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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월드 한달째 배짱영업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놀이시설인 서울 잠실동 롯데월드 어드벤처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안전진단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롯데월드가 이를 무시하고 한달여 동안 영업을 강행, 안전 불감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5일 건물 구조진단업체인 ㈜동양구조가 롯데월드의 용역을 받아 한국재난연구원과 함께 지난해 10월부터 2개월 동안 벌인 ‘정밀 안전진단 종합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놀이기구인 환상의 오딧세이와 크레이지범퍼카, 영상모험관 등 3곳의 영업장을 즉시 폐쇄하고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 시설들은 천장 구조물에 일부 균열이 발생, 즉시 보수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보고서는 또 혜성특급과 범퍼카의 천장에도 균열이 나타났고, 스포츠센터 수영장도 부식돼 영업장 폐쇄 뒤 보수공사를 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시설 내부 곳곳에 전선이 노출돼 있고 허용 전류 기준에도 못미치는 전선을 사용하고 있어 감전이나 화재발생 위험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 어드벤처의 대형 천장과 벽체 일부가 놀이기구 진동으로 인한 고정장치 불량으로 보수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1989년 7월 개장한 롯데월드에서는 지난해 6월 천장에서 가로 세로 30㎝ 크기의 마감재가 떨어져 놀이기구를 타던 아이가 머리를 다치는 등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계속 제기돼 왔다. 지난 달 초 초등학생 아이와 함께 롯데월드를 다녀왔던 김모(41)씨는 “회전놀이 기구 아래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놀이기구가 지나가자 큰 소음과 진동이 발생해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면서 “건물이 진동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롯데월드는 지난달 5일 업체로부터 이 같은 결과를 통보받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계속 영업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롯데월드는 개보수의 필요성은 있다고 보지만 영업장을 즉시 폐쇄할 정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롯데월드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 외부업체에 안전진단을 맡겼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자체 전문가들이 안전점검을 하고 있다.”면서 “다음달부터 수영장을 리노베이션하는 등 계획적으로 개선해 나갈 예정”이라고 말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한국공학상’ 한민구·이종원·이화섭씨

    과학기술부는 5일 서울대 한민구 교수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이종원 교수,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이화섭 박사를 ‘제7회 한국공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한국공학상은 과기부와 한국과학재단이 2년마다 공학 분야에서 세계 정상급 수준의 연구 업적을 이룬 국내 과학자를 선정, 포상하는 제도다. 수상자에게는 대통령상장과 50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한 교수는 노트북PC 및 평판TV에 사용되는 액정 화면(LCD)의 핵심 부품인 다결정 실리콘 박막 트랜지스터(TFT)의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교수는 ‘회전체 역학 및 진동’ 분야에서 활발한 논문 저술활동을 펼쳐 기계공학의 학문적 발전과 산업기술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됐다. KIST의 이 박사는 셀룰로오스 펄프를 인견, 타이어 코드, 필름, 물 정제용 분리 막, 인공신장 혈액투석막 등으로 가공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 국내 셀룰로오스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져주기로 하고 둔 바둑은 없다

    총보(1∼170) 이 바둑은 11월13일에 두어졌다. 그런데 김효곤 4단은 그 다음날 입대 예정이었다.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부대에 배치될 것을 감안하면 이 바둑을 이기더라도 그 다음 판을 둘 수 있을 확률이 거의 없다. 따라서 승부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료기사들은 이 바둑에 대해서 “김효곤 4단이 져주기로 하고 뒀지.”하고 진동규 3단에게 농담을 건네곤 한다. 어쩌면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아는 프로기사들 중에는 승부에서 일부러 져주는 프로기사는 한명도 없다. 혹시 대국 전에는 그런 마음을 먹었더라도 막상 대국에 임하게 되면 절대로 져주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프로기사이다. 즉 바둑에 전념하는 순간에는 바둑수 이외에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즉 져줄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할 마음조차 생기지 않는 것이다. 이 바둑에서도 김효곤 4단은 초반 포석에서 약간 우세하게 앞서 나갔다. 흑59라는 패착을 두기 전까지만 해도 바둑은 흑이 유리했다. 그러나 한수의 패착으로 우변에서 쫄딱 망하면서 순식간에 형세는 뒤바뀌었다. 그런데 그 순간부터 김효곤 4단은 끊임없이 승부수를 날렸다. 흑103의 붙임부터 좌하귀 백 대마를 노리는 수를 두고 흑109,119로 우하귀 백 대마를 노리며 재역전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결국 재역전에 성공하지 못하고 차이가 점점 벌어지자 돌을 거두고 만 것이다. 아마 진동규 3단도 초반 형세가 불리했을 때보다, 유리해진 다음에 더 긴장했을 것이다. 자신이 역전을 시키며 크게 앞서 나가고 있지만 이런 바둑을 재역전당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 바둑에 대해서 진동규 3단에게 물었을 때 주위의 동료기사들이 “져주기로 하고 둔 것 맞지?”하고 묻자, 진 3단은 말없이 웃고만 있었다. 아마도 그 웃음의 의미는 “내가 이 바둑을 이기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는 것만 같았다. 승리한 진 3단에게 축하를 보내며, 김효곤 4단은 군복무 잘 하고 바둑계에 성공적으로 복귀하기를 바란다. 170수 끝, 백 불계승 (제한시간 각 10분, 초읽기 40초 3회, 덤 6집반)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두번의 노림수

    제6보(95∼122) 흑95로 붙여서 중앙 키우는 데에 마지막 승부를 건다고는 했지만 사실상 이미 승부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곳곳에 빈틈이 많기 때문에 흑은 고스란히 중앙을 집으로 만들 수 없다. 또 우격다짐으로 집을 만들다가는 그만큼 백에게도 어느 정도의 집을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흑103은 이른바 승부수. 귀에서 수를 내겠다는 뜻보다는 우하귀 백 대마 전체를 잡으러 가겠다는 뜻이다. 흑111로 뒀을 때 백112로 최대한 웅크려서 받은 것도 상대의 노림수를 눈치 챘기 때문이다. 즉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참고도1) 백1로 젖혀서 받으면 흑은 2로 잡으러 간다.6까지 백은 중앙에서 한집을 만들어야 살 수 있는데 이것은 유리한 백의 입장에서는 상당히 떨리는 모험이다. 흑115로 찌르고 119로 치중한 수도 역시 백 대마를 노리고 있다. 이때 (참고도2) 백1로 받기 쉬운데 이것은 7까지 단패가 된다. 그러나 백120으로 받은 수가 호착으로 귀의 특수성 때문에 백은 패를 피하고 깔끔하게 살아 있다. 이후 바둑은 170수까지 이어졌지만 의미 없는 수순이므로 나머지 수순은 총보에서 소개한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봇물이 터지다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봇물이 터지다

    제5보(78∼95) 백78로 젖힌 다음에는 이미 사고가 터졌다. 우변이 깨끗한 흑집이라고 봤을 때 흑이 약간 괜찮은 정도의 형세인데 이곳에서 조금만 수가 생겨도 형세는 백쪽으로 크게 기울게 된다. 흑은 일단 79로 한 칸 뛰어서 받을 수밖에 없는데 백이 80으로 밀고 들어오자 응수가 딱 끊겼다. 여기에서 (참고도1) 흑1로 받으면 백2의 젖힘을 선수하고 백4로 빠진다. 흑5의 보강이 절대일 때 백6이면 간단히 산다. 이 모두 흑▲와 백△를 교환한 탓이다. 전보에서 흑▲가 패착이라고 했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흑81로 먼저 젖혀서 백의 응수를 살핀다. 만약 (참고도2) 백1로 받아준다면 이때는 흑2로 이어서 우변 백돌이 잡힌다. 백3으로 두어도 4의 치중 한방으로 그만이다. 백5부터 9까지 흑 한점을 따내도 한집을 만들 방법이 없다. 그러나 흑81을 외면하고 백82로 먼저 중앙 흑의 약점을 찔러가자 흑은 대책이 없다. 이른바 봇물이 터진 것이다. 내친 걸음으로 흑85에 둬서 백돌 넉점을 잡았지만 백90으로 끊자 이번에는 우상귀 흑돌이 위험하다. 더구나 이 수로 사실상 우변 백 대마는 살아 있다. 흑93으로 하변 백 대마를 위협했을 때 백94로 대마를 살리자 흑95로 붙여서 중앙을 키우는 데에 마지막 희망을 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서울신문 신춘문예-소설당선작] 그들만의 식탁/황시운

    뼛조각을 쥔 남자의 손가락에 양념이 엉겨 붙어 있었다. 남자의 얼굴은 땀으로 번들댔다. 엄마는 간혹, 맨밥만 끼적이고 있는 내 쪽으로 슬며시 음식이 담긴 접시들을 밀어주었다. 그러나 꼬리찜의 기름이 둥둥 뜬 나박김치, 허연 밥풀이 앉은 겉절이, 되는 대로 헤쳐 놓은 나물들까지, 어느 것 하나 남자의 흔적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며 된장찌개로 수저를 가져가려다 또다시 멈칫했다. 밥풀이 잔뜩 묻은 남자의 숟가락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찌개냄비를 휘젓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남자의 수저와 엄마를 번갈아 쳐다봤다. 내 시선을 의식한 엄마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자는 양 볼이 메어져라 우겨 넣은 음식들을 우물대다 말고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남자의 수저를 흘끔댔다. 남자도 쥐고 있던 자신의 수저를 내려다봤다. 수저엔 여전히 밥풀과 음식의 양념들이 지저분하게 들러붙어 있었다. 커다란 식탁 앞에 둘러앉은 우리 세 사람이 같은 곳을 바라보는, 흔치 않은 순간이었다. 남자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그러나 남자는 곧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시 식사에 열중했다. 엄마 역시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찌개를 떠먹었다.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 외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맞은편의 누군가와 눈을 맞추고 이야기를 나누기엔 우리들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커다란 식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남자와 엄마의 얼굴이 차츰 흐릿해졌다. 나는 잠시 멀거니 찌개 위에 뜬 기름기를 바라보았다. 찜 그릇이 다 비워지자 남자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남자의 시선은 엄마가 덜어놓은 내 접시 위 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속이 울렁댔다. 나는 수저를 놓고 일어섰다. “왜, 좀 더 먹지 않고…….” “그러지 그러냐. 이거, 오늘 고기가 유난히 단데 말이다.” 엄마의 걱정에 남자도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그러나 남자의 손은 이미 내 접시 위의 꼬리를 덥석 집어 들고 있었다. “전 다 먹었어요. 마음 쓰지 말고 더 드세요.” 나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향해 짐짓 미소까지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집안 가득 밴 음식냄새 때문에 속이 뒤집힐 지경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뼈에 붙은 고깃점을 다 훑은 남자가 크게 트림을 하며 양념이 묻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엄마는 급히 남자에게 물수건을 건넸다. 그러나 남자는 건네받은 물수건으로 손가락에 묻은 음식 찌꺼기를 닦는 대신 땀이 흐르고 있는 얼굴과 목덜미를 훔쳐냈다. 남자는 엄마의 네 번째 남자였고 내게는 세 번째 저기요였다. 엄마의 남자들에게 나는 단 한번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낳아준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내게 아버지는 엄마의 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흰 피부의 키가 큰 남자일 뿐이었다. 그렇다고 흰 피부와 큰 키를 가진 엄마의 다른 남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았다. 가능하면 호칭을 생략하려 애썼지만 부득이한 경우 나는 늘 그들을 저기요, 라고 불렀다. 저기요, 식사하시래요. 저기요, 전화 받으세요. 저기요……. 코끝을 쏘는 고추냉이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를 감지하는 순간, 경화제를 섞은 실리콘을 휘젓던 팔에서 힘이 쑥 빠지고 말았다. 독한 경화제 냄새 속에서도 용케 부품들의 생생한 냄새를 찾아내고야 마는 유난스러운 후각에 진저리가 쳐졌다. 모두들 퇴근하고 난 토요일 밤, 휑한 제작실의 공기가 후각을 한층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저은 실리콘을 골판지 틀 안에 천천히 붓자 후각을 자극하던 부품들의 냄새도 실리콘 반죽 속에 갇혀 버렸다. 드라이어의 온도를 최대한 낮춰 틀 위에 가져다 댔다. 원칙적으로 실리콘 틀은 자연건조시켜야 하지만 납품기일에 맞추려면 서둘러야 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 제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는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는 아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을 것이다. “별스러운 걸 기대했던 게 아니야. 나는 그저 소박한 식탁에 마주 앉아서 대수로울 것 없는 잡담이나 나누며 함께 밥 먹는 일상을 원했던 것뿐이라고.” 오 년여의 시간을 정리하던 날 그가 말했다. 시종일관 차분하다 못해 냉랭하기까지 했던 나와 달리, 그날 그는 필요 이상으로 많은 말들을 두서없이 쏟아놓았다. 도저히 널 이해할 수가 없어, 라고 말할 땐 눈물이 그렁하게 맺히기도 했다. 그 뒤로도 서너 번쯤 더 그를 만났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막막한 심정으로 마주 앉아 서로를 말없이 바라보다 헤어졌다. 나는 누군가와 식탁 앞에 마주 앉아서 잡담이나 늘어놓으며 보내게 될 일상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결국 얼마 후, 그는 결혼을 했다. 드라이어를 내려놓은 뒤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빼 물었다. 그러나 곧 담배를 담뱃갑 속에 도로 집어넣었다. 제작실 문에 걸린 금연 푯말을 일별한 후 문을 열고 나섰다. 복도를 서성이다 빈 사무실로 들어섰다. 책상 위에 걸터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과식 소화불량에 파라나 정―변비 식욕부진에 카이셀 과립’. 맞은편 건물 위에 세워진 전광판의 글자들이 색깔을 달리하며 우르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애초부터 자신들 사이에 괴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불을 켜지 않았지만 좁은 사무실은 전광판이 뿜어내는 빛만으로도 충분히 밝았다. 볕에 널어뒀던 북어껍질을 거둬들이는 엄마의 손이 붉게 빛났다. 노을은 엄마의 손뿐만 아니라 부엌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엄마는 나무 도마 위에 북어껍질을 뒤집어 올려놓고 절굿공이로 타닥타닥 두드렸다. 좁고 동그란 엄마의 어깨가 유연하게 들썩였다. 엄마는 편편하게 다듬어진 북어껍질을 물에 담가둔 뒤 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살짝 데친 숙주를 잘게 썰고 으깬 두부를 면포에 싸 꼭 짜냈다. 핏물을 뺀 소고기까지 다져낸 엄마는 준비해둔 재료들을 한데 그러모아 양념하고 치대기 시작했다. 얇은 면 티셔츠가 등에 들러붙어 있었다. 엄마의 뒷모습엔 다양한 표정이 담겨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음식을 만드는 순간의 엄마는 다른 어떤 때보다 다양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나 뒷모습이 만들어내는 표정은 언제나 그늘져 있었고, 그늘 속의 엄마는 날이 갈수록 창백해졌다. 엄마는 물에 불린 북어껍질을 건져 비늘을 긁어냈다. 물에 분 북어껍질은 탱탱하게 되살아나 있었다. 그러고는 반듯하게 잘라낸 북어껍질에 소를 넣어 아물린 뒤 계란 옷을 입혀 지져냈다. “너무 기름지면 개운한 맛이 덜하니까 주의해야 해. 소고기 대신 북어대가리로 육수를 내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지.” 지져낸 전은 한 김이 빠지자마자 냉동실에 넣어 식혔다. 잠시 뒤 엄마는 북어대가리와 무, 그리고 파만으로 우려낸 육수에 나박나박 썬 호박과 함께 식혀뒀던 전을 넣었다. 엄마는 국물이 한소끔 끓자 된장을 풀면서 다시 말했다. “된장은 마지막에 풀어라. 처음부터 장을 풀고 끓이면 떫은맛이 나기 십상이거든. 맑게 끓이려면 국간장으로 간을 해도 괜찮고.” 엄마는 썰어놓은 파와 미나리를 끓고 있는 탕 속에 집어넣으며 처음으로 내 쪽을 돌아봤다. “지금이야 쓸데없는 소리 같겠지만 들어둬라. 들어두면 언젠가는 써먹을 날이 있겠지.” 신문을 뒤적이던 저기요가 엄마와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세 식구가 쓰기엔 너무 큰 식탁은 곧 엄마의 음식들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 저기요는 벌써부터 커다란 식탁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집안의 모든 창문을 활짝 열어뒀지만 어글탕의 비릿한 냄새는 좀처럼 빠지지 않았다. 또다시 위가 저릿대기 시작했다. 엄마의 남자들은 하나같이 엄마보다는 엄마가 만든 음식에 홀려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언제나 엄마가 야물게 차려내는 음식에만 열중할 뿐, 엄마에게 그 이상의 것을 요구하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모두 엄마의 남자들이었지만 솜씨 좋은 요리사를 찾는 단골손님들 같기도 했다. 엄마 역시 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 말고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틈에서 나는 맛깔스러운 음식을 차려내는 요리사의 딸로서 그들 모두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엄마의 남자들과 엄마 사이에 음식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 그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 따위도 문제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마치 잘 차려진 음식상에 어울리지 않게 놓인 이 빠진 종지 같았다. 나는 날마다 타들어 갔다. 엄마가 만들어내는 온갖 맛깔스러운 음식들도 나를 살찌우진 못했다. “어머니 음식 솜씨가 이렇게 대단하신데 어떻게 넌 그렇게 비쩍 마를 수가 있었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 어머니, 한영이 얘, 다이어트 한답시고 걸핏하면 굶고 그러죠?” 처음 인사를 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던 날 그가 말했다. 엄마는 말없이 엷게 웃어 보였고 나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서글서글한 성품의 그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감탄 어린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엄마와 나의 세 번째 저기요는 흐뭇한 얼굴로 그가 먹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음식 타박 없이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많이 먹을 수 있는 사람인 줄은 미처 몰랐다. 그 날, 두 남자가 게걸스레 먹어댄 음식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고 그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봐야 했던 나는 저녁 내 치밀어 오르는 구토를 가까스로 참아냈다. “야, 어머니 음식 솜씨 정말 대단하시더라. 나 완전히 횡재한 기분인 거 있지? 어머니 닮았으면 너도 보통 솜씨는 아닐 거야. 그렇지?” 그 뒤로도 그는 종종 벌쭉벌쭉 웃어가며 만족스러워하곤 했다. 자신의 예상이 완벽하게 빗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조차 실망하는 기색은커녕 넉살 좋게 객쩍은 농담을 던지며 나를 위로하려 들었다.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딸은 엄마 닮는다는데, 그 피가 어디로 가겠냐? 안 해봐서 그렇지 너도 했다 하면 보나 마나 끝내줄 거라니까.” 그때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그의 말이 사실이면 어쩌나 싶어 한동안 몹시 불안했다. 엄마는 그 유난스러운 손맛 때문에 한순간도 자신의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던 거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었다. “손가락까지도 어쩌면 그렇게 쭉 고르고 하얗던지, 처음 봤을 땐 꼭 멀미라도 치밀 것처럼 속이 다 울렁댔더랬지. 그렇게 훤칠한 양반이 매번 앉은 자리에서 해장국을 두 사발씩이나 뚝딱뚝딱 비워내는데, 인연이 닿으려고 그랬던 건지 볼 때마다 속이 짠한 게….” 결국 나는 솜씨 좋은 해장국집 외동딸이 자신의 가슴을 짠하게 한 남자를 위해 뚝배기에 아낌없이 퍼 담아줬던 선지 덩어리가 만들어낸 결과물인 셈이었다. 한번도 묻지 않았고 엄마 역시 이후의 일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었지만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멀미기가 치밀 만치 하얀 피부를 가졌던 그 훤칠한 양반은, 사실 선지 해장국과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 하더라도 혼기 놓친 해장국집 외동딸 따위가 눈에 찰 리 만무했을 것이다. 입에 맞는 해장국을 먹기 위해 일생을 걸 남자가 도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엄마의 첫 번째 남자이자 나의 아버지였던 양반은 머지않아 해장국보다 더 나은 먹거리를 찾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끝. 통속적이지만 명쾌한 결말이 아닐 수 없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엄마는 가정식 백반으로 식당의 메뉴를 변경하고 본격적으로 음식 장사에 매달렸다. 타고난 손맛 때문인지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볐고, 덕분에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리 생각해 보려 해도 엄마는 그때 음식 장사를 시작해선 안 되는 거였다. 선지 덩어리를 퍼 담아 주다 만난 남자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를 들쳐 업고 기껏 다시 시작한 일이란 게 음식 만드는 일이었다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는 해도 엄마는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무책임했다. 생의 대부분을 음식 냄새 속에 갇혀 지내는 동안, 엄마는 요리 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져 갔다. 엄마가 찾아낸 새로운 삶이었을 저기요들조차 모두 엄마의 백반 집과 갈비 집의 단골손님들이었다. 이를테면 엄마는 비슷한 실수를 반복하며 살아온 셈이었다.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마다 엄마는 마치 정해진 수순을 밟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행동했다. 간혹 내 의견을 물어오기도 했지만 내가 보이는 반응에 그다지 신경을 쓰는 눈치는 아니었다. 나는 물론, 단 한번도 엄마의 결정에 반대하거나 돼먹지 못한 심술을 부려 엄마와 저기요들을 괴롭히지 않았다. 사실, 엄마의 방으로 옷가지 몇 벌을 옮겨왔을 뿐인 단골손님들에게 내가 불손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각자 어딘가 조금씩 불편하고 거북하긴 했지만 우리들의 동거는 대체로 평화로웠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만만한 게 뭐라고, 아무튼 제작팀을 무슨 개똥대가리로 안다니까! 납품기한 하나 제대로 조절 못하는 즈이 놈들 책임은 간데 없고 허구헌날 나만 들볶으면 안 될 일이 된대? 에이, 썅!” 작업가운을 벗어 던진 제작팀장이 담배를 빼물었다. 그러고는 서너 번쯤 신경질적으로 빨던 담배를 바닥에 내던진 뒤 제작실을 나가버렸다. 부서져라 닫은 문에 걸린 금연푯말이 덜렁댔다. 팀장은 종종, 자신이 늘 하는 말처럼 제작팀을 개똥대가리 취급하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를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말 기세로 성깔을 부려대곤 했다. 그러나 그때뿐이지, 그는 덜렁대는 금연푯말이 채 멈추기도 전에 다시 제작실 문을 기세 좋게 열고 들어와 나머지 팀원들을 몰아치곤 했다. “다들 들었지? 개 썅! 드럽고 치사하지만 어쩌겠어, 까라면 까는 수밖에. 자, 분발들 하자고!” 결국 그는 이 개 콧구멍만 한 회사에 없어서는 안 될, 퍽 유능한 관리자인 셈이었다. 예열 된 오븐 안에 모형들을 차곡차곡 집어넣었다. 타이머를 조절한 뒤 새로 작업할 음식의 부품들을 정리했다. 팀장은 조금 전 오더가 넘어온 열한 가지나 되는 스테이크의 메뉴와 자료들을 내게 넘기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주말까지는 완성해야 된다고 지레 숨넘어가는 소리를 해댔다. 물컹대는 스테이크의 표면을 마른 수건으로 세심하게 닦아낸 뒤 작업판 위에 접착했다. 골판지로 스테이크와 부품들의 주변을 두르고 파라핀으로 테두리를 마무리했다. 온갖 음식 부품들과 화공약품의 냄새가 뒤섞인 작업실은 마치 거대한 냄새창고 같았다. 종일 쉬지 않고 돌아가는 환풍기 소음 때문에 골이 지끈거릴 지경이었지만 이 지독한 냄새를 빼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스테이크의 틀을 완성한 뒤 성형이 끝난 초밥 부품들의 착색 작업을 시작했다. 날 생선을 주로 쓰는 일식은 무엇보다도 색감의 표현이 중요하다. 각각의 생선부품들에 그야말로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만큼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간단한 스프레이 작업 후, 보다 세밀한 표현을 위해 붓을 들었을 때 작업대 위에 올려뒀던 핸드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발신번호를 확인한 나는 그대로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램프는 한참을 더 깜빡이다 꺼졌다. 칠 개월 만이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그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망설임 없이 뛰어넘어도 괜찮을 만큼 달라진 상황들이 단순한 것도 아니었다. 꼬리를 무는 생각들로 머리가 무거워졌다. 잠시 후, 다시 램프가 깜빡였다. 그때까지도 나는 붓을 쥔 채로 전화기를 바라보고 있었다. 붓에 묻은 물감은 이미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시너 통에 붓을 헹군 뒤 천천히 핸드폰을 들었다. “여보세요.” “……, 나야.” 오랜만에 듣는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낯설었다. “좀 만났으면 하는데……, 시간 괜찮아?” 나도 모르게 한숨이 비어져 나왔다. 전보단 확실히 낮아진 목소리도 조심성 없는 그의 성품을 감춰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달라진 상황들로 인해 망설이고 있는 것은 나뿐인 것 같았다. 결국, 아직은 서로의 목소리를 잊어도 좋을 만큼 멀리 오진 못한 셈이었다. 모형음식이 필요한 이유와 그것의 가치는 일맥상통한다.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대량생산으로 맞춘 듯이 찍어내는 싸구려 모형들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모형음식의 예술적 승화 운운하며 걸핏하면 씨알도 안 먹힐 소릴 해대는 제작팀장이나, 직원들 보너스조차 변변히 챙겨주지 못하면서 소규모 주문제작만을 고집하고 있는 회사의 오너조차도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모형음식은 신기한 볼거리도, 획기적인 전시 아이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가짜들에 대한 환상 따위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환상만으로는 아무것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여러모로 열악한 여건들을 감수하면서까지 뒤늦게 이 일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모형음식은 음식을 포함한 모든 환상들로부터 나를 자유롭게 했다. 유일했고 완벽했다. 착색을 마친 모형에선 금방이라도 물기가 비어져 나올 것만 같았다. 붓을 내려놓은 뒤에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몰아쉬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전화에 약간 놀라기는 했지만 언제고 그가 연락을 해오리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은 없었다. 그가 나를 떠나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깨달음이었다. 드라이어의 뜨거운 바람을 쏘이자 딱딱하던 생선 모형들이 노골노골해졌다. 고추냉이를 표현한 초밥 위에 접착제를 바른 뒤 부드러워진 생선을 얹었다. 손으로 초밥을 꼭 감싸 쥐었다. 따뜻했다. 헛헛하던 속이 비로소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는 음식 따위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엄마가 남자들과 살림을 합칠 때 그랬던 것처럼 그들과 헤어질 때 역시 나는 별다른 감응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헤어짐의 원인이 내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는 그럴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저기요가 짐을 꾸리며 내뱉은 말은 적잖이 충격적이었다. “도대체 저놈의 자식이랑 같이 밥상머리에 앉아 있다 보면 내가 무슨 개, 돼지가 된 것 같단 말이야! 더러워, 아주 더러운 기분이야!” 그는 순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그랬다. 식당근처의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남자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의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하곤 했다. 엄마도 단 음식을 유난히 싫어하는 그를 위해 음식의 간을 따로 할 만큼 그에게 각별한 정성을 기울였다. 그는 또, 엄마와 살림을 합친 후부터는 나에게도 넘치거나 모자라지 않을 만큼의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나는 그가 엄마 모르게 쥐어줬던 약간의 용돈을 매번 무척 요긴하게 쓰곤 했다. 물론 그런 그에게 특별한 호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와 함께 한 밥상머리에서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을 만큼 별나게 굴지도 않았다. 그때 나는 겨우 열일곱 살이었지만, 사춘기를 무기 삼아 공연한 심술을 부려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았다.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아저씨는 그저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을 뿐이야.” 엄마의 위로도 별 도움이 되진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나는 언제나 웃었다. 엄마에게도, 저기요에게도, 심지어 엄마의 음식들에게조차 나는 웃어 보였다. 엄마의 집으로 많지 않은 짐들을 옮겨오던 날, 세 번째 저기요는 말했다. “너랑 불편하게 지내게 될까봐 은근히 마음이 쓰였는데,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보다.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응?” 나는 그에게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나 함께 산 지 오 년이 넘도록 그는 내가 음식을 거의 먹지 않는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종종 헛웃음에 감쪽같이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그도 어쩌면, 그것이 헛웃음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모른 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만일 그런 거라면 나는 그에게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유가 뭐냐? 오 년씩이나 잘 만나던 사람이랑 느닷없이 헤어졌을 땐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냔 말이다. 집에 인사까지 시켜놓고 이제 와서 결혼 못하겠다고 나자빠진 이유가!” 뒤늦게 그와 헤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다그쳤다. 하고 싶은 말도 해줄 말도 없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와 엄마의 남자들에게 담담했던 것처럼 엄마도 내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왜 그런 게 알고 싶은 거죠? 엄마가 그걸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왜냐구요? 도무지 결혼이라는 게 현실 같지가 않아서 싫었어요. 당연한 일 아니에요?” 엄마의 삶을 비난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납득할 수 없는 삶이라고 해서 무턱대고 비난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무엇보다도 나에겐 엄마의 삶을 비난할 자격이 없었다. 비록 엄마의 잘못된 선택 때문에 내 지난 시간들이 상한 음식처럼 퀴퀴한 냄새를 풍기며 그늘 속에 방치되어 왔다 해도 말이다. 그때, 엄마의 선택 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은 엄마 혼자만의 탓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가장 괴로웠을 사람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이었을 테니, 나까지 거들지 않는다 해도 엄마는 이미 충분한 대가를 치른 셈이었다. 그러니까 그건, 어디까지나 몸의 문제였을 뿐이다. 엄마도 그걸 이해해야만 한다고 믿었다. 초밥모형의 주문처는 확장이전을 계획하고 있다는 회전초밥 집이다. 주문량은 회전용 접시 스물두 개 분량이다. 모리작업을 위해 색색의 접시들을 꺼내 깨끗이 닦았다. 회전초밥 샘플의 경우엔 특별한 데커레이션이 필요 없다. 자료사진과 비교해가며 각각의 접시 위에 초밥모형들을 접착했다. 그러나 업체 쪽에서 넘겨준 자료들은 조악하기 짝이 없어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초밥 집에서 판매되는 음식들은 모형에 훨씬 못 미칠 것이 뻔했다. 그런 지경으로 어떻게 가게를 확장할 수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접착제 튜브를 내려놓고 뻣뻣해진 뒷덜미를 꾹꾹 주물렀다. 잠시 후 그를 만나면 함께 식사를 할 것인지 얼른 결정을 해야 했다. 그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는 일은 보나마나 고역일 것이다. 그렇다고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음식을 먹든 안 먹든 난감하긴 마찬가지였다. 코팅작업을 위해 클리어래커에 래커시너를 배합하고 있을 때 휴대폰의 램프가 깜빡였다. 작업실을 가득 메운 시너냄새를 뚫고, 이미 휘발되었던 그가 온전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순간, 약속장소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를 만났던 장소이기도 한 레스토랑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긴, 채 일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달라질 것이 무엇이겠는가. 지난 칠 개월은 그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변하게 하기에만도 벅찰 만큼 짧은 시간이었을 뿐이다. 점심시간인데도 레스토랑은 한산했다. “네가 만드는 음식모형쯤으로 생각하면 돼. 어차피 너에게 실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잖아?”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앞에 놓인 음식이 다 식어빠지도록 끼적대고만 있는 내게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널 다시 만나고 싶어, 라고 말했다. 나는 칠 개월 만에 다시 연락을 해온 그가 조금쯤은 초췌해졌거나, 적어도 이전보다는 깊은 눈을 갖게 되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그는 전보다 훨씬 부예진 모습이었다. 게다가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의 디자인에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음 직한 동창생 아내의 흔적까지 덕지덕지 바르고 나타났다. 그런 그가 난데없이 빈정거리고 있었다. 화를 내야 하는 것인지, 스테이크의 붉은 속살을 포크로 쿡쿡 찔러대고 있던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아직도 내게 기대하는 게 남았다는 뜻이야? 도대체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겠어.” 부지런히 음식을 씹고 있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그는 나이프와 포크를 양손에 쥔 채 말했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 차라리 쥐고 있는 포크로 내 얼굴을 사정없이 찔러버려. 제발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로 사람 좀 질리게 하지 말란 말이야! 넌 늘 그런 식이야. 다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이미 결정해 놓고도 망설이는 척……. 그런 식으로 너 자신을 방어하는 거라고 착각하고 있나본데, 웃기지 마. 넌 그냥 꽁무니를 빼고 있는 것뿐이야. 내가 원하는 게 뭔지, 그걸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나는 딱딱한 음식모형을 만드는 여자에게 가장 잘 어울릴 만한 표정이 뭘지 항상 궁금했다. 회사를 나서기 전에 한 움큼이나 되는 약을 먹어뒀음에도 불구하고 또다시 목구멍을 타고 신물이 역류했다. 쥐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물 잔을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 “주말에 전화해. 주중엔 당신뿐 아니라 누구와도 잘 수 없을 만큼 바빠. 그리고 다시 만날 땐, 제발 그 타이핀이랑 커프스버튼은 빼고 나타나 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테이블이 흔들렸고 그릇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스레 울렸다. 동시에 뺨이 얼얼해졌다. 아프긴 했지만 화가 나거나 불쾌하지는 않았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놨다. 나이프의 날엔 스테이크소스가 지저분하게 엉긴 채 굳어 있었다. “진정해. 혹시 포크로 내 얼굴을 찌르고 싶더라도 참아 줘. 우린 칠 개월 만에 만났어. 그 사이 당신은 결혼을 했고, 당신 말대로 난 여전히 마주앉아 함께 음식을 먹으며 사소한 잡담이나 나눌 만큼 편한 상대가 못돼. 당신도 알잖아.” 나는 천천히 일어서서 레스토랑을 나왔다. 그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다시 연락을 해올 것이다. 그때 가서 그를 다시 만나건 만나지 않건 그것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일을 두고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제대로 봉합해두지 않았던 탓에 꾸덕꾸덕해진 클리어래커에 시너를 다시 배합해 접시 위에 가지런히 데커레이션 된 초밥의 코팅작업을 했다. 래커의 양을 조절해가며 최대한 얇고 고르게 펴 발랐다. 실제 음식이건 모형음식이건 간에 실없이 번쩍대는 음식이 입맛을 돋울 리 없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음식모형도 그렇고, 그와의 관계도 그렇고, 엄마나 저기요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자칫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 모든 것들은 대책 없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오후엔 사무실에 다녀온 제작팀장이 다시 한번 작업가운을 벗어 던지며 길길이 날뛰었고 망할 놈의 환풍기는 아예 규칙적인 박자까지 맞추며 덜덜 돌아갔다. 나는 완성된 초밥모형만을 간신히 넘긴 뒤 서둘러 퇴근했다. 한번 뒤집힌 속은 다시 약을 먹어도 쉬 가라앉지 않았다. 어둠에 잠겨 있는 방안의 공기가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눈을 뜨자 침대 끝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주무시지 않고, 무슨 일이에요? 이 시간에…….” 묵직한 머리를 흔들어 남은 잠을 털어내며 물었다. “아저씨가 들어오지 않으셨다.” “겨우 그것 때문에 이 밤에 주무시지도 않고 그러고 계신 거예요? 곧 들어오시겠죠. 좀 늦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며칠 전부터 꽃게가 잡숫고 싶다고 하셔서 수산시장에 다녀왔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도 점심때가 다 돼서야 돌아왔지 뭐니. 돌아와선 또 한참이나 게를 손질하고 찜통에 쪄냈지. 그런데 아직까지도 들어오지 않으시는구나.” 그러고 보니 미처 맡지 못했던 비린내가 나는 것도 같았다. 순간 비어 있던 위가 저릿해졌고 동시에 신물이 올라왔다. 처음엔 그저 감전된 것처럼 저릿하기만 하던 위의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졌다. 나는 이불을 덮어쓰고 누워버렸다. 허리를 구부린 채 통증을 참아내고 있는 나를 향해 엄마는 말했다. “어쩐지 영 안 들어오실 거란 생각이 드는구나. 하긴, 오 년이면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 그동안 너나 그 양반이나, 참 용케도 견뎌내는구나 싶었다.” 웅크린 몸 구석구석에서 식은땀이 배어났다. 한동안 말없이 이불을 덮어쓴 내 몸을 토닥이던 엄마가 이불을 걷어내고 나를 바로 눕혔다. “약 어디 있니. 하루 이틀 이런 것도 아닌데, 어디 약이 있을 거 아니냐.” 엄마는 비칠비칠 일어나 약을 찾아 먹고 다시 누운 내 배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만 하면 됐지 않니. 그게 다 뒤숭숭한 에미 팔자 같이 겪어내느라 얻은 병이라는 걸 모르는 건 아니다만, 너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그만 마음을 풀었으면 좋겠구나. 도대체 내가 어떤 음식을 만들어야 네가 먹어줄는지……, 정말이지 모르겠다. 네게 필요한 건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덥혀 줄 음식이야. 이런 약 따위로 나아질 일이 아니라는 걸 너도 알잖니.” 엄마는 전에 없이 많은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참을 수 없이 뒤틀리던 속도 차츰 가라앉았다. 배를 쓸어주던 엄마가 이불 속을 더듬어 내 손을 찾아 쥐었다. 목구멍이 따끔댔다. 딱히 뭐라 단정지을 수 없이 복잡한 감정이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식탁을 바꿔야 해요. 지금 건 너무 커……. 너무 커서,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엄마가 도무지 보이질 않아요. 그 커다란 식탁 앞에 앉아 있으면 온통 엄마의 음식들만 보여.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선 누구도 엄말 제대로 볼 수 없었을 거예요.” 엄마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 후 엄마는 땀으로 끈적이는 내 얼굴을 한번 더 쓸어준 뒤 방을 나갔다. 나는 방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뒤에야 감고 있던 눈을 떴다. 사위는 여전히 짙은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그러나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담담한 시선으로 그림자만 가득한 방안을 휘둘러보았다. 빛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사람이 있는 곳에 그림자마저 묻어버릴 만큼 완벽한 어둠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디에나 존재하는 빛은 끊임없이 사물을 굴절시키고 왜곡한다. 속고 있으면서도 그걸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굴절된 삶 속에서 진짜를 가려내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는 피곤이 밀려왔다. 다시 잠들기까지도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몸으로 익힌 기억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나 사소하기만 한 몸의 기억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것인가. 그는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묘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낯설었다. 망설이듯 주춤대는 손길이나 어딘지 불편한 듯한 신음을 내뱉는 목소리까지. 하지만 어쩌면 그는 줄곧 같은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가슴을 그러쥔 아귀의 힘은 너무 강했다. 삽입 전의 행위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태도는 지루했다. 서너 차례 타이밍을 놓치면서부터는 눈에 띄게 조급해하기까지 했다. 삽입 이후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치골이 부딪힐 때마다 통증이 느껴졌고 유난히 건조하고 까슬까슬한 그의 피부가 불편했다. 모든 것이 부자연스러웠다. 나는 연속되는 천장의 무늬와 삐걱대는 매트리스의 소음에 몰입했다. 마치 커다란 식탁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런 내 기분 따위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그는 순식간에 절정을 향해 치달았다. 마지막 타이밍만은 놓치지 않고 정확히 페니스를 빼낸 그는 내 아랫배 위에 사정했다. 끈적끈적한 정액을 뒤집어 쓴 아랫배가 환한 형광등 아래서 번들대고 있었다. 나는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을 참기 위해 앙다문 입술을 파고드는 그를 힘껏 밀쳐냈다. 쫓기듯 욕실로 들어간 그는 비누의 향이 너무 강하다며 한참동안 투덜댔고, 결국 비누를 사용하지 않은 채 샤워를 마쳤다. 어쩌면 그는 뭔가 다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조금도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함께 있는 내내 우리는 아귀가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삐걱댔다. 지난 밤, 샤워를 마친 그는 아무렇게나 팽개쳐져 있는 셔츠에 물을 뿌리고 단정하게 걸어놓은 뒤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천연덕스레 잠들어 있는 그를 한참동안 내려다보다 조용히 일어나 옷을 입었다. 방을 나오기 전, 화장대 위에 놓인 타이핀과 커프스버튼을 가져다 변기 속에 빠뜨리고 물을 내렸다. 그의 동창생 아내의 세심한 배려를 단숨에 삼켜버린 변기는 크릉크릉 거친 숨을 토해냈다. 아마도 그는 사라진 타이핀과 커프스버튼 때문에 한동안 몹시 곤란해질 것이다. 그리고 다시는 내게 연락을 해오지 않을 것이다. 간혹 단순한 몸의 문제가 마음을 건드리기도 하므로 어쩌면 나는 그런 그가 조금쯤은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미 그가 진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오래 전의 내게 그러한 사실은 분명히 상처가 되기도 했지만, 이미 흉터로 남은 일은 더 이상 상처가 될 수 없다. 잊혀졌던 흉터를 확인하는 일이 괴롭긴 하겠지만 역시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엄마의 짐작대로 세 번째 저기요는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네 번째 남자의 귀가를 포기한 엄마는 다시 식당으로 돌아갔다. 썩 달가운 일은 아니었지만 굳이 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게다가 엄마는 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엄마는 더 이상 음식을 만들거나 권하지 않았다. 그것은 식당에서조차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과거와는 달리 최종적으로 음식의 간을 보는 일 외엔 주방 일에 일체 참견하지 않았다. 하지만 달라진 엄마가 네 번째 저기요를 찾는 일까지 그만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케이크 전문점에서 주문한 케이크 모형은 총 열세 가지이다. 생과일주스를 비롯한 음료까지 합하면 모두 스물다섯 가지나 된다. 나는 벌써 한 시간 가까이 음료를 만들 젤라틴에 첨가할 색을 결정하기 위해 색상표를 들여다보고 있다. 테스트용 물감을 풀어 샘플을 여러 개 만들어봤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색을 찾아내지 못했다. 가스레인지 위에선 중탕한 젤라틴이 끓고 있었다. 감색 수채물감에 흰색을 약간 섞어 젤라틴과 혼합했다. 역시 너무 들떠 있었다. 견본의 색과 별 차이는 없어 보였지만 여름 음료의 색감이 힘없이 들떠 있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심해(深海)와도 같은 색을 만들고 싶다. 한여름, 뜨겁게 달궈졌던 머리꼭지까지 서늘해질 만큼 강한 색감이어야만 한다. 완성된 샘플들을 모두 버리고 또다시 불려둔 젤라틴을 중탕했다. 건조 테이블 위에선 케이크의 틀이 천천히 굳고 있었다. 엄마는 끝내 커다란 식탁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설사 엄마가 다섯 번째 남자를 만나, 그를 다시 커다란 식탁 앞에 앉힌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다지 이상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고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끝내 엄마가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해도 그건 엄마 몫의 삶일 뿐이다. 누구나 그렇다. 어차피 그 모든 것들은 단순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처음부터 마음은 한 곳을 향해 있게 마련이고 그걸 흔들어놓을 만한 몸의 문제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 법이니까. 불필요한 갈등은 몸의 균형마저 깨뜨리고 말 뿐이다. 아침과 점심을 모두 거른 탓인지 비어 있던 속이 다시 저릿해졌다. 또다시 한 움큼의 약을 삼키며 엄마의 말을 돌이켜봤다. 엄마는 내게 필요한 것은 약이 아니라 차진 속을 데워줄 음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내 속을 데워 줄 수 있는 것은 혀를 홀리는 음식이 아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을 한꺼번에 얼려버릴 만큼 차가운 색감의 음료모형이다. 애초부터 나는 혀를 홀리고 배를 채워주는 음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먹을 수 있든 없든, 그런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지극히 사소한 몸의 문제에 지나지 않으므로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밖의 것들은 불필요한 갈등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진짜같아야한다진짜보다더……. 나를 지배하고 있는 주문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저릿하던 속이 가라앉고 포근한 열기가 차오르기 시작했다.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3국)] 흑의 기분 좋은 흐름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3국)] 흑의 기분 좋은 흐름

    제3보(37∼56) 흑37로 다가서고 백38로 막은 장면이다. 일견 기세의 충돌로 보인다. 흑은 자신의 진영에 쳐들어온 백돌들을 고분고분 살려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백은 반대로 공격해 볼 테면 공격해 보라는 태도이다.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당장 큰 전투가 벌어질 것만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곧잘 타협을 이루곤 하는 것이 바로 프로의 바둑이다. 흑39부터 41까지는 거의 절대수나 다름없는 외길수순. 백42 때가 고민의 순간이다.(참고도1) 백1로 이을 때 흑이 2로 지켜만 준다면 백3으로 두는 자세가 좋다. 그런데 흑2로의 곳에 한칸 뛰어서 공격해오면 백돌이 무거운 느낌이다. 실전 백42로 지키면 중앙으로 한발 더 도망갈 수는 있지만 흑에게 45,47의 활용당하는 것을 감수해야 한다. 흑도 기분 좋은 활용을 했으므로 더 이상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고 흑49로 지켜둔다. 백50,52로 지킬 때 흑51,53으로 느긋하게 몰아도 충분하다는 계산이기도 한다. 백54로 도망갈 때 흑55는 기세의 한수.(참고도2) 흑1,3이 보통의 진행으로 사실 이 정도로도 흑은 충분했다. 실전은 백이 56으로 반발해서 바둑이 조금 복잡해졌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정석 선택의 중요성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정석 선택의 중요성

    제2보 (16∼38) 백16의 걸침부터 진행되는 우상귀의 정석을 살펴 보자.32까지 거의 외길수순이나 다름 없는 이 진행은 부분적으로는 백의 이득이다. 백의 실리가 큰 데다 상변이 단단하게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변에 흑의 기착점이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보면 흑도 불만 없는 진행이다. 정석 수순 중 백24로는 (참고도1) 1과 같이 귀쪽으로 밀고 들어가는 수도 가능하다. 그러면 백3,5로 귀의 실리를 큼지막하게 차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흑2부터 6까지의 흑 세력이 우변 흑 진영과 더욱 호응하기 때문에 백도 이 정석은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이처럼 정석도 주변 배석에 따라서 선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아마추어들은 정석을 그냥 외울 것이 아니라 주변 배석을 고려한 정석 선택을 해야만 한다. 흑33은 우하귀에 백이 걸쳐올 때 좀더 강하게 압박하겠다는 뜻이다. 그렇더라도 백은 34로 걸치는 정도인데 흑35, 백36 때 흑37의 압박이 강력하다. 원래 흑37은 (참고도2) 1로 받고 이하 11까지가 정석인데, 이 진행은 다음 백12로 가볍게 삭감하기만 해도 애써 구축한 우변 흑 진영이 전부 무너지게 된다. 따라서 흑37은 좀더 강하게 공격하겠다는 뜻인데, 백도 물러서지 않고 38로 막고 버텼다. 이곳의 공방전이 이 바둑에서 첫번째 전투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간단한 정석에서의 최근 이론

    [제17기 비씨카드배 신인왕전-본선 1회전] 간단한 정석에서의 최근 이론

    제1보(1∼15) 김효곤 4단은 1983년생, 권갑룡 6단의 문하생으로 1999년에 입단했다. 그에 대해 별로 알려진 바가 없어서 예선대진표를 봤더니 1회전은 부전승을 거뒀고,2회전에서는 박정환 초단에게 승리를 거둬서 본선에 진출했다. 박초단은 지난봄에 입단한 국내 최연소 기사로 지금 실력이 급상승 중인 한국바둑계의 미래 유망주이다. 일단 그를 꺾었다는 자체로 실력파라고 봐야 하겠다. 진동규 3단은 86년생으로, 허장회 9단의 문하생이며 2003년에 입단했다.2005년 한국바둑리그 본선에 진출하여 보해의 4장으로서 좋은 활약을 거뒀다. 일단 한국바둑리그는 국내 최대기전이기 때문에 본선에 진출하면 바둑팬들에게 얼굴 알리기가 가장 좋다. 다만 2년 연속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기 때문에 내년에는 재진입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선에서는 김성래 4단과 김대용 3단을 물리쳤다. 흑5의 높은 걸침부터 이어지는 정석은 아마추어들도 대부분 알고 있는 가장 쉬운 정석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프로들의 바둑에서는 최근 흑11과 같이 높게 두는 수가 등장하는 빈도가 높아졌다. 과거에는 좌하귀에 백돌이 있을 경우에는 대부분 가로 낮게 두는 것이 기본 정석으로 여겨졌었다. 작은 차이이지만 이런 데에서 프로들의 연구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흑11의 의도는 백14로 (참고도)와 같이 백이 손을 빼서 다른 곳에 두면 흑2로 미끄러져 들어간 뒤에 흑4로 압박하는 자세가 좋기 때문에 고안된 수이다. 즉 백이 손을 빼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백14로 지키면 흑15로 우변을 폭넓게 지킨다. 이것이 최근의 바둑이론이다. 유승엽 withbdk@naver.com
  • [20&30] 아날로그 삶, 여유를 찾다

    쉽게 떨쳐내지 못했던 ‘악마의 유혹’을 극복했을 때는 그만큼 성취감도 큰 법이다. 유혹을 꿋꿋하게 이겨낸 2030들은 어떤 방법으로 승자의 기쁨을 누렸을까. 회사원 조유진(31·여)씨는 지난해 내내 한 인터넷 사이트 미니홈피 꾸미기에 미쳐 있었다. 매일 찍은 사진을 올리고 사이버머니로 아이템을 사모으며 밤을 꼬박 새우기 일쑤였다. 쉬는 날에도 하루종일 집에서 컴퓨터와 씨름했고 잠이 모자라 회사 일에까지 지장이 생겼다. 결국 조씨는 올해 들어오면서 집에 있는 개인용 컴퓨터를 처분하는 극약처방을 내리고 대신 중고 비디오 플레이어를 구입했다. “인터넷 검색은 회사 컴퓨터를 이용하면 되죠. 지금은 비디오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며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등 아날로그적인 삶의 기쁨을 누리고 있답니다.” 회사원 김모(28)씨는 올해를 시작하며 마음에 새긴 목표가 ‘사생활 되찾기’였다. 어린 시절부터 거절을 못하고 사람을 워낙 좋아하는 성격이라 주위에는 친구가 들끓었다.‘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이 되다 보니 사생활은 즐길 여유가 없었다. 이 때문에 김씨는 올초 휴대전화를 없애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처음엔 혼자 고립된 것 같았고 전화기가 없는데도 진동이 느껴지는 듯한 착각에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 등 심각한 금단 현상을 느꼈죠. 하지만 석달 정도 지나자 어느덧 익숙해졌고 이제는 내 생활은 내가 결정할 수 있게 됐답니다.” 회사원 이송이(25·여)씨는 지난해까지 열렬한 드라마 마니아였다. 좋아하는 드라마는 몇십부가 됐든 파일 공유사이트를 통해 컴퓨터에 몽땅 다운로드해 놓고 12시간 연속으로 스토리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씨는 올초 회사에 취직하면서 드라마의 유혹을 떨쳐내야겠다고 다짐하게 됐다. 이씨는 이를 위해 일부러 회사 일을 집으로 가져와 자신을 혹사시키고 여동생(23)과 함께 온갖 맛집을 다 찾아다니는 등의 방법으로 새로운 취미를 개발했다. 처음엔 금단현상까지 나타나던 드라마의 유혹은 결국 두달쯤 지나자 서서히 이씨의 몸에서 독성이 빠져나갔다. 보험회사원 고동기(28)씨는 계획적인 행동 실천으로 목표를 달성한 사례다. 고씨는 지난해 초 1년 동안 돈을 모아 2200만원짜리 스포츠유틸리티차(SUV) 살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이를 위해 한달 월급 가운데 꼬박 100만원을 떼어내 통장에 모았다. 평소 기분을 내면서 술값내기를 좋아하던 ‘지름신’을 속으로 꾹꾹 눌러 삭이고 주말에 약속도 줄이는 금욕생활을 실천했다. 결국 지난해 말 고씨는 할부금 1000만원을 보태 고성능 SUV를 장만할 수 있었다. 건설회사에 다니는 이상규(32)씨는 매년 다이어트 계획을 세웠지만 번번이 실패해 왔다. 집 근처 자전거 도로를 이용하려고 자전거를 구입해 보기도 하고 등산을 해보기도 했지만 이씨는 ‘악마의 유혹’이 간단치 않았다. 이씨는 결국 올 초 6개월에 50만원이나 주는 회사 앞 피트니스센터 회원권을 구입했고 돈이 아까워 지금까지 꼬박 운동을 나가며 다이어트에 성공했다.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타이완에 강진 휴~ 比 한때 쓰나미 공포

    동남아시아 해안을 강타,24만명의 사망자를 낸 쓰나미 재해 2주년인 26일 또다시 타이완 남부 해안에서 강력한 지진으로 쓰나미가 발생했다 소멸돼 인접국 주민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타이완 중앙통신은 26일 저녁 8시26분(이하 현지시간) 타이완 섬 남쪽끝 핑둥(屛東)현 헝춘(恒春)시에서 남서쪽으로 23㎞ 떨어진 지점에서 규모 6.7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보도했다. 이 지진에 이어 8분만인 8시34분에는 규모 6.4의 여진이 발생했다고 타이완 중앙기상국 지진관측센터가 전했다. 미국 지진관측소는 첫번째 지진의 규모를 7.1, 두번째 지진은 7.0으로 각각 발표했다. 일본 기상청은 당초 이 지진으로 높이 1m의 쓰나미가 발생, 필리핀 북동부해안으로 향하고 있다고 전했으나 확인 결과 소멸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본 기상청 관계자는 “예상됐던 쓰나미는 현실화되지 않았다.”며 “위험은 지나갔다.”고 밝혔다. 필리핀 주재 한국대사관측도 “현지 방송에선 어떤 쓰나미 발생 소식도 전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지진은 타이완 전역에서 감지됐으며 남부 전자 및 정유 공장을 중심으로 일부 인명 및 재산피해가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타이완 현지방송은 지진강도가 가장 컸던 헝춘시에서 두채의 가옥이 붕괴돼 주민 6명이 매몰된 현장의 장면을 보여줬으며 일부 지역에서 도로단절과 화재, 가스누출, 통신두절 사태도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 일대에선 가구와 담이 무너지면서 주민 8명이 매몰됐으나 저녁 11시 현재 모두 어린이 2명을 포함한 4명이 구출된 상태다. 가오슝(高雄)시에서도 중여우(中油)공사 정유공장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전화가 불통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북부 타이베이에서도 건물이 흔들리는 등 진동이 감지됐다. 가오슝항 항무국은 “지진 발생시 항만 수역에 다소 비정상적으로 높은 파도가 일기는 했으나 선박이나 컨테이너 설비 등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날 지진은 홍콩에서도 미세하게 진동이 감지됐다. 홍콩 연합뉴스
  • 지구촌 지도자들의 2006년 말…말…말…

    지구촌 지도자들의 2006년 말…말…말…

    이번 송년 술자리에서 단연코 화제는 노무현 대통령이 격정적으로 쏟아낸 ‘말’이다.“노무현만 왜 그래?”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올해도 전 지구촌 지도자들이 ‘할 말은 한다.’는 신념으로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진한 텍사스 사투리와 잦은 ‘말실수’로 유명한 대통령이다. 구글에서 ‘부시(Bush)’,‘인용(quote)’이라는 검색어만 쳐도 그의 엉터리 어법을 가리킨 신조어인 ‘부시즘(Bushism)’ 목록과 ‘멍청한(dumb) 부시’라는 사이트가 줄줄이 따라 나온다. 올해의 부시 어록에 기록될 만한 레토릭(修辭·수사)은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간) 털어놓은 말. 부시 대통령은 피터 페이스 합참의장의 말을 인용,“(이라크 전쟁에서) 이기지 못하고 있다.”고 처음 시인했다. 불과 열흘 전인 8일에만 해도 그는 집요하게 묻는 출입기자들에게 “이라크 상황이 나쁘다. 이제 됐소?(It’s bad in Iraq.That help?)”라고 퉁명스러운 감정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7월 G-8 정상회담에선 영국 토니 블레어 총리를 ‘어이, 블레어(Yo,Blair)’로 불러 영국민의 분노를 샀다. 앞서 2월엔 총기 오발사고를 낸 딕 체니 부통령을 향해 “내 유일한 지지자를 쐈다.”고 농담해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 중 압권은 2005년 9월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늑장 대응으로 미국민의 비난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내뱉은 한마디. 당시 연방재난관리청장이던 마이클 브라운에게 “브라우니,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라는 천지를 분간못한 엉뚱한 칭찬을 했다. 이 말로 부시는 지지도가 팍 떨어지는 위기를 겪었다. ●취임연설 가장 긴 美대통령은 해리슨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말 많았던 대통령은 누구일까. 미 역대 대통령의 각종 기록을 공개한 ‘미 대통령 연구(www.presidency.ucsb.edu)’ 사이트에 따르면 제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의 취임 연설이 가장 길었다. 사용된 단어수는 무려 8500자. 다음은 27대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으로 5000단어가 넘었다. 미 대통령 대부분은 취임 연설에서 2000단어 안팎을 말했다. 레임덕 현상으로 상징되듯 부시 대통령도 집권 후반기를 맞아 많은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된 2001년 취임 연설 분량은 2000단어가 되지 않았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에 따르면 2002년 1월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 단어수는 3875자. 지난 1월 연두교서에는 5433단어가 쓰여 대폭 길어졌다. 또 두 시기 동안 주로 쓴 단어도 ‘아메리카, 시큐리티(안보), 테러, 굿(good)’ 등에서 ‘세계, 국민, 경제, 자유’ 등으로 변화가 왔다. ●아마디네자드·차베스 ‘독설´ 유명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은 ‘독설가’로 유명하다. 두 대통령 모두 올 한해 동안 부시 대통령과 ‘맞짱을 뜬´ 지도자라는 확고부동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지난 9월 미국의 홈그라운드인 뉴욕의 유엔총회 연설을 시작하며 “악마(부시 대통령)가 어제 여기에 다녀갔다. 아직도 유황 냄새가 진동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5월에는 “부시는 (그의) 목장에서 입이나 다물고 있어라.”라고 한 데 이어 이라크 전쟁 3주년을 맞은 3월엔 ‘겁쟁이, 얼간이, 술고래’라고 부시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도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부시 대통령을 ‘전 세계의 통치자’로 조롱했다. 안동환기자 sunstory@seoul.co.kr
  • [오늘의 눈] 창당의 추억/김상연 정치부 기자

    그해 겨울은 목이 따가웠고 코가 맹맹했고 머리가 띵했다.3년전 이맘때였다. 여의도의 어느 건물에 급하게 입주한 신생(新生) 열린우리당엔 새 건축내장재가 내뿜는 화공약품 냄새가 진동했다. 그 안에서 ‘새집 증후군’의 공세를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리고 여기에 ‘새정당 증후군’이 겹쳐지면서 고역은 절정에 달했다.‘원내정당화’니 뭐니 하는 각종 정치실험을 뒤쫓느라 심신은 혹사당했다. 그래도 그때 “힘들어서 못 해먹겠다.”는 말을 달고 살던 기자들을 그나마 버티게 해준 건 열린우리당의 ‘비전’이 던지는 일말의 기대감이었다. 그들이 내건 ‘지역정당 탈피’‘상향식 정당문화 구현’ 등의 구호는 언론이 지향해온 숙원과 맞닿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자는 지난 몇년간 다른 출입처를 거쳐 20일 열린우리당 출입기자로 복귀했다. 그런데 3년전 기억이 여전히 생생한 기자를 맞이한 것은,‘헌집 증후군’이었다. 당사는 폐업을 앞둔 회사처럼 썰렁했고, 당 안팎에서 들리는 뉴스는 온통 ‘신당’으로 난무했다. 창당의 주역들이 다시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신당론을 휘두르는 것을 놓고,‘창당 전문업자’니 ‘떴다방’이니 하는 비난을 보태고 싶지는 않다. 다만 기자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은 애당초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생아였단 말인가.’라고. 그것이 아니라면 ‘신당’을 말하기 전에 ‘결산보고서’라도 내놓는 게 순서가 아니냐고 말이다.‘취지는 옳았으나 실천력이 떨어져 결과가 안 좋았다.’든지, 아니면 ‘비전 자체가 옳지 않았다.’든지. 그것도 아니라면 ‘옛사랑은 지워지는 게 아니라, 극복되는 것이다.’라는 이별사라도…. 그것이 원내 제1당을 만들어준 지지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가 아니겠는가. 그리고 그해 겨울 새집증후군으로 고생했던 기자도 얼마간은 그 대답을 들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김상연 정치부 기자 carlos@seoul.co.kr
  •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 건강짱] 항암작용 뛰어난 ‘카레’

    [의사 한송이의 요리짱 건강짱] 항암작용 뛰어난 ‘카레’

    지금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교 급식의 혜택을 받고 있지만 전에는 도시락을 싸가지고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필자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도시락을 가지고 다녔는데, 이보다 어린 저학년들은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수업을 했다. 같은 학교에 다니던 동생이 오후반인 경우에는 엄마가 동생 편에 정성스럽게 만든 따끈따끈한 도시락을 들려 보내주시곤 했는데, 그 중 제일 좋아하던 메뉴 중의 하나가 ‘카레’였다. 요즘에 볼 수 있는 좀 더 정통적인 인도음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훨씬 전이니, 감자와 당근, 양파를 깍둑 썰기해서 넣고 볶다가 당시 유명했던 모카레가루를 물에 풀어 끓인 우리나라 식의 카레였다. 그 독특한 향기 때문에 카레를 도시락으로 싸온 날은 온 교실이 맛있는 냄새로 진동했었고, 아이들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내 도시락을 보며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가끔 집에서 카레를 만들 때마다 그 때의 향수가 카레냄새에 섞여 진하게 떠오르곤 한다. ‘카레(커리)’라는 말은 본래 국물 또는 반찬이라는 뜻의 인도 말에서 유래했다. 카레는 여러 가지의 향신료를 섞어서 맛을 낸 조합향신료이고, 그 재료의 배합 방법과 맛은 우리나라의 ‘장맛’처럼 지방마다, 또 집집마다 다르다고 한다. 흔히 ‘카레’하면 노란색을 떠올리는데 이는 주성분인 강황(터메릭)이라는 성분 때문이다. 울금이라고도 불리는 강황은 인도가 원산지인 생강과 식물이다. 원료중 빛깔을 주로 내는 것에 울금(鬱金)·사프란·진피(陳皮) 등이 있고, 매운 맛을 내는 것에 후추·고추·생강·겨자가 있으며, 향미를 내는 것에 마근(馬芹)·회향·정향·육계·계피·너트메그·코리앤더(coriander:미나리과의 고수) 등이 있다. 카레의 효능은 요즘 더욱 새롭게 각광받고 있는데, 강황 속에 함유된 커큐민이 항암작용이 뛰어나고, 치매를 예방하며,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다고 속속 알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커큐민은 발열작용을 일으켜 에너지소비를 촉진하므로 비만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소금을 넣지 않아도 향신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맛과 향으로 입맛을 돋우기 때문에 고혈압이나 신장병 환자에게도 좋은 식품이다. 카레는 그 안에 들어가는 고기류, 채소류, 해물류 등의 부재료에 따라 더욱 다양한 변형이 가능하며, 기호에 따라 순한 맛부터 매운 맛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서현역 근처에 위치한 ‘탈리’는 한결 같은 맛과 서비스, 가격으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오는 인도음식점이다. 잦은 동남아 출장으로 인도음식의 매력에 푹 빠진 사장이 원래 하던 일을 그만두고, 율동공원 근처에 인도음식점을 시작한 것은 2001년. 최근에 서현역으로 위치를 옮겼다. 주방과 홀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두 인도출신인데,2개의 전통적인 탄두리(우리나라의 화덕과 비슷한 것)에 숯불을 피우고 고기와 난(인도식 빵, 카레에 곁들인다)을 굽는다. 감자에 카레 양념을 해서 만두처럼 튀겨낸 ‘사모사’나 케밥은 전채요리로 입맛을 돋우기에 충분하다. 커리는 11가지가 있는데, 인도에서 직접 공수한 향신료들을 베이스로 여러 가지 부재료에 따라 종류가 달라진다. 향신료가 많이 들어간 진한 카레 향의 ‘치킨 마살라’나 수제치즈와 시금치가 들어간 ‘팔락 파니르’, 양고기가 들어간 ‘머튼 마살라’등이 카레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추천할 만한 메뉴이다. 이 곳은 북인도음식을 표방하는데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카레에 곁들이는 빵은 우유와 계란으로 반죽한 ‘난’, 여기에 마늘을 더한 ‘갈릭난’, 버터가 들어간 ‘파로타’와 통밀로 반죽한 ‘로티’ 등이 있어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다. 식사 후엔 인도전통 음료인 라씨나 차이(밀크티)를 마셔보자. 다양한 요리를 고루 맛볼 수 있는 정식이 인기인데 평일 점심 정식은 1만 1000원, 주말 및 저녁 정식은 1만 6000원이다. 전화 031-707-3192. 여성전문병원 ‘한송이 W클리닉´ 원장
  • 오염 지하수 1753곳 수질검사 조작 학교등 1400곳 ‘먹는물’로

    오염 지하수 1753곳 수질검사 조작 학교등 1400곳 ‘먹는물’로

    정부 공인 14개 수질검사기관이 1753곳의 지하수 수질검사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로 인해 전국 어린이집 19곳, 학교 168곳, 마을 286곳 등 1400여곳에서 오염된 지하수가 ‘먹는 물’로 공급됐다. 지난 6월 수도권에서 집단 식중독을 일으켰던 69개 중·고교의 야채류도 이들이 조작한 오염된 지하수로 세척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4단독 김진동 판사는 20일 지하수 수질검사 결과를 조작한 혐의(위계공무집행방해)로 구속기소된 수질검사기관 Y연구원 대표 이모(54)씨와 M연구원 대표 도모씨에 대한 선고공판에서 징역 10월과 징역 1년을 각각 선고했다. 또 같은 혐의로 기소된 검사기관 대표 박모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20시간을, 지하수 시료채취 현장에 입회해 직접 시료를 채취·봉인하지 않고 지하수 개발업자들에게 봉인지만 작성해준 혐의(허위공문서 작성)로 기소된 공무원 박모(45)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이들을 기소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김종로)에 따르면 이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올 10월까지 지하수 개발업자의 부탁을 받고 질산성 질소 함유량을 기준치 이하로 조작한 허위 성적서를 발급해 업체들이 지자체로부터 지하수 준공 확인을 받도록 해줬다. 주로 시료 자체를 조작하거나 수질 검사도 하지 않은 채 다른 지하수의 시험 결과를 그대로 시험성적서에 입력하는 방법으로 조작됐다고 검찰은 밝혔다. 음용수 질산성 질소 기준치는 10ppm인데 일부 음용수에서는 기준치를 최고 17배 초과했다. 질산성 질소는 사람이나 동물의 분변이 유입되면 나타날 수 있는 것으로, 장기간 다량 섭취할 경우 유아의 피부색이 푸른색으로 변하는 청색증과 성장 발육 장애·빈혈 등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다. 공무원 박씨 등은 지하수 시료 채취 현장에 입회해 직접 시료를 채취ㆍ봉인해야 하는데도 이 과정을 생략하고 업자들에게 봉인지만 작성해 줬다. 국립환경과학원 직원은 검사기관에 대한 지도감독을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1800만원을 받았다. 국립환경과학원에서 지정한 민간 수질검사기관들은 지하수 업체들로부터 받는 검사료(수수료 건당 25만∼28만원)로 수익을 올리기 때문에 영업사원들을 동원해 경쟁적으로 ‘검사 수주활동’을 벌였다. 검찰은 그러나 급식업체 CJ푸드시스템의 경우, 오염된 식재료를 사용했다는 추정은 가능하지만 고의성이 나타나지 않고 식중독 사고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 노로바이러스의 감염 경로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않았다. 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성남에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수도권 최대의 재래민속시장인 모란시장 인근에 아름다운 간판거리가 조성된다. 성남시는 모란역세권 재래시장 주변의 낙후된 거리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성남대로 1.2㎞ 구간(수진동 태평역사거리∼성남동 모란시장사거리)을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 시범사업구간으로 정하고 12억원을 들여 새간판 디자인 개발 작업을 하고 있다고 18일 밝혔다. 이 거리는 다양한 업종이 밀집한 성남의 대표적인 상권이지만 노후·신축건물 모두가 특색없는 간판이 난립해 도시미관을 해쳐 왔다. 이에 따라 시는 지난 6월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최근 건물 68개동 360곳에 대한 새로운 간판(옥외광고물) 디자인 개발을 마무리했다. 업무용 상가위주의 태평역∼모란역 0.7㎞ 구간은 푸른색(블루 스트리트), 젊은층이 몰리는 모란역∼모란시장 0.5㎞ 구간은 노란색(오렌지 스트리트) 디자인이다. 다양성이 부족한 서울 청계천의 사례를 거울삼아 간판 크기와 수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않는 범위에서 간판 디자인 시안을 놓고 업주측과 지속적인 협의를 벌이고 있다. 창문을 이용한 간판이나 세로형 간판은 금지다. 돌출형 간판은 4층 이상만 허용해 현재 234개에서 71개가 줄어든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정부 “금융권 외화차입 관리”

    정부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쏠림현상’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판단, 금융기관의 외화차입과 수출기업의 선물환 매도 등에 대해 미시적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 대응을 취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은 지난달 국민·우리·신한·씨티·기업·HSBC서울지점 등 외화차입이 많은 6개 은행에 공동검사를 벌인 결과, 중장기 외화자산과 관련한 건전성 비율이 나빠져 정밀검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13일 서울 은행회관에서 국가경영전략연구원이 주최한 포럼에 참석,“환율이 경제의 펀더멘털을 벗어나서는 곤란하다는 차원에서 환율의 하락속도와 엔화와의 문제를 종합적으로 감안, 미시적인 정책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진 차관은 “원화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등의 경쟁국 통화에 비해 과도하게 절상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올해 달러화 대비 싱가포르 달러화는 8%, 원화는 9.9% 절상됐는데 엔화는 고작 2.3% 오르는데 그쳤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환율 안정을 위해 외화의 ‘아웃 플로(유출)’ 정책을 폈지만 최근에는 ‘인 플로(유입)’가 많았다.”면서 “이는 금융기관들이 엔화 등 외화를 차입해 단기간 자본수지에 부담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따라서 진 차관은 거시적인 차원에서 전통적인 대응(시장개입)은 계속하면서 외환 수급에 영향을 미치는 각 부문의 미시적 관리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문제가 일어난 뒤 사후에 조치를 취하는 게 아니라 이상 조짐이 보일 때마다 금융기관에 상황을 알리겠다고 덧붙였다.한편 한은과 금융감독원이 국민 등 6개 은행을 상대로 건전성 규제와 관련한 공동검사를 벌인 결과 1년 이상 중장기 외화대출 대비 중장기 외화조달의 비율은 지난 6월 말 103%에서 다소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이 비율은 80% 이상을 유지해야 외화자산 운용의 수급불일치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진동수 재경부 2차관 “무역구제 진전 있어야 FTA 순항”

    진동수 재정경제부 제2차관은 1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관련,“무역구제 분야에서 우리측 요구사항에 대한 진전이 있어야만 자동차와 의약품 등 미국측 관심사항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 차관은 이날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한·미 FTA협상 전망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진 차관은 또 내년 원·달러 환율에 대해 “그동안 원화 환율 하락이 과도했고 내년도 경상수지가 균형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 등을 고려할 때 올해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 토지대장 ‘일제잔재’ 털어냈다

    토지대장 ‘일제잔재’ 털어냈다

    서울 광진구는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진 소축적(3000분의1)의 임야대장을 대축적(1200분의1)의 지적대장으로 통합하는 토지등록 변경사업을 최근 완료했다. 해당 토지를 소유한 주민들은 서류상에서 땅이 줄어들거나, 늘어도 과세부담이 커진다며 반대했지만 자치구가 의지를 가지고 잘못된 행정을 바로잡은 것이다. ●일제가 만든 엉터리 토지대장 광진구는 소축적을 사용한 임야대장을 없애고 대축적으로 작성된 지적대장으로 통합하는 등록작업을 3년 만에 모두 끝냈다. 대상은 임야대장에 등록된 347필지(239만 6277㎡)이다. 이를 토대로 지적도에 대한 전산화 작업을 시작함으로써 앞으로 민원인들은 지적도를 발부받을 때 복사본 대신에 인쇄된 원본을 받게 된다. 일제는 1910년부터 16년 동안 우리나라 토지수탈을 목적으로, 세금을 받을 수 있는 주택과 농지는 지적대장에 등록하고 조세가치가 없는 임야 등은 임야대장이라고 이름을 붙인 대장에 등록했다. 지적대장의 지도는 보다 정밀한 축적을 사용했고, 임야대장의 지도는 경계선도 불분명한 축적을 사용했다. 지적도 한쪽 구석에 선을 대충 그은 지도가 덧붙여 있는 꼴이다. 문제는 행정기관이 도로를 내거나 소유주가 토지를 매매할 때 특정한 지역의 축적이 서로 달라 차질을 빚거나 분쟁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광진구는 2004년부터 9662만원을 들여 대한지적공사 전문가들과 함께 정확한 면적을 측량했다. 토지측량의 기준이 되는 측량기준점 185개도 땅에 묻었다. ●힘겨웠던 주민 설득 작업 명분과 취지가 훌륭해도 일부 주민들은 작업을 반대했다. 사업 첫 해에는 능동, 모진동 22필지(1만 7355㎡)에 대해 정리작업을 했다. 실제 땅 면적이 39㎡ 늘었다. 지난 해에도 구의동, 자양동, 광장동의 땅이 6312㎡ 늘었다. 그러나 올해 중곡동 용마산 등에서 작업할 때에는 사유지 6618㎡를 포함해 7504㎡가 줄었다. 광진구청 직원들이 토지 소유주들을 찾아가 지적대장 정리에 대해 동의를 구했으나, 땅이 줄어든 소유주들은 “괜한 짓을 한다.”며 반발했다. 땅이 늘어난 소유주들도 “재산세만 더 내게 생겼다.”면서 등을 돌리기 일쑤였다.“측량을 믿을 수 없다.”는 말도 쏟아졌지만, 결국은 납득을 했다. 광진구청 지적과 신강희씨는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다 나중엔 애원을 했다.”면서 “나이든 소유주라면 젊은 자녀나 며느리를 통해 이해를 구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어려움 때문에 정부도 1996년에 토지 재조사 사업을 하다 중단한 상태다. 광진구의 모범 사례는 최근 행정자치부가 주관한 ‘2006행정혁신 우수사례 발표회’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일제가 만든 임야대장은 구청 창고로 옮겨졌다. 김경운기자 kkwoon@seoul.co.kr
  • FTA·통상 마찰 불씨 되나

    지난 10월에 이어 11월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에서도 뼛조각이 검출됐다. 검역당국은 수입 쇠고기 전량에 불합격 조치를 내리고 반송하거나 폐기하기로 했다. 미국측은 강하게 반발, 한·미 FTA 협상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통상마찰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농림부 국립수의과학검역원은 1일 “지난달 23일 미 네브래스카주에서 수입된 쇠고기 3.2t에서 뼛조각 3개가 검출됐다.”고 말했다. 검역원은 X-선 이물질 검출기를 이용한 전수검사 결과, 꽃등심살 2개 박스에서 가로·세로·두께가 13㎜·6㎜·2㎜ 등인 손톱 크기의 뼛조각들이 나왔다고 밝혔다. 강문일 검역원장은 “쇠고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묻어 나온 것으로 추정된다.”면서 “뼛조각이 광우병을 일으키는 특정위험물질(SRM)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0월30일에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8.9t 가운데 살치살 1박스에서도 콩알만한 크기의 뼛조각이 발견돼 모두 반송·폐기시키기로 예정돼 있다. 검역원은 ‘뼛조각이 없는 박스는 수입을 허용해 달라.’는 미국측 요구에 대해 “박스가 아닌 수입 건수 전체별로 검역 결정이 내려지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농림부는 지난 1월 한·미간에 맺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에 따라 이번에도 뼛조각이 검출된 쇠고기 전량을 반송·폐기하고 미국내 해당 작업장으로부터 수입을 중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간 쇠고기 수입위생조건은 “살코기에서 척수 신경절 등 광우병 위험 물질이 발견되면 수입을 전면 중단하고 일반 뼛조각 등 단순 이물질이 나오면 미국내 해당 작업장에만 수입 중단 조치를 취한다.”고 규정했다. 한편 이날 3차로 미 아이오와주에서 수입된 미국산 쇠고기 10t이 인천공항에 도착, 통관을 기다리고 있어 합격 여부가 주목된다. 다만 3차 수입분은 전량 미국에서 X-선으로 검사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X-선 검사를 마친 미국산 쇠고기는 수입단가가 50% 정도 올라 미국측 업계의 불만이 높은데다 국내 소비자들도 다른 나라 소비자들보다 비싸게 지급해야 하는 문제점이 있다. 때문에 미국은 뼛조각 검역을 완화해 줄 것을 우리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농림부와 검역원은 “수입위생조건에 대한 미국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아직 없었다.”면서 “국제기준에 따라 쌍무적으로 결정한 사안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한·미 FTA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농림부가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뼛조각에 대한 검역기준이 없는 상황에서 인체유해 여부를 따지지 않고 무조건 불합격 판정을 내리는 것은 자칫 비관세 장벽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했다. 앞서 진동수 재정경제부 2차관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검역이 한·미 FTA 협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국 상품에 대한 무역보복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백문일 이영표기자 mi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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