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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3주년 광복절] “누명 벗은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 더 늦으면 안 돼”

    [73주년 광복절] “누명 벗은 조봉암 선생, 독립유공자 서훈 더 늦으면 안 돼”

    3·1운동 선봉장… 현실 진보정치 선구자1959년 간첩죄 사형 2011년 무죄 판결 동명의 국방헌금 내역에 심사 3번 탈락‘우리가 독립운동을 할 때 돈이 준비되어서 한 것도 아니고 가능성이 있어서 한 것도 아니다. 옳은 일이기에 또 아니하고서는 안 될 일이기에 목숨을 걸고 싸웠지 아니하냐.’ 이는 1956년 진보당을 창당하고 3대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등 ‘현실주의적 진보정치’의 선구자로 불리는 조봉암(위)의 어록에 있는 글귀로, 그가 묻혀 있는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의 비석에도 새겨져 있다. 지난 13일 서울 중구 충무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 곽정근(아래·85) 회장은 “조봉암 선생은 항일독립운동과 근로 대중을 위해 한평생을 살았던 분이다”면서 “선생을 독립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곽 회장은 “조봉암 선생은 20살 때인 1919년 3·1운동 선봉에 서다 징역 1년을 살았다”면서 “당시에는 독립운동의 일환이기도 했던 조선공산당 활동을 하다 1933년 상하이에서 체포돼 신의주형무소에서도 7년을 옥살이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일제 치하에 있던 시기인 1941년 12월 23일자 ‘매일신보’에 “인천 서경정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단신 기사를 문제 삼아 조봉암의 서훈을 거부하고 있다. 이를 이유로 조봉암은 2011년, 2015년, 2018년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곽 회장은 “기사에 나온 장소는 조봉암 선생과 살던 곳도 다르고 선생은 그만큼의 돈도 없었다”면서 “만약 사실이라면 정치적인 적들이 친일을 했다며 이용했을 텐데 그런 기록도 없다”고 반박했다.고향인 충남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인천으로 올라와 고학을 하던 곽 회장은 신문사에서 진보당 당원들이 토론하던 모습을 보고 조봉암의 사상에 매료돼 1956년 대선 선거운동에 뛰어든다. 곽 회장은 “당시에는 선거운동만 해도 잡아가는 시기라 운동원도 5~6명 정도였다”면서 “인천부두노동자들이 조봉암 선거 운동 차량에 손을 흔들며 따라오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돌이켰다. 초대 농림부 장관과 2대 국회부의장까지 지낸 조봉암은 간첩죄 등 혐의로 대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59년 7월 31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곽 회장은 “선생이 주장한 ‘진정한 민주주의’, ‘서민경제’, ‘평화통일’이라는 시대정신은 미래지향적이었다”면서 “대선이 끝나고 위협을 느낀 이승만에 의해 간첩으로 몰려 ‘법살’(법에 의한 살인)을 당했다”고 아쉬워했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있으므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했다. 2011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명예도 되찾았다. 곽 회장은 “내년이면 조봉암 선생 탄생 120주년, 서거 60주년”이라면서 “늦었지만 건국훈장을 받게 될 것이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남재희 전 노동장관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국면 주도해야”

    남재희 전 노동장관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국면 주도해야”

    “자존심 대신 현실감각으로 북핵 국면을 주도해야 합니다. 국제 정세를 냉정하게 바라보면서도 국익을 위해 현명한 대처가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협치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수구세력이 반전을 노린다’는 식으로는 불가능합니다.” 남재희(84) 전 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논객이자 정치평론가로 손꼽힌다. 서울신문 주필 등 언론인 출신으로 4선 국회의원과 장관 등을 지내며 언론과 정치 등 각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장관 재임 당시에도 노동계의 무노동 부분임금을 지지하면서 ‘비판적 보수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대 이후에는 웅숭 깊은 진보적 색채의 칼럼으로 우리 사회에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관훈클럽에서 만난 그는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형형(炯炯)한 눈빛으로 북핵 등 국제 정세와 한국 정치에 대해 막힘 없이 고견을 풀어냈다. -요즘 북·미 회담을 보면 마치 외줄타기 하는 광대를 눈 앞에 둔 듯 하다. 연일 냉·온탕을 오가고 있는데 어떻게 될까. =미국이나 북한이나 최고도의 전략 전술을 발휘하는 거다. 미국은 회담 과정에서 두 개의 목표가 있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북핵의 제거다. 트럼프 미 대통령 취임 직후 일본 국제정치학자가 ‘북한 문제에 있어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할 시도는 미국에 도달할 수 있는 핵 장착 미사일의 제거이고, 그 다음이 북핵일 것’이라고 분석하던데 맞는 이야기다. 싱가포르 북·미 회담에서 ICBM 해결은 끝난 것 같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활용할 카드가 생긴 셈이다. ‘내 업적은 ICBM을 제거한 것이다. 이로써 미국은 북핵으로부터 안전하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계속 북핵 협상에 낙관적인 이유다. 하지만 북한에게 핵은 유일한 밑천이다. 마지막 카드를 내놓는 건데 최고가로 흥정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은 핵 하나만으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불가침협정, 수교, 원조 등 여러가지를 다 해결해야 한다. 협상이 오래 걸릴 수 밖에 없다. 한국전쟁 당시 1년 간 전쟁이 벌어진 뒤 나머지 2년 간은 협상이 동시에 진행됐다. 공산권 협상은 전쟁과 협상이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이뤄진다. 공격하면서도 대화하고 대화하면서도 공격을 가하는 ‘타타담담(打打談談) 담담타타(談談打打)’가 그것이다. 나라도 마지막 카드는 쉽게 버리지 않을 거다. -판이 아예 깨질 가능성은 없나. =트럼프가 ICBM을 이용해 중간선거를 막더라도 여러 난제들이 있다. 북핵 말고도 이란·시리아 등 중동 문제도 복잡하다. 동북아 전체로 봐서도 러시아와 중국 등과 해결할 문제가 간단치 않다. 그러니 북한 문제가 추가적으로 악화되는 걸 원치 않는다. 쾌도난마 식으로 북한을 쑥대밭으로 만들 수도 없다. 북한도 판을 뒤엎을 처지가 못 된다. 국제 사회의 공론도 무시 못한다. 북한을 괴멸시키는 대신 북한의 생존을 인정한다는 식으로 인식이 바뀐 상태다. 그러니 결국 북미 긴장이 풀리는 방향으로 갈 거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에 우호적이라는 점도 북에게는 큰 힘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북한에도 변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쿠바의 경우 결국 카스트로 형제들이 다 물러나고 다른 이들이 집권하고 있다. 쿠바 모델이 북에 재현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주한미군 주둔 인정 여부도 문제가 될 수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도 주한미군 주둔을 인정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직접 이야기한 건 아니다. 김 전 대통령이 그런 심증을 가졌다는 것이다.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을 미리 인정하지는 않을 거다. 주둔의 불가피성은 이해하지만 바겐 포인트를 스스로 버릴 이유가 없지 않냐. 협상할 때는 미군 철군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주한미군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국제정치의 큰 흐름으로는 미국의 동북아 정책을 수용하지 않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중간자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아들 부시 대통령을 만났을 때 ‘디스 맨’이라고 지칭했다. 우리 식으로는 ‘이 자’에 해당한다. 매우 모욕적인 발언이었다. 오바마 대통령 당시 재임했던 로버트 게이츠 전 국방장관도 회고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칭해 ‘크레이지(Crazy)’라는 표현을 썼다. 우리 식으로는 ‘괴짜’ 정도에 해당한다. 노 전 대통령이 미국 입장에서는 까다롭고 불쾌했다는 것이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강경화 외무장관 등을 계속 특사로 보냈다. 그 덕분에 아직 미국과의 관계는 부드러운 것 같다. 다만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 입장에서 미국의 국익이라는 미국 정부의 기본 라인은 건드릴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6월 계간지 ‘황해문화’ 발간 100호 기념 심포지엄에서 발표된 개번 맥코맥 호주국립대 태평양아시아학과 교수의 진단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맥코맥 교수에 따르면 2000년대 말 집권한 일본 민주당 정권은 미국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자주외교를 시도했다. 그때 나온 말이 오키나와 미군 기지 이전이다. 당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는 제국주의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한 정치인이다. 방한 당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무릎까지 꿇은 사람이다. 그러나 일본 민주당 정권의 단명은 미국 외교라인과의 마찰이 한 요인이 됐다는 게 국제정치학계의 정설이다. 일본보다 외교력이나 경제력이 약한 한국은 더 말할 게 없다. 미국을 벗어난 자주 외교는 쉽지 않다. 그게 우리 앞에 놓인 운명이다. 사대에 대해서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고 본다. 사대는 약소국의 생존 전략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조선은 사대 정책을 펴왔지만 그걸 욕하기는 어렵다. 이승만 정부 때인 1951년부터 1955년까지 외교를 이끈 변영태 외교부장관이 퇴임 뒤 사석에서 “중국 주변국 중 화교가 자리를 못 잡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우리 조상들의 사대외교가 능수능란하고 현명했다는 점을 방증한다”고 설명하더라. 노예근성을 갖자는 건 절대 아니다. 그러나 한·미 관계에서도 자존심만 내세울 건 아니다. 현실감각을 갖고 접근해야 한다. 남로당 경북도당 간부였다가 전향했던 박진목씨가 과거에 언론인들과 친했다. 그는 한국전쟁 중 평양 밀사로 가서 이승엽 당시 국가검열상과 협상을 벌였던 인물이다. 박씨의 지론은 “과거 남로당이 생각을 잘못 했다. 그 막강한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물리친 미군을 상대로 남로당 몇몇이 ‘물러나라’고 투쟁했으니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니겠냐”는 것이었다. 중국이 미국에 맞서는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 어페어스’는 중국의 부상과 동북아 정세를 일컬어 ‘빙하를 움직이는 일’(Moving Ice Glacier)라고 표현한다. 강대국 입장에서 빙하는 한반도다. 빙하가 움직이려면 몇 십년 몇 백년이 걸린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평가는. 출범 초에 혁명적 상황에서 만들어졌으니 혁명적 대응을 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는데. =1960년 4·19 이후 장면 정부는 혁명적 상황을 비혁명적인 해법으로 일관했다. 군의 부정부패를 그대로 방치했다. 혁명적 상황에서는 최소한 반 정도는 혁명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시대 조류에 씻겨 내려간다. 그런 면에서 현 정부는 반 쯤은 혁명적인 색깔을 드러냈다는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기무사 해체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쿠데타의 원조인 기무사를 이번 기회에 해체해 개편해야 한다. 최근 경제가 안 좋다. 근로시간 단축이나 최저임금 상승 등을 원인으로 지목하지만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적인 경기 하락이라는 해외 요인이 더 크다. ‘삼성 투자 구걸’ 논란도 일종의 소아병적 반응이다. 대범하게 바라봐야 한다. -지방선거 압승 이후 여당의 탈주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우리나라의 기본적인 정치 지형은 보수가 강하다. 이는 남북이 분단됐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는 북한에서의 상층 인텔리들이 월남을 하면서 남쪽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개신교만 해도 평안도 출신의 보수적인 예수교장로회가 주역이 되고, 함경도 기반의 진보적인 기독교장로회는 소수가 됐다. 예장을 대표한 한경직 목사도 보수적인 색채가 매우 강했다. 미국의 영향력도 엄청났다. 미국이 길러낸 군, 학자, 언론 등 분야의 인물들이 얼마나 많은가. 미국 문화가 압도적이다 보니 보수가 강할 수 밖에 없다. 그에 반해 진보는 아예 없다시피 하다. 한국전쟁으로 일단 궤멸됐다가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사형당하면서 더 위축됐다. 4·19 혁명 이후 잠시 머리를 들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또 다시 사라졌다. 1980년대 이후 학생운동 정도가 진보의 명맥을 이은 것이다. 정치 지형만 놓고 보면 어쩌다가 노무현 정부가 들어섰다가 문재인 정부로 이어온 것이다. 진보 정부라도 제대로 된 진보가 아닌 약한 진보다. 김대중 정부는 아주 약한, 노무현 정부와 문재인 정부는 조금 약한 진보 정부다. 이에 반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강한 보수였다. 그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가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지만 낙관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다만 박근혜 정부가 완전히 망치고,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막말정치를 일삼으면서 보수가 힘을 못 쓰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책임이 있는 한국당은 연옥을 거쳐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엄청난 자정 노력 숙청, 반성 등 재생을 위한 노력이 뒤따라야 했지만 연옥을 안 거치니 안 되는 거다. 김병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점잖게 나가고 있지만 위기에 부딪혔을 때 어떤 행태를 보일 지 지켜봐야 한다. -그렇기에 평소 협치를 강조한 게 아닌가. 청와대도 협치내각을 구상 중이다.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인 이해찬 의원 관련 기사를 가리키며) 이 의원이 자꾸 말을 잘못 한다. 협치하자고 하면서 “수구세력이 반전을 노린다”고 이야기하면 되겠냐. 여당이 원내 과반수에 미달하면 야당을 슬슬 구슬러야 한다. 같은 표현이라도 ‘개혁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면 되는데 이렇게 자극하면 될 일도 안 된다. 한국당과의 협치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더라도 그런 입장을 취해야 한다. 끌어들이지 못할 망정 도발하는 건 맞지 않다. 이 의원은 문 대통령과 갈등을 빚을 수도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껄끄러운 관계로 가면 안 되는데 문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것이다. ‘나(이 의원)는 (예전에) 총리였고 넌(문 대통령) 민정수석이었고, 난 (운동권) 선배고 넌 후배’ 이런 식의 모습을 보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개헌을 통한 선거구제 개편 논의도 활발하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10년 전 쯤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전 세계 인구 대비 적정 의원수는 우리나라가 500명 정도이고, 단원제를 감안하면 350명 정도가 적정한 것으로 나온다. 의원수를 현재보다 늘리는 데 대해 국민들의 반감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숙제다.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의원이 정치 일성으로 의원수를 줄이겠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안철수는 끝났다’고 주변에 이야기했다. 의원 수를 줄이자는 건 정치를 전혀 모르는 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유럽식 선진 정치에 접근할 수 있다는 생각에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안했을 것이다. 나도 국회의원에 5번 출마해서 4번 이겼다. 상대방보다 약간의 표만 먹으면 권력의 전부를 먹는 거다. ‘올 오어 낫씽’(All or Nothing)이다. 이건 국회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 다수는 결정의 원리’라는 게 정치학의 기본 아닌가. 대통령 임기와 관련해서는 4년 중임제가 좋다고 생각하지만 5년 단임제 역시 무리하게 바꿀 필요는 없다고 본다. 1987년 개헌 과정에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세 유력 정치인이 서로 번갈아가며 대통령이 되기 위한 속내로 5년 단임을 지지한 측면이 강하다. 지금은 속도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다. 이젠 10년이 아닌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내각책임제는 우리 현실에서는 절대 안 된다. 국회의원들이 서로 자리다툼에 골몰해 내각이 몇 개월 만에 무너지는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싸움하다가 볼일 못 볼 수 있다. 제2공화국 당시에도 헌법에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이 분명히 구분돼 있었지만 윤보선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는 권력을 놓고 서로 암투를 일삼았다. -경제 면에서는 빈부격차 심화가 사회정의 문제 뿐 아니라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의견도 많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가 지난해 헨리 조지를 언급하며 강조한 것처럼 지대추구의 특권이 용인되는, 곧 땅으로 빈부격차가 심화되는 건 큰 문제다. 일본 파나소닉 창업자이자 ‘경영의 신’으로 불린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은 “땅은 공기나 물과 같다”고 말했다. 하늘이 주고 다른 것과 대체할 수 없는 땅을 독과점하는 건 부당하다는 것이다. 땅의 독점을 통해 엄청난 이익이 발생하고, 그에 따라 빈부격차가 심화된다면 당연히 정부 정책으로 해결돼야 한다. 다만 노무현 정부 때 그렇게 많이 올리지도 않았지만 종부세 인상으로 벼락을 맞았다. 속도는 알게 모르게 해야 한다. ‘오리털 뽑듯이 올린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원래 오리털은 펜촉으로 쓸 용도로 뽑았다. 오리털을 뽑으면 상처는 안 나지만 오리는 매우 아파한다고 하더라. 그래도 오리털은 뽑아야 한다. -얼마 전 한 언론(프레시안)에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죽음을 애통해하는 글을 썼다. =노 의원보다는 심상정 의원과 더 가깝다. 하지만 노 의원과도 술자리를 갖는 등 잘 어울려 다녔다. 내가 인정하는 ‘구라’는 3명이다. 소설가 황석영과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 그리고 노 의원이었다. 구라는 과장과 재치가 합쳐져야 가능하다. 황석영은 소설가로 1급, 유홍준은 미술평론으로 1급, 그리고 노 의원은 언어를 사용하는 정치인으로 1급이었다. 한국 정치 언어의 품격을 높인 그가 그런 선택을 해 애석하기 짝이 없다. 이두걸 논설위원 douzirl@seoul.co.kr
  • 양승태 사법부 ‘뇌물 판사’ 관심 덮으려 이석기 재판 조율했다

    檢·법원, 행정처 잇단 영장 기각에 충돌 “제 식구 감싸기” vs “요건 못 갖춰 기각”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 농단’을 수사하는 검찰이 법원행정처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법원에 연일 불만을 표출하자 법원이 발끈했다. 법원은 검찰이 발부 요건을 갖추지 못한 영장을 청구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이 재반박에 나서며 두 기관 간 갈등이 커졌다. 법원행정처가 법관 개인비리 수사에 대한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기 위해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 내란음모 상고심 기일을 조율하는 문건을 작성한 정황이 2일 드러나는 등 재판 개입 의혹은 점점 확산되는 국면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는 일제 강제징용·위안부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법원과 외교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외교부에 대한 영장만 발부했다. 지난주 양 전 대법원장·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데 이어 법원 관련 영장이 계속 기각되자 검찰 관계자는 “납득할 수 없는 기각”이라고 성토했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측은 “최근 기각된 법원 구성원에 대한 영장은 피의사실 특정, 범죄 구성요건 충족, 장소·물건의 명확한 범위 규정 등 영장 발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제 식구 감싸기’란 비판을 반박했다. 앞서 부산의 한 건설업자 형사재판에 개입한 의혹을 받았던 문모 전 판사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 사유를 “별건 수사”라고 밝힌 데 대해 검찰이 강력 반발한 것을 의식한 듯 법원은 이에 대해서도 해명했다. 문 전 판사 관련 비위 의혹을 덮는 데 행정처 영향력이 미쳤는지가 수사 대상일 뿐 문 전 판사의 과거 혐의 진위를 다시 파헤치려는 영장 청구는 ‘별건 수사’로 봤다는 것이다. 이에 검찰 관계자는 “참고인에 불과한 외교부에 대해서도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면서 범죄 의혹이 짙은 행정처·법원 관계자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하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것”이라고 재반박했다. 이번 영장 공방과는 별도로 비난 여론을 부를 법원 내 비위 사건을 덮으려고 행정처가 적극 나섰다는 의혹은 확산 중이다. 상고법원 도입이 적극 추진되던 2015년 1월 18일 최민호 판사가 ‘사채왕’ 최모씨로부터 수억원을 불법 수수했다고 검찰에서 자백한 이튿날 행정처는 이석기 전 통진당 의원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 선고일을 사흘 뒤로 확정, 발표해 세간의 관심을 이 전 의원 재판 쪽으로 돌리려는 방안을 검토한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실제 문건 내용대로 선고가 이뤄졌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文정부 임명 대법관 14명 중 8명 ‘과반’… 사법불신 속 보수색 벗나

    文정부 임명 대법관 14명 중 8명 ‘과반’… 사법불신 속 보수색 벗나

    ‘非법관’ 등 다양성 강화… 주류 교체 ‘양심적 병역거부’ 등 판결 변화 주목김선수(57·사법연수원 17기)·이동원(55·17기)·노정희(55·19기) 신임 대법관이 2일 취임하면서 대법관 14명(대법원장, 법원행정처장 포함) 중 8명이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인물로 꾸려졌다. 대법관 판결의 보수색이 옅어질지 주목된다. 진보 성향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회장 출신의 김 대법관은 대법 판결에 변화를 주도할 상징적인 인물로 꼽힌다. 김 대법관은 취임식에서 “순수 변호사 출신 대법관이라는 국민 여러분의 관심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이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국민들이 가장 궁금한 건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대법원 판결이 진보적으로 바뀔 수 있느냐는 점이다. 한 변호사는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보수적인데, 대법관 대부분이 판사 출신이라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임명권자의 성향이나 사회적 분위기를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법관 구성이 과거보다 다양해진 만큼 기존 판례가 변화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시각도 있다. 재판연구관을 지낸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기존 판례를 고수하는 1·2심 재판만 했던 재판연구관이라는 말이 있다”면서 “상고심을 담당하는 대법관으로서 시대정신에 맞춰 판례를 바꿔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법원 안팎에서는 다음달 공개변론을 여는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이 새롭게 구성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성격을 좌우할 것으로 예상한다. 2004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죄 판결을 내렸고, 하급심에서 무죄 판결이 잇따르자 대법원은 최근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14년 만에 회부했다. 한 부장판사는 “보통 판사 성향은 노동·공안 사건에서 갈리는 만큼 전교조 법외노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지위확인, 경찰의 쌍용차노조 상대 손해배상 사건에서 새로운 대법원의 성격이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법원 전원합의체에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강제징용 손해배상 재상고심 사건, ‘블랙리스트’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를 받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청와대 정무수석 사건 등이 회부돼 있다. 국정농단으로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 실세’ 최순실씨도 향후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할 가능성이 크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전문] 문희상·이정미·심상정·김호규 노회찬 의원 영결식 조사

    노회찬 정의당 의원의 영결식이 27일 오전 국회 본청 앞에서 국회장으로 엄수됐다. 영결식에서는 국회장 장의위원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이 영결사를 맡았으며,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김호규 금속노동자가 조사를 낭독했다. 다음은 영결사와 조사 전문. 문희상 의장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노회찬 의원님! 이곳 국회에는 한여름 처연한 매미 울음만 가득합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까? 어떻게 하다가 이 자리에서 노회찬 의원님을 떠나보내는 영결사를 읽고 있는 것입니까? 태양빛 가득한 계절이건만 우리 모두는 어두운 터널에 들어선 듯 참담한 심정으로 모여 있습니다. 둘러보면 의원회관 입구에서 본청입구에서 노회찬 의원님의 모습이 보일 듯합니다.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속에서도 여유 가득한 표정의 우리 동료, 노 의원님을 만날 것만 같습니다.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믿고 싶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현실이라는 것에 황망함과 비통함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충격이 가시질 않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습니다. 정의를 위해서라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만류에도 거대 권력과의 싸움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남긴 메시지에서도 노동자의 삶을 함께 아파했고 사회적 약자의 승리를 함께 기뻐했습니다. 정치의 본질이 못가진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 편에 늘 서야 한다고 생각했던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 서슬 퍼렇던 유신에 항거했습니다. 보장된 주류의 편안한 삶 대신 민주주의와 노동현장에서 온몸을 던져 투쟁했습니다. 낡은 구두, 오래된 셔츠와 넥타이가 말해주는 대중정치인의 검소함과 청렴함은 젊은 세대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한국 정치사에 진보정치와 생활정치의 깃발을 세워 사회적 약자와 노동자, 서민의 버팀목이 돼주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는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답설야중거 불수호난행) 今日我行跡 遂作後人程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마치 이 말씀을 온 몸으로 실천하듯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권력에 굴복하지 않았으며, 명예를 중시하고 신중했던 삶이었습니다. 당신의 삶은 많은 이들의 이정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노회찬 의원님! 당신은 22일 저녁 병상의 어머님을 찾아뵙고 동생의 집을 들렀지만, 만나지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그 누구도 꿈속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을 마지막 밤을 보내고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차마 이 길을 선택한 노회찬 의원님의 고뇌와 번민, 회한과 고통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눈물만 흐를 뿐입니다. 당신은 여기서 멈췄지만 추구하던 가치와 정신은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님! 지난 닷새 동안 당신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수많은 이들이 눈물 속에서 꽃을 건넸습니다. 흐드러지게 꽃피었어야 할 거인과의 갑작스런 작별을 온 국민이 애도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을 동료들과 함께 국회장을 치를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유가족 여러분께 가슴 깊이 우러나오는 감사의 말씀과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노회찬 의원님, 이제 평생을 짊어졌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영원한 평안을 누리십시오. 당신이 한국정치사에 남긴 발자취와 정신은 우리 국회와 대한민국의 역사 속에서 길이 빛날 것입니다. 부디 영면하소서. 이정미 대표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대표님! 수만의 시민들이 전국 곳곳에서 대표님을 추모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초등학생부터 구순 어르신까지. 막 일을 마치고 땀자국이 선연한 티셔츠를 입고 온 일용직 노동자부터 검은 정장을 정중히 입은 기업 대표까지. 남녀노소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오셔서 원내대표님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했습니다. 나이도 성별도 하는 일도 다르지만 이 분들이 저의 손을 잡고 울먹이며 하시는 말씀은 모두 같습니다.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꼭 필요한 사람’. 이보다 노회찬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을 것입니다. 노회찬 원내대표가 세상을 떠나자 많은 단체가 추모 성명을 냈습니다. 그들은 해고 노동자이고, 산재로 자식을 잃은 어미이자 아비였으며,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였습니다. 노회찬이 우리 정치에 없었다면 ?간절한 외침을 전할 길이 없었던 약자들이 노회찬의 죽음에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습니다. 노회찬의 정치 이력은 바로 이들을 대변하고, 이들의 삶을 바꾸는 길이었습니다. 대학생 노회찬은 노동 해방을 위해 용접공이 되어 인천으로 향했고, 일하는 사람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을 만들기 위해,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기 힘든 진보정치 단체들을 두루 이끌며 청춘을 바쳤습니다. 진보정당 탄생 후에는 그 성공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생의 마지막 순간, 그가 만들고 키워 온 정의당을 위해 그의 삶을 통째로 바쳤습니다. 그래서 노회찬을 잃은 것은 그저 정치인 한명을 잃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약자들의 삶을 바꿀 수 있는 민주주의의 가능성 하나를 상실했습니다. 노회찬, 당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정치인은 아닐지라도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2013년 2월 14일 삼성 X파일 대법원 선고로 의원직을 상실한 날, 억장이 무너진 당직자들에게 당신이 처음 했던 말이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였습니다. 분노의 눈물을 삼킨 동료들에게 오히려 웃음과 유머를 보였습니다. 당신은 하늘이 주신 이 재능으로 시민들에게 정치의 통쾌함과 즐거움을 안겼습니다. 그 유쾌함은, 위기와 역경을 낙관으로 이겨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노회찬은 불같은 분노와 강직함을 함께 갖고 있었습니다. 2013년 의원직 상실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다시 그날로 돌아가도 삼성 X파일을 공개 하겠다”고 말하는 지독한 고집쟁이였습니다. 마지막 유품인 10년이 넘은 양복 두벌과 낡디 낡은 구두 한 켤레에서, 스스로에게 엄격했지만 너무도 소박했던 노회찬을 봅니다. 우리 정치를 이상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노회찬을 다시 확인하게 됩니다. 국민들은 이런 노회찬을 보며 저기 국회에도 자기 편이 한명 쯤은 있다고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한결 같은 노회찬을 보며, 많은 정치인들은 정당과 정견은 다르더라도 그를 존중했습니다. 이처럼 소중한 노회찬이, 무겁고 무거운 양심의 무게에 힘겨워 할 때 저는 그 짐을 함께 나눠지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오직 진보정치의 승리만을 염원하며 스스로가 디딤돌이 되겠다는 선택을 할 때도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습니다. 당원들과 국민들께 너무나 죄송합니다. 정의당은 약속드립니다. 조문 기간 백발이 성성한 어른께서 저의 손을 잡고 “정의당 안에서 노회찬을 반드시 부활시키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저와 정의당은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노회찬의 정신은 정의당의 정신이 될 것이며, 노회찬의 간절한 꿈이었던 진보집권의 꿈은 이제 정의당의 꿈이 될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문희상 의장님과 선배 동료 의원 여러분! 노회찬 대표의 2012년 정의당 창당대회 연설을 기억합니다. 노 대표는 투명인간들에 대해 말했습니다. 매일 새벽 4시 서울 구로구에서 6411버스를 타고 강남의 빌딩으로 출근하는 여성노동자들은 진보정당에서조차 투명인간이었다고, 그는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분들이 냄새 맡을 수 있고, 손에 잡을 수 있는 곳으로, 이 당을 함께 가져가자”고 했습니다. 노회찬의 이 다짐이 정의당만의 다짐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한국 정치가 너나 ?없이 투명 인간으로 취급해 온 일하는 사람들, 소수자들, 약자들을 향해 이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개혁과 시민의 삶을 바꾸는 개혁에 나서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여기서 멈추겠다.”고 했던 노회찬은 결코 멈추지 않고 우리와 함께 “당당히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정치 변화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벗, 존경하는 나의 선배 노회찬 이시여. 부디 영면하십시오. 먼 훗날 다시 만나면, 수많은 노회찬의 부활로 진보정치의 큰 꿈을 이루고 이 나라가 평등 평화의 새로운 대한민국이 됐다고 기쁘게 이야기 나눌 것입니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노회찬 대표님! 나의 동지, 사랑하는 동지, 영원한 동지여! 지금 제가 왜? 왜? 대표님께 조사를 올려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싫습니다.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뒤로 숨고만 싶습니다. 생각할수록 자책감에 서러움이 밀려옵니다. 쉬운 길 놔두고 풍찬노숙의 길을 자임한 우리들이었기에, 수많은 고뇌와 상처들을 기꺼이 감당해왔던 믿음직한 당신이었기에, 우리 사이의 침묵은 이심전심이고 믿음이며 위로였기에, 지금껏 그래왔듯 그저 침묵으로 기도하면 될 줄 알았습니다. 저의 아둔함에 가슴을 칩니다. 칠흑 같은 고독 속에 수 없는 번민의 밤을 지새웠을 당신을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돌아보니 우리가 함께 한 세월이 30년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인천에서, 저는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가로 알게 되어 이후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그리고 정의당에 이르기까지 노회찬, 심상정은 늘 진보정치의 험준한 능선을 걸어 왔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패배로 점철되었던 진보정치의 역사에서 함께 좌절하고, 함께 일어섰습니다. 그 간난신고의 길,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던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열어주셨기에 함께할 수 있었고 당신과 함께였기에 견딜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역사와 국민의 부름 앞에서 주저 없이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뜻을 국민들께서도 널리 공감해주시기 시작한 이 때, 이렇게 황망하게 홀로 떠나시니 원통합니다. 당신 없이 그 많은 숙제를 어찌 감당해야 합니까? 그러나 이제 슬픔을 접으려 합니다. 당신을 잃은 오늘, 우리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깨끗하고 정의로운 정치를 위해 당신이 감당했던 천근만근 책임감을 온몸으로 받아 안을 것입니다. 저와 정의당이 그 유지를 가슴깊이 아로새기겠습니다. 당신이 목숨보다 아꼈던 진보정치, 정의당은 더 강해지겠습니다.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아름답고 품격 있는 정당으로 발돋움 하여 국민의 더 큰 사랑 받겠습니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노회찬 없는 진보정당, 상상할 수 없습니다. 가능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노회찬과 함께 할 것입니다. 당신이 끝끝내 지켜내고자 했던 진보정치의 꿈, 정의로운 복지국가, 저와 정의당 당원들이 함께 기필코 이뤄낼 것입니다. 사랑하는 노회찬 동지여! 나의 동지여! 마지막으로 생전에 드리지 못한 말을 전합니다. 노회찬이 있었기에 심상정이 있었습니다. 가장 든든한 선배이자 버팀목이었습니다. 늘 지켜보고 계실 것이기에 ‘보고싶다’는 말은 아끼겠습니다. 대신 더 단단해지겠습니다.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2011년 대한문 앞에서 함께 단식농성하며 약속했던 그 말, ‘함께 진보정치의 끝을 보자’던 그 약속, 꼭 지켜낼 것입니다. 정의당이 노회찬과 함께 기필코 세상을 바꿔낼 것입니다. 노회찬 대표님,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소서. 국민들과 함께 소탈하고 아름다운 정치인 노회찬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김호규 금속노동자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노회찬 선배께 “노동자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너무나도 소박한 요구를 밤새 가르방으로 긁어 유인물로 만들고 새벽찬 어둠을 뚫고 잰걸음으로 인천, 부천지역 공단 주변 집집마다 돌리고 먼 길을 돌아 출근했던 노동자 생활이 떠오릅니다. 서로 얼굴도 모른 채 가명으로 활동한 1986년 늦가을이 생각납니다. 벅찬 가슴안고 뚜벅뚜벅 걸었던 노동자의 길을 기억 합니다. 그 길에서 만난 노회찬 선배. 30년이 지난 오늘 영원한 안식의 길에서 만나게 되는군요. 제가 부족했습니다. 노동운동의 노선과 조직이름이 바뀌어도, 함께했던 선배였기에,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양날개론을 증명해보고자 실천한 선배였기에, 온갖 시련과 갈등이 혼재된 진보정당운동에서 대중적인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였기에, 그저 믿었습니다. 저희가 안일했습니다. 예전 조직활동을 했던 때처럼 분명하게 비판하고 조직적으로 결정했다면 이렇게 허망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필요할 때만 전화했던 이기심이 부끄럽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선배의 고민을 함께하지 못했던 얄팍함을 반성합니다. 그래도 노동자 민중의 정치를 위해 희망을 만들었던 선배를 존경합니다. 푸근한 호빵맨으로, 적절한 비유로 비판의 경지를 한 단계 높여 대중적인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열어낸 선배의 열정을 사랑합니다. 낮은 울림이 큰 첼로를 연주할 수 있는 정치인으로, 온 국민이 악기 하나쯤은 연주 할 수 있는 나라를 꿈꿨던 선배의 감성을 배우겠습니다. 1986년 부천에서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 저에게 지난 30여 년 동안 선배와의 인연은 일선의 현장활동가로서 가까웠지만 사안에 따라 다소 멀기도 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울산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선배의 지도는 늘 좋았고 명쾌했습니다. 갈등했던 기억은 잠시 뒤로 미루고, 울산 바닷가에서 의기투합했던 도원결의는 간직하겠습니다. 선배를 보내는 이 자리는 회한과 슬픔이 앞서지만 넋 놓지 않고 다시 한 번,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의 후배로서 선배의 유지를 받아안고 산 자의 결기로 나아가겠습니다.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는 선배를 통해 체득한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활동하는 동안 놓치지 않고, 노동자의 길로 나아가는 발걸음마다 나지막이 퍼져가도록 하겠습니다. 장례기간 동안 선배를 추모하는 긴 추모행렬을 보았고, 다양한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제 노동자의 길을 걸었던 노동운동가에서 진정한 정치인으로 우뚝 선 선배이기에 영원한 안식의 공간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고, 가고 싶은 곳을 자유롭게 가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광화문 정동길 금속노조 사무실 옥상에서 선배를 기억하며 서성이는데 붉은 고추잠자리가 제 주위를 맴도네요. 추억과 동심의 잠자리 모습에서 씨익 웃는 선배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아 번뜩 내려와 ‘귀로’라는 노래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다가옵니다. “무지개가 뜨는 언덕을 찾아 넓은 세상 멀리 헤매 다녔네 그 무지개 어디로 사라지고 높던 해는 기울어가네 새털구름 머문 파란 하늘 아래 푸른 숨을 쉬며 천천히 걸어서 나 그리운 그 곳에 간다네 먼 길을 돌아 처음으로” 엄혹했던 노동운동가에서, 치열한 진보적 대중 정치인으로. 이제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첼로의 운율을 남긴 만큼 먼 길 돌아왔습니다. 처음처럼, 아가처럼 편히 쉬십시오.
  • 대법관 후보 3인 임명동의안 진통 끝 국회 통과

    국회가 26일 본회의를 열고 김선수·노정희·이동원 대법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김 후보자는 끝까지 자유한국당의 반대에 부딪혔다. 김 후보자에 대한 동의안은 총투표수 271표 중 찬성 162표, 반대 107표, 기권 2표로 가결됐다. 노 후보자와 이 후보자의 반대·기권 표는 각각 43표와 24표였다. 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엔 적격 의견과 부적격 의원이 함께 실렸다. 보고서는 “다수 노동사건에서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기고 제도 개선에 기여했다”면서도 “일부 위원은 후보자가 진보성향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 회원으로 회장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을 변론하는 등 대법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한편 노 후보자가 임명되면 대법관 14명 중에서 여성 대법관은 4명으로, 역사상 여성 비율이 가장 높은 대법원이 구성된다. 이날 의원들은 본회의에서 고 노회찬 의원을 추모하는 묵념을 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 등은 상중에도 사법개혁에 대한 노 의원의 뜻에 따라 김 후보자의 동의안 통과를 위해 표결에 참석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 한국당 퇴장 속,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한국당 퇴장 속,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 청문보고서 채택

    대법관 임명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가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채택됐다. 인사청문특위는 26일 전체회의를 열고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경과보고서를 채택했다. 인사청문특위는 앞서 오전에 노정희·이동원 대법관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는 채택했으나, 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해서 한국당 의원들이 반대하며 지연됐다. 청문보고서에는 인사청문특위 위원들의 김 후보자에 대한 적격 및 부적격 의견이 함께 실렸다. 인사청문특위는 보고서에 “일부 청문위원은 김 후보자가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변론 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인정받았으며, 다수 노동사건에서 의미 있는 선례를 남기고 제도 개선에 기여하는 등 대법관에 요구되는 능력과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위원은 후보자가 진보성향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창립 회원으로 회장을 맡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고,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 사건을 변론하는 등 대법관으로서 역할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고 했다. 청문보고서 채택은 김 후보자를 반대한 한국당 의원들의 퇴장 속에 이뤄졌다. 인청특위 한국당 간사인 김도읍 의원은 퇴장에 앞서 의사진행 발언에서 “30년간 김선수 후보자는 정치적,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사건에 있어 특정세력 편을 들어서 소송 대리도 하고 성명도 내고 결국 국론 분열의 선봉에 섰다”며 김 후보자에 대한 반대를 분명히 했다. 국회는 이날 오후 4시 본회의를 열어 대법관 후보자 3명 임명동의안을 표결한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이동원 후보자 “법원행정처 해체 검토해야”

    이동원 후보자 “법원행정처 해체 검토해야”

    “사법부의 불신, 무거운 책임 통감” 사법행정권한 폐지에는 반대 의견이동원(55·사법연수원 17기) 대법관 후보자가 법원행정처를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2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법원행정처 폐지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법원행정처 해체까지 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사법행정회의에 대해서도 “충분히 검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긍정적인 의견을 냈다. 이 후보자는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 사법부 불신에 책임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이 후보자는 “지금 우리 사법부에 대해 주권자인 국민의 실망과 불신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며 “27년 동안 사법부 구성원으로 살아온 저 또한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 후보자는 대법원장의 모든 사법행정권한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의 뜻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사법행정권한은 대법원장에게 주어진 권한으로, 대법원장 권한을 아예 없게 만들면 헌법상 3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사법행정의 의사결정 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방법으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보자가 2016년 서울고법에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국회의원 지위확인 소송의 재판장을 맡아 ‘위헌 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로 소속 국회의원은 당연히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결한 것도 거론됐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통진당 전 의원들이 항소심 판결문의 논리와 (양승태 사법부의)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통진당 해산 검토 논리가 유사하다면서 재판 거래 의혹을 제기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자는 “법과 양심에 따랐다”며 “제가 올해 2월 법원장 프로필을 쓸 때 자랑스러운 판결로 썼다”고 답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단독] 이석기 회사, 언론사 상대 소송 5년 만에 일부 승소…법원 “200만원 지급”

    [단독] 이석기 회사, 언론사 상대 소송 5년 만에 일부 승소…법원 “200만원 지급”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회사가 선거홍보 비용을 부풀려 조직적으로 국고를 빼돌렸다고 보도한 언론사에 법원이 5년 만에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25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부장 이상윤)는 CN커뮤니케이션즈(CNC)가 A일간지와 B종합편성채널 방송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A일간지는 원고에게 2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CN커뮤니케이션즈는 광고 기획 및 대행업을 하는 업체로 이 전 의원이 주식의 99.6% 소유한 실질적 1인 회사로, 2010년 6월 지방선거와 교육감 선거, 2012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후보들의 선거 홍보를 맡았다.  2012년 총선 이후 이 전 의원의 선거보전비 편취 의혹이 불거졌고, 이 과정에서 2012년 6~7월 보도된 기사로 명예가 훼손됐다며 CNC가 언론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이 가운데 A일간지의 2012년 7월 기사 중 한 부분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물었다. 해당 일간지는 이 전 의원이 CN커뮤니케이션즈를 운영하며 내부 매뉴얼까지 만들어 조직적으로 선거비를 조작하는 등 ‘국고(國庫)’ 사기를 벌였다는 취지의 기사를 실었다. 특히 기사 중 ‘2010년 선거 외에도 (CNC의 전신인) CNP전략그룹이 2005년 설립된 이후 맡았던 모든 선거홍보 업무에서도 같은 수법으로 국고 빼돌리기가 조직적으로 진행돼 왔음을 입증하는 자료들도 확보됐다’고 보도한 부분은 “허위사실인 데다 취재 과정에서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타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으로 CNC에 2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해당 기사에 실린 CNC가 내부 매뉴얼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국고를 빼돌렸거나 이와 관련해 검찰이 2012년 7월 말쯤 이 전 의원을 소환 조사할 방침이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허위사실이 맞다고는 봤지만 “언론사들로서는 각 사실을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보여진다”면서 손해배상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또 이들 언론사 기사들에 대해 “선거비용 등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에 관한 것으로서 공적 관심 사안에 관한 것이므로 전체적으로 볼 때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 전 의원은 2010~2011년 지방선거 등에서 컨설팅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하며 물품 공급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선거보전비용 4억 440여만원을 타낸 혐의(사기·정치자금법 위반) 등으로 2012년 재판에 넘겨졌다. 2심에서 CNC 돈을 유용했다는 횡령 혐의만 일부 유죄로 인정돼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선거비용 보전 청구 시 제출된 회사와 후보들 사이의 계약서와 견적서 등을 보면 대금을 부풀렸다거나 허위로 작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앞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 전 의원을 상대로 선거비용을 부풀려 보전받았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지만 이에 대해서도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48부(부장 오상용)는 선관위의 청구를 기각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영원한 동지가 떠난 날”…유시민·심상정, 노회찬 별세에 오열

    “영원한 동지가 떠난 날”…유시민·심상정, 노회찬 별세에 오열

    특검 소환 수사를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故)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는 23일 오후부터 정계 인사를 비롯한 조문객들의 발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유시민 작가는 빈소를 찾아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유 작가는 조문 이후 노 원내대표의 영정사진 앞에서 오열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와 심상정 의원 등을 부둥켜 안고 또 다시 눈물을 흘렸다. 방송인 김구라와 박형준 동아대 교수도 침통한 표정으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유 작가는 오랜 시간 고인의 정치적 동지였다.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정의당에서 활동하며 진보 정치를 이끌었다. 팟캐스트 ‘노회찬, 유시민의 저공비행’ 등을 진행하며 친분을 이어왔다. 유시민 작가는 JTBC ‘썰전’을 떠나며 후임인 노회찬 의원에 대한 신뢰를 보냈다. 진행자 김구라는 “유시민 작가가 후임으로 노회찬 원내대표가 온다는 말을 하자 ‘그렇다면 안심하고 떠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심상정 정의당 전 대표 역시 24일 자정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나의 영원한 동지, 노회찬, 그가 홀로 길을 떠났다. 억장이 무너져내린 하루가 그렇게 갔다”는 글로 비통한 심정을 전했다.문희상 국회의장도 빈소를 찾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고, 엄청난 충격이다. 노 의원은 항상 시대를 선구했고, 그리고 진보정치의 상징이었다”면서 “노 의원은 정치의 본질이 망가진 자, 없는 자, 슬픈 자, 억압받는 자에 서야 된다고 생각했던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의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많은 국민으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던 노 의원이 황급히 가신 것에 대해 충격과 고통을 금할 수 없다. 그분이 남긴 많은 정치적 과제를 남은 저희들이 이어받아 국민을 위해 더 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혼자 너무 많은 고민을 하게 한 것 같아 미안하고, 죄송하다”라고 무거운 마음을 전했다. 이주영 국회부의장도 “(노 의원이) 너무나 마음이 고결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한게 아닌가 싶다”며 “정치의 바른 길, 정의로운 길을 주장했던 그의 뜻을 잘 받들어 국민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국회와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정의당은 노 의원의 장례식을 5일간 정의당장(葬)으로 치르고, 상임장례위원장으로 이정미 대표를 선임했다고 밝혔다. 정의당은 발인인 오는 27일 오전 9시 고인의 영정사진을 들고 당사를 들를 계획이다. 아울러 오전 10시 국회 영결식을 거쳐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원지동 추모공원에서 화장한다. 장지는 경기도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이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씨줄날줄] 노회찬과 부채의식/김성곤 논설위원

    [씨줄날줄] 노회찬과 부채의식/김성곤 논설위원

    “아무리 그래도 노원병 유권자들 반성 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노회찬을 떨어뜨립니까.” 10년 전인 2008년 18대 총선에서 노회찬 후보가 낙선한 것을 두고 언론계 한 동료가 한 말이다. 당시 최대 관심사는 노회찬의 당선 여부였다. 17대 민주노동당 소속 비례대표로 의원 배지를 단 그는 삼성 비자금 사건을 터뜨려 스타가 돼 있었다. 홍정욱 후보는 한나라당이 영입한 뉴페이스였다. 결과는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 43.1%, 통합진보당 노회찬 후보 40.1%, 김성환 민주당 후보 16.3%이었다. 노회찬 후보가 3% 포인트 차로 아깝게 낙선했다. 상계동 노원병 선거구에 살던 유권자를 비판한 그 언론인은 보수지에 몸담고 있으면서 평소에도 강한 보수 성향을 보였던 터라 그 반응이 의외로 느껴졌다. 노회찬은 그런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적 좌표는 왼쪽이었지만, 그는 좌파도 우파도 아닌 우리 곁에 항상 있었다. 진보정치의 상징이었지만, 친숙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정치인이었다. “청소할 때 청소를 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라고 얘기하면 말이 됩니까.” ‘적폐청산이 정치보복’이라는 야당의 주장에 대한 그의 촌철살인은 유권자를 미소 짓게 했다. 그는 앞서 간 탓에 꽃길보다는 가시밭길을 걸었다. 3선 의원이지만 그는 각종 선거에서 이긴 적보다 진 적이 많았다. 19대 노원병, 20대 때 창원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그 전엔 당내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기도 했고, 지역구를 제대로 찾지 못해 이리저리 떠돌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그를 스타로, 한국 정치의 자산이라고 여기면서도 선거 때는 외면했다. “미안하지만, 정권 교체가 우선이지….” 그가 23일 드루킹 관련 특검 출두를 앞두고 유명을 달리했다.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금전을 받은 사실은 있으나 청탁과는 관련이 없다.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겼다. 고인(故人)이 드루킹 측으로부터 돈을 받은 시점은 2016년 4·13 총선 직전인 3월이었다고 한다. 몇 표 차로 당락이 갈리는 선거판에서 돈은 참기 힘든 유혹이다. “운동원을 조금만 더 쓰면”, “자금이 조금만 더 있으면”이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것 같다는 게 한 은퇴 정치인의 얘기다. 정치판에서 돈에는 반드시 꼬리표가 달린다는데…. 막판에 판단이 흐려졌던 것일까. 누구나 살면서 실수를 한다. 정치인 노회찬에게는 그 실수마저도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일까. 진보정치의 아이콘으로서 소속 정당과 진보진영, 지지자, 가족에 대한 ‘무게’가 그리 컸던 것일까. 안타깝고 비통하기조차 하다. 솔직하게 시인하고 유권자에게 한번 더 심판을 받아보는 것은 어땠을까.
  • “대법관과 민변 역할 다르다” 선 그은 김선수

    “대법관과 민변 역할 다르다” 선 그은 김선수

    재조(판검사) 경험이 없는 재야 출신으로 처음 대법관 후보에 오른 김선수(57·사법연수원 17기) 변호사가 23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자신이 뿌리를 두고 있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과의 단절을 선언했다. 정치·이념 편향 논란에 선을 그으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김 후보자는 이날 “대법관으로 사는 삶은 민변과의 관계를 단절하는 데서 출발해야만 할 것”이라며 “이런 배경에서 대법관 제청 직후 민변을 탈회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 민주화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민변의 회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대법관의 역할과 민변 회원 역할은 분명히 다르다. 민변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하더라도 대법관은 현행 국보법을 전제로 판결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은 민변 창립 회원이자 회장까지 역임한 그가 위헌 정당 해산심판 사건에서 통합진보당 측 변호인 단장으로 활동한 경력 등을 거론했다. 김도읍 의원은 “국론분열 사건마다 재판에 관여하거나 성명을 내면서 정치적 편향성을 여실히 드러냈다”며 공격했다. 그러나 김 후보자는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두고 살아 왔다.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당에 후원금을 낸 적도 없다”며 정치적으로 논란이 될 사안들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 후보자는 특히 “변호사로서 인권단체 활동을 하며 가졌던 관점과 견해는 대법관 직무를 수행하면서 일정하게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를 포함한 모든 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다양성과 차이를 포용하는 사회,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대우받는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김 후보자가 청문회 서면 답변서에서 미리 밝힌 서울 서초동 아파트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대치동 전세 이사 등을 놓고 도덕성을 꼬집기도 했다. 이와 관련, 김 후보자는 “장남이 고등학교 진학 때였는데 서초동에선 남녀공학으로 갈 가능성이 컸다”며 “남녀공학은 내신에서 남학생들이 못 따라가기 때문에 (남자 고교에 갈 가능성이 높은) 대치동 쪽으로 옮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 후보자를 사법농단 사태로 땅에 떨어진 사법부 신뢰를 회복시킬 적임자로 치켜세웠다.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법원이 심각한 위기”라며 “이럴 때일수록 계속 판사로 지내오신 분보다 법원 바깥에서 다양한 경험과 견해를 가진 분이 새로운 시각으로 문제를 풀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23일부터 경찰청장·대법관 인사청문회 줄줄이

    23일부터 경찰청장·대법관 인사청문회 줄줄이

    오늘(23일)부터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와 김선수·이동원·노정희 대법관 후보자 등 고위 공직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줄줄이 이어질 예정이다. 이날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의 골프 접대 의혹 수사’로 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는 민갑룡 경찰청장 내정자와 ‘이념 편향성 논란’의 중심에 선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가 이뤄진다. 야권은 두 인사청문 모두 그냥 넘길 수 없다며 정밀 검증을 예고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미 사실상 경찰청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민 경찰청장 내정자에 대해 ‘김병준 비대위워장의 골프 접대 의혹’ 수사에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는 만큼 쉬이 넘길 수 없다는 분위기다. 김선수 대법관 후보자의 인사청문 역시 야당이 ‘정권의 코드인사’ ‘이념적 편향성’을 문제 삼아온 만큼 여야 간 공방이 예상된다. 야권은 김 후보자의 이력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세를 펼칠 것을 예고하고 있다. 김 후보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사무총장과 회장을 지냈고 참여정부 시절에는 사법개혁 담당비서관,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 기획추진단장을 지냈다. 2013년에는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에서 통합진보당 변호인단장을 맡았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檢, 양승태 사법부 ‘민변 대응 문건’ 실행 조사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에 반대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대응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 민변 회원 7명을 ‘블랙리스트’라고 명시한 문서파일도 확인됐다. 11일 ‘사법농단’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자용)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김준우·최용근 사무차장은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민변이라는 민간 변호사 단체를 사찰한 정황이 드러났다”면서 “또 의사결정 과정에도 부당하게 개입하려고 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민변은 대법원 산하 특별조사단이 찾아낸 410개 문건 중 ‘상고법원 입법관련 민변 대응 전략’을 포함해 총 7건의 민변 관련 문건이라고 설명했다. 문건에는 상고법원에 대한 민변의 입장을 바꾸기 위해 ‘약한 고리’ 전략과 ‘강한 고리’ 전략 등을 펼쳐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약한 고리’ 전략으로는 상고법원에 우호적인 진보 진영 학자나 국회의원을 돕자는 방안이 제시되면서 ‘최원식·문병호’ 등 전직 국회의원의 이름을 실명 거론하고, 우군으로 삼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강한 고리’ 전략으로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결정 이후 일선 법원에서 심리하는 관련 재판을 통해 민변과 ‘빅딜’을 시도하는 방안과 보수 변호사 단체 활용 방안도 제시됐다. 또 전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해 지역언론사를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하면서 법원장 등을 동원하는 것도 계획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변 측은 검찰 조사에서 2016년 10월 27일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000086야당분석’이라는 제목을 담은 메모 형태의 한글문서 파일도 확인했다. 파일에는 성창익, 정연순, 송상교, 장주영 변호사 등 민변 전·현직 간부 7명의 이름과 사법연수원 기수, 소속 사무실 등이 적혀 있고 그 위에는 ‘블랙리스트’라고 표시됐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첫 재야·여대 출신 대법관 나왔다

    첫 재야·여대 출신 대법관 나왔다

    다양성 초점·행정처 출신 배제 첫 여성 대법관 4명 시대 열려오는 8월 2일 퇴임하는 고영한, 김창석, 김신 대법관 후임으로 김선수 변호사, 노정희 법원도서관장, 이동원 제주지법원장이 임명 제청됐다. 판사나 검사 경험이 없는 재야 출신 대법관과 여대 출신 대법관이 처음 배출되는 등 대법관 구성을 다양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또 처음으로 여성 대법관 4명 시대가 열리게 됐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2일 김 변호사 등 3명을 신임 대법관으로 임명해 달라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제청했다. 대법원은 대법관 구성의 다양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기대를 각별히 염두에 뒀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판사나 검사 경험이 전혀 없는 최초의 대법관 후보다. 그는 서울신문과의 전화 통화에서 “법관 출신들은 사법 서비스 공급자 입장만 알고 있지만 변호사들은 수요자 측면까지 이해할 수 있어 이런 점을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조 경험이 없는 변호사 출신으로서) 모범을 보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우리 사회 약자와 소수자의 관점이 대법원 토론 과정에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를 나온 김 변호사는 헌법과 노동법 분야 전문가로 인정받았으며, 2010년부터 2년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을 지내는 등 진보 성향 인사로 분류된다. 1994년 변호인의 수사기록 열람과 등사를 거부한 검사의 처분에 대해 헌법소원을 내고 위헌 결정을 받아냈다. 이를 통해 형사소송법이 개정돼 변호인과 피고인의 수사기록 열람·등사권이 인정됐다. 지난해 6월과 11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최종 후보로 추천했지만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가 이번에 임명 제청됐다. 노 관장은 1990년 판사로 임용된 뒤 1995년 변호사로 개업했다가 2001년 다시 판사로 임용됐다. 노 관장이 임명되면 최초의 이화여대 출신 대법관이자 역대 7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또 사상 최초로 여성 대법관 4명 시대가 열린다. 노 관장은 여성과 아동의 인권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거듭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법원장은 1991년 판사로 임용된 후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거치는 등 재판 실무와 법리에 두루 능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헌정당해산 결정이 된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제기한 의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최초로 위헌정당 해산 결정의 효과가 소속 의원에게 미쳐 당연직으로 의원직을 상실한다고 판결했다. 대법관 임명 제청된 현직 판사 두 명은 모두 법원행정처 근무 경험이 없다. ‘행정처 출신이 대법관 등 고위법관이 된다’는 관행을 깨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 세 명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문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민선 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개발 중심 벗어나 생활구정 초점… 살고 싶은 중구 만들 것”

    [민선 7기 단체장에 듣는다] “개발 중심 벗어나 생활구정 초점… 살고 싶은 중구 만들 것”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당선자는 지난 26일 “중구는 마천루가 곳곳에 솟아 있고 재정자립도 2위인 부자 도시이지만 정작 주민들은 삶의 질이 보잘것없어서 박탈감이 크다”면서 “기존의 개발 중심이 아닌 주거, 교육, 문화, 복지 등에 초점을 맞춘 생활구정으로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도시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중구는 사실상 15년 만에 정권교체인데. -선거 때 여당 구청장이 중구 발전의 적임자라는 말씀을 계속 드렸다. 이번에는 여당에 기대를 해 주신 것 같다.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문재인 대통령의 평화번영 정책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 박원순 서울시장과 손발을 맞춰서 중구 발전을 이뤄 달라는 구민들의 바람으로 여기고 최선을 다하겠다. 구정 방향의 일대 변화를 통해 주민들이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겠다. →구정 변화의 방향은. -다른 구들은 이미 생활구정으로 주민 삶의 질을 챙기는데 중구는 관료 행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주요 사업도 청사 리모델링 등 개발 사업에 치중돼 있다. 실질적으로 구민들의 삶의 질을 높여 주는 주거, 교육, 문화, 복지 분야에 대한 지원이 취약하다. 명동, 동대문, 남대문 등 중구 상당수 지역에서 일하는 젊은 경제 인구는 비싼 집값 때문에 중구에서 살지 못하고, 중년층은 자녀 교육에 취약하다며 떠나가거나 떠나고 싶어 한다. 실제로 중구 인구는 2000년 14만명에서 올해 10여만명으로 서울 감소율보다 훨씬 많이 줄었다. 중구민을 위한 중구, 살기 좋은 중구, 일하기 좋은 중구를 목표 삼아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 →주민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은. -학생운동 시절이나 국회의원 보좌관 시절에도 삶의 질을 고민했다. 독재 타도뿐 아니라 학생의 생활권, 학습권에 관심을 가졌고 보좌관 때는 남들이 이동통신 관련 기술표준 방식을 놓고 싸울 때 통신요금 인하에 주목했다. 중앙정치가 가치와 이념을 두고 다투는 곳이라면 구는 선택된 가치를 삶의 질로 구체화하는 곳이다. 구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돈을 잘 벌어오고, 적재적소에 지출하는 구정을 펴겠다. →돈을 벌어오겠다고 했는데. -구의 수입에는 세금 말고도 중앙정부와 서울시로부터 받는 예산이 있다. 중구가 받는 특별교부금, 지역발전특별회계 보조금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으로 확보하고, 재정 구조를 혁파해 사업비를 연간 500억원 추가 확보하겠다. 중구가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정부·서울시에서 확보한 특별교부세(302억원)와 지역발전 특별회계 보조금(315억원)은 서울 25개 구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으로 일할 때 당시 비서실장인 문 대통령 및 현 정부 인사들과 쌓은 인연이 있을 뿐만 아니라 박 시장이 처음 선거를 치를 때 조직특보를 맡은 바 있어 추가 예산 확보에 자신 있다. →예산을 주로 어디에 쓸 것인가. -중구에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가 많다. 그만큼 시설이 노후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시설이 낡았을 뿐만 아니라 대학 진학률도 낮다.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중구의 낮은 대학 진학률 때문에 다른 데로 이사를 고민하는 인구가 많다. 이에 따라 교육지원금을 지금의 두 배 이상인 연간 100억원대를 확보해 교육 환경을 개선하고 명문 중·고등학교를 육성하겠다. 진학 문제뿐만 아니라 취업까지 전반적인 진로 문제에 대해 종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해 주는 중구교육연구원도 설립하겠다. 이 같은 교육 예산뿐만 아니라 중구에는 봉제, 섬유, 인쇄, 조명, 도기, 전통시장 등 지역특화 산업이 많은 만큼 이들을 지원하는 예산도 강화하겠다. 이들 소상공인이 돈을 잘 벌어야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구의 세입도 증가한다. →중점 추진 과제는. -서울 25개 구 중 중구의 가구별 평균 소득이 300만원대로 가장 낮다. 중구 소재 36개의 매출액 1조원 이상 기업인 ‘1조 클럽’과 공생협약을 통해 지역투자를 늘리고 지역경제를 살리겠다. 업종별 맞춤형 지원조례로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겠다. 중소상공인, 자영업자 영업용 차량에 대해서는 공영주차장 주차비 할인도 추진하겠다. →현안 중 시급한 문제는. -중구의 숙원사업 중 하나는 남산 고도 제한 완화 문제이다. 과거 정부가 일방적이고 일괄적으로 정한 남산 고도 제한 때문에 짧게는 20년, 길게는 40년간 재산권을 침해받은 분들이 있다. 성북, 종로, 용산, 중구, 은평 등 비슷한 문제를 가진 자치구들과 함께 합리적인 규제 완화 방안을 마련해 박 시장의 결단을 이끌어 내겠다.→권력교체를 이루면서 직원들 사이에 급격한 인사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데. -구청 인사는 7월과 12월에 있는데 취임 후에 예정된 인사는 진행한다. 다만 인사가 모든 것을 해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구청장이 취임한 만큼 구청 내 새로운 사기와 분위기 진작을 위한 정도의 인사를 하겠다. →준비위(인수위)를 꾸려 업무 보고를 받아 본 소감은. -대부분 공무원들은 열심히 일한다. 문제는 구정 목표 결과가 실현되도록 힘이 모이느냐에 있다. 관료 행정 대신 주민이 참여하는 중구민을 위한 중구, 주거 교육 복지 등 삶의 질 향상이 있는 살기 좋은 중구, 특화 산업 및 전통시장 육성이 강화된 일하기 좋은 중구 등 구정 비전에 맞게 인력과 예산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재배정하겠다. →선거 때 경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텐데. -서울 25개 구 가운데 전통시장이 가장 많은 곳이 중구이다. 이 전통시장들은 물론 중구에 많은 전통 제조업 종사자와 영세 상인 모두 너무 힘들어하신다. 정부는 전통시장 살리기, 중소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 관련 정책과 예산을 내놓는데 현장에선 체감이 잘 안 되는 것 같다. 정부 예산이 적재적소에 쓰이도록 상황을 점검하고 개선책을 찾겠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서양호 당선자는 경선 때부터 盧대통령 도와… 정치평론가로 친숙 서양호 서울 중구청장 당선자는 지난 15년간 사실상 보수당 구청장 시대를 이어 온 중구에서 진보당 시대를 다시 열었다. 중구는 민선 1~3기 민주당 구청장, 민선 4기 한나라당 구청장 선출 이후 2010년 민선 5기 때 다시 민주당 구청장으로 바뀌었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2011년 보궐선거가 치러지면서 큰 틀에서 10년 넘게 보수당 구청장 시대를 이어 왔다. 이번에 서 당선자가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나서 3선 연임에 도전한 최창식 자유한국당 후보를 꺾고 정권교체를 이뤘다. 서 당선자는 정치평론가로 친숙한 정치인 출신이다. 숭실대 철학과(87학번) 시절부터 학생운동에 몸담았으며 1997년 김대중 대통령 후보 선거대책위원회 청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정계 입문한 뒤 일찌감치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힘을 쏟는 등 20여년간 현실정치에서 뛰어 왔다. 서 당선자는 “2001년 당시 대선을 1년 앞두고 당 주류는 이인제 의원을, 소장파들은 김근태 의원을 대선 후보로 지지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적임자라고 판단해 김희선 의원의 보좌관 신분을 유지한 채 노 대통령 경선 캠프에서 일을 도왔다”고 회고했다. 이를 계기로 노 대통령 당선 뒤 인수위원회 정무분과 행정관으로 발탁된 데 이어 청와대 정무수석실, 인사수석실 등에서 행정관으로 일했다. 이후 국회에서 보좌관 등을 지냈으며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겸 정치평론가로 변신해 3년여간 신문 지면과 방송을 통해 대중성을 확보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중구청장 도전을 결심했다. 1987년 6월 민주화운동의 현장이 밀집돼 있는 중구를 구석구석 둘러본 뒤 펴낸 ‘길 위에서 만난 중구’로 지난 2월 출판기념회를 열었으며 이어 4월 전략공천을 받아 6·13 지방선거에서 전체 6만 5183표 가운데 51.3%인 3만 3479표를 얻어 당선됐다. 서울 25개 구청장 당선자 가운데 이창우 동작구청장 당선자, 오승록 노원구청장 당선자와 참여정부 시절 함께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한 인연이 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 저격수‘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에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 ‘박근혜 저격수‘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에게···.

    법원, 국정원 댓글 공작 관련 2000만원 배상 판결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이 국정원 댓글 공작으로 피해를 본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2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결했다.서울중앙지법 민사97단독 권순건 판사는 이 전 대표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 같이 선고했다. 이 전 대표는 원 전 원장이 국정원장 재직 시절 직원들에게 ‘댓글 공작’ 등을 통한 인터넷 여론전을 지시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3년 원 전 원장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이 게시한 트위터 글 등에 당시 대선 후보였던 이정희 후보와 통진당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이 다수 포함된 점이 검찰의 댓글 공작 수사로 드러난 바 있다. 원 전 원장은 이를 지시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이 확정됐다. 권 판사는 “피고(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이 트윗·리트윗한 글은 매우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으로, 원고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또 해당 트윗 글이 대선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의견 표시여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항으로 볼 수 있다는 원 전 원장 측의 주장에 대해서도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작성한 것에 불과해 현행 법질서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 전 원장은 이 전 대표 외에도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인 유우성씨 가족,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피해자 등이 제기한 다수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형사재판도 대법원에서 확정된 2012년 대선 댓글 공작 외에 국정원 외곽팀 등을 통한 정치개입, MBC 장악 시도, 국가발전협의회(국발협)을 통한 편향적 안보교육, 국정원장 특활비 유용 등이 아직 서울중앙지법에서 심리되고 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법원 “댓글 공작한 원세훈, 이정희에 2000만원 배상해야”

    법원 “댓글 공작한 원세훈, 이정희에 2000만원 배상해야”

    법원이 국가정보원의 댓글 공작으로 피해를 본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에게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00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97단독 권순건 판사는 이 전 대표가 원 전 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원고에게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이 전 대표는 원세훈 전 원장 재직 시절 국가정보원이 선거 등 정치에 개입하는 ‘댓글 활동’으로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2013년 3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당시 댓글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2012년 제18대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들이 게시한 트위터 글 등에 이정희 후보와 통합진보당에 반대하는 내용이 다수 포함된 사실을 확인한 바 있다. 이 사건으로 기소된 원 전 원장은 정치개입 및 불법 선거운동 혐의가 인정돼 지난 4월 대법원에서 징역 4년과 자격정지 4년이 확정됐다.재판부는 “원 전 원장의 지시로 국정원 직원이 트윗·리트윗한 글은 매우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으로, 이정희 전 대표의 인격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불법행위”라고 지적하며 인격권의 침해 정도와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정신적 손해배상액을 2000만원으로 책정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원 전 원장 측에서 해당 트윗 글이 대선 후보자에 대한 반대 의견 표시라는 점에서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사항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대해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을 위반해 작성한 것에 불과해 현행법 질서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 혐의가 대법원에서 유죄로 확정된 이후 법원이 민사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한 것은 처음이다. 원 전 원장은 현재 인터넷 사이트 ‘오늘의 유머’에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 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등 다수의 민사소송에서 줄줄이 피고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법원장의 직접 형사 고발은 불가”… 선 긋는 법원

    재판 거래 증거 없는 문건 공개 김명수의 고발 회피 명분 쌓기 “대법원장은 수사·재판 중립 유지” ‘수사 촉구’ 판사들도 한목소리 KTX 승무원 등 피해자 반발 여전 법원행정처가 재판 개입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관련 문건을 추가 공개했지만 수사를 촉구하는 여론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법원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직접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형사 고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선을 긋고 나섰다.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행정처가 전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조사한 문건 98건을 추가 공개한 것을 두고 김 대법원장 이름으로 형사 고발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행정처가 청와대 등 정치권과 재판을 두고 거래했다는 사실을 입증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해 긴급히 전체 문건(410건)이 아닌 일부를 공개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의 한 판사는 “재판 거래가 있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있어야 대법원장 이름으로 형사 고발을 할 수 있지 않겠나”며 “형사고발을 하지 않기 위한 명분을 쌓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의 이런 의도와 달리 몇 가지 새로운 의혹이 추가되기도 했다. 행정처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의 판결 결과를 미리 파악해 재판 독립을 해치거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등 진보 인사가 대법원에 입성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색깔론을 드러냈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오면 영장 발부를 관리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도 있어 영장을 거래 수단으로 삼으려 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청와대 협력 사례로 거론된 재판의 당사자인 KTX 해고 승무원, 키코 사태 피해자들의 반발도 여전하다. 법대 교수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일동’은 대법원 앞에서 천막을 치고 밤샘농성에 돌입했다. ‘김 대법원장이 형사 고발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법부의 입장을 뒷받침하는 명분은 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의견을 듣기 위해 직접 참석한 사법발전위원회 간담회에서는 재판개입 의혹 수사가 필요하지만 대법원장이 직접 형사 고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법원 내부 의견이 수사 촉구와 반대로 쪼개졌지만 정작 대법원장이 직접 형사 고발하라는 목소리는 없다. 서울고법 부장판사들은 수사 의뢰, 형사 고발 등 어떤 방식으로든 사법부가 형사상 조치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등 주요 법원 단독·배석판사들은 수사를 통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면서도 대법원장은 수사와 재판에 엄정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남은 대법원장 의견 청취는 7일 열리는 전국법원장간담회와 11일 열리는 전국법관대표회의다. 법원장간담회는 원로 법관들로 구성된 만큼 수사 반대 의견을 낼 가능성이 크다. 반면 법관대표회의는 젊은 소장파 판사들로 이뤄져 있어 수사 촉구 의견을 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대법원장이 형사 고발 주체가 되야 한다는 의견을 내는 곳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만약 대법원장이 형사 고발한 뒤에 그 사건이 무혐의나 무죄가 나오면 어떤 방식으로든 책임져야 한다”며 “수사나 재판 과정에 뒤따를 공정성 시비에도 자유로울 수 없어서 (형사 고발은) 불가능한 요구”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양승태 사법부, 靑·與 상대 ‘상고법원’ 로비 정황

    특조단, 문건 98건 추가 공개 한명숙·통진당 등 맞춤형 접근 승진 포기 판사 문제법관 규정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조사한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이 관련 문건 98건을 5일 추가로 공개했다. 상고법원 신설을 위해 재판 사례를 들어가며 당시 청와대와 여당을 설득하려는 로비를 시도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승진을 포기한 판사’(승포판)를 ‘문제 법관’으로 규정하고 출퇴근 빅데이터를 활용한 근태 관리를 검토한 계획도 포착됐다. 다만 문건들은 주로 재판의 경과·영향 분석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진행 중인 재판 개입 시도는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다는 평가다. 상고법원 도입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던 행정처는 대상에 따라 맞춤형 로비를 시도했다. 2015년 4월 작성된 ‘성완종 리스트 분석 및 대응’ 문건은 ‘한명숙 전 총리 사건은 상고법원에서 신속히 처리되고,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원칙적으로 판단하게 된다는 장점’을 당시 여당(새누리당)에 어필하자는 제안을 담고 있다. 쟁점이 단순한 상고심을 심리하는 상고법원이 신설된다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정적(政敵)에 대한 재판을 상고법원에 맡겨 빠르게 유죄 확정을 받게 해 줄 수 있다는 흥정처럼 보이는 대목이다. 이 문건엔 ‘6월 임시국회까지는 영장의 적정한 발부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적시돼 있어 사법행정이 일선 법원 영장발부 심리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의심케 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 행정소송’ 관련 문건에선 심리 중인 재판장을 연수원 동기인 행정처 심의관이 접촉해 소송 결론을 파악, 정치권 공세에 대비했다는 점이 명기됐다. 밀린 임금을 받는 조건으로 이른바 ‘신의성실의 원칙’ 기준을 내세워 논란을 일으킨 통상임금 전원합의체 판결을 내놓은 뒤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준 것으로 평가’한다고 청와대 동향을 살핀 정황도 문건에서 드러났다. 새로운 법관 사찰 양태도 드러났다. ‘기업이 변해야 김 대리가 산다’란 제목의 서울신문 연재 기사를 벤치마킹해 법관들에게 문제 법관들의 사례를 공유시켜 이른바 ‘승포판’에게 경고를 보내는 방법을 행정처가 모색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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