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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월호 신고 시각 훨씬 전부터 위험 징후

    최초 신고 시간으로 알려진 16일 오전 8시 55분 이전 ‘세월호’에 위험 징후가 나타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21일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와 세월호의 교신내용에 따르면 16일 오전 9시 7분쯤 교신이 닿았을 때 배는 이미 상당히 기운 상태여서 탈출도 어려울 정도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진교중 전 해난구조대(SSU) 대장은 “세월호가 항해한 항적과 교신에서 보고한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히 이전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면서 “선장하고 당직사관(3등 항해사)은 원인을 알고 있었겠지만 조치를 취하다가 안 되니까 신고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경기 안산 단원고 관계자는 학생들을 인솔하고 배에 탑승했던 강모 교감이 당일 오전 8시 20분쯤 학교로 전화해 “배가 기울고 있다. 상태가 많이 안 좋다”고 말한 것으로 전했다. 한 생존자는 “15일 밤 11시쯤 배가 15도 정도 기운 것을 느꼈다”면서 “당시 군산을 지나고 있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15일 세월호가 출항하기 전 청해진해운 측이 일부 화물기사들의 승선신고서 작성 요구를 무시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청해진해운 측은 사고 발생 직후 승선인원을 477명으로 밝혔다가 459명에서 462명, 475명, 그리고 476명으로 정정하는 등 혼선을 빚었지만,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까닭이다. 생존자 가족 A씨는 “아들과 함께 탑승했던 화물기사 동료 서모씨가 실종됐는데 탑승자 명단은 물론 구조자, 실종자 명단에서 찾을 수 없었다”면서 “알고 보니 명단에 ‘(A씨의 아들인) 구모씨 외 1명’이라고 기재돼 있었다”고 전했다. 출항 당일 구씨와 서씨가 표를 끊으면서 신분증을 내밀자 창구직원은 “필요없다. 빨리 승선하라”고 했고, 승선신고서도 구씨만 작성했다. 승선신고서는 3개월 동안 보관해야 한다.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선사 측의 관행이 실종자 명단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 셈이다. 진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흘려보낸 2시간 20분… 내부에 로프라도 연결했다면

    ⑥ 과도한 증축과 화물 적재 제대로 고정 안 한 화물… 급선회에 우당탕 쓰러져 세월호 침몰 사고를 막을 수 없었던 이유들 가운데 과도한 증축과 잘못된 화물 적재 방식을 빼놓을 수 없다. 세월호는 1157t의 화물을 실은 컨테이너 박스와 차량 180대를 실었으나 인천항 운항 관리실에는 이보다 적은 일반 화물 657t과 차량 150대가 실렸다는 가짜 보고서가 제출됐다. 적재량을 의도적으로 줄였다는 점에서 실제로 추가 적재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세월호는 또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 세월호에 타고 있던 한 트레일러 기사는 20t가량의 대형 철제 탱크가 실린 트레일러 3대가 여객의 급회전으로 쓰러졌다고 증언했다. 적재된 화물을 제대로 고정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세월호에는 장거리 외항 선박들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로딩 마스터’가 없었다. 로딩마스터는 화물을 선적할 때 좌우 균형을 맞춰 자동으로 위치를 정해주는 프로그램으로 무게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과도한 증축도 문제였다. 1994년 일본에서 5997t으로 진수된 세월호는 2012년 국내로 들어오면서 5층을 증축하고 239t 분량의 객실을 추가했다. 수직 증축은 선체가 흔들리다가 원 상태로 돌아오는 ‘오뚝이’와 같은 회복력을 떨어지게 만든다. ⑦ 무심한 해상 날씨 사고 다음날 거센 비·바람… 구조대 수색 작업 걸림돌 세월호가 출항한 지난 15~16일 인천에서 제주로 향하는 운항 루트에 별다른 기상악화는 없었다. 사고 당일인 16일 오전 전남 진도 앞바다 사고 해역인 병풍도 날씨 역시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사고 다음 날인 17일부터 비바람이 거세지면서 발생했다. 흐린 날씨 탓에 탁한 시야 등은 구조대의 수색작업을 방해했다. 게다가 정부가 민·관·군의 지휘체계를 일원화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구조작업은 더욱 난항을 겪었다. 거센 조류도 한몫했다. 사고가 발생한 시점은 물살이 세고 조석간만의 차가 큰 시기인 ‘대조기’(4월 15~18일)였다. 이 시기에 사고 해역인 맹골수도의 최대 유속은 시간당 8㎞ 이상이다. 맹골수도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물살이 거센 곳이기도 하다. 조류가 약한 ‘정조’(밀물과 썰물이 교차해 조류가 약해지는 시간대)는 하루 네 번. 구조 작업을 위해 잠수요원들이 정조 때에 맞춰 투입됐지만, 펄이 많은 탓에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 구조활동이 한창 이뤄졌어야 할 17일 오전 10시 사고 해역의 바람은 초속 8.9m로 나무가 흔들리는 정도였다. 수온 역시 12도 안팎으로 가만히 있어도 통증을 느낄 수 있어 물에 빠진 승객들의 저체온증이 염려됐다. 낮은 수온은 수색작업을 하는 구조대에도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 ⑧ 잘못된 첫 신고 제주 VTS로 사고 신고… ‘골든타임 11분’ 허비해 사고가 발생한 16일 세월호의 첫 신고는 80㎞ 떨어진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로 접수됐다. 세월호 사고 지점은 가까운 전남 진도 VTS로 신고해 조치를 받아야 했지만 승무원의 안이한 대응으로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11분을 허비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에 따르면 세월호는 사고가 발생하자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 교신채널 ‘12번’을 통해 제주 VTS에 신고를 했다. 세월호는 진도 지역을 지날 때 교신 채널을 ‘67번’인 진도 VTS로 맞춰야 했지만 미리 목적지인 제주 VTS로 맞춰 놓고 운항한 것이다. 사고가 나자 교신을 맡은 선임급 항해사가 채널을 변경하지 않아 신고가 제주 VTS로 가게 됐다. 결국 11분이 지난 오전 9시 6분 진도 VTS는 세월호의 침몰 사실을 확인하고 교신을 했다. 또한 구조 신고 당시 일반주파수를 사용하지 않은 점도 문제였다. 해상 통신은 일방 통신으로 단거리 근접 통신망(VHF)을 사용하는데 일반주파수인 ‘16번’을 제외하면 다른 선박들은 교신 내용을 들을 수 없다. 합수부 한 관계자는 “구조 교신을 할 때는 주변 선박 등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일반주파수 16번을 사용해야 하는데 세월호는 이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⑨ 때 놓친 탈출명령 침몰 직전에도 “선내 대기”… 승객 탈출 기회 날려버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은 침몰 위기 상황에서 승객들을 내버려둔 채 ‘나홀로’ 탈출을 했다. 사고 직후 세월호 주변에는 민간 어선들이 대거 모여 있는 상태여서 선장과 승무원이 도망가지 않고 제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큰 피해는 막을 수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해경에 따르면 지난 16일 오전 8시 58분 전남 목포해양경찰청 상황실에 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17㎞ 해상에서 세월호가 침몰하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돼 주변에 있던 민간 어선 수십 척에 무전으로 구조활동을 요청했다. 민간 어선 40여척과 해경 경비정, 헬기 등이 세월호 주변에서 구조활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호가 이미 심하게 기울어 침몰하기 직전인 상황이었는데도 여객선 주변 해상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뒤 한참이 지난 오전 10시 15분까지도 선내방송을 통해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말 외에 별도의 대피 명령이 없었다. 세월호는 신고가 접수된 지 2시간 20여분 만인 오전 11시 20분 뒤집힌 채 침몰했다. 선장과 승무원이 탈출한 오전 9시 37분에 승객들에게 탈출 명령만 내렸더라면 많은 사람들이 구조됐을 것이라는 주장이 안타까움을 더한다. ⑩우왕좌왕 초동 대처 정부 어리바리 현장 지휘… 선체 내부인원 구조 못해 세월호 침몰 참사는 승객 구호조치를 하지 않고 배를 탈출한 선장과 승무원들의 책임이 가장 크지만 구조 활동에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인 정부의 초동 대처도 문제로 지적된다. 선박 침몰 사고는 승객을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가장 중요한데 신속한 초기 구조활동이 미흡했다는 것이다. 재난 전문가들은 해난 사고에 능숙한 전문가가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지휘했더라면 인명 피해를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에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해경 구조선과 선박, 헬기 등이 많았지만 선체 외부 인원의 구조활동에 급급해 선체 내부에 있는 인원에 대한 구조 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선체가 급격히 기울어지기 전에 선체 내부에 진입해 적극적인 구조활동을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여객선 침몰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장비와 인원도 부족했고, 세월호가 침몰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아울러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 전에 여객선 곳곳에 긴 로프를 연결해 놓았다면 침몰한 뒤 구조와 수색도 좀 더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사고가 발생하고 침몰하기까지 2시간 20분 동안의 시간을 밀도 있게 활용하지 못해 더 많은 인명을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누가 봐도 침몰 상황… 뛰어내리면 얼마든지 구조 가능했다”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당시 전남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교신을 받고 구조 작업을 위해 가장 먼저 여객선에 접근한 배 두 척이 있었다. 2700t급 연안유조선인 두라에이스호(두라호)와 1500t급 유조선 드라곤에이스11호(드라곤호)다. 이들은 세월호 침몰 당시 모든 교신 내역을 청취했고 침몰 전 과정을 지켜봤다. 두라호 선장 문예식(60)씨와 드라곤호 선장 현완수(57)씨는 21일 서울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세월호는 누가 봐도 회복 불능 상태였고 선장이 퇴선(배를 버리고 바다로 뛰어내리는 등 탈출하는 것) 명령만 했어도 승객 대부분이 살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두 선장의 증언을 토대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두라에이스, 진도 연안 VTS입니다. 세월호 육안 확인됩니까.” 16일 오전 9시 6분, 진도 인근 해역을 지나 울산으로 가던 두라호에 긴급 메시지가 전달됐다. 진도 VTS에서 온 교신이었다. 두라호의 우측 전방 2.1마일(3.4㎞)에 400여명이 탄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교신을 접한 두라호는 즉시 속도를 높였다. 10분여 만에 세월호 옆에 접근했다. 문 선장은 “교신을 듣고 우현(배 오른편)을 보니 멀리 침몰하는 배가 보였다”면서 “오전 8시에서 8시 30분 사이 시속 20노트(약 37㎞) 정도로 우리를 앞질러간 배였다”고 회상했다. 문 선장은 사고해역에서 주춤하던 세월호가 다시 두라호와 맞닥뜨릴 수 있다고 판단해 레이더를 주시하고 있던 참이었다. 오전 9시 15분, 드라곤호도 VTS에 구조를 지원하겠다고 말한 뒤 세월호에 전속력으로 접근했다. 오전 9시 21~22분, 세월호 왼편에 다가선 두라호는 곧장 구조활동을 하려 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호 선장이 당연히 퇴선 조치를 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선박 주변에는 어떤 탈출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미 배는 5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었다. 현 선장은 “경험 있는 선장이라면 배가 30도만 기울어도 복원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론상 다 나와 있는 얘기”라면서 “퇴선 명령을 당연히 내렸어야 하는데 선장이 머뭇거린 게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문 선장과 현 선장은 모두 “9시 20분이 넘은 시점까지 배의 좌측으로 뛰어내려 얼마든 탈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오전 9시 14분 교신에서 VTS가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고 묻자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고 말했다. VTS 측도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선장이 알아서 판단하라”며 재촉만 했다. 오전 9시 27~28분, 해양경찰청의 구조 헬기가 세월호 상공에 도착했다. 오전 9시 33분 드라곤호가 접근했고 목포해경 진도파출소의 무전을 받은 인근의 소형민간어선 40여척도 세월호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이때까지 바다로 탈출한 승객이 없었던 까닭에 작은 배들만 세월호 옆에 붙어 배 위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승객을 태웠다. 헬기를 통해서도 일부 탑승자들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이준석(69) 선장 등 세월호의 핵심 승무원들도 이때 배를 빠져나갔다. 두라호는 9시 35분 진도 연안 VTS로부터 “구명정, 라이프링(구명튜브) 등을 전부 투하해 세월호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탈출자가 없었다. 문 선장은 “당시 모여든 어선 등이 수십 척은 보였다”면서 “배, 헬기 등이 계속 모여드는 상황이어서 뛰어내리기만 하면 구조됐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사고 원인으로 ‘급선회’(항로를 급히 바꾸는 것)가 꼽히지만, 두 선장은 “급선회할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고 말했다. 문 선장은 “침몰 지점이 거친 조류로 유명한 맹골수도로 알려졌지만 사실 좁은 맹골수도를 빠져나온 탁 트인 해역”이라면서 “날씨도 좋았고 암초나 레이더에 잡힌 고깃배도 없었기 때문에 갑자기 항로를 틀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현 선장은 “조타수의 실수이거나 조타기 이상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경 구조정과 어선, 헬기 등이 부산하게 구조작업을 벌였지만 세월호는 승객 476명 중 170여명만이 구조된 상황에서 오전 11시 20분 침몰했다. 두라호 등 대형 선박은 소형선과의 충돌 우려 탓에 가장 빨리 접근했지만,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외곽으로 빠져 정오가 넘은 시간까지 비극을 지켜봐야만 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아사히 “세월호 인양,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

    지난 16일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인양이 세계 해난 역사상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20일 “세월호(6825t)의 길이는 146m로 50층짜리 건물이 옆으로 누워 있는 것과 같은 데다 배에 바닷물이 들어가 더 무거워져 있다. 여러 대의 크레인으로 선체를 들어 올리는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지면 배가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내용의 일본 해상 전문가들 견해를 전했다. 야마다 요시히코 도카이대학 교수는 “크레인으로 선체를 고정한 뒤 구멍을 내 내부를 조사하는 게 우선이다. 그후 배를 잘라서 인양할 지 그대로 인양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 적어도 한 달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 여객선의 인양이 얼마나 어려운 지는 2009년 11월 일본 미에현 앞바다에서 침몰한 아리아케(7910t)호의 인양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리아케호도 세월호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실려 있던 컨테이너 등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배가 복원력을 잃고 옆으로 쓰러져 침몰했다. 세월호와 달리 탈출이 재빠르게 이뤄져 승객 7명을 포함한 29명의 탑승자 전원이 헬기 등으로 무사히 구조됐다. 그러나 인양은 극도로 어려운 과정을 거쳐 이뤄졌다. 인양을 맡은 업체는 배를 4등분으로 잘라 인양하기로 결정하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2010년 3월 선수와 선체 앞부분이 5m의 강한 파도를 맞고 절단돼 깊이 20m 해저에 다시 가라앉았다. 이 과정에서 배의 화물과 기름이 유출돼 주변 어장에 피해를 입혔다. 결국 가라앉은 부분을 다시 50~100t짜리 덩어리로 잘라 인양하느라 결국 침몰한 지 1년이 넘은 이듬해 12월에야 인양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문제는 세월호의 인양 조건은 아리아케호보다 훨씬 나쁘다는 것이다. 인양의 편의성을 위해 배를 절단하면 시신이 훼손되거나 유실될 수 있어 배를 통째로 들어 올려야 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월호가 가라앉아 있는 곳은 유속이 빠르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맹골수도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진도VTS와 교신 내용] “구조되겠나” 말만 되풀이… 골든타임 놓쳤다

    [세월호 침몰 참사-진도VTS와 교신 내용] “구조되겠나” 말만 되풀이… 골든타임 놓쳤다

    세월호가 지난 16일 오전 침몰 당시 진도교통관제센터(VTS)의 탈출 권고를 무시한 채 승객을 탈출시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진도VTS와의 31분간 교신 과정에서 세월호에 “선장이 상황을 판단해 승객을 탈출시키라”는 지시가 내려졌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지시를 지킨 것은 선장과 일부 승무원들뿐이었다. 20일 검경합동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진도VTS가 세월호를 처음 호출한 것은 16일 오전 9시 6분. 제주VTS가 세월호의 신고를 받은 8시 55분 이후 약 11분이 지나서였다. 진도VTS는 세 차례나 다급하게 세월호를 호출했다. 9시 7분 세월호가 응답했다. 진도VTS가 “지금 침몰 중이냐”고 묻자 세월호는 “그렇다. 해경 빨리 좀 부탁드린다”고 답했다. 진도VTS는 둘라에이스와 드레곤에이스 등 인근의 다른 선박에 구조 협조를 부탁했다. 이어 9시 10분쯤 세월호에 상황을 묻자 세월호는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진도VTS가 9시 14분쯤 승객들의 탈출 가능 여부를 묻자 세월호는 “배가 많이 기울어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9시 17분쯤 진도VTS가 배 상태에 대해 묻자 세월호는 “지금 50도 이상 왼쪽으로 기울어져 좌우로 움직이지 않는 상황”이라면서 “선원들에게는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하라고 했는데 입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침수 상태를 묻는 질문에 세월호는 “확인이 되지 않는다. 브리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어 벽을 잡고 겨우 버티고 있다”고 답했다. 상황이 급박한 것을 느낀 진도VTS는 9시 23분쯤 “방송으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를 착용토록 하라”고 지시했지만 세월호는 “방송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답했다. 이어 진도VTS는 “최대한 나가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꺼운 옷을 입도록 조치하라. 라이프링(구명대)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라. 빨리”라고 긴박한 무전을 전했다. 하지만 세월호의 대답은 의외였다. 세월호는 “승객이 탈출하면 구조가 바로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중국 선박 잉샹호 등이 인근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9시 18분 진도VTS와의 교신에서 둘라에이스호는 “사람이 탈출을 안 하면 배를 나란히 붙이는 작업을 할 수 없다. 최대한 접근 선회하면서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9시 25분쯤 진도VTS는 최종 판단을 선장에게 넘겼다. 진도VTS는 “저희가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선장님이 최종 판단을 하셔서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을 내려라”고 했다. 하지만 세월호 측은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할 수 있느냐”고 재차 묻기만 했다. 이미 7분 전부터 국내외 선박 등이 바로 옆에서 구조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해하기 힘든 답변이다. 진도VTS는 다시 “경비정 10분 이내에, 헬기는 1분 후 도착한다”고 알렸다. 이에 세월호는 “승객이 너무 많아 헬기 가지고는 안 될 것 같다”고 답했다. 다른 선박들의 구조 동참 가능이 확인된 이후 9시 35분쯤 진도VTS는 “탑재된 구명벌과 구명정을 모두 투하시켜 바로 사람이 탈출하면 탈 수 있게 준비 바란다”고 요구했으나 이때부터 교신 감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교신은 9시 38분쯤이었다. 진도VTS가 상태를 묻자 세월호는 “확인 불가하고, 해경과 상선들이 50m 옆에 근접해 있다. 좌현으로 탈출할 사람만 탈출 중”이라고 밝혔다. 당시 선체는 이미 60도 이상 기운 상태였다. 이후 세월호와 진도VTS의 교신은 끊겼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은 세월호에서 뛰어내렸다. 결국 선장 이준석(69)씨는 자신의 판단에 따라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렸을 때 구조가 이뤄질지를 우려만 하다 오히려 피해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진도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온정의 손길] “작은 도움이나마…” 한마음 된 대한민국

    [세월호 침몰 참사-온정의 손길] “작은 도움이나마…” 한마음 된 대한민국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세월호 실종자 가족과 구조 인력을 돕기 위한 손길이 전국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20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전날까지 244개 단체 5032명이 봉사활동을 펼쳤다. 대한적십자사, 의용소방대, 바르게살기협의회, 대한조계종, 기독교연합회, 원불교 등 민간·종교 단체들이 실종자 가족이 모여 있는 전남 진도체육관 등에 잇따라 도착해 시신 운구, 급식, 환경 정화 등을 돕고 있다. 구조 작업이 펼쳐지고 있는 팽목항 현장 등에도 도시락, 빵, 생수, 밥차, 모포, 의약품 등 구호 물품이 속속 지원되고 있다. 이랜드, 현대삼호중공업, 롯데마트, 이마트, 신세계푸드, CJ푸드, 삼립식품, 농심, 홈플러스 등 기업들이 지원에 나선 것. 개인 봉사자들도 속속 현장에 도착하고 있으며 자원봉사센터로도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정부의 구조·구호활동을 돕는 재난긴급대응단도 사고 첫날인 16일 구성돼 활동 중이다. 긴급대응단에 속한 한국구조연합회 회원 64명은 사고 해역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며 세브란스 의료진은 현장 응급의료소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대 의대도 의료진 30여명을 급파했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국가적 재난 대응에 동참하고 실종자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 오게 됐다”면서 “조금이라도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대부분 중간고사 기간인 대학가에서도 온정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는 다음 달 예정된 봄축제를 취소하기로 했다. 학교 측도 적십자사와 협의해 글로벌사회봉사단 소속 학생 30명을 진도로 보낼 예정이다. 고려대·숙명여대·건국대·동국대·국민대·서울시립대·서울여대 등 각 대학 총학생회는 모금 운동을 벌이거나 희생 동문들을 위한 분향소를 설치하는 한편 애도글을 발표했다. 누리꾼들도 동참하고 있다. 모금 사이트인 ‘네이버 해피빈’과 ‘다음 희망해’ 등은 누리꾼을 상대로 모금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날 3시 현재 각각 5만 1000여명과 3만 6000여명의 누리꾼이 참여해 1억 5000여만원과 6800여만원을 모았다. ‘다음 희망해’에 모금을 제안한 ‘코코아쿠키’는 “여객선 침몰 소식을 듣고 어제오늘 마음이 참 아팠다. 현장 구호와 생존자 치료를 위해 마음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승객 탈출을 돕다가 숨진 세월호 승무원 박지영씨가 모교인 수원과학대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는다. 2011년 이 학교 산업경영학과에 입학한 박씨는 이듬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휴학계를 내고 청해진 해운에 입사했다. .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승객 버린 선장·우왕좌왕 해경… 구조시계 87시간 ‘스톱’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승객 버린 선장·우왕좌왕 해경… 구조시계 87시간 ‘스톱’

    16일 오전 8시 55분. 전남 진도 맹골수로를 운항하던 세월호가 다급하게 제주해상교통관제센터를 찾는다. “아 저기 해경에 연락해 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갑니다.” 그러고 5분 뒤, 수학여행에 나선 안산 단원고생 등 탑승객 476명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고 있음이 교신으로 드러난다. “인명피해가 없느냐”는 관제센터의 물음에 “선체가 기울어져 사람들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세월호는 답했다. 사고는 터질 수 있다. 문제는 사고 이후 어떻게 대응하느냐이다. 그러나 민·관·군 합동구조팀이 선체 유리창을 깨고 객실 내부에 있던 시신 3구를 첫 수습한 19일 오후 11시 48분까지 약 87시간 동안 대한민국의 구조시계는 멈춰 있었다. 긴급 상황을 총지휘해야 할 선장은 탑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줄행랑을 쳤고, 선박직 선원 15명도 100% 탈출해 공분을 샀다. 세월호 참사는 선장과 승무원들의 무책임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 여기에 해경과 정부가 상황을 장악하지 못하고 초기 대응에 실패해 화를 키웠다. 해경이 제주해상교통센터로부터 정식 조난 신고를 받은 것은 오전 8시 58분. 세월호는 침몰 직전 제주해상관제센터 외에도 제주해경이 관리하는 진도해상관제센터와 조난 교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사고 접수 약 30분 뒤인 오전 9시 30분쯤 사고 해역인 진도군 관매도 인근 조도면 병풍도 21㎞ 해역에 도착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비함정과 군함, 어선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선체는 이미 반쯤 기운 뒤였다. 당시 구조에 나섰던 전남 201호 선장 최승용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측 핸들링이 물에 잠겼을 때는 뛰어내린 사람도 있었고 물속에서 물 밖으로 헤엄쳐 나온 사람도 있었다”고 말했다. 구명정 46척이 있었지만 1척만 작동됐고, 유일한 구명정도 선장 이준석(69)씨가 타고 도망쳤다. 늦은 출동은 아니었지만 해경은 일반 어선들처럼 이미 빠져나와 구명조끼를 입은 탈출자들 구조에만 매달렸다. 해경이 출동한 후 30분이 지난 오전 10시쯤에야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으라”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누구도 선체에 진입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완전히 침몰하기까지 2시간여 동안 배 안에 남은 승객들이 빠져나오도록 유도했다면 대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정부와 해경이 우왕좌왕하는 바람에 사고 후 30분인 ‘긴급구조 골든타임’과 48시간인 ‘본격구조 골든타임’마저 놓쳤다. “제2의 한주호 같은 사람이 왜 없느냐”는 탄식이 흘러나왔지만 조류가 세니, 시정이 안 좋으니, 수심이 깊으니 하면서 시간만 죽였다. ‘꽃다운 청춘들이 죽은 게 아니라 죽였다’는 비탄이 터져나오는데도 정부기관의 불협화음은 계속됐다. 골든타임이 지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18일 군·경 특수 구조대원들의 선체 진입을 놓고 해경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엇박자를 냈다. 이날 오전 10시 5분쯤 중대본은 “잠수부 4명이 선체 진입에 성공했다”고 밝혔지만 해경은 곧바로 부인했다. 그러자 중대본은 오후 3시 27분쯤 성공을 실패로 정정해 실종자 가족들을 또 한번 울렸다. 이날 정부의 무능과 거짓에 실종자 가족대표 마동윤씨가 “국민 여러분, 이게 진정 대한민국의 현실입니까?”라고 호소해도 소용이 없었다. “해경청장 등 주요 간부들이 사고 현장에 내려가 있어 현재로서는 본부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일이 없다”(해경 본부)거나 “사망자, 구조자 집계 현황 파악 업무는 중대본으로 넘어갔다”(해양수산부)고 모르쇠나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탑승객 ‘477명-476명-459명-462명-475명-476명’. 탑승자와 구조자 인원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한심한’ 정부였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초기 구조] 전문가들 “사고해역 수온 낮아 시신 훼손 적어”

    19~20일 진도 여객선 침몰 사고 해역에서 희생자들이 잇따라 수습되고 있지만, 육안으로 시신을 확인한 유가족들은 크게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사고 이후 4~5일째 건져 올린 시신이라고 보기에는 손상이 적기 때문에 ‘구조가 조금만 빨랐더라면 살았을 것’이라는 안타까움을 내보인 것이다. 20일 목포중앙병원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시신이 전혀 상해 있지 않았고 물에 불은 흔적도 없었다”면서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게 분명하다”고 말했다. 목포기독병원에서 만난 또 다른 실종자 가족은 “서두르면 아이들을 살릴 수 있다”며 더딘 구조 작업에 분통을 터트렸다. 전문가들은 사고 해역의 낮은 수온 때문에 훼손이 적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염분이 많은 바닷물에서는 박테리아 증식이 더디기 때문에 시신 손상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수온이다. 여름에 물에 빠진 시신은 2~3일이면 물 위로 떠오르지만, 비슷한 조건에서 겨울에는 1주일 넘게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도 한다. 법의학 전문가들에 따르면 죽은 사람이 물에 빠지면 처음에는 가라앉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몸속 박테리아의 활동으로 신체 조직이 부패해 가스가 만들어지면 부력을 갖게 된다. 그러나 시신이 물 위로 떠오르는 시기나 부패 등 훼손 정도에 대해서는 장담하기 어렵다. 권일훈 권법의학연구소 소장은 “지금 사고 해역 수온은 11~12도 정도로, 냉장 상태와 다름없는 조건”이라면서 “이러한 상황이라면 물속에 오래 들어가 있으면 생기는 손발이 쪼글쪼글해지는 정도 외에 큰 변화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과 교수도 “시신 손상 정도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수온”이라면서 “시신에 변화가 없다는 것만으로 죽은 지 얼마 안 됐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목포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서울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한 행동이… 세월호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이 사고 초기 미흡한 초동 대처로 피해를 키운 정황이 드러났다. 해상 사고 발생 후 승객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적절한 판단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구호 조처를 취하라는 교통관제센터(VTS)의 독촉에도 구조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며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20일 공개한 세월호와 진도 VTS의 교신 녹취록에 잘 나타나있다. 녹취록에는 첫 교신이 시작된 16일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31분간의 교신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세월호의 선임급 항해사가 교신을 했으며 이준석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와 진도 VTS가 처음 교신한 시간은 16일 오전 9시 6분. 첫 교신 이후 진도 VTS는 세월호가 침몰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배의 상황을 파악했다. 9시 10분 쯤 상황을 묻자 세월호는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진도 VTS가 승객들이 구명보트에 타고 있냐고 물었지만 세월호는 “배가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방송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번복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9시23분 교신 내용에서 VTS가 승객들에게 방송해 구명조끼를 입게하라는 지시에는 “현재 방송도 불가능하다”고 답을 하다가 14분 뒤에는 “방송을 했는데 좌현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또 선장이 직접 판단해 탈출을 명령하라는 지시에는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냐”는 말만 반복해 되물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9시 17분 교신에는 응급 상황 시 긴급 대피 매뉴얼에 따라 승객들을 안내해야 하는 승무원들이 브리지(조타실)에 모여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녹취록에는 오전 9시12분께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다는 교신 내용이 있다. 4분 뒤인 17분에도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24분에는 진도 VTS가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라고 지시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객실 안 승객들은 탈출 명령을 기다렸지만 선장의 명령은 없었다. 경비정과 헬기가 10분 안에 도착하는 상황에서도 탈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교신을 한 항해사는 계속해서 구조가 가능한지만 반복했다. 반면, 승무원들은 교신이 끊어진 오전 9시 37분 쯤 배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이 세월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배의 수장인 선장 이씨는 첫 번째 구조선을 타고 탈출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 시간 실종자 대부분은 선체에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고 객실 안에 남아 있었다. 진도 VTS의 지원 요청을 받고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온 한 선박은 오전 9시 14분 쯤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는 구명보트를 목격했다. 이 선박은 진도 VTS에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본선은) 기울어져서 접근하기 위험합니다”라고 상황을 알렸다. 이 구명보트에 누가 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승무원들이 탔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장 박모(54)씨는 수사본부에서 “선장이 위험하니 탈선을 하라는 말을 듣고 9시 쯤 기관실을 벗어났다”고 진술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이종인 다이빙벨, 오후 6시 세월호 현장 투입 예정…실종자 수색 큰 도움 될까

    이종인 다이빙벨, 오후 6시 세월호 현장 투입 예정…실종자 수색 큰 도움 될까

    이종인 다이빙벨 세월호 침몰 엿새째인 21일 잠수용 엘리베이터인 ‘다이빙벨’이 현장에 투입됐다. 전남 진도 팽목항을 찾은 해난 구조 전문가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는 이날 “오전 11시30분쯤 해경으로부터 사고현장으로 가도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다이빙벨이 팽목항에 도착한지 12시간만의 일이다. 이상호 고발뉴스 기자는 이날 트위터를 통해 “다이빙벨이 진도 해역에 오후 3시 전후를 기해 도착할 예정이다. 바지선 고정 및 다이빙벨 투하에 3시간이 소요돼 오후 6시경 선내 진입이 목표”라면서 “밤에 조명 더 잘 밝혀져 오히려 작업에 유리하다 함. 시간구애 없이 작업 계획이라 함”이라고 전했다. 이종인 대표가 지난 2000년 제작한 다이빙벨은 최고 수심 70~100m에서 20시간 연속 작업을 할 수 있는 잠수장비로 알려져 있다. 다이빙벨은 종 모양의 기구로 크레인에 매달아 물 속으로 집어넣고 바닥까지 내려 잠수부들이 안에서 머물면서 작업을 할 수 있다. 종 내부 위쪽에 에어포켓이 형성되는 데 에어컴프레셔를 연결해 물밖에서 공기를 공급해 주면 에어포켓을 통해 잠수부들이 숨을 쉬면서 연속 작업을 가능케 해주는 원리다. 다이빙벨 안에는 잠수부 2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다. 공기 통로를 이어놓아 숨쉴 공간을 확보하고 수압과 낮은 온도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런 다이빙벨을 크레인에 매달아 물 속으로 집어 넣으면 선체 바로 옆까지 수평 이동을 할 수 있고 조류를 피할 피난처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종인 대표는 사고현장의 조류가 특히 강한 것에 대해 “4톤 이상의 다이빙벨 무게로 인해 조류가 강할 때도 벨이 뒤집어지지 않는다”면서 “구조작업에 투입될 경우 40분 정도 잠수작업을 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이빙벨이 투입돼 긴 시간 잠수가 가능해져 한 명의 생존자라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이종인 대표는 이날 새벽 다이빙벨, 작업용 폐쇄회로(CC)TV 등 수십톤의 장비와 인력을 바지선에 싣고 팽목항을 찾았지만 안전성과 기존 구조작업 방해를 등의 이유로 해경의 허가를 받지 못했었다. 이날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같은날 SBS라디오와 전화인터뷰에서 “이론적으로는 (유속에 상관없이 20시간 작업이 가능하다) 그럴 수 잇지만 이쪽의 조류가 워낙 세고 탁도가 높기 때문에 부피가 큰 다이빙벨을 선체 내부에 넣지는 못한다”고 부정적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세월호, 두달 전 비상훈련 평가서 ‘양호’ 논란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선사·운항관리] 세월호, 두달 전 비상훈련 평가서 ‘양호’ 논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지난 2월 특별 안전점검을 받았을 때 ‘선내 비상훈련 실시 여부’ 평가 결과 ‘양호’를 받은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의원이 20일 해양경찰청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해양경찰청 등은 특별 안전점검 당시 소방훈련·구명정 훈련 및 비상 시 대비 훈련 실시 여부에 ‘양호’ 등급을 매겼다. 선장이 제일 먼저 여객선에서 탈출하고 승객들은 객실에서 배가 침몰할 때까지 대기하는 등 사고 대응이 잘못돼 인명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오는데도 세월호는 두 달 전 비상 시 대비 훈련에 문제가 없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다. 조타기 정상 작동 여부, ‘차량적재도에 준한 고박장비(화물을 배에 고정하는 장비) 비치 여부’ 등도 모두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객선이 급격하게 방향을 전환할 때 결박하지 않은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면서 선박이 원위치로 돌아오지 못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같은 평가 결과 역시 충분한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반면 배가 침수됐을 때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막아주는 수밀문의 작동은 불량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함께 객실 내 방화문 상태도 ‘불량’ 평가를 받았고 비상조명등 작동, 화재경보기 작동법 숙지 상태, 비상발전기 연료유 탱크 레벨게이지 상태도 ‘불량’ 평가를 받았다. 자료에 따르면 점검단은 화재경보기 작동법 숙지 상태, 비상발전기 연료유 탱크 레벨게이지 불량과 관련해서는 적발 현장에서 이를 바로잡았다고 기록했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수밀문 불량 등 나머지 지적 사항에 대해서는 검사 열흘 뒤인 3월 4일에 ‘시정조치를 모두 마쳐 정상 작동하고 있다’고 해운조합 인천지부에 보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바닷속에 갇힌 또다른 희생자’ 21일 중대고비

    ‘바닷속에 갇힌 또다른 희생자’ 21일 중대고비

    진도 세월호 여객선 침몰 참사 현장에서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 속에 구조와 수색 작업이 계속되는 가운데 바다 건너 중국과 호주, 말레이시아 등지에서도 말레이시아항공 여객기 실종자 가족들의 애타는 절규가 이어지고 있다. 사고 후 44일이 지났지만 239명의 승객을 싣고 실종된 여객기의 잔해는커녕 단서조차 나오지 않았다. 더욱이 기대를 걸었던 무인잠수정 투입에도 성과가 없어 향후 수색 작업이 중단될 수도 있는 기로에 놓였다. 호주 국영 ABC방송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의 히샤무딘 후세인 교통장관 대행은 19일(현지시간) 남인도양 해역에서 진행 중인 실종기 해저수색이 ‘매우 중대한 시점’에 와 있다고 밝혔다. 후세인 대행은 “오늘과 내일이 고비”라며 수색작업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석유회사 등 민간회사에 필요한 장비 등을 제공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후세인 대행은 “발견을 못해도 수색을 아예 포기한 것은 아니다. 수색범위가 확대되거나 다른 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해저 수색에서조차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면서 희망을 잃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토니 애벗 호주 총리가 지난 16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인도양 해저를 샅샅이 훑고 있는 무인 잠수정 블루핀21이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한다면 수색 방식 등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상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현재 블랙박스의 신호 발신기 배터리도 다 소진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상황이라 전망은 더 어둡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수색 범위가 좁혀진 만큼 주요한 단서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수색을 총괄하는 호주 합동수색조정센터(JACC·이하 수색센터)는 이날 해저수색 범위가 좁혀졌다며 블루핀21의 수색이 1주일 안에 끝날 것이라고 밝혔다고 A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좁혀진 수색영역은 지난 8일 호주 해군 오션실드호에 탑재된 블랙박스 탐지장치 ‘토드 핑어 로케이터’(TPL)가 마지막으로 블랙박스 추정 신호를 포착한 곳의 주변 반경 10㎞ 해역이다. 블루핀21은 수심 4500m까지 내려가 한 번에 최장 25시간을 수중에서 움직일 수 있다. 고해상도 영상을 생산하고, 음파로 3차원 해저 지도를 만들어 실종기 잔해 등을 찾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첫 수색에서 블루핀21은 활동 가능 한계 수심 4500m에 부딪혀 중도 귀환했다. 두 번째도 ‘기술적인 문제’로 수색을 중단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4695m까지 내려가 최고 수심 수색 기록을 경신하며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수색센터는 지난 14일 블루핀21이 처음 투입된 뒤 지금까지 6차례에 걸쳐 133㎦를 수색했지만 지금까지 아무 단서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날 일곱 번째 수색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사명자 명단 앞 기념촬영..진중권 “일베 수준”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사명자 명단 앞 기념촬영..진중권 “일베 수준”

    [세월호 침몰] 세월호 참사 현장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려던 송영철 안전행정부 국장이 직위를 박탈당했다. 20일 안전행정부는 전남 진도 팽목항 임시 상황본부에서 비상근무를 하던 중 사진 촬영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감사관 송영철 국장에 대해 직위를 박탈하고 대기 발령했다고 밝혔다. 실종자 가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송 국장은 이날 오후 6시께 팽목항 상황본부의 세월호 침몰 사망자 명단 앞에서 동행한 공무원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려다 실종자 가족들에게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이 안행부 관계자에게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냐”며 항의했다. 논란이 커지자 안행부는 3시간 만에 송 감사관의 직위를 박탈하고 대기 발령시켰다. 안행부는 “앞으로 징계위 회부 등 절차가 남아있다. 향후 관련 절차에 따라 엄히 문책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에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20일 트위터를 통해 “‘사명자 명단 앞 기념촬영’ 안행부 국장 직위 박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링크하며 “그 앞에서 인증샷 찍을 기분이 나냐 이 정도면 일베 수준”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해도 해도 너무 하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라고 덧붙였다.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기념촬영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송영철 안행부 국장 기념촬영 직위박탈, 대체 무슨 생각?”, “송영철 안행부 국장 기념촬영 직위박탈,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냐?”,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기념촬영..심했긴 심했다”,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기념촬영..본인 가족이 변을 당했어도 사진 찍을 수 있었을까?” 등 반응을 보였다. 한편 21일 오전 8시30분 현재 이번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64명, 실종자는 238명이다. 사진 = 방송 캡처 (세월호 침몰, 안행부 송영철 기념촬영) 온라인뉴스부 seoulen@seoul.co.kr
  • [속보]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 ‘폭탄주 술자리’ 참석했다가 결국…

    [속보]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 ‘폭탄주 술자리’ 참석했다가 결국…

    새누리당은 20일 진도 세월호 침몰사고의 와중에 ‘폭탄주 술자리’에 참석한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에 대해 ‘경고’ 처분을 내렸다.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는 지난 18일 밤 폭탄주를 곁들인 청년당원들의 저녁 모임에 참석한 것이 문제돼 당 윤리위원회에 회부됐다. 당 윤리위는 이날 오전 세종시 현장 조사에 이어 오후에 여의도 당사에서 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했다. 경대수 위원장은 회의 직후 브리핑에서 “당명에 불복하고 당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거나 당의 위신을 훼손했다고 판단해 징계를 결정했다. 다만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는 음주 사실이 없고 짧은 시간 있다가 자리를 떠나고 깊이 반성하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경고 처분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경 위원장은 “여객선 사고 이후 당원들이 자중하기를 다시 한번 당부하며 이러한 사태가 재발하면 당헌·당규에 따라 엄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한때 후보 자격 박탈까지 거론됐던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는 지방선거 세종시장 후보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윤리위는 문제의 자리를 마련한 청년당원들에 대해서는 참여 경중에 따라서 ‘탈당 권유’, ‘3개월 당원권 정지’ 등 징계에 처했다. 앞서 유한식 세종시장 후보는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모임에서 술잔은 받았지만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고,정치적 발언도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부덕의 소치로 우리 당과 당원 여러분께 염려를 끼치게 돼서 깊이 사과 드린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위기관리 시스템] 안산·진도 특별재난지역

    [세월호 침몰 참사-엉터리 위기관리 시스템] 안산·진도 특별재난지역

    정부가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군과 안산 단원고교가 있는 경기 안산시를 20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함에 따라 조만간 두 지역에 대한 피해 규모 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특별재난지역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 안전행정부 장관이 건의해 총리가 위원장으로 있는 중앙안전관리위원회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최종 선포한다. 선포된 이후에는 중대본부장이 특별재난지역의 구체적인 범위를 정해 공고하게 된다. 현행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은 특별재난지역을 태풍, 홍수, 지진 등 ‘자연재난’과 화재, 교통사고, 폭발 등 ‘사회재난’, 그 밖에 국가적 차원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재난이 발생한 경우에 지정한다.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는 자연재난이 아닌 사회재난 또는 특별 조치가 필요한 재난에 해당한다. 특별재난지역 선포 이후 정부는 관계 중앙부처와 진도군, 안산시로 구성된 ‘합동 피해조사반’을 구성해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조사 결과로 나온 피해액만큼을 정부가 국고로 지원한다. 구체적인 피해 지원 방안은 관계부처 협의 및 중대본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즉 피해 규모 및 지원 방식이 결정된 이후에야 정부가 일정 금액의 국고를 지원하는 구조인 것이다. 반면 자연재난이 발생해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곳에 대해서는 국고 지원 액수가 정해져 있다. 최근 3년간 평균 재정력지수에 따라 18억원부터 42억원까지 차등 지원된다. 이처럼 자연재난의 경우 지자체 여건에 따라 국고 지원 금액이 정해져 있지만, 사회재난은 국고 지원 액수를 사후에 조율해야 하는 이유로 사회재난이 발생해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된 사례는 상대적으로 적다. 그 결과 세월호 침몰사고를 포함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발생 이후로 인적·사회재난에 대해 특별재난지역이 선포된 횟수는 총 7회다. 하지만 자연재난에 따른 선포 횟수는 이보다 4배 이상 많은 29회다. 안산시는 앞서 지난 19일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집단피해 지원을 위해 특별재난지역 선포를 건의했다. 진도군은 특별재난지역 시정을 건의하지 않았지만 정부는 진도군이 사고가 발생한 해역에 해당하는 만큼 진도군에 구조·구호 및 의료 활동을 지원하는 것이 맞다고 보고 특별재난지역에 포함시켰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구조할 수 있나” 반복만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구조할 수 있나” 반복만

    세월호 승무원, 진도 VTS “라이프링 띄우십시오. 빨리!” 재촉에 “구조할 수 있나” 반복만 세월호 선장 등 주요 승무원들이 사고 초기 미흡한 초동 대처로 피해를 키운 정황이 드러났다. 해상 사고 발생 후 승객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있었지만 승무원들은 적절한 판단을 못 내리고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구호 조처를 취하라는 교통관제센터(VTS)의 독촉에도 구조할 수 있겠냐고 되물으며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내용은 검경합동수사본부가 20일 공개한 세월호와 진도 VTS의 교신 녹취록에 잘 나타나있다. 녹취록에는 첫 교신이 시작된 16일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31분간의 교신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세월호의 선임급 항해사가 교신을 했으며 이준석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녹취록 내용에 따르면 세월호와 진도 VTS가 처음 교신한 시간은 16일 오전 9시 6분. 첫 교신 이후 진도 VTS는 세월호가 침몰 중인 사실을 확인하고 배의 상황을 파악했다. 9시 10분 쯤 상황을 묻자 세월호는 “너무 기울어져 있어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진도 VTS가 승객들이 구명보트에 타고 있냐고 물었지만 세월호는 “배가 기울어 탈출할 수 없다”는 말만 반복했다. 방송 가능 여부에 대해서도 말을 번복하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다. 9시23분 교신 내용에서 VTS가 승객들에게 방송해 구명조끼를 입게하라는 지시에는 “현재 방송도 불가능하다”고 답을 하다가 14분 뒤에는 “방송을 했는데 좌현으로 이동하기 쉽지 않다”고 말을 바꿨다. 또 선장이 직접 판단해 탈출을 명령하라는 지시에는 “탈출하면 구조할 수 있냐”는 말만 반복해 되물으며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9시 17분 교신에는 응급 상황 시 긴급 대피 매뉴얼에 따라 승객들을 안내해야 하는 승무원들이 브리지(조타실)에 모여 있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녹취록에는 오전 9시12분께 배가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다는 교신 내용이 있다. 4분 뒤인 17분에도 배가 50도 이상 기울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24분에는 진도 VTS가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조끼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바랍니다.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라고 지시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객실 안 승객들은 탈출 명령을 기다렸지만 선장의 명령은 없었다. 경비정과 헬기가 10분 안에 도착하는 상황에서도 탈출 명령은 떨어지지 않았다. 교신을 한 항해사는 계속해서 구조가 가능한지만 반복했다. 반면, 승무원들은 교신이 끊어진 오전 9시 37분 쯤 배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이 세월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배의 수장인 선장 이씨는 첫 번째 구조선을 타고 탈출한 모습이 포착됐다. 이 시간 실종자 대부분은 선체에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고 객실 안에 남아 있었다. 진도 VTS의 지원 요청을 받고 사고 현장에 가장 먼저 달려온 한 선박은 오전 9시 14분 쯤 세월호에서 빠져나오는 구명보트를 목격했다. 이 선박은 진도 VTS에 “옆에 보트가 탈출하네요. (본선은) 기울어져서 접근하기 위험합니다”라고 상황을 알렸다. 이 구명보트에 누가 탔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승무원들이 탔을 가능성이 크다. 기관장 박모(54)씨는 수사본부에서 “선장이 위험하니 탈선을 하라는 말을 듣고 9시 쯤 기관실을 벗어났다”고 진술했다. 네티즌들은 “세월호 진도 VTS, 기가 막힌다”, “세월호 진도 VTS, 이걸 말이라고 하나”, “”세월호 진도 VTS, 초동대처만 잘했어도. 정말 분통이 터진다”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탈출시켜라” 지시받고도 선장·승무원 ‘뺑소니’

    “탈출시켜라” 지시받고도 선장·승무원 ‘뺑소니’

    전남 진도 해상에서 침몰한 세월호가 사고 직후 진도교통관제센터(VTS)로부터 승객들을 탈출시키라는 지시를 받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선장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내버려 둔 채 탈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검경합동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세월호는 지난 16일 오전 8시 55분 제주VTS에 신고한 뒤 약 11분이 지난 오전 9시 6분부터 오전 9시 37분까지 진도VTS와 31분간 11차례 교신했다. 진도VTS는 오전 9시 25분 “선장 판단 아래 인명을 탈출시켜라”고 말했지만 구조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으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세월호의 선임급 항해사가 교신을 했으며 이준석(69) 선장이 조타실에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 선장은 교신이 끊어진 오전 9시 37분 배를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 승무원 중 이씨와 1·2·3등 항해사, 조타수, 기관장 등 선박직 15명은 모두 생존했다. 수사본부는 이씨와 3등 항해사, 조타수 등 3명을 구속한 데 이어 다른 승무원 등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사고 경위와 퇴선 명령, 구호 조치를 적절하게 했는지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비상 상황과 관련해 안전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일부 승무원의) 진술이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대 잠수 요원들은 이날 세월호 선체 내부 진입 통로 5곳을 확보하는 등 선내에서 시신 수습 작업을 벌였다. 해경에 따르면 구조대는 19일 오후 11시 35분쯤 4층 격실 유리창을 깨고 진입해 남성 사망자 3명을 수습했다. 이어 내부 진입 통로 5곳을 확보했다. 해경은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를 이용해 선체 주위 해역도 집중 수색했다. 세월호는 선체가 전복된 상태로 뱃머리 부분이 수면 밑 약 10m까지 내려앉은 상태다. 정부는 이날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단원고가 있는 경기 안산시와 사고가 발생한 전남 진도군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했다. 한편 이번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교사 등 6명의 영결식이 이날 안산 지역 장례식장 곳곳에서 치러졌다. 안산제일장례식장 등에서는 유족과 단원고 학생들이 끝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사고 해역에서 시신들이 잇따라 인양되면서 21일 오전 1시 현재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다. 승선자 476명 중 174명이 구조됐으며 244명은 아직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안산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참사-수색 현장] 잠수부 8~10명씩 동시다발 선내 진입… 가족들 “이제서야…”

    ‘세월호 침몰’ 사고 닷새째인 20일 해양경찰(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부 등이 전남 진도의 사고 해역에서 활발한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기적’을 건져 내지는 못했다. 기다렸던 생환 소식 대신 가라앉은 선체에서 시신 10여구만 뭍으로 나왔다. 정부는 “해경과 해군, 민간 잠수 요원이 동시다발적으로 바다에 들어가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고 했지만 실종자 가족들은 “사고가 난 지 3~4일이 지나서야 선내에서 겨우 사망자를 찾는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격분했다. 사고 뒤 첫 주말인 19~20일 민·관·군 합동구조팀은 세월호 내부에 진입해 본격적인 수색 작업을 벌였다. 잠수부들은 19일 오전 5시 50분쯤 여객선 3~4층 계단 통로에 들어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4층 격실 창문 너머로 시신 3구를 발견했다. 오후 11시 48분 수차례 시도 끝에 손도끼로 유리창을 깨고 4층에서 남성 시신 3구를 물 위로 끌어올렸다. 잠수부가 선체 내부에서 피해자를 발견해 수습한 것은 사고 뒤 처음이었다. 수십㎝ 앞조차 가늠할 수 없는 탁한 시계(視界) 탓에 피해자가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객실로 보였다. 실종자 가족 사이에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지만, 잠수부들이 발견한 것은 숨을 거둔 시신뿐이었다. 21일 오전 1시까지 22구의 시신이 선체 안팎에서 수습되면서 사망자는 58명으로 늘었다. 더디기만 하던 수색 속도가 빨라진 것은 ‘생명선’으로 불리는 가이드라인(안내선)과 손도끼 등 수동 장비 덕이었다. 로프의 일종인 가이드라인은 침몰한 세월호 선수와 선체 중앙부 등에 20일까지 모두 5개가 묶였다. 성인 남성 손가락 굵기인 로프는 수면 위에서 선체까지 이어져 있다. 잠수사 수백 명이 사흘간 번갈아 투입돼 라이트 불빛과 손의 감각으로 선체 돌출 부위에 묶었다. 수면 아래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까닭에 잠수부들은 가이드라인을 부여잡고 천천히 이동해 겨우 선체에 닿을 수 있다. 이 줄이 5개까지 설치되면서 그동안 2인 1조로 20여분간 선체를 수색하는 데 그쳤던 구조팀은 8~10명씩 동시에 입수해 구조 수색 작업을 벌일 수 있게 됐다. 선내 유리문을 깨뜨린 ‘특수 손도끼’는 민간 잠수부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쇠뭉치의 끝을 뾰족하게 갈아 손잡이를 단 모양으로 유리를 찌르듯 깨뜨리는 장비다. 묵직한 도끼를 동원해도 해저 수압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사고 이후 줄곧 좋지 않던 기상과 조류도 뒤늦게 호전됐다. 빠른 유속으로 악명 높은 맹골수도 조류는 속도가 최저가 되는 ‘조금’(23일)이 되면 8일 전보다 유속이 40% 정도 느려진다. 미국으로부터 원격 조종 무인잠수정 ROV 2대를 지원받아 현장 투입을 앞두는 등 첨단 장비도 동원되고 있다. ROV는 원격 수중 탐색장비로 1980년대부터 깊은 바닷속에서 난파선 탐사, 기뢰 제거 등 위험 임무에 활용된 기계다. 관측함과 ROV를 케이블로 연결해 원격 조종하는 방식으로 해저 영상을 전달받아 수중 탐색에 활용한다. 또 이날 오후 사고 현장에 긴급 공수된 바지선(짧은 거리에서 화물을 수송하는 부선)이 정박해 잠수사들이 대거 투입할 준비를 마쳤다. 민간 잠수업체의 선박과 해경, 해군의 소형 선박들은 바지선에 잠수장비 등을 실어 놓고 잠수사들도 바지선 위로 올라탔다. 정조 시간인 오후 5시쯤에는 민간 잠수사 1개조가 바지선에서 잠수했다. 합동수색팀은 20일 민·경·군 잠수부 560여명과 함정 204척, 항공기 34대 등을 동원해 집중 수색을 벌였다. 사고대책본부는 이날까지 잠수부를 투입한 수색 구조 방식을 유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박 표면을 절단한 뒤 진입해야 한다는 요구도 잇따랐지만 선체의 중심이 흔들려 에어포켓(선실에 형성된 공기층)이 줄어 생존자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 이후 줄곧 ‘오보’를 양산해 빈축을 샀던 정부는 주말에도 사망자 수를 정정하는 등 허술한 모습을 보였다. 범정부사고대책본부는 19일 밤 세월호 주변 50m 부근 해상에서 시신 3구를 추가로 수습해 사망자가 39명까지 늘었다고 밝혔지만 이내 “선체 안에서 발견된 시체를 두 번 셌다”며 정정했다. 분노한 실종자 가족들은 20일 청와대 항의 방문을 시도했다. 오전 7시쯤 진도대교에 모여 청와대로 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의 설득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정홍원 국무총리까지 나서야 했다. 1시간에 걸친 설득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입장이 완강하자 정 총리는 차량에 탑승해 자리를 떠나려다 2시간여 동안 발이 묶였다. 경찰과 대치 중 가족 중 한 명이 오열하다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한편 지난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현장으로 출동하던 해군 구축함 대조영함(4500t)에서 화물승강기 정비 작업을 하던 중 머리를 다쳐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승조원 윤모(21) 병장은 19일 끝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진도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넘어갈 것 같다”…세월호-관제센터와 31분간 긴박한 교신

    “넘어갈 것 같다”…세월호-관제센터와 31분간 긴박한 교신

    세월호 침몰 직전 마지막 급박한 교신 내용이 20일 공개됐다. 내용 중에 이준석(69) 선장이 자신이 했다고 주장한 ‘퇴선 명령’ 부분은 들어있지 않았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가 해경의 연락을 받고 16일 오전 9시 6분부터 침몰 중인 세월호와 했던 31분간의 교신 녹취록에는 배 상태, 승객 탈출 가능 및 구조 여부 등을 묻는 긴박한 상황이 상세하게 담겼다. 진도 VTS의 3차례 호출 뒤 세월호와 교신이 시작됐다. 승객 탈출 가능 여부를 묻자 배가 기울어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답신이 왔다. 이후에 여러 차례 VTS의 ‘승객 탈출이 가능하냐’는 질문이 이어졌지만 세월호는 ‘구조가 가능한가’라는 말만 반복했다. 교신이 이어지는 가운데 오전 9시 14분께 주변 선박에서 세월호에서 처음으로 탈출한 보트가 목격됐다. 이후 VTS는 방송을 이용한 구명동의 착용을 지시했지만 세월호 측에서는 방송이 불가능하다고 답했다.“배가 60도 정도 기울여졌다…”는 교신을 끝으로 세월호는 응답하지 않았다. 교신이 끊기고 3분 뒤 승객과 승무원 등 150∼160명은 세월호에서 뛰어내렸고,이때 이미 선체는 60도 이상 기운 상태였다. 배가 침몰 위기에 놓이자 승무원들은 이때부터 이선(탈선)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진도 VTS가 바다에 뛰어들 승객들에 대비해 구명조끼와 구명벌 투하를 지시한 상태였는데도 교신이 이뤄지는 31분간 선장 이씨는 승객들에게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피해를 키웠다. 앞서 이씨는 수사본부 조사에서 “사고 초기에 조류가 빠르고 수온이 차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가 퇴선 명령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수학여행 취소 위약금 때문에…수학여행 취소 못하고 일정 강행해야

    수학여행 취소 위약금 때문에…수학여행 취소 못하고 일정 강행해야

    ‘수학여행 취소 위약금’ 수학여행 취소 위약금 때문에 세월호 침몰 사고 이후 예정된 수학여행을 취소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도 수학여행을 그대로 진행해야 하는 학교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18일 충북도교육청 및 일선 학교 등에 따르면 진도 여객선 침몰 참사 이후 “수학여행을 취소하거나 재고해야한다”는 여론이 이어지고 있지만 위약금 때문에 실제로 수학여행을 취소하는 학교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도 수학여행을 계획했던 한 고등학교는 수학여행 취소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 수학여행과 수련활동 활성화 위원회를 열었지만 위약금 탓에 결국 예정대로 수학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학교 관계자는 “학생 400명이 2박 3일간 제주도 수학여행비로 들어가는 경비만 1억 2000만원이 든다. 비행기값을 포함해 숙박과 차량, 식당 등 모두 개별적으로 계약했기 때문에 취소하면 위약금만 5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한편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수학여행 취소여부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 뒤 21일 시도교육청 담당 국장 회의를 소집해 정부 방침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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