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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하 우주] 화성에서 말라붙은 고대 호수 흔적 발견

    [아하 우주] 화성에서 말라붙은 고대 호수 흔적 발견

    큐리오시티 로버는 현재 4년째 화성의 게일 크레이터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까지 모은 데이터를 분석해서 게일 크레이터에 과거 거대한 호수가 있었다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최근 밝혀냈다. 물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다양한 지형과 광물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영국 레스터 대학과 오픈 대학의 과학자들은 과거 큐리오시티 로버가 게일 크레이터의 옐로나이프 베이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해 이 장소에서 오래전 호수가 말라붙었던 증거를 확인했다. 오래전 게일 크레이터에는 호수가 존재했다. 이 호수는 범람과 축소를 반복하면서 점차 크기가 줄어들었는데, 이는 화성이 춥고 건조해짐과 동시에 우주 공간으로 대기와 물을 잃은 것과 관련이 있다. 마지막 순간에 게일 크레이터 바닥에는 매우 짠 호숫물의 잔재가 남았다. 증발로 농도가 높아진 호숫물은 나트륨, 포타슘, 실리콘이 풍부하지만, 마그네슘, 철, 알루미늄은 부족한 침전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물에는 황 성분이 풍부했다. 연구에 참여한 레스터 대학의 존 브리지스(John Bridges) 교수에 의하면 우리가 마시는 물과 비교해서 황과 나트륨 성분이 20배나 높아 물맛은 나빴을 것이라고 한다. 고대 화성의 호수 바닥에서는 이 물이 말라붙으면서 마치 나뭇가지 같은 광맥을 지표에 남겼다. 지구에서도 비슷한 현상을 관찰할 수 있지만, 기온과 기압이 낮은 화성에서만 오랜 세월 보존될 수 있다. 지구의 사례를 보면 이런 짠물 속에서도 얼마든지 미생물이 번성할 수 있다. 어쩌면 과거 화성에서도 이런 물속에서 진화된 미생물이 있지 않았을까? 현재 우리가 가진 데이터로는 고대 화성에 미생물이 살았는지 아닌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잠시 한때라도 화성에 생명체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 연구는 계속될 것이다. 고든 정 통신원 jjy0501@naver.com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고갯마루 정감 품은 벽돌 외벽…고급진 연희동 닮은 연보랏빛…골목길 동선에 맞춘 지그재그

    한국 아파트 역사를 이해하는 여러 관점 중 하나는 거리형과 단지형 간의 대립과 복합이라는 구도다. 이것은 아파트라는 공동 주거가 주변 지역, 특히 거리와 어떠한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배경으로 한다. 상가 아파트는 거리형 아파트의 자연스러운 결론이다. 길에 면한 건물의 저층에 주거 보다는 상가를 넣는 것이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저층부 거주 환경이 더 좋은 단지형에서 상가 부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대부분 상가동을 따로 두는 방식으로 해결하지만 예외가 있다. 즉 거리형과 단지형이 복합된 경우다. 대표적으로는 이미 소개했던 반포 주공 1단지(1974)나 앞으로 소개할 동부 이촌동 한양맨션(1971) 등이 그렇다. 둘 다 대규모 단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들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단지에서 유사한 사례들이 발견된다. 고은 아파트, 연화 아파트, 그리고 홍파 아파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 모래내로 고개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 무악재를 따라 놓인 통일로는 홍제동을 둘로 나눈다. 지난번에 소개한 유진 상가, 원일 아파트, 안산 맨숀은 모두 통일로 북동쪽, 즉 인왕산 쪽의 홍제동에 있다. ‘고은 아파트’가 있는 곳은 통일로 너머 반대쪽, 즉 안산 쪽 홍제동이다. 지하철 3호선 홍제역과 무악재역 사이에 있는 삼거리에서 시작되는 모래내로에서 답사가 시작된다. 안산 중턱을 가파르게 경사져 오르다가 다시 홍제천 방향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그 고갯마루에 이름도 예쁜 고은 아파트가 있다. 외벽이 벽돌로 된 정감 있는 건물이다. 1975년 6월 17일에 사용승인을 받았고 2개 동 139가구의 오붓한 단지형 아파트다.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가동과 나동의 2개 동 중 상가가 있는 것은 가동이다. 전면 도로를 따라 건물이 ‘ㄴ자’로 꺾여 있는데 그 부분에 상가가 있다. 상가 비율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세탁소, 실버용품 상점, 염색 전문점, 신발 가게, 전자제품 상점 등 일상적인 삶을 위한 가게들이다. 마침 그 앞은 버스 정류장이다. 아파트단지 주민뿐 아니라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쉽게 상가를 이용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인접한 광산 아파트가 역시 소규모 단지형 아파트이면서도 가로에 일체의 상가가 없는 것과는 대조된다. 벽에는 ‘고은 아파트’라고, 관리실에는 ‘고은 맨숀’이라고 씌어 있어서 이 당시 두 단어가 서로 약간의 긴장감을 이루며 함께 사용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이 일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래내로라는 정식 도로명 대신에 화장터길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찾아보니 고은 아파트 고갯마루 바로 아래에 홍제동 화장장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인 1930년에 세워졌으나 점차 이 지역이 개발되면서 1970년 9월 1일 경기도 벽제로 이전한 ‘시립장제장’이 바로 그것이다. 화장장이 있던 시절에는 인근 안산의 나뭇잎에서 그을음이 묻어났었다고 하니 인근에 공동 주거가 들어서는 것은 생각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고은 아파트가 들어선 것은 1975년으로 이미 화장터가 옮겨간 지 몇 년이 지난 후였다. 새로운 지역에 일어나는 변화 뒤에는 항상 이렇게 사연이 있다. # 네 그루의 가로수가 리듬 맞춘 연화아파트 상가아파트에 대한 글을 쓴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종종 이런저런 제보를 받는다. ‘연화 아파트’도 그런 경우였다. ‘1970년대 지어졌고 이전에는 고급이었던 상가아파트가 연희 삼거리 근처에 있다’는 것이었다. 앞에서 이야기한 고은 아파트에서 모래내로를 타고 오면 자동차로는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이다. 연희동의 중심을 종횡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연희로와 증가로인데 이 두 길이 교차하는 지점이 바로 연희 삼거리다. 연화 아파트가 이 삼거리 북쪽 증가로 변에 들어선 것은 1975년 12월 6일이었다. 안산 너머의 고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난 지 약 반년 후의 일이었다. 연희동은 원래 조선 시대 이궁의 하나였던 연희궁이 있던 곳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연가구학교 자리로 전해진다. 궁은 사라졌지만 그 존재는 거기서 다소 떨어진 궁동산(宮洞山)이라는 이름에 아직 남아 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서울을 수복하는 과정에서 치른 저 유명한 연희 104고지 전투가 벌어진 바로 그 산이다. 연가구학교 신촌 캠퍼스가 있어 이전부터 학생 인구가 많았고 또한 한국한성 화교중학교의 존재로 짐작할 수 있듯이 화교 인구도 상당하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무원, 교수, 외국인 등을 위한 고급 주택지가 많은 것도 연희동의 큰 특징이다. 결과적으로 서울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 약간의 이국적 분위기가 감도는 고급 동네, 이것이 연희동의 일반적인 이미지다. 그러면서 상업과 주거가 적절하게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맛집 거리, 사러가 쇼핑 등의 존재가 이를 입증한다. 연화 아파트는 이러한 연희동의 다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한껏 의식하고 자리잡은 것 같은 모습이다. 비록 세월의 무게가 다소 내려앉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가로의 스케일을 전혀 거스르지 않는 적절한 높이와 폭, 보행자의 접근을 최대로 배려한 1층 상가, 정갈하고 차분한 외관. 특히 일반적으로 건물에서 잘 사용되지 않는 저 연보라색이 주는 독특한 느낌까지. 한마디로 참 깔끔한 아파트가 아닐 수 없다. 의도인지 모르지만 증가로변 정면의 가로수 네 그루는 마치 건물과 함께 리듬을 맞추는 것 같다. 정면에서 보면 그냥 단독 건물처럼 보이지만 연화 아파트도 엄연히 배치상으로는 단지형이다. 다만 한 동이 ‘ㄱ자’로 구부러지면서 마당을 품고 있는 형태다. 마당은 주차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포니 1이 출시되면서 본격적인 마이카 시대가 열린 것이 바로 다음해 초인 1976년 1월 26일인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의미심장한 계획을 한 셈이다. 총 38가구의 매우 아담한 연화 아파트는 지상 5층, 지하 1층 건물이다. 현재 가로에 면한 지하실은 미용실로 사용되고 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방공대피시설 안내판이 아직 붙어 있다. 평수 16평, 수용인원 96명, 심지어 관리 책임자의 이름도 보인다. 이런 안보 관련 시설들을 둔감한 시선으로 보는 경우도 많으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남침 땅굴 발견,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들이 이 무렵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던 것을 감안하면 이런 시설의 필요성은 당시로서는 현실이었다. 민간의 공동 주거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 태권도장? 주차장? 홍파아파트 지하 정체는 이 연재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거리형 상가아파트는 특정 지역 몇 군데에 몰려 있다. 충정로를 포함한 서대문 일대가 그렇고 홍제동이 또한 그렇다. 나중에 소개할 용산 지역 또한 예외가 아니다. 물론 사대문 안에도 여러 개가 존재한다. 반면 이 패턴에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다. 동대문에서 한참을 더 간 제기동 길가에 홀로 우뚝 서 있는 ‘홍파 아파트’가 그런 경우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아파트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하다. 제기로를 따라 고려대 쪽에서 접근하면서 보면 홍파 아파트의 특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정면이 강조된 디자인이지만 한쪽 면이 좀처럼 보기 드문 ‘지그재그’ 형이다. 꺾이는 곳마다 창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조형과 실내 공간 계획을 정확히 일치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한 이유는 건물 주변을 돌아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홍파 아파트의 정면은 제기로라는 넓은 도로지만 그 측면은 좁은 골목길이다. 서쪽 골목길은 제기로 13길로 불리는데 이 길은 45도 방향으로 비스듬히 나 있다. 이 골목길에 아파트의 배치를 맞추다 보니 지그재그형의 특이한 조형이 나온 것이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인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파트가 주변 지역, 특히 좁은 도로와의 관계를 이렇게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자기 몸을 만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정면뿐 아니라 골목길에도 1층에 상가를 넣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보지만 아마도 좁은 골목길에는 상권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생각했던 듯하다. 그래서 담장을 쳐서 골목과 단절해 놓은 것은 다소 아쉽다. 다만 저층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골목길을 따라 나름 연속성을 유지하면서 놓여 있는 모습은 지금 봐도 인상적이다. 주 출입구는 오른쪽 골목으로 형성된 마당 겸 주차장 쪽으로 나 있다. 즉 상가와 주거의 입구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가능하다면 이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지만, 정면에만 도로가 있는 경우는 불가능하다. 홍파 아파트는 대지의 깊이 덕분에 뒤에 마당을 만들 수 있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본 홍파 아파트는 폭 대 높이의 비가 거의 1대1로 상당히 홀쭉한 비례다. 그 덕분에 실제보다 높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제기로 남쪽 일대는 홍파초등학교, 경동시장 등 기본적으로 낮은 건물들이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6층이라는 그리 높지 않은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지역의 망루 같은 존재감을 갖는다. 입면을 보면 창호와 벽체 그리고 발코니가 이루는 독특한 리듬감이 있다. 6개 모듈로 좌우 대칭 구성을 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점도 재미있다. 내부 평형과 측면 가구의 구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다. 홍파 아파트는 지하 1층, 지상 6층이다. 48가구가 입주해 있으니 작은 규모의 아파트다. 특이한 것은 지하층의 용도다. 겉보기에는 주차장이고 실제로 차량이 들고 날 수 있는 램프가 두 군데나 있지만 건축물관리대장 상에는 주민운동시설인 태권도장으로 되어 있다. 공부상의 용도와 실제 용도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는 흔하지만 홍파 아파트의 경우 이미 건립 당시부터 지하층이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더구나 이 아파트의 사용승인일이 1971년 10월 7일로 앞서 소개한 고은 아파트나 연화 아파트보다도 시기적으로 몇 년 앞선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지하 공간은 만들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번 만들어 놓으면 시대에 따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될 수 있는데 홍파 아파트도 그런 경우의 하나인 것이다. 홍파 아파트는 장흥식이라는 사람이 지은 것이라고 한다. 회사가 아닌 개인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거대 자본이 아닌 개인 자본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 당시 아파트들의 규모가 지금보다 작고 각자의 개성이 살아 있는 것은 동원된 자본의 규모와 성격과도 관계가 깊다. 일부러 다양한 디자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상황 자체에 다양성이 있었던 것이다. 거대 자본에 의한 거대 단지로 공동 주거를 공급해 온 그간의 상황을 돌아볼 때가 되었다.
  • [글로벌 시대] 한류 지형이 바뀌고 있다/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글로벌 시대] 한류 지형이 바뀌고 있다/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

    한류의 지형이 바뀌고 있다. 1997년부터 시작된 한류 붐이 20년을 맞으면서 한류의 정의는 물론 주요 수출 분야와 한류 주요 거점지역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많은 한류 연구자들은 따라서 향후 한류정책과 한류 연구의 방향이 크게 바뀔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연세대 영상문화센터와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의 과학기술정책연구센터가 한류 20주년을 기념하여 올 6월과 8월 연속으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전 세계 연구자들은 한류의 역사적 조명과 미래 전망을 통해 한류의 대 전환을 예고했다. 실제로 한류는 몇 년 전까지도 국내 문화산업의 급성장과 이를 근거로 한 문화상품의 해외 수출이라는 의미로 통용되어 왔다. 최근 한류의 흐름은 그러나 소셜미디어의 등장과 활용으로 혁신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기존의 한류는 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류 상품의 구매, 즉 카세트테이프나 음악 CD 그리고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담은 테이프 등을 구매해서 즐기는 것이었다. 2010년대에 한류는 유튜브와 같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 문화를 공유하는 형태로 전환되었다. 대중문화를 소유하던 과거의 형태는 사라지고 소셜미디어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한국의 대중문화를 즐기는 형태로 변화된 것이다. 또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북미나 유럽에서 한국의 온라인 대신 모바일 게임이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의 스마트폰을 통해 웹툰을 즐기는 등 디지털 한류의 성장도 두드러지고 있다. 소셜미디어의 등장은 기존의 팬덤 현상도 크게 변화시키고 있다. 기존의 한류 팬덤이 주로 팬 클럽을 조직하고 케이팝 콘서트를 찾아가던 형태였다면 소셜미디어 시대의 팬덤은 한국 대중문화를 온라인상에서 번역하고 이를 공유하면서 한류의 생산자로서도 참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류의 핵심인 콘텐츠에서는 비순수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한류 콘텐츠가 한국의 특징을 반영하거나 아시아 정서를 반영하던 초창기의 한류 형태를 벗어나 서구 문화와의 혼종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팬들은 “한류가 한국적인 문화의 순수성을 고집하지 않고 서구와의 혼종화를 통해서 새로운 형태의 문화 콘텐츠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이를 사랑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케이팝이 한글과 영어가 뒤섞인 가사로, 또 발라드보다는 서구 음악 장르로 여겨지고 있는 랩과 테크노 등을 가미하고 있기 때문에 한류 팬들의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기 쉽다는 지적이다. 한류의 지형 변화는 한류 연구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팬덤 현상이 기존 동남아 위주에서 북미와 서유럽 그리고 남미는 물론 아프리카로 이어지는 글로벌 현상으로 발전하면서, 북·남미와 아프리카 등에서의 한류 연구가 크게 늘어난 반면 동남아에서의 연구는 급격히 줄고 있다. 동남아시아의 한 한류 연구자는 이와 관련, “동남아에서의 한류 연구가 많이 줄어 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한류 연구가 지나치게 한국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거나 산업적인 측면만 강조하는 것에 대한 역작용도 한 원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한류는 문화 자체의 현상만이 아니라 문화가 국제 관계에서 외국 정부, 기업 그리고 시민들에게 한국이라는 브랜드를 인식시킬 수 있는 소프트파워로서 크게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와 문화산업계의 한류 관계자들이 정부 주도의 지나친 간섭이나 기업 위주의 지나친 문화의 상품화는 자칫 한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할 때다.
  • [야권 계파 분화] 친문 vs ‘친문 아닌 친노’ 갈라져… 대선 국면 다시 핵분열할 듯

    [야권 계파 분화] 친문 vs ‘친문 아닌 친노’ 갈라져… 대선 국면 다시 핵분열할 듯

    #그림 1. 지난해 9월 11일, 노무현 의원 비서출신인 더불어민주당의 최인호 혁신위원(현 의원)은 친노(친노무현) 좌장 격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백의종군을 요구했다. 계파 갈등으로 위기에 놓인 당을 위한 충정이란 시각과 “친문(친문재인)과 ‘친문이 아닌 친노’의 분화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엇갈렸다. #그림 2. 지난달 24일,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이 더민주의 당권경쟁에 뒤늦게 뛰어들었다. 문재인 대표 시절 측근인 최재성·진성준 전 의원은 추미애 후보를 돕고, ‘부산친노’ 이호철 전 참여정부 민정수석은 송영길 후보를 돕던 터. 김 후보까지 출마하자 친노의 분화 징후가 아니냐는 분석이 뒤따랐다. 더민주의 최대 계파인 친노·친문(친문재인)은 40명 남짓이다. 정세균계와 민평련(고 김근태 고문 측)·86(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 등 ‘범친노’까지 넓히면 65~70명가량. 하지만 범친노 내에서도 출신(참여정부/영입인사/민평련·86 등)과 중도로의 확장성, 잠룡과의 관계에 따라 결이 갈린다. 우선 ‘친노·친문’이 20명 남짓으로 가장 많다. 홍영표·김태년(이상 3선), 전해철·박남춘 의원(이상 재선) 등 19대 국회부터 문 전 대표의 버팀목이 된 재선 이상은 물론, 참여정부 당시 비서관과 행정관 등으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강병원·권칠승·김경수·김한정·이훈·최인호 의원 등이 가세했다. 이른바 ‘더벤져스’(더민주+어벤져스)를 비롯한 총선 영입인사도 친문의 한 축이다. 김병관·김병기·김정우·박주민·조응천·표창원 의원 등이다. 올해 초 홍보위원장으로 합류한 손혜원 의원은 민평련과는 오랜 인연이지만, 정치적으로는 ‘친문’이다. 추미애 의원은 본래 친노와는 거리가 멀지만,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문재인 체제’에 합류한 뒤 주류·비주류 갈등 국면에서 문 전 대표를 지지한 경우다. 아직 안희정계란 말은 여의도에서 쓰지 않는다. 안 지사 스스로 ‘불펜투수’를 자임하고 있는 데다 원내 세력도 미미하다. 연말·연초쯤 ‘친안’의 실체가 드러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참여정부 출신 김종민·정재호·조승래 의원이 대표적 ‘친안’으로 꼽힌다.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는 민평련 출신이지만, 2010년 지방선거 때 대변인을 지내는 등 안 지사와 가깝다. 손학규계인 수도권 A, 충청권 B의원이 최근 들어 안 지사와 교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 서울시장 측근들은 총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기동민·권미혁 의원만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기존 의원 중에는 박홍근 의원이 박 시장과 가깝다. 민변 출신 이재정 원내대변인은 “정서적으로는 친문과 가깝지만, 박 시장과는 참여연대 시절부터 인연이 깊다”고 했다. 손학규계는 강훈식·고용진·김병욱·임종성·전혜숙 의원 등이 원내 진입하면서 10명을 웃돌지만, 아직 응집력은 느슨한 편이다. 더민주 계파지형은 대선 경선 국면에서 1차 분화한 뒤 후보 확정 뒤 한 번 더 요동칠 가능성이 짙다. 중립 성향의 한 의원은 “친노 의원들에게 노무현과 문재인의 존재감은 다르다.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10%대에 머무른다면, 친노 내부에서도 안 지사 측으로 급격하게 쏠림현상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안보냐 경제냐…포켓몬고 로 불거진 구글 지도 논란

    안보냐 경제냐…포켓몬고 로 불거진 구글 지도 논란

      세계 최대 검색 엔진인 구글이 한국 지도를 국외로 가져갈 수 있게 할지를 두고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구글이 우리 지도를 가져갈 경우 지금껏 파행 운영돼 온 한국판 구글맵(구글 지도)은 100% 기능으로 서비스할 수 있게 된다.  이 문제는 ‘안보 문제 때문에 지도 반출은 어렵다’는 우리 정부와 ‘부당한 규제’라는 구글 사이에 8년 넘게 계속돼 왔다. 하지만 올해 들어 증강현실(AR) 게임인 ‘포켓몬고’와 지능형 자동차 등 지도를 토대로 한 첨단 IT(정보기술) 제품이 주목받으며 지도 반출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글맵을 정상화하면 이를 바탕으로 한 우리 IT 서비스 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지게 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면 지도의 국외 제공이 남북 대치라는 상황에 직결된 사안이어서 반출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구글은 세계 각지의 지도를 ‘글로벌 서버’에 넣고 구글맵을 서비스한다. 이 서버는 미국·칠레·대만·싱가포르·아일랜드·네덜란드·핀란드·벨기에 8개국에 흩어져 있고 한국에는 없다.  구글은 한국 지도를 국외 서버로 가져가고 싶다며 반출 의사를 계속 밝혔지만, 번번이 우리 정부의 안보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한국에 서버를 두고 지도 데이터를 처리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국외까지 지도를 가져가면 국가 적대 세력이 우리 지도를 쉽게 확보할 위험이 커진다는 게 정부의 논리다.  구글이 반출 신청한 한국 지도는 SK텔레콤이 보유한 데이터로 내비게이션 ‘T맵’의 지도다. 이 지도는 청와대와 군부대 등 국가 중요 시설에 관한 내용은 모두 지워져 있어 안보에 큰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평가다.  그러나 우리 군 당국은 이 지도의 반출 조건으로 미국 등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 지도를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외국 구글맵에서 우리 군부대 등 민감 시설의 위성 이미지가 노출되는 만큼 이도 다 지워야 지도 반출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구글의 반응은 강경하다. 한국 규제를 이유로 미국·영국·브라질 등 타국의 구글맵 서비스까지 ‘검열’하는 것은 재량권 위반이라 수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반출 신청도 불허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판 구글맵은 위성사진 지도를 일정 수준까지 확대하면 화면 해상도가 떨어져 국가 시설을 포함한 모든 지형지물이 흐릿해진다. 이처럼 한국 서비스만큼은 우리 정부의 방침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는 게 구글 측의 해명이다.  정부의 선결 조건이 안보상 실익이 없다는 지적도 있다. 위성사진 데이터는 미국·러시아·유럽 등의 전문 업체들이 엄청난 양을 유통하는 탓에 구글맵만 지워봐야 정보 차단 효과는 미미하다는 얘기다.  반면 우리 군은 적대 세력이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을 토대로 손쉽게 테러 등을 모의할 우려가 있는 만큼 삭제는 꼭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구글맵이 정상화되면 한국에서도 △ 도보 길 찾기 △ 내비게이션 △ 실시간 교통정보 △ 실내 지도 △ 3차원 지도 등 고급 기능이 활성화될 수 있다.  지도 앱(응용프로그램) 사용자로선 선택 폭이 넓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구글은 지도 반출이 안 돼 한국에 소규모 서버를 두고 최소 기능만 제공하고 있다.  찬성 진영은 구글맵이 제대로 되면 포켓몬고와 구글의 지능형 차량 서비스인 ‘안드로이드 오토’ 등 구글맵을 쓰는 유명 서비스가 쉽게 국내 출시될 수 있어 혁신이 활발해진다고 강조한다. 세계에서 한국만 구글맵이 잘 안되는 ‘갈라파고스(고립지)’가 될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숙박앱과 택시앱, 배달앱 등 국산 서비스가 구글맵을 더 많이 쓰게 돼 우리 국제 경쟁력도 올라갈 것이란 주장도 있다. 지금껏 많은 국내 앱은 국산 지도 기반으로 설계돼 외국에 진출하려면 구글맵 버전으로 재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구글맵 반출이 ‘외국 기업의 갑질’이라는 주장도 반론도 만만찮다. 온라인 검색과 모바일 영역을 장악한 세계적 ‘IT 공룡’ 구글이 이번 지도 반출을 계기로 한국 시장에서 지배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표적이다.  국내 IT 업계에서 구글이 ‘특혜’를 요구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내 서버에 추가로 투자해 한국 소비자에게 더 많은 구글맵 기능을 제공할 수 있는데도 굳이 지도 반출이란 ‘편한 길’만 고집한다는 것이다.  지도 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빙(Bing) 지도’ 등은 국내 서버를 토대로 한국판 구글맵보다 훨씬 더 풍부한 기능을 제공한다“면서 ”지도 반출이 구글맵 정상화의 유일한 길이라는 구글 측의 주장은 부당한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구글이 한국에 있는 구글맵 서버에 투입하는 공과 비용은 ‘최소 수준’으로 알려졌다. 글로벌 서버 운영에 관한 자사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은 이해가 가지만 한국에서 자기 방식만 강요한다는 이미지를 주는 것도 좋지는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구글은 2008년 한국판 구글맵 출시 이후 계속 한국 당국에 지도 반출 의사를 강력히 밝혀왔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지금껏 한국 정부는 학술 연구 목적으로 지도 반출을 허용한 적은 있었지만, 외국 IT 기업에 허가해준 사례는 구글 외에도 없었다.  구글의 공식 반출 신청은 2010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현행 법규에서는 반출 신청이 들어오면 국토교통부·국방부·미래창조과학부 등으로 구성된 부처 협의체가 60일 이내(근무일 기준)로 심사를 거쳐 허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번 심사의 기한은 25일까지로 12일 예정된 협의체 회의에서 사실상 심사 결과의 윤곽이 잡힐 것으로 예측된다. 협의체의 한 관계자는 “외국 구글맵의 위성사진 삭제와 관련해 우리 군 측과 구글 사이의 견해차가 아직 크다. 회의를 해봐야 알겠지만 허가가 나오긴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전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지리의 역습, 정치·경제를 지배하다

    지리의 역습, 정치·경제를 지배하다

    지리의 힘/팀 마샬 지음/김미선 옮김/사이/368쪽/1만 7000원 전 세계 10개 지역 지리적 요소 분석 한반도 사드·남중국해·브렉시트 갈등 21세기도 지정학적 요인은 핵심 변수 남북 인위적 분단도 한반도 지형 때문 인터넷 등 정보통신기술(ICT)의 비약적인 발전은 지리적 시공간의 격차를 대폭 축소해 왔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기술은 시간과 공간으로 구분된 경계를 허물고 있다. 이제 인간은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며 지리적 위치도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예측이 현실화되고 있다. 하지만 신간 ‘지리의 힘’은 다시 지정학적 요인으로 시선을 돌린다. 지리가 개인과 국가의 운명을 좌지우지하고 있으며, 세계 정치·경제 현상에서 여전히 강력한 변화의 동인이 되고 있다는 점을 통찰한다. 한반도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한·미·중 3국 간 엇갈리는 이해관계의 부상,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심화된 유럽의 분열 등 21세기에도 지정학적 요인은 핵심적인 변수가 되고 있다. 민족 국가들의 국경선이 다 지워진 오늘날에도 크림 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그 옛날 군사력을 앞세워 부동항을 확보하려고 한 절대군주 이반 4세가 본 것과 똑같은 지도를 여전히 보는 데는 이유가 있는 셈이다. 저자는 “21세기는 영토와 자원을 두고 경쟁하는 ‘뉴그레이트 게임’의 시대로 지리를 알지 못하면 세상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시대”라고 말한다. 이는 인류가 아무리 지리의 법칙을 극복하려고 해도 궁극적으로 정치·경제·사회적 발전은 각각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형성돼 왔다는 점에 근거한다. ●유럽 분열은 이념이 지리에 복수의 일격 당해 25년간 지구상의 분쟁 지역을 취재해 온 국제 문제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전 세계를 10개 지역으로 나눠 지리적 요소가 어떻게 국제적 현안에 투사되고 있는지를 파헤친다. 저자가 보기에 유럽연합의 분열은 이념이 지리에 ‘복수의 일격’을 당한 대표적 사례다. 지진, 화산, 대규모 홍수의 피해를 거의 보지 않는 축복받은 땅인 동시에 긴밀하게 연결된 물길을 통해 활발한 교역이 이뤄진 유럽은 지리적 축복으로 인해 번성한 지역이다. 세계 최초의 산업화된 국가들이 특히 서유럽에 집중적으로 분포한 배경이다. 하지만 남유럽은 상대적으로 땅은 척박하고 지형은 험난해 교역이 활발하지 못했다. 이 같은 남북 간 단층선을 따른 지리적 차이는 ‘경제적 혼인’을 맺으며 하나의 유럽을 꿈꾸던 유로존이 2012년 그리스 사태가 터지자마자 서로 갈등하며 분열하게 된 근본적 원인이기도 하다. ●열강에 의해 인위적 분할 阿·중동 최대 피해자 지정학적 경계를 무시하고 유럽 열강에 의해 인위적으로 분할된 아프리카와 중동은 식민주의 정책의 가장 큰 피해자다. 아프리카는 5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하며 인류 역사의 가장 앞선 주자이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는 가장 고립된 땅으로 남아 있다. 유럽의 탐험가들은 등고선이 그려진 지도 위에 제멋대로 선(국경선)을 그었고, 56개국이 존재하는 오늘날의 아프리카에서 그 국경선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서로 다른 부족을 한 국가 안에 억지로 단일 민족으로 묶으려던 식민 정책은 수많은 내전의 뇌관으로 작동했다는 게 저자의 인식이다. 저자는 최근 대두되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테러도 중동에 그어 놓은 열강들의 국경선을 고치기 위한 투쟁으로 본다. ●IS, 중동에 열강이 그은 국경선 고치기 투쟁 책에는 한반도 문제도 담겨 있다. 저자는 한반도가 동서를 나눈 긴 산맥으로 동쪽과 서쪽이 분단돼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으로는 남북마저 분단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한반도에서는 일단 압록강을 건너면 해상까지 진출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천연 장벽이 없다”면서 “한국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강대국들의 경유지가 됐다”고 설명한다. 이 같은 한반도 지형 때문에 남과 북 사이의 인위적 분단이 가능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두 개의 한국은 기술적으로 전쟁 상태에 있다”며 “남북 간 갈등이 단지 포격 몇 번을 주고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으며, 한국은 핵이라는 위협을 머리 위에 안고 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의 접근법으로 바라본 사드 문제는 한반도 분단의 현실뿐 아니라 미·중 간 정치·군사적 패권 경쟁과 군국주의를 가속화하는 일본 등 주변 열강들 간 욕망의 충돌이자 누가 국제 질서를 주도할지를 겨루는 본격적인 반목의 신호탄으로 읽혀진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오이타현 땅의 역발상…4381개 온천, 電 뿜다

    오이타현 땅의 역발상…4381개 온천, 電 뿜다

    일본 남단 규슈섬의 거점 후쿠오카 공항에서 차를 타고 남동쪽으로 3시간가량 달리면 나무로 둘러싸인 산간 지역이 이어진다. 산 중턱에서는 하늘을 향해 수증기를 뿜어내는 4~5층 건물 높이의 둥근 냉각탑들이 눈에 들어온다. 땅 밑에서 뽑아낸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얻는 지열발전소 전경이다. 1000도의 지열층의 증기를 뽑아내 쓰고 남은 증기를 냉각해 액체로 증발시켜 보내는 냉각탑과 연결관, 발전시설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파이프는 땅속 800~3000m까지 이어져 있다. ●오이타현 8곳서 日 지열 전력 40% 생산 활화산인 아소산 지역을 서남쪽으로 끼고 있는 고코노에마치의 구주산 중턱에 설립된 이곳은 일본 최대 지열발전소인 핫초바루. 규슈 동북 지역의 오이타현 내륙에 위치한 발전소의 출력은 11만㎾, 발전량 72만 2608㎿h이다. 주변 땅 밑 30여곳에 고온 증기를 뽑아내는 구멍인 증기정(蒸氣井)을 뚫어 시간당 900여t 이상의 증기를 뽑아 올린다. 운영주체인 규슈전력의 고지마 이치로 팀장은 지난달 26일 “오이타현의 8개 지열발전소가 일본 전체 지열발전의 40.5%인 105만 5860㎿h의 전력을 만들어 낸다”고 소개했다. 핫초바루 발전소에서 반경 2㎞ 거리에는 일본 최초로 1967년부터 지열발전을 시작한 오오다케 등 4개 발전소가 모여 있다. 오이타현은 분당 279㎘의 온천이 분출되는 일본 최대 온천 지역으로 4381개의 온천이 있다. 활화산 지대면서 지진은 적어 지열발전의 잠재력이 크다. 오이타현이 선도해 온 지열발전은 지난해 경제산업성의 ‘중장기 에너지계획’이 확정되면서 추동력을 얻었다. 경제산업성은 지난해 7월 “현재 9.6%에 불과한 재생에너지 비율을 2030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22~24%까지 높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중 지열발전 비율은 같은 기간 1% 정도로 약 4배 높일 방침이다. 하세오 마사미치 오이타현 심의감은 “국가 에너지원의 다양한 확보와 온난화가스 삭감을 위해 지열 등 재생에너지 개발에 속도를 내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2030년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을 2013년보다 26% 줄이는 목표를 국제사회에 약속한 상황에서 지형 조건에 맞는 지열 개발 등을 빼놓을 수 없게 됐다. 일본은 지열발전 잠재력은 미국 등에 이어 세계 3위지만 발전용량은 미국, 필리핀 등에 이은 8위에 불과하다. 이를 2030년에는 2~3위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목표다. ●규제 풀고 보조금 지원… 원전 대신 지열로 경제산업성은 지난 4월 지열발전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 새 보조금 제도를 도입했다. 출력 2.5만㎾ 이상의 지열발전에 대해 독립행정기구인 석유·천연가스·금속광물자원기구(JOGMEC)가 심사해 국가중점개발지역으로 지정하고 기업에는 굴착·조사 비용을 지원하는 등 세제 혜택과 함께 보조금을 주기 시작했다. 투자액 30%를 비용으로 보고 특별상각도 인정하고 해외 법인세도 줄여 준다. 지열발전은 막대한 초기 투자, 행정 규제, 지역 주민 민원 등으로 발전 속도가 더뎠다. 여기에 원전에 비해 발전단가가 비싼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당 원전에 비해 1.7배가량 더 비싸다는 보고도 있다. 6개 지열발전소가 집중돼 있는 고코노에마치도 아소·구주국립공원 안에 포함돼 있는 등 대부분 발전 가능 지역이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다. 국립공원 규정 등 많은 규제를 경제산업성이 지난해 대폭 간소화했다. 일본 최대 지열발전사업자인 규슈전력은 설비 추가 등 국내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고지마 팀장은 “규슈전력도 2030년까지 설비용량을 3배 이상 키우려 한다”고 말했다. 가와조에 세이키 핫초바루 발전소 부소장은 “150만㎾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규슈전력은 2030년까지 지열발전 80만㎾를 포함한 250만㎾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가와조에 부소장은 “주변 유후인, 구마모토의 미나미아소 등에서 추가 지열발전소 건설을 위한 자원량 평가 조사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규슈전력은 홋카이도 지열발전 자원 조사계획도 지난 5월 발표했다. 올해 안에 지표 조사를 실시하고 굴착 작업 등 5개년에 걸쳐 자원량 등을 조사한 뒤 지열발전소를 지을 계획이다. 국제적으로도 일본 기업은 세계 지열발전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다. 가와조에 부소장은 “규슈전력은 이토추상사 등과 함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 북부 사룰라에 33만㎾급의 세계 최대 규모 지열발전소를 짓고 있다”고 소개했다. 올해 첫 발전기 가동을 시작으로 3년 동안 3기의 지열발전기 가동을 계획하는 등 국내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다. 도시바가 2017년 가동 예정인 터키 서부 키질데레 제3지열발전소에 쓰일 수억엔 규모의 7만㎾급 증기터빈과 발전기 수주에 지난 5월 성공한 것도 일본 기업의 활발한 진출 사례다. ●그린에너지, 또다른 ‘일본 주식회사’로 중앙정부가 지열발전을 원전을 대신할 주요 전력원의 하나로 보고 각종 법 제도와 지원 제도를 정비하고 있는 것도 이런 지열발전 활성화에 힘이 됐다. 하세오 심의감은 “지열 같은 지역 밀착형 분산형 발전은 송전 손실이 적고 재해 등 비상시에도 전력 확보에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핫초바루 지열발전소와 오이타현의 에코에너지 사업은 중앙정부의 국가적 에너지 대책과 지원, 지방정부의 비전과 실천, 발전소·기업 등 사업자의 경험을 하나로 엮어 세계 그린에너지 시장으로 향하는 ‘일본 주식회사’의 또 다른 경쟁력이다. 에너지원의 다양화를 또 하나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글 사진 고코노에마치(오이타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차 막히는 휴가철에도 호젓한 파주·연천

    차 막히는 휴가철에도 호젓한 파주·연천

    때로는 호젓한 경기 북부로 발길을 돌릴 일이다. 휴가객들로 도로가 몸살을 앓는 이맘때는 더욱 그렇다. 파주와 연천이 대표적이다. 최전방 도시로 인식되지만 이들 지역에 늘 전쟁의 기운만 감도는 건 아니다. 몇 가지 조심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절정의 휴가철에도 한결 여유롭게 쉬다 올 수 있다. 콩 볶는 소리가 이방인을 맞는다. 어느 부대에선가 사격훈련이 있는 게다. 가끔 포 쏘는 소리도 들린다. 역시 전방도시답다. 파주, 연천 등 비무장지대(DMZ) 인접 지역을 여행할 때는 몇 가지 조심할 게 있다. 꼭, 그리고 늘 기억해야 할 건 목함지뢰다. 임진강 줄기를 따라 종종 발견된다. 피하는 방법이야 간단하다. 임진강변엔 아예 발 딛지 않는 거다. 또 있다. 사격훈련 표시 붙은 곳은 얼씬대지 않는다. 그러면 위험할 게 없다. 종종 탱크 같은 철갑차량들이 도로를 오가는 경우도 있다. 다른 지역에서 이런 장면 보려면 박물관이나 가야 한다. 한데 이 일대에선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후방’ 지역에 사는 이들에겐 이마저 진기한 볼거리에 속한다. ●현대식 건축물·조형물의 조화 ‘헤이리’ 파주 여정의 들머리는 헤이리다. 현대식 건축물과 조형물들이 어우러진 곳. 구불구불 미로 같은 길을 따라 갤러리와 카페, 공방, 서점, 레스토랑 등이 빼곡해 도무지 지루할 틈이 없다. 임진각 평화누리는 이미 수도권 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여행지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무거운 분위기가 짓누르던 최전방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여느 관광지와 다름없이 밝고 평화롭다. 여름이면 아이들이 분수 주변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바람의 언덕’ ‘음악의 언덕’ 등에선 시원하고 상큼한 평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파주를 대표하는 인물은 율곡 이이(1536∼1584)다. 임진각을 지나 북녘땅을 향해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파주의 진면목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하는데, 대부분이 이이와 연계된 공간들이다. 파주는 이이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외가인 강원도 강릉이지만, 본가가 있던 곳은 파주였다. 자신의 호 또한 파평면 율곡리 지명을 따 지었다고 전해진다. 5세 때인 1541년 처음 파주 땅을 밟은 이후, 자주 파주를 찾아 은거했다. 그만큼 파주엔 그의 흔적 남은 곳이 많다. ●자운서원 등 율곡 이이 유적지 곳곳에 대표적인 곳이 법원읍 동문리 율곡 유적지다. 자운서원과 율곡의 가족묘, 율곡기념관 등이 한곳에 모여 있다. 자운서원은 1615년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들에 의해 조성됐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소실됐다가 1970년 복원됐다. 2013년엔 국가 사적(제525호)으로 승격됐다. 서원의 규모는 크지 않은 편. 하지만 오래된 나무들이 뿜어내는 묵은 향기는 건물의 크기를 뛰어넘고도 남는다. 자운서원 옆은 가족묘다. 이이의 묘, 어머니 신사임당과 아버지 이원수의 합장묘 등 13기가 조성돼 있다. 화석정은 이이가 자주 찾아 시상을 떠올렸다는 정자다. 율곡 유적지에서 9㎞ 정도 떨어져 있다. 건물 정면의 ‘花石亭’ (화석정)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썼다고 전해진다. 안쪽엔 율곡이 8세 때 처음 지었다는 시 ‘팔세부시’(八歲賦時)가 걸려 있다. 무엇보다 화석정의 자랑은 탁월한 전망이다. 정자 앞에 서면 임진강과 DMZ 일대 풍경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임진강·DMZ 풍경 한눈에 보는 화석정 화석정에 얽힌 이야기도 전한다. 임진왜란 당시 의주로 몽진하던 선조 일행이 임진나루를 건널 때 화석정을 태워 불을 밝혔다는 것이다. 이이가 선조의 몽진을 예견하고 정자 기둥에 기름을 발라두라는 예언을 남겼다는 게 이야기의 요지인데, 지나치게 부풀려진 느낌이 없지 않다. 임진나루와 화석정은 거의 1㎞ 가까이 떨어져 있다. 화석정 불빛이 닿기엔 먼 거리다. 주변 관아 건물을 태워 불을 밝혔다고 적은 징비록이 좀 더 현실적이지 싶다. 전설의 진위는 논외로 하더라도 ‘십만양병설’을 내세운 이이와 이를 무시한 선조의 악연이 얽혀 있는 곳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선조 이야기 깃든 임진나루는 아쉽게도 들어갈 수 없다. 허가받은 어부 외에 민간인은 일절 출입할 수 없다. 화석정에서 임진강변으로 나가면 율곡습지공원을 만난다. 공한지를 활용해 공원으로 조성한 곳이다. 규모는 작아도 연꽃정원과 조롱박터널, 호박 터널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만날 수 있다. 배경 삼아 사진 찍기 좋은 설치미술 작품들도 조성돼 있다. 율곡습지공원 인근에 장산전망대가 있다. 민통선 안쪽의 초평도와 굽이돌아가는 임진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주차장은 없고, 적당한 공간에 차를 대고 300m 정도 산길을 걸어가야 나온다. 인적 드문 데다, 전망도 빼어난 만큼 꼭 찾아보는 게 좋겠다. 율곡수목원은 아직 정식 개장하지 않았다. 정비가 끝난 지역에 한해 부분 개방하고 있는데, 사람들의 입소문을 덜 탄 만큼 한적하게 쉬다 올 수 있다.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었던 황희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임진강 옆 반구정(伴鷗亭)이다. 1449년, 당시 87세였던 황희가 18년 동안이나 재임했던 영의정에서 물러난 뒤 갈매기(鷗)를 벗 삼아(伴) 여생을 보냈다는 곳이다. 6·25전쟁 때 허물어진 걸 1967년 옛 모습대로 복구했다. 반구정도 빼어난 풍경 전망대다. 맑은 날 오르면 멀리 북한 개성의 송악산까지 보인다고 한다. 다소 떨어져 있긴 하나 ‘용미리마애이불입상’도 잊지 말고 찾는 게 좋겠다. 거대한 암벽에 2구의 불상을 우람하게 새겼다. 투박한 생김새에서 토속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웃는 듯한 표정으로 바뀌는 것도 이채롭다. ●1500년前 삼국시대 영토 전쟁 흔적도 지금과 마찬가지로 임진강 유역은 예부터 전쟁의 땅이었다. 1500년 전인 삼국시대에도 임진강을 끼고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당시 흔적들이 임진강변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특히 고구려의 자취가 많은데, 이는 당시 신라·백제연합군에 밀려 한강지역에서 패퇴한 고구려가 임진강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연천 호로고루성과 당포성, 은대리성 등 이른바 ‘고구려 3성’이다. 이들 3성을 두루 관통하는 특징은 삼각형의 현무암 절벽을 타고 앉았다는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볼거리이기도 하다. 절벽 바깥쪽, 그러니까 임진강과 접한 부분은 높이 20m에 이르는 주상절리 지대다. 주상절리는 용암이 흐른 흔적이다. 화구에서 흘러나온 마그마가 급격히 식으면서 생긴다. 이 주상절리 절벽이 자연적인 방어선 노릇을 하고 있다. 멀리 떨어져서 보면 이 같은 특성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세 성 모두 물살이 약해지는 여울목에 자리잡았다는 것도 동일하다. 이런 지형은 대개 포구가 형성되기 마련이다. 당시에도 포구들이 있었고, 3성은 이를 방비하기 위해 생긴 것이다. ‘고구려 3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 호로고루성이다.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은 고구려 기와가 발견되기도 했다. 오는 12~21일 ‘통일바라기축제’도 열린다. 수천 그루의 해바라기들이 호로고루성 일대를 노랗게 물들인다. 당포성은 접근성이 좋다. 주변도 깔끔하게 정비됐다. 성에 오르면 임진강과 파주, 동두천의 산군들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은대리성은 주변 소나무숲과 삼형제 바위 등이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글 사진 파주·연천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지역번호 031) →가는 길 자유로를 통해 접근하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율곡습지, 수목원, 반구정 등을 하나로 묶고 다소 떨어진 율곡유적지와 용미리마애이불입상을 묶어 도는 게 효율적이다. 호로고루성 인근에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능이 있다. 당포성 인근에서는 숭의전을 만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고려 태조와 7왕을 제사지내던 곳이다. →맛집 화석정이 있는 임진나루 주변에 민물고기 매운탕집들이, 반구정 주변엔 장어집들이 몰려 있다. 대부분 맛집으로 소문난 곳들이다. 해마루촌(www.haemaru.org)에서는 장단콩으로 만든 각종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민통선 안에 있기 때문에 반드시 예약해야 들어갈 수 있다. 연천 쪽에선 불탄소가든(834-2770)이 유명하다. 참게와 메기, 배가사리(동자개) 등을 넣어 끓여낸 매운탕이 맛있다. 재인폭포 인근에 있다. 한탄강오두막골(832-4177)은 가물치구이와 민물새우탕으로 이름난 집이다. 전곡읍내에서 가깝다.
  • 軍 “도발 땐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응징”

    軍 “도발 땐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응징”

    육군은 지난해 북한의 지뢰 도발 1주년(4일)을 하루 앞둔 3일 비무장지대(DMZ)의 수색 작전 현장을 공개했다. 이날 작전 현장에 투입된 육군 1사단 수색대대의 DMZ 수색 7팀은 지난해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당시 현장을 지휘했던 정교성(29) 중사의 인솔 아래 DMZ 남방한계선 아래 철책 부근에서 북한군과 맞닥뜨렸을 경우를 상정한 훈련을 실시했다. 수색팀장이 적 출현 상황을 가정해 “좌측에 적 발견!”이라고 외치자 팀원들이 일제히 복창하며 은폐물을 찾아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 태세를 갖췄다. 적을 발견한 수색팀원들이 총(공포탄)을 쏘기 시작했고 “수색조, 좌측 기동!”, “지휘조, 엄호사격!”이라는 수색팀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수색조가 우회기동으로 적에게 접근하고 지휘조는 엄호사격을 했다.이날 훈련을 실시한 수색 7팀은 지난해 북한의 지뢰 도발 당시 긴박한 상황에서도 작전 수행 절차에 따라 적절하게 상황을 조치해 김정원·하재헌 중사(진급 예정) 등 부상 전우의 생명을 살렸다. 육군 1사단은 지난해 8월 4일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 이후 DMZ 인근에서 북한군 동향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는 무인감시 시스템인 과학화 경계시스템을 도입했다. 일반전초(GOP)와 비무장지대 내 초소(GP)에 잡목이 우거져 지형적으로 잘 식별되지 않는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정 중사는 “지난해 8월 4일은 내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라면서 “적이 또다시 도발한다면 도발한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도록 처절하게 응징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황비웅 기자 stylist@seoul.co.kr
  • 군산 복합단지 내 대형 쇼핑몰 건축심의 통과…‘e편한세상 디오션시티’

    군산 복합단지 내 대형 쇼핑몰 건축심의 통과…‘e편한세상 디오션시티’

    최근 군산 복합단지 디오션시티가 지역을 대표할 새로운 주거단지로 떠오른 가운데 디오션시티 내 대형 쇼핑몰 ‘롯데아울렛’이 지난달 26일 전라북도 건축심의를 통과했다. 디오션시티는 6,400여 세대, 1만7000여 명의 거주가 계획된 신도시급 복합단지다. 대규모 상업시설과 함께 3만㎡ 규모의 테마공원과 유치원 2개,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가 건립 예정으로 향후 군산의 주거선호 지형도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e편한세상 디오션시티 관계자는 롯데 아울렛 쇼핑몰 확정과 함께 투자자들의 잔여세대 문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빠른 분양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현재 약 75%의 비교적 높은 초기 계약률을 달성한 e편한세상 디오션시티는 군산에서 최초로 선보인 ‘e편한세상’ 브랜드아파트다. 디오션시티 내에 들어서 교육. 문화. 상업시설. 공원 등 풍부하고 다양한 생활 인프라를 구비했으며 상대적으로 전매제한이 없다. 사업지는 전북 군산시 조촌동 2-6번지 A1블록 일원으로 총 6개 동, 29층 규모의 중소형 평형대 위주로 구성된다. 단지는 총 854세대로 59㎡ 174세대, 74A㎡ 84세대, 74B㎡ 174세대, 84A㎡ 253세대, 84B㎡ 82세대, 106㎡ 87세대의 전용면적 59㎡~106㎡인 6가지 타입으로 세분화된다. 단지 주변에는 이마트 군산점과 농협을 비롯해 군산지원, 군산시립도서관, 군산시청 등 각종 행정기관이 밀집돼 있으며 운동과 휴식 등 각종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진포해양테마공원과 금강하구 철새도래지 등이 인근에 자리했다. 또한 지척에 위치한 군산 근대역사박물관도 군산의 근대역사를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꼽힌다. 단지를 둘러싼 광역 교통망인 군산고속버스터미널과 군산역 이용이 용이하며 개통을 앞두고 있는 동백대교와 군산 IC를 통해 인접 도시 진출입이 수월한 교통 여건을 지니고 있다. 또한 걸어서 등교가 가능한 군산경포초, 군산제일중, 고 등이 인접한 가운데 유치원 2개원,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 등의 교육시설 신축도 계획돼 있다. 채광과 통풍에 유리한 4Bay 내부 설계를 적용한 가운데 전 세대 남향 위주(남동, 남서향 포함) 배치를 통해 일조량을 끌어올렸다. 또한 층간 소음 및 난방에너지를 함께 줄여주는 층간 소음 저감설계가 채택됐다. 확장 시 버려지는 자투리 공간을 활용한 알파룸과 워크인 드레스룸, 팬트리 등 수납공간도 마련된다. 분양 관계자는 “e편한세상 브랜드 아파트로 분양권 시세가 1,000만원 대까지 형성된 상황”이라면서 “롯데 아울렛 착공을 시작으로 복합단지의 면모를 선보이면서 부산의 센텀시티처럼 전북을 대표하는 랜드마크 단지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e편한세상 디오션시티의 견본주택은 조촌동 2-6번지 페이퍼코리아 부지 내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입주는 오는 2018년 11월 예정이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조합

    [이도운의 빅! 아이디어] 한국과 미국의 새로운 조합

    2016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와 2017년 12월 한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두 나라 정부의 새로운 조합이 결정된다. 아마도 21세기 중반까지의 양국 관계를 설정하는 중요한 모멘텀이 될 것이다. 북한 핵·미사일 등 한반도 문제와 미·중·일·러 등을 포함하는 동북아의 지정학·지경학적 변화, 여기에 신자유주의 이후의 새로운 국제 정치·경제 질서까지 맞물려 국가, 지역, 세계 정세가 요동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부터 이어 오던 관성적인 한·미 관계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이념 같으면 협력, 엇갈리면 갈등? 한·미는 그동안 군사동맹으로서 기본적인 협력 관계를 유지해 왔지만, 양국 정부의 이념 조합에 따라 크고 작은 갈등이 오고 갔다. 양국 정부가 보수-보수, 진보-진보 등 이념적으로 동질성이 있으면 관계가 더 좋았다. 전두환-로널드 레이건, 김대중-빌 클린턴 등의 조합이 그랬다. 반면 양국 정부가 이념적으로 엇갈리면 사이가 좋지 않을 때가 많았다. 박정희-지미 카터, 김영삼-빌 클린턴, 노무현-조지 W 부시 등의 조합이 그랬다. 올해 미 대선과 내년의 한국 대선 결과 나타나는 조합은 기존의 이념적 조합과는 다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자유무역협정(FTA)에 반대하고, 동맹도 버릴 수 있을 것처럼 말한다. 전통적인 보수주의자가 아니어서 그 정책을 예상하기 쉽지 않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은 상대적으로 일관되게 진보적 가치를 유지해 왔지만, 월스트리트 등 미 주류 사회에 뿌리를 내린 인물이어서 전통적인 진보 진영 후보로 보기 어려운 면도 많다. # 문재인도 보고 싶어 하는 미국 미국 측에서는 2017년 한국 대선 이후의 정치 지형 변화에 대한 검토가 오래전부터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미 국무부의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국제사회의 롤로덱스(명함철: 주요 인사를 많이 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되면 한국 안보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김용 세계은행(WB) 총재의 발언을 한국 기자들에게 전한 바 있다. 한국 정치 지도자로서의 반 총장을 염두에 둔 것이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최근 미국을 방문하려다 연기했는데,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이 무척 서운해하면서 빠른 시일 내에 방미하면 좋겠다는 뜻을 표시했다고 한다. 미국 측으로서는 진보 진영의 대선 후보로 유력한 문 전 대표가 어떤 인물일지 궁금할 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까지 한번도 미국에 오지 않았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의 386 참모들에 대한, ‘서로 몰라서 어렵고 불편했던’ 감정 같은 것을 반복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 미국에 먼저 아이디어 제시해야 2013년 2월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하기 직전 언론인 몇 명이 워싱턴과 뉴욕을 방문했다.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국무부, 국방부, 의회, 싱크탱크의 한반도 관련자들과 양국 관계에 대해 편하게 토론해 보자는 자리였다. 국무부의 한반도 담당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어떤 대북 정책을 제시해도 우리는 들을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아이디어를 내보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현상을 타파할 아이디어가 없었고, 버락 오바마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남·북, 미·북 관계는 악화되고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강화됐다. 미국의 새 정부는 임기 초반에 북한 핵 등 한반도 정책을 새로 검토할 것이다. 우리나라 새 정부가 미국의 전략을 최대한 우리 쪽으로 끌어오려면 먼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자면 1953년에 조인된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개정을 제안하는 것이다. 한·미 관계는 군사 동맹에서 시작했지만, FTA를 통한 ‘경제 동맹’으로 업그레이드됐으며,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드물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의 성격도 갖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게 조약문을 다듬고, 특히 핵과 테러 공격에 대한 대응을 명시한다면 북한 핵에 대한 한국인의 불안을 해소하고, 국제 테러에 공동 대응을 하는 데도 유용할 것으로 본다. dawn@seoul.co.kr
  • ‘박정희 공원’ 설계 당선작 ‘시간의 기억을 담은 정원’

    서울 중구가 재추진 중인 ‘박정희 공원’의 설계 공모 당선작을 결정했다. 2018년 하반기까지 구비 228억원을 투입해 완공하겠다는 계획이다. 중구는 동화동 역사문화공원 및 지하주차장 설계 공모에서 우리동인건축사사무소와 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가 출품한 ‘시간의 기억을 담은 정원’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고 2일 밝혔다. 공모에는 4개 팀 8개 업체가 출품했다. 중구 관계자는 “지난달 22일 공공건축가 등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회가 당선작을 선정했다”고 말했다. 당선작은 전체 공원 배치와 주차장 진·출입구 통합에 따른 합리적 교통 흐름, 주변 지형을 열린 공간으로 해석한 점 등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중구는 이번 사업에 전액 구비로 228억여원을 예산 편성했다. 내년 2월까지 기본·실시설계를 마친 뒤 2018년 하반기까지 공사를 완료할 예정이다. 앞서 중구는 2014년 박정희 가옥과 이어지는 역사문화공원 사업을 추진하려다 반대 여론과 서울시·구의회의 외면으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도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세금을 들여 기념공원을 만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구는 올해 초 자체 예산 85억 5000만원을 배정하며 재추진에 나섰다. 박정희 가옥은 2008년 서울시가 추진한 역대 정부수반유적 종합보존계획에 따라 국가등록문화재 제412호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내부 구조를 박 전 대통령 거주 당시로 복원하고, 전시시설로 리모델링해 지난해 3월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묘한 사다리꼴, 중정·잘 짜인 디자인, 정면·도심 공중 텃밭, 옥상…세 번 놀랐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묘한 사다리꼴, 중정·잘 짜인 디자인, 정면·도심 공중 텃밭, 옥상…세 번 놀랐다

    독립문에서 통일로를 따라 무악재를 넘어 홍제천 쪽으로 가다 보면 길 오른쪽, 즉 인왕산 쪽으로 단정한 외관의 아파트가 하나 있다. 통일로에서 한 켜 안쪽에 있기 때문에 전면 건물에 가려 일부분만 보인다. 콘크리트로 된 수평 띠 사이마다 창문과 회색 벽돌을 교대로 채워 넣어 입면을 만든 솜씨가 눈길을 끈다. 전형적인 근대주의적 디자인으로서 언뜻 보면 공동 주거가 아니라 사무실 같기도 하다. 이 건물이 바로 안산 맨숀이다. 아파트를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연예인 아파트’로 불릴 만큼 한때 유명 연예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솔직히 그 당시 아파트치고 그렇지 않은 예가 별로 없다. 일부 시민 아파트를 제외하면 당시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고급 주거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은 그 시절만큼의 영화를 누리고 있지 못하다는 점 또한 이 시대 아파트들의 공통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름이다. 인왕산 기슭인 이 일대에는 ‘인왕’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들이 유독 많다. 그런데 이 건물만 길 건너편 안산의 이름을 따왔다. 바로 인접한 ‘인왕 아파트’나 ‘인왕궁 아파트’ 사이에서 홀로 돋보이는 이름이다. 어떤 오기 같은 것이 느껴져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위치보다는 경관을 염두에 둔 이름이 아닌가 싶다. 도시에서 경관의 중요성을 인식한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상당히 시대를 앞선 생각이라고 하겠다. 인왕산 기슭에 놓여 있으나 안산을 바라보고 있는 건물인 셈이다. # 엄격한 근대건축의 외관에 아기자기한 중정 이 건물에 가서 보고 세 번 놀랐다. 그 처음은 위에서 적은 것처럼 아주 잘 짜인 정면의 구성 때문이었다. 지금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렇지 아마도 건립 당시에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었을 정도로 수준 높은 디자인이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건축가가 아닌 일반인들도 충분히 좋아하는가는 좀 다른 문제다. 이런 종류의 미감을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다소 엘리트적인 디자인이라고 할 것이다. 건축가의 이름은 알 길이 없으나 참으로 궁금하다. 두 번째는 이 건물이 중정식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이미 사전 조사에서 알게 된 사실이기는 했다. 그런데 미리 알고 봐도 여전히 신선하고 놀라웠다. 저런 엄격한 정면을 가진 건물이 그 안에 아기자기한 중정을 품고 있다니. 비밀은 대지의 형상에 있다. 안산 맨숀의 대지는 사다리꼴이다. 대지 경계선을 따라 건물이 배치돼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안쪽에 남는 공간이 생겼고 그것이 그대로 중정이 됐다. 대지가 네모반듯하지 않아서 중정도 사다리꼴이다. 그런데 이것이 묘한 안정감과 생동감을 동시에 준다. 천창이 없는 개방형 중정이라 외기의 변화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비와 눈을 그대로 맞는다. 세 번째 놀라움은 옥상 때‘문이었다. 무지개떡 건축론에 따르면 도시 건축에서 옥상을 잘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옥상이 생활공간과 연계되면 이를 한옥의 ‘마당’에 비유할 수 있다. 이렇게 외기에 면하고 하늘을 향해 열려 있는 외부 공간을 잘 활용하는 것은 복잡한 도심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다. 굳이 먼 곳까지 가지 않아도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연을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 때문이다. 이번 연재에서 소개하는 대부분의 상가 아파트들은 평지붕 건물로서 당연히 옥상이 있다. 그런데 대부분 그냥 텅 비어 있거나 심지어 물건을 쌓아 놓는 용도로 쓰고 있다. 생활공간과 인접한 마당으로 계획되거나 활용되고 있는 경우는 단 한 경우도 없다. 안산 맨숀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용은 항공사진으로도 확인이 어렵고 직접 가 봐야만 알 수 있다. 그런데 안산 맨숀은 옥상 전체가 경작지나 다름없었다. 한쪽은 인왕산, 또 다른 한쪽은 안산으로 둘러싸인 공중 정원, 아니 공중 텃밭이 거기 있었다. 아마도 안산 맨숀 주민들은 서울에서 가장 멋진 경작지를 가진 것인지도 모른다. 텃밭을 가꾸려고 주말마다 교외를 오가며 길바닥에서 시간을 다 보내는 것에 비하면 이 얼마나 도시적이고 친환경적인 해결인가. 여기에 마을 주민들을 위한 공동 쉼터나 독서실 같은 실내 공간이 인접해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이미 근사하다. 실로 예기치 못했던 발견이었다. # 상가 아파트로 변신… ‘맨숀 아파트’의 자부심 통일로에서 걸어 들어가 본다. 안산 맨숀의 정면을 보면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또 다른 아파트가 나온다. 다름 아닌 인왕 아파트다. 단지형 아파트이기도 하고 상가가 거의 없이 건물 대부분이 공동 주거이기 때문에 이 연재에서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용 승인일이 1968년 11월 11일로 역사가 상당히 오래됐고, 제법 사람들 입에도 오르내리는 편이다. 같은 길로 계속 들어가면 또 다른 단지형 아파트인 인왕궁 아파트의 입구가 나온다. 안산 맨숀에 대한 자료를 보면 이 건물도 원래 순수한 주거용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층에 상가가 들어가서 지금과 같은 상가 아파트가 됐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건물 2층에 중정이 있는 현재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중정 바닥을 한 층 올리는 대대적인 공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면 원래 1층에 있던 주거는 환경이 별로 좋지 않았을 것이다. 정밀한 실측 조사를 통해서만 파악될 수 있는 문제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따르면 안산 맨숀은 1972년 2월 18일에 사용 승인을 받았다. 그러니 다른 상가 아파트들에 비하면 다소 건립 연대가 늦은 셈이다. 지하층이 ‘아파트’로 돼 있는데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을 위한 창고로 짐작된다. 흥미로운 것은 기록상 1층에 아파트와 제1, 2종 근린생활시설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변동 내용란을 보면 2005년 이후 1층의 아파트가 근린생활시설로 용도 변경된 내력이 단계별로 나와 있다. 원래 주거전용 건물이었다는 소문은 사실이었다. 현재 1층에는 복덕방, 목욕탕, 미용실, 식당 등 주민들을 위한 일상적인 기능들과 장애인 보장구 수리센터 같은 다소 특수한 기능이 입주해 있다. 특이하게도 작은 유료 주차장이 있는데 건축물 관리대장에 나와 있지는 않다. 건물 북서쪽 코너의 좁은 벽면에 ‘안산 맨숀’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요즘 식으로 하면 ‘안산 맨션’이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이 글에서는 원 이름을 그대로 쓴다. 그런데 거리에서 공동 주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안산 맨숀 아파트’라는 좀 다른 이름의 간판이 달려 있다. 맨숀, 혹은 맨션과 아파트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일단 규모가 크면 아파트, 상대적으로 작으면 맨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실제 여러 자료를 보면 그 차이에 구체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같은 홍제동의 ‘유진 맨숀’과 ‘원일 아파트’의 경우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유진 맨숀이 오히려 훨씬 더 큰 건물이기 때문이다. 최선의 추정은 맨숀이 아파트보다 뭔가 더 근사해 보이는 이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산 맨숀 아파트’라는 이름은 ‘아파트는 아파트인데 보통 아파트가 아니라 근사한 맨숀 아파트’라는 의미일 것이다. 자부심이 배어 있는 이름이다. 지금도 그런 현상은 계속된다. 다세대, 다가구, 연립주택, 아파트라는 이름보다는 빌라, 하이츠, 맨션, 테라스 같은 욕망 투사형 이름이 널리 쓰인다. 앞의 이름들은 엄연히 법적 용어지만 뒤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심지어 캐슬(성), 팰리스(궁) 같은 봉건적인 이름까지 등장했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시민들이 죄 귀족이나 왕족이라도 된 것인가. 반면 서구에서 저층 주거 단지에 흔하게 사용되는 ‘코트’(court)는 한국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는다. ‘가든’(garden)은 각종 고깃집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듯하다. 일부 단지형 아파트에는 어느 때부턴가 ‘마을’이라는 한국어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느낌이다. # 옥상서 딴 푸성귀를 밥상에… ‘부엌 정원’ 현실로 건물 북서쪽 코너에 계단이 있다. 역시 당시 유행했던 테라조, 즉 ‘도끼다시’ 마감이다. 거리에서 입구에 들어서면 경비실, 우편함 등이 보이고 여기서 한 층을 오르면 중정이다. 중정 반대편에는 또 다른 외부 계단이 있어서 비상시의 대피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중정은 그야말로 안산 맨숀이라는, 48가구가 사는 하나의 마을, 혹은 동네의 중심이라는 느낌을 준다. 화분과 장독이 많이 놓여 있고 심지어 수돗가도 보인다. 높이에 비해서 폭이 좀 좁은 것 같지만 햇살과 바람이 충분히 들어온다. 눈을 들어 위를 보니 그날따라 유달리 화사한 초여름 늦은 오후의 하늘이 흘러가고 있었다. 중정에서 5개 층을 더 오르면 옥상이다. 지상 6개 층의 건물이지만 역시 엘리베이터는 없다. 중정이 이미 2층에 있고 계단실이 답답하지 않아서 그런지 옥상이 그리 멀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노약자는 불편할 수 있는 구조이므로 만약 리모델링을 하게 되면 작은 엘리베이터를 하나 설치하면 좋을 것이다. 솜씨 있는 건축가의 손을 빌리면 건물에 큰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엘리베이터가 옥상까지 연결되면 더욱 좋을 것이다. 옥상에 오르니 늦은 오후의 햇살 속에 주변 풍광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은 인왕산, 반대쪽은 안산이지만 주변에 건물이 많이 들어서서 썩 잘 보이지는 않는다. 아마 이 건물이 세워졌을 때는 주변이 훨씬 더 열려 있었을 것이다. 텃밭을 가꾸고 있는 주민들은 완연한 도시 농부의 모습이었다. 마침 저녁을 준비할 시간이라 다들 한 바구니씩 푸성귀를 따서 계단실 아래로 내려갔다. 바로 이런 것이 많은 사람이 꿈꾸는 부엌 정원이 아닌가. 이렇게 자기가 사는 곳의 옥상을 잘 활용하면 될 것을 굳이 마당 있는 집을 찾아 교외로 나갈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엄청난 출퇴근 시간을 감수하면서? 안산 맨숀의 옥상을 바라보면서 옥상은 교외의 대안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됐다. 바람직한 무지개떡 건축은 한 개의 건축물이라기보다는 수직으로 재구성한 마을, 혹은 동네와도 같은 것이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는 곳이 있어야 하고 제한적이지만 자연을 접하는 곳도 있어야 한다. 전형적인 근대건축의 엄격한 외관을 갖고 있으면서도 아기자기한 중정과 활발하게 사용되는 옥상 텃밭 등 수직 마을의 가능성을 잘 보여 주고 있는 곳이 바로 무악재 너머 홍제동의 안산 맨숀이다.
  • [글로벌 시대] 로봇산업 통해 산업 고도화를/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글로벌 시대] 로봇산업 통해 산업 고도화를/김영선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전 주인도네시아 대사

    2018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각국 선수단이 인천공항에 속속 도착한다.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로봇. 입국 절차부터 선수단 숙소, 올림픽 게임 일정, 주변 관광 및 편의시설 정보까지 쏟아지는 질문에 로봇이 다양한 언어로 친절히 답해 준다. 선수단의 안전도 로봇들이 24시간 보살핀다. SF 영화에서나 봤을 법한 일들이 평창올림픽에서 현실로 나타난다. 로봇과의 공존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업들은 산업 고도화와 효율성 제고를 위해 최첨단 로봇 기술을 생산 현장에 접목하고 있다. 병원이나 은행·식당에서는 서비스 로봇들이 활용되고 있다. 로봇들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기인한 노동인력 부족 현상들을 해결해 줄 수도 있다. 또 반려견과 같은 반려 로봇들이 일상생활에 자리 잡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안보 및 안전 분야에서도 로봇의 역할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독도에서는 수중탐사 로봇이 심해에서 광범위하게 해저 지형을 탐사하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와 같이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재난 지역에서 로봇이 현장 조사나 사후 처리 작업을 수행할 수 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는 로봇이 보초를 서는 일을 도울 것이다. 로봇 시장을 둘러싼 글로벌 경쟁은 이미 가속화됐다. 2014년 세계 로봇시장은 12.3%의 성장률을 기록, 167억 달러(약 19조원)의 시장으로 성장했다. 한국 로봇시장 역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평균 21%의 고도 성장률을 기록했고, 수출은 평균 50% 이상 신장돼 2014년 2조 6000억원 규모로 확대됐다. 중국·독일·일본 다음으로 네 번째로 큰 시장이다. 우리 정부가 로봇산업의 외연 확대를 통해 신수요와 신시장을 창출하고 로봇 연구개발(R&D) 체질 개선을 통해 글로벌 선도 역량을 갖춘다는 전략을 추진함으로써 국내 생산 7조원(현 2조 1000억원), 수출 2조 5000억원(현 6000억원), 로봇 기업수 600개(현 368개)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니 고무적이다. 국내 로봇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해외시장 개척도 필요하다. 세계 로봇시장에서의 소리 없는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그 중심에 로봇산업 최대 수요국인 중국이 있지만 우리는 6억 3000만 인구와 꾸준한 성장을 구가하는 아세안 시장을 주목해야 한다. 최근 싱가포르와의 로봇산업 협력, 그리고 대(對)아세안 진출 전략 모색을 위해 기업 대표단과 함께 싱가포르를 방문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생산성 증대,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확보와 복지 서비스 강화, 고부가가치 산업 개발을 위해 로봇 및 자동화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또 2020년까지 자율주행버스를 상용화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마련하고 있는 데다 스마트공장 구축을 통해 제조업 분야에서도 생산성 향상과 효율적인 작업 환경 조성을 위해 다양한 로봇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신축 중인 창이공항과 창이병원은 물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하고, 최첨단 로봇들을 사회 서비스에 활용할 예정이다. 태국 정부도 자국의 로봇산업 육성을 위한 정책을 적극 시행 중이며, 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도 산업·교육·의료 분야에 대한 로봇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아세안은 로봇산업에서 거대한 시장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로봇산업은 산업 경쟁력 제고와 국민 복지 향상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수단이며 차세대 신성장 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도 세계 4대 로봇 강국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신기술 발전을 위한 부단한 노력과 함께 새로운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적극 노력해야 할 때다.
  • 옛 선비들과 떠나는 팔도강산 피서

    옛 선비들과 떠나는 팔도강산 피서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유몽인·최익현 외 지음/전송열·허경진 옮김/돌베개/372쪽/1만 8000원 조선의 명산 유람은 소수 특권층에게만 허락된 일이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사회·신분적 제약으로 전국을 유람하는 건 일반인들에게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무더운 여름, 사랑채에 누워 다른 사람들의 기행문을 읽으며 팔도강산을 유람한다는 ‘와유록’(臥遊錄)이라는 말도 나왔다. ‘조선 선비의 산수기행’은 우리나라의 팔도 명산 20곳을 직접 유람한 선비들이 후세에 글로 남겨 전하는 기행문이다. 당대 여러 문인들의 유산기를 모은 정원림의 선집인 ‘동국산수기’와 한국문집총간 등에서 글이 뛰어난 20편을 선정해 완역했다. 유람기는 내로라하는 조선의 대표 문장가들이 썼다는 점에서 유려하면서도 세밀한 필체와 묘사, 당시 풍속도와 여행 후기까지 풍부하게 담겨 있다. 이들이 온전히 두 발로 팔도강산을 유람하고 남긴 기록을 읽고 있으면 마치 당대 선비로 태어나 함께 유람하는 기분이 든다. 정조 때 영의정을 지낸 채제공의 관악산 기행문인 ‘유관악산기’는 1786년(정조 10년) 4월 13일 관악산 연주대에 오른 기록이다. 채제공은 관악산을 가리켜 “경기 지역의 신령한 산으로 선현들이 일찍부터 유람했던 곳”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이 유람기의 백미는 채제공의 허세다. 연주대 가는 길이 험해 무척 힘들다는 주변의 걱정에 채제공은 “천하만사가 마음에 달렸을 뿐이네. 마음은 장수이고 기는 졸병과 같으니, 그 장수가 가는데 졸병이 어찌 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라고 큰소리를 떵떵 친다. 그러나 연주대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기력이 다 빠져 엉금엉금 기어서 정상에 도달했다고 스스로 썼다. 현종 때 우의정을 지낸 미수 허목이 83세의 나이에도 연주대를 나는 듯 올라 신선처럼 보였다는데 자신은 죽을 고생을 다했다고 푸념한다. 영의정의 허세도 험준한 관악산에서는 통하지 않았나 보다. 1603년(선조 36년) 9월 15일 삼각산, 즉 북한산을 유람하고 쓴 선비 이정구의 기행문은 한양 도성의 풍경이 손에 잡히는 듯하다. 노적봉에 오른 그는 “도성의 백만이나 되는 집들도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았지만 잘 보이질 않았다. 다만 내 발아래로 밥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생생한 한 폭의 그림이 펼쳐져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었다. 한편 구름 틈으로 상투처럼 드러나 보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그것이 남산임을 알 수 있었다”고 썼다. 한라산 기행은 조선 시대에도 매우 귀했던 기행문이었다. 구한말 대표적인 우국지사 면암 최익현은 한라산에 대해 “동서가 200리요 남북으로는 100리가 넘는다”며 “말은 동쪽에서 나고, 절은 남쪽에 모여 있으며, 곡식은 서쪽에서 자라기에 적절하고, 뛰어난 사람은 북쪽에서 많이 나며 나라를 향한 충성심도 남다르다”고 산세와 지형지물에 대한 탁월한 안목을 드러냈다. 두 편역자는 사계절의 변화가 눈에 그려지도록 계절 순으로 여행기를 배치하고 조선 영조 때 제작된 해동지도를 도판으로 써 옛 지도를 읽는 재미도 더했다. 이 책을 읽고 직접 그 옛날 선비들이 밟았던 산을 찾아가 보는 건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피서법이 될 듯하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제주 자연 품은 水·風·石 미술관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제주 자연 품은 水·風·石 미술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한국명 유동룡)에게 제주는 제2의 고향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특히 좋아하는 바다와 바람, 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 제주를 작품으로 이타미 준은 청년 시절 일본의 예술운동인 모노하(物波)를 이끌었던 예술가들과 의식을 공유하며 생생한 감촉이 살아 있는 소재, 조형의 순수성이 돋보이는 건축을 추구했다. 1980년대까지의 작업은 날것 그대로의 소재가 드러나는 무겁고 강렬한 것이 많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형태와 소재에 대한 집착에서 비로소 벗어나 건축이 매개하는 관계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들게 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제주의 자연이었다. 제주의 자연을 건축에 들여놓음으로써 인간과 자연, 건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타미 준 건축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말년에 제주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건축이 매개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요하고 온화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라산의 서남단,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에는 초가집 지붕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포도호텔, 제주와의 인연이 시작된 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2001), 물과 바람과 돌이 주인공인 수·풍·석 미술관(2004),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닮은 방주교회(2009)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이타미 준 건축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제주의 자연과 일체를 이룬 이 건축물들은 평단의 관심을 받으며 그에게 무라노 고도 건축상, 김수근 건축상, 대한민국 건축대상 등 수상의 영예를 안겨 주었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이타미 준) ●자연에 반응하는 ‘건축미’ 있는 미술관 이타미 준이 총괄 설계를 맡았던 비오토피아 내에 있는 수·풍·석 미술관은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건축의 본질과 인간, 그리고 환경의 관계를 탐구했던 그의 건축철학을 오롯이 보여 준다. 입장료는 별도로 받지 않지만 미술관을 보려면 비오토피아 관계자의 안내를 받거나, 커뮤니티센터 내의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접근하기가 까다롭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타미 준은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제여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수·풍·석 미술관은 자연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 미술관은 물이 주인공이다. 평지에 들어선 입방체의 나지막한 건물은 고요하다. 담을 따라 들어가면 네모난 인공 연못이 만들어져 있고 지붕이 타원형으로 뚫려 있다. 물과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친다. 가만히 귀 기울이지 않아도 작은 돌을 깔아 놓은 연못의 물이 넘쳐 흘러내리는 소리가 ‘졸졸졸’ 들린다. 물소리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물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면 귀가 청량해지는 느낌이다. 수 미술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풀 숲 사이로 바람을 담은 풍 미술관이 나온다. 가운데로 들어가면 엇갈린 날개처럼 양쪽으로 두 개의 나무 건물이 있다. 두 건물 모두 좁고 길게 자른 나무판으로 만들어져 그 틈으로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판과 판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제주의 노래 같다.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바람을 느끼며 고요하게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안쪽에 둥근 돌을 설치해 놓았다. 돌 위에 앉으니 바람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다시 5분 정도 걸어가면 붉은 코르텐스틸(내후성강판)로 만들어진 석 미술관이 나온다. 완만한 경사지 아래쪽에 서 있는 입방체의 건물은 겉에서 보면 좀 실망스럽다. 붉게 녹슨 철로 되어 있고, 유리에 녹이 흘러내린 것을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그래도 반전은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요한 침묵과 빛, 그리고 돌 뿐이다. 석 미술관 천장과 벽의 모서리에 만들어 놓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깔린 돌을 비추고 있다. 빛이 돌에 비치는 모습이 압권이다. 내부는 따뜻해서 빛과 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강화 유리로 된 창에 녹이 흘러내리지만 않았다면 건물 외부에 놓인 돌을 바라볼 수 있으련만 아쉽다. 미술관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은 두손 미술관이다. 저 멀리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와 산방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핀크스 골프장 클럽하우스 등 곳곳에 그의 흔적 비오토피아에서 4㎞ 거리에 있는 핀크스 골프클럽에는 이타미 준이 설계한 클럽하우스 건물과 포도호텔이 있다. 이타미 준은 1998년 재일교포 사업가 김흥수 회장의 의뢰로 제주도 핀크스클럽하우스를 설계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제주도의 독특한 풍경과 바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신선한 공기에 매료됐고 그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아 제주의 자연을 더욱 빛나게 했다. 제주의 풍경에 반해 늘 가슴에 제주를 품고 살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제주 곳곳에 유작을 남기고 2011년 6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유해는 절반은 아버지 고향인 경남 거창의 선산에, 반은 마음의 고향인 제주에 뿌려졌다. lotus@seoul.co.kr
  • 7080, 추억 그 이상

    7080, 추억 그 이상

    채은옥·이정희·양수경·강영철…미니앨범 형태 신곡 발표 줄 이어 1970~80년대 인기 가수들의 귀환이 줄을 잇고 있다. 트로트 중심인 성인 가요 시장의 지형에 영향을 줄지 주목된다. ‘빗물’로 유명한 1970년대 인기 가수 채은옥(61)이 새달 초 데뷔 40주년 디지털 싱글을 선보인다. 살아오며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고백이 담긴 ‘고마워요’와 ‘입술’ 등 신곡이 실린다. 1974년 전국대학생보컬경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데뷔한 그는 통기타 전성 시절, 호소력 짙은 허스키 음색을 바탕으로 샹송 스타일의 노래를 불러 큰 사랑을 받았다. 1976년 발표한 데뷔 앨범의 ‘빗물’이 대표적이다. 2014년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심은경이 ‘빗물’을 부르는 장면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최근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헌정 음반에 참여하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을 풍미했던 가수 이정희(58)도 지난 13일 33년 만에 새 앨범을 냈다. 1979년 전국대학가요경연대회에서 ‘그대 생각’으로 대상을 받으며 데뷔한 뒤 ‘바이야’, ‘그 집 앞’, ‘그대여’ 등으로 큰 인기를 끌었다. 1983년 5집 발표 뒤 미국으로 떠났다가 1988년 결혼과 함께 은퇴했던 그는 지난해 국내로 복귀해 방송 활동을 재개하며 새 앨범을 준비했다. 라틴팝 ‘스윙’을 비롯해 트로트 ‘슬픈 사랑’, 보사노바 ‘파리에서’ 등 3곡을 담았다. 원조 발라드 퀸 양수경(49)도 이달 초 17년 만에 미니 앨범을 내놓고 활동을 재개했다. 스패니시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발라드 신곡 ‘사랑 바보’와 리메이크 3곡을 담았다. 1980년대 중반 KBS 신인무대로 데뷔한 그는 ‘바라볼 수 없는 그대’, ‘그대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사랑의 끝은 어디인가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등을 거푸 히트시키며 당대 최고의 여가수로 군림했다. 결혼 직후인 1999년 발표한 9집까지 활동했다. 1980년대 인기 혼성 듀엣 한마음의 강영철(59)도 지난달 말 싱글을 내고 30년 만에 활동을 재개했다. 걸출한 여성 보컬 양하영과 싱어송라이터 강영철이 짝을 이뤘던 한마음은 1981년 데뷔곡 ‘가슴앓이’를 비롯해 ‘갯바위’, ‘친구라 하네’ 등 록 냄새가 나는 포크로 큰 사랑을 받았다. 새 앨범에는 ‘바다의 초대’와 ‘바람과 나무’ 포크 두 곡이 담겼다. 앞서 시적 감성이 깃든 노랫말과 아름다운 기타 선율로 1970년대를 풍미했던 1세대 여성 포크 싱어송라이터 박인희(71)도 미국으로 떠난 지 30여년 만에 돌아와 전국 투어를 성황리에 이어 가고 있다. ‘휘파람을 부세요’와 ‘개여울’ 등 불멸의 히트곡으로 큰 사랑을 받다가 은퇴 뒤 화가로 변신한 정미조(67)도 지난봄 37년 만에 새 정규 앨범 ‘37년’을 내고 다시 음악인으로 활동 중이다. 왕년의 가수들의 잇단 컴백은 복고 바람에, 정규 앨범보다는 싱글 등 미니 앨범 위주로 바뀌어 가는 음악 시장의 흐름이 맞물린 결과로 보인다. 대중가요계는 반색하고 있다. 정미조의 새 앨범을 발매한 JNH뮤직의 이주엽 대표는 “자기 장르로 복귀한다는 자체가 더 고무적이고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 “일회성 컴백에 그치지 않고 꾸준한 활동으로 이어진다면 트로트 중심으로 왜곡된 성인 대중가요 시장이 다양해지며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그래픽 이혜선 기자 okong@seoul.co.kr
  • 제주의 자연을 품은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제주의 자연을 품은 수(水)·풍(風)·석(石) 미술관

     재일교포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한국명 유동룡)에게 제주는 제 2의 고향이었다.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가 특히 좋아하는 바다와 바람, 돌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이타미 준은 청년시절 일본의 예술운동인 모노하(物波)를 이끌었던 예술가들과 의식을 공유하며 생생한 감촉이 살아있는 소재, 조형의 순수성이 돋보이는 건축을 추구했다. 1980년대까지의 작업은 날 것 그대로의 소재가 드러나는 무겁고 강렬한 것이 많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형태와 소재에 대한 집착에서 비로소 벗어나 건축이 매개하는 관계의 문제를 심도있게 파고들게 된다. 그 계기가 된 것이 제주의 자연이었다. 제주의 자연을 건축에 들여놓음으로써 인간과 자연, 건축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이타미 준 건축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말년에 제주를 중심으로 한국에서 선보인 작품들은 건축이 매개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고요하고 온화하게 표현하고 있다.  한라산의 서남단, 서귀포시 안덕면 상천리 일대에는 초가집 지붕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포도호텔, 제주와의 인연이 시작된 핀크스골프장 클럽하우스(2001), 물과 바람과 돌이 주인공인 수·풍·석 미술관(2004), 구약성서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닮은 방주교회(2009) 등이 자리하고 있어 ‘이타미 준 건축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다. 제주의 자연과 일체를 이룬 이 건축물들은 평단의 관심을 받으며 그에게 무라노 고도 건축상, 김수근 건축상, 대한민국 건축대상 등 수상의 영예를 안겨주었다.  “사람의 온기, 생명을 작품 밑바탕에 두는 일, 그 지역의 전통과 문맥, 에센스를 어떻게 감지하고 앞으로 만들어질 건축물에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언어를 듣는 일이다.”(이타미 준)  이타미준이 총괄설계를 맡았던 비오토피아 내에 있는 수·풍·석 미술관은 건축과 예술의 경계를 오가며 건축의 본질과 인간, 그리고 환경의 관계를 탐구했던 그의 건축철학을 오롯이 보여준다. 입장료는 별도로 받지 않지만 미술관을 보려면 비오토피아 관계자의 안내를 받거나, 커뮤니티센터 내의 식당을 이용해야 한다. 접근하기가 까다롭지만 그만큼의 가치는 충분하다. 이타미 준은 “건축은 자연과 대립하면서도 조화를 추구해야 하고, 공간과 사람, 자신과 남을 잇는 소통과 관계의 촉매재여야 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수·풍·석 미술관은 자연에 시시각각 반응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수 미술관은 물이 주인공이다. 평지에 들어선 입방체의 나즈막한 건물은 고요하다. 담을 따라 들어가면 네모난 인공연못이 만들어져 있고 지붕이 타원형을 뚫려 있다. 물과 하늘과 땅이 조화를 이루는 건물 자체가 작품이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의 모습이 맑은 물에 그대로 비친다. 가만히 귀 기울이지 않아도 작은 돌을 깔아놓은 연못의 물이 넘쳐 흘러내리는 소리가 ‘졸졸졸’ 들린다. 물소리에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어우러진 자연의 소리를 들으며 물에 비친 하늘을 바라보면 귀가 청량해 지는 느낌이다.  수 미술관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풀 숲 사이로 바람을 담은 풍 미술관이 나온다. 가운데로 들어가면 엇갈린 날개처럼 양쪽으로 두개의 나무 건물이 있다. 두 건물 모두 좁고 길게 자른 나무판으로 만들어져 그 틈으로 불어오는 제주의 바람을 느낄 수 있다. 판과 판 사이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제주의 노래같다. 관람객들이 차분하게 앉아서 바람을 느끼며 고요하게 명상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안쪽에 둥근 돌을 설치해 놓았다. 돌 위에 앉으니 바람의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다시 5분정도 걸어가면 붉은 코르텐스틸(내후성강판)로 만들어진 돌 미술관이 나온다. 완만한 경사지 아래쪽에 서 있는 입방체의 건물은 겉에서 보면 좀 실망스럽다. 붉게 녹슨 철로 되어 있고, 유리에 녹이 흘러내린 것을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그래도 반전은 있다. 육중한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요한 침묵과 빛, 그리고 돌 뿐이다. 돌 미술관 천정과 벽의 모서리에 만들어 놓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이 바닥에 깔린 돌을 비추고 있다. 빛이 돌에 비치는 모습이 압권이다. 내부는 따뜻해서 빛과 돌을 느끼기에 더없이 좋다. 강화 유리로 된 창에 녹이 흘러내리지만 않았다면 건물 외부에 놓인 돌을 바라볼 수 있으련만 아쉽다. 미술관과 바로 붙어 있는 것은 두손 미술관이다. 저 멀리 보이는 서귀포 앞바다와 산방산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이다. 비오토피아에서 4㎞ 거리에 있는 핀크스 골프클럽에는 이타미 준이 설계한 클럽하우스 건물과 포도호텔이 있다. 이타미 준은 1998년 재일교포 사업가 김흥수 회장의 의뢰로 제주도 핀크스클럽하우스를 설계하면서 제주와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그는 제주도의 독특한 풍경과 바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 신선한 공기에 매료됐고 그 아름다움을 작품에 담아 제주의 자연을 더욱 빛나게 했다. 제주의 풍경에 반해 늘 가슴에 제주를 품고 살았던 건축가 이타미 준은 제주 곳곳에 유작을 남기고 2011년 6월 26일 세상을 떠났다. 재일동포가 아닌 한국인으로 살고자 했던 그의 유해는 절반은 아버지 고향인 경남 거창의 선산에, 반은 마음의 고향인 제주에 뿌려졌다.  글 제주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인왕시장 품고 중정으로 감싸 더불어 숨쉬다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인왕시장 품고 중정으로 감싸 더불어 숨쉬다

    # 네덜란드 ‘마켓 홀’ 원형이 70년대 한국에? 최근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한 건물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이름하여 마켓 홀(Market Hall·Markthal 혹은 Koopboog). 서울역 고가공원의 설계자로 이제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네덜란드의 건축가 그룹인 MVRDV가 설계했다. 간단히 말해서 시장과 아파트를 결합한 건물이다. 가구 수가 228개에 이르니 상당히 대형 건물이다. 지하에는 1200대의 차량을 수용할 수 있는 4개 층의 주차장도 있다. 시장과 주차장과 공동주거가 결합한, 가히 초복합 건물이라고 할 것이다. 2014년 개장 이후 세계적인 명소가 되었고 이 설계 사무소는 이 건물로 인해 가히 폭발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는 업계의 후문이다. 디자인 못지않은 개념의 힘이다. 건물의 사진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찡했다. ‘아, 또 좋은 개념 하나를 누군가가 선점했구나…’ 하는. 시장과 결합한 아파트, 흥미로운가? 이런 개념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있는가? 그런데 이것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에게도 유사한 개념의 건물이 있었다. 그것도 이미 1970년대에. 홍제동 일대는 충정로에 이어 한국 아파트의 실험장이었다. 특히 그중에서도 이 연재의 주제인 주상복합 건물, 즉 무지개떡 건축의 사례가 유난히 풍부한 지역이다. 홍제동과 충정로 둘 다 서대문구인데 앞으로 이 연재가 계속되면서 등장할 여러 사례가 서대문구에 있다. 관심 있는 독자들은 권역별로 답사를 다녀도 좋을 듯하다. 지난번의 유진 상가에 이어 이번에는 그 바로 옆의 또 다른 상가아파트를 소개한다. 통일로 맞은편에서 비스듬히 찍으면 두 건물이 한 번에 카메라 앵글에 잡힐 정도로 가깝다. 바로 원일 아파트다. 서울 서북부 지역의 거점 시장인 인왕 시장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본격적인 주상복합 건물이다. 효자 아파트를 이야기하면서 통인 시장을 빼 놓을 수 없듯이, 원일 아파트를 이야기하자면 인왕 시장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 두 아파트는 시장과 한 몸을 이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인왕산은 서울 구도심을 호위하고 있는 네 개의 산 중 하나지만 정작 구도심의 일부인 인왕산의 동쪽 사면, 즉 서촌 일대에서는 인왕산과 관련된 이름이 그다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쪽 즉 인왕산의 서쪽 사면인 행촌동, 무악동, 홍제동 일대는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다. 인왕 목욕탕, 인왕산 아이파크, 인왕 어르신 복지센터, 인왕산 어울림 아파트, 인왕궁 아파트, 인왕 아파트, 인왕산 현대 아파트, 인왕 빌라, 인왕산 벽산 아파트, 인왕 초등학교, 인왕 중학교…. 남쪽의 독립문 인근부터 끝없이 이어지는 듯한 ‘인왕’이라는 이름의 행렬 최북단에 있는 것이 바로 인왕 시장이다. 인왕 시장에 대한 소개글에 의하면 1960년에 자연발생적인 시장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시장 개설 허가를 받은 것은 1971년 11월이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광장 시장이나 일제강점기에 개설된 통인 시장만은 못하지만 나름 50년에 가까운 연륜을 자랑하는 시장이다. 서울 서북부 지역의 거점 시장으로서 상당한 규모다. 당연히 다양한 품목을 다루지만 농수산물과 잡화가 주 종목이다. 점포 수만 150개, 좌판은 200개에 달한다고 한다. 특이한 것은 가로를 따라 길게 형성된 것이 아니라 광장 형이라는 것이다. 원래 노천 시장이었으나 2003년 시장 전체에 약 3400㎡의 지붕을 덮고 바닥을 정비해서 새롭게 태어났다. 워낙 존재감이 있는 시장이라 인근 유진 상가 사이의 넓은 길의 이름도 ‘유진상가길’이 아닌 ‘인왕시장길’이다. # 돌출된 수평선으로 조형미와 실용성 잡아 인왕 시장 내에 여러 갈래로 나 있는 통로 중의 하나는 서쪽의 통일로 쪽으로 입구가 나 있다. 그런데 그 사이에 건물이 하나 있어서 시장은 건물 하부를 그대로 관통한다. 이렇게 시장을 제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특이한 건물이 바로 원일 아파트다. 여기서 건물의 규모를 키우고 시장과 결합된 정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면 적어도 개념적으로는 위에서 이야기한 로테르담의 마켓 홀이 된다. 건축물 관리대장에 의하면 원일 아파트는 지하 1층에 지상 6층 건물로서 총 67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건물의 주 용도는 예상대로 공동주택, 사무실, 점포다. 주소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294-36 외 3필지로 되어 있다. 사용 승인일은 1970년 5월 20일이다. 인근 유진 상가가 1970년 7월 11일인 것을 보면 거의 동시에 공사를 진행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완공된 셈이다. 앞에서 적은 것처럼 이 두 건물이 완공된 이듬해 연말인 1971년 11월에 인왕 시장이 시장 개설 허가를 받았으니 1970년대 초에 이 지역에 불어닥친 변화의 열풍을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한편 인터넷에서 원일 아파트를 검색하면 거의 대부분의 경우 완공 및 입주 연도가 1979년도로 나온다. 1970년이라는 건축물 관리대장상의 준공 연도를 정확히 밝히고 있는 경우가 오히려 예외적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시작된 오류가 반복해서 인용되어 퍼져 나간 경우인 것으로 짐작된다. 1979년이면 이미 한국에서 상가아파트가 거의 지어지지 않던 시기이기 때문에 더더구나 신빙성이 떨어진다. 통일로 변에서 본 원일 아파트는 전형적인 근대주의 디자인이다. 가지런한 수평띠 사이에 창문이 끼워져 있고 그 모듈 또한 일정하다. 북쪽, 즉 유진상가 쪽에 비상계단을 두기 위해서 한 번 모듈에 변화를 줬을 뿐이다. 언뜻 보면 완전히 수직선과 수평선으로만 이루어진 건물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렇지 않다. 매 층을 구분 짓는 수평 띠의 상단이 약간 위로 벌어져 있다. 마치 서구 고전 건축의 코니스(cornice), 즉 돌출된 띠를 연상케 한다. 시공사가 신라 건설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지 설계자의 존재는 알 길이 없으나, 나름 고전 건축에 대한 감각과 조예가 있는 건축가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시대의 여러 건물들을 보러 다니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현재의 쇠락한 모습을 근거로 건축의 질을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벗겨진 페인트와 엉클어진 전선, 덕지덕지 붙은 간판과 에어컨 실외기 등은 관리의 부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징후일 뿐이다. 원설계자의 의도와 생각은 비례와 공간 구성, 주변 맥락에 대한 태도 등 그 너머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원일 아파트의 조형적 섬세함은 북쪽 측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정면의 수평 띠를 약간 돌출시켜 측면 벽에 요철을 만든 후 그 두께 안에서 비상계단을 솜씨 있게 집어넣었다. 움푹 파인 콘크리트 벽의 육중한 질감과 금속의 세장한 비례가 대비되는 수준 높은 조형 감각이다. 게다가 그 위 옥상에는 매우 흥미로운 단면 형상의 구조물이 보인다. 나중에 실내와 옥상을 답사해 보면 이 구조물이야말로 원일 아파트를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 또 다른 요소임을 알게 된다. 지하 1층과 지상 1, 2층은 상가고 지상 3층부터 6층은 공동주거다. 그러니 전체 7개 층 중에서 상가가 3개 층이나 차지하니 복합의 비율이 매우 높다. 게다가 상가에는 점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의원, 소규모 사무실 등이 들어가 있다. 이상적인 무지개떡 건축의 복합 기능을 골고루 담고 있는 사례인 것이다. 기본적으로 5개의 모듈로 구성된 정면에서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역시 남쪽 두 번째 모듈의 1층 부분이다. 이 부분에는 점포가 없다. 그 대신 인왕 시장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 있다. 통로 안쪽으로는 지붕 덮인 인왕 시장의 거대 공간이 보인다. 통일로 변 점포의 행렬이 통로 안으로 꺾여 들어가면서 시장으로 연결되는 광경은 일종의 도시적 드라마다. 어쩌면 불과 8개월 남짓 후 같은 통일로 변에 완공된 서소문 아파트(1971)가 원일 아파트에서 이런 태도를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서소문 아파트 역시 주변 상권을 이어주는 도시적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 환기 잘되는 중정… 옥상 오르니 인왕산·안산 아파트 내부로 들어가 본다. 원일 아파트 역시 평면의 깊이가 26m에 달하기 때문에 중정의 존재가 예상되고 있었고 답사 전 항공사진으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시장 한쪽의 입구를 통해 상가 2층을 거쳐 3층으로 올라가니 역시 중정이 있었고 그 양쪽은 계단이었다. 폭이 다소 좁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천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건물 내부를 부드럽게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아래 시장의 소음은 여기서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아주 포근하고 조용한 중정이었다. 난간에는 화분들이 가득 올려져 있었고 사람과 물건의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망이 4층과 5층에 쳐져 있었다. 의외로 환기가 잘된다는 느낌이었다. 일반적으로 지붕이 있는 중정 아파트의 경우 환기가 잘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원일 아파트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어떻게 해결을 한 것일까? 그 의문은 옥상에 올라가 보고서야 풀렸다. 밖에서 본 조형적인 구조물은 바로 천창이었다. 그것도 콘크리트로 아주 육중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런데 이 천장은 중정을 막고 있는 것이 아니라 중정의 뚫린 부분 위를 덮고 있을 뿐이었다. 옆으로는 완전히 트여 있어서 공기가 자유롭게 흐를 수 있었다. 즉 원일 아파트의 중정은 세운상가(1968)나 낙원 빌딩(1969)처럼 닫힌 중정도, 동대문 아파트(1965)처럼 열린 중정도 아닌 반개방형 중정이었다. 환기와 채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었던 것이다. 옥상 위는 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고 바람 쐬러 올라온 거주민들이 한두 명 보일 뿐이었다. 맞은편이 안산, 그 반대편은 인왕산이니 경치 또한 훌륭했다. 1970년 또한 한국 아파트 역사에서 중요한 해였다. 서로 이웃인 원일 아파트와 유진 상가를 비롯해, 남아현 아파트, 원효 아파트, 삼각아파트 등 대표적인 상가아파트가 이해에 지어졌다. 일반 아파트로는 비운의 와우 시민아파트, 그리고 시민 아파트의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지어진 시범 아파트의 선두주자 격인 회현 제2 시범아파트 등이 역시 1970년에 지어졌다. 이처럼 원일 아파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탄생했다. 그것도 시장과의 결합이라는 주제를 충실하게 구현한, 대표적 주상복합 아파트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소개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의미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적도 없었다. 아쉽게도 이런 실험적인 시도들은 이후 단지형 아파트가 대세를 이루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파트는 ‘주거의 성’이 되었고 다른 기능들과의 유의미한 결합은 더이상 시도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는 기껏 만들어 놓았던 훌륭한 도시 주거의 유형 하나를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그런 유형의 한끝에 마켓 홀 같은 가능성이 있었다. ※귀중한 사진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신 MVRDV에 감사드립니다.
  • 종로야, 숲에서 놀자

    종로야, 숲에서 놀자

    서울 종로구가 유니세프 인증의 아동친화도시를 조성하는 등 아이들을 위한 도시로 거듭난다. 종로구는 25일 숭인동 산 58 숭인공원 안에 1만㎡ 규모로 자연과 함께 노는 놀이터인 유아숲 체험장을 조성한다고 밝혔다. 이미 2015년 삼청공원에 유아숲 체험장을 만들어 큰 인기를 끈 종로구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대규모 숲 체험장을 또 조성하기로 했다. 지난 3월에는 교사, 학부모, 유아로 구성된 이용협의체를 만들어 숲 체험장 예정지 현장 답사를 진행하고 설계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숭인공원 유아숲 체험장은 오는 8월 착공, 10월에 완공할 예정이다. 숭인공원 유아숲 체험장은 숲에서 즐겁게 책을 읽을 수 있는 다람쥐 북카페, 숲속 동물인 토끼와 다람쥐가 되어 자연과 교감하는 호기심 숲, 자연을 배우는 도토리 공작 숲, 숲속 모험놀이를 체험할 수 있는 숲속 요새 등으로 구성된다. 자연 속에서 맘껏 뛰고 구르고 놀면서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또 자연을 최대한 보존하고 인공시설물 설치를 최소화하는 등 기존 보행로 등과 조화롭게 체험장을 만들 예정이다. 구는 유니세프의 아동친화도시 인증에도 도전한다. 유니세프는 18세 미만의 모든 아동이 유엔아동권리협약에서 보장한 생존, 보호, 발달, 참여의 권리를 누리면서 행복하게 사는 곳을 아동친화도시로 인증하는데 현재 서울 성북구와 전북 완주군 2곳이 인증을 받았다. 김영종 구청장은 “기존의 지형을 최대한 보존해 주변과 조화로우면서도 숭인 지역의 특색을 살린 체험장을 조성하겠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이 자유롭고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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