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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함안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유적 국가사적 지정

    함안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유적 국가사적 지정

    경남도는 함안군 가야읍에 있는 ‘함안 가야리 유적(咸安 伽倻里 遺蹟)’이 문화재청 최종심의를 통과해 국가사적 제554호로 지정됐다고 21일 밝혔다.가야시대 지배층 생활유적인 ‘함안 가야리 유적’은 남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신음천(新音川)과 광정천(廣井川)이 합류하는 지역 해발 45~54m 작은 구릉에 위치해 있다. 최근 발굴조사를 통해 구릉 북쪽 가장자리에서 흙을 쌓아 만든 성곽인 토성(土城)과 바닥을 땅 위나 물 위에 높게 지은 건물인 고상건물(高床建物), 망루(望樓) 등이 확인됐다.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에 조성돼 6세기 멸망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적은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咸州誌, 1587년 편찬)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伽倻國舊基)’ 또는 ‘옛 나라의 터(古國墟, 古國遺址)’로 기록돼 있다. 현지에 남문외(南門外), 대문천(大門川) 등 왕성이나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아직 남아 있어 그동안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져 온 곳이다. 그 주변으로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과 남문외 고분군(경상남도 기념물 제226호), 가야 최대 규모 굴립주건물(掘立柱建物, 기둥을 세워 만든 건물)인 ‘당산유적’ 등 주요 가야유적들이 1㎞ 남짓한 거리에 분포해 있어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 왕도(王都)였음을 잘 보여준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그동안 지표조사만 여러차례 해온 뒤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과정에 토(土)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를 했다. 조사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된 토성과 목책,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특히 건물지 안에서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출토돼 이곳이 군사적 성격의 시설임이 밝혀졌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잔존상태가 좋을 뿐만 아니라 주변 유적과 연계된 경관이 잘 보존돼 있어 고대 가야 중심지 모습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보존가치를 높이 평가받았다. 현재 발굴구간은 주요시설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성곽과 군사시설 일부다. 도는 앞으로 연차적인 학술발굴조사와 심화연구를 통해 아라가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재조명함으로써 가야사 복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했다. 도는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함안 가야리 유적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 문화재청, 함안군과 협의해 종합정비계획 수립 등 보존방안을 마련해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류명현 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이번 함안 가야리 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은 가야사 연구복원이 국정과제로 채택된 이후 창녕 계성고분군(사적 제547호, 2019년 2월 지정)에 이은 두 번째 쾌거”라며 “아직 경남에는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가야유적들이 많아 앞으로 철저히 조사·연구해 많은 가야유적이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도는 지난해부터 도내 주요 가야유적의 국가사적 지정을 위해 지표, 발굴 등 학술조사와 함께 학술대회, 사적 신청보고서 작성 등을 지원하고 있다. 현재 김해 원지리 고분군과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고분군, 합천 삼가고분군, 합천 성산토성 등 도내 주요 가야유적에 대해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도에 따르면 경남지역 전체 가야유적 544곳 가운데 92%인 501곳이 비지정 가야유적이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김포의 태실] (1) 김포 월곶면 조강리·고막리·고양리 3곳에 조선왕가 태실

    [김포의 태실] (1) 김포 월곶면 조강리·고막리·고양리 3곳에 조선왕가 태실

    경기 김포시에는 조선시대 왕가 태실 3개가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각각 월곶면 조강리와 고막리·고양리에 세워졌다. 태봉은 태실(胎室)이 조성돼 있는 산이나 ‘태(胎)를 봉(封)한다’는 뜻을 지닌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생명의 탄생을 그 시작부터 중히 여겨 태를 소중히 여기고 신성시하는 고유한 문화를 갖고 있다. 특히 조선왕실에서는 향후 아이의 성쇠를 결정할 뿐 아니라 나라의 국운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해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길지를 선정해 태를 봉안하는 특별한 의식을 치렀다. 이를 장태 또는 안태라 하고 태를 봉안한 산을 태봉이라 한다. 이에 대한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안태의궤나 안태등록·태실가봉의궤 등 많은 문헌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태실 유적과 태항아리 등 유물도 전해져 그 화려했던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1929년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선왕실의 정통성을 말살하려고 태실을 고의적으로 훼손했다. 왕과 공주의 태를 고양시 서삼릉에 옮겨 태실공동묘지를 만들었다. 이후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한 채 태실 일부만 문화재로 지정된 상태다. 이에 김포에 있는 태실의 유래와 관리·보존상태 등에 대해 3회에 걸쳐 살펴본다. 18일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군사보호구역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경기도편)’ 참고문헌에 따르면 김포 조강리 태봉산의 태실은 중종때 세워졌다. 평화누리길 2코스 중 가장 아름답던 길옆의 태봉은 해발 75m 정도 되는 산봉우리였다. 1544년(중종39) 중종의 다섯째 적녀이자 문정왕후의 넷째 딸이며 명종대왕의 친동생인 인순공주(1542~1545) 태를 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찍 죽어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태봉산 정상부는 10평 가량 좁은 대지에 태함(太函, 石函)과 태실비(胎室碑)가 남북선상에 위치했다. 당시 태실비는 동쪽을 보고 있으며, 태실비 뒤쪽에 태함이 있었다. 태실비는 연봉을 갖춘 연화형 비갓과 몸돌을 한 몸에 만들었으며, 방형 대좌를 갖췄다. 대좌 측면에는 공간을 구획하고 문양을 새긴 듯한 흔적이 있다. 태실비는 대좌 위에 시멘트로 발라 비신을 고정시켰으며 군용 철조망과 지주를 이용해 보호책을 설치했다. 태실이 있을 곳에는 반구형 석재가 일부 노출돼 있어 태실의 개석처럼 보이나 사실은 바닥에 있던 받침돌이 올라온 것이고, 개석은 오래전에 마을에서 방앗간 확돌로 사용했다고 한다. 건립시기를 나타내는 뒷면도 긁힘과 자연적인 마모로 판독이 어렵다. 전면에는 ‘□□□□阿只氏胎室’, 뒷면에는 ‘???拾三年□月□□□癸時□’인데 부분적으로 판독이 어렵다. 비석크기는 비갓이 가로 62㎝, 두께 20㎝, 높이 45㎝, 비신의 높이 84㎝, 너비 41㎝, 두께 15㎝, 대좌 가로 95㎝, 두께 52㎝, 높이 42㎝이다. 태실부 함몰 지름이 250㎝, 석함 노출된 곳과 태실비와는 210㎝ 떨어져 있다. 석함 높이는 60㎝, 추정지름은 70㎝다.월곶면 고막리 212에 있는 태실은 고막리에서 문수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 오른쪽에 있는 해발 100m 남짓 낮은 산정상부에 있다. 산 아래에서 걸어서 1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다. 이 산은 마을에서도 태봉산으로 부르고 있어 태실의 존재가 인근에는 알려져 있다. 태봉산 정상부는 가장 넓은 쪽도 10m를 넘지 않고 좁고 평탄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데 이곳에 태실 석함(石函) 개석 1장과 비석 대좌가 있다. 주위에는 소나무와 활엽잡목이 우거져 있고 군사시설인 교통호가 개설돼 있다. 태실비는 정상에서 마을쪽인 남쪽으로 5m 가량 지점 사면에서 발견됐다. 안타깝게도 태실은 이미 도굴당해 훼손됐고, 비석도 대좌에서 뽑혀 아래로 밀쳐 굴러내렸다. 일제강점기 때 도굴된 것을 비석만 원상태로 세웠으나 마을에 사고가 잦아지자 비석을 뽑아 지금처럼 굴렸다고 한다. 비석은 연화형 비갓을 연화형 비갓을 한 돌에 새긴 것으로 연봉은 떨어져 나갔다. 비석 면도 일부 훼손돼 비문 역시 일부 글자는 판독이 어렵다. 비석 전면에는 ‘王□□阿兄氏胎室’정도가 판독되며, 뒷면에는 1584년(萬曆十二年七月二十五日立)(1584년, 선조17), 萬曆十四年十二月初六日改立(1586·선조19)이라는 2행의 명문이 있어 장태한 시기와 다시 세운 시기를 명시하고 있다. 크기는 비갓 62×18×32㎝, 비신은 116×49×14㎝다. 비석 대좌는 네 면에 안상과 복련이 조각돼 있고 밑단 일부가 노출돼 있다. 대좌와 130㎝ 떨어져 있는 화강암제 개석도 기울어진 채 3분의2가량 지표에 노출돼 있다. 개석 둘레에 22×22㎝ 크기로 자라 머리 형태의 돌출부를 만들었는데 다른 쪽이 땅에 묻혀 전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네 귀퉁이에 이런 돌출부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지름은 102㎝다. 세 번째 태실은 월곶면 고양리 산27-1 마을에서 ‘태봉산’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대곶면과 경계지점이다. 산은 다른 태실처럼 다른 산과 독립돼 있으나 주위 산에 둘러싸인 가파른 산세다. 정상부에는 큰 구덩이만 남아있는데 이곳이 태실이 있던 자리다. 구덩이는 310~340㎝ 크기이고 깊이는 80㎝다. 구덩이 북쪽은 배수구를 내듯 둑을 터놓았다. 태봉산 태실의 태실비는 제자리를 벗어나 대곶면과 월곶면 경계를 이루는 길옆에 묻혀 있었으나 지금은 콘크리트포장에 완전히 덮여 확인이 어렵다. 옛 조사기록에 의하면 비문은 전혀 남아있지 않고 연꽃형 비갓의 연봉도 부러지고 없다. 비갓과 몸돌을 한 돌로 만들었는데 비석 뿌리가 길쭉하게 남아 있어 비대좌가 없이 땅에 묻어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크기는 비갓이 너비 60㎝, 높이 32㎝이고 비신은 너비 53㎝, 높이 80㎝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 동심에 젖어 서울 보물단지를 만나다

    푸른 하늘 은하수… ‘반달’ 동심에 젖어 서울 보물단지를 만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2차 윤극영의 반달’ 편이 지난 21일 강북구 수유동 일대에서 2시간 30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4·19묘지역 2번 출구에 집결, 도미니코수도회~윤극영 가옥~4·19민주묘지~북한산2코스둘레길~‘아나키스트’ 유림선생 묘~근현대사기념관을 둘러봤다. 이날 코스에서 서울미래유산은 윤극영 가옥과 4·19민주묘지, 근현대사 기념관 등 3곳이었다. 참가자들은 속세와 연이 닿지 않는 수도원 방문 기회를 의미 있게 받아들였으며, ‘반달 할아버지’ 윤극영 가옥에서 반달 노래를 합창하면서 동심에 젖었다. 4·19민주묘지에서는 안내자의 인솔에 따라 민주영령들에게 묵념하고 묘역과 4·19기념관을 참관했다. 기념관 옥상에 올라 백운대(836m)와 인수봉(810m), 만경대(799m)가 삼각뿔을 이루는 삼각산을 조망하는 시간도 가졌다. 마지막 코스인 근현대사기념관 관람이 끝난 뒤 참가자 조진주 강북구 문화해설사가 준비한 호박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면서 깜짝 파티를 즐겼다. 김미선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료한 해설과 깔끔한 진행으로 호평을 받았다.삼각산 아랫동네 수유동과 우이동에는 서울사람들이 깜짝 놀랄 보물단지가 숨어 있다. ‘중세의 반도체’라고 할 수 있는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다. 보통 도요지는 지방에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깼다. 고려 말~조선 초에 조성된 상감청자와 분청사기 가마터 20여기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왜 삼각산 아래 첫 동네에 도요지가 깃든 것일까. 고려 말 왜구의 잦은 출몰로 말미암아 전남 강진에 있던 왕실용 가마가 초토화되고, 도공들이 전국으로 흩어지면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서울까지 올라온 것으로 추정된다. 경기 광주 일대에 관요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왕실과 한양에서 사용하던 그릇 대부분을 이곳에서 구워냈다. 도자기의 생산과 유통경로에 대한 기존의 역사서술과 인식을 뒤집는 중요한 발굴 성과였다. 이를 반영하듯 가마터에서는 고려 상감청자에서 조선 분청사기로 넘어가는 기간에 생산된 귀중한 도편이 대거 출토됐다. 실전된 청자의 비법을 살려낼 실마리가 빛을 발할 날이 머지않았다.2009년 서울역사박물관의 첫 지표조사 이후 가마터의 정확한 위치와 범위 및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이뤄졌다. 2011년 수유동에서 분청사기를 구웠던 가마터가 확인됐다. 가마터는 삼각산 남동쪽 구릉의 아래쪽 계곡과 인접해 있다. 아카데미하우스와 통일교육원에서 도보로 30분 거리다. 이준 열사 묘역을 지나 탐방로를 따라 100m쯤 올라가면 나타난다. 신익희 선생 묘역 아래쪽이다. 수유동 가마의 구조는 아궁이와 계단이 없는 단실요의 형태를 띤다. 가마의 길이는 19.8m, 폭은 1.4~1.6m 정도다. 2014년 서울시기념물 제36호로 지정됐다. 우이동 청자가마터에 대한 발굴조사는 2012년에 이뤄졌다. 출토유물로 미뤄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반 사이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가마의 구조는 아궁이 앞에 불을 피우는 공간과 아궁이, 소성실, 연도부로 이뤄졌다. 수유동 가마와 마찬가지로 계단이 없는 단실요 형태였다. 길이는 21.1m, 폭 1.4~2m, 경사도 14도가량의 형태였다. 우이동 청자 가마터는 우이동 만남의 광장 위 옛 그린파크호텔 본관 뒤편 수영장주변 구릉지에 해당한다. 구릉 정상부에서 다량의 청자 파편과 가마벽 파편 등이 발견됐다. 도선사입구 버스정류장에서 걸어서 10여분 거리다. 보존을 위해 흙을 덮어둔 상태여서 가마터를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다. 수유동과 우이동 가마터는 1973년 한강유역 동작구 남현동에서 8세기 통일신라시대 도요지가 발굴된 이래 서울 북쪽 끝자락에서 발견된 가마터다. 가마터는 오래된 도시 서울에 또 한 가지의 현란한 빛깔을 덧칠했다.삼각산은 서울을 수도로 정한 조선 풍수의 핵심이다. 한양천도 때 무학대사 이야기의 시발점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태조가 승려 무학을 시켜 도읍 터를 정하도록 했다. 무학이 백운대에서 맥을 따라 만경대에 이르고, 다시 서남쪽으로 비봉에 갔다가 한 개의 돌비석을 보니 ‘무학오심도차’(무학이 길을 잘못 찾아 여기에 온다)라는 여섯 글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도선(신라의 도선국사)이 세운 것이었다. “문득 깨달은 무학은 길을 바꿔 정남 쪽 맥을 따라 백악산 밑에 도착했다. 세 곳 맥이 합쳐져서 한 들로 된 것을 보고 드디어 궁성(경복궁) 터를 정했다”고 한양천도와 경복궁 입지 풍수를 전한다. 무학의 길은 약 300년 전 고려 때 이미 정해져 있었다. ‘고려사’에 따르면 1101년(고려 숙종6) 왕이 백관을 거느리고 삼각산 아래에 와서 도읍지를 살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때 마들(노원)과 해촌(창동), 종로, 용산 등 4곳이 명당으로 꼽혔다. 이 중 백악산 아래에 남경을 정했다. 삼각산이란 고려시대 개성에서 남쪽을 바라봤을 때 우뚝 솟은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삼각뿔처럼 생겨서 붙은 이름이다. 북한산은 땅 이름이지, 산 이름이 아니다. 신라 때 서울의 지명인 한산의 북쪽이란 뜻에서 ‘북한산’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한강 건너 남쪽 남한산 또한 산 이름이 아니라 한산의 남쪽 즉 ‘남한산’이란 뜻이다. 한강은 ‘한산의 강’이란 뜻이다. 삼각산을 중심으로 생긴 한양예찬론은 조선의 모든 지리를 총 정리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북으로 화산(삼각산)을 진산으로 삼은 한양 땅은 용이 서리고 호랑이가 끌어안은 자세요, 남쪽은 한강으로 띠를 삼고…”라고 서술돼 있다. 단순히 명당론이나 풍수도참설이 아니라 성리학의 인문지리, 군사안보, 경제적 측면을 고려해 수도를 옮겼다.삼각산은 조선 개국과 한양도성의 설계자 삼봉 정도전의 호 삼봉의 유래와 닿아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삼봉이라는 호는 알려진 것처럼 정도전이 태어난 충북 단양 ‘도담삼봉’에서 따온 게 아니라 삼봉재를 짓고 살던 서울 삼각산에서 비롯됐다. 도담삼봉설은 역사학자 한영우 교수가 1973년에 출간한 ‘정도전 사상의 연구’에서 “아이를 길에서 얻었다고 해서 이름을 도전이라고 하고, 부모가 인연을 맺은 곳이 삼봉이므로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다”고 쓴 글에 의해 정설로 굳어졌다. 그러나 한 교수는 1999년 펴낸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에서 “삼봉이라는 호는 단양의 삼봉에서 차명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옛집인 개성 부근의 삼각산에서 차명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한발 물러났다.정도전은 호의 유래에 대해 직접 기록을 남기지 않았지만 유고문집 ‘삼봉집’에 몇 가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남겼다. ‘정도전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이 아니다’라는 글을 쓴 언론인 조운찬씨는 ‘삼봉에 올라’라는 시에서 “…삼봉마루에 올라/서북쪽으로 송악산 바라보니…”라니 구절과, 또 다른 시 ‘산중’의 내용이 도담삼봉과의 거리나 방향은 물론 풍경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 ‘이사’라는 시에는 5년 동안 3번 집을 옮긴 내용이 나오는 데 이사한 곳이 부평, 김포 등으로 삼각산 부근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무엇보다 ‘삼봉집’ 어디에도 단양이나 도담삼봉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조선과 서울의 설계자 정도전이 스스로 호를 딴 삼각산이라는 신령한 산 이름을 젖혀두고 북한산이라는 땅 이름으로 호칭하는 게 우리의 서글픈 현실이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3차 왕십리 ■집결장소 : 9월28일(토) 오전10시, 왕십리역 4번 출구, 시계탑 앞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사)서울도시문화연구원 (www.suci.kr)
  • 가야유적 잇단 ‘국가사적’ 지정… 잠든 1600년 역사가 깨어난다

    가야유적 잇단 ‘국가사적’ 지정… 잠든 1600년 역사가 깨어난다

    경남 곳곳에 1600년 동안 묻혀 있던 가야유적이 경남도와 해당 시군, 연구기관 등의 적극적인 발굴·연구 조사에 힘입어 국가지정문화재(사적)로 잇따라 지정되고 있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발굴·복원·관리비 70%가 국비로 지원돼 안정적으로 복원·관리할 수 있다. 현재 경남지역 가야유적 544곳 가운데 국가사적으로 지정된 곳은 창녕군 계성 고분군 등 모두 29곳이다. 특히 국가사적 고분 가운데 가치가 높은 김해 대성동, 함안 말이산, 창녕 교동·송현동, 고성 송학동, 합천 옥전 고분군 등 5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한다. 도는 합천군 삼가 고분군과 성산 토성을 비롯해 김해시 원지리 고분군, 함안 남문외 고분군, 창녕 영산 고분군도 국가사적 지정을 추진한다.●함안 가야리 유적 국가사적 지정 예고 경남도와 함안군은 함안군 가야읍의 ‘함안 가야리 유적’이 지난달 26일 문화재청 심의를 통과했다고 9일 밝혔다. 문화재청은 30일간 예고를 거쳐 의견을 수렴한 뒤 다시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해 사적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발굴조사, 가야시대 지배층 생활유적으로 확인됐다. 남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신음천과 광정천이 합류하는 일대 해발 45~54m 구릉에 있다. 그동안 5차례 지표조사로 토성 범위만 대략 확인됐다가 지난해 4월 경작지 조성 과정에서 토성벽 일부가 우연히 발견돼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발굴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규모 토목공사로 축조한 토성과 목책(울타리), 14동의 건물지 등이 확인됐다. 건물지 안에서 쇠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 등이 나와 군사 성격 시설임이 밝혀졌다. 구릉 북쪽 가장자리에서 토성과 고상건물(바닥을 땅 위나 물 위에 높게 지은 건물), 망루 등도 확인됐다. 아라가야 전성기인 5세기에 조성돼 6세기 멸망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가야문화권에서는 처음으로 판축토성(판자를 양쪽에 대고 흙을 다져 성을 쌓는 건축방식) 구조물이 확인돼 우리나라 고대토성 축조수법을 규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됐다. 전문가들은 토성의 상태가 좋고 주변 가야 유적과 연계 경관도 잘 보존돼 아라가야 중심 왕도 모습을 잘 보여 주는 유적이라고 평가한다. 이 유적은 조선시대 함안지리지인 함주지(1587년 편찬) 등 각종 고문헌에 ‘가야국의 옛 도읍터’ 또는 ‘옛 나라의 터’ 등으로 기록돼 있다. 지금도 주변에 남문외, 대문천 등 왕성이나 왕궁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어 아라가야 왕궁지로 전해 내려온 곳이다. 토성 주변에 아라가야 최대 고분군인 함안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과 남문외 고분군(도 기념물 제226호), 가야 최대 규모 굴립주건물(기둥을 세워 만든 건물)인 ‘당산유적’ 등 주요 가야유적들이 있어 가야읍 일대가 아라가야 왕도였음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발굴된 토성 구간은 왕궁을 보호하기 위한 성곽과 군사시설 일부다. 도와 군은 앞으로 발굴조사와 심화연구를 더 진행해 아라가야 사람들의 삶을 재조명하고 가야사 복원에 활력을 불어넣을 계획이다.●창녕 계성 고총 고분군 국가사적 지정 앞서 문화재청은 창녕군 계성면에 있는 계성 고분군을 지난 2월 국가사적 제547호로 지정했다. 계성 고분군은 영축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구릉 사면부에 형성된 대규모 고총 고분군이다. 서북쪽으로 계성천이 흐르는 낮은 구릉에 봉분 261기가 분포해 있다. 이 고분군 축조집단은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사적 제514호)을 조성한 세력 이전 시기인 비화가야 초기 중심세력으로 확인됐다. 무덤 구조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다. 돌덧널 상부 덮개는 나무로 만들어 덧널무덤 단계에서 돌덧널무덤으로 변해 가는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고분군에서 창녕양식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와 긴목항아리, 통모양그릇받침 등의 토기류, 금동관편, 금제 귀걸이와 은제 허리띠장식 등 장신구류, 말띠드리개(행엽) 및 발걸이(등자), 말안장 꾸미개(안교) 등 마구류, 무기류 등이 많이 출토됐다. 학계에 따르면 계성 고분군은 5~7세기에 걸쳐 장기간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5세기에 집중적으로 대형 고총 고분이 축조돼 창녕 비화가야 성립과 가야에서 신라로 이행해 가는 과정을 잘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합천 삼가 고분군·성산토성 국가사적 신청 도는 합천군 삼가면에 있는 도 기념물인 삼가 고분군과 합천군 쌍책면 성산토성도 지난 4월과 8월 문화재청에 사적 지정을 신청했다. 문화재청은 지난 7월 현지조사한 뒤 조사 및 자료 보완을 요청했다. 도와 합천군은 내년 2월쯤 추가 발굴 조사와 학술대회를 한 뒤 보완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삼가 고분군은 발굴 조사 결과 1~6세기 소가야권 가야집단이 조성한 고분군으로 대형 봉분 328기가 확인됐다. 아라가야 양식 철기류 등이 출토돼 당시 남강을 통한 활발한 문화교류를 보여 준다. 무덤은 목관묘에서 목곽묘, 석곽묘, 석실묘로 구조 변화가 확인된다. 24-1호분 안에서 굽다리접시, 그릇받침, 짧은목항아리 등 토기류와 각종 말갖춤새(마구), 쇠창과 쇠도끼를 비롯한 무기류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쌍책면 성산리에 있는 성산토성은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여러 차례 발굴조사에서 가야시대 다라국의 왕성으로, 옥전고분군을 조성한 최고 지배층의 5~6세기 취락유적 중심지로 조사됐다. 토성과 석성으로 이뤄진 성곽과 건물지, 제사유구 등 다양한 시설이 확인됐다. 유적 훼손이 적어 가야왕성의 실체를 규명하는 데 학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은 국가사적 지정 심의를 위해 다음달 현지조사한다. 박정혜 경남도 가야사복원 주무관은 “함안 남문외 고분군은 빠르면 올해 안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하고 김해 원지리 고분군과 창녕 영산 고분군 등 2개 도지정문화재는 내년 하반기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함안 남문외 고분군은 말이산 고분군과 가야리 유적 사이에 위치한 아라가야 최고지배층 고분군으로 43기의 봉분 분포가 확인됐다. 길이 7m 대형 석실묘가 발굴되고 가야·신라·백제 계통 유물도 출토됐다. 도와 함안군은 사적 신청에 앞서 오는 11월까지 중소형 석곽묘 10기 등을 추가 발굴조사할 예정이다.김해시 주촌면 원지리 고분군은 후기 가야 김해지역 최대 고총 고분군으로 조사됐다. 금관가야 최고 지배층 고총 고분군으로 그동안 발굴조사에서 김해지역 최대 길이(7.3m) 가야석실묘와 각종 유물 265점이 발굴됐다. 특히 일본과의 교류관계를 증명하는 자라모양 토기병 2점이 나왔다. 도와 시는 이달부터 M5호분 발굴조사를 할 계획이다. 창녕군 영산면에 있는 영산고분군은 비화가야에서 신라로 넘어가는 사회상을 보여 주는 대표 유적으로 꼽힌다. 연말까지 발굴 조사한 뒤 내년 11월 국가사적 신청을 할 계획이다. 도는 학술 가치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묻힌 가야유적이 국가문화재로 승격될 수 있도록 발굴·조사·연구를 지원하는 사업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류명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발굴 조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역사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도내 가야유적이 발굴 조사와 연구를 통해 국가사적으로 승격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남재우 창원대 사학과 교수는 “가야 각국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으로 편중됐던 발굴 조사가 평면적으로 확대돼야 하고 훼손이 심한 유적은 학술·발굴을 통해 성격을 규명하고 보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창원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천년의 숨결’ 고려시대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 사적 됐다

    ‘천년의 숨결’ 고려시대 진안 도통리 청자가마터 사적 됐다

    초기 고려청자를 생산했던 전북 진안군에 있는 가마터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가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551호로 지정됐다.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진안군 성수면과 백운면에 자리한 내동산에서 서북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 끝자락에 있는 중평마을 내에 자리한다. 중평마을 전역에는 청자와 도자기를 구울 때 청자를 덮는 큰 그릇인 갑발 조각 등이 널리 퍼져 있다. 요지의 존재는 지표조사 등을 통해 이미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2013~2017년 모두 5차례 조사하며 우리나라에서 처음 청자를 제작하던 시기인 10~11세기에 청자를 생산했던 벽돌가마(전축요)와 진흙가마(토축요)를 모두 확인했다. 벽돌·진흙가마는 전체 길이가 43m에 이르는데, 이는 호남 지역 최대 규모다. 애초 가마 벽체를 벽돌로 축조했다가 내벽을 진흙·갑발을 활용해 개보수했다. 또 다른 가마인 진흙가마는 전체 길이 13.4m로, 벽돌 없이 진흙과 갑발로 구축했다.가마 내부와 대규모 폐기장에서는 해무리굽완, 잔, 잔받침, 주전자, 꽃무늬 접시 등 다양한 초기청자와 다량의 벽돌, 갑발 등 요도구가 출토됐다. 문화재청 측은 2일 “초기 청자를 생산했던 가마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진안 도통리 청자요지는 우리나라 초기 청자의 발생과 변천 과정을 알려 주는 사적으로, 역사적·학술적인 가치가 높다”면서 “전북도, 진안군 등과 협력해 사적을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아라가야 중심지 ‘함안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예고

    아라가야 중심지 ‘함안 가야리 유적’ 사적 지정예고

    문화재청은 아라가야 중심지로 추정되는 경남 함안군 ‘함안 가야리 유적’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남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신음천과 광정천이 합류하는 지점 인근 구릉에 있다. 주변에 말이산 고분군, 남문외 고분군, 선왕 고분군과 길이 39m, 폭 15.9m에 이르는 가야 최대 규모 굴립주 건물터 ‘당산 유적’이 자리한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해발 45~54m 구릉부에 사면을 활용해 토성을 축조하고, 내부에 고상건물과 망루 등을 지었다. 고상건물은 땅 위에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 위에 바닥을 만든 건물을 가리킨다. 함안 가야리 유적은 앞서 조선시대 읍지(邑誌)인 ‘함주지’(咸州誌)와 17세기 ‘동국여지지’ 등 고문헌과 일제강점기 고적조사 보고서에서 아라가야 중심지로 지목됐다. 문화재청은 2013년부터 지표조사를 거쳐 대략적인 범위를 파악하고, 이번 정부가 ‘가야사 문화권 조사·정비’를 국정 과제로 선정한 다음해인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발굴 조사를 하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앞선 조사에서 토성과 울타리 시설, 대규모 고상건물을 비롯해 건물터 14동을 확인했다. 건물터 안에서는 무기인 쇠 화살촉과 작은 칼, 쇠도끼, 비늘갑옷이 출토됐다. 유적 조성 시기는 아라가야 전성기인 5∼6세기로 추정된다. 특히 올해 조사에서는 가야 문화권에서 최초로 흙을 시루떡처럼 차곡차곡 쌓아 올인 판축토성(板築土城) 구조물을 찾았다. 문화재청은 앞서 가야 유적인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 고분군, 창녕 계성 고분군을 사적으로 지정했고, 장수 동촌리 고분군은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무령왕릉 근처에 왕릉 등 고분 47기 존재 가능성”

    “무령왕릉 근처에 왕릉 등 고분 47기 존재 가능성”

    백제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 근처에 고분 47기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백제 웅진도읍기(475∼538년) 왕실 묘역인 송산리고분군에서 지표조사와 지하 물리탐사를 통해 이런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지난 2~3월 실내조사를 하고 4월 지표조사를 진행한 연구소는 “고분의 흔적, 입지특성, 지형분석 등을 통해 41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6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 지하물리탐사를 해 지하 고분 6기의 존재 가능성도 확인했다. 송산리에 백제 왕릉이 있다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돼 있다. 발굴조사는 1927~1933년 가루베 지온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처음 시행했다. 당시 29기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지만 8기에 관한 발굴기록만 남아 있다. 현재 31만㎡ 규모 송산리고분군에서 정비된 고분은 1971년 발굴한 무령왕릉을 포함해 모두 7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47기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 일대 고분이 최대 54기까지 늘어날 수 있다. 무령왕릉의 경우 삼국시대 무덤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어서 가치가 높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송산리고분군은 당시 백제 왕가의 무덤군으로 여겨진다. 부여로 천도한 성왕을 제외한 무령왕,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덤일 확률이 있다”면서 “고분 주인이 명확히 밝혀지면 사료로서 가치가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무령왕릉 근처에 왕릉 등 고분 47기 존재 가능성”

    “무령왕릉 근처에 왕릉 등 고분 47기 존재 가능성”

    백제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 근처에 고분 47기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백제 웅진도읍기(475∼538년) 왕실 묘역인 송산리고분군에서 지표조사와 지하 물리탐사를 통해 이런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지난 2~3월 실내조사를 하고 4월 지표조사를 진행한 연구소는 “고분의 흔적, 입지특성, 지형분석 등을 통해 41기의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6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 지하물리탐사를 해 지하 고분 6기의 존재 가능성도 확인했다. 송산리에 백제 왕릉이 있다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돼 있다. 발굴조사는 1927~1933년 가루베 지온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처음 시행했다. 당시 29기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지만 8기에 관한 발굴기록만 남아 있다. 현재 31만㎡ 규모 송산리고분군에서 정비된 고분은 1971년 발굴한 무령왕릉을 포함해 모두 7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47기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 일대 고분이 최대 54기까지 늘어날 수 있다. 무령왕릉의 경우 삼국시대 무덤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어서 가치가 높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송산리고분군은 당시 백제 왕가의 무덤군으로 여겨진다. 부여로 천도한 성왕을 제외한 무령왕,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덤일 확률이 있다”면서 “고분 주인이 명확히 밝혀지면 사료로서 가치가 아주 높다”고 설명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공주 무령왕릉 주변에 고분 47기 더 있을 가능성

    공주 무령왕릉 주변에 고분 47기 더 있을 가능성

    백제 무령왕릉이 있는 공주 송산리고분군(사적 제13호) 근처에 고분 47기가 더 있을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자 백제 웅진도읍기(475∼538년) 왕실 묘역인 송산리고분군에서 지표조사와 지하 물리탐사를 통해 야산에 41기, 지하에 6기의 고분이 더 있을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연구소는 지난 2~3월 실내조사를 하고, 4월 지표조사를 진행해 야산에 41기의 고분 존재 가능성을 추가로 확인했다. 신라, 가야와 달리 백제는 지하에 매장시설을 두고 봉분을 크지 않게 조성한다. 지표면에서 고분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연구소는 “고분의 흔적, 입지특성, 지형분석 등을 통해 위치를 추정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또 6월부터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과 함께 무령왕릉 정비구간 지하물리탐사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 이후 위치를 알 수 없었던 7~9호와 29호분의 흔적도 파악해 6기의 존재 가능성을 확인했다. 일제강점기 당시 고분 위치를 표시한 사진 자료와 현재 촬영한 사진자료를 비교?검토해 고분의 현재 위치를 추정했다. 조사과정에서 지표면에서 수습된 ‘중방(中方)’ 이라고 적힌 벽돌도 찾았다. 벽돌은 사용한 위치 등 쓰임새를 의미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발견한 벽돌은 무령왕릉의 긴 벽면에서 창문모양을 장식한 8점과 유사하다. 벽돌 발견 위치가 무령왕릉 남쪽 80m 지점인 점, 일제강점기에 보고된 벽돌무덤인 17호분의 추정 위치와 70m 이상 떨어져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벽돌이 발견된 일대에 또 다른 벽돌무덤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송산리에 백제 왕릉이 있다는 사실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에 기록됐다. 발굴조사는 1927~1933년 가루베 지온과 조선총독부박물관이 처음 시행했다. 당시 29기를 발견했다고 보고했지만, 8기에 관한 발굴기록만 현재까지 남아 있고 이 가운데 6기를 확인했다. 현재 31만㎡ 규모의 송산리고분군에서 정비된 고분은 1971년 발굴한 무령왕릉을 포함해 모두 7기에 불과하다. 이번에 47기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이 일대 고분이 최대 54기까지 늘어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덤의 주인이 명확히 드러날 경우 그 가치는 아주 커진다. 무려왕릉은 삼국 시대 무덤 중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왕릉이어서 가치가 높다. 이성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연구관은 “송산리고분군은 당시 백제 왕가의 무덤군으로 여겨진다. 부여로 천도한 성왕을 제외한 무령왕,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덤일 확률이 있다”면서 “무덤의 주인이 명확히 밝혀지면 사료로서 가치가 높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연구소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고분 조사에 나선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정부 안전 정책, 국민 체감 중요… 현장 중심 대응 역량 키워야

    정부 안전 정책, 국민 체감 중요… 현장 중심 대응 역량 키워야

    국가적 실패로 이어진 최악의 인재(人災). 재난에 대한 국민 인식을 뒤바꾼 ‘세월호 참사’가 오는 16일 5주기를 맞는다. 세월호 침몰 과정에서 안일하게 대응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고, 국민의 안전을 국가의 최우선으로 삼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곧 집권 3년 차에 접어드는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 사회는 과연 더 안전해졌을까. 총체적인 재난 리포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서울신문이 지난 4개월간 기획보도한 ‘세이프 코리아 리포트’를 마무리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정부에서 재난안전을 총괄하는 류희인 행정안전부 재난안전관리본부장(안전 차관)과 양기근 전 국가위기관리학회 회장(원광대 소방행정학과 교수), 방기성 경운대 안전방재공학과 교수,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중구 서울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진 좌담회에서 이 질문에 답했다. 이들은 “문재인 정부가 재난안전 분야에 힘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까지 가려면 아직 멀었다”면서 “정부가 미래 재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려면 현장 중심의 재난 대응 역량을 강화하는 데 정책적 역량을 기울여야 한다”고 진단했다. 안전 -문재인 정부 들어 한국 사회는 더 안전해졌나. 양 회장 “객관적인 데이터만 보면 이전보다 안전해진 것은 맞다. 자연재해 또는 사회재난 발생건수와 재산피해 규모 등이 감소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 사회지표조사’에서도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낀 응답이 전체 20.5%로 2016년(13.2%)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의미 있는 수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최근 사회적 재난에 포함된 미세먼지에 대한 국민적 불만이 크다. 한반도를 공포로 몰아갔던 포항 지진이 정부가 추진한 지열발전 탓이라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실제 재난안전과 관련된 객관적 지표가 나아졌음에도 이런 사건들로 국민은 국가가 전체적인 재난관리에 실패했다고 평가한다.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방 교수 “크게 ‘재난’과 ‘안전’ 두 분야로 나눠 봤을 때 안전 분야는 눈에 보일 만큼 많이 나아졌다. 하지만 재난 분야는 그렇지 않다. 아무리 비용을 많이 투자해도 실제 사고가 터지기 전까지는 정부의 대응 능력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중에 세월호 참사라는 엄청난 ‘테스트’를 받았고 거기서 낙제했다. 문재인 정부도 재난 분야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하지만 제2의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미심쩍다.” 이 교수 “아직 부족하다. 사람은 바뀌었지만 시스템은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을 비롯한 정책 결정자들이 현장을 찾아 많은 대화를 나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보겠다. 하지만 그것으로 우리 정부의 재난 대응 능력이 향상됐다고 할 수는 없다. 대형 재난 상황에선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재난안전 분야에 대한 투자는 부처의 서열과 경제논리에 밀린다.” 류 차관 “문재인 정부는 그간 흔들렸던 국가의 재난안전관리시스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특히 ‘사람이 중심’이 되는 재난관리체계를 구축하는 데에 역점을 뒀다. 나아진 점은 분명히 있다. 2016년 경주 지진 당시 긴급재난문자가 8분 만에 발송돼 문제점으로 지적됐지만 2017년 포항 지진에선 35초로 줄었다. 포항 지진 당시 정부가 쉽게 선택할 수 없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연기 조치도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이 정부가 그만큼 안전이 중요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는 결정이다. 공무원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많은 일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과 국민의 체감 사이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국민이 완전히 안전하다고 체감할 수 있을 때까지 정부가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 노력해온 것과는 또 다른 방향으로 개선 방안을 찾겠다.” 개선 -구체적으로 무엇을 개선해야 하나. 이 교수 “재난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현장 지휘관들의 실질적인 대응 역량을 높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고위 관료가 현장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지휘관들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강화해야 한다. 이들이 재난 상황에서 가지는 권한도 아직 부족하다. 재난 현장에서만큼은 현장 지휘관이 지방자치단체장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양 회장 “범부처 통합적으로 재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현행법을 정비해야 한다. 참여정부 이전부터 강조하는 것이지만 지지부진하다. 행안부 소관인 재난안전기본법은 기본법이라기보단 집행법적 성격이 강하다. 모든 재난을 총괄하는 행안부는 이 법을 근거로 재난 상황에서 각 부처를 조율해야 하는데 과연 잘 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차관급 조직인 행안부 재난안전관리본부를 장관급 이상으로 격상해야 한다.” 방 교수 “현장 지휘관뿐만 아니라 사고 수습을 총괄·지원하는 ‘비상관리자’의 역할도 강조돼야 한다. 이들은 현장에 나가진 않지만 사고 상황에 대해 정확하고 적절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재난 현장에 대해 높은 이해도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 정부에는 그런 인재가 없다. 오로지 사망자가 몇 명인지 등 보고서를 꾸미는 데에만 급급하다. 비상관리자들의 전문성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나라에서 재난 관리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재난관리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대학은 손에 꼽는다. 무엇보다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지만 체계적으로 배운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정부에서 재난 분야만을 전담할 ‘방재안전직’이 신설됐지만 실제 정부의 역량 강화로 이어지기까진 요원하다. 실제 정부 재난 대응 전담 조직의 60% 이상이 재난 분야 전문가로 채워져야 한다.” 류 차관 “과거엔 재난이 터지면 재빨리 수습하고 사회적 기능을 복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재난의 직간접적인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것에 정부가 더욱 역점을 둬야 한다. 지난해 11월 KTX 오송역에서 단전으로 열차 운행이 지연되는 사고가 있었다. 열차가 멈춘 원인을 찾아내 기차의 통행을 재개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은 과거의 재난 대응 방식이다. 이제는 기차 안에 있는 승객들에 대한 보호 조치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 정부가 고민해야 한다. 재난안전관리본부가 적극적으로 일하기 위한 위상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재난관리의 출발은 지자체와 현장이다. 중앙정부 차원에선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지자체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으로 나아가진 않고 있다. 정책과 제도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세월호 같은 상황이 또다시 발생했을 때 ‘국가 실패’로까지 일컬어지는 결과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있는가. 종합적인 관점에서 아직 ‘자신 있다’고 답변하지 못한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고 앞으로 개선해야 할 숙제다.” 대비 -미래 재난에는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방 교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려보자.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 축구의 4강 신화를 이뤄낼 때 그는 축구 경기에서 현란한 테크닉을 가르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체력 단력만 시켰다. 앞으로 복합, 신종 재난이 올 거라는 경고가 나온다. 기술적인 보완보다 앞서야 할 것은 기본적인 재난 대응 역량이다. 기본만 잘 갖춰져 있으면 어떤 재난이 와도 문제가 없다. 앞으로는 정부가 원칙과 틀을 세우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에도 앞으로 10년 안에 ‘슈퍼 태풍’(1분 평균 최대 풍속 67㎧ 이상)이 올 것으로 본다. 여의도가 잠기고 소양강댐이 허물어지는 등 한반도가 초토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재난으로 국가가 망할 수 있다는 정도의 혹독한 시나리오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자 우리에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이고 현재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와 있는지 진단해야 한다. 그 차이를 줄여나가는 것이 미래 재난에 대비하는 것이다.” 양 회장 “점점 재난에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기후변화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구조도 바뀌고 있다. 특히 어디 하나 연결되지 않은 곳이 없는 ‘초연결사회’에선 대규모 복합재난 발생으로 사회 전체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지경에 놓일 수도 있다. 사회 전체의 재난 대응 역량을 높여야 한다. 정부에 요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재난이 발생했을 때 시민들이 스스로 목숨을 지킬 수 있도록 높은 수준으로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재난에 대해 ‘공부’하는 사회가 돼야 한다. 대형 재난이 터졌을 때 언론과 국민은 정치권에 어떤 형태로든지 답을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하지만 답을 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개별적인 재난 사고 하나만 봐서는 안 된다. 보다 큰 관점에서 다가가야 한다.” 이 교수 “기본적인 재난 대응 능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앙보다는 지방의 역량이 약하고 광역단체보다는 기초단체가 열악하다. 과연 우리 지자체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확한 판단으로 중앙정부에 적절한 지원을 요청한 경험이 있는가. 이들이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각화된 데이터를 가지고 중앙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꾸려야 한다는 요청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류 차관 “미래 재난이라는 것이 이제는 정말 머나먼 미래의 관념만은 아니다. 슈퍼 태풍이라든가 대규모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등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 국가가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준비를 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당장 복합재난에 대한 시나리오를 개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음달에 ‘을지태극연습’을 실시한다. 지진이나 원전 사고 등에 대해 나름대로 시나리오를 개발해 관련된 모든 부처가 총력 대응하는 것을 기획하고 있다. 교수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미래 재난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종합적인 역량을 기반으로 대처해야 한다. 미래 재난에 대해 별도의 체계를 만들 수는 없다. 재난안전 분야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민관이 협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 대담 조현석 산업부장 hyun68@seoul.co.kr 정리 오경진 기자 oh3@seoul.co.kr
  •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 본격 추진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 본격 추진

    전북가야사 연구·복원사업이 본격 추진된다.전북도는 올해 22억원을 들여 학술조사, 발굴·복원 등 32건의 사업을 추진한다고 22일 밝혔다. 이에따라 전북도는 가야 유적이 분포돼있는 7개 시·군에 보조금을 교부하고 국가사적 지정을 위한 시·발굴과 고증 위주의 기본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현재 전북 동부권 7개 시·군(남원,완주,진안,무주,장수,임실,순창)에는 426개소에 751건의 유적이 분포돼있다. 유적은 고분 456기, 제철유적 176개, 봉수 73개, 산성 46개 등이다. 윤동욱 전북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은 “가야 문화권 조사·연구를 위한 지표조사 및 시·발굴 조사를 추진해 신속하고 정밀하게 문화재 지정을 유도하고 복원·정비사업을 통해 전북가야사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전주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목포문화연대, 목포 임성지구 고인돌 보존 대책 촉구

    목포문화연대, 목포 임성지구 고인돌 보존 대책 촉구

    목포시가 택지개발 지역에서 고인돌 유적지를 무더기로 발견했는데도 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수년 동안 대책 마련에 부실하다는 판단에 급기야 시민단체가 보존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19일 목포대학교 박물관에 따르면 목포 석현동과 옥암동 일대에 개발중인 ‘임성지구’에 대해 2014년 지표조사한 결과 문화재 10개소가 분포돼 있다. 이중 4개소가 도시개발 사업 지구안에 있다. 청동기시대 석현지석묘Ⅱ, 구석기·삼국시대 옥암동 장재유물산포지, 삼국시대 옥암유물산포지, 삼국시대 초당산고분 등 4개소이다. 도시개발 사업부지 바깥 부분에도 청동기시대 지석묘 2개소, 시대 미상 거석기념물 1개소, 조선시대 노거수1개소, 삼국시대 유물산포지 1개소, 삼국시대 갱골고분 1개소가 산재해있다. 이같은 사실에 문화재청은 2015년 목포시에 ‘목포 임성지구 도시개발사업지구 내 문화재 보존대책’ 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지난 3월에도 보존대책과 전수조사 등을 실시하도록 목포시에 다시 통보했다.목포시문화유산위원회에서도 2012년 ‘석현지석묘군 Ⅱ’과 옥암동 초당산 고분 2개소를 시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지난 2월에는 고고학자가 석현동 일대를 재조사하면서 고인돌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고고학자는 ‘석현동은 4m 규모의 대형급 큰 고인돌이 존재하며 주변에는 보다 작은 규모가 분포해 상징적인 기념물과 함께 무덤 고인돌이 공존한 고인돌군이다’, ‘석현동 아파트앞 고인돌은 부서지거나 방치돼 있고, 덮개돌이 깨진 상태이거나 이동된 것들이다. 최근 발굴에서 받침돌(지석)만 있거나 덮개돌이 없어져 무덤방(석실)만 있는 형태로 확인돼 훼손상태가 매우 심하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목포문화연대는 이날 성명서를 내고 “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임성지구 고인돌군은 종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보존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보존대책을 강조하고 있다”며 “석현동 일대는 곳곳에 고인돌이 산재돼 있는 장소로 목포의 대표적인 고인돌군이다”고 밝혔다. 정태관 목포문화연대 대표는 “훼손 방지 대책을 강구하고 종합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하는 방안을 즉시 모색하기 바란다”며 “고인돌 공원화 등의 문화적 콘텐츠에 대한 다양한 방향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목포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화성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지름 82㎞ 운석구덩이 포착

    화성에서 온 ‘크리스마스 카드’…지름 82㎞ 운석구덩이 포착

    이웃 행성에서 온 완벽한 ‘크리스마스 카드’ 사진이 공개됐다. 유럽우주국(ESA)은 20일(현지시간) 화성탐사선 마스익스프레스가 보내온 사진을 발표했다. 마치 한 곳에만 동그랗게 하얀 눈이 쌓인 것처럼 보이는 이 사진은 화성 북극 근처에 있는 운석구덩이 ‘코롤료프 크레이터’를 촬영한 것으로, 중심에 보이는 흰색 물질은 두꺼운 얼음층이다.코롤료프 크레이터는 지름 약 82㎞, 깊이 약 1.9㎞로 측정될 만큼 매우 거대하며, 그 안에는 일 년 내내 깊이 약 1.8㎞의 얼음층이 쌓여있다. 이는 얼음층 때문에 그 위에 있는 대기가 냉각돼 차가운 층을 만들어 얼음이 녹지 않고 계속 남게 되는 콜드 트랩(cold trap) 현상이 원인이라고 ESA 전문가들은 말한다. 크레이터의 이름은 소련 로켓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르게이 코롤료프(1906~1966)를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마스익스프레스는 2003년 6월 발사돼 같은 해 12월 25일 화성 궤도에 도달했으며, 이번 사진은 고정밀카메라를 사용해 촬영한 것이다. 화성에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지질탐사선 ‘인사이트’도 지난달 26일 착륙해 사진 촬영과 지표조사를 벌이고 있다. 19일에는 지표에 과학장비인 지진계(SEIS)를 내려놓는 데 성공했다. 지구 외의 행성에서 지진계가 설치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진계는 탐사선으로부터 로봇팔을 뻗칠 수 있는 최대 거리인 약 1.6m 거리에 배치됐다. 지진계는 화성의 지진을 탐지해 화성 내부 구조를 파악하는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 이는 화성의 지하 각 층을 통과하는 지진파를 분석함으로써 각 층의 깊이와 구성 성분 등을 파악해 낼 수 있다. 사진=ESA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덩치 커지는 서울 월세 시장, 수요자 눈길 오피스텔로 쏠려

    덩치 커지는 서울 월세 시장, 수요자 눈길 오피스텔로 쏠려

    서울 주택시장에서 월세가 늘고 있다. 아파트값이 크게 상승한데다 최근 정부의 대출규제로 인해 매수에 대한 부담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서울에서 소액으로 임대 투자가 가능한 소형 오피스텔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8월 발표한 ‘2018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서울 월세 거주 비율은 31.2%로, 2015년에 비해 5.2% 포인트 상승했다. 자가 비율은 42.1%로 높지만, 2년 전에 비해 1.0% 포인트 소폭 올랐고, 전세는 6.7% 포인트 떨어져 26.2%였다. 10년 전(2007년)과 비교하면 월세 시장은 20.6%에서 무려 10.6% 포인트 증가했다. 상승폭은 자가(2.5% 포인트)의 4배 이상이다. 아울러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1만 8333건으로, 올해 최대치다. 평당 월세 가격 역시 매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올 상반기 기준 3.3㎡당 평균 월세가 3만 9400원대로, △2016년 하반기 3만 8800원 △2017년 상반기 3만 8900원 △2017년 하반기 3만 9100원 등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업계는 서울의 높은 집값으로 내 집 마련 진입장벽이 높아진데다 기준금리가 여전히 1%대 저금리를 유지해 집주인들이 월세를 선호하면서 월세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풀이했다. 또한, 정부 규제의 적용으로 신규 분양 아파트에 당첨되기 위해 무주택자 신분을 유지하려는 사람도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흐름 속에 북위례신도시 서울 송파권역에 절찬리 분양 중인 신규 오피스텔이 있어 화제다. 일신건영은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일상 6-1-1, 6-1-2블록에서 듀얼 컴팩트 하우스 ‘더케렌시아 300’을 분양 중이다. 북위례 송파권역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북위례 개발에 따른 미래가치를 기대할 수 있고, 업무시설용지 7개 블록을 걸어서 이용할 수 있는 거리에 지어진다. ‘더케렌시아 300’은 다양한 생활 인프라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우선 지하철 5호선 거여역이 직선거리로 약 700m 거리에 있어 이를 통해 광화문, 여의도 등 업무지역으로 한번에 이동 가능하다. 거여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오금역에서 지하철 3호선 환승을 통하면 강남권과의 연계성도 우수하다. 여기에 서울외곽순환도로 송파 IC, 송파대로, 동부간선도로 등 다양한 도로망이 가까이 있고, 향후 위례신사선(예정), 위례트램(예정) 등도 예정돼 있어 교통환경은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단지 인근에는 연면적 15만 9798㎡ 규모의 트레이더스몰, 전문매장, 영화관 등이 들어서는 ‘스타필드 시티 위례’가 18일 문을 열었고, 위례신도시의 핵심시설인 트랜짓몰도 가까워 편의시설 이용이 수월하다. 이와함께 도보권에 대규모 수변(호수)공원도 조성될 예정에 있어 쾌적한 주거생활이 가능하다. ‘더케렌시아 300’은 지하 4층~지상 12층 전용면적 23~29㎡ 총 300실 규모로 이뤄졌다. 지하 4층~지하 1층에는 주차장이, 지상 1~2층에는 연면적 2598㎡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더케렌시아몰’ 41실이, 지상 3층~12층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전용면적별로는 △23㎡A 163실 △24㎡ 110실 △26㎡ 17실 △29㎡ 10실 등 임대수요 확보가 용이한 원룸구조와 테라스형, 2bay 1.5룸 위주로 구성된다. 서울시 송파구 방이동 35-8번지에 분양 홍보관을 운영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함안 아라가야는 ‘토기 왕국’이었다…길이 11m 오름가마 유적 발굴

    함안 아라가야는 ‘토기 왕국’이었다…길이 11m 오름가마 유적 발굴

    경남 함안에서 아라가야 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가마터와 토기 폐기장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아라가야 토기 생산 거점으로 알려진 경남 함안군 법수면 우거리 산139-3번지 일대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길이 약 11m, 최대 너비 2.5m, 잔존 깊이 1.1m인 계단식 등요(登窯·경사지에 터널형으로 축조한 오름가마) 유적을 찾아냈다고 13일 밝혔다. 함안 법수면은 14년 전인 2004년 창원대박물관이 지표조사를 진행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에 축조한 토기 가마터 13곳이 분포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해에 국립김해박물관이 가마터 한 곳을 발굴해 가마 3기를 확인한 바 있다.가마터 유적 존재가 알려진 지 14년 만에 발굴조사를 시행한 연구소는 토기를 두는 소성부(燒成部)와 연기가 빠져나가는 연도부(煙道部) 사이에 낮은 계단이 있는 등요를 발견했다. 강동석 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연합뉴스를 통해 “기존 조사에서 확인한 가마터는 길이가 7m 이하인데, 이번에 확인한 가마는 규모가 월등히 크다”며 “형태도 이전 가마는 계단이 없는 등요였으나, 이번에는 계단이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호(大壺·큰항아리)를 굽기 위해 조성한 가마로 추정된다”며 “경남 김해와 창녕에서도 가야 가마터가 나온 바 있는데,우거리 가마는 다른 가야 가마와 비교해도 큰 편”이라고 말했다. 아라가야 토기 생산기지의 고갱이었음을 보여준다.가마와 폐기장에서는 승석문단경호(繩蓆文短頸壺·삿자리무늬 짧은목항아리)가 많이 나왔으나, 노형기대(爐形器臺·화로형 그릇받침)·통형고배(筒形高杯·원통형 굽다리접시)도 소량 출토됐다.이에 대해 연구소는 “대부분 함안을 중심으로 영남 지역에 넓게 분포하는 고식(古式) 도질토기(陶質土器)”라고 설명했다. 고식도질토기는 1천도 이상 온도를 유지하는 가마에서 구운 단단한 토기로, 보통 신라와 가야 초기 단계 토기를 지칭한다. 강 연구관은 “가마터 유적은 왕궁터에서 북서쪽으로 약 5㎞ 거리에 있는데, 아라가야 수공업 거점이자 토기 산업단지였다”며 “이곳에서 토기를 대량 생산해 각지로 유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연구소는 “가마 크기에 따라 토기 생산방식과 종류가 어떻게 달랐는지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는 좋은 자료를 확보했다”며 “아라가야 토기 생산기술의 발전상을 추가로 연구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까지 아라가야 발굴조사는 고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토기 생산지 조사는 연구 영역을 넓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경남 합천 삼가고분군, 가야시대 독자적인 ‘삼가식 다곽식고분’

    경남 합천 삼가고분군, 가야시대 독자적인 ‘삼가식 다곽식고분’

    경남 합천군 삼가면 양전리·일부리에 걸쳐있는 가야 무덤인 삼가고분군은 한 봉분에 여러개 무덤이 조성된 삼가지역만의 독자적인 고분문화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합천군과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는 23일 삼가고분군 국가사적 승격을 위한 역사적 자료와 당위성을 확보하기 위해 이날 합천박물관 대강당에서 ‘빛나는 합천의 가야 삼가고분군’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군에 따르면 경남도기념물 제8호인 삼가고분군은 사적 제326호 옥전고분군과 함께 합천지역 가야를 대표하는 고분 유적으로 최근 정밀지표조사에서 모두 328기의 봉토분이 확인됐다.학술대회는 문준희 합천군수와 홍재우 경남발전연구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조영제 경상대학교 사학과 교수의 기조강연, 삼가고분군의 역사적 가치와 활용방안 마련을 위한 주제 발표, 토론 등으로 진행됐다. 군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삼가고분군은 ‘삼가식 다곽식고분(한 봉분에 여러 개 무덤이 조성된 고분)’으로 명명할 만큼 이 지역만의 독자적인 고분문화를 갖고 있는 고분임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고분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삼가고분군 축조세력의 대외교류 역량을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도 확인됐다. 군 관계자는 “학술대회를 통해 삼가고분군이 서부경남 가야유적 가운데 뚜렷한 특징을 갖고 있어 국가사적으로 지정할만한 가치와 중요성이 있는 유적으로 평가됐다”고 말했다. 군은 이번 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전문가들의 연구결과 등을 바탕으로 삼가고분군 사적 지정 당위성을 뒷받침 하는 자료를 확보해 사적 지정과 복원·정비 사업 등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합천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전남 장흥읍성 터에서 백제·고려시대 유물 발굴

    전남 장흥읍성 터에서 백제·고려시대 유물 발굴

    전남 장흥읍성 발굴조사에서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이 확인됐다. 장흥읍성은 지난해 전라남도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지역으로 확정됐다. 발굴조사는 (재)민족문화유산연구원에서 지난 6월 18일부터 시작했다. 장흥읍 동동리 산 6-1번지에 위치한 조사구역은 사전지표조사에서 다양한 유물들이 확인됐다. 판축 다짐층과 수혈유구, 주공 등 백제시대부터 통일신라, 고려시대까지 유물의 시대적 폭도 넓은 것으로 알려졌다. 발굴에 참여한 전문가는 “백제 고마미지현의 중심지가 이 일대로 판단된다”며 “백제 유적이 이 지역에서 확인돼 삼국사기, 삼국유사 기록에 부합한 중요한 장소다”고 밝혔다.기와 조성기법(문승문, 포목문)은 전남 동부권인 순천시와 여수시·광양시에서 출토되는 백제시대 기와와 유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제시대 유적에서 보이는 승문제작방법과 공통된 제작기법을 보여 시기는 7세기 내외로 추정되고 있다. 장흥군은 지난 12일 장흥읍성 발굴조사 현장설명회를 열고 이같은 의견을 발표했다. 군 관계자는 “지속적인 발굴조사와 주변 수목제거 등 유적 정비를 통해 문화재로 지정되도록 힘쓰겠다”고 말했다. 장흥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진안군에서 가야문화특별전

    전북 진안군이 가야문화유산과 동향면 대량리 제동유적 조사성과를 보여주는 특별기획전을 16일부터 진안역사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진안에서 찾은 가야, 그리고 구리고을’을 주제로 여는 이번 전시는 진안 황산리 고분군과 와정유적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를 비롯해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대량리 제동유적의 조사성과와 수습유물 등을 선보인다. 진안지역은 삼국시대 백제의 영역에 속했던 곳으로 알려져 왔는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용담댐 수몰지구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황산리 고분군 등이 드러나면서 가야문화의 존재가 확인됐다. 최근 지표조사 결과에서 진안을 비롯한 진안고원 일대에 분포한 산성과 봉수 등이 장수지역을 중심으로 집결하는 양상으로 확인되면서 가야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진안 동향면에 있는 대량리 제동유적에서는 구리를 생산했던 제동로(製銅爐) 2기와 대규모 폐기장, 건물지 1기가 조사됐다. 동향면(銅鄕面) 지역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 등 문헌에 기록된 ‘동향소(銅鄕所)’가 있던 지역으로, 예로부터 구리 고을이라고 불렸다 이 지역에 있는 대량리 제동유적은 문헌기록에 등장하는 동향소의 실체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볼 수 있다. 유적의 운영 시기는 고려시대로 판단되나 삼국시대 토기가 일부 수습됨에 따라 고려시대 이전부터 운영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증가 추세 보이는 서울 월세 거주 비중… 소형 오피스텔에 수요자 ‘관심’

    증가 추세 보이는 서울 월세 거주 비중… 소형 오피스텔에 수요자 ‘관심’

    서울 주택 시장에서 월세의 비중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서울에서 소액으로 임대 투자가 가능한 소형 아파트 또는 오피스텔로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에서 지난 8월 발표한 ‘2018 서울서베이 도시정책지표조사’를 보면 2017년 기준 서울 월세 거주 비율은 31.2%로 나타났다. 자가 비율은 42.1% 전세는 26.2%로 뒤를 이었다. 2015년도와 비교하면 월세는 5.2%p 상승했다. 반면 자가 비율은 1.0%p로 소폭 상승했고 전세는 6.7%p 하락했다. 더욱이 10년 전(2007년)과 비교하면 월세 시장은 크게 늘었다. 2007년 월세 비중은 20.6%로, 무려 10.6%p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자가는 2.5%p, 전세는 7.1%p 떨어졌다. 늘어난 월세 수요는 30대 가구주가 다른 연령대에 비해 높았다. 2017년 30대 월세 거주 비중은 43.5%로 나타났다. 반면 전세는 40.8%, 자가는 15.4%로 조사됐다. 그 외 월세 거주 비중은 △40대 24.4% △50대 20.2% △60대 이상 23.1% 등으로 나타났다. 월세 비중이 높아진 만큼 월세 거래 비율도 늘었다.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거래된 주택(아파트, 단독/다가구, 다세대/연립) 수는 총 32만1172건로 이 중 월세는 9만2275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거래 중 28.73%가 월세로 거래됐다. 2015년도에 월세로 거래된 거래 비율이 27.52%(34만3577건 중 9만4558건)인 것보다 1.23%p 늘었다. 업계는 서울의 높은 집값으로 내 집 마련 진입장벽이 높아지자, 세입자들이 늘어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기준금리도 여전히 1%대 저금리를 유지하고 있어, 집주인들이 전세보다는 월세를 선호한 것도 월세 비중이 증가한 것으로 보여진다. 부동산114자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3㎡당 2395만원으로 나타났다. △단독/다가구는 3.3㎡당 1602만원 △연립/다세대는 3.3㎡당 1580만원으로 조사됐다. 2015년 대비 시세가 많이 올랐다. 2015년 6월 기준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3.3㎡당 1726만원이었으며 △단독/다가구 3.3㎡당 1147만원 △연립/다세대 3.3㎡당 1227만원 등에 불과했다. 2015년보다 △아파트 38.64% △단독/다가구 39.67% △연립/다세대 28.77% 등 각각 상승했다. 일신건영은 서울 송파구 위례신도시 일상 6-1-1, 6-1-2블록에서 오피스텔 ‘더케렌시아 300’을 분양 중이다. 이 단지는 지하 4층~지상 12층 전용면적 23~29㎡ 총 300실 규모로 이뤄졌다. 지하 4층~지하 1층에는 주차장이, 지상 1~2층에는 연면적 2598㎡ 규모의 근린생활시설 40실이, 지상 3층~12층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전용면적별로 살펴보면 △23㎡ 163실 △24㎡ 110실 △26㎡ 17실 △29㎡ 10실 등 임대수요 확보가 용이한 원룸구조와 테라스형, 2bay 1.5룸 위주로 구성된다. 단지는 북위례에서도 행정구역상 서울 송파구에 속해 있으며, 본격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높은 거여·마천뉴타운과도 인접해 있어 향후 가치상승도 기대된다. ‘더케렌시아 300’은 다양한 생활 인프라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우선 지하철 5호선 거여역이 직선거리로 약 700m 거리에 있어 이를 통해 광화문, 여의도 등 업무지역으로 한번에 이동 가능하고, 거여역에서 두 정거장 거리에 있는 오금역에서 지하철 3호선 환승을 통하면 강남권과의 연계성도 우수하다. 여기에 서울외곽순환도로 송파 IC, 송파대로, 동부간선도로 등 다양한 도로망이 가까이 있고, 향후 위례신사선(예정), 위례트램(예정) 등도 예정돼 있어 교통환경은 더욱 좋아질 전망이다. 단지 인근에는 연면적 15만 9798㎡ 규모의 트레이더스몰, 전문매장, 영화관 등이 들어서는 ‘스타필드 위례’가 오는 12월 완공될 예정이고, 위례신도시의 핵심시설인 트랜짓몰도 가까워 편의시설 이용이 수월하다. 이와함께 도보권에 대규모 수변(호수)공원도 조성될 예정에 있어 쾌적한 주거생활이 가능하고, 업무시설용지 7개 블록이 모두 도보권에 있어 풍부한 임차수요 확보에도 용이하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김포 문수산서 고려시대 절터 추정 유적지 첫 발견

    김포 문수산서 고려시대 절터 추정 유적지 첫 발견

    경기 김포시 문수산에서 처음으로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유적지가 발견됐다. 김포문화재단은 문수사 일대 학술·정밀 지표조사 결과 문수산에서 최초로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지역 1곳을 발견했다고 25일 밝혔다. 추가로 조선시대 절터 추정 1곳과 1705년 숙종시대 세워진 응진당대사비 평탄지 1곳도 발견됐다. 문수산의 현 문수사는 사료는 없으나 신라 해공왕때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문수사 풍담대사 부도·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1호로 지정돼 있다.먼저 응진당대사비 평탄지에서는 3단석축과 조선시대 백자편·도기편 등이 발견됐다. 이곳은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 ‘전등사본말재산대장’에 기록된 ‘풍담대사 부도 및 비’와 문수사 재산인 ‘상월당대사비’· ‘강월당대사탑’ 및 부도가 존재할 가능성이 많은 곳이다. 또 조선시대 절터와 고려시대 절터로 추정되는 두 곳은 조선후기 지도에 ‘문수곡(文殊谷)’이라 표시된 곡부상에 위치해 있다. 조선시대 절터는 총 1400여㎡로 2단석축이 확인됐다. 발견된 조선후기 자기편과 와편·도기편 중 특히 와편이 압도적으로 많아 절터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고려시대 절터는 총 3300여㎡로 잔존 높이 2m가량 3단석축이 확인됐다. 여러 단이 추가로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에서도 상당수 와편과 도기편이 나왔다. 와편은 고려시대 기와특징인 어골문이 타날된 것으로 고려시대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형숙 문화유산팀장은 “문수곡은 군부대 때문에 접근하기 어렵지만 예전 문수산성 북문으로부터 문수사로 올라가는 동선으로, 이 선상에서 확인된 건물터는 문수사와 관련된 절터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또 “응진당대사비 평탄지가 절터인지 부도밭인지는 추가로 발굴조사가 이뤄져야 확인할 수 있고 우선 보존조치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국토문화재연구원이 맡아 지난 3월부터 넉달간 진행된 이번 조사는 고지도 및 고문헌 분석, 현장 지표조사 등을 통해 문수사의 역사적 가치와 연원을 규명하고 주변 유적의 유존현황과 효과적인 보존방안을 마련하고자 실시됐다. 최해왕 김포문화재단 대표는 “학술적 목적으로 문수사 일대에 대한 지표조사를 실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수사의 역사적 원형을 찾는 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며 “이번 조사는 문수사의 역사적 위상과 스토리의 폭을 한층 넓히는 계기로 앞으로 추가로 조사해 학술대회와 스토리텔링를 실시해 김포 문수산과 문수사가 갖는 역사적 의미를 하나씩 밝혀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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