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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7회] 행정처와 정반대 결정한 재판부 부정 평가… “행정처 요구는 없었다”

    [대법원장, 피고인석에 서다-57회] 행정처와 정반대 결정한 재판부 부정 평가… “행정처 요구는 없었다”

    ‘일부 사건의 결론을 도출하면서 여러 객관적인 사정에 대한 검토가 부족한 채 주관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음’ / ‘일부 사건에서 이유 설시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었음’ / ‘일부 사건에서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거나 논리적 표현 과정에 적절치 못한 부분이 있음’ 2015년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의 재판장과 배석판사들의 평정에 기록된 이 내용들을 두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재판에서 공방이 벌어졌다.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관심을 갖고 있던 통합진보당 국회의원들의 의원직 지위확인 소송과 관련해 행정처의 입장과 다른 판단을 한 재판부에 대해 불리한 평정이 주어졌다는 검찰의 지적에 따라 당시 법원장이 직접 법정에 나와 입장을 밝혔다. 평가 내용에 대해 행정처의 지시나 요청은 없었다는 것이다. 13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56회 재판에는 김문석 사법연수원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김 원장은 2015년 2월부터 2017년 2월까지 서울행정법원장을 지냈다. 검찰의 공소장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지난해 11월 조한창 서울고법 부장판사(당시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의 증인신문 과정에서 조 부장판사가 반 부장판사 등에 대해 자신은 이 같은 평정 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검찰이 당시 법원장이었던 김 원장을 불러 법정에서 확인해야 한다며 증인으로 신청했다. ●“(부정적) 평정 직접 쓴 것 맞아…행정처 요구는 없었다” 약 넉 달 만에 법정에 나온 김 원장은 “여기 있는 모든 내용은 사실상 제가 직접 작성했다고 봐도 된다”며 2015년 법관 평정에 기록된 내용들을 자신이 쓴 게 맞다고 확인했다. 다만 통진당 행정소송과 같은 특정 사건을 염두에 두고 쓴 것도 아니었고, 특정 사건의 결론에 대한 평가도 아니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원장은 “판결 작성 부분에 대해서는 판결이 논리적인지, 이유에 모순이 있는지, 설득력이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서는 (법원장이) 판결문을 많이 읽어보고, 상급심에 올라가서의 평가 등 그밖의 여러가지 근거를 갖고 하는 것이지 특정 사건만 갖고 하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김 원장은 당시 법원행정처에서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고 했다. 처음 “그 소송에 대해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묻는 검찰의 질문에는 “대법원장이나 법원행정처장이 관심을 갖고 있었는지까지는 제가 알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다”고 했다가 “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행정처의 누군가가 또는 전체가, 그건 알 수 없으나 그 사건에 대해 관심갖고 있었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관심을 갖고 있었는가는 제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다.김 원장은 2015년 3월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전국 법원장간담회에 참석했다가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강 전 차장으로부터 통진당 행정소송과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정확히 기억나는 말은 “거꾸로 됐다”는 취지였다고 했다. 이전에는 헌법재판소가 법원의 판결에 대해 심리를 했는데 통진당 사건은 헌재의 해산결정에 대해 법원이 의원직 지위확인 관련 소송의 심리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꾸로 됐다’고 강 전 차장이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법원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당시에 저는 그런(거꾸로 됐다는)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었기에 뚜렷하게 기억한다”고도 말했다. 그러나 이후 이 사건의 진행상황을 직접 챙기거나 신경쓰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통진당 소송 관련 행정처 관심 알았지만 직접 관여 안 해“ 이어 2015년 5월 조 부장판사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을 만나 통진당 의원들의 의원직 지위확인 소송과 관련해 법원이 각하 판결을 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법원행정처 검토보고서를 받게 됐다. 재판부에 법리 설명을 하는 방식으로 전달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이었다. 조 부장판사는 사법연수원 동기인 이 전 상임위원의 부탁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고, 평판 등이 신경쓰여 한참 뒤에 반 부장판사에게 구두로 행정처 보고서의 취지를 전달했다고 이 법정에 나와 밝혔다. 이러한 상황들에 대해 김 원장은 “어느 날 조 수석부장이 ‘행정처에서 만나자고 해서 행정처 사람을 만나러 간다’는 보고를 들었고, 나중에 문건을 하나 가져온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다만 당시에는 조 부장판사로부터 관련 보고를 듣긴 했지만 재판부에 어떻게 전달을 했는지 등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했고,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이 불거지면서 뒤늦게 “문건을 재판부에 전달하지 않았다”는 조 부장판사의 설명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해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이 소송을 각하하는 결정을 했다. 행정처의 검토 보고서와는 정반대의 결론이었다. 이러한 결정에 대해 당시 행정처가 불만을 갖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김 원장은 말했지만, 어떤 경위로 행정처의 입장을 알게 됐는지, 또는 그 당시에 알았는지 이후에 사건 관련 언론보도 등을 통해 알게 됐는지도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그해 연말 회식에서 이 사건의 주심이었던 서모 판사에게 “왜 그랬나, 반 부장이 시킨 것인가” 물었다는 진술도 있었다고 검찰이 거듭 물었지만 김 원장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고, “서 판사가 말을 지어냈을리도 없고, 그렇게 진술을 했다면 아마 맞을 것”이라고만 했다. 공교롭게도 2015년 평정에서 행정13부의 반 부장판사와 배석 판사들은 모두 ‘보통’ 등급을 받았고, 앞서 제시된 부정적인 평가가 더해졌다. 검찰은 “세 명의 판사의 평정에 공히 ‘일부 사건에서’라는 표현이 있다”며 ‘일부 사건’이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을 가리킨 것이냐고 재차 확인을 요구했지만 김 원장은 여러 사건을 합쳐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김 원장은 그러면서 “법원행정처 관계자로부터 통진당 소송 결론이 부적절했다는 기재를 제시받거나 평정에 이를 반영하라고 요청받은 적이 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거듭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 다음해 이 사건의 주심이었던 서 판사의 경우 ‘우수’ 등급의 평정과 함께 ‘논리 전개 과정이 탄탄하고 완결성에 있어 수준이 매우 높다’는 취지의 평가가 기록됐는데 김 원장은 “우수 등급을 줄 때는 최대한 긍정적이고 좋은 평가를 써주고 보통 등급을 매길 때는 약간의 흠을 부각시키는 등 평정을 기록하는 방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평정이 해마다 바뀌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오는 5월 6일과 8일, 13일 사흘에 걸쳐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낸 강형주 전 원장을 불러 증인신문을 할 계획이다.한편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 윤종섭)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보석 청구를 허가하는 결정을 했다. 임 전 차장이 지난 2018년 10월 28일 구속된 지 503일 만이다. 재판부는 보석을 허가한 사유에 대해 “법원이 구속영장을 (추가로) 발부한 때로부터 약 10개월이 경과했다”면서 “그동안 피고인은 격리돼 있어 참고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고 일부 참고인들은 퇴직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당시와 비교하면 피고인이 참고인들에게 미칠 수 있는 사실상의 영향력은 다소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참고인들은 피고인의 공범이 별도로 기소된 관련 사건에서 이미 증언을 마쳤고 피고인에게 형사소송법 98조에 따라 조건을 부가함으로써 죄증 인멸의 염려를 방지할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피고인에 대해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에게 법원이 지정하는 날짜와 장소에 출석하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또 보증금 3억원을 내도록 했고 법원이 지정하는 장소로 주거를 제한하며 재판과 관련된 인물을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는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오후 석방됐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은 피고인은 양 전 대법원장과 임 전 차장 둘 뿐이었다. 지난해 양 전 대법원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데 이어 임 전 차장이 이날 석방되면서 이 사건의 피고인들은 모두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게 됐다. 별도로 재판을 받은 5명의 전·현직 법관들은 모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삼성, 임직원 시민단체 후원 무단열람 사과

    삼성, 임직원 시민단체 후원 무단열람 사과

    삼성전자를 비롯한 17개 삼성 계열사들이 옛 미래전략실이 임직원들의 시민단체 기부금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데 대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명백한 잘못이었음을 인정한다”고 사과했다.삼성 계열사들은 28일 사과문을 내고 “2013년 5월 삼성 미래전략실이 특정 시민단체에 대한 임직원 기부 내역을 열람한 것에 임직원 여러분, 해당 시민단체, 관계자 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지난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재판 과정에서 삼성 미래전략실이 20여개 계열사 임직원 386명의 진보 성향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연말정산 제출 자료를 통해 무단으로 파악한 사실이 드러났다. 삼성은 환경운동연합,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여성민우회, 통합진보당 등 11곳의 시민단체와 정당을 ‘불온단체’로 분류하고 이들 단체에 후원한 임직원의 개인정보를 문건으로 만들어 특별관리 대상에 올렸다. 이에 대해 삼성 측은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경영진부터 책임지고 앞장서서 대책을 수립, 이를 철저하고 성실하게 이행해 내부 체질과 문화를 확실히 바꾸겠다”며 “그간 우리 사회와의 소통이 부족해 오해와 불신이 쌓였던 것도 이번 일을 빚게 한 큰 원인이 되었다는 점 또한 뼈저리게 느끼며 깊이 반성한다”고 입장을 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시민단체와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교류를 확대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부합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번 사과문은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 파기환송심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양형 줄이기를 위한 조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역할과 의미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 18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재판부와 이 부회장은 준법감시위원회를 명분 삼아 정경유착 범죄를 ‘법경유착’으로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며 “삼성이 지난 범죄에 대해 진정으로 반성하고 성찰할 의지가 있다면 준법감시위원회를 스스로 해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날 사과문과 함께 삼성 측이 낸 자료에는 준법감시위원회가 지난 13일 2차 회의에서 임직원 기부금 후원내역 무단 열람에 대해 강한 우려를 표명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는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삼성의 이번 사과는 준법감시위원회 출범 이후 첫 조치인 셈이다. 사과문에 함께 이름을 올린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 삼성SDI, 삼성전기, 삼성디스플레이, 삼성SDS,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삼성엔지니어링,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 호텔신라, 제일기획, 에스원, 삼성경제연구소, 삼성의료원 등 17곳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사법농단’ 잇단 무죄… 양승태에게 물을 죄가 사라졌다?

    ‘사법농단’ 잇단 무죄… 양승태에게 물을 죄가 사라졌다?

    최대 쟁점 직권남용죄 성립조차 안 돼 양 전 대법원장 공소사실 상당수 흔들려 21일 양승태 재판 두 달 만에 재개 ‘촉각’양승태(72·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전·현직 법관 5명이 잇따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며 이들의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 등 전직 사법부 수뇌부 재판에도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특히 지난 13일과 14일 이틀간 내려진 판결에서는 전체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줄기인 사법행정권의 범위와 재판 개입의 인과관계에 대한 검찰의 주장이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아 양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사실이 상당수 흔들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판사가 위헌적 행위를 했음에도 벌할 수 없다’는 논리에 따라 사법부가 스스로 사법 신뢰를 저버렸다는 비판도 높아질 전망이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 박남천)의 심리로 오는 21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63·12기)·고영한(65·11기) 전 대법관(법원행정처장)의 재판이 두 달 남짓 만에 재개된다. 지난해 5월부터 53차례 열렸던 재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폐암 수술을 받으며 중단됐다. 47개에 달하는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 가운데 핵심은 청와대와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행정소송 등 각종 재판에 개입해 직권을 남용했다는 의혹이다.그런데 지난 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부장 송인권)는 재판 개입 관련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기소된 임성근(56·17기) 서울고법 부장판사에 대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를 했지만 직권남용으로 형사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의 독립된 재판을 침해할 권한이 애초에 사법행정권자에게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못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임 부장판사의 개입 행위에도 불구하고 일선 재판장들은 독립적인 판단을 했다며 재판 개입과 실제 재판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도 없다고 판단했다. 직권남용죄의 또 다른 축인 ‘의무 없는 일’도 인정되지 않은 셈이다. 이 같은 논리가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서도 이어진다면 대법원장의 재판 개입 권한이 직무권한으로 인정되지 않는 것은 물론 법원행정처의 관여를 받은 일선 법원 재판 결과와의 인과관계도 입증이 안 돼 재판 개입 관련 혐의들이 대부분 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검찰은 “재판 개입을 위한 직무권한이 존재하지 않아 직권남용죄가 성립할 수 없다면 상급자의 어떠한 재판 관여도 처벌할 수 없고, 직권남용죄의 보호법익인 국가기능의 공정성은 사법의 영역에서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며 반발했다. 이러한 판결이 확정되면 앞으로 어떠한 재판 개입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임 부장판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재판부는 법관 탄핵이나 대법원 징계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 법관 탄핵은 국회의 소추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야 하고, 징계는 시효가 3년으로 짧기 때문이다. 게다가 탄핵과 징계 모두 현직 법관에게만 적용될 수 있고, 징계 수위도 최대 정직 1년이어서 재판 개입의 중대성에 크게 못 미친다. 재판 개입을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는 데다 강제징용 사건 당사자 등 잘못된 재판 개입의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지금으로선 불가능하다. 미국·프랑스 등에서 규정한 ‘사법방해죄’를 법관들에게도 범위를 넓히는 취지의 입법을 하거나 사법부가 자체적으로 재판 관여를 막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당장 실현되긴 어려워 보인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포토] 노동문제 토론회 발제하는 이정희

    [포토] 노동문제 토론회 발제하는 이정희

    이정희 통합진보당 전 대표가 12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중당 김종훈 의원실 주최로 열린 ‘진보정치가 놓치고 있었던 노동문제들’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연합뉴스
  • VIK 피해자연합 “이정희.. 이철 VIK 대표 변호인단 중 한 명”

    VIK 피해자연합 “이정희.. 이철 VIK 대표 변호인단 중 한 명”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12일 오후 국회에서 ‘진보정치가 놓치고 있었던 노동문제들’이란 주제의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민중당은 노동환경 변화를 반영한 새 노동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토론회라고 설명했다. 비슷한 시각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사기는 살인”이란 구호를 외치며 열린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피해자연합 집회에서도 ‘이정희’란 이름이 나왔다. 변호사로서의 이정희 전 대표였다. 대법원 사건조회 결과 이 전 대표는 투자자 3만여명으로부터 투자금 7000억원을 끌어모은 혐의로 사기,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돼 유죄 선고를 받은 이철 VIK 대표 변호인단에 이름을 올린 것을 확인됐다. 변호인단에는 이 전 대표와 같은 로펌 소속으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통일위원장인 심재환 변호사 등이 참여하는 등 보혁 진영을 막론한 유력 변호사들이 많이 포함됐다.이철 대표는 2015년 10월쯤 투자자 3만여명으로부터 투자금 7000억원을 끌어모은 혐의로 구속기소됐지만, 1심재판 구속기간인 6개월이 지난 뒤인 이듬해 4월 보석으로석방됐다. 같은해 9월 검찰은 이철 대표가 재판·보석 기간에도 2000억원대 불법 투자를 유치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영장이 기각됐다. 이 대표에 대한 선고는 기소된 지 3년여가 지난 지난해 12월 내려졌다. 국민참여당과 노사모에서 활동한 이철 대표는 정계 친분있는 인사와 교류를 이어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시민 작가가 2014년 8월 VIK 모집책 상대 강연을 했고, 이듬해 6월 유 작가 지지모임인 시민광장 주최로 글쓰기 강연이 있었다고 VIK 피해자연합은 설명했다. 이밖에 도종환 의원, 변양균 전 장관, 김수현 전 청와대 수석도 VIK에서 강연했다. VIK 피해자연합은 “수천억원대 사기 주범 이철 대표에게 검찰은 고작 징역 10년을 구형했고, 법원은 고작 징역 8년의 형만 선고했다”면서 “다른 공범들에게는 징역 1년 6개월~3년을 선고한 법원의 형은 미미했고, 검찰의 수사와 기소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이 탄핵되고 전직 대법원장까지 구속되었지만 민생 관련 적폐들은 아직도 청산이 되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또 이철 대표 변호인단을 향해 “적폐청산 정의사회를 외치면서도 적폐를 변호했다”면서 “수임료의 출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기 바란다”고 비난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총독인가 동반자인가’… 주한 미국대사 70년사

    해리스 대사, 호르무즈파병 압박 등으로 ‘총독’ 비난받아역대 23명 대사 중 유일 직업군인 출신, 국민에게 낯설어결례 논란 전임 대사도 자유롭지 않아…현대사에 영향력미국대사 과거 막후 외교관이었지만 지금은 공공 외교관변화된 역할 조정 과정서 시행착오 겪으며 논란 불거져 ●한국민에게 낯선 미국대사, 해리스 “해리스 대사는 한국 총독처럼 행세하지 않느냐. 자기가 무슨 총독인 줄 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지난 17일 공개된 재단 유튜브 채널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대사에 대해 이같이 언급했다. 해리스 대사가 지난 7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이 그곳에(호르무즈해협)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며 정부에 파병을 압박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을 ‘총독 행세’라고 비판한 것이다.해리스 대사가 16일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신년기자회견에서 남북 협력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대해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하면서 당정청은 일제히 반발했다. 다음 날 “의견 표명은 좋지만 우리가 대사가 한 말대로 따라 한다면 대사가 무슨 조선 총독인가”(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 “내정간섭 같은 발언은 동맹 관계에도 도움이 안 된다”(민주당 설훈 최고위원), “대북정책은 대한민국의 주권에 해당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통일부 이상민 대변인), “대사가 주재국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언론에 공개적으로 언급한 부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청와대 관계자)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앞서 해리스 대사는 호르무즈해협 파병과 남북 협력 사업뿐만 아니라 한미 방위비분담협상,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과 관련 미국 정부의 입장을 직설적으로 표명하면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해리스 대사는 지난해 11월 당시 국회 정보위원장인 바른미래당 이혜훈 의원을 관저로 불러 방위비분담금을 50억 달러 내라는 요구만 20번 정도 반복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외교적 결례라는 비난을 받았다. 해리스 대사는 같은 달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맞서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내린 데 대해 “한국이 한일 과거사 문제를 안보 영역으로 확대한 데 대해 실망했다”며 종료 결정을 번복할 것을 압박했다.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우선 대사의 개인적 성향에 기인한다는 분석이다. 해리스 대사는 첫 직업군인 출신 주한 미국대사다. 1949년 부임한 1대 존 무초 대사부터 해리스 대사까지 23명 대사 중 6명을 제외하면 모두 직업 외교관 출신이다. 비외교관 출신 6명 중 해리스 대사를 제외하고는 외교를 전공한 교수이거나 한국과 인연이 깊은 목사, 외교에 익숙한 중앙정보부(CIA) 출신 요원, 국회와 국방부에서 외교를 담당한 정치인이었다. 군인 출신으로 외교적 수사보다 직설 화법에 익숙한 해리스 대사가 한국민에겐 ‘낯선 대사’라는 것이다.외교 소식통은 “한국어에 능숙한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와 한국민과 스킨십을 즐겼던 마크 리퍼트 대사에 익숙했던 한국민에게 4성 장군으로 태평양사령관을 역임한 해리스 대사의 야전군 사령관 스타일이 낯설어 보일 것”이라고 했다. 다만 주한 미국대사의 행보와 발언이 논란이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승만 정권 당시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표출하는 등 거만한 태도를 보여 이 대통령의 반감을 샀다. 박정희 정권에 베트남 파병을 압박했던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카운터파트인 이동원 외무부 장관을 ‘패싱’하고 정일권 국무총리, 박정희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짓는 오만함을 보이기도 했다.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는 진보적인 노무현 정부와 보수적인 조지 W 부시 정부가 마찰을 빚던 당시 노무현 정부의 남북 화해협력 정책과 어긋나는 발언을 해 정부로부터 경고를 받기도 했다.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의 총독’이라는 논란은 한국 현대사에서 미국 정부와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주한 미국대사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불거졌다는 해석이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마다 주·조연으로 등장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데 영향을 미쳤다. 미국대사는 한국 현대사와 한국 정치에서 한복판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가원수급 대우 받은 초대 미국대사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첫 주한 미국대사는 존 무초 대사다. 무초 대사는 1948년 8월 13일 주한 최고대표로 임명돼 사흘 후 부임했다. 미국은 이듬해 1월 1일 한국을 정부로 승인하고 4월 7일 무초 최고대표를 주한 미국대사로 임명했다.1년 전 남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미국의 지원이 절실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을 ‘장엄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했다. 1949년 4월 20일 무초 대사의 신임장 제정식에는 이 대통령과 이시영 부통령, 이범석 국무총리, 신익희 국회의장, 김병로 대법원장 등 삼부 요인이 모두 참석했고, 무초 대사는 중앙청에 육해군 의장대의 사열을 받으며 입장했다.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은 무초 대사는 1950년 이 대통령과 6·25 전쟁 첫 2년을 함께 겪었다. 무초 대사는 전쟁 발발 직전인 6월 초 미국 의회에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했다. 그는 전쟁 당일인 25일 워싱턴 국무부에 “북한군의 전면 공격이 시작됐다”고 보고했고 이 대통령의 관저인 경무대로 들어갔다. 무초 대사는 피난가겠다는 이 대통령을 말렸지만, 이 대통령은 무초 대사에게 알리지 않고 27일 서울을 떠나 수원으로 갔다. 무초 대사는 이 대통령의 행동에 분노했지만 이후 한국 정부를 따라 수원·대전·대구·부산으로 피난가던 도중 이 대통령을 자신의 차에 태워 피신시키기도 했다. ●이승만 하야 작전의 선봉장? 이 대통령은 미국에서 교육을 받고 독립운동을 한 친미주의자였지만, 집권기에는 미국과 갈등을 빚었다. 이 대통령은 6·25 전쟁 기간 휴전 반대, 반공포로 석방 등으로 휴전을 원하던 미국과 틀어지기 시작했다. 전쟁 후에 미국은 냉전 전략의 일환으로 한일 관계를 정상화하라고 요구했지만 이 대통령은 이를 뿌리쳤고, 미국의 우려에도 독재의 길을 걸어가면서 양측의 갈등은 악화됐다. 미국 정부는 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한 계획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는데, 일각에서는 미국대사들이 야당 인사들과 접촉하며 최전선에서 하야 계획을 수행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 대통령은 당연히 미국대사와의 관계도 좋지 않았다. 1955년 5월 취임한 3대 윌리엄 레이시 대사는 재한 미국인 상사에 세금을 물리는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 정부와 충돌하자 이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불만을 토로했다. 이 대통령은 반감을 느껴 이례적으로 미국 정부에 대사 교체를 요청했고, 취임 다섯 달 만에 레이시 대사는 사임했다. 후임인 4대 월터 다울링 대사는 진보당 사건, 보안법 파동 등 이승만 정권의 정치 탄압을 두고 이 대통령과 부딪쳤다. 다울링 대사는 이승만 정권이 1958년 야당 진보당의 조봉암 당수 등을 간첩 혐의로 체포해 사형을 구형하자 정권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을 두 차례 만나 조봉암을 구명하려 했으나 조봉암은 1년 후 사형당한다. 1958년 12월에는 이승만 정권이 야당과 언론을 탄압하기 위한 국가보안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일방 통과시키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다울링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며 항의의 뜻을 표했다.1959년 12월 부임한 5대 월터 매카너기 대사는 이승만 정권의 종말에 일조했다. 매카너기 대사는 1960년 4·19 혁명 당일 “시위자들과 당국이 폭력을 자제하고 법과 질서를 되찾아 정당한 불만이 해결되기를 바란다”며 시위대에 우호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19일과 21일 경무대에 이 대통령을 찾아가 미국 정부의 우려를 전달했다. 26일 서울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리자 매카너기 대사는 “전국적으로 퍼진 정당한 국민의 불만 표시에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미봉책을 취할 시기가 아니다”며 이 대통령의 하야 요구를 시사하는 성명을 냈다. 직후 경무대로 가 이 대통령으로부터 하야 의사를 전달 받았다. 경무대 앞에 있던 시위대는 매카너기 대사의 차가 경무대에서 나오자 그가 이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냈다고 생각하며 ‘매카너기 만세’, ‘미국 만세’를 외쳤다고 한다. ●박정희 인정하되 미국 요구 관철시킨 대사들 박정희·전두환 독재 정권 하에서 미국대사들은 미국의 국익을 위해 반공의 최전선에 서 있는 이들을 돕기도 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이라는 미국의 가치에 반하는 이들을 견제하기도 했으며, 국익과 가치의 딜레마에서 이들의 독재를 방관하기도 했다. 1961년 5·16 쿠데타가 발발하고 한 달여 후 취임한 6대 새뮤얼 버거 대사는 박정희의 쿠데타 세력을 사실상 인정하되 미국의 정책을 따르도록 설득하는 전략을 취했다. 쿠데타 발발 당일 마셜 그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카터 매그루더 주한미군사령관이 쿠데타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뒤집은 것이다. 버거 대사는 박정희에게 민정 이양을 위한 선거를 실시하고 한일 국교정상화를 추진할 것을 요구했다. 박정희는 전역하고 1963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했으며, 2년 후 한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조약 등을 체결했다.7대 윈스럽 브라운 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미국이 수행하던 베트남전 참전을 압박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4년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 개입하자 그 해 9월 베트남에 의무 요원과 태권도 교관을 파견했는데, 브라운 대사는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게 증파를 요청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5년 10월부터 전투부대를 파병하기 시작했고, 브라운 대사는 이듬해 3월 한국의 추가 파병에 대한 미국의 보상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전달했다. 브라운 각서와 월남 특수로 한국은 경제·군사적 성장을 이루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지만, 국군 장병의 피를 돈을 받고 팔았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유신 정권과 대립했던 대사들 1970년대 미국에 닉슨·포드·카터 정부가 차례로 들어서고, 박정희 정권이 1972년 유신헌법 개정으로 독재의 길을 걸으며 양국은 충돌하기 시작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69년 냉전 완화(데탕트)를 이유로 아시아에서의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 국가들의 자력 방위를 요구하는 ‘닉슨 독트린’을 발표했다. 닉슨 독트린에 따라 8대 윌리엄 포터 대사는 1970년 박 대통령에게 주한미군을 6만 명에서 4만 명으로 감축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 대통령이 감축에 불만을 갖고 미국의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 요구를 거부하자 포터 대사는 “(박 대통령은) 엉클 샘(미국)의 큰 젖통에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으려 한다”며 독설을 하기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동맹국이 미국을 벗겨 먹는다며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주한미군 감축까지 고려할 수 있다고 시사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닌 셈이다.1971년 10월 취임한 9대 필립 하비브 대사는 ‘미국 당대의 가장 걸출한 전문 외교관’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내에서는 김대중 대통령을 구명한 인물로 유명하다. 하비브 대사는 1973년 8월 박정희 정권이 야권 정치인 김대중을 납치하자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했다. 하비브 대사는 박 대통령에게 “김대중 납치 사실을 알고 있으며 김대중이 죽는다면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끝장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당시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지부장이자 후일 주한 미국대사로 부임하는 도널드 그레그가 회고했다. 김대중은 납치 닷새 후 서울 자택에서 풀려났다. 후임 10대 리처드 스나이더 대사는 박정희 정권이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한 사실을 알아채고 박정희 정권에 경고해 핵무기 개발 계획을 무마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독재 정권의 견제자인가 방관자인가 11대 윌리엄 글라이스틴 대사는 1978년 7월 취임, 이듬해 10·26 사태와 12·12 쿠데타,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 등 한국사의 주요 변곡점을 겪은 인물이다. 1977년 출범한 카터 정부는 도덕주의 외교 노선을 앞세우며 박정희 정권의 독재 정치를 비판하고 주한미군 철군을 추진함에 따라 한미 관계가 악화됐다. 이 과정에서 글라이스틴 대사는 카터 대통령을 설득해 주한미군 철군 계획을 철회하는 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정희 정권이 1979년 10월 국회에서 여당 공화당과 유신정우회를 동원해 야당 신민당의 김영삼 총재를 의원직에서 제명하자 카터 정부는 항의의 뜻으로 글라이스틴 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하기도 했다.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듬해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탄압할 당시 글라이스틴 대사와 미국 정부는 이를 묵인하거나 최소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전두환과 그의 참모들을 만나 광주에서의 군사 작전을 항의하기도 했으나,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이 전남도청 진압작전을 수행하기 하루 전 글라이스틴 대사는 ‘(신군부에) 군사작전을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았다”고 백악관에 보고한 것으로 기밀해제 문서를 통해 드러났다. 신군부의 진압작전을 묵인했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글라이스틴 대사는 1999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신군부의 행동에 미국이 공모자는 아니었으나 무력했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12대 리처드 워커 대사는 1981년 8월부터 1989년 1월까지 약 7년 5개월간 재임해 현재까지 최장수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1대 무초 대사부터 11대 글라이스틴 대사까지 모두 직업 외교관이었으나, 워커 대사는 학자로서 첫 비외교관 출신 주한 미국대사이기도 하다. 워커 대사는 1980년 7월 내란음모죄로 사형 선고를 받은 김대중을 석방시키는 데 역할을 했지만, 김대중 석방 대가로 전두환 대통령의 조기 방미를 성사시켜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정권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민주화 이행기의 CIA 출신 대사들 13대 제임스 릴리 대사와 14대 도널드 그레그 대사는 CIA 요원 출신으로, 1987년 6·10 항쟁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까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목격했으며 민주화를 직간접적으로 지원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방조 의혹으로 반미 정서가 고조됐던 1980년대 말 부임했던 릴리 대사와 그레그 대사는 한국민의 거센 반감에 직면해야 했다. 릴리 대사는 반미 시위대로부터 수차례 인형 화형식을 당했으며, 그레그 대사는 시위대의 관저 침입을 겪기도 했다. 특히 릴리 대사의 후임으로 연이어 CIA 출신인 그레그 대사가 미국대사로 임명되자 야당과 언론은 ‘미국이 한국을 외교 대상이 아닌 정보·공작 대상으로 본다’며 반발하기도 했다.하지만 1987년 6·10 항쟁 당시 전두환 정권이 명동성당에 강제 진입해 학생들을 연행하려 하자 릴리 대사는 13일 최광수 외무부 장관을 만나 “전 세계가 떠들썩해질 것”이라며 진입을 저지했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계엄령을 검토하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시위를 평화롭게 해결해야 한다는 내용의 친서를 요청해 받았다. 릴리 대사는 전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으나 청와대는 18일 거절 의사를 밝혔다. 릴리 대사는 결국 다음 날 전 대통령을 찾아가 친서를 전달하고 “무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라”고 경고했으며 전두환 정권은 계엄령 선포 계획을 백지화했다. 그레그 대사는 취임 약 4개월 후인 1990년 1월 광주를 찾아 미국의 광주 학살 개입 책임을 묻는광주민주화운동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레이건 대통령이 전 대통령을 취임 후 첫 외국 정상으로 초청한 것은 김대중을 사형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기 때문”이라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레그 대사는 노태우 정권의 남북화해정책과 북방정책을 지지했으며 미군 전술핵무기의 한반도 철수를 추진하며 1992년 남북 한반도비핵화선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레그 대사는 1992년 남북화해를 위해 한미연합훈련인 팀스피리트 훈련을 취소하도록 이끌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한미 정부는 그레그 대사와 상의 없이 훈련을 재개하면서 북한은 준선시상태를 선언했고 핵확산방지조약(NPT)에서 탈퇴했다. 그레그 대사는 2015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내가 대사로 봉직하던 기간 중에 미국이 결정한 유일한 최악의 실수”라고 했다. ●북핵 전문 외교관 전성시대 1993년 북한의 NPT 탈퇴로 1차 북핵 위기가 촉발되자 미국의 대한국 외교는 물론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북핵 문제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1993년 11월 취임한 15대 제임스 레이니 대사는 목사 출신으로 직업 외교관은 아니었으나, 1947~1950년 서울에서 정보장교로 근무했고 1959~1964년 연세대에서 신학을 가르친 ‘지한파’였다. 레이니 대사는 1994년 북한이 영변의 핵연료봉 추출을 강행하고 미국은 영변 핵시설 정밀 타격을 시행하려 하면서 한반도 긴장이 최고조에 오르자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 대북 특사로 방북해 중재할 것을 요청했다. 카터 전 대통령은 그 해 6월 김일성 주석을 만나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냈으나, 7월 김 주석이 사망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됐다. 하지만 북미는 9월 제네바합의를 타결하며 1차 북핵 위기를 종식시켰다.레이니 대사의 후임인 16대 스티븐 보즈워스 대사, 17대 토머스 허버드 대사, 18대 크리스토퍼 힐 대사는 모두 북핵 전문 외교관이다. 보즈워스 대사는 1995~1997년 제네바합의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는 대신 북한에 경수로를 건설하는 역할을 맡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의 사무총장을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다. 보즈워스 대사는 2001년 주한 미국대사에서 퇴임한 이후에도 2009~2011년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대북특별대표를 맡아 북미 협상을 총괄했다. 그는 미국 대북 협상파의 상징적 인물로 꼽힌다. 허버드 대사 역시 1994년 북미 제네바협상에 실무급으로 참여한 대북 협상 전문가다. 2001년 9월 취임한 허버드 대사는 이듬해 2차 북핵 위기를 맞게 된다. 아울러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의 여중생 압사 사건, 이듬해 정부의 이라크 파병 결정, 2004년 주한미군 기지 평택 이전 반대 시위 등으로 반미 감정이 고조되고 한미 동맹의 균열 우려가 심화되자 이를 해결하는 데 임기를 보냈다.후임인 힐 대사는 2004년 9월 취임해 이듬해 2월 북핵 문제를 논의하는 6자회담의 미국 측 수석대표로 지명됐으며, 두 달 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에 취임하면서 대사직을 내려놓았다. 힐 대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반미 감정을 누그러트리는 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힐 대사는 2005년 9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이정표로 평가받는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다. ●‘리코드 브레이커’ 대사들의 명과 암 19대 알렉산더 버시바우 대사부터 23대 해리 해리스 대사까지 다섯 명의 대사는 주한 미국대사 역사의 ‘신기록 보유자’들이다. 버시바우 대사는 직전에 주러시아 미국대사를 역임하고 주한 미국대사 중 역대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했다. 캐슬린 스티븐스 대사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한국어 구사 대사, 성 김 대사는 최초의 한국계 대사였으며 마크 리퍼트 대사는 현재까지 최연소 대사 기록을 갖고 있다. 해리스 대사도 최초의 직업군인 출신 대사 기록을 세웠다. 2005년 10월 취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역대 주한 미국대사 중 최고위급 인사로 부임하면서 북핵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버시바우 대사는 부임 초기 북한의 인권과 위조지폐 문제를 거론하고 김정일 정권을 ‘범죄 정권’이라고 칭하며 대북 강경 기조를 보였고 당시 노무현 정부는 버시바우 대사에게 북한 비난을 자제하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협상에 반대하는 촛불 시위가 한창이던 때에 손학규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실망스럽다”고 해 외교적 결례 논란을 빚었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주장한 데 대해 “과학적 근거도 없이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했으며, 민주당 측은 이를 공개하며 반발했다. 다만 버시바우 대사는 힐 대사와 마찬가지로 인터넷을 통해 한국민과 소통하며 국민을 상대로 한 공공 외교를 이어나갔다. 스티븐스 대사는 유창한 한국어로 한국 국민과 접촉면을 늘리면서 공공 외교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대사로 평가받는다. 스티븐스 대사는 미국 평화봉사단에 들어가 한국 복무를 자원, 1975~1977년 충남 예산군 예산중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고, ‘심은경’이라는 한국 이름을 지었다. 그는 1978년 국무부에 입부한 후 1983~1989년 한국에 다시 와 서울 대사관과 부산 영사관에서 근무했다. 스티븐스 대사는 2008년 10월 취임하자마자 33년 전 봉사한 예산중학교를 방문, “예산은 내가 외교관으로 필요한 자질을 배웠던 곳”이라며 한국 국민의 마음을 샀으며, 블로그도 개설해 글을 연재하며 ‘파워 블로거’로서의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후임 성 김 대사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6자회담 특별대표를 역임하다 그 해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김 대사는 2017년 주필리핀 미국대사로 자리를 옮겼으나 이듬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판문점에서 최선희 당시 외무성 부상과 정상회담 조율을 위한 실무협상을 했다. ●‘같이 갑시다’ 한미 동맹 캐치프레이즈 만든 리퍼트 리퍼트 대사는 미국 민주당 상원의원 보좌관을 지내다 2008년 오바마 정부 인수팀에 합류했다. 정부 출범 후 국방장관 수석보좌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 국방장관 비서실장을 역임하고 2014년 11월 주한 미국대사로 취임했다. 이전 직업 외교관 출신 대사들이 ‘늘공’(늘 공무원)이었다면 리퍼트 대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 참모로서 관직을 맡은 ‘어공’(어쩌다 공무원)인 셈이었다.리퍼트 대사는 2015년 3월 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김기종 씨에 의해 습격을 당했을 때 의연하게 대처함으로써 자신은 물론 미국의 이미지를 제고하고 나아가 한미 동맹 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습격 소식이 전해지자 리퍼트 대사의 수술은 물론 한미 관계에 대한 우려의 여론이 높아졌다. 리퍼트 대사는 사건 당일 수술을 마치고 트위터에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복귀합시다. 같이 갑시다!”라고 올리며 우려의 여론을 신속히 잠재울 수 있었다. 이후 ‘같이 갑시다’(Go together)는 한미 동맹의 캐치프레이즈가 돼 한미 동맹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인사말이나 건배사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문구가 됐다. 리퍼트 대사는 대사 부임 전 한국과 인연이 별로 없었지만, 부임 후 빠르게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익히며 한국민과의 거리를 좁혀나갔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 부임 후 갖게 된 첫째 아들에게 ‘세준’이라는 한국식 이름을 미들 네임으로 줬고, 딸에게도 ‘세희’라는 미들 네임을 붙였다. 야구팀 두산 베어스의 팬으로 유명한 리퍼트 대사는 대사 재임 기간은 물론 퇴임 후에도 야구장을 찾아 두산을 응원하면서 ‘야구 외교’를 선보이고 있다. ●막후 외교서 공공 외교로 대사의 역할 변화했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2월 주호주 미국대사로 지명됐다가 세 달 후 주한 미국대사로 재지명된 뒤 7월 취임했다. 전임 리퍼트 대사가 퇴임하고 1년 6개월여 만에 공석을 메운 터라 기대도 높았던 반면, 그가 대북·대중 강경파라는 점에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추진하는 문재인 정부와 마찰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교차했다. 하지만 해리스 대사는 2018년 6월 상원 외교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실제 협상에 진지한지 가늠하는 차원에서 주요 (한미연합)훈련을 일시 중단할 필요가 있다”며 트럼프 정부의 대북 협상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 해리스 대사가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문 대통령의 남북 협력 사업 추진에 한미 협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개인의 신념이라기보다 트럼프 정부의 기조를 대변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뿐만 아니라 전임 대사들도 한국 정부와 이견이 있는 이슈에서 항상 미국 정부의 입장을 대변해왔다. 버시바우 대사도 재임 기간 당시 조지 W 부시 정부의 기조대로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해 해리스 대사처럼 외교적 결례라는 비판을 받았다. 스티븐스 대사도 2010년 한미의 핵심 현안이자 2000년대 한국 내 반미 정서의 주요인이었던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관련 “(한국의) 시장이 완전히 개방되기를 바라지만 이 사안의 민감성을 잘 알고 있다”며 비록 정제된 톤이었지만 미국 정부의 입장을 명확히 전달했다.그럼에도 해리스 대사의 발언이 더욱 논란이 되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방위비분담협상 등 한미 관계의 현안에 대해 한국 정부를 전례 없이 강하게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공교롭게 한일관계가 악화 일로를 걷는 중에 해리스 대사가 부임하고, 그의 취임 후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가 한국 정부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번복하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며 해리스 대사에게는 ‘고압적인 미국 외교관’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졌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한미 관계가 과도기를 겪는 상황에서 한국과 미국 모두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을 변화한 상황에 맞게 조정하는 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같은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한국의 국력이 급성장하면서 한미 관계가 상호 호혜적 관계로 재조정되는 가운데 주한 미국대사의 역할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 대국민 공공 외교를 통해 한미 관계를 증진시키는 것으로 변화할 필요가 생겼다. 하지만 과거 미국대사의 한 마디에 한국 정부의 기조가 흔들렸던 경험을 겪었던 한국민은 미국대사의 발언을 정부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로 간주하며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미국대사들도 한국과 미국이 불평등한 관계에 있었던 역사와 한국민의 의심을 고려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발언함으로써 오해를 자초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 미국대사는 주한미군사령관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냉전 이후 한국의 국력이 강화되면서 미국대사는 한미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역할로 변화했다”고 했다. 이어 “해리스 대사를 둘러싼 논란은 대사 개인의 성향에 기인한 것도 있겠지만, 한미 정부가 변화된 양자 관계 속에서 이견을 조율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제된 톤으로 발표하는 데 서툰 모습을 보이는 탓도 있다”고 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18·19대 청년 정치인 16명 중 현역 2명뿐… 비례로 시작, 재선은 ‘벽’

    18·19대 청년 정치인 16명 중 현역 2명뿐… 비례로 시작, 재선은 ‘벽’

    18대 국회 7명·19대 9명… 주류서 밀려나 20대 총선서 대부분 고배… 21대 재기 ‘꿈’ 정치 경험 살려 국정 동참… 시민운동도4·15 총선을 겨냥해 여야가 ‘2030 표심’을 잡기 위해 청년 정치인을 앞세우는 가운데 18·19대 총선에서 청년의 이름으로 당선된 의원 중 현역으로 남은 사람은 단 2명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청년 비례대표로 의정 활동을 시작하지만 재선의 벽을 넘지 못해 대부분이 주류 정치의 외곽으로 밀려난 것이다. 총선에서 당선된 2030 정치인은 18대에 7명, 19대에 9명이었다. 18대에 한나라당에서는 김동성·홍정욱·강용석 의원이 각각 지역구에서 당선됐고, 무소속으로 김세연, 통합민주당에서 김유정, 민주노동당에서 이정희, 친박연대에서 양정례 전 의원이 배지를 달았다. 이 중 현재까지 의원 신분으로 남은 건 3선의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뿐이다. 그러나 김 의원은 최근 “한국당은 이제 수명이 다했다”며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19대에서는 직전보다 많은 9명의 청년 정치인이 당선의 기쁨을 맛봤다. 이 중 남은 의원은 전진당 이언주 의원뿐이다. 하지만 이 의원은 최근 ‘미래를 향한 전진 4.0’(전진당)을 창당하면서 19대 국회에서 보여 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정치색을 보이고 있다. 국회를 떠났지만 청년 정치인의 경험을 살려 국정에 동참하거나 시민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19대 민주통합당 청년비례 출신인 김광진 전 의원은 최근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청와대 정무비서관 역할에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20대 총선 당내 경선에서 떨어진 장하나 전 의원은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로 변신해 ‘유치원3법’ 등을 통과시키는 데 역할을 했다. 18·19대 출신 청년 정치인들은 대부분 지난 20대 총선에 도전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럼에도 또 적지 않은 수는 21대 총선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이었던 이자스민 의원은 정의당으로, 통합진보당 소속이었던 김재연 의원은 민중당으로 적을 옮겨 출마한다. 20대 총선에서 당선된 민주당 김해영, 한국당 신보라, 바른미래당 김수민 의원도 모두 21대 총선에 나간다.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선거비용 사기’ 무죄 받은 이석기, 형사보상금 받는다

    ‘선거비용 사기’ 무죄 받은 이석기, 형사보상금 받는다

    법원이 내란 선동 사건 등으로 9년째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선거비용 사기 등 일부 혐의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과 관련해 보상금 지급을 결정했다. 2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7부(이균용 부장판사)는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형사보상금 860여만원을 지급하기로 지난 13일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형사보상이란 무죄 판결이 확정된 경우에 형사재판 당사자가 쓴 재판비용을 국가가 보상해주는 제도다. 재판부는 이 전 의원과 함께 재판을 받은 3명에 대해서도 770만~900여만원의 형사보상을 공시했다. 이런 결정은 이 전 의원의 사기·정치자금법 위반·횡령 혐의 중 일부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확정된 데 따른 것이다.이 전 의원은 ‘CNP전략그룹’이란 선거홍보 회사의 대표를 맡아 2010년∼2011년 지방의원 선거, 2010년 경기도지사 선거 등에서 컨설팅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하며 물품 공급 가격을 부풀리는 방법으로 선거보전비용 4억 440여만원을 타낸 혐의(사기·정치자금법 위반)로 2012년 기소됐다. 또 CNP의 법인자금 1억 9000여만원을 유용해 개인 명의로 여의도 빌딩을 사들인 뒤 임대 수익을 올리고, 이와 별도로 CNP 명의의 4000만원을 빼돌려 쓴 혐의(횡령)도 받았다. 1심은 “사기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6800만원만 유죄로, 횡령 혐의는 상당 부분이 유죄로 인정된다”며 사기 및 횡령 혐의로 징역 10개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선거비용 보전 청구 시 제출된 CNP전략그룹과 후보들 사이의 계약서와 견적서 등을 보면 대금을 부풀렸다거나 허위로 작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사기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모두 무죄로 인정하고 횡령 혐의에 대해서만 징역 8개월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임은정 검사의 항변 “인사거래 분명히 있었다”

    임은정 검사의 항변 “인사거래 분명히 있었다”

    검찰 내부 비리를 폭로한 임은정 검사의 인사거래를 놓고 검찰 내부에서 설왕설래가 뜨겁다. 임 검사는 지난 2012년 윤길중 진보당 간사의 반공법 위반 재심사건에서 검찰의 ‘백지 구형’ 지침을 무시하고 ‘무죄 구형’을 하면서 내부고발자가 됐다. 그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2018년 2월 21일, 저는 인사동에서 윤대진 당시 중앙지검 1차장을 만났다. 그날 윤 차장은 저와 연수원 동기인 정유미 당시 중앙지검 공판3부장과 함께 왔다”고 밝혔다. 윤 차장은 ‘대윤’으로 불리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이어 ‘소윤’으로 불릴 정도로 현 총장과 친밀한 사이다. 현재 대전지검 형사2부장검사인 정 검사는 임 검사와 같이 사법연수원 30기다. 정 부장은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를 통해 임 검사가 조직을 욕보이려 인사거래를 경향신문 칼럼을 통해 주장했으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이어 윤 차장이 좋은 마음으로 유학을 권유한 것으로, 그 자리에서 그런 인사제의가 있었는지 자신은 들은 기억이 없다며 ‘네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조직을 욕보이려고 왜곡한 것으로 생각된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임 검사는 “윤 차장은 칼럼에 소개한 바와 같이 서지현 검사의 미투 때문에 저를 부장 승진 못 시켰다고 양해를 구한 후 해외연수 제의를 하며 개인의 행복을 찾으라고 열심히 설득했다”며 “미투 운운이 새빨간 거짓말이라 당황하여 정 부장을 쳐다봤더니 같이 당황할 줄 알았는데, 편안하게 한정식 반찬을 먹고 있는 걸 보고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고 설명했다. 임 검사는 윤 차장의 설득이 시끄러운 사람 해외로 보내려는 의사가 노골적이어서 불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학 제의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수인 어학시험 신청도 하지 않았다고 공개했다. 윤 차장은 직접 내부망 메신저로 연락을 해 신청도 안한 것을 알고 실망했다고 했다. 인사 발표날 오전 전화를 하여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자기도 약속을 지키지 않는’ 거라고 변명했다고 부연했다. 임 검사는 “정 부장이 인사거래를 기억을 못하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규정했다. 한편 조만간 있을 검찰 중간 간부 인사에서 임 검사는 영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9월 취임 직후 “임 검사를 비롯한 많은 검사로부터 의견을 경청하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민주노총, 진보정당과 ‘연결고리’ 구축 행보

    민주노총, 진보정당과 ‘연결고리’ 구축 행보

    ‘제1노총’으로 등극한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발걸음이 4·15 총선을 앞두고 바빠지고 있다. 독자적 창당 계획을 접은 이후 정의당 등 진보정당을 접촉하며 ‘연결고리’ 구축 작업을 이어 가는 모양새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은 14일 국회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표와 만나 총선 연대 방안을 논의했다. 김 위원장은 “진보정당들과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장들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면서 “반통일 반평화 세력들을 심판하고 진보 정치를 확장하는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민주노총이 총선에 임하는 자세”라고 밝혔다. 이에 심 대표는 “어떤 당이라도 참정권을 적극 행사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되셨으면 좋겠다”면서 “그중에 당연히 정의당 당원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화답했다. 정의당은 민주노총이 제안한 ‘전태일법’도 21대 국회에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전태일법은 5인 미만 사업장 근로자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근로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날 회동은 지난해 말부터 이어온 민주노총과 진보정당 간 연쇄 간담회 일정에 따른 것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7일 민중당, 지난 3일 녹색당, 8일 노동당, 10일 사회변혁노동자당을 찾았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진보정당과 어떤 연대를 이룰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마련한 자리”라면서 “과거처럼 배타적 지지를 선언하는 등의 결과물 대신 다른 전략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민주노총은 민주노동당 분당 사태 이후 탄생한 통합진보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를 2012년 철회한 이후 10년 가까이 총선·대선에서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대신 진보정당에 다수 출마자를 내는 방향으로 총선을 치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민주노총은 오는 17일 정기대의원대회를 열어 노선을 결정할 예정이다. 민주노총은 최근 조합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민주노총당’ 창당 방안 등에 대한 의향도 물어 관심을 끌었으나 독자적인 정당 창당은 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신형철 기자 hsdori@seoul.co.kr
  • 대만 反中에 다시 불붙는 홍콩… 美는 ‘中 길들이기’ 지렛대로

    대만 反中에 다시 불붙는 홍콩… 美는 ‘中 길들이기’ 지렛대로

    지난 11일 치러진 제15대 중화민국 총통(한국의 대통령 격) 선거에서 대만 유권자는 자신들을 이끌어 갈 지도자로 차이잉원 총통을 다시 한번 선택했다. 대만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은 첫 번째 임기(2016~2020) 내내 정치력 미숙 등으로 부정적 평가를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압박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도 차이 총통은 대만 독립 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양안(중국과 대만) 갈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중국이 군사적 위협 수위를 더욱 높이고 대만의 수교국들도 속속 단교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대만의 생존에 가장 중요한 미국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올해 11월 치러질 대선을 앞두고 대만 문제를 지렛대 삼아 ‘중국 길들이기’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13일 인민일보 등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차이 총통이 재집권하자 중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차이 총통이 재선 일성으로 “(중국의) 어떤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곧바로 엄포를 놓은 것이다. 전날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대만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라고 못 박았다. 겅 대변인은 “대만 정세가 앞으로 어떻게 변하든지 세계에는 단 하나의 중국만이 존재하고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 일본 등이 차이 총통의 당선을 축하한 것과 관련해 “이들 국가의 행동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반한 것으로 중국은 이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명하며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중국은 특정 사안에 대해 외교적 경로로 항의할 때 ‘엄정한 교섭을 제기했다’는 표현을 쓴다. 환구시보와 글로벌타임스는 공동사평(사설)에서 “차이 총통이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고 대선 경쟁자였던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모함하는 전략을 사용했다”면서 “대만 독립이라는 급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차이 총통이 대선 역사상 최다득표로 당선되면서 대만 독립 추구 움직임이 본격화될 것을 차단하려는 베이징의 우려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실제로 대만 총통 선거 결과가 당장 홍콩 정세에 영향을 주고 있다. 지난 12일 홍콩 시민 3만여명이 도심에서 시위를 벌였다. 올해 9월 치러질 입법회(한국의 국회 격) 선거에 대만처럼 완전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취지였다고 홍콩 명보가 13일 보도했다. 이에 맞서 홍콩 정부는 12일 국제인권단체 ‘휴먼 라이츠 워치’ 대표의 홍콩 입국을 금지했다. 그가 홍콩 시위 사태 확산에 불을 붙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조만간 중국이 대만에 대해 직간접적 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린잉위 대만 국립중정대 교수는 중국 군용기가 대만을 위협 비행하는 등 중국이 군사적 위협을 가할 가능성을 제시했다. 양안 관계는 2016년 차이 총통이 집권하면서 크게 나빠졌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1기 때부터 군사, 외교, 경제 등 다양한 방법으로 대만을 압박했다. 지난해 8월에는 중국인들의 대만 자유 여행도 제한해 연간 1조원이 넘는 경제적 타격을 가했다. 중국 전투기가 대만해협 중간선을 넘어 대만 전투기와 대치하고 중국 군함과 군용기들이 대만을 포위한 형태로 훈련하는 일도 잦아졌다. 앞으로 이런 ‘전통적 방식의 위협’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대만 전문가인 리모시 리치 미 웨스턴켄터키대 교수는 “얼마 남지 않은 대만의 수교국들이 관계를 단절하고 중국과 새로 수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은 차이 총통 집권 뒤로 ‘차이나 머니’를 내세워 대만의 외교적 고립을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태평양 지역에 있는 대만의 오랜 우호국들을 잇따라 단교시켜 자신의 편으로 돌려놨다. 중국으로서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군이 지배하는 태평양 지역에 전략적 요충지를 확보하는 효과가 있다. 차이 총통이 취임한 뒤 엘살바도르와 도미니카공화국, 부르키나파소, 상투메프린시페, 파나마, 솔로몬제도, 키리바시 등 7개국이 대만과 단교했다. 대만과 외교 관계를 맺은 국가는 15개국으로 줄었다. 대부분 정치적 영향력이 크지 않은 나라들이다. 차이 총통의 두 번째 임기(2020~2024)에도 중국발 ‘단교 도미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대만은 2차 세계대전 승전국으로 미국, 러시아 등과 함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위상이 커지면서 미국이 수교에 나서려 하자 1971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유엔에서 탈퇴했다. 시간이 갈수록 대만의 외교적 고립이 가팔라지는 모양새다. 미국은 대만과 외교 관계를 단절하는 국가를 제재하는 법안을 추진하는 등 비공식적 동맹을 지켜 주고자 노력하지만 성과는 그리 크지 않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밝혔다. 미중 관계도 더욱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스인훙 중국 인민대 교수는 “차이 총통 재집권 뒤 직면할 중국의 큰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있다. 그는 대만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군사적 지원책을 펴고 있어 중국의 ‘마지노선’을 시험하고 있다”고 했다. 스 교수는 “중국의 가장 큰 어려움은 트럼프 행정부가 인도·태평양 전략(호주와 일본, 인도 등이 연대해 중국 견제) 요충지에 대만을 포함하고자 한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간 트럼프 대통령은 대만을 사실상의 국가로 인정하고 대만에 첨단무기 수출을 승인했다. 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차이 총통에게 힘을 실어 줬다. SCMP는 “차이 총통 재선 승리로 대만에 대한 중국의 압박이 더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대만을 보호하려는 미국의 지원도 계속될 것”이라면서 “지금도 긴장 상태인 미중 관계에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풀이했다. 즉흥적 성격의 트럼프 대통령과 ‘힘의 외교’를 추구하는 시 주석이 대만 문제를 매개로 초유의 갈등 상황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올해 미 대선과 미중 2단계 무역협상이 대만 정책의 분수령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린 교수는 “중국 입장에서 지금의 대만 정책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양안 관계가 얼어붙을수록 대만인들의 마음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다. 이럴 때일수록 중국은 (대국적 차원에서) 양안 교류를 일정 부분 복원해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차이 총통이 급진적 노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의 일국양제 수용 요구를 거부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국이 ‘인내의 한계’로 여기는 독립 선언을 추진하는 것도 아니다. 냉엄한 국제사회 질서 속에서 대만의 처지를 이해하고 ‘현상 유지’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전략은 학자 출신으로 인내심을 갖고 꾸준히 상대방을 설득하는 차이 총통 특유의 기질에서 비롯됐다는 견해가 많다. 같은 당 천수이볜 전 총통의 과오에 대한 학습효과도 한몫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진보당 소속 첫 총통이 된 천수이볜은 자신의 임기(2000~2008)에 대만 독립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해 중국의 분노를 샀다. 그는 미국에서조차 ‘골칫덩이’라는 평가를 받아 고립을 자초했다. 민진당에는 ‘비현실적’, ‘급진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결국 천수이볜은 2008년 대선에서 국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민진당도 해체 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겪었다. 현재 차이 총통은 중국에 대한 자극을 최소화하면서도 미국과는 ‘사상 최고 수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도 무역전쟁을 계기로 중국을 견제하고자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차이 총통의 ‘전략적 인내’가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경제보다 주권 택한 대만… 차이 총통, 역대 최다표로 재선 성공

    경제보다 주권 택한 대만… 차이 총통, 역대 최다표로 재선 성공

    투표율 74.9%… 817만표 얻어 지지율 57% 젊은층 지지·홍콩 시위 사태가 승리 요인 총선도 동시 실시… 與 민진당 과반 유지 차이 “결코 中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 中 “대만의 독립·분열 시도 결연히 반대”대만 독립을 추구하는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 11일 치러진 제15대 중화민국 총통(한국의 대통령 격)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이번 대선은 지난해부터 거세진 중국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수용 요구와 홍콩 시위 사태 격화로 반중 정서가 한껏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다수의 대만 유권자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반발로 반중 성향의 차이 총통을 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경제보다는 주권’이라는 논리가 공감대를 얻었다는 것이다. 12일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선거에서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 총통은 817만 231표(57.1%)를 얻어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552만 2119표·38.6%) 가오슝 시장을 264만여표 차이로 누르고 당선됐다. 3위인 친민당 쑹추위 후보는 60만 8590표(4.3%)를 모았다. 차이 총통은 1996년 대만에서 총통 직선제가 도입된 뒤로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지지율도 4년 전 총통 선거 때 얻은 56.1%보다 더 높아졌다. 한 시장은 막판 분위기 반전을 노렸지만 자신의 정치적 고향인 가오슝에서도 패하는 등 판세를 뒤집지 못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전체 유권자 1931만명 가운데 1446만명이 투표해 74.9%의 투표율을 나타냈다. 역대 최저였던 2016년 대선 때의 66.3%보다 10% 포인트 가까이 높아졌다. 그간 투표에 소극적이던 젊은층이 차이 총통을 지지하고자 대거 투표장을 찾은 것으로 풀이된다.차이 총통은 11일 밤 타이베이 민진당 중앙당사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국민이 선택한 정부는 결코 (중국의)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더욱 큰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외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중국이 대만을 대등한 상대로 여기고 평화적으로 대한다면 양안 관계를 개선해 나갈 의지가 있다”고 협상의 여지를 남겼다. 여당인 민진당도 대선과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한국의 국회의원 격) 선거에서 무난히 과반 의석을 유지했다. 민진당은 전체 113석(지역구 79석, 비례대표 34석) 가운데 61석을 차지해 국민당(38석)을 압도했다. 역대 최다 득표로 재선에 성공한 차이 총통은 민진당의 총선 승리에 힘입어 두 번째 임기(2020~2024)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차이 총통은 1956년 타이베이의 부유한 사업가 가정에서 태어났다. 대만대를 졸업한 뒤 미국 코넬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각각 법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만으로 돌아와 국립정치대 등에서 법학 교수로 일했다. 1988년 대만 총통이 된 국민당 리덩후이는 임기 말 중국 본토와 대만이 별개의 나라임을 정립하는 ‘양국론’ 개념을 준비했는데, 당시 이 계획을 책임진 것이 당시 교수였던 차이 총통이었다. 그는 2000년 총통 선거에서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가 당선된 뒤 양안 관계 최고 책임자로 발탁돼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천수이볜이 부패 추문 등으로 2008년 선거에서 국민당에 정권을 내주자 차이 총통은 해체 직전의 민진당을 맡아 당의 재건에 앞장섰다. 2012년 대선에서 최초의 여성 후보로 출마했지만 패배를 맛봤다. 당 주석직을 내려놓고 ‘야인’이 됐다가 2014년 90%가 넘는 당원들의 지지로 당 주석에 복귀한 뒤 2016년 대선에서 국민당 주리룬 후보를 꺾고 첫 여성 총통에 올랐다. 집권 1기 차이 총통은 당선 직후부터 중국과의 갈등과 정치력 부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대만은 전 세계에서 중국 본토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다. 이 때문에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민진당과 차이 총통에게는 ‘비현실적’, ‘급진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최근까지도 대만의 주된 정서는 ‘아시아의 네 마리 용 가운데 가장 뒤처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중국과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분위기를 업고 2018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은 국민당에 참패했다. 차이 총통은 첫 임기만 마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1월부터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겠다”며 군사 압박 수위를 끌어올리자 상황이 달라졌다.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차이 총통의 이미지가 재조명된 것이다. 특히 같은 해 6월 시작된 홍콩 시위 사태가 대선 판세를 가르는 결정타가 됐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차이 총통은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친중 성향의 한 시장에게 크게 밀렸다. 그러나 홍콩 사태가 혼돈 속으로 빠져들던 8월부터 지지율 1위에 오르며 이변을 연출했다. ‘중국의 지원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지 못해도 괜찮으니 주권만큼은 포기해선 안 된다’는 여론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편 마샤오광 중국 국무원 대만판공실 대변인은 이날 대만 대선 결과에 대한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의 대만 정책은 명확하다. 평화통일과 일국양제 기본 방침과 ‘하나의 중국’ 원칙을 견지한다”면서 “어떠한 형식의 대만 독립과 분열 시도에 대해서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차이 총통 당선에 대한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대만독립 성향 차이잉원 총통 재선 성공

    대만독립 성향 차이잉원 총통 재선 성공

    대만 차이잉원 총통이 11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막바지 개표 작업이 진행 중인 이날 오후 8시 54분(현지시간) 현재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 총통이 801만5014표를 얻어 539만6602표를 얻은 친중국 성향의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261만여표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 한궈위 가오슝 시장은 지지자들에게 “차이잉원 총통에게 방금 당선 축하 전화를 했다. 선거 결과에 승복한다”고 밝혔다. 올해 대만 대선은 작년부터 거세진 중국의 일국양제 수용 압박과 홍콩 시위의 영향으로 대만에서도 반중 정서가 크게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최근 치러진 홍콩의 지방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이 압승한 데 이어 대만 유권자들까지 독립 성향의 차이 총통의 재선을 선택함에 따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적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만 차이잉원, 개표 중반 56.5%로 당선권 근접

    대만 차이잉원, 개표 중반 56.5%로 당선권 근접

    대만 총통 선거 개표가 절반가량 진행된 가운데 집권 민주진보당 후보인 차이잉원 총통이 500만표 넘게 획득하면서 당선권에 근접했다. 11일 대만 CTV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30분(현지시간) 현재 차이 총통은 527만483표(56.5%)를 얻어 364만1502표(39.0%)를 얻은 중국국민당 후보 한궈위 가오슝 시장을 162만여표 차이로 앞서가고 있다. 차이 총통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689만4744표(56.12%)를 얻어 당선됐다. 타이베이 민진당 중앙당사 앞에 모인 지지자들은 선거 개표 방송을 지켜보면서 환호했다. 선거 승리가 확실시되면 차이 총통은 중앙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지자들 앞에 설 예정이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대만 11일 대선…차이잉원- 한궈위 마지막 세몰이

    대만 11일 대선…차이잉원- 한궈위 마지막 세몰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이 재선에 성공해야 중국 본토의 위협으로부터 대만의 주권과 민주주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다.”(민진당 후보 측) “양안(兩岸·중국과 대만)관계가 회복돼야 경제가 산다(臺灣安全, 人民有錢).”(국민당 후보 측) 대만 총통선거가 하루 앞으로 다가온 10일 현 총통인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와 라이벌인 한궈위(韓國瑜) 국민당 후보가 각각 수도 타이베이(臺北)와 제2도시 가오슝(高雄)에서 마지막 유세를 갖고 대대적으로 막판 세몰이에 나섰다. 차이잉원 후보는 이날 한궈위 후보가 전날 유세를 했던 타이베이 총통부 앞에서 대규모 유세를 진행했다. 차이 후보는 중산층 감세와 복지 개선을 강조하며 중국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를 배격하며 중국 공산당에 휘둘리지 않는 ‘중화민국 대만’을 만들어가자고 호소했다. 차이 후보 진영은 돌발 변수가 없으면 여론조사보다 더 큰 격차로 이길 것이라며 승리를 자신했다. 차이 후보 캠프 관계자는 이날 자체 여론조사 결과 20%가 넘는 격차로 여전히 우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한궈위 후보는 이날 자신의 지지 기반인 가오슝 멍스다이(夢時代) 쇼핑몰 앞에서 마지막 선거 유세를 펼쳤다. 한 후보는 유세에서 경제를 살리고 서민들이 잘사는 대만을 만들겠다고 약속하면서 부동층을 흡수해 막판 뒤집기에 총력을 쏟았다. 한 후보 캠프 관계자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 후보를 선택하지 않은 30% 가량의 부동층의 지지를 기대하면서 이들 중 상당수가 한 후보를 지지하는 ‘샤이(shy) 한궈위’일 것이라고 전망을 내놓았다. 대만이 11일 총통선거를 실시한다. 과거 국민당 독재를 거친 대만에서 일반 국민들의 손으로 직접 총통이 선출하는 것은 지난 1996년 이래로 이번이 7번째다. 대만 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입법의원(국회의원) 선거와 함께 진행되는 이번 총통 선거는 11일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투표가 진행된다. 개표 결과는 이날 밤 늦게 나올 전망이다. 대선에는 친민당까지 3개 정당이 대선 후보를 냈지만 대만 독립 성향의 집권 민진당(민주진보당)과 제1야당인 국민당(중국국민당)의 양자 대결 구도가 형성됐다. 지난 1일부터 여론조사 결과 공표가 금지된 가운데 그 전까지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는 차이 후보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지난달 양안정책협회의 여론조사에서 차이 후보의 지지율은 54.9%를 기록해 한궈위 후보의 22.1%보다 30%포인트 이상 앞섰다. 친국민당 성향으로 평가되는 연합보의 여론조사에서도 차이 후보와 한 후보의 지지율은 각각 48%, 22%로 집계됐다. 대선에 단골로 출마하는 쑹추위(宋楚瑜) 친민당 후보의 지지율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5∼10% 수준에 그쳐 일찌감치 당선권에서 멀어졌다. 대만 현지에서는 극적인 돌발 변수가 없다면 차이 후보의 재선이 유력하다는 관측이다. 장촨셴(張傳賢) 대만 중앙연구원 정치학연구소 연구원은 “차이 총통과 한 시장의 지지율 격차는 국민들이 차이 총통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한 시장에 대한 불만이 크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차이 후보의 지지율은 50% 안팎으로 4년 전인 2016년 대선 때 지지율 56.12%에 못 미친다. 다만 변수는 존재한다. 젊은 층의 투표율과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한 후보 측이 어떻게 반격하느냐 여부다. 국민당이 국공내전에서 패퇴하는 바람에 1949년 대만으로 쫓겨오고 나서 2000년 민진당 소속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당선될 때까지 국민당은 50년여년 간 집권 세력이었다. 국민당의 지역 당 조직의 힘은 민진당에 비해 여전히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 대만의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사실 지난해 초만 하더라도 인기가 바닥을 기는 바람에 차이 후보의 재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다. 하지만 불과 1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놀라운 상황의 반전이 일어났다. 2018년 11월 24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차이 후보가 이끄는 민진당은 국민당에 치욕적인 참패를 당했다. 6개 지역을 챙겼을 뿐 15개 지역을 국민당에 내줬다. 더욱이 민진당 텃밭인 가오슝 시장 자리를 혜성처럼 등장한 한궈위의 열풍에 밀려 20년 만에 처음으로 국민당에 내준 것이다. 사상 첫 국민당 출신 가오슝 시장이 된 한 후보의 인기가 치솟으며 차기 총통 자리를 예약했다는 분석까지 나왔다. 반면 크나큰 정치적 타격을 입은 차이 후보는 그날 “지지해주신 분들을 실망하게 해 참으로 죄송하다”는 사과 성명을 내고 민진당 당수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가 추구한 노동 개혁과 연금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대만 경제 상황도 나쁜 데 대해 책임 추궁을 당했다는 평가가 뒤따르며 차이 후보의 지지도는 날이 갈수록 추락했다. 그러나 반전의 계기가 생겼다. 차이 후보에 새 생명을 불어넣은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었다. 시 주석이 지난해 1월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40주년을 기념해 발표한 연설이 불씨가 됐다. 시 주석은 대만과의 통일 방안으로 ‘일국양제’를 강조하며 여의치 않으면 무력 사용도 배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 주석의 이런 위협에 대해 차이 후보는 재빨리 선거전략 프레임을 바꿨다. “대만 독립 추구”가 아닌 “중국에 병합되는 걸 막자”, “대만을 지키자”로 미묘하게 분위기 변화를 꾀한 것이다. 6월에 접어들며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시 주석이 말하는 일국양제의 본보기인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벌어지면서 일국양제의 적나라한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대만에서 반중 정서가 크게 강해짐에 따라 차이 후보는 “오늘의 홍콩이 내일의 대만”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지난해 4월 중순만 해도 대만 여론조사에서 국민당 후보 한궈위는 51.4%로 차이잉원(37.4%)을 앞서 나갔다. 그러나 홍콩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면서 대만인의 일국양제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커졌고 지난해 10월 차이 후보는 41.2% 지지율로 30.8%의 한궈위를 따돌리며 꺼저가던 재선의 불씨를 되살렸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소수의견도 활발해야 건강한 사회… 사법의 정치화 경계해야”

    “소수의견도 활발해야 건강한 사회… 사법의 정치화 경계해야”

    “소수의견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얼마나 건강한지 보여 주는 척도다.”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위대한 반대자’였던 김이수(67) 전 헌법재판관은 지난달 26일 경기 고양시 자택에서 서울신문과 가진 단독 신년 인터뷰에서 소수의견과 민주주의 사회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관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과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 등 당시 뒷얘기를 비롯해 최근 정치적 양극화 현상에 대한 의견을 가감 없이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정치적 의견이 갈수록 양극화한다. 극단화 해소를 위한 실마리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합리적 보수·진보가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느낌이 든다. 배제와 혐오, 차별이 넘쳐난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에서 만든 부정적 유산이 여전하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뚜렷한 방책은 없지만, ‘상대방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보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다. 무조건 반대쪽 사람의 말은 근거도 없다고 하지 말고 들어 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배제와 혐오, 차별을 내면화하게 된다. 남북 분단과 전쟁, 최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불행한 죽음과 박 전 대통령 탄핵과 구속 등을 거치면서 상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축적되지 않았나 싶다.” -정치적 극단화 와중에 정치의 사법화, 또 그 반대로서 사법의 정치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가 정책은 정치적 공론장을 통해야 한다. 타협이 힘들다는 이유로 혹은 부담스럽다는 핑계로 사법부에 떠넘기는 게 정치의 사법화다. 낙태죄나 간통죄, 호주제, 양심적 병역거부 모두 그런 식이었다. 이견을 조율하고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현안을 해결하는 역할을 정치가 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고소·고발부터 하고 보는 게 일상이 돼 버렸다. 헌법재판소나 법원으로서는 정치 쟁점을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돼 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법원이 정치 현안을 판단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됐다. 그런 과정이 심해지면 사법의 정치화가 이뤄진다. 통진당 사건은 정치의 사법화인 동시에 사법의 정치화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헌법재판소나 법원도 그렇고 검찰과 경찰 등 법을 다루는 기관은 권력 행사를 절제해야 한다. 그걸 헌법학에서는 ‘과잉금지의 원칙’ 혹은 ‘비례의 원칙’으로 표현한다. 이를 위반하는 것은 헌법 위반이 된다.” -많은 이들이 김이수 헌법재판관 하면 ‘미스터 소수의견’이라는 별명을 떠올린다. “헌법재판관 시절 혼자서 낸 소수의견만 8건이었다. 그래도 사적으로는 다른 재판관들과 잘 지냈지만 2014년 12월에 통진당 해산을 결정한 정당 해산 심판 사건에서는 많이 외로웠다. 8대1로 혼자만 의견이 다르니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결정문 초안에 ‘쓸모 있는 바보들’이 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구절을 봤는데 반대 의견을 쓰는 나를 가리킨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 표현을 바꿔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집필자는 끝내 그 표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소수 발언을 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창의적인 생각도 쓴소리도 힘들 것 같다. “2017년 6월 헌법재판소장 청문회 당시 자유한국당 등에서 ‘통진당 해산을 반대한 재판관은 헌재소장이 될 자격이 없다’고 나를 비난했다. 그 정도 토론조차 허용할 수 없나 자괴감이 들었다. 다양한 생각을 보장하고 소수의 생각이 주눅 들지 않도록 보호하는 게 민주사회다. 소수의견이 활발하다는 건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뜻이다. 다수의견만 강요하는 사회는 독재로 빠진다.” -법원행정처에서 통진당 지방의원직 박탈 소송 판결 방향을 지시하는 문건을 만들었다는 게 ‘사법농단’ 와중에 드러나기도 했다. “‘사법농단’ 사건은 법원 내부에서, 그것도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 조직을 중심으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한 사건이어서 충격을 더한다. 핵심 의혹은 대체로 상고법원 설치를 위한 재판 거래,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 판사 사찰 등이다. 대체로 국제인권법연구회 탄압이나 판사 사찰은 사실인 듯하다. 재판 거래 역시 시도 자체는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것만으로도 국민의 신뢰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재판은 결론에 이르는 과정도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개방성을 가져야 하고 그러려면 용기와 절제가 모두 필요하다. 좋은 재판을 위해서는 재판에 대한 평가, 특히 시민사회의 평가가 활발해져야 한다. 법관들 역시 허심탄회하게 재판에 대한 평가를 들을 필요가 있다.”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서는 만장일치가 나왔다. “몇 차례 고비가 있었다. 촛불집회도 그렇고,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압도적인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되는 등 국민 여론이 확연히 드러난 게 중요했다. 탄핵 심판은 초기에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는 분위기였다. 중간에 ‘최순실이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는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문화·체육 등 일부 분야에 국한됐다면 탄핵까지 갈 건 아니지 않느냐는 논의도 있었다. 막판에는 대리인단이 법정을 모욕하는 변론 태도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박 전 대통령에게는 확실히 불리하게 작용했다.” -광화문에서 ‘탄핵은 사기’라며 박 전 대통령 석방을 요구하는 집회가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집회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이것저것 눈치 안 보고 말한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난하는 것도 거리낄 게 없다. 표현의 자유는 확실하게 누리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표현이 도를 넘을 땐 오히려 스스로 설득력이 없어진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서 우리가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얼마나 제대로 자기 목소리를 내느냐, 그리고 사회가 그걸 얼마나 보장하느냐 하는 점이다. 소수의견에 더 귀를 열어 주고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더 책임을 느끼는 사회가 다원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최근 논란이 된 한기총 집회를 어떻게 보나. “1972년부터 교회를 다녔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와 인권 증진에 기독교가 큰 역할을 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언행을 보면 과연 기독교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한쪽으로 쏠려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회를 정치집단으로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매우 걱정스럽다.” -헌법재판관에서 물러난 뒤로 어떻게 지내나. “퇴임하자마자 보름 넘게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여행했다. 업무상 해외에 간 걸 빼면 부부가 함께 여행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재작년부터 길고양이도 거둬서 키우는데 몸은 까맣고 발만 하얀색이라 이름을 ‘흰발이’로 지었다. 판소리를 1년 넘게 배우다가 박 전 대통령 탄핵 심판을 맡으면서 접었는데 다시 배울 생각이다.”-격무 속에서도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2002년부터 집 근처 호수공원에 나가 뛰기 시작했다. 2003년 봄에는 호수마라톤대회 하프마라톤에 출전했다. 2013년에 처음 완주를 했는데 당시 기록이 5시간 5분이었다. 지금까지 19번 완주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네댓 번 호수공원에 가서 6~7㎞를 뛴다. 마라톤은 늙어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사실 나이가 들면 그 재미를 더 잘 알게 된다. 내 목표는 75세까지 꾸준히 7㎞를 뛰는 거다. 무리하지만 않으면 상당히 오래 할 수 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폐암 의심 진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폐 수술 이유로 재판 연기

    “폐암 의심 진단” 양승태 전 대법원장, 폐 수술 이유로 재판 연기

    양 전 원장 측 “수술 후 4주간 안정해야”폐암이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을 앞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 관련 재판 일정이 다음달 21일로 연기됐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의 다음 공판을 다음달 21일 열기로 했다. 양 전 원장의 공판은 당초 이달 8일 재개돼 주 1∼2회 열릴 예정이었지만 지난달 양 전 원장이 ‘폐암으로 의심되는 악성 신생물’ 진단을 받아 이달 14일 폐 수술을 받게 되면서 일정이 연기됐다. 양 전 원장 측은 앞서 공판기일을 바꿔 지정하고 주거지 제한과 관련한 보석 조건을 변경하는 등 적절한 조처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양 전 원장 측은 또 회복기간인 내년 2월 둘째 주까지는 재판에 출석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으며 이를 재판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양 전 원장 측은 의료진이 수술 후 약 1주일간 입원 치료가 필요하고, 4주간 안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도 밝혔다. 검찰은 수술을 위한 보석 조건 변경에는 동의하면서도 수술 이후 추가기일을 열어 다음 공판계획을 수립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대법원장으로 재임하면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이 조사한 범죄 사실은 40여개에 달한다.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행정소송,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댓글 사건 재판, 옛 통합진보당 지방·국회의원 지위확인 행정소송 등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법관 뒷조사 등 사찰 및 인사 불이익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현대자동차 비정규노조 업무방해 사건 관련해 청와대 통한 헌법재판소 압박, 법원 공보관실 비자금 조성 의혹 등의 혐의도 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文 면전서 “이석기 석방” 민중당원들…文 아차산 일정 사전 유출?

    文 면전서 “이석기 석방” 민중당원들…文 아차산 일정 사전 유출?

    민중당 “국민통합 얘기할거면 李석방 필수”민중당 당원, 페북에 “청와대 비인권적”청와대 직원들 입막는 등 제지 소동통상 대통령 일정은 보안상 비공개 진행 사전 유출 확인시 경호 논란 제기될 듯문재인 대통령이 새해를 맞아 2019년을 빛낸 의인들과 함께 1일 서울 아차산을 올랐다가 기습적으로 내란선동 등의 혐의로 복역하고 있는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석방하라고 외치는 민중당 당원들과 마주쳐 청와대 관계자들이 제지하는 소동이 빚어졌다. 민중당 당원 성치화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페이스북글과 영상에 따르면 이날 성씨는 민중당 중랑 당원들과 신년 산행 도중 문 대통령을 만나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십시오”라고 외친 뒤 “(이 전 의원 수감이) 벌써 7년째입니다”고 호소했다. 그러자 청와대 경호처 직원으로 추정되는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한 관계자가 계속해서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외치는 성씨에게 다가가 자신의 왼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는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성씨는 이에 반발해 “뭐하시는거냐. 신분과 소속을 말해달라”고 항의했다. 영상에서는 두명 남짓의 인사들이 성씨가 문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가려 하자 앞을 막는 장면이 나온다.성씨는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박근혜 정권에 의해 7년, 8년째 여전히 수감 중인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고 얘기했다. 신년 특별사면에서 낡은 정치, 배제의 정치를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올렸다. 성씨는 이어 “정의로운 외침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제 몸을 거칠게 밀치고 입을 틀어막는 등 비인권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민통합을 이야기할 거라면 조작된 정치탄압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이 의원의 석방은 필수”라면서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이 이 의원을 가두는 것은 역사적·시대적 과오”라고 주장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취임 후 세 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이 사면대상에 포함됐지만 이 전 의원은 명단에서 빠졌다.당시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데 대해 “선거사범 등 일반적인 다른 정치인 사범과는 성격이 달라서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2013년 8월 28일 내란 음모, 국가보안법 혐의 등으로 구속됐지만 2015년 1월 대법원은 내란 음모죄는 무죄, 내란 선동죄는 유죄로 인정하며 징역 9년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이 전쟁 발발시 지하혁명조직(RO)을 통해 북한과 동조해 통신과 유류, 철도, 가스 등 국가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한 혐의(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를 유죄로 판단했다. 이날 민중당원의 미리 준비한 듯한 기습 항의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민중당원들이 문 대통령의 아차산 산행 일정을 사전에 알고 산에 오른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통상 경호상의 이유로 해당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공개되지 않는다. 이번 아차산행도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 외에는 알지 못했다. 이 때문에 누군가 민중당원들에게 미리 문 대통령의 일정 정보를 전달하는 등 문 대통령의 일정이 사전 유출돼 민중당원들이 고의적으로 시간을 맞춰 산에 오른 것으로 파악될 경우 대통령 경호에 구멍이 생긴 게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이석기 석방’외친 민중당원 입막히자 “청와대 비인권적”

    ‘이석기 석방’외친 민중당원 입막히자 “청와대 비인권적”

    문재인 대통령이 1일 2020년 경자년(庚子年) 새해를 맞아 2019년을 빛낸 의인(義人)들과 함께 서울 아차산을 올랐다가 민중당원들과 마주쳤다. 이들은 미리 준비한 듯 내란음모 등으로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을 석방할 것을 외치면서 청와대 관계자들로 추정되는 이들과 부딪히는 소동을 빚었다. 이날 민중당원 성치화씨의 페이스북 글과 영상에 따르면 성씨는 민중당 중랑 당원들과 신년 산행 중 문 대통령을 만나 “이석기 전 의원을 석방하십시오”라고 외쳤다. 영상에선 이외에도 “(이 전 의원 수감이) 벌써 7년째입니다”라는 등의 호소가 이어진다. 그러다 청와대 관계자로 추정되는 파란색 점퍼를 입은 한 관계자가 계속해서 이 전 의원의 석방을 외치는 성씨에게 다가가 자신의 왼손을 들어 그의 입을 막는듯한 움직임을 취한다. 성씨는 이에 반발해 “뭐하시는거냐.신분과 소속을 말해달라”고 항의한다. 파란색 점퍼를 입은 관계자는 청와대 경호처 직원으로 추정된다. 이 관계자 외에도 영상에선 두어명의 인사들이 성씨가 문 대통령이 있는 쪽으로 가려 하자 앞을 막는다. 성씨는 이에 대해 페이스북에 “박근혜 정권에 의해 7년, 8년째 여전히 수감 중인 이석기 의원을 석방하라고 얘기했습니다. 최근 발표한 신년 특별사면에서 낡은 정치, 배제의 정치를 이어가는 문재인 정부! 이게 말이 됩니까!”라며 “정의로운 외침에 청와대 관계자들은 제 몸을 거칠게 밀치고 입을 틀어막는 등 비인권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라고 적었다.이어 “국민통합을 이야기할 거라면 조작된 정치탄압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이석기 의원의 석방은 필수”라면서 “촛불혁명으로 국민들께서 정권을 바꿔준 지 3년이 지나는 중입니다. 아무런 명분도 이유도 없이 이석기 의원을 가두는 것은 역사적·시대적 과오라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취임 후 세 번째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 및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등이 포함된 가운데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명단에 빠졌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이 전 의원이 특사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데에 “선거사범 등 정치인 사범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전 의원은 내란음모·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지난 2013년 구속됐으며 대법원은 이 전 의원이 전쟁 발발시 지하혁명조직(RO)을 통해 북한과 동조해 통신과 유류, 철도, 가스 등 국가기간 시설을 타격하는 방안을 논의한 혐의(내란선동·국가보안법 위반 등)를 유죄로 보고 징역 9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한편 이날 민중당원들이 문 대통령의 아차산 산행 일정을 미리 알고 산에 오른 게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대통령의 외부 일정은 경호상의 이유로 해당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공개되지 않으며 이번 아차산행도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 외에는 알지 못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총선 앞두고… 이광재·한상균·곽노현 특별사면

    총선 앞두고… 이광재·한상균·곽노현 특별사면

    양심적 병역 거부·세월호 관련자 등 포함 박근혜 전 대통령·한명숙·이석기는 제외문재인 대통령이 31일자로 이광재 전 강원도지사와 한상균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 등 5174명에 대한 특별사면을 했다. 선거사범 267명, 양심적 병역 거부자 1879명과 세월호 집회 및 광우병 촛불집회 등 사회적 갈등 사건 관련자 18명도 포함됐다. 문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는 세 번째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30일 “민생 사면이자 국민 대통합을 강화하기 위한 사면”이라고 밝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이 전 지사는 2011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이 확정되며 피선거권이 박탈됐다. 이와 관련, ‘대통령 사면권 제한·정치인 사면 최소화’를 지향했던 지금까지의 청와대 기조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과거 기준에서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하지만 청와대는 “정치적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한 전 위원장의 사면에 대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를 끌어안으려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전 위원장은 민중총궐기 등 13건의 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은 후 2년 6개월간 복역하다 지난해 가석방됐다. 2012년 후보자 매수 혐의로 징역 1년이 확정됐던 곽 전 교육감과 야권 인사인 신지호·공성진 전 한나라당 의원도 사면·복권 명단에 포함됐다. 반면 한명숙 전 국무총리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포함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형이 확정되지 않아 사면 대상에서 제외됐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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