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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개혁반대파 곧 숙청”/송평·와인지등 구체거론

    ◎당 중앙군사위/군부에 개혁지지 「반좌투쟁」 지시 【홍콩=최두삼특파원】 중국의 최고지도자 등소평이 주도하는 제2단계 개혁개방정책이 당내 보수강경파들로부터 각종 방해공작과 저항등을 받고 있으며 이에 따라 등은 주요 보수좌파지도자들을 숙청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홍콩신문들이 5일 보도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 친중국계 월간 경보는 이날 『천안문사태이후 모택동주의 부활을 시도해온 일단의 당정간부들이 당규율검사를 받게될 것』이라고 전하고 지난 2월부터 북경에서 나돌고 있는 해임대상은 당인사담당 정치국원 송평,당중앙선전부장 왕인지,인민일보사장 고적,국무원 문화부장(대행)하경지등이라고 보도했다. 또 성도일보는 인민해방군에 대해 최근 개혁정책에 대한 지지를 촉구하고 좌익사조에 대한 반대투쟁을 고무하며 군지휘부의 연경화를 촉구하는 당중앙군사위원회의 지시가 하달됐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북경발 특파원기사에서 중국인민해방군 총참모부가 지난 2월29일 예하 각군 기관 및 부대 지휘관의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당중앙군사위로부터의 6개항의 「중앙정신의 관철」을 요구하는 지시를 하달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중국군부에 하달된 중앙군사위의 지시사항가운데 중요한 내용은 ▲개혁개방속도를 보다 빨리할것 ▲반좌투쟁을 강화할것 ▲군지휘관의 연령을 낮출것 등이라고 밝혔다.
  • 나고르노분쟁/구소군 개입 “위기”

    ◎전면전 발발땐 내전 “소용돌이”/러연선 유엔중재 요청 가능성 독립국가연합(CIS)내 최악의 민족분규지역인 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의 영유권을 둘러싼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공화국간의 전투가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구소련군의 직접개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어 새로운 위기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이지역 현지 구소군 지휘부는 샤포슈니코프 통합군사령관에게 대응작전을 촉구하는 동시에 현지 주둔군이 공격을 받을시 응사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그루지야공화국 주둔 구소련군 카프카스군관구측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와 관련,샤포슈니코프 통합군사령관도 구소련군이 개입할 경우 전면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 88년부터 4년여간 1천여명의 사망자를 낸 나고르노 카라바흐지역에 구소련군의 개입은 독립국가연합 전체를 내란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을 뿐만 아니라 경제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상황을 더욱 구렁텅이로 빠뜨릴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지역에 구소련군이 개입할 경우 민족분규를겪고 있는 몰도바공화국과 그루지야공화국들에 선례를 남기는 결과를 초래해 1백20여 민족으로 뒤엉켜 활화산으로 비유되는 구소련전체에 불을 댕기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이같은 위기의식을 감지하고 있는 양측 당사자들도 분쟁해결을 위한 노력을 계속해 왔다.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공화국 외무장관은 지난 20일 러시아연방의 코지레프외무장관의 중재아래 영토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휴전에 전격 합의했었다.양국외무장관들은 휴전과 함께 분쟁해결을 위한 유럽안보회의(CSCE)나 유엔의 평화적 노력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힌바 있다. 평화적 해결방법을 찾고 있는 러시아당국 역시 이같은 제의에 대해 이 지역에 유엔평화군이 파견되는데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국제적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영토분쟁에 서방과 유엔주도로 국제적인 개입이 시작된다 해도 문제해결이 쉬운 것은 아니다.최근 회교권의 경제협력회의등을 통해 이들 공화국들과 관계개선을 모색하면서 입지를 강화해온 이란이 분쟁의 중재자로 나설 경우 또다른분쟁의 불씨를 만들 소지를 안고 있기 때문이다. 분쟁당사국들이 국제적인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데다 사태가 제2의 유고판 내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원치않는 러시아로서는 구소련군에 의한 군사개입보다는 해결의 실마리를 국제적인 개입에 일단 의존할 가능성이 큰것으로 보인다.
  • 우크라이나/흑해함대 통제권 타협 검토/국방장관

    ◎“법과 협상통해 문제 해결”/독립국연합에 이양 시사 【모스크바 AFP AP 연합】 흑해함대의 통제권을 둘러싼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연방간의 마찰이 좁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우크라이나는 9일 흑해함대에 대한 통제권 요구를 완화하고 타협할 용의가 있음을 시사했다. 콘스탄틴 모로조프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는 법과 협상절차를 통해 흑해함대의 통제권 문제를 해결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으로 러시아 RIA통신이 보도했다. 이같은 발언은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흑해함대가 전략적인 요소를 갖추고 있으며 오는 92년 6월까지는 흑해함대를 인수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지 하루만에 나온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 최고회의내 고위인사도 우크라이나가 흑해함대의 일부를 갓 출범한 독립국가연합(CIS)으로 넘겨주는 문제를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보도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이번주 들어 독립국가연합의 군지휘부와 우크라이나에 주둔중인 30만명의 구소련군을 연결하는 통신설비를장악했다고 CIS국방부의 한 대변인이 밝혔다. 잠정군 사령부의 간부인 블라디미르 니카로노프는 이같은 조치는 CIS 군사령부가 우크라이나 주둔 병력들과 교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전화통화밖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간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도 구소련군 참모본부 관계자들을 인용,이로 인해 중앙의 군사당국과 우크라이나내 전술핵무기를 통제하고 있는 병력들과의 교신이 두절됐다고 전했다.
  • 크렘린 권력투쟁 “유동적 상황”/베이커 맞아 최후 줄다리기 양상

    ◎옐친 행보 주춤·「공동체」 창설 제동/고르비 “헌법수호” 발언 지지 얻어/핵통제 싼 슬라브국 이견·「회교연맹」이 변수 당장이라도 영토및 정치체제등 모든 것이 뒤바뀌어 환골탈태의 새나라가 될듯 급박하게만 돌아가던 소련정국이 제임스 베이커미국무장관의 방문을 맞아 일단 가라앉았다.그러나 소강상태로 접어든 현 국면은 변혁을 보다 공고히 하려는 중간정지 작업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변혁에 대한 반동적 상황이 제기된 탓도 있어 외양이 아닌 내부의 숨소리는 예전처럼 가쁘기만 하다. 독립국가공동체를 새 소련의 활로로서 주창하고 이의 실현을 향해 일로약진하던 보리스 옐친 러시아대통령의 스피드가 이삼일 전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반대로 연방해체와 함께 연방대통령직 사임의 막다른 벼랑까지 내몰려 급전직하의 신세를 면치 못할 듯 싶던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낙하의 예상을 깨고 뒤를 돌아보는 여유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옐친대통령의 전격 제창과 함께,정체된 무풍지대에 빠져있던 소련 정국을 그대로 태풍 속으로빠트렸던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안은 그 실현도에 있어 가히 파죽의 기세로 내달았다.주도 3개공화국인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의 의회가 차례로 이를 비준한 데 이어 중앙아시아권의 5개공화국을 비롯,나머지 공화국들이 거의 빠짐없이 직·간접으로 동참의사를 표시했다.이같은 승승장구의 기세에 눌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도를 바꿔 공동체창설 지지의사를 표명하면서 사임할 뜻을 분명히 했고 이에따라 소련 내국인이나 외부의 국제사회는 하나같이 독립국가공동체의 출발신호로서 고르비의 하야를 「하릴없이」 기다리는 모습들이었다. 그러나 주가 바뀌자마자 들리는 건 주초로 확정되다시피 했던 고르비의 사임준비 소리가 아니라 반대쪽 옐친 진영의 분열음이었다.즉 그동안 액셀레이터만 밟아오던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안에 브레이크가 걸린 양상이다.고르바초프대통령은 14일 소련 인테르팍스통신과의 회견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군통수권 행사에 충실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고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의 전화를 통해 헌법질서 수호라는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다.또한 같은날 배포된 미 타임지와의 인터뷰기사는 자신의 조기사임을 일축하는 당당한 자세로 일관되었다.지난주에는 그의 사임 의도를 흘리던 고르비 측근들 역시 급선회,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은 고르비의 조기사임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연방해체의 비준과 같을 고르비의 사임이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과 때를 같이 해서 옐친 진영의 내부분열이 노출되고 표면화돼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에의 추진력이 크게 감소되는 판세이다.군부에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루츠코이 러시아공 부통령의 군불만 위기 경고가 있자마자 포포프 모스크바시장의 경제시책 비판을 동반한 사임의사 발언이 터졌다. 핵무기 통제문제를 둘러싸고 슬라브계 공화국간에 이견이 표출되었으며 특히 『슬라브계 공화국들과 동등한 지위를 부여받지 못할 경우 독립국가공동체가 아닌 회교연맹을 결성할 수도 있다』는 중앙아시아권 공화국들의 엄포마저 들려오는 마당이다. 그러나 독립국가공동체와 관련한 옐친의 스피드 감속은 지금까지의 상황으로 보아심각하다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주창직후의 급속도에 대비된 탓에 실상보다 과장되게 전달될 수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옐친은 이 기간중에도 공동체 실현을 위해 여러 큼직막한 작업에 매달려 한층한층씩 구축해 나갔다.옐친은 이 와중에서 샤포슈니코프 연방 국방장관과 비공개로 회동,공동체 출범에 따른 「통합군」지휘부 구성문제를 협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또 옐친은 자신이 회담하기 한발 앞서,소련방문에 나선 베이커 미 국무장관 편에 러시아공 외무장관을 보내 미국의 러시아 승인을 요구하도록 했다. 고르바초프의 사임연기 발언에 대해서도 반옐친의 동향으로 파악하는 대신 공동체 통합군 지휘와 관련한 양측의 협상 진전을 반영한다는 추정도 있다. 스케줄에 다소 차질을 보이고 있을 뿐 옐친의 독립국가공동체 바람은 아직까지 소련정국의 틀림없는 대세이며 최근의 사태추이들을 우선은 「마이너」현상으로 취급해도 무방하다고 할수 있다.베이커의 소련 나들이가 끝난뒤에는 아마도 좀더 시계가 밝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 「핵가방」 누구 손에 있나

    ◎고르비­슬라브 3국간 서로 쟁탈전 양상/미,신중한 반응속 「합동지휘부」 구성 낙관 러시아·우크라이나·벨로루시등 3개 공화국의 「주권국가공동체」창설선언으로 소연방이 와해되면서 3만개에 가까운 소련내 핵무기통제권의 향배에 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선언 이전까지 연방대통령의 손안에 있었던 핵통제권이 현단계에서는 누구의 수중에 있는지조차 불분명한 가운데 소련의 지도자들간에는 이를 둘러싸고 쟁탈전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대통령은 독립국공동체선언 직후 조지 부시 미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슬라브3국이 소련내 핵무기를 책임지고 관리할 것임은 물론 현재도 하나의 지휘통제하에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은 독립국가공동체 창설은 불법이며 자신이 소련군의 통수권자로서 핵무기를 통제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공동체에 참여하고 있는 우크라이나공의 레오니드 크라프추크대통령은 소련내 핵무기가 슬라브3국 대통령3인의 복수통제하에 놓일 것이라고 밝히는등 핵심지도자들조차 상반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러한 엇갈린 주장들 때문에 미국은 현재 소련의 「핵가방」이 누구의 손안에 있는지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들은 소련의 정정이 유동적인 현상황에서 부시행정부가 슬라브3국이 핵무기를 관리·통제하고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며 핵지휘체계는 혼돈상태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소련의 군병력과 무기가 결국 개별공화국으로 뿔뿔이 흩어진후 각 공화국간의 협정으로 집단안보체제가 형성될 것이며 핵무기의 관리·통제를 위해 연합사성격의 합동지휘부가 구성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 유고군,자그레브 대규모 공습/1백만 시민에 대피령/크로아공

    ◎크로아공 대통령궁 주변 맹폭/육군은 지대지미사일 포격전 【자그레브 AFP 로이터 연합】 유고슬라비아 사태는 7일 밤(이하 한국시간) 연방공군기들이 지난 6월 내전 발발후 처음으로 크로아티아공화국 수도 자그레브를 공습한데 이어 대규모 비행단이 재공습에 나선 것으로 공화국 언론이 8일 새벽 긴급 보도함으로써 연방측과 크로아티아공간의 「최후 일전」으로 본격 비화됐다. 공화국 TV는 8일 새벽 긴급 보도를 통해 『다수』의 연방 공군기가 자그레브에 대한 본격적인 공습에 나섰다고 전하면서 1백만 시민들이 대피하도록 요청했다. 유고 연방 공군기들은 앞서 7일 밤 지난 이번 내전 발발후 처음으로 자그레브시를 공습,대통령궁등이 피격됐다고 공화국 통신 HINA가 보도했었다. 통신은 공군기 2대가 이날 밤 11시 자그레브 상공에 나타나 관공서 밀집지역에 공대지 미사일들을 발사했다고 전하면서 대통령궁등이 피격됐다고 전했다. 공습 당시 정부 청사에 스티페 메시치 연방 대통령이 있었으나 무사히 대피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그러나 프란요투즈만 공화국대통령이 집무중이었는지 또는 다쳤는지 여부는 즉각 확인되지 않았다. 공화국 국방부도 이날 긴급 성명을 발표,연방 공군기들이 자그레브시를 공습했음을 확인했다. 연방 육군은 이날 공습이 이뤄진 것과 때를 같이해 자그레브에 대해 지대지미사일을 발사,본격적인 시공격에 돌입했다고 유고 관영통신 탄유그가 보도했다. 목격자들은 공군기들이 자그레브에 나타난후 큰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 올랐다고 전하면서 피해 여부는 즉각 전해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습은 자그레브 인근까지 진격한 연방군 야전 지휘부가 자그레브에 대한 대규모 공격 가능성을 경고한지 수시간만에 취해졌다. 브란코 코스티치 연방 부통령도 이날 앞서 크로아티아공측의 봉쇄로 갇혀있는 연방군및 가족등 모두 2만5천명을 『힘으로 구해 내기로 결정했다』고 발언,자그레브에 대한 공격이 임박했음을 시사한 바 있다. 연방군은 지난 6월 내전이 시작된 이후 자그레브에 위협 비행을 가한 적은 있으나 본격적으로 공격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편 크로아티아공은 또한 8일중 유럽공동체(EC)에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해주도록 공식 요청할 것이라고 즈보니미르 세파로비치 공화국 외무장관이 밝혔다.
  • 미 「전술핵 폐기」 따른 방위대책 질문/28일(국감중계)

    ◎“한반도 핵 「NCND정책」 변함 없다”/정태수씨 증인채택 요구 싸고 입씨름/축산진흥 위한 경마취지 어디 갔나 ▷국방위◁ 국방부에 대한 이틀째 감사에서 야당의원들은 부시 미대통령의 핵전력 감축계획 발표와 관련,미국의 핵정책 전환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과 이에 대한 우리측의 대응방안에 대해 집중 질의. 권로갑의원(민주)은 『부시대통령의 이날 발표는 한반도 정세변화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전제한뒤 『미국의 핵정책 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책은 무엇이며 향후 한반도 상황의 전망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유준상의원(민주)은 『한반도 핵에 대한 기존의 NCND정책은 이제 수정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뒤 『미국이 군사전략변화의 일환으로 지상 핵무기 폐기를 선언한 만큼 한반도 핵에 대한 정부의 입장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 또 정대철의원(민주)은 『미국의 이번 조치가 한반도 정세 특히 대북관계에 미치는 영향이 무엇이냐』고 질문한뒤 『미국의 전술핵은 한국군의 대북군비 열세를 보충하는 주요 수단이었던 만큼 이에 대한 우리군의 대책은 무엇이냐』고 추궁. 답변에 나선 이종구국방장관은 『부시미대통령의 핵전력 감축계획은 지상및 해상핵무기는 제거하되 공중발사 핵무기는 계속 잔류시키고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밝혀 지상핵은 철수되더라도 주한 미공군이 보유하고 있는 핵은 철수되지 않을 것임을 강력히 시사. 이장관은 야당의원들이 NCND정책을 수정해야 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새로운 핵정책의 발표가 미국의 기본입장인 NCND정책의 변화를 의미하지는 않으나 이번 발표로 주한미군 핵의 존재여부는 더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언급,여전히 핵에 대한 NCND정책이 유효하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장관은 또 부시대통령의 새로운 핵정책선언과 관련,『한미양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주한미군 핵문제를 포함한 한반도 핵문제를 은밀히 협의해 왔다』고 밝혀 미국의 이번 조치가 한반도에서의 전쟁억지력을 약화시키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 ▷농림수산위◁ 한국마사회와 농수산물도매시장 관리공사에 대한 감사에서 정일영의원(민자)은 『마사회의 소관부처가 내년 1월1일부터는 농림수산부에서 체육청소년부로 이관됨에 따라 경마수입중 축산진흥을 위해 지원하는 자금의 운영등이 체육청소년부장관이 정하게 됐다』고 지적하고 『이에따라 축산진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고 질타. 박형오의원(민주)은 농수산물 도매시장에 대한 감사에서 『올해들어 수입바나나와 파인애플로 인한 판매차익이 무려 87억2천만원이나 되고 서울청과·중앙청과·한국청과등의 상장거래실적중 수입과일 거래실적이 33∼34%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국내 농산물보다 수입과일 판매에 치중하는 것이 과연 도매시장의 설립목적에 맞느냐고 질의. 박경수의원(민자)은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모든 상품에 대한 시장경매제도를 단계적으로 추진하는데 일부 악덕중매인들이 출하농민들에게 상장을 기피하게 하거나 상장업무를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면서 이들 악덕중매인에 대한 대책을 강구토록 하라고 촉구. 답변에 나선 유승국마사회장은 『경주마의 국산말 충당률을 92∼96년에는 20%,2003년 이후에는 75%로 단계적으로 늘려나가겠다』며 『이를 위해 경주마 자급확대 중장기계획을 수립,농가의 마필생산과 육성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설명. 한편 농수산위는 이날 수산물 매점매석과 수산물값 폭등문제를 다루기 위해 야당측이 대우·삼성·현대·해태·삼양사등 5개 재벌그룹회장을 증인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했으나 여당측이 매점매석등 물가문제는 경과위에서 다뤄야한다며 이에 반대,결국 표결끝에 부결시키는등 진통. ▷재무위◁ 중소기업은행과 주택은행에 대한 감사에서 민주당의원들이 감사벽두에 정태수전한보그룹회장의 증인채택을 요구하기 위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여야의원들의 입씨름이 벌어지고 곧바로 정회가 선포되는 파행을 되풀이하다 감사자체도 무산. 민주당측이 정전한보회장의 증인채택을 강력히 거론하고 나온 것은 법규정 증인출석은 1주일전에 요청토록 돼있는 만큼 오는 10월5일의 국감종료를 8일 앞둔 시점에서도 증인채택요구가 관철되지 않으면 강제출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 민주당은 이날 상오 국회에서 원내대책회의를 열어 재무위 국정감사에서 정전한보회장이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으면 3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어 국정감사의 전면거부문제를 논의하기로 결론을 내리고 이날 국감이 없는 의원들과 당직자들을 재무위에 투입시키기로 하는등 총력전태세에 돌입. 그러나 상오의 중소기업은행 감사장에는 김원기총장,조승형·이협의원등 3명의 현역의원이 지원을 나왔고 하오의 주택은행 감사에는 김덕규수석부총무만이 자리를 지켜 당지휘부의 기대에는 크게 미달. 하오의 주택은행에 대한 감사에서도 김위원장은 김정길·유인학·강금식·이경재의원등이 위원장석을 둘러싸고 『의사진행발언권도 주지 않는 회의가 어디있느냐』고 항의하는 것을 무시하고 은행장의 증인선서를 받고 곧바로 정회를 선포하는 배짱진행. ▷보사위◁ 환경처에 대한 국정감사 첫날인 28일 야당의원들이 보사부 국감에서 있었던 안필준보사부장관의 수감태도를 다시 문제삼고 나왔으며 이에 여당의원들이 맞서 고성이 오간 끝에 국감시작 20분만에 첫 정회소동. 민주당 이돈만의원은 이날 권이혁환경처장관이 인사말에 이어 업무보고에 들어가려 하자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보사위 국감이 타행적으로 진행된데 대해 안장관이 공개사과할 것과 선경에 은행잎에끼스제조허가 배경및 경위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해 발언을 제지하려는 여당의원들과 한바탕 실랑이. 이의원의 발언에 대해 김장숙의원(민자)이 『환경처의 국감』이라면서 이를 제지하자 이의원은 『대통령의 사돈인 선경얘기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느냐』『당신들이 총재를 모시려면 똑바로 모시라』고 엉뚱한 발언을 꺼내 여야의원간에 삿대질이 오가는 추태가 10여분간 계속. 황명수보사위원장은 사태가 험악해지자 개의 20분만에 정회를 선포한뒤 여야간사절충을 거쳐 상오 11시20분 이의원에게 의제안에서의 발언권을 다시 주기로 하고 속개.
  • “민주화”·“전문화”… 국군이 달라졌다

    ◎철조망 제거·시설 개방으로 국민 가까이/국방부조직 43년만에 민위주로 대개편/개방시대 발맞춰 새 위상 어떻게 가꾸고 있나/어로선 북상·민통선 출입통제 완화/토지수용 대폭 해제… 재산권 보장/수재민 구호·의료지원등 대민활동 강화 국군이 변화하고 있다. 제6공화국 출범과 함께 민주화·개방화·국제화 추세에 맞추어 국군도 민주화·전문화·개방화되고 세련된 전문집단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개정된 「군인복무규율」은 군의 정치적인 중립화를 명문화하고 「국군병영생활규정」은 내무반의 폭행·구타·폭언을 금지시킴으로써 명랑한 병영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현역 중심의 국방부 간부직원도 대거 일반직 공무원으로 충원함으로써 공개국방행정을 위한 문민화를 이루고 군구조 개편작업으로 3군의 작전권을 통합한 새로운 합참본부를 출범시켜 작전효과의 극대화를 꾀했다. 최근 2∼3년 사이 민주화된 모습으로 바뀌고 있는 국군의 실상을 알아본다. ○도로·공원으로 활용 군이 국민과 가까워지기위한 노력이 최근 2∼3년 사이에 크게 돋보이고있다. 군사시설보호구역을 대폭해제해서 국민들의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으며 도심지군부대를 교외로 이전,도로와 공원을 개발토록해 쾌적한 도시환경을 만드는데 기여했다. 더욱이 휴전선부근의 민간인 출입통제를 대폭완화하고 동해안과 서해안의 어로작업선을 북상시킴으로써 영농과 어로편의를 제공한 것등은 새로운 민·군관계개선을 위한 획기적인 조치로 보인다. 육군은 최근 동해안의 철조망을 일부 철거함으로써 휴가를 즐기는 시민들에게 오염되지 않은 쾌적한 해안을 개방한데 이어 군체육시설도 시민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개방할 예정이다. 국방부의 한 관계자는 『도심지군부대이전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군 작전수행을 위해 군이 수용한 토지도 수용지역을 해제,국민들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국민을 위한 공개 국방행정을 펴기위해 지난 3월28일 문민화된 국방부직제 개편안을 확정,2년여 끌어오던 조직개편 작업을 마무리지었다. 2차관보 2실 7국 13관 34과 45담당관으로 재편된 국방부직제는과거 현역이 자리잡고 있넌 국·과장들을 일반직·별정직 공무원으로 대체함으로써 문민화와 업무의 전문성제고에 주안점을 두었다. 국방부 직제개편에는 미래지향적인 국방정책을 수행하기 위해 국방정책실과 대민업무를 위한 민정협력관 또 남북대화와 군비축소를 위한 군비통제관,그리고 방대한 군사조직을 관리하기 위한 조직관리관을 신설하고,국방전산소를 독립기구로 격상시켰다. 민정협력관은 지금까지 군사비밀 차원에서 은밀하게 추진하던 국방업무를 국회나 언론등 일반에 공개하고 국민적인 지지를 구하기 위해 신설되었다. 개정된 국군조직법에 따라 지난해 국군의 날에 출범한 합동참모본부는 그동안 육·해·공군참모총장이 지휘하던 총 13개의 작전부대를 직접 지휘·감독하게됐으며 각군본부는 작전을 제외한 인사·군수·지원업무만을 담당토록 했다. 국방부는 또 우수인력을 확보전문군대로 육성하기 위한 「국방인사정책의 장기적 발전 방향안」을 마련,우수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이들을 직업주의에 입각한 전문지식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정치개입은 옛말 5·16혁명과 5·17사태로 군이 국민들로부터 받은 부정적인 이미지를 벗고 새롭게 태어나자는 움직임이 88년초부터 소장급 장군들에 의해 일어났다. 본부의 참모와 사단장급 지휘관들인 이들은 『과거 소수의 정치장교들의 정치개입으로 대다수의 순수 야전성과 정책형의 장교들이 매도당한 적이 있었다』고 시인하고 『그러나 국민소득이 6천달러에 육박하는 현시점에서 군이 다시 정치개입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군인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60년대와 80년대와 현재는 시대적인 상황이 각기 다르며 시민들의 민주의식도 성숙해져 있어 군부가 정치에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는 것이 현역장교들 대부분의 의견이다. 90년 12월20일에 개정한 군인복무규율(대통령령)과 국군병영생활규정안(국방부훈령)은 군의 정치적인 중립을 명문화하고 영내의 가혹행위를 금지시켜 민주화된 국민의 군대로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였다. 개정된 군인복무규율에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위해 ▲정당및 정치단체의가입 ▲특정정당이나 정치단체를 지지 또는 반대하는 행위 ▲특정후보자의 당선및 낙선에 영향을 주는 행위 ▲투표에 있어 어느 한쪽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도록 영향을 주는 행위 ▲기타 정치적 중립을 저해하는 행위 등을 금지토록 명시했다. 개정된 군인복무규율에는 병영안에서의 구타·폭언 등 가혹행위를 금지시키고 군복무중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직속상관에게 해결을 건의할 수 있는 고충처리규정을 신설했다. 또 명령의 확대해석을 금지,직무와 관계가 없거나 법규및 적당한 명령에 반하거나 자기권한밖의 사항에 대해서는 명령을 할 수 없도록 했다. 지난달 21일에는 군복무중 사소한 잘못으로 군형무소에서 복역을 했더라도 제대후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특수전과말소제도」를 도입하고,일본군국주의 군형법을 모델로한 군형법의 경우 엄벌위주로 되어있는 형량체계를 대폭 완화시켰다. 이같은 군의식의 민주화전환은 군의 뿌리인 사병위주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병영생활도 공개 우리군은 48년 창군당시 정신적으로는 독립군의 전통을 이어받았으면서도 형제적인 동지애가 없었으며 편제면에서는 미군을 답습했으면서도 미군의 윤리인 조국·명예·의무·책임감이 결여됐었다. 오히려 구일본군의 악습이라고 할 수 있는 가혹한 내무생활을 중심으로 한 구타와 기합·폭언 등 가혹행위 등 인간성 말살의 비정한 풍조가 유입,상존해왔다. 상관의 명령을 지상최대의 과제로 삼아 절체절명의 상황속에서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병사들의 최대의 덕목이었다. 국군은 80년대와는 달라진 병영생활을 일반시민에게 공개함으로써 자신을 얻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시민이 접근하기 어렵던 군부대와 예비군훈련장을 인근 초·중·고학생들에게 소풍장소로 개방함으로써 국군이 국민과 친숙한 관계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또 지난 90년 여름 홍수 등과 같은 재난이 발생할때면 군이 보유하고 있는 각종 중장비와 병력을 투입해 복구잡업에 나서는 등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진면목을 보여주어 큰 호응을 받았다. 최근에는 휴가나온 장병들이 유원지에서 익사직전의어린이와 노약자들을 구조하고 자신은 숨지는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 시민들이 장례를 치러주기도 했다. ○전력 증강에 10조 현역 65만명,방위병15만명,군무원과 각종 사관후보생등 1백만명에 가까운 국군이 단기간에 민주화를 이루고 새로운 민·군관계를 정립하기는 매우 어렵다. 88년8월 중앙경제신문의 오홍근부장테러사건과 90년10월 윤석양이병의 국군보안사령부 민간인사찰폭로사건 등은 새로운 민·군관계확립을 위해 노력하던 군에게 치명타를 입히는 큰 사건이었으나 지휘관을 문책하고 기구개편과 함께 명칭까지 바꿈으로써 환골탈태의 진통을 겪었다. 다시는 이런 종류의 인권을 침해하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바꾸고 지휘·감독을 충실히 하겠다는 것이 군지휘부의 공통된 다짐이었다. 국군은 앞으로 9년안에 차세대전투기사업(KFP),잠수함사업,헬리콥터·전차생산등 무려 10조원이 투입되는 전력증강사업을 세워놓고 있다. 90년대후반의 추가적인 미군감군계획과 연계한 한반도방위의 한국화를 위해 의욕적인 전력증강계획을 세워놓고 있다.그러나 한정된 국방예산만으로는 이를 계획대로 추진하는데 많은 문제점을 안고있다.
  • 미 싱글로브 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6

    ◎“주한 미2사단 철수” 카터 공약 큰 파문/“또 다른 아시아 전쟁 개입 피한다” 명분/한국측선 “철군구상은 배신행위” 반발/베시 유엔군 사령관,백악관 면담서 “최종결정전 논의” 언질 받아내 76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유엔사령부는 서서히 8·18만행으로 증원됐던 부대들을 원대복귀 시켰다.수개월 동안 군사정전위원회에서의 북한측 태도는 두드러지게 유화적으로 나왔으며 DMZ상에서의 도발도 거의 없었다.이는 우리의 강력한 무력시위가 이들 공산군 지휘부를 자제토록 했기 때문이었다. ○새 사령관으로 부임 리처드 스틸웰대장은 그해 가을 전역했으며 존 베시대장이 새사령관으로 부임했다.그는 2차대전 때 소총수로 입대하여 전장에서 현지임관,승진해온 군인중의 군인 이었다.조용하고 강직한 성격으로 한국에서 유엔군사령관직을 수행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인물 이었다. 그러나 베시의 지도력은 곧 시험을 겪게 됐다.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본격적으로 개시되면서 민주당후보인 카터의 대외정책 공약중에는 한국으로부터 미지상군을 철수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그의 유세 가운데 나타난 철군이유는 아시아에서 또다른 전쟁에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다는 것이었으며 더러는 경제적 이유도 있었다.아마도 그는 2사단병력을 한국에 그대로 두는것이 미국에 유지시키는 것보다 경비가 덜든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것 같다. 한국인들은 이같은 카터의 철군구상은 일종의 배신이며 어리석은 생각이라고 불평했다.한국 군고위장성들과 정부고위층들은 미국인 대화채널에게 기회있을때마다 그 부당성을 강조했다.한국인들은 이미 5만명의 지상군을 베트남에 파병했으며 엄청난 살상에도 불구하고 연합군과 행동을 같이 했었다. 그러나 이에대해 미국은 1971년 한국정부와 한마디의 상의없이 보병7사단을 철수하는 것으로 보답한바 있었다.그런데 이제 또 유력한 대통령후보가 나머지 병력의 철군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었다.보병2사단은 고도의 통신장비와 강력한 화력을 가진 부대로 한반도에서 북한군의 침입을 억제하는 수단이 되어왔다. 카터가 당선된 후에 나는 한국군 참모총장인 이세호대장과 후에 합참의장이된유병현중장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그들은 한결같이 카터 대통령당선자의 주한미군 철수주장 이유를 물었으며 또 그가 북한군 전력증강에 대한 정보보고를 받지 못했는가 하는 것이었다.그들은 49년 미군의 갑작스런 철수로 야기됐던 50년의 북한 침공을 상기시켰다.류장군은 『만일 당신들 군대가 떠나면 김일성이 틀림없이 다시 쳐들어 올것』이라고 강조했다. 나는 이들에게 미합참이 대통령 취임후에 바로 이 문제를 대통령에게 환기시킬 것임을 확약했다.그러나 그들은 카터의 군사보좌관들이 주로 자유주의 그룹과 좌파경향의 평화주의그룹으로 구성돼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을 달래려고 애를 썼지만 솔직히 나 스스로도 확신이 서질 않았다. 그해 12월 우리는 북한의 침공 가능성을 경고한 새로운 정보평가를 입수했다.전에는 북한군이 전면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수일내지 적어도 일주일은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작성된 중앙정보국(CIA),국방정보국(DIA)합동평가에 따르면 12시간이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북 침공 가능성 경고 더욱 비관적인 상황이 새해들어 전개됐다.77년 1월21일 카터대통령은 취임후 첫공식집무로 1만여명에 달하는 베트남전쟁 징집기피자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렸다.이는 한국인들에게는 미국이 아시아에 있는 우방들을 더이상 방어할 의사가 없다는 상당히 상징적인 의미로까지 비추어진것이 틀림없었다. 2주후 베시사령관은 합참의장인 조지 브라운대장으로부터 비공식 메시지를 받았다.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에 주한 미군철수 시안인 대통령지시각서(PRM)13호를 내렸으며 세가지 방안중 어느것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견해를 물어왔다는 것이었다. PRM­13은 1월27일자로 작성된것으로 틀림없이 카터대통령이 북한군 증강및 전쟁준비에 관한 새정보평가에 대해 충분히 검토할 시간적 여유없이 성급하게 성안된 것이었다. 제시된 내용은 첫째 즉각적인 철수,둘째 2개월에 1개 대대씩 2년내 완전철수,셋째 한국군에의 현대식 장비이양및 조작술훈련등을 포함한 4∼5년내 철수등이었다.그런데 백악관은 이 문제에 대해 서울의 유엔군 사령부와 협의할 필요가 없다고 특별히 요청해 왔다는 것이다. 결국 합참은 이들 방안 모두가 한반도에 치명적 결과를 낳을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일수 없다고 결정했으나 해롤드 브라운 국방장관으로부터 강한 압력을 받고는 마지못해 세번째 방안을 천거했다는 것이다. 베시는 기회 있을때마다 합참의 참모들에게 북한군이 지난 가을이후 방어태세에서 공격태세로 전환된 사실등을 강조했다. 베시는 그해 3월초 회의참석차 워싱턴에 갔다가 카터대통령과 백악관에서 면담할 기회가 있었다.베시는 북한의 명백한 침략의도등 최근의 정보평가를 바탕으로 보고했다.그러나 대통령은 보고하는 동안 줄곧 무표정하게 있었다.베시는 과장법을 쓰지않는 사람이며 군사작전면에서는 어느 지휘관보다도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낙관적 분위기 점증 카터는 마침내 『장군,당신은 내가 미처 알지못하던 사실들을 잘 지적해주었소. 최종결정을 내리기전 다시한번 당신과 의논하겠소』라고 말했다. 며칠후 3월9일 카터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가졌다.그가 먼저 한국에 관해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한 기자가 그에게최근 제출된 78년예산안에 주한미군 유지경비 수억달러가 포함돼 있음을 들어 그의 철군공약에 대해 물었다. 그는 철군을 하되 4∼5년간의 적절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국정부와 신중하게 협의해 결정하게 될것이라고 답변했다. 이 문제는 4월말 버나드 로저스 육군참모총장이 서울에 왔을때 다시 거론됐다.리처드 스나이더대사의 관저에서 베풀어진 오찬에 참석했을때 그는 카터대통령이 철군계획을 그대로 추진하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유엔사령부는 철군결정을 정식으로 접수한바 없었으며 베시사령관에게 최종결정을 내리기 전에 꼭 협의를 거치겠다고 한 대통령의 언질을 바탕으로 낙관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 더욱이 이같은 낙관적 분위기는 5월초 미국무부와 국방부 합동으로 철군관련 고위협의단을 한국에 파견하겠다는 전문이 날아왔을때 최고조에 달했다.전문내용은 브라운 합참의장과 필립 하비브 국무차관이 인솔하는 협의단이 5월말에 파견된다는 것과 철군에 대한 결정이 아직 내려지지 않았고 한국내의 모든 그룹들과 협의를 통하지 않고는 결정될수 없음을 한국인들에게 강조하라는 지시까지 포함돼 있었다.
  • “독재의 기둥” KGB 수술대에 오른다

    ◎「공포의 위상」 어떻게 바뀌나/개혁물결 반영,권한축소 불가피/휘하 30만 병력 국방부 배속 방침/총원 70만명에 한해 예산 49억 루블 소요 소련 공산독재정권의 「칼과 방패」로 무자비한 철권을 휘둘렀던 「비밀경찰」KGB가 역으로 철퇴를 얻어맞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쿠데타실패 직후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개혁파 인물인 바딤 바카틴 전내무장관을 임명,KGB에 개혁바람을 예고했다.고르바초프는 28일 KGB 최고지휘부인 콜레기움(협의회)의 해체를 명령하고 KGB 휘하의 30만 국경경비대 병력을 국방부 통제하에 두도록 지시했다. 실무국장단과 부의장 7명이 포함된 협의회를 없애 개혁파 바카틴의장이 전적인 지휘권을 갖도록 했으며 본연의 정보활동외에 월권의 근거였던 군사조직을 또한 없애버린 것이다.거기다 진보적인 인사들로 조사단을 구성,KGB 고위층의 지난 쿠데타 개입여부 뿐만 아니라 「국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KGB 활동 전반에 대한 감사를 실시하도록 한 것이다. 조사단은 오는 10월 중순까지 이 악명높은 「비밀경찰」의 실상을 적기하면서 새롭게 정립해야 할 국가보안위로서의 역할을 제시할 예정이나 KGB의 권위실추와 권한축소는 자명해보인다. 바카틴 신임의장은 『지금까지의 KGB는 거대한 독점 그 자체로서 일대 절단의 수술이 필수적이다』는 의견을 공공연히 피력하고 있다. KGB는 총 소속인원이 70만명으로 추정되고 공식적인 예산만도 49억루블(한화 약22조원)이다.이 기관의 활동영역을 미국과 대비시켜 보면 CIA의 해외정보활동,FBI의 국내중요범죄 수사,정부기관 동향파악,관세및 국경수비 그리고 일반시민에 대한 사찰권을 포괄 보유해왔다. 군·공산당과 함께 소련독재의 3대 기둥의 하나인 KGB는 지난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 창설된 「체카」를 원조로 삼고 있다.혁명정부를 주도하고 있던 레닌은 국내외로부터의 반혁명 음모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기구로 체카를 설치,그해 12월 출범시켰다.「바퀴를 조이는 나사못」이란 뜻의 체카는 처음 23명으로 구성되었는데 첫 책임자는 테러 예찬론자로 폴란드태생인 펠릭스 제르진스키였다. 체카는 출범한지 1년이 채안된 1918년 8월 레닌에 대한 저격사건을 계기로 반혁명분자들을 정식재판에 회부하지 않고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됐다.그후 1919년 말까지 「혁명의 수비대」라는 기치아래 1백만명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재판없이 처형했다. 소련은 신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미국 차관을 얻기 위해 1922년 2월 체카를 폐지하고 내무인민위원부(NKVD)소속으로 국가정치보안부(GPU)를 설치한다.GPU의 책임자는 제르진스키가 그대로 맡았고 기구도 그대로였으며 23년 소련 헌법이 채택되자 GPU는 합동국가정치보안부로 바뀌지만 실체는 변동없이 똑같았다. 이 기구는 스탈린의 폭압정치를 거치면서 엄청나게 강화된 권한을 부여받고 무자비한 피의 숙청을 도맡았다.스탈린 시대의 이 기구 총책인 베리야가 53년 총살당한 뒤 54년 KGB로 개칭돼 오늘에 이르렀다. 85년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KGB의 변화가 시작되었으나 89년 동구의 민주혁명 때까지만 해도 위성국 정보망의 상부조직으로서 공산독재체제의 유지에 전력을 기울여왔다.국내사찰요원 4만명,해외공작요원 2만명으로 추산되는 민간요원들은 동구민주화 이후에는 외국의 군사비밀과 경제기술분야 스파이활동에 중점을 두어오면서 서방원조식량의 소련내 배급을 감독하는 기능을 담당했다. KGB는 90년 5월 합법성을 원칙으로 하고 인권및 자유를 존중한다고 선언했으나 크류치코프 전임 의장은 「서방의 소련전복 기도」를 여러번 경고하는 등 보수적 성향을 드러내보인 뒤 이번 쿠데타에 주도자로서 참가했다.쿠데타 주도혐의로 기소된 13명 가운데는 크류치코프 의장 외에 3명의 KGB 고위인사가 더 연루되어 있다. KGB 일부에서는 이번 쿠데타에의 참여도 및 연루자들은 이 기구 전체로 보아 소수파에 지나지 않는다고 항변하고 있으나 쿠데타와 상관없이 KGB의 권한축소를 통한 위상재정립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민주화와 「비밀경찰」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 군 지휘부 전면 숙청/고급장교 80% 교체/신임 소 국방 밝혀

    【모스크바 AP 연합】 예프게니 샤포슈니코프 소련 신임 국방장관은 25일 소련군 지휘부에 대한 전면 숙청작업을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샤포슈니코프장관은 이날 한 TV회견에서 공산당을 군부에서 축출하려는 미하일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조처에 지지를 표명하고 고급 장교들의 80%를 교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포장만 다른 통합3개항/김명서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정치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순수 집단지도체제」「단일성 집단지도체제」「상임공동대표제」등. 김대중신민당총재가 17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측에 제시한 신민·민주양당의 통합방안이다. 「순수집단지도체제」는 3명이상의 지휘부가 합의에 의해 당을 운영하는 제도다.3공당시 이철승대표최고위원의 구신민당이 이제도를 채택했다.명분상의 당대표를 원칙으로 하지만 실질적 권한이 대표최고위원에게 주어지는 것은 물론이다. 「단일성집단지도체제」.김총재가 이날 회견에서도 강력히 희망한 제도다.총재·대표최고위원·최고위원으로 지휘부가 구성된다.총재에게 1인지도체제에 못지않은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에 「단일성」이라는 「접두사」가 붙었다.신민당이 현재 채택하고 있는 제도다. 「상임공동대표제」는 「공동대표제」에서 파생됐다.민주당이 주장하고 있는 「공동대표제」는 말그대로 동등한 권한의 공동대표에 의해 당을 운영한다는 것이다.일반 기업체의 「공동대표」와 같다.「상임공동대표」는 대외적으로는 두사람이상을 대표자로 내세우기가 어색한 만큼 명분상 한단계 격이 높은 상임공동대표를 둔다는 방안이다. 김총재가 제안한 3가지 방안은 한가지 공통점을 지닌다.「집단」「공동」의 수식어로 포장은 되어있지만 어떤 경우든 「최고 1인자」는 존재한다는 것이다.이자리는 물론 현야권의 대표자로 인정받고 있는 김총재가 맡겠다는 생각이다.한마디로 「법적인 대표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복잡한 통합방안은 결렬을 거듭했던 야권통합협상의 산물이다.「대표성」과 「기득권」을 놓고 의견대립을 벌이다 절충의 의미로 제시한 방안이 이같은 기묘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야권통합에 있어 제1의 극복대상은 상대방에 대한 「불신감」으로 지적되고 있다.설사 통합이 되더라도 당초 약속이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 서로가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이점에서 김총재가 이날 제시한 3가지 통합방안에 대해 민주당측은 곳곳에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각 방안별 의미는 복잡하지만 양당 내부에 흐르는 기류는지극히 단순하다.굽히고 들어오라는 것과 「못하겠다」는 식의 대립이다.그렇다면 보다 솔직해 져야한다. 수식어는 버려야 한다. 통합문제가 계속 꼬여가고 있는 현실에서 양자간의 대화가 「말장난」으로까지 비쳐지는 것이라도 피해야 한다. 깨끗하고 정직한 정치를 생각해야 한다.
  • 미 싱글로브장군 회고록/위험한 임무:2

    ◎미군의 원산상륙 소 잠함 방해로 지연/중공군 압록강집결 「단순한 위협」 오판/애치슨,6·25발발 책임 CIA에 전가 1950년 6월26일 월요일,때마침 개회중이던 상원 예산지출승인위원회는 공화당 출신 스타일스 브리지의원의 제의로 중요한 국가외교정책에 관한 비공개청문회를 열어 미국이 왜 북한의 갑작스런 공격에 무방비상태로 당하게 됐는지를 정부책임자들을 불러 따졌다. 이날 아침 일찍부터 열린 회의에서 애치슨국무장관과 존슨국방장관은 야당인 공화당뿐만 아니라 여당인 민주당 의원들로부터도 호되게 질책을 당했다. 이들의 증언이 계속되고 있는 동안 CIA본부에서는 힐렌쾨터국장과 월터 포르자이머법률고문이 의회에서의 증언을 협의하고 있었다.얼마후 증언을 마친 애치슨국무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자신이 성난 상원의원들의 원색적인 공격앞에서 정보담당자들의 입장을 옹호하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으며 또 그날 하오3시 트루먼대통령에게 브리핑하도록 주선을 해놓았다고 알려왔다. 그러나 이 브리핑 계획은 오후의 청문회 출석과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힐렌쾨터는 청문회에 제출키로 했던 모든 자료를 싸갖고 포르자이머와 함께 백악관으로 갔다.만일 대통령에게의 보고가 길어질 경우 국회에는 그를 보낼 생각이었다. 대통령에게의 보고는 매우 진지하고 솔직한 가운데 간략하게 이루어졌으며 의회에 제출하려던 모든 자료들이 제시됐다.대통령은 정보수집에는 잘못이 없었음을 수긍하는 듯했다. 힐렌쾨터와 포르자이머는 백악관을 나와 급히 의회로 가 청문회가 열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그곳에 도착했을때 그들은 왜 애치슨장관이 자신들을 백악관에 묶어두려 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오전에 있었던 증언에서 애치슨장관은 국무부로 쏟아지는 전쟁발발의 비난을 CIA로 돌리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으며 그것이 바로 언론에 새나가 대서특필된 「정보수집실패」보도들의 주요한 소스가 되었던 것이다. 힐렌쾨터는 화가 치밀었지만 침착을 유지하며 정보평가서와 북한의 침략의도가 명백히 언급된 정보원들의 보고를 읽어내려갔다.잠시후 민주당출신의 매켈러 위원장이 왜그같은 보고들을 국무부와 국방부 책임자들에게 배포하지 않았는가고 물어왔으며 그에 대해 힐렌쾨터는 모든 정보평가가 정부의 핵심부서에 전달되도록 돼있다고 답했다. 이날 청문회가 끝날무렵 여야 대부분의 의원들은 CIA가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고 이해하게 됐지만 매켈러위원장만은 생각을 바꾸지 않고 다음날까지 그들 증거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청했다.다음날 애치슨장관의 것을 포함,장관들로부터 받은 정보문서 수령증들이 제시됐을때 그는 그것들을 자세히 보지도 않고 『이것들은 전부 위조된 것이야.모두 가지고 나가!』라며 전부 바닥에 팽개쳐버렸다. 포르자이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정중하게 그들 사인이 모두 믿을만한 것임을 설명했으며 매켈러의원은 그들이 다른 서류에 사인한 것과 하나하나 자세히 비교한뒤 점차 이들 수령증이 진실된것임을 깨닫게 되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언론에 그같은 사실을 다시 알리지는 않았다. 나는 그해 7월초 82공수사단 505공정연대 3대대의 행정관(소령)으로 노스 캐롤라이나의 브래그기지에 배속됐다.당시 82공수사단에는 미국내에서 전투경험이 있는 전문 공수요원들이 총집결해 있었다. 개전초기 10일간 어이없는 공격을 당하는 동안 트루먼대통령은 미군이 북한군의 침공을 격퇴할것을 천명했고 유엔은 남한에 파병을 결정했다.그러나 한국으로부터의 전황은 불과 사흘만에 서울이 함락됐다는등 우울한 것이었다. 초기에 미군의 개입은 일본점령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24보병사단의 부분적 투입으로 이루어졌으며 경무장 돼 있었기 때문에 탱크로 무장된 북한군을 당할수 없었다.7월 중순이 되자 24사단은 절반의 병력도 남지 않을 정도로 패퇴했으며 한·미연합군은 한반도의 남쪽끝에서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었다.그러나 점차적으로 미 제1기갑사단의 경장갑차들이 남해안에 당도했고 하와이로부터 25보병사단이 투입됐다. 1950년 8월,8군은 한국전에 참전중인 전투부대내에 장거리정찰능력을 필요로 하게 되어 각사단에 소규모의 특수정찰중대를 편성케 했다.그들은 적진 후방에 투입돼 정찰업무를 수행하고 적의 통신교란을 목적으로 했으며 나는 그 요원들의 교육을맡게 됐다. 특수정찰요원들의 교육훈련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한국전의 상황은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었다.9월 중순 맥아더장군은 육군제7보병사단과 해병제1사단으로 편성된 제10군단을 지휘,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여 공산군의 저항을 일거에 뚫고 서울을 재탈환했으며 부산에 주둔하고 있던 워커장군 휘하의 8군은 북으로 공격을 개시, 파죽지세로 몰고 올라가 10월 들어서는 연합군이 38선까지 쳐올라갈 정도로 전세는 역전됐다. 워싱턴의 브래들리 합참의장은 맥아더장군에게 소련군이나 중국공산군의 개입을 부를수도 있는 38선 이북으로의 진격을 경고했고 맥아더도 그점에서는 신중했다. 맥아더는 대담한 전략가였다.그는 한반도의 지형을 고려,평이한 산악공격을 피하고 10군단 병력으로 원산에서 다시 상륙작전을 시도하려했다.그러나 이 작전은 소련잠수함들의 기뢰부설로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했으며 기뢰를 제거하는데만 2주일이 걸려,미제1해병사단이 상륙을 감행했을때는 한국군 제3사단과 수도사단이 이미 수십㎞ 북쪽으로 진격해 있었다. 이 작전에서 유엔사령부는 언밸런스한 두개의 지휘부로 나눠지는 양상이 나타났다.맥아더원수의 참모장인 에드워드 알몬드소장이 지휘하는 10군단이 주력이된 반면에 워커중장이 이끄는 8군은 보조적 역할을 맡게 됐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워커장군이 몇몇 부대들을 압록강을 향해 북으로 진군하도록 한 것이었다.북한인민군으로부터 저항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와 그의 참모들은 전쟁이 거의 끝났다고 판단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게 된것이다.결국 그의 지상 주력부대인 제2·제25보병사단과 제1기갑사단의 북한 북서해안지방에 대한 공격은 무모한 것이었다. 한편 극동사령부 정보참모 윌로그비소장이 소련과 중공의 개입가능성에 대한 자세한 정보보고를 올린것은 10월14일이었다.그는 소련은 개입의사가 없다고 결론내리고 중공군에 대해서는 만주 주둔 9개 야전군의 38개사단 가운데 24개사단이 압록강을 따라 배치돼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단순한 「외교적 위협」으로 간과해 버렸다.그러나 그로부터 6주가 채못돼 미군은 중공군의 예기치 못한공세에 허를 찔리게 됐다.
  • 이라크내 핵시설 공격목표/부시,20여곳 최종승인

    ◎영,“모든 수단동원… 핵복구 불용” 【뉴욕 AFP 연합】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이라크가 자체 핵시설 및 물질을 파괴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공격할 목표로 설정한 이라크내 약20개의 군 지휘소및 통제소 목록을 승인했다고 뉴욕 타임스지가 12일 보도했다. 미행정부 관리들은 이라크 지도자들을 응징하는 의미의 이러한 공격이 이라크가 핵·화학무기를 개발하는데 사용할 장비와 원료를 숨겨놓은 것으로 추측되는 장소를 공격하는 것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과 그의 고위 지휘부에 더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이 신문은 미국방부 고위관리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이 신문은 미정부가 이러한 새로운 공격목표물 목록을 공개한 것은 이라크정부가 이라크내 핵물질 및 생화학병기를 파괴 또는 제거하라는 유엔의 요구를 전폭 수용하도록 위협하기 위한 또다른 시도라고 밝히고 이는 또한 공격대상 핵물질의 상당부분이 쉽게 옮겨질 수 있어 공격이 어렵다는 것을 최근 인식한 행정부 고위관리들의 사고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런던 로이터 연합】 존 메이저 영국총리와 조지 부시 미대통령은 11일 전화회담을 갖고 이라크 핵시설 제거를 위한 「단호한」 조치를 논의했다고 영고위관리가 전했다. 이 관리는 메이저총리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사담 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이 핵시설을 복구하는 것을 허용치 않을 것』 이라는 강경 입장을 미측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 세대교체론/내각제개헌/“금기 깬 거론”… 여권내 미묘한 파문

    ◎“단발성인가”·“조직적 돌출인가” 관심/야 일부 동조… 「정치쇄신」 분위기 타고 확산 조짐 한동안 잠잠했던 세대교체론과 내각제개헌론이 범여권에서 적극 제기되고 야권 일각에서도 동조움직임이 일고 있어 향후 정국전개와 관련,주목되고 있다. 기초·광역의 양대 지방의회선거를 거치는 동안 사그러드는 듯했던 세대교체와 내각제개헌문제가 다시 돌출하게된 계기는 지난9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질문이었다. 이날 대정부질문과정에서 민자당내 민정계인 정동성의원이 「양금씨 퇴진론」을,공화계인 김홍만의원이 「내각제공론화」를 각각 제창해 올들어 여당내에서 논의가 금기시됐던 두 문제에 대한 논쟁의 불을 댕겼다. 김대표를 비롯한 당지도부는 이들 두 의원의 발언을 묵살,덮어두는 방법으로 더 이상의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10일에는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이 양금구도청산을 적극 주장하고 나서 세대교체와 내각제개헌을 둘러싼 민자당내 민정·공화계와 5공세력들의 움직임이 본격화 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이 어떤 커다란 계획에 의해 진행되는지 여부와 만약 그렇다면 그 지휘부는 어디인가 하는 점이다. 당장의 관측으로는 이런 것들이 단일 명령체계에 의해 발생되고 있지는 않다는 느낌이다. 대정부질문에서 문제의 발언을 한 정동성의원은 민정계내에서 세대교체주장을 선도하고 있는 신정치그룹과도 유대관계가 없고 한때 가까웠던 월계수회와도 최근엔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의원의 발언이 일부 분석처럼 상당한 고위측과 연계되어 나온 것이라면 민정계의 김윤환총장,김종호총무가 그같이 적극 만류했을 까닭이 없다는 논리도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국민이 내각제를 원치 않는다는 객관적 판단기준이 무엇이냐』고 문제제기를 한 공화계의 김홍만의원도 민정계와의 사전 조율을 거친 뒤 발언한 것이라고 단정지을 증거는 없다. 따라서 정의원은 민정계 내부에서 꿈틀대는 목소리를,김의원은 내각제개헌없이는 공화계의 존립이 어렵다는 상황을 반영해 각자의 견해를 개진한것으로 일단 이해된다. 김용갑 전총무처장관의 발언도 같은 관점에서 분석될 수 있다. 김전장관은 10일 서울호텔 신라에서 열린 「ROTC 서울클럽」초청연설회에서 「대통령직선제로 차기 대통령선거를 치르게 될 경우 현재로서는 양금간의 대결구도가 기정사실화되고 있는 만큼 향후 정치발전을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같은 사태를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김전장관은 이전에도 이와 비슷한 발언을 계속해왔으며 소신이 강해 누구의 「주문」에 의한 행동은 않는 것으로 알려져 배후는 없을 것이란게 일반의 관측이다. 그렇지만 이같은 움직임이 하나의 계통은 아니더라도 상당한 정도로 연관성을 갖고 일어나고 있다는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 정동성의원은 최근 민정계 신정치그룹 멤버인 이치호의원과 잦은 교류를 통해 세대교체론의 필요성에 동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평소 「정보통」으로 소문나 있는 만큼 청와대등 고위층의 기류를 감지했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공화계내에서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 내년초 14대 총선까지 이어진다면 김영삼대표의 민주계가 내세우는 「대세론」에 밀릴 수밖에 없다는 절박한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으며 김홍만의원의 발언은 이와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김용갑전총무처장관은 박태준최고위원,이춘구의원등 민정계 실세들과의 친분관계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져 그의 발언을 단순히 「개인의견」으로 치부하긴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게다가 정·김의원의 대정부 질문이후 신민당의 서울출신 의원 다수가 『옳은 말을 했다』고 양인을 격려한 것으로 전해져 양금대결구도가 국가 전체를 위해 이롭지 않다는 견해가 범여권 일각에 국한되지 않았음을 시사하고 있다. 여야 내부에서 흐르는 이러한 기류의 연계성여부를 떠나 주목되는 것은 단발성이라도 세대교체나 내각제개헌문제가 거론되면 상당한 파장이 일어난다는 점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차기 대권구도가 양금대결로 갈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후유증을 우려,신선한 새 구도가 필요하다는 것에 공감하고 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결국 앞으로의 정국구도는 새 정치구도나 인물을바라는 일반의 여망이 양금 혹은 호남대 비호남구도로 상징화되는 기존 정치틀을 깰만큼 강력해 질 것이냐에 따라 결판날 것으로 보인다. 여권내에서는 김대표를 중심으로 「신주류」가 형성되는 가운데 과거 주류였던 민정계 일부를 포함한 범여권연합세력의 도전 움직임이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올 가을 쯤에는 훨씬 영향력있는 인사의 「세대교체선언」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야당내에서는 「통합서명파」로 지칭되는 세대교체론자들의 활동이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나 야당지도자교체는 여권의 세대교체여부에 상당 부분 영향을 받으리라 전망된다.
  • 스리랑카 국방부에 폭탄테러/75명 사망·2백명 부상

    【콜롬보 AP 로이터 연합 특약】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시내에 있는 국방부 합동작전지휘부(JOC) 건물근처에서 21일 상오 강력한 폭발물이 터지면서 적어도 37명의 군인들을 포함,75명 이상이 사망하고 2백여 명이 부상했다고 군소식통과 경찰이 말했다. 그러나 사상자수는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경찰이 말했다. 목격자들은 이날 상오 10시쯤 폭발물이 터지면서 JOC건물 근처에 있는 참모부 건물이 크게 파손됐으며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인근 건물과 차량들이 불길에 휩싸였다고 말했다.
  • 에티오피아 반군,수도 “진입”/미 요청/과도정부 수립도 착수

    ◎정부선 휴전 일방 선언 【런던 AP AFP 연합 특약】 에티오피아 반군인 에리트리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 지휘부는 27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반군들의 수도 아디스아바바 진입을 명령했으며 과도정부 수립에 착수했다고 EPRDF 대변인이 밝혔다. 런던에서 에티오피아정부군과 반군간의 평화협상을 중재하고 있는 허먼 코헨 미 외교사절도 미국은 에티오피아를 안정시키기 위해 반군들에게 수도로 진입할 것을 촉구했다고 말했다. 코헨은 이와 함께 정부측과 반군대표들은 런던회담에서 지난 30년간의 내전종식을 위한 휴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EPRDF 대변인은 정부측과 반군 대표들은 휴전에 완전히 합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에티오피아정부는 반군들과의 일방적인 휴전을 선언했다.
  • “미,중동에 영구주둔 검토”/NYT 보도/바레인엔 군기지 설치 추

    진 【워싱턴 AFP 연합】 미국은 바레인에 군사기지를 설치할 협정에 서명할 준비를 갖추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에 영구히 병력을 주둔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 뉴욕타임스가 25일 공식 미 소식통들을 인용,보도했다. 뉴욕타임스의 이같은 보도는 지난 23일 노먼 슈워츠코프 미군사령관이 바레인을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걸프지역 어느 곳에 중앙지휘부의 전진본부를 이동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 것보다 구체적인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또 미 국방부는 기지설치와 관련해 바레인과 협정에 서명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보도하고 협정에 따라 전진본부부대 전부가 바레인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 패전 이라크,이번엔 내란위기/「백기 든 이후」의 바그다드

    ◎학정에 시달린 시아파,정권탈환 노려/쿠르드족도 반감고조… 반정봉기 태세 걸프전 종전뒤 이라크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것인가. 이에대한 답변은 사담 후세인의 장래와 연결지어서 풀어나가야 한다. 후세인의 앞날에 대해서는 갖가지 설과 가정이 소개되고 있는게 사실이지만 유럽언론들은 전쟁의 진행상황으로 미루어 그의 실각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전쟁은 당초의 예상대로 후세인의 완패로 결말이 지어졌으며 후세인이 권좌를 계속 유지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라크 국민들에게 후세인의 제거를 공개적으로 부추겨온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아니더라도 지난해 8월2일 이후 많은 사람들은 이라크인들 스스로 후세인을 쫓아내길 고대해 왔었다. 종전후 이라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변화를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군부 쿠데타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후세인의 장기독재에 따른 몸서리 쳐지는 학정을 자각한 군장성들이 특히 패전에 대한 책임으로 후세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하고 있다. 그러나 군부쿠데타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만만치않다. 왜냐하면 이라크 군지휘부는 후세인이 엄선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후세인의 충복중의 충복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후세인은 집권이래 군고위층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치만 보여도 숙청의 칼날을 뽑아 왔었다. 집권 초기에는 나세르주의를 지향하는 좌파장교들을 무더기로 숙청했고 그뒤 얼마 안가서는 바트당 당원이 아닌 장교들이 당했다. 정권유지를 위한 무자비한 숙청은 걸프사태 이후에도 계속되어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쿠웨이트 침공 작전개시일 결정에 대한 의견 제시를 미루었다는 이유만으로 군지휘관 10여명이 처형됐으며 다국적군의 공습이 개시된 바로 다음날 방공포대 지휘관들이 공습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이다. 또 며칠 뒤에는 공군 지휘관들도 같은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같이 군부는 솎아내고 걸러낸 친위조직으로 구성됐기 때문에 쿠데타를 일으키기는 어렵다는게 이에대한 신중론의 근거이다. 또한가지 가능성은 민간쿠데타 즉 시민혁명이다. 30여년간 줄곧 핏물 튀는 군부독재가 계속 되어온 탓에 이라크에는 언뜻 손꼽히는 정치엘리트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몇 지도자들은 오래전부터 영국 독일 또는 미국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들 중에도 널리 알려진 인물은 드물다. 게다가 이라크에는 후세인의 바트당이 일당독재 지배체제를 확립하고 있으며 「3인1조」식으로 구성된 세포조직은 지역·기업 및 군대까지 파고 들어 반대정치 세력의 출현을 원천 봉쇄하고 있다. 유럽의 전문가들은 바트당내의 지도층에 의한 쿠데타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기도 한다. 제2인자인 이자 이브라힘 알 듀리 제3인자인 타하 야신 알 지즈라위 부총리인 사돈 하마디 소장층의 대표주자인 하산 압둘 마지드 등의 당지도층을 대상으로 모반을 가정해 보지만 그동안의 후세인 통치스타일로 미루어 역시 가능성은 미지수일 수밖에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종족간 대립이나 이슬람교내의 갈등이 이번 기회에 표면화되어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관심을 끌고있다. 이교간의 갈등 이상으로 집권층인 이슬람교도 수니파와 심한 대립현상을 보이고 있는 시아파가 관심의 대상이다. 8백만명인 시아파는 대부분 사우디아라비아쪽을 연고로 두고 있는 사람들이며 집권 수니파에 눌려 오랫동안 학정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시아파는 항상 폭발직전의 불만에 싸여 살아오고 있으며 77년 2월 및 79년 6월 등에는 걷잡을수 없는 폭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중앙정계에서 활약하는 정치지도자는 한명도 없으나 나자프 또는 게르발라와 같은 도시의 종교지도자들은 반정부 행동을 위한 군중동원 능력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종교조직을 바로 정치조직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짜놓고 있다. 후세인에게 가장 도전적인 세력은 바로 쿠르드족이다.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쿠르드족은 항상 바그다드 정부에 적대적인 자세를 보여오고 있다. 그들은 특히 지난 87년 화학무기로 쿠르드 양민을 무차별 살상한 후세인을 증오,기회만 있으면 봉기의 횃불을 올릴 자세를 갖추고 있다. 5백만명의인구를 포용하고 있는 쿠르드족의 지도자들은 이미 몇주일전에 이라크 북부지방에서 대대적인 반후세인 봉기에 착수할 준비가 다 되어있다고 워싱턴에 알리기도 했다. 시아파나 쿠르드족은 그동안 뚜렷한 활동은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정치조직을 가지고 있다. 시아파는 이라크 이슬람전선,이라크 이슬람교 혁명최고위원회,이라크 무자헤딘운동 등의 조직이 있으며 쿠르드족은 이라크 쿠르디스탄전선,쿠르디스탄 민주당,쿠르디스탄 애국연합,쿠르디스탄 인민민주사회주의 등이 있다. 후세인 이후의 이라크에 중앙집권 형태가 사라지고 수니파 시아파 및 쿠르드족 등 3개파가 조화있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게 전쟁에 참여했던 주요 국가들의 바람인 것 같다.
  • 「특혜분양」 계기로 전산망 실태를 알아보면

    ◎「수서」 무자격자 색출… “컴퓨터가 일등공신”/재산세 납부 추적… 유주택 가려/서울시 전산소/가옥정보 300만건… 하루 1인이 2천건 검색/당첨자 명단 65만건… 118명 적발/주택은 전산부 수서지구 주택조합원 가운데 무자격자가 드러나면서 이를 밝혀낸 컴퓨터전산망과 무자격자 판별절차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로서 무주택 여부를 가리는 장치로는 서울시 및 각 국청의 행정전산망과 주택은행의 아파트당첨자 입력전산망 등 두가지가 이용되고 있다. 지난 8일 감사원이 1차로 발표한 7백72명의 무자격자는 행정전산망의 재산세 추적을 통해 밝혀진 것이며 10일 「5년이내 아파트 재당첨금지」 규정에 위반돼 추가로 드러난 1백18명의 무자격자는 주택은행의 전산망에 의한 것이었다. 우선 서울시가 행정전산망을 통해 무자격자를 가려내는 과정을 살펴보자. 행정전산망의 「지휘부」는 서울시 산하 사업소의 하나인 「전자계산소」로 이번에 두가지 절차를 통해 7백여명의 무자격 조합원을 가려냈다. 전산소측은 지난 5일 주택기획과로부터 수서지구 26개 주택조합원 3천3백60명과 직계존비속 등 1만4천여명의 명단을 건네 받았다. 전산소측은 이어 담당직원 6명을 투입,마그네틱테이프에 찾고자 하는 이름을 입력시킨 뒤 주컴퓨터의 정보저장 장치와 연결,88·89·90년 3년동안 재산세를 낸 사실이 있는가를 검색해 유주택자를 가려냈다. 이 재산세 검색자료에는 가옥·건물 등에 대한 3백만건의 정보가 들어 있으며 주택소유 여부는 물론 건물의 위치·구조·용도·면적·내구연한 등이 상세히 저장돼 있다. 담당직원 1명이 하루에 2천여건을 검색할 수 있어 1만4천여명의 재산세납부 여부를 하룻만에 알아 낸 셈이다. 전산소측은 이와함께 조합설립인가를 내준 중구청 등 7개 구청 전산실로부터 조합원 명단과 가족사항이 입력된 플로피디스크를 넘겨받아 곧바로 주컴퓨터 정보와 비교해보는 방식도 병행했다. 전산소측은 이렇게해서 추적해낸 7백72명의 명단을 주택기획과에 넘겨주었으며 이 자료는 또다른 마그네틱테이프에 저장해 5년동안 보관하게 된다. 지난 83년 신설된 이 전산소는 현재 재산세 관련정보 3백만건과 토지세 정보 2백86만건 등을 저장하고 있는 「데이타베이스」를 구축,행정 전산화의 구심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시 전산소의 행정전산망과 함께 주택은행의 전산망도 이번 무자격자 추적에 단단히 한몫을 했다. 주택은행 아파트전산부는 지난 78년이후 아파트당첨자 명단 65만여건을 컴퓨터에 입력,재당첨자를 적발해 내고 있다. 주택은행은 이번 수서조합의 경우도 감사원측으로부터 추적의뢰를 받아 「국민주택 10년,민영아파트 5년이내 재당첨금지」 규정에 저촉된 무자격 조합원 1백18명을 적발,통보조치 했다. 이같은 컴퓨터전산망을 통해 무자격자를 가려내고 있지만 현 전산망으로는 재산세납세 추적을 통한 유주택 여부(시의 행정전산망)와 5년이내 아파트당첨 여부(주택은행 전산망)만을 알 수 있을 뿐이며 무자격자의 또다른 유형인 ▲동일직장 2년 이상 근무 ▲서울시이외의 지방유주택자 ▲타인명의 취득 등을 가려낼 수 없는 등 한계를 지니고 있는게 또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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