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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의 저울’ 새 법정드라마 지평 열고 종영

    ‘신의 저울’ 새 법정드라마 지평 열고 종영

    SBS 프리미엄드라마 ‘신의 저울’이 자체 최고 시청률인 16.5%를 기록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25일 시청률 조사회사인 AGB닐슨미디어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4일 방송된 ‘신의 저울’ 마지막회는 1부 12.5%, 2부 16.5%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2부 16.5%는 지난 17일 방송된 ‘신의 저울’ 2부가 기록한 14.0%에서 2.5% 포인트 상승한 것으로 ‘신의 저울’ 자체 최고 시청률에 해당한다. 지난 8월 29일 첫방송된 ‘신의 저울’은 평균 시청률이 10%로 저조했지만 참신한 기획과 밀도 높은 긴장감을 형성하며 법정드라마로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날 방송된 마지막회에서는 김우빈(이상윤 분)이 뒤늦게 범인으로 밝혀져 법정에 서지만 정당방위로 무죄를 선고 받고 자신의 죄를 뉘우친 우빈이 피해자 용하(오태경 분)에게 사죄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또 김우빈의 사법연수원 동기이자 용하의 친형인 준하(송창의 분)가 손을 마주 잡으며 그의 죄를 용서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한편 SBS는 ‘신의 저울’을 끝으로 금요일 저녁 방송되던 프리미엄 드라마를 종영하고 31일부터는 오후 10시 예능 프로그램 ‘웃음을 찾는 사람들’을 방송한다. 사진=SBS(위쪽)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드라마 ‘신의 저울’ 스타배우 없어도 빛났다

    드라마 ‘신의 저울’ 스타배우 없어도 빛났다

    법 앞에 상처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기획된 SBS 금요 드라마 ‘신의 저울’이 오는 24일 종영을 앞두고 있다. 지난 8월 29일 방송을 시작으로 줄곧 10% 중반의 시청률을 기록한 ‘신의 저울’은 시청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기존의 많은 드라마들이 선정적인 소재를 가지고 시청률을 노리던 것과 달리 ‘신의 저울’은 마지막까지 당초의 기획의도를 살리며 새로운 드라마의 길을 열었다. 종영을 앞둔 ‘신의 저울’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 스타급 배우 없어도 참신한 기획에 스토리가 좋으면 돼 ‘신의 저울’은 첫 방송 되기 전까지만 해도 특별한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타급 배우들이 출연했던 것도 아니고 법과 정의, 그리고 진실의 본질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다소 무거운 소재의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은 배우인 송창의, 이상윤, 김유미, 전혜빈과 중견 배우인 문성근, 김서라, 장현성 등 세대별로 능력 있는 연기자들의 조화는 드라마를 빛나게 만들었다. 매회 배우들의 열연에 시청자들은 게시판에 호평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법정드라마로서 가장 중요한 밀도 높은 긴장감으로 채워진 스토리와 참신한 기획은 시청자들의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 법 앞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열심히 살아가던 한 가족이 우발적인 살인 사건에 휘말리면서 최소한의 법률적 서비스도 받지 못한 채 극적인 상황에 내몰린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신의 저울’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기 힘들었던 법조드라마다. 두 주인공 장준화(송창의 분)와 김우빈(이상윤 분)의 대립구조 속에 다양한 법률 상황들은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 법과 진실의 상관성을 암시하면서 시청자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다. 이렇듯 법 앞에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렸던 ‘신의 저울’은 지나친 우연의 반복, 상관관계가 떨어지는 인물들의 구성력 등 작위적인 상황 설정에도 불구하고 법정 드라마의 지평을 넓힌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 작품은 좋지만 시청률은 안타깝다 많은 시청자들이 안타까워 했던 점이 바로 ‘신의 저울’의 시청률이다. 참신한 기획, 빠른 전개 등 드라마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낮다는 것이 시청자들의 생각. 심지어 금요 드라마가 아니라 미니시리즈였다면 더 많은 시청률을 기록했을 것이라는 평도 있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시청률로만 평가할 수 없듯이 법정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연 ‘신의 저울’은 시청자들의 금요일 밤을 책임진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SBS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서태지심포니 공연’ 내일 오후 10시 50분 방송

    ‘서태지심포니 공연’ 내일 오후 10시 50분 방송

    지난 9월 27일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개최된 서태지 밴드와 클래식계의 거장 톨가 카쉬프 및 영국 로열필하모닉의 협연 실황 방송 중계 일정이 확정됐다.  이번 서태지 공연은 24일 오후 10시 50분 MBC를 통해 전격 방영될 예정이다.  당시 공연은 3만명 이상의 관객이 입장했으며, 팬들에게 큰 감동을 줬다는 후평과 함께 실험적인 공연으로 대한민국 대중가수 공연 역사에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방송 부적합곡인 ‘F.M. 비즈니스’를 제외하고 실황 당시 연주됐던 전곡이 방송될 예정이다.  65인조 규모의 웅장한 오케스트라를 일사불란하게 지휘한 톨가 카쉬프 지휘 아래 파주 시립합창단과의 멋진 협연이 돋보였던 ‘T‘ik T’ak‘, 공연 당시 서태지 스스로 “ 10년전에 서태지 심포니 공연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 같다.” 고 말한 ‘영원’ 등 서태지의 곡들이 재편곡되어 전파를 탈 예정이다. 방송은 10월 24일(금) 오후 10시 50분부터 1시간 50분 동안 진행된다. 인터넷서울신문 최영훈기자 taiji@seoul.co.kr [서울신문 다른 기사 보러가기] 서태지 측 “심포니 음향문제 수정 후 방송” 서태지 회견중 돌발행동…“너희쪽으로 갈게” 김건모 “마흔, 이제 진짜 시작” 가요계도 ‘빈익빈 부익부’ 양극화 현상 심화 동방신기, 국내 가요계 부활 중심에 서다
  • [공기업] “철도 육성 특별법 제정 추진”

    [공기업] “철도 육성 특별법 제정 추진”

    국가성장의 새로운 패러다임인 ‘저탄소 녹색성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코레일이 지난 15일 공공부문 최초로 구체적인 실행계획인 ‘ECO RAIL 2015’를 발표하며 교통부문 녹색혁명의 포문을 열었다. 코레일에 대한 국정감사를 마친 이병석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위원장은 19일 “에너지 다소비 구조인 국내 교통체계를 감안할 때 철도를 중심으로 한 교통체계 전환은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필요하다.”며 공감을 표시했다. 이 위원장은 “고유가시대와 더불어 철도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면서 “저탄소 녹색성장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현재 각각 70%와 15%인 도로와 철도의 수송분담률을 반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우리나라 철도는 최악의 상태다. 그동안 (정부가 철도)투자를 안 한 것은 일반 국민에게 최소한의 복지를 베풀지 않고 고통을 준 것”이라며 “최고 정책 책임자의 결단과 정책적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1960년대 3022㎞이던 철도 영업거리가 2004년 3371㎞로 1.1배 증가한데 비해 고속도로는 313㎞에서 2932㎞로 9.3배 증가한 것을 예로 들었다. 이 위원장은 “유럽 선진국은 철도 분담률이 80%를 넘고 있으며 앞으로 도로 비중이 더 줄어들게 될 것˝이라며 “우리가 선진국과 비슷하게 되려면 엄청난 자본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철도투자에 대한 인식전환을 강조했다. 단순 건설이 아니라 환경과 복지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다. 그는 “철도와 해운 등 대량수송체계의 적극적인 활용 및 철도와 자동차간 연계, 철도역에서 버스와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갈아탈 수 있는 ‘복합교통역사’ 등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 위원장은 녹색성장의 ‘총아’인 철도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국회 차원에서 가칭 ‘철도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특별법’ 제정을 추진 중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국회 및 국토해양부 차원에서는 파급효과가 크고 첨단기술을 보유한 고부가가치 산업인 철도를 신성장산업으로 육성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나아가 철도가 남북문제 해결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남북을 연결해 북에서 그 흙을 디디는 순간 내 땅, 내 조국, 대한민국이라는 정신을 느끼고 발견해낼 것”이라며 “백두대간을 따라 한반도 철도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가 연결되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창을 갖게 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아시아·유럽대륙의 게이트웨이 역할을 하는 국제철도수송기반 구축에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기업 선진화 방안의 특징 중 하나인 통폐합을 통한 시너지 창출과 관련, 코레일과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통합에 대해서는 역할과 기능의 차이를 들어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초기 시행착오나 부처 이기주의가 야기될 수 있지만 조정을 통해 충분히 해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유라시아 철도 연결은 우리가 세계 속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철도는 사색의 창으로, 철도가 발달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미인도’ 감독 “노출에만 편중된 관심 안타깝다”

    ‘미인도’ 감독 “노출에만 편중된 관심 안타깝다”

    영화 ‘미인도’의 전윤수 감독이 배우들의 파격 노출이나 정사 장면에만 집중된 관심에 대해 서운함을 드러냈다. 전윤수 감독은 “‘미인도’ 는 250년의 역사를 거슬러온 천재화가 신윤복의 예술혼과 불꽃같은 사랑을 재조명해 그린 영화”라며 “파격적 설정 속 배우들의 노출에 편중된 시선이 조금 안타깝다.”고 전했다. 이어 전 감독은 “극중 김민선과 김남길의 노출 장면은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다. 그림을 위해 남자로 살아야만 했던 여인 신윤복의 아픔과 동경이 묻어있는 아름답고도 슬픈 장면”이라고 강조했다. 또 전 감독은 “화폭을 도화지에 담듯 미학적 영상에 초점을 맞췄다. 조선시대 풍속화의 거장 신윤복과 김홍도의 숨겨진 삶과 예술혼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미인도’는 역사 속 고증이 불분명한 신윤복의 숨겨진 삶에 ‘신윤복은 여자다’ 는 픽션(fiction)을 가미, 파격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형 웰메이드 팩션 무비의 새 지평을 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서울신문NTN 정유진 기자 jung3223@seoulntn.co.kr/ 사진=조민우 기자@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제89회 전국체육대회] 우리 시·도의 명예를 걸고!

    ‘녹색의 땅, 미래를 향한 바다’ 국내 최대의 스포츠축제인 제89회 전국체육대회가 10일 전남 여수시 진남경기장에서 거행된 개회식을 시작으로 7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이날부터 16일까지 여수를 비롯 순천, 보성 등 전남 17개 시·군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는 2만 5000여명의 선수단이 유도, 육상 등 42개 종목에서 시·도의 명예를 걸고 열띤 메달레이스를 펼친다. 오후 6시부터 진행된 개회식은 식전행사인 ‘녹색의 땅을 여는 새로운 지평’을 주제로 한 화려한 매스게임으로 시작됐다.‘맑은 생명이 숨쉬는 바다’를 제목으로 남해의 다도해를 상징하는 군무가 여수시립국악단의 창과 함께 어우러지는 가운데 이순신 함대의 ‘학익진’을 형상화한 무용도 선보였다. 개회식은 선수단이 모두 입장한 가운데 베이징올림픽 배드민턴 혼합복식 금메달리스트인 이용대(20·삼성전기)와 김중수(48) 대표팀 감독이 전남 22개 시·군 820.9㎞의 대장정을 마친 성화를 성화대에 붙이면서 절정에 달했다. 화려한 개회식에 견줘 이번 대회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올림픽 스타들의 활약은 뚜렷하게 나타나지 못할 전망. 특히 유도 중량급 간판으로 베이징올림픽 기수를 맡았던 장성호(30·수원시청)가 부상으로 빠졌고, 첫 금메달의 주역인 최민호(28)와 은메달리스트 김재범(23·이상 한국마사회)도 각각 발가락 염증과 무릎 인대 파열로 출전을 포기했다. 한 자리에서 세계신기록을 줄줄이 엮어냈던 장미란(25·고양시청)은 “이번 대회에서는 새 기록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밝혀 팬들을 다소 섭섭하게 한 터.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의 위업을 일궈낸 박태환(19·단국대) 역시 자유형 50m를 비롯한 단거리와 계영 등에만 출전할 뿐 주종목인 중장거리에는 나서지 않는다. 올림픽 이후 풀어진 몸을 다듬는 등 내년 로마 세계선수권에 첫 발을 내딛는 데 목표를 둔 것으로 알려졌다. 첫날 경기에선 소속팀 해체를 눈앞에 둔 정해랑(20·수자원공사)이 사이클 남자 일반부 스크래치 결승전에서 우승, 대회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역도 남자고등부 69㎏급에 출전한 원정식(18. 원주고)은 첫 3관왕이 됐다. 보성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경기에서 원정식은 인상 130㎏, 용상 165㎏, 합계 295㎏을 들어 올려 금메달 3개를 휩쓸었다. 여수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변신하는 국악, 고정관념 바꾼다

    변신하는 국악, 고정관념 바꾼다

    KBS 1TV ‘문화지대’는 10일 오후 11시30분 방송에서 국악의 변화상, 파리의 한국 미술작가전, 그리고 한국 여성계의 대표화가 윤석남 등을 두루 조명한다. 국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는 하루이틀의 이야기가 아니다.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고정관념이 오랫동안 편견으로 자리잡아 왔다. 하지만, 최근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국악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엿보인다. 국악에 현대감각이 묻어나는 가요와 서양 클래식 등을 가미하거나 완전히 다른 예술장르와 조합하는 등 변신의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대중에게 다가가려는 이런 국악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평소 국악을 어려워하거나 꺼려하던 이들이 고정관념을 벗고 국악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 또 거꾸로 국악의 풍부한 예술성에 자극을 받아 먼저 국악에 손을 내미는 음악인들도 갈수록 늘고 있다. ‘문화지대’는 이처럼 대중화의 길을 걷고 있는 국악의 색다른 도전을 화면에 담았다. 프로그램은 또 파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의 미술작가 전시회도 찾아간다. 지난 2일부터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간판스타들이 프랑스 파리의 초청으로 현지에서 단체전을 열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 루이뷔통 재단의 후원으로 12월까지 계속될 전시에는 서도호, 이형구, 플라잉시티, 함진, 정수진 등 모두 10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지대’는 화가 윤석남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았다. 페미니즘 계간지 ‘if(이프)’의 첫 발행인이기도 했던 그는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새 지평을 연 작가로 주목받아왔다. 결혼 이후 아이를 기르던 주부가 마흔살이 넘어 화가의 꿈을 이뤘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사 자체가 미술계에 두고두고 회자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어느덧 일흔 줄에 접어들었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은 그의 개인전 ‘윤석남 1025-사람과 사람없이’를 다음달 9일까지 연다. 진돗개, 달마시안, 골든리트리버, 셰퍼드 등 나무로 만들어진 1025마리의 유기견 조각품을 만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새달 30일까지 경기도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언니가 돌아왔다’에서도 만날 수 있다. 강아연기자 arete@seoul.co.kr
  • 세계 생산인구 2015년부터 감소

    2015년부터 전 세계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같은 시기 한국의 생산연령인구 비중도 줄기 시작, 서울이 세계 20대 거대 도시에서 탈락할 전망이다. 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은 5일 ‘인구 보너스·오너스로 본 지역별 시장성장 전망’이라는 보고서에서 이같이 예상했다. 인구 보너스는 생산연령인구가 늘어나는 현상을, 인구 오너스는 감소하는 현상을 이른다. 보상을 뜻하는 영단어 보너스(bonus)와 부담을 뜻하는 단어 오너스(onus)에서 각각 유래했다. 이 연구위원은 “1990년 이후 생산연령인구 비중이 줄면서 성장세가 둔화된 일본처럼 선진국들은 2010년을 정점으로 생산연령인구 감소 시대를 맞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미국의 경우 베이비붐 세대(1946∼1965년생)가 2010년 이후 은퇴하면서, 이 때를 전후해 경제 쇠퇴론이 재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했다. 아시아 지역에 포진한 개발도상국들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겠지만, 결국 순차적으로 이 지역도 인구 오너스 시기에 들어간다고 이 연구위원은 예상했다.2010년에 중국과 싱가포르·홍콩·태국이,2015년에 우리나라가,2020년에 베트남이,2025년에 인도네시아가,2030년에 말레이시아가,2040년에 필리핀과 인도가 생산연령인구 감소세를 경험할 전망이다. 앞으로 20년 내에는 인도가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연구위원은 “인구 오너스에 빠지는 선진국은 성장세가 둔화되는 가운데 노년층을 상대로 한 실버비즈니스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고, 개도국은 급속한 도시화가 비즈니스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인문학, 대중 속으로 더 가까이…

    인문학과 대중의 열린 만남을 지향하는 ‘2008 인문주간’(교육과학기술부·학술진흥재단 주최)행사가 6일부터 12일까지 서울과 제주를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열린다. 인문주간은 2006년 9월 전국 93개 대학의 인문대학장들이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됐다.‘일상으로서의 인문학’을 주제로 한 올해 행사는 대중에게 인문학을 보다 가까이서,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국 대학과 인문학 민간단체 22곳이 참여해 학술제와 대중강좌, 답사, 문화 체험행사, 공연·전시 등 109개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펼친다. 일주일간의 인문학 축제는 ‘아시아 인문학자 대회’(6일, 중앙대)로 문을 연다.‘아시아에서의 인문가치와 인문학’을 주제로 9일까지 아시아 관련 학자 30여명이 지성의 향연을 벌인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천광싱 타이완 교통대 교수의 기조 발표와 사카이 나오키 미국 코넬대 교수의 강연 등이 예정돼 있다. 전남대 인문학연구소의 ‘다문화 현실과 우리 인문학’(6일), 충남대 대전인문학포럼의 ‘인문학의 사회적 힘’(6일), 서강대의 ‘과학기술과 인문학의 소통-새로운 지식의 지평 개척’(9일), 대구사회연구소의 ‘인간과 자연의 화해’(11일) 등 인문학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장이 펼쳐진다. 현장 답사와 인문학을 결합한 행사도 다채롭다.‘역사학자와 함께 하는 역사 탐방’(7일),‘서울민속기행(10일),‘신화의 세상, 설화의 세상으로’(11일) 등은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직접 다니며 인문학적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 대학에서 셰익스피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의 모임인 ‘셰익스피어의 아해들’과 아시아교정포럼이 경기 여주교도소에서 수감자들을 대상으로 펼치는 연극 ‘햄릿’(10일)과 충북대의 청주여자교도소 인문강좌(6∼9일) 등도 눈길을 끈다. 행사 문의는 인문주간 웹사이트(hweek.krf.or.kr).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김제 지평선축제 1일 팡파르

    ‘제10회 김제지평선축제’가 1∼5일 호남평야의 중심부인 전북 김제시 일원에서 펼쳐진다. 30일 김제시에 따르면 문광부 지정 4년 연속 최우수축제인 지평선축제에서는 농경문화 체험과 문화행사 등 7개 분야 77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첫날인 1일 세계청소년들이 참가하는 농촌풍경 그림그리기 대회가 진행된다. 2일 아리랑문학관에서는 KBS 장사씨름대회가 벌어지고,3일에는 20개 어린이팀이 참가한 전국 어린이 가을들녘동요제, 전국 실버장기자랑 경연이 펼쳐진다.5000여명이 코스모스가 핀 들녘을 달리는 마라톤대회도 열린다. 4일 오후 1시 김제시민운동장에서는 자연보호 30주년을 기념하는 ‘자연보호 그림그리기 대회’가 펼쳐지며 전국 남녀 궁도대회가 벌어진다. 마지막 날인 5일 오전 벽골제에서는 예선을 통과한 지역 요리의 달인들이 향토음식과 이색요리를 선보이고 손맛을 겨룬다.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131㎞에 이르는 호남평야의 코스모스 길 드라이브다. 전주 임송학기자 shlim@seoul.co.kr
  • “세계와 소통하는 한국학 보여줄 것”

    “세계와 소통하는 한국학 보여줄 것”

    한국학은 옛 유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영역도 함께 다뤄야 합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생산된 이론이 해외에서 팔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문화적 선진국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제4회 세계한국학대회가 오는 21일부터 24일까지 서울 워커힐호텔 컨벤션센터에서 열린다.‘세계와 소통하는 한국학’을 주제로 한 이번 대회에는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 세계 20여개국 135명의 한국학 전문가들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대회 조직위원장인 신대철(57)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문화교류센터 소장을 만나 대회의 의의와 지향점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번 대회는 원래 일본 후쿠오카의 규슈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독도 문제가 불거지면서 지난 8월초 갑자기 장소가 바뀐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뜻하지 않게 한·일간 난기류가 형성되는 바람에 개최지 변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일부 이견이 있었지만 독도 문제는 간단한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신중한 논의를 거쳐 장소 변경을 결정했습니다. ▶‘세계와 소통하는 한국학’이 이번 대회의 주제인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한국학은 한국 안에서만 이뤄지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세계적인 흐름속에서 다방면에 걸친 학문적 소통이 필요합니다. 자민족 중심의 관점에서 벗어나 세계의 학문과 교류하면서 보다 폭넓은 공감을 이끌어낼 때 보다 객관적이고 보편성을 띤 한국학의 지평을 열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학술대회는 해외 한국학의 흐름과 전 세계 한국학의 위상을 조망하는 뜻깊은 행사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히 과거 인문학 중심의 한국학 연구 경향을 넘어서 다양한 분야를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미래지향적인 한국학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현재 한국학의 위상은 어떻습니까. -일본학과 중국학에 비하면 질과 양적인 측면에서 상당히 열세인 것이 사실입니다. 미국의 한 대학에 한국학 전공 교수는 많아야 2∼3명인데, 일본학·중국학 교수는 수십명입니다. 하지만 얼마전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부총장이 한국어 강좌 개설과 관련해 서울을 다녀간 것을 비롯해 한국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경제, 문화, 체육 등 각 분야에서 한국의 국가브랜드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한국학을 바라보는 외국의 시각도 우호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이 네번째 대회인데 그간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대회에서 발표되는 논문들을 통해 학문적 성과를 공유하고,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학자들간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자부합니다. 미국과 타이완의 한 대학이 5회 대회를 개최하겠다고 먼저 제의할 정도로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낸 것도 세계한국학대회가 거둔 성과로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학이 발전하려면 어떤 점에 더 신경을 써야 할까요. -한국학은 조상이 남긴 옛 유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영역도 함께 다뤄야 합니다. 외국 학자들은 한국의 과거보다 현재 모습에서 교훈과 발전의 원동력을 찾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생산된 이론이 해외에서 팔릴 수 있을 정도로 정신적·문화적 선진국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와 더불어 한국학을 이끌어갈 차세대 한국학자를 육성하는 데에도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번 대회에서 대학원생의 논문을 공모·시상하는 제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기성 학자와 신진 세대간 소통을 통해 한국학을 풍요롭게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이지요.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월街 쇼크’… 하반기 경제운용 초비상

    ‘월街 쇼크’… 하반기 경제운용 초비상

    ‘9월 위기설’을 넘기고 나니 이번에는 ‘미국발 금융쇼크’가 하반기 우리경제를 옥죄고 들 태세다. 당장은 주가하락과 환율상승 등 금융시장 불안으로 현실화하고 있지만 결국에는 실물경제에 대한 타격으로 전이될 수밖에 없다. 국제유가가 떨어지고 있는 게 한가닥 위안이 되고 있지만 이 역시 세계경기의 둔화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마냥 반가운 일도 아니다. 이런 가운데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둘러싼 여야간의 정쟁 등 정치권의 구태는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더욱 냉각시키고 있다. 16일 미국 금융불안 관련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열린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도 금융안정이 전제돼야만 실물경제가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금융불안은 국내경제에 환율상승과 물가급등, 수출감소, 투자부진 등의 형태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한국에 들어와 있던 해외투자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미국의 펀더멘털(경제기초)과 상관없이 ‘강(强)달러’ 현상이 나타나고 이는 환율상승과 물가인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내수와 투자가 위축되는 데 대해 미국의 소비와 투자 둔화가 본격화하면 우리 기업의 수출에도 타격이 오게 된다. 다만 현 금융불안이 얼마나 더 추가로 진행되고 그 강도가 어디까지일지 아직 알 수 없어 예측은 쉽지 않다. 때문에 정부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순전히 금융만 놓고 보면 우리경제에 미칠 타격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면서 “관건은 금융부문의 문제가 실물경제로 얼마만큼 전이될 것인가인데, 현재는 상황을 면밀히 점검하는 수준이며 거시경제의 기조에 대한 논의를 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재정부 관계자는 “국제유가가 100달러 밑으로 떨어져 물가인하 요인이 생겼지만 환율이 오르면서 그 효과를 상쇄하고 있다.”면서 “금융불안이 환율상승을 계속 자극할 경우 하반기 물가관리에 큰 어려움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물가는 재정지출이나 금리 등 정책수단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이번 상황이 물가급등을 낳을 경우 경제운용에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리먼 브러더스의 청산 등으로 금융문제는 서서히 마무리 국면에 들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금융문제의 실물경제 전이가 본격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실물경기가 꺾이면 대미 수출은 물론이고 중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 수출에도 타격을 줄 것”이라면서 “정부가 대외수지 균형에 무엇보다도 역점을 두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 워낙 외부적인 요인이 강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묘수를 찾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정부와 국회가 일관성 있는 비전을 제시함으로써 경제주체들이 심리적 안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신뢰를 받지 못하고 국회는 정쟁으로 일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이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태균기자 windsea@seoul.co.kr
  •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신경림 누항 나들이] 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몇해 전 파리에 갔을 때다. 서너 명이 피켓을 들고 서 있어서, 동행한 유학생에게 그 피켓에 써 있는 글귀의 뜻을 물었더니 사회주의 이상의 지평은 없다 뭐 그런 뜻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프랑스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저 정도라고 감탄하기를 잊지 않았다. 나는 그 학생이 최근의 우리 사정을 잘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해서 한 마디 했다. 우리도 저 정도의 자유와 민주주의는 이미 누리고 있다고. 그 예로 나는 인사동 술집에서 김정일 장군이 내려오면 서울이 눈물바다가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들었다. 아무도 헛소리에 관심을 기울이거나 고발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터로,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만큼 튼튼해졌다는 증좌가 아니고 무엇인가. 오랫동안 외국에 나와 공부하고 있는 그 젊은이는 불과 20여년 전 정부를 비판하거나 월북한 작가의 책 한 권을 간직하고 있다가 빨갱이로 낙인 찍히던 우리 현실을 구체적으로는 알고 있지 못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가슴이 뿌듯했다. 적어도 자유나 민주주의에 관한 한 서구나 미국에 대하여 우리가 기죽을 필요가 무엇이 있는가, 나는 제법 큰 소리를 쳤다. 이제 이 큰소리가 쑥 들어가게 됐다. 사실 한 전직 교수의 돈키호테적 행각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은 사회주의가 총체적으로 몰락하고 베일에 가려졌던 북한의 현실이 백일하에 드러난 마당에 그의 주장에 동조할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듯 안보의식이 해이해서가 아니라는 소리다. 죽은 것도 살려서 소중하게 쓰는 것이 학문일진대 그의 생각이 우리 사회에 해독을 끼치리라는 주장은 말 그대로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나치를 아는 것도 중요한 것은 그 이론에서도 우리가 배울 바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과 행동을 새삼스럽게 묵은 서랍 속에서 꺼낸 서류를 들이대며 규제한다는 것은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그만큼 후퇴시키겠다는 경고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여간첩 사건은 좀 웃기는 얘기 같다. 간첩 하면 우리 머리에는 독침을 들고 어둠 속에서 은밀히 움직이는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인데, 이건 엉성하기 짝이 없다. 공작원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도 낮에는 사로청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금성정치군사대학에서 교육을 받았다니, 밀봉교육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엄격한 공작원 교육을 알바로 받았단 말인가. 누구를 살해하려 하다가 도저히 살인을 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는 계획이며, 북한을 드나들었다는 행각도 어딘가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지를 않는다. 마치 우디 앨런의 코미디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재미는 있지만 실감이 가지 않는다. 옛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왔다가 친구들 앞에서 무언가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결국 그는 북과 내통을 하는 사상가로 행세하면서 돈도 뜯어 쓰고 술도 얻어 마시다가 마침내 한 친구의 고발로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구속이 되고서도 그는 한동안 스스로 북한에 동조하는 공산주의자로 행세했지만 사실이 탄로나면서 반공법으로 겨우 1년을 살고 나왔다. 여간첩 사건 보도를 보면서 문득 이 사람이 생각나는 것은 웬일일까. 사람들을 혼란시키는 생각을 퍼뜨리거나 국가의 기밀을 나라 밖에 파는 사람을 적발하고 처벌하는 일은 당연히 당국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안보는 튼튼할수록 좋다는 주장에도 결코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러나 재미로 늑대요 하고 외쳐 동네 사람을 끌어내다가 진짜 늑대가 나왔을 때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드는 어리석음이 세상에 드물지 않게 있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죄가 의심스러울 때는 벌은 가볍게 주고 공이 의심스러울 때는 상을 후하게 준다.”라는 송나라 때 시인 소동파의 낡은 아포리즘도 한번쯤 되새겨 볼 때다. 시인 신경림
  • 경제 전문가 8인의 긴급진단

    경제 전문가 8인의 긴급진단

    경제전문가들은 ‘9월 위기설’로 촉발된 이번 금융시장 불안이 오는 10일을 전후로 진정되고, 다음달에 접어들면 본격적인 안정기조를 되찾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현재 수준(5일 종가 1129.0원)에서 소폭 하락한 뒤 1050∼1100원 선에서 등락을 거듭할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그러나 우리경제의 불안요인이 완전히 해소된 것이 아니어서 지속적으로 금융과 실물 부문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4일 서울신문이 경제연구기관의 학자들과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우리경제에 대한 단기전망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한 8명 모두 조만간 금융불안이 진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이상재 현대증권 이코노미스트는 “9월 이후 경상수지가 흑자로 반전되면 원화 환율이 급격히 안정될 것이고 이에 따라 4·4분기 이후 금융시장이 빠르게 안정세에 들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과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유가하락 등으로)9월에 경상수지 적자행진이 멈추면 금융시장의 안정이 더욱 확연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에 따른 ‘패니매’·‘프레디맥’ 문제가 이달 말 해결될 것으로 보여 국내 금융시장도 그 영향으로 4분기에 안정세를 찾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안심할 상황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었다. 신용상 금융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은 “주가·채권·원화 등 트리플 약세 국면이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금융불안 기조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했다. 원·달러 환율은 1050∼1100원선에서 안정될 것이라는 견해가 많았다.1200원 이상으로 뛸 것이라고 본 전문가는 한명도 없었다. 그 이유로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경상수지 개선 가능성을 든 사람이 많았다. 이효근 대우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단기 환율 급등에는 수급요인 이외에 투기자금의 문제가 컸다.”면서 “우리경제의 펀더멘털을 감안할 때 1100원 내외에서 환율이 형성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국제유가는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100달러 내외가 유지되겠지만 두자릿수로 떨어지기는 힘들 것이란 생각이 많았다.KIEP 윤 선임연구위원은 “유가불안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으며,11월에는 다시 상승할 수 있다.”고 했다. 환율급등을 불러온 미국 달러화의 글로벌 강세 기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러나 강도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류승선 HMC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달러화 강세는 최소한 내년까지는 지속될 것”이라면서 “달러화의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인덱스가 지금보다 15%까지는 추가로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 신 거시경제연구실장은 ‘혼조세 속 완만한 강세 기조’를 예상했고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실물경제실장은 “달러강세는 단기적인 추세”라면서 오래 못갈 것으로 내다봤다. 위기설의 원인 중 하나인 경상수지 적자는 올해 연간 70억∼100억달러로 본 전문가들이 많았다.KIEP 윤 선임연구위원은 “유가가 앞으로 더 오를 가능성이 많아 적자가 100억달러를 넘어 130억달러까지 갈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아파트 미분양 사태와 인수·합병(M&A) 관련 일부 대기업의 유동성 문제는 우려할 상황이기는 하지만 국가경제 전반을 뒤흔들 사태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대우증권 이 이코노미스트는 “유동성 문제의 징후가 일부 나타나고 있어 당분간 힘든 상황이 이어지겠지만 국가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위험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중소업체를 중심으로 한 건설업계의 위기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김태균 이영표 조태성기자 windsea@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하편)

    ■몽골에서 우리의 옛 모습을 보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오고바흐타의 진단은 몽골에 체류하는 동안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몽골 입성 4일째 되는 날,의료봉사를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야유를 나섰다.말이 야유지 그것은 또다른 고행의 체험이었다.워낙 햇볕이 따가워 일행들은 함부로 초원에 나서기를 꺼려했다.그냥 차안에서 너른 초원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투였다.그래도 몽골이라는 나라가 그리 쉽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아니지 않은가.필자는 작심하고 시원한 차량을 나섰다.더운 바람이 턱 하고 숨길을 막았고,발바닥에 밟히는 초원의 감촉은 뜨겁고 푹신했다.뜨거움은 태양에 달궈진 대지의 체온이고,푹신한 것은 빠삭하게 마른 모래흙이 밟히는 감촉이었다.걸음을 뗄 때마다 풀풀 먼지가 일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가 몽골과 역사·문화적 뿌리를 공유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주는 흔적을 곳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어워’였다.초원을 가로 질러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이어진 길(나중에 지도를 보고 그 길이 러시아령 바이칼 호수 쪽으로 이어지는 간선 국도임을 알았다.)을 따라가자니 길가에 익숙한 돌무더기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바로 어워였다.우리 식으로 보자면 성황당이다.모양도 성황당과 너무 닮았다.몽골인들은 길을 오가다 어워를 만나면 돌을 세개 쌓거나 주위를 세번 돈 뒤 기원을 하고 지나간다.의례까지도 우리의 성황당 의식과 너무 비슷해 놀랐다.요즘엔 차량 이용자가 많아지면서 예전처럼 돌이 많이 쌓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직 몽골에는 토템이나 샤먼적 요소가 우리보다 훨씬 많이 남아 있다.예컨대 차량 운전자도 아워 앞을 지나칠 때면 경적을 세번 울리거나 아예 차로 아워 주변을 세번 돌고 지나가는 식이다.우리에게 익숙한 ‘삼세번 문화’와 흡사한 의식의 발현이다. 우리와 다른 점도 있었다.종교든 생활 관습이든 주어진 환경 조건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일정 부분의 원형 이탈은 불가피한 것이다.우리의 경우 큰 나무에 영성(靈性)이 깃들었다고 보고 그걸 성황당으로 삼는 데 비해 그들은 그냥 평지에 돌무더기를 쌓아 어워로 삼았다.삼림지대가 아닌 망망대해 같은 초원지대에는 나무가 거의 없어 우리처럼 노거수를 토템의 대상으로 삼기가 쉽지 않은 탓일 것이다.이 때문에 우리는 나무 등걸에 색색의 천을 걸거나 금줄과 유사한 기능의 새끼줄을 걸쳐 공간의 신성성을 표시하는데 몽골에서는 돌무더기 가운데 통나무를 박아 장소성을 나타냈다.그들은 이 나무에 예외없이 파란 천을 친친 두른다.물론 다른 색의 천도 걸려있지만 주종은 파란색 천이다. 파란 색 천은 옛적부터 몽골인들이 외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하늘을 뜻한다.그러고 보니 우리가 탄 버스의 운전석 위에도 씨름 샅바처럼 만 파란 천이 가로로 걸쳐져 있다.이런 습속은 일반인의 생활에도 깊숙히 자리잡아 게르나 현대식 주택엘 들어서도 거의 예외없이 출입문 위에 가로로 걸쳐 놓은 파란 천을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충분히 이해됐다.그들의 삶을 지배하는 태양이 터를 잡은 곳이 하늘이고,철궁으로도 뚫지 못하고,천마를 달려도 다다를 수 없으니 어찌 그들이 하늘을 경외하지 않았겠는가.비록 지상에서는 동과 서,남과 북 천하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대제국을 일궜을지라도 하늘 만큼은 그들의 발아래 꿇릴 수 없었을테니…. 그들이 하늘을 외경의 대상으로 삼은 흔적은 까마귀를 신성시하는 것에서도 확인됐다.그들도 우리처럼 까마귀를 ‘태양의 사자’라고 믿는다.그래서 사냥에 나설 때도 까마귀는 건드리지 않는다.만약 누군가가 까마귀를 해쳤다면 전쟁터로 가는 길이든,결혼식장으로 가는 길이든 모두 포기하고 돌아온다고 한다.까마귀의 영성을 대하는 이들의 시각은 이 정도다. 이런 의식은 우리와도 닮았다.지금이야 까치는 길조이고,까마귀를 그냥 기분 나쁜 새로 여기지만 이는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 이입된 서구적 의식의 영향 탓일 뿐 예전 우리 조상들은 까마귀를 영물(靈物)로 여겼다.몽골과 마찬가지로 우리 조상들도 까마귀를 ‘하늘의 사자’라고 여겼으며,이는 우리 신화 속에 깃든 삼족오(三足烏)의 전설이 입증해 준다.혹 어렸을 적에 할머니로부터 이런 얘기 들을 기억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다. “아,글씨 이 망할 구미호(여우)가 어찌나 신통방통한 둔갑술을 가졌는지 도저히 어찌 해볼 요량이 없는게야.그래 그 사람이 이젠 죽었구나 하고 아예 땅바닥에 다릴 풀고 퍼질러 앉았지.그러고는 조상께 하직인사를 올렸지 뭐야.‘인자 죽게 돼 조상님들께 제사도 못 올리게 되었다고….’그랬더니 눈앞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타나 이렇게 말하는 게야.‘이 눔아,게서 죽으면 못써.얼렁 내가 일러준 주문을 외워봐.그러면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널 구해줄게다.’ 그래 정신이 퍼뜩 든 이 사람이 그대로 주문을 외았드니 금시 삼족오허고 삼족구가 와서 그 구미홀 쫓아내는거야.” 여기서 삼족오는 다리가 셋인 바로 그 까마귀이고,삼족구는 다리가 셋인 개를 말한다.이처럼 우리 의식 속에서는 둘 다 잡귀를 물리치고 주인을 지켜주는 신성한 영물로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삼족오를 일본이 잽싸게 건져내 자국의 축구 국가대표팀 문장으로 만들었다.사실 우리 축구대표팀의 문장에 넣은 호랑이는 애당초 우리 의식 속에 늘 있었던 것이어서 놀랄 일이 아니었으나 일본이 삼족오를 내미는 데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 때 내 속으로는 “저들이 언제 우리 할머니 이바구까지 훔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무척 아까웠었다.생각은 그렇더라도 까마귀에 대한 이런 의식이 동양문화의 중추를 관통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이로써 대륙의 문명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음을 확인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 다른 문화의 유사성은 씨름에도 있었다.아워도 그렇지만 씨름도 우리 민족이 중국의 한족과 전혀 다른 문화적 혈통을 가졌음을 확인시키는 결정적 근거가 아닐까.씨름의 민속 벨트가 몽골-러시아 극동지역-한국-일본으로 이어져 중국이 배제되고 있다.인류문화사적으로도 중국은 우리와 전혀 다른 언어 및 인종적 경로를 갖고 있다. 몽골에서 ‘부흐’라고 부르는 씨름은 샅바를 이용하는 우리의 것과 형식적으로는 약간 차이가 있다.그러나 두 사내가 서로 맞붙어 힘과 기술을 겨룬다는 점에서는 똑같다.승패를 가르는 방식,즉 넘어뜨리면 이기는 승패 규칙도 매우 흡사하다.해마다 7월 11∼13일에 몽골 최대의 나담축제가 열리는데,이 축제의 3대 행사가 바로 부흐와 말타기,마상 활쏘기이다.여기에서 그들에게 부흐가 생활의 일부임을 알 수 있다.몽골 역사상 올림픽 첫 금메달리스트가 된 유도의 투브신바야르 나이단도 원래는 부흐 선수였다.현지에서 듣기로는,그가 부흐를 배우다가 ‘세상이 바뀌어 이제는 부흐로 먹고 살기 어려우니 유도를 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로 유도선수가 되었단다.하기야 유도나 씨름이나 근본적인 역동의 원리는 그다지 달라보이지 않는다. 몽골 체류 중 일행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가장 큰 곳 중 하나라는 재래시장을 찾았다.소액(50토그르기)이지만 입장료도 내야 했다.뙤약볕 아래 제법 널찍하게 펼쳐진 재래시장은 예의 인파로 북적였다.갖가지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이 보도를 점령한 것도 우리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다.특히 냉차를 파는 노점은 옛날의 우리 모습을 다시 보는 듯 했다.온갖 잡화가 진열된 그곳은 생각과 달리 잘 정리되어 있었고,풍성했고,사람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이 시장은 울란바토르에서도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또다른 익숙한 광경도 눈에 띄었다.식료품 가게에는 감자와 마늘,양파가 즐비했다.현지 안내원에게 물으니 몽골인들이 일상적으로 먹는 식품들이라고 했다.우리와 다른 점은 어물전이 없다는 거였다.하기야 고비사막을 깔고 앉은 내륙도시 울란바토르에 신선한 생선이 있을리 만무했다.일행중 누군가가 우스개소릴 던졌다.“어디 가서 싱싱한 회나 한 접시 했으면 좋겠구만.” 이 시장이 매력적인 것은 몽골인들의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다는 점이었다.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거리의 악사’가 눈길을 끌었다.초로의 여인이 짙은 화장을 하고 뙤약볕 아래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아들인 듯 싶은 젊은이는 반주가 담긴 카세트를 켜들고 그 뒤에 물끄러니 서있었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우리의 옛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일제에 의해 전통적인 우리의 권번이 해체되면서 수많은 기생들이 거리로 내몰렸다.이를테면 그 이전의 관기(官妓)가 중심이었던 ‘공창 시스템’을 자본주의식 ‘사창 시스템’으로 전환시킨 조치였다.하루 아침에 일자리에서 내몰린 기생들이,그것도 ‘애기기생’들을 모두 떠나보내야 하는 늙수그레한 노털 기생들은 천상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국을 떠돌며 잔치집을 전전하거나 노상에서 술과 웃음을 파는 들병이로 전락했다.이 몽골 여인의 삶의 내력을 알 수는 없었으나 길거리에서 기예를 파는 처지가 딱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양 한마리를 해치우는데 고작 20여분. 몽골을 떠나기 이틀 전,몽골 현지 ACC 책임자가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몽골의 자연형 국립공원인 테일지 초원의 게르로 나가 양고기 오찬을 대접하겠다는 것이었다.정중한 초청이었기에 거절할 수는 없었지만 일행 대부분은 이미 여러번의 현지식에서 양고기의 누린 맛에 적잖이 질린 터라 서로 마주보고 눈만 꿈벅거렸다.그때 일행중 한 명이 나섰다.“너무 양고기에 기죽은 표정들 하지 맙시다.이미 초청을 받았는데 안 간다는 것도 결례이고 하니 그냥 가볍게 초원으로 산책 나간다는 생각으로 갔다 옵시다.” 그렇게 해서 울란바토르에서 차로 1시간 쯤을 달려 테일지 자연공원에 도착했다.그곳은 아름드리 삼림이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발원했다는 맑은 강물이 흐르는 천국 같은 곳이었다.산의 능선을 타고 펼쳐진 바위가 마치 금강산의 풍광 한 폭을 뚝 떼어다 옮겨놓은 듯 아름다웠다.안타까운 것은 거기에도 개발 바람이 불어 그 울창한 원시의 수림대가 차차 망가지고 훼손된다는 사실이었다.테일지로 가는 길목 곳곳에 베어넘긴 거목의 시체들이 즐비했다.그곳에서 말등에 올라타고 두개의 야트막한 하천을 건너 한참을 가니 광활한 초원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상상해 보라.인공이 가해지지 않은 원시의 초원을 눈앞에 두고 선 나그네의 가슴 울렁거리는 희열을. 말인 즉 인공이 가해지지 않았다고 했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그곳에는 양과 말,야크떼를 거느린 유목민들이 살고 있었다.양털과 젖이 그들의 주수입원이었지만 가끔 게르에서 하루,이틀 묵으며 초원을 체험하려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그곳 유목민들은 땟국에 절은 입성 말고는 어떤 문명의 티도 내지 않았다.예약된 게르에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딱딱하게 말린 양젖 버터를 권했다.마치 고구마 절편처럼 딱딱했다.맛을 보려고 입으로 가져가니 예의 누린내가 확 끼쳐 슬그머니 내려놓고 말았다. 게르 뒷편에서는 젊은 유목민 사내가 때맞춰 능숙한 솜씨로 양을 잡고 있었다.그걸 지켜보자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살아있는 양의 네 다리를 잡고 땅바닥에 누인 뒤 고작 연필만 한 주머니칼을 꺼내 명치 부위에 10㎝ 가량의 칼집을 냈다.그때까지 양은 멀쩡하게 살아 맴맴거리고 있었다.이윽고 사내는 칼집으로 손을 쑥 집어넣더니 검지를 대동맥에 걸어 뚝 하고 잡아뗐다.그걸로 끝이었다.양은 이내 목을 축 늘어뜨렸다.양의 숨이 끊어지자 사내는 손바닥을 밀어 익숙하게 가죽과 몸통을 분리했다.칼은 발목과 목을 분리할 때만 썼다.다음은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는 일.가슴을 갈라 내장을 들어내고,흉곽에 그득한 피를 준비한 그릇에 담아 선지 순대를 만들었다.그의 아내인 듯 보이는 여성이 들어낸 내장을 익은 솜씨로 손봐냈다.순대와 내장,적당한 크기로 나뉜 몸통은 그대로 통속으로 들어가 삶겼다.양 한마리를 잡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20여분 정도,그러는 동안 땅바닥엔 피 한방울이 흐르지 않았다.일을 마친 사내는 풀섶에 쓱쓱 문대 손의 피를 닦았다.양 한마리를 그렇게 잡도리했다. 일행이 담소하는 동안 삶은 양고기가 가득 든 통을 든 사내가 게르로 들어섰다.건장한 사내는 순박하게 웃어보이며 통 속에서 막 삶긴 뜨거운 양고기를 꺼내 칼질을 시작했다.익숙한 솜씨였다.통속에는 양고기와 함께 돌과 감자도 들어있었다.게르에 차려진 간이 식탁위에는 금세 맛있게(?) 삶긴 양고기가 그득했다.다릿살이며 내장에 양의 선지를 채운 양순대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다.술도 나왔다.말젖을 발효시킨 마유주였다.맛을 보니 시금털털해 아무래도 비위가 얇고 술에도 약한 필자가 감당하기엔 무리였다.일행 중 한 명이 “내 이럴 줄 알고 준비했지.”라며 술 한병을 꺼내 식탁에 올려놨다.몽골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칭키즈칸 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돌자 처음엔 양고기 누린내에 고개를 모로 꺾던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들어 안주 삼아 양고기를 맛보기 시작했다.더러는 “생각보다 먹을만 한데….”라는 후평을 내놓기도 했으나 준비해 간 고추장 맛으로 몇 점 먹어본 것이 고작이었다.30여명이 먹은 양고기가 너댓근에 불과해 보였다.남은 고기가 먹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맞았다.벌써 며칠째 밥 다운 밥 꼴을 못 본 필자는 그걸로라도 면허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해 고기덩이 속에서 삶은 감자를 골라냈다.그러나 양고기와 같이 삶긴 터라 감자든 고기든 누리기는 매 한가지였다.양고기와 양순대,간 등이 있었지만 누린내 때문에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옆에 있던 누군가가 그런 필자의 옆구릴 쿡,찌르며 귀엣말을 건넸다.“아직 배가 덜 고팠구만….” ■애들아,말 달리자.저 땅 끝까지. 오찬을 마친 일행은 초원으로 나섰다.초원에서 몽골 말을 타볼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말을 타려니 연전 터키의 한 시골에서 말을 타다가 엉덩이 꼬리뼈 부위가 벗겨져 곪는 바람에 며칠 혼쭐이 났던 기억이 되살아났다.말안장에 쓸린 상처 부위가 덧나 나중에는 차를 타건 비행기를 타건 한시도 의자에 바로 앉지 못했던 그 끔찍한 여행의 기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을 터였다.그걸 아는 필자로서는 말등에 올라서도 말이 제 멋대로 달리게 할 수가 없었다.말은 과천 경마장에서 내달리는 유럽형 경주마처럼 크지 않았다.키가 작달막해 보였는데 그래도 가까이 다가가니 등이 어른 키높이만 했다.바로 이 말이 옛날 몽골 전사들이 타고 세계를 아우른 그 말이라고 했다.순식간에 내달리는 속도는 유럽산 경주마에 뒤지지만 지구력이 좋아 오래 달린다고 했다.또 먹성도 까탈스럽지 않고 병에도 잘 견딘다니 전쟁터에 타고 나갈 기마용으로는 그만인 듯 했다.그러니 유난히 말을 사랑했다는 당태종이 이곳에서 명마를 골라 준마도,백마도(百馬圖)를 그리고 그 유명한 당삼채로 완성해내지 않았을까. 그렇든 말았든 꼬리뼈의 추억 때문에 고삐를 바짝 당겨쥐어 말이 뛰지 못하게 한 뒤 게르 주변을 한바퀴 도는 것으로 끝냈다.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나중에 보니 엉덩이 가운데 꼬리뼈 끝이 빨갛게 쓸려 있었지만 예전처럼 곪지는 않았다. 농사 유전자를 가진 한국인에게 말을 타는 일이 썩 어울려 보이지는 않았다.거북하고 어색한 몸짓이 우스꽝스러웠는지 그곳 아이들이 바라보며 키득거렸다.태어나 걸음을 떼면서부터 말등을 떠나지 않은 그곳 아이들 아닌가.아닌게 아니라 고작 예닐곱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잽싸게 말등으로 뛰어오르더니 ”츄∼츄∼”하는 입소리를 내며 가죽 고삐로 뱃골을 치자 말은 순식간에 초원 저편으로 질풍처럼 내달려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때 누군가가 한가지 제안을 했다.“저 꼬마녀석들에게 뭔가 선물을 줘야 할텐데 그냥 주기도 뭐하니 말타는 모습을 좀 보여달라면 어떨까?” 그런 뜻을 게르 주인에게 전했더니 주인 사내는 한 술 더 떴다.“이 마을(마을이라야 게르 서넛이 멀찍이 자리잡은 것에 불과했다.)에 저 또래 아이들이 모두 여섯인데 그들에게 목표를 정해 말타기 경주를 시켜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모두가 동의했다.하는 김에 5달러씩 걸어 이긴 사람이 본전을 제하고 나머지를 애들 시상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주인이 제안한 터라 딱히 그 사람들이 기분 나쁘게 여길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자고 동의하자 주인이 초원을 향해 높은 톤으로 소릴 질렀다.멀리 있는 아이들을 부르는 소리였다.잠시 후 여기저기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모여들었다.그들 뿐이 아니었다.아낙들,젖먹이들도 모두 눈을 반짝이며 게르 앞으로 모여 들었다.꼬마들은 제각각 아끼는 말을 골라타고는 고삐를 바투잡고 나란히들 섰다.그들은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듯 했다.우리야 한번 말등에 오르내리려면 기를 써야했지만 걔들은 가볍게 말등을 오르락거렸다.말에 올라탄 꼬마들은 뭐라고 주문을 외며 우리가 든 게르 주변을 천천히 열바퀴 돌았다.몽골의 전통적인 출정의식이라고 했다.이윽고 목표가 정해지고 모두 출발선에 섰다.목측으로 2000m쯤 되는 거리였다.사내가 신호를 하자 고삐를 꼬나쥔 꼬마들이 초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마치 옛날의 몽골 전사들이 저렇게 내달려 도버해협과 북해의 거친 해안까지 다다랐던 것은 아닐까.그들의 모습에서 영화로웠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오고타이,손자인 쿠빌라이칸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았다.그 모습은 시공을 초월해 그들이 말(馬)을 매개로 엮어진 불가분의 의식공동체임을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애들이 말을 몰아 목표를 돌아오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얼굴이 발그레 상기된 아이들은 사내의 지시에 따라 마상에서 뭐라고 몇 번 고함을 지른뒤 훌쩍,훌쩍 뛰어내렸다.그들이 마상에서 내지른 소리 역시 무사히 말을 타게 해 줘 감사하다는 일종의 주문이라고 했다.논의 결과 아무리 애들이 수고는 했지만 직접 돈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여겨 사내에게 모은 돈을 한꺼번에 건넸다.그렇게 모은 돈이 한 40 달러쯤 됐다.사내는 한 켠으로 아이들을 불러모은 뒤 뭐라고 얘기를 나눴다.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잠깐 말 타는 것을 보여줬을 뿐인데 돈은 무슨 돈이냐는 투였다.거기까진 우리가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황무지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구름 한점 없는 하늘 한 켠이 마치 불길이라도 이는 듯 선홍빛으로 타들었다.대륙의 장엄한 노을이었다.타드는 것이 하늘 뿐만은 아니었다.하늘과 맞닿은 대지도 붉게 달아올랐다.그 노을 속으로 누군가가 말등에 지친 몸을 싣고는 하염없이 길을 걷고 있었다.그의 뒤를 키 작은 양떼들이 따랐다.유목의 사내일 것이다.그 모습에서 문득 몽골의 전사들을 이끌고 천하를 휘저을 때 남긴 칭키즈칸의 말이 떠올랐다.“성벽을 쌓는 자는 망하고 이동하는 자는 살아남을 것이다.” 그랬다.비록 그 말이 옛적 유목의 부정형 삶을 두둔하고 옹호하는 의미였을지라도 우리는 지금 그 의미를 결코 백안시할 수도,도외시할 수 없다.오늘날에도 그 교조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몽골의 거친 황무지,그 황무지와 하늘을 가장 단순하게 구획하는 일획의 지평선 위로 비장하게 물드는 노을.뜨겁게 달아 올랐다가 아무 것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스러져 가는 그 노을에서 장대했던 몽골의 옛 제국을 보았다.참으로 비장했던 제국의 영화와 끝.그 노을을 응시하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말문을 닫았다.자연이 연출한 그 무위의 파노라마 앞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말고 무슨 영탄이 필요할 것인가.몇몇은 풀섶에 가만히 주저앉아 술병을 땄다.보드카였다.독한 술이 목줄기를 타고 넘어가 순식간에 흉금을 적셨다.노을에 함뿍 적신 얼굴 위로 서서히 술기운이 돌았다.노을과 사람이 함께 익어드는 것 같았다. 이윽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시작한 노래가 거친 풀섶으로 나즈막히 흘렀다.“천등사안 바악딸째를 울고넘는 우리 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노래는 다시 이어졌다.“아아∼∼ 신라의 바아암이이이여 불국사의 종소리가 들리어온다 지∼나가는 나아그네에에여어 거∼얼음을 머어엄추어라 고오오요오하안 다아알빛아래….” 그 노래가 그 시각,그 자리에서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고,또 생각하지도 않았다.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장대한 자연의 섭리를 앞에 두고 터져나온 노래야말로 가장 진솔한 정서의 토로 아니었겠는가. 이윽고 맞은 저녁.몽골의 밤하늘은 별들의 천국이었다.장관이었다.요요한 풀섶에서 쳐다보는 밤하늘에는 별들이 촘촘하게 박혀 형용할 수 없는 자태의 빛을 발하고 있었다.휘∼ 손을 내저으면 우수수 떨어질 것만 같았다.어린 시절 고향에서 보았던 그 광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는데,그 모습이 고스란히 몽골의 초원에서 재현되고 있었다.아주 오랫동안 뒤로 고개를 꺾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가슴이 울렁거렸다.기대하지 않았던 만남이 주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그 싱싱하고 영롱한 별들이 어느 새 술병 속에 떨어져 잠겼는지 몇 잔을 마신 보드카가 이내 목에 턱턱 걸렸다.그렇게 술과 함께 삼킨 초원의 별들이 훗날 내 속에서 어떻게 되살아날까. 봉사단원들은 모처럼 가진 초원에서의 휴식에 모두 흡족해 했다.ACC 김종구 총재가 일행과 함께 하며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꽃향기는 황홀해 보여도 산 하나를 넘지 못하지만 남에게 베푸는 봉사의 향기는 국경도 넘는다.” 사실 일상에 쫓기며 살아야 하는 갑남을녀가 ‘봉사’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그러나 김 총재의 말마따나 “봉사는 마약”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선뜻 사재를 털어 빈민에게 새 게르를 지어주기는 쉬울 것이며,자신의 직장일을 뒤로 하고 1년에 몇 차례씩 해외 봉사활동을 나서기는 또 쉬울 것인가.봉사활동 말미에 가진 한·몽 ACC 자평모임에서 김 총재는 이런 말을 했다.“재산이 많아 하는 봉사는 자선일 수는 있어도 엄밀한 의미의 봉사는 아니다.봉사는 자신의 여건을 초월해 나서는 것이다.세상에 아무 것도 잃지 않고서 할 수 있는 봉사란 없다.” 일행을 이끈 아시아 사랑나눔의 배용민씨는 현지에서 정을 나눈 안내원들과 따로 어울리며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눴다.그가 대뜸 이런 말을 꺼냈다.“고생할 때는 두번 다시 몽골엔 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초원에서 밤을 맞으니 그 생각이 틀린 것 같습니다.이걸 보고 몽골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그랬다.사실 몽골에서의 체험은 매우 특이했다.그러나 누린 먹을거리에 곤죽이 되고,태양에 주눅이 들었어도 그것이 잘 사는 나라에서 항용 겪는 무관심이나 비하와 모욕의 체험은 아니었다.사람들은 순박했고,지혜로웠다.손님을 대하는 태도도 정성스러웠다.그런 정성이 양고기의 역겨운 노린내를 지우고도 남았다. 애당초 봉사하자고 나선 길에 무슨 호의호식을 바라겠는가.그런 생각이 봉사의 취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지며 더 많은 땀을 쏟지 못한 아쉬움이 가슴으로 잔잔하게 배어들었다.밤이 지나면 다시 저 망망한 대지 위로 태양이 떠오를 것이다.그리고 그 태양의 순환처럼 이 황무지에도 연대와 공유의 찬란한 세상이 다시 열릴 것이다.그렇게 기원했다. 글·사진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별자리 모양이 시대따라 왜 다른가?

    “사현금(四絃琴·거문고)을 퉁기는 신선과 불춤을 추는 신선 사이에서 요고(腰鼓·장구)를 두른 신선이 북두칠성을 배경으로 하늘 나라에서 풍류를 즐기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인 중국 지안(集安)의 오회분 4호묘에 그려진 북두칠성의 그림이다. 고대 조상들이 하늘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혼연일체를 추구하던 상상력이 지금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을 들려주는 책이 나왔다.‘우리 역사의 하늘과 별자리’(김일권 지음, 고즈윈 펴냄)는 옛 선인들이 하늘의 별자리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천문 연구서다.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천문의 역사와 문화를 시대별로 분석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민속학 전공교수인 지은이는 고인돌 등에 새겨진 고구려식 북극성 천문도, 고려시대 천문에 대한 북한의 보고서, 일제 강점기때 조선총독부의 발굴자료, 중국 천문자료 등 광범위한 자료를 찾아내 천문학과 역사를 넘나들며 우리 역사 속의 별자리를 살핀다. 역사에 투영된 별자리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숱한 이야깃거리가 내장돼 있다. 하늘의 별자리가 단지 어린 시절 상상의 날개를 펴던 ‘낭만의 자리’가 아니라 시대상과 문화상을 오롯이 담고 있는 ‘역사의 자리’라는 것. 별은 같은 곳에 한결같이 뜨는데 시대별로 다르게 보는 것은, 같은 별자리라도 시대에 따라 모양이나 갯수가 변하게 되기 때문이다. 한 시대에 각광받던 별자리가 후대에는 쇠퇴하는 대신 다른 사상적·사회적 배경을 업고 등장한 별자리가 새롭게 주목받다는 것이다. 지은이는 먼저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별자리 그림에 주목한다. 신라 첨성대를 제외하고는 삼국시대 별자리 유물 자료가 남아 있지 않은 데다,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는 고구려처럼 다양하고 선명한 별자리 그림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황해도 안악3호분에 최초의 천장 별자리 벽화가 나타나고 다채로운 별자리를 간직한 평남 남포시 덕흥리 고분은 오행성의 그림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지안 오회분 4호묘는 북극3성의 5방위 별자리 체계가 등장, 별자리 관측에 대한 고구려의 천문학 수준을 가늠케 한다. 그렇다면 고구려의 수준 높은 별자리 관측이 조선에 와서 맥이 끊긴 까닭은 뭘까. 지은이는 무엇보다 제천의례 혁파에서 찾는다. 조선왕조실록 등에는 “태조 원년(1392) 조박 등이 ‘원구(圓丘)는 천자가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의절이니, 이를 폐지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했다.”고 적혀 있다. 성리학적 질서를 숭상한 조선은 중국의 천자만이 하늘의 별자리를 독점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책은 고대 한국의 별자리 그림이 중국의 별자리 그림과 다르다는 견해도 내놓는다. 한국과 중국은 같은 문화권이지만 별자리에 대해서는 다르게 인식했다. 한국은 북극성 별자리를 ‘북극삼성(北極三星)’으로 바라본 데 비해 중국은 ‘천극사성(天極四星)’ 혹은 ‘북극오성(北極五星)’으로 간주했다. 별자리 만큼은 중국의 시각에서 벗어나 고구려의 독자적인 관점이 정립된 셈이다. 별자리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책.2만 8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중편) ■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유목민들의 환호… 들뜨는 초원 현지에 도착해 사흘째 되는 날 늦은 오후,갑자기 울란바타르 시내가 들썩거렸다.도심 곳곳에서는 차량이 경적을 울려대며 질주하고 있었고,그 차창 밖으로 벗은 몸통을 드러낸 청년들은 뜻을 알 수 없는 환호성을 토해냈다.저녁이 되자 시내 중심지에 있는 정부 청사 앞 수흐바토르 광장에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몽골 혁명의 아버지 수흐바토르가 1921년 울란바토르에 몽골 인민정부를 수립한 것을 기념해 조성한 광장이다.울란바토르의 중심부에 있는 이곳에는 지금도 황톳빛 나는 수흐바토르의 기마상이 세워져 있는 울란바토르와 몽골의 중심 광장이다. 그들은 손에 손에 몽골 국기를 들고 있었다.베이징 올림픽에서 몽골 전통 씨름선수 출신인 투브신바야르 나이단(24)이 유도 남자 100㎏급 결승에서 카자흐스탄 선수를 꺾고 금메달을 딴 것이다.몽골 공화국이 탄생한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했다.그 분위기가 2002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뤘을 때의 서울 풍경과 흡사했다.방송은 종일 그 소식을 전했다.방송체계가 열악해 금메달을 따는 순간의 경기 비디오는 나중에야 국민들에게 전해졌으나 시민들 반응은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특별 프로그램으로 방송하며 자국민들의 신명을 긁어댔다. 환호작약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자유분방한 유목정신과 버무려진 근대의 국가주의 냄새가 물씬 풍겨났다.국가주의의 한 모습은 심야에 대통령이 각료를 불러모아 광장의 연단에 오른 것에서도 확인됐다.텔레비전으로 중계된 광장의 축하 집회에서는 ‘몽골 만세’라는 구호가 밤새 울려퍼졌다.도심의 건물 곳곳에 대형 몽골 국기가 내걸리고,사람들은 취한 듯 이런 분위기에 젖어 그날도,다음날도,그 다음날도 금메달 얘기를 되내이고 곱씹었다.한 시민은 금메달을 딴 몽골선수에게 족히 5억 토그르기는 주어질 것이라며 부러워했다.일종의 포상금이고 격려금인 셈이다. 하기야 엥흐바야르 대통령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는 시민들의 소요로 곤욕을 치르는 가운데 이들의 관심을 일거에 잠재울 금맥이 터졌으니 그 선수가 얼마나 고맙고 기특했을 것인가.아직 민주주의에 대한 훈련이 부족한 탓인지 그들은 금새 그런 국가적 과제를 잊고 금메달의 환호에 매몰되어 가고 있었다.우리에게도 전두환 집권 초기에 ‘3S(Sports,Sex,Screen) 정책’의 아픈 기억이 있었다.그 묵은 관성은 지금도 때만 되면 되살아나 국민들의 정신을 갉아댄다.일종의 심리적 마약 같은 것이다.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다.애쓴 선수들의 노고와는 별도로 그런 마약 같은 정치적 의도가 많은 국민들의 정서에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필자만 가진 것은 아니리라. 초원의 나라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뿐이 아니었다.얼핏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황무지도 가만 들여다 보면 온갖 생명의 약동이 있듯 더는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는 듯 보이는 왕년의 제국 몽골이 긴 잠을 털어내고 약동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들은 칭기스칸과 그의 후예들이 일군 제국의 꿈을 다시 이루는 일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이런 바람은 그들의 유전자가 된 정복욕의 현대적 발현일지도 몰랐다. 이번 여행길에 만난 몽골의 엥크볼드 총리는 이런 말을 했다.“지금 몽골이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오로지 말 안장에 몸을 얹은 칭기즈칸이 극동에서부터 멀리 아랍권과 서·동유럽 일대를 아우르고 위대한 승자가 되었듯 우리 몽골도 반드시 국부를 일궈 그 옛날의 영화를 재현하려 한다.” 지금도 몽골 초원에는 양과 말,야크 무리가 끊임없이 떼를 지어 이동하고 있으며,사내들은 말을 타고 거침없이 초원을 질주한다.그러나 그런 노마드의 삶이 언제까지 이어질런지는 알 수 없다.옛적 몽골의 용맹스런 기마부대가 마각(馬脚)을 앞세우고 지축을 흔들며 질주해 간 길을 지금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달리고 있다. 생각해 보면,말과 오토바이가 갖는 기능의 유사함은 놀랄 만큼 닮았다.말이 달릴 수 있는 곳은 어디든 오토바이로 달릴 수 있다.몽골 젊은이들이 구닥다리라도 오토바이를 즐기는 것은 이런 말의 문화에 대한 향수를 담은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그들의 핏속에는 말등에 생애를 얹고 거친 초원을 끝에서 끝으로 달리며 살아온 강인하고 웅혼한 기백이 여전히 남아있기 때문이리라. 울란바토르 시내에서는 검게 그을리고 주름진 얼굴에 눈매가 날카로운 안짱다리 사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그들은 바깥으로 휜 안짱다리로 어기적거리며 불안하게 걷는다.다 까닭이 있다.유목민인 그들은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자라고 살아왔다.그런 그들이 말을 버리고 도시로 들어와 살아도 기마의 흔적까지 청산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안짱다리는 그들이 말을 몰아 초원을 내달리며 살아왔음의 지울 수 없는 유흔이다.그렇게 말과 함께 살아온 그들이 생계를 위해 다리품을 팔기 시작하면서 생긴 변화가 퇴행성 관절염이다.말을 버렸으니 말이 겪어야 할 다리의 노역을 고스란히 사람이 감당해야 하고,그러자니 관절염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이를테면 문명이 그들에게 편의만 준 게 아니라 관절염의 고통까지 가져다준 셈이다. 사실 지금의 지리멸렬한 몽골을 보면서 옛 영화의 재현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여겨졌으나 엥크볼드 총리의 말마따나 강한 희구가 또한 강한 동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 혹은 희망이 읽히는 것도 사실이었다.구체적인 삶의 일이야 짧은 기간 머물다 이내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관여할 일도 아니고 그럴 여유도 없었다.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들이 원나라 멸망 이후 일패도지해 세계 곳곳에 흩어진 혈족들을 다시 불러모아 당장 뭔가를 도모할 여력을 갖지는 못했다 할지라도 그들이 가진 무한한 자연자원과 광물 등 지하지원,그리고 옛 영화에의 향수가 언젠가는 무한한 에너지로 발산될 것이라는 믿음이 그곳 ‘젊은 전사’들의 눈빛에서 읽힌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사실 몽골에서 마주친 젊은이들은 비록 입성이 초라하고,용모가 꾀지지하다 해도 눈빛 만큼은 여전히 도발적이고 진취적이었다.노마드의 기질을 타고난 그들은 바깥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도 적극적이었다.그들은 소득 수준에 어울리지 않게 자유로운 섹스를 즐긴다고 했다.이것 역시 유목의 한 관습이다.하기야 과거 칭키즈칸의 정복 시절,수만리 원정길에 나선 그 ‘전사’들이 무슨 재주로 제 나라 여자만을 품었겠는가.그렇게 생각하면 답은 간단한 것이었다.그로부터 자유로운 섹스의 관행이 또한 하나의 습속으로 자리잡지 않았을까. 울란바토르 시가지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휴대폰으로 통화하고,MP3를 즐겨들으며,더러는 콜라를 곁들인 햄버거를 먹기도 했다.그들 중 한 젊은이와 대화를 나눴다.올해 스물 두살인 그의 이름은 오고바흐타였다. -학생인가. ▲울란바토르 국립대에서 생명공학을 공부하고 있다. -여자친구는 있는가. ▲있었는데,두달 전쯤 헤어졌다.나는 결혼을 하고 싶었는데 그 쪽 부모들이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우리집은 양을 키우는 가난한 집인데 그 쪽은 아버지가 고위 공무원이어서 매우 유족한 편이다. -그런 일로 헤어져 안타깝지 않나. ▲처음엔 무척 속이 상했지만 어쩌겠나,받아들여야지.사실,날 좋아하는 여자들도 꽤 많다. -최근 몽골에서도 부정선거로 인한 시위가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만 외국인에게 국내 일을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그는 자국의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한사코 발언을 꺼렸다.) -사실,옛 영화를 돌이켜 보면 지금의 몽골 모습은 좀 실망스럽다.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한꺼번에 많은 것을 얻기는 어렵다.경제적 어려움은 몽골의 현실이지만 따지고 보면 중국의 집요한 방해가 크게 작용한 측면도 있다.중국은 네이멍구 자치주의 독립 요구를 의식해 철저하게 우리를 견제하고 있고,그래서 경제적 어려움이 더 심하다.사람들은 몰라도 네이멍구는 당연히 우리 땅이다.언젠가는 우리가 되찾아야 한다.(몽골은 내몽골과 외몽골로 나뉘는데 이 중 생활 여건이 좀 나은 내몽골은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돼 있다.) 또 정치인들이 더 정직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지금 몽골의 많은 실력자들은 부패해 있고,그래서 신뢰를 못 받고 있다. -혹시 밖으로 나가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당연히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나 뿐 아니라 많은 젊은이들이 그걸 바란다.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러지는 못할 것 같다.만약 갈 수 있다면 한국에 가고 싶다. -그럴 이유라도 있나. ▲몽골 사람들이 한국을 동경하고 있으며,나도 마찬가지다.생김이 비슷한 것도 좋고…,한 혈통이라서 그런 것 아니겠나.사실,2년 전 형이 한국 평택에서 돈벌이를 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몽골에 들어와 있다.형을 통해서도 한국 얘기 많이 들었다. 오고바흐타의 말에서도 드러나듯 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반감은 생각보다 깊고 강했다.그들은 중국을 몽골을 토막낸 분열의 조종자로 인식하고 있었다.그보다 더 근원적인 이유도 있었다.근대 이전에 한족과 몽골족(흉노족·선비족)은 서로 죽이지 않으면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투를 끊임없이 되풀이했다.중국은 틈만 나면 군대를 동원해 흉노족을 토벌했다.칭기즈칸 이전만 해도 흉노족은 통일된 세력을 이루지 못해 항상 중국의 한족 토벌군에게 쫓기며 살아야 했다.한족 토벌군이 한번 들이닥치면 그들의 생업은 한순간에 초토화되기 일쑤였다.그럴 때면 이들은 또다시 기약없는 유랑길에 오르곤 했다.부족 단위로 연맹체를 이뤄 살았던 이들이 막강한 한족 토벌대에 맞설 결속력을 갖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이런 몽골인들의 한은 이들이 남긴 노래에도 흔적이 남아있다.‘해가 지면 저 먼 동쪽에서 낯선 말울음 들리고 갑옷 입은 적들이 초원의 단잠을 해치러 온다….’ 지금도 몽골의 유목민들은 게르를 지을 때 항상 출입구를 동쪽에 둔다.언제 한족 토벌군이 들이닥칠지 몰라 항상 동쪽을 경계하면서 살라는 의미였다.그것이 오랜 세월 되풀이되면서 전통이 되어버린 것이다.그만큼 그들은 한족의 중국을 두려워하며 살았다.그런 두려움은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해 대제국을 건설할 때까지 계속됐다.몽골인들의 중국에 대한 이런 뿌리 깊은 적대감은 중국 본토를 정복해 원제국을 건설한 과정에서 여과없이 투영됐다. 칭기즈칸은 동서양 어느 나라를 정복해도 결코 무리한 동화를 요구하지 않았다.‘너희 식으로 살라.종교든 전통이든 다 예전처럼 향유하도록 허락한다.단,나를 배반하는 것만은 용서하지 않겠다.복종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다.’이것이 정복자 칭기즈칸의 지배방식이었다.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철저한 복속을 요구했다.몽골인들이 갖지 못한 문자 말고는 모든 것을 몽골 식으로 바꿨다.그 과정에서 수많은 살륙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았다.몽골족은 중국 정복 이후 이전의 앙심을 철저하게 되갚았다.몽골이 우리나라를 대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광경이다. 그와의 대화는 계속됐다. -젊은이들의 사교는 자유롭나. ▲그렇다.대학생쯤 되면 대부분 연인을 갖는다. -혼전 관계는 어떤가. ▲자유롭다.요새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다르다.부모 세대와는 그런 점에서 이해를 공유하기 어렵지만 유목민족이어서 그런지 어른들도 그런 점에서는 보기보다 개방적이다.그런 점에서는 한국이나 중국의 영향이 크다.이곳에서는 한국 텔레비전도 볼 수 있다.(실제로 그곳에서는 아리랑 TV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결혼전에 동거하는 경우도 많지 않겠나. ▲당연하다.내 친구 중에도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사는 애들이 많다.개중에는 아이를 둔 친구도 있다.사실 몽골에서는 유목 특성상 결혼식이라는 의례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물론 전통적으로야 그렇지 않지만….요새는 젊은이들이 그런 습속에 얽매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학교에서 공부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외국에서 공부하고 온 친구들 얘길 들으면 아직 몽골 대학에는 첨단 기술을 배우는 학과가 부족한 것 같다.한국이나 중국은 같은 기술이라도 세분화해서 가르치는데 몽골에서는 기술 분야의 경우 엔지니어링이라는 큰 틀에서 공부를 하고 그 속에서 자신이 분야를 정해 공부를 한다.그런 점 말고는 별로 큰 차이는 없지 않을까. ■“역사를 자부하되 거기에 갇히지는 말자.” 그 전에 투브 아이마그라는 지방 소도시에서 만난 바이갈마 국립병원장은 자신이 옛 소련에서 의학을 공부했다고 얘기했다.이처럼 기성세대의 주류는 대부분 소련 유학파들이다.당연히 대학 교육의 주류도 소련 유학파들이었다.구미지역으로 나가 공부를 하는 부류는 대부분 나이가 젊은 신세대들이다.그들에게서 몽골의 희망을 볼 수 있었다.제국의 몰락 이후 한없이 추락하는 지리멸렬한 몽골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뜻밖에 그들은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당찬 모습을 보였고,구닥다리 전통에 발목이 잡힌 답답한 국수주의자나 국가주의자도 아니었다.담담하게 현실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이 결코 몽골의 모든 것이 아님을 말하고 싶어했고,과거보다 다가올 미래를 말하고 싶어했다. 오고바흐타와는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다.그는 제법 기품있고 당당한 젊은이였다.자신의 생각을 말하는데 별로 주저함이 없었다.그는 몽골이 지금 앓고 있는 병을 ‘전통과 현대의 갈등’이라고 정리했다.현대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이 전통과 잘 어우러져야 하며 특히 현대문명이 몽골의 가족주의를 해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지금 몽골의 젊은이들은 거침없이 초원을 누비던 예전의 ‘전사’가 아니었고 그걸 바라지도 않았다.오히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열린 세상에서 모두가 함께 어울리는 ‘시민’이었다.오고바흐타가 그런 몽골의 바람을 내게 보여주었다. 하기야 울타리가 없는 초원에서 살던 그들이 문명의 규격화된 틀 속에 갇혀 산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몽골은 우리나라와 달리 컴퓨터로 대변되는 디지털의 수혜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마치 전통 매듭을 엮어 늘어뜨린 것 같은 그들의 문자 ‘외가르징’을 컴퓨터로 처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개발되지 않아서다.이런 까닭에 그들은 지금도 몽골말로 의사 소통을 하면서도 글은 러시아 문자를 쓴다.예전에 한자를 들여와 우리 식으로 음을 부여한 것과 흡사한 방식이다.몽골 구레대학에 재학 중인 아마르자르갈(20)이라는 여학생은 “이런 방식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다.그래도 사람들이 몽골말을 잊은 건 아니다.”고 말한다.그는 “정부가 지금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데 한 3년쯤 후면 우리 문자로 컴퓨터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았다.그들의 얼굴에서 몽골의 내일을 볼 수 있었다. 몽골 제국의 전성기는 10∼12세기였다.이 때 몽골을 이끌었던 칭키즈칸과 그의 아들 우고데이,손자 쿠빌라이칸 등은 몽골은 물론 세계사에서도 전무후무한 정복사업을 완성했다.지금 몽골인들이 갖는 자부심은 여기에서 기원한다.물론 그런 자부심이 그들에게 더 이상 ‘빵’이 될 수 없으며 ‘칼’도 될 수 없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겪어보면 알겠지만 세계 어디를 가봐도 몽골인들처럼 순박한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비록 경제적으로는 곤궁하지만 받은 것은 반드시 되돌려 주는 것도 특성이라고 할만 합니다.그것이 모욕이든 은혜든….이런 몽골 사람들을 상대로 일부 한국인들은 구차하다,못 산다,지저분하다며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몸짓과 표정을 드러내 보였는데 그런 한국인들을 보고 이들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저것들이 이제와 우릴 얕잡아 본다.예전엔 우리 발밑을 기던 것들이….’라고 합니다.가난하다고 생각이 없는 건 아니지요.”ACC 김종구 회장의 말이다.그는 국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몽골통이다.울란바토르에만도 그와 형님,동생 하는 현지인들이 즐비하다.몽골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뒤 이런저런 인연으로 현 총리와 울란바토르 시장 등 정부 고위 관료들과도 격의없이 지내 이젠 그들과 사적인 인연도 무척 깊다고 말한다.그는 몽골인들의 기질이 사내다운 면모를 좋아하지만 의외로 정에 약하다고 정리했다. 다시 그의 말을 듣자.“사실 많은 사람들이 몽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하지만 이 나라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자원이 있습니다.그래서 구미 열강들이 벌써 그걸 노리고 엄청난 공세를 펴고 있기도 합니다.일본만 해도 벌써 몽골의 지하자원 지도를 만들었답니다.우리가 오불관언할 처지가 아닙니다.지금 하지 않으면 늦습니다.알짜배기를 다른 나라가 다 가져간 뒤에 겉만 핥아대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되지요.우리도 몽골을 장기적인 국가전략의 대상으로 삼아야 합니다.” 울란바토르에서 만난 또 다른 청년 오르디흐(‘오르디흐’는 산을 오르다는 뜻의 몽골어이다.그는 우리나라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다.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으며,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중퇴한 뒤 몽골에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다.)는 이런 말을 했다.“잘은 모르지만 유럽 국가들이 우리 지하자원을 불법적으로 채굴(무단 채굴이 아니라 당초의 협정을 위반한 채굴이라는 뜻)해 가고 있으며,이걸 우리 지도자들도 알고 있다고 들었다.그러나 그 후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는 모른다.국민들은 이런 점에서 지도자들이 좀 더 투명한 국정운영을 바라고 있다.”(사실 오르디흐의 말을 듣기 전에도 몽골 권력자들이 지하자원 채굴권을 외국에 넘기면서 막대한 사익을 챙기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대지를 달구던 해가 설핏 기울자 울란바토르 거리에는 다시 사람들로 넘쳐난다.낮에는 없던 과일 노점도 서둘러 좌판을 펴고,재래시장도 아연 활기를 띤다.오가는 차량도 낮보다는 훨씬 많아진 듯 하다.시내의 한 음식점 창밖으로 내다본 울란바토르 시가지는 확실히 낮과 밤이 달랐다.더위 탓이리라.밤이면 활기를 띠는 곳이지만 중국의 도시들처럼 환락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다.(그런 곳이 따로 있는지는 모르지만….)도시 분위기는 그냥 수더분하고 소박했다.어둠이 내리자 나방이 다시 가로등을 에워쌌다.도심의 경직된 스카이라인 밖으로 시선을 돌리자 멀리 지평선 너머로 사위는 노을이 조용히 잔광을 거두고 있었다.음식점 점원에게 동쪽을 물었다.그 어디에 서울이 있을 것이다.‘오랑캐 말은 북풍에 귀를 열고 월나라 새는 남쪽 가지에 둥지를 튼다(胡馬依北風 越鳥巢南枝)’ 운운했던 무명씨의 싯귀가 떠오른다.‘바람의 땅,태양의 나라’에서 맞은 하루가 또 그렇게 저물었다.(하편에 계속)
  •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상편)

    [심재억 기자의 짧은 몽골 체류기](상편)

    □상편=그곳에 칭기즈칸은 없었다 □중편=“이제는 ‘전사’가 아니라 ‘시민’이고 싶다.” □하편=잊혀진 제국에도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몽골-문명과 전근대가 만나는 곳=상편 거친 황무지는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지평선에서 떠오른 태양이 다시 지평선으로 지는 나라.그 불모지에는 생명이 없는 듯 보였다.멀리서 보면 눈부신 초록의 초원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보면 이미 살아있는 땅이 아니었다.바짝 말라붙은 대지 위에는 만지면 바삭거리며 부서지고 마는 사막의 마른 초지식물들만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있을 뿐 들쥐 한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초록의 초원’은 햇볕을 견뎌내지 못하고 죽은 ‘풀의 미라’가 남긴 착시일 뿐이었다. 생명의 흔적은 오직 하늘에만 있었다.까마귀 무리는 나무 한 그루 남아있지 않은 야트마한 구릉 위를 힘겹게 날고 있었고,들 가운데 앉은 독수리의 눈빛은 황무지의 끝없는 갈증을 말해주고 있었다.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태양은 작열하고 있었고,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었다.황무지 몽골의 이런 풍경이 이방인에게는 한없이 낯설고 막막해 보였다. 11일 이른 오후.공익법인 아시아 사랑나눔회(ACC·Asia Children Charity·회장 김종구)가 꾸린 카톨릭의료봉사단원과 봉사요원 등 30여명은 몽골의 항공 관문인 칭기스칸 공항에 도착해 이곳에서 멀지 않은 수도 울란바타르 시내로 곧장 이동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울란바토르의 교외 풍경은 혹독한 자연 조건이 인간의 삶을 통째로 지배하는 모습 그대로였다.곳곳이 웅덩이처럼 패인 도로 위를 마치 야생마처럼 질주해 가는 버스,그 버스 뒤를 자욱하게 뒤덮는 흙먼지와 바람,그런 것들로 몽골은 이미 내게 아주 낯설게,그러나 아주 가까이 다가서고 있었다. ■유목의 도시 울란바토르 이런 풍경은 울란바토르 시내도 크게 다르지 안았다.사람이 좀 더 많이 모인 곳일 뿐 그곳도 틀림없는 사막이었다.도심의 낮고 낡은 건물,덕지덕지 가난이 묻어나는 빈민들의 지향없는 배회와 그들의 삶을 무질서하게 비집고 오가는 차량들.그런 차량이 내뿜는 매연과 경적 소음은 우리의 개발연대를 돌이키게 하기에 충분했다.그곳에서는 우리가 거쳐온 과거가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었다. 차선도 없는 거리를 열에 들뜬 듯 내달리는 차량은 태반이 한국산이었다.그게 한국에서 폐차된 차량을 가져온 것인지,아니면 도난 차량인 지는 알 길이 없지만 틀림없는 것은 이런 풍경이 항용 그렇듯 우리가 예전에 겪어온 어두운 잔상,예컨대 배고픔과 풍요에 대한 열망,소음과 무질서,더러움과 절망감,전통적 가치의 붕괴와 새로운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 등속을 떠올리게 했다.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앞으로 닥칠 고난이 예견됐다.파리가 들끓는 로비에는 한국말이나 영어를 아는 직원이 단 한명도 없었다.냉방 대신 호텔 현관에 설치된 에어 커튼이 전부였다.방에 들어서자 더 막막했다.벌써 콧잔등에 땀방울을 매달고 있는데 냉방이 되지 않았다.살펴보니 객실에 아예 냉방기 송출구가 보이지 않았다.에어컨 시설이 없는 것.목을 축일 요량으로 물을 찾았으나 흔한 물 한병도 비치되지 않았다.그러니 객실에 냉장고형 미니바가 없는 것도 당연했다.도리없이 훌훌 벗어부쳤다.답답한 호텔방에서 이 더위를 이기려면 우선 씻는 게 상책이라고 여긴 까닭이었다.그러나 고난은 욕실까지 이어졌다.깔깔한 비누를 문대가며 씻긴 했는데 이번엔 물이 바닥에 고여 빠지지 않았다.프론트에 알릴 요량으로 전화기를 들었으나 수화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P&###*!%$”였다.난감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욕실 바닥엔 고인 물이 첨벙거렸다. 일행 중 누군가가 말했다.“그래도 이 방은 오후엔 햇볕이 비치지 않으니 다행이네.” 하기야 몽골에서 호의호식하려 했던 건 아니니 다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한낮의 햇볕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20∼25도나 뚝 떨어지는 일교차가 만드는 밤의 추위와 먼지바람을 피할 수 있으니 이런 방도 천국이려니 여기기로 했다. 다행인 것은 해가 지자 금세 기온이 떨어져 창문을 열어두면 오싹 추위를 느낄 만큼 서늘해졌다는 점.‘엎어진 김에 자고 간다.’고 잘 됐다 싶어 현관문과 창문을 마주 열어놓으니 제법 시원한 바람이 방을 쓸고 지나갔다.그러나 거기에도 문제는 있었다.‘꺅!’하는 비명과 함께 옆방에 짐을 푼 일행 한명이 놀라 뛰어왔다.가보니 열어둔 창문으로 몸통이 엄지손가락만 한 나방들이 날아들었다.보기에도 흉칙했지만 어찌 할 수가 없었다.저게 뭔지 모르니 두고 볼 밖에.전등불빛을 보고 달려든 크고 작은 나방이 걸려 잠을 청할 수 없었다.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잠을 청했다.다행인 것은 사막지대라 모기가 없다는 것이었다. 울란바타르 시내는 걷기가 힘들 정도로 매연이 심했다.몽골 전체 인구 300만명 중 100만명이 몰려 사는 이 도시는 사막이라는 혹독한 자연조건을 이기기 위해 도심 곳곳에 석탄을 때는 화력발전소를 건설해 가동하고 있었다.우리의 체험으로 보자면 이 화력발전소라는 게 전력 생산량은 신통치 않으면서도 매연으로 인근을 서서히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것 아닌가.그 굴뚝에서 쉼없이 뿜어져 나온 매연이 자욱하게 도시를 뒤덮고 있었다.거기에 원래 있었던 사막의 먼지바람과 차량의 배기가스가 더해져 숨길을 턱턱 막아댔다. 옛적 칭기스 칸이 물길 좋은 평원(분지)에 터(울란바타르)를 닦고서 “이곳에서 하늘을 보며 동과 서로 멀리 땅 끝까지 나아갈 것을 다짐했노라.”고 되내었던 제국의 심장이 이미 아니었다.끝없이 쇠락해가는 옛 영화의 상징일 뿐이었다. ■의료봉사-일회성이 아쉬운 ‘아름다운 베풂’ 어디에서든 지평선이 보이는 나라,대지를 달구는 태양이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삶을 억압하고,정의하고,설명하는 곳. 이곳에 여장을 푼 의료봉사단은 생각보다 진료가 어려울 것이라는 데 전망이 일치했다.우선 아직도 여전한 유목 생활 때문에 주민들이 한 곳에 정주하지 않아 의료봉사가 있다는 정보를 전달하기조차 쉽지 않았다.많은 봉사인력이 초음파 진료기기 등 무거운 장비를 갖고 끝없는 초원을 옮겨다니며 진료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고작 200만명의 주민들이 광활한 몽골 초원 곳곳에 흩어져 살기 때문에 집단 취락지를 대상으로 할 수 밖에 없는 봉사단으로서는 현지 국가기관의 협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게다가 뜨거운 태양이 봉사단의 걸음을 막았다.습도가 10%에 불과한 건조한 사막기후 때문에 햇빛 아래서는 여지없이 살갗이 따갑게 졸아드는 느낌이었다.낮기온이 36∼38도가 예사였지만 걱정만큼 땀이 많지는 않았다.그렇지만 햇빛과 건조한 기후에 피부가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했다.햇빛에 노출된 살갗이 금세 지직거리며 타드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사전에 몽골 ACC를 통해 진료 대상 지역과 대상자를 선정했지만 걱정이 없는 건 아니었다.과연 그들이 문명세계의 의료를 이해하고 모여줄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첫날 울란바타르 시내 항올지구에서 진료가 실시되자 기다렸다는 듯 진료 희망자들이 줄을 이었다.종일 접수창구에서는 아우성과 소란이 끊이지 않았다.진료희망자들 가운데는 공무원과 이 징역 보건소 및 병원 관계자의 가족들이 적지 않았다.이런 진료 티켓을 얻는 것도 그들에게는 잡기 어려운 특권으로 통하는 듯 했다.그러니 미리 진료를 받겠다고 신청한 저소득층 주민들이 특권층의 새치기를 보다 못해 왁왁대며 고함을 질러대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의료진은 가능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진료하기로 했고,이튿날까지 연인원 800여명이 내과(김예원·주승행) 외과(이용배) 소아과(김예원·주승행) 피부·비뇨기과(신민석) 산부인과(이용오) 정형외과(이용배) 신경외과·통증의학과(김광희) 및 진단방사선과(양우진) 진료를 받았다.의료진들이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강행군을 한 결과였다.김광 김지은 노미란 김혜선 박정옥 이명숙 김민주 김삼단 박미리 최종숙 김은자 문미래 손송희씨 등이 약사 및 간호사와 안내 등 진료 보조업무를 맡았다.여기에 이승구(안드레아) 신부와 행정지원팀 배용민,방송취재팀 3명 등이 동행했다. 한 의사가 푸념을 했다.“한국에서 진즉 이렇게 진료를 했으면 벌써 빌딩을 사도 여러 채 샀을 건데….” 진료 후 의료진들이 털어놓은 후일담은 몽골의 현실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환자들 대부분은 만성 성인병 질환자들이었다.육식을 주로 하는 섭생 특성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그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비싼 채소류와 곡류보다는 양고기 등 육식을 하는 게 쉬운 일이었고,그런 까닭에 비만,고혈압·뇌졸중 등 순환기계 질환과 근골격계 질환이 많았다.이런 몽골인들의 비만이 머잖아 당뇨 대란으로 이어질 것임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비만은 그들의 문화가 낳은 고질이지만 최근들어 특히 심해지고 있었다.과거처럼 힘겨운 유목생활을 하면서 육류를 섭취하는 게 아니라 도시에 정주(定住)하면서 육식을 즐기는 탓에 잉여 열량이 고스란히 비만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비만은 남성보다 여성에게서 두드러졌다.적지 않은 주민들이 초음파를 포기해야 했다.두꺼운 복부 지방 때문에 초음파의 영상이 잡히지 않아서였다. 의외로 피부질환과 알레르기 질환이 많은 것도 특이했다.서울중앙클리닉 신민석 원장은 이런 견해를 내놓았다.“사막지대의 뜨거운 햇볕과 건조한 기후,강한 바람과 20도를 넘나드는 일교차 때문에 아무리 적응했다 해도 피부질환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알레르기 질환도 마찬기지로 보인다.아마 이곳에 자생하는 식물류의 꽃가루가 원인일텐데 이런 질환을 한번의 진료나 처방으로는 치료하기 어렵다.그래서 생활수칙을 반드시 일러주곤 했는데 그게 얼마나 먹힐지는 모르겠다.” 산부인과팀이 털어놓은 고충도 간단치 않았다.물이 부족한 까닭에 대다수 환자들이 기본적인 청결을 유지하지 못해 심각한 부인과 질환을 갖고 있다는 것이었다. ■문명의 덫에 걸린 몽골 전사들의 비육지탄 그리고 가난 노마드의 유전자를 가진 그들이 허벅지에 군살이 붙고,불거져 나온 배를 보며 어찌 비육지탄의 소회가 없겠는가.그러나 그들은 지금 변하고 있다.말들은 피빛 땀을 쏟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달릴 일이 없고,큰 눈을 내리 깐 채 초지에 누워 뒹구는 낙타들 역시 무거운 짐을 지고 사막을 건널 일이 없으며,사람들도 더는 절박한 생의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 고비사막의 모래바람을 헤치고 나아가려 하지 않는다. 초원 가운데 자리잡은 소도시 쫑머드의 진료 현장에서 만난 노인 두르그발(71)씨는(사진 참조)은 “개방 이전만 해도 몽골에는 옛 전통이 남아 유목생활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많은 유목민들이 이 일을 힘들다고 여긴다.머잖아 초원이 텅 빌 것”이라며 “몽골 사람이 초원을 버리면 초원도 몽골을 잊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토로했다.어디가 불편해 진료를 받으려 하느냐고 묻자 “아픈 곳은 없다.모르는 병이나 생기지 않았는지 알아보려고 왔다.”고 했다.깡마른 얼굴에 골 깊은 주름의 이 노인에게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고 묻자 “그러자.”며 흔쾌히 진료를 위해 벗었던 전통 쇠가죽 옷과 말장화를 껴신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이방인을 낯설어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순수함이 그득 배어있었다. 기후가 역사를 만든다는 말은 몽골에서 극명하게 입증되고 있었다.연간 강우량이 100∼150㎜에 불과한 몽골에서 저소득층 주민들이 우리처럼 샤워를 일상화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특히 이들에게 피부 질환이 많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의료진이 한 가정에서 조사한 결과 이 집의 아이들은 1년 동안 고작 한두번 씻고 산다고 했다.아이들의 몸통에는 땟국이 엉겨 켜를 이루고 있었다.전신에 부스럼이 생겨 고통을 받고 있었지만 청결하게 해서 그걸 낫게 하기는 애당초 어려워 보였다.그만큼 물이 귀했다. 울란바타르 시내에도 수돗물이 공급되는 곳은 도심지역 뿐이고 외곽 빈민촌에는 아예 수도나 배수시설이 없었다.그들은 땟국에 전 물통을 들고가 한 통에 10토그르기씩을 주고 물을 사서 먹는다.물값이 금값이니 벌이가 없는 빈민들이 씻지 못하는 사정이 이해되기도 했다.비교적 고소득층의 한달 급료는 25만 토그르기(한국의 25만원 정도)이지만 그나마 일할 곳이 없어 저소득층은 유리걸식이 예사다.집 지을 경제력을 갖지 못한 그들은 꾸역꾸역 울란바토르로 몰려들어 외곽의 구릉지에 몽골의 전통 가옥인 게르를 짓고 산다.집 짓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옛날 같으면 게르에는 젖과 마유주(말젖을 발효시킨 전통술),양고기가 있었을테지만 우리가 찾은 빈민촌의 낡은 게르에는 ‘약에 쓸려도’ 양고기 한 조각이 없었다.이미 초원을 떠나 도시생활을 시작한 까닭이다.벌써 몇달째 거리에서 주워 온 뼈를 삶은 물만 먹고 산다고 했다.피골이 상접한 그들을 지켜보자니 가슴 깊은 곳이 동통처럼 아려왔다. 보다 못해 ACC 김종구 회장이 나섰다.그는 몽골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각별했다.벌써 10여년 동안 몽골,필리핀,인도네시아 들을 오가며 어린이 돕기와 황무지 나무심기 사업 등을 계속해오고 있다.울란바토르 시장은 그런 김 회장의 공로를 인정해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그를 ‘울란바토르 홍보대사’로 임명하기도 했다.그런 김 회장이 “안 봤으면 모르지만 저걸 보고 어떻게 발길을 돌리느냐.”며 직접 게르를 지어주는 사람을 찾아나섰다.울란바토르 시내를 뒤진 끝에 한 게르 업자를 만났다.새 게르 한 채를 짓는데 150만 토그르기가 필요하다고 했다.우리돈 150만원 가량이다.봉사단원들의 경비도 빠듯한 터에 거기에서 150만원을 덜어낸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지만 김 회장은 “뒷일은 우리가 감당하자.”며 그 자리에서 게르 비용을 전액 지불해 버렸다.거기에다 따로 50만 토그르기를 전해 우선 먹을 식량과 가재도구 등을 준비하도록 했다.봉사단원들이 직접 시장을 돌며 침구 등 가재도구와 먹을 것을 챙겨줬다. 처음엔 봉사단의 방문을 의아해 하던 게르의 여주인도 한참 나중에야 자신에게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알아차린 듯 “고맙다.”며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처음엔 경계하던 그가 직접 아이들을 불러 몸통이며 팔다리 곳곳에 번지고 있는 부스럼을 의료진에게 보여주기도 했다. 이런 몽골 주민들의 고통은 우리가 과거에 겪었듯 근대화의 피할 수 없는 여정인지도 몰랐다.울란바타르 등 몽골의 곳곳에서는 사회주의적 개방정책 이후 서구형 근대 문명과 전통의 유목정신이 치열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장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예컨대 좀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라면 번듯한 서구형 저택에 산다.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그들의 전원에는 어김없이 전통가옥인 게르가 지어져 있다.여름 더운 철에는 게르에서 생활을 하는 게 그들에게는 새로운 습속이 됐다.그들이 집안에 게르를 따로 짓는 이유는 간단하다.서구식 문명에 적응하지 못한 탓이다.달리 말하면 아직도 전통의 유목 습성을 그리워 한다는 방증 아니겠는가. (‘중’편에 계속)
  • 서태지, 메탈리카ㆍ잉베이맘스틴 넘을 수 있을까?

    서태지, 메탈리카ㆍ잉베이맘스틴 넘을 수 있을까?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ETPFEST 2008’에 이어 국내 최초, 최대, 최고의 공연으로 팬들을 다시 만난다. 서태지는 오는 9월 27일 오후 8시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더 그레이트 2008 서태지 심포니’(이하 서태지 심포니)를 개최, 영국의 클래식 거장 톨가 카쉬프가 이끄는 대형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펼친다. 이미 해외에서는 세계적 기타리스트 잉베이 맘스틴이 1999년 체코 오케스트라와 2000년도 일본 투어 중 일본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가졌으며, 세계적인 메탈 그룹 메탈리카가 1999년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와 장르를 뛰어넘은 협연을 펼쳐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일본의 전설적인 록 그룹 엑스저팬(X-Japan) 또한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은 아니지만 클래식 음반을 선보였으며, 그 외 다양한 장르의 아티스트들이 음악의 근원인 클래식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이번 ‘서태지 심포니’의 경우 서태지는 물론 국내에서는 첫 시도되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무대로 한국 공연 역사에 새 획을 그을 전망이다. 1992년 데뷔 후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선보인 서태지는 데뷔곡 ‘난 알아요’에서는 메탈과 힙합을 접목했으며, ‘하여가’에서는 국악과의 만남을 시도했다. 그 외에도 3집 수록곡 ‘영원’, 7집 수록곡 ‘제로’또한 클래식이 접목된 스튜디오 음반을 선보인 적이 있다. 하지만 ‘서태지 심포니’자체는 이런 스튜디오 음반과는 다른 라이브 무대이기에 다른 양상을 띌 수도 있다. 서태지에게 요구 되는 것은 라이브에서의 안정성과 철저한 준비다. 잉베이 맘스틴, 메탈리카 모두 매년 전 세계를 돌면서 수십 회의 대형공연을 펼치는 아티스트로 연주력 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15일 ‘ETPFEST’당시 서태지는 자신의 앞과 뒤에 오른 더 유즈드, 마릴린 맨슨과 비교했을 때 라이브의 안정성 면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음향적인 면에서도 노이즈가 섞이는 등 서태지 자체의 공연을 놓고 본다면 기대치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리고 서태지 본인은 ‘서태지 심포니’에 대한 철저한 준비를 가져야 한다. 기존 해외 아티스트들의 경우 심포니 공연 자체는 섞일래야 섞일 수가 없던 메탈과 클래식의 접목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그 자체가 새로운 시도였다. 하지만 세계적인 록 거장들이 이미 10년 앞서간 심포니 공연에서 2008년에 서태지가 갖는 심포니 공연 자체는 더 나은 무엇이 있어야 할 것이다. 단순히 최고, 최대, 최초라는 것은 이미 국내에만 국한 되는 것으로 인터넷의 보급과 해외 공연이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현실에 높아질 데로 높아진 대중의 눈높이는 기존 심포니 공연과는 다른 철저한 기획과 수준 높은 연주만이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서태지 심포니’는 국내 공연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는 대형 공연이다. 국내 최고의 아티스트 서태지가 영국의 클래식 거장 톨가 카쉬프와 협연을 갖는 자체로 주목을 받고 있으며 20일 오후 9시 27분 티켓 오픈은 시작된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서태지 심포니’에서 서태지는 잉베이 맘스틴, 메탈리카가 가졌던 심포니 공연을 넘어야 할 것이며 그 몫은 서태지에게 달렸다. 서울신문NTN 김경민 기자 star@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옴부즈맨 칼럼] 언론보도의 진정한 중도/남재일 세명대 교수

    [옴부즈맨 칼럼] 언론보도의 진정한 중도/남재일 세명대 교수

    언론이 진보-보수로 양극화된 건 참여정부 때다. 조·중·동이 보수기조에 반정부 논조, 한겨레·경향·KBS·MBC가 진보논조에 친정부 논조였다. 새 정부 들어서도 이 대립구도는 여전하다. 친정부-반정부의 역할만 바뀌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언론의 정파성이 한층 심화됐다. 게다가 대립의 양상까지 변했다. 참여정부 때까지는 ‘진보-보수’ 대립이 아니라 친정부-반정부의 대립 구도였다. 정치철학보다 정부에 대한 태도가 더 중요했다는 말이다. 그만큼 언론의 일관된 정치적 관점이 없었다는 의미다. 촛불집회 보도부터 정부는 더이상 대립의 중요한 변수가 아니다. 보수논조의 조·중·동도 이명박 정부를 비판한다. 물론 “촛불의 요구를 들어라.”라는 비판은 아니었다. 비판의 초점은 “보수 세력을 대변하는 보수정권이 어떻게 이렇게 무능할 수 있는가?”였다. 그래서 강경대응을 주문하기도 하고, 민의의 적당한 수렴을 권유하기도 했다. 정부가 박지성 같았고, 조·중·동이 히딩크 같았다. 같은 시각 한겨레와 경향은 “폭력은 저들에게 강경진압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시위대를 다독거렸다. 촛불이 오정해 같았고 경향과 한겨레가 임권택 같았다. 신문은 모두의 머리 꼭대기에서 지휘했다. 나중에는 서로를 향해 포문을 열기도 했다. 정파 투쟁의 결과는 이렇게 나타났다. 이런 양상이 썩 나빠 보이진 않는다. 언론이 정부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의존증’에서 벗어나 스스로 보수와 진보의 주인이자 전위임을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적어도 언론이 정부의 그늘에서 ‘정서적 독립’을 시작한 건 분명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신문 스스로가 정치철학을 정립하고 일관된 정치적 관점으로 이념 논쟁에 나서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현실의 전체상을 들춰내는 진정한 보수-진보의 쟁점을 산출해 낼 수 있다. 극심한 정파성의 틈새로 보이는 희망은 이런 거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 촛불보도에서 정부보다 더 국가주의적인 조·중·동은 ‘무능한 정부’를 대신해 보수이념을 전면화하고 있다. 한 칼럼은 ‘제복은 국가의 피부다’라고 제목을 달았다. 국가가 모든 구성원의 의사가 결과적 종합된 유기체라는 것! 이보다 더한 국가주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경향은 국가주의에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하는 ‘국가를 다시 묻는다’ 시리즈를 시작했다. 도대체 국가가 서민들에게 뭘 주었는지 따져보자는 거다. 차라리 이게 낫다. 스트레이트에 정파성을 입혀서 사실을 비트는 것보다 ‘의견’ 대 ‘의견’으로 논쟁을 전면화하는 것이! 독자들이 판단하면 되니까. 서울신문은 촛불보도의 중도를 표방했다. 그래서 의견을 자제하고 사실보도를 했다. 그런데 사실보도의 출처가 정부쪽에 쏠려 있다. 의견도 조금씩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지난주는 KBS 정연주 사장 사퇴 종용과 건국 60주년 기념일 전야제 행사 중계를 거부한 KBS와 MBC를 비판하는 사설 두 편이 실렸다. 공영을 국영과 동일시하는 국가주의 시선으로 가치를 재단하고 있다. 의견표명의 논리와 시점 모두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국면에 따라 논조의 강도를 조율하며 진보-보수 논리를 형식적으로 절충하는 것이 중도는 아니다. 중도 나름의 일관된 관점이 있어야 한다. 중도의 전략을 보여준 2개의 기사가 눈에 띈다.5일자 ‘박춘호 국제해양법 재판소 재판관 심층인터뷰’와 ‘촛불100일 기획 대담’이다. 정치적 사안을 합리적인 지평에서 분석해서 독자들에게 문제의 실상을 전하는 데 도움을 준 기사들이다. 정연주씨 거취 문제도 논란의 핵심적 쟁점이 무엇인가를 정치적 부담을 무릅쓰고 정리해서 보여주는 것이 진정한 중도의 자세가 아닐까? 남재일 세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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