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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빈치 예수 초상 5000억원 낙찰… 최고가 ‘역사’

    다빈치 예수 초상 5000억원 낙찰… 최고가 ‘역사’

    작가 몰랐던 60년전 7만원에 팔려 피카소 ‘알제의 여인들’ 두배 넘어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예수 초상화가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인 약 5000억원에 낙찰됐다. AP통신 등은 15일(현지시간) 다빈치가 그린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억 5030만 달러(약 4978억 9000만원)에 낙찰됐다고 전했다. 기존 최고가 작품이었던 파블로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이다. 알제의 여인들은 2015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 7940만 달러에 낙찰됐었다. ‘살바토르 문디’는 오른손을 들어 축복을 내리고 왼손으로는 크리스털 보주를 잡고 있는 예수의 상반신을 그린 그림이다. 다빈치가 1500년쯤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작품은 ‘21세기 최대의 재발견 예술품’으로 불린다. 유럽 귀족들의 손을 거치며 심한 덧칠 등으로 손상됐고 누구의 작품인지 확인되지 않은 채 수백 년을 떠돌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1958년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단돈 45파운드(약 7만원)에 팔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빈치가 아니라 그의 제자가 그린 그림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2005년 그림의 붓질과 염료 등을 정밀 감정해 다빈치의 진품이라고 결론내렸다. 2011년 영국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처음 전시됐다. 2013년 러시아 억만장자이자 미술품 수집가인 드미트리 리볼로블레프가 1억 2750만 달러에 구입했다. 리볼로블레프는 이번 경매에 이 작품을 1억 달러에 내놨다. ‘살바토르 문디’를 사들인 사람의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다. 로이터통신은 매수자가 전화로 경매에 참여했으며 약 20분 만에 경매가 끝났다고 전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마윈 매직

    마윈 매직

    가상 피팅룸… 얼굴인식 결제… 팝업 가게 온·오프라인 결합 + 모바일 + AI 융합 소매 + 오락 ‘리테일테인먼트’ 지난 11일 ‘광군제’(光棍節·독신자의 날) 신기록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 주는 증표였다. 광군제를 만든 알리바바가 2년 전 약 3000억원에 인수한 홍콩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3일 “알리바바의 250억 달러(약 28조원) 판매 신기록은 세계 소매시장의 미래를 보여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마윈 알리바바 회장이 소매와 오락을 접목한 ‘리테일테인먼트’란 신조어를 만들었다고 보도했다.●매출 신기록… 中 ‘세계의 공장’ 증표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 행사가 된 광군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을 보여 주는 시험대였다고 분석했다. 이번 광군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가상현실 기술이 도입돼 소비자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를 지운 완벽한 쇼핑 경험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거대한 스크린이 실제로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는 듯한 경험을 제공했고 옷을 입어 볼 수 있는 가상의 피팅룸도 있었다. 상품 대금은 얼굴 인식 기술을 활용한 시스템으로 지불했다. 홍콩 공항에서는 알리바바 팝업스토어(임시 매장)에서 맘에 드는 상품을 보고 바로 온라인으로 주문 가능했다. 상하이에서는 알리바바의 가상현실 게임에서 얻은 쿠폰을 쇼핑센터에서 쓸 수 있었다. 알리바바는 중국 전역에 오프라인 상점을 팝업스토어로 바꿔 10만개의 매장을 선보였다. 알리바바는 지난해 중국 백화점 인타임과 올해 대형 슈퍼마켓 체인 리엔화의 지분을 인수해 오프라인 시장도 장악했다. 미국 온라인 시장의 제왕 아마존이 유기농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를 인수한 것과 비슷한 사례다. 중국이나 미국 소비자 모두 생선, 과일, 고기는 오프라인 시장에서 사는 습관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알리바바가 지난해 선보인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성’(盒馬鮮生)도 인기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완벽한 결합을 보여 주는 ‘허마’에서는 휴대전화로 주문뿐 아니라 결제까지 가능하고 매장에서 매운 민물가재 요리 ‘마라룽샤’(麻辣龍蝦)도 먹을 수 있다. 중국 전체 소매점의 10%에 이르는 60만개의 상점이 알리바바의 ‘링쇼우퉁’(零?通) 서비스에 가입했다. 휴대전화로 매장에서 판매할 상품을 직접 주문할 수 있는데 알리바바는 링쇼우퉁을 통해 빅데이터에 기반을 둔 판매 정보도 함께 제공했다. 소매점들은 어떤 상품이 많이 팔리는지와 같은 알리바바 제공 정보로 재고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컨설팅 회사 PwC 관계자는 “온라인 소매시장이 빠르게 성장할수록 전자상거래 회사는 오프라인 전략도 펼쳐야만 성장할 수 있다”며 “소비자들이 실제로 온라인에서 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알리바바, 2위 ‘징둥’과 매출 신경전 광군제 이후 중국 2위 전자상거래업체인 징둥과 알리바바가 매출액을 두고 벌이는 신경전도 한창이다. 징둥이 광군제 판매액을 1271억 위안(약 21조원)이라고 밝히자 알리바바는 11일 하루 거래액이 아니라 1일부터 11일까지의 11일치 판매액이라고 반박했다. 중국 소비자들은 “택배가 제대로 오느냐, 물건이 진품이냐에 따라 알리바바와 징둥의 진검승부가 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알리바바는 광군제 첫 주문을 12분 18초 만에 배달했다고 선전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르누아르 그림, 둘 중 하나는 짝퉁…트럼프? 시카고미술관?

    르누아르 그림, 둘 중 하나는 짝퉁…트럼프? 시카고미술관?

    세계적인 인상주의 화가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작품인 '두 자매'(Two Sisters/ On The Terrace)에 대한 흥미로운 주장이 나왔다. 지난 18일(현지시간) 미국 CNN등 현지언론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소유한 '두 자매'가 진품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두 자매가 함께 서있는 아름다운 장면을 담은 이 그림은 지난 1881년 미술상이 르누아르로부터 구입한 것으로 1933년부터 미국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시카고 미술관에 걸려 있다. 문제의 발단은 '똑같은' 작품이 뉴욕 트럼프 타워에도 걸려 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 승리한 직후 이루어진 영부인 멜라니아 트럼프의 인터뷰 영상에도 이 그림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결론적으로 양쪽에 걸려있는 작품 중 하나는 '짝퉁'이라는 이야기다. 이같은 사실을 알린 것은 과거 '트럼프네이션'(TrumpNation)이라는 전기를 펴낸 저자 팀 오브라이언이다. 그는 "수년 전 이 그림을 보고 트럼프에게 진품인가 물었더니 진품이라고 대답했다"면서 "내가 진품은 시카고 박물관에 있다고 하자 그는 계속에서 이 작품이 진짜라고 반박했다"고 밝혔다. 한술 더 떠 오브라이언은 "트럼프는 여전히 자신의 아파트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주장하고 다닐 것"이라면서 "그는 수십 년동안 자신이 하는 거짓말을 믿고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 상관없이 똑같은 말만 되풀이한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나 이같은 주장에 대해 시카고 박물관 측은 자신의 작품이 진품이라며 일축했다.  트럼트 대통령과 오브라이언은 악연이 깊다. 지난 2005년 오브라이언은 ‘트럼프네이션'을 출간했다가 트럼프에게 수십억 달러의 소송을 당했다. 이유는 트럼프의 재산이 1억 5000만달러에서 2억 5000만 달러 사이라고 적은 것인데, 트럼프는 자신의 재산을 과소평가했다며 이같은 소송을 냈으나 결국 패소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명품 스타일? 이것도 짝퉁입니다!”... 불법 판매 온상 된 블로그마켓

    “명품 스타일? 이것도 짝퉁입니다!”... 불법 판매 온상 된 블로그마켓

    얼마 전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에서 유명 연예인이 쓰고 나온 모자가 인기를 끌자 온라인에서 ‘원조’ 논란이 일었다. 개인 블로그를 개설해 물건을 파는 블로그마켓 여러 곳이 “이 모자는 자사 제품입니다. 유사품에 주의하세요”란 글을 올린 것이다. 그러자 참다못한 원 제작자가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이 제품은) OOOO와 XXX의 콜라보 제품”이라면서 “지금은 ‘솔드아웃’(매진)됐다”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젊은이들 사이에서 ‘핫’한 구매 채널로 떠오른 블로그마켓이 불법 판매 온상이 되고 있다. 유행하는 제품이 있으면 너도나도 디자인을 모방해 유사제품을 내놓는가 하면, 명품 브랜드의 불법 복제품을 대놓고 팔기도 한다. 이런 블로그마켓 때문에 특히 명품업계가 골치를 썩는 것으로 알려졌다. 블로그마켓에서는 ‘명품’이 아닌 ‘명품 스타일’ 제품을 판매한다는 방식을 자주 쓴다. 해당 제품은 의류부터 가방, 신발 등 다양하다. 특허청 위조상품 담당자는 “제품 브랜드 뒤에 ‘st’(style의 준말)를 붙여 판매하는 온라인 판매상들이 늘고 있다”면서 “감정을 받기 전 진품인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최근 적발된 사례를 보면 10개 중 9개는 가품”이라고 말했다. 실제 명품업체 A사는 최근 자사 브랜드 뒤에 ‘st’를 붙여 파는 블로그마켓 운영자를 찾아내 소송하겠다면서 당장 판매를 중단하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하지만, 브랜드명을 일부 바꾸는 수법 등으로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블로그마켓에 대해서는 제재 수단이 사실상 없다. 명품업체 B사는 “블로그마켓에서 판매하는 불법 복제품에 대해서는 본사에서도 관심을 둘 정도로 사안이 심각하다”면서도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지만, 처벌이 쉽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일부 블로그마켓은 가격을 공지하지 않고 비밀댓글 기능을 통해 문의를 해오는 고객에만 알려주기도 한다. 또 현금이 아닌 카드로 결제하는 소비자에게는 카드 수수료를 제품 가격에 얹어 판매한다. 단순 변심에 의한 교환은 ‘절대 불가’라는 블로그마켓부터 제품 구매 신청을 하기 전 환불·교환 불가에 동의를 요구하는 곳도 있다. 특허청 관계자는 “검찰, 경찰, 관세청, 지방자치단체 등도 위조품 판매 근절을 위해 단속하고 있지만 외국에 서버를 두고 판매하는 업자에게는 단속의 손길이 미치기가 쉽지 않다”면서 “불법 복제품 판매가 의심되면 바로 신고를 해달라”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백년손님’ 이만기, 장모집에서 발견한 병풍 진품 확인 ‘감정가 얼마?’

    ‘백년손님’ 이만기, 장모집에서 발견한 병풍 진품 확인 ‘감정가 얼마?’

    ‘백년손님’ 이만기가 장모집에서 오래된 병풍을 발견해 일확천금의 꿈을 꿨지만 수포로 돌아갔다.14일 방송된 SBS ‘자기야-백년손님’에서는 창고에서 병풍을 발견하는 이만기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장모는 자신의 창고를 공개했고 이만기는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경하다 심상치 않은 포스를 보이는 병풍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어 이만기는 병풍 사진을 찍어 관련 전문가인 지인에게 보냈고, 지인은 “싸구려가 아니다. 감정을 받아봐라”고 말해 이만기를 들뜨게 했다. 이만기는 장모를 설득해 병풍을 싣고 오래된 물건을 감정하는 전문가에게 찾아가 감정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전문가는 “이거 진품이다”라고 말해 이만기를 흥분하게 했다. 이만기는 이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때 엄청 놀랐다”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만기는 다급하게 “얼마인가요?”라고 물었고 전문가는 “7만원이다”라고 답했다. 이만기는 “괜히 왔다”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애지중지 안고 있던 병풍을 차 트렁크에 집어던져 웃음을 자아냈다.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천경자 유족 “‘미인도’ 수사검사 처벌해달라” 진정서 제출

    천경자 유족 “‘미인도’ 수사검사 처벌해달라” 진정서 제출

    고(故) 천경자 화백의 유족이 ‘미인도’를 진품으로 결론 내린 검찰 관계자들을 처벌해 달라며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제출했다.천 화백의 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칼리지 미술과 교수(63) 측은 14일 “‘미인도 사건’ 수사 검사와 수사관 6명의 직권남용과 비위사실을 조사해 처벌과 징계를 해달라는 내용을 담은 진정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김씨 측은 진정서에서 “검찰은 미인도가 가짜라는 프랑스 뤼미에르 과학감정팀의 최종보고서를 수사대상인 현대미술관 측에 유출하고, 뤼미에르 측에 보고서를 유족 측에 제공하지 말고 언론에도 알리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 “검사와 수사관이 감정인들에게 ‘천 화백의 둘째 딸이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시인했다’거나 ‘이거 그냥 진품이라고 보면 어때요’라며 허위사실을 고지해 허위감정을 유도했다”고도 했다. 미인도의 금분 사용 여부와 화판과 액자에 대해 수사를 하지 않아 부실수사를 초래했다고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4월 “미인도가 진품이라는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6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내리면서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 5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모씨에게만 사자 명예훼손 혐의를 적용해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천 화백의 유족은 항고했지만 기각됐고, 재정신청을 냈다. 그러나 재정신청 역시 지난달 31일 서울고법에서 기각됐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찰, 온라인상 ‘문재인 시계’ 위조 제작·불법 판매 모니터링

    경찰, 온라인상 ‘문재인 시계’ 위조 제작·불법 판매 모니터링

    ‘이니 굿즈’(‘이니’는 문재인 대통령의 애칭, ‘굿즈’는 상품(goods)을 뜻하는 말)로 불리며 인기를 끌고 있는 ‘문재인 시계’(문재인 대통령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기념품 손목시계)가 온라인에서 불법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사이버범죄 발생 여부를 점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경찰청 관계자는 7일 “청와대 민정수석실 요청이 있어 시계와 관련한 사이버범죄 발생 여부를 모니터하고 있다”면서 “실제 해당 시계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속여 판매 글을 올리면 인터넷 사기를 의심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매일경제는 다른 경찰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계를 위조해 판매하는 경우, 진품을 직접 받은 사람이 판매하는 경우, 제조업체가 청와대를 통하지 않고 우회 판매하는 경우 등을 놓고 조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재인 시계’는 시중에 판매되지 않는 물품으로, 청와대 행사에 초청된 손님 등에게만 선물로 제공한다. 미리 주문해 쌓아놓고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주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지난달 인터넷 중고품 거래 카페 ‘중고나라’ 등 온라인에서 ‘문재인 시계’가 공동구매 형식으로 거래되고 있다는 제보를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시계는 1인당 1개씩 증정되는 것이어서 공동구매식 거래는 불가능하다. 이 시계에 적힌 문 대통령 서명을 허위로 그려 판매하면 형법상 공서명위조 혐의로 입건될 수 있다. 시계에 새겨진 봉황 문양은 업무표장으로 분류되는데 이를 위조하면 공기호위조죄가 적용되며 상표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대통령 시계 위조 제작은 특허권, 상표권 침해 가능성을 넘어 그 자체로 불법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시계를 위조 제작하고 판매에 가담한 혐의(공기호·공서명위조 및 위조 공기호·공서명 행사)로 지난해 4월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아직 몰라? 끼·꿈 핫플레이스 망우역

    아직 몰라? 끼·꿈 핫플레이스 망우역

    서울 망우역 주변이 청년들의 거리 공연, 화가 이중섭 특별전, 그리고 공방거리 축제가 열리는 지역의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서울 중랑구는 망우역 광장에 비가림 캐노피를 설치하고 각종 프로그램을 마련해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문화의 거리로 조성했다고 6일 밝혔다. 거리 공연은 이달부터 오는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이용객에 따른 연령별, 시간대별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지역 내 우수 공연단체인 더 광대 연희단을 비롯한 투엔티스, 구수경, 애니, 세움컴퍼니, 에코브릿지힐링컴퍼니, JT매직퍼포먼스 등 젊은 거리예술 공연팀들이 나서 볼거리를 선사한다. 망우역 광장에 인접한 중랑아트센터에서는 8일부터 10월 28일까지 ‘이중섭과 그의 시대’(그림)를 주제로 이중섭의 진품 그림들을 관람할 수 있다. 이중섭은 중랑구 내 망우역사문화공원(망우묘지공원)에 안장돼 있어 그의 탄일과 기일이 있는 9월을 맞아 전시를 준비했다는 설명이다. 망우역 2번 출구 앞 ‘상봉공방거리’에서는 20여명의 공방 작가들을 중심으로 공방 체험 프로그램과 버스킹 공연, 프리마켓이 열린다. 도자기 액세서리, 패브릭 소품, 양말 인형 등 다양한 핸드메이드 제품을 구경할 수 있고, 캘리그래피와 액세서리 만들기와 같은 프로그램도 체험할 수 있다. 마술쇼 등도 준비돼 있다. 16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열린다. 나진구 중랑구청장은 “망우역 문화의 거리는 젊고 생기가 넘치는 청년 아티스트와 주민들의 창작 공간으로 조성하고 있다”면서 “문화적 재능을 이웃과 나누는 문화 커뮤니티를 확대해 문화예술의 끼가 넘치는 광장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이은미의 뮤지엄 천국]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백제관음

    지난해 런던에 있는 영국박물관을 찾았다. 덴마크국립박물관 객원연구원으로 2년 동안 유럽에 머무르면서 한 번은 가보리라 작정했던 터였다. 세계 문명을 보여 주는 전시실 사이를 거닐다가 일본실에 들어서면서 예기치 못한 만남에 놀랐다. 전시실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아 주는 늘씬하고도 우아한 자태의 부처님, 일본 호류지(法隆寺)의 백제관음이 아닌가. 오래전 일본 나라현 한적한 동네의 유서 깊은 절에서 만나 시선을 사로잡았던 그 불상이 틀림없다. 설명문을 보니 한자로 백제관음입상(百濟觀音立像), 영어로 구다라 관음상이라고 정확하게 이름이 적혀 있다. ‘구다라’는 일본에서 백제를 부르는 말이다. 어떻게 일본이 자랑하는 국보급 불상이 영국박물관 일본 상설실에 전시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영국박물관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박물관이라 해도 그것은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이 의문은 설명문을 읽으면서 허망하게 풀렸다. 이 불상은 ‘진품’이 아닌 ‘복제품’이었다. 비록 1930년쯤에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가짜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영국박물관은 일본실에서 만나는 첫 작품으로 이 복제품 불상을 전시했을까. 일반적으로 박물관의 본질은 유물에 있다고 한다. 진짜 유물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전시의 정수를 맛보게 해 주고 전시의 명성을 좌우한다. 유럽에서도 수준 높은 일본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진 영국박물관이다. 백제관음은 누가 어디에서 제작했는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이 불상을 전시실 입구에 전시함으로써 이러한 제작지에 관한 논란을 뛰어넘어 고대 일본의 문화가 아시아 주변국과의 교류와 영향 속에서 성립했음을 선명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백제관음 앞에는 18세기에 만들어진 나전칠기 시계도 전시돼 있었다. 이는 일본의 근대문화가 고대 아시아 대륙과의 교섭을 바탕으로 하는 전통의 토대 위에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여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 준다. 전시실 입구의 두 전시물은 일본 문화가 세계와의 교류 속에서 성립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전시의 기본 의도를 상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선택인 셈이다. 소위 ‘일본적인’ 아우라를 발산하고 있는 미술 명품을 진열하던 과거의 일본실과는 사뭇 다른 접근이다. 이 도입 전시물을 지나면 일본의 역사가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순으로 다양한 유물을 통해 다차원적으로 펼쳐진다. 외국 박물관 일본실이나 중국실에 비해 빈약한 한국실에 관한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수준 높은 한국 문화를 보여 주기에는 유물의 양과 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영국박물관 일본실의 사례를 보면 우리 문화를 해외 박물관에서 외국인들에게 이해시키는 데 꼭 여러 점의 국보급 진품이 동원돼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 준다. 박물관 전시는 전시물을 통해 맥락을 만들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교육적이고도 정치적인 장이다. 유물이 주인공인 전시회도 있지만 유물이 보조 수단인 전시도 성공적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우리라면 한국 미술 전시회에 중국에서 만든 논란이 있는 불상을 전시회 프롤로그에 내세울 수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영국박물관 일본실 전시를 보고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였으면 높였지 ‘일본 문화는 한국의 아류’라고 생각한 관람객은 아마 한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 문화 중심주의는 박물관의 전시 기획자들이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국박물관 전시도 일본인이 아니라 아마도 영국인이 기획했기에 객관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 법원, ‘미인도 논란’ 천경자 화백 유족 재정신청 ‘기각’

    법원, ‘미인도 논란’ 천경자 화백 유족 재정신청 ‘기각’

    고(故) 천경자 화백 유족 측이 ‘미인도’를 진품이라는 검찰 수사결과에 반발해 재정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서울고법 형사28부(부장판사 김필곤)는 천 화백의 유족이 검찰 수사결과에 반발해 낸 재정신청을 기각했다고 31일 밝혔다. 법원 관계자는 “재정신청을 하며 추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검찰에 기소를 명하기가 충분하지 않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재정신청은 검찰에 낸 고소·고발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법원에 그 결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로, 재판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법원이 검찰에 공소 제기(기소) 명령을 내린다. 천 화백의 차녀 김정희(63)씨는 작년 4월 ‘미인도가 가짜인데 진품이라고 허위 사실을 퍼뜨렸다’며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 등 관련자 6명을 고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그해 12월 미인도가 진품이라고 결론 내리면서 마리 관장을 비롯한 관련자 5명을 무혐의 처분하고 미술관 전 학예실장 정모씨만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에 유족 측은 항고했지만, 서울고법이 받아들이지 않자 ‘무혐의 처리된 이들도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취지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우환 그림 위조 화랑주 징역 7년 “시장 혼란·명예 훼손”

    이우환 그림 위조 화랑주 징역 7년 “시장 혼란·명예 훼손”

    이우환 화백 작품의 위작을 그려 판매한 화랑주와 화가에게 중형이 선고됐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1부(부장 나상용)는 24일 이 화백 작품을 위조해 팔아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로 기소된 화가이자 갤러리 운영자 김모(59)씨에게 징역 7년의 중형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김씨의 제안을 받고 이 화백의 위작을 그려 서명까지 위조한 화가 박모(57)씨에게도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범행으로 국내 미술품 시장에 극심한 혼란이 초래됐고다. 이우환 화백은 명예 손상과 상당한 정신적 손해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위작을 진품으로 믿고 구매한 피해자들도 재산상의 피해를 봤고, 피고인들의 범행 규모가 드러나지 않아 미술계 종사자들이 직·간접 피해를 볼 가능성을 고려하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다만 박씨에 대해선 “범행 일부를 자백하고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한 점, 김씨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을 감안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공범으로 기소된 부인 구모(46)씨에 대해선 “미술품에 문외한이고, 김씨가 문제의 그림을 다 진품이라고 주장한 만큼 피고인이 위작 사실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김씨와 박씨는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이 화백의 ‘점으로부터’, ‘선으로부터’ 등을 모사해 총 9점의 위작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이 중 일부를 갤러리나 개인 소장자 등에게 총 52억원에 팔아넘긴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가 이를 통해 개인적으로 취한 이득은 20억원으로 추산된다. 재판부는 이들이 만든 위작 중 3점에 대해선 ‘박씨의 위작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감정 결과를 토대로 공소사실에서 제외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진품이라던 덕종어보, 이완용 아들이 제작한 짝퉁

    진품이라던 덕종어보, 이완용 아들이 제작한 짝퉁

    문화재청이 미국으로부터 돌려받았다며 공개한 ‘덕종어보(德宗御寶)’가 진품이 아닌 모조품으로 확인됐다. 18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에 따르면 문화재청이 2014년 미국으로부터 환수받았다고 밝힌 덕종어보는 1471년 제작된 진품이 아닌 1924년 제작된 ‘모조품’ 임이 드러났다. 덕종어보 진품은 여전히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덕종어보는 1471년 조선 성종이 아버지 덕종을 추존하기 위해 만든 의례용 도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날 “해당 덕종어보는 1471년이 아닌 1924년에 제작된 것이 맞다”며 “당시 진품이 분실되자 따로 만든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환수 직전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후 1924년자 기사를 보고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문화재청은 2014년 12월, 미국 시애틀 박물관으로부터 덕종어보를 환수 받았다고 발표했다. 문화재청은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덕종어보 반환문제를 지난 7월부터 시애틀 미술관과 직접 협의를 진행했다”며 “2015년 3월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기증자 유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반환받아 국민에게 공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실태조사를 벌여 덕종어보가 진품인 것을 확인했다”며 재차 진품임을 강조했다. 덕종어보는 1924년에 분실됐다. 이는 1924년 당시 언론의 보도로 확인됐으나 문화재청은 해당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진품을 반환받았다고 발표한 것이다. 게다가 문화재청이 진품이라고 발표한 모조품은 1924년 진품이 분실된 직후 대표적 친일파인 이완용의 차남 이항구가 지시해 만들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항구는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과 관련한 사무를 담당하던 기관 ‘이왕직’에서 예식과장으로 재직했고,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된 바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19일부터 10월 29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Ⅱ에서 ‘다시 찾은 조선 왕실의 어보’ 특별전시를 열 예정이다. 특별전시 품목인 ‘덕종 상존호 금보(德宗上尊號金寶)’, 즉 덕종어보는 2015년 환수 문화재로 명단에 올랐다. 그동안 공식석상에서 1471년 제작된 진품이라 발표한 문화재청은 이번 전시회 자료에는 이를 슬그머니 ‘1924년 재제작품’으로 명시해놓았다. 2015년 환수 당시 ‘진품’이라며 대대적인 홍보를 펼쳤던 데 대해선 아무런 해명도 덧붙이지 않았고 특히, 친일파가 제작한 모조품이라는 사실 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에 문제를 제기한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라고 성토했다. 혜문 대표는 “2014년 문화재청이 덕종어보를 시애틀미술관으로부터 돌려받았다고 해서 분실된 진품이 반환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1924년 도난 사건 이후 제작된 모조품을 반환 받고서는 그 경위를 해명하지 않은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해당 덕종어보는 1471년이 아닌 1924년에 제작된 것이 맞다”며 “당시 진품이 분실되자 따로 만든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환수 직전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후 1924년자 기사를 보고서 파악했다고 설명했다. 이항구가 제작한 사실에 대해서도 “그런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친일파가 만든 모조품임에도 특별전시회 품목에 들어간 것에 대해서는 “해당 사실을 파악 한 직후 이번 특별전시회를 통해 바로잡으려는 생각이었다”며 다소 황당한 답변을 내놨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년 전 환수한 조선왕실 ‘덕종 어보’…이완용의 차남 지시로 만든 ‘가짜’

    2년 전 환수한 조선왕실 ‘덕종 어보’…이완용의 차남 지시로 만든 ‘가짜’

    정부가 2015년 미국 시애틀미술관으로부터 돌려받은 ‘덕종 어보’가 조선왕실의 유물이 아닌 모조품으로 드러났다.18일 노컷뉴스는 문화재청이 진품이라고 발표한 모조품은 1924년 진품이 분실된 직후 친일파 이완용의 차남인 이항구가 지시해 만들어진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항구는 일제강점기 조선 왕실과 관련한 사무를 담당하던 기관 ‘이왕직’에서 예식과장으로 재직했고, 지난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도 포함됐다. 문화재청은 환수 당시 조선 제9대 임금 성종이 죽은 아버지 덕종(1438∼1457)을 기려 1471년 제작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사태로 문화재청은 권위와 신뢰도에 큰 타격을 받게 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이날 “지금 남아 있는 덕종 어보는 일제강점기에 분실됐다가 다시 만들어진 것”이라며 “조선미술품제작소에서 분실 직후 다시 제작해 종묘에 안치했다는 기사를 확인했다”고 연합뉴스를 통해 밝혔다. 이 관계자는 “어보를 받아올 당시에는 재제작품인지 몰랐다”며 “다른 어보와 비교하고 분석한 결과, 15세기 유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덕종 어보는 성종이 아버지에게 온문의경왕(溫文懿敬王)이라는 존호를 올릴 때 바친 유물이다. 그러나 1924년 종묘에 사상 초유의 절도 사건이 발생하면서 예종 어보와 함께 모두 5점이 사라졌다. 덕종 어보가 진품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난해에도 제기됐다. 당시 이정호 한국전각협회 이사는 어보에 있는 글씨가 다른 어보와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어보에 새겨진 공경할 경(敬) 자에서 입 구(口) 자 부분을 날 일(日)로 처리한 것은 오류라고 지적했다. 그는 “전각에서 사용하는 서체에 장식이 많기는 하지만, 입 구 자를 절구 구(臼) 자가 아닌 날 일 자로 쓰는 경우는 없다”며 “어보에 있는 따뜻할 온(溫) 자와 보배 보(寶) 자도 서체가 이상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의 주장에 대해 문화재청은 덕종 어보가 진품이라고 밝혔으나, 1년 만에 입장을 뒤집어 오류를 인정했다. 이 덕종 어보는 19일부터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다시 찾은 조선왕실의 어보’에서 공개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정말 외롭습니다. SOS - 제주 이중섭 미술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나는 정말 외롭습니다. SOS - 제주 이중섭 미술관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화가 이중섭(1916-1956)은 외로웠다. 죽을 때까지 혼자였다. 어차피 모든 사람은 외롭게 죽을 운명이라고 낙담하였던 세계적인 조각가 쟈코메티(1901-1966)보다도 더 빨리, 더 고독하게 죽었다. 그가 서귀포 구석진 바람벽, 휘뚜루마뚜루 써 놓았던 시(詩), ‘소의 말’에서도 삶은 그에게 이미 서글프고 그리운 것이 되어 있었다. 한국전쟁의 전화(戰禍)를 피해 원산에서 내려온 그의 가족들은, 1951년 1월부터 12월까지 제주도 서귀포의 무너진 돌담집 한 켠에 자리를 잡는다. 이 곳에서 한라산의 성근 부추를 뜯고, 해초(海草)나 게를 잡아먹는 가난한 생활을 하였지만 두 아들, 아내와 함께하는 모처럼의 단란한 시간도 누린다. 서귀포 생활은 그늘진 그의 운명이 허락한 마지막 행복이었다는 사실을 그때의 그는 몰랐으리라. 제주 이중섭 미술관이다. 이제서야 그의 삶은 주목을 받고 있다. 흔히들 한국의 반 고흐, <소>그림에 빠져버린 민족화가, 온갖 기행을 일삼던 경제관념 없던 미치광이 화가, 담뱃갑 은박지에 그림을 그리던 은지화(銀紙畵)의 선구자 등등 그를 수식하는 용어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외로운 화가였다.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생한 그는, 아버지는 없었으나 어머니, 형, 누이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으며 부유하게 성장한다. 이후 3.1운동 당시 33인의 민족지도자 중 한 명인 이승훈이 세운 오산학교(五山學校)에 진학하면서 그의 삶은 변화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된다. 당시 오산학교는 홍명희, 조만식, 김억, 염상섭 등과 같은 당대 내로라하는 문인과 예술가들이 이끌어가던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명문 학교였다. 더구나 미국 예일 대학에서 수학했던 화가 임용련(任用璉. 1901~ ? )이 미술선생으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1930년대의 서구 미술의 주류 중 하나였던 입체주의와 표현주의에 대한 심도 있는 수업이 이중섭에게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오산학교 졸업과 일본 유학생활 이후, 그의 그림은 입체주의와 표현주의 경계를 넘나드는 야수파적인 매우 강렬한 색채와 선묘 위주의 특이한 조형 감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비록 감각은 서구적이었으나 소재는 민족적인 정서를 담고 있었는데 주로 소, 닭, 어린이, 게, 가족 등의 일상적인 그림을 서정성을 지닌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타내었다. 그의 대표작인 <소>, <흰소>, <투계>, <집 떠나는 가족>, <물고기와 게와 아이들>, <바다가 보이는 풍경> 등은 이렇듯 서구적인 조형성에 한민족 삶의 원형이 확연히 드러나는 작품들로 볼 수 있다. 이중섭의 삶은 한국전쟁의 참화로 인해 모든 것이 변하였다. 그를 아끼며 든든한 경제적, 정서적 후원자였던 어머니와 형, 누이를 고향에 남겨두어야 했다. 또한 ‘아고리’라는 애칭으로 그를 각별히 사랑했던 아내 마사코(山本方)와 두 아들마저 생활고로 인해 일본으로 떠나보낸 뒤 그는 부산과 통영의 부두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게 된다. 극심한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담배곽에 싸여 있던 은박지를 뜯어 그림을 그려야만 했고, 늘 일본의 가족을 그리워했다. 1955년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전시회를 미도파 백화점에서 열게 되었지만 경제적인 여유는 전혀 생기지 않았다. 이후 그는 대구 성 누가 정신병원을 거쳐 1956년 서대문 적십자 병원에서 영양실조로 인한 간장염으로 만 40세에 쓸쓸히 숨을 거둔다. 그의 곁에 남은 것은 처음부터 밀린 병원비 독촉장이 전부였다. 그가 아내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나는 정말 외롭습니다. SOS...SOS...SOS...언제나 건강하고, 다정한 당신의 소식을 들을 수 있다면 기쁘기 그지없겠습니다.....“ <제주 이중섭 미술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제주도 서귀포 일정이 하루 정도 여유가 있다면 2. 누구와 함께? - 가족과 함께 3. 가는 방법은?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이중섭로 27-3 (064-760-3567) 4. 감탄하는 점은? - 이중섭 미술관 주변의 벼룩시장.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미술관 규모로서는 아담한 편. 레플리카(복제화) 외에도 좀 더 많은 진품이 소장되기를 6. 꼭 봐야할 그림은? - 황소 7. 관람 예상 소요시간은? - 약 1 시간 정도.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culture.seogwipo.go.kr/jslee/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제주 올레 6코스, 쇠소깍, 천지연폭포, 외돌개, 소암기념관, 서귀포시기당미술관, 서복전시관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이중섭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추천. 미술관 주변 거리의 벼룩시장이 볼만하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강서구 ‘보물찾기’

    강서구 ‘보물찾기’

    조선 3대 묵죽화가로 일컬어지는 유덕장의 대나무그림, 조선 초기 문신인 강희맹의 할아버지 강회백·아버지 강석덕·형 강희안의 행장(行狀)과 시문(詩文)을 엮어 만든 ‘진산세고’(보물 1290호), 중국 후한 위백양의 저술인 ‘주역참동계’(보물 1900호)….13일 서울 강서구 허준박물관 기획전시실을 찾았다. 역사적 가치가 뛰어난 고미술품과 서적들이 관람객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 강서구가 개청 40주년을 맞아 구민들의 소장품으로 꾸린 ‘강서 보물을 찾아라’ 특별전에 나온 물품이다. 한 관람객은 “국립박물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수준 높은 작품들이 우리 구민의 소장품이라는 데 놀랐다”고 감탄했다. 강서구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지난 2월부터 6개월간 지역민들이 소장한 미술품, 수집품 등을 공모했다. 그 가운데 구를 대표할 만한 물품 170여점을 한데 모았다. 전시는 3부로 구성됐다. 1부 ‘강서의 진품명품’에는 지난 6월 KBS ‘TV쇼 진품명품’ 감정단의 감정을 통해 뛰어난 가치를 인정받은 고미술품이 진열됐다. 한국화, 도자기 등이 고풍스러운 멋을 자아낸다. 2부 ‘강서의 별난 수집가’에는 구민들이 오랫동안 취미생활로 모아 온 특색 있는 수집품들로 가득하다. 수석(壽石), 매킨토시 컴퓨터, 건담 만화책, LP판 등 별난 물품들을 볼 수 있다. 3부 ‘강서의 옛 기록물’에는 강서구의 과거를 확인할 수 있는 사진 작품과 영상물이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옛 그리스도신학대학인 KC대학 설립 초기에 교사로 재직했던 미국인 선교사가 1950~1960년대 강서구 일대를 촬영한 영상 등 희귀 기록물들이 강서구의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 준다. 전시는 10월 8일까지 이어진다. 노현송 강서구청장은 “주민들이 주민들을 위해 마련한 문화예술 행사”라며 “구민이 주인공이 되는 행사를 통해 개청 40주년을 좀더 의미 있게 기념하기 위해 마련했다”고 했다. 이어 “이번 특별전을 위해 각계각층에서 숨어 있던 강서의 보물들을 찾아줬다”며 “강서를 아끼고 사랑하는 구민들이야말로 진정한 강서의 보물”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텅 빈 홍채·인중 표현·스케치선…미인도, ‘천경자 코드’와 달라 위작”

    “텅 빈 홍채·인중 표현·스케치선…미인도, ‘천경자 코드’와 달라 위작”

    “어머니는 위작이 출현할 것을 예견이라도 한 듯 보석 같은 비밀을 숨겨 놓았습니다.”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미인도’가 천경자(1924~2015) 화백의 작품이 맞는지를 놓고 26년째 진위 공방 및 고소·고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천 화백의 차녀인 김정희 미국 몽고메리대 교수가 ‘미인도’가 확실한 위작이라는 증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20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자신이 쓴 책 ‘천경자 코드’를 소개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국립현대미술관과 일부 화랑 대표 및 전문가에 이어 권력기관인 검찰까지 합세해 위작을 ‘진본’이라고 강변하는 희한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며 “1977년(‘미인도’에 표기된 해)의 천경자 진품들과 미인도의 미학적 비교분석 과정에서 독특한 작법의 천경자 코드를 발견해 책을 통해 그 전모를 밝힌다”고 말했다. 작품의 미학적 비교분석에는 미술사학자인 클리프 키에포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 김 교수의 남편인 문범강 조지타운대 교수가 참여했다. 김 교수는 “홍채, 인중, 입술, 밑본 스케치, 그리고 그림을 숟가락으로 문대는 독특한 작법 등 5가지 ‘코드’를 통해 ‘미인도’가 위작임이 확인됐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천 화백은 인물의 홍채를 표현할 때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 긁고 파 들어가듯 표현한 흔적이 확연하지만 ‘미인도’는 단지 두 가지 색이 병렬됐을 뿐이고 안이 텅 비어 있다. 입술을 그릴 때에는 의도적으로 인중을 가르지 않았지만 ‘미인도’에는 인중이 나타나 있다. 입술은 윗입술의 근육 모양을 생략하고 일자로 표현하지만 ‘미인도’에는 인중이 나타나 있다. 천 화백은 밑그림을 다른 동양화가들처럼 목탄 스케치를 하지 않고 처음부터 엷게 붓질을 시작해 서서히 형태가 나타나게 그리는데, ‘미인도’의 경우 날카로운 스케치선이 확인된다. 김 교수는 “천 화백은 여인상의 어두운 목 부분과 눈 사이를 숟가락으로 문대는 방식으로 두드러져 보이게 했지만, ‘미인도’에는 숟가락으로 문지른 흔적이 단 한 군데도 없다”고 설명했다. 이번 책 출간으로 천 화백 유족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에 벌어지는 진위 공방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미인도’의 제작기법이 천 화백의 양식과 일치한다고 발표했다. 유족 측은 이에 불복해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를 제기했지만, 검찰이 기각결정을 내렸다. 이에 김 교수 측은 지난 6월 1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청기와 얹은 국기원… ‘시대극 단골’ 허바허바 사진관

    [2017 서울미래유산 그랜드투어] 청기와 얹은 국기원… ‘시대극 단골’ 허바허바 사진관

    투어 참가자들이 찾은 첫 번째 서울미래유산인 ‘태권도의 메카’ 국기원은 강남구가 생기기도 전인 1972년 대한태권도협회 중앙도장이라는 이름으로 개원했다. 청기와를 지붕에 얹고, 태권도 팔괘 품새를 형상하는 8개의 둥근 기둥을 건물 전면에 배치했다. 강남의 랜드마크였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테헤란로에 국기원의 청기와 지붕만 보였지만 지금은 강남에서 가장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라는 평가를 받는 신세가 됐으니 격세지감이다.‘국기’(國技)라는 용어는 국제태권도연맹(ITF)을 창설한 최홍희 총재가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는 박정희 정권을 비판하다 캐나다 망명길에 올랐다. 박 전 대통령은 ‘국기 태권도’라는 휘호를 내렸는데 우리나라가 주도하는 세계태권도연맹(WTF)에 가입한 모든 도장에 걸려 있다고 한다. 진품은 국기원 연수원장실에 보관돼 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이 됐고, 200개가 넘는 나라에서 1억명이 즐기는 한류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좁고 낡은 시설은 국기원을 찾는 전 세계 태권도인에게 적잖은 실망감을 준다. 국기원과 정부, 서울시, 강남구가 지난해부터 국기원 명소화 사업을 추진 하고 있으나, 500억원에 이르는 재원 조달 문제로 난항 중이다. 두 번째 서울미래유산인 허바허바사진관은 1959년에 개업해 58년간 영업을 이어 오고 있다. 을지로2가에서 개업했고, 1985년 지금의 자리에 강남점을 열었지만, 을지로점이 2011년 폐업해 강남점이 본점이다. 1960년대부터 시대를 재현하는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등장한다. 허바허바라는 상호는 ‘빨리빨리’를 뜻하는 영어에서 왔다고 하는데, 진주만을 뜻하는 ‘펄 하버’에서 왔다고도 한다. 한창 때에는 서울 시내에만 5개의 지점을 개설할 만큼 명성을 누렸다. ‘허바허바 사장’이라는 초창기 상호가 이색적이다. 1970~80년대까지 사진의 현상과 인화, 확대는 ‘DP점’에서 맡았는데 촬영 장비를 갖춘 스튜디오를 ‘사진관’이라 했고, 일반 사진관보다는 좀더 큰 규모의 스튜디오나 전문성을 가진 사진관은 ‘사장’(寫場)이라는 말을 썼기 때문에 생긴 상호라고 한다. 박정아·이지현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서울미래유산연구팀
  • 문정왕후·현종어보 드디어 반환…문 대통령, 허리 굽혀 인사

    문정왕후·현종어보 드디어 반환…문 대통령, 허리 굽혀 인사

    6·25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가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왔다. 취임 이후 첫 방미에 나섰던 문재인 대통령은 2일 오후 문정왕후어보와 현정어보와 함께 귀국했다. 어보(御寶)는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공항에서 귀국한 어보를 향해 허리 굽혀 인사했다. 문화재청 관계자가 어보를 옮기는 모습을 보며 김정숙 여사와 함께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주미 한국대사관은 워싱턴DC의 대사관저에서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 환수식을 열고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한국에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 어보는 한국 고미술 수집가인 로버트 무어에게 입수됐다. 로버트 무어는 2000년 LA카운티박물관에 문정왕후어보를 팔았고, 현정어보는 소장해 왔다. 문화재청은 2013년 두 어보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이를 도난품으로 판단해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에 수사를 요청했고 진품 확인·법적 소송 등의 절차를 거쳐 2015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내 반환이 결정됐다. 그러나 최근까지 후속 절차가 지지부진하다가 이번 문 대통령 방미를 기해 돌아오게 됐다. 어보 반환 과정에는 문 대통령의 방미 수행단에 포함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역할이 컸다. 문화재청은 “이르면 오는 8월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두 어보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김서연 기자 wk@seoul.co.kr
  • 문정왕후·현종어보, 文대통령과 함께 내일 귀국

    문정왕후·현종어보, 文대통령과 함께 내일 귀국

    6·25 때 미국으로 불법 반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정왕후어보(왼쪽)와 현종어보(오른쪽)가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2일 귀국한다. 어보(御寶)는 왕실의 정통성과 권위를 상징하는 의례용 도장이다.주미 한국대사관은 29일(현지시간) 오전 11시 워싱턴DC의 대사관저에서 문정왕후어보와 현종어보 환수식을 열고 대통령 전용기 편으로 한국에 돌려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고미술 수집가인 로버트 무어는 이 두 어보를 입수했다가 문정왕후어보는 2000년 LA카운티박물관에 팔았고, 현정어보는 소장해 왔다. 2013년 두 어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문화재청은 도난품으로 판단하고 미 국토안보수사국(HSI)에 수사를 요청했다. 진품 확인, 법적 소송 등 절차를 거쳐 2015년 한·미 정상회담에서 국내 반환이 결정됐지만 최근까지 후속 절차가 지지부진했다. 문정왕후어보는 명종 2년(1547년)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에게 ‘성렬대왕대비’(聖烈大王大妃)라는 존호(尊號·덕을 기리는 칭호)를 올린 것을 기념해 제작했다. 가로·세로 각 10.1㎝, 높이 7.2㎝ 크기로 금으로 제작됐다. 거북 모양 손잡이가 달렸다. 현종어보는 효종 2년(1651년) 임금의 맏아들인 현종이 왕세자로 책봉됐을 때 제작했다. ‘왕세자지인’(王世子之印)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재질은 옥이며, 문정왕후어보보다 약간 더 크다. 문화재청은 앞서 “이르면 오는 8월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두 어보를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정준모의 영화속 그림 이야기] 영화 ‘모데카이’와 화가 고야의 이중성

    미술품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일 중 하나는 우연히 손에 들어온 그림이 갑자기 유명작가의 그림으로 밝혀져 ‘일확천금’을 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이런 일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흔한 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의 정치가나 관료들도 그림이 갖는 문화적 가치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세금을 부과하거나 재벌들을 옥죄기 위해 그림, 미술품을 생각한다. 범죄영화를 가장한 코미디 스릴러영화라 할 수 있는 ‘모데카이’(2015)도 미술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영화라는 점에서 동서의 그림에 관한 생각은 같은지도 모르겠다.영화는 스페인의 거장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 고야(1746~1828)의 그림을 차지하기 위해 쫓고 쫓기는 내용이다. 그림보다는 가볍고 능청스러운 주인공 모데카이를 연기하는 조니 뎁의 활약이 돋보이는 코미디물이다.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미술품은 임자를 제대로 만났을 때 예술로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천박하고 계산적인 인간을 만나면 미술품은 당장에 세속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고색으로, 시간의 흔적이 담긴 표면 효과만 남게 된다. 즉 현재의 지위를 기호화해서 지금의 지위와 주장이 정당하다는 것을 방증하는 시각적 지위 증거로 사용될 뿐이다. 모데카이는 주인공의 이름인 동시에 영화 제목이다. 그는 영국 귀족 가문의 후손으로 스스로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물려받았다고 여기며 미술품 수집을 즐긴다. 하지만 이미 몰락해 재정은 파탄이 났고 대저택은 오늘내일 경매로 넘어갈 형편이다. 그는 그저 자신 외에는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는 이기적인 인물이다. 영화는 프란시스코 고야가 그렸지만 세상에 공개된 적이 없는 전설 속 그림 ‘웰링턴의 공작부인’이 복원 도중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로 속고 속이며 벌어지는 해프닝이 영화의 전부나 다름없다. 모데카이는 얄밉기 짝이 없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400년 전 소설 돈키호테를 연상시킨다. 그러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당시 지배계급에 대한 비판과 조롱, 풍자에 집중했다면 모데카이는 풍자를 빙자한 재미에만 더 매진하고 있다. 영화는 50년 전에 발표된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원래 소설은 위트와 유머가 넘치고, 통찰력 있는 비유와 묘사가 압도적이라는 평을 받았으나 영화는 글쎄다.영화에 나오는 ‘웰링턴의 공작부인’은 영화를 위해 화가 샐리 드레이에게 주문해 만들어진 가공의 그림이다. 그는 고야의 유명한 ’옷 입은 마하’(1803)를 바탕으로 고야풍의 새로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고야의 진품 역시 영화 속 ‘웰링턴의 공작부인’만큼 사연이 많다는 사실이다. 고야는 ‘옷 입은 마하’를 그리기 3년 전인 1800년 ‘옷 벗은 마하’를 그렸다. 스페인의 실세였던 마누엘 고도이의 주문에 의해 그린 그림인데 당시는 공식적으로 누드화를 금하던 시기였다. 여성의 나신이 그대로 드러난 그림은 신성 모독 논란을 일으켰고, “마하에게 옷을 입히라”는 댓글(?)이 쏟아졌다. 하지만 고야는 원그림을 고치는 대신 ‘옷 입은 마하’를 새로 그렸지만 1813년, 마하 연작이 외설이라는 이유로 종교재판을 통해 압수당하기도 했다. 고야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다. 고야는 스페인 궁정화가의 전통을 이어 세 명의 왕의 초상화를 그린 고전적 의미의 대가이자 주제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시선으로 그 의미를 해체한 최초의 근대적 예술가였다. 32세에 궁정화가가 되기 전 고야의 작품들은 산뜻하고 밝았다. 말년에 들어 소위 ‘검은 그림’을 그린다. 그의 머릿속 환상과 악몽들이 드러난 것은 그가 청력을 잃을 정도로 중병을 앓고 나서였다. 그 후 나폴레옹군의 스페인 침공으로 민족의식이 나타났다고 한다. 그가 시대적인 자각을 통해 화가로서의 자의식을 찾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좀 다르다. 처음에는 권력자들의 초상화로 명예를 얻었으나 스스로 “인간의 과오와 악덕에 대한 비판”을 목적으로 판화집 ‘카프리초스’(변덕)를 발간해 계몽주의자가 되었다. 성직자를 조롱하거나 외설적인 마녀 그림이 문제가 되자 재빨리 판화집을 회수하고 판매 중지로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에 조국 스페인은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프랑스는 스페인을 침략해 페르난도 7세를 폐위하고, 나폴레옹의 형 조세프를 호세 1세로 즉위시켰다. 하지만 곧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영국군이 들어와 페르난도 7세를 복위시키는 등 스페인과 프랑스 사이 반도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고야는 출중한 실력 또는 처세술로 여전히 궁정화가로 일했다. 그는 호세 1세의 초상화를 그려 1811년 훈장을 받았다. 하나 웰링턴 공작이 마드리드에 입성하자 호세 1세의 얼굴을 웰링턴으로 고쳐 바쳤다. ‘비리의 고발자, 정의의 투사’라는 고야의 이미지는 이런 행적 때문에 기회주의자로 비치기도 한다. 그는 부르봉왕조, 종교재판소, 프랑스군, 영국군 모두를 위해 일했고 어느 쪽으로부터도 피해받은 바 없다. 물론 훌륭한 예술가라고 모두 철저하게 대의를 따를 수는 없지만 예술가들이 혁명적인 경우는 대개 예술에 한한다. 특히 고야를 혁명적 인물로 만들어준, 민중의 항거와 권력에 의한 학살을 고발하는 그림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도 알고 보면 1814년에 그려졌다. 즉 프랑스 점령기가 아니라 그들이 물러가고 페르난도 7세가 복위하기 직전, 화가의 친프랑스 행적에 대해 의심이 가해질 무렵 그려졌기 때문에 그 저항의 의미를 의심하게 된다. 스페인 반도전쟁의 도화선이 된 ‘1808년 5월 2일의 봉기’ 즉 ‘도스 데 마요 봉기’와 짝을 이루는 이 그림에서 고야는 보통사람들을 영웅적 순교자 내지는 그리스도와 같은 구원자로 이상화시켜 혁명가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구엘 감보리노가 1813년 제작한 판화를 차용한 것으로, 이후 마네의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 피카소의 ‘한국에서의 학살’에 직접적으로 영감을 주었다. 아무튼 고야의 삶을 돌아보면 사람의 삶이란 완벽할 수 없다는 말에 동의한다고 해도 표리부동함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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