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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기대에 부푼 베를린 현장을 가다(이제 독일은 「하나」:3)

    ◎쌓이는 상품…「줄서기경제」가 사라진다/동독기업 자생력 회복이 최대과제/국민도 자본주의적 사고수용 시급/동독의 자구노력 없을땐 서독 지원에도 한계 「7ㆍ1경제통합」 전날 까지만 해도 텅비어 있던 동독상점들의 진열대에는 2일부터 다시 상품이 그득히 쌓이기 시작했다. 비누한개 사과몇개 사려해도 지루한 줄서기를 강요당했던 엊그제의 사정에 비하면 세상이 크게 달라졌음을 실감케 하는 것이다. 현지의 신문들은 이번 조치로 독일경제사에 새지평이 열렸다고 보도하고 있다. 사회주의경제체제를 하루아침에 자본주의체제로 바꾸어 놓은 이 조치는 아마도 20세기 경제사에 최대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40여년간의 공산독재 아래 사회주의경제의 특징인 배급제도에 길들여져온 동독국민들은 이날 경제통합조치후 처음 장사를 시작한 상점에서 가전제품이며 옷가지며 식료품 등 평소 사고싶고 지니길 원했던 물건들을 자유스럽게 선택하여 사들고 나오는 것으로써 자본주의사회의 자유시장경제와 첫 만남을 했다. 『마르크화를 처음 받았을 때는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고 갖고싶던 물건을 사고 나니 딴 세상에 온듯 싶습니다』부인과 함께 컬러 TV를 사가지고 나오던 오토 슐레만씨(46)는 흡족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아직은 뭐가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가경제적인 측면으로 보면 이번 조치로 동독은 완전히 서독에 흡수되어 사라져버렸다. 서독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가 발권을 전담함은 물론 통화의 수급조절도 담당하게 된다. 또 국가예산의 통제권도 서독정부가 행사한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쓰러져 가는 동독경제가 뜻대로 활기를 찾게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렵다. 개인들에 있어서의 염려와 마찬가지로 국가경제 전체적인 측면에서의 불확실성도 만만치 않다. 이번에 적용된 양독화폐교환 비율,그리고 이에 소요된 2백60억마르크라는 막대한 화폐발행은 앞으로 인플레를 부르고 금리를 올리는 역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가 공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동독의 모든 기업들은 가능한한 신속히 국영에서 민영체제로 바꾼다는 협정 내용에 따라 국가의 직접적인 지원이 1일부터중단됐다. 시장경제의 경쟁체제로 내몰린 것이다. 동독의 공장들중 자유경쟁에서 견뎌낼 수 있는 곳은 30%에 불과하며 절반은 재정지원을 받아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이고 20%정도는 아주 짧은 기간안에 도산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경제연구소는 경제통합과 관련한 연구보고서에서 단기적인 부정적 측면을 보다 자세하게 예시했다. 이 연구소의 하이네르 후라베스크 책임연구원은 동독의 기업들은 생산설비의 구조적 취약성,생산수단의 낙후,통신시설 미비,노동자들의 근로의욕 저하 및 자발적의사결정태도의 미숙 등으로 자유경쟁체제에서 어려움을 겪게될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기업의 도산 등으로 동독의 실업률이 91년에는 17%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같은 회색빛 전망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는 자신들의 경제력으로 이를 담당,해결해 내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으며 동독국민들이 불안속에서도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는것도 바로 이때문이다. 헬무트 콜 서독총리는 1일 통화통합에 즈음한 TV연설을 통해 경제통합조치의 성공적인 수행만이 분단된 조국의 완전통일을 조속히 달성할수 있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동서독은 이번 조치를 취하면서 총 1천1백50억마르크 규모의 「통독기금」을 만들기로 했다. 동독은 이 기금에서 올해에 2백20억마르크,내년에 3백50억마르크,92년에 2백80억마르크,93년에 2백억마르크,그리고 94년에 1백억 마르크를 받게된다. 이같은 지원규모는 동독의 경제재건에 큰 도움을 주게될 것은 사실이겠으나 충분한 해결책은 될수 없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동독의 경제가 새로운 시장경제체제에 얼마나 빠른 적응력을 보이느냐가 문제해결의 초점으로 등장되고 있다. 도이체 방크 이사 쿠르트 카시씨는 『억만금의 마르크도 모든 것을 다 해결 할 수는 없다』고 지적하면서 문제는 사회주의 경제에 물들어있는 사람들의 사고를 어떻게 빨리 전환시킬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생산시설을 보강하고 통신수단과 경영관리 체제를 개선하여 외국으로부터의 투자유인환경을 갖추어야 하며 이와함께 관료주의 타파등 경영층과 근로자들의 사고전환,서독으로부터의 재정지원 등이 조화를 이룰때 경제통합은 그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되며 사회주의 경제체제가 자유시장 경제로의 완전한 탈바꿈이 이루어 질수 있다는 것이다.
  • 전국의 사유지 가격 조사작업 모두 끝나

    지난 4월20일부터 시작된 전국 사유지 2천3백96만필지의 개별 토지가격조사 작업이 모두 끝나 14일부터 시ㆍ군ㆍ구단위의 지방토지평가위원회의 심의에 들어갔다. 건설부는 이와 관련,지가산정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 지방토지평가위원회의 심의전에 통장ㆍ이장 등 지역대표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토록 하고,필지간 가격균형이 이뤄지도록 심의에 철저를 기하라고 각 시ㆍ도에 시달했다.
  • 「신사고 바람」의 주역 고르바초프/정상회담 계기,재조명 해본다

    ◎“이념보다 빵”… 실용주의 노선 추구/동구권 개혁ㆍ냉전종식에 큰역할 베를린장벽 붕괴등 동구의 대변혁을 가져오고 2차대전이후 지속되던 냉전체제를 화합의 새시대로 바꿔가는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기왕에도 세계 여론의 주목대상이었지만 4일 한반도주변상황에 역사의 새 지평을 열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가짐으로써 다시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소연방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한 리투아니아공화국에 대해 소련이 천연가스의 공급감축등 경제봉쇄란 강경조치를 취했는데도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세계는 말로만 이를 비난했을뿐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지원할 수 있는 실제행동은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이는 순전히 고르바초프가 서방측이 취할 어떤 행동으로 타격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만큼 고르바초프는 서방 세계로부터 절대적인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그가 올해초 미시사주간지 타임으로부터 80년대의 인물로 선정된 것이라든지 지난달 영국에서 전유럽을 대상으로 창간된 유러피안이 창간특집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자유선거로 통합유럽의 대통령을 뽑을 경우 고르바초프가 1위를 차지할 것이란 결과가 나온 것등이 고르바초프에 거는 서방세계의 기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또 과거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달리 아시아에도 유럽에 못지 않은 관심을 갖는 지도자로 평가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지난 86년 7월 소련이 아시아ㆍ태평양국가의 일원임을 천명한 블라디보스토크연설 이래 89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한반도정세의 전반적인 개선으로 한국과 경제관계를 맺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는가 하면 지난 3월 김영삼 민자당대표의 방소때는 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싶다고 밝히는 등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 꾸준히 눈길을 돌리고 있다. 물론 이는 일본을 선두로 한 한국 등 아시아의 신흥경제세력들이 이룩한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에서 아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진데 따른 필연적인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새 조류를 재빨리 간파,때를 놓치지 않고 그 조류에 올라타며 스스로 그 흐름의 방향을 조정해 나가는데서 세계를 이끄는 지도자로서 고르바초프의 탁월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4일의 한소정상회담 개최도 이같은 고르바초프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한소정상회담을 발판으로 한국과 소련과의 경제협력이 강화되면 자연 일본도 여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으며 일본까지 소련경제에 참여하게 되면 아시아쪽에 주도권을 뺏기는 것을 우려,구미경제도 대소경제협력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다. 3일 미소정상회담을 마감하는 백악관회견에서 자신의 일본방문계획을 피력한 것도 이같은 맥락에서이며 한소에서 소일,소ㆍ구미로 이어지는 소련경제회복 전략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85년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이래 그에겐 언제나 개혁세력이나 수식어가 따라다녔으나 사실 그에겐 개혁세력이라기보다는 실용주의자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고르바초프가 내세운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에게 있어선 인간의 삶의 질이 최우선이며 여기에 위배될때는 기존의 이념 따위는 언제든 버릴 수 있다. 그가 지난 85년 소련의 최고지도자로 등장한 즉시 개혁과 개방을 제1의 기치로 내건 것도 종래의 이념이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실제로 국민생활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떤 것이든 할 수 있다는 실용주의적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오랫동안 우방이었던 북한의 불만을 무릅쓰고 전격적인 한소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현실을 속박하는 과거로부터의 틀은 과감히 깨뜨려야 한다는 그의 사고가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련내에서 최근 옐친 등 급진개혁파가 급격히 부상함으로써 이들 급진개혁파들이 개혁세력으로 지칭되고 고르바초프자신은 여기서 떨어져 중도노선의 정치인으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이제야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나오기 시작한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옐친등 이른바 새 개혁세력의 주장도 역시 그 뿌리는 고르바초프가 내건 페레스트로이카에 두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는 여전히 소련개혁의 아버지일 수밖에 없다.
  • 정상회담 성사배경과 전망(한ㆍ소 새 시대:1)

    ◎한반도 냉전종식의 역사적 전기/북방ㆍ개혁정책 일치… 양국수교 “초읽기”/통일여건 조성에 큰 파급효과 예상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6월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한소 수교임박이라는 양국관계에 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그 의의가 엄청나게 크다. 노ㆍ고르비회담은 우선 한소 수교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간에는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가 교환설치된 이래 1년도 채 못돼 금년 2월과 4월에 주모스크바 한국영사처,주서울 소련영사처가 설치되었으며 이번에 한소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성사됨으로써 양국수교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ㆍ고르비회담에서는 한소 관계정상화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될 것이 틀림없으며 미수교국간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교에 대한 기분적인 인식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한소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수교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수교원칙을 토대로 양국 수교교섭단이나 양국 외무장관이 빠르면 7월중에 1∼2차에 서울과 모스크바 및 유엔본부 등을 오가며 수교에 따른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9월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한소간의 관계긴밀화 발전속도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연말 방소,2차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소 정상회담의 전격 성사배경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를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려는 소련측의 실질적 욕구와 남북관계개선 방법을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구사해야겠다는 우리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서는 신흥공업국인 한국의 건설ㆍ제조업분야 등을 유치,자국의 시베리아개발,일반국민들의 생필품수급확대 등 경제번영의 촉매가 되게하고 또한 한국경제의 소련진입이 경제대국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경제부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진전,나아가 민족공동체로서 남북 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하나 북한이 한사코 폐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쪽으로 움직이게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방외교의 관건인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우회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이번 노ㆍ고르비회담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의의는 남북한 관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물결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동구에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이뤄진 최근의 세계적 화해 무드가 「분단 한반도」에 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냉전체제의 최후의 산물인 남북한 분단의 해소없이는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차 있었다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방북외교의 완결을 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노대통령에게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ㆍ고르비회담은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남북통일 여건조성이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절대 고립시키지 않으며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북한측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재개 등을 종용하고 북한도 개방의 길을 걷도록 권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산이 소련의 충고를 끝내 거부할 경우에 구사할 수 있는 대북압력카드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 개발관련 기술지원의 중단을 들 수 있다. 이미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공식비판한데 이어 소련핵기술팀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도무기체계가 소련무기체계로 이뤄져있는 점을 감안할때 군사적 압력이 용이하고 석유공급도 압력수단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북한외채의 80%가 소련채무인점도 충분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가 어렵더라도 자본주의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포기는 물론 사회주의가 얻은 전리품도 포기하는 것』(5ㆍ24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이라는 폐쇄노선을 다짐했지만 결국은 소련의 압력을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단된 남북대화나 인적ㆍ물적교류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남북 관계진전은 통일시대 개막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소 관계발전이 가속화될 경우 시베리아개발에 한국의 자본ㆍ기술이 지금도 현지에 나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그같은 「결합」은 남북한 관계진전에 새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한소 정상회담→양국 관계정상화로 이어질 북방외교성취는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상제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내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외치로 보상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은 분단시대를 열게 했던 주역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청산해간다는 의미에서 북방외교의 완결이자 분단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한ㆍ소 최근 접촉 일지 ▲78년 4월=KAL기 소 무르만스크 남쪽 2백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 9월=한국각료로는 처음으로 신현확보사장관 세게보건기구총회참석자 소련입국 ▲79년 4월=한소 국제전화 개설 ▲83년 9월=KAL기 사할린부근 상공서 소전투기에 피격 ▲88년 1월=소련,서울올림픽참가 공식발표 ▲〃 8월=박철언대통령정책보좌관 극비방소,수교교섭 개시 ▲89년 3월=최호중외무부장관,방콕에서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리가초프 소 외무차관과 접촉 ▲〃 4월=소 연방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개설,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사무소 개설 ▲〃 6월=김영삼민주당총재 방소 ▲〃 11월=한소 영사처 상호교환 개설 합의 ▲90년 2월=주모스크바영사처 개설 최호중외무장관 한소 외무장관회담제의 ▲〃 3월=공로명 초대 주소 영사처장부임,주한 소련영사처 개설,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 방한 ◎한ㆍ소관계 7백50년 약사/1884년한ㆍ노 수교조약… 공식외교 개시/무역사무소 작년 개설,양국관계 급진전 한국과 소련 양국은 서기 1246년 당시 고려 왕자인 왕준ㆍ왕전형제가 몽고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고왕 정종즉위식을 계기로 러시아 수스달 공국의 제로슬라브대공과 솔란게스왕자와 첫 접촉을 가진 이래 이번 노태우대통령ㆍ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 정상회담성사까지 7백50여년간 공식ㆍ비공식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소 양국이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61년 중로 북경조약체결로 연해주땅이 러시아영토가 됨에 따라 한로 국경이 두만강을 경계로 접하면서부터. 이후 부동함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1884년에는 한보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돼 양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이후 한소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으나 70년대 들어 한국정부는 6ㆍ23선언등을 통해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류및 관계개선용의를 표명했다. 6공들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추진과 함께 한소간 인적 교류가 증대되었으며 88년 8월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이 극비 방소,양국 수교교섭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선수단이 참가함으로써 양국관계진전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며 한소 양국은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를 교환개설했다. 이어 11월 공식관계의 시초라고 할 영사처교환설치에 합의,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에따라 지난 2월 주소 영사처가 개설되고 공노명대사가 초대 주소 영사처장으로 부임했으며 소련측도 3월 중순 시로추크를 영사처장대리로 임명,영사처업무를 정식개시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6월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소련과학원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 등 당정고위인사들이 소련을 또다시 방문,고르바초프등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만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간에 이를 뒷바침하는 친서가 교환됨으로써 양국은 1904년 국교단절이래 86년만에 다시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평을 열었다.
  • 일왕 “통석” 사과와 양국관계 앞날

    ◎「과거사」 매듭… 선린우호의 새 지평 열다/주ㆍ객체 명시… 우리측 요구 대체로 수용/대 미ㆍ중국 사과보다 훨씬 더 강도 높아/경협ㆍ교포지위 등 현안타결 가시화가 진실성 좌우 새로운 한일 우호선린관계의 개막을 위한 최대의 걸림돌이 일단 제거되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 첫날인 24일 저녁 아키히토(명인) 일왕은 그동안 한일 양국간의 최대쟁점으로 부각되었던 「과거사과」 문제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책임과 반성을 표명했기 때문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만찬사에서 히로히토(유인) 일왕이 지난 84년 언급했던 「과거사유감」(금세기의 한 시기에 양국간에 불행했던 과거가 있었던 것은 참으로 유감된 일이며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 발언을 상기시킨 후 『일본에 의해 초래된 이 불행했던 시기에 귀국의 국민들이 겪으셨던 고통을 생각하고 본인은 통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고 밝혔다. 일왕의 이같은 과거사에 대한 강도있는 사과표명은 그동안 우리 정부가 요구해왔던 ▲일제식민지 지배에 있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명시 ▲분명한책임과 반성의 표현을 대체로 수용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사과문은 일 식민지배의 가해자가 일본이며 피해자는 「귀국의 국민」 즉 한국인임을 적시했고 사과의 주체가 「본인」 즉 일왕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반성의 정도는 『통석(일본용어이나 우리말로 풀어보면 「뼈저리게 뉘우치는」의 뜻)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함으로써 「심도있는 반성」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아키히토 일왕의 이러한 「사과수준」은 그의 선왕인 히로히토 일왕의 지난 84년의 「유감」보다는 크게 진전된 것이며 히로히토 일왕 재위시 미국이나 중국에 대해 행한 사과수준 보다는 훨씬 강도가 높다. 이런 점에 비추어 이번 아키히토 일왕의 대한사과는 일단 평가할 수 있다. 더욱이 일왕 사과에 이어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일 총리가 이날 하오에 있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과거사문제와 관련,『과거의 한 시기에 한반도의 여러분들이 우리나라의 행위에 의해 견디기 어려운 고난과 슬픔을 체험한 데 대해 겸허하게 반성하며 솔직히 사죄한다』고밝힌 점은 과거사에 대한 일측의 반성정도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같은 일본측의 사과에 대해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은 『솔직히 사과하고 반성한 것으로 평가한다』고 논평하고 『이러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의 정신이 각 분야에 반영되어 한일간에 상호존중과 이해ㆍ협력의 바탕이 굳건해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부의 이같은 공식논평은 일왕및 일 총리의 「과거사 사과」를 대승적 차원에서 수용한 것으로 해석되며 이로써 한일 양국은 「불행했던 과거」에 대한 역사적인 첫 매듭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측의 심도있는 사과는 대체로 2가지 이유에서 연유되었다고 보여진다. 첫째는 한일간에 있어 과거문제를 가지고 언제까지 끌고 갈 수는 없다는 인식이 일본정부 수뇌부에 그런대로 확산됐다는 것이다. 둘째는 동서간의 벽이 무너지는등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경제력에 상응하는 국제정치적 위상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으로서 우선 한국과의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할 필요성이 점층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침략군국주의의 대명사 쇼와(소화) 일본의 인상을 씻고 평화지향의 헤세(평성) 일본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접국인 한국과의 선린관계를 내외에 과시하는 게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촉진되는 아키히토 일왕의 한국방문이 성사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 종결은 불가피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일왕의 대한 사과는 그가 일본국가의 상징이자 일본 통합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한일양국 관계발전에 족쇄가 되어온 과거역사의 그늘과 잔재를 치우는 일대계기를 마련해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중요한 부분인 「반성」과 「책임」을 표시하는 데 있어 일본식 표현인 「통석의 염」을 사용함으로써 우리측 요청사항을 교묘히 우회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일왕의 사과발언은 우리국민 감정까지 감안할 경우 충분한 설득력을 갖지는 못했다고 지적된다. 여기에서 분명히 인식해야 할 대목은 일왕과 일 총리의 심도있는 사과만으로 과거청산의 완전종결이 이뤄진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말해 일본측이 얼마나 「말」과 「행동」을 일치시켜 사과수준에 상응한 실질적인 조치를 하느냐에 따라 사과의 진실도가 좌우된다는 것이다. 예를들어 과거사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재일 한국인 법적지위,특히 교포 1ㆍ2세에 대한 3세와 상응한 조치여부,원폭피해자ㆍ사할린 동포 지원에 있어 일본의 성의정도가 바로 사과의 진실도를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일본의 사과수준에 대한 우리 국민의 증폭된 욕구가 조성되는 것도 일본의 「행동」 가시화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일 양국이 새로운 우호선린의 동반자관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과거잔재의 청산과 병행하여 미래지향적인 협력체제가 서서히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가령 만성적인 무역역조의 개선,통상ㆍ경제분야의 협력,특히 과학기술의 협력 등은 바로 그 징표가 될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과 관련,국내적으로 「큰짐」이 되었던 과거사 문제가 이런 수준에서 일단 타결된 것은 그의 일단계 방일성과가 가시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 세계지도자초청 「새시대의 도전」 대토론 내용

    ◎“통독은 한반도통일에 큰영향 미칠 것”/한국과 독일분단 「상호교류」측면서 큰 차이/경제개혁 실패한 고르바초프… 서방 자원엔 한계/한­일은 갈등극복,동ㆍ서구 변화에 대처해야 「새 시대의 도전­동아시아정세와 관련하여」를 주제로 한 세계지도자초청 대토론회가 23일 서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신현확 전 총리 등 4명의 전직국가수반들은 한승주교수(고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소련과 동구의 개혁,미소관계 및 군축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체제 구성문제,아시아와 한국의 역할 등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독일통일이 한국통일의 교훈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독일통일이 남북한관계개선에 미칠 영향과 남북통일을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토론내용을 요약해본다. ▲한승주교수(사회)=세계 정세가 최근 급변하고 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등장이후 소련과 동구의 개혁도 본격화되고있다. 소련의 당면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는.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총리=소련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언론의 자유면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경제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서는 실패했다. 현재 소련의 경제상태는 브레즈네프시대보다 오히려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는 용기가 있는 뛰어난 정치인이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개방정책은 성공적 고르바초프는 이밖에도 소연방을 하나로 유지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 앞에는 당내 보수ㆍ개혁파간의 권력투쟁,개혁에 대한 관료층의 저항,군비축소 등에 따른 군의 반발 등이 해결과제로 놓여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련내의 지원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원조가 필요하다. ▲사회=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는가.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서구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성공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 그렇지만 서구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서구의 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련 내부의 경제 사회문제가 고르바초프 정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회=소련의 개혁정책 및 문제점들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으며 내년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방일이 일ㆍ소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리라고 보는가.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성공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일본과 소련과의 관계는 서구ㆍ소련과의 관계와는 다를 것이다. 양국간에는 북방도서 반환문제 등이 놓여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소련정부가 발트3국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하고 있듯이 북방도서 문제도 이와 비슷한 선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회=일소관계와는 대조적으로 한소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소련의 정책 및 체제의 변화와 함께한국이 북방정책을 표방한 결과일 것이다. 현재 한소관계는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신현호 전 국무총리=그동안 한국은 정부수립이래 같은 유라시아에 있는 소련을 단지 「위협」의 의미로만 여겨왔으며 미국과의 관계만 유지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역사적인 조건이 누적된 것도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등장한후 과감한 정책변경과 민주화ㆍ자유화 노선으로 한국에는 닫혀 있던 지평선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다. 북방정책이 시기적절하게 주효하여 한국은 동구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소련과도 가까운 시일내에 국교를 수립할 전망이다. 한국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련 및 동구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움을 극복,신사고가 성공하기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바라고 있다. ○군사력 중요성 감소 ▲사회=통독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지만 분단국인 한국국민들은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통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주변 유럽국가들이 독일통일을 보는 입장은 어떤가. ▲지스카르 데스탱=유럽의회에서는 정기적으로 통독에 대한 현황을 논의하고 있다. 통독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91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며 7월2일 시작되는 경제금융통합이 잘되느냐에 따라 통독의 전망이 밝혀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헬무트 콜서독총리가 장기적인 것으로 통독의 10개항을 발표한 것과는 달리 통독은 훨씬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론 동서독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통독을 도와주는 주위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독이 쉬운것만은 아니다. 서독정부는 생산성이 떨어져 있는 동독기업들의 육성과 동독인들의 생활수준향상을 위해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마련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통독에 호의적인 유럽인들의 수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럽은 20여년전부터 영국ㆍ서독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4개국의 중요성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될 경우 인구도 늘어나게 될 뿐아니라 GDP(국내총생산)가 40%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사회=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속히 통일을 하게 되었는가. ▲헬무트 슈미트=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차이가 더 많다. 서독은 항상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로부터 교통,왕래허용 등 적지않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나는 호네커 전 동독국가평의회의장과 공식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신을 자주 교환했으며 유선으로도 통화할 수 있었다. 콜총리와 호네커는 상호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서로의 노력으로 쉽게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가 분단이후 남북이 접촉을 거의 하지않은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독은 지난 60년대말 브란트 전총리가 주창한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했으며 프랑스와의 협력을 위해서도 힘으로 기울였다. 90년대는 군사력보다는 경제ㆍ재정적인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사회=강대국뿐아니라 주변국가들이 통독을 경이적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는가. ○한국,저자세 바꿔야 ▲헬무트 슈미트=동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서독은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배상을 했다. 프랑스와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드골 전 프랑스대통령은 독ㆍ불관계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서독은 유태인학살로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방문단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폴란드 헝가리 등에도 재정지원을 했다. 서독정부는 이들 국가들에 수백억달러를 배상했으며 동구국가들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왔다. 소련은 서독의 이러한 움직임에 의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서독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잔류 등이 더욱 소련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다. ▲사회=독일과 일본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상이한것 같은데 24일 시작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쿠다 다케오=한­일 양국은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동ㆍ서구의 움직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며 두나라는 가장 가까운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일본은 환영하며 한일양국관계가 돈독해지고 좀더 전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뿐이 아닌 명실상부한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양국은 협력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에 영향을 미칠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서 바라는 것을 해왔으며 계속 노력해 왔다. 남북한이 현실을 직시한다면 미래에는 실수가 없도록 현명히 대처해야하고 일본은 미래의 우호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구ㆍ환경 주요이슈로 ▲헬무트 슈미트=30년전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전했다. 한국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므로 너무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자세를 바꿔야 하며 이것은 대소ㆍ중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상대방이 거절하겠지만 주변국들은 한국의 신뢰를 얻어야 할때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성공을바라서는 안된다. 한국은 이제 중간급 호랑이로 성장했으며 한­일은 동아시아의 유대를 위해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앞으로 10년 남은 21세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스카르 데스탱=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정권은 존립할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국가는 타국의 주의력을 이끌게 될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인구와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산업발전이 있었지만 환경은 이로 인해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군사력 대립은 줄어들게 될 것이지만 우발적인 사고가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지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지역문제는 그 지역기구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첫 감정평가사시험 7월22일 실시

    지가공시법시행으로 토지평가사와 공인감정사가 일원화됨에 따라 첫 감정평가사자격시험이 7월22일 치러진다. 건설부는 16일 제1회 감정평가사자격시험 일정을 이같이 확정하고 이번 자격시험에서 1백명을 뽑기로 했다. 1차시험은 민법(총칙 및 물권)ㆍ경제원론ㆍ회계학ㆍ부동산관계법규 등 4개 과목으로 객관식이며,2차시험은 감정평가 및 보상법규ㆍ감정평가원론ㆍ감정평가실무를 대상으로 논문작성 및 기입형으로 치러진다.
  • 민생치안ㆍ질서확립 대책 발표의 배경

    ◎흐트러진 사회기강 바로잡기 총력전/민주체제부정 폭력소요에 단호대응/불법분규ㆍ투기봉쇄로 경제난 해소부축 내무ㆍ법무ㆍ문교ㆍ노동 등 4부장관이 10일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내용은 「총체적 난국」으로까지 표현되고 있는 현재의 위기상황을 빠른 시일안에 극복하고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흐트러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겠다는 강력한 뜻을 담고 있다. 안응모내무,이종남법무,정원식문교,최영철노동부장관이 김기춘검찰총장과 김우현치안본부장을 배석시킨 가운데 제시한 현실타개방안은 「극약처방」만은 피하면서 노태우대통령이 지난 7일 「시국특별담화문」에서 강조한 「엄정한 법집행」을 최대한 뒷받침해 악성노사분규나 학원의 폭력소요에는 즉각 경찰력을 투입하는 등으로 강력히 대처할 것임을 밝히는 것이었다. 특히 이날 회견은 6공화국 들어 처음으로 서울 도심지는 물론 전국 곳곳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하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진 다음날에 있어 그 어느 때 보다도 장관들의 표정과 답변이 결연하고 진지했다. 정부가 지난 8일 경제장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부동산투기 억제책」등 경제대책을 발표한데 이어 이날 「민생치안 및 사회안녕 질서확립대책」을 내 놓은 것은 부동산 투기및 치안부재로 대변되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정책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날의 합동기자회견은 수출부진 등 경제적으로 다소의 문제가 있기는 했으나 「위기상황」으로까지 인식될 정도는 아니던 우리사회가 한국방송공사(KBS)사태를 계기로 급격히 악화되기 시작,급기야는 울산현대중공업 사태와 증시폭락,대규모시위 등 「총체적 난국」의 상황에까지 이른것이 그 동기가 된 셈이다. 정부로서는 이같은 상황을 더이상 간과하다가는 어떤 사태로까지 비화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 마침내 KBS와 현대중공업에 공권력을 투입하는 한편,증시부양대책을 발표하고 재벌들의 비업무용 부동산을 강제 매각토록 하는등 총력을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8일에는 부동산투기를 원천적으로 근절시키기 위한 「부동산등기에 관한 특별조치법안」을 확정발표하고 대대적인 부동산 투기꾼 색출작업에 나섰다. 이같은 종합대책이 발표된 뒤부터 기승을 부리던 부동산 투기가 수그러들고 증시가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은 불행중 다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9일 저녁 전국에서 발생한 폭력 및 방화시위는 지난 87년 6월의 시위를 방불케 하는 것으로 일부에서는 불길한 예감마저 점치고 있는 실정이다. 도심지 한복판에서 화염병과 돌이 난무한 끝에 수백명의 경찰관이 부상하고 경찰버스 여러대가 불탔으며 심지어는 외국 공공기관의 건물까지 방화하는 등 마치 혼란과 불법이 극에 이른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학생들의 이같은 극렬행위와 관련,이날 합동기자회견에 나온 관계장관들은 『폭력ㆍ파괴 및 방화행위는 자유민주체제를 전면 부정하는 것으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면서 한결같이 『단호히 대처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특히 이날의 기자회견은 앞으로 예상되는 「5ㆍ18광주민주화운동」및 「6ㆍ10대행진」등을 계기로 한 대규모 집회에도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9일 저녁과 같은 격렬한 시위가 그때까지 이어질 경우 국민의 불안은 더욱 가중될 것이며 경제 또한 크게 위축될 것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관계장관과 검찰총장ㆍ치안본부장이 밝힌 내용들은 되도록 극약처방을 피하려는 나머지 모두 원론에만 치우친 감이 없지 않아 실효성 있는 후속조치가 요구되고 있다. 이와함께 분규가 발생하거나 시위가 발생할 때마다 공권력 투입만을 능사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안내무부장관은 『공권력을 투입할 때는 사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필요한 범위 안에서 집행하고 있다』고 설명,정부측으로서도 공권력 발동에 신중을 기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는 민생침해사범및 불법노사분규ㆍ학원소요ㆍ부동산투기대책 말고도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공직자들이 앞장서야한다는 각오아래 고위공직자에 대한 광범위한 부조리 수사 등이 폭넓게 제시됐다. 김기춘검찰총장은 『현재 중앙부처의 국실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내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해 조만간 비위공직자에게 철퇴를 가할 것임을시사했다. 고위공직자에 대한 비리수사는 대검중앙수사부를 정점으로 각지검 특수부에서 엄밀히 진행하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청와대사정팀과 국무총리실 제4조종관실에서도 「저인망」식으로 비위공무원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민생치안 및 사회안녕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풀어야 할 문제들도 아직 산적해 있다. 민생치안의 경우,수사인원은 물론,장비가 너무 빈약한데다 경찰관과 수사관들의 사기도 저하돼 있어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욱이 6공화국들어 민주화추세에 덮여 크게 떨어진 공권력과 법집행의 권위를 회복하는 일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아무리 좋은 대책은 국민들이 호응하지 않고 따라주지 않으면 모두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들도 현재 겪고 있는 총체적난국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법질서와 치안확립이 시급하다는 인식아래 스스로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4부장관 회견 일문일답/법집행 엄정히… 어긴사람 꼭 처벌/분규다발업체 정밀근로감독 실시/학원문제 간섭 자제,자율해결 유도 안응모내무ㆍ이종남법무ㆍ정원식문교ㆍ최영철노동 등 4부장관과 김기춘검찰총장ㆍ김우현치안본부장등은 10일 민생치안 및 법질서 확립을 위한 합동기자회견을 한뒤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에 공권력을 투입한데 대해 언론탄압이라는 주장이 있다. ▲안응모내무부장관=KBS에 공권력을 투입한 것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임명된 사장을 노조원들이 거부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사장취임 거부행위 자체가 노조활동의 범위를 벗어난 것일 뿐 아니라 취임거부 운동과정에서 사장실의 기물을 파괴하는 등 폭력행위가 잇따라 회사측의 요청에 따라 경찰력을 투입했다. 또한 KBS는 어떤 이유로도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공영방송이며 국가중요시설이라는 점과 KBS사태가 장기화되면 다른 산업현장에까지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도 고려했다. MBC에 경찰력이 들어간 것은 KBS사태 주도자들이 MBC에 도피중이어서 미리 발부된 영장을 집행하기 위한 것이었지 MBC자체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아니다. ­최근 우리사회에는 법을 지키면 손해라는 풍조와 법질서 문란행위가 만연해 있다. 이에대한 대책은, ▲이종남법무장관=우리사회일각에서는 말로만 민주화를 외치고 행동은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폭력적 행위를 서슴지 않는일이 있다. 법집행을 엄정ㆍ공명하고 일관성있게 함으로써 법을 어긴 사람은 반드시 처벌을 받고 손해를 입는다는 인식을 확산시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도록 하겠다. ­공권력과 법질서를 무시하는 풍조는 검찰 등이 재벌이나 공직자는 처벌하지 않고 일반국민들의 범법행위만을 처벌하는 등 법집행의 형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도 원인이 있다고 보는데. ▲김기춘검찰총장=법을 차별없이 집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나 미흡하다는 비판을 겸허히 수용하겠다. 개인이나 기업의 부동산거래를 일률적으로 법에 위반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현재 이에관한 특별법규가 마련되고 있으므로 앞으로는 관계기관의 협조를 얻어 경제난국의 가장 큰 요인인 재벌 등의 부동산투기를 철저히 다스리겠다. 법치주의확립을 위해서는 공직자의 기강확립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므로 대검 중수부 등을 동원해 각 부처의 실국장 등 고급공무원의 비리를 집중 수사하겠다. ­현대중공업과 KBS에 대한 연쇄적인 경찰력투입으로 노사문제의 자율해결분위기가 위축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앞으로의 노사관계를 전망하고 이에따른 정부의 산업평화대책을 밝혀달라. ▲최영철노동부장관=아직까지 노사모두가 교섭경험이 미숙하고 시각차이가 많아 당분간은 전환기적 진통이 계속되겠지만 2∼3년 안에 우리실정에 맞는 합리적이고 성숙된 노사관계가 정착될 것으로 본다. 합법적인 노동운동은 적극보호하되 사용자의 부당노동행위나 근로자들의 불법행동에 대해서는 엄중히 대처하겠다. 분규다발업체에 대하여는 정밀근로감독을 실시해 노무관리의 문제점을 해소하는 등 분규요인을 막도록 하겠다. ­9일 전국에서 1백5개대학의 학생들이 가두시위를 벌이는 등 학원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데. ▲정원식문교부장관=지금까지 해온대로 학원문제는 외부간섭없이 대학자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해 나가겠다. 운동권 학생들에 대해서는 해외연수를 확대하고 폭넓은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는등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도록 하겠다. 그러나 폭력ㆍ파괴행위 교권도전행위등은 교육외적인 방법인 일반형사법차원에서 엄히 다스릴 수밖에 없다. ­최근 교통경찰관의 비리가 드러나 국민에 대한 공신력이 크게 떨어졌다. 이에대한 대책은. ▲김우현치안본부장=앞으로는 경찰관 모집단계에서부터 인성검사를 실시해 비리유발 경찰관을 제외시키도록 하겠다. 또 장기근속 교통경찰관은 전원교체하고 감찰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비리경찰관은 즉시 파면,구속해 깨끗한 교통경찰관상을 확립하겠다.
  • 김영삼대표 인사말

    ◎“국민을 두렵게 알고 국민위해 희생” 새로운 사고와 새로운 정치로 국가와 민족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 우리는 이자리에 모였습니다. 앞으로 저는 국민의 소리를 받들고 경륜있는 최고위원들과 더불어 우리당의 총재이신 노태우대통령이 훌륭히 국정을 수행하고 난국을 헤쳐나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겠습니다. 오늘날 우리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불안은 상호신뢰의 상실과 희망의 부재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이고 총체적인 국정개혁만이 사회적 불안과 국민의 위기감을 씻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정치ㆍ경제ㆍ사회적으로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의 도덕성 회복과 자기쇄신만이 해이해진 민족정기와 사회기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민자당의 출범은 현상안주가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며 개혁속의 안정,안정속의 개혁이야말로 민주와 자유,개방과 개혁이 있는 사회의 안정을 이루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개혁의 차원을 뛰어넘는 혁명이나 계급투쟁에 대해서는 사회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 단호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우리당은 권위와 효율을 앞세워 일사불란한 경직성을 당연시해서도 안되지만 이질적 요소의 결합이라는 것을 빌미로 더이상의 분열과 갈등을 용인해서도 안됩니다. 현시기는 우리당이 규정한 바 「총체적 난국」이며 우리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뜻하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당원동지 여러분의 배전의 분발과 헌신,화합적 단결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습니다. 전당대회를 계기로 화합의 정치,믿음의 정치,성숙된 정치를 펼쳐 나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난국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고 민자당의 위상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민자당 창당의 역사성이 새겨질 것입니다. 당원동지 여러분들도 민족사의 과업을 실현해 나갈 주역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뜨겁게 하나로 됩시다. 도덕과 청렴과 신의로 우리를 쇄신합시다. 국민을 두렵게 알고 국민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는 촛불이 되고 누룩이 됩시다.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주역이 바로 우리 자신이 되기 위하여 용기와 지혜와 힘을 합쳐나갑시다.
  • 명동1평 1억2천만원/가장 싼곳은 화순,임야 1백49원

    ◎건설부,전국 30만곳 공시지가 고시 건설부는 1일 지난 1월1일을 기준으로 조사한 전국 30만개 표준지의 공시지가를 고시했다. 지난 연말에 이어 두번째로 고시된 이번 표준지 공시지가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땅값이 높은 곳은 서울 중구 명동2가 33의2 상업은행 명동지점 부지로 평당 1억2천만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1차고시때의 1억9백75만원보다 1천25만원 오른 것이다. 반면 전국에서 땅값이 가장 낮은 곳은 전남 화순군 이서면 연평리 산96의 녹지로 평당 1백49원으로 밝혀졌다. 건설부는 30만개 표준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오는 8월말까지 전국의 민간소유 토지 2천4백17만필지의 땅값을 산정,토지소유자의 열람과 중앙토지평가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이렇게 해서 조사된 개별 토지가격은 토지에 대한 모든 과세의 기준이 되며 보상 등의 기준이 된다. 즉 양도소득세ㆍ상속세ㆍ증여세는 물론 토지공개념 확대도입에 따른 토지초과이득세,종합토지세,택지상한 초과부담금,개발부담금 부과의 기준이 된다. 이번 공시지가 조사에서는 개별토지 가격 산정의 기준이 되는 표준지수가 1차때 15만개에서 30만개로 늘어 보다 정확한 땅값 평가가 가능하게 됐다. 용도지역별로 전국 최고ㆍ최저지가 지역은 상업지역의 경우 최고지역은 서울 명동의 상업은행 명동지점부지,최저지역은 전남 완도군 금일읍 월송리로 평당 6천9백42원으로 나타났다. 주거 지역으로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64 일대가 평당 3천4백71만원으로 최고를 기록했고,전남 영광군 영광읍 용산리 산3이 평당 2천4백10원으로 가장 낮았다. 1차고시때의 주거지역 최고지가는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54의8로 평당 2천9백75만원이었다. 또 공업지역의 최고가 지역은 서울 구로구 구로동 1125의4로 평당 9백92만원이고,최저가 지역은 전남 화순군 화순읍 감도리 산25로 평당 1천2백90원이다. 이밖에 녹지지역중에서는 서울 강남구 세곡동 99의5 일대가 평당 5백45만원으로 가장 높고,전남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96 일대가 가장 낮다. 이번에 고시된 표준지의 공시지가는 지난해 7월1일을 기준으로 조사돼서 지난 연말에 고시된 1차때의 공시지가에 비해 6개월 사이 상당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 외언내언

    미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가 24일 지구궤도에 진입시킨 우주망원경은 3백㎞나 떨어진 곳의 동전글씨를 읽을 수 있고 1백40억광년의 거리에 있는 천체의 빛도 포착할 수 있다고 한다. 3백㎞는 대략 서울∼김천의 거리다. 1백40억광년의 별빛이란 1초에 지구를 일곱바퀴반이나 도는 빛이 1백40억년이나 달려야 하는 곳에 있는 별의 빛이란 이야기다. ◆정식명칭은 허블우주천체망원경. 1929년 은하가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사실을 관측,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허블박사의 이름을 딴 것이다.「우주는 어느 정도의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장차 팽창은 끝날 것인가」우주의 기원과 미래를 이해할 자료를 포착하는 것이 제1의 사명이라고 이 계획 책임자 와이러박사는 설명한다. ◆무게10t에 직경4ㆍ27m길이 13ㆍ1m이며 빛을 포착하는 반사경의 지름은 2ㆍ4m로 세계 제1을 자랑하는 미캘리포니아주 파로마산 천문대의 반사경지름 5m의 절반 크기이나 감도는 10배나 더 우수하다는 것. 지상의 것은 산꼭대기 등에 있어도 구름등대기의 영향을 피할 수 없는 데 우주공간에서는 그런 장애가 완전히 제거되기 때문. 지상에선 12억광년의 천체관측이 고작이었으나 산정에서 우주공간으로 올라감으로써 1백40억광년의 별빛 관측까지 가능해 진것이다. ◆우주의 지평선이 일거에 10배나 넓어진 셈이며 갈릴레오가 1610년 망원경을 만들어 처음으로 천체관측을 시작한지 4백년만의 최대 쾌거라는 것이 천문학자들의 흥분된 평가다. 앞으로 15년동안 지상6백km궤도를 돌며 태양열로 작동,10만장의 관측사진을 송신할 예정.5년마다 수리보수까지 해가며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공위성개발사에서 도 새 시대를 여는 큰의미를 갖는다. ◆개발및 발사비가 15억달러에 운영비가 연간 2억달러. 이 때문에 「천문학에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획기적 망원경」이란 비판도 있지만 우주의 신비에 도전하는 인간의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하는가 보다. 파괴되는 환경,과밀해지는 인구,인류의 미래는 우주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 전국땅값 일제조사/전국사유지 2천만필지 대상/정부,오는 20일부터

    정부는 20일부터 건설부ㆍ국세청ㆍ지방자치단체및 한국감정원직원등 1만8천여명을 동원,국공유지를 제외한 전국 2천4백17만필지의 개별토지가격 일제조사에 나선다. 6월20일까지 두달동안 조사될 토지가격은 시ㆍ군ㆍ구청 토지평가위원회의 심의,주민 열람 및 이의신청접수,재심 및 건설부장관의 확인 등을 거쳐 8월30일에 최종 확정된다. 이번에 조사ㆍ결정되는 토지가격은 토지초과이득세ㆍ양도소득세ㆍ증여세ㆍ상속세 등의 과세기준시가가 되며 개발부담금산정,종합토지세부과를 위한 토지등급결정,택지초과소유부담금산정 기준 및 공공용지보상가격의 기준이 된다. 특히 증여세의 경우 5월1일이후 증여에 대해서부터 이번조사로 고시될 공시지가에 의해 소급과세된다. 정부는 30만 표준지에 대한 지가를 5월10일에 고시할 계획이다.
  • 공시지가 토지과표의 기준으로

    ◎땅값조사 20일부터…결정방법과 파급효과/표준지가기준,배율곱해 개별지가 산정/양도ㆍ상속세,현행보다 크게 늘어날듯/토지공개념 제도의 실효성제고 기대 그동안 여러갈래로 나뉘어 있던 땅값체계를 일원화하기 위해 지난해 4월부터 지가공시제가 도입됨에 따라 전국 2천4백17만 필지의 민간소유 토지가격이 8월30일까지 조사,결정된다. 정부는 건설부ㆍ내무부ㆍ국세청 및 지방자치단체 합동으로 모두 1만8천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오는 20일부터 6월20일까지 조사에 나선다. 이번에 민간소유 개별토지에 대한 가격조사에 나서는 것은 올해부터 토지초과이득세ㆍ택지소유상한제ㆍ개발이익환수제ㆍ종합토지세제 등 토지공개념확대도입 관련제도가 일제히 시행됨에 따라 정확한 토지가격의 조사가 선행되어야 이들 제도가 실효를 거두기 때문이다. 토지가격이 조사되는 필지는 국공유지 등 비과세대상 토지를 제외한 2천4백17만필지로 전체필지의 76%에 해당된다. 개별토지가격 조사는 2천4백17만필지에 모두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오는 5월10일까지 고시될 주요지역 30만필지의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즉 30만필지의 표준지에 대해서는 일일이 지가를 조사하지만 그밖의 2천3백87만필지에 대해선 표준지 땅값을 기준으로 사정하는 절차를 거쳐 땅값을 산정한다. 개별지가 산정에는 표준지 인근의 유사토지가격을 산정할 수 있도록 만든 비준표가 이용된다. 비준표란 도로접면상태,토지이용상황,용도지역,교통편의,유해시설과의 거리 등 토지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48개의 토지특성을 조사하여 만든 일종의 배율표를 말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경우 주거지역 표준지를 1로 했을 때 적용되는 배율은 준주거지역 1.63,상업지역 1.97,녹지지역이 0.79이다. 또 전철역 기준 5백m 이내를 1로 했을 때 1백m 이내는 1.14이다. 예를들어 전철역에서 5백m이내의 주거지역에 있는 단독주택지로 7m도로에 접해있고 고저가 있는 표준지의 공시지가가 평당 6백60만이라고 할 때 똑같은 주거지역의 단독주택지로 전철역에서 80m거리에 있고 7m도로에 접해 있으며 평지로 된 개별토지의 땅값은 6백60만원×1.14×1×1×1.52로 1천1백43원이 나온다. 이같은 절차를 거쳐 개별토지의 가격이 사정되면 시ㆍ군ㆍ구청에 설치된 지방토지심의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가가 잠정 결정된다. 잠정 결정된 지가는 다시 읍ㆍ면ㆍ동에 비치돼 열람된다. 정부는 지가공시제 도입으로 전국에 걸쳐 처음으로 실시되는 지가산정에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폭넓게 반영하기 위해 7월1일부터 3주간 읍ㆍ면ㆍ동 민원실에서 열람을 실시한다. 지가산정에 이의가 있는 토지는 소유자들로부터 재심신청을 받는다. 재심요청이 있으면 지방토지평가위원회는 땅값을 재차 산정하여 건설부 안에 설치된 중앙토지평가위원회의 재심을 거쳐 건설부장관이 최종 확정한다. 건설부는 개별토지가격 산정에 시가를 반영하기 위해 지가산정의 기본이 되는 표준지 땅값부터 2인이상의 감정평가사가 중복평가하도록 하고 있으나 아직 시가의 80∼90% 수준 정도밖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산정된 개별토지 가격은 토지에 대한 모든 과세의 기준이 되며 보상등의 기준이 된다. 즉 양도소득세ㆍ상속세ㆍ증여세는 물론, 토지초과이득세ㆍ종합토지세ㆍ개발부담금ㆍ택지초과부담금의 기준이 된다. 현재 정부는 부동산투기를 막기 위해 이달 중 상속증여세법ㆍ양도소득세법등의 시행령을 고쳐 증여세는 5월 이후의 증여분부터 공시지가를 소급적용,중과할 계획이다. 또 양도소득세에 대해서는 9월1일부터,상속세는 내년1월1일부터 공시지가를 적용할 방침이다. 현재 양도ㆍ상속ㆍ증여세의 과세표준액은 시가의 35∼40% 수준이어서 앞으로 공시지가가 적용될 경우 세금이 훨씬 무거워진다. 공시지가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토지초과이득세의 기준시가가 된다. 국세청은 오는 6월에 땅값이 크게 뛴지역을 1년마다 과세되는 특별과세대상지역으로 선정,토지초과이득세를 무겁게 물릴 방침이다. 공시지가는 또 개발이익을 환수하기 위해 부과되는 개발부담금산정의 기준이 되며 서울 등 6대 도시에서 2백평 이상의 택지를 갖고 있는 경우 상한선초과분에 대해 부과되는 초과부담금의 산정기준도 된다. 이와함께 공공용 토지매수 또는 수용때 보상의 기준이 되며,국공유지 처분때도 기준가격이된다. 이밖에 토지거래허가 또는 신고때 토지가격심사의 기준으로 활용된다. 공시지가는 앞으로 은행대출 등을 받기위해 담보되는 토지의 감정가격으로도 활용될 전망이다. 현재 지가공시법에는 이같은 의무화 규정이 없으나 공시지가가 널리 활용될 경우 공시지가의 신뢰성으로 번거롭게 감정원에서 감정을 하지 않더라도 공시지가가 바로 감정가격으로 이용될 수 있을 것으로 건설부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이같이 지가체계가 일원화되면 이용목적에 따라 중복적으로 땅값이 조사되는 행정상의 낭비를 막을 수 있게 된다. 또 그동안 국민들이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토지공개념 관련제도의 시행효과를 피부로 느끼게 돼 투기억제와 땅값안정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 “정통기마민족”…5∼6세부터 말타기훈련(깨어나는 몽고:3)

    ◎초원의 유목생활/사람보다 많은 말…2백50만마리 방목/울란바토르시민의 42%가 「게르」에 거주/양고기ㆍ말젖으로 만든 치즈ㆍ우유가 주식 몽고수도 울란바토르의 모습은 한마디로 황량한 느낌이 들게 한다. 이제 막 민주개혁바람이 불기 시작한 곳이란 생각이 그나마 적막함을 덜어주는 것 같다. 시내 한 가운데 종합청사를 중심으로 한 빌딩가를 조금만 벗어나면 한적한 한국의 시골과 같은 풍경이 나타나고 좀 더 떨어진 외곽지대엔 아파트단지와 몽고 원형천막이 모여 이룬 주택가가 눈에 들어온다. 한창 붐벼야 할 출퇴근 시간에도 그리 많지 않은 행인들이 무궤도 버스정류장에 띄엄 띄엄 모여 있을 뿐 바쁜 모습은 찾기 힘들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위에 세워진 도시에 고작 50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으니 그럴 수 밖에 없을게다. 전체 인구라야 2백만명 밖에 안되는데 국토면적은 한반도의 7배나 되니까 다른 곳을 가 봐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것은 구경하기가 힘들다. ○우리 농촌풍경 비슷 또 울란바토르 시민의 42%가 전통적인 원형천막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서구식 도시생활에 젖은 이방인은 타임머신을 타고 옛 유목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울란바토르에서 동북쪽으로 70km 떨어진 테레지 마을도 거의 모든 주민이 원형 천막에서 살고 있었다. 흔히 몽고 「파오」라고 불리나 이는 포를 중국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몽고어로는 게르라고 한다. 보통 직경 4∼6m 정도의 이 천막내부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양쪽에 침대가 있고 정면엔 주인석이 놓여 있다. 손님은 주인석 오른쪽의 자리에 앉게 돼 있다. 기자가 방문한 테레지마을의 한 원형천막집은 밖의 날씨가 영하13도인데도 가운데 피워 놓은 난로와 천막을 덮은 양가죽들 때문인지 매우 훈훈했다. 줄친관광회사 직원 만라이(26)의 소개에 4개월된 체렌바트란 이름의 손주를 안은 할머니가 『한국사람은 처음 본다. 생긴 것이 우리들과 똑같다』며 큰소리로 웃는다. 윗 옷만 걸친 체렌바트 어린이의 엉덩이엔 예외없이 푸른 몽고반점이 퍼져 있었다. 잠시 후 한국기자가 손님으로 왔다는 소문을 듣고 이 마을촌장인 77세의 잠발브레흐노인이 말을 타고 찾아왔다. 몽고족 고유의 복장(델)에 털모자(톨초그)와 긴 가죽장화(구톨스)차림의 그는 허리에 칼까지 차고 있어서 활과 화살만 있다면 영락없이 정한한 옛 몽고기병의 모습이다. ○전체인구2백만명 고령이지만 생기넘치는 눈빛,강건해 보이는 몸동작들은 양고기와 말젖으로 만든 치즈,우유를 주식으로 한 때문이라고 한다. 또 몽고 초원의 강한 바람을 맞으며 일망천리지평선을 향해 달리는 말위에서 다져진 건강이라고도 했다.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도 옛 복장에 말을 타고 달리는 사람들을 더러 볼 수 있었다. 역시 몽고인의 삶은 말과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을 것 같다. 국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촌의 초원지대는 물론 도시의 사람들도 말을 주요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 특히 초원의 사람들은 『말 안장 위에서 태어난다』고 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말과 가깝게 지낸다. 보통 5,6세가 되면 새끼말 위에 타기 시작하며 말을 못타면 사람대접도 못받는다. 전국적으로 총인구보다 많은 2백50만마리의 몽고말이 방목상태로 사육되고 있으며 야생마도 적지 않다고 한다. 어깨높이 1.5m안팎에 턱뼈가 길고 넓적하며 발목뼈가 굵고 튼튼한 이 몽고말이 바로 칭기즈칸의 제국건설을 가장 크게 도운 초원의 주인공들인 것이다. 비록 몽고사회는 여러가지 요인으로 오늘날 쇠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의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지칠줄 모르는 지구력과 강인함을 유지한채 대초원을 누비고 있다. 품종이 우수하다는 아라비아산이나 서양의 경주말이 하루 50km를 달리는 데 비해 몽고말은 처음 출발 때 속력은 다소 뒤지나 1백∼1백20km를 쉬지 않고 달린다. 사람들이 사료를 주는 일은 전혀 없으며 겨울철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혹한에서도 눈에 덮인 마른 풀을 찾아 먹고 들판에서 그대로 잠을 잔다. 칭기즈한의 군대는 이런 몽고말을 병사 한명당 7∼10마리씩 끌고 전쟁에 임했다. 끝없는 초원을 말을 바꿔타고 경쾌하게 달리며 사정거리 3백m이상의 몽고활을 쏘면서 진격하는 기동성과 용맹에 철갑으로 중무장해서 몸놀림이 둔할 수 밖에 없는 유럽의 기사들이나 중국 등 농경민족의 군대는 아예 적수가 되지 못했던 것이다. 몽고 활은 성능과 모양이 한국의 국궁과 똑같으며 중국이 한국을 가리켜 동쪽의 큰 활을 잘 쏘는 민족이란 뜻으로 동이라고 부른 것도 대단했던 활의 위력 때문이었다. ○활모양,국궁과 흡사 테레지마을에서 털털거리는 소제승용차를 타고 울란바토르로 돌아오는 길에 질풍같이 말을 몰아 달리며 야생마 몇마리를 길들이는 두명의 말몰이꾼과 만났다. 이들은 갓 사로잡은 야생마가 무리에서 떨어져 달아나자 긴장대에 반원형으로 밧줄을 묶은 우라크라는 연장으로 말들을 잡아들였다. 미국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즐겨쓰는 라쏘란 밧줄은 짐승에게 던져 실패할 경우 다시 줄을 둥글게 감아 던져야 하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반면 몽고인들의 우라크는 실수할 확률이 거의 없는 효율적인 것이었다. 만약 야생마가 밤중에 도망갈 우려가 있을 땐 앞발과 뒷발 하나씩을 끈으로 묶어 놓는다고 했다. 제대로 뛸 수 없으므로 결국 몰이꾼에 의해 순치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초원의 말처럼 강인하고 표한했던 몽고인들이 그동안 역사의 뒷전으로 철저히 물러나고 무기력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공산주의로 침체기 갖가지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국민들의 극소수만 믿고 있는 라마교 때문이라는게 지배적인 풀이인것같다. 원나라를 세웠던 쿠빌라이가 13세기 중엽 티베트를 점령했을 때 현지 라마교 고승 파스파를 제사(황제의 스승)로 삼은 이후 교세가 강화되면서 몽고인의 정신이 타락하게 된것으로 지적된다. 라마교가 몽고제국에서 막강한 특권적 지위를 차지하면서 궁중법회를 한번 열 경우 4만명의 승려가 7일 밤낮 종교의식을 거행했으며 이로인한 막대한 재정부담은 점차 제국의 기반을 흔들거리게 했다. 게다가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옛 라마교는 음란성이 짙은 밀교여서 몽고인들의 강건 소박한 기풍을 썩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울란바토르 교외에 지난 21년 소련지원에 의한 공산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배자로 군림했던 보그드 한의 궁전을 가보았다. 그도 대단한 라마교광신자여서 방마다 라마교 불상이 안치돼 있었다. 『역대황제나 지배자들이 종교에 너무 미쳐 있었고 국민들에게도 이를 강제로 믿게 했다. 외세가 침략을 해도 싸울 태세는 안갖추고 그저 기도만 열심히 드렸다. 나쁜 일이 생기면 현실적으로 고칠 생각은 않고 역시 기도만 했다. 지난 70년 동안 몽고사회를 지배했던 공산주의도 이런 종교만큼이나 국가와 국민을 침체케 했다』 현재 몽고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몽고민주당(MDP)당원이기도한 젊은 안내인의 설명은 자조와 미래를 향한 신선한 반항심이 섞인 것이었다.
  • 한소 수교길 “정치적 정지”/김영삼최고위원 방소 7박8일 결산

    ◎대통령 친서ㆍ답신교환,「정상화 진입」 신호/소의 평화의지 확인… 한반도 안정에 도움/당ㆍ정의 첫 「경쟁외교」… 보완 효과 못거둬 김영삼 민자당최고위원 일행의 7박8일에 걸친 방소는 한소 양국관계를 수교직전 단계인 「정부간 공식대좌」 단계로 끌어올렸다. 방문단이 당초 목표하고 예상했던 수교일정 단축이나 일정합의가 이루어진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친서와 답신을 주고받은 것은 두 나라 관계가 사실상의 「정상화 단계」에 이르렀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김최고위원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지난 21일 크렘린궁에서 전격 회동한 점은 소련측이 대한수교에 대한 강한 의지를 공개화한 것으로 보여 한소수교가 실무적 협상절차만 남겨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까지 가능하게 한다. 방소단과 초청자인 IMEMO(세계경제및 국제문제연구소)가 26일 발표한 공동성명은 『일련의 대담을 통하여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는 한소간의 관계정상화가 필요하다는 공동인식을 하게 되었다』고 말해 두 나라가 수교를 전제로 노력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공식화하고 있다. 나아가 공동성명은 『한소교류를 급속하게 해 양국간의 공식적 정부관계를 사실상 수립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했다』고 밝혀 두 나라가 비록 수교는 하지 않았지만 「공식적 정부관계」에 있음을 밝혀 주목을 끌었다. 김최고위원 일행의 방소활동은 박철언정무1장관이 주도하는 실질수교협상과 김최고위원측의 수교분위기 제고활동으로 2원화된 점이 특색이다. 때문에 방소단 활동의 구체적 평가도 두가지 측면에서 각각 다른 점수로 나타나고 있다. 김최고위원측이 주도한 수교를 위한 정치적 분위기 성숙작업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것으로 여겨진다. 김최고위원측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면담을 비롯,소련공산당 2인자로 불리는 야코블레프 정치국원,프리마코프 연방회의의장,부르텐스 공산당중앙위 국제부수석부부장 등과 잇따라 회담을 가짐으로써 양국간 수교분위기를 극대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소련측 인사들이 이구동성으로 『한소수교에 장애물은 없다』고 밝힌 점이나 공동성명이 한소 현주소를 「공식적 정부관계」로 설정한 점등은 정치적으로 두 나라 관계가 수교를 기정사실화하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알리는 일련의 사건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소수교의 실질협상은 커다란 진전이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같은 정치적 분위기와 실질협상에서의 괴리는 경우에 따라 우리측 협상대표단에게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정부대표단인 박정무장관팀은 수교일정을 단박에 합의할 수 없다면 각료급을 대표로 한 양국협상팀을 구성,수교문제를 협의토록 시타리얀 경제담당부총리와의 회담에서 촉구한 바 있다. 그러나 공동성명 작성과정에서 소련측이 우리측 요구사항인 「수교및 경제협력을 위한 각료급회담 필요성 합의」 조항을 굳이 삭제함으로써 소련측이 한소수교를 금명 받아들일 생각이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방소활동을 결산하는 공동성명은 우리측의 선수교 후교류 확대의 요청에도 불구,과학기술처장관회담및 소련측 과학아카데미와 한국과학기술원 사이의 정기교류에만 합의하고소련측 문화교류 확대 요청의 결과랄 수 있는 문화교류를 위한 정부부처간 또는 공식단체간 접촉추진을 동시에 명기하고 있다. 이는 여전히 우리측 주장인 선수교와 소련측 요구인 후교류확대 선수교의 이견차를 허물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정무장관은 세차례의 실질협상이 끝난 뒤 『소련측은 여전히 공식수교보다 교류확대를 주장하고 있다』고 밝히고 『현재로서는 한소수교가 양국 정부간의 협상결과에 달려있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이번 방소기간동안 수교가 필요하다는 점은 소련측에 강력히 제시했지만 수교의 구체적 조건 등은 아직 협상에 들어가지 않았거나 협상이 계속되고 있음을 시사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수교의 시기가 결정될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했음은 소련측의 두가지 발언에 의해 강조되고 있다. 하나는 야코블레프가 설명한 『양(교류)이 질(수교)로 변하는 시기가 빨리 오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한대목이다. 또 하나는 소련측이 김최고위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영사처를 총영사관으로 승격시키겠다』고 한 부분을들 수 있다. 영사처의 총영사관 승격은 일견수교로 가는 단계적 절차로 볼 수도 있으나 비밀수교일정 합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현재상태의 장기화 계산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곧 교류축적이 수교를 위해 더 필요하다는 소련측 입장이 외교행위로 구체화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정부측의 한 관계자는 이와관련,『막후에서 수교일정이 합의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총영사관 설치제의가 있다면 이는 현재의 수교없는 상호교류를 보다 장기화시키려는 계산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외교관례상 고르바초프가 노대통령에게 보내는 답신의 내용은 대표단이 서울로 돌아온 뒤 청와대측과의 협의가 있고 난 뒤에라야만 부분적이라도 공개가 가능하다. 답신의 구체적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고 또한 고르바초프대통령과 김최고위원 간의 회동시간,형식,내용이 밝혀지지 않은 시점에서 한소수교문제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수교에 대한 소련측의 계산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단계로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러한 실질협상의 미진에도불구하고 정치적 수교분위기 성숙,특히 「김­고 회동」은 한반도가 전쟁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는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주변 4강국의 협조를 통해 한반도 평화를 보장받으려는 우리측 「생존외교」가 소련측의 「협조」를 얻어냄으로써 새로운 지평위에 서게 됐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최고위원의 방소는 정부ㆍ여당내에서 처음으로 같은 외교목표를 두고 당과 정부가 경쟁을 벌인 우리 외교사의 첫 경험이었다. 결과적으로 민자당의 특수성등으로 경쟁외교가 보완 상승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으로 하여금 유리한 조건제시자를 골라잡게 만드는 문제점을 노출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김최고위원과 박장관 모두가 언제나 「국민적 인기」를 염두에 두려 하는 정치인이란 점에서 이같은 시도는 실패가 예견되었던 부분도 없지 않다. 김­고 회담이 김최고위원과 박장관 간에 사전협의되지 않았고 이로인해 대통령 친서가 다른 방법으로 전달되었던 점은 외교에서의 「경쟁」이 가져다줄 수 있는 피해의 한 단면을 보여준 셈이다.김최고위원 측근인사들은 『소련측이 대화 파트너를 김최고위원으로 골랐다』고 스스로 자랑하고 있다. 소련측이 선택해준 대가로 무얼 요구할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좀더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모스크바=김영만기자〉
  • 2천4백만 필지 땅값 조사/공개념 시행 차질없게/4월부터

    정부는 택지소유상한제,토지초과 이득세제 등 토지공개념 관련법들을 차질없이 시행하기 위해 오는 8월30일 까지 전국 3천2백24만5천필지의 토지중 국공유지 등 비과세대상 토지를 제외한 2천4백52만 필지의 개별토지 가격을 조사하기로 했다. 19일 건설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국 30만개 표준지에 대한 90년 1월1일 기준의 공시지가를 오는 5월10일 고시하는데 이어 이 표준지지가를 기준으로 토지개발공사와 국토개발 연구원이 공동 개발한 토지가격 비준표를 활용해 2천4백52만필지 토지의 지가를 산정하고 이를 지가열람,주민의견청취 및 중앙토지평가 위원회의 심의 등의 과정을 거쳐 오는 8월30일 확정할 계획이다. 이번 개별토지가격 조사기간은 4월20일부터 6월20일 까지 2개월간이며 현장조사를 위해 건설부,토지개발공사,감정원 직원 등 점검반 2백66명을 포함,시ㆍ군ㆍ구ㆍ공무원 등 총 1만8천2백1명의 조사요원이 동원된다.
  • 분당지역 25% 협의수매 불응/보상가등에 불만

    분당 신도시개발지구 5백55만2천평의 땅중 약 25.4%인 1백42만평의 토지보유자들이 정부의 보상가 등에 불만을 품고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건설부에 따르면 주택공사가 개발하고 있는 산본 신도시는 개발대상면적 1백26만7천평중 36.7%인 46만5천평의 땅 소유자들이 협의매수에 응하지 않았으며 토지개발공사가 사업시행중인 평촌의 경우 대상면적 1백39만1천평중 31.8%인 44만2천평의 토지소유자들이 협의매각을 거부했다. 한편 수도권지역 5개 신도시중 토개공이 사업시행하는 일산은 지난해 12월1일부터 토지평가작업에 착수,이달말 평가작업이 완료되면 곧 협의매수에 착수할 예정이다.
  • 「4당 구조개편」 정지작업 활발(경오년 신춘정국:상)

    ◎지자제 선거 계기,윤곽 드러날 듯/민정ㆍ평민선 연합공천제 공식 거론/민주ㆍ공화,14대국회 활로모색 주력 정치권기류가 새해 벽두부터 빨라지고 있다. 지자제에서의 연합공천 이야기가 3일 상오 새해들어 처음 열린 민정당과 평민당의 공식회의에서 공통으로 제기됐다. 「5공터널」을 벗어난 새해 4당정국의 기류가 「미래정치」를 향해 얼마나 빠르고 무쌍하게 변화해 갈 것인가를 실감케 해주고 있다. 2년 동안 정치권의 발목을 붙들어 매온 5공청산 문제는 전두환 전대통령의 증언이 남긴 부분적인 미흡에도 불구하고 더이상 정치권의 전진적인 기류형성을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민정당은 「미흡하지만 종결됐다」는 여론 위에서 새 정국의 창출을 위한 발빠른 행마를 시작했다. 3일 열린 당직자회의에서 연합공천을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노태우대통령이 담화를 통해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자고 호소한 것은 신춘정국의 방향을 알리는 포석에 해당한다. 야권 역시 5공문제에 더이상 연연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평민당이 전전대통령의 국회고발을 운위하고 있지만 민주ㆍ공화당의 반응을 고려하면 「광주」를 의식한 1회용 당론에 불과한 것으로 이해된다. 5공청산에서 남은 유일한 과제는 전 전대통령의 거처이전 문제뿐이다. 이 문제 역시 기술적,시기선택의 문제일 뿐 정국의 방향타를 움직일 변수는 못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새해 정국을 일관할 주제는 정계개편이다. 그것이 보수대연합이든,아니면 통합야당대 과반수 여당으로의 개편이든 분명하게도 정가의 관심과 움직임은 정계개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이같이 구체적인 명제설정이 가능한 것은 대체로 세가지 관점에서 이를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청와대와 민정당이 순수한 노태우시대를 열기 위해서나,정권 재창출을 위해 4당구조의 재편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는 민주ㆍ공화 양당이 그 방향과 목적은 여권과 다르다 하더라도 정게개편을 희망하고 있다는 점이며 세번째로 야권 일각에서 일고 있는 야당통합 움직임과 함께 여야간에 정계개편문제가 실제로 막후 절충되고 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권에서 현재의 4당구조는 개편되어야만 할 대상으로서만 인식돼 왔다고 할 수 있다. 합의에 의한 5공청산,「뼈를 깎고 가슴을 도려내는 고통을 감내하면서」(노대통령)까지 청산의 합의를 도출하려 했던 것도 정계개편에서의 이니셔티브를 쥐기위한 전제조치였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현재의 4당구조가 지속될 경우 결과적으로 「노태우대통령정권」은 과도기적 정권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정계개편의 최대 장애물이었던 5공 문제가 매듭된 새해 정국에서 여권이 정계개편에 어느 정도 체중을 실을 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민주ㆍ공화당이 정계개편에 적극적인 동참의사를 갖고 있는 것은 이를 통해서만 14대총선 이후의 생존이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제3,제4당이 새로운 선거에서 입지를 확보할 수 없다는 점은 40년이 넘는 헌정사에서 이설을 찾을 수 없을 만큼 경험으로 축적돼 왔다. 유일하게도 평민당만은 정계개편에 반대한다. 민주ㆍ공화당이 개편에 동참하려는 이유와 반대의 이해관계에서다. 새해 정국의 흐름을 가름할 구체적 정치행사는 지자제선거를 들 수 있다. 지자제는 상부구조만 있던 정치판에 제도로서의 새로운 하부구조를 만들어 내게 된다. 상부구조의 변혁을 가져다주는 혁명이나 쿠데타에 못지 않은 변화를 정치권에 가져다 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영향력은 정치문화의 성질을 바꿀 만큼 광범위하게 미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지자제실시는 중앙정부와 중앙당의 통제력을 이른바 「풀뿌리민의」로 부분적일진 모르지만 대체하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중앙정치 지도자들의 카리스마적 권위는 컬러TV의 등장이 미친 것 이상으로 감소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당체질과 정당문화의 변혁이 불가피할 것으로 여겨진다. 정국기류로서의 정계개편 움직임과 정치행사로서의 지자제선거는 상호 연관하면서 새해 정국의 방향을 잡아갈 것 같다. 정계개편의 지렛대로 지자제선거가 활용되는가 하면 지자제선거의 결과가 역으로 정계개편의 방향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5공의 질곡에서 벗어난 노대통령정부가 정치권의기류와는 별도로 펼쳐갈 「새로운 역사쓰기」도 새해 정국을 움직이는 큰 축의 하나로 파악된다. 「5공청산」은 정치권의 변화욕구가 행동화하는 것을 방해하는 족쇄였으면서 동시에 본격 「노태우시대」의 개막을 방해한 장애물로 작용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런 장애물이 걷힌 90년대에 노대통령 정부는 통일ㆍ외교정책은 물론 내치에서도 지난 2년과는 다른 새로운 통치스타일을 선보일 것이 틀림없다. 경제정책과 노사분규,학원대책 등에 노대통령의 고유한 스타일이 선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행정과 정치가 대등한 위치에서 1990년의 연사를 채워갈 가능성도 따라서 커지고 있다. 민정 당직개편에서는 민정당이 추진할 정계개편과 노대통령 정부의 강력한 실천의지를 뒷받침하는,2개의 목표를 수행할 새로운 진용이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계개편은 이를 추진하는 세개의 주체 모두 목표가 다르다. 민정당이 정책연합→정치연합을 거쳐 내각제개헌으로 가 결국 보수대연합을 구성한다는 목표인데 반해 민주ㆍ공화당은 통합야당과 보수대연합 사이에서손익을 저울질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평민ㆍ민주당의 소장파,민정당내의 원내외 소외그룹은 통합야당과 과반수 여당으로 정계개편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민정당과 손잡아 4당구조 변화없이 정국을 민정ㆍ평민 두축으로 해 움직여 가려는 것은 평민당,특히 김대중총재의 생각이다. 각 주체들이 가진 정계개편의 상이한 목표는 정계개편의 현실화가 농축된 논의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지나치게 많은 변수로 인해 정계개편의 조감도를 그리기는 대단히 어렵다. 이같은 이유들로 인해 실제 정계개편은 14대총선이 실시되는 92년에나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란 신중론이 우세하다. 올 6월이전에 실시될 지자제선거에서 연합공천이 실시될 것이란 각 정당들의 공언과 전망은 정계개편을 위한 구체적 움직임이면서 동시에 여러 절차중의 시각에 불과하다는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반적인 관측은 연합공천은 올 지자제의회선거에서 선만 보이고 본격화는 내년중에 실시될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시ㆍ도지사 선거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치권은 정계개편의 현실화에 앞서 올 한해 다양한 제휴모델을 시험하고 선보일 전망이다. 그러한 제휴는 정책연합과 지자제 연합공천이 의미하는 정치연합에서 구체화되고 이런 과정에서 각 당간, 각 당내 분파간 이해가 자연스럽게 정계개편의 공통 분모를 만들어 갈 것으로 보인다. 올 한해의 정국흐름을 지난 12ㆍ16의 대통령선거 이전 상황에 못지 않게 빠르게 소용돌이 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어느해보다 편안한 마음으로 긴장없이 정치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 이란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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