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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리/아름다운 도시(아랍서 지중해까지:24·끝)

    ◎물고기 노니는 센강… 곳곳 공원·분수/거리엔 샹송 대신 팝송물결… 값싼 관광상품 판쳐 아쉬움 파리라는 도시의 패션을 말할때 내게는 우선 창이 떠오른다.파리의 창은 참 아름답다.「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에 사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하다.그 낡은 세계에 질린다」라고 시인 아폴리네르가 말했다고 하던가.거리도 다리도 건물도 모두 돌로 된 파리에 철제로 된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때 파리 시민들의 놀라움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다.에펠탑은 센강과 함께 파리의 영원한 상징이리라. 파리 어느 곳에서도 그 에펠탑과 센강을 창을 통해 내다 볼 수 있을 것 같다.그것은 에펠탑이나 센강이 그 형상으로서가 아니라 어떤 영원 불변함에 대한 희구가 의식화 된 것으로,파리 사람들은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 받아들여 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마치 사물을 슬쩍 바라보고 그리는 인상주의 화법으로서가 아니라 사물의 더 영원한 측면을 그리려는 입체주의와 같은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할까. 여하튼 모든 창 위로 센강이 흐르고 에펠탑이 서있는 영상을 이방인인 나는 수없이 보았다. ○채석장 자리 공원조성 창이 면적으로 뚫려있지 않고 어떤 심성으로 혹은 인생에 대한 체험으로 뚫려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그렇게 느끼게하는 이 도시에 대해 나는 여러번 감사하였다. 공원 또한 몹시 아름답다. 파리는 무엇이든 없어지는 장소는 공원으로 만든다고 한다.시테 기숙사 앞에 있는 몽수리공원은 채석장이 폐쇄될때 만들어졌다고 한다.공원에는 훌륭하게 살다간 사람들의 동상이 서있고,나무와 잔디,꽃밭,호수,호수위에 백조나 물오리 그리고 공원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하면 거리 곳곳에는 회전목마와 조각공원과 광장이 있다. 라데팡스 광장에는 미로의 대형조각을 위시하여 40여개의 조각이 놓여있고,풍피두센터앞 스트라빈스키의 조각분수 광장에는 고철이나 페품등을 이용해서 전기로 움직이게 해놓은 조각물이 매우 원색적으로 천진함과 환상적인 감을 자아내며 놓여있다. 지하철을 잘못 탄 탓으로 헤매여 겨우 찾아간 퐁피두 센터에서,이미 지쳐버려 그림을 볼 힘은 없을것 같기에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근처를 어슬렁거리던 중 발견한 이 조각 분수가 얼마나 기쁨을 주고 유년의 기억 속으로 끌어들이던지. 이런 도시 곳곳에 있는 창,공원,조각분수,회전목마 같은 것들이 도시생활의 질과 격을 한층 높여주고 있는것 같다. ○상하수도 시설 완벽 파리는 달걀모양의 형태를 하고있고 서울의 반밖에 안되는 크기이며 동과 서,양쪽에 커다란 불로뉴 숲과 벵센느 숲이 있어 도시의 공기를 그런대로 신선하게 유지시켜주고 있다고 한다.또 「장발장」이라는 영화에서 보았듯이 상하수도 시설이 아주 잘되어 있는 것도 파리의 도시패션에 든든한 밑받침을 하고 있는것 같다. 겉으로 보아서는 물이 맑아 보이지 않는 센강에도 그 속에 커다란 고기들이 싱싱하게 살고 있다고 한다.백년이 넘은 지하철은 굳건하고,지하철의 질서 역시 잘 지켜지고 있다.에스커레이터를 탈 때 사람들은 오른 쪽으로 붙어 서는데 그것은 빨리 걸어서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을 위한 질서라고 한다.버스표와 지하철 표가 같은 것도 시민들에 대한 정부의 세심한 배려로 느껴진다. 밤이 깊을수록 불야성인 거리에 여자 혼자 다녀도 안전하다고 하며 실제로 한번도 위협을 느껴보지 못했다.지하철 앞에 젊은 순경이 서있다가 기타를 들고 나가려는 거리의 악사를 제지하는 모습을 꼭 한번 보았다. 또한 시각환경을 지배하는 광고들을 지하철이나 공고판에서 볼 수 있는데 여행사 광고가 가장 눈에 뜨이고 백화점 광고도 많이 붙어있다.다양한 문화프로그램도 여기저기 붙어있다.그러나 무수한 그것들이 시끄럽지 않게 보여지는 것은 그 내용이 고도의 미감과 어떤 설득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밤부터 시작하여 새벽까지 세계각국의 광고만을 상영해주는 장소도 있다고 한다.밤새워 그런 필름을 돌릴때 파리란 정말 재미있는 곳이었다. 파리시민들은 TV로 많이 배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TV에 문화,사회 관련 프로가 많고 최고 인기장수 프로가 문학,출판 관련의 대담프로라는 것 또한 파리라는 도시패션에 집어넣고 싶다. 패션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사람들의 옷차림을 떠올릴 것이다.그리고 옷차림에는 유행이 있고 그 유행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것을 입는 일반 시민들이 있을 것이다. ○서양문화 깊게 물들어 크리스티앙 디오르,이브 생 로랑,샤넬등의 그 세계적인 상표가 다 파리의 것이기에 아주 화려하고 앞서가는 어떤 분위기를 기대할 것이다.그러나 내가 본 파리에는 그런 것들이 있는 곳은 어느 다른 동네인가 싶게 특기할만하게 없었다.상점의 진열이나 사람들의 옷차림,표정이 세련되었다는 정도 밖에는­. 아주 개성있는 문턱을 넘어설때 소름이 돋으며 이 안에 뭔가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갖게하는 상점을 의외에도 파리에서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내 눈이 발견 못해서인가,어디서나 관광객을 의식하여 만들어 내놓은 상품들과 마주 대하게 되었고,그런 물건들에서는 진정한 무엇과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일었다. 샹젤리제거리나 생 미셀거리,오페라거리,또 새로운 상점가로 등장했다는 퐁피두 센터 근처 포럼 레알지구의 거대한 쇼핑센터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백화점 역시 그러했다. ○이젠 뉴욕패션에 밀려 포럼 레알지구의 쇼핑센터에서는 스피커를 통해「스위트 캐롤라인」이 은은히 들려왔다. 베르사유의 한 카페 앞에 있는 회전목마에서는 「우든 핫」에 맞추어 목마가 돌아갔다.맥도널드에서도 팝송이 흘렀고 몽마르트르 카페의 피아니스트도 팝송을 연주했다.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샹송은 그어디에서도 쉽게 들을 수 없었다.그러고 보면 파리에도 알게 모르게 아메리카의 문화가 깊이 스며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우리 일행이 마지막으로 올라간 몽마르트르 언덕에는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거리의 화가들이 그림을 팔고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몇번 보는 사이 그들의 일상이 되어버린 삶을 잠깐 엿본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그곳에서 그림을 그려서 팔고 관광객들에게 초상화 그리기를 권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뭐 어떤가,누구의 삶인들 별다른가하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겠으나 왠지 그 느낌이 조금 서글펐다.한 일행은 그들의 그런 모습이 삶에 대해 까탈을 부리지 않고 수용하는 너그러운 자세라고 말하였지만.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찰스 드골 공항으로 가는 차안에서 확 트인 하늘 위에 커다란 포물선으로 무기재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비행기의 내 옆 좌석에 앉은 여학생은 2년간 파리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했다.나는 그 여학생에게서 몇가지 얻어들을 수 있었다. 패션도 이미 그중심이 뉴욕으로 넘어가 있다,우리나라의 디자이너는 이신우와 이영희 등이 파리에 알려져 있으며 그녀가 보기에 이영희씨쪽이 밀고 나아갈 옷의 방향이 더 열려있는것 같다,같이 공부한 파리장들은 주로 옷을 벼룩시장에서 아주 싼값에 사입는데 무슨 옷이든 잘 소화하여 개성있게 입는다. 그녀는 또 말했다.자신은 돌아가면 이영희씨 밑에서 공부해보고 싶은데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고. 공항으로 오는 길에 무지개를 보았느냐고 나는 물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 밑에서 꼭 공부하고 싶다면 어떻게든 해보라고,될꺼라고,공부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무지개도 보지 않았느냐고. 이렇게 말하며 나는 낡은 것들에 질린다는 아폴리네르의 말을 떠올렸고,이제 오고있는 새로운 것들의 방향은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 문화의 질/강한섭 서울예전교수·영화평론가(굄돌)

    서울에서 가장 크다는 서점에 갔다.「쥘과 짐」이라는 현대 프랑스 소설이 혹시 번역되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다.출판물량으로 보면 세계 몇째라는 우리나라,또 「개미」라는 프랑스 소설은 정작 본국에서는 별볼일 없었는데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슈퍼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오래간만에 찾아본 외국소설의 진열대에서 필자는 커다란 절망감을 맛보아야 했다.「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제인 에어」와 같은 고전들은 쉽게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이후를 잇는 미국소설과 영국소설의 연결고리는 도대체 찾을 수 없었다.이러저러한 외국소설들은 많이 출간되었지만 거기에서 출판의 깊이와 체계를 찾기가 어려웠다.양적으로는 엄청나게 발전했지만 속이 빈 허황된 발전이었다.좀 과장하자면 우리는 어쩌면 60년대의 「명작전집시대」에서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월부로 구입한 전집을 자랑스레 거실에 전시하던 때가 이제 아득할 만도 하고 그때에 비하면 외국문학의 전공자만도 10배 이상이나 늘었을 텐데… 이런 빛좋은 개살구의 상황은 영화분야도 마찬가지다.전세계의 연간 영화제작 편수는 4천여편에 불과하다.우리나라의 영화산업은 이중 4백여편을 들여오고 비디오 분야에서는 무려 1천여편을 수입한다.여기에 주평균 7편의 외국영화를 방영하는 텔레비전까지 계산하면 우리나라는 전세계의 거의 모든 영화를 수입하는 셈이다. 이렇게 외국영화는 쏟아져 들어오지만 우리나라에 앉아있으면 세계영화의 흐름을 알 수가 없다.영화사적으로 중요한 영화들은 거의 수입되지 않기 때문이다.출판문화와 마찬가지로 영화문화도 겉만 요란하지 속이 비어있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문화의 「대량공급시대」로 급속하게 접어들고 있다.일간지가 주간지보다도 더 두꺼워지고 방송은 매체 분화 뿐만 아니라 채널증대 그리고 24시간 방송으로 달려간다.그러나 이제 우리는 문화의 질을 생각해야 한다.문화는 근본적으로 양이 아니라 질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 「조선조 화원전」/「근대 고서화전」/전통회화의 다양한 화풍 한눈에

    ◎화원전/안견·김홍도등 당대 걸작 60점 선봬/30일까지 간송미술관/서화전/개화·척사파­근대 10대가 작품 진열/28일부터 학고재 화랑 조선조 대표적인 화원화가들의 작품만을 모은 고미술전과 개화기 전후 근대미술의 10대가 작품을 중심으로한 고서화전이 잇따라 열려 눈길을 끈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전영우)부설 간송미술관은 47회째 정기전으로 「조선시대 화원화가전」을 열고있으며(30일까지) 학고재화랑(대표 우찬규)은 5회째 「고서화 소품전」으로 「근대로 오는 길목」주제의 고미술전(28일∼11월13일)을 연다.이 전시회들은 조선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회화양식의 변천과정과 다양한 화풍을 들여다 볼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라는 데서 주목된다. 「화원 화가전」은 도화서 소속의 내로라하는 조선조 화가 46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로 특히 화원 그림만을 소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화원은 도화원(도화원:나중에 도화서로 개칭)에 소속돼 왕실에서 필요한 장식용 그림과 국가행사의 기록화 등을 맡았던 직업화가.조선시대에는 사대부작가들이 일부 그림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림 그리는 일 자체를 천시해 이 화원들이 남긴 그림이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할뿐 아니라 회화사의 중심을 이룬다.따라서 이번 전시는 화원 그림연구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그림도 여러점 포함된 이 전시에는 조선 초기 안견에서부터 조선조 최고의 솜씨로 꼽히는 단원 김홍도,구한말 도화서의 마지막 화가로 산수 인물 화조에 두루 능했던 소림 조석진,그리고 심전 안중식등의 작품 60여점이 선보인다.남아있는 작품이 드문 조선초기의 작품으로 안견을 비롯,그의 제자인 석경·이상좌·이정근·유성업·이정 등의 그림도 소개돼 더욱 눈길을 모은다. 「고서화 소품전」은 이른바 개화파들의 글씨와 근대미술 10대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꾸며질 예정이다.「난」그림과 활달한 글씨 솜씨로 이름난 흥선대원군을 포함,오경석,김옥균,유길준,박영효,김홍집 등 개화파들의 글씨와 황현,최익현 등 위정척사파 선비들의 글씨,그리고 그 뒤를 잇는 윤용구,지운영등의 서화가 소개되는 것.또 춘곡고희동을 비롯,묵로 이용우,심산 노수현,청전 이상범,이당 김은호,소정 변관식,의재 허백련 등 근대미술,특히 동양화 10대가들의 작품이 전시된다.근대미술기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들의 작품에는 글씨건 그림이건 작가마다 강한 개성과 대담한 변형이 많이 나타나며 전체 분위기가 세련미 추구에 있다는 점이 공통된 특징이다. 작품 1백51점의 가격을 일일이 공개,이채를 띠게될 이 전시에는 근대 이전의 전통회화중 현재 심사정과 표암 강세황 등의 작품도 곁들여 비교감상의 길을 마련하며 김용준,청계 정종여 등 최근 해금작가의 작품도 함께 내놓을 계획이다.
  • “일 총독부 관리가 백제유물 빼돌렸다”

    ◎익명의 일 수장가가 기증한 문화재 정리 과정서 밝혀져/당시 공주 송산리 고분 발굴한 다케시/출토품 상당수 일 공동상에 팔아넘겨/문화제에 관한한 “일인의 양심은 없다” 입증 조선총독부 시절 문화재 발굴을 책임진 일본인 관리가 백제시대 보물급 유물을 빼돌려 골동품상에 돈을 받고 팔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문화체육부는 지난달 19일 익명을 요구하는 일본의 70대 사업가로부터 백제시대 귀고리 한쌍을 비롯해 고려시대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와 은으로 만든 팔찌 등 모두 3백77점의 우리 문화재를 돌려받았다. 이 장신구들은 기증받을 당시 모두 작은 진열 상자 안에 가지런히 정리된 채 유물 하나하나에는 유물의 수집경위와 출토지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보물급으로 평가되는 백제 귀고리 한쌍에는 각각 「순금으로 만든 귀고리로 공주감옥소 뒷산에서 총독부박물관 노마모리 다케시씨가 발굴했다(순금제이식 공주감옥소 이산 출토 총독부박물관 야수 건씨 발굴)」는 설명이 붙어 있었던 것.노마모리 다케시(야수 건)는 바로 일제시대 조선총독부 촉탁으로 1927년 공주 송산리 1∼5호분과 1930년 평남 대동군 오야리 고분 등을 발굴한 장본인이다.그가 이때 쓴 조사보고서는 1936년 조선총독부가 간행해 아직도 학계의 중요 자료로 쓰이고 있다. 기증자에 따르면 이 유물들은 일본은행장을 지낸 자신의 아버지가 1920년대와 30년대에 도쿄의 골동품상을 통해 사들였던 것.주로 경주 부여 동래 진주 등지의 고분에서 나온 유물을 집중적으로 모아 품목별로 분류해서 소장하고 있었다고 한다. 백제귀고리 한쌍 역시 골동품상에서 사들인 것.노마모리가 출토품을 몰래 일본으로 가져가 골동품상에 돈을 받고 넘긴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전문가들은 일단 이 귀고리가 송산리 고분 출토품은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아마도 총독부 차원의 발굴과는 별도로 다른 고분을 도굴했으리라는 추정이다.그렇다해도 그가 참여해 공식적으로 발굴한 유적에서도 중요 출토유물을 상당 수 빼돌렸을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노마모리가 왜 떳떳치 못한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의 이름을 숨기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두가지로 분석한다.하나는 출토지와 발굴자를 당당히 내세움으로써 희귀한 백제시대 금속유물이라는 것을 증명해 더 많은 돈을 받아내려 했다는 것.또 하나는 당시 일본사회에 총독부 차원의 발굴사업 담당자가 도굴을 해서 우리 유물을 팔아먹는 파렴치한 행위를 해도 당연시 하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어 이같은 일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우리 학계는 지금까지 제국주의 일본이 역사왜곡과 문화재의 조직적 약탈을 위해 우리 땅에서 발굴을 했지만 그 발굴에 참여한 당사자들은 일본인이라 할지라도 학자적 양심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던 것으로 보고 있었다.그러나 이번 일로 문화재에 관한 한 당시 「일본인의 양심」은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진 셈이다.
  • 신세대들에 혁명의식 교육 강화(북한 이모저모)

    ○계급교양 사업 실시 ○…북한은 최근 새 세대들의 혁명성 약화를 우려,이들에 대한 「계급교양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고. 당 기관지 노동신문 최근호가 보도한데 따르면 북한은 최근 세대교체가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감안,청소년·학생들이 지주·자본가와 미·일 제국주의자들을 증오하는 계급의식을 높이기 위한 「계급교양 사업」을 다양한 방법으로 실시하고 있다는 것. 북한이 새 세대들을 집단적으로 참관시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계급교양실」에는 「착취받고 압박받던 지난 날을 잊지 말자」는 구호아래 지주·자본가의 「악랄성」을 부각하는 사진과 그림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베틀·물레·다듬이방망이 등을 진열,사회주의「우월성」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이 신문은 보도. 또 과거에 소작인이었거나 머슴살이를 했던 노인을 동원,이야기모임을 갖고 있으며 해설강사를 통해 교육을 시킨후 조직이나 단체별로 학습토론,감상발표모임,실효투쟁을 벌이도록 하고 있다는 것. 북한은 「계급교양 사업」을 통해 새 세대들의 혁명의식을 고취시키고 「북한식 사회주의」를 고수해 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 ○김정일,신조어 양산 ○…북한에서 선전선동 구호나 일상용어로 널리 통용되고 있는 「주체성」「수령관」「우리식」「항일유격대식 사업방법」「혁명영화」등 신조어는 모두 김정일이 만든 것이라고 계간 언어잡지 「문화어학습」 최근호가 보도. 「문화어학습」은 김정일이 『주체시대의 요구를 반영하여 새 말을 많이 창조했다』면서 이같은 낱말들을 예시. ○가공식품 생산 박차 ○…극심한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은 최근 식량확보를 위해 양곡의 출미율을 높이는 한편 주식대용의 가공식품 생산에 주력. 북한 정부기관지 민주조선 최근호에 따르면 북한 정무원산하 양정부에서는 한 행정단위로 하여금 특정제품에 대해 「모범」을 창조토록 하고 이를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주식대용 가공식품들을 생산하는 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것. 이에 따라 평성시는 옥쌀 가공공정을,삼천군은 옥수수쌀 가공공정을,황주군과 북창군은 벼정미공정을,평양시는 국수 가공공정과 쌀밥 가공공정을 각각 「시범창조대상」으로 설정,이에 대한 「모범」을 창조하고 있다고.
  • 식료품 사범 엄벌에 처하라(사설)

    부정 불량식품 유통과 식품 허위 과대광고가 여전한데 모두들 분노 한다.더구나 이름난 대기업이 광고내용과는 달리 유통기간 지난 건강보조 식품을 날짜 고쳐 팔고 함량미달 저질 장유식품 육가공식품을 완벽한 상등품같이 표시 선전해온 것에 용서하기 어려운 배신감을 느낀다. 감사원이 발표한 저질식품 제조및 과대광고 업소 77개사 적발,조치 내용은 그 단속 시기가 6월15일부터 한달간이고 지역이 서울시와 경기도 일부라 해도 항상 계속되고 있는 식품제조 유통의 전국적 현상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식품행정 전반과 단속에 대한 불만또한 높지 않을 수 없다. 단속에서 노출된 실태는 시장 판매업소에서 유통기간 지난 식품을 진열 판매하는 것에서부터 식품에 제조업소명·성분함량·기간을 표시하지 않거나 허위표시한 것,품질검사 없이 「자체검사필」증을 마구 붙인것 등 천태만상이다.제조업체와 백화점등에서 수거한 식품에서도 대장균과 세균이 기준초과 검출되고,저질원료와 부적합원료 및 허가되지 않은 첨가물 사용등 사례도 많았다.그동안 기본적인 식품 제조 유통 관리와 단속이 얼마나 소홀했나를 입증하는 것이다. 특히 서울 경기지역 식육·어육·면류 제조업체들 42%가 허가받은 성분 원료는 적게 넣고 값싼 저질 원료를 다량 사용 하면서도 허가된 원료를 규정대로 넣은 것같이 표시 판매해 왔다는 것은 당국이 제조업소에 대해 정기 점검도 하지 않고 방치한 것이 아닌가 의심케 한다.소시지제조 업체가 허가된 닭고기 대신 값이싼 칠면조 고기를 많이 넣고도 닭고기 함량을 규정대로 넣은 것처럼 표시한 것도 있을수 없는 일인데 유통기간 지나 수거 폐기 처분해야 할 미국산 치킨후랑크 소시지를 원료로 하거나 버려야할 쌀떡을 넣어 만든 부대고기라는 육가공품 적발에 이르러서는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소시지 같은 육가공품은 신선하지 않으면 부패 변질도 빠르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세균과 독성이 엄청나서 허약한 사람이 먹게되면 치명적이 되는 사고도 생기며 요행히 식중독 사고 없이 넘어갔다 해도 그 독성이 인체에 쌓여 여러 장해,질환 유발등 해를 입히는 것이다.변질을 막기위한방부제,첨가물은 또 얼마를 넣었겠는가. 식품은 생명과 직결된다.유해식품 제조 유통은 간접살인 행위와 다를것 없다는 인식을 가져온지도 오래된다.60년대 후반부터 부정불량식품 근절이 정부의 연례 시정 목표의 하나였고 중앙과 시도의 특별단속도 정기적으로 실시되어 왔는데 아직도 잠깐의 시범단속에서 이런 사례가 노출된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좀더 사명감 가진 요원을 투입하고 벌칙도 높여 엄히 다스려야 한다.
  • 박태준씨 귀국 정치권 반응·양산 상가 표정

    ◎상당수의원 조문 않고 여론 살펴/선처 기대하며 핵심부 의중탐색/여/동정 분위기 속에 엄정처리 주문/야 박태준전포항제철회장이 노모상을 당해 귀국하게 되자 민자당은 그동안 정치적인 부담이었던 사법처리문제등을 놓고 「묘안 찾기」에 고심하고 있으며 민주당은 「정치보복 불가」를 내세우며 선처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췄다. ▷민자당◁ ○…박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사법부에서 판단할 일』이며 문상하는 문제는 『인륜의 문제』라고 2원적으로 반응.그러나 당직자들의 조문이 곧 사법처리의 방향을 읽게 해주는 것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감돌자 부담스러워하는 기색.이 때문에 당차원의 조문은 김종필대표가 조화만 보내는 것으로 대신했으나 당직자 개개인은 조문하는 문제를 놓고 고심하는 모습. 문정수사무총장은 이날 상오 부산에 내려가기에 앞서 『참석여부는 당에서 간섭하지 않고 개인의 판단에 맡길 일』이라고 피력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문상할지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표명.이한동원내총무는 『국회의원은 조화를 보내지 못하도록되어 있으며 국회운영위원장으로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조화를 보내지 않겠다는 뜻만 분명하게 피력.그러나 최재욱사무부총장등 박씨와 인연이 깊은 민정계 일부 의원들은 이날 경남 양산의 박씨 상가에 조문했으며 정석모·김윤환의원도 하오에 문상했으나 상당수 의원들은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반응. 의원들의 이같은 어정쩡한 태도는 대체로 박씨에 대한 선처를 예상하면서도 핵심부의 의중을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 문총장은 사법처리문제와 관련,『박씨를 사법처리하는 것이 국민감정에 걸맞지 않지 않느냐』고 반문.8일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손학규부대변인은 『정부가 인도적으로 자세를 취하기로 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일단 장례식을 치르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임을 확언. 박씨의 귀국을 놓고서도 민주계는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선처메시지」를 보내 조기귀국을 설득해왔으나 본인이 망설였다』는 반면 그의 측근과 민정계 인사들은 『분명한 메시지가 아니어서 모양새가 이상하게 됐다』고 불만스러운 반응. ▷민주당◁ ○…박지원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박씨에 대한 사법처리는 정부에서 판단할 일이지만 김영삼대통령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정치보복적인 공권력 행사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주장.아울러 박씨가 사법처리를 우려해 임종하지 못한데 대해 동정론을 개진하며 이를 「표적사정의 폐해」로 규정.박대변인은 『윤리적으로 보아 당연히 모친 생전에 귀국했어야 옳다』고 논평했으며 권노갑최고위원도 『자식된 도리로 임종하지 못한 심정이 얼마나 아프겠느냐』고 가세. 사법처리문제와 관련,김원기최고위원은 『박씨가 노모상을 당해 귀국하는만큼 국민정서상 민심이 좋지 않게 볼 것』이라고 했으며 권최고위원은 『박씨가 비록 과오가 있지만 국민들은 사법처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반면 조순형의원등 법사위소속 일부의원들은 『1차사정이 실패한 뒤 2차사정이 이뤄지고 있다』면서 『박씨의 범법행위가 명백하다면 엄정히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양산 상가◁ 박태준전포철회장의 모친 김소순씨가 별세한 경남 양산군 장안읍 임랑리 173 자택 빈소에는 8일 하룻동안 박전회장 형제의 친척과 친지등 1백여명이 조문. ○…자택 뜰에 마련한 빈소의 좌우에는 김영삼대통령과 최규하전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나란히 놓였으며 왼쪽에는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이 보낸 조화가,오른쪽에는 황낙주국회의장과 김종필민자당대표,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이기택민주당대표의 화환이 진열됐다.김수환추기경과 정주영전현대그룹명예회장도 조화를 보내왔다. 또 신상우국회정보위원장과 조중훈한진그룹회장,육사6기동기회,구사가와 쇼조(초천소삼)일한의원연맹부회장,효성그룹 조석래회장의 조화가 뒷줄에 진열됐다.이밖에 이종찬새한국당대표와 노재봉민자당의원도 전국무총리명의로 조화를 보냈다. ○…박전최고위원은 모친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데 대해 무척 통한하고 있다고 한 측근이 전언. 이 측근은 『모친이 위독한 것을 알고도 귀국하지 못한 심정이 오죽하겠느냐』면서 『박전최고위원이 7일 이후 지금까지 한 잠도 못 잤다고 들었다』전언.
  • 로마/광장과 분수들(아랍서 지중해까지:17)

    ◎빼어난 조각 트레비분주 “압권”/저마다 소원빌며 샘에다 동전 던지는 모습은 진지하기만… 로마의 아침을 보려고 5시쯤에다 시간을 맞춘다. 바로크풍의 둔중한 건물들이 늘어선 거리에는 간밤의 불빛들이 아직 명멸하고 있어도 사방을 에워싸고 다가들던 그 거창한 명소나 유물들은 채 잠이 깨지 않았는지 희뿌연 모습들인 채 산책을 방해하는 것같지가 않다. 숙소근처를 두어블록 걷자 골목에서 새벽장이 서고 있다.인근 농장에서 직접 왔는지 캡을 쓰고 멜빵바지차림으로 웃고 있는 주인들 곁의 열어젖뜨려진 소형트럭과 좌판위에 늘어놓인 갖가지 야채와 이름모를 과일들이 싱싱하다.여기 오렌지는 쪼개면 핏빛으로 넘치는 즙과 함께 톡 쏘는 단맛이 유난스럽다.정말로 감동을 일으키는 것은 언제나 이런 사소하고 일상적인 현실의 풍경이어서 지리멸렬한 여독이 어느새 가시고 있다. ○하찮은 것도 소중히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무리 보잘 것 없고 하찮은 것이라도 그럴듯한 이름을 거기 붙이기를 좋아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버리는 재주가 있는 것같다.구멍가게나 문방구에서 파는 작은 기념품,펜대 하나의 모양새가 그렇고 별의별 이름을 다 붙여놓은 거리들이 그렇다.별 두개짜리 속소인 「셀렉트」호텔만 해도 우리식으로는 장급여관수준밖에는 안돼 보였으나 주위공간을 하도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아 좁다는 불평을 할 수가 없다.정갈한 욕조,앙증맞은 비누곽,출입문과 바로 이어지는 통로를 간결한 탁자와 꽃들로 장식해 아늑한 공동정원으로 꾸며놓고 있다.거기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올려다보노라니 서울 필동의 어느 후진 곳을 연상시키는 그 뒤쪽의 낡은 건물이 오히려 고소를 자아낸다. 좁아터졌으나 역시 아늑하기 짝이 없는 지하식당에서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시내나 한바퀴 둘러보자고 나선 길에 운좋게도 산 피에트로광장에서 교황을 만난다.운좋게라고는 하지만 카톨릭신자가 아니므로 그저 먼빛으로 구경이나 한 셈이 되어버린 이 수요일 오전의 알현은 필자에게는 사실 뜻밖이었다. 바티칸시국은 64번 버스종점으로 테르미니역과는 반대편끝이다.산 피에트로사원은 카톨릭미술의 보고인 바티칸박물관,라파엘로관,기타 미술관들과 미켈란젤로의 저 유명한 「천지창조」가 천장화로 장식된 시스티나예배당으로 바로 이어진다.높이 25m가 넘는 장대한 오벨리스크와 분수와 1백40인의 성인상이 주위의 열주지붕위에 버티고 선 더 넓은 광장에는 세계 도처에서 모여든 듯한 수천명의 신자들이 웅성거리고,사원정면 계단 아래쪽에 차양을 치고 마련된 대좌 위의 요한 바오로2세는 시종 웃음을 띠고 있는 것 같았다.각 나라말로 한마디씩 은총을 내리는 모양으로 그때마다 해당되는 나라의 신자들이 환호하며 몸들을 일으켰다. 뭐라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으나 물론 우리말의 은총도 환호도 있었다.조말의 병인사옥이라든가 서강쪽의 절두산 같은 것이 제풀에 생각나 감개가 없을 수 없다. ○광장서 교황 만나 테베레강을 건너 베네치아광장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버스를 버리고 걷는다.로마는 웬만한 길들이 그대로 모두 쇼핑타운이 되어 있어 은근한 디자인과 태깔의 그런 길가 가게들 모습은 유별나다.무드를 연출하고 집중적인 포인트로 상품을 진열해놓는 품새부터가 그렇고,묘하게 접혀서 제자리에 걸려 있는 그저 그런 옷가지 하나가 무슨 첨단디자인의 최고제품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눈에까지 그 지경이라면 입성에다 목을 매다는 여성들의 눈에는 오죽하겠는가.사심없는 눈요기야말로 하나의 풍경의 중심에 도달하는 첩경이고 일종의 쾌락에 가까운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고 있는데,그래서 그런지 가게로 들어간 일행 두사람이 좀처럼 나올 염을 않고 있다. 천사가 모는 사두마차의 지붕 좌우끝머리 조각과 중앙의 기마상이 인상적으로 금방 눈에 들어오는 에마누엘레2세기념관의 베네치아광장은 사통팔달로 연결되는 주위의 한다 하는 로마명소나 유명한 분수들의 그 중앙통쯤 되는 지점이 된다.트레비분수는 그 바로 다음인 콜로나광장에 있다.로마근교의 미남 홀아비 로사노 브리지가 관광온 미국처녀를 죽어라 쫓아다니는 얘기인 왕년의 영화 「애천」이 생각나서도 그렇지만,이 분수는 그 웅장한 규모로나,바로크양식의 걸출한 조각으로나,사철 거기 몰려 와글대는 사람들로나 역시 이곳 볼거리의한 압권이랄 수밖에 없다. 샘 주위는 그대로 온갖 피부색 인종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하고,그런 격의없는 꿈의 무슨 도피처로도 보인다.사뭇 진지하게 소원을 빌면서 저마다 한번씩 샘에다 등뒤로 동전을 던져보고 있대서가 아니라 그 소박하고 치기어린 제스처가 또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빨리 통일이라도 되었으면 하는 지고한 소망보다는 한푼이라도 돈을 더 벌게 해줍시사 하는 현실적인 소원이,그래서 여기서는 더 비현실적인 뉘앙스를 띠면서 제대로 먹혀들 것도 같다.권태와 욕구불만에 고주망태가 된 글래머 스타 애니타 에그버그가 심야에 이 분수에 뛰어들어 난동을 부리는 장면이 있는 예의 페데리코 펠리니의 「달콤한 생활」이 떠오른다. 기적이라고까지 불린 이탈리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시작되던 60년대를 배경으로 소위 로마 상류층의 무위와 타락한 일상을 신랄하게 비꼬면서 고발하고 있는 이 필름은 스페인광장 저쪽의 베네토거리가 로케이션의 주무대였던 걸로 알고 있으나 트래비분수를 슬쩍 삽입한 예의 장면의 효과는일탈한 것이었다. 펠리니는 이 관광명소의 또다른 상징적 의미를 거기서 끌어내고 싶었을지 모른다.배는 불러도 삶의 공허를 어쩔 도리가 없어 카페에서 남녀가 말타기놀음까지 벌이는 유한계급의 그런 지리멸렬한 속성이나 같은 이유로 그들의 스캔들이나 고작 뒤쫓고 팔아먹으면서 파행을 자초하는 어떤 잡지사 기자의 행각이 이 작품에서는 스토리가 되고 있다. 펠리니도,「길」에서 젤소미나역을 절묘하게 해내던 그 부인 줄리에타 마시나도,단발머리로 이이스크림을 빨면서 계단을 깡충거리고 내려오던 왕녀 오드리 헵번도 얼마전에 모두 타계했다.윌리엄 와일러의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지고 지금도 여일하게 그대로인 그 스페인광장의 계단은 그래서 새삼 감회를 자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낱 스크린속의 선남선녀들이 벌이던 그런 운명의 무상감 때문이 아니라 화면에서는 그렇게도 정답고 낯이 익던 공간이 실제로는 도무지 현실감으로 오지 않는 그 생뚱함 때문일 것이다. 이 스페인광장의 끝에서부터는 구치니,발렌티노니,페라가모니 하는 소위 유명상표의 가게들과 부티크타운의 콘도티거리가 바로 이어지지만 별볼일이 없는 것같아 그냥 지나친다.동행과도 헤어져 어디를 어떻게 해맸는지 알 수가 없다. ○요상한 청년들 배회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고대로마의 건축물인 만신전 「판테온」앞을 어설렁거리다 나보나광장으로 다시 빠져나와서야 맥이 쭉 빠졌다.뭘 보려고 헤맨다는 것이 사실은 한 뼘의 쉴 장소를 찾으려고 여태 긴장해온 것을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마실 것을 갖다놓은 야외카페 탁자위로 겁도 없이 비둘기 서너마리가 날아 앉는다. 차가 들어올 수 없는 이 광장에는 「사대강」 「무어인」 「넵튠」의 이름이 붙은 유명한 세개의 분수가 있다.도리없이 또 필자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아니라,그런 축조물 주위에 앉거나 아무렇게 드러누워버린 요상한 차림의 젊은이들이다.로마건 어디에서건 가장 흔하게 보아오던 비슷비슷한 무리들인데,어디서 왔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베낭족들도 있고 어설픈 인디언 목걸이니 열쇠고리니 하는 것을 팔면서 움직이는 젊은이들도 있다.60년대의 히피즘이 다시 도래하는 것이나 아닌가 하고 눈여겨봤으나 행색만 비슷할뿐 그것도 아닌 것같다.기타를 끼고 있는 녀석도,헝겊으로 이마를 묵은 녀석도,민대머리도 있다. 왜 이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가고 새삼 생각한다.우선 그들은 이념적인 색채가 전혀 없어 보인다.항문이 찢어질 정도로 가난해는 보이지만 돈의 위력쯤 똥으로도 안 여기는 눈치들 같기도 하다.집도 절도 냉장고도 지니고 있지 않아 거칠어는 보여도 그만큼 어딘가가 탁 틔어 있다. 21세기는 아마 그들의 몫일 것이다.
  • 770­0011,0057,0063/의심나면 전화하셔요(청와대)

    청와대에 전화를 걸어 본 사람이면 알지만,『○○사무실입니다』라는 답변을 들을 수 가 없다.대신 『3번입니다』나 『205번입니다』처럼 이쪽의 전화번호만 말한다. 국가안전기획부나 다른 정보기관들에도 있는 관행이다.누군지 확인되지 않은 사람에게 전화받는 쪽을 먼저 노출시키지 않겠다는 뜻이다.문민시대에까지 이런 조심성이 필요한 것인지는 따로 생각해 볼 일이지만,어쨌거나 이런 관행은 유지되고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가 최근들어 이같은 관행과는 다르게 국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려고 하는 전화번호가 있다.청와대 대표전화 770­0011과 인사행정비서관실 770­0057(김재석비서관),사정2비서관실 770­0063(배재욱비서관)등 3대의 전화다.청와대 사칭 사기사건이 급증하면서 선의의 피해자를 막기 위해 취하는 조치이다. 0011은 교환대가 나오므로 미심쩍은 사안이 있으면 필요한 사무실과 연결할 수 있다.인사행정비서관실은 청와대에 실제로 그런 사람이 근무하는지를 확인하라는 뜻으로,사정2비서관실은 청와대 내사팀이 근무하는 곳이므로 이상한 일이 있으면 신고하라는 뜻으로 공개하고 있다. 하반기들어 청와대사칭 사기사건이 급증하고 있다.지난해 새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사법처리된 청와대사칭 사기사건은 모두 25건이다.그 가운데 5건이 지난달에 일어났다.이는 전국적인 통계가 아니라 청와대 민정비서실에서 인지한 것들이다.청와대가 알고 있는 적발건수가 이 정도면 실제 적발건수나 실제 청와대사칭 사기건수는 미루어 짐작할만한 일이다. 청와대 민정비서실도 왜 이같은 사건이 급증하는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사정바람이 한차례 지나갔다는 판단으로 사회전체 분위기가 약간 느슨해진 탓이 아닌가 여기는 정도다. 청와대 사칭 유형은 5∼6가지가량으로 설명되고 있다. 사무실에 선거기간중에 생긴 「대도무문」이란 김영삼대통령의 휘호나 주로 대통령후보 시절의 김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걸어두고 사기대상자 앞에서 청와대 비서관과 전화를 하는 척하는 부류가 그가운데 하나이다.개업식이나 기공식을 열어 비서실장의 화환을 진열하고 가짜축전을 낭독해 친분을 과시하는 방법도 있고,실제 청와대 비서실의 면회실을 사기사건의 무대로 활용하는 수도 있다.일당 가운데 먼저 온 사람이 와이셔츠차림으로 기다리고 있다가 사기대상자에게 『내가 바빠 그런데 이사람 말을 들으면 된다』고 말하고는 사라지는 것이다.가짜 청와대 신분증을 갖고 다니는 방법도 있다. 또 전화를 통해 『나 아무개 수석입니다.안면도 없는 상태에서 이런 전화를 드려 죄송합니다』라면서 『후배가 하나 찾아갈텐데 말씀 잘 들어달라』고 이야기하는 유형도 있다.이 때는 주로 경제수석이 사칭된다.비서실내 서열 2위인 정무수석은 무슨 일을 하는 자리인지가 잘알려지지 않아서,대통령의 측근인 총무수석은 사람들이 잘 몰라서 오히려 사칭되는 경우가 적다고 한다. 권력층의 친인척으로 위장하는 사람도 많다.김영□ 손□□ 최형□등의 이름이 이런 때 자주 등장하는 이름이다.강원도 가평군에서는 사정비서관을 자칭하면서 자신의 아버지 회갑연에 기관장의 화환과 축의금까지 받은 사례도 있었다.고급관리가 속을 정도면 일반인들이 청와대를 사칭하는것인지를 분간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측은 청와대 관계자라고 쓴 명함을 건네면 일단 의심해줄 것을 당부한다.청와대 사람들은 명함을 잘 만들지 않는다.만들더라도 특히 신뢰할 만한 관계로 소개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명함을 잘 주지 않는다.전화를 받고도 ○○번이라고만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다.
  • 인재를 인재로 바꾸는 가을독서/신재인(서울광장)

    가물고 무더웠던 한여름에는 조용하던 골목길이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동네 개구쟁이들의 소리로 서서히 활기를 되찾아 간다.내가 가끔 들르는 사무실의 옆허리에 걸쳐 있는 이 골목길은 차 두대가 겨우 비켜갈 수 있는 좁은 길인데도 하루하루 그 모양새가 눈에 띄게 다르게 변하고 있다.빈터에는 새로운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고 낡고 비틀어진 문짝으로 옛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던 상점들은 겉을 산뜻하게 재단장을 하고 고가구를 파는 상점이나 약국이 그 틈새를 비집고 새로 들어서고 있다.그런데 오늘은 아주 곱게 외벽을 치장하던 가게가 문패를 바꿔달고 개점을 했는데 예상밖으로 책파는 가게가 들어선 것이다.부근에 학교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무실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도 아닌데 조금 크다 싶을 정도의 서점이 자리를 잡은 것이다.바로 맞은 편에는 몇달전에 책을 돈받고 빌려주는 대여점이 문을 열고 월간 여성잡지나 가벼운 소설책들을 진열해 놓고 있어서 골목길에 비디오 대여점보다 먼저 들어선 그가게가 그렇게도 돋보일 수 없더니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서점이 새로 문을 연 것이다.안으로 들어가보니 아직은 서가에 있는 책들이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아서 전집류와 사전들이 뒤얽혀 있고 소설류와 비소설류가 서로 어깨를 맞대고 있는가 하면 거의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초중고등학생들의 학습지마저도 바닥에 묶인채로 쌓여 있어서 꼭 새로 이사온 신혼부부의 살림살이를 보는 것만 같다.빈손으로 나갈 수 없어 손 닿는대로 집히는 책을 산 것이 대만출신 구영한이 쓴 인재론 이라는 책이다.이책은 부제로 「돈을 벌수 있는 다음 착안 점은(사람의 재화) 바로 이것이다」로 쓰고 있고 머릿글 처음에는 「기업은 사람이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다.나라가 튼튼하고 부강해지려면 많은 좋은 상품들을 만들고 해외로 수출을 해야겠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인적자원의 계발이 절대적 조건이 된다고 그는 말하려고 한다.그래서 국내에 아무런 부존자원이 없는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대국이 되고 한국이나 대만이 신흥공업국의 선두주자가될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인재론 때문이라는 설명을 하고 있다.그는 이책의 머릿글을 북경에서 상해로 가는 중국민항기내에서 쓰고 있다고 밝히고 만약 11억7천만명의 중국국민 한사람 한사람들이 인재에서 인재로 바뀌어진다면 세계적인 대변혁이 일어날 것이고 중국이 이제 그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말하면서 중국대륙의 해안지대를 직접 다녀보면서 체험을 해보도록 권하고 있다.그책의 중간되는 부분에는 이미 타계한 우리나라 큰 그룹의 총수에 대한 일화도 싣고 있다.그는 매년 도쿄에 와서 먼저 서점에 들러 우선 눈에 띄는 책을 사고 시간이 날 때마다 독서삼매에 빠진다는 줄거리와 그가 말한 「뭐라 해도 인재가 사운을 좌우하니까요」라는 말을 크게 인용하고 있다.「이제 그책을 나한테 좀 주슈」하고 옆자리에 있는 동료가 손을 내민다.그래 책도둑은 도둑도 아니라하니 정식으로 말을 하고 내가 산 책을 집어가는 그 동료를 탓할 수만은 없다.여름휴가철 피서지에서 검게 그을은 그의 얼굴이 아직도 꼭 흑인병정을 보는 것만 같다.길게 늘어선 차량행렬과 무질서한 행락질서속에서 전리품처럼 얻어온 그 휴가증명서가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것이다.「죄송합니다.이제 마음좀 차분하게 고쳐 잡고 나도 책좀 보려고 합니다」 상큼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서 벌써 건전한 가을 냄새가 난다.그리고 불현듯 가로수의 잎새 가장자리에서부터 잔잔하게 번져가고 있는 갈색의 물감과 높아져 가는 파란 하늘이 연상된다.그리고 풍성한 9월이 벌써 문을 확짝 열고 우리안에 들어와 있음을 깨닫는다.사무실을 나선다.밖은 벌써 어두어졌고 요즘 유행하는 프랙탈 이론처럼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축소판처럼 변화해가는 그 골목길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고 상점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아직은 노래방도 없고 그 흔한 카페도 없는 그러나 페인트 냄새가 아직은 덜가신 큰 책방이 있는 그 골목을 나선다.그리고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한 우리나라는 화려한 삼천리금수강산일수 밖에 없다고 깨닫는다.발끝에 걸리는 돌뿌리를 힘껏 차고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친구와 저녁약속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다.
  • 다시 유행하는「재키 패션」/5월별세이후 60∼70년대 봄 되살아나

    ◎소매없는 단색원피스·굽낮은 구두 “불티” 재클린 케네디가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뒤 구미패션계에는 재키열풍이 또 한차례 불고 있다. 벌써부터 유명 디자이너와 의류회사들은 재키가 젊은 시절 가을·겨울에 즐겨 입었던 에이라인 스커트,몸에 꽉 죄는 재킷,굽낮은 구두를 올가을 주력상품으로 내놓았다. 이번 여름에 전세계적으로 여성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소매없는 단색 원피스도 재키스타일의 하나다. 물론 재클린이 살았을 때도 그를 추종하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재키패션붐이 거셌다.60∼70년대초 디자이너와 여성들은 재키의 등장에 주목했으며 여성잡지의 단골손님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여년이 지난 지금 최첨단의 의상들이 거리를 휩쓸고 있는 90년대 와서 다시 재키의 패션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왜일까.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은 바로 지난 6월호의 잡지들을 이유로 들고 있다.당시 전세계 잡지들이 특집으로 재키의 우아한 모습을 가득 담은 화보들로 지면을 장식했던 것이다.대통령의 부인,재벌의 부인,그리고 나중에는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커리어 우먼으로서 평생을 화려하게 살다간 재키의 사진들은 현대의 젊은 여성들에게도 충분히 동경의 대상이 됐음직하다.이런 동경이 또 재키와 같은 옷을 입고 싶게 만들기도 했을 터이다. 사실 재키는 화려한 모습 뒤에 이와 얽힌 갖가지 일화를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백악관에서 보낸 첫 1년동안 그는 옷과 장신구들을 사들이는데 4만5천4백46달러를 썼다고 한다.당시 대통령으로서 케네디의 보수는 연 10만달러였다.또 선박왕 오나시스의 부인이 되었을 때는 터틀넥 스웨터를 색깔별로 사기 위해 메디슨가의 의상실을 제집 드나들 듯 했다는 소문도 있다.또 패션잡지인 보그를 탐독하면서 스스로에게 맞는 의상을 고안해내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으며 출판사 재직 당시에는 「러시아의 의상」이라는 책도 펴냈다. 이같은 일화속에서 여성들은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었던 재키의 상황에 대한 부러움으로 그와 같은 옷을 입으며 대리만족도 느낄는지도 모른다. 한때 휴먼 섹슈얼 리스판스라는 그룹은 여성들의 재키에 대한 동경을 그대로 드러낸 노래를 발표해 화제를 낳았다.『나는 재키 오나시스가 되고 싶어요/나는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싶어요…』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같은 여성들의 심리를 재빨리 간파한 디자이너와 의류회사들이 앞다투어 재키옷을 만들어냄으로써 재키유행을 굳히고 있다.캘빈 클라인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에이라인 치마에 같은 색상의 허리위까지 오는 짤막한 재킷,이탈리아 밀라노의 뮤치아 프라다는 브이(V)모양의 큰 깃을 달고 주머니가 큰 코트,도나 카란은 요즘 좀처럼 볼 수 없는 꽃분홍색의 옷을 각각 만들어 선전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백화점 등 판매점도 가세했다.뉴욕 블루밍데일 백화점은 올가을 가게 진열대마다 재키스타일의 패션을 전시한다.여성스럽고 우아한 정장스타일의 옷과 함께 팔꿈치까지 올라오는 장갑,큰 선글라스,스카프,진주 목걸이 등을 총출연시킨다는 계획이다. 캘빈 클라인의 중저가 남성복메이커인 CK는 한술 더 떠 모든 재키는 케네디를 그리워 할 것이라고 판단,케네디가 즐겨 입었던 더블버튼의 블레이저를 신상품으로 내놓았다.
  • 아테네/파르테논 신전(아랍서 지중해까지:14)

    ◎아크로폴리스의 가장 웅장한 유적/기원전 5세기 대페르시아 전승기념으로 수호신 아테나 위해 건립 아테네까지 와서 이것마저 보지않고 간다면 말도 안된다는 고정관념 때문일까?그 재미없는 유적탐방으로 결국 하루를 보내고 말았지만,그런 상투적인 강박관념은 그리스로 넘어오기 전부터 염두에 늘어붙어 따라왔던 것이어서 시간을 허비했다는 느낌까지는 차마 들지 않았다.아크로폴리스나 그 신전들은 그만큼 아테네 어디서나 노상 눈에 띄었다.시내 복판에 언덕이 있어서도 그랬지만 어쩌다 현대식 건물들에 가려 보이지 않을때는 예의 민주주의니 헬레니즘이니 하는 텅빈 관념들이 잊을세라 곧잘 뇌리로 스며들면서 자리를 메우려 한 때문이었을 것이다.그런 관념을 불신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져서 감촉된 것까지도 믿지 못하는 기묘한 버릇이 필자에게는 있다.눈앞에 보이는 그 어떤 세계도 피가 통하지 않으면 결국은 헛것에 불과하다는 소린데,고질인 신경통의 오랜 경험 탓일지도 모른다.그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도 예외가 아니었다. ○헬레니즘 명성뿐 아크로폴리스의 유적들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웅장한 도리스 양식의 신전.건물둘레 1백60m,46개의 가공대리석 원주,기둥높이 10m,기단은 가로 31m,세로 70m.페르시아 전승기념으로 기원전 447∼432년에 걸쳐 집권자 페리클레스에 의해 조각가 페이디아스의 지휘로 아테네의 수호신 아테나를 모시기 위해 세워졌다. 그리스인의 건출술이 어떻고 부조가 어떻고 하면서 그런 상식적인 해설을 늘어놓은 책자와 그 확인만으로는 더구나 아무것도 알수 없다.필자는 급기야 숙소인 카라벨호텔 객실에 딸려있던 터무니없이 넓은 거실까지도 거기 연관을 시켜보았다.아마 가족용이거나 상용회의실 삼아 그런 공간이 덤으로 필요했던 것인지 덕택에 막혔던 숨도 몰아쉬고 거기서 편지도 쓰고 했지만,폴리스라 불리던 고대 도시국가의 소위 그 민주적인 이념이나 제도란 것이 이런 구닥다리 호텔의 공간배정 같은 것과도 무슨 연루가 있는 것이나 아닐까.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동방정책이후 발진해서 근대 서구문명의 2대 근간정신이 되었던 헬레니즘이란 것은 또 어떤가.선지자가 고향에서 배척받고 불교가 발상지인 인도에서 떠나버렸듯이,아테네의 어디에도 그런 흔적은 없지 않은가.있는 것은 잔해와 상품화한 그 명성뿐,말이 통하지 않는 시민들은 입을 다물고 일행들은 가게만 기웃거리고 있다.결국 전 기항지인 이스탄불에서 겪은 작은 에피소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서야 생각의 가닥이 잡혔다. ○조각상과 거리 멀어 그 이전의 로마시대는 제쳐놓고라도 그리스는 15세기부터 19세기 중엽을 넘어설 무렵까지 무려 4백여년 간이나 터기의 식민지였다.우리와 일본의 그것은 약과라고 할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 지배과정에서 일어났던 온갖 만행,학살사건의 원한으로만 따진다면 그런 철천지 원수지간이 또 있을 것같지 않아 최근까지 설왕설래하던 영토분쟁까지 떠올리면서 주의를 기울였으나,항로에는 아무 이상의 기미가 없었다.하다못해 그리스인과 터키인이 서로 인상쓰는 모습이라도 보았으면 했던 것은 아니다.그 이스탄불의 중앙통에서 구두를 닦다 바가지를 쓸 뻔했던 일이 엉뚱하게도 아크로폴리스가 발현하고 있는 그런 그리스 정신이란 것과도 연관이 될듯하면서 뇌리에 떠올랐던 것이다.그 에피소드란 것도 실은 하잘 것 없는 공중도덕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숙해 보였던지 구두를 마무리한 소년은 처음 말했던 요금의 세배쯤을 더 내라고 떼를 쓰기 시작했다.그냥 달라고 했으면 동정심이라도 일어났을 것을 『돌라(딸라)!돌라!』하면서 하도 영악스럽게 굴어 이쪽에서도 분통이 터졌을 것이다.행인들이 한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엄한 어조로 소년을 꾸짖었다.아이는 얼굴을 붉히고 계면쩍어 하면서 비실비실 모습을 감췄다.명동이나 종로 한복판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우리는 어땠을까 하는 연상이 그제야 필자의 얼굴마저 화끈거리게 했다.이방인 하나가 가령 그런데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찐드기를 당하고 있는 꼴을 보았다면 급하게 딴데로 눈을 돌려버리고 나는 모른척 그냥 지나쳐가고 말지 않았을까.이 경우 떼를 쓰는 아이는 각박한 현실이고,그것을 꾸짖는 어른은 전통이든가 소양에 등을 대고 있었을 것이다. 동서문화의 요충지라고는 해도 이스탄불의 그 터키행인들이 설마 공자한테서 그런 도덕심을 배운 것같지는 않았다.그들은 4백년 동안이나 지배를 하느라고 하면서도 모르는 새 그리스 전래의 그 시민정신이란 것을 제것으로 삼켜버렸던 게 아니었던가.이 사소한 사건에서 필자가 느낀 감상이나 거기서 끌어낼 수밖에 없었던 교훈의 요지는 그것이었다.물론 자국이나 다른 전통감각 내지 소양같은 것도 그 터키인들은 다분히 혼용해서 함께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아테네 사람들은 옛 조각에서 흔히 보는 그런 균형잡힌 생김새가 아니었다.이마와 미간에서 그대로 이어지는 코는 대체로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나 그밖에는 얼굴도 울퉁불퉁 제멋대로이고,더구나 여인들의 표정이나 몸매는 팔등신의 그것과도 거리가 멀었다.그녀들이 보다 이지적이고 강해보이는 인상을 주고 있었다면 차라리 그런 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스인들의 이념과 현실의 차이를 이런데서까지 추출할 생각이 필자에게는 없다.쇳된 기타소리 비슷한 음색을 내고 만돌린을 닮은 전통악기 부주키를구경하려고 파네스피스티미우 대학가를 헤매면서 맞닥뜨린 그곳 젊은이들도 그런 인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유행가나 팝송을 흥얼대며 왁짜하게 거리를 메우면서도 어딘지 근엄하달까 절대로 자신을 방기해버리지는 않는 묘한 구석이나 기색이 학생들의 표정에는 역력했고,대중문학작품들 조차 고풍스런 표지디자인을 한채 일사불란하게 진열된 서점가 풍경 같은 것은 더구나 말할 것도 없다.악기점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요르단에서부터 터기·이탈리아·스페인·파리에서까지 한번씩은 기웃거린 그런 가게에서 질좋은 물건이라며 내놓는 기타가 우리 제품이어서 어안이 좀 벙벙했던 것도 사실이다. 이쪽을 중국이나 일본인으로 착각했던 모양으로 코리안이라고 하자 그들은 실소했다.피아노 제작기술이 서방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비교적 싼 것에서부터 몹시 비싼 기타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메이드 인 코리아 사태를 당하자 미상불 우쭐한 기분이 되지말란 법도 없었다.의식을 하고 있는지 무심한지는 몰라도,아테네 사람들이 가령 자국이나 외지에서 그들의 시민정신이라든가 거창하게도 예의 헬레니즘 운운하는 이념이나 그 편린이라도 깨닫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면 아마 이 비슷한 우쭐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도시국가의 몰락이후 헬레니즘은 불가피하게 내셔널리즘 혹은 극단적인 개인주의를 소극적인 철학으로 삼고 범세계,전인류라는 생각을 적극적인 이상으로 밀어올리면서 동방과 유럽전역으로 퍼져갔다. ○근엄함 잃지 않아 서로 상충하는 이 두 논리의 거듭한 격돌,변천이 오늘날 우리가 마주치는 서구문명의 그 중심적인 양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시내로 들어오는 거리 곳곳에서 보게되는 대형간판의 아름다우나 그로테스크한 그 온갖 상품광고들 역시 터전밖에서 번창했다가 지금은 몰락으로 접어들고 있음이 틀림없는 그런 문명의 잔해거나 그 상징으로 보였다고 하면 좀 과장일까. 밤이 깊자 이 지혜롭고 강인했던 유적도시도 어둠에 잠겼다.어느 옛거리에서 였던가 올리븐지 느티나문지 거창하게 얽힌 가지 한복판에 웅크린 커다란 들고양이 한마리가시야에 들어왔다.동물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눈길을 옮겨가노라니 무성한 잎사귀들 너머,황토빛 야간조명을 받은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 신전이 얼핏 또 보였다. 어딘가 피가 통하는 듯하면서 신전의 윤곽이 비로소 분명해지는 듯한 느낌을 필자가 받은 것도 그때다.
  • 프라하에서 보낸 편지④/민병석(굄돌)

    작년 초 체코에 부임한 직후였다.처음 근무하게 된 동유럽국가여서 물정도 익힐겸 시간나는대로 시내 상점들을 기웃거려 봤다.그런데 프라하 상점의 점원들은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뭐 도와드릴 것 없느냐고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손님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았다.좀 더 심한 경우에는 찡그린 얼굴로 바라보는 모습이 왜 하필 내 상점에 와서 귀찮게 하느냐는 인상이었다.어느 상점에서는 내가 먼저 웃으면서 진열된 물건에 관심을 보였더니 점원은 불쾌하다는 듯이 「노」(NO)!라면서 안으로 들어가기까지 했다.나가 달라는 태도였다. 우리들에게는 전혀 낯선 이런 모습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하기까지 한 일이 아닌가.그런데 곧 그 사연을 알게된 즉,국영상점 점원들은 한가하게 앉아 있거나 바쁘게 일하거나 간에 국가로부터 정해진 월급을 받는 준공무원이며,그러니 손님이 오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 반갑고 수지맞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후 나는 꼭 사야할 물건이 있어도 직접 가기가 꺼려졌다.그러다가 집에서 주문한 물건을 퇴근길에 찾아다 달라는 부탁을 받고 오랜만에 상점에 꼭 들러야 할 일이 생겼다.별로 즐겁지 않을 것을 예상하면서 상점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이게 웬일인가.점원은 활짝 웃는 표정으로 포장하는 동안 잠깐 기다리라고 친절하게 말하지 않는가.더욱이 주문도 하지 않은 시원한 주스 한잔을 대접하면서 새로 나온 물건을 보라고 상품홍보까지 한다.깜짝 놀랄 일이었다.이것은 작년에 경험했던 불쾌한 체코 상점이 아니라 전혀 새로운 체코의 모습이었다. 내가 그들을 직접 상대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지냈던 1년 반동안에 프라하는 자본주의를 걸음마부터 배우기 시작해서 벌써 뜀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는 사이에 체코라는 또 하나의 자본주의 국가가 우리의 새 경쟁자로 성장한 것이다.이제부터라도 동유럽 경제를 무시하지 말자.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이 우리를 앞질러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 아테네/관광타운 플라카(아랍서 지중해까지:13)

    ◎그리스혼 번뜩이는 십자가목걸이/토속음식·술 겸해 파는 「타베르나」 곳곳에… 초저녁부터 “불야성” 활주로를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기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 도시 혹은 한 나라의 첫인상이 실제의 리얼리티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를 필자는 모른다.3박4일 혹은 길어야 4박5일 정도씩 각 나라에 배당된 이번 여행일정으로는 어차피 수박 겉핥기식의 관광유람 밖에는 소득이 없을 것같고 이런때 채택되는 그럴싸한 유적지라든가 뜻깊은 건물 내지 역사적 유물들을 찾는 일에도 필자는 실상 애초부터 흥미를 잃은채 포기하고 있었다.루브르를 하루만에 다 보고 소감을 말하라는 소리와도 그것은 같다.40년을 살고 있어도 서울이라는 괴상한 도시의 그 중심이 어딘지 필자는 아직 그 끄트머리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공중에서는 우선 그 나라의 땅과 산과 마을들의 대체적인 형태와 윤곽이 드러나고 빛깔이 나타난다.자주색에 가까운 지질과 짙고 어두운 녹색의 산야를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오렌지 빛깔의 길들이 갈퀴질하듯이 마구 엇갈리고 있던 스페인의 첫 인상은,번드레하게 치장한 마드리드라는 도시와 후지고 매운 지방색이 두드러지던 그라나다를 직접 밟고 접촉했을 때의 그 느낌과도 무관하지 않았다.이스탄불 상공에서는 강과 붉은 벽돌지붕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왁자지껄한 소음까지 들렸다.물론 이런 식의 과장은 린드버그가 애 기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사상 첫 무착륙비행을 하면서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고 외쳤을 때의 그런 갈증과 그리움 없이는 어불성설의 것이기는 하다. ○포세이돈 환영이 아테네 상공에서 해신 포세이돈이 거대한 몸을 뒤채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필자 눈에 들어온 에게해의 물빛은 그만큼이나 푸르고 맑았다.기창 하나 가득 부드러운 옥색이 들이닥치면서 없어지지를 않아 처음엔 하늘의 일부인가 했다.여기저기 솜털처럼 희끗희끗한 작은 파도의 흔적이 보였을때야 물이라고 알아봤을 정도다.좀 커보이는 솜털은 아마 요트의 돛이었으리라.아직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방대한 푸른 공간…에게해의 인상은 한마디로 그랬다.영화 「지중해」를 만든 가브리엘 살바토레는 이 잔잔한 바다에서 「망각」을 보았다.아비규환의 전쟁,쓸모없는 욕심,그리고 가차없이 생명을 무너뜨리는 시간이란 것의 망각.아구다가와 수상소설인 「에게해에 바친다」를 쓴 판화가 이케다 마쓰오(지전만수부)는 거기서 서양여자의 자궁을 보았다.거창한 문명을 만들어놓고도 모태 주위에서 한 치를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간의 파리와도 같은 집착과 욕망.「그랑 블루」의 뤽 베송은 이색필름 「아틀란티스」에서 그 살아있는 물의 리듬을 보았고 「구세주 알렉산더」를 만든 그리스의 현역 테오도로스 앙겔로폴로스는 아마 도시국가의 번영과 민주주의와 헬레니즘을 제창한 고대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거기서 보고 각성을 촉구하는 그런 파격적인 필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어안내표기 없어 신화란 무엇인가.자연과 인간을 고리짓는 강인한 생명력의 그 의인화이며 그런 갈망의 변용이 아니겠는가.고대 그리스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디푸스니 엘렉트라니 하는 인간의 잠재의식과 매몰된 무의식의 깊은곳까지도 샅샅이 천착해 들어갔다.포세이돈이 살아있다는 소리도 따지자면 그런 자연으로서의 바다의 순도거나 그 오염 여부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실제로 에게해가 다른 대양에 비해 어느 정도나 덜 오염이 되어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자료나 수치를 필자는 아는 바가 없다.그렇긴 해도 여태껏 보아온 바다들 중에서는 가장 맑고 순연하다는 확신이 드는 것은 비단 눈으로만 측정된 그 감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행이라 기왕에 보아왔던 영화나 소설이나 여타의 선입견으로는 우리 보다 훨씬 가난하리라 여겼는데 실제의 아테네는 그렇지도 않아보였다.다소 실망했다면 아마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선입견 속의 그리스는 바다를 낀 벼랑들 틈에 다붙은 정갈하고 흰 방형의 돌집들과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전란과 가난과 외세의 침입이라는 질곡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낙천적인 사람들의 굴곡짙은 그 얼굴의 음영이었다.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도 그렇고,여성이면서도 저항정치활동을 해온 끝에 집권한 사회당의 문화청장관까지 지내다 얼마전에 작고한 배우 머리나 멜리쿠리가 남편 율스 닷신과 함께 만든 콜걸 얘기의 필름 「일요일은 참으세요」를 봐도 그 이미지는 여축이 없다.이런 이미지에는 「피가 마르는 듯한 햇빛」이라는 식의 일종 말할 수 없이 청량하고 건조한 느낌이 스며있는데,더구나 제대로 된 고대 희랍비극의 영상작품 같은 것에는 그 뉘앙스가 절정에 달한다.「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적인 고뇌를 가장 가까이서 노려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그런 느낌의 이미지가 지금의 아테네에서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정도는 아니지만,호텔로 가는 콘스탄티누 거리 양쪽에 에워싸고 밀집한 현대식 호화아파트들의 모습이 우선 그런 기대를 반감시키고 있었다.그나마 낙조가 비쳐드는 건물 틈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서 스쳐가는 아크로폴리스의 남아있는 신전들이 그 기묘한 실망을 달래주고라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언덕위에 저런 것이 정말 다 서있네』라고 일행중의 하나가 내지른 탄성처럼,사양길에 접어든 해운업 보다도 순전히 그런 볼거리의 관광자원에힘입어 그리스는 이 정도의 여유나마 지니게된 것처럼 보인다.거리는 깨끗해서 후진데가 거의 눈에 띄지않았고,시민들은 코를 치켜든채 다소 거만한 표정들이었다.음식점이나 길이거나 영어표기가 거의 되어있지 않고 지도를 내보이며 길을 물어도 우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기가 일쑤며 더구나 게발새발 지껄이는 엉터리 영어같은 것은 처음부터 먹혀들지도 않는다. 전시대의 건물들이 비교적 그대로 남아있는 플라카 지구의 골목들은 아닌게 아니라 그 자존심 높은 그리스인들이 외래객을 위해 따로 특별히 선심이라도 베푼 듯한,그런 신경과 배려가 유감없이 내배있는 곳이었다.우선 상점들과 거기 진열된 물건들이 정교하고 예뻤다.그리스 정교의 표지인 독특한 십자가 목걸이를 주로 파는 액세서리 가게엘 들어섰더니 득의만면하게 그것들을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어째서 작품이냐니까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넓적한 은판에다 뒤뷔페 풍의 희화(호화)들을 낙서처럼 간단히 새겨넣은 것들인데,노심초사하는 그런 공정을 한쪽 코너에서 그대로보여주기까지 하고있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도 없다.자존심과 상술이 교묘하게 결합된 예다.기념품들도 왁자하게 진열되어 있지않고,손가락만한 크기의 납작한 블론즈 제품인 옛 기마상 같은 것도 하나하나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게 정성이 가 있다.여기에서 만은 가게들도 친절하고 물건 값이 비싸지도 않아 야박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야등 줄줄이 내걸어 토속음식과 술을 겸해 파는 타베르나 라는 카페 비슷한 독특한 음식점들의 모양새와 정취역시 그랬다.걷다보면 같은 길이 또 나올 정도로 사통팔달로 뚫려서 연결이 되고있는 계단과 골목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곤 하는 그런 곳들은 빨간 고추같은 야등들을 줄줄이 내걸고 길에다 좌석을 내놓고 있다.채양빛깔이며 장식이며 디자인의 색조가 외래객의 굶주린 정서를 직통으로 파고들기에 모자람이 없다.일행들이 모두 무드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이런 식의 길가 가게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하고 탄식이 나올 정도다.초저녁부터 등불들이 켜지고 그황금빛으로 환한 좁은 길을 메운 쌍쌍들이 흐느적대듯 느리게 흘러간다.야하지도 소란하지도 않은 불야성…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떠오른다.역시 군데군데서 마주치는 소극장 윈도의 공연 포스터들을 들여다 본즉 하나같이 심각하고 진지한 장면들을 내걸고 있다.희극의 그것이라도 아테네 사람들의 표정에는 모종의 엄숙함이 노상 곁들여져 있는 것도 같다.뭐라고 토론하는 소리같은 것이 들려와 올려다 본 골목모퉁이 한 술집의 이름이 그 좋은 증좌가 된다.왈 「소크라테스의 감옥」.
  • 국립 경주박불관/「음성 안내시스템」 첫 도입

    ◎관람순서에 맞춰 전시품 상세히 설명/본관에서 안압지까지 70분에 담아/외국인 관람객위해 일어·영어로도 제작 「박물관 정문에서 헤드폰을 끼고 본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낭랑한 목소리가 박물관의 역사를 들려준다.본관에 들어서면 이 목소리는 관람객의 발걸음을 전시실로 인도하며 진열된 유물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시작한다.」 국립경주박물관이 국내에서 처음 도입한 「음성 안내 시스템」이 최근 본격 운영에 들어가 박물관 관람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음성 안내시스템」이란 박물관에 들어서면서 부터 문을 나설 때까지 전시품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관람 순서대로 헤드폰으로 듣는 작은 녹음기에 담아놓은 것.입구에 있는 대여소에서 2천원을 내고 녹음기를 빌리면 본관과 고분관·안압지관 등 3개 전시관과 박물관 뜰에 있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과 석조유물 등 경주박물관의 모든 것을 약 70분에 걸쳐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둘러 볼 수 있다. 먼저 박물관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과 함께 본관에 들어서 선사실과 원삼국실·미술공예실 등을 둘러보는데 약 30분,다시 발걸음을 옮겨 고분관을 훑어보는데 15분 정도가 걸린다.고분관을 나서면 헤드폰 속의 음성은 잠시 시스템을 끌 것을 지시한다.다음 전시관인 안압지관까지 상당한 거리가 떨어져 있기 때문.그동안 관람객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조금 전에 본 것들을 화제로 이야기 꽃을 피워도 좋다.이어 15분 정도 안압지관을 둘러보고 나면 시스템은 박물관 뜰 곳곳에 있는 대형 유물들 앞으로 관람객들을 인도하게 된다. 이 시스템은 경주박물관이 (주)도우미전자와 함께 지난 봄부터 작업을 시작해 얼마전 완성한 것.도우미전자측이 전문 스크립터를 동원해 녹음용 초고를 만들었고 경주박물관의 학예직들이 내용 검토에 참여했다.현재 녹음된 내용은 전시유물에 대한 요점을 전문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관람객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4차례의 수정작업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이 시스템은 우리말 이외에도 외국인 관람객을 위한 영어와 일본어 녹음도 있다.우리말의 경우 성우들이 녹음을 맡았고 영어와 일본어는 국제방송 아나운서들이 동원됐다.또 중간중간 에밀레 종소리와 불경소리들을 효과음으로 적절히 삽입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했다.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비용은 2천원.현재 5백 세트가 비치되어 있다.도우미전자는 이 대여료를 받아 개발비와 운영비에 충당하게 된다. 한편 경주박물관에 이어 국립민속박물관도 곧 이 시스템을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건길 경주박물관장은 『최근에는 이곳처럼 관람객들이 녹음기의 지시에 따르는 방식이 아닌,관람 순서에 관계없이 어느 진열장 앞에서도 그 진열장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 시스템이 일본에서 이미 실용화되어 있다』면서 『새로 지어질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아직 이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각 지역 박물관들은 이 새로운 시스템을 갖추어야 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금간 담장·축대에 받침대 설치를/태풍 「더그」 이렇게 대비하라

    ◎벼 쓰러짐 막게 4∼6포기씩 묶어야/수해상습지역 노약자 미리 안전지대로 전국이 태풍비상권에 휘말렸다.지난 59년 무려 8백49명의 인명을 순식간에 앗아간 「사라」호 태풍에 맞먹는 위력을 지닌 제13호 태풍 「더그」가 서서히 한반도에 접근하고 있다. 철저한 대비자세를 갖춘다면 인명이나 재산피해를 최소화할 수있다.태풍「더그」의 북상을 앞두고 「해야할 일」을 점검해 본다. ▷농촌지역◁ 논두렁,제방등의 붕괴에 대비하고 논에서는 배수로 주변의 풀을 베거나 깊이 파주어 물이 빨리 빠지도록 한다.또 일손이 닿는대로 벼의 쓰러짐을 막기위해 4∼6포기씩 묶어두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있다. 특히 밭,과수원,비닐하우스등 원예시설,축사주변등에서도 반드시 이같은 배수로 관리가 이뤄져야 한다.양어장에서는 흙탕물이 흘러 오는 것을 막기위해 수원지부근을 정비해두고 저수지는 수문을 서서히 열어 홍수피해와 함께 제방붕괴피해를 막아야 한다. ▷도시지역◁ 집안팎의 하수도,맨홀등이 배수가 잘되도록 되어있는지 점검한다.담장,축대등이 무너질 위험이 있는 곳에서는 받침대를 설치하고 위험표지도 해둔다. 강풍에 대비해 간판이나 건물의 부착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단단히 묶고 건물 밖에 진열한 물건등을 미리 건물안으로 옮겨 놓는다. ▷대형공사장◁ 토목공사장에서는 비탈면등에 대해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절개지에는 비닐을 덮어 토사유출을 막아야 한다.지하에서의 작업을 잠시 중단하고 공사시설뿐만 아니라 주변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도록 보강시설을 마쳐야 한다. ▷해안과 어촌지역◁ 해안의 저지대 주민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언제라도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를 마련해둔다.정박중인 모든 선박은 문,어창덮개,창고문을 막아두고 배 몸체를 고무타이어등 방충물과 함께 단단히 고정시키고 소형선박은 내륙으로 끌어올린다. ▷산간지대◁ 야영객이나 등산객들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대피하되 경사도가 30도를 넘는 산기슭,절벽,축대등을 무조건 피해야 한다.토사유출이 예견되는 사방시설은 가마니나 비닐등으로 보호한다. 또 고립가능성이 있는 산간마을은 안전한 이웃마을과 연락이 가능토록 사전에 약속을 해두고 태풍경보가 발령되면 즉시 대피토록 해야한다. ▷수해상습지역◁ 마을공동의 순찰조를 편성,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노약자나 어린이는 미리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킨다.침수될 것에 대비해 가전제품이나 귀중품은 비닐등으로 포장해 안전지대로 옮겨놓고 고립될 것을 상정해 마실 물,마른 옷가지등을 준비해두는 현명한 대처가 필요하다.
  • 문화인이 됩시다/지건길 국립경주박물관(굄돌)

    우리나라 근대박물관은 1908년 창경궁 안에서 문을 연 이왕가 박물관을 효시로 친다.이어 경복궁 안에 총독부박물관이 세워지고 경주와 부여,공주 등 지방고도에도 분관이 들어서면서 영세하나마 박물관이 점차 사회교육기관으로서 자리를 잡아가게 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계속된 사회적 혼란을 겪으면서 오랫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그러다 최근에는 경향 각지에 새로운 박물관들이 속속 문을 열고 있다.신축중인 곳을 포함해 멀지않아 열군데가 넘는 국립박물관이 제 몫을 할 것이고 여기에 이보다 훨씬 많은 공·사립박물관이 가세할 것이다. 박물관의 증가에 못지 않게 관람객도 해마다 늘어나 제철에는 서울이나 경주 같은 곳은 제대로 관람이 어려울 정도로 붐비게 되었다.철마나 관람객의 성향도 달라서 여름과 겨울 같은 휴가철에는 주로 가족단위의 관람객들이 그런대로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여유롭게 관람할 수가 있다.그러나 봄,가을의 수학여행철에는 북새통이 되고 만다.가지런히 줄을 서서 열심히 들여다 보는 학생들을 만날 때면 가슴 뿌듯한 보람 같은 것을 느끼다가도 갑자기 밀려드는 인파와 함께 눈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에는 아연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러저리 뛰어 다니며 목청껏 떠드는 학생들과 이들을 큰소리로 말리는 인솔교사들로 해서 진열실 안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된다.입구에 주의사항을 써붙여 놓고 그때 그때 타일러도 보지만 별무효과이다. 도저히 감당 못할 지경에 이르게 되면 도대체 누구를 탓할 것인가 하는 한심스런 생각이 들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이곳이 박물관이라고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무질서를 박물관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겪어야 만 하는 것이다. 궁리 끝에 현관 앞에다 다음과 같은 순 한글로 된 경고문(?)을 써붙여 보았다.『박물관에서는 문화인이 됩시다』
  • 관광코스 “환경보호”(“빙하의 대륙” 알래스카:하)

    ◎5년전 원유 유출해역 청정바다로/생태계 거의 회복… 토양은 아직도 오염/송유관·저유시설에 야간관광객 몰려/발데즈만엔 기름띠제거 첨단장비 갖춘 선박 대기 알래스카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환경관광이다.대표적인 것은 발데즈항에서 매일 저녁7시에 출발하는 파이프라인관광.알래스카의 젖줄인 1천2백80㎞ 송유관이 끝나고 저유시설이 갖춰져 있는 발데즈해안 터미널을 돌아보고 오는 이 관광은 2시간이 소요된다. 주간관광이 끝나고 돌아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20달러를 받는 야간선택관광으로 돼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발데즈항에서 16㎞폭 바다 건너에 있는 이 터미널은 철저한 보안구역.따라서 버스는 먼저 발데즈공항청사에 들른다. ○24시간 환경을 감시 청사의 한쪽에는 파이프라인과 터미널에 관한 각종 사진및 모형들이 진열된 방문자센터가 있고 그 옆으로 비행기타는 것과 똑같은 보안수속을 밟은 후 다시 버스에 오르도록 돼 있다. 73년 공사를 시작하여 77년 완공된 알래스카종단 파이프라인과 발데즈터미널의 총공사비는 터미널건설비용 14억달러를 포함,모두 80억달러(한화 6조4천8백억원).송유속도는 시간당 10㎞로 푸르도만에서 출발한 원유가 발데즈터미널에 도착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5일반.1일 송유량은 1백70만배럴로 터미널내 모두 18개의 탱크에 보관되고 있다.이 원유들의 수송을 위해 드나드는 매월 70여대의 유조선들로 터미널내 4개 대형도크는 늘 붐빈다. 이 관광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는 것은 방재시설분야.모든 유조선들은 「프린스 윌리엄해협」 해역을 통과하는 동안은 방재에스코트선박(ERV)의 보호를 받게 돼 있다.방재및 기름띠제거장비를 비치,기름유출 발견시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는 이 선박은 다섯대가 있어 모든 터미널 입·출항 유조선을 커버한다. 터미널주위 발데즈만과 해협일대 해역의 환경을 24시간 감시하는 「발데즈스타」호도 운영되고 있다.시간당 3백50배럴의 기름띠를 제거할 수 있는 장비 35대를 적재,기동타격대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선박은 북미 최대의 환경감시선박으로 그 시설도 최고로 알려져 있다. ○동물 통로 5백54개 또한 1천2백80㎞ 뻗어 있는 파이프라인에도 주변생태계에 영향을 극소화하기 위한 시설들이 마련돼 있다.대부분이 1.5m 지상으로 놓여 있어 동물들이 자유롭게 왕래하고 있으며 동물을 위해 특별히 만든 패스(통로)만도 모두 5백54개에 이른다. 그리고 파이프라인 전구간을 12개의 펌프스테이션으로 나누어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있으며 석유누출 등 이상발견시에는 어느 스테이션에서든지 4분이내에 송유를 정지시킬 수 있도록 돼 있다.이들이 허가를 위해 적용받은 각종 법조항은 주법 8백32개,연방법 5백15개이며 이 가운데 절반이상이 환경관계조항이라고 이 터미널의 홍보담당자인 제임스 아이어씨가 설명했다. 알래스카가 이같이 파이프라인을 관광코스에 넣고 있는 것은 그들의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오염방지시설 등을 과시하려는 의도도 있지만 『실제로는 5년전 발생한 「알래스카 역사의 가장 불행한 장」이라고까지 불릴 정도로 피해가 컸던 환경오염사건을 늘 기억시켜 그 재발을 막아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아이어씨는 덧붙였다. 알래스카주는 1959년 뒤늦게 미국의 49번째 주로 승격했으나 적은 인구와 산업의 미발달로 오랫동안 개발과 보호의 틈새에서 갈등을 겪어왔기 때문에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특히 지난 68년 북극해 푸르도만에서의 석유발견을 계기로 대대적으로 일기 시작한 경제개발과 70년대말부터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한 환경운동의 틈바구니에서 크게 시달려왔다. ○7만3천㎢를 정화 그러던 중 지난 89년3월24일 알래스카연안 해역중 가장 아름다운 경치와 해양생물의 보고로 유명한 「프린스 윌리엄해협」의 블리그섬 해역에 초대형 유조선 엑슨 발데즈호가 좌초된 사건은 알래스카를 더이상의 논쟁이 없는 환경우선의 주로 만들었다. 배가 기울면서 11개의 오일탱크중 8개의 탱크에서 쏟아져나온 25만8천배럴의 원유는 2만여㎦ 넓이의 해협전역을 덮은 뒤 조류를 타고 알래스카만으로 흘러들었다. 열흘동안 키나이반도 동부해안 전역을 뒤덮은 기름띠는 이내 알래스카반도로 번졌으며 알류산열도쪽으로 기세좋게 내달았다. 기름띠는 사고발생 56일후인 5월18일까지 확산됐으며 이에 따른 전체 오염해역은 길이 7백56㎞ 면적 7만3천㎦에 이르렀다.해협을 포함한 이일대 바다의 진귀한 해양동식물 등 자연생태계의 파괴는 극도에 달했다. 그로부터 5년,지난 3월 엑슨 발데즈신탁재단이 펴낸 「5년후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새나 바다동물·어류 등의 생태계는 거의 완벽하게 원상회복이 됐거나 진행중이지만 아직 토양속으로 스며든 오일 등은 완전히 제거되지 않은 것으로 진단했다. ○민·관·기업 합심 사고발생직후 유조선 소유회사인 엑슨사가 사고처리및 그이후 대책마련을 위해 출연한 9억달러로 설립된 이 신탁재단은 그동안 오염처리를 전담해왔다.이같이 빠른 회복을 보이고 있는 것은 1차적 책임의 기업과 주민과 주정부당국 3자의 혼연일치된 노력의 결과였다.또 이제는 그 결과를 관광상품으로까지 팔고 있는 것이다.
  • 낙천적인 스페인사람들/마드리드(아랍서 지중해까지:10)

    ◎돈키호테 후예들 거리마다 북적/“내일을 걱정하는 자는 이방인”…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흥청 스페인식 상상력? 그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대야를 투구로,빗자루를 창으로 삼아 불의와 대적하는 기사(돈키호테). 아리아를 부르는 앵무새,탬버린에 맞추어 황금달걀을 백개나 낳는 암탉,사람의 생각을 알아맞히는 원숭이,기분나쁜 추억을 잊게 해주는 찜질약,먹으면 보기 싫은 사람을 눈에 안 보이게 하는 물약 등을 잔뜩 싣고 마콘도마을에 나타난 집시들(백년동안의 고독). 연인이 언니와 결혼하는 것을 보고도 말없이 두 사람의 결혼케이크를 만드는 티타,그녀가 케이크반죽 속에 떨어뜨린 눈물 때문에,케이크를 먹고 난 모든 하객들이 일제히 울음을 터뜨리고 구토를 한다(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여자의 얼굴은 옆모습과 앞모습이 어우러져 있고,유방은 옷 밖으로 튀어나와 목덜미에 붙어 있다.무릎을 포갠 한쪽 다리는 치마이자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의 다리이기도 하다(피카소). 멀리 하얀 바다와 깎아지른 단애가 있고,돌상자에 뿌리를 박은 죽은 나뭇가지에 시계가 빨래처럼 걸려 있다.돌상자모서리에 걸려 있는 또다른 시계는 지금도 계속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중이다(달리). ○스페인 부의 집결지 이들이 보여주는 황당무계한 초현실적 세계인식.스페인에 가면 일부러 무엇을 보려고 애쓰지 않고,스페인식 상상력을 몸으로 느껴본다는 것이 내 전략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 방법까지도 이미 스페인 자신이 말해주고 있었다.고야의 판화 중에는,두 눈을 가린 백작부인이 이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자기의 왼손을 사기꾼같은 남자에게 내맡기고 있는 그림이 있다.음흉한 속셈을 간신히 감추고 있는 남자에 반해,그의 떨거지들은 그녀의 미래가 송두리째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와 있는 것에 대해 짓꿎은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야는 그녀의 도도한 모험에 대해 이런 제목을 붙여놓고 있다. ­그녀는 「예」라고 말한다.그리고 자신의 손을 낯선 사람에게 내맡긴다. 오후 다섯시에도 햇빛은 베일 듯 강렬했다.푸에르타 델 솔(태양의 문)로 가는 길이었다.길 양쪽에 즐비한 상점들은 마드리드가 스페인 부의 집결지라는 것을 과시하는 듯했다.고급상품들이 진열된 진열장 앞엔 행인들의 발이 줄줄이 묶여 있었고,매장 안엔 손님들이 북적거렸다. 마침 걸치고 있는 옷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는 참이어서 여성용 의류상점으로 들어갔다.소매없는 셔츠 하나를 고르고 그것을 입어보는 데는 적지않게 시간이 걸렸다.거침없이 어깨와 팔을 드러내놓고 거리로 나오니 태양이 가슴 깊숙이 파고드는 듯했다. ○인생의 즐거움 만끽 「아하!」여행중 내내 꼭꼭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저절로 벙싯 열렸다.벼랑끝까지 따라가보리라.눈을 가리고 모험을 할 바에는 스페인이 얼마나 좋은 나라인가.남은 문제는 무엇에 대해 「예」라고 대답하느냐였다. 길가에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 곱지 않은 시선으로 맞았다. ­친구여,스페인에서는 날 찾지 마라.몸은 곁에 있어도 마음은…아니,몸도 마음도 연기처럼 증발해버리더라도 부디 찾지 말기를. 그들은 시무룩하게 내 행색을 흘겨보았다. 푸에르타 델 솔은 끝이 빤한 아주 작은 광장이었다.그곳을 중심으로 10개의 방사선 도로가 뻗어나가는 까닭에 턱없이 사람들이 붐빈다는 것 외에 그럴싸한 입상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없었다.시민들이 약속을 할 때 징표가 된다는 마드리드의 문장인 곰상이나 시계탑조차도 인파에 묻혀버린 모양이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어깨를 맞비비고 있는데,벽을 쌓듯 둘러선 사람들 사이로 꿈꾸듯 나른한 선율이 흘러나왔다.「아랑페이스 협주곡」「알함브라의 추억」.오래전부터 내 마음을 길 위로 이끈 선율이었다. 그들은 플루트·기타·베이스로 이루어진 3인조 악사들이었다.그밖에 굶주림과 외로움을 함께 해온 개가 있었다.기타 케이스에 떨어져 있는 두 장의 지폐와 몇닢의 동전들이 부끄러울 지경으로,연주는 진지했고,그 선율은 순수했다.선율에서 묻어나는 집시의 우수가 해 저무는 들녘쪽을 가리켜 보이는 듯했다. 나는 생각했다.집에 있는 플루트를 들고 저들을 따라나서도 좋지 않을까.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낯선 얼굴들뿐이었다.일행들은 저만큼 마요르광장쪽으로 가고 있었다. 펠리페3세가 1617∼1619년 사이에 완성한이 광장은 사방이 4층 건물로 둘러싸여 있다.세번이나 화재가 발생해 개조를 한 끝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옛날에는 왕가의 의식과 종교재판의 화형식이 이곳에서 행해졌고,그후엔 투우와 야외연극,성인식,정당대회 등이 열리는 장소로도 널리 쓰여왔다고 한다. 광장에선 네덜란드축제가 열리고 있었다.높이 뜬 노란 애드벌룬이 중앙에 있는 펠리페3세의 동상을 내려다보며 축제의 현수막을 펄럭였고,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는 천막 앞에는 구경꾼들이 몰려 있었다.꽃씨와 구근을 파는가 하면,통나무로 나막신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하고,한편에선 6인조 밴드가 네덜란드 민속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광장 둘레에 즐비한 카페에는 관광객과 시민들이 음료를 마시며 축제를 멀찍이서 바라보았고,다른 한편에선 거리의 화가들이 즉석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다. 손님이 없어 무료하게 앉아 있는 화가에게로 다가갔다. 『1960년대만 해도 스페인은 서부유럽에서 제일 가난한 나라였다.언제부터 이런 눈부신 경제성장이 이루어졌는가』 『1975년 프랑코체제가 무너진 이후 스페인엔 자유선거,자유시장,자유언론이 가능해졌다.이제 당신은 이 도시 어디에서도 그의 기억을 되살릴 수 없을 것이다』 『스페인 사람들은 메손에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얘기하기를 즐긴다고 하는데,그러고도 어떻게 다음날 일을 할 수 있는가』 『일 때문에 우리는 인생의 즐거움을 희생시키지는 않는다.대화·음식·가족·우정을 중요시하는 것이 우리의 풍습이다.우리는 하루를 두번 산다.낮과 밤의 생활.내일을 걱정하는 것은 이방인의 생각이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북적거려 빈 의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그들이 가진 가장 큰 컵으로 맥주를 시켰다.광장을 둘러보고 돌아온 K가 내 앞에 놓인 커다란 맥주잔을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너 그거 다 마실 수 있어?』 『그럼.그리고 또 마실 건데』 해가 저물고 있었다.도시의 각 가정에선 여인들이 거울 앞에서 몸단장을 하고 있을 법했다.라벤더향기가 코끝을 스쳐가는 듯했다. 그런데 내 앞엔 무슨 건수가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동료는 내가 다 못마실 맥주에돈을 낭비하는 것마저 아까워하는 판이었다. 일행들이 아르고 데 쿠치예로스거리에 있는 「엘 쿠치」레스토랑으로 갔을 때였다. 『우리 오늘밤은 이곳 사람들이 하는 식으로 밤새도록 이집 저집 찾아다니며 마셔보면 어떨까요?』 ○카페 빈자리 없어 나는 일행들의 염려를 묵살하고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에게 음식이름을 늘어놓았다.생야채 혼합 샐러드,흰 강남콩과 생소시지,왕새우 철판구이,오징어튀김,정어리 소금절임,가다랭이 토마토졸임,석류소스를 친 피망구이,어패류와 고기를 함께 익힌 밥,그리고 맥주 10병이었다.밤새도록 먹기 위한 나의 이 과도한 주문은,『그걸 어떻게 다 먹으려고 그래?』하는 핀잔과 함께 대폭 수정되었다. 일을 좀 저질러보려고 몸살을 아무리 앓아도,분별력 있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매우 간소한 우리의 식탁 옆에서는 마드리드의 젊은이들이 떡 벌어지게 차려놓고 유쾌한 담소에 여념이 없었다.그런데도 웨이트리스는 연방 그들의 자리로 새 음식을 나르고 있었다. 한편에선 퇴근후 바를 순회하는 사람들이 카운터에 선 채로 올리브를 안주삼아 가볍게 한잔씩 하고 있었다.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들이 부러웠다. 「예」라고 대답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음에도,손을 잡아줄 그 무엇이 좀처럼 나타나주지 않았다.그것은 분별력 있는 동료들 탓이기보다,그림 속의 백작부인처럼 눈을 가리지 않은 내 탓인지 몰랐다.나 자신의 분별력이 결코 눈을 감지 못하는 탓이었다. 하지만 그라나다에서 나는 마침내 일을 저질렀다.
  • 「펜트하우스」 상륙… 음란성 논란

    ◎(주)텔리퓨처,서울시내 서점·가판대등에 배포/대담·요염한 포즈 그대로/간행물윤리위,강력제재 방침 미국의 대표적인 음란잡지인 「펜트하우스」가 최근 국내에서 발행됨에 따라 관계 당국이 강력한 제재의사를 밝혔다.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위원장 이원홍)는 26일 제2분과위원회(잡지 담당)긴급회의를 열어 (주)텔리퓨처(대표 오규정)가 지난 주말 발간한「펜트하우스」의 특집호「The Girls of PENTHOUSE」에 대해 음란성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측은 『이번 특집호가 비록「펜트하우스」를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니지만 외설잡지의 대명사격인「펜트하우스」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데다 전체적인 흐름이 매우 음란하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제재대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간행물윤리위원회는 26일 열리는 분과위원회에서 음란성을 확인하면 28일의 전체회의를 거쳐 문화체육부에 제재건의를 하게 된다. 한편 문화체육부 이승규출판진흥과장도『가슴을 완전 드러내거나 치모를 일부 노출한 사진이 실려 있어 음란서적으로 볼 근거가충분하다』고 말하고 간행물윤리위원회의 판정이 나오는대로 ▲ 출판사및 인쇄소 등록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출판사 등록을 취소하거나 ▲미성년자보호법·아동복지법으로 형사고발하는 등의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텔리퓨처사는 지난 5월 한국어판「펜트하우스」를 월간지로 내려고 공보처에 등록신청서를 냈다가 시민·사회단체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실패하자 이번에 공보처 등록이 필요없는 비정기간행물로 특집호를 발행했다. 텔리퓨처사는 또 특집호 발행에 앞서 그동안 공보처에 계류돼 있던 정기간행물 등록신청서를 지난 17일 철회한 것으로 밝혀졌다. 발행인 오규정씨는 이번 특집호 발간에 대해 『처음부터 이 정도 수준으로 한국어판「펜트하우스」를 내려 했으나 비난이 심해 우선 특집호부터 선보이게 됐다』면서 『특집호의 반응을 봐서 한국어판「펜트하우스」를 정식 발행할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텔리퓨처는 이번 특집호를 서울시내 서점,24시간 편의점,지하철역 가판대등에 돌렸으나 교보문고등 대형서점들은 이 잡지의 진열·판매를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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