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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콤한 사이언스]“아프냐, 나도 아프다”…사이코패스에게는 없는 ‘이것’ 발견

    [달콤한 사이언스]“아프냐, 나도 아프다”…사이코패스에게는 없는 ‘이것’ 발견

    세월호 5주기를 맞아 개봉한 영화 ‘생일’을 본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단식을 하고 있는 유가족들 앞에서 갖가지 음식을 사들고 가서 먹어댄 사람들이나 여전히 교통사고 운운하면서 유가족들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라는 문장으로 대변될 수 있는 타인의 감정에 대한 공감능력이 이렇게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뭘까. 최근 과학자들이 타인의 감정과 고통에 공명하는 뇌신경을 발견해 주목받고 있다. 네덜란드 왕립신경과학연구소 소셜브레인실험실, 라이덴대 심리학연구소 인지심리학실험실, 암스테르담대 심리학과 공동연구팀은 타인의 고통을 관찰할 때 스스로 고통을 경험할 때와 똑같은 세포를 활성화시킨다는 것을 규명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연구결과는 생물학 분야 국제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11일자에 실렸다. 뇌과학이 발달하면서 감정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이 슬퍼하는 것을 볼 때 함께 슬프고 친구가 손가락을 베는 것을 보면 움찔하는 느낌을 갖는 공감능력은 여전히 미지의 부분이다. 특히 대부분의 정신질환이 감정이입이나 공감 능력이 부족 때문에 나타나거나 질환이 발생할 경우 감정결핍이 결과로 나타나기도 해 이 부분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연구팀은 생쥐를 이용해 공감능력을 처음 실험했다. 연구팀은 생쥐들에게 전기충격이나 날카로운 물질로 찔러 고통을 느끼도록 하면서 다른 생쥐들이 그 장면을 지켜보도록 하면서 쥐의 뇌 움직임과 행동을 관찰했다. 그 결과 쥐들은 공포감을 느끼면 얼어붙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생쥐의 고통스러움을 지켜본 생쥐들이 얼어붙는 모습이 관찰됐다. 가장 늦게 진화한 뇌 부위이자 감정을 관장하는 신피질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보면 신피질 부분의 뉴런이 활발히 움직인다는 것이다.연구팀은 약물을 주입해 신피질의 뉴런 활동을 억제한 뒤 똑같은 실험을 했다. 그러나 약물을 주입받은 생쥐는 타인의 고통을 보면서도 전혀 반응하지 않는 것이 확인됐다. 연구팀은 자신의 고통을 느끼고 타인의 고통을 볼 때 활성화되는 뉴런을 ‘공감 거울 뉴런’이라고 명명했다. 쥐의 뇌는 피질구조나 뉴런 형태가 인간의 뇌와 매우 유사해 쥐에게서 나타난 부분은 사람에게서도 똑같이 나타날 것이라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크리스티앙 케이저스 왕립신경과학연구소 교수는 “이번에 발견한 공감 거울뉴런은 지금까지 해석되지 않았던 불가사의한 정신장애에 대해 어느 정도 설명해줄 뿐만 아니라 우리 진화와 깊이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라며 “쥐 같은 동물들에게도 공감이라는 근본적 감정이 있는데 사람에게서는 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있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잊지 않고 함께 지켜줄게요”… 빗속 유족 보듬은 ‘안전 약속’

    “잊지 않고 함께 지켜줄게요”… 빗속 유족 보듬은 ‘안전 약속’

    주말·휴일 안산·목포서 아픔 기억하며 눈물 음악·연극으로 희생자 안식 기원·유족 위로 중·고생 ‘노란 풍선 인간리본’ 만들어 애도 ‘진상규명’ 꾹꾹 눌러 쓴 엽서로 염원 표현도“4월은 잔인합니다. 흐르는 세월에도 잊혀지는 게 아니라 더 기억이 뚜렷해지니까.”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이틀 앞둔 14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에서 만난 정성욱(49)씨는 이렇게 되뇌었다. 금쪽과도 같은 아들 동수(당시 17·단원고 2년)군을 잃은 그는 “트라우마 치료 권유를 받았지만 아이에게 미안해 포기했다. 참사 이후 정권교체에도 변화를 피부로 느끼진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빗속에선 ‘경기 페스티벌-약속’이란 타이틀 아래 세월호 희생자들을 보듬는 자리가 마련됐다. 별이 된 희생자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 그리움으로 아파하는 가족을 지켜주겠다는 ‘약속’, 보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웃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이란 의미를 담았다. 경기팝스앙상블이 오후 4시 안산 와동체육공원에서 붐업 공연 ‘나비날다’를 열어 팝송과 클래식, 뮤지컬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등을 연주했다. 오후 7시 30분 메인 공연에서는 경기도립국악단의 추모곡 연주, 도립무용단의 위로 퍼포먼스로 애잔함을 더했다. 소리꾼 전태원의 ‘상사화’, 크로스오버 밴드 ‘두 번째 달’의 연주, 성악가 홍일의 ‘시간을 보내고’로 하늘나라에서라도 안식을 누리라고 빌었다. 이어 제주에서 온 꼬마 동화작가 전이수 토크쇼, 그림 전달식이 있었다. 도립극단의 낭독 공연과 출연진 전원의 합창 ‘잊지 않을게’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지난 12일 안산 예술의전당 달맞이극장에서 도립극단이 ‘태양을 향해’를 선보였다. 아픔을 보듬고 깨달아가는 과정을 통해 불행도 삶의 과정이며, 그조차도 소중하다는 것을 전달하려는 작품이다. 13일엔 경기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같은 곳 해돋이극장에서 마시모 자네티의 지휘로 세월호 사건에 대한 안타까움, 공포, 탄식의 감정을 담은 이은선의 ‘물 속에서(Im Wasser)’,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등을 연주했다. 기획을 맡은 정도연 연출가는 “남은 사람과 그 곁을 돕는 고마운 이웃에게 위로와 감사의 마음을 건네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남 목포신항엔 13일 목포 중고학생연합회 주최 추모식에 학생 416명이 참석해 아픔을 기억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은 머리 위로 노란색 풍선을 들어 ‘인간 리본’을 표현하며 희생자들을 애도했다. ‘잊지 않겠다’는 맹세와 ‘진상규명’을 바라는 마음을 꼭꼭 눌러 쓴 노란색 엽서로 염원을 기원하기도 했다. 중견작가 정태관 화백은 목포 평화광장에서 304m 길이 옷감에 세월호 희생자 304명 이름을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시민 릴레이 퍼포먼스’ 문화제를 개최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안산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진보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기각

    ‘나경원 의원실 점거농성’ 진보단체 회원 1명 구속영장 기각

    법원 “증거 은닉·도주 우려 인정 어려워”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의원회관 사무실을 기습 점거해 농성을 벌인 진보단체 소속 대학생의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됐다. 1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은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받는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 A씨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측은 “A씨가 증거를 인멸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기 어렵다”고 이유를 밝혔다. A씨 등 이 단체 회원 22명은 지난 12일 오전 10시쯤 국회의원회관 4층에 있는 나 원내대표의 의원실을 점거하고 “황교안은 사퇴하라”, “나경원은 사퇴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김학의 사건’을 은폐했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논란이 됐던 ‘반민특위 발언’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반민특위 망언 나경원은 사퇴하라’, ‘김학의 성 접대 사건 은폐 황교안은 사퇴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농성을 벌이다 국회 방호과 직원들이 제지하자 바닥에 누워 스크럼을 짜기도 했다. 이들은 국회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약 50분 만에 의원회관 밖으로 끌려나갔고, 이후에도 의원회관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농성을 이어가다가 경찰에 연행됐다. A씨를 제외한 나머지 21명은 앞서 모두 석방됐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세월호 그날 이후…5년 들여다보면 ‘지겹다’ 말 못합니다”

    “세월호 그날 이후…5년 들여다보면 ‘지겹다’ 말 못합니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겸 작가 인터뷰“세월호 가족들, 사회적 외면에도 5년간 버텨스스로 감정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 겪어”“사회가 외면하고 욕하더라도 무언가 털어놓고 싶을 때 ‘이 사람은 꼭 들어주겠지’하는 든든함을 준 것 같아요.”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소속으로 세월호 가족들의 육성을 기록해 온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기록단의 존재를 이렇게 표현했다. 참사 발생 이듬해인 2015년 유가족을 인터뷰해 책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펴냈고 2016년에는 생존 학생,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모은 ‘다시 봄이 올 거예요’를 썼다. 작가기록단은 유가족과 생존 학생 가족들의 재난이후의 삶을 기록한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를 최근 펴냈다. 미류씨는 “지난 5년 동안 세월호 가족들은 자신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을 겪었다”고 전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고통과 상실은 시간이 지난다고 옅어지지 않고, 세상을 향한 분노도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들은 조금씩 자기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미류씨는 “초반에는 유가족이 웃으면 웃는다고, 울면 운다고 외부에서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며 “이런 시선에 괴로워하던 가족들은 이제는 스스로 괜찮아도, 혹은 괜찮아지지 않아도 ‘괜찮다’며 자신을 인정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공권력의 감시와 사회적 시선을 버텨왔다. 지쳐서 쉬었던 사람도 있고, 포기하거나 뒤늦게 나온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버틴 5년은 한국사회를 바꿔놓았다. 미류씨는 “이제 누군가 사망했을 때 여기에 어떤 사회적 문제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갖게 됐다”며 “사회적 죽음이라는 감각 생기고 무엇을 바꿀지 고민하게 된 것이 가장 큰 변화”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왜 아직도 세월호 이야기냐’고 말하기도 한다. 진상규명이 더 필요하냐는 의문도 던진다. 미류씨는 “가족협의회에서 특별수사단 설치를 요구하는 것은 이 사고에 어떤 잘못과 책임이 있었는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정의도, 회복도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필요성을 알리는 데만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며 “이제는 진실규명이라는 첫 단추를 끼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4월 16일이라는 날짜를 기억하는 것 보다 그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류씨는 “국가의 공식 기록이나 기억을 위한 공간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세월호는 우리 사회에 무엇이었는지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이후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세월호 이야기가 지겹다거나 그만하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5년 전 아픔 간직한 세월호

    5년 전 아픔 간직한 세월호

    바다가 삼켰던 세월호는 참사 1091일만인 2017년 4월 목포신항에 인양돼 이듬해 똑바로 세워졌다. 목포 신항의 곳곳이 구겨지거나 뜯겨나가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고, 1년 넘게 철제빔 받침대에 누워있었던 세월호의 좌현은 진갈색의 녹 덩어리로 변했다. 선체조사위원회는 선체 내부를 수색하면서 나온 화물과 구조물, 내부에 쌓여있던 펄까지 하나도 빼지 않고 세월호 앞에 모아뒀다. 진상규명에 작은 단서라도 되지 않을까 하는 유가족들의 바람 때문이었다. 세월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신항 출입을 허용하는 주말이 되면 200~300명의 추모객이 찾아오고 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세월호 참사 5주기…“전면 재수사·책임자 처벌” 외친 촛불

    오는 16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지난 13일 유족들과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 모여 촛불을 들었다. 유족들과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세월호 참사 재수사 및 책임자 처벌을 한목소리로 외쳤다. 4·16 연대와 서울시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라는 이름의 세월호 참사 추모문화제를 열었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의 장훈 운영위원장은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었을 때, 해양경찰이 선원들만 구했을 때 우리 아이들은 전부 살아 있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였느냐”면서 “국가는 구하지 않았고, 오히려 구조를 방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장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유족들은) 단 한가지를 요구한다. 우리 아이들, 304명의 국민을 죽인 살인자를 처벌해 달라는 것”이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은 두 번이나 세월호 참사 재수사를 천명했다. 이제 그 약속을 지켜달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광장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참을 호소했다. 박래군 4·16 연대 공동대표도 “우리는 5년 전의 참사를 보며 ‘4월 16일 이후는 그 전과 달라야 한다’고 다짐했다”면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들을 꼭 처벌해 보다 안전한 사회,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자”고 강조했다. 이날 추모문화제는 낮부터 ‘국민참여 기억무대’로 시작됐다. 이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플래시몹, ‘세월호 참사 5주기 대회’ 등이 이어졌다.특히 이날 오후 4시 16분쯤 열린 ‘잊지 않을게’ 대학생 대회에서는 참여자들이 노란 우산을 들고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의 대형 리본 모양을 만드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또 이날 광화문광장에서는 각종 부스가 설치돼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 가방고리 만들기 체험, 세월호 기억물품 나눔행사 등이 열렸다. 아울러 시민사회단체들은 서울 광화문 북측 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책임자 처벌과 5·18 역사왜곡 등 적폐청산을 촉구하는 ‘자유한국당 해체, 적폐청산, 개혁 역행 저지, 사회 대개혁 시국회의’ 집회를 열었다. 4·16 연대 회원인 서지연씨는 무대에 올라 “참사 때 배가 가라앉는 것을 TV로 보면서도 ‘다 구조했다’는 말에 속아 안도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두려움에 떨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저린다”면서 “(참사 당시) 위험하니까 탈출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사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끝까지 진실을 밝혀서 단 한 명도 빠짐없이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는 친박 단체가 이날 오후부터 광화문광장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경찰은 105개 중대를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으나 우려했던 충돌은 없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극우세력, 세월호 5주기 추모행사 방해하겠다고…”

    “극우세력, 세월호 5주기 추모행사 방해하겠다고…”

    “광화문광장에 방해 집회 예정…경찰 즉각적예방 조치 나서야”“5주기 하루 전 참사 책임자 명단 공개” 후속 기자회견도 예고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와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는 12일 “대한애국당이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를 불법으로 방해하려 한다”고 규탄했다. 이들은 이날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기억문화제를 개최한다”면서 “대한애국당과 극우세력이 같은 날 광화문광장에서 집회를 열어 5주기 기억문화제를 방해하겠다고 공표했다”고 주장했다. 또, “평화로운 기억문화제에 참여하는 희생자 가족과 국민을 자극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이들은 5년 내내 세월호 참사를 비하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고의로 충돌을 유발하려는 극우세력의 행태를 절대 수수방관해서는 안 된다”며 “즉각 예방 조치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광배 가족협의회 사무처장은 대한애국당을 향해 “사람의 생명을 정치적 명분과 잣대로 기준을 세우는 당신들이 학살자와 무엇이 다르냐고 묻고 싶다”고 강하게 규탄했다. 그러면서 “정의롭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운 4·16재단 이사는 “대한애국당의 망동을 조장하고 방치한 경찰 당국에도 책임이 있다”며 “경찰이 이들의 집회 방해 행위를 계속해서 방치한다면 관계자들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5주기 행사 총감독을 맡은 배서영 4·16연대 사무처장은 “세월호 5주기를 하루 앞둔 다음주 월요일 이 자리에서 참사 책임자 명단을 전격 공개할 것”이라며 후속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4·16연대는 13일 오전 10시 서울시청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결 과제를 점검하는 ‘5주기 콘퍼런스’를 개최한다. 이후 오후 7시 광화문광장에서 기억문화제를 연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포토] ‘황교안·나경원 사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나경원 의원실 점거 농성

    [포토] ‘황교안·나경원 사퇴’ 한국대학생진보연합 나경원 의원실 점거 농성

    12일 오전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을 기습 점거했던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학생들이 회관 본청 현관 앞에서 농성을 이어가다 경찰에 연행되고 있다. 이들은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가로막고 ‘김학의 사건’을 은폐했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논란이 됐던 ‘반민특위 발언’에 대해서 책임지고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연합뉴스
  • “故장자연 사건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하라”

    “권력관계 성폭력, 범죄 특례조항 필요” 고 장자연씨 사건에 대한 공소시효가 대부분 완성됐다는 시각이 팽배한 가운데 원외정당과 시민단체에서 시효 문제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주장하고 나섰다. 하승수 변호사(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1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시효 정지 조항을 포함한 ‘장자연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는 ‘장자연 리스트’의 목격자인 윤지오씨를 비롯해 신지예 녹색당 공동위원장, 배복주 장애여성공감 대표,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 등이 참석했다. 해당 사건은 5월 말 활동 종료 예정인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2007~08년에 일어난 사건이기 때문에 강요죄(5년), 강제추행죄(10년), 직권남용(7년) 등 대부분 시효가 이미 완성됐다. 조사단은 무고죄 적용도 검토했으나, 이 역시 11일로 시효가 완성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하 변호사는 “1995년 제정된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역시 이미 시효가 완료된 가해자가 있었음에도 특별법에 ‘국가의 소추권행사에 장애사유가 존재하는 기간’ 동안 시효가 정지된다는 조항을 추가해 처벌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기존의 법을 변경해야 할 공익적 필요는 심히 중대한 반면, 법적 지위에 대한 개인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상대적으로 적어 정당화될 수 있는 경우’에 소급입법도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권력관계 성폭력 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특례 조항을 신설하는 방안도 제시됐다. 현행법상 성폭력 범죄를 당한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는 날까지는 시효가 정지되며, 특히 13세 미만 아동을 상대로 한 성범죄는 아예 시효가 적용되지 않는다. 신 위원장은 “권력형 성범죄는 가해자들이 직장이나 학교에서 피해자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경우가 많아 쉽게 피해를 드러내지 못한다”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점부터 시효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실질적인 입법 과정은 험난할 것으로 보인다. 원외정당인 녹색당의 입법안에 호응하는 원내정당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하 변호사는 “이제 공론화의 시작”이라며 “한국 국회 상황에서 섣불리 제안하긴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앞으로 논의를 통해 구체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윤씨는 이날 인사말에서 “공소시효라는 악법이 폐지되기가 쉽지 않은 것을 보며 ‘악법도 법이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면서 “2009년 세상에 처음 알려지게 된 이 사건은 시간이 흘러 2019년이 됐지만 10년 전에서 정체돼 진실을 규명함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고, 현재 16번째 증언을 마친 상태”라고 말했다.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 성남시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 5년…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려

    성남시청 평화의 소녀상 건립 5년…위안부 피해 할머니 기려

    “자유롭고 편안한 모습의 소녀상을 세워주신 성남시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성남시청 광장 평화의 소녀상 건립 5주년 행사가 10일 오후 2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1)와 은수미 시장, 박문석 시의회의장, 보훈단체장, 시민 등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날 행사는 묵념, 살풀이춤, ‘소녀와 꽃’ 헌정 공연, 헌화 순으로 진행, 아픈 역사 속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렸다. 이용수 할머니는 “내가 역사의 산증인이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28년째 진상규명과 공식사과, 그리고 법적배상을 요구하고 있다”며 “대한민국의 주인인 학생들이 역사를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은수미 시장은 “이용수 할머니께서 우리 모두가 피해자다. 내가 문제를 해결하고 가야하는데 너희들에게 넘겨주고 갈까봐 걱정스럽고 미안하다고 하셨다”며 “이러한 참혹한 이야기를 듣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새로운 다짐을 하게된다”고 말했다. 성남시청 광장 평화의 소녀상은 2014년 4월 15일 설치돼 일본의 인권 침해와 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슬픈 듯 의연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형상의 단발머리 소녀상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가장 큰 피해자로 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과 명예 회복에 관한 메시지를 강한 울림으로 전한다. 현재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240명이다. 219명이 세상을 떠났고, 21명만 생존해 있다. 시는 오는 8월 성남시청 광장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조속 해결을 촉구하기 위한 ‘위안부 기림의 날 행사’ 연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5·18 문건 속 ‘시체’ 행불자 찾기 불 지피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공군 수송기로 ‘시체’를 옮겼다는 군 기록이 나와 구체적 진상 규명에 불을 지폈다. 7일 육군본부가 공개한 ‘소요진압과 그 교훈’(1981년 6월 작성)이라는 문건에는 당시 공군 수송기 지원 현황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특히 5월 25일 광주~김해 구간을 기록한 부분에는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운송했다고 하는데, 비고란에는 ‘屍體’(시체)라고 한자로 썼다.당시 공군 수송기가 경남 김해에서 의약품과 수리부속품을 싣고 광주로 왔다가 돌아가면서 시체를 운송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임무 수행 중 사망한 군인을 ‘시체’라고 표현하지 않고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부르는 말)으로 기록하는 점에 주목할 만하다. 오인 사격 등으로 사망한 23명의 군인은 모두 성남비행장으로 옮겨졌다. 2007년 국방부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 참여했던 조선대 노영기 교수는 “(소요진압과 그 교훈 문건은) 군이 소요진압을 한 다음에 재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시체를 옮겼다는 자료의 신뢰성이 매우 높다”며 “여러 정황상 운송한 시체는 행방불명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문건에선 관련 기록을 의도적으로 삭제·누락한 정황도 발견됐다. 공군이 1980년 5월 21~29일 작성한 ‘5·18 광주소요사태 상황전파자료’에도 5월 25일 운송화물 기록은 수정액으로 삭제돼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軍 초동수사 잘못… 아들 의문사 21년째 못 밝히고 거짓말 계속”

    “이제부터 ‘제2의 김훈 중위 사건’ 시작입니다.” 두 시간 반 가까이 쉼 없이 말을 하면서도 ‘아버지’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다. 20년을 싸워 왔는데 아버지는 또 다른 싸움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경비 초소에서 근무하다가 사망한 김훈(당시 25세·육사 52기) 중위의 아버지 김척(76·육사 21기) 예비역 중장의 이야기다. 국방부는 세 차례의 수사를 거쳐 김 중위의 죽음을 ‘권총 자살’로 결론 냈다. 유족들은 “군 수사기관이 처음부터 자살로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진상을 은폐·조작하거나 요식적인 수사를 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패소, 2심과 3심에서는 1차 수사의 과실만 인정해 김 중위의 부모와 동생에게 모두 1200만원을 국가가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은 2006년 12월 “초동 수사가 잘못돼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도 2009년 10월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론지었다.미궁에 빠진 죽음을 두고 2010년 육사총동창회와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는 ‘자살’이 아닌 ‘순직’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로부터도 몇 년이 더 흘러 김 중위는 숨진 지 19년 만인 2017년 8월 31일에서야 국방부로부터 순직을 인정받았다. 김 중위의 부모는 지난해 다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06년 대법원 판결 이후에도 국방부가 ‘자살’로 고집하며 순직 결정을 미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부장 이동욱)는 지난달 27일 “진상규명 불능일 경우 순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 조항이 없었다”는 이유 등으로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미룬 것이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김 중위 부모는 곧바로 항소했다. 20년을 넘어선 싸움이 다시 이렇게 이어진다. 다음은 김척 예비역 중장과의 일문일답.●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답 정해놓고 수사 -패소 판결을 받고 어떤 기분이셨나요. “정말 분노했습니다. 우리 헌법 1조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고 하고 7조에는 ‘국가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이번 판결은 이 본질을 무시하고 국방부에 편파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여겨져요. 우리는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한) 2010년부터의 국방부의 거짓을 문제 삼고 싸우려 한 건데, 법원은 2006년 판결을 근거로 삼았어요. 대법원을 비롯해 국회와 권익위 등 다른 국가기관들이 훈이의 자살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국방부만 유일하게 자살 주장을 고집했어요. 아니라고 부딪치고 싸워도 다른 국가기관의 결론을 오히려 왜곡해 가면서 우리를 ‘정신질환 자살자’의 가족으로 매도했어요. 그에 대한 사과를 받고 싶어 소송을 한 건데 우리의 아픔은 보지 않은 것 같아요.” -판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불만스러우신가요. “대법원 판결에 이어 군의문사진상규명위에서 훈이 죽음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했고, 2012년 8월 권익위(당시 위원장이던 김영란 전 대법관이 2006년 대법원 판결 시 주심 대법관)가 훈이를 순직 처리하라고 시정 권고했어요. 그러나 국방부는 여전히 훈이가 자살한 게 맞다고 허위주장을 했어요. 2010년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태영 당시 국방부 장관이 ‘대법원 판결에서 자살로 인정됐다’고 했고,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도 ‘대법원이 ‘자살’ 내용을 그대로 확정한 것이라 번복하는 것을 육군에서 결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2010년 육사총동창회가 순직 변경을 요구하자 육군 법무계획과장은 ‘대법원은 2·3차 수사결과 자살이라고 한 결론을 긍정한 것’이라면서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원고 등이) 유리한 자료들만 모아서 유리하게 주장한다는 것’이라고도 했어요. 한마디로 우리가 떼를 쓴다는 거예요. 이번 재판부는 이들의 거짓 언행이 잘못이라고 인정해 주는 듯하더니 ‘객관성과 정당성을 잃을 정도는 아니다’라며 사소한 걸로 치부했어요. ‘판결 취지를 부적절하게 해석해 발언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유족들에게 아픔을 끼친 것을 넘어서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국방부 장관이, 고위직이 국회와 국민을 상대로 몇 년간 허위주장을 해 왔는데(2012년 국감 및 국회의원 요구 자료에도 국방부는 자살이 인정됐다고 주장)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재판부에 낸 의견서에도 ‘분노’라는 단어가 유독 많던데요. “군은 애초에 훈이가 정신질환에 의해 자살한 것으로 사건을 덮기 위해 부실 수사와 조작·은폐를 일삼았어요. 훈이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자살을 합리화했다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2006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합동조사단이 다소 무리한 추측을 했다고는 인정했다.) 사건 직후 초동 수사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2·3차 수사도 잘못됐고 결국 지금까지도 제대로 진상을 밝히지 못했잖아요. 그에 대한 사과는커녕 거짓이 계속돼요. 훈이 오른손에 (권총 자살일 경우 나타나는) 화약흔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미군 수사 감정서를 자살이 입증된 자료라고 왜곡했고 이번 재판 과정에서도 국방부는 마치 정신질환으로 자살을 한 훈이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순직 결정의 은혜를 베풀어 준 것처럼 의견서를 냈어요. 권익위가 재심의하라고 하니 국방부는 2012년 9월 보강조사의 중점사항으로 ‘공무상 사유로 인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상당히 저하된 상태 여부’, ‘직무수행과 관련한 폭언, 가혹행위 등으로 인한 원인발생 여부’를 적시했어요. 사건 처음부터 재조사까지 훈이를 정신질환자로 몰기 위해서 답을 정해 놓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객관적 정당성을 잃은 것까지는 아니라고 했죠.”●돈 받으려는 소송 아냐… 진심 사과 땐 소 취하 -‘장군의 아들’이었던 김 중위가 대표적인 군 의문사 사건의 주인공이 됐고,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네요. “제가 싸우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저와 아들이 군에 몸을 바친 게 합쳐서 40년 가까이입니다. 그나마 저는 군을 잘 알고 육사총동창회 도움도 있었기에 자료도 더 많이 얻고 여기까지 왔지만 다른 부모들은 폐쇄적인 군으로부터 객관적인 자료 하나 받기도 힘들어요. 제가 싸워서 더이상 ‘군 의문사’라는 게 없어지길 바랍니다. 객관적인 감정서를 갖고 죽음의 원인을 정확히 밝혀 달라는 겁니다. 군에서 사망사고가 나더라도 부모들에게 진실을 정확히 밝혀 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훈이의 죽음이, 우리 가족의 싸움이 젊은이들을 많이 구할 수 있고 군을 발전시킬 수 있다면 저는 그것을 세상에 태어난 제일 큰 보람이라고 생각해요. 군 의문사와 싸우지 않으면 군은 더 큰 괴물이 되는 거예요.” -언제까지 싸움을 계속하실 건가요. “소송을 냈지만 돈을 원하는 게 아니에요. 국방부에도 계속 이야기했어요. 진심으로 사과하면 소를 취하하겠다고요. 잘못했으면 사과해야죠. 남들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해요. 제가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국방부에 보낸 내용증명만 47차례에요. 법을 잘 모르니 한 번 보내려면 2주를 꼬박 고생하죠. 거대한 국가기관과 20년을 싸우면서 우리 가정은 파탄이 났어요. 한 집안이 망하는 일이고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도 없어요. 그런데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으니 싸울 수밖에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겁니다. 처음엔 그런 줄 알았죠.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묻는다고 치유가 되는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건 바보 같은 거죠. 싸워야 합니다. 내가 싸우다가 죽어도 그게 더 행복한 거예요. 훈이를 국립묘지에 안장하니 주변에서 ‘이제는 잊고, 용서하고 편히 사세요’라고들 하더군요.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는데 제가 어떻게 용서를 합니까.”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숨진 가족들 사이서 죽은 척했던 8살 소녀, 한국군 학살을 고발하다

    숨진 가족들 사이서 죽은 척했던 8살 소녀, 한국군 학살을 고발하다

    한국군이 온 가족을 처참하게 죽인 1968년 그날, 응우옌티탄은 겨우 8살이었다.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친 한국군은 방공호에 숨어 있던 가족에게 수류탄을 내보이며 던지는 시늉을 했다. 오빠가 놀라 달려나가자 총으로 쏘아 죽였다. 두려워 집 안으로 뛰어들어가던 언니에게도 총알이 날아가 박혔다. 남동생은 어느샌가 이미 죽어 있었다. 한국군은 마지막으로 아기를 안고 나오던 이모를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아기도 죽였다. 죽은 척했던 응우옌티탄만 살아남았다. 베트남전 당시 퐁니 지역에서 일어났던 이 끔찍한 사건은 그의 평생을 집어삼켰다. 그날 하루에만 마을 사람 74명이 죽었다. 대부분 여성과 아이들이었다. 베트남전 때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사건 생존자 응우옌티탄(62)과 응우옌티탄(59·동명이인)은 4일 103명의 피해자를 대표해 청와대를 찾았다. 이들은 피해 진상조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공식입장 표명, 피해 회복을 요청하며 피해자들이 서명한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피해자와 유족이 한국 정부에 공식적으로 진상조사 등을 요구하는 문서를 제출한 건 처음이다. 응우옌티탄은 기자회견에서 “8살에 불과한 어린아이였지만 그날의 기억은 너무도 선명해 한순간도 잊지 못한다”며 “제 온몸의 진실을 다 짜내서 여러분에게 말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그는 “지난해 한국에서 열렸던 시민평화법정에서 모든 걸 증언했고, 베트남에 돌아가 한국 정부의 응답을 기다렸으나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면서 “1년 동안 실망을 거듭했다”고 말했다. 응우옌티탄 등 많은 피해자들은 지난해 4월 시민단체의 주최로 한국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에 참석해 한국군의 살인, 강간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증언했다. 이 법정은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한 모의재판이었다. 주심을 맡았던 김영란 전 대법관 등 재판부 3인은 “중대한 인권침해이자 전쟁범죄의 성격을 띤다”며 대한민국 정부에 책임이 있음을 선고했다. 또 다른 피해마을 하미에서 온 응우옌티탄은 “우리 마을에 설치된 학살 피해자 135명 위령비 뒤에는 한국군이 저질렀던 범죄 사실이 낱낱이 기록돼 있었는데, 2000년 한국 정부의 압박으로 이 비문을 큰 대리석으로 가렸다”고 주장했다. 이날 청와대에 제출한 청원서에는 103명의 피해 증언록과 서명이 담겼다. 피해자들은 “한국 정부는 ‘베트남 정부가 사과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지만, 그 어떤 한국 공무원도 우리에게 찾아와 사과를 원하는지 묻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정부가 일본 식민지배 당시 불법 행위에 책임을 요구하는 입장은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 문제에도 일관되게 유지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피해자 서명 운동은 한국군이 파견됐던 중부 5개성 가운데 2개성 16개 마을에서만 진행됐다. 다른 지역의 피해자들도 한국 시민단체에 청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인권 대부 고 홍남순 변호사 39년만에 무죄판결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인권운동 대부’ 고 홍남순(1912~2006) 변호사가 39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1부(부장 송각엽)는 내란중요임무종사와 계엄법 위반 혐의로 1980년 10월 전교사 계엄보통군법회의에서 무기징역 판결을 받은 홍 변호사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4일 밝혔다. 시민 수습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이모(1980년 당시 65세·사망)씨와 시위에 참여해 광주교도소를 향해 칼빈소총 2발을 발사해 유죄 판결을 받은 임모(64)씨에게도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홍 변호사의 행위의 시기와 동기,사용수단, 결과 등을 볼 때 헌정 질서 파괴 범행을 저지하거나 반대한 행위”라며 “헌법의 존립과 헌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한 행위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홍 변호사는 1980년 5월 시민 수습위원과 함께 시민 희생을 막기 위한 소위 ‘죽음의 행진’에 나섰다가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년 7개월간 복역한 뒤 형 집행정지로 풀려났다. 홍 변호사는 1963년 호남 민주화운동의 산실로 불리는 광주 동구 궁동 가옥에 사무실을 열고 양심수 변론을 맡아 ‘긴급조치 전문변호사’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인권활동과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65년 한일협정 반대 발언을 한 유옥우 전 국회의원 사건을 비롯해 문인, 정치인 등 양심수들을 위해 60건 이상의 무료 변론을 했다. 이후 5·18 광주구속자협회 회장, 5·18광주민중혁명기념사업 및 위령탑 건립추진위원장 등을 맡아 5·18 진상규명과 시민 명예회복 활동을 하다가 2006년 타계했다. 검찰은 5·18 사건으로 군법회의에서 유죄를 선고받았으나 재심을 받지 않은 111명(사망 36명)에 대해 직권으로 재심 청구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靑 前대변인 굴욕…‘김의겸 투기’ 서울지검 형사부 배당

    靑 前대변인 굴욕…‘김의겸 투기’ 서울지검 형사부 배당

    ‘부동산 투기 의혹’에 휩싸인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서울 흑석동 재개발 지역 건물 매입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형사부가 수사를 맡기로 했다. 한겨레 논설위원 출신인 김 전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에서 불명예 퇴진한 데 이어 검찰 형사부 수사까지 받게 되는 굴욕을 당하게 됐다. 4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은 시민단체 ‘행동하는 자유시민’이 김 전 대변인을 부패방지법(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와 운영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고발한 사건을 형사1부(김남우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앞서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이 공동대표로 있는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김 전 대변인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의혹이 있다며 지난 2일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최근 고위공직자재산공개에서 전 재산이 14억원이라고 밝힌 김 전 대변인은 10억원의 은행 대출 등을 받아 26억원짜리 재개발지역 상가 건물을 매입해 부동산 투기 논란이 일었다. 김 전 대변인이 산 건물은 두달 뒤 재개발 지역으로 발표됐고 6개월 뒤 시세가 35억~4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김 전 대변인은 해명 당시 “노후 대비 차원으로 투기가 아니다”라며 아내가 자신 몰래 진행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유연대 등 6개 보수성향 시민단체도 이날 추가 고발장을 제출했다. 자유연대 등은 “김 전 대변인이 흑석동 상가주택을 매입할 때 대출서류를 조작한 의혹이 있다”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및 업무방해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했다. 앞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김종석 의원은 김 전 대변인이 실제 임대 상가가 4개에 불과한 건물의 임대료 수입을 부풀려 서류를 조작하기 위해 10개 상가가 입주한 것으로 산정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김 의원은 이런 조작으로 인해 월 525만원의 임대료 수입을 산정해 10억원의 특혜성 대출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창고와 사무실 등 임대되지 않은 공간까지 임대업 이자상환비율(RTI) 산정 기준인 연간 임대소득에 합산되면서 대출 한도가 부풀려졌다는 것이다. 김 전 대변인에게 대출을 해준 국민은행 측은 “정상적인 대출이었다”고 특혜 의혹을 부인했다. 이와 관련해 김 의원은 “대출을 담당했던 지점장이 김 전 대변인과 고교동문이란 점이 이러한 의심을 더 강하게 하고 있다”며 “철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고 미흡할 경우 금융감독원 통해 부실대출에 대해 검사를 요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태안에 간 Mr.중재자 “또다른 용균씨 막는 게 마지막 소임”

    태안에 간 Mr.중재자 “또다른 용균씨 막는 게 마지막 소임”

    위원장에 ‘노동법 대가’ 김지형 前대법관 “피해자 소리 세심히 들어”시민단체 신뢰 회의실 대신 현장 찾아 열악한 시설 점검 7월까지 노동환경 진단 후 개선안 마련“김용균의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3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조사위) 첫 본회의에서 김지형(61·법무법인 지평) 전 대법관이 던진 일성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11일 이 발전소에서 발생한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당시 24세)씨 사망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찾는 조사위의 위원장으로 선정됐다. 나머지 15명의 조사위원들과 함께 비극 뒤에 숨은 진실을 찾아 나선다. 위원회는 지난 2월 유족 측과 정부, 여당의 합의안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두려움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주어진 과제가 너무도 무거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중압감이 든다고 했다. 조사위가 꼼꼼한 진상 규명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찾아야 위험의 외주화 관행 속에서 위험에 내몰린 ‘또 다른 김용균들’(비정규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그는 “이것이 저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을 아는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입증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비(非)서울법대 출신(원광대 법대 졸업)으로 대법관 시절 사회 약자를 위한 판결을 여럿 내놨던 그는 2011년 대법관 퇴임 이후 첨예한 갈등이나 참사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Mr. 중재자’라는 별칭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삼성 백혈병 분쟁조정위원장을 맡아 지난해에는 11년간 이어진 분쟁을 끝냈다. 2016년에는 19세 노동자 김모군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사고의 진상규명위원장이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폐쇄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의 수장을 맡기도 했다. ‘노동법 대가’인 김 위원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는 각별하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세심히 듣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도 회의실에서 서면 자료를 넘겨 보는 대신 사고 현장을 찾았다. 취재진과 함께 발전소 내 석탄취급설비 현장, 탈황설비 현장 등 시설 전반을 점검했다. 김 위원장은 발전소를 둘러보는 동안 의견을 말하는 대신 노동자들의 설명에 귀 기울였다. 한 노동자가 “탈황제어실은 입구가 하나뿐이라 입구 쪽에서 불이 나면 모두 죽는다. 20년간 시설 개선이 없었다”고 말하자 김 위원장은 허탈해했다. 조사위원들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열악한 작업 시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회처리시설(연료가 타고 남은 재를 매립하는 곳)을 둘러보던 위원들은 “조도가 확보되지 않아 깜깜하다”면서 “낮에도 이런데 밤에 혼자 근무한다고 생각해 보라”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과 조사위원들은 2인 1조가 정착됐는지, 사고 이후 원청에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설비개선 요구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등도 꼼꼼하게 챙겼다. 김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김씨가 사망한 장소였다. 김 위원장은 무릎을 굽히며 김씨가 사망한 채 발견된 9·10호기 컨베이어벨트 안을 한동안 들여다봤다. 그는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고 한다면 (좋겠지만) 12월 11일 이후에라도 진상규명위 활동을 통해 김씨와 같은 비극이 생기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정말 절실하게 들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른 위원들과 오는 7월 31일까지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발전소 노동환경을 진단하고 제도개선안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씨 모친 김미숙씨는 “위원회를 통해 국민이 노동 현실을 제대로 알고 용균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글 사진 태안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국방부 “당시 지휘라인 서훈 취소 검토” 민갑룡 청장, 경찰 총수 첫 추념식 참석 ‘민간인 학살’ 경찰 관여 사실상 인정국방부와 경찰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검은색 양복과 검정 넥타이를 맨 국방부 관계자는 3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 출입기자실을 방문해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낭독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나 서주석 국방부 차관 명의가 아닌 ‘국방부’ 차원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제주 4·3사건을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 ‘제주 4·3사건 특별법’ 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차관은 이날 광화문에 마련된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저희가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최선을 다해서 적극 동참하고,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유가족분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데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서 차관은 ‘4·3 사건 당시 양민 살상의 지휘라인에 책임을 묻는 후속조치 혹은 서훈(취소) 조치를 검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법적인 검토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여기까지 오시는 데 71년 걸렸다. 뒤로 가는 일이 없도록 진심으로 바라겠다”고 했고, 서 차관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민갑룡 경찰청장도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정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찰 총수가 민간 주도 4·3 추념식을 찾아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애도를 사과로 받아들여도 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는 분명히 사죄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우리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말해 경찰이 군과 함께 당시 무고한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4·3 안에서 소외된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4·3 안에서 소외된 피해자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

    군사정권 눈 피해 출범된 지 벌써 30주년 유해발굴 등 묻혀진 진실 밝히는 데 힘써 후유장애 인정조차 못 받은 분들도 많아 트라우마센터도 없어… 특별법 통과 시급“제주 4·3 때 입은 총상으로 몸이 딱딱하게 굳은 분들이 아직 연구소를 찾아 오십니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았는데 후유장애 인정을 못 받은 분들도 많고요. 이제는 그늘에 가려진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좀더 귀 기울이려 합니다.” 올해 개소 30주년을 맞는 제주4·3연구소 허영선(62) 소장은 3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30년간 연구소가 4·3 진상규명에 집중했다면 앞으로는 4·3 안에서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들에게도 주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해를 말하지 못하고 희생자 명단에 이름조차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며 “잊혀진 이름을 찾아 주는 것이 정의를 제대로 실현하는 길”이라고 덧붙였다. 올해 71주년을 맞은 제주 4·3은 1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 중 하나다. 그러나 수십년간 사건을 언급하는 것도, 희생자를 추모하는 것도 금기시됐다. 연구소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렵게 출범했다. ‘4·3’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무실을 얻기도 어려웠던 시절을 지나 1988년 이후 서울 등 곳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린 뒤 제주 출신 인사들을 중심으로 “빨리 증언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야 한다”고 뜻을 모았다. 4·3에 대한 기록도, 연구도 거의 없던 때였다. 군사정권의 눈을 피해 추진된 연구소는 1989년 5월 10일 구술집 ‘이제사 말햄수다(이제서야 말합니다)’를 발표하며 출범했다. 이후 연구소는 제주 4·3의 묻혀진 진실을 밝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과정은 험난했지만 꾸준했다. 증언 채록, 국내 외 사료발굴, 유물조사, 유적지 기행 등이 이어졌고 다랑쉬굴 유해 발굴, 제주국제공항 집단 매장지 유해발굴 등 굵직한 성과도 냈다. 2002년부터 주최하는 ‘본풀이 증언대회’가 그중 하나다. 지난달 29일 제주도 문예회관에서 열린 18회 행사에서도 장애 인정을 받지 못한 할머니들과 어릴 적 희생된 아버지가 희생자로 인정받지 못한 당사자도 나와 묻어뒀던 상처를 꺼냈다. 허 소장은 “4·3의 역사는 진행형”이라고 강조한다. 71년이 지났지만 생존자들이 여전히 남아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규명되지 않은 피해도 많아서다. 허 소장은 “역사는 고백과 증언으로 밝혀지는 것”이라며 “명예회복이 필요한 수형인들, 희생자임에도 신고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 강제결혼이나 성폭력 피해를 숨겨야 했던 여성들 등 소리 내지 못한 고통을 꺼내려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소장은 상처를 보듬기에 아직 국가의 응답은 미흡하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정부가 제주 4·3을 국정운영 100대 과제에 포함시켜 해결 의지를 보이고 국방부가 처음 유감을 표명하는 등 진척이 있었지만, 피해자 보상 등의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안은 1년 넘게 국회 문턱을 못 넘고 있다. 허 소장은 “아직 트라우마 센터도 제대로 없는 게 현실”이라며 “특별법이 통과되면 미해결 과제들을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시인이기도 한 허 소장은 최근 4·3이 남긴 상흔과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한 에세이 ‘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을 펴냈다. 그는 “4·3은 결국 인간과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주제”라며 “4·3의 비극을 늘 기억하고 인권, 평화, 인간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 [르포]태안으로 간 Mr. 중재자 “또 다른 용균씨 막는게 마지막 소임“

    [르포]태안으로 간 Mr. 중재자 “또 다른 용균씨 막는게 마지막 소임“

    故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 출범위원장에 ‘노동법 대가’ 김지형 전 대법관어두운 작업시설··비상연락체계 등 점검7월까지 노동환경 진단 후 개선안 마련“김용균의 죽음이 헛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3일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열린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조사위) 첫 본회의에서 김지형(61·법무법인 지평) 전 대법관이 던진 일성이다. 그는 지난 12월 11일 이 발전소에서 발생한 청년 비정규직 김용균(당시 24)씨 사망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책을 찾는 조사위의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나머지 15명의 조사위원들과 함께 비극 뒤에 숨은 진실을 찾아나선다. 위원회는 지난 2월 유족 측과 정부, 여당의 합의안에 따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됐다. 김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두려움이 앞선다”고 털어놨다. 주어진 과제가 너무도 무거워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중압감이 든다고 했다. 조사위가 꼼꼼한 진상 규명을 통해 제대로 된 대안을 찾아야 위험의 외주화 관행 속에서 위험에 내몰린 ‘또 다른 김용균들’(비정규 하청 노동자)의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그는 “이것이 저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힘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을 아는 이들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진정성을 입증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비(非)서울법대 출신(원광대 법대 졸업)으로 대법관 시절 사회 약자를 위한 판결을 여럿 내놨던 그는 2011년 대법관 퇴임 이후 첨예한 갈등이나 참사 현장을 외면하지 않았다. ‘Mr. 중재자’라는 별칭이 자연스러운 이유다. 삼성 백혈병 분쟁조정위원장을 맡아 지난해에는 11년간 이어진 분쟁을 끝냈다. 2016년에는 19세 노동자 김모군의 목숨을 앗아간 구의역 사고의 진상규명위원장이었다. 2017년 신고리 5·6호기 폐쇄 여부를 결정할 공론화위원회의 수장을 맡기도 했다. ‘노동법 대가’인 김 위원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신뢰는 각별하다. 문제 해결 과정에서 피해 당사자의 목소리를 세심히 듣기 때문이다. 그를 조사위원장으로 추천한 것도 시민사회였다. 삼성반도체 피해자 단체인 ‘반올림’의 이종란 노무사는 “우리 단체가 삼성 측과의 대화에서 배제됐을 때 김 위원장과 조정위원들이 ‘반올림도 같이 가야 한다’고 방향을 정해줬다”면서 “우리가 최종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신뢰 때문”이라고 말했다.김 위원장은 이날도 회의실에서 서면 자료를 넘겨보는 대신 사고 현장을 찾았다. 위원들과 취재진은 4개 조로 나눠 발전소 내 석탄취급설비 현장, 탈황설비 현장 등 사고 위험성이 높은 곳을 위주로 점검했다. 조사위원들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은 열악한 작업 시설을 보며 안타까워했다. 회처리시설(연료가 타고 남은 재를 매립하는 곳)을 둘러보던 위원들은 “조도가 확보되지 않아 깜깜하다”면서 “낮에도 이런데 밤에 혼자 근무한다고 생각해보라”고 지적했다. 또, 위원들은 김용균씨가 사고 이후 몇 시간이 지나 발견됐다는 사실이 기억난 듯 현장의 비상연락체계가 개선됐는지도 물었다. 또 가동되지 않는 설비를 가리키며 이유를 묻거나 설비마다 관리하는 협력업체가 다른지 등도 점검했다. 김 위원장은 다른 위원들과 오는 7월 31일까지 노동자의 생명·안전을 위협하는 발전소 노동환경을 진단하고 제도개선안까지 마련할 계획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김용균씨 모친 김미숙씨는 “위원회를 통해 국민이 노동 현실을 제대로 알고 용균이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태안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유아인, 제주 4·3 추념식 참석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

    유아인, 제주 4·3 추념식 참석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사”

    배우 유아인이 3일 제주도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1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 참석해 다짐을 낭독했다. 유아인은 KBS 2TV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함께 출연 중인 도올 김용옥으로부터 추념식 참석을 제안받고 전국 대표 6명의 자격으로 젊은 세대의 결의와 다짐을 낭독했다. 유아인은 “부끄럽게도 4.3을 잘 몰랐다. 어떻게 불러야 할지도 몰랐고, 또 왜 우리가 몰라야 했는지도 잘 몰랐다. 그걸 몰랐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라고 운을 뗐다. 유아인은 “4.3을 접하고 조금씩 알게 되면서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되는,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소환하고 현재로 만들어야 하는 역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라며 “처음에는 많이 놀랐고 분노했고 슬펐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자행한 일들은 어떻게 멀쩡히 살아갈 수 있었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제주라는 섬이, 그 상상조차 되지 않는 상처를 어떻게 품어왔는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의 일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고 기억해야 하는 역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조심스럽지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미안하다, 죄송하다, 더 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할 정도는 된 것 같다. 4.3을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고, 다시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는 이들 중 청년세대가 적지 않다. 그래서 희망은 있는 것 같다”라며 “70주년을 넘어 71주년이, 앞으로 남은 날들이 그랬으면 좋겠다. 4.3의 정신을 기억하는 내일이 되기를 희망한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정부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4·3사건은 1947년 3·1절 기념식 발포사건 때부터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7년 7개월간 군경의 진압 등 소요사태 와중에 양민들이 희생된 사건이다. 적게는 1만4천, 많게는 3만명이 희생당한 것으로 잠정 보고됐다. 좁은 섬에서 막대한 인적·물적 피해가 발생했고 그 후유증을 극복하고 진상규명을 하는 데 오랜 세월이 걸리고 있다. 이날 추념식은 제주4·3생존 희생자와 유족 등 주요 인사 1204명을 포함해 1만여명이 자리했다. 국방부는 이날 71년 만에 처음으로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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