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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족과 떠나는 미술·박물관 휴가

    ◎마이크로 월드전 등 볼만한 전시회 5선 여름방학을 맞아 각 박물관과 미술관이 청소년을 동반한 가족나들이 객을 위해 다양한 전시회를 열고 있다. IMF시대 온가족이 휴가 삼아 가볼만한 전시회들을 소개한다. ◇중국문화대전­63앵콜전 29일부터 9월6일까지 여의도 63빌딩 별관 1층 특별전시장 및 옥외전시장에서 열린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5천년 중국문화를 한눈에 볼수 있다.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려 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한 수준높은 전시. 진시황 동마차,병마용,갑골문,월왕구천검 등 시대별 핵심작 500점과 함께 중국의 기인과 예인이 보여주는 갖가지 이벤트가 마련된다. 초등학생 4천원,중고생 6천원,일반 8천원. ◇볼 수 없던 세계,마이크로 월드전 오는 8월6일까지 예술의전당 미술관에서 열린다. 현미경으로나 볼 수 있는 진기한 마이크로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사진전시회이다. 인체,생활,자연,시간,빛 등을 주제로 1천여점의 마이크로 세계 사진과 동영상이 관람객을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5,200배로 확대한 혀,날아가는 총알을 찍은 사진,산호초처럼 생긴 남성호르몬,이탈리아 토리노성당의 성수의(聖壽衣)등이 특히 눈길을 끈다. 유치원생 4천원,초중고생 6천원,성인 8천원. ◇400년만의 귀향­일본속에 꽃피운 심수관가 도예전 8월10일까지 광화문 일민미술관(구동아일보)에서 열린다. 임진왜란때 일본으로 끌려가 조선도예를 전해주고 ‘사쓰마야키’라는 일본의 대표적인 도자기를 일구어낸 초대 심당길로 부터 14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제작된 140여점이 선보인다. 주요작품으로 조선의 흙과 유약에 불만 일본의 것을 빌렸다는 초대 심당길의 ‘불만 빌린 그릇’(원명:히바카리다완),8대 심당원의 ‘사자승 관음상’,14대 심수관의 ‘금칠보설륜문대화병’등이 있다.청소년 2천원,일반 3천원. ◇우리 호랑이 특별전 8월1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호랑이해를 맞아 조상들이 남긴 호랑이 관련 유물들을 한자리에 모은 전시회. 조선시대 ‘산신도’를 비롯,단원 김홍도 임희지 합작의 ‘죽하맹호도’,호랑이무늬 방망이,호랑이가 그려진 ‘청화백자철화송호문필통’,목제 호랑이상,영천 은해사의 ‘산신탱’,승주 선암사의 ‘목조 산신상’등 200점 전시되고 있다. 초중고생 무료,대학생 300원,일반 900원. ◇우리네 여름이야기 특별전 8월31일까지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열린다. 옛 선인들의 여름나기 풍습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수 있는 전시회다. 여름의 대표적인 놀이인 천렵을 묘사한 풍속화를 비롯,시원한 그늘에서 부채질하는 사람의 모습을 그린 겸제 정선의 ‘유음납량도(柳陰納凉圖)’,물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탁족도(濁足圖)’등 현대인들이 쉽게 볼수 없는 여름관련 옛그림과 고문헌을 모았다. 이밖에 죽부인만들기,화문석짜기,감물들이기 등 여름용품 제작과정을 보여주고 입장객에게 부채를 나눠준다. 또 31일에는 입장하는 어린이들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며 단오 유두 음식인 유두국수 등 각종 여름음식도 제공한다. 초중고생 무료,성인 700원.
  • 난세에는 영웅이 탄생한다/동서양 영웅 다룬책 줄줄이

    ◎역경 이겨낸 당당한 이야기/몽골 칭기즈칸·클레오파트라·중국 진시황제 어지러운 때일수록 사람들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사회 전반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불안심리가 카리스마에 기대게 만드는 것일까.요즘 서점가에는 동서양 역사의 영웅들을 다룬 책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칭기스칸은 살아 있다’(신현덕 지음,강),‘천년영웅 칭기즈칸’(이재운 지음,해냄),‘클레오파트라’(조지 마가렛 지음,,미래M&B),‘진시황제’(김성한 지음,조선일보사) 등이 그런 책들이다. 우선 관심을 끄는 인물은 몽골제국의 창시자인 칭기즈칸.미 워싱턴포스트는 95년 지난 1,000년동안 가장 위대한 역사적 인물로 칭기즈칸을 선정했다. 또 일본에서는 공무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칭기즈칸을 꼽고,그의 조직관리법을 벤치마킹하고 있다.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의 중화사상이 여전히 남아 있어 칭기즈칸이나 누르하치 같은 유목영웅들을 한낱 오랑캐로만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역사·문화에세이 성격을 띤 ‘칭기스칸은…’과 대하역사소설 ‘천년영웅…’은오늘의 시각에서 칭기즈칸을 조명한다.‘칭기스칸은…’을 쓴 신현덕씨(세계일보 생활부장)는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몽골 국립사회과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몽골문제 전문가다.그런 강점을 살려 이 책에서는 칭기즈칸 이야기 못지않게 몽골인의 여러 생활풍습도 낱낱이 살핀다. 칭기즈칸은 몽골인들의 자부심의 원천이며 마음의 지주다.그것은 그가 단순히 10만 병사로 전세계를 제패했다는 사실 때문만이 아니다.칭기즈칸은 군인과 군사 요충지는 철저하게 파괴했지만 비전투적인 민간인들에게는 위해를 하지 않았다.이 책은 칭기즈칸의 지도자로서의 인간적 덕목에 주목한다. 이와 관련,지은이는 “칭기즈칸은 심지어 일반 병사들까지 ‘너’라고 불렀을 정도로 백성과 친밀함을 유지했다”고 설명한다. “몽골군이 지나간 뒤에는 먼지만 남는다”는 말이 있다.그들의 잔인함을 강조한 말이다.모두 8권 중 세 권이 출간된 ‘천년영웅…’은 13세기 몽골 초원을 달렸던 ‘인간태풍’ 칭기즈칸의 야수성을 그린다.하지만 이 소설이 정작 강조하는 것은칭기즈칸의 세계경영 지혜와 불요불굴 정신이다. 미국 여성작가 마가렛 조지의 ‘클레오파트’는 ‘이시스의 딸’‘파라오의 사랑’‘동방의 진주’‘악티움의 노을’‘하데스의 눈물’등 5부로 된 전기소설.17세에 왕위에 올라 39세의 젊은 나이로 죽기까지 로마라는 초강대국의 그늘 아래서 이집트의 옛 영화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역정을 그렸다. “클레오파트라는 로마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를 타고난 미모로 좌지우지한 천하의 요녀(妖女)다” 이런 세간의 평가는 과연 적절한가.이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이같은 의문을 갖게 된다.작가는 우리가 클레오파트라에 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부분 클레오파트라의 적들이 쏟아낸 비난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키케로,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 같은 대문호들이 클레오파트라의 정적이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않다. ‘바비도’의 작가 김성한이 엮어낸 ‘진시황제’(전3권)는 진시황의 아버지인 장양왕과 진시황,그리고 그의 아들 호해 3대에 걸친 권력쟁탈 과정을 그린 역사소설이다.이 작품 역시 폭군으로만 인식됐던 진시황제를 이상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던 야심만만한 통치자로 재조명하고 있다.이 책에서 영웅이란 ‘억지’를 쓰고 그 억지를 관철할 수 있는 인물이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준비하는 지금,결코 선인(善人)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영웅들의 이야기에 왜 눈길이 가는 것일까.그것은 이 시대가 역경을 뚫고 피나는 노력으로 당당히 일어선 진정한 영웅정신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 클린턴 부부 진시황릉 관광후 釣魚臺 투숙/클린턴 訪中 이모저모

    ◎서안인근 주민들과 민주주의·일상사 토론 【베이징 외신 종합】 ○…방중 이틀째를 맞은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26일 하오 8시30분 쯤 베이징에 도착,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의 영접을 받은뒤 조어대(釣魚臺)국빈관에 투숙했다. 이에앞서 시안 주변의 농촌 마을을 방문하고 진시황릉을 관광하는 등 비교적 여유있는 일정을 보냈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부인 힐러리 여사는 이날 상오 진시황릉 마을인 시안(西安)시 교외 린통(臨潼)지구 시아허(下河)촌을 방문,한 초등학교에서 농부,교사,식당 주인,대학생 등 6명의 주민들과 약 40분간에 걸쳐 민주주의를 비롯한 정치적인 문제에서 일상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 학교 구내의 나무 밑에서 진행된 주민들과의 질의 답변에서 클린턴은 주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 “귀찮을 텐데 왜 중국의 일반 백성들과 토론을 하려고 하느냐”고 하자 “정치 지도자들은 이른바 기층 주민들이 어떻게 사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응수. ○…클린턴 미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수행중인 1,000여명의 인사 가운데는 클린턴 대통령의 장모인 도로시 로드햄 여사도 포함돼 있어 눈길. 로드햄 여사는 공식 수행단에 섞여 사위 내외의 시안 방문에 동행했는데 클린턴 대통령은 힐러리 여사와 장모, 그리고 딸 첼시아가 함께 중국 마을을 방문하게 돼 기쁘다고 말하기도 했다.
  • “韓·中 협력 亞太시대 열자”/金대통령 胡錦濤 부주석 초청 오찬

    ◎김 대통령­“명실상부한 동반자관계” 역설/호 부주석­“어려울때 한국 떠맡아 힘들겠다” 金大中 대통령이 28일 낮 청와대에서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국가부주석과 가진 오찬은 진지하면서도 무척 좋은 분위기였다는 게 배석한 朴仙淑 청와대부대변인의 전언이다. ○…金대통령은 접견이 끝난 뒤 이어진 오찬에서 “우리 두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일 뿐만아니라 이제 경제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친밀한 동반자 관계를 이룩하게 됐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분위기를 이끌었다.또 “다가오는 21세기를 아시아·태평양의 시대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우리 두나라의 긴밀한 협력이 중요하다”고 상호협력체제 구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후진타오 부주석은 답사를 통해 “92년 수교이후 이해도 깊어지고 경제적 교류협력도 확대되어 왔다”고 지적하고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거쳐온 金대통령께서 어려운 때에 한국을 떠맡아 책임이 무거운 것을 알고있다”고 위로했다. ○…이어 후진타오 부주석은 오찬 자리에 앉자마자 “李姬鎬여사가 쾌차하시기바란다”고 위로하자,金대통령은 “아내가 내가 대통령이 되고 나면 좀 잘해줄까 기대했을 텐데 경제위기 때문에 여념이 없었다”며 “아마 아프면 서비스 좀 받을 수 있을까 기대했을 것 같다”고 대답,좌중에 폭소가 터지기도 했다. 또 중국 진시황의 공과에 대해서도 견해를 교환해 눈길을 끌었다.金대통령은 “진시황이 폭군으로 비난 받아왔지만 실제로 운하를 개발하는 등 국정면에선 후일 인류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고 재평가했다. ○…후진타오 부주석은 접견에서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공식 초청의사를 전했으며,金대통령은 “빠른 시일내에 방문하고 싶다”고 화답했다.두사람은 또 중국인의 자유여행지역에 한국을 포함시키는 문제에 대해 실무적 합의를 거쳐 처리키로 의견을 모았다.
  • 5천년 중국문화의 흔적들/‘중국문화대전’ 예술의 전당 미술관

    5천년 중국문화의 흐름을 보여주는 대규모 전시인 ‘중국문화대전’이 지난 7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미술관(580­1234)에서 열리고 있다. 한·중수교 5주년과 예술의전당 개관 10주년을 맞아 예술의전당과 중국대외문화교류협회가 공동주최한 이번 전시는 예술의전당 전관을 사용하는 첫기획.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 명품과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유물 등3천여점을 선보이는데 문명사에서 손꼽히는 수작에서부터 민속공예품과 소수민족 의상,티벳인 문물 등 중국의 풍속과 문화·생활사의 면모를 한꺼번에 들여다볼 수 있는 흔치않은 자리이다. 1층에는 중국이 자랑하는 대표적인 청동기 유물과 역대 황제의 유물들이 선보인다. 무릎을 꿇고 등을 들고 있는 궁녀의 모습을 형상화한 기름램프 장신궁등과 국내 최초로 선보이는 진시황 동마차 1호도 있다. 또 화려한 세공법과 황제의 권위를 들여다볼 수 있는 황실가구도 전시돼 있다. 2층에는 당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도자기로 세계의 주목을 받아온 당삼채를 비롯해 쌀알과 머리카락 위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새긴 절묘한 세공술의 명품들과 55개 소수민족의 의상을 모아 보여주고 있다. 또 3층에는 불교와 유목문화가 접목된 티벳의 만다라가 들어 있고 서화에서 농민화까지 중국의 다양한 회화가전시돼 있다. 3월29일까지.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시(중앙아시아를 가다:10)

    ◎중앙아 최고의 도시… 동서문화 교류 요충지/8세기 아랍군에 점령… 투르크족 점차 이슬람화/사마르칸트궁전 벽화엔 고구려인 조문사신이… 오늘날 사마르칸트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주의 주도다.그러나 고대 그리스시대부터 역사에 등장한 중앙아시아 최고도시의 하나였다.그 고도에서는 옛 고려인을 그린 벽화를 만날 수 있다.멀고도 먼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을 만나다니…….그럴만한 사연을 지닌 고도가 바로 사마르칸트인 것이다. 그러한 역사속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동서문화의 교류가 중앙아시아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그리고 동서문화 교류를 통해 세계문화사가 전개되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하다.따라서 세계문화사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중앙아시아역사를 한 차례쯤 들여다 보는 일일 것이다. ○대규모 민족이동 첫 파장 중앙아시아 일대 대초원의 역사에서 파상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대규모의 민족이동이다.그 첫 파장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분명치 않다.다만 파장의 주체가 수메루족이 었을 것이라는 추정은 해볼 수 있다.기원전인 BC3500년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고대문명을 이룩한 수메르족은 오늘의 터키족이 속하는 알타이어족의 한 갈래다.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를 연구한 앗시리아학자들이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원주민들과는 생활습관 뿐 아니라 언어마저 다른 수메르족이 이 지역에 나타났다.그 수메르족은 뒷날 지금의 중동인종인 셈족에게 흡수되면서 수메르어도 사라졌다.이들 두 사건,다시 말하면 수메르족의 출현과 소멸은 알타이어계의 동양족이 서남쪽으로 이동한 뒤 메소포타미아에 고대문화를 다시 이룩했다는 사실을 입증한다.그것은 민족의 서방이동이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나서 BC2000년쯤 알타이와 내몽골,시베리아로 코카시안 또는 백인들이 들어왔다.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가 바로 지난번에 말한 아파나시에보문화다.그 다음 8세기쯤에는 스키타이가 기마병을 이끌고 이 지역에 제2진으로 도착했다.그러니까 백인의 동방이동은 중앙아시아가 두번째 맞은 파장이었다. 스키타이의 기마술은 카스피해안에서 몽골과 만주에 이르는 대초원 전지역에 충격을 안겨주었다.보병을 한꺼번에 밀어치울 수 있는 기마전은 당시로서는 가공할 전술이기도 했다.그리고 말은 여러 가축을 이끌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기마술은 결국 본격적인 유목생활을 재촉한 생활수단으로 정착했다.토착의 동양족들은 이를 재빨리 받아들였다.이에 따라 민족혼합이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새롭고 강력한 정치집단도 나왔다.BC3세기 몽골에서 발흥한 흉노가 그 집단이다. ○흉노 저지 만리장성 축소 그 시기에 중국의 진시황은 만리장성을 쌓았다.북쪽의 흉노족을 막기위해서 였다.BC221년에 시작하여 기원후인 AD220년에 끝난 전한과 후한이 기를 써서 막아야 했던 세력은 흉노다.서방의 흉노인 훈제국의 아틸라 칸은 AD445년에 등극했다.그리고 아시아에서 중부유럽에 이르는 지역을 손아귀에 넣었다.동·서 로마를 포함한 어떤 세력도 흉노에 대항하지 못했다. 동로마의 황제 데오도시우스가 아틸라 칸을 살해하려다 발각된 일이 있다.그러나 죽음을 맞을뻔 한 아틸라 칸은 데오도시우스 앞에서 당당했다는 것이다.그 사실을 기억한다면 서방의 사가들이 흉노를 얼마나 질시하고 두려운 눈으로 보았는지를 잘 알수 있다.중국의 정사도 마찬가지다.중국은 흉노에 비해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겉치례옷을 걸쳤을 뿐 질시와 두려움은 여전했던 것이다. 동방의 돌궐제국은 한때에 와해되었다.그러나 6세기에 돌권의 후예들이 투르크라는 이름으로 부족연맹을 결성했다.돌궐 또는 투르크제국시대가 다시 열린 것이다.흉노와 마찬가지로 돌궐 역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대제국들로 나누어졌다.비록 다양한 세력들이기는 했으나 투르크는 같은 문화와 언어,종교 만큼은 서로 공유했다. 그런 투르크에도 변화가 왔다.8세기 초에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공화국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가 아랍 이슬람군에 점령된 것이다.이들 지역의 투르크족은 이슬람교도가 되었다.그 뒤에 이슬람지역의 투르크족들은 여러 이슬람투르크왕조를 세웠다.그리고 AD751년 당나라 군대를 이끌고 탈라스로 원정한 고선지장군이 이슬람 투르크 세력에게 패했다.중국은 이를 계기로 중앙아시아를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슬람 투르크의 왕조들은 13세기 몽골의 말발굽에 짓밝히는 비운을 맞았다.투르크는 패자이기는 했으나 이슬람문화는 끝까지 지켰다.그리고 유럽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오스만 터키제국(AD1340∼1922년)은 제2차 세계대전까지 투르크의 영광을 버리지 않았다. 그렇듯 흉노와 돌궐의 민족이동은 BC3세기에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다.그 사이 몽골의 군사적 제압이 뒤따랐다.그러나 민족이동의 주역들은 이슬람이나 기독교에 편입되었다.이슬람화한 각 지역의 투르크족들은 나름대로 문화적 정체성을 지금도 강하게 지니고 산다.오늘날 중앙아시아 5개 공화국에 남아서 사는 투르크족이 그들이다. ○‘해뜨는 나라 고구려’ 기록 중국의 중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탈라스 패전 이후 시야를 벗어났다.우리의 역사도 그 지역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그러나 벽화속의 그림이기는 하나 사마르칸트에서 고구려의 사신을 만났다.그 벽화는 아프레시압박물관에 소장되었다.그런데 오르콘 돌궐비문은 카칸의 조문 사절단들이 누구누구인가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해가 뜨는 나라 베클리(고구려),타브카즈,티벳,아바르,로마,키르키즈,오츠 쿠르칸,오트우즈 타타르,기단(거란),타타비 등 여러 민족들이 신음하고 울기위해(주문하러)왔다.”고 기록했다. 투르크제국 공식비문에 ‘해뜨는 나라 고구려’가 첫 국빈으로 기록된 것이다. 이 공식기록은 고구려 사절단이 어떤 국가의 사절단들과 조우했는지를 일러주는 자료다.고구려 사절단은 천산아래 탈라스를 지나와서 세계의 끝에서 온 여러나라 사절들을 만났다.그런 중국 영향권 밖에 사는 사람들과 교류를 하기위해서는 한문이나 한자문헌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이다.
  • 이옹,이번 수능시험은 잘 치셨나요(박갑천 칼럼)

    세상에는 재사들이 있다.5세에 세종임금 앞에서 시를 지음으로써 어른들의 혀를 내두르게한 김시습같은.15세에 성균시 장원을 하는 고려조 이제현도 어디 보통사람인가. 그런 재사가 있는가하면 문리가 늦게 터지는 사람들도 있다.[대동기문]에 따르자면 김득신도 그런사람 가운데 하나였던 듯하다.그가누구인가.임란공신 김시민의 손자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의 아들 아니던가.한데 워낙 아둔하여 백이전을 1억1만3천번(과장이겠지만)이나 읽어야만 했다.그런 연유로 자기 서실이름도 ‘억만재’라 지었다는것이고.물론 나중에 급제하였으며 시재 또한 뛰어난 것으로 전한다. 한데 사람의 성공은 재주와 반드시 관계되는 것이 아니다.김시습만해도 평생이 팽패로운 방랑길 아니던가.또 남달리 성공이 늦은 사람도 있다.가령 기원전 7세기 중원을 제패했던 진문공을 보자.42세에 망명하여 이리저리 쫓겨다니다가 고국에 돌아와 제후의 맹주가 된 때의 나이는 62세였다.그런걸 ‘운’이라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기문총화]에 쓰여있는 영남선비 성여신·김태시·백현 용세사람의 경우도 그렇다.그들은 “나이가 70대인데도” 과거응시를 그만두지 않고 감시와 복시(회시)를 치르러 갔다는 것이다.과장에서 어떤 젊은이가 그들 앞을 지나다가 야살을 떨었다.“좌중에 한분이 빠지셨군요”.그 젊은이는 이른바 상산사호(중국진시황때 상산에 은둔했던 네사람.눈썹과 수염이 하얘진 노인들이었음)를 가리켰던 것.이에대한 성여신의 대답­”그 한사람은 곧 자네 할아버지였는데 몰랐었나?”.과장이 웃음바다로 되었다고 한다.성여신은 64세에 사마시합격,백현룡은 67세에 진사가 되었으나 김태시에 대해서는 알수가 없다.대단한 집념들이었다고 하겠다.98학년도 수능시험에는 올해 73세의 이근복옹이 응시하여 주목을 끌었다.이번이 다섯번째의 도전.네번실패에 낙담도 하였으나 “죽기전에 못배운 한을 꼭 풀어보자”는 마음으로 또 응시했다 한다.합격하면 농과대학에 가겠다는 뜻도 밝힌다.청승맞은 늙은이라고 흉하적할 일이 아니다.“구하라 주실것이요…”하는 마태복음(7―7)을 떠올리게 하잖은가.나이잊은 다잡이 집념은 본받아야할 대목 아닌가 한다.
  • 북과 춤으로 표현한 한중일 문화/국립무용단 ‘동양 3국의 북춤’

    ◎중 산서성·일 가고시마지역팀 참가/“춤의 새로운 장르탄생의 토대” 기대 한·중·일 동북아시아 3국의 북춤이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난다. 국립무용단(단장 국수호)이 올가을 정기공연으로 준비한 북춤 큰잔치 ‘동양 3국의 북춤’이 29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 국립극장 대극장에서 펼쳐진다. 한국과 중국,일본의 문화는 그 고유의 양식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역사적으로 뗄레야 뗄 수 없는 사이.‘동양 3국의 북춤’은 이같은 불가분의 3국문화를 북춤이라는 한 형식을 통해 새로이 조명해보는 자리다. 이번 공연에서 선보일 중국과 일본의 북춤은 산서성과 가고시마의 지역적 색채가 듬뿍 담긴 산서성 경주북춤과 가고시마 야고로북춤.산서성은 황사의 진원지이며 가고시마는 한반도를 거친 황사가 소멸하는 일본의 남동부.3국간 문화의 통로를 상징하는 황사의 흐름을 좇아 북춤의 원류를 찾아본다는 취지에서 수차례에 걸친 현지답사를 통해 이들 두 지역의 북춤을 선정했다. 36명이 공연하는 산서성 경주북춤은 진시황때부터 전수돼온 중국의 대표적전통 북춤.진시황이 용병들을 사열할 때 치던 북에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진 이 북춤은 용과 호랑이의 대결을 묘사하는 대륙풍의 웅장함과 함께 북소리만으로 결혼식 장면이나 군사들의 개선 장면을 느끼게 하는 등 섬세한 기예가또한 장기이기도 하다.산서성에서는 이번 공연을 위해 지름 2m가 넘는 초대형 북을 배편으로 운송해온다. 25명이 출연하는 가고시마 야고로 다이코팀은 일본의 수많은 대고 공연팀중에서 지역적 색채가 가장 뛰어난 단체.야고로북춤은 가고시마지방의 사무라이 수령을 상징하는 거신 ‘야고로 돈’을 만들어 이를 신사에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표현한 북춤이다.이 북춤은 특히 가면을 쓰고 춤을 추는 가면북춤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한국에서는 이번 공연을 위해 북춤 최고의 명인들이 모두 나선다.국립무용단에서는 국수호 단장이 13년 전부터 한국의 모든 북을 한데 모아 연출해온 ‘북의 대합주’를 선보이며 남도 기예에 바탕을 둔 안채봉의 소고춤,남도들 노래의 가락과 춤이 담긴 박병천의 진도북춤,우리 탈춤 가운데 유일한 북춤인이태영의 문둥북춤 등 원류의 북춤들을 선보인다. 또한 장고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김백봉 안무의 ‘장고춤’,이매방의 3북춤등 창작북춤들도 곁들여진다. 이번 공연을 기획한 국단장은 “80년부터 관심을 갖다 2년전 국립무용단을 맡으면서 본격 추진해온 이번 공연의 가장 큰 취지는 춤의 다양화를 위한 작업,다시말해 전통춤과 창작춤에 국한된 춤의 장르에 북춤이라는 형식이 하나의 새 장르로 탄생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라며 “앞으로 3년 연속으로 공연을 가져 예술영역의 확충을 꾀하겠다”고 말했다.
  • 「등」이후 중국­동북아­세계:Ⅱ(지구촌 칼럼)

    ◎본사 지구촌칼럼 필진 4명 국내전문가 1명 공동진단/국제정세 영향/리처드 하스 미 브루킹스연 외교정책실장/당분간 대외마찰 최소화/정치안정·경제번영땐 영향력 확대 등소평의 죽음은 우리에게 대답보다는 질문을 더 많이 남기고 있다.그의 죽음은 중국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리고 세계에는. 분명 등소평이 중국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고 지금도 지대하다.현재의 중국은 모택동보다는 등소평의 국가라고 말해도 결코 과장은 아니다. 그러나 중국의 미래는 탄탄대로라든가 분명하다는 것관 거리가 멀다.중국은 시장경제 변화의 도입과 세계경제와의 연계증대를 굳게 약속한 것처럼 보인다.그렇지만 등 시대에 이런 일들이 아주 점진적으로 이뤄진 사실은 곧 커다란 의문들이 상존함을 뜻한다.강택민 등은 힘있지만 비능률적이고 돈이 많이 드는 국영기업의 운명을 결정해야 한다.그들은 또 광범위한 부패,정부보조금의 축소,경제활동에 대한 국가통제의 완화지속 등을 헤쳐나가야 한다.이런 방향으로 움직여 나갈 때에만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에 합류할 수 있고세계에서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다. 중국의 정치적 미래는 한층 불확실하다.공산당이 정부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합법적인 후계를 위한 공식절차도 없고 민중의 반정부 시위를 다룰 법조항도 별로 없다.시간이 지나면 무엇인가가 주어져야 한다.경제개혁에 고삐를 물리고 중국의 잠재적이며 정치적인 개혁을 제한할 어떤 것이 나오던가 아니면 중국 지도자들의 힘을 제한하는 어떤 것이 나오든가 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이 답해지는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그러나 이것의 현실적인 파장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크다.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번영할 때만 중국은 국경선 너머로 심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장으로서는 등소평의 사망이 중국의 바깥 세계와의 관계에 미칠 충격은 작아 보인다.등소평이 몇년에 걸쳐 차근차근 퇴장한 결과로 그가 지목한 후계자들이 결정적으로 중요한 세력 변수들로부터 지지를 얻을 시간을 가졌다는 사실은 의미깊다.후계는 그의 사망 이후부터가 아니라 이전부터 이뤄졌다. 그럼에도 등의죽음은 새로운 불확실한 상황들을 야기한다.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지만 중국의 역사는 후계결정의 시기에 합법성을 얻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권위가 채 확고하지 못한 후계가능 인물들은 대담한 정책이나 폭넓은 타협책을 택하기를 꺼리게 된다고 일러준다. 이것은 결국 앞이 보이는 장래,최소한 올 가을의 당대회 이후 상당기간까지는 상황이 예전과 아주 비슷하게 돌아갈 것이란 점을 말한다.미국은 이 기간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미국에는 예의 주시와 분명성과 일관성과 현실주의가 요구되는 때이다. 미국정부가 인권에 관해 장기적인 접근법을 택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중국지도자들이 갑자기 세계인권 규약준수를 다짐하고 반정부 인사를 석방하고 감옥에 대한 국제사찰을 허용할 리는 없다.변화는 오로지 시간이 지나야만,경제개혁과 중국지도자들의 자신감 확대의 결과로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공개적인 압박보다는 은밀한 재촉이 진전을 이뤄낼 것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관리들은 홍콩에 대해서도 현실주의자가 될 필요가 있다.홍콩의 이양은 시간표대로행해질 것이 확실하다.더구나 중국지도자들이 홍콩의 민주적 관행들이 계속되고 발전되도록 허용하리라고 기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중국은 그러나 그들의 홍콩에 대한 태도가 많은 미국인들의 중국관에 큰 영향을 줄 것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또다른 민감 사안인 대만 문제에서 중국은 자기의 권리주장에 절대적인 자세를 견지할 것이며 국제사회가 대만 정부와 어떤 관계라도 맺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할 것이다.대만에 전투기를 판매하려는 미국의 계획도 큰 저항을 받을 것이다.우리는 중국 군사력이 대만을 위협할 능력을 시범보인 지난해의 긴장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재연되는 것을 목격할 수도 있다.그럼에도 미국은 대만에 대한 의무를 완수하고 흔들림없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그밖의 지역에 대해 중국이 어떻게 나올까는 덜 분명해 보인다.그이유는 등 사망 이전에 관련 정책들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주요 원인이다.그래서 중국이 북한 식량난 문제에 개입해 대량의 식량지원에 나설지는 확실치가 않다.하지만 미국은 전쟁을 피하고 북한의 어떤 붕괴사태도 관리될 수 있도록 상호정책 협의를 할 만큼 중국을 개입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동아시아 경제/노조에 신이치 일 아세아대학 교수/중국도약은 아주발전 “핵”/개혁·개방의 흐름 단절 안될것 혁명가 등소평옹이 타계했다.그가 남긴 업적과 역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할 생각은 없지만 다음과 같은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등이 주도한 개혁·개방정책은 사람들의 욕망에 불을 붙여 중국경제를 「거대한 용」으로 소생시키며 21세기에는 미국과 유럽,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제의 잠재적 「핵」으로서 세계경제 틀 안으로 진입시킬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그러한 것은 중국인들에게 강한 희망과 자신감을 가져다주었다.중국의 개혁·개방 흐름이 등소평의 죽음에 의해 바뀌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판단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국경제가 시장경제로 이행함으로써 고도성장이 이룩됐다는 사실은 매우 시사적이다.인간의 욕망을 긍정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시스템의 도입으로 경재발전이 가능하게 된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자본주의를 초월하는 것으로 등장한 사회주의경제 시스템이 사실은 규제의 덩어리로 발전을 저해했다는 것은 옛 소련이나 중국의 경험이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 의미로 등소평 사망직전에 일어난 북한의 황장엽 서기 망명사건은 상징적이다.주체사상의 창시자라고 하는 황서기의 망명은 김일성체제의 종언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더욱 주목해야할 것은 북한이 경제적으로는 이미 붕괴했다는 점이다.황서기도 「사람을 굶기는데 무슨 사회주의인가」라고 지적했다.북한은 80년대말 배급제도가 기능하지않아 계획경제체제는 붕괴되고 말았다.망명자의 속출은 인민이 자기체제를 포기했음을 의미한다.「인간이 주체」라고 계속 주장해도 인민을 철저히 지도자에 복종시키고 감시하지 않을수 없는 체제에서의 경제발전은 어렵다는 것이 분명하다.그러한 북한에 경제원조를 얼마나 하더라도 그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지나지않는다.북한의 연착륙설은 환상이라고 말할수 밖에 없다.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중국경제의 세계경제로의 등장은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 동아시아경제에 거대한 충격을 주고 있다.일본을 선두로 아시아의 신흥공업경제군(NIEs),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 경제발전이 차례로 당구와 같이 연쇄반응해온 동아시아에 있어서 중국이라는 거대한 기관차의 등장은 동아시아경제의 발전가능성을 더한층 높이는 것이라 말해도 좋을 것이다.세계의 투자가의 눈이 아시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중국경제의 거대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론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중국경제가 앞으로 순조롭게 발전해 나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있다.중국의 지금까지의 발전이 외자 유입에 주로 의존했다는 것은 명백하다.문제는 그 발전을 보다 내실있고 영속성 있는 것으로 할수 있는가하는 점이다.이를 위해서는 중국이 국제규범을 준수하고 경쟁원리에 의해 움직이며 투명성 있는 시장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런 의미로 ASEAN 국가가 중국에 투자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시장개방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온 것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그것이 ASEAN 국가의 계속적인 발전을 보증하고 있다.주목하고싶은 것은 그 문제가 ASEAN이나 중국에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미국경제의 재생,일본경제의 어려움이라는 대조적인 현상도 그점에 깊이 관련돼 있다고 말할수 있다.다시말해 규제완화 등 보다 매력적인 투자환경 정비를 추진한 미국 경제가 부활한 반면 그것이 불충분하고 대응이 늦은 일본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가.김영삼 대통령 정권은 출범과 함께 종래의 권위주의적인 정책운영방식에서 탈피,「국민의 자발적 참여와 능동적 창의」를 원동력으로 하는 새로운 정책운영방식을 추구할 것을 분명히 했다.그러한 아이디어는 상술한 세계적인 움직임에 대응한 것으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한국경제의 약진은 그러한 아이디어의 실천에 의한 것이라고도 말할수 있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도 그 결과이다.그러나 한보철강 부정융자사건의 발생은 권위주의적 정책운영방식이 여전히 청산돼지 않은채 남아있음을 보여준다. OECD가입에 따라 한국은 앞으로 보다 개방적이고 투명성 높은 정책운영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그것은 한국경제에 큰 고통과 마찰을 가져다 주겠지만 그러한 진통을 극복하여 한국경제는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 탈바꿈할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북아 정세/예브게니 바자노프 러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일 대외영향력 확대 제동/한반도 균형유지정책 계속 추진 중국 고대의 진시황제가 죽었을때 각종 희귀보물에 덮인 지하궁전과 거대한 석조전사등이 만들어졌다.살아있는 짐승과 사람까지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1976년 혁명지도자 모택동이 죽었을때는 수천만 중국인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중국에는 모의 초상화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었다.그러나 중국개혁의 원로 등소평은 특별한 거만도 떨지않고 조용히 역사속으로 사라졌다.거의 모든 중국인들은 울지 않았다. 등소평의 그러한 죽음은 중국의 많은 진전을 나타내는 것이다.(서방처럼) 곧바로 죽음을 알리고 당국은 장례위원회를 구성,그에게 경건한 조의를 표시했다.수천년 중국역사를 더듬어 보면 개혁주의자들은 처참한 말로를 맞았다.독살을 당하거나 능지처참을 당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개혁주의자들을 용인하지 않는 전통은 중국만 그러한 것은 아니다.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만들려는 많은 선각자들은 당대 많은 학대를 받아왔다.고대 그리스·로마가 그랬고 독일·프랑스·러시아·이란등 현대국가에서도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났다. 세계의 관심은 등이 사라진후 그가 추진한 개혁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첫번째 시나리오는 개혁의 중단이다.등의 개혁으로 심천 일부 해안지방의 도시들은 서방국가 도시 이상으로 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체제인사들은 탄압을 받고 소수민족문제가 악화되고 있다.이런 문제들이 중국개혁에 장애물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더욱이 후계자 문제가 통치위기로 까지 이어질지 모른다.지배엘리트가 분열되고 이것이 지방 작은 도시까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소수민족의 항거가 일부 국경에서 일어나고 있다.이것이 다시 대도시의 사회혼란으로 이어질지 모른다.1920∼1940년대 상황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일부는 러시아에서 동지를 구할 것이고 다른 일부는 미국과 미국의 협력자 대만에 손을 뻗칠지도 모를 일이다.이렇게 되면 중국은 더이상 한반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지못할 것이다.힘도 없고 한반도문제에 간여할 욕심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등소평식 개혁이 무너질거라는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많은 어려운 문제가 있었음에도 중국은 이미 경제발전에서 두드러진 업적을 일궈냈다.가까운 장래에 「아시아의 큰 용」으로 변해있을지 모른다.홍콩이 반환되면서 용의 힘은 더 커질 것이다. 중국의 이러한 힘을 느끼는 쪽은 조만간 동남아시아가 될 것이다.이와함께 북경은 세계무대에서 정치적 군사적 입지를 확대하려는 일본의 영향력에 제동을 걸 것이다.중국과 일본은 동남아시아시장에서 주요 경쟁자가 될 것이다.이같은 두번째 시나리오 아래서 중국은 북쪽(러시아)에 대해 강경한 입장에 설 것이다.지금도 엄청난 수의 중국인 정착민들이 시베리아 지역과 극동지역으로 세력을 넓히고 있다.중국은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에 대해 러시아의 영향력을 대체하려 할 것이다.이렇게 되면 워싱턴과 모스크바,도쿄는 중국의헤게모니를 견제하기 위해 자연스레 뭉칠 것이다.그러나 동맹국가내 복잡한 사정때문에 실질적인 결속력은 강하지 못할 것이다.미국­일본의 무역분쟁,러시아­일본의 영토분쟁,미국­러시아의 유럽안보분쟁 등의 문제가 있다. 중국은 이러한 시나리오 아래서는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으로 남아있는한 북한쪽에 계속 남아있을 것이다.동시에 중국은 경제적 인센티브를 동원,한국을 가능한 한 미국과 떼어놓으려 할 것이다.두번째 시나리오에 상당수 전문가가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이는 「제3의 시나리오」만 못하다.세번째 시나리오는 등소평식 개혁이 계속되며 중국은 안정과 경제성장을 지속한다는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은 남을 것이며 북경정부는 계속 현대화의 필요에 외교정책의 초점을 맞출 것이다.그러한 외교정책은 현실적이고 온건한 외교노선이다.이는 갈등과 대결을 피하면서 동·서방 모두에게 이로운 측면이 있다.이러한 전략의 틀내에서 중국은 한반도에 균형유지정책을 계속할 것이다.적대적인 두개의 한국을 가급적 머리를 맞대게 할것이다.북한이 만일 붕괴된다면 중국은 슬쩍 발을 떼내 현상에 순응할 수 있다.결론적으로 등의 사후에는 「제3의 시나리오」가 가장 이상적일 것으로 본다.
  • 원측 스님을 찾아/송상용 한림대 사학과 교수(굄돌)

    중국 내륙에 있는 서안은 2천여년에 걸쳐 열한 왕조의 수도였던 중요한 도시다.그곳은 일찍이 비단길의 출발점이었고 동서문화의 교류는 당나라때 절정에 이르렀다.뿐만 아니라 서안사변 같은 현대사에서 뺄수 없는 사건도 여기서 일어났다. 그러기에 오늘날 서안은 중국의 대표적인 관광지다.관광객들은 진시황릉과 세계 8대 기적의 하나라는 병마용,그리고 양귀비가 목욕했다는 화청지를 어김없이 돌아본다.그러나 당의 고승 현장이 불경을 번역한 대안탑과 그의 제자 원측에 관심을 갖는 한국관광객은 많지 않다. 신라 왕족으로 알려진 원측은 7세기 초 당에 유학해 유식사상을 공부했다.그는 여섯나라 말에 능통했고 불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책임자였다.원측은 방대한 업적을 남겼지만 경쟁자 규기의 시기를 받아 이단시되었고 저술의 일부가 전할 뿐이다. 서안에서 50리 떨어진 흥교사에 원측의 사리탑이 있다.두번째로 서안에 간 기회에 택시를 달려 아무도 없는 측사탑 앞에 섰다.40년전 박종홍선생이 처음 시작한 한국철학사 강의에서 원측의 사상을 들었을 때의 감격이 되살아났다.그런데 절을 둘러보다가 일중불교친선비를 발견하고 놀랐다.현장과 원측이 일본 불교계의 존경을 받는다지만 한국이 먼저 했어야 할 일이다. 구 동베를린에 있는 훔볼트대학의 일본학연구소는 백년전 그곳에 살았던 일본 작가의 집이다.일본 정부에서 사서 대학에 기증했다고 한다.이 연구소는 일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한국 불교도들도 흥교사에 우리나라가 낳은 세계적인 고승 원측을 기리는 비를 세워야 한다.그곳이 한국인들의 필수 관광코스가 되어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다.
  • 동서고금의 흥미로운 「상징문화」/박영수씨의 「행운의 풍속」

    ◎새로운 사람들간/불행 막기위한 로마인의 열쇠 태우기 등/21가지 주제통해 분석한 인류의 신앙행태 고대 로마사람들은 매년 행운의 여신 포르투나의 축제일(8월17일)이 다가오면 앞다퉈 문 열쇠를 불속으로 던졌다.불행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소유」의 상징인 열쇠를 정화하는,일종의 액막이 행위였다.원화소복의 의식 혹은 문화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인다.하지만 행운을 기원하는 인간의 마음만은 언제나 닮은 꼴이다.최근 출간된 「행운의 풍속」(새로운 사람들,박영수 지음)은 행운과 금기에 관한 풍속과 유래,상징문화를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이 책은 21가지의 상징적인 주제를 통해 인류의 삶과 맥을 같이해 온 행운의 실체에 접근한다.인류의 풍속사를 살펴보면 행운기원 보다는 불운방지의 관습이 더 널리 행해졌음을 알 수 있다.특히 부적은 보이지 않는 신의 대용품으로 인류의 시작과 함께 한 신앙형태다.고대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은 손모양의 붉은 무늬가 재앙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해준다고믿어 벽에 그 무늬를 그렸으며,이집트인들은 풍뎅이를 부활의 상징으로 신성시해 풍뎅이 무늬를 새긴 반지를 끼고 다녔다.또 중국인들은 악귀에 대항하는 주문을 노란 종이위에 써서 태운 다음 그 재를 물에 타서 삼키는 이른바 「소회탄부」로 악귀를 쫓았다. 독일의 미술사가인 빌헬름 보링거는 『문양은 인간의 내적인 불안으로 생긴 공간공포를 진정시키기 위한 추상충동에 의해 나타난 것』이라고 말했다.그렇다면 인류가 그려온 수많은 무늬속에는 과연 어떤 뜻이 담겨 있는 것일까.이 책은 풍부한 사례를 통해 각 문화권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무늬의 상징성을 밝힌다.특히 동양문화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문양인 박쥐무늬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곁들여 눈길을 끈다.동양에서 박쥐는 오복을 가져다주는 동물이자 다산을 상징하는 동물이다.태국에서 박쥐는 장수를 상징하는 영물로 인식되며,인도네시아 발리섬에서는 풍년을 상징하는 신령한 동물로 간주된다.중국에서도 박쥐는 행복과 장수의 상징이다.그러나 서양에서는 박쥐야말로 부정적 이미지의표상이다.바빌론시대에는 악령이나 유령으로 묘사됐으며,중세시대부터 셰익스피어시대까지는 죽음·공포·불운·악마를 상징했다.마녀나 드라큘라가 집에 들어올 때는 박쥐모습을 한다고 믿었으며 박쥐를 악귀들의 심부름꾼으로 여기기도 했다. 히틀러는 그의 저서「나의 투쟁」에서 이렇게 썼다.『붉은 바탕은 우리가 벌이는 운동의 사회적 이상을 나타내고 흰색원은 민족적 이상,하켄크로이츠는 아리안족의 승리를 위한 투쟁의 사명을 나타낸다』 이 책에서는 나치스의 당장인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에 담긴 뜻을 면밀하게 살핀다.하켄크로이츠는 유럽백인의 원조인 아리안족 최고의 상징으로,「불의 요람」 또는 행운을 뜻했다.대중조작 기술이 뛰어났던 히틀러는 바로 이 「불의 요람」에서 불·힘·권력의 속성을 파악했으며,국가사회당의 지도권을 장악했던 1920년에는 하켄크로이츠를 문장으로 선택했다. 거울의 상징성에 대한 동서양 문화권의 해석을 비교·소개하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서양에서는 거울을 마법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믿었다.고대신화를 보면 메두사를 퇴치하는데 거울을 사용했으며,뿔달린 백마 유니콘을 유혹하기 위해서도 거울을 이용했다.거울은 주구나 신기,나아가 통치자의 상징물로도 활용됐다.거울에 왕권을 부여했음은 진시황제나 고려·조선의 예에서 알 수 있으며,일본 왕실의 삼보에 거울이 포함돼 있는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고려태조 왕건은 객상 왕창근이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고경에 새겨진 글자를 해석한뒤 용기를 얻어 고려건국을 결심했고,조선태조 이성계는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꾼뒤 길몽이라는 해석에 자신감을 얻어 조선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이 책은 단순히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흥미위주의 책이라기 보다는 동서양 상징문화를 「행운과 불운의 방정식」으로 풀이한 풍속 소사전이라 부를수 있다.
  • 중 서안 초호화 빌라촌 건설 “붐”

    ◎서구식구조 최고급 자재… “현대판 아방궁”/외국자본가 등 몰려 분양동시 매진 선풍 진시황의 300리 아방궁이 세워졌던 중국 서안에 「현대판아방궁」이 들어서 일대선풍을 일으키고 있다. 중국 샐러리맨의 평균임금 400년치를 고스란히 쏟아부어야만 살 수 있는 초호화판 빌라가 분양과 동시에 매진되는 폭발적 인기를 끈 것이다. 화제의 대상은 중국 섬서성 서안시 북부 미앙대로 중간지역에 있는 아하화원 빌라촌.10만㎡(3만여평)의 대지위에 5억위안(한화 5백억원)을 들여 서구식 초호화빌라 69채와 10개 동의 고급아파트가 건립돼 최근 입주를 시작했다.이 가운데서도 특히 빌라는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3개 층의 단독형으로 중국실정에서는 그야말로 비싼 값이다.중국돈으로 3백50만위안(한화 3억5천만원)에 팔렸다니 중국노동자 평균임금 700원의 5천개월치다. 빌라는 집집마다 넓은 정원에 수영장이 달려 있어 분위기를 압도한다.현관에 들어서면 최고급건축자재를 사용한 거실과 부엌이 휘황찬란하다. 지하층 역시 상상을 초월할 정도.우리나라32평형 아파트 욕실의 3배크기 욕실에 원통형 대형욕조가 탄성을 자아내며 10여명이 원탁에 둘러앉을 수 있는 식당이 2개나 있다.게다가 홈스탠드바도 설치됐고 30여명이 함께 노래하며 춤출 수 있는 무대도 있다. 이들 빌라는 당초 업무와 주거겸용으로 설계됐으나 막상 분양하자 외국자본가와 중국 신흥부호가 주거목적으로 단번에 사들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같은 「꿈의 주거공간」을 세운 사람이 30대 후반의 여장부라는 점.건설·금융·여행·제조·무역 등 35개 사기업집단을 이끌고 있는 신대륙집단유한공사의 서소평 총재가 주인공이다. 공무원생활을 하다가 부동산사업에 뛰어들어 떼돈을 번 사천성 출신의 서총재는 93년 개혁·개방정책에 발맞춰 국제화를 추구하던 서안시정부의 제의로 이같은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 85년 전두환­허담 밀담 내용

    ◎“아웅산테러뒤 군부 전쟁계획/전씨 지휘관들 설득 중단시켜”/“한반도 전쟁발발때 대전발화” 경고­전/“테러 사과하라고 하면 큰일 망칠것”­허 지난 85년 9월5일,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북한밀사 허담(당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91년 사망)과 경기도 기흥 동아그룹 최원석 회장의 별장에서 만나 남북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한 김일성 주석의 친서를 전달받고 남북 긴장완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 것으로 밝혀졌다. 월간조선이 입수해 11월호에 공개한 원고지 400자 분량의 「전두환­허담의 극비대화록」은 특히 「지난 83년 아웅산폭파 테러사건 직후 우리 군이 북한과의 전쟁을 계획했으나 당시 전대통령이 군지휘관들을 설득,전쟁계획을 중단시켰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전전대통령은 『한국이 원자탄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이미 소지하고 있다』고 말한것으로 전하고 있다. 대화록에 따르면 전 전 대통령은 『북한은 우리와 전쟁하게 되면 일주일안에 끝낼수 있다는 식으로 판단하고 있으나 이는 불가능한 말』이라면서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제 3차대전으로 발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허담에게 경고했다. 이밖에 『진시황이 불로초를 캐가지고 아무리 건강관리를 잘해도 때가 되면 돌아가시는 것 아니냐… 김주석도 서울에 오시고 해야 할 터인데 그 어른은 평생을 통해 아마 이쪽에 한번도 안 와보신 것로 알고 있다』는 전 전 대통령의 발언도 포함돼 있다. 허담은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으로부터 아웅산테러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받고『그 문제를 시인할 수도 없고 더구나 사과할 수도 없는게고 또 남측에서 그걸 우리보고 시인하고 사과하라든가 이렇게 되면 결국은 우리가 큰일(정상회담을 지칭)을 망칠 수 있다』고 말했다는 것. 당시 김일성이 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는 『나는 이번에 대통령각하가 북남 최고위급 회담을 진행하기 위하여 평양을 방문하려는 의향을 표시한 것과 관련하여 그 준비사업을 추진시킬 목적으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비서 허담동지를 나의 특사로 서울에 파견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친서는 또 『나는 대통령각하의 우호적인 관심속에서 나의 특사의 서울방문이 좋은 결실을 가져오며 각하와의 뜻깊은 평양상봉이 꼭 이루어지게 될 것을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전 대통령과 허담이 만난 자리에는 우리측에서는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박철언 안기부장특보,북측에서는 한시해(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국 직속부부장·사망)가 배석한 것으로 전하고 있다.〈서동철 기자〉
  • 서울신문 새 연재 「소설 사기」 집필 김병총씨

    ◎“「사기」는 정치·전략·경영 종합서”/진시황의 흥망성쇠 등 춘추전국시대 무대/당대 영웅호걸들의 숨가쁜 합종연횡 그려/“흥미진진한 줄거리로 역사적 교훈 전할터” 『옛 중국의 역사를 담은 「사기」를 읽다보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실감납니다.2천3백년전의 일화들과 너무 닮은 사건들을 우리 주변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10월1일 서울신문 전면 가로쓰기 단행과 함께 서울신문에 새롭게 연재될 「소설 사기」의 집필을 맡은 작가 김병총씨(57).다음 회를 손꼽아 기다릴만큼 흥미진진한 줄거리에 역사적 교훈을 듬뿍 담아 전하겠다며 각오가 대단하다. 김씨가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를 소설로 풀어쓸 결심을 하게된 것은 7년여에 걸쳐 이의 평역에 매달리면서부터.국내 첫 완역본인 「평역 사마천의 사기」 전 10권을 집문당에서 내놓은 94년 무렵 그는 「사기」의 세계에 흠뻑 빠진 예찬자가 돼 있었다.「사기」를 읽을수록 『이야말로 나를 위한 소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사기」는 원본 1백30권 분량에 중국대륙의 고대사를 담고 있습니다.방대한 만큼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끝없이 쏟아져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또한 인생의 지혜가 샘 솟습니다.오늘날의 정치전략,경영 등이 이미 「사기」하나에 종합돼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소설은 진시황의 아버지 여불위가 등장하는 춘추전국시대부터 진시황의 천하통일,유방의 등장까지 무수한 영웅호걸들이 합종연횡을 숨가쁘게 그려낸다.야심찬 대장부들의 뒤에는 교태를 감춘 미모의 여인들이 양념처럼 숨어있다.최근 정치판의 이전투구며 권력투쟁의 거의 모든 형태를 여기서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것.이같은 입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김씨는 역사서가 결코 보여줄 수 없는 생동감넘치는 이야기의 공간을 짜내겠다는 계획이다. 지난 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헤 동화작가로 등단한 김씨는 왕성한 필력으로 40년간 쉬지않고 소설을 써왔다.특히 「검은 휘파람」「칼과 이슬」「달빛 자르기」「대검자」 등은 「한국무예소설」을 개척한 작품이라고 자부한다.지난 해엔 「사라지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작품으로 한국소설가협회의 소설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책상앞을 떠나서도 연극인들의 무대검술 사범으로 활약할 정도로 펜싱과 무예에 능한 만능 스포츠맨이다.최근엔 일산에 사철탕,삼계탕 전문식당 「해피 가이」를 내는 등 「팔방미인」으로 살아온 그를 두고 친구들은 『네가 소설보다 더 소설적』이라고 평하기도 한다고. 김씨는 『이처럼 소설쓰며 쌓아온 필력은 물론 괴짜같은 삶에서 얻은 지혜를 총결집해 평생의 역작을 써내겠다』며 호기롭게 웃었다.
  • 초일류 서울신문 더 새롭게 변합니다

    ◎새달부터 전면 가로쓰기/기사는 고급,읽기는 쉽게 서울신문이 10월 1일부터 새로운 제호와 함께 전면 가로쓰기를 단행하면서 지면과 내용도 획기적으로 혁신합니다.21세기 초일류 고급정론지로 자리매김을 하는 서울신문은 앞으로 독자들에게 보다 알차고 질 높은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과 정부의 가교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지면 대혁신/「행정마당」 월요일자에/입법예고·법령공포 주2회로 확대 매주 월요일 게재하던 기존의 입법예고·법령공포를 월·목요일 주2회로 늘려 싣고 「행정마당」을 신설,관보내용 가운데 입법예고·법령공포이외의 고시·공고 등 경제활동에 필요한 행정·정책 정보를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이슈별 초점인터뷰/정부부처·기관 국장급 실무자 찾아 앞으로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각 정부부처·기관등의 국장급을 중심으로 한 실무책임자들로부터 실상을 전해들을수 있는,뉴스제공 성격의 「초점 인터뷰」란을 신설합니다. ○그래픽으로 보는 컬러 생활통계 1면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통계수치를 알기쉽게 그래픽과 그림으로 게재합니다.컬러 생활통계는 시각적인 효과를 최대로 살려 단순화함으써 필요한 생활통계가 오래 기억에 남게 될 것입니다. ○정확한 기상예보/「오늘의 날씨」 확대 날씨가 일상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짐에 따라 날씨 안내를 세분화하고 세계 주요도시의 날씨를 지도도 곁들여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도록 합니다.기상청 분석자료 외에 웨더뉴스사와 특약을 맺어 정확한 기상정보를 제공할 계획입니다. ○연재물·특집 충실히 ­언·학 합동취재 「북한은 지금」 ­세계문화유산 ­사이버 월드 ­라이프 테크 이밖에 현재 인기리에 연재중인 장기 기획물 「세계문화유산순례」와 언학협동취재의 장을 연 「북한은 지금…」,그리고 「G­7으로 가는 길」·「송화강 5천리」·「인물탐구」·「한국인의 얼굴」등도 새로운 체제로 더욱 내용을 충실히 해 연재합니다. 또 멀티미디어 시대의 각종 정보와 지혜를 담은 「사이버 월드」와 일상 생활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는 「라이프 테크」도 매주 금요일과 수요일 8개면 특집으로 발행합니다. ○뉴스면 확대 새로운 정보를 보다 많이 제공하기 위해 뉴스면을 대폭 확대합니다.1·2·3면을 종합 뉴스면으로 중요한 그날의 뉴스를 집중 보도합니다.또 국내뉴스를 중심으로 20면은 지역뉴스면,21·22·23면은 종합사회면으로 편집합니다. ○「소설 사기」 새 연재 중견작가 김병총씨가 역사소설 「소설 사기」를 새롭게 연재합니다.세계최초의 종합적 통사인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를 토대로 한 이 소설은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둘러싸고 이합집산하는 고대 중국역사를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을 통해 보여줄 것입니다.
  • 김일성 찬양망발 언제까지(사설)

    며칠전 우리 TV들은 평양의 「김일성궁전」이라는 것을 일부 보여주었다.최근에 북한이 공개한 필름이다.그것이 어찌나 호화로운지 1㎞에 이르는 회랑의 한가운데로 해자가 흐르고 8t무게의 주물장식이 달려 있는 문하며 어마어마하게 공들인 장식들이 번쩍거렸다. 그것을 깨끗이 유지하기 위하여 무릎꿇고 앉아서 하염없이 닦아내고 있는 북한주민 모습도 보였다.백성의 고혈로 자신의 궁전을 만들어놓고 굶주리고 헐벗은 백성의 원한을 산 대표적 인물은 세계사에 악명 높은 진시황제다.그는 그러나 군주제도시절의 전제군주였다.인민의 평등이념을 내세운 근세의 권력자는 아니다. 그런데도 그를 방불하게 하는 궁전을 지어놓고 인민을 무릎꿇려 부려먹은 「지도자」가 김일성이고 그 확실한 「50년」의 증거중 하나가 「인민궁전」인 셈이다.헐벗고 굶주리다 못해 초등학생까지 수업을 작파하고 산과 들로 「먹을 풀」을 찾아나서게 하고,주민으로 하여금 연변으로 중국으로 식량구걸길을 걷게 하고,외교관이 마약까지 밀매하게 하고,국제사회에 온갖 궁상으로「도움」을 떼쓰게 만든,인권이라고는 전무한 「이상한 나라」를 유산으로 남긴 그를 찬양하는 성명을 한총련이 내놓았다고 한다. 항일무장투쟁을 했고 친일파청산과 새 사회건설을 노력한 김일성이 제대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라고 한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항일투사들이 해방된 나라에 남겼을 「50년」이 그렇게 밖에 안된다면 그것도 찬양할 일일까.생각해볼 일이다.김일성 일가와 그 주체사상만이 정의고 진리라는 망발을 지키기 위해 황금 같은 청년기를 흙탕물에서 허우적거리는 좌경운동권 학생들의 어리석은 집요함이 환멸스럽다.그렇게 만든 것만으로도 그들을 사상적으로 오염시킨 세력을 우리는 용서할 수 없는 심정이다.스스로를 위해 이제 그만 망상에서 깨어나라.
  • 호화분묘/백홍기 강릉대 박물관장(굄돌)

    요즈음 중국에 다녀오는 여행객수가 무척 많아졌다.그래서 중국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화제에 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우리 조사단이 신라고분군을 발굴,조사하던 어느날 중국에 다녀온 몇 분이 찾아와 이 신라고분이 당시 귀족의 무덤이냐 아니면 서민의 것이냐고 물어보면서 중국 서안에서 본 진시황의 여산릉에 관한 견문담을 늘어놓았다.『중국의 만리장성이나 자금성의 웅장함이나 대만 고궁박물관의 화려한 유물에 비해서 우리나라 역사유적이나 유물은 너무 초라하고 빈약하다』는 것이었다.그 규모의 웅장함이나 호화찬란하다는 점에서 이 분의 말에 수긍이 안가는 것은 아니지만,그러한 역사기념물의 생성배경도 함께 생각해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사기에는 진시황의 여산릉 축조에 70만명의 죄수가 동원되었다고 하며,한 무제의 묘인 무릉의 축조에는 국가 공부의 3분의 1이 탕진되었다고 한다.또 한 경제의 묘인 양릉에서는 능축조에 동원되었다가 죽은 죄수가 목과 다리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 묻혀 있는 1만여기에 달하는 무덤도 발견되었다고 한다.신라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화장하여 그 재를 동해에 뿌려달라,그러면 나는 동해의 호국룡이 되어 왜구를 막겠다』고 유언했다고 하며,그 유언에 따라 경북 봉길리 앞 동해에 있는 대왕암의 해중릉침이 조성되었다고 한다.이 어찌 우리의 자랑이 아닐 수 있겠는가.우리의 황남대총도 결코 작은 규모의 왕릉은 아니지만 수많은 죄수와 백성의 희생이나 착취의 소산물은 아닌 것으로 생각된다. 요즈음에도 초호화분묘가 등장하여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종종 보게 되는데,현대의 초호화분묘는 먼 훗날 우리 후손에게 과연 어떠한 감회를 줄 것인가 궁금하다.
  • 당나라 측천무후­고종 합장분묘 건릉발굴 싸고 논란

    ◎“훼손위험” “관광유적지 개발” 중앙­지방정부 맞서 중국 분묘중 최대 규모의 하나인 건릉의 발굴여부를 놓고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논란을 벌이고 있다.지방정부는 발굴을 통해 관광유적지로 개발하려는 반면 중앙정부는 훼손,도굴등을 이유로 발굴에 반대하는 것이다.건릉은 중국 역사상 유일한 여황제였던 당나라 측천무후와 그의 남편 고종이 합장된 분묘.진시황의 무대이면서 항우와 유방,삼국지의 무대였던 섬서성 건현에 위치해 있다.서주에서 당나라까지 11개 왕조가 도읍했던 곳이기도 하다. 견고한 건축양식덕택에 황제 무덤으로서는 유일하게 훼손,도굴되지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어 그 발굴여부가 세계고고학계등 문화관계자들의 흥분을 자아내게하고 있다.훼손 안된 부장품과 고분모습을 통해 당나라 전성시대의 생생한 실상을 밝힐수 있다는 기대를 받고 있는 것이다.건릉의 발굴은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었다.84년 제6기 전국인민대회(전인대)2차 회의에서도 섬서성 대표단이 건릉 발굴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었다.주은래 총리는살아 생전 훼손등 발굴 부작용을 고려,『후대에서 할일』이라며 발굴에 반대했다.섬서성은 지난해에 이어 금년 전인대에서도 건릉발굴을 계속 요청할 방침으로 알려졌다.섬서성이 기를 쓰고 건릉발굴을 실현하려는 것은 건릉이 진시황의 병마총을 능가하는 관광명소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건릉의 규모는 묘역 전체 둘레가 40㎞,즉 1백리 가량 되지만 지금은 오랜세월을 거치며 지상의 궁전과 건물들은 모두 없어지고 능원의 둘레는 10㎞로 줄어든 상태다.발굴불가론을 내세우는 문물국과 전문가들은 완벽한 발굴이 어렵고 발굴도중 자칫 분묘와 부장품이 파괴되기 쉽다는 점과 함께 발굴작업중의 도굴위험을 내세운다.그러나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발요구 목소리는 높아만가고 있어 그 결과에 다시 세계문화계의 이목이 모아지고 있다.
  • 솔잎음료 시장이 후끈 달았다는데(박갑천 칼럼)

    『더우면 꽃피고 추우면 잎지거늘/솔아 너는 어이 눈서리를 모르는다/구천에 뿌리 곧은 줄을 그로하여 아노라』.고산 윤선도의 오우가에 나오는 솔 예찬가다.솔은 윤고산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수명이 길면서도 잎은 사시장철 푸르렀기에 옛사람들은 절조·장수·번영에 빗대면서 솔을 예찬했다. 한자 「솔송=송」은 「목」과 「공」으로 이뤄졌다.나무 가운데 지체높은 존재임이 나타난다.그에 대한 일화도 전한다.오나라의 정고란 사람이 자기 배위로 소나무가 자라는 꿈을 꾼다.꿈얘기를 들은 어떤 사람이 말했다.『당신은 18년후 삼공의 한사람이 되리다』.「송」자가 「십팔(목)」과 「공」으로 되었기 때문이다(「오록」). 우리말 「솔」은 거슬러오를때 「□」이 뿌리말로서 「살다(주)·살(육)·수리(정수리)…」따위와 핏줄을 함께한다.전국의 토박이땅이름에 보이는「살·사라·사로·사리·설·서라·서리·솔·소라·소래·소로·소리·술·수라·수리…」가 다 「□」에서 출발되어 뜻에서 「삶」과 관계를 갖는다.그러므로 나라의 산을 「철갑두르듯」 덮고있는 솔은「국토의 살­살나무­솔나무­소나무」였다 할것이다. 초근목피로 보릿고개 넘기던 시대의 그「나무껍질」은 소나무 껍질속의 흰살이었다.그리고 그땐 솔잎도 먹었다.그솔잎은 옛날 도가들의 신선식이기도.「순오지」에 쓰인 수나라장수 장손성얘기도 그를 말해준다.장손성이 여산(이산)에서 사냥하다가 털복숭이여인을 만났는데 나뭇가지로 날아오르는 품이 나는 새와 같았다.그여자는 이렇게 말했다.『나는 진시황 궁녀인데 항우가 함곡관 넘던날 산속으로 피해와서 지금껏 솔잎을 먹고 살았소』.말하자면 1천년도넘게 살아왔다는,『번갯불에 솜구워먹은 소리』다.어쨌거나 솔잎의 장수효과 한번 공골차구나 싶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지면서 솔잎마실거리 시장이 달아올랐다 한다.이름난 회사들이 고개 내밀고자 종부돋움하고 있다는것.그걸로 지난해 66억여원어치를 판 한업체는 올해 1백50억원어치를 팔 계획이라니 그 열기를 짐작할만하다.그건 좋지만 외목장사하는 세상도 아니고 솔밭이 메숲진것도 아닌데 단거리 솔잎은 어찌 조달하는지.「새로운 인간송충이」로 되고 있지나 않는 것일까.「지봉유설」(훼목부)의 다음 글귀도 심기를 불안하게 만든다.『소나무와 잣나무는 잎으로 뿌리를 보호한다.그래서 잎을 자르면 다시 가지가 나지 않는다』.
  • 석굴암·팔만대장경·종묘 「유네스코 세계유산」 지정 의미

    ◎한국문화재 3점 인류 문화유산으로/고대·중세·근세 것 1개씩 채택… 더욱 값져/세계 100국 440개 등재… 기술·재정지원 받아 한국의 문화재들이 4일부터 9일까지 독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유네스코산하 세계유산위원회 제19차 총회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하게 되었다.세계유산위원회 21개 이사국은 이번 총회 기간중 지난 7월 세계유산위원회 집행이사회 회의를 거쳐 권고된 각국 문화재의 세계유산등록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어서 우리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지난 집행이사회에서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토록 권고된 우리 문화재는 석굴암(국보 제24호)·불국사(사적,명승 제1호)와 판만대장경판(국보 제32호)및 판고(국보 제52호)·해인사(사적,명승 제5호),그리고 종묘(사적제125호)등 3건.우리나라의 전통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는 이들 문화재는 고대에서 중세,근세를 망라했다는 점에서 더욱 값진 세계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 등록제도는 지난 72년 유네스코 제17차 총회에서 체결된 「세계문화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75년부터 효력을 발생하기 시작했다.그러니까 세계유산위원회가 협약 가입국의 유산중 오늘의 인류들이 뚜렷하게 보존할 보편적 가치가 인정되는 유산을 유네스코 세게유산일람표에 등재하는 제도다.세계유산으로 등록되면 세계유산기금으로부터 기술·재정적 원조를 받을 수 있고 세계유산협약국이 매 5년마다 그 보전상태를 모니터해 보고하도록 돼있다.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보전 관리가 가능한 것이다.그리고 국내외 대상 문화유산이 있는 지역에는 관광객이 증가돼 고용기회와 수입이 늘어날 수 있다.특히 유산에 대한 국가의 자부심을 고취시켜 국가적 책임감도 형성시키는 이점이 반드시 뒤따른다.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다는 문화민족으로서의 자긍심일 것이다. 세계유산은 문화유산 3백26개를 비롯해 자연유산 98개,복합유산 16개등 모두 1백개국에서 4백40개가 등록돼있다.문화유산에는 미국의 독립기념관,자유의 여신상,차코 문화국립공원이 북미에 분포되었다.이밖에 유라시아의 그리이스의 아폴로신전,델피 고고유적,아테네 아크로폴리스,로데스 중세도시,이탈리아의 플로렌스 유적도시,피사의 사탑등을 망라했다.아시아만 하더라도 중국이 만리장성,진시황릉,명청대궁전,라사폰텔라궁등 14건이 등록을 마쳤다.일본의 경우 5건,인도 21건,인도네시아 4건,필리핀 2건,태국 4건,베트남 2건등이 등록돼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88년12월 세계 1백2번째로 세계유산협약에 가입했다.유네스코 세계유산협약과 인연을 맺은지 7년째지만 아직까지 단 한건의 문화·자연 유산도 등록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번 문화유산 등록은 국가적으로 매우 뜻이 깊다.따라서 이번 세계유산 등록은 우리 문화재가 유수한 세계의 문화유산과 동등하게 평가되고 비교되는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를 한껏 모으고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보고/우리 문화유산 사랑 계기되길/최몽룡 서울대 박물관장 우리나라의 불국사­석굴암,해인사 대장경판­장경판고와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다.좀 뒤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우리민족의 얼과 솜씨가 밴 문화재가 세계문화유산의 반열에 오른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불국사는 통일신라 서기 710년(경덕왕 10년)김대성의 발원으로 창건한 사찰이다.여기에는 다보탑(국보 20호),삼층석탑(국보 21호),연화칠보교(국보 22호),청운백운교(국보 23호),금동비로자나불(국보 26호),아미타여래좌상(국보 27호)과 사리탑(보물 61호)이 있다.또 19 66년 10월 삼층석탑(석가탑)의 해체 수리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을 비롯한 동경,옥류와 은제사리함 등은 국보 126호로 일괄 지정받았다.그중 두루마리로 된 다라니경은 8세기경에 제작된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이라 할 수 있다. 석굴암석굴(국보 24호)은 751년(경덕왕 15년)김대성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후원전방의 석실이다.그안에 본존불을 비롯해 십일면관음보살,십대사천왕상,금강역사상과 팔부신중상들이 조각되어 있다.종교성과 예술성을 공유한 이들 조각은 세계적 예술품이거니와 우리조상이 남긴 걸작의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해인사 대장경판(국보 32호)은 고려 고종때 대장도감에서 1233년∼1248년에 걸쳐 판각하였는데 매수가 8만여판에 이른다.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가장 완벽한 대장경이다.장경판고(국보 52호)는 정면 15칸 측면 2칸의 우진각지붕의 건물로 홍치원년명의 기와(1488년)가 나와 조선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이 건물은 장경판을 보존하기 위한 시설로 통풍시설 등 선조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인다.이들 이외에도 해인사에는 고려각판(보물 206호),대장경 판본(보물 972호),목조희랑대사상(보물 999호),석조여래입상(보물 264호)과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 518호)이 있어 해인사의 중요성을 한층 부각시킨다. 종묘(사적 125호)는 조선시대 역대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왕과 왕비의 신주를 봉안한 사당으로,태조의 묘인 태묘의 정전(국보 227호)과 조묘인 영녕전(보물 821호)으로 이루어진다.이 건물은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좌변에 둔것으로 1394년(태조3)터를 보아 1546년(명종 1)에 완공되었다.그후 임진왜란때 불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증건되어 오늘에 이르른다.이들은 선조에게 제사지내는격식과 장엄함을 건축공간에 잘 표현한 조선조의 뛰어난 건축물이다. 이들 세곳은 국보와 보물의 창고로 여겨질 만큼 많은 중요한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이와같이 우리나라에는 선사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유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이 아직까지 없었다.이미 등록된 중국의 14건과 일본의 5건에 비하면 우리 역대 정부의 문화정책이 빈곤했던 것도 사실이다.이들 외에도 앞으로 세계의 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부분이 많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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