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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바그보 체포직후 “살려달라”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이 전격 체포될 당시 군인들에게 했던 첫마디는 ‘살려달라’였다고 AFP통신이 현장 목격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그바그보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뒤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내전을 일으켜 1000명이 넘는 희생자를 냈다는 지탄을 받아 왔다. 이 목격자는 유엔이 유일한 합법정부 수반으로 인정한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 당선자측 군인들이 그바그보가 피신해 있던 대통령궁에 최루가스를 뿌린 뒤 수색작업을 시작했다면서 “그바그보는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와타라측 군인들과 마주쳤을 때 ‘나를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군 지휘관들은 일부 군인들이 그바그보를 죽이려 했기 때문에 그에게 방탄 조끼를 입히고 에워쌌다고 밝혔다. 이들은 그바그보를 차량에 태운 뒤 와타라 대통령 측이 본부로 사용하는 골프 호텔로 이송했다고 덧붙였다. 그바그보는 체포된 뒤 와타라 측 방송인 TCI에 출연해 “무기를 내려놓고 민간인의 일원이 되기를 바란다. 국가가 정상을 회복하기 위해 위기를 신속히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때늦은 종전선언을 했다. 그바그보는 이날 몇몇 참모들과 골프 호텔의 한 방에 있는 모습이 방송에 공개됐다. 그는 속옷을 입은 채 타월로 몸을 닦은 뒤 셔츠를 갈아입기도 했다. 그는 피곤해 보였지만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바그보 체포 작전은 이날 오전 3시쯤 시작됐다. 전날 밤부터 프랑스군 헬기가 그바그보가 은신해 있던 대통령 관저를 공격해 그바그보 세력을 무력화한 뒤였다. 정오를 막 넘겼을 즈음 와타라 측 군병력이 대통령 관저 구내에 진입해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와타라 신임 대통령은 법무장관에게 그바그보를 사법처리하는 절차에 착수하도록 요구할 것이라며 그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민들에게 평정을 요구하며 무장한 민병대에 무장해제를 촉구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신임 2군작전사령관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

    신임 2군작전사령관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

    정부는 7일 육군 제2군작전사령관에 조정환 육군 참모차장(56·육사 33기·중장)을 내정하는 대장 인사를 전격 단행했다. 조 내정자는 강원 춘천제일고를 졸업했으며 제22사단장과 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제5군단장을 역임했다. 지난해 6월 육군 참모차장에 보임된 조 내정자는 야전 지휘관 경험이 풍부해 육군 내부에서 전투형 부대 육성의 최적임자란 평가를 받아왔다. 부재원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조 내정자는 오는 12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되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제2작전사령관에 임명할 예정”이라며 “후반기 대장 인사때는 비육사 출신을 꼭 선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가 이날 저녁 갑자기 대장 인사를 단행한 것과 관련, 장성 인사를 앞두고 나도는 다양한 억측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강원 ▲춘천 제일고·육사 33기 ▲22사단장 ▲교육사령부 교육훈련부장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 ▲제5군단장 ▲육군 참모차장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집단학살만 남기고 끝난 ‘두 대통령’ 사태

    집단학살만 남기고 끝난 ‘두 대통령’ 사태

    코트디부아르의 ‘한 나라 두 대통령’ 간 쟁투는 결국 집단학살과 난민 양산, 정치적 혼란 등 상처만 남기고 끝났다. 지난해 11월 로랑 그바그보 대통령이 대선 결과에 불복하면서 내전으로 치달은 코트디부아르 사태는 유엔과 프랑스군의 공습에 이어 5일(현지시간)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 당선인 측 군대가 대통령궁과 관저를 포위하면서 사실상 종료됐다. 가족들과 관저 지하벙커에 은신해 있는 그바그보 대통령은 유엔과 퇴진 조건을 놓고 막바지 협상에 들어갔다. 전날 프랑스 TV LCI와의 인터뷰에서 곧 항복할 것이라는 보도를 부인한 그는 6일 하루 더 버티려 한다고 AP가 이날 보도했다. 하지만 로이터가 입수한 유엔 문건에 따르면 그바그보는 이미 대통령직을 포기했다. 최영진 코트디부아르 유엔 특별대표도 AP TV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바그보가 대선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원칙을 받아들였다.”면서 “지금 협상의 핵심 쟁점은 그가 어디로 갈지에 관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바그보 정부 대변인인 아후아 돈 멜로도 “와타라 당선인이 대통령이라는 전제하에 퇴진 조건을 협상하고 있으며 그와 가족들의 안전 보장도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바그보 측 군지휘관들이 유엔에 휴전을 요청하면서 현재 경제수도인 아비장을 비롯, 다른 지역의 전투도 중단됐다. 하지만 일부 서방 외교관들은 여전히 다수의 그바그보 측 민병대가 총을 들고 다니면서 거리에서 총성이 들리고 있다고 증언했다. 학살과 정쟁으로 분열된 나라를 넘겨받게 된 와타라 당선인의 출발은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대선 당시 46%의 득표율을 얻어 근소한 차이로 패한 그바그보가 여전히 강력한 추종세력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이다. 리스크자문사인 ‘컨트롤리스크’의 한나 코엡은 “그바그보가 사라진다 해도 좌절한 그의 지지자들이 중무장한 상태라 아비장의 치안 상황은 당분간 예측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전범 재판에 소환될 가능성도 커졌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이날 조사에 착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조사를 시작하기 위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면서 “코트디부아르에서 발생한 대량학살에 대해 매우 우려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히 규명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이번 내전으로 1500여명이 숨졌다. 오캄포 검사는 누가 살인행위에 책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지만 와타라 측의 공화군(반군)이 집단학살에 연루된 정황이 드러날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질 전망이다. 세계 최대 코코아 수출국인 코트디부아르의 수출 재개는 와타라가 정권을 잡는 대로 신속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IHS글로벌인사이트의 마틴 로버츠 애널리스트는 “코코아 가격이 빠르게 떨어지는 것은 코트디부아르 사태가 곧 정상화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내전 사태로 썰물처럼 빠져나갔던 외국 통신·채광회사, 은행 등도 새 대통령에게 연줄을 대기 위해 복귀할 가능성이 크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北 동·서해 훈련 시작…국지도발 감행 가능성”

    김관진 국방장관은 5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관계발전특별위원회에서 “북한이 해빙기를 맞아 동·서해 해상 침투훈련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북한의 군사동향 보고’를 통해 이같이 밝힌 뒤 “다양한 형태의 기습적 국지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말했다. 이어 서북해역 북한 동향에 대해 “꽃게 성어기(4∼6월)를 맞아 북한 경비정의 활동이 증가 추세”라면서 “북한군 상급 지휘관의 현장 방문과 작전태세 유지 활동도 활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했다. 김 장관은 또 키리졸브 및 독수리연습(KR/FE)과 관련, “북한이 지난해보다 증가된 수준의 비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올해는 지난해 290여회보다 70여회 증가한 360여회에 달한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이 전·후방 각급 부대별로 다양한 형태의 대응훈련을 실시하고 있다.”면서 “식량과 유류 부족 등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동계훈련도 예년 수준으로 정상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김 장관은 북한의 서북해역 도발에 대비하기 위해 “꽃게 성어기 중 해상경비전력을 증강하고 서북도서 도발 유형별 대비계획을 발전시켜 적 도발 시 대응하기 위한 긴급 소요전력을 전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민간단체의 전단살포 시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해 제반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북한의 도발 억지에 중점을 두고 도발 시 현장에서 작전을 종결하겠다”고 강조했다. 한편 육군은 합동화력운용체계(JFOS-K)와 차기다연장로켓을 각각 2012년과 2014년부터 새로 배치해 북한 장사정포의 70%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조기에 갖춘다는 계획을 세웠다. 육군은 현재 전투시설이 상시 100% 기능을 발휘하고 작전부대의 생존성을 보장할 수 있도록 70억원의 예산을 들여 전방초소(GP)와 일반관측초소(GOP)를 유개화(콘크리트로 지붕을 덮은) 진지로 구축하는 등 보강할 방침이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부시 전 美대통령 海士 특강 “北이 한계점 넘지 않도록 경고선 그어야”

    부시 전 美대통령 海士 특강 “北이 한계점 넘지 않도록 경고선 그어야”

    미국 제 43대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George W. Bush) 전 대통령이 29일 경남 진해 해군사관학교에서 ‘대통령의 결정’(Decision of President)이라는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한·미는 공동의 가치 구현하는 동맹국” 부시 전 대통령은 강연에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평화의 소중함과 한·미동맹의 중요성 등을 역설했다. 대통령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재임 당시 세계 평화와 안전을 위해 단행했던 중요한 정책결정, 국제관계 등에 대한 생생한 경험담을 생도들에게 들려줬다. 그는 “자유가 없다면 표현도, 행동의 자유도 없으며, 테러리스트는 자유를 위협하는 공동의 적으로 사관생도 여러분은 이러한 위협 속에서 자유와 평화를 지켜내는 리더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한·미 관계는 단순한 군사동맹이 아니며 지금 이 시간에도 한국군은 미군과 세계 곳곳에서 자유를 위해 함께 싸우고 있다.”면서 “두 나라는 공동의 가치를 구현하는 동맹국으로서 여러분들은 앞으로 이러한 한미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평화 앞장서는 국제 리더 되길” 부시 전 대통령은 또 “북한의 3대 세습은 국민들의 동의하에 권력을 이양한 것이 아니라 부자 간의 세습이다.”며 비판한 뒤 “북한이 일정 한계점을 넘지 않도록 경고선을 분명히 그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제제재 등 국제 공조체제 구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생도 여러분들은 세계 평화에 앞장서는 국제 리더, 한국의 위대한 전통 계승의 일원이 되어 달라.”는 말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연에는 김성찬 해군참모총장과 원태호 해군사관학교장 등 주요 지휘관과 해군사관생도 등 1100여명이 참석했다. 강연에 앞서 부시 전 대통령은 자서전 ‘결정의 순간’(Decision of Points)을 사관생도들에게 전달 했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사설] 국방개혁 공감대는 넓히되 멈춰선 안 된다

    군 상부 지휘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국방개혁 307계획’을 놓고 청와대와 국방부, 예비역 장성 간의 갈등 국면이 좀체 수습되지 않고 있다. 이달 초 대통령 재가 이후 계속된 군 안팎의 엇갈린 여론이 그제 김관진 국방부 장관과 예비역들의 모임을 통해 간극이 더 벌어지고 있는 듯하다. 청와대는 예비역들의 반발 배후로 군 내부 반대세력(현역)을 지목하며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했고, 예비역들은 청와대가 자신들의 의견을 제대로 경청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국방부는 청와대와 예비역들 사이에 끼여 안절부절못하고 있다. 논란이 되는 대목은 두세 가지다. 합참의장에게 군정권을 주는 것은 육·해·공 참모총장을 지휘하도록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면 문민통제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국가적인 위기나 비상사태에 예기치 않은 돌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각 군 참모총장에게 군령권을 부여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작전사령부가 직접 합참에 보고하는 현행 체계에서 앞으로는 참모총장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작전 지휘면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각 군 총장에 대한 합참의장의 지휘권 행사에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지적도 있다. 개편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팽팽하다. 국방부는 합동성 강화를 위해 군정-군령을 일원화하는 개편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지만 예비역들은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서 나타난 대응 미비는 지휘체계가 아닌 지휘관의 능력 부족 때문으로 상부구조 개편과 연결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사안에 따라 의견이 다를 수는 있지만 국방개혁은 국가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국방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되려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군, 예비역 사이에 공감대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 청와대는 우선 국방개혁의 당위성을 각계에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예비역들도 만나는 등 소통에 적극 나서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아예 머리를 맞대는 데 주저해서는 안 된다. 예비역들의 충정어린 지적을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예비역들도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하되 무리하게 깔아뭉개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국방개혁은 공감대를 넓혀 나가되 멈춰서는 안 되는 국가의 최우선 과제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카다피 고향 진격 앞두고 주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본거지인 수도 트리폴리와 고향 시르테를 향해 진격하던 다국적군과 반정부군이 28일(현지시간) 시르테로 향하는 도로 위에서 카다피 친위부대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쳤다. 반정부군은 이날 시르테에서 동쪽으로 100여㎞ 떨어진 도로에서 픽업트럭에 탑재된 중기관총을 발사하며 반격에 나선 카다피 지지세력의 저항에 부딪혀 진격을 멈춘 상태라고 AFP 통신이 전했다. 반군의 지휘관인 함디 하시 장군도 “시르테의 함락은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 현재 카다피 부대와의 전투가 시르테로부터 100㎞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마을 나우파리야 밖에서 치러지고 있다고 AP 통신에 말했다. 시르테는 반군 거점인 동부와 카다피군이 장악한 서부 지역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반군이 시르테를 함락시키면 수도로 진격할 수 있는 동력을 거머쥐게 된다. 반정부군의 반격 행보가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카타르가 28일 프랑스에 이어 두번째로 리비아 반군의 구심체인 국가위원회를 리비아의 합법적인 대표기구로 인정했다고 현지 관영 뉴스통신이 외무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또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등 아라비아반도 6개국으로 구성된 걸프협력협의회(GCC)도 이날 성명을 내고 카타르의 결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한편 외교통상부는 28일 리비아에서 우리 국민 39명이 추가로 철수해 잔류 중인 국민이 64명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상습구타로 멍든 ‘해병대 전통’

    해병대에서 구타·가혹행위가 상습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4일 해병대 내의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처음으로 직권조사를 벌인 결과 폭행·욕설 등 가혹행위가 관행처럼 이뤄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은폐·축소 역시 심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해병대사령관에게 가해자 8명에 대한 사법처리와 피해자 7명에 대한 보호조치를 권고했다. 또 피해 정도가 심각한 2명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했다. 인권위는 “해병대 1개 연대에 대해 직권조사를 실시했더니 행동제한을 뜻하는 ‘인계’, 아래 위 기수 관계를 무너뜨려 인격적 모독감을 주는 ‘기수열외’ 등 가혹행위가 만연했다.”면서 “해병대 상습 구타·가혹행위에 대한 근절 대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지난해 12월 한 해병대 부대원으로부터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진정을 접수하고 지난 1월 해당 연대에 대한 직권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A선임병은 지난해 8월 14일 B이병에게 청소불량, 군기 유지 등을 이유로 이층침대에 매달리게 한 뒤 온몸을 폭행해 다발성 늑골·흉골 골정 등 중상을 입혔다. B이병이 고통을 호소하자 선임병들은 소대원들을 소집해 피해자가 ‘축구하다 다친 것’이라고 말을 맞췄다. 또 간부들은 구타 사실을 알고서도 사단장에게 알리지 않은 채 가해자에게 영창 10일의 행정처분만을 내렸다. 다른 선임병 C는 후임 D이병에게 평상시 청소 불량 등 사소한 이유로 검지와 중지 사이에 볼펜, 가위 등을 끼우고 꽉잡게 하는 가혹행위를 가했다. 또 D이병은 수시로 구타를 당해 늑골 골절로 전치 6주 진단을 받았으나 분대장 등 지휘관들은 작업 도중 다쳤다고 보고하라며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 심상돈 인권위 조사국장은 “대부분 가해자가 후임병 시절 자신도 비슷한 행위를 당했고, 이를 참는 것이 ‘해병대 전통’이라고 알고 있었다.”면서 “국방부 등 관계기관과 협조해 구타를 묵인하는 병영문화와 지휘감독 체계를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日 정부 각료 1명도 현장 가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어”

    “日 정부 각료 1명도 현장 가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없어”

    “지금 일본 정부의 대응은 솔직히 이해할 수 없어요. 총리 등이 열심히 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모습이 국민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됩니다.” 1995년 고베 대지진 직후 재해 현장에 들어가 이재민과 8개월간 고락을 함께 한 오자토 사다토시 당시 재해대책담당상은 각료 한명 현장에 보내지 않는 간 나오토 정부의 대응에 불신을 드러냈다. 22일 오자토 전 재해대책담당상을 중의원 회관에서 만났다. →지난 11일 동일본 대지진 이후 간 나오토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적지 않다.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나. -대재앙이 발생했는데 간 총리 내각의 대신 가운데 1명도 아직 현장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는 일 중의 하나다. 총리 관저가 땀을 흘리지만 국민이 기대하고 있는 대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총리는 전체 상황을 가능한 한 자기가 집약하고 종합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그래야 본래의 총리, 즉 지휘관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한다. →정부가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총리, 즉 사령탑 아래에 각 분야를 통괄하는 책임자가 있으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력 문제가 중요하니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이 맡고, 긴급 지원 물자 수송도 중요하니 그건 다른 대신이 맡아야 한다. →서둘러야 할 대책은. -긴급 의료 대책이 중요하다. 또 물자 수송도 정말 중요하다. 고베 때와 비교해서 재해 지역이 5배다. 게다가 복잡한 피해가 났다. 각 재해 지역, 피난소의 인원과 피해 규모를 파악해서 거기에 어떤 방법으로 긴급 물자를 나를 것인지를 정해야 한다. 바다로 나를 것인지, 육로로 나를 것인지, 어떤 방법이든 구체적인 연구를 통해 배송 계획을 세우고 경찰에든, 자위대에든, 소방에든 부탁하는 것이다. 보다 빨리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물과 가솔린이 부족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고 사령탑이 종합 조정을 하고 수요가 있는 부서는 계획을 세워서 일제히 실천하는 게 필요하다. 그저께 미군 군함으로 물자를 날라 와서 소방서의 창고에 넣은 뒤 다시 배송하던데 이렇게 하면 2~3일 늦어진다. 중요한 것은 물자를 빨리 재해 지역과 피난민에게 보내는 것이다. →총리의 현지 시찰이 무산된 것에 대해 논란이 많은데. -총리는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수집하고 종합적으로 조정하는 사령탑 역할을 해야 한다. 도쿄전력에 간다든가, 극히 일부 지역에 간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비중이 낮은 임무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재해 담당 대신은 현지에 가지 않고 있는데. -이 시대는 휴대전화가 있어 그 자리에서 지시하고 보고를 받을 수 있긴 하지만…(현지에 가야 한다). →오자토 대신은 고베 대지진 사흘 후 담당상에 기용됐다. 그 경위는. -1995년 1월 17일 지진이 발생하고 이틀 동안 국토청 장관이 지진 대책 업무를 겸무하고 있었는데 사흘째 되는 날 무라야마 총리로부터 맡아 달라는 특명이 내려왔다. 남자로서 ‘해 보겠다.’고 결심했다. →언제 현장에 갔나? -총리는 지진 발생 이틀 후 현장을 다녀왔다. 난 그 다음 날 명을 받고 당일 저녁 현지에 들어갔다. 눈으로 보고 직접 겪고, 기민하고 대담하게 손을 써야 하는 게 재해 대책이다. →현장의 재해대책본부는 어떻게 꾸려졌나. -효고현 지사, 고베시장, 현지 국회의원 등 10명 정도와 함께 현장에서 필요한 것을 주문하고, 각급 자치단체에 정부 지침을 전달하는 한편 그들의 요청을 청취했다. 무라야마 총리는 사람, 예산을 충분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한 각 부처의 우수하고 행동력 있는 인재를 발탁해 내 아래에 모아 줬다. 이런 관료들이 열심히, 그리고 필사적으로 협력했다. 그 인원이 대략 100명이고 여타 부서에서도 지원을 나와 한마음이 돼 일했다. →며칠 정도 현장에 있었나. -그해 9월까지 18회 고베를 왔다 갔다 했다. →어떤 현장 활동을 했나. -행정과 절충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경찰관, 소방관, 자위대원 등을 격려하고 상담했다. 이른바 구조·복구 작업의 기획 및 감독 역할이었다. →지금은 방위성이 됐지만 당시 방위청 조직에서 자위대를 움직이는 게 힘들었을 텐데. -자위대와 거리를 두던 시대였다. 그렇지만 현지에 가 보니 재해 출동 요청이 없었는데도 자위대가 솔선해서 사전 조사라는 명목으로 현지에서 열심히 활동을 펴고 있었다. →주일 미군은 어떤 지원을 했나. -내가 총리에게 명령을 받기 전 미국 측으로부터 “뭐든지 협력하겠다. 항공모함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그걸 일본 정부 관료가 (미군 지원과 관련된) 장벽과 절차를 고려해 거절했다. 그렇지만 난 “(우리를) 따뜻한 마음으로 도와주겠다는 세계인 모두를 환영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이틀 전에 미국 제안을 거절한 터라 항공모함은 일본을 떠난 상태였다. 현장에 가 보니 여진에 비까지 내리고 있었다. 이재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오키나와 미군에게 지원 요청을 했다. 그들은 (난민이 생활할) 200인 규모의 텐트 등을 지원해 줬다.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서 직접 와 줬다. →현장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선배들이 나에게 조언한 것은 (고베 등이) 종교가 많은 곳인 데다 여러 민족이 혼재해 있는 곳이란 점을 유의하라는 것이었다. 또한 당시 효고현 지사와 고베시장이 별로 사이가 안 좋다는 점도 주의하라고 했다.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고 하던데. -그렇다. “지휘관이 사소한 걸 얘기하면 부하들이 정신적으로 지친다. 지휘관은 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한다.”라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고 생각했다. →고베 대지진 당시 각 부처 간 알력은 없었나. -정치와 관료가 일체감을 갖는 게 소중하다. 정치인이 “내가 책임을 진다.”고 하면 관료들도 혼란을 느끼지 않고 따라온다. →간 총리가 대연립 구상의 하나로 자민당 총재의 입각을 제의했는데. -타이밍이 좋지 않다. 정당과 정당이 제휴하게 되면 정계 재편이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번 지진과 관련해 한국이 얻을 교훈은 뭐라고 생각하나. -상대적으로 한국에선 지진이 적다. 이웃 나라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일의대수(一衣帶水)이니 서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도쿄에서도 지진이 올 가능성에 대해 어떤 대비가 있어야 할까. -수도를 옮기는 천도론이란 말을 쓰는데, 내가 그 연구회를 국회의원 재직 중에 만들었다. 식료, 모포 등을 축적하는 것도 상당히 위력을 발휘한다. 글 사진 도쿄 황성기기자 @seoul.co.kr ●오자토 사다토시는 누구… 1930년 가고시마현 출생으로, 중의원 9선을 지낸 노() 정치인이다. 1995년 무라야마 내각 당시 고베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재해대책담당상에 전격 기용돼 현장을 진두지휘했다. 당시 작업복 차림에 작업모를 쓰고 재해 현장을 누비던 그의 모습은 일본인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줬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 이후 어느 장관도 현장에 가지 않은 것과 비교해 오자토 당시 재해담당상의 모습이 부각됐다. 집권 자민당 시절 총무처 장관, 홋카이도개발청 장관, 오키나와 개발청장관, 노동대신 등을 지냈다. 당에서는 총무회장, 국회대책위원장 등의 중역을 맡았다. 2002년 자민당의 실력자 가토 고이치가 의원직을 사퇴한 뒤로 파벌을 물려받아 오자토파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오토바이 마니아. 할리 데이비슨을 몰고 다니는 모습이 고향인 규슈에서 자주 목격됐다고 한다. 일화도 있다. 1997년 하시모토 총리가 록히드 사건으로 사임한 총무처 장관 후임자로 오자토 의원을 지명하면서 오자토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오자토 의원은 오토바이를 타고 교외를 달리는 중이었다. 결국 한참 뒤에나 전화를 받았고, 곧바로 청바지 차림 그대로 총리 관저로 직행했다. 2005년 정계를 은퇴하고는 지역구를 장남 오자토 야스히로에게 물려줬다. 도쿄 황성기기자 marry04@seoul.co.kr
  • “정부, 원전 살수작업 소방관에 협박”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지사가 원전 살수 작업 중인 소방관에 대한 정부의 부당 대우에 발끈, 총리 관저를 찾아가 거세게 항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22일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이시하라 지사는 21일 간 나오토 총리 관저를 방문,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살수 작업을 벌이고 있는 도쿄소방청 소방대원들에게 정부 관계자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공갈협박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며 강력 항의했다. 이시하라 지사는 “소방관들은 허용치 이상의 방사능을 쪼이며 죽을 힘을 다해 일하고 있다.”면서 “그런 사정도 모르고 멀리 있는 지휘관이 그런 바보 같은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간 총리는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은 이와 관련, 21일 저녁 기자회견에서 간 총리가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선처가 필요하면 정부가 돕겠다고 도쿄 지사에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간 총리는 사태를 수습하려는 듯 이후 열린 긴급재해대책본부와 원자력재해대책본부 합동회의에서 부랴부랴 이시하라 지사와 소방대원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간 총리는 이 자리에서 “지사에게 거듭 감사드린다.”면서 “소방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일본과 국민을 구하기 위해 애쓰면서 상황이 나아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 천안함 징계 1년만에 마무리

    정부가 10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초동조치 등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해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던 11명의 지휘관과 영관 장교들에 대한 징계를 사건 발생 1년 만에 마무리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1명의 지휘관에게 중징계가, 5명의 지휘관과 장교들에게 경징계가 확정됐다. 1차 징계위원회에서 중징계인 정직처분을 받았던 김동식 전 해군 2함대사령관과 경징계 처분을 받았던 박정화 전 해군작전사령관, 김 모 전 합참 작전부장, 천안함 소속 부대장 등의 이의신청에 따른 징계위원회 항고심에서 기각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근신처분을 받았던 황 모 전 합참 작전본부장과 박 모 전 2함대 작전참모에 대해선 견책으로 처분을 감경했다. 또 초동대응과 위기조치반 소집 등에서 문제가 인정돼 경징계 처분을 받았던 류 모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지휘통제실장 및 반장에 대해선 모두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해 11월 1차 징계위에선 국방부 검찰단의 기소유예 결정으로 징계위로 넘겨졌던 최원일 천안함 함장은 징계유예 처분을 받았으며, 양 모 전 합참 작전처장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방위산업부터 중화학공업까지 경제계획을 입안, 집행했던 오원철(83)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1977년 발행된 미국 뉴스위크지를 보 관하고 있다. ‘한국인이 몰려온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의 수출·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을 다뤘다. 이 잡지는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은 진정한 기술강국이 됐다’는 특집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기술을 해외에 전수해 먹고살 수 있는 나라. 오 전 수석이 팔십평생 꿈꾸던 나라가 실현된 셈이다. 10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오 전 수석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정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대신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대담 박선화 경제에디터·정리 홍희경기자 →지난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그러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원전 수출은 사실상 40년 전에 기획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족을 죽이는 병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원자폭탄꽃 대신 산업성장의 기반이 되는 값싼 전기 생산과 원전 수출이라는 ‘무궁화 꽃’을 마침내 피워냈다. 당시 우리는 일본처럼 필요할 때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10·26 이전에 박 전 대통령에게 우라늄농축용 분말인 ‘옐로 케이크’를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선 뒤 국내 원자력 기술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수출 위주 중화학공업 정책은 이제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 교과서처럼 되었다. 핵심분야 가운데 가장 애착이 남는 부분은. -철강·석유화학·기계·조선 등 6대 분야 가운데 하나라도 빠졌다면 중화학공업 성장 역사는 없었다. 여기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대덕연구단지까지 모두 7개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오로지 국토의 균형발전과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제대로 입지를 잡아 성공적으로 육성했다고 자부한다. 산업정책을 펴는 데 있어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따르면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과학벨트 유치 경쟁이 한창인데. -지금 정부에는 전문 기술관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학벨트 논쟁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은 소외됐다. 만일 1960~70년대 이렇게 했다면,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업을 육성하려면 수심이 깊은 바다라는 입지를 찾아야지, 정치적인 표심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과학벨트 선정은 과학기술자 집단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설령 그들이 싸우더라도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결정은 정치인인 대통령의 몫이 아닌가.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자금으로 100억달러를 빌려야 한다고 하자 재무부 쪽이 난색을 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내가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설득해 정책을 강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도 따라줬는데,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에 돈을 핑계로 주저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지휘관은 전체를 파악해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물론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 박 대통령 집무실에는 대형 한반도 지도에 북한군과 우리군의 전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불러 “적기가 뜬 뒤에는 이미 늦으니, 단추 하나로 적을 제압할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기술이 계속 유지발전됐다면,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지휘관이 방향을 제시하면, 참모인 기술관료는 계획서를 만들고 집행을 하며 지휘관의 머리와 손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힘이 실린다. 지휘관도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한다. →테크노크라트가 역량을 발휘할 방법은. -정부에 테크노크라트가 들어가 국가계획을 세울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부도 없고, 청와대에도 과학기술자를 대변할 인물이 없는 같다. 새롭게 생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는 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동타격대처럼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 같은 조직이 필요한데, 오히려 그런 팀이 너무 많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흔히 한국의 성장방식을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일본 학자가 개발한 용어를 국내 정치권에서 사용했다. 그런데 ‘압축’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영국이 수공업인 방직공장에서 시작해 증기 동력을 통해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듯이, 우리도 수출을 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된 뒤부터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다. 1963년까지만 해도 생선·김·돼지털·인모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수출했다. 그러다가 교육도 못 받고 형편도 어려워 3~4명씩 좁은 방에 합숙하며 살던 여공들이 수출산업의 주역이 됐다. 다음에는 남성 기능사가 나섰다. 월남전 이후 미군 하청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인력이 생기며, 중동 건설현장이라는 시장에 투입됐다. 당시 영어로 된 도면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키우려고 공고 3학년생 2000명을 교육시켰다. 이들을 소년병이라고 불렀다. 용접은 어른들이 해도, 도면을 읽고 지시하는 일은 소년병이 했다. 이들이 점차 성장해 경제발전의 역군이 됐다. →최근 공학한림원에서 받은 대상 상금을 기탁했는데. -여공들과 남성 기능사·기술자는 그야말로 한국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다. 관료들도 열심히 했지만, 현장의 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상금을 전부 기탁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한국 사람은 끈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러일전쟁 때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연구에 매진했다는 과학자의 일화가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집적회로(IC)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한국 연구진에게 맡겼더니, 안 되는 이유만 설명하고 연구비를 더 달라고 요구했단다. 타이완 연구자에게 다시 일을 맡기자 근성 있게 매진하더니 6개월 만에 만들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 세대는 끈기와 창의력이 뛰어난 것 같다. 최근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과 비보이를 보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성공하려는 끈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기능사·과학기술자들은 국익을 위한 사명감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saloo@seoul.co.kr ■ 그는…박 前대통령이 국보라 부른 사나이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저녁 서울 프라자호텔.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공단 순시를 마친 뒤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을 가리키며 “임자는 국보야, 국보.”라고 불렀다. 일순 오 수석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김정렴 비서실장 등 주변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 수석은 우리나라 중화학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전문 기술관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군 소령을 거쳐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와 국산자동차의 공장장을 지낸다. 이듬해인 1961년 5·16이 일어나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을 맡은 이래 상공부 화학과장, 공업1국장을 맡으며 1차 5개년 개발계획과 수출제일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1970년에 차관보로 승진해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고, 1971~79년 10·26이 날 때까지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 일했다. 이때 조선, 원자력, 대덕단지 등 7개 중화학공업 정책을 주도하고 방위산업 육성을 총괄했다. 율곡사업 진행 시 깐깐한 결재 때문에 12·12 이후 신군부에 미운털이 박혀 13년간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백선엽 장군 등 지인들과 어울리며 과학기술 강국을 강조한다고. 팔순을 비켜가듯 젊은이를 혼내며 박장대소하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란다.
  • [기고] 국회 정보위와 국정원에 바란다/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기고] 국회 정보위와 국정원에 바란다/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잠입 의혹 규명을 위해 지난 금요일 개최된 국회 정보위원회 결과를 보면 좀 더 진지하고 생산적인 회의가 될 수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민은 이 회의가 국익과 관련된 의혹을 해소하고 국가차원에서 정보업무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또 많은 국민은 이 회의에서 중요한 국가이익이 걸린 문제가 왜 그렇게 가볍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한 의문도 함께 규명하기를 기대했다. 처음 이 사건을 인지하게 된 인도네시아 주재 국방 무관과 국방부가 이 일을 처리한 방법이 적절했는지, 의혹을 받은 국정원의 대응방식은 적절했는지, 국정원의 개입을 기정사실화하는 것 같은 경찰청장의 발언은 적절했는지 등이다. 이런 문제의 재발방지 대책은 무엇인지 등도 함께 논의하기를 기대했으나 초점이 빗나가고 말았다. 정보위원들은 국정원이 이 의혹에 연루되었음을 인정하라고 윽박지르는 데 치중했고 일부 의원들은 국정원장의 ‘NCND’(Neither Confirm Nor Deny, 긍정도 부정도 아님) 태도를 문제 삼아 사퇴를 요구했다. 국정원장이 NCND 태도를 보였다 해서 사퇴하라는 것은 옳지 않다. 정보기관이 중요한 국익이 걸린 문제에 대해 NCND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인정되는 관행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NCND 관행이 정착된 것은 CIA 국장이 국가이익을 고려한 의회증언 때문에 형사처벌을 받았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73년 헬름스 CIA 국장이 상원 외교위원회 공개회의에서 칠레 아옌데 정권 전복공작에 간여했느냐는 질문을 받고 “간여하지 않았다.”라고 답변했다가 위증혐의로 기소되어 2000달러의 벌금과 징역 2년의 집행유예를 받았다. 공개회의에서 부인하고 나중에 비공개회의에서 사실대로 증언하는 방법도 있으나 그때는 미국의회에 정보위가 설치되기 전이어서 의원들의 비밀유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결국, 국익을 위해 헬름스 자신이 형사처벌을 감수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우리는 정보위가 설치된 지 16년이 지났지만, 보안의식에 관한 한 정보위원들은 아직도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안보나 중요한 국익이 걸린 사항도 정보위에 보고하는 즉시 언론에 유출된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국정원장의 NCND 태도를 문제 삼아 사퇴하라고 윽박지르기 전에 정보위원들이 먼저 국민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또 만에 하나 국정원 직원이 이 의혹사건에 연루됐다 하더라도 국정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보기관에서는 국익을 위해 매일 수십건, 많게는 수백건의 정보활동이 수많은 저항요소와 마주치는 가운데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정보활동은 사례마다 상황과 여건이 다른 고도로 비정형화된 업무여서 항상 높은 실패 위험 속에서 추진된다. 이 많은 정보활동 가운데 일부 실패가 있었다고 지휘자에게 책임을 묻는다면, 정보기관은 소심하고 무사안일한 사람들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지금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있는 정보 지휘관, 그리고 국민의 격려가 필요한 때이다.
  • 합참의장에 인사·군수·교육권… 권한 대폭 강화

    합참의장에 인사·군수·교육권… 권한 대폭 강화

    육·해·공군에 대한 일부 인사·군수·교육권이 주어지는 등 합동참모본부(합참) 의장의 권한이 크게 강화된다. 또 440여명에 달하던 장군도 15% 정도 줄어들게 된다. 국방부는 8일 군 상부지휘구조와 군 구조 개편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 국방개혁 ‘307(3월 7일 확정됐다는 의미로 붙인 이름)계획’을 확정, 발표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국방개혁 추진계획인 307계획은 안보위협과 국방환경 변화를 고려해 상부 지휘구조 개편 등 73개 개혁과제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307계획’의 핵심은 상부지휘구조 및 장성 숫자 감축,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명시된 합참과 합동부대에 근무하는 육·해·공군 요원 구성비 준수 등이다. ●육·해·공 비율 2:1:1로 준수 우선 합참의장의 권한이 대폭 강화된다. 우리 군의 평시 작전권을 행사하는 합참의장에게 육·해·공군에 대한 인사·군수·교육 등 이른바 군정권이 부여되고 2015년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대비해 전쟁지휘사령관의 역할을 겸임하도록 했다. 1991년 818개편 이후 20여년간 군령과 군정권이 합참의장과 각군 총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기형적 구조를 이어 왔다. 이에 따라 합동성을 발휘해야 할 합참 근무자와 각군 장교들이 그동안 인사권 등을 갖고 있는 각군 총장에게만 충성한다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전시작전통제권을 돌려받은 후부터 각 군 사령관의 작전지휘 기능이 각 군 총장으로 이관되면서 합참의장과 각군 총장의 애매한 관계가 수직관계로 정리된다. 각 군 본부와 작전사령부가 통합되고 국방부 직할부대에 대한 정리가 이뤄져 장성 숫자가 15% 정도 줄어든다. 홍규덕 국방개혁실장은 “현재 440여명의 장성 중 조직 재편 과정에서 60여명이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또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규정된 합참 등 합동부대에 근무하는 육·해·공군 구성비도 준수된다. 합참은 육·해·공군의 비율은 2대1대1로, 국방부 직할부대와 합동부대 지휘관의 비율은 3대1대1로 보직하게 된다. 하지만 국방선진화추진위원회가 1대1대1로 건의했던 비율과 달라 해·공군의 불만이 이어질 전망이다. 이와 함께 국방부는 고(高)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와 스텔스기(FX) 조기 전력화를 포함했다. 북한 전역을 감시하고 은밀히 타격할 수 있는 글로벌호크와 스텔스기의 전력화 시기를 당초 2015년에서 앞당겨 이르면 올해 말 가계약까지 체결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글로벌호크 등 전력화 연내 구축 하지만 307계획이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 도발로 재확인된 현존 위협(북한)에 대한 대응 방안임을 강조하면서도 당시 문제가 됐던 군 지휘부의 정보분석 및 판단 능력 향상을 위한 대책은 마련하지 않고 “세부사항으로 준비할 예정”이라고만 밝혔다. 이번 307계획은 참여정부가 마련한 ‘국방개혁 2020’을 현 정부 출범 후 수정해오다 천안함 및 연평도 사건 이후 전면적인 보완 작업을 거쳤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김 국방장관에게 “국민에게 국방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실행되도록 해 달라.”면서 “국방개혁은 체질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리 신무기를 도입할지라도 안 된다.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키리졸브 훈련 ‘뜨거운 현장’ 미군기지 ‘캠프 캐럴’ 동행記

    키리졸브 훈련 ‘뜨거운 현장’ 미군기지 ‘캠프 캐럴’ 동행記

    지난 3일 경북 왜관의 미군 기지 캠프 캐럴.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른 아침의 고요함을 깨는 날카로운 엔진소리가 울려 퍼졌다. 소리의 주인공은 미 육군의 ‘M1A1 에이브람스’ 전차. 여기에 ‘M2A2 브래들리’ 장갑차를 포함한 각종 지원차량과 중장비들이 토해 내는 소음이 더해졌다. M1A1 전차 한대의 무게는 약 70t. 수백t의 화기가 지나가니 지축이 흔들린다. 5m 거리에 서 있던 기자의 발 끝에 그 진동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지난달 28일 시작된 전시대비 한·미연합 증원훈련인 키리졸브의 핵심훈련이 본격화되는 순간이었다. 키리졸브. 단어 그대로 풀이하면 ‘중대한 결의’라는 뜻이다. 한반도에 전쟁 같은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이 증원되는 과정을 숙달하기 위한 훈련이다. 지난 1994년 중단된 ‘팀스피리트’ 훈련을 대신한 것으로 그동안 미군 주도로 해 오던 것을 전시작전권 환수에 대비해 한국군 지원업무 위주로 전환했다. 일반적으로 군대를 해외에 파견하기 위해선 본토에서 병력과 장비, 각종 보급물자를 수송선으로 실어 나른다. 이럴 경우 미군 증원병력이 우리나라에 도착하려면 한달이 넘는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야 한다. 때문에 미국은 시간을 줄이기 위해 캠프 캐럴을 비롯해 부산, 일본의 사가미·요코하마 보급창 등에 장비와 보급물자를 미리 비축해 놓고 병사들만 항공편으로 태평양을 건너온 뒤 여기서 장비를 꺼내 쓰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사나흘 만에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 곳곳에 배치된 장비와 보급물자를 묶어 ‘미 육군 사전배치물자’(APS)로 부른다. 우리나라의 사전배치물자는 ‘APS4’다. 미군은 미 본토와 유럽, 인도양, 중동 등에도 사전배치물자를 마련해 놓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미 육군 사전배치물자 철로수송 훈련’은 미 본토에서 건너온 병력이 캠프 캐럴에 비축된 각종 장비와 물자를 꺼내 동두천행 열차에 이를 싣는, 어찌보면 키리졸브 훈련의 핵심이다. 캠프 캐럴의 사전배치물자를 관리하는 제19지원사령부에 따르면 이번 훈련을 위해 미 캘리포니아와 워싱턴주에 주둔하고 있는 제11기갑연대와 워싱턴주방위군 포병대 일부 병력이 직접 태평양을 건너왔다. 병사들은 우리나라의 꽃샘 추위가 익숙하지 않은 듯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게차가 도착해 창고에 밀봉보관해 온 기관총을 지급하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익숙한 손놀림으로 눈 깜짝할 사이에 각자 맡은 M1A1 전차에 설치했다. 이 병사들은 하루 전날 캠프 캐럴에 도착해 창고에 보관 중이던 전차와 장갑차, 자주포 등을 수령했으며 자체 점검을 모두 마친 상태라고 부대관계자는 설명했다. 야적장에서 열차적재를 기다리는 장비들을 살펴봤다. 장기간 창고에 보관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반질반질했다. 모든 차량에 혼잡한 전장에서 적과 아군을 구별해 주는 ‘전투식별판’(Combat Identification Panels, CIP)이 부착돼 있는 것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CIP는 야간에 아군차량임을 알려 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라크전 당시 투입된 차량들에 지급됐던 장비다. 창고에서 갓 꺼내온 차량에 전투식별판이 달려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들 장비가 모두 실전에 사용 중인 장비에 준하는 개량이나 정비를 수시로 받고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취재진에 공개된 창고 안에는 언뜻 봐도 수십대는 돼 보이는 전차와 장갑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창고 근처를 둘러보니 이와 비슷하거나 다소 작은 규모의 또 다른 창고 수십동이 눈에 들어온다. 더 큰 창고도 보였다. 이곳에 저장된 사전배치물자의 규모는 도대체 얼마나 될지 궁금증이 일었다. 캠프 캐럴을 관리하는 제403 야전지원대대의 더글러스 패트로스키 중령은 “1개 중(重)여단 전투단(HBCT)을 무장시킬 수 있는 양”이라며 “탄약과 수리부품 등 일부 물자는 일본의 보급창에 분산돼 있다.”고 덧붙였다. 중여단 전투단은 미국의 ‘미래형 사단’(Unit of Employment X) 구상에 따라 등장한 부대로 지휘관은 대령급이 맡는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연대에 해당하지만 50여대의 전차와 60여대의 장갑차, 10여문의 자주포 및 정찰과 지원을 위한 각종 차량이 속해 있어 전투력은 상급부대인 여단이나 사단급과 비교된다. 유사시 한반도에는 막강한 전투력을 갖춘 여단급 부대가 불과 사흘 만에 늘어나는 셈이다. 잠시 후 미 본토에서 건너온 병사들이 점검과 이동준비를 마친 장비들이 엔진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번 훈련의 하이라이트인 열차적재를 위해서였다. 캠프 캐럴에는 신속한 장비 수송을 위해 기지 내부까지 철로가 연결돼 있으며, 이들을 열차에 실을 수 있는 시설까지 마련돼 있다. 철로는 바로 옆을 지나는 경부선과 이어져 있어 전방까지 손쉽게 장비를 실어 나를 수 있다. 열차적재는 이동이 쉬운 지원차량을 시작으로 무게가 많이 나가는 전차와 장갑차 순으로 진행됐다. M1A1 전차의 경우 폭이 366㎝로 이를 실어 나를 화차보다도 좌우로 10여㎝가 더 넓어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했으나, 우리나라 군무원과 미군 전차 조종수가 완벽한 호흡으로 열차적재를 끝마쳤다. 철로수송 담당관인 니컬러스 스턴 소위는 “지금 열차에 실리고 있는 장비는 내일까지 동두천의 캠프 케이시에 도착해 그곳에서 주한 미 2사단과 함께 사격훈련에 참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사격 훈련을 실시하는 이유는 미 본토의 병력이 한반도에 비치된 장비를 받아 실제로 전투를 치를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제403 야전지원대대의 더글러스 패트로스키 중령은 “이번 훈련을 통해 대한민국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 한·미 동맹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라는 것을 확신시켜 줄 것”이라고 말했다. 왜관 최영진기자 zerojin2@seoul.co.kr
  • “3군 작전 합동성 강화…국방개혁 시급”

    “3군 작전 합동성 강화…국방개혁 시급”

    이명박 대통령은 4일 “제2의 창군정신으로 빠른 시간 내에 새 시대에 맞게 국방개혁을 이뤄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초임 장교 합동 임관식에 참석, 축사를 통해 “여러분은 국방개혁을 창조적으로 실천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초임 장교 임관식이 합동으로 열린 것은 창군 이래 처음이다. ●“강한 군사력이 北도발 억제” 이 대통령은 “첨단 과학기술로 인해 전쟁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고 있고, 북한은 핵과 미사일 개발은 물론 특수전 부대 등 비대칭 전력을 키우며 무모한 군사적 모험으로 평화에 대한 위협을 증가시키고 있다.”면서 “이 모든 위협과 변화에 대비하자면 국방개혁이 시급하며, 특히 전군이 유기적으로 결합돼 하늘과 바다, 육지에서 통합 작전을 수행하는 합동성이 강화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를 통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군대, 북한이 감히 도발할 수 없도록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군대가 돼야 한다.”면서 “강한 군사력과 굳센 정신력이야말로 우리 목표인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고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는 길”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또 “우리 군은 이제 한반도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를 위해 한몫을 담당하는 군으로 우뚝 서야 한다.”면서 “높아진 국제적 위상에 따라 우리 군도 국제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육·해·공사 등 5309명 임관 임관식에는 이 대통령을 비롯해 김관진 국방장관, 주요 군 지휘관, 졸업생 가족 등 2만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소위 계급장을 단 새내기 장교들은 육사 207명, 해사 126명, 공사 137명, 간호사관 77명, 3사 493명, 학군(ROTC) 4269명 등 모두 5309명이다. 여기에는 간호사관학교와 각 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123명의 여군 소위도 포함됐다. 임관식에서는 이승준(24·육사), 나병우(24·해사), 남연진(24·여·공사), 김수연(23·간호사), 김철호(24·3사) 소위 등 8명이 대통령상을 받았다. 특히 공사를 졸업한 남 소위는 4년 내내 수석을 놓치지 않은 인재다. 남 소위는 “사관학교에서 배운 가치와 덕목, 지식을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가장 높은 힘이 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군이 되고자 용맹 정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소위도 “사관학교에서 배운 투철한 군인정신과 리더십을 바탕으로 위국 헌신의 길을 계승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또 나 소위는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목숨을 바쳐 조국을 수호한 충무공의 기상을 본받아 우리 해군과 조국 해양 수호에 기여할 수 있는 명예로운 해군 장교가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임관자들은 지난달 16일부터 28일까지 학교별로 전통에 따라 축제 형식으로 졸업식을 마친 데 이어 합동으로 전·평시 지휘소 견학, 타 군부대 방문, 전적지 답사 등을 통해 합동성 강화 교육을 받았다. 김성수·오이석기자 sskim@seoul.co.kr
  • 이대통령 병문안…석선장 “꼭 나아 마도로스복 입고 뵙겠다”

    이명박 대통령이 5일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다 구출되는 과정에서 크게 다친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을 직접 찾아 쾌유를 빌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에 입원한 석 선장을 문병하고 석 선장의 부인과 부모를 위로했다. 또 의료진으로부터 석 선장 상태를 설명듣고 노고를 치하했다. 이 대통령은 먼저 석 선장의 손을 잡으며 “살아나서 너무 고맙다.”고 말을 건넸고, 석 선장은 “대통령님께서 저를 살려주셔서 고맙다.”고 화답했다. 이 대통령은 “작전을 지시해 놓고 선장이 다쳤다고 해서 마음에 얼마나 부담을 가졌는지 모른다.”며 석 선장의 중상 소식을 들은 뒤의 심경을 전했다. 이어 ”정말 훌륭하다. 해군 함대 사령관을 해야 될 사람이다. 지휘관으로서의 정신이 (있다)”고 치하했다. 이에 대해 석 선장은 “나는 그 배의 선장이다. 선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정말 (문병) 오고 싶었는데 (회복에) 방해가 될까봐 못 왔다.”면서 “내가 해군으로부터 석 선장이 안에서 큰 작전을 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우리도 작전을 해도 되겠구나 하고 판단했다.”고 당시 결정 순간을 전했다. 이 대통령은 “빨리 퇴원해서 걸어 나와야 ‘아덴만 여명작전’이 끝이 나는 것”이라며 석 선장의 빠른 쾌유를 빌었다. 이어 “마도로스 복을 한 벌 만들라고 했다.”면서 선장 예복을 석 선장에게 선물하고 직접 모자를 씌워줬다. 특히 “퇴원하면 이 예복을 입고 청와대에 가족과 함께 와달라. 모든 국민이 사랑하고 기대하고 있으니 의지를 갖고 빨리 일어나 달라.”며 석 선장과 그의 가족들을 청와대에 초청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새 한·미 연합사령관에 서먼 미 육군사령관

    새 한·미 연합사령관에 서먼 미 육군사령관

    모래바람 휘날리는 중동의 주요 전장(戰場)에서 잔뼈가 굵은 야전형 장군이 새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으로 추천됐다.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은 1일 월터 샤프 현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 후임으로 제임스 D 서먼 미 육군사령관(대장)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추천했다고 발표했다. 서먼 사령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최종 지명 절차와 상원 인사청문회 등을 거쳐 한국에 부임하게 된다. 2008년 6월 부임한 샤프 사령관은 한·미연합사령관직을 마지막으로 퇴임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클라호마 주 출신인 서먼 사령관은 지난 1975년 임관했으며, 합참부의장, 제4 보병사단장, 독일 주둔 미 육군 5군단장 등을 역임했다. 그는 1991년 걸프전 당시 이라크를 상대로 한 ‘사막의 폭풍 작전’에서 활약했고, 이라크전 당시 ‘이라크 자유 작전’을 지휘하기도 했다. 게이츠 장관은 “서먼 장군은 미 대륙 내 70만명 이상의 병사들에 대한 감독, 훈련, 보급 등의 책임을 맡으면서 육군의 가장 큰 조직을 현재 이끌고 있다.”면서 “서먼 사령관은 이라크에서 사단장을 지낸 것을 비롯해 전장에서의 상당한 경험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게이츠 장관은 서먼 사령관 외에 미 특수작전사령관에 윌리엄 맥레이븐을, 남부군사령부 부사령관에 에릭 올슨을 각각 추천했다고 밝혔다. 군 고위 관계자는 “연평도 사건 이후 한반도의 불안한 안보 상황을 감안해 작전 지휘 경험이 풍부한 야전형 지휘관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한·미 동맹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게이츠 장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키 리졸브 및 독수리 훈련’과 관련, “다양한 비상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을 갖기 위한 프로그램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이런 훈련을 중요하게 만든 북한의 도발들을 지난해에 봤다.”고 지적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서울 오이석기자 carlos@seoul.co.kr
  • “쏠까 말까 고민말고 先조치 後보고”

    “쏠까 말까 고민말고 先조치 後보고”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하라.” 김관진 국방장관이 1일 북한군 도발 가능성에 대한 대비태세를 점검하기 위해 서부전선 최전방부대를 순시하면서 유사시 현장 지휘관의 판단에 따라 대응사격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북한군 도발에 망설이지 말고 즉각 대응하라는 취지로 풀이된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김 장관은 오전 7시 55분쯤 1군단 지하 벙커에 있는 지휘통제실에서 최종일 군단장으로부터 북한군의 최근 동향과 우리 군의 대비 태세를 보고받았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최 군단장의 보고를 받은 직후 “북한군이 도발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도발유형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하고 끊임없는 토의가 필요하다.”면서 “작전 시행 시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김 장관은 이어 “아무리 도발 대비 계획이 잘돼 있다고 해도 행동이 따라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훈련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최 군단장은 “북한군의 미세한 움직임까지 추적하고 있다.”면서 “북한군이 도발하면 자위권 차원에서 대응하고, 적의 공격이 있다면 원점을 타격할 것”이라고 말했다. 1군단은 남북관리구역 서부지구 및 임진각 일대를 관할하는 부대다. 김 장관은 이어 1군단 예하 포병대대의 다연장로켓(MLRS) 부대를 방문해 대비 태세를 점검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김 장관은 지난달 28일부터 시작된 키 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 기간 북한군의 도발 가능성에 대비하고 점검하는 차원에서 전방을 순시했다.”면서 “특히 북한군이 심리전 발원지를 조준 격파 사격하겠다고 위협하는 최근 상황을 반영한 조치”라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연일 비난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정당방위를 위한 우리 군대의 물리적 대응이 불가피해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이석·윤설영기자 hot@seoul.co.kr
  • “생선회·산 낙지 먹고 싶다” 웃음

    “생선회·산 낙지 먹고 싶다” 웃음

    ‘아덴만의 영웅’으로 돌아온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이 28일 의식을 회복, 해적들에게 납치되고 구출되던 상황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해적이 쏜 총상으로 몸은 만신창이가 됐고 세 차례에 걸친 대수술로 기력이 쇠약한 상태였지만,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취재진 앞에 드러난 석 선장은 면도에 머리 염색까지 한 깔끔한 모습이었다. “한번 환하게 웃어 주세요.”라는 요구에 “못생겼어도 잘 찍어 주세요.”라고 농담까지 할 정도였다. 그는 “국민 모두가 신경 써 준 덕분에 많이 좋아졌다. 저도 빨리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지휘관(선장)으로서 의무와 도리를 다하겠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었고, 국가적으로 손해를 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해적에게 납치될 당시의 순간도 뚜렷이 기억했다. “해적에게 영어로 죽이려면 죽이라고 말했었다.”는 석 선장은 다만 총을 맞은 순간에 대해서는 “밤에 작전이 시작돼 어두워서 기억을 못한다. 누가 쐈는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석 선장은 “매트리스를 뒤집어쓰고 바닥에 엎드려 있는데 바닥을 스치면서 총탄이 튀어올랐다.”며 “처음 총상을 입었을 때는 정신을 잃지 않았고, 그 이후 총격이 오갈 때 여기서 눈감으면 난 죽는다. 작전 끝날 때까지 정신을 잃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청해부대원을 확인한 뒤에는 부상을 입어 피가 흐르는 왼팔을 보고 나서 “헬기를 불러 주세요.”라고 말했으며 헬기로 오만 현지 병원에 이송된 후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 의식을 잃었다고 말했다. 아덴만의 여명 작전 당시 목숨을 걸고 교란작전을 편 것에 대해서는 “해적의 수중에 배가 들어갈 때까지 선장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못할 줄 알았다.”며 “총부리를 목에 겨눠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쪽지에 배를 고장내라고 적어 선원들에게 건넸었다.”고 밝혔다. 가족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도 전했다. “설날에 잠시 의식을 차렸을 때 아내에게 제2의 생명을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 미음을 먹고 있는데 부산사람이라서 그런지 생선회가 생각난다.”며 “산낙지도 먹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납치됐던 선원들에 대해서는 “선원들이 병문안 온 것은 기억이 없다. 7명 모두 다녀갔다는 것을 들어서 알았다.”며 “모두 무사하다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석 선장은 마지막으로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전이었다.”며 다시 환하게 웃었다. 현재 석 선장의 활력징후는 혈압 130/80mmHg, 맥박 86회/분, 체온 37도, 혈색소 11.2 g/㎗, 혈소판 수치 29만/㎕ 등 정상으로, 향후 팔과 다리 3군데 골절 부위의 상황에 따라 기능 회복을 위한 정형외과 추가 수술 및 재활 치료가 예정돼 있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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