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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오른 ‘2대의혹’ 청문회」쟁점

    옷로비 의혹 및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증인신문과 청문회가 각각 23일,26일부터 시작된다. 지난주 준비단계의 조사활동에서는 ‘자료 공개’ 시비도 있었지만 사실관계 규명의 진전은 없었다.벌써부터 진실규명보다는 ‘정치논란의 장’으로되고 있는 국회 조사에서 야당측의 의혹 제기와 정부 및 관련 인사들의 해명을 사안별로 정리해본다. ■옷로비 진상조사 이미 경찰과 검찰은 강인덕(康仁德)전 통일부장관 부인배정숙(裵貞淑)씨가 단독으로 벌인 로비 미수사건으로 수사를 종결했다. 그러나 야당은 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延貞姬)씨를 비롯,연루된 전직 고위직 부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은폐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당은 아직도 국민 의혹이 사라지지 않은 만큼 진상규명에 적극 동참할 방침이다.그러나 더 이상의 ‘은폐된 사실’이 드러날 여지는 적다고 판단하고있다. 이번 청문회에서 가장 큰 쟁점은 배씨 단독범행 여부와 로비 규모다.야당은 “연씨 등 당시 고위직 부인들이 이형자(李馨子)씨에게 남편인 최순영(崔淳永)신동아그룹회장의 구명을 운운하며 로비를 유도한 사건”이라며 “배씨는 희생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또 “이 모 장관 부인 차명계좌에 이형자씨가 돈을 입금했다”고 로비 관련자들이 더 있음을 법사위 조사 초기에 추가로 폭로했다. 이에 대해 검찰·경찰측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야권이 증거도 없는 ‘설(說)’을 검증 없이 주장,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있다는 게여권의 시각이다. 호피무늬 반코트 반납시점을 두고도 논란이 일 전망이다.검찰은 사직동팀내사 전인 올 1월5일 돌려줬다고 발표,사건과 코트가 무관한 것으로 결론지었다.법사위 조사에서도 그러한 입장을 고수했다.그러나 야당은 “구입시점은 12월26일이 아닌 12월19일이며 연씨는 사직동팀 내사 시작 후에도 코트를입고 다녔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직동팀 내사 착수시점이다.경찰의 1월15일 발표에 맞서 야당은 1월9일 내사 종결을 주장했다. ■파업유도 국정조사 조폐공사 파업유도 국정조사특위는 지난주 조폐공사 대전 본사,옥천 및 경산조폐창에 대한 현장검증을 벌였다.그러나 기존의 검찰조사를 뒤집을 만한 물증을 빼내지는 못했다. 이번주부터 김태정 전 검찰총장을 비롯,검찰,노동부,공안대책협의회 참석자,언론사 및 시민단체 인사 등 증인 27명과 참고인 13명을 상대로 청문회를시작한다. 최대 관심사는 조폐공사 파업이 검찰의 발표대로 진형구(秦炯九)전 대검공안부장의 단독범행이었는지 여부와 검찰의 조직적인 개입 여부다. 이제까지 정부와 여당은 검찰조사 외에 더 이상의 의혹이 없다는 쪽이다.야당측은 각 사업장의 제보와 노조원들의 진술을 토대로 청와대의 개입 등 추가 의혹 폭로에 초점을 맞추었다. 강희복(姜熙復)전 조폐공사사장과 진형구 전 부장이 파업유도에 대해 상의했는지,파업유도가 장은증권 서울지하철공사 등 노사분규가 벌어진 다른 사업장에도 개입됐는지 여부도 핵심쟁점이다.또 김 전 검찰총장이 진 전 부장으로부터 파업유도에 관한 보고를 받았는지 여부도 논란거리다.그러나 검찰은 두 부분에 대해 자신이 있다는 태도다. 국정조사 초기 과정에서 강재규(姜在圭)전 조폐공사노조 부위원장이 “청와대 모 인사로부터 ‘임금협상이 구조조정문제로 바뀔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윗선의 조직적 개입’가능성을 시사했으나 당시 청와대 행정관의 의미 없는 얘기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획예산위가 조폐창의 구조조정 시한을 2001년으로 발표했다가 99년 2월로 앞당겨 발표하게 된 경위와 옥천조폐창을 경산조폐창에 통합시킨 이유 등에대해서도 여야 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박준석 주현진기자 pjs@
  • 법사위 옷로비 조사…의상실 조사 별성과 없어

    지난 18일부터 시작된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진상조사가 이렇다할 성과를올리지 못하고 있다. 이번 조사는 초반부터 해당기관의 자료열람 거부 등으로 조사에 어려움이 예상됐었다. 야당의원들은 지금까지 “이모장관 부인 차명계좌에 신동아그룹 회장 부인이형자(李馨子)씨의 돈이 입금됐다” “사직동팀은 올 1월9일 내사를 종결해놓고 김태정(金泰政) 전검찰총장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 내사착수 시점을 1월15일로 조작했다”는 등 여러가지 의혹을 제기했다. 증인 신문이 시작되면 제기된 의혹에 대해 어느정도 진실규명이 이뤄질 것이라며 기대감도 보였다.그러나 해당기관은 한결같이 “사실무근”이라며 부인,성과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야당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단순한 제보에 바탕을 둔 폭로성발언”이라며 신빙성에 의문을 던지고 있다. 한편 국회 법사위는 20일 진상조사 사흘째를 맞아 라스포사,앙드레김 등 문제의 의상실 4곳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야당 의원들은 고객관리장부의 열람을 요구했지만 의상실측은 “별도로 만들지 않는다”며 장부의 존재를 부인해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라스포사 사장 정일순(鄭日順)씨는 이날 건강을 이유로 나타나지 않았다.정씨의 남편 정환상(鄭煥常)씨는 “아내는 건강상 기수련원에 머물고 있지만 24일로 예정돼 있는 증인신문에는 출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정씨는또 “연씨가 되돌려준 문제의 호피무늬 코트는 다른 손님에게 450만원에 판매했다”고 밝혔다. 법사위소속 한나라당 의원들은 전날 문서열람을 거부한 김광식(金光植) 경찰청장과 임휘윤(任彙潤) 서울지검장에 대해 법사위 차원의 고발을 추진키로했다. 박준석기자 pjs@
  • [김삼웅칼럼] 대선자금은닉과 理性의 공적행사

    바람 잘 날 없는 정가에 또 한차례 태풍이 몰아친다.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의 측근 10여명이 세풍자금 10억원을 빼돌려 친인척 계좌에 보관중이란 것이다. 야당총재의 핵심측근들이 국세청을 통해 모금한 대선자금의 상당액을 유용하거나 개인계좌에 은닉중이란 보도는 폭우와 태풍에 시달리고 있는 국민에게 큰 충격이다.지난해부터 총풍 세풍 옷풍(衣風) 검풍 등 ‘바람풍 시리즈’가 신물나게 진행되더니 진짜 태풍과 폭우가 쏟아져 수많은 국민이 큰 피해를 당하고 있다. 국세청을 동원하여 천문학적인 선거자금을 조달한 것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인데 쓰고 남은 엄청난 금액을 측근들이 분배 은닉하고 있었다면 이중 삼중의 범죄행위다. 실제로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이나 잔여분을 은닉해온 행위는 죄질이나 수법에 있어서 고급옷사건이나 검찰간부의 파업유도 발언에 못지않은사건이다.그런데 한나라당이 의풍과 검풍사건에서 보인 태도와 세풍사건에서취한 태도는 너무 차이가 크다. 모름지기 야당은 정치적 도덕적으로 훨씬 깨끗하고 떳떳해야만정부여당을비판할 수 있고 그럴 때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다. 성경의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장)는 구절이나 “나는 바담풍 해도 너는 바람풍 해라”는 혀짧은 훈장의 고사를 이 나라 유일 야당이 닮는다면 비극 이전의 소극(笑劇)일 뿐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기회에 세풍사건의 진상을 스스로 밝히거나 검찰에 협력해야 한다.‘야당탄압’‘이회창 죽이기’란 상투적 대응으로 입막음을 할 것이 아니라 ‘은닉자금 잔여분’ 문제까지 한점 의혹이 없도록 수사에 협력하고 국정조사와 특검제를 수용해야 한다.그리하여 ‘은닉자금’ 문제가 한나라당을 말살하기 위한 조작이나,총재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으로 밝혀진다면오히려 탄탄한 국민의 지지기반에 서게 될 것이다. 국회와 정당이 제기능을 못하면서 시민단체들의 발언이 많은 국민의 공감을 사고 ‘민의대변’ 역할을 하고 있다.시민단체들은 고급옷사건,파업유도발언사건에 이어 이번 대선자금 사적 전용 의혹사건에 대해서도 고언을 아끼지않고 있다. 참여연대와 경실련,정치개혁시민연대는 검찰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선자금 은닉에 대해 철저히 수사할 것을 요구했다.진상규명을 위한 특검제의 도입도 주장했다.또 사적 전용 부분에 대해 횡령죄를 적용하여 몰수조치하는 등엄중 사법처리를 촉구했다. 시민단체들의 요구 경청을 한나라당에도 따끔한 일침을 잊지 않았다.‘야당파괴’ 운운하며 회피하지말고 수사에 정정당당히 임할 것을 촉구하며 “부정한 돈도 당에서 사용하면 정치자금으로 면책되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고 여야 정당의 가장 아픈부분에 일침을 가했다. 거듭 말하거니와 야당은 장외투쟁 등 물리적 방법으로 이 문제에 대처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진상규명’의 차원에서 풀어야한다.그렇지 못할 때 내년 총선을 비롯,두고두고 야당을 옭죄는 올가미가 될 것이다.사실로 드러나면 은닉자금을 국고에 환수하고 책임자의 사과가 따라야 할 것이며 사실이 아니라면 발설자와 그 책임자를 철저히 가려 ‘야당파괴’의 배경을 규명해야 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도리 철학자 칸트는 ‘이성(理性)의 공적 행사’란 글에서 인간의 인간다움은 이성의 소유에 있고 이성은 공적 행사일 때만이 그 가치가 있다고 역설한 바있다.그에 따르면 만유 가운데 유독 이성의 존재인 인간이 반이성의 행동을서슴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인간의 울타리를 벗어난 존재란 것이다. 석학이 던지는 담론의 의미는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인간이 인간이기위해서는 이성의 공적 행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우리 사회의 심각한 병폐의 하나는 이성의 공적 행사가 아닌 사적 행사라는 점이다.한나라당모 부총재가 세풍사건과 관련,“계속 덮어두기만 한다면 (당에) 누가 된다”며 “문제가 있다면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이성의공적 행사’의 작은 목소리라 하겠다. 한나라당뿐만 아니라 국민회의·자민련 그리고 검찰까지 대선자금 은닉의혹 사건에 대해 정치공방이 아닌 이성의 공적 행사의 차원에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할 것이다.
  • 특검제협상 첫날부터 난항

    여야는 28일 파업유도 및 옷로비 의혹사건에 대한 특검제 법안 실무협상을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 소속 국민회의 조찬형(趙찬衡) 박찬주(朴燦柱),자민련 함석재(咸錫宰),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 최연희(崔鉛熙)의원 등 여야 실무팀은 이날 회담에서 특별검사의 임명절차,직무범위,활동기간 등에서 현격한 견해차를 보였다. 여당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대통령 임명을 고수한 반면 한나라당은 공정한 수사를 이유로 대법원장 임명을 주장했다. 또 활동시한과 관련,여당은 이미 검찰수사를 통해 한차례 걸러진 사건인 만큼 신속하게 끝내자며 ‘30일 이내,20일 1회 연장’을 주장했다.이에 반해한나라당은 진실규명을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며 ‘6개월 이내,2회 연장’으로 맞섰다. 직무범위와 권한에 대해 여당은 일반 검사 2명과 수사관 10명을 우선 파견한 후 특별검사가 독자적으로 특별수사관을 3명까지 임명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두자고 주장했고 한나라당은 독자성과 공정성 보장을 위해 제한을 두지말자는 입장을 보였다.이날 여야가 쟁점 현안에 대해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회담을 마침에 따라 향후 협상에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박준석기자 pjs@
  • 파업유도 의혹 수사중단 없다

    검찰은 휴일인 25일에도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를 계속했다.정치권의 수사 중단 요구에는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별수사본부장인 이훈규(李勳圭)서울지검 특수1부장은 발언 파문의 장본인인 진형구(秦炯九)전 대검공안부장을 26일 소환하겠다고 밝혔다.김태정(金泰政)전 검찰총장도 적절한 시기에 소환하겠다고 덧붙였다.눈치를 보지 않는‘불도저식 수사’로 검찰의 위상을 되찾겠다는 뜻을 분명히했다. 그러나 검찰 일각에서는 사건 성격상 진실규명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도너무 ‘일방통행’식으로 몰아붙이는 것 같다고 걱정하고 있다.특별검사제도입의 명분만 부추겨주는 ‘자충수’를 두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않다. 검찰 관계자들은 정치권이 수사 중단을 요구한 것은 ‘검찰의 중립성’을침해한 것이라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수사팀의 한 관계자는 “수사는 검찰의 고유권한인 데도 정치권에서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사안 자체를 정치논리로 해결하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다른관계자도 “정치권이수사 중단을 요구하는 것은 검찰이 어떤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국회에지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리한 주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부에선 앞으로 특별검사제가 입법화돼 검찰 외부인사가 특별검사로 이번사건을 파헤치더라도 검찰 수사 이상의 성과를 얻어내지는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관계자들은 특별수사본부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있는 수사결과를 내놓을지에 대해서는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특별검사제를 반대해온 검찰이 자체 특별검사까지 임명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만약 검찰도 밝혀내지 못한 것을 특별검사가밝혀낸다면 검찰 조직은 모든 비난을 다시 한번 뒤집어써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고 말했다. 독자 수사 결정에 대해 불만의 소리도 만만찮다. 지방 검찰청의 한 간부는 “검찰은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대한 수사시기를이미 놓쳤다고 본다”면서 “정치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진형구 전 부장의발언 파문 직후 수사에 착수했어야 옳았다”고 말했다. 이훈규 특별수사본부장은 수사본부 소속 검사 12명 모두가 퇴근도 잊은 채수사에 매달리고 있지만 검찰 안팎에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점을 의식한 듯 ‘고독하다’는 식으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이 본부장은 특히 지난 23일 대검 공안부장실 등을 사상 처음 압수수색한데 대해 검찰 내부에서 “심하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거세게 일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전국의 공안검사들로부터 “그럴 필요까지 있느냐” “우리가범죄집단이냐”는 식의 항의전화도 잇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강충식 이상록기자 chungsik@
  • “당리당략의 극치” 성토

    정치권이 특검제 도입문제로 오랜기간 대치해오다 5일 국회마저 공전시키자 시민단체와 정치학자 등 각계에서는 “국회의원이 국회를 저버리는 이성을잃은 처사”라며 분개했다. 시민들은 여야 정치인들이 산적한 민생현안을 방치하고 국회를 보이콧한데대해 “본연의 직분을 망각한 당리당략의 극치”라면서 “차제에 ‘시민파워’로 정치개혁을 앞당겨 나갈 것”이라며 목청을 높였다. 숙명여대 행정학과 박재창(朴載昌)교수는 한국의 고질적인‘벼랑끝(brinkmanship)정치’,‘기(氣)싸움’이 우리 정치의 맹점이라고 꼬집었다.박교수는“정치가 윈-윈(win-win)게임이 돼야지 한쪽이 독식하려 한다면 정치하지 않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타협없는 우리 정치권의 현주소를 개탄했다.그는 “국회는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어떤 일이있어도 국회의 틀을 벗어나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연세대 법학과 박상기(朴相基)교수는 “특검제의 목적은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에 있는데 여야는 정치적 이용물로 생각하고 있다”며 여야를 싸잡아비난했다.박교수는 “야당이 국회 보이콧 등으로 특검제를 정치투쟁 수단화하는 것은 민생현안 심의 등 국회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는 처사”라고 우려했다. 명지대 정외과 신율(申律)교수는 “협상의 여지를 열어놓는 곳이 국회”라며 ‘국회 보이콧’은 어떤 명분이라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김형완(金炯完)시민입법국장은 “여당은 특검제에 대한 국민여론을 무시한채 옷 로비사건 정도 추가하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고 야당은 진실규명보다는 공세의 재료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며 여야의 정략적인 발상을지적했다. 참여연대 이강준(李康俊) 시민감시국 간사는 “특검제 국면에서 시민들의민생현안이 정쟁으로 볼모가 된 것은 문제”라면서 “정쟁을 중단하고 민생현안에 눈을 돌리라”고 촉구했다. 흥사단 박성규(朴聖圭)사무총장은 “지금의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게 아니라정치인을 위한 정치”라며 “국민을 위한 정치란 원론을 되새기라”고 촉구했다.박사무총장은“국회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가장 큰 쟁점인 특검제와 국정조사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의 결단을 촉구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賢)시민입법국장은 야당보다 여당의 책임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고국장은 “여당이 특검제에 대해 명확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모호한 발언을 함으로써 협상전략도 세우지 못한채 원론만 되뇌고 있다”고비판했다. 유민 최광숙 추승호기자 bori@
  • 與野 ‘특검제 해법찾기’잰걸음

    여야의 특검제 협상이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지난 2일 김종필(金鍾泌)총리가 ‘특검제 확대 수용’발언을 한 이후 협상이 급류를 타고 있다.국민회의 손세일(孫世一),자민련 강창희(姜昌熙),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는휴일인 4일에도 비공식 접촉을 갖고 각 당의 입장 차이를 조율했다. ●여당 조폐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에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을 추가,한시적특검제를 확대 적용함으로써 ‘특검제 논란’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복안이다.공동여당인 자민련이 적극 제안하고 국민회의가 수용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전면적 특검제는 특검제를 한시적으로 실시한 뒤 국회 정치개혁특위에서 논의해야 한다는 기존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옷로비 의혹에 대한 국정조사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한다.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총재권한대행을 비롯한 고위당직자들이 김총리의 발언 이후에도 “당론은 그대로”라며 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도 대야(對野)협상력을 높여 국정조사 공세를 차단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민회의 손총무는 이날 총무접촉 직후 “자민련이 옷로비 의혹의 특검제실시를 제의했다”면서 “5일 당 지도부와 상의해 보겠다”고 말해 신축적인반응을 보였다. 손총무는 옷로비 의혹사건과 관련,“국정조사 대신 국회 상임위 차원에서다루더라도 증인채택 등을 통한 진실규명에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해 적극적인 야당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음을 시사했다. ●한나라당 아직까지 여권의 ‘진의(眞意)’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전면적 도입을 시사한 김총리와 한정적 도입을 계속 고수하고 있는 국민회의 김대행의 ‘견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부영총무는 “대통령의 의사와 지시내용이 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고고개를 저었다. 특검제 및 국정조사에 관한 한 기존 당론을 고수하고 있다.특검제를 2∼3년 한시적으로 전면 도입하고,4대 의혹 사건 가운데 조페공사 파업유도 의혹사건과 고급옷 로비 의혹사건은 반드시 국정조사를 병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여권의 입장이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론변화는‘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일축한다. 그러면서 특검제 전면도입에 ‘낙관론’을 편다.이총무는 “김총리의 국회답변으로 일단 특검제 전면도입의 물꼬를 텄다”면서 “국민회의가 기존입장을 고수하고 있지만 앞으론 고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압박했다. 오풍연 박찬구기자 poongynn@
  • [김삼웅 칼럼] 여론몰이와 三人成虎

    전국책 ‘위지(魏志)’에 ‘삼인성호(三人成虎)’란 고사가 있다.방총의 이야기로 “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게 되면 없는 호랑이도 있는 것으로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방총은 위나라 태자와 함께 인질로 조나라로 잡혀가게 됐다.떠나기에 앞서혜왕(惠王)에게 말했다. “지금 누가 시장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믿을 수 없지.” “두번째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면 믿으시겠습니까?” “반신반의하게 되겠지.” “세번째 또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때는 믿게 되겠지.” “대체로 장마당에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그런데도 세 사람이 똑같이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하면 나타난 것이 되고 맙니다.” 근거가 없는 소문(여론)에 군왕이 너무 현혹되지 말라는 충간이다. 비슷한 얘기가 춘추시대 말기의 대학자 증자(曾子)의 고사에도 전한다. 증자는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극진한 효자다.어느날 증자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자가 사람을 죽였다.소문을 들은 마을사람이 증자의 어머니를 찾아갔다. 베를 짜고 있던 증자의 어머니는 “내 자식이 사람을 죽일 리가 없다”하고 베만 계속 짜고 있었다.조금 뒤 또 한 사람이 달려와 같은 말을 했다.증자의 어머니는 여전히 베만 짜고 있었다.그러나 세번째 또 한 사람이 달려와똑같은 말을 전하자 그제서야 증자의 어머니는 베틀에서 일어났다. 착한 아들을 믿는 어머니의 마음도 여러 사람의 말 앞에서는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여론이란 무섭다.대낮 장터에 나타나지 않는 호랑이도 여럿이 봤다고 주장하면 나타난 것으로 되고,효성이 지극한 자식도 살인범으로 인식된다. 이 고사를 분석하면 사실과는 상관없이 여론이 형성되는 경우이고 형성된여론은 목적하는 바를 달성하게 된다는 점이다.최근 여러날 동안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옷사건 보도가 ‘삼인성호’식,‘효자살인’식은 아니었을까. 고관부인들이 떼지어 다니면서 고가의 쇼핑을 하거나 재벌부인의 로비가 이루어졌다면 백번 지탄받아 싸다.아무도 그들을 감싸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여론몰이식·마녀사냥식 폭로성 보도가 국민을 선도하고 진실을밝히는 언론의 본분과 도덕성에 부합하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다.기사의 비중도 ‘연구’ 대상이다.그 무렵 러시아가 한국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하는 한·러 정상회담과 남북차관급회담 합의가 이루어졌다.국익이나 국민의 알권리 차원에서 볼 때 옷사건에 못지않은 비중을 갖는 사건인데도 언론은 옷사건에 밀려 작은 기사로 취급했다. 옷사건에 이어 터진 검찰의 ‘조폐공사 파업유도’ 파문의 보도와 논평도똑같은 행태가 돼서는 곤란하다.어디까지나 진실규명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언론이 비정상적인 보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그런 여론을 따르지않는다고 집권자가 민심을 모르는 ‘오만’과 ‘독선’에 빠졌다고 질타하는 것은 언론자유의 남용이다. “지도자는 여론의 잘못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한다.단순히 여론을 대표하는것만으로는 그 책무를 다하지 못한다”는 발자크의 주장은 지도자가 갖춰야할 책무이기도 하다.지도자가 여론을 경시해서도 안되지만 여론에 밀려 인사나 정책에서 원칙을 잃을 때 국가의 기저가 흔들리게 된다.그때 언론은 또지도자가 원칙없이 갈팡질팡한다고 질타할 것이다. 언론의 권력감시와 비판은 끊임없이 이뤄져야 한다.그래야 권력의 오만과독선을 견제하고 투명한 국정을 이끌면서 개혁을 하게 만든다.전제가 따른다.언론이 진실추구와 공정성을 유지하면서 자체의 개혁을 게을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스스로는 공정하지도 못하고 ‘갑골(甲骨)’에 덮여 개혁을 외면하면서 상대에게만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그야말로 언론의 ‘오만’과 ‘독선’이 아닐까. 언론은 정부나 사회의 비리를 파헤치는 한편 자체 개혁과 비리도 밝히려는도덕성을 보여야 한다.먼저 ‘언개연’과 시민단체에서 제기한 언론개혁 그리고 ‘원철희(元喆喜)리스트’등에 거론되는 언론계의 자체 정화에 나서야한다. [주필 kimsu@]
  • ‘고급 옷 로비의혹’ 여야 대응 전략

    신동아그룹 최순영(崔淳永)회장 부인 ‘옷 로비’ 의혹사건이 연일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청와대 등 여권은 정공법을 통해 ‘속전속결’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반면,한나라당은 김태정(金泰政)법무장관의 자진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여권 청와대는 검찰수사가 시작된 지난 28일과 29일 김중권(金重權)대통령비서실장과 김정길(金正吉)정무수석 등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회의를 가진데이어 30일에도 일부 수석등이 나와 진화대책을 숙의했다.회의에서는 이번 사건의 실체적 진실규명이 급선무인 만큼 검찰의 수사를 우선 지켜보기로 했다.김실장은 러시아와 몽골을 순방중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회의 내용을 포함한 국내 정국상황을 시시각각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여권이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처할 경우 민심 이반으로까지 비화할 우려가 크다고 보고,정국의 조기수습을 위해 김장관의 거취문제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제기해 귀추가 주목된다. 이와 관련,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30일 “이번 사건은 검찰 수사결과와 국민 여론에 따라 ‘가닥’이 잡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국민회의 박홍엽(朴洪燁)부대변인은 “한나라당이 법무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것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기도 전에 정치적 흠집을 내려는 저열한 정치공세”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대변인단이 모두 나서 김법무장관과 청와대 사직동팀 ‘때리기’를 계속했다.안택수(安澤秀)대변인은 “김장관 스스로 용퇴하는 것만이 대통령과 궁지에 빠진 국민회의를 살리고 정국안정을 기하는 길”이라고 압박했다.구범회(具凡會)부대변인도 “김장관이 진퇴를 분명히 해야 하루라도 빨리 스스로의 욕됨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은 “청와대 사직동팀의 초법적 활동은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면서 “축소·은폐의혹의 중심에 있는 사직동팀은 내사자료를 전부 공개하라”고 사직동팀을 겨냥했다.
  • 학술단체협-5·18기념재단 주최 심포지엄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와 교훈을 남겼는가.그리고 5·18정신을 계승·발전시키기 위한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가. 5·18 광주민주화운동 19주년을 맞아 5·18의 의미를 되새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학술 세미나가 열렸다.학술단체협의회와 5·18기념재단 주최로 최근 서강대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서는 ‘5·18은 끝났는가’라는주제로 5·18의 의미와 평가,남은 과제들을 학술적으로 조명했다. 동국대 강정구(姜禎求·사회학과)교수는 “5·18은 우리가 추구한 반외세민족자주화를 통한 해방공간에서의 통일국가 형성의 역사적 계기를 복원한역사적 사건”이라고 규정하고 “그러나 어렵게 복원된 계기가 제대로 성숙해 민족통일의 터전을 닦기도 전에 동구 사회주의의 몰락,미국 중심의 단일패권주의 구축 등 세계사적 전환과 IMF 경제신탁통치라는 내외적 강풍에 의해 위축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냉전과 탈냉전,동북아 질서의 변화,제3세계와 미국과의 관계,미국의 이윤축적 방식의 변화 등 여러가지 요인에 의해우리의 민족자주화 운동은 숱한 고난을 겪어왔다”면서 “한반도는 특히 미국의 개입 정도에 따라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5·18을 비롯한 일련의 민주화운동과 한반도의 통일은 하나로이어진다”면서 “5·18의 민족사적 의의는 한반도의 탈냉전에 기초한 국가통합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 루이스 앤 클라크대 랜즈버그(경제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민주적인 발전에 대한 한국 민중의 투쟁에서 분수령적 사건”이라면서“신군부의 압제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단결해 대항한 민중의 잠재력을 보여준 항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5·18이 ▲한국 엘리트들의 자본주의적 특권보호를 위한 폭압 ▲한국의 민주발전 촉진을 무시한 미국의 정책 ▲민주주의 발전 현실화의 장애물로 나타난 남북분단이라는 교훈과 통찰력을 남겼다고 주장했다. 한국정치연구회 정해구(丁海龜·정치학)연구위원은 5·18이 한국의 지배체제에 대해서 갖는 의미에 대해 정리했다. 정연구위원은 한국의 지배체제를 ‘국가적·체제적지배체제’와 ‘정권적차원의 지배체제’로 나누면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지배체제의 은폐된본질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라고 규정했다.또 이렇게 드러난 지배체제의 본질은 결국 지배체제의 정당성을 급속히 약화시켜 오늘날 민주화를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와 함께 “5·18은 당시 민주화운동이 전개됐던 실제 역사의 현장에서 지역공동체적 차원의 ‘민중’을 형성시키는 역할도 했다”면서 각 시대별 민주화운동의 예를 들며 한국 민주변혁운동 자체 맥락 속에서의 5·18의의미도 되새겼다. 전남대 나간채(사회학과)교수는 ‘관련단체들을 중심으로 한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과제’라는 주제로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5·18운동의 과제에 대해 의견을 발표했다. 나교수는 “최근 5·18관련 운동은 유가족과 부상자,구속자 등 5·18 관련단체들이 법인화·통합화하고 기념재단 설립 등을 추진하는 추세”라면서 “5·18관련 책임자 처벌 등을 명시한 96년 ‘5·18재판’을 기점으로 5·18운동의 저항적 투쟁성도 기념사업활동이나 항쟁 정신을 구현하는 시민운동적성격으로 바뀌고 있다”고 정리했다. 그는 5·18운동이 해결해 나가야 할 구조적 측면의 과제로 ▲관련단체들의내부 통합성 강화 ▲지역사회와의 연대성 강화 ▲비합법적·폭력적 방식에서 절차적 민주성을 실천하는 방식으로의 전환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 문제 등을 꼽았다. 이와 함께 활동적 측면의 과제로는 ▲진실규명과 과거 청산을 위한 문제 ▲미완의 처벌과 재심 문제 ▲불완전한 보상에 관한 문제 등 미해결 과제와 ▲각종 조형물을 포함한 기념사업 ▲학술연구회나 토론회 ▲5·18관련 사회운동 등을 제시했다. 나교수는 “이러한 모든 과제들은 한국사회의 민주화가 5·18을 포함하는광주문제의 완전한 해결 없이는 언제까지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서 “5·18의 기본정신을 확대·재생산할 수 있고 변화된 현재의 환경 속에서 인권·정의·자치정신을 발전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과제들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톨릭대 안병욱(安秉旭·국사학과)교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우리민족의 통일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면서 “한국 역사의 민주적 발전과 민족통일을 위해 꼭 넘어야 할 과제인 미국의 대한(對韓)정책과 한국인들의 대미(對美)인식의 전환문제가 광주항쟁을 통해 어떻게 투영됐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교수는 “민족의 통일로 가는 과정은 또 하나의 변혁운동”이라고 전제하고 “단순히 보편적인 개념이나 이론틀을 내세운 논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역사의 자취 속에서 그 구체적 의의를 추구할 때 5·18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고 남겨진 과제들을 발전적으로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록기자 myzodan@
  • 신동아그룹 세무조사 배경

    - 정부, 대한생명 지원앞서 '탈세의혹' 규명 국세청이 대한생명 등 신동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간 것은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고 버티는 최순영(崔淳永)회장에 대한 ‘압박용’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실 금융기관인 대한생명의 정상화를 위해 1조원 가량의 국민세금을 지원할 예정이다.이번 세무조사는 이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성격이 강하다.천문학적인 국민 세금이 투입되는 마당에 의혹이 제기돼왔던 최회장과 일가의 탈세 및 자금도피 여부를 철저히 가려 ‘회사는 망해도 사주는 살아남는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불식시키겠다는 것이 세무당국의 의지다. 최회장의 탈세사실은 지난 2월 대한생명 등에 대한 실사단계에서 이미 혐의가 드러났다. 금감원은 이때 세무당국에 탈세사실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국세청이 구체적인 관련자료를 넘겨줄 것을 요청해와 실사자료를 건네줬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대한생명의 해외매각 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동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가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지만 최회장의 탈세여부 규명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워낙 강하다”고 전했다. 금감원 주변에서는 대한생명 등 신동아그룹 계열사에 대한 이번 세무조사가 다른 기업들에 대한 세무조사와는 달리 지금까지 언론에 공개된 최회장 관련 자료를 확인하는 절차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신동아그룹 22개 계열사와 2개 관계사 등 24개사 중 최회장이 탈세 창구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10개사에 대해 영업·경리장부 일체를 넘겨받고 나머지 계열사에도 필요한 자료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조사를 벌이고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이번 세무조사는 최회장이 해외 자금도피와 대한생명의부실로 물의를 빚었고 그 과정에서 대규모 탈세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회적의혹이 제기됨에 따라 진실규명 차원에서 착수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주석 김균미기자 kmkim@- 신동아 어떤 회사 신동아그룹은 대한생명과 신동아화재 등 2개의 보험회사를 주력 계열사로하는 중견그룹이다. 대한생명은 그룹의 가장 큰 계열사로,지난해 말 현재 총자산 14조7,816억원에수입 보험료는 8조5,626억원으로 생명보험업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보험설계사를 포함,6만여명의 식구를 거느리고 있다. 신동아그룹은 또 소맥분(밀가루) 가공업과 원양수산 업체인 동아제분을 갖고 있다.63빌딩 안에 관광안내와 식당 등 레저업체를 운영하는 대생기업(자산규모 1,130억원)과 63빌딩 건물관리를 맡는 대생개발(자산규모 1,319억원),염료업체인 태흥산업(자산규모 1,220억원) 등도 신동아그룹 계열사다. 오승호기자
  • 정신대 할머니 명예 졸업장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갖은 고초를 겪은 李容洙할머니(71·대구시 달서구 상인동)가 6일 경북대 사회교육원에서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李할머니는 일본총리를 직접 만나 일본군의 만행을 따지는 등 일본정부를상대로 피해배상과 사죄를 요구하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이고 있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국제법을 알아야만 일본의 사죄를 받아낼 수 있고 법적 배상투쟁도 벌일수 있다’며 96년 경북대 사회교육 과정의 명예학생으로 등록했다.지난 3년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손자·손녀뻘 되는 학생들과 국제법학,역사,일어,현대사회와 법,경제 등 5과목을 수강했다. 일제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야학에서 한문을 배웠다.지난 43년 만16세의나이에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가 고생하다 해방 이듬해인 46년 귀국했다. 보험회사 등에 다니며 홀로 지내다 92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신고한 뒤 수시로 일본을 오가며 아시아 각국의 일본군 위안부 재판에 증언도 서고 일본정부와 언론을 상대로 진실규명작업에 매달리고 있다. 보다 체계적인 역사 지식을쌓고 국제법을 터득하기 위해 배움의 길에 나섰다 李할머니는 “일본은 오욕의 역사를 진실로 사죄하고 피해보상이 아닌 피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 (26) 민족대표 33인중 1인 李甲成

    올해로 ‘3·1 만세의거’ 80주년이다.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전민족 차원의독립운동으로 기록되고 있는 ‘3·1의거’는 4월 하순까지 조선 8도에서 모두 1,214건의 시위에 참가자는 110만명에 달했다.또 당시 만세시위에 나섰다가 일경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자가 7,500여명,검거된 자는 4만7,000여명에달했다. 구한말 의병항쟁 이후 일제말기의 광복군에 이르기까지 항일대열에 참가한애국지사는 수십만을 헤아린다.그러나 이들 가운데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받은 사람은 99년 2월 현재 8,524명이다.아직도 상당수 애국지사들이 훈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보훈당국이 야박해서만은 아니다.독립운동 공적은 인정되나 훈장급에는 미치지 못하거나 독립운동을 입증할만한 구체적인 거증자료를 찾지 못한 때문이다.독립진영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한 사람들의 경우 증거자료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자료찾기가 어려운 것은 일제의 비밀요원인 ‘밀정’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93년 5월 국가보훈처는 역대 독립유공자 가운데 재심사 대상자 8명의명단을 국회 비공개회으에서 공개하였는데 그 가운데에는 ‘3·1의거’ 당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사람이었던 이갑성이 포함돼 있었다.그에게 씌어진 혐의는 ‘밀정’으로 요샛말로 하면 일제의 스파이노릇을 했다는 것이다.광복회장까지 역임하면서 81년 사망 당시 사회장이 치러졌던 그가 ‘변절자’였다는 의혹은 62년 이래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그동안 제기된 의혹과 논란을 통해 그의 친일혐의를 추적해보자. 연당(硏堂) 이갑성(李甲成)은 1889년(명치 2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대구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그는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3년 세브란스의전(醫專) 약학과 3학년 재학중 중퇴하였다.이 해부터 세브란스병원 사무원으로 일하던 그는 남강 이승훈(李昇薰)의 권유로 기독교계 대표로 3·1의거에 참여하였다.당시 민족대표중 가장 어린 나이였던 그는 외국인및 학생측과의 연락,독립선언서 배부,해외연락 업무를 맡아 의거를 성공으로 이끄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3·1의거 당일 태화관에서 일경에 체포된 그는 재판과정에서도 의연한 자세를 잃지않았다고 한다.또 감옥안에서도 3·1의거 기념 만세를 주동하였다. 이로 인해 다른 민족대표들이 가출옥한 뒤인 22년 5월 뒤늦게 출옥했다.출옥후 이듬해 세브란스 의약회사 지배인으로 재직하던 그는 그 해 11월 ‘민립대학 기성발기총회’에서 중앙부 집행위원으로 선출돼 전국을 돌며 민립대학 설립의 필요성을 선전·강연하다가 체포돼 다시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하였다. 24년 11월 이승만이 주도한 ‘동지회’의 서울지부격인 ‘흥업구락부’의간사로 피선된 그는 25년 조선중앙기독청년회(현 YMCA) 이사로 피선돼 활동했다.그는 또 좌우(左右) 민족운동세력의 통합체인 ‘신간회’ 창립에 발기인으로 참여하였으며 29년 11월 광주학생의거 직후 ‘신간회사건’으로 6개월간 복역하였다.출옥후 30년경 경성공업주식회사 지배인으로 있다가 이듬해 상해(上海)로 망명하였다.그를 둘러싼 친일의혹은 그가 상해행에 오른 후 37년 일경에 체포돼 본국으로 압송될 때까지 7년간의 행적이다.생전에 그는이 시기의 활동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다. 한편 이갑성에 대한‘친일논쟁’은 62년 그가 건국훈장을 수훈할 무렵 불거져 나와 65년 광복회장에 취임한 직후,그리고 81년 그의 사망직후 한 잡지에서 그가 일제때 사용하였던 명함을 공개하면서 다시 논란이 됐었다.그의친일경력을 처음으로 공식 거론한 사람은 임시정부 서무국장 출신의 임의탁(林義鐸·건국훈장 독립장)씨.그는 ‘대한일보’(67.5.11)에 게재한 광복회비상총회 명의의 ‘성명서’에서 ▒민족대표 33인중의 한사람으로 솔선하여창씨개명을 한 점 ▒상해에서 임정에는 출입을 못하고 상해 조선인거류민회회장이자 유명한 친일파인 이갑녕(李甲寧)만 접촉한 사실 ▒총독부 산업국장의 주선으로 일본 미쯔비시(三菱)회사 신경(新京)출장소장으로 임명된 사실▒총독부 경무국장 마루야마(丸山鶴吉)의 촉탁을 지냈다는 주장 등 충격적인 내용을 폭로하였다. 또 유관순(柳寬順)열사의 오빠로 3·1의거에 참여했던 유우석(柳愚錫·건국훈장 애국장)씨는 이갑성이 “일제말기 일본인도 하기 어려운 경성공업사(군사공업)의 중역을 지냈다”고 증언하였다.두 사람 모두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애국지사들로 이갑성의 친일문제와 관련,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증언하고 있다.독립유공자 가운데는 같이 활동했던 동지들의 증언만으로도 훈장을 받은 사례도 있다.독립운동가들의 증언은 사료(史料)가치를 인정받고있다. 한편 임·유씨의 증언에 대해 이갑성은 반박성명을 통해 두 사람의 증언내용을 모두 부인하였다.그러나 몇 가지 사항을 검토해보면 이갑성의 반박은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우선 창씨문제.이갑성은 자신이 이와모토(岩本正一)로 창씨개명한 사실(호적서류 참조)을 두고 당시 자신은 해외에 있어서 모르는 일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창씨는 호주(戶主)만이 할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호주였던 그가 자신의 창씨 사실을 몰랐다는 얘기는 말이안된다.33인 가운데 그를 포함해 정춘수(鄭春洙,禾谷春洙),최린(崔麟,佳山麟)등 3명이 창씨개명을 했다. 다음으로 이갑성이 미쯔비시회사의 신경출장소장을 지냈다는 주장.현재로서는 확인된 바는 없다.그러나 그가 ‘주식회사 일만산업공사(日滿産業公司)전무취체역’을 지낸 사실은 확인됐다.(명함사진 참조) 또 이갑성이 상해 임정에 출입을 못했다는 주장.이에 대해 임정 총무과장 출신 K씨는 “당시 이갑성은 임정요인과 교류가 없었으며 임정 청사에 출입을 못했다”고 증언한바 있다. 독립운동가 김성수(金聖壽·건국훈장 독립장)는 자신의 경험담을 들어 이갑성이 상해에서 제중(濟衆)약국을 경영하면서 밀정행위를 했다고 사망직전에증언한 바 있는데 이갑성이 약국을 했을 가능성은 크다.우선 그가 약학을 공부했고,서대문형무소 수감시절 일경이 작성한 자료에 그가 상해로 도피하여약종상(藥種商)을 했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그가 경무국장 마루야마의촉탁을 지냈다는 주장도 아직 확인된 바는 없다.이밖에도 그가 친일을 했다는 증언은 수없이 많다.독립운동가 사회에서는 그의 ‘친일’이 공공연한 비밀로 돼 있다.다만 그가 생전에 역대 정치권력과 깊은 유대를 가지고 독립운동가 사회의 상징적인 인물로 행세해왔기 때문에 나서서 언급하기를 꺼려왔을 뿐이라는 것.해방 직후부터 정치권에서 활동하면서 한때 이승만을 추종하던 그는 1961년 5·16이 발생하자 ‘…국가와 민족의 앞날을 위하여 크게염려하던 군인들에 의한 군사혁명이 일어난 것은 다행한 일로…군사혁명 정부가 완전히 성공하도록 물심양면으로 깊이 협조해 주기를…’ 호소하였다. 이듬해 62년 그는 해방후 첫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건국훈장 대통령장(2등급)을 받았으며 공화당 창당과정에서 발기위원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65년에는 초대 광복회장에 취임하였고 이어 3·1동지회 고문,이준열사기념사업회총재 등 민족단체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하였다.또 63년 그는 독립유공자 공적심사에도 참여하였는데 당시 이름만 써내면 훈장을 주었다는,소위 ‘백지사건(白紙事件)’에 그가 깊이 관련돼 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이갑성의 일제하 행적에 대해서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상당수 있다.33인 출신으로 일제당국에 신분이 노출된 상태에서 어떻게 상해를 자유롭게 드나들며 또 거기서 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37년 국내에 압송돼 와서 1년만에 가출옥한 배경이나 이후로도 수 차례 투옥된 이유는 무엇인지 등등.33인중 최후의 생존자로 매년 3·1절이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던 이갑성은 81년 3월 타계후 국립묘지에 안장됐다.그의 공과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진실규명 차원에서도 그의 행적에 관한 자료조사는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다. 鄭雲鉉 jwh59@
  • 경제 청문회…증인신문 마친 청문회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특위’의 경제청문회가 11일 경제전문가의 의견 청취를 끝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국민회의와 자민련 소속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청문회는 ‘통과의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않았다.하지만 성과가 컸다는 분석이다.한계상황 속에서도 굵직굵직한 사실이 밝혀진 것도 많다.대표적인 게 ‘사직동팀’에서 97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金大中국민회의후보의 계좌만 추적했고 신한국당의 姜三載사무총장이폭로한 DJ비자금도 조작됐을 것이라는 증언을 끌어냈다. 또 鄭泰守 전 한보그룹 총회장이 92년의 대선 직전 金泳三후보에게 150억원을 직접 건넸다는 것도 이번에 드러난 사실이다.姜慶植 전 경제부총리와 金仁浩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늑장대응과 한심한 외환관리,金전대통령의 차남인 賢哲씨가 92년의 총선에 개입했다는 것도 ‘흘러간 노래’였지만 흥미로웠다. ▒林昌烈 전 경제부총리가 취임하던 날인 97년 11월 19일 IMF체제로 가는 것을 알았다는 것 ▒삼성그룹이 부도 직전 金善弘 전기아그룹 회장의 영입추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에 재벌의 압력도 작용 ▒金전대통령의 기아부도 불가 지시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이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청문심사위원을 독단적으로 선임하는 등의 전횡 확인도 주요 성과로 꼽힌다. 아쉬운 점도 많다.金전대통령이 출석하지 않아 IMF로 가기 전의 외환위기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鄭泰守리스트,金善弘리스트,李信行리스트등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된 구체적인 것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주요증인과 참고인들이 출석을 거부하거나 증언을 제대로 하지 않아 한보대출 의혹,PCS 인·허가,종합금융사 인·허가 등과 관련된 정경유착의 구체적인 실상이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姜전부총리,金仁浩 전 경제수석,金善弘 전 기아그룹회장,李信行 전 기산사장 등 일부 증인과 참고인들의 뻣뻣하고 뻔뻔한 태도도 문제였다.진술이 엇갈리는 증언이 있었지만 대질(對質)신문이 이뤄지지않아 진실규명은 쉽지 않았다. 특위위원들도 문제가 많았다.그동안 감사원이나 검찰의 수사에서 나온 사실을 재탕,삼탕나열한 게 많았다.윽박지르기식의 질의와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우기는 태도도 좋지 않았다.특위위원 몇명을 제외하고는 증인과 참고인의 책임회피성 진술과 잘못된 진술을 따질 수 있는 실력이 없었다. 청문회에서 맹활약한 국민회의 丁世均,자민련 鄭宇澤의원은 “출석을 거부한 증인과 위증(僞證)한 증인에 대한 처벌이 강화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郭太憲 tiger@
  • [안테나] 무리한 증인-참고인선정 문제로 남아

    국회 ‘국제통화기금(IMF) 환란조사 특위’는 5일 개인휴대통신(PCS)관련증인·참고인 신문을 끝으로 이번 청문회를 ‘사실상’ 마감했다.다음 주에는 종합정리 청문회를 갖지만 새롭게 나올 게 없기 때문이다.‘공식적’으로는 11일에 증인과 참고인을 소환하는 신문을 끝낼 예정이다. 특위는 청문회에 들어가기 직전인 지난달 16일 증인 45명,참고인 45명 등 90명을 출석대상으로 선정했다.청문회 도중 일부 증인과 참고인이 추가돼 모두 100명으로 늘어났다.지난달 25일부터 증인과 참고인을 신문했지만 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인 賢哲씨와 李錫采 전 정통부장관 등 13명은 배짱과 건강,도피성 외유 등으로 나오지 않았다.8일에 나와야 하는 金 전 대통령도 불출석할 게 뻔하다. 경제청문회의 진실규명이 어려웠던 것도 이런 핵심인사들의 불출석 탓이 크다.석연치 않은 이유로 불출석한 증인과 참고인들의 뻔뻔함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특위도 증인과 참고인 선정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피할수 없을 것 같다.무더기로 증인과 참고인을선정해놓고 실제 질의는 하지 않고 넘어간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청문회에 나와서 진술하기로 돼 있던 증인과 참고인 중 具本英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비롯한 22명에게는 질의를 신청한 특위위원들이 없었다. 처음부터 무리다 싶을 정도로 많은 증인과 참고인을 선정한 탓이다.국민회의와 자민련이 당차원에서 증인과 참고인을 선정한 경우도 있고 특위위원들이 개별적으로 필요해서 선정한 경우도 있지만 실제 청문회에서는 그냥 지나친 게 많았던 셈이다. 5일 張喆薰 전 조흥은행장,申復泳 서울은행장,鄭之兌 전 상업은행장은 참고인 자격으로 증언을 하기로 돼 있었지만 청문회장에 나올 필요가 없었다.질의를 신청한 특위위원이 없었기 때문이다.이들은 당초 PCS와 관련해 증인과참고인에 포함시키려던 인사들이 빠지면서 대타(代打)로 들어갔었다.구색맞추기식,끼워넣기식으로 선정했으니 질의가 없는 게 당연했다.
  • 『경제청문회』林昌烈씨 대질신문 ‘쟁점’

    국회 ‘국제통화기금(IMF)환란조사특위’는 3일 다음주에 주요 증인과 참고인의 대질(對質)신문을 하기로 했다.증인과 참고인의 엇갈리는 진술을 바로잡기 위해서다.경제청문회의 목적대로 진실규명을 하려면 대질신문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위는 외환관리 책임과 姜慶植전부총리의 IMF행 인지시점을 놓고 姜전부총리와 李經植전한국은행총재를 대질신문하기로 했다.IMF행 보고시점에 관해다른 진술을 한 金仁浩전청와대 경제수석과 尹鎭植전청와대 조세금융비서관도 대질신문한다.삼성음모설 및 기아사태 처리지연과 관련해 의견이 상반되는 姜전부총리와 金善弘전기아그룹회장의 대질신문도 검토하기로 했다.하지만 이번 청문회에서 최대 이슈로까지 떠오른 林昌烈전경제부총리가 취임식날인 97년 11월19일에 IMF에 가는 것을 알았는지에 대해 사실을 밝히려는 대질신문은 확정되지 않았다.林전부총리는 지난달 25일 청문회에 나와 “IMF로가는 것을 몰랐고 다만 협상하는 정도로만 알았다”면서 “金泳三전대통령이 말하지도 않았다”고 답변했었다.姜전부총리와 金永燮전청와대 경제수석은 180도 다른 얘기를 했다.姜전부총리는 “林전부총리는 취임하기 이틀 전인 11월17일에도 IMF로 가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金전경제수석은 지난 2일 청문회에서 “金泳三전대통령은 97년 11월19일 임명장을 준 뒤 林전부총리에게 ‘IMF를 포함해 전직 부총리로부터 업무 인수인계를 받으라’고 지시했다”는 증언까지 했다.이런배경으로 자민련은 반드시 林전부총리도 대질신문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입장이지만 국민회의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국민회의 소속인 張在植특위위원장은 “林전부총리가 취임식날 IMF행을 알았느냐 여부는 환란의 주요한 부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반면 자민련의 魚浚善 金七煥 鄭宇澤의원은 “姜전부총리와 林전부총리의 대질신문이 이뤄지지 않으면 청문회가 무의미하다”고 강경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林전부총리의 대질신문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郭太憲 tiger@
  • [안테나] 방향타 잃은 청문회

    경제청문회의 강도가 날로 낮아지는 분위기다.특위위원들의 열정과 집요함도 하루가 다르게 퇴색해 가는 모습이다. 더욱이 기아·한보 관련 비리정치인들의 사면·복권 방침이 전해지면서 ‘재를 뿌릴지 모를’ 예민한 질의는 기술적으로 피해가는 형국이다.자칫 여권 수뇌부의 ‘정계개편 구상’에 누를 끼치지 않겠다는 ‘몸사리기’가 역력했다. 이런 기류는 28일 ‘기아사태 청문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지난 3일간 보여줬던 특위의 열의와 긴장감도 현저히 떨어졌다.특위위원들은 질의 전부터“새로운 것이 나올 것도 없는데”라며 전의(戰意)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기아의 ‘1,000억원 비자금 조성의혹’과 이른바 ‘金善弘리스트’ 등 정치권을 뒤흔들 ‘대형뇌관’을 건드리지 않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듯했다. 특위 군기반장 격인 국민회의 李允洙의원도 金善弘전기아그룹회장을 상대로 비자금 규모와 정치자금 액수를 따졌지만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재판중인 까닭에 말할 수 없다” “아는 바 없다”는 金전회장의 ‘모범답안’을더는 추궁하지도 않았다. 지난주 기관 보고에서 맹위를 떨쳤던 ‘매서움’은오간데 없고 ‘송방망이’ 질의에 머물렀다. 국민회의 千正培의원은 속기록을 의식한 듯 기아 비자금 존재 여부를 지나가듯 언급하는 데 그쳤다.“모른다”는 답변에 “좋습니다”라는 반응이 전부였다.일부 위원들은 보도자료 내용인 金善弘리스트와 비자금 관련 질의를아예 건너뛰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여권의 청문회 성격 규정과 무관치 않다.현정권의 집권 2기출발을 위한 ‘통과의례’쯤으로 보는 시각이다.철저한 진실규명보다는 과거단절을 위한 ‘요식행위’라는 분석도 이런 맥락이다. 하지만 일부 시민단체들은 “엄정한 진실규명 없이 구여권과 서둘러 화합을 추진할 경우 개혁대상을 개혁주체로 바꾸는 역사적 실수를 되풀이할 것”이라며 가감없는 진실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 경제청문회 증인 신문 이모저모

    李經植전한은총재,洪在馨·林昌烈전경제부총리 등이 증인·참고인으로 나선 25일의 경제청문회는 외환위기를 추궁하는 특위위원들과 당시 상황논리를앞세워 책임을 벗어나려는 일부 증인들간의 설전으로 시종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행됐다.▒특위위원들은 첫 증인으로 나선 李전총재 등이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하거나 면책성 발언을 늘어놓자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李전총재는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애매한 태도를 보이다가도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는 대목에서는 목소리를 높이며 항변했다.李전총재는 특히 답변도중 어려운 경제학 용어를 써가면서 당시 정책의 정당성을 주장하다 면박을 받기도 했다.국민회의 張誠源의원이 단도직입적으로 “잘못한 것이 없냐”고 묻자 “결과적으로 환란사태가 온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잘못을 인정했다.▒張在植위원장은 증인들이 경제관료로 잔뼈가 굵은 ‘경제통’인 점을 감안,증인신문에 들어가기 앞서 “얄팍한 경제지식이나 변명으로 진실을 호도하면 또 한번의 죄를 짓는 게 될 것”이라고경고하기도 했다.張위원장은 “변명과 책임회피적 해명을 하지 말고 진실을 가려달라”며 증인들에게 거듭 진실규명에 협조할 것을 당부했다.▒국민회의는 이날 증인신문의 중요성 때문에 일부 ‘공격수’를 바꿨다.李允洙의원을 잠시 빼고 ‘비장의 카드’로 아껴뒀던 金民錫의원을 등장시켰다.金의원은 지난 97년 한보청문회에서 맹활약했고,국회 재경위 등의 활동을통해 닦은 실력으로 경제관료와의 ‘한판싸움’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선수교체전략’은 26일에도 이어져 국민회의 金元吉정책위의장이 증인으로 나서는 姜慶植전부총리를 맡을 예정이다.▒李전한은총재등 4명의 증인은 이날 오전 청문회가 열리기 20분전 청문회장에 들어와 증인선서문에 서명하는 등 증언 준비를 했다.李전한은총재는 답변에 대비해 관련서류를 담은 검은색 007서류가방,洪전부총재는 자주색 손가방만을 갖고 나왔다.그러나 두 사람 모두 착잡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李전한은총재는 “청문회 준비를 많이 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준비는 무슨 준비냐.어제 귀국해청문회 중계도 못봤다”고 답변했다.崔光淑 bori@
  • 여권 “姜慶植 경제논리를 깨라”

    이번 경제청문회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구여권과 신여권의 ‘경제논리 대결’로 볼 수있다. 환란위기의 진실규명을 서두르는 신여권으로서 최대 난제로 姜慶植의원(전경제부총리)을 꼽는다.환란 당시 경제사령탑으로서 ‘진실’의 열쇠를 쥐고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姜의원은 자타가 공인한 실무경제통인데다가 두차례의 경제부총리를 역임,만만치 않은 논리적 배경도 갖고있다. 이에대해 국민회의 金元吉정책위의장은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며 “姜의원에 대한 대책없이 어떻게 청문회를 열수가 있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우선 姜의원에 대한 증언시기를 최대한 늦춘다는 복안이다.金의장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姜의원을 증인으로 불러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증거를 제시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환란위기의 전과정을 꿰뚫고 있는 金의장이 진두지휘할 가능성이 높다.吳一萬 oilman@
  • 정직한 역사 되찾기-민주열사 열전(20회)

    민주열사열전 시리즈가 20회로 막을 내린다.어두웠던 시대에 조국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 까.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고 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그들의 진실 밝히기가 현재와 미래를 더 욱 의미있게 하기 위한 과거의 재창조 행위라는 인식에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와 성과 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한다.가톨릭대 安秉旭교수와 李相勳변호사,전국민족 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金學喆사무국장,대한매일 金三雄주필이 자리를 같이했다. 金三雄주필:8월7일 장준하선생편을 첫 회로 시작된 시리즈가 5개월만에 마 무리하게 됐습니다.제도언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독재투쟁에 몸을 불사른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역사적 의미,유족과 동지들의 근황 등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安秉旭교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유관단체를 포함해서도 처음이라고 봅니다. 민주화투쟁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증거로 그분들의 업적은 중요합니다.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매일이 어려운 여건 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金學喆국장:이번 시리즈는 하나의 사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실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과감히 밝힌 것이 언론 계의 ‘사변적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李相勳변호사:한 건의 의문사를 해결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과거 군사독재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률 제정 등에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더 이상 잘못된 50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중요합 니다.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디딤돌의 의미가 깊다 고 봅니다. 金주필:‘항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이들에게 붙였던 ‘열사’라는호칭이 부 적절하다,과거지향적인 것을 꺼내어 국민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지적 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들은 열사로 불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또 역사적으로도 두번 다시 잘못됨을 되 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연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金국장:보훈처 관계자의 열사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기고를 보고 제가 반론 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항일정신이나 반독재의 민주화 정신은 구국의 의미 에서 맥을 같이합니다.과거를 덮어두고 어떻게 제대로된 미래가 나오겠습니 까.밝은 미래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꼭 필요 합니다. 安교수:민주화 정신은 항일정신만큼 높이를 같이한다고 봅니다.아직 민주화 에 대한 인식이 덜 보편화되어 있어 항일정신과 민주화정신을 구분하려는 것 같습니다.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이러한 논란이 나오 지 않을 것입니다.과거에 대한 진실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을 때 미래지향적 인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金주필:우리 역사를 보면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이 있습니다.신라의 화랑, 조선시대의 의병·승병,한말의 의병,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정신을 주도했습니다.해방 후 그 대를 잇는 것이 바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이라고 봅니다.그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들 에 대해 의미부여가 덜 되어 있습니다.현 정부도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 워졌는데 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변호사:민주열사 예우와 보상 관련 법안 작성에 민족민주운동의 개념문제 가 불거졌습니다.보상과 명예회복을 전제로 한 민족민주운동 개념의 실례가 부족하고 사회적 일치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金주필:해방후 반민족행위자 규정처럼 민주화운동 유공·희생자들과 관련해 역사·사회학계 등의 주도로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또 활발한 학술토론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安교수:민족민주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밀렸던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개념 설정과 인물의 구체적 선정과정에서 큰 논란이뒤따를 것입 니다.하지만 우리 민주화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는 큰 틀에서 볼 때 그러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공개적인 논의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충 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金국장:열사들이 유공자 대우를 바라고 민주화투쟁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독재정 권에 맞섰던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획득의 의미입니다.폭압적 공안기구와 정 권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파헤쳐져 그러한 행태가 줄어들고,장기적으로 없어 져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데 법 제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金주필:나치 치하에서 함께 저항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 를 야스퍼스는 ‘형이상학적 죄’라고 했습니다.군사독재 치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도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인’에 해당될 것입니다.마땅히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관련 법률안을 만 들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기념관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려야 하고 묘역을 조성해 민주성지로 만들어야겠지요.또 어렵게 살 고 있는 그 유족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조선왕조시대에도 병자·정묘 호란 희생자들의 자손들을 7·8대까지 돌봐준 예가 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 관련 법안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더이상 독재하에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징 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둘째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정리해 기념관 등을 조성해 모아놓고 학교와 국민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셋째는 그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李변호사:현재 국민회의가 내놓은 최종 법률안인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해자 측면에서는 진상규명,피해자 측면에선 명예회복과 예우 및 보상에 직접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시기와 적용대상이 처음 작성할 당시의 원안에서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安교수:정당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항력 적인 면이 있습니다.보훈대상자 선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 주유공자 선정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장차는 이런 분들까지 발굴해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金주필:이승만정권 이후 최근까지를 포괄하는 법률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번 기회에 촉구해야하지 않을까요. 金국장:처음엔 1945년 이후로 잡아 법안 작성을 추진했습니다.하지만 집권 여당에서도 부담을 갖고 반대했습니다.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 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절충한 것이 3선 개헌을 기준으로 잡은 6 9년 8월7일 이후입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安교수:전거가 없어 법률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률안이 다른 나라에도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는,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국회의원들도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 역사적인 법률을 만들 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눈앞의 위기 탈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달이 아닌 1 0년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金주필: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고 위기감을 갖는 사람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참여기회를 주고 적절한 배 상과 보상을 통해 화해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金국장:유가족도 진상규명을 원합니다.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 한 고백과 사과를 받으면 용서한다는 입장이지요. 李변호사:예우·보상은 진상규명의 전제 위에서 가능합니다.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젭니다.진상규명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金국장: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늦었지만 의미 있습니다.‘형이상학적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열사들의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대한매일은 이 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들에 대한 공적인 자리매김을 대한매일이 했습니다.시리즈 에서 다룬 인물들은 우리 자랑스런 역사의 출발점이고 굴절된 50년 역사를 그나마 빛나게 한 분들입니다. 金주필:필리핀의 호세 리잘은 스페인 침략시절에 ‘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 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그러나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 들을 잊지 말라’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바로 밤사이 스러져간 열사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그들의 뜻을 기리고 희생을 생각하 는 것은 우리 전부의 의무입니다.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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