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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밝은 표정속 가족과 「조용한 하루」/김대통령 어제 68회 생일

    ◎특별한 행사없이 친지 20여명과 조찬 김영삼대통령은 23일 68회 생일을 맞았다.부인 손명순여사도 오는 25일이 역시 68회 생일이다.지난 주말에는 막내딸 혜숙씨가 딸을 출산해 경사가 겹친 셈이다. 게다가 전날 이회창전총리의 신한국당 영입이 발표됐다.김대통령은 생일인 이날 가족들과의 조찬 및 수석비서진 인사모임 이외의 특별한 행사는 갖지 않았지만 시종 밝은 표정이었다고 청와대 관계자들이 전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관저에서 가족 20여명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5명의 여동생들 내외,두 아들 내외,막내 사위 등이 참석했다. 김대통령은 이어 집무실 옆 서재로 자리를 옮겨 김광일비서실장과 수석비서관으로부터 생일축하인사를 받는 자리에서도 나이를 화제로 가벼운 대화를 주고 받았다. 김대통령은 『원 호적에 실제보다 나이가 한살 적게 돼 있어 어릴 때 막내 취급받는게 싫어 바로 고치려 했더니 면서기가 한살은 정정이 안된다며 두살을 정정,결국 호적 나이가 실제보다 1살이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한편 황락주국회의장,윤관대법원장,김용준헌재소장,김윤환신한국당대표,김대중국민회의총재,김종필자민련총재,서울대총동창회,헌정회 등이 난화분을 보내 김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했다.이수성총리등 국무위원 일동은 국궁(활)을 선물로 보내 왔다.또 음성꽃동네 오웅진신부는 사과 1상자와 쌀 1부대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 환경정책/정종택장관 인터뷰(올해 국정 이렇게)

    ◎“대기오염물질 총량 연 14% 감축”/1조3,145억원 투입 환경기초시설 확충/시민대표 참여하는 수질검사 체계 마련 올해를 「체감환경 개선의 해」로 선언한 정종택환경부장관은 20일 서울신문 이경형사회부장과의 인터뷰에서 『체감환경지수개발,대기오염물질 발생총량규제,사업장의 폐기물 감량목표제 도입 등 생활현장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정책을 중점 개발,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그는 『환경의 중요성 등을 홍보하기위해 앞으로 중앙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와 주민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세일즈 맨」역할을 하는데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올해안에 「체감환경지수」를 개발,매일 발표하겠다고 했는데 구체적인 계량화작업이 이뤄지고 있습니까. ○환경 체감지수 개발 ▲막연하게 『대기중 아황산가스농도가 얼마다,매연이 어느 정도다』라는 등의 수치로는 국민들이 환경오염의 정도를 실감할 수 없습니다.환경오염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는 여러가지 평가항목을 종합적으로 계량화함으로써 이 수치를 보면 환경의 상태를 곧바로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이같은 체감지수가 개발되면 주민들은 특별한 전문지식이 없더라도 그날그날의 지수를 보고 『오늘 환경상태는 괜찮구나,또는 환경상태가 좋지않으니 오염유발요인등을 제거하는데 노력해야 하는구나』는 등의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대기오염은 더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닙니까. ▲대기오염은 각종 공사등에서 발생하는 먼지와 자동차등에서 발생하는 매연이 주범입니다.이에 대한 대책으로 우선 청정연료의 확대를 들 수 있습니다.수도권의 경우 아직도 벙커­C유를 사용하고 있는 아파트를 97년까지 전량 청정연료인 LNG로 바꾸고 이에 앞서 올해는 약 1백만t의 일반연료를 LNG로 전환시킬 예정입니다.또 발전소에 탈황시설을 설치하는등 오염정화시설의 확충을 통해 산업체 및 아파트가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 총량을 연간 2백88만t에서 14% 줄어든 2백50만t으로 감축할 계획입니다.아울러 상반기중에 8백㏄이하의 경자동차는 생산때 반드시 저공해 배기장치를 부착토록하고 현재 운행중인 서울시내버스,청소차등도 매연저감장치를 부착토록 해 자동차매연을 줄여나갈 생각입니다. ­올해도 지난해에 이어 계속되는 가뭄으로 남부의 여러지역이 제한급수를 받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지방자치단체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라고 합니다. ○청정연료사용 확대 ▲가뭄으로 식수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우선 암반관정개발과 비상송수관개발에 필요한 예산을 그때그때 지원할 생각입니다.또 광역상수도와 달리 국고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시·읍 등 지방중소도시의 상수도 개발에 올해 3백억원을 지원할 예정입니다.농어촌지역도 생활용수개발을 위해 4백억원의 추가지원 계획을 세워두고 있습니다.도서지역은 주요도서에 저수지를 만들어 인근도서에 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토록 하는 종합대책을 강구중 입니다. ­최근 환경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수돗물을 믿을 수 없어 생수를 마시거나 끓인 물을 마신다고 답변했습니다.『수도물이 최고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은 백년하청 입니까. ▲수돗물의 수질을 높이는것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중요과제중 하나입니다.맑은 물 공급을 위해 관계부처와 합동으로 올해 1조3천1백45억원을 들여 환경기초시설 신·증설,하천바닥밑을 흐르는 복류수 개발,강변여과수 개발,식수전용저수지 개발 등 각종 사업을 추진중 입니다.또 침전·여과방식의 재래식 정수공법에 활성탄과 오존처리를 추가하는 고도정수처리공법을 98년까지 도입하게 됩니다.15년이상 된 낡은 수도관은 97년까지 모두 교체하고 시민대표가 공동참여하는 수질검사체계가 마련되면 수돗물의 공신력은 크게 높아질 것입니다. ­지방자치제가 본격화되면서 자치단체등이 지역재정등을 이유로 지역개발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지역환경보전이 뒷전으로 밀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수돗물 공신력 제고 ▲꼭 필요한 지역개발은 지원하되 자연보전과 조화를 이루는 환경친화적 개발이 되도록 할 방침입니다.또한 중앙부처등의 개발사업에서도 환경영향평가,국토이용계획변경협의 등을 통하여 대안을 마련하도록 하고 환경적으로 민감한 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입지 및 규모를 제한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지역의 쓰레기매립장건설등 환경기초시설 설립 등 때도 환경관리공단등 전문기관이 시설진단 및 기술지도 등을 하도록 해 지역의 환경시설 설치노력을 간접적으로 뒷받침할 계획입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지적됐습니다만 각종 개발사업때 받도록 돼 있는 환경영향평가제도가 대행기관의 엉터리 평가등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환경평가서를 부실하게 작성한 평가대행업체에 대해서는 업무정지등 강력한 행정조치를 내렸지만 지적하신대로 행정조치만으로는 미흡한 게 사실입니다.지난해 10월 환경평가에 참여한 전문가들에게 평가서에 이름을 기록토록 하는 「평가실명제」를 도입했고 보다 근원적인 대책마련을 위해 환경평가업무를 전문적으로 지도·감독할 환경평가연구원(가칭)을 정부산하기관으로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중 입니다. ­환경문제는 이제 주변국가와의 협력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구체적인 협력방안이 있습니까. ▲한반도주변지역은 대기오염물질의 장거리 이동문제,황해오염문제,동해의 핵폐기물투기 등이 현안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동안 일본,중국,러시아 등과 환경협정을 체결하고 공동위원회등을 개최해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해 왔습니다.올해도 6월경에 한중 환경장관회담을 비롯,한중일 실무회의,동북아 환경협력회의 등의 다자간 회의를 통해 동북아 주변의 환경보전을 위한 대책등을 모색할 예정입니다.다만 북한이 아직 이같은 환경협력체계에 참여하지 않아 아쉬움으로 남아있습니다.북한의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이 올해 사업으로 비무장지대와 인접지역의 생태계를 항구보존하자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습니다.정부가 구상중인 생태계조사계획이나 이들 지역의 보존대책 등을 소개해 주시지요. ▲비무장지대주변은 세계적인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보존가치가 매우 높습니다.정부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비무장지대 중서부지역의 생태계조사를 실시해 보존대책등을 강구할 생각입니다.아울러 전국적인 생태계조사도 벌여 산위주의 관리뿐아니라 하천,갯벌,해안선,섬 등도 다각적으로 관리할 방침입니다. ◎21세기 환경비전은 어떤 내용/녹색도시 10곳 건설 하수처리율 80%로/2천5년까지/다목적댐 8개소 개발 지난 연말 세계화추진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 「21세기 환경비전」은 환경모범국가로의 도약을 구체화하는 청사진을 담고 있다.선진국으로 접어드는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를 맞아 성장과정에서 도외시됐던 환경문제를 올해부터 2005년까지 10개년에 걸쳐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종합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모두 77조원이 투입되는 녹색환경사업에는 환경의 훼손여부가 국민소득에 반영된 그린 GNP(녹색국민소득) 개념의 도입,녹색도시의 조성,식수전용댐 건설등의 환경친화적인 건설사업을 총망라하고 있다. 각종 환경개선 수치만 봐도 이번 사업의 전략을 어느정도 가늠할 수 있다. 우선 대기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대기환경기준을 2005년까지 세계보건기구(WHO)권고기준으로 강화하고 울산등 오염이 극심한 지역은 아황산가스·먼지등의 발생한도를 설정하는총량규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청정연료확대등 각종 대기 오염저검대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면 아황산가스의 농도가 평균 0.023㎛에서 0.008㎛ 수준으로 낮추어지는등 도심공기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될 것이라는게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또 국민의 급증하는 환경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도시개발의 이상적인 모형을 미래형 녹색도시로 두고 민통선 부근 파주군 장단면 통일촌과 대전시 둔산지구등 5개 신도시를 생태도시 시범지역으로 설계하는 등 자연생태계의 본래의 모습에 가까운 21세기 녹색도시 10여곳을 조성한다는 복안도 포함돼 있다. 물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다목적댐 8개소를 개발하고 대구·부산등 대도시주변에는 식수전용댐을 2∼3개씩 건설,각종 재해 때 최소한의 식수는 공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국 하천의 수질기준(3㎛) 달성률이 30%에 불과한 것을 오염관리를 통해 목표연도인 2005년에는 95%로 높이고 하수처리장등 기초시설도 연차적으로 확충,현재 42%에 불과한 하수처리율을 80%로 높인다는 복안이다.◎정장관의 환경마인드와 인사 스타일/70년대초 음식안남기기 운동 전개/부내간부 투표로 뽑아 눈길 끌기도 정종택환경장관은 언제나 봐도 매끄럽다.그리고 아이디어가 풍부하다. 과천 제2정부종합청사의 장관집무실에서 지난 50여분간의 인터뷰가 끝날 무렵 슬쩍 심기를 건드렸다. 『장관 취임직후인 작년 연말 환경부 기획관리실장을 「인기투표」로 뽑았는데 앞으로도 그렇게 할것인지 가부만 밝혀달라』고 질문했다. 정장관은 갑자기 손부터 저으면서 『무슨 소리』라고 되받고는 속사포로 말을 이었다. 『20여년전 도지사,노동청장으로 부임한 직후에도 그같은 투표를 했어요.당시는 외부 청탁을 막는 방패가 되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컨센서스가 도출되었지요』『지난번엔 청렴성,능력,성실,연공서열 등을 기준으로 실국장과 해당실 과장 상대로 추천을 받은 것인데 사실은 이미 차관으로부터 추천을 받은 인물과 동일해 임명했지요.물론,다음엔 그런 절차는 필요없을 것입니다』 11대부터 국회의원을 연거푸 3번 했고 장관도 농수산,정무장관에 이어 이번이 3번째지만 그에게 과연 「환경마인드」가 있는지 궁금했다. 『지금까지 환경단체의 회원으로 가입해본 적이 있습니까』고 따지듯 물었다. 정장관은 금새 열을 올리며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는 70년대초 청와대 새마을담당비서관 시절부터 「음식물 안 남기기」운동을 폈다며 이것이 곧 「집안쓰레기 줄이기」의 시발점이자 작은 환경운동의 하나라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까다로운 질문을 하나 더 던졌다.『요즘 서울외곽 북한산에 들고양이가 많아 토끼나 다람쥐 등의 씨를 말린다고 하여 「고양이 덫」을 놓자는 의견과 「그대로 두자」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데 환경장관으로서는 어느 쪽에 찬성합니까』 그는 이 질문에 진짜 「덫」이 있는지 잠시 머뭇거리다가는 『그같이 구체적인 사안까지는 알 수 없다』고 전제한뒤 『우선은 들고양이로 인한 피해정도를 정밀조사하는 등의 사전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고 답변했다. 산전수전 다겪은 노련한 행정가의 면모가 번득였다.자칫 한쪽 의견을 제시했다가는 동물애호단체나 자연보존협회로부터 공격을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미­중 갈등의 대한파장/이석우북경특파원(오늘의 눈)

    중국정부는 18일 저녁 미국 대사관의 공군 무관1명에 대한 본국 소환요구를 발표했다.최근 미국에 대해 표면상 한층 부드러워진 중국의 태도로 볼때 이유야 어떻든 사실상 외교관추방에 해당하는 이번 조치는 기습적이라고까지 할만하다. 중국국가주석 강택민은 지난 10일과 15일 중남해 집무실에서 부시 전 미국대통령과 다이안 파인스타인등 미국상원의원단의 개별예방을 받고 두 나라의 건설적 관계를 강조하는 기분좋은 모습으로 뉴스시간에 등장했었다.남중국해의 가스생산을 기념,중·미 합작사업 및 미국기업인의 역할을 치하하던 지난주 이붕 총리의 동정도 주요뉴스로 처리되는등 두 나라는 이원족 대만부총통의 미국 통과비자발급에도 불구,순조로운 출발을 보인듯했다. 그러나 중국정부가 군사기밀구역의 불법 정보수집을 이유로 미대사관의 거드스 공군중령에 대한 소환을 요구한 것은 중·미관계 개선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북경외교가에선 중국의 결정을 이원족 대만부총통에 대한 비자발급등 「비우호적 정책을 포기치 않는」 미국에 대한 경고 메시지로 해석하는 분위기다. 어쨌든 이번 조치에 대해 미국이 크게 반발하지 않은채 받아들이기로 함에 따라 그 파장이 크게 번질것 같지는 않다.하지만 이러한 중·미 갈등과 균열은 중국의 역량과 행동반경이 늘어날수록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의 주의를 요한다.두 나라의 균열이 심해지면 한반도의 안정과 통일엔 직접적인 악영향을 피하기 어렵다.중국은 한국전쟁을 민족내전에 간섭해온 미국제국주의의 침략을 막아내고 북조선을 도운 전쟁이란 의미에서 「항미원조」라고 표현한다. 최근들어 항미원조의 의의가 강조되고 있는 것도 대미관계의 악화 및 군부의 발언권확대와 무관치 않는듯 보인다.중국 당국이 올들어 전국민대상의 우수영화로 한국전쟁 다쿠멘터리인 「항미원조 기실」을 추천하고 전국 극장들에서 상영키로 한것이나 전쟁기념관에 항미원조기념관을 설치키로 한 것도 이와 맥을 같이한다. 미국과 중국간에 갈등이 심화되면 될수록 중국은 반미구호를 더욱 높일 것이고,그러면 그럴수록 미국과 중국 중간에 끼여있는 한국의 입장이 난처해질수밖에 없을 것 같아 씁쓰레한 뒷 맛을 남기고 있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전씨 수사검찰발표

    ◎전씨 뇌물공여자·측근·친인척 등 430명 조사/집권후기 고위직 동원 대선자금 명목 거액 거둬/출처불명 비자금 조성 경위·은닉 재산 계속 추적 ▷수사경위◁ 1.수사착수배경 ○서울지방검찰청은 오늘 전두환전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과한 법상의 뇌물수사 혐의로 공소제기하였음 ○검찰이 12·12사건,5·18사건의 수사와 병행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사건을 수사하게 된 것은 ­동인이 지난 1988년 11월23일 국민여론의 지탄 속에 백담사로 출발하면서 「국민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대국민사과성명을 통하여 『연희동 집 두채,서초동 땅 2백평,용평콘도(34평)1개,골프회원권 2개,금융자산 23억원 및 여당총재로서 사용하다가 남은 잔액 1백39억원 등 자신의 전재산을 국고에 헌납하고 숨겨진 다른 재산이 있으면 어떠한 책임추궁도 감수하겠다』고 공언하였음에도 ­퇴임후 계속하여 측근들을 관리하는 등 그 씀씀이가 거의 달라지지 않아 「동인이 재직중 엄청난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였고 퇴직후에도 이를 은닉해 두었을 것」이라는세간의 의혹이 끊어지지 않고 있던 중 ­금융실명제 실시 이래 끊임없이 나돌았던 「정체불명 비자금설」및 「전직대통령 4천억원 비자금설」이 그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면서,마침내 지난해 10월 「노태우전대통령 부정축재등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두환전대통령의 수뢰혐의와 관련된 구체적 자료들이 입수되었기 때문임. ­검찰은 이 사건 역시 노태우전대통령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헌법사상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권력형 부정부패사건」임을 직시하고,그 진상을 낱낱이 밝혀 엄정하게 처리함으로써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아울러 정경유착의 폐해를 뿌리뽑아 왜곡되어 온 우리의 역사를 바로 잡겠다는 사명감에서 이 사건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를 개시하게 된 것임. 2.수사경과 ○이에 따라 서울지방검찰청은 ­1995년 12월7일부터 전두환전대통령의 뇌물수수와 관련,뇌물공여자인 기업체 대표 42명등 기업관련자 1백60여명을 조사하였고 ­수수된 자금의 조성 및 관리와 관련하여,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전 은행감독원장 이원조를 비롯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의 측근,친·인척,금융기관 관계자등 2백70여명을 조사하였고 ­압수수색영장에 의하여 1백83개의 시중 금융기관 계좌 및 5백50매의 채권증서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자금추적을 실시함과 아울러 ○전두환전대통령 본인에 대하여도 6회에 걸쳐 심문,조사를 실시하였음. ▷금품수수◁ 1.수수규모 ○전두환전대통령은 검찰이 특별수사부 검사 6명등 수사력을 집중투입하여 추적의 강도를 더해가자 수수금원의 조성경위에 관하여 『재임기간중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까지 포함한 기업체의 대표들로부터 일해재단·새세대육영회 기금,새마을성성금의 모금등과는 별도로 자금 7천억원 상당을 수수하였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였음. ○이에 따라 검찰은 금원 재공자,뇌물성 여부,자금의 행방등을 철저히 수사하였으나 ­범행후 15년 내지 8년 이상이 경과되어 관계자료의 폐기,보유 금융자산의 무기명 내지 가·차명화,관련자의 소재불명,기억소멸등으로 수사에 어려움이 있어 그 정확한 액수와 성격은 계속 추적중에 있고 ­현재까지 증거를 바탕으로 뇌물죄의 성립을 밝혀낸 금액은 기업체 대표 42명으로부터 최고 2백20억원,최저 2억원을 교부받아 조성한 총 2천1백59억5천만원임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과 별도로 기업인들을 상대로 새마을성금 1천4백95억여원,일해재단 기금 5백98억원,새세대육영회 찬조금 2백23억원,심장재단 기금 1백99억원 등 합계 2천5백15억원의 각종 성금 및 기금등을 조성함으로써,동인이 제5공화국 기간동안 기업인들로부터 거두어들인 금액은 총9천5백억원을 상회함. 2.기업 등으로부터 공여된 자금의 성격과 형태 ○전두환전대통령이 기업인등으로부터 수수한 위 2천1백59억5천만원은 기업체 대표등으로부터 특정사업의 수주나 세금의 감면등 이권과 관련하여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행사에 대한 대가로 제공되었거나 포괄적으로 기업경영과 관련하여 선처해 달라는 등의 취지에서 제공된 것으로서,모두 대통령의 직무와 관련하여 수수한 뇌물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는 바 ○동인은 행정부의 수반으로서 행정각부의 장들을 지휘·감독하여 각종 재정·경제정책을 수립,시행하는 과정에서 국책사업자 선정,신규사업의 인·허가,금융지원,세무조사 등 기업활동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행사할 수 있는 직무와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주로 기업체 대표들을 은밀히 단독으로 만나 특정사안에 대하여 특혜를 부여하거나 해당기업의 현안문제에 관심을 표명하는 등의 방법으로 거액의 금품을 수수하였으며,이를 대별하여 보면 첫째,뇌물공여기업측이 공사발주등 특혜를 받은 사안으로 ­1986년 12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동아그룹 회장 최원석으로부터 4회에 걸쳐 1백80억원을 수수하였는바,동아그룹은 전두환전대통령 재임중 인천매립지의 정부매수 회피,원자력발전소 건설,댐 건설등 대형 국책공사를 수주하였고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으로부터는 7회에 걸쳐 2백20억원을,전 삼성그룹 회장 이병철로부터는 8회에 걸쳐 2백20억원을,대우그룹 회장 김우중으로부터는 6회에 걸쳐 1백50억원을 각 수수하였는바,이들 기업들 역시 고속도로 건설공사수주,차세대 전투기 사업,반도체 사업,율곡사업등 각종 대형 이권사업에 본격진출한 것으로 나타났음. 둘째,세무조사등 선처명목으로 기업체 대표 등으로부터 금품이 공여된 사안으로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은 1986년 12월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 70억원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공여하고 조사중이던 세무조사와 관련,부과추징되어야 할 세금 2백억원을 감면받은 사실등이 확인되었으며 셋째,한진그룹 회장 조중훈으로부터는 1983년 10월께 청와대 인근 안가에서,그무렵 소련영공에서 발생한 대한항공 소속 케이이(KE)007 여객기 격추사고에 대한 불이익 방지의 취지로 제공하는 30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김포공항 여객기 추락사고에 대한 무마등 명목으로 5회에 걸쳐 1백60억원을 수수하였는바,이는 사건·사고에 따른 불이익 방지차원에서 제공된 뇌물이라 할 것이고 넷째,각종 인·허가와 관련하여서도 금품이 제공되었는 바 ­1984년 11월 하순경 청와대 대통령집무실에서,국제그룹 회장 양정모로부터 통도골프장 건설 내인가를 해주어 사업승인을 받도록 영향력을 행사하여 준 데 대한 대가로 3개월 만기의 10억원권 약속어음 1매를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골프장 설립과 관련하여 애경그룹 회장 장영신 등 4개 기업체의 대표로부터 합계 45억원을 수수한 것이 그 예라 할 것임. 끝으로,기업경영에 수반되는 각종 금융·세제,국책사업 참여등 기업전반의 경영상의 불이익 방지 차원에 선거자금 명목으로 제공된 뇌물의 예로는 ­전두환전대통령은 특히 집권후기에 이르러 안현태전경호실장,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사공일전재무부장관,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등 고위공직자들을 동원하여 중소기업에 이르기까지 대선자금 지원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집중적으로 수수한 사실등이 이에 해당됨. *기업체별 뇌물수수내역은 별첨 3.뇌물수수의 방법 ○전두환전대통령은 청와대 경호실장 등으로 하여금 기업체 대표들과의 비공식 면담을 주선하게 하여 본인이 직접 뇌물을 수수하거나,국세청장·은행감독원장·안기부장등에게 지시하여 기업인등으로부터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는 바 ○현재까지의 수사결과 밝혀진 뇌물수수의 방법중 특이한 경우로는 ­경호실장 안현태가 위와같이면담을 주선하여 전두환전대통령이 수수한 금액은 4백억원,경호실장 장세동의 주선으로 수수한 금액은 2백억원 ­국세청장 성용욱,국가안전기획부장 안무혁등으로 하여금 조성하게 하여 수수한 금액은 1백14억5천만원 ­은행감독원장 이원조의 주선으로 수수한 액수는 30억원으로 밝혀졌음. 4.조성관여자들의 행위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 ­1985년 2월20일부터 1988년 2월25일까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근무하면서,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기업 회장들에게 금원을 제공하도록 적극적으로 권유하거나 전두환전대통령과의 비공식 단독면담을 주선하는 방법으로 ­1985년 7월부터 1987년 10월까지 동아그룹 회장 최원석등 9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4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고 ­1986년11월 하순경 미원그룹 회장 임창욱으로부터 당시 미원그룹에 대하여 실시하고 있던 국세청 세무조사와 관련하여 대통령에게 세금감면을 부탁할 수 있도록 면담을 주선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5천만원의 뇌물을 수수하였음. ○성용욱(전국세청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3월5일까지 국세청장으로 근무하면서 기업체 대표들이 자신의 요구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점을 이용하여 ­1987년 10월경 대한전선그룹 회장 설원량으로부터 세무업무와 관련하여 선처하여 달라는 취지로 제공하는 15억원을 교부받은 것을 비롯하여 11개 중견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뇌물을 교부받아 전두환전대통령에게 대선지원금으로 상납하였고,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6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안무혁(전국가안전기획부장) ­1987년 5월27일부터 1988년 5월7일까지 국가안전기획부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10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국세청장인 성용욱으로 하여금 위와같이 11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합계 54억5천만원의 자금을 조성하게 하였음. ○사공일(전재무부장관) ­1987년 5월26일부터 1988년 12월4일까지 재무부장관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께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대농그룹 회장 박용학등 5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합계 1백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이원조(전은행감독원장) ­1986년 1월13일부터 1988년 4월15일까지 은행감독원장으로 재직하던중 1987년 8월경 전두환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코오롱그룹 회장 이동찬등 2개 기업체 대표들로 하여금 전두환전대통령에게 합계 30억원을 제공하게 하였음. ▷자금관리·사용◁ 1.재직중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재직중 위와 같이 조성한 자금을 본인이 직접 총괄하면서 1985년 2월24일경까지는 경호실장 장세동에게,그 이후는 경호실장 안현태에게 각 관리하도록 지시함과 아울러 당시 총무수석 이재식 및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으로 하여금 은행,신탁회사 등 금융기관의 입·출금업무를 전담하게 하였음. ○김종상이 관리한 예금계좌에서는 ­한국·대만·국민 등 3개 투자신탁회사와 서울·조흥·제일·신한 등 8개 시중은행 38개 점포에서 「경호실」,「박경호」,「김경호」등 가명을 사용하여 거래하였음이 판명되었다. ­자금의 관리방법으로서 최대한 외부노출을 피하면서도 높은 수익을 얻기 위한 방편으로 매회 20억원 내지 50억원을 수억원 단위로 나누어 금리가 높은 개발신탁예금,수익증권정축,기업금전신탁,정기예금으로 분산예치하거나 양도성예금증서(CD)또는 무기명채권 등을 매입하면서 이자소득세가 면제되는 「경호실」등 기관의 사업자등록번호를 위장사용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1987년 4월중순경부터 그해 12월말까지 대부분 1천만원권 또는 1억원권 고액수표로 집중 인출되어 무기명채권 구입자금으로 사용되었음. ○한편 전 청와대 총무수석 이재식은 김종상이 관리한 규모 이상의 자금을 관리하면서 투자신탁회사의 장·단기 공사채 매입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추정되자,1995년 12월14일 검찰이 김종상에 대한 조사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자 같은 날 캐나다로 출국,도피하여 동인이 관리해 온 자금 전부를 규명하는 것은 상당한 기간이 소요될 전망임. 2·자금의 사용 및 퇴임후 남은 돈의 관리 전두환전대통령은 위 7천억원 상당의 조성자금에 대하여 구체적 사용항목의 진술을 거부하면서 ­퇴임시까지 친·인척 관리자금,정당 창당자금 등으로 사용하고 남은 자금은 약1천6백억원 상당이고 ­그 내역은 한국산업은행 발행 산업금융채권 약9백억원,장기신용은행 발행 장기신용채권 약2백억원,현금 및 예금 약5백억원 등 항시 처분가능하고 유동성 있는 금융자산으로 보유해 왔다고 주장하고 있음. ○검찰은 위와같이 전두환전대통령이 현재 채권과 예금 등 상당액의 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용처와 보유형태 등에 대하여는 밝히기를 거부하면서 자료제출 요구에 불응하고 있어 자금의 구체적인 사용처 및 현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밝히기 위하여 김종상이 관리한 계좌 및 퇴임전후에 매입한 금융채권 등을 중심으로 계속 추적중에 있음. ▷관련자 조치◁ ○뇌물수수자인 「전두환전대통령」에 대하여 ­1996년 1월1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추가기소하고 ­동인의 현 보유재산 상황을 파악,「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특례법」에 따라 몰수·추징의 보전청구를 할 방침임. ○뇌물수수를 방조하거나 수수한 뇌물을 상납한 관련자중 ­그 죄질이 중한 안현태·성용욱은 각 같은 날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등으로 구속기소하고 ­안무혁은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의 공범으로,사공일·이원조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방조로 각 같은 날 불구속기소하며 ­장세동은 1984년 12월 이전의 범행으로 공소시효 완성되어 불입건 조치하였음. ○뇌물공여 기업체 대표들에 대하여도 공소시효 완성으로 법리상 처벌이 불가능하여 불입건 조치하였음. ▷향후 수사 계획◁ ○검찰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회적 근간을 뿌리채 흔들어 놓은 전직대통령 등의 부정축재와 정경유착 등 비리를 과감히 척결함으로써 흐트러진 국가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역사적 소명의식 아래 최선을 다하여 수사에 주력해 왔음. ○그러나 전두환전대통령이 아직도 모든 진실을 털어놓지 아니하고 있고 자금추적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전체적인 진상확인에는 장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므로 일단 전두환전대통령을 비롯한 일부 자금조성 관여자들을 우선 기소하고 ○앞으로도 계속 수사력을 집중하여 아직까지 명백히 밝혀지지 아니한 이 사건 자금의 나머지 조성경위와 자금의 사용처 및 현재의 보유재산 은닉상황 등을 계속 수사해 나갈 것임.
  • 안현태·성용욱씨 구속/검찰

    ◎「전씨 비자금」 400억 알선·수뢰 혐의/안무혁의원 불구소 입건/전개국·전경환씨 금명 소환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0일 안현태전청와대경호실장(59)과 성용욱전국세청장(60) 등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조성에 개입한 핵심측근 2명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뇌물수수·뇌물수수방조)등 혐의로 구속했다. 이들은 이날 밤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검찰은 또 성씨에게 지난 87년 10월 대통령선거 자금을 모금하자고 제의한 뒤 성씨가 기업체로부터 거둔 뇌물을 전 전대통령에게 전달한 안무혁전안기부장(59·신한국당 국회의원)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이본부장은 『안전안기부장은 87년 9월 선거자금이 필요하니 자금을 조성해 보라는 전 전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성씨와 함께 기업체명단을 작성했으나 성씨가 모금한 자금을 전 전대통령에게 전달하는 중간역할만 해 불구속입건했다』고 밝혔다. 이본부장은 이어 『그러나 성씨는 국세청장의 지위를 이용,자리보전을 위해 기업인들을 상대로적극적으로 자금조성을 주선한 혐의가 드러나 구속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에 따르면 안전경호실장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재직하던 86년 9월부터 87년 10월까지 세무조사에서 선처해 준다는 명목으로 미원그룹 임창욱회장에게 70억원을 내도록 하는 등 대농·진흥·한화·쌍용·동아·금호·대림 등 8개 그룹회장이 전전대통령을 단독 면담하도록 자리를 알선,10억∼70억원씩 모두 2백80억원의 비자금을 전 전대통령에게 건네도록 주선한 혐의를 받고 있다. 안씨는 또 86년 11월 미원그룹 임회장을 경호실장 사무실에서 만나 세무조사와 관련한 선처를 위해 『대통령 면담을 주선해 달라』는 청탁과 함께 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성씨는 87년 10월 (주)삼천리 이장균대표로부터 세무조사 선처를 빌미로 5억원을 받는 등 한일시멘트·동아제약 등 11개 기업체 대표들로부터 모두 54억5천만원을 뇌물로 받아 안씨를 통해 전전대통령에게 대선자금으로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성씨는 또 지난 87년 10월 국세청장집무실로 찾아온 신격호롯데회장에게 『대통령의 지시로 롯데그룹과 회장개인에 대한 기초자료를 수집하고 있다』고 세무조사 실시 정보를 흘린 뒤 『50억원 정도만 제공하라』고 요구,87년 9월부터 같은 해 12월까지 롯데 등 2개 기업체로부터 60억원을 제공토록 알선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전 전대통령에게 돈을 준 관련기업체대표들은 특가법상 뇌물공여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처벌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전씨를 특가법상 뇌물수수혐의로 12일쯤 추가 기소한다는 방침아래 전씨의 맏아들 재국씨와 동생 경환씨도 금명간 소환·조사키로 했다.
  • 이건희회장 조촐한 54회 생일/출근 않고 자택서 경영구상 몰두

    이건희삼성그룹회장이 9일 54회 생일을 「쓸쓸하게」 맞았다.한남동 자택에서 조촐하게 가족들과 함께 생일상을 받은 것은 예년과 같다.그러나 매년 이날 신라호텔에서 이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으로 개최했던 「자랑스런 삼성인 상」 시상식을 올해는 열지 않았다.뒤로 미뤄졌다. 이에 대해 삼성의 한 관계자는 『상식선에서 생각하면 이해가 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15일로 예정된 비자금 파문 2차 공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자랑스런」 상을 수여하기는 어색하다는 얘기다. 비자금 파문 이후 이회장은 삼성본관 집무실에 일체 발길을 끊다시피 했다.검찰 수사결과 발표 직후 사내방송을 통해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담화문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정부논리를 반박하는 방향으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원고까지 준비했다가 취소했다.연말 사장단회의도 작년말부터 없앴다.3일 그룹 시무식에도 모습을 나타내지 않고 신년사도 강진구삼성전자회장에게 대독시켰다.지난 5일 김영삼대통령과 재계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한상의 주최로 열렸던 신년인사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10일 전경련 회장단회의 및 나웅배부총리 등과의 오찬에도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자숙하는 태도를 표현하는 나름대로의 방식일 것이다. 이회장은 요즘 자택과,자택에서 승용차로 2∼3분 거리인 승지원을 오가며 칩거중이다.자동차 및 해외사업 등 경영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고 한다.맞수 현대가 2세 체제로 바뀌면서 신임 정몽구회장이 재계의 향도역할을 자임하고 나서는 데 대해서도 묵묵부답이다.아무튼 이회장의 칩거와 침묵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 ’95 풍미한 말·말·말…/「통치자금」 검은 돈의 대명사로

    ◎교도소 수감자 「개털」·「범털」에 「봉황털」 추가/대형사고 빗댄 「무서워」 시리즈 무섭게 번져/「태우는 기가막혀」·「방랑하는 전삿갓」 애창 어처구니없는 사건·사고가 잇따른 올해에도 사건·사고의 파문만큼이나 숱한 신조어가 생겼다.특히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과 관련된 다양한 유행어들이 대중가요의 변형이나 매스컴을 타고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 가운데 가장 인기를 끈 것은 「통치자금」.대통령의 통치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사용하게 된 돈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해 나온 이 용어는 시중에서 탈법을 위해 회계장부에 올리지 않은채 숨긴 「검은 돈」의 대명사로 활용됐다.「안방비자금」은 「통치자금」의 아류.김옥숙씨가 노씨와는 별도로 수백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빗댄 말로 주부들끼리 계모임 등에서 『안방비자금(남편몰래 갖고 있는 돈)으로 한턱 써라』는 말로 통용되기도 했다. 전직 대통령의 구속사태와 관련한 대중가요 변형도 세태풍자에 한몫 거들었다.「태우는 기가 막혀」 「방랑하는 전삿갓」등이 그 예다.「태우는 기가 막혀」는 듀엣 「육각수」가 부른 「흥보가 기가 막혀」의 변종이며 「방랑하는 김삿갓」은 가수 명국환이 부른 「방랑시인 김삿갓」에서 나온 것.전두환씨가 장교시절 이 노래를 애창했다는 일화가 MBC 정치드라마 「제4공화국」에서 소개된뒤 유행병처럼 번졌다.또 전직대통령이 수감된 교도소내 재소자들사이에는 「개털·범털」에 이어 「봉황털」이란 신조어가 등장했다.청와대 집무실의 봉황그림을 본떠 전직대통령을 「봉황털」로 불러야 한다는 일부 재소자들의 조소섞인 말이다. 또 삼풍백화점붕괴사고와 대구도시가스폭발사고 등도 「무서워」시리즈와 「부실·사고공화국」「우째 이런 일이…」등의 유행어를 낳았다.「무서워」(무서운 전쟁)시리즈는 「무섭소」(무서운 소) 「무섭데이」(무서운 날)등 시리즈로 이어지면서 무섭게 번졌고 「우째 이런 일이…」는 잇단 참사에 대한 짜증의 발산어로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자연스레 등장한 지방사투리로 3년 연속 유행어목록에 올랐다.「부실·사고공화국」은 미국 CNN,일본 NHK등 전세계 언론들이 삼풍백화점붕괴사고를 다루면서 붙여준 이름. 삼풍참사때 극적으로 생환한 최명석군과 유지환·박승현양등이 구조된뒤 첫마디로 건넨 「콜라를 먹고 싶어요」 「커피를 주세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요」 등은 발랄한 X세대를 「인스턴트 매니아세대」로 인식되기도 했다. 대학가도 전직대통령의 구속과 관련된 신조어가 압권이었다.광고를 본뜬 「아무도 이 사람을 대통령으로 기억하지 않습니다.우리는 그를 범죄자로 기억합니다」는 올해 최고의 「카피」로 떠올랐으며 전직대통령은 「대도령」으로 바뀌었다.「땡전·땡노뉴스」의 부활도 관심을 끌었다.전씨·노씨 관련기사가 5·6공당시 대통령동정기사보다 더 많이 보도된 것을 빗댄 것으로 대학학보에까지 올랐다. 이밖에 「어솨요」(어서 오세요)「글쿤요」(그렇군요) 「방가방가」(반갑습니다) 「시로」(싫어요)등 PC통신용 은어는 일상어로 자리잡았다. 또 세태변화를 반영한 유행어로는 「간 큰 남자」 「머피의 법칙」등이 대표적이다.작가 김한길씨가 유행의 불길을댕긴 「간 큰 남자시리즈」는 슈퍼우먼시대를 살아가는 가부장들의 몸부림을 그려 폭넓은 공감을 얻은 끝에 같은 이름의 TV드라마까지 나왔다.
  • 한라그룹 2세경영 가시화/정몽원 부회장 기자 첫 대면

    ◎“행동·업무 전과 달라진 것 없어”/“이번 승진인사 나만 빠져” 농담 정몽원 한라그룹 부회장(41·정인영 회장 차남)이 27일 처음으로 기자들과 상견례를 가졌다. 이날 상견례는 최근 재계의 2∼3세 승계분위기와 맞물려 그의 경영전면 등장이 임박하지 않았느냐는 추측을 낳고 있다.그러나 그룹측은 이같은 추측에 공식으론 부인한다. 『분위기는 그렇지만 내놓고 얘기할 계제가 못된다』『아직 왕성하게 활동 중인 아버지(정 회장)와 미주지역 사업을 전담하고 있는 형(몽국)에게 누를 끼칠 수 있다』는 게 측근들의 얘기다.그룹 한 관계자는 『그동안 정부회장이 경영 이외의 대외 활동을 자제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젠 나설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말해 승계를 둘러싼 가족끼리의 조율이 어느 정도 이뤄졌음을 시사했다. 정 부회장은 그러나 이날 『나의 행동이나 업무가 예전과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이번 만남은 한해동안 돌봐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다.이날 단행된 임원인사와 관련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아버지는 남들은 모두 승진시키면서 나는 늘 제외시킨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지난 7월 정회장으로부터 한라시멘트 주식을 대량으로 넘겨받고 가끔 사장단 회의도 주재하는 등 2인자로서의 승계절차를 사실상 밟아왔다. 그 전에는 만도기계 공장에서 살다시피했으나 정몽국 부회장이 선박수주 등을 위해 미국으로 간 올 4월 이후 강남구 대치동 그룹사옥으로 집무실을 아예 옮겼다.최근엔 부회장 비서실의 기능도 강화해 어느 시점에 경영 전면에 나서느냐는 문제만 남은 상태다.
  • 「애연가 이 총리」 담배 계속 피울까/보건증진법 새해부터 시행

    ◎정부청사 대부분 「금연지대」로… 「대응」에 관심 「이수성 국무총리는 과연 담배를 계속 피울 것인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도 담배를 빼어 물곤 하는 골수애연가 이총리의 「거취」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보건증진법이 시행되는 새해 1월1일부터 세종로 제1종합청사가 대부분 「금연지대」로 탈바꿈하기 때문이다.이 법은 연면적이 3천㎡가 넘는 모든 건물에 흡연구역과 금연구역으로 분리해서 지정토록 하고 있다. 이총리가 담배를 계속 피울 수 있을지 없을지는 총리 집무실이 과연 금연구역으로 지정될 것인가,흡연구역으로 지정될 것인가에 달려있는 셈이다. 종합청사를 관리하는 정부청사수급관리소 생각은 이렇다.이 법의 취지는 담배를 안피우는 사람과 피우는 사람이 같이 있을 때,안피우는 사람을 보호하는데 있다.그렇지만 담배를 피울 권리 또한 보장을 해주어야 한다.따라서 사무실은 금연구역으로 지정하되,별도로 흡연구역을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총리를 비롯한 국장급 이상이 쓰는 1인 집무실이다.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는 곳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수급관리소는 그러나 1인집무실 역시 금연구역으로 분류한다.책상은 하나지만 혼자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라는 것이다. 관리소측은 국민보건증진법에는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웠다고해서 처벌하는 규정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다른사람을 생각하며 피우게 만들자는 취지라는 것이다. 법학자 출신인 이총리가 담배를 피울 것인지를 놓고 법규정을 따를 것인지,법의 취지를 따를 것인지 관심거리다.
  • 95 북한 10대 뉴스/내외통신 선정

    올해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북한 뉴스로는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 피해를 발생시키며 북한 전역을 초토화시켰던 수해사태가 꼽혔다.내외통신이 연말을 기해 선정한 「95 북한 10대 뉴스」에는 분단 반세기만에 최초로 남한 쌀 15만t의 대북 지원에 합의한 「남북한 쌀회담」,「북­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경수로협상 타결」등이 상위 순위에 올랐다.북한 관련 10대 뉴스와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최악의 수해◁ 지난 7월말부터 8월 중순에 걸쳐 신의주 등 서북부 지역을 강타한 집중호우는 50만명의 이재민과 막대한 재산피해 등 북한사상 최대의 수재로 기록됐다.유엔인도국 조사단이 북한 전국토의 75%가량이 수해를 입었다고 유엔본부 외교단에 보고한 이번 수해로 북한은 전세계를 상대로 긴급 구호요청에 나서야 했다. ▷남북 쌀회담◁ 남북한은 6월17일부터 4일동안 북경서 차관급 쌀 회담을 열고 북한측에 쌀 15만t을 전량 무상제공키로 합의했다.남한 쌀 2천t을 실은 씨 아펙스호가 6월25일 청진항에 첫 입항,남북화해의 새 이정표를 세웠다.그러나 뒤이어 터진 씨 아펙스호 인공기 강제게양 및 삼선비너스호 억류사건등으로 남북관계의 새 앙금만 남겼다. ▷경수로협상 타결◁ 지난해 10월 채택된 북­미 제네바 기본합의에 따라 경수로 공급협정 체결협상을 진행해오던 양측은 12월15일 협정문에 서명했다.그동안 큰 입장차이를 보이던 경수로 건설공사내용중 ▲송배전 시설과 핵연료 가동공장 건설비용은 북한이 부담하고 ▲경수로 발전소 부지내 도로 건설과 모의안전시험대 등은 KEDO가 부담하기로 합의했다. ▷86우성호 억류◁ 5월30일 북방한계선 북방 16마일 해상에서 항로를 벗어난 한국선박 86 우성호가 북한경비정에 피랍됐다.북한은 남북 북경쌀회담서 우성호의 인도적 송환에 응할 뜻을 비췄다.그러다가 군부의 입김이 작용한듯 9월20일 중앙통신 보도를 통해 『공화국 법률에 따라 처리할 것』이라며 강경 입장으로 선회하는등 우여곡절 끝에 12월22일 대남방송을 통해 12월26일 생존자 5명과 사망자 3명의 시신을 보낸다고 발표했다. ▷무장간첩 남파◁ 9월 남파간첩 대동 월북과 운동권 포섭 등 지하당 구축임무를 부여해 김동식(33·본명 이승철)과 박광남(가명·31) 등 2명의 무장간첩을 제주도를 통해 침투시켰으며 이들은 10월24일 중부 내륙지대인 부여에서 1명은 사살되고 다른 1명은 생포됐다.북한은 지난 10월17일에도 임진강에 인민무력부 소속 무장공비를 침투시키려다 1명이 사살되는등 대남 적화적략을 포기치 않았다. ▷노동당 창당 50돌◁ 지난 45주 당창건 행사에서 외국대표단을 대거 초청한 것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내 행사에만 치중,당연히 예상됐던 중앙보고대회를 생략한 채 이례적으로 대규모 군사퍼레이드와 백만군중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오진우 사망◁ 혁명 1세대 간판이자 군부의 대부이며 김정일 다음가는 권력 2인자였던 인민무력부장 오진우가 2월 폐암으로 사망함으로써 북한권력층의 변화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게 됐다. ▷김일성 시신 영구보존◁ 지난 6월 당중앙위·당중앙군사위·국방위 중앙인민위 공동명의의 결정서를 통해 김일성이 집무실로 써오던 금수산의사당을 새롭게 단장,「금수산기념궁전」으로 성역화하고 이곳에 그의 시신을 안치해 영구보존한다고 발표했다. ▷신년사 공동사설로 대체◁ 김일성이 새해 첫날 발표해오던 신년사를 올해는 김정일이 이어받지 않은 채 당보·군보·청년보 공동사설이란 새로운 형식으로 대신함으로써 김일성의 유훈통치가 계속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평양 체육­문화축전◁ 지난 4월말 김정일 체제의 위상 확립과 외화획득을 위해 「평화를 위한 평양 국제체육 및 문화 축전」이라는 일대 정치쇼를 연출했으나 기대에 못미친 빚잔치로 끝났다.
  • 두환­노태우 군사반란죄 공소장 전문

    피고인 전두환은 1955.9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제1사단장등을 거쳐 1979.3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10·26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사건」(이하 「10·26사건」이라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27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4.14부터 7.17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31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6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1,취임하고 다시 1981.2.25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3 취임한후 1988.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9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사건」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7 육군대장으로 전역한후 정무제2장관,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등을 역임하고 1985.2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12·16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2·25 취임한후 1993·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자로서 1995·12·5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자 등인바, 「10·26 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21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8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체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의 석방,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 오던중,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당시 박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육본」이라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한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7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12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8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후 12·9경 위 이학봉,보안사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12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수도군단장육군중장 차규헌,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금진영,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위 이학봉·허삼수,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위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12 18·00경부터 19·00까지 사이에 위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위 허화평·권정달·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 상황을 파악,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정병주·김진기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12 18·30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우경윤·성환옥·최석립·이종민등은 같은날 18·00경 합수부수사관 7명,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제대 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 소총으로 무장케 한 다음 18·50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을 총장공관 부관실,공관입구 헌병초소,공관현관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10경 허삼수·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 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육군소령 한길성,육군상사 박원철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 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30경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18·20경 위 이학봉,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20경 위 정동호·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40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1·30경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여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제26사단,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3·00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전사령관을 체포한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00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12 24·00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13 00·30경 위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10경 위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0·05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 1,2,5,6대대 병력 1천5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능곡·수색을 거쳐 01·3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후 제1,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6대대 병력은 국방부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40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50경 지하 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12 23·30경 특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00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육군대위 김흥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2·00경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03·00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장용주 등은 12·13 02·00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제1한강교를 거쳐 03·2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12 23·30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윤성민,육본 작전 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신윤희는 12·13 03·00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40경 육군대위 한영수,육군대위 이재우,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윤성민·하소곤·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13 02·20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30연대 병력 1천3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홍은동을 거쳐 03·30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13 02·30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구파발·서대문 등을 거쳐 03·25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13 03·30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천1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세검정을 거쳐 06·20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김인선·정병주·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같은 노태우는 중요업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 “국민마음 편하게 성심행정 펼터”/이수성 총리 취임 첫 기자간담

    ◎「어려운 일 회피」 도리 아니어서 “응낙”/출신지역 사랑 좋지만 이기심은 금물 이수성 국무총리는 18일 『대단히 큰 중압감을 느낀다』면서 『오직 성심으로 응하겠다는 이것 하나밖에는 없다』고 취임소감을 밝혔다. 이총리는 이날 이·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시기를 맞아 국민들의 마음을 편하게 할 행정적 묘안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착잡한 심정』이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총리는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시종 소신에 가득찬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솔직담백하게 피력했다. ­내각 제청권이 있는데. ▲솔직히 그 문제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국회의 임명동의가 있기 전에는 내정자에 불과하지 않았나.오늘·내일 진지하게 생각해보겠다.훌륭한 분을 뽑자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취임사에서 개혁에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개혁이라고 표현하지만 나는 행정의 신뢰성·일관성의 개선이라고 생각한다.공직자 스스로 개선·봉사할 것이 많지 않겠느냐는 뜻이다. ­대통령의 역사바로잡기를 어떻게 생각하나. ▲권력을 이용한 축재는 공직사회에서 추방되어야 한다.청빈이 자랑스러워야 국민의 면모가 바로선다.그런 점에서 역사바로잡기는 올바르다. ­덕망과 학식을 내세운 민심수습용·얼굴마담용 총리라는 비판도 있다. ▲솔직히 덕망도 그리 높다고 생각지 않는다.나같은 사람이 국면을 수습할 수 있다면 더 이상 다행이 없겠다. ­경북 출신인데. ▲출생은 함남 함흥이다.그곳에서 우리 어른(부친)을 따라 광주로 갔다.다시 평양에서 살다 5살 때 서울로 올라와 유치원부터 학교를 다녔다.칠곡은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으로 대단히 자랑스러운 나의 고향이다.고향을 단순히 사랑하는 것은 좋지만 이기심을 가져서는 안된다. ­(총리직을 5번 고사한 것을 두고)왜 6번째 고사하지 않았나. ▲자부심과 존경심으로 따지면 서울대총장만한 자리가 없다.어렵다고 생각해 회피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작은 힘이나마 필요하다면 따르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5·6공 인사들에 대한 생각은. ▲3공이든 4공이든 5공이든 6공이든 구별하지 않는다.다만 이익만을 쫓아다니던 사람은 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잘못이 있었으면 좀 부끄러워할줄도 아는 맛이 있어야 하는데…. ­재벌에 대한 생각은. ▲재벌은 과거 권력이 돈달라면 주고,때리면 맞았다.존중해주어야 한다.대기업 뿐 아니라 모든 기업을 배척하기보다는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18정국을 수습하려면. ▲궁극적으로 대통령이 판단할 일이다.어떤 생각이 있다면 대통령에게 건의하는 것이 도리다.나도 80년5월에 고생을 좀 했다.그뒤 수사하던 사람의 아들 주례를 두번 섰다.조금만 더 젊었더라도 원수처럼 지냈을 지도 모른다. ◎이 총리 취임식 이모저모/김 대통령 임명장 수여뒤 20여분 밀담/“대통령에 기 꺾였습니다” 좌중 웃음꽃 이수성 국무총리는 18일 하오 4시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뒤 하오 5시 정부종합청사 대회의실에서 이홍구 전임 국무총리와 이·취임식을 가졌다. 신·구총리는 이·취임식에 앞서 9층 총리 집무실에서 5분 환담을 나눈데 이어,이·취임사에서도 전·후임자에 대한 덕담을 아끼지 않는 등 친밀감을 과시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하오 국회 임명동의를 받은 이신임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뒤 배석자를 물리친채 이총리와 20여분간 밀담을 나눠 각별한 신임을 나타냈다. 윤여전 청와대대변인은 『김대통령이 각료들에게 임명장을 준뒤 배석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하는게 관례이나 오늘은 두분이 따로 하실 말씀이 있었던것 같다』면서 『개각 인선협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두분외에는 알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대통령은 이총리에게 임명장을 준뒤 『(이총리 임명을) 국민들도 다 좋아하고 국회 동의에서도 표가 많이 나왔더라』면서 『서울대 총장으로 모교 발전에 열심히 노력하다 도중에 그만두게된 것은 가슴 아프지만 이 시점에서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는 분명하지 않느냐』고 이총리 기용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이에 이총리는 『제가 대통령의 기에 꺾였습니다』라고 답변,좌중에 웃음이 터졌다고 윤대변인이 전했다. ○…이홍구 전총리는 이날 삼청동공관에 머무르다 하오 3시쯤 청사에 나온뒤 총리실 직원들과 시종 미소띤 얼굴로 일일이 악수를 나누는 등 이임인사를 했다.이전총리는 『앞으로 총리실의 역할이 중요해진 만큼 직원숫자는 적더라도 열심히 일해달라』는 당부로 인사를 마쳤다.이전총리는 일요일인 17일 삼청동공관에서 역삼동사저로 이사를 끝냈었다.
  • 「12·12전 최 전대통령 조사」 자료 내용

    ◎“김재규에 「계엄」 알려줘 내란방조” 추궁/“시해범 체포지시 왜 안했나” 압박­신군부/약점잡혀 정 총장 연행 재가→하야­최씨 최규하 전대통령이 12·12사건이 일어나기 12일전인 79년12월1일 신군부측에 의해 내란방조혐의로 처음 조사받았다는 사실은 최근 최전대통령의 「진술거부」와 관련,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해 6월과 8월 2차례 검찰에서 소환조사를 받은 이학봉 전의원의 피의자 신문조서내용은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측의 정권탈취음모가 이때부터 이미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상 유례가 없는 피의자조사는 그 이후의 12·12 정승화 육참총장연행 재가강요,80년 4월14일 전보안사령관의 중앙정보부장 겸직발령 실현 등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12·12사건의 실체와 그 성격을 확인시켜주는 것이다. 검찰은 전씨를 비롯한 핵심측근들의 내란죄 성립을 지난해 파악하고도 군사반란죄부분만 혐의를 인정한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신문조서에서 신군부측은 최전대통령에게 시해범 김재규 체포를 지시하는 등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다음 날 새벽 4시부로 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김재규에게 알려 주는 등 내란을 방조한데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따진 것으로 기록돼 있다. 따라서 결정적인 약점을 잡힌 최전대통령이 이후 12월12일 정승화 육참총장의 연행재가와 5·17비상계엄확대 등 신군부측의 계속된 강압적 요구에 이끌려다니다 결국 하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지금까지 신군부측이 최전대통령을 피의자신분으로 조사한 사실이 공개된 적은 한번도 없었다.검찰의 12·12 및 5·18사건발표에도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12·12사건 재수사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14일 민주당 강창성의원이 『최전대통령은 80년3월12일 전 당시보안사령관·이 당시보안사대공처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에 의해 대통령집무실에서 박대통령시해사건의 방조혐의로 4시간동안 조사받았다』고 폭로했으나 근거를 대지는 못했다. 따라서 최전대통령의 조사를 직접 담당한 이학봉전의원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공개로 강의원이 주장한 것보다 무려 석달전에 신군부가 최전대통령을 직접조사한 사실이 증명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이 이같은 사실을 지난해 12·12사건조사당시 밝혀 놓고도 공개하지 않고 은폐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추측이 엇갈린다.우선 당시 「조사의 한계」를 안고 있던 검찰이 이 사건을 불기소처분하기 위해서는 신군부측의 내란죄 입증에 결정적인 증거가 되는 최대통령조사사실을 숨길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같은 질문을 이학봉·장세동·유학성·허삼수·허화평씨 등 전씨의 핵심측근 5명에게 모두 던졌으나 이씨만 구체적으로 답변했을뿐 나머지 4명은 『모른다』고 잡아뗀 것으로 피의자신문조서에는 기록돼 있다. ◎최규하 전대통령 성명서 요지 친애하는 국민여려분.작금의 상황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국민앞에 본인의 입장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게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88년 국회광주특위 이래 지난 7월 검찰에서의 12·12와 5·18고소·고발에 이르기까지 국회와 검찰에서는 본인에 대한 증인 또는 참고인 조사를 요구하였으며 본인은 그때마다 당국요구에 그대로 따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해온 바 있습니다.보도를 통해 다 아시겠지만 이를 다시 요약하면 『대통령 재임중의 공적인 행위,즉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책무에 따라 처리된 국정행위에 대해 일일이 조사를 받아야 한다면 국정은 소신대로 처리할 수 없으며 조사를 받는다는 것은 전례를 남기는 것이고 또 그러한 전례는 앞으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마저 없지 않아 이러한 전례는 앞으로 수많이 탄생할 대통령들의 직무수행에 두고 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 예상되는 바 전직대통령으로서는 후임 대통령들에게 바람직하지 못한 전례를 남겨 부담을 줄 수 없다는 점과 비록 일시적 비난의 화살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국가의 정통성과 계속성을 유지함과 아울러 대통령직의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전직 대통령으로서 택해야 할 최소한의 덕목』이라고 생각하여 왔고 지금도 그 소신과원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와 같은 소신 때문에 본인이 검찰에 직접 진술은 하지 않았으나 진실규명의 협조차원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진상이 알려지도록 노력한 바 있습니다.12·12사건 조사에 있어서도 그날 밤을 같이 지새며 공관접견실에서 사태에 대처한 국무총리와 재임시 보좌하던 분들이 이미 참고인 자격으로 대통령에 관한 사항까지 소상히 진술하였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5·17사태의 조사 경우에도 그동안 검찰은 본건과 관련하여 80년 당시 국무총리·관계장관·측근보좌관·각군 사령관·관계 공무원 및 기타 장병들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참고인들의 진술을 청취하여 당시 상황이 파악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10·26사건이라는 우리 역사상 유례없는 국가적 비극과 비상사태에서부터 1980년 여름에 이르는 격동기는 첨예한 남북간 군사적 대치상황 속에서의 안보문제의 심각성 뿐만 아니라 제2차 석유파동의 엄습에 의한 경제적 난국,극심한 사회혼란 등 참으로 예측불허의 국가적 위기였으며 본인과 정부는 이 일련의 위기상황을 극복하는데나름대로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였습니다. ◎검찰 2차방문 조사 시도 안팎/최씨 평소 생각 전달한 듯/최씨측근 전언/“금품수수설엔 진노” ○…서울 서교동 최규하씨의 사저에는 이날 하오 3시 28분쯤 김상희부장과 이문호검사 등 수사팀 3명이 도착,대기중이던 최흥순비서실장 등의 안내로 최씨를 2차 방문. 김부장과 이검사는 질문자료가 담긴 파란색 봉투를 들고 차에서 내려 미리 기다리고 있던 최비서실장과 악수를 나눈 뒤 『오랜만입니다』라고 짧게 인사말을 건네고 부속실로 직행. ○…최비서실장은 『최씨가 전두환씨로부터 1백75억원을 받았다는 민주당 강창성의원의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검찰수사가 끝나면 밝혀질 것인데 왜 미리 지레 짐작등을 하느냐』고 반문. 한 측근은 『이기창 변호사와 평소 친분관계가 있던 강의원이 서교동측에 아무런 통보도 없이 금품수수설을 제기해 어르신이 몹시 분노했다』면서 『명예훼손혐의로 소송을 제기키로 하는 등 법적대응을 신중히 검토한 것으로 안다』고 전언. ○…검찰수사팀이 2차 방문한지 1시간여만인 이날 4시30분쯤 최비서실장과 이검사가 최씨 집을 나와 검찰수사가 끝난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가 팽배.그러나 검찰조사가 이루어졌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비서실장이 『아니야』라고 답해 검찰수사가 순조롭지 못함을 간접 시사. ○…최전대통령에 대한 2차 방문조사를 마친 검찰수사팀은 하오 4시50분쯤 최씨 집을 나서면서 『수사가 잘 됐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최씨는 검찰의 수사에 응했다.다만 질문내용에 대해서는 종전 입장과 같이 국민과 국익을 위해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면서 답변을 회피. 최씨 측근들은 기자들과의 전화통화에서 『최 전대통령이 검찰의 2차방문 조사에서는 나름대로 평소생각을 전달한 것 같다』고 전언,1차 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조사가 진행됐음을 시사.
  • 신군부,「12·12」이전 최씨 신문/79년 12월1일

    ◎김재규 범행 방조여부 등 조사/검찰,작년 이학봉씨 조사서 밝혀내 최규하 전대통령이 박정희 전대통령 시해사건에 대한 내란방조혐의로 79년 12월1일 당시 신군부측으로부터 피의자 조사를 받은 사실이 16일 처음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해 서울지검이 12·12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79년 당시 10·26사건 합동수사본부의 수사1국장이었던 이학봉전의원에 대한 피의자 신문조서에서 확인됐다. 지난해 6월8일과 8월3일 2차례에 걸쳐 작성된 이전의원의 피의자 신문조서는 각각 1백11쪽과 25쪽 분량으로 돼 있다.그러나 이 조서에는 최전대통령이 조사를 받은 장소 및 정황,조사방법에 관해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전의원은 신문조서에서 『당시 국무총리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최전대통령이 김재규의 범행을 방조한 의혹이 있어 합수부측에서 79년 12월1일 조사한 사실이 있다』면서 『그러나 최전대통령이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김재규를 도와주는 행동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드러나 시해사건의 방조범으로 처벌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전두환당 시보안사령관 등 신군부측이 당시 국정의 최고수행자였던 최전대통령을 상대로 피의자 조사를 했다는 사실은 신군부측의 정권탈취 음모가 79년 12월12일 정승화 당시계엄사령관을 연행하기 이전에 이미 수립돼 있었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으로 주목된다. 당시 최전대통령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김재규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체포지시를 비롯,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건 다음날인 10월27일 김재규에게 새벽4시에 계엄이 선포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등 최고 통수권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렸다는 이유로 신군부측에 약점을 잡힌 것으로 알려져 왔다. 검찰은 지난해 10월29일 12·12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최전대통령이 신군부측의 조사를 받은 사실을 공개하지 않고 전씨 등의 군사반란 혐의만 인정하고 기소유예처분 했었다. 한편 민주당의 강창성 의원은 지난 14일 『최전대통령은 지난 80년 3월12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방조혐의로 4시간에 걸쳐 전두환 사령관과 이학봉 보안사대공처장으로부터 신문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었.
  • 제자의원 후원행사장서 “임명” 들어/총장총리 탄생하던 날 표정

    ◎이홍구 전총리 어제아침 사의 표명 ○…이수성 총리내정자는 15일 하오 3시20분쯤 경기도 안양 평촌 신도시 월드뷔페에서 열린 서울대법대 제자인 이석현의원(국민회의)후원회 행사에 참석 도중 자신의 총리 임명 발표사실을 전해 들었다. 이총리내정자는 곧바로 서초동 진흥아파트 자택으로 가 노모 강금복씨에게 인사를 드린 뒤 하오 4시쯤 기자회견을 갖기 위해 서울대 총장공관으로 직행. 한편 현직 서울대총장이 국무총리로 발탁되기는 지난 88년 2월 6공의 첫 총리로 임명됐던 이현재씨에 이어 거의 8년만이다. ○…현직 총장의 총리 임명에 대해 서울대 교수들은 환영과 우려를 동시에 나타낸 반면 총학생회측은 탐탁치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법대 동료인 최종고교수는 『법학자로서 정의감과 의리감이 투철해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아 온 분으로 훌륭한 교육자 한 분을 빼앗긴다는 차원보다는 우리나라 교육계 전체의 큰 손실』이라고 아쉬움을 표시하면서도 『자기 목소리가 강하고 강직한 이총장이 앞으로 국가를 위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대를 표명. 이홍근 환경보건학과교수는 『한마디로 얼떨떨하다.교수들도 「환영 반 우려 반」의 엇갈린 의견을 보이고 있다』고 교수들의 반응을 전달하면서 『한번 자신의 철학을 펼쳐보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고 이총장의 총리 임명을 긍정적으로 평가. 그러나 서성오 총학생회장(23·국사학과 4년)은 『1천5백여명의 교수가 직선으로 뽑은 이총장이 4년 임기 가운데 1년도 채우지 못하고 도중하차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면서 내년 국회의원 총선을 겨냥한 정략적 산물로 평가절하했다. ▷총리실◁ ○…이홍구 국무총리의 「유임」쪽으로 가닥을 잡아가던 총리실 관계자들은 청와대가 15일 하오 후임 총리를 발표하는 순간까지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한 관계자는 『이총리가 아침에 청와대 주례보고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온뒤에도 비서실장과 행정조정실장에게 「안전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전달했다』면서 급작스러운 경질발표에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이총리는 경질소식이 알려진뒤 집무실로 모여든 간부들에게 『오늘 아침 대통령에게 「정부의 새로운 출발을 위해 총리를 포함시켜 개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사의를 표명했다』고 총리 경질발표 과정을 설명했다.
  • “최씨,전씨돈 1백75억 받았다”/민주당 강창성·장기욱 의원주장

    ◎“80년 8월 하야전후 3차례 걸쳐” 민주당의 강창성·장기욱 의원은 14일 최규하 전대통령이 지난 80년 8월 퇴임을 전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으로부터 세 차례에 걸쳐 거액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당내 「5·6공 부정부패 진상조사위」위원장인 강의원은 이날 의원총회에서 『최전대통령이 전씨에게 거액을 받았다는 제보를 최근 입수했다』면서 『다음주 중 검찰에 관련자료를 제공한 뒤 돈의 규모 등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강의원은 『제보자에게 이같은 사실을 직접 공개하도록 설득하고 있다』면서 구체적인 제보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당시 최전대통령이 받은 돈은 모두 1백75억원이며 제보자는 최전대통령의 측근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강의원은 이날 회의에서 『최전대통령은 지난 80년 3월12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 방조혐의로 4시간에 걸쳐 전사령관과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으로부터 피의자 신문조사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최씨측 전면 부인 한편 이에 대해 최전대통령의 최흥순비서관은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으로서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고 수수사실을 부인했다.
  • 검찰수사 「5·18」로 확대 안팎

    ◎「12·12 군사반란」 규명 마무리 정면/피의자 대부분 조사… 「상당한 진척」 관측/두 사건 연계… 핵심 주모자 구속 불가피 12·12수사가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 느낌이다.검찰은 11일부터 5·18당시 이희성 계엄사령관을 소환했다.12·12사건의 수사를 5·18로 확대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 3일 전두환씨를 구속하면서 지금까지 소환조사한 12·12사건 관련자는 전두환·노태우씨를 포함해 모두 37명이다. 이 가운데 20명은 12·12사건과 관련한 피고소·고발인이며 2명은 5·18사건의 피의자다.나머지 15명은 참고인이다. 12·12사건의 남은 조사 대상자인 장세동 수경사 30경비단장은 12일 소환될 예정이다.당시 공수여단장으로 국외 체류중인 박희도·장기오씨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최세창씨의 출두는 당분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지만 전체적인 수사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않을 전망이다. 또 아직 출두하지 않는 최규하 전대통령도 5·18사건과 병합조사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당분간 절충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검찰은12·12사건의 16년째이자 전씨의 첫번째 구속만기일인 12일까지 12·12사건 관련자를 대부분 소환·조사한 셈이다. 이러한 수사진척에 따라 검찰은 5·18수사를 진행하는 한편 소환조사의 결과를 분류·분석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이 피의자들을 어떻게 사법처리할 것인지가 가장 큰 관심사의 하나다. 검찰의 당초 의지대로라면 피의자들은 대부분 반란죄 이외에도 내란죄의 적용을 받을 것은 분명하다. 12·12사건과 5·18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한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방향이기 때문이다. 현재 수사의 강도로 미루어볼 때 12·12사건의 핵심 주모자인 「경복궁 모임」 참가자와 「보안사팀」은 반란죄와 내란죄의 각 죄목을 적용받아 구속될 것이 불가피해보인다. 또 총장공관 점거,직속 상관 체포등을 주도한 피의자들도 구속을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관련자 모두를 구속할 지 선별처리할 지 등의 사법처리 수위를 예상하는 것은 쉽지않다.아직 5·18수사와 관련지어 최종 윤곽이 드러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두 사건이 동일한 사안이라면 구속자수도 함께 고려해야 하고 이는 정치적 조율도 필요로 하는 대목이다. 검찰은 공소시효 논란이 없는 전씨에 대해서는 구속만기일인 22일쯤 반란·내란죄를 적용해 기소한다는 방침이다.노씨도 이때 같은 죄목으로 추가기소될 것으로 보인다. 전씨 측근들이 법정에서 대결한다는 계획아래 검찰의 소환에 의외로 순순히 응하고 있어 22일쯤까지는 내란죄가 핵심사안인 5·18수사도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힐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대대로라면 전씨를 기소할 때 핵심주모자들도 함께 구속기소될 가능성도 많다. ◎12·12 관련 소환자의 당시 역할/정 총장 연행계획 수립 주도­이학봉씨/「비상계엄 확대」 군회의 주재­정영복씨/총리공관 경호대 무장해제­정동호씨/5·18때 광주에 군출동 지시­이희성씨 12·12 및 5·18사건과 관련,11일 검찰에 소환된 이학봉 당시 보안사 대공2과장 겸 합수부 수사1국장 등 6명은 군사반란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거나 「거사」에 적극 협력한 대가로 5공 때 출세가도를 달렸던 인물들이다. 이씨는 12·12사건 당일 전두환 합수본부장의 명령을 받아 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과 함께 정승화 계엄사령관의 연행계획 수립을 주도,군사반란을 성공으로 이끈 1등 공신이다.그는 80년 5·17 당시에도 정치인·재야인사·학생 등 소요 배후조종 혐의자와 권력형 부정축재 혐의자의 검거대상 선정 및 검거까지 담당,신군부세력의 「집권 시나리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5공 때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안기부 2차장 등을 역임하고 13대 민정당 공천으로 당선됐으나 89년 5공청산 때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석방됐다. 정동호 당시 청와대경호실장 직무대리는 12·12 당시 최규하 대통령의 집무실인 총리공관을 경비하던 육군 특별경호대의 무장을 강제로 해제하고 청와대경호실병력으로 대체,최대통령과 군수뇌부와의 접촉을 차단시킴으로써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그는 86년 육군 참모차장 때 「국회 국방위 회식사건」으로 예편한 뒤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거쳐 국회에 진출했으나 지난 93년 공직자 재산공개 때 부동산 투기혐의 등으로 민자당에서 제명처분을 받았다. 주영복 전국방장관은 12·12가 신군부측의 승리로 끝난 직후인 12월15일 공군참모총장에서 예편한 지 8개월만에 국방장관에 기용됐다.그는 5·17당시 소집된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주재하면서 비상계엄 확대조치를 통과시킨 후 이의 재가를 최전대통령에게 건의했다.내무장관·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등을 역임했다.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서리는 신군부측에 회유돼 12·12직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에 임명됐다.그는 5·17비상계엄 확대조치와 5·18광주민주화운동 진압당시 병력출동 지시를 내렸다.교통부장관·주택공사이사장 등을 지냈다. 윤성민 당시 육군참모차장은 13일 새벽 신군부에 의해 군수뇌부들과 함께 보안사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으나 곧바로 신군부측으로 전향했다.합참의장·국방장관·한국석유개발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김윤호 당시 육군보병학교장은 12일 밤 신군부측의 연락을 받고 급거 상경,신군부 대변인자격으로 13일 상오 글라이스틴 주한미국대사 등 미국 관리들과 접촉하고 다음 날 전합수본부장과 글라이스틴대사와의 회동을 주선했다.그는 12·12 직후 1군단장을 거쳐 1군사령관·합참의장·석탄공사 이사장·한국가스공사 이사장 등을 지냈다.
  • 미 하원 깅리치 조사 특별검사 임명/윤리위 결정

    ◎세법위반 관련… 시기·범위는 논란 【워싱턴 연합】 미국 하원윤리위는 뉴트 깅리치 하원의장의 연방 세법위반 의혹을 조사하기 위한 특별검사를 임명키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이 위원회의 낸시 존슨 위원장이 6일 발표했다. 존슨 위원장은 이같은 결정을 통보하기 위한 서한이 깅리치의장의 집무실에 전달됐다고 말했으나 특별검사로 물망에 오르는 후보와 특별검사 임명시기 등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앞으로 임명될 특별검사는 깅리치 의장이 고향인 조지아주의 대학에서 면세혜택을 받고 한 강좌를 정치활동에 이용함으로써 연방 세법을 위반했는지 여부를 조사,윤리위에 보고하게 된다. 윤리위는 깅리치 의장이 출판사로부터 선금을 받은 것 등 다른 5개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 등의 이유로 더 이상의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깅리치는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윤리위의 결정에 만족하며 남은 혐의도 벗겨질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윤리위는 공화당정치행동위원회(GOPAC)회장이었던 깅리치의장이 지난 90년 당시 주의회선거 등 지방선거를 지원토록 규정된 GOPAC 기금을 불법 전용,연방 하원의원선거인 자신의 선거활동에 투입함으로써 연방선거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조사 가능성을 여전히 남겨놓았다.
  • 5·6공 잔영 씻고 「총선장정」 돌입/신한국당 출범

    ◎수구세력 배제… 새달20일께 공천 매듭/계파 갈등 해소 “새분위기로 승리” 포석 지난 90년 1월 민주정의·통일민주·신민주공화당 3당이 합당,문민정부를 탄생시킨 민주자유당이 6일 창당 5년10개월 만에 신한국당이란 새 이름으로 재출범했다. 신한국당의 출범은 외형상 3년전 대통령선거 당시 김영삼후보가 내걸었던 「신한국 창조」라는 기치와 일맥상통한다.그러나 그동안 불안정한 상태에서 유지돼 왔던 민자당의 「3당 동거체제」를 청산하고 비로소 YS의 독자적인 체취가 담긴 당으로 거듭 태어났다는데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과거 민자당에서 당명변경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한국당으로의 당명변경은 최근의 노태우 비자금정국이 빚은 부산물이다.민자당이 노씨의 잔재를 벗지 않고서는 다시금 정권재창출을 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당내에 팽배했기 때문이다.따라서 당명변경의 배경에는 내년 4월의 총선과 나아가 97년 대선승리를 향한 여권의 중장기 포석이 깔려 있다. 그러나 크게 보면 김대통령이 그동안 일관해서 추진해왔던 정치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새한국당이 당명변경을 계기로 정치관계법 기초위를 곧 구성해 통합선거법과 정치자금법 개정작업을 본격화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신한국당은 이달 20일쯤 전국 2백60개 지구당 중 현재 조직책이 공석 중인 18개의 절반인 10개 정도를 확정하고,내년 1월20일까지는 총선후보자를 공천할 생각이다.이와 함께 공천자대회를 겸한 전국위원회 또는 전당대회를 열어 총선정국으로 들어간다는 시간표를 갖고 있다. 신한국당의 출범을 계기로 앞으로 당내 물갈이의 폭과 시기에 각별히 관심이 쏠린다.강삼재 사무총장은 『5·6공 참여세력과의 단절은 논리적으로 말이 안된다』면서도 『개혁에 동참하지 않고 수구적 자세를 견지해 온 세력은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따라서 앞으로 공천과정에서 과거 5공 핵심세력과 조만간 정치인 사정대상이 될 상당수 의원들의 퇴진이 불가피할 전망이다.아울러 그동안 반개혁적이었거나 개혁에 비협조적이었던 적지 않은 의원들도 물갈이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92년 총선을 노태우 대통령 밑에서 어정쩡하게 치렀던 당내 민주계는 신한국당으로 이름이 바뀐 지금,내년 총선을 「YS신당」같은 새로운 분위기를 타고 승리하자는 전략이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앞날이 마냥 순탄한 것 만은 아니다.민자당 시절의 계파간 반목과 갈등의 극복이 여전히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당명변경을 의결한 이날 당무회의가 끝난 뒤 당사의 김윤환대표위원실에 민주계 좌장인 최형우의원과 중부권을 대표하는 민정계의 이한동 국회부의장이 각각 한동안 머물며,전날 김대통령에게 사표를 제출했던 김대표에게 위로와 함께 격려를 한 것은 어쩌면 오늘날 신한국당이 처한 2인3각적인 계파적 위상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강삼재 총장 기자간담 내용/5·6공인사도 개혁 동참하면 개혁세력/5·17관련자 처벌범위 검찰서 결정할 일 신한국당(가칭)의 강삼재 사무총장은 6일 『노태우씨 비자금사건 및 12·12,5·17등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계없이 당이 해야할 일을 정상적으로 챙겨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강총장은 이날 여의도 당사 집무실에서 노씨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발표 및 당내 민정계 일부의 동요등과 관련,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김윤환대표위원 사퇴파동 후유증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는데. ▲대표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을 이해한다.하루 이틀 쉬게 해드리자는 생각도 있었으나 당을 함께 하지 않을 것이라면 몰라도 정상적으로 하자고 한 이상 하루라도 흩어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고 어제 간곡히 요청했다.김영삼대통령 추대위를 맡았던 분으로서 국가와 당이 어려울 때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고 말이다.일부 의견이 다르다고 따로 가고 하면 누가 남아 있을 수 있겠는가.만에 하나 내가 잘못해서 대표와 불화가 생긴다면 전적으로 내 책임이라는 심정으로 대표를 모시겠다. ­최재욱 기조위원장과 강재섭 대구지부장의 당직 및 당무위원 사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반려할 것이다.모시던 분이 구속되는등 상황에 대한 인간적 고뇌를 이해하기에 마음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겠다.오늘 당무회의 불참은 정 내키지 않으면 그리 하도록양해키로 했다. ­5·17 관련 처벌범위를 최소화해 달라는 김대표의 요청에 김대통령이 수긍했다는 얘기는 어떤 의미인가. ▲나는 그리 비중을 두지 않는다.검찰이 수사해서 처벌범위가 정해지는 것이다.정치권이 수사도 하기 전에 그런 얘기를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대표 얘기는 지금 당내에 5·17등과 관련,고민·동요하는 의원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본다.5·6공 단절설,공천때 물갈이설 등으로 불안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말하건대 5·6공에 참여했어도 개혁에 동참하고 있는 사람은 개혁세력이다.우리가 분리하려고 하는 부류는 5·6공에 참여했으면서 계속 수구적으로 나가는 사람들이다. ­정국 정상화 방안은. ▲5·18특별법등 수사를 위해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다 하고 있다.이제 당명변경을 계기로 정치권이 할 일을 찾아 보겠다.공석중인 조직책도 20일까지는 10여 곳을 발표하겠다. ­검찰 수사가 어디까지 갈것인가. 검찰에 물어 달라.다만 정치를 위해 수사를중단할 수는 없다.어제 검찰의 발표는 노씨 기소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비자금의 정치권 유입등 제기된 의혹들은 계속 수사가 이루어질 걸로 본다.우리가 받은 정당운영비만 해도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검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나오면 당의 입장을 밝힐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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