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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어 포기할까 흔들리는 내 아이 막을 4가지 비법

    영어 포기할까 흔들리는 내 아이 막을 4가지 비법

    집에서 영어를 곧잘 하던 하은(가명·6·여)이는 영어유치원에 편입한 뒤부터 말수가 줄었다. 첫날 영어 합창을 따라 부르지 못한 일과 “한국말을 쓰지 말라”고 외국인 교사에게 지적받은 일을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게 화근인 듯하다. 엄마는 밀린 진도를 맞추느라 하은이와 집에서 3시간씩 영어 공부를 하지만, 영어 실력이 늘지 않아 걱정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영어를 시키는 건 좋지 않다던 누군가의 지적도 떠오른다. 어린이 영어 교재를 분석하고 관련 교구와 교습법을 개발하는 문진미디어 킴앤존슨 영어교육센터 등에서 15년간 일한 신수정(43)씨는 하은이처럼 영어를 포기할 기로에 놓인 아이들을 많이 만났다. 영어 전문 교사들은 아이들이 힘들어 하는 부분을 곧잘 찾아냈지만, 정말 영어가 더딘 아이가 있으면 ‘공’을 엄마에게 돌렸다. 아이의 영어 부진 원인을 노력부족 탓으로 여기고, 숙제를 많이 내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부를 해 오도록 유도했다. 어떤 아이는 숙제를 완성했고, 또 다른 아이는 영어를 포기했다. 신씨는 이런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지 않은지 고민했다. 그리고 찾아낸 게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의 ‘다중지능 이론’이다. 다중지능 이론이란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강점을 지닌 지능의 영역도 각기 다르기 때문에 강점을 발전시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부분도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론이다. 신씨는 “영어유치원이나 학원에서는 아이가 모를 때까지 ‘이건 뭐야’라고 묻는 식으로 가르치는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약점을 찾아내기 위한 교육”이라면서 “아이의 강점을 살려 작은 목표라도 연속해서 달성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신씨가 최근 펴낸 ‘아임리딩’(I´m Reading) 시리즈는 다중지능 이론을 반영한 영어 그림책이다. 언어·음악·신체운동·자기이해·인간친화·자연친화·공간·논리수학 등 8개 영역으로 나누고 영역별로 난이도에 따라 4단계로 수준을 정한 60권의 영어책을 2년 동안 신씨 혼자 창작했다. 그는 “아무래도 외국교재는 문화 차이로 아이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국 정서에 맞는 우리 교재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림책 내용이 한국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경험에 기반했기 때문이다. 할머니 손에 자란 신씨가 어린 시절 할머니 얘기를 들으며 졸졸 따라다니다 책상 밑에 들어가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은 공간 지능 영역의 ‘이상한 나라의 위니’ 이야기가 됐다. 스위스 출장을 다녀온 아빠가 얼음의자에 앉아 있는 사진을 보며 신씨네 다섯 남매가 신기해하던 일화는 남극 펭귄이 도란도란 모여 영사기로 이글루 벽에 쏜 사진을 보는 ‘동굴 속 펭귄 포핀스’로 각색됐다. 펭귄 포핀스는 인간친화 영역에 있다. 집에서 잠시 유기견을 맡았던 경험은 눈이 안 보이는 소녀가 맹인견을 만나 행복해지고 맹인견의 죽음에 슬퍼하는 애틋한 이야기로 인간친화 영역에 담겼다.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영어 공부 걱정을 하게 되는 요즘, 신씨는 “너무 조급해 하지도, 너무 방치하지도 말라”고 당부하며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대학에서 일문과를 전공한 신씨가 영어교육 공부를 본격 시작한 것은 딸 송다인(18)이 때문이었다. 다중지능 이론에 따라 언어 영역에 재능이 있는 다인이를 돕고 싶었다. 다인이가 7살 때까지 사회활동을 쉬었던 신씨는 다인이가 읽어 달라는 만큼 책을 읽어줬고, 공연도 함께 봤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를 본 다인이가 주인공처럼 탭댄스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공부 학원은 안 보내도 탭댄스 학원은 보냈다. 단 “탭댄스를 배우다니 참 이상하구나”라고 말하는 주변 얘기를 못 들은 척하는 ‘강심장’이 필요했다. 아이의 흥미와 강점을 파악했다면 아이가 성공을 경험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책 한 권을 읽어 냈을 때, 좋아하는 영어 단어가 생겼을 때, ‘해피 버스데이 투유’처럼 아주 쉬운 영어 노래를 했을 때에도 축하하고 격려해야 한다. 작은 성공을 이뤘다면 수준을 높여주거나 아이가 어려워하는 다른 영역에 도전하게 해 성공에 대한 욕망을 키워줘야 한다.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이의 목표가 된다. 신씨가 15년간 관찰한 한국 엄마 대부분은 발음 문제 때문에 아이에게 영어책 읽어주기를 꺼렸다. 그래서 ‘아임리딩’ 시리즈를 읽어 줄 CD는 발랄한 낮 시간대 용과 함께 차분한 분위기의 밤 시간대 용을 함께 제작했다. 지식과 감정이 더해졌을 때 기억이 오래 지속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평생 가도 잊히지 않는 기억인 ‘추억’은 감정선이 살아있는 기억이라는 것. 그러니 엄마가 읽어주는 게 좋다. 동영상과 CD 등 다양한 교구를 활용할 수 있지만, 책은 아이의 오감을 발달시키는 데 최적의 교구다. ‘문제풀이’가 아니라 ‘문제해결’에 능한 아이가 되기 바란다면 책을 읽히는 게 좋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책 읽기를 강조하는 한국의 학습 풍토에 비해 실제로 한국 교육과정에서 책 읽은 게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중간고사 성적이 고 3때까지 가는 거래”라고 말하며 답답해 하던 다인이는 2년 전 스스로 수소문한 끝에 인도 국제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며칠 전 다인이는 “엄마 말대로 책을 읽을 걸 그랬어”라는 메일을 보내왔다. 수학도 에세이 쓰기로 시험 보는 그곳에서 책을 읽지 않으면 지식의 부족함을 절실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다인이가 그 학교에서 리듬에 맞춰 몸으로 표현하라는 음악 수업 과제로 탭댄스를 췄더니 박수갈채를 받았다고 해요. 여기서는 공부에 방해된다고 그렇게 눈총받던 탭댄스인데…. 우리나라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아이의 강점에 주목하는 학교와 교육 말이에요.”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러 사할린 근해 규모 8.2 강진…한때 쓰나미 경보

    러 사할린 근해 규모 8.2 강진…한때 쓰나미 경보

    24일 오후 2시 47분쯤 러시아 사할린 근해에서 규모 8.2의 강진이 발생했다고 일본 기상청이 밝혔다. 진원의 위치는 북위 54.7도, 동경 153.4도이고 깊이는 590㎞로 추정됐다. 이 지진으로 일본 훗카이도에서도 진도 1~3이 계측됐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도 이날 오후 2시 44분쯤 사할린 근해(북위 54.87도, 동경 153.334도)의 깊이 601.8km 지점에서 규모 8.2의 지진이 일어났다고 전했다. 로이터통신은 러시아 당국이 한 때 사할린 지역에 쓰나미(지진해일) 경보를 발령했다가 철회했다고 보도했다. 지진 발생지는 일본 도쿄에서 2375km, 러시아 에소(Esso)에서 359km 떨어져 있는 지점으로 알려졌습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무림(舞林)의 고수들

    무림(舞林)의 고수들

    이달 말 두개의 굵직한 무용 무대가 연이어 막을 올린다. 전통과 현대의 장르를 달리하는 무대이지만 국내 무용계를 대표하는 춤의 고수들이 망라됐다는 점, 여타의 공연과는 다른 독특한 기획과 형식으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은 공통분모다. 오는 30~31일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 집 코우스에서 선보이는 ‘팔무전’(八舞傳)은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우리나라 전통 춤의 대가 8명을 나란히 한 무대에 세우는 공연이다. 이런 콘셉트 덕분에 이 공연은 처음 기획된 2008년부터 꾸준히 화제가 돼 왔다. 동문이나 사제(師弟)의 무대가 대세였던 전통 춤 공연 형식을 과감히 깨트린 것이다. ‘~류’ ‘~파’로 한정되는 계보를 과감히 무시하고 분야별 고수들이 자존심을 걸고 무대를 엮는다. 올해는 2011년 ‘남무(男舞)열전’에 이어 여류 춤꾼들이 무대를 꾸민다. 유지화의 ‘부포춤’, 황희연의 ‘진도북춤’, 김정녀의 ‘살풀이춤’, 이애주의 ‘승무’, 한동희 스님의 ‘나비춤’, 김동연의 ‘신태무’, 이현자의 ‘태평무’, 김영숙의 ‘춘앵전’ 등이다. 이 중 ‘부포춤’의 부포는 농악대의 상쇠가 쓰는 전립 위에 달린 꽃송이로, 이 춤에는 여성 대표 상쇠 유지화의 60년 농악 인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진도북춤은 북채 2개를 양손에 들고 추는 춤으로 황희연은 북춤의 명인 고 박병천 선생에게서 이를 사사했다. ‘태평무’는 일제강점기에 한성준이 창안한 춤으로 승무나 경기 무속춤의 춤태가 나타나면서도 발 디딤의 기교가 두드러진다. 이러한 각양각색의 춤들이 진옥섭 한국문화의 집 예술감독의 연출로 신통하게 조화를 이룬다. 전통 춤의 세부 장르들이 총망라된 무대인 만큼 춤사위가 펼쳐지는 ‘공간’도 주목해 볼 묘미다. 마당, 기방, 법당, 궁전을 넘나드는 유연한 무대가 인상적이다. 악사 26명이 연주하는 음악도 곱씹을 감상 포인트다. 1만~3만원. (02)3011-1720. 한국공연예술센터(한팩)가 31일 막을 여는 ‘2013 한팩 솔로이스트’는 현대무용의 대표 무용수들이 최고의 솔로 무대를 펼치는 무대다. 중견 무용수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안무한 작품을 무대에 올리지만 이번 공연은 그런 공식을 깼다. 안무가와 무용수를 1:1로 조합한 것이 특징이다. 안무가는 그동안 구상해 온 동작이나 콘셉트를 무용수를 통해 실현하는 ‘실험’을, 무용수는 춤꾼의 역할에만 전력을 다하는 ‘몰입’을 경험한다. 31일과 6월 1일 이틀간은 4편이 무대에 오른다. 무용수 김성용과 브라질 안무가 지젤라 로샤의 ‘엄마와 낯선 아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안무가 김보람의 ‘혼돈의 시작’, 한국무용가 김혜림과 안무가 김재덕의 ‘초이스’, 현대무용가 밝넝쿨과 권병준 서강대 겸임교수의 ‘파이팅 룸’ 등이다. 6월 7~8일 이어 올려지는 작품은 3편. 무용수 김건중과 독일 안무가 하이디 비어탈러의 ‘스위프트 시프트’, 무용수 정훈목과 벨기에 안무가 프랑크 샤르티에의 ‘존 막’, 무용수 허성임과 벨기에 안무가 스테프 레누어스의 ‘출입구 또는 몽환’ 등이다. 서울 종로구 아르코예술극장. 2만~4만원. (02)3668-0007.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씨줄날줄] 밀양 송전탑/박현갑 논설위원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어요?” 죽은 남편의 고향에서 피아노 교습으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신애(전도연)는 외아들을 유괴로 잃고 눈물로 지새운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신앙으로 이겨내고 범인도 용서하려고 꽃을 들고 교도소를 찾는다. 하지만 살인마는 이미 하나님한테 용서를 받았다며 웃는다. 그녀는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를 할 수 있느냐. 당신이라면 이래도 살겠느냐”고 외친다. 신이 가해자와 한패라는 배신감에 절규하는 그녀를 종찬(송강호)은 말없이 지지하며 위로한다. 영화 ‘밀양’의 줄거리다. 2007년 제6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밀양의 여인’ 전도연은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받으며 밀양을 세계에 알렸다. 밀양은 연극으로도 우리에게 친숙하다. 올해로 13회째가 되는 밀양 여름공연예술축제는 국내의 대표적인 공연예술축제로 자리잡았다. 남편의 외도, 자식의 죽음까지 감내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다룬 연극 ‘어머니’를 연기한 연극인 손숙도 밀양 여인이다. 밀양 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아랑이다. 밀양 부사의 딸 아랑이 어느 날 밤, 달 구경을 나갔다가 자신을 성폭행하려는 남자에게 저항하다 흉기에 찔려 죽는다. 아버지는 딸이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우다 달아난 것으로 생각하고 자리를 물러난다. 그런데 이후 밀양에서는 신임 기관장이 부임 첫날 밤이면 의문의 시체로 발견돼 관료들이 임관을 기피하게 된다. 하지만 이상사(李上舍)라는 기관장은 부임 첫날 밤에 나타난 아랑의 원혼에게서 억울한 사연을 듣고 범인을 찾아내 처형하고 아랑의 주검을 수습해 위로한다. 이후로는 원혼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한국 여인의 지조와 정절의 표상인 아랑낭자 설화의 줄거리다. 정선·진도 아리랑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아리랑의 하나로 꼽히는 밀양아리랑도 이 아랑설화에서 비롯됐다. ‘빽빽할 밀(密), 볕 양(陽)’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밀양은 여름이면 전국 최고기온을 기록하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5월 밀양은 이미 뜨거운 ‘전쟁터’다. 송전탑을 세우려는 한전과 이를 저지하려는 주민들의 갈등으로 후끈 달아올라 있다. 마을 입구와 논, 밭, 뒷산을 가로지를 송전탑 공사를 저지하려고 할머니들은 상의를 벗어젖혔다. 알몸 시위다. 이를 막아야 할 권력의 방패들도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다. 할머니도, 손주뻘인 경찰도 모두 피해자다. 아랑의 원혼을 이상사가 풀어주듯, 종찬이 신애를 묵묵히 바라보며 구원해 주듯, 지금 밀양에는 소통이라는 은밀한 햇살이 필요하다. 박현갑 논설위원 eagleduo@seoul.co.kr
  • 대법 “과거사위 조사 불명확 땐 추가증거 조사로 개별심리해야”

    대법원이 6·25 전쟁 때 벌어진 국민보도연맹 사건, 민간인 학살, 유신시대의 간첩조작 사건 등 과거사 관련 사건에 대한 손해배상 규모 등과 관련해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앞으로 과거사 관련 국가 배상 재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16일 진도 국민보도연맹 사건 희생자 유족 7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유족들에게 각각 1300만∼8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조사보고서를 인정해 손해배상 청구를 인용한 원심 판결은 추가로 필요한 심리를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과거사정리위원회의 보고서는 유력한 증거자료가 될 수 있지만 보고서 판단에 모순이 있거나 진술 등이 불명확할 때는 법원에서 추가 증거조사를 통해 국가에 의한 희생인지 개별적으로 심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과거사 관련 사건의 손해배상에 대한 심리·판단 기준과 관련,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진실규명 결정을 받은 피해자와 유족만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며,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 단기소멸시효기간인 3년 내에 국가배상을 청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증거 판단은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 내용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충실한 사실 심리가 돼야 하고, 피해자들 간의 형평성, 희생자·유족의 숫자 등을 고려해 위자료를 산정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앞으로 하급심 법원의 과거사 관련 국가배상청구소송의 사실 인정과 소멸시효에 대한 통일적인 심리 판단 기준이 정립되고, 법원별로 편차가 큰 위자료도 완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9년 4월 박모씨 등 2명이 6·25 전쟁 당시 경찰관들에게 끌려가 사망했다고 판단하고서 국가가 유족들에게 사과하고 적절한 배상을 할 것을 권고했다. 유족들은 이를 근거로 소송을 냈고 1·2심 재판부는 유족들에게 1300만∼88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모이는 시간도 아껴 공부… 카톡 스터디 ‘붐’

    모이는 시간도 아껴 공부… 카톡 스터디 ‘붐’

    성균관대 3학년 박상석(27)씨는 매일 아침 7시면 ‘카톡’(카카오톡) 메시지가 도착하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문자창엔 ‘카톡 스터디’의 회원들이 라디오 영어 방송에서 나오는 문장을 적어 보낸 내용으로 가득하다. 8시까지 답장을 보내지 않으면 벌금을 내야 한다. 늦어도 9시까지는 그날 공부 계획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고, 시간을 정해 틈틈이 진도를 나타내는 ‘인증샷’을 올린다. 밤 10시에는 목표량을 소화했는지 대화하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이 늘어나면서 카카오톡 등을 이용한 온라인 공부 모임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학업과 취업 준비에 치어 얼굴 볼 시간마저 아까운 20~30대 젊은 층이 온라인에 몰리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편리하게 이용이 가능한 덕분이지만 ‘인스턴트 문화’에 물들어 가는 젊은 층의 세태를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용 방법은 다양하다. 직장인 김윤선(32·여)씨는 “자기계발은 필요한데 일 때문에 학원 갈 시간이 없어 스터디원들과의 영어 대화로 공부를 대신한다”면서 “하루에 20개 정도의 문장을 쓰게 돼 적잖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모(36·여)씨는 “혼자서는 의지가 약해지기 쉬운 ‘공시족’(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나 ‘취준생’(취업 준비생)들은 서로의 학습량을 확인하면서 자극을 받는다”면서 “한 사람씩 출제일을 정해 간단한 OX 퀴즈를 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규칙도 온라인화됐다.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갖지 않는 대신 정기적으로 화상 통화를 하며 스터디 방향을 논의한다. 회계사 스터디를 했던 장유미(25·여)씨는 “매일 아침 퀴즈에 참여하지 않으면 벌금으로 커피 기프티콘(온라인 선물)을 보냈다”면서 “스톱워치로 공부 시간을 재고 밤에는 인증 사진을 찍어 학습량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한 스터디원은 “오프라인에서는 뒤풀이가 빠지지 않아 친목을 위한 자리가 되기 쉽지만 카톡 스터디는 훨씬 촘촘하게 운영되는 장점이 있다”면서 “다만 얼굴도 모르는 사이다 보니 조금 하다가 마음에 안 들면 금세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한동섭 한양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공간과 시간의 제약을 극복해 바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려는 것”이라면서 “오프라인 모임에서 생길 수 있는 불필요한 감정 노동을 피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화도 부담스러워 문자로 대신하는 대학생이 많은 것처럼 직접 만나는 일을 거북스러워 하는 것”이라면서 “쉽게 만나고 쉽게 헤어지는 관계에 익숙해진 젊은 층의 세태를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신안 앞바다서 예인선 침몰

    27일 오후 11시 36분쯤 전남 신안군 장산면 마진도 남쪽 2㎞ 해상에서 완도선적 72.28t 예인선 102신한호(선장 김종태·58)가 침몰해 선장 김씨와 기관장 김정남(63), 선원 김인창(66)씨 등 3명이 실종됐다. 진도 서망항에서 목포항으로 항해 중이던 신한호는 토사를 실은 부선(금산 3001호)과 연결한 줄이 끊기면서 침몰한 것으로 알려졌다. 102신한호는 수색 하루 만인 28일 오전 9시쯤 사고해역에서 발견됐다. 이 선박에는 충돌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손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목포해경은 지난 27일 ‘예인선이 좌초했다’는 신고를 받고 경비정 9척, 헬기 1대를 급파해 실종자 수색작업에 들어갔다. 해경은 부선에 탄 선원 최모씨 등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기초단체장·의원 무공천 ‘반쪽짜리 실험’ ‘묻지마’ 출마… 도미노 선거로 혈세낭비

    4·24 재·보궐 선거는 끝났지만 정치개혁 실험은 미완으로 남았다. 여당의 반쪽짜리 시도로 끝난 기초단체장·의원 무공천, ‘묻지마’식 출마로 도미노 선거를 치르며 혈세를 낭비하는 구태 극복은 여야가 다음 선거에서 해결할 숙제다. 새누리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대선공약 이행을 위해 기초단체장·의원 무공천을 단독 강행했다. 당내 반발이 만만치 않았고 야권도 입법화를 외면했던 탓이다. 여야 정치쇄신특위는 25일 전체회의를 열고 국회의원 선거구 획정제도·당원협의회제도 개선 등과 함께 지방선거 정당공천제 폐지안도 의제로 다루기로 했지만 당장 빛을 보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지방선거 정당공천제는 그동안 공천비리, 지방의 중앙정치 예속, 주민의사 왜곡 등 부작용의 주범이라는 비판을 샀다. 그러나 공천폐지는 기본적으로 야권 호응을 얻기 어렵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통상 무소속 기초단체장·의원은 국비 확보 등을 위해 친여 성향으로 기우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공천제를 폐지할 경우 후보자 검증, 여성·정치신인의 지방정치 진입장벽을 어떻게 해결할지도 관건이다. 지방 의원들이 임기 중 줄줄이 사퇴 후 단체장에 출마하는 폐해를 개선하는 일도 시급하다. 실제로 이번 가평군수 보궐선거는 불과 임기 1년여 짜리 군수를 뽑기 위해 도의원 선거까지 치르는 도미노 선거를 실시했다. 도의원 2명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퇴한 뒤 군수선거에 나서면서 두 의원 선거구의 도의원까지 추가로 뽑게 된 것이다. 이로 인해 군민이 추가 부담하는 세금만 4억 6000여만원에 이르렀다. 경남 함양군도 전직 군수 3명이 당선무효형 등으로 지사직을 상실하면서 민선 5기 들어 벌써 3번째 선거를 치르며 여론 뭇매를 맞았다. 선거비용 역시 함양군이 고스란히 떠안았다. 이런 식으로 2006년 이후 5년간 들어간 재·보궐 선거비용만 해도 720억여원에 달한다. 재·보궐 선거 원인제공자에게 선거비용을 부담토록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현재 국회 안전행정위에 계류 중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쇄신 공약이기도 하지만 진도는 지지부진하다. 서울시장 같은 광역단체장 선거관리비용의 경우 수백억원이기 때문에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비판도 있다. 안행위 관계자는 “선거비용 반환이나 경비 부담이 공무담임권, 직업 선택의 자유를 제약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헌법에서 규정하는 선거공영제 취지를 종합 고려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日 6.3 강진… 18년 전 한신 대지진 재현?

    지난 13일 새벽 일본 효고현 아와지섬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한 원인 등을 놓고 일본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번 지진으로 23명이 부상을 입고 1200여채의 건물 피해가 발생했다. 간사이 지방에서 ‘진도 6’ 이상의 지진이 발생한 것은 사망 6434명, 부상 4만 4000여명, 건물 64만여채 손괴 등의 피해를 냈던 1995년 한신 대지진 이후 처음이다. 지진은 한신 대지진 때와 거의 같은 시간인 새벽 5시쯤 발생했다. 진원지도 비슷하다. 18년 전 한신 대지진 때는 아와지섬 북단이었지만 이번에는 섬 중앙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 이런 이유로 이번 지진이 한신 대지진의 여진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정부 지진조사위원회는 기상청 등의 관측 데이터를 토대로 14일 임시 회의를 연 뒤 이번 지진이 그간 알려지지 않은 활단층(活斷層·현재 활동하고 있거나 활동한 적이 있는 단층)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조사위원회는 여진의 분포 등으로 미뤄 아와지섬 중앙부에 있는 길이 약 10㎞의 알려지지 않은 활단층이 이번 지진을 일으킨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근처에 규모 6.6의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센잔 단층대가 있지만 이번 지진과의 연관성은 분명치 않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이번 지진은 한신 대지진을 일으킨 노지마 단층의 남쪽에서 발생했다. 조사위원회 혼쿠라 요시모리 위원장은 “한신 대지진과 얼마간 관계가 있다는 데 위원들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며 이번 지진이 넓은 의미에서 한신 대지진의 여진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도쿄 이종락 특파원 jrlee@seoul.co.kr
  • “각 부처 국정과제 이행 실시간 점검”

    “각 부처 국정과제 이행 실시간 점검”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국조실)이 각 부처의 국정과제에 대해 사후 평가가 아닌 실시간 평가를 통해 점검·관리해 나가기로 했다. 국조실은 11일 정부세종청사에 국정과제 상황실을 열고, 이날부터 전 중앙 행정기관들로부터 박근혜 정부의 140개 국정과제 및 609개의 관련 세부과제에 대한 일일 진전상황 보고를 받는 등 비상근무에 들어갔다. 140개 국정과제 전체 추진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해 그린(양호)-옐로(약간 지연)-레드(추진 지연 및 문제 발생) 등 신호등 체제로 관리하고 진도관리표(Dash Board)도 만들기로 했다. 그때그때 관련 과제 및 각 부처 이행과정에서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부처 간 이견 조정 및 협업 체제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부처의 국정과제 추진 계획과 실적을 ‘국정과제 온라인 시스템’과 ‘정부평가 온라인 시스템’에 입력해 실시간 모니터링을 하도록 했다. 또 상황실에 영상 회의 시스템을 설치, 서울 등 세종시 밖에 있는 부처들과도 정부 내부통신망 등을 통해 책임자들과 수시로 문제점 등을 논의하는 등 소통을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국정과제 추진·이행상황을 실시간으로 점검·관리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단 오는 6월 4일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까지 국정과제의 조기 안착과 목표 달성을 1차 목표로 삼았다. 예전의 국정과제 추진과정에서 부처 간 영역 다툼이나 갈등이 적지 않았던 점에도 주목하고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해 조정하기로 했다. 또 각 부처의 국정과제 이행 상황을 정부 업무 평가 등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상황실은 이병국 국조실 정부업무평가실장이 총괄책임을 맡고 경제부흥·국민행복·문화융성·평화통일기반팀 등 6개팀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국조실의 총괄정책관이 각 팀의 책임을 지게 했다. 김동연 국무조정실장은 12일 전 부처 차관들을 소집해 국정과제추진협의회를 열고 국정과제 추진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강력한 의지와 방침을 전달하겠다고 말했다. 추진협의회를 통해 각 부처 간 이견 사항과 협업, 세부과제 실행계획을 확정하기로 했다. 국조실은 오는 16일 국정과제와 관련한 내용을 국무회의에 보고하고 국정과제 전략 내부검토회의를 거친 뒤 국정과제 및 세부실행계획을 확정해 나갈 방침이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이날 세종청사 국조실 3층에 마련된 국정과제상황실을 방문해 관계자들로부터 상황실 운영계획, 온라인 국정과제관리시스템 등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정 총리는 이 자리에서 “국정과제 추진상황을 날마다 점검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국민이 현장에서 정책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정부 관계자는 “국정과제의 실시간 점검은 의미가 있지만 기획재정부나 안전행정부 등 힘센 부처들이 국조실 지시를 무시하는 경향이 적지 않아 실질적인 권한 등 성과에 따른 확실한 상벌제도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종 이석우 선임기자 jun88@seoul.co.kr
  • 치유·기원의 굿, 다양하게 즐겨요

    치유·기원의 굿, 다양하게 즐겨요

    구시대적 풍습이나 미신이라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굿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치유법이다. 망자의 넋을 달래고, 마을과 개인의 행복을 기원하는 굿을 다양한 방식으로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줄줄이 열린다. 서울 중구 흥인동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는 오는 26일 오후 7시 30분 ‘서도소리 불후의 명곡 배뱅이굿’을 공연한다. 서도소리 보유자인 이은관(96) 명창과 제자 박정욱(48)이 ‘배뱅이굿’을 완창하는 자리다. 평양식 판소리 ‘배뱅이굿’은 “왔구나, 왔소이다. 황천 갔던 배뱅이 혼신이 오늘에야 왔소이다”라는 구절로 잘 알려져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과 끝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갑자기 죽은 무남독녀 배뱅이를 그리워한 최 정승 부부가 팔도무당을 불러 굿판을 벌인다는 내용의 ‘배뱅이굿’에는 사랑과 사회 비판, 풍자가 녹아 있다. 3만~5만원. (02)2232-5749. 오는 21일 오후 4시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는 ‘서울 굿(Good) 놀이’ 한마당이 펼쳐진다. 경기민요 준보유자 김혜란(64) 명창을 중심으로 국악인 30여명이 출연해 소리극을 꾸민다. 공연에서는 서울굿의 열두 거리를 압축해 보여 주고, 경기민요와 각설이 타령, 재담 등을 섞어 신명난 공연을 만든다. 전석 초대. 010-6233-7948. 국립 남도국악원은 1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서초구 서초동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기획공연 ‘씻김굿’을 올린다. 생전의 원한을 깨끗이 씻는 ‘진도 씻김굿’과 출상 전날 밤샘하면서 슬픔과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다시래기’를 접목했다. 박병원(68) 진도씻김굿 보유자가 특별 출연한다. 5000원. (02)580-3300. 연희집단 ‘더(The) 광대’는 10~11일 오후 8시 서울 중구 필동 서울남산국악당에서 ‘굿모닝 광대굿’을 한판 벌인다. 부정풀이, 씻김, 축원 등 굿의 형식에 흥겨운 놀이를 결합했다. 2만원. (02)399-1111. 최여경 기자 kid@seoul.co.kr
  • 러 과학자 “日 1년반 이내 규모 9.0 대지진 발생”

    러 과학자 “日 1년반 이내 규모 9.0 대지진 발생”

    1년 반 이내 일본 대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러시아의 지진학자 알렉세이 류부신 박사(슈미트 기념 지구물리학연구소)가 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 지구물리학연맹 회의에서 ‘제2의 일본 대지진’의 가능성을 제기했다고 러시아 리아 노보스티 통신 등이 보도했다. 류부신 박사가 이끈 연구진은 지진 예측 시스템인 ‘광대역 지진관측망’(F-net)을 이용해 저주파 대의 지진 노이즈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다. 그 결과, 1년 이내에 규모 9.0(최대 진도 7)급의 거대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나타났다고 류부신 박사는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이날 류부신 박사는 “2011년 3월 일본 북부에서 지진이 발생했지만 이 지역 플레이트의 긴장 상태는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면서 “도쿄 부근 난카이 해구에서 2013~2014년 사이에 거대한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한편 러시아는 지난해부터 영국과 공동으로 지진 예측 위성 개발에 착수했다. 이 위성이 완성되면 모든 지진의 전조가 예측 가능해진다고 한다. 사진=자료사진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참 매운 역사구나, 그 옛날 ‘시월드’

    “며느리 하나 죽는 거는 논둑 하나 무너진 거밖에 안 된다. 큰 소 한 마리 죽는 거보다 몬하다.” (김남규. 1929년생. 포항) “각시를 닛 얻었어. 애기꺼징 낳고. 집이 들어앉아, 다섯 달두 살다, 여섯 달두 살다, 가거덩.” (정소덕. 1931년생. 진도) “화장실에. 옛날에. 짚토매 이런 거 갖다 놓잖아. 그거 훌 깔고. 거기서 낳았어. 우리 큰딸을.” (지용자. 1928년생. 강릉) ‘시집살이 이야기 집성 1’(박이정 출판사)에 채록된 일제 식민지 시절에 태어나 6·25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넘어 1970년대 한강의 기적과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살아온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읽다가 눈물이 찔끔 난다. 지난해 여자 대통령이 탄생한 나라지만,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나 사는 일은 맵고 짜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여성으로 태어난 것을 축복하는 프랑스적 감성을 떠올리면 더 서글퍼진다. 며느리 목숨을 큰 소 한 마리보다 못하게 취급하더니 울꺽 화가 올라오고, 산모사망률이 그리 높을 수밖에 없었음을 지용자 할머니 구술에서 깨달을 수밖에 없다. 바람난 남편과 씨앗을 견디고 살아야 하는 정소덕 할머니는 어떤가. 요즘 같으면 이혼하고 여자에게도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 개명한 세월이 아닌가. 오랫동안 구비문학 연구를 해 온 신동흔 건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비롯한 24명의 연구자가 각 지역을 돌아다니며 모두 109명의 구술 자료를 담았다.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역사적 사건도 포함됐고, 사연의 유형에 따라 총 10권으로 나눴다. 사연을 따라가다 보면 소설이 따로 없다. 신동흔 교수는 “역사학자들이 특정한 관점과 목적의 정보를 확보하기 위해 구술을 받는 것과 달리 국문학자들의 구술정리는 문학적인 접근”이라며 “할머니들이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이야기, 즉 사실은 물론 과장과 허구, 주관적 감정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모두 기록했다”고 했다. 이런 작업의 의의에 대해 신 교수는 “한 사람의 생애는 하나의 우주다”고 말했다. 문소영 기자 symun@seoul.co.kr
  • [서울광장]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레짐 체인지/구본영 논설실장

    [서울광장]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 레짐 체인지/구본영 논설실장

    3차 핵실험 이후 북한의 서슬이 갈수록 시퍼렇다. 유엔안보리 제재결의안이 통과되자 남쪽을 향한 협박이 가히 장난이 아니다. ‘핵 선제타격’이나 ‘제2의 조선전쟁’ 으름장은 예사고, 한반도 비핵화선언과 정전협정의 무효화를 일방적으로 선포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한·미 연례 방어훈련인 키 리졸브 연습이 시작된 지난 11일. 북한 노동당 김정은 제1비서는 우리 측 백령도가 빤히 보이는 월내도에서 “명령만 내리면 적들을 모조리 불도가니에 쓸어넣으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얼마 전 “적들이 우리 영토에 단 한 점의 불꽃이라도 떨군다면 적진을 벌초해 버리라”고 했던 그다. 20대 후반 최고사령관의 목청이 한 옥타브 더 높아졌다. 말 대로라면 북측이 여차하면 무슨 큰일이라도 저지를 태세다. 하지만 우리가 여기에 너무 과민반응을 보일 이유는 없을 듯싶다. 북측의 광기 어린 협박에 대해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IDA) 책임연구원의 분석이 그럴싸하다. 즉 “어린이가 몸집 큰 어른한테 작대기를 한번 휘둘렀는데 어른이 쩔쩔매면 그다음부터는 자꾸 도전의 수위를 높이는 심리”라는 것이다. 하기야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는 속설도 있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북 지도부의 거친 언사는 그들의 절망이 깊어졌다는 증좌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정작 걱정해야 할 대목은 따로 있을 게다. 혈맹인 중국마저 유엔제재에 동참할 낌새를 읽고도 핵실험을 강행했다면 북의 핵보유 의지가 그만큼 강고하다는 얘기다. 김정은의 지상과제는 세습체제를 지켜내는 일일 것이다. 착각이지만 이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 핵보유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임은 불문가지다. 1993년 1차 북핵위기 이후 우리와 국제사회가 대화와 제재 등 온갖 카드를 사용해 봤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오죽하면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인 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조차 “지난 20년간 대북정책은 그 성격이 포용이든 봉쇄이든 북의 (핵)위협을 줄이는 데 분명히 실패했다”고 했겠는가. 이 와중에 북한 주민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고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북한 영유아의 27.9%가 발육부진 상태라고 밝혔다. 유엔개발계획(UNDP) 통계를 보면 북한 영유아 사망률은 우리의 6배 이상이었다. 이는 북한정권의 위기이지만 막 출범한 새 정부에 울린 경보음이기도 하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명명된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남북 간 신뢰를 쌓아가는 바탕 위에서 교류와 협력을 확대해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게 요체다. 그러나 북의 핵실험 및 인공위성으로 포장한 탄도미사일 발사로 ‘박근혜 표’ 정책은 펼치기도 전에 시험대에 오른 형국이다. 북한 세습정권은 진퇴양난에 처한 지 오래다. 주민을 먹여 살리려면 개혁·개방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면 기만적인 주체사상으로 쌓아온 모래성이 무너지고 마는 딜레마다. ‘김씨 조선’의 3대 상속자 김정은이 끝내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는 역설적으로 김정은보다 합리적인 정권으로 북한의 지도부가 바뀌는, ‘레짐 체인지’(정권교체) 이외엔 북의 핵개발이나 대남 도발을 억제할 길이 없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 간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과 사회경제적 교류 협력의 상호 보완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구상이다. 그런 신기능주의적 접근의 취지는 백번 옳다. 하지만 북이 한반도 비핵화라는 중요한 약속을 깬 마당에 당장 진도를 나가기도 어렵다. 북핵을 머리에 이고 살게 된 우리로선 북측이 신뢰를 보여줄 때까지 팔짱만 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표방하되, 조용히 ‘플랜 B’도 가동해야 한다. 자력으로는 개혁·개방을 선택할 수 없어 스스로 레짐 체인지를 부르고 있는 김정은 이후의 시나리오도 짜야 한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가 과연 그런 큰 그림을 그리고 있긴 한지 궁금하다. kby7@seoul.co.kr
  • ‘7명 실종’ 해상 뺑소니 상선 항해사 범행 시인

    전남 진도 해상에서 뒤집혀 선원 7명 전원이 실종된 신안선적 9.77t 연안자망 대광호는 대형 상선과 충돌해 침몰한 것으로 밝혀졌다. 목포해경은 5일 대광호를 충돌하고 달아난 뒤 여수신항에 입항 중인 2960t급 ‘오션어스호’ 2등 항해사 이모(50)씨 등 선원 9명을 붙잡아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해경은 18m 길이의 어선이 조업 중 세 동강이 나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일로 다른 선박과 충돌해 사고가 났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사를 해 왔다. 이 사고로 선장 박재원(48·울산시)씨 등 선원 7명 전원이 실종됐다. LPG 운반선인 오션어스호는 지난 2일 중국을 출항한 뒤 3일 새벽 1시 27분 대광호와 부딪힌 후 그대로 달아나 4일 오후 11시 40분 광양항에 입항했다. 목포해경은 대광호가 지난 3일 오후 11시쯤 인근에 있던 창원호와 위치를 묻는 마지막 교신을 하고 파손된채 표류상태에서 발견된 4일 낮 12시 38분 사이를 중심으로 인근을 지나는 선박들과 통신 내역에 대한 확인 작업을 해왔다. 인근을 지나던 50여척 중 사고 지점에서 1마일 근접 상태에 있던 8척의 배를 파악한 해경은 대광호의 선파 부분과 같은 색깔의 페인트 부분을 오션어스호 앞부분에서 발견했다. 해경은 당직 근무자로 조타기를 잡았던 이씨가 당초 혐의를 부인했지만 충돌 흔적과 항적자료 등을 제시하며 압박하자 ‘부딪힌 것 같다’고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씨를 비롯해 대부분 선원은 충돌 당시 어선이 두 동강이 날 정도의 충격이 있었지만 흔들림 등 느낌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경은 이씨를 6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구속 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같은 선박 충돌 사고는 야간에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인원을 최소하고, 자동키로 조정해서 운항하기 때문에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진도 해상서 어선 전복 ‘두 동강’… 7명 실종

    진도 해상서 어선 전복 ‘두 동강’… 7명 실종

    전남 진도 해상에서 전복된 어선이 두 동강이 나면서 선장 박재원(48)씨 등 7명이 실종됐다. 4일 낮 12시 40분쯤 진도군 조도면 독거도 남쪽 22㎞ 해상에서 신안선적 9.7t급 연안자망어선 대광호가 전복돼 표류 중인 것을 인근을 지나던 화물선이 발견, 목포해양경찰에 신고했다. 해경이 경비정, 헬기를 동원해 확인한 결과 대광호는 두 동강이 난 채 선미는 진도에서, 선수는 10㎞ 떨어진 완도해역에서 발견됐다. 조타실이 있는 선미 부분의 지붕과 엔진은 사라진 상태로 선체 뼈대만 남아 있었고 선저에는 긁힌 흔적이 있다. 해경은 15m 길이의 어선이 두 동강 나 발견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 어선은 지난달 21일 오전 8시 전남 신안군 임자도 삼두리항에서 출항했으며, 지난 3일 오후 11시쯤 인근에 있던 창원호와 위치를 묻는 마지막 교신을 했다. 해경 관계자는 “수중 확인 결과 선미 쪽 조타실을 기준으로 두 동강이 나 충돌 가능성이 높지만 바닥에 긁힌 흔적이 있어 조업 중 수심이 낮아 사고가 났을 수도 있다”고 밝혔다. 해경은 3일 오후 9시부터 이날 오전 11시까지 이 해역을 항해한 50여척의 선박을 대상으로 항로 추적 조사를 벌이고 있다. 목포항에 입항한 선박 2척도 조사 중이다. 해경은 경비정 등을 동원해 사고 해역에서 수색작업을 펴고 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실종자 명단 ▲선장 박재원(48·울산 중구), 선원 진창규(52·전남 목포시), 하인권(63·목포시), 변명철(45·목포시), 홍승완(33·경남 함양), 김성철(37), 김동권(45)
  • [씨줄날줄] ‘대마도의 날’/함혜리 논설위원

    부산에서 불과 50㎞ 거리에 있으며 남북 82㎞, 동서 18㎞의 크기에 넓이 700㎢로 3.4%의 농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산지인 대마도(對馬島). 행정구역상으로 일본 나가사키현 쓰시마시에 속하는 이 섬을 삼국시대엔 진도(津島)라 불렀다. 백제 문화가 일본에 전파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쓰시마의 도주(島主)는 고려 말부터 고려에 조공을 하고 쌀 등 생필품을 받아 갔다. 조선 초 이곳을 근거지로 한 왜구의 침략이 계속되자 세종 원년(1419년)에 삼군도제찰사 이종무가 군사 1만 7285명에 군함 227척을 거느리고 진격해 정벌했다. 이후 조선의 국왕은 쓰시마 도주에게 관직을 내려 조선의 영향력 아래 두기 시작했고, 이 같은 관계는 임진왜란 때까지 꽤 오랜 기간 유지됐다. 마산시의회는 2005년 3월 18일 임시회의에서 ‘대마도의 날 조례’안을 출석의원 전원 찬성으로 가결했다. 조례는 쓰시마섬이 한국 영토임을 대내외에 각인시키며 영유권 확보를 목적으로 하고, 이종무 장군이 쓰시마 정벌을 위해 마산포를 출발한 6월 19일을 ‘대마도의 날’로 정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틀 전 일본 시마네(島根)현 의회는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시마네현으로 편입고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2월 22일을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로 정하는 조례안을 통과시켰다. 마산시의회는 당초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폐기 촉구 결의안을 논의했으나 좀 더 공격적으로 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지면서 대마도의 날 조례를 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시마네현에서는 2006년부터 매년 2월 22일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열고 있다. 지난 22일에도 제8회 행사가 열렸는데 예년과는 사뭇 다른 위상이다. 집권 자민당 내각이 시마지리 아이코 해양정책·영토문제 담당 정무관을 일본 정부대표로 파견했고, 호소다 히로유키 자민당 간사장 대행을 비롯해 여·야 국회의원 19명이 동참했다. 지역 차원의 행사가 사실상 정부행사로 격상된 셈이다. 우리 정부가 강하게 항의하자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이므로 정무관 파견은 당연한 일”이라고 되레 큰소리쳤다. 이러다간 우리도 ‘대마도의 날’ 행사를 정부행사로 격상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2010년 9월 28일 여야 의원 37명은 대마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고취시킨다는 목적으로 대마도포럼을 창립했다. 포럼의 대표 허태열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새 대통령을 보좌하게 됐다. 역사적 함의가 무엇일지 자못 궁금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北 3차 핵실험 강행] TNT 7000t 파괴력… 국정원 “무기화 실패”

    국정원은 12일 감행된 북한의 3차 핵실험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화에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국방부도 이날 핵실험에서 보인 파괴력이 6~7㏏으로 추정된 것에 대해 “예상했던 수준은 아니다”라며 깎아내렸다. 이날 핵실험으로 발생한 인공지진의 규모는 4.9로 조사됐다. 이를 핵폭탄 실험으로 환산했을 때 파괴력은 6~7㏏에 해당한다. 2006년 1차 실험 때(1㏏·규모 3.9)와 2009년 2차 실험 때(2~6㏏·규모 4.5)보다 향상된 수치다. 진도가 0.2 커질 때마다, 발생하는 에너지의 크기가 2배로 증가하는 것을 감안하면 이날 핵실험 폭발력은 2차 때보다 4배 강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한이 가진 핵의 위력이 높아졌고 북한의 핵 기술 역시 발전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그러나 국방부와 국정원은 이날 북한의 3차 핵실험의 파괴력이 당초 예측했던 15㏏ 수준에 이르지 못하자 그 규모와 수위를 낮게 평가했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원자탄을 성공시켰다는 북한의 발표는 과장 광고”라면서 “북핵 능력에 대해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기상청은 이날 인공지진 규모를 5.2,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5.1로 분석했다. 때문에 이번 인공지진의 폭발력이 16㏏ 안팎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핵폭탄(16㏏)의 파괴력과 맞먹는 수준이다.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 폭발력은 21㏏이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은 이날 ‘다종화된 핵억제력’을 언급하며 고농축우라늄(HEU)을 이용한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무기의 안정적 공급 기반을 마련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군 당국은 향후 미국 등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이 이번 핵실험에서 고농축우라늄을 사용했는지 아니면 기존과 같은 플루토늄을 이용했는지를 판별할 계획이다. 핵실험에 사용된 재료는 무인정찰기 등을 통해 크세톤(Xe135), 크립톤(Kr85), 세슘(Cs137) 등 방출된 방사성물질을 채집해 그 비율을 측정하면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한 반 3명 방과후 학교 썰렁해… 하루 4과목 대치동만 뜨겁지

    프린트물을 읽으며 위험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학생, 걸으면서 꾸역꾸역 햄버거를 먹는 고등학생, 차를 끌고 마중나온 열혈 학부모까지. 지난 15일 찾아간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입시 열기는 한겨울 추위를 녹일 정도로 후끈했다. 짧아진 겨울방학과 장기간 불황이 겹치면서 사교육 시장에 칼바람이 분다는 뉴스도 있었지만 명문대 입학을 보장한다는 대치동 학원가는 여전히 활황이었다. 오후 5~6시. 짬을 내 끼니를 때우려는 학생들이 몰려나와 편의점과 패스트푸드점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뛰어가며 햄버거를 먹는 남학생도, 컵떡볶이를 쥐고 책을 읽는 여학생도 눈에 띄었다. 정모(17)양은 컵라면에 삼각김밥을 먹으며 내내 영어 유인물만 쳐다봤다. 하얀 A4 용지에는 ‘swagger’(으스대는), ‘wizened’(쪼글쪼글한), ‘excrement’(대변·배설물) 등 어려운 단어가 빼곡했다. 허겁지겁 배를 채운 학생들은 다시 학원으로 종종걸음을 쳤다. 계단부터 교실 앞까지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학’의 합격 명단이 촘촘히 붙어 있고, 대학배치표와 입시전형 등 관련자료도 가득했다. 학원 입구에 선 부원장은 줄지어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손바닥을 내밀었고, 학생들은 군말 없이 숙제를 제출했다. 과제가 ‘출석도장’인 셈. 그렇게 들어간 교실에서 학생들은 두꺼운 교재에 형광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눈을 빛냈다. 학생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다. 문모(15)군은 “학교 선생님들은 농담 따먹기로 시간만 보내거나,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는데 자기 혼자 진도를 나간다”면서 “선생님도, 교재도, 학습 분위기도 학원이 훨씬 낫다”고 했다. 이모(18)양은 “학교수업은 너무 쉬워서 재미없고 지루하다”면서 “학원에는 공부 잘하는 애들이 많고 어려운 문제도 내줘서 자극이 된다”고 설명했다. 김모(18)양도 “우리 반 애들 전부 학원에 다니는데, 학원 간다고 하면 야간 자율학습을 빼준다”면서 “국어·수학·영어·과학까지 네 과목을 듣는데 수강료는 한 달에 120만원”이라고 귀띔했다. 오후 10시엔 마중나온 학부모들로 대치동 사거리가 꽉 찼다. 도로 양쪽에 서 있는 차만 승용차 53대, 학원승합차 15대. 삼삼오오 나온 중·고생들은 익숙하게 차에 올라 대치동을 빠져나갔다. 20분도 안 돼 도로는 한산해졌다. 신모(16)양은 “엄마가 매일 와서 중1 남동생과 나를 집(서초동)까지 싣고 간다”면서 “우리 동네 학원은 내신 위주로 가르치는데 대치동은 전반적인 실력을 높여준다”고 말했다. S학원 김모(55) 원장은 “학교 교사들은 안정 속에 안주하는 반면 대치동 학원은 학부모 반응이 즉각적이라 연구하지 않으면 바로 도태된다”면서 “교재 개발, 기출문제 분석, 교수법 등 최고의 교육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한 학부모는 대치동을 찾는 이유로 수준별·심화 교육, 경쟁·시험을 통한 자극, 체계적인 성적 관리 등을 꼽았다. 조은지 기자 zone4@seoul.co.kr
  •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3)10세에 정해지는 명문대

    [다시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3)10세에 정해지는 명문대

    “a가 2분의√2보다 큰 상수 a에 대하여…이 문제 한 번 봐봐.” 16일 서울 종로구의 A고 2학년 8반 교실. 방학중 ‘방과후 학교’의 수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참석 학생은 고작 3명뿐. 원래 이 수업에 등록한 학생이 20명이었으니 15%만 출석한 셈이다. 결석률이 무려 85%. 다른 반도 사정은 거의 같았다. 국어 수업을 하고 있는 2학년 2반과 3반도 학생이 각각 5명에 불과했다. 이날 수업에 나온 예비 고3 이모(18)양은 “방학 때 늦잠 잘까 봐 방과후 학교를 등록하기는 했는데 과외도 따로 하는 중”이라면서 “주변 친구들을 봐도 70% 정도가 학교 수업과 상관없이 학원을 다닌다”고 말했다. 2006년부터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진행 중인 방과후 학교가 사교육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목표와 달리 학생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직접 방문 취재를 한 학교 3곳 모두에서 사교육 없이 방과후 학교에만 몰두하는 학생은 찾기 힘들었다. 서울 중랑구 B고는 종로구의 학교보다는 사정이 나았지만 대부분 결석률이 30%를 웃돌았다. 한 교사는 “신청자들조차 결석해도 불이익이 없으니 ‘아프다’, ‘겨울이라 춥다’는 등 변명을 대고 많이 빠진다”면서 “그런 학생들도 인근 중계동에 있는 대형 학원은 빠지지 않고 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방과후 학교가 외면받는 것은 단적으로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교육과학기술부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방과후 학교가 학업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 고등학생들은 65.6점(100점 만점)을 줬다. 중랑구 B고 홍모(18)군은 “학교 수업이 학원 진도를 못 따라가다 보니 만족도가 떨어진다”면서 “올 6월 모의고사 수학 범위에 기하와 벡터가 들어가는데 적분과 통계를 배우는 현재 진도를 보면 손도 못 대게 생겼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강모(18)양은 “고등학교 1·2학년 때는 정말 방과후 학교랑 야간자율학습만 했었다”면서 “선생님들이 열의가 없고 교재 선택도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해 지금은 학원에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학생들의 참석 열기도 높지 않다. 지난해 서울시의 경우 1230개 초·중·고교 모두 방과후 학교를 운용하고 있었으나 학생 참석률은 55.4%에 그쳤다. 특히 중학교의 경우 46.5%를 기록, 가장 참석률이 낮았다. 이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현재 방과후 학교 수업이 이전에 배운 내용을 단순히 보충하는 식이다 보니 학부모나 학생들이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학원을 찾고 있다”면서 “우수 강사 확보나 선생님들의 독창적 교수법 개발 등 공교육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여야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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