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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 대신 배 그려진 中 ‘짝퉁’ 아이폰 사기 사건

    사과 대신 배 그려진 中 ‘짝퉁’ 아이폰 사기 사건

    피해여성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웃음이 나오는 소식이다.최근 중국 인민일보 등 현지언론은 온라인상에서 '짝퉁' 아이폰이 진품인양 버젓이 팔리고 있어 네티즌들의 주의가 요구된다고 보도했다. 아이폰 관련 짝퉁이 많은 중국에서 이번 사건이 유독 화제가 된 것은 아이폰의 로고인 사과가 배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언론에 보도된 황당한 사건의 피해자는 장쑤성 남부에 위치한 우시시에 사는 여성 자오씨. 그녀는 최근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최저가로 판매한다는 아이폰6s 광고를 보고 구매를 결심했다. 판매 가격이 3400위안(61만원)으로 현지 애플 매장에서 파는 가격(5288위안·95만원)보다 비교할 수 없을만큼 저렴했던 것. 횡재를 했다는 기분도 잠시 자오씨는 판매자의 문자를 받게된다. 주문한 아이폰이 세관에 압수됐다는 내용으로, 판매자는 5000위안(90만원)을 더 보내주면 나중에 상품 수령 후 돈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에 5000위안을 더 송금한 자오씨는 얼마 후 꿈에 그리던 택배를 받았다. 그러나 상자 속에 들어있던 것은 애플의 아이폰이 아닌 배가 그려진 아이폰이었다. 한마디로 짝퉁이었던 것. 자오씨는 "판매자는 홍콩에서 아이폰을 직접 판매한다며 나를 속였다"면서 "계속 판매자에게 전화와 문자를 보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며 가슴을 쳤다. 현지언론은 "지난 1월 이후 우시시에서만 수백여 건의 아이폰 관련 사기사건이 보고되고 있다"면서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을 때는 가짜가 아닌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권고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포토] 타이 콥 야구 카드, 美 폐가서 발견…수백만 달러 가치

    [포토] 타이 콥 야구 카드, 美 폐가서 발견…수백만 달러 가치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2일(현지시간) 메이저리그의 전설인 타이 콥의 카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익명을 요구한 발견자는 고조부가 살았던 미국 남부 폐가에 있던 낡은 종이 가방에서 타이 콥 카드 7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카드 검정 결과 모두 진품이며 1909년에서 1911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AP=연합뉴스/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美 폐가서 발견된 타이 콥 야구카드 가격은?

    美 폐가서 발견된 타이 콥 야구카드 가격은?  미국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3일(한국 시각) “폐가의 버려질 뻔한 낡은 종이 상자 속에서 타이 콥 야구 카드가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타자인 타이 콥의 카드는 높은 가치를 인정 받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발견자는 고조부가 살았던 미국 남부 폐가에 있던 낡은 종이 가방에서 타이 콥 카드 7장을 찾았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발견된 카드가 수백만 달러의 가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콥은 통산 타율 0.366·안타 4191개를 친 초창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다. 23년 연속 타율 3할을 유지하며 통산 타율 1위에 올랐고, 1936년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최초의 5인’으로 헌액됐다.  카드의 감정을 맡은 프로스포츠 검증협회(PSA)는 이번에 발견된 7장의 카드가 모두 진품이고, 1909년에서 1911년 사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했다.   타이 콥 야구카드는 현재 15장밖에 발견되지 않았다.   때문에 “새로 발견된 7장의 가치가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 올랜도 PSA 회장은 “극적이고 기적적인 발견”이라며 “이번과 같이 놀라운 발견은 다시 없을 것 같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발견된 타이콥 카드는 ‘T206’ 시리즈 가운데 하나다. 애초 야구카드는 미국 담배회사가 판매촉진을 위해 담뱃갑 속에 끼워 팔면서 발간됐다.  1909년부터 1911년부터 발간된 ‘T206’ 시리즈는 희소성 때문에 가치가 높다. 특히 콥의 야구카드는 찾기 어려운 카드다. 이는 담배를 싫어했던 콥이 담뱃갑에 자신의 카드가 포함돼 판매되자 담배회사에 발매 중단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구미술관서 기증 받은 작품까지… 이인성 ‘연못’도 진위 논란

    대구미술관서 기증 받은 작품까지… 이인성 ‘연못’도 진위 논란

    미술품감정평가원 2004년 위작 판정… 2년 뒤 화랑협회는 2차 감정 때 “진품”“위원들 ‘너무 조악하다’ 의문 제기도” 고 천경자 화백, 이우환 화백 작품의 진위 논란이 잇따라 제기된 가운데 대구시립미술관이 지난해 한 기업인으로부터 기증 받아 처음으로 공개한 화가 이인성(1912~1950)의 작품 ‘연못’이 2004년 1월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에서 위작 판정을 내린 작품으로 밝혀졌다. 한국화랑협회는 2년 뒤인 2006년 이 작품에 대해 1차에서는 감정 불능을 내렸다가 2차에서 진품으로 감정한 바 있으나 이 작품의 진위에 대한 이견은 여전하다. 당시 감정위원으로 참여했던 근대미술 전문가 정준모(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씨는 25일 “이 그림은 이인성의 필치나 화풍과 달라서 위작 판정을 내렸던 것과 동일한 작품”이라며 “한국화랑협회가 2년 뒤 진품 판정을 내렸다고 해도 이견이 있는 작품을 공공미술관에서 기증 받아 전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예술애호가인 김인한 유성건설 회장이 지난해 6월 대구미술관에 기증한 예술품 578점 가운데 하나로, 미술관은 지난 22일부터 ‘아름다운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김인한 컬렉션 하이라이트’전을 열고 있다. ‘연못’은 대구 출신 천재 화가 이인성이 일제강점기인 1933년 그린 가로 33.4㎝, 세로 24㎝의 유화 작품으로, 김 회장의 기증 작품 중에서도 가장 가치가 있는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미술관은 이인성의 또 다른 작품 ‘향원정’(1940년쯤)과 함께 ‘연못’을 이번 전시의 간판 작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대구미술관 김선희 관장은 “김인한 회장의 기증 작품 중 이인성의 작품은 매우 귀한 작품인 데다 화랑협회가 발행한 진품보증서가 첨부돼 있었고 전문가들로 구성된 심의위원회를 두 차례 열어 기증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대구미술관의 심의위원은 “여러 위원들이 심의 과정에서 작품이 이인성의 것이라고 하기엔 너무 조악하다며 의문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정준모씨는 “감정이란 사람이 하는 것이어서 뒤집힐 수도 있지만 이 작품은 이인성이 22세 때 그린 것이라고 하기엔 여러 가지로 무리가 있다”면서 “화가 서동진으로부터 수채화를 사사한 이인성의 작품은 가볍고 경쾌한 터치와 물감의 농도를 묽게 그린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대부분 흰색을 거의 모든 색에 섞어 쓰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파스텔 톤이 나거나 동양화의 호분을 칠한 듯한 느낌이 나는 특징이 있지만 ‘연못’은 그런 특징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인성의 사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 그림에 있는 사인은 주로 수묵화에서 사용한 것이라는 점도 진품이 아닐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 준다”고 강조했다.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 2013년에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감정 의뢰를 받은 이인성의 작품 69점 중 54점이 위작으로 감정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故 천경자 차녀 ‘친자’ 소송… 미인도 진위·상속분쟁 2R

    법원 인정 땐 유작 권리 행사 가능… “진품 주장 국립현대미술관 소송할 것” 지난해 8월 별세한 천경자 화백의 차녀 김정희(62·미국 거주)씨가 자신을 천 화백의 법적 자녀로 인정해 달라며 법원에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2일 김씨의 법정 대리인인 배금자 변호사에 따르면 김씨는 지난 18일 친생자관계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며 천 화백의 차남 고 김정우씨의 아들도 고모와 함께 원고인에 이름을 올렸다. 이 사건은 서울가정법원 가사3단독에 배당됐다. 천 화백은 생전에 네 명의 자녀를 뒀다. 첫 남편 고 이형식씨와의 사이에서 장녀 이혜선씨와 장남 이남훈씨를 낳았고, 이혼 뒤 김남중씨와 만나 정희씨와 정우씨를 낳았다. 김남중씨는 당시 다른 여성과 법률상 혼인 상태였던 까닭에 정희씨와 정우씨는 김남중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이름을 올렸고 법률상 어머니도 천씨가 아닌 김씨의 부인으로 되어 있었다. 배 변호사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정희씨가 어머니의 명예회복을 위한 법적인 절차를 진행함에 있어 권리행사를 위한 공적인 지위가 필요해 소송을 제기했다”면서 “상속재산 분쟁 때문은 절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모자 관계의 입증은 출산했다는 증거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판례가 있다. 정희씨와 정우씨는 천 화백이 집에서 낳아 기르고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천 화백이 남긴 글에 여러 차례 언급돼 있어 절차상의 무리는 전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친자확인 판결이 나는 대로 ‘미인도’를 천 화백의 작품이라고 주장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을 상대로 명예훼손 및 저작권법 위반으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며 “법원의 결론이 나오기까지는 두 달 정도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혼외자식’ 신분이었던 정희씨가 법적 자녀로 인정을 받을 경우 현재 장녀 이혜선씨가 독단적으로 결정해 온 천 화백의 유품 처리에 대해서도 공식 권리를 행사할 것으로 전망돼 상속재산을 둘러싼 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혜선씨는 지난해 8월 천 화백의 사망 사실도 다른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두 달 뒤 유골을 들고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다녀갔다. 이어 드로잉을 포함한 미공개 작품 1000여점과 개인소장품 등 4000여점을 부산에 있는 부경대에 기증하고 미술관 건립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물 대신 ‘이것’만 먹고 107세까지 살다 떠나다

    물 대신 ‘이것’만 먹고 107세까지 살다 떠나다

    장수의 비결을 알렸으니 이제 세상에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107살 스페인 할아버지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병장수의 비결을 공개하고 사망했다. 주인공은 최근 눈을 감고 스페인 알카브레 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간 안토니오 도캄포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사망 직전에 공개한 장수비결은 스페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할아버지가 밝힌 장수비결은 직접 생산한 레드와인 마시기다.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스페인 일간지 '라보스데갈리시아'에 실린 화제의 인물 인터뷰에서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물 대신 레드와인을 마신 게 무병장수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나를 통해 레드와인이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레드와인을 많이 마시라고 권했다. 레드와인은 가르시아 할아버지에게 평생의 음료였다. 특히 100세를 넘기고 나서는 아예 물을 끊고 레드와인을 식수처럼 마셨다. 가르시아 할아버지의 아들 마누엘 도캄포는 "아버지의 레드와인 사랑엔 끝이 없었다"며 "정말 레드와인 덕분인지 103살 전까진 항생제조차 드셔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르시아 할아버지가 마신 레드와인은 평범한 와인은 아니었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직접 재배한 포도로 레드와인을 담가 마셨다.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100% 진품 와인'을 음료로 즐긴 셈이다.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와인은 금새 식초처럼 신 맛이 되기 일쑤지만 가르시아 할아버지에게 맛이 변한 포도주는 없었다. 엄청난 주량 때문이다. 아들 마누엘 도캄포는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매월 200리터 이상 레드와인을 마시곤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하루에 최고 3리터를 들이킬 정도로 레드와인을 즐겼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인터뷰가 신문에 나간 지 4일 만인 1일 사망했지만 직접 만든 레드와인이 건강에 특효라는 그의 경험담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라보스데갈리시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107세 장수비결? 물 대신 ‘이것’만 먹었지~”

    “107세 장수비결? 물 대신 ‘이것’만 먹었지~”

    장수의 비결을 알렸으니 이제 세상에서 할 일을 다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107살 스페인 할아버지가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무병장수의 비결을 공개하고 사망했다. 주인공은 최근 눈을 감고 스페인 알카브레 묘지에서 영면에 들어간 안토니오 도캄포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사망 직전에 공개한 장수비결은 스페인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할아버지가 밝힌 장수비결은 직접 생산한 레드와인 마시기다.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간) 스페인 일간지 '라보스데갈리시아'에 실린 화제의 인물 인터뷰에서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물 대신 레드와인을 마신 게 무병장수의 비밀"이라고 말했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나를 통해 레드와인이 수명을 늘린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과 마찬가지"라며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다면 레드와인을 많이 마시라고 권했다. 레드와인은 가르시아 할아버지에게 평생의 음료였다. 특히 100세를 넘기고 나서는 아예 물을 끊고 레드와인을 식수처럼 마셨다. 가르시아 할아버지의 아들 마누엘 도캄포는 "아버지의 레드와인 사랑엔 끝이 없었다"며 "정말 레드와인 덕분인지 103살 전까진 항생제조차 드셔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르시아 할아버지가 마신 레드와인은 평범한 와인은 아니었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직접 재배한 포도로 레드와인을 담가 마셨다. 첨가물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100% 진품 와인'을 음료로 즐긴 셈이다. 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와인은 금새 식초처럼 신 맛이 되기 일쑤지만 가르시아 할아버지에게 맛이 변한 포도주는 없었다. 엄청난 주량 때문이다. 아들 마누엘 도캄포는 "아버지와 함께 둘이서 매월 200리터 이상 레드와인을 마시곤 했다"고 말했다. 특히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하루에 최고 3리터를 들이킬 정도로 레드와인을 즐겼다. 가르시아 할아버지는 인터뷰가 신문에 나간 지 4일 만인 1일 사망했지만 직접 만든 레드와인이 건강에 특효라는 그의 경험담은 폭발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사진=라보스데갈리시아 손영식 해외통신원 voniss@naver.com
  • ‘청자 마니아’ 이병철·‘백자狂’ 이건희… 삼성가에 국보급 유물들 모여든 사연

    ‘청자 마니아’ 이병철·‘백자狂’ 이건희… 삼성가에 국보급 유물들 모여든 사연

    리 컬렉션/이종선 지음/김영사/320쪽/1만 8000원 한국을 찾은 외국의 명사들이 한국문화의 뿌리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방문하는 곳이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미술관 리움이다. 삼한시대의 청동검부터 시작해 가야 금관, 고려청자, 조선 백자, 추사의 글씨, 겸재 정선과 단원 김홍도의 그림 등 국보급 문화재 150여점을 포함해 소중한 문화유산이 오롯이 보존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미술사를 아우르는 무수한 걸작을 품은 삼성가 국보 컬렉션은 어떻게 모아졌을까. 창업주인 이병철 선대 회장과 이건희 회장 2대에 걸쳐 20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수집과 박물관에 관련된 업무를 맡았던 이종선(68)씨가 낸 ‘리 컬렉션’은 귀한 보물들을 보유하기까지, 모두가 궁금했지만 정확히 알 수 없었던 막후의 이야기를 공개한다. 고고학을 전공한 저자는 1976년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미술관 설립과 개관 및 운영을 위해 특별채용돼 학예연구실장, 부관장을 지냈다. 저자는 “이병철 회장은 ‘청자 마니아’, 이건희 회장은 ‘백자 마니아’”라고 말한다. 절제의 미학을 추구한 이병철 회장과 명품주의를 내세운 이건희 회장의 수집스타일은 확연하게 달랐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수집을 시작한 것은 대구 시절 주변 인사들의 권유에 의해서였다. 저자는 “집안의 유교적 가풍과 선비 같은 품성이 주변의 권유를 계기로 하여 취미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다”며 수집의 내용이 특정 분야에 쏠리거나 집중하는 경향을 보이지 않았고, 수집 자체를 너무 서두르거나 고가의 작품에 휘둘리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고려불화의 역수입에서 보듯이 애국적인 역할에 해당되면 주저하지 않고 수집 경쟁에 뛰어들었다”든가 “같은 물건이라도 비싸다는 소문이 있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냉정한 면모도 있었다”고 전한다. ‘절제의 미학’을 중시했던 이병철 회장은 ‘가야금관’(국보 제138호)과 ‘청자진사주전자’(국보 제133호)에 대한 애착이 특히 강했다. 가야금관은 도난을 우려해 복제품을 만들어 진품 대신 전시하도록 지시했고 청자진사주전자는 방탄유리로 쇼케이스를 제작하도록 했다. 이건희 회장에 대해선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당시의 이건희 회장을 만났을 때부터 백자에 조예가 깊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며 “백자를 좀더 알기 위해 수집가 홍기대 같은 이에게 백자수업을 들었다. (중략) 한번 빠지면 끝장을 보는 성미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중에는 백자 감정까지 해도 좋을 정도가 됐다”고 적었다. 이 회장은 “특급이 있으면 컬렉션 전체의 위상이 덩달아 올라간다”는 지론을 펴며 ‘명품주의’를 내세웠다. 오늘날 리 컬렉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보물들을 수집하게 된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가 시작된 배경이다. 책은 화조와 영모에 능했던 이암의 ‘화조구자도’(보물 제1392호)가 자칫하면 조총련을 통해 북한으로 흘러가 김일성 컬렉션이 될 뻔했던 사연, 골동품상 김동현에게서 목숨처럼 아끼며 간직해 온 고구려불상(국보 제118호)을 인수받은 이야기, 백자 달항아리(국보 제309호)를 이건희 회장의 출근을 막아서서 결재 처리해 수집한 비화 등을 소개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항상 시끄러운 구설수가 뒤따랐고 겨우 자리잡은 수집품들이 온전하게 자리를 보전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면서 “애틋하고 간절한 갈망이 없었다면 이들의 ‘수집’이 그 많은 풍파를 헤치고 나라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오늘날 대중에게 선보일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썼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제주 저지문화예술인마을

    제주시 한경면 중산간 지역 저지리. 이곳은 나무, 가시덤불, 용암 암석 등 자연의 생명체들이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며 삶을 향한 각축전을 벌이던 전쟁터였다. 가시덤불과 나무는 암석 위에 뿌리내리기 위해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벌였다. 나무가 없는 곳에서는 덤불이 승리자였지만 나무뿌리가 암석을 움켜쥐고 튼튼히 뿌리내려 쑥쑥 자라면 나무가 승자가 됐다. 숲이 되어 해가 들어오지 않은 곳은 이끼와 고사리 등이 승자였다. 가시덤불은 살기 위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랐다. 가시덤불에 제 몸을 내어준 나무들은 영양분을 내주고 다시 거름이 되기도 했다. 돌 틈으로 스며든 빗물은 삼다수가 되어 생명체들을 살렸다. 그렇게 자연은 서로에게 내어주고 기대고 하면서 억겹의 세월 동안 조화를 이루며 살아왔다. 이곳이 바로 곶자왈. 곶은 숲, 자왈은 가시덤불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숲이 만든 수천, 수만년의 역사 속으로 인간이 들어왔다. 숲과 가시덤불, 암석밖에 없는 곳이라 농사도, 집도 지을 수 없었던 땅. 그때만 해도 인간이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무로 숯을 만드는 것뿐이었다. 세월이 다시 흘러 이 숲에 길이 놓이고 골프장과 휴양리조트도 생겼다. 자연 훼손에 대한 논란도 일었다. 좀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며 나아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차에 예술이 대안으로 부상했다. 때마침 서양화가 김흥수 화백이 제주에 자신의 그림을 기증했다. 미술관이 들어설 자리를 찾으면서 예술과 숲의 조화를 구상하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10여년이 흘러 이제는 30여명의 예술가들이 그 숲에 둥지를 틀면서 마을이 되었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제주현대미술관을 중심으로 약 3만평(9만 9383㎡)에 걸쳐서 30여명의 예술가들이 머물고 있는 마을이다. 화가, 서예가, 음악가, 공예가, 건축가, 조각가, 만화가, 사진가 등 분야도 다양하다. 1000여명이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도 있고 어린이야외조각전시장도 있다. 각각의 건물 사이에는 숲이 살아갈 공간을 둬 자연과의 상생을 도모했다. 숲은 예술가 각자의 개성을 지켜주는 담벼락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숲과 예술의 공존을 위해 전기시설 등도 모두 땅속으로 묻었다. ●제주현대미술관이 마을 산책의 구심점 마을 산책의 구심점은 제주현대미술관이다. 미술관 본관 입구에 서면 철골로 만든 사람이 손을 내밀고 있다. 이 지역에서 예술의 역할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본관에는 서양화와 한국화를 접목시켜 조형주의를 탄생시킨 김흥수 화백의 특별전시실과 기획전시실, 아트숍 등이 들어서 있다. 2월 12일까지 20세기 마지막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이자 ‘양철북’의 저자인 귄터 그라스의 삶과 예술을 엿볼 수 있는 특별기획전이 열린다. 여성의 누드를 독특하게 해석해 작품 세계로 삼은 김흥수 화가와 43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결혼한 부인 장수현 화가의 러브 스토리를 알게 되면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분관에는 박광진 화백의 기증 작품이 특별 전시되어 있다. 부드러운 필치와 빛으로 제주의 풍광을 그린 작품들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분관과 이웃한 진갤러리는 박광진 화백이 소장한 근현대 대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미술관 주변으로는 어린이야외조각공원이 펼쳐져 있는데 상상 속의 동물들을 조형한 작품들이 푸른 잔디, 숲과 잘 어우러져 있다. 부엉이를 작품 모티브로 삼은 안윤모 작가의 특별 공간도 인상적이다. ●민이식·조수호 등 유명 작가 전시실 한눈에 미술관 관람이 끝나면 마을을 둘러볼 차례다. 차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천천히 걷기를 추천한다. 약 한 시간 정도면 돌아볼 수 있어 산책하기 좋다. 미술관과 이웃해 문인화의 대가로 꼽히는 민이식 작가의 연고제, 서예가 조수호 작가의 탐묵헌, 서예가 조종숙 작가와 현병찬 작가의 작업실과 전시실 등이 위치해 있다. 조종숙 작가의 전시실 글오름집은 때때로 지역 작가들의 작품을 공동으로 전시하는 전시관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단색화로 한국의 추상미술을 이끌고 있는 화가 박서보와 독특한 그림으로 유명한 중국인 화가 펑정지에의 작업실도 나란히 위치해 있다. 이층 구조의 한옥이 돋보이는 선장헌은 ‘TV 진품명품’의 감정위원으로 알려진 양의숙씨 집이다. 독특한 건축 구조와 아기자기한 조각들이 놓여있는 정원이 인상적이다. 대부분 작가의 작업실은 밖에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운이 좋으면 직접 안을 둘러볼 수도 있다. 가끔은 작업실을 개방하기도 한다. 갤러리 노리는 화가이자 큐레이터인 이명복과 아내 김은중 관장이 운영하는 갤러리로 언제나 열려 있다. 다양한 예술 전시가 활발하다. 카페까지 겸하고 있어 잠시 쉬어 가기도 좋다. 저지문화예술인마을은 계속 진화 중이다. 올해 김창열도립미술관이 이곳에 문을 연다. 아울러 이 마을의 아쉬움으로 늘 지적되어 왔던 지역 작가들의 작품들을 한군데서 돌아볼 수 있는 전시실도 갖춰질 예정이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64) →가는 길:제주공항에서 차로 35분 걸린다. 주차장은 제주현대미술관 공용주차장(제주시 한경면 저지14길 35)을 이용한다. 710-7801. 한림읍에서 출발하는 버스가 있지만 자주 다니는 편은 아니다. 미술관 관람은 오전 9시~오후 5시까지, 매주 수요일 휴관. →함께 가볼 곳:마을의 원초적인 모습을 보고 싶다면 이웃한 환상숲곶자왈공원(772-2488)을 가보길 권한다. 전문 숲 해설가와 함께 숲을 돌아보며 나무와 가시덤불의 상생과 투쟁의 역사를 흥미진진하게 만날 수 있다. 한겨울에 더욱 푸르고 비가 오면 더욱 진한 숲이 펼쳐진다. 마을 입구의 저지오름을 함께 올라도 좋다. 왕복 1시간이면 제주 서쪽 중산간 지역의 시원한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저지오름 앞의 저지리문화회관을 중심으로 제주올레길 13, 14코스가 교차한다. 사진 명소로 소문난 성이시돌 목장도 차로 5분 거리다. 푸른 목장과 오름을 배경으로 목동들의 휴식처였던 ‘테시폰’(근현대기에 도입된 건축 양식의 하나)이 이국적으로 펼쳐진다. 겨울과 이른 봄이면 동백이 제철이니 카멜리아힐(792-0088)도 함께 돌아보기 좋다. →맛집:알동네집(772-3337)은 신선한 자투리 돼지고기(200g 1만 1000원)를 연탄불에 구워 강된장과 먹는다. 특히 점심엔 김치가 푹 익도록 끓여내는 김치찌개와 돌솥밥이 인기다.
  • [월드경매+] 가정집에서 찾은 베토벤 친필 악보. 1억 4000만원 낙찰

    [월드경매+] 가정집에서 찾은 베토벤 친필 악보. 1억 4000만원 낙찰

    천재작곡가 베토벤이 직접 그린 악보 한 장이 205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됐다. 22일(현지시간) 그리니치타임즈 등 영국 현지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감정사(평가자)로 일하는 브랜던 라이언은 자신이 가진 골동품을 팔고 싶다는 여성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그리니치에 사는 집주인이 팔고자 하는 물건은 악보가 아닌 다른 물건이었는데, 라이언은 우연히 그 집의 복도에 걸린 액자에 눈길이 쏠렸고 한 눈에 독일어로 적힌 필체의 주인을 알아봤다. 바로 천재작곡가 베토벤의 필체였다. 집주인은 액자에 걸어놓은 악보 한 장이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베토벤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200년이 넘도록 빛을 발하지 못했던 그것을 과거 베토벤이 남긴 유품을 감정한 경험이 있던 라이언이 알아본 것이다. 중앙 부분에 음표가 어지럽게 그려진 이 악보에는 ‘1810’이라는 숫자가 표기돼 있다. 1827년 베토벤이 사망하기 전 그려진 이 악보가 어떻게 독일에서 영국까지 왔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라이언은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맨해튼빌 대학의 카멜로 컴버리아티 교수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수 주에 걸친 감정 끝에 해당 악보는 베토벤이 직접 쓴 ‘진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컴버리아티 교수는 “이 악보는 베토벤의 폭풍과도 같았던, 성급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해당 악보는 지난달 미국의 한 경매업체를 통해 12만 달러(약 1억 4120만원)에 낙찰됐다. 이중 10만 달러는 악보를 보관하고 있던 그리니치의 여성에게로 돌아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천안함 피격 北소행 증거’ 어뢰추진체 관리 소홀

    ‘천안함 피격 北소행 증거’ 어뢰추진체 관리 소홀

    국방부가 2010년 3월 발생한 천안함 폭침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며 핵심 물증으로 제시한 어뢰추진체의 부식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당시 북한의 표기법과 같다면서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으로 제시한 어뢰추진체의 ‘1번’ 글자 표기도 희미한 윤곽만 남아 관리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23일 “보관 중인 어뢰추진체의 부식이 심해 1번 글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앞으로 법원, 검찰 등과 협의해 보존 처리 문제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2010년 5월 15일 해당 어뢰 잔해를 서해에서 건져 올린 이후 현재까지 조사본부 건물에 보관해 놓았지만 5년간 부식과 산화를 방지하는 특수 처리를 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정부가 천안함 사건을 조작했다고 주장한 신상철 전 민군합동조사단 위원의 명예훼손 혐의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증거물에 손을 댈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신씨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징역 3년을 구형받았고 내년 1월 25일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다. 군 관계자는 “잔해에 약을 뿌리는 등 처리를 할 경우 증거물 변형, 조작 등의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2010년부터 수거한 어뢰와 크기가 비슷한 모조품을 3개 만들어 전쟁기념관, 해군본부, 평택 해군 2함대에 전시해 왔다. 공개된 장소에 어뢰 진품을 전시할 경우 훼손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모조품까지 제작해 놓고도 정작 진품 관리에는 소홀해 왔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은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대표적 정전협정 위반 사례라고 홍보해 놓고 관리를 소홀히 한 것은 그만큼 천안함 사건에 대해 기리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복도에 걸어둔 악보…알고보니 베토벤 친필 악보

    복도에 걸어둔 악보…알고보니 베토벤 친필 악보

    천재작곡가 베토벤이 직접 그린 악보 한 장이 205년 만에 세상의 빛을 다시 보게 됐다. 22일(현지시간) 그리니치타임즈 등 영국 현지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감정사(평가자)로 일하는 브랜던 라이언은 자신이 가진 골동품을 팔고 싶다는 여성의 전화를 받고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그리니치에 사는 집주인이 팔고자 하는 물건은 악보가 아닌 다른 물건이었는데, 라이언은 우연히 그 집의 복도에 걸린 액자에 눈길이 쏠렸고 한 눈에 독일어로 적힌 필체의 주인을 알아봤다. 바로 천재작곡가 베토벤의 필체였다. 집주인은 액자에 걸어놓은 악보 한 장이 값어치 있는 물건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베토벤의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200년이 넘도록 빛을 발하지 못했던 그것을 과거 베토벤이 남긴 유품을 감정한 경험이 있던 라이언이 알아본 것이다. 중앙 부분에 음표가 어지럽게 그려진 이 악보에는 ‘1810’이라는 숫자가 표기돼 있다. 1827년 베토벤이 사망하기 전 그려진 이 악보가 어떻게 독일에서 영국까지 왔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라이언은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맨해튼빌 대학의 카멜로 컴버리아티 교수에게 조사를 의뢰했다. 수 주에 걸친 감정 끝에 해당 악보는 베토벤이 직접 쓴 ‘진품’인 것으로 밝혀졌다. 컴버리아티 교수는 “이 악보는 베토벤의 폭풍과도 같았던, 성급한 성격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해당 악보는 지난달 미국의 한 경매업체를 통해 12만 달러(약 1억 4120만원)에 낙찰됐다. 이중 10만 달러는 악보를 보관하고 있던 그리니치의 여성에게로 돌아갔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지금 이순간,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지금 이순간, 생애 최고의 크리스마스

    잔뜩 찌푸린 하늘. 오락가락하는 안개비. 습기에 묻어 온 냉랭한 기운이 몸 구석구석에 스민다. 유럽의 겨울 이미지에 딱 어울리는 날씨다. 하긴 고풍스러운 건물, 고통과 번뇌를 그린 조각들이 즐비한 곳에 모래알이 반짝일 정도로 햇볕이 쨍쨍하다면 그것도 좀 어색한 풍경이지 싶다. 도시에 스멀스멀 어둠이 내리면 파리한 낯빛의 사람들이 가로등 아래를 유령처럼 흘러간다. 발걸음의 방향은 대개 같다. 밝고 화사하고 왁자한 웃음이 있는 곳,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잿빛 도시의 탈출구와 같은 곳이다. 독일은 지금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이다. 가족, 연인, 친구들이 옛 음식 함께 먹으며 정담을 나누는 자리다. 크리스마스 마켓이 가장 먼저 시작됐다는 옛 동독의 고도(古都) 드레스덴, ‘음악의 도시’이자 장벽 붕괴의 발원지였던 라이프치히 등을 돌아봤다. 독일은 맥주가 유명한 나라. 하지만 크리스마스 마켓에서는 맥주를 볼 수 없다. ‘부어라 마셔라’보다는 지인들과 정을 나누며 조용하게 한 해를 갈무리하려는 뜻일 터다. 유럽 사람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우리의 설날과 같다.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다시 만나고 즐거움을 함께 나눈다. 그 매개체 노릇을 하는 게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말 그대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열리는 장터다. 성당, 광장 등의 명소를 끼고 열려 볼거리와 먹거리, 놀거리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대개 11월 말쯤 시작돼 12월 23일께 끝난다. 독일어로는 바이나흐츠마르크트다. 크리스마스 마켓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독일 드레스덴과 뉘른베르크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것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드레스덴은 동화 같은 도시다. 아름다운 엘베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는데 드레스덴 성, 츠빙거 궁, 대성당 등 고풍스럽고 화려한 건물들은 대부분 구시가에 몰려 있다. 대가의 작품들로 치장된 건물 사이를 걷다 보면 시간을 몇 백년쯤 거슬러 올라간 듯하다. 이 풍경을 두고 드레스덴 사람들은 흔히 ‘엘베 강 위의 플로렌스(피렌체)’라 부른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열리는 지역별로 이름을 달리한다. 드레스덴에서 가장 유명한 마켓은 구시가 초입의 슈트리첼마르크트다. 1434년 시작됐으니 올해로 581번째 장터가 열린 셈이다. 크기는 달라도 마켓의 형태는 비슷하다.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주변으로 빨간 지붕을 인 상점들이 들어섰다. 가게에서 파는 건 주로 호두까기 인형 등의 장난감과 크리스마스트리 장식물, 수공예품, 양초 등이다. 독일의 명물 소시지와 케이크, 구운 견과류 등 다양한 먹거리도 맛볼 수 있다. 지역과 규모는 달라도 모든 마켓에서 빠짐없이 파는 게 있다. 글뤼바인이다. 와인에 계피 등을 넣고 데운 전통 음료다. 저물녘이면 사람들이 글뤼바인 가게 앞으로 모여든다. 우리가 포장마차에서 어묵 국물을 홀짝이듯 독일 사람들은 차가워진 몸을 녹이기 위해 글뤼바인을 마신다. 글뤼바인의 알코올 도수는 그리 높지 않다. 덥히는 과정에서 알코올이 증발하기 때문이다. 글뤼바인을 담아 주는 컵은 도시마다 형태와 문양이 다르다고 한다. 차곡차곡 모아 두면 썩 괜찮은 기념품이 될 듯하다. 글뤼바인 한 잔 마셨으면 드레스덴의 숱한 명소들을 둘러볼 차례다. 들머리는 당연히 구시가다. 바로크 시대 건축과 미술의 중심지라는 상찬을 받는 곳이다. 한데 ‘영원한 공사장’이란 마뜩잖은 별칭으로도 불린다. 거기엔 사연이 있다. 2차대전 끝자락이던 1945년 2월, 1250대가 넘는 미국과 영국의 폭격기들이 드레스덴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건물의 높낮이는 사라졌고 도시는 잿빛으로 변했다. 당시 무시무시한 폭격은 이후 ‘융단폭격’이라는 단어의 기원이 됐다. 종전 후 독일 사람들은 폐허 속에서 벽돌 하나하나를 찾아내 복원했다. 건물 외벽에 검은빛의 옛 벽돌과 흰빛의 새 벽돌이 섞여 있는 건 이 때문이다. 복원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래서 ‘영원한 공사장’이다. 하지만 별명 이면엔 드레스덴이 얼마나 더 아름다워질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역설도 담겨 있다. 구시가에서 첫 번째로 맞는 드레스덴 성이 웅장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진주’라 불리는 건축물이다. 흰 벽돌 못지않게 많은 수의 검은 벽돌이 섞여 있다. 융단폭격의 와중에도 완파되는 비극만큼은 피했던 모양이다. 성 안의 보석박물관은 꼭 둘러보는 게 좋겠다. 여러 개의 방에 서로 다른 보물들이 전시돼 있다. 가장 알려진 건 보석방의 녹색 다이아몬드다. 크기가 무려 41캐럿에 달한다. 무굴제국 왕의 생일잔치를 묘사한 작품도 인상적이다. 5000개의 다이아몬드와 각각 500개의 루비, 에메랄드가 쓰였다고 한다. 전시된 보물들은 진품이다. 2차대전 동안 드레스덴 외곽 ‘작센의 스위스’ 국립공원에 보관된 덕에 화를 피할 수 있었다. 드레스덴 궁에서 대성당을 끼고 오른쪽으로 돌면 슈탈호프다. 교통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 외벽엔 그야말로 압도적인 규모의 벽화가 조성돼 있다. 2만 4000여개의 마이센 자기 타일로 만든 벽화 ‘군주의 행렬’이다. 길이가 무려 101m에 이른다. 아우구스트 2세 등 35명의 작센 군주들이 말을 타고 행진하는 모습을 그렸다. 행렬 마지막 부분에는 작가가 몰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 넣었다니 한번 찾아보시길. 도로 건너는 츠빙거 궁전이다. 바로크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꼽힌다. ‘축제의 장소’라는 이름처럼 각종 연회가 열렸던 건물이다. 1710~1729년 지어졌으나 2차대전 때 완파됐고, 이후 20년 간 복원 작업을 거쳐 옛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 도자기 박물관, 역사박물관 등이 입주해 있다. 아우구스트 왕의 심장이 묻혀 있다는 대성당, 독일에서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 중 하나로 꼽히는 젬퍼 오페라 하우스 등도 빠짐없이 돌아보는 게 좋겠다. 프라우엔(성모) 교회 앞 마켓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프라우엔 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부터 2차 세계대전 등 굵직한 역사의 흔적이 깃든 루터파 개신교회로, 96m짜리 초대형 돔 건물이 인상적이다. 구시가의 여러 명소들 사이를 느릿느릿 걷다 마켓에 들러 독일식 주전부리로 요기를 하는 것도 좋겠다. 마켓은 엘베 강 위에 놓인 아우구스트 다리를 건너 신시가지 노이슈타트에서도 열린다. 글 사진 드레스덴(독일)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인천에서 라이프치히나 드레스덴까지 가는 직항편은 없다. 어느 지역에선가 한 번은 경유해야 하는데, 요즘 여행가들의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 터키 이스탄불이다. 터키항공(www.turkishairlines.com/ko-KR)이 이스탄불을 ‘유럽의 허브’로 만들겠다며 유럽의 소도시에까지 항공편을 확대하는 등 대대적인 마케팅 공세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터키항공은 전 세계 110개국 278개 도시를 운항하고 있다. 그 가운데 유럽에서만 107개 도시를 연결하고 있다. 그야말로 거미줄이다. 독일에선 14개 노선을 운영 중이다. 이스탄불에서 라이프치히까지는 매일 운항한다. 3시간 30분 소요된다. 인천~이스탄불 구간은 매주 11회 왕복 운항한다. →여행 정보:독일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은 무려 150여개에 이른다. 독일관광청 홈페이지(www.germany.travel/kr/specials/christmas/christmas.html)에서 각각의 운영 시간과 링크 주소를 확인할 수 있다. -엘베 강을 따라 유람선이 오간다. 드레스덴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넉넉한 주변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매일 오전 11시, 오후 1시· 3시 아우구스트 다리 옆 선착장에서 출발한다. 어른 16유로.
  • 대한제국 황제·황후 입던 의상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제·황후 입던 의상 선보인다

    대한제국 황제와 황후가 착용했던 황색 곤룡포와 황원삼이 일반에 공개됐다. 세종대 박물관이 세종대 창립 75주년을 맞아 1일부터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개최하는 ‘박물관 소장 유물 특별전시’를 통해서다. 세종대 박물관은 1973년 개관 이래 4000여점의 유물을 소장, 관리해 오고 있다. 이번 특별전에선 고종황제(왼쪽·1852~1919)와 순종황제(오른쪽·1874~1926)대에 입었던 황색 곤룡포(중요민속문화재 제58호) 2벌과 황후 황원삼(중요민속문화재 제49호), 황후 적의(중요민속문화재 제54호), 동궁비 원삼(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 왕비 당의(중요민속문화재 제103호) 등 조선시대부터 대한제국시대 황실의 복식문화를 보여주는 희귀 유물이 대거 선보였다. 박물관 측은 “곤룡포 2벌은 황제를 상징하는 황색으로 만들어졌으며 고종황제와 순종황제대에 입었던 진품이고 황후 황원삼은 순종황제의 계비인 순정효황후가 착용했던 대례복”이라며 “황색 곤룡포와 황원삼은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유일한 황실 복식 유물로 문화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곤룡포는 조선시대 세종대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왕이 평상시 업무를 볼 때 입었던 집무복으로 가슴과 등, 양 어깨에 용 무늬를 금실로 수놓은 둥근 보(補)가 달려 있어 용포 또는 망포라고도 불렀다. 처음에는 붉은색 곤룡포를 입다가 고종황제에 이르러 황제국 지위에 맞게 황색 곤룡포를 입었다. 고종황제가 착용했던 장신구인 패옥(중요민속문화재 제48호), 황실에서 사용했던 별전괴불(중요민속문화재 제47호), 단원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전해지는 ‘해상군선도’와 ‘평양시가도’ 등의 작품도 전시됐다. 특별전은 11일까지 이어진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일본 나들이 ‘난파선 보물’… 관람객들 “한국 좋아하게 됐다”

    일본 나들이 ‘난파선 보물’… 관람객들 “한국 좋아하게 됐다”

    “스고이네!”(굉장하네!), “가와이.”(귀엽다) 삼삼오오 모여 전시품들을 살피던 관람객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다. 몇몇 중년 여성들은 13세기 고려시대 제작된 ‘청자상감유연수금문매병’에 새겨진 문양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이 문양은 연못 사이에 핀 연꽃 사이로 노니는 오리떼다. 고려청자로서는 세계에 유일무이한 형태의 동자(童子)·동녀(童女) 모양의 수적(水適) 앞에서 수첩에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적고 있는 젊은 학생. 12세기 전반기 청자로 만든 사자 모양을 한 향로 뚜껑의 독특한 형태에 관람객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러저리 살폈다.  평일이던 지난 20일 두 달 남짓한 전시의 끝물인데도 관람객들의 발길은 ‘오사카시립동양도자미술관’(MOC·이하 미술관)으로 몰렸다. 오사카 시청사, 중앙공회당 등을 곂에 둔 오사카의 상징거리 에노시마에 위치한 이 미술관에서는 ‘새로 발견한 고려청자’ 전시회가 열렸던 것이다. 신안선 등 1976년 이후 40년 가까이 한반도 주변의 침몰선에서 건져 올린 해저 유물 가운데 고려청자 210점을 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 40점과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미술관은 한국해양문화재연구소, 한국국제교류재단 등과 함께 한·일 수교 50주년을 기념해 연 국제교류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난파선에서 건져 올린 12~13세기 보물이란 점도 호기심과 반향을 일으켰다. 해저 유물을 발굴·인양하는 장면을 비디오로 찍어 상영한 영상관에서는 70~80대 노인들도 어린애처럼 신기해하며 봤다. “1976년 신안선 해저 유물 인양 작업을 필두로 1970년대 46점, 1980년대 122점 등 한국은 동아시아 수중고고학의 최대 거점이 됐다”고 이 미술관의 정은진 학예원은 귀띔했다. 일본 국공립 미술관의 유일한 한국인 큐레이터인 정 학예원은 “한국 수중고고학 성과물들이 일본에서 전시되기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오사카에 산다는 타나카 신이치 가족은 충남 태안군 마도 해저에서 발견돼 보물 1783호와 1784호로 지정된 청자문매병 2점을 가리키면서 “청자의 아름다운 자태도 일품이지만, 죽간이 함께 나와 언제, 누구에게 간 것인지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이들은 함께 발견된 죽간에서 “고려시대 무인 협의기구인 중방의 도장교(都將校)란 직책의 관리인 오문부의 집으로 문매병 안에 꿀과 호마유(胡麻油)를 넣어 보낸다”는 내용을 입에 올리며 즐거워했다. 이 미술관이 소장한 고려청자의 최상급 진품들도 함께 공개돼 새삼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 있으면 국보로 지정받았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청자로 만든 항아리인 ‘청자음각연화문삼이호’, 동녀 모양의 청자 수적 등 일본의 중요 미술품으로 지정된 것들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 9월 5일부터 열린 전시회를 다녀간 이들의 반응은 소셜미디어(SNS)나 편지 등으로 반향을 만들었다. 관람객들은 “한국을 다시 보게 됐다” “한국을 좋아하게 됐다”는 반응을 전했다. “12~13세기 고려에서 이런 작품을 만들고, 일상 생활에 썼다니 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 놀랍다”며 탄성의 느낌을 전하는 관람객도 있었다. 경기 침체로 “일본의 도자기 애호 열기가 전과는 다르다”는 상황 속에서도 2만명에 달하는 관람객들이 다녀갔고, 한국 전통미의 매력이 입소문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 도자기는 인류가 최초로 발명한, 화학반응을 동반한 실용적 조형작품이어서 수준 높은 한국 도자문화에 일본이 놀란 것이다. 오사카 여행 도중 들렀다는 대만인 류하오는 “세계적 명성의 (대만) 고궁박물관에도 비슷한 유형을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형태의 청자들을 발견해 놀라웠다”고 말했다. 카도가와 요시로 오사카박물관협회 이사장은 “고려청자 등 한국 공예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일반에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면서 “개막공연 등 부대 행사를 통해 한국 전통문화를 더 깊이 이해시키고 한·일 교류의 오랜 역사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최현수 국제교류재단 도쿄사무소장은 “국외 소재 우리 문화재들을 한국에서 온 해양발굴 문화재들과 함께 전시할 수 있는 기회였다”면서 “우리 전통문화의 보다 적극적인 소개와 노출을 통해 일본인들에게 한국문화의 관심을 다시 일깨우고, 주춤해 있는 한류를 다양한 형태로 되살리고 확대시키는 방안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오사카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중고명품 소비자에겐 가격보다 신뢰가 우선

    중고명품 소비자에겐 가격보다 신뢰가 우선

    직장인을 비롯해 대학생, 주부 등 다양한 계층에서 선호하는 명품은 이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하나의 소품이 되었다. 과거에 비해 구매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해졌고, 생활 여건이 나아지면서 명품이 생활필수품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최근의 명품 구매 트렌드는 무엇일까? 바로 ‘중고명품’이다. 계속되는 불황에 중고명품 매장에서 신상품에 준하는 중고품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구매하려는 고객들이 많아졌다. 명품 구입이 처음이었던 최모(36)씨 역시 중고명품 사이트를 통해 명품을 구입했다. 그는 특별한 날을 위해 명품가방을 구입하기로 결심하고 여러 중고명품 사이트를 찾아다녔다. 백화점에서 제값 주고 사기엔 가격이 너무 비쌌고, 해외직구는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반품 배송비와 반품 비용이 너무 커서 부담이었기 때문.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온라인 중고명품 서비스에서 가장 고려하는 사항으로 ‘정품에 대한 신뢰’를 꼽고 있다. 중고명품 구입 시 꼭 따져봐야 하다보니 소비자들은 가격에 대한 측면보다는 판매하는 회사의 전통과 진품에 대한 보증을 제공하는 업체를 더욱 선호했다. 이에 대해 관계자는 “명품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면서 진위여부 판단이 어려운 명품들이 즐비해졌는데 거래할 때에는 가급적 중고명품 거래량이 많고, 오프라인 매장을 같이 운영하고 있는 업체를 선택하고, 또한 매장이 멀지 않을 경우 직접 방문해 실물을 보고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그러던 중 지인에게 중고명품 유통기업 구구스(www.gugus.co.kr)를 추천받으면서 온라인쇼핑몰과 전국 15개의 직영매장에서 투명한 거래 시스템을 보고 믿을만한 중고명품 쇼핑몰이라는 확신이 들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구구스는 GIA보석감정사와 35년 경력의 시계장인 및 품목별 감정단이 상주하여 현재 가치만큼 현금을 지급하는 매입서비스와 고객을 대신해 판매를 대행하는 위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으며, 고객 편의에 맞춰 원하는 시간과 장소로 찾아가는 출장방문 서비스를 진행해 물량이 많거나 중고명품 처분할 시간이 부족한 고객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톡!톡! talk 공무원] 임영숙 인천공항세관 감시과 주무관

    [톡!톡! talk 공무원] 임영숙 인천공항세관 감시과 주무관

    “여기가 뚫리면 국내 단속은 100배 이상 힘듭니다. 국경을 책임진다는 마음가짐으로 모니터에 집중합니다.” 엑스레이 판독 경력 18년의 베테랑이자 판독 교관요원인 인천공항세관 감시과 임영숙(51·여) 주무관은 자신의 역할에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의 첫마디는 위험물질이나 고가 물품의 국내 밀반입은 불가능하니 자진신고하라는 권유였다. 세관의 철저한 엑스레이 검사에 대한 일종의 경고다.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우리나라의 판독능력과 관련해 “일본은 한국을 거친 화물에 대해 검색 편의를 제공할 정도”라고 소개했다. ●경력 18년 베테랑… “국경 책임진다고 생각” 마음씨 좋은 이웃 같은 임 교관이 검색기 앞에 앉자 ‘매의 눈’으로 돌변한다. 업무에 익숙할 만한 연륜이지만 숨기려는 자와 찾아내려는 자의 싸움이 몇 초 만에 승부를 결정짓기에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고 한다.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입국장 엑스레이 판독은 평범한 업무다. 하지만 통관지연에 따른 불편과 민원, 나아가 국가 신뢰도와 연계돼 있어 수화물 한 개당 3.5초 이내에 결정을 내려야 한다. 지난해 여행자 수화물에 이중으로 교묘히 숨겨진 마약(메트암페타민) 4㎏을 사전정보 없이 엑스레이 판독만으로 적발하기도 했다. 마약 4㎏은 13만여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양으로 적발하지 못했을 경우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마약은 엑스레이 판독으로는 적발이 어렵다. 그래서 ‘그림자 게임’으로 불린다. 임 교관은 “차량용 휴대용 전기 냉장고인데 테두리 부분에서 수상한 음영을 발견했다”면서 “그동안의 경험과 요원의 이유 있는 의심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담담히 말했다. 인천공항 입국장에서는 80명의 판독요원이 2개 조로 나눠 격일제 근무를 한다. 하루 40명이 400여대의 비행기에서 내려지는 화물과 수화물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매일 3차례, 항공기 착륙이 집중되는 오전 5~7시와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3시 30분~6시 30분이 ‘러시아워’로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짝퉁 구별은 기본… 마약 적발이 가장 어려워 한국 세관의 엑스레이 판독 능력이 높아진 것은 2003년 이후라고 한다. 임 교관이 판독 업무를 지원한 1997년 전후에는 책임의식만 있었을 뿐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없었다. 말로 설명을 듣고 선배들 옆에서 지켜보며 배우는 식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교육관에서 이론과 현장 교육을 거친다. 한 달간 베테랑 선배와 같이 근무하며 단계별로 업무를 익히는 과정을 통과해야 5개월째부터 단독 근무를 할 수 있다. 명품이나 고급 양주 등의 진품과 짝퉁을 단번에 구별하는 능력은 기본에 속한다. 판독요원은 철저한 자기관리가 중요하다. 장시간 근무를 하기 때문에 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무엇보다 눈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쓴다. 임 교관은 “엑스레이 판독은 섬세한 관찰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여성에게 적합한 업무”라며 “전문분야로 커리어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인천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시론] 천경자와 천옥자/황인 미술평론가

    [시론] 천경자와 천옥자/황인 미술평론가

    천경자 화백의 타계 소식이 두 달이나 늦게 전해졌다. 천 화백의 본명은 천옥자다. 부모님이 주신 옥자(玉子)라는 이름을 버리고 스스로 경자(鏡子)라는 이름을 지었다. 구슬(玉)을 버리고 거울(鏡)을 택한 셈이다. 그녀의 나이 18세, 도쿄여자미술전문학교를 입학하던 해의 일이다. ‘주체는 거울(鏡)에 비친 이미지를 동일시하려 한다’고 밝힌 건 철학자 라캉이다. 거울은 주체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한 소품이다. 한반도의 여성에게는 주체를 추구하고 자의식을 갖는 것이 금기였던 어두운 시대가 있었다. 그런 시절에 그녀는 자신이 택한 새 거울 속에 화려한 이미지를 드러냄으로써 능동적인 주체를 이끌어 나갔다. 천 화백은 이중 삼중으로 변방으로 밀렸던 사람이다. 남성 우위의 사회 분위기에서 여류 화가가 설 수 있는 입지는 좁았다. 수묵화가 대세이던 한국화 화단에서 그녀의 화려한 발색의 채색화는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녀의 삶과 그림을 지지한 건 여성들이었다. 우월 의식을 가진 남성들은 그녀를 탐탁지 않게 여겼다. 어떤 수묵화 화가들은 그녀를 공격하기도 했다. 그녀를 변방으로 몰아붙였던 위세등등의 수묵화는 지금 거의 멸실 상태다. 천 화백의 그림은 빛을 더하며 살아남았다. 미술시장에서도 최고의 작품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과연 누가 승리자인가. 사회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궁지에 몰렸던 천 화백이지만 그녀의 삶은 당당하고 활기가 넘쳤다. 1960년대라면 세계 일주 여행가로 김찬삼 교수가 거의 유일했다. 이 무렵부터 해외여행을 나선 천 화백은 잘 알려진 뉴욕은 물론 한국인들에게는 미지의 땅이었던 아프리카 등지를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인도, 중남미를 여행하고선 현장 사생 작품을 현대화랑에서 전시(1980년)했다. 당시 천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을 모사하는 여대생들이 제법 있었다. 서글서글하면서도 짙은 음영의 슬픈 눈을 따라 그렸다. 젊은 여성들은 천 화백의 그림 속에 나오는 여자의 눈동자가 본 세상을 상상하며 그녀의 삶을 닮으려 했다. 그녀는 일류 문장가였다. 이국 정취를 불러일으키는 그녀의 수필과 기행문을 읽으며 젊은 여성들은 멀고 막연한 세계를 상상했다. 천 화백은 젊은 한국 여성들에겐 꿈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다. 천 화백은 여성운동가도 계몽주의자도 자처한 적이 없다. 그러나 그녀의 매력이 세상을 계몽했다. 이 땅의 여성들이 꿈속에서나 상상할 법한 과감한 삶을 그녀는 실제로 살았다. 어쩌면 비현실적일 수도 있는 그녀의 삶이 여성들에게 역설의 위안과 용기가 됐다. 올가을에는 서울시립미술관의 천경자상설전시실에 사람들의 발길이 유독 잦다. 많은 관람객이 그녀의 작품 앞에 줄지어 서서 지나간 한 시대를 기리고 있다. 석채를 담은 통, 평필, 세필, 아교를 녹이는 전기풍로 등 화구를 비치해 재현한 화가의 방 앞에서는 숙연한 모습이 되기도 한다. 천 화백의 늦은 부음과 함께 1991년에 있었던 ‘미인도’ 위작 사건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이번에는 국회까지 나서서 재감정 요청을 제기했다. 위작인지 진품인지는 공방 중이다. 그러나 24년 전과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주장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논리에는 보충 설명의 부연이 아쉬웠다. 미인도가 위작이라고 주장했던 작가 측의 논리 역시 다소 자의적인 면이 있었다. 지금은 양측이 주장하는 근거가 상당히 논리적이며 실증적이다. 그때보다 수십 배가 늘어난 근거들이 조리 있게 제시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검증의 과정을 공유하고 있다. 결과에 관계없이 과거보다는 더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검증 과정을 거치게 되는 셈이다. 알게 모르게 24년간 우리 사회가 많이 진화했다는 걸 이번 사태가 증명해 주고 있다. 새 거울 속의 이미지를 좇아 천옥자에서 천경자를 택했던 그녀는 이번 사태에서 보듯 어느새 한국 사회를 되비추는 큰 거울이 됐다. 위작 논란과는 무연하게 그녀를 향한 세간의 열광은 점점 힘을 더해 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천 화백은 이 땅의 진정한 스타다. 정부가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일에 주저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 故천경자 화백 절필 이끈 ‘미인도’ 재감정 이뤄질까

    故천경자 화백 절필 이끈 ‘미인도’ 재감정 이뤄질까

     최근 천경자 화백의 타계 소식이 뒤늦게 전해진 이후 천 화백을 절필로 이끌었던 ‘미인도’ 위작 논란이 재점화한 가운데 국회에서 ‘미인도’에 대한 재감정 요청이 제기됐다. 앞서 ‘미인도’를 소유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재감정 가능성과 관련 “국회에서 통보가 오거나 유가족이 요청을 해오는 등 상황이 발생해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고 밝힌 바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이석현 국회부의장실은 6일 “어제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앞으로 ‘천경자 미인도의 재감정 요청의 건’을 우편으로 발송했다”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예술가에게 절필은 자살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위작 논란 속에 절필하고 세상을 등진 만큼 망자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도 재감정을 통한 위작 여부 확인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 부의장은 재감정 요청공문에서 ?작가가 지속적으로 위작이라고 주장했던 점 ?권춘식씨가 위작을 자백한 점 ?당시 수사검사인 최순용 변호사의 증언 ?유족의 요구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이 부의장은 또한 1991년 당시에는 생존 작가여서 화랑협회에서 감정했지만, 망자의 경우 고미술감정협회에서 진위 여부를 감정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1991년 ‘미인도’ 위작 논란은 한국 미술계의 사건이었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국가가 압류한 미술품 가운데 ‘미인도’가 있었고, 이를 소장하게 된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시와 함께 프린트해 팔기 시작했다. 유가족 등에 따르면 천 화백은 당시 한 동네 목욕탕에 자신의 그림이 걸려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확인하러 갔다가 분노에 차서 돌아왔다. 그는 “내가 그린 것이 아니라 위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대미술관은 한국화랑협회에 감정을 의뢰했고, 협회는 ‘진품’이란 결론을 내렸다.  천 화백은 “자식 못 알아보는 어미가 어디에 있느냐”는 말로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미술계에서는 ‘예순이 넘은 천 화백이 노망이 들었다’는 말이 떠돌았다. 결국, 절필을 선언하고 1998년 작품 93점을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한 채 한국을 떠났다.  하지만, 최근 천 화백이 지난 8월 숨졌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위작 논란 당사자들이 열기 시작했다. 1995과 1999년 두 차례에 걸쳐 고서화 전문위조 혐의로 검거된 권씨는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미인도는 내가 그렸다”고 주장했다. 당시 권씨를 수사했던 최 변호사도 “국립현대미술관의 천 화백 그림을 자신이 그렸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미인도’는 현재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위작 논란 이후 단 한 번도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도굴 문화재 거래하고 숨긴 16명 검거

     수십년간 문화재를 훔치고 거래해 온 도굴범 등이 경찰에 무더기로 붙잡혔다. 경기경찰청 제2청 광역수사대는 4일 문화재를 도굴하고 유통한 혐의 등으로 강모(62)씨를 구속하고 경북 모 박물관 관장 김모(67)씨와 골동품상 등 1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 등은 1980년대부터 1990년대 말까지 전국의 분묘와 사찰, 고택 등에서 서적과 도자기, 공예품 등 문화재 799점을 훔쳐 유통한 혐의를 받고 있다. 회수된 문화재 중에는 보물 1157호인 ‘성리대전서절요’와 같은 판본인 4책 중 1책도 포함돼 있다. 성리대전서절요는 중종 38년이던 1538년 김정국이 성리대전에서 중요한 부분만을 뽑아 편성·간행한 책으로, 나머지 판본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경찰은 도난 문화재를 숨기거나 매매한 이들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었다. 박물관장 김씨는 대형 금고에 문화재를 숨긴 채 강하게 저항했으며, 위작 도자기를 진품으로 알고 집 화장실 천장에 숨긴 사례도 있었다. 경찰은 “공소시효가 지난 문화재 도굴범들과 반년 간 전국 각지를 돌며 수사를 했으며, 70~80대의 고령인 도굴범들은 죽기 전에 참회하는 심정으로 수사에 협조했다”고 밝혔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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