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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日의 군상:8/월북무용가 崔承喜(정직한 역사 되찾기)

    ◎日帝에 국방헌금 내고 ‘舞踊報國’ 맹세/15세때 日 유학… 귀국후 세계순회공연하며 대활약/1942년 6개월간 만주 돌며 130여회 日軍 위문공연/해방후 前歷 비난 피해 남편과 월북… 北韓정권 참여 □엇갈리는 親日 평가 “예술위해 불가피” “자의적 친일 활동” 근대 이후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예술가 중에서 ‘스타중의 스타’는 누구일까? 1930년대 당시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무용가 崔承喜도 그중의 한사람이다. 崔承喜는 세계적인 무용가라는 찬사를 받은 ‘전설적 예술가’였다. 바로 그 崔承喜가 최근 우리사회에서 ‘부활’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국적의 재일교포 무용수 白香珠씨가 내한공연을 통해 崔承喜의 춤사위를 완벽에 가깝게 복원한데 이어 한달 뒤인 7월에는 그의 이름이 국내 한 일간지에 대서특필되었다. 崔承喜(1911∼?). 언제적 이름인가. 그의 이름 앞에 ‘월북무용가’란 수식어가 필요할만큼 우리 귀에 낯선 이름 崔承喜. 해방후 남편을 따라 월북,북한정권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그는 반세기 가까이 우리 기억에서 잊혀져 왔다.그가 ‘최모(某)’에서 ‘崔承喜’라는 이름 석자를 되찾은 것도 90년대 들어서다. 암울한 일제하 미국과 유럽·중남미 등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며 식민지 조선의 자존심을 세워주었던 ‘조선의 꽃’ 崔承喜. 그러나 그는 남한에서는 ‘월북예술가’라는 이유로,북한에서는 ‘반(反)혁명분자’로 낙인찍혀 남북한 모두에서 외면당해 왔다. 격동의 우리 현대사가 지하창고에 가둬 뒀던 한 천재 예술가를 ‘역사의 양지녘’으로 이끌어내 보자. 崔承喜는 한일병합 이듬해인 1911년 서울 종로에서 양반집 4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26년 숙명여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당초 도쿄음악학교에 진학할 작정이었으나 연령미달로 입학이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던중 큰 오빠 崔承一의 권유로 당시 일본 최고의 무용수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관람한 것이 계기가 돼 그의 문하에 입문했다. 해방후 그에게 쏟아진 ‘친일파’라는 비난은 그의 출생시점과 그가 일본으로 무용공부를 떠나면서부터 예고된 것인지도 모른다. 열여섯살 때 일본으로 건너가 3년간이시이 문하에서 무용공부를 한 崔承喜는 29년 귀국,서울 적선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를 차렸다. 이듬해 2월 그는 경성(京城)공회당에서 제1회 신작발표회를 가졌는데 첫 공연 치고는 성공작이었다. 이 때 공연한 한국무용 ‘영산춤’ 등은 한국인이 춘 최초의 독자적 춤공연이었다는 점에서 우리 무용사에 한 획을 그은 일로 기록되고 있다. 이듬해인 1931년 그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가이자 당시 와세다대학 재학생이던 安漠(본명 安弼承)과 결혼,인생의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최승희연구가 鄭昞浩(중앙대·무용과) 명예교수는 그들의 결혼배경을 두고 “崔承喜는 공연기획 분야에서 천재적인 安漠의 능력을,安漠은 崔承喜의 인기를 사회주의 건설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고 분석했다. 해방후 崔承喜의 월북은 그의 남편 安漠의 권유가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安漠은 북한정권에서 평양음악학교장·문화선전부 부부장(차관)을 지냈으나 58년 숙청의 비운을 맞았다. 한편 崔承喜는 33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이시이 문하로 들어갔다. 남편 安漠이 ‘조선독립음모사건’으로 구속되자 정치적 압박과 경제적 곤란까지 겹쳐 더이상 국내에서는 활동이 곤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두번째 일본행은 의외로 행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쿄로 돌아온지 두 달만에 그는 한 잡지사 주최 여류무용대회에서 ‘신인 스타’로 떠올랐다. 그 때 그가 춘 춤은 ‘에하라 노아라’라는 전통 조선무용으로 술에 취한 자기 아버지의 굿거리 춤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다. 1934년 도쿄에서 개최된 그의 제1회 신작발표회를 통해 그는 명실공히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는 “崔여사가 추는 조선무용을 보면 일본의 서양무용가들에게 민족의 전통에 뿌리박으라는 강력한 가르침을 볼 수 있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조선인 최초의 무용가’라는 점이 의외로 일본사회를 강타하여 그에게 광고모델 요청이 쇄도했다. 하늘을 찌를듯한 그의 인기는 부와 명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여세를 몰아 그는 마침내 해외공연을 추진하였다. 중일전쟁 발발 이듬해인 38년 2월 그는미국 샌프란시스코 공연을 시작으로 해외공연길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프랑스 파리 공연에 이어 스위스·이탈리아·독일·네덜란드 등 유럽공연을 마쳤다. 이무렵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40년 브라질 공연을 시작으로 우루과이·아르헨티나·페루·칠레·멕시코 등 중남미지역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40년말 2년여 해외공연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오자 일제 당국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인기를 군국주의 전쟁에 활용할 속셈이었다. 결국 그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친일대열에 들어서게 된다.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崔承喜 부부는 궁성(宮城),메이지신궁(神宮),야스쿠니신사(神社)을 참배하고는 ‘무용보국(報國)’을 맹세하였다.(‘報知新聞’40년 12월7일) 며칠 뒤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는 “구미(歐美)공연 때 마음이 든든한 것은 위대한 일본의 국력 덕분이었는데 새삼 조국에 감사하는 마음을 강하게 가졌다”며 친일성향을 드러냈다. 그의 친일과 관련,빼놓을 수 없는 일화 한토막.아사히신문 41년 2월5일자에는 ‘일독(日獨)헌금 교환,독일인 기사와 崔承喜씨’라는 기사가 실려 있다. 내용인즉 일본회사에 근무하던 한 독일인 기사가 귀국하면서 여비의 일부를 국방헌금으로 써달라고 이 신문사에 기탁한 일이 있은 후 이번에는 유럽공연을 다녀온 崔承喜가 두 차례의 독일공연에서 생긴 수입금을 독일육군병원에 헌금하려고 가져왔다는 것. 이 무렵 崔承喜는 일본을 ‘조국’이라고 불렀다. 또 춤을 통해서도 그의 친일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춤의 비중이 점차 증가한데다 춤동작에서도 일본 전통춤인 ‘노(能)’가 차츰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가 공연 수익금의 일부,혹은 전부를 국방헌금으로 바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 부터다. 그는 수 차례에 걸쳐 일본군부와 조선군사령부 등에 국방헌금을 바쳤다. 41년말 ‘대동아전쟁’(소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일제는 예술가들까지도 전선(戰線)으로 내몰았다. 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42년 2월초 그는 일본군 위문공연차 만주·중국으로 향했다. 8월까지 6개월 동안에 무려 130여 차례의 위문공연을 하였는데 당시 그의신분은 일본 육해공군 촉탁이었다. 해방때까지 그의 일본군 위문공연은 계속됐다.그는 상하이 주둔 한 일본군 부대에서 위문공연을 하다가 일본패망 소식을 접했다. 해방이 되자 그에게는 중국 현지에서부터 ‘친일파’란 비난이 쏟아졌다. 이듬해 5월 귀국해 보니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친일전력(前歷) 때문에 그는 남한 땅에서는 설 땅이 없었다. 결국 그는 귀국한지 두 달도 채 안돼 남편을 따라 월북하였다. 격동기를 살아오면서 공과(功過)가 교차된 崔承喜의 일생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여기에는 변호와 비판이 엇갈리기 마련이다. 무용학자 鄭昞浩 교수는 崔承喜의 친일행적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그는 예술을 위해 친일을 했을 뿐”이라며 그가 한국무용사에 남긴 업적에 무게를 실어준다. 반면 金鍾旭(서지연구가·60)씨는 “崔承喜는 도일 직후부터 본명 대신 일본식 이름(崔承子,사이쇼코)으로 활동한 열성 친일파”라며 그의 친일성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전성기 시절 ‘반도의 무희(舞姬)’‘민족의 꽃’으로 불리며 조선인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崔承喜. 식민지시대와 분단기를 거치면서 그에게 씌워진 ‘친일(親日),친공(親共)’의 굴레가 ‘역사의 화해’를 볼 날은 과연 언제일까. ◎崔承喜의 知人들/동서양 명사들과 골고루 교분/美 소설가 존 스타인벡/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화가 피카소·시인 장콕토/周恩來 등과도 친교 전성기 당시 崔承喜는 ‘톱스타’답게 각국의 최정상급 명사·예술인들과 교류를 맺고 있었다. 우선 일본 체류시절 그를 후원해준 사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와 민예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등 당대 일본 최고의 지성인들이었다. 그와 교류한 서양인으로는 미국공연 시절 사귄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소설가 존 스타인백·루이스 레에나·존 그로프,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로버트 테일러·게리 쿠퍼 등이 있다. 유럽에서는 화가 피카소를 비롯하여 시인 장 콕토,소설가 로맹 롤랑·미셀 지몽,영화배우 샬 보아에이 등이 그와 친교를 맺고 있었다. 또 중국인으로는 周恩來 총리,무용가 梅蘭芳 등이그의 후원자이자 벗이었다. 국내에서는 呂運亨·宋鎭禹 등 민족진영 인사와 남편의 동지이기도 한 朴英熙·韓雪野 등 카프계열 작가들이 그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다. 파리공연 때 그는 피카소로부터 그림 한 점을 선사받은 적이 있다. 시가로 수억대를 호가하는 이 그림의 행방을 두고 安씨집안(시댁)과 崔씨집안(친정)간에 한 때 불화가 있었던 적도 있다.
  • 창작오페라 역사의 무대서 첫공연/이순신 현충사·원효대사 불국사서

    ◎이순신­伊 거장 아우콜라노 교수 우리가락으로 작곡/원효대사­대구시립오페라단 경주엑스포 축하 공연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가 87년 이집트 룩소르의 피라미드 앞에서 공연됐을 때 오페라 팬들은 “꿈이 현실로 이뤄졌다”며 흥분했다. 최근 중국 북경의 자금성에서 열린 푸치니 오페라 ‘투란도트’ 역시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작품 배경의 원래장소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그 시대를 호흡케 하는 만큼 감동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처럼 특화된 공연이야말로 경쟁력 있는 미래형 문화상품이 아닐 수 없다. 성곡오페라단이 19일 충남 아산 현충사를 시작으로 12월23일까지 전국에서 순회공연하는 창작오페라 ‘이순신’은 그 시금석이 되는 무대다. 순국 400주년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된 ‘이순신’은 임진왜란을 배경으로 이순신장군의 활약상을 그린 3막 오페라. 오페라단 단장인 백기현 공주대 교수와 대전지검 송민호 부장검사가 직접 대본을 써 눈길을 끈다.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외국인이 작곡을 맡았다는 점. 이탈리아 후로시노네 음악원교수인 니콜로 이우콜라노가 꽹과리,북,자바라,태평소 등 13개의 국악기를 사용해 곡을 만들었다. 이순신 역에 바리톤 고성현,부인 방씨 역에 소프라노 박정원,선조 역에 베이스 김요한,원균 역에 테너 강무림 등이 출연한다. 곽승 부산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의 지휘로 부산시향,충남도립교향악단,성곡오페라국악단,대전시립합창단,공주문화대 무용단 등이 협연하며 연출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김홍승 교수가 맡았다. 현충사 이후 공연일정은 다음과 같다. ▲9월26일(하오 8시)=충남 공주 백제체육관 특설무대 ▲10월2∼3일(하오 7시)=경남 통영시민문화회관 ▲11월13∼14일(하오 7시)=광주문예회관 대극장 ▲12월2∼3일(하오 8시)=부산문화회관 대극장 ▲12월9∼12일(하오 8시)=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12월22∼23일(하오 7시)=대전엑스포아트홀.(042)526­1016 한편 대구시립오페라단이 18∼20일 하오8시 경주 불국사 경내에서 공연하는 야외 오페라 ‘원효대사’도 관심를 끄는 무대다. 98경주문화엑스포 축하공연으로,원효대사의 일대기를 그린다.불국사 경내를 배경으로 산사의 풍경소리와 바람소리,그리고 별빛이 어우러져 현장감을 더해준다. 장일남 작곡·김효경 연출로 바리톤 박영국,소프라노 신미경,테너 정광 등이 출연한다. 대구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반주를 맡고 경주시립합창단 등이 협연한다.(053)623­5859 오페라 ‘이순신’과 ‘원효대사’는 폐쇄된 극장이 아니라 트인 공간에서 시도되는 무대란 점에서,더구나 열악한 조건의 지방오페라단이 주관하는 공연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7억원의 예산을 들인 ‘이순신’은 250명의 제작·출연진이 참여하는 그랜드 오페라로 내년에는 오페라 본고장 이탈리아에도 진출할 예정이다. 제작팀은 이 작품을 베르디의 ‘아이다’,푸치니의 ‘투란도트’,‘나비부인’이 각각 이집트와 중국,일본을 세계에 알린 것처럼 세계인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고부가가치 문화상품’으로 가꿔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 신라 천년의 신비가 열린다/경주 세계문화엑스포 오늘 전야제

    ◎고유제·길놀이·본행사로 엮어/박혁거세·문무대왕 설화 재현/세계민속공연단 장기자랑도 전세계 48개국이 참여하는 경주 세계문화엑스포가 경주 보문단지에서 9∼10일 전야제를 시작으로 화려하게 막을 올린다. 오는 11월10일까지 2개월간 각종 행사가 이어지지만 특히 전야제는 놓치면 아까울 ‘쇼’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번 전야제는 크게 세가지로 구성된다.고유제,길놀이 및 막간 공연,전야제 본행사 등. 우선 9일 하오 7시30분 감포 문무왕릉에서 ‘문무대왕 용이 되어 납셨다’란 주제로 열리는 고유제는 감포 앞바다를 환히 비출 장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행사는 신라 문무왕이 거대한 청룡이 되어 나타나 태풍을 진압하는 ‘만파식적’을 신문왕에게 전했다는 설화를 재현한 것이다. 감포백사장에서 사물놀이패의 지신밟기에 이어 신문왕과 신라 육부촌장 등이 등장,문무왕의 신통력을 비는 고유문을 낭독한다. 이에 때맞춰 폭죽이 휘황찬란하게 터지는 가운데 길이 18m의 청룡이 바다에서 떠올라 관중을 환상으로 이끈다. 다음날인 10일 하오7시부터는 경주역 앞 중앙로 800m 구간에서 청룡 모형과 엑스포 길놀이팀이 퍼레이드를 벌이고 중국등 세계민속공연단이 각기 장기를 뽐낸다. 이어 하오 8시쯤부터 1시간40분동안 경주역 앞 특설무대 등에서 전야제의 본행사인 ‘새 천년의 미소’가 펼쳐진다. 이 행사는 신라의 창시조 박혁거세의 난생설화에 기초해 마련됐다. 지휘자인 박범훈 서울 국악예술고 이사장의 사회로 MC 김성녀가 관객 전원과 함께 카운트 다운을 끝마치면 봉덕사의 종소리와 백마의 힘찬 울음소리가 울려퍼지며 행사가 시작된다. 이어 여제사장인 최정임(동국대 국악과 재학)이 축원을 올리면 무대에 놓인 커다란 알이 신비로운 빛을 내뿜으면서 두쪽으로 갈라지며 박혁거세가 태어난다. 또 경주예술단원들이 원화무,낭자무 우담바라 등의 춤을 현란하게 추는 가운데 높이 5m의 첨성대가 세워지면서 행사는 절정에 오른다. 마지막으로 관객들 전원이 소리꾼 장사익의 선창에 따라 ‘신라 불사조’라는 노래를 합창하며 막이 내린다. 전야제를 총연출하는 이영식씨는 “관객과 연기자가 하나로 동화될 수 있도록 무대를 꾸몄다”며 “IMF로 고통과 실의에 빠져있는 국민 모두에게 힘을 북돋아줄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 紫禁城 투란도트/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가 중국 베이징 자금성(紫禁城)에서 공연된다고 했을 때 그 기발한 아이디어에 전세계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투란도트’가 오페라의 배경인 중국에서,그것도 폐쇄된 극장이 아니라 중국 역대 황제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앞에서 공연된다는 것은 뉴스가 아닐 수 없었다. 트인 공간에서 오페라가 시도된 데다 자금성이 명(明)대에 건설된 것을 감안하여 시대배경을 원래의 당(唐)대에서 명대로 바꾼 것도 대단한 재치다. 과연 첫날인 지난 5일 3,500여명의 관객은 공연이 끝나자 8분동안의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자리를 떠날줄 몰랐다고 한다. 이날 공연장을 메운 관객의 95%는 공연을 보기 위해 일부러 중국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입장료는 250달러에서 1,500달러까지 고가였으나 이미 한달전에 매진된 상태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를 성공시켰는가. 어두운 밤 중국 역대 황제들의 위패가 모셔진 태묘(太廟)앞에서 세계적인 음악가들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중국식 의상의 출연자들이 변화무쌍한 춤을 보여준다는 자체가 최고의 특화이자최대의 관광상품이다. 더구나 이번 공연에는 세계적인 주빈메타가 지휘를 맡고 중국이 낳은 세계적인 영화감독 장이모(張藝謀)가 밝고 화려한 색채로 ‘장이모식 투란도트’를 연출해냈다는 평이다. 바로 그런 장이모가 총연출을 하기 때문에 ‘투란도트’가 선전되었고 세계적인 지휘자와 성악가와 첨단 조명장비를 동원할 수 있었다는 결론이다. 갖가지 풍물에 전위성 퍼포먼스,외국공연까지 초청되어 비빔밥을 만들어 버리는 축제들과는 비교할 수 없다. 다만 남을 부러워 하기전에 우리에게도 뉴욕에서 대성공을 거둔 ‘명성황후’나 ‘춘향전’ 등을 비원(秘苑)이나 남원 광한루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한다. 또 세계적인 예술가 초청도 중요하지만 장이모같은 대스타를 갖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깊이 할 필요가 있다. 시샘이나 질투로 방해하지 말고 상대방에게 작은 가능성이 보이면 그가 누구이든 대스타를 만드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 줘야한다. 그때 비로소 우리의 스타와 함께 세계의 시선은 우리의 무대를 주목하게 될 것이다.
  • 쇤베르크 오페라 ‘모세와 아론’(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9)

    ◎현대 예술의 파경과 진리/모세 표현능력 없어 고민 현대 예술가와 닮은 꼴/‘죽은’하느님의 20세기 구시대­현대 파경 상징/장­단조 파괴 12음기법 정처없이 열린 난해성/솔티 스무번 넘게 지휘 “갈수록 명료해진 진리” 1.막이 오르자마자 매우 불안한,아니 불길한 선율이 연기처럼 피어오른다. 그,‘인적없는’ 분위기는 매우 길 것같다. 그 예상은 곧 깨진다. 모세가 말한다. 유일한 분,무한한 당신,편재(遍在)하는 분,감지할 수 없고,상상조차 할수 없는 하느님!… 그러나 모세의 인성(人聲)이 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예상은 소재적으로 깨졌지만 내용적으로 이어진다.‘없는’ 하느님 대목에서 벌써 불안이 공포로 찢어진다. 너는 하느님의 예언자가 되라! 불타는 숲에서 목소리가 그렇게 명한다. 그러나 모세는 주저한다. 왜냐면,벌써 암시했듯이,모세에게 하느님은 감지할수 ‘없고’ 상상할 수 ‘없는’ 존재다. ‘아무도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스스로 하느님의 전언(傳言)을 이해는 하지만 그것을 백성들이 ‘알아듣게 표현’할능력이 없다. 불타는 숲의 목소리가 말한다. 너의 형 아론에게 설명할 능력을 주겠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앞에서 이끌 것이다. 영원한 존재와 하나되어 그들은 다른 모든 민족에 모범을 이룰 것이다…. 그렇게 하느님은 모세를 설득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모세의 고민을 오해한 것이다. 모세는 표현능력이 ‘없는’ 자가 아니라 그 ‘표현’이 하느님의 왜곡을 부를 것을 예견할 능력이 ‘있는’ 존재이다. 그렇게 문제는 구약성서의 시대와 종교를 뛰어 넘어 아연 현대성을 띤다.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해야 하는 사명,그것이야말로 현대 예술가의 사명인 까닭이다. 2.아론은 ‘눈에 보이는’ 기적과 ‘손에 잡히는’ 비유로써 하느님을 설명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세가 생각하는 하느님과 터무니없이 멀다. 아니,하느님의 전락이다. 그가 보기에 아론은 정말 구약시대의 예언자에 불과하다. 신약시대의 예수는 자신의 탄생과 죽음으로써 인간 삶의 난해성을(단순 설명하지 않고) 육화(肉化)했다. 그리고 20세기는 ‘없는’,혹은 ‘죽은’ 하느님의 시대다. 아론의 기적과 비유는 그 정황에 비추어 너무도 낡았다. 음악적으로 아론은 노래 투를,모세는 일상 대화 투를 구사한다. 즉,아론은 대중적으로 아름답지만 낡은 조화의 시대를,모세는 괴롭지만 현대의 난해를 포괄하는,모종의 파경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전락은 인간의 전락에 다름 아니다. 아론은 대중과 접하면서 급격하게 우중 선동가로 전락한다. 그 전락은 천박할뿐 아니라 끔찍하기도 하다. 대중은 ‘눈에 보이는’ 숭배대상을 요구하고 아론은 급기야 황금송아지를 우상으로 세운다. 대중은 산 처녀를 제물로 바치고…. 십계명을 받아들고 내려온 모세는 그 처참한 광경에 경악,아론을 질책하지만 아론도 할 말이 있다. 십계명 판은 우상이 아니더냐…. 모세는 십계명 판을 부숴버린다. 그렇다. 우상 뿐 아니라,계명­율법화 또한 종교의 전락이다. 손쉬운 주문 몇 개로 진리를 대신하는 밀교의 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십계명의 길은 사실 ‘제사장’ 아론의 길이다. 3.쇤베르크의 ‘12음 작곡기법’은 한 옥타브내 전음(全音) 7개와 반음(半音) 5개를 똑같이 대우한다. 즉,몇개의 음을 중심으로,혹은 지향점으로 음악이 진행되는 장조­단조체제가 파괴된다. 천년동안 발전해오던 음악적 명료성,혹은 조화의 세계가 깨지고 ‘정처없는’ 난해의 공간이 열린다. 쇤베르크는 ‘모세와 아론’에서 자신의 음악혁명을 옹호하려 한 것일까? 답은 노. 왜냐면 오페라 등장인물인 모세 자신이 스스로를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세계의 조화,하느님의 조화를 무책임하게 파괴하기만한 것이 아닐까? 그는 그런 종교적 원죄의식에 시달렸다. 아론의 대중적 화술에 대한 찬탄도 모세는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런 채로 그는 끝없이 자신을 미지의 영역속으로 밀어넣는다. 그 갈등의 조화가 이제까지의 조화를 일순,너무도 순정하고 천진난만하고,또는 철없는 것으로 보이게 만든다. 그때 그의 음악혁명이,기법을 넘어서 음악예술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리고,그는 결코 난해,자체를 지향하지 않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진리를 ‘느끼게’ 하는 이해의 길로서 난해를 명료화하는 것이다. ‘모세와 아론’은 음악적으로이제까지 오페라예술의 성과를 집대성하면서 그것을 현대 세계의 난해성과 대립시키고 있다. 거울은 이미 깨졌다. 그 깨짐 자체가 길이 되지않으면 안된다….그는 그렇게 말하고 있다. 4.쇤베르크 이래 현대음악은 ‘깨진’ 거울속에 있다. 음악은,특히 오페라는 ‘성(性)의 극복’이라는 예술의 무의식적인 목표에 충실해왔다. ‘모세와 아론’은 그 장(場)을 삽시간에 아름다움의 불모지로 만든다. 즉,성이(극복되지 않고) 노년화하거나 삭제된다. 쇤베르크 이래 현대음악 또한 그 불모성 속에 있다. 그것은,음악이 진정한 인간해방에 도달하기 위해 거쳐야할 통로일 것인가,아니면 그냥 그렇게 닫혀 버릴 것인가? 이것은 ‘모세와 아론’ 이래 모든 현대 예술을 총괄하는,사활의 질문이다. 이 작품에 대해 오늘 음반의 지휘자 솔티는 이렇게 말했다. “1965년 이 작품악보를 연구하면서 느꼈던 두려움과 불안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정말 복잡한 작품이었다. 내가 제대로 해낼수 있을까. 스스로 그런 의문에 사로잡혔을 정도다. 그 후 나는 스무번 넘게 이작품을 지휘했다. 갈수록 작품이 명료해졌다… 이번 녹음에서 나는 작품의 복잡성보다는 명료성을 강조하고자 했다”. 그의 말은 경험담이지만 ‘모세와 아론’의 주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 그렇다. 진정한,진리의 (현학이 아니라) 난해를 포괄하면서 예술은 복잡해지지만 그것이 명료성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아니,오히려 복잡성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예술의 몸은 나이를 먹으면서 복잡하게 아름다워진다. 그것이 인간의 미래향으로서 예술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쇤베르크는 3막의 대본에 음악을 붙히지 않았다. 미완(未完)의 열림? 아니,누군가가 자신을 음악으로 열어주기를 바랐던 것 아닐까? 1984 녹음 1985.Decca 414­264­2 베이스­바리톤 프란츠마주라 외(外)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게오르그 솔티 경(卿)
  • JM 월드響/21·22일 내한/세계 우수 청소년 팀 구성

    ◎한국 박수진 등 4명 참여 전세계 우수 청소년 음악도들로 구성된 교향악단이 한국을 찾아 연주회를 갖는다. 예술의 전당은 해외 유명 오케스트라 초청공연 시리즈로 올해에는 ‘J.M 월드 오케스트라’의 무대를 21일과 22일 하오 7시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펼친다. ‘J.M.월드 오케스트라’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청소년음악연맹이 전세계 젊은 음악도들을 위한 문화사업의 하나로 지난 70년 창단한 단체. 매년 60여개 회원국에서 16∼23세 사이의 청소년 100여명을 오디션을 거쳐 뽑는다. 선발된 단원들은 베를린 필 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 수석 주자들과 주빈 메타와 같은 세계적 지휘자들로부터 훈련을 받는다. 올해엔 37개국에서 뽑힌 100여명이 단원으로 선정됐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박수진(바이올린),고진영(바이올린),황지인(첼로),이현주(플루트) 등 4명이 참가했다. 첫날에는 이 오케스트라 아시아 투어 총지휘자인 안드레이 보레이코의 지휘로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서곡,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등을 들려준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선이가 협연자로 나선다. 또 22일에는 원로지휘자 임원식씨 지휘로 유조 토야마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광시곡’,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K488’등을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이경숙이 협연한다. 580­1250
  • 대전(지방정부 싱크탱크:7)

    ◎비대전고·비고시출신 중용/대전의 힘은 ‘능력’서 나온다/김용관 상수도본부장­조직장악력 뛰어나/김현규 내무국장­합리적 일처리 돋보여/박성효 경제국장­경제정책 전반 지휘자/김정욱 도시계획국장­꿈의 도시 건설의 주역/이진옥 교통국장­몸에 밴 연구습관 장점 대전시를 움직이는 힘은 학맥도 지연도 아니다. 능력이다. 洪善基 대전시장을 둘러싼 파워 엘리트군(群)을 들여다 보면 자연스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洪시장은 대전고 출신이다. 지근거리에 동문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핵심 정책에 깊숙이 관여하는 인사 중 대전고 출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대전고를 나온 朴城孝 경제국장(43)은 洪시장 경제정책의 핵심 브레인이다. 고시출신으로 능력과 업무 추진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대전시 경제정책 전반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첨단산업 단지 내 현대전자 유치,벤처산업 육성,대덕연구단지 기능과 시정의 접목 등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한양대 토목과 출신인 金正旭 도시계획국장(59)은 대전시 도시계획의 대부다. 정부 대전청사가 위치한 둔산 신도시 개발 등 대전 도시계획의 밑그림을 그가 그렸다. 청렴한 성격에 공정한 일처리로 신임이 두텁다. 한성신학대를 나온 劉相赫 도시계획과장(48)은 金국장을 이을 재목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1월 도시계획계장이던 그를 洪시장이 과장으로 발탁했다. 李鎭玉 교통국장(48)도 洪시장을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측근 인사다. 고졸 검정고시·방송통신대 행정학과를 나와 석사학위까지 받은 ‘독학형’이다. 하지만 고시출신에 버금가는 행정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업무가 주어지면 몸으로 체험,연구하는 스타일이다. 金容官 상수도사업본부장(48)도 洪시장이 아끼는 핵심참모다. 충남고·육사 출신으로 조직 장악력과 업무추진력이 돋보인다. 洪시장의 민선2기 개혁 프로그램을 수행할 적임자로 평가받고 있다. 고시출신인 金賢圭 내무국장(54)은 합리적인 일처리로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李昭榮 비서실장(54)도 빼놓을 수 없다. 민선1기 중반인 지난해 3월부터 비서실을 총괄지휘하고 있다. 시장 스케줄은 물론 각종 자료정리까지 도맡아 한다.실력파 계장(사무관)들도 정책 브레인역을 맡고 있다. 尹台熙 정책2계장(40)은 정책개발,李壽基 예산1계장(51)은 외자유치,鄭夏允 새마을계장(44)은 시민운동 및 자원봉사활동 파트를 전담하고 있다. ‘비고시·비대전고’ 출신인 이들은 수시로 시장과 ‘독대’하고 있다. 학계 인맥도 洪시장을 보좌하는 중추 그룹의 한 축이다.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정책진단 역할까지 맡고 있다. 지역 학계의 대부격인 朴康壽 배재대 총장(60)은 문화·체육파트의 정책조언자다.洪시장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2002년 월드컵 문화시민운동 추진협의회와 대전의제 21추진협의회 위원장직 등을 맡고 있다. 吳德成 충남대 교수(43·건축공학과)도 브렌인 중 한 사람이다. 洪시장의 최대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WTA(세계과학기술도시연합) 운영위원장직을 맡고 있다. 대전시 도시계획 문제에 대한 정책조언도 맡고 있다. 사회복지단체 대표인 金永大 대전개발위원회 위원장(67)과 韓万愚 대전상공회의소 회장(62)도 정책 협조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시민대표격인 이들은 洪시장과 자주 만나 특허법원 유치 등 시단위 숙원사업에 대해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다. 재전(在田) 부여향우회 회장인 尹正雄 대전 도시개발공사사장(62)도 洪시장과 끈끈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택지개발·물류단지·동물원조성 등의 업무를 대행,처리하고 있다.
  • 베르디 오페라 ‘팔스타프’(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8)

    ◎주세페 베르디/희극,일상과 노년의 과정/호색한 팔스타프卿 계교에 빠져 망신살/세익스피어 원전으로 비극 극복의 오페라화/더 우월한 삶의 亂場 일상스민 죽음의 미소/83세 토스카니니 지휘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여인숙 술집. 응축한 음악이 웃음을 폭발시킨다. 그리고 ‘응축과 폭발’이 시작부터 의인화(擬人化),따아,따아,딴,단 세 음(音)으로 딴전을 핀 후 씩씩하게 돌아다닌다. 뚱보에다 배불뚝이,모주꾼에 호색한인 팔스타프가 그렇게 소개된다. 소개는 반복되고 장면이 진행된다. 정작 팔스타프는 술에 쩐 상태. 게으르게 퍼져있다. “팔스타프!” 박사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그렇게 눈을 부라리지만 그는 대꾸가 없다. “팔스타프경!” 박사가 그렇게 고함을 질러도 소용이 없다. “왜 내 하인들을 두들겨 패고 그러나.” 그렇게 다그치는 박사를 그는 아예 무시해버린다. “주인장! 세리주 한 병 더!” 음악은 팔스타프 대신 돌아다니고…. 희극 오페라(오페라 부파) ‘팔스타프’는 그렇게 시작된다.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적절한 웃음 의 축제를 위한 무대가 그렇게 마련된다. 팔스타프는 유부녀를 꼬셔 재미도 보고 재정문제도 풀어보려 한다. 그러나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오히려 그 여자와 자기 주변사람들이 꾸민 계교에 빠져 지독하게 골탕먹고 호되게 망신당한다. 그것도 두 번 씩이나. 팔스타프는 실의에 빠지지만 끝내는 술과 웃음으로 낙천적이다. 해피엔딩도 있다. 젊은 딸이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젊은 연인과 결합에 성공한다. 2.오페라 ‘팔스타프’의 이야기장(場)은 이렇듯 매우 평범하다. 대본 자체가 셰익스피어 희극 ‘윈저의 유쾌한 아낙네들’과 사극 ‘헨리 4세’를 원전으로 하고 있다. 음악의 장은? 다르다. 의인화한 음악=웃음이 오페라가 진행되는 동안 내내 응축,폭발과정을 심화­확대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두 장의 관계 속에서 ‘과정’이 결론을 극복하는 광경. 일상을 매개로 웃음이 성(性)의 온습(溫濕)과 음탕을 포괄한다. 그리고 바로 그 과정속에 다시 젊고 청아한 사랑이 탄생한다. “내 황홀의 노래가 내 입을 떠나 깊은 밤멀리 여행한 후 다른 사람의 입술을 만나고 그 입술이 단 한마디 대답해준다면 음악은 더 이상 홀로 있지 않고 은밀한 조화의 기쁨에 떨고 동틀 무렵 사랑으로 온 공기를 채우며 원래 입술로,다른 목소리와 함께 돌아오리니 돌아와 다시 소리를 얻고 그러나 노래의 목적은 자신을 가르는 것을 통합시키는 것 뿐 그렇게 나는 연인의 입술에 입맞추었네…” 그(가사와 선율의 겹침이 자아내는) 청아함은,낭만주의와 달리,문명의 나이를 아는 청아함이다. 그것은 비비꼬이지만 비비꼬임 자체를 순정성(純正性)의 자양분으로 전화한다. 그리고 육체의 순정­순결성보다 우월한 역사적 순정성을 일상 속에 창조한다. 이것은 상부구조의 반영인 비극을 하부구조의 반영인 희극이 극복하는 ‘과정’ 그 자체의 음악­오페라화에 다름아니다. 3.고대 그리스비극에서 일상인은 전령,보초 등 미미한 역할 뿐이었다. 그들의 우스갯소리가 하부구조의 유일한 반영이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에서 웃음은 ‘음탕을 동원한’ 정치 풍자였다. 그렇게 시작된 연극에서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극복하는데는 2천년 이상이 걸렸다. 오페라 부파는 연극의 극복과 더불어,특히 이탈리아 희극과 춤에서 탄생한다. 그리고 다시 200년 이상의 발전 과정을 거쳐 베르디의 ‘팔스타프’에 달한다. 그토록 허랑방탕했던 웃음이 음악을 매개로 총체보다 더 우월한 삶의 난장(亂場)을 펼친다. 아니,난장으로 펼쳐진다.동시에 난장을 포괄하는 새로운 총체가 예감된다. 매우 강력하게. 이때,무엇이 보이는가. 아,음악이 죽음을 매개한다. 일상에 스며든 죽음. 그 죽음이 음악의 모습을 띠면서 모종의 미소를 흘린다. 마침내 검은 가면도 없이. 삶과 죽음이 살을 섞는 성(性)과 성(聖). 세속의 종교화. 그 속에 바리톤과 테너가,남자와 여자가,선율과 가사가,아리아와 레시타티브가 각각 완벽하면서도 더 큰 총체를 구성한다. 페르골레시­로시니를 계승한 오페라부파 테너 청아성(淸雅聲)의 경지가 절정에 달하면서 그 모태(母胎)인 바리톤 영역과 완벽하게 한 몸으로 겹쳐진다. 아니 그것은 이미,새로운 총체의 음악화이다. ‘팔스타프’에는 여느 오페라작품을 능가하는 아리아와 중창이 수두룩하지만 따로 분리되어 불리는 경우는 드믈다. 비극은 일상을 끝내지만 희극은 죽음을 일상속으로 ‘연장’시킨다. 희극이 낭만적일 수는 있어도 낭만주의적일 수는 없는 까닭이다. 이탈리아 부파 음악은 독일­프랑스음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것은 그날그날의 이름없는 일상으로 존재하면서 모차르트­바그너를 비롯한 오페라 대가들에게 ‘열등감의 교과서’로 작용했다. ‘팔스타프’는 그 과정을 역전시킨다.베르디로 하여 이탈리아는 대망하던 일상의 이름을 갖게 된다. 4.베르디는 1893년,즉 80세 때 ‘팔스타프’를 무대에 올렸다. 출세작 ‘나부코’(1841),대 히트작 ‘리골레토’ ‘라트라비아타’등을 거쳐 ‘아이다’(1870)를 끝으로 무대 은퇴를 선언한지 장장 23년 만의 일이었다. 아 그랬던가. 체념과 노년의 과정조차 이 작품은 요했던 것인가. 대본작가 보이토는 베르디와 예술적으로 대립했던 사람. 그렇다. 이 작품은 화해의 과정조차 요했다. 그 모든 과정들이 ‘팔스타프’의 과정으로 응축­폭발,수천년 문명의 나이를 먹은 웃음을 노년화하면서 동시에 일상 속에 낯익은 죽음의 모습을,웃음으로 형상화 한다. 그렇게 과정이 과정화하고 그 총체를 능가하고 죽음은,허망한 채로,위안에 가깝다. 이 위대한 ‘과정의 미학’을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가 83세의 나이로 연주한다. 그는 27세 때,즉 ‘팔스타프’ 초연 1년 후 이 작품을 직접 지휘했다. 그후 둘 사이에 깊은 예술적 교감이 오간다. 그렇다. ‘팔스타프’는 토스카니니의 과정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팔스타프’를 통해 토스카니니의 뿌리 깊은 바그너 취향이 극복된다. 그런 그의 83세 노년 연주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1950.4&8 녹음. 1990. BMG60251­2­RG 바리톤 주세페 발뎅고 외(外) 로버트 쇼 합창단(지휘:로버트 쇼) NBC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아르투로 토스카니니
  • 독일 성악가 프라이 별세

    【뮌헨 AP DPA 연합】 독일 출신의 세계적 바리톤 가수겸 지휘자인 헤르만 프라이가 23일 뮌헨 교외 크라일링의 자택에서 별세했다고 그의 매니저회사 대변인인 게지네 랑에 여사가 말했다.향년 69세. 랑에 여사는 프라이가 전날밤 심장발작을 일으켜 치료를 받았었다고 말했다. 프라이는 일요일인 19일 뮌헨의 한 극장에서 마지막 연주회를 가졌다. 지난 40여년간 전세계 주요 무대에서 오페라와 리트(예술가곡)를 함께 불러온 프라이는 부드럽고 서정적인 음색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뛰어난 감각으로 ‘바리톤의 명인’으로 불렸다.
  • ‘해설있는 음악회’/불황 공연계 효자노릇

    ◎‘클래식=난해함’ 선입견 없애/독주회 빼곤 대부분 해설 곁들여/금난새·하성호씨 스타성 한몫 ‘해설이 있는 음악회’.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거리감을 갖게 했던 클래식이 올 여름 공연계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음악회에 해설을 곁들이는 이 새 기획은 IMF여파로 예년에 비해 연주회가 양적으로 대폭 줄어든 가운데 한여름 공연계의 명맥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주 열렸던 음악회중 독주회를 제외하고 나면 대부분 이같은 해설이 있는 연주 무대였다.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16일의 ‘베토벤 페스티벌’과 18일의 ‘심포니여행’이 그렇고 토요일(18일) 저녁 덕수궁에서 펼쳐진 ‘가족 음악축제’도 그랬다.또 광인성악연구회가 17일 예술의전당에서 가진 ‘오페라콘서트’도 오페라 아리아에 황선숙 아나운서의 해설이 곁들여졌다. 이번주도 예외가 아니다.24일 서울올림픽공원 수변무대서 마련되는 ‘야외음악회’와 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노영심의 고전 음악이야기’,22일 KBS국악청소년음악회 등 해설을 곁들인 연주회가 이어진다. 이같이 불황의 공연계에 해설이 곁들인 음악회가 봇물을 이루는 것은 연주만 하는 정통방식의 음악공연으로는 더이상 관객동원이 어렵기 때문이다.‘클래식=난해함’이라는 거부감을 없애줌으로써 관객들의 접근을 좀더 쉽게 하려는 시도다. 이같은 형태의 연주회를 이끌어가는 지휘자 금난새,하성호씨의 ‘스타성’도 한몫을 해내고 있다.음악적으로 해박한 지식은 물론 정감있는 말솜씨는 청소년은 물론 일반인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다.대중가수와 방송진행자로 활동해온 노영심씨도 최근 인기있는 클래식 해설자로 손꼽히고 있다. 금씨는 정통 클래식에 충실하고 깔끔한 해설로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다.반면 하씨는 클래식에 국한되지 않고 팝,가요,재즈 등 장르를 넘나드는 크로스 오버 음악과 함께 시사성 띤 구수한 말솜씨로 청중들에 어필한다. 2,600석중 2,171명이 찾아 94%의 객석 점유율을 보인 금씨의 지난주 ‘심포니여행’과 석조전앞 광장에 8천여명의 청중이 몰린 하씨의 덕수궁 가족음악축제에서 이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2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릴 노영심의 ‘고전음악이야기’도 공연을 1주일을 남겨둔 20일 현재 50%의 표가 팔려나갔다. 이같은 음악회의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예술의전당이 8월 한달만 빼고 매달 한차례씩 금씨가 이끌어갈 ‘청소년음악회’를 계속할 예정인데다 서울팝스오케스트라도 하씨의 해설을 곁들인 연주회를 덕수궁과 올림픽공원에서 매달 각 1회씩 가질 계획이다.또 8월12∼20일 정동극장에서는 여름방학을 맞아 ‘이야기가 있는 청소년음악회’를 준비중이다. 음악평론가 탁계석씨는 IMF불황속에서도 이같은 음악회가 고정팬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더없이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그러나 인기에 편승해 연주회마다 ‘해설’을 갖다붙이거나 음악전문가가 아닌 유명스타를 해설자로 내세우는 것은 지양돼야 한다”고 밝혔다.
  • 박세리 훈장논란 유감/徐東澈 행정뉴스팀 기자(오늘의 눈)

    金宇中씨와 趙重勳씨는 ‘레종 도뇌르’를 받았다.‘레종…’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프랑스 정부가 주는 최고 훈장이다.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金宇中씨는 대우그룹 회장이고,趙重勳씨는 한진그룹 회장이다.두말할 필요없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인들이다. 기업인이란 무엇일까.얼마전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어 고향인 강원도 통천 땅으로 금의환향했던 鄭周永 현대그룹 명예회장도 부모 몰래 소 판 돈을 들고 38선을 넘어와 싸전을 열었을 때는 평범한 장사꾼이었다.자동차를 고치는 ‘아도공업사’를 차리면서 중소기업인으로 변신했고 이후 현대건설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명실상부하게 기업인으로 발돋움했다. 한 마디로 기업인이란 이처럼 성공한 ‘장사꾼’이다.당연히 기업인에 아마추어란 없다. 그렇다면 프랑스 정부는 왜 金宇中씨나 趙重勳씨에게 발자크나 뒤마 같은 대(大)문호(文豪)에게 주었던 것과 똑 같은 훈장을 주었을까.프랑스 국익(國益)에 도움이 되었거나,장차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뜻이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세계적인 지휘자 鄭明勳씨는 프랑스 정부가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해 지은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의 음악감독으로 활동했음에도 ‘레종 도뇌르’는 받지 못했다.鄭씨는 대신 우리나라에서 문화훈장을 받았다. 그의 누이인 바이올리니스트 鄭京和씨도 같은 훈장을 받았다. 두 사람은 음악이라는 직업을 통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는 공통점도 있다.‘프로 중의 프로’라는 얘기다. 이들이 ‘프로’라기 보다는 ‘고전음악가’가 아니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그렇다면 ‘두만강 푸른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부른 金貞九씨와 왜색(倭色)으로 비난받으며 한때 금지곡 반열에 들었던 ‘동백아가씨’를 부른 李美子씨에게 정부가 수여한 문화훈장은 과연 잘못될 것일까. 최근 일부에선 골프천재 朴세리씨에게 훈장을 주는 문제를 놓고 그녀가 아마추어니 프로니 하며 괜한 트집을 잡기도 한다.그러나 金宇中·趙重勳 회장과 鄭明勳씨 남매,金貞九씨와 李美子씨의 사례에서 보듯 이미 결론이 내려진 ‘철 지난 논란’이라고 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 바흐,‘6개의 무반주 첼로모음곡’(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5)

    ◎음악으로 돌아가는 경이/돌아감은 곧 나아감/명징하게 열린 비탄 1.춤은 태초부터 태초로서 있었으며 음악도 태초부터,태초로서 있었다. 그리고 나아 간다. 지금,악기(樂器)는 바로크 이전(以前)과 이후 그 사이에 있다. 스트라디바리 첼로. 음(音)은 과거보다 여린,섬세한 몸으로 진보(進步)의 창(窓)을 낸다. 그리고 선율이 도돌이표를 그리며 끝없이 유영(遊泳)한다. 첼로 음은 둔중하다가 느닷없이 중력의 흐느낌으로 치솟는다. 선율의 유영은 날씬하고 매끄럽다. 그리고 선율의 음악,음악의 말(言)은 나지막이 속삭인다. 돌아가라,돌아가라,음악으로…아직 음악은 서두부다. 바흐 생애 전체로 보자면 종교적 경건함의 그 웅혼한 높이와 깊이를 악기와 인간 목소리의 음악으로 세우는 대장정을 아직 시작도 안한 셈이다. 그런데,도대체 어디까지 ‘음악으로 돌아’ 갈 참인가. 그러나 이 끝없는 돌아감 없이 바흐 음악의 위대한 경지는 가능하지 않았다. 그 돌아감은 나아감의 바탕으로 되고 그렇게 바흐 종교 음악의,두 겹 흔들림의 강한 성(城)이 이룩된다. 그 흔들림의 틀 속에서 종교음악의 가장 명징하게 열린,(광란이 아니라)비탄과 감동의 이성(理性)이 건축된다. ◎땀방울의 아름다움/아! 국제주의 프랑스 2.어쨌거나,지금은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들을 때. 음악이 음악 속으로 길을 내고 음악이 춤으로 되어가는,혹은 거꾸로의 시각(視覺)­청각(聽覺)과정이 겹쳤다 분리되고 다시 겹쳐진다. 그 사이 분명 하나의 선율이 둘로 나뉘고 겹쳐지고 다시 여러 개 선율로 무한 공간으로 펼쳐진다. 아,단선(單線)인데. 푸가도 아닌데…그렇게 음악은 귓 속으로 또 제 몸 속으로 파고 든다. 이 곡을 발견하고 첼로 음악의 주요 레퍼토리로 확립시킴으로써 첼로라는 악기의 격(格)을 동시에 높였던 것은 파블로 카살스다. 그의 연주는 진지하며 묵중하고 정통적이다. 땀방울이 아름다움 그 자체로 변해가는,음악에서만 가능한 ‘연습곡의 경지’를 그는 이 작품에 부여한다. 아름다움이 탄생하는 과정 자체가 그 결과보다 아름다운,예술의 속살을 들여다 보면서도 창조의 끔찍함에 경악하지 않는 그런 경지. 광활하고 심오한 종교음악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해 끝없이 음악의 원초(原初)로 돌아가는 ‘근면한 음악가’ 바흐의 체취를 우리는 카살스 연주에서 직접 맛볼 수 있다. 당시 바흐가 실험하던 악기는 바로크 첼로,즉 지금보다 고음현(高音鉉)하나가 더 붙은 비올론첼로 피콜로다. 애너 빌스마의 ‘원전 악기’ 연주는 그렇게 바흐의 실험 정신을 매우 참신하게 구현한다. 그러나 바흐를 따라,‘음악으로 돌아감’으로써 더 나아가려면 우리는 모리스 장드롱의 연주를 들어야 한다. 국제주의와 예술적 모성(母性)의 합(合)인 프랑스 정신이 스트라디바리 첼로 음을 구사하면서 위의 모든 요소를 포괄하고 현재에 와닿는다. 동시에,춤에서 기악(器樂)이 독립하던 그 기악(器樂)의 원초로 돌아간다. 즉 바흐의,흔들림의 미래인 것이다. ◎聖俗 거대한 변증법/첼로 최고의 연습곡 3.그렇게 기악은 앞으로 바흐 음악의,성스러운 광휘의 배경을 이루며 찬란한 광휘의 배경을 거대한 배경을 이루며 인성(人聲)에 내재한 비참의 아비규환을 성(聖)과 속(俗)의 거대한 변증법으로전화시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독립,푸가 기법 자체가 주제인 ‘음악의 음악’에 달할 것이다. 그리고 필경은 기악만의 교향곡에 달하리라. 음악이 음악 속으로 길을 내고 음악으로 돌아가는데도… 아,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그 ‘과정의 예술’은 얼마나,종교보다 더 지상적(地上的)인 동시에 더 내세적(來世的)인가. 바흐가 살던 당시 첼로는 그 역할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악기였다. 한마디로,바탕에 깔리는 반주 역할이 고작이었다. 그런데 왜 바흐는 이런 첼로 음악을,‘더군다나’ 무반주의,즉 첼로 만의 음악을 작곡했을까? 음악사가(史家)들은 흔히 그렇게 자문(自問)한다. 그리고 악기­연주 발전사의 맥락에서 자답(自答)한다. 기량이 뛰어난 연주자를 만났기 때문이다. 커다란 홀 연주를 위해서는 음량이 충분한 악기가 필요했다… 운운. 그러나 우리는 예술­창조의 맥락에서 설명을 덧붙혀야 한다. 그것은 ‘더군다나’를 ‘그러므로’로 바꾸는,사고의 전환과 직결된다. 반주 역할을 맡던 첼로를 음악세계의 유력한 등장인물로 바꾸려면,반주 역할자체를 의미화(意味化)해야 하는 것.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그런 예술정신으로써 이 방면 최고 걸작으로 남게 된다. 이후 코다이,브리튼 등 극소수의 작곡가만이 ‘무반주 첼로곡’이라는 형식에 손을 댔다.그리고 바흐의 벽에 부딪쳤다. ◎투명한 슬픔의 육체/더 강건한 음악理性 4.다른 한편 이 예술정신의 세례를 받고 이후 숱한,완벽에 달한 독주 악기 연습곡들이 탄생할 것이다. 바흐 자신의 ‘평균율’,베토벤,브람스,쇼팽,쇼스타코비치에 이르는 연습곡들. 그러나 이것들은 모두 피아노 독주곡들이다. 그렇다. 바흐 ‘6개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은 ‘음악의 음악’으로써,그리고 첼로 연습곡으로써 완벽에 달했다. 돌아감의 통로로써 완벽하게 열렸던 것이다. 바흐로 돌아가라… 난해(難解)의 수렁에 빠져 음악의 귀(대중의 그리고 작곡가 자신의)를 상실당한 숱한 현대 음악가들이 그렇게 외치고 있다. 어디로,무엇으로,돌아갈 것인가? 음악은 서주,알망드에서 쿠랑트로,그리고 미뉴에트,지그로 이어지는데. 그러는 사이 어느새 육체가 춤으로 춤이 선율로 전화하고 첼로 음마저 제 옷을 벗고 그렇게 다시 투명한 슬픔의 육체를 드러내는데. 그 드러냄이 이리 하냥 흘러가는데,그 경로가 6번이나 반복되고 심화­확산되는데,어디로? 바흐의 ‘음악으로 돌아가는,그 경이’ 속으로. 근면과 예술 정신 속으로. 바흐보다 더 깊이. 바흐보다 더 난해한 세상을 포괄하는,혼란으로 더 흔들리면서 그것을 더 투명한 명징성으로 음악 세계화하는,그렇게 2,000년 낡은 문명의 나이를 아름다움의 나이로 바꾸어내는,더 강건한 흔들림의 음악 이성 속으로. ◎푸가,수트란 첼로는 4개 현이 각각 5도 간격의 도,솔,레,라로 조율되어 있다. 음역은 3옥타브 이상. 17세기에는 통주저음(通奏抵音,음악 내내 지속되는 저음) 연주악기 역할이 고작이었지만 낭만주의 시대 이래 가장 중요한 악기 중 하나로 부상했다. 푸가는 여러 개의 선율이 동시에 진행되는 음악 형식. 원래 ‘비상(飛翔)’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이다. 둔주곡(遁走曲)이라고도 번역한다. 모음곡은 원래 여러 악장의,대개 춤곡 형태의 기악. 17,18세기에는 가장 중요한 기악 형식 중 하나였다. 바로크 시대 전형적인 모음곡은 알망드(4/4혹은 2/4박자의 독일 민속 무곡),쿠랑트(4/3박자의 프랑스 민속 무곡),사라반드(느린 3박자의 고전 무곡),지그(빠른 3/8 혹은 6/8박자의 무곡) 등 춤곡으로 구성되고 종종 미뉴에트(우아한 3박자 무곡),가보트 (4/4박자 춤곡)등이 삽입되었다. 소나타,교향곡 형식이 발전하면서 모음곡은 말 그대로 곡모음을 뜻하게 된다.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1644∼1737)는 이탈리아 태생의 현악기 제작 거장(巨匠). 바흐 나이 35세인 1720년까지 황금기를 구가했다. 모리스 장드롱(1920∼1990)은 프랑스 태생의 첼리스트. 니스와 파리음악원에서 배우고 프라도에서 파블로 카살스를 사사했다. 70년대 이래 파리음악원 교수를 지냈고 지휘자로도 활동했다.
  • 창무악 ‘춘하추동’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이자 아쟁산조를 창시한 국악인 정철호씨가 창과 춤,그리고 연주가 어우러진 창무악 ‘춘하추동’을 무대에 올린다. 3일 하오 7시 전남 광주시 남도예술회관.(062)364­6928. 전남 도립 남도국악단의 98년 정기공연으로 선뵐 이 작품은 정씨가 아름다운 우리나라 풍광을 주제로 한 그동안의 자신의 곡들을 계절별로 묶은 것이다. 한이 서린듯한 분위기의 태평소 시나위로 시작되는 ‘춘하추동’은 모두 일곱개 장으로 이뤄진 창무악. 연극적 요소가 강한 창극과는 달리 줄거리는 가지고 있되 대사보다는 음악과 무용으로 극을 이끌어가는 종합예술의 성격이 강한게 특징이다. 성주풀이 남한산성 진도아리랑 등 민중의 애환이 서린 남도민요와 동편,서편제 창법,사물놀이,부채춤 등 우리 전통문화 양식을 혼합해 새로운 감각의 창작예술로 승화해낸 공연물. 남도국악단은 지난 86년 창단된뒤 국내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 독일 등지에서 모두 360여회의 공연을 한 전통예술단체로 정씨가 현재 상임지휘자를 맡고 있기도 하다. 전설적인 명창임방울선생 제자로 ‘적벽가’ 완창음반을 내는 등 판소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정씨는 창극 ‘학이여 사랑이여’ ‘류관순’ ‘녹두장군 전봉준’ 등을 작곡했다. 또 이번 공연에 이어 창무악 ‘인동초’ 전국순회공연을 위해 준비중이다.
  • 特搜部 대통령 직속에 異見/‘공직 부패방지법’ 여야 입장

    ◎與­총체적 국정개혁 의지… 野 설득 자신/野­원칙 찬성… 검찰·감사원 무시 ‘屋上屋’ 金大中 대통령이 국민회의를 통해 공직자 부패방지법의 제정을 강도 높게 주문하자 여야 모두 “공감한다”며 원칙에는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대통령 직속기구로 특별 수사부를 설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국민회의는 지난 96년 부패방지 기본법안을 국회에 냈다. 따라서 金대통령의 법제정 지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는 분위기다. 아울러 사회 전반의 구조조정과 개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직 사회만이 무풍지대로 남아있다는 비판적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총체적 국정개혁의 한 줄기라는 시각이다. 특별수사부를 대통령 직속기구로 설치키로 한데 대해 야당이 반대한 데 대해서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당 정책 관계자는 “야당을 설득할 대안이 있다”고 강조했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두면서 중립성을 최대한 보장한다면 불필요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대통령 직속기관이면서도 중립성을지키고 있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예로 들었다. 특별수사부라는 명칭은 ‘가칭’이며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국회에 계류중인 비리 조사처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야당이 우려할 정도로 미숙한 법은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다. 당 정책관계자는 “공무원들의 부정부패를 뿌리뽑지 않고서는 총체적 국정개혁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됐다”면서 “법안이 졸속이라는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따라서 법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야당측과 충분한 협의를 거쳐 9월 정기국회때 통과 시킨다는 전략이다. ○…한나라당은 부정부패를 뿌리뽑아야 한다는 데는 찬성하지만 대통령 직속의 ‘특수부’를 설치 하는데는 반대다. 입법과정에서도 반대입장을 분명히 할 계획이다. 26일 열린 총재단회의에서는 이 대목에 초점을 맞춰 집중적인 성토가 있었다. 金哲 대변인은 회의 후 “사정을 통한 부패방지에는 찬성한다”면서도 “대통령 직속의 특수부 설치나 특별검사제 도입은 국가 사정기관인 검찰과 감사원의 고유 기능을 무시한 옥상옥(屋上屋)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金대변인은 “중앙공무원 인사위원회를 통한 공무원 인사권 장악,기획예산위를 통한 정부 각부처의 예산 장악에 이어 공무원에 대한 사정권한까지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 검찰권의 최고 지휘자가 대통령임에도 굳이 대통령 직속의 특수부를 만들거나 특별전담검사로 하여금 부정부패를 수사토록 하겠다는 것은 ‘정치검찰’을 만들고 이 정부를 검찰에 의존하는 ‘검찰국가’로 만들겠다는 발상”이라고 비난했다.
  • 사랑과 나눔의 자선공연

    지휘자 함신익,테너 최승원,소프라노 김수정,바이올린 캐서린 조,피아노 윤선영씨.미국에서 활동중인 클래식 음악계의 스타급 연주자들로 자선공연 ‘98 사랑과 나눔의 콘서트’무대에 나란히 선다. 29일 하오 7시30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598­8277. KBS교향악단의 연주로 진행될 이번 공연의 수익금 전액은 정신지체장애인수용시설 ‘교남 소망의 집’ 재활시설 기금으로 쓰여진다. 92년 이래 매년 한차례씩 KBS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해온 함씨는 현재 미국텍사스 애벌린 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예일대심포니 음악감독 겸 지휘자로 활동중인 중견 지휘자.또 최승원과 김수정씨는 각각 93년,95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주인공들이며 윤선영씨도 유명 콩쿠르 입상과 링컨센터 연주,음반활동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보이고 있는 피아니스트. 최고의 첼로주자 로스트로포비치가 “음악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만들 줄아는 특별한 재능을 지닌 연주자”라고 극찬했던 캐서린 조는 최근 유망신예에게 수여하는 애브리피셔 커리어 그랜트상을 받기도 했다. 이날 연주곡목은 베르디의 ‘운명의 힘’서곡과 멘델스존 ‘바이올린협주곡 작품64’,생상 ‘피아노협주곡 제2번’,도니제티의 오페라 ‘루치아’중 아리아 등.
  • 클래식 음반史 한눈에/DG 100주년 기념 ‘레전드’ 시리즈

    ◎지휘자·성악가 등 연대별 수록 클래식 음반 100년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앨범이 나왔다.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 그라모폰(DG)의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폴리그램이 지휘자와 바이올리니스트,피아니스트,성악가의 연주를 연대기별로 담은 ‘레전드’(전설)시리즈를 제작 발매했다. 두장짜리 CD 5집,모두 10장으로 구성된 이 앨범은 클래식 음반의 어제와 오늘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한국판으로 특별 기획된 것. 이번 음반은 100년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각별한 의미는 물론,음반이란 매체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DG 100년을 기념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DG가,토마스 에디슨과 같은 시기에 음반을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가 창립한,바로 그 회사이기 때문.에디슨이 원통형의 음반을 낸 것과는 달리 베를리너는 현재의 것과 유사한 원형 음반을 발명,본격적으로 산업화한 주인공이다.따라서 DG는 음반의 기술과 예술적 성과에서 한 세기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같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음반 첫 부분에 베를리너의 1898년 육성도 담겨졌다.‘레전드’시리즈는 지휘자 부문이 1,2집 CD 4장으로 구성돼 있고 3집 피아니스트,4집 바이올리니스트,5집 성악가 순으로 짜여 있다.교향곡이나 협주곡은 하이라이트가 되는 한 악장씩만 수록했다. 전설처럼 전해 오는 지휘자 아르투르 니키시의 베토벤 교향곡 ‘운명’을 비롯,리하르트 슈트라우스,카를 뵘,카라얀,앙드레 프레빈,레너드 번스타인,정명훈에 이르기까지 명지휘자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그륀퓔트,리히터,마르케비치 등 피아니스트와 부슈,슈탄스케,크레머 등 바이올리니스트를 만날수 있고 엘리자베스 슈만,레오 슬레차크의 감미로운 노래를 100여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음반은 IMF현실을 감안,2장을 한장값에 판매한다.시리즈지만 낱장으로도 판다.값은 각 1만4,000원.
  • 금난새와 함께 오페라 여행을

    지휘자 금난새씨가 연말까지 네차례에 걸쳐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금난새와 함께 하는 오페라여행’이라는 음악프로그램을 주관한다. 이 프로그램은 3시간이 넘는 공연시간과 의미전달 부족으로 일반인들에게 다소 부담스런 공연물인 오페라를 자세한 해설을 곁들여 쉽게 풀어냄으로써 좀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도록 꾸미는 무대.따라서 의상이나 분장은 오페라분위기를 그대로 살리되 하이라이트 위주의 공연으로 지루함을 줄이고 장면전환때마다 금씨가 해설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26일 하오 7시30분 첫 공연은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통속적인 사랑이야기처럼 인식돼온 이 작품을 진실한 사랑의 의미는 물론,금권결혼과 황금만능주의가 판치던 당시 파리상류층의 위선에 통렬한 비판을 가한 작곡가의 의도를 살펴본다.뉴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테너 박세원,소프라노 형진미,바리톤 양재무씨 출연.554­6292.
  • 모차르트 ‘레퀴엠 미사’ 진혼곡(명반과 함께하는 음악여행:4)

    ◎검은 가면의 만파식적(萬波息笛) 1.울음의 그림자가 짙게 깔린다.그림자는 점점 더 짙어진다.짙음만으로 비극성(悲劇性)에 도달하려는 것처럼.그것은 음악이 시작되기 전부터 아니 태초(太初)부터,지금까지 깔리고 쌓여 오는 것 같다.그렇게 순식간에 음악의 공간이 마련된다. 레퀴엠 아에테르남 도나 에이스.안식,영원한,주소서,그들에게.언제부터 ‘레퀴엠’이라는 단어가 슬픔과 위안을 그 자체로 동일시했던가.언제부터 ‘키리에’라는,‘주님’을 뜻하는 단어가 그 자체 인간 존재 비극성의 명징한 음악적 응축으로 되었는가.라크리모사(눈물),호스티아스(봉헌),베네딕투스(찬양),아뉴스 데이(신의 어린 양)은 또 어떻게? 서양음악의 레퀴엠 전통은 그렇게,‘단어를 음악으로 만들’ 만큼 위대하다.그리고 모차르트의 ‘레퀴엠’은 그중 가장 인간의 체취로 온습(溫濕)하다. 모차르트,쫓겨난 천사의,인간적인 체취? 왜냐하면,이 작품은,놀랍게도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이다.그리고 이 작품 이래 모든 걸작 진혼곡들은 미사곡이 아니라 비극 자체가 등장인물인 장엄한 오페라로 화한다. 2.어느 날 짙은 안개를 꿰뚫고 검은 가면을 쓴 사내가 모차르트에게 나타난다.진혼곡을 써다오… 그는 죽음의 사자(使者) 같았다. 이 곡은 혹시 나를 위해 쓰라는 것이 아닐까,그렇게 나는 사형선고를 받은게 아닐까…모차르트는 작곡을 하면서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그는 가난과 방탕으로 병들고 지쳐 있었다.그의 작곡 속도가,원래 빨랐지만,병적으로 더 빨라졌다.미처 악보에 옮겨 적기가 힘들 정도로 악상(樂想)이 유령처럼 어른댔다. ‘돈 때문에’ 오페라 ‘마적’과 ‘티토의 자비’를 마친 후 그는 다시 레퀴엠에 몰두한다.심신이 점점 더 황폐해가고,그는 음악 속으로,진혼곡 속으로 그리고 죽음 속으로 속속 빠져 들어갔다.죽음이 더 먼저 왔다.레퀴엠은 미완으로 남았다. 모차르트의 생애를 다룬 음악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차르트의 재능을 시기한 이탈리아 출신의 선배 음악가 안토니오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죽음의 공포’로 내몰아 살해했다,혹은 독살했다는 푸슈킨-림스키 코르사코프류 이야기를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 시재(詩才)를 시기하여 정지상을 죽이는 김부식의 이야기를 우리 고려사는 품고 있다.‘삼국사기’의 명문장가이자 대학자였던 김부식이 왜 시골 뜨기 시인 동창(同窓)을 선망­질투­증오했을까. 3.그러나 실제 고려사는 훨씬 더 복잡하다.정지상은 혁명적인 예술가였지만 정치적 미망(迷妄)에 사로 잡혔다.김부식은 보수적인 대학자였고,현실주의자였다.‘모차르트 독살’설은 우선 사실과 다르다. 살리에리는 베토벤,슈베르트,그리고 리스트를 가르친 훌륭한 스승이었고 존경받는 오스트리아 황제궁 음악감독이었다.1790년 황제 죠셉 2세가 죽고 새로 부임한 레오폴트 2세가 살리에리 대신 자신을 음악감독으로 써 주기를 바랐던 모차르트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재능은 있었으되 말썽꾸러기였던 것.살리에리는 그런 그를 두둔하느라 진땀을 흘렸을 것이다.그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몰랐을 리는 없다.그러나 자신의 제자들 또한,특히 베토벤이 모차르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리라는 것을 몰랐을 리도 없다. 기교만 보자면 모차르트는 놀라운 음악의 신동(神童)이다.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로서 그는,아니 그도,평생 동안 거대한 벽과 싸워야 했다.그 벽은 바로 이탈라이 오페라 부파 음악. 이 음악장르는 이탈리아 본토 뿐 아니라 파리와 빈 등 서유럽 음악중심지에서 그야말로 창궐했다.일반인들은 그 장르가 구사하는 기발한 악상,무엇보다 음탕한 대사를 즐겼지만 모차르트는 달랐다.테너의 고음 선율이 청아한채로 뒤틀릴 때 그는 죽음의 검은 가면을,죽음이 삶 속에 제 모습을 언뜻 언뜻 내보이면서 흘리는 웃음을,어리석은 삶을 너그럽게 포괄하는,비극을 넘어서는,수 천년 나이를 먹은 웃음의 경지를 보았다.그렇다.그는 현대성의,미래예술의 한 핵심을 보았다. 4.모차르트의 부파 풍(風)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돈 조반니’‘코지 판 투테’는 모두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를 차용하고 선망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비비꼬는 이탈리아 청아성(淸雅聲)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독일적 서정의 극치를 구현한다.그렇게 ‘마적’은 부파적인 요소를 최대로 삭제한 채 독일 오페라 음악사의 최고절정에 달하고,최후작 ‘티토의 자비’는 오페라 세리아다. 물론 모차르트 음악은 가장 위대한 인류 유산 중 하나다.‘이탈리아 오페라 부파’라는 벽은 그가 스스로 키운,그렇게 실제보다 더 거대한 벽이고,그의 위대함을 담보해 주는 예술가의,예술의,시련의 벽이었다. 그렇게 그가 자기 자신을 위한 진혼곡을 남긴다.지상으로 쫓겨왔던 천사가 지상을 떠나며 남기는 유언은,지상적으로 뭉클하다.하나님,이제는 이 창조의 속박을 벗게 하소서.그 유언이 지상에 남은 모든 인간을 위한 만파식적이 된다.살으라,고통받으라,의미를 창조하라… ‘살리에리 이야기’는 35세에 요절한 천재 모차르트를 위한 허구다.그러나 예술가는 더 깊은 진실을 이야기 속에 은유(隱喩) 혹은 상징(象徵)으로새겨 넣는다. ‘검은 가면’이야말로 진실의 핵심을 담고 있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대개 브루노 발터의 연주를 최고의 것으로 친다.그의연주는 모차르트 음악의 한 본질인 일상적 우울의 장려미(壯麗美)를 총괄적으로 보듬고 있다.다만,그것조차 풀어헤치고 절망하는 모차르트,그 절망의 진지함에 기적적으로 묻어나는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의 검은 가면이,카를 뵘의 연주와 달리 보이지 않는다. 어쨌거나,불쌍한 살리에리.그는 모차르트보다 6년 먼저 ‘이탈리아에서’태어나 34년을 더 살았다. 1971.녹음,1983 DG 413 553­2 GH 소프라노:에디트 마티스/알토:율리아 하마리/테너:비슬라브 오크만/베이스:카를 리더부쉬 빈 국립오페라 합창단/빈 필하모니커/지휘:카를 뵘 ◎레퀴엠,부파란 레퀴엠.‘죽은 자를 위한 미사’ 통상 미사에서 ‘글로리아’(영광송)와 크레도(신앙송)부분이 빠지고 ‘디지레’(진노의 날)부분이 첨가된다.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그리고 베를리오즈,베르디,포레가 걸작을 남겼다.브람스 이래 진혼곡은 통상 미사곡과 다른 가사를 사용하거나 기악만으로 구성되면서 더욱 일반화,현대화되었다. 오페라 부파. 일상의 삶에서 소재와 등장인물을 뽑아내는 희극(喜劇)오페라.오페라 세리아의 반대.페르골레시 ‘마님이 된 하녀’,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로시니 ‘세빌랴의 이발사’와 ‘신데렐라’를 거쳐베르디 ‘팔스타프’에서 최고의 경지에 달했다. 마티스(1938∼)는 모차르트,슈트라우스 해석에 능한 스위스 소프라노.하마리(1942∼ )는 헝가리 메조소프라노이다.레퍼토리가 다양하다.오크만(1937∼ )은 폴란드 테너.차이코프스키,모차르트와 베르디까지 소화한다.리더부쉬(1932∼ )는 바그너역으로 너무나 유명한 독일 베이스. 빈 필하모니커.1842년 창단.역대 주요 지휘자는 니콜라이,말러, 바인가르트너,푸르트뱅글러,카라얀,뵘 등. 뵘.모차르트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오페라에 정통한 오스트리아 지휘자.그가 지휘한 두 작곡가의 오페라 전곡집이 DG 레이블로 나와 있다.
  • 反民특위 강제 해체/‘6·6사건’의 의미(정직한 역사 되찾기)

    ◎친일파 ‘미완의 단죄’로 민족사 굴절/제헌국회,48년 반민족처벌법안 통과/화신재벌 朴興植 등 검거 재판대 세워/본격 활동 앞두고 李承晩이 강력 제동/조사대상 30%만 기소… 결국 흐지부지 일제 강점기 친일 행각을 벌인 반역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가 구성된지 50년의 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이 특위는 李承晩 대통령의 집요한 방해로 활동에 제약을 받아오다가 마침내 이듬해 6월6일에는 강제 해산을 당하고 말았다.반민특위 활동의 미완성은 이후 49년 동안 우리 현대사 굴절의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해왔다. 1949년 6월6일 아침 8시.서울 남대문로에 위치한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경찰을 가득 태운 2대의 드리쿼터가 들이닥쳤다. 습격대 지휘자는 尹기병 당시 중부경찰서장.尹을 비롯한 40여명의 경찰은 장탄한 권총을 꺼내들고 출근하는 특위 직원들을 연행했다.반민특위 金尙德 위원장과 金相敦 부위원장이 “국립경찰이 헌법기관인 특위를 강점하고 직원을 불법체포하니 이게 무슨 행패냐”고 항의했으나 경찰은 막무가내였다.金부위원장은 책상을 치며 울분을 터트렸다.검찰총장 겸 특별검찰관장 權承烈이 소식을 듣고 달려왔다.그 역시 안하무인의 경찰에게 권총을 뺏기는 수모를 당했다.“지휘권자에게 이렇게 할 수 있느냐”는 호통도 소용없었다. 연행된 사람은 모두 35명.특경대원 24명,직원 및 경호원 9명이었다.직원을 면회온 민간인 2명도 엉뚱하게 같이 끌려 갔다.연행자 중 22명이 입원할 정도로 심한 고문을 당했다. 이날의 ‘6·6사건’은 해방후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분수령이었다.경찰력이 제헌국회가 설치한 반민특위를 사실상 해체,李承晩 독재의 길을 열었다.친일파 제거에 실패함으로써 헌정사 왜곡의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입법부가 행정부의 들러리로 전락하는 순간이기도 했다.반민특위가 구성된것은 48년 9월29일.올해가 50주년이다.반민특위가 친일파를 제대로 정리했다면 李承晩 독재는 물론,이후 군사정권도 불가능했을 지 모른다. 제헌국회는 48년 9월7일 반민족행위처벌법안을 통과시켰다.반민특위 위원은 각도 출신국회의원 중 선임됐다.金相敦(서울) 趙重顯(경기) 李鍾淳(강원) 朴愚京(충북) 金明東(충남) 吳基烈(전북) 金俊淵(전남) 金尙德(경북) 金孝錫(경남) 金庚培(제주·황해) 등이었다.金炳魯 대법원장을 재판관장으로 하는 특별재판부,權承烈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특별검찰부,李元鎔 총무과장이 이끄는 중앙사무국이 각각 구성됐다.진용을 갖춘 반민특위는 49년 1월5일 공식업무를 시작했다.특위는 1월8일 화신재벌 朴興植을 검거하는 것을 필두로 전광석화같이 친일파 색출에 나섰다. 그러나 출범초부터 친일세력의 심한 반발이 일어났다.일제 경찰 출신들이 반발세력의 중심이었다.해방직후 발족된 새 경찰의 50%이상이 이들 출신으로 추산된다.친일파 세력을 집권 기반으로 한 李承晩도 반민특위가 눈엣가시였다.李承晩은 盧德述 崔燕 등 심복인 경찰간부들이 특위에 체포되자 특위 해체를 추진,‘6·6사건’에 이르게 된다. 결국 특위는 49년 8월31일 조사대상 682명 중 221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활동을 끝냈다.이중 12명이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5명은 집행유예,나머지 7명도 형집행정지 등으로 석방됨으로써 친일파 단죄는 흐지부지 넘어갔다. ◎다른 나라의 사례/佛,나치협력 3만∼4만명 처형/시민법정 설치… 9만5천여명 시민권 박탈/中·대만 정부 친일파 漢奸 색출 상당수 처벌 2차대전 직후 독일과 일본의 전범처리가 있다.뉘른베르크재판에서는 22명의 1급 전범이 기소되어 나치군 원수 괴링 등 12명에게 사형이 선고됐다.7명이 종신형∼10년의 금고형을 받았다.도쿄재판에서는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7명의 전범에게 교수형이 내려졌다.기도 고이치(大戶幸一) 등 18명에게는 종신형∼금고 20년이 선고되었다. 우리의 친일파 문제와 비슷한 것은 유럽국가의 나치협력자 숙청과 중국·대만의 한간(漢奸·친일파)재판이다. 프랑스의 드골은 나치멸망 직후인 44년 6월부터 11월에 걸쳐 나치협력자 처리를 위한 4개의 훈령을 내렸다.이 훈령에 따라 조사받은 인원은 150만∼200만명.드골은 회고록에서 1만842명이 나치협력자로 처형됐다고 밝히고 있다.드골은 작가,언론인,학자 등 나치에 협력한 지식인들도 엄히 다스렸다.현대사가 로베르 아롱은 “3만∼4만명이 재판에 의했든지, 그렇지 않든 간에 민족반역자로 사형당했다”고 추정했다.프랑스는 형사재판권이 없는 시민법정도 설치,9만5,000명을 ‘비국민’으로 판정해 시민의 권리를 박탈했다. 덴마크는 1만4,000명,네덜란드는 4만명,벨기에는 5만명, 노르웨이는 2만명의 나치협력자를 각각 민족반역자로 무기에서 유기징역형에 처했다. 중국과 대만정부도 2차대전이 끝난후 친일파 제거에 나섰다.한간재판은 중국공산당 정부와 장제스(蔣계石)의 국민당 정부에 의해 46년 4월부터 48년 9월까지 따로 진행되었다.중국·대만정부에 의해 한간으로 판명된 상당수 인사들이 처형됐지만 개별처리 사실만 알려질뿐,전체적 통계는 아직 집계되지 않고 있다. ◎특위 총무과장 역임 李元鎔옹/“민족정기 바로서는 날 두눈 감기전 보았으면” “金大中 대통령이 명실공히 역사를 바로잡아 민족정기를 되찾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반민특위 총무과장과 조사관을 역임했던 李元鎔옹(78)은 국민의 정부에 거는 기대가 컸다.반민특위에관계했던 인사들이 대부분 타계한 현실에서 그는 당시 특위의 고위 중앙요원으로는 유일한 생존자다.서울 공대 전신인 광산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48년 10월 반민특위 구성때 민간인 신분으로 행정실무를 주도했다.다음은 李옹과의 일문일답. ­현재의 심경은. ▲오늘 이 땅위에 사는 구세대 치고 일제의 학정과 인간 이하 대우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입니다.이러한 일본의 관헌에게 우리 조국광복을 위해 신명을 바치던 애국지사를 밀고,또는 체포해 넘긴 반역자가 있었습니다.아직도 그 생각을 하면 피가 역류하는 분노를 금할 길 없습니다.두 눈을 감기전 바르게 처리되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반민특위가 소기의 목표를 달성 못한 이유는. ▲국내사정에 어두운 李承晩 대통령이 친일파들의 간계에 현혹되어 경찰력을 동원,하루 아침에 반민특위를 와해시켰습니다.제헌국회의 결정에 따른 헌법기관이 불법적으로 무너짐으로써 헌정사에 크나 큰 오점을 남기게 됐지요. ­친일파 청산의 현주소는. ▲金泳三 정권이 들어선 뒤 역사 바로 세우기를 기치로 내걸어 혹시 하며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실효없이 용두사미격이 되어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지금이라도 관계 각료나 관련 인사들이 모여서 기구를 만들어 과거에 처단치 못한 민족반역자를 처벌해야 합니다.그래야 이 나라의 기초가 탄탄해집니다.金대통령은 해박한 경제관과 탁월한 국제 외교력을 겸비했습니다.조국광복을 위해 순국하신 많은 선열들의 넋을 위로해주는 데도 힘써주실 것으로 믿습니다.그것이 경제 등 다른 난국의 극복에도 도움이 됩니다. □반민특위 활동 일지 ▲48년 8월5일=제헌국회,‘반민족행위 처벌법 기초특별위원회’ 구성 ▲9월7일=‘반민족행위 처벌법’ 국회 통과 ▲9월29일=반민족행위처벌법 공포,‘반민족행위 조사특위(반민특위)’구성동의안 국회 가결 ▲10월1일∼11일=반민특위 10명 조사위원 선임 ▲10월23일=반민특위 1차위원회 ▲49년 1월5일=반민특위 사무실 개소,업무 개시 ▲1월8일=화신재벌 총수 朴興植 1호 체포 기록 ▲1월13일=崔麟 검거 ▲1월25일=盧德述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검거 ▲2월7일=崔南善 李光洙 검거 ▲2월15일=李承晩 대통령,반민처벌법 개정 필요성 특별담화 ▲3월28일=李琦鎔 朴興植 등 반민자 첫 공판 ▲5월하순∼6월초=정부,1·2차 국회 프락치사건 발표 ▲6월6일=경찰,반민특위 습격,조사요원 불법체포,특경대원 무장해제 ▲6월26일=金九 선생 암살 ▲8월31일=반민특위 공식해체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 李炫熙 성신여대 교수 대한민국 정통성 토론회 주제발표

    ◎대한민국은 臨政 법통성 계승 건국 50주년을 기념하여 3일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개최된 ‘대한민국 건국과정과 정통성’ 대학술토론회에서 첫번째 주제발표에 나선 성신여대 李炫熙 교수의 발제문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과의 관계’를 요약 소개한다. ○민족사 정당한 계승자 대한민국의 건국은 국가로서 큰 의미를 갖되 3·1혁명으로 李東寧 등에 의해 1919년 4월13일 상해에서 수립 선포된 임정(臨政)의 정부로서 독립운동정신과 홍익인간적 창조의 전통을 계승하여 민족자결의 원칙에 따라 주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우리의 자주적인 정부수립운동의 성과였다. 수립 초기부터 광복때까지 27년간 上海시대­이동(移動)시대­重慶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적인 국내의 민족독립세력을 수렴,통합하며 구심점과 대표성을 견지한 채 광복투쟁의 방향을 제시 집행하였던 대한민국임시정부(1919∼45) 27년사는 그것이 뒷받침이 되어 1945년 8·15 민족의 광복을 스스로 쟁취할수 있었다.그것은 임정이 내정(內政)교통 군사 외교 문화 재정 사법의 광복정책을계획 실시하여 8·15의 광복을 쟁취했고,그 맥락을 이어 대한민국이 건국된 것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성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연면히 이어 내려온 우리 민족사의 정당한 계승자로서의 법통적 지위를 갖게 되었다. 이에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 건국사는 비록 제약성은 있었으나 이전의 군주제를 청산하고 주권재민의 민주공화제를 개시한 임정으로부터 그 기원을 찾아 볼 수 있겠다. ○민주건국사 임정서 비롯 그러므로 대한민국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은 별개의 맥락이 아니다.제헌국회에서 제정된 헌법을 통해 3·1독립정신을 계승한다고 그 전문에 극명하게 천명하여 임정의 법통성을 자유민주이념 선상에서 묵시적으로 명시하였고,그뒤 1988년 제9차 개헌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성을 연결한다’고 문서적으로 명시하여 대한민국이 건국한 사상적 이념적 정통성의 현주소를 재확인,인식하게 조치되었다. 또 대한민국은 임정의 주요 애국인사들이 지도자로서 재등장하여 사상,이념에 이어 인적인 맥락이 이어지고 있다.우선 대통령 李承晩은임시정부의 대통력직을 역임하였고(1919∼25),미주,하와이 등지에서 임정의 구미위원부위원장으로 열성적인 강·온 양면에서 임정과 연계하에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또한 선비형의 지사 부통령 李始榮은 임정 27년 동안 시종일관 법무 재무 등 입법부 요직을 역임한 법통성과 함께 임정의 산 역사였다. ○임정인사 요직 재등장 이외 이범석,지청천,허정,임병직,윤보선,김현철,조병옥,윤치영,임영신,유일한,정운수 등도 임정출신으로 대한민국 정부 요직을 받았던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이준식,채원개,유해준,안춘생,박영준,김국주,박시창,박기성,장호강,공군의 김신 등 광복군의 지휘관급 인사도 거의 8·15이후 한국군의 지휘자로 맥락지어져 광복군 역시 한국군의 뿌리로 연결되고 있다. ○건국 50돌 민족통일 과제 이처럼 대한민국은 인적인 맥락과 함께 임정의 법통성을 제도와 정신으로 이었으며 자유민주주의 체제인 대의정치와 자유시장 경제원리를 채택한 합법적인 국가로 출발하였다. 이후 대한민국은 우여곡절속에서 경제적 발전과 성숙된 민족의식을바탕으로 사회건설과 문화발전에 매진하면서 1998년 8월15일,건국 50주년에 이르고 있다.그러나 우리에게는 임정 이래 통일달성이라는 민족사적으로 해결해야할 큰 과제가 남아있다.진정한 선진화,세계화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평화적 통일방안의 실천을 통한 민족의 화합과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건국 50주년을 기해 이를 위한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여 세계속에서 위대한 한민족의 시대를 다시 열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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