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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돈은 이렇게…” 10년새 500배나 ‘튀긴’ 중국남자

    “모름지기 돈을 이렇게 손쉽게 벌어야죠.‘야무진 놈’ 하나 잡아놨더니 10년새 한 500배 오르데요.” 중국 대륙에 한 사내가 괜찮은 골동품을 사서 묻어두었더니 10년이 지나 가격이 무려 500배나 부풀려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테크 방법으로 전수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 살고 있는 다이(代)모씨.그는 10년전 2000위안(24만원)을 주고 구입한 10위안(1200원)짜리 청나라시대 은화가 진품인 것으로 확인돼 가격이 무려 500배나 폭등한 108만 9000위안(약 1억 3068만원)인 것으로 감정돼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중경신보(重慶晨報)가 2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다이씨가 뜻밖에 ‘횡재’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그는 10년전인 1997년 우연한 기회에 회사 업무차 베이징(北京)에 출장을 갔다.이때 다이씨의 절친한 고향 친구가 집안에 골동품이 많은 한 노인을 소개해줬다. 평소에 골동품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막상 방문해보니 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수많은 진귀한 골동품들이 여기저기 진열돼 있어 다이씨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특히 이중에서 청나라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은화가 다이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노인은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었다.다이씨가 은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노인은 “2000위안만 주면 10위안짜리 은화를 주겠다.”고 제의했고,다이씨 역시 “좋다.”며 그 자리에서 흔쾌히 노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이씨는 청나라시대의 은화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이런 까닭에 그는 구입한 은화가 얼마니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그냥 집안의 골방 속에다 쳐박아두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2년 어느날,큰 맘을 먹고 다이씨는 컴퓨터를 하나 구입했다.컴퓨터를 구입한 기쁜 마음에 컴퓨터를 자주 다루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인터넷상에서 열심히 서핑을 하던중 우연히 자신이 5년전에 구입한 청나라시대의 은화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게 됐다.다이씨는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구입한 청나라 시대 은화가 ‘진품’임을 알게 됐다. 다이씨가 구입한 은화는 ‘경술춘운남조선통원보(庚戌春雲南造宣統元寶)’인데,이는 청나라 선통제(宣統帝) 2년인 경술년(1910) 윈난(雲南) 화폐주조창에서 만든 은화로,이때 모두 10매(枚) 밖에 주조하지 않은 진귀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은화가 값어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한 그는 다시 이 은화에 대한 자료를 상세하게 검색하기 시작했다.이때 입이 딱 벌어지는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졌다.이 청나라시대 은화 1매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낙찰가가 천문학적인 액수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1매(枚)당 무려 108만 9000 위안이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다이씨는 이튿날 곧바로 그 은화를 들고 국가문물감정국 감정위원 등으로부터 감정을 받았다.그 결과 청나라시대 은화의 ‘진품’이라는 거듭 확인됐다.다이씨는 “이 은화가 ‘진품’이어서 너무너무 기쁘다.”며 “그러나 이 은화는 팔지 않고 보존하다가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돈은 이렇게…” 10년새 500배나 ‘튀긴’ 사내

    “모름지기 돈을 이렇게 손쉽게 벌어야죠.‘야무진 놈’ 하나 잡아놨더니 10년새 한 500배 오르데요.” 중국 대륙에 한 사내가 괜찮은 골동품을 사서 묻어두었더니 10년이 지나 가격이 무려 500배나 부풀려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테크 방법으로 전수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중국 동중부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시에 살고 있는 다이(代)모씨.그는 10년전 2000위안(24만원)을 주고 구입한 10위안(1200원)짜리 청나라시대 은화가 진품인 것으로 확인돼 가격이 무려 500배나 폭등한 108만 9000위안(약 1억 3068만원)인 것으로 감정돼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고 중경신보(重慶晨報)가 27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다이씨가 뜻밖에 ‘횡재’하게 된 사연은 이렇다.그는 10년전인 1997년 우연한 기회에 회사 업무차 베이징(北京)에 출장을 갔다.이때 다이씨의 절친한 고향 친구가 집안에 골동품이 많은 한 노인을 소개해줬다. 평소에 골동품에 유달리 관심이 많았던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 노인의 집을 방문했다.막상 방문해보니 집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수많은 진귀한 골동품들이 여기저기 진열돼 있어 다이씨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특히 이중에서 청나라시대 말기에 만들어진 은화가 다이씨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노인은 아내도 없고 자녀도 없이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었다.다이씨가 은화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본 노인은 “2000위안만 주면 10위안짜리 은화를 주겠다.”고 제의했고,다이씨 역시 “좋다.”며 그 자리에서 흔쾌히 노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이씨는 청나라시대의 은화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다.이런 까닭에 그는 구입한 은화가 얼마니 귀하고 가치 있는 것인지를 모르고 그냥 집안의 골방 속에다 쳐박아두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2년 어느날,큰 맘을 먹고 다이씨는 컴퓨터를 하나 구입했다.컴퓨터를 구입한 기쁜 마음에 컴퓨터를 자주 다루다보니 자신도 모르게 인터넷하는 재미에 흠뻑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인터넷상에서 열심히 서핑을 하던중 우연히 자신이 5년전에 구입한 청나라시대의 은화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게 됐다.다이씨는 이때서야 비로소 자신이 구입한 청나라 시대 은화가 ‘진품’임을 알게 됐다. 다이씨가 구입한 은화는 ‘경술춘운남조선통원보(庚戌春雲南造宣統元寶)’인데,이는 청나라 선통제(宣統帝) 2년인 경술년(1910) 윈난(雲南) 화폐주조창에서 만든 은화로,이때 모두 10매(枚) 밖에 주조하지 않은 진귀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이 은화가 값어치가 높을 것으로 판단한 그는 다시 이 은화에 대한 자료를 상세하게 검색하기 시작했다.이때 입이 딱 벌어지는 ‘경악’할만한 일이 벌어졌다.이 청나라시대 은화 1매가 경매에 붙여졌는데 낙찰가가 천문학적인 액수로 나와 있었기 때문이다.1매(枚)당 무려 108만 9000 위안이었다. 놀랍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다이씨는 이튿날 곧바로 그 은화를 들고 국가문물감정국 감정위원 등으로부터 감정을 받았다.그 결과 청나라시대 은화의 ‘진품’이라는 거듭 확인됐다.다이씨는 “이 은화가 ‘진품’이어서 너무너무 기쁘다.”며 “그러나 이 은화는 팔지 않고 보존하다가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희귀 명품 브랜드의 신비주의 마케팅

    어디서 본 것도 같고 들은 것도 같은데 막상 사려고 하면 살 수 없는 제품들이 있다. 업체들이 특정한 장소에서만 구입할 수 있도록 차별화한 고급제품들이다.‘신비주의’ 마케팅의 산물이기도 하다. 회사원 장모(33·경기도 일산)씨는 얼마 전 100% 순쌀 증류주 ‘일품진로’를 사려고 집 근처 할인점과 편의점을 돌아다녀봤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시중 소매점에서는 일품진로가 유통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진로가 내놓은 일품진로는 고급 한식당·일식당·호텔 등에 월 8500상자만 공급되는 상품이다. 김정수 진로 마케팅담당 상무는 “최고급 음식점을 엄선해 제품을 공급해 왔는데 점점 일품진로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면서 “우리가 특화한 고급 소주가 값비싼 위스키, 와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명품 마니아들에겐 샤넬, 루이뷔통, 구치 등 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명품에 깊은 식견이 있는 사람들은 희귀 명품 브랜드를 찾아 다닌다.153년 전통의 프랑스 명품 가방 브랜드 ‘고야드’는 국내 유일하게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에 입점해 있다. 고야드는 전 세계를 통틀어 5개국에서 9개 매장만을 갖고 있다. 유명 명품 브랜드와 가격대는 비슷하지만 희소가치와 소장가치가 뛰어나다. 명품 마니아들이 열광하는 브랜드이다. 현대백화점에만 입점한 구두·핸드백 브랜드 ‘토즈’, 롯데백화점에서만 만날 수 있는 명품의류 ‘데렉 램’도 고객을 잡아끄는 힘을 발휘한다. 명품 제품을 많이 갖고 있다는 주부 김민정(30·서울 압구정동)씨는 “명품이 점점 일반화되면서 비슷한 핸드백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같은 값이면 남들이 갖지 않은 명품 브랜드 제품을 구입하는 것으로 차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새들도 나무로 착각하고 앉는다는 광고로 화제에 오른 LG전자 PDP TV ‘엑스캔버스 갤러리’도 일반 매장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진열된 상품을 보고 별도 주문해야만 제작에 들어간다. 이탈리아산 최고급 나무 소재로 주문 후 거실에 걸리기까지 며칠이 걸린다. 제품 가격만 990만원에 이르지만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수입산 미네랄 워터 제품 사이에서 선전하는 고급 국산 물도 있다. 철저한 회원제를 통해 주문 배송만 하는 ‘약산 게르마늄 샘물’이다. 강원도 홍천 지역 지하 암반수에서 퍼 올린 이 물은 국내 유일의 게르마늄 성분 함유 생수로 고혈압과 위궤양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이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청와대로 배달시켜 마신 것으로 알려져 명성을 얻기도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인제 읍·면장실 주민 상담실로

    강원 인제·화천군 등 일부 자치단체들이 읍·면장실을 주민들의 생활상담공간으로 새롭게 꾸미는 등 변신을 꾀하고 나섰다. 인제군은 새달 1일부터 관내 6개 읍·면장실을 모두 없애고 남는 공간을 지역주민이 활용할 수 있는 주민생활상담실로 만든다고 21일 밝혔다. 이에 따라 읍·면장실은 주민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며 행정서비스 상담과 컴퓨터, 책 등을 볼 수 있는 여가공간으로 활용된다. 읍·면장은 민원창구에서 일반 직원들과 함께 각종 행정업무 등을 처리한다. 주민들과 접촉하며 최일선에서 근무하는 읍·면장이 주민들의 세심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친근감 넘치는 공개행정을 펴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화천군 사내면 면장실도 최근 주민들의 농산물과 중고가구 등을 전시·판매하는 벼룩시장으로 변했다. 사내면은 최근 10평 규모의 면장실을 리모델링을 통해 ‘화악산 잡동사니의 집’으로 이름 붙인 뒤 중고 의류와 가전제품, 책 등 생활용품은 물론 참깨와 들깨, 인진쑥, 토마토 등 농산물을 연중 판매하는 공간으로 변화시켰다. 사내면은 이장협의회장 등이 참여하는 벼룩시장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농특산물과 생활용품 수집·정리, 진열을 맡을 담당자를 지정했다. 벼룩시장 수익금은 불우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다.인제·화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섹스 걱정하는 섹스업자들

    섹스 걱정하는 섹스업자들

    춘화도가 판을 치고「섹스」에 관한 갖가지 인쇄물이 범람한다. 매춘부가 득실거리고「섹스」 영화가 흥미를 돋우며 오가는 행인의 발걸음을 유혹한다. 어디가나「스트립·쇼」요, 음탕한 요지경이 즐비하다. 이 모든 것이 부족하다면 출연한 배우들이 벌이는 실제의「섹스」장면을 구경할 수도 있다. 세계 최대의 도시「뉴요크」의 일면이다. 세계적 적선 지대로 각종「에로」물 범람 42번가. 이곳은 한때 미국 연극 음악의 중심을 이루었던 문화의 거리였지만 지금은 음탕하고 선정적인「섹스」장사의 소굴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다. 지금 이곳엔 유명한 미국의 연극연출가「지그필드」의 연극도,「거슈윈」의 음악도,「프레드·애스테어」의 노래도 없다. 미국의 매춘과 변태성「섹스」각종「에로」물의 중심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추악하게 생긴 암소지만 젖이 풍부하다』- 누군가 부동산「브로커」가 이 지역을 두고한 말이다. 정화되어야할 사회적 적선 지대이면서도 좀처럼 정화시키기 힘드는 이곳의 생리를 풍자한 말이다. 거리는 24시간 쉴새없이 살아움직인다. 24시간을 쉴새없이 살아 움직이는 거리 영화관은 단지 4시간을 쉴 뿐이고 거리의 음식점은 문을 닫는일이 없다.「타임즈」 광장 주변엔 세계적 구미에 맞추는 각종 값싼 음식을 파는 식당들이 즐비하다. 화려한「네온·사인」불빛에 진열된 갖가지 상품들은 어수룩한 손님, 관광객들의 손을 기다리고「레코드」점에선 쉴새없이 광란의 음악을 거리로 쏟아낸다. 창녀며 주정뱅이 거지 소매치기들이 어슬렁거린다.「뉴요크」에서 가장 노련한 경찰관들의 순찰이 쉴새없이 오간다. 득실거리는 매춘부「섹스」영화 번창하고 이곳을 번창하게 하는 최대의 물주는 3「달러」이상으로 팔리는 노골적인「섹스」사진을 수록한 20~30「페이지」짜리「에로」잡지. 그보다는 훨씬 비싼「핍·쇼」(도색물 구경거리), 훌렁 훌렁 벗어 제치는「스트립·쇼」 전문「클럽」과 소위「성인 영화」라고 하는「섹스」영화 등이다. 매춘부 손가방을 든「샐러리맨」관광객 등의 단골이 붐비며 이 거리는「뉴요크」에서도 가장 비싼 부동산(땅·건물)에 대한 사용료를 부담하고도 남을만큼 강한「섹스·붐」을 탄다. 대부분의 고객은 남자들이며 근무시간이 끝나고 퇴근의「러시·아워」가 시작되면 손님은 쏟아져 들어오고 밤이 되면 흥청대기 시작한다. 인쇄된「섹스」물과 함께 번창하고 있는 것은 각종「섹스」의 실연이다. 「섹스」극을 실연하는 외설 스타도 등장해 유서깊은 극장가였던 이곳의 새로운「스타」로 등장한 것은「버니」와 「클로드」라는 이름의 젊은 한쌍. 「버니」는 19살,「클로드」는 23살. 2개의「클럽」에서 각각 하루 8회씩「쇼」를 한다. 그들이 엮어내는「쇼」의 내용은 언제나「아파트」에 돌아온 직업여성이 도둑에게「섹스」를 강요당하는 내용. 복면을 한 도둑은 그녀에게 권총을 들이대고 옷을 벗으라고 위협하며 벗은 몸으로 춤을 추게하고 마침내는 그에게 사랑을 바치도록하는 일종의 변태적인「섹스」도둑극이다. 그래도 현재의 규제법을 얼마간 지켜 실제로 성관계를 갖는 것까지는 연출하지 않지만 그대신 성관계 과정을 묘사하는 신음소리와「모션」은 취한다. 『우리는 이것이 현대 풍자극의 전통적인 형태라고 생각한다』-「클로드」의 말이다. 「브로드웨이」가 가지를 뻗고 새끼를 쳐나가듯 42번가도 번식을 하고있다. 24번가「클럽 ·오기」는 어떤 면에서는 42번가의「섹스·무드」를 앞지르고 있다. 성교를 포함하는 실연의「섹스·쇼」를 보여준다. 이곳은 생긴지 14주 간만에 14번이나 경찰의 단속을 받아 문을 닫았었다. 4가지의「섹스」극을 공연하는데 경찰의 제재가 있으면 문제가 된, 지나치게 노골적인 것 한편만 잠정적으로 중지시키고는 재빨리 다시 문을 연다. 현행 미국법의 맹점을 최대로 이용하고 있다. 도색물에 관한 대통령직속위원회의 건의대로 성인들에 관한 도색물규제를 완전히 철폐한다면 42번가의 면모는 급격히 달라질지도 모른다. 현재 이곳의「섹스」장사꾼들은 그렇게 된다면 각종「섹스」인쇄물이나「쇼」등의 값이 싸질 것이고 또 신비감이라든가 외설물을 읽고 본다는「드릴」감이 없어져 지금처럼 수지를 맞추기가 힘들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珍> [선데이서울 70년 10월 25일호 제3권 43호 통권 제 108호]
  • [금융투자시장’빅뱅’온다] (상) 편해진 소비자

    [금융투자시장’빅뱅’온다] (상) 편해진 소비자

    금융투자사(현 증권사)에 월급계좌를 갖고 있는 나투자씨. 나씨는 금융투자사 지점을 방문, 공과금 자동 납부기를 이용해 공과금을 낸다. 고향에 계신 부모의 은행계좌로 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 용돈을 보낸다. 그런 다음 상담창구에서 투자할 상품을 고른다. 상담직원은 자체 개발한 탄소펀드에 투자할 것을 권유한다.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투자해 얻은 탄소배출권을 시장에서 내다팔아 수익을 얻는 펀드다. 일반인도 투자가 가능해졌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진다. 물가상승률이 4% 미만일 경우 연 수익률 8%를 보장하는 파생상품에도 관심이 간다. 지난 15일 국회 재정경제위 금융소위를 통과한 자본시장통합법이 1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실행될 2009년 이후면 가능한 변화들이다. ●다양한 상품조합 가능 현재 증권계좌에서 다른 사람의 은행계좌로 돈을 이체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의 은행계좌로 돈을 옮겨야 한다. 은행계좌에서 증권계좌로 돈을 자동이체시킬 때도 예금주가 같아야만 한다. 증권계좌 중 편의성을 높였다는 종합자산관리계좌(CMA)로도 일부 공과금은 낼 수 없다. ‘자통법’이 시행되면 증권사에 소액자금이체가 허용돼 증권사 계좌 하나로 불편함 없이 모든 금융업무를 볼 수 있다.‘은행에 일보러 간다.’가 ‘금융투자사에 일보러 간다.’는 말로 바뀔 수도 있다. 자통법에서 증권·자산운용·선물업의 경계를 허물고 금융투자사가 이 업무를 다 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지금처럼 자산운용사에서 만든 상품을 증권사에서 사는 단계가 사라진다. 판매단계가 한 단계 줄어드는 셈이므로 판매수수료가 줄어들 수 있다. 선물도 금융투자사에서 취급할 수 있게 됨에 따라 금·돼지고기 선물 등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선물투자가 다른 상품들과 함께 상품진열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자통법이 가져올 또 다른 변화는 ‘투자성(원금 손실 가능성)’이라는 특징만 가지면 어떤 상품이든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규모 손실을 각오하고 미래의 위험을 피할 수 있는 맞춤형 상품을 만들 수도 있다. 특정 종목을 많이 보유한 투자자가 그 주식의 주가가 떨어질 경우 대규모 손실을 입는 것을 막기 위해 적은 돈으로 주가하락 때 행사할 수 있는 주가연계증권(ELW)을 사는 행위가 모든 경제 행위에 적용될 수 있다. ●아는 만큼, 있는 만큼 돈 버는 시대 소비자의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은행과 증권사간 서비스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증권사의 CMA가 연 4%대 이자로 인기를 끌자 은행들이 월급통장 금리를 올려주고 다양한 부가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은행의 고유업무였던 대출에 있어 증권의 경쟁력도 강화될 전망이다. 일부 증권사에서 실시중인 CMA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주식담보신용대출이나 펀드담보신용대출 등도 활성화될 수 있다. 소비자들이 저축에서 투자로 이동하고 있는 지금, 일단 증권사로 넘어온 소비자들을 잡기 위한 부가서비스가 강화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투자할 돈이 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 고달파질 수 있다. 은행이 증권사와 경쟁하면서 예금이자를 올리면 대출이자도 오를 수밖에 없다. 대출재원으로 쓰이는 요구불예금이 줄어들면서 은행이 양도성예금증서(CD)나 은행채 발행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비중이 커질 전망이다. 자금 조달비용이 늘어나면 대출 이자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자통법의 도입은 투자할 여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많은 기회를 제공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은행 문턱을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강유정의 영화in] 마리 앙투아네트

    [강유정의 영화in] 마리 앙투아네트

    영화의 첫 장면. 백색에 가까운 금발의 여자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있다. 장난기 어린 요염한 눈빛을 관객에게 던지면 MTV에서나 들을 법한 록음악이 흘러나온다.16세기 유럽의 로코코 의상과 MTV스타일의 록,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이 조합은 영화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려낼 중세가 어떤 것인지 여실히 보여준다.21세기에서 돌아본 16세기, 아니 21세기풍 16세기 코스튬드라마가 바로 ‘마리 앙투아네트’이다. ‘마리 앙투아네트’는 한 여자를 통해 혁명을 재조명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자의 내면이 ‘옷갈아입기’로 표현된다는 사실. 물론 우리는 옷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했던 여성들을 여러 번 영화에서 만나왔다.“옷은 내면의 빈 곳을 채워줘요.”라고 말하는 ‘토니 타키타니’의 여자부터,“66사이즈로는 성공을 꿈꿀 수 없다.”며 명품 옷을 갈아입었던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앤드리아까지. 옷은 여성 심리의 일부이자 혹은 전체로 묘사되곤 했다.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묘사하는 것도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오스트리아와 프랑스간의 전략적 선택으로 프랑스 왕조에 시집오게 된 마리는 그 긴장이 버겁고 무겁다. 섹스, 임신, 대인관계까지 사생활이라 부를 모든 것이 정략적 차원에서 설계되고 실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소문과 협잡이 넘쳐나는 베르사유 궁에서 마리는 불안을 견디 듯이 옷을 사들이고 맛있는 것들을 먹어 치운다. 캔디 컬러와 꽃장식으로 가득한 공간은 숨막힐 듯한 정치적 외피를 은닉해 준다. 그리고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그 외피 속에 자신을 숨긴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마리 앙투아네트일까? “빵이 없으면 케이크나 먹으라고 해요.”라는 철부지 코멘트로 역사의 오점을 남긴 마리 앙투아네트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는 한편 그녀의 사치가 500년 넘게 프랑스의 국보급 문화재로 남게 된 역설과도 상통한다. 피와 눈물로 이루어졌다고 배척된 그녀의 공간은 관광지로 재탄생해 현재까지 지속된다. 사치와 낭비라고 비난받았던 그녀의 소비패턴은 내면적 허기를 채운 보상행위로 재조명된다. 그녀는 처참하게 죽었지만 그녀의 이름은 영원한 낭만성 속에서 지속된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역사는 폭군을 좋아한다. 폭군만큼 흥미로운 캐릭터가 없기 때문일까? 비난은 두고두고 이야기가 되어 새로운 장르로 거듭난다. 진시황의 유물, 이집트의 피라미드처럼. 피와 뼈로 이루어진 역사는 호사가들의 호기심을 따라잡지 못한다.16세기 풍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다름없는 ‘마리 앙투아네트’는 분명 ‘역사 영화’가 아니라 의상 영화이다. 진열된 옷과 쿠키, 케이크는 스스로 생명력을 얻는 듯하다. 쇼윈도에 걸린 값비싼 명품 드레스처럼 내가 직접 입을 수는 없지만 보기엔 황홀한 환상,‘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런 작품이다. 영화평론가
  • 英 테스코·獨 밀레 등 외국계 기업들 “한국식 경영전략 배우자”

    한국식 경영이나 마케팅 기법이 해외에서 또 다른 한류(韓流)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만의 독특한 점포 형태나 제품 기술 등을 익혀 본사로 역수입하거나 다른 진출국가로 확산시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핵심 노하우 배워 가 유통업계에서는 삼성테스코 홈플러스가 대표적이다. 홈플러스는 영국계 글로벌 유통기업 테스코(TESCO)가 한국에 진출하면서 설립한 할인점으로 현재 국내 2위다. ‘테스코’란 사명을 그대로 쓰는 다른 나라와 달리 1999년 삼성물산과 제휴해 들어오면서 유독 ‘홈플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한국에서의 빠른 성장세를 눈여겨보던 영국 테스코는 2005년 10월 한국의 장점만을 모아 맨체스터에 1200평 규모의 할인점을 열었다. 이름도 한국의 이름을 따 ‘테스코 홈플러스’로 지었다. 유럽·아시아 12개국에 3268개 점포,40만명 종업원을 거느린 84년 역사의 거대기업이 10년도 채 안된 한국으로부터 핵심 노하우를 배워간 셈이다. 테스코 홈플러스는 가정용품, 주방용품, 전자제품, 의류, 액세서리 등 비식품(Non-food) 전문매장. 전형적인 유럽의 창고형 대신 밝은 조명과 고급스러운 자재 등 한국형 인테리어·진열 방식을 도입한 게 특징이다. 또 유럽인들이 꺼려하는 복층 형태를 과감하게 도입했다. 프로모션 안내물도 한국과 같은 색깔로 했다. 이에 힘입어 지난해 11월 문을 연 켐스퍼드 홈플러스의 경우 주(週)당 평균 5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리고 있으며 다달이 10∼15%씩 매출이 뛰고 있다. 현재 7개의 홈플러스를 운영하고 있는 테스코는 빠르게 매장을 늘려나갈 방침이다. 특히 테스코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식 복층 점포 도입을 확대하는 한편 매장 내에 한국형 문화센터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아웃백, 한국식 조리법 美로 역수출 유럽지역 세탁기·진공청소기 등 1위인 독일 밀레도 한국지사를 배우고 있다. 한국지사는 전 세계 37개 지사 중 처음으로 인터넷 마케팅을 시작해 높은 실적을 내고 있다. 지난해 말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리는 소그룹 법인장 회의에서 네덜란드, 덴마크 등의 법인장들에게 기법을 가르쳤다. 올 4월에는 일본 지사에서 대리점 사장단 15명이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1위인 아웃백스테이크하우스가 내놓은 한국식 쇠고기 스테이크는 미국 시장으로 역수출됐고 조리법은 영국,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미국의 도넛 브랜드 크리스피 크림도 한국적 특색을 살린 녹차라테와 녹차프로즌 블렌드를 유럽·아시아·호주 등지로 전파하고 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신림 재래시장에 ‘상인대학’ 떴다

    재래시장에 상인대학이 생겼다. 서울 관악구 신림1동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경영혁신에 나섰다. 4일 관악구에 따르면 상가 내에 상인대학 ‘신림1동 시장 거상 만들기’를 세워 마케팅과 서비스를 업그레이드하기로 결정했다. 중소기업청과 시장경영지원센터가 5000만원을 지원했다. 지난달 31일 문을 연 상인대학은 오는 11월30일까지 매주 2차례씩 열린다. 참석한 상인들은 기초과정에서 재래시장 변화의 필요성과 소비자 심리를 학습한다. 이후 심화과정을 통해 상품배치와 진열, 많이 팔고 잘 파는 법 등 구체적인 판매기법을 익힌다. 또 다른 지역의 우수 재래시장을 방문, 견학한다. 교육과정이 끝나면 상점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육지도를 진행할 방침이다. 명예학장을 맡은 김효겸 관악구청장은 “재래시장이 지역경제, 서민경제 활성화의 중심역할을 맡도록 다각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말했다.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이젠 포스트 BRICs] (16) 카자흐스탄 (하)

    [이젠 포스트 BRICs] (16) 카자흐스탄 (하)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호수임에도 불구하고 바다라는 호칭을 뒤에 붙이는 세계 최대의 호수 카스피해.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는 지금 불타고 있다. 석유 시추공에서 나오는 불도 있지만 원유확보를 위한 보이지 않는 ‘석유전쟁’도 벌어지고 있다. ●최대 유전지대 악토베 중국서 싹쓸이 카스피해 일대는 ‘제2의 중동’으로 불린다. 원유 추정매장량은 2600억배럴로 전세계가 10년 간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다. 천연가스 추정매장량은 239조입방피트로 전세계가 9년 간 쓸 수 있는 양이다. 특히 카자흐스탄의 채굴가능 원유매장량은 396억배럴로 인근의 아제르바이잔(70억배럴), 우즈베키스탄(6억배럴), 투르크메니스탄(5억배럴) 등 이웃한 국가들을 합한 것보다 훨씬 많다. 때문에 카자흐스탄엔 세브론·엑손모빌·셸·토털 등 석유 메이저사들이 적극 진출하고 있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인도,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이 2005년 카자흐스탄 유전에 투자한 금액은 46억달러. 외국인 전체투자금액의 70%에 달하는 돈이 석유에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경제성장을 위한 원유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국의 기세가 무섭다. 곽정일 한국석유공사 카자흐스탄 사무소장은 “원유확보에 비상이 걸린 중국의 경우 돈으로 유전을 싹쓸이 한다”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라면서 “카자흐스탄 최대의 유전지대 중 하나인 악토베는 완전 중국판”이라고 말했다. 중국 최대의 국영석유회사 CNPC는 카자흐스탄의 석유기업인 페트로카자흐스탄을 42억달러 주고 통째로 인수했다. 중국 투자기업인 씨틱은 3억 5000만배럴 규모의 유전을 19억달러에 매입했다. 또 카자흐스탄 아타수와 중국의 두산쯔를 연결하는 길이 1000㎞의 송유관을 완공하기도 했다. 중국의 공세가 강화되면서 이를 견제하는 움직임도 생기고 있다. 곽 소장은 “카자흐스탄 정부는 페트로카자흐스탄이 인수된 뒤인 2005년 말 유전광구 등을 거래할 때는 정부가 우선적으로 인수할 수 있는 정부선취권을 부여하는 법안을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로 연결되는 송유관 건설 나서 매장량은 넘쳐나지만 문제는 운반하는 방법이다. 카스피해는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서쪽으로 아제르바이잔, 동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남쪽으로 이란 등에 가로막혀 있다. 카자흐스탄에서 석유를 수출하려면 결국 송유관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소련시절에 건설된 송유관은 러시아를 지나 동유럽으로 향하도록 설계돼 서구자본이 들어오지 못했다. 때문에 미국 등 서방 석유 메이저 회사들은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에서 그루지야 트빌리시를 지나 터키의 세이한항을 연결하는 BTC 송유관을 건설했다.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의 텡기즈 유전에서 러시아 노보로시스크로 연결되는 CPC 송유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러시아는 또 최근 카자흐스탄과 투르크메니스탄 등에서 러시아를 직접 연결하는 새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건설에 합의했다. ●석유공사등 국내업체도 광구탐사 현재 카자흐스탄엔 석유공사를 비롯해 LG상사,SK㈜, 삼성물산 등이 석유를 비롯한 자원개발에 나서고 있다. 카자흐스탄 북부의 아다(ADA)광구의 경우 1억 7000만배럴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한해 동안 사용되는 석유 소비량 8억배럴의 5분의1을 조금 넘는다. 또 아다 외에도 잠빌, 사우스 카르포프스키 등 카스피해 인근 4곳에서 탐사를 진행 중이다. 잠빌의 경우 석유 매장량은 10억배럴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해외에서 확보한 유전 가운데 20억배럴의 매장량을 가진 나이지리아 해상광구 다음으로 큰 것이다. 또 사우스 카르포프스키의 가스 매장량은 4600만t으로 추정된다. 이는 국내 연간 LNG 도입량 2300만t의 2배가 넘는 규모의 어머어마한 양이다. 곽 소장은 “카자흐스탄은 지질학적으로도 석유가 발견되기 쉬운 땅”이라며 “또한 상대적으로 생산원가가 저렴한 육상광구가 많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newworld@seoul.co.kr ■ “세제등 국내외 투자 차별없어”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예전엔 해외투자에 특혜가 있었지만 지금은 해외투자나 국내투자나 법적으론 똑같다고 봐야 합니다.” 카자흐스탄의 대형로펌 중 하나인 아에퀴타스(AEQUITAS) 파트너 변호사 나탈리아 브라이니나는 이같이 말했다. 그는 5년 전만 해도 특별법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에 세제나 금융상의 특혜를 제공했지만 외국인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조건은 해마다 줄어들어 현재는 외국인 투자와 국내투자가 동등한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카자흐스탄의 로펌들은 석유메이저, 금융회사들을 담당하는 비교적 대형로펌과 카자흐스탄 무역회사 등 작은 기업들을 상대하는 중간규모의 로펌으로 구분할 수 있다.1993년에 만들어진 아에퀴타스는 런던에 상장, 큰 반응을 불러왔던 구리생산업체 카작무스 등의 법률자문을 하고 있다. 또 우림건설 등 건설붐을 타고 들어온 건설업체를 포함해 5∼6곳의 한국기업과도 일을 같이 했다. 브라이니나는 “카자흐스탄의 문화와 법률은 계속 변화하고 있다.”면서 “변화의 방향은 물론 개방의 정도를 높이고 자유경제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카자흐스탄 법률시장은 금융법과 노동법이 중심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카자흐스탄은 알마티를 지역금융허브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브라이니나는 “정부가 경제의 중심을 자원에서 금융으로 변화시키려 하고 있다.”면서 “해외채권 발행, 기업공개(IPO) 등 금융시장이 커질 것이고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노동자들의 권리도 계속 확대되면서 근로조건, 노사문제 등 노동법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카자흐스탄은 아직 개발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잠재력이 큰 기회의 땅”이라고 강조했다. newworld@seoul.co.kr ■ “카자흐스탄은 제2의 중동”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카자흐스탄의 경제수도로 불리는 알마티는 카자흐스탄 말로 ‘사과(알마)의 아버지(아티)’라는 뜻이다. 이 말처럼 알마티에는 사과나무가 많았다. 하지만 사과밭은 이제 아파트나 개인주택으로 변하고 있다. 성원건설 김이곤 알마티 1공구 현장소장은 “우리나라의 강남개발과 같은 식”이라며 “강남이 논과 밭이었다면 여긴 사과밭이라는 점만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의 말처럼 카자흐스탄 부동산 시장은 개발을 넘어 과열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신흥 부유층이 생겨나면서 돈은 넘쳐 나지만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알마티나 아스타나 등 대도시 등으로 한정된 일이다. 카자흐스탄의 부동산 열기는 가격에서도 확인된다. 알마티에서 한창 건설 중인 메리어트 레지던스의 평당가격은 2만 5000∼3만달러. 우리돈으로(환율기준 931원) 평당 2300만∼2700여만원이다. 기준 평형인 50평은 10억원이 훌쩍 넘는다. 소련시절인 20∼30년 전에 지어진 20∼30평짜리 주상복합 아파트도 2억∼3억원이 넘는다. 우리 건설업체들의 진출도 늘어나고 있다. 동일 하이빌, 우림건설, 성원건설 등 중견 건설업체들은 아파트 건설을 진행 중이고 또 최근엔 국내 대형건설업체들도 현지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80년대 중동 이후 ‘제2의 해외건설 붐’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다. 알마티 톈산(天山) 국립공원 인근 4000여평 부지에 지하 2층, 지상 20층의 5개동 270여가구의 주상복합아파트와 12동 180여가구의 고급 아파트를 짓고 있는 성원건설 이광섭 차장은 “카자흐스탄은 상류층의 고급 주택 수요와 중산층의 이전 수요 등으로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며 “한국의 고급 주택문화를 카자흐스탄에 전파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국내 건설사들은 카자흐스탄 진출을 중앙아시아 진출 교두보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무조건 장밋빛 전망만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일단 우리나라와 제도가 틀리다. 우리처럼 ‘선분양 후완공’제이지만 분양가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또 분양도 층이 올라갈 때마다 부분부분 이뤄지는 식이다. 아울러 건설사는 골조공사까지만 하고 내부 인테리어공사는 입주자가 별도로 한다. 성원건설 전승덕 차장은 “한국 건설사들이 진출초기에 고급 인테리어나 편리성을 강조하고 싶었지만 이 같은 현지특성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바지스와 쿠아트 등 현지업체의 시장지배력도 막강하다. 다리와 도로 등 대규모 토목공사는 일본과 카자흐스탄 건설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터키업체들이 선점하고 있다. 사회주의 시절 관료주의의 잔재가 남아 있어 인·허가 과정이 까다로운 점은 여전히 문제다. 아울러 국내 업체들의 진출이 늘면서 “국내 업체들간의 과열경쟁으로 부동산 가격만 올리는 부작용을 불러 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newworld@seoul.co.kr ■ “전자시장 매년 2배 증가 한국제품이 60% 점유” |알마티(카자흐스탄) 김효섭특파원| “대형 드럼세탁기가 잘 나갑니다.” 알마티 최대의 쇼핑몰 메가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전자유통업체 ‘술팍(Sulpak)’의 직영 매장 판매직원 디아나(여·21)는 최근 판매실적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대형이라고 하면 10㎏이상인 우리와 달리 현지에선 5㎏이상이면 대형으로 통한다. 하지만 매장 한편엔 드럼세탁기와 함께 세탁과 따로 탈수하는 구형 세탁기도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또 600만원이 넘는 52인치 대형 LCD TV와 함께 30인치 브라운관 TV가 나란히 진열돼 있다. 카자흐스탄 전자시장은 이처럼 양극화되어 있다. 부유층은 LCD,PDP TV 등 첨단제품을 구매하지만 도시를 벗어나면 여전히 브라운관 TV가 가장 많이 팔리고 있다. 카자흐스탄은 또 러시아 경제권 전체에서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술팍엔 러시아 최대의 전자유통회사 엘도라도가 투자했다. 엘도라도는 러시아에서만 1000여개의 전자매장을 갖고 있다. 술팍의 회장 세르게이 리는 “시장이 해마다 2배 가까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카자흐스탄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거의 모든 제품을 주도하고 있고 브랜드 이미지도 좋다고 평가했다. 실제 매년 소비자와 전문가가 뽑는 ‘올해의 제품’에서 한국제품이 전 부문을 석권하고 있을 정도다.LG전자 카자흐스탄 법인의 김춘기 부장은 “한국제품이 시장의 60% 정도를 점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전자시장은 고급화되고 있다.TV의 경우 현재는 브라운관 TV의 판매량이 높지만 올 연말쯤에는 LCD,PDP TV의 판매량이 이를 능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때문에 우리 업체들도 프리미엄 전략으로 나가고 있다. 카자흐스탄 현지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LG전자의 경우도 장기적으로 현재 생산중인 브라운관 TV 생산라인을 PDP TV 생산라인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김 부장은 “현재도 프리미엄 전략으로 나가고 있고 앞으론 이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른바 불법통관 상품에 신경을 쓰고 있다. 휴대전화나 전자제품 중에서 정식통관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세금이 없는 두바이 자유무역지대 등에서 건너온 물건이 카자흐스탄에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오래된 모델이나 같은 상품이라도 낮은 가격으로 매장에서 팔리는 것은 ‘삼성’이라는 브랜드에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 카자흐스탄법인의 장석진 차장은 “두바이나 중국 등에서 들어오는 밀수물량이 상당하다.”고 말했다. newworld@seoul.co.kr 기획시리즈 ‘이젠 포스트 브릭스’는 카자흐스탄을 마지막으로 현장 취재를 모두 마칩니다. 포스트 브릭스는 다음주 취재방담과 전문가 대담을 한 뒤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 ‘프리 세일’ 5000여명 북새통 매장 2~3곳 추가 개설 검토

    ‘프리 세일’ 5000여명 북새통 매장 2~3곳 추가 개설 검토

    “손님 죄송합니다. 아직은 보여지는 매장 운영이 더 중요해서요….” 신세계첼시의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 정식 오픈을 하루 앞둔 31일 열린 프리-세일 행사에는 5000여명의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다.3∼4년 지난 제품도 많은데다 원하는 제품의 사이즈가 없는 경우도 눈에 많이 띄었다. 매장이 완전히 정비되지도 않았다. 폴로랄프로렌 매장의 한 직원은 “제품이 예정보다 늦게 들어온 탓에 어제 새벽 3시까지 정리했다.”면서 “창고가 아직 정비되지 않아 손님에게 원하는 제품을 찾아 드리기가 아직 어렵지만 곧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프리-세일 행사에서 일부 매장의 경우 진열된 제품이 대부분 동이 나기도 했다. 연면적 8200여평 규모의 아울렛에는 모두 120여개 국내외 유명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라이선스를 포함한 90%가 외국 제품이다. 규모와 브랜드는 물론 정품을 파는 명품숍의 분위기를 그대로 가져온 매장 분위기나 직원들의 친절은 경쟁력으로 꼽힌다. 가격 부분에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체감하는 만족도에서 차이가 심할 것으로 보인다.1년 전의 이월 상품이 주종으로 정가보다 평균 25∼70%가량 할인해서 판매한다고 하지만 구치 등 일부 명품 매장의 경우 물건 구색이 단조로운 편이었다. 많은 매장에서는 2003년에 나온 제품을 60∼70% 할인해서 판매했다. 자카디 아동 의류는 2003년 제품을 60% 할인해서 내놓은 게 많았다. 지난해 강남 논현동 등 일반매장에서도 50%에 할인하던 제품이 많았다. 물론 다양한 제품이 갖춰진 경우도 있다.2006년 겨울 출시된 바바리 여성 재킷은 60% 할인된 60만원, 안나수이의 2006년 봄 시즌 바지는 50% 할인된 29만 9000원에 나와 있다.2006년 이전 출시된 빈폴과 폴로의 남성 긴팔 셔츠는 10만원선, 아르마니 양복은 80만∼90만원선이다. 신세계 첼시는 여주 프리미엄 아울렛을 2700여평 추가 확장할 예정이다. 프리-세일 행사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레슬리 차오 첼시 프로퍼티 그룹 회장은 “한국 시장은 상당한 잠재력 때문에 서울을 포함한 전국에서 2∼3개 매장을 늘리는 것을 검토중”이라고 말했다.2호점 후보지는 전국 주요 대도시 주변에 문화관광 인프라가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김용주 신세계첼시 대표는 “수도권 소비자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해외 관광객까지 유치해 첫해 방문객 300만명 이상, 매출 연 1500억∼2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 매장들이 기존 VIP를 상대로 정품 매장에서 할인판매하던 이월 상품을 전량 여주로 옮겨온 것인데다 이탈리아, 영국 등 본사와 중국 등 세계 각국에서도 이월 제품을 들여와 물량도 충분하다고 덧붙였다. 오전 10시부터 저녁 8시까지 영업한다. 추석과 설날은 당일만 쉰다. 여주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1) 단원의 ‘포의풍류도’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21) 단원의 ‘포의풍류도’

    단원 김홍도의 ‘포의풍류도’. 조선 후기 서화와 골동품 수집 붐 속에 단원 역시 끼니를 걱정하면서도 매화 화분 하나를 큰 병풍 두 개 값에 해당하는 2000전(錢)에 선뜻 사들일 만큼 호사취미를 갖고 있었다. 그림값이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는 요즈음입니다. 얼마전 미술품 경매에서는 박수근과 김환기의 유화가 수십억원씩에 낙찰되기도 했지요. 그림 수집 열기는 그러나 요즘 사람들의 전유물은 아닙니다.18∼19세기 조선시대에도 서화와 골동품의 수집 붐은 상상을 뛰어넘었다고 합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라는 말이 있지요.‘서경(書經)’에 나온다고 하는데,‘물건에 집착하면 큰 뜻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문인(文人)은 서화나 골동을 도덕적 자기수양을 위한 방편으로만 써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하지만 명나라 말기에 시작된 수집 열기는 조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청나라와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종로거리에는 베이징의 골동품시장인 류리창(琉璃廠)에서 들여온 호사스런 물건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고 하지요. 서화와 골동 수집에 광적으로 탐닉하여 재산을 탕진한 인물도 여럿이 나타났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당시는 서화와 골동을 ‘투자대상’으로 분명하게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요즘의 그림 수집 열기와 다른 점이겠지요. 실제로 상고당(尙古堂) 김광수(金光遂·1696∼?)는 장안에서 으뜸가는 감식안을 자랑했지만, 노경에 이르러 물건을 내놓았을 때 산 값에 팔린 것은 열에 두셋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조선 후기의 수집 붐을 가장 잘 보여주는 그림으로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가 지목된 것은 뜻밖입니다.‘흙벽에 종이로 창을 내고 몸이 다할 때까지 시나 읊조리련다.’는 화제(畵題)가 담긴 이 작품은 세속의 명리를 초탈한 문인의 일상을 그렸다는 해석이 일반적이었으니까요. 미술사학자인 장진성 서울대 교수는 ‘포의풍류도’가 ‘고동서화(古董書畵) 수집에 몰두해 있는 인물의 호사취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난 인물의 이미지는 ‘완물상지’를 유념하면서 아취 있는 문인생활을 즐기는 감상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집한 골동품이나 서화로 끝없이 정서적 기쁨을 만끽하는 호사가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지요. 그림 속에는 쌓아올린 서책과 다발로 묶여진 두루마리, 중국자기로 보이는 귀가 둘 달린 병, 벼루와 먹, 붓과 파초잎, 악기인 생황과 칼, 그리고 호리병 등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당시에는 여간한 사람이 소장하기 어려운 진귀한 재보(財寶)였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파초잎 옆에 놓인 나팔꽃 봉오리 모양의 고()는 기원전 11∼12세기 중국 상나라의 청동제기로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고 하지요. 값이 치솟자 가짜가 나돌기 시작한 것은 요즘의 그림시장 상황과 비슷합니다. 서화나 골동을 수집하는 데 재산을 탕진하고도 진귀한 물건을 갖고 있는 데 스스로 만족하는 그림 속 인물의 모습은 당시 문인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풍속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포의풍류도’가 문인의 초탈한 심사를 가장했다고 하더라도, 조선 후기의 사회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오히려 서화나 골동품 수집열기는 물질문화를 긍정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만큼 근대적 소비사회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는 것이지요. dcsuh@seoul.co.kr
  • [이색거리 탐방] (17)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이색거리 탐방] (17)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28일 오후 1시 서울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마치 1시30분을 가리키는 시침처럼 비스듬하게 자리잡은 골목을 들어서자 손목에 찬 시계바늘이 한참에 뒤로 도는 느낌이다. 한 20년 전으로 되돌아갔을 법한 서울 풍경이다. 한때 국내 최대의 예물상가이자 시계명장들의 사관학교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었지만 2007년 5월 종로 시계골목은 어느 순간 멈춰 선 듯하다. ●요지경속 시계·귀금속골목 예지동 108∼156번지. 광장시장 맞은편에 위치한 이곳엔 약 1400여개의 시계와 귀금속 상가가 밀집해 있다.1500원짜리 중국산 아동용시계부터 1500만원짜리 스위스 산 피아제시계까지 한 점포에서 살 수 있는 요지경 같은 곳이다. 우리에겐 ‘시계골목’이란 이름이 익숙하지만 굳이 따지자면 ‘시계·귀금속 골목’이 정확한 표현이다. 이곳의 시계전문 점포는 300여곳. 나머지 대부분의 점포는 시계와 귀금속을 같이 판다. 시계수리점만 해도 40여곳이 넘는다. 종로4가 시계 귀금속도매상 번영회 정권천(48) 회장은 “우리나라 시계의 역사를 그대로 옮겨놓은 곳”이라면서 “비록 오래되고 비좁은 골목이지만 시계와 보석류라면 없는 것 없고 가격경쟁력도 어느 곳 못지않다.”고 말했다. ●청계천과 함께한 역사 시계상가의 역사는 청계천과 함께 한다.30년 넘게 이곳에서 장사를 한 김연수(67)씨는 “자유당 시절 청계천변에서 장사를 하던 시계상인들이 청계천이 복개되면서 이쪽으로 몰려 터를 잡은 것이 시계 골목의 시초가 됐다.”고 말했다. 60년대에 사과 궤짝으로 시작한 진열대는 70∼80년대 유리 진열장으로 변하면서 상가는 전성기를 맞았다. “그땐 장사하는 게 폼 났지. 종로에서 시계가게 한다는 것만으로 동네에선 유지 소리를 들었으니까.” 시계가 중심이던 진열장에 귀금속이 들어온 것은 70년대 말부터다. 광산 바람이 불었던 당시 전국에서 채취한 금은을 사줄 만한 시장이 필요해서였다. 그만큼 이 곳은 돈이 모이던 곳이었다. 너나할 것 없이 귀금속가게를 차리면서 상가는 번창을 거듭했다. 어느덧 명실공히 국내최대의 예물전문상가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하지만 90년도 중반을 넘자 시계를 중심으로 상가는 침체기를 걸었다. 복병은 삐삐와 휴대전화였다. 늘 지니고 다니는 삐삐(무선호출기)가 늘어나면서 손목시계의 자리를 빼앗기 시작하더니 얼마 못가 그 삐삐의 자리를 휴대전화가 차지했다.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는 사람은 찾기 힘들 정도가 됐다. 이곳 골목은 직격탄을 맞았다. ●우린 아직 짱짱하다 비록 노병이지만 아직은 건재하다. 신용 때문이다. 번영회 정권천 회장은 “한 자리에서 30년 이상 장사를 해온 상인들이 많기 때문에 첫째도 둘째도 신용”이라면서 “이 때문에 적어도 인근에서 짝퉁은 찾을 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도매상인 탓에 물건 값은 시중보다 30∼40% 싸다. 카르티에나 로렉스·피아제 등 명품 시계는 20%이상, 세이코·아르마니 등 20만원대 중저가 시계는 일반 매장에 비해 30∼40%까지 싸다. 예물용 보석도 시중가보다 30%정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시계수리에 있어서도 한국최고를 자부한다. 인근에 부품상이 많아 없는 부품이 없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유영규 정은주기자 whoami@seoul.co.kr
  • [시론] 진정한 행복도시를 위하여/박경난 경실련 정책위원 이학박사·주거환경학

    [시론] 진정한 행복도시를 위하여/박경난 경실련 정책위원 이학박사·주거환경학

    차량출입을 막기 위한 볼라드, 가로수, 지하철 출입구·급배기구, 상품진열대, 간판, 쓰레기통, 전기 및 통신분전함, 신호등, 정류장표지판, 그리고 자전거, 오토바이, 불법주차 차량까지. 지난해 여름부터 서울 영등포구와 손잡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도시환경개선사업’에 참여한 주거복지연대는 실태조사를 하면서 보도(步道)에 이렇게 다양한 시설물이 있는지 새삼 놀랐다. 보행자를 위한 보도가 아니라 도시에 필요한 시설을 모두 올려다 놓았다는 것이 맞았다. 일단 영등포구에 한해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관공서, 병원, 초등학교, 경로당, 공원과 지하철역, 사거리 주변 등 주요시설중 271곳을 사회적 약자의 관점에서 조사했다. 보도 위의 다양한 장애물에서 적절하지 않은 점자블록, 건물입구의 이용이 어려운 경사로 등 205곳에서 1228가지 문제점이 발견됐다. 개별적인 장애물은 물론이고 보도의 연속성이 확보되지 않아 보행약자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들도 안전한 보행을 위협받고 있었다. 이는 영등포구가 특별히 열악하다기보다는 오래된 도시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최근 지자체별로 시설물을 정비하고 노점상을 단속하고 주민을 상대로 계도하며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새로 정비한 보도에도 보행을 방해하는 편의시설이나 가로수 등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보도가 보행을 위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 건축한 공공건물과 공공시설에서도 경사로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유도블록 등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게 확인됐다.‘장애인·노인·임산부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한 편의시설 설치의 기본원칙이나 접근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획에 반영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이동거리는 차량보다 짧지만 이용빈도는 훨씬 높은 게 보행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어린이, 노인, 장애인과 유모차를 사용하는 아기 엄마들은 지역에 머무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은 주요 보행자들이다. 일반인에겐 편리함과 불편함의 차이이지만 유모차나 휠체어가 갈 수 없는 길은 아이 엄마나 휠체어 이용 장애인에겐 불가능한 길이다. 차도가 비어 있어야 차량이 제 속도를 내듯 보도도 비어 있어야 한다. 보도에서는 보행이 가장 중요한 목적이라는 시각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이제는 공공시설인 보도를 시민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영등포구는 지적된 장애물들을 관련 부서별로 검토해 오는 6월까지 개선계획을 수립하고 우선 순위를 정해 2008년까지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변화를 시작하자. 시민과 공공기관이 손잡고 시민 모두가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거리, 그래서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자. 길가 상점에 사람이 북적여서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살기좋은 도시로 만들어 보자. 행복도시는 정부가 충남 연기군 일대에 건설 중인 행정중심복합도시 ‘세종’을 일컫는 말이다. 도시 전체에 보행자 전용도로가 구현된다는 행복도시는 목표인구 5만명이다. 그래서 ‘누구나 와서 살기좋은 도시’로 건설된다고 해도 누구나 가서 살 수는 없다. 도시의 모습은 이래야 한다고 믿는다면 행복도시를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하나씩 바꿔보자. 영등포구에서 출발해 서울의 25구를 거쳐 전국의 도시까지 변화시키자. 신도시에서만이 아니라 오랫동안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온 모든 도시를 그렇게 만들자. 박경난 경실련 정책위원 이학박사·주거환경학
  • [주말탐방] 롯데 VVIP 멤버스 클럽

    [주말탐방] 롯데 VVIP 멤버스 클럽

    세상에는 ‘부자’ 수준을 초월하는 ‘갑부(甲富)’나 ‘거부(巨富)’급 자산가들이 있게 마련이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든 스스로 벌어 쌓은 것이든 그들의 재력은 샐러리맨 1년치 봉급을 옷 한 벌에 털어넣게도 하고,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을 다이아몬드 반지 하나와 맞바꾸게도 한다. 이들은 유통기법의 정점에 있는 백화점 명품관에서 최고의 진객(珍客)이다. 한 백화점의 경우 최상위 1% 고객의 매출이 전체의 3분의1을 차지한다. 백화점이 이들을 지극 정성으로 ‘모시는’ 것은 장사하는 입장에서 당연할 수 있다. 롯데백화점 본점(서울 소공동) 명품관 에비뉴엘이 운영하는 초우량 고객(VVIP) 전용 멤버스클럽의 별세계를 들여다 봤다. “남편 여름양복이랑 내 여름정장을 한 벌씩 살까 해요. 이따가 오후 1시쯤 갈 테니까 알아서 준비해 놓으세요. 남편 정장은 페라가모나 제냐 중에서 알아 보세요.” 17일 오전 11시 양유진(46) 수석 퍼스널 쇼퍼를 비롯한 롯데 에비뉴엘 멤버스클럽 직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진다. 최상위 ‘톱10’에 드는 고객의 전화다. 직원 이지연(26·여), 문효주(〃)씨와 함께 매장을 돌며 각각 10여벌의 남성, 여성 정장을 골라 클럽내에 깔끔하게 진열해 놓는다. 에비뉴엘에 없는 남성 브랜드는 옆 건물 본관 매장에서 가져왔다. 고객이 이 정도 컬렉션에서 하나를 고르면 다행이지만 그러지 않으면 몇번이고 매장을 돌며 옷을 골라와야 한다. 하지만 걱정은 별로 없다. 잘 아는 손님이어서 어떤 스타일, 어떤 컬러를 좋아하는지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고급 명품관인 에비뉴엘 이용고객(연간인원으로 80여만명) 중에서도 매출액 기준 최상위 300명만 회원제로 들어올 수 있는 퍼스널 쇼퍼(Personal Shopper) 전용 룸이다. 퍼스널 쇼퍼는 맞춤형 쇼핑 도우미로 이곳 양유진씨가 국내 1호다. 퍼스널 쇼퍼는 클럽을 찾은 고객에게 어울릴 만한 상품, 유행을 따라잡을 수 있는 상품들을 해외명품 매장에서 골라 가져다 보여주며 각종 조언과 함께 선택을 도와준다. 고객은 에비뉴엘내 61개 명품매장을 일일이 둘러볼 필요가 없이 퍼스널 쇼퍼가 골라온 ‘후보상품’ 중에서 선택하게 된다. 상품권 등 사은품도 대신 받아다 주고 고급 리무진 차량도 제공한다. 물건구매뿐 아니라 휴식을 취하거나 작은 모임도 가질 수 있다.20평 남짓의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벽지·가구·소파·탁자 등은 모두 미국과 유럽산 최고급 제품이다. 커피, 차, 주스, 쿠키, 초콜릿, 샌드위치 등이 기본으로 제공된다. 최상위 고객들에게는 호텔 룸서비스처럼 음식이 들어오기도 한다. 롯데 본점은 2005년 3월 에비뉴엘을 열면서 4층에 이 VVIP 전용공간을 개설했다. 높은 호응도에 따라 지난해 3월에는 5층에 두번째 방을 열었다. 에비뉴엘은 매년 말 개인들의 연간 구매실적(롯데백화점 일반매장이 아니라 에비뉴엘의 패션·잡화·보석류 등 해외명품 구매액)을 집계해 멤버스클럽 회원을 정한다. 정원이 300명이지만 클럽가입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어 실제로는 상위 350명 정도까지 포함된다. 회원들은 재벌그룹 ‘사모님’부터 기업인, 연예인, 의사·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직들이 대부분이지만 실명은 외부에 비밀로 돼 있다. 사무직으로 있다가 클럽 개설 때 이곳으로 온 이지연씨는 “부자들은 차갑고 까다로울 것이라는 선입견이 강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이곳 근무가 달갑지 않았지만 막상 고객들을 한분 두분 접하고서 보니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서 “앞으로 패션·영어 등 다양한 수련을 통해 인정받는 정식 퍼스널 쇼퍼가 돼보고 싶다.”고 말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롯데 에비뉴엘관 멤버스클럽 출입이 허용된 최상위 부자고객 300인. 그들은 어떤 특성을 가졌을까. ●몇백만∼몇천만원짜리 물건도 단박에 사나? 한 벌에 2000만원 정도 하는 샤넬 여성정장을 큰 고민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300명 중 최상위권 일부에만 국한된다. 재력 뿐 아니라 각자의 성격도 큰 영향을 미친다. 의류·핸드백 등 패션상품의 경우 단품으로 1000만원이 넘어가는 물건을 사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여러가지 물건을 한꺼번에 산 총합이 몇천만원에 이르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보석류는 사정이 달라서 1개에 20억∼30억원대인 다이아몬드 액세서리도 팔려 나간다. ●멤버스클럽 이용 빈도는? 뭔가를 사기 위해 오는 경우와 안락한 쉼터를 찾아서 오는 경우로 나뉜다. 동시에 여러 팀을 받지 않는 특성상 하루 방문은 4,5팀 정도다. 구매목적의 회원들은 30∼40대가 많다. 사업가나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의 비중이 높다. 50대 이상은 대화와 휴식을 위해 찾는 사람들의 비중이 크다. 방문빈도는 이들이 더 잦아서 1주일에 5,6일씩 오는 사람도 있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7대3쯤 된다.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연령대와 브랜드는? 가장 많은 돈을 쓰는 연령대는 40대부터 50대 초반까지다. 그 이상 연령대는 소비를 자제하는 경향이 많고 30대들은 퍽 신중한 편이다.30∼40대 젊은 층은 샤넬, 에르메스, 루이뷔통, 마크 제이콥스, 크리스티앙 디오르 등을 선호한다. 그 이상 연령대는 아이그너, 센존, 에스카다, 말로 등을 좋아하지만 최근에는 젊은 쪽 브랜드를 찾는 비율이 높아졌다. 남성복으로는 페라가모, 제냐, 휴고보스, 폴스미스 등이 주로 팔린다. 이보다 한 단계 높은 에르메스, 브리오니 등을 특별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나누는 대화는? 정치·사회 등 딱딱한 주제보다는 살아가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사회적 지위나 체면 때문에 남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자식 문제, 남편과의 다툼, 고부(姑婦)갈등과 같은 얘기들을 퍼스널 쇼퍼들에게 털어놓기도 한다. 중매를 부탁하기도 한다. ●부자들의 강북-강남 차이는? 서울 성북동, 평창동, 종암동 등지의 강북 부자들은 강남 부자들보다 자존심이 더 세고 논리적인 편이다. 물건을 사기 전에 상대적으로 오래 생각한다. 친해지는 속도는 늦지만 한번 맺은 인연은 강남보다 더 오래 간다. 강북 부자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브랜드를 즐겨 찾는 반면 강남 부자들은 다양한 브랜드를 알고 있고 유행에 더 민감하다.‘톱10’에 드는 최상위는 대부분 강북 사람들 차지다. ●부자들은 혼자서 쇼핑하길 좋아하나? 자기 소비성향이나 패턴이 드러나는 것을 꺼리는 사람이 많다. 대체로 운전기사나 가사도우미들에게도 숨기려고 한다. 기사 없이 자가운전으로 오거나 백화점에 리무진서비스를 요청하는 이유다. 수백만원짜리 옷을 산 뒤에 명품 로고가 새겨진 쇼핑백을 버리고 슈퍼마켓에서 쓰는 까만 비닐봉지에 담아 둘둘 말아갖고 가는 고객도 있다. 는 사람이 쇼핑을 하고 있으면 얼굴 마주치기 민망하다며 멀리 돌아서 가기도 한다. ●회원끼리 관계는? 한 팀(한 사람)이 클럽 안에 있으면 다른 팀을 받지 않기 때문에 회원끼리 마주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다. 회원끼리는 영화관람 등 이벤트 때에만 만난다. 이때 성격이 맞는 사람끼리는 대화를 나누기도 하지만 헤어지고 나면 대개 그걸로 끝이다. 자기 이름이나 신분을 상대방에게 먼저 밝히는 경우도 거의 없다. 말은 안해도 묘한 자존심의 신경전이 읽혀진다. 퍼스널 쇼퍼들도 그들이 누구인지 다른 손님들에게 얘기하지 않는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퍼스널 쇼퍼 1호 양유진씨 “그들과 너무 멀어도, 가까워도 안되죠” ‘1년에 얼마 쓰는 사람이 최고 부자냐.’,‘○○그룹 △△△회장,□□그룹 ◇◇◇여사도 거기 회원이냐.’,‘유명 연예인 중에선 누가 오느냐.’ 롯데 에비뉴엘관 멤버스클럽의 수석 퍼스널 쇼퍼 양유진(46) 매니저에게는 매양 이런 호기심 어린 질문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99%는 답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일반고객도 그렇지만 초우량고객(VVIP) 정보는 특히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수준의 철통보안 사항이다. 개별 고객에 대한 정보를 수첩에 적지 않고 머릿속에 외워서 갖고 있는 것도 혹시 남이 알게 될까에 대한 걱정 때문이다. 양 매니저는 갤러리아 백화점 출신이다.1988년부터 15년 가량 매장에서 근무하다가 2004년 3월 갤러리아가 국내 최초의 VVIP 라운지를 만들 때 1호 퍼스널 쇼퍼가 됐다.2005년 4월 에비뉴엘관이 탄생하면서 이곳에 스카우트됐다. 대학전공은 통계학이었지만 패션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게 사실. 하지만 나름의 고충은 대단하다. 부자고객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의 눈과 손이 돼서 옷을 고르고, 코디 제안 등을 하려면 뼈를 깎는 자기관리가 필요하다. 저녁 8시 퇴근시간은 새로운 일과의 시작이다. 몸매유지를 위해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고 국내외 잡지, 인터넷 등으로 패션동향과 신상품 정보 등을 확인하고 다음날의 고객 일정을 점검하고 대화소재를 개발하는 등 일을 마친뒤 대개 새벽 2시는 돼야 잠자리에 든다. 헤어 스타일이나 의상, 액세서리 등도 손님들 수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개인지출이 많은 편이다.“손님이 저한테 ‘그 블라우스 어디에서 샀느냐.’고 물었는데 우리 에비뉴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산 거라고 말할 수는 없잖아요.” 하지만 절대로 손님들보다 의상·헤어스타일 등이 화려하거나 튀어서는 안 된다. 대화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들어주는 데 치중해야지 고객의 말이 사실과 조금 다르다고 해서 말허리를 자른다든지 조언을 한다든지 하면 틀림없이 부작용이 나타나게 돼 있다. 너무 가까워서도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불가근 불가원(不可近 不可遠)’ 원칙에 충실하려고 애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객들과 하루종일 대화하고 옷을 들고 매장과 라운지 사이를 수십번씩 왔다갔다 하는 날에는 온몸에 진이 빠진다. 자존심 강하고 자기만을 최고로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부자 고객들을 매일같이 상대하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모멸감을 느낀 적도 많았다. 일을 관둘까 생각한 적도 여러차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옆에서 힘이 돼 준 남편이 고맙다. 남편은 근무지가 지방이어서 주말부부 생활을 하고 있다. 요즘에는 후배양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롯데백화점 VVIP 라운지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 20년간의 노하우를 전수하기 위해서다. 대학에 짬짬이 출강을 하기도 한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8) 절두산 천주교 순교 성지

    1만명에서 많게는 2만명의 순교자를 냈다는 이 땅의 천주교 역사는 그야말로 처절한 박해의 점철이다.‘박해의 역사’란 말 그대로 곳곳에는 목숨을 던져 신앙을 지켜낸 천주교 선구들의 외침을 소리없이 전하는 흔적들이 산재해 있다.‘휘광이´(천주교에서 망나니를 부르는 말)의 칼날 아래 피를 뿌리며 스러져간 숱한 순교자들 가운데 지금까지 성인 품에 오른 이는 103위이다. 지난 1984년 시성(諡聖)되어 성인의 반열에 오른 이들 103위의 영혼은 뒤늦게나마 위로받은 채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순교자들은 부지기수다. 전국의 천주교 순교터 가운데 절두산 성지(서울 마포구 합정동 96의1·사적 399호)는 이름 나지 않은 무명의 초기 신자들이 가장 많이 피를 흘린 성지이다. ‘절두산’(切頭山). 이름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순교 터이다. 수천명(3000∼7000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작 신원이 파악된 순교자는 고작 29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24명만 이름과 행적이 확인됐고 나머지 5명은 이름만 겨우 알 수 있을 뿐이다. ● 교황 요한 바오로2세 참배 지난 1984년 한국천주교 200주년 기념행사 참석차 한국에 온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공항에서 곧바로 직행해 참배했던 곳도 이곳이다. 이 땅에선 어떤 험한 일이 있었을까. 옛 양화진 일대를 포함하여 사적지로 지정된 이 순교 성지는 지금의 이름과는 달리 원래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던 곳. 양화진 동쪽 봉우리의 절두산은 ‘동국여지승람’이며 ‘세종실록’등에 ‘머리를 높이 든 형상’, 혹은 ‘누에가 머리를 치켜든 형세’라 하여 ‘가을두(加乙頭)’니 ‘잠두봉(蠶頭峰)’의 이름으로 전한다. ‘동국여지승람’에서 강희맹은 그 형상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서호는 도성에서 10리도 안 되게 떨어져 있는데, 산이 푸르고 물이 푸러 형승이 나라에서 제일 간다. 호수 남쪽에 끊어진 언덕이 있는데 형상이 큰 자라 머리 같으며 혹은 잠두라고 불린다.” 그 말마따나 늘상 풍류객들이 산수를 즐기고 나루손들이 그늘을 찾던 평화로운 곳으로, 중국의 사신이 오면 반드시 유람선을 띄웠다고 한다. 그렇듯 한가롭게 명승을 이루던 양화나루와 잠두봉이 피비린내 나는 ‘절두’의 극형지로 변한 것은 바로 병인년인 1866년의 병인양요 때문이다. 그해 두차례의 프랑스 함대가 양화진까지 침입해온 배경에 천주교 신자들이 있었음을 확인한 대원군과 조정이 박해의 칼을 들었다. “양이(洋夷)로 더럽혀진 한강 물을 서학(西學)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프랑스 함대가 쳐들어온 바로 그 양화진을 보란 듯이 사형지로 삼은 것이다. 당시 절두산에서 처형을 하기 전 내건 포고문에서 “천주교인들 때문에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왔다. 그들 때문에 우리의 강물이 서양의 배로 더럽혀졌다. 그들의 피로 이 더러움을 씻어내야 한다.”는 내용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교회사연구소와 순교자현양위원회가 조사한 대로라면 이곳에서 휘광이의 칼이 피를 뿌렸던 시기는 1866년 10월부터 이듬해 7월까지였다. 황해도 출신으로 시흥 봉천동에서 잡혀온 이의송(프란치스코)과 그의 아내 김엇분(마리아), 아들 붕익(바오로)이 순교한 것을 시작으로 수천명이 9개월간 차례로 목숨을 잃어간 것이다. 절두산에서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는 동안 천주교 신자들의 주 처형지였던 새남터와 서소문 밖 네거리에선 형이 집행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서 얼마만큼 절두산 처형을 집요하게 진행했는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도 재판의 형식과 절차가 있었을 터이지만 절두산의 처형은 무지막지한 선참후계(先斬後啓)였다. ● 순례성당·박물관 등 웅장하게 세워져 “일단 먼저 머리를 자르고 본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곳 순교자들에 관한 기록은 29명만 빼놓곤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다. 이곳을 성지로 삼은 천주교계는 1962년 ‘가톨릭 순교성지’ 기념탑을 세웠다가 병인박해 100주년을 맞은 1966년 기공식을 갖고 그 이듬해에 종탑과 순례성당, 박물관으로 구성된 절두산 기념관을 웅장하게 세워놓았다. 사제관을 겸한 순교성인시성기념관을 지나 야외전시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오른쪽에 3층의 기념관이 우뚝 섰다. 순교자기념상을 쳐다보면서 오른쪽 경사로를 따라 오르면 가장 먼저 ‘절두산’이라 새긴 바윗돌이 섬뜩하게 다가온다. 계단과 소로를 조금 더 올라 꼭대기에 닿으면 형 집행 때 썼던 형구들을 전시해놓은 진열장이 당시 처형장의 분위기를 전한다. 진열장 정면에 박물관, 그 오른쪽에 성당 출입문이 따로 나 있다. 기념관은 잠두봉의 지형을 그대로 살린 채 순교자들의 정신을 오롯이 담았다고 한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전통 갓의 모양을 한 돔 형태의 스테인드글라스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이 중앙 제대와 독서대, 해설대, 감실을 환히 비춘다. 양쪽 벽을 두른 14처며 천장에서 제대 앞으로 내리건 십자고상, 부활절에만 밝힌다는 제대옆 부활초, 죄인이 목에 쓰는 칼을 형상화한 독서대의 모습이 독특하다. ● 순례객들 발길 끊이지 않아 신자석 오른쪽으로 난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성해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가장 먼저 찾은 공간으로 순교 성인 27위와 무명 순교자 1위가 모셔져 있다. 왼쪽 위에는 빈 공간이 마련된 채 앞으로 봉안될 순교자 6위를 기다리고 있다. 바로 옆 박물관은 그야말로 한국 천주교 박해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공간. 절두산 순교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의 발자취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놓았다. 초대 교회 창설을 보여주는 이벽, 이가환, 정약용의 유물과 순교자 유품, 형구(刑具)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한국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 일대기 31점을 포함해 유중철 요한, 이순이 루갈다 동정부부 일대기 27점도 들어 있다. 박물관에서 나와 야외전시장으로 내려서면 병인박해 때 교수형을 집행하던 형구들이며 희생자들의 행적을 재현해 놓은 갖가지 전시물들이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김대건 신부 동상을 비롯해 오타 줄리아의 묘, 박순집의 묘, 남종삼 성인의 흉상과 사적비가 순례객들을 차례로 맞는다. 한 집안 열여섯명이 한꺼번에 희생된 박순집 일가의 이야기를 새긴 비석 앞에는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순교 성지를 다지기 위한 작업이 한창일 무렵 “너무 많은 사람의 목을 잘라 절두산으로 부른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계기로 이름이 붙여졌다는 ‘절두산 성지’. 무명 순교자들의 정신을 기리고 위로하기 위해 천주교계가 어렵사리 마련해 놓았지만 그 형세는 마치 칼을 쓰고 처형을 기다리는 순교자의 모습을 닮아 있어 순례객들을 안타깝게 한다. 기념관과 사제관 앞쪽을 가로지르는 당산철교와 성당 아래쪽 강변북로, 일산 방향으로 뻗은 지하차도가 ‘ㄷ자’ 모양으로 성지를 옥죄고 있다. 한국 천주교 사상 가장 혹독했다는 ‘병인박해’의 순교자들은 지금도 신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kimus@seoul.co.kr 사진 김명국기자 daunso@seoul.co.kr ● 정확한 순교 위치는 어디? 수천명 천주교 신자의 목숨을 빼앗은 절두산 순교 성지. 그 많은 순교자들이 희생된 처형장의 위치를 놓고 천주교계는 엇갈린 견해를 보이고 있다. 정확한 처형 장소는 어디일까? 일반적으로 알려진 처형장은 절두산 잠두봉 꼭대기인 지금의 순례성당 제대 뒤쪽의 이른바 ‘치명터’. 어차피 신자들의 처형장면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을 택했다면 한강에 인접한 봉우리 꼭대기였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실제로 천주교계가 성지 조성을 하면서 접촉한 주민들은 “절두산 꼭대기에서 칼로 신자들의 목을 쳐서 그 시신을 강물에 던졌다.” “한 오랏줄에 여러 명의 교우들을 결박하여 산 채로 낭떠러지 밑 강물로 밀었다.”는 말을 들은 것으로 증언했다고 한다. 이같은 증언을 토대로 순교자 기념탑을 절두산 꼭대기에 세웠고, 나중에 이 탑을 헐고 마련한 기념관과 성당도 그 자리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선 많은 사람들이 올라 형을 집행하기엔 절두산 꼭대기가 비좁고, 각종 기록과 증언으로 미루어 볼 때 양화나루 앞 길가 평지가 처형지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같은 입장은 정부측의 관련자료나 교인들의 증언집인 ‘병인박해 순교자 증언록’ ‘치명일기’에서 모두 처형지를 절두산 꼭대기가 아닌 ‘양화진두’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 등으로 밝히고 있다는 근거를 들고 있다. “양화진두에서 군민을 많이 모아놓고 천주교 신자들의 목을 베어 머리를 달아 대중들을 경계시켰다.”라는 정부측 기록의 ‘진두’와 천주교회측 자료의 ‘양화진 진터’ ‘양화진 진’ ‘양화진’이 일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런 근거로 미루어 순교 장소는 당산철교로 인해 순교기념관에서 성지가 분할된 동쪽의 꾸르실료 건물, 즉 세계성체대회기념교육관과 잠두봉의 중간 어느 지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자의 거장’ 도예가 혁산 방철주 옹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청자의 거장’ 도예가 혁산 방철주 옹

    총알에 날개를 달았다. 날카로운 부리도 있다. 어떤 계략이나 은폐·엄폐가 필요없다. 잔잔한 호숫가를 그저 바라보는가 싶더니 ‘쉬익∼’ 하고 날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기를 낚아챈다.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예술이다. 햇빛에 반사되는 파문과 현란한 날갯짓에서 펼쳐지는 청록색 향연은 그야말로 눈이 부시다. 이 광경을 보고 아마 ‘비(翡)’라고 했을 터.0.002초의 승부사 물총새, 바로 그 색깔(翡)에 우리 조상들은 넋을 놓았을 것이다. 천년 세월을 이어온 ‘고려청자’가 세계의 으뜸인 까닭은 무엇일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한결같이 형언할 수 없는 천하제일의 비색(翡色)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보석의 비취색보다 더 고운, 태고의 신비감이 자랑이다. 그 비색을 좇아 살아온 40년 세월이다. 고려인의 비색청자를 가장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울러 생동감 있는 문양창조로 청자의 품격을 한층 세련되게 끌어올려 한국을 방문하는 각국의 정상들로부터 ‘보물급’이라는 찬사를 듣는다.‘청자의 거장’이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美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작품 영구전시 혁산(赫山) 방철주(85)옹. 경기도 이천의 ‘동국요’에서 나이를 잊은 채 여전히 ‘작업중’이다. 선생은 요즘 어느 때보다 ‘청자인생’에 보람을 느낀다. 다름 아닌 다음달 7일 선생의 작품 ‘지구무늬 항아리(Global Jar)’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영구 전시(등록번호 2043527)된다. 1998년 제작된 이 ‘지구무늬 항아리’ 표면에는 물방울 모양이 점점 확대되거나 축소되면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듯한 현대적인 문양이 그려져 있다. 스미스소니언 측은 고려청자의 고전적인 아름다운 비색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디자인을 표현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생은 2000년 일본 도자기상이 연출한 희대의 고려청자 사기극을 밝혀내 국내외 언론에 대서특필이 된 바 있다. 지난 9일 도자기 축제가 벌어지는 경기도 이천시내를 거쳐 신둔면 수하리에 위치한 ‘동국요’를 찾았다. 마당 한가운데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지금까지 선생과 동고동락을 같이해 온 세월의 버팀목인 듯했다. 그 주위로 전시장, 작업실, 사무실 등이 그림처럼 이어진다. 낯선 기척에, 수제자이자 딸인 방문숙(43)씨가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이어 선생이 “멀리서 왔다.”며 손을 내밀었다.8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얼굴피부가 무척 젊고 고왔다. 아름다운 비색과 함께 살아서 그럴까. ●수제자인 딸과 함께 작업 작업실에 들어섰더니 마침 딸과 함께 작업중인 ‘지구무늬 항아리’가 있었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에 보관될 작품과 똑같은 크기로 전체 작업단계 중 약 80%라고 선생은 설명했다. 이어 전시실로 들어섰다.40평 남짓한 공간에는 온통 비색으로 가득찼다. 가장 아낀다는 ‘벚꽃무늬 항아리’를 비롯한 각종 꽃들이 비색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공간이다. 또 주병(酒甁), 장경병(長頸甁) 등 여러 가지 병류와 매병(梅甁), 각종 주전자 등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 진열대 중간 중간에 찰스 영국 왕세자, 미테랑 전 프랑스대통령,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일본의 나카소네·후쿠다·호소가와, 고이즈미 전 총리 등 혁산의 비색청자를 선물받은 각국 정상 12명의 사진과 관련 기사들이 액자로 쭉 놓여져 있었다. 그의 작품이 세계 정상들의 안방에 놓여져 있다는 생각에 경외스럽게 느껴진다. 잠시 그의 도록집을 살폈다. 도자사학가 강경숙씨는 “선생의 작품세계는 절정기의 비색청자의 모방과 재현에서 출발했으나 현대의 미감이 충분히 발현돼 있다.”면서 “기형은 전통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무늬는 젊고 생동감이 넘치며,4월의 등나무 꽃을 연상시키는 연이은 구슬무늬 등 현대인의 감각에 잘 와닿는다.”고 평가했다. 또 정양모 전 국립박물관장은 “비색을 빚어내는 오묘한 기술은 단절되고 그 영롱한 아름다움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도 찾아보기 어려운데 지금 같은 경지에 이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의미부여를 했다. 기법 또한 상감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문숙씨는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박지기법(백토를 문양 위에 바른 후 다시 얇게 벗겨내는 것)이 상감과 어우러지며 진사채(辰砂彩)와 함께 고고(孤高)하면서도 화사하게 아롱진다.”고 설명했다. ●계룡산 점술가 “평생 깨지는 물건 취급할 팔자” 선생의 도예인생은 어쩌면 숙명적이었다. 충남 논산 출생인 그는 27세때 우연히 계룡산 근처의 노(老) 점술가를 만난다. 이때 점술가한테 “자네는 평생 깨지는 물건을 취급할 팔자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안 돼 정말로 우연하게 유리사업을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됐다. 같이 일하던 중 1954년 서울 을지로2가에 ‘유리상회’를 차렸다. 이어 대전에 3000평 규모의 유리가공 공장을 설립했다. 일본을 오가며 기술개발도 하며 나름대로 번창했다. 그러던 어느날 건강이 악화되자 문득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다 때려치우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 이상하게도 어린 시절 옹기그릇을 잔뜩 이고 있던 할머니 모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그 할머니는 우리 집에 와서 그릇을 다 줄 테니 곡식과 바꿔달라고 했거든요. 그 모습이 얼마나 애절하던지….” 1967년,45세 나이에 유리사업가에서 도예의 길로 뛰어든 계기가 됐다. 일본에서 4년 동안 유약과 흙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1971년 귀국해 현재의 ‘동국요’를 만들었다. 이후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청자재현에 매진했다.1973년, 일본에 사는 지인이 가끔 왔다 가곤 하더니 하루는 5만달러를 불쑥 보내왔다.“부담없이 받고, 혹 (도자기)구워지는 거 있거든 하나 둘 보내달라.”는 짤막한 서신도 동봉했다. 빚 아닌 빚이 된 셈. 이후 일본으로 완성품 청자를 몇번 보냈다. ●1974년 고 이병철 회장과의 만남 1974년 봄이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갑자기 사람을 보내 잠시 만나자고 해 이 회장 집무실로 찾아갔다. 셋째 아들 이건희씨와 그의 장인이자 당시 중앙일보 사장인 홍진기씨 등도 함께 있었다. 이 자리에서 이 회장은 “지금 국내 어디에서 도자기를 팔고 있느냐.”고 물었고, 혁산은 단 한점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 이 회장은 “도자기는 여러 사람한테 보여주는 것이다. 신세계백화점에 장소를 내줄 터이니 그곳에 전시하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극구 사양하고 돌아왔지만 며칠 동안 사람이 찾아와 설득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신세계에 직매장을 설치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일본의 지인에게 보냈던 작품이 도쿄시내에 전시됐고 이 회장이 이를 우연히 보고 혁산을 부르게 됐다. 선생은 평소 ‘도자기의 생명은 흙이라는 단미(單味)에 있다.’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었다.1975년 전남 강진군 일대를 샅샅이 답사하던 중 또 한번 숙명적으로 고려시대의 ‘태토’와 만났다. 고려청자에 가장 근접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미 800년의 긴 세월 동안 단절돼 버린 그 전통기법의 맥은 과연 무엇이며, 과연 이를 살려낼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 저를 괴롭힌 숙명적 화두였지요.”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22년 논산 출생 ▲65∼70년 일본의 세토(瀨戶), 교토(京都), 마쓰자카(松阪) 등지에서 도예 수학 ▲71년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하리 현 위치에 ‘동국요’ 설립 ▲73∼2007년 일본에서 개인전 80여회 ▲73년∼현재 12개국 정상들에게 해외 수교예술품으로 증정 ▲75년 전남 강진에서 최고의 청자용 태토 발견, 채취에 성공 ▲76∼79년 신세계백화점 내 미술관에서 개인전(4회) ▲84∼88년 미국, 남미 등지 순회그룹전 ▲85년 한국의 전승공예도예 5대 작가 초대기획전 ▲97년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대학 주최 한국 전승 도자전(한국학과 설립 100주년 기념) ▲97∼2002년 한국 이천 도자기 축제에서 한·중·일 작가 특별전 ▲02년 프랑스 파리 한국도자전 ▲05년 청자 초대전(롯데 에비뉴엘 갤러리) ▲06년 한국도자기 런던 특별전 ▲07년 6월 ‘지구무늬 항아리’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영구전시
  • [박성서의 7080 가요X파일] ‘아빠의 청춘’ 부른 오기택(1)

    1960년대 후반 ‘아빠의 청춘’ ‘고향무정’ 등으로 정상을 질주하던 오기택씨의 노래들은 일순간 방송에서 모조리 자취를 감춘다. 서울 워커힐의 한 외국인 전용클럽에서 오락을 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한 방송국 PD에게 목격된 것. 이 소식이 전파를 통해 보도되자 오씨는 전속으로 있던 신세기레코드사 강윤수 사장에게 심한 질책을 받기에 이르렀고, 이에 발끈한 그는 PD를 찾아가 거칠게 항의하면서 ‘괘씸죄’까지 적용됐다. 그의 노래들은 방송가에서 외면을 당하고 취입한 노래들마다 불발탄이었다. 이에 국내에서의 연예활동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일본을 오가며 도쿄, 오사카 등지에서 6년간 밤무대 가수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연예협회 가수분과위원장 직을 맡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해보지만 결국 무대에 설 의욕을 잃고 골프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현재 그의 아파트에는 트로피와 메달이 벽과 진열장에 가득할 만큼 정상급의 골프 실력을 자랑한다.1981년부터 골프를 시작한 그는 전국체육대회에 전남 대표로 출전해 단체 금메달과 개인 1위를 하는 등 각종 아마추어대회의 상을 휩쓸었다.1990년엔 싱가포르 로렉스 오픈대회 1위,1994년엔 필리핀 소니컵 오픈대회에서 2위를 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낚시 때문에 인생이 또 한번 바뀐다. 그는 낚시광이자 꾼이었다.1996년 12월31일, 새해맞이를 겸해 추자도의 무인도 ‘염섬’을 찾았다. 그런데 폭풍주의보로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이 폭풍 속에서 갑자기 빈혈증세로 쓰러져 왼쪽 팔과 다리에 마비현상을 겪는다. 하필 그가 넘어진 곳은 바다 쪽으로 급경사진 곳. 몸을 움직일 때마다 자꾸 바다로 미끄러지자 눈보라 속에서 말을 듣지 않는 몸으로 겨우 한쪽 팔로 소나무 가지를 잡고 한쪽 다리로 소나무에 걸쳐 버티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그러기를 꼬박 24시간. 배가 고프면 소나무 잎을 씹고 쏟아지는 졸음을 쫓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래를 불렀다. 해병대 출신답게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정신을 잃으면 곧바로 죽는다는 생각만이 전부여서 그는 주위에 아는 사람 모두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기도 하고, 목청껏 노래를 부르며 버텼다. 다음날 낚시꾼 배에 의해 구조되어 생명을 건졌지만, 이 사고로 그는 반신불구가 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각종 재활훈련을 통해 차츰 회복되고 있는 그에게 최근 반가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그의 이름을 딴 ‘오기택 가요제’가 올 10월 그의 고향인 해남에서 열리는 것. 당연히 그 자리에 참석, 노래도 불러야 될 듯하다. 자신의 명예가 걸린 이 ‘가요제’ 무대에 오르기 위해 그가 어느 정도까지 재활치료에 성공할지 기대된다. 대중음악평론가 sachilo@empal.com
  • 국내 첫 주얼리 갤러리 ‘오뜨 클라세’

    국내 첫 주얼리 갤러리 ‘오뜨 클라세’

    ‘말이 없는 보석이 여심을 흔들어 놓는다.’ 셰익스피어는 여자의 심리를 어쩜 그리 잘 꿰뚫었는지. 서울 청담동 패션거리에 문을 연 국내 첫 주얼리 갤러리 ‘오뜨 클라세(Haute classe·최상급)’에 들어서자 눈길이 바빠지고 마음이 왠지 설렌다. 건물 5층에 위치한 20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은 모던하지만 아늑한 기운이 포근하게 감싸는 곳이다. 값비싼 보석들이 진열돼 있는 곳이라 ‘문턱’이 높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의외다. 한쪽 벽면을 거울로 채워 내부가 훨씬 넓어 보인다. 갓 뽑아낸 원두커피의 진한 향이 퍼진다. 거울 앞 테이블에 앉아 찻잔을 들고 고개를 돌리니 왼편 통유리로 분주한 거리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의 안주인이자 서울종합예술학교 패션주얼리디자인과 교수인 이향숙 대표는 “우리 여인네들의 규방문화를 꽃피우고 싶다는 마음에서 되도록 부담없는 공간으로 꾸미고 싶었다.”고 했다. 저녁 때는 노래방으로도 변신이 가능하다며 웃는다. 이 대표는 금속공예과를 나와 보석감정사·보석디자이너라는 개념이 흔치 않던 1980년대 외국에서 보석디자인을 공부했다.1990년대 초반 자신의 브랜드 ‘오뜨 클라세’를 만들어 현재 해외 명품 브랜드들과 견줘서 밀리지 않을 만큼 키워냈다. 30년간을 휘황찬란한 보석과 함께해 온 사람답지 않게 아무런 장신구도 걸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이어서 적잖이 놀랐다. 보석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만든 보석이 다른 이의 몸에서 예쁘게 반짝일 때가 더 기쁜 법이란다. ●한국적 명품 보석 육성 개관 초대전으로 무형문화재 옥석장 김영희 선생의 작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호박, 비취, 산호 등 전통보석을 세심하게 다듬어 만들어낸 노리개, 비녀에서 장인의 정성이 느껴진다.6월 개봉하는 영화 ‘황진이’를 위해 선생이 만든 노리개, 비녀, 떨잠 등도 예사롭지 않은 아름다움을 뽐낸다. 이 대표는 “‘황진이’의 장신구들은 이미 프리뷰를 통해 다 팔렸다.”고 귀띔했다. 들어간 정성과 고급스러운 재료에 비해 가격이 저렴해 눈썰미가 있는 VIP 고객들은 놓치지 않았다. 물론 송혜교가 착용했던 장신구라는 프리미엄도 한몫했다. 보석 장인과 고객들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 외에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또 있다. 바로 후진을 양성하는 것. 명품 브랜드들의 위세와 중국산 박리다매 제품 사이에서 신음하는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기회를 터주고 싶다고 했다. 그 일념 하나로 사재를 털었고 3년 동안 준비해 갤러리를 열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한해 우리나라 보석시장 규모가 약 4조원. 이중 절반을 해외 명품 브랜드들이 가져가고 있다.“5∼6년 전부터 세트로 맞추던 결혼식 예물도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면서 동네 슈퍼마켓만큼 있던 금은방들도 하나둘씩 종적을 감추고 있죠.” 시장은 축소되고 있는 반면 배출 인력은 점점 늘고 있다. 이 분야의 한해 졸업생만 2500명. 그 전에 졸업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엄청난 숫자가 갈 곳을 못 찾고 있는 실정. 또 작품을 만들어도 보여줄 공간조차 마땅치 않아 이래저래 설 땅이 줄어들고 있다. 디자이너가 전시회를 한번 여는 데 필요한 돈은 보석 제작비를 제외하고 약 2000만원의 비용이 든다. 이 대표는 누구나 와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도록 갤러리를 무료로 개방했다. 한마디로 말해 보석 분야의 작가주의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적 명품 브랜드를 육성하는 것이 그의 궁극적 바람이다. 물론 어렵다. 한달 운영비만 3000만원.“망할지도 몰라요.”(웃음) 다행히 세계적인 트렌드의 변화가 희망을 싹 틔우고 있다.“일본만 해도 티파니, 카르티에 등 흔히 알고 있는 브랜드가 아닌 디자이너의 제품을 찾는 추세가 늘고 있어요. 대량 제작·생산되는 보석보다 나만의 고유한 보석을 원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지요.” ●새달‘프런티어 100인전’기획 새달부터는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의 전시회를 연달아 여는 ‘프런티어 100인전’을 기획한 것. 공인 기관이 없는 터라 작가 선정 작업을 조심스럽게 진행하고 있지만 업계의 반응은 고무적이다.“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고 장담하는 그는 작가들의 설명회 등 다양한 이벤트도 곁들인 재미있는 행사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청담동 규방’에서 피어날 찬란한 보석 문화의 앞날이 기대된다. 글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모험과 도전 변신에 성공한 기업들] (6·끝) ‘점유율 70%대’ 쿠쿠홈시스

    [모험과 도전 변신에 성공한 기업들] (6·끝) ‘점유율 70%대’ 쿠쿠홈시스

    1998년 이후 국내에서 팔린 전기밥솥은 어림잡아 1800만대. 이 중 73%인 1340만대가 ‘쿠쿠’였다. 외형 규모도 그렇지만 도산 직전에까지 몰렸던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최대의 밥솥 브랜드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은 다른 기업들에 특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쿠쿠홈시스의 모태는 78년 창립된 성광전자였다. 사실 회사이름이 안 알려져 있었을 뿐 성광전자는 LG전자·필립스·동양매직 등 대기업 주문자상표부착(OEM)으로 다양한 제품을 생산해 온 전기밥솥의 강자였다. 전환점은 97년 말 외환위기였다. 대기업들도 휘청대는 판이었으니 OEM 전문회사의 사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대기업의 생산주문이 하나둘 끊기면서 매출이 3분의1로 줄었다. 선택이 필요했다. 과연 자체 브랜드로의 전환은 해답이 될 것인가. ●성광전자가 모태… 대기업 OEM 생산 사정은 만만치 않았다. 삼성과 LG가 시장을 장악하고 있고, 얼마 후면 일본 조지루시(象印)의 ‘코끼리밥솥’이 시장개방으로 들어올 판이었다. 대기업의 인지도, 자금력, 판매망과 일제에 대한 주부들의 선호도를 감안하면 톱3에 들어가는 게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구자신(현 회장) 사장은 98년 4월1일 OEM의 낡은 집을 버린다고 선언했다.“그동안 갈고 닦아온 업계 최고수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자체 브랜드 전환은 전에도 몇차례 시도는 했었습니다. 시련기를 맞아서 과감히 도전키로 한 것이었죠. 이미 우리에게는 94년에 상표등록을 한 ‘쿠쿠’ 브랜드가 있었습니다.”(조학래 이사)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 신제품을 개발했고 업계 최초로 ‘에이징 라인’을 도입했다. 모든 제품에 대해 실제 밥을 짓는 것과 똑같은 과정의 ‘시뮬레이션’을 통해 정상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으로 불량률 ‘제로’를 위해 개발된 과정이었다. 그해 8월1일. 대리점 등 판매업소에 제품이 공급되던 첫날. 구 사장은 전 직원들에게 외상거래 절대 금지 지침을 내렸다.“우리 제품을 외상으로 주면 상인들은 물건으로 보지만 선금을 내고 사가면 우리 제품을 금(金)으로 본다. 세계 최고인 우리 제품은 그에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게 구 사장의 지론이었다. 하지만 당시는 일단 매장에 진열을 해보고 팔리면 돈을 주는 관행이 일반화돼 있던 시절. 판매점이 곱게 들을 리 없었다. 게다가 쿠쿠라는 처음 듣는 브랜드가. 영업사원들이 아침에 회사에서 밥솥을 들고 나갔다가 저녁에 고스란히 들고 들어오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냥 OEM이나 하는 게 옳았던 게 아닌가, 외상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우리나라 상거래 관행에 비추어 너무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한숨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비로소 주문다운 주문이 들어온 것은 한달 이상이 지난 뒤였다. 옛 성광전자 OEM 제품이 시장에서 사라진 뒤 소비자들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대리점들이 성광전자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엔진시동은 늦게 걸렸지만 그 이후의 속도는 대단한 것이었다. 회사 자체 집계로는 99년 9월에 LG, 삼성 등을 제치고 시장점유율 1위에 올랐다. 시중에 등장하고 나서 딱 1년 걸렸던 셈이다.2000∼2003년 4년간은 국내 가전사에 남을 만한 ‘밥솥 혈전’이 벌어진다. 가격과 신제품 출시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20만원선 밥솥이 일부 매장에서 6만원대에 팔리기도 했다. ●업계 첫 시뮬레이션 ‘에이징 라인´ 도입 가격보다는 기술에 능력을 집중했다. 다행히 그동안의 명성으로 소비자들은 가격공세에 흔들리지 않을 로열티를 갖고 있었다. 결국 몇몇 중소기업은 자금 사정으로 몰락했고 대기업은 불량률 증가와 폭발사건 등으로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고 밥솥 생산을 중단하고 만다. 오랜 밥솥전쟁의 최후의 승자는 쿠쿠가 된 셈이다. 이것이 쿠쿠를 지금과 같은 시장점유율 70%대 기업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 됐음은 물론이다. 철저한 고객관리도 성공의 원천이었다. 소비자들이 인터넷에서 건의하면 회장 이하 팀장 이상까지 모든 사람에게 메일이 전달된다. 그러다보니 불만이 바로바로 고쳐졌고 소비자들이 전하는 아이디어 중 유용한 것은 사장이 직접 담당을 지정해서 연구를 지시했다. 쿠쿠 성공요인의 또다른 한 가지. 인력 대신 임금의 구조조정을 했던 것도 주효했다. 노사협의를 통해서 임금을 1차로 13.8% 자진삭감했다. 회사를 떠나면 어디 갈 데도 없던 암울한 시절. 적게 받고 직장을 유지하자는 공감대가 노사간에 퍼지면서 핵심 인력들이 그대로 남을 수 있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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