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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 음악단체/지휘자 선정싸고 갈등

    ◎지자제시대 맞아 지역출신 임명추세/단원들은 “실력있는 사람 골라야” 반발/인천시향 출근거부소동… 부산선 외국인 지휘자 떠나 다른 지역의 유능한 음악가를 끌어들여 수준을 높일 것인가 아니면 지역 출신의 음악가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인가. 지방자치시대를 맞은 지역음악단체의 이같은 고민이 최근 지역출신 상임지휘자 임명과 관련해 단원들의 출근거부에까지 이른 인천시립교향악단 사태로 표면화되고 있다. 인천시향의 경우 인천에는 음악대학이 1곳도 없지만 서울에서 출퇴근이 가능하다는 점때문에 유능한 연주자들이 몰려들어 좋은 소리를 낸다는 평가를 받아왔다.지난 90년까지 상임지휘자를 역임한 임원식씨 같은 원로급 인사를 초빙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에따라 현재 인천시향단원의 상당수는 인천출신이 아닌 서울을 활동본거지로 하는 이른바 「중앙 음악인」이다.이들은 인천시향이 지역교향악단에 머물기보다는 KBS교향악단이나 서울시향의 수준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주무관청인 인천시청은 단원들의 이러한 의사와는 달리 인천출신의 김중석씨(단국대교수)를 상임지휘자로 임명했다.중량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지자제시대에 맞추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단원들은 『행정관청의 예술에 대한 몰이해와 편협한 지역이기주의가 합작한 결과로 지역예술단체를 몇몇 지역예술인및 동네 유지들이 특정세력화 하려는 것』이라며 지난 12일부터 3월1일까지 출근을 거부하기로 반발하고 나섰다. 이러한 지역출신 지휘자에 대한 반발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를 단원으로 임용할 수밖에 없는 서울 위성 도시의 몇몇 시립합창단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각각 20여개에 이르는 전국의 시립교향악단과 합창단의 설치를 규정한 각 시의 조례에는 지휘자와 단원을 그 지역출신으로 제한한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럼에도 지방자치제 출범이후 지휘자가 그 지방출신으로 임명된다는 것은 거의 불문율이 되어가고 있고 이제 그 범위는 단원에까지 넓혀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18일 단원선발을 위해 오디션을실시한 천안시립합창단은 모집요강에 「단원으로 뽑히면 주민등록을 천안으로 이전할 것」을 명시했다.천안시민이 되어야 천안시립합창단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갈등을 겪고 있는 또하나의 대표적인 단체가 부산시향이다.89년부터 이 단체를 이끌어 연주수준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은 소련출신의 상임지휘자 마크 고렌쉬타인은 지난해 10월 지휘자의 권한이 축소되고 음악감독제가 신설되는 내용의 조례개정안이 통과되자 임기를 1년이나 남겨놓고 떠나버렸다. 음악계는 이 조례의 개정을 부산출신으로 부산시향의 상임지휘자를 맡을 만한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음악감독만이라도 지역출신에게 맡기기 위한 편법으로 이해하고 있다. 부산시향은 지난 88년에도 8년동안 상임지휘자로 활동하며 서울의 양대 교향악단만큼 수준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던 박종혁씨(충남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떠나보내야 했다.박씨가 재임중에 실시한 오디션이 실력위주로 이루어져 연주수준이 높아졌으나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 출신의 음악인이 대거 선발된 반면 지역음악인이 상당수 탈락되었고 이에 대해 강력한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그 지역출신으로 그 지역 대학에서 배출한 음악전공자를 그 지역단체가 외면하면 그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는 주장이었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의 지역예술단체는 부산시향이나 인천시향처럼 중앙의 예술단체에 수준이 근접하면 똑같은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지역문화에 대한 과감한 투자로 지방과 중앙의 문화수준의 격차를 줄이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다는 것이 음악계의 중론이다.
  • 미 교향악단 적자에 “허덕”

    ◎경기침체로 정부보조·재단지원 줄어/「신시내티」 선두로 봉급삭감·감원바람 미국의 교향악단들이 경제불황의 여파에 시달리고 있다. AP통신은 최근 미국의 유수한 교향악단들이 경기후퇴에 따른 정부보조금의 삭감 등으로 『많이 쓰이지 않는 관악파트를 일시해고라도 해야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미국 교향악단연맹에 따르면 산하 8백50개 교향악단 가운데 28개의 초대형 단체가 90·91년 시즌에 적자를 기록했다는 것. 이에따라 많은 지휘자와 단원들의 봉급이 미리 깎이거나 깎일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교향악단이 이처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데에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불황에 따라 정부의 기금과 각종 재단의 기부금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첫번째 이유이고 두번째는 교향악단들이 청중을 잃을까봐 각종 물가의 인상에도 불구하고 입장권값 올리기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향악단들은 지난 81년에만 해도 교향악단 예산의 12%정도를 연방보조금으로 충당했다.그러나 지난해에는 보조금이 예산의 8% 수준으로 줄어들었다.현재 뉴저지심포니오케스트라는 1백30만달러(약 10억원)의 적자가 누적되어 있는데 이 적자의 대부분은 주정부의 보조금이 삭감되어 발생한 것이다. 1백50만달러(약11억6천만원)의 적자를 안고 있는 뉴욕필하모닉과 1백70만달러(약13억원)의 로스앤젤레스필하모닉,1백만달러(약7억7천만원)의 시카고심포니 등도 모두 같은 상황이다. 이에따라 각 교향악단들은 입장권 가격을 올리는 것을 신중히 검토했으나 불황속에서 입장권가격이 높아지면 청중이 모이지 않아 오히려 수입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이런 처지가 되자 신시내티심포니의 단원 97명은 교향악단측의 봉급삭감요구를 받아들였고 그 결과 올해 예상되던 1백50만달러의 적자를 50만달러로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뉴멕시코심포니는 단원은 물론 지휘자와 사무요원의 봉급도 모두 10%씩 깎아 올해 25만달러(약2억원)로 예상되던 적자를 면하게 됐다. 그러나 모든 교향악단이 이처럼 암울하지만은 않다. 오하이오의 데이튼필하모닉의 경우 금요일 아침에 갖는 「커피콘서트」등의 혁신적인 프로그램들을 개발해 3%의 입장권이더 팔리고 있으며 스폰서도 40%나 늘어났다. 이처럼 교향악단들은 입장권 판매를 늘리는 방법밖에는 적자를 줄이는 방법이 없음을 깨닫고 있다. 디트로이트심포니도 이같은 노력으로 지난해 2백50만달러의 주정부 보조금이 삭감되어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지난 90년 8백40만달러(약6억5천만원)였던 적자를 6백80만달러(약5억2천만원)로 줄일 수 있었다.
  • 92교향악축제 15일 개막

    ◎「예술의 전당」서 한달간 전국 18개 악단 기량선봬 전국의 18개 교향악단이 벌이는 「92 교향악축제」가 15일 개막되어 오는 3월17일까지 계속된다. 예술의 전당이 지난 89년부터 열어온 이 축제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게 하고 지방교향악단에겐 나름대로 갈고닦은 실력을 중앙무대에서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고 있다.교향악축제는 또 지휘자난에 허덕이는 중앙음악계가 꾸준히 능력을 다져온 지방악단 지휘자의 기량을 재평가하는 자리이자 든든한 실력을 갖춘 중견 및 신인연주가들에게도 교향악단과의 더 많은 협연기회를 주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는 자리이다. 특히 올해는 서울에서 KBS와 서울시향·코리안심포니·서울심포니·아카데미심포니 등 5개 교향악단과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12개의 시립단체,유일한 도립악단인 공주의 충남교향악단 등 모두 18개의 교향악단이 참여해 교향악축제 창설이래 가장 큰 규모가 된다. 교향악축제는 30여개에 달하는 전국 교향악단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보여주고 있다. 올해는 지난해 5월 창단연주를 가진 충남교향악단과 창단이후 제법 긴 준비기간을 거친 군산과 울산시향이 새로 참가하고 갖가지 문제로 지난해 참가하지 못했던 대구와 제주시향도 다시 참가한다. 한편 상임지휘자 선임문제로 큰 내분을 겪고 있는 인천시향은 참가를 취소했다. 지난해 참가했던 춘천과 목포시향도 올해는 참가를 포기했는데 단원부족 등 운영이 극도로 어려운 상황으로 알려져 음악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교향악축제는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회 당일 하오7시30분에 시작되며 일정은 별표와 같다.
  • 서울심포니 음악감독 이진권씨/불가리아 3개 교향악단을 지휘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 이진권씨(41)가 불가리아의 교향악단을 지휘하기위해 29일 출국했다. 이씨는 오는 2월5일 초청자인 소피아방송교향악단을 지휘한뒤 15일과 25일에도 소피아아카데미오케스트라와 톨부인쳄버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잇따라 지휘자로 나선다. 이씨는 특히 이번 지휘여행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 멘델스존등 고전·낭만 레퍼토리외에 한국작곡가의 창작곡을 연주하게 된다. 한국 작곡가의 곡은 박인호의 「관현악을 위한 남한강」과 최동선의 「클라리넷과 9개의 현악기를 위한 효과」,박정선의 「관현악을 위한 회상88」및 「현을 위한 비바리」,임평용의 「관현악을 위한 얼」,이영철의 「풍류90」등 6곡이다. 이씨의 이번 불가리아진출은 지난해 9월 서울심포니를 객원지휘한 소피아필하모닉의 지휘자 조르단 다포프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한편 서울심포니는 올시즌 불가리아의 연주자 3명을 정식 단원으로 초빙한다.
  • 전 교무처장등 3명 재소환/조씨 자살 계기

    ◎교직원대상 수사 압축/조씨,시험지 운반때 차량운전/검·경확인/범행 총지휘자 색출에 수사력 총동원/현장 사택주변서 종이태운 재 발견/서울신대사건 【부천=조명환·김동준·박홍기·김학준기자】 서울신학대 전 경비과장 조병술씨(56·부천시 남구 소사2동 101의101)가 28일 하오 자살함으로써 후기대 시험지 도난사건은 또한번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뿐만아니라 조씨를 그동안 용의자로 지목하지 않고 단순히 참고인으로만 조사했다가 갑자기 자살함으로써 수사당국을 더욱 당황케 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조씨가 자살한 것은 일단 그가 이번사건과 깊숙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조씨와 함께 시험지를 운반·보관했거나 그동안 학내문제에 관련이 있는 주변인물 등에 대한 과거 행적과 시험지 도난사건을 전후한 알리바이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재수사를 펴고 있다. ▷자살◁ 조씨는 이날 하오4시40분쯤 자신이 임시로 살고 있는 부천시 소사2동 101의101 서울신학대 학장공관 1층보일러실에서 흰색 나일론끈으로 목을 매 자살,밖에나갔다온 부인 윤명숙씨(54)가 발견,경찰에 신고했다. 조씨는 부천 세종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부인 윤씨는 『이날 하오 남편이 은행에 가 복사골 친목회에 24만원을 입금시키고 오라고 해 은행에 갔다 집에 돌아왔으나 남편이 보이지 않아 지하실에 내려가 보니 남편이 천장 파이프에 목을 맨채 숨져 있었다』며 『자살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윤씨는 남편 조씨가 이날 상오 『이번 일은 모든 것을 내가 뒤집어 쓰게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공관◁ 경비실에서 50여m 떨어진 보일러실은 학장공관을 비롯,이 건물 전체에 난방을 공급하는 곳이다.공관1층은 조씨가족이,3층은 이 학교 이모교수가 살고있으며 2층은 비어있다. 조씨가 자살한 지하실은 평소 근무자들외에는 출입자가 거의 없는 곳으로 경찰은 사건이 발생하자 일반인및 보도진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특히 조씨는 현장에 유서등 일체의 유류품을 남기지 않았다. 한편 조씨는 이날 상오 2시쯤 경찰의 조사를 받고 귀가한 후 부인 윤씨에게 『내가 부하직원을잘못둔 것 같다』고 말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병원◁ 경찰은 이날 조씨의 사체검안이 되는 동안 세종병원 응급실에 외부인의 출입을 완전차단했다. 인천지검 강력부 박기준·최재근검사등 검사 2명은 이날 하오7시20분쯤 병원에 도착했으나 이길영 부천경찰서 형사과장등 경찰간부들과 1시간가량 요담을 가진뒤 사체 검안을 실시토록했다. ▷수사◁ 검찰과 경찰은 이번 시험지 도난사건이 숨진 조씨를 비롯한 모든 주변 인물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이는 ▲조씨의 돌연한 자살 ▲구속된 경비원 정계택씨(44)의 잇단 허위진술▲시험지·칼등 물증확보가 안된 점 ▲사건당시의 현장 정황등이 석연치 않다는데 그 이유를 두고있다. 검·경은 이날 자살현장에서 정씨의 유서등을 발견하지 못했으나 공관뒤편 단장아래에서 종이를 태운 것으로 보이는 재를 발견,이를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또 조씨의 집에서 「진술서·본적」이라고 적힌 메모지를 발견,이번사건의 고리를 풀 수 있는 증거물로 보고있다. 검·경은 이날밤 이 대학 전교무처장 천▦욱씨(56),전교무과장 이순성씨(38),경비원 이용남씨(25)등을 다시 불러 조사를 하는 한편 구속된 정씨에 대한 신문도 계속하고 있다. 검·경은 조씨가 자살한 이유를 학내 분규과정에서 조종남전학장파에 속해 있은데다 범인으로 지목된 정씨의 진술번복으로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죄책감과 위압감에 견디다 못해 자살한 것으로 보고있다. 그러나 검·경은 조씨가 더이상의 사건확대를 꺼리는 다른 학내인사에 의해 타살됐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경은 이날 수사에서 시험지 인수당일인 지난20일 낮12시15분쯤 교무처와 학적과 중간에 있는 6평크기의 전산실에 시험지를 별도로 보관할 때 전교무처장 천씨,전교무과장 이씨,그리고 숨진 경비과장 조씨와 경비원 정·이씨등 5명이 함께 있었음을 확인하고 이때부터 경비는 경비과장 책임밑에 정·이씨가 맡았기 때문에 이들이 이번사건에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고 보고 그 배후를 캐고 있다.검·경은 또 시험지를 운반·보관한 사람이외에 이들을 뒤에서 조종 내지는 지휘한사람이 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수사도 하고있다. ▷조씨주변◁ 조씨는 지난 73년 당시 이 학교 재정담당이었던 이모목사(현재 미국 LA체류중)의 소개로 대학건물 신축공사장에 임시 경비원으로 취직한뒤 74년 10월 정식직원인 학교경비원으로 채용됐다. 그뒤 88년 경비주임으로 승진했고 90년 3월부터는 경비과장직을 맡아왔으며 최근에는 교직원 출퇴근 차량을 운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지난해까지 학교부근 개인주택에서 살다 그 집이 헐리면서 학장공관으로 이사했으며 가족으로는 부인 윤명숙씨(54)와 이 대학 음악과 3학년인 딸(22)과 고교 2년생인 아들(17)이 있다. 조씨는 전교무과장 이씨와는 소원한 관계였으며 평소 술·담배를 전혀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 중동신도시 아파트에 분양신청해 당첨이 되는등 비교적 경제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해왔으며 정계택씨가 다니는 부천성결교회의 모교회라고 할 수 있는 대부천성결교회에 나가고 있었다. 고향인 충북 옥천에서 국민학교만 나온 그는 지난 62년 1월 특수절도죄로 1년형을,63년 7월에는 장물취득죄로 징격6월형을 복역한 것을 비롯,교통사고처리특례법위반 등 6차례의 전과경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 이틀에 한번꼴 연주회 열린다

    ◎경기 시립음악단들,올 170회 계획 경기도내 수원·성남·부천·안양 등 시립음악단체가 올 한햇동안 1백70회의 연주회 일정을 확정함에 따라 도민들은 이틀에 한번꼴로 음악연주회를 감상할 수 있게 됐다. 27일 도에 따르면 수원·성남·부천·안양시립합창단에서 1백20회,수원·부천시립교향악단에서 50회 등 모두 1백70회의 연주회를 각각 확정해 지난해 합창단 1백8회,교향악단 42회 등 1백50회보다 20회의 연주회가 늘어났다. 합창단의 경우 수원시립(지휘자 이상길)이 31회,안양시립(지휘자 전평화) 34회,성남시립(지휘자 서북진) 32회,부천시립(지휘자 최병철) 23회 등 모두 1백20회의 연주회를 각각 가질 계획이다. 또 교향악단은 수원시립(부지휘자 양린종)이 지난해보다 20%이상 연주횟수를 늘려잡아 모두 30회를 확정했고 부천필하모니오케스트라(지휘자 임헌정)도 20회의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특히 이 시립음악단체들의 올해 연주회 가운데 중·고교 및 대학교·군부대·기업체·불우시설 등을 찾아가 연주하는 순회연주가 30회로 계획돼 있다.한편 지난해에는 안양시립합창단의 34회를 비롯,부천필하모니오케스트라 27회,수원시립합창단 25회,부천시립합창단 23회,수원시립교향악단 21회,성남시립합창단 20회 등 모두 1백50회의 연주회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 쟁이와 예술가/문두훈 서울시경 단원(굄돌)

    이 세상에 남자로 태어나서 해볼 만한 직업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면 첫째가 대통령,두번째가 큰 배의 선장,그리고 세번째가 교향악단의 지휘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보통사람들도 대통령과 함장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되나 교향악단의 지휘자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상상이 가지 않을 것이다. 교향악단의 지위자는 쉽게 말해서 교향악단의 군주(군주)이다.그는 교향악단을 훈련시키고 통치하며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만들도록 모든 지시를 한다.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보다도 교향악단을 훈련시키는 일이다.그런데 이 과정에서 군주의 역량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고 교향악단의 군사들이 느끼게 되면 군사들은 도도해지고 너나 할 것 없이 군주의 머리끝에 서고자한다.어찌하였든 이러한 때에 우리는 이 군사들을 「쟁이」라고 부르는데 「쟁이」가 된 군사들은 자신들의 군주인 지휘자에게 철저히 자기 주장을 한다. 『군주여! 훈련종료 시간이 지났습니다』『군주여 그대의 지휘 방법이 옳지 못하니 방법을 바꾸어 주시오!』등등…하여간 이러한 상황이 닥치면 어떠한 교향악단이라도 훌륭한 연주를 할 수가 믿다.그런데 이렇듯 절망적인 교향악단에 유능한 군주가 나타난다면 상황은 일순간에 바뀌어 「쟁이」었던 군사들이 모두 예술가로 바뀌어 충성에 충성을 다한다.『훈련시간을 늘려서라도 우리는 이 훌륭한 예술작품을 완성해야 한다』고 외치면서 말이다.그래서 누군가는 이 세상에 나쁜 지휘자는 있어도 나쁜 교향악단은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아닌 전혀 다른 상황에서 「쟁이」었던 단원들이 예술가로 바뀔 때가 있다.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그들이 연주하고자 한 작품이 한없이 아름다울 때 「쟁이」었던 단원들이 예술가로 바뀌는 것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쟁이」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한다.『자! 이제 아름다운 사회,2세들에게 자신있게 물려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설혹 훌륭한 지위지가 없다 하더라도 훌륭한 예술가의 길을 걷지 않으시렵니까』라고.
  • KBS 교향악단/내국인 협연 50%로 높여

    ◎공석중인 상임지휘자에 오트마마가 선임/쳄버오케스트라 창단 지방공연도 활성화 KBS교향악단은 외국인 위주로 되어 있던 협연자의 내국인 비중을 크게 높이고 새로이 KBS쳄버오케스트라를 창단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92년도 활동계획을 발표했다. KBS교향악단의 협연자는 지난해까지 8대2 정도로 외국인 협연자가 절대적으로 많았던데 비해 올해부터는 내국인들에게 무대를 제공해 발전의 전기를 마련해준다는 취지에서 그 비율이 5대5로 조정됐고 내년부터는 오히려 2대8로 내국인의 비율이 크게 높아지게 된다. 이에따라 올해에는 바이올린의 김남윤과 이미경 이택주와 피아노의 서주희 김대진 손국임 등 내국인 6명과 바이올린의 루벤 아가로니안과 일리아 그루버트,첼로의 게리 호프만,피아노의 옥사나 야브론스카야·알렉산더 토레제,클라리넷의 제르바스 드 페이어 등 6명의 외국인이 협연자로 초청됐다. 특히 4월에는 그동안 공석이던 상임지휘자로 오트마 마가가 취임해 올해말까지 6개월 정도 머무르며 16회의 정기연주회 가운데 6회를 지휘하게 된다.이밖에 전임지휘자 금난새가 2회,수석객원지휘자인 박탕 조르다니아와 모세 아츠몬이 각각 5회와 2회,객원지휘자 피터 맥코핀이 2차례의 정기연주회를 맡는다. KBS교향악단은 또 단원 가운데 30∼35명 정도로 쳄버 오케스트라를 조직해 운영한다고 밝혔다. 김동성총감독은 『이 쳄버오케스트라는 교향악단이 설 무대가 없어 찾아갈 수 없었던 중소도시나 학교·산업체에서 연주하기 위해 조직하게 됐다』면서 『부수적으로 신예지휘자와 독주자에게도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주어 훌륭한 음악가로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교향악단은 올해부터 모든 정기연주회의 프로그램을 예술의 전당과 KBS홀에서 각각 연주하게 됨에 따라 16프로그램,32차례의 정기연주회와 팝스콘서트,지방순회연주회,방송연주회 등 모두 80회의 공식연주를 하게 된다.
  • 나치수용소 유태인에 “죽음의 전주곡”/바그너음악 이스라엘공연 논란

    ◎바렌보임 연주무산후 찬반논쟁 가열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이스라엘 필하모닉이 바그너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연주할 수 있을까. 지난 연말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 함께 바그너를 연주하려던 계획이 단원 및 여론의 강력한 반발에 밀려 무산된 뒤에도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가열되고 있다고 근착 뉴욕타임스와 시사주간지 타임이 잇따라 전하고 있다.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는 지난 19 38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팔레스타인 심포니의 연주 이후 공연계획표에서 사라졌다. 그 뒤 지난 81년 인도인이지만 이스라엘에 누구보다도 애정을 갖고 있는 주빈 메타가 「트리스탄과 이졸데」가운데 「사랑과 죽음」을 「금기를 깨기 위해」앙코르곡으로 연주하다 청중들의 흥분으로 중단됐다. 10년이 흘러 지난 해 바렌보임이 이스라엘 필하모닉과의 연주계획을 발표하며 바그너를 포함시키자 또다시 소동이 일어 오케스트라 회원 및 단원들은 투표끝에 연주를 거부했다. 바그너는 히틀러가 태어나기 6년전이고 권력을 잡기 무려 반세기전인 18 83년에 죽었다.그가 살아있는 동안 유대인을 혐오하는 글들을 쓰기도 했고 그의 작품속에 반유대주의적인 경향이 있다고는 하지만 세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그리고 있는 유대인의 모습처럼 구체적이지는 않다.사실 바그너적인 유대인에 대한 편견은 당대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문제는 그의 음악이 나치선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에따라 나치침략의 가장 강력한 상징이 되었다는데 있다. 특히 30만명에 이르는 「죽음의 수용소」의 생존자들에게는 당시 수용소의 나팔스피커에서 울려퍼지던 바그너의 음악이 곧 「죽음의 전주곡」으로 깊숙이 각인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유대인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잭 스턴과 이츠하크 펄먼,슐로모 민츠,그리고 수용소 생존자인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 부악장 데이비드 아번 등은 바그너의 음악으로 히틀러가 힘을 얻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수많은 수용소 생존자들에게 바그너는 고통을 상징하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의 연주는 불가능 하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반대하는 쪽의 의사가 대부분 관철되고 있다. 그러나 메타나 바렌보임과 같은 노력도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다. 수용소 생존자의 한 사람인 클리블랜드오케스트라의 트럼펫주자 데이비드 조더,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펠츠만,지휘자 레온 보트스타인 등도 그런 쪽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주장은 음악은 그 자체로 미하적 도덕적 기준을 적용해야지 청중의 경험과 결부시켜서는 안 되며 바그너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에서 바그너 음악의 연주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그너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유대인들도 흥분이 아닌 이성을 갖고 이 문제를 대하자는 것이지 과거를 잊자거나 나치의 역사와 화해를 하자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처럼 관대한 쪽의 유대인들도 막상 텔아비브에서 바그너음악회가 열리면 대부분 외면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들의 주장은 이스라엘에서의 바그너연주를 억지로 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 고통의 상징인 바그너의 음악을 듣고 싶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 북한 문화실상:1(공연예술:상)

    ◎“이념적 장르 탈피” 부산한 몸짓/“혁명예술” 피바다 아닌 새 무대 시도/최근들어 「민족음악」 보다 「양악」 인기/김일진·서윤영등 국제콩쿠르서 상위에 입상도 지난해말의 남북합의서 채택에 이어 한반도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남북관계가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향해 급속히 진전되고 있다.어느날 갑자기 통일이 우리곁에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관측이 나올 정도인데 북한의 문화예술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그러나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다.부분적 이해마저도 편견이나 비판에 불과했다고 볼 수 있다.문화적 남북 동질성 회복을 위해 민족문화의 자산이 될만한 북한문화의 특질을 분야별로 점검해본다. 그동안 북한의 공연예술은 혁명가극 「피바다」와 같이 음악·무용·연극이 종합화되어가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에따라 음악무용서사시극·무용극·음악무용이야기·음악무용서사시등의 새로운 장르가 형성되어 빈번히 공영되고 있다. 그러나 음악·무용·연극의 개별장르도 꾸준히 위치를 지켜왔다는 사실은 그렇게 알려지지 않았다. 종합화된 장르가 철저히 혁명이나 이념의 구현을 추구했다면 개별 장르는 전체적으로 지향하는 방향이 같았을지라도 어느 정도의 보편성이 유지되어왔다고 할수있다. 북한에서 예술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기준은 「인민성」인데 종합화된 장르는 바로 이 「인민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선택된 셈이다. 음악의 경우 이 「인민성」을 위해 순수양악을 연주하는 교향악단도 우선은 대중을 위한 음악을 연주해야하며 성악가들도 서양식 창법외에 민요발성법을 교육받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북한에서 일반적으로 서양음악종사자들은 소위 「민족음악」종사자들보다 훨씬 고상한 집단으로 대접받고 있다.공식적으로 서양음악을 「민족음악」의 한갈래로 분류하고 「민족음악」을 우대하는 정책과는 모순돼 보이는 현상이다. 그에따라 북한 제1의 공연예술전문가 양성기관인 평양음악무용대학에 설치되어 있는 성악과 민족기악,양악기악,무용,작곡등 5개 전공학부가운데 해마다 양악기악학부가 가장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고 다음이 작곡학부,음악분야가운데 최하위를 항상 민족기악학부가 차지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북한이 소련의 문화예술체계를 모범으로 삼았고 그에따라 소련등 동구권과 마찬가지로 교향악단 양성 등 서양음악에도 힘을 기울였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따라 상당한 숫자의 양악전공자들에게는 해외유학의 기회가 주어졌고 그 대상국가도 초기에는 소련과 동독등 공산주의국가에서 80년대말부터는 오스트리아및 이탈리아·프랑스까지로 넓어졌다. 국제콩쿠르에도 참가해 83년에는 바이올린의 서윤영이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입상한 것을 비롯,이미 잘 알려진 지휘자 김일진이 85년 카라얀콩쿠르에서 1등 없는 2등을 차지했다. 또 86년에는 조혜경과 김진국등 두 성악가가 차이코프스키콩쿠르에서 나란히 입상했으며 불가리아 소피아음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에 유학하고 있던 김영욱은 89년 최현수와 함께 「스테파노 국제성악콩쿠르」에서 공동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국제콩쿠르에서 입상한 연주자들은자연히 북한을 벗어나 해외연주를 하게될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수준급으로 알려진 북한 교향악단의 경우도 동구권이 대대적인 변혁을 겪기 전만해도 1년에 3∼4차례에 이르는 동구권및 제3세계 개발도상국 순회연주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서 서양음악전공자들의 위상이 높은 것은 이처럼 해외유학이나 해외여행,해외체류의 기회가 많기때문이다.이에 비해 「국내용」인 「민족음악」전공자의 경우 해외에 나갈 기회는 거의 없다.우리도 지난 60∼70년대에는 해외에 나갈 기회가 있는 직장이 좋은 직장이라 여겨졌던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 하겠다. 북한에서 서양음악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고 있는 좀더 전문적인 이유로는 북한음악의 세계성이 문제가 된다는데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민족음악」을 깔보는 현상까지 나타났다고 한다.이런 상태이기에 『정책적 배려에 의해 민족성악과 민족기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높은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자라나는 새세대들속에는 「민족음악」을 전공하지 않으려는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고백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소위 「민족음악」이 북한사람들의 정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것도 아니고 국제적으로 「북한의 독특한 음악」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다는 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북한이 작곡가 윤이상씨에 대해 최대의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은 후자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지적이다. 국제적으로 명망있는 작곡가인 윤씨가 역대 남한정권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1980년의 광주를 소재로 한 「광주여 영원히」같은 작품을 썼다는 것도 북한입장에서는 중요하지만 북한의 서양음악이 아닌 「민족음악」이 보편적인 세계음악계와 소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통로가 그이기때문이라는 설명이다.지난 1984년 설립된 「윤이상음악연구소」가 연구원 12명과 회원 80명,성악가 10명을 포함한 45명 규모의 「윤이상실내악단」을 운영하는등 규모가 큰 것도 이런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볼때 공연예술,특히 음악분야에서는 이미 크게 달라져버린 음악현상을 서로 이해하려고 하면 암담하지만「보편적인 예술을 보는 눈」이라는 공감대는 긴 분단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일치하고 있다는 것이 통일을 전제로 길지 않은 시간동안에 남북동질성의 회복이 가능하다고 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 음악회에 갑시다(굄돌)

    얼마전의 일이다.내가 몸담고 있는 교향악단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초청된 한 외국인이 연주를 마치고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서울시민이 얼마나 되지요?』 나는 대답했다.『1천만명입니다.그리고 낮의 유동인구는 1천5백만명입니다』 그 답변을 들은 지휘자는 의아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며 질문을 다시했다. 『그렇다면 1천만 서울시민중에서 시울시립교향악단의 연주회가 며칟날,어디서,무슨 프로그램으로 열리는가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나는 다시 대답했다.『그것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알 수 없으나 전에 조사한 자료를 토대로 한다면 2만 명에서 3만 명정도일 것입니다』 그는 다시 입을 열었다.『내가 디트로이트 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계약을 했었을 당시에 시민의 10%정도만이 제가 맡은 교향악단의 공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는데 1년 동안 홍보를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여 40%정도의 시민이 공연에 따른 정보를 알게 된 후 청중과 회원이 무려 20배가 증가해서 공연 횟수를 4배로 늘리게 되었습니다.서울시립교향악단도 최소한 서울시민의 30%정도가 공연에 대한 정보를 알수 있게 되어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로서는 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한 달에 두번꼴로 개최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에는 평균 1천5백명의 청중이 모이는데 이러한 공연 횟수와 청중수로 1천만 서울시민이 빠짐없이 우리 교향악단의 정기 연주회를 보게 하려면 3백년이 넘게 걸린다는 계산이다. 부끄러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현재 상황은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극복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터무니 없는 계산같지만 서울에 거주하는 1천만 시민이 10년에 한번씩 시립교향악단이 개최하는 연주회에 참석하기로 한다면 교향악단은 세종문화회관의 4천석 객석을 모두 채우고 연주하더라도 10년동안 1년에 2백50회씩의 공연을 해야만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쯤 된다면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세계 최고의 악단이 되지 못하란 법도 없을 듯하다. 그러니 세계 10대 도시에 걸맞게 세계 10대 교향악단에 들어갈 수 있는 악단을 육성하는 것이절대로 어려운 일이 아닌 듯하다. 모두 다같이 외쳐봅시다. 『시민 여러분! 10년에 한번씩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지역 교향악단의 연주회를 직접 찾아가서 들어 봅시다』 ▷필진이 바뀝니다△ 1월의 필진이 김재희(재미·유니세프본부 인사부 국장) 문두훈(서울시립교향악단 튜바 수석연주자) 안공혁(보험감독원장) 이태동(서강대교수·영문학) 이승렬씨(본사 편집위원)로 바뀝니다.
  • 교수낀 백억대 도박단 적발/9명 구속

    ◎프로야구 유승안선수등 셋 수배 【대전=이천렬기자】 대전지검 특수부(이기배부장검사)는 8일 1백여억원대의 판돈을 걸고 포커 도박을 해온 대전시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서강복(47·M대교수)·김정연씨(31·B대 강사)등 교수 2명과 채봉석씨(42·세원운수 대표·대전시 서구 용문동 276)등 기업인 7명등 모두 9명을 상습도박혐의로 구속했다. 검찰은 또 이들과 함께 도박을 해온 전 빙그레이글스 소속 프로야구선수 유승안씨(35·대전시 서구 갈마동 동산아파트3동 910호)등 3명을 수배했다. 서교수등은 지난 89년 1월부터 지난해말까지 같이 구속된 길영종씨(30)가 마련한 도박장소에서 한판당 3백만∼1천만원씩의 판돈을 걸고 1백30여차례에 걸쳐 포커노름을 벌여온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이들 가운데 전병태씨(35·화성금속 대표·대전시 대덕구 법동 285)는 지난해 8월부터 4개월동안 무려 4억여원을 잃은 것으로 드러났으며 도박장을 개장한 길씨는 2억2천만원의 장소대여료를 받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검찰은 이들 말고도 다른 기업인 10여명이 상습도박을 벌인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이들의 신병확보에 나섰다. ◇구속자 ▲서강복 ▲김정연 ▲채봉석 ▲길영종 ▲전병태 ▲박정근(33·골드프로모션 대표·대전시 중구대흥2동 240) ▲손경용(37·의류상·〃 중구 선화동 현대아파트 103동 301호) ▲박태호(29·S국교 음악강사) ▲박형서(32·무직·대전시 동구 원동 97)
  • 30여 정상급 외국악단 몰려온다/올 음악무대 “풍성”

    ◎「동구권 편중」 탈피 다양한 음악세계 펼쳐/세종회관·예술의 전당 대관일정 “만원” 92년은 그 어느 해보다도 해외의 뛰어난 음악가와 단체의 내한연주를 즐길 수 있는 해가 될 것같다.20개에 육박하는 국제수준의 교향악단과 10개를 넘는 1류급 실내악단,그리고 전성기에 있는 솔리스트들이 대거 한국을 찾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올해는 또 동구권 연주단체의 편중현상도 어느 정도 개선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내한예정인 동구권 연주단체의 수가 지난 해보다 늘어났음에도 다른 지역 연주단체의 초청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기 때문에 아직 성사가 불투명한 공연도 있지만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 전당의 대관일정을 중심으로 올해 예정된 해외 음악가의 초청현황을 알아본다. ▷1월◁ 빈 국민가극장 관현악단이 19,20일 신년음악회를 갖는다.이 관현악단은 60여명의 단원이 오페레타를 중심으로 빈 특유의 정서를 표출하는 악단으로 알려져 있다. ▷2월◁ 파리오페라관현악단의 수석주자로 구성된 라주모프스키 현악4중주단이 내한한다. ▷3월◁ 르네상스다성음악에 뛰어난데다 폴 사이먼의 유행음악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선사하는 킹스 싱어즈를 비롯,피아니스트로 더욱 유명한 필립 망트르몽이 지휘하는 빈 쳄버오케스트라와 자그레브 솔리스티,필하모니아 현악4중주단 등 실내악단이 줄을 잇는다. ▷4월◁ 몬트리올·이무지치 실내악단과 미국의 포틀랜드 청소년교향악단이 연주회를 갖는다. ▷5월◁ 브룸스테트가 지휘하고 바이올린의 린초량이 협연하는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가 지휘하는 몬테칼로필하모닉,밤베르크심포니 등 교향악단과 부다페스트실내악단,콘센루스 헝가리쿠스,빈필하모닉솔리스트라,노르웨이 국립음악원 실내악단이 잇따른다.또 부친 다비드의 대를 이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미고르 오너스트라흐 독주회와 카를로스 보넬의 기타독주회도 예정되어 있다. ▷6월◁ 소련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게나리 로체스트벤스키가 지휘하는 스톡홀름필하모닉과 체코심포니,헝가리 국립교향악단이 내한하며 함부르크 모차르트오케스트라와 키예프 쳄버오케스트라 등 실내악단,그리고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인 앙드레 와츠의 독주회와 크리스티나 오르티즈의 서울시향 협연이 예정되어 있다. ▷7월◁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에서 이름을 바꾼 성페테르부르크필하모닉의 내한이 추진중에 있고 뉴욕 팝스오케스트라와 롱아일랜드 유스오케스트라의 연주가 확정됐다. ▷8월◁ 우리 청소년 연주자가 대거 참여할 아시안 유스오케스트라와 1백5명의 남성으로만 구성된 소련 적군합창단도 내한한다. ▷9월◁ 런던 페스티벌오케스트라와 호주 실내악단에 이어 피아니스트 라자 베르만이 아들 파벨과 듀오콘서트를 가지며 세계적인 클라리넷주자인 제르바스 드 페이에도 KBS교향악단과 협연한다. ▷10월◁ 「환상의 지휘자」로 불리는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뮌헨필하모닉과 예프게니 스베틀라노프가 지휘하는 러시아 국립교향악단이 세계 최고의 교향악단이란 어떤 수준인가를 유감없이 보여줄 것이다.또 바르샤바심포니와 로열필하모닉 팝스오케스트라,폴란드 국립오페라단,빈 소년합창단,산도르 베그가 리드하는 카메라타 잘츠부르크가 내한하며 테너 페터슈라이어도 리트의 정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1월◁ 「4계」로 유명한 클라우디아 시묘네가 지휘하는 이 솔리스티 베네티 외에 헝가리 라디오심포니와 바덴바덴심포니 등 교향악단,파리 나무십자가와 스윙글 싱어즈 등 합창단이 공연한다.이밖에 체코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요셉 수크도 독주회를 갖는다. ▷12월◁ 「4계」에 있어 이 솔리스티 베네티와 또 하나의 쌍벽인 이 무지치와 클리블랜드 현악4중주단이 내한공연을 갖는다.
  • 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5

    ◎“동질성 회복의 첩경” TV등 방송개방/방송·문화교류/언어·풍속이질화 극복 급선무/역사·음악등 비이념분야 협력 크게 늘듯 동서독의 통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것은 다름아닌 TV였다. 통일 당시 동독주민의 80%가 서독TV를 시청하고 있어 동질성 회복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그러나 동독TV는 서독주민들에게 거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동독정권의 입장에서는 서독의 TV가 무엇보다도 가공할 무기였던 셈이다. 「남북합의서,제16조에 방송과 문화예술교류가 명시되어 있긴하나 바로 이런 이유때문에 방송과 문화예술교류의 속도가 크게 빨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 방송과 문화·예술교류의 가속화는 곧 북한체제붕괴의 가속화를 뜻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남북한 화해 공존」의 정신을 담은 이번 「합의서」의 채택은 교류의 질절향상보다는 그간의 상징적 교류를 실질적 교류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KBS와 북한중앙방송이 서울과평양에서 각각 열린 세계청소년축구 남북단일팀 평가전을 판문점의 전송회선을 통해 교환한 것은 좋은 선례로 기록되고 있다. 방송인들은 이번 「합의서」가 발효된뒤 3개월안에 「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1개월안에 「교류·협력분과위원회」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는데 주목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정치적인 색채가 완전히 배제된 순수한 스포츠프로그램의 경우 우리쪽에서 적극적인 협력제의가 있을 경우 북측에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편 문화예술의 경우 활발한 남북문화교류가 기대되는 분야는 학술과 음악분야다.두 분야 모두 비교적 이데올로기의 개입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특히 고고·역사학의 경우 양쪽 모두가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발해와 가야사연구는 남북한 학자의 공동작업이 절실한 상황으로 어렵지 않게 학자와 자료의 교환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며 문화재의 공동발굴조사 전망도 밝다. 또한 언어문제의 이질화 극복노력도 학술교류의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로 꼽힌다. 음악의 경우 「서양고전음악」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활발한 교류가 기대되고 있다. 앞으로 지휘자와 독주자의 교환연주나 양쪽 교향악단 단원이 섞이는 합동연주 등은 무리없이 성사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술의 경우 북측은 지금까지 우리측의 교류제의에 대해 공식기구를 통한 접촉을 기피하고 「민미협」이나 「민예총」등 단체에 의사표시를 해왔으나 이번 「합의서」채택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기구와의 접촉이 기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순수미술 차원의 교류는 쉽게 이루어질 것으로 보이나 남쪽이 북쪽의 사실주의적 작품에 호기심이 쏠릴 가능성이 있는 반면 우리작품이 북쪽에서 유통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출판·문학분야에서는 지난 87년 금서해금조치로 납·월북문인의 작품이 대량으로 소개됐으나 대부분 북한에서도 소외된 작품들이었고 그외 해금되지 않은 북한문인의 작품도 상당부분 법적 테두리 밖에서 소개됐다.이에 따라 거의 모든 북한문인의 작품을 대할 수 있게 됐으나 지금은 거의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다. 문학교류의 문제는 우리 작품을 북한에 소개하는일이다.우선 「태백산맥」「장길산」「객주」같은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물을 북쪽에서 전향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추천과 협조가 필요하다. 이같은 남북문학 작품의 교류보다 남북 문인들의 교류에 문단 당사자들의 관심은 더욱 쏠리고 있다.
  • 고르비의 부와 침/역사의 아이러니

    ◎「개혁」 외쳐 권좌 오르고 「개혁」 못해 밀릴판/전제통치 했더라면 연방해체 막았을것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6일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라며 사임설을 일축했다.그러나 모스크바에는 『빠르면 이번주중에 그가 물러나게 될것』이라는 설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가 물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르바초프의 집권 7년동안 두가지 커다란 역설적인 사실을 꼽을 수 있다.그 하나는 그 자신이 추진한 「글라스노스트」(개방),「페레스트로이카」(개혁),「데모크라티자치야」(민주화)등 개혁조치에 의해 권력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개혁을 거부하고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통치를 했더라면 소연방의 해체를 막고 자신도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그의 최대 업적일지 모른다.글라스노스트는 반정부인사를 허용했고 자유언론을 대두시켰다.한때 고르바초프는 소련지식인과 작가·예술가들의 영웅이었다.그러나 찬양의 합창소리는 너무 커진 나머지 지휘자를쫓아내 버리고 말았다. 지난 85년 고로바초프가 공산당 지도자가 되었을때 처음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신문과 라디오 TV에서 거론됐다.86년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은 교묘한 암시에 불과했으나 금년에는 그의 서기장 재임기간중 공산당에 의한 김의 해외유출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이 가해지기에 이르렀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유기업을 장려했고 그 결과 소련국민들은 손쉽게 수입상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불가피하게 국민들의 경제적 기대치가 개혁의 속도를 앞지르게 됐고 광범위한 불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데모크라티자치야로 모든 선거는 공정하고 복수후보가 경쟁할 수 있게 됐는데 그결과 고르바초프의 정책과 권위에 도전하는 대중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이들중에는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과 같은 전 공산당원과 그루지야공화국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야나 체첸 잉그슈자치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장군과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등이 포함됐다.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키고 KGB(국가보안위원회)활동에 제재를 가하고 정치범을 석방시킴으로써 고르바초프는 개방사회를 향해 거보를 내디뎠다.그러나 공포의 대상이 됐던 국가기관들에 대해 「휴업조치」를 내린 것은 동시에 자신의 권력에도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소련제국의 붕괴요인으로 작용했다.소수민족들은 글라스노스트를 틈타 수십년간 계속된 무자비한 러시아화 정책으로 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여기에다 민족주의 대두까지 겹쳐 인종분쟁의 긴장이 야기됐고 경제적 불만과 선동주의적 지도자들에 의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 결과는 독립운동과 영토분쟁,분리주의,폭력이 뒤엉키는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고르바초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국가정책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무력사용을 거부한 것일지 모른다.
  • 문화적 사대주의/서동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지난 8월22일 김자경오페라단이 사단법인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한 연회에는 전·현직 장관을 비롯,5백여명의 사회저명인사가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을 가득 메워 음악인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음악인들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중요한 음악행사에 내노라하는 인사들이 얼굴을 내밀지 않으면 안될 만큼 우리 사회에서 음악계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다는 한 증거인 셈이다. 사실 요즘은 국내외 유명음악가들의 동정 몇가지를 신문에서 눈여겨 보아두지 않으면 웬만한 자리에서는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는 고백이 심심치않게 들려올 정도로 음악의 저변이 넓어졌다면 넓어졌다고 할 수도 있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오는 11월 내한하는 플라치도 도밍고의 독창회는 15만원짜리 입장권까지 거의 팔려 나간 상태라고 전해진다. 도밍고와 순회공연을 위한 전속지휘자,전속소프라노에게 주어질 외화는 38만달러라고 문화부에 신고됐고 이들의 국내 체재비까지 합치면 들어가는 돈은 훨씬 많아질 것이다. 이들을 초청한 공연기획자와 외국에서 갓돌아온 동업가수들은 그러나 이 액수가 결코 많지않다고 항변한다. 미국이나 유럽등 음악의 본고장에서도 도밍고를 초청하려면 그정도 돈은 든다는 것이다.나름대로 일리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도밍고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전혀 관계없는 프랑스의 여배우 소피 마르소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한때 소피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우상이었다.그러나 재미있는 것은 그녀가 우상으로 떠오르던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녀가 출연한 영화가 단 한편도 소개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그녀를 이 땅에서 우상이 되게한 것은 그녀의 영화를 본뒤 그녀를 우상화한 일본잡지였고 또 그 잡지를 베낀 우리의 잡지들이었다. 이제 도밍고의 독창회가 끝나면 다시 장안의 화제거리가 될 것이다. 김자경오페라단의 경우 연회는 성황을 이루었지만 공연자체는 화제거리가 되지는 않는다. 그 김자경오페라단이 29일부터 「메리위도우」를 공연할 예정이지만 표가 안팔려 울상이라고 한다. 자신의 얼굴을 내보이기 위해 연회에 참석했던 사람들 가운데 과연 몇명이나 공연장에나올 것인지 주목거리가 아닐 수 없다.
  • “이번엔 꼭 결실맺자”… 남북총리 화답

    ◎평양의 우리 대표단 이모저모/“올안 서울 오셔야죠”에 “가야죠” 응답/“남 언론 동구 붕괴 어떻게 보나” 묻기도/양산도·고향의 봄 연주에 “한마음 박수”/남북한 총리,무대 올라가 공연자들 격려/통일신보위원 “군비 줄이면 남북 모두 잘 살것” ○…정원식국무총리를 비롯한 대표 7명과 수행원·기자등 우리측 대표단 90명은 22일 하오 평양에 도착,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서 여장을 푼뒤 회담장인 인민문화궁전을 답사.이어 하오 7시부터 열린 연형묵정무원총리 주최 환영만찬에 참석하는 것으로 공식일정을 모두 끝내고 평양에서의 첫날 밤을 보냈다. ○각계인사 두루 참석 ▷목란관 만찬◁ 이날 만찬이 열린 목란관 연회장에는 4백여평의 홀에 헤드테이블과 16개의 원탁테이블이 마련됐으며 한 테이블에 15명씩 모두 2백55명이 참석. 만찬에 참석한 남북회담 대표들과 취재기자,그리고 연예·문화계등 각계 각층의 북측 대표들은 서로 어울려 남한측 대표단과 고위급회담전망,남북교류문제등 여러가지를 화제로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찬에 참석한 통일신보의 홍창식논설위원은 군축문제와 관련,『북한이 군사비에 많은 투자를 하다보니 인민의 생활이 어렵게 됐다』며 『그래서 군비를 축소하면 남북한 모두 잘 살 수 있게 될것』이라고 말하고 정치·군사문제 우선해결을 주장. 북한측 참석자들은 또 소련 동구권국가에서의 공산주의 붕괴사태를 남한언론에서 어떻게 취급하느냐며 관심을 표명한뒤 남한측의 「흡수통일론」에 경계심을 나타내기도. ○…이날 만찬은 칠면조요리 사슴고기중탕 닭고기 쇠고기요리가 망라된 성찬이었다는 평. ○정 총리,선글래스 선물 특히 만찬이 시작된지 약 1시간반쯤 지난 하오 8시25분쯤 13인조로 구성된 「왕재산 경음악단」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점차 고조됐다. 이들 경음악단의 반주에 맞춰 양산도·고향의 봄등 노래와 탈춤,빠른 템포의 무용등이 어우러졌는데 남북양측 참석자들은 박수로 이들의 공연에 호응하기도. 또 여성8인조 무용인 「꽃피는 봄」공연때는 출연자들의 무릎윗부분이 여러차례 노출돼 눈길을 끌었다. 약 35분간의 공연이 끝나자 정총리와 연총리는 함께 무대위로 올라가 공연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정총리는 악단지휘자에게 선글래스를 선물. 정총리가 이어 여성출연자들에게 『미인들』이라고 추켜세우자 연총리는 『북쪽 여자들은 모두 미인들』이라고 맞장구. ○…이날 만찬이 열린 목란관은 평양중심가 창광거리에 있는 정무원직영 연회장으로 지난해 2차 회담때도 남측 대표단을 위한 만찬이 열렸었다.뿐만아니라 북·일수교회담의 일본대표단등 외국귀빈들을 위한 연회도 자주 열려 비교적 잘 알려진 북한의 대표적 공연시설로 꼽힌다. ▷백화원 초대소◁ ○…낮12시55분쯤 숙소인 백화원초대소에 도착한 정총리일행은 초대소 로비에서 연형묵북한정무원총리의 영접을 받았으며 로비 뒤편에 있는 금강산 그림을 배경으로 남북 양측대표들이 기념 촬영. 이어 양측 대표단들은 응접실로 옮겨 약 7분간 환담. 정총리는 연총리에게 『미국가셨다 언제 오셨냐』고 말문을 연후 『고향인 재령과 소학교를 다니던 사리원을 지날 때는 기차가 잠시 멎었으면 하는 심정이었다』고 토로. ○전 총리안부도 물어 연총리가 상담모습을 취재중인 기자들을 의식,『이번에는 북남 뿐만아니라 일본기자들도 많이 왔다』고 하자,정총리는 『일본 뿐아니라 국제적 관심도 큰만큼 이번에는 결실을 맺도록 노력하자』고 다짐. 이에 연총리는 『합시다』라고 응답. 연총리는 이어 강영훈전총리의 안부를 물었으며,정총리 역시 강전총리의 인사말을 전달. 정총리가 『금년내에 서울에 오셔야죠』라며 5차회담을 의식한 말을 건네자 연총리는 웃으며 『가야죠』라고 응답. 연총리가 정총리를 응접실과 부속실에 달린 침실로 안내한 후 초대소를 떠나자,우리측 이동복대변인은 도착성명을 발표. 이날 남북총리 환담및 도착성명발표에는 남북한 기자들은 물론 신화사·인민일보등 중국기자들,아사히등 일본기자들과 로이터등 서방기자를 포함해 40여명이 열띤 취재경쟁. ○건강·날씨 화제 삼아 ▷개성∼평양◁ ○…22일 상오 9시 개성역에 도착한 정총리등 남측대표단 일행은 침대칸 16량으로 편성된 특별열차에 탑승. 열차안에서 정총리는 북측의 안병수부위원장과 나란히앉아 건강문제와 날씨를 화제로 담소. 정총리가 백남준 북측 대표에게 『지난 1차 서울회담때 차량사고로 다친 허리가 괜찮으냐』고 묻자 백대표는 『아직도 거동이 부자연스럽다.하지만 역사적 선물이 아니겠느냐』고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 ○…양측 대표들의 환담이 끝난뒤 정총리는 북한의 중앙통신·로동신문 기자들의 요청에 응해 약 5분간 차내 회견. ○…대표단 일행을 태운 특별열차는 상오 9시 정각 개성역을 출발,도중에 한곳도 정차하지 않은채 3시간30분간을 달려 평양역에 도착. 열차안에서 북측 기자들과 안내원들은 한결같이 『이번 4차회담에서는 성과가 있어야겠는데 남측에서 불가침선언을 수용할 태세가 돼있느냐』며 관심을 표명. 특히 북측 기자들은 『남쪽의 차기대권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등 집중 질문. 또 북측 기자들은 『5공인사들이 정당을 결성하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는데 『워낙 변수가 많아 앞일을 전망하기가 어렵다』는 답변에 고개를 갸우뚱하기도. 평양역에 도착한 대표단은 아무런 환영행사없이 승용차와 버스를타고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직행. ○“45년만에 고향 본다” ○…이날 평양시내와 개성시내에는 농촌지역과는 달리 시민들의 왕래가 잦았는데도 남측 대표단 일행에 대해서는 눈길한번 주지 않는 냉담한 모습. 이와관련,북측의 한 안내원은 『세번에 걸친 총리회담에서 한치의 진전도 보지 못한채 왔다갔다하기 때문에 실망해서 그런다』고 설명하면서 『이번 제4차 회담에서는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 ▷판문점 출발◁ 정원식국무충리등 우리측 대표단 7명은 이날 상오 8시30분 판문점의 군사분계선을 통과,북으로 행했다. 정총리는 북측이 보내온 승용차를 타기에 앞서 환송나온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의 『잘 다녀오십시오』라는 인사에 『고맙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한뒤 환송나온 인사들에게 손을 흔들자 이들은 박수로 답례. ○신분확인 완전 생략 북측 관계관들은 신분확인 절차를 위해 수행원 기자단의 명단과 사진첩을 준비해왔으나 이미 세차례나 이같은 「통과의례」를 치른 탓인지 신분확인 절차를 완전히 생략한채 『그냥 가시죠』『들어가세요』등의 인사말로 대신. ◎대표단 평양 도착 성명 우리 대표단은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해 이제 두번째로 평양을 방문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대표단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해준 평양시민들과 북녘동포 여러분에게 심심한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남과북은 이제 더이상 단절과 대결속에서 스스로의 역량을 허비하고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하루속히 서로 돕고 협력하며 함께 번영하는 길로 나가야 할 때입니다. 서로가 자유롭게 왕래하고 서로의 사는 모습을 확인하는 가운데 민족공동체의 뿌리를 찾고 민족의 혈맥을 다시 이어야 할 때입니다. 이제 남과 북이 유엔에 함께 가입한 만큼 이를 계기로 남북관계를 조속히 정상화하고 공존·공영을 도모하면서 평화통일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이번 제4차 회담이 남북고위급회담의 진전에 하나의 분기점이 된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입장의 차이를 좁혀 합의를 생산하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는 진실로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하는 대화,분단의 고통과 불행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대화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회담의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이해와 양보의 자세로 모든 노력과 성의를 다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평양방문이 남북대화 20년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이정표로 기록될 수 있도록 북측 대표단의 성의와 협조를 기대합니다.
  • 한미정상,테니스 치며 우의 돈독히(노 대통령 북미순방 여로)

    ◎“「보통사람」 링컨 말인줄 나중에 알았다” 조크/“내 미제라켓은 무역 불균형 시정 위해 산 것”/88올림픽 사진등 비치… 한국문화 전시장 눈길 ◎…부시 미 대통령내외가 노태우대통령내외를 위해 2일밤 백악관에서 주최한 국빈만찬은 필요격식을 갖추느라 7시15분부터 2시간20여분간 계속. 노 대통령내외는 백악관 북측현관에 도착,부시대통령내외의 영접을 받고 기념촬영을 한뒤 3층 옐로 오벌 룸에서 잠시 환담. ○만찬 2시간20분 걸려 노 대통령내외는 7시45분 부시대통령의 안내를 받으며 기수단을 앞세우고 만찬이 열린 2층의 국빈만찬장으로 이동. 양국 대통령내외는 이동 도중 또 한차례의 기념촬영을 한뒤 만찬장에 입장전 이스트 룸에서 참석자들을 접견했는데 양국대통령이 들어설 때는 「국가원수에 대한 찬가」를 연주. 4분여에 걸친 부시대통령의 만찬사 및 건배제의에 이어 노 대통령은 조크를 곁들인 답사와 함께 건배를 제의했고 8시30분부터 만찬이 시작. 만찬이 끝난뒤 노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참석자들과 격의없이 어울려 10여분간환담을 나눈후 이스트룸으로 이동,20여분간에 걸쳐 공연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ThePhantomofTheOpera) 중 5곡을 감상했는데 이 뮤지컬은 현재 케네디센터에서 성황리에 공연중. 공연이 끝나자 부시대통령은 무대로 올라가 지휘자,남녀가수와 악수를 하고 『이렇게 특별한 날에 한국에서 오신 특별한 손님을 위해 훌륭한 공연을 해주어 고맙다』고 치하. 부시대통령은 이어 노 대통령내외도 무대로 올라올 것을 권유한 뒤 참석자들에게 소개했으며 이에 노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여사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무대에 올라가 공연자들과 악수를 나누고 참석자들의 박수를 받으며 퇴장. ○환대에 거듭 감사표시 ◎…노 대통령은 이날밤 국빈만찬의 답사를 통해 양국간 전통적 우의를 누누이 강조하며 환대에 대해 거듭 감사의 뜻을 표시. 노 대통령은 『오늘 내 생애에서 가장 귀한 선물을 받는 기쁨을 가질수 있었다』고 서두를 꺼낸뒤 그것은 부시대통령이 애써 구해준 「링컨―더글러스 디베이트(논쟁)」초판본 때문이라고 설명. 노 대통령은 링컨대통령이 『보통사람이 제일 잘난 사람이다.하느님께서 보통사람을 가장 많이 만든 것을 보더라도 이것이 설명된다』고 했는데 바로 「보통사람」이 자신의 대통령선거 구호였고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연다」는 게 자신이 이끄는 정부의 국정목표가 됐다고 부연. 노 대통령은 『내가 「보통사람」을 선거구호로 선택했을 때 링컨대통령이 이런 말을 먼저 썼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고 나중에야 알게됐다』면서 『따라서 내가 링컨대통령의 「지적소유권」을 침해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고의적인 침해행위는 아니었음을 믿어달라』고 조크,박수와 웃음소리가 한동안 그치지 않고 지속. ◎…노 대통령과 부시대통령은 2일 하오 백악관 테니스코트에서 1시간가량 테니스를 즐기며 우의를 다졌다. 두대통령은 현홍주주미대사·그레그주한미대사·이현우경호실장 등과 함께 코트에 도착,가볍게 몸을 푼뒤 하오4시10분부터 대통령조와 대사조로 나눠 시합. ○강력한 스트로크 구사 환갑을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부시대통령은 경쾌한 푸트워크로 노익장을 과시했고 노 대통령은 특유의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해 박수를 받았다. 대통령조와 대사조의 첫세트는 6대4로 대통령조가 승리. 두대통령은 대사조를 물리친뒤 조를 바꿔 현대사대신 이실장과 그레그대사조와 경기를 가져 역시 6대4로 승리. 두번째 시합에 들어가면서 부시대통령은 노 대통령에게 『이번에도 사정을 봐주지말고 이기자』고 파이팅을 보이며 승부욕을 과시하기도. 섭씨 30도를 넘는 무더운 날씨때문에 두정상은 땀을 흠뻑 흘리면서 1시간동안 테니스를 즐겼고 시합이 끝난뒤 땀에 젖은 라켓을 교환. 부시대통령이 『이 라켓은 작년 전미 오픈에서 우승한 심슨이 기증한 것』이라고 소개하며 『우승자의 사인이 있는 커버까지 드릴테니 앞으로 이 라켓을 갖고 시합하면 계속 승리하실 것』이라며 라켓을 교환. 이에 노 대통령은 『이 라켓은 미제인데 내가 이 라켓을 구입해 사용한 이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서 쓰고 있다』면서 『한미간의 무역불균형 해소를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고 조크해 웃음이 터지기도. ◎…백악관에서 부시 미대통령과회담을 마친 노 대통령은 영빈관에서 잠시휴식을 취한후 제임스 베이커국무장관이 국무부청사에서 주최한 오찬에 참석. 부인 김옥숙여사와 함께 국무부 건물에 도착한 노 대통령은 외교사절입구(디플로매틱 엔트란스)에서 베이커장관 내외의 영접을 받고 리드 의전장의 안내로 1층에 있는 한국소개 전시대를 관람하고 애담스룸에서 대기하고 있던 오찬 참석자들을 접견. 한편 국무부청사 1층 복도에서는 노 대통령의 국빈방문을 기념하는 한국에 관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어 방문자들의 눈길을 끌기도. 이 전시관에서는 한국의 문화재모형 9점과 서울올림픽사진 36점등이 전시되었는데 미정부는 국빈방문의 경우 그나라의 특징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방문 1주 전후로여는 것이 관례라고. ○두 정상 회담결과 만족 ◎…정상회담이 끝난뒤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매디슨호텔 2층에 마련된 프레스센터에서 회담결과를 브리핑. 이대변인은 『정상회담은 10시45분부터 11시25분까지의 단독회담과 25분간의 확대회담등 총 65분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양국의 상호 관심사에 대해 진지하고 기탄없는 대화가 있었다』면서 『회담결과에 대해 양국 정상은 만족을 표시했다』고 설명. 이대변인은 『전체적으로 이날 회담에서 모든 문제에 있어 의견이 다르거나 차이가 있는 부분은 없었으며 양국간의 긴밀한 협조에 대한 다짐이 있었다』고 강조. ◎…대통령부인 김옥숙여사는 2일 하오 워싱턴의 여성미술관을 방문,이곳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 현대여류작가 10인전」과 소장품들을 약 40분동안 관람. 윌헬미나 홀라디 관장(여)의 안내로 전시실을 둘러본 김여사는 3층 전시실의 여성인물 중심의 걸작소장품에 관심을 표명. 김여사는 특히 2층에 전시중인 박상숙 정경연 진옥선씨 등 우리나라 여류작가 10인의 작품을 재미교포 화가 부부인 한규남 최분자씨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했는데 『우리 여류미술인들의 작품성이 다양하고 과감하다』고 찬사.
  • 치기 가득찬 김정일/82년 평양 「국제클럽」 근무 일 여성 폭로

    ◎손에 담배·술잔 들고 “밥먹여 달라” 추태/파티 끝나면 1백달러짜리로 팁뿌려/“1억엔·벤츠 줄테니 평양 살라” 유혹도 지난 82년 북한이 평양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만든 외국인 전용 유흥업소 국제클럽의 개점에 참여했던 요시무라 게이코(35·가명)라는 일본 여인이 6일 발매된 주간문춘에 평양에서의 체험을 수기로 기고했다. 김정일의 파티에서 그를 직접 접대하기도 했던 이 여인은 수기에서 김정일은 자신을 마마상이라고 부르며 음식을 떠먹여줄 것을 요구하는 등 철부지 같은 추태를 보이기도 했으며 국제클럽을 이용하는 외국인들이 거의 없어 일본·태국인 등 여고용원들은 사실상 김정일을 위한 국제호스티스나 다름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녀의 수기 중 김정일이 주최했던 파티장면 내용을 요약·소개한다. 82년 9월 평양에 도착한 후 김정일을 처음으로 만난 것은 평양 남서쪽의 한 바닷가 마을에서 열린 심야파티에서였다. 그 이후 평양의 김정일 저택 등 여러 파티에 초대를 받았으며 그때마다 김의 바로 곁에서 그의 시중을 들어주었다. 파티에 나오는 술은 주로 중국의 마호타이인 경우가 많았으며 파티는 중국식·일식·프랑스식 등 다양했다. 그런데 한 번은 김정일이 한 손엔 담배,다른 손엔 술잔을 들고 나에게 음식을 떠먹여 달라고 요구했다. 주위의 권고에 못 이겨 음식을 떠 입으로 가져가니 서슴없이 받아 먹으며 좋아했다. 그는 이때 나를 마마상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김정일은 또 담뱃재를 재떨이에 떠는 법이 없었다. 담뱃재가 흰 시트 위에 떨어지면 진공청소기를 든 여자가 항상 김정일 뒤를 따라다니며 이를 청소했다. 김정일은 60명 이상의 고위급 인사가 참석한 한 파티에선 교향악을 직접 지휘하는 치기를 부리기도 했다. 그가 지휘자 옆에서 맨손으로 지휘를 시작하자 지휘봉을 그에게 넘겨주고 황공한 태도로 그의 지휘모습을 지켜보았으며 지휘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오랫동안 계속됐다. 김정일은 파티가 끝나면 수고했다며 언제나 빳빳한 1백달러짜리 지폐로 팁을 주곤 했다. 1개월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나는 일본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20여 일 만에 또다시 초청을 받고 평양을 두 번째로 방문했다. 김정일이 직접 초청하는 것이라고 해 거절하기가 어려웠다. 이때의 조건은 월 50만엔에 준비금 20만엔이었다. 두 번째로 평양에 도착한 나는 김정일의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초대를 받았다. 훌륭한 유럽식 정원이 딸린 저택에는 대낮부터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다. 3시간 정도 기다리니 이제 막 잠자리에서 깨어난 듯 부스스한 얼굴의 김정일이 나와 악수를 청하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김정일의 오른 쪽에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왼쪽에는 내가 앉았다. 오른손을 젊은 여자의 무릎 위에 얹어놓고 있던 김정일이 왼손을 내 무릎 위로 뻗쳐왔다. 내가 손으로 저지하자 그는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호텔로비에 걸려 있는 대형 초상화의 주인공으로 알고 있다』고 대답하자 그는 만족스런 미소를 지으며 『1억엔에 집과 벤츠를 줄테니 여기서 살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나는 조국에 사는 게 가장 행복하다며 거절했는데 이날의 파티는 김정일이 술에 취해 의자 밑으로 넘어지면서 황급히 끝났다. 요시무라씨는 한편 이 수기에서 몇 명의 태국여성들이 일본에 직장을 알선해주겠다는 미끼에 걸려 평양에 머물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쓰고 있다.
  • 남북 교향악단 첫 교류 추진/6·7월에

    ◎서울시향·평양국향 교환 순회공연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한 교향악단의 교환연주가 추진되고 있다. 원로지휘자 임원식씨(72·전 이대 교수·인천시향 음악감독)가 이끄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6월중 방북,평양·원산 등 북한의 주요 도시를 돌며 순회연주를 펼칠 계획이며 상호교류원칙에 따라 7월중엔 북한의 국립평양오케스트라가 내한,서울·부산·대구 등에서 순회연주를 가질 계획이다. 이는 당초 북한측 윤이상 음악연구소가 임씨를 통해 남한교향악단의 북한연주를 제의해오면서 추진된 것으로,임씨와 재독작곡가 윤이상씨(75·베를린 거주)의 오랜 친분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편 국토통일원은 『신청을 해올 경우 적극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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