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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폐공사 파업유도 청문회-초점 중계

    31일 국회의 조폐공사 파업유도청문회에서는 김태정(金泰政) 당시 검찰총장의 개입 의혹과 책임론이 도마에 올랐다.여야 의원들은 ‘숨은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김 전 총장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으나 김 전 총장은 사전 보고설이나 개입 의혹 등을 조목조목 반박했다.그러면서 “재판결과가 진실을 밝힐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전 총장의 증언으로 당시 진형구(秦炯九)대검공안부장,강희복(姜熙復)조폐공사사장에 이어 ‘핵심 3인방’의 증인신문이 일단락됐지만 청문회는 당초 검찰 수사결과에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이날 신문은 지난해 10월13일 김 전 총장이 진 전 부장에게서 조폐공사건(件)으로 ‘특별한’ 보고를 받았느냐에서부터 논란이 일었다.파업유도사건이 김 전 총장 등 검찰의 조직적 개입으로 일어났다는 가설과 직결된 대목이다. 국민회의 조성준(趙誠俊)·천정배(千正培)의원 등은 “당시 언론보도에 따르면 ‘진 전 부장이 조폐공사 파업유도 관련 보고를 했을 때 김 전 총장이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잘 알아 듣지 못했다’고 돼 있다”며 김 전총장이 사전보고를 받았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에 김 전 총장은 “검찰총장이 아무리 엉터리라도 범죄모의를 보고받고가만 있었겠느냐”고 되물었다.김 전 총장은 특히 “공기업구조조정의 첫 단추로서 조폐공사사태를 ‘합법 보장,불법 필벌(必罰)’이라는 파업대처원칙에 따라 잘 풀어나가야 한다는 소신을 그대로 옮겼을 뿐”이라며 파업유도연루설에 쐐기를 박았다. 김 전 총장의 책임론도 제기됐다.한나라당 안상수(安商守)의원은 “참모(진 전 부장)만 알고 지휘관(김 전 총장)이 모르는 사건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같은당 서훈(徐勳)의원은 “김 전 총장은 진 전 부장의 업무방해죄,직권남용죄,제3자개입금지 위반의 공동정범”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김 전 총장은 “진 전 부장이 죄를 지었다고 상급자인 총장이 당연히 죄가 있다고 하는 것은 연좌제 발상”이라는 논리로 공세를 피했다.김 전 총장은 당시 공안대책협의회의 월권 의혹에도 “정책집행 과정에서 관련 부처간 중지를 모아야 한다는 것이 소신”이라며 “의견 조율과 협의 기능에 그쳤다”고 해명했다. 박찬구기자 ckpark@
  • 6대분야 고질부패 집중 척결

    정부와 여당은 17일 부패방지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건축,건설,세무,경찰,환경,식품위생 등 6대 분야를 부패취약 분야로 지정,별도의 개선대책을 내놓았다. 당정이 집중적으로 추진하기로 한 6대 부패취약분야 70대 개혁과제를 분야별로 요약했다. ■건축분야 관련 공무원의 재량권 축소를 위해 시행령,시행규칙,고시,조례,규칙 등의불명확한 규정을 투명하게 개정한다.장기적으로는 금지되는 행위만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네거티브 리스트제’를 도입한다. 민원인의 불편을 덜어주고 공무원의 금품수수 소지를 차단하기 위해 건축신고제를 확대한다.현행 도시 및 준도시지역에 100㎡ 이하로 돼있는 건축신고대상 범위를 330㎡ 이하로 확대한다. 각 과로 분산돼 있는 건축인·허가 관련 부서를 건축법에 규정된 전담부서로 통합해 준공검사 등을 일괄처리함으로써 민원을 신속하게 처리하고 대민접촉 기회를 축소한다. 건축위원회,도시계획위원회 등 건축관련 주요 심의회에 시민단체 등이 추천하는 전문가를 반드시 참여시킨다.주요 인·허가 처리과정과 결과를 인터넷에 공개해 행정의 투명성을 높이고 행정불신을 제거한다. ■건설분야 물량,예산액,개략적인 발주시기 등 분기별 발주계획을 인터넷에 공개,다수의 사업자간 경쟁을 유도한다.수의계약 사유를 엄격하게 적용해 가능한 경쟁입찰을 실시한다. 수의계약이라고 하더라도 3,000만원 이상 공사의 경우 견적서 제출기회를특정사업자에 한정하지 않고 일반에 개방한다. 계약관련 규정을 위반한 공무원에 대한 행정처벌을 강화한다.계약체결 후설계변경 등으로 인한 계약금액 조정신청이 있는 경우,30일내에 처리하도록명시한다. 입찰·계약과정의 부당행위에 대한 조정기구를 신설한다.일정금액 이상의공사에 대한 사업에 착수할때나 중대한 설계변경시 시민대표를 참여시키고,주민청구시 사업내역을 공개한다. 시민단체 추천 전문가,외국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특별감리검수단을 구성해주요 건설현장의 감리실태를 불시에 점검한다. 금품을 제공한 사람이나 기관에 대해서는 공공기관과의 거래제한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강화하고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수 있도록 근거법령을 마련한다.부패행위,부실시공,예산부정 사용행위 등에 대해 국민들이 고발하거나일정 수 이상의 국민의 동의를 얻어 감사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고발시고발로 인한 정부수입의 5∼15%(최고한도 10억원)를 보상하는 제도를 도입한다. ■세무분야 납세자와 세무공무원과의 접촉을 차단하기 위해 세무공무원의 지역담당제를 폐지하고 과세자료 처리건수를 현행 연간 700만건에서 200만건으로 축소한다. 국세청을 세목(稅目)별 조직에서 기능별 조직으로 개편한다. 향후 5년 동안 신용카드 사용에 대한 공제를 확대한다.음식,숙박 등 현금중심거래 업종에 대해서는 카드매출액의 부가가치세 세액공제비율을 현행 1%에서 2%로 상향조정한다. 근로소득자에 대해서는 소득의 10%를 초과하는 카드사용액에 대해 초과액의 10%에 해당하는 소득을 공제한다. 113만명에 달하는 부가가치세 과세특례자 및 54만명에 이르는 간이과세자제도는 조세부담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폐지하거나 간이과세자로 전환하는 방안을 강구한다. 시민단체 등 민간단체가추천하는 전문가를 세무서 단위의 각종 위원회·협의회 위원에 포함시켜 운영의 공정성을 높인다. 조세범의 형량을 적정하게 조정하고 새로운 유형의 탈세범에 대한 처벌규정을 신설하는 등 조세범처벌법의 실효성을 높인다. 조세와 관련된 비리고발을 활성화하기 위해 고발로 인해 1,000만원 이상을포탈세액으로 징수할 경우,징수액의 5∼15%(최고 1억원)를 보상해 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부패와 관련해 해임 이상의 처분을 받은 세무공무원에 대해서는 5년간 세무사 개업 및 세무법인,세무사사무소에의 취업을 제한한다. ■경찰분야 적발위주의 교통단속을 지도와 교통소통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해 음주운전,신호위반,중앙선 침범,난폭운전 이외의 교통법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처벌보다는 사전지도를 강화한다. 과속은 사고위험지역을 중심으로 예고단속을 실시하고 시내 등 교통혼잡지역은 원활한 소통을 위해 최소화한다. 교통사고 조사시 반드시 피해자 가족이 입회하도록 하고 조사결과를 사고당사자에게 알려줘 사고처리의 투명성을 높인다.단순한 물적피해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형사책임 면책기준을 현행 80만원 미만에서 200만원 미만으로 상향조정한다.유착비리 방지를 위해 대도시 지역의 파출소는 단계적으로 대폭 축소,경찰서 집중순찰체제로 전환한다. 유흥주점을 제외한 접객업소에 대한 경찰의 직권단속을 금지한다.단속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경찰·시민단체로 구성된 ‘민관합동단속’을실시한다. 경찰에 대한 시민의 감시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변호사,교수,시민단체대표등을 위원으로 하는 ‘경찰행정 시민평가단’을 운영,경찰운영 실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해 경찰청장이나 반부패위원회에 통보한다. 인사비리를 예방하기 위해 전보(轉補)권역을 구분,특정권역에 일정기간 근무한 경우 다른 권역으로 전보하고 전보경합시 근무성적순으로 결정한다.경찰 승진심사시 인사권자의 재량에 따라 부여하는 지휘관추천점수 비율을 하향조정한다. ■환경분야 환경공무원은 위법행위를 단속할때 단속목적,단속사항,단속자신분을 공개하고 적발결과도 현장에서 점검기록부에 기재하도록 한다. 대형 대기배출 사업장의 경우,굴뚝에 오염물질 자동측정기기를 부착하고 전산망과 연계운영하여 24시간 상시감시함으로써 현장방문식 지도단속을 지양한다. 단속결과,조치사항을 인터넷에 공개해 자의적인 단속과 처벌을 예방하고 잘못된 조치나 조치불이행 등에 대해서는 시민의 고발을 유도한다. 환경단속과 관련,시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고발보상금액을 현행 1만원에서 5만∼10만원 또는 부과금의 5∼15% 수준으로 인상한다.단속과정에서 이뤄진 금품수수행위에 대한 고발이 있을 때도 보상을 한다. ■식품위생분야 상업지역내 단란주점에 대해서는 접대부 고용시 유흥주점과 동일한 수준으로 특별소비세를 부과해 단란주점을 유흥주점으로 전환토록 유도한다. 주택지역내 단란주점에 대해서는 접대부 고용을 엄격하게 단속해 노래방 등으로 전환을 유도한다. 경찰은 풍속위반사범 단속 및 범죄신고때만 제한적으로 식품접객업소를 출입할 수 있도록 ‘경찰관풍속 단속지침’을 운용한다. 불법 및 퇴폐,변태영업 신고에 대한 보상금을 현행 2만∼10만원에서 5만∼30만원으로 상향조정한다. 단란주점의 칸막이 및 조명규제 폐지를 검토한다.일반음식점,휴게음식점,식품제조,가공업 등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한다. 정리 김성수기자 sskim@
  • 사망 군인 5명 합동영결식

    육군은 3일 오전 10시 군 벽제병원 연병장에서 지난 1일 집중호우로 인한산사태로 사망한 이민수(李敏洙)하사 등 장병 5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을 거행했다. 영결식은 군단장을 장의위원장으로 유가족,육본 관계 참모·소속 지휘관 및 부대 장병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으며 영결식 후 고인들의 유해는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육군은 고인들을 1계급 특진시켰으며 유가족들에게는 관련 법규에 따라 2,378만원의 사망보상금과 월 46만5,000원의 보훈연금 지급과 함께 성금을 모아전달할 계획이다. 김인철기자 ickim@
  • [사설]‘되풀이 水災’없애야

    집중호우가 중부 이북 지방에 큰 물난리를 불러왔다.기왕의 인명·재산피해가 엄청난데도 태풍 ‘올가’의 북상과 함께 더 많은 피해가 예상된다니 걱정스럽다.신속한 이재민 구호와 피해복구는 물론 종합적이고 항구적인 수방대책을 마련해야겠다.특히 지난 96년부터 올해까지 세 차례나 극심한 수해를 입은 경기 북부지역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이 지역의 물난리는 이제 연례행사처럼 되고 말았다.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내년에도내후년에도 같은 사고가 계속되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내리는 비를 막을 수는 없겠지만 동일한 피해를 되풀이해서 당한다는 것은천재지변이 아닌 인재(人災)로 부끄럽기 짝이 없는 후진국형 사고다.게다가96년과 98년의 수해복구도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라는 것은 당국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밖에 없다.복구 작업에 대한 행정절차가 복잡한데다당국이 예산부족을 이유로 적극적인 대책을 세우지 않아 동두천 도심을 가로지르는 신천의 복구율이 50%,파주시 고산천 제방의 복구율이 10% 수준에머물고 있다는 것이다.행정기관의 게으름과 무사안일,예산타령이 수해의 악순환을 초래한 셈이다. 나라에 맡긴 소중한 군인의 목숨을 자연재해로 계속 잃는다는 것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지난 96년 경기 북부지역의 홍수로 58명이 숨진 데 이어 98년 13명이 또 숨졌고 올해도 1일 현재 5명 사망,1명 실종으로 보고되고 있다.비상사태에 가장 신속하고 안전하게 대처해야 할 군인이 전쟁도 아닌 상황에서 목숨을 위협받는다면 국민은 누구를 믿을 것인가.전술적인 이유로 군부대가 산사태 위험이 높은 곳에 위치한다면 경계태세도 그만큼 완벽해야 한다.군인의 안전불감증은 안보에도 위협이 되는 만큼 부하 사병들을 죽음으로 내몬 지휘관에게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아울러 비상시에는 이동막사 설치 등 긴급대피를 위한 현장지휘관의 적극적인 상황대처 능력을 길러야한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중앙과 지방 행정의 1차적 목표다.수해대책 관계장관 회의에서 갖가지 대책이 마련됐지만 지금까지 그랬듯이 탁상행정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낮은 강바닥의 준설작업,좁은 강폭의 확장,빗물펌프장과 댐 건설 등 기본적작업과 함께 일상화한 기상이변에 대비해 모든 수방시설 기준과 용량을 늘리는 일도 장기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교하·금촌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건설이 파주 지역에 더 큰 수해를 가져 온 것으로 보도된 만큼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 종합적 국토관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임진강 수계관리를 위한 북한과의 협력도 검토해 볼 만하다.
  • [오늘의 눈] 한심한 경찰

    ‘경찰이 이럴 수가…’. 지난 19일 잠복근무중이던 경찰이 신창원의 동거녀를 성폭행했다는 신의 일기내용이 사실인 것으로 확인되자 시민들이 보인 반응이다.도대체 범인을 잡겠다는 경찰관이 탈옥수보다 더한 범행을 저지를 수 있느냐는 비난이 잇따랐다. 경찰은 일단 이번 사건을 김모경장의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고 있다.하지만시민들은 그동안 경찰관들이 일선 현장에서 보인 행태들을 볼 때 경찰조직의 기강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여기고 있다. 경찰은 성폭행 이외에도 올해들어 전북 익산과 충남 천안에서 신창원의 검거에 실패한 뒤 사실을 축소·허위보고하는 직무유기도 저질렀다. 신창원으로부터 “왜 경찰 자신들의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지 이해가 안된다”는 조롱까지 받았다. 지난 93년 비리 경찰관의 적나라한 생활상을 코믹스럽게 만든 영화 ‘투캅스’가 86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평소에 경찰관에게 품고 있던 시민들의 불신이 이 영화에 그대로 투영돼 ‘카타르시스’를느껴 흥행 대성공을 거뒀다는게 영화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경찰은 당초 신창원의 일기공개 여부를 놓고 많은 갈등을 겪었다.경찰에게불리한 내용이 들어 있어 공개를 꺼린다는 언론의 의혹이 연일 제기되자 전문을 공개하는 ‘용단’을 발휘했다.하지만 예상대로 경찰관의 성폭행을 비롯해 직무유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경찰은 신창원을 검거하기 위해 지난 2년6개월동안 무려 연인원 97만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했다.신이 출몰할 것으로 예상되는 업소 1,081만여곳을 탐문했으며 은신 용의처 1,004만여곳을 수색했다.매일 1만1,000여곳을 뒤진 셈이다. 그럼에도 신창원을 검거하지 못한 이유는 무얼까.오히려 탈옥수에 의해 자신들의 치부가 까발려지는 당혹스러운 현실을 경찰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신창원 사건만으로 볼 때도 경찰은 본연의 임무인 수사와 검거 뿐 아니라 도덕성에서도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총체적인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 신의 일기장에서 드러난 경찰의 치부를 개인의 일로,몇몇 지휘관의 능력부족으로 돌린다면 ‘제2,제3의 신창원 치욕’은 계속될 것이다. jrlee@
  • 국방부 특별조사단 가동… 軍내 의문사 철저조사

    국방부는 5일 군내 의문사 조사에 대한 유족들의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육군 소장을 단장으로 한 국방부 특별조사단을 구성,이날부터 가동한다고 밝혔다. 특조단은 16명의 군 수사전문가와 유족대표 등이 추천하는 국내외 법의학자,전·현직 경찰 수사요원 등을 자문위원으로 위촉, 육·해·공군의 조사 진행을 지도·관리·감독하게 된다. 육·해·공군은 지난 3월부터 인사참모부장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조사단을구성,지난 67년 이후 군복무 중 숨졌으나 사인규명이 불명확한 132건의 진상규명을 위해 현지부대 방문과 수사기록 재검토,사망 당시 부대 근무자 및 군지휘관 등 참고인 조사 등을 해왔다. 김인철기자 ickim@
  • 중국-타이완 군비현대화 경쟁 ‘후끈’

    중국과 타이완(臺灣)간에 치열한 군비 현대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미국·일본의 신(新) 안보협력지침(가이드라인)이 마련되고 걸프전·코소보 사태등에서 ‘첨단 무기의 열세’를 뼈저리게 느낀 중국이 군비 현대화 작업에나서자,타이완도 첨단 무기의 자체 개발을 천명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밍바오(明報) 등 홍콩의 주요 언론들은 중국 지도부가 1일 첨단 무기를 개발·생산할 주요 국방과학 기술업체를 선정하는등 군비 현대화 작업을 선언하고 나섰다고 2일 보도했다.장쩌민(江澤民) 당총서기겸 국가주석은 이날 츠하오텐(遲浩田) 국방부장 겸 중앙군사위 부주석 등 군관련 인사들에게 “주요 국방과학 기술업체의 선정은 국방과학 기술의 경쟁력 제고를 통해 중국의 군비를 현대화하는 중대한 조치”라며 “‘군수품 우선주의’의 기치 아래 국방과학 기술이 발전하는데 헌신해줄 것”을 당부했다. 이에 앞서 중국은 지난달 러시아와 48대의 수호이 30 전투기 도입 계약을체결한데 이어,첨단무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중급 지휘관및 비행사들을 양성하는 육군 항공병 학원을 설립했다.인민해방군의 전투력 증강을 위해 최근 티베트 지역에서 첨단무기를 동원한 특수 기동훈련도 실시했다. 이에 당황한 타이완도 첨단무기 개발만이 국가안보를 보장한다며 첨단무기자체 개발에 총력전을 펼치겠다고 밝혔다.리덩후이(李登輝) 타이완 총통은이날 이례적으로 국립 중산(中山)과학기술연구소를 방문,“강력한 군대의 제 1요소는 첨단 무기”라며 물론 외국으로부터 첨단 무기를 들여올 수 있지만,중국의 방해로 쉽지 않기 때문에 자체 개발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롄잔(連戰) 부총통도 레이더,공대공 미사일인 톈젠(天劍)과 미사일 요격시스템인 톈궁(天弓) 등을 개발한 국방관련 연구소를 찾아 첨단무기 개발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김규환기자 khkim@
  • 서해 남북대치 진정국면

    서해의 남북 대치상황이 진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합참에 따르면 북한 경비정은 지난 16일에 이어 서해상에 폭풍주의보가 해제된 17일에도 북방한계선(NLL) 북쪽 6㎞ 해상에 머문 채 내려오지 않았다. 북한 어선 5척은 오전 6시45분쯤 NLL 선상까지 내려왔으나 완충구역 아래서대기하던 해군 고속정 6척이 출동하자 물러나 NLL 북쪽 해역에서 조업했다. 김진호(金辰浩) 합참의장은 이날 오후 주요 작전지휘관 회의를 열어 전투대비태세를 점검하려 했으나 서해의 대치 상황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고 보고 회의를 연기했다.군당국은 그러나 북한의 추가 도발에 대비,전군에 내린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는 등 경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장정길(張正吉) 합참차장(해군중장)은 이날 국회 국방위 보고에서 “북한이 이후 성동격서(聲東擊西)식으로 서해상이 아닌 다른 지역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이어 “지난 15일 침몰된 북한 어뢰정에 승선한 17명(장교 2명,사병 15명)은 모두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조성태(趙成台) 국방부장관도 답변을 통해 “함포와 해안포,미사일 등을 통해 북한의 추가 도발이 예상된다”면서 “예상되는 도발형태별 시나리오를마련,대응작전을 세워놓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미국 국방부는 한반도의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항공모함 컨스털레이션호를 한반도에 파견하는 등 주한미군의 해·공군 전력을 대폭 증강키로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 정박중인 항공모함 컨스털레이션호는 18일 출항,당초 계획대로 걸프만으로 이동하기 전 한반도 해역에서 훈련을실시할 예정이다. 일본 요코스카항에 머물고 있는 순양함 빈센스호 등 군함 2척도 곧 한반도해역에 투입되며 EA-6B 전자정찰기 등 공군력도 증강된다.이들 전력은 코소보 사태로 인해 항공모함 키티호크가 태평양에서 걸프해역으로 이동한 데 따른 공백을 메우게 된다. 미국은 또 미국 본토와 하와이 등에 있는 FA-18 호넷기 2개 비행대대와 B-52 전략폭격기 10대,F-16 팰콘 전폭기 8대,패트리어트 요격미사일 1개 대대등이 한반도 유사시에 즉각 투입될 수 있도록 비상 출동대기명령을 내렸다. 한편 북한은 이날 오전 11시 판문점을 통해 6·25 전쟁 당시 북한에서 숨진미군 유해 5구를 송환하려던 계획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고 유엔사측이 밝혔다. 김인철 주병철 추승호 조현석기자 ickim@
  • 軍수뇌부 움직임

    국방부와 합동참모본부는 남북 함정간의 교전이 발생한 지 이틀이 지난 17일 서해상의 대치 상황이 진정 국면에 접어 들었다는 판단 아래 ‘마무리 작전’에 돌입했다. 군 당국은 북한의 추가 도발 가능성에 대비,강력한 비상경계태세를 유지하되 고속정 등 함정을 완충지역 아래로 배치하는 등 북한을 자극하는 군사작전을 최대한 자제하라고 작전부대에 지시했다. 합참은 특히 이날 오후 해군작전사령관,공군작전사령관,특전사령관,1·2·3군 사령관 등 9개 작전부대 지휘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기로 했던 주요 작전지휘관 회의를 연기했다. 이에 앞서 조성태(趙成台)국방장관은 오전 8시 주요 참모회의를 소집,“북한은 서해 교전에서 완패한데다 미군전력의 대폭보강 등으로 극도로 위축됐을 것”이라면서 “강력한 경계태세를 유지하되 북한을 자극하는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김진호(金辰浩)합참의장은 오전 6시부터 국방부 지하벙커에 마련된 합참 지휘통제실에서 북한군의 동태를 점검했다.김 의장은 북한경비정이 NLL 북쪽 3∼5㎞ 지점에정박한 채 추가 도발 움직임을 보이지 않자 잠시 휴식을 취했다.이어 10일째 밤샘 근무한 합참 장교들을 격려하면서 “18일까지 무월광기간인 만큼 긴장상태가 진정될 때까지 돌발상태에 대비해 경계를 늦춰서는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국방부 차영구(車榮九)대변인은 기자간담회에서 “15일 교전 이후 북한 함정들이 NLL 북쪽에 머무는 등 사태가 진정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전투는 시작도 중요하지만 끝마무리를 잘해 남북간 화해와 협력,교류·대화를 조기에 정착시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석기자 hyun68@
  • 「남북한 西海 교전」꽝… 꽝… 꽝 포성에 섬전역 긴장

    - 전부대원들 전투배치 15일 오전 연평도 앞바다에서 북한과 우리 해군 사이에 교전이 벌어졌다는소식이 전해지자 이곳 군부대는 즉각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꽝 꽝 꽝”하는 포성이 터지자마자 지휘관들은 전 부대원을 전투배치한뒤 참모들과 함께 지하벙커 상황실에 자리잡고 상부에서 내려오는 작전명령을 점검하는 등 부산하게 움직였다. 연평도에 주둔하며 레이더로 해상감시 임무를 수행하는 해군 293부대는 전부대원이 완전군장을 갖추고 비상근무에 돌입했다. 연평도 앞바다 2㎞ 지점에 설치된 해군 바지선 근처에서는 150t급 고속정은 물론,1,000t이 넘는 대형 초계함과 전함들이 빠른 속도로 기동했다.부두에서 배를 타고 나간 남편과 시아버지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민 김순용(金順容·39)씨는 초계함과 전함을 가리키며 “연평도에서 계속 살았지만 대형 군함이 기동하는 것은 처음”이라면서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연평도 경비를 담당하고 있는 해병대 9518부대도 106고지 대공감시 포병반에 “서해에서 교전으로 예상되는 포성이 들린다”는급보가 날아들자 즉각 비상경계 태세에 돌입했다.해안경비 소대장 강병석(姜炳碩·25)중위는 “소대원들은 이런 때를 대비해 평소 충실히 훈련했다”면서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웃 공군기지에서는 조종사들이 비상출동 명령이 내려지면 즉각 출동할 수 있도록 시동을 걸고 기내 ‘전투대기’에 돌입했다.백령도 등 서해 5개 도서와 인근 바다에 대한 전투공중초계(CAP)도 강화됐다.
  • 聞慶 양민학살사건 경위-군인들 정찰임무중 우발적행동 추정

    ‘문경사건’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 국군에 의해 자행됐다는 점에서 ‘거창사건’ 등과는 또다르다.특히 이 사건은 군인들이 주민들에게 ‘부역혐의’를 씌워 주민 대다수를 몰살시킨 비극적인 사건이다.본사가 단독입수한 문건에 따르면 이 사건은 당시 이 일대를 정찰하던 국군의 일시적인 ‘화풀이’나 우발적 행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건발생 다음날인 1949년 12월 25일자로 국군 제3사단 25연대가 주한미군사고문단에 보고한 내용에 대한 미군측의 자체 조사보고서(미 국립문서보관소 소장)에 따르면,당시 25연대 3대대 7중대 제2소대와 3소대는 사건 전날 16시 각각 점촌(현 문경시)과 여천을 출발,다음날인 24일 10시에 상선암동에서 합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학살사건은 2개 소대가 상선암동에서 합류,14시경 석달마을 인근을 정찰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이들은 주민들을 집합시킨 후 별다른 확인없이 주민들을 향해 총을 난사하였다.사건후 이들을 포함한 연합부대는 석봉산,달비산 등을 정찰한 후 18시에 인근 갈평리에 도착한것으로 나와있다.따라서 당시 이들의 정찰임무속에 ‘학살’임무는 없었던것으로 보인다.특히 직속 7중대장이 이 사건을 보고받은 후 소대지휘관에게화를 냈다는 당시 경찰 내부의 ‘보고서’를 감안하면 이 사건은 중대장도모르는 상태에서 소대를 지휘한 일선 소대장이 학살을 명령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 사건은 4·19후 언론보도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과도정부 당시국회에서는 정부에 재조사를 촉구하는 등 진상규명 노력을 보였으나 이듬해5·16으로 좌절됐다.군을 상대로 호소문을 냈다는 이유로 오히려 유족 2명이 포고령 18호 ‘반국가행위혐의’로 구속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당시 학살을 지휘한 지휘관은 현재 대부분 사망했다.유족들은 군 당국에서 관련자료를 소장하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자료공개를 요청하고 있다. 정운현기자- 채의진 유족회장 인터뷰“고통의 50년 진상규명 있어야” “사건 당시 8개월 된 젖먹이가 벌써 50세가 되었습니다.그 사건으로 동네가 불에 타 완전히 없어지고 생존자 대부분이 말할 수 없는 고통속에 지난 50년을 살아왔습니다.국민의 정부에서 억울한 사정을 꼭 해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사건후 한동안 ‘침묵’을 강요당해온 생존자 18명은 93년 문민정부 출범을 계기로 유족회(회장 채의진·63·상주시 이안면 이안1리)를 결성,진상조사와 명예회복을 요구하고 나섰다.유족회장 채씨는 그 사건으로 형님 등 일가족 9명을 잃었으며 자신은 형님의 시신에 깔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음은 채씨와의 일문일답. ●학살당시의 상황을 설명해 달라. 당일 점심 때쯤 완전무장한 군인 70∼80여명이 들이닥쳐 주민들을 동네앞 논에 집결시키더니 곧바로 학살을 했다.이웃마을에 다녀오던 청년들과 귀가중인 학생들은 동네 뒷산에서 2차로 변을 당했다. ●주민학살 이유는 뭐라고 보나. 아직도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아마 뭔가를 오인한 것 같다.내용확인도없이 즉흥적으로 학살을 한 것으로 봐 상부지시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이 국군이라는 확증은 있나?학살자들의 복장이나 총기,또 총끝에 대검을 꽂은 것이 후에 6·25때 본 국군과 꼭 일치했다.또 사건후 관계자들의증언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확인사살’도 있었다는데. 마을앞 논에서 1차학살을 한 후 “산 사람은 옆으로 서라”고 하더니 다시총을 쐈다.또 뒤엉킨 시체속에서 죽은 체 하고 있던 사람들을 골라내 다시확인사살을 하기도 했다. ●당국에 대한 요구사항은?이 사건은 전시가 아닌 평시에 발생한 양민학살사건으로 6·25중에 발생한‘거창사건’ 등과는 또다른 의미가 있다.특별법 제정을 통한 진상조사와 명예회복·보상을 요구한다.
  • 49년 聞慶 주민학살사건-국군소행 입증자료 발견

    1949년 12월 경북 문경의 한 산간마을 주민 80여명에 대한 집단학살 사건이 공비가 아닌 당시 국군 부대의 소행이었음을 입증하는 문서가 발견돼 사건발생 50년만에 진실이 밝혀지게 됐다.이 사건은 널리 알려진 거창 양민학살사건 등과는 달리 6·25 이전 한 마을에 ‘부역혐의’를 씌워 국군 2개 소대가 주민 80여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으로 문민정부 수립 이후 유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해왔으나 증거자료가 없어 공비 소행으로 진실이 왜곡·은폐돼 왔다. 본사는 19일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와 맥아더기념관이 보관중인 주한 미 육군 무관이 도쿄 주둔 극동군사령부 정보참모부장에게 보낸 1950년 1월1일자 보고전문(문서번호-ARMA 10호)과 사건 직후 미 군사고문단이 자체조사한 ‘조사보고서’ 등 ‘문경양민학살’관련 문건 4건을 단독 입수했다.이 문건들에는 당시 학살에 가담한 국군의 소속부대명과 지휘관 명단,피해상황 등이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어 이 사건이 국군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이에 따르면 석달마을 주민을 학살한 부대는 국군 제3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소속 제2·3소대 병력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49년 12월 24일 오후 2시 문경군 산북면 석봉리 석달마을 인근을 정찰하던 중 이 마을에 들이닥쳐 주민들을 한 곳에 집결시키고는 주민들에게부역혐의를 추궁한 후 별다른 확인절차도 없이 곧바로 주민들에게 카빈총·소총·수류탄·바주카포 등을 무차별 난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주민 127명 가운데 86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다.사망자 가운데는 유아 3명,초등학생 9명이 포함돼 있었으며 가옥 27호중 23호가 불탔다. 학살후 이들은 생존자를 가려내 재차 확인사살까지 한 것으로 나타나 있으며 생존자 12명은 시체 더미에 깔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이 문서들은 밝혔다. 사건 직후 3소대 지휘관 유진규소위,2소대 지휘관 안택효중사·김점동하사는 7중대장 유응철대위에게 이 사건을 보고했다.그러나 유중대장은 군의 책임을 모면키 위해 이의성 당시 문경경찰서장과 짜고 이 사건을 ‘공비소행’으로 상부에 보고한 것도 아울러 밝혀졌다. 한편 이같은 문건은 미 군사고문단이 공비들이 양민을 학살하는 쪽으로 전술을 전환했는지의 여부를 조사하던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이 문건은 사건 후 경찰이 자체 비밀조사를 통해 진실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파문을 예상해 조사결과를 육군에 통보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며,단 국회의원 8명에게는 정보를 전달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밝혔다. 국사편찬위원회 정병준 편사연구사(현대사전공)는 “미국내 한국관련 주요자료들이 대부분 폐기된 가운데 이 문건은 운좋게 살아남은 것으로 보인다”며 “미군 당국의 공식문서로 진실이 밝혀진 이상 정부차원의 재조사와 명예회복·보상 등 적절한 조치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스라엘 野총리당선 유력…총선투표도 함께 실시

    예루살렘 외신종합 연합 이스라엘은 17일 오전 7시(한국시간 오후 1시)부터 총리와 120명의 크네세트(의회) 의원을 동시에 선출하는 총선 투표에 들어갔다. 이스라엘 유권자 428만5,400여명은 전국의 7,236개 투표소에서 집권 리쿠드당의 후보인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와 노동당 주도의 ‘하나의 이스라엘’ 후보인 에후드 바락을 놓고 선택을 한다. 투표일 직전 3명의 군소정당 총리 후보들이 모두 사퇴했으며 이중 2명이 바락 후보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네타냐후 후보와 바락 후보는 이날 총리 선거의 1차 투표에서 과반을 획득해야만 총리로 당선되며 과반에 미달할 경우엔 다시 결선투표(6월 1일)를 치뤄야 한다. 유권자들은 이와 함께 30여개 정당을 대상으로 비례대표제의 크네세트 의원에 대한 투표도 함께 실시했다.최소 5만5000표를 획득하거나 득표율 1.5%를기록해야 1개 의석이 배당된다. - 떠오르는 중동평화의 ‘빛'-바락 노동당 당수 17일 이스라엘 총리선거에서 당선이 유력시되고 있는 에후드 바락 노동당당수(57)는 팔레스타인과의 영토협상에서 온건노선을 취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때문에 그가 당선될 경우 강경노선의 베냐민 네타냐후 현 총리가 집권하면서 3년여 동안 유예되어온 중동평화협상이 크게 진일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바락은 본래 군지휘관 출신으로 그의 정치경력은 지난 95년 노동당의 라빈내각에서 내무장관직을 맡으면서 시작됐다.그 이전까지만해도 그의 본무대는 ‘군(軍)’이 전부였고 실제 그는 이스라엘 군에서 가장 뛰어난 장교였었다. 17세에 입대후 군대내 엘리트 과정을 속성으로 거치면서 두각을 나타낸 그는 30세 이전에 사령관이 됐다.네타냐후도 한때는 그의 수하에 있던 장교중한명이었다. 군에서 특히 그는 용맹성과 함께 뛰어난 ‘지략’을 갖춘 지휘관으로 존경받았다.예로 지난 72년 벨기에 여객기가 팔레스타인 테러범들에 의해 공중납치됐을 때 그는 부대원들을 모두 기계수리공으로 가장시켜 침투시키는 기지를 발휘,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난 97년 시몬 페레스 전총리를 물리치고 노동당 당수에 올랐으며 ‘호전적인 비둘기파(온건파)’라고 불린다.그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선 ‘강한 이스라엘’이 돼야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다.하지만 강경파인 네탸냐후와는 달리 강한 이스라엘은 또한 이웃과의 평화를 위해 ‘양보’ 역시 할줄 알아야 한다고 역설해오고 있다. 42년 키부츠에서 팔레스타인에 이주한 동유럽 이민자의 아들로 출생했다. 한편 이번 당선으로 그가 과연 자신의 전통적인 헤브루 이름 ‘바락(빛이라는 뜻)’과 같이 갈길 먼 중동평화의 ‘빛’이 될지 기대가 모아지고 있다. 이경옥기자
  • 軍, 동향·동문 모임 못갖는다

    군부대 안에서 출신지역이나 학교별 모임이 전면 금지되고 연대장 이상 주요 지휘관들은 연고지 부대의 보직을 받지 못하게 된다.지휘관이나 고참병등의 후배 챙기기 등 인화단결을 저해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서다. 국방부는 6일 화합을 통한 강군 육성에 기여하기 위해 이같은 내용의 ‘인화단결 저해요인 개선지침’을 마련,전군에 시달했다. 특히 논산 육군훈련소 및 1·3군 보충대 등 신병훈련소에 한 지역 출신들을 같은 날 입영시켜 ‘○○장정’ 등으로 호칭하며 훈련시키는 현행 ‘지역별 입영제도’를 ‘전국 입영제도’로 고쳐,전국 각 지역에서 비슷한 비율로동시에 입영토록 개선하기로 했다. 또 그동안 연대장과 사단장,군단장 등 주요 지휘관 임명시 연고지 위주로관리하던 보직 관행도 고쳐 출신지역이 아닌 곳에 지휘관을 보임토록 하고인사나 작전,정보 등 핵심 보직에 특정지역 출신이 연임하지 못하도록 했다. 부대장이 장병들의 지연과 학연 등을 이유로 편애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을방지하기 위해 신상명세서 등을 작성할때 본적이나 출신고교등을 기재하지못하도록 하고 표준말 사용도 적극 권장키로 했다. 김인철기자 ickim@
  • [제2공화국과 張勉](19)-요동치는 軍(上)

    1960년 8월27일 민의원에서 총리 취임후 첫 시정연설에 나선 장면(張勉)은긴급과제 6가지에 관한 정부 방침을 역설했다.마지막 항목에서 장총리는 “경제건설과의 균형상 과중한 국방비를 줄이고자 감군(減軍)을 하겠으며 이에 대비해 중장비를 도입하는 계획을 이미 수립했다”고 밝혔다.이어 “국군의 군기를 확립하고 일부에서 있었던 부패를 숙청하는 동시에 군의 정치적 중립을 확보하고 군내 파벌 조성을 방지하기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다짐했다. 장총리가 제시한 군 관련 정책의 큰 줄기는 ‘감군’과 ‘개혁’이었다.또그가 지적한 군의 문제점들은 국민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들이었다.이승만(李承晩)정권 아래서 군은 정치에 심하게 오염된 상태였다[별도기사 참조].4월혁명이 일어난 뒤 군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분야에 관한 것 못잖게 높았다. 4월혁명 공간에서 국민과 군의 만남은 충돌 없이 이루어졌다.4월19일 이승만정부가 계엄령을 선포해 군이 서울 등 대도시에 진주했지만,경찰과는 달리국민에게 총부리를 들이대지는 않았다. 송요찬(宋堯讚)계엄사령관은 계엄군에게 “민가에 들어가지 말고 절대 음식을 얻어먹지 말 것,어떤 일이 있어도 총을 쏘지 말며 발포한 자는 엄벌에 처한다”는 명령을 내렸다.계엄군인 15사단의 조재미(趙在美)사단장은 19일 고려대를 찾아가 강당에서 농성 중인 학생들에게 “절대 연행하지 않겠다”는약속을 해 해산시키기도 했다. 60년 4월 중립을 지킨 군의 엄정한 자세는 민족과 국가를 위해 다행스러운일이었다.가령 군이 유혈진압에 나섰다면 그 비극적 결말은 상상하기에도 두려울 정도였을 테고,계엄사태를 빙자해 직접 권력 장악에 나섰더라도 민주화를 이루는 데 큰 타격이 됐을 것이다. 4월혁명 과정에서 군은 정치·사회적인 문제에 초연한 듯이 보였다.다만 장총리의 연설에서 지적받은 자체 문제점들을 처리하려는 움직임이 내부에서일어났다.그것이 바로 정군(整軍)운동이다. 허정(許政)과도정부 시절인 5월2일 군수기지사령관인 박정희(朴正熙)소장은송요찬 육군참모총장에게 편지를 보낸다.“군의 최고 명령자로서 ‘3·15부정선거’에책임을 지고 용퇴하라”고 권유하는 내용이었다. 5월8일에는 김종필(金鍾泌)중령 등 육사 8기생인 중령 8명이 김중령 집에서모였다.이들은 정군운동을 벌이기로 뜻을 모으고 ▲3·15 부정선거를 방조한 군 장성들의 책임 추궁 ▲부정축재한 장성 처단 ▲무능·파렴치한 지휘관제거 ▲파벌 요인 제거와 군의 정치적 중립 보장 ▲군 처우개선 등을 목표로 정했다. 이들은 연판장을 돌려 군내 여론을 불러일으키려고 했지만 즉시 발각돼 김종필 최준명(崔俊明) 김형욱(金炯旭) 옥창호(玉昌鎬) 석창희(石昌熙)등 5명이구속됐다.그러나 여론 악화를 우려한 송요찬은 이들을 바로 석방하고 참모총장직에서 물러났다.송요찬의 후임으로는 역시 정군대상으로 꼽히는 최영희(崔榮喜)중장이 임명됐다. 장면내각이 구성되면서 국방장관은 현석호(玄錫虎),정무차관은 박병배(朴炳培)의원(무소속)이 각각 맡았다.장·차관 모두 군이나 국방에 관해서는 백지나 다름없었다.다만 현석호에게 육사 2기생인 현석주(玄錫朱)라는 동생이 있어 그를 통해 군 내부사정을 알아보는 정도였다.장면은 국방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듯하다.공보비서관인 고 송원영(宋元英,5선의원 역임)은 회고록에서 “장총리는 나이가 지긋한 민간인을 국방장관에 앉힌다는 원칙을 세우고 있었다.그러나 국방부의 모든 일은 한계가 있다고 본 것 같다.미군에서 작전권을 가진 이상 국방장관 자리는 한계가있다고 보았던 것이다”라고 밝혔다.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는 최경록(崔慶祿)중장을 앉혔다.최중장은 이승만정권에서 정치에 물들지 않은,몇 안되는 고위장성 가운데 하나였다.최영희는 합참의장으로 승진했다. 장면정부 출범후 영관급 장교들의 정군운동이 다시 떠올랐다.9월10일 김종필 김형욱 등 중령 11명이 현석호 국방장관을 방문해 전군을 상대로 정군을 단행할 것을 청원했다.현장관도 필요한 정화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했다.이틀뒤 국방장관이 현석호에서 민주당 구파인 권중돈(權仲敦)으로 바뀐 뒤 권장관은 정화조치의 첫 단계로 3·15부정선거 관련자와 부정축재자를 조사하는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한다. 9월20일 엉뚱한 곳에서 정군운동에 불똥이 튀었다.최영희 합참의장 초청으로 방한한 미국 국방부 군원국장인 윌리스턴 파머 대장이 한국을 떠나면서 정군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한국군 고위장성들이 최근의 사태에큰 불안과 초조를 느끼니 더 이상 조직을 흔들어 군사력을 약화시키지 말라”는 요지였다. 파머의 성명은 큰 반발을 불러왔다.최경록 육참총장이 즉각 “명백한 주권침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9월24일에는 육사 7·9·10기 대표 16명이 최영희 합참의장을 찾아가 “파머를 불러들여 자리를 보존하려고 했다”면서 사임을 요구했다.‘하극상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태의 결과로 김종필·석정선(石正善) 두 중령이 61년 2월 예편당한다.배후로 지목된 박정희는 육군본부작전국장에서 2군 부사령관으로 좌천된다. 이후 정군운동은 사라지지만 주동자들은 결국 쿠데타 음모로 돌아선다. 이용원기자ywyi@李承晩정권하의 軍실태 이승만(李承晩)정권 12년동안 군은 외형상 눈부신 성장을 이루었다.대한민국 출범 당시 국군은 육군·해군을 합해 5만 병력 규모였다.‘6·25’발발직전에 10만명을 넘어섰고 1954년에는 65만명에 이른다.이후 다소 줄어 50년대 중반부터는 통칭 ‘60만 대군’으로 자리잡는다. 반면 이 시대는 군이 정치적인 사건에 자주 동원되고 그 영향으로 분파(分派)가 극심해지는 등 정치에 오염된 기간이기도 했다. 창군(創軍)이후 60년대 초까지 한국군 상층부를 이룬 장성과 고급장교들은출신에 따라 네 부류로 나뉜다.광복군 또는 중국 정규군 출신을 비롯해 ▲일본군 장교·하사관 ▲일본이 창설한 만주군 ▲공산통치를 피해 내려온 이북피난민 출신 들이다. 육군의 전신으로 46년 창설된 조선경비대에서는 광복군의 유동열(柳東悅)송호성(宋虎聲)장군이 초대,2대 사령관을 맡는다.하지만 이승만은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 김구(金九)를 지지하는 광복군·중국군 출신들을 뒷전으로 밀어낸다. 이승만은 초대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참모총장(49년 폐지됨)에 일본군 출신 이응준(李應俊) 채병덕(蔡秉德)을 각각 임명한다.일군 출신들은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실전 경험도 풍부해 초기 국군이 기틀을 잡는 데 나름대로기여한다. 그러나 일군 출신들도 52년이면 ‘실권’에서 멀어진다.‘발췌 개헌’때 이승만이 육군참모총장 이종찬에게 2개 전투사단을 부산으로 보내라고 명령하지만 거부당한 일이 계기가 됐다.일본 육사를 나온 이종찬은 “군의 정치적 개입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한다. ‘만만치 않은’일군 출신들을 배제한 이승만은 후임에 ‘젊고 경험이 부족한’만주군 출신들을 선택한다.대표적인 인물이 만주군관학교를 나온 정일권(丁一權)과 백선엽(白善燁)이다. 일제가 중국대륙을 침공하려고 관동군 보조병력으로 창설한 만군은 그 위상이 독특했다.정규전 훈련보다는 독립군이나 마적들을 소탕하는 데 필요한 반란진압 전술을 주로 배웠다.독립운동가·공산주의자를 상대하는 바람에 그업무도 상당히 정치적이었다.그래서 흔히 “만군 출신의 많은 장교들은 군내(軍內) 분파주의와 음모의 원천이 되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승만은 정일권과 백선엽을 교대로 중용하며 충성경쟁을 부추긴다.정일권이 51년 34살에 국군 최초로 중장에 오르지만 대장 계급장은 그보다 3살 아래인 백선엽이 53년 먼저 단다.육군참모총장도 정일권(50년)-백선엽(52년)-정일권(54년)-백선엽(57년)으로 왔다갔다한다.두 사람의 선두다툼은 군부 내에 함경도파(정일권)와 평안도파(백선엽)라는 두 파벌이 형성되는 원인이 된다. 군부내 파벌을 조장해 충성경쟁을 시킨 것 말고도 이승만은 여러 면에서 군을 정치에 악용한다.대통령·국회의원 선거 때 부정투표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처럼 되었다.헌병총사령부(사령관 元容德)와 특무대(대장 金昌龍)를 시켜 군 내부를 감시하는 한편 이들을 정적 제거에도 동원했다.‘서민호(徐珉濠)의원 사건’이 대표적인 예이다. 정치자금도 군비에서 조달했다.군은 당시 국가예산의 40%이상을 썼고 매년미국으로부터 4억달러 상당의 무기와 군수물자를 원조받고 있었다.군에서 정치자금을 끌어쓰는 행태는 필연적으로 군 내부에 부패를 불러왔다.군수물자를 빼돌려 사복(私腹)을 채우고 위로는 상납하는 구조가 심해졌다. 4월혁명으로 이승만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군은 자유당·관료층에 버금가는개혁의 대상으로 떠올라 정군(整軍)운동을 불러왔다. 이용원기자ywyi@
  • 예비군 육성분담금 미납업체 처벌키로

    오는 7월부터 예비군 지휘관 및 훈련장 운영비를 분담하지 않는 중·소기업들은 처벌 받는다. 국방부는 25일 이같은 내용의 향토예비군설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7월1일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에 따라 서울 구로와 경기 안산,경북 포항,전남 여천 등 전국 22개 공단내 5,000여 중소업체들은 분기마다 10만∼100만원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하고 납부하지 않으면 고발조치된다.
  • “北 전역 미사일 600기 보유”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북한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을 공격할 수 있는 약 600기의 전역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레스터 라일즈 미공군 중장이 15일 미 의회에서 밝혔다. 라일즈 중장은 상원 세출위 국방소위원회 증언에서“존 틸럴리 주한미군사령관이 빌 클린턴 대통령과 윌리엄 코언 국방장관이 참석해 열린 주요 지휘관회의에서 이같이 보고하고,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전역미사일방위체제(TMD)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면서“미 국방부는 시험발사에서 나타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곧 주한미군을 비롯한 야전군에 효과적인요격미사일체제를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한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이날 금창리 지하시설 의혹해소를위한 현장접근에 이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규제를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브라이트 장관은 미 하원 세출위원회에서 답변하는 가운데“오늘날 한반도 상황만큼 평화와 안정에 더 큰 위협이 되는 것은 없다”면서“미국은 동맹국인 한·일 양국 및 중국과 한반도긴장완화를 위해 긴밀한 협의를 갖고있다”고 말했다.
  • 3士출신 첫 사단장 탄생

    정부는 2일 육군 군단장(중장)과 사단장(소장)을 포함한 육·해·공군 장성급 30여명에 대한 진급 및 보직인사를 단행했다. 이번 인사에서 朴準根 국방부 인사국장(육사 25기),徐鍾杓 육본 감찰감(〃)과 李善珉 육군 개혁위부위원장(학군 6기) 등 3명이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군단장에 진출했다. 또 金寬鎭 육본 전력기획처장 등 육사 28기 6명과 權寧德 1군사령부 동원처장(갑종 216기) 등 8명이 소장 진급과 함께 사단장에 보임됐다.특히 3사 1기인 朴永夏 2군사령부 정보처장이 지난 68년 개교 이래 31년 만에 처음으로‘지휘관의 꽃’으로 불리는 사단장에 임명됐다. 李億秀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공사 14기)과 金大郁 공군참모차장(공사 15기)이 자리를 맞바꾸고 朴光勇 해본 정보작전부장(해사 21기)을 군수사령관에,裵相基 해병대부사령관(해사 24기)을 해병 1사단장에,金成萬 조함단장(해사25기)을 3함대사령관에 각각 임명했다. 이밖에 朴宣基 국방부 법무관리관(법무 84기) 등 3명이 소장으로 임기제 진급했다. 한편 군단장 및 사단장 진급자의 출신지역별로는 군단장은 경남 1명,충남 1명,전남 1명이며 사단장은 부산 및 경남·북 3명,전남·북 3명,서울 2명이다. 국방부는 “이번 인사는 국방업무 전문화와 전투력 증강에 기여할 수 있는유능한 인재 발탁에 역점을 뒀으며 군 화합과 단결을 위해 출신 및 지역별균형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 [김삼웅칼럼]화해와 용서의 미학

    어느날 자공(子貢)이 “종평생(終平生)할 수 있는 준칙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어떤 말이 있습니까?”묻자 공자는‘기여호(其如乎)하라’고 가르쳤다. “용서하라”는 말이다.기독교의 정신도 ‘사랑과 용서’다. 불교를 비롯해모든 종교의 정신이 표현의 차이일 뿐 ‘사랑과 용서’를 본질로 한다. 3월1일 5·18민중항쟁 부상자와 유족 220여명이 광주항쟁 당시 진압부대인제3공수특전여단을 방문해 ‘화해의 만남’ 행사를 가졌다.이 부대는 광주항쟁때 도청 최종진압을 맡았던 부대다.그때 얼마나 많은 광주시민이 학살됐는지는 잠시 접어두자. 같은 날 전남·경북대생 220명이 상대편 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기 위해 입교했다.이번 교류 학생들은 1년간 동일한 학칙을 적용받게 되고 기숙사 무료제공과 등록금 전액 면제혜택을 받게 된다.두 대학 학생들은 “영호남 화합디딤돌 될래요”라고 합창했다. 얼만전 영호남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모여 화합과 친선의 자매결연을 하고 언론사에 TK·PK·MK 등 지역갈등을 조장하는용어를 삼갈 것을 요청했다. 지난달 25일金大中대통령 취임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신안군 하의도 생가를 방문한 대구와 충북·강원지역 노인복지대학 노인들이 金대통령의 생가를 복원할 수 있도록 성금모금의 뜻을 밝혔다.노인들은 “하의도를 방문했으나 金대통령의 생가가 복원되지 않아 볼거리가 전혀 없어 실망스러웠다”며 관광객들이 섬을 찾았을 때 생가라도 보고 갈 수 있도록 복원을 위한 작은 정성을 모으기로 했다고 한다. 오는 6월에는 임진왜란 당시 한·일 양국 장군들의 후손 20여명이 서울에서 ‘화해의 만남’을 갖는다.이 행사에는 우리측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15대 후손과 서애(西涯) 유성룡의 14대 후손,일본측에서는 왜군 총지휘관이었던 우키다 히데이어(宇喜多秀家)의 15대 후손과 경남 사천성 전투의 왜장 시마쓰 요시히로(島津修久)의 14대손 등이 참석한다.일본은 지난해 10월8일 金大中대통령의 방일을 계기로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처음으로 문서를 통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햇볕정책을 통해 포용론과 화해정책을 펴고 있다.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판문점으로 ‘소떼’가 올라갔다.17명의 장기수도석방됐다.玄勝鍾전국무총리가 “나는 일본군 장교였다”는 부끄러운 과거를고백하면서 용서를 빌었다.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상생(相生)의 정치’를제창했다. 화해와 공존의 정치를 의미한다. 한국 근현대사는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겪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을 안겨주었다.망국과 분단과 전쟁과 독재와 민주화과정에서 숱한 죽임과 억압,대결과 갈등을 빚었다.이념싸움과 노선투쟁·지역대결과 내부갈등이 그치지 않았다.이런 와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고 찢기고 갈라지면서 원(怨)과 한(恨)을 남겼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친일파 문제를 비롯해 독재청산,의문사와 각종 의혹사건 등 청산하고 밝히고 정리해야 할 ‘역사의 빚’이산적해 있다.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다.원수는 잊기 어렵지만은혜는 쉽게 잊는다는 말이겠다. 원도 많고 한도 많은 민족이기에 최제우 선생은 일찍이 ‘해원상생(解寃相生)’을 제창했던 것이다.20세기 원한의 매듭을 모두 풀고 새 천년을 맞았으면 한다.더구나 지금은민족의 대시련기다.민족적 시련과 대결을 화해와 용서로 풀고 남북과 동서가 공생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햇볕정책을 통해 북을 포용하고 지역차별금지법을 제정해 동서가 화합하면서 국난을 극복하고 새 세기,새 천년의 세계무대에 당당하게 나갔으면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해자들,기득권자들이 참회할 것은 참회하고 용서받을 일은 용서받아야 한다.또한 정치인들이 적대의식과 지역감정에서 해방돼 화해와 용서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국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 정치”(네루)라고 하지 않던가.전직 위정자들을 포함,과거 권위주의 시대에 국민에게 위해를 가한 인사들은 이 기회에 참회하면서 국난극복에 동참했으면한다. 물론 인간적 동정이나 용서와 역사적·사회적 평가를 혼동해서는 안될 것이다.또 원칙없는 온정주의로 쉽게 잊고 용서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그렇지만 화해와 용서는 인간의 환치할 수 없는 불변의 가치이고 삶의 미학이 아닐까. 주필 kimsu@
  • 헤즈볼라 폭탄공격…이 將星 폭사

    [베이루트 예루살렘 AP AFP 연합] 이스라엘이 점령중인 레바논 남부에서 28일 이슬람 무장조직인 헤즈볼라 게릴라가 폭탄공격을 감행하고 이스라엘이공중폭격으로 보복함으로써 이 지역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날 더 강력한 응징을 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가운데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흐도 이번 공격이 저항운동의 새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해 양측간 확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헤즈볼라는 성명에서 이스라엘 국경선 북쪽 6km 지점인 카우카바 마을과 하스바야 마을 사이의 도로에서 이스라엘군 호송차량 4대를 원격조종 시한폭탄으로 폭발시켰으며 “탑승자 전원이 죽거나 부상했다”고 주장했다. 현지 보안 소식통들은 이 공격행위가 약 30분의 시차를 두고 두차례에 걸쳐이스라엘군 점령지역인 ‘안전지대’에서 발생했으며 친이스라엘 민병대인남부 레바논군(SLA)과의 연락 총책임자 에레츠 게르슈타인 준장(38)과 사병2명,방송기자1명 등 4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앞서 23일에도 이스라엘 군에 매복공격을 가해 지휘관 1명과 장병 7명을 사살했다. 이스라엘 전투기들은 테러 직후 수도 베이루트 및 레바논 남부,시리아가 통제중인 동부의 베카 계곡 인근의 헤즈볼라 기지들에 수십발의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남부 항구도시 티레 등지에 1시간 30분 동안 100발 이상의 로켓포를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지난 85년 이후 헤즈볼라등의 공격을 막기 위한 완충지대로 레바논남부를 점령,‘안전지대’를 설정했으나 그동안 헤즈볼라의 공격을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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