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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계엄군 발포경위에 피고인 모두 발뺌/마지막 직접신문 이모저모

    ◎전씨 공판대비 구치소서 열심히 “공부” 12·12 및 5·18사건을 검찰이 마지막으로 직접 신문한 7차 공판은 6차 공판때와는 달리 순조롭게 진행됐다.검찰은 전두환·황영시·주영복·이희성·정호용피고인 등 5명을 상대로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발포경위 등에 초점을 맞춰 신문했으나 피고인들은 발뺌으로 일관했다. ○…정호용피고인은 검찰 신문 내용 대부분을 부인하면서 『검찰에서 진술한 참고인들을 증인으로 불러 대질신문해 달라』고 검찰에 역공. 정피고인은 광주에 투입된 공수여단의 지휘관들이 정식 지휘계통에 있던 소준렬 전교사 사령관을 제치고 자신에게 중요사항을 보고했다는 일선 지휘관들의 진술과 관련,『그런 사실이 없다』며 대질 신문을 요구. ○…주영복피고인은 『광주시위 진압결과 사망자가 생길 경우 자살하려 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바꿔 『그런 적이 없었다』고 부인. 주피고인은 이어 『전혀 진술하지 않은 내용이 검찰 조서에 들어있어 변호인단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공박. ○…전피고인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당시 계엄군이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위 등 검찰의 신문내용 일체를 부인. 전피고인은 『자위권 보유를 천명한 경고문은 당시 정도영 보안처장이 계엄군측에 건네준 게 아니냐』는 거듭된 검찰신문에 『아니라고 설명하지 않았느냐』고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답. ○…당시 계엄사령관 겸 육군참모총장이던 이희성피고인은 12·12 사건 이튿날 전피고인으로부터 「육참총장 이희성」이라고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으나 『누구 마음대로 총장을 임명하느냐』고 질책했다고 답변. 이피고인은 비상계엄의 전국 확대 조치와 관련,『전쟁 또는 전쟁에 준하는 사변,적의 포위공격이라는 계엄확대의 요건이 발생한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물음에 『없었다』고 짤막하게 말해 부당하게 계엄을 확대한 사실을 시인.또 보안사에서 기안한 계엄포고령 10호로 모든 정치활동이 중단된데 대해서는 『잘못된 겁니다』라고 분명하게 인정. ○…전피고인은 최근 5·18 공판에 대비해 5·18 사건을 재구성하는 등 「공부」에 열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피고인은 이 과정에서 『계엄군이 반란군으로 규정되고 시위를 조속하게 진압하기 위해 강경하게 대처한 것이 왜 내란죄가 되는지 모르겠다』며 의문을 제기한다고 주변 사람들이 전언. ○…검찰은 이날 『신속한 재판진행을 바라는 국민정서』 등을 거론하며 재판부에 주2회 야간신문을 요구한 반면 변호인단은 『신속성보다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기 위한 치밀성이 더 요구된다』고 각각 반대 주장을 피력. 재판부는 이와 관련,『검찰신문에서 피고인들이 변소를 많이 했다』며 『변호인의 신문사항이 많을 경우 「적절한」 시간을 마련하겠다』고 답변,야간에도 재판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변호인 반대신문 첫 기일이 2주뒤인 오는 20일로 잡히자 변호인단은 『인민재판을 하려는 것이냐』며 강력 반발. 한 변호인은 『재판부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재판일정을 잡았다』며 『검찰 수사기록 1장을 읽는데 30초가 걸린다고 쳐도 4개월 반이 필요한데 해도 너무하는 처사』라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박은호·강충식·이지운 기자〉
  • 「12·12」 3차공판­쟁점과 전망

    ◎“「12·12」는 쿠데타” 다각적 입증/검찰측­세차례 공판통해 「의도된 계획」 확인/전씨측­“정 총장 연행 정당한 수사행위” 강변 12·12 사건과 관련,전두환·노태우 피고인 등 13명의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이 25일 3차 공판으로 마무리됐다.공판에 쏠린 국민적 관심에 비춰 1단계 고비를 지난 셈이다.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을 비롯한 핵심 쟁점을 둘러싸고,예상대로 검찰과 피고인이 첨예하게 대립했다.때문에 공판일정도 재판부의 당초 예정보다 2주가 늦어졌다. 세차례의 공판을 통해 12·12 사건의 사실관계는 비교적 명쾌하게 규명됐다.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사전 계획과 집결경위,정총장 연행,신군부의 병력동원,육본의 대응,최규하 대통령의 재가과정,신군부의 무력진압,군 인사의 논공행상 등이다. 검찰의 논지는 이렇다.『12·12 사건은 치밀한 사전계획 아래 신군부측 장성들이 경복궁의 30경비단에 모이면서 구체화됐다.정총장의 연행사실을 알면서도 육본의 정식 지휘계통을 무시하고 진압군을 무력으로 제압했다.최대통령에게 사후에 강압적으로 재가를 받았다.변명의 여지 없는 군사 반란』 당시 주한 미국대사관이 본국에 보낸 비밀전문에도 12·12 사건이 10여일 전에 치밀히 계획된 쿠데타였음이 최근 공개됐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공판에서 역사적 사실의 실체규명에 대체로 성공,주도권을 잡은 판세이다. 그러나 쟁점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반격 강도는 의외로 거셌다.두차례에 걸친 변호인단의 기습적인 의견서 배포,전씨 진술에 맞춘 피고인들의 「입맞추기」가 단적인 예이다. 이들은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치밀하고 의도된 쿠데타」라는 점은 한결 같이 부인했다. 정총장의 연행은 합수부의 정당한 수사과정이고,병력동원은 육본의 진압에 맞선 것이라고 주장했다.최대통령의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합법적이라고 우겼다. 이양우 변호사는 ▲정총장연행의 합법성 ▲경복궁 모임의 순수성 ▲진압군의 선제발포 등 3가지 쟁점을 부각시킨 점을 성공작으로 꼽았다. 물론 판단은 재판부의 몫이다. 다음달 1일에 5·17사건,즉 80년 비상계염의 전국확대 등에대한 검찰의 직접신문을 시작으로 5·17 및 5·18 사건의 공판이 순차적으로 열린다. 재판부가 『효율적 재판을 위해 피고인의 방어권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것이나, 5·18사건이 사실 규명 측면에서 12·12사건보다 훨씬 난해한 점 등은 재판일정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변호인의 반대신문과 증인신문 일정 등을 감안하면 1심 선고는 잘해야 8월에나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 “대통령재가 관계없이 정승화 총장 연행하라”

    ◎전씨,“허삼수에 지시” 진술/「12·12」 군사반란 혐의 시인/12·12­5·18 2차공판 12·12 사건 당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연행은 최규하 대통령의 사전 재가없이 이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전두환 피고인은 18일 12·12 및 5·18 사건의 2차 공판에서 『79년 12월12일 당시 허삼수 우경윤 등에게 재가에 관계없이 하오 7시가 되면 정총장을 연행하라고 지시했다』고 진술했다. 전피고인은 『당시 합수부장으로 6시30분쯤 총리 공관으로 최대통령에게 가면서 7시쯤 재가를 얻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밝히고 『최대통령도 여러 경로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가할 것으로 확신했다』고 말했다. 전피고인은 『12월6일 정총장을 연행할 것을 결심한 뒤 7일 노태우피고인을 만나 연행 및 수습 방안 등을 설명하고,같은 날 허삼수 등에게도 계획을 설명했다』고 진술,12·12사건이 자신의 주도 아래 신군부의 사전모의에 의한 것이라는 점을 일부 시인했다. 전피고인은 12월 7일 황영시,9일 최세창·박준병,10일 박희도,11일 거규헌,12일 유학성피고인 등을 만나 12·12 계획의 일부를 설명하고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도록 요청했다고 밝혔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상오 10시부터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된 공판에는 전피고인을 비롯,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거규헌 박준병 최세창 장세동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박종규 신윤희 피고인 등 12·12 관련자 13명이 출정했다. 전피고인은 『대통령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고 임의로 병력을 동원해 국방부와 육군본부를 점거하고,장태완 수경사 사령관 등 육군 정식 지휘계통의 핵심 지휘관들을 체포함으로써 정식 지휘계통을 와해시키지 않았느냐』는 추궁에 『그 때 상황으로는 그럴 수 밖에 없었지만 그건 사실』이라고 말해 12·12 군사반란 혐의를 인정했다. 전피고인은 그러나 『10·26사건에 깊숙히 연루됐던 정총장에 대한 연행은 합수부의 합법적이고 불가피한 조치였다』며 『재가과정에서 강압은 없었으며,최대통령도 노재현 국방장관이 오면 재가하겠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신문에앞서 전피고인측 변호인인 전상석 변호사는 「변호인단의 기본입장」과 「쟁점 정리를 위한 석명 요청」을 통해 『검찰의 공소 사실대로 전피고인이 위법한 내란에 의해 집권했다면 대통령에 취임한 것은 무효이므로,대통령으로서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며 『12·12 및 5·18 사건과 비자금 사건 가운데 하나는 공소를 기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판은 유학성 황영시 피고인에 이어 전피고인에 대한 직접 신문을 끝으로 하오 6시50분쯤 끝났다.3차 공판은 오는 3월25일 상오 10시에 열린다.〈황진선 기자〉
  • 두 전대통령 역사의 심판대 함께서다/“정총장 연행 전씨와 합의”

    ◎「12·12·「5·18」 첫 공판/노씨,“조사 마친뒤 시키려 했다”/“쿠데타”·“정치재판” 검찰·변호인 공방 헌정 사상 최초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란히 섰다. 12·12 및 5·18사건에 대한 첫 공판이 11일 상오 10시 서울지법형사 합의30부(재판장 김영일 부장판사) 심리로 서울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전·노피고인을 비롯,황영시 유학성 허화평 허삼수 이학봉 차규헌씨 등 12·12 및 5·18 관련자 8명,최세창 박준병 장세동 신윤희 박종규씨 등 12·12 관련자 5명,이희성 주영복 정호용씨 등 5·18관련자 3명 등 모두 16명의 피고인이 출정했다. 노피고인은 하오 3시15분부터 진행된 검찰의 직접신문에서 『12·12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정승화 참모총장의 연행계획을 협의한 사실이 있다』며 『정총장이 많은 의혹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조사를 마친 뒤 용퇴하도록 설득할 계획이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 등을 체포하도록 지시하지 않았느냐』는 추궁에는 『자세한 계획은모르고 체포된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고 답변하는 등 대부분의 신문에 대해 12·12 사건의 정당성을 내세우거나 군권찬탈의도를 부인했다. 전·노씨 등 피고인과 변호인들은 하오 3시가 넘을 때까지 모두진술을 통해 『검찰이 5공화국과 5공화국 헌법을 전면 부정함으로써 그 연장선상에 있는 6공화국은 물론 현 정권까지 부정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다. 전상석·한영석 변호사 등은 ▲5·18특별법의위헌성 ▲기소유예 및 공소권이 없다고 결정한 사건의 재수사의 부당성 ▲공소사실의 추상성 ▲정총장 연행의 정당성 및 대통령의 사후재가를 통한 지휘계통의 준수 등을 주장하며 이 사건의 재수사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강변했다. 검찰은 상오 모든진술에서 『12·12 및 5·18사건에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뒤바꾼 역사적 사건으로, 이 재판을 통해 감춰진 역사적 진실을 밝혀내고 후손들에게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고 강조했다. 이어 기소요지 낭독을 통해 『전·노씨 등 신군부가 군권을 찬탈하기 위해 대통령의재가없이 정승화 육군총장을 연행한 뒤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짓밝아 권력을 창출하는 등 쿠데타를 자행햇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노씨에 대한 신문만 마친뒤 하오 6시10분즘 공판을 마쳤다. 2차 재판은 18일 상오 10시에 열린다.
  • 「12·12」「5·18」 공판­이모저모

    ◎전씨,노씨와 귀엣말… 제지 당하자 당황/보도진 사진 촬영 이례적 90초 허용/방청진 「암표」 1장에 50만원 웃돌아 두 전직 대통령을 함께 법정에 세운 「세기의 공판」이 열리기 전부터 법원이나 구치소 주변은 긴장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법원주변◁ ○…정문 앞에는 6개 중대·7백20명의 경찰이 배치돼 삼엄한 경비를 폈다.「5·18동지회」 등 5·18관련단체 회원 80여명은 이날 상오 광주에서 전세버스 2대를 타고 올라와 법원으로 들어가려다 경찰과 몸싸움을 벌였다. 「5월 민중항쟁 동지회」 김현장 회장(46)은 『전·노 두사람에게 5·18 유족들의 울분을 보여주기 위해 피켓과 현수막을 준비했는데,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게 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이들은 전·노씨 등 피고인들을 태운 호송차가 도착하자 계란 등을 던지며 시위를 벌이다 경찰에 연행됐다. ○…상오 9시 방청권을 손에 쥔 사람들은 수고비를 톡톡이 받고 의뢰를 받은 심부름 센터 직원들이 대부분.방청권을 받기 위한 줄서기는 지난 9일 하오 시작돼 같은날 하오 8시 사실상 마감됐었다. 때문에 방청권의 「암표값」은 이틀 밤을 철야한 품값과 공판이 갖는 의미에 비춰 장당 50만원을 넘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법정에서 전·노피고인에게 고함을 쳤던 고 강경대군의 아버지 강민조씨(55)는 전씨의 차남 재용씨(32)를 전치 3주의 진단서를 첨부,경찰에 고소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전·노씨가 웃으며 악수를 하는 순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고함을 치는 순간 옆 자리에 앉았던 재용씨가 목을 때렸으며,전·노씨의 측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고 주장. 강씨는 공판이 끝난뒤 목의 상처를 이유로 관악구 사당동 사당의원에 입원. ▷호송◁ ○…안양교도소 및 서울구치소·영등포구치소 등 3곳에 분산 수감돼 있던 두 전직 대통령 등 구속피고인 11명에 대한 법정호송이 상오 7시50분부터 경찰의 삼엄한 경비속에 2시간여동안 진행됐다. ▷구치감◁ ○…노피고인은 상오 9시22분 경기5더1062호 호송차량을 타고 법원 구치감 입구에 도착한 뒤 기다리던 취재진에게 일체의 답변을 하지 않고 바로 구치감으로 들어갔다.그는 비자금 사건 등 계속된 재판으로 지친 탓인지 초췌한 표정이 역력했으며 굳은 표정으로 기자들의 질문을 외면. ○…6분 뒤 경기6도1007호 차량을 타고 도착한 전피고인도 미소까지 띠고 손을 흔들며 당당하게 입정하던 지난번 비자금 사건 재판 때와는 달리 긴장된 모습.그는 건강상태를 묻는 질문에 고개를 두어번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전·노피고인을 태운 호송차량은 시민들이 던진 계란 등의 얼룩이 앞유리창과 옆창문 등에 묻어 있었다. ▷법정◁ ○…서울지법 417호 법정으로 통하는 2층 검색대 앞에는 전·노씨의 친인척과 측근 인사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이원홍 전 문공장관,김진영 전 육참총장,이필섭 전 합참의장,최석립 전 경호실장,최웅 전 대만대사,김재명 전 지하철공사 사장 등 5∼6공 인사들도 대거 방청. 전씨가 백담사에 유배됐을 당시 백일기도를 도왔다는 성능스님은 『오랫동안 전 전 대통령을 뵙지 못해 나왔다』며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했다. ○…재판부는 이 날 피고인들이 모두피고인석에 서자 인정신문에 앞서 90초동안 피고인의 뒷모습과 재판부·검사석에 대한 보도진의 촬영을 허용.40초이던 전·노씨 비자금 사건 공판에 비해 촬영허용 시간이 곱절 이상 길어졌다. ○…검찰은 노씨에 대한 직접신문을 진행하는 동안 옆자리에 앉은 전씨가 귀엣말로 노씨와 수차례 속삭이자 강력히 제동. 하오 속개된 공판에서 김상희 부장검사가 『전두환 피고인은 가만히 계십시오』라고 큰소리로 제지하자 전씨는 놀란 듯 검사석을 돌아본 뒤 서둘러 재판장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등 당황한 표정이 역력. ○…상오 재판이 끝나며 다소간의 소란이 빚어지자 김영일 부장판사는 하오 5시55분쯤 20분간 휴정을 선언하고 퇴정하면서 『누구도 법정안에서 소란을 피울 수 없다』며 『그런 사람은 법정에 들어올 자격이 없으며,앞으로는 재판부가 퇴정한 이후의 법정소란 행위도 절대 용납치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선언. ○…노씨는 비자금 사건 공판 때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자기 변호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검찰신문에 대응해 눈길. 노씨는 정총장의 연행은 신군부측의 하극상에 의한 불법행위였다고 검찰이 추궁하자 『당시 신군부 장성 이외에 정식 지휘계통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재가를 받은 만큼 불법적 요소는 없었다』고 강변. 특히 『합수부장은 범죄혐의가 있는 한 어느 누구라도 수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며 정총장을 연행한 행위가 정당했다고 주장. ▷연희·서교동◁ ○…두 전직 대통령의 자택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주변은 비교적 한산.가족용 방청권 3장을 받은 재국씨 등 전씨의 세아들은 상오 8시25분쯤 어머니 이순자씨를 집에 남겨 둔채 법원으로 출발. 재국씨는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변호인과 상의해서 나중에 말하겠다』고 짤막하게 답변. 노씨의 장남인 재헌씨도 아침 일찍 서초동 법원으로 서둘러 출발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서교동 집 주변도 한적했다.최 전대통령의 한 측근은 『언론을 통해 오늘 공판이 열리는 사실은 아시겠지만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고 전언. ▷피해자 반응◁ ○…이 사건의 직접 피해자인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70)과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65·재향군인회 회장)은 관련자들에게 엄정한 법의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씨는 『부하들이 반란죄를 짓고 법정에 선 모습을 보니 다소 안타깝다』며 『그러나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대통령 시해사건을 수사하다가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는 등 반란을 꾀한 것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장씨도 『반란사건을 진압하지 못한 지휘관으로서 국민과 역사 앞에 부끄럽다』며 『앞으로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진상규명과 이를 토대로 한 엄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며 『재판부는 여론과 국민감정보다는 예방적 차원에서 냉정한 심판을 내려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 전·노씨 「12·12」 첫 공판 쟁점과 전망

    ◎“군사 반란”­“우발 사건” 법리공방 거셀듯/5백가지 직접신문 통해 「반격」 무력화­검찰측/재수사 모순 부각… 「정치재판」 유도 의지­피고측 12·12사건 공판에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피고인들의 「법정 반격」은 어느 수준이나 될까. 11일 첫 공판의 관심은 전·노 두 피고인의 대응이다.특히 검찰 신문에 대한 반격의 수위가 주목거리다.앞으로 최규하 전 대통령까지 증인으로 나오면 전직 대통령 세 명이 함께 법정에 서게 된다. 첫 공판에는 전·노씨를 비롯,유학성·장세동씨 등 모두 16명의 피고인이 출정한다.피고인의 입정과 인정신문,피고인의 모두진술,검찰의 직접신문 순으로 진행된다. 첫 공방은 피고인의 모두진술과 검찰의 직접신문을 통해 펼쳐진다. 핵심 쟁점은 이른바 「경복궁 모임」의 성격,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연행의 강압성,지휘계통의 문란,대통령의 사전 재가 여부이다. 12·12를 군사반란으로 규정한 검찰과 공무집행상의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하는 변호인의 치열한 법리 싸움이 불을 튄다.양측의 입장이 사뭇다르기 때문이다. 이종찬 수사본부장은 『비자금 사건과는 달리 변호인의 대 반격이 예상된다』고 말했다.이에 대비해 피고인들의 자충수를 노리는 이이제이 전략이다.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대응하려는 것이다. 전씨는 3백가지,노씨는 2백가지의 신문을 통해 추궁할 계획이다.김상희 주임검사 등 수사검사 8명이 이를 위해 포진하고 있다. 직접신문을 통해 피고인·사안별로 차근차근 반격을 제압하려는 작전이다.특히 대통령의 사전 재가 없는 정총장의 연행은 정권찬탈의 사전음모라는 점을 부각시킬 방침이다. 이에 앞선 공소요지 낭독에서는 전·노씨 등의 범죄사실과 「역사 바로 세우기」를 위한 수사 재기의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기로 했다. 변호인들은 피고인의 모두진술과 직접신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정면으로 검찰에 맞설 것이다.일단 기소유예한 사안을 재수사하는 모순,상황 변화에 따른 수사의 부당성을 들어 정치재판으로 몰고 가려는 것이다. 정총장의 연행은 불가피했고,또 사후재가를 받았으므로 지휘계통을 준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정총장연행시의 발포는 우발적 사건이라고 주장할 전망이다.변호인들간의 회동이 분주하고 피고인의 면회가 잦다는 점에서 「대 반격」의 의지가 엿보인다. 양측의 법리논쟁으로 첫 공판이 뜨거워지더라도 이변은 없을 것이다.법조계에서도 일단은 탐색전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본다.
  • 박준병·장세동·최세창씨 구속/검찰/군사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경복궁 모임 참석·주선… 별력 불법 출동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 3차장)는 22일 12·12사건과 관련,박준병 의원(자민련)을 군형법의 반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구속,서울구치소에 수감했다. 또 5·18 특별법에 대한 위헌제청으로 구속영장 발부가 보류됐던 12·12 당시의 수경사 30경비단장 장세동씨와 3공수여단장 최세창씨도 이 날 법원이 영장을 발부함에 따라 서울구치소와 영등포구치소에 각각 수감했다. 서울지법 형사 합의20부 김문관판사는 이 날 검찰이 청구한 박의원의 구속영장과 장·최씨의 영장을 함께 발부했다. 검찰은 상관살해 및 살해미수 혐의가 드러난 당시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씨와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는 불구속 기소키로 했다. 미국에 도피 중인 당시 1공수여단장 박희도씨와 5공수여단장 장기오씨에 대해서는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검찰에서 두차례 조사를 받고 지난 달 캐나다로 몰래 출국한 당시 수경사 헌병단장 조홍씨도 기소중지할 방침이다. 이에 따라12·12 및 5·18 사건으로 사법처리됐거나 될 사람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정호용의원 등 현역 의원 4명을 포함,모두 19명이다. 박의원은 12·12 당시 반란을 모의한 이른바 「경복궁 모임」에 참석하고 20사단 병력을 동원,육군의 지휘계통에 따라 출동하려던 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을 사전에 저지하는 등 반란에 가담한 혐의이다. 장씨는 30경비단장실을 「경복궁 모임」의 장소로 제공,반란모의에 적극 가담했으며 정승화 전 육참총장을 연행할 때 30경비단 5분대기조 병력 70여명을 출동시켰다. 최씨는 12·12 당시 3공수여단 15대대장 박종규씨에게 정병주 전 특전사령관을 연행토록 명령,이 과정에서 김오낭 전 특전사령관의 비서실장이 사살당했으며 특전사 2개대대의 병력 6백여명을 경복궁으로 이동시켰다.
  • 박준병씨 구속영장

    피의자는 육군사관학교를 제 12기로 졸업하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이른바 「10·26사건」 당시 제 20사단장으로 근무했으며 육본 인사참모부장과 국군보안사령관 등을 거친 뒤 현재 14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피의자는 10·26사건 이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 육참총장을 강제로 연행,지휘권을 박탈하고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 전두환·노태우 등의 사전계획에 따라 79년 12월12일 하오 6∼7시까지 유학성·최세창 등과 함께 제 30경비단장실에 모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도록 지휘부를 결성했다. 하오 8시30분쯤에는 제 20사단 참모장 노충현으로부터 「진도개 하나」 비상이 발령됐으며 육군 참모차장 윤성민,3군 사령관 이건영 등이 피의자를 급히 찾는다는 사실을 전화로 보고받고도 부대로 복귀하지 않았다. 오히려 30경비단장실에 계속 머무르면서 10∼15분 간격으로 노충현에게 전화를 걸어 『부대장악을 철저히 하고 나의 육성지시 없이는 병력출동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또 경기 성남시에 있는 제20사단 사령부 및 60·61·62연대 병력으로 하여금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태세를 갖추고 기동타격대 및 의정부 지역의 도로봉쇄 임무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육군의 정식 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26사단과 수도기계화사단의 병력출동을 사전에 막았다. 피의자는 중요 임무 종사자로서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증거를 인멸한 염려가 있다.
  • 5·18수사 이종찬본부장 일문일답

    ◎“국회의원 부정축재 수사계획 있다”/정의원 혐의 5·18군사반란에 국한/언론통폐합 추가로 밝혀진것 없어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 이종찬본부장은 30일 하오 정호용·허삼수·허화평의원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앞으로의 수사방향 등에 대해 설명했다.다음은 일문일답. ­전두환·노태우전대통령 등 다른 5·18관련자들은 이미 기소됐는데 이들 세 의원도 곧 기소하나. ▲수사가 마무리되는 대로 가능하면 빠른 시일 안에 기소할 방침이다. ­남은 수사는 어떤 것인가. ▲일부 의원을 상대로 5·18사건 관련 혐의 이외에 부정비리 혐의도 수사할 계획이다. ­포착된 비리내용은. ▲앞으로 수사과정을 보면 알 것이다.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의원은 누구인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수사단서가 확보되면 모두 조사하겠다. ­정의원의 경우 검찰의 12·12사건 1차 수사결과 부화뇌동죄가 적용됐는데 이번에는 반란중요임무종사죄가 적용된 이유는. ▲이번 수사과정에서 정의원이 당시 전두환보안사령관과 함께 주영복국방장관­이희성계엄사령과 황영시육참차장으로 이어지는 정식 군지휘계통에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한 사실과 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과정에서 광주시민을 살해한 혐의가 확인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 구속영장을 청구한 혐의내용은 5·18사건 과정에서 이뤼진 군사반란 행위에만 국한된 것인가. ▲그렇다.불법진퇴및 지휘관수소이탈 등 12·12사건과 관련된 반란혐의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으로 보고 포함하지 않았다.이 부분은 헌법재판소에 계류중인 위헌제청 사건이 종결되는 대로 법에 따라 처리하겠다. ­부화뇌동한 정의원도 그때 추가로 사법처리되나. ▲헌재의 합헌결정이 있더라도 정의원은 12·12 당시 뒤늦게 상경,반란군측에 합류한 것이므로 처벌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신군부에 의한 언론통폐합과 관련,그동안 수사를 통해 추가로 드러난 사실이 있나. ▲현재로서는 지난번 관련자들을 기소할 때 공소장에서 밝힌 것이 전부다.
  • 「12·12」·「5·18」 핵심 5명 영장

    ▷유학성◁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황영시·차규헌·박준병 등과 함께 79년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그곳 참석자중 최상서열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황영시·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를 재가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함. 그 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피의자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고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정승화총장 연행에 항의하는 장태완수경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쪽으로 오라』고 회유함. 또 하오 9시부터 11시 사이에 윤성민참모차장,김용휴국방차관,1·2군사령관,제3군사령부 참모장 등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측 지시에 따른 병력출동의 저지를 부탁한 것을 비롯,출동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전화를 걸어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달라고 회유하는 등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함. 전두환등과 함께 80년5월27일 국무회의에서 대통령령으로 제안된 국보위설치령을 의결하게 한뒤 공직자숙정계획에 따라 공직자 8천6백1명에게 사임을 강요하고 각 언론사에 언론인 3백36명의 해직을 종용하는 등 계엄하의 고유업무와 무관한 조치들을 결정함. 이를 통해 전두환등의 국정수행능력을 내외에 과시,유일한 집권세력으로 부각시키는데 이용하면서 행정부와 그 수반인 대통령을 무력화하고 10월29일부터 81년 4월10일까지 국가보위입법회의가 국회의 권한을 대행하도록 함. 80년 9월1일 전두환이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도 언론을 계속 통제한 상태에서 집권과정의 제반조치들을 헌법에 반영하고 신당을 창당,정계를 재편하는 등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함. 이로써 헌법에 의하여 설치된 국가기관을 강압에 의해 전복 또는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황영시◁ 피의자는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7시 사이에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그곳 참석자중 최고령자로서의 영향력을 행사하여 그 모임의 구심적 역할을 수행함. 하오 9시30분쯤 자신의 주도하에 전두환·유학성·차규헌 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찾아가서 최규하대통령에게 집단적으로 정승화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함. 또 육군 주요지휘관이나 참모장에게 전화를 걸어 육본 정식지휘계통에 따른 병력출동을 저지하는 한편 12월13일 0시30분쯤 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도록 지시하고 1시10분쯤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는 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80년 5월초 전두환·노태우·유학성 등과 함께 수시로 만나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한뒤 이를 추진하기로 모의함. 5월17일 전군에 소요진압부대 투입작전명령을 하달,5월18일 하오 2시30분쯤 광주의 전남대·조선대를 포함한 전국 92개 주요대학과 국회 및 신민당사와 공화당사,언론기관,공공기관등 1백36개 주요 보안목표에 계엄군 2만5천여명을 배치하여 각 해당시설을 점거함. 5월18일 상오 1시쯤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된 계엄포고 제10호를 발령하고 국회의원들의 국회출입을 저지함으로써 국회의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함. 피의자등의 정국장악을 위한 비상계엄확대조치와 계엄군 투입 및 정치인들의 체포에 반대하고 전두환의 퇴진과 민주화추진을 요구하는 광주 학생·시민들을 진압봉으로 가격하고 발포하는 등 강경진압함. 이후 공직자 숙정,언론 통·폐합,국가보위입법회의 설치등 자신들의 향후 집권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81년 1월24일까지 비상계엄상태를 유지하는 등 폭동하여 내란을 일으킴. ▷최세창◁ 피의자는 1957년 6월 육군사관학교를 제13기로 졸업했으며 10·26사건 당시에는 제3공수여단장으로 근무했던 자임. 피의자는 10·26사건과 관련,정승화육참총장을 강제 연행해 군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 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이를 제압해 군의 주도권을 장악한다는사전계획을 세웠음. 이에 따라 노태우·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쯤부터 하오 7시쯤까지 사이에 경복궁내 수경사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유사시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했음. 피의자는 같은날 하오 11시30분쯤 자신이 여단장으로 있는 특전사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했음. 박종규는 이날 자정쯤 서울 송파구 거여동 특전사령부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에게 사령부 외곽을 포위하도록 지시했으며 이에 따라 육군대위 김홍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신원이 확인되지 않는 육군하사 6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했음.이어 육군하사 6명이 이들에게 M16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해 김오랑을 살해하고 정병주에게 중상을 입힘. 피의자는 또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을 위반하고 다음날인 13일 상오 2시쯤서울 송파구 거여동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3시경 경복궁으로 진주했음. 피의자는 이같이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자신의 부하인 박종규에게 지시하여 직속상관인 정병주를 체포하고,제3공수여단 2개대대 병력을 인솔하여 경복궁으로 진주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반란중요임무종사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장세동◁ 피의자는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의 잦은 월권행위와 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을 문제삼아 인사조치할 것으로 알려지자 그 지휘권을 박탈하고 무력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함. 사전계획에 따라 노태우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등과 함께 12월12일 하오 6시부터 하오 7시 사이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함. 하오 7시40분쯤 허화평으로부터 정승화총장을 무사히 연행하였으며 전두환이 정승화총장 연행조사문제를 보고하기 위해 총리공관에 갔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해 있는 장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줌. 잠시후 허화평으로부터 총장연행 과정에서 총격전이 발생,연행하러간 우경윤대령이 부상을 입었으며 동원된 제33헌병대 병력이 공관경비를 맡고 있는 해병대 병력에 포위되었다는 전화연락을 받고 장성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준 뒤 제33헌병대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김진영으로 하여금 제30경비단 소속 5분대기중대 병력 80여명을 인솔하고 총장공관으로 가서 사태를 수습하도록 조치함. 수경사에서 비상이 발령되고 장태완수경사령관으로부터 주요 지휘관 비상소집 명령이 하달되었음에도 소집에 응하지 않음. 제30경비단 상황실로 전파되는 상황과 각 부대에 전화하여 파악한 상황등을 통해 육본 수뇌부가 비상을 발령하고 정승화총장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검문검색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과 제9공수여단 제26사단 수도기계화사단 등에 병력출동을 전제로 한 준비명령을 하달된다는 첩보 등을 수집,제30경비단장실에 모인 장성들에게 전파함. 중요임무종사자로서 반란군 지휘부 결성과정에서 장소를 제공하고 정승화총장 연행,부대동향 및 병력이동 상황을 수시 파악,지휘부에 전파하면서 총장공관에 억류된 합수부측 병력을 구출하기 위해 무장병력을 출동시키는 등 전두환 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자로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이학봉◁ 피의자는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인 「10·26사건」당시 보안사대공처 대공수사과장으로 근무하고 육군준장으로 전역한 뒤 13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자임. 1,79년 「10·26」사건 합수부본부장으로 임명된 전두환은 계엄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마찰을 빚어왔음.이에 정총장의 지휘권을 박탈,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김재규의 범행에 관련됐는지 여부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승화총장을 강제연행키로 결의했음.연행일을 12월12일로 결정한 전두환으로부터 연행장소 등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받고 이를 허삼수 등에게 통보했음.또 79년 12월12일 하오 6시20분쯤 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전두환을 수행해국무총리 공관으로 가서 정총장의 연행재가를 요구했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정총장에 대한 연행이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연행장소를 결정했음.허삼수등이 정총장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합수부수사관 7명을 지원하는등 전두환등과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반란을 일으킴. 2,80년 5월초 군이 전면에 나서 정국을 장악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전두환의 지시를 받았음.그뒤 전국계엄의 실시,과도정부적 성격의 소극적인 내각을 통제하기 위한 비상기구 설치 및 국회해산 등 「시국수습방안」을 추진했음.5월16일 보안부대 대공과장들을 보안사로 불러 소요 배후조종자 및 권력형 부정축재자등의 검거대상자 명단을 주고 검거를 지시,사회혼란 조성등 혐의로 김대중 국민연합공동의장,문익환목사등을 체포하고 권력형부정축재라는 불분명한 범죄혐의로 김종필 공화당총재,이후락·박종규국회의원등을 구속했음.11월12일 45개 언론사 사주들로부터 언론통폐합 조치에 이의가 없다는 내용의 각서를 받았음. 피의자는 중요임무종사자로서 주요정치인·재야인사에 대한 수사계획을 수립,이들을 체포·구속했음.국가기관을 강압으로 전복하거나 그 권능행사를 불가능하게 했으며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을 일으킨 자로 도망 및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음.
  • 계엄군 지휘체계 집중 추궁/「12·12­5·18」수사

    ◎이희성씨 등 4명 환문/전·노씨 「축재」발견돼 불기소 취소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5일 80년 당시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 이희성씨 등 관련자 4명을 소환,광주 현장에 투입된 계엄군의 지휘체계와 병력 이동 등에 대해 조사했다. 이날 소환된 사람은 이씨를 비롯,당시 7공수 33대대장이었던 권승만준장,육군참모차장 황영시씨,육본 작전참모차장 이상훈씨 등이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5·17 전군 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키로 결의한 경위와 광주에 진압군으로 공수부대 등을 출동시킨 이유,광주에서의 계엄군 지휘계통 등을 집중 조사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11일 12·12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소환됐었다. 한편 검찰은 6일 신우식 당시 7공수여단장 등 관련자 4명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 전씨 맏아들 금명 소환/검찰/비자금 관리·운영 개입 혐의

    ◎이수정 전 문공부국장 오늘 환문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서울지검3차장)는 3일 80년 당시 신민당의원이었던 손주항씨와 11공수여단장 최웅씨,국보위 사회정화위원 강상진씨 등 3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손씨를 상대로 80년 5월20일 황낙주의원과 제104회 임시국회에 등원하려다 국회를 봉쇄한 33사단 병력에 의해 제지당한 경위 등에 대한 진술을 들었다. 검찰은 특히 계엄 해제 등 현안을 다룰 예정이던 임시국회가 계엄포고령에 의해 돌연 봉쇄되는 과정에 신군부측의 압력이 개입됐었는지도 조사했다. 검찰은 최웅씨에 대해서는 80년 5월19일 광주에 투입될 당시 시위상황과 유혈진압이 이뤄진 경위,금남로 등 도심에서 발포가 되기까지 구체적인 지휘계통 등을 신문했다. 검찰은 또 강상진씨를 상대로 국보위가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성격과 기능을 벗어나 사실상 내각을 대신,권력기구로서 활동하게 된 구체적인 배경과 신군부가 권력 장악에 국보위를 이용했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했다. 한편 검찰은 전두환전대통령의비자금 이자 가운데 8백만원이 영화배우 김지미씨(56·여)가 운영하는 지미필름 명의의 계좌에 유입된 사실을 확인했으나 김씨는 전씨 비자금과는 무관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문제의 8백만원은 지미 필름이 운영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어음을 발행해 이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입금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검찰은 4일 5·18 당시 문공부 공보국장을 지낸 이수정씨를 불러 조사하기로 하는 한편 전씨의 비자금관리·운영에 깊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전씨의 맏아들 재국(36)씨를 굼명간 소환키로 했다.
  • 전씨 비자금 관련 39명 출금 저변

    ◎「5·18」­「12·12」 핵심 사법처리 수순인듯/검찰 “혐의 확인됐거나 재수사 대상” 설명/이상연씨 등은 비자금 조성에 개입 추정 12·12 및 5·18과 전두환전대통령의 비자금 사건과 관련,검찰이 출국금지한 39명의 명단이 드러남에 따라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에는 12·12사건과 5·18사건의 핵심 관련자들이 대부분 포함되어 있어 검찰이 사법처리의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 마저 나오고 있다. 출국금지자는 ▲전씨 등을 비롯,12·12 및 5·18사건 중복 피고발인 12명 ▲12·12사건 피고발인 5명 ▲5·18사건 피고발인 12명 ▲5공 당시 사공일 청와대 경제수석·안무혁 사회정화위원장·이상연 안기부장 등 나머지 10명이다. 검찰은 5·18사건과 관계 없는 안현태 전경호실장과 김종상 전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등은 전씨의 비자금 조성과 분산예치에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역할한 사실이 밝혀져 출국금지를 했다는 것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지난번 수사에서 어느정도 혐의가확인되었거나 소환한 사람 중 재수사의 필요성이 있는 사람 등을 출국금지시켰다』면서 『사법처리 수위는 다르겠지만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사법 처리 대상에 들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따라서 출국금지조치의 시기도 소환 직전과 직후에 한 셈이 된다. 12·12사건의 경우,12·12사건을 모의하기 위해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인 유학성 전국방부 군수차관보,황영시 1군단장,장세동 30경비단장,허삼수 보안사 인사처장 등 「경복궁 모임」참석자 8명과 정승화 전육참총장 연행 계획을 세운 이학봉 보안사 대공처장,권정달 보안사 정보처장,정도영 보안사 보안처장 등 3명이 포함되어 있다. 검찰은 이들이 구속기소된 전두환·노태우 두전직대통령과 함께 12·12사건의 핵심 지휘부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판단,사법처리의 1차 대상으로 이들을 꼽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다 고명승 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과 구창회 9사단 참모장,박종규 3공수여단 15대대장 등은 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병력을 멋대로 이동,총리공관·국방부·육군본부등을 점령,이 사건의 주요 피의자로 분류되어왔다. 5·18사건의 관련 출국금지자 24명은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에서부터 광주사태 진압,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등에 이르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핵심 인물이다. 광주사태 과잉진압에 직접 투입되거나 주남·송암마을 등에서 양민학살에 연루된 정호용 전특전사령관,소준렬 전교사 사령관,최웅 11공수여단장,안부웅 11공수 61대대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5·6공 당시 사공일 전경제수석과 안전사회정화위원장,이전안기부장 등은 지금껏 12·12사건 등에서 전혀 거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전씨의 비자금 조성에 개입됐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 전씨 실명제직후 20억 「세탁」/검찰 확인

    ◎채권 20장 차명 분산뒤 현금인출/남덕우 전총리 등 오늘 소환조사 12·12 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7일 당시 전투병과교육사령부 작전참모 백남희씨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사무처장 오경락씨,중앙정보부 전남지부장 정석환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또 28일 남덕우 전국무총리와 안영화 전국보위운영분과위원장을 불러 조사를 벌이기로 했다. 검찰은 백씨를 상대로 전남북 계엄사령부였던 전교사의 작전상황과 공수부대 등 광주에 출동한 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계통등에 대해 집중조사했다. 검찰은 오씨에 대해 국보위의 활동이 본래의 설립취지인 대통령 자문기구로서의 성격을 벗어나 이른바 「혁명평의회」구실을 하게 된 경위등을 신문했다. 한편 김성호 서울지검 특수3부장과 홍만표 검사는 이날 전두환 전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산업금융채권 20억원어치가 금융실명제 실시 직후 「동북아전략연구소」 김승환(47) 소장에 의해 돈세탁을 거쳐 현금화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조사결과 김씨는 93년12월평소 알고 지내던 부국증권 장옥수(51)상무에게 부탁,전씨의 1억원짜리 채권 20장을 다른 고객들의 계좌에 분산 예치한 뒤 현금인출해준 것으로 드러났다.
  • 「5·18」 진압·양민피해 등 규명/오늘부터 현장조사

    ◎수사팀 4명 광주 파견/이기백 전 국방 등 3명 환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6일 광주 현장조사를 위해 주임검사인 김상희 부장검사 등 수사팀 4명을 27일 상오 광주에 파견하기로 했다. 검찰은 현장조사를 통해 계엄군의 진압과정,시위정황,양민피해상황등을 조사하고 현장검증을 병행하는 한편 피해자와 관련자들의 진술 및 자료 등을 확보하기로 했다. 검찰은 우선 27일 10여명의 양민이 학살된 주남마을, 계엄군과 시민군이 교전을 벌인 화정동·쌍촌동·내방동, 어린이 2명이 총에 맞아 숨진 송정리비행장 부근 송암동 등 양민 피해지역 가운데 한곳을 찾아 조사하기로 했다. 한편 검찰은 26일 5·18당시 국보위 운영분과 위원장을 지낸 이기백 전국방부장관과 전남지사 장형태씨, 수경사 작전참모 박동원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했다. 검찰은 이씨를 상대로 국보위의 설립배경과 주요활동 내용, 해산 경위등을 추궁했다. 검찰은 또 27일 상오 5·18당시 전투병과 교육사령부 작전참모였던 백남희씨 등 3명을 소환, 조사키로 했다. 검찰은 백씨를 상대로 ▲당시 전남북 계엄사령부였던 전교사의 작전상황 ▲공수부대 등 광중에 출동한 진압군의 실질적인 지휘계통 ▲계업군의 과잉진압 여부 등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 신군부 내란혐의 입증에 초점/5·18사건 검찰수사 중간 점검

    ◎당시 군수뇌부 등 24명 소환조사/비상계엄 전국확대 경위 등 추궁 지난 19일 국회에서 5·18특별법이 통과되면서 5·18사건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 검찰은 20일부터 25일까지 매일 2∼5명씩 이 사건 관련 피고소·고발인 및 참고인등 모두 24명을 불러 조사했다. 이 가운데 15명정도는 5·18사건 피고소·고발인 58명에 포함된 인물들이다. 또 이에 앞서 피고소·고발인 10여명은 12·12사건 조사 때 이미 조사를 받았다. 검찰이 전두환·노태우 두 전대통령을 12·12사건과 관련,군사반란죄로 기소하면서 5·18수사를 새해 1월중순까지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것에 비추어보면 수사는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방향과 내용을 종합해보면 검찰의 5·18수사는 당초 밝힌대로 신군부세력의 내란혐의를 입증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동안 검찰의 주요 소환조사자는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광주사태 진압 관련자라는 두 부류로 크게 나눠져있다. 검찰은 5·17 비상계엄전국확대 과정과 관련해서는 비상계엄확대를 처음 결의한 전군주요지휘관회의가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시국현안등 정치성 사안을 논의했고 국회해산·비상기구 설치등 국정에 직접 관여하는 문제를 논의했다는 점에 주목해왔다. 검찰은 이 회의에 참석한 당시 유병현 합참의장,윤자중 공군참모총장,김종곤 해군참모총장등 군 수뇌부가 신군부측이 제안한 비상계엄확대에 동의한 경위를 집중조사했다. 또 이한빈 부총리등 당시의 내각 관계자들을 소환한 것은 비상계엄전국확대 조치가 군의 결의뒤 반나절만에 국무회의에서 전격처리된 배경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군이 국정의 책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입증하겠다는 의도의 표현이다. 비상계엄 전국확대가 신군부의 정권 장악의도를 증명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종환 전내무장관을 소환해 당시 치안유지상태가 군의 전격개입이 필요한 정도로 불안했는 지를 조사한 것과 초법적으로 국정을 사실상 장악했던 국보위 참가인사들을 대거 소환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또 비상계엄확대 결정이후 군의 국회의사당 봉쇄에 대해서도 폭넓은 조사가 진행됐다.신군부가 행정부 뿐 아니라 국가의 중추기구인 입법부에 대해서도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파악해 총체적인 내란음모를 규명키 위해서였다. 군의 광주 진압작전에 대한 조사는 광주현지 조사와 함께 이번주부터 본격 조사에 들어갈 전망이다. 특히 정상적인 지휘계통을 유지하고 있었는 지와 발포 경위가 주요한 조사사항이다. 당시의 주요 지휘관들이었던 진종채 2군사령관,윤흥정 전남·북 계엄분소장,소준렬 전교사 사령관등은 이미 조사를 받았고 정호용 특전사령관등이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 서면조사 한계… 현지인 목격담 중시/검찰 광주현장조사 왜 하나

    ◎마지막 수사 각오… 생생한 체험담 청취/금남로·도청·주남마을서 발포과정 등 조사 검찰이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전개된 광주를 빠르면 26일쯤 방문,그 현장을 직접 조사키로 한 것은 한마디로 「정확한 진상」규명을 위해서다. 이는 여야 합의에 의해 5·18특별법이 제정되고 5·18 진상규명에 대한 여론에 높은 데다 5·18 수사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책임감 아래 보다 진실에 다가서려는 검찰의 의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지난번 5·18수사때 전두환 전대통령등 피고소·고발인 58명을 비롯 이 사건 관련자 2백69명을 조사,수사기록만도 13만여쪽에 이를 정도로 엄첨난 양의 수사를 벌였다. 하지만 검찰의 「공소권 없음」 결정에 대한 비난과 함께 한편에서는 『검찰이 아무리 깊이 있는 수사를 했다고 한들 광주 현장을 보지도 않고 앉아서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제기됐었다. 최환 서울지검장은 24일 『지난번 수사때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가 서울에서만 이루어져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는데 미흡한 점이 많았다』면서 『마지막 진상규명 조사인 만큼 철저하고 생동감 있는 수사를 위해 광주지검과 협조,현장조사를 실시키로 했다』고 밝혔다. 최지검장은 또 『우선 지난 수사에서 규명하지 못했거나 언론에 의해 제기됐던 의문점을 중심으로 조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즉 당시 거리·마을·건물 등 현장의 조사 없이 서면상 수사기록과 관련자들의 일방적인 진술만으로는 당시 상황판단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피해자들의 구체적인 피해진술과 시민들의 생생한 경험담 등을 청취할 계획이다. 검찰은 우선 현장 조사 대상지로 당시 시민군과 계엄군 사이에 가장 공방전이 치열했던 광주 시내 금남로와 전남 도청,양민이 집단으로 학살된 주남마을 등을 꼽고 있다. 검찰은 광주 도청 등의 조사를 통해 당시 계엄군과 시민들의 구체적인 대치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이를 위해 도청과 금남로에서의 사격 거리·각도·피해자들이 주장하는 발사 위치 등에 대한 조사가 뒤따를 전망이다. 따라서 과연 계엄군측이 시민군의 대항에 자위권을 발동,지휘계통을 거치지 않고 자연발생적으로 위협사격을 위해 집단 발포를 했는지 발포명령을 받았는지 여부를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또 80년 5월23일 미니버스에 총격을 가해 10여명을 숨지게 한 주남마을 앞 광주∼화순간 국도를 직접 찾아가 계엄군의 사격 위치를 비롯,목격자들의 진술을 듣기로 했다. 이밖에 비록 시일이 많이 걸리더라도 검찰청 습격,교도소 습격시 발포상황,부대별 주둔지와 이동경로 등 가능한 한 광주사태와 연루된 모든 곳을 조사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겠다는 입장이다.
  • 「광주발포」·계엄확대 경위 조사/검찰 「5·18수사」

    ◎진종채 전2군사령관 등 5명 소환/미체류 박희도·장기오씨 그;국 종용/전씨 비자금 거액 분산 확인 「12·12및 5·18사건 특별수사본부」(본부장 이종찬 서울지검3차장)는 22일 진종채 전2군사령관,김종환 전내무장관,우병규 전국보위 법사위원,길기상 전국회사무처장 등 5명을 소환,조사했다. 검찰은 진씨로부터 80년 5월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의 전국확대를 결의한 배경과 광주 진압작전의 지휘계통 및 발포경위 등을 조사했다. 또 김전내무장관에게서는 비상계엄확대 때의 경찰의 치안질서장악상태,우씨에게는 국보위활동상황과 내용,길씨에게는 계엄확대 때 군의 국회봉쇄상태에 대해 각각 진술을 받았다. 검찰은 현재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박희도 전1공수여단장과 장기오 전5공수여단장의 귀국을 종용하기 위해 여권재발금금지조치를 외무부에 요청했다. 검찰은 또 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당시 부총리이던 이한빈씨등 거물급 5명을 23일중으로 소환조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전씨 비자금 수사와 관련,지난 93년실명제실시를 전후에 조성된 전씨 친인척및 측근의 수천억대 금융자산 및 부동산 자금출처에 대한 추적을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전씨가 실명제직전 친인척 및 측근 명의로 거액의 비자금을 분산시켰다는 단서를 확보하고 조만간 친인척 등 관련자들을 소환, 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21일 경찰병원에 입원중인 전씨에게 현재까지 조사된 3천여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경위 및 친인척 명의로 거액의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조성했는지를 추궁했으나 확인하는 데는 실패했다.
  • 검찰 공소발표문 요지

    ▷12·12사건 관련◁ ○서울지방검찰청은 그동안 특별수사본수를 구성,수사를 전개하여 왔던 세칭 12·12사건등과 관련,오늘 전직 대통령이었던 전두환·노태우 두 피의자를 서울지방법원에 군형법상의 반란수괴,반란중요임무종사 등 혐의로 공소를 제기하였음 ○이들에 대한 공소사실은 ­세칭 「10·26사건」이후 피의자 전두환은 국군 보안사령관 겸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동 노태우는 9사단장으로 각 재직하면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군내부인사,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의 의견대립 등으로 마찰을 빚어 오던중 그를 제거하고 불법으로 군의 주도권을 장악할 목적으로 정승화 참모총장이 박대통령 시해사건에 연루되었다는 구실로 ­1979년 12월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 주도로 수도권 핵심지휘 부대장인 정병주 특전사령관,장태완 수경사령관 및 김진기 육군본부 헌병감을 만찬을 빌미로 음식점으로 유인하여 육군정규지휘계통의 즉각대응체제를 혼란케 한 다음 ­위 특전사령관,수경사령관 지휘하에 있는 1공수여단장·3공수여단장·5공수여단장·30경비단장 및 수도권 방위의 중핵부대지휘관인 1군단장·수도군단장·9사단장·20사단장·국방부 군수차관보등을 포섭,경복궁 구내에 있는 30경비단에서 회합,지휘부를 형성하여 위 정규지휘부대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정규지휘계통보다 우세한 병력을 동원하기로 계획한 다음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부하인 보안사령부 인사처장과 육본 헌병대장,수경사 33헌병대장 등으로 하여금 정승화 총장을 총기등으로 강제 체포케 하고 ­육군의 정규지휘계통의 명시적인 출동금지 명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장한 병력을 동원 △1공수여단은 국방부와 육군본부 검거를 △3공수여단은 특전사령부 점거 및 특전사령관의 체포를 △수경사 헌병단은 육본측 장성등 체포를 △5공수여단은 효창운동장 진주를 △9사단 및 2기갑여단은 중앙청 진주를 △30사단은 고려대학교 진주등을 하도록 지휘,군사반란을 감행하고 △이 과정에서 상관살해,상관살인미수등 인명을 살상하여 국민의 군대로서 맡겨진 임무를 저버리고 하극상의 행위를 자행함으로써 ○당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은 반란의 최고책임자로서,당시 9사단장인 노태우는 반란의 중요임무를 수행하였다는 것등이 그 요지임. ▷수뢰 및 축재사건 관련◁ ○검찰은 본건 수사와 더불어 ­전두환 전대통령의 수뢰와 축재혐의에 대하여도 수사중에 있음 ­현재까지 기업인등 20여명을 조사하고,금융계좌 추적등을 통해서 수사한 바,친인척등 명의로 된 부동산과 함께 금융자산등 상당히 많은 액수의 축재사실이 발견되어 현재 계속 수사중에 있음 ▷5·18 및 12·12나머지부분◁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5·18 민주화운동등에 관한 특별법,헌정질서파괴범죄의 공소시효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됨에 따라 ○5·18사건은 물론 12·12사건의 나머지 부분에 대하여도 국민의 여망에 귀를 기울이면서 철저한 수사를 전개하여 법에 따라 처리할 계획임
  • 두환­노태우 군사반란죄 공소장 전문

    피고인 전두환은 1955.9 육군사관학교를 제11기로 졸업하고 육군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1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제1사단장등을 거쳐 1979.3부터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재직하던 중 10·26 중앙정보부 김재규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인 세칭 「10·26사건」(이하 「10·26사건」이라한다)이 발생함에 따라 10·27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부소속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부」라한다) 본부장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면서 1980.4.14부터 7.17까지 중앙정보부장서리를 겸임하고 5.31부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으로 근무하다가 8·6 최규하 대통령의 사임으로 8·27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9.1,취임하고 다시 1981.2.25 개정헌법에 따라 새로 구성된 대통령 선거인단에 의해 제12대 대통령에 선출되어 3.3 취임한후 1988.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 자, 같은 노태우는 위 전두환과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으로서 1955·9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래 제9공수여단장,대통령경호실 작전차장보 등을 거쳐 「10·26사건」당시에는 제9사단장으로 근무하였으며 그후 수도경비사령관,국군보안사령관을 거쳐 1981·7 육군대장으로 전역한후 정무제2장관,체육부장관,내무부장관등을 역임하고 1985.2 제12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선출되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 및 총재로 재직하다가 1987·12·16 제13대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1988·2·25 취임한후 1993·2·24까지 대통령직에 있던자로서 1995·12·5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위반(뇌물)으로 서울지방법원에 구속기소되어 현재 재판계속 중에 있는자 등인바, 「10·26 사건」이후 국내정치상황은 유신헌법을 개정하여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여야 한다는 국민적 여망에 따라 1979·11·8 최규하 대통령 권한대행이 헌법개정을 통한 정치발전을 약속하고 11·21 국회에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헌법질서의 창출이 모색되는 가운데 12·8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비방행위를 금지하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가 해체되어 유신체제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되고군 내부에서도 육군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비롯한 군수뇌부가 계엄의 성격과 목적을 「10·26사건」이후 발생한 사회혼란을 수습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데 국한함으로써 군의 정치적 중립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등 정국이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피고인 전두환이 계엄업무 수행과정에서 「10·26사건」과 관련하여 직무유기혐의로 구속된 이재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의 석방,청와대에서 발견된 금원의 처리,부정축재자의 처리 및 재산몰수,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출국허가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정승화 총장과의 사이에 잦은 의견대립으로 인해 마찰을 빚어 오던중,11월 중순경에 단행된 군인사에서 비정규육사 출신들이 군요직에 배치되고 정규육사 출신의 피고인등이 중심이 된 소위 「하나회」소속 장교들이 배제되자 자신들의 군내 입지에 위기의식을 가지게 되고 12월 초순경 군 일각에 피고인 전두환이 잦은 월권행위와 군지휘체계 문란행위 등으로 곧 실권이 없는 한직으로 인사조치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도는 가운데 정승화총장이 국방부장관 노재현에게 피고인 전두환의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으로 알려지자,피고인등은 위 전두환에 대한 인사조치를 차단하고 「하나회」소속 장교들의 군내입지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군의 주도권 장악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정승화총장이 「10·26 사건」당시 박대통령 시해 현장부근인 중앙정보부 궁정동 안가의 본관 식당에 있다가 김재규와 육군본부(이하「육본」이라한다)로 동행한 사실로 인한 일부 군인들 사이에 정승화총장이 위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 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을 기화로 이미 그동안의 수사과정에서 혐의가 없는 것으로 밝혀진 정승화총장을 김재규와의 관련 혐의에 대해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강제연행하여 그 지휘권을 박탈하는 한편,군의 정식지휘계통이 이를 저지할 경우 무장병력을 동원하여 제압함으로써 군의 주도권을 장악하기로 결의하고 12·7경 국군보안사령부(이하 「보안사」라한다)에서 서로 만나 정승화총장의 연행.조사 문제를 논의한 끝에 그 연행일을 12·12로 결정하고 피고인 전두환이 보안사 대공2과장겸 합수부 수사1국장 육군중령 이학봉에게 연행장소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하여 그 검토결과를 토대로 12·8경 육군참모총장 공관(이하 「총장공관」이라 한다)을 연행장소로 결정한후 12·9경 위 이학봉,보안사인사처장 겸 합수부 조정통제국장 육군대령 허삼수,육본 헌병감실 범죄수사단장겸합수부 수사2국장 육군대령 우경윤 등에게 구체적인 연행계획을 수립하라고 지시하는 한편 정승화총장의 연행에 대응하여 병력을 동원할 가능성이 있는 특수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수도경비사령관 육군소장 장태완,육본 헌병감 육군준장 김진기 등을 12·12 당일 만찬 초청 명목으로 유인하여 부대지휘를 사전 차단키로 하고 피고인 노태우 등 소위 「하나회」 회원들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지역 주요부대 지휘관들은 그날 저녁 경복궁 구내 수도경비사령부(이하 「수경사」라 한다) 제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필요시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기로 하고 국방부 군수차관보 육군중장 유학성,제1군단장 육군중장 황영시,수도군단장육군중장 차규헌,제20사단장 육군소장 박준병,제71훈련단장 육군준장 백운택,제1공수여단장 육군준장 박희도,제3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최세창,제5공수여단장 육군준장 장기오,수경사 제30경비단장 육군대령 장세동,수경사 제33경비단장 육군대령금진영,국군보안사령관 비서실장 육군대령 허화평,위 이학봉·허삼수,보안사 정보처장 육군대령 권정달,위 우경윤,육본 헌병감실 기획과장 육군대령 성환옥,수경사 제33헌병대장 육군중령 최석립,육본 헌병대장 육군중령 이종민,대통령 경호실장 직무대리 육군준장 정동호,대통령 경호실 작전담당관 육군대령 고명승,수경사 헌병단장 육군대령 조홍,수경사 헌병단부단장 육군중령 신윤희,보안사 보안처장 육군대령 정도영,제30사단장 육군소장 박희모,제30사단 제90연대장 육군대령 송응섭,제2기갑여단장 육군준장 이상규,제9사단 참모장 육군대령 구창회,제9사단 제29연대장 육군대령 이필섭,제9사단 작전참모 육군중령 안병호,제1공수여단 제2대대장 육군중령 서수열,제1공수여단 제5대대장 육군중령 박덕화,제3공수여단 제15대대장 육군중령 박종규등과 순차로 공모하여, ○피고인 노태우는 사전계획에 따라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박준병·백운택·박희도·최세창·장기오·장세동·김진영 등과 함께 12·12 18·00경부터 19·00까지 사이에 위 30경비단장실에 집결하여 유사시 자신들의 병력을 신속히 동원할 수 있는 지휘부를 결성하는 한편,위 허화평·권정달·정도영 등은 보안사 상황실을 거점으로 하여 각급부대 지휘관의 전화를 도청하는 등의 방법으로 부대동향과 병력이동 상황을 파악,수시로 위 지휘부에 보고하는 체제를 갖추고, ○위 조홍은 미리 계획한대로 12·초경 계엄업무로 수고하는 수도권 주요지휘관들을 보안사령관이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위 장태완·정병주·김진기등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여 12·12 18·30경 약속장소인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소재 상호불상 한정식집에 오게하여 유인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오전 국군보안사령관 사무실에서 현직 육군 참모총장겸 계엄사령관인 정승화를 체포하려면 그 중대성에 비추어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사전승인을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절차를 무시한채 총기와 실탄을 준비하여 강제적인 방법으로 연행하라고 위 허삼수등에게 지시하고 이에 따라 허삼수·우경윤·성환옥·최석립·이종민등은 같은날 18·00경 합수부수사관 7명,경복궁 구내 주둔 수경사 제33헌병대 3개 제대 병력 60여명을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 소재 보안사 서빙고분실에 집결시켜 총장공관 경비병등을 제압하는 임무를 부여하고 권총과 엠(M)16 소총으로 무장케 한 다음 18·50경 정당한 이유없이 위 부대를 인솔하고 수소를 이탈하여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총장공관에 도착,각자 분담한 임무에 따라 무장한 합수부 수사관들을 총장공관 부관실,공관입구 헌병초소,공관현관등을 제압하고 제33헌병대 병력은 퇴로를 확보하고 19:10경 허삼수·우경윤이 총장공관 응접실로 들어가 정승화 총장에게 대통령의 재가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면서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사실에 대하여 진술을 받아야 하겠으니 녹음준비가 되어 있는 곳으로 가주셔야 하겠습니다』라고 요구하였으나 정승화 총장이 이를거부하면서 수행부관 육군소령 이재천에게 국방부장관이나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재가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하여 동인이 부관실에서 전화를 걸려고 하자 합수부 수사관 육군소령 김대균,육군소령 한길성,육군상사 박원철등이 이를 저지하기 위해 권총을 난사하여 상관인 이재천과 경호장교 육군대위 김인선등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그들의 머리와 허리 등에 총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그 무렵 허삼수·우경윤은 정승화 총장을 끌고 나오던 중 우경윤이 성명불상자로부터 총격을 받고 쓰러지자 부관실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길성이 허삼수를 도와 정승화 총장의 양팔을 붙잡고 박원철은 엠(M)16소총 개머리판으로 응접실 대형유리창을 깨고 들어가 정승화 총장을 위협하면서 함께 끌고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승용차에 태워 19·30경 보안사 서빙고 분실로 강제연행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18·20경 위 이학봉,대통령 의전수석비서관 정동렬과 함께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재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정승화총장이 김재규로부터 돈을 받은 새로운 혐의 사실이 발견되어 연행.조사하여야 하겠으니 재가하여 주십시오』라고 요구하였다가 현직 계엄사령관을 연행.조사하는 것은 중대한 사안이므로 국방부장관의 의견을 듣지 않고서는 재가를 해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하자 20:20경 위 정동호·고명승에게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여 출입을 통제하라고 지시하고 정동호·고명승 등은 그시경 대통령의 승인이나 대통령 비서실과의 협의 없이 청와대 경비업무를 담당하는 제55경비대대 부대대장 육군소령 권중원 및 5분대기조 24명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출동하여 20·40경 대통령 특별경호대장 육군중령 구정길과 그 대원들의 무장을 해제시킨후 그곳 막사에 억류하고 위 제55경비대대 2개 제대 병력 64명을 추가로 출동시켜 그 일대에 배치함으로써 국무총리공관을 장악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1·30경 위 유학성·황영시·차규헌·백운택·박희도등과 함께 국무총리공관으로 가서 최규하 대통령에게 집단으로 정승화 총장의 연행. 조사를 재가해 달라고 재차 요구하였으나 다시 거절당하고 그무렵 육군 정식지휘계통에서 정승화 총장의 원상복귀를 강력히 요구하면서 피고인등을 반란군으로 규정하여 진압할 움직임을 보이자 피고인등은 계엄지역에서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사전승인을 받지 아니하거나 명시적인 병력출동 금지명령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지휘하에 있는 병력을 동원하여 선제공격하기로 하고 그 사실을 숨긴채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지시에 따라 출동할 가능성이 있는 제9공수여단,제26사단,수도기계화사단등에 전화를 걸어 그 부대장이나 참모들에게 병력을 출동시키지 말아 달라고 회유하여 각 부대의 출동을 사전에 저지하고 ○피고인 전두환은 12·12 23·00경 위 박희도에게 제1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고 국방부장관을 보안사로 연행해오라고 지시하고 위 조홍에게는 수경사 헌병단 병력을 출동시켜 수경사에 있는 육본 지휘부와 수경사령관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위 최세창에게는 특전사령관을 체포한후 제3공수여단 병력을 경복궁으로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24·00경 위 장기오에게는 제5공수여단 병력을 출동시켜 국방부와 육본을 점령하라고 지시하고 피고인 노태우는 12·12 24·00경 위 구창회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황영시는 12·13 00·30경 위이상규에게 중앙청으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01·10경 위 박희도에게 고려대학교로 병력을 출동시키라고 지시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0·05경 서울 강서구 공항동소재 제1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 1,2,5,6대대 병력 1천5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행주대교·능곡·수색을 거쳐 01·3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한후 제1,2대대 병력은 육본 정문에 근무중인 헌병등을 무력으로 제압한후 무장을 해제시키고 안으로 진입하여 육본 건물을 점령하고 제5,6대대 병력은 국방부정문에 근무중인 헌병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국방부 청사를 점령하고 그 과정에서 제5대대 제15지역대 소속 성명불상 장병들이 국방부 초소에 근무하는 초병 육군병장정선엽에게 총격을 가하여 살해하고 02·40경 국방부장관실에 난입하여 합동참모의장육군대장 김종환등 장성 8명의 무장을 해제시킨 다음 국방부 청사를 수색한 끝에 03·50경 지하 1층 상황실 입구에서 국방부장관 노재현을 발견하여 보안사로 연행하고, ○위 최세창은 12·12 23·30경 특전사령부(이하 「특전사」라 한다) 제3공수여단 육군중령 박종규에게 직속상관인 특전사령관 육군소장 정병주를 체포하라고 지시하고 박종규는 24·00경 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특전사에서 제3공수여단 제15대대 소속 1개 지역대 병력 38명으로 하여금 사령부 외곽을 포위케 한 다음,육군대위 김흥열,육군대위 나영조,육군중사 신현수,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과 함께 안으로진입하여 위 정병주와 비서실장 육군소령 김오랑이 집무실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육군하사 성명불상 6명이 이들에게 엠(M)16 소총으로 집중사격을 가하여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정병주를 살해하려 하였으나 제1수장골무지우부개방성분쇄골절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최세창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12·13 02·00경서울 송파구 거여동 소재 제3공수여단 연병장에서 2개 대대 병력 6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천호대교·강북로·한남동을 거쳐 03·00경 경복궁으로 진주하고, ○위 장기오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5공수여단 제23대대장육군중령 정낙준과 제26대대장 육군중령 장용주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정낙준·장용주 등은 12·13 02·00경 인천 북구 부평동 소재 제5공수여단 연병장에서 제23대대 및 제26대대 병력 4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경인고속도로,제1한강교를 거쳐 03·25경 용산 삼각지에 도착하였으나 국방부와 육본이 제1공수여단에 의해 이미 점령되어 있어 효창운동장으로 이동하여 진주하고, ○위 조홍은 12·12 23·30경 수경사 헌병단 부단장 신윤희에게 당시 서울 중구 필동 소재 수경사에 모여 있던 위 장태완·윤성민,육본 작전 참모부장 육군소장 하소곤,합동참모본부장 육군중장 문홍구 등 육본측 장성들을 체포하라고 지시하고,신윤희는 12·13 03·00경 헌병단 소속 육군대위 임대식·윤태이 등으로 하여금 헌병 55명을 지휘하여 사령부 외곽과 1,2층 복도를 포위케 한 후 03·40경 육군대위 한영수,육군대위 이재우,헌병단 정보과장 군무원 최순호,성명불상 헌병 5명과 함께 사령관실로 진입하여 장태완·윤성민·하소곤·문홍구 등을 체포하고 그 과정에서 한영수가 엠(M)16 소총 1발을 발사하여 상관인 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좌흉부관통상을 입히는데 그쳐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위 이필섭은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구창회의 지시를 받아 12·13 02·20경 경기 고양군 벽제읍 소재 제29연대 연병장에서 제29,30연대 병력 1천3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구파발·홍은동을 거쳐 03·30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이상규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제16전차대대 대대장 육군중령 김호영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김호영은 12·13 02·30경 경기 파주군 금촌읍 아동리 소재 제2기갑여단 연병장에서 제16전차대대 전차 35대와 병력 1백80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통일로·구파발·서대문 등을 거쳐 03·25경 중앙청으로 진주하고, ○위 박희도는 육군 정식지휘계통의 명령에 위반하여 위 송응섭에게 병력출동을 지시하고 송응섭은 12·13 03·30경 고양시 신도읍 삼송리에 집결한 제90연대 병력 1천1백여명을 인솔하고 정당한 이유없이 수소를 이탈하여 홍은동·세검정을 거쳐 06·20경 고려대학교 운동장으로 진주함으로써 계엄지역에서 각 지휘관이 권한을 남용하여 부득이한 사유없이 부대를 각 진퇴시키고 정당한 이유없이 부대를 인솔하여 각 수소를 이탈하고 상관인 김오랑을 살해하고 상관인 이재천·김인선·정병주·하소곤을 살해하려 하였으나 각 미수에 그치고 초병인 정선엽을 살해함과 동시에 피고인 전두환은 수괴로서,같은 노태우는 중요업무종사자로서 작당하여 병기를 휴대하고 반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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