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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법부 ‘넘버2’ 의회정치를 말하다

    입법부 ‘넘버2’ 의회정치를 말하다

    대한민국 입법부의 ‘넘버 2’인 국회 부의장은 위상에 비해 ‘저평가’되고 있는 자리다. 의장과 번갈아 가며 본회의를 관장하지만 의장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한다. 첨예한 여야 대립 속에서 자기 목소리를 죽여야 할 때도 많다. 여야의 목소리를 조율하고, 의회정치를 한 단계 발전시킬 책임이 있는 두 부의장에게 정기국회 쟁점 등 현안에 대한 혜안을 들어 봤다. ■한나라당 정의화 국회 부의장 “액세서리 부의장은 하지 않겠다” “액세서리 부의장은 하지 않겠다. ” 정의화 국회부의장의 당선 후 첫 목소리였다. 정 부의장은 취임 이후 초당파 국회의원단을 이끌고 중국을 방문하고 크로아티아 등 유럽 국가를 공식 순방하는 등 왕성한 활동력을 보이고 있다. 정기국회 개회를 맞아 6일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새로운 부의장상(像)을 세워 보겠다.”며 강한 의욕을 내보였다. →어떤 부의장상(像)인가. -그간 국회의장의 위상은 존재했지만 부의장은 액세서리 비슷했다. 국회 2인자로서 마땅히 거기에 걸맞은 역할을 해야 한다. 의장 중심이 아닌 ‘의장단 중심’의 국회운영이 필요하다. 당선 직후 대통령으로부터 전화 왔을 때 ‘의장단과 더불어 나라를 걱정하자.’고 했고, 특히 ‘(민주당 몫의) 홍재형 부의장에게 자주 전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홍 부의장과 얘기를 마쳤지만, 양당에서 합리적인 중진들을 모아 자주 대화를 갖고 현안을 논의하면서 완충 지대를 형성하기로 했다. 여야 간 대화의 접촉면을 최대한 늘려 충돌을 최대한 피하자는 취지다. →정치의 복원인가. -그렇다. 충돌 가능성이 엿보이면 사전에 정리하고 여야의 충돌을 예방하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을 찾고 있고,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다. 국민으로부터 좀 더 사랑과 신뢰를 받고 품격을 높이는 데 공헌한 부의장으로 남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여야 호혜의 원칙이 불문율로 만들어져야 한다. 여당 독식의 자세를 버려야 한다. 의원 상호 간의 인격을 서로 존중해야 한다. →지난 2일 민주당 강성종 의원 체포동의안 처리 때 본회의 사회를 맡았는데, 박기춘 민주당 수석부대표가 대표발언에서 ‘정의화 부의장께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던데. -당일 낮에 야당 의원들이 집무실로 몰려들어 사실상 점거를 했다. 본회의를 하루 연기하자는 것이었는데, 이해할 대목이 있다고 봤다. 그래서 한나라당 지도부와 특임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등 곳곳에 전화를 걸어 야당의 처지를 설명해 줬다. 그런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인 것 같다. 앞서 정운찬 총리 후보자 청문회에서도 청문위원장으로서 공정하게 하려 애썼는데, ‘공평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야당이 인정을 해 주는 것 같다. →대외적으로는 어떤 역할이 가능한가. -의원외교 측면에서 할 일이 대단히 많다. 행정관료나 정부에서 하지 못하는 얘기를 한다는 측면에서 의원외교의 의미가 크고, 그게 의장단이면 무게감이 훨씬 더하다. 이번 크로아티아 방문은 수교 18년 만에 첫 국회 차원의 방문이었기 때문에 의의가 컸다. 재외교포의 복리 등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시간과 비용이 문제인데 개선점을 연구하고 있다. →첫 정기국회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우선 추태가 없어야겠다. 예산처리 법정 처리기한인 12월2일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 보겠다. 예산심의 60일을 90일까지 늘려 예결위가 제대로 역할할 수 있게 하고 싶다. →직권상정이 필요한 상황이 왔을 때 방망이를 두드릴 것인가. -불가피하다면. 단 몇 가지 분명한 전제조건이 있다. 야당과 최대한 대화할 것이다. 여당이 여당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에 도움이 되겠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최소한 정의화 개인의 신념을 기준으로 판단할 때 필요하다면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제 이만섭 의장 시절처럼 직권상정 없는 국회가 돼야 한다. 명색이 G20 국가라면 정치적으로도 G20에 들어야 한다. →개헌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인가. -의장이나 부의장이 하자하자 해서 될 일이 아니다. 의원 298명 간 컨센서스가 있어야 한다. 내용이 무엇이 됐든 논의해 보자는 분위기는 형성돼야 한다. 최소한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국회부의장은 의장과는 달리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중진들과 계파 모임을 탈퇴하자고 했다. 계파끼리 부딪쳐서는 다음 총선이고 대선이고 다 어렵다는 게 내 주장이다. 정 부의장은 “신경외과 의사로 순간순간이 긴장과 판단의 연속이었고, 1974년부터 1996년까지 23년을 그렇게 살다 보니 주장도 강하고 고집도 셌다. 그러나 60세가 넘어 보니 조화와 균형이 중요하다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면서 “여야 관계에서든 당내에서든 부의장으로서 이를 기반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이지운·허백윤기자 jj@seoul.co.kr ■민주당 홍재형 국회 부의장 “나는 후퇴없는 장기판의 卒역할” 민주당 홍재형 의원은 역대 국회 부의장 가운데 가장 극적으로 부의장에 오른 인물로 기억될 만하다. 홍 의원은 선수(3선)가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 속에 지난 6월 야당 몫 부의장 경선에 뛰어들었다. 같은 당 박상천(5선) 의원과 2차 결선투표까지 벌였은데, 39표로 동수를 이뤘다. 연장자 우선이라는 당규에 따라 나이를 비교한 결과 똑같이 38년 생이었다. 결국 생일이 7개월 빨라 부의장에 올랐다.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자리이지만 누구보다 힘들게 오른 부의장직은 어떤 의미일까. 6일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가진 홍 부의장은 “장기판의 졸(卒)처럼 비록 약하지만 절대 뒤로 물러서지 않고 조금씩 발전하는 국회를 만드는 부의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치열한 경선 끝에 부의장이 된 지 3개월이 흘렀다. 소감은. -힘든 경쟁을 해서라도 한번 해볼 만한 자리다. 나는 특히 야당의 대표 자격으로 이 직을 수행하고 있으니 야당 목소리를 많이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대통령 중심제이기 때문에 국회는 기본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행정부의 거대한 힘을 견제하면서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 영국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불이 켜진 의사당을 보며 안심한다고 하지 않나.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우리도 존경받는 국회를 만들어야 한다. →존경받는 국회가 되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여야가 모두 100%를 얻으려고 하니까 몸싸움이 나는 것이다. 몸이 아니라 말로 싸우고 타협해야 한다. 국회는 국민의 모든 갈등이 모이는 곳이다. 여당이 90%를 관철시키고, 야당은 85%를 관철시키는 선에서 타협하면 좋을 것 같다. →부의장은 어떤 자리라고 생각하나. -의장과 함께 국민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소통시키는 역할을 하는 자리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의장단이 국민의 뜻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의장단이 무리하게 직권상정을 하거나 날치기를 하면 국회는 영원히 존경받지 못한다. 늦더라도 후퇴하지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국회가 돼야 한다. 장기판의 졸(卒)처럼 말이다. →부의장도 일종의 2인자인데 2인자 역할은. -옛날 장관 시절을 더듬어 본다. 그때 내 밑의 차관에게 어떤 역할을 요구했는지를 회상해 본다. 내가 조직의 수장이었을 때 2인자에게 바랐던 역할을 그대로 하면 될 것 같다. 2인자도 자기 하기 나름이다. 내 역할을 찾고, 그 역할을 넓히면 된다. →18대 후반기 국회도 전반기 국회처럼 직권상정이 많을까. -전반기 국회는 부끄러웠다. 의회의 권위를 스스로 무너뜨렸다. 후반기는 최소한 전반기처럼은 안 될 것이다. 대통령이 의회를 지나치게 압박해선 안 된다. 여당이 강하게 밀어붙이면 야당의 반발도 그만큼 거세진다. 의원 스스로가 국민이 위임한 권한과 책임을 지키려고 노력해야지 청와대만 쳐다봐선 안 된다. →박희태 의장이 직권상정을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덕적으로 설득할 수밖에 없지 않나. →올 정기국회도 쟁점이 많을 것 같다. -4대강 사업이 가장 큰 문제가 될 것이다. 국민의 60% 이상이 반대하는 만큼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새로 논의했으면 좋겠다. 17대 국회 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란이 심해지자 국회에서 특위를 구성해 모든 의견을 다 들어보지 않았나. 국회는 사회적인 갈등을 끌어들여 공론의 장을 마련해 주는 곳이지, 이를 밖으로 분출하는 곳이 아니다. →개헌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데. -많은 야당 의원들도 권력 집중의 폐해를 느끼고 있고,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권력 집중은 대통령 개인의 민주적인 수준에 기대어 풀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개헌 논의가 얼마나 진정성이 있느냐인데, 4대강 사업과 같은 현안을 호도하기 위한 개헌으로 의심받으면 추진할 수 없다. 아직 여당 내에서 단일안도 나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음 총리가 결정되지 않으면 내각을 해산하지 못하도록 안전장치를 해 놓은 독일식 내각책임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 →박희태 의장, 정의화 부의장과의 관계는. -박 의장과는 김영삼 정부 초대 내각에서 각각 법무부 장관과 재무부 장관으로 일했다. 박 의장의 인품과 의회주의에 대한 신념을 높이 평가한다. 정의화 부의장은 기본이 돼 있는 분이다. 대화가 되는 상대다. 이창구·강주리기자 window2@seoul.co.kr
  • 구청장들도 차별 있다?

    서울시내 구청장들이 갖는 권한과 의무는 대동소이하지만, 엄연하게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민 수에 따라 ‘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기초단체장인 구청장의 직급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구청장은 부구청장보다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대우하는 게 관례이다. 부구청장의 직급은 인구 50만명 이상이 2급, 50만명 미만은 3급이다. 서울시내 25개 자치구 중 2급 부구청장이 있는 관악·노원·송파·강남·강서·양천 등 6곳의 구청장은 1급, 나머지 19곳의 구청장은 2급 대우를 각각 받는다. ‘1급 자치구’ 승격이 임박한 곳들도 있다. 강동구 인구는 지난해 기준 48만 9655명, 성북구 48만 4457명, 은평구 47만 732명 등으로 승격 기준인 인구 50만명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성북구의 경우 민선 체제가 출범했던 1995년만 해도 1급 자치구였다. 그러나 재개발 사업 추진 등으로 인구가 감소해 2급 자치구로 떨어졌다. 성북구 관계자는 “올해 말부터 재개발 사업이 마무리된 지역에서 입주가 본격화된다.”면서 “내년에는 주민 수가 5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기대했다. 강동구와 은평구도 각각 고덕·강일지구와 은평뉴타운 등에 대한 입주가 완료되는 1~2년 뒤에는 50만명을 무난하게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직급 상승의 혜택은 현직 구청장이 아닌 차기 구청장이 누릴 가능성이 높다. 지방자치법 시행령은 인구 기준을 2년 연속 초과해야 그 이듬해에 직급을 상향 조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청장 직급에 따라 해당 구청의 인원이나 조직 규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집무실 크기나 관용차 배기량 등 의전 기준도 동일하다. 문제는 급여다. 연봉의 경우 1급 구청장이 8167만원, 2급 구청장은 7530만원이다. 연봉 외에 급에 따라 달리 받는 ‘직급보조비’(1급 월 75만원, 2급 월 65만원)와 ‘직책급 업무추진비’(1급 월 75만원, 2급 월 65만원) 등도 차등 지급된다. 결국 1급 구청장과 2급 구청장의 소득은 연간 1000여만원, 임기 4년간 4000여만원의 차이가 난다. 인구 50만명을 기준으로 구청장을 차별하는 것과 관련해 몇몇 구청 고위직들은 “똑같은 선출직인데 인구 2만~3만명의 차이로 차별을 두는 것은 마땅하지 않다.“면서 “벌써 민선 5기인데 여전히 과거 관선 구청장 시절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인 만큼 관련 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구청장들 “권위는 가라”

    구청장들 “권위는 가라”

    서울시내 구청장들의 파격 행보가 잇따르고 있다. ‘B·M·W(자전거·지하철·도보)’를 타고, 전임 구청장이 쓰던 물건을 스스럼없이 재활용하며, 권위의 상징인 집무실마저 줄여 나가고 있다. 볼썽사나웠던 ‘과도한 의전’은 줄이는 대신 소탈하고 친서민적인 모습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군림하는 단체장은 싫다 구청장이 타는 검정색 대형 관용차는 주민들이 거리감을 느끼게 만드는 대표적인 권위의 상징이다. 차성수 금천구청장은 이런 관용차 대신 마을버스를 타고 출퇴근한다. 집과 구청을 오가는 마을버스를 타면 10~20분이면 충분하지만, 차 구청장을 알아보는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면 출퇴근 시간이 1시간을 훌쩍 넘어서곤 한단다. 관용차 이용은 스스로 ‘업무시간 내’로 제한하고 있다. 차 구청장은 “공적인 업무를 볼 때를 제외하면 의전은 필요없다는 게 기본 생각”이라면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취임 직후 3400㏄급 에쿠스와 2900㏄급 그랜드카니발 등 자신 몫으로 있던 관용차 2대를 7000여만원에 공개 처분했다. 대신 2400㏄급 그랜저 중고 모델을 2000여만원을 들여 구입해 타고 다닌다. 김 구청장은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고 어려운 경제 사정을 감안해 고급·대형 관용차를 매각한 것”이라면서 “관용차 매각 차액 5000여만원은 세외수입으로 편성해 내년도 구 예산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성환 노원구청장도 집에서 구청사까지 가급적이면 걸어서 출근한다. 김 구청장은 “집에서 구청사까지 승용차로 5분, 걸어서 20분이라면 당연히 걷는 것이 우선”이라면서 “걸으면서 주민들과 호흡하고, 하루를 구상하는 것이 편하다.”고 밝혔다. 이해식 강동구청장은 대표적인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신조어)이다. 아무리 바빠도 매주 금요일에는 자전거 동호회 소속 구청 공무원들과 함께 자전거를 탄다. 지난해 6월 시작해 벌써 1년이 넘었다. 특별한 외부 행사가 없는 날에는 지하철도 이용한다.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외부 행사에 직원들이 동행할 경우 관용차 대신 구청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지방자치단체장에게는 관용차가 주어진다. 배기량과 차종 등을 자율 결정할 수 있다. 다만 행정안전부가 2008년 6월 마련한 ‘지방자치단체 관용차량 관리·운영 개선방안’에 따르면 광역단체장은 3300㏄급, 기초단체장은 2800㏄급 이하로 권고하고 있다. ●주민·직원 ‘곁으로’ 구청장들의 격식 파괴는 집무실로도 번지고 있다. 구청장 집무실은 관용차처럼 행안부가 제시한 ‘청사 표준 설계면적 기준’에 따라 99㎡만 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에 훨씬 못 미치는 공간만 활용하는 구청장이 늘고 있다. 이성 구로구청장은 89㎡의 집무실을 직원들을 위해 내줬다. 공간 부족 등을 이유로 외부 건물에서 ‘셋방살이’하는 부서에 제공한 것이다. 이 구청장은 대신 화장실과 침실 등으로 쓰던 34㎡ 공간을 새로운 집무실로 꾸몄다.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집무실의 3분의1가량을 ‘참여와 소통의 방’으로 만들었다. 담당 부서에서 해결하지 못한 주민 민원을 직접 챙기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위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청장실 앞을 지키던 경비도 없앴다. 박겸수 강북구청장과 진익철 서초구청장, 김우영 은평구청장 등도 집무실 일부를 구청을 방문한 주민들을 위해 내줬다. 종로구청장실은 ‘독서실’이란 애칭이 생겼다. 구청장실에 걸렸던 그림이나 사진을 모두 떼어내 ‘썰렁’하기 때문이다. 김 구청장은 “구청장의 권위를 상징하는 커다란 사진이나 그림은 필요없다.”면서 “주민이나 손님들이 찾았을 때 가장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구청장실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시내에서 ‘유이한’ 여성 구청장인 신연희 강남구청장과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근검절약하는 ‘아줌마 정신’을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전임 구청장이 쓰던 가구와 집기 등을 교체하는 관행을 깨고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또 구청장들이 일방적으로 지시만 하는 게 아니라 직원이나 주민들의 얘기도 귀담아 듣고 있다. 김영배 성북구청장은 매월 두 차례 ‘생활구정 수요포럼’을 열어 전문가 초청강연을 들은 뒤 지역에 적용할 방안을 논의한다. 차성수 금천구청장도 모든 회의를 지시와 보고가 아닌, 상호 토론 방식으로 바꿨다. 성장현 용산구청장과 유덕열 동대문구청장,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등은 특정 요일을 ‘소통하는 날’로 지정해 주민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다. 성 구청장은 “(구청장 출마를 준비할 당시) 사무실에 앉아 몇 시간씩 오지 않는 방문객을 수없이 기다렸다.”면서 “저를 찾는 주민들이 귀찮고 불편한 게 아니라 반갑고 고마울 따름”이라고 털어놨다. 문소영·장세훈·김지훈기자 shjang@seoul.co.kr
  • 美 이라크전 31일 공식종료

    미국이 이라크에서의 전투활동 종료를 오는 31일 공식 선언한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이날 지난 7년5개월간 수행해온 미군의 이라크전 참여활동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계획을 재확인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8일 주례 라디오 연설을 통해 내년 말까지 잔류 비전투 미군 5만명도 완전 철수시킴으로써 이라크전을 종료하겠다고 내세웠던 대선공약을 지키겠다고 강조했다. “대선 후보 입장에서 이라크 전쟁 종식을 공약했으나, 지금은 대통령으로서 이라크 전쟁종료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힌 오바마 대통령은 “이라크도 국가의 미래와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결정해야 할 때가 왔다.”면서 아프가니스탄전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이라크에서의 전투활동을 마무리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지난 19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마지막 부대였던 제2 보병사단 제4스트라이커 전투여단이 철수했으며, 31일에는 나머지 전투병력 6000명도 마저 철수할 예정이다. 이라크에서의 미군 전투활동이 공식 종료되는 31일 오바마 대통령은 제1기갑사단 본부가 있는 텍사스주 포트 블리스를 방문한 뒤 백악관 집무실에서 대국민연설을 통해 전쟁종료를 선언할 예정이다. 29일 AP통신에 따르면 오바마 행정부는 5만명의 비전투 병력을 내년 말까지만 이라크에 남겨 이라크 군과 경찰의 교육, 훈련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백악관은 미국 시민이 이라크 전투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장병들에게 문자나 영상 메시지를 남길 수 있도록 인터넷 웹페이지에 새 코너를 마련하기로 했다. 이라크 주둔 미군은 2007년 ‘이라크 안정화 작전’ 당시 17만 1000명으로 최대 병력을 기록했으며, 이후 단계적 철수 과정을 거쳐 지금은 5만명 이하로 줄었다. 그러나 오바마 행정부의 전투종료를 시기상조라고 보는 시각은 여전히 적지 않다. 미군 철수 이후 이라크 국민들은 기대와 불안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7일 보도했다. 이라크 국민들은 내전으로 혼란에 빠진 수도 바그다드 등에서의 미군 역할에 만족하면서도 미국이 후세인 정권을 어설프게 해체시킨 탓에 종파 간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철수 결정을 우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100년전 치욕 잊지말되 이젠 미래를”

    “무효!/ 이로부터 우정의 천년이 있다/ 앞이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이 있다/ 오늘 그 길의 첫걸음이 여기 있다.”(고은 시인)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29일. 비극적 한국근대사를 우정으로 다시 써야 한다는 고은 시인의 자작시 낭송이 울려 퍼졌다. 서울 충무로 세종호텔에 마련된 행사장이 박수소리로 가득 찼다. 지난 5월과 7월 한·일지식인 공동선언을 주도한 김영호 유한대 총장과 와다 하루키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 등 한·일 지식인 20여명이 마주 보며 마음을 나누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들은 앞서 고종의 옛 집무실에서부터 서울 남산의 옛 통감부 관저 터까지 을사늑약과 강제병합의 현장을 ‘침묵’하며 행진했다. 서울 등 전국 곳곳에서 1910년 경술국치 당시 국권 피탈의 치욕을 되새기자는 행사가 잇따랐다. 한국과 일본의 117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강제병합 100년 공동행동 한·일실행위원회’는 서울 남산 서울유스호스텔 앞 공원의 옛 조선통감 관저 터에서 표석을 제막했다. 이곳은 100년 전 이완용 총리대신과 일본의 데라우치 통감이 한·일강제병합조약을 체결한 국치의 현장이다. 실행위는 이어 성균관대에서 ‘한·일시민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이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본의 식민지 범죄를 적시하고 현안별 해결책과 세부 실행계획을 발표했다. 광복회도 서울 탑골공원 3·1독립선언기념비 앞에서 독립유공자유족회와 공동으로 ‘한·일강제병합 100년’ 행사를 열었다. 독립유공자유족회가 1995년부터 매년 경술국치일에 추모제를 개최해 왔지만 이처럼 대규모 한·일 강제병합 행사가 열린 것은 처음이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을사늑약 ‘비운의 역사현장’ 시민 품으로

    을사늑약 ‘비운의 역사현장’ 시민 품으로

    #1. 1905년 11월17일 일본군들이 고종 황제의 집무실인 경운궁(현 덕수궁) 중명전을 에워쌌다. 긴박한 분위기에서 어전회의가 열렸다. 고종이 한국을 일본의 보호국으로 한다는 일본 정부의 신협약안(新協約案)을 끝내 거부하자 이토 히로부미는 헌병 수십명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가 8명의 대신을 위협, 이중 5명의 찬성을 얻어낸 뒤 일방적으로 조약에 날인했다. 18일 새벽 1시쯤이었다. #2. 1907년 6월 고종은 이준, 이상설, 이위종 3명을 은밀히 중명전으로 불렀다. 고종은 이들에게 만국평화회의가 열리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가서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릴 것을 지시하며 친서를 전달했다. 을사늑약과 헤이그 특사 파견 등 구한 말 격동의 역사 현장이었던 덕수궁 중명전이 원형 복원돼 한·일 강제병합 꼭 100년이 되는 29일부터 일반인에게 개방된다. ●1897년 건립… 일제땐 서양인 클럽으로 1897년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중명전(당시 수옥헌)은 일제 강점기엔 서양인 클럽으로 사용됐다. 1976년 민간에 매각됐다가 문화재청이 2006년 소유권을 인수해 이듬해 12월부터 복원 공사를 했다. 26일 언론에 공개된 중명전은 러시아 건축가 알렉세이 사바친(1860~1921)이 설계한 원형대로 아치형 문과 1·2층 회랑 공간을 되살렸다. 흰색으로 칠했던 건물 외벽도 붉은 벽돌의 제 모습을 찾았다. 다만 여러 개의 별실로 구성된 지하층은 용도가 불분명해 복원 공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근대 역사교육·체험 공간으로 꾸며 문화재청은 이곳을 근대 역사 교육과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 1층은 중명전의 연혁을 정리한 ‘중명전의 탄생’, 을사늑약의 현장을 보여주는 ‘을사늑약을 증언하는 중명전’, 을사늑약 후 고종과 대한제국의 노력을 담은 ‘주권회복을 위한 대한제국의 투쟁’, 헤이그 특사의 활동을 조명한 ‘헤이그 특사의 도전과 좌절’ 4개 전시실로 구성됐다. 을사늑약 현장이 어느 방인지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정황상 1층 왼쪽 방일 가능성이 높아 이곳에 을사늑약 체결일지, 현장 상상도, 한규설 참정대신·모건 미국 공사 등 을사늑약 목격자의 증언을 담은 자료들을 전시했다. 2층에는 고종의 집무 공간을 재현한 ‘고종과 중명전’ 전시가 마련됐다. 문화재청은 27일 오후 4시 중명전 현판식과 전시 개막행사를 연다. 중명전 관람은 1일 6회, 회당 25명으로 제한했다. 20명은 덕수궁 홈페이지(www.deoksugung.go.kr)를 통해 사전예약으로 받고, 5명은 현장에서 신청받는다. 관람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 휴관. (02)732-7524.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경교장 내부원형 남아있다

    경교장 내부원형 남아있다

    그동안 완전히 훼손된 것으로 알려져 있던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 경교장(사적 제 465호)의 내부가 일부 원형대로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시는 경교장의 원형 복원 공사를 위한 정밀조사 결과 각층 천장의 지붕부와 2층 동쪽 서재 내부 벽체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11일 밝혔다. 1939년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경교장은 김구 선생이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부터 암살당한 19 49년 6월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쓰던 곳으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쓰이기도 했다. 1967년 삼성재단에 팔려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되다 2005년 2층의 김구 선생 집무실이 기념실로 단장됐지만 1층 등 나머지 공간은 병원 약국이나 창고, 보호자 대기실 등으로 쓰이며 정확한 상태가 파악되지 못한 채 내부가 완전히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시는 현재 1층의 전체적인 평면이나 공간 용도는 변형이 되었지만 천장의 지붕부는 원래 평면의 형태 및 마감재료 등이 건립 당시의 모습대로 잘 남아 있어 원형 그대로 복원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2층 임시정부의 서재와 김구 주석의 집무실과 침실 등은 많이 변형됐지만 동쪽의 서재만큼은 아직까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재는 나무로 된 마감벽체와 1930년대 근대건축물에서 유행했던 장식용 벽난로, 지붕부 천장의 몰딩 및 마감장식 등이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 시는 복원공사 때 천장과 벽체 등을 최대한 살리고 건축지 ‘조선과 건축’(1938년 발행)에 실린 평면도 등에 실린 경교장 사진 등을 참고하여 원형대로 복원할 예정이다. 내년 11월 복원공사를 완료할 경교장은 오는 15일 내부를 시민들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마흔여덟 리더십, ‘소통’의 아이콘으로

    마흔여덟 리더십, ‘소통’의 아이콘으로

    “도대체 김태호가 누구야?” 8일 발표된 이명박 정부 3기 내각의 명단을 보며 적지 않은 국민들이 수군거렸다. 설마했던 정부와 정치권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파격적 발탁이라는 얘기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1962년 8월21일생이다. 올해 48세다. 좋게 말하면 연부역강(年富力强)이고, 심하게 말하면 ‘애송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제3공화국 시절인 1971년 만 45세로 11대 총리에 취임했던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 이후 39년만에 탄생하는 40대 총리다. 정부 수립 이후 정식 취임한 총리 가운데 40대는 초대 이범석(1948년·47세), 4대 백두진(1953년·44세), 9대 정일권(1964년·46세) 등이 있었다. 40대 총리는 일단 세계적 흐름과도 맞는다. 김 후보자는 경남 거창에서 성장한 ‘풀뿌리 정치인’이다. 서른여섯에 도의원, 마흔에 거창군수, 마흔두 살에 경남도지사가 됐다. 젊지만 지방행정 경험은 풍부하다. 김 총리 후보자의 측근들은 그가 서민적이고, 소통에 능하며, 꿈이 큰 정치인이라고 얘기한다. 2002년 군수 선거에 나서 유세장에 도착했을 때 “소장수 아들이라던데…”라는 수군거림이 들렸다. 김 후보자는 큰 목소리로 “구산마을 소장수 김규성의 아들 태홉니다.”라고 연설을 시작했다.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박수를 쳤고, 그는 최연소 군수에 당선됐다. 김 후보자는 남들이 자녀를 조기유학 보내던 시절 오히려 농촌으로 ‘하방(下放)’시켰다. 거창군수를 거쳐 경남지사에 당선돼 아들과 딸을 창원으로 전학시켰다. 하지만 ‘도지사의 아들·딸’이라는 급우들의 눈총 등을 싫어하는 자녀가 창원 학교 생활을 그만두고 거창으로 되돌아가려고 졸랐다. 이에 김 후보자는 흔쾌히 부인 신옥임(46)씨와 함께 자녀들을 거창으로 돌려보내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서민 정치인’이라는 브랜드를 갖게 됐다. 김 후보자는 역발상의 필요성도 자주 강조한다. 지사 시절 집무실에는 거꾸로 된 대한민국 지도가 걸려 있었다. 지도를 거꾸로 보면 남해안이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세계로 무궁한 발전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도의원과 경남지사에 당선될 때도 모두 초반의 어려운 판세를 모두 뒤집고 최연소로 당선되는 저력을 발휘했다. 김 후보자의 또 다른 장점 가운데 하나는 모든 세대와 잘 통하는 ‘비디오형’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186㎝ 키에 딱 벌어진 어깨, 그리고 호감가는 얼굴형을 가진 데다가 연설도 잘한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자신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나 ‘선배’라고 부르며 돈독한 인간관계를 만드는 데 재주가 있다고 한다. 이른바 소통에 능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총리 지명으로 대권 구도에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온다. 김 후보자는 지사 시절에도 이틀 이상 서울에 머무른 주가 많았다. 딱히 서울에 일이 많았다기보다는 서울에 올 일을 만들었다. 그래서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한나라당 의원들을 만나 밥도 먹고, 술도 마셨다. 그는 오래전부터 중앙정치를 꿈꿔왔다. 대학 시절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부친의 죽마고우였던 고(故) 김동영 전 의원의 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면서 정치에 대한 감각을 키웠다. 당시 김 의원의 집은 ‘민주산악회’의 본산이었다. 이어 이강두 전 의원의 선거 캠프에 우연히 합류, 당선에 기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러나 김 후보자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친박계 한 의원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도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지 않으냐.”고 말하는 등 벌써부터 견제가 시작됐다. 서울 김규환·창원 강원식기자 khkim@seoul.co.kr ■김태호 총리 후보자 간담회 “사회의 막힌 곳을 뚫어내는 소통과 통합의 아이콘이 되겠다.” 김태호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는 8일 서울 종로구 내수동의 개인 사무실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이같이 말했다. 김 후보자는 “세대 간의 문제, 지역의 문제, 이념적 갈등 문제 등이 미래로 가는 발목을 잡고 있다.”면서 “이러한 구조를 풀어가고 통합되는 사회를 만드는데 앞장 서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세대·지역·이념의 갈등 풀것 →대통령으로부터 총리직 요청 언제 받았나. 총리로서 주문받은 역할이 있는가. -이틀 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부터 총리직 임명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 받았다. 구체적으로는 오늘 아침 대통령과의 조찬을 통해서 최종 확인했다. MB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친서민 정책, 소통의 문제 등에 있어 역동적인 역할을 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40대 젊은 총리가 39년만에 탄생했다. 발탁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지금은 무엇보다 20~30대 청년층이 상실감에 빠졌다. 소 장수 아들로 태어난 배경없는 촌놈인 제가 도의원과 군수를 거쳐 최연소 지사를 두 번이나 했다. 저를 발탁한 배경에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기회의 땅인지, 용기를 갖고 뛰면 일반 서민들도 할 수 있다는 대한민국의 희망과 가치의 메시지를 전달하시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 같다. 특히 MB 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소통과 친서민 정책 등에 있어 김태호가 역할을 해줄 수 있다는 믿음이 토대가 된 듯 싶다. →신임 국무총리 후보자로서 각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기회가 주어지고 정의감이 꿈틀거리는 대한민국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친서민정책과 소통을 중시하는 현 정부의 가치를 성공시키고자 대통령을 잘 보필하고 정부의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하겠다. →이재오 신임 특임장관과의 역할 분담은. -앞으로 여러 가지 정책 사안이나 국가적 이슈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종합적으로 지혜를 모아 정부가 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중지를 모으겠다. 서로 마음을 열고 정도(正道)를 걸으며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진실 아니면 깃털하나도 안 나와 →검찰에서 무혐의 내사 종결 처리를 했지만 후보자는 한때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을 받았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언론에 관련 기사가 300개 이상이더라. 분명한 것은 2010년 대한민국 수준에서는 죄가 있으면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죄가 있는데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세상이 떠나갈 듯 시끄러워도 진실이 아니면 깃털 하나도 안 나올 것이고, 깃털 하나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진실이라면 태산도 움직일 수 있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씨줄날줄] 총리공관/최광숙 논설위원

    이창호 9단과 목진석 4단의 바둑 대국이 열린 1999년 1월1일. 삼청동 총리공관 삼청당(三淸堂)에서 있었던 일이다. 총리 공관에서 바둑 대회가 열린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날은 김종필 전 총리의 생일이었는데 바둑 마니아인 그는 자신이 거처하던 공관에 바둑인들을 초청했던 것이다. 영국에 총리 관저 ‘런던 다우닝가 10번지’가 있다면 우리는 ‘삼청동 총리 공관’이 있다. 총리 공관은 각종 회의가 열리는 ‘공적 공간’이기도 하지만 총리가 가족들과 함께 생활하는 ‘사적 공간’이기도 하다. 다소 베일에 싸여져 있던 총리 공관이 최근 주목을 끈 것은 바로 첫 여성 총리 한명숙 전 총리 때문이다. 한 전 총리가 불법 자금 5만달러 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을 받는 과정에서 식당 등 공관의 살림살이 현장이 TV에 처음으로 공개되기도 했다. 대통령과 총리는 바로 이웃해 살고 있다. 이들 간 사이가 좋으면 대통령이 총리 공관으로 마실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해찬 전 총리 시절 공관을 여러 차례 비공식 방문, 부부 동반 식사를 즐겼다고 한다. 탄핵을 받을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얼마나 답답했던지 총리 공관으로 달려가 고건 전 총리를 만나 울분을 토로했다고 한다. 역대 총리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총리로 평가되는 이수성 전 총리는 퇴청해 집(공관)으로 돌아오면 개인의 삶을 즐겼다. 공관에서는 항상 한복차림으로 흰 고무신을 신고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총리 공관은 서울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전원적인 분위기다. 총리를 두 번이나 역임한 고건 전 총리가 “산으로 둘러싸여 다른 곳보다 온도가 3도가량 낮고, 봄도 늦게 온다.”고 했을 정도다. 현 공관은 조선시대 왕자가 살던 태화궁(太和宮)이 있던 자리다. 1948~1961년 국회의장 공관으로 사용되다가 1961년 5월 이후 총리 공관으로 사용됐다. 집무실, 침실이 있는 본관 건물과 오·만찬 회의장으로 이용되는 삼청당 등 부속건물이 있다. 본관은 노신영 전 총리 시절 1985년 일본식 목조 건물을 헐고 석조건물로 신축한 것이다. 재미난 사실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노 총리 비서관 시절 공관 신축에 관여했다고 한다. 사퇴의사를 밝힌 정운찬 총리가 최근 공관 인근에 사는 주민 40여명을 초청해 만찬을 했다. 취임 첫 행사로 지역 주민들을 공관에 초청한 데 이어 두번째다. 물러나면서 이웃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인 정 총리의 후임으로 공관에 입주할 김태호 내정자도 그런 마음 이어가길 바란다.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 [관가 포커스] 환경장관 ‘4대강사업 옹호’ 구설수

    이만의 환경부 장관이 휴가 중 고향지역인 전남 영산강을 방문한 자리에서 4대강 사업을 옹호 하는 발언을 해 구설수에 올랐다. 개각을 앞둔 시점에서 일부러 튀기 위한 ‘충성발언’이라는 비판과 ‘소신발언’이라는 해석이 팽팽하다. 이 장관은 지난 3일 금강 금남보 현장을 방문한데 이어 4일에는 광주 영산강 승천보 건설현장을 찾았다. 이 자리에서 “강을 살리는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지역의)정치인들 얘기를 들으면, 애향심이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반대하는 환경단체도 강 살리기에 동참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이 같은 사실을 전해들은 지역 환경·시민단체는 발끈했다. 광주시장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시민단체들은 즉각 성명을 내고 “환경보전을 책임져야 할 주무장관이 4대강 사업에 이견을 보이는 국민들을 되레 폄하하는 것은 책임을 망각한 발언”이라고 성토했다. 환경부 직원들은 장관의 발언을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뭔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이 장관은 5일 정부과천청사 집무실에 정상 출근, 국·실장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가 끝나고 한 간부가 현지 반응 등을 전하자, 장관은 “의도적으로 한 발언이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의에 참석했던 또다른 국장은 “장수 장관으로서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서 말이 많은 4대강 사업에 대해 소신발언을 한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하지만 한 시민단체 간부는 “타지역 지자체장들이 공사지지를 표명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장관의 연고지인 영산강은 여전히 반대여론이 높아지자 충성발언을 한 것”이라며 “하지만 환경보전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으로서 경솔했다.”고 비판했다.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 이재석 심플렉스인터넷 대표의 ‘마침표 없는 도전’

    이재석 심플렉스인터넷 대표의 ‘마침표 없는 도전’

    [서울신문NTN 김수연 기자] 43세의 젊은 CEO는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이었다. 직원수 460명의 심플렉스인터넷이 최고 가치로 내세우고 있는 자유와 창의성이 이재석 대표의 드레스 코드에서 묻어났다. 심플렉스인터넷은 웹·서버 호스팅, 쇼핑몰 솔루션, 온라인 마케팅 컨설팅(인터넷 광고대행), 홈페이지 제작 등 일체의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는 IT 비즈니스 기업이다. 서울 신대방동에 위치한 심플렉스인터넷 사장 집무실에서 이재석 대표와 마주 앉았다. ◆ 창립 11년만에 연매출 300억, 시장점유율 1위 달성이재석 대표가 심플렉스인터넷을 설립한 것은 벤처붐이 일던 1999년이었다. 포항공대 물리학과에서 순수과학을 전공한 그는 원래 데이터 해석과 예측에 관심이 많았다.이 대표는 자신의 관심 분야를 살리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을 궁리한 끝에 지금의 사업을 구상하게 됐다. 인터넷 시대가 열렸던 것도 창업을 결정하는 데에 큰 계기가 됐다.그렇게 시작한 사업이 올해로 11년째에 접어들었다. 그 동안 작은 벤처기업은 직원수 460명에 연매출 300억원을 기록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사업 분야도 확장됐다. 이 대표는 웹 호스팅 사업의 노하우를 활용해 쇼핑몰 솔루션과 온라인 마케팅 컨설팅이라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 모험처럼 보였던 ‘솔루션 무상제공’ 2000년 이재석 대표는 심플렉스인터넷의 브랜드 ‘카페24’를 출범시키고 3년 뒤 ‘카페24’를 통해 무료 쇼핑몰 솔루션 서비스를 개시했다. 이 대표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할 무렵을 떠올리며 “고객들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콘텐츠에 대한 가격 탄력성은 작다. 또 싼 게 비지떡이라는 고정관념도 있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웹 호스팅 사업으로 인지도를 쌓아온 심플렉스인터넷의 역량을 믿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뚝심을 발휘했다. 그는 “일반적으로 6개월 정도 지켜보다가 잘 안 되면 접는 것이 인터넷 사업의 생리인데 이와 상관 없이 꾸준히 했더니 반응이 오더라. ‘이용해 보니 좋다’는 입소문 효과인 것 같다”고 말하며 겸손함을 보였다. 또 “‘공짜가 다 그렇고 그렇지’라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현재 심플렉스인터넷의 대표 브랜드인 ‘카페24’에 입점한 쇼핑몰 수는 40만개, 회원수는 300만에 달해 ‘성공’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 ‘발명적 접근’ 아닌 ‘발견적 접근’이재석 대표가 선굵은 행보를 거듭하고 있는 데에는 자신만의 사업 마인드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대표의 사업 신조는 ‘발명적 접근이 아닌 발견적 접근을 하라’는 것이다.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하는 것’들을 먼저 해보자는 의미다.이를 실천하기 위해 이 대표는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어떤 일을 시도할 때면 과연 어떤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정답에 가까운 것인지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한다고 한다. 경쟁사에 대처하는 방법이나 직원들을 대우하는 방식에 있어 감정적으로 치우치지 않고 장기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마인드가 몸에 밴 덕분이라고 그는 설명했다.이 대표가 ‘발견적 접근’을 통해 이룬 것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심플렉스인터넷만의 문화로 자리잡은 ‘레저 휴가’다. 주 5일제를 어떻게 하면 회사의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주 5일제를 실천할 수 있을까에 대한 정답을 찾기 위해 고민한 끝에 ‘레저 휴가’를 도입했다. 이 대표는 3년 째 직원들을 대상으로 매월 10만원의 휴가비를 지원하는 레저휴가를 시행하고 있다. 레저휴가는 연차휴가, 안식휴가와 별도로 진행되는 심플렉스인터넷만의 휴가제도로 이를 통해 직원들은 경제적 부담 없이 실질적인 레저를 즐기고 있다. 심플렉스인터넷이 전직원을 대상으로 레저휴가 활용 및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지난 3년간 직원들의 레저휴가 사용률은 84%로 업무상의 이유로 당직을 신청하는 직원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직원이 레저휴가를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컴퓨터도 과열되면 다시 껐다 켜야 한다. 사람도 쉼이 있어야 능률있게 일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이 대표의 굳은 믿음도 제도 안착에 힘을 보탰다. ◆ 지치지 않는 도전, ‘카페24 마케팅센터’최근 심플렉스인터넷에 효자 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카페24 마케팅센터’다. 쇼핑몰 사업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광고를 대행해 주는 모델로 2006년 처음 선보인 이래 꾸준한 매출 상승을 이끌어내고 있다. 심플렉스인터넷은 점점 다양해지는 쇼핑몰 사업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카페24 마케팅센터’를 통해 쇼핑몰 매출 분석은 물론, 어느 광고를 언제 어떻게 노출하는 것이 효과적인가 등에 대한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현재 ‘카페24 마케팅 센터’가 심플렉스인터넷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고객의 니즈를 먼저 파악하는 ‘선제적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 대표의 경영철학은 심플렉스인터넷을 늘 고객 곁에서 공감할 수 있도록 해준다.◆ ‘소통’하는 쇼핑몰을 꿈꾸며 최근 이재석 대표는 쇼핑몰 사업자들과 그들의 고객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구축하는데 전력투구 하고 있다.개성이 다양해지는 요즘 쇼핑몰 사업자들이 고객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에 최적의 지원을 하기 위해서다. 그는 쇼핑몰 사업자와 소비자 간 원활한 소통을 가능케 하는 시스템을 구현하는 과정에 심플렉스인터넷의 역할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강조한다.“미술 용품을 판매하는 쇼핑몰 운영자가 그림을 잘 그리는 법에 대해서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고, 야구 용품을 취급하는 운영자가 야구에 관해 수요자와 대화할 수 있는 그런 커뮤니티가 구축될 수 있도록 최적화된 시스템을 완성해 보고 싶습니다.” 지금 가진 것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파악하고 그것들의 조합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해 내는 이재석 대표가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사진 = 심플렉스인터넷 김수연 기자 newsyouth@seoulntn.com
  • 새달 퇴임 여성 첫 대법관 김영란

    새달 퇴임 여성 첫 대법관 김영란

    지난 26일 오후 4시, 인터뷰가 1시간쯤 이어졌을 때 김영란(54) 대법관이 물었다. “덥지 않나요.” 서울 서초동 대법원 8층 그의 집무실은 법정온도(26도 이상)를 유지하는 듯했다. 그는 조용히 일어나더니 옆방에서 선풍기를 들고 나왔다. 바람이 잘 가도록 맞춰주며 그는 다시 물었다. “괜찮나요.” 김 대법관은 우리 어머니처럼, 배려가 몸에 배어 있다. 그는 ‘여성적 감수성’이라고 표현했다. 남성적 감수성이 지배하는 한국사회에서 소수자를 이해하는 데 이 감수성이 밑거름이 됐다고 했다. 2004년 8월25일 서열·기수 관행을 뛰어넘어 그가 대한민국 첫 여성 대법관으로 임명된 이유이기도 하다. 오는 8월24일 퇴임하면서 또 한번 관행을 뛰어넘는다. 변호사로 개업하지 않기로 한 것. 판사 출신 전임 대법관 가운데 조무제(69) 전 대법관이 유일하게 퇴임 후 동아대 석좌교수로 옮겼다. “제일 좋아하는 사람이 안철수(카이스트 교수)씨거든요. 과감하게 버리고 또 새로운 투자를 하더라고요. 나는 그동안 그렇게 못했어요. 그 분을 보니까 용기가 나더라고요.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새로운 투자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게 참 감사하다 싶고요. 지금 변호사를 안 하는 것은 순전히 그런 개인적인 선택이에요.” →대법관 퇴임 후 어떤 변화를 예상하나. 자기검열 등으로 발산하지 못했던 내 자신이 서서히 나오겠죠. 자유롭게 살다보면 개성이 드러나고요, 어떻게 살 거냐를 결정하는 순간이 많이 오겠죠. 한 10년 지나면 다른 모습으로 살 거예요. 일단 나가면 머리부터 염색하고. 까맣게, 누구는 금발로 하라고 하던데 (웃음). 요새 너무 흰머리가 느니까, 정말 몇 년 위인 사람들하고 다녀도 저를 제일 위로 봐요. (2004년 취임할 때 그는 ‘30대 소녀’ 같았다. 다른 대법관보다 나이도 열 살 이상 어렸고, 표정도 30대처럼 밝았다. 집무실에 갇혀 6년간 사건기록과 싸우더니 그의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퇴임 후 삶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전혀 예상하지 않았던 거예요. 변호사 안 할 거라고 오래 전부터 얘기해 왔고, 그래서 평소의 생각을 얘기한 것뿐이에요. 도덕적으로 우월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요. 성격상 (변호사와) 맞지도 않고, 더 솔직히 말하면 사건기록 보면서 티격태격하는 게 이제 지겨워요. 하지만 이 반응들이 무슨 의미인지는 깊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판사들은 나름대로 잘하려고 애를 쓰는데 판사가 느끼는 것과, 세상이 판사를 보는 시각이 다르다는 게 확인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대법관이 퇴임해서 변호사로 일한다고 다 전관예우받으면서 부당하게 행동하는 게 아닌데도 왜 일반인은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런 것을 역으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들었어요. →초임 단독판사로 오늘, 법대에 다시 앉는다면. 제가 임신 9개월쯤 됐는데 아이가 이상해서 재판을 연기하고, 산부인과에서 치료를 받았어요. 재판 연기된 것을 원고는 알았는데, 피고는 몰랐어요. 그러자 피고가 상대방에게만 정보 알려줬다고 오해를 하더라고요. 이런 사소한 것에도 당사자는 ‘상대방이 이 판사를 좀 아나 보다.’ 이렇게 생각해요. 소송에 져도 그래서 졌다고 믿고요. 그래서 양쪽 모두에게 정말 공평하게 재판한다는 인상을 주도록 노력할 거예요. 판사들이 열심히 하고 뛰어난 인재인데도 인정 못 받는 건 이런 이유 때문이에요. →대법원 선고일 전날, ‘내 결론이 맞나’ 잠 못 이룬 적 있나. 많이 있죠. 민사보다 형사가 훨씬 고민이 되더라고요. 피고인이 혐의를 부인하면서 수십장씩 써내고, 그걸 다 읽어보면 그럴싸해 보이거든요. 증거를 다 찾아보고 맞춰 보죠. 피고인의 말만 믿으면 무죄인데, 기록 전체적으로 보면 유죄인 거예요. 특히 살인 사건 같은 경우, 저 혼자 보다가, 혹시나 하고 재판연구원에게 다시 보게 시키고, 선고하는 아침까지 보는 판결도 있어요. 사형 판결도 대법원에 와서 3개 정도 했어요. 어쨌든 전 기본적으로 사형제도에 반대하지만, 다른 대법관도 다하고, 저만 안 할 수 없는 거니까요. 개인적 신념과 상관 없이 해야 되니까 마음이 무거웠어요. →아쉬움이 남는 판결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사건을 전원합의체(대법관 13명 구성)에서 제대로 못 해 보고 떠난 게 그래요. 전원합의체에서 논의할까 해서 재판연구원실에 본격적인 검토까지 시켰는데, 결국은 제가 문제제기를 못 했어요. 소극적으로 임한 거죠.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줬으면 좋겠는데…. 징역형(2년6월)을 감수하는 걸 보면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로 보이고, 병역회피의 수단이 아니라는 게 뚜렷한데 젊은이들을 계속 벼랑에 내몰아야 되는지…. 헌법재판소가 계속 합헌이라고 결정해서 혼자 무죄라고 할 수도 없고…. →‘유일한, 첫 번째 여성’이라는 수식어가 평생 따라다녔다. 원동력이 무엇인가. 학교 다닐 때부터 ‘나 자신의 삶을 살자’ ‘내가 주체로서 독자적인 내 인생을 살자’라고 생각했고, 그럼 전문적인 직업을 갖고 승부를 봐야 한다고 결론내렸어요. 사회과학대에 입학했는데 1년 반 후에 법학과를 선택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많은 여학생들은 법대에 와요. 몇 십년 흘러도 여성들이 다른 직업에 가서 개척하기 힘들다는 얘기죠. 우수한 인재가 (법조계에) 많이 오는 것도 좋지만 다른 쪽으로 가서 개척하라고, 여대 같은 데 가면 얘기해요. →후배 여성들이 닮지 않았으면 하는 점은. 나는 교집합 속에서, 소극적으로 살았어요. 소수의 여성으로서 남성이 많은 사회에 적응해야 하니까, 남녀가 겹치는 부분에서만 양쪽에서 욕을 먹지 않도록 행동을 제한하면서 말이죠. 자기검열이 강하고, 정말로 내가 발언해야 할 때 제대로 못 하고요. 첫 여성이란 타이틀을 가진 외국인들도 다 느끼는 모습이더라고요. 후배들은 그러지 말기를 바라요. 자기 개성도 살리고, 삶의 주도권을 잃지 않으면서, 원하는 바도 얻는 그런 길을 달성해 나가면 좋을 거 같아요. 정은주·임주형기자 ejung@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서울광장]절대권력이 그리운가요/육철수 논설위원

    [서울광장]절대권력이 그리운가요/육철수 논설위원

    아무래도 역사의 시곗바늘을 두어 시대쯤 거꾸로 돌려놓은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군사독재시대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어떻게 지금 버젓이 벌어지겠는가. 며칠 전 어느 기사를 읽으면서 눈을 의심했다. J(40)씨는 열흘 전쯤 새벽에 귀가 중 건장한 괴한 3명으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했다고 한다. 괴한들은 J씨의 집 주소와 이름을 확인하고는 30분 동안 두들겨팼다는 것이다. 양복차림의 한 괴한은 J씨에게 “겁이 없다. 뭘 믿고 그러냐. 조용히 살아라. 왜 그딴 글을 올리느냐.”며 위협했다고 한다. J씨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해 보수단체 사이트에 댓글을 단 게 문제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촛불집회에 자주 참석했고, 대검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더욱 기가 막히는 일은, J씨의 어머니가 경찰서에 신고했더니 “(당신 아들) 요주의 인물에 들어 있네요.”란 소리를 들어야 했단다. 생각이 다르고 정부에 껄끄러운 소리를 한다는 이유로 폭행을 당한다면 그건 무법천지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문득 20여년 전 언론인 O씨 테러사건이 떠올랐다. 당시 신문사 사회부장이던 O씨는 군사문화를 비판하는 칼럼을 썼다가 정보사 장교들에게 단도(短刀)로 허벅지를 사정없이 찔렸다. J씨 사건은 시대를 뛰어넘어 O씨 사건과 국화빵처럼 닮았다. 상대가 아무리 얄밉고 주먹을 한방 먹이고 싶다고 해서 사적(私的) 린치를 가한다면 민주화된 법치국가의 커다란 수치다. 2년 전 촛불정국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정부에 비판적이던 어느 공무원은 청와대에 불려가 사방이 꽉 막힌 방(일명 먹방)에서 신분도 모르는 사람한테 조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총리실 감찰요원들이 퇴근하는 고위 공무원을 집앞에서 기다렸다가 다시 사무실로 데려가 압수수색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J씨 폭행사건과 공무원들에 대한 청와대·총리실의 위압적 조사가 사실이라면, 대한민국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권위주의 시대로 되돌아간 게 틀림없다. 공교롭게도 독재시대를 연상케 하는 권력의 탈선이 최근 빈발하고 있다. 경찰이 고문을 하고 검찰은 스폰서를 두고 공짜술을 즐겼다. 공직기강을 살펴야 할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민간인과 여당 국회의원들을 무차별 사찰했다. 정치인들은 검찰수사에 개입해 뒷거래를 하고, 방송가엔 연예인 블랙리스트까지 나돌았다.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독재시대의 구색을 갖추었는지 놀랍다. ‘어설픈 공직자’(이명박 대통령 표현)들은 역사를 되돌려 절대권력을 누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국민은 똑똑하다. 이미 권력의 속살을 보았고 그 생리까지 터득하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쏟아지는 권력 최상층부의 소식도 수시로 접한다. 미국의 어느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인턴 여직원과 벌인 부적절한 행위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탈리아 총리가 이혼 당하고 프랑스 대통령이 가수와 재혼했으며, 아이슬란드 총리는 레즈비언이라는 ‘비밀’도 안다. 멀리 갈 것 없다. 우리의 전직 대통령은 권위를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렸고, 검찰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니 국가지도자들조차 권력만 빼면 보통사람과 다를 바 없다는 인식이 머리에 박혀 있다. 권력이 탐나고 부럽긴 하겠지만 무섭다고 여기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시대의 국민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다고 착각하는 ‘졸권’(猝權)이 존재한다. ‘벼락 권력자’들은 국민이 자신들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줄을 모른다. 그러나 역사의 커튼 뒤에 숨어 절대권력을 휘둘러봤자 언젠가 들통나게 마련이다. 대한민국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지나 어렵게 선진화의 문턱까지 왔다. 이 문턱을 넘고 싶으면 시대착오적이고 병든 권력부터 도려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법치도 가능하다. 권력 실세들은 5000만 국민의 1억의 눈이 주시한다는 점을 제발 잊지 마시라. 국민이 뭉치면 능히 ‘역발권’(力拔權)할 수 있다는 사실도. ycs@seoul.co.kr
  • [사설] 집무실 줄인 구청장, 봉급 반납한 시장·군수

    서울 구로구가 구청장 집무실을 현재의 3분의1 이하로 줄이고 새로 생긴 공간을 업무 부서에 주기로 했다고 한다. 34㎡(약 10평) 크기의 구청장실에는 책상과 회의 탁자, 책장 등 최소한의 사무용 가구만 비치할 예정이다. 호화 청사와 아방궁을 방불케 하는 시장 집무실로 논란을 빚었던 성남시와는 극히 대조적인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김충석 여수시장과 허남석 곡성군수는 6·2 지방선거 과정에서 유권자들에게 다짐했던 봉급 사회 환원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이런 실용적 행정사례들이 존재하는 한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고 본다. 행정안전부 조례 표준안에 따르면 시·군·구의 단체장실은 접견실 등 부속공간을 포함해 100㎡ 내외(30평 정도)가 적정규모다. 광역시·도의 경우 165㎡ 내외(50평 정도)를 기준면적으로 한다. 그러나 민선단체장 취임 이후 단체장실 규모가 경쟁적으로 넓어지면서 표준면적 준수율은 고작 8.5%에 그친다. 업무의 효율성이나 재정 상태와는 상관없이 개인 편의 증진과 권위 과시를 위해 혈세를 들이는 셈이다. 최근 들어 지자체들이 앞다퉈 호화청사를 신축하면서 단체장실은 더 화려하고 넓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지나치게 외관에 치우치는 것은 관용차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들은 소형차나 경차는 철저히 외면하고, 대신 중·대형차를 관용차로 구입하고 있다. 행안부는 지자체 청사는 주민수 등을 고려해 면적 기준을 정하고 그 범위에서 지자체가 조례로 면적을 정하도록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한 데 이어 내년 3월부터 지자체장 집무실 면적 기준을 법으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앞서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전국 지자체 중 가장 작은 단체장 집무실을 갖게 된 구로구와 봉급 모두를 사회에 환원하는 여수시장과 곡성군수의 사례가 모든 지자체들의 재정건전성을 확립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 구로구, 청장실 3분의 1로 축소

    구로구가 기존 구청장실을 3분의1로 줄여 ‘셋방살이’를 하는 부서에 주기로 했다. 구는 27일 집무실(89㎡)과 화장실(5㎡), 침실(14㎡)까지 갖춘 구청장실(108㎡)을 3분의1 수준에도 못 미치는 34㎡(약 10평) 크기로 줄일 예정이라고 밝혔다. 새 집무실에는 업무용 책상과 회의 탁자, 책장만 들이고 나머지 시설은 전부 빼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구는 다음달 7일 공사를 시작해 15일 마무리할 방침이다. 구청장실 축소로 부구청장실도 69㎡에서 32㎡로 줄어들고 여유공간은 사무실로 활용한다. 구로구청은 사무실 공간 부족으로 교통행정과와 환경과, 푸른도시과 등 3개 부서가 구청 인근 빌딩 3개 층에 세들어 직원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사무실 임대 비용으로 구민들의 혈세가 낭비된다는 지적도 적잖았다. 밖으로 나간 1개 과가 옛 구청장실 공간으로 들어오면 조직개편과 맞물려 임대 공간이 1개 층으로 줄고 예산도 보증금 12억원에 월세 900만원에서 보증금 4억원에 월세 300만원으로 급감한다. 행정자치부가 최근 입법예고한 기초자치단체장 집무실은 최대 99㎡로 규정돼 있다. 부구청장실을 줄여 생기는 공간은 이 구청장 핵심공약 사항인 ‘옴부즈맨’ 업무를 다루는 사무실로 꾸민다. 유영환 조직경영과장은 “구청장이 형식을 중시하지 않는다. 집무실을 줄인 것은 이런 성격을 반영한 것이자 주민 세금을 아껴 복지예산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청장실 화장실이 없어지면 볼일(?)을 직원들과 함께하는 것도 잦아지게 됐다. ‘골초’로 소문난 이 구청장은 ‘사무실 금연’ 규정을 지키기 위해 옥상 등 청내 흡연공간을 이용하고 있다. 직원들이 같이 담배 피우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외국에선 시장들도 격의 없이 직원과 대화한다. 소통의 시간으로 활용하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 덕수궁 분수 물개상 출생비밀 밝혀졌다

    덕수궁 분수 물개상 출생비밀 밝혀졌다

    고종 황제의 처소 겸 집무실이었던 덕수궁 석조전의 원형 복원 공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석조전 앞 분수의 물개 조각상에 얽힌 궁금증을 풀어줄 단서가 발견됐다. 석조전 분수는 1938년 일제가 석조전 서쪽에 이왕가미술관(현 덕수궁미술관)을 만들 때 조성한 서양식 분수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근래 공개된 1920~30년대 사진자료에 지금과 다른 형태의 서양식 분수가 이미 존재했고, 물개가 아닌 거북 조각상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조각상 교체 배경과 의도 등에 대해 의혹이 제기돼 왔다. 물개 조각상을 누가, 언제 제작했는지도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재미 큐레이터 선승혜(40·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 한국·일본미술 담당)씨는 26일 석조전 분수의 물개 조각상은 1937년 제6회 조선미술전람회 조각공예부문 심사위원이었던 일본 도쿄미술학교 쓰다 시노부 교수가 디자인했으며, 1940년 1~8월 사이에 설치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선씨는 논문 ‘한국 근대의 양식(洋式)취미-석조전 정원과 쓰다 시노부의 분수조각’에서 이왕직(일제 강점기 조선의 왕족을 관리하던 직제)이 분수를 개·보수하면서 쓰다 교수에게 새 조각상을 의뢰한 공문을 입수해 공개했다. 1938년 7월16일 작성된 공문은 분수 디자인의 사진과 크기를 보내면 오사카 주조소에 제작을 의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공문에는 어떤 의도로 조각상을 의뢰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정종수 국립고궁박물관장은 “거북은 왕의 도장인 어새의 손잡이에 조각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서 “거북 조각을 물개 조각으로 대체한 것이 의도적인 것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조선 왕조를 부인하고 권위를 크게 훼손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대통령전용기 입찰 보잉-에어버스 각축

    대통령전용기 입찰 보잉-에어버스 각축

    민간 항공기뿐만 아니라 공중급유기 등 군용기에서도 경쟁관계에 있는 보잉사와 유럽항공우주방위산업(EADS)이 한국 대통령 전용기 입찰에 참여하면서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다. 방위사업청은 23일 지난 5월26일 공고한 대통령 전용기 입찰제안서 제출기한이 다음 달 3일 마감되며 보잉사와 에어버스의 모기업인 EADS가 제안서를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방사청에 따르면 하늘에 떠 있는 대통령 집무실을 만들 수 있는 업체는 보잉사와 EADS 두 곳밖에 없다. 이렇다 보니 독점적인 지위가 아닌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구도가 형성됐다는 것이 방사청의 설명이다. 방사청 관계자는 “두 회사로부터 받은 제안서를 토대로 8월부터 10월까지 가격협상과 시험평가를 거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 회사의 기술력의 우위를 가리기 어려워 비슷한 수준의 기종과 옵션을 제시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특히 민간 항공기 시장 점유율이 높고 미국 회사인 보잉이 EADS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 EADS가 최근 새 민간 항공기 기종을 출시하면서 보잉을 위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 대통령 전용기 수주를 두고 양사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일단 방사청은 두 회사가 제시한 제안서를 검토하고 제안서에 담긴 내외부 시스템 등에 대한 정밀 검증을 실시할 예정이다. 시험평가는 공군이 담당하게 된다. 공군은 이미 시험평가단을 구성해 놓았으며 이들은 양측이 제시한 후보 기종에 대한 전용기로서의 기술과 효율성을 모두 평가하고 전용기 제작 회사를 최종 선택하게 된다. 12월 말까지 방사청이 회사와 기종을 선택하면 대통령 전용기는 제작기간 3년을 거쳐 2013년부터 실용화된다. 현재의 대통령 전용기는 1985년에 도입된 노후기종으로 규모가 작아 탑승인원이 제한되고 항속거리도 짧아 중국이나 일본 등 가까운 지역에만 이용할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의 장거리 순방 때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전세기를 번갈아 빌려 이용하다가 올해 4월부터는 대한항공으로부터 5년간 장기 임차한 항공기를 사실상 전용기로 사용해 오고 있다. 현재 방사청은 보잉 787급 혹은 에어버스 340급 이상의 중형기를 도입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보잉 787 혹은 에어버스 340은 300석 안팎이며 장거리 비행이 가능하다. 대통령 전용기에는 미사일 회피 시스템이나 첨단 통신장비 등이 옵션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구매가격은 3000억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박근혜 前대표 보수대연합에 중요한 인물”

    “박근혜 前대표 보수대연합에 중요한 인물”

    자유선진당의 중앙당사는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맞은편 용산 빌딩에 자리잡고 있다. 4층에 자리잡은 이회창 대표의 집무실 창밖으로 한나라당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표실은 정치인보다는 선비의 사무실 분위기를 풍겼다. 하얀 벽, 하얀 블라인드, 짙은 갈색 책장 주위로 난초 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회창 대표는 21일 오전 10시부터 시작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보수대연합과 개헌, 개각, 7·28 재·보궐 선거, 세종시 등 정국 현안에 대해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논리적인 답변을 이어갔다. 인터뷰는 이도운 정치부장이 진행했다. [보수 대연합] →6·2 지방선거 직후 보수대연합을 제기한 이유는. -지방 선거 결과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때 흔적 없이 사라질 것처럼 보였던 친노세력이 다시 돌아왔다. 유권자를 보수 30%, 진보 30%, 중간 40%로 나누는데 중간층이 2002년 대선 때는 친노 쪽으로 갔다가 2007년 대선 때는 보수 쪽으로 왔다. 지금 이 정권이 잘못해서 실패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이 보수세력의 실패로 직결돼 다시 친북좌파 정권이 돌아오는 것은 안 된다. 이 정권이 싫어도 ‘보수는 좋다.’는 인식을 확보해야 다음 대선에서 보수정권을 다시 탄생시킬 수 있다. 보수세력이 이같은 의식에 공감하고, 결집하기 위해 친보수적인 국민층을 확보할 수 있는 공동의 행동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보수대연합은 누가 주도해야 할까. -지금 말하면 자칫 보수대연합의 의미가 왜곡될 수 있다. 보수대연합의 필요성을 보수들이 공감하는 게 중요하다. 자발적으로 모이는 동기가 형성되어야 한다. →보수대연합의 대상은. -모든 보수세력, 보수 단체, 보수 정당이다. 보수대연합의 필요성을 인식해야지 정략적인 이합집산으로 생각하면 성공할 수 없다. →보수대연합을 위해 이 대표는 어떤 역할을 할 생각인가. -그 필요성을 적극 확산시키고, 성공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 →보수대연합의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실정이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이 대통령의 실정이 민주당의 회귀를 가져왔다. 보수대연합의 전제 조건은 이명박 대통령이 실수와 실정 없이 제대로 정치를 하는 것이다. →보수대연합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고립론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한나라당 안에서 보수대연합을 아주 정략적으로 보기 때문에 나오는 말이다. 박 전 대표는 보수대연합의 굉장히 중요한 인물이다.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선진당과의 통합보다 중도적인 세력 영입을 우선하겠다고 말했다. 보수대연합의 과정에서 중도적인 세력의 통합도 필요한가. -안 대표의 이야기를 듣고 사실 불쾌했다. 우리 당은 합당의 합자도 꺼낸 적이 없는데 (안 대표가) 제멋대로 선진당 합당 이야기를 운운하는데, 이는 보수대연합의 개념을 모르는 것이다. 보수대연합을 한나라당 중심으로 뗐다 붙였다 하는데, 그러면 보수대연합은 성공하지 못한다. 특히 중도대통합이라고 했는데 이는 굉장한 착각이다. 표층에선 중간층이 있지만 정치 세력에는 중도란 없다. 그런데도 중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자신들이 중도세력화를 하면 이 중간표층에 가까이 갈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말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틀린 이야기다. 중도세력과 통합한다는 것은 심하게 말하면 허깨비와 통합한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과 선진당의 합당 가능성이 있는 것 아닌가.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선거 이슈로 꺼냈고, 그것으로 끝난 것으로 본다.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보수의 세 불리기 차원에서 합당 운운하는 것은 안 된다. →보수대연합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보수대연합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면 이름이 연대든, 연합이든, 합당이든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이런 과정 없이 한나라당 쪽에서 합당 이야기가 먼저 나온다면, 이는 한나라당 중심의 세 불리기란 오해가 생길 것이고, 보수대연합도 무산될 수 있다. →안 대표는 한나라당이 자유선진당과 통합하면 수구보수로 비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진당의 색깔은. -그 보도를 보고 눈을 의심했다. 집권당 대표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진의가 와전된 게 아닌가도 생각해본다. 천안함 사건을 비롯한 외교안보 쪽에서 일관되게 우리의 주장을 유지한 것을 두고 그러는 것 같은데, 이런 것이 수구라면 도대체 안 대표나 한나라당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묻고 싶다. 우리가 수구라면 한나라당은 보수정당이 아니고 필요할 때만 보수를 부르는 일종의 무늬만 보수, 얼치기 보수다. 잘못된 이야기라고 본다. 외교안보 이외의 부분에서 오히려 한나라당이 수구다. 진정한 보수는 정부나 공권력의 개입을 최소하면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작은 정부를 추구한다. 반면 현 정권은 민간인을 사찰하고, KB금융 경영진을 뽑는 데 청와대 실세들이 개입해 좌지우지하는 행태를 보인다. 이런 게 전형적인 반(反)법치, 반(反)보수적인 행태이자 수구다. [개헌] →보수대연합과 개헌은 어떤 관계가 있나. -없다. 일부에서 보수대연합을 한나라당이 개헌을 위한 정족수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거론하면서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개헌을 정치 의제로 만들어 당리당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게 아닌가 우려된다. →법률가이자 정치인으로서 한국의 정치문화에 맞는 권력구조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가. -그렇다. 현재 헌법은 1987년, 20세기형 민주화 시기에 만들어졌다. 21세기 이후 선진화 시기에 대비하고, 그에 맞는 국가 권력구조를 고민하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과정이 잘못되고 있다. 국가구조에 대한 이야기는 관심도 없고, 20세기형 헌법에서 권력구조만 바꿔 대체하겠다는 말만한다. 각 정당들이 누가 정권을 잡을 때 자신에게 뭐가 좋을까하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지 진정한 개헌 논의가 아니다. →한국에서 내각책임제도 가능할까. -우리나라에선 대통령제가 국민 의사를 결집하고 또 국가의 힘을 모은다는 측면에서 적합하다. 5년에 한 번 대통령을 뽑는 과정에서 국민 전체가 국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또 그렇게 해서 국민들의 결집된 의사 형성 기회를 갖는다. 이것이 우리 정치를 역동적이고 진취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역동적으로 나가는 반면, 일본은 머뭇거리고 처져 있다고 하는데 일본의 내각제와 우리의 대통령제의 차이에서 나온 것으로 본다. [세종시 및 국무총리] →세종시 원안을 고수한 것은 양심적 판단인가, 아니면 정치적 계산 때문인가. -지방분권 차원에서 일부 부처의 이전은 필요하다고 과거에도 나는 말했다. 부처 이전은 강소국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화를 위해 필요하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먹고 살 길은 분권화해서 지금 서울과 같은 발전축을 여러 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획기적인 지방분권화로 가기 위한 중간 사업이 바로 세종시다. →통일 이후도 생각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수정론자들에 따르면 통일이 되면 수도가 평양, 서울, 세종시 3곳에 생긴다고 한다. 그야말로 탁상공론가들이 하는 소리다. 통일이 되면 양쪽이 동질화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유롭게 오가지 못한다. 수도를 어떻게 평양에 두겠느냐. 오히려 통일이 되면 세종시를 연방정부의 수도로 만들어야 한다. →정운찬 총리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 총리는 세종시 수정안을 위해 들어온 총리다. 떠맡은 과업이 제대로 안된 이상 물러나는 게 맞다. 남은 임기라도 더 이상 실수 없도록 일할 총리가 필요하다. [기타] →현 정부의 이념은 보수적이라고 보는가. -천안함 사건 이후 대통령 담화에서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가 점점 꼬리를 내리는 것으로 흘러갔다. 과연 보수정권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필요할 때는 보수라고 했다가 또 이념을 떠난 중도라고도 한다. 대통령 스스로도 중도실용 정부라고 하면 보수가 아니란 것 아닌가. 헷갈린다. →이명박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은. -금융 위기에서 탈출한 것이다. 다만 피부로 좋아지지 않으니 국민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 정부 가장 큰 실정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세종시 문제다. 법이 되어 있고, 자신이 하겠다고 수십번 약속해놓고 하루아침에 뒤집는 것이 지방선거 패배를 가져왔고, 현 정권의 레임덕 도화선이 됐다고 본다. 아주 큰 실수를 한 것이다.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원칙과 신념을 견지하는 태도다. 쉬운 것 같아도 어려운 일이다. 단점을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야당으로서 민주당에 배울 점은 무엇인가. -당내 사정이 여러 정파가 갈려 있어 복잡하지만 선거 때만 되면 싹 뭉친다. 우리 보수는 그런 게 약하다. 그래서 번번이 당하는데 그런 점은 사실 좀 부럽다. →세 차례 대선에 출마했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얻었는가. -대통령 자리를 잃었고,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쉽게 얻지 못했을 정치적 경험을 얻었다. →2012년 대선 출마하는가. 대선 출마설과 보수대연합이 상관 있는가. -지금 그런 말할 때가 아니다. 둘을 자꾸 결부시켜 이야기하면 쓸 데 없는 오해가 나올 수 있다. 정리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韓·美 ‘불굴의 의지’ 준비 끝났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20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 청사에서 만났다. 이번 회담은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를 하루 앞두고 두 장관이 의견을 사전 조율한 데서 의미가 있다. 특히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2+2회의의 무게가 천안함 사태 대응을 위한 안보 동맹의 확인에 있음을 강조하는 성격도 있다. 김 장관과 게이츠 장관의 회담은 오후 3시30분부터 한 시간가량 조용히 이뤄졌다. 이들은 2+2회의 직후 발표될 공동성명에는 포함되지 않을, 북한을 향한 한·미 군당국의 훈련과 대응 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25일부터 동해에서 열리는 한·미 연합훈련의 일정과 그 이후 이뤄질 후속 연합훈련들에 대한 부분이다. 이번 회의의 주제인 한미동맹·안보협력·대북정책 등 정책적인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실질적 군사행동에 대한 논의인 셈이다. 양국의 참여 전력 규모를 확정하고 후속 훈련들에 참여하는 전력의 규모 등에 대해서도 계속 조율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강화 등 한·미 동맹을 위협하는 북한의 미사일, 핵확산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도 협의했다. 이번 훈련에 해상차단훈련 성격의 특수훈련이 포함된 이유이기도 하다. 두 장관은 또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유보에 따른 후속조치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 전작권 전환 시기가 2015년 12월로 연기됨에 따라 양국 군 사이에 조정할 내용들을 점검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안 등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계획을 담아서 올해 10월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까지는 완전한 합의를 이루자고 협의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김 장관과 게이츠 장관은 한·미 군사동맹에 대해 재확인하고 급변하는 북한의 상황과 그에 따른 군사적 대응에 대해서도 앞으로 더욱 긴밀히 논의하기로 합의했다. 김 장관은 이날 집무실에서 게이츠 장관을 만나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국민들이 한·미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면서 “유엔 안보리 과정에서 미국의 협조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회담에는 한국 측에서 한민구 합참의장, 정승조 연합사 부사령관, 장광일 국방정책실장, 정홍용 합참 전략기획본부장이 배석했으며 미군 측에서는 마이크 멀린 합참의장, 로버트 윌러드 태평양함대 사령관, 월터 샤프 한미연합사령관이 참석하는 등 양국 군 수뇌부가 총 출동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4대강 솔루션(하)] 박준영 전남지사 “영산강 상류 용수 고갈 보 설치는 현실적 대안”

    [4대강 솔루션(하)] 박준영 전남지사 “영산강 상류 용수 고갈 보 설치는 현실적 대안”

    “강물을 깨끗하게 하는 게 최우선입니다. 맑은 물 자체가 다양한 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박준영 전남지사는 19일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정부의 대운하와 연결 짓는 4대강 사업으로 봐서는 안 된다.”며 “강변에 삶터를 둔 주민들이 수질 개선 등을 간절히 바라는 만큼 그런 목적에 맞게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강 정비사업에는 찬성해도 이명박 대통령과 정치노선이 다른 점을 의식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박 지사는 집무실에서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수십년간 강바닥에 쌓인 퇴적물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는 “하류인 목포의 하구언 일대에서 중상류인 나주 영산포 사이 구간엔 퇴적물이 3m 이상 쌓여 가고 있다.”며 “이 구간에 대한 준설 시기를 놓칠 경우 강상(江床)이 둔치와 비슷한 높이로 변하는 동시에 유지수도 고갈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만큼 영산강 정비가 급하단다. 그나마 목포~영산포 구간은 꾸준한 준설과 용수 관리가 이뤄진다면 강으로서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영산포에서 발원지로 이어지는 상류 구간이다. 30여년 전 장성·담양·광주·나주 등 4개 댐이 건설되면서 상류 구간은 유지 용수가 고갈돼 버렸다. 갈수기에는 강상이 드러나고 광주권에서 흘러든 오·폐수로 물이 시커멓게 썩기 일쑤다. 물고기 폐사 등 각종 환경 재해가 빈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박 지사는 “영산강에 보를 설치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반대했다.”면서 “그러나 하천용수 유지를 위해 상류 구간 전체를 준설하기엔 천문학적 예산이 드는 만큼 현실적 대안으로 이같이 판단했다.”고 말했다. 가동보를 이용할 경우 홍수 때에 퇴적물을 효과적으로 배출시켜 쌓이는 것을 막고, 평상시엔 확보된 물을 하천 유지수로 사용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이어 “개발 방향은 홍수예방과 강 주변의 친환경적 정비, 뱃길 복원(옛 새우젓배·홍어배 정도의 규모이지, 운하를 통해 드나드는 화물선은 아니라고 강조) 등에 둬야 한다.”고 말했다. 박 지사는 실제로 2006년부터 최근까지 도내 전문건설협회 등과 공동으로 2000여개 지구 1369㎞의 샛강 살리기 사업을 폈다. 샛강이 썩으면 본류의 오염이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나주 영산지구의 생태하천 정비사업, 고대문화 복원, 천변 저류지와 홍수조절지 설치, 퇴적 오니 준설 등도 꾸준히 추진했다. 그는 “이런 도정 방침과 맞아떨어지는 영산강 살리기 사업을 정치적 논리로 반대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에서 발원지(담양·장성)~목포 하구언 129.9㎞ 전 구간을 공동 답사할 것을 제안하는 등 영산강 개발에 대한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무안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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