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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고향에 가 남편 한 풀고 싶어”

    “이젠 고향에 가 남편 한 풀고 싶어”

    “이제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남편 고 윤이상(사진 왼쪽) 선생의 탄생 90주년을 맞아 한국을 찾는 이수자(오른쪽·80)씨가 윤이상평화재단을 통해 밝힌 심경의 일단이다. 윤이상평화재단은 6일 이씨가 1967년 동백림 사건 이후 40년 만인 10일 한국에 온다고 밝혔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은 동베를린 간첩단이란 누명을 쓰고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구명운동으로 풀려나 이후 독일 국적을 취득했다. 베를린 자택에 한반도 모양의 연못을 만들 정도로 조국을 그리워한 윤이상은 95년 사망할 때까지 끝내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부산 남여자중학교 국어교사로 일할 당시 윤이상을 만나 결혼한 이씨는 남편의 타계 이후 “선생의 명예가 회복되기 전에는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지난해 4월 금강산에서 열린 윤이상음악회에서는 “죽기 전에 고향땅 가서 남편 한을 푸는 게 소원”이란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윤이상 명예회복’과 관련,2006년 1월 국정원과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는 “동백림사건은 확대 왜곡된 것이므로 당사자 및 유족들에게 정부가 사과하기를 권고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같은해 8월 이 여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남편의 명예회복 등을 촉구하는 편지를 부쳤다. 지난 5월 정부가 이씨에게 과거 불행한 사건에 대한 유감의 뜻을 밝히고 ‘2007 윤이상 페스티벌’에 초청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이씨의 고국방문 뜻은 한층 확고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이상평화재단측은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부분에 이 여사도 동의했다.”며 “윤이상이란 작곡가에 대한 국민의 재인식과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명예회복이란 걸림돌도 넘어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씨는 20일가량 한국에 머물면서 16일부터 두달간 개최되는 ‘윤이상 페스티벌’과 14일 통영 미래사에서 열리는 추모제에 참석할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면담도 예정되어 있다. 한편 평소 이수자 여사와 가깝게 지낸 재독 사회학자 송두율 교수(뮌스터대)는 6일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로 “윤이상 선생님의 한을 제일 가까운 분이 풀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며 이 여사의 한국 방문을 축하했다. 이어 그는 “윤이상 선생님이 천상에 계시지만, 남북 간의 응어리진 문제가 민족의 고민으로 승화되었으면 한다.”는 소망을 밝혔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대전형무소사건 유해발굴

    한국전쟁 전후 최대 규모의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으로 알려진 ‘대전형무소사건’의 유해가 발굴되면서 진실규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층층이 묻힌 유골 매장형태로 볼 때 집단희생 정황이 뚜렷하단 분석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지난 6월말부터 진행한 ‘대전형무소사건’ 유해발굴조사 결과, 현재까지 모두 4곳의 매장추정지에서 총 35구 이상(추정치)의 유골과 명찰 및 신발 등의 유품을 발견했다.”며 발굴현장을 공개했다. 대전형무소사건은 1950년 7월초, 대전시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에서 국군과 경찰이 대전형무소 재소자와 인근 지역 보도연맹원들을 집단학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美피란민정책이 노근리 참사 불러”

    “노근리 사건은 절대 우발적 실수가 아닙니다.6·25전쟁 당시 민간인 사격을 가능토록 한 미군 피란민통제정책의 필연적 비극입니다.” 정구도(53) 노근리평화연구소 소장은 “말이 피란민정책이었지 1950년 미군은 전선에 접근하는 민간인을 쏴죽일 수 있는 명시적인 명령을 하달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우발적 사고’라고 밝힌 미국 발표와 달리 미군의 무리한 피란민통제정책이 참사의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정 소장은 1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제1회 노근리 국제평화학술대회’를 연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유족들이 직접 개최하는 보기 드문 국제학술대회다. 정 소장은 미군 피란민정책 및 공중공격작전과 민간인 학살과의 상관관계를 밝힐 예정이다. 국제학술대회가 개최되기까지는 노근리 진상규명을 위해 뛰어다닌 정 소장의 오랜 노력이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후퇴하던 미군은 50년 7월26일 충북 영동군 노근리 경부선 철로와 쌍굴다리 밑에서 전투기의 기총사격과 총기사격으로 수백명의 민간인을 학살했다. 정 소장의 형과 누나도 노근리 사건 현장에서 미군의 총에 사망했다. 현장에 없어 살아 남은 아버지 정은용(86·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장)씨는 사무친 한에 91년 70세의 나이로 ‘우리 아픔 아는가’란 책을 냈고, 아버지의 작업을 도우며 정 소장도 노근리 사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정 소장의 노력은 99년 AP통신의 노근리 사건보도로 이어졌고,2001년의 한·미공동 진상조사보고 발표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발표결과는 ‘우발적 사고’였다.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에 침묵하는 미국이 과연 인권국가가 맞나 싶었습니다. 진실규명을 위해선 제대로된 연구와 증거제시가 필요했고, 결국 피해자인 제가 연구소를 차릴 수밖에 없었지요.” 경영학 박사인 정 소장은 역사문제인 노근리 사건으로 4편의 논문을 쓰고 한 권의 책을 냈다. 그는 이번 학술대회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말한다. 그는 “6·25전쟁 당시 미8군과 10군단의 피란민정책이 민간인에 대한 명시적인 사격명령과 네이팜탄을 사용한 무차별적 공중공격 지시 등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밝혀냈다.”면서 미 국립문서보관소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했다. 문서엔 ‘관할지역 주민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발사 및 폭격 권한을 가진다.’‘아군 전선에 들어오는 모든 피란민에게 필요하면 발포하라. 박격포 사용도 가능하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정 소장은 “이번 학술대회는 노근리 사건을 뛰어넘어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사건의 총체적 원인을 규명하는 데 적지 않는 기여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6·25 전후 좌익 등 민간인 학살도 규명”

    북한군과 좌익세력 등 6·25전쟁 전후 적대세력에 의한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첫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양평적대세력사건’과 ‘주문진지역 양봉열 외 4인의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0일 밝혔다.‘양평적대세력사건’은 1950년 9월26일에서 30일 사이 후퇴하던 인민군과 정치보위부 내무서원에 의해 양평군 주민 600여명이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진실화해위는 “희생자들은 주로 우익단체원이나 공무원 및 부농 등으로, 국군과 유엔군에 협조했다고 판단한 적대세력이 이들을 양평면 한강변 백사장으로 끌고 가 집단총살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희생자들 중 대한청년단원이 31명, 공무원 12명, 국민회와 대한국민당원이 7명인 것으로 확인됐다. 진실화해위는 또 50년 4월5일 양봉열씨 등 대한청년단원 4명이 인민군에게 의해 산채로 매장당한 ‘주문진 지역 양봉열 외 4인의 희생사건’에 대해서도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공안사건 피해자 재심 법무부, 법률지원키로

    변호사 선임 비용이 없어 재심 청구에 어려움을 호소(서울신문 7월12일자 1면)해온 ‘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 피해자 차풍길씨 등 과거 공안사건의 억울한 피해자들이 법무부의 재심지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진실규명건 중 재심 권고사안에 대해 재심청구 및 진행 과정에 필요한 법률지원을 할 예정”이라고 19일 밝혔다. 법무부는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하는 진실화해위 공문을 6월29일과 7월12일 두 차례에 걸쳐 받았다.”면서 “내용을 밝힐 단계는 아니나 공문 수령 직후부터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청와대는 진실화해위의 권고조치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는 서울신문 보도에 따라 대통령 훈령 제정을 통한 ‘권고사항 처리단’ 가동을 12일 결정한 바 있다. 법무부의 재심지원 방안은 크게 3가지다. 법무부는 ▲7월초에 재심지원 TF팀을 구성해 운영하고 있고 ▲대검찰청에 진실화해위 결정내용을 통보해 재심에 필요한 법률지원 요청했으며 ▲법률지원구조공단에 협조공문 발송했다고 밝혔다.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인을 선임할 돈이 없어 재심청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이들이 재심 과정에서 불편함을 겪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검찰이 나서서 재심을 청구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 관계자는 “검사의 재심청구 권한을 명시한 형사소송법 제424조(재심청구권자)의 입법취지와 달라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해당 형소법 조항은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에서 허위자백으로 확정판결을 받은 가짜 범인의 의사에 반해서 재심을 청구하고 진범을 기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분명히 할 점은 법무부의 재심지원은 검찰의 과거반성 차원임과 동시에 대승적 차원의 지원”이라고 강조,“재심은 실체적 진실규명을 다시 한다는 의미로, 청구인들이 죄를 지었으면 유죄판결을 받을 것이고 죄가 없다면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이에 대해 “법은 입법취지에 맞아야만 적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면서 “평생 억울한 누명으로 고초를 겪어온 피해자들을 생각해서라도 검찰의 적극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법무부는 다음주쯤 구체적인 지원내용을 공개할 방침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국정원 李 X파일 없다”

    “이명박 X파일을 정말 국정원이 보유하고 있나.”(김정훈 한나라당 의원) “그게 뭔지 실체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다. 국정원은 이명박 X파일을 가지고 있지 않다.”(김만복 국가정보원 원장) 한나라당과 김만복 국정원장은 12일 국회 정보위원회 비공개회의에서 이명박 X파일을 둘러싼 공방전을 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명박 X파일 존재 여부에 대해 김 원장을 거세게 추궁했다. 김 원장은 “현재 국정원이 갖고 있는 것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며 의원들의 공세를 피해 갔다. 김 원장은 “국정원장으로 임명되기 전부터 그런 자료가 있다는 이야기는 있었다.”면서 “취임 후에 국장들에게 X파일과 유사한 것이라도 있는지 점검해 보고하라고 했지만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당시 국장들에게 X파일이 없다는 확인서도 일일이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열린우리당 이해찬 의원 홈페이지에 오른 중앙정보부의 ‘최태민 수사보고서’에 대해 “검찰이 X파일 존재 여부를 물어왔다.”며 “수사 협조 차원에서 실제 자료가 존재하는지와 유출됐는지, 만약 유출됐다면 누가 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열린우리당 박명광 의원은 “한나라당이 국정원을 정쟁에 이용하고 있다. 국정원이 개입한 것인지 진실규명을 위해 당장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김 원장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건강 이상설과 관련해 “업무에 큰 지장은 없는 상태로 알고 있다.”면서 “독일 의료진 7∼8명이 북한을 방문했지만 심장수술을 한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한나라당 김형오 원내대표는 이날 취임 1주년 간담회에서 “국정원이 지금처럼 정치중립 운운하며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국정원의 내년도 국내파트 예산을 전면 삭감할 것”이라고 밝혔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단 한건도 이행안돼

    진실화해위 재심 권고 단 한건도 이행안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지난해 11월부터 현재까지 진실규명 결정사건과 관련해 국가에 권고한 재심청구 조치가 단 한 건도 이행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가 피해자의 명예회복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음에 따라 피해자들은 스스로 빚을 내 변호사를 선임, 재심을 청구하는 등 속앓이를 하고 있다. 반면 정치적 국면과 맞물린 부일장학회(현 정수장학회) 건은 정부가 적극적인 재산반환 작업에 나서고 있어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11월28일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을 시작으로 올 7월3일까지 진실화해위가 진실규명 결정을 내린 사건은 총 27건. 진실화해위는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사과 및 화해조치와 아울러, 인권침해 사건 중 확정판결이 난 ‘민족일보 조용수 사건’ ‘태영호 사건’ ‘이수근 간첩조작 사건’ 등 9건에 대해 재심청구를 통해 명예회복조치를 취할 것을 국가에 권고해 왔다. 그러나 서울신문이 관계기관과 9건의 재심청구 사건 피해 당사자 및 유족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첫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지고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가 재심청구한 사건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의 부일장학회(재심 건 아님) 재산환수 추진을 제외하면 권고조치 이행 자체가 전무하다. 재심 후 무죄판결을 받아야 가능한 손해배상소송도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겨지고 있는 실정이다. 올 4월10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심을 청구한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의 동생 조용준씨는 “진실규명이 됐으면 가해자인 국가가 나서서 피해자 명예회복을 시켜 줘야 하는데 너무 무관심한 것 같다.”며 섭섭함을 표했다.‘차풍길 간첩조작의혹사건’ 피해자 차풍길씨도 “돈이 없어 변호사도 못 알아 보고 있다.”면서 “1982년 사건 당시 변호사 4명을 선임하느라 재산을 다 탕진하고 그때 진 빚이 아직 남아 있는데, 또 빚을 지게 생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현재 형사소송법 제424조(재심청구권자)는 유죄선고를 받은 피해당사자 외에 검사에게 재심청구 권한을 주고 있다. 국가의 의지 여하에 따라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적극적인 역할이 가능하지만, 검찰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김갑배 진실화해위 상임위원은 “검찰이 과거반성 차원에서 스스로 재심청구를 하면 피해자들이 훨씬 신속하게 무죄선고를 받을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면서 “결국 검찰은 재심에서 피해자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상황을 연출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34조(국가의 의무)도 국가에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한 적절한 법적·정치적 조치를 취할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국가의 의무 이행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얽혀 있는 ‘부일장학회 사건’에 대해서는 정부가 신속하게 대처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부일장학회 건이 진실규명(5월29일)된 지 6일만인 지난달 5일, 노무현 대통령의 재산반환 방안 마련 지시에 따라 현재 법무부가 구체적인 안을 짜고 있는 중이다. 권고조치 이행 움직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국무총리실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진실화해위 권고조치 대책을 논의 중이다. 그러나 초보적인 자료검토 수준으로 구체안이 나온 것은 없다. 국무조정실 법무팀 내 ‘한일수교회담문서공개대책기획단’ 관계자는 “개별 권고조치마다 처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건과 권고조치를 유형화해 종합적으로 처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함평 11사단’ 명예회복 권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지난 3일 한국전쟁 전후 불법적으로 이뤄진 민간인 집단희생사건인 ‘함평 11사단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6일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긴급한 전투상황이 아님에도 주민들이 빨치산에 협력하고 있다고 판단해 민간인을 집단 총살한 것은 범죄이며, 이 책임은 당시 한국군 총참모장과 국방부 장관, 대통령에게까지 귀속된다.”고 밝혔다. ‘함평 11사단 사건’은 육군 11사단 20연대 2대대 5중대 군인들이 1950년 11월20일부터 1951년 1월14일까지 전남 함평군과 장성군, 광산군 등에서 빨치산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주민 258명을 총살하거나 부상케 한 사건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진실화해위 재심권고 ‘아람회 사건’ 피해자 김난수씨

    “딸 아람이가 벌써 스물일곱 살입니다. 지금 수의사로 일하고 있어요. 아람이도 소식을 들으면 기뻐할 겁니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5일 반국가단체 구성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아람회’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 김난수(54)씨는 이날 소식을 전해듣고 “취업이 안 돼 고통받은 지난 세월이 너무 억울하다.”면서 “재심을 통해 무죄를 인정받고 손해배상까지 받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단순 친목모임이 반국가단체로 ‘아람회’ 사건은 1981년 대전경찰서가 김난수씨와 박해전씨 등 12명을 불법감금 상태에서 고문 등 가혹행위를 한 뒤 법원에서 징역 10년과 자격정지 10년 등 중형을 선고한 사건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였다. 피해자들은 2년 4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아람’은 김씨의 딸 이름이다. 경찰은 81년 7월 아람씨의 백일잔치를 계기로 김씨 집에 모인 사람들이 단순 친목모임 명칭으로 거론한 ‘아람회’를 반국가단체로 몰았다. 진실화해위는 “국가는 피해자들과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재심 등 상응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김씨는 당시 육군 대위로서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김씨는 “장교 선배들과 친구들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딸아이 백일을 축하했을 뿐”이라면서 “사건 이후 집안은 거의 파탄이 났다.”고 안타까워했다. ●보안부대 지하실서 한달간 고문 김씨는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81년 8월 혼자 제507보안부대로 이첩돼 조사를 받고 군 검찰에 송치됐다. 김씨는 “무릎 사이에 몽둥이를 끼운 채 군홧발에 밟히는가 하면 발가벗긴 상태로 구타당하는 등 보안부대 지하실에서 한 달간 고문을 받았다.”고 밝혔다.83년 12월 특사로 풀려났지만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고 김씨는 전했다. “출소 직후 3개 회사에 합격했지만 신원조회 과정에서 불합격처리됐고, 노태우 정권 때까지도 보안관찰 대상이라 취업이 안 됐습니다. 사면복권된 후엔 나이가 너무 들어 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됐습니다.” 김씨는 식당과 독서실 등을 운영해 봤지만 모두 실패하고 지금은 10여년째 무직상태다. 김씨는 “가정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아람이도 아빠의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경제적으로 무능한 아빠에 대한 불신이 컸을 것”이라며 가슴아파했다. 태어나자마자 반국가단체의 이름이 돼버린 딸 아람씨는 지금 어엿한 성인으로 자라 수의사로 일하고 있다. 5·18광주민주항쟁 유공자이기도 한 김씨는 5·18민주화운동등에관한특별법에 따라 2004년 4월 재심을 청구했고 현재 대전지법에 계류 중이다. 박해전씨 등 다른 피해자들의 재심청구는 작년 7월 서울고등법원에서 재판이 개시됐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Local] 함평 학살 양민 ‘명예 회복’

    1950년 11월 한국전쟁 때 전남 함평에서 학살당한 양민 258명(부상자 9명 포함)의 명예회복이 이뤄진다.‘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최근 함평 양민학살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유족들은 국가로부터 공식 사과와 위령사업비를 지원받는다. 또 명예회복, 호적 정정도 가능하다. 유족회는 21일 월야고등학교 강당에서 영령들을 위로하는 고유제(告由祭)를 연다. 과거사위는 “함평 11사단의 양민학살은 반인륜적이고 위법 행위”라고 결론지었다. 유족회 노병량(66·월야면) 회장은 “이제서야 빨치산의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들이 편안한 안식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 “보도연맹원 학살은 이승만 명령 따른 것”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 학살이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것이란 증언이 가해자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나왔다. 또 보도연맹원에 대한 첫 학살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처럼 50년 7월1일 경기도 이천에서가 아니라 6월28일 강원도 횡성에서 이뤄졌고, 집단학살에 헌병대가 깊숙이 개입됐다는 사실도 최초로 확인됐다.●국가 차원 학살… 헌병대 깊숙이 개입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충북대책위원회’가 4일 충북도청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전쟁 당시 6사단 헌병대 일등상사였던 김만식(81·청주시 흥덕구 수곡동)씨는 보도연맹원 학살의 최고명령권자가 이 전 대통령이었음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김씨는 “전쟁 직후 대통령 명령을 받은 육군참모총장이 각군 지휘관에게 무전으로 보도연맹원 학살지시를 내렸다.”면서 “6사단 헌병대에서도 대통령 명령이라며 헌병대장이 부대 간부들에게 내용을 구두로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명령 요지는 ‘극렬분자 보도연맹원들을 경찰에서 인수받아 즉결 처분하라.’였다.”고 전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김동춘 상임위원은 “의혹 수준에 머물러 있던 이 전 대통령의 학살 명령 사실이 가해자의 입을 통해 확인됐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증언”이라면서 “이는 국가 차원의 치밀한 계획 하에 학살이 이뤄졌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전쟁 사흘만에 횡성서 150여명 사살 김씨는 또한 전쟁 발발 3일 만인 50년 6월28일 보도연맹원에 대한 첫 학살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씨는 “6월28일 춘천과 홍천지역 보도연맹원 150여명을 횡성으로 이송시켜 사살했다.”면서 “당시 현장 지휘 책임자로서 사살 결과를 보고 받았다.”고 밝혔다. 김 상임위원도 “횡성에 집단매장지가 있다는 피해자들의 주장과 일치해 사실로 확인될 경우 7월1일로 알려진 기존의 연구결과를 수정해야 할 것”이라며 증언을 뒷받침했다. 김씨는 “6사단 헌병대와 19연대 헌병대는 강원도 원주, 충청도 충주·음성·오창, 경북 영주·상주 등지로 내려가며 보도연맹원들을 학살했다.”면서 “원주와 영주에서는 나도 직접 사살에 나섰다.”고 말했다. 이는 피해자 증언에만 의존해오던 헌병대의 학살 개입 의혹이 가해자에 의해 사실로 입증된 것으로, 보도연맹사건 진실규명 작업이 한층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 상임위원은 “가해자 증언확보의 어려움으로 보도연맹사건은 위원회의 직권조사에도 불구하고 한 건의 진실규명도 하지 못했다.”면서 “김씨의 증언은 이런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조만간 김씨에게 협조를 얻어 참고인 조사를 할 방침이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거짓자백 안했으면 지금 땅속에 있을 것”

    1980년 8월21일, 석달윤(76)씨는 신군부가 장악한 당시 중앙정보부로 끌려갔다. 남산 대공분실 168호에서 47일간 고문을 당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냈다. 한국전쟁 때 행방불명된 뒤 얼굴 한번 본 적 없는 고종 10촌 형님 박양민씨 탓이었다. 석씨가 간첩으로 남파된 박씨에게 전남 진도 해안 경비상황을 보고했다며 중정은 자백을 강요했다. 남파공작원 오모씨의 “박씨 간첩활동을 북에서 들은 바 있다.”는 막연한 진술이 근거였다. 수사관들의 고문은 가혹했다. 발로 배를 차고, 머리를 욕조에 담그고, 송곳으로 하반신 곳곳을 찌르고…. 잠은 안 재우면서 잠깨라고 볼펜 심지를 성기에 집어넣고…. 당시 중정 조사실은 피범벅이었다고 한다. 석씨는 결국 “내가 형님의 간첩활동을 도운 게 맞다.”고 자백했고,1981년 1월 안기부는 “고정간첩 15명을 일망타진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달 26일 47차 전원위원회에서 1980년 발생한 ‘석달윤 등 간첩 조작의혹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진실위 “반인권적 사건… 재심조치를” 진실화해위는 “장기간 불법구금 및 강압적 상태에서 자백을 받아 간첩으로 조작하고, 사형 등 중형으로 처벌한 비인도적이고 반인권적 사건”이라면서 “국가는 유가족에게 사과하고 화해 및 재심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27년 만의 진실규명 결정이다. 석씨는 이날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나는 떳떳하므로 진실이 밝혀질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짓으로라도 자백하지 않았으면 난 아마 지금 땅속에 있을 것”이라면서 “일주일만 그런 고문을 받으면 김일성이라도 만났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씁쓸해했다. ●18년 복역… 지금도 보안관찰 대상 석씨는 무기수로 징역 18년을 살았다. 함께 누명이 벗겨진 박씨의 외조카 김정인씨는 이미 1985년 10월31일 사형당했다. ‘간첩’의 처자식은 생계가 끊겨 두 달 동안 고구마로 연명했고, 고향 진도에서 살지 못해 내쫓기듯 이사했다. 1998년 8월15일 가석방된 석씨는 여전히 공안당국의 보안관찰 대상이고, 고문으로 굽은 허리는 지금도 하루 턱걸이 70개를 해야 펴진다고 한다. 진실화해위 결정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한 것에 불과하다. 석씨의 ‘법적’ 간첩혐의는 바뀐 게 없다. 석씨는 “당연히 재심 청구한다. 백번 천번이라도 청구해서 무죄를 인정받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교도소에서 배운 서예솜씨로 석씨는 국전에 수차례 입선했다. 그는 안산에서 통일운동가와 서예가로 여생을 보내고 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1949년 문경 석달사건서 살아남은 채의진씨

    “사건 발생 57년 6개월 3일 만에 진상규명이 됐습니다. 덩실덩실 춤을 춰도 이 기쁨을 다 표현하지 못하겠습니다.” 문경 석달사건 생존자 채의진(72)씨의 떨리는 목소리는 크고 높았다.“지난 세월 가슴에 쌓인 한이 비로소 씻겨나갔다.”고 했고,“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통곡소리로부터 조금은 놓여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진실화해위 “반인륜적 집단학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약칭 진실화해위)는 29일 “‘문경 석달 집단희생사건’에 대해 26일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문경 석달사건은 1949년 12월24일 경북 문경군 석달마을에서 2사단 소속 국군 70여명이 마을 주민 86명을 집단 총살한 사건이다. 주민들이 ‘공비’에게 음식을 줬다는 ‘입증되지 않은’ 이유 때문이었다. 사망자 중 10세 이하 어린이만 22명이었다. 진실화해위는 “석달사건은 국군이 비무장 민간인인 노약자나 부녀자를 아무런 확인과정 없이 무자비하게 총살한 반인륜적인 집단학살”이라며 ▲유족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 ▲부상자들에 대한 의료비 및 생계비 지원 ▲유족들의 지속적 위령제 봉행을 위한 재정적·제도적 지원 등을 권고했다. ●형·사촌동생 시신에 깔려 살아 진실규명 결정엔 채의진씨의 평생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사건 당시 13살이었던 채씨는 형과 사촌동생의 시신에 깔리는 바람에 살아남았다. 석달사건을 알려내려고 21년간의 교사생활을 그만뒀고,‘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피해자 전국유족회’를 만들어 공론화시켰다. 미국을 오가며 관련 비밀문서를 찾아 공개하기도 했다. 채씨는 “14대 국회 때부터 국회의원들을 찾아다니며 진상규명을 요구했지만 정부와 국회는 모르쇠로 일관해왔다.”면서 “오죽하면 청와대 앞에서 분신자살할 생각까지 했겠나.”라며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 채씨는 “죄 없는 사람들을 죽인 것도 통탄할 노릇이지만, 사망원인을 ‘공비에 의한 총살’로 호적에 기재해 진실을 왜곡한 정권들의 행태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회고했다. 채씨는 “이제라도 국가를 믿고 싶다.”면서 “국가는 피해자 배상과 위령사업을 조속히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석달사건에 관한 개별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배상 규정을 명시하지 않는 이상 현행법으로 피해자 배상은 불가능하다. 채씨는 “2005년 경북 도의원 56명 전원의 서명으로 배상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17대 국회에서 통과되긴 힘들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부일장학회 강탈” 결정…법적구속력 없어 반환 실현 미지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부일장학회 재산 강제헌납 의혹 사건에 대해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고 국가의 사과와 강제 헌납한 토지 반환 및 손해 배상을 권고함에 따라 피해자가 재산을 돌려받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이 법적 구속력은 없기 때문에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진실화해위가 오는 8월 결정 내용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면 국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 제34조(국가의 의무)에 따라 피해자 명예회복과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법적·정치적 화해조치 등을 취할 의무가 발생한다. 그러나 이 법은 국가에 의무를 부과할 권한은 있으나 국가의 의무 이행을 강제할 권한은 없다. 이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은 전적으로 대통령 등 정책 결정자의 정치적 판단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경우 최소한 권고 조치를 받은 당사자가 입장을 서면으로 밝히도록 강제하는 조항이라도 있지만, 진실화해위는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국가가 적절한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경우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다음 단계는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 배상소송을 해야 한다. 재심에서 ‘간첩혐의’를 벗은 고 최종길 전 서울대 교수 가족들도 국가 상대 소송에서 승소한 전례가 있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2005년 7월 국정원 과거사위원회가 동일한 결정을 내렸지만 그때는 국정원의 자기반성 차원의 작업이었고 특별한 권고 조치도 없었다.”면서 “이번 결정은 국가 독립기구가 피해 사실을 공식 인정하고 국가를 상대로 권고 조치까지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李청장, 한화측과 통화 시인

    이택순 경찰청장이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과 관련해 한화측 고위관계자와 통화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사면초가에 빠졌다. 이 청장은 29일 “지난달 29일 고교 동기동창인 한화증권 유모 고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통화했다.”면서 “그러나 사적인 이야기를 하다 대화 말미에 김 회장 사건 얘기를 꺼내기에 ‘네가 낄 일이 아니다.’라고 면박을 주고 더 이상 얘기를 못 하도록 한 뒤 끊었다.”고 밝혔다.●국회 위증죄 검토…‘부실감찰’ 논란도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이 청장이 지난 4일 행자위에 출석해 한화측 관계자와 만나거나 통화한 적이 없다고 공언한 것과 관련해 ‘위증죄(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법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경찰청 감사관실은 지난 25일 감찰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 청장과 한화증권 유모 고문 사이에 이번 사건과 관련해 접촉이 일절 없었다고 밝혀 ‘부실감찰’ 논란도 일고 있다. 이 청장은 이날 예정된 행사를 급히 취소하고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07 교통사고줄이기운동 범국민대회’를 주재할 예정이던 이 청장은 급히 강희락 차장을 행사에 대신 보냈다. 이 청장은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이 이날 오후 급히 주재한 경찰청 회의에만 모습을 드러냈다.●행자부 장관, 경찰청장 사퇴촉구 움직임 엄중경고 박 장관은 “국민적 의혹에 대한 진실규명에 있어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검찰에의 수사의뢰가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면서 “경찰 내부에서 집단적·분파적 행동으로 인사권에 대한 의견 표명까지 하는 것은 경찰 신분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이 청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거짓말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은 이 청장에 대한 안팎의 사퇴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사이버경찰청 경찰관 전용방의 ‘김종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출석해서 전혀 그런 사실 없다고 거짓말을 했으니 이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울 듯하다. 초읽기에 들어간다. 이제 그만 떠날 때도 되었는데….”라고 했다. 일선서 경정급 간부도 “사실 사퇴까지는 아니라고 봤는데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한 걸 보고는 한계선상에 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탁이 없었으면 왜 처음부터 통화했다는 사실을 당당하게 밝히지 못했나.”라며 이 청장을 질책했다. 일반인들의 사퇴 여론도 거셌다.26년 동안 경찰로 복무했다는 ‘한경희’씨가 포털사이트 다음에 올린 ‘이택순 경찰청장은 물러나라.’는 청원에는 이날 오후 3시 현재 400여명이 서명했다.●늑장·외압수사 관련자 5∼6명 출금 서울중앙지검은 이날 김학배 전 서울경찰청 수사부장과 장희곤 전 남대문경찰서장 등 5∼6명을 출국금지하고, 관련자들에 대한 계좌추적과 자택·사무실 압수수색을 실시할 방침이다. 검찰은 또 경찰로부터 전달받은 한화그룹 최기문 고문의 통화내역을 조사해 지금까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난 경찰간부 외에 다른 고위층이 최 고문과 접촉한 기록이 있는지 캐낼 예정이다. 검찰은 특수부 검사들을 대거 투입한 특별수사팀을 꾸려 경찰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특별수사팀은 김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 수사를 지휘한 서범정 형사 8부장이 주임검사를 맡았다. 검찰은 경찰이 보낸 수백 쪽 분량의 감찰 보고서를 토대로 기초 조사를 진행하고 필요할 경우 관련자들에 대한 자택과 사무실, 계좌를 압수수색할 방침이다.홍성규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진실화해위 “부일장학회 中情서 강탈”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9일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 재산 등 강제헌납 의혹사건’에 대해 강압에 의한 재산 헌납이라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리면서 “국가는 재산권을 침해한 점을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강탈한 재산을 반환하는 한편 피해자의 명예회복 및 화해를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중앙정보부의 수사권은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범죄에만 한정돼 있는데 이와 상관없는 김지태씨를 구속 수사한 것은 권한 남용에 해당된다.”면서 “구속 재판을 받고 있어 궁박한 처지에 있는 김씨에게 부일장학회 기본재산 토지 10여만평과 부산일보, 한국문화방송(MBC), 부산문화방송 등 언론 3사를 국가에 헌납할 것을 강요한 것은 개인의 의사결정권 및 재산침해 행위”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는 헌납 토지에 대해서는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려울 경우 그 손해를 배상하라.”면서 “부일장학회가 이미 해체된 만큼 공익목적 재단법인을 설립해 그 재단에 돌려주는 게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헌납 주식도 돌려줘야 하는데 정수장학회가 이 주식을 국가에 반환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김지태씨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는 또 “정수장학회가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운영되고, 언론사 주식을 정수재단의 경비 조달 수단으로 활용한 것은 공익성에 반하기 때문에 국가는 이를 시정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진실화해위는 “강탈 당한 언론 3사는 단순한 재산권 침해에 머물지 않고 언론기관의 존립 근거에 속하는 공공성 또는 중립성 등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정수장학회는 현재 MBC 주식 30%, 부산일보사 주식 100%를 소유하고 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차남 영우(65)씨는 지난해 1월27일 “1962년 박정희 정권이 아버지를 국내재산 도피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한 뒤 처벌을 면제해 주는 조건으로 부일장학회와 아버지 소유의 땅 10만평, 부산일보 등 언론 3사를 강제로 헌납시켰다.”며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용어클릭 ●부일장학회 1958년 11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인이었던 김지태(전 삼화고무 사장)씨가 토지 10만 147평을 기본 재산으로 설립한 장학회다.62년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몰수돼 5·16장학회로 바뀌었다.82년 박정희 대통령의 ‘정’과 육영수 여사의 ‘수’를 따서 지금 이름으로 고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95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이사장으로 있었으며 최필립씨가 현재 이사장이다.
  • 부일장학회 故김지태씨 차남 인터뷰

    29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진실규명 결정에 대해 부일장학회(정수장학회)를 창립한 고 김지태씨의 차남 김영우(64·한생산업 회장)씨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결단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의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사필귀정이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실까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빼앗긴 재산을 돌려받더라도 사적으로 쓸 생각이 전혀 없다. 정수장학회는 공익에 맞게 써야 한다. ▶정수장학회에 어떤 제안을 하고 싶나. -이름을 아버님 아호인 ‘자명’을 따서 자명장학회로 바꿔야 한다. 그동안 일했던 임원진은 모두 물러나야 한다. 필요하다면 박 전 대표와 만나 새로운 이사를 구성할 수도 있다. ▶정부에 바라는 점은. -진실화해위의 권고에 따라 정부가 적절한 조치를 취해 소송 등 법적 분쟁으로 안 가고 원만하게 모든 일을 해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님은 어떤 사람인가. -1982년 돌아가실 때까지 경남 일원에 많은 인재를 키우셨다. 부일장학회를 빼앗기고 나서도 부산상고에 자명장학회를 만들었다. ▶향후 계획은. -아직 법적인 해결을 고려하진 않고 있다. 박 전 대표의 태도를 먼저 볼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소송을 해서라도 원상회복할 것이다. 서로 원만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 결단을 기다려 보겠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한화 수사 비리 검찰이 나서라

    한화 회장의 보복폭행사건 수사를 두고 경찰 간부의 사표와 징계가 줄을 잇고 있다. 어제 서울경찰청장이 사표를 제출했고, 직위해제됐던 남대문경찰서의 전 수사과장이 사표를 냈다. 또 서울경찰청 수사부장이 직위해제됐다. 초동수사 늑장과 축소·은폐 압력 여부를 둘러싼 경찰 간부들의 책임 떠넘기기와 네탓 공방이 한창인 가운데 이뤄졌다. 국민의 궁금증과 의혹이 증폭되는 건 당연하다 할 것이다. 몇몇 간부의 징계나 사표로 마무리될 일이 아니다.늑장수사와 축소·은폐 의혹은 사건이 불거졌을 때부터 제기됐다. 남대문경찰서와 지휘를 맡은 서울경찰청간의 갈등으로 비화되는 조짐까지 보였다. 남대문경찰서 전 수사과장은 “사건을 처음 내사했던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가 수사자료 협조요청에 응하지 않아 수사에 방해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남대문경찰서로 이첩된 이후에도 수사가 한달 이상 중단된 것으로 확인됐다. 초기에 경찰 내부에 축소·은폐의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그러나 언론보도 이후 본격 수사가 이뤄지면서, 경찰 간부들간의 책임공방, 네탓 공방으로 양상이 바뀌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간부들이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언론은 그동안 늑장수사·은폐의혹의 감찰과 수사를 꾸준히 요구해 왔다. 경찰은 그러나 진실규명 노력을 회피해 오다, 뒤늦게 감찰결과를 내놓았다. 여론에 떼밀려 최소한 수준에서 마무리한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감찰만으로 덮을 사안이 아니다. 정식 수사를 통한 규명만이 의혹을 푸는 첩경이다. 검찰이 나서, 문제점과 의혹을 낱낱이 밝혀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재벌간의 커넥션이 있었는지 여부도 가려야 함은 물론이다.
  • 교사승진 근무평점 비중 확대

    교원 승진 평가 때 근무평정 비중이 높아지고, 경력 비중은 낮아진다. 동료교사에 의한 다면평가제도 도입된다. 정부는 15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국무회의를 열어 이같은 내용의 교육공무원승진규정 개정안 등을 의결했다. 개정안은 우선 교원 승진 평가 때 현재 25년인 경력평정 기간을 20년으로, 평정 점수를 현행 90점에서 70점으로 축소했다. 반면 근무성적 평정 점수는 종전 80점에서 100점으로 올리고, 산정 기간도 교감·장학사·교육연구사는 3년, 교사는 10년으로 확대했다. 또 교사에 한해 동료 교사에 의한 다면 평가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근무성적 평정점과 합산해 승진 후보자 명부에 반영하도록 했다. 정부는 이날 제주특별자치도를 국제자유도시로 발전시키기 위한 ‘제주특별자치도법’ 개정안도 의결했다. 개정안은 ▲제주에 개설된 의료기관에 재외국민이나 외국인 환자를 소개·알선·유인하는 행위 허용 ▲출자총액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도 제주 첨단과학기술단지 입주 회사나 제주 투자진흥지구에 설립된 회사 주식을 취득 또는 소유하는 경우 출총제 적용 면제 ▲토지 이용과 도시계획 및 개발에 관한 권한을 제주도지사에게 대폭 이관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오는 25일부터 ‘주민 소환에 관한 법률’이 시행됨에 따라 투표 청구를 위한 선거구별 서명인 산정 기준을 정한 시행령안도 통과됐다. 시·도지사는 해당 시·군·구별 주민소환 투표 청구권자 총수의 10% 이상, 시장·군수·구청장은 해당 읍·면·동별 청구권자 총수의 15% 이상으로 정했다. 이밖에 과거사 진실규명 요청 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에 고위 공무원단 1명과 검사 1명 등 32명을 증원하는 안건도 의결됐다.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사회플러스] 부일장학회 진실규명 또 연기

    진실ㆍ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15일 제43차 전원위원회를 열어 ‘부일장학회 강제헌납 의혹사건’에 대해 논의했지만 진실규명 결정을 다음 회의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강제헌납 등 사실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방향에 대해 이견이 없었지만 국가 권고 사항 등 세부 사항에 대해 의견이 엇갈려 29일 열리는 제44차 전원위원회로 넘겼다.”고 말했다. 진실화해위는 앞서 지난달 3일과 17일 각각 열렸던 2차례의 전원위원회에서도 이 사건을 안건으로 다뤘지만 결정을 연기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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