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지휘관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3개 구역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연료전지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 4개 구역
    2026-01-26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866
  • 美 새벽 소형선박서 폭발 화재… 잠자던 34명 덮쳤다

    美 남동부 허리케인 ‘도리안’에 비상사태 미국 캘리포니아주 앞바다에 있던 소형 선박에서 2일(현지시간) 새벽에 발생한 화재로 삽시간에 탑승자 최소 25명이 사망하고 9명이 실종되는 대형 참사가 빚어졌다. 화재는 이날 새벽 3시쯤 캘리포니아주 산타크루스섬 연안에 정박해 있던 상업용 다이버 선박 ‘컨셉션호’에서 발생했다. 컨셉션호는 화염에 휩싸인 뒤 수심 20m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사고 직후 승무원 5명은 바다로 뛰어들어 인근에 있던 선박에 의해 구조됐다. 미 해안경비대 매슈 크롤 부지휘관은 이날 “시신 25구를 수습했다”고 말했다. 해안경비대는 나머지 실종자 9명에 대해 수색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고 당시 선박에는 승무원 6명과 승객 33명 등 모두 39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한편 허리케인 도리안이 강타한 카리브해 바하마에서 최소 5명이 사망하고 21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2일 집계됐다. CNN에 따르면 이날 플로리다를 중심으로 2700여편의 항공편이 취소됐으며, 플로리다 레고랜드와 디즈니랜드도 휴장했다. 플로리다와 조지아, 사우스 캐롤라이나 등에 이어 버지니아주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美 서부해안 다이빙 보트 불에 타 침몰, 25명 사망 9명 실종

    美 서부해안 다이빙 보트 불에 타 침몰, 25명 사망 9명 실종

    미국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상에 정박해 있던 다이버용 소형 보트가 2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화재로 침몰해 탑승자 39명 가운데 25명이 주검으로 확인됐다고 해안경비대가 밝혔다. 9명은 여전히 실종 상태이며 앞서 선장과 승무원 등 5명은 구조됐다. 한국인 승선자가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불은 새벽 3시쯤 캘리포니아주 샌타바버라 남쪽, 말리부 서쪽 바다의 산타크루스섬 연안에 정박해 있던 상업용 다이버 선박인 ‘컨셉션호’에서 일어났다. 보트는 선체 길이 22m 정도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서쪽으로 140㎞ 떨어진 산타크루스섬 북쪽 해안의 18m 지점에 정박 중이었다. 컨셉션호는 화염에 휩싸인 뒤 뱃머리 일부만 남겨둔 채 수심 20m 바닷속으로 침몰했다.  AP통신은 해안경비대 매튜 크롤 부지휘관의 말을 인용해 갑판 아래쪽 선실에서 잠자던 탑승자들은 대부분 사망하거나 실종됐으며, 갑판 위에 있던 선장과 승조원 등 5명이 물에 뛰어들어 가까운 곳에 있던 그레이프 에스케이프호에 의해 구조됐다고 전했다.  벤투라 카운티가 지역구인 줄리아 브로드웨이(민주) 의원은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희망을 걸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 탑승자 가족은 KTLA 방송에 “선상에서 프로판가스 폭발이 있었다고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해안경비대와 소방당국은 “현재로선 화재 원인을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탑승자들이 탈출할 수 없을 정도로 화재가 급속도로 번진 것 같다”고 말했다.  사고 선박을 소유한 플리츨러스 트루스 아쿠아틱스 홈페이지에 따르면 이 배의 최대 탑승 인원은 46명이며 110명을 위한 구명조끼와 탈출용 보트가 갖춰져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배는 샌타바버라에서 산타크루스섬까지 산호초와 해양생물을 수중 탐사하는 스쿠버 다이버들을 실어 날랐다.  사고 선박은 1981년 건조됐으며 그동안 특별한 사고나 법규 위반 사례는 없었다. 컨셉션호는 노동절 사흘 연휴를 맞아 지난달 31일 샌타바버라 항구에서 출항했으며 2일 오후 돌아갈 예정이었다.  한편 LA 한국 총영사관은 “현재 한국인 또는 한국 교민 탑승자가 있는지 확인 중”이라며 “지금까지 교민 안전과 관련해 문의해온 확인 전화는 없었다”라고 말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성매매 안 하는 남자들

    처음으로 ‘성매매’라는 개념을 접했던 순간을 기억하십니까. 남자다움을 증명하려고 선후배간 호기롭게 향했던 ‘방석집’. 밤마다 성매매 경험을 늘어놓는 군대 선임과의 휴가. 일의 연장 선상이라며 자연스럽게 룸살롱으로 향하던 회식 자리. 성매매 경험을 마치 무용담처럼 소비하는 우리네 남성문화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성구매를 반대하는 남성들’을 만나 성매매 여부가 성인 남성을 가르는 기준이 돼 버린 대한민국의 ‘남성문화’에 대해 물었습니다.■ 처음 성매매를 마주한 기억 송재한〉 대학 졸업하고 사회 초년생이 됐을 때, 큰 노래방이라고 얘기를 듣고 같이 일하는 동료하고 가게 됐어요. 그게 저한테는 첫 번째 성매매 경험이었고. 김창하〉 제일 많은 건 아무래도 군대 있을 때죠. 김은총〉 선임병사가 후임병사들을 휴가를 데리고 가서 (성매매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문화였어요. 송재한〉 휴가를 같이 나오거나 외박을 같이 나온 선임이 있어요. 이 사람하고 1박 2일을 지내고 다음날 이 사람을 안 보면 상관이 없잖아요. 근데 1박 2일 지내고 난 이 사람하고 2년을 지내야 돼. 박경재〉 격이 없는 사람이면 “아 그럴 돈으로 나 밥 사줘” 아니면 “술이나 더 먹게”라고 하고 무마시켜서 넘어갈 수 있지만, 만약에 내 직장상사고 군대에서 내 선임이고 지휘관이고 내 생활에 직접적인 불이익을 안 줄 수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그런 상하관계가 있다면 거기서 거절하는 건 쉽지 않죠. ■ 왜 성매매는 계속 될까? 송재한〉 경제 원리에 있어서 성매매라는 것이 굉장히 좋은 도구이기 때문에 놓고 싶지 않은 거죠. 돈을 100만원 주는 것보다 100만원을 가지고 성매매를 줬을 때 돌아오는 효과가 더 커요. 그거를 기존에 있던 성매매를 찬성하는 남성들이 유지시키고 싶은 거죠. 다 보면 겉으로 드러낼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한 대가로 성매매를 준단 말이에요. 송재한〉 그렇죠. 공정하지 못한 것에. 공정한 거에 있어서 대가를 성매매를 주는 경우는 없어요. 김창하〉 쌓였던 욕구를 푸는데 그게 뭐 성욕 만은 아닌 거 같아요. 사회 안에서 억눌려 있던 뭔가를 해소하려는 방식으로 푸는 거지. 박경재〉 사람에게 가장 수치감을 주는 게 성적인 폭력이라고. 권력의 가장 끝을 누리게 하려면 어떤 사람의 인권을 짓밟는 행위. 그걸 그냥 욕망적으로 본다면 (성매매는) 굉장한 희열이 있을 거란 말이죠. 왜냐면 나와 같은 존재를 파괴하는 거기 때문에. 김은총〉 상당수의 남성들은 남성 중심의 사회 속에서 포섭된 결과물도 꽤 많다고 생각해요. 자발적으로 ‘내가 지금 당장 성매매를 하러 가겠어’ 혼자 돌진한다? 전 그건 되게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요. ■ 성구매를 하지 않기로 한 이유 송재한〉 원래부터 그런 개념을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뭔가 내가 이성에게 내 매력을 어필하고 그 이성이 날 좋아해서 내 옆에 있는 게 아닌, 돈을 줬으니 옆에 있겠다는 그런 개념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김창하〉 그거는 철저히 제 개인적인 취향이었어요. 내가 그냥 잘 모르는 사람하고 잠자리를 갖는 것 자체가 저는 좀 불쾌하고 별로 좋지 않아서 싫다고 얘기를 했거든요. 사회 문제로 인식하게 된 건 전북여성인권지원센터가 가장 컸고요. 성매매에 대해서, 피해 여성들에 대한 상황들이 구조적 문제에 있었고, 구조적인 상황 때문에 생기는 경우들이거나 또 이런 구매를 함으로써 피해 여성들이 계속 지속적인 피해를 받게 되는 구체적인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되서 ‘내가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나 동의가 피해자들을 양산하는구나’ 그런 거에 대해서 느끼게 됐죠. ■ 성구매를 거부하는 남성으로 산다는 것 김창하〉 성매매를 통해서 신뢰하는 사회에는 끼지는 못하죠. 송재한〉 또래 친구들이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이해하면서 지내기는 하지만 사회에서 만난 친구나 직장동료나 어떤 그룹에 있어서는 거의 찾지 않죠 저를. 김은총〉 엄밀히 따져봤을 때 작동하는 사회시스템을 따져봤을 때 저는 남성 기성 사회에 포섭되지 못한 존재인 거 같다는 거를 최근에 인정하게 됐던 것 같아요. 박경재〉 거기서 나는 싫다고 나오는 거는 그 무리와 어떻게 보면 척을 어느 정도 지거나 거리를 두는 거니까 ‘너는 별난 사람’ 정도면 굉장히 쿨한 반응이고, 쟤는 이상한데 쟤는 우리랑 안 맞아 보이지 않는 어떻게 보면은 그 본의 아니게 왕따 아닌 왕따 같은 입장이지 않을까요. ■ 성매매는 고대부터 계속된 원초적 본능? 송재한〉 고대 때부터 있었고 고대 때부터 다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것도 고대 때부터 있었던 거예요. 싫어했던 것. 그걸 반대했던 사람이 고대에서부터 있었던 거죠. 근데 사람들은 그걸 성매매를 긍정하는 사람만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예요. 모순인 거죠. 반대했던 사람도 그 때부터 존재했었던 거고 심지어 그것들을 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던 에너지와 노력했던 희생이 더 많았어요. 박경재〉 그거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그 본성이라던지 동물적인 폭력적인 구조에 따라서 있었던 부분들에 대한 거지. 그거를 우리가 지향해 온 건 아니잖아요 사회적으로. 계속해서 개인의 자유.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해질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들. 그런 논의가 전혀 없는 생각이라고 생각해서. 김은총〉 전 남성으로서 너무 창피해요. 본인 스스로 너무 미성숙하다라고 하는 존재의 반증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니 도대체 우리가 한 인격체로서 한 사람으로서, 인간으로서 통제하지 못한 본능이란 게 과연 있는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얼마나 지적인, 고도한 사회 속에서 사는 일원이면서 어떻게 한 개개인의 성욕을 컨트롤 할 수 없어서 그런 일을 할 수밖에 없다라고 얘기하는지. 그건 여전히 성적인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놓기 힘들어서 떼 쓰는 거라고 밖엔 안 보여요. ■ 성매매 문제, 해결 가능할까 송재한〉 해결책은 있는데 그 해결책대로 하고 싶지 않은 거죠. 근데 그 부류들을 보면 성매매라는 것을 이용해서 자기 기득권을 유지하고 뭔가 해결해야 될 문제들을 그냥 해결하지 못하게 만드는 매개로 성매매를 삼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그래서 악의적인 기득권이 가장 좋아하고 오래된 불법이 성매매예요. 그래서 그것에 규합하지 않으면 사실은 해결책이 되는 거예요. 김은총〉 그 피해 주체인 여성들이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을 거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의 역할이 중요한 거 같아요. 그 성 안에서도 이 성이 무너지길 바라는 남성들이 있다는 거. 송재한〉 그런 현실을 조금이라도, 같이 공생하자는 얘기잖아요 결국에는. 남녀를 편갈라서 싸우자는 얘기가 아니고, 대부분 우리가 주장하고 이야기 하는 대상은 남자 여자 이게 아니고 공생을 하기에 어려운 사람들에 대해서 메시지를 던지는 거거든요. 그게 남성이든 여성이든 간에. 김은총〉 이상한 녀석이 이상한 모임을 다닌다고 비춰질 수 있겠죠. 그런데 이제 아무래도 사회가 변화해 나가고 발전해 가는 과정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는 더 좋은 작용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제가 남성 모임의 일원으로서 약간의 배제 받은 남성들을 대변할 수 있을 것이고 그들에게 하나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거라는 믿음과 책임의식을 갖게 돼요. 박경재〉 나보다 더 권력이 높고, 나보다 더 돈이 많고, 나보다 더 좋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성매매를 할 수 있는) 논리라면 언제든지 나를 그렇게 깨부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이지 않게, 내 가족이, 내 이웃이,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아야 된다는 생각 정도만 한다면 선택에 있어서 한 번 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김형우 기자 hwkim@seoul.co.kr
  •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제2연평해전 희생 뒤에… 유도탄고속함 도입, 전사자 보상 신설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서쪽 14마일 해상. 해군 참수리 고속정 357호정 정장(대위)이었던 윤영하 소령은 253편대 기함인 358호정과 함께 기습도발을 감행하던 북한 경비정 차단 작전에 투입됐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북방한계선(NLL)을 1.1㎞가량 침범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25분 북한 경비정이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서 참수리 357호정과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고, 참수리호의 좌현이 노출됐습니다. 이때 북한군이 갑자기 85㎜포로 기습공격을 했습니다. 150m 거리에서 날아든 포탄에 순식간에 357호정 조타실이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함교에 올라와 있던 윤 소령은 즉각 대응사격 명령을 내렸지만 연이어 날아든 총탄에 피격돼 안타깝게 산화했습니다. 당시 참수리호 함교는 지붕과 벽면이 없었기 때문에 윤 소령의 위치가 그대로 노출됐고 적의 집중적인 사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함교 아래 조타실에서는 조타장 한상국 상사가 치열한 교전 과정에 가슴에 흉탄을 맞았습니다. 그는 항로를 유지하기 위해 끝까지 키를 놓지 않은 상태로 숨을 거뒀습니다.적의 포화는 20㎜ 벌컨포 사격을 맡은 병기사 황도현 중사에게도 집중됐습니다. 그는 포탄 파편이 머리 쪽으로 날아드는 순간에도 몸을 피하지 않고 방아쇠를 당겼고, 그 모습 그대로 발견돼 동료들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습니다. 40㎜ 함포로 적함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던 병기사 조천형 중사도 좌석에서 화재로 숨지는 순간까지 함포 방아쇠를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M60 기관총으로 사격하던 서후원 중사는 적함의 저격수에게 희생됐습니다.●희생 장병들 방아쇠 놓지 않고 끝까지 응전 의무병이었던 박동혁 병장은 한 명의 전우라도 더 살리려고 몸을 아끼지 않고 내달렸고 서 중사가 쓰러지자 직접 M60 기관총을 붙들고 응사하는 투혼을 보였습니다. 그에게 다시 총탄이 쏟아졌고 온몸에서 100여개의 총탄과 파편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과다 출혈로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후송돼 인공호흡기와 수많은 의료기기를 단 상태로 사투를 벌인 박 병장은 결국 84일 만에 숨을 거뒀습니다. 북한 경비정은 함께 반격하는 358호정은 그대로 두고 집요하게 357호정만 공격해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하는 큰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윤 소령을 포함한 모든 장병이 목숨을 걸고 반격해 적 경비정을 NLL 북쪽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권기형 상병은 왼손 손가락이 모두 잘려나간 상태에서도 한 손으로 소총 탄창을 갈아 끼우며 대응 사격을 했다고 합니다. 황창규 중사는 적의 기습공격으로 40㎜ 함포의 전원 장치가 손상되자 수동 사격으로 전환해 적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습니다. 당시 부장(중위)이었던 이희완 중령은 지휘관인 윤 소령이 전사하자 오른쪽 다리가 절단되는 부상을 입고도 끝까지 전투를 지휘했습니다. 이들의 분전으로 적함도 3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갑판이 대부분 부서진 채 NLL 북쪽으로 퇴각했습니다. 참수리 357호정은 적과의 교전에서 큰 상처를 입고 결국 침몰했습니다. 조타장 한 상사가 바닷속에 가라앉은 357호정 조타실에서 발견되는 아픔도 겪었습니다. ●함정 추진 방식 프로펠러→워터제트로 당시 국민들의 관심은 온통 오후 8시에 열리는 터키와의 한일월드컵 3·4위전에 쏠려 있었습니다. 이날 갑작스러운 비보가 전해지자 국민들은 큰 충격과 슬픔에 빠졌습니다. 정부는 6용사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각각 1계급 특진을 추서하고 윤영하 소령, 박동혁 병장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을, 한상국 상사와 조천형·황도현·서후원 중사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을 서훈했습니다. 여기까지가 여러분이 뉴스로 보거나 영화로 봤던 ‘제2연평해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들의 분전과 헌신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을 기억해야 합니다. 교전 당시 북한 경비정 대응지침(교전수칙)은 ‘경고방송 →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의 5단계였습니다. 이것이 ‘경고방송→경고사격→조준격파사격’ 등 3단계로 단순화됐습니다. 단계별 조치를 취하다 기습공격을 받은 참수리호의 교훈을 되새기는 의미였습니다.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서해 NLL의 경비는 130t급의 참수리 고속정(PKM)이 맡았지만, 지금은 400t급 유도탄고속함(PKG)과 검독수리(230t)급 신형 고속정(PKMR)이 맡고 있습니다. 검독수리급 고속정은 76㎜ 함포와 130㎜ 유도로켓을 장착해 원거리에서 북한 경비정을 타격할 수 있게 했습니다. 특히 함교를 함 구조물 내부로 넣어 정장이 비바람은 물론 적의 표적으로 노출되지 않도록 외관 구조를 대폭 개선했습니다. 또 윤영하함(400t)급 유도탄고속함은 레이더에 잘 탐지되지 않는 스텔스 선체에 76㎜ 함포와 대함유도탄을 장착했습니다. ‘프로펠러’로 기동하던 함정의 추진 방식도 ‘워터제트’로 바꿔 기동력을 높였습니다. 새로 건조된 유도탄고속함에는 윤 소령을 포함한 6용사의 이름이 차례로 붙여졌습니다.●16년 지난 작년에야 특별법으로 전사자 예우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은 ‘일반순직’으로 처리됐습니다. ‘전사자’를 전사자로 부르지 못하고 ‘순직자’로 규정해버린 것입니다. 당시 ‘군인연금법’에는 ‘전사’에 대한 보상규정이 없었고, 분노한 여론이 들끓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공무상 사망’ 보상기준에 따라 1인당 3000만~6000만원의 보상금을 제공하는데 그쳤습니다. 정부에서 돈을 줄 근거가 없다 보니 성난 국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으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후 2004년 법 개정을 통해 군인연금법에 ‘전사’에 대한 보상기준을 신설했지만 정작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에게는 소급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16년이 지난 지난해 7월에야 ‘제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에 따라 제2연평해전 전사자 6명의 유족에게 추가 보상금(1인당 1억 4400만~1억 8400만원)을 지급하게 됐습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국가가 이제야 도리를 다하게 됐다”며 국방부 장관에게 유족에게 사과의 뜻을 전하도록 지시했다고 합니다. 한 해군 관계자는 “제2연평해전 전사자들의 희생으로 보상제도 등 군 체계가 크게 발전하게 된 것”이라며 “군은 피를 흘리면서 발전하지만, 한편으로 그때 전사하신 분들의 아픔이 너무 컸다”고 토로했습니다. 제2연평해전 직전 윤 소령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경기장에 갈 수는 없지만 온 국민과 함께 우리 대표팀의 16강 진출을 마음으로 응원하겠습니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들이 남긴 갚진 유산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겁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백남기 농민 사망’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1심 무죄→2심 유죄로…벌금형 선고

    ‘백남기 농민 사망’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 1심 무죄→2심 유죄로…벌금형 선고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2심에서는 유죄 판단을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 이균용)는 9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구 전 청장의 항소심에서 벌금 1000만원을 선고했다. 함께 재판을 받은 신윤균 전 서울경찰청 4기동단장은 1심과 같은 벌금 1000만원을 선고받았고, 살수요원인 한모 경장과 최모 경장에게는 각각 1000만원과 700만원의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들은 2015년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집회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백남기 농민에게 물대포를 직사 살수해 백씨가 두개골 골절 등으로 사망하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특히 구 전 청장은 현장을 지휘·감독하는 총 책임자로서의 임무를 소홀히 한 혐의를 받았다. 1심은 현장 지휘관에 대해 일반적인 지휘·감독 의무만을 부담하는 구 전 청장이 살수의 구체적 양상까지 인식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며 구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당시 집회·시위와 관련 경찰 인력·장비의 운용, 안전관리의 총괄 책임자로 사전에 경찰이나 시위대에 부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예상하고 있었다”면서 “실제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시위가 점차 격화되고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 현장이 긴박한 상황에 처하게 되자 그 상황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주시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은 현장 지휘관의 보고를 받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절히 지휘권을 행사해 과잉 살수가 방치되지 않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필요한 조치를 했어야 함에도 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서울경찰청의 상황센터 내부 구조나 현장 상황 파악 체계, 시위에 대한 대응과 함께 과잉 진압 여부도 감독해야 하는 상황지휘센터의 기능, 무전을 통해 실시간 현장에 개입할 수 있는 지휘체계가 구축된 점, 사건 당일 상황지휘센터 내에서 방영되던 교통 폐쇄회로(CC)TV 영상 및 종합편성채널 TV 방송의 영상 등을 근거로 구 전 청장이 현장에 대한 지휘·감독상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있다과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집회·시위 현장에서 불법·폭력행위를 한 시위 참가자가 민·형사상 책임을 지듯이 경찰이 쓴 수단이 적절한 수준을 초과한다면 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당시 집회가 적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폭력 시위 양상으로 흘렀고 민사 소송을 통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이 이뤄진 점 등을 양형에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선고를 마친 뒤 구 전 청장은 법원의 판단이 유죄로 바뀐 데 대한 입장을 묻자 “유죄든 무죄든 내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충북도 제천 화재참사 위로금 협상 손 뗀다

    충북도 제천 화재참사 위로금 협상 손 뗀다

    충북도가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유가족과의 위로금 협상을 중단하기로 했다. 권석규 충북도 재난안전실장은 8일 도청 브리핑룸에서 “행정안전부가 지난달 25일 위로금 지급을 위한 특별교부세 지원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국회에 통보했다”며 “더 이상 도가 독자적으로 위로금을 지급하기에는 한계점에 달했다”고 밝혔다. 도는 60억원의 교부세를 지원받아 총 75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한다는 계획이었다.권 실장은 “위로금 지급을 위해 도가 조례를 제정 시행하는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국회와 정부는 특별법 제정으로 유가족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호소했다. 권 실장은 이날 “소방현장 지휘관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고, 유가족이 제기한 재정신청도 법원이 기각했다”며 화재 참사와 관련해 도의 책임이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동안 유가족은 이시종 지사의 법적책임 인정을 요구했지만 도는 이를 수용할수 없다며 대립각을 세워왔다. 도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유가족들은 유감을 표시했다. 유가족들은 입장문을 통해 “도는 아직까지도 도의적 책임만 지겠다며 배보상금이 아닌 위로금을 지급하겠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며 “제천화재 참사 책임을 모두 건물주에게 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배보상금을 더 지급해 달라는 게 아니라 제천화재참사에 대한 도와 이 지사의 책임 인정과 진심어린 사과”라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21일 오후 발생한 제천시 하소동 스포츠센터 화재는 부실한 건물 내 소방시설 등으로 초기진화에 실패하며 29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치는 참사로 기록됐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김재규 사진 다시 걸린 軍,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재규 사진 다시 걸린 軍,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이 약 40년 만에 그가 몸담았던 부대에 걸린 것으로 1일 확인됐다. 육군은 이날 “김 전 부장의 사진이 지난 5월 말부터 육군 3군단과 6사단 등 군부대 역사관 및 군 인트라넷 등에 게시됐다”고 밝혔다. 김 전 부장은 육군에 몸담으면서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지냈다. 1980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혐의로 내란죄가 확정돼 사형된 뒤 그의 사진과 이름이 역사에서 사라졌다가 약 40년 만에 지휘관으로 복권된 것이다. 지난 4월 국방부는 역대 지휘관 사진 게시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을 개정했다. 개정안에는 내란·외환·반란·이적의 죄 등으로 형이 확정된 경우 및 금품 및 향응수수, 공금의 횡령·유용으로 징계 해임되는 경우에는 홍보와 예우 목적으로 지휘관 사진을 게시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다만 홍보가 아닌 ‘역사적 기록 보존’의 목적일 경우에는 게시할 수 있도록 했는데, 내란죄가 확정된 김 전 부장이 이 예외 조항에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김 전 부장의 ‘복권’(復權)은 덩달아 다른 범죄 사실이 있는 지휘관들에게도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점이 딜레마다. 국방부는 역대 국방부 장관 중 12·12 군사반란과 5·18 당시 반란·내란으로 형을 선고받은 22대 주영복, 25대 정호용, 29대 최세창 전 장관의 사진을 국방부 장관실과 인터넷 홈페이지 ‘역대장관’란에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또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인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과거 군 지휘관을 지냈던 대통령들의 사진도 이들이 근무했던 사단 군 내부 홈페이지와 지휘관실, 역사관 등에 고스란히 남게 될 전망이다. 그 밖에 금품수수 등의 범죄를 저지른 지휘관들의 사진도 역사 보존이란 차원으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육군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내부 논의를 거쳐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10·26 주역’ 김재규 사진, 출신부대에 다시 걸렸다

    ‘10·26 주역’ 김재규 사진, 출신부대에 다시 걸렸다

    국방부 “역사 있는 그대로” 훈령 개정 따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시해된 10·26 사태 이후 군에서 금기시됐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사진이 근 40년 만에 일선 부대에 다시 등장했다. 1일 육군 등에 따르면 김재규 전 중정부장의 사진은 지난 5월말부터 그가 지휘관을 지냈던 군부대 역사관 등에 전시되고 있다. 김재규 전 중정부장은 육군 18대 3군단장과 15대 6사단장 등을 지냈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시해한 뒤 1980년 내란죄가 확정돼 사형된 이후 그의 사진과 이름이 전 부대에서 사라졌다. ‘12·12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의 존재 자체를 금기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를 통해 ‘군이 정권을 창출했다’는 자부심과 명분을 무너뜨렸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의 사진이 일선 부대에서 근 40년 만에 부활하게 된 것은 국방부가 지난 4월 역대 지휘관 사진물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담은 ‘국방장관 및 장성급 지휘관 사진 게시 규정 등 부대관리훈령’을 개정한 데 따른 것이다. 새 훈령은 역사적 사실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 모든 역대 지휘관 및 부서장 사진을 부대 역사관이나 회의실, 내부 홈페이지 등에 게시할 수 있도록 했다. 그의 사진과 약력은 육군 3군단 및 6사단 홈페이지에도 소개됐다. 그러나 예우·홍보를 목적으로 한 사진 게시의 경우에는 형법·군형법 등으로 형이 확정된 지휘관과 부서장은 제외된다. 국방부 측은 ‘군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기록한다’는 취지에서 훈령 개정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정경두, 취임 후 가장 강한 표현 “우리 위협하면 북한은 적”

    정경두, 취임 후 가장 강한 표현 “우리 위협하면 북한은 적”

    “우리 위협하는 모든 세력 적으로 보아야”“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 가치 없다”“9·19 남북 군사합의 충실히 이행할 것”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31일 북한이 도발한다면 북한도 한국의 ‘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정 장관이 작년 9월 취임한 이후 북한을 겨냥한 가장 강한 표현이다. 정 장관은 이날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웨스틴조선호텔에서 개최한 ‘제61회 KIDA 국방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를 위협하고 도발한다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당연히 ‘적’ 개념에 포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장관은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은 북한의 핵·미사일만이 아니다”며 “포괄적 안보개념에 근거해 우리를 위협하는 모든 세력을 적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8 국방백서’에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국토,국민,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앞서 합동참모본부는 이날 “북한이 오늘 새벽 함경남도 호도반도 일대에서 미상 발사체 수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일각에서 ‘주적개념도 없애고 정신교육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북한에 대해서는 장병의 명확한 안보관 확립을 위해 ‘북한 정권과 북한군이 도발한다면 단호하게 응징할 태세와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을 정신전력 기본 교재에 분명하게 적시해 놓았다”고 소개했다.정 장관은 “한미연합연습과 훈련도 변함없이 실시하고 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여건 조성을 위해 연합연습을 일부 조정하기는 했지만, 올해 들어 이미 100여회 이상에 걸쳐 크고 작은 연합훈련을 실시한 바 있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9·19 군사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하여 한반도 평화정착을 뒷받침해나갈 것”이라며 “합의를 충실하게 이행한다고 우리의 안보와 국방태세가 약화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강해지고 있다. 이는 우리 군의 강력한 힘과 대비태세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조치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 장관은 “9·19 군사합의와 우리 군의 교육훈련은 전혀 별개의 사안”이라며 “훈련하지 않는 군대는 존재할 가치도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군을 향한) 무분별한 비방은 지금도 한여름 더위 속에서 땀 흘려 교육훈련에 매진하고 있는 각급 부대 지휘관과 장병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다.일정 규모의 한미연합훈련과 우리 군 자체 합동훈련은 변함없이 지속하고 있다”고 거듭 말했다.  정 장관은 북한 목선에 대한 경계 실패 및 삼척항 정박 은폐·축소 의혹, 2함대 허위자수 사건을 언급하면서 “군의 현행 경계작전수행 미흡과 군 고위직들의 잘못된 인식으로 상황이 확대된 것에 대해 국방부 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 어떠한 따가운 질책과 비난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고 사과했다.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굳건한 한미동맹 기반 하에서 체계적, 적극적으로 추진되고 있다”면서 “곧 있을 IOC(기본운영능력) 검증에서 군의 준비태세를 꼼꼼하게 점검할 것이다.그 결과에 따라 전작권 전환 여부를 결심하도록 차근차근 체계적으로 준비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포함외교와 넘버 3/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지난 23일 오전 중국 군용기 2대와 러시아기 3대가 통보 없이 한국항공식별구역(KADIZ)에 진입했다. 러시아 조기경보기 1대는 두 차례나 독도 영공을 침범했다. 타국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첫 사례다. 우리 군은 즉시 전투기를 출격시켜 경고사격까지 했다. 오랜만에 보여 준 군 본연의 속 시원한 모습이다. 군인에게 국가 이익은 오로지 국토를 방위하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기에 신속하고 당당한 대응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군복을 입고 있는 군인과 현장 지휘관에게 외교적 우려나 걱정은 사치다. 이로 인해 발생한 외교적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고 정부의 몫이다.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 획득과 확대를 위해 대외적으로 군사력을 시현해 왔다. 특히 다른 나라에 함대를 파견해 압력을 가함으로써 상대방으로부터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려는 외교 수단 중 하나인 포함외교의 역사는 오래됐다. 1866년 셔먼호사건, 1871년 신미양요, 1875년 강화도사건 모두가 포함외교가 빚은 아픈 역사다. 이번 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을 지켜보면서 구한말 열강들의 침탈이 재현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중·러 군용기가 동시에 KADIZ에 진입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러시아 국방부가 중국 공군과 처음으로 연합 공중훈련을 실시했다고 밝힌 만큼 이미 철저히 준비된 훈련이었다. 독도 영공 침범 역시 경고사격에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반복됐다는 점에서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이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중러가 우리와 개별적으로 군사문제를 야기하고 대립각을 세울 이유는 없기에 중러 연합훈련을 동해상에서 실시한 의도는 두 나라가 노리는 전략적 이익의 실현이라는 측면에서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 편을 들어 북미 협상을 앞두고 미국을 압박하거나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으로 보기도 어렵다. 중러가 첫 장거리 연합 초계비행 훈련을 한 것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한 중러의 군사협력 강화와 공동 대응을 생생하게 보여 주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대 중러 대립의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6월 1일 ‘인도·태평양 전략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중러를 위협 국가로 규정했다. 힘이 예전 같지 않은 미국은 중국을 포위하고 러시아의 극동 지역 복귀를 차단하기 위해 일본, 호주, 인도를 중심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일본 자위대 위상 강화를 가장 바라는 쪽은 미국이다. 아베의 헌법 개정을 통해 일본이 군대를 가지게 되는 상황을 정당화하고 인정받으려면 한일 관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미국이 위안부 합의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체결에 적극적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미국-일본-한국이라는 위계적 질서에서 우리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사드 배치라는 족쇄까지 채워졌다. 한국에도 인도·태평양 전략 참여를 요구하며 미국-일본-한국으로 이어지는 군사협력이 인도·태평양 전략의 동쪽 한 축을 구성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지난 6월 30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에 협력 의사를 밝히자 중국이 민감하게 반응한 것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중러의 공중훈련은 인도·태평양 전략이 미국의 의도대로 호락호락 추진되지 않을 것이란 경고의 메시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한 축인 미국-일본-한국의 위계적 관계가 가진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독도 영공 침범이 계획적이었다면 일본이 이 상황에서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우리의 군사적 대응을 비난하는 순간 중국과 러시아가 원하던 인도·태평양 전략의 균열이란 목적은 충분히 달성했다. 미국이 서둘러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대응을 강력하게 지지한다”고 한 것도 이러한 우려를 불식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독도 문제에 대한 논란을 피하려는 듯 어느 나라 영공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다. 이번 중러 연합훈련이 조직 간 세력 다툼에서 상대 보스나 중간 보스가 아닌 일단 조직원을 향한 것이라면 기분 좋을 리가 없다. 미국이 보는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은 다르다. 영화 넘버3에서 주인공이 “누가 넘버 3래. 나 넘버 2야”라고 했던 대사가 불현듯 생각난다. 중러 군용기 엔진 소음이 “그렇게 영원히 넘버 3로 살 거니?” 하는 것처럼 들리니 이상하다.
  • 靑 ‘北 탄도미사일’ 이례적 신속 결론

    청와대는 25일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북한 발사체를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결론지은 배경에 대해 “사거리와 비행제원, 특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라고 밝혔다. 앞서 5월 4·9일 북한이 두 차례 쏘아 올린 발사체에 대해 ‘미사일’이란 표현 대신 ‘단거리 발사체로 한미 군사당국이 분석 중’이라며 신중을 기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미사일 사거리 및 미사일 발사 성공에 따라 빠른 분석이 가능했다”며 “지난 5월 4일 발사체는 2발 모두 실패했고, 9일은 2발 중 1발만 성공해 정밀평가가 계속 진행됐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사거리와 성공 여부가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지난 23일 러시아의 영공 침범 등과 이날 분석 결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는 초기 분석으로, 향후 한미 간 정밀평가를 통해 (단거리 탄도미사일 여부를) 최종 판단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청와대는 개량형 패트리엇 미사일(PAC3), 유도탄 방어체계 등 북한 공격체계에 대해 우리 군이 방어체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추가적인 대응전력을 갖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정부는 2017년 12월 채택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397호에서 금지하는 ‘탄도미사일’ 여부에 대해 판단을 유보한 채 비핵화 실무협상에 여지를 열어 두려는 모습을 보였다. 원칙적으로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사용할 경우 안보리 제재 대상이 될 수 있어 휘발성이 큰 사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날 북한 발사체를 재빠르게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확인했고, 전문가 사이에서도 탄도미사일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은 한미 군 주요 지휘관 초청 간담회에서 북한 발사체를 ‘단도미사일´이라고 발언했다가 청와대가 즉시 ‘단거리 미사일을 잘못 말한 것’이라고 정정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탄도미사일’을 언급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청와대는 부인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병사 휴대전화 1년 허용해보니 기밀유출 ‘제로’

    병사 휴대전화 1년 허용해보니 기밀유출 ‘제로’

    국방연구원 설문조사 공개병사 36만여명 휴대전화 이용80% “군 적응에 도움”사용 규정 위반행위는 0.2%군, 사용시간 1시간 줄이기로 부대 안에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가한 결과 군 생활 적응과 자기계발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인식이 압도적인 것으로 조사됐다. 우려했던 기밀유출 등 보안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으나 불법도박 등 규정을 위반한 사례는 극소수 있었다. 군 당국은 이러한 조사를 토대로 평일과 휴일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시간을 각각 밤 9시까지로 제한해 지금보다 1시간씩 줄이기로 했다. 국방부는 16일 ‘병 휴대전화 사용’ 시범운영(지난해 4월~올해 5월) 결과와 한국국방연구원이 진행한 관련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전국 일선 부대에서는 훈련병을 제외한 36만여 명의 병사가 휴대전화를 사용 중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방연구원이 병사 4671명, 간부 2236명, 상담관 2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병사들은 휴대전화를 대부분 SNS(38.4%)와 전화·문자(23.2%)에 사용했다. 병사 대부분(96.3%)은 외부와의 소통 여건이 현격히 개선됐다고 인식했고, ‘병-간부 간 소통이 활성화됐다’는 응답률도 67.4%로 나타났다.휴대전화 사용이 군 생활 적응과 자기 계발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병사들의 응답률은 각각 79.1%, 83.7%에 달했다. 연구원은 특히 휴대전화 사용 병사들의 우울, 불안, 소외감은 그렇지 않은 병사들보다 낮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야전 부대에 배치된 병영생활 전문상담관 대부분(79%)은 병사들의 긍정적 변화를 체감하고 있고, 대인 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상담 빈도가 감소(42.5%)한 것으로 인식했다. 특히 2018년 이후 병영생활전문상담관 상담에서 복무 부적응, 심리·정서 상담이 각각 29%, 8.5% 감소했고, 국방헬프콜센터 상담에서도 이성, 진로, 부적응 상담이 각각 55%, 27%, 16%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우려됐던 병사들의 체력 저하 현상, 군사비밀 유출 등의 보안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규정·지침 위반 행위의 발생비율은 사용 인원 대비 0.2%로 분석됐다. 다만 휴대전화를 통한 도박 및 유해 사이트 접속 등 일부 문제점이 식별됐다. 최근 경기도에 있는 모 부대에서는 일부 병사들이 휴대전화로 수억 원대 불법도박을 한 사실이 적발돼 군 당국의 조사를 받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국방부는 지난 15일 ‘군인 복무정책 심의위원회’를 열어 이 같은 시범운영 결과를 평가하고, 향후 운영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국방부는 현재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시간이 점호 준비 등에 일부 영향을 준다는 야전부대 의견을 수렴해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평일은 현행 ‘18∼22시’에서 ‘18시∼21시’, 휴일은 ‘7∼22시’에서 ‘8시30분∼21시’로 각각 조정키로 했다. 평일·휴일 오후 9시부터 오후 10시, 휴일 오전 7시부터 오전 8시 30분까지는 지휘관 재량 하에 사용 시간 연장이 가능하다. 국방부는 또 장기간 외부와 소통이 제한되는 해외 파병부대에 대해서는 심리적 안정과 사기 진작을 위해 일정 시간, 일정 장소에서 영상 통화를 허용키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4월부터 단계적으로 확대된 ‘병사 일과 후 휴대전화 사용’은 지난 4월 1일부터 모든 국군 부대에 적용되고 있다. 국방부는 향후 일부 부작용에 대한 보완대책을 마련해 전면시행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정의당 김종대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 과도한 정치공세”

    정의당 김종대 “정경두 국방장관 해임? 과도한 정치공세”

    최근 북한 목선이 강원 삼척항에 입항하고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장교가 병사에게 허위 자백을 요구한 사건이 발생하자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책임을 져야한다면서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정경두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과도한 정치공세”라면서 “안보를 정치화하는 게 보수 정치냐”고 보수 야당을 비판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15일 공동으로 정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두 야당은 지난달 15일 북한 목선의 삼척항 입항 사건에서 확인된 군 경계 실패와 지난 4일 해군 2함대 사령부 안에서의 허위 자백 사건 등으로 군 기강 해이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면서 정 장관의 해임을 주장하고 있다. 장관 해임건의안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이 찬성하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다. 그러나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해임건의안이 제출된 장관을 반드시 해임해야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다. 보수 야당은 정 장관의 해임건의안 표결을 위해 오는 18~19일 이틀 간 본회의를 열자고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반대하고 있다. 이렇게 여야 간에 임시국회 의사일정 합의마저 제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김종대 의원은 보수 야당의 정 장관 해임 주장이 “안보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동해 목선에 이어 ‘서해 오리발 사건’은 군의 기강 문제다. 그 어떤 대공 용의점이 발견되지 않았고, 전선은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로운 상황”이라면서 “군 기강 문제는 해당 부대 지휘관이 책임지고 개선할 일이지 정부의 안보 정책, 대북 정책 문제로 확대시켜서는 곤란하다. 안보가 무너졌다고 국방장관이 책임을 지라는 건 과도한 정치공세”라고 지적했다.김 의원이 ‘서해 오리발 사건’이라고 언급한 해군 2함대 사령부의 허위 자백 강요 사건은 지난 4일 밤 ‘거동 수상자’로 지목된 인물이 탄약고에서 경계병의 신원 확인 절차에 응하지 않고 도주한 사건이다. 당시 2함대 인근에서 고무보트와 오리발이 발견돼 적이 침투한 흔적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러나 조사 결과 당시 ‘거동 수상자’는 인근 초소의 경계병으로 밝혀졌고, 당시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지휘통제실 간부(소령)가 제대를 앞둔 병장에게 허위 자백을 강요해 논란이 됐다. 김 의원은 “서해 2함대 사건이 국방장관에게 직보되지 않았다고 문제 삼는 건 어처구니가 없다. 장관이 상황실 당직 장교인가”라면서 “대북 전략에 몰입해야 할 장관에게 그런 세세한 상황을 보고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해 사건(북한 목선 입항 사건)도 보고의 문제가 드러난 만큼 책임은 규명해야 한다. 그렇다고 장관을 흔들고, 1조원이 넘는 구축함을 목선 잡는데 추가로 투입한다고 한다”면서 “황당한 안보 낭비다. 이런 안보 논란이 안보 낭비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보수 야당에서) 국방장관 해임 안하면 추경(추가경정예산안) 통과 안 하겠다는데, 안보를 정치화하는게 보수 정치냐”고 지적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트럼프 이어 마크롱도 ‘우주군’ 창설 선언

    프랑스가 ‘우주군’ 창설을 선언하며 우주에서의 세계 군사 경쟁에 뛰어들었다. AFP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3일(현지시간) 공군의 일부가 될 ‘국가 군사 우주군사령부’를 창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발표는 프랑스대혁명 기념일(바스티유 데이) 전야제에서 군 지휘관들이 참석한 가운데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은 “우리의 우주 역량 강화와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오는 9월 우주를 담당하는 사령부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플로랑스 파를리 국방장관이 제안하고 내가 승인한 이 새로운 우주·군사 정책에 따라 프랑스는 우주에서의 방어 능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우주군사령부를 공군 산하에 포함해 현재의 공군을 항공우주군으로 확대 개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주에서의 군사 활동은 정찰위성 제작·운영, 위치 추적, 전파 방해, 통신, 사이버 공격 등을 포함한다. 프랑스는 우주의 군사적 활용 가치를 인식하고 우주 활동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5년까지 36억 유로(약 4조 7790억원)의 국방비를 투입하기로 했다. 현재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이 우주에서의 군사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도 지난해부터 우주 방어 전략 필요성을 언급해 왔다. AFP는 그의 생각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3월 우주군 창설 입법안이 의회에 제출된 상태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여야 ‘추경 기싸움’ 도중 ‘정경두 해임건의안’ 대립

    여야 ‘추경 기싸움’ 도중 ‘정경두 해임건의안’ 대립

    내일 윤석열 임명 수순…25일 임기 시작여야가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오는 19일까지 추가경정예산안을 처리하는 문제를 놓고 양보 없는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이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새로운 무기로 들고 나오면서 대립이 거칠어지고 있다.한국당은 15일 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 장관 해임건의안을 표결하려면 본회의에서 이틀이 필요한데 여당이 본회의를 하루만 연 채 사실상 ‘방탄국회’를 하려 한다”며 “이렇게 되면 추경안 처리 협조가 어렵다”고 했다. 국회법은 국무위원의 해임건의안이 발의됐을 때 이후 처음 개의되는 본회의에서 그 사실을 보고하고, 해당 시점부터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토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당은 정 장관 해임건의안을 18일 본회의에서 상정하고 이튿날 추경안과 함께 처리하자는 입장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19일 하루만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통과시키자며 맞서고 있다. 민주당 홍익표 수석대변인은 “군 기강 해이 등에 대해 해당 지휘관을 처벌할 순 있지만 장관을 물러나게 하는 건 동의할 수 없는 정치 공세”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국회에서 윤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재송부가 불발된다면 대통령의 임명 재가는 16일 이뤄지며 ‘25일 0시 임기 시작’으로 정리될 것”이라고 말했다. 25일부터 임기가 시작되는 것은 문무일 검찰총장 임기가 24일까지기 때문이다. 나 원내대표는 “윤 후보자는 검찰총장으로 부적절하다”고 했다. 정국이 경색되며 경제원탁토론회 일정 협상도 중단됐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동성애 금지 군형법, 군대내 성소수자 인권 침해”

    “군인 성적 지향, 복무 수행과 관계 없어” 동성애자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군 임무 수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2017년 3월 육군중앙수사단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뒤 그의 군 생활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씨의 성적 지향을 알아챈 수사단은 그가 과거 만났던 동성 연인에 대해 물었고 A씨가 부인하자 수사관은 소리치며 위협하거나 옛 연인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결국 A씨가 과거 동성애 관계를 진술하자 수사관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거나 “어디에 사정했느냐” 등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했다. A씨는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소유예됐다. 국제앰네스티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국내 전·현직 군인과 예비 입영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는 이 내용 등을 정리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 한국 군대의 LGBTI(성소수자)’를 발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6~7월과 올해 5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수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의 삶을 파괴하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 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프 국장은 “적대적인 환경이 학대와 따돌림을 조장하고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며 “한국 군대는 군인의 성적 지향이 군 복무 수행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와 인터뷰 한 성 소수자 군인 상당수는 군대에서 지휘관에 의해 아웃팅(동성애 사실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것)을 당했다. 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내에서 폭행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고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보내지기도 했다. 라이프 국장은 “군대 내 게이 남성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라며 “한국은 성 소수자에 만연한 낙인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으로 군형법 제92조 6항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군대에서 학대와 따돌림”…앰네스티 “동성애 금지 군형법 없애야”

    국제앰네스티 ‘한국 군대의 성소수자’ 발간“성소수자 군인들 아웃팅당하고 폭행·모욕도”동성애자 A씨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숨긴 채 육군 장교로 군 생활을 했다.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군 임무 수행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다. 하지만 2017년 3월 육군중앙수사단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은 뒤 그의 군 생활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A씨의 성적 지향을 알아챈 수사단은 그가 과거 만났던 동성 연인에 대해 물었고 A씨가 부인하자 수사관은 소리치며 위협하거나 옛 연인에게 영상통화를 걸기도 했다. 결국 A씨가 과거 동성애 관계를 진술하자 수사관은 “어떤 체위로 관계를 가졌느냐”거나 “어디에 사정했느냐” 등 사생활을 침범하는 질문을 했다. A씨는 군형법 92조 6항을 어겼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소유예됐다. 국제앰네스티는 11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A씨 등 국내 전·현직 군인과 예비 입영자 21명을 심층 인터뷰한 결과를 발표했다. 앰네스티는 이 내용 등을 정리한 보고서 ‘침묵 속의 복무- 한국 군대의 LGBTI(성소수자)’를 발간했다. 이 기관은 지난해 6~7월과 올해 5월 군 복무 경험이 있는 성소수자들을 만났다. 로젠 라이프 국제앰네스티 동아시아사무소 조사국장은 “동성 간 성적 행위를 범죄화하는 것은 수많은 성 소수자 군인들의 삶을 파괴하며 사회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비판했다. 현행 군 형법 제92조 6항은 ‘항문성교나 그 밖의 추행을 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라이프 국장은 “적대적인 환경이 학대와 따돌림을 조장하고 보복의 두려움으로 피해자를 침묵하게 만든다”며 “한국 군대는 군인의 성적 지향이 군 복무 수행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앰네스티와 인터뷰 한 성 소수자 군인 상당수는 군대에서 지휘관에 의해 아웃팅(동성애 사실을 타인에 의해 폭로당하는 것)을 당했다. 또 그러한 사실이 알려지면 군대 내에서 폭행이나 성적 모욕을 당했고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보내지기도 했다. 라이프 국장은 “군대 내 게이 남성의 성관계를 범죄화하는 것은 충격적인 인권 침해”라며 “한국은 성 소수자에 만연한 낙인을 해소하는 결정적 첫걸음으로 군형법 제92조 6항을 시급히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항공기로 담배 심부름·폭언… 갑질 공군대대장 국민청원

    항공기로 담배 심부름·폭언… 갑질 공군대대장 국민청원

    공군 소속 한 부대장이 부하에게 사적 심부름과 폭언을 했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와 공군이 감찰에 착수했다. 공군 관계자는 10일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A 대대장(중령)에 대해 감찰실에서 지난 8일부터 감찰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지난 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공군 ○전대 ○○○대대 대대장 인권침해 및 사적지시 사례 고발’이라는 제목의 청원 글에 따르면 게시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항공기를 이용해 외지비상대기 근무 교대 중인 조종사에게 지시해 지인에게 전자담배를 갖다 주라는 등 사적업무를 상습적으로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의 물품을 병사에게 택배거래를 지시했으며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부대원에게 면세담배를 사오라는 지시도 했다고 주장했다. A 대대장이 부하에 대한 폭언으로 부대의 사기를 떨어뜨렸다는 주장도 나왔다. 청원 글에 따르면 A 대대장은 외부 인사가 부대에 방문했을 때 “대대원들 모두 떨거지들만 남았다”, “애들 성격이 죄다 쓰레기다”라며 부대원을 비하했다. 또 업무가 바빠 점심시간을 놓쳐 간단한 시리얼로 끼니를 때우는 부대원에게는 “니가 개냐? 사료 처먹게”라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밖에도 본인의 비행감독관 업무를 자격이 없는 부대원에게 지시하거나 일과 시간 중 테니스나 취침을 하는 등 근무태만도 보였다고 게시자는 주장했다. 앞서 지난 3월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윤의철 7군단장이 비합리적인 부대 운영을 한다며 해임청원이 게시되는 등 최근 부대 지휘관에 대한 부대원의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공군 관계자는 “사실로 밝혀질 경우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한국사가 잊어버린 한인 영웅들/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1941년 6월 22일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꾼 독소전쟁이 발발했다. 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러나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 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미국의 요청으로 1945년 8월 대일전쟁에 참여해 한반도 북부를 해방했다.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 소련에 거주하던 한국인들도 참전해 불멸의 공로를 세웠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됐다. 소련에서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국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자료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또는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기 위해 용감성을 발휘해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했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를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해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했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해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했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 깃발 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제3우크라이나 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전해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을 치른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해 적군을 격파하고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했고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에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로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했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됐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년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했다. 그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의 반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해 마을을 해방했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했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했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고 확인됐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사가 잊어버린 독소전쟁의 한인 영웅들

    한국에서 6월말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면 십중팔구 6·25남침이라는 대답이 들릴 것이다. 그것은 물론 사실이다. 한국전쟁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큰 비극이며 그 상처들은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9년 3일 전인 1941년 6월 22일에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바꿀 또 한 가지의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것은 바로 나치 독일이 선전포고도 없이 소련을 침략한 것이다.유럽 대륙을 정복하고 새로운 ‘생활권’(Lebenstraum)을 확보하려는 일본의 동맹국 독일이 유발한 이 전쟁은 소련의 자원을 빼앗고 ‘불필요한 인구’를 말살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으며, 만약 독일이 성공했다면 전 세계가 몇 개의 민족들이 강제 지배하는 암흑시대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한국의 해방도 없었을 것이고 한국 문화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말살되었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을 것이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에 맞서 싸운 소련의 붉은 군대는 4년동안 피를 흘려 가면서 나치독일 침략자들을 패배시켰으며, 1945년 8월에 미국의 요청으로 대일전쟁에 참여하였고 중국 동북지역과 한반도 북부를 해방하였다. 물론 이 전쟁은 단순히 러시아인들과 독일인들 간의 전쟁이 아니라 러시아족을 비롯한 소련의 모든 민족들이 참여한 전쟁이었으며, 그 중 침략 당시에 소련에 거주한 한인, 소위 ‘고려인’들도 있었다. 이 기사에서 유럽, 나아가 전 세계를 나치로부터 해방하기 위한 전쟁에서 불멸의 공로를 세운 한인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문서보관소의 폐쇄 등으로 제2차 세계대전 한인 참가의 연구는 오랫동안 큰 제약을 받고 있었으나 1990년대 이후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되면서 일반 연구자들도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었다. 2011년에 신 드미트리, 박 보리스, 최 발렌틴 등 연구자들이 방대한 분량의 사료를 분석한 ‘1941년~1945년 위대한 소련 조국전쟁 고려인들의 참전록’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독소전쟁 한인 참전자 372명과 관련된 사료, 회고록, 신문기사 등이 수록되었다.1941년 당시 소련에 거주하는 한인에게 붉은 군대에 입대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1937년 국가안보의 이유로 극동지역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한 소련의 한인들은 신뢰할 수 없는 민족으로 간주되어 붉은 군대에서 오랫동안 근무해온 전문군인들도 강제 전역되었다. 1937~1938년 대숙청이 끝난 후 그 일부는 군대에 복귀되었지만, 많은 한인에게 붉은 군대 입대권은 여전히 거부되고 있었다. 하지만 1941년 6월 22일, 독일 침략의 소식이 알려지자 각각 도시와 농촌의 군사동원부 앞에서 사회주의 조국을 지키고 나치즘이라는 위협을 없애기 위해서 붉은 군대에 지원하려는, 애국열과 투쟁열에 불타오르는 소련 모든 민족 젊은이들의 기나긴 줄이 생기기 시작하였는데, 한인들도 그 예외가 아니었다.당시 군대에 입대하면 전선에서 나치침략자들과 싸우는 전선군대와 후방에서 전선부대들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노동군대 등 2가지의 길이 있었다. 물론, 입대에 성공한 많은 한인은 전선에 가지 못해 노동군대에 파견되어 무기생산이나 방어시설 건설 등에 전선부대들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역사 앞에서의 책임을 자각하는 많은 한인 젊은이들은 전선에 가는 것을 꿈꾸고 이를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였다. 입대지원서에 출신지, 민족에 대하여 위조한 사실을 신고하고 입대하는 경우가 제일 많았고 이름을 바꾸고 입대하는 경우도 많았는데, 보다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1941년 노동군대에 동원된 차가이 씨가 전선에 가기 위해 3번이나 탈영 시도했고 결국 성공하여 고리키 시에 도착하고 노동자로 일하다가 다시 동원되어 전선에 파견되었다. 1941년 8월 노동군대에 동원된 황동국은 스탈린에게 “소비에트 조국의 원수들과 직접 싸우게 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1942년 9월에 입대했으며 중사라는 계급을 수여받고 대전차포의 지휘성원으로 베를린 공세작전에서 참여하였다.우리에게 나치독일과 싸워 유럽과 아시아 해방에 크게 기여한 한인들의 참여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지는 자료는 그 공로의 기록이 나오는 붉은 군대 훈장수여증명서이다. 러시아국방부중앙문서보관소에 보관되어 있는 훈장수여 관련 자료는 너무 방대해서 연구가 완료되어 있지 않지만, 지금까지 발견된 자료 중 대표적인 예들을 들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제116사단 제246 반전차대대 부대장 지(池 혹은 智) 대위가 1942년 4월 22일 오전 5시에 예정된 아군 보병부대의 공격을 지원하지 위해 용감성을 발휘하여 최전방 정찰부대가 위치한 곳에 44㎜ 대포를 설치하였다. 새벽이 되자 측면사격으로 적군 중기관총 5대와 토목화점 2개 파괴한 것으로 ‘용맹’ 훈장을 수여받았다. 제4돌격군 소속 함 니콜라이는 1943년 8월 6일 독일군 방어선을 공격할 때 돌파구에서 분산된 부대들을 통합시킨 후 그 지휘관으로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198,5 고지 전투에서 함 대위는 전차들을 위해 교량과 도로의 안전 여부를 확인하면서 누구보다 먼저 고지에 돌격하여 독일군 장병 3명을 직접 제거하였다. 함 대위는 1944년 1월 6일 벨라루스를 해방하면서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유럽 해방에 공로를 세운 한인도 있다. 예컨대, 제233 붉은깃발사단에 속한 김 니콜라이 중좌는 전쟁 첫날부터 참전하였으며 제3우크라이나전선의 일원으로 헝가리 수도인 부다페스트 공세작전에 참여하여 1급 조국전쟁 훈장을 수여받았다. 살벌한 방어전 후 김 중좌가 지휘한 연대는 1945년 3월 20일 공격을 개시하여 적군 부대들을 격파시키면서 시몬토르냐라는 마을을 점령하였으며 카포시 수로를 건너 적에게 큰 피해를 입혔다. 3월 23일, 김 중좌의 정확하고 능숙한 지도 하의 그 연대는 치열한 전투 끝에 적을 패주시켜 약 500명의 독일군 장병을 제거하였다. 소련의 영웅이라는 최상위의 칭호이자 가장 높은 훈격을 수여받은 한인 민 알렉산드르도 있다. 만 26세의 청년인 그는 1941년에 입대해 가장 어려운 전투를 감당한 전선군 중에 하나인 브랸스크 전선군에 파견되었으며 대위 계급을 수여받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1944녀 7월 9일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러시아문서보관소에서 보관되어 있는 그의 훈장수여증명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볼린 주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투에서 민 동무는 그 부대의 전장으로 가서 직접 대대를 지휘하면서 적군 5개 반공격을 퇴치하고 전진할 수 있었다. 스타리예 코샤르 마을 전투에서 민 동무와 그 대대는 용감하게 우회작전을 실시하여 마을을 해방하였다. 육박전이 된 이 전투에서 민 동무는 직접 그 대대를 지휘하였다. 그 후 파로두브 마을 전투 때에도 민 동무는 전장에 직접 섰으며 부대를 지휘하다가 영웅적으로 전사하였다. 용감성과 영웅의 기질을 발휘한 민 동무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한다. 현재까지 확인된 바에 따르면, 독소전쟁의 거의 모든 큰 전투에 한인들이 참여했다. 모스크바 전투에 적어도 2명, 레닌그라드 방어전에는 21명, 스탈린그라드 전투에는 16명, 쿠르스크 전투에는 8명, 베를린 공세작전에는 11명, 그리고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에서 진행된 첫 승리 퍼레이드에는 한인 2명이 참가했다. 전선에 나가 파시즘과 싸운 한인 중 절반 이상이 목숨을 잃었지만, 그들은 소련의 다른 민족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하면서 나치 독일을 막음으로써 그 희생과 공훈이 한국 해방으로의 길을 열렸다고 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사람들을 기념하는 한국 영화는 아직 한 편도 없다. 최근에 나온 영화 중에 독소전쟁과 관련이 있는 유일한 것은 ‘마이웨이’이라는 영화이지만, 그는 냉전 시대에 할리우드로부터 들어온 선입견에 사로잡혀 독소전쟁의 진정한 모습이 아닌 풍자화를 그리고 있다. 1941년에 발발하고 1945년 5월 9일에 독일의 무조건 항복으로 종식된 이 전쟁은 한민족을 비롯한 그 전쟁에 참여한 모든 민족들의 공동 공로이며, 한인들의 독소전쟁 참전 역사를 연구하고 그들에 대한 역사적 기억이 영원토록 남게 하는 것은 우리 역사가들의 중요한 과제이며 거룩한 임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