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 광장]수구 물결을 경계한다
제6공화국의 두번째 대통령인 김영삼(金泳三)씨는 민주화의 발목을 붙잡는 ‘군부 후견주의’를 일소했으나,개발독재의 잔재 청산에는 실패했다.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경제위기와 냉전논리를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였지만,소외계층의 삶을 보장하는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획기적으로 구현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이제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대통령 당선과 진보정당의 성장을 보게 됐다.다소 낙관적인 전망을 해본다.새 정부의 보수화를 부추길 것으로 예상됐던 민주당내 일부 세력이나 정몽준(鄭夢準)씨가 정치무대의 ‘코러스라인’(연극에서 주역 배우만이 넘는 선) 뒤로 일단은 물러났기 때문이다.
예비 정부의 첫걸음은 수구파에 안기거나,그들을 껴안고 정치를 했던 과거 두 전임 정부와 분명 다르다.젊고 신선해보이는 전문가와 지식인이 미래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노 후보의 대선 승리를 ‘87년 6월항쟁의 완성’이라고 찬탄하는 소리에 멈칫하지 않을 수 없다.그의 득표율은 과반에 이르지 못했다.또 진보정치를 이끌고 있는 민주노동당 등도 국회에서 개혁을 주도할 만한 의석을 갖고 있지 않다.때문에 비관적인 전망도 없지 않다.
특히 ‘검열자’들은 큰 불안감을 안겨준다.그중 가장 드센 ‘칼잡이’는 매일 아침 가정을 방문,냉전적인 대북관과 반민주적인 가치관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수구언론이라고 생각한다.그들의 사고와 행동을 구성하는 씨줄과 날줄은 ‘사익 추구’와 ‘반대자 탄압'이다.그들은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의견이라도 자신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기꺼이 용인하고 종종 지면에 올린다.반면,좌파라고 규정하기도 힘든 민간정부의 개혁적인 인물들은 서슴없이 ‘빨갱이’로 몰아친다.
‘건전한 보수우파’를 자처하면서도 보수우파의 상식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원칙을 독재자 찬양이나 재벌체제 비호 등으로 전면 부정하는 수구언론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새 정부의 누군가가,혹은 학계의 개혁적 인물이,노 당선자나 최장집(崔章集) 교수가 당했듯,마녀사냥의 도마 위에 올려질 수도 있다.국가보안법과 그것을 지탱하는 무리들도 경계심을 불러일으킨다.국가보안법은 안전과 보호의 미명 아래 개인의 자유를 탄압하는 모든 습속과 제도의 ‘두목’이다.
국가보안법은 5·16,유신,12·12,5·17 같은 쿠데타의 당사자들을 단죄하는 대신,‘불온한 사상’을 신봉하는 소위 ‘반체제 인사들’을 감옥에 가두었다.국가보안법이 ‘구체적인 범죄’가 아닌 ‘사람의 속내’를 주목하는 탓이다.예컨대 ‘한총련 대의원’들은 ‘이적단체’의 구성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수배와 구속의 대상이 된다.뿐만 아니라,국가보안법의 ‘부하들’이 사회문화 분야에서도 온갖 참견을 일삼고 있는 세상에서,결국 우리는 모두 ‘한총련 대의원’이 될 수 있다.
6월항쟁은 5공의 후임자인 노태우(盧泰愚)씨의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져 회한에 찬 뒷말을 남겼다.이번에도 우리는 ‘검열자’들의 포위와 개혁 시도의 좌절로,또다시 회한에 사로잡힐 수도 있다.
그래서 바란다.구시대적 시각을 뚫고 다양한 정치색이 사회에 만개하길.또 여러 정파의 연대를 통한 시민사회의 분투를.
투표용지를 날려 보내고 새 종이에 쓴다.“검열자들을 검열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