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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균 나이 20.7세 방어율 2.59…키움 ‘에이스 트리오’가 뜬다

    키움의 ‘영건 트리오’ 최원태(22), 안우진(20), 이승호(20)의 기세가 매섭다. 평균 20.7세. 나이는 어리지만 10개 구단 중 가장 강력한 토종 선발진이다. 셋이 합쳐 12경기에서 73이닝을 소화하며 평균자책점 2.59를 기록 중이다. 거의 대부분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급 활약을 보여준 것이다. ‘투수 놀음’이 중요한 야구에서 외국인 선수 2명까지 합쳐 5선발이 안정되자 키움의 코칭스태프는 연일 싱글벙글이다. 첫 풀타임 선발에 도전하는 좌완 이승호는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올 시즌 4경기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 중이다. 지난 14일 한화전에서는 개인 한 경기 최다인 탈삼진을 10개나 잡아냈다. 시즌 평균자책점도 3.46으로 안정됐다. 이승호는 올해 개막을 앞두고는 막판까지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다가 지난달 19일 KIA와의 시범경기에서 6이닝 1실점으로 호투를 펼치며 한 자리를 꿰찼다. 2017년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아서 지난해까지는 투구수 관리가 필요했지만 올 시즌에는 매 경기 92~114구를 소화하며 건강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장정석 키움 감독은 이승호 얘기가 나올 때면 “감각적인 부분을 타고난 것 같다. 제구가 좋다”며 연신 치켜세우고 있다. 연봉 3200만원의 ‘데뷔 2년차’ 안우진도 높은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처음 2경기에서는 총 7자책점으로 다소 불안했지만 3~4번째 등판은 모두 무실점으로 막으며 안정감을 되찾았다. 7점대까지 치솟았던 평균자책점은 이제 2.52까지 낮아졌다. 최고 150㎞ 초반대까지 나오는 직구에다 예리한 슬라이더를 보유하고 있던 안우진은 스프링캠프 기간에 커브와 체인지업 연습에 매진한 끝에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배짱이 두둑한 공격적 투구도 장점 중 하나다. 이미 2승(1패)을 챙긴 안우진의 올 시즌 목표는 10승이다. 2017년에 13승, 2018년에 11승을 거두며 키움의 토종 에이스로 자리매김한 최원태는 올해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올 시즌 4경기에서 2승을 거두며 평균 자책점 1.64를 기록 중이다. 1.09의 이닝당 출루허용률도 리그 상위권이다. 2017년에는 어깨, 지난해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매년 시즌 막판 이탈했지만 올 시즌은 다르다. 경기당 5~6이닝씩만 던지며 관리에 들어갔다. 올해는 가을에도 ‘건강한 최원태’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 영건 트리오의 나이는 20대 초반에 불과하다. 서로 경쟁하며 성장한다면 앞으로 10년 이상 마운드를 책임질 수 있다. 리그에서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지만 선수 육성으로 돌파구를 찾은 키움이 ‘부자 구단’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구하라 전 남친 최종범 “동영상 협박은 NO, 인정할 건..”[종합]

    구하라 전 남친 최종범 “동영상 협박은 NO, 인정할 건..”[종합]

    구하라 전 남자친구 최종범 씨가 재물 손괴 혐의만 인정했다. 18일 서울 서초구 서초중앙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상해, 협박 및 강요 혐의를 받고 있는 구하라 전 남친 최종범이 출석했다. 최종범은 지난해 9월 구하라와 다투는 과정에서 팔과 다리 등에 타박상을 입히고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며 협박한 혐의를 받고 있다. 같은 해 8월 구하라 몰래 등과 다리 부분을 촬영하고, 구하라 소속사 대표가 자신 앞에서 무릎을 꿇게 만들라고 강요한 혐의도 있다. 구하라에겐 과거 함께 찍은 사적인 영상을 전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하라는 영상을 전송받은 뒤 엘리베이터에서 최종범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종범 측은 검찰이 증거로 제시한 구하라와 구하라의 동거인, 소속사 대표 등의 진술에 대한 증거 채택을 모두 부인했다. 첫 공판에 참석한 최종범 변호인은 “재물손괴를 한 점은 인정하고 반성하지만, 양형을 참작할 만한 경위를 살펴봐달라”고 말했다. 이어 최종범 변호인은 “사진은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된 것이 아니고, 성적 욕망이나 수치심을 유발할 만한 사진도 아니다”며 “상해도 방어 과정에서 피해자를 제압하다가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성관계 동영상을 빌미로 소속사 대표를 불러서 사과하도록 한 바도 없다며 협박죄도 부인했다. 다만 재물손괴 혐의를 두고는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측은 구하라와 구하라의 동거인, 소속사 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해 다음 기일에 신문할 예정이다. 2차 공판은 5월 30일 진행될 예정이다. 한편 구하라 역시 지난해 최종범과 다투는 과정에서 최종범의 얼굴에 상처를 내 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으나, 기소 유예 처분을 받았다. 이후 팬미팅을 개최하는 등 일본을 무대로 활동을 재개했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대만 화롄 진도 6.1 강진 강타…타이베이서 옷장문이

    대만 화롄 진도 6.1 강진 강타…타이베이서 옷장문이

    대만 동부 화롄에서 리히터 규모 6.1의 강한 지진이 발생해 수도인 타이베이를 비롯한 대만 전역이 크게 흔들렸다. 진앙 인근 지역은 진도가 7까지 올라가기도 했다. 정확한 피해 집계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18일 대만 기상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1분쯤 대만 화롄현 정부 청사로부터 서북쪽으로 10.6㎞ 떨어진 지점에서 진도 6.1의 지진이 발생했다. 중국 지진 당국은 지진 규모가 6.7이라고 밝혔다. 진앙의 정확한 위치는 북위 24도 13분, 동경 121도 52분 지점으로 진원의 깊이는 18.8㎞였다. 이날 지진은 타이베이는 물론 대만해협 건너편인 중국 본토에까지 진동이 감지됐다. 지진이 발생한 화롄현 일대에서는 최대 진도 7의 강한 흔들림이 발생했다. 대만 동부는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에 자리 잡고 있어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이다. 앞서 화롄은 지난해 2월 규모 6.0의 지진이 발생해 17명이 사망하고 280명이 부상했었다. 중국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는 푸젠성과 저장성 등지에서 갑작스러운 진동을 느꼈다는 누리꾼들의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양창수 주타이베이 대표부 대표는 “대만에서는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편인데 이번에는 전보다는 강도가 세게 느껴졌다”면서 “타이베이에 있는 사무실 책상 위의 물건들이 움직이고 옷장의 문이 저절로 열릴 정도였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양 대표는 “현재 대표부의 영사와 행정원들을 동원해 교민들과 단체 여행객들을 중심으로 전화를 돌리면서 일차적으로 체크를 했는데 아직 특별한 피해 상황이 나타난 것은 없었다”면서 “계속 추가 확인 작업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대만에는 1년에 100만명가량의 한국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화롄은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대만 편에서 소개된 타이루거 협곡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골목골목 싹싹… ‘Mr. 클린’ 유덕열 구청장

    골목골목 싹싹… ‘Mr. 클린’ 유덕열 구청장

    “동대문구를 ‘쓰레기 없는 청결도시, 깨끗한 선진도시’로 만들기 위해 총력을 쏟겠습니다.” 유덕열 서울 동대문구청장은 17일 오전 7시 답십리1동에서 직원 및 주민 60여명과 함께 ‘우리 마을 대청소’ 캠페인을 했다. 건물 앞 마대 자루에 몰래 담아 버린 쓰레기들을 수거하고, 빗물받이를 일일이 열어 내부에 쌓인 담배꽁초들을 제거했다. 주민들에게 쓰레기를 제대로 버려 달라고 당부도 했다. 1시간여 동안 3개 이면도로 총 3㎞ 구간에서 2t 트럭 3대 분량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그는 2014년 7월 민선 6기 출범 이후 이 같은 골목 청소 캠페인을 매달 하고 있다. 유 구청장은 주민들이 살기 편한 도시의 선결 조건은 청결이라며 청소 행정에 각별히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지난 1월부터 ‘무단투기단속반 임기제공무원 동 전담제’를 시행하고 있다. 동별로 임기제공무원 1명과 공공근로자 2~3명을 단속반으로 구성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쓰레기 무단투기 주요 발생지역을 정기 순찰하고 있다. 쓰레기 무단투기 및 불법 소각 단속, 폐기물 배출요령 홍보 활동을 한다. 재개발·재건축 예정 지역에서 조합이 방치한 쓰레기 단속도 강화했다. 실제로 올 들어 이달 현재 1990건을 단속해 과태료 1억 3000여만원을 부과했다. 과태료 부과 없는 계도도 6525건에 달한다. 그 결과 동대문구는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무단투기쓰레기 발생량을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0%(550여t) 가까이 감소시켰다. 쓰레기 처리 비용도 1억여원 절감했다. 또 경동시장 등 청량리 전통시장 일대에 대한 쓰레기 무단투기 단속을 강화했다. 지난 1월부터 1개 반 7명으로 운영하던 전담 단속반을 지난달부터 3개 반 14명으로 확대했다. 매주 3회씩 새벽 2시부터 6시 사이에 집중 단속한다. 앞서 구는 지난해 11월부터 추진한 ‘겨울철 청소종합대책’을 지난달 15일 마무리한 바 있다. 직영 환경미화원 노조의 협조를 얻어 일요일 근무자 30명을 확보함으로써 주말에도 청소 공백이 없도록 했다. 동시에 대행업체에서 토요일 저녁 6시부터 일요일 새벽 6시 사이에 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주말 수거제’ 모니터링도 강화해 가로변 청결도를 향상시켰다는 설명이다. 유 구청장은 “무단투기 쓰레기를 잘 치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전에 제대로 배출하는 것도 중요하다”면서 “기초질서를 잘 지킬 수 있도록 홍보와 계도 활동 강화도 병행하겠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이제는 잃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겠습니다

    이제는 잃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겠습니다

    팽목항서 추모극·안전행동의 날 행사 유가족 24명 낚싯배로 사고 해역 찾아 안산 전역 사이렌… 시민 5000명 행사 인천에선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 열려 강원·광주 학생단체 진상 규명 촉구도“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건 잊지 않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16일 전국 곳곳에서 희생자를 기리고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추모행사가 열렸다.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와 4·16재단이 경기 안산시 화랑유원지에서 공동 주관한 ‘기억식’에는 유가족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이재명 경기지사, 이재정 도 교육감, 윤화섭 안산시장, 시민 등 5000여명이 참석했다. 유 부총리는 추도사에서 “세월호 참사 5년이 지났어도 슬픔은 그대로다. 인사도 없이 떠나간 참사 희생자 304명 모두가 (오늘) 우리 곁에 온 것 같다”며 “대한민국은 아직 그 참사가 왜 일어났는지 진상규명을 못 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인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훈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추도사에서 “희생된 우리 아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함께한 모든 분 고맙다”며 “우리 아이들이 별이 됐다고 말을 한다. 정말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 끔찍한 당시를 잊고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안산시 단원고에서는 ‘다시 봄, 희망을 품다’로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약했다. 사회자로 나선 3학년 부회장 김민희양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5주기를 맞았지만, 아직도 진실은 수면 아래 머무르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다짐했다. 행사를 마친 학생들은 노란 리본을 만들고, 사고 당시 2학년 교실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안산교육지원청 내 ‘기억교실’을 찾아가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참사가 발생한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는 이날 오전 ‘다시, 4월’이라는 이름으로 자리를 마련했다. 팽목 바람길 12.5㎞ 걷기에 참석한 추모객들은 기억의 벽 일대를 걸으며 희생자들을 기억했다. 청소년 체험 마당 등에 이어 추모극 ‘세월을 씻어라’가 무대에 올라 참석자들을 눈물로 얼룩지게 했다. 사고 당시 유가족들이 머물렀던 진도체육관에서는 진도군민과 학생 등 500여명이 추모식과 ‘국민 안전 행동의 날’ 행사를 펼쳤다. 인천 부평구 인천가족공원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추모관’에서도 일반인 희생자 추모식이 열렸다. 추모관에는 세월호 사고 당시 희생된 단원고 학생·교사를 제외한 일반인과 세월호 승무원 등 41명의 봉안함이 안치돼 있다. 제주에서도 세월호 촛불연대 주최로 행사가 열렸다. 제주시 산지천광장에서 열린 행사에서는 제주지역 17곳에서 세월호 추모·기억공간을 찾은 사람들이 접은 종이배를 큰 배에 싣고 5년 전 세월호가 도착해야 했던 제주항 2부두까지 행진을 벌였다. 제주국제대에서도 단원고 희생자 중 제주국제대에 명예 입학한 7명을 위한 추모행사가 열렸다. 강원과 광주 지역 시민·학생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특별수사단 설치를 촉구했다. 단원고 학부모 24명은 이날 오전 10시 10분쯤 진도 동거차도 인근 침몰사고 해역을 찾았다. 진도 서망항에서 낚싯배를 타고 도착한 이들은 희생자의 넋을 달래려 차례로 국화를 바다에 던졌다. 한 학부모가 “애들한테 인사합시다”라고 외치자 눈물바다로 바뀌었다. 이승현(당시 16세·단원고 2년)군 아버지 이호진씨는 “답답하죠. 배에 있는데 물이 들어온다 생각해 봐요”라고 되물으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안산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4월, 못잊을 이름…5년, 야속한 세월

    文 “진상규명·책임자 처벌 철저히 할 것” 정치인 도넘은 ‘세월호 망언’ 국민 공분 애꿎은 죽음을 겨냥한 어른들의 끝없는 막말 속에 우리는 어느새 다섯 번째 ‘4·16’을 만났다. 어느 누군가에겐 아들이나 딸, 엄마나 아버지였을 희생자 304명을 떠올린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언어폭력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이날도 어김없이 도마에 올랐다. 국민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조은화, 한고운…’이라고 스러진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은 16일 대한민국 전역에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고 안전한 나라를 일구어 생명을 존중하겠다는 뜻으로 ‘리멤버 20140416’이라는 글을 돋을새김하거나 노란 리본을 달았다. 갈수록 또렷해지는 아픔을 아는지 모르는지, 야속하게 흐른 세월은 침몰사고 해역에서도 오롯이 엿보였다. 숱한 목숨과 함께 세월호를 삼켰던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인근 현장엔 참사를 알리는 부표가 원래 ‘세월호’라는 명칭 중 ‘호’ 글자 부분을 잃은 채 떠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철저히 이뤄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또 “세월호 아이들을 가슴에 간직한 평범한 사람들의 행동이 나라를 바꾸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유가족에겐 “지난 3월 17일 광화문에 모셨던 희생자 영정의 자리를 옮기는 이안식이 있었다. 5년 동안 국민과 함께 울고 껴안으며 위로를 나누던 광화문을 떠나는 유가족 마음이 어떠셨을지 다 가늠 되지 않는다”며 위로를 건넸다. 또 “아이들이 머물렀던 자리가 세월호를 기억하고 안전사고를 대비하는 공간이 됐다는 게 유가족께 작은 위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서울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포토] 세월호 참사 5주기… 녹슨 세월호와 미수습자

    [포토] 세월호 참사 5주기… 녹슨 세월호와 미수습자

    세월호 참사 5주기인 16일 전남 목포신항에서 미수습자 5인의 사진 너머로 세월호가 보이고 있다. 지난 2014년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 등 476명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했고, 304명(미수습자 5명 포함)의 안타까운 목숨이 희생됐다. 2019.4.16 뉴스1
  • JSA귀순 오청성 “영상 속 사람이 나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美NBC 인터뷰

    JSA귀순 오청성 “영상 속 사람이 나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美NBC 인터뷰

    NBC “美언론과 첫 인터뷰”…오 씨 얼굴 사진도 공개2017년 11월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병사 오청성 씨가 미국 NBC방송과 인터뷰를 하고 귀순 과정을 전했다. NBC는 오창성씨의 얼굴도 공개했다. 15일(현지시간) NBC방송에 따르면 오 씨는 귀순을 계획한 것이 아니라면서 “군사분계선(MDL)을 넘은 것이 오후 3시 15분이었고 그날 아침만 해도 남쪽으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의 귀순이 계획된 것이 아니라 우발적이었음을 암시한다. 그는 “상황이 긴박했고 (남쪽으로) 운전을 하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면서 “아주 빠른 속도로 운전을 했다. 아주 겁이 났다”고 했다. 이어 “(귀순) 영상을 볼 때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기적이라는 걸 깨닫는다 ”면서 “나조차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영상 속의 사람이 나라는 걸 믿을 수가 없다(I can‘t believe it’s me in the video)”라고도 했다. 오 씨는 자신이 귀순할 때 다섯 차례의 총격을 가한 전(前) 동료를 탓하지 않는다면서 “내가 그 상황이었다면 나도 총을 쐈을 것이고 이건 우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내가 잡혔다면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총살당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NBC방송은 오 씨와의 인터뷰가 미국 언론과 한 첫 인터뷰라고 전했다. 오 씨는 2017년 11월 13일 JSA에서 군용 지프를 타고 MDL로 돌진하다가 배수로에 빠지자 차에서 내려 남쪽으로 뛰었다. 이 과정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5∼6군데에 총상을 입었으며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수술을 거쳐 회복됐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강원 같은 대형 산불 날라…소방서 없는 지자체들 속앓이

    강원 같은 대형 산불 날라…소방서 없는 지자체들 속앓이

    최근 발생한 강원 동해안 대형 산불로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소방서가 없는 지자체들이 소방서를 신속히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16일 소방청에 따르면 대통령령인 ‘지방소방기관설치에 관한 규정’은 시군구별로 소방서를 설치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시군구 226곳 중 27곳에는 소방서가 설치되지 않았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6곳(곡성, 구례, 장흥, 완도, 진도, 신안)으로 가장 많고 경북 5곳(군위, 청송, 영양, 봉화, 울릉), 전북 4곳(진안, 무주, 임실, 순창), 강원 2곳(화천, 양구) 등이다. 예산 부족 등을 이유로 ‘1지자체 1소방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소방서가 없는 지역에 소방서 설치를 위해서는 지역에 따라 100억~200억원 정도의 예산(전액 지방비)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별로는 전남이 6곳(곡성, 구례, 장흥, 완도, 진도, 신안)으로 가장 많고 경북 5곳(군위, 청송, 영양, 봉화, 울릉), 전북 4곳(진안, 무주, 임실, 순창), 강원 2곳(화천, 양구) 등이다. 경북지역의 경우 포항남부소방서가 담당하는 도서지역인 울릉군은 소방서와의 거리가 200㎞가 넘어 사건·사고 발생시 인력과 장비가 크게 열악한 울릉119안전센터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안동소방서 관할인 영양군과 청송군은 소방서와의 거리가 각 51.5㎞, 41.2㎞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봉화군과 군위군은 19.5㎞, 9.9㎞ 떨어진 영주소방서와 의성소방서의 지원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산불 진화나 인명 구조 시 소방차 도착 시각이 턱없이 늦어지고 있다. 지난해 기준 경북지역의 화재신고 후 7분 내 도착률은 42%로 전국 17개 시·도 중 꼴찌권이다. 2017년 말 구조구급대의 신고 후 10분 내 도착률도 71%로 전국에서 17번째로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청은 2022년까지 시군구 소방서 19곳, 2023년 이후 12곳을 신설토록 해 ‘1시군구 1소방서’ 체제를 구축할 계획이지만 성사가 불투명하다는 지적이다. 지자체 관계자들은 “강원 산불 피해 이후 소방서가 없는 지역의 주민들이 인명 및 재산 피해를 우려하며 불안에 떨고 있다”면서 “관련 예산 확보를 통한 소방서 설치 추진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영상] 세월호참사 5주기, 4·16 그날의 기억

    [영상] 세월호참사 5주기, 4·16 그날의 기억

    지난 12일 세월호 참사 5주기를 앞두고 비극의 아픔이 여전히 가시지 않은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을 찾았다. 차로 다섯 시간 반을 넘게 달려 늦은 아침에 도착한 팽목항. 참사 이후 실종자 구조와 사고 수습, 의료지원을 위해 진도군민 뿐 아니라 전국에서 한 걸음에 달려온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헌신과 땀이 가득했던 이곳엔 쓸쓸한 적막한 기운만이 맴돌았다.팽목항에서 출발해 조도와 관매도를 운행하는 새섬두레호를 기다리는 여행객과 주민들만 간간이 눈에 띠었다. 배를 기다리며 힘든 시간을 쪼개 가족과 함께 팽목항을 찾아온 박근태(37·동대문)씨는 “딸이 태어난 때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해였다. 그래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 사건만 아니었면 이곳은 정말 아름답고 좋은 곳인데, 너무나 안타깝다. 그래도 직접 오니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는 거 같다”며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모든 궁금증이 해소될 만큼 밝혀진 건 없는 거 같다. 유가족 분들에게 어떤 위로의 말이 되겠냐만은 그래도 그분들 제발 건강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은 심인숙(39·동대문)씨도 “세월호를 추모하는 일이 무시받거나, ‘아직까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오버하지’ 라는 식의 시선들이 없어지길 바라며, 정말 마음 놓고 다 같이 진심으로 슬퍼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슬퍼하는 시선조차도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현실이 너무 마음 아프다”고 했다.세월호 참사 유가족 중 유일하게 팽목항에 남아 묵묵히 이곳을 지키고 있는 단원고 학생 故 고우재(당시 18세) 아버지 고영환씨. 세월호 참사 후 2014년 10월 말 경기도 안산에서 팽목항으로 내려온 고씨는 지난해 9월 철거된 팽목항 분향소 자리에 임시로 설치된 ‘세월호 기억관’ 옆 컨테이너에서 숙박을 해결하며 5년째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 기억공간을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고씨는 “이곳 팽목항에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조그만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게 목표다. 그 뒤의 일은 아직 생각 해본 적 없다”며 “국가는 우리 가족을 포함한 모든 피해자 분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나는 아들에게 한 약속만은 꼭 지키겠다”고 했다. 그는 또한 “아들이 천국에선 선배고 난 후배다. 천국에 올라가면 아들에게 살면서 못한 거 속죄할거다. 앞으로도 많이 노력할테니깐 하늘에서라도 지금의 아빠 모습을 많이 지켜봐주고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이날 이곳을 찾은 장완익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사회적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세월호 관련 진상을 최대한 밝힐 수 있는 것만이 피해자분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라며 “진상이 밝혀져야지만 안전한 사회, 안전한 나라 그리고 생명이 존중받는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 박홍규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nasturu@seoul.co.kr
  • ‘주식회사 日’ 취업 한국인 3만 눈앞… “차별 적지만 일본어 필수”

    “나름대로 빠른 결정을 내린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일본 기업은 ‘스펙’을 안 보고 잠재력을 본다는 데 마음이 끌렸습니다.” 도쿄의 통신 대기업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소연(34)씨는 국내 명문대학을 나왔음에도 학과의 장벽에 가로막혀 원하는 기업 입사가 어렵게 되자 일본행을 택했다. 산업인력관리공단 주최 해외취업박람회를 통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강씨는 철저하게 발로 뛰는 기업 탐색을 강조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무 선입견도 갖지 않은 채 일본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직접 만나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를 묻고 또 물었어요.” 강씨는 “우리 회사는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보라’는 식으로 직원이 해보고 싶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문화가 강하다”고 말했다. “일본인과 차별 없이 나를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각박하다고 할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쓴다든지 하는 건 정말로 철저합니다. ‘12시’와 ‘12시 1분’은 완전히 다른 시간이라는 거죠.” 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 중인 박종찬(31)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왔다. 국내 대기업 입사가 내정돼 있었지만 ‘더 늦으면 해볼 수 없는 도전’을 위해 용기를 내서 일본에 왔다. “오기 전에 하루 8시간 이상 정말로 ‘목숨을 걸고’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처음에는 편의점에서 ‘도시락 데워드릴까요’ 하는 정도의 일본어도 안 들리더군요. 아, 한국에서 익힌 일본어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기초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일본어 능력입니다.” 그는 “가장 큰 적은 역시 외로움”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친한 선후배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이런 게 안되는 건 각오를 하고 와야 해요. ‘차별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피해의식과도 싸워야 해요. 제가 쓴 일본어 문장에 대해 직장 상사가 어색하다고 지적하면 저도 모르게 ‘이런 게 차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심리적 불안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일본인 동료도 그 상사에게 혼나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저 분이 나를 혼내지 않는 게 더 차별이겠지’ 생각하며 힘을 냈지요. 마음을 좀더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종진(32)씨의 말. “한국에서 일본 취업에 대해 너무 쉽게들 얘기하는 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몇 년 살아본 입장에서 보면 그런 태도들이 준비 없이 일본에 오는 ‘예비 실패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아무리 구인난이 심하다고 해도 일본 기업들이 준비 안 된 사람을 뽑을 리가 없죠. 설령 입사에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막연하게 정보기술(IT) 업체라는 정도만 알고 건너왔다가 애초 기대와 너무 달라 서너 달 만에 돌아가버린 경우도 봤습니다.” 백지선(29)씨는 사이타마의 의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는 데 적극적이고 리더십도 더 강하다는 점을 일본 기업에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러한 부분을 잘만 살리면 승진도 일본인보다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자격증 사회여서 영어 토익 점수처럼 남에게 보여주어야 할 스펙이 필요하지만, 일본 회사들은 그런 면보다는 그 사람의 잠재능력을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만들어진 사람을 데려다 필요한 곳에 투입하는 한국과 달리 우선은 될성부른 인재를 입사시킨 뒤 자기 기업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IT 회사인 다이코IWS의 야스다 마사시 솔루션사업본부장은 취업을 위해 일본에 올 때 주의할 점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이 많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일본에 와서 근무를 하는 이상 한국의 상식적인 일이 일본에서는 ‘비상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 시작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스다 본부장은 한국인의 ‘단점’에 대해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전제 하에 “가족 사정 등을 이유로 너무 간단하게 퇴직 절차를 밟고 한국으로 돌아가버린다든지, 장기적인 안목의 로드맵을 설계하지 않고 성급하게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성향은 다소 아쉽다”고 했다. 글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가파른 증가세를 타면서 누적인원 3만명을 내다보고 있다. 15일 일본 후생노동성 등에 따르면 ‘기술·인문지식·국제업무’ 비자(통상적인 취업비자)를 통해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은 지난해 10월 기준 2만 4434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14% 늘어난 것으로 2014년 1만 2972명과 비교할 때 불과 4년 새 2배가 된 것이다.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늘어난 것은 양쪽의 노동력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에서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급증했고, 일본에서는 경기 회복과 인구 감소·고령화 등이 겹치면서 갈수록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 기업에서 청춘의 도전에 나선 우리 청년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세월호 5주기] “악플보다 세월호와 함께한 눈물이 훨씬 많아요, 꼭 기억하세요”

    [세월호 5주기] “악플보다 세월호와 함께한 눈물이 훨씬 많아요, 꼭 기억하세요”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 글 올린 A씨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난 5년간 슬픔에 잠겨 있지만은 않았다. 진실을 은폐하려는 국가 권력과 맞서 싸웠고, 또 다른 재난이 발생하면 먼저 달려가 피해자들을 보듬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와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다. 팽목항으로 달려가 세월호 유족들과 함께했다. 재난 피해자들의 끈끈한 연대가 안전 사회의 귀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저는 정부로부터 제대로 사과를 받았는데도 20여년 전 그 일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요. 그런데 세월호 때는 정부 사과는커녕 진실조차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잖아요. 어떻게 세월호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피해자 A(필명 산만언니)씨는 지난 11일 서울신문과 만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대처는 삼풍백화점 때보다 못했다”고 비판했다. A씨는 세월호 침몰 직후 전남 진도 현장으로 달려갔다. A씨는 삼풍백화점 붕괴 때 정부의 대응은 비교적 빠르고 확실했다고 기억한다. 당시 A씨는 뒤에서 날아온 건물 파편에 피투성이가 됐다. 다행히 지나던 시민이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입원실로 조순 당시 서울시장의 꽃바구니와 위로금이 왔다. 공무원들도 수차례 다녀갔다. 따로 요구하지 않았는데 대통령이 사과했고, 보상금도 바로 지급됐다. 사고 원인을 제공한 공무원 다수가 처벌받았다. 세월호 참사를 보며 A씨는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는 생각을 했다. 여론도 삼풍 때와 달랐다. 일부 시민들은 세월호 가족들에게 ‘자식 목숨 장사’를 한다며 손가락질했다. A씨는 지난해 한 네티즌이 올린 세월호 유가족 비난 글을 보고는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 결국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 생존자가 말할게요’를 통해 삼풍 사고와 세월호 참사에서 정부와 사회의 달랐던 반응을 조목조목 나열했다. 수십 개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공유됐다. 그는 “세월호 어머니들에게 위로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고 말했다. “참사 생존자인 내가 그들 대신 말해 줘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돈을 들먹이며 유족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나도 충분한 보상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 돈 열 배를 돌려주고서라도 안 겪었으면 하는 게 피해자 마음”이라고 썼다. 세월호 유가족과 연고가 없는 A씨는 최근 가까운 수녀님을 통해 세월호 어머니들이 자신의 글을 접하고 많이 울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진심이 돌고 돌아 닿은 뭉클한 순간이었다. 분노로 올린 글이었지만, A씨에겐 ‘따뜻한 기억’으로 남았다. 그의 글을 공유하며 세월호 피해자들을 걱정하고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악플을 달고 모진 말을 하는 도드라진 소수보다 함께 아파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세월호 유가족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씨는 ‘피해자다움’ 프레임에서 과감하게 벗어날 것을 조언했다. 그는 “나를 만난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얘기가 ‘우울하게 살 줄 알았는데 멀쩡해서 놀랐다’는 것이었다”고 전했다. A씨에겐 그런 말이 2차 가해로 느껴졌다. “피해자들이 더 크게 웃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무리 슬픈 장례식장이라도 밥은 먹고 웃을 수도 있잖아요.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행도 다니고 맛집도 다니면서 밝게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주식회사 日’ 취업 한국인 3만 눈앞… “차별 적지만 일본어 필수”

    ‘주식회사 日’ 취업 한국인 3만 눈앞… “차별 적지만 일본어 필수”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가파른 증가세를 타면서 누적인원 3만명을 내다보고 있다. 15일 일본 후생노동성 등에 따르면 ‘기술·인문지식·국제업무’ 비자(통상적인 취업비자)를 통해 일본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한국인은 지난해 10월 기준 2만 4434명에 이른다. 1년 전보다 14% 늘어난 것으로 2014년 1만 2972명과 비교할 때 불과 4년 새 2배가 됐다. 한국 청년들의 일본 취업이 늘어난 것은 양쪽의 노동력 수요와 공급이 맞아떨어진 결과다. 한국에서는 심각한 취업난 속에 일본으로 눈을 돌리는 청년들이 급증했고, 일본에서는 경기 회복과 인구 감소·고령화 등이 겹치면서 갈수록 구인난이 심각해지고 있다. 일본 기업에서 청춘의 도전에 나선 우리 청년들을 만나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봤다.“나름대로 빠른 결정을 내린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일본 기업은 ‘스펙’을 안 보고 잠재력을 본다는 데 마음이 끌렸습니다.” 도쿄의 통신 대기업에서 8년째 근무하고 있는 강소연(34)씨는 국내 명문대학을 나왔음에도 학과의 장벽에 가로막혀 원하는 기업 입사가 어렵게 되자 일본행을 택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 주최 해외취업박람회를 통해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와 인연을 맺었다. 강씨는 철저하게 발로 뛰는 기업 탐색을 강조했다. “책상머리에 앉아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는 것은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아무 선입견도 갖지 않은 채 일본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직접 만나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를 묻고 또 물었어요.” 강씨는 “우리 회사는 ‘당신이 하고 싶으면 해보라’는 식으로 직원이 해보고 싶어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는 문화가 강하다”고 말했다. “일본인과 차별 없이 나를 감싸준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많아요. 하지만 각박하다고 할까.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서 쓴다든지 하는 건 정말로 철저합니다. ‘12시’와 ‘12시 1분’은 완전히 다른 시간이라는 거죠.”글로벌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 중인 박종찬(31)씨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에 왔다. 국내 대기업 입사가 내정돼 있었지만 ‘더 늦으면 해볼 수 없는 도전’을 위해 용기를 내서 일본에 왔다. “오기 전에 하루 8시간 이상 정말로 ‘목숨을 걸고’ 일본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처음에는 편의점에서 ‘도시락 데워드릴까요’ 하는 정도의 일본어도 안 들리더군요. 아, 한국에서 익힌 일본어로는 명함도 못 내밀겠구나 싶은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기초적으로 중요한 것은 역시 일본어 능력입니다.” 그는 “가장 큰 적은 역시 외로움”이라고 했다. “퇴근하고 친한 선후배와 삼겹살에 소주 한 잔, 이런 게 안되는 건 각오를 하고 와야 해요. ‘차별을 받고 있는 건 아닌가’에 대한 피해의식과도 싸워야 해요. 제가 쓴 일본어 문장에 대해 직장 상사가 어색하다고 지적하면 저도 모르게 ‘이런 게 차별인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심리적 불안이 원인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일본인 동료도 그 상사에게 혼나는 걸 보면서 ‘오히려 저 분이 나를 혼내지 않는 게 더 차별이겠지’ 생각하며 힘을 냈지요. 마음을 좀더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소프트웨어 회사에서 근무하는 이종진(32)씨의 말. “한국에서 일본 취업에 대해 너무 쉽게들 얘기하는 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에 몇 년 살아본 입장에서 보면 그런 태도들이 준비 없이 일본에 오는 ‘예비 실패자’들을 양산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아무리 구인난이 심하다고 해도 일본 기업들이 준비 안 된 사람을 뽑을 리가 없죠. 설령 입사에 성공한다고 해도 문제입니다. 막연하게 정보기술(IT) 업체라는 정도만 알고 건너왔다가 애초 기대와 너무 달라 서너 달 만에 돌아가버린 경우도 봤습니다.” 백지선(29)씨는 사이타마의 의류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말하는 데 적극적이고 리더십도 더 강하다는 점을 일본 기업에서도 아주 잘 알고 있다”면서 “이러한 부분을 잘만 살리면 승진도 일본인보다 빠르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자격증 사회여서 영어 토익 점수처럼 남에게 보여주어야 할 스펙이 필요하지만, 일본 회사들은 그런 면보다는 그 사람의 잠재능력을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만들어진 사람을 데려다 필요한 곳에 투입하는 한국과 달리 우선은 될성부른 인재를 입사시킨 뒤 자기 기업의 사람으로 만들어가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IT 회사인 다이코IWS의 야스다 마사시 솔루션사업본부장은 취업을 위해 일본에 올 때 주의할 점과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해도 다양한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그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일본인이 많지 않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도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필요하겠지만, 어차피 일본에 와서 근무를 하는 이상 한국의 상식적인 일이 일본에서는 ‘비상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인지하는 것이 시작 단계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야스다 본부장은 한국인의 ‘단점’에 대해 ‘일반적으로 얘기되고 있는 부분’이라는 전제 하에 “가족 사정 등을 이유로 너무 간단하게 퇴직 절차를 밟고 한국으로 돌아가버린다든지, 장기적인 안목의 로드맵을 설계하지 않고 성급하게 자신을 높이 평가해주기를 바라는 성향은 다소 아쉽다”고 했다. 글 사진 도쿄 김태균 특파원 windsea@seoul.co.kr
  • [세월호 5주기]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죽은 참사… 그날 해경의 1시간30분 밝혀야”

    [세월호 5주기] “살 수 있었던 아이들 죽은 참사… 그날 해경의 1시간30분 밝혀야”

    거리엔 벚꽃과 개나리가 만발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여기저기 웃음꽃이 피어난다. 4월은 그렇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그런 4월이 잔인하기만 하다. 2014년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다. 이들은 줄곧 함께 분노하고 울었지만 먹먹함은 더할 뿐 사그라지지 않는다. 아이가 살아 돌아오지 않는 한 그들에게 치유란 단어는 없다. ‘예은이’ 아빠 유경근(50)씨도 그런 사람이다. 딸 예은(당시 16·단원고 2년)은 이제 곁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15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중앙대로 4·16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유씨를 만났다. 노란 리본을 새긴 점퍼가 ‘이제라도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바람을 외치는 듯했다. 유씨는 “진상규명에 5년째 매달리고 있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점 투성이다. 후손들에게 어떤 교훈을 남길지 고민해야 한다”며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세월호 참사 본질은 선박 사고에 그치지 않아요. 당연히 살았어야 할 사람들이 죽었는데 사고원인을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세월호 침몰 전까지 최소 1시간 30분가량 여유가 있었는데도 왜 적극적으로 구조에 나서지 않았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가슴을 쳤다. 사고 선박에 도착한 해경이 마이크를 통해 승객 탈출을 권유했다면 최소 6분, 길어야 8분이면 모두 탈출할 수 있었다는 게 재판 과정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유가족들이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아이들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 것도 아니다. 꼭 5년 전 오늘 아침 아이들로부터 사고 소식을 듣곤 “빨리 그곳을 탈출하라”고 얘기를 못 건넨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한다. “그토록 엄마아빠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부모랍시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안내방송 잘 따라야 한다’고 오히려 타일렀다”며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아이들에게 미안해 죽고 싶은 심경”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유가족들이 여태 진상규명에 매달리며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이유다. 더러 “박근혜 대통령도 탄핵됐고 정권도 바뀌었는데 차분하게 기다리면 되지 않느냐”라고 불편한 시선도 보내지만 진상규명은 이제부터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달 2기 ‘특조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밝힌 중간조사 발표 내용에 주목한다. 특조위는 해군이 2014년 6월 세월호 선내 안내 데스크에서 수거했다고 주장해 온 폐쇄회로(CC)TV DVR(영상녹화장치)과 검찰이 확보한 DVR이 서로 다른 것으로 의심되는 단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유씨는 “유가족들은 사고 직후 해경에 DVR을 빨리 수거하라고 요청했으나 소극적이었고 수거 사실도 뒤늦게 알게 됐다. 당시 영상을 조작했다고 의심할 만한 여러 정황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영상 조작이 사실이라면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누가 어떤 이유로 기획하고 진행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무사가 세월호 참사에 개입해 실종자 가족 성향을 분석하고 개인 신상을 털어 성향을 분류한 사실이 최근 공개된 문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 사고로 여기다가 갈수록 아닐 수도 있다는 심증이 확증으로 굳었다”고 했다. “우리 어른들은 죄인입니다. 어쩔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죽은 게 아니라 사람을 구조하지 않아서 벌어진 게 세월호 대참사입니다.” 유씨는 “우리 아이들처럼 억울하게 희생되는 동생들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게 아이들의 명령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5년을 보냈는데 앞으로 50년을 가는 것도 두렵지 않다”고 거듭 강조했다. ‘동수 아빠’ 정성욱(49)씨는 “(당시 단원고 2학년이던 아들이) 시흥으로 이사를 해서 1시간 20분 거리를 통학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입을 뗐다. 이어 “바쁘다는 핑게로 동수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해 아직도 미안하다”고 아쉬워했다. 세월호 트라우마 탓에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권유에도 “내 몸 하나 편해지려는 듯해 아이에게 미안해 포기했다”고 귀띔했다. 또 “의혹이 늘어나지만 2기 특조위엔 수사권이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며 특별수사단 구성을 정부에 요구했다. ‘준형 아빠’ 장훈(49)씨는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3남 1녀 중 맏이인 준형이는 약자를 보살피는 정의로운 아이였다”며 듬직한 아들을 보호하지 못한 죄책감에 늘 죄인처럼 산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가 국민 가슴에 남는 것은 내 가족,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라며 안전사고 없는 세상을 염원했다. “준형이가 교생 선생님과 벚꽃 아래에서 찍은 사진을 마지막으로 봤는데 봄마다 온몸으로 앓습니다,” ‘우재 아빠’ 고영환(51)씨는 참사 6개월 만인 그해 10월 안산 생활을 정리하고 전남 진도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5년째 팽목항 가족식당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고씨는 “너무나 쉽게 말들을 하는 세상과 떨어져 혼자 이겨내야 해 아예 아픈 현장으로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유가족 중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고씨는 “외롭지만 이제 적응돼 힘들지 않다”며 웃었다. 우재 여동생이 어려움을 딛고 대학을 가 미안하기도 하고 너무 대견해 자랑스럽기도 하다. 고씨는 “수많은 자원 봉사자들과 함께했던 이 자리에 교훈으로 삼을 기록관과 공원 등이 생길 때까지 머무를 것”이라고 했다. 안산에는 회의가 있을 때 참석한다. “동네 이웃들 등 많은 분들이 쌀과 채소 등 도움을 주고 계신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평일에는 슬픔을 잊기 위해 노란 세월호 리본을 만들고 있다. 마음을 닦으며 만든 나무 리본이 1만개쯤 된다.5주기를 앞두고 4·16가족극단 ‘노란 리본’의 엄마들은 세 번째 작품 ‘장기자랑’을 무대에 올렸다. 단원고 교복까지 맞춰 입은 무대 위 엄마들이 객석을 흐느낌으로 물들였다. ‘장기자랑’은 2014년 단원고 2학년생들이 수학여행을 코앞에 두고 장기자랑을 준비하면서 서로를 알아 가는 과정을 그렸다. 극본을 쓴 변효진 작가는 희생 학생 등의 이야기를 12권으로 정리한 ‘4·16 단원고 약전’을 바탕으로 삼았다. 그래서 작품은 사실 그 자체다. 동수 엄마 김도현씨, 수인 엄마 김명임씨, 예진 엄마 박유신씨, 영만 엄마 이미경씨, 순범 엄마 최지영씨, 그리고 생존 학생인 애진 엄마 김순덕씨 등이 배우로 무대에 선다. 엄마들이 연극을 하게 된 것은 2015년 10월 말 커피공방 대표의 권유로 연출가 김태현씨를 소개받고부터다. 시작은 ‘심리치유를 위한 대본 읽기’ 모임이었다. 그러다 무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누구 엄마’로 불리기 위해서였다. 2016년 3월 극단을 결성하고 그해 7월 첫 작품 ‘그와 그녀의 옷장’을, 2017년 7월엔 두 번째 작품 ‘이웃에 살고 이웃에 죽고’를 무대에 올렸다. 그렇게 4년차 ‘세월호 전문배우’가 되었다. 김도현씨는 “아이(동수)만 보고 연습했다”며 웃었다. 이어 “아이들이 하늘나라에서 연극을 본다면 ‘엄마아빠 견뎌라, 힘내라’고 할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연출가 김씨는 “연극을 통해 세월호로 무엇을 잃었는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고 어머님들 스스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설명했다. 또 스스로 아이가 되어 무대에 서는 게 어려운 결심인데 중간중간 울컥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소환하기 위해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안산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안산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우리둘은1학년]채시라·고소영도 녹색어머니…근데 그게 뭔데

    [우리둘은1학년]채시라·고소영도 녹색어머니…근데 그게 뭔데

    [편집자주]올해 초등학교에 딸을 보낸 워킹맘이 학부모가 되면서 겪은 우여곡절을 연재합니다. 아는 동네 엄마 하나 없고, 사교육에도 문외한인 아웃사이더 엄마는 ‘인싸’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녹색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이다. 수술복 색깔의 녹색 원피스를 즐겨 입고 장롱에는 녹색 계열의 옷이 한가득이다. 둘째 아이 태명을 ‘초록이’로 지었을 정도다. 오죽하면 별명이 ‘녹색성애자’일까. 대학시절 친구는 이렇게 나를 놀린다. “녹색을 그렇게 좋아하더니 녹색어머니회까지 하는 거야?” 그렇다. 나는 녹색어머니회 회원이다. 그것도 ‘반 대표’라는 감투까지 썼다. 딸의 초등학교에서 학부모 총회가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학부모회, 명예교사, 녹색어머니회 등 학부모 단체 중 가입 신청을 받는다는 가정통신문이 날아왔다. 복수 신청이 가능하다는 안내는 적혀 있었지만,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구는 없었다. 녹색어머니회 옆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8차선 도로와 4차선 도로를 건너 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는 건널목을 지키는 녹색 어머니들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나도 그 정도 봉사는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 년에 3번만 나가면 된다고 하니 일하는 엄마의 부담도 적었다. 직장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을 조금 늦게 하면 될 것이다.학부모 총회에 가는 길에 직장 선배들의 엇갈린 조언이 떠올랐다. 선배1: 눈치 게임이 시작될 거야. 절대 선생님과 눈을 마주쳐선 안 돼. 너 회사 다니면서 학부모 단체 생활 어떻게 하려고 그래? 가입해놓고 모임 안 나가면 더 욕먹는다.선배2: 녹색 어머니회는 꼭 해라. 거기서 알게 된 엄마들과 관계가 6년 내내 가더라. 애들 잘 챙기는 엄마일수록 학교 활동 열심히 하는 거 알지? 그런 엄마들이랑 친해지는 게 워킹맘 살길이야. ‘누구 말이 맞는지는 곧 알게 되겠지.’ 공개수업이 끝나고 본격적인 총회가 시작됐다. 딸 아이 책걸상에 안 맞는 몸을 우겨넣고 앉았다. 담임 선생님의 당부 말씀이 시작됐다. “이제 제일 어려운 일이 남았어요. 학부모 단체조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녹색어머니회에는 7명, 급식모니터링에 2명, 명예교사에 1명이 손을 들어주셨습니다. 학부모회와 명예교사 한분씩만 더 지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서주실 분 계실까요?” 순간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 바로 이 타이밍이구나. 눈치 게임….’ 지원자가 없자 난처해진 선생님이 부연했다. 명예교사는 한두 번쯤 독서실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면 되고, 학부모회는 등록만 해도 된다는 거였다. 한쪽에서 “제가 할게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비롯한 나머지 엄마들은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면서 존경, 감사, 안도의 눈빛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이로써…, 총회를 무사히 끝냈다.’ 안도를 하던 찰나, 선생님의 부름을 받았다. 녹색어머니회 가입을 신청한 7명 어머니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명단을 녹색어머니회 학교 대표에게 제출해달라는 말씀이었다. 두 손으로 받아든 명단의 내 이름 옆에는 ‘(대표)’라고 적혀 있었다. 나: 선생님, 제가 반 대표인가요? 왜…왜죠?선생님: 어머니, 그냥 가나다순으로 한 거예요. 명단만 제출하시면 돼요. 딸 이름 초성이 ‘ㄱㄱ’이라 벌어진 일이다. ‘잠시만요 선생님, 이건 아닌 것 같은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에서 나온 말은 “네”였다. 어려운 학부모회 대표를 자원한 분도 있는데, 가나다순으로 정한 반 대표를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어렵사리 녹색어머니회 회장을 찾아가 명단을 냈다. ‘포스’가 느껴지는 대표는 “반 회원을 모은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단톡방)을 개설해, 반 대표들이 모인 단체방에서 전달받은 사항을 반에 알리면 된다”고 말했다. 반 대표 방에는 곧 초대될 거라고도 했다.학부모 총회에 가기 전 학교 선배와 이런 대화를 나눈 터였다. 선배: 네 성격에 한자리하고 오는 거 아니냐.나: 에이, 저 그런 데 가서는 안 설쳐요. 조용히 입 닫고 있다가 나올 거예요. 장담했는데… 녹색어머니회 반 대표라니? 멍해져서는 선배에게 메시지를 날리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남편도 지인들도 뭐가 고소한지 깔깔 웃어댔다. 나는 심각해 죽겠구먼! 고등학교 때 반장인가 부반장 해보고선 얼마 만에 써보는 감투인가. 인간은 참 간사하다. 막상 감투를 쓰고 나니 잘 해내고 싶어졌다. 녹색어머니회, 결코 만만하게 볼 조직이 아니다. 반백 년 역사를 가진 초등학교 학부모 최대 봉사단체다. 짜임새 있는 운영체계도 놀랍다. 각 반 녹색 어머니 회원을 관리하는 반 대표, 각반 대표로 구성된 학년 대표가 있다. 학교마다 녹색어머니회 지회 또는 ○○초등학교 녹색어머니회가 구성되는데 대표는 회장이 맡는다.각 학교 녹색어머니회 회장과 부회장으로 구성된 △△경찰서 녹색어머니회연합회가 존재하고, 이 단체는 지방경찰청 소속 녹색어머니연합회에 귀속된다. 연합회 회장과 부회장은 조직의 최정점인 녹색어머니중앙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 녹색어머니중앙회는 경찰청 소속 사단법인이다. 중앙회 홈페이지(gmothers.kr)에 따르면 녹색어머니회의 기원은 1969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초등학교 단위별로 ‘자모교통지도반’이 출범했다. 자녀의 등하굣길 안전을 위해 통학로에서 교통안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1971년 녹색어머니회라는 공식명칭이 등장했다. 처음에는 서울 등 6개 도시 위주로 결성됐다. 지금은 전국 17개 시도 4000여개 초등학교에 녹색어머니회가 운영되고 있으며 전국적으로 약 86만명의 회원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조직에 발을 들여놓은 나는 그날 저녁, 1학년 대표님의 첫 지령을 받았다. 반 회원의 유니폼 치수를 파악해달라는 지시였다. ‘녹색어머니회 유니폼’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고소영도 피하지 못한 녹색어머니회’라는 제목의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물이다.지난 2017년 6월, 영화배우 고소영씨가 녹색어머니회 복장으로 건널목에서 교통안전 지도를 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것이다.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청바지에 유니폼 셔츠를 입은 고씨의 자태는 남달랐다. 역시 배우는 배우였다. 그렇지만 딸 아이 학교의 녹색 어머니 복장 규정에는 어긋나는 차림새였다. 우리 학교 녹색어머니회는 교통지도 시 선글라스를 쓰지 말라고 했다. 배우 채시라씨가 학교 앞에서 녹색어머니회 활동을 하는 사진도 찾을 수 있었다. 채씨는 고소영씨와 같은 녹색어머니회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노란색 조끼 차림이었다. 학교마다 녹색어머니회 복장 규정이 다른 것 같았다. 궁금해서 녹색어머니중앙회 정관을 찾아봤다. 6장 제34조에 복장 규정이 있다. 녹색 어머니 제복은 감색 치마를 원칙으로 하되 겨울철에는 바지와 겉옷을 착용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감색 넥타이, 감색 모자, 파란색 셔츠가 제복을 구성한다.구두는 장식이 없어야 하고 굽이 있는 검은색을 신어야 하며 스타킹은 살구색으로 한다고 돼 있다. 머리는 단정해야 하며 지나친 액세서리와 염색을 삼가라고 돼 있다.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학교마다 차림새가 다른 걸 보면 이런 복장 규정이 의무는 아닌 것 같다. 고소영씨는 녹색어머니회 활동사진이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자 당시 일간스포츠와 한 인터뷰에서 “너무 민망하다. 다들 하는 건데…. 정말 재미있게 했다”면서 “선글라스는 다른 엄마들이 눈이 부시니까 꼭 쓰라고 해서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고씨는 작품활동을 잠시 쉬면서 초등학교에 입학한 큰아들을 뒷바라지했다고 한다. 복장 외에도 녹색 어머니로서 주의해야 할 게 몇 가지 더 있다. 보행신호에 따라 안전 깃발을 제대로 열고 닫는 일이다. 지난달에 열린 녹색어머니회 소양교육에서 궁금점을 해결할 수 있었다. 깃발을 허리 높이에 들고 서 있다가 초록 불이 켜졌을 때 90도로 열어 차량의 진행을 막는다. 이때 호루라기를 한 번 분다. 보행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면 호루라기를 두 번 불면서 깃발을 닫는다.교통안내를 하다가 간혹 차량과 접촉하는 사고가 발생하는 모양이다. 녹색어머니회 회장은 “봉사자의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며 “빨간불 신호에서는 반드시 인도 위로 올라와야 한다”고 당부했다. 딸 학교 녹색어머니회 회장은 무려 3년차다. 학교 활동에 미적지근하거나 관심 둘 시간조차 없는 학부모를 위해, 어떤 분은 적극적으로 봉사해주니 대단하면서도 감사한 마음이 크다. 사실 녹색어머니회는 오랫동안 학부모와 언론의 ‘표적’이었다. “교통안전 지도를 왜 학부모가 해야 하는가”부터 “어머니회라는 이름을 바꿔라”까지 다양한 불만이 제기됐다. 등굣길 건널목에서 ‘녹색 아버지’와 ‘녹색 할머니’를 본 적이 있다. 심지어는 ‘녹색 삼촌’, ‘녹색 이모’도 있고 돈을 주고 녹색어머니 당번을 대신하는 ‘녹색 아르바이트’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딸아이 반 회원 중에서도 “엄마 일정이 안 되면 아빠가 대신 봉사해도 되느냐, 그럴 때 아빠도 유니폼을 입어야 하느냐”라는 질문을 하는 분이 계셨다. (아빠들은 유니폼과 비슷한 감색 계열의 셔츠를 입으면 된다는 ‘유권해석’이 나왔다.)어떤 학교에서는 전교생 학부모가 교통 안전지도에 참여하도록 n분의1로 할당하는 곳이 있다고 한다. 어떤 학교는 노인복지관 어르신에게 교통안전 도우미 업무를 맡겨 노인 일자리를 창출한다고 홍보하기도 한다. 녹색어머니회를 언제까지 둘지, 명칭을 어떻게 바꿀지는 학교와 학부모가 논의해 결정할 문제다. 50년간 운영된 조직을 하루아침에 없애거나 바꾸긴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자원자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질지도 모른다. 다만 누군가 도로 앞에 깃발을 들고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차량 운전자에게 이 주변이 통학로라는 경각심을 주고, 아이들의 안전한 등교를 돕는 역할은 분명해 보인다. 만약 녹색어머니회가 유지된다면, 손주 녀석 학교 갈 때 ‘녹색 할머니’로 나서게 될까.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다음 주 주제는 “스마트폰은 언제 사줘야 하나요?”입니다.
  • 손바닥 정맥으로 돈 찾는다

    통장·도장·비밀번호 없이 거래 가능 고령층 고객 ‘금융 소외’ 개선될 듯 통장이나 도장, 비밀번호 없이 손바닥만으로 은행에서 돈을 찾는 것이 가능해졌다. 비밀번호를 까먹을 수 있는 고령층이 손쉽게 창구 거래를 할 수 있을 전망이다. KB국민은행은 손바닥 정맥 인증 방식으로 영업점에서 예금을 찾는 ‘손으로 출금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14일 밝혔다. 은행이 개인의 손바닥 정맥 정보를 수집해 암호화하고 금융결제원과 분산 보관하는 방식이다. 한 번 등록하면 그 이후에는 거래 금액이나 횟수에 제한 없이 돈을 찾을 수 있다. 처음 정맥 정보를 등록할 때에만 신분증과 계좌 비밀번호가 필요하다. 등록은 3분 정도 걸리고, 당일부터 바로 정맥 인증으로 출금할 수 있다. ‘손으로 출금’은 기존 통장 기반의 거래 관행을 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통장 분실 관련 업무와 신분증 확인 시간 등을 줄일 수 있다. 특히 모바일뱅킹 시대에 소외될 우려가 큰 고령층이 통장, 도장 등 준비물 없이도 은행에서 쉽게 거래할 수 있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출금뿐 아니라 예·적금 해지도 가능하다”면서 “고령 고객이 적금 만기 때 비밀번호를 잊어버렸어도 등록된 바이오 인증으로 돈을 찾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은행 이용 고객 1800만명 중 300만명이 영업점을 주로 이용하는 고객이며 그중 80만명이 60대 이상 고령층 고객이다. 지난 12일 직접 정맥인증 서비스를 시연해 본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은행 창구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에서 정맥인증 활용이 가능해져 바이오인증 서비스의 파급력이 높아질 것”이라면서 “그동안 비대면 거래 위주의 서비스 개선이 이뤄져 혜택을 누리지 못했던 고령층 고객의 편의 증진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이번 서비스 도입을 위해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로부터 영업점 창구에서 바이오 인증만으로 출금이 가능하도록 은행업감독규정 유권해석을 얻었다. 국민은행은 50개 영업점에서 시범 실시한 뒤 하반기에 전국 영업점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은 “이번 사업은 금융 당국의 적극적 개선 의지와 금융결제원의 고객정보 분산보관 신기술, 금융사의 도전적 혁신이 힘을 모아낸 결실”이라고 강조했다. 허인 국민은행장은 “다양한 방식으로 금융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이고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세월호는 공동체 트라우마… 5년 지난 지금이 치유 필요할 때죠”

    ‘[속보] 진도 해상서 350여명 탄 여객선 조난신고…침수 중’ 2014년 4월 16일. 가라앉는 세월호의 모습을 생중계한 뉴스 속보를 우리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희생자들과 그 가족들, 참사를 지켜본 우리의 상처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아프게 덧난다. 아무 기념일도 아니었던 그날은 5년이 지나면서 ‘추모일’이 됐다. 이 슬픔을 어떻게 기억하고 치유해야 하는가. ‘단원고 학생들이 의지하는 의사’ 김은지(정신과 전문의) 원장을 만나 답을 들어 봤다. 그는 2014년 7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경기 안산 단원고의 ‘스쿨 닥터’였다. 이후 안산을 떠나지 못한 채 ‘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의원’을 열고 생존자와 시민의 마음을 치료하고 있다. “한 빌라에 여러 명,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아이를 잃은 상황이 발생했어요. 온 국민은 침몰 현장을 실시간으로 지켜봤죠. 일대 사건을 넘어 우리 사회의 ‘공동체 트라우마’로 남았어요.”김 원장은 세월호 참사 당시 한국 사회를 이렇게 진단한 뒤 우리가 5년이 지난 지금 해야 할 일을 제시했다. “상처는 함께 입었는데 정작 이 상처를 공동체적으로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있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참사 이후 유가족과 생존자에 대한 관심만 지나쳤지 배려는 결여됐다. 더욱이 참사의 간접 피해자인 단원고 1, 3학년 학생들과 안산 시민은 관심에서도 배제됐다. 김 원장은 “공동체적 관점으로 모두를 보듬었다면, 그래서 이 슬픔을 통해 우리가 서로 연결돼 있다고 느낄 수 있었다면, 추모관 건립 문제 등으로 서로 날을 세우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누군가는 “아직도 치유가 필요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김은지 원장은 아직 치료를 끝낼 수 없다. “그만 기억하라고 하기엔 너무 중요한 일”이 됐기 때문이다. 매년 4월이면 단원고 출신 아이들이 그를 찾는다. 김 원장은 “학교 다닐 때는 어른들의 강요에 못 이겨 아이들이 수동적으로 치료에 임해 쉽지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된 아이들은 한발 떨어져 참사를 겪은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을 살아내 보기 위해 아이들이 적극적으로 치료를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김 원장은 “재난 트라우마는 성격에 따라 양상이 다르다”고 했다. 불가피한 자연재난과 달리 세월호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 누군가의 과실로 벌어진 인공재난 피해자는 심리 치료가 더 어렵다. ‘신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특히 세월호 트라우마는 젊은 세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원장은 “그 또래 아이들은 당시 상황을 지켜보며 ‘와 이것 봐. 아무도 안 지켜 주네. 어른들은 싸움만 하고 있네’라고 느꼈고 공공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다”고 전했다. ‘세월호 세대’가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김 원장이 안산에 남은 이유도 ‘신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나의 유일한 목표”라고 했다. ‘우리가 치유해 주겠다’며 갑자기 안산에 몰려들었다가 일순간에 떠나버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아이들은 많은 상처를 받았다. 시간이 흐르자 좋지 않은 의도로 피해자에게 접근하는 사람도 생겼다. ‘너희 몇 억원씩 받았다며?’라는 비수 같은 비아냥도 날아왔다. 아이들은 이런 사회와 사람에게 지쳤고, 마음의 벽을 쳤다. “아이들에게 ‘세상에 믿을 사람이 아주 없지는 않아’라고 말해 줘야 합니다. 사회는 그 말을 증명해 보여야 하고요.” 세월호의 과도한 상징성은 때론 유가족과 생존자들을 짓누르기도 한다. 조금은 잊어야 일상을 살 수 있지만, 사회는 그들에게만 “잊지 말라”고 요구한다. 일부 생존 학생들은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보며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모습을 보였다. 치료를 통해 아픔이 잊히는 것을, 또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잊히는 것을 괴로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감내하며 살아 내고 있다. 김 원장은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잘 견뎌 주어, 잘 살아 가려고 노력해 주어 참 고맙다”고 진심을 전했다. 김 원장이 보기엔 참사로부터 한발 떨어진 지금이 오히려 지원이 더 필요한 시기다. 그는 “참사 당시 유가족 중에는 ‘아이를 먼저 보내 놓고 내가 뭘 잘했다고 치료를 받나. 진상 규명이 더 시급하지’라는 생각에 심리치료를 받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5년이 흘렀다. 김 원장은 “긴 세월을 극복할 힘을 가지려면 꾸준히 치료받으며 살아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금씩 잊혀 가는 지금이야말로 유가족들과 우리 공동체에게 치유가 더 절실하다는 것이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시선도 지적했다. 김 원장은 “유가족들이 시위하면 눈물을 흘리는 분에게 카메라가 향하고, 이를 클로즈업하는 것은 ‘유가족은 이래야 한다’는 프레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짚었다. “여전히 아프고 슬프지만, 어떤 날은 밥을 먹다가 웃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유가족도 생존자도 ‘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공감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울산·휴스턴 우호협력 도시 협약체결

    울산시 국제교류협력 대표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한 송철호 시장이 11일(한국시각 12일 오전 4시) 휴스턴 시청에서 울산·휴스턴시 우호협력 도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두 도시는 협약서에서 우호협력과 도시 간 교류를 촉진하고 특히 행정, 문화, 관광, 교통 등 분야에서 교류·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휴스턴은 세계 최대 정유공업지대로 휴스턴 항은 액체화물 처리량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유럽 에이알에이(ARA, 암스테르담·로테르담·안트워프), 싱가포르와 함께 세계 3대 오일 중심(허브) 항 중 하나다. 석유 및 풍력 등 에너지산업과 우주, 바이오, 의료산업 선도도시로 울산시와는 산업·지리적 유사성을 바탕으로 상생발전 가능성이 큰 도시다. 또 울산시 국제교류협력 대표단은 이날 휴스턴시와 양해각서 체결에 앞서 현지 교포 간담회를 열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민간교류 확대와 협력방안을 논의했다. 특히 휴스턴은 현지 교포를 중심으로 울산시와 휴스턴시와 활발한 교류를 위해 자발적으로 ‘울산·휴스턴 자매도시 추진위원회’를 결성해 앞으로 교민사회 간 민간교류도 활성화할 것으로 시는 전망했다. 송철호 시장은 “이번 휴스턴시와 우호 협력 도시 양해각서 체결로 세계 최대 정유공업지대이자 우주, 의료, 바이오 분야 선진도시인 휴스턴시와 활발한 교류·협력을 이어나갈 것으로 기대한다”며 “동북아 에너지 허브를 추진하고 새로운 미래 신성장 동력을 찾는 울산시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시 대표단은 12일 베일러의대 인간게놈해독센터 등을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며 울산시 바이오산업 발전방안에 대해 협의를 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7일부터 14일까지의 5박 8일 방미 일정을 마친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팽목항 인근 국민해양안전관 6월 착공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와 해양안전 체험 시설 등을 갖춘 국민해양안전관이 전남 진도군 팽목항 인근에 건립된다. 진도군은 오는 6월 국민해양안전관을 착공, 2020년 12월 완공할 예정이라고 12일 밝혔다. 국립해양안전관은 세월호 참사의 현장인 팽목항에서 500여m 떨어진 임회면 남동리 일원 10만㎡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규모로 건립된다. 이곳에는 국민해양안전관과 해양안전체험시설, 유스호스텔, 해양안전정원(추모공원), 추모 조형물 등이 들어선다. 핵심 시설인 국민해양안전관은 4D시뮬레이터 체험과 심폐소생 및 선박 탈출 특수 교육시설 등을 갖춘 ‘해양재난대응관’과 ‘해양경찰 직업체험관’ ‘기획전시실’ ‘시설체험관’ 등으로 구성된다. 특히 시설체험장은 구명조끼 활용과 고무보트, 구명뗏목, 선박탈출, 선박화재진압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며진다. 이밖에 150∼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유스호스텔과 추모조형물이 세워진다. 또 팽목항 방문객들이 남긴 세월호 추모 물품 등도 국민해양안전관에 보존된다. 팽목항 방파제에는 전국 어린이와 어른들이 글과 그림을 새긴 4656장의 타일로 만든 ‘세월호 기억의 벽’과 ‘기다림의 의자’로 이름 붙인 벤치, 노란 리본을 조형화한 대형 기념물이 있다. 방파제 끝에는 빨간색의 ‘하늘나라 우체통’과 ‘기억하라 416’ 글자가 새겨진 부표 모양의 구조물, 미수습자 9명의 사연을 적은 ‘이제 그만 집에 가자’는 현수막 등도 걸려 있다. 군은 지난 2018년 11월 건축설계용역을 완료한데 이어 건축과 토목·전기·통신 등의 공사를 지난해 12월30일 발주했으며, 올 해에는 47억원을 투입해 기초·골조공사 등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국민해양안전관은 오는 2021년 3월 개관할 예정이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세월호 5주기] 다섯 번째 봄, 팽목항 색바랜 노란 리본만 ‘그날’ 기억하듯 ‘몸부림’

    [세월호 5주기] 다섯 번째 봄, 팽목항 색바랜 노란 리본만 ‘그날’ 기억하듯 ‘몸부림’

    주민 “평일 한산… 주말엔 100여명 찾아” 20대 추모객 “4월만 되면 왠지 숙연해” 컨테이너 20여개 철거, 2동만 덩그러니 기념관엔 단원고생 반별 단체사진 걸려 팽목항 개발 사업중… 진도 관광객 증가세그날 이후 다섯 번째 봄을 맞아 화려한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들은 울음바다를 이뤘던 길에 활짝 피워 올렸지만 쓸쓸함을 달랠 순 없었다. 2014년 4월 16일 제주로 가던 유람선 세월호 침몰과 함께 미처 꿈을 피우지도 못하고 차가운 물속으로 잠긴 5년 전 어여쁜 아이들이 자꾸자꾸 떠올라서일 터이다. 11일 오후 1시 며칠 사이 비가 내리고 강풍으로 벚꽃이 하나둘씩 떨어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은 약간 흐린 날씨에다 거센 바닷바람 탓에 썰렁하기만 했다. 뼈아픈 참사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렸던 비극의 장소이자 수습 거점으로 여겨졌던 팽목항은 5년이란 세월을 뛰어넘어 이젠 평온하게 손님을 맞았다.이곳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양재석(50) 비취타운 사장은 “평일엔 사람들을 거의 찾을 수 없는데 주말엔 가족과 교회 단위로 100여명쯤 온다”며 “세월호 5주기를 앞두고 더러는 처음 방문했다며 슬픈 얼굴을 한다”고 귀띔했다. 파랗게 출렁대는 바다에 시선을 보내고 있던 서승원(28·전남 순천시)씨는 “14일 생일이라 와보고 싶었다. 그날을 생각하면 해소되지 않는 먹먹한 슬픔을 느낀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씨는 “세월호 사고 이전에는 마냥 즐겁기만 한 날들이었는데 그날 이후 4월만 되면 꼬리표처럼 세월호와 학생들을 떠올리며 숙연해진다. 그러면서도 더불어 당연한 일상에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사고 수습현장으로 자원봉사자와 미수습자 가족들이 4여년간 머물던 이동식 컨테이너 건물 20여개는 모두 철거되고 황량함만 풍겼다. 가족식당과 화장실, 세월호 팽목기념관 등 건물 2동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임시분향소로 이용됐던 팽목기념관엔 영정사진 대신 ‘그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경기 안산 단원고생들의 반별 단체사진들이 걸려 한결 밝은 표정을 자아냈다. 귀여운 미키마우스 인형과 장남감, 노란 색종이로 만든 바람개비 등이 놓여 방문객을 환영하는 듯했다. 바로 옆 방파제에는 색이 바랜 노란 리본만이 나부껴 안전한 대한민국을 빌었다. 아직 가족을 만나지 못한 5명에게 어서어서 신고 오라며 운동화 다섯 켤레가 꽁꽁 묶여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이들에게 하늘에선 안녕하기를 기원하는 희망의 편지들이 발길을 붙잡았다. 이곳 팽목항은 2020년까지 진도항 배후지 개발 사업을 추진 중이어서 대형 덤프트럭들이 연약지반 처리를 위해 흙을 나르느라 바빴다. 업무차 한 달에 두 번씩 이곳에 들른다는 김모(여·54·진도읍)씨는 “진도군민들로선 너무나 큰 생채기를 마음에 새기면서 고통을 함께 안고 가고 있다. 흐르는 세월에 따라 지우개처럼 잊는 게 아닌 다시는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기억과 각오를 새기고 지낸다”며 입을 앙다물었다. 세월호 참사 당시 기피지역으로 바뀌었던 진도엔 관광객이 차츰 예년처럼 회복되고 있다. 2014년 29만여명에 그쳤지만 이후 연간 50여만명, 지난해에는 73만여명으로 늘어났다.진도군은 오는 15일과 16일 팽목항 등대와 옛 분향소 마당에서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모행사’를 마련한다. 문화제와 토론회, 청소년 체험 마당, 예술 마당 등으로 그날의 아픔을 씻는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수색 작업은 지난해 10월 마무리됐다. 그러나 남현철·박영인(당시 단원고 2년)군, 양승진(당시 57) 교사, 제주로 이사를 가던 권재근(당시 50)·혁규(당시 6) 부자의 흔적은 끝내 찾지 못했다. 글 사진 진도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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