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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총기난사·철책선 군 수뇌부 책임져야

    군대에서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잇따라 터져 국민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어제 새벽 최전방 GP에서 총기난동 사고가 일어나 장병 8명이 목숨을 잃었다. 며칠전에는 북한군 병사가 철책선을 뚫고 내려와 비무장지대에서 나흘이나 배회하도록 까맣게 몰랐다. 최근들어서만도 해군이 특수작전용 보트를 분실하지 않나, 술 취한 어부가 해상경계망을 뚫고 월북하지 않나, 철책선을 끊고 월북한 사건이 벌어지지 않나, 이거야말로 군의 총체적 기강해이요 경계 실패가 아니고 무언가. 총기난동사건이 터진 GP는 북한군과 불과 수백m 떨어진 최전방 감시·경계초소다. 이곳에 근무하는 장병들은 자칫 잘못하면 안보와 직결된다는 중요성 때문에 철저한 신원조회와 훈련을 거쳐 선발된다. 총기 등 무기의 관리는 기본이며, 병사들의 인성과 사기(士氣)·심기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배려해야 하는 등 한치의 빈틈없이 부대를 운영해야 하는 곳이다. 사고를 저지른 병사가 선임병들로부터 몇달째 언어폭력에 시달려 왔다는데, 지휘관들은 뭘하고 있었는지 답답하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월 ‘인분사건’에 이어 대국민 사과와 함께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사고는 장관의 사과 한 마디로 끝날 일이 아니다. 그동안 군내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해당 지휘관들에게만 그 책임을 묻고 군 수뇌부는 아무 책임도 없는 양 그냥 넘어갔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고는 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한계에 이르게 했다. 그런 점에서 사건 수습 후 군 수뇌부는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이며 재발방지 효과도 높일 수 있다. 군은 각종 총기·군기문란 사고가 터질 때마다 원인근절과 재발방지를 약속해 왔지만 예하부대에서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국민의 군대로 다시 태어나려면 이번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기강과 인권, 경계실태 등에 대한 전반적인 재점검과 함께 재발방지책을 단단히 실행해야 할 것이다.
  • 신임 ‘자이툰’ 사단장 정승조 소장

    이라크 아르빌에서 평화재건 임무를 수행중인 자이툰부대의 신임 사단장에 정승조(육사 32기) 육군 소장이 취임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지난 14일 자이툰부대 현지에서 사단장 이·취임식이 열려, 정 소장이 초대 사단장인 황의돈(육사 31기) 소장의 지휘관 임무를 인계했다고 16일 밝혔다. 이날 이·취임식에는 이상희 합참의장을 비롯해 장기호 주 이라크 대사, 신자리 쿠르드자치정부(KRG) 내무장관, 다국적군사령부(MNC-I)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신임 정 사단장은 취임사에서 완벽한 부대 방호 태세 확립과 이라크 평화정착 및 재건을 위한 성과있는 지원, 합리적인 부대 관리 등을 지휘 방침으로 제시했다. 정 사단장은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차장,3군사령부 작전처장,1사단장 등 전후방에서 주요 보직을 역임한 작전분야 전문가다.
  • 미군4형제 한꺼번에 이라크 복무 화제

    “내 아들들이 아니면 누가 해요?” 미국 아이다호주의 시골 마을에 사는 주부 태미 프루예트는 남들 같으면 아들 한 명을 사지(死地)인 이라크에 보내 놓고 밤잠을 이루지 못할 텐데 4형제를 한꺼번에 보내놓고도 태연하기 짝이 없다. 얼마 전 남편 레온과 다섯째 아들 에렌이 이라크에서 돌아왔지만 이들 부부의 네 아들은 국가경비대 소속으로 이라크의 쿠르드 자치지역인 키르쿠크에서 근무하고 있다. 오빠들이 귀국길에 오르기 전에 떠날지는 알 수 없지만 딸 에밀리도 훈련을 마치는 대로 이라크로 파견될 예정이다. CNN은 태미 가족의 특별한 조국 사랑을 조명하면서 이들 가족이 “자신들이 의무를 다함으로써 미국인들이 누리는 것과 같은 자유와 자부심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갖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다.”고 전했다. 이들 4형제는 평소 직장을 다니며 주말에 복무를 하다 의무기간 18개월을 채우려 이라크로 갔다. 월마트 부점장으로 일하던 맏이 에릭(26)은 기갑병 지휘관으로 이라크 경찰을 훈련시키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으며, 바텐더로 일하다 이번에 아기 아빠가 된 둘째 이반(23)은 형과 부대원들이 운전하는 탱크를 수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셋째 그렉(23)은 통신 전문가로 일하며 근처에서 교신하는 온갖 무선 전파를 감청하며 형들의 안전을 걱정하곤 한다. 고국에 돌아오면 잡화점 경리로 일하게 될 넷째 제프(20)는 저항세력을 수색하러 다니며 이라크인 신병들을 훈련시킨다. 평소에는 이메일 등으로 안부를 주고받던 네 형제는 인터뷰 때문에 파병 이후 처음 한자리에 모여 어머니와 가족, 집에서 먹던 요리 얘기 등을 나누었다고 CNN은 전했다.임병선기자 bsnim@seoul.co.kr
  • [씨줄날줄] 영 창/우득정 논설위원

    군에 갔다온 사람이면 “저 ×× 영창보내.”라는 말이 얼마나 살벌한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것이다. 옛말에 개똥밭에 뒹굴어도 저승보다 이승이 낫다는 말이 있듯이 혹독한 훈련과 고참의 가혹행위도 영창에 비하면 그래도 ‘인간적’이다. 누가 만들어냈는지 모르지만 입소문을 통해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사단 헌병대 영창에 끌려가면 그 순간 계급장이 떼어지고 눈앞에 수많은 별들이 난무할 정도로 따귀를 맞는다. 그때 따귀 맞는 정도를 ‘예배당의 종 치듯이’라고 했던 것 같다. 영창 얼차려의 주 종목은 ‘창타기’란다. 그것도 하루에 서너차례씩 원숭이처럼 창살에 매달려 30분 이상을 버텨야 한다. 발이 바닥에 닿기라도 하면 비 오는 날 먼지가 나도록 얻어터진다고 했다. 야간경계근무 중 졸거나 술에 취해 사고쳤다가 당직사관에게 걸리면 영창만은 보내지 말아달라고 싹싹 빈다. 남들이 쉬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팬티 차림에 한쪽 발은 전투화, 한쪽 발은 고무신, 알철모를 쓴 채 연병장을 박박 기고 구보하는 ‘군기교육대’가 그래도 낫다. 어느 주말, 면회 온 애인이 남자 친구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는 소설 같은 실화가 옆부대에서 있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최근 당정협의를 갖고 중대장급 이상 지휘관들이 병사들을 1회에 15일(총 60일)까지 영창에 구금할 수 있는 징계권을 손질하기로 했다고 한다. 헌법상 체포나 구금은 적법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으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야 함에도 영창제도는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아 위헌요소가 있다는 시민단체와 일부 국회의원들의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는 각 부대에 배치된 인권담당 법무관이 영창 결정의 적법성을 사전 심사하고, 결정에 불복하는 병사에게는 항고 절차를 통해 재심의 기회를 부여하기로 했다고 한다. 영창제도 폐지에 대해서는 군이 지휘권 약화 우려를 들어 강력 반대했다고 한다. 근신처분이나 휴가제한과 같은 미국식 징계가 징병제인 우리에게는 실효성이 없다는 게 반대 이유다. 하지만 지금도 군 내부규정에는 항고할 수 있도록 돼 있으나 유명무실한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초법적인 영창제도는 개선이 아니라 폐지의 대상이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美軍, 아프간 장기주둔 근거 확보

    9월 총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자세를 보여주려 했던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의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23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 카르자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 양해각서 체결을 통해 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장기주둔과 바그람 공군기지 등 주요 군사시설의 지속적인 사용권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반면 아프간에 주둔 중인 약 2만명의 미군에 대한 통제권을 더 많이 넘겨달라는 카르자이 대통령의 요구에 대해 부시 대통령은 “아프간 정부와 협의는 하겠지만 미군은 미군 지휘관의 명령에 따를 것”이라며 거절했다. 관타나모 기지 등 해외에 수감 중인 아프간 포로 수백명의 본국 송환 문제도 성사되지 못했다. 전날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미군이 아프간 포로 2명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건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난했던 카르자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는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이는 개별적인 문제이며 전체 미국인들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목소리를 낮췄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전시대비 학생 단번까지 부여

    정부가 1985년 폐지한 일선 고등학교의 학도호국단 조직을 전시에 대비한 ‘서류상 조직’으로 여전히 편성해 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예상된다. 교육부는 지난 3월 ‘전시 학도호국단 운영계획’이라는 제목의 대외비 문건을 일선 고등학교에 내려보냈다. 문건에는 각 고교를 전시 학생동원조직인 호국단으로 편성하고 학교장 등 교직원은 대대급 이상 지휘관, 일반 학생은 소대급 이하의 지휘관과 소총수 등을 맡도록 했다. 학생들에게는 군번과 같은 학도호국단 단번이 부여돼 있으며 전쟁 위협상황인 ‘충무 2종’ 사태 발생시 전시조직으로 전환토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전시 좌경생 지도’라는 명목으로 좌경학생과 교사를 파악해 특별관리한다는 내용도 담고 있어 사상검증 논란까지 일 것으로 보인다. 남학생들은 긴급 복구사업과 학교장 동의 아래 경계원 활동 등에 동원토록 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이에 대해 “1985년 이후 지금까지 서류상으로 존재해 온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전시에만 적용될 뿐”이라고 해명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軍수뇌부 반발 파문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군 사법개혁안을 마련 중인 가운데 일부 군 수뇌부와 야전 지휘관들이 군 검찰 독립 등에 대해 사실상 반발하고 나서 파장이 예상된다. 윤광웅 국방장관과 이상희 합참의장, 김장수 육군·남해일 해군·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을 비롯한 수뇌부와 군단장 등 군 고위 관계자 70여명은 19일 국방부에서 비공개 토론회를 갖고 ‘지휘권 보장과 확립’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개혁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밝혔다. 이들은 “군의 존재 목적은 전쟁에서 싸워 이기는 데 있고, 이를 위해서는 지휘권이 확립되고 보장돼야 한다.”며 “군 사법제도 개선은 인권보장과 지휘권 확립에 도움이 되는 방향에서 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사개추위의 ‘전신’격인 대법원 산하 사법제도개혁위원회(사개위)는 지난해 말 군 검찰 조직을 국방부 소속으로 통합, 지휘관으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토록 하는 한편 지휘관의 형량 감경권과 현역 장교가 재판관으로 참여하는 심판관 제도의 폐지 등을 골자로 하는 개선안을 마련, 사개추위에 건의한 바 있다. 토론회에서 일부 지휘관들은 “군 검찰이 독립적으로 활동하게 되면 지휘관의 통제권에서 벗어나 군내 최고의 권력기구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고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군사법원·軍검찰 민간이양”

    “군사법원·軍검찰 민간이양”

    국방부 장관 자문기구인 국방 연구발전TF(위원장 김희중 예비역 육군 중장)가 최근 군사법원과 군 검찰의 민간(民間) 이양 등 파격적인 내용의 군 사법제도 개선 건의안을 마련해 국방부에 보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 건의안이 대통령 자문기구인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위원장 한승헌 변호사)가 지난해 말 해체된 사법제도개혁위원회로부터 넘겨받아 보완 작업중인 개선안과는 거의 전 분야에 걸쳐 현격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파악돼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18일 “이 TF가 수개월에 걸친 개선에 관한 연구를 마치고 최종 시안을 최근 윤광웅 장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사개추위는 오는 6월까지 최종 시안을 도출할 방침이다. ●토론회 거쳐 최종안 도출……논란 예고 국방부는 국장급 이상 간부와 일선 지휘관 등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9일 대회의실에서 이와 관련해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군 사법제도 개선과 관련해 현직 지휘관들이 참석하는 토론회가 열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그동안 군 사법제도 개선작업 과정에서 군심(軍心)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군 안팎의 지적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비공개로 진행될 토론회에는 합참의장과 각 군 참모총장, 일선 군단장 등 현역 장성들도 대거 참여할 예정이어서, 그동안 지휘권 누수 등을 우려해 온 일선 지휘관들의 불만이 어떤 양상으로 표출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또 민간의 검·경과 마찬가지로 군내 수사 지휘권 문제를 둘러싸고 보이지 않게 알력을 빚어 온 군 검찰과 헌병 관계자들도 자리를 함께 할 예정이어서 격론도 예상된다. 국방부는 현재 사개추위가 추진 중인 사법제도 개선안에 대해 지휘관들의 우려가 적지 않은 점을 감안, 이달 말쯤엔 사개추위 기획추진단과 군 수뇌부간의 토론의 자리도 만들 방침이다. ●“사개위안 군 특수성 반영못해” TF는 건의안에서 군사법원과 검찰을 민간에 이양토록 했다. 수사·재판의 완전 분리로 사법의 독립성을 확보하고, 법무장교는 지휘관에 대한 법률 조언과 기타 법률 업무만 지원토록 했다. 당초 사개위가 평시에 한해 폐지를 주장한 관할관 확인조치권과 심판관 제도 역시 국민 사법제도 참여 추세에 어긋나는 데다, 군의 특수성도 반영하지 못했다며 유지 입장을 밝혔다. 이와 함께 헌병에 대해 군 검찰의 수사 지휘권을 강화하는 사개위의 방침은 경찰 수사권 독립을 추진 중인 민간과는 오히려 반대로 가는 형국이라고 지적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검찰도 참여하는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이 가감없이 개선 작업을 실제로 추진중인 사개추위에 전달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前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씨

    1980년 2월4일 오후 서울 서빙고동 국군보안사령부 분실장실.50여일 동안 감방생활을 한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운명적으로 만났다. 장 사령관은 전 사령관보다 장교임관 5년선배였다.. “장 선배, 그동안 고생이 많았습니다. 건강은 어떠신지요?” “나야, 이래저래 죽을 몸인데 건강이 뭐가 중요하겠소. 그런데 전 장군, 난 수경사령관이오. 나의 임무(반란군 진압)가 뭔지 잘 알잖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전 사령관은 약간 어색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사실, 정승화 육참총장이 김재규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도 조사에 불응했습니다. 정 총장께서 총장직을 내놓고 6개월정도만 집에서 쉬고 계시면 국방부장관이나 더한 자리를 보장해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순간 장 사령관은 쿠데타 계획이 매우 치밀하게 짜여져 있음을 직감했다. 전 사령관의 얘기는 계속됐다. “장 선배가 한강다리를 막는 바람에 지금 금값이 얼마인 줄 아십니까.3만원하던 것이 7만원으로 뛰었고, 국제여론도 좋지 않습니다.” 무슨 생뚱맞는 얘기인가. 장 사령관은 아랑곳하지 않고 다그쳐 물었다. “전 장군, 정 총장은 나를 수경사령관으로 임명한 상관이요. 총장을 연행해 갔다는 사실을 왜 안 알려줬소.” “장 선배, 사실은 밑에 사람들이 장 선배를 사전에 연금시키자는 것을 내가 야단을 쳤어요.‘그 어른은 우리가 모시고 큰 일을 함께 할 분인데 그렇게 하면 되겠나.’라고 했지요. 장 선배가 그러지만 않았다면 우리들은 그 다음날 장 선배를 중장으로 진급시켜 군단장으로 내보내려 했습니다. 사정을 이해해주시고 6개월 동안 집에서 쉬고 계시면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장 사령관은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분하고 억울했다.6.25전쟁도 겪지 않은 후배한테 철저하게 유린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 장군, 군인이 군생활을 마치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일자리는 무슨 일자리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소. 승부는 깨끗하게 합시다. 이 패장을 죽이지 않고 집으로 보내준다니 나가야지.” 장 사령관은 다시 감방으로 돌아왔다. 수사관들이 전역지원서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사령관님, 이거 예편서입니다. 써주셔야 하겠습니다.” “뭐라고 쓰면 돼?” “네, 일신상의 사유로 인해 예편을 상신합니다.” “알았어.”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일제때 태어나 광복의 기쁨도 채 가시기 전 19세 어린 나이에 구국의 일념으로 6.25에 참전했다. 또 베트남전을 겪으며 무수히 많은 사선을 넘었다. 명예롭기는 커녕 12.12 군사반란을 진압하지 못한 불충의 죄인으로 30년 동안 몸담았던 군을 떠난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전역지원서를 쓴 장 사령관은 연행돼 올 때 입었던 소장 계급장의 군복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노을지는 저녁무렵이었다. 서울 봉천동의 집에 도착하자 아들과 딸 부인과 누나 내외, 그리고 장모가 울음으로 맞이했다. ●드라마서 전두환을 유비·관우처럼 취급 이후 장 장군의 집안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는다. 우선 장 장군은 강제로 전역된 뒤 자택에서 2년동안 가택연금을 당했다. 또 TV뉴스를 통해 보안사에 끌려가는 장 장군의 모습을 본 시골의 아버지는 곡기를 완전히 끊고 매일 막걸리만 마시다가 80년 4월 세상을 뜨고 말았다. 또 82년 2월에는 외아들이 장 장군의 곁을 떠나버렸다. 그것도 할아버지의 산소 근처에서 꽁꽁 얼어붙은 채로. 꼭 25년 세월이 흘렀다. 쿠데타 세력들은 역사의 심판을 받았다. 장 장군은 재향군인회장,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등을 지내며 뒤늦게나마 명예회복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가슴에 묻어둔 천추의 한을 어찌 씻을 수 있으랴. 특히 요즘 TV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그날을 생생하게 되새기고 있다. 서울 대치동 자택에서 장 장군을 만났다. “쿠데타를 하고 나서 집권을 위해 어느 한쪽을 손을 봐야 했지. 그래서 민주화를 외쳐대는 전라도 광주를 친 거야. 서빙고에서 알았지만 놈들은 정부운용 계획까지 치밀하게 짜놓았더군.”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했다. 그는 “이제와서 무슨 말을 해. 날 좀 내버려둬.”하면서 처음에는 인터뷰를 거절했다. 거실 의자에 앉자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문제가 많아”하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전두환을 무슨 유비나 관우처첨 취급하고 있어. 나머지는 다 샌님이야. 잘 모르는 젊은 세대들은 어떻게 생각할거야.” 또한 “쿠데타는 5·16이나 12·12에서 보듯 불과 200∼300명의 군인이 저질러. 이런 것이 미화되면 누가 아들을 군대에 보내겠으며, 목숨으로 나라를 지킨 호국영령들을 욕되게 하는 거야.”라고 했다. 그가 지적한 드라마 ‘제5공화국’의 오류. 첫째 쿠데타의 배경과 대통령 유고 상황에서 국가적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않은 부분을 쏙 빼버렸다는 것.5·16으로 집권한 박정희 전 대통령이 권좌의 안위를 위해 전두환씨를 보안사령관에 임명한 배경과 하나회를 통해 전씨에게 힘이 쏠린 과정, 그리고 10.26때 모든 요직의 책임자들이 우왕좌왕해 사실상 직무유기한 부분 등 교훈적 가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보안사서 정보 완전 장악, 12·12진압 못해 두번째는 국가운영에 필요한 정보가 한곳으로 모아지면 안된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는 것.10·26직후 보안사령관이 군과 경찰 정보는 물론 중앙정보부까지 완전히 장악, 대통령에게 정보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12·12가 성공할 수 있게 된 결정적인 요인임에도 드라마에서는 이를 놓치고 말았다고 꼬집었다. 또한 군사반란이란 어떤 것이며, 발생했을 경우 방어와 진압의 수순 등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수경사는 대통령령으로 방패계획에 의해 창설됐지. 또 수경사의 사전 허락없이 수도권에 군병력이 절대 들어올 수 없어. 지휘관이 몰래 수경사 예하 30경비단을 장악한 그 자체가 중대 반란이야.” 12·12를 진압하지 못한 결정적인 원인을 묻자 “무슨 명령만 내리면 저놈들이 죄다 알고 있는거야.”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어 “마지막으로 수경사 소속 전차를 출동시키려고 부대 정문을 나서는데 이희성 당시 중앙정보부장 서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를 걸어와 ‘출동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더군.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하게 감시당했어. 또 휘하의 지휘관들은 이미 저쪽으로 많이 기울어졌어. 정말 기막힐 노릇이지.”라고 한탄했다. ●일과의 60% 독서… 쿠데타 막는 법 책낼 것 장 장군은 경북 칠곡에서 3남3녀 중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대구상고를 다니던 중 6·25가 터지자 육군종합학교(11기)에 지원, 사선을 넘었다. 육군대학 졸업논문으로 보안사령부 해체를 주장했다가 베트남 참전때 ‘사상 불순자’로 찍히기도 했다.71년 1월 별을 단 그는 5군단 참모장-수경사 참모장-26사단장 등을 거쳐 10·26 직후 수경사령관이 됐다. 요즘 장 장군은 쿠데타를 막지 못한 ‘한’ 때문에 동서고금의 쿠데타 자료를 모으고 있다.1799년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이 군력(軍力)으로 정부를 뒤집은 데서 유래한 쿠데타 막는 법을 생전에 책으로 엮어내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요즘에는 일과의 60%를 독서에 쏟아붓고 있다. “죽기보다 더 괴로운 인생을 살았습니다. 다시는 쿠데타가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제갈공명은 강류석불전(江流石不轉)이라고 했다. 강물은 흘러도 그 안의 돌은 물결따라 이리저리 구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 그가 걸어온 길 ▲1931년 경북 칠곡 출생 ▲50년 대구상고 재학 중 6·25참전. 육군종합학교 11기 졸업. 육군 소위 임관 ▲53년 조선대학교 법학과 졸업. ▲54년 보병학교 전술학교관 ▲71년 장군진급 ▲72년 5군단 참모장 ▲73년 수경사 참모장 ▲75년 26사단장 ▲78년 육본 교육참모부차장 ▲79년 11월 수경사령관 ▲80년 육군소장 예편 ▲82년 한국증권전산 사장 ▲91년 육군종합학교전우회 회장 ▲94년∼2000년 제27대,28대 재향군인회 회장 ▲2000년 새천년민주당 입당 ▲2000∼2004년 전국구 국회의원 ■ 상훈 충무무공훈장, 보국훈장 천수장, 자랑스런 한국인상(96년) ■ 저서 12·12쿠데타와 나(93년, 명성출판사) km@seoul.co.kr
  • [코드로 읽는책] 영혼을 지휘하는 리더십/에드거 F 퍼이어 지음

    2차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끈 마셜, 맥아더, 아이젠하워, 패튼 등 4명의 장군.‘영혼을 지휘하는 리더십’(에드거 F 퍼이어 지음, 이민수·최정민 옮김, 책세상 펴냄)은 이들의 리더십을 여러 각도에서 비교 분석한 책이다. 저자는 타고난 능력과 후천적으로 개발된 요소들의 합작품이 리더십의 근간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책은 단순히 성공을 꿈꾸는 군인들만이 아니라 리더십이 요구되는 어떤 직업·직책의 사람들에게도 유익하다. 특히 리더에서 가장 중요한 자질은 배려와 사랑으로 ‘영혼을 지휘하는’것임을 강조한다. 마셜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병사들 가족의 생계를 해결해 줬고, 맥아더는 전사자들의 가족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다. 아이젠하워는 당번병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영국 왕을 만나는 자리에 부하를 데리고 갔다. 거친 패튼은 부상자들의 병문안을 가서 눈물을 흘렸다. ●신념과 용기 리더십, 맥아더 그의 휘하의 한 사단장은 “그의 용기는 단연 으뜸이다.”라고 말한다. 적의 폭격에 다른 장교들은 방공호로 내려갔지만 그는 사무실에 남아 적을 관찰했다. 그는 군인들에게 한 연설에서 “모든 군인들의 특질 중에서 가장 위대한 찬양을 일으키는 것은 용기”라고 강조했다. 잘 생기고, 쇼맨십까지 갖춘 그는 자신을 영웅처럼 떠받들게 하는 매력이 있는 지휘관이였다. 좀처럼 병사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직접 방문시에는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 병사들이 자신을 둘러싸게 했다. ●결단과 조정의 리더십, 아이젠하워 군인으로서의 자질뿐만 아니라 정치가로서의 융통성 등이 필요했던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자리. 그는 이를 가장 잘 수행해낸 인물이다. 영국군 야전군 원수이던 몽고메리 경은 그를 “연합군이 멋진 전투를 수행하도록 단결시키고 수많은 분쟁과 방해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 준 최고사령관이자 군 정치가였다.”라고 평가할 정도다. 언론도 잘 다뤄 기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신뢰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위험한 정보는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성과 사랑의 리더십, 마셜 참모총장 시절 그는 사열도중 한 병사와 얘기를 나눴다. 뭔가 그 병사의 눈빛이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 면담결과 나이도 많고 부양가족도 여럿인 것을 알고 바로 다음날 그를 가족들에게 돌아가도록 조치했다. 그는 스스로 전문적인 지식을 배우는데 그치지 않고 젊은 장교들에게 전문 군사특기를 습득하도록 독려했다. 개인적인 영광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쓴 그다. 그의 리더십은 2차 세계대전시 육군 참모총장의 직위에 올랐을 때 최고조에 달했다. ●긍지와 솔선수범의 패튼 그는 해변에서 공급 물자 싣는 것을 돕거나, 진흙탕에 빠진 트럭을 병사들과 함께 밀어 올리는 등 몸소 실천하는 스타일이다. 병사들이 잘 먹는지, 옷은 따뜻하게 입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지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지도자’가 아니라 ‘운전사’라고도 말한다. 패튼은 적과 싸우는 만큼 자신들의 병사들을 위해 싸웠다.2만 5000원. 최광숙기자 bori@seoul.co.kr
  • 누가 ‘미스터 김’ 모르시나요

    “54년 전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서 나를 구해줬던 소년병 ‘김씨’를 꼭 만나고 싶습니다.” 6·25 전쟁 때 유엔군 소속으로 참전했던 그리스의 예비역 대령이 전쟁터에서 부상한 자신을 구해준 당시의 한국인 청년을 애타게 찾고 있다. 주인공은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7월 29일 그리스군 육군 중위로 강원도 철원 인근 ‘스코치 313’ 고지에서 중공군과 대치했던 알렉산더 카라차스(84). 그해 10월 카라차스는 ‘스코치 313’ 고지에서 중화기부대 부지휘관으로 전투를 벌이다 복부에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그러나 두달가량 함께 막사생활을 했던 당시 18세 가량의 한국군 군무원에게 구조돼 다행히 목숨을 건지게 됐다. 하지만 자신을 도와줬던 이 청년에 대해 그가 지금 기억하는 것은 그의 성이 김씨였다는 게 유일하다. 카라차스는 지난 3월에도 그리스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김씨’의 소재를 파악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는 “지금도 당시만 생각하면 그때의 ‘김씨’가 그리워진다.”고 말했다. ‘스코치 313’ 고지는 강원도 철원 서쪽 6∼7㎞(당시 지명으로 갈곡과 독산리 사이)지점에 위치한 곳으로, 당시 전투에서 그리스군 49명이 전사하고 120여명이 부상하는 등 그리스군이 6·25전쟁 때 가장 치열한 전투를 치른 것이다. 카라차스는 최근 한국에 입국해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영동고속도로 여주휴게소에 마련된 그리스군 참전기념비 단장공사를 직접 맡았으며, 지난 10일엔 보수공사가 완료된 기념비 제막식에도 참석했다. 김씨의 소재에 대해서는 주한 그리스대사관(02-729-1400)이나 수원보훈지청(031-259-1705)으로 연락하면 된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③ 호찌민의 친구들

    [방현석교수의 테마로 읽는 호찌민] ③ 호찌민의 친구들

    1931년, 호찌민은 영국 식민지였던 홍콩에서 체포됐다. 베트남의 빈 지방법원이 궐석재판으로 호찌민에게 이미 사형을 선고했기에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영국 식민지 당국이 그를 프랑스에 넘기지 않고 추방조치만 취해도 호찌민은 대기 중인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총독부로 넘어가게 되어 있었다. 일단 인도차이나 총독부 손에 넘어가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때 호찌민에게 행운의 밧줄을 던진 사람은 영국인 변호사 프랭크 로스비였다. 변론을 맡은 그는 호찌민을 빅토리아 감옥에서 빼내 보원로드 병원으로 옮겼다. 호찌민이 병원에서 결핵으로 사망했다는 소문을 퍼뜨린 다음, 영국 식민지 당국과 협상을 통해 호찌민이 싱가포르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수완을 발휘한 것도 로스비였다. 그러나 싱가포르에 도착한 호찌민은 세관 관리들에 의해 체포되어 곧바로 홍콩으로 되돌려 보내졌다. 프랑스의 정보망을 따돌리고 호찌민을 탈출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로스비의 부인까지 나섰다. 그녀는 친구인 라벤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홍콩 부총독의 부인으로 시인이기도 했던 라벤스는 지적이고 당당하며, 예의바른 식민지 청년에게 깊은 호감을 느꼈다. 호찌민이 영국 당국자의 호위를 받으며 몰래 상하이로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은 로스비와 라벤스 덕분이었다. 이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그러나 우연한 행운이 아니었다. 호찌민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강한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적들조차도 그를 직접 겪었던 사람은 거의 예외 없이 그의 옹호자가 되었다.1945년 베트민의 근거지 떤자오에서 호찌민과 함께 지냈던 미국 공군 필런 중위는 훗날 호찌민을 아주 ‘온화하고 착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다. 비슷한 시기에 프랑스군 정보관으로 인도차이나에서 일했던 장 라쿠튀는 ‘이 시대의 혁명가로서 이 정도 강한 인내로, 감히 힘의 질서에 도전할 수 있었던 사람이 달리 있었느냐.’고 되물었다. 1955년부터 1963년까지 호찌민을 수행하며 기록영화를 찍었던 안선(An Son) 감독은 1957년 호찌민의 해외순방 시절을 잊지 못한다.11개국을 연쇄방문 중이던 호찌민이 어느 날 아침 수행하고 있던 일행들에게 어려운 일이 없느냐고 물었다. 모두 없다고 대답했는데 26세로 막내였던 안선이 당돌하게 손을 들었다. “아저씨가 너무 빨리 걸어서 찍기가 너무 힘듭니다.” 호찌민은 유난히 걸음이 빨랐다. 더구나 안선은 좋은 그림을 얻기 위해 덩치가 큰 외국 기자들과 몸싸움을 벌이며 뛰어야 했다. “신문 기자들은 수첩 하나, 사진 기자들은 사진기 한 대만 들고 다니지만 전 카메라에 녹음기, 배터리까지 하면 10㎏을 넘게 메고 뛰어야 합니다.” 다른 수행원들이 모두 나무라는 눈길로 안선을 흘겨보고 호찌민의 눈치를 살폈다. 안선도 아차 싶었는데 정작 호찌민은 환하게 웃으며 알았다고 했다. 그날 호찌민은 자주 안선의 위치를 확인하고 걸음을 늦추어 주었다. 그래도 쉬지 않고 매일 밤 11시까지 계속되는 일정은 안선을 녹초로 만들었다.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었죠. 그런데 잠결에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는 것이 느껴지는 거예요. 잠결에 얼핏 눈을 뜬 저는 깜짝 놀랐어요.” 벌떡 일어나려는 안선의 어깨를 호찌민은 지그시 눌렀다. 그리고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려 덮어주고는 가만히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정작 나는 그리고 나서 한숨도 자지 못했어요. 나는 일행 중에서 가장 어린, 아무 배경도 없는 촬영기사, 그것도 남부에서 올라온 사람일 뿐이었어요. 밤새 생각해보았는데 친아버지도 내게 그래 준 적이 없었어요.” 안선이 결혼해 아이를 얻은 다음이었다. 라오스국왕이 베트남을 방문해서 환영 연회가 열렸다. 연회가 끝난 다음 촬영장비를 챙기고 있는데 배웅을 나갔던 호찌민이 되돌아왔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에 남아 있던 사탕을 집어서 그의 주머니에 슬그머니 넣어주었다. 안선이 돌아보자 호찌민은 빙긋이 웃었다. “‘깜 험’ 가져다 줘.” 호찌민은 안선의 3살 난 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지도자가 호 아저씨였어요. 아저씨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 누구나 이런 비슷한 기억을 가지고 있어요. 내가 죽기 전에는 내 심장 속에서 아저씨를 빼낼 수 없을 거예요.” 올해 일흔 넷의 백발 노인이 되었는데도 호찌민을 회상하는 안선의 상기된 얼굴은 소년처럼 해맑았다. 호찌민 주변의 인물들을 만나면서 가장 의외였던 것은 혁명 운동의 전 기간을 통해서 호찌민이 다수파였던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인맥과 세력을 형성해서 정치를 했던 지도자가 아니었다. 권력을 앞세워 인맥을 구축하고 명분을 내세워 다수파가 되려고 하지 않은 드문 정치가가 호찌민이었다. 그렇다고 호찌민이 카리스마가 없는 지도자는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그는 아주 강력한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였고, 그의 곁에 포진한 매우 충성스럽고 유능한 인물들에 의해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훼손되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호찌민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호위하며 베트남을 이끌어온 사람들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셋 있다. 쯩 찐과 팜 반 동, 보 응우옌 잡이 그들이다. 쯩 찐은 1941년 호찌민이 베트남에 돌아와 주재한 제8차 당 전체회의에서 총서기장을 맡은 인물이다. 호찌민은 그 자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정중하게 사양하고 쯩 진에게 그 자리가 돌아가도록 했다.1920년대에 혁명청년회에 가담해 일찍 감옥생활을 한 그는 사교적이지 않았지만 원칙에 아주 충실한 사람이었다. 팜 반 동은 행정과 재정에 관한 능력이 탁월한 인물로 호찌민이 주석과 겸직하던 총리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를 수립하고 체계를 잡아가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특히 그의 ‘청렴’은 호찌민 정권의 위신을 높이고 대중의 신뢰를 얻는 데 기여했다. 보 응우옌 잡은 호찌민의 진영의 가장 출중한 군사 전략가였다.1944년 12월22일,34명의 대원으로 ‘베트남해방무장선전대’를 창설한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작전을 성공시킬 때까지 무려 30년간의 저항 전쟁을 총지휘했다. 이 세 사람과 호찌민의 관계를 베트남 사람들은 ‘한 다리로 서 있는 학의 세 발가락’이라고 불렀다. 학이 베트남이라면 그 학을 받치고 선 한 다리는 호찌민이다. 그리고 그 다리를 견고하게 지탱하고 있는 세 발가락이 쯩 찐과 팜 반 동, 보 응우옌 잡이다. 그 중에서도 보 응우옌 잡은 호찌민의 가장 충실한 동지이자 제자였다.1940년 신혼이었던 잡은 호찌민의 호출을 받고 아내와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첫 딸을 남겨두고 중국으로 갔다. 그가 떠난 다음 아내 우옌 티 꽝 따이는 프랑스 당국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었다. 아내의 언니인, 우옌 티 민 카이도 사이공의 군사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총살형을 당했다. 잡의 아버지도 훼에서 프랑스군에 체포되어 이빨이 다 뽑히는 고문을 당한 끝에 죽었다. 호찌민은 악명 높은 꼰다오 감옥에서 갓 출감한 팜 반 동과 함께 쿤밍으로 온 잡에게 옌안으로 가서 군사과학을 공부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여행허가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했다.1940년 6월22일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호찌민은 두 사람에게 베트남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고국으로 돌아가서 이 상황을 이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군사학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베트남으로 돌아와 무장투쟁의 책임자가 된 잡의 활약은 눈부신 것이었다.34명의 대원으로 베트남해방무장선전대를 창설한 그는 이틀만에 프랑스군 초소를 공격하여 완승을 거두었다. 그 공격을 통해 무장선전대는 프랑스군의 무기로 무장하고 다음 공격에 나서, 다시 승리를 거두었다. 잡은 군대를 눈덩이처럼 불리며 북부 국경지대에 해방구를 확보해나갔다. 프랑스를 내쫓고 베트남을 삼킨 일본이 연합군에게 항복을 선언한 이튿날인 1945년 8월16일, 잡은 5000명으로 늘어난 해방군을 이끌고 하노이를 향해 진격했다. 하노이를 접수하고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를 궤멸시키면서 잡은 세계적인 전략가로 명성을 얻었다. 군사전문가도 아닌, 일개 역사교사 출신에 불과한 잡에게 군대를 맡긴 이유를 묻는 외국기자들에게 호찌민은 대답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졸업장이나 증명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실재일 뿐이다.” 그래도 군단급 병력도 없는데 대장 계급은 지나치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호찌민은 명쾌하게 대답했다. “우리 베트남에서는 소장과 싸워 이기면 소장을 주고, 중장과 싸워 이기면 중장을 준다. 웨스트모어랜드 장군도 대장 아니었나. 이긴 잡도 당연히 대장이다.” 잡이 진정한 호찌민의 제자라는 사실은 디엔비엔푸 전투의 승리에서가 아니라 전술 변경 과정에서 확인됐다. 잡이 디엔비엔푸 전선에 간 것은 전투개시가 임박해서였다. 전선을 직접 확인한 잡은 ‘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이 중대한 오류임을 금방 발견했다. 프랑스군의 화력, 장비가 베트남을 압도하고 있었고, 포병과 공군까지 확보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격개시는 기정사실이 되어 있었고, 병사들은 결사항전의 결의로 불타고 있었다. 작전을 연기할 경우 최고조로 끌어올려 놓은 병사들의 사기가 땅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었고 또 우기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잡은 중국 군사고문이 지지하는 ‘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을 ‘완벽한 준비, 완전한 승리’ 전술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반발이 없을 수 없었다. 잡은 사령관이었지만 무조건 명령하지 않고 토론에 붙였다. 토론에서는 언제나 선명한 명분이 힘을 발휘한다. 잡은 인내심을 가지고 반대의견을 설득하고 공격을 연기했다. 그런 다음 병력을 대거 충원하고, 야포를 맨손으로 산꼭대기까지 끌어올렸다. 이 ‘조기공격, 신속승리’ 작전수립에 참여했던 32사단장 레쫑똔은 만약 그 때 잡이 와서 전술 변경을 결단하지 않았으면 베트남은 결코 프랑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고백했다. 전선의 정치위원이던 팜 응옥 목의 의견도 다르지 않았다. “잡이 일단 멈추고 준비하자고 말했을 때 나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을 만큼 속으로 기뻤다.‘조기공격, 신속승리’ 전술에 따르면 자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로 평가받을까봐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도 하지 못하는 말을 잡이 했다.” 보 응우옌 잡은 디엔비엔푸의 전술 변경이 자신의 ‘지휘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고 최근에야 밝혔다. 명분 때문에 진실을 외면하고, 개인의 영예를 위해 인민을 희생시키지 않는 호찌민의 노선을 그는 언제나 견지했다. 호찌민이 운명한 다음 살아있는 지도자들 중에서 베트남인의 가장 큰 존경을 받는 그는 지난 4월30일에 열린 승전30주년 기념행사에서도 직접 연설을 하고, 전쟁 희생자들을 챙겼다. 그러나 그는 한 번도 자신의 스승이자 동지인 호찌민을 가리려고 하지 않았다.1975년 4월30일, 사이공의 대통령궁을 접수하고 가장 먼저 잠든 호찌민에게 찾아가 그 사실을 보고했던 잡. 자신의 공적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의 대답은 올해도 변함이 없다. “나는 호 아저씨의 노선과 방침을 직접 적용하고 실행해온 지휘관이었을 뿐이다.” 1983년 그가 ‘국가출산계획위원회’ 위원장에 내정됐을 때 거절할 것으로 생각한 사람들이 많았다. 일본과 프랑스, 미국, 중국과 싸워 베트남을 지킨 전쟁영웅에게 그 자리는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태연히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받아들였고, 지금도 그것에 대해 말이 없다. 베트남이 지금까지 권력의 암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잡과 같은 호찌민의 사람들이 호찌민 정신을 자신의 삶으로서 지켜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방현석 교수 bang80@jowoo.co.kr ●자료 사진을 협조해주신 주한베트남대사관과 베트남통신사(VNA)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특히 애써주신 베트남통신사 부 주이 흥 서울지국장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美 ‘괴짜 전쟁영웅’ 해크워스 사망

    |뉴욕 연합|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수많은 무훈을 세워 ‘전쟁영웅’으로 불렸으나 괴이한 행동으로도 유명했던 데이비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이 지난 4일(현지시간) 멕시코의 한 병원에서 암으로 숨졌다고 뉴욕타임스가 6일 보도했다.74세. 신문에 따르면 불과 20세의 나이로 한국전에 지휘관으로 참전했고 베트남전에서는 최연소 대령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의 무공십자훈장 등 91개의 훈장과 메달을 받을 정도로 혁혁한 무훈을 세운 해크워스는 현역 신분으로 미군의 베트남전 수행방식을 비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1931년 미 캘리포니아주에서 출생한 해크워스 예비역 대령은 15세 때 ‘가짜 아버지’에게 돈을 주고 입대연령에 도달했다는 보증서를 받아 육군에 입대했다. 이어 한국전이 발발하자 자원 참전,‘울프하운드(이리사냥개) 특공대’로 불린 의용군 부대를 지휘하면서 머리에 총상을 입고도 전선을 떠나지 않는 불굴의 용기를 보였다. 한국전 종전 후에는 미군의 베트남전에 공수부대의 일원으로 참전했으며 공격용 헬기 부대 지휘관이 됐다. 그가 이끈 헬기부대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소재가 됐다. 한 전투에서는 2500명의 월맹군 병사들을 몰살한 반면 아군 사망자는 25명에 그치는 대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해크워스는 다른 한편으로는 병사들의 성병 감염 위험을 제거한다는 이유로 부대 주변에 매춘업소를 운영하는 등 기이한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 육·해·공군 참모총장 민간정책보좌관 둔다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좌할 민간인 정책보좌관제의 도입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윤광웅 국방장관은 최근 육·해·공군 참모총장을 보좌하는 정책보좌관의 신설 문제를 적극 검토할 것을 지시했다고 국방부 관계자가 27일 밝혔다. 3군 총장들이 오랜 기간 야전 지휘관으로 있었고, 집무실이 충남 계룡대에 있는 만큼 국회관계 등에 익숙하지 않은 데다 사회에 대한 현실 감각이 다소 떨어져 이같은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추진되는 것이라고 이 관계자는 설명했다. 정책보좌관제 도입이 확정될 경우 올 상반기 중에 채용이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對) 국회 업무에 해박한 민간인 출신이 맡게 될 정책보좌관은 2급 상당 군무원 계약직으로, 임기가 2년인 각군 총장과 임기를 같이 할 가능성이 높다. 국내·외 현안에 대한 정확한 상황 판단으로 지휘관이 결심을 하는 데 조언해 줄 것이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국방부 본부 문민화 방침이 순수한 군인조직인 각군 본부로까지 확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없지 않다. 한편 국방부는 현역 725명 중 346명(48%)을 올해부터 오는 2009년까지 207명(29%)으로 139명 줄이고 현역 장성 및 장교가 맡아온 32개 보직을 연내 민간인에게 넘기는 현역 편제 및 직제조정 계획을 확정한 바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다이만부대, 이라크 모래바람을 뚫다

    이라크 평화재건 공수임무를 맡고 있는 공군 다이만부대(제58항공수송단·쿠웨이트 주둔)가 1000시간 무사고 비행기록을 달성했다. 공군은 다이만부대 소속 C-130 수송기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이라크 북부 아르빌 자이툰부대로 물자를 수송하고 쿠웨이트 알리 알 살렘기지로 무사히 귀환, 비행기록 1000시간을 달성했다고 25일 밝혔다. 김준환(38) 소령과 김승현(31) 대위가 조종한 C-130 수송기는 부대장인 강대희 준장을 비롯한 미국, 일본 등 동맹군 지휘관들의 축하 속에 살렘기지 활주로에 안착했다. 강 단장은 “거센 모래바람과 적대세력의 대공 위협 속에서 이뤄낸 값진 결실”이라며 “태극마크를 달고 이라크 평화 재건을 위해 몸 바친 부대원들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한호 공군참모총장은 축하 메시지를 보내 “이역만리에서 어려운 작전 환경을 극복하고 이뤄낸 쾌거는 공군 파병사에 크게 빛날 것”이라고 치하했다. 한편 다이만부대는 지난해 10월 25일 작전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연인원 8500여명, 화물 700여t을 공수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마이너리티 리포트’ 현실로?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장갑을 낀 손을 허공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며 컴퓨터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던 주인공 톰 크루즈의 모습이 머잖아 현실화될 전망이다. 이른바 ‘동작 공학’을 활용, 손짓으로 컴퓨터를 조작하는 방법을 미 방위산업체 레이시온이 연구 중이며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13일 보도했다. 레이시온 기술진은 이 영화를 보면서 기술 개발의 영감을 얻었고, 이 영화에 기술진으로 참여한 존 언더카플러 박사를 고용해 연구를 발전시키고 있다. 이 기술은 특수장치가 부착된 장갑을 끼고 손 동작을 하면 컴퓨터와 연결된 카메라가 이를 인식, 컴퓨터에 명령을 전달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스크린 앞에서 엄지손가락을 내리고 손을 좌우로 움직이면 마우스로 드래그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난다. 손으로 스크린에 뜬 화면을 확대·회전시키거나 지우는 것도 가능하다. 현재 손 동작으로 컴퓨터에 내릴 수 있는 명령은 20개 정도다. 기본적으로 이 기술은 마우스와 키보드를 대신해 장갑을 입력장치로 이용하는 것이지만 훨씬 다양한 명령을 편리하고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때문에 회사측은 전쟁터에서 군대 지휘관이 위성과 센서, 병사들로부터 쉴새없이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를 능률적으로 처리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본다. 또 컴퓨터 게임이나 건축설계 등 3차원 영상을 이용하는 분야에 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합참의장 이상희씨등 군수뇌부 7명 인사

    정부는 22일 국무회의를 열어 합동참모회의 의장에 이상희(육사 26기) 3군 사령관, 육군 참모총장에 김장수(육사 27기)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해군 참모총장에 남해일(해사 26기) 교육사령관을 임명하는 군 대장급 인사안을 의결했다. 육군 1군 사령관에는 김병관(육사 28기) 7군단장,2군 사령관에는 권영기(갑종 222기) 국방대학교 총장,3군사령관에는 김관진(육사 28기) 합참 작전본부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는 이희원(육사 27기) 육군 항공작전사령관이 각각 보임됐다. 군내 8명의 대장 가운데 7명에 대한 이번 인사를 계기로 군 수뇌부가 일단 젊어졌다. 이번 인사에서 빠진 공군 참모총장은 임기가 완료되는 오는 10월에 인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이상희 합참의장 야전의 주요 지휘관과 정책부서 작전·전략·정책 등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전략통. 부하들에게 요구하는 수준이 높아 힘들게 하면서도 유머 감각을 발휘해 애정을 표시한다는 평. 부인 김순영씨와 1남1녀.▲강원 원주(59) ▲경기고 ▲육사 26기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본부장 ▲합참 작전본부장 ▲3군사령관 ●김장수 육군참모총장 온화하고 합리적이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철두철미하고 빈틈없는 스타일. 이라크 추가 파병과 주한미군 재배치로 인한 한국군 임무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 부인 박효숙씨와 1남1녀.▲광주(57) ▲광주일고 ▲육사 27기 ▲수방사 작전처장 ▲육사 생도대장 ▲합참 작전부장 ▲7군단장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남해일 해군참모총장 해상 작전 분야에 해박하고, 원리원칙에 충실한 군인. 해군 제독 가운데 작전은 물론 인사·교육·복지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부인 박임숙씨와 1남1녀.▲경북 울진(58) ▲경북 후포고 ▲해사 26기 ▲해군본부 작전상황실장 ▲연합사 인사참모부장 ▲2함대사령관 ▲해군본부 인사참모부장 ▲해군 교육사령관 ●김병관 1군사령관 전력발전 분야에 다년간 근무하면서 미래 국방 전투력 증강 분야에 식견을 쌓았다. 전사에 해박하고 전술에도 능하다는 평이다. 육사 졸업 때부터 선두를 달려왔다. 짬날 때마다 책을 잡는 학구파이기도 하다. 부인 배정희씨와 2남.▲경남 김해(57) ▲경기고 ▲육사28기 ▲2사단장 ▲합참 전략기획부장 ▲7군단장 ●권영기 2군사령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참모를 두루 거쳤다. 교육훈련 분야에 경험이 많다. 부하들에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창의적으로 일하는 여건을 제공하는 등 업무의 효율성을 중시해온 것으로 알려진다. 부인 김청세씨와 2남.▲경남 합천(58) ▲진주고 ▲갑종 222기 ▲1군사령부 참모장 ▲3군단장 ▲국방대 총장 ●김관진 3군사령관 야전 주요 지휘관과 작전·전략·정책·전력증강 분야 등을 두루 겪어 문무를 겸비했다는 평. 자상하면서도 자신에겐 엄격한 외유내강형.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의사교환을 중시하는 편이다. 부인 김연수(51)씨와 3녀.▲전북 전주(56) ▲서울고 ▲육사 28기 ▲35사단장 ▲육본 기획관리참모부장 ▲2군단장 ▲합참 작전본부장(2004년) ●이희원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줄곧 순수 야전에서 뼈가 굵은 작전통. 공사 구분이 엄격하고 청렴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합리적이고 사려깊은 성품으로 많은 부하들이 따르는 덕장이라는 평. 독서와 테니스, 음악감상을 즐긴다. 가족은 부인 한여옥(54)씨와 2녀.▲경북 상주(57) ▲부산고 ▲육사 27기 ▲51사단장 ▲3군사령부 참모장 ▲수도군단장 ▲육군 항공작전사령관
  • [부고]

    ●주영복 전 국방장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국방장관을 지내고, 제5공화국때 내무장관을 역임한 주영복 예비역 공군 대장이 14일 오전 별세했다.78세. 경남 함안 출생으로 1944년 일본 다치아라이(太刀洗) 육군비행학교,1950년 4월 공군사관학교(소집 2기생)를 졸업한 뒤 한국전쟁에도 참가했다. 5·18 하루 전 신군부에 협조해 전군 주요 지휘관회의를 소집, 진압군의 자위권 발동을 결정, 발표했다. 이로 인해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7년 4월 법원으로부터 반란·내란 중요 임무 종사 등으로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박봉자 여사와 차남 용식(43·미 존스홉킨스대 조교수), 장녀 금순(53)씨 등 2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영안실. 영결식은 17일 오전 10시 빈소에서 공군장으로 거행된다.(02)810-6040∼1 ●김경원(전 주미대사, 고려대 석좌교수)경석(전 서울내과 병원장)씨 모친상 14일 서울 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010-2292 ●이장희(미국 거주·스포츠서울USA 발행인 겸 회장)경애(일본 거주)씨 부친상 13일 강남성모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30분 (02)590-2660 ●하영식(광양산업 사장)영구(한국씨티은행장)영채(사업)영선(코스프 상무)씨 부친상 김홍석·김영배(공무원)이종안(사학연금 상무)씨 빙부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5시30분 (02)3410-6909 ●정윤정(한국산업은행 자금결제실장)윤성(아세아시멘트 직원)윤권(엘케이테크넷 전무이사)씨 모친상 박수화(성신여대 교수)씨 시모상 14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30분 (02)3410-6916 ●황호수(인천일보사 사장)씨 모친상 14일 인하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9시 (032)890-3199 ●권홍택(영흥상사 대표)호택(경인교역 〃)씨 부친상 김영식(사업)임성현(그린코퍼레이션 대표)씨 빙부상 경명완(서울산업대 직원)씨 시부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3010-2266 ●이한국(CJ 회장실 전략지원팀장)신종화(시립인천전문대 교수)박준성(사업)씨 빙부상 13일 인하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32)890-3191 ●김상철(한화투신운용 고문)씨 빙부상 11일 평촌 한림대 성심병원, 발인 15일 오전 6시 (031)384-2465 ●황인규(일신건영 재무부장)씨 상배 14일 국립암센터, 발인 16일 오전 6시 (031)920-0303 ●김희정(부천북부고 교사)씨 부친상 김수용(청주시 자원봉사센터 사무국장)씨 빙부상 13일 충남 연기군 조치원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016-519-2397 ●김선종(자영업)씨 모친상 박동진·전길택(자영업)이영진(한국기업평가 사장)씨 빙모상 14일 경남 사천시 선구동 41-57 자택, 발인 16일 오전 9시 (055)832-3119 ●이종렬(국방부연구개발관실 서기관)종탁(미아상사 이사)씨 형님상 김만태(대산자동차공업사 대표)씨 매제상 1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2)3010-2264 ●이민호(개인사업)씨 부친상 신종우(개인사업)김영환(개인사업)임재식(광주매일 사회부 기자)씨 빙부상 14일 전남 고흥군 점암면 화계리 신전마을 자택, 발인 16일 오전 8시 (061)833-4804
  • [변화하는 軍權] 靑·국정원, 사생활까지 ‘그물망 검증’

    [변화하는 軍權] 靑·국정원, 사생활까지 ‘그물망 검증’

    오는 22일 국무회의에 오를 대장급 군 수뇌부 인사를 앞두고 전례없이 고강도 검증작업이 ‘전방위’로 진행되고 있다. 과거엔 군 인사 검증작업을 국군기무사령부가 거의 전담했지만, 이번에는 청와대·국정원까지 나선 게 특징이다. 장성 진급 비리의혹사건, 참여정부의 잇단 각료 낙마 파문에다 정부의 강한 군 개혁 의지와도 무관치 않다. 그물망식 검증 결과에 따라 의외의 인사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게 군 관계자들 얘기다. ●재산증식·여자관계도 조사 군 당국은 이미 수뇌부 인사와 관련해 밑그림은 모두 짜놓았으며, 이달 초부터 강도높은 검증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증작업에는 국방부 직할기관인 기무사 이외에 국정원과 청와대까지 가세하고 있다. 정부와 군 당국은 인사 대상자들의 근무 평정과 군 내의 인물평은 물론 재산증식 과정, 여자관계 등 사생활까지 모든 면을 면밀히 분석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대장급 인사 대상자들의 경우 그동안 진급과정에서 수차례 검증을 거치긴 했지만, 이번처럼 세밀한 부분까지 검증을 하다 보면 그동안 드러나지 않은 비리 의혹이 드러날 수도 있다.”며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문제가 생기는 인사도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인사 검증작업이 진행되면서 일각에서는 ‘모 장성의 경우 재산문제가 의심스럽다.’거나,‘모 장성은 부인이 지나치게 부대 일에 개입한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소문도 적지 않게 나돌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대대적으로 인사 검증에 나선 것은 이번 대장급 장성 인사가 잘못될 경우 진급비리 의혹사건으로 추락한 군의 이미지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위기 의식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최근 참여정부에서 잇따라 발생한 각료 낙마 파문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일각에서는 군 인사 검증을 주로 맡아온 기무사령부의 역량 부족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로 기무사는 지난해 가을 육군 장성 진급심사를 앞두고 사실관계를 둘러싸고 논란의 여지가 있거나 다소 주관적인 내용의 일부 인사자료를 육군측에 제공, 이 자료가 추후 심사 때 부적절하게 활용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와 함께 당시 인사에서 기무사 소속 준장 진급자가 청와대 재가 과정에서 뒤바뀐 것은 이례적인 수준을 넘어, 군 정보기관으로서 통수권자의 신뢰를 얻지 못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합참의장 이상희·양우천 경합 합참의장에는 일단 육사 26기인 이상희 3군사령관과 양우천 2군사령관이, 육군 참모총장에는 한 기수 아래인 육사 27기의 김장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 각각 유력하다. 연합사 부사령관에는 이상태 교육사령관, 이희원 항공작전사령관, 홍갑식 참모차장(이상 육사 27기) 등이 거론된다. 또 1·2·3군 사령관에는 김관진 합참 작전본부장, 김병관 7군단장(이상 육사 28기), 방판칠(ROTC 8기) 합참 인사군수본부장, 권영기(갑종 222기) 국방대 총장, 박영하(3사 1기) 11군단장 등이 거론된다. 이와 함께 해군 총장에는 해사 25기의 윤연 작전사령관과 동기인 김성만 해군사관학교 교장이 유력한 가운데 해사 24기인 오승렬 합참 차장도 거론되고 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기수·지역 안배… 소위~대령 23년 걸려 군 당국은 인사도 군대식 ‘형평’을 강조한다. 특히 대장급 등 고위직으로 갈수록 더 그렇다. 기수는 물론 출신지역, 임관 구분별(육사·ROTC·3사 등)로 ‘안배’를 원칙으로 한다. 현재의 군 수뇌부는 지역별로 영남 4명, 강원 2명, 서울 1명, 호남 1명이다. 영남이 좀 많은 편이다. 또 임관 구분별로는 과거처럼 한 명의 비(非)육사 출신이 포함돼 있다. 그래서 금명간 단행될 인사도 안배에 기초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이같은 인사방식이 군 발전을 크게 저해한다는 지적도 상당하다. 상명하복이 분명한 군 조직의 특성상 기수를 무시할 순 없지만 철저하게 기수를 따지다 보니 어느새 ‘늙다리’ 조직으로 변했다. 특히 군 인사법이 주요 지휘관의 임기를 2년으로 정하고 대장급 장성, 특히 합참의장과 각군 참모총장을 거의 매 기수별로 배출하다 보니 조직이 기형적으로 바뀌었다. 실례로 지난 1980년대 초만 해도 30대 중·후반이면 연대장(대령)이 됐으나 지금은 어림도 없다. 현재는 40대 중반이 돼야 가능하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소위 임관 후 대령까지 13∼16년이 소요됐으나, 지금은 평균 23년이 걸린다. 이에 따라 군 인사법의 주요 지휘관에게 부여된 2년 임기를 1년6월로 줄여 순환주기를 짧게 만들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대장급 장성의 경우 임기제를 아예 없애고, 능력있는 인사는 미국처럼 기간에 상관없이 장기간 보직을 주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매 기수별로 바통을 이어받는 인사문화를 없애지 않을 경우, 지금 같은 극심한 조직 적체를 해소할 길이 없다는 게 소장파 장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와 함께 출신지역이나 임관구분별 안배 역시 적잖은 부작용 가능성을 안고 있다. 군 발전에 보탬이 될 능력을 갖추고도 이런 안배에 밀려 발탁되지 못하거나, 역으로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안배라는 요행수에 이끌려 진급하는 것 모두 군으로는 손해가 분명하다. 합참 관계자는 “안배가 무난한 인사방식임은 틀림없지만 , 조직 발전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며 “조직도 건강하게 만들고, 인재도 발탁하는 인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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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타·가혹행위와의 전쟁을 선포해서라도 이를 근절해야 한다.-윤광웅 국방장관은 9일 최근 잇단 군내 자살 및 가혹행위 사건과 관련, 전군 지휘관 및 참모에게 보낸 장관서신을 통해 “광복 60주년이자 국군 창설 56주년인 올해를 군내 구타·가혹행위 근절의 원년으로 만들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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