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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더위를 날려주마” 동·서양 스릴러 대격돌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버릴 공포 영화 2편이 다음주 관객들을 찾아간다. 각각 ‘머리카락과 물’,‘피묻은 살점과 도끼’라는 전형적인 동·서양의 공포 코드로 무장한 두 영화는 모두 ‘일상성’을 무기로 했다. 주변에서 떠도는 익숙한 얘기나 실화를 소재로 더욱 피부에 와닿는 공포를 만들어낸다. ●‘셔터’(Shutter) 30일 개봉하는 팍품 웡품·반종 피산다나쿤 감독의 태국 영화 ‘셔터’는 친숙하면서도 지루하게 무섭다.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카메라에 찍힌 혼령’ 얘기를 기본 얼개로 익숙한 공포를 전한다. 영화속 귀신은 전혀 세련되지 않다. 머리를 풀어헤치고 피를 흘리며 땅바닥을 기어 쫓아오는 모습에서는 “내 다리 내 놔∼.”라며 다가오던 ‘전설의 고향’속 여자 귀신을 연상케 한다. 목과 어깨가 뻐근해 고생하는 사람이 지나는 아이로부터 “아저씨는 왜 항상 여자를 등에 업고 다녀요?”라는 말을 듣는다는, 우리가 무서운 얘기로 곧잘 써먹는 설정도 담겨 있다. 재밌는 것은 관객들이 귀신이 나올 타이밍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 귀신이 나오기 전 주인공의 공포에 질린 모습이 먼저 보이면서 관객들은 ‘도대체 어떤 귀신이기에?’라는 생각에 더 소름이 돋고 공포스러움을 느낀다. 영화 상영 내내 쉼 없이 튀어나오는 긴장감, 불안감은 좀체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다. 반면 줄거리는 무척 단순하며, 그 밀도와 연관성도 무척 성글다. 사진작가 턴(아난다 에버링햄)과 연인 제인(나타웨라누크 통미)은 차를 타고 밤거리를 가다 뺑소니를 낸다. 이후 턴이 찍은 사진에는 귀신의 얼굴 형상이 나타나고, 턴의 옛 여자친구와 관련이 있는 대학 동창들이 하나, 둘씩 자살을 하게 된다. 턴은 죽음을 직감하며 제인과 구천을 떠도는 사진 속 귀신이 품은 원한이 무엇인지 쫓는다. 영화는 후반부에 턴의 끔찍한 과거 실체를 보여주면서 무서운 반전으로 이어진다.15세 이상 관람. ●‘아미티빌 호러’(The Amityville Horror) 새달 1일 개봉하는 앤드루 더글러스 감독의 ‘아미티빌 호러’는 ‘나쁜 녀석들’‘더 록’,‘진주만’,‘아마겟돈’ 등을 감독한 흥행의 귀재 마이클 베이가 제작을 맡은 작품이다. 1974년 실제 미국 롱아일랜드 지역 한 저택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관객들은 실화에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고 느낄 때 공포는 한층 가중된다.”고 마이클 베이는 말하지만, 영화 속 공포는 그리 극적이지 않다. 아마도 실화에서 오는 한계인 듯. 영화는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주류를 이뤄 온 ‘슬래셔 무비’의 원칙을 따르기보다 인물의 심리 변화를 공포의 원천으로 이용한다. 팔과 다리가 잘리는 모습 등 특수효과는 없지만, 갑자기 나타나 놀라게 하는 끔찍한 장면 등이 충분한 공포감으로 다가온다. 미국 북동부의 작은 마을 아미티빌. 집안에서 일가족이 모두 총에 맞아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죽이라고 시켰다.”고 말하는 큰 아들. 그로부터 1년 뒤, 이 집으로 세 아이를 둔 여자 캐시(멜리사 조지)와 그녀의 새 남편 조지(라이언 레이놀즈)가 이사를 온다. 그러던 중 이들 앞에 죽은 사람이 나타나고 악령의 소리가 들리는 등 과거 살인 사건 때와 유사한 일들이 발생한다. 딸 ‘첼시’의 눈엔 ‘조디’라는 아이 귀신이 보이고, 사람 좋던 조지는 점점 광기에 휩싸여 간다.15세 관람.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의회] 정성영 동대문구 의원 ‘중국 견학·기행 일지’ 눈길

    [의회] 정성영 동대문구 의원 ‘중국 견학·기행 일지’ 눈길

    지방의회 한 의원이 해외연수를 둘러싸고 지역언론 보도로 불거진 주민들의 오해를 잠재우기 위해 홈페이지, 그것도 주민 게시판에 그 경과를 일지 형식으로 올려 눈길을 끈다. 서울 동대문구의회 정성영(답십리3) 의원은 20일 ‘의회에 바란다’에 ‘해외연수를 다녀와서-7편’을 내보냈다. 이날 글에서 그는 “우리나라는 아시아 경쟁국들의 저가(低價) 생산품 공세에 밀려 경제난의 골이 깊어지는데, 막상 중국에서 보니 한국인 관광객이 물결을 이루어, 결국은 중국 경제발전에 밑거름이 된 듯해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정 의원은 이 글의 마지막에 “상하이(上海)로 가는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으로 갔는데 왜 그리도 시끄러운지….”라면서 “곳곳에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 사투리가…. 마치 국내 시장통에 온 느낌이었다.”고 덧붙였다. 점심식사 뒤에는 의무 관광코스라고 하는 진주 판매점으로 갔다고 한다.“가짜에 속지 말자.”는 등 관광객들의 말에 충동구매를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일행과 바깥에서 대화하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표정이 왠지 좋지 않은 것 같았다고 소개했다. 황룡동굴을 둘러보면서 최근 엄청나게 달라진 중국인들의 태도에서 많은 것을 깨우쳤다고 그는 되돌아봤다. 중국인들의 상술도 상술이지만, 화장실 문화도 확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면 “우리나라를 따지면 재래시장의 경우 심각하게 보였다.”면서 “무엇이 구민들에게 필요한가를 먼저 생각해 보자.”고 동료 구의원들에게 권유했다. 상하이의 ㈜보광철광을 견학하며 기술적 측면에서 아직은 한국의 저력이 대단함을 확인하고는 앞으로 더 발전시켜 세계 최고를 유지하는 동시에 북한도 따라 배워 통일한국의 그날이 앞당겨졌으면 하는 바람도 곁들였다. 구이린(桂林)에 있는 관음동굴의 경우 입구부터가 관광객들을 끌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고 말했다. 모노레일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강원도 삼척의 환선굴을 비교하면 노약자들은 접근하기 힘들게 해놓아 속이 상했단다. 자연상태를 보존하면서도 관람객 편의를 꾀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의원은 “무조건 해외연수를 나쁜 의도로 몰아붙이는 일부 시각을 바로잡아 불필요한 소모전을 없애기 위한 고육책이자, 시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일지를 올리게 됐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꼭꼭 숨어라 과학 보인다”

    ‘극과 극은 통한다.’미술에 혁명적 변화를 불러온 계기로는 16세기 원근법 도입,19세기 카메라 발명,20세기 초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등 과학이론의 발달,20세기 후반 컴퓨터의 등장을 꼽을 수 있다. 즉 인간 감성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는 미술작품이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과 맞물려 진보를 거듭한 셈이다. 세계적인 명작 속에 녹아있는 과학을 들여다본다. ●기하학을 모르면 화가도 아니다 15∼16세기 르네상스시대 초기에 활동한 화가 지오토의 ‘죄없는 학살’은 3차원적 깊이감, 즉 원근법을 살린 최초의 작품이다. 기존의 미술작품은 대다수 문맹자들에게 성서의 내용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돼 오로지 신에 대한 신앙심을 표현했을 뿐, 사실적인 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지오토의 원근법은 초보적인 수준이었으며 자로 잰 듯한 수학적 원근법은 마사초에 의해 제시됐다. 이후 르네상스시대에는 원근법이나 비례법 등 기하학의 원리를 모르고는 화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영향을 크게 미쳤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은 이같은 기하학적 원리를 절묘하게 활용, 예수와 12명의 제자를 효과적으로 배치해 구성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었다. 또 ‘모나리자’에서는 기존의 정밀한 선을 활용한 원근법 대신 사물의 경계를 흐릿하게 처리해 원근감을 표현하는 공기원근법이 처음으로 사용됐다. 이 때문에 모나리자의 신비감이 더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원리가 미술작품 전체를 지배한 것은 아니다. 수학적 원근법을 본격적으로 도입한 프란체스카의 ‘성스러운 대화’의 경우 그림 중간에 위치한 달걀이 원근법에 맞지 않게 크게 그려졌다. 이는 성모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됐다는 성스러운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뜻으로 풀이된다. 즉 예술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때론 과학을 희생시키기도 한 것이다. ●미술가의 눈은 곧 과학자의 눈 17세기 바로크시대에 접어들면서 화가들은 선과 색채 대신 빛과 어둠이 주는 광학적 효과를 작품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다. 바로크의 거장 카라바조는 ‘의심하는 도마’ 등에서 빛을 극적으로 활용해 인간의 심리상태까지 묘사했다. 이어 램브란트의 ‘야간순찰’도 작품에 역동감을 불러오는 매개체로 빛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금은 이 작품이 명작으로 손꼽히지만 당시에는 작품 외적인 요소 때문에 램브란트가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순찰대원들의 얼굴은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한 후원자들이었으나 그림이 완성된 후 얼굴이 어둠에 가려 제대로 드러나지 않자 후원금을 돌려달라는 소동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는 평가를 받는 베르메르의 ‘진주귀걸이 소녀’도 빛이 들어오면서 뺨과 콧날의 선을 투명하게 처리해 해체함으로써 특별한 아름다움을 연출했다. 이처럼 빛을 포함한 외부세계에 대한 세심한 관찰은 18세기말 영국 풍경화에서 꽃을 피운다. 자연의 현장감을 살리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과학자의 눈을 빌려 대기의 흐름까지 그림에 표현했다. 영국 풍경화의 대부 컨스터블과 영국 최고의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터너 등이 이에 해당한다. ●과학이 어려워지면 미술도 어려워진다 그러나 19세기 카메라의 발명은 이같은 화풍을 위기로 몰아넣었으며 동시에 인상주의를 비롯한 근·현대미술을 낳는 씨앗이 됐다. 마네의 ‘오페라 홀에서의 가면무도회’에서는 16세기 이후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던 원근법이 파괴됐다. 이는 2차원적인 평면에 3차원의 공간을 표현할 수 없다는 회의에서 출발, 미술의 본질을 추구하겠다는 의도였다. 모네는 ‘노적가리 연작’ 등의 작품을 통해 빛에 의해 순간적으로 포착되는 모습을 그려냈다. 모네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형태와 색채가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화폭에 담아내기 위해 한 장소에 14개의 캔버스를 놓고 동시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또 세잔의 ‘생 박토아르 산’에서는 한쪽에서만 들어오는 빛, 한 지점에서만 바라보는 시점 등의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미술에서 고정관념에 대한 의문과 파괴 현상은 20세기 초반 각종 과학이론이 발표되면서 더욱 증가했다. 초현실주의 화가인 달리의 ‘기억의 고집’에서 등장하는 늘어진 모양의 시계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영향을 미쳤다. 즉 시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시간의 속성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보자는 것이다. 또 입체주의 화가인 파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은 X-레이의 등장으로 안과 밖의 구분이 모호해지자 사물을 기하학적으로 해체, 표현한 것이다. 특히 이처럼 과학의 영향을 받는 미술은 20세기 후반 컴퓨터 등 이미지를 시각화할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되면서 과학과 미술의 경계가 사라지기도 했다. 광학적인 착시효과를 이용한 옵티컬아트의 경우 과학이 곧 미술이라는 사조도 만들어냈다.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아인슈타인처럼 새로운 과학적 비전을 제시하는 과학자나 컴퓨터 프로그래머 등이 앞으로 예술가로 성장한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 도움말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국민대 미술학부 겸임교수)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배 가른 아픔보다 심적 고통이 더 커요”

    “배 가른 아픔보다 심적 고통이 더 커요”

    “다른 엄마들은 제왕절개 안 하고도 잘만 낳던데, 제가 유독 인내심이 부족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제왕절개를 하고 나니 시댁에서 ‘사흘 동안 배 앓아서 낳은 사람도 있다.’는 말씀까지 하시더라고요.”지난해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A씨는 자궁수축 주사로 훗배앓이를 하고, 젖이 돌지 않아 고생한 것보다는 심리적인 고통이 훨씬 더 컸다고 털어놓았다. 수십시간 동안 진통을 하다 산모와 아이가 모두 위험할 수 있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제왕절개를 택했지만, 왠지 인위적인 방법으로 아이에게 생명을 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갖게 됐다. A씨는 “병원에서 아기 침대에 ‘제왕절개’라는 표시를 해놓았는데 이걸 보고 어른들이 다들 한마디씩 했다.”면서 “시아버지는 ‘우리 손자보다 머리가 1㎝ 작은 아이도 자연분만이더라.’는 말씀까지 하셨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는 “다들 순산했느냐고 묻는데, 수술을 한 나는 순산 여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정말 속상했다.”고 덧붙였다. 제왕절개 분만을 한 여성들은 정상적으로 아이를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인내심이 부족한 엄마라는 주변의 평가 속에 심한 심리적 위축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일부 산모들은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뒤 출산에 대해 아름다움의 이미지보다 고통이나 두려움을 먼저 떠올렸다. 이런 사실은 한국여성개발원이 만든 ‘출산여성의 건강증진 방안’이라는 연구보고서에서 밝혀졌다. ●“비정상적인 분만, 아이에게 너무 미안” 여성개발원은 33세 이하 여성 가운데 최근 1∼1년6개월 사이에 제왕절개로 첫 아이를 낳은 산모 19명을 상대로 심층면접을 했다.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흔히 자연분만이라 불리는 ‘질식분만’을 한 산모들과 다른 측면에서 심리적인 변화를 겪고 있었다. B씨는 제왕절개로 첫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두고두고 아쉽고 미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질식분만=자연분만=엄마의 의무’라는 생각 때문에 ‘제왕절개=인위적 분만=엄마가 피해야 할 일’로 등식화하고 있었다.B씨는 “자연분만은 어머니가 되기 위한 관문과도 같다고 생각했다.”면서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좋은 품성의 시험과정이라고 여겼는데, 그 경험을 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역시 제왕절개 수술을 받은 C씨는 아이가 밤마다 영아산통을 겪으며 울고 보채는 것이 제왕절개 때문인 것만 같아 불안한 마음마저 든다. 그는 “제왕절개를 한 시각인 밤 9시30분쯤에 자주 우는 통에 아이가 혹시 수술경험을 기억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라면서 “젖을 빨리면서 아이를 첫 대면하고 싶었는데, 거친 조명이 번쩍이고 칼이 보이는 수술실부터 떠올리게 된 사실이 안타깝다.”고 속상해했다. ●아이와 정서적 분리감…모성애 형성 느려 제왕절개를 한 산모는 수술 뒤 마취에서 깨어나는 동안 아이와 분리되는 경험 때문에 “정말 내가 낳은 아이인지 모르겠다.”는 느낌마저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D씨는 마취에서 깨어난 뒤 자기가 과연 아이를 낳았는지도 제대로 분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만 하루가 넘게 진통을 하다 수술을 했지만 분만 이후에도 통증이 지속돼 바로 옆에 있는 아이가 보이지도 않았고, 이 때문에 출산을 했다는 것 자체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실감도 나지 않는 상황에서 아기를 데리고 왔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오히려 우울한 기분마저 들었다.”면서 “몸이 회복되고 조리원에서 아이를 좀 안고 나서야 모성애가 생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E씨는 출산 뒤 우울증을 겪었던 것이 제왕절개로 분만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E씨는 “자연분만을 했다면 아기에게 더 강한 애정이 있어 우울증이 덜 했을 것 같다.”고 했다. ●의료의 질에 실망…아름다움보다는 고통 조사에 응한 대부분의 산모들은 제왕절개로 인해 출산에 대한 인식 자체가 바뀌었다고 응답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자녀를 그만 낳고 싶다는 반응을 보였다. “질식분만은 안해 봐서 모르겠지만, 제왕절개 수술은 사무적으로 와서 마취하고 면도를 합니다. 출산이 아름다운 게 아니라 고통이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마취가 깨지 않은 비몽사몽간에 아이를 만나니 예쁜 줄도 모르겠고, 수술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더 무서워졌어요. 예전에는 출산도 행복한 일이고 잘할 수 있다는 기대가 있었지만, 지금은 무서운 기분뿐이에요.” 제왕절개 수술은 다음 출산에서의 분만방법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모들은 둘째를 낳을 때 어떤 분만법을 택하겠느냐는 질문에 “어차피 진통하다 낳을 거면 처음부터 수술하자.”는 응답과 “첫째를 수술로 낳은 만큼 둘째는 꼭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제왕절개를 한 뒤에도 질식 분만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연구를 진행한 정진주 연구위원은 “특별한 가족력이나 병력이 있는 여성이 아니고서는 제왕절개 분만을 예상하고 미리 준비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의료진도 병원에 미칠 영향을 고려, 분만과정 중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에서 제왕절개 가능성을 논의하고 결정한다.”면서 “이 때문에 구체적인 정보를 얻지 못하고 수술을 받는 산모들의 불안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 연구위원은 “여성의 최소한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분만방법 선택을 위한 교육 및 정보 제공을 활성화하고, 의료기록 평가를 통해 의사가 주도하는 의료환경을 개선하는 것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2006독일월드컵] “수비 빈틈부터 메워라”

    [2006독일월드컵] “수비 빈틈부터 메워라”

    ‘Again 2002-이제부터 시작이다.’ ‘본프레레호’가 통산 7회,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위업을 달성하며 독일에 안착했다.6회 연속 본선 진출은 지금까지 세계에서 8번밖에 없었을 정도의 대기록이다. 이미 2002월드컵 4강을 이룩한 한국 축구가 사실상 ‘세계 축구 빅10’ 반열에 오른 셈이다. 이에 따라 오는 8월17일 상암벌에서 열릴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최종예선 마지막 경기는 ‘6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과 4강 신화 재현’을 위한 성대한 축제의 장으로 자리매김될 전망이다. 하지만 이러한 객관적 성과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 월드컵 예선을 거치며 본프레레 감독의 순발력 있는 전술 운용의 부재를 비롯해 신구 세대교체, 협회의 지원, 원정경기 무기력 등 많은 문제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다. 일단 공격 라인은 ‘축구 천재’ 박주영(20·FC서울)의 가세로 다양한 전술 및 인력 운용의 가능성을 넓혔다. 박주영은 중앙·좌·우 등 모든 포지션을 소화해내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이미 세계 톱클래스로 손꼽히는 박지성(24·PSV에인트호벤)과 안정환(29·요코하마 마리노스), 정경호(25·광주) 등과의 신구 조화도 잘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중앙 미드필드진과 수비라인의 안정감 부족. 왼쪽 윙백 김동진(24·FC서울)이 회복 기미를 보였지만 유럽 최고 수준의 왼쪽 윙백인 이영표(28·PSV에인트호벤)가 대표팀에서 ‘평범한 오른쪽 윙백’으로만 쓰이는 것과 노쇠한 유상철(34·울산)의 계속 기용 여부도 딜레마다. 더욱이 수비라인은 지난 2002월드컵 ‘홍명보-최진철-김태영’ 스리백을 자꾸 생각나게 할 정도로 안정감이 떨어진다.‘늦깎이’ 김한윤(31·부천)을 발굴해냈듯 흙 속의 진주를 찾는 노력을 계속하는 한편 쿠웨이트전 후반에 실험했듯 ‘스리백’과 ‘포백’의 혼용에 대한 조직력을 다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남은 1년 동안 무엇을, 어떻게 보완하고 어떤 선수를 발굴해 얼마만큼 단련시킬지에 따라 내년 7월 이후 한국 축구가 받아들 월드컵 성적표가 달라질 것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급진주의는 서양 자유주의 수준”

    “한국 급진주의는 서양 자유주의 수준”

    “한국인들 사이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이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심리가 있는 것 같은데 사실과 다르지 않으냐.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은 어느 쪽이 우선권을 가질 것이 아니라 공존해야 한다.” 지난 5월1일부터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실의 인턴인 정책비서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 크론(28)의 지적이다. 그는 “경제 발전을 위해 노동자 계층 등 소수자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침묵시키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도 위험하다.”면서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인 재벌과 노동자, 학생, 시민단체들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족주의와 경제발전은 공존해야” 크리스의 한국 경험은 2001년부터 2년 동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학원의 영어강사를 한 데 이어 이번이 두번째다. 크리스는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뒤 빅토리아 대학 정치학 박사과정에 있는 ‘정치학도’다.‘문화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도 쓴 그는 한국사회의 유교문화, 권위주의, 샤머니즘, 시민사회운동 등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한다. 그가 임종석 의원과 인연을 맺은 계기는 국제대학원 인터넷에 뜬 ‘외국인 인턴 채용’이라는 광고였다. 크리스는 “채용 전에는 임 의원이 누군지 몰랐는데, 나중에는 그를 몰랐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며 386의원인 임 의원의 유명세를 평가한다. 그는 한국에서 임 의원은 ‘레디컬(급진적)하다.’고 평가받는다고 지적하자 “한국사회에서 레디컬은 서양식으로 볼 때 자유주의자이며 개혁적인 수준이고, 인텔리전트하다.”고 평가한다. 인텔리전트하다는 표현은 ‘한국 사회의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부연했다. ●“한국 정치사중 광주학살 가장 경악스러워” 2004년 뉴질랜드 의회의 인턴을 했던 그는 “한국과 뉴질랜드의 정치환경이 아주 유사하다.”고 밝혔다. 그는 “뉴질랜드도 1996년 이전에는 행정부가 발의한 법안들이 의회를 무사통과했지만, 지금은 야당이 강력히 반대한다.”면서 “한국도 1992년 민주화 이후로 강력한 야당에 부딪혀 곤란을 겪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정치사 중 ‘광주학살’이 가장 경악스러웠다.”면서 “그러나 건국 50년 만에 경제적 도약을 이뤄내고 학생·시민들이 민주주의 완성을 위해 열정적으로 노력하는 모습에 감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의 국회의원을 목표로 하는 그는 “한국에 대한 이해·경험이 뉴질랜드 한인사회의 선거운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웃는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마광수의 섹스토리] ② 하렘의 왕이되어

    [마광수의 섹스토리] ② 하렘의 왕이되어

    나는 꿈 속에서 하렘(harem)의 왕이 되어 있었다. 왕비도 내가 하렘의 후궁들과 섞여서 노는 것을 기분 나빠하지 않았고, 자신도 즐거이 다른 궁녀들처럼 마조히스틱한 열락에 동참해주는 것이었다. 어마어마하게 큰 하렘의 한가운데에는 작은 호수만 한 크기의 욕탕이 마련돼 있었다. 투명한 천창(天窓)이 너무 높아 하렘은 마치 야외에 만들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주변에는 잘 손질된 원추형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었고, 나무들마다에는 탐스럽게 잘 읽은 열대 과일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바닥 여기저기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이 한껏 교태를 부리며 암술과 수술을 뻗쳐올리고 있었다. 욕탕의 바닥과 가장자리는 황금과 백금과 옥으로 만든 타일로 덮여 있었는데, 수십 명의 남녀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몸을 비비꼬면서 애무하는 모습이 모자이크되어 있었다. 욕탕 바깥의 바닥은 수천 개의 두꺼운 거울로 모자이크되어 있었고, 사이사이에는 자주색과 핑크색을 주조로 하는 화려한 빛깔의 페르시아 융단이 깔려 있었다. 욕탕의 지붕은 여섯 개의 육각형 기둥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었는데, 기둥들은 모두 투명한 크리스털로 만들어져 있었다. 기둥 옆에는 여러 남녀들이 애무하는 모습으로 조각된 수정 스탠드가 있어 은은한 오렌지색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황금으로 된 욕탕의 지붕은 여인의 풍만한 유방 모양을 하고 있었고, 젖꼭지 부분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 열대 오후의 나른한 햇살을 갖가지 찬란한 빛깔로 반사시켜 주고 있었다. 지붕의 안쪽은 모자이크로 만들어진 거울로 되어 있어, 여러 개의 거울들이 서로를 끊임없이 반사시켜 무수히 신비로운 상(像)을 만들어냈다. 욕탕 위의 높디높은 천창에는 루비와 사파이어 등 갖가지 보석들로 만들어진 샹들리에들이 꽃 모양의 전구들을 머금고 뻗어내려와, 흡사 성긴 은하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욕탕은 기분좋은 온도와 향기나는 물로 채워져 있었다. 그리고 욕탕 한가운데서는 핑크빛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분수가 물을 방울방울 뿜어올리고 있었다. 분수는 위로 높이 쳐든 여인의 엉덩이 모양을 하고 있었고, 항문에서 서서히 흘러나오는 물방울들은 물이 아니라 꿀맛이 듬뿍 스민 향기로운 술이었다. 욕탕 주변에 있는 만개한 꽃들과 잘 익은 과일에서 풍겨나오는 감미로운 냄새, 그리고 분수에서 흘러나오는 술의 고혹적인 알코올 향이 뒤섞이면서, 욕탕 안은 더욱 신비롭고 몽롱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욕탕 밖에서는 수십 명의 벌거벗은 여인들이 나태한 자세로 누워 오후의 햇살을 즐기고 있다. 그네들 가운데는 서로 얽히고설켜 애무하면서, 바닥의 거울이 반사해 내는 자신들의 황홀한 나신을 도취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여자들도 있다. 여인들은 뒷굽의 높이가 15㎝는 됨직한 황금빛 뾰족샌들을 신고 있을 뿐인데, 가지가지 색깔의 탐스러운 머리카락들이 길게 웨이브지며 흘러내려와 하얀 유방과 곱슬거리는 음모와 탐스럽게 부풀어오른 엉덩이들을 가려주고 있다. 한 여인이 길디 긴 손톱을 부챗살처럼 길게 뻗어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넘기자, 보름달 같은 유방의 농염한 자태가 드러난다. 젖꼭지에는 둥근 황금고리가 꿰어져 있고, 고리 아래로 늘어진 체인 끝에 매달린 금방울들은 살랑살랑 흔들거리며 명량(明亮)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탕 안에는 수십명의 여인들이 알몸뚱이로 물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앉아 있다. 대리석으로 깎아 빚어 만든 듯한 늘씬한 다리들은 물 아래에서 뒤엉켜 서로를 마찰해주고 있고, 길고 가느다란 색색가지 음모들이 물풀처럼 살랑대며 춤을 추고 있다. 중앙의 분수에서 느릿느릿 뿜어져 나오는 작은 물방울들이 여인들의 몸을 간질인다. 그로테스크한 색조로 짙게 화장한 얼굴들과 껍질을 벗긴 핑크빛 수박덩어리 같은 유방들이 반쯤은 물에, 반쯤은 향기로운 술에 젖어 반짝거리고 있다. 여인들은 가끔씩 유방에 방울방물 맺혀 있는 술을 서로가 혀끝으로 천천히 핥아먹으면서 아리따운 추파를 흘리고 있다. 욕탕 바깥의 페르시아 융단 한 모퉁이에서는 십여명의 여인들이 서로 화장을 해주고 있다. 한 여인이 상대방 여인의 속눈썹을 은색의 펄(pearl) 마스카라로 한 올 한 올 정성껏 올려주고 있는 게 보인다. 은빛 콘택트 렌즈를 낀 여인의 눈동자는 은색의 펄 속눈썹과 함께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발산한다. 여인은 붉은 포도주 색깔의 립스틱이 자기의 입술에 진하게 발라지는 동안 입술을 백치처럼 멍하니 벌리고 있다. 얼굴화장이 끝나자 몸 화장이 시작된다. 흑장미색의 립스틱이 양쪽 유두에 칠해지고, 짙은 꽃분홍색의 액체 파운데이션이 하얀 유방 위에 부드러운 동심원을 그리며 칠해져 나간다. 배꼽 주변에도 물감을 칠한 후, 이번에는 두 다리 사이의 거웃이 손질된다. 손가락 길이만큼 길러 황금빛 매니큐어를 칠한 긴 손톱을 조심스럽게 움직이면서, 상대방 여인의 음모를 정성껏 손질해 주고 있는 궁녀의 손놀림이 곱다. 곱슬거리는 연한 갈색의 음모는 황금빛 손톱이 스쳐지나가면서 화려한 무지개색으로 염색되고, 곧이어 막 세팅한 머리처럼 봉곳이 부풀어 오른다. 음모 손질을 끝낸 궁녀는 상대방 여인의 불두덩에 살짝 입맞춤을 하고 나선, 음순에는 진주로 된 음순걸이를, 항문에는 묘안석(猫眼石)으로 된 항문걸이를 걸어준다. 그런 다음 두 몸이 한데 엉켜 우아하게 요동을 친다. 렘의 나무 사이를 거닐며 열매를 따거나 꽃을 꺾고 있는 여인들도 있다. 그들은 다른 여인들과는 달리 투명한 옷감으로 된 드레스를 입고 있는데, 걸음을 걸으면서 몸의 각도를 바꿀 때마다 젖가슴의 볼륨과 음모의 반짝임, 하늘거리는 허리선과 부드러운 둔부의 곡선이 잠자리 날개 같은 옷감을 통해 보일 듯 말 듯 내비친다. 그네들 역시 맨발에 굽 높은 샌들을 신고 있다. 타원형을 이루며 둥글게 아래로 말려들어간 긴 발톱들이 샌들 앞부분으로 나와 있고, 발톱들은 노란색·빨간색·보라색·분홍색·연두색·복숭아색·은색·금색 등 여러 가지 색깔의 매니큐어로 손질되어 있다. 샌들의 앞굽을 발톱 길이에 맞춰 높게 만들었지만, 휘어들어간 발톱들이 워낙 길기 때문에 걸을 때마다 바닥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여인들의 발놀림은 무척이나 느리고 권태스러워 보인다. 과일이나 꽃를 따고 있는 손톱들도 둥글게 말려들어갈 정도로 길다. 갖가지 색깔로 손톱에 칠해진 펄 섞인 매니큐어들이, 일제히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나와 왕비는 카펫 위에 있는 상아 침대에서 푹신한 금빛 보료에 묻혀 나란히 누워 있다. 나는 한 궁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해주는 보디 마사지를 받고 있고, 왕비는 미풍에도 출렁거릴 정도로 얇고 긴 손톱들을 궁녀 두명에게 손질시키고 있다. 보디 마사지가 끝나자 방금 온 몸에 화장을 끝낸 여인이 내게로 천천히 기어온다. 그녀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귀고리·코걸이·팔찌·반지·젖꼭지걸이·음순걸이·항문걸이 등에 매달린 금방울들이 꿈결 같은 소리를 만들어낸다. 여인은 내 앞에 오자 무릎을 꿇고서 내 발에 입맞춘 후, 서서히 혓바닥을 옮겨 나의 온 몸을 혀끝으로 살살 핥아주기 시작한다. 왕비 역시 손톱 손질을 끝내고서 한 궁녀가 해주는 혓바닥 마사지를 받고 있다. 혓바닥 마사지가 끝나자 나는 궁녀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욕탕 안으로 들어간다. 물 속에 반쯤 몸을 담그자 한 여인이 분수로 가서 입 안 가득히 술을 받아 머금고 온다. 그녀의 긴 핑크빛 머리카락과 진주빛 시폰 드레스는 물에 젖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있다.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움직일 때마다 몸에 달라붙은 드레스를 통해 어렴풋이 엿보이는 핑크빛 젖가슴과 연두색 불두덩이 물결치듯 움직이고 있다. 여인은 입 안에 머금고 있는 술을 내 입 안에 흘려 넣어준다. 나는 그녀의 입 안에서 적당히 따뜻해진 술의 향기를 음미하면서 여인의 젖꼭지를 장난치듯 꼬집어 본다. 여인은 적포도주색 매니큐어가 칠해진 긴 손톱으로 나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면서 꿈꾸는 듯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마광수는 1951년 경기 수원 출생 연세대 국문과 졸업(문학박사) 현재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저서 ‘윤동주 연구’ ‘상징시학’ ‘카타르시스란 무엇인가’ ▲장편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알라딘의 신기한 램프’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 전국 평정 ‘싸움소 투스타’

    “‘꺽쇠(1070㎏)’와 ‘범이(950㎏)’를 아십니까.” 경남 의령군 의령읍 만천리 하의효(71)·영효(66)씨 형제가 키우는 싸움소들로 전국의 소 싸움판을 평정한 ‘지존’들이다. 의효씨가 키우는 꺽쇠는 지난달 진주대회까지 8연승을 했으며, 영효씨의 범이는 지난해까지 12연승을 기록하고 있다. 오는 16일 창원대회에 출전할 예정인 범이의 우승이 예상돼 13연승 기록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소싸움은 체급별로 경기를 하며, 울타리를 넘거나, 꼬리를 보이며 달아나면 진다. 체급별 몸무게는 갑종이 731㎏ 이상이고, 을종이 641㎏ 이상, 병종은 570㎏ 이상이다. 하씨 형제는 4대째 싸움소를 키우는 우주(牛主). 그래서 그런지 싸움소를 보는 눈도 남다르다. 싸움소는 우선 눈이 작고, 찢어져 사나운 상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상대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는 것. 다음은 귀가 작고, 뿔 사이 간격이 좁아야 기술을 사용하기 좋다. 그리고 목은 길고 앞 가슴이 넓어야 싸움을 잘한다. 동생 영효씨는 6년 전 경북 청도대회에 나왔던 범이에게 반해 거금(?) 1500만원을 주고 손에 넣었다. 당시 송아지 값이 300만∼400만원이었으니 짐작이 간다. 영효씨는 “송아지티가 남아 있는 범이가 ‘병종’에 출전, 소문난 싸움소를 1시간20분 만에 제압하는 것에 반해 소 주인이 달라는 대로 주고 샀다.”라고 털어놨다. 의효씨가 꺽쇠를 손에 넣게 된 연유는 범이에게 있다. 지난 2003년 10월 창녕대회에 출전한 꺽쇠가 예선에서 범이에게 패하자 실망한 주인이 팔려는 것을 보고 그자리에서 5000만원을 주고 샀던 것. 꺽쇠의 주특기는 ‘뿔걸어 후리기’. 체구와 달리 순발력이 뛰어나 싸움스타일은 속전속결이다. 반면 범이는 뛰어난 지구력과 근력을 이용한 지구전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목감아 돌리기’가 특기지만 상대를 얕보는 버릇이 있어 가끔 주인의 가슴을 졸이게 한다. 이 때문에 지난해 김해대회 예선에서 진주의 ‘대웅’이에게 패할 뻔했다. 20여분간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다 갑자기 달려든 대웅이에게 밀려 넘어졌다가 가까스로 일어나 이겼다. 하씨 형제는 둘을 한 대회에 출전시키지 않는다. 둘이 4∼5차례 맞붙었지만 모두 범이가 이겼다. 이 때문에 범이의 몸값이 최근 2억원 정도로 뛰었다. 주위에서 넘기라는 제의가 있지만 영효씨는 “그동안 쌓인 정 때문에 팔 수 없다.”라며 손사래를 친다. 범이의 훈련은 매일 8㎞씩 걷는 것이며, 몸이 무거운 꺽쇠는 타이어를 끌고 4㎞를 간다. 하씨 형제는 “내 소의 공격을 받고 상대가 도망가는 것을 보면 통쾌하기 그지없다.”면서 “소싸움을 안 시켜 본 사람은 그 맛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의령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 말만 요란

    국립대 통합이 지지부진하다. 통합하자면서 요란하게 변죽은 울리지만 막판에 서로 이해 득실을 따지며 포기선언을 한다. 그런 가운데 부산대와 밀양대가 통합에 합의해 ‘흡수통합’은 물꼬를 텄으나, 비슷한 규모의 대학끼리의 ‘대등통합’은 여전히 난항이다. ●부산·밀양대 ‘통합 부산대’ 출범 합의 부산대와 밀양대는 지난 4월 교수·교직원 등 대학 구성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통합 찬반투표가 통과됨에 따라 2006학년 새학기부터 ‘통합 부산대’로 출범하기로 했다. 통합 부산대는 두 대학측의 유사·동일학과(부)를 통·폐합하는 대신 나노과학기술대학과 생명자원과학대학 등 2개 단과대를 신설, 현 밀양대를 나노·바이오캠퍼스로 특화할 계획이다. 두 대학측은 이달중 평가 관련 서류를 교육부에 제출,7월쯤 심의가 통과되면 재원 마련 등 절차를 거쳐 내년 새학기부터 밀양대를 부산대 밀양 캠퍼스로 운영할 방침이다. 강원대와 삼척대도 지난달 25일 두 대학 총장들이 통합대학의 학교명을 강원대 춘천캠퍼스와 삼척1캠퍼스(삼척시내)·삼척2캠퍼스(도계읍)로 하고, 대학본부는 통합시점인 내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각 캠퍼스에 2년 주기로 번갈아 두기로 잠정 결정했다. 앞서 삼척대는 교수·교직원·동문들로부터 강원대와 통합에 찬성한다는 동의서를 받았다. 강원대는 이어 로스쿨 유치를 위해 법학과를 두고 있는 강릉대, 국립 2년제 원주대와 물밑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경상·창원대 지역민 반발에 발목 반면 경상대와 창원대의 통합은 무산됐다. 두 대학측은 3일 통합 기본합의서 도출을 위한 경남국립대학교 통합 공동추진위원회를 마지막으로 열었으나 대학본부 위치와 단과대학 배치 등 핵심 쟁점사항에 대한 이견차를 좁히지 못해 합의도출에 실패했다. 이로써 지난해 4월 통합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 이후 13개월 만에 통합 논의는 종결됐다. 창원대는 통합대학의 본부가 도청소재지인 창원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나 경상대는 대학의 역사나 규모 등을 감안, 교육도시인 진주에 있어야 하며 특히 지역정서상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며 맞섰다. 두 대학측은 더이상 통합에 관한 논의는 진행시키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각 대학 특성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향후 교육인적자원부의 구조개혁 선도대학 지원사업에 각각 참여키로 의견을 모았다. 충남대와 충북대의 통합 추진도 물건너간 상태다. 지난달 12일 충북대가 학장회의에서 내부 반대를 이유로 통합을 전면 중단키로 결정한 것. 두 대학 총장은 지난해 10월 통합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통합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충북대는 통합에 따른 설문조사에서 교직원의 경우 반대 282명 찬성 32명, 학생은 반대 3102명 찬성 457명, 교수는 반대 382명 찬성 256명으로 내부 구성원 대부분이 통합에 반대했다. 이들은 반대 명분으로 통합 이후 정부의 구체적인 재정지원 등의 약속이 없다는 것을 내세웠으나, 충남대에 흡수 통합될 경우 통합대 본부와 인문·예술대가 행정도시 예정지인 충남 연기·공주에 들어서면 학생들이 빠져나가 지역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이유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군산대와 익산대도 통합을 논의해 왔으나 군산대가 교수·학생·교직원·동문중 한 집단이라도 반대하면 통합을 추진하지 않기로 했고, 최근 실시한 투표에서 일부 집단들이 반대를 해 통합논의를 중단했다. ●대구·경북국립대 사실상 무산 경북대는 지난해 12월 안동대와 금오공대, 대구교대, 상주대 등 대구·경북국립대학간 통합 청사진을 제시했으나 해당 대학들의 소극적인 자세로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이중 경북대와 상주대는 지난 12월 구조개혁공동연구단을 발족, 통합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북대는 안동대, 금오공대, 대구교대와의 통합도 적극 시도할 방침이었으나 3개 대학이 통합에 부정적이어서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경북대 관계자는 “통합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대학들이 서로 득실을 따지며 눈치를 살피고 있다.”면서 “통합 이후 구조조정 등에 따른 내부 반발도 통합을 더디게 하는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대구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④-LG화재·LS그룹

    LG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과 그의 형제들이 함께 일군 그룹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형제들의 활약이 컸다. 구 회장을 중심으로 철회·정회·태회·평회·두회 6형제는 말 그대로 ‘한솥밥’을 먹으며 회사를 키워왔지만 3대째 내려 온 현재는 각기 다른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구철회씨 자손 LG화재가 첫째 동생 철회(75년 작고)씨의 자녀(4남4녀)들은 지난 1999년 LG화재를 갖고 독립했다. 지난해 자산 4조 6000억원에 매출 3조 444억원, 순이익 500억원을 기록한 LG화재는 현재 4남인 구자준(55) 부회장이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장남인 구자원(70)씨는 LG화재 경영에서는 사실상 손을 떼고 방위산업체인 넥스원퓨처 회장을 맡고 있다. 진주고와 고려대 법대, 독일 쾰른대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64년 락희화학에 입사한 구 회장은 럭키증권 사장, 럭키개발 사장,LG정보통신 부회장 등을 거쳐 99년 계열분리와 함께 보험업계에 뛰어들었다. 경춘관광 사장을 지낸 유기홍씨의 딸 영희(63)씨와의 사이에 2남2녀를 뒀다. LG화재 본부장인 장남 본상(35)씨는 지난해 LG화재 주식 10만 7150주를 사들여 지분율을 3.53%로 늘렸다. 위기관리 전문업체인 TRC코리아 상무인 차남 본엽(33)씨는 지난해 말 소프트웨어 자문일을 하는 ‘LIG시스템’ 대표이사를 맡았다. 본상씨와 본엽씨는 또 넥스원퓨처 주식을 각각 31.79%씩 보유하고 있다.LG이노텍의 방산부문을 인수해 설립한 넥스원퓨처는 자산이 3300억원, 매출이 3000억원에 달한다. 본엽씨가 감사, 구자원 회장의 제수인 이갑희(62)씨가 사외이사를 맡고 있다. 차남 고 구자성 전 LG건설 사장은 이종구 전 산업은행 이사의 딸인 이갑희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뒀다. 장녀 본희(37)씨는 정재문(대양산업 회장) 전 국회의원의 아들인 정연준(41) 미디어플러스 사장과 결혼했다. 차녀 본주(35)씨는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낸 고 진성규 변호사의 아들 진상범(36) 남부지법 판사와 결혼했다. 구자성씨의 외아들 본욱(29)씨는 LG화재에 다니고 있다. 3남인 구자훈(58) LG화재 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4년 금성사에 입사했지만 곧바로 범한화재(현 LG화재)로 옮겨 30년간 ‘보험인생’을 걸어왔다. 범한화재 런던·뉴욕사무소 소장을 지낼 정도로 국제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다. 금융발전심의회 보험분과위원, 주한 우루과이 명예부영사도 맡고 있다. 임방인(61)씨와 사이에 세 딸을 뒀는데 3녀 문정(30)씨는 최근 타계한 금호아시아나그룹 박성용 명예회장의 장남 재영(35)씨와 결혼했다. 장녀 현정(35)씨의 남편은 글로벌 보험회사인 AON코리아 부사장인 에릭 호프먼(42)이다. ●보험경영도 탐험처럼, 구자준 부회장 미사일 전문가에서 보험전문가로 변신한 구자준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미국 캔자스·미주리 주립대를 다니다 귀국, 한양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구 부회장은 74년 금성사 사원으로 입사, 금성정밀(현 LG이노텍)에서 방산사업부 경영을 주로 맡았다.94년 미국산 호크미사일의 탄두 재장착 시스템과 국산화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할만큼 미사일 전문가로 통한다. 99년 계열분리로 LG화재 부사장으로 임명되자 생소한 보험영역을 공부하기 위해 2000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의 보험전문대학인 ‘TCI’에서 보험전문가로서의 기초를 다졌다. 최근 북극점 정복 성공으로 세계 처음 산악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탐험가 박영석 대장의 ‘후원자’로 널리 알려졌는데 2001년 히말라야 K2등정 때는 베이스캠프까지 원정대와 동행해 전문산악인 못지않은 실력을 보여줬다. 마라톤 풀 코스를 6번이나 완주할 정도로 ‘철인 체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참가한 베를린마라톤부터는 1m마다 100원씩을 적립, 지금까지 900만원을 모았다. 구 부회장은 자동차보험 ‘매직카’와 장기보험 브랜드 ‘엘플라워’를 앞세워 보험업계 2위 진입을 노리고 있다. 부인 이영희(53)씨와의 사이에 동범(30), 동진(28) 형제를 뒀다. ●GS, 두산으로 이어지는 딸들의 혼맥 구철회씨의 네 딸은 하나같이 ‘좋은 집안’으로 시집갔다. 장녀 위숙(78)씨는 허만정씨의 3남인 고 허준구 LG건설 회장에게 출가, 허창수 GS회장 등 GS그룹의 핵심 5형제(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를 낳았다. 재계에서는 허준구 회장의 생가가 있던 옥인동을 따 이들을 ‘옥인동 5형제’라고 부른다. 2녀 영희(74)씨는 의학박사인 고 이호덕씨에게,3녀 고 구자애씨 역시 의사인 정승화(72) 형제의원 원장에게 시집갔다. 자애씨의 장남 정규원(42)씨는 LG화재 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4녀 선희(61)씨는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의 장남 박용훈(63) 두산산업개발 부회장과 결혼했다. 박우병씨는 박두병 전 두산 회장의 동생이다. 선희씨의 장녀 박성연(35)씨는 이창수 전 주 필리핀대사의 아들인 주학(40)씨와 결혼했다. ●트랙터부터 전자태그(RFID)까지,LS그룹 구인회 창업주의 셋째, 넷째, 다섯째 동생인 ‘태평두’씨는 2003년 11월 LG전선그룹(현 LS그룹)을 갖고 독립했다.LG의 성장과정에서 이들 3형제의 역할을 감안하면 자산 5조원 남짓한 전선그룹은 너무 작은 것 아니냐는 불평이 나올 만했다. 하지만 3형제는 큰 불만 없이 ‘가족회의’에서 결정된 사항을 묵묵히 따랐다고 한다.LG는 이후 LG산전(현 LS산전)을 추가로 넘겨주는 형식으로 3형제의 노고에 대한 보답을 잊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를 ‘본부’로 한 LS그룹은 전선·산전·LS니꼬동제련·가온전선·E1·극동도시가스를 주축으로 1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자산 5조 8800억원으로 CJ와 비슷하며 동국제강, 대림, 동양, 효성, 코오롱보다 규모가 크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과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아셈타워 21층에 나란히 사무실을 두고 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도 같은 건물 14층 사무실을 쓰며 우애를 다지고 있다. 구태회 명예회장은 진주중과 일본 후쿠오카고를 마쳤는데 징병으로 만주로 끌려갔다 광복 후 광복군으로 귀국하는 등 ‘파란만장’한 젊은 시절을 보냈다.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에 다닐 때는 창신동 하숙집에서 ‘화장품연구’에 몰입,‘투명크림’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50년 락희화학의 전무로 입사, 형의 사업을 돕기 시작했는데 플라스틱 사업 진출, 서울사무소 개소 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다 58년 고향인 진양에서 제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공화당 대변인 겸 원내총무, 무임소장관, 국회 부의장 등 중책을 맡다 82년 LG그룹 고문으로 돌아왔다. 최무(83)씨와의 사이에 4남 2녀를 뒀는데 장녀 근희(62)씨는 이계순 전 농림장관의 아들 준범(64)씨와 혼인했다. 이준범씨는 현재 합성수지업체인 화인 회장이다. ●멜빵 맨 ‘디지털 전도사’ 구자홍 회장 장남 구자홍(59) 회장은 73년 LG상사에 입사한 뒤 홍콩·싱가포르 지사 근무를 통해 ‘국제감각’을 쌓았다. 영국에서 찰스 황태자를 만났을 때 영국 사람들조차 발음과 표현에 감탄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실력을 자랑했다고 한다.87년 LG전자 해외사업본부 상무로 옮긴 뒤 2003년까지 18년을 전자에서 일하며 ‘디지털 전도사’라는 명성을 얻었다. 1999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조사한 최고경영자(CEO)들의 경영지수 평가에서 1위를 받을 정도로 대표적인 ‘스타CEO’로 GE, 모토롤라, 소니,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적 기업들의 CEO와도 교우가 깊다. 특히 빌 게이츠 회장, 리빈 주한 중국대사와는 막역한 사이라고 한다. 북미·아시아·유럽의 전직 고위관료, 기업인 등으로 구성된 TC(Triliteral Commission) 멤버로도 활동 중이다. 학창시절 쌓은 농구와 수영실력이 수준급인 구 회장은 골프에도 남다른 재질을 보여 지금까지 모두 4차례의 홀인원을 기록했다. 요즘 핸디캡은 7정도. 또 한국기원이 인정한 ‘아마 6단’의 바둑실력을 자랑한다. 지난해 주요 사업장을 순방하며 ‘분위기’를 익힌 구 회장은 ‘R&D워크숍’,‘혁신한마당’,‘테크놀로지 이벤트’ 등 그룹차원의 행사를 연이어 개최하며 회장으로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최근 전력망회의(CIGRE) 한국위원회 위원장을 맡으며 공식 대외활동도 재개했다.LG전자 CEO직에 유난히 애착을 보였던 구 회장이 전자에서 못다 이룬 꿈을 LS그룹에서 실현시킬 수 있을지 관심사다. 구 회장은 70년대 재벌 오너일가의 장남으로서는 흔치 않게 지순혜(60)씨와 연애결혼했다. 구 회장은 경기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잠깐 다니다 미국 프린스턴대(경제학과)로 유학을 떠났는데 인근 뉴저지주립대에서 식품영양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던 순혜씨를 만나 사랑을 꽃피웠다고 한다. 순혜씨는 이화여대 가정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까지 떠난 엘리트 여성으로 귀국 후 이대에서 잠시 강의를 맡기도 했다. 구자엽(55) 가온전선 부회장은 경복고와 명지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LG화재에서 주로 일했다.LG건설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사장을 지낸 뒤 2003년 희성전선(현 가온전선)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태향(55)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는데 장녀 은희(29)씨는 고 정몽우 전 현대알미늄 회장의 장남인 정일선(35) BNG스틸 사장과 결혼했고 장남 본규(26)씨는 미국 유학 중이다. 3남인 구자명(53) LS니꼬동제련 부회장은 경기고를 마치고 아버지와 같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자 재벌가 자제로는 흔치 않은 학군단(ROTC) 출신으로 포병학교를 수석으로 마치고도 전방 부대 근무를 자원했다고 한다. 미국 페어리디킨슨대와 조지워싱턴대에서 정치학·행정학 석사과정을 이수한 뒤 미국 셰브론사에서 잠시 일하다 84년 호남정유 원유수급조정과 과장으로 입사, 정유사업에서 잔뼈가 굵었다. 부인 조미연(53)씨는 경희대 조영식 이사장의 차녀. 아들 본혁(28)씨는 LS전선 경영기획팀에서 일하고 있다. 4남 구자철(50) 한성 회장은 LG상사에서 잠시 일하다 일찌감치 독립 경영을 했다. 외동딸 원희(25)씨는 구 회장의 경기중·고 동창인 ㈜두산 박용만(50) 부회장의 장남 서원(26)씨와 오는 30일 낮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결혼한다. 마침 구평회 명예회장의 ‘팔순잔치’도 이날 저녁 그랜드 인터컨티넨털호텔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구씨 일가의 ‘대이동’이 예상된다. 2녀 혜정(57)씨는 이인정(60) 태인 회장과 결혼했다. 아들인 이상현(28)씨는 지난 2003년 운동권의 ‘메카’였던 한양대 총학생회장 선거에 ‘비운동권’ 후보로 나서 당선돼 화제를 낳았다. 이씨는 한양대를 졸업하고 현재 유학 준비 중이다. 구평회(79) E1명예회장은 서울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1951년 락희화학 지배인으로 경영에 첫발을 내디뎠다.1954년 뉴욕에서 ‘콜게이트사’ 주변에 머물며 치약 제조기법을 알아내 LG의 첫 해외주재원으로 기록됐다. 구 명예회장은 5·16 쿠데타 직후인 61년 ‘부정축재 기업인’ 처벌 때 형을 대신해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할 정도로 LG경영의 핵심을 담당했다. 락희화학 전무시절인 65년 정유사업 진출 보고서를 형에게 제출, 오늘날 GS칼텍스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84년에는 국내 최초의 LPG수입사인 여수에너지(현 E1)를 설립했는데 이 인연으로 사업연관성으로 따지면 GS그룹에 넘어갔어야 할 E1이 LS그룹 몫으로 남았다. 재계원로 가운데 독보적인 영어실력과 국제감각으로 ‘재계의 외교관’으로 불린다. 한국인 최초로 태평양 경제협의회(PBEC) 국제회장을 지냈고 한·미경제협의회 회장, 무역협회장 등을 역임했다. 특히 2대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 활동하며 340억원의 유치기금을 조성하는 등 월드컵 개최에 큰 공을 세웠다. 현재도 한·미협회장을 맡아 한·미간 우호증진에 애쓰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1952년 금릉원예조합 문흥린 이사장의 딸 문남(75)씨와 결혼해 3남 1녀를 뒀다. ●‘철인 CEO’ 구자열 부회장 장남인 구자열(52) LS전선 부회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LG상사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뉴욕지사와 도쿄지사, 동남지역본부장 등 오랜 해외경험으로 영어와 일어에도 능통하다. 구 부회장은 해외경험을 살려 폭넓은 해외인맥을 자랑하는데 2003년에는 도쿄 주재 특파원, 은행지점장, 지사장 등이 모여 만든 ‘동경회’ 회장을 맡았다. 직전 회장은 김인진 한진 사장.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 조정호 메리츠증권 회장 등과는 ‘월가(Wall Street)회’ 모임을 통해 교류를 쌓고 있다. LG증권을 거쳐 2001년 LS전선 재경부문 부사장으로 부임한 구 부회장은 2002년부터 대표이사를 맡아 ‘재도약’을 노리고 있다.LS전선은 특수전선 업체인 GCI, 알루미늄 창호업체 알루텍, 광부품 업체인 네옵텍, 초고주파 부품업체인 코스페이스,2차전지 음극재 전문업체인 카보닉스에 이어 선박용 케이블업체인 진로산업을 인수하는 등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다. 구 부회장은 만능 스포츠맨으로도 유명하다.2002년 독일에서 열린 ‘트랜스 알프스 산악자전거 대회’에 참가해 아시아인 최초로 7박8일 동안 650㎞를 완주할 정도. 스키는 물론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스노보드에도 일가견이 있는데 지난겨울 사내 스키동호회 모임에 유일하게 스노보드를 들고 나타나 젊은 직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명함에 ‘No Innovation,No Future(혁신 없이는 미래도 없다)’라는 문구를 적어 넣을 정도로 체질 개선을 독려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사내게시판에 ‘애니 기븐 선데이’라는 영화 동영상과 메시지를 직접 올려 팀워크 정신을 강조했다. 미식축구를 소재로 한 이 영화는 과감한 도전과 팀원들간의 협력을 통해 진정한 승리를 일궈 낸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12월24일에는 라디오방송을 통해 “한 해 동안 고생하신 사랑하는 LS전선 임직원들과 함께 듣고 싶다.”며 머라이어 캐리의 노래를 신청하기도 했다. 지난 2월 사내동호회 행사에서는 직원들 자녀에게 일일이 용돈을 챙겨줬다고 한다. 육군 중장으로 청와대 경호실차장과 성업공사 사장, 전쟁기념관장을 역임한 고 이재전 장군의 딸 현주(48)씨와 결혼,1남2녀를 뒀는데 아직 학생이다. 차남인 구자용(50) E1 사장은 서울고와 고려대 무역학과를 마쳤는데 사촌형인 구자명 LS니꼬동제련 부회장과 마찬가지로 ROTC 장교로 복무했다.79년 LG전자에 입사, 주로 미주법인에서 일하다 계열분리를 앞둔 2001년 LG칼텍스가스(현 E1)로 자리를 옮겼다. 구 사장은 보수적인 구씨 집안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로 통할 정도로 유머감각이 뛰어난데 직원들과의 자리에서도 본인이 나서 자연스러운 분위기를 유도한다고 한다.E1이 10년 연속 무교섭 임금 타결을 이뤄낸 데는 구 사장의 이같은 면모가 적잖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이상돈 전 중앙대 의대 학장 딸인 현주(46)씨와 결혼, 두 딸을 뒀는데 둘다 외국 유학 중이다. 3남 구자균(48) LS산전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마치고 미 텍사스주립대에서 경영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97년부터 고대 국제대학원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경영인으로 전격 변신했다. ●8개사 사장을 거친 구두회 ‘막내’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고려대 상대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경영에 뛰어들었다.74년 범한화재 사장을 시작으로, 희성산전, 금성계전, 금성통신, 금성반도체, 호남정유 등 주요 계열사 사장을 역임한 뒤 95년 구본무 회장 체제 출범과 함께 경영에서 물러났다. 위로 두 형과 마찬가지로 구 명예회장도 한·독경제협력위원회, 한·중남미협회장, 고려대 교우회장, 성북구 문화원장 등 활발한 외부활동을 벌였다. 이같은 공로로 78년 멕시코정부로부터 명예영사로 임명됐으며 94년에는 ‘멕시코 최고훈장’을 받았다. 지난달 고려대 100주년 기념행사에서는 ‘자랑스러운 고대인’으로도 선정됐다. 구 명예회장은 유한선(72)씨와의 사이에 1남 3녀를 뒀다. 장녀 은정(44)씨는 김택수 전 공화당 원내총무의 아들인 김중민(48) 전 국민생명보험 부회장과 결혼했다. 외아들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는 홍익고와 미국 베네딕틴대 경영학과, 시카고대 MBA를 거쳐 90년 LG정유에 입사했다.LG전자 상하이지사 근무로 중국과 인연을 맺어 LS전선에서도 중국지역 담당을 맡고 있다. 장상돈(고 장경호 동국제강 창업주 아들) 한국철강 회장 딸인 인영(37)씨와 결혼했다. 구 명예회장의 막내 재희(38)씨는 김세택 전 덴마크 대사 아들 동범(37)씨와 결혼했다. ukelvin@seoul.co.kr ■ LG·두산家, 겹사돈·사업제휴속 프로야구선 ‘서울 라이벌’ 신경전 LG가(家)는 고 구인회 창업회장 때부터 두산가문과 우애가 두터웠다. 구인회 회장이 1956년 서울 컨트리클럽에서 평소 가깝게 지내던 두산, 경방그룹 회장들과 골프 친목모임인 ‘단오회’를 결성할 정도였다. LG와 두산은 또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철회씨가 박우병 전 두산산업 회장과 사돈을 맺으면서 더욱 가까워진다. 하지만 두 그룹은 LG가 90년 프로야구단 ‘MBC청룡’을 인수하면서 잠시 사이가 벌어졌다. 같은 서울을 연고로 한 두산구단의 ‘방해’가 심했던 것이다. 이후 LG임직원들은 두산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는데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구자경 당시 회장이 부산에서 행사를 가졌는데 평소 좋아하던 양주 ‘패스포트’ 대신 다른 술이 차려져 있었던 것. 두산 제품을 빼라는 기조실의 지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구 회장은 기조실 사장에게 일부러 크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그룹의 중요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만한 일로 감정적인 변화를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LG와 두산은 오는 30일 구태회 명예회장의 4남 구자철 회장과 고 박두병 두산회장의 5남 박용만 부회장이 사돈을 맺으며 ‘겹사돈’으로 이어진다.LS전선과 두산엔진은 ‘합작사’까지 만들었다. 하지만 두 집안의 혼사나 제휴와 상관없이 프로야구 ‘서울 라이벌’의 팽팽한 긴장은 쉽게 풀릴 것 같지 않다.LG트윈스가 최근 두산과의 잠실 홈경기에서 이길 때까지 무료입장이라는 파격적인 ‘카드’를 제시한 것만 봐도 그렇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74)태평양전쟁과 남양군도

    오는 27∼28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종전 60주년을 기념해 남양군도의 사이판을 방문한다.6000여 일본인들도 이때 함께 이 작은 섬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대변지인 산케이신문은 벌써부터 광분하며 기획특집을 쏟아내고 있다. 정말 ‘대단한 뉴스’(?)가 아닐 수 없다. 원래 일왕은 팔라우와 마셜군도 등 태평양 섬들을 두루 둘러볼 참이었으나 미국령인 사이판만 찾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지난주, 옛 일본 육군 제30사단 소속 야마카와 요시오(87) 중위와 나카우 스스키(83) 상등병이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 인근 산악지대에서 숨어살다가 발견됐다는 오보 사태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휩싸인 일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지난 1972년 괌의 요코이 쇼이치(당시 56세)에 이어 74년 필리핀에서 오노다 히로오(당시 51세)가 종전 30여년 만에 생환했었다. 당시 요코이는 “부끄럽게도 살아 돌아왔습니다.”라는 귀국 일성을 토해내 일본 군국주의자들을 열광케 했는데,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또 무슨 말을 내뱉을까. 이래 저래 일본인들의 해묵은 관심이 태평양에 쏠리고 있다. 그 태평양과 우리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머나먼 태평양에 수만의 무주고혼들이 떠돌고 있다. 신혼여행지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이판 같은 곳에서도 수많은 조선인들이 군인과 군속,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죽어갔다. 그들이 ‘덴노헤이카 반자이(천황폐하 만세)’를 외치며 몸을 던졌다는 일명 만세절벽은 일본인 참배객의 메카가 되었으며, 일왕은 여기에 세워질 신사 준공식을 겸해 이곳을 찾는 것이다. 2차대전은 곧 태평양전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주, 중국, 버마와 인도네시아 등지에서 전선이 확대되고 있었고, 같은 시기 남양군도에서는 바다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남양군도란 오늘날 미크로네시아를 가리킨다. 지도를 펼치면, 일본 남쪽으로 괌, 사이판 등이 포함된 북마리아나군도가 있고 그 밑으로 얍과 팔라우 등이 자리잡고 있다. 동쪽으로는 마셜군도가 있는데 이곳을 총칭하여 미크로네시아(Micronesia) 라 부르며, 여기에는 2106개의 섬이 포함돼 있다. 태평양의 일본군 최대 근거지였던 팔라우를 찾았다. 연전에 어느 정신없는 탤런트가 ‘정신대를 기리는’ 누드촬영을 하겠다고 나서 온 사회를 벌컥 뒤집어 놓은 바로 그곳이다. 육·해·공군을 관장한 팔라우 집단사령부와 식민청인 남양청 본청, 법원, 병원 등이 있던 매우 중요한 전략기지였다. 흔히 일본이 2차대전 무렵에 이곳으로 진출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일본의 태평양 진출은 이보다 앞선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콜럼버스의 이른바 ‘아메리카 발견’ 이후 스페인과 포루투갈의 식민지 쟁탈전을 조정하기 위해 태평양쪽은 스페인이 독식하는 것으로 합의된다. 그리하여 필리핀을 위시한 팔라우도 16세기에 스페인에 예속된다. 19세기 중반에는 카이저황제와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후원에 힘입어 이곳에 독일 자본이 밀어닥쳤다. 독일의 스페인에 대한 도전은 1899년에 드디어 성공한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 전쟁에서 스페인이 패함에 따라 힘을 잃게 되자 스페인은 파리에서 비밀협정을 맺어 독일에 이 섬들을 팔아넘긴다. 이에 1914년 10월, 일본은 영국과 연대해 독일에 대항하면서 미크로네시아를 넘본다. 사실, 일본의 태평양 탐욕은 훨씬 전부터 드러났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등을 거치면서 북방 대륙 진출에 여념이 없던 일본으로서는 남쪽 바다를 향한 야욕을 잠시 유보했을 뿐이다.1880년대에 다케코시 요사부로는 “적도를 얻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외치지 않았던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한 지 두달도 채 되지 않아 일본 해군은 캐롤라인과 마리아나, 마셜군도의 주요 섬에 상륙한다.1914년 10월7일, 수백명의 일본군이 폰페이섬의 성당에 들이쳤으며, 이곳에 기관단총을 설치하고 팔라우 공격에 나섰다. 1919년에 국제연합은 공식적으로 이곳의 일본 지배를 인정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전리품으로 남양군도를 획득했으니, 일본의 태평양 식민사는 이로부터 근 100년에 이르는 것이다. 종교와 교육, 그리고 경제적 개발은 식민지를 건설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남양청을 세우고 식민 관료들이 섬을 지배한다. 일본인 이민이 급증했으며 그들은 전력산업, 알루미늄광산, 진주양식과 카사바 같은 상업적 농업에 종사했다. 일본 정부의 지원 속에 1935년까지 5만여 일본인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살았는데, 이들 대부분은 오기카와로부터 이주해 왔다.1940년에 일본인 인구는 7만 7000명까지 늘었으며,2년 뒤에는 9만 6000명을 헤아렸다. 미국과 전쟁이 시작되면서 군인·군속들이 속속 집결, 일본인 수는 거의 2배로 불었는데, 팔라우와 사이판이 주요 거주지였다. 일본 식민청은 이곳에서 각 섬마다 이른바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한반도에서 하던 방식과 똑같이 원주민의 토지 개인소유는 인정하되, 바닷가나 산의 공유지는 모두 식민청 소유로 돌렸다. 한마디로 ‘털도 벗기지 않고’ 대부분의 땅을 먹어치운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자 이 땅의 대부분은 군사기지로 징발된다.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한 것도 기실은 일본과 미국의 태평양을 둘러싼 이해대립 때문에 생긴 필연적 귀결이었다.2차대전이 벌어지기 훨씬 전부터 양국은 서로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지켜보고 있었으며 급기야 미크로네시아에서 태평양전쟁 중 가장 혹독한 전투가 치러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괌이 2차대전 때 미국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괌은 1898년에 미국과 스페인 전쟁의 부산물로 미국으로 넘어갔다. 미국은 이 전쟁을 계기로 태평양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교두보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1783년에 무역선 차이나호(Empress of china)를 통해 태평양에 본격 등장했다. 배에는 무역 상인과 선교사, 뉴잉글랜드의 포경업자, 해군 장교 등이 타고 있었다. 미국은 괌에 더해 20세기 초반에는 필리핀, 하와이, 사모아제도 등을 추가로 얻는다. 하와이에서는 1893년에 미국 상인과 선교사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조를 전복시키기도 했다. 그 후 이곳에서 사탕수수 산업이 시작되었고, 한국인 이민도 비슷한 시점에 이뤄진다. 말이 이민이지 노예수출에 지나지 않았다.1899년에는 미국령 사모아에 미국 해군이 진을 친다. 괌에서도 미국은 ‘어머니 나라(Mother Country)’로 등장했다.1941년 12월7일 일본이 진주만을 때린 것은 이처럼 태평양을 둘러싼 해묵은 패권 다툼의 발화였을 뿐이다. 거의 동시에 일본 육군은 홍콩을 공격한 데 이어 42년 2월에는 영국군 거점인 싱가포르까지 먹어치운다. 이런 일련의 사태로 태평양전쟁은 종말을 향해 치달았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독립기념관) 김도형 연구원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36년,15살 어린 나이의 한국인 위안부 10여명이 처음 팔라우에 끌려온다. 그 후 코롤섬 토목공사를 위해 전라·경상도에서 노무자 200여명이 왔다. 코롤시 동쪽 끝에 위치한 ‘아이고브리지’는 한인들이 다리를 놓을 때 너무 혹독하게 시달린 나머지 ‘아이고, 아이고’를 연발해 붙은 이름이라는 내력이 슬프다. 한인 노무자와 더불어 조선총독부는 농업이민도 보냈다. 모두 13회에 걸쳐 1266명이 이주됐다. 중부 태평양의 중심기지인 트럭섬이 궤멸되자 1944년 2월25일 관동군과 조선군에서 선발된 정예부대 29사단이 팔라우에 진주했다. 이때 중국 관동에서 1만 2000여명이 왔는데, 대부분 한인 병사들이었다는 설이 있다. 팔라우의 한인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은 군속이었다. 말이 군속이지 해군에서 토목작업을 시키기 위해 끌고온 노무자들이었다.1943년 5월20일, 부산을 거쳐 팔라우에 800여명의 한인이 도착했다. 이들은 처음에 일본 본토와 남양과의 수송시설 건설에 종사하다가 미군의 공격이 심해지자 진지 구축에 투입된다. 인근 무인도에서는 남양척식주식회사에서 갈매기 배설물인 인광을 채굴하여 비료를 만드는 일에도 이들이 투입됐다. 1944년 8월, 연합국이 중부 태평양의 마지막 공격지 팔라우에 들이쳤다. 미 제1전대의 공격으로 일본 육군 7212명 중 6766명이 전사하고 466명만 살아남았다. 해군도 3400명 중 단지 10명만이 생존했다. 물론 그 일본군 중에는 징병으로 끌려온 한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미군 폭격이 거세지자 일제는 팔라우의 일본인 1만7800여명을 본국으로 강제소환한다. 그렇지만 강제 징용된 한인들은 송환 대상에서조차 제외된 채 전쟁이 본격화되어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식량보급이 끊기면서 한인들에게는 식량도 주어지지 않았다. 굶주림에 지쳐 식량을 훔치다 총을 맡고 숱한 한인들이 죽어 나갔다. 정신대로 끌려온 조선의 딸들도 곳곳에서 죽어나갔다. 창고에서 건빵을 훔치려다 들킨 한인을 나무에 매단 뒤 귀나 코를 베는, 임진왜란 때 왜군의 만행과 흡사한 짓을 자행했다는 믿기 어려운 증언도 전해진다. 팔라우 주둔 일본군이 미군에 공식 항복한 것은 1945년 9월2일이었다. 총알받이로 수많은 한인들을 끌고 왔다 수세에 몰리자 나몰라라 내팽개친 뒤 자신들만 빠져나간 것도 일제 만행의 일부로 기록돼야 한다. 그 불바다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아 귀환한 사람이 2만 5773명이었고, 팔라우에서는 3000여명이 귀환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많은 이들이 죽어갔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팔라우에서도 ‘천상의 바다정원’으로 소개되는 록 아일랜드로 스피드보트를 타고 나가 무인도에 배를 댔다. 물 속으로 들어가자 ‘물 반 고기 반’이다. 산호섬답게 산호가 아름답기 그지없다. 너무도 아름다워 ‘용궁’이 본디 이런 풍경이었을까 여겨지는 곳. 그러나 물 밑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탱크와 항공기, 선박의 잔해가 즐비하다. 전쟁은 끝났지만 아직도 역사의 시간은 진행 중임을 이 잔해들이 말해주고 있다. 과거, 잠시 적이었고 이후 해양 패권의 든든한 동지로 미국에 보조를 맞춰 온 일본의 왕이 미국의 비호를 받으며 미국령 사이판을 찾는다. 태평양의 바다 속에 잠긴 탱크들이 다시금 포신을 곧추세우기 시작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경의 태평양을 다시 피바다로 만들 작정이다. 이 막막한 타국을 떠돌고 있을 한국인들의 넋에 대한 최대의 모욕이 일왕에 의해 지금 다시 시작된 것이다.
  • 올 여름 얼굴 블루~

    올 여름 얼굴 블루~

    화장한 얼굴은 보는 것만으로도 덥다?그래서 여름 메이크업은 시원함을 강조한다. 투명한 물, 반짝임, 광택, 파랑 등 경쾌한 느낌을 살리면 화장한 얼굴이 맨 얼굴보다 더 시원해 보인다. 올 여름의 핵심컬러는 단연 블루. 아찔할 정도로 깊은 바다의 색에서부터 카리브해의 신비한 블루, 파랑 물감에서 빠져나온 듯한 원색의 블루, 아쿠아 블루, 에메랄드 블루 등 다양한 블루의 향연이 시원한 여름으로 안내한다. 왜 블루인가. 블루는 생동감과 강렬한 느낌을 전한다. 특히 올해는 블루가 펄을 만나 태양 아래 빛나는 세련된 아름다움을 표현한다. 온몸에 반짝이는 펄을 바르거나, 갈색톤의 보디 메이크업과 대비되어 더욱 건강미를 자랑할 수 있다. 올해 눈길끄는 블루 화장품들에 대한 정보를 모두 모았다. ●활기찬 도시의 블루 태평양 라네즈의 여름 메이크업은 ‘스타일리시 큐빅’을 테마로 삼았다. 태양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가 돋보이는 여름 메이크업으로 투명하게 빛나는 블루빛 눈매와 반짝이는 연한 오렌지 입술로 연출하는 ‘블루 큐빅룩’은 섹시함을 한층 높여준다.‘스타일리시 보디 스무더’를 팔과 다리, 쇄골 등에 가볍게 발라 햇살에 반짝이는 건강한 피부톤을 완성한다. 코리아나는 민트 블루의 ‘아쿠아 샤인 아이섀도’로 푸른 물처럼 촉촉하고 시원한 여름 메이크업을 표현한다. 수용성 보습 성분이 눈가 피부의 건조함을 최소화시켜 촉촉한 눈매를 유지시키는 게 특징. 에뛰드는 반짝이는 ‘블링블링’ 컨셉트를 내세웠다. 블링블링 블루 섀도로 눈두덩에 살짝 펴발라 밝고 생생한 눈매를 만든다. 섀도에 들어 있는 펄감은 세련된 청량감을 연출한다. 엔프라니의 올 여름은 진주알처럼 반짝반짝 매끄럽고 투명하게 빛나는 ‘루시드 펄 메이크업’. 은은하게 빛나는 펄로 반짝이는 피부를 표현하고, 화이트·블루·퍼플 섀도로 깊이 있는 눈매를 만든다. ●시원한 바다의 블루 패션 트렌드를 따라 메이크업도 이국적인 아프리카 스타일이 강세다.LG생활건강 오휘의 권민영 브랜드매니저는 “사파리룩부터 아프리칸 리조트룩까지 다양한 아프리칸 모티프를 이용한 패션과 어울리는 생생한 컬러가 주류”라고 설명했다. 오휘가 제안하는 패턴은 아프리카로 떠나는 여행,‘트립 투 아프리카(Trip to Africa)’다. 강렬한 금빛 아이섀도에 화이트·블루 포인트로 시원한 메이크업을 연출한다.‘오휘 올오버 시머’로 눈매와 몸에 반짝이는 효과를 주어 고급스럽게 빛나는 패션을 완성한다. 한국화장품 오션은 ‘마니아 블루’로 시원함을 더욱 강조했다. 바다빛을 닮은 디프블루로 포인트를 주면서 이국적인 바다의 여유와 낭만을 느끼게 한다. 블룸파우더와 힐링파우더의 저자극 케어로 촉촉함과 함께 눈가를 부드럽게 가꾸어 준다. 클리오의 여름은 ‘카리브 블루’다. 블루와 바이올렛 색상으로 신비롭고 아름다운 카리브 해변의 여름을 담아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③-‘사업동지’ GS 허씨일가

    지난해 발표된 국내 100대 부호 명단에는 6명의 허씨가 포함됐다. 허창수(57) GS회장이 3160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허정수(55) GS네오텍 사장이 2530억원,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이 1700억원, 허완구(69) 승산회장이 1510억원, 허남각(67) 삼양통상 회장·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이 각각 1390억원으로 뒤를 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가문 가운데 하나인 김해 허씨 문중인 이들은 경남 진주의 만석꾼인 고 허만정씨 자손들이다. 허씨가는 지난 세월 재계에서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올해 LG에서 분리, 재계 7위 규모의 GS그룹을 출범시키며 재계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GS그룹은 삼양통상, 승산, 코스모 등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친족 회사들을 계열로 편입시키며 무려 50여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 발표기준 자산규모는 18조 7200억원으로 한화(16조 2200억원), 두산(9조 7300억원) 등 전통을 자랑하는 그룹들을 압도할 정도였다. ●허씨의 핵, 허준구 일가 수백년간 이어졌던 구씨와 허씨의 관계를 ‘인척’에서 동업관계로 바꾼 사람은 고 허준구 회장이다.1946년 초 고 구인회 LG 창업회장 장인(허만식씨)의 재종(6촌)인 고 허만정씨가 3남인 준구(작고)씨의 ‘경영수업’을 부탁하면서 사업자금을 내놓은 것이다. 구 회장은 귀족적인 용모의 일본 간토중학교(5년제) 출신 사돈을 반갑게 맞이했다고 한다. 당시 허만정씨가 내놓은 자금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허씨가는 이후에도 고향마을(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내리)의 땅을 처분한 돈으로 계속 출자를 했다. 이른바 해방정국의 ‘벤처캐피털’인 셈인데 허씨의 투자는 59년 만에 18조원이 넘는 자산으로 돌아왔으니 ‘대박’이 터졌다고 볼 수 있다. 허준구 회장은 당시 가내수공업 수준을 면치 못하던 락희화학의 영업담당 이사로 발을 디뎠는데 당시 공장에서 고생하던 구자경 이사를 부산 시내로 불러내 술을 사 주며 ‘위로’하기도 했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내가 ‘비어홀’이라는 곳을 처음 가 본 것은 준구씨 덕분”이라고 회고했다. 허 회장은 반도상사(현 LG상사)·금성사 상무를 거쳐 62년 금성사 부사장으로 승진했다.68년 반도상사 사장을 시작으로 71∼82년 금성전선(현 LS전선) 사장,84∼95년 금성전선 회장 등을 지내며 LG그룹의 버팀목이 됐다. 구인회 회장은 68년 그룹체제를 출범시키며 허 회장에게 초대 기획조정실장을 맡길 정도로 무한한 애정을 보였다.69년 락희화학이 민간기업 최초로 기업공개를 실시한 것도 당시 기조실장이었던 허 회장의 ‘숨은 공로’다. 77년 하루 480㎜의 폭우가 쏟아져 금성전선 안양공장이 2m 가까이 침수됐을 때 허 회장은 예비군복에 장화를 신고 물속을 헤치고 다니며 공장 복구를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밤낮없이 꼬박 두달동안 계속된 복구작업끝에 안양공장은 주변 공장 중에서 가장 빨리 재가동에 들어갈 수 있었다. 2002년 7월29일 허 회장이 세상을 뜨자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회장 등 구씨들은 ‘5일장’ 내내 자리를 지키며 ‘사돈이자 동지’였던 허 회장의 타계를 안타까워했다. 허 회장은 구인회 회장의 첫째 동생인 고 구철회씨 장녀 위숙(77)씨와의 사이에서 5명(창수·정수·진수·명수·태수)의 아들을 뒀는데 모두 고려대 동문인 데다 대부분 해외유학파 출신이다. 특히 창수·정수·진수씨는 학과(경영학과)까지 똑같다. ●항상 공부하는 허창수 회장 장남인 허창수 회장은 그룹 회장을 맡으면서 지주회사인 GS홀딩스와 GS건설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경남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허 회장은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경영대학원(MBA)을 마친 77년 그룹 기조실 인사과장으로 입사했다.79년 럭키금성상사 해외기획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홍콩지사, 도쿄지사 등 해외근무를 오래하며 영어와 일어 실력을 쌓았다.88년 럭키금성상사 전무로 승진한 직후인 89년에는 LG화학 부사장을 지냈고 92년부터는 LG산전(현 LS산전) 부사장을 맡았다. 95년 구본무 회장이 3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아버지가 맡고 있던 LG전선 회장을 이어받았고 2002년부터는 LG건설(현 GS건설)을 지휘하며 분가를 준비해왔다. 허 회장은 첨단제품과 해외정보에 관심이 많은데 지금도 월스트리트저널, 비즈니스위크 등 해외 경제전문지들을 빼놓지 않고 보고 있다.2002년 LG건설 회장을 맡으면서 ‘건설부흥’,‘주간 다이아몬드’ 등 일본의 경제잡지에 나온 일본 건설회사의 현황 기사를 번역해 임직원들에게 배포하기도 했다. 최근에도 ‘미국 건설산업 왜 강한가?’,‘영국 건설산업의 혁신전략과 성공사례’ 등을 필독서로 권유했다. 허 회장은 전형적인 ‘아침형 인간’으로 새벽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전날 읽은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헬스장에서 1시간 정도 조깅을 한다. 허 회장은 조깅, 등산 등으로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있는데 운동량이 부족한 임직원들을 위해 ‘만보기’를 직접 사줄 정도로 자상한 면모도 갖고 있다. 골프는 80대 중반 실력이지만 라운딩을 자주 하는 편은 아니다. 주량은 양주 반병 가량으로 약하지는 않지만 맥주를 마시며 대화하는 것을 즐긴다고 한다. 늘 구본무 회장 한발 뒤에 섰던 허 회장은 소탈하고 겸손한 면모를 갖고 있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GS타워에서 지하철 한 코스 떨어진 강남역 정도는 수행비서도 없이 걸어서 다닌다. 비서팀도 따로 없다. 탁월한 외국어 실력을 지닌 데다 젊은 직원들도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첨단기기들에 관심이 많은 허 회장의 향후 행보는 재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하다. 허 회장은 지난 3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당대에서는 LG와 겹치는 사업에 진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지만 ‘슈퍼루키’ GS그룹의 펄펄 끓는 에너지가 어느 쪽에서 터져나올지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허 회장은 고 이철승 전 상공부 차관의 딸인 부인 이주영(53)씨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뒀다. 아버지의 모교인 미국 세인트루이스대를 나온 아들 윤홍(26)씨는 지난 2002년 LG칼텍스정유(현 GS칼텍스)에 입사, 영업전략팀·경영분석팀 등을 거쳐 올 초 아버지가 회장으로 있는 GS건설 경영관리팀 대리로 입사했다. 구씨와 마찬가지로 허씨 역시 ‘장자승계’의 원칙을 따르고 있으므로 먼 훗날에는 윤홍씨가 허씨가의 대표로 그룹 회장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윤홍씨는 조만간 누나(윤영·29)가 공부중인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MBA 코스를 밟을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GS경영을 책임지는 동생들 허창수 회장의 첫째 동생 허정수(55)씨는 GS네오텍(전 LG기공) 지분 100%를 보유하며 사장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영학과 출신인 허 사장은 90년대 LG전자에서 상무로 일하다 96년 LG기공으로 자리를 옮겨 독립했다. 당시 LG는 처음으로 계열분리를 시도하면서 구씨와 허씨 한 명씩을 분가시키기로 했는데 구씨 쪽에서는 고 구정회씨 아들인 구형우씨가 부민상호저축은행을 갖고 독립했고 허씨쪽 대표로 허 회장이 LG기공을 맡았다. 교환기 설치 및 부가통신공사, 유무선 통신케이블 및 전송공사, 전기전력 및 산업 플랜트 공사, 정보통신 및 인터넷사업을 영위중인 GS네오텍은 지난해 수주 2700억원에 매출 2250억원, 당기순이익 123억원을 냈다. 최근에는 반도체,LCD 공장에 필수적인 ‘클린룸’ 사업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부인 한영숙(51)씨와의 사이에 2남을 두고 있다. 장남 철홍(26)씨는 GS홀딩스 지분 1.26%를 갖고 있는데 ‘홍’자 돌림 3세 가운데 가장 많다. 허진수(52) GS칼텍스 부사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마치고 주로 호남정유(현 GS칼텍스)에서 일했다.2000년에는 LG전자 중국지사 부사장을 거친 뒤 2001년부터 GS칼텍스 경영전략본부장·경영혁신본부장을 거쳐 지난해부터 생산본부장으로 일하고 있다.2003년에는 발전회사인 LG에너지 대표이사를 맡았지만 GS가 LG에서 분리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LG는 LG에너지 지분을 GS에 매각하는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허 부사장은 부인 이영아(47)씨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두고 있다. 허명수(50) GS건설 부사장은 경복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LG전자 청소기공장장, 영국 뉴캐슬 법인장 등을 거쳐 2002년 허창수 회장과 함께 GS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재경본부장으로 회사의 살림을 책임지고 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려대 ‘역도부’에서 활동했다. 허 부사장은 노재현 전 국방부장관의 딸인 부인 노경선(45)씨와의 사이에 2남을 뒀다. 노 전 국방장관은 ‘12·12사태’때 국방장관으로 말 못할 고초를 겪은 뒤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한국자유총연맹 총재 등을 지냈다. 허태수(48) GS홈쇼핑 부사장은 중앙고와 고려대 법대를 거쳐 미국 조지워싱턴대에서 MBA 코스를 밟았다. 이후 콘티넨탈은행, 어빙은행 등 금융권 경력을 살려 88년 LG증권 국제조사팀 과장으로 입사했다. 이후 런던법인 상무보 등 2002년까지 LG증권에서 일하다 LG홈쇼핑 전략기획부문 상무로 자리를 옮겼고 2003년 말 경영지원총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허 부사장은 중국 현지 법인인 ‘충칭GS쇼핑’ 설립을 주도하는 등 중국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허 부사장은 바로 위 형인 허명수 부사장과 함께 골프실력이 재계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싱글’ 수준을 넘어 ‘이븐’이나 ‘언더파’를 칠 정도로 프로 못지않다. 부인 이지원(43)씨는 이한동(71) 전 국무총리의 장녀. 한때 대권 후보로까지 나섰던 이 전 총리는 현재 법무법인 남명의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는데 아들 이용모(41)씨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장남가의 화려한 혼맥 고 허만정씨의 장남인 고 허정구 삼양통상 회장은 고 이병철 회장,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와 함께 삼성을 공동 창업했다. 보성전문 법학과 출신의 허 회장은 제일제당(현 CJ) 전무, 삼성물산 사장을 지낼 정도로 삼성 경영에 깊숙이 관여하다 57년 삼양통상을 설립, 독립했다. 야구공·글러브와 나이키 신발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하는 삼양통상은 지난해 2121억원의 매출에 97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삼양통상은 또 수입담배, 골프용품, 윤활유 판매 등을 맡고 있는 삼양인터내셔널과 보헌개발, 경원건설 등 건설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허 회장은 권투협회장, 대한체육회장, 프로골프협회장, 골프장협회장, 아시아태평양아마골프회 회장 등 체육계와 남다른 인연을 쌓았는데 생전에 체육훈장 기린장을 받았다. 삼양통상은 허 회장이 99년 사망한 뒤 장남인 허남각(67) 회장이 이끌고 있다. 허 회장의 부인은 이화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를 지낸 구자영(68)씨다. 허 회장은 보성고와 서울대 상대,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을 마친 뒤 63년 삼양통상 시카고 지사장으로 경영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을 지낼 정도로 스포츠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GS그룹의 주요 주주이자 ‘장손’ 자격으로 올 초 허창수 회장의 전남 여수 GS칼텍스 사업장 방문을 동행해 주목을 받았다. 허 회장의 장녀 정윤(34)씨는 정문원 전 강원산업 회장 아들 대호(37)씨와 결혼했고 아들 준홍(30)씨는 올해 GS칼텍스에 입사했다. 이로써 현대차 그룹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씨와 사돈으로 연결된다. 의선씨가 정문원 회장의 조카사위가 되기 때문이다. 장녀 허영자(65)씨는 벽산그룹 김희철(68)회장과 결혼, 김성식(38) 벽산 사장, 김찬식(36) 벽산 상무 등 3형제를 낳았다. 차남 허동수(62) GS칼텍스 회장은 보성고와 연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화학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대표적인 ‘오너경영인’이다. 허 회장은 미국 셰브론 리서치사의 연구원을 거쳐 73년 호남정유(현 GS칼텍스)로 입사,33년째 ‘오일맨’의 길을 걷고 있다. 국내 최초로 휘발유에 브랜드(테크론)를 도입하는가 하면 전 세계 정유업계 최초로 ‘6시그마’를 도입해 혁신을 추구했다. 도시가스, 전력,LNG 등 사업다각화와 대규모 시설투자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3월 국내 처음으로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KBCSD)를 설립,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아마 6단으로 바둑에 남다른 취미를 갖고 있는데 2001년부터 한국기원(총재 한화갑 민주당 대표) 이사장을 맡고 있다.GS칼텍스배 바둑대회를 신설해 바둑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젊은 시절에는 태권도 선수로도 활동했다. 김선집(86) 전 동양물산 회장의 장녀인 부인 김자경(60)씨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뒀는데 막내딸 지영(25)씨는 이병무(64) 아세아시멘트 회장의 차남 인범(34)씨와 결혼했다. 3남 허광수(59)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 상대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을 마쳤다. 삼양통상과 나이키의 합작사였던 한국나이키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아시아태평양 골프연맹 부회장, 영국 로열앤드에인션트골프클럽 정회원으로 골프와 인연이 깊다. 허 회장은 사촌 동생(명수·태수)들에 못지않은 골프실력을 자랑한다. 고려대 아이스하키 대표선수로 활약할 정도로 ‘운동신경’이 남다르다. 부인은 고 김동조 전 외무부장관의 딸인 김영자(55)씨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 회장의 부인 김영명씨의 언니다. 허 회장은 지난 2000년 외동딸 유정(31)씨를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아들 준오(31)씨와 결혼시켜 또 한번 화제를 뿌렸다. 삼양통상은 지난해 류근일(67) 전 조선일보 주필을 사외이사로 선임, 조선일보와 끈끈한 인연을 이어갔다. 허남각·동수·광수 3형제는 GS타워 인근에 ‘삼정빌딩’을 갖고 있는데 삼양통상 본사가 입주해 있다. 삼정은 3형제가 돈을 모아 세웠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3형제는 또 삼양통상 지분 17%,4.5%,3.1%를 나눠 갖고 있다. 허남각 회장의 아들 준홍(34)씨, 허동수 회장의 아들 세홍(36)·자홍(33)씨, 허광수 회장의 아들 서홍(28)씨도 각각 11%,1.7%,0.8%,1.7%를 갖고 있다. 삼양인터내셔널의 경우 준홍·세홍·자홍·서홍씨가 각각 37%,33%,11%,7.5%를 갖고 있어 사실상 2세들이 소유하고 있다. 차녀 허영숙(53)씨의 남편은 유명한 소설가인 윤후명(59·본명 윤상규) 한국문학원 원장이다. 윤씨는 연세대 철학과 재학중이던 67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현대문학상(여우사냥), 이상문학상(하얀배), 이수문학상(나비의 전설) 등을 수상했다. 연세대 강사와 추계예대 문예창작과 겸임교수, 한국소설대학 학장도 역임했다. ●LG의 창업공신 허학구·신구가 고 허만정씨는 8형제 가운데 허준구씨의 경영수업을 사돈에게 부탁했는데 이후 준구씨의 형인 고 허학구씨와 동생 허신구(76) GS리테일 명예회장도 LG경영에 뛰어들었다. 학구씨는 고향마을을 지키다 51년 플라스틱 사업 진출을 준비하던 락희화학에 들어갔다. 부산 범일동에 공장 부지를 마련하고 사업진출을 서두르던 구인회 LG 창업회장은 학구씨를 불러들여 아들 자경씨와 함께 공장업무를 맡겼다. 이후 각각 전무와 상무로 승진한 뒤에도 둘은 공장이 완공돼 빗, 칫솔 등을 생산하기 시작하자 군용 슬리핑백에서 잠을 자며 현장 노동자처럼 일했다고 한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당시 함께 고생한 학구씨와 그의 자형인 이연두씨 등 ‘지킴이 삼총사’가 일은 물론 술로도 호흡이 잘 맞았다고 회상했다. 학구씨는 6척 장신으로 경기고보 시절부터 농구선수로 이름을 날렸지만 부친(허만정)이 공부해야 한다며 진주고보로 전학을 시켰다. 하지만 진주고보에서도 농구를 시키려고 하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야 했다고 한다. 학구씨는 LG전선 부사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1970년 구자경 회장이 2대 회장으로 취임하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학구씨는 최필선(89)씨와의 사이에 1남3녀를 낳았는데 장남 전수(61)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새로닉스 회장을 맡고 있다. 새로닉스는 고 허학구 회장이 68년 설립한 ‘정화금속’이 이름을 바꾼 회사로 인쇄회로기판(PCB), 섬유강화플라스틱(FRP) 등을 생산하다 최근에는 LCD백라이트 부품인 도광판과 브라운관 전자총 부품 등 디스플레이 부품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변경했다. 허 회장은 71년 미국 센트럴 미시간대를 졸업하고 74년 정화금속 총무이사로 입사, 아버지 사업을 이어받았다. 허신구 GS리테일 명예회장은 부산대 상대를 나와 해운회사인 ‘조선통운’에 근무하던 시절 사돈어른인 구인회 창업회장의 부름을 받고 락희화학의 서울사무소 일을 맡았다. 허 명예회장은 처음에는 장사 경험이 없다며 사돈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자네 뒷조사는 다했다. 그만하면 일 하겠더라.”며 서울행 기차표를 쥐어주는 사돈의 청을 뿌리칠 수 없었다고 한다. 허 명예회장은 이후 동남아 출장에서 ‘합성세제’ 아이디어를 얻어 럭키 ‘하이타이’를 탄생시키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다. 금성사 사장, 럭키 사장, 그룹 부회장, 럭키석유화학 회장을 지내다 95년 구본무 회장 취임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다. 허 명예회장은 윤봉식(74)씨와 2남2녀를 뒀다. 장남 경수(48)씨는 코스닥 등록기업인 코스모화학 등을 주력으로 한 ‘코스모그룹’ 회장을 맡고 있다. 코스모그룹은 코스모정밀화학,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앤홀딩스, 코스모양행, 코스모아이넷, 코스모레저, 드림스포츠 등을 계열사로 거느리고 있다. 코스모화학은 코스모산업이 2003년 이산화티타늄 독점공급업체인 ‘한국지탄공업’을 인수하면서 이름을 바꾼 회사다. 허 회장은 LG전자에서 이사로 잠시 일하다 87년 코스모산업 설립과 함께 자리를 옮겼다. 동생인 허연수(44)씨는 GS리테일 상무로 삼촌인 허승조(55) 사장을 보필하고 있다. 보성고와 고려대 전기공학과를 거쳐 87년 LG에 입사한 허 상무는 LG상사 싱가포르법인장을 끝으로 상사를 떠나 2002년부터 LG유통(GS리테일)에서 일해 왔다. ●고향이름을 딴 승산가 허완구(69) 승산 회장은 미국 페이퍼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돌아와 잠시 LG에서 일했지만 69년 ‘대왕육운’이라는 물류회사를 차려 일찌감치 독립했다. 허 회장은 이미 LG에서 자리를 잡고 있던 형님들이 너무 많아 회사를 나왔다고 한다. 대왕육운은 이후 구씨와 허씨의 고향 이름을 따 승산으로 이름을 바꿨다. 허 회장은 한국올림픽위원회(KOC) 상임위원, 부위원장과 민속씨름협회장 등을 맡을 정도로 스포츠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아버지 허만정씨가 1925년에 설립한 진주여고(일신여고)에 100억원을 쾌척, 교사를 새로 짓는 등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96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았다. 장남 허용수(37) 승산 사장은 보성고와 미국 조지타운대를 마치고 뉴욕 및 홍콩 CS 퍼스트 보스턴 투자증권에서 일했다.98∼99년에는 국민은행 사외이사로도 활동했다. LG그룹의 육상 운송을 담당하는 승산은 허 사장이 58.55%, 여동생인 허인영(33) 승산레저 이사가 18.48%, 허완구 회장이 18.34%, 허 회장 부인 김영자(66)씨가 4.63%를 갖고 있다. 김영자씨는 ‘추일서정’,‘와사등’ 등으로 유명한 시인이자 사업가였던 고 김광균씨의 딸이다.‘매듭공예가’인 김은영(63) 녹미미술문화협회 이사장이 동생이다. LG는 친인척 소유의 회사에 물류업무를 맡기고 있는데 수출 관련 물류는 고 구정회씨 둘째 아들인 고 구자헌씨가 운영하던 범한종합물류가 담당한다. 범한여행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범한물류는 구자헌씨의 미망인인 조금숙(55)씨가 54%, 아들 구본호씨가 46%의 지분을 갖고 있다. 승산은 물류회사인 에스엘에스·여수화물, 골프장·호텔사업을 하는 승산레저 등을 계열사로 갖고 있다. 국내보다 미국내 계열사인 철강회사 파웨스트스틸(Farwest Steel)의 규모가 훨씬 크다. 허 회장이 91년 인수한 파웨스트스틸은 지난해 2593억원의 매출에 183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모회사인 승산(매출 867억원, 순이익 183억원)보다 덩치가 크다. ●‘젊은 삼촌’ 3형제 허승효(61)씨는 조명전문업체인 알토 회장을 맡고 있는데 경남고와 경희대를 졸업하고 형님 회사인 정화금속 이사와 승산의 대표이사를 역임한 뒤 85년부터 알토를 이끌었다. 알토는 아셈타워 정상회의실과 인터컨티넨탈 호텔, 서울역사, 인천공항 여객터미널,GS타워 등의 조명시스템을 설계, 제작했다. 숭례문, 보신각, 비원, 동십자각 등 문화재 조명도 이 회사의 작품이다. 허 회장은 서울시 야간경관 개선 공로로 월드컵유공자, 모범시민상 등을 받았다. 그는 한국조명디자이너협의회 회장, 한국산업디자인협회 이사, 한국전기설비조명학회 이사 등을 맡을 정도로 조명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지난해 매출 311억원, 순이익 20억원을 낸 알토는 허 회장이 36%, 아들 영수(36)·윤수(32)씨가 각각 15%, 동생인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이 각각 3.8%의 지분을 갖고 있는 ‘가족기업’이다. 영수씨는 현재 GS리테일 과장으로 일하고 있다. 허승표(59) 인텍웨이브 회장은 기업인으로뿐만 아니라 ‘축구인’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보성고와 연세대 상대, 서울은행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했고 74년 한국인 최초로 영국 프로축구 3부 리그에서 뛰기도 했다. 허 회장은 78∼90년 형님 회사인 승산에서 근무한 뒤 90년 방송 프로그램 제작, 미디어 유통,CF편집 등을 담당하는 미디아트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미디아트는 허 회장과 부인 조희숙(56)씨, 딸 서정(29), 아들 준수(28)씨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허 회장은 2000년에는 이동통신용 전력 증폭기, 유무선 통신용 부품 및 이동통신용 중계기 등을 제조하는 ‘인텍웨이브’를 설립,IT업종으로 발을 넓혔다. 인텍웨이브는 LG전자 등을 주 거래처로 지난해 1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허 회장은 90∼92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을 지냈고 97년에는 축구협회장 선거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회장 선거 출마설이 나돌았지만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는 선에서 정리했다. 축구계의 ‘야당’으로 불리는 연구소는 이용수, 신문선씨 등이 책임연구원을 맡고 있다. 허승조(55) GS리테일 사장은 서울고와 한양대 공업경영학과를 마치고 78년 럭키금성상사에 입사했다. 이후 패션본부장, 유통사업부문장, 마트부문장 등을 역임하다 2000년 LG백화점 사장으로 유통경영을 시작했다.2002년 LG백화점,LG상사 할인점 부문,LG유통이 LG유통으로 통합되자 초대 사장을 맡아 지금까지 이끌고 있다. 허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10년 뒤의 장기 비전을 갖고 대비하라.”고 주문하고 ‘페어플레이’를 강조한다고 한다. 허 사장은 지난해 말 세계적인 헬스·미용 전문기업인 ‘왓슨’과 합작으로 ‘GS왓슨스’를 설립, 지난 3월 홍익대에 1호점을 내고 지난 2월에는 코오롱마트를 인수하는 등 신규사업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태광그룹 창업주 고 이임룡 회장의 장녀인 부인 이경훈(51)씨와 2녀를 두고 있다. 허 사장의 처가는 장상준 전 동국제강 회장, 양택식 전 서울시장, 한광호 한국베링거인겔하임 명예회장, 신선호(롯데 신격호 회장 셋째 동생) 일본 산사스식품 사장 등과 혼사를 맺었다. ukelvin@seoul.co.kr ■ 허씨의 남다른 축구사랑 GS그룹은 분리되면서 LG의 프로야구·프로축구·프로농구 등 스포츠 가운데 축구를 갖고 나왔다.‘안양LG’는 지난해 3월 ‘FC서울’로 이름을 바꿔 서울 입성에 성공한 뒤 거물 신인 박주영을 잡으면서 일약 명문구단으로 떠올랐다. FC서울의 눈부신 성장에는 허창수 회장 등 허씨 일가의 남다른 축구사랑이 밑거름이 됐다. 98년부터 LG축구단 구단주를 맡은 허 회장은 축구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데 해외출장 중에도 FC서울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인터넷을 통해 경기상황을 직접 확인할 정도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녹화해 나중에라도 꼭 챙겨 본다고 한다. FC서울은 박주영의 고교(청구고)시절인 2002년부터 영입에 공을 들였다. 비록 박주영이 고려대 진학으로 진로를 정하면서 영입에 실패했지만 이후에도 끈질기게 박주영측과 고대를 설득, 마침내 대어를 품에 안는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허 회장이 모교인 고대에 7억원짜리 잔디구장을 기증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GS측은 “그런 사실은 없다.”고 부인했다. 하지만 허 회장 5형제가 모두 고대 출신일 정도로 고대와 깊은 인연이 어떤 식으로든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박주영의 유니폼에 광고를 하고 있는 GS건설은 박주영 신드롬으로 광고효과만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GS리테일이 실시한 ‘박주영 경기 보러 가자.’라는 이벤트에는 3만 6000여명이 응모하는 대성황을 이뤘다.GS는 지난 5월10일 열린 ‘GS출범 이벤트’ 추첨자로 박주영을 내세우는 등 박주영을 그룹의 ‘얼굴’로 십분 활용하고 있다. 허 회장의 삼촌으로 연세대, 서울은행, 영국 아스날에서 축구선수로 활약한 허승표 인텍웨이브 회장은 축구계의 대부로 통한다. 그는 97년 대한축구협회 회장직에 도전한 데 이어 올 초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을 맡아 축구계 개혁에 힘쓰고 있는데 경쟁 상대인 정몽준 회장이 조카인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의 동서라는 점이 이채롭다. 사돈간의 ‘정리’도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막지 못한 것이다. 허씨들은 축구 외에도 아이스하키, 골프, 역도, 태권도 등 다양한 스포츠에 재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GS 관계자는 “허씨들이 키가 크고 체격이 좋은데다 집안에 여유가 있어 일찍부터 스포츠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고 말했다. 허씨 3세 남자들 가운데는 아마추어 수준 이상의 축구 실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여자들도 열성 축구팬이 많다. ukelvin@seoul.co.kr ■ 계열사의 핵심인맥 GS그룹은 숫자에 관한 감각이 탁월하다는 오너 허씨 일가에 이어 각 계열사 CEO도 재무통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18조원이 넘는 그룹 자산을 관리, 운용하고 투자 포트폴리오를 짜야 하는 서경석(58) GS홀딩스 사장은 부산 출생으로 경남고를 졸업했다. 서울대법대 4학년이던 70년 행정고시 9회에 합격, 국세청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재무부 세제국, 국세심판소 조정실장, 간접세과장, 소득세제과장, 조세정책과장, 상임심판관, 주 일본 대사관 재무관 등을 역임하고 91년 LG그룹 회장실 재경 상임고문으로 옮겼다. 서 사장은 공직에서 쌓은 재무 경력을 바탕으로 LG에서도 회장실 재무팀장, 전략개발사업단 운영본부장,LG투자신탁운용 사장,LG종금 사장, 극동도시가스 사장,LG투자증권 사장 등을 거쳤다. 허창수 회장이 서 사장을 GS그룹으로 영입한 것도 그의 회계·재무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강말길(62) GS홈쇼핑 부회장 역시 재무통이다. 부산대 상대 출신으로 공인회계사이기도 한 강 부회장은 금성통신 재경본부장, 관리담당 이사를 거쳐 회장실의 관리담당 상무를 역임했다.89년 LG유통(GS리테일) 전무로 부임, 유통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고 95년 LG유통 대표이사로 취임한 지 3년만에 만년 적자이던 편의점 사업을 흑자로 돌려 놓은 뒤 지난해 LG홈쇼핑으로 옮겼다. 김갑렬(57) GS건설 사장은 허창수 회장의 경남고, 고려대 경영학과 동기동창으로 74년 LG화학 입사 후 LG상사 등을 거쳐 93년부터 96년까지 LG건설 재경 담당을 역임했다. 이후 LG구조조정본부 재무팀장과 LG화학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거치며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부상했다.2002년 허 회장과 함께 LG건설로 옮겨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김 사장은 취임 당시 “2010년까지 양과 질에서 국내 1위 건설회사로 만들겠다.”던 약속대로 2002년 3조 6000억원이던 수주액을 2003년 5조원, 지난해 6조원으로 키워냈고 올해 6조 500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완경(51) GS스포츠 대표이사 부사장도 선린상고와 고대 경영학과를 거쳐 79년 LG그룹 기획조정실에 입사한 이래 줄곧 재경업무를 담당해 왔다.LG투자증권 부사장으로 서경석 사장과 함께 ‘LG증권 전성시대’를 연 주인공으로 GS홀딩스 재무팀장을 겸임하고 있다. 심재혁(58) 한무개발 사장은 연세대 상대, 미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출신으로 LG그룹 홍보팀장을 거쳤다. 인터컨티넨탈을 국내 최고 수준 호텔로 키워내 재계의 대표적인 ‘홍보맨 CEO’로 꼽힌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고객이 만든 제품 팔아 드립니다

    고객이 만든 제품 팔아 드립니다

    “일반인들이 손수 만든 제품을 대신 팔아줍니다.” ●값 싸고 품질 좋아 인기 아마추어 작가들의 제품을 전문적으로 팔아주는 서울 양천구 목1동의 행복한세상백화점 ‘마이핸즈숍’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정성이 들어 있으며, 품질도 뛰어난 덕분이다. 마이핸즈숍을 담당하는 이종원 여성의류팀장은 “백화점에 대한 친밀도를 높여 지역 소비자들을 유치하겠다는 차원에서 이 매장을 열게 됐다.”며 “매장 오픈 이후 찾아오는 소비자들이 매달 10∼20% 늘어날 정도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고 밝혔다. ●니트·포크아트·퀼트 등 공예 생활용품이 주류 지난해 10월 문을 연 ‘마이핸즈(My Hand’s)숍’은 소비자의 제품을 위탁 판매해 주는 전문 매장. 손뜨개·니트류와 포크아트(가구 등의 제품에 손으로 섬세하게 꽃무늬 등을 그려넣은 공예품)제품·퀼트(조각 천을 이어 가방이나 지갑, 벽걸이 등을 만드는 공예품)용품·십자수·비즈(구슬)공예·전통 조각보 제품 등 공예 분야의 생활용품을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다. 이곳을 찾은 주부 한지혜(29·양천구 목동)씨는 “부담스럽지 않은 가격에 독특하고 예쁜 소품들을 구입할 수 있어 자주 들른다.”며 “디자인이 깔끔하고 예쁜 목걸이와 귀고리가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대학에서 섬유 디자인을 전공한 경력을 살려서 기회가 된다면 ‘작품’을 만들어 이곳에서 팔아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했다. 주부들이 자주 찾는 인기 품목은 작은 핸드백류를 비롯해 여름철을 맞아 비즈와 자개, 은 등 다양한 소재와 독특한 디자인으로 만든 액세서리, 포크아트, 퀼트, 구체관절 인형(인형의 관절을 분해한 다음 구체(동그란 관절부분)를 만들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연결한 것)의상 등이다. 귀고리 세트는 1만∼1만 5000원이며, 크리스털 나비 목걸이와 귀고리 세트는 4만원, 백금으로 도금된 독특한 체인과 진주가 조화를 이루는 목걸이와 귀고리세트는 5만원이다. 은을 가공해 원석과 산호 등이 어우러진 독특한 문양의 금속 목걸이는 2만 5000∼3만원, 나이가 젊어 보이는 가죽줄에 자개로 만들어 시원한 느낌도 함께 주는 목걸이는 가격이 3만원으로 부담이 없어 40∼50대 주부들이 많이 찾고 있다. 동전 지갑을 고르고 있던 주부 성경주(35·양천구 신월동)씨는 “디자인이 산뜻하고 깔끔한 데다 공이 많이 들어간 작품처럼 보여 마음에 든다.”며 “하지만 대량 생산되는 제품이 아닌 만큼 한번 잃어버리면 똑같은 스타일의 제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이 흠”이라고 지적했다. 포크아트용품에는 전화기가 23만원, 시계 7만원, 앨범이 6만 5000원, 이쑤시개통 1만 5000원 등이 있다. 한땀한땀 바느질을 해서 만든 퀼트제품에는 동화의 한 장면을 옮겨놓은 듯한 키홀더가 1만 5000원, 꽃무늬와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동전 지갑이 1만 8000원, 화사한 디자인의 퀼트 손가방이 6만원이다. 마니아들이 주로 구입하는 구체관절인형 의상은 한벌에 6만원으로 고가지만, 호평받는 제품이다. ●‘아마 작가’ 명예 걸고 판매… AS ‘보증’ 디자인을 의뢰하면 그대로 만들어주는 맞춤 의상도 제작해 준다. 상품권 포장용으로 인기를 모았던 전통 조각보로 만든 돈보, 테이블 세팅을 위한 조각보 메트가 각 1만원 등으로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품목들이다. 특히 퀼트 원단으로 만든 원피스는 자잘한 꽃무늬와 원단이 부드러워 고가품(15만원)에 속하지만 내놓기가 무섭게 팔려나갈 정도이다. 이들 제품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유명 브랜드’가 아니어서 가격이 싸지만, 위탁 판매자인 ‘작가’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공을 들여 만드는 만큼 품질도 뛰어나기 때문이다.AS가 가능하고 액세서리의 경우 위탁 판매를 맡기는 아마추어 작가들이 지역내 주부들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도 인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김문기 여성팀 대리는 “마이핸즈숍으로 지역 주민들의 백화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져 백화점 자체적으로도 성공작으로 평가하고 있다.”면서 “미술이 전공인 한 전업주부는 직접 아이디어를 내 만든 ‘손뜨개 두건’이 인기를 끌자 ‘언더그라운드 유명작가’로 발돋움했다.”고 귀띔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가격 파괴’ 소문난 벼룩시장… 알짜 중고품 천지 행복한세상이 ‘마이핸즈숍’과 함께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특화매장은 ‘벼룩시장’이다. 매달 마지막주 목요일에 들어서는 벼룩시장은 각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소비자들이 가져와서 직접 다른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장터. 판매 대상은 아이들의 작은 옷과 쓰지 않는 장난감, 사용하지 않는 소형 가전, 읽지 않은 책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아이들 옷과 장난감의 경우 내놓자마자 판매될 정도다. 특히 좋은 물건을 매우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곳으로 입소문이 나면서, 백화점 판매전략팀 직원 20여명이 벼룩시장 관리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붐비고 있다. 이 덕분에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진행되는 이 행사는 시장이 열리고 1시간 정도면 나와 있는 제품의 절반 이상이 팔려 나간다. 가격은 대부분 2000∼5000원이다. 최홍준 판매전략팀 과장은 “벼룩시장을 오픈할 때에는 이 정도로 지역주민의 반응이 뜨거울지 몰랐다.”며 “가정에서는 필요없지만 손때 묻은 물건을 주부 스스로가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판매한다는 점과 그 물건을 통해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에 주부 스스로 매우 만족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딸과 함께 가는 당일치기 논개축제

    경남 진주는 문화예술에 목말라하는 현대인들의 정서를 촉촉하게 적셔줄 단비와 같은 여행지다. 무색무취한 일상에서 벗어나 ‘느낌’ 있는 여행을 원하는 사람에게 제격이다. 예로부터 ‘북평양 남진주’로 불릴 정도로 전통 문화가 융성한 고장이자 방년 19세의 나이로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든 논개의 숨결이 살아 숨쉬는 곳이다. 작은 도시에 ‘진주 8경’이 숨어있을 정도로 아름답다. 초여름의 푸름 속에서 27∼29일 열리는 논개축제를 비롯해 한달에 두차례 열리는 소싸움, 조선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체험, 실크밸리 탐방, 유등축제 등 일년내내 문화 축제가 마련돼 있다. 특히 ‘양귀비 꽃보다 더 붉은’ 논개의 영혼이 녹아 있는 남강과 진양호의 석양은 일상의 답답함을 시원스레 날려준다. 진주(眞珠)처럼 작지만 아름답고 커다란 빛을 뿜어내는 도시 진주로 안내한다. ●푸른 강바람에 가슴이 활짝 가슴이 활짝 열린다. 진주 IC를 빠져 나오자 진주 시내를 휘감고 흘러가는 남강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강가의 아찔한 바위절벽에 우뚝 서 있는 진주성의 풍광은 한폭의 수채화다. 임진왜란(1592년) 당시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충절을 다했던 그 강물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유유히 흘러가는 물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도착한 곳은 진주성(사적 118호). 진주성은 임진왜란 당시 3800여명의 적은 군사로 2만여명의 왜군을 물리친 3대 대첩지 가운데 하나다. 입장료는 어른 1000원이며, 주차료는 30분에 500원, 추가 10분당 200원이다. 진주성 관광안내센터(055-749-2485). 논개의 기상이 서려 있는 촉석루에 올랐다. 녹음이 우거진 촉석루는 남원 광한루, 밀양 영남루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누각의 하나이자 진주 8경중 제 1경이다. 초여름 햇살에 비친 남강은 어딘가에 논개의 넋이 흐르는 듯했다. 촉석루 아래에 있는 의암은 원래 ‘위험한 바위’라는 뜻의 ‘위암’이라고 불렸으나 논개의 의로운 행동을 기리기 위해 ‘의암’으로 불리게 됐다.11m 높이의 절벽위에 서면 ‘19세의 어린 나이로 어떻게 죽음의 고통을 견뎌냈을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저려온다. 진주성 안에 있는 논개사당 의기사에 있는 ‘논개 영정’은 이 지역 시민단체가 친일파 화가가 영정을 그렸다는 이유로 지난 10일 강제로 뜯어내는 등 논란을 빚기도 했다. 촉석루를 나와 1760m 길이의 성벽을 따라 걸으면 멋진 산책로가 펼쳐진다. 서장대와 북장대 등 누각과 임진왜란을 주제로 꾸민 진주박물관, 김시민 장군 전공비, 호국사 등을 둘러볼 수 있다. 진주는 특히 남강의 야경이 일품이다. 논개축제를 앞두고 최근 성벽을 오렌지색으로 밝히는 야간 조명공사가 끝나 남강에 비친 진주성의 멋진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전체적인 야경을 감상하려면 진주성 맞은편의 남강 둔치나 진주교, 천수교가 좋다. 남강을 거슬러 서쪽으로 올라가면 석양이 아름다운 진양호가 나온다. 덕유산과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온 남강물이 잠시 머무는 낭만의 호수. 저녁 노을이 질 무렵 황금물살을 가르는 보트의 모습은 마치 달력의 그림처럼 환상적이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찍한 진양호반과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전망대는 일년 계단과 연결돼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다. 남인수 광장에는 진주 출신 대중가수인 고 남인수씨의 ‘애수의 소야곡’이 구성지게 울려퍼져 호반의 정취를 더해준다. 백두산 호랑이와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마리 야생동물을 볼 수 있는 동물원은 어린이들의 인기 명소다. 진양호공원관리사업소(749-2510).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문화 진주는 전통 예술의 도시답게 진주만의 독특한 문화행사가 즐비하다. 대표적인 축제는 27∼29일 열리는 제4회 논개제로 어느 지역에서도 흉내낼 수 없는 진주만이 가지고 있는 소재로 구성됐다. 여성들만이 제관이 될 수 있는 제례인 의암별제와 진주오광대, 교방굿거리춤, 화포발사시연, 기생사진전 등이 펼쳐진다.27일 오후 9시와 28일 오후 7시30분에는 의암 주변에서 ‘논개 투신장면’이 재현된다. 논개축제준비위원회(755-9111). 논개를 정점으로 한 진주 기생의 맥을 잇는 교방문화는 일제시대 천한 기녀들의 생산물로 치부되면서 사라졌다가 복원된 전통문화. 교방춤 따라 배우기와 악기다루기 등 다양한 교방문화 체험도 가능하다. 비용은 1만원, 진주민속예술보존회(746-6282). 천수교 다리 아래 남강 백사장의 ‘상설투우장’에서는 한달에 두차례 소싸움이 열린다. 진주 소싸움은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는 전통 지역 축제다. 첫째, 셋째 토요일이면 머리를 맞대고 거친 숨소리를 내며 맞부딪치는 소들의 혈투를 즐길 수 있다. 서로를 향해 돌진하는 싸움소의 불끈대는 근육은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입장료는 무료. 진주투우협회(742-6150). 진주성 서쪽 공북문에서 서문까지 600m에 이르는 인사동 골동품 거리는 꼭 들러 봐야 할 곳. 자연발생적으로 조성된 거리에는 20여개 업소가 몰려 있는데 고문서와 전적, 서화, 탁본류, 민속자료, 도자기, 조각품, 공예품, 석물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이 저렴해 일반관광객도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다. 진주는 또한 우리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하다.130여개의 견사업체에서 국내 생산량의 80%를 생산하고 있다. 올 10월에는 세계의상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 선진국형 성장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다채로운 행사를 준비중이다. 한국견직연구원(www.ksri.re.kr)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견직업체 현황 등 진주 견직산업의 현주소를 볼 수 있다. 진주성 앞 실키안(747-9841)과 진주시청사내 특산품 판매점에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진주의 먹을거리 진주 비빔밥과 진주장어구이가 유명하다. 진주성 전투때 처음으로 선보였다는 진주비빔밥은 진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음식이다. 동황색의 둥근 놋그릇과 쌀밥, 그리고 다섯가지의 나물이 어우러져 칠보화반으로도 불린다. 천황식당(741-2646)과 설야(762-0585)가 유명하다. 진주 장어는 비린내가 없고 담백하며 깻잎에 싸 먹는 맛이 일품이다. 유정장어본점(746-9235)과 남강장어(747-0888)가 맛있다. ■ 이렇게 가세요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 진주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박 2일 일정이 적당하지만 대전~통영고속도로를 타면 수도권에서 당일 여행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전~통영속도로를 타면 대전에서 서진주IC까지 1시간30분 정도로 길이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3시간30분이면 갈 수 있다. 서울고속버스터미널에서는 오전 6시부터 20∼50분 간격으로 진주행 고속버스가 있으며,3시간50분 정도 소요된다. 요금은 일반 1만 56000원, 우등 2만 3200원. 항공편은 김포~사천 공항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이 하루 6차례 왕복 운항하며, 도착시간에 맞춰 시내까지 공항버스가 운행된다. 전남·경남 부산 등지에서는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진주 IC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진주시 문화관광과(749-2055). 진주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운동장조회…조개탄난로…교육 100년 사진전

    운동장조회…조개탄난로…교육 100년 사진전

    ‘하얀 저고리, 검정 치마의 순박한 여학생, 개구쟁이 학생들의 운동회, 길게만 느껴졌던 운동장 조회….’ 어렴풋이 추억 속에 담아놓았던 지난 학창시절이 그리운가요. 그럼 경기도 고양시에 들러 보세요. 한국 교육의 지난 100년을 돌아볼 수 있는 ‘한국교육 100년 사진전’이 다음달 1일부터 14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 열린다. 서울신문사와 교육인적자원부가 주최하고 한국교육개발원 주관으로 열리는 이번 행사는 ‘2005 교육·인적자원혁신박람회’의 하나로, 우리나라 교육 100년의 역사 자료 수집을 위해 마련됐다.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공모한 700여점 가운데 1900년대 이후 교육 현장의 생생한 순간을 담은 귀한 사진 100여점을 선보인다. 대상에는 이주춘씨의 ‘시험치는 날’(1975년)이 선정됐다. 짝꿍 사이에 커닝을 못하도록 책가방을 세로로 놓고 문제를 푸느라 끙끙거리는 초등학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을 듯한 기억으로 시험 부정에 대한 고민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서울여상의 ‘즐거운 점심시간’(1930년)과 서울 삼육초등학교의 ‘운동회 조회’(1923년)는 우수상으로 뽑혔다.‘즐거운 점심시간’은 길게 머리를 땋아내린 여학생들이 밥 소쿠리를 가운데 놓고 얌전히 식사하는 장면을 담았다. 당시 사진들이 대부분 기념사진 형태인 점을 감안하면 당시 여학생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는 희귀한 사진이라는 점을 인정받았다.‘운동장 조회’는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치마저고리, 교복과 비슷한 옷 등 당시 초등학생들의 다양한 옷차림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눈길을 모은다. 장려상에는 김정희씨의 ‘미술시간’(1956년)을 비롯해 정지연씨의 ‘난로가 있는 정겨운 교실풍경’(1960년), 서울여상의 ‘주산 수업시간’(1981년), 김태우씨의 ‘벌’(2004년), 서울 계성초등학교의 ‘계성만세’(1925년) 등 5점이 선정됐다. 입선작으로는 올해로 개교 100주년을 맞은 경남 진주 중안초등학교의 ‘우리나라 최초의 공립학교 졸업생’을 비롯한 31점이 뽑혔다. 사진전을 포함한 2005 교육·인적자원혁신박람회에 대해 궁금한 사항은 박람회 홈페이지(www.eduexpo2005.com)에서 찾아볼 수 있다. 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싱 “우즈 비켜”

    ‘검은 진주’ 비제이 싱(피지)이 소리소문없이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를 제치고 골프 세계 랭킹 1위에 다시 올라섰다. 싱은 24일 미국프로골프(PGA) 사무국이 발표한 순위에서 랭킹 포인트가 12.85로 올라 12.63에 머문 우즈를 0.22차로 밀어냈다. 싱과 우즈는 23일 막을 내린 PGA 투어 뱅크오브아메리카콜로니얼에 모두 출전하지 않아 포인트를 추가하지 못했지만 PGA 랭킹 산정 방식에 따라 우즈가 상대적으로 포인트를 더 잃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로써 싱은 지난 4월12일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으로 빼앗긴 세계 정상의 자리에 42일만에 복귀했다. 그러나 정상의 자리는 여전히 살얼음판. 이전까지 우즈가 0.18차로 싱에 앞서다 결국 2인자로 밀려난 것처럼 워낙 적은 점수차 때문에 언제 또 순위가 뒤바뀔지 점치기 힘든 상황이다. 싱은 지난 3월21일 베이힐인비테이셔널 준우승으로 우즈를 ‘지존의 자리’에서 끌어내렸지만 불과 22일만에 다시 1·2위 자리를 바꿨다. 한편 ‘탱크’ 최경주(35·나이키골프)는 지난주 29위에서 32위로 3계단 떨어졌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패션+α]

    ●IPKN(입큰)은 ‘퍼퓸 파우더 팩트 샤이니핑크 기획세트’를 출시한다. 기존의 퍼퓸 파우더 팩트와 동일한 가격인 2만 8000원에 바디 쉬머 펄, 퍼프를 함께 구성했다. 바디 쉬머 펄은 화이트, 핑크, 실버 색상의 진주펄 성분을 섞어 얼굴과 몸에 반짝이는 효과를 주며 피부 본래의 탄력을 돋보이게 한다. 사랑스러운 분홍빛 케이스로 선물용으로 좋다.080-424-7788. ●백옥생은 행인, 피마자, 유근피, 상백피, 문형 등의 복합 한방성분과 콜라겐, 엘라스틴이 농축 함유된 ‘퓨어스노이 아이크림’을 출시했다. 주요성분인 행인(앵두추출액)은 주름을 펴고 피부에 보습을 주며, 문형(쇠뜨기)은 피부의 신진대사를 도와 혈행을 개선해 잔주름을 잡고 탄력 있는 눈매를 유지시킨다는 설명. 용량 30㎖,5만 5000원.(02)2285-0345. ●안경전문매장 아이닥(www.eyedaq.com)은 6월30일까지 고급 선글라스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눈 사랑 이벤트’를 연다. 광학렌즈(CR39), 폴리카보네이트 등으로 제작해 시력 보호 기능이 높은 국산 제품을 5900원,9900원 1만 9900원에 마련했다. 수입 선글라스는 4만 9900원. 명동엘리트안경원(02-754-0110), 엘리트안경 일산점(031-902-7711), 룩아이안경원(032-422-1088)에서 진행한다. ●젬브로스는 샹들리에 스타일의 6월 컬렉션 ‘지오로 루미나스’를 출시했다. 블루 그린 다이아몬드와 화이트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디자인이 시원함을 선사한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 논현동 본사 부티크, 인터넷 쇼핑몰(www.gembros.co.kr)에서 만날 수 있다. 가격미정.(02)517-5727. ●빈폴진은 KTF의 모바일 게임 서비스 ‘지팡(GPANG)’과 손잡고 게임 마니아들을 위한 청바지 ‘지팡진’을 출시했다. 패션과 유행을 중시하고 최신 디지털기기에 관심이 많은 ‘테크노섹슈얼족’을 타깃으로 게임폰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수납 주머니를 만들었다.5가지 스타일,14만 9000∼15만 9000원. ●서울패션디자인센터는 지난 4월 열린 ‘2005 춘계 신진디자이너컬렉션’에 참가한 디자이너 전시회를 31일까지 현대백화점 신촌점 지하 2층 ‘씨컨셉트’에서 연다.‘New Creator’s Choice’라는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번 전시회는 고지현, 이영준, 김원미, 신민경·이미진, 오민아, 장종빈, 장주희, 정희정, 한정아 등 디자이너들이 컬렉션 사진과 의상 각 2벌씩을 출품할 예정이다.
  • 삼겹살 제주·파마는 고양 최고 비싸

    지역별로 개인서비스 요금이 다양한 가운데 삼겹살 1인분과 여성 파마요금은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22일 한국소비자연맹 강원·춘천지회에 따르면 전국의 지역 소비자단체가 지난 5일 춘천, 서울, 부산, 대전, 광주 등 전국 16개 지역에서 외식, 교육, 미용, 레저 등 23개 개인서비스 품목의 가격을 일제 조사해 비교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조사결과 삼겹살 1인분의 가격은 전국 평균이 6032원이었다. 그러나 가장 비싼 제주시(7300원)와 최저가인 진주시(3750원)는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또 여성 미용요금인 기본 파마료는 최고 높은 고양시(2만 8125원)와 최저가인 춘천시(1만 6875원)는 1만 1000원가량의 차이가 있었다. 이밖에 초등학생 초급반을 기준으로 한 피아노 월 학원비는 최고가가 춘천(7만 7500원), 최저가는 광주(5만 7750원)로 나타났다.PC방 시간당 이용료의 경우 최고가는 고양시(1125원), 최저가는 대구시(675원)로 지역에 따라 가격 차이가 컸다. 반면 휘발유 가격의 최고가는 제주시(1468원), 최저가는 대구(1396원)로 조사됐으며 시내버스 요금은 최고가가 춘천·원주시(950원), 최저가는 제주시(800원)로 지역차가 거의 없었다. 한편 춘천지역은 갈비탕(6000원)과 피아노 학원비, 시내버스 요금 등에서 전국 최고가 수준이었으며 파마료, 비빔밥(3113원), 등유(850원) 등은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LG家 ②-구인회 3代 경영

    지난달 19일 러시아 모스크바 출장길에 오른 구본무(60) LG 회장을 수행한 사람은 차장급 직원 한명뿐이었다. 계열사 사장들과 같이 가는 출장이 아니면 수행은 늘 직원 한명이 담당한다. 공항으로 임원들이 배웅이나 마중을 나오는 것도 금지한다. 구 회장은 지난 12일 LG 계열사 사장단 20여명과 함께 국내사업장 ‘혁신투어’를 나서면서 자신의 차량인 ‘벤츠S600’을 놔 두고 대형 관광버스 2대를 빌렸다. 사업장간 이동중에도 사장들과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다. 지난 2003년에도 구 회장은 버스로 2박3일간 전국의 사업장을 누볐다. 이처럼 ‘격식’을 따지기보다 실용성을 강조하는 구 회장을 두고 ‘소탈한 이웃집 아저씨 같다.’는 평이 따라다닌다. 사람좋아 보이는 눈웃음 등 구 회장의 외모도 이같은 이미지 구축에 한몫했다. ●몸에 밴 검소한 생활 구 회장의 소탈한 모습은 아버지 구자경(80) 명예회장이나 할아버지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인회 회장은 창업초기인 40년대 후반 부산 서대신동 시절 활동하기 편하다며 미군 파카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외출할 때를 제외하곤 공장내에서 늘 입고다녀 소매가 닳고 기름때가 반지르르 묻은 옷이었다. 구 회장은 또 비싼 담배와 싼 담배를 같이 갖고 다니면서 손님에게는 좋은 담배를 권하고 자신은 값싼 담배를 피웠다.“돈이란 벌 때 아껴야 하는 법”이라는 지론이다. 사돈이자 동업자인 고 허준구 회장도 당시 판매와 구매일을 맡으면서 수금하러 거래처를 다닐 때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찰떡궁합’인 셈이다. 구자경 명예회장은 사업장이나 계열사 사무실을 즐겨 찾았는데 어떤 때는 사전통보없이 불쑥 고객서비스센터 등 현장을 방문해 생생한 고객의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럭키증권(현 우리투자증권) 객장을 방문했을 때는 고객들이 좁은 객장에서 불편을 겪고 있는데 반해 임원실이 한 부서보다 큰 것을 보고 “무슨 임원방이 내 방보다 커요?”라며 질책을 했다고 한다. 이같은 소탈한 이미지 때문인지 LG의 회장들은 삼성이나 현대에 비해 강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 ‘시사저널’이 지난해 발표한 가장 영향력있는 기업인 순위에서도 구본무 회장은 삼성 이건희 회장은 물론 현대차 정몽구 회장보다 순위가 낮았다. 재계에서 LG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대차그룹보다 낮지 않은데도 그룹총수의 영향력은 현대차가 높게 나온 것이다. LG관계자는 구 회장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이렇게 반박했다.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는 허씨와의 동거기간이었고 2년전까지만 해도 삼촌뻘 되는 집안어른들이 계열사 사장을 맡고 있었다. 또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국제통화기금(IMF) 직격탄을 맞았고 99년에는 반도체 빅딜로 주력사업을 빼앗기는 고초를 겪었다. 사실 구 회장의 총수로서의 경영능력은 올해부터 검증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LG의 상징, 인화(人和) 구인회 창업회장은 포목상, 청과·어물전, 운수업 등 숱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 47년 럭키크림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사업인생을 걸었다.6형제의 장남(4명의 여자형제도 있었으나 일찍 사망함)이자 6남4녀의 아버지가 하는 사업을 돕기 위해 초기 가족들의 고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경영도 대부분 가족이나 사돈(허씨)들이 도맡아 했다.47년 락희화학 설립당시 생산담당이었던 김준환씨를 제외하면 구 회장, 부사장 고 구정회(둘째 동생)씨, 영업담당 허준구(첫째 동생 철회씨 사위)씨 등으로 사실상 ‘가족기업’이었다. 이후에도 아래로 다섯 동생과 여섯 아들, 조카, 허씨들이 대거 경영에 참여했는데 LG의 ‘인화정신’은 이같은 독특한 가족사와 무관치 않다. 친인척들을 잘 다독여 가며 경영을 하는 것이 중요했고 이를 경영이념으로 발전시킨 것이 인화다. 창업회장부터 내려온 인화정신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성과 함께 했던 방송사업. 구인회 회장은 60년대 초반 사돈인 고 이병철 삼성회장으로부터 방송사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의를 받고 50대 50 합작으로 64년 ‘라디오서울’과 ‘동양TV’를 설립했다. 하지만 방송사 경영이 시원치 않은 와중에 두 그룹에서 파견된 임직원간 알력이 심해졌고 결국 TV는 LG가 라디오는 삼성이 맡아서 하기로 잠정 합의를 봤다. 이후에도 TV와 라디오 사업의 정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구 회장은 일본으로 건너가 이 회장을 만나 TV사업까지 삼성에 넘기기로 결정한다.LG내부에서는 불만이 많았지만 구 회장은 사돈간의 ‘불화’가 더 이상 계속돼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80년대에는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가 사돈과의 정리를 생각해 포기했다. 당시 기획조정실에서는 21세기 물류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택배사업을 유망한 신규 사업으로 선정, 일본의 택배사업을 벤치마킹하고 계획을 수립했지만 사돈인 한진그룹에서 택배(한진택배)를 하고 있다는 이유로 구자경 회장이 사업중단을 지시했다.LG와 한진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동생인 구자학(75) 아워홈 회장의 2녀 명진(41)씨가 한진그룹 고 조중훈 회장의 4남 조정호(47) 메리츠증권 회장과 결혼하면서 사돈으로 맺어졌다. ●창업주의 사람들 구인회 창업회장은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을 배우다 열네살때인 1921년에야 지수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한다.24년에는 서울로 상경, 중앙고등보통학교를 다녔지만 19세때인 26년 처가에서 보내주던 학비가 끊기고 본인의 뜻도 있어 낙향, 사업의 꿈을 키운다. 구 회장은 사업을 키워가면서 동생들을 뒷바라지했고 동생들은 좋은 학교를 졸업한 뒤 형의 사업을 성심성의껏 도왔다. 한때 구씨, 허씨 일가가 너무 많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문제’로 지적되기도 했지만 구씨, 허씨들 가운데는 경영능력을 갖춘 이들이 적지 않았다. 창업회장의 동생들은 초창기 외국원서를 번역해 기계 작동법을 알아내고 수출, 기술도입 등 형이 할 수 없는 해외업무를 도맡아 했다. 첫째 동생 고 구철회씨는 형과 함께 첫 사업인 포목상 ‘구인회상점’을 세웠고 둘째 고 구정회씨는 동경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하고 평안남도청 토목과에 잠시 근무하다 형의 사업을 도왔다. 구태회(82) LS전선 명예회장은 일본 후쿠오카고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쳤다. 그는 경영보다는 정치권에서 주로 활동했는데 4대 민의원과 6,7,8,9,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구평회(79) E1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마치고 51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다. 구두회(77) 극동도시가스 명예회장은 진주고보와 고려대 상대,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한일은행에서 잠시 일하다 63년 금성사 상무로 입사했다. ‘골프멤버’였던 사돈인 이보형 제일은행장·홍재선 전경련 회장·경방 김용완 회장, 효성 조홍제 회장 등도 구인회 회장과 교우가 깊었다. ●제2의 창업주 구자경 명예회장 구자경 LG명예회장은 삼촌인 구평회 명예회장과 진주고보에 같이 입학한 뒤 진주사범을 마치고 고향인 지수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이후 50년까지 부산사범대 부속국민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했는데 제자들 중에는 신상우 전 국회부의장, 권근술 전 한겨레신문 사장,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부인인 한인옥씨 등이 있다. 구 명예회장은 한씨에 대해 “얼굴도 예쁜데다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었다.”고 기억했다. 신 전 부의장은 모 TV프로그램에 출연해 구 명예회장에게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구 명예회장은 50년 락희화학 이사로 입사했지만 공장에서 현장 근로자들과 같이 먹고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았다. 구인회 회장은 생전에 왜 장남을 그토록 고생시키느냐는 질문에 “대장장이는 하찮은 호미 한 자루 만드는데도 담금질을 되풀이해 무쇠를 단련한다. 내 아들이 귀하니까 저렇게 일을 가르치는 것이다.”고 대답했다. 덕분에 그는 현장에서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의 전문가가 될 수 있었다. 69년 12월31일 구인회 회장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뜬 직후인 1970년 1월6일 열린 럭키그룹 시무식에서 구철회 락희화학 사장은 본인의 경영 퇴진과 구자경 당시 금성사 부사장의 회장 추대를 제안했고 이는 우레와 같은 박수로 통과됐다. 구 회장 취임 이후 1년간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준 사람은 삼촌인 고 구정회 사장이었다. 조카를 ‘보필’하는 삼촌은 LG가의 저력을 잘 말해준다. 구자경 신임회장은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들어 인화단결과 상호협조를 통해 그룹의 부드러운 기업풍토를 조성하는데 힘쓰고 급속한 확대보다는 내실있는 안정적인 성장에 주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락희화학, 금성사 등 11개 계열사를 갖고 시작한 구자경 회장은 95년 2월 이임할 때까지 LG를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는다. 취임 첫 해인 70년 520억원에 불과하던 그룹매출은 94년 30조원을 넘어섰고 수출은 3100만달러에서 147억달러로 474배나 늘어났다. ●늘 꿈이었던 농사일에 매진 구 명예회장은 장남 구본무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넘겨주면서 “앞으로 여의도 본사에는 일주일에 한번만 출근할 것이다. 모든 경영은 신임 회장에게 맡긴다.”고 약속했다. 구태회·평회·두회씨 등 창업주 형제들과 허준구·허신구 회장도 고문으로 물러났다. 충남 천안의 ‘천안연암대학’으로 내려간 구 명예회장은 버섯재배 등에 심혈을 기울이며 10년전 약속을 지키고 있다. 주중에는 천안에 머물다 주말에는 서울 성북동 집으로 올라오는데 매주 월요일에만 트윈타워로 출근한다. 하지만 구본무 회장 집무실인 30층 대신 32층으로 직행, 본인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복지재단·문화재단 업무만 보고 오후에는 천안으로 내려간다.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구 회장 얼굴을 보지 않고 그냥 가는 경우가 많다. 분재, 장미재배를 거쳐 버섯재배로 이어진 구 명예회장의 왕성한 취미활동은 요즘 된장, 생면, 만두 등 유기농 먹을거리로 확대되고 있다. 구 명예회장은 선친이 두산, 경방그룹 회장과 함께 1956년 서울컨트리클럽에서 발족한 ‘단오회’와 진주중 15회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있으며 능성구씨 대종회장을 맡고 있다. 단오회에는 김각중 경방 회장, 김상홍 삼양사 명예회장, 선친을 치료했던 이동렬 박사 등이 참여하고 있다. 진주중 동창인 고 이규호 전 문교부 장관도 생전에 절친한 사이였다. 고 정주영 회장도 전경련 회장단 활동 등을 통해 남다른 친분을 쌓았다. ●20년 경영수업 받은 ‘구병장’ 구본무 회장은 연세대 상학과에 다니다 육군 현역으로 입대했다. 재벌 총수 가운데 현역 출신은 쉽게 보기 어렵다. 보병으로 만기 제대후에는 미국 애슐랜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클리블랜드주립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구 회장은 30세때인 75년 럭키(현 LG화학)의 심사과(사업의 적정성을 평가하는 부서로 사업전반을 이해할 수 있음) 과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심사과에서 같이 근무했던 직원이 구 회장의 ‘핵심참모’인 강유식(57) ㈜LG 부회장이다. 강 부회장은 청주고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72년 럭키에 입사했다.97년 회장실(구조조정본부)로 소속을 옮겼고 99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으면서 그룹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 전환을 진두지휘했다. 구 회장은 아버지처럼 ‘험한’ 고생은 하지 않았지만 81년에야 금성사 이사로 승진할 정도로 차곡차곡 경영수업을 받았다. 럭키 심사과장, 수출관리부장, 유지사업본부장을 거쳐 80년 금성사(현 LG전자)로 옮겨 기획심사본부장을 맡았고 83∼84년에는 도쿄 주재원으로 근무했다. 입사 10년만인 85년에야 기획조정실 전무로 그룹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95년 회장 취임사에서 ‘초우량 LG’를 약속했던 구 회장은 인터넷, 홈쇼핑, 이동통신, 통신 등에 잇따라 진출하며 사세를 넓혀갔고 필립스와 합작으로 LCD사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빅딜’과 ‘LG카드 사태’로 반도체, 금융사업에서 손을 떼는 등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1등LG를 이끄는 사람들 지금까지 LG그룹을 상징해 온 ‘인화’는 구본무 회장 대에 이르러 사실상 ‘일등주의’로 바뀌었다.LG는 그동안 ‘인화정신’이 결코 ‘온정주의’가 아니라고 항변해 왔지만 삼성그룹에 비해 LG그룹의 분위기가 다소 느슨해 보인 것은 사실이다. 요즘 LG가 거의 매일 쏟아내는 ‘강한 승부욕’,‘독종정신’,‘다이내믹’ 등은 LG가 온건하고 점잖은 반면 보수적이고 느린 조직에서 ‘환골탈태’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다. 구 회장이 주력 계열사인 LG전자를 김쌍수(60)부회장에게 맡긴 것도 생활가전사업을 1등으로 만든 그의 ‘뚝심’을 높이 샀기 때문이다. 김 부회장은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부진을 면치 못하던 휴대전화 사업을 ‘비전문가’인 박문화(55) 사장에게 맡겨 새로운 도약을 주문했다. 오디오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박 사장은 LG의 ‘광스토리지’ 사업을 7년 연속 세계 1위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LG에서 독립한 다른 친척이나 형제와 달리 주력사인 LG필립스LCD 부회장을 맡고 있는 둘째동생 구본준(54) 부회장 역시 1등에 대한 집념이 남다르다. 경복고 서울대 계산통계학과,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경영학과를 나온 구 부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미국 AT&T를 거쳐 86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빼앗기다시피 넘겨주는 것을 눈으로 지켜본 뒤 99년부터 LG필립스LCD 대표를 맡아 세계적인 LCD업체로 키워왔다. ●숨어있던 승부사기질 발휘되나 소탈하고 인자해 보이는 구 회장의 이면에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과 승부욕이 도사리고 있다는 평이다. 구 회장의 집념은 그가 하늘을 나는 모습만 보고도 무려 150여종의 새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조류학’에 조예가 깊은 것에서 잘 나타난다. 중학교때 산에 올랐다가 우연히 다친 새 한 마리를 발견, 집에 데려와 치료해 준 인연으로 새에 관심을 갖게 된 구 회장은 2000년에는 ‘조류도감’을 낼 정도로 새에 관해서는 전문가다. 여의도 LG트윈빌딩에 둥지를 튼 천연기념물 ‘황조롱이’가 구 회장의 각별한 보살핌덕에 무사히 새끼를 낳은 일화는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동생 구본능(56) 희성그룹 회장도 최근 ‘사진으로 보는 한국야구 100년’을 발간할 정도로 야구에 대한 관심이 보통이 아닌데 좋아하는 일에 대한 열정은 윗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사람좋아 보이는 구 회장이 거의 ‘경멸’할 정도로 싫어하는 부류가 있는데 준비하지 않는 불성실한 사람이다. 구 회장은 연습장에서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무작정 골프장에 나타나는 초보자를 무척 싫어한다고 한다. 더 싫어하는 부류는 ‘트리플보기(이븐파보다 3타를 더 치는 것)’를 하고도 ‘히죽히죽’ 웃는 사람이다. 다시는 트리플보기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웃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계열사 사장들을 평가할 때도 이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구 회장은 특별히 운동에 소질이 있는 편은 아니지만 끈질기게 연습에 매달려 한때 핸디캡 5∼6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한다. 환갑을 맞은 지금도 핸디 8∼9 정도를 친다. 구 회장은 지난 3월 구 명예회장 시절 선포한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에 ‘1등LG’를 더한 ‘LG Way’를 새로운 기업문화로 천명했다.10여년에 걸친 계열분리를 마무리지은 구 회장은 ▲고객이 신뢰하는 LG▲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LG▲인재들이 선망하는 LG▲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LG를 목표로 재도약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의 집념과 승부사기질이 앞으로 어떻게 발휘될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구 회장은 지난해 동국제강 창립 50주년 기념식에 이례적으로 참석할 정도로 장세주 회장과는 친분이 깊은 편이다. 장 회장의 숙부인 장상돈 한국철강 회장의 딸 인영(37)씨가 구 회장의 당숙인 구자은(41) LS전선 상무와 결혼해 사돈지간이기도 하다. 만화가 허영만씨와도 교류가 있는데 허씨는 인기작 ‘식객’에서 구 회장이 임직원들에게 맛있는 삼계탕을 사주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출한 네식구 구 회장은 72년 김태동 전 보사부 장관의 딸인 김영식(53)씨와 결혼했다. 김씨는 이화여대 영문과를 다닌 ‘재원’으로 서구적인 외모의 미인이었다고 한다. 시아버지 구자경 명예회장은 “보수적인 며느리를 원했는데 맞고보니 맏며느리는 개방적이고 아래 며느리들이 보수적이었다. 뒤바뀐 감도 없지 않지만 그만하면 잘 맞는 편”이라며 만족하는 분위기다. 구 회장 부부는 금슬이 좋기로 유명하지만 ‘내외’가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 회장이 주말에 곤지암에서 골프를 치다 부인이 일행들과 골프를 치는 것을 보고 나무랐다는 일화도 있다.LG 소유인 곤지암은 주말에 주로 계열사 임원들이 비즈니스 차원에서 애용하는데 ‘회장 부인’이 나오면 임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이유다. 김씨가 다른 그룹 회장 부인과 달리 미술관을 맡지 않은 것이나 여의도 트윈타워에 한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LG가의 엄격한 ‘단속’ 때문이다. 구 회장은 지난해 양자로 들인 구광모(27)씨와 연경(27)·연수(9) 두딸을 두고 있다. 광모씨는 병역특례인 산업기능요원으로 국내의 한 IT솔루션업체에 근무하고 있다. 올해 병역을 마치면 미국 뉴욕주의 로체스터 인스티튜트공대로 돌아가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양자로 입적된 뒤 ㈜LG와 LG상사 지분을 대폭 늘려 ‘경영승계’가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하지만 LG측은 “광모씨의 양자입적은 ‘제사 지낼 장손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구자경 명예회장의 뜻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4세 경영’과는 관련이 없다.”고 일축했다. 연세대 사회사업학과를 마치고 미국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연경(27)씨는 삼성 이건희 회장의 막내딸 윤형(26)씨와 함께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붓감’이다. ukelvin@seoul.co.kr ■3공화국서 “소총 만들어보라” 권유 구인회 “유망해도 무기는 싫다” 거절 LG화학은 한때 자회사를 통해 ‘비데’사업을 하다 그룹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았다. 타일, 욕조 등 욕실 인테리어사업에 비데를 함께 취급하면 고객들에게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시작했지만 구본무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첨단기술로 해외시장을 노리는 제품도 아닌데 돈이 된다고 해서 ‘품위’에 맞지 않는 제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LG에서 계열분리된 지 1년이 지난 지난해 말에도 LG카드의 부실이 해결되지 않자 채권단은 또 한번 LG그룹의 지원을 요청했다.LG측은 “이미 1조원이 넘게 지원을 한데다 그룹에서 분리된 회사를 무슨 근거로 지원하느냐.”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구 회장의 ‘결단’으로 출자전환을 결정했다. 구 회장은 LG카드 기업어음(CP)을 갖고 있던 친척들에게 일일이 양해를 구해가며 출자를 부탁했다고 한다. 삼성과 공동으로 시작했던 방송사업을 넘겨준 것이나 택배사업 진출을 계획했다 직전에 포기한 것도 ‘사돈간의 불화’로 세인들의 지탄을 받지 않기 위해서였다. LG가 이처럼 ‘세간의 평판’을 신경쓰는 것은 엄격한 유교가문의 장손인 고 구인회 창업회장의 경영철학에서 비롯됐다. 구인회 회장은 도박이나 술 등 사행산업은 물론 이른바 ‘먹고 마시는’일과 연관된 소비성 사업, 부동산 투자도 금지할 정도로 엄격했다. 나중에야 필요에 의해 인터컨티넨탈호텔을 설립했지만 한때는 호텔사업도 LG의 ‘금지리스트’에 올라 있을 정도였다.3공화국 당시 정부로부터 “소총을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을 때도 “우리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은 고마우나 아무리 유망한 사업이라도 무기는 만들고 싶지 않다.”며 거절했을 정도다. 하지만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같은 ‘체면 경영(정도경영)’은 자칫 수익성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칠 수 있고 공격적인 확장에도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LG관계자는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가며 일등할 생각은 없다.”면서 “좋은 품질과 서비스를 갖추면 무리한 방법을 쓰지 않아도 고객들이 인정해준다는 것이 구 회장의 지론”이라고 말했다. ukelvin@seoul.co.kr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 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합병돼 설립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새 주인’이 누가될 것인지를 놓고 재계가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매각대금이 3조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이는 이 대형 매물의 유력한 새 주인으로 전 주인인 LG가 거론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LG는 하이닉스 인수설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았고 앞으로도 검토할 일도 없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40년 가까운 구씨 3대의 반도체 인연이 그리 쉽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게 중론이다. LG는 구인회 창업회장 생전인 69년 미국 NSC의 기술제공으로 반도체 회사인 금성전자를 설립했다. 초대 사장은 구자두 현 LG벤처투자 회장이었다. 금성전자는 1차 오일쇼크 등으로 73년 금성사에 흡수합병되면서 주춤했지만 74년 삼성 이건희 회장(당시 동양방송 이사)이 한국반도체를 인수한 것 등에 ‘자극’받아 75년 반도체팀을 만들고 미국 AMI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79년에는 대한전선의 대한반도체를 인수, 금성반도체를 발족하기에 이르렀다. 초대 회장은 구자경 현 명예회장, 사장은 이헌조 현 LG그룹 고문이었다. 금성반도체는 이후 85년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세번째로 1메가롬(ROM)을 개발하는데 성공하고 금성일렉트론으로 이름을 바꾼 뒤 90년 1메가 D램,91년 4메가 D램을 잇따라 내놓으며 삼성전자와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하지만 LG는 98년 정부의 ‘빅딜정책’의 ‘희생양’이 되면서 반도체사업을 현대그룹에 양보하게 된다.99년 1월6일 청와대를 방문한 구본무 회장은 전자사업이 주력인 LG에 반도체사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지만 이미 현대측과 ‘얘기’가 끝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의 귀에 구 회장의 ‘절규’가 들릴 리 만무했다. 이날 밤 이헌조, 변규칠, 성재갑 등 LG의 원로들이 마련한 위로자리에서 구 회장은 모처럼 통음을 했다. 일부에서는 구 회장이 ‘통곡’을 했다고 하지만 ‘통한의 눈물’을 보인 정도였다는 것이 당시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서울 한남동 구 회장의 집앞에 진을 친 기자들은 자정이 넘어 귀가하는 구 회장을 붙들고 ‘소감’을 물었고 구 회장은 “다 버렸습니다.”는 말로 3대를 내려오며 30년간 이어진 반도체와의 인연을 정리했다. ukelvi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 (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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