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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인 이번주 줄소환… 여야 균형?

    검찰의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이번 주부터 정치인 소환조사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스테이트월셔 골프장 로비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김기동)는 6일 골프장 회장 공모(43·구속기소)씨에게서 돈을 건네받은 정황이 드러난 공성진·현경병 한나라당 의원의 소환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공 의원에 대해서는 이른바 ‘스폰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이는 L사와 C사 등에 대한 압수수색과 계좌추적 등을 통해 억대의 금품이 제공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또 현 의원에 대해서는 지난 주말 보좌관 김모씨를 체포해 조사한 뒤 돌려보냈다. 검찰은 “충분히 조사했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조사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이뤄졌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관심은 수사가 어디까지 뻗어갈까다. 이미 정치권과 검찰 주변에서는 공·현 두 의원에 이어 3~4명의 정치인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와 함께 대한통운 비자금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권오성)도 곽영욱(69·구속기소) 전 사장이 진술한 참여정부 실세들에 대한 로비의혹을 확인하고 있다. 한명숙 전 총리를 비롯, 유력정치인 J의원과 K 전 의원 등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검찰은 한 전 총리가 곽 전 사장에게서 5만달러를 받았다는 진술을 토대로 자금을 추적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곽 전 사장이 2007년 4월 남동발전 사장에 취임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시기나 방법 등에서 엇갈리는 측면이 많아서 곽 전 사장의 진술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확인은 하겠다는 입장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검찰 수사가 균형맞추기 수순으로 들어간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내용이야 어쨌건 여야에 대한 수사 진도를 맞춰 정치적 편파성 논란에서 벗어나려는 것 아니냐는 얘기다. 그러나 결과까지 형평성을 맞추기는 어렵다는 점은 고민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전남 새우 어획량 3년째 감소

    김장철을 앞두고 전남 서해안의 새우 어획량이 크게 줄어 어민들이 한숨짓고 있다. 22일 전남 신안군 우이도와 진도, 영광 칠산 앞바다 등 서해안 어민들에 따르면 매년 7만여드럼(1드럼 200~250㎏)을 기록했던 새우 어획량이 올해는 5만드럼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다음달 본격적인 김장철을 앞두고 있지만 전국에서 잡히는 새우의 70%가량이 거래되는 전남 신안 지도수협위판장의 최근 김장용 젓새우와 생새우 위판량은 1~2드럼에 지나지 않는다. 어민들은 이같은 새우 어획량 감소가 지난 2007년부터 3년째 계속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2006년까지는 매년 평균 7만여드럼(새우잡이 철인 5~12월)의 새우가 잡혔지만 2007년 이후 5만여드럼으로 줄어들었다. 어민들은 부족한 어획량을 채우기 위해 기름값 등 각종 출어비용 부담에도 불구하고 인천, 강화 지역까지 원정 조업을 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어획량이 줄어들면서 새우 값도 크게 올랐다. 현재 위판장에서 생새우는 1상자(5㎏)에 3만~4만원, 젓새우(보통젓)는 1드럼에 40만~50만원의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이맘때보다 20%가량 오른 가격이다. 광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동해시 국내 첫 해저케이블 공장 준공

    LS전선이 19일 국내 처음으로 해저케이블 양산체제를 갖춘 동해공장을 준공하고 높은 기술장벽으로 유럽의 소수 업체만 과점하고 있는 세계 해저케이블 시장의 진입을 선언했다.LS전선은 이날 강원 동해시 송정산업단지 공장 내에서 김진선 도지사, 김학기 동해시장, 일본 히타치 전선의 사토 노리노 회장, 구자홍 LS그룹 회장과 구자열 LS전선 회장, 시민 등 6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장 준공식을 가졌다.동해항이 인접한 송정산업단지에 1800억원을 들여 24만 8000㎡의 부지에 조성된 동해공장은 지난 6월부터 산업용 특수케이블 생산라인을 가동한 데 이어 9월부터 제주∼진도 간 105㎞ 구간에 설치할 250㎸급 해저케이블을 생산하고 있다.강원도와 동해시는 통상 2년 이상 소요되는 산업단지조성 및 공장건축 기간을 3개월에 가능토록 초고속으로 지원했다. LS전선은 2011년이면 동해공장에서 해저케이블 매출 4000억원, 산업용 특수케이블 매출 1500억원 등 4000억∼4500억원의 매출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강원도와 동해시는 LS전선의 동해공장 건설로 7231억원의 생산유발 및 700명의 고용유발 효과, 2500명의 상주인구 증가, 그리고 97억여원의 지방재정 확충 효과로 지역경제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동해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외지인 이주·농외소득… 행복마을 효과

    외지인 이주·농외소득… 행복마을 효과

    대흥사 바로 밑자락인 전남 해남군 삼산면 매정 마을은 최근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2~3년 전만 해도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가 드문드문 보이고,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마을이 ‘행복마을’로 지정된 지난 2007년부터 젊은 층이 이주하고, 서울과 해남읍 등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 앞길엔 메타세쿼이아와, 동백나무들을 심었고, 빈터 곳곳엔 화단을 조성했다. 마을 어귀에 흐르는 실개천에 버려진 농약병 등 쓰레기를 치웠고, 가장자리마다 꽃들을 심었다. ●해남 매정마을 한옥22채 새로지어 이 마을 이장 최상용(60)씨는 “최근 들어 우리 마을에 이주하겠다는 외지인들의 전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정부의 각종 지원 사업에 힘입어 ‘돌아오는 농촌’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민 김모(59)씨는 “헌 집이 헐리고 현대식 한옥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마을이 깨끗해지고 생기가 돈다.”며 “‘제2 새마을운동’이나 다름없는 농촌마을 가꾸기 사업이 모든 지역으로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행복마을로 지정된 이후 모두 22채의 한옥이 새로 지어졌다. 낡은 115채도 점차 주거 환경개선 사업이 이뤄진다. 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 세워진 지금의 마을회관도 한옥으로 새롭게 신축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도는 첫해인 2007년 해남 매정, 무안 석북 등 5개 마을을 시작으로 지난해 12곳, 올해 21곳 등 모두 39곳을 행복마을로 선정했다. 전원 마을 12곳도 행복마을로 지정, 새롭게 조성하고 있다. 도는 내년에 21개 마을을 추가로 선정해 정주여건 개선 등 각종 지원에 나선다. 이에 따라 내년 한해 동안 500동의 한옥이 신축 또는 개·보수된다. 행복마을은 선정위원회가 공모방식으로 지정하며, 희망 마을을 대상으로 현지 실사 등을 거쳐 결정된다. 한옥 12호 이상 신축이 가능하고, 주민들이 사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추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행복마을에서 한옥을 지을 경우 ‘한옥지원 조례’에 따라 지방비 4000만원과 장기 저리 융자 3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마을 상·하수도와 마을회관, 진입로, 안길, 주차장 등이 확충된다. 행복마을은 약초, 녹차, 연꽃, 야생화 등 특화작물을 재배해 도시민을 마을로 유치하고, 체험활동과 민박·특산품 판매 등을 통해 소득증대를 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도는 이를 위해 신축한 한옥은 반드시 방 한칸을 민박용으로 활용토록 규정해 놨다. ●고흥 명천마을 전입문의 월2~70명 행복마을 사업 3년째인 현재 무안 약실 34명을 비롯, 함평 오두 10명, 장흥 우산 13명, 해남 매정 11명, 구례 상사 20명, 진도 신전 4명 등 모두 147명의 외지인이 행복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마을주변 땅값도 고흥 명천마을이 ㎡당 6800원에서 2만 8000원으로 4배 이상 오른 것을 비롯, 행복마을로 지정된 곳의 주변 토지가 평균 2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지인들의 전입 문의도 매월 2~70명 정도에 이른다. 한옥 민박을 통한 농외소득도 가구당 평균 70만원을 웃도는 등 낙후된 농어촌 마을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승옥 전남도 행복마을 과장은 “이 사업은 고령화된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 넣고 주민 소득증대를 위해 마련됐다.”며 “해당 마을에는 그린농촌 가꾸기, 참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등 각종 개발사업을 패키지로 묶어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외지인 이주·농외소득… 행복마을 효과

    외지인 이주·농외소득… 행복마을 효과

    대흥사 바로 밑자락인 전남 해남군 삼산면 매정 마을은 최근 주변 풍경이 확 바뀌었다. 2~3년 전만 해도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가 드문드문 보이고, 한적하기 그지없었다. 마을이 ‘행복마을’로 지정된 지난 2007년부터 젊은 층이 이주하고 서울과 해남읍 등 외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을 앞길엔 메타세쿼이아와 동백나무들을 심었고, 빈터 곳곳엔 화단을 조성했다. 마을 어귀에 흐르는 실개천에 버려진 농약병 등 쓰레기를 치웠고, 가장자리마다 꽃들을 심었다. ●해남 매정마을 한옥22채 새로지어 이 마을 이장 최상용(60)씨는 “최근 들어 우리 마을에 이주하겠다는 외지인들의 전화 문의가 쇄도하고 있다.”며 “정부의 각종 지원 사업에 힘입어 ‘돌아오는 농촌’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주민 김모(59)씨는 “헌 집이 헐리고 현대식 한옥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마을이 깨끗해지고 생기가 돈다.”며 “‘제2 새마을운동’이나 다름없는 농촌마을 가꾸기 사업이 모든 지역으로 확산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행복마을로 지정된 이후 모두 22채의 한옥이 새로 지어졌다. 낡은 115채도 점차 주거 환경개선 사업이 이뤄진다. 마을 주민들은 “1970년대 세워진 지금의 마을회관도 한옥으로 새롭게 신축되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도는 첫해인 2007년 해남 매정, 무안 석북 등 5개 마을을 시작으로 지난해 12곳, 올해 21곳 등 모두 39곳을 행복마을로 선정했다. 전원 마을 12곳도 행복마을로 지정, 새롭게 조성하고 있다. 도는 내년에 21개 마을을 추가로 선정해 정주여건 개선 등 각종 지원에 나선다. 이에 따라 내년 한해 동안 500동의 한옥이 신축 또는 개·보수된다. 행복마을은 선정위원회가 공모방식으로 지정하며, 희망 마을을 대상으로 현지 실사 등을 거쳐 결정된다. 한옥 12호 이상 신축이 가능하고, 주민들이 사업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추진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행복마을에서 한옥을 지을 경우 ‘한옥지원 조례’에 따라 지방비 4000만원과 장기 저리 융자 3000만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또 마을 상·하수도와 마을회관, 진입로, 안길, 주차장 등이 확충된다. 행복마을은 약초, 녹차, 연꽃, 야생화 등 특화작물을 재배해 도시민을 마을로 유치하고, 체험활동과 민박·특산품 판매 등을 통해 소득증대를 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도는 이를 위해 신축한 한옥은 반드시 방 한칸을 민박용으로 활용토록 규정해 놨다. ●고흥 명천마을 전입문의 월2~70명 행복마을 사업 3년째인 현재 무안 약실 34명을 비롯, 함평 오두 10명, 장흥 우산 13명, 해남 매정 11명, 구례 상사 20명, 진도 신전 4명 등 모두 147명의 외지인이 행복마을에 둥지를 틀었다. 마을주변 땅값도 고흥 명천마을이 ㎡당 6800원에서 2만 8000원으로 4배 이상 오른 것을 비롯, 행복마을로 지정된 곳의 주변 토지가 평균 200% 이상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지인들의 전입 문의도 매월 2~70명 정도에 이른다. 한옥 민박을 통한 농외소득도 가구당 평균 70만원을 웃도는 등 낙후된 농어촌 마을이 되살아나고 있다. 이승옥 전남도 행복마을 과장은 “이 사업은 고령화된 농어촌에 활력을 불어 넣고 주민 소득증대를 위해 마련됐다.”며 “해당 마을에는 그린농촌 가꾸기, 참살기좋은 마을 가꾸기 등 각종 개발사업을 패키지로 묶어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면접때 ‘선생님’ 호칭 듣고 떨어지나 했죠”

    “면접때 ‘선생님’ 호칭 듣고 떨어지나 했죠”

    “면접관도 저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더군요. 올해부터 제도가 바뀌기는 했지만, 제 나이에 공무원이 되는 건 아직 낯선 풍경인가 봅니다.” 올해 국가직 7급 공채에서 최고령으로 합격한 김성우(광주 남구 봉선동)씨는 만 49세라는 나이 말고도, 일반행정직 합격자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올해부터 응시연령상한 제한이 폐지되면서 ‘늦깎이 합격생’이 여럿 나왔지만, 대부분 사서직 등 특수 직렬에서 합격했다. 하지만 김씨는 응시생이 가장 많은 일반행정 직렬에 도전해 젊은 수험생들과 실력을 겨뤘고, 당당히 합격의 영광을 누렸다. 김씨는 지난해 12월부터 공무원시험을 준비했다고 한다. 올해 7월 필기시험이 있었으니, 8개월 남짓 공부해 합격한 것이다. 젊은 수험생도 7급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최소 2년을 준비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가 잘나서 단기간에 합격한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행정법과 헌법은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있었어요. 또 20여년 전 행정고시에 응시하기도 했기 때문에 공무원시험이 그리 생소하지는 않았죠.” 김씨는 행시 합격에 3~4차례 실패한 뒤, 공직에 대한 꿈을 접고 학원강사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공무원시험 응시에 나이 제한을 두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마지막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월급을 주던 학원을 미련 없이 그만두고 ‘공시족’이 됐다. 김씨가 가장 먼저 시작한 과목은 국어.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근무했지만,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을 가르치던 실력으로는 공무원시험을 통과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수험 준비 초반에는 국어 공부만 하루에 10시간 이상 했다. 김씨는 이왕 공부를 시작한 만큼 모든 것을 걸었다. 마을 도서관 불을 끄고 나오는 사람은 항상 김씨였고, 집에 가서도 새벽 2시까지 책을 봤다. 잠자는 시간 5~6시간 말고는 모두 공부에만 몰두했다. 덕분에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행정학과 경제학 기본서, 문제집을 3번 반복해 볼 수 있었다. 다른 과목도 1번씩은 독파했다. 학원이나 동영상 강의는 듣지 않았고 순전히 독학했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었다. 가끔은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이 옳은 것일까.’라는 회의도 들었다. 이럴 때는 바다로 가 시원한 바람을 쐬며 몸과 마음을 재충전했다고 한다.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에는 인터넷으로 만난 ‘젊은 친구’들과 함께 면접대비 스터디를 했다. ‘젊은 친구’들이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자, ‘아저씨’보다는 ‘선배’라고 부르라며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김씨는 면접 생각만 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저출산을 극복할 수 있는 대책을 기획하라.’는 발표 주제를 받았는데, 기획이 아닌 논문을 썼다고 면접관에게 핀잔을 들었다. 봉사활동 경험을 얘기할 때는 병상에 있는 어머니 발마사지를 해준다고 했다가 “그게 무슨 봉사냐.”며 눈 흘김을 받았다. 면접관이 김씨의 나이를 의식해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는 ‘떨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는 지난 9일 행정안전부로부터 합격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도 기쁘기보다는 어리둥절했다고 한다. 하지만 곧 20년 전 실패했던 공무원의 꿈을 이제야 이뤘다는 감격이 북받쳐 올랐다. 김씨가 근무하고 싶은 부처는 환경부나 국토해양부다. 고향이 바닷가(전남 진도)인데, 아름다운 바다에 쓰레기가 널려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고 한다. 바다 오염을 막는 정책을 마련하고 싶다는 게 김씨의 희망이다. 지천명(知天命)의 나이에 공직에 들어온 김씨는 10여년밖에 근무할 수 없다. 공무원이 되면 자신보다 어린 상사들의 지시를 받을 수도 있다. 김씨는 “일단은 조직에 잘 융화하는 게 목표”라면서 “젊은이처럼 순발력은 없지만 여러 사회 경험을 한 만큼 ‘감초 같은 공무원’이 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아프리카 대륙이 쪼개진다고?

    아프리카 대륙이 쪼개진다고?

    ‘아프리카 대륙이 갈라지고 있다.’ 2005년 지진으로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동북부 사막에 생긴 길이 56㎞, 너비 6m의 틈이 새로운 바다의 탄생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고 미국 과학전문지 사이언스데일리가 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 영국,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예멘 등의 과학자들은 공동 연구를 통해 지구물리학연구지에 실은 논문에서 에티오피아에서 발생한 화산활동이 대양의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거의 똑같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지진 발생 당시 문제의 균열이 새로운 대양의 시작이며 아프리카 대륙이 갈라질 것이라는 주장이 일부 지질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으나 충분한 연구가 이뤄지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2005년 당시의 지진 자료를 모아 지진 발생 상황을 재구성했다. 단층대 북쪽에 위치한 다바후 화산이 처음 폭발했고 단층 중간부에 위치한 마그마가 솟아올라 땅을 ‘지퍼를 열듯’ 갈라놓았다. 걸린 시간은 며칠이었다. 공동 저자인 미국 로체스터대학 신디 에빙거 교수는 “바다 밑의 산마루들이 단층대에서 흘러드는 마그마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산마루가 한꺼번에 뭉텅이로 갈라질 수 있다는 것은 몰랐다.”고 밝혔다. 그동안은 화산대가 장기간에 걸쳐 조금씩 갈라진다는 것이 주류 가설이었다. 이 연구는 해양 지각판의 가장자리를 따라 형성된 화산대가 한꺼번에 함께 갈라질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런 대규모 화산분출이 육지에서 일어날 경우 단층대 인근 주민들은 여러 개의 소규모 분출보다 훨씬 심각한 위험에 처하게 된다. 미국의 TV영화 ‘진도 10.5 미국 침몰’과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에빙거 교수는 “이 연구의 중요성은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현상이 인간이 갈 수 없는 바다 밑바닥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같은 것이냐 하는 질문에 ‘같다’는 답을 얻은 것”이라며 “유례없는 국제적 협력으로 가능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의 틈이 ‘독특하고 훌륭한 해양 산마루 실험실’이 된 것이다. 에티오피아 북부 아파르 사막에서 만나는 아프리카판과 아라비아판은 일년에 2.5㎝ 미만의 속도로 3000만년간 벌어져 현재의 아파르 분지와 홍해를 만들었다. 학자들은 수백만년 뒤에 홍해가 새로 생긴 바다로 흘러들고 새 바다가 홍해와 아덴만(예멘과 소말리아 사이의 아라비아해)과 연결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눈길에서 가장 빠른 車 ‘스노우 캣’ 공개

    눈길에서 가장 빠른 車 ‘스노우 캣’ 공개

    눈길에서 만큼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차가 공개됐다. 3일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열린 ‘세마(SEMA)쇼’에는 ‘스바루 WRX STI TRAX’이 전시됐다. ‘스노우 캣’(Snow Cat)이라는 애칭이 붙여진 이 차는 스바루 랠리팀이 직접 개발한 눈길용 랠리카다. 차체는 기존 스바루 WRX의 것을 그대로 사용했지만, 바퀴 대신 궤도를 장착해 눈길에서 뛰어난 주행성능을 발휘한다. 커다란 궤도를 이끌기 위해 엔진도 더욱 강력해졌다. 2.5ℓ 4기통 터보차저 엔진은 400마력의 최고출력과 55.3kg.m의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강력한 힘은 4개의 궤도를 통해 고르게 전달되며, 높아진 차체는 랠리 스포츠용 서스펜션이 안정적으로 지지한다. 실내는 레카로(Recaro)사의 버킷시트와 4점식 안전벨트를 장착돼 운전자의 이탈을 막아준다. 현지 업계에 따르면 이 차는 전시를 위한 쇼카로 실제 양산될 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정치연 자동차전문기자 chiyeon@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희망 UP 현장을 가다] (22) 대우건설 거가대교

    [희망 UP 현장을 가다] (22) 대우건설 거가대교

    경남 거제 저도 앞바다에 해발 100~158m에 이르는 거대한 사장교 주탑들이 위용을 드러냈다. 일반 사장교 주탑 외형은 ‘H’형이지만 이 사장교는 다이아몬드형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곳이 바로 국내 최초로 침매(沈埋)터널 방식으로 건설되는 GK해상도로(거가대교) 현장이다. 국내 토목학계는 물론 세계 교량분야 전문가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현장이기도 하다. 3m 안팎의 파도에도 불구하고 저도 앞바다에서는 자재와 인력을 실은 배들이 쉼 없이 오가고, 사장교 주탑 위에서는 타워크레인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공사는 바다 위에서뿐 아니라 해저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거가대교 구간은 8.2㎞. 이 가운데 가덕도와 중죽도·대죽도 사이 3.7㎞는 국내 최초로 침매터널 방식으로 건설된다. 나머지 해상 구간은 사장교이다. 영국과 프랑스를 잇는 도버터널이 바다 밑을 뚫는 방식이라면 GK해상도로 침매터널 구간은 조립식 해저터널 공법으로 건설된다. 180m에 이르는 함체(콘크리이트 사각터널)를 지상에서 만들어 바다로 운반한 뒤 이를 정해진 위치에 가라앉혀 함체끼리 이어나가는 공법이다. 사장교보다 공사비도 적게 들고 안전해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는 일반화됐다. 하지만 이 현장이 주목받는 것은 그 규모와 첨단 시공기술 때문이다. 침매 함체의 길이가 180m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는 점이다. 함체 하나의 무게만도 4만 7000t에 이른다. 콘크리트 두께만 1.4m이다. 8개로 된 함체의 부품들도 이중조인트로 연결했다. 진도 8, 초속 78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침매 함체는 모두 18개가 들어간다. 또 콘크리트 침매터널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깊은 수심(48m)에서 이뤄진다. 특히 이 현장은 외해(外海)여서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난공사로 꼽힌다. 거센 파도와 싸워야 한다. 이 일대 바다는 연약지반이다. 함체를 연결할 때 조금만 어긋나도 함체가 손상되거나 유실될 수 있지만 아직까지 사고 한번 없이 13번째 함체를 조립했다. 함체 자체도 견고하다. 최종대 대우건설 GK사업관리팀장은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GK 현장은 최첨단 건설 공학이 총동원되는 기술 경연장”이라며 “앞으로 한·일해저터널이나 한·중해저터널이 가시화되면 귀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말 GK해상도로가 완공되면 부산~거제간 거리는 140㎞에서 60㎞로 80㎞ 단축되고, 통행시간도 3시간30분에서 40분으로 단축돼 부산·경남권 경제 활성화에도 큰 보탬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현장&이슈] 5년새 800개 기업 입주 충남 당진 자족도시 부상

    [현장&이슈] 5년새 800개 기업 입주 충남 당진 자족도시 부상

    ‘전통적 농어촌에서 국내 굴지의 철강산업 도시로.’ 충남 당진군이 눈부시게 자족도시의 면모를 갖춰 가고 있다. 당진군의 발전과정은 세종시가 수정됐을 경우 당진군만큼 자족도시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1일 찾은 당진군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이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는 내년 1월 완공 예정인 일관제철소 건설작업이, 18년간 지지부진하다 올해 첫 분양이 이뤄진 석문국가산업단지에서는 매립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당진에는 1000여개의 기업이 있다. 2005년부터 기업이 쇄도해 지금까지 모두 800개가 넘는 기업이 입주했다. 당진에는 현대제철·동부제철·휴스틸·환영철강·현대하이스코 등 철강 대기업과 함께 중외제약과 대한전선 등이 있다. 산업단지가 황해경제자유구역까지 합하면 14개 단지 5600만여㎡에 이른다. 김인재 군 지역경제계장은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기업 입주가 본격화됐다.”고 말했다. 2시간 넘게 걸리던 서울이 1시간대로 줄면서 물류환경이 크게 좋아졌다. 항만을 끼고 있고, 중국과 가까운 점도 작용했다. 철강산업이 발달하면서 대기업은 전용 부두를 갖췄다. 현재는 15선석, 2020년 총 1억t을 처리 가능한 49선석으로 늘어난다. 기업이 입주하자 인구도 크게 늘어났다. 한보부도와 외환위기 후유증으로 2004년 11만 8700명까지 줄어든 인구가 지금은 14만 1000명이 넘는다. 1999년 8332가구에 불과하던 아파트는 현재 2만 4621가구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인구가 급증하자 교육청은 당진군 학교 통폐합 추진을 전면 중단했다. 상권도 커졌다. 10년 전 950개이던 음식점이 올해 2700개로 급증했다. 대형마트 등이 들어왔고, 입지 문의도 여전히 숨가쁘다. 1개뿐이던 영화관은 3곳으로 늘었다. 군내 첫 종합병원도 송악면 기지시리에 300병상 규모로 지어지고 있다. 이 병원은 내년 1월 문을 연다. 주민 박장배(62)씨는 “아프면 천안이나 서산으로 갔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면서 “요즘 당진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고 말했다. 최근엔 특목고 유치추진위원회도 구성했다. 지난 5월 말 당진~대전고속도로가 개통돼 또다시 당진 발전의 기폭제가 될 전망이다. 군은 올해 관광객 1000만명 시대를 개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충남발전연구원 김용웅(도시계획학 박사) 원장은 “세종시는 당진보다 수도권과 멀고 항만이 없는 등 여러 가지 여건이 뒤진다. 기업이 쏟아져 들어온 당진도 인구가 15만명밖에 되지 않는다.”면서 “세종시는 정책결정, 업무, 상업 등이 복합적으로 이뤄져야 인구 50만명으로 클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당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10·26 30주년] 박상범 전 실장의 인터뷰 전문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의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그는 특히 박 전 대통령이 말년에 유신헌법을 개정한 뒤 물러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비화를 들려줬다. 즉, “박 대통령이 집권 18년 정도 됐을 때인데 ‘1∼2년 뒤에는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라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는 얘기였다. 경호 실무자로서 피경호대상을 지켜내지 못한 아쉬움을 넘어 그의 표현대로 “경제적으로 세계사에서 드문, 한강의 기적을 이룬” 박 전대통령이 평화적 권력이양까지 일구지 못한 데 대한 아쉬움이 배어있는 듯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를 안 꺼낼려고 했다.”며 서울신문의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특유의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간 남북정상회담 준비과정의 뒷얘기에서부터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 답방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경호 및 남북관계 전문가로서 견해를 담담하게 피력했다. 합기도 등 각종 무술이 도합 10단이 넘는 무골답지않게 담담한 어조였다.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만에 이 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 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만에 된 것으로 봐야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그런걸 보면 당시 지도자였던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고 강력하게 뒷받침 해줬던 국민의 저력이 “참 대단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해외 나가면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한국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고 느낀다. 서거 30년이 흘렀지만 매년 개인적으로 현충원을 간다. 그분 생각이 가끔 떠오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도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 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 그게 그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였던가 하는 생각을 한다. 가끔 친구들과 부부동반으로 국내를 다니다 보면 관광지 재정비 한 곳을 많이 보는데 대부분 그 때 시작한 것이다. 그 족적을 보면서 당시의 지도자로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정희 대통령을 재평가를 하게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박정희 대통령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것들이 경제나 문화쪽에서 보인다. 최근 광화문 세종대왕 좌상이 생겼지만, 그 전에 이순신 장군 동상 세워지고…. 여주의 영릉이나 아산의 충무공 사당도 그 때 다 성역화됐다. 처음에 갔을때는 초라했는데 그분이 성역화시키고, 그게 우리 역사에서 계속 남는 거다. 사석에서 말씀하는 걸 보면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갖고 계셨다.  ●경호를 하시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으셨겠지만, 그 중에서도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텐데. 1983년의 아웅산사태 때도 아슬아슬했겠지만.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소위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매사 들어봐야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 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최악의 상황을 상정해야한다는 건가.  -그렇다. 아웅산 사태도 마찬가지다. 모든 것들이 다 거기에서부터 시작된다.  ●경호관계자 중 ‘10·26’ 현장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것은 그 때 중앙정보부(현재 국가정보원) 후배가 평소에 후덕한 모습을 기억하고 일부러 비껴 쏴서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게 했다는 말도 있었는데. 확인사살 과정에서 버클에 맞췄다는 얘기도 있었고.  -제 3자를 통해 그런 얘기도 들었지만, 지금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다. 총을 맞고 쓰러져 있었고, 중정 직원들도 다 사형당했으니.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중정 직원들도 참 고생 많이 했다. 대통령 경호원과 한 집안 식구같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 사람들 고생하는거 보고 서로 따듯하게 해서 깊은 우정들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사건이 벌어지는 바람에 사실 정말 안타까웠다. 정말 제가 아끼는 후배들도 있었고 그 중에 저를 참 좋아하는 후배들도 꽤 많았다.  ●정황상으로는 어떤가.  -그 현장이 한 10평 그 정도 밖에 되지않는다. 가운데 직사각형의 막힌 조리대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졌으니까 확인사살은 실수할 리가 없다.  ●군출신 아닌 첫 문민 경호실장을 지냈는데, 박종규, 차지절, 장세동, 안현태, 이현우씨등 군 출신의 여러 경호실장들의 노후는 불행했거나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 욕심 탓인지, 아니면 권력의 비정한 생리나 속성 때문인지.  -둘다로 본다. 하나는 권력의 속성 탓이다. 당시 여러 사회적 여건이 그 자리에 그분들이 있을 때 여건이 그런쪽으로 갈 수 밖에 없게끔 만들어진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의 성격에도 (다소) 문제가 있지 않겠나 싶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으로서 그런 행로를 답습하지 않아야겠다는 철학을 정립했을 것 같은데.  -거기서 오랫동안 생활하다보니 많은 상사들을 모시고 이런저런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확신은 안서지만 내가 만약에 과장자리. 처장자리에 갔을 때 ‘이러이러한 것은 내가 이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많이 했다. 어느 직장이나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우선 권위라는건 꼭 필요하지만 배타된 권위는 안된다. 예컨대 정부 각료들 회의 때 경호실장이 그 자리에 참석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스럽지 않다. 그 안에 근접 경호를 책임지고 있는 팀장도 있기 때문에 굳이 국가 정책 논의하는 그 자리에 경호실장이 꼭 들어가서 앉을 필요가 있느냐. 교육도 참 중요한것 같다. 2년 있는 동안 교육문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 어차피 경호도 국제화되기 때문에 많은 국빈들이 오고 우리 대통령도 1년에 몇 번씩 해외를 순방하고 그런 시대가 돼서 이제 어학 문제라든가 이런것을 체계적으로 해서 경호원들의 수준을 높여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1년 코스이지만 해외 유학도 보냈다. 지금은 우리 후배들 보면 아주 상당한 수준에 와있다는 생각이다. 통역 필요없이 업무를 직접 협의할 정도까지 상당한 직원들이 와 있다. 경호실이 예전처럼 권위적이지 않다. 한 때는 날아가던 새도 떨어뜨린다는 조직이란 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주 순수한 전문 조직으로 자리를 잡지 않으면 안된다. 그리고 경호라는 것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경호하는것이지 인간 누구를 경호하는것 아니다. 적어도 경호실은 그런 생각을 갖고 전문 조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차지철 경호실장이 월권 등으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알력이 생겨 박 대통령 서거라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고 보는 쪽도 있다. 이와 달리 박 대통령이 3선후 유신체제로 가면서 장기집권하는 통에 산업화 이끈 훌륭한 지도자로 남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불행해졌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저는 계장급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정치적이나 정책적인 면 잘 모르지만 다 일리가 있다. 다만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에 의해 저격된 뒤 차지철 실장이 들어왔을때 사회적 환경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차 실장이) 장관들을 배석시킨 채 국기하강식을 한다든가 하는 월권도 저질렀다는데.  -주말마다··· 그랬다. 굉장히 힘들 때가 있었다.  ●차 실장의 다른 독특한 면은.  -차 실장은 그런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금전, 돈 에 대해서 상당히 깨끗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는데 아무것도 남겨놓은 게 없다. 돈에 있어선 깨끗했다.  ●최근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회고록에서 1978년 경제특보 재임 당시 “유신헌법의 대통령 선출방식은 내가 봐도 엉터리야. 그러고서야 어떻게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겠어.”라며 개헌후에 물러나겠다는 박 대통령의 육성을 기록했는데 당시 그런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  -사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난다. 문제는 그 때가 (박 대통령 집권) 18년 정도 됐을때인데 “1~2년 뒤에는 내가 하야를 해야하지 않겠나.”하는 말을 사석에서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게 좀 앞당겨 실현됐더라도 ‘10·26’ 같은 불행한 일은 없었을텐데.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유신헌법 개정안 초안 작업을 하던 신직수 법률특보가 10·26 이후 관련자료를 폐기했다고 남 전총리가 구체적으로 증언했던데.  -2년 정도 뒤에 하야하려고 생각하셨던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박 대통령은 그때 그런 생각을 확실하게 갖고 있었다.  ●문민정부 첫 경호실장 하실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뻔 했는데, 그 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어느 단계에 가서 김일성 주석이 사망했냐면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였다. 물론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돼 버렸다.  ●그 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 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이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저한테 연락이 왔다.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줘야겠다는 연락이었다. 그 자리에서 정리를 다 했다. 경호 쪽에서 인원 줄이고….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될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 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길래 내가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당시에 정책비서관이 ‘맞으면 도사로 모시겠다.’고 농담으로 말하더라.  ●김영삼 대통령에겐 보고했나.  -안했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끝났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일주일 전에 꿈을 꿨다. 새벽 3시쯤 깜짝 놀래서 깼다. 집사람을 깨워 ‘이상한 꿈을 꿨다.’고 하니 집사람이 ‘절대 다른 곳에 가서 말하지 말라. 경호실장이 그런 말 하면 북한가기 싫어서 이야기 한다고 오해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더라.  ●당시 정상회담이 이뤄졌다면 남북관계 큰 진전 있었을 텐데 김일성주석 답방도 있을 수 있고.  -그렇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국의, 한반도의 운명이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든다.  ●꿈으로 나타날 정도면 신경 많이 써서 그런 것 같다. 사상 최초로 북한에 가는 남쪽 정상을 경호 하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 상당했을 것 같다.  -처음 이뤄지는 일이고 민감한 일이었다. 여러가지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실 잠이 안왔다. 현장에서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여건들이 많았는데,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옥쇄할 수 밖에 없다는 각오까지 했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한다는 보도가 잇다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를 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꼭 물리적인 위해가 아니더라도 김 위원장 쪽에선 남쪽 보수단체에서 계란이라도 던지지 않나 이런 것 신경쓰는 거 아닌가.  -그런것도 있고. 예를 들어 근접 경호하는 사람 중에 약간 정신적으로, 순간적으로 문제가 발생돼 총이라도 뽑고 한다면 그건 큰일이 생기는 거다.  ●영화 쉬리의 한 장면 떠오르는데.  -그럴 경우 전쟁터가 되는 거다. 사실 초청한 쪽에선 그런 의도 없더라도…. 그게 젤 위험하다. 우리도 그렇지만 그쪽에서도 그런 생각 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 몇분 모셨나.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등 다섯분을 모셨다. 김종필 총리 인준이 안되는 바람에 (인수인계가 늦어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반 (보훈처장으로) 잠깐 재직하기도 했다.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정희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제 기억으로는.  ●김영삼 대통령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과 같은 보스형 리더십의 소유자인가.  -그렇죠.  ●노태우 대통령은 좀 다르지않나.  -좀 다르다. 최규하 대통령도 그렇고.  ●어느 정부든 할거 없이 대통령 아들 때문에 속썩인 일이 많은데.. (김영삼 대통령 아들인) 현철씨 관련해서 경호실장 하면서 김 대통령에게 직언하자 언짢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그런거 보다도…. 김현철씨 같은 분 보면 예의도 바르고 총명하고 그렇다. 대인관계도 좋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아버님이 두 번씩 대선에 출마할 때 김영삼 대통령과는 부자간의 관계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동지이기도 했다. 대선 때 어려움을 겪으면서 참모역할을 하면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는 한다. 저도 한 2년 현철씨를 접촉했지만 예의바르고 대인관계 좋고 그랬는데, 대통령학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했지만 집권후 1년, 1년반 지나다 보면 주변에 사람들이 자꾸 모이게 되지않나. 어떤 사람들이 주위에 모이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본의 아니게 본인 생각과는 전혀 관계 없이 그런 문제 야기할 가능성이 있다. 오랫동안 다섯 분 대통령 모시면서 보고 느꼈던 일이고, 김현철씨도 그랬던 듯하다. 그래서 그 당시 대통령께 (박관용 비서실장 등을 포함해) 여러분들이 고언을 드렸던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 아들인) 박지만씨와 관련한 에피소드중 기억나는 것은.  -박지만씨가 몇년 전 결혼해서 축복해 주기도 했지만, 그때는 육사를 다녔다. 아주 어릴 때인 1974년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가 서거하신 뒤로 정신적 어려움이 많았고, 그래서 저항적인 그런 쪽으로 한 때 잠깐 바뀌었던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니까 약물도 시작하게 됐고…. 안타깝게 생각하지만, 한편으로 오죽 외롭고 했으면 그랬겠나 하고 이해도 된다. 어린 나이에 부모가 세상을 떠났고, 더군다나 비명에 가시지 않았나. 자연사로 가신것도 아니고…. 다행스러운건 지금 새 보금자리 만들어 잘 살고 있고….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권부 근처에 있었으니 일부 측근들이 엉뚱한 권력을 행사하는것을 보는 등 온갖 인간 군상들을 목격했을 듯한데.  -그런 것들이 대통령의 자제분들이나 가까운 친척 분들을 망가뜨릴 수도 있고. 역시 사람이 젤 중요하다. 사회생활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 대화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기도 하니까.  ●지난 대선에 나온 허경영 후보가 공중부양한다는 농담같은 얘기가 나도는 데 무술의 달인으로서 말하자면 원조 공중부양 전문가라는 소문은 사실인가.  -(손을 내저으며) 에이, 지금은 세월이 흐르니 아픈데도 생기고…. 요즘엔 무술 훈련은 안하고 하루에 한시간 반 정도 집에서 열심히 헬스는 하고 있다. 지금 나이에 무슨 헬스 하냐고, 또 얼마나 오래살라고 그러냐고도 하는데 적어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해야 통일되는 것도 보고, 요즘 G20 그러는데 (한국이) G10 되는 건 보고 죽어야 할것 아니냐는 농담도 한다. 열심히 운동한다. 한 시간 헬스가서 운동하면 기분 좋고 정신도 맑아지고 의욕도 생기고 그렇더라.  ●다친 무릎 때문에 고생한다는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이제 등산은 하지않는다. 가끔 골프할 때는 보호대 차고 한다.  ●공직 땐 골프 안했는데 입문 1년만에 싱글했다는데.  -1998년 3월 중순까지 보훈처장으로 일했다. 그 직후 집사람과 골프 시작해 6개월 만에 80타 쳤다.  ●경호 전문가지만 민주평통 사무총장, 보훈처장 등 남북관계나 안보전문가로서 식견을 사회에 환원할 복안은.  -후배들에게 그런 이야기 많이 한다. 1996년 평통 총장 막바지에 장학재단을 하나 만들었다. 장학재단 일이 다 봉사다. 수익사업 하는것도 아니고.  ●강의 같은 것도 하나.  -강의를 그만둔게 한 3년 됐다.대전 배재대에서 경제학부 학생들이 인간관계론을 강의해달라 해서 2년, 경기대에 경호문제 및 대테러 문제로 석·박사 과정 학생들 한 2년 지도했는데 무척 힘들더라.  ●10·26 사태의 배경을 설명해 달라.  -신문이나 언론을 통해 수없이 많이 보도 됐다. 합동 수사팀들이 조사결과가 가장 정확할 것이다. 그런 사건을 당했던 사람들은 너무 순식간에 일어났더 일들이니까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다음에 모르잖아요. 총맞고 깨어나니 병원이었다. (공식)기록이 가장 중요하다. 작년에 어느 매체에서 1974년 문세광 사건 재조명한다고 했다. 한 11년동안 음성전문가 동원해서 준비했다는데, 어떤 결론을 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니까.  ●경호원이 육 여사 돌아가시게 했다는 추측성 보도를 가리키는 건가요.  -그런 뉘앙스로…. 하도 그래서 내가 한 말이 있다. 총알은 절대 거짓말을 안한다. 탄환이 다 있다. 건물 내부에서 일어났던 일이니까 탄환이 없을리 없잖아요. 총알은 각도가 있다. 그렇게 이해시키려 했는데, 자칫잘못하면 왜곡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 10.26 사건도 조금 전에 말씀드린대로 합동수사팀의 조사결과가 젤 정확하다. 객관적인 측면에서 합동 수사팀에 검찰도 다 들어가고 했기 때문에 숨길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운명이다. 운명이 아니고는 벌어질 수가 없다. 물론 원인도 다들 아시잖아요. 차 실장과 김재규씨하고 인간관계도 있고. (유신정권의)권력독점 문제 등도 있고.  ●호사가들은 미국 CIA가 배후조종했다는 설도 제기하는데요.  -(고개를 저으며)원래 그런 사건에 별별 추측이 다 일어나거든요.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어땠나요.  -그분도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죠. 외모를 보면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가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죠. 예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74년도에 영부인 서거한 뒤에 굉장히 외로워하셨죠. 박근혜씨가 영부인 대행하셨지만 외로움을 타는 것 같았죠. 그러다 보니까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 때 건설된 거죠. 창원 신도시에서 창원 공단, 풍산에는 풍산금속 등이 하나하나 자리잡기 시작했지요. 70년 초만 해도 우리나라가 철모도 하나 못만들었지요. 철모가 간단한거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총알이 맞아도 튕겨나갈 정도가 돼야하는데 그걸 못만들었으니까. 안면도에는 제 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 만들기 시작했지요.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합니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유난히 많이 다녔는가요.  -처음에 말씀드렸지만, 가끔 여행하다 보면 그분의 족적을 볼 수 있다.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요,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 없었거든요. 그런 걸 그 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광양으로 바뀌었죠.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고 그러니까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억들이 납니다  대담 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10·26 30주년] “陸여사 서거뒤 일에 몰두… 국산로켓·잠수함에 집념”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란 게 있는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30주기인 26일을 사흘 앞둔 박상범 전 대통령 경호실장의 소회였다. 1979년 ‘10·26’ 당시 경호계장이었던 그는 궁정동 저격 현장의 경호실 관계자 중 유일한 생존자다. 인터뷰 요청을 완곡하게 사양하던 그였지만, 본지 취재진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민주평통장학재단 그의 사무실을 찾자 온화한 미소로 반겼다. 대담:구본영 편집국 수석부국장 →‘10·26’ 30년을 맞는 소회가 남다를 텐데. -(박 대통령이) 서거하신 지 30년이 된 요즘에 와서 박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를 하는 학술대회도 열고, 유물·기록전시회도 하고 그러더라. 기억하기 싫은 일들이라서 가능한 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수립된 이후 한 60년 만에 이만큼 경제·사회·문화적으로 발전하게 된 나라는 세계사에 없다. 소위 한강의 기적은 정확히 이야기하면 (박 대통령이 집권한 뒤부터) 약 40년 만에 된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가는 나라들이 이 정도까지 올라오는 데 최소한 100~150년 걸렸다. →최근 국제학술회의에서 진보쪽에서도 박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있다. 한 교수는 김일성 유일체제인 북한에 비해 상대적이지만 반대 세력을 허용한 박정희의 남한이, 그리고 개방적·국제적 전략을 택한 남한이 폐쇄적 전략을 취한 북한을 압도했다는 평가를 내렸는데. -당시 그분을 모시고 신변안전을 책임지고 다녔다. 1970년대부터 시작해서 지금 우리 경제를 이끌어가는 핵심인 조선, 제철, 자동차 등이 짧은 기간에 상당한 발전을 했다. 과학분야도…. 요즘 두각을 나타내는 군수산업도 당시에 기초가 다져지고 그랬다. 참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졌던 지도자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유신 때 데모하다가 호주에서 공부한 김형아 호주국립대교수가 박 대통령을 재평가하게 됐다는 말을 했다. 여러 면에서 박 대통령의 캔두이즘(Candoism)이 큰 기반이 됐다 하더라.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캔두이즘이 국민성을 바꿨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그런 신념을 가까이서 감지할 수 있었는지. -나이가 들수록 그런 생각이 난다. ‘할 수 있다.’, ‘우리도 잘살 수 있다.’ 라는 신념을 심어준 것 자체가 중요하다. 그것이 밑거름이 돼 소위 말하는 한강의 기적이 이뤄진 게 아닌가 싶다. →경호를 하면서 사선(死線)을 수차례 넘나들었다. 그 중 ‘10·26’ 현장이 가장 충격적인 기억으로 남아 있을 텐데. -경호했던 사람으로 거기에 대해 이야기할 수가 없다. 자칫 변명으로 들릴 수 있고. 다만 그 이후에 후배들에게 나와 같은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뜻에서 경호 기법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발전시키려고 노력했다. 경호라는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가 있는데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지역을 최소화시키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10·26’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떤 경우라도 경호는 일단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매사를 접근하고 들어봐야 한다. 경호력이 미칠 수 없는 그런 부분을 최소화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경호실장 때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이 1994년 있을 뻔했는데, 그때 경호 관련 협상에서 어느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었나. -경호 통신 문제에 대해 협의가 다 끝나고 일주일 뒤에 우리 경호 선발팀들이 들어가게 돼 있었을 때 김 주석이 사망했다. 총기 휴대하고. 제일 문제된 게 위성 통신 문제였다. 그것까지도 다 원만하게 잘 협의가 돼서 일주일 뒤에는 최종적으로 선발팀이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김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모든 게 중지됐다. →그때 김일성 사망을 예상하는 꿈을 꿨다는 비화가 있던데. -당시 윤여준씨가 안전기획부 제3특보였고, (별세한) 엄익준씨가 북한 국장이었다. 나중에 통일부 장관 지낸 정세현씨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있었다. 오찬하는데 “아무래도 경호실에서 인원을 정리해 줘야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찬이 끝나고 제가 지나가는 이야기로 “아무래도 정상회담 안 될 거 같다.”라고 말하니 다들 깜짝 놀라더라. 경호실장이 그런 이야기하니 (무슨) 특별한 정보있는 줄 알고…. “무슨 이야기냐.”고 하기에 농담처럼 “며칠 전 김일성 주석이 사망해서 관에 입관하는 꿈을 꿨다.”고 얘기했다. →요즘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싶어 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그런데 북측이 김정일 국방위원장 경호문제로 답방에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호상 여러가지 가정도 있는데 그쪽도 똑같은 가정을 놓고 검토할 것 아니겠는가. 아차하는 순간에 발생하는 문제이고 전부 총기를 휴대하고 있으니까 힘들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경호하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성품을 가까이서 봤을 텐데. -서로 다르지만 공통점은 부지런하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건강하다. 그게 아주 공통되는 거 같고 박정희, 전두환, 김영삼 대통령은 카리스마, 결단력이 있었던 분들 같다. 특히 박 대통령 같은 분은 공과가 있겠지만, 30~40년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다. →육 여사 서거후 지만군을 돌보라고 박 대통령이 특별히 밀명 준 건 없나. -그런 건 없고, 그 당시에 지만군이 주말에 나오면 (청와대에) 안 들어가려고 했던 적이 있다. 외출나와서. 대통령이 찾으니까 차지철 실장이 나를 부르더니 “지만이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명동에서 찾아서 데리고 갔던 그런 일도 있고…. 나중에 지만씨가 약물 때문에 보훈병원에서 봉사한 적이 있다. 제가 1997년 초에 보훈처장 할 때였다. 지금은 사업도 잘하고 가정도 이루고 애도 갖고 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말년에 박 대통령이 지방시찰 많이 다녔나. -지금 관광지인 설악동인가, 그게 그 당시엔 정말 형편없었다. 그런 걸 그때 다 정비하는 등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이상 내다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광양제철소는 본래 (충남) 아산에 만들려고 결정됐다가 (전남) 광양으로 바뀌었다. 그때 모시고 현장에 갔을 때 중국 쪽에서 바람이 부니까 매연이 내륙으로 들어오니 전문가들이 건의하고 그래서 현지에서 박 대통령이 “그럼 광양으로 하자.”고 결정했던 기억이 난다. →박 대통령의 인간적인 면모는. -유년시절부터 어렵게 성장하셨던 분이지만, 굉장히 정이 많은 분이었다. 외모는 아주 매섭고, 단구에다 깡마르고, 눈매도 무섭고…. 하지만 인정은 많았다. 전에 골프를 가끔 나가시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근무자를 꼭 챙기셨다. 아주 서민적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1974년 영부인이 서거한 뒤 굉장히 외로워하셨다. 그러다 보니 국정에만 몰두해서 74년 이후 쭉 기록을 봐도 알 수 있지만 공단이나 산업단지 조선소 등이 그때 건설됐다. 안면도에는 제2국방과학연구소가 있었는데 거기서 로켓을 만들었고 타코마라는 회사가 당시 마산에 있었는데 거기서 잠수함을 만들기 시작했다. 허전함을 그런 일로 푸셨던 듯하다. 정리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박상범 전 靑 경호실장 인터뷰 전문 보러가기
  •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 알뜰주부라면 꼭한번!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 알뜰주부라면 꼭한번!

    ‘실물크기로 제작한 5척의 황포돛배, 옛 모습대로 재현한 난전과 주막, 뱃사공 등 조선시대 복장을 한 인물들까지….’ 15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이 옛 마포나루터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축제 한마당으로 변신한다. ‘제2회 한강 마포나루 새우젓 축제’를 맞아 전국 유명 산지에서 올라온 새우젓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다. 서울 마포구는 마포나루의 옛 모습을 감상하고 강경, 광천, 신안, 소래 등 전국 유명 산지에서 올라온 품질 좋은 새우젓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는 새우젓 축제를 17일까지 3일간 연다고 12일 밝혔다. ●김장철 앞두고 전국 유명 새우젓 염가판매 마포구가 주최하고 마포문화원이 주관한 이 축제는 특히 김장철 필수품목인 새우젓을 산지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어 알뜰주부라면 꼭 한번 들러 볼만하다. 강화새우젓영어조합, 소래포구 젓갈상인회, 강경맛깔젓상인협동조합, 광천특산물토굴새우젓재래맛김영어조합, 신안군 등 15개 업체가 참여해 지역의 명예를 걸고 새우젓 판매에 나선다. 15일과 16일엔 하루 한번씩 새우젓 경매행사도 열린다. 마포구청 앞 광장에서는 11개 지역의 특산물 판매장도 운영된다. 월드컵공원 평화광장에는 마포나루의 옛 모습을 고증해 만든 난전과 주막, 실물크기의 황포돛배가 선을 보인다. 전통 캐노피 천막 50여채가 들어서는 난전에는 옛 복장을 한 뱃사공, 보부상, 주모 등이 나와 조선시대 서민들의 생활상과 풍물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전통문화 체험장에서 떡메치기·새끼 꼬기·홀태·베틀·다듬이질 등 101가지에 이르는 옛 물건들을 직접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다. 과거와 우리것에 대한 향수가 자극된다. 옛 마포나루의 풍경을 소개하는 희귀 사진전도 열린다. 옛 마포나루 전경을 비롯해 석재운반을 담은 모습, 소를 태운 나룻배 등 당시의 현장을 담은 희귀 사진들이 대거 전시된다. ●풍성해진 문화공연 등 볼거리 다양 올해 2회째를 맞는 이번 축제는 첫해에 비해 문화공연이 한층 풍성해진 것이 특징이다. 신명나는 강강술래와 흥겨운 춤사위가 어우러지는 북놀이 등 전통민속놀이가 강릉, 진도 등지에서 올라온 마을공동체의 참여로 펼쳐진다. 특히 16일 평화광장에서 펼쳐질 강강술래는 관람객과 진도 소포리 주민이 하나가 돼 축제의 하이라이트를 연출할 것이다. 새우젓 축제 개막 축하공연 ‘tbs 교통방송 한마음 콘서트’가 15일 저녁 평화광장 특설무대에서 진행된다. 16일에는 ‘한전과 함께하는 희망사랑 나눔콘서트’가 마련된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한강 마포나루 새우젓축제는 한강, 마포나루, 새우젓, 황포돛배라는 콘텐츠를 소재로 마포의 전통성을 복원한 축제”라며 “100년 전 경제 항구였던 마포가 21세기에 문화 포구로 거듭나게 되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민경기자 white@seoul.co.kr
  • 명량대첩 재현 국경·지역 뛰어넘어 400년 갈등 깨다

    400여년 전 임진왜란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한·중·일’ 장군들의 후손이 명량해전 전투 현장에 모였다.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울돌목 바다에서 충무공 이순신이 판옥선 12척(공식기록)으로 왜선 133척을 격파한 대승을 기념해 전남도와 해남군, 진도군이 명량해전축제(9~11일)를 공동으로 마련했다. 한산대첩축제를 개최하는 경남 통영시도 삼국의 평화를 위해 축제에 우정 참가했다. ●한·중·일 장수 후손들 한자리에 10일 오전 진도대교 위에서는 명량해전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패들이 상여 3기에 안치됐다. 이날 이 충무공 후손은 물론 명나라 진린 장군의 후손, 일본 구루시마 미치후사 장군 후손, 난중일기에 기록된 ‘민초 전사’ 오극신·양응지의 후손, 관광객 등이 참여해 국화꽃 1000송이를 다리 아래 울돌목으로 일제히 던졌다. 이어 이번 축제의 백미인 명량해전을 재현하는 행사가 한 편의 영화처럼 연출됐다. 축제라고 해도 영화 ‘신기전’과 ‘해운대’의 특수효과팀, 스턴트팀이 참여해 화약과 폭죽 등을 터뜨려 사실감을 더했다. 조선 수군의 판옥선과 일본군의 아타케부네(안택선) 등을 대신해 작은 어선 100여척을 동원하고 수군으로 분장한 300여명이 직접 물로 뛰어들기도 해 관람객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울돌목에서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면서 거센 물살 흐름이 일시 정지되자 판옥선과 왜선이 전투대형으로 갈라서더니 이내 뒤엉켜 연막탄을 쏘아올렸다. 배에는 형형색색의 깃발 500여개가 내걸리고 곳곳에 연기가 피어올랐다. 명량해전은 모함 끝에 다시 해전에 나선 이 충무공이 막강한 왜군을 유인해 좁은 벽파진(폭 280~320m)을 통과하는 왜선을 일자진 공격으로 격파한 대첩이다. 총공격에 나선 왜군은 6명의 장군 중 구루시마 장군이 현장에서 전사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화 1000송이 띄워 희생자 넋 기려 구루시마 장군의 후손인 무라세 마키오(69·구루시마현창보존회 사무국장)는 “울돌목은 선조의 안타까운 혼이 서려 있는 곳”이라면서 “그러나 이번 축제의 주제처럼 한국과 일본 모두가 평화와 상생을 잊지 말고 서로 도우며 잘살아 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린 장군의 후손이자 귀화인 진방식(70·전 교육자)씨는 “할아버지는 명나라의 조선구원군 수군도독으로 500여척을 이끌고 강진, 완도 해전에 참여하는 등 전과를 올렸다.”고 전했다. 진린 장군의 후손은 그의 유언대로 명나라가 멸망하자 해남군 산이면 덕송리 황조마을에 정착했다. ●133척 해전 재현 다큐멘터리 보는 듯 난중일기에 나오는 오극신의 후손 오상민씨는 “울돌목 전투에서 충무공을 도와 왜선을 무찌르는 데 큰 공을 세운 할아버지를 기억해 축제 현장에서 헌화와 제례를 할 수 있어 의미 있고 고맙다.”고 강조했다. 이번 축제에 통영시는 초등학생 50여명을 보내 군점무(군대 점호를 춤으로 엮음)를 무대에 올렸다. 축제 마지막 날인 11일 진도대교에서는 상여 5기에 수백여장의 만장 행렬이 뒤를 따랐다. 망자의 혼을 달래는 진도 씻김굿은 보는 이들을 숙연케 했다. 진도군 전체 786개 마을에서는 마을별 역사와 전설 등을 적은 깃발 786개를 진도대교에 내걸어 주민참여형 축제다운 모습을 보여 줬다. 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부고]

    ●홍영기(일요화가회 고문)씨 별세 지웅(열린책들 대표)현민(두홍시스템 〃)현수(SNI 〃)씨 부친상 임한조(아주대 전자공학부 교수)이태수(LS산전 전력IT생산팀 부장)씨 빙부상 8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10일 오전 7시 (02)2227-7580 ●박규복(전 신한은행 영업본부장)규용(늘푸른교회 담임목사)규섭(신한은행 BPR추진부 부부장)씨 부친상 안철(KT 서안동지사 과장)씨 빙부상 8일 서울성모병원, 발인 10일 오전 6시 (02)2258-5953 ●류명재(인터워크솔루션즈 대표)길재(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영재(서스틴베스트 대표)씨 모친상 8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0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2 ●김경훈(자영업)씨 부친상 조동욱(충북도립대 교수)씨 빙부상 8일 대구 효병원, 발인 10일 오전 9시 016-304-6362 ●이태선(전 진도건설 이사)씨 별세 치덕(신한은행 부부장)씨 부친상 김순일(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이식외과장)이기성(미국 거주)이영근(대한항공 부장)씨 빙부상 7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발인 9일 오전 9시 (02)2227-7556●주경중(영화감독)윤중(서울 강남구청 서기관)씨 부친상 유해룡 신현경씨 빙부상 8일 서울의료원, 발인 10일 오전 8시 (02)3430-0297 ●이진영 완영(전 충북도의회 의원)상영(충북도관광협회장·속리관광개발 대표)은영(한일시멘트 영업팀장)씨 부친상 8일 충북 단양노인병원, 발인 10일 오전 (043)421-4444
  • 쓰나미 위에서 ‘지옥의 서핑’한 남자

    지난달 30일 진도 8.3의 강진이 사모아를 강타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쓰나미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다 간신히 살아난 운 좋은 청년이 언론에 소개됐다. 뉴질랜드 웰링턴에 사는 대학생인 크리스 넬은 당일 아침 서핑을 하려고 바다로 나갔다. 서핑을 하기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고, 곧바로 쓰나미가 닥쳐왔다. 사람들은 재빠르게 움직였지만 바다는 더욱 빠르게 주위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그는 “높은 파도를 보는 순간 해변에 가서 부딪치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파도가 해변으로 갔다가 다시 바다로 밀려들어올 때마다 보드에 바싹 엎드려 휘말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넬은 35~45분가량 떠다니다 파도와 또 다른 파도가 밀려드는 시간차를 노려 무사히 해변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해변에 다시 도착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면서 만약 누구라도 먼저 해변에 닿으려 했다면 분명 죽거나 큰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우리는 운이 매우 좋았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해변에 남아 구조작업을 도우려 했지만 또다시 쓰나미 경보가 발령되면서 어쩔 수 없이 마을을 떠나야 했다.”면서 “‘지옥의 서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엄청난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남도 한가위 손님맞이 한마당축제

    남도 한가위 손님맞이 한마당축제

    ‘한가위(3일)에 고향에서 토요 민속공연과 경매로 즐거움을 더하세요.’ 추석에도 귀성객과 관광객을 위해 전남 목포와 진도, 강진에서 토요잔치가 벌어진다. 진도군은 30일 “3일 오후 2시 진도읍 향토문예회관에서 토요 민속공연을 이어간다.”고 밝혔다. 진도군민들로 이뤄진 군립민속예술단원(25명)이 남도민요창, 기악합주, 진도북춤·북놀이, 강강술래 등으로 열기를 더한다. 공연관람 뒤 세방낙조와 운림산방 등을 도는 이색 답사도 관광객들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지금껏 432회 공연에 20여만명이 관람했다. 3일 오전 11시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에서는 남도예술은행이 소장한 한국화와 서예, 문인화 등 작품이 경매에 들어간다. 30여점이 경매되며 낙찰 가격은 10만~40만원대다. 낙찰자들은 주로 관광객들로 서양화풍이 가미된 한국화작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60번 경매에 1060점이 낙찰됐고 경매낙찰가 총액은 2억 1300만원으로 집계됐다. 전남도립국악단은 3일 오후 5시 전남도청 입구의 목포시민문화체육센터에서 추석맞이 강강술래, 남도민요창, 사물놀이, 창극으로 심봉사 눈 뜨는 대목 등을 무대에 올린다. 단원 50여명이 무대를 달군다. 추석을 맞아 입장료는 없다. 248회를 공연했고 올해 관람객만 1만 3000여명에 이른다. 3일 오후 6시 강진군 마량면 마량항 방파제에 마련된 상설무대에서 토요 음악회가 열린다. 추석맞이 귀성객들을 위해 이번 음악회는 마을별 노래자랑으로 특화했고 푸짐한 상품으로 풍성함을 더한다. 중간에 인기가수 공연도 더해진다. 이 밖에 강진 청자경매는 3일 오후 3시 대구면 사당리 청자박물관 시청각실에서 시작된다. 청자 주전자, 매병 등 12점이 경매 무대에 오른다. 낙찰가는 20만원에서 수백만원을 넘기도 한다. 더욱이 강진군이 운영하는 화목가마(장작불가마)에서 나온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650만원을 넘는 고가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이번 경매에 출품되고 시작가는 320만원부터다. 한편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에서는 한우 판매점들이 한우를 직접 잡아 싼값에 판매한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강강술래 등 5건 세계무형유산 된다

    강강술래 등 5건 세계무형유산 된다

    강강술래 등 우리 고유의 전통 무형문화재 5건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게 될 전망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29일 “아랍에미리트연합 아부다비에서 30일(현지시간) 열리는 유네스코 제4차 세계무형유산위원회에서 우리의 강강술래, 남사당놀이, 영산재, 제주칠머리당영등굿, 처용무 등 5건의 무형문화재에 대해 세계무형유산 등재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라면서 “이들 무형문화재는 무형유산위원회 사전자문회의에서 등재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본회의에서의 등재가 확실시된다.”고 밝혔다. ●오늘 유네스코 본회의서 결정 유네스코에서는 1992년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고, 2006년 ‘무형유산보호협약’을 발효시켜 무형유산의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형태로 외연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세계무형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에는 70개국 90건이 등재돼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중요무형문화재 제1호인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년)을 시작으로, 판소리(2003년·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강릉단오제(2005년·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 등 3건이 등재돼 있는 상태다. 이번 아부다비 회의에서 5건의 등재가 결정되면 모두 8건의 세계무형유산을 보유하게 된다. 강강술래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로서 주로 전남 진도, 해남 등에서 설, 대보름, 추석 등에 행해지며 노래, 무용, 음악이 삼위일체로 이뤄지는 원시종합예술이다. 남사당놀이(중요무형문화재 제3호)는 조선 후기 남사당패가 양반사회의 부도덕성을 놀이를 통해 비판했으며, 경기도 안성에서 전승활동이 이뤄지고 있다. ●남사당놀이·영산재·처용무 등 등재 권고 받아 영산재(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는 49재의 한 형태로 한국불교 태고종 봉원사를 중심으로 이뤄진 의식으로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제주칠머리당영등굿(중요무형문화재 제71호)은 제주시 건입동의 칠머리당에서 하는 굿으로 영등신에 대한 제주도 특유의 해녀신앙과 민속신앙이 담겨 있으며 우리나라 유일의 해녀 굿이다. 처용무(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는 궁중 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추는 춤으로 처용설화를 바탕으로 하며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무용예술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추석 눈앞 고향특산물이 먼저 상경했네

    추석 눈앞 고향특산물이 먼저 상경했네

    추석을 앞두고 서울 시내 곳곳에서 알뜰한 직거래장터와 풍성한 공연이 펼쳐진다. 경기가 어려운 탓에 산지에서 올라온 농수산물은 예년보다 더 싸졌다. 가족이 함께 즐길 만한 공연과 이벤트는 신종플루의 영향으로 줄었지만 내용은 한층 다양해졌다. ●성북구 이천·예산 특산물장터 성북구는 구청사 옆 일자리센터에서 이천·예산·담양·고창 등지에서 올라온 쌀·쇠고기·고추장·더덕 등을 판매한다. 자매결연한 지방 7곳에서 직송해온 토산품들이다. 지역 중소기업이 만든 제수용품도 전시된다. 구로구는 구청 광장에서 구례·진도 등 10곳에서 올라온 특산물을 판매한다. 부녀회는 판매장 주변에 잔치국수·파전·막걸리 등 먹을거리를 내놓는다. 동작구는 노량진근린공원에서 미용비누 등 지역 중소기업 제품 위주로 장터를 꾸민다. 송파구는 잠실 롯데백화점 광장에서 영광굴비, 간고등어, 문어 등을 판매한다. 관악구도 고창복분자주, 평창황태포, 죽염된장 등 농수축산물을 내놓는다. 강북구는 보성녹차·양평한우 등 자매결연지 5곳의 특산품을 선보인다. 청국장분말, 오디잼, 과하주 등 다양한 선물용품도 갖췄다. 지난 설에 2억 1000여만원의 장터매출을 올린 서대문구는 제주, 충북 영동 등에서 올라온 감귤, 옥돔, 사과 등을 판매한다. 물품과 먹을거리를 직접 교환하는 나눔장터도 함께 열린다. 광진구는 구의공원에서 문경사과, 보은인삼, 미시령황태 등을 선보인다. 강동구는 전국 13개 시·군에서 올라온 사과와 배, 복숭아, 인삼 등을 판매한다. 양천구는 25~26일 양천공원에서 평창·경기광주 축협 등과 연계해 한우의 등심·안심·우족 등을 20% 이상 싸게 공급한다. ●강동구 새달 3~4일 전통놀이행사 강동구는 다음달 3~4일 암사동 선사주거지에서 전통놀이와 먹을거리, 국악이 어우러진 행사를 연다. 송편을 직접 빚고 떡메 치기를 배울 수 있는 기회다. 강서구는 오는 30일까지 전통시장 6곳에서 한가위 이벤트를 이어 간다. 송화시장에선 한복을 입고 시장을 배회하는 상인회조합장을 불러 가격흥정을 벌이는 ‘대감님을 잡아라’ 이벤트가 열린다. 양천구 신영시장에선 28일까지 투호 던지기, 상품권 뽑기 등의 행사가 이어진다. 서초구는 26일 방배복지관에서 외국인과 자원봉사자 50여명이 어울리는 송편 빚기를 개최한다. 중랑구는 쌀 250포대를 지원받아 지역 소외계층 250가구에 나눠 주는 나눔 행사를 연다. 중구는 앞서 24일 가수 이은하씨의 공연과 직거래장터가 어우러진 독특한 형식의 장터 콘서트를 선보였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바코드 없는 흑산도 홍어·진돗개는 가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지역특산품인 흑산도 홍어와 진돗개가 ‘명품’으로 관리된다.전남 신안군은 24일 “다음달 1일부터 홍어 꼬리에 바코드를 붙여 홍어를 잡은 배와 날짜. 위판기록 등을 알 수 있도록 생산이력관리시스템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는 흑산 홍어를 가짜와 구별해 신뢰성을 높이고 명품으로 정착시켜 어민소득과 관광소득을 늘린다는 전략이다.소비자는 흑산 홍어의 바코드 번호를 온라인으로 확인한 뒤 신안군(www.shinan.go.kr)이나 자체 홈페이지(www.shinan-heuksan.com)에서 생산이력을 알 수 있다. 지난해 흑산도에서는 홍어잡이 배 7척이 3만 8000여마리를 잡아 35억원대 매출을 올렸다.전라도 잔칫상에 빠지지 않는 고급음식인 홍어는 신선한 회로 먹어도 쫄깃쫄깃하고 담백하지만, 푹 삭혀 먹으면 눈물이 쏙 나올 만큼 쏘는 특유의 맛이 일품이다. 더욱이 홍어와 묵은 김치, 삶은 돼지고기를 함께 먹는 삼합도 유명하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흑산 홍어에 바코드를 붙이고 해마다 흑산 홍어 축제와 포장재 개선으로 홍어의 상품가치를 높이겠다.”고 말했다.또 진도군은 토종개를 대표하는 진돗개(천연기념물 제53호)를 특별관리하기 위해 다음달까지 두 달에 걸친 혈액검사를 마무리한다. 군은 현재 진돗개 혈통 보존을 위해 등록된 진돗개 2000마리를 대상으로 마을 농가를 돌며 채혈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친자를 확인하고, 우수 유전자를 확보하는 한편 혈통서(개족보)를 발급해 진돗개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등록견 이외에 진돗개사업소가 등록해 관리하는 진돗개는 암컷 270마리, 수컷 120마리가 있다. 등록견은 수컷 혈통과 출산 증명서, 유전자 시험을 거쳤다.이렇게 심사를 통과한 진돗개는 목덜미 밑에 전자칩이 부착된다. 진돗개의 고유번호, 이름, 체형, 심사점수 등이 들어 있다. 등록된 진돗개는 군 밖으로 데리고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진돗개가 낳은 새끼 가운데 생후 3개월 내의 등록견이 아닐 때는 진도군 밖으로 내보낸다.신안·진도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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