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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80년대 군비 2조달러 허비” 금융정보지 「월스」 보도

    ◎카터·레이건 정부 구소능력 과대평가/무리한 전력증강으로 예산적자 초래 2차대전 종전이후 미국과 소련간에 치열하게 전개됐던 냉전이 80년대초에 사실상 끝났는데도 불구하고 미행정부는 정보판단 잘못으로 80년대말 소련 붕괴 때까지 2조달러라는 엄청난 돈을 불필요한 군비확장에 쏟아붓는 우를 범했다고 미국의 금융정보 월간지인 「월스」(Worth)지가 최근호에서 폭로했다. 월스지는 주로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 때 이뤄진 이같은 잘못된 정보판단으로 인한 예산남용은 오늘날 연방정부를 곤경에 빠뜨리고 있는 예산적자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만일 정확한 정보판단이 있었다면 1천6백4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지난해 예산은 1백10억달러의 흑자로 반전시킬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잡지는 소련 힘의 약화시점을 1980년 8월 폴란드 그다니스크에서의 자유노조 파업으로 발생된 폴란드 위기 이후로 상정하고 그때부터 소련군의 약화과정을 바르샤바조약군 총사령관을 역임한바 있는 아나톨리 그리프코프 전소련군 대장과의 인터뷰와당시 소련정치국 회의록등을 통해 밝혔다. 바웬사가 이끄는 폴란드 자유노조의 1년여 투쟁끝에 야루젤스키 정권의 붕괴가 임박하자 소련은 폴란드 침공여부를 진지하게 검토했으나 결국 81년 12월10일의 정치국원 최종회의에서 격론끝에 79년의 아프간 침공으로 인한 국제적 위신추락 및 고립화와 경제난등을 이유로 폴란드 불개입원칙을 확정시켰다는 것이다. 그리프코프 장군은 『당시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이 소집한 군최고지휘관 회의에서는 「아프간은 하나로 족하다」라고 결론을 내렸으며 이어서 열린 정치국원회의에서 그같은 지휘관회의의 결론을 그대로 수용했다』고 회고하고 『브레즈네프 정권의 폴란드 포기는 소련이 유럽에서 더이상 공산주의를 지킬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이같은 그의 증언은 1급비밀로 분류됐던 당시의 정치국원 회의록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소련에 대한 정보는 카터행정부의 브레진스키 안보보좌관이 CIA의 보고는 폴란드가 곧 제2의 아프간이 된다고 분석하고 있었으며 냉전에서 소련이 승리하고 있으며 소련의 경제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이었다고 회고록에서 밝힐 정도로 왜곡돼 있었다.또 외교정책 자문기구인 CPD는 소련의 세계 최강국으로의 부상을 강조하면서 미국의 No 2국가 전락을 경고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 카터행정부와 레이건행정부는 소련의 위협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방위력강화를 추진,81년 1천9백40억달러였던 방위예산이 베를린장벽 붕괴의 해인 89년에는 2천8백50억달러까지 증강시켜왔다는 것이다.
  • 야당작전의 실패와 성공(송정숙 칼럼)

    이른바 「면담파동」은 야당측의 패배로 끝나고 말았다.「청와대 고위층」이 직접 나서서 야당의원 한사람을 빼내려했다는 『혐의를 잡고』 그것이 야당와해공작이라고 도덕적 시비를 걸고 나올 때만 해도 그 전의는 승산이 있어보였는데 당사자인 문제의 강원도출신 ㅊ의원의 해명이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자기를 유혹하려던 사람은 야당이 들고일어나 공격하는 「최고위층」은 아니라고 밝히는 바람에 등등한 한판승부를 벼르던 소속야당측을 난처하게 만들고 말았고 상대적으로 화가난 여권에서는 줄줄이 고소를 엄포하며 「버릇고치기」에 나섰다.그러니까 야권은 또 어차피 궁지에 몰릴 바에야 마지막 돌격으로 「전면전」을 선포하고 배수진을 쳤던 것이다. 기준도 특색도 없는째 정당들의 마구잡이 사람잡아당기기 게임이 진행중인 계절에,별것도 아닐 수 있었던 일이 비정상하게 발전하여 만들어진 이 사태.그 본질이라고 할수 있는 『ㅊ의원 유혹』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해 말인 95년 12월이라고 한다.ㅊ의원은 그것을 96년인 새해 1월에 들어와서 대표에게 보고했다.왜 그토록 오래 뜸을 들였는지 모른다.그리고 그의 고백대로라면 그가 만난 것은 청와대 수석비서진의 ㅇ씨인데 어느 과정에선가 「대통령」으로 둔갑되었다.누구 잘못인지 지금으로서는 모호하다. 사라예보의 총성 한발이 세계대전의 발단이 되기도 하지만 이 「모호함」이 급기야 여야간에 전면전이라는 험악한 지경을 부른 것이다.야당대표측은 ㅊ의원이 만난것은 최고위층이고 여전히 확신한다는 주장을 마지막까지 고수했고 ㅊ의원이 그것을 부정한 것은 여권의 「탄압」을 겁낸 것이라고 말했다.그러나 ㅊ의원은 거듭 「고위층」을 직접 만난 적도 없고 처음부터 그렇게 말한 적도 없다고 밝혔다. 집안끼리 어긋난 이 논지는 ㅊ의원이거나 당 고위층중 어느 한쪽이 일을 좀 부풀린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ㅊ의원쪽을 의심한다면 우선 일이 있은지 한달이나 지나서야 당에 보고한 것부터 연결해서 생각해볼만하다.여권의 ㅇ씨수준에서 막연히 의중을 건들여 본것을 자가발전해서 무게있는 교섭을 받은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부풀렸을 가능성도있다.때마침 뭔가 여권을 향해 국지전정도의 자극을 하고싶던 야권대표측은 그것에 자극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면 ㅊ의원의 말대로 처음부터 ㅇ씨수준의 접촉이었음을 밝혔는데 대표측에서 부풀렸을 가능성도 상정해볼 수 있다.ㅇ씨수준으로는 「공격 작전」의 수위가 낮아서 효율이 떨어지겠으므로 그렇게 부풀리고,문제가 되면 「야권탄압」이라는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방패를 활용하자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러나 세상은 이미 많이 변해서 「야권탄압」무기는 그것을 사용할 기능조차 퇴행해버린 시대가 되었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볼때 어떤 형태로든 야당의원 유혹기도가 있었던 것만으로도 공격 빌미는 될수 있었는데 좀 과욕을 부려 「최고위층」을 들먹인 것이 화근이 된 셈인다.그러고보면 애당초 청와대의 「ㅇ씨」를 「대통령」으로 바꾸게한 것은 고의든 아니든 야당의 전의가 낳은 소산이기는 한데 좀 서툴러서 작전으로서는 성공하지 못한 것같다. 거기 비하면 가사두른 스님과 두손을 맞잡고 환하게 웃으며 『정치가 종교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말로 종교에 개입하고 있는 또다른 야당총재의 작전은 매우 성공적으로 보인다.매체마다 화려하게 실려진 그 모습만으로,최근에 있었던 군인교회 과잉경호문제로 불교계의 노여움을 산 여권의 「실수」에 따른 반사이익을 충분히 거둔 셈이다.이렇게 잽싼 정치적 행보를 다른 야당쪽도 배울만하다. 특히 수도권 선거전략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이 야당 「최고위」의 행보는 작전이 노련하고 권위도 있어보인다.그「최고위」가 직접 내놓은 작전중에는 『규정하기』같은 것도 있는데 그들이 「선생님」으로 모시는 최고위의 이미지를 『양심적인 사람』 『서민적인 사람』으로 「규정」하는 따위다. 일단의 수하를 거느리고 『수도권은 한석도 내주지 말라』고 자신만만하게 지령하는 모습은 흡사 「수도권접수 연습작전」의 지휘관같은 고만함을 느끼게도 하고 그래서 불길성도 들게한다.그러나 이미 「예술 기관」에 가서 『우리가 정권을 넘겨받았을 때를 위해 잘해 놓으라』고 으름장을 놓을만큼 승리의 환희에 대한 적응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그쪽야당의 정서인 것을 보면 「최고위급」의 작전이 다소 고만한 인상을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도 할것같다.어쨌든 모든 판단은 국민의 몫이다.
  • 경찰간부 초청 오찬/김대통령

    김영삼대통령은 2일 『북한은 최근 극렬한 선동으로 우리 사회의 혼란을 획책하고 있으므로 경찰은 친북 불순세력 척결과 대간첩작전 태세 확립 등 안보치안활동을 한층 강화해 주기 바란다』고 경찰당국에 당부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박일용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지휘관 32명을 청와대로 불러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 『다가오는 15대 총선은 가장 깨끗하고 공명정대한 선거가 돼야 한다』면서 『경찰은 엄정하고 공정한 자세로 선거사범을 철저히 단속하라』고 지시했다.
  • 미 함정 7년만에 중 상해 입항/천안문사태 이후 처음

    【홍콩 연합】 미국 태평양함대의 제7함대 소속 대형 함정 「포트맥헨리호」가 미해군 함정으로는 천안문사태후 7년만에 처음으로 지난달 31일 중국 동부상해항에 입항,오는 4일까지 기항한다고 홍콩신문들이 1일 보도했다. 이는 미·중 양국이 대만문제를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으나 군사 교류는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진건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밝혔다. 이 함정의 지휘관 월트 도런 제독은 양국 해군간의 친선과 상호 이해 증진,장병들의 휴식을 위해 이번 방문이 이루어졌으며 대만해협 사태 등 정치적 문제들은 거론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영장/내란목적 살인 등 혐의

    ◎「5·18」 재수사 사실상 마루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0일 정호용5·18 당시 특전사령관,허삼수보안사 인사처장,허화평보안사령관 비서실장 등 현역 국회의원 3명에 대해 형법상 내란중요임무종사 및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정의원에게는 내란목적살인죄가 추가 적용됐다. 이로써 이 사건으로 사법처리된 사람은 추가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이학봉·유학성·황영시씨 등 구속기소자 3명,이희성·주영복·차규헌씨 등 불구속 기소자 3명을 합해 모두 11명으로 늘어났다. 검찰은 지난해 11월말 5·18 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여만에 사건수사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검찰은 5·18 당시 20사단장을 지낸 박준병의원은 5·18사건보다 12·12사건에 더 깊이 연루돼 있다고 최종 판단,5·18특별법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사법처리를 유보키로 했다. 당직판사인 서울지법형사합의22부 유해판사는 31일 새벽 2시가 지나도록 영장관련 서류를 면밀하게 검토했으며 최욱서울지검장 등 검찰관계자들은 지난 18일 장세동·최세창씨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전철이 되풀이될 가능성에 대비, 검찰청사에 남아 영장발부를 기다렸다. 이종찬본부장은 이날 영장청구사실을 발표하면서 『일부 의원의 경우 부정비리에 대해서도 수사할 예정』이라고 밝혀 이날 영장이 청구된 의원 3명의 비리에 대해서도 수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에 따르면 허삼수·허화평의원은 5·18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을 직접 기획하고 전군지휘관회의와 계엄확대·국회봉쇄 등 일련의 집권과정에 깊숙이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정호용의원은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개입하는 한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특전사령관으로 정상적인 군의 지휘명령계통을 무시하고 현지로 직접 내려가 계엄군으로 투입된 3·7·11공수여단 등의 유혈진압작전을 진두지휘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한편 정호용의원은 이날상오 검찰에 출두하면서 『사전 집권시나리오를 작성하거나 광주민주화운동을 강경진압토록 지시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 5·18수사 이종찬본부장 일문일답

    ◎“국회의원 부정축재 수사계획 있다”/정의원 혐의 5·18군사반란에 국한/언론통폐합 추가로 밝혀진것 없어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이종찬본부장은 30일 하오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앞으로의 수사방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다른 5·18관련자들은 이미 기소됐는데 이들 세 의원도 곧 기소하나.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기소할 방침이다. ­남은 수사는 어떤 것인가. ▲일부 의원을 상대로 5·18사건 관련 혐의 이외에 부정비리 혐의도 수사할 계획이다. ­포착된 비리내용은. ▲앞으로 수사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은 누구인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수사단서가 확보되면 모두 조사하겠다. ­정의원의 경우 검찰의 12·12사건 1차 수사결과 부화뇌동죄가 적용됐는데 이번에는 반란중요임무종사죄가 적용된 이유는. ▲이번 수사과정에서 정의원이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주영복국방장관­이희성계엄사령과 황영시육참차장으로 이어지는 정식 군지휘계통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을 살해한 혐의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혐의내용은 5·18사건 과정에서 이뤼진 군사반란 행위에만 국한된 것인가. ▲그렇다.불법진퇴및 지휘관수소이탈 등 12·12사건과 관련된 반란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보고 포함하지 않았다.이 부분은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 위헌제청 사건이 종결되는 대로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 ­부화뇌동한 정의원도 그때 추가로 사법처리되나. ▲헌재의 합헌결정이 있더라도 정의원은 12·12 당시 뒤늦게 상경,반란군측에 합류한 것이므로 처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과 관련,그동안 수사를 통해 추가로 드러난 사실이 있나. ▲현재로서는 지난번 관련자들을 기소할 때 공소장에서 밝힌 것이 전부다.
  • 구속 8명… 사회파장 최소화/검찰의 「5·18」재수사 2개월

    ◎“쿠데타 반드시 단죄” 선례확립 큰 의미/특별법 헌의결정 필요… 재판 늦어질듯 5·18사건에 대한 검찰의 재수사가 30일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 현역의원 3명을 내란 등 혐의로 사법처리함으로써 사실상 일단락됐다. 지난해 11월 말 5·18사건에 대한 재수사에 착수한 지 2개월만이다. 검찰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대통령을 비롯,모두 8명을 구속했고 3명을 불구속 기소했다.핵심 관련자들로 처벌 대상을 최소화했다는 것이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을 이번 수사를 통해 쿠데타는 발생 시점이 언제든 반드시 단죄한다는 선례를 확립했다.「역사 바로 세우기」에 대한 김영삼대통령의 의지가 그대로 반영됐다고도 할 수 있다. 검찰은 이날 정의원 등에 대한 구속영장에서도 드러났듯이 군권을 장악한 12·12사건과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이후의 과정을 「하나의 사건」으로 연결시키지는 않았다.그러나 5·17 이후의 일련의 집권 시나리오가 80년 5월12일 신군부세력이 마련한 「시국수습방안」에 따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집권시나리오의 창출에서부터 내란이 완성되는 81년 1월24일 비상계엄해제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허삼수 당시 보안사 인사처장과 허화평보안사령관비서실장을 구속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정호용 당시 특전사령관에게 내란목적살인 혐의가 적용된 것은 전두환·황영시·이희성·주영복씨 등과 함께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시위대에게 발포토록 하는 등 유혈진압을 진두지휘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정씨에게는 따라서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 적용됐다. 검찰은 5·18 사건을 엄하게 단죄하면서도 사건수사가 몰고올 지도 모를 정치·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처벌대상을 일단 13명으로 압축한 것도 이 때문이다.광주에 투입된 일선부대 지휘관들을 명령에 따라 작전을 수행한 「생명이 있는 도구」로 규정,무혐의 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지난해 7월 5·18 사건의 관련자들에게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점을 고려할 때 검찰의 재수사 자체가 스스로 명예를 훼손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수사 과정에서 신군부측의 집권시나리오와 발포를 용인하는 자위권 발동 사실 등을 새롭게 밝혀내는 등 오히려 검찰에 대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시키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검찰은 앞으로 5·18사건 피고인들이 5·18특별법 등에 대해 계속 위헌공세를 벌일 것으로 보고 법리 대응에도 주력한다는 방침이다.검찰은 이를 위해 이 사건에 대한 사법처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특별수사본부를 존치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5·18특별법 등의 위헌여부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빨라야 다음달 말쯤에야 내려질 전망인데다 전두환전대통령이 단식 후유증으로 빠른 시일안에 법정에 출두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여서 이 사건에 대한 본격재판은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 「5·18」 3의원 구속영장 요지

    ▷정호용◁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허삼수·허화평·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 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 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에서 시민들의 민주화 요구시위가 발생하자 피의자 등의 정국장악에 상당한 장애요소로 판단,언론보도를 통제하면서 공수부대를 광주로 투입,강력히 진압하고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계엄군으로 하여금 광주 외곽을 봉쇄하고 자위권발동이라는 명목으로 실탄을 분배해 발포케 하고 광주 재진입작전인 상무 충정작전을 실시해 광주 시민인 이정연 등을 살해했음.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 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하고,광주 시민들을 살해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허삼수·허화평◁ 피의자는 전두환·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주영복·이희성·이학봉 등과 순차 공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국회를 해산해 계엄해제 요구권 행사를 봉쇄한 상태에서 입법·사법·행정을 통제하는 초헌법적 비상기구를 설치,국정을 장악해 집권하고 나아가 그 기반을 공고히 할 목적으로 80년 5월 초 전두환 등과 함께 「시국수습방안」을 수립한 다음 5월17일 하오 9시42분쯤 무장병력이 배치된 가운데 비상국무회의에서 계엄법상의 요건에 위배해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의결시켜 이날 자정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했음. 5월17일 하오 11시쯤 사회혼란 조성 및 학생·노동계 소요의 배후조종 혐의로 김대중 등을,권력형 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혐의로 김종필 등을 각각 체포하고 18일 무장병력으로 하여금 국회의사당을 점거,8월30일까지 국회의원 등의 출입을 통제하게 해 헌법기관인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음. 5월27일 국보위를 발족시켜 31일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으로 취임한 다음,공직자 숙정,언론통폐합,언론인 해직 등 각종 정책을 수립·시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사실상 국무회의 내지 행정 각부를 통제하거나 그 기능을 대신해 헌법기관인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시킴으로써 그 권능행사를 불능케하고 7월 중순 국보위 법사분과위원들을 동원해 개헌안 시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전두환·노태우·이학봉 등과 함께 간선제 대통령 선출안 등을 결정하고 피의자 등이 운영하는 국보위 상임위원회가 국정을 장악하고 대통령과 행정 각부를 무력화시킴으로써 대통령으로서의 권한 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8월16일 하야하자 18일 서울과 제주를 필두로 잇달아 열린 통일주체국민회의의 대의원 안보보고회의에서 새 대통령 후보로 전두환장군을 추대토록 하는 한편 8월21일 전군 주요지휘관 회의에서도 전두환을 국가원수로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8월27일 전두환이 제 11대 대통령으로 당선돼 9월1일 취임했음. 집권에 이르는 과정에서 취한 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거나 완결하고 언론을 순화시키며 신당을 창당해 정계를 개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계엄상황을 계속 유지하면서 9월 20일 피의자 등의 의견이 반영된 제 5공화국 헌법개정안을 마련,29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고,10월22일 국민투표로확정된 헌법개정안을 27일 공포하고,제10대 국회를 해산시키면서 국가보위 입법회의로 하여금 81년 4월10일까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게 하고 80년 6월20일부터 신당 창당을 추진하여 특정 정치인들의 정치활동을 규제하는 한편 정보·수사기관 관계자들의 주도하에 민주정의당을 창당했음. 계엄하에서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돼 81년 1월23일 대법원의 상고기각으로 김대중의 사형이 확정되자 동일 무기징역으로 감형하고 그 다음날인 24일 자정을 기해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등으로 피의자는 중요임무 종사자로서 헌법에 의해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하는 등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내란함과 동시에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음.
  • 아랍연맹 18개국 군용어·복장 통일/「평화군」 창설 진척될듯

    『앞으로 사단은 플러툰이라는 용어 대신 디비전으로만 쓰자』 『독수리나 왕관 등 나라마다 다른 지휘관 견장과 계급장을 똑 같이 통일하자』 아랍연맹 소속 22개국 가운데 18개국이 최근 12일간의 일정으로 열린 군사용어 및 복장 등의 통일에 관한 제11차회의에서 사상 처음으로 일부 군사용어의 통일을 이뤄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는 아랍권 국가들이 탈냉전시대를 맞아 추진하는 아랍연맹의 일체화 노력이 나름대로 의미있는 진전을 이뤄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앞으로 군사용어가 모두 통일되면 아랍군사지도자들은 다른 나라의 군대들을 손쉽게 지휘할 수 있을 것이며 장기적으로는 아랍평화군 창설도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북 전술기 전방배치 강경파 득세… 군동향 예측불허”

    ◎김홍래총장,대비태세 만전 강조 김홍래공군참모총장은 27일 상오 공군작전사령부에서 작전사령부 예하 지휘관 회의를 열고 북한 및 주변국 정세분석과 함께 올해 주요 업무계획 등을 논의했다. 김총장은 이날 『북한은 체제불안,심각한 식량난,국제적 고립 등으로 한계에 다다른 상태며 군부내 강경파의 득세와 함께 전술기 전방배치 등 예측불허의 군사동향을 보이고 있다』면서 『우리 공군은 완벽한 영공방위임무 완수를 위한 대비태세 유지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95년 공군 최우수조종사로 지난해 국군의 날 기념행사 축하비행에서 선도기 편대장을 맡았던 하성용소령(35·공사 32기)을 선발,시상했다.
  • 국방자원 관리 만전/이국방 지휘서신

    이양호국방부장관은 27일 전 군의 여단장급 이상 지휘관 및 참모들에게 장관지휘서신 제9호를 하달,전 부대는 효율적인 국방자원관리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장관은 지휘서신을 통해 『우리의 국방현실은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위협에 대처해야 함과 동시에 미래 안보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는 전력구조를 갖춰 나가야 할 이중적 부담을 안고 있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국방예산의 안정적 확보가 어려운 만큼 우리 군 스스로 국방자원관리의 효율화를 통한 전력창출 극대화를 도모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효율적인 국방자원관리를 위해 국방부가 추진하고 있는 통합군수정보체계 구축,군수 회전기금제 도입 및 자원관리 정보체계 구축 등에 적극 참여하라고 덧붙였다.
  • 정치범 11개 수용소에 20만명 복역/북한 탈출 3인 일문일답

    ◎“96년안에 무력통일 된다”… 군사훈련 강화/작년 10월 노란부대 쌀 배급… “남한산” 수군 ­귀순동기는. ▲이순옥=나는 함북 온성군 상업관리소 간부물자공급소 책임자였고 남편 최정학(56)은 온성남자고등중학교 교장이었다.85년 10월쯤 옷감구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온뒤 온성군 안전부장 김병준이 아들 혼수용 양복을 상납하라고 요구,불응하자 「국가재산 탐오죄」라는 누명을 씌워 13년형을 받고 평남 개천교화소에 수감됐다.6년간 갖은 고초를 겪다 출소한 뒤 충성으로 섬겨온 중앙당에 억울함을 호소했더니 오히려 재수감하겠다고 협박하고 남편과 김일성종합대학에 다니던 아들마저 모두 쫓겨나 그 동안의 믿음이 사라져 죽더라도 외아들인 동철이만은 자유롭고 보람된 곳에서 살게 하고 싶어 탈출을 결심했다. ▲최동철=평소 전자공학에 관심이 많아 몰래 들은 남한방송을 통해 경제가 발전되고 자유로운 남한사회를 동경하게 됐으며 김일성대학의 학생들 수준이 너무 형편없어 실망을 하고 있던중 어머니의 누명으로 강제 퇴학당했다. ­아편 재배실태는. ▲최동철=91년부터 담배농장의 부업토지의 아편재배 현장에서 근무했다.북한은 「도라지(양귀비)를 심어 생활필수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전국적으로 아편농장을 운영,외화벌이에 나섰다.안전원들의 철저한 감시속에 대규모로 재배되며 주로 홍콩·일본 등지에 밀반출되거나 중국교포들과 생필품을 직접 바꾸는 밀매가 성행하고 있다고 들었으며 재배중인 아편을 몰래 뜯어 당간부에게 뇌물로 바치거나 몇몇이 모여 몰래 피우기도 한다.최근에는 중독자도 크게 늘었다고 들었다. ­당간부의 부패실태는 어떤가. ▲이순옥·최동철=어려운 식량사정에도 불구하고 당간부는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어 최근 빈부차가 더욱 극심해 졌다.고위간부인 1호간부는 한달에 육류4㎏·기름 3㎏·담배 30갑이 지급된다. 몰수당한 우리재산이 중앙당에 귀속되지 않고 컬러TV는 형을 내린 재판장이,냉장고는 검사가,자전거는 도안전원이,외투는 감찰간부가 중간에서 차지한 것에서 부패의 실상을 알았다.「당일꾼은 당당하게먹고,안전원은 안전하게 먹고,보위원은 보이지 않게 먹는다」는 말이 널리 퍼져 있다. ­정치범 수용소에 있는 정치범의 숫자 등 실태는. ▲최동철=함남·북지역에만 11개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한 관리소에 2만여명이 수용된 것으로 미루어 20여만명이 있는 것 같았다. ­북한 교도소내의 인권실태는. ▲이순옥=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이다.개천 여자교화소의 경우,수용능력은 6백명정도이나 80년대 중반이후 사회범죄가 크게 늘어나 1천8백∼2천여명까지 수용하고 있었다.나는 수용소에서의 고문으로 이 4개가 부러졌고 수용생활 중 입이 돌아가고 허리와 다리 통증이 심해 거동도 할 수 없었으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북한군의 갱도적응훈련이란. ▲최광혁=지난해 12월 두차례 실시했다.많은 용도의 갱도 가운데 남한으로 통하는 것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1개 군단의 2개 연대가 합동으로 갱도공사를 하는 것을 보았고 전쟁준비와 관련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핵·화학무기를 직접 본 적이 있는가. ▲최광혁=핵무기를 직접 본적은 없지만 남한에 핵무기가 많으니 우리도 핵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특히 간부들은 지구를 깨뜨릴 수 있는 무기가 있으니 신심을 가지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북한의 식량난은. ▲최광혁=지난해 10·11월 평소와는 달리 노란부대의 쌀이 1차분 들어와 남한쌀이란 수군거림이 있었다.휴가를 가도 직접 얼굴을 보이기 전에는 배급을 주지 않는다.이대로 가면 곧 폭동 등 변화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북한군의 사기,특히 김정일 체제이후의 상황은. ▲최광혁=최근 식량난과 보급품부족으로 하사관들의 사기가 낮다.하루 식량배급량이 8백g이지만 수송도중 간부들의 편취로 6백50g정도밖에 안되고 부식도 시래기국·미역국·염장무 3쪽정도가 고작이다. 지휘관들은 『96년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이제는 무력통일이다』라며 훈련을 강화하고 작년 11월에는 『조국통일 시기가 다가오고 있으니 무기관리를 잘하라』는 말도 들었다. ­김일성 종합대학의 입학자격과 생활상은. ▲최동철=출신성분이 좋은 중앙당 간부의 자식들은 공부를 잘 못해도 입학하고 학교생활에 별 문제가 없다.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의 실력은 너무 낮다.27살에 입학하는 제대군인의 경우 수학과 영어 기초가 모자라 예비반을 만들어 가르친다.정치사상에 대한 교육이 많고 모내기와 건설사업,행사에 동원되는 일이 너무 많아 전공을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다. ◎이순옥씨,북 교화소 실상 폭로/“신생아 태어나면 즉시 살해·암장”/우는 여죄수는 7일간 독방에 수감/물고문에 화로 고문… 억지 자백 강요/수형자 거의 영양실조… 흙까지 먹어 25일 귀순자 3인의 기자회견에서 북한의 정치범과 일반죄수들은 인간 이하의 처참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순옥씨는 우리로 치면 구치소인 함북 청진 농포집결소와 교도소인 평남 개천 사회안전부 제1교화소에서 자신이 6년 2개월동안 겪은 참상을 폭로했다. 이씨는 지난 86년 10월 농포집결소에 수감돼 1년여동안 지내면서 벽돌을 굽는 뜨거운 노속에 갇혀 극심한 호흡곤란 속에 화상을 입는 등 악랄한 고문을 받았다. 또 ▲담요를 온 몸에 씌우고 집단구타한 뒤 실신하면 짐승처럼 질질 끌고가서 물을 뿌리는 고문 ▲형틀 의자에 묶어놓고 채찍을 휘두르는 고문 ▲감옥 창살에 양손·발을 묶고 고무호스로 손가락을 때리며 발로 차고 몽둥이로 구타하는 고문이 되풀이됐다. 그래도 말을 안듣자 주전자로 물을 강제로 먹인 뒤 실신하면 배위에 판자를 올려놓고 밟아서 먹은 물을 토하게 하고 의식이 회복되면 재차 반복하기도 했다. 3백㎏짜리 벽돌을 4명이 들것으로 나르게 시키고 제대로 못 움직이면 무차별 구타하거나 잠을 안재우며 공포·억압적 분위기에서 억지 자백을 강요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 혹한에 알몸으로 1∼2시간 무릎을 꿇도록 해 동상에 걸렸고 남자들 앞에서 알몸이 된 채 채찍질을 당할 때는 여자로서의 수치심 때문에 차라리 죽고싶었다고도 말했다. 하루 3백g의 소금국으로 연명하거나 「감식처분」이라는 명목으로 2∼3일 동안 굶기는 일도 흔했다. 87년 11월 개천교화소로 옮겨져 겪은 일은 더 참혹했다. 이 교화소에서는 임신 7∼8개월이 된 여죄수는 위생원이 주사를 놓아 사산시키고 아이가 살아 태어나면 목졸라 죽이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시체는 인근 야산에 암매장됐으며 이 과정에서 임산부가 울면 「당에 대한 반감」이라며 7일동안 독방에 수감됐다. 생활고가 가중되면서 특히 가정주부 수감자들이 급격히 늘어 20명을 수용하는 한 감방에 70∼80명씩 수용돼 겨울에는 한 이불을 10여명씩 덮고 「다른 사람의 발을 안고」 자야 했다.작업복 한 벌,죄수복 한 벌로 10년정도를 버텨야해 옷감이 절어 살이 베어질 정도였다. 작업에 필요하거나 질문에 대답하는 것 말고는 말을 할 수 없고 화장실 용무도 단체로 감시하에 봐야했다. 이러한 참혹함 때문에 대부분 척추뼈가 굽어 곱사등이가 되고 다리가 「문어처럼」 휘어지는 등 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일부 수용자는 극심한 영양실조 때문에 외부작업을 할 때는 진흙을 파먹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북한에서는 수용소를 「땅위의 지옥」이라고 부른다』고 전하고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살아나왔는지 모르겠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 1군 사령부 주최 「지휘통솔 대토론회」

    ◎“신세대 장병 권위주의론 통솔 안된다”/지휘관 실무 능력 향상·대화로 신뢰 심어야/획일적 통솔·단체 기합은 반발심만 일으켜 상관의 명령과 지시에 무조건 복종하기 보다는 합리성 여부를 따지는 신세대 장병들을 효과적으로 통솔하려면 지휘관들이 이들보다 우월한 전술적인 실무지식과 강인한 체력을 갖추고 신뢰관계를 쌓아야 할 것으로 지적됐다. 이는 25일 강원도 고성군 알프스리조트에서 1군사령부(사령관 오영우대장·육사 20기) 주최로 열린 「지휘통솔 대토론회」에서 모아진 견해다. 다음은 정종철대령(육군대학)의 주제발표 내용 요지. ▲신세대들은 고학력자가 많고 오히려 소대장을 능가하는 병사들이 많다.병사 개인은 물론 부대별 독립성이나 자율성이 요구되고 있는 시점에서 소대장이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지휘관으로서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직책이나 계급을 이용한 권위주의적 지휘통솔보다는 부대실무에 대한 구체적인 교육과 전술진지,시설,지형답사에 이르기까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군에서 하의상달이 어려운것은 지휘관과 부하간의 인간적인 관계,특히 의사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판단능력과 주체성이 강한 신세대의 자존심을 꺾지 않는 의사소통을 통해 지휘관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줘야 한다. 자기중심적이고 차별성을 중시하는 신세대 의식성향을 고려할 때 획일적인 업무부여나 단체기합은 반발심만 일으킨다.획일적인 통제를 지양하고 가능한 다양성을 인정하는 지휘가 이뤄져야 한다. 또 부대의 업무나 훈련 등에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임무를 부여할 때 목적·방침·진행요령·결과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고 임무의 결과나 의견에 대해서도 가급적 인정하고 칭찬해주어야 한다. 신세대 사병들은 행군을 가장 힘들어 하며 진지공사와 같은 작업때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르는 등 작업효율이 떨어지며 개인·집단간 경쟁의식이나 의지가 부족한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소대장의 경우 자신의 업무를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기보다는 지시된 사항에 대해서만 반응하고 부대임무달성에 대한 사명감보다는 병사들에게 인기영합 위주의 지휘를 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 80년 「신군부」와 맞섰던 사람들

    ◎신현확전총리­군 동원 시위진압 반대/유병현전합참의장­국보위설치 이의 제기/정웅사단장­시위 정치적수습 건의 5·18사건 전후 군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정국을 장악하려던 신군부에 맞서 나름대로 소신을 펴며 군인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23일 검찰의 5·17,5·18사건 공소장속에 등장하고 있다. 신군부측은 이른바 집권시나리오인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80년 5월17일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개최,비상계엄전국확대·국회해산·국가보위비상대책위라는 비상기구 설치 등의 안건을 처리할 계획을 세웠다. 유병현합동참모의장은 이 회의가 열리기 전 주영복국방부장관으로부터 회의 안건을 듣고 『비상기구설치와 국회해산을 군지휘관회의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면서 자신의 입장을 표명,안건을 일단 보류토록 했다. 안종훈육군군수사령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진행되는 가운데 학원 소요의 과열·폭력화와 심상찮은 북한의 동향으로 계엄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사가 개진되자 『계엄확대조치는 국민의 합의에 의해 해야 하는데 시기상조』라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결국 이 회의에서 정호용특전사령관과 노태우수경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 신군부측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비상계엄 전국확대는 참석자의 서명을 통해 결의됐다. 신군부에 대한 반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진압하러 나섰던 계엄군 지휘관 가운데도 나타났다. 김기석전교사부사령관은 5월21일 하오4시쯤 황영시육군참모차장으로부터 무장헬기와 전차를 동원,시위대를 조속히 진압할 것을 명령받았으나 거절했다.계엄하에서 상관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정웅31사단장은 5월21일 전투병과교육사령부를 통해 「시위대의 주장 내용이 정치적인 것이기 때문에 물리적인 수습보다는 정치적인 수습이 최선」이라는 사태 수습방안을 이희성계엄사령관과 정호용특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 등에게 냈다. 이밖에 공소장에는 대학생들의 시위진압을 위해 군병력 동원하자는 신군부측의 의견에 『유혈사태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며 반대하는 신현확국무총리 등 일부 국무위원들,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에서 김재규피고인 등에게 내란목적살인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소수의견을 밝힌 양병호대법원판사 등이 기재돼 있다.
  • 5·18 추가 기소(사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을 포함한 「5·18」핵심관련자 8명을 내란혐의로 기소함으로써 실체적 진실규명을 위한 사법적인 검증이 법원으로 넘어갔다.특히 전씨등 4명에 대해 광주유혈사태의 총기발포명령등 강경진압을 주도한 책임을 물어 내란목적 살인혐의까지 추가적용한 것에서 검찰 재수사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당초 검찰이 불기소처분했던 「5·18」사건이 노씨의 비자금사건으로 불거져 나온 것을 계기로 김영삼대통령의 결단을 얻은 특별법제정에 따라 기소되었음은 의미있는 일이다.잘못된 과거에 대한 청산 없이는 역사를 바로세우기 어렵다는 김대통령의 판단에 따라 재수사 50일만에 16년전 국권찬탈음모가 속속 드러나고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음은 다행한 일이다. 이 사건의 기소는 무엇보다 법정에서 광주민주화운동과 일련의 국권찬탈 행위에 대한 실체가 규명되고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이 법적으로 인정되는 첫걸음이라는 데 그 의미가 있다.또 법과 정의가 살아 있음으로써 다시는 그같은 비극이 되풀이되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이는 일그러졌던 역사를 바로잡는 당연한 절차라고 하겠다. 검찰이 비록 최초의 발포책임자를 밝혀내지 못해 현지에 투입됐던 지휘관들을 무혐의처리키로 한 것은 내란죄로 처벌할 만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하지만 전씨등 4명에 대해서 살인죄를 적용한 것은 자위권을 발동하도록 지시하고 실탄을 지급한 만큼 실질적인 발포책임자라는 의미로 이해돼 이에 대한 판결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제 「5·18」에 대한 법률적인 판단은 비록 법원으로 넘어갔지만 검찰은 최종사법처리를 위한 과제를 안고 있다.특별법에 대한 헌법소원으로 「12·12」관련자들에 대한 기소가 연기된 상태여서 두 사건이 국권찬탈을 위한 다단계쿠데타임을 구체적으로 입증해야 한다.검찰은 앞으로 보강수사를 통해 두 사건의 연계성을 밝혀냄으로써 실체에 입각한 엄정한 판결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검찰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공소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당부한다.
  • 전두환 이희성 황영시 주영복 정호용「5·18」발포명령 책임자확인

    ◎“사상자 발생해도 조기진압” 결의/군자위권 행사요건 전혀 안지켜/검찰발표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군의 일선부대 지휘관들은 당시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위권 행사를 천명하자 이를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12·12 및 5·18특별수사본부는 23일 수사발표를 통해 『발표명령자를 명시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80년 5월21일 하오 7시30분 이희성계엄사령관이 방송을 통해 자위권 행사를 지시한 것이 발포명령으로 인정된다』고 밝혔다. 자위권 사수 천명 시점부터 광주에 진주한 계엄군에 일제히 공문이 하달됐으며 일선 지휘관들은 이를 발포명령으로 인식하고 발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당시 대대장 등 일선지휘관들의 소환조사에서 밝혀냈다는 것이다. 결국 자위권발동을 지시한 당시 신군부 수뇌부에게 발포명령의 책임이 있다는 설명이다. 이같은 결론에 따라 검찰이 지목한 발포책임자는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이희성 계엄사령관·황영시 육군참모차장·주영복 국방장관·정호용 특전사령관 등 5명. 검찰에 따르면 전두환·황영시·이희성·주영복·정호용씨 등은 5월21일 상오 광주사태가 격화되자 일련의 회의를 갖고 광주사태에 대한 강경진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광주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계엄군에게 자위권 발동이라는 명목으로 발포하게 해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조속히 진압할 것을 결의했다는 것이다. 이어 황영시육참차장은 이구호 기갑학교장에게 전차1개 대대 동원을 지시한 뒤 김기석 전교사 부사령관에게 무장헬기 및 전차를 동원할 것을 지시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 이계엄사령관과 주국방장관은 이날 하오4시35분 국방부장관실에서 만나 자위권 발동을 결정하고 이 계엄사령관이 하오 5시30분 육군본부 기밀실에서 합수부가 마련한 자위권 보유를 천명하는 경고문을 TV를 통해 발표했다. 이 때부터 책임자들에게 내란목적 살인죄가 적용된다는 것이 수사본부의 설명이다. 당시에는 3회 이상 경고,위협사격,부득이 한 경우 생명의 지장이 없는 하퇴부 사격 등 통상적인 군의 자위권 행사요건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지킬 의도도 없었다고 수사본부는 밝혔다.즉 자위권 행사가 살인을 목적으로 한 발포명령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자위권 발동은 책임자 4인이 소준렬 당시 전교사령관과 정호용 특전사령관을 거쳐 각 공수여단 등 계엄군 지휘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드러났다. 한편 21일 발포명령에 앞서 정특전사령관은 19일쯤부터 광주 전교사 2층 감찰참모실 등에 전용상황실을 마련,수시로 공수여단장들의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전씨 등과 진압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씨는 이 대책논의에서 공수단 지휘부의 건의로 5월22일 시위진압에 소극적인 윤흥정 전교사 사령관을 소준렬 육군종합행정학교장으로 교체토록했다는 것이다. 또 전씨는 23일 하오 정특전사령관을 통해 소신임사령관에게 사태의 조기수습을 당부하는 친필메모를 보냈으며 정사령관은 25일 소사령관에게 공수여단의 공격계획을 전달했다.
  • “전씨 등 4명 내란목적살인죄” 검찰

    ◎「5·18」 핵심 노씨포함 8명 기소/“자위권행사 지시”는 발포명령 간주/광주 일설 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3일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정에서의 발포명령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희성계엄사령관·황영시육군참모차장·주영복국방부장관·정호용특전사령관 등 5명에 의해 사실상 하달된 것으로 밝혀냈다. 검찰은 이날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5·18사건 관련자 8명을 기소하면서 수사결과를 발표,이에 따라 국회가 개회중이라 이번 기소대상에서는 빠진 정호용의원(무소속)을 제외한 나머지 4명에게 내란목적 살인죄가 추가적용됐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들 5명은 80년 5월21일 일련의 회의를 통해 광주 시위대를 무장폭도로 규정하고 사상자가 생기더라도 조속히 진압하기로 결의,이날 하오 7시30분 방송을 통해 이희성계엄사령관이 자위권 행사를 지시했고 이는 일선 지휘관들에게 발포명령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계엄군들은 전씨 등의지시에 따라 정권찬탈의 의도를 모르는 상태에서 광주에 투입,「생명이 있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지적,따라서 계엄군의 일선지휘관들은 무혐의 처리키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이어 5·18 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집권시나리오인 이른바 「시국수습방안」에 따라 비상계엄 전국확대,광주민주화운동 과잉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회의와 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 등을 통해 정권을 찬탈한 내란이었으며 이에 따라 이 사건의 공소시효 기산점은 5·17 비상계엄이 해제된 81년 1월24일로 잡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전씨 등 신군부측은 최규하전대통령의 반대에도 불구,국보위를 설치해 내각을 무력화시켰으며 결국 입법·행정·사법권을 총괄하는 국가보위입법회의를 발족,헌법기관의 기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날 추가기소된 전·노씨를 비롯,황영시씨,유학성 당시 3군사령관,이학봉보안사대공처장 등 5명을 구속기소하고 이희성씨,주영복씨,차규헌 당시 육군사관학교장 등 3명을 불구속기소했다. 이들에게는 내란수괴·내란모의참여·내란목적살인·반란수괴·불법진퇴·지휘관계엄군지역수소이탈 등 9가지 혐의가 2∼5가지씩 적용됐다. 검찰은 이번 임시국회가 끝나는 대로 정호용·허화평·허삼수·박준병의원 등 4명도 사법처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날 발표에서 『광주진압군의 지휘체계가 뚜렷하게 이원화된 것은 아니지만 전두환·정호용씨가 정식 지휘체계에 뛰어든 것은 사실』이라며 지휘체계가 일원화됐다는 전씨측의 주장을 일축했다. 또 전씨 등은 80년 5월17일 임시국무회의가 열린 중앙청 안팎에 무장병력을 배치,위압적인 분위기속에 비상계엄확대를 결의토록 한 사실 등이 확인돼 군사반란죄가 추가됐다고 밝혔다. 전씨는 특히 80년 7월 권한행사에 한계를 느낀 최규하전대통령이 사임을 결심하자 8월10일 노태우씨를 만나 대통령에 취임하는 문제를 논의한 뒤 각 지역 보안부대장들에게 지시,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이 자신을 지지토록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80년 언론통폐합 조치도 전씨 집권계획의 일환으로 자행된 내란의 주요과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덧붙였다.
  • 전씨 등 내란죄 기소­수사검사 문답

    ◎“「자위권」 선언직후 진압군에 실탄 지급”/“황영시씨 「탱크진압·헬기 위협사격」 지시/전씨 등 내란상황 계엄해제날까지 지속” 23일 5·17 및 5·18사건 관련자들을 기소한 서울지검 특별수사본부의 김상희부장검사는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수사경위와 성과 등에 대해 설명했다. ­전두환씨 등 4명에 대해 내란목적살인을 적용한 것은 이들이 광주에서 발포명령을 내렸음을 스스로 인정했기 때문인가. ▲이들이 치밀한 사전계획에 따라 발포명령을 내렸다고는 볼 수 없다.그 누구도 발포명령을 명시적으로 한 사람은 없다.그러나 이희성계엄사령관이 TV연설을 통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다』고 한 뒤 곧바로 계엄군에게 실탄을 지급했다.이와 함께 시위대에 대한 3회이상 경고,사전 위협사격실시,생명보호를 위한 하반신 조준 등 자위권행사요건의 준수여부에 대해 누구도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는 내란목적살인의 「미필적 발동」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명백한 지휘체계 이원화가 이루어졌다고 보긴 어려운데. ▲이원화여부를 한마디로 말하면 「없다」고 해야한다.이계엄사령관으로부터 광주지역 정웅30사단장 등에 이르는 정식 라인에 전·정호용씨 등이 중간에서 끼어들었기 때문에 사실상의 이원화는 있었지만 뚜렷한 이원화 체계는 없었다. ­불법진퇴,지휘관 계엄지역수소이탈 등의 혐의는 전·노태우씨에게만 적용됐는데. ▲이들의 혐의는 국무회의 병력동원과 김영삼씨 가택연금 등 두가지 범죄사실에서 발견했다.다른 사람들도 이같은 혐의는 인정되나 대통령재임기간동안 공소시효가 정지되기 때문에 전·노씨에게만 적용했다. ­내란목적살인에 황영시씨가 포함된 이유는. ▲당시 참모차장으로서 내란을 목적으로 한 시국수습방안 논의에 참여했으며 탱크진압을 지시했고 헬기기총위협사격을 전교사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하는 등 광주 강경진압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명령을 받고 실제 발포를 했던 군인들은. ▲계엄군은 명령을 받아 진압에 나섰던 생명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따라서 계엄군 전체를 공범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또 단순살인은 공소시효도 지났다. ­구속과 불구속의 차이는 무엇인가. ▲주도적 역할 및 적극적인 행동 여부 등이 판단의 기준이 됐는데 차규헌씨 등 불구속자들은 관여정도가 다른 피고인들보다 떨어진다고 판단했고 이희성씨는 고령이 감안됐다.이외에 개전의 정과 범행후 정상 등이 참작됐다. ­전씨가 80년 9월 대통령에 취임해 사실상 내란의 목적을 완성했으면 이 때가 공소시효 출발점이 되는 것 아닌가. ▲전씨 등은 대통령 취임후에도 자신들의 위치에 대해 크게 불안을 느끼고 계엄을 해제했을 경우의 위험에 대해 꾸준한 논의를 벌여왔다.따라서 계엄을 다음해 1월에서야 해제한 것이므로 이때까지는 내란상황이 계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번 수사때와 비교해 이번에 새로 드러난 사실은 무엇인가. ▲비상계엄해제시점까지가 신군부 폭동의 종료시점이라고 봤으므로 지난번 소홀했던 부분을 많이 보완할 수 있었다.초법적 비상기구를 설치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국보위설치령」을 발동한 것을 비롯해 국무회의장에 병력을 배치하고 전화선을 끊어버려 분위기를 조성한 사실등이 새로 밝혀졌다.또 K공작과 시국수습방안은 물론,언론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등의 실체도 이번에 드러났다. ­광주현지조사의 성과는. ▲수사가 다 끝나지 않아 말하기는 어렵다. □「12·12」 「5·18」 재수사 일지 ▲95년 11월24일=김영삼대통령,5·18특별법 제정 및 관련자 의법처리 지시. ▲11월29일=정동년씨 등 고소·고발인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취하서 제출. ▲11월30일=검찰,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발족. ▲12월1일=검찰 전두환씨 출두통보. ▲12월2일=전씨,대국민성명 발표직후 합천행.전씨에 대한 군형법상 반란수괴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 발부. ▲12월3일=전씨 안양교도소에 전격구속수감,1차 방문조사. ▲12월5일=유학성국방부 군수차관보 소환. ▲12월7일=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9일=허삼수보안사인사처장 등 소환. ▲12월10일=권정달보안사정보처장,황영시1군단장,정도영보안사보안처장,허화평보안사비서실장 등 소환. ▲12월12일=최규하전대통령 1차 방문조사 시도.장세동수경사30경비단장,정승화육참총장 등 소환. ▲12월16일=신현확국무총리,김진기육본헌병감 소환. ▲12월17일=장태완수경사령관 등 소환. ▲12월20일=전씨 경찰병원에 이감. ▲12월21일=전·노씨 반란수괴 등 혐의로 구속기소. ▲12월27일=광주현장조사단 구성. ▲12월28일=검찰,사공일·이상연·안무혁씨 등 39명 출국금지. ▲96년 1월9일=정호용특전사령관,소준렬전남북계엄분소장 소환. ▲1월10일=허문도중앙정보부비서실장,유학성국방부군수차관보,주영복국방장관,박영수통일주체국민회의사무총장 소환. ▲1월17일=장세동·황영시·최세창·유학성·이학봉씨 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구속영장청구.전씨측,서울지법에 위헌제청신청. ▲1월18일=서울지법(당직판사 김문관) 전씨측 위헌제청 인용,장세동·최세창씨 영장기각. 황영시·유학성·이학봉씨 영장발부. 전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1월22일=노씨측,5·18 재수사 헌법소원. 헌재,「5·18특별법 위헌심판사건 및 5·18 재수사 헌법소원」 심리착수.
  • 5·18관련자 내란 확인/특수부/전·노씨 등 공소장 작성

    12·12 및 5·18수사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21일 전두환전대통령 등 5·18 관련,구속 및 불구속 기소자들에 대한 공소장 작성작업을 벌였다. 검찰은 오는 23일 서울지법 형사합의 30부에 제출할 공소장을 통해 5·18사건은 전씨 등 신군부측이 80년 5월4일 시국수습방안이라는 집권시나리오를 미리 작성,이를 근거로 치밀하게 이루어진 내란이라고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광주현장조사의 보고서를 검토한 결과,주남마을에서 계엄군에 의해 학살된 양민들이 더 있다는 광주현지 목격자 등의 주장는 달리 당시 의무기록과 암매장장소 발굴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학살된 양민 등의 사망자 수를 공소장에 추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시국수습방안에 따른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확대를 결의하는 배경,위압적인 분위기에서 임시국무회의가 열리는 과정,정권기반을 다지기 위한 언론통폐합 실행 등을 구체적으로 공소장에 담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와 함께 광주현지에서 투입된 계엄군이 정식 명령계통과는 달리 별도로 신군부측에 의해 지휘되는 등 지휘체계가 이원화되었다는 사실도 포함시켰다. 검찰은 전씨등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등을 낸 것과 관련,검찰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조만간 헌재에 검찰의 의견서를 보내기로 했다.
  • 광주진압 연대장이하 지휘관 사법처리 제외방침/검찰,현장조사 마쳐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19일 5·18사건의 실체규명을 위해 지난해 12월27일부터 시작된 광주 현장조사가 마무리됨에 따라 20일중 광주지검으로부터 관련기록을 넘겨받아 정밀검토작업을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그러나 당시 광주시위진압에 참여,검찰에 피소된 연대장급 이하 현장 지휘장교들은 형법상 내란죄를 적용하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법처리대상에서 제외키로 했다. 검찰관계자는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한 시민의 암매장여부에 대해서는 관련자들의 증언이 신빙성이 떨어지는 등 장소확정 등에 문제가 있어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며 『그러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면 수사발표 이후라도 발굴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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