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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덕수궁 분향소 경찰버스 봉쇄 풀어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덕수궁 분향소 경찰버스 봉쇄 풀어

    서울 덕수궁 대한문의 시민 분향소를 에워쌌던 경찰버스들이 봉쇄 나흘 만에 사실상 철수했다. 덕수궁 앞에 마련된 ‘범민주시민 국민 분향소’에는 이날도 2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고인의 영면을 기원했다. 이 분향소에는 첫날에 4만명, 둘째날 12만명, 셋째날 15만명이 몰렸다. 이날 30도를 넘나드는 무더위도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객들의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쯤부터 단계적으로 분향소옆 차도의 버스를 빼기 시작해 낮 12시30분쯤 150여m 떨어진 성공회 서울교좌 성당 인근에 세워진 버스 9대를 제외하곤 모두 철수시켰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날 봉하마을에서 “질책도, 사랑도 국민의 뜻”이라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서울광장을 열어주는 게 민주주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신문로 서울역사박물관에 마련된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박희태 대표는 방명록에 “서민 대통령으로 영원히 국민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 정몽준 최고위원 등은 전날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마을 입구에서 일부 시민들이 막는 바람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를 찾은 거물급 인사들의 행태가 서민 추모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세살배기 아기를 품에 안은 주부 등과는 달리 고급 승용차를 타고 등장한 정치인이 몰려와 정숙해야 할 분향소를 시장바닥처럼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을 갖고 있는 광주에서는 ‘시민추모위원회’가 꾸려지는 등 영결식이 다가올수록 추모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광주·전남지역 시민사회단체 등 330여명으로 구성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광주·전남 추모위원회’는 영결식 전날인 28일 오후 7시 옛 전남도청 일대에서 대규모 시민추모제를 열기로 했다. 김해 봉하마을과 교류협약을 맺은 전남 함평군 신광면 연천마을에도 부엉이바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관심을 끌고 있다. 이 바위는 부엉이가 사는 굴 주변에 있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7월 주민들과 같이 연천마을을 방문, ‘2008 함평세계나비·곤충엑스포’를 관람하는 등의 인연을 맺었다. 전국종합 광주 최치봉·서울 주현진 오달란기자 cbchoi@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 → 경복궁 영결식 → 서울광장 노제 → 수원 연화장 →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운구행렬은 29일 새벽 발인이 끝난 뒤 오전 6시쯤 봉하마을을 떠나 서울 경복궁 앞뜰 영결식장으로 향한다. 발인제는 1시간 전인 오전 5시 봉하마을 마을회관에서 진행된다. 운구행렬은 고속도로를 이용해 서울로 올 것으로 보인다. 이동 경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봉하마을 근처인 동창원IC(남해고속도로)~칠원JC(중앙고속도로)~여주JC(영동고속도로)~신갈JC(경부고속도로) 등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운구행렬 중 영정을 모실 검은색 캐딜락은 보닛 정면에 V자 모양으로 꽃 장식을 한다. 또 경찰 순찰차량이 노 전 대통령의 가는 길을 호위한다. ●종합청사서 대한문까지 교통통제 노 전 대통령이 오전 10시쯤 서울에 도착하면, 사이드카 24대가 영정차량을 앞뒤에서 호위한다. 선도차와 영정·훈장차가 앞을 달리고 상주차와 유가족차, 장의위원차 등이 뒤를 잇는다. 경찰은 이날 교통통제를 위해 서울시청 앞~미국대사관~시민 열린마당과 정부중앙청사~대한문까지 폴리스라인을 칠 계획이다. 경찰은 또 갑호비상체제로 전환하고, 경복궁 인근 광화문 네거리 차도를 통제한다. 영결식은 오전 11시 경복궁 흥례문 앞뜰에서 거행된다. 뜰에는 4층 계단형 제단이 세워진다. 흰색 천으로 덮인 제단은 2000여 송이의 국화꽃으로 장식된다. 식장에는 삼부 요인 등 1000여명의 장의위원과 수천명의 인사들이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본다. 영구차가 군악대의 조곡에 맞춰 도열병을 통과한 뒤 자리잡으면 개식선언과 함께 국민의례가 시작된다. 이어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보고, 한승수 장의위원장의 조사, 종교의식이 진행된다. 또 고인의 생전 영상이 방영되고 헌화와 조가가 뒤를 잇는다. 마지막으로 삼군의장대의 조총이 21발 발사되고 영결식 폐회가 선언된다. 낮 12시30분쯤 영결식이 끝나면 운구행렬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이동,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이날 광장과 거리에는 수많은 시민들이 나와 태극기와 노 전 대통령의 상징인 노란 리본을 흔들며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길엔 태극기·노란리본 물결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수원시 연화장으로 운구돼 화장되며 화장과 분골 절차가 마무리되면 다시 봉하마을로 향한다. 운구행렬이 봉하마을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후 10시쯤. 노 전 대통령의 유해는 봉하마을 사저 인근 사찰인 정토원에서 하루 머문 뒤 다음날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이 영면을 취할 곳은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12 일대가 유력하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 서쪽으로 50m 떨어진 야산이다. 그러나 유족들이 따로 길일을 잡으면 안장이 며칠 늦춰질 수도 있다. 박건형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봉하마을 개발 사업 향배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주변의 각종 개발사업은 어떻게 될까. 노 전 대통령 서거로 정부와 김해시가 추진하는 봉하마을 개발사업의 추동력이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의 서거가 예정된 봉하마을 각종 개발사업의 보류나 취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봉하마을과 관련된 개발사업이 중단되면 현정부에 대한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와 김해시는 여론의 흐름을 지켜보며 봉하마을 개발사업의 추진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해시·정부, 여론 추이보며 재조정 앞서 김해시는 지난달 봉하마을 각종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해 조정할 방침임을 밝혔다. 봉하마을 개발사업을 비롯해 여러 사업 예산이 모자라 각 부서별로 진행되는 사업의 효율성과 투자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꼼꼼하게 따져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김해시는 노 전 대통령의 귀향을 계기로 봉하마을을 자연친화적인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지난해 1월부터 ‘봉화산 일원 관광자원 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비는 75억여원이다. 기본계획 사업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생가복원사업(사업비 9억 8000만원)과 사저 맞은편의 봉하마을 공동주차장 조성사업(12억)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한다. ●미곡종합처리장·생태주차장 보류 또 환경부가 추진하는 화포천의 생태하천 복원사업(60억원)과 산림청의 봉화산 산림경영 모델숲(웰빙숲) 조성사업(30억원) 등 중앙부처 사업은 예정대로 이뤄질 예정이다. 화포천 복원과 봉화산 웰빙숲 조성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과 퇴임 뒤 깊은 관심을 가졌던 사업이었다. 김해시 관계자는 “추경예산을 짤 때 예산이 많이 부족해 봉하마을 개발사업도 사업성을 따져 우선순위를 조정하기로 한 것일 뿐”이라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 김상화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박희태대표 등 한나라 지도부 조문 못하고 돌아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일째인 25일 빈소가 차려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은 전날의 어수선한 분위기와 달리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추모 행렬이 이어졌다.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은 낮 최고 29도까지 오르는 뙤약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분향소 입구부터 길게 늘어서 차례를 기다렸다. 장의위원회측은 “이날 20만명 넘게 다녀가는 등 3일간 40만명을 넘었다.”고 밝혔다. 경남 통영시에서 왔다는 제천모(39) 목사는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북한이 조전을 보내 놓고, 한편으론 핵실험을 했다.”며 “나라가 상중인데 어이가 없다는 말밖에 못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 조문, 불미스러운 상황 우려 장의위원회 고문을 맡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날 봉하마을 임시 기자회견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조문은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이 여기에 있기 때문에 당연히 여기에서 조문하는 것이 맞지만 밖의 상황이 장례위가 통제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어서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며 “이 대통령은 영결식날 서울에서 조문을 하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또 “서울에서 영결식을 하게 된 것은 장례가 국민장으로 됐고, 추모객의 불편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는 종일 무거운 침묵만 흐른 것으로 전해졌다. 사저에는 가족과 가까운 친척 외에는 접근이 철저하게 차단됐다. 간간이 사저와 빈소를 오가는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는 눈이 퉁퉁 부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상주 건호씨는 분향소 설치와 제례의식 등을 거행하며 비교적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 한 측근은 “유가족이 모두 노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심한 충격을 받은 데다 자책감도 상당한 실정이지만 어떻게 해서든 장례는 깔끔하게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실상 악으로 버티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벌써 장례 후에 유가족들을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다른 측근은 “노 전 대통령은 지난 3월 형 건평씨가 구속되자 그때부터 많이 우울해했고, 건강도 눈에 띄게 안 좋아졌다.”며 “유서에 나온 ‘글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다.’는 말을 그때도 하셨다.”고 밝혔다.이 관계자는 노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0여년 전 김해영농경영회장 신분으로 처음 만났다고 말했다. ●조문객들, 부엉이바위도 찾아 봉하마을 안내센터 인근에 있던 방명록 작성 장소는 조문객들이 급증하자 분향소 인근과 행렬 주변 곳곳에 마련됐다. 부산에서 왔다는 전종찬(55·자영업)씨는 “큰형님을 잃은 것 같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오전에 (문상)하고 출근하려고 아침 일찍 찾아 왔다.”며 “1시간 이상 줄서 기다린 끝에 조문하고 돌아간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흔적을 찾기 위한 듯 부엉이바위를 찾는 조문객들도 부쩍 늘었다. 현장을 찾은 추목객들이 간간이 눈물을 훔쳤으며,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찾았던 담배를 두기도 했다. 일부는 사진을 찍거나 손으로 바위 등을 가리키는 등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자갈치 아줌마, 민주열사 부모도 조문 2002년 대선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찬조연설을 맡은 부산 자갈치시장 이일순(65)씨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 당선 일등공신으로 불린 이씨는 영정에 국화꽃 한송이를 바쳤다. 그는 “지난 23일 시장에서 장사하고 있는데 주변 상인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처음에는 거짓말로 넘겼지만 뉴스를 보고 사실을 확인한 뒤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 말했다. 1989년 당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대표로 평양 ‘세계 청년학생 축전’에 참가했던 임수경씨도 빈소를 찾았다. 임씨는 “노 전 대통령이 종로구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인연이 좀 있고, 최근엔 제가 해인사에 머물고 있는데 대통령 내외분이 위로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고(故)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씨와 고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도 빈소를 찾았다. ●자원봉사자 사흘째 조문객 지원 자원봉사자와 마을주민 등 500여명은 조문객을 맞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황순선(62·여·김해시 진영읍)씨는 “엄청난 양의 음식을 해 내느라 힘들지만 존경하는 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러 오는 문상객들에게 밥 한 그릇이라도 대접하려고 이렇게 힘을 보태고 있다.”고 말했다. 김원웅 전 의원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하기 직전 모친이 별세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발길을 돌리지 않고 노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김 전 의원은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은 채 차분하게 조문을 끝냈고, 이같은 소식을 알게 된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김 전 의원을 배웅하며 위로의 뜻을 깍듯하게 전했다. 한편 박희태 대표를 비롯, 정몽준·허태열·공성진·박순자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날 낮 노 전 대통령의 빈소가 마련된 봉하마을을 찾았으나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조문을 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김해 김정한 김상화 유대근기자 jhkim@seoul.co.kr
  • “이젠 편히 쉬소서” 휴일 아침에도 끝없는 추모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빈소가 차려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휴일인 24일에도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전날 오후 8시40분께부터 유족들의 분향을 시작으로 정치인과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된 이후 밤새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 24일 오전에도 전국에서 많은 조문객이 주차문제로 출입이 제한된 봉하마을 진입로를 2㎞이상 걸어서 들어와 빈소를 찾고 있다. 조문객들은 마을광장 한 쪽에 마련된 방명록에 ‘편히 쉬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등을 적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했다. 장례를 준비 중인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현재 마을회관 앞의 좁은 분향소를 대신할 폭 10m정도의 대형 분향소를 설치 중이다. 이날 오후부터는 이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을 전망이다. 한편 이날 오전 8시40분께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구속됐다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쪽에서 나와 곧바로 임시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빈소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23일 오후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이날 새벽에 봉하마을에 도착한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유가족 등과 장례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분향소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아직까지 장례일정과 형식 등 장례절차를 확정하지 못한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해 경황이 없다”며 일정 확정이 늦어지는 이유를 밝혔다. 김해 연합뉴스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봉하마을 공식 분향소 설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분향소가 24일 오전 조문객을 맞기 시작했다. 오전 11시30분쯤 설치가 완료된 공식 분향소는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회관 임시 분향소 바로 옆에 폭 10m 규모의 철제 구조물로 만들어졌다.분향소 안에는 수천송이의 국화로 만든 제단과 영정· 위패 등이 자리잡았다. 공식 분양소 설치 후 이해찬·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영정을 안치했고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참여정부 인사들이 위패를 들고 뒤따랐다.이어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술을 따른 뒤 절을 올렸고 이해찬 전 총리가 참여정부 인사를 대표해 헌화했다.이 과정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 회원들은 “사랑합니다.”라고 외치며 울먹이기도 했다. 일반인들의 조문이 시작된 직후 공식 분향소에는 조문객이 밀려들면서 행렬이 50m 이상 길게 이어지고 있다.시간이 지날 수록 조문객들의 줄은 더 길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식 분행소가 마련됨에 따라 봉하마을에는 공식 분향소와 노사모 자원봉사센터에 자리잡은 분양소가 각각 운영된다.천막으로 만들어진 임시 분향소는 곧 철거될 예정이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젠 편히 쉬소서” 휴일 아침에도 끝없는 추모 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임시빈소가 차려진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는 휴일인 24일에도 조문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전날 오후 8시40분께부터 유족들의 분향을 시작으로 정치인과 일반인의 조문이 시작된 이후 밤새 1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조문했다. 24일 오전에도 전국에서 많은 조문객이 주차문제로 출입이 제한된 봉하마을 진입로를 2㎞이상 걸어서 들어와 빈소를 찾고 있다. 조문객들은 마을광장 한 쪽에 마련된 방명록에 ‘편히 쉬십시오’, ‘명복을 빕니다’ 등을 적으며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통해했다. 장례를 준비 중인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현재 마을회관 앞의 좁은 분향소를 대신할 폭 10m정도의 대형 분향소를 설치 중이다. 이날 오후부터는 이 분향소에서 조문객을 맞을 전망이다. 한편 이날 오전 8시40분께 세종증권 매각 비리로 구속됐다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난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 씨가 모습을 나타냈다.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 쪽에서 나와 곧바로 임시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으로 들어가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현재 심경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없이 빈소 안으로 모습을 감췄다. 23일 오후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이날 새벽에 봉하마을에 도착한 건평씨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유가족 등과 장례절차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분향소에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검찰 조사를 받은 이택순 전 경찰청장과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고위 관료와 정치인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다. 아직까지 장례일정과 형식 등 장례절차를 확정하지 못한 유가족과 참여정부 참모진은 “노 전 대통령이 갑자기 서거해 경황이 없다”며 일정 확정이 늦어지는 이유를 밝혔다. 김해 연합뉴스 영상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관련영상] ☞ 유서 “화장해라.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 충격과 비탄속 노 전대통령 시신 봉하마을에 ☞ 경찰, 盧 추모집회 봉쇄…시청역 ‘충돌’ ☞ ’부엉이 바위’ 어떤 곳이길래 ☞ 봉하마을 임시 분향소 조문 잇따라…일부에선 몸싸움도@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청문회스타… 대통령… 투신… 풍운의 정치역정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청문회스타… 대통령… 투신… 풍운의 정치역정

    23일 오전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줄곧 우리 사회의 주류와 다투는 비주류의 삶을 살았다. 상업고등학교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것을 시작으로 대통령 임기 중에도 노 전 대통령은 수많은 성역과 금기에 맞서 고군분투했다. 그가 불러 일으킨 ‘노풍(風)’은 주류 사회에 불어 닥친 비주류의 ‘반란의 바람’과도 같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46년 8월6일 아버지 노판석(사망)씨와 어머니 이순례(사망)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형제 자매로는 큰형 영현(사망)씨와 둘째형 건평(67·구속)씨, 누나 명자(81)·영옥(71)씨가 있다. 김해 진영읍에서 10리 정도 떨어진 산골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진영 대창초등학교(1959년)와 진영중학교(1963년), 부산상업고등학교(1966년)를 각각 졸업했다. ●고졸로 사시 합격… ‘인권 변호사’로 전형적인 서민 가정에서 자란 노 전 대통령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68년 3월 육군 현역으로 입대해 당시 강원 원주에 있던 육군 1군사령부에서 부관부 행정병으로 복무했다. 만기 제대 후 노 전 대통령은 같은 고향 출신인 부인 권양숙(62)여사와 1973년 1월 결혼해 아들 건호(36)·딸 정연(34)씨를 낳았다. 부산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권 여사는 할아버지의 병 문안차 고향에 갔다가 군에서 막 제대한 노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연인이 됐다. 노 전 대통령은 고졸 출신에게 사법시험 응시 자격을 주는 ‘사법 및 행정요원 예비시험’을 통과한 뒤 두차례 낙방 끝에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유일한 고졸 출신으로 합격했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1977년 대전지방법원에서 판사로 부임했지만 7개월 만에 그만두고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다. “적성에 맞지 않아서”라는 이유였다. ‘변호사 노무현’은 곧 ‘인권 변호사’로 인식된다. 1981년 5공 정권이 사회과학 서적을 읽은 혐의로 대학생 20명 남짓을 기소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용공조작 사건인 ‘부림사건’을 변론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학생과 노동자 등이 연루된 사건을 도맡아 변호하면서 ‘인권 변호사’로 알려지게 됐다. 노 전 대통령은 1988년 13대 총선 당시 부산에서 통일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정치인 노무현’의 인생은 한마디로 ‘풍운아’라고 요약할 수 있다. ‘좋은 때를 타고 활동하여 세상에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의미가 그대로 적용된다. 1988년 국회 입성도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재야인사 영입 사례로 이뤄졌다. 그는 국회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살인마”를 외치며 전두환 전 대통령을 향해 의원 명패를 집어 던지며 ‘청문회 스타’로 부각됐다. 1990년 3당 합당 때는 ‘역사적 반역’이라며 합류를 거부했다가 ‘삼수’의 시련을 겪었다. 1992년 총선 실패, 1995년 부산시장 도전 실패, 1996년 서울 종로 패배의 쓰라린 경험이었다. 계속되는 패배로 정치권의 야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199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국민회의에 입당, 김대중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로운 기회를 잡는다. 당시 민주당 잔류파와 함께 결성한 국민통합추진회의가 ‘3김 청산과 세대교체’를 내건 이인제 후보 지지 등으로 의견이 갈릴 때 “시대의 과제는 정권교체”라고 주장했다. 이어 1998년 7월 종로 보궐선거에서 6년 만에 원내 재입성에 성공했으나 2000년 16대 총선에서 종로를 마다하고 부산에 자원 등판했다가 쓴 맛을 보게 된다. ●‘노사모’ 바람 일으켜 대통령 당선 2000년 해양수산부 장관 발탁은 새로운 전기로 작용했다. 대권 도전의 중요한 발판이기도 했다. “정치인 집단을 조직화하고 세력으로 엮어 이끌어 나가는 조직적 리더십을 한 차례도 실험해 보지 않았다.”고 스스로 고백했듯, 약점을 보완하는 기간이었다. 2001년 3월 장관직을 떠난 뒤 노 전 대통령은 본격적인 대선 후보경선 준비에 나선다. 변변한 조직도 없었지만 국민참여 경선에 힘입어 ‘이인제 대세론’을 극복했다. 몇 차례 말 실수로 ‘불안하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지지도 하락을 겪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 4강 열기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던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해 다시 힘을 얻었다. 선거 운동 기간 동안 소액기부를 유도하기 위해 나눠 준 ‘희망돼지 저금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투표 하루 전날 정 후보의 일방적인 지지철회로 후보 단일화는 깨졌지만 그는 ‘노사모’ 등 팬클럽의 지지를 얻어 대권을 쥐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 노무현’의 행보 역시 순탄치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중 선거법 중립 의무 위반, 국정·경제 파탄, 측근 비리 등의 이유로 사상 초유의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었다. 16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04년 3월12일부터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기각한 5월14일까지 63일동안 대통령 직무가 정지됐다. 그러나 이것이 오히려 역풍을 불러 일으켜 제3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국회 의석의 과반을 차지하며 한나라당의 의회 독주에 제동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떠받친 것은 ‘충돌’과 ‘도전’이었다. ‘도덕성’은 힘의 근원이었다. 가난하고 어려웠던 성장기와 자수성가형 인생 스토리는 ‘못 가진 자’에 위안을 주며 정치적 자산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측근인 안희정·최도술 씨 등 386세력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옥고를 치르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형 건평씨를 둘러싸고 2003년 1월 인사개입설을 시작으로 재임 기간 내내 친인척 비리 의혹이 불거졌지만 노 전 대통령은 그때마다 ‘도덕성’을 방패막이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 방패막이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었다. 지난해 12월 건평씨가 세종캐피탈 대표 홍기옥(59·구속)씨에게서 ‘농협중앙회가 세종증권을 인수하도록 정대근 농협 회장에게 청탁해 달라.’는 명목으로 29억 6300만원을 받아 구속 수감됐다. ●수뢰혐의로 수사받자 비극적 최후 이어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 ‘사람 사는 세상’에 권 여사가 박 회장의 돈을 받아 썼다는 글을 올린 이후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조사를 받고, 노 전 대통령 자신도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소환되는 불명예를 남겼다. ‘노무현만은 다를 것이다.’고 평가했던 많은 국민에게는 실망을 안겨줬다. 굴곡 많던 정치인생을 버티게 했던 유일한 자산을 잃게 된 셈이다. 결국 노 전 대통령은 “구 시대의 막내가 되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쓸쓸히 집 나선지 12시간여… 오열 속 ‘귀가’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쓸쓸히 집 나선지 12시간여… 오열 속 ‘귀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시신이 23일 오후 고향인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 사저에 도착하자 마을은 온통 울음바다에 빠졌다. 검은색 상복 차림의 마을 주민과 노사모 회원, 관광객 등 수천명은 검은색 리무진 운구차를 뒤따르며 통곡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봉하마을 회관에 안치됐다.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과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참여정부 시설의 주요 인사 8명이 마을회관으로 운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와 딸 정연씨, 한명숙 전 총리 등도 오열하며 뒤따랐다. 노사모 회원 500여명이 스크럼을 짜고 뒤따라 들어갔다가 촛불을 받쳐들고 애도했다. 빈소가 마련된 마을회관에는 흰색 천막으로 분향소를 설치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조화를 보냈지만 마을 주민들이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이어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도착했으나 주민들이 반대로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모여드는 봉하마을에는 추모객이 늘었다. 시민 조문객들은 마을 곳곳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거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통곡했다. 이들은 울먹이거나 넋이 빠진 모습이었다. 오전 10시부터 마을회관 공동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진혼곡과 유서 내용이 비통한 분위기를 더했다. 마을회관 맞은편 2층짜리 노란색 노사모 사무실에는 노 전 대통령과 권양숙 여사가 함께 환히 웃는 얼굴 사진 아래 메모판에 ‘노짱 고이 잠드소서.’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일부 마을 주민들은 취재진과 외지인을 상대로 “우리가 노 전 대통령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현정권과 검찰, 언론이 노 전 대통령을 죽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일부는 “사저 앞 취재를 중단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날 봉하마을을 찾은 관광객 300여명도 노 전 대통령의 사망 소식에 “그럴 리가 없는데….”라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관광객은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워했다. 일행 9명과 함께 봉하마을을 찾은 최규현(50·전남 여수시 연서동)씨는 “봉하마을로 가는 중 섬진강휴게소에서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했다.”며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한 사람인데 명복이라도 빌기 위해 돌아가지 않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은 마을 다목적 광장 옆에 마련된 관광안내센터에 비치된 방명록에 ‘민주주의를 위해 고생했다.’ ‘좋은 데 가십시오.’라는 등의 조문 글귀를 썼다. 봉하마을에는 관광객과 취재진이 이날 오전부터 몰려들면서 극심한 혼잡을 빚었다. 경찰은 오전 11시부터 봉하마을에서 900m 떨어진 진영읍 대현삼거리부터 교통을 통제했다. 사저 앞에는 경찰 10여명이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다. 빈소가 봉하마을 마을회관에 설치되면서 주민들은 장례절차 준비에 들어갔고, 마을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 등은 노란색 리본을 단 긴 줄을 마을 주변의 도로변 등에 둘러쳤다. 탤런트 문성근씨와 전 후원회장 이기명씨는 노사모 회원 20여명과 함께 이날 오후 2시쯤 봉하마을에 도착, 노사모자원봉사지원센터에서 회원들과 앞으로 대책 등을 논의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대통령 서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끝내 자신의 목숨을 스스로 끊었다. 대통령 재임시절 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시점에서 고심끝에 몸을 내던지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했다.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한 뒤 6년 3개월만에 영욕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 올해 나이 63세다. 노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6시40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자신의 사저 뒤 봉화산에 경호관 1명과 함께 부엉이 바위에 올라 30m 아래 소나무밭으로 몸을 던졌다. 노 전 대통령은 머리 등에서 피를 흘리는 상태에서 김해 세영병원을 거쳐 경남 양산시 부산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이미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직접 사인은 극심한 머리 손상 노 전 대통령의 직접적 사인은 극심한 머리 손상이었다. 아울러 추락의 물리적 충격으로 가슴뼈와 골반뼈 등이 심하게 부서졌다. 백승완 양산 부산대병원장은 “노 전 대통령은 오전 8시23분쯤 인공호흡을 하며 응급실로 이송됐으나, 도착 당시 의식이 없었고 스스로 호흡도 할 수 없었다.”면서 “두정부(머리 정수리)에 11㎝ 정도의 열상이 발견됐으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회복이 안 돼 오전 9시30분 중단했다.”고 밝혔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오전 9시30분쯤 양산 부산대병원에서 서거하셨다.”면서 “이날 오전 5시45분 사저를 나와 봉화산을 등산하다가 봉화산 바위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권양숙 여사는 남편의 시신을 확인한 뒤 정신을 잃었다가 병실로 옮겨져 안정을 취했다. 노 전 대통령의 시신은 이날 오후 6시30분쯤 운구차에 실려 빈소가 차려진 봉하마을로 도착했다. 노 전 대통령 시신이 안치된 관은 일반인들이 통상 장례식에서 사용하는 평범한 것이라고 병원측은 밝혔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 이호철 전 청와대 수석 등이 운구를 맡아 관을 차량에 실었다. 딸 정연씨 부부가 오열하며 이 광경을 지켜봤다. ●유족 7일 가족장 강력 희망 빈소는 봉하마을회관에 마련됐다. 장례 절차와 관련, 청와대측은 국민장을 제의했지만 유족 등은 ‘7일 가족장’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산에 오르기 전 짧게 남긴 메모 형식의 유서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마을 주변에 작은 비석 하나 세워달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포괄적 뇌물’ 640만달러를 받았다는 혐의로 지난달 30일 검찰에 소환돼 조사받았다. 권 여사가 2007년 6월 청와대 대통령 관저에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전 회장의 돈 100만달러를 받았고,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이 송금한 500만달러를 투자운영했는데 노 전 대통령이 이 돈을 모두 요구해 받았다고 검찰은 판단했다. 최근에는 딸 정연씨가 40만달러를 추가 송금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미국에 고급주택을 차명으로 샀다는 의혹이 새롭게 제기됐다. 노 전 대통령은 600만달러에 대해 자신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도 검찰은 권 여사와 아들 건호씨, 딸 정연씨를 차례대로 불러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수수죄로 사법처리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이날 노 전 대통령이 숨지면서 검찰은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박 전 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았다는 혐의로 검찰이 조사하던 정·관계인사에 대한 사법처리는 다소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경찰은 이날 경남지방경찰청에 이운우 청장을 수사본부장으로 하는 94명 규모의 수사본부를 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자살경위 등에 관해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이운우 경남청장은 이날 오후 2시30분 브리핑을 갖고 취재진에게 노 전 대통령의 행적과 병원 후송과정, 수사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측은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 전대미문의 사건이지만 일반적인 변사사건과 비슷한 경로로 수사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경찰청측은 “해당 경호관은 물론 경호실과 측근, 유족 등을 대상으로 변사사건에 준하는 수사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봉하마을의 경비를 강화하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김해 특별취재팀 ksp@seoul.co.kr ■ 현지 특별취재팀 ●정치부 홍성규 김지훈 ●사회부 이재연 장형우 유대근 박성국 ●사회2부 김정한 한찬규 김상화 강원식 박정훈 ●사진부 김명국 도준석 정연호
  • [노무현 소환 이후] 새벽 5시55분 사저 도착… 하루종일 휴식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출두로 침통한 하루를 보냈던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 주변은 1일 평온을 되찾은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5시55분쯤 봉하마을 사저에 도착한 뒤 하루종일 휴식을 취하는 듯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이날 오전 노 전 대통령은 출두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저 옆 주차장에 정차한 버스에서 내려 머리를 조금 숙이고 말없이 걸어서 사저로 들어갔다. 주민들과 노사모 회원 등 100여명은 사저 앞 도로 양편에서 현수막과 노란 풍선 등을 흔들며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을 환영했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 앞에 멈춰 살짝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은 사저 대문에서 귀가하는 노 전 대통령에게 목례를 했다. 전날 검찰에 출두하는 남편을 눈물로 배웅했던 권양숙 여사는 냉정을 되찾은 모습으로 현관 입구에서 맞았다. 한 측근은 권 여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출발할 때는 몸이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냉정을 찾은 것 같더라.”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 내외와 주변 인사들은 사저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뒤, 노 전 대통령 내외는 내실로 들어갔고 나머지 인사들은 모두 돌아갔다.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께서 많이 피곤해하신다.”며 “오늘은 일단 쉬고 앞으로의 상황은 천천히 생각할 문제”라고 말했다. 동행했던 김 비서관도 일찌감치 사저를 나와 퇴근했다. 전해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대로 다 했다.”며 “오늘은 경황이 없고 노 전 대통령도 쉬어야 하니 (앞으로 대응 방향은) 추후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와 귀가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 몰려들었던 국내외 수백명의 취재진도 이날 오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盧 전대통령 귀가… “최선 다했다”

    검찰의 조사를 받기 위해 30일 오후 1시 20분께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10시간만인 오후 11시 20분께 피의자 신분의 소환조사를 끝냈다. 조사를 마친 노 전 대통령은 피의자 신문조서를 검토한 후 1일 새벽 2시 10분께 대검찰청 청사를 떠나 귀갓길에 올랐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최선을 다해 조사를 받았다.”는 말을 남기고 청와대 경호처 버스에 올라탔으며 사저를 떠난 지 22시간여만인 오전 5시 55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도착했다. 글 / 서울신문 나우뉴스TV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盧 전대통령 소환] 정치권 반응

    정치권은 3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에 안타까움을 나타내면서 동시에 ‘성역없는 수사’를 촉구했다. 그러나 초점은 달랐다. 한나라당은 노 전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으로 수사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여권 실세도 검찰이 수사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한나라, “ 진실 밝혀야” 한나라당 조윤선 대변인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아닌 국민에게 진술하는 것”이라면서 “스스로 재임기간 중 ‘구 시대의 막내’라고 했던 만큼 불미스러운 일로 법의 심판을 받는 것도 이번이 마침표가 되기를 염원한다.”고 논평했다. 조 대변인은 “검찰은 최대한 증거에 의해 수사해야 하고, 노 전 대통령도 대통령이나 변호사 신분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졌던 노 전 대통령이 그와 똑같은 죄목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고 하니 슬프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더이상 우리나라에 전직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청와대의 공식 반응은 없다.”며 아예 언급을 삼갔다. ●민주, “살아있는 권력도 견제를” 민주당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여권 실세에 대한 수사를 외면하는 검찰을 강하게 비판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4·29 재·보선의 수도권 승리를 자화자찬하며 분위기를 전환하려는 움직임도 감지됐다. 김유정 대변인은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참으로 안타깝고 불행한 일”이라고 전제한 뒤 “오늘 소환조사를 끝으로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기대하며 무엇보다 불구속 수사의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변인은 “모든 의혹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살아 숨쉬는 권력 실세들에 대한 수사에도 즉각 착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송영길 최고위원은 “여러가지로 송구스럽고 죄송스러운 말씀을 금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저희가 여당 시절에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민심 전달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성해야 한다.”면서 “지금 현상도 마찬가지다. ‘죽은 권력’은 난도질하면서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에는 재갈을 물리는 현실을 국민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대통령제에 대한 제도적 모순이 얼마나 큰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노 전 대통령은 국민적인 의혹을 남김없이 모두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노, “졸렬한 정치 보복” 친노 인사인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을 배웅하기 위해 김해 진영읍 봉하마을에 들렀다가 기자들과 만나 “정치보복의 악순환을 되살리는 이명박 대통령은 어리석은 대통령”이라면서 “증거가 있으면 법정에 내놓고 기소하면 되지, 확정되지 않은 사실들을 언론에 흘리며 모욕주는 것은 정치행위”라고 비판했다. 유 전 장관은 이어 “옛날에는 군인들이 정치를 했는데 요즘은 검사들이 정치하는 것 같다.”면서 “지금 나라가 어려운데 국민들 마음을 찢어 놓고 이런 식으로 국가를 운영하면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주장했다.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면목없습니다” 노 전대통령 오후 1시20분 대검 도착

    ”국민여러분께 면목 없습니다.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가서…잘 다녀오겠습니다.” 단 세 마디를 남기고 30일 오전 8시2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떠났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오후 1시에 궁내동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를 통과한 뒤 1시19분 서울 서초구 반포로 대검찰청 청사 앞에 주차했다.당초 약속했던 오후 1시30분보다 10분 정도 먼저 도착했다.이 차량은 현관 정문 앞에서 잠시 정차해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김 비서관 등이 먼저 내린 뒤 1시 21분쯤 차에서 내렸다. 노 전 대통령이 그냥 들어가버렸기 때문에 취재진이 공동으로 준비한 7가지 질문(100만달러 용처 못 밝히는 이유,포괄적 뇌물죄 인정하는가,박연차 회장과 대질 원하나 등)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왜 면목이 없다고 말했느냐는 질문에만 “면목 없는 일이지요….” 정도로 답했을 뿐,심경 등을 묻는 질문에는 “다음에 하죠.”라며 말을 아끼고 바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실로 올라가 이 중수부장과 차 한 잔을 마셨다.이 중수부장은 “국민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으니 정확한 실체가 규명될 수 있도록 협조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해 “잘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 뒤 노 전 대통령은 1120호 특별조사실로 옮겨 자신에 대한 수사를 주도해온 우병우 중수1과장과 100만달러,500만달러,12억 5000만원 등 자신에게 주어진 혐의 별로 수사를 전담해온 검사들이 돌아가며 300여개에 이르는 질문을 쏟아내고 노 전 대통령은 준비해온 답변을 하게 된다. 조사는 자정을 넘겨 새달 1일 새벽 2~3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마친 뒤 다시 한 번 플래시·질문 세례를 받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청사 안에는 취재진과 경호팀들이 모여 북새통을 이뤘다.청사 정문 출입구 주변에서는 진보 보수 단체 회원들이 몰려들어 집회를 벌였다.보수 단체 회원 200여명과 노사모 회원 200명 정도가 각각 집회를 열었다.이 과정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노 전대통령 차량 쪽을 향해 던진 계란 5개와 신발 한 개가 노사모 회원들 쪽으로 날아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노 전 대통령을 태운 청와대 경호실 제공 의전차량은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오다 낙동분기점에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로 빠진 뒤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천안분기점을 지나 낮 12시20분쯤 천안 입장휴게소에 잠깐 들러 휴식을 취했다.노 전 대통령은 버스에서 하차하지 않고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 것으로 알려졌다.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김경수 비서관 등 수행원들만 하차했다. 문 전 실장은 “어제까지 검찰 소환 조사에 관한 준비를 모두 마쳤기 때문에 사는 얘기 등 가벼운 얘기만 차 안에서 나눴다.”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앞서 오전 7시57분 사저 밖으로 얼굴을 잠시 비췄다가 무슨 일 때문인지 사저 안으로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문 전 실장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측근들과 함께 사저 안마당으로 나와 승합차에 탑승,지지자들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 이동했다.노 전대통령은 승합차에 오르기 전,활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초 알려진 대국민성명보다는 검찰에 소환되게 된 자신의 소회를 짤막하게 밝혔다.발언 도중에 감정이 복받친 듯 2~3초 정도 머뭇거리기도 했다.이어 8시1분쯤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 쪽으로 이동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보인 뒤 버스에 올랐다.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란 옷을 입은 채 노란 풍선을 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소회 발표 도중 “노무현”을 연호했다. 버스에는 문 전 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김경수 비서관 등 4~5명이 동승했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면목없습니다” 노 전대통령 오전 8시2분 사저 출발

    ”국민여러분께 면목 없습니다.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가서…잘 다녀오겠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30일 오전 8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사저를 떠나기 전에 이같이 말했다.오전 7시57분 사저 밖으로 얼굴을 잠시 비췄던 노 전대통령은 무슨 일 때문인지 사저 안으로 잠깐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나와 문재인 전 비서실장과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비롯한 여러 측근들과 함께 사저 안마당으로 나와 승합차에 탑승,지지자들과 취재진이 기다리고 있는 앞으로 이동했다.노 전대통령은 승합차에 오르기 전,활짝 웃음을 짓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초 알려진 대국민성명보다는 검찰에 소환되게 된 자신의 소회를 짤막하게 밝혔다.발언 도중에 감정이 복받친 듯 2~3초 정도 머뭇거리기도 했다.이어 8시1분쯤 청와대 경호실에서 제공한 것으로 추정되는 버스 쪽으로 이동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뒤 버스에 올랐다. 노란 스카프를 두르고 노란 옷을 입은 채 노란 풍선을 든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 회원 등은 노 전 대통령의 소회 발표 도중 “노무현”을 연호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탑승한 버스는 동밀양과 동대구와 김천 나들목을 통해 중부내륙고속국도로 진입한 다음 영동고속국도로 여주까지 북상한 뒤 영동고속국도를 이용해 신갈 IC에서 경부고속국도로 서초 IC로 나와 서울 반포로의 대검찰청 청사에 도착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버스에는 문 전 비서실장, 전해철 전 민정수석,김경수 비서관 등 4~5명이 동승했다. 오후 1시30분쯤 대검 청사에 도착할 예정인 노 전대통령은 포토라인에서 언론에 자신의 심경을 밝힌 다음 이인규 중앙수사부장실에 올라가 이 검사장과 차 한 잔을 마신 뒤 1120호 특별조사실로 향한다. 조사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주도해 온 우병우 중수1과장과 100만달러,500만달러,12억 5000만원 등 각 혐의별로 수사를 전담해 온 검사들이 각각 맡을 예정이다. 조사는 자정을 넘겨 새달 1일 새벽 2~3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 전 대통령은 조사를 마친 뒤 다시 한 번 플래시·질문 세례를 받고 봉하마을로 귀향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 /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영상 / 멀티미디어기자협회 공동취재단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서면조사서 답변 착수… 착잡한 봉하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 서면조사서 발송을 시작으로 소환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23일 착잡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 사저를 방문해 2시간쯤 머문 뒤 돌아갔다.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은 전날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 잘 나타나 있다.”고만 말해 사저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음을 내비쳤다. 노 전 대통령이 글을 통해 홈페이지 폐쇄 방침을 밝힌 데 대해 김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혼자서 결정할 사안이 아니며 관리자가 회원들과 협의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서면조사서와 관련해 김 비서관은 “답변서가 작성되는 대로 검찰에 보낼 것이며 언제까지 제출한다고 정해진 것은 없다.”면서 “전날 밤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검찰로부터 서면질의서 원본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비서관은 “문 전 실장은 (노 전 대통령이 답변서를 작성하는 데) 협의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저를 방문할 것이며 답변서를 제출하기 전에 사저를 다녀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10분쯤 봉하마을을 방문, 사저에서 노 전 대통령 내외와 오찬을 함께 하며 2시간쯤 머문 뒤 돌아갔다. 유 전 장관은 사저를 떠나면서 검은색 승합차 유리창문을 잠시 내려 “대통령을 지내신 분도 다 똑같은 사람인데 어려울 때 위로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에서 찾아왔다.”면서 “여러가지 사는 이야기도 하고 위로를 드리고 간다.”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대통령의 언급과 관련된 질문에는 “밥 먹으면서 그냥 사는 이야기 좀 했고, 다른 말씀은 드릴 것이 없으며 이정도만 이해해달라.”고 말한 뒤 떠났다. 김경수 비서관은 “오늘 오후 대구에서 강의가 있는 유 전 장관이 전날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에 올린 글을 보고 찾아왔으며 자신의 장관시절 이야기와 근황, 집필 중인 책 등 편안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노 前대통령, 소환대비 숨고르기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소환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15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 사저에서는 검찰 조사를 대비해 하나씩 준비하며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이날 오전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의 사저에는 비서관과 경호원 등 사저 근무자들이 마당을 청소하는 등 겉으로는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은 이날 “노 전 대통령은 평소처럼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사건 진행 상황을 차분하게 지켜보면서 (소환에 대비한) 적절한 조치와 필요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사저 안의 근황을 전했다. 앞서 지난 14일 오후 6시쯤 노 전 대통령은 카메라기자 수십명이 사저를 향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부인 권양숙 여사와 함께 사저 뒷마당을 5분쯤 여유롭게 거니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가벼운 옷차림을 한 노 전 대통령과 권 여사는 뒷마당 나무그늘 사이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눈에 띄었다. 김 비서관은 전날 검찰에 재소환됐다가 귀가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가 사저를 방문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검찰 조사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이런 상황에서 사저를 방문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조사가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취재진들의 봉하마을 취재열기도 다소 식은 모습이다. 지난 7일 노 전 대통령 사과문 발표 후 봉하마을에 상주하며 사저를 향해 카메라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던 취재진 숫자는 그동안 50여명에서 이날은 30여명으로 줄었다.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사저 주변 골목길과 봉화산 정상 등에 카메라 장비를 설치해 놓고 기다리는 취재진의 모습에 호기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방문객 김모(69)씨는 “노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한 뒤부터는 사저 안에서만 왔다갔다 한다더라.”며 사저 안의 움직임에 관심을 나타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박연차 게이트] 盧 소환 임박 긴장의 봉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소환조사가 머잖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사저는 적막감이 감도는 분위기다.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을 통해 밖으로 전해지는 사저안 분위기도 상당히 긴장돼 있는 듯했다. 노 전 대통령측은 검찰소환에 대비해 사저 안에서 수시로 비서진 등이 참석하는 대책회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인 대책회의는 문재인 전 비서실장이 지휘하고 있으며, 영장이 기각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노 전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사저에는 아침 일찍 출근한 비서관들과 경호원 등 사저근무자들 외에 특별한 출입자가 눈에 띄지 않았다. 사저 안에서 경호원들이 바깥 취재진의 움직임을 지켜 보기도 했다. 김 비서관은 검찰로부터 연락이 있었는지에 대해 “아직 연락온 것이 없고 검찰이 어떻게 판단할지 지켜 보고 있다.”면서 “그동안 검찰이 우리쪽보다 언론에 먼저 흘리더라.”고 말해 검찰 조사에 불만을 우회적으로 표시했다. 지난 11일 소환조사를 받았던 권 여사는 이날도 하루종일 사저에서 휴식을 취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김해 “봉하마을 사업 재검토”

    경남 김해시가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진영읍 봉하마을에 대한 각종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종합적으로 재검토한다. 김해시는 10일 노 전 대통령이 부인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사과문을 발표한 것과 관련해 봉하마을 각종 개발사업의 타당성을 다시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시는 아직 발주하지 않은 봉하마을 내 미곡종합처리장(RPC) 건립 사업은 시비를 지원하지 않고, 노 전 대통령 귀향 직전에 마련한 봉하마을 개발계획에 포함됐던 마을광장의 생태주차장 조성사업도 중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노무현 자금수수 파장] “털면 문제 없는 사람 있나” 봉하마을 주민들 한숨

    [노무현 자금수수 파장] “털면 문제 없는 사람 있나” 봉하마을 주민들 한숨

    노무현 전 대통령이 사과문을 발표한 다음날인 8일 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주변은 평소와 다름없이 보였다. 관광객들은 사저를 좀 더 가까이서 보려고 바짝 다가가 집안을 쳐다보고 돌아가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의 모습은 확연이 줄었다. 봉하마을 관광안내센터에 따르면 봉하마을을 찾는 관광객수는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늘어나 요즈음 평일 하루 2000명에 이른다. 사저안도 바깥에서 보기에는 평소처럼 조용한 가운데 별다른 움직임이 눈에 띄지 않았다. 사저 주변을 경비하는 경찰의 경비근무는 사과문 발표 전보다 인원이 보강되는 등 강화된 모습이었다. 사과문 발표 뒤 혹시라도 노 전 대통령이 바깥으로 모습을 보이거나 특별한 입장 설명이 있을 것에 대비해 많은 취재진이 봉하마을에 몰려들었다. 일부 방송사는 중계차를 대기해 놓았으며, 카메라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향해 설치돼 있다. 마을 주민들은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한 마을 주민은 “그렇게 털면 문제가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불편한 마음을 내비쳤다. 또 다른 한 주민은 “주민들이 걱정을 많이 한다.”고 전했다. 김해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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