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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족집게 드론 암살’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미국의 ‘족집게 드론 암살’에 박수를 보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하면 참 무섭고 끔찍한 일이다. 인류의 가치에 반하는 테러를 저지른 흉악한 이라도, 러시아와 북한, 중국의 지도자가 세계평화를 위협하더라도 몰래 다른 나라의 영토에 무인항공기나 드론을 들여 보내 암살하는 행동은 얼마나 정당할 수 있는가? 국제법으로 이런 공격은 얼마만큼 용인되고 옹호될 수 있는가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마냥 박수만 보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테러리스트나 전체주의 지도자를 비호하거나 할 생각은 꿈에도 없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 해가 뜨고 한 시간쯤 지난 오전 6시 18분쯤의 일이다. 극렬 테러집단 알카에다의 지도자로 악명을 떨치고 미국 정부에 현상 수배된 아이만 알자와히리(71)는 여느 아침과 다를 것 없이 자택의 발코니로 걸어 나왔다. 이집트 지하디스트로 잔뼈가 굵고 2001년 9·11 테러 공동기획자로 테러리스트들을 조직해 공격을 실행하도록 지휘한 그가 매일 아침 예배를 드린 뒤 버릇처럼 하는 행동이 발코니로 나와 바깥 공기를 쐬는 것이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두 발의 미사일이 날아와 그를 해쳤다. 집안에 있던 아내와 딸은 상처 하나 입지 않았다. 3일 영국 BBC는 어떻게 발코니에만 타격이 집중되는 놀라운 일이 가능했는지 살펴봐 눈길을 끈다. 미국은 과거 여러 차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해치는 오폭으로 비난을 듣기 일쑤였다. 미군이 사용한 미사일은 드론에서 발사된 공대지 미사일 헬파이어였다. 이 미사일은 헬리콥터, 지상의 차량, 선박 및 고정익 항공기를 포함한 다양한 플랫폼에서 발사될 수 있다. 미국은 2020년 초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이란 혁명수비대장 카셈 솔레이마니를 죽이기 위해 헬파이어를 사용했고, 2015년 시리아에서 ‘지하드 존’으로 알려진 영국 출생의 이슬람국가(IS) 지하디스트를 역시 이것으로 살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헬파이어가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주된 이유 하나는 정확성이다. 이 무기를 운용하는 사람은 멀리는 미국 본토에서도 에어컨이 가동되는 통제실에 앉아 무인 드론에 달린 카메라 센서가 위성을 통해 피드백한 타깃을 생중계 동영상으로 시청하면서 화면 위의 ‘타겟팅 브래킷’으로 타깃을 “옭아매고” 레이저를 찍을 수 있다. 미사일이 발사되면 목표물을 맞출 때까지 레이저를 이용해 그 경로를 따라갈 수 있다. 드론을 운용하는 요원은 행동에 나서기 전에 민간인 사상자를 최대한 적게 만들기 위해 명확하고 순차적인 절차를 따르게 된다. 과거 미군이나 미 중앙정보국(CIA)이 암살 임무에 나설 때도 군 변호사에게 협의를 요청하는 절차가 포함돼 있다. 표적 살해 전문가이자 시러큐스대학 보안정책법률연구소를 설립한 윌리엄 뱅크스 교수는 공무원이 민간인 사망 위험과 목표물의 가치를 균형있게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자와리히를 표적 제거한 것은 그 과정의 “모델 응용 프로그램처럼 들린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런 경우 다른 사람을 타격하지 않고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는 장소에서 그를 찾기 위해 매우 조심스럽고 면밀하게 한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알자와리히를 성공적으로 제거한 무기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버전인 헬파이어 R9X으로 타깃에 명중하기 전에 여섯 개의 칼날을 펼치게 돼 있는데 실제로 이 모델이 사용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방송은 밝혔다.2017년에 알카에다의 또다른 지도자이자 알자와히리의 부관 중 한 명이었던 아부 카이르 알 마스리가 시리아에서 R9X 헬파이어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미사일에 명중된 그의 차량 사진은 미사일이 지붕에 구멍을 뚫고 탑승자를 갈가리 찢어놓을 정도로 위력이 대단했지만 폭발이나 차량이 추가 파괴된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카불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미국이 오랫동안 꾸준히 정보를 수집해 공격의 정확성을 높였음은 물론이다. 미국 관리들은 발코니 습관과 같은 알자와히리의 “삶의 패턴”을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미국의 첩자들이 몇 달은 아니더라도 몇 주 동안 집을 지켜보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CIA 고위직었던 마크 폴리머로풀로스는 BBC 인터뷰를 통해 공격을 감행하기 전에 지상의 첩자와 신호 정보를 포함한 다양한 정보 방법이 사용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무인 항공기나 항공기가 몇 주 또는 몇 달 동안 교대로 타깃의 위치를 모니터링했으며, 들리지도 않고 지상에서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 사람이 원하는 인물이란 것을 거의 확신할 수 있는 뭔가가 필요하며, 민간인 사상자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부수적인 자유 환경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면서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못박았다. 폴리머로풀로스는 알카에다의 개별 인물들과 다른 테러리스트 표적들을 수십년 추적한 미국 정보기관의 경험으로부터 얻은 성과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이런 일에 탁월하다. 미국 정부가 20년 넘게 매우 잘해낸 것”이라면서 “그리고 그 일로 미국인들은 한결 안전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준비가 늘 계획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8월 29일 카불 공항 북쪽에 주차된 차량에 대한 드론 공습으로 10명의 무고한 인명이 희생됐다. 국방부 관계자는 “비극적인 실수”임을 인정했다. 몇년 동안 미국의 드론 공격을 추적해 온 민주주의방어재단의 선임연구원 빌 로지오는 알자와히리 제거는 미국 정부가 존재하지 않는 영토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이전의 암살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아프간과 국경을 맞댄 파키스탄을 과거 무인기로 공격했을 때는 아프간에서 날린 것이었고, 시리아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 우호적인 (쿠르드족이 장악한) 영토에서 수행된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미국이 목표 지점에 도달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지상에 자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은 훨씬 복잡했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철군한 뒤 알카에다나 IS 같은 무장집단을 첫 번째로 공격한 것인데 흔한 일이 아니다.”로지오 연구원은 아프간에서 알카에다 표적을 비슷하게 공격하는 일이 다시 일어나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표물이 부족하지 않다”면서“잠재적인 차기 지도자들이 그곳에 없다면 아프간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많다. 문제는 미국이 여전히 이것을 쉽게 할 능력을 갖고 있는지, 아니면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인가?”라고 덧붙였다. 9·11 테러가 일어나기 3년 전에 탄자니아와 케냐 주재 미국 대사관 동시 테러를 알자와히리가 일으켜 알카에다의 존재감을 주지시킨 뒤 CIA는 지난해 미군 철군 이후 그가 카불에 돌아와 부촌의 한 자택에 숨어지내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백악관에 보고했다. 6월과 7월 고위 관리들은 백악관 상황실에서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을 거듭 논의해, CIA 소속 드론과 헬파이어 미사일로 공격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알자와히리 제거 작전이 불러온 정치적 파장에 신중했던 조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25일 작전을 승인했다. 이렇게 24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오랜 추적 끝에 알자와히리가 제거됐다.
  • 러 시리아 난민 300만명 목숨에 거부권…이 아이에게 뭐라 답할까

    러 시리아 난민 300만명 목숨에 거부권…이 아이에게 뭐라 답할까

    러시아가 내전으로 고통 받는 시리아인 300만명에 대한 인도주의 지원을 연장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8일(이하 현지시간) 거부권을 행사했다. 터키 국경을 넘어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 사태를 촉발하기 위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분석이 서방에서 제기된다. 시리아 북서부는 바샤르 알아사드 정부에 반대하는 반군 세력에 장악돼 있다. 지하드의 동맹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과 터키의 지원을 받는 반군 단체들이다. 러시아와 가까운 알아사드 대통령은 터키 남동부 국경을 통해 건너오는 유엔의 식량 원조 프로젝트가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대해 왔다. 그런데도 2014년부터 달마다 1000대의 트럭이 난민들에 제공할 식량과 약품, 피난처 물품 등을 싣고 국경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유엔 안보리 결의안 덕이었다. 그런데 기존 결의안 종료일(10일) 이틀을 앞두고 연장 결의안이 부결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의 안나 포스터 기자는 얼마 전 유엔의 원조 호송대를 따라 시리아 깊숙이 들어간 기억을 되살려 이번 결의안 부결이 미칠 참상을 전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립주 시골에 들어선 알사다카 난민촌에 머무르는 소녀 움 알리는 일곱 아이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준비한다. 불길을 살리려고 골판지와 쓰레기들을 아궁이에 밀어넣는다. 유엔의식량 구호물품은 늘 턱없이 부족해 적은 재료를 넣고 끓여 양을 불린다. “매일 아이들은 알루미늄캔, 나일론 가방 및 다리미를 주우러 쓰레기 매립지에 간다. 그렇게 모아 팔아봤자 빵 네 덩어리, 한 끼 식사, 아침 식사 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원조는 감사한 일이지만 충분치 않다고 여겨왔는데 이제 그마저 끊기게 된 셈이다. 그렇잖아도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식량 구입 비용이 2년 새 8배로 올랐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은 시리아 내전 11년 만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난민들의 숫자는 더 늘어났다고 호소했다. 움 알리는 국제 원조 없이는 가족이 살아갈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국제 정세가 어떤 것인지 모르는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비정부기구(NGO)들은 입을 모은다. 처음 유엔 프로젝트가 시작했을 때는 이라크와 요르단 국경을 통해서도 식량 트럭이 시리아에 들어왔지만 러시아는 이 루트도 결의안 거부권으로 막아버려 지난 두 해 동안 밥 알하와(Bab al-Hawa)가 유일한 루트가 됐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나빠진 미국과 러시아 관계 때문에 이 루트마저 막힐 것이라는 전망 때문에 지난 몇 주 동안 더 많은 물품을 제공하기 위해 더 많은 트럭들이 국경을 넘었다. 그런데 이제 모든 상황은 난민들에게 훨씬 불확실해졌다. 유엔 안보리는 노르웨이와 아일랜드가 작성한 타협안을 먼저 표결에 부쳤는데 6개월만 연장한 뒤 자동으로 여섯 달 더 갱신하는 안이었다. 15개 안보리 이사국 중 13개국이 찬성했지만, 상임이사국인 러시아가 유일하게 거부권을 던졌다. 중국은 기권했다. 그 뒤 러시아는 내년 1 월에 적극적인 갱신이 필요한 6 개월 연장안을 내놓았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찬성하고, 미국·영국·프랑스가 반대했다. 나머지 10개국은 기권했다. 결의안이 통과되려면 15개 이사국 중 9개국 이상의 찬성과 함께 다섯 상임이사국 중 한 곳도 반대하지 않아야 한다. 유엔 안보리는 2011년 시작된 시리아 내전으로 위기에 직면한 북서부 주민 410만여명에게 2014년부터 1년 단위로 결의안을 연장하며 식량과 의약품 등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번 부결로 당장 10일 이후 구호물자를 반입할 수 없게 됐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러시아가 시리아 주민의 마지막 생명줄을 끊은 셈이라며 규탄했다. 린다 토머스 그린필드 유엔 주재 미국대사는 부결 직후 발언권을 얻어 “시리아 주민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뻔뻔하게 거부권을 행사한 국가 때문에 그들의 삶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러시아를 정조준했다. 러시아는 표면적으로는 터키를 통하는 유엔 지원 경로가 시리아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서방과 갈등이 깊어진 것이 배경에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드미트리 폴리안스키 유엔 주재 러시아 차석 대사는 6개월 연장안이 아니면 거부권을 다시 행사할 것이란 입장을 고수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앞서 외교관들은 “시리아로 가는 마지막 지원 경로가 막히면 수천명이 시리아를 탈출해 유럽과 중동의 난민 사태가 악화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고 뉴욕 타임스(NYT)는 전했다.
  • ‘적은 내부에’ 이슬람세력 간 다툼…IS-K 테러로 탈레반 35명 사상 [영상]

    ‘적은 내부에’ 이슬람세력 간 다툼…IS-K 테러로 탈레반 35명 사상 [영상]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 호라산’(IS-K)이 지난 주말 아프가니스탄 동부에서 발생한 연쇄 테러의 배후임을 자처했다. 20일 AF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ISIS-K는 전날 선전 매체를 통해 탈레반에 대한 연쇄 공격을 감행했다고 주장했다. IS-K는 18일과 19일 아프간 동부 잘랄라바드에서 탈레반 차량을 겨냥한 7건의 폭탄 공격을 수행했다고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18일 탈레반 차량 3대를 겨냥한 각기 다른 3건의 폭탄 공격과 19일 1건의 테러로 탈레반 대원 15명이 죽고 20명이 다쳤다. 이에 대해 탈레반은 어떠한 공식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IS-K는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파키스탄 지부다. 호라산은 아프간과 파키스탄 등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서방 국가에서는 이슬람국가를 이전 명칭인 ‘이라크시리아이슬람국가’(ISIS)로 부르고 있어, 이슬람국가 호라산 역시 ‘ISIS-K’로 약칭한다. IS-K 핵심 근거지는 이번 연쇄 테러가 발생한 잘랄라바드 낭가르하르다. IS-K는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주의자) 조직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단체로 꼽힌다. 상부 조직인 IS와 마찬가지로 초국가적 칼리프 체제(이슬람 신정일치 국가) 수립을 목표로 잔인한 민간인 학살을 행했다. 여학교와 병원을 공격하며 여학생과 임산부, 간호사를 죽였다. 2019년 8월 카불 결혼식장에서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해 63명의 목숨을 빼앗았고, 지난해 11월 카불대학에서 총격 테러를 감행해 20여 명을 숨지게 했다.IS-K와 탈레반은 같은 이슬람 수니파 무장 조직이지만, 종교와 전략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심각한 갈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탈레반 경쟁 세력으로 출범한 IS-K는 특히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한 탈레반의 온건 노선 선회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탈레반이 카타르 도하에서 미국과 평화협상을 추진했을 때 IS-K는 탈레반이 화려한 호텔에서 적들과 내통하며 지하드를 포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레반과 IS-K 사이 회색지대로 분석되는 탈레반 내 분파 하카니 네트워크가 아직 두 세력의 연결고리로 작동하고 있으나 유혈 사태는 계속되고 있다. 주말 연쇄 테러에 앞서 지난달 26일 카불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는 IS-K가 벌인 자살 폭탄 테러로 170여 명이 사망했다.
  •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서구식 근대화로 도시·농촌 양극화… 탈레반, 대중의 분노 부추겼다

    탈레반이 카불을 함락했을 때 서방 세계는 그 충격적인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람들은 여성에 대한 철저한 억압과 잔인한 통치가 꽤 규모 있는 나라에서 부활할 것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이역만리 타국의 격변이 서방 세계 전체를 흔드는 이유는, 그것이 서구인들이 강고하게 갖고 있던 어떤 믿음을 거스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프간의 상실로 서구인들 신념 ‘흔들’ 그 믿음은 3세기 전 즈음에 북대서양에서 태동한 계몽주의와 진보의 신화인데,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끝없이 확대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교리를 핵심으로 한다. 그 믿음은 북대서양 네트워크를 통해 탄생한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꽃을 피워 세계를 제패했다. 한편 믿음의 신봉자들에게 중앙아시아의 험준한 산악 지대에 자리한 아프가니스탄은 북대서양에서 발원한 그 신화가 아직도 도달하지 않았던 ‘암흑의 심장’이었다. 따라서 아프가니스탄의 상실이 서구인들의 마음에 그토록 크게 울려 퍼지는 것은, 단순히 전략적이거나 재정적인 손실의 차원이 아니라 신념이 흔들리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서구식 계몽주의는 패배한 것일까? 세계 최강의 군대와 가장 효율적 기업으로 무장한 미국은 왜 아프가니스탄에서 20년이라는 시간을 쓰고도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을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2021년의 아프가니스탄이 아니라 더 긴 시간축 속에서 더 넓은 공간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카불이 함락되기 100년 전, 서쪽의 터키는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무슬림 세계에서 전통적 권위를 인정받던 오스만 제국이 제1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멸망하려 하고 있었다. 연합국 주도로 이루어지는 제국의 분할에 맞서서, 청년 장교단과 민족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외세에 맞서는 봉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순히 반외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전통과 구습에 묶인 제국을 구하기보다는, 근대 계몽주의의 가치를 받아들인 새로운 공화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1921년은 그렇게 모인 터키 독립전쟁의 주역들이 최초로 헌법을 통과시킨 해였다. 터키의 새로운 엘리트들은 가톨릭 교회를 억누르고 세속주의를 확립시킨 프랑스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신헌법은 여러 개정을 거쳤고, 마침내 터키의 국체는 세속주의 공화국으로 확정됐다. 그 지도자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이름을 딴 이념인 ‘케말주의’가 공식화되는 순간이었다.●이란·이라크 등 근대화 프로그램 시작 터키에서 시작된 케말주의는 이슬람 세계 전역에서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세계는 19세기 이래로 ‘유럽을 압도하던 우리가 왜 지금은 유럽의 지배를 받게 됐는가’라는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던 차였다. 케말주의가 제시한 답은 간명했다. 서구 계몽주의를 따르자. 종교와 구습에 얽매인 노인들을 몰아내고, 무지몽매한 대중을 계몽해 근대적 공화국을 건설하자. 그렇다면 민족은 얼마든지 강력하게 재탄생할 수 있으리라. 이 같은 비전은 이름을 달리한 채, 시차를 두고 여러 국가에서 시도됐다.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케말주의에 깊은 감명을 받아 나름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계몽주의는 이집트의 영웅 나세르, 이라크와 시리아의 바스당 당원들, 파키스탄의 국부 무함마드 알리 진나가 모두 공유하는 신념이었고, 자민족을 부강하게 만들 약속된 도구였다. 신세대 엘리트 주도하의 근대화 프로그램은 여러 성과를 내었다. 근대적 고등교육과 기술교육의 혜택을 많은 이들이 누렸고, 그중에는 교육에서 오랜 기간 배제돼 온 여성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슬람 전통법인 샤리아 대신 서구식 법체계가 자리를 잡았고 영화나 가요를 비롯한 현대적 도시 문화도 태동했다. 이 국가들의 근대화 프로그램을 지원하러 미국, 소련, 유럽에서 날아온 고문단은 이런 발전상을 보며 흡족해했다. ●‘이슬람주의’라는 이념 태동 하지만 근대적 발전상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었다. 계몽주의에 기초한 서구 근대성은 많은 사람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반감의 대상이기도 했다. 그들은 서구의 힘에 굴복하고 전통과 신성을 내팽개친 새로운 엘리트를 혐오했고, 무기력하게 전통을 답습하는 전통 엘리트도 경멸했다. 이슬람 신학, 법학과 서구 학문과 공산주의 혁명론 등에 정통한 지식인과 활동가들은 근대적인 단체를 설립했고, 학술적 탐구와 정치적 구호를 담은 책들을 간행했으며, 세속주의 엘리트를 향한 저항을 선동했다. 세속주의가 이슬람 세계를 휩쓰는 것과 거의 비슷한 시간표에 따라 ‘이슬람주의’라는 이념이 태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움직임에 주목하는 이들은, 이슬람 세계의 바깥은 물론이고 안에서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들은 세속주의 엘리트가 추진하는 근대화가 충분히 진행되면 그런 ‘반동적’ 이념들은 금세 사그라들 것으로 예측했다. 따라서 1979년에 이란의 샤(황제)가 혁명의 물결에 밀려 퇴위하고,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주도하는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섰을 때 세계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란은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근대화라는 숙제를 착실히 이행하는 우등생으로 인식되곤 했다. 어쩌다가 근대화의 결과로 사라졌어야 할 이념이 새롭게 헤게모니를 잡게 됐을까? 사실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했다. 계몽주의와 세속주의를 주창한 엘리트들의 근대화는 사회를 충분히 바꾸어 놓기는커녕 서구식 근대화에 대한 극심한 반발만을 야기했다. 근대화의 혜택이 대부분 발전한 도시 지역에 집중되는 가운데, 내륙의 농촌에는 여전히 전통적 사회 질서와 문화가 잔존했다. 근대화에서 소외된 지역의 빈곤은 뿌리 깊은 문제였으나 도시 엘리트들은 촌락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의지도 부족했다. 한편 1945년 이래로 시작된 급속한 인구증가, 그에 따른 생태적 위기는 농촌 인구의 도시 이주를 부추기며 사태를 악화시켰다. 주요 도시의 화려함과 부유함, 그리고 서구식 생활양식은 도시에 유입된 빈민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문명적’ 생활양식을 향유하는 서구적 엘리트들은 여전히 종교라는 구습에 얽매이는 도시와 농촌의 빈민들을 깔보고 무시했다. 엘리트에게 빈민들은 ‘계몽의 빛’을 거부하며 무지에 속박된 이들이었다. ●이란 혁명, 파키스탄 이슬람화 자극 이슬람주의자들은 상황을 다른 각도로 보도록 도와주었다. 서구화된 엘리트들은 문명화된 것이 아니라 ‘타락한’ 것이었다. 미국은 소비자본주의와 성적 방종으로 문화를 더럽히는 국가였고, 소련은 무신론을 내걸고 이슬람을 탄압하는 국가였다. 따라서 타락한 엘리트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외세를 몰아내는 투쟁을 시작하는 것만이 알라가 제시한 성스럽고 올바른 길이었다. 혜택이 편향됐던 서구식 근대화는 도시와 농촌, 엘리트와 대중의 분열을 부추겼다. 마침내 1970년대를 거치며 이슬람 세계 각지에서 근대화 프로그램의 초라한 성적이 드러나자, 힘의 균형은 이슬람주의 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분개한 대중이 보기에 현실을 더 잘 설명하는 언어는 계몽주의가 아니라 이슬람주의였다. 따라서 1979년 이란 혁명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사건이 아니었다. 아랍 세계의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란의 시아파 혁명을 불신했으나, 유사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전망에 고무됐다. 그해 11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극단적 무장 단체가 메카의 대(大)모스크를 점거하고 타락한 사회에 대한 정화를 촉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충격을 받은 사우디 왕실은 대내적 불만을 잠재우고자 자신들 판본의 종교적 보수주의인 ‘와하비즘’을 더 강하게 선전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이란 혁명은 인접한 파키스탄이 이미 1977년부터 추진하고 있던 이슬람화를 더욱 급격하게 밀어붙이도록 자극했다. 쿠데타를 일으킨 지아 울 하크 장군은 이슬람주의 정책을 통해 대중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1979년의 마지막 나날에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진격하자,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의 관계는 놀라운 속도로 진척됐다. 미국과 파키스탄의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며 파키스탄은 소련군을 막아내는 방파제 역할을 맡으며 대규모 지원을 받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은 지정학 이상이었다. 석유 파동 덕택에 부유해진 사우디는 파키스탄에 경제적 지원을 해줌과 동시에 이념적 지원도 해주었다. 사우디가 지원한 마드라사(신학교)가 파키스탄 각지에 세워졌으며, 이곳은 급진 이슬람주의 전사들을 키우는 훈련소가 됐다.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국경 양편에 거주하는 파슈툰족은 이런 공통의 경험을 통해 급진화됐다. 한편 사우디는 아랍 세계 각지의 지하드 전사들이 ‘무신론 제국’인 소련을 상대하러 아프가니스탄에 집결하는 것도 지원했다. 그렇게 아프가니스탄의 계곡에 들어간 전사 중에는 토목공학을 전공한 부유한 집안의 청년인 오사마 빈라덴도 있었다. 지역에 근거한 이슬람 무장 세력과 글로벌 테러리즘을 주창하는 성전주의자들 간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은 현지의 이슬람주의 전사들은 소련군이 물러난 뒤에도 아프가니스탄을 이슬람화하겠다는 신념으로 뭉치며 ‘탈레반’이 됐다. 탈레반은 꾸준히 시골을 공략했다. 그들은 도시의 부패와 ‘타락’을 몰아내고 마을 주민에게 질서, 안정, 이슬람의 회복이라는 언어로 호소했다. 탈레반의 힘은 무기와 아편 판매로 모은 돈만큼이나, 그들 고유의 언어와 약속에서도 나왔다.●미군이 탈레반에 패배한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미군은 왜 탈레반에 패배했을까? 그 이유는 탈레반의 신념을 형성하는 긴 역사와 배경에서 설명될 수 있다. 도시에 거주하는 세속주의 엘리트들은 배후지의 농촌, 혹은 도시의 빈민과는 유리된 삶을 살았으며 그들 사이의 문화적 분리는 크나큰 정치적 불만을 촉발했다. 승리와 패배를 결정한 것은 도시 바깥에 뻗어 있는 광활한 대지, 거기에 펼쳐진 수많은 마을의 동향이었다. 그 마을의 주민들은 애초에 계몽주의에 근거한 비전에 공감하지 못했으며, 천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누적돼 온 관습과 그와 유사한 깊이의 신앙에 오히려 더욱 공감했다. 카불과 헤라트에서 일어난 계몽주의의 패배는 그렇기에 일찍이 1979년의 이란과 2013년 무렵의 터키에서 벌어진 패배와도 일정하게 흡사한 점이 있다. 카불의 함락은 서구적 근대화라는 비전이 이 지역에서 국민적 발전을 가리키는 빛이 아니라 도시와 시골, 엘리트와 대중을 가르는 단층선에 불과했다는 고질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또다시, 아주 극적인 모습으로 남긴 셈이다. 임명묵 작가
  • 미국 떠난 아프간에 360억원·백신 원조 나선 중국

    미국 떠난 아프간에 360억원·백신 원조 나선 중국

    중국과 미국의 외교 수장이 각각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탈레반에 대해 전혀 다른 접근법을 보였다. 미국 국무부 장관 안토니 블링컨은 독일에서 미국의 서구 동맹과 함께 아프간에 대해 논의하는 외교장관 회담을 가졌다. 반명 중국은 아프간의 이웃국가인 파키스탄, 이란,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과 지난 8일 회담을 열었다. 지난 7일 아프간 임시 정부 탈레반은 수도 카불에서 내각을 구성해 각 부처 장관 이름을 발표했다. 왕이 중국 외교장관은 중국이 아프간 원조에 2억 위안(약 362억원)을 내놓겠다고 했다. 여기에 300만회 접종 분량의 코로나19 바이러스 백신과 음식도 포함했다. 왕이 장관은 탈레반에게 테러리스트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촉구하며, 중국은 아프간 인접 국가에 흩어져있는 테러리스트들을 색출해서 단속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 장관이 언급한 테러리스트는 위구르족 지하드 조직으로 신장 위구르족 자치구 독립운동을 벌이는 튀르키스탄 이슬람당(ETIM) 등을 가리킨다. 1990년 부터 2001년 사이에 200차례에 걸친 테러 행위를 벌였으며 2001년에 일어난 9·11 테러를 계기로 유럽 연합, 중국 등에 의해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지난해 11월 ETIM을 테러 조직 명단에서 제외했다.왕 장관은 “아프간에 기지를 둔 몇몇 국제 테러 조직이 이웃 국가에 잠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며, 탈레반이 이들 테러 조직과의 관계를 끊고 국경을 엄중하게 단속하라고 촉구했다. 이어 중국은 아프간 재건을 위해 도울 것이라며, 테러리스트와 불법 마약 거래 소탕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와칸 회랑으로 불리는 아프간과 중국간 국경 통행도 식량 배달 등을 위해 열어 놓겠다고 다짐했다. 중국은 아프간과의 화물 열차 운행을 재개할 계획임을 밝히며, 미국은 아프간 난민을 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반면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유럽에서 20개 국가와의 회담을 통해 탈레반이 인권, 테러리즘과의 전쟁, 포괄성, 안전한 통행 등의 공공 의무를 다할 것을 주장했다. 중국과 러시아도 이번 회담에 초청됐지만 양국 모두 참여하지 않았다. 불참 이유에 대한 질문에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국제 사회는 아프간 문제에 대한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만 답했다. 이어 다자간 회담은 공허한 말잔치 보다는 실질적인 결과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해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간 논의 모임 참여 가능성을 차단했다.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중국이 탈레반 재정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중국이 아프간 원조를 시작할 수는 있겠지만, 다른 국가들도 책임을 나눠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팔레스타인 죄수 6명 ‘쇼생크 탈출’… 숟가락으로 땅 파 이스라엘서 탈옥

    팔레스타인 죄수 6명 ‘쇼생크 탈출’… 숟가락으로 땅 파 이스라엘서 탈옥

    경비가 삼엄한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수감자 6명이 몇 개월 동안 땅굴을 파 탈옥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영화 쇼생크탈출을 연상시키는 사건이다. BBC는 6일(현지시간) 이스라엘 북부 벳샨의 길보아 교도소에서 팔레스타인 무장독립 투쟁을 이끈 혐의로 수감 중이던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 6명이 밤새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사라진 수감자 중 1명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파타당의 군사조직인 알아크사 순교 여단의 전직 사령관이며 다른 5명도 서안지구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들이다. 이들 중 5명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었다. 당국은 오전 4시에 인원점검을 하다 이들의 탈출 사실을 확인했다. 교도소 내부 수색 이후 이들이 탈출로로 쓴 듯한 화장실 바닥의 구멍이 발견됐다.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크기의 구멍은 교도소 담장 밖까지 연결돼 있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수감자들이 포스터 뒤에 감추어 둔 녹슨 숟가락으로 몇 개월 동안 몰래 땅굴을 팠다고 전했다. 이들은 또 휴대전화를 몰래 반입하는 등 외부의 조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400여명의 팔레스타인 출신 수감자를 구금 중인 길보아 교도소는 이들의 탈옥 사건 뒤 수감자들의 방을 재배치하며 경비를 강화했다.
  • 영화 쇼생크 탈출?…팔레스타인 수감자들, 숟가락 땅굴로 이스라엘 감옥 탈출

    영화 쇼생크 탈출?…팔레스타인 수감자들, 숟가락 땅굴로 이스라엘 감옥 탈출

    경비가 삼엄한 이스라엘 교도소에서 팔레스타인 출신 수감자 6명이 몇 개월 동안 땅굴을 파 탈옥하는 사건이 6일(현지시간) 밤 동안 벌어졌다. 이스라엘 군경은 헬기와 드론(무인기)을 동원해 수색에 나선 반면 팔레스타인 자치구에선 축하 행진이 펼쳐졌다. BBC는 이날 이스라엘 북부 베트셰얀의 길보아 교도소에서 반이스라엘 독립투쟁을 이끈 혐의로 수감되어 있던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 6명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사라진 수감자 중 1명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주도하는 파타당의 군사 조직 알 아크사 순교 여단의 전직 사령관이다. 다른 5명도 서안지구에서 활동하던 이슬람 지하드 조직원이다. 탈옥한 6명 중 5명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당국은 인원점검을 하던 오전 4시쯤 이들의 탈옥 사실을 확인했다. 곧바로 교도소 내부 수색에 나선 당국은 탈출로로 추정되는 화장실 바닥의 구멍을 발견했다. 구멍으로 연결된 땅굴은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빠져나갈 크기로, 교도소 담장 밖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수감자들이 포스터 뒤에 녹슨 숟가락을 숨겨 놓고, 교도관 눈을 피해 틈틈이 몇 개월 동안 땅굴을 팠다고 전했다.이스라엘 나프탈리 베네트 총리는 이들의 탈옥 사건을 “중대 사건”이라며 전체 보안 부서에 추적 명령을 내렸다. 반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이슬라믹 지하드는 탈옥 수감자들을 “영웅”이라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우리 용맹한 군인들의 승리”라고 칭하며 환호했다. 팔레스타인 거주지에서는 이들의 탈옥을 축하하는 행진이 열렸다.
  • 카불 폭탄테러 현장 아비규환…피투성이 시신 더미에 절규

    카불 폭탄테러 현장 아비규환…피투성이 시신 더미에 절규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공항 인근에서 26일(현지시간) 연쇄 폭탄테러가 발생해 공항이 아비규환 상태에 빠졌다.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테러의 배후로 자처하고 나선 가운데 소셜미디어에는 테러 직후 촬영한 영상이 확산하며 참혹한 현장과 절규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공개된 영상에는 공항 애비게이트 부근 도랑에 각종 쓰레기와 피투성이가 된 시신들이 한데 쌓여 오수에 잠겨 있었고, 담벼락 위에도 시신이 널브러져 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그 사이를 걸어다니며 쓰러진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거나, 시신 더미에서 누군가를 끌어내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어떤 이들은 현실이 믿기지 않는 듯 참사 현장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영상을 촬영하던 남성은 이러한 아비규환 상황을 찍으면서도 끝없이 흐느꼈다. 이날 미국 CBS 방송은 아프간 보건 당국자를 인용해 이번 테러로 사망자가 90명, 부상자가 150명으로 늘어났다고 전했다. 미 당국은 추가 테러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 관리들은 이번 공격의 배후로 ‘이슬람 국가 호라산’(IS-K, Islamic State Khorasan)를 지목했다. IS-K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아프간 지부 격으로 ‘ISIS-K’, ‘ISIL-KP’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호라산’은 이란 동부, 중앙아시아, 아프간, 파키스탄을 아우르는 옛 지명이다. IS는 시리아와 이라크 영토 상당 부분을 장악했다가 미군과 국제동맹군에 밀려 세력이 크게 약화했다. 이후 IS는 여러 다른 나라로 진출했는데, 그중에서도 아프간에 진출한 뒤 2015년 1월 IS-K라는 조직을 만들고, 끊임없이 테러를 저질렀다. IS-K는 2019년 8월 카불 서부 결혼식장에서 자살폭탄테러를 감행해 무려 63명의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IS-K는 탈레반과 같은 수니파 무장 조직이지만, 탈레반이 미군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데 비판적 입장을 보여왔다. 또 시아파 대응에 있어서 이견을 보여 대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을 당시 알카에다가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과 대조적으로 “미국과의 거래로 지하드 무장세력을 배신했다”며 탈레반을 맹비난했다.
  • 카불 참극 일으킨 IS 호라산은 극렬 분파,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와도 인연

    카불 참극 일으킨 IS 호라산은 극렬 분파, 탈레반 하카니 네트워크와도 인연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두 차례 자살폭탄과 로켓 공격을 감행했다고 스스로 천명한 이슬람국가 호라산지방(ISKP)은 IS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지부라고 생각하면 된다. 호라산(Khorasan)은 흔히 두 나라를 묶어 부르는 이름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하드(성전) 무장조직 가운데 가장 극렬한 분파라고 영국 BBC가 소개했다. 이 조직은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가장 맹위를 떨치던 2015년 1월 만들어졌다. IS는한때 칼리프 제국(caliphate)을 수립했다고 선언할 정도로 득세했으나 미국이 이끄는 동맹국들에 패퇴해 해체되다시피 했다. ISKP는 아프간과 파키스탄의 지하드 분자들 중 극렬한 주장을 펴 아프간 탈레반에서 자리를 못 잡아 밀려난 이들이 힘을 모아 만들었다. 최근 들어 여학생 학교나 병원, 심지어 조산원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아 임산부와 간호원들을 살해하는 끔찍한 만행으로 지탄을 받아왔다. 관심을 아프간에만 한정하는 탈레반과 달리, 이 그룹은 혁명의 수출에 관심이 많아 서방이나 국제조직, 인권단체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파키스탄에로 마약과 인신매매 통로가 되는 동부 낭가하르주가 근거지다. 가장 많았을 때는 3000명의 전사를 거느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미군과 아프간 보안군, 심지어 탈레반과 충돌하는 과정에 상당한 타격을 입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이들이 완전히 탈레반에 적대 세력이라고 간주할 수만은 없다. 탈레반의 한 분파인 하카니 네트워크와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워낙 두 분파가 밀접해 최근에는 탈레반과도 상당한 연결고리를 갖는 것으로 본다. 하카니 네트워크의 실질적 지도자 칼릴 하카니가 현재 미군이 통제하는 공항 밖의 모든 카불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 그의 목에는 미국 등이 설정한 현상금 500만 달러가 걸려 있다. 아시아태평양재단에서 일하는 사잔 고헬 박사는 몇년째 아프간의 무장조직 연결망을 모니터링하고 있는데 “2019년부터 올해까지 테러 공격들은 ISIS-K, 탈레반의 하카니 네트워크, 파키스탄의 다른 테러조직들이 협력한 결과”라고 단언했다. 탈레반이 지난 15일 카불을 장악했을 때 풀이차르키 교도소에 수감된 많은 죄수들을 풀어줬는데 이들 중에는 IS와 알카에다 전사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이들은 현재 달아난 상태다. 하지만 ISIS-K는 탈레반이 성전과 전장을 포기한 채 카타르 도하의 “번지르르한 호텔들(posh hotels)”에서 평화협정에 도장이나 찍고 있다고 비난한다. IS 무장조직원들은 이제 막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 정부에 중대한 안보 위협으로 대두했다. 서방 정보기관들과 회의를 한 사실까지 공개하는 등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탈레반 지도부가 어떻게 대처할지 주목된다.
  • [영상] “하마스가 폭탄풍선 날렸다”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공습

    [영상] “하마스가 폭탄풍선 날렸다” 이스라엘군 가자지구 공습

    이스라엘군(IDF)이 무장 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공습했다. 24일 AFP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23일 늦은 밤 가자지구에 전투기 폭격을 가했다. 22일 새벽에 이은 또 한 차례의 공습이다. 이스라엘군(IDF)은 성명을 통해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 있는 하마스 무기공장과 자발리아에 있는 지하터널 입구, 세자이야에 있는 지하 로켓포 발사대에 폭격을 가했다”고 발표했다. 익명의 팔레스타인 소식통 역시 가자시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가 이스라엘군 공습으로 파괴됐다고 확인했다. 다행히 이번 공습으로 인한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상당한 재산피해를 입었다고 설명했다.보도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스라엘군 전투기 폭격에 기관총 사격으로 대응했다. 이스라엘군도 하마스 대응 사격 후 지하터널 입구를 추가로 공격했다. 더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공개한 영상에서는 23일 밤 이스라엘 공습을 받은 가자지구 남부 칸 유니스에 불덩어리가 솟구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스라엘군은 이번 공습에 대해 “하마스가 이스라엘 영토로 폭탄풍선을 날린 것에 대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이스라엘 소방당국에 따르면 22일 가자지구에서 최소 9개의 폭탄풍선이 가자지구 접경 에시콜 지역으로 날아와 여러 건의 화재가 발생했다.폭탄풍선은 헬륨 풍선에 기폭 장치를 붙여 만들며, 별도의 발사 장치는 필요 없다. 군사 보복을 유발하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할 수 있는 가장 저렴한 방법으로 하마스가 자주 활용하고 있다. 기폭 장치에 불을 붙여 하늘로 띄운 폭탄풍선은 바람을 타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 영토로 날아간다. 이렇게 날린 폭탄풍선이 태운 농지 및 자연보호구역은 2018년부터 올해 5월 25일까지 14.79㎢에 달한다. 다만 인명 피해를 일으킨 사례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난 5월 11일 간의 전쟁이 끝난 뒤에도 하마스의 폭탄풍선 도발이 계속되자 이스라엘군도 보복에 나섰다. 6월 하마스 측 지하드(이슬람 성전) 운동 지지자들이 폭탄풍선을 날렸을 때 이스라엘군이 이례적인 보복 공습으로 맞대응 하면서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지난 16일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을 향한 로켓포가 발사된 후에는 무력 충돌 양상이 더욱 짙어졌다. 당시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서 날아온 로켓포를 아이언돔 미사일로 요격한 것으로 알려졌다.21일에는 가자지구 경계 지역에서 발생한 팔레스타인 시위대 폭력 시위를 진압하던 이스라엘 국경 경찰 1명이 시위대가 쏜 총에 머리를 맞아 중상을 입었다. 이에 이스라엘군은 22일 새벽 가자지구 내 하마스 무기공장과 저장소 등 4곳에 폭격을 가했다. 이스라엘 채널12는 이스라엘 보안 소식통 말을 인용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이 가자지구에서의 전면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우려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시위가 재개됨에 따라 이스라엘군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도 불가피해졌으며, 사상자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5월 전쟁 때는 팔레스타인인 260명과 이스라엘인 13명 등 수백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바 있다.
  • 미 전문가 “북한 문제, 아프간 사태로 우선순위 더 밀릴 것”

    미 전문가 “북한 문제, 아프간 사태로 우선순위 더 밀릴 것”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한미 협력방안 모색’ 아프가니스탄 사태로 인해 미국 내에서 북한 문제가 우선순위에서 더욱 밀리게 됐다는 미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익연구소 한국담당 국장은 19일 통일연구원이 온라인으로 개최한 한미 싱크탱크 공동세미나에서 “아프간 철군으로 피랍사태나 난민사태 등 큰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향후 몇 개월간 북한의 우선순위는 그만큼 밀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과 경제 악화 등으로 대북 협상의 중요도가 더 밀리는 상황이라며 북미관계는 “단기, 중기적으로는 굉장히 비관적”이라고 전망했다. 1994년 북핵 위기 당시 미측 수석 협상 대표와 국무부 정치군사 담당 차관보를 지낸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교수도 현실적으로 현 상황에서 북미 대화가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갈루치 교수는 “조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의 협상을 시작하게 되면 미국 내부적으로 공화당의 큰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어떠한 조치를 취하든 간에 양보로 비춰지기 때문에 비판을 피할 방법이 없다. 이게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비핵화 목표에 대해서도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카지아니스 국장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한다는 것은 사실 좀 잊어야 할 것 같다”면서 어떤 형식으로든 대화 재개를 위한 실용적 입장을 취할 것을 주문했다. 그러면서 “북한이 핵무기 관련 기술을 지하드나 테러리스트 단체 등 어떤 세력에게도 판매하지 않도록 하는 목표를 달성한다면 비핵화를 달성하지 못하더라도 미국 국민들은 이를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재단 대표는 “제재 해제나 완화, 관계 정상화, 평화, 경제지원 등 북한이 원하는 부분을 다루지 않고서는 상황을 타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준형 전 국립외교원장은 “동시 행동을 불러오기 위한 선제적 마중물로 인도적 지원을 통 크게 할 필요가 있다”면서 내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3주년과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삼아 북미 간 비밀접촉 및 협상 가능성을 제시했다. 노규덕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공유할 수는 없지만, 한미 간 인도주의 차원의 대북협력 등 다양한 대북 관여에 대해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면서 “북한을 대화로 나오도록 이끄는 방법이 무엇이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성 김 미 대북특별대표 등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어느 수준의 인센티브를 줄지는 정무적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50년 동안 팔레스타인 과격파 이끈 아메드 지브릴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50년 동안 팔레스타인 과격파 이끈 아메드 지브릴

    1970년대와 1980년대 이스라엘을 겨냥해 공중납치, 폭탄 테러 등을 기획하고 지휘한 팔레스타인 과격 지도자 아메드 지브릴이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8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가 이끌던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총사령부(GC)는 지브릴이 몇달 동안 숙환으로 고생하다 다마스쿠스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7일(현지시간) 밝혔다. 사망 일시나 원인 등 구체적인 사항은 알려지지 않았다고 AP 통신이 전했다. 다마스쿠스를 거점으로 다른 팔레스타인 분파를 이끄는 칼레드 압둘메지드는 고인이 생전에 심장이 좋지 않았다고 전했다. 팔레스타인 아버지와 시리아 어머니 사이에서 1938년 영국이 통치하던 자파에서 태어난 그는 시리아로 이주해 시리아 육군 장교로 임관하고 국적도 취득했다. 1950년대 말 PFLP를 창설햇는데 이념 분쟁으로 분열하고 말았다. 1968년 그는 친시리아 성향의 PFLP-GC를 세운 뒤 짧은 기간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와 결합했다가 1974년 야세르 아라파트와 첨예한 갈등을 빚은 끝에 결별했다. 지브릴은 미국이 중재한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에 격렬히 반대했다. PLO에 견줘 정치적 영향력이 덜한 만큼 과격한 테러에 매달렸다. 1968년 엘 알 제트기 공중납치, 이듬해 스위스 취리히 공항에서의 기관총 난사, 그리고 1970년 취리히를 출발해 텔아비브로 향하던 스위스항공 여객기 안에 시한폭탄을 장치해 4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 그룹은 또 레바논 기지들에서 이스라엘을 겨냥한 공격을 감행했다. 1982년 레바논 침공 때 이스라엘 병사 셋을 억류한 뒤 3년 뒤 1100여명의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죄수들을 맞교환한 일로 눈길을 끌었다. 1987년에는 그의 부하 둘이 행글라이더를 이용해 레바논 국경을 넘어 이스라엘에 들어가 6명의 이스라엘 병사를 살해하는 색다른 테러 공격을 펼쳤다. 이 공격은 인티파다(봉기)를 연 첫 도화선으로 지금도 평가받고 있다. 물론 이 분파는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로부터 테러 단체로 인식되고 있다. 고인의 아들 지하드는 2002년 베이루트에서 살해됐고, 이 그룹은 이스라엘의 소행이라고 비난했다. 당시 지하드는 PFLP-GC 군사조직을 지휘하고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여파로 시리아 내전이 발발하자 그의 분파는 바샤르 아사드 정부군을 지원해 다마스쿠스 야르묵 캠프에 있던 반군 세력과 전투를 벌였다. 유족으로는 네 딸과 세 아들을 남겼다.
  • 무슬림으로 강제 개종당한 15세 소녀, 성폭행당하고 결혼까지

    무슬림으로 강제 개종당한 15세 소녀, 성폭행당하고 결혼까지

    인도에서 미성년자 소녀를 성폭행하고 강제 개종하게 해 결혼식까지 올린 이슬람교 가족의 범행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현지시간) 타임스오브인디아 등 현지매체 보도에 따르면, 지난 27일 우타르프라데시주 피로자바드에서 한 20대 남성이 아버지와 친척의 도움으로 15세 소녀를 이슬람교로 강제 개종하게 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됐다. 피해 소녀는 이날 체포된 20대 남성과 결혼식까지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람가르 경찰은 피해 소녀의 아버지로부터 고소장을 접수받고 하스맛 나가르에 있는 민가에서 소녀를 구조하고 세 남성을 체포했다. 이에 대해 아쇼크 쿠마르 경관은 “가해 남성 세 명 중 살림(21)이라는 이름의 한 남성은 피해 소녀의 아버지가 구자라트주 바루치에서 운영하는 공장 부지 내 식당의 단골 고객이었다”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살렘은 지난 6일 피로자바드에 있는 한 친척 집으로 피해 소녀를 유인해 데려갔다. 살림과 그의 아버지 압둘 가파르 그리고 그의 매형(또는 처남)인 라만은 소녀에게 종교를 힌두교에서 이슬람교로 바꾸도록 강요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피해 소녀를 안전하게 구조해 병원으로 옮겨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한 검사를 받게 했다면서도 소녀가 성폭행을 당해 강제로 개종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당 사건에 관한 추가 조사가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도에서는 우타르 프라데시주 등 8개주에서 강제 개종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이슬람교 남성이 개종을 목적으로 힌두교 여성과 결혼하는 이른바 ‘사랑의 지하드’에 맞서기 위해 만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123rf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자말 카슈끄지와 오사마 빈라덴의 인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자말 카슈끄지와 오사마 빈라덴의 인연

    2018년 10월 2일(이하 현지시간)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암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와 9·11 테러를 기획해 2011년 5월 8일 미군의 참수 작전에 스러진 오사마 빈 라덴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88년 5월 4일 영자지 아랍 뉴스에 실린 빛바랜 흑백사진부터 보자.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옛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려는 이슬람 전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젊은 기자로서 자말은 세계적인 특종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를 초청한 사람이 같은 사우디인으로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는 오사마였다. 해서 자말은 로켓발사기를 자랑스럽게 어깨에 건 채 오사마와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기사 제목은 ‘아랍 젊은이들이 어깨를 결고 무자헤딘 전쟁에 나선다. 자말은 오사마의 이름을 ‘가명 아부 압둘라’라고 표기하며 아프간 전쟁이 무슬림 세계 전체로 번져 나가는 지하드(성전)의 첫 발이 될 것이란 그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9·11 테러의 기획자로 그의 이름을 듣기 13년 전의 일이다. 야후! 뉴스의 팟캐스트 ‘음모의나라(Conspiracyland)’는 21일 자말 카슈끄지를 다룬 세 번째 편 ‘자말과 오사마’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기사는 자말이 과연 아프간에 갔을 때 순수하게 특종 욕심에 눈먼 기자였을까? 아니면 아랍 전사들의 대의에 공감해 그곳에 갔던 것일까? 질문부터 던진다. 답은 둘 다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오사마의 테러 음모를 용인하지 않았지만 오사마와 돈독했던 자신의 과거를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오래 일한 동료는 자말이 죽는 날까지 오사마와 “갈등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자말은 오사마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은 몇 시간 뒤 트위터에 “아부 압둘라 당신의 가슴아픈 얘기를 듣고 쓰러져 울었다. 분노와 야심에 굴복하기 전 아프간에서의 아름다운 시절, 당신은 용감했고 아름다웠다”고 적었다. 자말은 1970년대 말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유학했다. 사우디 출신 동창들이 수백명 있었다. 신문방송학 전공이었으나 전공보다 독실한 무슬림이 되는 일이 우선이었다. 테러호트의 이슬람 센터에서 오마르 파룩과 만났는데 이슬람 개종자였다. 자말은 사우디인들이 경원시하는 시아파 무슬림과도 곧잘 어울려 오마르의 걱정을 샀다. 자말의 태도는 이집트에서 불기 시작한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메디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형제단 모임에 참석해 오사마와 처음 만났다. 오사마는 1957년생, 자말은 한 살 아래였다. 둘이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이 대목은 자말이 2005년 동료 기자 로렌스 라이트와 한 인터뷰에서도 밝힌 내용인데 라이트의 책 ‘루밍 타워(The Looming Tower)’에도 소개돼 있다. 훌루 TV에서 2018년 미니시리즈로 제작했으니 시청할 만하다. 자말은 라이트에게 “오사마의 꿈은 이슬람 국가(지금의 IS와 같은 듯 다른)의 창설이었으며 한 국가를 그렇게 만들면 다른 나라로 전파돼 도미노처럼 모든 나라가 바뀌어 인류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무자헤딘에 뒷돈을 대고 있었다. 라이트는 여러 번 자말에게 묻는다.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느냐고? “우리가 동굴에 함께 있어 감동적이었다. 밤은 캄캄하고 촛불만 켜져 있다. 그는 무슬림에 충일했고 지하드 생각에 골몰했다. 신에 가까이 있었다.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피칠갑을 한 소비에트 이교도와 싸우고 있었는데, 내게 그건 아름다운 일이었으며 특히 그 나이때는 그랬다.” 자말은 암살 당하기 4개월 전 버지니아주에서 이슬람식 성혼 선언을 한 이집트 승무원 출신 하난 엘아트르에게도 여러 차례 오사마와 보낸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아트르는 자말이 “인간적으로 (오사마는) 친절한 사람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소련이 물러나고 탈레반이 득세하자 두 사람은 갈렸다. 오사마 특종 덕에 자말은 승승장구해 메이저 신문사인 알와탄 편집장에까지 올랐고, 사우디 왕가와도 친한 기자란 명성을 만끽했다. 오사마는 알카에다를 만들고 미군 주둔을 용인한 왕가를 규탄했다. 1990년대 중반 수단 하르툼으로 넘어가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이끄는 이집트 출신 강경파들과 결합했다.자말과 오사마는 얼마 안 있어 다시 만났다. 빈라덴 가문이 자말에게 하르툼에 가서 오사마를 만나 사우디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라고 부탁했다. 사우디 정보부가 뒤를 봐줬다. 자말은 나중에 라이트에게 털어놓길, 오사마의 집에서 사흘 연속 쌀과 양 요리로 융숭한 접대를 받았다고 했다. 자말이 오사마를 계속 밀어붙였고, 오사마는 주저주저했다. 때로는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오프더레코드로 하자고 했다. 또 미국인에 대한 성전을 벌여 아라비아반도에서 몰아내겠다고도 했다. 오사마의 말이다. “아덴만을 때렸더니 그들은 떠났다. 소말리아를 때렸더니 그들은 다시 떠났다.” 사흘째 밤에 자말은 답을 예, 아니오 중 하나로 달라고 재촉했다. 오사마는 이집트 동료들에게 달려간 뒤 되돌아와 되물었다. “넌 내게 뭘 해줄 건데(What’s in it for me)?” 자말은 낙담했다고 했다. 그는 ‘오사마, 넌 그 사람들, 사우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 널 정말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야. 왜 그걸 모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사마는 그 유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자말은 오사마가 정신줄을 놓았으며,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자말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던 나와프 오바이드는 오사마와 함께 한 아프간에서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에 따르면 자말은 오사마를 영웅으로 여겼다. 오바이드 역시 자말에게 오사마와의 친분을 과장했다고 지적하며 그렇게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람을 좋게 묘사해선 안된다고 했다. 어느날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기 직전 뛰어내리는 사람들 사진을 자말에게 보여주며 “봐라. 이것이 빈라덴이 저지른 짓”이라며 “우리가 솔직히 고백하고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말이 사진을 들고 조용히 있다가 몇 시간 뒤 오바이드를 보며 “맞아 네 말이”라고 말했다. 오바이드는 자말이 옛친구에 대해 내적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데올로기적인 인물이었으며 신학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둘은 내면에서 갈등했고.”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이종수의 헌법 너머] 양심의 무게와 색깔 따지는 사회

    [이종수의 헌법 너머] 양심의 무게와 색깔 따지는 사회

    인류 역사에서 양심의 자유는 신앙의 자유와 더불어 국가권력에 의해 맨 먼저 승인된 기본적 자유의 하나로 손꼽히는데, 개인적 자유의 시초로도 일컬어진다. 헌법재판소는 양심을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 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고 표현했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도 양심을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법관”으로 비유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 각자는 교회, 사회 및 전통과는 무관하게 이성적이고 도덕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따라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각자에게 서로 다른 양심을 두고서 그 무게를 저울질하는 일은 그 자체로 난센스다. 양심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보장되지만, 결코 무제한적이지는 않다. 양심의 자유를 앞세워 합헌적인 법질서를 적극적으로 침해하거나, 특히 타인의 생명과 권리를 훼손해서는 아니 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내놓는 이가 한편에서는 순교자로 추앙받지만, 또한 가장 섬뜩하기도 하다. 신념을 위해 때로는 타인의 목숨을 빼앗는 행위도 서슴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지하드’를 앞세운 이슬람의 자살폭탄 테러에서 목도되듯이 신념과 신앙을 위해 무고한 다수의 생명을 위협하는 행위가 정당화되기는 어렵다. 요즘도 ‘색깔론’이 정치권에서 상대방을 공격하는 정치적 수사(修辭)로 여전한데, 1960~70년대에는 심지어 사형당하거나, 사상범 내지는 양심수로 오랫동안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다. 반면에 특별한 직업적 양심의 보장에는 매우 관대하다. 특히 일부 국회의원들의 잦은 당적 변경은 헌법상 자유 위임에 따른 국회의원 개인의 양심상 결정이라 법적인 제재가 없다. 때때로 납득하기가 어려운 법원의 판결 역시도 재판상 독립과 법관으로서의 양심에 따른 결정으로 존중돼 왔다.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병역의무가 주어지는 현행의 법질서에서 줄곧 양심적 병역 거부가 논란이 돼 왔다. 우리만이 아니라 ‘개병제’를 원칙으로 하는 다른 나라들에서도 오래전부터 불거져 온 문제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선과 악이 극명하게 갈리거나 또는 구별 자체가 아예 무의미한 기제로 전쟁에 비견할 만한 게 어디 있을까 싶다. 헌법재판소도 이 문제를 여러 차례 다뤄 왔다. 그리고 뒤늦게 2018년에서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게 대체복무를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과잉적으로 침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관련 법률들이 제·개정됐다.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대체역심사위원회’가 신청자의 대체복무 편입 여부를 심사하도록 새로 정했다.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자가 지닌 양심의 진정성과 무게를 따져 보겠다는 취지인 셈이다. 그런데 양심의 자유를 통해 보호되는 주된 내용이 이른바 “양심 추지(推知)의 금지”, 즉 “스스로 형성한 양심의 내용을 외부에 드러내도록 강제당하지 않을 자유”다. 예컨대 17세기의 일본에서 당시 막부 측이 기독교를 탄압하면서 기독교 신자를 가려내려고 예수나 마리아의 모습이 새겨진 목판을 밟도록 한 ‘후미에’(踏み)나 십자가 밟기가 양심 표명을 강제했던 대표적인 사례로 오르내린다. 그런데도 헌법재판소는 앞서 언급한 결정에서 “헌법상 양심의 자유에 의해 보호받는 ‘양심’으로 인정할 것인지의 판단은 그것이 깊고 확고하며, 진실된 것인지 여부에 따르게 된다. 그리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를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의 ‘양심’을 외부로 표명하여 증명할 최소한의 의무를 진다”고 덧붙여 밝혔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대체역심사위원회’와 같은 기구의 구성을 예견했다고 짐작되는 대목이다. 확인해 보니 이 기구에 속한 인력의 대다수가 조사과 직원들이다. 최근 이 대체역심사위원회의 활동 내용이 언론에 보도됐다. 위원회가 활동을 처음 시작한 작년 6월부터 지금까지 총 2000여건이 넘는 대체역 편입 신청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신청이 인용되고, 기각된 사례는 단 한 건에 불과했다. 주로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고 개인적 신념을 사유로 대체복무가 결정된 이들도 몇 있다. 이 위원회의 구성 초기에 지녔던 우려와는 달리 양심의 자유에 대체로 우호적으로 심사하니 퍽이나 다행이다. 그렇지만 양심의 진정성과 무게를 따지고 조사하는 이 제도가 여전히 마뜩잖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 이스라엘 지상군 공격 ‘미끼’였다…하마스 지하시설 파괴

    이스라엘 지상군 공격 ‘미끼’였다…하마스 지하시설 파괴

    총리까지 나서 “더 많은 조치 있다”“지상군 가자지구 공격” 발표 정정전투기 160대 띄워 지하시설 공습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사이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나흘째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 공격을 선언한 것은 상대의 허점을 찌르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스라엘군(IDF)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오후 9시쯤 가자지구 경계에 배치했던 지상군 병력에 대한 소집 명령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이후 무장한 몇몇 보병대대 병력이 가자지구 경계의 포병 진지에 합류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문제를 실행 가능성 있는 옵션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하마스를 상대로 한 조치가 더 많이 있다고 은근히 분위기를 띄웠다. ●“공군·지상군 동시 공격” 발표 뒤 정정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4일 0시쯤 트위터에 “공군과 지상군이 동시에 가자지구를 공격하고 있다”는 영문 메시지를 게시했다. 이에 워싱턴포스트, ABC 방송, AFP 통신 등은 이스라엘 지상군이 가자지구로 진입했다고 일제히 속보를 쏟아냈다. 그러나 실제 지상군의 이동은 없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아직 지상군이 가자지구 안으로 들어간 상황은 아니라고 나중에 확인해줬다. 현지 언론은 이런 조치를 하마스 지하시설을 공격하기 위한 이스라엘군의 ‘작전’으로 분석했다. 일간 예루살렘 포스트에 따르면 하마스와 지하드 조직은 경계를 넘어 침투하는 이스라엘군의 탱크와 자주포, 병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하 시설에 숨겨뒀던 대전차 미사일 부대와 박격포 부대 등 ‘제1방어선’ 전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이런 움직임은 ‘하마스의 지하철’로 불리는 가자지구의 거대한 지하시설 위치가 드러나게 했다. 이 시설은 2014년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참혹한 피해를 본 하마스가 공습 시 피난처, 무기 운반 및 저장용으로 만든 지하 터널로, 그 규모가 수 ㎞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시설 드러나자 전투기 ‘160대’ 공습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이 민간인 거주지역 지하에 있는 이 공간을 공격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군은 위치를 포착하자마자 즉시 전투기 160대를 띄워 지하시설을 파괴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는 전했다. 결국 ‘이스라엘 지상군 공격’ 신호는 하마스의 지하사실을 공격하기 위한 ‘미끼’였던 셈이다. 이스라엘군 대변인 히다이 질베르만 준장은 “아직 하마스 지하 시설 내 사망자 규모를 알 수 없다. 작전의 결과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로켓포 300발 vs 전투기 폭격… 동예루살렘 갈등 격화

    로켓포 300발 vs 전투기 폭격… 동예루살렘 갈등 격화

    이슬람교, 유대교, 기독교의 성지인 동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급기야 양측 간에 로켓포 공격과 전투기 폭격 등 무력 충돌이 빚어졌다. 외신들은 이 지역 긴장이 최근 몇 년 이래 가장 높은 수준에 다다랐다고 전했다. 11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10일(현지시간) 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하고 있는 무장정파 하마스의 군사시설 등에 대규모 공습을 했다. 하마스 측은 어린이 9명을 포함해 최소 25명이 숨지고 125명이 부상했다고 밝혔다. 사망자 가운데는 하마스의 지휘관들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라엘의 공습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들의 로켓 공격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이뤄졌다.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은 이날 저녁부터 다음날까지 이틀간에 걸쳐 300발 이상의 로켓포를 이스라엘 영토에 발사했다. 헌법상 수도인 예루살렘에도 6발이 떨어졌다. 예루살렘이 공격 목표가 된 것은 2014년 이후 7년 만이다. 아비브 코하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은 “더 광범위한 군사작전에 대비하라”면서 하마스의 무기 생산 및 보관 시설을 집중 타격하라는 메시지를 군에 발령했다고 일간 하레츠가 전했다. 하마스도 성명을 통해 “어떠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이스라엘 점령 세력에 대한 저항을 계속할 것”이라며 전의를 다졌다. 이날 무력 충돌은 1967년 이스라엘이 3차 중동전쟁을 통해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것을 기념하는 ‘예루살렘의 날’을 맞아 촉발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동예루살렘의 3대 이슬람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에서 이스라엘 규탄 시위를 벌이자 이스라엘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탄 등을 동원해 강경 진압에 나섰으며 이로 인해 500명 이상이 중경상을 입었다. 이에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오늘 오후 6시까지 알아크사 사원 등에서 병력을 철수시키라”고 경고했으며 철수 시한이 되자 로켓포 공격을 감행했다. 김태균 선임기자 windsea@seoul.co.kr
  • 英 SAS 스나이퍼, 1㎞ 거리서 단 한발로 IS 대원 5명 사살

    英 SAS 스나이퍼, 1㎞ 거리서 단 한발로 IS 대원 5명 사살

    영국 육군 공수특전단(SAS) 소속 저격수가 약 1㎞ 떨어진 곳에서 이슬람국가(IS) 지하드 최고사령관 1명을 포함한 테러범 5명을 단 한 발의 저격으로 모두 사살해 화제에 올랐다. 영국 데일리스타 등 현지매체는 23일(현지시간) SAS 소속 저격팀의 베테랑 저격수가 단 한 발의 저격으로 적 지휘관을 포함한 테러범 5명을 사살하는 공적을 올렸다고 전했다. 이번 작전은 지난해 11월 시리아에서 IS 잔당 소탕 및 생포 작전 중 하나로 이루어졌다. 당시 저격팀은 며칠 동안 IS의 폭탄 제조 공장으로 의심되는 곳을 감시하고 있었고, 베테랑 저격수는 한 건물 안에서 남성 5명이 현장을 이탈하기 위해 밖으로 나온 순간을 목격하고 기회를 노렸다.팀에서 가장 강력한 배럿(Barrett) 50구경 저격총을 쓰고 있는 이 저격수는 첫 번째 제거 대상으로 확인된 자살 폭탄 테러범 1명의 가슴 부위를 저격해 자폭 조기에 매달린 폭탄을 폭발하게 했다. 이 저격수가 쓰는 총은 차량과 같이 더 큰 표적을 타격하기 위한 것으로 사람을 맞추면 사지를 떼어낼 만큼 강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총으로 표적을 맞췄기에 폭발이 일어나 근처에 있던 테러범 4명까지 모두 죽일 수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지하드 최고사령관인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저격에 앞서 테러범들 중 한 명은 카메라를 들고 웃으며 자살 테러를 시행할 조직원을 촬영하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당시 계획은 자살 폭탄 테러범이 확인되면 그를 최우선으로 제거하고 나서 지휘관을 제거하는 것이었지만 운이 좋았다”면서 “표적은 사격 능력 최대 거리에 있었기에 저격수는 바람에 맞춰 조준하고 방아쇠를 살며시 당겼다”고 말했다. 이어 “저격수는 작전 성공에 대한 포상으로 ‘롱 레인지 데스’(Long Range Death)가 새겨진 야구 모자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이번 작전은 1㎞나 되는 거리에서 테러범이 착용한 폭탄 조끼를 폭발시켰다는 점에서 놀랍긴 하지만, 가장 먼 거리에서 표적을 맞춘 기록에는 한 참 미치지 못한다. 2017년 캐나다의 한 저격수는 무려 3.44㎞ 떨어진 곳에서 IS 조직원을 사살했다. 이 총알은 고층 타워에 설치된 맥밀런 TAC-50 소총에서 발사돼 이라크군을 공격하고 있던 이 IS 테러범을 향해 날아가는 데 10초나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인도 힌두 여성에 남정네들 몰려와 “무슬림 남편과 헤어져라” 유산 소문

    인도 힌두 여성에 남정네들 몰려와 “무슬림 남편과 헤어져라” 유산 소문

    인도에서 임신한 22세 힌두교도 여성에게 생판 모르는 남정네들이 몰려와 무슬림 남편과 헤어지라고 위협하며 행패를 부리는 바람에 산모가 유산했을지 모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지난 5일 북부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모라다바드 마을에서 오렌지색 스카프를 목에 두른 남성들이 이 여성을 못 살게 구는 동영상이 최근 급격히 번져 많은 여성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한 남성은 “너 같은 사람들 때문에 이런 법이 만들어지는 거야”라고 대놓고 조롱한다. 이들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이끄는 바라티야 자나타 당(BJP)을 지지하는 강경 힌두교도 모임인 바지랑 달 성원들이다. 이들이 들먹인 법이란 불법 신도 개종 금지법인데 현지에서는 그냥 ‘러브 지하드(聖戰) 법’으로 불린다. 이슬람에 대해 막연히 두려움을 갖고 혐오하는 급진 힌두교도들은 무슬림 남자들이 먹잇감을 찾듯 결혼을 통해 힌두 여인들을 개종시키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이 여성의 남편, 그의 형제를 경찰서에 데려가 체포하도록 했다. 여인은 정부 보호소로 보내졌다. 며칠 뒤 이 여성이 임신 7주의 몸이었으며 구금된 동안 유산을 당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번 주초 법원은 그녀가 남편 집에 돌아가도 좋다고 허용했다. 자신이 성인이며 무슬림 남자를 선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남편과 시아주버니는 여전히 갇혀 있다. 지난 14일 공개된 인터뷰 동영상을 통해 그녀는 보호소 직원이 지분거렸으며 자신이 복통을 호소하는데도 못 들은 척했다고 주장했다. 보호소는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용태가 더 나빠지자 (지난 11일) 병원에 보내줬다. 혈액 검사를 받은 뒤 입원했다. 하혈이 시작되자 처음 주사를 놔줬다.” 이틀 뒤 더 많은 주사를 맞았다. 하혈 양도 늘었고 건강이 악화됐다. 그래서 아기를 유산했다고 여성은 주장했다. 14일 아침에도 여전히 그녀는 구금 중이라 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가 없다. 당국은 그녀가 유산했다는 소식은 가짜 뉴스이며 시어머니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동보호위원회 비세시 굽타 의장은 유산에 관한 모든 보도를 부인하고 “아기는 건강하다”고 말했다. 그녀를 진찰했던 산부인과 의사도 취재진에게 “7주 된 태아의 상태는 초음파로 확인된다”면서 “경질(trans-vaginal) 검사만으로도 아이가 안전한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국은 그녀가 풀려난 뒤에는 일절 이런 의심에 대해 이렇다 할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또 초음파 검사 결과나 잘못된 약물이 주사됐을 가능성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 않고 있다. 처음 병원에 입원한 지 닷새가 흘렀지만 아직도 아이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인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다른 종교 신도들이 결혼으로 맺어지는 일이 금기시돼 왔다. 하지만 새 법률은 개종을 원하는 누구나 구역 담당 관리에게 동의를 받게끔 했다. 사실사 내가 배우자를 고를 권리를 억누를 수 있는 권한을 행정 책임자가 누리게 만든 것이다. 이를 어기는 불신자는 최고 징역 10년형에 처할 수 있게 했다. 적어도 네 군데, BJP 당이 장악한 주들은 비슷한 법을 채택했다. 당연히 퇴행적이며 공격적인 법률이라고 강력히 반발한다. 대법원에는 폐기해야 할 악법이라고 청원이 제출돼 있다. 지난달 29일 의회에서 통과된 뒤 벌써 여섯 건 정도가 보고됐다. 세상에 이런 법도 있나 싶다. “여성은 대리인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믿음을 거부한다. 자유의지를 무시하도록 부추긴다. 누구랑 결혼하고 싶다는 선택권이 여성에게 주어지는 것 아닌가. 다른 종교로 개종하고 싶다 한들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 법은 범위와 폭 모두 모호하다. 순진무결함을 네 스스로 증명해보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위험하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병원 창 밖서 코로나 감염된 엄마 임종지킨 아들, 시신 훔쳐 직접 매장

    병원 창 밖서 코로나 감염된 엄마 임종지킨 아들, 시신 훔쳐 직접 매장

    매일 병원 배관을 타고 올라가 창밖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된 어머니를 지켜본 효심깊은 아들이 결국 사망한 모친의 시신을 훔쳐 직접 매장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NBC 뉴스 등 해외언론은 팔레스타인 웨스트뱅크 헤브론에 사는 지하드 알 수와이티(30)가 사망한 어머니의 시신을 훔쳐 매장했다고 보도했다. 전세계에 감동을 안긴 지하드의 사연은 지난 7월 해외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당시 73세의 고령인 지하드의 모친은 백혈병으로 투병 도중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에 병원 방침에 따라 입원한 어머니를 만날 수 없었던 지하드는 발을 동동구르다 매일 2층 병원의 배관을 타고 올라가 창문 밖으로 면회하는 모습이 공개돼 세상에 감동을 안겼다. 당시 병원 관계자는 현지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온종일 창밖에서 어머니를 들여다보곤 했다. 꼭 어머니가 잠드신 걸 확인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고 설명했다.그러나 지하드의 효심을 뒤로하고 모친은 지난 7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에도 그는 배관을 타고 올라가 창문 너머로 어머니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졌다. 지하드의 효도는 놀랍게도 모친이 사망한 후에도 이어졌다. 당국의 방침을 어기고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모친의 시신을 훔쳐 흰 수의를 입혀 직접 매장한 것. 이슬람에서는 시신에 흰 수의를 입혀 가능한 한 빨리 매장하는 것이 전통이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팔레스타인에서는 올해 초 부터 코로나19로 사망한 시신의 경우 씻기거나 수의를 입히는 과정없이 비닐봉지에 담아 매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지하드는 "어머니가 살아 생전에 내가 이 병으로 죽으면 비닐봉지에 담아 묻지 말아달라고 당부하셨다"면서 "내손으로 직접 무덤을 파서 어머니가 부탁한 대로 땅에 묻었다"고 털어놨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바람을 이루어주기 위해 당국의 방침을 어기고 아들이 위험천만한 행동을 한 것으로 이에대한 찬반 의견도 갈린다. 한편에서는 아들의 지극한 효심을 칭송하는 반면 일각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무시했다는 주장이다. 이에대한 의견이 어떻게 갈리든 코로나19 팬데믹이 낳은 아들의 가슴아픈 효도인 셈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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