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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홍기특파원 도쿄이야기] 규모 7.2 강진에 불과 9명 사망… 일본의 유비무환

    주말인 14일 아침 일본 이와테현·미야기현 등 동북지방에 리히터 7.2의 강진이 덮쳤다. 여진은 260차례나 관측됐다.15일에도 계속됐다.1995년 1월 한신대지진과 맞먹을 만큼 지축을 흔들었다. 진원에서 500㎞쯤 떨어진 도쿄에서도 느껴질 만큼 강력했다. 한달 전 중국 쓰촨성을 휩쓴 대지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에 더 공포에 떨었다. 일본 기상청은 ‘이와테·미야기 내륙지진’이라고 명명했다. 지진은 대체로 산간지역에 집중됐다. 인명 피해는 규모에 비해 비교적 적었다. 사망 9명, 실종 13명, 부상 200여명으로 집계됐다. 주택 붕괴도 10채를 갓 넘었을 뿐이다.반면 미야기현의 구리하라시에 있는 산의 능선이 통째로 사라졌다. 흘러내린 토사와 낙석으로 고속도로는 곳곳이 끊긴 데다 다리도 내려앉았다. 원전도, 댐도 손상을 입었다. 고립된 마을도 속출했다.2004년 산간지역을 강타했던 니가타현의 지진 상황과 비슷했다. 일본의 대응은 신속했다.2005년 산간 지역의 재해대책을 마련해 놓은 터다. 정보수집, 물자수송, 구조뿐만 아니라 야간 헬리콥터의 동원, 자위대 파견 등까지 체계적인 매뉴얼에 따랐다. 정부 역시 총리관저에 대책실을 설치한 데다 방재담당상을 현지에 급파했다. 언뜻 보면 잦은 경험에 따른 몸에 밴 조치로도 볼 수 있다. 좀더 들여다보면 철저한 지진 대비인 셈이다. 단적인 예가 주택의 피해가 적었다는 점이다. 붕괴에 의한 매몰 피해가 거의 없었다. 일본 주택은 건축기본법상 진도 7의 강진에도 견디도록 내진설계를 갖춰야 한다. 내진 기준에 맞춘 주택은 전국적으로 75%에 달하고 있다. 특히 눈이 많이 내리는 지형의 특성도 작용했다. 눈이 쌓이지 않도록 철판지붕을 사용, 기와지붕에 비해 가벼웠다. 한파를 피하기 위해 창문이나 출입문을 작게 만든 독특한 건물 구조도 피해를 줄이는 데 한몫했다. 일본 정부는 다시금 도시·산간·연안 등의 지진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에 나설 태세다. 현재 2000개의 활단층이 존재하고 있다. 확인되지 않은 단층도 수두룩하다.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다. 지진을 막을 수는 없지만 피해는 줄일 수 있다는 인식에서다. 누구나 쉽게 말하는 ‘유비무환’의 의미를 새삼 되새겨 본다.hkpark@seoul.co.kr
  • 수원 장안구 SK케미칼부지 택지로 개발

    경기 수원시 장안구 SK케미칼 공장부지가 택지로 개발되고 권선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곡반정동으로 이전하는 등 5곳 131만㎡가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개발된다. 수원시는 이같은 내용의 ‘2015년 수원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을 입안해 13일 공고했다. 이에 따라 정자동 SK케미칼 수원공장 부지(32만 1194㎡)에 대해 지난해 확정된 도시기본계획을 토대로 주변 여건을 고려해 주거용도로 개발할 수 있도록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한다. 또 개발이익을 지역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전체 부지의 40% 이상을 공원·녹지·교육·문화시설 등 공공기반시설 부지로 무상으로 받을 방침이다. SK케미칼 공장 부지는 1969년 개발 당시 주변이 논밭이었으나 1992∼2000년 정자1, 천천1·2지구 택지개발로 아파트촌에 둘러싸이게 되면서 공장이전을 요구하는 주민들의 민원이 잇따랐다. 시는 이와 함께 권선동 농수산물 도매시장(부지 5만 7354㎡)을 이전키 위해 외곽인 곡반정동에 이전부지(26만226㎡)를 확보할 계획이다. 현대식 건물로 시장을 건설하고 집배송단지와 함께 도로·공원 기반시설을 건설, 화성·용인·평택지역과 광역유통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1993년 개장한 농수산물 도매시장은 좁은 부지로 소음, 악취, 교통체증, 주차난이 심각해 상인들과 고객, 주변 주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시는 이밖에 탑동 권선구 행정타운 주변에 근린생활·업무·상업시설을 갖춘 배후단지(6만 179㎡)가 들어올 수 있도록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세우기로 했다. 임인수 도시계획팀장은 “새로 지정될 지구단위계획구역 5곳의 경우 땅값상승을 막기 위해 이번 도시관리계획에 용도지역 변경사항을 포함시키지 않았다.”며 “대규모 택지개발과 도로개설로 지형이 변형돼 경계 재조정이 필요한 지역에 대해서는 올 하반기에 도시관리계획을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배기선 前의원 뇌물수수 등 유죄

    대법원 형사1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12일 16대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이던 2004년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지원법을 연장해준 대가로 광고물 업자에게 금품을 받아 불구속기소된 배기선 전 국회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4년에 추징금 80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구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배 전 의원의 5000만원 뇌물수수,5000만원 제3자 뇌물공여,3000만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가운데 제3자 뇌물공여 혐의에 대해서만 무죄 취지로 원심을 파기한 것이어서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사실상 유죄가 확정됐다.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원한 관계? 성 범죄?

    경찰은 허양이 나체로 발견된 점 등으로 미뤄 원한 관계는 물론 인근 불량배나 성범죄 전력자의 범행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수사 중이다. 특히 등산객이 전혀 다니지 않는 곳이어서 이곳 지형을 잘 아는 사람들의 소행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이날 감식전담반 8명을 투입해 현장 감식을 끝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가릴 방침이다. 범행 당시 허양의 집 인근에서의 휴대전화 통화를 추적하는 한편 인근 도로에 설치된 CCTV도 분석하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시체의 부패 상태로 봐서는 허양이 납치 직후에 피살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사건은 금품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납치 사건과 양상이 다른 데다 그동안 신빙성 있는 제보도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허양은 생활고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여동생(초등 4년), 할아버지와 함께 월세 5만원에 2칸짜리 방에서 생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허양의 아버지(36)와 어머니 김모(31)씨는 이날 오후 6시쯤 현장에 도착,“경찰이 원한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 엉뚱한 수사만 해왔다.”면서 “이곳은 우리도 모르는 길인데 길을 잘 아는 사람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참가자 숫자 차이 왜

    8만여명 vs 70만여명. 지난 10일 서울 광화문 일대를 메운 촛불집회 참가자 숫자에 대해 경찰은 8만명, 주최 측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70만명이라고 밝히고 있다. 무려 8.75배의 차이가 난다. 집회가 열리면 경찰의 참가자 추산은 주최 측의 계산보다 적게 마련이다. 지난달 2일 촛불집회가 시작된 이후 양측이 추산한 참가자 숫자는 적게는 1.5배, 많게는 5배가량 차이가 났다.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9배 가까운 차이는 특히 심했다는 평가다. 논란의 핵심은 2004년 3월 탄핵무효 촛불집회 인파(경찰 추산 13만명. 주최측 추산 20만명)보다 적으냐, 많으냐로 모아진다. 대책회의 관계자는 “탄핵 당시엔 숭례문까지 시민들이 늘어서지 않았지만 경찰 추산이 13만명이었다.”면서 “이번 집회 참가자가 탄핵 때보다 많았다.”고 강조했다. 대책회의 측은 ‘70만명 주장’ 역시 20여명의 집계요원들이 현장에서 지형도를 고려해 계산한 것이라고 밝혔다. 게다가 아이디 ‘승리의 아고라’는 다음 아고라에 올린 글에서 “촛불집회 모습을 높은 곳에서 찍은 사진을 편집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광점(촛불)을 세는 방식으로 확인한 결과 최대 26만 1664개의 광점이 나타났다.”면서 “경찰의 공식 집계는 과학적이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3.3㎡(1평) 당 사람이 빽빽하게는 15명, 엉성하게는 8명 정도가 설 수 있지만 시민들이 촛불을 든 점을 감안해 8명 정도로 추산했다고 밝혔다. 경찰청 경비과 관계자는 “10일 인파가 서소문 네거리까지 늘어선 점을 감안하더라도 평당 서있는 사람 숫자를 감안해 8만명으로 책정했으며 탄핵 때보다 시민들이 좀더 엉성하게 서 있었던 점을 미뤄보면 탄핵 때보다 숫자가 적은 것으로 보인다.”며 경찰 셈법이 과학적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시민들이 계속 의문을 제기하니 우리도 산정방법을 재고해봐야 하나 고민중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이재훈기자 nomad@seoul.co.kr
  • [월드이슈-中 쓰촨 대지진 한 달] ‘고통’의 대륙… 溫은 ‘소통’ 胡는 ‘불통’

    12일로 쓰촨(四川) 대지진이 발생한지 한 달째를 맞는다. 공식 사망자 6만 9142명, 실종자 1만 7551명에 피해를 입은 사람만도 37만여명이나 되는 대참사의 상처를 딛고 중국은 오는 8월 베이징 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지진이 사회·정치적으로 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경제적인 영향은 무엇인지 짚어봤다.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쓰촨(四川) 대지진은 숱한 영웅을 만들어냈지만, 가장 빛나는 영웅의 하나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꼽을 수 있다. 지진 발생 당일 현장 도착은 국가 지도자로서는 사실 무모하기까지 했던 일. 그러나 당일 임시 천막에서 대책회의를 열고 구호활동을 지시하며 이재민을 위로하는 모습에 국민들은 환호했다.‘제1선’에 선 지도자 상에 국민적 지지가 몰리는 순간, 원 총리에게는 정치적인 ‘기사회생’의 기회가 터졌다. 중국 정치에서 서구식 대중 정치의 맹아,‘대중 정치인의 출현’ 가능성이 확인되는 때이기도 했다. 2007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인플레이션과 함께 원자바오 총리의 입지는 좁아져 갔다. 걷잡을 수 없는 물가 상승에 경제 정책은 긴축에 긴축이 이어지고,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급기야 2007년 가을 17차 당대회를 전후해서는 홍콩 언론을 통해 “원로들이 원 총리를 못마땅해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에게 직접적으로 질타를 받았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올 초 남방에 닥친 100년만의 폭설은 그를 최악의 위기로 몰아갔다. 곳곳을 다니며 민심 수습에 나선 그를 보며 적지않은 이들이 위로를 받기보다는 “또, 또…”라며 혀를 찼다.2006년 초 ‘낡은 운동화’와 ‘낡은 점퍼’로 쌓아올린 서민 총리의 이미지도 거의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지진 와중에 그는 역전했다. 그는 늘 해오던 대로였지만,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나는 원자바오 할아버지다.”,“곧 구해줄테니 조금만 더 참아라.”,“반드시 구출될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중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주저앉은 지붕 밑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학생에게는 직접 물을 먹여주기도 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며 다른 지도자들은 그와 뚜렷이 구별되며 비교되기 시작했다. 당 서열 1위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제1선’에 섰지만 감동의 깊이와 정도가 달랐다. 자식을 잃고 넋을 잃은 부모에게 “지금 10만명의 인민해방군이 구조활동에 투입됐다.”는 말은,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 채 정치 선전으로밖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의 얼굴에는 대중이 원하는 표정이 부족했다.‘방송 언어’와 ‘감성적 표현’을 구사하고,‘TV형 표정’을 보여주는 원자바오 총리와는 시시각각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과거 어떤 중국 정치인도 보여주지 못했던 모습이다. 후 주석과 달리 원자바오 총리는 이를 통해 새롭게 ‘힘’을 가졌다.“지진 초기 원 총리의 명령에 불복종한 군 수뇌부에 대해 인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렇다할 계파도, 내부 지지세력도 없던 그의 처지를 고려해보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설이다. 국민적 지지가 당내 권력 투쟁에 주요한 힘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시금석이 될 일이다. 쓰촨 대지진은 중국 정치 지형에 보이지 않는 변형을 가져왔다. 중국 국민들의 눈에는 이미 감동을 줄 줄 아는 ‘대중 정치인’의 형상이 투영되고 말았다. 선전·선동형 지도자보다는 교감할 수 있는 정치인상에 가까운 모습이다. 이번 지진은 당장 4년 뒤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 부총리간의 차세대 1인자 경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 중국 정치사에 싹을 틔운 서구식 대중 정치의 맹아는 어떻게 자라날 것인가. jj@seoul.co.kr
  • [6·10 촛불집회] 내각 총사퇴로 본 여권 권력다툼 2R

    청와대와 내각의 일괄 사의 표명으로 여권 권력구도에도 적잖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을 구심점으로 한 ‘주류 중의 주류’ 친이(친이명박) 온건파가 당내 이명박 직계그룹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정두언 의원의 직격탄을 맞고 비틀대는 양상이다. 특히 류우익 대통령실장과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 등 이 전 부의장과 가까운 인사들이 인적 쇄신의 표적으로 부상, 사표를 제출한 것은 이 전 부의장의 당내 입지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친이 강경파는 지난 3월 공천과정에서 남경필·정두언 의원 등을 앞세워 이 전 부의장의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다가 치명상을 입었지만 이번 싸움에서는 청와대와 내각 일괄 사의 표명을 이끌어내는 등 외관상 주도권을 쥔 양상이다. 내심 이번 기회에 청와대와 정부는 물론이고 당내 인적 쇄신작업도 병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강경파의 한 의원은 10일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면서 “청와대와 내각은 물론이고 당도 대대적인 쇄신을 보여 주지 않으면 돌아선 민심을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친이 온건파는 여론 동향을 주시하는 동시에 이 대통령의 선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향후 여권의 권력지형이 달라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이번 사태를 촉발시킨 정 의원이나 이 전 부의장이 입을 굳게 다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온건파의 한 의원은 “문제는 누구나 제기할 수 있고, 비판은 언제든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책임감”이라며 “집권 여당 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없이 여론에 편승해 비판만 하는 사람들에게 국정과 당정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반격했다. 친이 강경파와 온건파의 다툼은 이 대통령의 다음 인선과 오는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판가름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전 부의장과 함께 온건파의 양대 축을 형성하고 있는 박희태 전 국회부의장이 차기 당권을 잡을 경우, 사실상 이 대통령의 정치 특보 역할까지 담당하는 당 대표 이상의 역할이 예상된다. 박 전 부의장은 이상득 전 부의장이나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등과 함께 원로그룹으로서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적지 않은 조언을 해왔다. 실제 이 전 부의장과 최 위원장은 9일 아침 청와대 안가에서 이 대통령과 조찬을 함께 하며 시국 수습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이 전 부의장의 입지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적잖은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 측근 의원은 “당내 세력구도를 감안할 때 이 전 부의장이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을 경우 걷잡을 수 없는 대립과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구도”라며 “어떤 형태로든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삼기자 hisam@seoul.co.kr
  • 이전지역 어떤 곳

    안동과 예천 경계지역은 배산임수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지형이다. 일찍부터 지리적, 문화적으로 경북도청 이전 1순위 지역으로 꼽혔다. 낙동강이 동서를 가로질러 흐르고 백두대간의 두 지맥인 문수지맥과 보현지맥이 남북으로 마주보는 곳이다. 서울의 북악산과 비슷한 높이의 검무산(331.6m)이 주산 역할을 한다. 인근의 정산(289m)과 화산(328m)이 좌청룡, 거무산(227m)과 가일산(143.1m), 봉황산(200m)이 우백호, 마봉(173m)과 시루봉(185m)이 남주작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길지(吉地)로 손꼽힌다. 중앙고속도로 서안동IC, 예천IC와 10분 남짓한 거리에 있고 중부내륙고속도로와 건설될 상주∼영덕간 고속도로 등과의 접근성이 좋다. 대구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병자호란 다시 읽기] (74) 병자호란이 시작되다(Ⅰ)

    전쟁이 일어나기 바로 직전까지 조정에서는 청과의 관계를 복원할지, 그것과 관련하여 사신을 보낼지를 놓고 격심한 논란이 빚어졌다. 척화파는 명분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절교가 불가피하다고 했고, 주화파는 이렇다 할 준비 없이 전쟁을 벌이는 것의 위험성을 들어 끝까지 청을 기미(羈)해야 한다고 맞섰다. 사람들은 대체로 척화파의 논의가 높고 깨끗하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높고 깨끗한 논의’만으로 전쟁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갈팡질팡하는 사이 전쟁은 결국 터지고 말았다. ●준비 없이 갈림길에 서다 당시 ‘명분’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헤매고 있던 조선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던 인물은 명 감군 황손무(黃孫茂)였다. 그가 귀국 길에 보낸 서한이 10월24일 조정에 도착했다. 그는 청천강과 압록강, 그리고 평안도의 험준한 지형은 하늘이 준 것이니 병사들을 조련하고 화약과 총포 등을 제대로 갖추면 적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선 신료들이 현실을 모른다고 야유했다.‘경학(經學)을 연구하는 것은 장차 이용(利用)하기 위한 것인데 나는 귀국의 학사와 대부들이 읽는 것이 무슨 책이며 경제(經濟)하는 것이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었소. 뜻도 모르고 웅얼거리고 의관(衣冠)이나 갖추고 영화를 누리고 있으니 국도(國都)를 건설하고 군현(郡縣)을 구획하며 군대를 강하게 만들고 세금을 경리하는 것은 과연 누가 담당한단 말이오?’ 황손무의 비판은 신랄했고 진단은 냉정했다.‘귀국의 인심과 군비(軍備)를 볼 때, 저 강한 도적들을 감당하기란 결단코 어렵습니다. 일시적인 장유(奬諭)에 이끌려 그들과의 화친을 끊지 마십시오.’ 조선을 찬양하고 청과의 싸움을 독려하는 내용을 담은 황제의 유시문을 들고 왔던 그였다. 조선을 다독여 청과 싸움을 붙이는 것이 자신의 임무였지만, 황손무가 본 조선은 전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오히려 청과의 관계를 단절하지 말라고 충고했던 것이다. 청 역시 마지막까지 조선의 본심을 떠보려고 시도했다. 역관 박인범(朴仁範) 등이 들어갔을 때, 용골대는 새로운 제안을 내밀었다. 자신들에게 협력하여 명을 공격하는 데 동참하고, 화친을 배척한 신하를 넘겨주고 왕자를 볼모로 보내라는 요구였다. 박인범 등은 반발했다. 그러자 용골대 등은 왕자와 척화신만 보내주면 청군이 비록 압록강에 이르더라도 침략을 당장 중지하고 두 나라가 혼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제의했다. 박인범 등이 ‘예의의 나라로서 차마 들을 수 없고, 또 전달할 수 없는 말’이라고 거듭 반발하자 용골대 등은 돌아갔다. 좀처럼 좁히기 어려운 서로의 입장 차이를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홍타이지, 침략 결심을 하늘에 고하다 1636년 11월25일 홍타이지는 신료들을 이끌고 환구에서 제사를 지냈다. 황천(皇天)과 후토(后土)를 향해 자신이 조선 정벌에 나서게 된 까닭을 고하는 자리였다. 홍타이지는 축문을 통해 조선이 ‘저지른’ 잘못들을 열거했다.1619년 명을 도와 자신들을 공격하는 데 동참한 것,1621년 이후 자신들이 요동을 차지했을 때 도망하는 한인들을 받아들여 명에 넘긴 것, 정묘년에 맹약을 체결한 이후에도 누차 그것을 어긴 것, 후금으로 귀순하는 공유덕과 경중명 일행을 공격했던 것, 명에는 병선(兵船)을 제공했으면서도 그것을 빌려 달라는 자신들의 요구는 거부한 것, 인조가 평안감사 홍명구(洪命耉)에게 유시문을 보내 자신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운운 한 것 등이었다. 조선에 대해 품었던 불만이 모두 나열되었다.‘청의 힘과 역량이 명 못지않게 커졌는데 조선은 명만 편들고 자신들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만의 요점이었다. 공유덕 등의 귀순을 저지하려 시도하고, 명에만 병선을 제공한 것에 대한 불만이 특히 도드라져 보였다. 홍타이지는 곧이어 누르하치의 신주를 모신 태묘(太廟)에도 나아가 자신의 결심을 고했다. 홍타이지는 11월29일 여러 장수들을 모아놓고 유시문을 내렸다. 조선을 정벌해야 하는 까닭을 다시 강조했다. 위에서 언급한 ‘허물’에 더하여 조선이 청에서 보낸 국서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것도 추가했다. 조선 조정이 몽골 버일러들이 내민 편지를 퇴짜놓았던 것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홍타이지는 평안감사 홍명구에게도 ‘유시문’을 보냈다.‘조선이 패만하고 무례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의병(義兵)을 일으키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병’들에게 조선에서의 행동 지침을 하달했다.‘인명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 것, 대군이 통과하는 지역의 사묘(寺廟)를 파괴하지 말 것, 저항하지 않는 자를 죽이지 말 것, 항복한 자를 죽이지 말고 치발(髮)할 것, 망명해 오는 자를 받아들여 보호할 것, 사로잡은 백성들의 가족을 서로 이산시키지 말 것, 부녀를 폭행하지 말 것’ 등이 그것이었다. 12월1일 조선 원정에 동참할 몽골 버일러들이 병력을 이끌고 심양에 집합했다. 홍타이지는 이날, 정친왕(鄭親王) 지르가랑(濟爾哈朗)에게 심양에 남아 도성을 방어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아지게(阿濟格)를 우장(牛莊)에 배치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도록 했다. 조선을 공격하는 와중에 혹시라도 명군이 배후에서 역습해 오는 상황을 우려한 조처였다. 우장은 압록강과 발해만으로 연결되는 전략 요충이었다. 당시 청은 명이 수군을 이용하여 발해만으로 들어와 내지에 상륙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에 나서면서도 여전히 명의 위협을 염려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월2일 오전 홍타이지는 대군을 출발시키기에 앞서 당자(堂子)에 나아가 삼배구궤두례(三拜九頭禮)를 행했다. 당자는 까치를 신성시하는 만주족 샤머니즘 신앙의 상징물이었다. 이어 팔기의 깃발들을 도열해 놓고 주악을 울리며 다시 배천례(拜天禮)를 행했다. 홍타이지는 이어 도도(多鐸)와 마부대 등에게 병력 1300명을 따로 주었다. 그들 가운데 300명은 상인으로 변장시켰다. 그들을 신속히 서울로 진격시켜 궁궐을 포위하려는 깜냥이었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는 것이 홍타이지의 생각이었다. ●무너진 통신체계 조선 침략에는 만주와 몽골군뿐 아니라 명에서 귀순한 한족 출신 장졸(-漢軍)들도 대거 동참했다. 공유덕, 경중명, 상가희(尙嘉喜)를 비롯하여 석정주(石廷柱), 마광원(馬光遠) 등 한군 지휘관들이 그들을 이끌었다. 청은 조선을 공략하기 위해 만몽한(滿蒙漢)의 모든 역량을 사실상 총동원했던 것이다. 한군들은 특히 홍이포(紅夷砲), 대장군포(大將軍砲)를 비롯한 중화기의 운용과 운반을 맡았다. 12월9일 의주부윤 임경업(林慶業)은 청군이 압록강을 건너 몰려오는 상황을 인지했다.‘병자록’에 따르면 이미 12월6일부터 청군과 관련된 이상 징후를 알리는 봉화(烽火)가 여러 차례 올랐지만, 도원수 김자점(金自點)은 그 상황을 서울에 제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적이 겨울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또 봉화가 알려질 경우, 서울에서 소동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9일 적군이 이미 순안(順安)을 통과하여 안주를 향해 내달리는 상황에서야 김자점은 장계를 올렸다. 청군은 질풍같이 내달렸다. 조선은 청군의 철기(鐵騎)와 야전에서 맞서서는 승산이 없다고 여겨 주로 산성에 들어가 방어하는 전술을 구상했다. 하지만 청군은 조선군이 대비하고 있는 산성을 공격하여 시간을 허비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서울로 돌격하는 전술을 택했다. 사실 의주 부근의 백마산성도, 평양 부근의 자모산성도 서울로 이어지는 대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로에서 적 기병을 차단하려 들지 않았던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나마 봉화마저 제때 올리지 않았고, 평안도 각지에서 올린 변보(邊報)는 청군 기마대에 의해 차단되었다. 그 같은 상황에서 인조와 조정은 강화도는커녕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시간적 여유조차 가질 수 없었다. 전쟁은 이렇게 시작부터 음울했다.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
  • [월드 사이언스]

    [월드 사이언스]

    ■ 자기 키 27배 뛰는 메뚜기 로봇 발명 스위스 로잔 아카데미 지능시스템 연구소가 메뚜기처럼 도약하는 로봇을 개발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파사데나에서 최근 열린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 국제회의에서 발표된 이 로봇은 무게가 7g에 불과하지만 자신의 키 높이보다 27배나 높은 1.4m를 뛰어오를 수 있다. 지금까지 발표된 비슷한 크기와 무게의 다른 로봇보다 10배 이상 높이 뛰는 것이다. 메뚜기 로봇은 보통 로봇이 갈 수 없는 거친 지형을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따라서 소형 센서를 장착해 거칠고 접근이 힘든 땅을 탐사하거나 탐색·구조 작업에 사용될 전망이다. 또 태양전지를 장착해 움직이며, 지구나 다른 행성을 탐사하는 도중에 충전할 수 있어 활용가치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벼룩이나 방아깨비, 메뚜기, 개구리 등과 같은 동물들은 탄성 에너지를 천천히 충전했다가 한번에 발산하는 방식으로 도약을 한다. 이번에 발표된 메뚜기 로봇도 같은 원리로 도약을 한다.0.6g의 이동모터를 사용해 비틀림 스프링(torsion spring)에 에너지를 저장한 후 장착된 소형 전지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3초 간격으로 320번이나 도약할 수 있다. ■ 전자감시기술 발달이 범죄 막는다 미국 정부의 범죄 모니터링 방식이 새로운 전자감시기술(EST)의 등장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다.EST 옹호론자들은 새로운 기술이 생명을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시민의 자유를 침해할 확률이 높아졌으며, 실제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보호받고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위성위치추적시스템(GPS)은 최근 들어 감시기술의 핵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다.GPS 모니터링은 이미 유럽에서 부분적으로나마 시행되고 있다. 2006년 GPS 감시체계를 도입한 매사추세츠주는 현재 700여명의 예상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한정된 범위를 벗어나면 위성을 통해 이를 컴퓨터 서버로 전송하는 전자발찌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매사추세츠주 법에 의해 판사는 감시가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전자감시 명령을 내릴 수 있다. 오클라호마 상원은 지난 4월 47대 0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GPS기술을 폭력사건 피해자 방지에 활용하도록 했다.GPS는 형무소에 범죄자를 감금하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든다. 범죄자를 감옥에 송치해 유지하는 데는 1년에 3만∼4만달러가 든다. 반면에 GPS 유지비는 연간 3400달러면 충분하다. 미국에선 2006년 상반기에만 위스콘신주 등 14개 주가 아동 성범죄자에게 GPS를 의무적으로 착용토록 하는 법안을 입법화했다. 영국, 프랑스, 호주, 일본도 전자감시시스템을 가동 중이거나 도입을 앞두고 있다. 영국의 일부 지역은 2004년부터 상습 성범죄자를 위성으로 24시간 감시하고 있으며, 일본은 성범죄자에게 GPS를 의무적으로 채우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강촌·구곡폭포 일대 레저·문화관광지로

    강촌·구곡폭포 일대 레저·문화관광지로

    수도권 시민들이 즐겨 찾는 춘천 강촌·구곡폭포 일대가 레저·문화관광 명소로 바뀔 전망이다. 30일 강원 춘천시에 따르면 젊은이들과 가족의 나들이 명소로 알려진 강촌·구곡폭포 지역을 새롭게 정비해 체계적인 레저·문화관광지로 만들 계획이다. 시와 시설관리공단은 최근 ▲관광 명소 브랜드 구축 ▲신규 관광 콘텐츠 개발 ▲기존 관광자원과의 연계 ▲관광기반 조성 등 문화관광지 활성화 방안을 논의했다. 내년부터 서울∼춘천을 잇는 동서고속도로가 개통돼 강촌IC가 놓이면 수도권 레저·관광객들이 30분 안팎의 강촌·구곡폭포 지역을 많이 찾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우선 강촌과 연계된 구곡폭포의 한정된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해 가족 동반 트레팅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문배마을을 관광권역으로 흡수해 활성화시킬 계획이다. 또 이 지역에서 ‘아트(Art) 프리마켓’,‘울림(響)소리축제’ 등을 비롯해 스토리 텔링, 생태연못 등 문화 관광 콘텐츠사업 추진도 논의되고 있다. 특히 봉화산, 검봉산 등 주변 산악 지형을 활용한 산악자전거(MTB), 빙벽대회, 산악마라톤, 걷기대회, 체험학습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해 산악레저스포츠 체험 명소로 특화하고, 구곡폭포∼임도∼가정리∼유인석 장군 유적지로 이어지는 ‘역사 탐방로’ 개발 방안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춘천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우리금융 민영화 조속 추진”

    “우리금융 민영화 조속 추진”

    이팔성(64) 현 서울시립교향악단 대표가 29일 우리금융회장 회장후보추천위원회(회추위)의 추천을 받아 회장 후보에 내정됐다. 회추위 이재웅 위원장은 이날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회장 후보의 금융업 전반에 대한 다양한 근무 경험과 경영자로서의 역량을 높이 평가해 회장 적임자로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8명의 지원자 중 서류심사를 통해 5명으로 압축했고, 심층면접을 통해 임영록 전 재정경제부 차관과 이 후보가 높은 점수를 얻어 최후까지 치열하게 경합했다.”고 설명했다. 단독 후보로 선정된 이 후보는 “빠른 시일 내 공적자금을 극대화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인수·합병(M&A) 등을 통해 세계적 금융기관이 돼야 한다.”면서 “절차를 통해 회장으로 취임하면 관계자들과 상의해 민영화에 최대한 협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금융이 그동안 은행 위주로 발전해 왔지만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증권과 자산운용, 보험 등을 지주사의 핵심역량으로 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회장과 행장 직군 분리에 대해 “지주회사 회장과 은행장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다.”면서 “은행장 선임에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 후보는 이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고려대 동창, 서울시 인연으로 단독 내정된 것이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오해와 억측”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이 회장 후보는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관련한 일정·지배구조, 지주회장과 은행장의 차별성,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따른 금융지형에 대한 비전 등 주요 현안에 대해 대부분 답변을 회피하거나 논지를 비켜갔다. 한편 이 후보는 이사회를 거쳐 다음달 말 주주총회에서 차기 회장으로 공식 선임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집중 인터뷰] “광우병·AI대처에 국민소통 미흡했다”

    [집중 인터뷰] “광우병·AI대처에 국민소통 미흡했다”

    한승수 총리가 이달 말로 취임 석 달째를 맞는다. 한 총리는 그동안 정부 조직 개편과 총선, 자원외교 순방 등 동분서주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안착에 한몫했다. 그러나 최근 광우병 파동과 조류인플루엔자(AI) 확산 등을 둘러싸고 국정 혼선이 빚어지면서 ‘총리 책임론’이 불거지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 총리로부터 최근 현안과 그동안 국정수행에 대한 소회, 향후 계획 등을 들어 봤다. ▶새 정부 초대 총리로서 짧은 시간이지만 느낀 소회는. -이명박 정부의 국정 틀을 짜는 데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총리실도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고, 기능도 ‘국정조력자’로 재조정해 국정을 차질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국내외 경제상황 악화, 쇠고기 협상 등 어려움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약속한 ‘선진인류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쉬지 않고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노력할 것이다. ▶최근 자원외교를 위한 첫 순방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는데.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생각보다 성과가 컸다. 우리가 큰 나라가 아니어서 오히려 비교우위에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 못지않은 기술과 인적·물적 자원을 그쪽의 천연자원과 교환하는 상호 호혜적 관계를 맺은 게 주효했다. 이런 외교는 향후 100년 이상 갈 것으로 본다. ▶향후 자원외교에서 예상되는 어려운 점은.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가격 상승과 신자원민족주의의 움직임, 전 세계적인 자원확보 경쟁이 부담이 된다. 이미 주요 자원 부국에는 선진국 자본이 대거 진출해 있고, 기술력도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에 비해 불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제개발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고 각국 사정에 맞춘 패키지형 자원외교를 펼쳐 나간다면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자원외교에서 특히 어떤 자원 확보에 주력할 계획인가. -석유·가스와 유연탄·우라늄·철·동·니켈 등 6대 전략 광물이다. 국가 기간산업에 필수적이고 안정적 공급이 필요한 자원들이다. ▶유가 폭등으로 서민들의 어려움이 큰데 정부가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유류세 추가 인하 등 모든 걸 포함해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나온 대책과 다른, 실효성 있는 대책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정부도 고통을 나누는 방안을 검토하겠지만 국민들도 스스로 기름을 아끼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같은 위기상황은 고통분담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광우병 파동과 AI 확산 등을 둘러싸고 국정 혼선이 빚어졌다. 원인은 무엇으로 보는가. -각 부처가 소관업무에 최선을 다해 대응하고 있으나 부처간 협조 및 국민과의 소통에 다소 미흡한 점이 있었다. 향후 정책발표 이전에 부처간 사전협의가 원활히 이루어지고, 국민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수 있도록 하겠다. 특히 총리가 각 부처에 대한 지휘·감독을 강화하고 최근 쇠고기 위생검역, 한·미 FTA 비준, 고유가 대책의 사례처럼 필요한 경우 직접 조율하겠다. ▶최근 여권에서 책임총리제 강화, 총리실의 정책조정 기능 복원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에 대한 입장은.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총리는 최종적으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보필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의 업무를 최대한 도와주는 게 내 역할이라고 본다. 각 부처 통할업무 등 헌법상 총리에게 부여된 책임을 다해 왔다. 각종 장관회의도 주재하고 장관 통솔도 한다. 장관에게 설명지침도 준다. 다만 외부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권위적이지 않으며, 총리가 충분히 일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준다. 앞으로 주요 정책에 대한 부처간 이견을 사전에 조율해 나가겠다. ▶촛불집회와 시위를 ‘불법집회’로 보고 엄단하겠다고 했다. 국민정서와 다소 거리가 있는 조치 아닌가. -촛불시위는 정부를 믿지 못하는 데서 비롯됐다. 광우병 소를 금지하겠다고 담화문을 발표했고, 미국도 이를 지지한다고 했다. 그러면 정부를 믿어 줘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촛불시위는 명분 자체가 약하다. 그럼에도 합법적인 촛불시위는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새벽 5시까지 시위를 하면서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위는 금물이다. 촛불시위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고 평화적으로 하라는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17대 국회 비준이 어려울 것 같다. 앞으로의 대책은. -한·미 FTA는 현재 쇠고기 협상문제와 연계돼 국회 비준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국익 측면에서 17대 회기 내에 꼭 비준할 필요가 있다.18대 국회로 넘어가면 원 구성과 재검토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일본·중국 등 경쟁 국가보다 몇 년 빠르게 FTA를 체결해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기후변화대응은 핵심 국정과제다. 정부의 최우선 과제는. -내년 말까지로 예정된 ‘포스트 2012’ 국제협상에 대응하는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과 적극적인 자세로 나서겠다. 국내 경제를 생각하면서도 국제적 위상을 감안해 최적의 국가협상 전략을 마련 중이다. 아울러 본격적인 온실가스 감축 추진, 기후변화 재난계획 마련, 신성장 동력으로서의 기후산업육성, 금융·세제 개편, 대국민 캠페인 전개 등 범국가적 차원의 대응책을 상반기내 수립할 예정이다. ▶‘포스트 2012’엔 한국도 온실가스 감축 대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그로 인해 우리가 져야 할 경제적 부담은 얼마나 되나. -현재 우리나라 온실가스 배출량의 상당부분이 에너지와 산업부문에서 발생함을 감안할 때, 온실가스 감축은 기업의 추가비용을 부담시켜 기업경쟁력 약화 등을 야기할 수 있다. 국민생활에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다. 또 온실가스를 중심으로 한 무역규제가 현실화되는 상황에서 적극 대응하지 못하면 주력 수출상품에 타격을 입을 수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 배출업체들의 인식전환과 적극적 참여가 중요하다. 기업 유인책이 있나. -정부는 기업과 자발적 협약체결 등을 통해 에너지절약 및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추진하고 있다. 전경련 등 경제단체를 중심으로 업종별 감축목표 설정과 자율 실천을 통해 산업계의 자발적 감축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기후변화 대응이 새로운 시장 창출과 일자리 확대의 기회로 활용되도록 기후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유치위원장으로서 실패에 대해 아쉬웠을 텐데. -작년 총회가 열린 과테말라에 갔었다. 러시아 푸틴의 정치적인 힘을 당해내지 못했다. 아쉽기 짝이 없다. 앞으로 그런 기회가 또 찾아오면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할 생각이다. ▶1988년 상공부 장관 이후 주미대사, 대통령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외교통상부 장관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20여년간의 공직생활 중 능력이나 인간성 등에서 아끼는 분이 있다면. -몇 명만 꼽으라면 거명되지 않은 사람들이 섭섭해할 것이다. 그래서 국내 인사 말고 국외 활동하는 사람 중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꼽겠다. 내가 주미대사로 일할 때 등 약 15년 동안 가까이 지내면서 봤는데 일처리는 물론 인격도 훌륭한 분이다. 대담 김민수 공공정책부장 정리 임창용 강주리기자 sdragon@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죽도 방파제 사고는 이상파랑 탓”

    지난 4일 9명의 목숨을 앗아간 충남 보령시 남포면 죽도방파제 사고는 이상파랑(긴 주기의 파도)에 의한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국립해양조사원은 죽도방파제에서 발생한 해일성 파도는 서해 먼바다에서 발생한 긴 주기의 파도가 연안으로 이동하면서 수심과 지형의 영향을 받아 증폭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28일 밝혔다. 조사원은 그 근거로 서해안의 조위관측소(대청도∼대흑산도)에서 관측된 해수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고 당일 2차례의 이상파랑이 관측됐다고 설명했다.조사원은 피해를 발생시킨 이상파랑은 서해 먼바다(서쪽∼서남쪽)의 기압 차이 등 기상 변화로 생성된 장주기파(파도 높이 50㎝, 주기 50분 정도)가 수심이 낮아지는 연안에 접근하면서 파도의 높이가 급상승된 것으로 추정했다.이동구기자 yidonggu@seoul.co.kr
  •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29) 경남 햠양군 마천면 창원·동구 마을

    지리산 곳곳에 걸쳐 있는 고갯길, 숲길, 강변길, 논둑길, 마을길 등을 환(環)형으로 연결해 오는 2011년까지 완공 예정인 국내 최초 장거리 도보 트레일 ‘지리산길’의 시범구간 약 20.8㎞가 지난 4월27일 개통됐다. 이번에 선보인 도보길 중 제1구간인 ‘다랭이길’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매동마을에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까지의 10.68㎞로 전체 구간을 통틀어 가장 오랫동안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할 수 있는 길이다. 이 ‘지리산길’을 따라 전라도 남원땅에서 해발 700여m의 등구재를 숨 가쁘게 넘어서면 경상도 함양땅에 닿는데, 중봉∼천왕봉(1915m)∼제석봉 능선이 뚜렷한 경상도의 첫 마을이 바로 닥종이(한지) 생산지로 유명한 창원마을이다. 전북과 도계를 이루며 마을 서쪽을 감싸 안은 삼봉산(1186.7m)∼백운산(902.7m) 사이 등구재는 ‘거북이 기어 올라간 지형’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 나가고, 효성 가성 큰애기는 산수 따러 다 나간다.’라는 민요가 구전될 만큼 감나무가 많은 곳이다. 판소리 6마당 중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변강쇠와 옹녀가 마지막으로 정착해 살던 곳도 등구(등구재와는 별도로 창원마을 건너편에 등구마을이 따로 있다) 마천이다. 등구재가 아직 산길로 남아 있는 것과 달리 마을 북동쪽 오도재에 도로가 뚫린 건 2003년 11월. 함양 마천 엄천사 도솔암에서 수도하던 청매 인오조사(1548∼1623)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한 터라 ‘오도재’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벽소령과 장터목을 거쳐 온 남해 하동의 해산물이 이 고갯길을 통해 전북·경북·충청도로 운송되었다. 이 고갯길은 2006년 건설교통부에서 발표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굵직한 두 고갯길 틈에 자리한 창원마을엔 그 고갯길만큼 굴곡진 다랑논이 촘촘하다.‘옛날에 한 농부가 논을 갈다가 집에 가려고 삿갓을 들어보니 그 안에 논이 하나 더 있더라.’는 유래에서 ‘삿갓배미’라고도 불리는 이 계단식 논들엔 자투리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던 지리산민들의 억척스러움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이웃에 사는 박금순(71) 할머니와 박순자(64) 할머니는 이제 막 논배미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참이다. “50년 전, 그러니까 스물한 살 노큰애기(노처녀의 사투리) 때 저 등구재 넘어 남원에서 경상도로 시집을 왔지요. 등구재는 주로 인월장 다니려고 넘었고, 오도재는 함양읍 나갈 때 이용했던 고갯마루예요.” 박금순 할머니가 처음 창원마을로 시집 왔을 때만 해도 동네에 길이라곤 거의 없이 돌뿐이었다더니 그 덕에 돌담장이 많은 마을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주로 논농사, 칠나무(옻), 감, 호두, 닥종이 생산을 주업으로 삼는데 한지의 경우 한때는 온 동네 사람이 다 했을 정도란다. 삼봉산과 백운산 등산로가 있긴 하지만 최근 공개된 ‘지리산길’이 창원마을 곁을 지나면서 부쩍 외지인들이 많아졌다. 박순자 할머니는 뜯어온 취나물을 팔라고 보채는 타지의 주부들에게 “이까짓 거.”하며 그냥 줘버린 일도 있다. 베풀기 좋아하는 아랫집 박순자 할머니의 가슴엔 상처가 가득하다. 지난해 장남과 남편을 모두 잃은 탓이다. 아들은 세 살배기 어린 딸을 두고 떠났다. 부산에 나가 있던 막내가 농사일을 돕기 위해 귀향했지만 그것 또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 남원에서 시집온 박금순 할머니 역시 작년에 딸을 잃었다고 한다. 아들이 사준 휴대전화를 꺼내 그 속에 담긴 손자 손녀 사진을 보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마당에서도 빠끔 올려다 뵈는 지리산 천왕봉만이 갈기갈기 주름진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두 여인의 슬픔을 위로한다. 글 사진 황소영 월간 마운틴기자(www.emountain.co.kr) ▶가는 길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과 구의동 동서울터미널에 함양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동서울터미널에서 백무동행을 탔다면 마천에서 내려 창원리까지 버스나 택시를 이용한다. 자가용의 경우 88고속도로 지리산IC에서 산내∼마천 방면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함양과 생초IC를 각각 이용한다. 함양이나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오도재(지방도 1023호선)를 넘어 창원마을로 갈 수도 있다.
  • ‘자출족’들의 천국

    ‘자출족’들의 천국

    대학로의 건축사무소에 근무하는 박상희(37)씨. 직장 동료의 권유로 자출(自出·자전거 출퇴근) 대열에 합류한 신참 ‘자출족’이다. 마포구 도화동에서 상암동으로 이사온 지난 3월부터 자출을 감행하고 있다. 엄밀히 말해 박씨는 ‘지하철역 자출족’이다.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구간은 집에서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까지 1.8㎞밖에 되지 않는 까닭이다. 집과 지하철역을 오가는 노선버스가 있지만 배차간격이 불규칙한 출근시간엔 자전거의 효율성을 따라잡지 못한다. 상암동엔 박씨 같은 지하철역 자출족이 어림잡아 200여명에 이른다. 6호선 수색역과 월드컵경기장역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2000∼3000명인 점에 견준다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지하철역 자출족이 유독 많은 것은 상암동의 지리적 특성 때문이다. 동 면적이 8.38㎢로 서울에서 가장 넓지만 버스노선 수가 적고 지하철역이 멀어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다. 서쪽 끝인 상암7단지에서 월드컵경기장역까지는 직선거리로만 2.3㎞에 이른다. 반면 평탄한 지형과 잘 닦인 전용도로는 자전거 출퇴근에 최적의 조건이 되고 있다. ‘자전거 붐’ 조성에 발벗고 나선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상암동 주민센터의 ‘자전거 이용 활성화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28일 마포구에 따르면 상암동은 지난 2월부터 마을가꾸기 사업의 핵심목표를 ‘주민참여를 통한 자전거 도시 조성’에 두고 다양한 자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이 자전거 강좌와 자전거 동호회. 최근 주부와 초등학생들을 상대로 기초적인 실기·이론 교육을 진행하기 위해 교습용 자전거 20대를 구매했다.7·8월엔 주민센터와 인근 월드컵공원에서 자전거 특강도 실시할 계획이다. 동호회는 직능단체를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아파트 단지별 모임으로 확대해간다는 구상이다. 통·반장들에겐 지역 순찰 때 공용자전거를 이용하도록 독려하고 있다. 각 가정에 방치된 채 녹슬어 가는 자전거를 부품값만 받고 고쳐주는 이동수리반은 시작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21일 상암3단지에 처음 마련된 이동수리 현장에는 100여명의 주민들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지난달 공용자전거 90대로 시작한 무인자전거 대여소는 한 달 이용자가 3600명을 넘어섰다. 조주연 행정민원팀장은 “한 달동안 단 한 대의 자전거도 분실되지 않았다.”면서 “공용자전거 정책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됐다.”고 말했다. 마포구 역시 월드컵경기장역에 자전거 보관·대여·경정비 등을 종합적으로 수행하는 토털 서비스센터를 운영할 계획이어서 상암동의 ‘두 바퀴 혁명’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병자호란 다시 읽기](73)최후의 주화-척화 논쟁

    [병자호란 다시 읽기](73)최후의 주화-척화 논쟁

    최명길의 주장은, 척화(斥和)하여 청과 싸우겠다는 결심을 굳혔으면 ‘공세적’으로 하자는 내용이었다. 말로만 ‘척화’를 외치며 미적거릴 경우, 청군의 철기(鐵騎)를 조선 영토 깊숙이 불러들이게 되어 엄청난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한 계책이었다. 압록강 변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적과 싸울 경우, 설사 패하더라도 피해의 범위를 줄일 수 있었다. 인조와 조정 또한 운신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인조는 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언관들이 들고일어나 최명길을 처벌하라고 외쳤다. ●尹煌과 鄭蘊의 결전론 최명길의 주장은 척화파의 거두 윤황(尹煌)이나 정온(鄭蘊)의 생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대사간 윤황은 1636년 8월에 올린 상소에서 인조에게 척화를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촉구했다. 그는 백성과 장졸들을 분기(奮起)시키려면 강화도로 들어가려는 생각부터 버리라고 요구했다. ‘임금과 종사(宗社)를 안전한 곳에 모신 뒤에야 국사를 도모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인심이 흩어져 나라가 망할 위기로 몰리고 있다는 것이다. 윤황은 강화도에 배치한 병력을 모두 평안도로 보내고, 강화도에 지어놓은 행궁(行宮)마저 태워버림으로써 결전의 의지를 보여달라고 했다. 정온은 윤황보다 더 확실한 자신감을 갖고 인조에게 결전을 벌이라고 촉구했다. 그는 도원수를 의주로 보내 압록강을 방어하고, 의주에서 효사수성과(效死守城科-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지키겠다는 용사를 선발하는 과거)를 실시하여 결사대를 뽑고, 인조도 개성에 진주하여 장졸들을 진두지휘하라고 촉구했다. 정온은 결전을 위한 구체적인 작전 계획까지 제시했다. 그는 조선의 사수(射手)와 화포병(火砲兵)을 ‘천하 무적’이라고 평가하고 그들을 활용하면 후금군 기병의 돌격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투가 벌어질 곳에 먼저 진을 칠 장소를 정합니다. 포수 4000명을 4대로 나눠 2000명은 앞에 진을 치고,2000명은 지형을 살펴 좌우에 진을 칩니다. 포수 뒤에는 사수를, 그 뒤에는 살수(殺手)를, 그 뒤에는 편곤군(鞭棍軍)과 기사병(騎射兵)을 각각 배치합니다.(중략) 적이 학익진(鶴翼陣) 형태로 공격해 오면 아군의 전대(前隊) 1000명이 먼저 조총을 쏩니다. 쏜 뒤에는 앉아 화약을 장전하고 후대 1000명이 다시 쏩니다. 적이 만약 장사진(長蛇陣)으로 공격해 오면 좌군(左軍)이 전대가 했던 방식처럼 먼저 쏘고, 적이 40∼50보 안에 들어오면 사수들이 포수가 쏘던 방식대로 화살을 발사합니다. 그러면 포성이 그치지 않고, 화살은 비 오듯이 쏟아질 것이니 비록 저들의 견갑철마(堅甲鐵馬)라 할지라도 어찌 궤멸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정온의 계책은 병자호란 무렵 제기된 결전론 가운데 가장 구체적이고 논리 정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청군에 지레 겁을 먹고 ‘천하 무적’의 궁수와 포수들을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했다는 점이었다. 최명길의 주장이 이들과 다른 점은 ‘결전에 돌입하기 전에 한번 더 심양으로 사람을 보내 청의 속내를 파악해 보자.’는 것이었다. 실제 최명길의 주장이 나온 직후인 1636년 9월8일, 비변사는 심양으로 역관 권인록(權仁祿) 등을 보내 청의 내부 사정을 탐문하자고 주청했다.‘오랑캐의 정세를 탐지하라.’는 명나라 감군 황손무(黃孫茂)의 충고도 비변사의 주청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갈팡질팡하는 인조 인조는 비변사의 주청을 받아들였다.‘결전’ 운운하면서도 실제로는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러자 수찬 오달제(吳達濟)와 헌납 이일상(李一相) 등이 들고일어났다. 그들은 황손무의 충고를 따르는 것은 의롭지 못한 행동이라며 인조가 ‘우리는 이미 오랑캐와 절교하여 사자(使者)가 통하지 않으니 간첩을 쓰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황손무에게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은 것을 비판했다. 이일상 등은 더 나아가 청에 사자를 다시 보내는 것은 위로는 명을 배반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기만하는 행위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대부분의 삼사 소속 언관(言官)들이 비변사를 비난하는 와중에 사간 정태화(鄭太和)는 소신을 내세웠다.‘옛날부터 교전(交戰) 중이라도 사자를 왕래시키고 국서를 교환했다.’며 비변사의 주청은 일리가 있다고 반기를 들었다. 인조는 정태화의 주장에 힘을 얻은 듯 비변사의 반간책(反間策)을 받아들였다. 역관 박인범(朴仁範)과 권인록을 심양으로 들여보내기로 했다. 하지만 삼사(三司)의 언관들이 격렬하게 반발하자 인조와 비변사는 다시 동요했다. 박인범 등에게 압록강을 건너지 말고 일단 의주에 대기하라고 지시했다. 언관들과의 논의가 아직 결말을 맺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최명길이 보다못해 다시 나섰다. 그는 먼저 연소한 언관들이 군사 기밀의 중요성을 모른다고 개탄한 뒤, 정묘호란 때 일부 언관들이 ‘야간에 적을 습격하는 것은 의롭지 못하다.’고 비판했던 것을 예로 들었다. 그러면서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앞으로는 국가를 위한 대사를 대신과 밀의(密議)하여 결정하되 승지와 내관들도 알지 못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인조가 비변사 중심의 주화론과 언관 중심의 척화론 사이에서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공격의 화살은 최명길에게로 날아들었다. 오달제는 최명길이 기필코 중론(衆論)을 배척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조빈은 더 강경했다. 그는 ‘우리의 국시(國是)는 중국을 높이고 오랑캐를 배척하는 것인데 광해군이 오랑캐와 화친했기 때문에 쫓겨났다.’며 인조반정의 명분까지 거론했다. 그러면서 ‘청에 다시 사자를 보내면 반란을 생각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구실을 줄 수 있다.’고까지 했다. 그것은 사실상 인조에 대한 협박이었다.‘광해군이 오랑캐와 화친했기 때문에 쫓아낸다.’고 했던 인조반정 당시의 명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인조의 입장을 자극하는 주장이었다. ●‘秦檜보다 나쁜 최명길’ 1636년 9월27일 사간원의 언관들은, 최명길이 중론을 무시하고 국가 정책을 밀실에서 추진하려 했다며 파직하라고 요구했다. 인조는 언관들을 비난하고 최명길을 두둔했지만 11월6일, 최명길은 판윤(判尹)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11월8일, 부교리 윤집(尹集)이 최명길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임진년에 나라가 망할 뻔했는데 신종(神宗) 황제의 구원 덕분에 조선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며 예의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상기시켰다. 그러면서 ‘오랑캐와의 화의를 내세워 재조지은을 배신하고 나라를 망치려 하는’ 최명길은 진회(秦檜,1090∼1155)보다도 나쁜 자라고 매도했다. 진회는 남송(南宋)의 재상으로 있으면서 금(金)과의 화의를 주도하여 세폐를 바치고 명장 악비(岳飛)를 제거하는 데 앞장 선 인물이었다. 이후 성리학자들 사이에서 ‘간신의 전형’이자 ‘매국노의 상징’처럼 여겨져 왔던 인물이었다. 청에 사자를 다시 보내자고 주장했던 최명길은 이제 관인으로서 최악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말았던 것이다. 인조와 비변사는 논란 끝에 역관들을 심양으로 보냈다. 홍타이지는 조선 역관들을 퇴짜 놓았다. 심양을 정탐하고 돌아온 역관 일행은 청의 분위기를 보고했다.‘군대를 일으키려는 기미도 보이지만 우리와 꼭 절교하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헷갈리는 내용이었다. 비변사는 사신을 보내 다시 화친을 도모하자고 했다. 삼사의 언관들은 저들의 본심이 드러났다며 다시 반대했다. 1636년 12월 초, 인조는 다시 사신을 출발시켰다. 사신이 심양으로 가고 있던 도중에도 귀환시킬 것을 요구하는 언관들의 항의는 빗발쳤다. 그러나 이미 모두 소용없는 일이었다. 홍타이지는 11월 25일, 신료들을 모아 놓고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조선을 공격하겠다는 결심을 고하는 제사였다. 바야흐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한·중 ‘전략적 동반 관계’ 초석 닦을듯

    한·중 ‘전략적 동반 관계’ 초석 닦을듯

    이명박 대통령이 27일 취임 후 첫 중국 방문에 나선다. 지난달 미국, 일본 순방에 이어 한반도 주변 4국 가운데 세번째 방문으로, 이명박 정부의 새로운 외교 지형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28일까지 베이징에서 이뤄질 정상외교의 방점은 한·중 관계 격상에 놓여 있다. 중국 외교를 기준으로 할 때 기존의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서 한 단계 끌어 올려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자는 것이 회담에 임하는 양국 정상의 목표다. 두 나라는 1992년 수교 당시 경제·통상분야 협력을 시작으로 1998년 김대중 대통령 방중을 계기로 ‘21세기 한·중 협력 동반자 관계’,2000년 주룽지 중국 총리 방한 때 ‘전면적 협력관계’, 이어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방중 때 ‘전면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관계 발전을 이뤄 왔다. 그러나 중국 외교에 있어서 이같은 관계는 두 나라의 전략 목표에 대한 상호 이해를 높이고 제한적 수준에서 공유하는, 이른바 ‘비전략적 관계’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따라서 이번 이 대통령의 방중을 계기로 새롭게 설정될 ‘전략적 동반자 관계’는 과거 한·중 외교와는 다른 차원의 지평을 여는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군사동맹 수준의 협력까지는 아니더라도 외교·안보·경제·통상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이뤄 나가고 대외문제에서도 상당한 수준으로 보조를 맞춰 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같은 관계 격상을 상징하듯 이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 원자바오 총리는 올 한 해에만 7∼8차례 회동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같은 양국 관계 격상은 중국에 있어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한·미·일 3각 협력관계 강화에 따른 동북아에서의 ‘외교적 불균형’을 미연에 방지하는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정부로서도 대북 정책의 지렛대로 삼을 수 있을 뿐더러 대미·대일 외교에 있어서도 입지를 한층 강화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정책을 견제하는 데에도 유효한 수단이 될 전망이다. 특히 북핵 신고를 놓고 북·미 대화와 6자회담 재개가 임박한 시점에서 자칫 북핵 해결 과정에서 우리가 소외되는 상황을 차단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중 두 나라는 경제·통상 협력에도 진전을 이룰 것으로 점쳐진다. 미·일 순방 때보다 무려 10명이 많은 36명의 경제인이 수행하는 것도 이번 방중에서 차지하는 경제협력의 비중을 말해 준다. 나아가 정보기술(IT)·에너지·환경·과학기술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방안도 비중 있게 다뤄질 전망이다. 우리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산둥성(山東省) 칭다오(靑島)를 방문하는 것도 나름의 상징성을 지닌다. 산둥성은 우리나라의 중국 투자규모의 60.4%를 점하는 지역이다. 이 지역에 진출한 우리 기업만 해도 1만여 개에 이른다. 최근 어려움에 처한 중국 진출 중소기업들의 사기를 높이고, 현지 경영의 어려움을 해소하는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이 대통령의 방중 일정은 지난달 미국 방문 못지않게 빡빡하게 짜였다.27일 공식 환영행사에 이어 한·중 정상회담과 만찬,28일 베이징 기초과학시설 방문,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과 만찬, 베이징대 연설, 올림픽 주경기장 방문 등 3박4일간 무려 26개의 공식 일정이 줄을 잇고 있다. 진경호기자 jade@seoul.co.kr
  • 티베트 인권 묻혀… 경제적 손실 미미

    |베이징 이지운특파원|쓰촨(四川) 대지진은 땅만 뒤흔든 것이 아니라 중국의 정치·외교·경제 등 각 분야에도 적지 않은 지각 변동을 가져왔다. 당장 티베트 사태와 맞물려 중국과 세계 주요국들이 대치하는 듯했던 국제 지형에 반전이 이뤄진 것은, 인위적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큰 변화다. 세계 각국은 지금 티베트 유혈진압, 인권 문제 등을 거론하지도 않을뿐더러 ‘중국 돕기’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중국 정부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추진하다 긴급 구호지원에 나선 미국 의회가 대표적이다. 티베트 망명정부마저도 스스로 지진 피해자를 애도하면서 희생자 기금 마련에 동참하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큰 한숨을 돌리게 된 셈이다. 아울러 “중국 정부가 재난 수습 과정에서 신속한 대응을 보여주며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를 제고했다.”는 월스트리트저널 등 해외 언론들의 평가도 ‘가외’ 소득일 수 있다. 개선 기미가 뚜렷했던 타이완과의 관계도 더욱 좋아지고 있다. 마잉주(馬英九) 신임총통이 모금 활동에 직접 나서기도 했고, 무엇보다 민간 차원에서 ‘동포애’를 유도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다. 경제 관련 피해 집계액은 날로 늘고 있어 정확한 규모는 파악되지 않지만 신화사는 23일 지난 1월 폭설피해보다 직접적 경제 손실은 훨씬 큰 것으로 예상했다.“이번 지진으로 추정되는 직접 경제손실은 최소 5300억위안(약 79조원)가량으로, 지난 1월 폭설 때의 1516억위안보다 훨씬 많다.”고 보도했다. 쓰촨성은 석탄과 천연가스의 주요 생산지여서 지진은 중국내 에너지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또한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꼽힌 돼지고기 주요 산지이기도 하다. 게다가 남서부지방의 교통 요지인 쓰촨성 성도 청두(成都)의 고속도로 및 철도 유실로, 인근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농산물의 운반에도 차질이 예상돼 이래저래 지진에 따른 물가 압력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만 쓰촨성이 전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전체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8100만명 인구로 전체 인구의 6.2%를 차지하지만 전체 국가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2%에 불과해 중국 경제가 크게 악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국내 정치적으로는 국민적 결집이 이뤄진 게 불행 속에서 얻은 소득이다. 민간 차원에서의 모금, 구조지원 등 이른바 ‘비조직성’ 활동이 사실상 처음으로 전국적 단위에서 진행됐다. 이는 중국 국민과 전세계 화교들이 하나로 뭉치는 기제로도 작용했다. 그러나 이번 지진이 새롭게 야기한 여러 사회적 현상들은 중·장기적으로 중국 지도부에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크다.jj@seoul.co.kr
  • [김원기의 월척 樂漁] 보령 수부저수지

    신록이 산야를 푸른빛으로 수놓고 있다. 아까시 하얀 꽃망울도 하나 둘 터지며 계곡지 물가를 온통 꽃향기로 물들이고 있다. 평지형 저수지는 물론 계곡형 저수지들도 어느덧 봄철 산란기가 지나고 있다. 산란의 고통으로 지쳐 있는 붕어들은 깊은 수심으로 이동해 안정을 찾는 시기로, 조황이 다소 떨어지는 때다. 그러나 요즘 조황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배수다. 매년 이맘때면 전국의 저수지들은 모내기 준비로 물빼기를 한다. 낮아지는 수위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붕어는 비교적 수심이 깊은곳으로 이동해 수위가 안정되기 전에는 활동을 하지 않아 연안낚시 조황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된다. 시기적으로 잦은 배수가 진행되는 저수지에서는 좋은 조과를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민물낚시 마니아들은 배수와 무관한 계곡형 하천이나 강가 또는 계곡형 소류지로 출조해 산란후 안정기로 들어선 굵은 씨알의 붕어들과 만나고 있다. 충남 보령시 웅천읍에 자리한 수부 저수지는 3만 6000㎡의 계곡형 저수지다. 가물치들의 산란철을 맞아 수초 속이 시끄럽다. 며칠전 수몰 버드나무 가에서 월척급 붕어들이 낚이며 꾼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평일임에도 여러 조사들이 낚시대를 펼치고 있다. 높은 산 계곡에서 흘러드는 계곡수는 특유의 맑은 물색 때문에 낮에는 조황이 떨어진다. 주로 깊은 밤부터 새벽녘 사이에 씨알 좋은 대물급 붕어들이 낚이고 있다. 대물낚시 마니아들은 다대편성을 하고 해가 서쪽 산을 넘어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대천에서 가끔 이곳을 찾는다는 김석철(42)씨는 “많은 붕어를 낚아 내는 곳은 아니지만 대물 붕어 자원이 많아 월척급 붕어를 만날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매력”이라며 “주위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저수지들이 여러 곳 있어 아직까지 비교적 깨끗하고 조용한 것도 좋다.”고 말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지렁이 미끼가 잘 먹히고 있다. 밤에는 새우나 참붕어, 옥수수 미끼를 번갈아 사용하는 것도 좋다. 포인트는 상류권 수몰나무와 듬성듬성 수면 위에 떠 있는 수초 속으로, 수심 1∼1.5m 정도가 적당하다. 대부분의 저수지들이 배수를 했거나 진행되고 있지만, 이곳만은 아직 물을 빼지 않은 상태다. 중·대형 계곡형 저수지와 이웃하고 있는 계곡형 소류지에도 관심을 가져볼 때다.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무창포 나들목→웅천방향→웅천읍 대천리삼거리→부여방향 좌회전→수부리→수부저수지 낚시웹진 조우 운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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