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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사람과 동시에 결혼식”…인도네시아 신랑 화제

    “두 사람과 동시에 결혼식”…인도네시아 신랑 화제

    두 여성과 동시에 결혼한 인도네시아 남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일 트리뷴뉴스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보르네오섬 인도네시아령 칼리만탄 서부 한 마을에서 신랑 1명과 신부 2명이 동시에 결혼하는 이색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한꺼번에 웨딩 베일을 쓴 세 사람이 하객들 앞에서 결혼식을 진행했다. 신랑은 “나는 어느 한 명이 상처받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동시에 두 사람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이들의 결혼식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나갔다. 동영상에는 신랑이 혼인 서약을 하자 두 신부가 각각 신랑의 손에 키스하고, 하객들이 환호하는 장면이 찍혔다. 신랑은 단 10만 루피아(한화 8550원)의 지참금으로 결혼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사진의 이 난민 소녀는 56년 뒤 라트비아 대통령이 됩니다

    사진의 이 난민 소녀는 56년 뒤 라트비아 대통령이 됩니다

    이 다섯 살 난민 소녀는 56년 뒤 옛 소련의 영향권이었던 나라 가운데 최초의 여성 국가 지도자가 된다. 사진이 찍힌 곳은 1942년 라트비아 리가였다. 바로 전 해 나치 독일군이 침공했고 2년 뒤 옛 소련의 붉은 군대가 진주했다. 철 모르던 소녀는 행진하는 소비에트 병사들을 보며 멋있다고 환호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딸에게 그러지 말라고, 라트비아에 슬픈 날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일곱 살이던 1944년, 소녀는 가족과 함께 조국을 탈출, 초토화된 독일 북부 뤼벡으로 건너간 뒤 프랑스가 통치하던 모로코를 거쳐 캐나다에 안착했다. 54년 가까이 타국을 떠돌다 예순이던 1998년 조국 라트비아에 돌아와 여덟 달 만에 대통령에 올랐다. 영국 BBC 사운즈는 바이라 비케 프라이베르가(82) 전 라트비아 대통령의 “운명의 장난과도 같은” 인생 드라마를 4일 ‘그녀의 얘기, 역사를 만들다(Her Story Made History) 시리즈 2의 첫 편으로 소개해 눈길을 끄는데 27분 분량이다. 군 수송선을 이용했는데 어뢰 공격을 받으면 몰살될 수 있었지만 공산 치하를 벗어나겠다는 이들은 목숨을 내놓고 탔다. 그녀의 10개월 밖에 안된 여동생도 폐렴으로 잃었다. 1년도 안돼 어머니는 또다시 남동생을 출산했는데 같은 방에는 마찬가지로 아이를 막 출산한 18세 소녀가 누워 있었다. 그 소녀는 아이 이름을 지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러시아 병사들에게 집단 강간을 당해 낳은 아이였기 때문이었다. 그 불쌍한 아기에게 여동생 이름 마라를 붙여줬다. 그 때부터 어린 프라이베르가는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다고 느꼈다. 열한 살 때 모로코 카사블랑카로 이주했다. 밤에 트럭에서 내던져졌을 때 마치 미니어처 지구촌 같았다. 아버지의 아랍인 동료가 지참금 1만 5000프랑에다 당나귀 두 마리, 젖소를 줄테니 그녀를 결혼시키라고 했다. 부모들이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하니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책임지겠다고 했는데 어찌어찌해 말렸다.그녀는 열여섯에 은행에 취업, 밤에는 학교를 다녀 토론토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라트비아 망명자 이만츠 프라이베르그를 만나 결혼했다. 심리학을 전공해 1965년 박사 학위를 땄다. 대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던 교수 밑에서 사내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고 이를 악물고 공부해 학위를 땄다. 다섯 언어에 능통하고 책을 10권 썼다. 몬트리올 대학에서 33년 일한 뒤 예순 살이던 1998년 석좌 교수가 되면서 은퇴했다. 어느날 라트비아 총리가 전화를 걸어와 라트비아 연구소를 이끌어달라고 요청했다. 사람들은 라트비아 문화도 이해하고 서구 정신도 이해하는 여러 언어를 소화할 수 있는 디아스포라를 원한다며 그녀를 적격이라고 했다. 그러고 난 뒤 얼마 안돼 대통령 선거에 나서 최초의 이 나라 여성 대통령이 됐다. 2003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했는데 가장 높았을 때 지지도가 무려 85%였다.이듬해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와 유럽연합(EU)에 모두 가입하는 데 앞장섰다. 그녀로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엇보다 언론은 그녀를 불신했다. ‘다른 나라들을 떠돌다 이제 와 조국에 헌신하겠다는 거냐’는 식이었다. 해서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했다. 또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에게도 NATO 확대가 왜 필요한지 힘주어 강조했다. “여자라서 이점도 있었다. 이스탄불 NATO 정상회담 때 부시 대통령이 내 어깨를 부축해줬다. 하이힐을 신었는데 자갈이 깔린 길이었다. 해서 함께 천천히 걸으며 최선을 다해 그에게 NATO 가입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임기는 2007년 일흔 번째 생일을 몇달 앞두고 끝났다. 그 뒤 전직 국가 지도자들의 모임인 클럽 마드리드를 함께 창립해 민주 리더십과 거버넌스를 증진하는 데 힘을 합치고 여성 권익 신장에 주력하고 있다. 캐나다 교수님에게 시달렸을 때처럼 여전히 여성들의 권익을 신장하는 싸움은 승리와는 거리가 멀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인도 132개 마을에서 3개월간 216명 태어났는데 여아는 0명…“뿌리깊은 가부장제 탓”

    인도 132개 마을에서 3개월간 216명 태어났는데 여아는 0명…“뿌리깊은 가부장제 탓”

    지난 3개월간 인도의 132개 마을에서 모두 216명의 아이가 태어났으나 이 중 여아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인도의 뿌리깊은 남아선호 사상 탓에 여아를 선별적으로 낙태하는 관습 탓이라고 지적했다. 알자지라는 23일(현지시간) 인도 정부의 공식 데이터에 따르면 인도 북부 유타란찰주 우타라카시의 500개 마을에서 모두 947명의 아이가 태어났으며, 이 중 여아는 479명으로 남아(468명)보다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 가운데 132개 마을에서는 단 한 명의 여아도 태어나지 않았다. 시 당국은 132개 마을을 ‘레드존’으로 규정하고 25명의 관리들로 팀을 구성해 조사에 나섰다. 아시쉬 초한 치안판사는 알자지라에 “132개 마을 중 출산율이 높게 나타난 82개 마을에 대한 조사를 먼저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이 마을에서 여아 살해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확언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활동가이자 학자인 니베디나 메논은 “3개월 동안 이렇게나 많은 도시에서 단 한 명의 여자아이도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이전에는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라면서 “분명 불법으로 사전에 성별을 판별한 뒤 선별적인 낙태가 자행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동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의 프라바트 쿠마르는 성차별과 여아 영아 살해는 인도 전역에서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례도 물론 우연일 수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여아에 대한 차별과 경시의 한 사례로 보여진다는 것이다. 초한 판사는 “이번 일은 그저 우연일 수도 있다”며 여성 인권단체의 문제 제기에 대해 반박했다. 인도는 1994년 여성 태아에 대한 선택적 낙태를 법적으로 금지했지만 이러한 관행은 여전히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 영국 의학전문지 렌셋이 실시한 2011년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인도에서 최대 1200만명의 여아가 낙태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조사된 인도 인구 구성에서도 남성 1000명당 여성의 수는 943명에 불과했다. 2014년 유엔은 인도에서 태어나는 여아 비율이 “비상 사태”로 규정할만큼 줄었으며 이는 여성에 대한 범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2015년 인도 여성·아동개발부 장관은 “남아 선호 사상 때문에 하루 평균 2000명의 여아가 살해되고 있다”면서 “그 중에는 태어나자마자 베개 등으로 눌려져 질식해 사망한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악습의 바탕에는 인도 사회의 오랜 가부장제가 있다. 남아에 대해서는 가정의 한 자산으로 취급하고 결혼 때 지참금을 챙겨가야 할 여아는 책임져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게다가 힌두교의 영향으로 부모가 사망했을 때 마지막 의식을 치르는 것도 아들의 몫이라 남아를 선호하는 사상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인구와 젠더 이슈를 다루는 비영리단체 인도연구재단의 앨록 바즈파이는 “인도의 사회문화적 규범이 이번 일의 근본적인 원인이자 책임”이라고 지적했다.2015년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왜곡된 성비를 해소하고 여아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자 “딸들을 구하자. 딸들을 교육시키자”는 이름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러나 올해 초 현지 언론이 보고한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해당 프로그램에 사용됐어야 할 예산의 절반 이상이 홍보비로 사용됐으며, 25%만 각 주에 배분됐다. 뉴델리에 기반을 둔 사회조사센터 란자나 쿠라기는 “정치 지도자들의 공약과 실제 정책을 실현하는 관료들 사이에 ‘불합치‘가 있다”면서 “실천이 명백히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민나리 기자 mnin1082@seoul.co.kr
  • [여기는 인도] 3개월간 남자아이만 216명 태어난 印 마을, 이유는?

    [여기는 인도] 3개월간 남자아이만 216명 태어난 印 마을, 이유는?

    3개월간 남자 아기만 200여 명이 태어난 인도의 한 마을이 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영국 메트로 등 현지 언론의 22일 보도에 따르면 인도 북부 우타라칸드라주 우타르카시 지역의 마을 132곳에서 지난 3개월 동안 태어난 남자아이의 수는 216명이며, 이 아이들의 성별은 모두 남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스터리한 신생아 성비 불균형 현상에 지역 당국이 의심을 품고 조사에 나섰다. 아직 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현지 언론에서는 해당 지역의 무분별한 낙태 탓에 여자아이의 출생률이 0%를 기록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실제로 해당 지역들은 인도 내에서도 남존여비 사상이 매우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남아선호 사상이 만연한 일부 시골 지역에서는 여전히 불법 낙태가 만연한 상황이다. 인도 정부는 1994년 여아의 낙태를 법으로 금지했지만, 딸이 결혼할 때 내야 하는 결혼 지참금을 부담스러워하는 일부 부모들은 지금도 여아를 기피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초 인도 정부는 조사를 통해 호적에 오르지 못한 여성의 수가 6300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여아를 기피하는 현상이 사그라지지 않자 인도의 남녀성비에도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다. 현지에서는 3개월 간 여자아이가 단 한 명도 태어나지 않은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이 될 때까지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제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하는 목소리다 적지 않다. 사진=123rf.com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법서라]‘송송커플’ 이혼으로 본 이혼소송 궁금증 세가지

    [법서라]‘송송커플’ 이혼으로 본 이혼소송 궁금증 세가지

    [편집자주] 전국 최대 법원과 최대 검찰이 몰려 있는 서울 서초동에는 판사, 검사, 변호사뿐만 아니라 그들을 취재하는 기자들도 있습니다. 일반 국민의 눈으로 보는 법조계는 이상한 일이 참 많습니다. 법조의 뒷이야기와 속이야기를 풀어드리는 ‘법조기자의 서리풀 라이프’, 약칭 ‘법서라’를 토요일에 선보입니다.  송중기(34)·송혜교(37) 부부가 파경을 맞았습니다. 송중기씨가 서울가정법원에 이혼조정 신청을 접수한 사실을 법무법인 광장이 보도자료를 통해 알렸습니다. 보도가 나온 27일 오전부터 온라인 공간은 ‘송송커플’ 이혼 소식으로 시끄러웠습니다. 실시간 검색어에 ‘이혼조정신청’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법조 기자들은 ‘협의이혼이면 협의고, 이혼소송이면 소송이지 이혼조정은 도대체 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2주 전인 지난 14일, 홍상수 영화감독이 이혼 소송에서 패소하면서 가뜩이나 세간의 관심이 이혼 소송에 집중된 상황이었습니다.  한국은 월평균 9500명, 연평균 10만 8600명이 이혼하는 나라입니다. 인구 천명당 이혼건수가 2.1건에 달합니다. 지난해 전체 이혼 중 재판 이혼은 21.2%를 차지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이혼소송 궁금한 점 세가지를 이혼전문 변호사에게 물어봤습니다.  ①조정이랑 소송이랑 뭐가 다른가…‘비공개‘ 이유로 선호한듯  서울가정법원은 27일 송중기씨가 신청한 이혼조정 신청을 조정 전담부인 가사12단독 장진영 부장판사에 배당했습니다. 송중기씨는 전날 이혼 소송이 아닌 이혼 조정을 신청했습니다.  이혼하는 데는 크게 세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협의이혼, 이혼조정, 이혼소송입니다. 부부 모두 이혼에 동의하고 양육권이나 재산분할에 이견이 없다면 법원에 협의이혼을 신청하면 됩니다. 미성년 자녀가 없다면 1개월, 미성년 자녀가 있다면 3개월의 이혼숙려기간을 거쳐야 합니다. 이후 행정관청에 이혼신고를 하면 이혼 효력이 발생합니다.  이혼에는 합의했지만, 재산분할 등에 이견이 있다면 조정이혼을 합니다. 조정이 성립되면 재판상 확정판결과 효력은 같습니다. 조정이 불성립되면 소송으로 갑니다. 최태원 SK회장, 홍상수 감독이 모두 조정을 거쳐 소송했습니다. 홍 감독은 1심에서 패소하고 항소를 포기했습니다. 소송을 제기해도 가사소송법 ‘조정전치주의’에 따라 미리 조정절차는 거쳐야 합니다.  이혼조정부터는 변호사가 필요합니다. 이혼에 합의했고, 재산문제나 양육권으로 크게 다툴 것 없어 보이는 ‘송송커플’이 협의이혼이 아닌 이혼조정을 선택한 것을 두고 법정에 직접 출석하지 않고 대리인인 변호사를 앞세우기 위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습니다. 그런데 판사 재량이긴 하지만, 조정도 대부분 당사자가 직접 출석한다고 합니다.  조정을 택한 실제 이유는 시작부터 끝까지, 비공개로 진행되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소송을 하게 되면 판결문이 남습니다. 이혼 판결문에는 이혼에 이르게 된 온갖 사정이 다 포함됩니다. 누가 잘못했고, 어떤 일이 일어났고 등 세세한 내용이 담기는 거죠. 재판도 원칙적으로 공개입니다. 반면 조정은 재판과 법률적 효력은 같지만 ‘두 사람은 이혼한다’ 수준의 간단한 내용만 남깁니다. 재산분할 사항도 이혼 판결문보다는 덜 구체적입니다. 조정기일에는 담당 판사, 당사자, 변호사만 조정실에서 만납니다.  법무법인 심평의 이보라 변호사의 말입니다.  “아이가 없으니 양육권 문제는 없을 것이고, 재산분할도 각자 명의에,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만큼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입니다. 다만 양쪽 모두 경제규모가 큰 만큼 통상의 경우보다 위자료를 많이 부를 수도 있습니다.”  ②유책배우자는 소송할 수 없나…‘예외기준’ 확대돼 가능  송중기씨가 먼저 이혼조정을 신청한 것을 두고 온갖 소문이 확산됐습니다. 대부분 ’누가 더 파탄에 책임이 있다더라‘는 내용이었죠. 홍상수 감독 소송으로 모두 ’유책주의‘를 학습한 덕분이기도 합니다. 홍 감독 패소 소식이 알려지면서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는 이혼을 요구할 자격이 없다’는 법리가 상식처럼 퍼졌습니다. 이혼소송에서 한국은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책배우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일은 많습니다. 특히 이혼조정의 경우 유책배우자가 신청하는 경우가 소송에 비해 많다고도 합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용덕)는 2015년 9월, 15년간 별거하며 혼외자를 둔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이혼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하며 ‘유책주의’를 유지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책주의 예외 기준을 확대했습니다.  그로부터 두달 뒤인 2015년 11월,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 민유숙)는 혼외자를 둔 남편이 아내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유책주의에 따라 청구를 기각했던 1심을 파기하고 이혼을 허용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재판부는 “유책배우자는 이혼 청구를 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지만, 남편의 귀책사유로 별거에 이르렀다고 해도 25년 이상 장기간 별거생활이 지속되면서 혼인생활의 실체가 해소됐고 두 사람이 각자 독립적인 생활관계를 가졌다”고 판단했습니다. 세월이 오래 흘러 남편의 유책성이 약해졌다는 거죠. 재판부는 유책주의 예외 기준에 들어맞는다고 했지만, 사실상 ’파탄주의‘를 일부 받아들인 이 판결은 대법원에서 상고기각돼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2015년 12월 같은 재판부가 내린 다른 판결도 유사합니다. 8년째 투병하는 아내를 돌보지 않은 남편이 낸 이혼청구 받아들인 겁니다. 아내가 뇌출혈로 쓰러진 뒤 별거생활을 해온 남편은 아내를 간병하거나 병원비를 부담하지 않았습니다. 얼핏 보면 유책배우자인 남편의 혼인 청구가 기각될 것 같지만, 법원은 경제적 사정 등을 고려해서 축출이혼의 위험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장기간 별거생활과 투병생활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 ’유책주의‘가 견고한 것 같지만, 아주 조금씩 틈은 벌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새올법률사무소의 이현곤 변호사의 말입니다.  “단순히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로 나눌 것이 아니라 일본처럼 유책주의를 유지하되, 파탄주의를 폭넓게 인정하는 방식이 조화를 이루면 좋을 것 같아요. 원칙과 예외의 문제로 가는 거죠.”    ③재산분할, 위자료는 얼마나 받을 수 있나…재산은 기여 있어야, 위자료는 기대 말아야  이혼에서 가장 치열하게 다투는 부분은 양육권과 재산분할입니다. 한국 현실에서 위자료는 얼마 안 됩니다. 통상 위자료는 1000~5000만원선입니다. 한쪽에서 크게 잘못을 해도 그렇습니다. 시어머니가 요구한 2억 5000만원의 지참금 문제로 예비 신부와 예비 신랑이 갈등을 겪다가 파혼한 사건에서 법원은 남자측에 잘못이 있다며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013년 판결인데요. 당시 법원은 예비 신랑은 1000만원, 예비 시어머니는 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고 판단했어도 위자료는 1500만원이었습니다.  재산분할은 재산형성 기여도를 따집니다. 전업 주부라도 혼인생활을 길게 이어왔고, 그동안 재산이 늘어났다면 기여도가 있다고 봅니다. 연금도 분할 받을 수 있습니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 사이의 이혼소송에서 1심 재판부는 이 사장이 임 전 고문에게 86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임 고문측은 이 사장의 전체 재산을 2조 5000억원대라며 절반인 1조 2000억원을 요구했는데, 그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죠.  ‘송송커플’은 결혼기간이 1년 8개월로 짧고, 각자 명의로 경제생활을 한만큼 ‘각자 벌어온 것은 각자 가져간다’는 원칙을 지킬 것으로 보입니다. 해인법률사무소 배금자 변호사 말입니다.  “한국도 외국처럼 유책배우자에게 징벌적 성격의 위자료를 물려야 합니다. 재산분할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가정을 깬 사람에게 페널티를 줘야죠. ‘바람 피면 위자료를 얼마 준다’는 식의 혼전 계약서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스리랑카 지참금이 뭐길래..“생후 6개월 딸과 생이별”

    스리랑카 지참금이 뭐길래..“생후 6개월 딸과 생이별”

    스리랑카 지참금 문화가 눈길을 끈다. EBS ‘글로벌 아빠 찾아 삼만리’의 ‘스리랑카 아빠 수랑가의 지참금이 뭐길래’ 편에서는 지참금 해결을 위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스리랑카 남성의 이야기가 전파를 탔다. 제주도의 광어 양식장에서 일하는 스리랑카 국적의 수랑가 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12살, 생후 6개월의 어린 두 딸을 스리랑카에 두고 머나먼 한국에서 10여 년 동안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 한국으로 온 것은 두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스리랑카에서는 아직도 여자가 결혼할 때 지참금을 가지고 가야한다. 필요한 금액은 재력에 따라 달라진다. 인도나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행해지는 신부값과 달리, 스리랑카의 결혼 지참금은 보석이나 토지, 집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두 딸은 아빠와 생이별 중이다. 엄마는 지참금 때문에 고생하는 남편에게 미안해 온갖 부업을 하며 몸이 부서져라 일하며 모든 행복을 남편이 돌아올 때로 미뤄두고 있다. 큰 딸 산자냐는 이런 스리랑카의 현실을 살아가는 12살 소녀다. 그녀는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며 꿈을 키워가고 있다고. ‘대장금’의 주인공 이영애는 산자냐와 그 가족과의 만남에 기꺼이 나서 감동을 안겼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생활한 여성의 사연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생활한 여성의 사연

    자신을 성폭행 한 남자와 강제로 결혼생활을 해야 했던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졌다. 이 여성에게 ‘범인’과의 결혼을 종용한 사람이 다른 아닌 그녀의 부모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이 더해졌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24일 보도에 따르면 서니 앤젤(40)이라는 영국 여성은 20세 였던 20년 전, 부모가 힌두교인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만남주선 사이트에서 고른 남성과 강제로 결혼했다. 결혼 전 이 남성은 직접적인 데이트가 아닌 ‘러브레터’로 그녀의 환심을 사려 했고, 이 여성은 내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강요로 결국 결혼식을 올려야 했다. 하지만 결혼 직후 그녀는 자신의 남편에게 지적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에게 보냈던 편지도 사실은 남편의 어머니가 대신 작성했다는 사실까지도 깨달았다. 결국 그녀는 결혼을 취소하려 했지만 시부모 측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그녀를 성폭행하는 것을 문밖에서 조용히 지켜만 봤을 뿐이었다. 앤젤은 지적장애가 있던 남편이 자신을 성폭행을 한 뒤 시어머니에게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초콜릿 먹어도 돼요?“라고 묻는 황당한 장면까지 목격했고, 이후 시어머니가 자신의 아들에게 음란 동영상 등으로 성폭행을 ‘교육’시킨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는 부모에게 이혼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부모는 딸이 아닌 딸을 성폭행한 남성을 사위로 선택했다. 딸과 사위의 결혼을 없었던 일로 하기 위해서는 결혼지참금 1만 파운드(약 1480만원)를 되돌려줘야 하는데, 이를 거절한 것이다. 앤젤은 결국 자신의 부모가 선택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도 모자라, 양가 부모의 강요로 끔직한 결혼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게 1년 여가 흐른 뒤, 앤젤은 소송을 통해 간신히 지옥같은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17년에는 자신의 경험을 옮긴 책을 출간하고 같은 처지에 놓은 여성들을 응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한편 메트로는 2014년 영국에서 강제 결혼을 불법으로 간주하는 법령이 시행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 매년 8000명의 여성들이 앤젤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레스토랑의 번성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레스토랑의 번성

    춥고 배고플 때 따끈한 국물 한 사발만큼 기운을 북돋아 주는 특효약이 있으랴. 레스토랑은 애초에 식사를 제공하는 장소가 아니라 원기를 회복시켜 주는 국물을 의미했다. 1765년 파리 루브르궁 근처에 근대적 식당이 문을 열었다. 여기서는 고기 국물로 만든 맑은 수프와 몇 가지 요리를 내놓아 인기를 끌었는데, 사람들은 이 수프를 레스토랑이라 불렀다. 레스토랑 파는 곳이 하나 둘 늘면서 문 앞에 그날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알리는 표지판을 내걸고, 테이블에 앉은 손님에게는 작은 표지판을 제공해 음식을 고르게 하는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레스토랑이 만개한 것은 19세기의 일이었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나자 귀족들은 목숨을 잃거나 파산하거나 망명길에 올랐다. 그들이 거느린 요리사들은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됐다. 이들은 까다로운 귀족의 입맛에 맞추느라 갈고 닦은 솜씨를 무기로 식당을 열었다. 부르주아 계층은 요리별로 가격이 매겨진 메뉴판을 보고 원하는 것을 골라 식사하는 데 재미를 붙였다. 1830년대 파리에는 식당이 2000여개로 불어났다. 레스토랑은 수프가 아니라 식당을 의미하는 어휘가 돼 프랑스 아카데미사전에 올랐다. 제르벡스는 불로뉴공원 안에 있는 레스토랑 ‘프레 카탈랑’의 한때를 보여 준다. 1905년 파리시는 이곳에 카지노와 고급 레스토랑을 건설하려는 계획을 추진했다. 카지노 건설은 무산됐으나 레스토랑은 문을 열자 곧 명소로 떠올랐다. 신고전주의풍으로 지어진 레스토랑은 식당이라기보다 상류층 사교클럽 같은 분위기다. 주렁주렁 드리워진 샹들리에가 앞마당까지 훤히 밝히고 있다. 테이블에 앉아 있는 손님들은 당대 사교계를 주름잡던 인사들이다. 앞마당에서는 초록색 드레스를 입은 애너 굴드, 그녀의 남편, 화가의 부인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미국 부호의 딸인 애너는 막대한 지참금을 싸들고 대서양 건너 시집을 왔다. 사람들은 “애너의 예쁜 데는 등뿐”이라고 농담을 했다. 등(dos)과 지참금(dot)의 발음이 같은 데 착안한 말장난이다. 화가는 짓궂게도 그녀를 뒷모습으로 그려 넣어 이 농담에 동조했다. 이 사치스런 레스토랑은 오늘날도 건재하다. 미술평론가
  • “전생에 부부였기 때문”…6살 쌍둥이 남매 결혼시킨 부모

    “전생에 부부였기 때문”…6살 쌍둥이 남매 결혼시킨 부모

    태국에서 한 부모가 6살 된 쌍둥이 남매를 결혼시켰다.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은 25일(이하 현지시간) 전날 태국 방콕 인근 도시 사뭇쁘라깐에서 6살 쌍둥이 남매의 호화로운 결혼식이 열렸다고 전했다.이들 쌍둥이를 위해 우리 돈으로 수백만 원을 쓴 부모는 남매가 전생에 연인이었다고 굳게 믿어 이런 의식을 진행했다. 31세 남성 아모르산 쑨쏜 말리랏과 30세 아내 파차라폰은 모두 불교 신자로 지금으로부터 6년 전인 2012년 9월 쌍둥이 남매가 태어났을 때 이들을 결혼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현지 불교신자들은 쌍둥이 남매는 전생에 부부였고 당시 쌓은 업(카르마)을 갚기 위해 함께 태어난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 남매를 위해 가능한 한 빨리 결혼식을 치러주지 않으면 미래에 이들이 불행을 겪게 될 것이라고 이들 부모는 말한다. 이에 따라 전통 혼례식이 치러진 날에는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 등 하객 수십 명이 참석했다.이날 신랑이 된 소년은 거리 행진과 함께 9개의 문을 통과하는 의식을 치르고 나서야 신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나서 소년은 소녀와 결혼식을 올리기 전 현찰과 금으로 20만 바트(약 690만 원)에 달하는 지참금을 내야했다.이후 두 아이는 팔짱을 끼고 포즈를 잡으며 결혼식 사진을 찍었다. 다만 이 결혼식은 관습에 따라 진행하는 것일 뿐 법적 효력은 없다. 따라서 이들 남매는 성인이 되고나서 각각 배우자를 만나 결혼할 수 있다. 남매의 어머니 파차라폰은 “결혼식 내내 아이들이 너무 귀여웠다. 남매는 평생 최고의 친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中 29세 남편 66세 아내…“아내 위해 흰머리 염색도 불사”

    中 29세 남편 66세 아내…“아내 위해 흰머리 염색도 불사”

    중국 허난성 농촌에 거주하는 29세 남성과 66세 여성의 결혼이 연일 화제다. 무려 37세 나이 차를 뛰어넘은 이들의 결혼 소식은 곧장 중국 온라인 SNS와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허난성 농촌에 거주하는 29세 남성 주씨는 66세 아내를 만나기 전 오랜 기간 연애한 여자친구가 있었다. 하지만 주씨와 결혼을 약속했던 전 여자친구는 그가 평균 2000위안(약 32만5000원)의 월급을 받아오면 곧장 쇼핑하는 등 낭비벽이 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결혼식을 앞두고 혼수를 마련하는 시기에는 주씨에게 수만 위안에 달하는 지참금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가정 형편상 수만 위안의 지참금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주씨는 전 여자친구와 헤어질 결심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그는 10세 연상의 또다른 여자친구를 만나기도 했지만, 그녀 역시 결혼을 약속할 무렵이 되자 돌연 지참금 문제 등 현실적인 장벽 앞에서 많은 갈등을 일으켰다고 주씨는 토로했다.주씨는 전 여자친구와의 이별 경험에 대해 “그녀들은 줄곧 내게 큰돈을 원했고, 결혼식을 앞두고는 그녀들의 부모님 역시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지참금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이후 그는 이번 일생에서 자신을 결혼조차 할 수 없는 무능력한 남자라고 자책,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가 자살 시도를 반복했던 그 무렵 만난 여성이 현재의 아내다. 주씨는 “당시 죽느냐 사느냐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면서 “내 아내는 고난에 빠진 내게 ‘뭐 그리 대단하지도 않은 것으로 죽을 결심을 하느냐?’”라면서 “‘앞으로 더 좋은 아가씨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난 그때 그녀가 아니었다면 지금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이후 그는 그녀의 말과 행동에 따뜻한 감정을 느꼈고, 그녀와 함께 있는 시간 동안 편안한 감정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이 알려지자 가장 먼저 반대 의사를 보인 것은 아내 가족들이었다. 이미 한 차례 결혼과 사별 경험이 있는 그의 아내에게는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난 자녀들 외에 오랜 기간 그녀가 직접 키운 17세 손자가 함께 거주 중이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37세의 나이 차이 탓에 그녀가 상처받을 상황이 있을지 모른다는 이유로 결혼을 만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내 역시 두 사람 사이의 무려 37세 나이 차이에 부담을 느낀 탓에 자신에게 청혼한 주씨에게 거절 의사를 내비쳤던 것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주씨의 고향에 거주 중인 그의 부모님을 만난 후 그녀의 마음은 그와 결혼하겠다는 방향으로 돌아설 수 있었다. 주씨의 결정을 지지하겠다는 그의 부모님의 뜻을 듣고 난 뒤 그녀 역시 마음 편하게 그와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남편 주씨의 어머니는 그의 아내보다 2세 연상이다. 주씨는 “부모님 댁을 함께 찾아갔을 때 우리 부모님은 아내와 내가 묶을 방을 신혼 방처럼 깨끗하게 꾸며 놓았었다”면서 “다른 사람들의 편견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아내가 내가 너무 젊은 것에 스트레스를 받을까 봐 그것이 걱정”이라고 했다.그러면서 “남들 시선에 스트레스받을 아내를 위해 최근에 내 머리를 직접 흰 머리로 염색을 했다”면서 “앞으로 어떤 시련이 있어도 아내와 함께 극복할 수 있다. 최근에는 아내와 함께 시험관 시술을 통한 2세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상속은 ‘생존전략’이었다

    상속은 ‘생존전략’이었다

    상속의 역사/백승종 지음/사우/272쪽/1만 6000원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상속세와 소득세 최고세율의 합이 가장 큰 나라는 일본(상속세 55%·소득세 45%)이고, 우리나라가 그다음이다. 상속세가 50%, 소득세가 42%에 이른다. 기업가들은 이를 피하려 온갖 편법을 쓰곤 한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을 위해 기업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린 것으로 드러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시민사회단체는 이를 주도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상속세를 내지 않고 편법으로 삼성그룹 경영권을 확보했다고 비판한다. 여전히 혈통을 중시하는 유교 문화 때문일까. 다른 나라는 자수성가해 부자가 된 이들의 비율이 70%에 이르지만, 우리나라는 70%가 상속으로 부를 일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구약성경~조선시대 상속제도와 사회상 백승종 한국기술교육대 교수가 쓴 ‘상속의 역사’는 이런 우리 상황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신간이다. 동서고금에 걸쳐 상속의 역사를 훑는 책으로, 구약성경에서부터 조선시대,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상속제도와 당시 사회상을 짚어 낸다. 상속제도는 단순히 재산을 물려주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누군가는 권력을 얻거나 부자가 되고, 누군가는 신분이 추락하거나 가난으로 내몰린다. 왕가의 상속 때문에 벌어진 싸움이 국제전으로 확산하고, 때론 국경이 달라지기도 했다. ●집단·사회·경제·문화 따라 달랐던 제도 집단·사회·경제·문화에 따라 상속제도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예컨대 18~19세기 독일의 한 유언장에는 “너(상속자)는 나(부모)에게 우유를 공급하고 죽을 때까지 우리를 돌봐야 한다. 그래야 내 재산이 네게 상속될 것이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한국, 중국, 일본과 같은 동아시아권에는 이런 유언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유교 사회에서는 효도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라 분석한다. 효도가 자식의 당연한 의무인 사회에서 부모가 노후를 우려해 유언장을 남기는 일은 그 자체로 납득키 어렵다는 뜻이다. 유산을 누구에게 주느냐의 문제도 제각각이었다. 역사상 가장 널리 퍼진 상속제도는 부계상속이다. 장자의 특권적 지위를 인정하는 장자상속이 가장 일반적이지만, 막내아들이 상속하는 말자상속, 여러 아들이 나눠 갖는 균분상속, 형제가 공동으로 상속하는 공동상속도 있다. 농업사회에서는 장자상속이 보편화했지만, 유목사회에서는 말자상속을 선호한다. 농업사회보다 불안한 까닭에 부모가 좀더 오래 부양받기 위해서였다.암투가 횡행했던 로마는 귀족층이 정치적·경제적 고려에 따라 입양제도를 정착시켰다. 황제들마저 양자를 들이곤 했다. 카이사르가 죽은 뒤 양아들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잡고, 옥타비아누스가 또 양아들 티베리우스에게 양위하는 과정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혈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풍습이 강해지며 로마의 입양제도는 자취를 감춘다. 그러다 근대 유럽 사회에서 유아 유기와 고아의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다시 고개를 들다가 19세기 미국이 입양제도를 활성화하면서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조선 역시 입양이 활발했지만, 생판 남이 아닌 형제나 친척의 아이를 입양하는 사례가 많았다. 저자는 서양 소작농이 먹고살기 위해 지주를 ‘대부모’로 삼은 일, 조선 양반들이 지위를 유지하고자 종가를 이루고 종손을 정하는 일에 사력을 다하는 모습을 들어 상속제도에 따른 생존전략을 살핀다. 이 밖에 재산을 지키고자 유전병에도 불구하고 근친혼을 서슴지 않았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결혼 당시 여성의 지참금 때문에 부인과 이혼하지 못했던 중세 귀족들의 실태 등도 흥미롭다.●사회·문화적 결과이자 사회 변화의 원인 저자는 동서양의 다양한 상속제도를 살핀 뒤, 상속제도가 사회·문화적인 결과이자 사회 변화의 큰 원인이라 결론짓는다. 모든 상속제도에서 공통적인 키워드가 있었는데, 다름 아닌 ‘생존’이었다. 바꿔 말하면, 상속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양극화, 부의 불평등과 같은 문제가 완화하거나 심각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올바른 상속제도란 어떤 것인가?’ 의문이 들게 마련이지만, 책은 바로 이 지점에서 멈춰 버린다. 동서고금의 상속제도를 살펴보고 당시 사회상을 살피지만, 구체적인 해결책은 내놓지 못한다. 역사가인 저자에게 해결책까지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긴 하나, 책의 완결성으로 볼 때 아쉬운 부분이다. 또 워낙 방대한 역사를 오가며 각종 상속제도를 펼쳐 놓느라 시대별, 지역별 상속제도 간 적절한 비교가 미흡하다는 인상도 든다. 다만 상속제도와 사회변화를 묶어 내고 집단의 ‘생존전략’으로 본 점은 그 자체만으로 흥미롭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여기는 중국] 여성 박사가 남성에게 요구한 결혼 조건 논란

    [여기는 중국] 여성 박사가 남성에게 요구한 결혼 조건 논란

    중국 박사 학위 소지자 여성의 혼수 조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최근 논란의 여성과 결혼을 약속했던 상대 남성이라고 신분을 밝힌 네티즌 유 모씨(34)는 자신이 운영하는 SNS ‘바이쟈호(百家号)’에 상대 여성이 요구한 혼인 조건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다. ‘바이쟈호’는 중국 국내 포털 사이트 바이두가 운영하는 공개 계정 플랫폼이다. 유 씨는 최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신과 결혼 약속을 한 여성 A씨(37)가 상견례를 앞두고 자신과 결혼하기 위해서는 대도시 소재 부동산 1채와 자동차 1대, 혼인 지참금 80만 위안(약 1억 3000만원) 이상 등의 현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더욱이 상대 여성 A씨가 요구한 부동산 1채는 반드시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1선 대도시에 소재해 있을 것을 강조했다고 적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는 50만 위안 이상의 브랜드일 것 △예물 또는 현금으로 80만 위안 이상을 준비해 이를 처가에 선물로 지급해야 할 것 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혼수를 요구한 A씨 측은 자신이 박사학위를 소지한 ‘인재’라는 점을 근거로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 씨는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 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며, “나 역시 박사학위 소지자인데, 상대 여성 측의 요구가 지나치게 높아서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가 밝힌 내용에 따르면 상대 여성 A씨와의 만남은 결혼을 목적으로 한 소개팅 업체의 주선으로 시작됐다. 유 씨는 앞서 소개팅 업체에게 자신이 원하는 상대 여성 조건으로 오직 ‘학력이 높은 여성일 것’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결혼을 목적으로 하는 소개팅인 만큼 나와 비슷한 수준의 교육을 받은 여성이길 바랬다”면서 “하지만 A씨는 나보다 3살이나 많았고, 외모 또한 평범했다. 비교적 무난한 성격이 마음이 들어서 결혼까지 생각했지만, A씨의 부모님과 만남을 앞두고 지나친 혼수를 요구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A씨와 만남을 갖기 이전 약 그녀보다 상대적으로 젊은 200여 명이 넘는 학사 출신의 평범한 여성들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소개팅 전문 업체가 비교적 나와 유사한 조건의 상대 여성을 소개해 준 결과가 기대치 이하였다”고 실망을 표시했다. 이 같은 글이 게재되자 온라인 상에서는 A씨의 혼수 요구 조건이 지나치다는 의견과 고학력만 강조한 상대 남성에 대한 비판 등의 ‘설왕설래’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더욱이 해당 글을 게재한 남성 A씨는 문제의 사례를 설명하는 글과 함께 상대 여성인 A씨의 사진을 무단으로 게재, 유 씨에 대한 비판 여론도 함께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최근 중국에서 유 씨와 같은 ‘고학력’을 사유로 한 지나친 혼수 요구 사례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연이어 공개되고 있는 양상이다. 지난 3월 자신의 사촌 노처녀 사촌 언니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한 여성은 “사촌언니 정 씨(32)는 무려 지난 7년 동안 140~150회에 달하는 소개팅을 했다”면서 “박사학위를 소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상대 남성에게 지나친 혼수 마련을 요구하는 탓에 매번 소개팅에 실패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글을 게재한 여성의 사연에 따르면, 문제의 사촌언니 정 씨는 외모는 평범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학업 성적이 좋은 탓에 도시에 소재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재라고 했다. 하지만 정 씨는 결혼이 늦어지자 사촌 동생 부부 집에 얹혀 살면서 매번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에게 지나친 혼수 요구를 하는 탓에 결혼이 늦어지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 씨가 요구하는 혼수 조건은 △상대 남성의 신장이 178cm 이상일 것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 일 것 △대출금 없는 부동산 1채 이상을 소유하고 있을 것 △결혼 전 해당 부동산의 명의를 정 씨 자신으로 명의 이전해 줄 것 △나이차이는 5세 이하일 것 △연봉 30만 위안 이상일 것 등이다. 이 같은 요구 사항에 대해 해당 글 게재자는 “솔직히 정 씨는 우리 집안의 자랑이었다”면서 “하지만 그녀의 결혼이 매년 늦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집안의 걱정거리로 전락했다. 결혼은 남녀가 함께 절반씩 책임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정 씨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다”고 적었다. 임지연 베이징(중국) 통신원 cci2006@naver.com 
  • 10대 신부와 결혼 놓고 소셜미디어서 벌어진 경매 논란

    10대 신부와 결혼 놓고 소셜미디어서 벌어진 경매 논란

    최근 남수단 출신의 10대 소녀가 소셜미디어를 통한 경매에서 부유한 사업가에게 팔려 시집 간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1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남수단 동레이크스 주 출신의 17세 소녀 사진이 지난 달 25일 페이스북에 게재됐다. 소녀를 놓고 벌어진 경매에 다섯 남성이 참여했고, 최고 입찰자가 된 한 중년 남성은 소 500마리와 고급 승용차 3대, 그리고 지참금 1만 달러(약 1133만원)를 소녀 아버지에게 주었다. 지참금은 결혼할 때 신부가 신랑 측에 혹은 신랑이 신부 측에 결혼 대가로 건네는 돈을 의미한다. 이들의 결혼식은 지난 3일 치러졌고, 웨딩드레스 차림의 소녀 사진 역시 소셜미디어사이트에 공유됐다. 소녀는 ‘순결한 신부’ 혹은 ‘남수단에서 가장 비싼 여성’으로 언급되며 일부 언론에 보도됐지만 그 이후 수도 주바로 행적을 감추면서 더 이상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아동인권 단체들은 경매를 벌인 이들에게 훨씬 강경한 조치를 취할 것을 당국과 페이스북에 촉구했다. 국제여성인권단체인 이퀄리티 나우는 “다른 가족들이 더 많은 지참금을 요구하기 위해 소셜미디어사이트에 딸을 내놓는 위험한 선례를 만들 수 있다”며 “페이스북은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확보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국제구호개발단체 플랜 인터내셔널(PI)의 수단 지부장 조지 오팀도 “세계 최대 소셜 네트워킹 사이트에서 한 소녀가 결혼을 위해 판매될 수 있다는 사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페이스북 대변인은 “지난 9일 사태를 파악하자마자 사회적 기준을 위반한 해당 게시물을 지우고, 관련된 사용자들을 탈퇴시켰다”며 “인신매매에 공조하는 게시 글이나 페이지, 광고, 단체 등은 어떠한 형태로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유엔아동기금 유니세프에 따르면, 합법적인 결혼 연령이 18세 임에도 남수단 소녀 50%이상이 18세 생일 전에 결혼을 한다. 이 같은 ‘아동 결혼’에는 높은 수준의 빈곤, 분쟁으로 인한 불안정성, 교육에 있어 성벽 격차가 크게 일조했다. 또한 많은 남수단 지역 사회는 혼전 성관계와 원치 않는 임신에서 소녀들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혹은 가축과 같은 자원이나 지참금과 교환하기 위해 어린 아이들을 결혼시킨다. 그 결과 미성년자의 불법 결혼이 증가하게 됐다. 사진=페이스북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여기는 중국] 초등생 자녀 위한 ‘공개구혼’ 봇물, 이유는 ‘숙제’

    [여기는 중국] 초등생 자녀 위한 ‘공개구혼’ 봇물, 이유는 ‘숙제’

    중국은 우리나라 못지않게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주어지는 과제량도 만만치 않다. 이러다 보니 ‘아이의 숙제=부모의 숙제’가 되는 경우가 수두룩하다. 최근 중국의 한 학부모는 초등 저학년 딸을 위한 ‘공개 구혼’을 SNS에 올렸는데, 그 이유가 바로 '아이의 숙제'에서 비롯됐다. 항저우의 한 학부모가 SNS에 올린 구혼장은 다음과 같다. “친애하는 미래의 사돈어른께, 내 딸은 집도 있고, 보험도 들었고, 수영도 할 줄 압니다. 만 18세가 되면 시집을 보낼 텐데 집과 차와 혼수와 축의금도 모두 줄 겁니다.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결혼 지참금은 안 보내셔도 됩니다. 다만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세요. 며느리 삼을 집에서 키워주세요!” 잠시 뒤 아들을 둔 한 학부모가 답글을 올렸다. 그는 “마침 내가 집에서 아들의 숙제를 봐주고 있는데, 두 아이의 숙제를 같이 봐줄 수 있다”면서 “다만 한 가지 요구사항이 있는데, 지금 당장 집과 차를 달라”고 답했다. 이어서 아이의 숙제로 깊은 고민에 빠진 학부모들의 ‘공개 구혼’ 패러디가 봇물 터지듯 이어졌다. “ XX 평 이상의 집을 주겠다”, “명품 차를 보내겠다”, “학원비를 전부 대주겠다”는 등, 이들의 전제조건은 단 하나, “숙제를 봐달라”는 것이었다. 자녀의 학업을 돕다가 병으로 몸져눕는 학부모들도 종종 발생한다. 최근 33살의 젊은 엄마는 초등학교 3학년 딸의 숙제를 돕다가 중풍에 걸렸다. 딸은 매일 밤 10시경 과제를 마쳤는데, 그날은 밤 10시가 되어도 아이는 숙제를 마치지 못했다. 화가 난 엄마는 아이에게 큰소리치며 혼내다가 입이 돌아가고, 손이 마비되었다. 병원 진단 결과 급성 뇌경색이었다. 또 다른 학부모는 5학년 아이의 숙제를 돕다가 심근경색으로 입원해 두 개의 스텐트를 삽입했다고 전했다.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한 또 다른 학부모는 “뇌출혈의 원인이 아이의 숙제를 돕다가 일어난 것 같다”면서 “다시는 아이의 학업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말 그대로 학부모들의 ‘목숨 건 과제 돕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이에 대해 한 교사는 “부모가 아이의 학습 전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아이의 독립적인 사고방식을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아이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과제를 내주는 경우가 많아 학부모들의 불만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사진=왕이하오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월드피플+] 키 93cm 아내, 키193cm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월드피플+] 키 93cm 아내, 키193cm 남편과의 ‘러브스토리’

    키가 93cm에 불과한 여성이 키 193cm의 남성과 결혼해 22년째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산동(山东)성 이위안현(沂源县)에 사는 여성 리수란(李淑兰·42)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골형성부전증 진단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도자기 인형(瓷娃娃)’병으로 불리는데,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쉽게 골절되는 희소 질환이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어려워 치료를 받지 못해 키가 1m에도 못 미친다. 어려서부터 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꿨던 그녀지만, 작은 키에 누구와도 사랑할 수 없을 거라 체념해왔다. 하지만 그녀가 20살이 되던 1996년, 인근에 사는 40살 장 씨와 맞선을 볼 기회가 생겼다. 나이 차이도 크게 났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의 키 차이가 무려 1m에 달했다. 장 씨의 키는 193cm에 달하는 보기 드문 장신이었다. 마을에서 가장 키 큰 남성과 가장 키 작은 여성의 어딘가 불안한 만남이었다. 하지만 맞선을 본 지 한 달 만에 둘은 약혼을 할 정도로 마음이 맞았다. 장 씨는 200위안의 지참금을 리 씨 집안에 건넸는데, 이는 당시 동네에서 가장 비싼 결혼 지참금에 해당했다. 중국에서는 신랑이 신부 집안에 지참금 형식으로 돈을 건넨다. 그는 “아내가 비록 장애인이지만 당당하게 시집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전했다. 약혼 후 두 사람은 5년간의 연애를 거쳐, 2001년 정식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장 씨는 돈을 벌기 위해 자주 외지로 나가 노동일을 했다. 버는 돈은 크지 않았지만 성실하게 일해 번 돈을 들고 한 달에 한 번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비록 남편이 하룻밤만 머물다 떠나야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 내가 있으니 만족한다”면서 행복한 미소를 보였다. 하지만 환갑을 훌쩍 넘긴 장 씨는 관절통까지 앓고 있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내 리 씨는 남편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집에서 모바일 메신저를 활용한 과일 판매를 하고 있다. 큰돈은 아니지만, 두 사람이 먹고사는 데 지장은 없을 정도라 남편의 힘든 타지 생활을 그만두게 할 생각이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스물두 해를 함께 해왔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다. 그녀가 남편에게 가장 미안한 점은 아이를 낳지 못한 점이다. 유독 아이들을 좋아하는 장 씨지만 “두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면 됐지, 아이를 낳게 하려고 아내에게 위험을 감당케 하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아이를 낳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기 때문이다. 사진=토우티아오신원 이종실 상하이(중국)통신원 jongsil74@naver.com
  • “다리 건너봐”…고소공포증 남친에게 담력 대가로 청혼한 여친

    “다리 건너봐”…고소공포증 남친에게 담력 대가로 청혼한 여친

    한 중국인 여성이 청혼에 대한 대가로 겁쟁이 남자친구에게 고소공포증 극복 차 유리 바닥으로 된 다리를 건너라고 시켰다가 퇴짜를 맞았다. 17일 중국 국영 허난 데일리에 따르면, 허난성 정저우 복희산에 있는 지상 350m 높이의 다리 위에 나타난 웨딩드레스 차림의 여성은 지참금 10만 위안(약 1637만원)이 든 가방과 자동차 옆에 서서 남자친구에게 파격적인 프러포즈를 했다. 여성의 옆에는 ‘만약 이 다리를 건너오면 나는 너와 결혼할거야’라고 적힌 빨간색 현수막도 걸려있었다. 마이크를 든 여성은 남자친구에게 “3년 동안 너와 사랑을 해서 행복했었고 부모님도 결혼하라고 하시지만 난 그럴 수 없어”라고 말했다. 이어 “왜 인지 궁금하지 않아? 겁쟁이에 고소공포증까지,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네가 약해서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하지만 남자친구는 “그녀가 무책임했고, 서로의 관계를 위기에 빠트렸다”며 불평하면서 여자 친구를 외면했다. 남성의 친구들이 그에게 다리를 건너라고 설득했지만 그는 단호히 거절하고 떠났다. 이후 여성은 현지 언론을 통해 남자친구와 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여성의 사연을 전해들은 네티즌들은 두 사람에 대해 안타까움을 나타낸 반면 ‘홍보용이 아닐까’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이에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 지씨는 “해당 다리는 6월에 대중에게 개방됐다. 연인들이 이 다리에서 청혼을 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많은 젊은 연인들이 여기에서 웨딩촬영을 부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여성의 프러포즈에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 우리가 계획한 것은 아니다. 우리는 평소 관광객들이 원하는 일을 도와왔다”며 세간의 주장을 일축했다. 사진=더페이퍼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신랑은 어디에?…결혼식장에 혼자 들어간 신부 사연

    신랑은 어디에?…결혼식장에 혼자 들어간 신부 사연

    화려한 결혼식에 신랑과 신부가 아닌 신부 한 사람만 등장한 황당한 일이 발생했다. 방콕포스트 등 태국 현지 언론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2일, 현지에 사는 여성 마노우(24)는 꿈에 그리던 자신의 결혼식을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지인들에게 전달했다. SNS로 결혼식을 실시간으로 보기 시작한 사람들은 영상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축하 받아야 할 신랑 신부 중 신부 단 한 사람만 결혼식장에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신부는 드레스를 입고 하객들을 일일이 맞이하며 결혼식 일정을 홀로 소화하고 있었다. 하객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할 때에도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은 신부 한 사람 뿐이었다. 방콕포스트에 따르면 신랑과 신부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결혼을 약속하고,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결혼지참금(한국의 혼수와 유사한 문화)을 건네기로 약속했다. 당시 신랑이 신부에게 주기로 한 결혼지참금의 규모는 30만 바트(한화 약 1010만원) 상당의 현금과 금이었다. 이후 두 사람은 1000명이 넘는 지인들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웨딩사진을 촬영했다. 결혼식을 올리기 전 신부 측은 약속의 의미로 30만 바트의 결혼지참금 중 20만 바트를 먼저 받았다. 하지만 문제는 결혼식을 일주일 남겨놓고 발생했다. 신부가 자신의 신랑이 다른 여성과 교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 신랑은 결혼식을 전면 취소하는게 어렵다고 판단한 듯 약속대로 결혼식을 진행하자고 제안했고, 신부는 받아야 할 결혼지참금의 일부를 마저 받고 이에 동의했다. 이 같은 결정에도 불구하고 신랑은 결혼식 하루 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가 결혼식 당일 새벽이 되어서야 연락이 닿았지만 결국 결혼식에는 불참하고 말았다. 의아해하는 하객과 지인 앞에서 신부는 의연하게 섰고, 신랑이 오지 않아 자신 혼자 결혼식장에 섰다고 발표했다. 좌절하는 그녀의 모습을 담은 영상은 페이스북에서 50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잘잘못을 따지는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새신부에게 턱수염이 있어요”…이혼 소송 제기한 신랑

    “새신부에게 턱수염이 있어요”…이혼 소송 제기한 신랑

    한 인도 남성이 결혼한 새 신부에게 턱수염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돼 이혼소송을 청구했다. 18일(이하 현지시간) 인도 일간 더 타임스 오브 인디아는 구자라트주 아마다바드 출신의 루페쉬(가명)가 수염이 있을 뿐 아니라 남자처럼 말하는 아내 루파(가명)를 상대로 이혼소송을 제기했다고 전했다. 루페쉬에 따르면, 그는 결혼식 전날까지 루파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예식에서 처음 본 아내는 아시아 남부지역 여자들이 쓰는 스카프인 두파타(dupatta)를 두르고 있었고, 화장을 진하게 한 상태였다. 결혼식 동안에도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단 기간에 두 사람의 결혼식을 마련해준 처가 식구들이 전통을 이유로 아내 얼굴을 보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루파와 7일이란 시간을 함께 보낸 후, 나는 일을 하러 마을을 떠났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가 수염을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또한 그녀는 남자같은 목소리로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루페쉬가 처가 식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그들은 “막 결혼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 문제는 경찰에 인계됐고, 그는 결국 이혼 신청을 해 두 사람은 법정에 섰다. 법정에 선 루파는 호르몬 문제로 인해 얼굴에 일부분 털이 자라고 있고, 굵고 낮은 목소리가 나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치료를 통해 고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루파의 변호사는 루페쉬의 모든 주장이 루파를 집에서 쫓아내기 위한 근거없는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루페쉬의 가족이 지참금을 요구했고, 그들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루파를 학대했다. 만약 이혼할 경우, 한달에 5만 루피(약 81만원)를 버는 루페쉬가 매달 이혼수당 2만 루피(약 32만원)를 지불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양 당사자의 의견을 들은 후 판사는 “이혼 사유로 충분하지 않다”며 루페쉬의 이혼 소송을 기각했고, 루페쉬가 여러 차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사진=셔터스톡 안정은 기자 netineri@seoul.co.kr
  • “지참금 바로 못 줘”…결혼 15분 만에 이혼 선언한 신랑

    “지참금 바로 못 줘”…결혼 15분 만에 이혼 선언한 신랑

    아랍에미리트의 한 남성이 결혼식을 올린 지 15분 만에 이혼을 선언한 사실이 알려졌다. 아랍에미리트의 영문 일간지 걸프 뉴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두바이에서 결혼식을 올린 남성은 현지 풍습대로 결혼식 당일 자신의 장인이 될 신부의 아버지에게 결혼 지참금을 전달하기로 약속했다. 인도와 파키스탄, 중동 지역의 풍습인 결혼지참금은 신부 측이 신랑 측에게, 혹은 신랑 측이 신부 측에게 결혼 대가로 건네는 돈을 의미한다. 이는 결혼할 남성이 가족을 부양할 능력을 여성에게 보증하는 의미로, 신부는 평생 지참금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번 사연 속 남성은 결혼 전 신부 측에게 10만 다르함, 한화로 약 3000만원의 결혼 지참금을 전하기로 약속했다. 결혼식 당일이 되자 신랑은 신부 측 가족에게 결혼식이 성사됐다는 의미로 약속한 지참금의 절반인 5만 다르함을 먼저 전달했고, 남은 금액은 법원에서 정식 절차를 마친 후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부 측은 당장 남은 5만 다르함을 달라고 요구했고, 기분이 상한 신랑은 곧바로 자신의 차로 가더니 결혼식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뒤 친척과 친구들에게 신부측에 전달했던 지참금 5만 다르함을 다시 가져오게 시킨 뒤 변호사를 보내 이혼을 선언한다고 밝혔다. 신랑은 변호사를 통해 “신부 측 아버지의 행동에서 모멸감과 모욕감을 느꼈다”면서 “신부의 아버지는 자신의 딸이 나의 아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것으로 보였다”고 이혼 사유를 밝혔다. 결혼서약서에 서명한 지 15분만에 이혼하는 사례는 흔치 않지만, 아랍에미리트에는 유사한 사례가 또 있다. 2012년, 아랍에미리트의 한 신랑은 신부의 아버지가 딸이 직장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했다는 이유로 결혼식이 시작된 지 몇 분 만에 이혼을 선언하기도 했다. 사진=123rf.com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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