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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35) 柱石之臣(주석지신)

    儒林 (659)에는 ‘柱石之臣’(기둥 주/돌 석/어조사 지/신하 신)이 나오는데,‘나라를 떠받치는 중요한 구실을 하는 신하’를 뜻하는 말이다. ‘柱’는 意符(의부)인 ‘木’(목)과 音符(음부)에 해당하는 ‘主’(주)가 결합하여 ‘기둥’의 뜻을 나타냈다.‘主’는 본래 ‘횃불’‘등잔의 불’을 나타낸 글자였고 이와 모양이 유사한 ‘王’(왕)은 자루가 없는 ‘큰 도끼’의 상형이다.‘柱’의 用例(용례)는 ‘氷柱(빙주:고드름),柱聯(주련:기둥이나 벽 따위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支柱(지주:어떠한 물건이 쓰러지지 아니하도록 버티어 괴는 기둥, 정신적·사상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근거나 힘)’ 등이 있다. ‘石’자는 손아귀에 잡을 수 있는 크기의 날이 있는 돌의 상형이다. 옛날 사람들은 이 돌을 무기로 쓰고, 흙을 파거나 물건을 자르는 도구로도 사용했다.‘石間水(석간수:바위틈에서 나오는 샘물),鐵石肝腸(철석간장:굳센 의지나 지조가 있는 마음),試金石(시금석:가치, 능력, 역량 따위를 알아볼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기회나 사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등에 쓰인다. ‘之’자는 ‘止’(지)와 ‘一’(일)을 합한 글자.‘발’을 뜻하는 止 아래에 出發線(출발선) 또는 地面(지면)을 가리키는 一을 넣어 ‘어디론가 가다.’라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臣’자는 포로가 結縛(결박)된 채 무릎을 꿇고 눈을 치켜 뜨고 있는 형상이다. 본 뜻은 ‘포로’ 혹은 ‘노예’로, 주군의 뜻을 받들어 백성들을 감시하는 ‘신하’의 뜻도 생겨났다.用例에는 ‘家臣(가신:정승의 집에 딸려 있으면서 그들을 섬기던 사람),亂臣(난신:나라를 어지럽히는 신하, 난시에 나라를 잘 다스리는 신하),忠臣(충신:나라와 임금을 위하여 충성을 다하는 신하)’ 등이 있다. 尙書(상서) 益稷(익직)편에는 聖君(성군)으로 알려진 순(舜)임금이 신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下敎(하교)한 내용이 있다.“신하는 짐의 팔과 다리(股肱:고굉)요, 눈과 귀가 되어야 한다. 내가 백성들의 삶에 보탬이 되고자 하면 너희들은 내 뜻을 따라주고, 내가 사방에 힘을 펼치려 하면 너희들도 동참해야 한다.(중략)만일 내가 도리에서 벗어나거든 너희들이 規正(규정)하여 輔弼(보필)하고,面前(면전)에서는 순종하는 척하다가 뒤에서 수군거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股肱之臣’(고굉지신)은 여기서 나온 말로 柱石之臣(주석지신)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社稷之臣(사직지신),股掌之臣(고장지신)도 유사한 말이다. 김후직(金后稷)은 신라 지증왕의 曾孫(증손)으로, 진평왕을 섬겨 병부령(兵部令)을 지냈다. 그는 정사를 내팽개치고 사냥을 즐기는 왕에게 直言(직언)을 서슴지 않았다.“옛날 老子(노자)가 이르기를, 말을 달리며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發狂(발광)케 한다고 하였습니다.書經(서경)에서는 ‘안에서 여색에 빠지거나 밖에 나가 사냥에 몰두하는 것 중 한 가지만이라도 있으면 망하지 않는 자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병을 얻어 세상을 하직하는 마당에도 충심은 변함이 없었고 遺骸(유해)를 왕의 사냥 길목에 묻어달라는 遺言(유언)을 남겼다. 후직의 사후에도 왕의 사냥놀음은 그칠 줄 몰랐다. 어느날 왕이 사냥을 가는 도중 어디선가 “가지 마시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의 出處(출처)는 후직의 무덤이었다. 왕은 후직의 충성심에 感服(감복)하여 다시는 사냥터에 나가지 않았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오늘의 눈] 안타깝고 한심한 작통권 논란/김수정 정치부 차장

    “한국은 정말 아시아에서 성공한 나라이고 우리가 배우려고 하는 나라다. 그런데 왜 자주(自主)란 말을 하는지…. 한국이 미국의 속국이었나?” 지난 2004년 참여정부 출범 1년이 지났을 무렵.1인당 국민소득 300달러 정도인 동남아 국가를 방문했을 때 그 나라 고위관리가 기자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는 “참 재미있다.”고 했다. 손엔 한국의 대미외교 ‘자주’를 ‘Independent’(독립)로 번역·소개한 영자지가 들려 있었다.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논란이 재점화됐다. 국가안보의 논란을 넘어서 이념 갈등과 정치게임으로 비화된 상황이다. 한·미간 전작권 논의가 해를 넘겨 진행됐는데, 이제야 문제삼는 쪽도 문제다. 하지만 감정적 논란의 불씨는 작통권, 한·미관계를 둘러싼 최고 수뇌부의 화법이 상당부분 제공했다고 본다. 지구촌 나라 중 강대국의 그늘 한쪽을 걸치지 않은 나라는 없다. 하지만 국익이 된다면, 나름의 논리로 포장을 한다. 그 자체가 국민 자존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산기지 이전이나, 전시작통권을 묘사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화법은 달랐다. 한·미동맹 50년 역사, 한국 주둔의 역사를 부정적인 측면만 강조하며 표현한다면 국민의 자존심은 어디로 가고, 상대국은 어떻게 느끼겠는가. 외교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대등 자주 외교와, 전시작통권 환수의 당위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충정이겠지만, 참여정부에 몸담은 전직 관료들의 노골적 비판도 민망하다. 물러날 때까지 직언한 분들도 있다지만, 지킬 선은 있다. 정권이 1년 넘게 남았는데도,‘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유의 폭로가 줄을 잇는다. 한국 ‘외교자산’으로서의 한·미동맹 평가, 작통권 환수의 시기, 실익 등을 객관적으로 짚어보는 논쟁은 어디가고 “작통권 강행하면 하야운동 벌이겠다.” “한국 대통령은 미국한테 무조건 예, 예 해야 하느냐.”며 기싸움을 벌이는 현실이 참으로 한심하고 안타깝다. 김수정 정치부 차장 crystal@seoul.co.kr
  • 儒林(66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2)

    儒林(666)-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2)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12) 이 말을 들은 퇴계는 대답하였다. “공자께서는 그 선물이 의로웠기 때문에 사양하지 않고 받았던 것이다.” 그러자 이덕홍이 다시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면 선생님은 어찌하여 김이정이 보낸 노새를 돌려 보내셨습니까. 연로하신 선생님께서 타고 다시니라고 보내온 노새는 의로운 선물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그 선물이 의롭지 않은 선물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의롭지 않은 선물이라고 생각지 않으시다면 왜 노새를 돌려 보내셨습니까.” 퇴계가 정색을 하며 대답하였다. “그러나 남의 선물을 받는 데에는 법도가 있는 법이다.” “그 법도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러자 퇴계는 대답하였다. “옛날 사람들은 집에 부모가 생존해 계시면 남에게 거마를 선물로 주는 법이 없었다. 김이정은 부모님이 생존해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런 법도를 몰라도 단순한 호의로 나에게 노새를 보내주었겠지만 그 법도를 알고 있는 나로서야 어찌 그 노새를 받을 수 있겠느냐.” 이 말을 들은 이덕홍은 새삼스럽게 스승의 덕행에 머리를 수그리지 않을 수 없었다고 ‘언행록’은 기록하고 있는데 어쨌든 이 일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김이정은 스승에게 노새를 보낼 정도로 극진히 퇴계를 섬기고 있었고 퇴계 역시 자신을 친부모보다 더 섬기고 있는 김이정에게 호의를 느끼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김이정은 고봉과도 각별한 우정을 쌓고 있어서 퇴계와 고봉 사이에 중간역할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10월 15일 보낸 퇴계의 편지에서도 그러한 삼각관계가 여실히 드러나고 있음인 것이다. 즉 고봉은 우연히 김이정을 만났을 때 퇴계가 주장한 ‘사물의 이치에 이른다(物格).’는 내용과 ‘무극이면서 태극이다(無極而太極).’란 해설에 대해 나름대로 치열하게 반론을 제기하였던 것이다. 아무리 스승의 주장이라 하더라도 옳지 않다고 생각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반드시 입바른 직언을 날려야 직성이 풀리는 고봉의 거친 성정을 엿보게 하는 장면 중의 하나인데, 그 무렵 퇴계는 17세의 어린 나이인 선조를 위해 ‘성학십도(聖學十圖)’란 말년의 유작을 완성하고 있었다. ‘성학십도’는 퇴계가 도산에 퇴거하여 연구와 저술에 강학에만 전념한 끝에 마침내 68세에 지은 만년 작으로 그의 학문의 온축(蘊蓄)를 남김없이 쏟아 부은 명저인 것이다. 제1도인 태극도(太極圖)로 시작되는 이 책은 대학도(大學圖), 심통성정도(心統性情圖) 등 10개의 목차로 구성되어 있는데, 당시 정주계(程朱系) 성리학의 총결산서와 같은 것이었다. 퇴계는 이 책에서 당시까지의 우주설과 이기설을 도형(圖形)과 해설의 방법으로 총체적이면서도 중점적으로 요령 있게 정리소개하고 있다. 따라서 퇴계학의 규모와 성격과 깊이를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명저인 것이다. 퇴계는 1568년 선조에게 ‘차문(箚文)’을 지어 함께 바쳐 올린다.
  • 黨 ‘문재인 카드’ 철회 자신감

    신임 법무부 장관으로 8일 누가 임명되느냐에 따라 당청 갈등이 분기점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6일 벌어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간 ‘담판’의 득실도 이때 확인될 전망이다. 특히 한나라당에서 `문재인 법무카드´는 절대반대를 명확히 하고, 더불어 실익 없는 작전통제권 조기 환수를 문제삼아 윤광웅 국방부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까지 꺼내 여권을 압박하는 상황이라 열린우리당은 완전히 수세에 몰릴 수도 있다. 6일 청와대 오찬에 대해 열린우리당 한쪽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인사권 존중’을 다짐받아 당·청간의 주도권을 다시 잡은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특히 이들은 회담 이후에도 문 전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기용 가능성을 열어놓은 점을 두고, 김근태 의장이 노 대통령 앞에서 또다시 뒷심 부족을 드러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에 이어 문 전 수석이 법무장관에 임명될 경우 야당의 공세뿐만 아니라 민심 이반을 견뎌낼 수 없다는 전제하에서다. 그러나 김 의장측에서는 “대변인의 브리핑 내용에는 다 담겨 있지 않지만 할 말을 다 했다.”면서 “당은 대통령에게 인사권 존중이라는 ‘명분’을 돌려주고 ‘문재인 법무 철회’라는 ‘실리’를 챙긴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즉, 문 전 수석의 내각 입성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당의 또다른 인사는 “문 전 수석을 법무장관에 임명하는 것은 민심을 고려할 때 불가능하지만, 청와대 비서실장 기용 등은 가능한 것 아니냐.”면서 “대통령에게 직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통령의 인사권은 통제를 받지 않는 무소불위 권력이 결코 아니다.”면서 “원칙에 맞고, 일반 국민의 여론에도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오 원내대표도 “문재인씨 불가 사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가 법무부장관이 된다면 대선의 중립성을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윤광웅 국방부장관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더 높았다. 강창희 최고위원은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는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멸망에 이를 수도 있는 중대한 실정이므로 한나라당은 나라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윤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열린우리당에 윤 장관에 대한 정책청문회 개최를 제안하고, 그 결과에 따라서는 윤 장관 해임 건의안을 제출할 뜻도 밝혔다.문소영 박지연기자 symun@seoul.co.kr
  • 儒林(65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

    儒林(658)-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

    제6부 理氣互發說 제2장 四端七情論(4) 그러나 퇴계의 강력한 추천으로 시독관(侍讀官)에서 오늘날 국립대 총장격인 성균관의 대사성으로 임명되었으나 고봉은 사사건건 당시 복잡하게 얽힌 정치상황 속에서 실권을 잡은 대신들과 충돌하는 일이 빈번했다. 고봉은 이른바 트러블메이커였던 것이다. 이러한 고봉의 반골(反骨)정신은 그의 집안내력이기도 하였다. 고봉의 집안은 대대로 절개를 지켜왔던 기골(氣骨)의 가문이었다.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난 고봉의 고조부인 건(虔)은 대사헌을 역임하였으나 단종이 폐위되자 관직을 버리고 야인생활을 하던 절의파였다. 그는 세조가 다섯 번 찾았으나 끝내 절개를 버리지 않았다. 또한 숙부 기준(奇遵)은 기묘사화 때 조광조와 함께 죽임을 당한 사림파의 거두였던 것이다. 그의 부친 진(進)은 아우가 죽자 집을 광주로 옮기고 벼슬도 사양한 채 학문에만 힘을 썼던 은둔거사였다. 고봉이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하여 약관에 이미 성리학에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이러한 가문의 기질 때문이었던 것이다. 고봉은 비교적 늦은 나이인 32살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올랐으나 항상 자신의 정치이념을 사림파의 거두였던 숙부 준의 정신을 본받아 부패하고 낡은 정치를 개혁하려 하였다. 그는 병조좌랑, 이조정랑의 요직을 거쳐 마침내 퇴계의 추천으로 성균관 대사성에까지 이르렀으나 그의 관직생활은 파란의 연속이었다. 신진사류의 영수로 지목되어 훈구파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당대 최고의 권신이었던 영의정 이준경과의 충돌 때문에 해직당하기도 했었는데, 이는 고봉이 강직한 성품과 불의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강골정신의 결과였던 것이다. 고봉은 임금 앞에서도 당당하였다. 경연 등을 통해 국가 기강쇄신과 민생보호를 역설하였으며, 특히 훈구파를 중심으로 한 간신들의 횡포를 비판하였다. 왕도정치의 확립을 도모하는 선봉장으로 언로를 넓게 열 것과 민심에 따를 것을 직언하였다. 특히 고봉이 부르짖었던 왕도정치는 기묘사화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조광조와 숙부 기준의 개혁정신을 이어받은 것이었다. 따라서 고봉이 퇴계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에서 자신의 ‘거친 성정’ 때문에 자신의 ‘지난날 처신이 일반적인 기준에 맞지 않고’ 자신의 의견이 (임금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미련 없이 벼슬에서 떠나버린 사실에 대해서 ‘제가 비록 못났지만 마음속으로 늘 이것을 걱정했던 까닭에 벼슬에 나온 이후로는 감히 제 몸을 보존하겠다는 생각을 접은 지가 오래입니다.’라고 변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봉 스스로가 변명하고 있는 ‘일반적인 기준에 맞지 않는 처신’ 바로 그것은 이른바 김개(金鎧)에 대한 탄핵사건이었다. 고봉이 퇴계로부터 강력한 추천을 받아 성균관 대사성으로 오를 무렵 그는 오래 전부터의 숙원이었던 기묘사화로 억울하게 죽은 조광조와 숙부였던 기준 등을 추증(追贈)하고 그들을 성인군자로 복권시킬 것을 선조에게 건의한다. 그러나 이때 김개는 이를 정면에 나서서 반대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고봉은 이에 대해 상소문을 올리고 홀연히 낙향하여 고향인 광주에서 낭인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상큼한 재충전 맛봐…추천 산 30곳

    상큼한 재충전 맛봐…추천 산 30곳

    올 여름 물 맑고 깊은 계곡을 찾아 신선놀음을 해보자. 울창한 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파란 이끼가 낀 바위틈을 이리저리 흐르는 투명한 옥수와 우렁찬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의 장쾌함에 무더위는 씻은 듯 사라진다. 유명 휴양지처럼 변변한 편의시설 하나 없지만 자연을 벗하며 지내는 깊은 산속의 휴가는 지친 우리를 재충전시켜 줄 것이다. 전국에서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산과 계곡을 소개한다. 돗자리와 간단한 도시락을 가지고 한적한 계곡에 자리잡고 발이라도 씻으면 ‘어이구 좋아라.’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것이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31)신선도 반해버렸다! 무릉계곡 신선들이 사는 별천지인 무릉도원. 그곳에 가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아름답고 신비한 강원도 동해의 무릉계곡을 권한다. 계곡 입구부터 여느 계곡과는 다르다. 약 1500평 하얀 너럭바위가 계곡 전체를 이루고 휘감아도는 맑은 물이 옥구술처럼 흐른다. 사람 1000여명이 앉을 수 있는 커다란 반석 위에 조선 4대 명필로 꼽히는 봉래 양사언이 쓴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台泉石 頭陀洞天)이란 글씨뿐 아니라 여러 양반네들의 이름이 여기저기 적혀있다. 이런 바위에 걸터 앉아 즐기는 신선놀음에 도끼 자루 썩는지 모를 정도로 여유롭고 편안하다. 동해시 서남쪽의 두타산(1353m)과 청옥산(1404m)이 만든 이 계곡은 입구의 무릉반석에 취해 주저앉기 일쑤이지만 올라갈수록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계곡의 모습에 놀라게 된다. 무릉반석을 지나면 ‘학소대’가 나온다.4단 폭포의 모습이 흡사 학이 노는 모습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20분을 더 올라가면 세월을 이야기하듯 켜켜이 쌓인 바위 주름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두줄기 폭포인 ‘쌍폭’, 거대한 화강암 바위 사이로 흐르는 하얀 물줄기가 여인의 섬섬옥수 같다는 ‘용추폭포’의 자태는 우리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힌다. 이밖에 하늘문은 무릉계곡의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전망대로 하얀 구름 모자를 눌러쓴 청옥산과 두타산의 모습에 넋을 잃는다. ■ 찾아가는길:영동고속도로→종점 바로 직전 갈림길 좌회전→강릉 나들목→동해고속도→7번국도→동해시 효가 사거리 우회전→40여분을 달리면 무릉계곡 ■ 여행정보:동해시에는 동해관광호텔(033-533-9215), 이스턴관광호텔(033-533-9700) 등이 있다. 현지에 무릉프라자(033-534-8855), 청옥장여관(033-534-8866) 등이 있으며 여름에는 계곡 상가에서 민박도 할 수 있다. 무릉계곡관리사무소(033-534-7306) (32)반갑다, 조경동 계곡 열목어야~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에 자리 잡은 조경동계곡은 여름에 잘 어울리는 곳이다. 구룡덕봉, 응복산, 가칠봉, 갈전곡봉 등 해발 1200m가 넘는 준봉들이 둘러싸고 있는 강원도 오지 계곡으로 열목어가 살고 있을 정도로 깨끗하다. 계곡산행의 참맛을 보려면 굳이 길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반바지 차림으로 물 가운데로 거슬러 오르는 여름 산행의 재미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찾아가는길:44번 국도→홍천을 지나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451번 지방도로 고석평→31번 국도로 상남, 현리교, 진동2교→진동2교 앞의 보호수면지정 안내판 뒤로 돌아 농수로→계곡이 초입이다. ■ 여행정보:방태산 자연휴양림(033-463-8590)의 산림휴양관은 휴가철이라 예약이 어렵고 인근의 민박집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방태산민박(033-463-5488), 꽃피는 산골(033-463-7397), 대골민박(033-463-5791) 등이 있다. (33)발 담그기 미안한(?) 내리계곡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내리에 있는 내리계곡은 우리나라에서 몇개 남지 않은 생태계의 마지막 보루.7년째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있는 곳으로 상류쪽으로는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다만 계곡 입구에서 4㎞정도 구간은 일반인에게 개방되고 있다. 물이 너무 맑고 깨끗해서 몸을 담그기가 민망할 정도. 계곡물도 비교적 잔잔하고 수심이 깊지 않아 어린이들이 물놀이 하기 좋다. ■ 찾아가는길:영동고속도로 만종분기점(중앙)→원주, 제천방향→신림IC(지방도88)→주천→영월→고씨동굴→하동-김삿갓 휴게소→칠룡교를 건너-와룡초등학교 내리분교를 지나면 내리계곡. ■ 여행정보:계곡에 야영을 해도 좋고 내리산촌(033-378-0515), 소나물골(033-378-0180) 등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각종 나물에 된장을 섞어 보리밥이 유명한 장릉보리밥집(033-374-3986), 영월의 대표적인 먹을거리인 곤드레밥이 유명한 청산회관(031-374-3030)등에 가보자. (34)태고의 신비 궁금하다면 미산계곡 인제군 상남면 미산리에 있는 미산계곡은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자연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개인산 자락을 따라 형성된 계곡 주위에는 가문비나무 등 숲이 우거지고 큰 여울이 많다. 어름치, 쉬리, 버들치 등 1급 어종들이 모여 사는 생태의 보고다. 홍천군 율전에서 흘러온 물줄기와 미산계곡이 만나는 양지말 합수지점은 모래톱과 자갈밭이 넓어 아이들이 놀기에 그만이다. ■ 찾아가는길:홍천∼인제 44번 국도를 타고 가다 철정검문소에서 우회전→451번 지방도→상남 슈퍼 앞에서 446번 지방도로 우회전→미산계곡 ■ 여행정보:미산자락 펜션(033-463-7661), 예지나펜션(033-463-1920), 그린황토민박(033-463-6825). 강원도 손두부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미산민박식당(033-463-6921)에서도 음식과 숙박을 할 수 있다. (35)하얀 포말의 추억, 중원계곡 서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이 있는 경기도에도 태곳적 자연을 그대로 간직한 산과 계곡이 의외로 많다. 너무나 깨끗한 물과 하늘을 뒤덮은 아름드리 나무, 각종 새와 곤충들이 가득한 자연의 천국이다. 경기도 양평의 중원 계곡은 용문산 동쪽의 중원산과 도일봉 사이에 숨어 있어 사람의 흔적을 느낄 수 없다. 약 6㎞에 달하는 계곡에는 깨끗하고 맑은 물이 만드는 폭포와 소(沼)·담(潭)은 물론이고 바위에 가득한 이끼의 모습에 보기만해도 무더위가 사라진다. 마음에 드는 곳 어디에나 자리를 깔고 앉으면 그야말로 신선이 되는 그런 곳이다. 또 중원계곡을 따라 도일봉까지 산행을 할 수 있어 더욱 좋다. 입구부터 계곡 끝인 싸리재까지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사방을 뒤덮은 울창한 나무 아래 햇볕 한점 쬐지 않고 물소리, 새소리를 노래 삼아 하는 계곡산행은 별미다. 버스 종점인 중원2리 매표소를 지나면 커다란 주차장이 나온다. 보통 여름에는 여기에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간다. 하지만 위쪽으로 더 차를 몰면 승용차 20여대를 세울 수 있는 마지막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계곡이 시작된다. 나무로 만든 터널을 따라 20여분을 걷다 보면 물소리가 우렁찬 중원폭포가 나온다. 비록 작지만 3단 폭포로 주변의 깍아지른 듯한 절벽과 잘 어울린다. 피서철에는 여기까지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기저기 삐쭉삐쭉 고개를 내민 바위를 조심하며 산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몇번의 냇가를 건너고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간다. 시원한 계곡물에 얼굴이라도 씻으려고 손을 담그면 시원함에 깜짝 놀란다. 여기서부터 적당한 장소에 앉아서 쉬면 된다. 파랗게 바위에 낀 이끼를 보니 정말 여기는 청정지역임에 틀림없다. 정말 여름 더위가 느껴지지 않는 그런 곳이다. 여름에는 중원산 정상보다 계곡을 따라가는 도일봉쪽이 인기다. 울퉁불퉁한 계곡길을 따라 걷다 보면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긴 하얀 포말이 치마처럼 펼쳐진다. 이른바 치마폭포다.20분 정도 걸으면 도일봉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치마폭포 아래 삼거리에서 도일봉으로 오른 경우 대부분이 싸리재로 가다가 이곳으로 하산한다. 도일봉 정상까지는 40여분. ■ 찾아가는 길:서울에서 홍천으로 가는 6번국도→양수리, 양평→홍천 방향으로 직진→용문휴게소 지나 마룡교차로에서 용문사 방면 331국도→덕촌교에서 우회전 후 직진→조현초등학교를 지나 중원계곡. ■ 여행정보:쌍둥이민박(031-773-2188), 중원산장민박(031-774-4745), 도일봉먹거리민박(031-773-3998), 쉼터집민박(031-772-0516). 특별한 먹거리는 없지만 도일봉 먹을거리민박의 토종닭백숙과 오리백숙이 유명하다. (36)사나사 계곡은 마르지 않는다 사나사 계곡에 들어서면 서울 근교에 이렇게 조용하고 깨끗한 곳이 숨어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게 된다. 용문산에서 흘러내린 계곡 물이 맑고 풍부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사나사 계곡은 길을 따라 만들어져 있어 걷다가 적당한 곳에 자리를 깔고 하루를 보내면 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고려시대 고찰 사나사가 기다린다. 깊은 산속에 위치한 사나사는 작고 아담하지만 오랜 역사을 지닌 유서 깊은 절이다. ■ 찾아가는 길:6번 국도를 타고 양평 못미쳐 옥천에서 한화콘도→옥천 읍내→37번 국도와 만나는 막다른 삼거리에서 우회전→5분 정도 가다가 용천리 방면으로 좌회전→첫번째 다리를 건너 계속 직진하면 된다. 다른 방법은 용천리 방면 이정표를 지나쳐 200m정도 더 가면 양평 유기농마을이나 양평종합건설이란 간판이 나온다. 좌회전을 해서 계속 길을 따라 가면 사나사 계곡을 만날 수 있다. ■ 여행정보:선우산장(031-772-7665), 옥천타운(031-771-0067), 훼미리파크(031-771-1866)에서는 닭백숙, 오리탕 등을 팔고 있다. (37)알프스 뺨치는 어비계곡 어비계곡은 아는 사람들만 찾았던 청정계곡이다. 풀냄새와 맑은 물로 가득하다. 어비계곡을 따라 자동차로 오르면 마을이 나타난다. 여기가 양평의 오지인 갈현부락. 파란 산을 배경으로 들어선 예쁜 펜션에 마치 알프스의 마을에 온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이름 모를 새들의 노래에 맞춰 하얀 들꽃이 바람에 춤추는 마을. 밤이면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별들이 가득한 곳. 이런 곳에서의 하룻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만든다. ■ 찾아가는 길:양평으로 가는 6번 국도→옥천에서 한화콘도 방향으로 좌회전→37번 국도와 만나는 막다른 삼거리에서 좌회전→농다치 고개를 올라 끝에서 유명산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우회전→200m정도 가다가 어비계곡쪽으로 좌회전. ■ 여행정보:밤나무펜션(031-772-5246), 어비계곡자연산장(031-771-0904), 개울가의 성(031-772-5491), 목소리펜션(031-774-1266), 아일랜드펜션(011-361-9118) (38)조무락골엔 골뱅이가 산다? 조용한 계곡이 많은 경기도 가평에서도 조무락골은 비교적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1급수의 깨끗한 물과 원시림이 잘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숲이 우거지고 늘 새들이 조잘거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조무락골은 적목리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개울이다. 6㎞정도 계곡이 형성되어 있는데 폭포·소·담이 줄줄이 이어져 아름답다.30분쯤 가면 ‘무주채폭포’를 만난다. 또 물이 똬리를 틀듯 흐르며 돌아서 떨어지는 ‘골뱅이 소’, 호랑이가 웅크린 모습을 하고 있는 ‘복호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 찾아가는 길:46번 경춘국도로 타고 마석, 대성리, 청평→가평군청 표지를 보고 좌회전→363번 도로→가평읍내를 지나 목동삼거리에서 좌회전→명지계곡과 익근리계곡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음식점과 38교가 나온다. 우측 계곡이 조물락골의 시작이다. ■ 여행정보:훼미리하우스(031-582-6891), 조무락(031-582-6060) (39)청룡·황룡의 보금자리, 쌍룡계곡 경북 문경의 쌍룡계곡은 소백산맥이 마지막 힘을 모아 빚어 놓은 비경으로 도장산과 불일산의 기암괴석과 층암절벽 등 조물주의 걸작들이 즐비하다. 청룡·황룡이 살았다고 해 쌍룡계곡이라 불린다. 달밝은 밤이면 하늘나라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하였다는 선녀탕, 용이 놀다 간 흔적도 바닥에 새겨져 있다. 물가에 세워진 자그마한 정자인 ‘사우정(四友亭)’에서 계곡이 시작된다. 길을 따라 절경이 펼쳐지고 쌍룡터널 부근에서 절정을 이룬다. 계곡 입구에서 왼쪽 길을 택해 다리를 건너면 깨끗한 물이 샘솟는 쌍용약수가 있고 2㎞ 남짓 계곡 길을 계속 오르면 다락골 수련관에 이르게 된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중부내륙고속도로→문경새재 나들목→함창→농암을 거쳐 쌍룡터널로 가면 된다. ■ 여행정보:계곡 주변 민박은 서형석(054-571-3690), 유복만(054-571-1946) 등이 있고 문경시내에는 IMT모텔(054-555-9890)과 관광호텔 등이 있다. 도토리묵·도토리손칼국수로 이름난 새재 ‘초곡관’(054-571-2320), 토종닭백숙과 두부전골로 맛있는 ´김용운달식당’(054-552-6644)은 김룡사 들머리에 있다. (40)20리 환상적 비경, 보경사계곡 경북 포항 보경사계곡은 굽이굽이 20리 골짜기로 온갖 비경을 다 보여준다. 보경사를 지나자마자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골짜기 양옆에 우뚝 서 있고, 상생폭·보현폭·삼보폭 등 기묘한 형상의 크고 작은 폭포가 이어진다. 젊은 남녀의 애틋한 사랑 얘기가 전하는 비하대를 지나 관음폭과 연산폭의 장쾌한 물줄기는 시원함을 더해준다. 널찍한 암반과 협곡 사이로 옥수가 흐르고 또 다시 기묘한 폭포가 이어지는 멋진 계곡이다. ■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영천나들목→포항으로 가는 28번국도→포항입구인 안강에서 925번 지방도→안강에서 신광을 걸쳐 송라면→보경사 표지를 보고 가면 된다. ■ 여행정보:보경사 입구의 연산온천파크(054-262-5200), 영일식당(054-262-1130), 삼보가든(054-262-2224), 삼지봉식당(054261-6679) 등 민박을 겸하는 음식점이나 슈퍼마켓들이 많다. (41)화림동 계곡은 정자 문화의 메카 남덕유산(1508m)에서 시작하는 물줄기가 만든 경남 함양 화림동계곡은 기이한 바위와 담·소를 만들고 ‘농월정’에 이르러서는 맑고 푸른 물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무릉도원’을 만들었다. 장장 60리에 이르는 이곳은 우리 정자 문화의 메카라고 불린다. 계곡 전체의 넓은 암반 위에 수많은 정자들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주변의 풍경 속에 농월정(弄月亭) 정자가 그럴 듯하게 눈에 띈다. 정유재란 때 황석산 산성에서 순직한 인근의 주민들과 관군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황암사’·경모정·동호정·거연정 등 아름다운 정자들이 곳곳에 있다. ■ 찾아가는 길:대전~통영간 고속도로 지곡나들목→안의→농월정. 아니면 서상나들목→26번국도→거연정부터 먼저 돌아볼 수도 있다 ■ 여행정보:동원가든(055-962-4400), 군자가든(055-962-9525), 메기찜이 일품인 농월정 한쪽편의 거창식당(055-962-4498), 갈비찜과 탕이 별미인 안의갈비탕(055-962-2848) (42)고선계곡의 아름다운 물줄기 험준한 준봉들이 즐비한 봉화에서도 가장 깊은 오지로 불리는 지역이 소천면이고, 여기에서 가장 깊숙한 골짜기가 바로 고선계곡이다. 태백산에서 시작하는 고선계곡의 물줄기는 시원하며 깨끗하다.50리에 이르는 계곡의 물에 어른거리는 산그림자가 너무 아름다워 살아 있는 그림을 보는 듯하다. 길고도 깊은 이 계곡의 곳곳에는 자갈과 모래가 알맞게 섞인 캠핑 사이트가 널려 있어 야영지로도 아주 제격이다. ■ 찾아가는 길:중앙고속도로 서제천나들목(5번 국도)→영주(36번 국도)→봉화→현동(31,35번 국도 병행구간)→고선리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 여행정보:박창덕(054-672-7367), 이완교(054-672-7365) 등이 민박을 운영하며 고선리 명산랜드(054-673-9966)는 여관·식당·사우나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휴게소. 맛있는 소고기로 이름 높은 봉화한약우 본점이(054-672-1091) 인근에 있다. (43)살아있는 작은 정글, 물한계곡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삼도봉, 석기봉, 각호산, 민주지산에 둘러싸여 있는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은 그야말로 생태계의 보고. 계곡을 덮고 있는 숲엔 꾀꼬리, 노랑할미새 등 수십 종의 새들이, 물속엔 쉬리, 버들치, 동사리 등이 어우러져 산다. 황룡사에서부터 용소(일명 무지개소)에 이르는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 물한리에서 삼도봉으로 오르는 길은 옥소폭포·의용골폭포·음주암폭포·장군바위 등 폭포와 숲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정글을 연상케 한다. ■ 찾아가는 길:경부고속도로 황간나들목→49번 도로→매곡→상촌면 방향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상촌초등학교→물한계곡 이정표 ■ 여행정보:진수암민박집(043-744-1350), 밤골민박집(043-745-6333), 호도나무민박집(043-744-3675) 등이 있다. 선희식당(043-745-9450)의 어죽(4000원)이 유명하다. 또 황간읍의 안성식당(043-742-4203)의 올갱이국(5000원)도 별미. (44)용하구곡의 아홉 가지 매력 월악산 남쪽의 만수봉과 동남쪽의 문수봉이 만들어내는 용하구곡은 무려 16㎞에 걸쳐 비경이 이어지는 계곡이다. 아름다움을 아홉가지로 압축시켜 놓았다고 해 용하구곡이라 부른다. 약 높이 35m, 길이 100m의 폭포가 천연동굴 위로 쏟아져 내리는 장쾌함이 느껴지는 수문동폭포, 다섯개의 큰 바위가 층계를 이루고 맑은 물이 소를 이룬 청벽대, 집채만 한 바위 위로 흘러내리는 폭포가 장관인 수렴선대, 수곡용담, 관폭대, 선미대, 수룡담 등이 장관이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이끼가 끼지 않는 맑은 물, 바위가 어우러져 만들어 내는 절경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계곡물에 손을 담그면 시원함이 뼛속까지 스며든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중앙고속도로 단양나들목→충주방면 36번국도→ 덕산면 용하구곡 ■ 여행정보:억수휴게소(043-653-0295), 용하휴게소(043-651-6555), 용하수민박(043-653-3829)이 있다. 이밖에 도원가든(043-651-9755), 큰덕골가든(043-651-1164), 삼룡매운탕(043-651-1933) 등 식당도 추천한다. 월악산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043-653-1205) (45)용현계곡에서 조약돌셈 내기를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위치한 용현계곡은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계곡물은 바닥에 깔린 조약돌을 셀 수 있을 정도로 맑고, 숲에서 내뿜는 솔내음은 가슴까지 상쾌하게 만든다. 가야산 기슭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계곡마다 솟아난 바위들을 예쁘게 다듬어 놓아 아이들과 물놀이 하기에 ‘딱’이다. ■ 찾아가는 길:서해안고속도로 서산 IC→32번국도→운산→고풍리→서산마애삼존불상→보원사지에서 용현계곡 표지가 나온다. ■ 여행정보:서울민박(041-664-3663), 푸른산장민박(041-664-1715)이 있고 산수가든(041-663-4567)의 토종닭이 맛있다. (46)인적 드문 마을의 갈론 계곡 괴산댐을 지나 굽이굽이 고갯길을 30분 정도 달려 길이 끝나면 마주치는 갈론마을. 이 마을 뒤쪽에 있는 것이 갈론계곡이다. 편의점, 음식점, 심지어 주차장도 없다. 모든 준비물을 직접 가지고 가야 한다. 물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물이 맑고 깨끗하다. 계곡을 따라 걷다 보면 군데군데 자투리 땅에 1∼2평 남짓한 자그마한 논과 감자와 고추, 산딸기, 청개구리까지 만날 수 있다. ■ 찾아가는 길:영동고속도로 여주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괴산나들목→34번 국도를 타고 괴산→괴산수력발전소 표지를 보고 좌회전 ■ 여행정보:식당도 여관도 없다. 마을에 3∼4곳의 민박집이 있다. 여기에서 된장과 산나물로 지은 백반(4000원)을 맛볼 수 있다. 강완수(043-832-5614)씨에게 문의하면 연결을 해준다. 괴산의 맛집으로는 호산죽염된장집(043-832-1388)이 있다. 된장 양념한 돼지숯불구이와 한정식을 포함해 1만원. (47)내변산이 바다를 만났을 때 전북 부안의 변산반도는 남서부 산악지를 내변산, 그 바깥쪽 바다를 끼고 도는 지역을 외변산이라고 할 정도로 두 얼굴을 가진 지역이다. 변산해수욕장, 채석강 등에 비해 그 안쪽 내변산의 절경은 잘 알려져있지 않다. 내변산은 해발 508m로 높지 않은 산이지만 호남의 5대 명산 중 하나. 쌍선봉 옥녀봉 관음봉 선인봉 등 400m 높이의 봉우리들이 계속 이어지고 골도 깊다. 내변산에는 높이 20m의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 내리는 직소폭포,30∼40m의 커다란 바위로 된 울금바위, 우금산성 외에 가마소·봉래구곡·분옥담·선녀당 등이 아름다운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또 잣나무가 가지런히 심어져 있는 천년 고찰인 내소사,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월명낙조’로 이름난 낙조대의 월명암을 품고 있다. ■ 찾아가는 길:서해안 고속도로→부안나들목→30번 국도→섶못삼거리에서 우회전→736번 지방도→부안호를 지나면 봉래구곡으로 좌회전하면 내변산의 시작이다. ■ 여행정보:내변산 주변에 관광휴게소(063-583-2722)에서는 식사와 민박을 겸할 수 있고 산고을가든민박(063-583-3003), 남여치가든(063-581-7577) 등이 있다. (48)옛 풍류가 머무는 곳, 가마골 전라남도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있는 용추산(523m)을 중심으로 사방 4㎞에 이르는 골짜기가 가마골이다. 깊은 계곡 사이로 쏟아지는 용연폭포와 갖가지 기암괴석들이 즐비해 경관이 수려하다. 또 약 900명이 야영할 수 있는 야영장을 비롯해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가족과 함께 더위를 피하기는 그만이다. 가마골은 소설과 영화로 잘 알려진 ‘남부군’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 빠져 약수리 삼거리에서 좌회전→1번 국도로 담양방면→894번 지방도로 담양→향교교→용면 삼거리 우회전해서 29번 국도→용면 삼거리→792번 지방도로 가다보면 가마골 이정표가 나온다. ■ 여행정보:에버그린(061-383-9200), 추월산장(061-383-0816), 베스트여관(061-383-8800) 등 숙소가 있고 소문난 떡갈비집인 신식당(061-82-9901)과 한정식이 푸짐하고 맛있는 전통식당(061-82-3111)도 권할 만하다. (49)빨치산의 아픔 녹아있는 백운동 계곡 지리산 자락에 안긴 산청 웅석봉(1099m)이 만들어 낸 곳이 전북 진안 백운동계곡이다. 규모가 크지 않지만 깨끗하고 거센 물줄기가 구름처럼 널린 희디 흰 바윗자락을 타고 굽이쳐 쏟아지는 모습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길고 짧고 넓고 좁은 폭포들과 깊고 얕고 짙푸르고 맑은 소와 담이 줄줄이 이어져 마치 잘 그린 동양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나라가 어려울 때 상소를 올려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남명 조식이 제자들과 풍류를 즐기기도 하고 나라 걱정에 눈물을 흘렸던 곳이 바로 백운동계곡이다. ■ 찾아가는 길:대전 통영간고속도로의 장수IC로 나와 장계에서 26번 국도→천천면→진안→30번 국도→마이산도립공원을 돌아 마령→운교리→백운초등학교 좌회전→백운동계곡 ■ 여행정보:백운관광농원(063-432-4589), 백운 산촌마을(063-432-5188), 동신체험마을(063-432-3008) 등에서는 숙박과 자연체험이 가능하다.25가지 반찬이 나오는 금복회관(063-432-0651)의 한정식이 유명하며 아기돼지의 애저찜이 유명한 진안관(063-433-2629) 등은 소문난 맛집이다. (50)호남의 금강 강천사 계곡 전남 순창 강천산은 그 빼어난 아름다움에 ‘호남의 금강’으로 불릴 만큼 산세가 빼어나다. 산자락 병풍바위에서 쏟아지는 시원한 물줄기에 더위가 사라진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만든 폭포라 좀 씁쓸한 감은 있지만 그래도 장관이다. 강천사 계곡은 아이들과 더위를 피하기에 좋다. 물이 깊지 않고 둥근 자갈돌이 바닥에 깔려 있어 계곡치고는 사고의 위험이 없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등산로를 따라 선녀계곡 지적골 분통골 등 작은 계곡이 계속 이어져 여름철 산행지로도 그만이다. 강천사 팔각정 옆으로 지상 50m에 아슬아슬 달려 있는 구름다리 또한 이곳의 명물. 발을 내디딜 때마다 흔들려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구름다리 건너 신선봉 전망대에 오르면 발아래로 산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 찾아가는 길:호남고속도로 정읍IC→29번국도→21번국도→93번 지방도→강천산 주차장, 호남·영남권에선 88고속도로 순창IC→24번국도→793번 지방도→강천산 ■ 여행정보:구룡파크장(063-652-6767), 영빈장(063-652-6060), 이화장(063-653-8000) 등 숙박시설은 많다. 반찬이 20가지 정도 나오는 충장로식당(063-652-5388)의 백반(6000원)은 맛깔스럽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 (123) 楚辭(초사)

    儒林 (607)에는 ‘楚辭’(초나라 초/말씀 사)가 나오는데,‘중국 楚(초)나라 굴원(屈原)의 辭賦(사부)를 주로 하고, 그의 作風(작풍)을 이어받은 제자와 후인의 작품을 모아 엮은 책, 또는 그 文體(문체)의 名稱(명칭)’을 말한다. ‘楚’는 ‘林’(림)과,‘足’의 변형인 ‘疋’(발 소)가 결합해 ‘우거지다’의 뜻을 나타내지만 ‘가시나무’‘회초리’‘아픔’의 뜻으로도 쓰인다.用例(용례)로 ‘苦楚(고초:괴로움과 어려움),四面楚歌(사면초가:아무에게도 도움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등이 있다. ‘辭’는 본래 ‘죄를 다스리다’라는 뜻을 나타낸 글자.‘말’‘글’‘그만두다’의 뜻으로도 쓰인다.用例로 ‘謙辭(겸사:겸손하게 사양함, 겸손한 말),一言半辭(일언반사:한 마디 말과 반 구절이라는 뜻으로, 아주 짧은 말을 이름)’ 등이 있다. 楚辭 가운데 ‘漁父’는 굴원(屈原)의 나라를 위한 苦惱(고뇌)와 鬱憤(울분)을 토로한 작품. 초(楚)나라 왕족의 후예인 굴원은 뛰어난 학식으로 회왕(懷王)의 신임을 받아 26세의 젊은 나이에 左徒(좌도:나라의 정사를 주관하는 직책)에 오른다. 강대국 진(秦)나라와의 연합을 반대하여 齊楚(제초)동맹을 주장하다가 江南(강남)으로 追放(추방)되었다. 어부는 憔悴(초췌)한 몰골로 호수 가를 거닐고 있는 굴원에게 유배당한 이유를 묻는다. 굴원은 ‘세상은 온통 腐敗(부패)하였으나 자기 홀로 깨끗했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술에 취했으나 자기 혼자만 맑은 정신이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漁父(어부)는 굴원의 非妥協的(비타협적)이고 孤高(고고)한 處世(처세)를 비판한다. 굴원은 이에 ‘머리를 감은 사람은 반드시 갓을 쓰기 전에 갓의 먼지를 떨고(新沐者必彈冠:신목자필탄관), 목욕을 한 사람은 옷의 먼지를 떤 다음 옷을 입는 법(新浴者必振衣:신욕자필진의)’이라면서,‘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지언정 깨끗한 몸을 더럽힐 수 없음’을 闡明(천명)한다. 어부는 노를 두드리며 다음과 같은 여운을 남기고 어디론가 떠난다.‘창랑(滄浪)의 물 맑으면 갓끈을 씻고(滄浪之水淸兮 可以濯吾纓:창랑지수청혜 가이탁오영), 창랑의 물 흐리면 발을 씻을 수 있는 것(滄浪之水濁兮 可以濯吾足:창랑지수탁혜 가이탁오족)’ 한(漢)나라 武帝(무제) 때의 名臣(명신) 동방삭(東方朔)은 재치와 해학, 변설에 뛰어났다. 여러 가지 奇行(기행)을 일삼아 반미치광이 취급을 받기 일쑤였다. 무제는 자주 그를 불러 이야기를 청해 듣곤 했다. 그는 무제에게 直言(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무제에게 “교활하고 아첨하는 무리들을 멀리하시고 讒訴(참소)하는 말을 물리치소서.”라는 一聲(일성)을 남겼다고 전한다. 그의 이런 性格(성격)은 不義(불의)와 妥協(타협)하지 않고,忠節(충절)로 일관한 굴원의 삶과 상통한다. 그가 쓴 ‘七諫(칠간)’의 ‘自悲(자비)’편에는 이런 말이 보인다.“얼음과 숯불은 함께 할 수 없다(氷炭不可以相幷兮:빙탄불가이상병혜).” 아첨과 참언을 일삼는 姦臣(간신)들과는 共存(공존)할 수 없다는 자신의 心境(심경)을 밝힌 것이다. 여기서 유래한 성어가 ‘氷炭不相容’(빙탄불상용)이다. 김석제 경기도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실전논술] 학교의 역할과 오늘날의 대학

    ●다음은 황종희의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의 일부이다. 글쓴이가 주장하는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러한 역할이 오늘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 자신의 견해를 논술하시오.(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600자 내외(±200자)로 쓸 것.) 학교는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기관이다. 그러나 옛날 성왕들의 의도는 단지 거기에 머물지만은 않았다. 반드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 놓은 뒤에야 비로소 학교를 설립하는 의의가 갖추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조정에서 서열을 정하고 법령을 제정하는 정치 활동, 노인을 봉양하고 고아를 보살피는 후생 복지 사업, 신속한 법 절차, 전쟁 상황에서의 통신 체계, 전쟁이 일어났을 때 장병의 징집, 커다란 소송 사건에 연루된 관리와 일반 백성들에 대한 소환 조사, 큰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조상에게 흠향하는 일 등이 모두 옛날 국립 대학인 벽옹이 설립되었을 당시부터 비롯된 제도인데, 그렇다고 물론 이러한 일들만을 모든 구비 조건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므로 교육이란 조정에 있는 군주로부터 방방곡곡의 여염집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없게끔 하려는 것이다. 군주가 옳다고 해서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니요, 군주가 그르다고 해서 반드시 다 그른 것만도 아니다. 군주라도 함부로 자신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반드시 옳고 그름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 그러므로 인재를 양성하는 일은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 가운데 일부일 뿐, 학교는 오로지 인재만을 길러 내기 위하여 설립되었던 것은 아니다. 옛날 삼대 이후로 천하의 옳고 그름은 한결같이 조정에서 결정하여 왔다. 그래서 천자가 칭찬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옳다고 말하였고, 천자가 욕하는 일이라면 모든 신하들이 무조건 따라서 그르다고 하였다. 문서 정리, 회계, 조세, 군사, 소송 등의 실무적인 일들은 하급 관리들에게 위임시키고 다만 세속의 풍습이나 대중적 유행을 벗어난 몇몇 사람들은 학교 안에서 마땅히 세속적 거래나 술수가 없어야 좋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말하는 학교란 과거 시험을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 그리고 부귀 영화의 꿈을 불태우는 곳이 되었고, 마침내 조정 내에서 일어나는 세력과의 이해 관계에 따라 그 본령이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선비들 가운데 재주와 덕있는 학자들은 더러운 세상에서 벗어나 스스로 덕을 닦고 학교와는 처음부터 관여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학교는 그나마 인재를 길러내는 마지막 남겨진 기능마저 상실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의 설립 취지는 서원 형태로 변하였다. 그러므로 자연히 조정의 생각과 노선이 다른 경우가 많았다. 만약 서원에서 그르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옳다고 주장하고, 서원에서 옳다고 말하면 조정에서는 반대로 반드시 그것을 그르다고 비난하였다. 서원에서 주장하는 일이라면 그 진실이 어찌되었든 무조건 거짓된 학문이라 하여 배우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리거나 서원을 철폐하거나 탄압하였고, 어떻게 해서라도 조정의 권력을 동원하여 이기려고 들었다. 그래서 벼슬하지 않은 자에게는 형벌을 가하면서,“이 자는 천하의 사대부들을 선동하여 조정을 배반하는 자이다.”라고 하였다. 당초에 학교는 조정과 각별한 관계는 없었으나, 후대로 갈수록 조정과 학교는 대립하면서 마침내 인재를 길러내는 일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그 인재들을 해치며 탄압하기까지 하였다. 그러면서도 오히려 학교라는 이름만 남겨 놓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동한(東漢) 시대 태학(太學)의 3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은 권력자들에 대해 조금도 거리낌없이 통렬하게 비판하자 공·경·대·부 등 고위 관리들은 그들의 비판을 피하기에 급급하였다. 또한 송나라 시대에는 많은 학생들이 대궐문 앞에 모여 북을 두드리면서 이강(李綱)의 복직을 강력히 청하기도 하였다. 하·은·주 삼대가 남긴 유풍 중에서 오직 이러한 사실만이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조정 중신들에게 학생들의 옳고 그르다는 기준에 따라 그들의 옳고 그름의 잣대로 삼게 하여 장차 도적의 무리들과 간신배들이 학생들의 올곧고 준엄한 기상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군주도 편안하고 나라도 보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떤 자들은 그것을 보고 세상의 일이 쇠퇴하여 간다고 생각했다. 나라가 망해가던 원인은 당인을 잡아들이고 진동(陳東)과 구양철(歐陽澈)을 유배 보냈기 때문이며, 게다가 학교를 파괴함으로 인하여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모르고 학교의 사람들만 탓하고 있다. 아! 하늘이 이 백성을 낳아 군주에게 맡겨서 가르치고 양육하게 하였으나 밭을 주던 법은 사라져 백성들은 밭을 사서 스스로 먹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금을 부과하여 그들의 생활을 어렵게 만들었다. 게다가 학교를 폐지시켜 백성들은 바보처럼 교육받을 기회도 잃게 되었는데 오히려 권익과 이익만으로 그들을 유혹하니, 이는 매우 어질지 못한데도 공허한 이름으로 칭송해 높여 군부(君父)라 부르니, 누구를 속일 수 있겠는가? ●지문의 분석 교육의 역할에 대한 글쓴이의 견해가 담겨 있는 이 책의 제목은 퇴조하는 명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정치 체계 내지는 원리를 세워 어진 군주를 기다린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글쓴이는 이 책에서 당시 정치·경제·사회의 문제들을 주로 맹자의 민본 사상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하·은·주 삼대의 정치를 이상으로 국가 체계에 관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였다. 그는 무엇보다 천하의 정치는 한 성(姓)의 흥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백성들의 고통과 행복의 문제임을 밝히고, 정치의 기본적인 모습을 여러 사람이 큰 나무를 옮겨 가는 모양에 비유하기도 하였다. 제시문은 그 중 학교 역할의 변질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다. 글쓴이는 학교는 인재 양성 기관이라는 점을 전제로 천하를 다스리는 모든 수단이 학교에서 나올 수 있도록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즉, 학교 설립의 목적과 의의에 대해 말하면서 학교는 단순히 인재만을 양성하는 곳이 아니라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나오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교육의 목적이 성인의 가르침에 감화되어 관대한 기풍을 가지도록 하는 데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모든 시비 판단을 학교의 공론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역사적으로 학교가 인재를 길러내는 기능을 상실했다는 점과, 대학을 파괴하면서부터 나라가 망하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학교의 역할, 학생들의 직언, 대중 운동의 정당성 등을 강조하고 있다. ●출제 의도와 생각하기 이 문제는 제시된 글을 읽고 논점을 파악하여 분석한 후에 이를 다시 우리의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한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제시문에 나타난 학교 교육의 역할에 관한 필자의 견해를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의하면, 학교는 우선 천하를 다스리는 수단을 제공하고 성인의 감회를 가르쳐 임금에서 백성에 이르기까지 관대한 기풍을 지니도록 해야 한다. 또한 세상의 모든 시비를 판단하며 인재를 양성하고 권력을 비판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학교의 본래적인 역할이 변질됨으로써 과거 시험을 위한 경쟁, 세속적 욕망의 추구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인재 양성의 기능마저 상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학교 교육은 통치 원리의 제공, 국민 인성의 함양, 시비의 판단, 인재 양성, 권력 비판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용 분석이 이루어지면 다음에는 이러한 학교 교육의 역할을 오늘의 대학에서도 똑같이 담당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 수험생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제시문에 나타난 역할을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관점이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고, 과거의 역할을 전적으로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이는 가치관의 문제이므로 어느 관점이 옳고 그르다 할 수 없지만, 어떤 주장이든지 논거가 분명해야 한다. ●어떻게 쓸까 논제에서 제시문을 토대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것을 오늘날 대학과 연관지어 논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내용을 제시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아야 하는데, 논술문의 주제로는 ‘전문적 능력을 지닌 인재의 양성’ 정도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을 토대로 오늘의 대학은 전문성을 지닌 인재 양성의 책무에 전념하고 인성 교육을 통해 전문적 능력을 통합해야 한다는 내용을 주제문으로 글을 이어나가면 자연스러운 논술문을 작성할 수 있다. 먼저 서론 부분에서는 사회 변화에 따른 역할 분담에 대하여 언급하고 학교의 역할 변화에 대한 구체적 내용으로 본론을 이어가면 자연스럽다. 물론 여기에서 오늘날 학교의 현실을 언급하면서 논의를 도입하면 논의의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본론의 첫 단락에서는 주어진 논제대로 제시문을 분석하여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제시문에 나타난 인재 양성과 권력 비판 등과 관련지어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언급하면 된다. 이어서 사회와 학교의 관련성에 대하여 논지를 이어가면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최근 우리 사회의 교육 현안과 관련지어 언급을 하면 그만큼 논의가 구체성을 지닐 수 있다. 이 단락에서는 제시문의 내용 핵심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해 논점을 이끌어내고 있는지가 채점의 핵심이 될 수 있다. 본론의 두 번째 단락에서는 앞서 언급한 글쓴이가 주장한 학교의 역할이 오늘날의 대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 논술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대학이 어떤 기능을 지니고 있고,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전개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대학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기대와 한계에 대해 언급해야 한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대학의 역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무엇인지, 그에 따른 대학의 위상 변화와 그 역할에 대해 언급하면 논의가 심화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는 앞부분에서 논의한 학교의 역할과 그 역할이 대학에 적용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한 핵심적 주장을 요약해 강조하면서, 인성 교육을 바탕으로 한 전문성 고양과 교육의 사회적 통합 기능을 강조하며 마무리지으면 좋은 답안이 된다. 이석록 서울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 신임 고검장·검찰국장 프로필

    정동기 대구고검장 비교적 소수인 한양법대 출신으로 성품이 강직하고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 대구지검장으로 재직하던 2004년 기업경영 혁신기법인 ‘6시그마’를 검찰에 도입했다. 천정배 법무장관과 사시동기이며, 개인적으로도 친하다. 부인 김외숙(51)씨와 1녀. ▲영동지청장▲대구지검 특수부장▲법무부 검찰4과장▲부산지검 형사1부장▲법무부 보호국장▲대구지검장▲인천지검장 정진호 광주고검장호남 출신으로 검찰 조직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군산지청 재직 때 조직폭력배 두목과 주부 등으로 구성된 억대 도박단을 검거하는 등 검찰내 대표적인 형사통이다. 체질상 술을 거의 못 마시지만, 술자리에는 빠지지 않고 참석하는 친화력과 통솔력이 돋보인다. 부인 황미진(50)씨와 2남. ▲대전지검 형사2부장 ▲법무부 관찰·조사과장 ▲서울동부지청 차장 ▲법무부 보호국장 ▲서울북부지검장 박상길 대전고검장 수사 지휘능력과 기획력이 탁월하다. 치밀한 성격에 지휘통솔 능력도 엄정해 차갑다는 평을 얻기도 했다. 서울지검 특수1·2·3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특수통.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한보사건,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 등을 처리했다. 부인 김미애(48)씨와 1남1녀. ▲서울지검 특수부장▲서울지검 3차장▲법무부 기획관리실장▲대검 중수부장▲대구지검장 임채진 서울중앙지검장 ‘과묵한 원칙론자’로 불린다. 법무부검찰 1·2과장 등 다양한 법무·검찰 행정 보직을 거쳤으며, 일선 수사경험도 풍부하다. 검찰국장 시절에는 중수부 폐지, 형사소송법 개정 등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객관적인 판단을 토대로 장관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다. 부인 김세경(50)씨와 1남1녀. ▲대검 범죄정보관리과장▲대전지검 차장▲서울지검 2차장▲춘천지검장▲법무부 검찰국장 문성우 검찰국장 공안부와 특수부 검사를 거쳐 검찰 1과장까지 두루 거친 기획통. 지난해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검찰의 전략을 세우는 역할을 맡았다. 수사와 관련된 선진제도 도입에 관심이 많다. 부인 엄윤경(45)씨와 3녀. ▲부산지검 동부지청 특수부장▲광주지검 공안부장▲법무부 검찰1과장▲서울지검 형사7부장▲서울지검 2차장▲대검 기획조정부장▲청주지검장
  • “노숙인 아닌 이름 석자로 불리고 싶다”

    “노숙인 아닌 이름 석자로 불리고 싶다”

    1일 오전 8시 용산구민회관. 서울시가 처음으로 추진하는 ‘노숙인 일자리갖기 프로젝트’에 참여할 노숙인 1000여명이 새벽부터 몰려들어 구민회관 앞 인도를 가득 메웠다. 오전 8시30분, 구민회관 입장이 시작됐다. 간단한 참가 신청 절차를 마친 노숙인들에게 옷 한벌과 점심 식권 한장이 주어졌다. 오리엔테이션 기간 동안 이들은 ‘하이서울’마크가 새겨진 푸른색 모자와 유니폼을 입는다. 시는 이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려 유니폼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체면 버리고 재기 성공하라.” 오전 10시30분, 노숙인들과 똑같이 푸른 유니폼을 입은 이명박 서울시장이 첫 연사로 나섰다.“모자를 조금만 올려써봐요. 얼굴이 안 보여요.”라며 강연을 시작한 이 시장은 “모자를 눌러쓰고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 아직 정신을 덜 차렸습니다.”라는 직언을 쏟아냈다. 이 시장은 하루 한끼도 못 먹었던 10대 시절, 환경미화원으로 일했던 대학 시절 등 거지와 다를 바 없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 시장은 “기업은 동정하는 마음으로 직원을 뽑는 곳이 아닙니다.”라면서 “교회나 복지회관에 다니며 밥을 얻어먹으려면 차라리 굶고, 일할 의지를 다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시장은 또 “시는 여러분을 위해 일자리를 만들어 갈 것”이라며 자립하겠다는 약속을 해주길 당부했다. ●“아기 분유값이라도 벌고 싶다.” 이 시장의 강연을 경청하며 간간이 박수를 보냈던 박모(53)씨.20년 전 결혼에 실패하고 혼자 살아온 박씨는 IMF 외환위기 때, 기능공으로 일해왔던 공장에서 쫓겨났다. 쉼터 생활이 올해로 8년째인 박씨는 “나도 이명박 시장만큼 못살았다. 이번만큼은 꼭 내 일자리를 찾아 노숙인이 아닌 내 이름 석자로 불리고 싶다.”며 재기의 의지를 다졌다. 15개월 젖먹이 아이와 함께 공원 등지에서 6개월 가까이 노숙을 했던 김모(33·여)씨도 서울시의 첫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며 빚더미에 앉은 김씨는 “남편도 노숙인이 돼 거리를 떠돌고 있다.”면서 “아기 분유 값이라도 벌고 싶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기업들 “노숙인들 일하는 것 지켜봐요.” 기업 관계자 50여명도 참석했다. 이들은 노숙자들을 아직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지만 사회복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기에 우선은 이들은 지켜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SH공사 이철수 사장은 “사회 복지 차원에서 노숙인을 받아들일 것”이라며 “120명 정도를 우선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산산업개발 박현우 관리과장은 “일단 3명에게만 일자리를 주고 결과가 좋으면 협력업체에도 이 인력을 전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노숙인들은 1∼4일 나흘 동안 용산과 중구 구민회관에서 특별정신교육, 안전교육, 건강관리, 참여기업 사업설명회 등 교육을 마치고 6일부터 은평뉴타운 건설 현장 등 147개 기업에 투입된다. 임금은 통상적인 공사장 일용인부 임금의 최저액인 5만원을 기준으로 해 시가 50%인 2만 5000원을, 건설회사가 나머지를 댄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儒林 속 한자이야기] 絶長補短(절장보단)

    儒林 (464)에는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을 보충’한다는 뜻의 ‘絶長補短’(끊을 절/긴 장/기울 보/짧을 단)이 나오는데,‘長點(장점)이나 넉넉한 것으로 短點(단점)이나 부족한 것을 補充(보충)함’을 뜻한다. ‘絶’은 ‘무릎을 꿇고 앉아 바느질을 하는 아낙네가 칼을 들고 실을 끊는 모습’을 나타냈고, 여기서 ‘끊다’라는 뜻이 나왔다.用例(용례)에는 ‘杜絶(두절:통이나 통신 따위가 막히거나 끊어짐),謝絶(사절:요구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고 사양하여 물리침)’ 등이 있다. ‘長’자는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을 그려 ‘길다’라는 뜻을 나타냈다.‘웃어른’‘우두머리’‘자라다’같은 뜻으로도 쓰인다.‘長物(장물:불필요한 물건, 또는 남는 물건),長蛇陳(장사진:많은 사람이 줄을 지어 길게 늘어선 모양을 이르는 말)’등에 쓰인다. ‘補’자는 ‘깁다’라는 뜻을 나타냈고, 후에 ‘채우다’‘메우다’같은 뜻이 파생됐다.用例로는 ‘補强(보강:보태거나 채워서 본디보다 더 튼튼하게 함),補塡(보전:부족한 부분을 보태어 채움)’등이 있다. ‘短’자는 ‘矢´(화살 시)와 ‘豆´(제기 두)로 구성된 글자로,‘화살의 길이나 祭器(제기)의 높이만큼 길지 않다’는 뜻을 나타냈다. 후대에 ‘짧다’‘모자라다’ 등의 뜻이 派生하였다. 용례에는 ‘高枕短眠(고침단면:베개를 높이 베면 오래 자지 못한다는 말),短見(단견:천박한 소견),取長舍短(취장사단:좋은 것은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림)’등이 있다. 文公(등문공)이 世子(세자) 시절,楚(초)나라로 가는 길에 宋(송)나라에 머물고 있던 孟子(맹자)를 찾아 신세 恨歎(한탄)을 하였다. 맹자는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누구나 聖人(성인)이 될 수 있다는 原論的(원론적) 立場(입장)을 표명하였다.孟子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문공은 公務(공무) 수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다시 孟子를 만났다. 문공의 質問(질문)에 성간, 안연, 공명의를 예로 들면서 ‘나라는 (국토의)긴 곳을 잘라 짧은 곳을 보충(絶長補短)하면 사방 50리가 되니, 그만하면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戰國策(전국책)에는 초양왕(楚襄王)에게 목숨을 걸고 直言(직언)한 장신(莊辛)의 이야기가 전한다. 양왕은 간신배의 帳幕(장막)에 가려 國政(국정)을 소홀히 한다면 곧 患亂(환란)에 처할 것임을 警告(경고)하였다. 장신의 忠言(충언)은 默殺(묵살)되고 망령든 늙은이 取扱(취급)을 받아 趙(조)나라로 내쳐졌다. 얼마 되지 않아 楚나라는 秦(진)나라의 侵攻(침공)으로 窮地(궁지)에 몰렸다. 이때서야 장신을 찾아 難局(난국) 打開(타개)方案(방안)을 諮問(자문)하였다. “양을 잃고서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듣건대, 옛날의 湯(탕)·武(무)는 백리의 땅으로 創業(창업)하였으나 桀(걸)·紂(주)는 천하를 소유하고도 멸망하였습니다. 지금 楚나라의 國勢(국세)가 약하다고는 하나 긴 곳을 잘라 짧은 것을 잇도록 하면(絶長續短:절장속단) 아직도 수천리의 땅이 남았으니 어찌 湯·武의 백리에 견줄 수 있겠습니까?” 一時的(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나 長點이 더 많은 만큼, 이를 잘 活用(활용)하면 轉禍爲福(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는 主張(주장)이다. 김석제 경기 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개화기 지식인의 고뇌 엿보기

    개화기 지식인의 고뇌 엿보기

    올해는 을사조약(1905년)으로 국권을 상실한 지 100년 되는 해. 이를 기념하는 의미있는 전시회 ‘개화공정 전시회’가 오는 12∼18일 인사동 이형아트센터에서 열린다. 나라 사랑을 되새기고자 마련한 이번 전시회에서는 조선 말 개화기 사상가들의 시대적 고뇌와 나라 사랑을 가득 담은 편지와 글씨, 그림 등이 선보인다. 갑신정변을 주도한 김옥균과 개화기 선각자 유길준 등의 작품은 물론 고종·순종황제의 글씨 등도 전시된다. 김옥균의 작품 한시로는 젊은 시절 쓴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나라 건설을 희망하는 내용과 일본 망명시 국가와 민족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내용의 시 등 2점이 있다. 또 ‘갑오경장(1894년)제2차 김홍집 내각 대신회의’ 기록과 같은 당시 개화기의 정치 상황을 엿볼 수 있는 자료도 있다. 고종황제가 주재하고 총리대신 김홍집, 내무대신 박영효, 법무대신 서광범 등이 참석한 내각 회의에서 이들은 청나라의 지배에서 벗어나 신문물의 독립 국가를 세우자고 주장한다. 현재 국무회의록과 같은 이 기록은 길이 5m에 이른다.“서구 문물을 받아들인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이라면 우리는 아시아의 프랑스가 돼야 한다.”는 대신들의 직언도 담겨 있다. 독립지사 안중근 의사의 생애와 활동 등 일대기를 담은, 조선 4대 문장가로 손꼽히는 김택영의 ‘안의사중근전’은 이번에 처음 공개되는 책이다. 추사 김정희와 다산 정약용과 교류하면서 개화기 선각자들에게 정신적 영향을 미친 초의선사의 시와 민비의 조카 민영익의 글씨와 그림도 소개된다. 전시회를 기획한 황필홍 단국대 교수는 “국권을 상실한 100년전과 주위 열강으로 둘러싸인 지금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면서 “젊은이들에게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겨 주고 싶다.”고 밝혔다.(02)736-4806.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노동부 첫 女홍보관리관 “노동정책 코디 되겠다”

    노동부 최초로 여성 홍보관리관(공보관)이 탄생했다. 여성가족부를 제외한 중앙부처의 여성 홍보관리관도 처음이다. 화제의 주인공은 노동부 내에서 ‘여걸’로 통하는 정현옥(48) 산재보상보험심사위원회 위원장이다. 그는 윗사람을 상대로 거침없는 비판과 직언을 날릴 만큼 두둑한 배짱과 소신을 갖췄다. 하지만 후배들은 정확한 판단력과 지도력, 따뜻한 인간애를 지닌 상사로 평가한다. 김대환 장관이 최고조에 달한 노정갈등 국면에 그녀를 노동부의 ‘입’으로 기용한 것도 이 같은 능력을 인정했기 때문이란 평이다. 정 신임 홍보관리관은 “배우나 가수에게 전문 코디가 있듯이 노동정책이 정확히 전달될 수 있도록 돕는 노동부의 코디가 되겠다.”고 밝혔다. 경기여고와 성균관대를 나와 행정고시(28회)에 합격,1986년 노동연수원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으며 노동부 재해보상과ㆍ노동조합과ㆍ노사협의과 서기관과 근로기준ㆍ임금복지ㆍ임금정책과장, 기획예산담당관 등을 거쳤다.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盧대통령에 “NO”할 기세

    29일부터 이틀간 경남 통영에서 개최되는 열린우리당 의원 워크숍을 앞두고 당내에서 심상찮은 긴장감이 감지된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의 잇단 발언과 청와대 움직임에 대한 당내 불만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다. 대연정론을 비롯해 국민의 정부 도청 발표건과 ‘97년 대선후보 수사 원치 않는다.’는 등 노 대통령의 최근 언행에 대한 쓴소리가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일련의 일들이 핵심 지지기반과 호남 민심을 이반시키고 있다는 데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의원들은 청와대와의 갈등을 무릅쓰고서라도 ‘직언’을 불사하겠다는 기세다. 당의 한 관계자는 28일 “정치 일선에 당은 없고 대통령만 존재하는 현 상황이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들이 있다.”는 말로 분위기를 설명했다.특히 ‘정권을 통째로 넘길 수도 있다.’는 발언이 많은 거부감을 야기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적어도 지난 5월30일 워크숍에서 제기됐던 당정분리 회의론과 청와대 인적쇄신론 등보다는 한층 강경한 분위기가 연출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은 워크숍이 끝나는 30일 당 소속 의원 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기로 했다.여당 의원 모두를 청와대로 부르는 것은 4·15 총선 직후 김혁규 총리 지명 문제로 당·청관계가 냉각됐던 무렵인 지난해 5월29일 여당 당선자 축하만찬 이후 처음이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는 “이병완 신임 비서실장이 여당과의 대화 자리를 대통령에게 건의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여권 관계자는 “대통령과의 대화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던 만큼 격의 없는 대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워크숍 마지막날 바로 열리는 노무현 대통령과의 대화는 의원들의 반발을 사전에 어느 정도 제어하는 효과를 낼 것으로 관측된다. 노 대통령에 대한 의원들의 불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당과의 대화부족’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노 대통령이 1년여만에 의원들을 초청한 사실 자체가 분위기 완화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야파에 속하는 한 의원은 “절차를 밟아서 (당에) 알아듣도록 설명해주고 연정을 던지든 뭘 던지든 해야지”라고 불만을 토로하면서 “어떤 집권당이 이런 것인지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오영식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의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다보면 반발과 아쉬움도 일부 제기되겠지만, 노 대통령 발언의 기본 취지와 의미에 공감하게 될 것”이라고 기류를 전했다.이지운기자 jj@seoul.co.kr
  • 盧대통령 ‘국민과의 대화’ 주제별 내용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꼭 절반을 맞은 25일 KBS의 ‘참여정부 2년6개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듣는다’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연정, 경제살리기, 과거사 등의 현안에 대해 설명했다.‘국민과의 대화´는 100분 동안 진행됐다. 노 대통령은 특히 경제 현안을 설명할 때는 가계부채·신용카드 등의 경제지표를 그린 표를 보여줬고, 빈부 격차를 따지는 소득5분위 배율이란 경제용어를 들었다. 질문자들은 경제 지지도가 10%가 안된다는 점을 들어 ‘F학점’이라고 몰아세웠고, 부동산 정책으로 ‘세금폭풍’을 맞을지 모른다는 주부의 걱정도 나왔다. 질문자로는 김광두 서강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와 주부, 대학원생 등이 나섰다. 다음은 토론회 주요발언 내용. ●한나라 지역기반 지키려 연정반대과반수를 이루는 쪽에서 총리 이하의 전권을 갖고 국정을 책임지는 운영을 해보자는 게 기본적인 발상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파트너이고 대화의 상대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제왕의 자리인가, 신하의 자리인가를 정말 골똘히 고민해 왔다. 제왕의 자리에 있다면 그런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 만일 신하의 자리에 있다면 국민을 제왕으로 생각하고 필요할 때 직언하고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이 받을 수 없는 이유는 선거구제를 내놓지 않기 위한 것이다. 기득권을 내놓지 않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국민들도 조금 있으면 알아챈다. 지역 기반을 잃기 싫다는 것이다. ●국가권력 피해자 ‘해원’ 해주자는 것 개혁과 통합이란 두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는데 개혁부문은 잘된 것, 못된 것이 있지만 상당부분 변화가 있었다. 통합에서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보복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 보복이 가능한 곳이 거의 없다. 과거사 보복이 가능한 데가 있나. 피해자의 상처는 치유해 줘야 한다.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에 해원굿이 있다. 해원을 하듯이 상처 입은 사람들의 명예를 회복해줘야 한다. 도청사건이 국가의 범죄이기 때문에,97년 대선자금보다 훨씬 큰 문제다.97년 대선자금 문제는 법적으로 시효가 완성됐다. ●당정 조세저항 고려하다 정책 반쪽 부동산 정책은 어렵다. 역대 정부가 계속해서 실패했던 이유는 저항 때문이다. 부동산이야말로 시장이 완전히 실패한 영역이다. 부동산에 거품들어가면 우리 상품의 국제경쟁력도 유지할 수 없다. 경제부처 장관이 안을 들고 대통령에게 와서 이거는 이래서 저항이 있고, 이거는 조세저항이 있고 하나씩 빠졌다. 결국 가져간 것도 당정협의할 때 또 깎이고, 국회에 가니까 왕창 깎인다.10·29 부동산 대책도 그렇게 된 것이다. ●北 평화적 核이용 잘 될것 같다 국민들이 가장 걱정했던 문제가 이 두가지이고, 대통령이 가장 잘한 것 중의 하나가 이 두가지다. 참여정부가 소위 자주 국방, 자주적인 외교관계, 완전한 대등이야 이뤄지지 않는다 해도 합리적인 관계, 균형있는 한·미관계의 방향으로 차근차근 가고 있다. 적절한 수준의 탈선하지 않는 수준으로 궤도 위를 가면 좋겠다. 한때 무력행사 얘기가 나왔을 때 “무슨 소리하십니까.”라고 했고 평화적 해결로 가다가 대화에 의한 해결로 바뀌었다. 지금은 평화적 (핵)이용까지 될 것 같다. ●팔팔하진 않지만 한국경제 밝아 경제 전망을 어둡게 보는 것은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경우다. 너무 경제를 어렵게, 어둡게 말하지 않는 절제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다. 참여정부 들어와서 생긴 일은 아니고 우리 경제가 세계화된 90년대 초반부터 매우 심각하게 변화돼온 것이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책임없다고 말하지는 않겠고, 정면으로 대응해 나가겠다. ●靑 업무시스템 ‘e지원’ 자랑할만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적 지지도는 29%다. 국정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우리가 다시 한번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정 수행을 제대로 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대통령 자리에 그냥 앉아서 앞으로 계획을 밝히는데 과연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각제가 아니어서 국회를 해산하고 총선을 통해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 방법도 없다. 대통령직을 불쑥 내놓는 것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어 굉장히 고심하고 있다. 성공을 얘기하라고 하면 국민들이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부혁신이다. 청와대의 업무관리시스템인 ‘e지원’을 직접 만들었다.‘경포대’라는 말을 듣는 ‘경제를 포기한 대통령’이 e지원으로 경제를 매일 들여다보고 있다. 이 시스템만 생각하면 골치아픈 생각을 하다가도 기분이 좋아진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YTN, 표완수 대표이사 재선임

    표완수 YTN 사장이 3년 임기 사장으로 재선임됐다.표 사장은 사외이사, 감사, 노조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사장후보추천위원회에서 추천받아 2일 열린 YTN 주주총회와 이사회에서 선임됐다.80년 해직언론인인 표 사장은 89년 언론계에 복귀해 시사저널, 경향신문, 경인방송을 거쳐 2003년 YTN 사장으로 취임했다.
  • [길섶에서] 우회 어법/이상일 논설위원

    A기관장은 기분이 좋아지면 말 실수가 잦다. 그래서 부하들은 기관장의 기분이 좋을 때면 평지풍파를 일으킬까 조마조마한다. 참모 B씨는 기관장에게 기분 좋은 일이 많을수록 조심하시라고 말을 하려다 주저했다. 직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사가 어디 있는가. 이런 생각에 B씨는 기관장에게 조언할 적당한 시점을 엿보고 있었다. 그러나 B씨는 한 발짝 뒤졌다. 비서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A기관장은 부하들의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다.“기관장님, 잘 나가실 때 주위를 다잡으셔야 합니다.”라는 한 참모의 건의를 받고 난 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B씨가 자신의 직언 시점을 저울질하는 사이에 누군가 다른 참모가 우회 어법으로 기관장이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일깨워준 것이다.“주위를 다잡으라.”는 말은 바로 “당신,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의미였다.B씨는 “한 수 배웠다.”고 전했다. 기관장이 아래의 목소리를 고깝게 생각하는 바람에 제 때에 조언을 듣지 못하며 그래서 우회어법이 필요하다고 B씨는 지적했다. 정말 그 기관장이 우회어법을 자신의 경고로 알고 정신차렸는지는 모르겠다고 B씨는 덧붙였다. 이상일 논설위원 bruce@seoul.co.kr
  • [사설] 이정우 위원장 항변 설득력 없다

    행담도 의혹사건으로 청와대 위원회의 역할과 기능이 도마에 오르자 이정우 정책기획위원장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그는 대통령 자문위원회에 쏟아지는 비난이 상궤를 벗어난 광풍(狂風)에 가깝다면서 위원회야말로 나라의 희망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또 자신들을 조선시대 훈구파에 맞선 사림파에 비유하는가 하면,‘아마추어 정부론’에 대해서는 아마추어일수록 구태와 시류에 덜 물들었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풍부하다는 논리로 옹호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을 나무라는 지금의 분위기는 뭔가 잘못됐다.”는 이 위원장의 말처럼 새벽부터 밤늦도록 일하는 당사자들로서는 최근의 비난이 억울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을 지근 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는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직언할 수 있어야 위원회 활성화라는 취지를 살릴 수 있다. 그래서 이해찬 국무총리는 ‘분수를 안 지키고 본래의 역할에서 벗어나 합리성이 없는 일을 했다.’고 지적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여권 내부에서조차 청와대가 일을 배우는 자리가 돼선 안된다며 청와대 인적 쇄신 필요성을 제기한다면 항변에 앞서 자신을 돌아보고 개선책을 강구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다. 이 위원장은 위원회의 대표적인 성과로 ‘10·29 부동산대책’, 지역혁신과 균형발전 등을 꼽았다. 하지만 투기 억제 및 지역개발 정책은 전국을 투기장화하는 등 의도와는 정반대의 부작용을 낳고 있다. 땅부자, 집부자들의 배만 불림으로써 다음 정권에까지 엄청난 부담을 주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러고도 위원회가 효능이 비용을 압도하는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10·26관련 김재규 ‘丈夫恨’ 자작시

    31일 강신옥 변호사가 공개한 ‘김재규 변호 접견록’ 가운데 눈에 띄는 것은 김 전 중앙정보부장이 직접 쓴 ‘장부한’(丈夫恨)이라는 자작시다. 원문은 ‘안하준령(眼下峻嶺)복백설(覆白雪)천고신성(千古神聖) 수감침(誰敢侵), 남북경계(南北境界)하처재(何處在), 국토통일(國土統一)불성한(不成恨)’으로 기록돼 있다. 해석하면 ‘눈 아래 준령 흰눈에 덮였네/천년묵은 신성을 누가 감히 침범하랴/남북경계가 어디 있느냐/국토통일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한’이라는 내용이다. 강 변호사는 “1980년 2월 말쯤 김 전 부장을 접견갔을 때 오래전에 지은 시라면서 직접 접견노트에 적으면서 본인의 마음을 전하려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0·26에 대해 “유신의 심장에 야수의 심정으로 쐈다.”고 말한 김 전 부장의 심경과 이어지는 부분이다. 접견록에는 김 전 부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이유에 대해 “현 유신체제와 긴급조치는 철폐돼야 하는데 그러려면 대통령을 살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검찰 공판기록 내용도 있었다. 거사를 위해서는 강경한 발언과 월권적 행동으로 자신의 직언을 번번이 좌절시켰던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도 살해할 수밖에 없었다는 진술도 기록돼 있었다. 10·26 사건 당일 연회자리에서의 마지막 대화는 “김영삼 당시 신민당 국회의원을 구속하라.”고 박 전 대통령이 지시하자 김재규 전 부장이 “각하, 김 총재는 이미 제적됐는데 사법처리까지 하면 이중조치가 됩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차 당시 경호실장은 “신민당 사람들이 까불면 전차로 밀어버린다.”라고 언급했던 것으로 나와 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儒林(202)-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儒林(202)-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제2부 周遊列國 제4장 喪家之狗 회견을 끝내고 돌아온 공자는 다음과 같이 변명하였다고 사기는 기록하고 있다. “나는 처음부터 그녀를 만날 생각은 없었으나 그것이 예의이니 어쩌겠나. 그리고 서로 만날 때에는 서로가 예로써 응대했었다.” 공자가 비록 ‘예로써 서로 응대했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어쨌든 이는 오늘날의 성적희롱과 같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안 자로가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 중 가장 특별한 존재에 속한다. 나이는 공자보다 9세 아래였으나 성격이 거칠고 과감하였다. 성격이 군인다웠을 뿐 아니라 군사에 뛰어난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자로는 어렸을 때부터 백리가 넘는 곳에서 쌀을 사와 부모를 봉양할 정도로 가난한 집 출신이었으나 공자의 문하에 들어온 후 거친 성품을 억누르고 꾸준히 공자를 좇아 수양을 닦았다. 공자의 생애를 보면 유일하게 스승의 부당함을 따지고 직언을 하는 제자로는 자로뿐이다. 이는 마치 예수를 따르던 제자 중 성격이 급한 베드로를 연상케 한다. 예수를 체포하러 군사들이 쳐들어오자 베드로는 칼을 들어 군사의 귀를 잘랐듯이 공자의 제자 중에서 자로만은 군사다운 용맹으로 공자를 호위하던 용감한 보디가드였으며, 때로는 스승의 잘잘못을 따지는 유일한 비판자였다. 이러한 자로의 태도를 공자는 신임하고 있어 논어에서 공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도가 행해지지 않아 뗏목을 타고 바다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나를 따를 사람은 중유(仲由:자로의 이름)뿐이다.” 공자로부터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로 솔직하고 곧은 성품을 지녔던 자로였으므로 스승이 음탕한 여인 남자와 단둘이 만난 사실을 알게 되자 성을 낸 것은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되신 겁니까. 선생님이 남자를 만날 수 있으시다니요.” 이 말을 들은 공자는 맹세하듯 소리쳤다. “내행동이 옳지 못하다면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리실 것이다.(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공자의 이런 태도는 공자의 인간미를 엿보게 한다. 인류가 낳은 세 명의 성인 중에서 예수와 석가모니 두 사람의 생애를 보면 이 두 사람에게서는 단 한번의 인간적인 실수나 약점이 보이지 않으나 유독 공자의 경우에는 끊임없이 오류가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불완전한 인간에게 있어 예수와 부처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처럼 느껴지나 공자는 신이 아니라 인간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공자가 우리들 인간처럼 끊임없이 실수를 하고 또 자신을 반성하여 수양을 통해 고쳐나가는 태도를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선인(先人)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자신이 만약 잘못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두 번이나 탄식하는 공자의 변명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공자의 인간적인 모습은 오히려 우리들에게 위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위나라에 대한 환멸은 음탕한 부인 남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위나라의 임금인 영공에 이르러 한층 극대화되었다. 사기에 의하면 공자가 위나라에 다시 온지 달포 만에 영공으로부터 다시 초청받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공자는 영공과 함께 시가를 통과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영공은 부인과 함께 수레를 탔을 뿐 아니라 환관 옹거(雍渠)를 같은 수레에 배승하도록 하였던 것이다. 공자의 좌석은 뒷수레에 배당되어 있었으며, 이때의 공자모습을 사기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공자는 수레를 타고 시가를 통과해 나가면서 씁쓰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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