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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296…내 전셋집은

    18,296…내 전셋집은

    8·28 부동산 대책 이후 부동산 시장에 매매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9~10월 전국에 약 1만 8300가구가 풀리면서 전세난에도 숨통이 트일 전망이다. 서울에서는 올해 마지막 장기전세주택 3500여 가구가 이달 중 청약을 시작하고, 수도권에서는 다음 달 14개 단지 8900여 가구가 입주를 시작한다.10일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SH공사는 이달 중 ‘25차 장기전세주택’ 3565가구의 청약을 받는다. 전세난에 지친 수요자들의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실제 공급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공급 물량도 많지 않아 오를 대로 오른 전셋값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 물량은 서울 세곡2지구 772가구, 내곡지구 529가구, 마곡지구 1462가구, 양재2단지 390가구, 신내3지구 368가구 등이다. 면적별로는 전용면적 59㎡가 2368가구로 가장 많고, 84㎡ 1085가구, 101㎡ 38가구, 114㎡ 51가구 등이다. 지난 2월 SH공사의 23차 장기전세주택은 평균경쟁률 23.4대1, 지난 6월 24차 장기전세주택은 평균경쟁률 7.9대1로 1순위에 마감된 바 있다. 전셋값은 24차의 경우 마곡2지구 59㎡형이 1억 6240만원, 84㎡형이 1억 9440만원에 공급됐다. 주목할 점은 10월 입주 아파트 물량이다. 수도권에서 8952가구, 지방에서 9344가구의 아파트가 입주를 시작한다. 주택 거래 심리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전국에서 1만 8296가구가 공급되면서 상당수의 전세 매물이 쏟아질 예정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수도권에서는 서울 서초·내곡 보금자리지구, 삼송, 별내지구, 인천 송도 등 14개 단지에서 8952가구가 집들이를 시작한다. 이는 올 들어 가장 많은 물량으로 전달보다 4179가구 늘어난 규모다. 정태희 부동산써브 팀장은 “지난달 부동산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시장의 거래 심리가 조금씩 풀리고 있는 데다 현재 주택 가격이 바닥까지 떨어졌다는 인식도 확대되고 있다”면서 “시프트의 영향은 적겠지만 신규 입주 물량은 일부 매매와 전셋값 하락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보소, 올 한가위 고향 내려오믄 추억 총총 썰어, 인심 푹푹 끓인 시장통 국시 한그릇 먹으러 오소

    보소, 올 한가위 고향 내려오믄 추억 총총 썰어, 인심 푹푹 끓인 시장통 국시 한그릇 먹으러 오소

    시장에 가면 뭐가 좋을까. 우선 싸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조사에 따르면 올 한가위 차례상 비용(4인 가족 기준)은 전통시장이 18만 5125원, 대형유통업체는 26만 2941원으로 예상됐다. 전통시장이 30% 가까이 저렴했다. 지역경기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여기저기 기웃대다 군것질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엇보다 인심은 한 되, 추억은 한 말쯤 챙겨올 수 있다. 이제는 명소가 된 각 지역의 전통시장을 정리했다. 한가위 귀성객들이 가볼 만한 곳들이다. ‘향수 어린 장터’ 장흥 토요시장 예부터 장흥시장은 나주 영산포의 홍어시장, 함평 학다리 우시장 등과 함께 전남 3대 시장으로 유명했다. 2005년엔 시설 보수작업을 거쳐 토요일에만 문을 여는 주말 관광형 시장으로 탈바꿈했다. 이게 주말시장의 효시가 됐다. 그렇다고 평일에 문을 닫는 건 아니다. 소고기집들이 늘어선 시장 뒤편으로 청과물과 해산물 등을 파는 전통시장이 형성돼 있다. 여기 정말 싸다. 그리고 싱싱하다. 올여름 장흥시장에서 3000원에 미나리 한 아름, 2000원에 시장바구니 한가득 콩나물을 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1만원의 가치’를 재확인해 보고 싶다면 꼭 장흥시장에 들러보시길. (061)864-7002, 860-0741. ‘콧등치기 국수’ 정선 아리랑시장 강원 정선 아리랑시장은 1966년 개설됐다. 지금은 ‘정선 5일장’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실제 5일장이 서는 날만 골라 정선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있을 정도다. 매월 2, 7, 12, 17, 22, 27일에 장이 선다. 강원도에서 나는 각종 산나물과 약초는 물론 곤드레나물밥, 콧등치기 국수 등 추억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특히 메밀전병, 메밀전 등 토속적인 먹거리는 반드시 맛보는 게 좋다. 시장 뒤 문화예술회관에선 장날마다 정선아리랑 창극 ‘신들의 소리’ 공연이 열린다. (033)563-6200. ‘아홉 번째 볼거리’ 단양 구경시장 충북 단양 구경시장은 상설시장과 전통 5일장이 공존하는 곳이다. 저 유명한 단양 8경에 더해 아홉 번째 자랑거리라는 상징적인 뜻을 담고 있다. 구경시장은 ‘동국문헌비고’에 1770년쯤 장이 개설됐다는 기록이 나올 만큼 연륜이 깊다.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자리를 옮겨 현재 단양군 도전리에서 운영되고 있다. 단양은 예부터 토양과 기후 여건이 마늘을 재배하는 데 맞춤하다고 알려졌던 곳이다. 단양육쪽마늘과 관련된 다양한 요리를 장터에서 맛볼 수 있다. 씹을수록 구수하고 담백한 맛이 일품인 단양 마늘순대와 양념이 독특한 흑마늘 닭강정 등이 별미로 꼽힌다. (043)422-1706. ‘마약 김밥·육회’ 서울 광장시장 1905년 문을 연 뒤 100년이 넘도록 종로를 지켜온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시장이다. 특히 먹거리장터가 발달해 식객들의 발길로 하루 종일 분주하다. 꼬마김밥은 ‘마약김밥’, 돼지고추장구이는 ‘동그랑땡’으로 불리는 것도 재밌다. 서울 토박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빈대떡은 광장시장을 대표하는 먹거리. 신선해서 고소하기까지 한 육회와 큼지막해서 더 먹음직스러운 왕순대 등이 뒤를 잇는다. 여기에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곁들이면 스트레스가 한 방에 날아간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에 이르는 서울성곽을 한 시간 정도 걷고 광장시장에 가 보자. 적당한 허기에 각종 먹거리가 입에 착착 붙는다. (02)2272-0967. ‘부산 별미 집합소’ 부산 국제시장 해방 후 ‘도떼기시장’으로 출발해 부산 최대의 만물 시장으로 성장한 시장이다. 올해 10월 10일까지 부산관광공사에서 벌이고 있는 ‘부산 그랜드 세일’ 이벤트에 전통시장이 참여하면서 한층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먹자골목이 특히 유명하다. 아리랑거리를 중심으로 비빔당면 골목(충무김밥을 함께 판다)과 팥빙수 골목, 떡볶이 골목이 밀집돼 있다. 밀면과 완당, 냉채족발, 유부전골 등 별미가 즐비하다. ‘1박2일’ 이승기 덕에 이름을 알린 BIFF 거리의 씨앗호떡도 늘 인기 상종가다. 이제는 쇠락한 광복동 고갈비 골목의 남마담집과 할매집에서는 여전히 옛날 추억의 맛을 팔고 있다. (051)600-4511. ‘200m골목 맛집들’ 수원 못골시장 경기 수원의 팔달문 인근에 있는 못골시장은 늘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북새통이다. 채 200m도 안 되는 골목에 87개 점포가 밀집해 있기 때문이다. 못골시장이 이름을 얻게 된 건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의 ‘문전성시 프로젝트’ 덕분이다. 못골시장에선 반찬, 정육, 생선 등을 주로 판다. 먹거리도 다양하다. 냉면보다 칼국수와 녹두빈대떡이 유명한 ‘냉면’집, 밤과 단호박, 서리태 등이 가득 든 영양 백설기가 맛있는 떡집 등이다. 인근에 통닭 골목, 수원 화성 등 돌아볼 곳도 많다. (031)246-5638. ‘서해 싱싱함 가득’ 서천 특화시장 충남 서천 특화시장은 2004년 문을 열었다. 수산물동, 일반동, 농산물동, 노점동 등으로 구성됐다. 수산물만 파는 곳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렇지는 않다. 입점한 상점 수로 따지면 청과류 매장이 수산물 매장보다 곱절 가까이 많다. 다만 지역 특성상 서천특화시장 하면 역시 수산물이 첫손 꼽힌다. 홍원항과 마량항, 장항항이 지척이니 늘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난다. 해산물을 맛보려는 이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시장 2층에 20여곳의 식당이 있다. 1층 시장에서 횟감을 사서 올라가면 돈을 받고 회를 떠준다. (041)951-1445. ‘서민의 삶과 낭만’ 춘천 낭만시장 강원 춘천 낭만시장은 서민의 삶과 낭만이 깃든 곳이다. 중앙시장에서 이름이 바뀌며 새 단장했지만, 전해지는 사연과 소박한 풍취는 예전 그대로다. 낭만시장은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과 인근 서민이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물건과 약사리고개를 넘어온 농산물이 모였던 곳이기도 하다. 50년을 넘어선 내장 골목, 닭집, 국숫집 등도 대를 이어 구수한 맛을 지켜간다. 최근엔 시장 구석구석에 벽화를 그리고, 콘서트를 여는 등 문화의 옷을 입기도 했다. 낭만시장에서 간식 골목을 거쳐 근대사와 예술가의 흔적이 서린 망대골목까지 산책에 나서는 것도 좋겠다. (033)250-3068.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호텔따라 떠나는 그리스

    좋은 호텔은 좋은 여정을 만든다. 아테네와 펠로폰네소스반도의 이오니아해, 에게해에 자리한 좋은 호텔 세 군데를 소개한다. ●Athens 아테네 올림픽을 기억하는 신의 도시 ▶hotel 고대 도시의 품격을 품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Hotel Grande Bretagne 공항에서 아테네 시내로 접어드는 길은 혼잡하다. 얼키설키 얽힌 도로 위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노라면 신들의 도시 아테네에 대한 막연한 로망은 흐려지고 만다. 로망 이전에 아테네는, 전 세계에서도 매연으로 이름 높은 그리스 제일의 도시인 것이다.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는 그런 아테네의 심장부에 자리하면서도 혼잡한 도심의 기운을 뒤로하고 당당하게 서 있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문을 연 건 1874년. 140년이 넘는 세월은 호텔에 고스란히 녹아 들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시간은 현재에서 과거로 흘러 고대 도시 아테네로의 여정을 알린다. 로비의 와이파이 존을 찾아다니며 현실의 끈을 놓지 못하는 현대인은 그래서 그랜드 브르타뉴에서 초라해진다. 그랜드 브르타뉴가 세워진 이래 아테네에서는 두 번의 올림픽이 열렸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이 그것이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두 번의 올림픽 당시 모두 공식 호텔로 지정됐다. 전 세계에서 유례 없는 기록이다. 호텔의 유명세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소피아 로렌 등 왕족들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방문도 한몫 했다. 그랜드 브르타뉴는 클래식과 디럭스 타입의 객실을 비롯해 7개 타입의 스위트 객실을 선보인다. 비교적 좁은 편인 낮은 등급의 객실이라도 고풍스럽기는 한결같다. 완벽한 조망을 바란다면 디럭스 스위트가 제격이다. 객실은 디럭스 타입과 동일하지만 아크로폴리스를 조망하는 넓은 발코니를 지녔다. 세세한 배려 또한 잊지 않았는데, 객실에는 각각 다른 5종류의 베개가 비치돼 있다. 부대시설로는 인도어 수영장과 아웃도어 수영장, 스파 등이 자리했다. 압권은 레스토랑이다. 멀리 아크로폴리스를 품은 ‘GB 루프 가든’의 풍경은 시간과 빛의 움직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진다. 그곳에서는 한낮에는 태양을 받아 찬란하게 빛나고, 어두운 밤에는 조명으로 환하게 물든 아크로폴리스를 맞게 된다. GB 루프 가든에서의 식사는 맛을 음미하고 배를 채우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다. 여행의 참맛을 되뇌게 하는 행복한 각성이다. 그랜드 브르타뉴에는 GB 루프 가든을 포함해 7개의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찾아가기 아테네 국제공항에서 호텔까지는 차로 45분 정도 걸린다. 신타그마 광장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타면 호텔까지 쉽게 닿을 수 있다. 시내에서 이동한다면 지하철 신타그마역을 이용해도 된다. 호텔의 위치는 호텔을 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 그런 의미에서 그랜드 브르타뉴는 백 점 만점에 백 점이다. 호텔은 국회의사당과 신타그마 광장 바로 옆에 자리했다. 신타그마 광장은 아테네의 트렌드와 미식 중심지인 에르무, 미트로폴레오스 거리와 이어진다. 아크로폴리스, 제우스 신전, 판아테나이코스 근대 올림픽 경기장 등 아테네의 굵직굵직한 볼거리 또한 차로 10분여 거리로 가깝다. 홈페이지 www.grandebretagne.g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Drive 코린토스Corinth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사이에는 코린토스 운하가 흐른다. ‘육지에 파 놓은 물길’이라는 운하의 뜻 그대로 코린토스 운하는 인공적으로 판 물길이다. 1881년에 시작된 공사는 1893년에 끝나 코린토스에서 살로니코스까지 700km 바닷길을 단 6.3km로 줄였다. 운하를 파려는 노력은 기원전부터 있어 왔지만 매번 여러 반대에 부딪쳤다. 신이 막아 놓은 것을 왜 파느냐는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고, 살로니코스에 비해 코린토스의 해수면이 높아 살로니코스가 잠기고 말 거라는 비과학적인 이유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었다. 67년, 네로 황제는 포로 6,000명을 동원해 공사에 착수했지만 그들은 모두 수장되고 만다. 이리저리 한눈에 담기는 코린토스 운하는 펠로폰네소스를 찾는 여행자라면 반드시 지나는 길이다. 코린토스 운하만 스쳐 지나기 섭섭하다면 루트라키 해변이나 아크로코린트로 향하는 것도 괜찮다. 한적한 루트라키 해변에는 그리스 대중 음식점인 ‘타베르나’가 줄지어 서 있다. 입맛 당기는 해산물 요리는 시끌벅적하게 그리스 스타일로 즐겨야 그 맛이 배가 된다. 아크로코린트는 아크로폴리스의 3배 높이인 해발 575m에 세운 도시국가다. 코린토스와 살로니코스를 모두 굽어보는 전략적 요충지에 자리해 여러 차례 땅의 주인이 바뀌는 비극을 겪었다. 사람이 오를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쌓았던 아크로코린트의 성벽은 길이가 4.6km, 두께가 무려 두께 7m에 달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0min Drive 아크로폴리스Acropolis 아크로폴리스는 폴리스의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각 폴리스에는 아크로폴리스가 존재하지만 오늘날 아크로폴리스는 흔히 아테네를 일컫는다. 아테네는 1,000여 개에 이르는 도시국가 중 하나인데, 대표적인 도시국가로는 아테네, 스파르타, 테베 등이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향하기 전 여행자들은 으레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에 들른다. 이전에는 파르테논 신전 옆에 자그마하게 자리했지만 지금은 ‘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웅장하게 변모했다. 아크로폴리스의 변천사와 출토 유물 등의 전시물도 볼 만하지만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가 참여한 박물관 건물은 그 자체로도 유명하다. 아크로폴리스는 이름 그대로 높은 언덕에 자리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언덕까지는 걸어야 하고, 그 길 중간에는 음악당인 헤로데스 아티쿠스가 있다. 닫힌 문 사이로 일부 모습을 드러내는 음악당은 아크로폴리스에 입장한 후에야 제대로 된 반원형의 모습을 보여 준다. 불레의 문을 통과하면 양쪽으로 선 에레크테이온 신전과 파르테논 신전을 보게 된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남쪽 벽의 여인 조각상 가리아티드로 유명하다. 파르테논은 아크로폴리스를 대표하는 유적이다. 도리아식 기둥의 황금 비율을 선사해 최고의 신전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세월에는 장사가 없다. 늘 그래 온 것처럼 파르테논 신전은 공사 중이다. 입장료┃뉴 아크로폴리스 박물관 5유로 아크로폴리스 전망대 12유로 ●Pylos 필로스 이오니아 해의 숨결 ▶hotel 상상 그 이상의 리조트 코스타 나바리노Costa Navarino 코스타 나바리노는 단순한 리조트가 아니다. 오랜 열정과 땀의 결실이다. 코스타 나바리노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는 1987년. 그리스의 해운 선주 바실리스는 펠로폰네소스 남서쪽에 자리한 메시니아 주의 땅을 일부 구입하며 코스타 나바리노의 서막을 올렸다. 코스타 나바리노가 첫 손님을 맞이한 해는 2010년. 23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시간, 리조트에는 1만6,000그루가 넘는 올리브 나무와 8,000그루가 넘는 과실수가 옮겨 심어졌다. 황량했던 황톳빛 땅은 나무가 우거진 푸른 땅으로 변모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는 일대를 더욱 푸르게 꾸민다. 2009년에 선보인 코스타 나바리노의 듄 코스는 푸르름의 결정판이다. 티박스에 서면 골프 코스와 조화를 이룬 바다와 강, 언덕의 푸르름이 한눈에 담긴다. 듄 코스는 US 마스터스 챔피언인 베른하르트 랑거와 골프 매니지먼트 회사인 트룬 골프가 설계했다. 듄 코스 외에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2011년에 완성된 베이 코스가 하나 더 있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골프 코스가 특별한 이유는 코스타 나바리노는 골프 리조트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름하며 내세우지 않은 시설조차 코스타 나바리노에서는 이리도 훌륭하다. 코스타 나바리노는 그 밖에도 즐길거리가 넘쳐난다. 수영장은 기본. 리조트 내에는 워터 슬라이드를 갖춘 아쿠아파크까지 자리했다. 정규 테니스 코트에 어린이 전용 테니스 코트까지 갖췄으니 기타 스포츠 시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이오니아 해를 마주한 1km 길이의 해변이 자리했지만 리조트에 머물며 해변에 나갈 일은 흔치 않다. 코스타 나바리노의 건물은 돌로 된 성채를 연상케 하는 메시니아의 전통 양식을 따랐다. 건물들이 미로처럼 연결된 까닭에 무심코 길을 나섰다가는 헤매기 일쑤다. 리조트 지도는 필수. 리조트 내 시설은 상상을 초월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는 18곳에 달하는 레스토랑이 자리했다. 그리스 정통 요리에서 아시아 요리까지, 전 세계 맛 기행이 리조트 내에서 이뤄진다. 스시 등 아시아 요리를 선보이는 라운지 바인 ‘인비’와 야외극장과 인접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 루이지’는 특히 인기다. 조식은 뷔페 레스토랑인 ‘모리아스’에서 진행된다. 코스타 나바리노에서 직접 만드는 신선한 요구르트와 다양한 종류의 꿀과 잼이 특징이다. 객실은 로마노스 리조트에 320개, 웨스틴 코스타 나바리노에 444개가 마련돼 있다. 모든 객실에는 리조트 시설과 바다가 조망되는 넓은 발코니가 딸려 있다. 일부 1층 객실은 전용 인피니티 수영장을 갖췄다. 찾아가기 아테테 국제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45분 거리다. 아테네 공항에서 출발하는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280유로. 국내선을 이용, 칼라마타 공항에서 리조트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하다. 칼라마타 공항에서 48km 거리로 리조트 전용 택시는 한 대에 70유로다. 홈페이지 www.westincostanavarino.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3h 20min Drive 모넴바시아 Monemvasia 육지에서 섬이 됐다가 다시 육지와 연결된 모넴바시아. 필로스에서는 3시간, 칼라마타에서는 2시간 30분 거리다. 아테네에서 모넴바시아로 가려면 무려 5시간이 걸리지만 당일치기로 모넴바시아를 찾는 이들도 꽤 된다. 길에 버리는 시간조차 아깝지 않을 만한 가치가 모넴바시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모넴바시아는 펠로폰네소스 남동쪽 라코니아 주에 우뚝 선 섬이다. 본디 반도에 속한 땅이었지만 375년의 대지진을 겪으며 섬으로 분리됐다. 이 섬은 수백 년이 지난 6세기, 다시 육지와 400m 둑으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그리스어 ‘모네Mone’과 ‘엠바시Emvassi’가 합쳐진 말로 ‘하나의 입구’라는 뜻이다. 실제 모넴바시아로 들어가려면 단 하나의 입구를 지나야 한다. 그렇게 닿은 모넴바시아는 식물의 뿌리처럼 뻗은 고샅으로 이어진다. 입구의 고샅은 중앙 광장으로, 또다시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연결된다. 모넴바시아는 아랫마을과 윗마을로 구분된다. 아랫마을을 굽어보며 선 윗마을은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은 아랫마을에는 보수를 거친 800여 채의 옛집과 4곳의 교회가 남아 있다. 중앙 광장에서 바다 쪽 절벽을 굽어보면 절벽에 매달린 집들의 모양새에 모넴바시아는 역시 그리스 섬이구나 싶다. 그러다가 눈을 돌려 고샅을 훑으면 육지의 어디인가 싶기도 하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음식을 조금이라도 얻어 먹겠다고 얌전히 테이블 옆을 지키니 여행자들에게 길들여진 ‘섬 고양이’인가 싶다가도 다가서면 흠칫 놀라 몸을 낮춰 피하니 ‘육지 고양이’인가 싶다. 육지 혹은 섬. 풀리지 않는 숙제다. 모넴바시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고샅을 훑고 바다를 감상하고, 레스토랑과 카페, 기념품 가게를 둘러보는 일이 전부라면 전부다. 하루 이틀 더 묵어 간다 해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고샅을 품은 그 집, 바다를 안은 저 집의 정취가 모두 달라 며칠 머물며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다. 모넴바시아는 그런 곳이다. 스페체스 섬은 자동차가 없는 곳이다. 천천히 오가는 마차가 이곳의 예스러운 정취를 더해 준다. ●Spetses 스페체스 오토바이가 넘실거리는 섬 ▶hotel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 호텔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The Poseidonion Grand Hotel 정기선이든 전셋배든 수상택시든, 스페체스로 향하는 배들은 크기와 형태를 막론하고 다피아 선착장Dapia Port으로 향한다. 멀리, 배에서 바라보는 스페체스는 늘 바라 온 그리스 섬이다. 에게해를 비추는 햇빛은 청록빛에 물들고, 바다로 쏟아질 듯 섬의 언덕에 다닥다닥 붙어 자리한 집들은 파스텔톤 황톳빛을 머금었다. 선착장에서 내려다본 스페체스의 풍경은 또 다르다. 선착장에서 걸어서 1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포세이도니온 호텔이 떡 하니 자리하고 있어 스페체스의 전형과는 조금은 다른 스카이라인을 그려 낸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프랑스 남동부,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인 코트다쥐르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 아테네의 호텔 그랜드 브르타뉴와도 동일한 양식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빌리자면 ‘그리스 관광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급히 지은, 외견만 고급스런 호텔이 아니라 제대로 정성을 들여 세운 품격 있는 본격적인 호텔이다.’ 비즈니스 개념의 호텔만이 존재했던 19세기. 포세이도니온은 그리스 최초의 리조트호텔로 1914년에 문을 열었다. 유럽 각국의 왕족들이 호텔을 다녀갔고 그들의 흔적은 호텔의 옛 장부에 생생하게 남았다. 숙박객들의 이름과 숙박료를 꼼꼼하게 적은 옛 장부는 로비 한 편을 장식하며 호텔의 역사를 말해 준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웅장하고 화려하다. 방과 거실을 분리한 듯한 형태의 로비는 고급스러운 소파와 테이블로 꾸몄다. 로비 천장은 화려한 샹들리에로 장식하고 층과 층은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했다. 포세이도니온은 6층은 됨직한 3층 건물이다. 현대의 실용성만 놓고 본다면 형편없는 건물이겠지만 사치스럽기에 웅장하고 화려할 수 있었다. 다만 1914년에 머물렀다면 호텔은 낡아 버렸을 것이다. 호텔은 2004년부터 5년간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시행해 2009년 6월에 다시 문을 열었다. 타일, 벽돌 등의 자재는 기존의 것을 유지했기에 웅장하고 화려한 옛것과 깨끗하고 편리한 새것은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은 히스토릭 윙Historic Wing과 포세이도니온 뉴 윙Poseidonion New Wing으로 구분된다. 각 건물에는 슈피리어, 디럭스, 스위트 등급의 객실이 자리한다. 정원, 바다의 조망에 따라 객실 등급은 또다시 세분화된다. 낮은 등급의 객실은 아담한 침실과 욕실이 있는 단출한 시설이지만 편안한 침대와 침구를 갖췄다. 반면 스위트 등급의 객실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고급스럽다. 그중 전용 엘리베이터로 닿을 수 있는 로열스위트는 호텔에서도 단 하나뿐인 객실이다. 3개의 침실에는 각각 욕실이 딸려 있으며, 넓은 거실은 값비싼 가구로 채웠다. 압권은 에게 해를 끌어안은 발코니. ‘발코니의 넓이가 부의 기준’이라는 그리스의 문화를 몸소 깨닫게 하는 장소다. 포세이도니온 그랜드 호텔은 ‘베스트 클래식 부티크 호텔Best Classic Boutique Hotel In The World’ 등 2012년에만 호텔 어워드 3관왕을 차지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찾아가기 펠로폰네소스 아르골리스 주 남동쪽 끄트머리에 자리한 코스타 항에서 스페체스까지 가는 페리를 매일 4회 운항한다. 소요 시간은 15분. 운항 시간은 수시로 바뀌므로 호텔에 문의하는 게 좋다. 수상 택시는 코스타 항을 비롯해 포르토 헬리 등지에서도 이용 가능하다. 24시간 운항하지만 늦은 밤이나 새벽에 타려면 따로 문의해야 한다. 아테네에서 스페체스 섬으로 바로 간다면 피레에프스(피레우스) 항에서 출발하는 배를 타면 된다. 배의 종류에 따라 2시간 30분~3시간가량 소요된다. 홈페이지 www.poseidonion.com 유의사항 그리스의 2,000여 개의 섬 중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은 200여 개다. 그리스 섬 사람들은 연중 섬에 살지만 11~4월에 여행자들이 섬을 찾기는 힘들다. 이 시기에는 호텔은 물론 카페나 레스토랑 등 여행자 편의시설이 모두 문을 닫는다. 이유는 다름아닌 날씨 때문. 강수량이 집중되는 시기라 그리스의 찬란한 햇빛은 고사하고 우중충한 날씨가 이어진다. 포세이도니온 호텔 또한 같은 이유로 이 시기에 문을 닫는다. 1~10min Walk 스페체스Spetses 스페체스 섬에는 차가 없다. 호텔에서 짐을 나르는 데 사용하는 개조 트럭이 존재하지만 일상적으로 운행되는 차는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렇지 않아도 섬이라는 단어는 고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법. 자동차마저 사라져 버린 섬의 정적은 가보지 않고는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스페체스 섬의 실상은 정적과는 거리가 멀다. 섬은 차가 없는 대신 오토바이로 넘쳐난다. 10초에 한두 대의 오토바이는 반드시 보게 되니 하릴없이 섬을 왔다갔다 하는 이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여행자에게 오토바이를 빌려 주는 가게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오토바이를 타면 섬 구석구석을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겠지만 작은 섬에서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천천히 섬을 걷다 보면 섬의 풍경과 일상이 느리지만 여유롭게 눈에 담긴다. 조금 멀리 이동할 일이 있다면 마차를 타면 된다. 섬의 정취에 예스러운 정취를 더하는 아주 멋진 교통수단이다. 포세이도니온 호텔에서 걸어서 1분이면 다피아 선착장이고, 다피아 선착장 인근에는 스페체스 섬의 다운타운이 형성돼 있다. 말이 다운타운이지 걸어서 10분이면 훑을 만한 기념품 가게, 카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다. 기념품 가게의 단골 메뉴는 마차, 집, 고양이 등 스페체스의 풍경이 새겨져 있는 마그네틱이다. 여기에 영어로 휘갈겨 적은 ‘스페체스’라는 글씨는 기념만 되지 않는다면 지워 버리고 싶을 정도로 조악하다. 신발, 의류, 모자, 액세서리 등을 판매하는 기념품 가게도 많다. 무언가를 사고 말고를 떠나서 모든 가게들은 예쁘고 아기자기하게 스페체스의 풍경에 녹아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은 점심이나 저녁 시간을 제외하면 한산하다. 스페체스의 ‘그리스’ 할아버지들은 한산한 카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 나른한 그들의 일상은 여행자들에게 그리스를 말하는 풍경이 된다. 지금은 아니지만 17~18세기의 스페체스는 ‘부富’로 대변되는 섬이었다. 스페체스의 작은 섬에는 범선을 만드는 큰 조선소가 있었고 이곳에서는 화물과 대포를 모두 실을 수 있는 범선을 생산했다. 17세기 이전, 그리스는 해적으로 골머리를 앓았는데 이러한 범선이 생산되며 순조로운 무역이 가능해졌다. 스페체스 섬에 부를 가져다준 본거지는 올드하버다. 오늘날 제일 항구의 명예는 다피아 선착장에 내줬지만 당시 올드하버의 영화로운 흔적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올드하버에는 요트 등 개인 소유의 배들이 즐비하고, 인근에 자리한 부유한 선박 소유주들이 지은 호화로운 집들이 스페체스 특유의 풍경을 만든다.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이들 가옥은 그리스에서 가장 비싼 집들 중 하나로 손꼽힌다. 올드하버는 다피아 선착장에서 2km 정도 떨어져 있다. 다피아 선착장과 가까운 락사리나 부부리나Laksarina Bouboulina의 집도 스페체스 섬이 풍요로웠던 시절에 지어졌다. 부부리나는 1821년 투르크와 맞선 독립전쟁에 전 재산을 내어 놓고 독립군을 이끈 여걸이다. 그리스에서 그녀의 이름을 듣는 건 어렵지 않은 일. 유로를 쓰기 이전 그리스의 화폐인 드라크마에도, 거리 이름에도 부부리나는 살아 있다. 과거나 현재나 변함없이 부부리나를 존경하는 그리스인들 덕분에 스페체스는 풍요로움과와 더불어 영광의 섬으로 불리게 됐다. 부부리나의 집은 1991년에 부부리나 박물관으로 선보였다. 집 안에 오래된 무기와 책, 도자기, 편지와 문서, 그림, 개인 소장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부부리나의 후손이 40분간 영어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며 6유로의 입장료는 옛 집을 유지, 보수하는 데에만 쓰인다고 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1h 15min 에피다브로스Epidaurus 에피다브로스는 의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병의 치유를 기원하던 장소다. 에피다브로스에 모인 환자들은 일상의 즐거움을 찾았고, 대규모 반원형 극장은 그렇게 탄생했다. 에피다브로스는 그리스, 로마의 오케스트라 극장 가운데 유일하게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기원전 4세기경에 지어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음향 시스템 또한 완벽하다. 에피다브로스의 무대에는 당시의 음향 시스템을 시험하고자 전 세계 여행자들이 줄을 선다. 소리를 치는 이들도, 노래를 부르는 이들도 있다. 객석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도 소리는 잘 들린다. 소리가 벽을 치고 증폭돼 울리는 것마냥 아주 잘 들린다. 에피다브로스의 반원형 극장은 1만4,00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다. 입장료 6유로 1h 30min 나프플리온Nafplion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우스 주에 자리한 나프플리온. 투르크와의 독립전쟁에서 승리한 후 그리스 임시정부가 들어선 곳이기도 하다. 나프플리온은 아테네와도 2시간 30분가량 거리로 가까워 당일치기 여행이 가능하다. 나프플리온을 기점으로 삼고, 에피다브로스를 함께 돌아보면 된다. 타운 홀이 자리한 신타그마 광장은 나프플리온 여정의 출발점이다. 여유가 된다면 나프플리온이 한눈에 조망되는 아크로 나프플리온과 팔라미디 성채에 올라 본다. 아크로 나프플리온의 언덕 아래로는 바다 혹은 골목으로 이어지는 길이 여러 갈래로 펼쳐진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 있는 나프플리온의 골목은, 일상이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그런 일이 늘 그렇게 일어나는 것처럼 골목 사람들은 여유롭다. 나프플리온의 개들도 골목 개 행세를 한다. 원색의 꽃이 흐드러지게 핀 나프플리온의 골목에서는 여행자가 아닌 척, 그들의 생활에 녹아 들어 골목 사람처럼 굴고 싶다. 하지만 이런 마음은 꽃보다 화려하게 치장한 기념품 가게에서 꺾이고 만다. 어느 관광지에나 있는 그저 그런 기념품이 아니라 꽤 괜찮은 물건을 파는 가게들이 몇 있어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골목을 벗어나 바다로 난 길로 향하면 바다 위에 떠 있는 성채가 보인다. 부르지 섬이다. 베네치아인들의 요새였던 곳으로 19세기에는 사형 집행인들이 은퇴 후 이곳에서 생활했다 한다.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02-3789-7054 www.turkishairlines.com ▶travie info 항공 한국에서 그리스로 가는 직항은 없다. 터키항공을 이용해 인천, 이스탄불, 아테네를 연결하면 빠르고 편리하다. 인천과 이스탄불 구간은 매일 1회, 이스탄불과 그리스 구간은 매일 4회 운항된다. 시차 그리스가 한국보다 6시간 느리다. 화폐 유로를 사용한다. 2013년 7월 기준, 1유로는 1,477원. 전압 220V, 50HZ. 한국의 전기 제품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 지리산 끝자락 기운 센 땅, 경남 산청을 가다

    지리산 끝자락 기운 센 땅, 경남 산청을 가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시원해졌습니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거지요. 한데 여름 내내 지독한 폭염에 시달렸던 몸은 쉬 회복되지 않는 듯합니다. 거센 자연에 시달린 몸, 자연에서 좋은 기운 받아 치유하는 건 어떨까요. 경남 산청으로 갑니다. 지리산에 기댄 마을마다 1000여종의 약초가 자란다는 한방의 땅이지요. 생초, 차황 등 마을 이름에서조차 약초 향 물씬 풍기니 산청에서라면 몸과 마음이 절로 가붓해질 듯합니다. 산청은 ‘동의보감의 고향’쯤으로 여겨진다. 지은이 허준(1539~1615)이 산청을 다녀갔다는 기록 한 줄 없는데도 그렇다. 이는 미암일기 등 허준의 행적을 다룬 여러 문집이나 전설 등에 따른 추정일 뿐이다. 허준에 대한 기록은 그가 33세 되던 1571년에야 비로소 등장하기 시작한다. 그가 종 4품의 내의원 첨정에 중용된 때다. 서른셋 이전의 허준은 뭘 하며 지냈을까. 그의 일생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지는 것도 바로 이 기간이 베일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동의보감박물관의 김요한 학예연구사는 “집안에 아들이 없어 실질적인 적자 노릇을 하던 허준은 아버지가 정실부인을 들여 아들을 낳는 바람에 또다시 서자의 지위로 떨어지는 등 이 기간 곡절 많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고 했다. 질풍노도의 젊은이가 이 같은 상황에서 집 밖의 세계를 동경하는 건 당연한 노릇일 터. 김 학예사는 허준이 이 기간 약재상으로 전국을 떠돌았을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허준이 1000여종의 약초가 자란다는 지리산, 특히 산청 지역을 여러 차례 돌아봤을 거란 추정도 가능해진다. 요즘 말로 허준의 ‘전공’이 침이 아닌 약초학이었던 것도 이를 방증한다. 훗날 어의에까지 오른 허준은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게 꼬박 400년 전인 1613년의 일이었다.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이하 산청엑스포, www.tramedi-expo.or.kr)가 9월 6일~10월 20일 열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의보감 초쇄 간행 400주년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동시에 기념하는 자리다. 행사장은 지리산 끝자락 산청군 금서면 동의보감촌·한방의료클러스터 일대다. 허준이 약초를 찾아 발품 팔고 그의 스승 유의태가 의술을 펼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산청 최대의 국제 행사를 앞두고 최구식 집행위원장이 최근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왔다. 요약하면 “산청엑스포 현장이 생애 통틀어 최고의 근무 환경”이란 거다. 공기 청량하고 물 맑은 곳이라면 산청 말고도 나라 안에 즐비하다. 한데 뭐가 그리 다른가.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게 ‘기’(氣)다. 이른바 ‘명당’의 자리가 선사하는 기운이 남다르다는 거다. 이영복 문화관광해설사는 산청엑스포장을 “기의 보고”라고 했다. 지리산 천왕봉과 왕등재를 지나 온 정기가 왕산(王山·923m)을 거쳐 엑스포장으로 모인다는 것이다. 왕산은 필봉산과 함께 엑스포장의 뒤편을 떠받치고 있는 산이다. 기가 센 곳엔 이를 수렴할 암자나 탑 등이 들어서게 마련이다. 산청엑스포장엔 건축물 대신 돌을 세웠다. 왕산 자락을 따라 위에서부터 석경(石鏡)과 귀감석(鑑石), 복석(福石)을 배치했다. 석경은 중심부에 봉황 형태의 무늬가 새겨진 돌 거울이다. 다리 굽혀 품에 안으면 맑은 기운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핵심 포인트는 석경의 윗부분이다. 기가 특히 센 곳이어서 반드시 이마를 대고 있어야 한단다. 귀감석은 동의전 뒤편에 있다.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등이 ‘기 받는 바위’로 입소문을 내면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원래는 차황면 신촌마을에 있던 신석(神石)이었다. 이 해설사는 주민들이 국가적인 행사의 성공을 위해 선뜻 산청엑스포 측에 제공했다고 귀띔했다. 거북이 등껍질 형태의 귀감석은 ‘기의 최강자’다. 특히 가운데 ‘황기’라고 쓰인 부분이 핵심이다. 장삼이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기의 흐름이 없는 건 아닐 터. 사지 쭉 뻗어 물 샐 틈 없이 거석과 밀착하는 게 한껏 기를 받는 지름길이다. 복석은 엑스포장 끝자락에 있다. 전각 안에 있는 데다 형태도 밋밋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탑돌이 하듯 돌 주위를 돌면 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산청엑스포 행사장은 주제관과 동의보감관, 약초생태관, 힐링타운, 기체험관, 세계관, 약선문화관, 산업관 등 8개 전시관으로 구성된다. 한의학 체험, 약초 구매 등 전통 의학과 관련된 모든 체험을 한곳에서 할 수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인도 등 5개 전통 의약 강국의 의료 체험 등 독특한 콘텐츠도 마련됐다. 왕산 자락에서 찾아야 할 곳이 또 있다. 구형왕릉이다. 신라에 패망한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仇衡王·521~532)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공식 기록이 없어 이름 앞에 전(傳) 자를 붙이기도 한다. 무덤 형태가 특이하다. 돌무더기를 7단으로 쌓아 올렸다. 왕릉 옆엔 증손자 김유신이 시묘살이 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구형왕릉 못 미처 ‘유의태 샘’도 찾을 만하다. 왕산의 정기가 서렸다는 샘물이다. 유의태가 환자를 치료할 때 이 약수를 사용했다고 한다. ‘풍경의 명당’ 하나 덧붙이자. 산청의 산하를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곳, 정취암(淨趣庵)이다. 개창 시기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찰이다. 지리산과 황매산 등 산청의 명산에 오르려면 땀깨나 쏟아야 하는 것에 견줘 정취암까지는 차로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절집은 신등면 대성산 자락에 터를 잡았다. 절집까지 오르는 길이 빼어나다. 이리저리 휘휘 돌 때마다 산청의 산과 들녘이 번갈아 자태를 뽐낸다. 산 중턱에 걸터앉은 절집의 자태도 예사롭지 않다.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렸던 ‘절벽 위에 핀 연꽃’ 그대로다. 절집 뜨락까지 왔다면 5분만 더 투자하시라. 응진전 뒤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더욱 빼어난 풍경과 마주한다. 비 갠 오후, 산자락을 딛고 오르려던 조각구름 하나가 힘에 부쳐 절집 위에 머문다. 아찔하게 선 너럭바위 위로는 돌탑 하나가 서 있고 그 너머로 지리산과 산청의 들녘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남사예담촌도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의 아이콘이다. 어깨 높이로 쌓인 흙담이 마을 전체를 둘러싼 곳이다. 한 민간단체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1호로 지정하기도 했다. 마을에 들면 약 400년 된 이씨 고가 등 고색창연한 옛집들이 객을 반긴다. 이씨 고가는 남사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옛집 앞엔 X자 모양으로 굽은 회화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마을의 상징 같은 나무다. 수령은 300년을 헤아린다. 원래 화기(火氣)를 막으려 심었는데 미군 폭격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됐을 때도 이씨 고가는 멀쩡하게 남아 ‘효험’을 입증했다고 한다. 담장길을 따라 마을 안쪽의 수백년 묵은 매화나무 등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글 사진 산청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지역번호 055) →가는 길 대전통영고속도로에서 산청으로 내려서는 나들목은 모두 3개다. 국제조각공원 등을 둘러보려면 생초 나들목, 동의보감촌이나 구형왕릉, 정취암 등을 먼저 보려면 산청 나들목이 빠르다. 남사예담촌, 남명 조식 유적지 등은 단성 나들목에서 가깝다. →맛집 약초와 버섯골식당(973-4479)은 약초버섯전골로 이름났다. 흑돼지와 누렁이(973-8289), 민물고기찜을 내는 물레방아식당(972-8290)도 소문난 맛집. 읍내 바다양푼이동태탕(972-3030)은 오가는 길에 부담 없이 들를 만한 집이다. 시원한 동태탕과 찜이 별미다. →잘 곳 지리산힐링타운은 ‘기’가 모인다는 왕산 끝자락에 있다. 산청엑스포장 안에 있어 축제를 둘러보기도 수월하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남사예담촌의 고택 민박이 좋겠다. 경호강변의 산청한방리조트펜션(972-9989)도 깔끔하다.
  • 서태지-이은성, 이미 부부…서태지 “결혼식 올렸다”

    서태지-이은성, 이미 부부…서태지 “결혼식 올렸다”

    가수 서태지(41)가 배우 이은성(25)과 이미 결혼식을 올린 것으로 밝혀졌다. 서태지는 21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서태지닷컴에 남긴 ‘안녕. 서태지 닷컴!’이라는 글을 통해 결혼 사실을 알렸다. 서태지는 팬들에게 “나는 나름 바쁘게 잘 지내고 있었어. 얼마 전 가족들끼리 모여서 뜻 깊은 결혼식도 잘 올렸고 집들이 겸 해서 여러 지인들도 초대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라고 밝혔다. 이어 “가정도 꾸리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 보니 좋은 점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소소한 일상 속에 큰 행복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철도 좀 드는 것 같고…”라면서 결혼 생활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지난 5월 서태지는 서태지닷컴을 통해 이은성과의 결혼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두 사람은 서울 평창동에 신혼살림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래는 서태지가 공개한 글 전문. 안녕~ 서태지닷컴! 안녕! 오늘은 닷컴 리뉴얼후에 축하인사도하고 오랜만에 근황이라도 알리려고 글을 쓰고 있어. ^ ^ 사실은 오픈 과 동시에 글을 올리려고 했는데 오픈 시에 사고(?)가 좀 생겨서 지금에야 올리는 거야. 괜히 또 걱정하게 한 것 같구나 하지만 꼭 모두가 행복하게 머물 수 있는 닷컴이 되도록 잘 보완하도록 할게~ 그나저나 모두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지난 5월 15일에 결혼소식을 알린 후 벌써 세달 이라는 시간이 지나갔구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팬들도 많아 고마웠지만 그보다 많은 팬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또 오해도 많은 것 같아 나도 많이 안타까웠어. 하지만 그 동안 여러 사연들을 읽어보면서 모두의 마음을 차분하게 헤아려보다 보니 내가 미처 살펴보지 못했던 마음들도 많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이제 내가 좀 더 신중하고 깊은 생각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하기도 했어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번 일을 통해 우리가 또 배우고 성장하면서 좋은 변화를 가져오길 바라고 있어 그리고 최근에 루머나 억측들도 많은데 이로 인해 또 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지는 않았으면 해. 모두 근거도 없고 상식 밖의 이야기들뿐이니까 ^ ^ 아무튼 이제 힘든 시기도 지났고 숨길 부분도 없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좀 더 편하게 만나게 되겠지? 그럼 모두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 생각해 그러니 이제는 무엇보다 너희들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좋겠어.. 무슨 말인지 알지? ^ ^ 그리고 결혼발표 이후에 아무 소식이 없어서 궁금했었지? 나는 나름 바쁘게 잘 지내고 있었어~ 얼마 전 가족들끼리 모여서 뜻 깊은 결혼식도 잘 올렸고 집들이 겸 해서 여러 지인들도 초대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어. 이제 가정도 꾸리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 보니 좋은 점들이 참 많은 것 같아 소소한 일상 속에 큰 행복들이 숨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리고 왠지 철도 좀 드는 것 같고 ㅋ (철들면 안 되는데^^;;;) 아무튼 좋은 변화가 생기는 것 같은 기분이야 ^ ^ 반면 한 가지 걱정되었던 부분도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게 되니까 예전에 혼자 지내며 작업할 때보다 혹시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그런데!! 의외로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이 되더라고 ^ ^ 그래서 다행이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 새삼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참 포근하고 든든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암튼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작업도 좀 풀리는 것 같아서 기분도 살짝 UP 되어있어 ㅎㅎ (여기가 그 술술~ 풀린다는? 덕질 공간이야~) 그나저나 내가 빨리 돌아온다고 해놓고 ㅠ 이번 공백기가 너무 길어져서 새 음반을 기다리는 너희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구나. 휴~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엔.. 알지? 꼭!! 멋진 9집 들고 찾아갈 테니 각자 열심히 지내다 보면 곧 예전처럼 좋은 모습으로 다시 만나고 있을 거야. ^ ^ 암튼 모두들 빨리 보고 싶다~ 엄청 습하고 더운 날씨이니 모두들 건강 유의하고 잘 지내고 있어~ 나도 좋은 소식으로 또 찾아 올게. 그리고 새로워진 닷컴에도 더욱 더 행복한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랄게~ 항상 고마워, 닷컴도 너희들도!! ^^ 그럼 안녕~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태지, 이은성과 이미 결혼

    서태지, 이은성과 이미 결혼

    가수 서태지(오른쪽·41)가 지난 5월 결혼을 발표한 배우 이은성(25)과 최근 결혼식을 치렀다고 밝혔다.서태지는 21일 자신의 홈페이지인 서태지닷컴에 올린 글을 통해 “얼마 전 가족들끼리 모여서 뜻깊은 결혼식도 잘 올렸고 집들이 겸해서 여러 지인들을 초대하면서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결혼 사실을 공개했다.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신접살림을 차린 그는 “가정도 꾸리고 부모님과 함께 지내다 보니 좋은 점이 참 많은 것 같다”면서 “소소한 일상 속에 큰 행복이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왠지 철도 좀 드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서태지는 지난 5월 이은성과의 결혼을 공식 발표했지만 결혼식 일정과 장소는 공개하지 않았다. 소속사인 서태지컴퍼니는 두 사람이 지난 6월 26일 자택에서 양가 가족들만 참석한 가운데 예식을 치렀다고 설명했다. 현재 9집 앨범을 작업 중인 그는 “아무래도 생활 패턴이 많이 바뀌니 혼자 지내며 작업할 때보다 ‘혹시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아닐까’ 내심 걱정이 많았는데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작업이 된다”면서 “새삼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참 든든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억측들도 많은데 근거 없는 상식 밖의 이야기들이니 또다시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면서 “이번 공백기가 길어졌는데 멋진 9집을 들고 찾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혈세 빼먹는 인천 어린이집

    인천지역 일부 어린이집들이 시간제 교사를 전임교사로 허위 등록하는 방법 등으로 국가보조금을 받아 챙기면서 보육예산이 눈먼 돈으로 전락하고 있다. 15일 경찰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인천지역 어린이집에서 국가보조금 및 지방자치단체 보조금을 부정한 방법으로 받았다가 적발된 것은 110건, 2억 3800만원에 달한다. 시는 적발된 부정 수급액 전액을 환수 조치했지만, 점검 부족 등으로 적발하지 못한 어린이집들의 부정 수급액은 결국 혈세로 충당되는 셈이다. 이들 어린이집은 시간제 보육교사 자격증 소지자를 전임교사(하루 8시간, 주 40시간 근무)로 등록하면 간단한 서류 확인만 거친 뒤 국가보조금(해당 전임교사가 담당하는 아동 한 명당 20만∼40만원)이 지급된다는 영유아보육법의 허점을 이용했다. 지난 13일 인천시 서구의 한 어린이집 원장 A씨(39·여)는 시간제 교사 3명을 전임교사로 허위 등록해 국가보조금 1000여만원을 부정 수급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앞서 지난 3월 부평구 한 어린이집의 원장 B씨(47·여)는 보육교사 자격증을 소지한 자신의 딸 등을 전임교사로 허위 등록한 뒤 국가보조금 1250만원을 받아 챙겼다. 이처럼 법의 허점을 악용한 국가보조금 부정 수급 범죄가 끊이질 않는 가운데 일부 시간제 교사들은 부정 수급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어린이집 시간제 교사 이모씨(30·여)는 “하루에 4시간 일하는 시간제 교사의 월급(50여만원)과 비슷한 수당을 허위 등록만 해도 가만히 앉아 벌 수 있는데 누가 마다하겠느냐”고 말했다.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힘 합친 동네 빵집, 프랜차이즈 이겼다

    힘 합친 동네 빵집, 프랜차이즈 이겼다

    동네 빵집들이 일을 냈다.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의 공략으로 폐업의 기로에 섰던 동네 빵집들이 손을 잡고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한 것이다. 동네 빵집들은 제품 공동 개발에 그치지 않고 프랜차이즈 빵집처럼 같은 재료를 공급하고 제조 기술을 공유하고 있다. 대구 서구의 동네 빵집 6곳이 의기투합한 것은 2011년 5월이다. 당시 유명 프랜차이즈점에 맞서기 위해 업주 6명이 그동안 쌓아 온 빵 제조 노하우를 접목해 ‘서구 맛빵’을 개발했다. 빵 껍질은 열대지방에서 나는 식물 뿌리인 타피오카를 원료로 해 만들었다. 속은 호두, 밤, 해바라기씨, 완두 등 몸에 좋은 천연 재료로 가득 채웠다. 여기에 고객의 시선을 단박에 사로잡을 수 있도록 코코아, 바닐라, 딸기 등으로 빵 색깔을 다양화했다. 식감도 기존 빵보다 쫄깃해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는 데 성공했다. 판매량이 꾸준히 늘어 매출액이 2배 이상 늘었다. 지난해 9월에는 대구백화점 본점 지하 1층 식품관에 입점했다. 규모가 100㎡로, 유명 프랜차이즈 빵집이 있다가 장사가 안 돼 문을 닫은 자리였다. 서구 빵집이 입점한 뒤 매출은 프랜차이즈 빵집보다 3배가량 늘어났다. 서구 빵집들은 최근 2호 제품을 내놓았다. 6개월에 걸쳐 수천번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개발한 고구마빵이다. 겨울철 동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군고구마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서민적이고 웰빙 이미지와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판단한 것이다. 밀가루가 아닌 고구마라는 천연 재료를 활용해 제품을 특화시켰다. 다른 빵집 주인 8명도 개발에 참여해 빵 굽는 기술을 익혔다. 이들은 지난달 8일 서구맛빵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영세한 자금 사정상 개별적으로 제품 개발과 판로 개척에 나서기는 힘에 부친다고 판단했다. 자본금은 정부 지원을 받아 5억원 정도 되며, 앞으로 참여하는 빵집을 늘릴 계획이다. 손노익 서구맛빵협동조합 이사장은 “프랜차이즈와 맞서기 위해 동네 빵집들이 뭉쳤다. 앞으로 공동 개발 제품을 10개 이상으로 늘려 가겠다”고 말했다. 동네 빵집이 성공 가도를 질주하는 데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컸다. 서구 맛빵이란 브랜드 이름도 서구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공모해 정한 것이다. 서구는 서구 맛빵을 2011년 9월 특허청에 상표 등록해 다른 곳에서 사용하지 못하게 했다. 또 판매 빵집 6곳에 ‘모범음식점’과 같은 ‘서구 지정-맛있는 빵집’ 표지판을 선물했다. 이와 함께 대학교수와 소비자단체 등 15명으로 지원팀을 구성했다. 구청 직원 400명은 맛 평가단으로 참여했다. 여기에다 서구는 지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반드시 서구 맛빵을 맛보게 했다. 맛을 본 관광객들이 블로그 등에 글을 올려 서구 맛빵의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강성호 서구청장은 “동네 빵집이 힘을 합쳐 새로운 빵을 개발하는 게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적극적인 행정 지원과 브랜드 관리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오늘의 눈] 아득하기만 한 서부대개발/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오늘의 눈] 아득하기만 한 서부대개발/임병선 체육부 부장급

    여름휴가로 중국 네이멍구(內蒙古) 자치구의 사막과 초원을 찾았다가 정신을 잃을 정도로 아득한 서부 대개발의 현주소를 목격했다. 수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서쪽으로 자동차를 4~5시간 달려 만난 어얼둬쓰(鄂爾多斯·옛 오르도스)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와중이었다. 외몽골의 고비사막에서도 그렇게 멀지 않은 이곳에서 빌딩 높이 올리기 경쟁이라도 벌어진 듯했다. 2002년 후진타오 전 국가주석이 집권과 동시에 기치를 든 서부대개발 열풍의 영향이었다. 어얼둬쓰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캉바스(康巴什) 신도시의 광장은 프랑스 파리 근처의 베르사유궁 앞뜰이 연상될 정도였다. 잘 닦인 도로 위에는 벤츠 등 외제 자동차들이 줄을 이었고, 10대 청소년들이 요란한 음악을 쿵쾅거리며 몰고 가는 일본제 모터사이클의 굉음도 심심찮게 들렸다. 네이멍구 자치구의 2400만명 가운데 400만명을 차지하는 몽골족 중에도 사막이나 목초지 등에 묻혀 있던 석탄이나 광물, 희토류 덕에 벼락부자가 된 이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지역의 총생산은 2001년 150억 위안(약 2조 7399억원)에서 지난해 3218억 위안(약 58조 7799억원)으로 20배 넘게 뛰었다. 2011년 미스월드선발대회를 개최할 정도로 떵떵거렸다. 일행을 안내하던 옌볜 청년 김철(35)씨는 “이곳은 10년 전에는 아무것도 없는 벌판이었다”며 “이곳 벼락부자들은 집에서 자기 귀찮아 호텔마다 돌며 잠을 청하곤 한다더라”고 전했다. 그러나 2020년까지 이 신도시에 70만~80만명을 입주시키는 계획은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입주율이 30%대에 그쳐 낮이나 밤이나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사막이나 초원에서도 ‘런타이둬’(人太多·사람 참 많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의아한 일이었다. 온 도시가 공사판이었고 이런 모습은 후허하오터나 중공업 중심인 바오터우(包頭)도 마찬가지였다. 후허하오터 호텔 옆에도 빙 둘러 주상복합건물 공사판이었다. 그런데 주요 도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흉가(凶家)나 다를 바 없는 집들이 눈에 들어왔다. 어얼둬쓰에서 후허하오터로 돌아오는 길 옆의 시골 주택과 주변 여건은 흉측하기조차 했다. 화물 트럭들이 질주하는 도로는 어느 순간 뚝 끊겨 위험천만한 장면을 연출하기 일쑤였다. 후허하오터 호텔 앞에는 포장마차가 성업 중이었고 어디에서 왔는지 짐작조차 힘든 중국 인민들이 한민족에 지지 않겠다는 듯 밤새 노래를 불러 젖혔다. 관광버스들이 정차하면 손님들이 줄지어 내려 거리낌없이 바지 지퍼를 내렸다. 어쩌다 마주친 휴게소나 주유소의 화장실들에는 파리떼가 점령해 정말 눈 뜨고 일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남한 면적의 7배 가까이 되는 네이멍구 지역을 돌아다니던 일행의 머릿속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마천루와 그 뒤꼍의 조악한 풍경이 겹쳐지며 혼란스러움을 더했다. 어느 게 진짜 중국이고 중국식 사회주의인가? 그러면서도 분명해진 것은 중국 서부대개발의 혼돈과 간극, 문화 지체가 성장 정체에 갇힌 한국경제에 기회가 되리란 확신이었다. bsnim@seoul.co.kr
  • 어린이집 관리, 단속반 대신 ‘큰엄마’가 뜬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어린이집 문제를 풀어내는 데 자원봉사자들이 현장에 투입된다. 마포구는 1일 ‘아이사랑 빅 마마’ 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쏟아지는 보육대책 속에서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얘기만 들린다. ‘쓰레기 급식’으로 불리는 질 낮은 급식, 아동학대 수준의 체벌, 보조금 전용 등이 쏟아진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 시선 때문에 자꾸 어린이집들이 움츠러든다는 것이다. 학부모는 물론 지역사회와 소통이 끊긴다. 빅 마마 사업은 주변 사람들을 자원봉사자로 어린이집에 파견해 일상적 일손을 거들어주는 한편, 이들로 하여금 어린이집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초점은 문제점을 적발해 내는 게 아니다. 관리·감독보다는 어린이집 스스로 운영에 최선을 다하도록 하되 지역사회도 어린이집의 어려운 점을 이해하도록 한다는 취지다. 강희천 자치행정과장은 “행정기관의 점검이나 단속은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면서 “지역사회에 대한 개방을 통해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면서 해결하려고 애써야 아이들이 밝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는 지역에 자리한 이화여대부속유치원 학부모들로 이뤄진 봉사활동 단체 ‘이싹회’와 손잡고 다음 달부터 연말까지 구립어린이집 5곳을 대상으로 빅마마 사업을 시범 추진한다. 여기에 참여할 자원봉사자 300명에게 역량강화교육도 실시한다. 사업의 취지뿐 아니라 동화책 읽어주기, 동화 구연, 정리정돈법 등 어린이집 근무에 실제 필요한 지식을 일러준다. 시범사업 기간에는 어린이집마다 5명의 자원봉사자가 교대로 배정된다. 봉사가 끝나면 모니터링 일지를 작성해 월 단위로 구 자원봉사센터에 제출하고 문제점을 발견했을 땐 즉각 보고하도록 했다. 시범사업이 마무리되면 문제점을 보완해 내년부터 전면 실시한다. 박홍섭 구청장은 “우리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이웃의 아이를 먼저 살펴야 한다”면서 “이웃끼리 서로의 아이를 돌보는 이번 사업을 통해 아이와 이웃을 모두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바람이 떠나라 시켰다… 물 만나 여름을 식혔다

    바람이 떠나라 시켰다… 물 만나 여름을 식혔다

    같은 지역이라도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사뭇 달라 보이게 마련입니다. 강원도 평창 하면 겨울철 눈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사방을 둘러친 장쾌한 백두대간의 준령들도 엇비슷한 무게로 뒤를 잇겠지요. 여름이니 ‘물 맑은 곳’에 초점을 맞춰 봅니다. 놀랍게도 듣도 보도 못한 풍경들이 여기저기서 뛰쳐나옵니다. 주민들만 알음알음 찾았거나 자연휴식년제 등에 묶여 있던 곳들이니 깨끗한 건 말할 나위 없습니다. 숨겨진 명소들로 함께 가 보시지요. 더위 사냥에 제격입니다. 평창군 대화면 대화7리에선 ‘땀띠물’이 솟는다. 안내판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몸에 땀띠가 난 사람이 이 물에 몸을 씻으면 그야말로 ‘씻은 듯’ 땀띠가 사라져 이 같은 독특한 이름을 얻게 됐다고 한다. 설마 땀띠물로 목욕한다고 땀띠가 사라질까만, 땀띠가 생기지 않을 만큼 물이 시원하다는 걸 해학적으로 표현했다고 보는 게 옳지 싶다. 주민들은 땀띠물을 ‘굴물’이라고도 부른다. 마을을 둘러친 청룡산 자락의 크고 작은 샘통에서 흘러나온 물이라는 뜻이다. 아무리 가뭄이 심해도 땀띠물이 마르는 법은 없다. 매일 일정량의 물이 연못 여기저기서 솟아오른다. 온도 변화도 거의 없다. 연중 11~13도 사이를 유지한다. 땀띠물은 차다. 족욕장에 앉아 발을 담그면 10초를 버티기 쉽지 않다. 땀띠는 쏙 들어가고 대신 소름이 오드득 돋는다. 주변과의 온도 차도 확연하다. 이는 바로 옆을 흐르는 대화천의 수온이 여름철 18~20도인 것과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여름엔 에어컨, 겨울엔 노천온천과 다름없었을 터. 현지 주민들은 “땀띠물이 여름엔 등목터, 겨울엔 빨래터”였다고 입을 모았다. 주민들이 올해 처음 여는 ‘평창 더위사냥 축제’도 땀띠물 공원이 주무대다. 2~11일 열린다. 은어와 송어 맨손 잡기 등 천렵 프로그램도 재밌지만, 무엇보다 삼굿체험이 관심을 끈다. 감자 등을 바닥에 묻고 흙과 자갈, 나뭇가지 등으로 덮은 뒤 불을 때 익혀 먹는 프로그램이다. 원래 삼굿은 길쌈의 원료가 되는 삼(대마)의 껍질을 쉽게 벗기기 위해 삼을 찌는 구덩이나 솥, 혹은 그 과정 등을 일컫는다. 이걸 감자 등을 쪄 먹는 체험 프로그램으로 응용한 게 삼굿체험이다. 강변을 따라 걷는 둘레길도 좋다. ‘남산둘레길’과 ‘매화마을 녹색길’이다. 남산둘레길은 솔숲 안쪽으로 난 길이다. 오가며 맡는 진한 솔향이 인상적이다. 평창읍내에서 종부교를 건너면 바로 남산산림욕장이다. ‘솔향기 고운 숲길’ 간판 아래 목재 데크가 들머리다. 길 아래로는 평창강이 시원스레 흐르고, 양옆으로는 붉은 수피의 소나무들이 울울창창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다. 걸어서 접근하기 어려운 강변 산자락에 굵은 소나무들이 매달려 있고, 그 사이로 목재 데크가 놓여져 있다고 보면 알기 쉽다. 이런 길이 7㎞쯤 이어진다. 매화 마을 녹색길은 평창강을 따라 이어진 기암절벽과 동행하는 길이다. 마을의 옛 이름은 절개 마을이다. 마을 앞에 곧추선 절개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름에서 퍼뜩 느껴진다. 산세가 얼마나 가파를지 말이다. 칼로 싹둑 베어낸 듯 절리를 이룬 자태가 멋들어지다. 그 절벽 위로 아양정이란 정자도 세워 뒀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지 않는다면 전혀 볼 수 없는 풍경이니 부러 찾아야 한다. 평창에서 영월 가는 국도변에 있다. 전체 길이는 4.1㎞다. 핵심 구간은 승용차로도 접근할 수 있다. 사람 손 덜 탄 곳을 찾는다면 원당계곡이 제격이다. 백덕산(1350m)에서 발원해 평창강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다. 전체 길이는 6㎞ 남짓. 그 가운데 덕말~용소골 사이 약 2㎞ 구간은 7년여 동안 자연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되다 최근 해제됐다. 계곡물은 차고 맑다. 수량도 풍성한 편. 연한 연둣빛 감도는 계곡물이 쉼 없이 흘러간다. 발만 살짝 담근 채 탁족을 즐겨도 좋겠다. 뭐니 뭐니 해도 최고의 피서는 냅다 뛰어들어 계곡과 하나가 되는 것. 원당계곡에선 훌훌 벗어던지고 물에 뛰어드는 게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빼어난 계곡 가운데 온몸 던져 놀 수 있는 곳이 어디 흔한가. 이런저런 제약 탓에 발끝 하나 담그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그러니 이만하면 대단한 호사다. 영동고속도로 장평 나들목에서 31번 국도를 타고 평창읍에 이른 뒤 뇌운계곡 방향으로 가면 닿는다. 물과는 관련이 없지만, 물가 못지않게 시원한 명소 한 곳 덧붙이자. 육백마지기다. 미탄면 청옥산 정상 아래 있는 고랭지 채소밭이다. 지난달 25일 오후 평창읍 기온이 영상 27도 쯤이었던 것에 견줘 육백마지기는 22도에 머물렀다. 여기에다 바람까지 세차게 부니 반소매 옷차림으로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서늘했다. 천혜의 ‘풍욕장’(風浴場)인 셈이다. 글 사진 평창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맛집 평창의 대표적 재래시장인 평창올림픽시장에서 5일까지 ‘평창메밀부치기축제’가 열린다. ‘부치기’는 부침개를 뜻하는 사투리. 메밀로 만드는 다양한 요리를 체험할 수 있는 축제다. 지난해 처음 열린 뒤 관광객들의 반응이 좋아 올해까지 이어졌다. 평창시장 안엔 모두 11개의 부침개집이 있다. 저마다 ‘수십년 내공’을 자랑하는 집들이다. 어느 집을 들어가도 메밀전병, 김치전 등 담백한 토속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축제 기간에 한해 음식값을 내린다. 김치전 한 장에 500원 정도 받는다. 대신 음식의 양은 줄인다. 적은 예산으로 다양한 음식을 맛보라는 배려다. 평창송어(332-0505·이하 지역번호 033)는 각종 송어 요리로 이름났다. 콩가루에 비벼 먹는 송어회가 특히 맛있다. →잘 곳 가족 단위라면 휘닉스파크(www.phoenixpark.co.kr)를 추천할 만하다. 평창군 홈페이지(www.yes-pc.net)에 다양한 펜션들이 올라 있다. 캠핑장은 솔섬오토캠핑장(333-1001), 물굽이오토캠핑장(010-2127-9737), 계방산오토캠핑장(070-7789-8892) 등이 대표적이다.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해가 뜰 조짐을 보이자 두 사람은 이윽고 발걸음을 멈추고 씨라리골 깊숙한 갈대숲 속으로 숨어들었다. 위인은 가근방 지리를 손금 들여다보듯 환하게 꿰고 있었고, 몇 리 상거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여축 없이 알아맞히는 눈치였다. 오밤중에 내성에서 발행하면 여명이 밝아올 무렵에 씨라리골 갈대숲에 닿게 되고, 그곳에 숨어 한나절을 보낸다면 내왕하는 길손들 눈에 발각되지 않고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자로 잰 듯 계산하고 있었다. 녹록하게 볼 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위인의 정체를 적실하게 밝혀내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굴을 뛰쳐나온 적당이 아닐까. 그러나 적당이라고 믿기는 아직 일렀다. 포흠하다 쫓겨난 관변 부스러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관변 부스러기라면 왜 하필 상단에서 쫓겨난 하찮은 신세가 된 자신을 덮쳐 인질로 삼았다는 것인가. 갈숲 속이라지만 지척이나 진배없는 숫막에서 그때 새벽닭이 목청을 길게 빼고 울었다. 어찌된 일일까. 닭 울음소리가 그치기를 기다린 것일까. 그곳까지 길을 줄여올 동안 입에서 구린내가 나도록 말이 없던 위인이 드디어 입을 열어 곡절을 물었다. “네놈이 끼고 잤던 내성 저잣거리 논다니는 행방술이 절륜하더냐?” “그 음분(淫奔)한 계집이 감창소리가 어찌나 소란하던지…… 색사를 벌일라치면 가죽방아 한 번에 삼이웃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러서 창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마치 가풀막진 된비알을 오르는 멧돼지처럼 씩씩거리며 소리를 질렀지요.” “이놈 봐라 비위짱 좋게 언사가 개차반이군…… 계집의 행요가 그토록 절륜했다면, 해우채는 섭섭지 않게 대접을 했어야지 푼돈깨나 만진다는 네놈이 인색하게 푸대접을 하였더군. 의지 없이 떠돌며 풍상을 겪는 신세는 살꽃 파는 논다니 계집이나 십이령 치받이길을 쇄골이 부러지도록 용을 쓰고 오르내리며 연명하는 네놈이나 같은 처지가 아닌가. 상부상조하라는 말을 잊었더냐?” 40리 길을 올 동안 내내 입을 닥치고 있다가 불쑥 지른다는 말이 너무나 하찮아서 못 들은 척하고 딴청을 피우는데, 위인이 눈발을 날카롭게 곤두세우며 채근을 하였다. “내 말이 말 같잖나?” “가졌던 돈을 투전판에서 거덜내기는 하였습니다만, 계집에게도 틈틈이 적잖은 해우채를 안겼습지요. 계집에 주려서 눈알이 뒤집힌 사내들이라면 그깟 해우채 몇 푼 때문에 배리다는 핀잔을 듣겠습니까. 동전만 헤아리다 백발 되면 뭣하겠습니까. 체면만 깎일 뿐이지요…… 그년이 색사를 과도하게 벌여 육탈이 된 나를 끝까지 잡아먹지 못해서 몇 푼 되지도 않는 해우채를 가지고 벌벌 떠는 자린고비로 날조를 한 것이오.” “이놈 봐라? 제법 통이 큰 척하네. 그게 거짓이 아니라면 그 논다니도 고얀 년이군. 널 나한테 팔아넘길 적엔 네놈을 눕혀놓고 물먹은 걸레 짜내듯 해도 눈물 한 방울 짜낼 것이 없는 아주 똑 떨어진 자린고비여서 달포 가까이 같이 끌어안고 농탕질하고 배꼽을 맞춰주며 육허기를 채워주었는데도 떨군 것이라곤 쇳내 등천하는 동전 몇뿐이었다고 아주 이를 갈면서 궁상을 떨더군.” “그년 소행머리를 보면 매타작을 내려 어육을 만들 년입니다.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닳고 닳은 계집들이 바로 색주가를 떠도는 논다니들 아닙니까. 밑엣품 파는 계집치고 고쟁이도 벗기 전에 손부터 내미는 버릇이 있다는 것은 이미 고려 적부터 소문난 일이 아닙니까. 그년이라고 해서 계집편성 다를 리가 있겠습니까.” “하긴…… 청루주사(靑樓酒肆) 즐비한 저잣거리를 쏘다니다보면 농염한 미술 가진 계집을 찾지 않을 수 없겠지만, 떼 꿩에 매 놓기라고 해서 투전판에까지 물색 모르고 첨벙 뛰어들면 네놈처럼 몰골 숭한 꼴을 당하느니……” 투전이란 것은 두꺼운 종이를 작은 손가락 너비만하게 만들어 그 한편에 사람이나 짐승, 새나 벌레, 물고기 같은 그림을 그려넣어 끗수를 정하고 기름으로 절인 것이자 이 종잇조각 40장이나 60장을 가지고 끗수를 겨루는 노름이다. 그런데 이 심심풀이 오락으로 시작한 노름이 여염에 널리 퍼지면서 저자의 무뢰배와 행상꾼과 악소배와 타짜꾼들이 꾀어들어 도박하여 하루이틀 사이에 그로 말미암은 부채가 수백 관에 이르렀다. 그로써 걸핏하면 칼부림이 오가고 심지어 살인까지 서슴지 않아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허다하였다. 멋모르고 하찮은 밑천으로 노름판에 뛰어들었다가 전문(錢文)을 빚진 뒤에 노름 돈을 대지 못하면 전문을 가진 전주가 곁에서 지켜보고 있다가 냉큼 노름 밑천을 변통해주는데, 비록 잠시라 하더라도 필경 몇 배의 이자로 문권을 작성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하룻밤 사이에 누차 작성하여 원금과 이자가 수십 수백으로 늘어나 아주 홀딱 벗기고 말았다. 문서로 작성한 것을 관아에 내고 고발하게 되면 빚진 자의 부모처자가 대신 갚아주어야 풀려날 수 있었다. 장본인은 저지른 일이 있으니 당연히 망신을 당해도 싸지만, 나머지 식솔은 뜻하지 않게 찾아온 불상사에 또한 패가망신하는 것이었다. “사내에게 여색이란 세상의 쇠락거리다. 그래서 서로 만나기만 하면, 기필 액운이 따르기 마련이다. 또한 음욕이 자못 방자해지면, 마치 소금물을 마시는 것과 같아서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해지고 오직 죽고 나서야 그치게 되니 어찌 만족이 있을 수 있겠나.” 훈계인지 핀잔인지 아리송한 말을 귓가로 흘려듣는 길세만의 시선은 갈밭 너머로 아득하게 바라보이는 숫막 쪽을 향해 있었다. 단칸집의 구새먹은 통나무로 새운 굴뚝에선 아침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길세만은 문득 용기를 내어 물었다. “나를 그년으로부터 넘겨받은 까닭이 무엇입니까.”
  • [新 대한민국 24시] (2)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살기

    [新 대한민국 24시] (2)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살기

    기자라면 화르륵 불타오르는 현장에 대한 로망이 조금이나마 있게 마련. 그런데 김샜다. 오전 9시 20분 동주민센터를 나설 때 뭔가 화끈한(?) 거리가 있을까 싶어 이것저것 물었다. 네 마음을 안다는 듯 빙긋 웃더니, 얼굴 표정만큼이나 생글거리는 답을 내놨다. “저흰 다른 곳에서 상당히 부러워하는 동주민센터예요. 인원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데다 큰 대학들이 있고 상권이 발달해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어려운 가정이 적은 편이어서 부담이 덜한 편이거든요. 다른 동에서 오고 싶어하기도 해요.” 하기야 동주민센터에 걸린 관내지도를 봐도 구역 면적의 절반이 연세대, 이화여대다. 그래도 늘어난 복지 업무 때문에 코피를 쏟거나, 아니면 제대로 된(?) 민원인을 만나 곤욕을 치르는 풍경은 없을까.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일이 찾아다니는 가정방문이 가장 중요하다는 거예요. 동주민센터나 구청 사무실에서만 만나면 생떼를 쓰거나 욕을 하거나 곤란하게 하시는 경우가 많은데, 자주 직접 찾아가서 설명을 드리면 그다음부터는 이해하시게 돼요. 아주 거친 분들의 경우엔 여전히 냉담한 분들도 계시는데, 그럴 경우에도 최소한 욕설이나 협박문자 같은 건 절대 안 하시게 되죠.” 자꾸 얼굴 들이미는데 당할 재간이 있겠느냐는 얘기다. “우리끼리 ‘기본 1시간’이라 부르는 ‘블랙 리스트’가 당연히 있죠. 그런데 그런 분들에겐 얼굴보고 말 들어주는 게 최고의 대응법이에요. 몇 번 겪다 보면 욕설이나 터무니없는 요구 같은 것들이 가라앉게 되거든요.” 김효정(39)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남가좌동, 홍제동, 구청, 북가좌동 등을 거쳐 신촌동으로 온 지 3년 정도 됐다. 지난 23일 10년차 베테랑 사회복지 공무원인 김씨를 따라다녔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는 사회복지 담당공무원의 하루를 체험해보기 위해서다. 현장 우선 원칙에 따라 출근하자마자 오전 3명, 오후 3명의 방문자들에 관한 정보를 챙기더니 이내 짐을 싸서 길을 나섰다. 신촌동 주민 1만 8000여명 가운데 복지 대상자는 900명 정도다. 기초생활수급자 318명, 홀몸노인 70명, 장애인 545명 등이다. 이 가운데 동주민센터에서 방문대상으로 추려낸 이들은 400명 정도. 동주민센터 직원은 15명이고 이 가운데 복지업무는 7명이 담당한다. 팀장 빼고 6명이 2명씩 조를 짜서 현장방문을 다닌다. 원래 사회복지 공무원은 김 주무관 딱 혼자였다. 동주민센터를 생활복지의 전초기지로 삼기 위해 서대문구에서 추진한 동복지허브화 사업의 바람을 타고 사회복지직이 1명 더 배치됐고, 행정직 5명이 사회복지 업무를 맡게 됐다. “예전에도 가정방문 같은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그때도 상담하고 방문하고 그런 활동을 다 했는데, 복지 업무는 늘어나는데 인원은 부족하고 안에서 할 서류작업들이 많다 보니까 자주 나올 엄두를 못 냈지요. 그런데 동복지허브화 사업을 하면서 그 부분이 해결된 거죠.” 사회복지직을 소수의 곁다리 직군으로 취급해온 관행을 깨야 현장복지가 성공할 수 있다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의 지론이 효과를 본 셈이다. ■김효정 신촌동주민센터 주무관이 현장에서 하는 일은 무더위에 장마까지 며칠 오락가락하다 보니 하늘엔 간간이 구름이, 길에는 습기가 가득하다. 구불구불 골목길을 내달리듯 걸어간다. 창천교회 맞은 편 골목으로 깊숙이 들어가니 허름한 무허가집들이 보인다. 기차길 옆 언덕을 따라 지어졌다. 언덕 경사를 이용하다 보니 집도 계단처럼 만들어지는 바람에 집안 구조가 특이하다. 할머니 예쁜 손녀는요… 문화바우처로 책 사주세요 첫 방문지는 A(81) 할머니 댁. 부엌 하나 딸린 방이라지만 거의 한 몸 눕히는 고시원 수준이다. “이래 거지처럼 삽니다.” 방안에 자리 잡고 앉자 A 할머니는 강한 경상도 사투리로 이런저런 넋두리들을 늘어놓는다. 김 주무관은 할머니의 기나긴 넋두리 틈을 비집고 들어가 식사, 빨래, 치아 건강 등 확인할 것을 다 확인한다. 할머니들의 18번 레퍼토리, 손자 자랑이 이어지자 김 주무관은 동주민센터에서 제공하는 ‘문화바우처카드’를 권했다. 예쁜 손자에게 책이라도 사다주라는 뜻이다. 상담을 마치고 나서는데 A 할머니가 “이래 자주자주 보니까 남 같지 않고 허물없어서 좋아요”라며 씩 웃는다. 김 주무관도 “복지대상자분들은 대개 주변과 단절된 분들이 많은데 저분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해서 마음이 놓이는 분”이라 했다. 할아버지 치매는요… 요양보호사 제도 써보세요 두 번째 방문은 B(75) 할아버지와 C(72) 할머니 부부. 화가였다더니 다세대주택 지하방에는 그림이 잔뜩 있다. 그런데 그림에 좋은 환경은 아니다. 창문도 없고, 볕도 들지 않는다. 눈에 띄게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B 할아버지는 중풍에다 치매증세까지 겹쳐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 C 할머니는 몸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병 때문에 괴팍해진 B 할아버지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다며 하소연과 눈물을 쏟아낸다. 김 주무관은 장기요양보험을 차근차근 설명해 드렸다. 1주일에 한 번 정도 요양보호사를 불러 할아버지를 맡기면 그 시간 동안 다른 일을 잠깐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슬쩍 밖으로 나와 황도원 주무관과 얘기를 주고받았다. 황 주무관은 마침 혼쭐이 난 참이다. A 할머니 댁에 방충망을, B 할아버지 댁에는 형광등을 갈아주기 위해 동행했다. B 할아버지가 형광등을 갈아주는 방법까지 참견해 잔소리를 한 탓이다. “아우, 저 정도는 양반이세요. 그때 그때 감정조절해서 대응하는 게 정말 어려워요. 어쨌든 도와드리는 게 목표니까 최대한 잘 대응을 해야죠” 황 주무관은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서 틈틈이 익힌 색소폰 솜씨를 뽐낸다. 솜씨? 전국적으로 공개된 적 있다. MBC TV ‘우리 결혼했어요’에 나와 색소폰을 분 것. 황 주무관의 아들은 연예인 광희다. 곰팡이 벽지는요… 자원봉사자 연결시킬게요 가족관계가 모두 단절된 72살 할머니, 92세로 관할 지역 내에서 최고령인 할머니를 만난 뒤 오후 들어서는 D(80) 할아버지와 E(70)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이때는 오경찬 신촌동장도 동행했다. 큰 비가 내린 뒤라곤 하지만 집안에 습기가 한가득이다. 벽지가 누렇게 다 변했다. E 할머니는 그래도 요즘 폐지 값이 올라서 그럭저럭 사정이 괜찮다고는 했지만, 도배장판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했다. 김 주무관은 도배장판을 서비스에 올리겠다고 말했다. 오 동장이 “자원봉사자들이 하는 거라 비전문적이니까 너무 잘못 발랐다고 타박하지 마세요”라고 농담을 툭 던지자 E 할머니는 연신 “아이고 매번 너무 미안해서…”라며 말끝을 흐린다. 이 복잡한 서류는요… 전세금 도와준단 얘기네요 마지막으로 F(80) 할아버지 댁을 들렀다. F 할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얼른 김 주무관을 방으로 데려간다. “구청에서도 나오고 복지관에서도 나오는데 난 우리 효정이가 제일 좋아.” 그러고선 막 웃더니 서류 하나를 꺼내든다. LH공사에서 보낸 전세임대 통지서다. 김 주무관이 오길 기다렸다가 설명을 들으려 했던 참이라 했다. “할아버지, 이건 전세계약 때 전세금의 95%를 LH공사에서 내주고 매달 임대료 명목으로 0.2% 정도 되는 돈을 이자로 받아가는 제도에요. 임대주택은 너무 대기자들이 많으니까 이게 더 나을 수 있어요.” 김 주무관이 차근차근 설명했다. 오전 오후에 걸친 가정방문을 마치고 김 주무관은 동주민센터로 복귀했다. 그러고는 ‘사통망’, 그러니까 사회복지공무원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빠트린다는 그 사회복지통합전산망 앞에 앉아 오늘 상담 내역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친우관계, 건강, 복지, 주거, 환경 등 여러 가지 분야에서 꼼꼼하게 기록해 나가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상담일지도 쓰고, 개개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지역사회복지협의체에 도움을 구할 만한 사항이나 동주민센터가 운영하는 나눔게시판에 올릴 얘기들도 구분해 정리했다. “복지 관련 법이나 제도로 규정된 것은 저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돼요. 정말 눈여겨볼 부분은 사각지대죠. 혹시 도움이 필요한 데도 못 받는 사람은 없는지, 국가의 공적 부조가 안 된다면 민간단체와 어떻게 연결시킬 방법은 없는지를 늘 고민하고 삽니다.” 또 내일 만날 어르신들에 대한 기존 상담 정보를 확인하고 전화로 약속을 잡는 등 상담 준비에 들어갔다. 사통망과 욕설 공포는요… 결국 현장에 답이 있는 거죠 사회복지 현장에서 뛰는 공무원들의 바람은 뭘까. “사회복지공무원 자살 사건이 났을 때 서울시에서 한 번 의견을 모아서 들은 적이 있거든요. 그때 모두 말했던 게 수당 인상이나 처우 개선 같은 게 아니라 행정직 공무원들이 사회복지 업무를 맡으면 인사상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거였어요. 행정직 분들이 사회복지 업무를 안 하려는 이유가 사통망 같은 전산시스템 문제와 민원인들을 직접 상대하기 힘들다는 두 가지 이유에서거든요. 사통망은 쓰다 보면 익숙해지기 마련이고 민원인은 자꾸 만나다 보면 친숙해져요. 현장에서 복지를 강화한다면 그런 방향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김 주무관은 요즘 무척이나 긍정적이라 했다. “어쨌든 지금은 모두가 관심을 가져 주는 때”이니까 말이다. 글 사진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순례는 안단테

    Pilgrimage 길 위를 걷는 자에게 서두름은 독이 될 뿐이다. 순례자임을 표시하는 가리비 하나 달고 마음을 의지할 지팡이 하나 짚고 걸음을 내딛는다. 느릿하게 울리는 프랑스 순례마을 보행기步行記. 순례가 범람하는 시대에 길을 나서다 분명한 건 ‘철학’도 유행을 탄다는 점이다. 많이 생산하고 빨리 소비하는 게 절대적 선으로 여겨졌던 세상에 반기를 드는 가치들이 출현하고 있다. 버리고 줄이고 좁히고 늦추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은 웰빙을 부르짖고 로하스, 다운시프트 같은 삶의 방식을 발 빠르게 차용했다. 그에 따라 여행 철학도 많이 변한 것 같다. 정복한 나라 개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한 해외여행이라고 자부했던 때도 있다. 밤낮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하는 여행에서 이제는 되도록 천천히, 느리게 여행하자 한다. 때마침 ‘걷기 여행’은 강력한 트렌드가 되었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맞춤형 소비재가 되어 빠르게 소모돼 갔다. ‘그럴듯한 새로움’을 갈구하는 콘텐츠 시장에서 순례는 구미 당기는 소재였으리. 서점에 넘쳐나는 순례 에세이들, 열흘짜리 순례길 맛보기 여행상품까지….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민첩한 유행 앞에 순례의 본래 의미나 목적은 사장된 듯했다. 그래서였나. 내 딴에 순례란 단지 시대의 산물에 불과할 뿐이고 유행이 식으면 그 다음 주자에게 자리를 넘겨주어야 할 위태로운 ‘전염’이라 취급했으니. 이제야 심성이 삐딱한 여행자였노라고 인정해야 할 듯하다. 한 해 몇천명의 순례자들이 거쳐 가는 프랑스 남부 미디피레네Midi-Pyrenees 순례길에서 길의 매력에 전염되다 못해 여행 후 강력한 후유증까지 앓고 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이번 여행기는 기도문이 될 것 같다. 나처럼 산티아고 순례길은 스페인에만 있는 줄 알았던 여행자가 있다면 그 오만으로부터 얼른 구원받길 바라는 마음으로 써 내려가리. 말뿐인 순례가 범람하는 이 시대에 나는 ‘순례’를 알지 못했다. 그 길 위를 걷기 전까지 말이다. ▶미디피레네 Midi-Pyrenees 프랑스, 안도라공국, 스페인에 걸쳐 있는 피레네산맥 일부 지역에 위치한 프랑스 남서부 주. 주도인 툴루즈Toulouse는 파리에서 남쪽으로 680km 떨어져 있다. 프랑스에서 만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사실 ‘산티아고 순례길’은 수만 갈래다.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른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야고보St.James. 그가 묻힌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 수도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대성당에 이르는 모든 길은 순례길이다. 야고보를 찾아가는 길에는 축복과 기쁨보다는 성자를 향한 연민과 참회가 가득하다. 성자를 지키지 못한 신도들의 원죄가 깊고도 깊기 때문이리라. 야고보는 예수 사후 이스라엘에서 참수를 당했는데 신도들은 성자의 억울한 죽음을 맞고도 그의 시체조차 찾지 못했다. 유해를 싣고 스페인으로 향하던 배가 난파된 것. 9세기 들어서야 발견된 그의 시체는 그간의 험난한 여정을 증명하듯 노오란색 가리비가 다닥다닥 붙은 채였다고 한다. 뒤늦게 야고보의 묘지 위에 성당을 짓고 증축을 거듭해 산티아고를 조성했다. 그들이 성지를 세우는 것만으로 미안한 감정을 달랬다면 오늘날의 순례길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거다. 성직자와 신자들은 단지 그의 묘를 참배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가리비를 머리에 달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성 야고보처럼 길을 나섰다. 아무리 구불구불한들, 제 아무리 험준하다 한들 당신이 걸음을 내딛으면 나만의 참회와 구원이 담긴 길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알고 보면 ‘산티아고 순례길’이 일반인에게까지 유명세를 떨친 건 최근의 일. 파울로 코엘료가 <순례자>를 집필하면서 전세계적인 열풍을 낳은 산티아고 순례길은 제주 올레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올레가 ‘휴식’이라는 이미지와 맞물린다면 산티아고 순례길은 ‘고난’으로 수렴된다. 현재 유럽에는 12갈래의 대표적인 순례길이 있는데 순례자 10명 중 8명은 일부러 프랑스 남부서부터 일정을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는 험준한 길을 택한다. 놀멍쉬멍 걷든 지팡이를 짚고 걷든 ‘걷는다’는 행위는 동양과 서양 어디서든 구도의 길과 이어지나 보다. 고단한 순례자의 안식처 콩크Conques 모든 순례길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로 통칭되는데 프랑스 남부도시 생장 피드 포르에서 출발해 스페인 북부를 횡단하는 루트가 가장 유서 깊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걸은 길은 프랑스 남부 도시 르 퓌Le Puy에서 출발해 미디피레네주의 유명 순례도시를 관통하는 구간의 일부였다. 나를 포함해 미국, 라트비아, 중국, 크로아티아, 캐나다 등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을 이끌 가이드는 러시아계 프랑스인인 엘리나. 말 그대로 다국적 ‘순례단’인 우리는 미팅 포인트였던 툴루즈Toulouse에서 그녀를 보자마자 속사포같이 질문을 쏟아낸다. ‘예순이 넘은 내가 걸을 수 있는 길이냐, 하루에 몇 시간을 걷는 거냐, 너무 힘들면 도중에 포기해도 되냐’라는 질문에 엘리나는 빙긋 웃으면서 답했다. “마음을 먹은 성직자들은 이 길을 무릎으로 기어 올라간답니다.” 차분한 한마디였지만 ‘엄살떨지 마시오’라는 엄포가 분명했다. 동행인이 있어도 또 가이드가 붙는다 해도 긴장되는 초행길이었다. 사람들의 경직된 표정을 읽었는지 엘리나는 이 길을 가는 데 있어 꼭 경건한 마음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일러준다. 단지 마주치게 될 프랑스의 대자연, 봄과 여름 사이를 가르는 바람, 작은 마을들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즐기라 했다. ‘순례’라는 말이 주는 무게감에 짓눌렸는데 어느덧 경직된 마음이 사르륵 녹아내린 건 헤픈 성격보다는 ‘끝내줬던’ 날씨에 책임이 있으리. 미디피레네를 횡단하는 갸론Garon강에서 첫 번째 목적지 콩크Conques까지 3시간 가량 차로 이동하는 동안 첩첩산중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건 바로 건축자재였다. 주변에 암석으로 된 산이 없는 탓에 갸론강에서 길어 올린 붉은 모래를 이용해 벽돌을 구워 건물을 올리고 길을 닦은 툴루즈와는 달리 암회색 집들이 눈에 띈다. 언덕 위 석회석을 이용해 튼튼히 쌓아올린 건물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 앞에 일행을 태운 차가 멈췄다. 콩크는 불어로 조개를 뜻하는데 마을 전체가 조개껍데기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생겼다고 해서 붙은 이름. 겨우내 잠잠했던 콩크는 4월 부활절과 함께 모여드는 순례자들로 다시금 활기를 찾는다. 중세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산티아고를 찾아가는 길목길목에는 순례자를 위한 마을이 조성됐고 콩크도 그 마을 중 하나다. 각 순례 도시는 종교적인 기능과 생활적인 기능 모두를 담당했다. 전망이 좋은 곳에는 어김없이 교회나 수도원이 들어서 있다. 매일 평균 8시간 동안 길을 걷는 순례자가 안락한 밤을 지새울 수 있도록 숙박업소가 등장했고 그들을 치료하기 위한 병원이 갖춰졌다. 90가구가 전부인 이 작은 마을에 한 해 3만명의 순례자들이 모여든다. 기사들도 말 위에서 내려와 걸어야 했을 만큼 좁은 골목길, 손으로 일일이 쪼개 얹은 기왓장은 천년 동안 고단한 순례자를 반겨 왔다. 느린 걸음으로 한 시간이면 돌아보는 마을이지만 세계 각국에서 출발한 순례자에게 콩크는 없는 것 빼고 다 갖춘 마을일 거다. 작디작은 마을에 한걸음 내디딜 때마다 켜켜이 앉은 시간이 스쳐갔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Santiago de Compostela 12사도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순교지라는 게 정설. 산티아고는 야고보의 스페인식 발음이며 콤포스텔라는 ‘별의 들판’이라는 뜻의 라틴어campus stellae에서 유래했다. 예루살렘·로마에 이은 유럽 3대 순례지의 하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을 비롯해 성당·교회·대학 등 중세의 건물이 남아있어 번영했던 때를 보여준다. 척박한 땅에서 드리는 기도 로카마도르 Rocamadour 순백의 도시가 언덕 끄트머리에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계령 뺨을 칠 정도로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고 나니 로카마도르Rocamadour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촉박한 일정이었지만 잠깐 머뭄의 시간을 갖는 데 일행 모두가 동의했다. 마을 입구를 2km 앞두고 멀찌감치 떨어져 하염없이 마을을 바라본다. 오체투지로 순례길에 나선 성직자들은 물론이고 순례로서 죗값을 치르던 이들까지 바로 이 자리에 서서 마을을 굽어보고 한시름 놓았을 게 틀림없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풍경 덕에 자꾸 발걸음이 늦춰진다. 이 마을은 석회질이 다량 포함된 토질 덕분인지 유난히 흰 빛을 뽐낸다. 석회바위산 꼭대기에 이 같은 마을을 만들려면 평지보다 몇 배 노동력이 투입됐을 텐데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입지였다. 듣자하니 이 ‘석회’가 바로 순례마을의 비밀을 푸는 열쇠였다. 6만년 전 이 일대가 바다 밑에서 융기하며 바다생물이 퇴적된 땅이 드러났다. 토양의 주성분은 석회석과 같은 탄산칼슘. 하지만 물을 그대로 통과시키는 토질 탓에 나무를 심어도 과실이 나지 않고 곡식을 심어도 추수할 수 없는 척박한 땅이 돼 버렸다. 성직자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땅, 조용히 명상할 수 있는 이곳에 주목했다. 12세기부터 도시를 일궈 한때는 8,000명 가까이 머무는 ‘기도하는 마을’을 만든 것이다. 지금은 800명 규모로 축소됐지만 한 해 방문객만 100만명에 이르는 관광지다. 가장 유명한 순례마을 중 하나였던 로카마도르는 악명 높은 곳이기도 했다. 삶이 고단한 자들은 유복한 내세를 보장받기 위해, 범죄자들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어떤 이들은 기적을 간구하기 위해 마을의 맨 꼭대기 성당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찾는 구원을 얻고자 필시 223개의 계단을 오르는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어떤 성직자는 구불구불한 14개의 고갯길을 택해 무릎으로 오르기도 했다. 모든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던 건 성당 내 위치한 ‘검은 성모상’을 알현하기 위함이었다. 106년 기적을 행했다는 검은 성모상은 시간이 흐르며 자연적으로 검게 변했다고 하는데 프랑스 내 많은 검은 성모가 있지만 로카마도르 것을 제외하고는 일부러 페인트를 칠한 것도 많다 한다. 가끔 아무도 치지 않는 종이 울리는 건 이 성모의 힘이라고 로카마도르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두런두런 얽힌 로카마도르 이야기를 들으며 223개의 계단을 올랐다. 로카마도르 터가 머언 옛날 바다 아래 잠겼던 땅임을 증명하듯 계단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화석이 박혀 있다. 아름다운 길이지만 시간이 흘렀어도 악명은 여전했다. 최영미 시인은 아침마다 내뱉는 마른 기침으로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하는데 나 역시 고통으로 생이 자각되긴 마찬가지였으니. 건조한 모래바람이 호흡기를 훅 틀어막고 심장은 튀어나올 듯 펌프질을 해댔다. 온몸의 기관들이 벌떡 잠에서 깼을 무렵에야 검은 성모의 성당 앞에 겨우 발을 디뎠다. 언덕 꼭대기에는 대성당 외에도 자연 동굴을 활용해 만든 예배당이 있었는데 건조한 기후 탓인지 외벽에는 13세기에 그려진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다. 럭비를 너무너무 사랑하는 미디피레네 사람들을 위한 럭비의 신 예배당도 갖추고 있다. 엄숙하게만 보인 순례 마을의 귀여운 재치라고나 할까. 다시 떠나는 길 오슈Auch 마지막 행선지 오슈Auch에 도착하기 전 프랑스에서 가장 작은 마을이라 알려진 라르상글Larressingle에 들렀다. 목적은 라르상글에 있는 교회에서 순례자들에게 찍어 주는 도장을 받기 위해서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는데 각 순례 마을은 이들 여권에 방문자임을 증명해 주는 도장을 찍어 준다. 그러나 한때 주교가 거주할 정도로 큰 마을이었던 라르상글에는 을씨년스런 바람이 불었다. 교회 역시 군데군데 파손된 흔적이 역력했고 벽에는 커다란 엑스 표시가 낙인처럼 찍혀 있었다. 엑스 표시는 ‘팔렸음’을 뜻하는 표식이란다. 20세기 병적으로 ‘프랑스’적인 것에 탐닉한 미국인들은 오벨리스크를 유럽으로 옮긴 로마인처럼 프랑스의 와인이나 예술품뿐만 아니라 건물을 통째로 뜯어 부지런히 신대륙으로 날랐다. 혁명정부 이후 나폴레옹 제정이 들어서면서 교회는 더 이상 경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군자금을 충당하려는 약탈자들이 전국의 교회로 몰려들면서 온전히 제 모습을 보존하기는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그 당시 프랑스인에게 교회를 뜯어 파는 일은 아무런 죄책감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왠지 교회 내부에 바깥보다 더 추운 공기가 도는 것 같다. 별 기대 없이 여권을 대고 한 켠에 마련된 도장을 꾸욱 눌러 보는데 선명한 글씨가 찍혀 나온다. 한동안 이용하지 않았다면 잉크가 말랐을 게 분명하지만 도장은 아직 촉촉했다. 분명 바로 얼마 전 순례자가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했다. 반가운 마음에 길을 재촉했다. 순례자의 행선지가 우리와 같다면 길 위에 마주칠 것이다. 한걸음에 달려 오솔길 위를 걷고 있는 두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걷는 길 위의 동지였으므로 안면몰수하고 둘을 잡아 세웠다. 순례에 나선 지 한 달이 넘었다는 미국인 칼과 브라이언트는 40년지기 친구사이. 군에서 제대해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먼저 걸었던 칼이 브라이언트를 끈질기게 설득해 성사된 여행이라고 한다. “부인과 자녀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친구 녀석 믿고 한번 와보기로 했지.” 결국 브라이언트는 ‘해고의 위험’을 무릅쓰고 보스에게 장기 휴가를 얻는 데 성공해 길에 나섰다.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가장 오래된 도장을 찍었다는 그는 여정이 빼곡히 담긴 여권을 자랑한다. 남이 보지 않을 땐 꼭 붙어 걷던 두 사람에게 어깨동무를 요청하니 쑥스럽다며 발을 뺀다. 나머지 여정도 건강하게 마무리짓길 바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는 우리대로 오슈에 다달았다. 오슈라는 도시명은 아우구스투스에서 유래했는데 이곳은 중세 유명한 종교도시였다. 도시 어디에서나 고딕양식의 오슈대성당Auch Cathedral이 시선에 걸린다. 성당 내부는 26m 높이로 프랑스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해마다 5월이면 오르간축제가 펼쳐지고 6월부터 8월까지 매주 일요일에는 무료 콘서트가 열린다. 가장 좋은 것, 귀한 것을 집약해 천국에서의 행복한 나날을 암시하고자 했던 의도대로 교회 내부는 화려했다. 믿음을 확인한 순례자는 교회를 빙 한 바퀴 돌아보고 다시 길을 나서야 하는 동력을 얻는다. 오늘날 프랑스의 순례 마을과 관련 건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곳이 많은데 단지 시간이 오래 되어서라거나 보존이 잘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차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믿음의 힘만으로 수천명의 사람들이 같은 길을 걸었던 장면은 그 당시에도 장관이었을 테니. 반면 기독교가 쇠락하고 신보다 인간이 앞서던 시대가 도래하고 또 부르주아 혁명이 일어나면서 순례길이 쇠퇴해 갔다는 점도 유럽인의 역사가 이 길 위에 오롯이 반영되는 것 같다. 다시 성찰의 기회를 물색하던 현대인에게 조용히 길을 내준 사람들 덕분에 순례마을은 박제된 박물관이 아닌 삶과 역사의 교차점에 서 있다. 그리고 내 삶의 좌표는 그 어디쯤엔가 찍혀 있다. 글·사진 양보라 기자 취재협조 프랑스관광청 kr.rendezvousenfrance.com 02-776-9142 ▶travie info 어디서 출발하면 좋을까 출발점을 선택하는 건 순례자의 몫이다. 프랑스길Camino Frances을 걷는다면 파리, 르퓌Le Puy, 아를Arle, 생장St. Jean Pied de Port이 관문지다. 특히 생장에서 산티아고까지 800km에 이르는 코스에 70%의 순례자가 모인다고 한다. 미디피레네 코스를 걷고 싶다면 주도 툴루즈Toulous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 무엇을 준비할까 가리비와 나무 지팡이를 든 순례자의 초라한 행색도 시간이 흐르며 변모됐다. 기본적인 아웃도어 트레킹 물품을 준비하자. 편한 신발, 스틱, 수통 등을 챙기자. 빗물로 인해 무릎 아래 부분이나 등산화가 젖는 것을 방지하는 스패츠도 유용하다. 유럽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하려면 우비는 필수다. 어디서 먹고 씻고 잘까 일단 먹는 것은 알아서. 순례자 전용 숙소인 알베르게에서 조리도 가능하다. 알베르게는 도미토리 형식의 유스호스텔이라 보면 되는데 순례길 전역에 분포해 있다. 위생상태는 천차만별. 때로는 침대 진드기에 역습을 당할 수도 있다. 다음 순례자를 위해 한 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다만 몸이 아픈 경우는 예외다.
  •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배낭 멘 여행길에선 낯모르는 이와 “안녕” 하고 입만 벙긋하는 인사만으로도 말꼬리가 길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아주 사소한 호감부터 “너 지금 행복하니?”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는 꿈꾸듯 거닐며 수많은 이방인들과 옷깃 스치는 인연을 맺었다. 이를테면 옷깃스침 동행이랄까. 유럽 땅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나는 마냥 행복했다가 돌연 쓸쓸해지고 그지없이 황홀했다가 못내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순간순간을 맞이한다. about ‘동행’ 본 기사는 SJR EUROPE에서 론칭한 ‘동행’ 상품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총 6개국 18개 도시를 탐방했다. tip 1 동행 상품가 외에 옵션투어 비용, 식비, 자유 여행을 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각종 입장료 등 15박 17일의 현지에서 지출한 여행경비는 120만원 남짓. 기념품 구입 또는 개인 쇼핑 품목이 많을 경우에는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tip 2 파리의 라스파일 시장과 몽파르나스 묘지, 뮌헨의 영국정원과 슈바빙,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비엔나의 레오폴드 뮤지엄, 베네치아의 리도섬과 부라노섬 등은 기본 투어가 아닌 자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했다. 기본 투어에 해당하는 파리,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등의 주요 도시 투어 역시 일부 구간 동행 후 자유로이 움직였고, 옵션 투어 가운데 바티칸 시국은 개별적으로 방문했다. France Mont Saint Michel, Paris 파리에서 지도 없이 걷기 기어코 파리. 파리는 독보적이다. 자정 가까이 늦은 밤에 도착한 파리였지만 여행에 앞서 만난 선배의 말이 실감이 됐다. “아마도 네 마음과 부단히 싸우는 여행이 될 거야.” 어디부터 갈까, 뭐부터 할까, 마음은 급한데 결정은 못하고, 그럼에도 파리에서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여행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가까이에 위치한 호텔Campanile Maine Montparnasse 로비에서 15박 17일간의 동행들과 만났다. 며칠 전에 도착해 이미 파리에 푹 빠진 이도, 스페인이며 어디며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동행을 태운 버스는 파리를 조금 아껴두고 4시간여를 달려 프랑스의 끄트머리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 닿았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신성한 산성, 몽생미셸은 노르망디Normandie 해변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자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도원이다.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다.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바위섬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워낙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썰물의 간격이 짧아 많은 이들이 휩쓸려 버린 탓에 ‘몽통브mont tombe’, ‘무덤 산’이란 고약한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8세기 초반의 어느 날, 인근 아브랑쉬Avranches 지역 오베르St. Aubert 대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예배당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후 서서히 모습을 달리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전투 요새로, 18세기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몽생미셸은 고되고 혼란스러운 노르망디의 역사가 쓸려가고 다시금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밀려오는 축복의 성지다. 그 물살에 실려 동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리는 몽생미셸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섬 꼭대기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호텔과 기념품 가게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는 짧은 물때를 맞추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는 이곳의 대표음식 오믈렛과 사과 파이, 발효주 시드르Cidre 등을 즐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선 수도원에서 갯벌 뒤로 어디서부터가 바닷물인지 모를 그저 눈부신 노르망디 해안을 실눈으로 조망한다. 드디어 정말, 파리의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진작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조식 서비스를 마다하고 향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er.’ 카페 홀을 등지고 바깥 거리 쪽 테라스 좌석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파리지엔의 밥상을 받아든다. 그러나 난 이따금씩 꿈꿨다.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파리지엔들마저 도시의 풍경으로 소비되는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이 도시의 산보객이 되는 순간을.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한가한 무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바로 옆 서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막 문을 여는 참이다. 출근하는 서점 직원들을 따라 들어가 바바리코트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들과 책 구경을 한다. 파리를 담은 사진집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라스파일 시장Marche Biologique Raspail’에 이른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의 오일장처럼, 라스파일 도로변에 장이 선단다. 일요일에는 파리 근교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파는 유기농마켓이 열린다. 운이 좋다. 마침 장날이다. “봉쥬르.” 늘어선 가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인사와 한 손에는 애견,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동네 할머니와의 연속된 조우. 그리고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올리브를 맛보기로 건네는 손길까지 의도치 않게 살가운 일상을 공유한다. 예상치 못했던 진짜 파리지엔의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몽파르나스 묘지Montparnasse Cemetery에는 안내지도를 들고 명망가들의 묘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시장에서 산 빨간 딸기를 베어 먹으며 보들레르 묘 앞에 마주앉은 나는 잠시 시간여행자로 전환된다. 아, 파리에서의 3일은 턱없이 짧다. 나는 파리를 빠르게 읽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튈르리 정원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그 긴긴 길 위엔 셀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의자가 줄지어 있고 그 위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그날 밤, 중세 파리 투어를 했던 동행 몇몇이 해질녘 몽마르트르에서의 낭만을 안주 삼아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장소가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다음날, 동행들로부터 귀동냥한 정보를 중얼거리며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 역시 조식 서비스 대신에 공원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크레이프와 커피로 덜 깬 잠을 달랜다. 조깅하는 파리지엔과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 뒤를 쫓는 단체여행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까짓것 부지런해져 보지 뭐. 반의반, 그 일부만이라도 보겠다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갔다. 역시나 나의 관심사는 미술작품보단 ‘오르세’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므로 두어 시간이면 될 거라는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르세는 물론 파리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다. 그냥 넋 놓기로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한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낯선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에게 초상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2~3분 만에 옆모습 실루엣을 종이에 오려 준다는 거리 예술가 앞에 앉았다. 대개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인지 예술가의 손놀림인지 모르겠더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민망함을 누르는 동안에 완성된 나의 실루엣. 하나도 안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탐이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은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위에서의 센강 유랑이다. 저마다의 파리를 즐긴 동행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듣는 이는 드물다. 알알이 불씨 오른 에펠탑이 가까워진다. 탄성이나 호들갑 없이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리의 밤이 강물 따라 흘러간다. ▶travie info 동행 프로그램은 여행하는 도시 가운데 주요 도시에서 지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1일 투어를 기본 일정에 포함하고 있고 파리에서는 2가지의 옵션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옵션 투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지식 가이드 투어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개인의 여행 기호를 존중하여 얼마든 자유 여행이 가능하다. route 1. 루브르 박물관+중세 파리투어 샹젤리제 거리→개선문→루브르박물관→중식→시테섬→노트르담성당→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시청사→퐁피두센터→사요궁전(에펠탑 조망) route 2. 오르세 미술관+파리 인상파 투어 오르세 미술관→로댕미술관 정원→몽마르트르 언덕(성심성당, 예술인의 광장, 피카소의 작업실, 물랭루즈(조망))→개선문(샹젤리제) Switzerland Interaken,Luzern,Mürren,Mürren 만년설 위로 반짝이던 하루 파리 유랑을 끝낸 동행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꼬박 8~9시간 몸을 구겨 잠을 청해야 한다. 다들 오랜 시간의 쪽잠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잠에 빠진다. 조금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낯선 도로 위다. 예상치 못한 거센 눈발로 좀더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번 여정은 이 야간이동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라하까지 여정의 절반 이상을 이 버스 한 대로 움직인다. 유럽 배낭인데 유레일이 아니고 버스라니 처음엔 갸웃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시간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보다 한두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인터라켄이다. 도시락으로 요기한 동행 대부분이 ‘Top of Europe’ 융프라우에 오를 채비를 한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터라켄에서 나는 과감히 융프라우를 포기했다. 이미 올랐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파리 파노라마가 가시기 전 유럽의 지붕 아래서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놓쳤던 청정마을 뮈렌Murren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착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기 전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홈메이드 스프 한 그릇을 먹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눈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뮈렌에서 단출한 워킹화에 의지하여 곧 미끄러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다. 날쌔게 지나가는 스키어들은 물론 눈썰매 힘껏 지치는 어린 아이들도 탄탄한 기운을 뿜어낸다. 변덕스런 날씨로 여행자 애태우기 일쑤인 그날의 융프라우는 다행히 쾌청했다고 동행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다들 세상 모르고 잠이 들겠지. 하얀 솜사탕처럼 멀리 뭉게뭉게 겹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품속에서 그만큼 달달한 꿈을 꾸면서. 이른 아침인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프스 높은 곳 어디에선가 발을 뗐을 패러글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천이 눈꽃, 상고대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새 루체른Luzern이다. 호반 위로 얌전히 뻗은 카펠교Kapellbrucke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고즈넉함을 맛본다. Germany Füssen, Munich 찰나지만 더없이 벅찬 순간 몇 시간 후 국경을 넘어 독일 퓌센Fussen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전후인데 벌써 어둑하니 날씨가 궂다.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모습이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상당수 장면의 배경이니 말이다. 성의 일부가 보수공사 중인 데다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는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라 아랫마을에서 성의 초입까지 짧은 산책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방향을 틀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뮌헨Munich은 몹시 차분했다. 물론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는 달랐다. 동행들과 우르르 몰려간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홀답게 사람도, 맥주도, 열기도 거품이 일 듯 넘쳐났다. 뮌헨에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동행들이 삼삼오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파리에서의 3박 4일이 짧다 투덜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뮌헨에선 아주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슈바빙Schwabing과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의 잔상 때문이었을 게다. 이젠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바빙과 영국정원의 모습만은 또렷했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전, 자유로운 3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리셉션에서 지도 한 장과 함께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받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곧 멎을 것처럼 숨이 찼음에도 자전거와 유모차가 차례로 엇갈려 지나가고 오리와 거위가 벤치를 돌며 길동무 해주는 영국정원에서 더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그리곤 지그재그로 훑어 내려간 슈바빙. 짧아서 아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다. 전혀. 그곳에 내가 존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차기만 한 걸. 찰나일지라도. 다시 올라탄 동행 버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 깜빡일 때마다 영화 스틸 컷이 된다. 할슈타트로 가는 길이다. 휴대전화로 알림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네트워크 설정을 알리는 메시지. 버스가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네트워크 설정이 달라진다. 독일 통신망을 잡았다가 오스트리아 통신망을 잡았다가. 이윽고 조용해졌다 싶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그곳, 할슈타트 끄트머리에 있었다. Austria Hallstatt, Salzburg, Vienna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가다 여전히 하얀빛을 발하는 눈이 마을을 살포시 덮고 있다. 그만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쾌하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분. 깜빡 졸다 깨나니 어느새 할슈타트Hallstatt 호수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다. 할슈타트를 포함하여 이 일대를 보통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작은 마을들은 알프스 아래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다.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호숫가로 내달린다. 공기 중엔 감탄만이 존재한다. 떠나오기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모차르트, 클림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그들이 태동한 마을, 도시, 공간 그 자체였다. 할슈타트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이후 잠깐의 산책이 허락됐다. 호수 가장자리 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할슈타트의 집들. 집 위에 집, 그 위에 다시 집이 층층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그런 까닭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탈 아래 집의 다락방 또는 굴뚝과 눈이 마주친다. 집 앞 정원, 뒤뜰은 물론이고 담장, 벽면, 창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손질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맞닿은 벽면에 벤치를 놓은 집들이 많다. 허락 없이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등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마을을 관찰한다.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밀려온다. 이미 때는 놓쳤고 아쉬운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투박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한다. 할슈타트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동행 버스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캐리어를 호텔 방에 밀어두고 저녁나절 동행의 지식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을 지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까지 단숨에 잘츠부르크 구시가를 가로지른다.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차례로 맛보며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만찬을 가져볼까 잠시 고민. 하지만 생선요리를 판매하는 이곳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포장하고 기차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슈니첼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장을 본다. 호텔 방 안에 차려낸 배낭여행자의 잘츠부르크식 만찬에 흡족해하며 여행 친구들과 꽤 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Czech 에곤 실레 그리고 카프카 할슈타트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좁다란 골목골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하나. 모차르트 엄마 그리고 에곤 실레 엄마의 고향이 각각 할슈타트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것.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다. 두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포인트. 특히나 엄마의 고향 체스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체스키를 표현한 작품도 상당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익은 에곤 실레의 초상과 작품으로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도 있다. 굴라쉬 브런치를 즐긴 다음 그가 걸었을 법한 골목을 따라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자주 걸음을 멈췄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시야가 트이는 성벽길에 접어들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그 너머의 마을 가장자리를 둥그스름하게 에두르고 그 안쪽에 중세의 시간을 간직한 집들이 소복히 모여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마을엔 아늑한 기운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프라하Prague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화약탑, 천문시계, 카렐교까지 프라하 구시가를 동행 매니저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렐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들을 뒤로하고 다리 난간에 바싹 붙어 프라하 성을 바라본다. 카렐교 건너의 펍에서 벨벳 맥주 한 잔. 부드러운 벨벳 거품이 입술에 닿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나. 잔이 빌 때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셈하게 된다. 달게 자고 일어난 프라하의 아침은 지난밤만큼 아름다웠다. 성비투스성당, 황금소로가 이웃하고 있는 프라하 성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동행 가이드 투어 이후엔 홀로 프라하 시가지를 쏘다녔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끝내 제 발로 찾아갔다, 카프카Franz Kafka를.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내도 아쉬움 가득할 여행길에서 가슴 철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나는 카프카 뮤지엄Franz Kafka Museum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닙니다. 꺼져 가는 꿈과 열정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시간이라는 태양의 갈라진 바닥을-잠수종 속에서처럼-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구스타프 야노우호의 <카프카의 대화> 인용문 中 카프카가 남긴 기록을 보는 사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프라하는 한순간에 반전된다. 숨이 턱 막힌다. 달달한 체코 전통빵 뜨르들로Trdlo를 뜯어먹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곧 프라하를 떠난다. 숨 가쁘게 도착한 다음 여정은 비엔나Vienn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꼭 맛보아야 한다는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에곤 실레와 맞바꾸고 나는 다시금 배고픈 여행자가 된다.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에곤 실레의 체스키는 내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어둡고 울적했지만 나로선 참 반가운 장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간이 다르고 에곤 실레와 나 사이의 시간 또한 다르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풍경이 있고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의 순간에 감사한다. ITALY Vaticano,Rome,Veneziam,Sorrento,Sorrento,Sorrento 냉정해질 수 없는 이탈리아 여행 오늘 나는 생애 첫 야간열차를 경험한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꼬박 12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원했던 베네치아에 닿는다. 이번 동행길에서 가장 기대한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6개의 간이침대가 세 개씩 양 벽면을 의지해 층을 이룬 열차 칸은 비좁았다. 부피 큰 캐리어는 침대 아래 보관함에 들어가지 않아 양쪽 침대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세웠다. 그 위로 다시 작은 짐들을 포갠다. 이제 열차 칸의 여섯 명은 발 디딜 공간 하나 없이 밤을 달린다. 열악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모든 것이 야간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 감행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두근두근했던 그 느낌. 한참 줄을 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슈니첼 한 덩이를 패티로 넣은 버거와 커피 한 병. 자정 가까이 돼서 맛보는 제대로 된 첫 끼니다. 꿀맛. 푸르렀다. 물이 곧 땅인 베네치아Venezia에서는 모든 것이 맑고 푸르렀다. 동행들과 베네치아 본섬 투어에 나섰다. 떠밀리듯 걸을 수밖에 없을 만큼 본섬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 북적임이 베네치아를 더욱 활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물결을 따라 조금 멀리 나가 보자. 배에 올랐다. 리도 섬Lido으로 가는 배다. 매년 가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섬 리도의 4월은 따사로웠다. 흐드러진 벚꽃과 나뭇가지마다 터져 나온 초록 잎사귀들로 봄기운이 물씬했다. 한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세계의 끝은 낮고도 깊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반짝이는 해변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흡수한다.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 양동이와 집게를 들고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사과를 베어 문 젊은 연인. 영화와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다. 리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부라노 섬Burano은 색색이 선명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데칼코마니 풍경을 찍어내는 부라노의 색채는 바다로 나간 이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알록달록 칠을 한 것이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 거품이 절반이나 되는 폭신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녕, 부라노. 안녕, 베네치아.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베네치아의 축복 속에 헤엄치던 나는 어느새 피렌체Firenze 산타마리오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한 마디로 두오모Duomo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두말 할 것 없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곱씹으면서. 찰나에도 시작과 끝은 있다.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인다. 동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로마 떼르미니. 악명 높은 떼르미니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동행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여행지니 모두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지. 주변을 살피고 짐 가방 단속도 단단히 한다. 이제 로마Rome의 법을 따를 시간이다. 이튿날 아침, 로마의 여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나보나 광장까지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의 중심을 통과한다. 촌스럽게 무슨 동전 던지기를 하냐고 피식 비웃었던 나는 어둔 밤 조명 밝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앞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들었고, 칠칠치 못하게 거리에서 무슨 젤라또를 날름거리냐고 흉봤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맛있다는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강 건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마을에 이르러서야 느긋한 한때를 보낸다. 중세로부터 이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라고 했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라도 동네 어귀 작은 카페며 레스토랑 어디엘 들어가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웬만한 부침개보다 훨씬 큰 피자 한 판도 머릿수대로 주문하는 것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와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틈에서 매끄러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훅 들이킨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과 노천카페가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광장으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진다. 조바심쟁이가 모처럼 너그러워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나폴리 항을 곁눈질한 끝에 도착한 폼페이Pompeii에서는 그 폐허 위로 핀 들꽃처럼 가슴 뛰는 생명력을, 아말피 코스트Amalfi Coast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쏘렌토Sorrento에서는 나른해서 더 달콤한 지중해 마을의 여유로움을 삼킨다. 꿈은 아니겠지. 마지막은 아니겠지. 바티칸에서 뜻밖에도 새로이 선출된 교황님의 알현식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이번 여행, 정말 제대로다. 떼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Leonardo Express 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진 폴더 안에 새로이 추가된 이미지 파일만 3,000장. 힘들었던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애틋하게만 기억되는 동행. 나는 지금 또다시, 더없이, 여행을 안달하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SJR EUROPE www.sjreurop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삽자루의 유럽 ‘동행’ 15박 16일 2013년 SJR EUROPE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나는 15박 16일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은 개인의 기호와 예산에 맞게 선택, 자연스럽게 동행 일정 전후로 자신만의 여행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일정 내내 전문 지식 가이드 출신의 인솔자가 동행하여 주요 도시에서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한편 여행자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여행 정보와 노하우는 물론 충분한 자유 일정을 지원한다. 함께하는 낭만과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가장 큰 매력.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퓌센, 할슈타트, 체스키 등 자유 여행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를 경유하는 것도 동행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남부지중해 투어, 바티칸 투어 등 다양한 옵션 투어도 마련해 두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여행자 또는 안전과 도시간 이동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상품이다.
  • 여의도의 재구성

    여의도의 재구성

    한강 위에 뜬, 알고 보면 엄연한 섬. 수상 레포츠와 63시티, IFC에서의 몰링까지, 극과 극 피서가 가능한 곳. 땡볕 더위와 열대야를 이겨낼 강력한 처방전으로 여의도를 추천한다. ■River 여의도 한강공원을 즐기는 세 가지 방법 낮에는 따사로운 인간적인 공원, 밤이 오면 뜨거워지는 반전 있는 공원! 여의도 한강공원을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섬 둘레를 자전거로 돌아보거나 요트나 유람선을 타고 여유를 즐겨 보자. 선선해진 밤이면 잔디밭 위에서 재즈 선율에 빠져 보는 것도 좋다. 자전거 하이킹 즐기기 여의도는 한강에 떠 있는 제일 큰 섬이다. 섬 반쪽 면은 샛강에, 나머지 반쪽 면은 한강 물길에 접해 있고 공원 역시 샛강생태공원과 한강공원으로 양분돼 있어 풍광이 사뭇 다르다. 한강 자전거족들이 여의도를 사랑하는 이유도 이런 다양한 매력 때문. 두 공원을 거쳐 여의도를 한 바퀴 돌아보는 데는 1시간 남짓이면 충분하다. 자전거는 마포대교와 원효대교 밑에서 빌릴 수 있다. 여의도역으로 오는 경우 여의도공원에서 대여하고 반납해도 된다. 원효대교에서 시작해 63빌딩을 바라보며 달리면 곧 좁은 샛강이 나온다. 노량진과 여의도를 사이에 두고 흐르는 샛강은 제법 길게 이어지는데, 빌딩숲 사이로 억센 생명력을 자랑하는 무성한 갈대숲이 놀랍다. 또 습지 속으로 들어가 야생초 화원, 버들숲, 여의못 등을 데크 위로 걸어 볼 수 있어 좋다. 샛강 생태공원은 여의도 둘레의 절반인 3~4km에 달하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이 좋다. 물길이 모인 방문자센터 앞 여의못을 걸어 본 후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달리거나, 여의도 공원을 가로지르면 다시 한강공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마포대교 아래에는 시원한 분수와 물이 흐르는 ‘물빛광장’과 ‘피아노물길’, 한강공원에서 가장 넓은 잔디밭인 ‘너른 광장’, 시원한 음료로 해갈할 수 있는 ‘빛의 까페’와 편의점이 있다. 여의도한강공원┃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에서 도보 3분, 지하철 5, 9호선 여의도역에서 도보 10분 여의도한강공원 주차장 마포대교남단, 순복음교회 앞, 샛강 성모병원 앞, 샛강 여의 2교 밑 등 5개 구역 운영시간 오전 9시~밤 11시 주차비 1일 1만5,000원(공휴일 무료) 자전거 대여소 마포대교 남단 1개소, 원효대교 남단 1개소, 여의도공원 5개소 대여비 1인용 3,000원(1시간 기준, 초과 15분당 500원), 2인용 6,000원(1시간 기준, 초과 15분당 1,000원) 문의 02-416-4440 강변의 밤, 낭만 만끽하기 여름이면 여의도 한강공원은 늦은 밤까지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저녁 노을이 번진 잔디밭 위에 앉아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를 듣고 강바람을 맞고 있으면 마음마저 시원해진다. 한강의 노을을 즐기는 최고의 방법은 유람선이다. 매일 저녁 7시30분 ‘라이브유람선’과 ‘디너뷔페크루즈’가 원효대교와 마포대교 사이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선상에서 라이브공연 또는 호텔식 뷔페를 즐기며 밤섬과 선유도, 서울의 야경과 반포대교의 달빛 무지개 분수를 볼 수 있어 운치가 있다. 7월 말부터 8월에는 매주 토요일 저녁 7시30분, 환상적인 불꽃을 쏘아 올리는 ‘불꽃유람선’도 운항한다고. 유람선을 타기 어려운 경우에는 마포대교 위에 있는 무료 해넘이 전망대에 가보자. 서강대교 방면으로 탁 트여 있는 공중 전망대라 스포츠 중계석 못지않은 넓은 시야를 자랑한다. 해질녘이면 사람들은 물빛무대 앞으로 속속 모여든다. 물속에서 떠오르는 물방울을 형상화한 반돔형 무대에선 매주 수, 금요일과 토요일, 실력 있는 밴드들의 라이브 재즈 공연이 펼쳐진다. 금요일에는 재즈공연 후 영화 상영도 이어져 여름밤 시민들의 감성을 채워 줄 예정이라고. 밤이면 여의도에 밀집한 방송국들의 야외 촬영도 심심찮게 진행된다. 물빛무대 공연┃일정 매달 홈페이지 게재 www.floating-stage.com 여의도 한강 유람선┃운영시간 오전 11시~오후 8시40분 이용요금 1만2,000원(일반)~6만5,000(디너뷔페) 문의 02-3271-6900 www.elandcruise.com ▶travie info 여의도에서 ‘물빛’ 프러포즈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무대 위 공개 프러포즈. 일반적으로라면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여의도 한강공원 물빛무대에서는 무료로 가능하다. 한강사업본부 홈페이지(hangang.seoul.go.kr)에서 미리 신청하면 매주 목, 금, 일요일 저녁 8시 혹은 9시에 프러포즈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신청자는 추억이 담긴 커플 사진과 프러포즈 영상, 세레나데를 준비하면 되고, 한강사업본부에서는 영상 만들기부터 당일 공원에 사람들을 모아 축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수상 레포츠 도전하기 여유 있게 더위를 피하고 싶다면 너른 강 위로 가 보자. 수상보트와 웨이크보드는 짜릿한 스피드로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게 만든다. 운전사와 함께 보트에 탑승하는 수상보트는 주로 여성들이 즐긴다. 시속 40km로 물 위를 바람처럼 달리다가 순식간에 유턴하는 기술은 묘기에 가까울 정도. 웨이크보드는 수상스키의 보드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물속에 빠져가며 온몸으로 한강을 느끼는 조금은 과격한 스포츠지만 균형 감각만 있으면 하루 만에 쉽게 배울 수 있다. 바다에서 주로 보던 요트도 여의도 앞 한강변에는 심심찮게 떠다닌다. 요트를 빌려주고 교육도 시켜 주는 ‘서울마리나 클럽 & 요트’가 국회의사당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 한강은 바다처럼 파도가 심하지 않기 때문에 초보자들도 쉽게 입문할 수 있고 비용도 저렴하다. 무동력 1인 요트인 딩기요트부터 8인용 크루저 요트까지 다양하게 배울 수 있으며, 체험프로그램을 통해 기본기를 익히고 직접 강 위로 나가 실습해 볼 수 있다. 딩기요트의 경우 일정시간 동안 교육을 이수하고 나면 면허가 없어도 대여해서 스스로 운항해 볼 수 있다. 바람의 방향이나 강도에 따라 움직여 윈드서핑처럼 스릴 만점이다. 여러 명이 같이 타는 크루저 요트는 돛을 피고 바람의 힘으로 움직이지만 입출항시 약한 마력의 보조엔진을 사용한다. 크루저 요트의 경우 선장이 운항하는 배 자체를 임대하거나 개인적으로 승선해 볼 수 있다. 요트나 수상보트보다는 얌전하고 유람선보다는 다이내믹한 것으로 수상 콜택시도 있다. 여의도공원 내 3군데에서 탑승할 수 있는데, 미리 예약하면 태워서 목적지에 데려다주는, 말 그대로 물 위의 택시다. 방화대교에서부터 잠실까지 총 18개 선착장 중 원하는 곳에서 타고 내릴 수 있어 편리하다. 1시간 내외로 한강을 유람하는 코스 상품을 이용하거나 한 대를 통째로 빌려 개인 유람선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이외에도 여의도 한강공원에서는 개인 장비를 이용한 낚시나 카약 등도 가능하다. 단 캠핑을 할 땐 주의가 필요하다. 한강공원에서 천막 이외 텐트로 캠핑하는 것은 사실상 불법이라고. 파라다이스 수상레저┃이용요금 모터보트 3만원부터(1~3인, 10분 내외), 수동 오리배 1만5,000원(2~4인, 40분), 자동 오리배 2만원(2~4인, 40분) 이랜드크루즈 수상스키·웨이크보드┃대여료 2만5,000원(10분) 강습+대여비 6만원(4시간), 수상오토바이(5만원, 10분 *조정 자격증 소지자 본인이거나 동승만 가능) 문의 02-3271-6948 서울마리나 클럽 & 요트┃이용요금 체험프로그램 3만원(1인, 2시간), 크루저 요트 승선 1만5,000원(1인, 1시간), 크루저 요트 렌탈 12만원(8인, 1시간) 문의 02-3780-8400 www.seoul-mariina.com 수상택시┃이용요금 여의도~잠실 기준 9만원(7인, 40분) 탑승장소 여의도119, 여의나루역, 서강대교남단(국회의사당 앞) *탑승 전 예약 필수 문의 1588-3960 www.pleasantseoul.com ■City 여의도 안의 또 다른 도시 63시티 학창시절 한 번쯤은 가봤을 법한 63시티. 아쿠아리움과 전망대를 갖춘 63시티는 바다와 하늘이 가진 가장 낭만적인 요소들을 한데 모아놓은 곳이다. 63스카이아트, 왁스뮤지엄, 씨월드. 이중 하나만 보더라도 일상의 지루함을 날려 버리기 충분하다. 바다의 신비, 63씨월드 63씨월드는 1985년 개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족관이다. 당시 여의도 한가운데에서 들여다본 바다 속 세계는 많은 이들에게 경이로움과 충격을 안겼다. 400여 종 2만여 마리에 달하는 해양생물을 볼 수 있어 여전히 서울 구경 일번지로 꼽힌다. 국내 여러 아쿠아리움 중에서도 63씨월드는 관객과 가장 가까운 아쿠아리움이다. 하루 종일 기발한 이야기와 캐릭터로 웃음을 주는 다양한 수중 공연이 펼쳐진다. ‘매직 물범 해리와 로니’(1일 4회)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농구를 하는 물범을, ‘슈퍼 물개 오디션’(1일 3회)은 캘리포니아 물개들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깜찍한 율동을 선보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국가대표 출신 연기자의 ‘수중 발레’(1일 6회)도 놓쳐선 안 될 공연이다. 이외에도 수조 위가 뚫려 있어 눈앞에서 펭귄을 볼 수 있는 터치풀장, 투명 강화 수조 위를 걸으면 발아래에서 상어와 가오리가 노니는 모습이 고스란히 들여다보이는 ‘스릴워터’도 재미있다. 공중에서 맛보는 힐링, 63스카이아트 63빌딩 최고층인 60층에는 63스카이아트가 있다. 해발 264m에 자리잡은 자타공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미술관’이라고. 63시티 개관 때부터 전망대였던 공간을 2008년 미술관으로 탈바꿈했는데, ‘Kitty S’전, ‘13세기 그림으로 떠나는 여행’전 등 팝아트부터 순수 회화 전시까지 매년 3개의 테마를 주제로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미술관으로 바뀌었지만 전망대의 기능도 여전하다. 사방이 전면 창으로 되어 있어 여의도와 한강을 다양한 각도에서 감상할 수 있다. 시간을 내어 미술관 옆 스카이아트 카페에서 차 한잔을 즐겨 보자. 인천 앞바다까지 이어지는 한강의 아름다운 물길과 서울의 부감을 보고나면 스카이아트가 지닌 가장 진귀한 소장품은 바로 이 풍광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오바마와 어깨동무, 왁스뮤지엄 63왁스뮤지엄은 국내에서 최초로 개관한 밀랍인형 박물관이다. ‘명예의 전당’, ‘최후의 만찬’, ‘화가의 방’, ‘스타 리뷰’, ‘공포체험관’, ‘스포츠 스타’ 등 총 10개의 섹션에 약 70여 점의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는데, 순간순간 움찔하게 될 정도로 손가락 마디 위의 털 하나, 눈동자 동공마저 진짜 사람 같다. 이곳은 거의 ‘인증샷’을 위한 박물관이다. 평소 흠모하던 세계적인 지도자들과 슈퍼스타들, 예술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기 때문. 가장 흥미로운 곳은 ‘최후의 만찬관’이다. 3년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은 2000년대 초, 베를린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열린 ‘밀랍인형 역사인물전’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렇게 감쪽같은 작품들을 만든 사람은 세계적인 밀랍인형 제작자 ‘마자쓰키 사토루’다. 할리우드 스타들이 그의 손에 자신의 밀랍인형이 제작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길 정도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아티스트로 현재까지 1,000여 점에 이르는 작품을 제작했다. 최근 만든 김수환 추기경의 밀랍인형도 만나 볼 수 있다. 놀라운 임팩트, 63아트홀 63빌딩 지하 1층에 위치한 63아트홀은 공연장 겸 영화관이다. 거대한 아이맥스 스크린이 펼쳐진 극장에서 초대형 뮤지컬과 3D 아이맥스 영화를 상영한다. 현재 비보이 뮤지컬 <마리오네트>가 오픈런으로 공연 중이다. 심장을 가진 인형과 이들을 보살피는 인형사, 그리고 악한 마법사의 이야기인데, 실로 매달아 조작하는 꼭두각시 인형(마리오네트)의 몸짓을 비보잉을 통해 사실적으로 표현해냈다. 흥미로운 이야기와 음악, 비보이 그룹 익스프레션 크루Expression Crew의 안무가 인상적이다. ▶travie info 63시티를 방문할 때는 패키지 티켓을 구입하면 훨씬 저렴하다. big3 3만3,000원(씨월드, 스카이아트, 아이맥스, 왁스뮤지엄 중 3가지 선택), big4 3만8,000원(씨월드, 스카이아트, 아이맥스, 왁스뮤지엄), big5 4만8,000원(big4+뮤지컬) ■Mall 여름에는 역시 몰링malling! 여름 더위에 정공법으로 맞서는 야외 스포츠보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선호한다면 여의도에서 IFC몰 만한 곳이 없다. 지난해 8월에 오픈해 개장 1년을 앞두고 있는 여의도 IFC몰은 쇼핑, 외식, 영화 관람이 한꺼번에 가능한 복합쇼핑공간. 하루 종일 있어도 지겨울 틈이 없다. 인터내셔널쇼핑몰인 IFC몰에는 국내외 유명 패션 브랜드, 화장품 브랜드 등 110여 개 상점이 입점해 있다. 바나나리퍼블릭, 마시모두띠, 스트라디바리우스, 버쉬카, 풀앤베어 등 백화점에만 입점하는 해외 패션 브랜드도 많다. 특히 패션 피플들의 발길을 끄는 곳은 국내 1호 매장으로 문을 연 홀리스터. 캘리포니아 해변의 바에 와 있는 듯한 독특한 인테리어, 화려한 컬러와 무늬의 여름 옷들로 인기를 끌고 있다. 쇼핑이 있는 곳에 먹거리 또한 빠질 수 없다. IFC몰 지하 3층에는 맛집들이 즐비하다. 대기 줄이 문 밖까지 이어지는 ‘제일제면소’, 일본식 화로구이 전문점 ‘와세다야’, 아시아 퓨전 레스토랑 ‘어니스트 키친’, 파스타와 피자가 있는 ‘꼬또’는 특히 인기다. 지하 3층에 위치한 엠펍MPUB은 영국펍을 표방하는 세계맥주 전문점이다. 점심에는 런치뷔페를 즐길 수 있고, 저녁에는 다채로운 라이브 공연이 열린다. IFC몰 CGV에는 국내 최초로 시도한 ‘시네마 스트리트’가 있다. 9개 상영관이 마치 가게처럼 늘어서 있고, 펍과 서점, 인터넷존, 영화마니아들을 위한 가게가 있어 영화 관람 외에도 여유롭게 쉬며 문화를 즐길 수 있다. IFC몰 | 주소 여의도동 국제금융로10 찾아가기 지하철 5호선, 9호선 환승역인 여의도역과 무빙워크로 바로 연결 개관시간 오전 10시~밤 10시 문의 02-6137-5000 www.ifcmallseoul.com ■Education 당일치기 여의도 유학 국회의사당과 방송사, 대기업 본사가 밀집한 한국의 맨해튼 여의도. 여의도에는 숨겨진 교육의 장이 많아 아이들과 함께 견학하기 좋다. 미래의 에디슨을 꿈꾼다면? LG사이언스홀은 국내 최고 수준의 민간 과학관이다. 지난 2010년 전시물을 첨단 아이템으로 전면 교체하며 업그레이드를 마쳤고, 과학기술처의 공식 과학관으로도 등록됐다. 아이들에게 과학에 대한 꿈을 심어 주기 위해 설립한 곳인데 LG의 사업 분야를 토대로 전자, 화학, 통신 등 과학시설을 아이들이 쉽게 체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사이언스드라마’ 존에서는 마치 교육방송을 보는 것처럼 연극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과학 실험을 보여 주며, ‘바디스토리’ 존에서는 세포만화경, DNA퍼즐, 아들딸 게임 등을 통해 세포와 유전에 대해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관람을 위해서는 방문 2주 전까지 반드시 인터넷 예약을 마쳐야 한다. 평소에는 13인 이상 단체만 관람 가능하며 매월 1, 4주 토요일 전일, 1, 3, 5주 토요일 오후, 방학기간(7월19일~8월16일)에는 개인 관람도 가능하다. 7세부터 13세까지 입장 가능하며 관람 시간은 2시간 내외다. LG사이언스홀 | 주소 여의도동 20 LG트윈타워 서관 3층 이용요금 무료 개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평일), 오전 9시~오후 5시(주말) 문의 02-3773-1053 www.lgscience.co.kr 참고 체험활동지 발급 가능 우리나라 정치의 현장이 궁금하다면? 국회의사당은 여의도를 대표하는 건물 중 하나다. 지하 1층 지상 7층, 석조건물인데 단일 의사당 건물로는 동양에서 제일 커, 남북통일이 되더라도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규모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견학은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생 이상에 적합하다. 뉴스에서만 보던 국회의사당을 직접 눈으로 보고,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우리나라의 주요 법과 정책이 결정되는 과정, 국회 활동에 관해 공부할 수 있다. 국회 입구의 헌정기념관을 먼저 방문한 후 국회의사당으로 가면 좀더 이해하기 쉽다. 헌정기념관은 역대 국회, 국회의장의 활동, 세계 여러 나라의 국회 모습을 전시하고 있으며 국회 모습을 배경으로 가상체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20인 이상 단체는 미리 신청하면 직접 국회의원이 되어 법을 만드는 ‘의정활동’을 체험해 볼 수 있다. 헌정기념관은 자유 관람이며 국회의사당 견학을 위해서는 국회 홈페이지에서 방문 3일 전까지 예약을 마쳐야 한다. 개인별로 견학이 가능하며 주말에는 10명 이상이 모일 경우에만 국회의사당 관람이 가능하다. 단, 국회 본회의가 열리는 날은 국회의사당을 관람할 수 없다. 국회의사당 | 주소 여의도동 의사당대로 1 참관시간 오전 9시~오후 6시(평일), 오전 9시~오후 5시(주말) 문의 02-788-3656 memorial.na.go.kr 참고 체험활동지 발급 가능 *무료 셔틀버스 운행 오전 9시~오후 4시20분(12시20분, 12시40분, 공휴일은 운휴), 배차간격 20분, 여의도역 3번 출구 앞→국회의사당 안내실 앞 <1박2일>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면? 장래 프로듀서나 아나운서를 꿈꾼다면 KBS 방송체험관(KBS On) 방문은 좋은 동기 부여가 될 것 같다. KBS 본관에 마련된 방송체험관과 방송역사박물관을 직접 둘러보며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4층 방송체험관에서는 KBS 주요 프로그램들을 멀티 터치스크린으로 감상하고 가상 스튜디오, 9시 뉴스 앵커코너, 3D 입체영상관 등을 관람하게 된다. 블루스크린이 준비된 가상스튜디오에 들어가면 인기 어린이 프로그램 속에 등장한 듯 합성이 된 사진을 찍어 본 후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어린이들은 후토스, 유후 등 평소 좋아하던 캐릭터와 촬영도 해보고, 구름빵 3D 애니메이션을 보고 직접 더빙도 해볼 수 있다. 9시 뉴스 앵커 코너에서 근사하게 뉴스 원고를 읽어 보는 것도 멋진 추억이 된다. 5층 방송역사박물관은 1927년부터 시작된 한국방송의 역사를 담고 있다. 또한 스튜디오 시창을 통해 라디오와 TV프로그램 제작과정도 직접 관찰할 수 있어 유익하다. 개인의 경우 예약 없이 자유관람이 가능하며, 11인 이상 단체일 경우 인터넷에서 예약한 후 해설원의 인솔을 받아야 한다. KBS 방송체험관 | 주소 여의도동 18 이용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30분 문의 02-781-2224~5 office.kbs.co.kr/hall 참고 전시관 관람 스태프만 인증 가능 ■Restaurant 여의도 미식 탐험 땅값 높고, 물가 높기로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여의도. 하지만 주머니 사정 따라 알뜰하게 또는 품격 있게 선택이 가능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구름 위 로맨틱한 식사 레스토랑 겸 와인바 ‘워킹온더클라우드’는 63시티의 스카이라운지 역할을 한다. 워킹온더클라우드 최고의 메뉴는 59층에서 보는 서울의 야경. 유러피언 레스토랑인 ‘가든레스토랑’에서는 유럽 정원의 아늑함을, 창가를 향해 좌석을 배치한 ‘와인바’에서는 300여 종이 넘는 세계 와인을 즐길 수 있다. 환상적인 전망뿐 아니라 맛으로도 뒤지지 않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미식 가이드지 <자갓 서베이>와 국내 미식 가이드북 <블루리본 서베이>에 우수 레스토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후 5시까지는 바에서 차와 음료도 판매하며 주말과 공휴일에는 밤 12시까지 운영한다. 드라마틱한 프러포즈를 계획 중이라면 패키지를 추천한다. 63빌딩 관람 후 코스요리와 와인을 즐기고, 빔프로젝터로 영상 프러포즈를 할 수 있는 ‘씨크릿 프러포즈’, 코스요리에 꽃다발과 와인, 케이크를 준비해 주는 ‘러브패키지’ 등 미리 예약하면 이용 가능하다. 실제로 <내조의 여왕> 등 드라마 속 프러포즈의 단골 명소라고. 워킹온더클라우드 |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60 63빌딩 59층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밤 10시 가격대 런치코스 6만3,000원부터, 런치파스타세트 3만2,000원부터 문의 02-789-5904 갈비가 만두를 만났을 때 마포만두에서는 특허까지 받았다는 갈비만두를 맛볼 수 있다. 만두소는 양념한 갈비살을 참나무숯으로 직접 구워 만들었다고. 숯불갈비 특유의 향과 육즙, 간장 양념이 잘 배합돼 느끼하지 않다. 김치만두나 잔치국수와 같이 먹으면 좀더 개운할 듯. 또 다른 특별 메뉴는 계란밥이다. 계란에 참기름, 양념간장, 깨소금을 얹은 추억의 음식. 직장인들을 위해 아침메뉴로 팔기 시작한 것이 인기를 얻게 됐다고 한다. 마포만두 | 주소 | 여의도역점 여의도동 26-19 서여의도점 여의도동 17 영업시간 24시간 가격대 갈비만두 3,000원, 계란밥 3,000원 문의 여의도역점 02-783-5159, 서여의도점 02-782-2014 벨기에인이 운영하는 본토 와플 빠뜨릭스Patrick’s 와플은 이미 여의도 일대에는 맛 좋기로 소문이 파다한 집. 간이매점 같은 조그만 가게이지만 벨기에인 형제가 직접 운영한다. 벨기에 와플 기계로 즉석에서 구워내는데, 겉은 바삭하고 달콤하면서도 속의 빵은 결이 살아 있어 매력적이다. 와플은 오리지날 벨지안 와플, 아이스크림 와플, 생크림와플 세 가지를, 음료는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핫쵸코를 판매한다. 포장만 가능하다. 빠뜨릭스Patrick’s 와플 | 주소 | 1호점 여의도동 53-11 상아빌딩 1층 2호점 여의도동 37 아일렉스상가 1층 영업시간 오전 11시30분~오후 7시(주말 휴무) 가격대 와플 2,100원부터 문의 1호점02-3775-0608, 2호점 070-4111-4548 프랑스의 맛과 분위기에 취하는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여의도 유명 베이커리 ‘폴Paul’이 여의도 메리어트호텔 1층에 ‘브리오쉬 도레Brioche Doree’로 재탄생했다. 고풍스런 테이블과 의자, 샹들리에, 높은 파티셰 모자를 쓴 직원들을 보면 ‘프렌치’한 분위기에 흠뻑 빠진다. 크로와상 등 기본적인 빵에서부터 산딸기, 사과 등을 넣어 만든 타르트와 길쭉한 모양의 케이크 에끌레흐 등까지 달콤한 디저트로 입맛을 돋우기 좋다. 브리오쉬 도레 | 주소 여의도동 28-3 메리어트호텔 1층 영업시간 오전 7시~밤 10시 가격대 크로와상 2,300원, 사과 타르트 8,500원 문의 02-2070-3000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도선미
  • 주일 대사관 신청사 집들이… “한·일 새시대의 장으로”

    주일 대사관 신청사 집들이… “한·일 새시대의 장으로”

    주일 한국대사관이 18일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아자부에 있는 새 청사에 입주했다. 이날 400여명의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관식에서 이병기 주일대사는 “2015년 한·일국교정상화 50주년을 앞두고 한·일 간의 새로운 시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새 대사관이 양국 정부는 물론 양국 국민을 이어주는 가교이자 양국 관계 발전과 교류 확대의 장이 되도록 만들겠다”고 말했다. 도쿄에서도 금싸라기 땅으로 꼽히는 이 지역에 한국 대사관이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재일교포 서갑호(1915∼1976)씨가 기증한 토지와 건물이 바탕이 됐다. 한국 정부는 1979년 이 자리에 대사관 청사를 건립했고, 2010년부터는 약 800억원을 들여 지상 7층, 지하 1층의 신청사와 대사관저를 지어 지난달 완공했다. 대사관 측은 서씨의 기증을 기념해 신축 대사관 1층에 주일 공관의 역사를 전시한 자료관 이름을 서씨의 호를 따 동명실(東鳴室)로 명명했다. 개관식에는 김규현 외교부 제1차관, 김수한 한일친선협회 중앙회 회장 및 역대 주일대사 등이 참석했고 일본 측에서는 후쿠다 야스오 전 총리, 누카가 후쿠시로(중의원 의원)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이 함께했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막국수 집만 160여곳… 건강식품으로도 인기

    ‘막국수를 밥처럼, 연중 하루 한 끼 이상 먹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춘천 사람들이다. 그 호반의 도시에 막국수 집만 160여곳이다. 그중에는 서울 사람들이 드나드는 유명한 집들이 있는가 하면 토박이들만 들락거리는 작고 외진 ‘그들만의 단골집’이 있다. 식당들로선 춘천 단골들이 시어머니이고 제일 눈치가 보인다. 막국수는 쉬운 듯하면서도 반죽이나 불의 세기 등 만들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더 삶았느니, 덜 삶았느니, 툭하면 노인들에게 트집 잡히기 일쑤다. 주인이 바뀌지 않고 한결같다는 것은 단골이 많다는 얘기다. 그러니 춘천 사람들에게 막국수는 송아지 친구나 큰 사돈을 만나 오롯한 그 시절을 거칠게 불러내는 향수다. 문헌을 보면 메밀은 중국에서 들어왔다. 고려시대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 처음으로 거론되지만, 조선후기 농서 서명응의 ‘고사십이집’(古事十二集)에 “국수는 본디 밀가루로 만든 것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메밀가루로 만든다”는 기록이 있는 걸로 보아 조선시대부터 서민들이 즐겨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훗날 강원도권에서 막국수가 인기를 끈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생계형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이야 건강식품으로 각광받지만 옛 어른들에게는 먹고 돌아서면 배고픈, 하지만 밥이 되어 준 구황식품이다. 오죽하면 메밀음식 먹고 뛰지 말라고 했을까. 소화가 잘 되고 탈이 없었다. 특히 메밀은 칼로리가 낮아 다이어트에 좋으며 필수아미노산과 칼슘, 철분 등이 많이 들어 있어 성인병 예방에 도움을 주는데, 루틴(rutine) 성분은 고혈압 등 각종 혈관계 질환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메밀을 수확해서 빻는 과정에 돌이 많이 들어갔어요. 먹다 보면 어석어석 씹히는데, 그게 거친 메밀 맛이기도 해.” 일주일에 서너 번 막국수를 먹는다는 김봉석(76)씨는 “맷돌에 갈아 메밀가루를 만드는 과정에서 껍질이 덜 벗겨진 것을 모아 국수를 만드는 것”이라며 “동치미의 무는 해독작용을 한다”고 선조들의 지혜를 짚어 주었다. 막 빻아낸 국수라서 막국수이고, 면이 뚝뚝 끊어지니 ‘바로, 막’ 먹으라고 하여 막국수라는 것이다.
  • 시청률, 새로 정의된다

    시청률, 새로 정의된다

    과거 시청률 50~60%를 웃도는 드라마는 퇴근길 유동 인구의 발길을 붙들어 맸다. 직장인들의 귀갓길을 재촉해 도심 식당과 선술집들이 낭패를 겪곤 했다. TV와 PC의 광범위한 보급에 이어 스마트폰 등 스마트 기기의 보급률이 76%에 이르면서 이런 풍속도도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한 명의 시청자가 TV와 PC, 스마트 기기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를 언제, 어디서나 접할 수 있는, 바야흐로 ‘N스크린’(다수의 기기에서 콘텐츠를 연속적으로 즐기는 기술) 시대다. 15일 미디어 업계에 따르면 ‘손 안의 TV’가 대세를 이루면서 사망선고를 앞둔 기존 TV 시청률을 대신할 다양한 지표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인터넷 텔레비전(IPTV)이나 주문형비디오(VOD)에서 비디오·영상을 불러오는 크로스미디어 시대에 굳이 TV 시청률에 얽매일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적인 정보분석 기업인 닐슨은 최근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빅데이터센터와 손잡고 그동안 TV에서만 측정되던 시청률을 PC, 스마트 기기 등 3개의 스크린에서 합산해 산정하는 통합 지수를 개발하기로 했다. 협약에 따라 닐슨코리아는 통합 표본집단의 TV, PC, 모바일 기기에 설치된 개별 미터기를 통해 수집한 시청 기록을 서울대에 제공하고, 서울대는 이를 빅데이터센터와 함께 분석·관리해 시청률 산정 시스템을 개발한다. 시스템은 이미 산업계 전반의 화두로 떠오른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닐슨이 2009년부터 관련 조사를 해온 ‘코리안클릭’을 인수, 빅데이터의 기반을 구축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강남준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TV뿐 아니라 PC와 모바일 기기를 통합한 시청률 측정 방식 개발은 시청률 분야의 빅데이터를 강화하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닐슨코리아는 현재 CJ E&M과 함께 콘텐츠파워지수(CPI)를 만들어 시범 운영하고 있다. CPI는 해당 프로그램에 대한 화제성(뉴스 구독자 수), 참여도(검색자 수), 몰입도(SNS 등의 사용빈도) 등을 종합해 산출한다. 예컨대 지난달 토요일 밤 예능프로그램의 CPI 1위는 케이블채널 tvN의 ‘SNL코리아’였다. SNL코리아의 뉴스 구독자 수는 195만명, (포털)검색자 수는 51만 2000명, SNS 사용량은 9300건으로 지상파의 ‘세바퀴’(MBC), ‘인간의 조건’(KBS2) 등을 압도했다. 아울러 CJ E&M은 지난 10일 국내 처음으로 TV, PC, 스마트 기기의 광고 효과를 통합해 측정하는 매체 캠페인 통합효과 측정 모델(CIM)도 내놨다. 이처럼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을 따라잡으려는 방송사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방송시장에서 절대권력을 휘두르던 지상파 방송사들은 모바일 TV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푹’(Pooq)이란 N스크린 서비스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로 지상파 실시간 방송은 물론 VOD를 활용한 드라마·연예·오락프로그램 시청이 가능하다. 케이블 사업자인 CJ헬로비전과 현대HCN도 각각 ‘티빙’ ‘에브리온TV’로 모바일 TV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2006년 이후 콘텐츠 부족으로 도태된 DMB도 시장 재공략에 나섰다. 갤럭시S4 LTE-A 등에 ‘스마트DMB 앱’ 등이 기본으로 탑재되면서 기존 DMB망과 LTE망을 동시에 활용하는 방송이 가능해진 덕분이다. DMB 업계의 관계자는 “올 하반기 모바일 방송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할 계획”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KT가 최근 조사한 방송·영상 시청 행태에 따르면 국내 이동통신 이용자의 주 시청기기는 TV(61.9%), 스마트폰(20.5%), 노트북(16.4%) 등 순으로 나타났다. 닐슨코리아 조사에선 TV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하는 사람들 가운데 43%는 TV를 보면서 동시에 카카오톡 등의 SNS를 사용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김주영 대하소설 ‘객주’ 완결편

    그들은 그 계곡에서 야숙한 이튿날 선반 머리에 붙잡은 적당들을 추달(推撻)하여 얻어 낸 길을 따라 산채로 향했다. 일전을 앞둔 행중 모두는 신들메로 발을 바싹 묶고 바짓가랑이에는 통행전을 친 복색을 갖추었으니 깔축없는 장돌림 차림이었다. 조도를 소리 없이 걸어가는 행중 누구에게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산채가 자리 잡은 곳은 한나무재에 있는 응봉산을 넘기 전인 삿갓봉이었다. 그러나 말이 쉬워 삿갓봉이지 거기까지 가는 데는 메뚜기 이마같이 깎아지른 듯한 치받이길로만 이어진 데다가 그 길 끝자리에 난데없는 암자 하나가 조도를 가로막고 있었다. 수정암(修正庵)이란 암자인데, 규모가 번듯하진 않았으나 그곳에 암자가 있었다는 것은 길눈 밝기로는 따라올 사람이 없다던 곽개천도 미처 몰랐던 일이었다. 척후로 내세웠던 위인이 바로 그 암자를 가리켰고 덮치고 보니 놀랍게도 젊고 허우대가 건장한 스님이 혼자 기거하고 있었다. 그런 암자에는 허리가 굽어 콧등이 땅에 닿을 듯이 늙은 스님이 동자를 데리고 기거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상단이 발견한 스님은 기골이 번듯한 중년의 사내였고, 머리를 깎아 독두이긴 하였으나 도무지 스님의 외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앞섰다. 중도 속도 아닌 그런 어중간한 위인으로 보였다. 그가 산적이란 것을 눈치챈 사람은 정한조였다. 샛재 주막을 찾아와 이것저것 수소문하고 다녔던 운수납자의 외양을 소상하게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색을 알아챈 정한조는 스님으로 가장하고 암자를 지키던 그를 덮쳐 몽둥이질로 추달하였다. 그 암자에는 원래 목에 가래가 가릉가릉하는 노스님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지난여름에 저승길을 코앞에 둔 노스님을 쫓아내고 자칭 운수납자란 놈이 암자를 차지해 도둑의 척후 노릇을 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그러고는 암자 뒤쪽을 가리켰다. 뒤쪽으로는 은사시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암자의 울타리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사시나무 숲을 간신히 비켜 나가면 계곡 쪽으로 뻗은 완만한 경사지가 나타났다. 경사지의 조도를 따라 행초 한 대 태울 동안만 걸어가면 산기슭 여기저기에 숨어 있는 움집과 뜸집들이 나타났다. 그것이 명색 산채인 셈이었다. 산채를 발견하는 순간 행중은 흥분했다. 새들도 넘기 어려운 이런 첩첩산중에 산채가 교묘하게 숨겨져 있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들을 잔뜩 긴장시켰던 산적들의 수효가 잡고 보니 열 사람을 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풍경한 꼴을 벌이지 않고 산채를 접수하리란 것은 상상조차 못 했던 일이었다. 발행할 적에만 해도 상단 행중에 한두 사람은 목숨까지 내놓아야 한다는 각오를 했다. 잡힌 산적들은 거개가 계집들과 거동이 임의롭지 못한 늙은이들이었는데, 삼순구식도 어려웠는지 모두 피골이 상접했고 얼굴들은 누렇게 떠 있었다. 뜸 지붕에 돌막집이며 풀막 지붕에 귀틀집이며 움집들을 샅샅이 뒤져 보았으나 방과 부엌의 경계가 분명하지 않아 살림집이란 명색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이렇다 할 가재도구조차 눈에 띄지 않았다. 각다분한 시골집이라 하더라도 바람벽에 멱서리, 둥구미, 삼태기, 바구니, 버들낫, 구럭 같은 너절한 가재도구들이 걸려 있음 직한데, 그런 것들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몸을 붙이고 살았다는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이름만 산채일 뿐 산적들 대다수는 도방 대처의 숫막이나 색주가에서 뒹굴며 살았다는 증거였다. 붙잡힌 산채 식구들은 눈이 번들거리는 상단들이 화승총에 작살이며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쳤으나 육탈이 된 형용에 얼혼까지 빠져 버렸는지, 기절초풍해서 달아나기는커녕 비루먹은 나귀처럼 대판으로 벌어지고 있는 소동을 넉살 좋게 바라보기만 하였다. 그중에서 한 사람이 움집 앞에 있는 손바닥만 한 텃밭 고랑에서 괭이질하다가 잔당들을 색출한답시고 정신없이 설쳐 대고 있는 상단 사람을 손짓하며 한마디 거들었다. “노형들께서는 두령의 행방을 찾으시오?” “그렇다 이놈아. 네놈이 그놈 행방을 알고 있느냐?” “행방은 미처 지켜보지 못했으나 외양이 어떻다는 것은 또렷하게 꿰고 있지요.” “그렇다면 그놈 도타하기 전에 용모단자를 냉큼 일러라.” “도타하다니요?” “아직 그놈을 찾아내지 못했으니 도타할지도 모르지 않나.” “암자를 뒤졌다면서 두령을 찾아 멸구를 시키지 못했단 말이오? 그 암자에서 참선하던 땡초란 놈이 바로 이 산채의 두령이오.” “그놈 알아맞히기는 오뉴월 쇠파리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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