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지진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재수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파울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시한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 소환
    2026-08-13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3,974
  • [씨줄날줄] 오시비엥침의 추억/서동철 논설위원

    폴란드 남부의 유서 깊은 도시 크라쿠프를 찾았을 때는 6월이었지만,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떨어져 반팔 옷으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성 마리아 성당이 있는 중앙광장 주변의 시장을 둘러보다 야겔로니안 대학의 로고가 가슴에 새겨진 긴팔 티셔츠를 사 입었던 기억이 난다. 1364년 개교한 이곳 야겔로니안 대학은 중부 유럽에서는 1348년 문을 연 체코 프라하의 카를 대학에 이어 두 번째로 역사가 길다. 크라쿠프는 14세기 초반부터 17세기 초반까지 폴란드의 수도였다. 하지만 1759년 오스트리아에 편입됐고, 1815년부터는 크라쿠프공화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나치의 ‘살인 공장’이었던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 수용소는 크라쿠프에서 40㎞ 남짓 떨어져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는 오스트리아 통치 시절 독일식으로 바뀌어 불린 지명이라고 한다. 폴란드 사람들은 오시비엥침과 브제진카를 외지 사람들이 침략자식 표현인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로 부르는 것을 불편해한다. 그런 방식의 호칭은 서울이나 부산을 여전히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처럼 게이조우(경성·京城)나 가마야마라고 부르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폴란드군 막사를 개조했다는 오시비엥침 제1수용소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았다. 입구에 ‘노동이 자유를 주리라’는 유명한 나치의 선전 문구가 높이 내걸린 바로 그 수용소다. 반면 광활한 평원에 세워진 오시비엥침 제2수용소, 즉 브제진카 수용소는 그야말로 ‘초대형 살인 공장’이라고 해도 좋았다. 제1수용소의 20배가 넘는 크기에 300동의 막사가 들어서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학살 대부분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철길이 붉은 담장의 수용소 내부로 이어졌는데 사람들은 ‘죽음의 문’이라고 불렀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수용소를 둘러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그럼에도 감수성이 풍부하지 못한 탓인지 다큐멘터리 필름에서 강조하는 엄청난 전율은 느끼지 못했다. 한국사람은 다르지 않은 분노를 이미 경험했기 때문은 아닌지…. 관동대지진 당시와 난징의 대학살이 그렇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그렇다. 타민족을 말살하는 국가권력 차원의 폭거라는 점에서는 오시비엥침에서 나치가 했던 짓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니 오시비엥침을 찾은 일본인 가운데 아베의 과거사 정책을 지지하면서도 이곳의 참상에는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면 안타까운 일이다. 신문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오시비엥침을 방문해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사진을 보면서 지난 여행의 기억이 떠올랐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열린세상] 번지수 제대로 찾아 부조하기/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번지수 제대로 찾아 부조하기/김정현 소설가

    2011년 3월, 일본 동북지방을 강타한 지진과 지진해일은 모두의 기억에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 우리는 엄청난 재난에 직면한 그들을 진심으로 안타까워하고 도움이 되도록 애쓰며 위로하고 격려했다. 그렇지만 뭔가 지나치다는 생각은 들었다. 과연 지상파 방송이 전국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특별방송으로 성금을 거두기까지 해야 하는지. 게다가 얼마 뒤 특집 음악회까지 열어 성금을 강요하는 듯한 데에는 솔직히 불쾌감마저 들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다시 삐거덕거리기 시작한 한·일관계는 이제 그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엄두조차 못 낼 지경에 이르렀다. 다시 2013년 11월 9일, 이번에는 초대형 태풍 하이옌이 필리핀을 강타해 엄청난 피해를 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어쩐지 미적지근하다. 정부의 지원은 일반적이고 민간차원의 움직임도 이전의 적극적인 것과는 확연히 다르다. 구조단도 날아갔지만 우리 교민의 생사와 안전 확인이 전해 오는 소식의 대부분이다. 난 10여년, 높아진 나라의 위상만큼 우리는 지구촌 재난에 꽤 적극적으로 나서 왔다. 비단 일본의 지진해일이나 중국 쓰촨(四川)성 지진과 같이 가까운 이웃의 재난뿐 아니라 멀리 중남미의 아이티에까지 고루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우리의 마음이 과연 얼마나, 어떤 성과를 거두었느냐 하는 계산이나 되돌아보기는 의미가 없다. 결코 생색내기나 과시가 아니라 모두 우리 본연의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된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고약한 뒷맛도 있다. 바로 일본의 경우이다. 역사적 피해와 갈등에도 순진하거나 어리석게도(?) 마치 내 일인 듯 두 팔 걷고 나섰다가 지금은 호되게 뒤통수를 맞고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되짚어봐야 할 게 있다. 무엇이든 과하면 부족함만 못한 법인데 왜 그처럼 지나쳤는지. 혹여 그때의 기획자들에게 안타까움 이외에 다른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설마 그럴 리가 없다 싶어 그저 어리석어 과했다고 여긴다. 어쨌거나 창고에 잔뜩 쌓아놓은 자신들의 국력에 머리라도 숙인 듯 착각하여 아직 그 재난의 흔적이 다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벌써 까맣게 잊어버린 저들을 어찌 하나. 그저 구제불능의 개망나니 이웃? 잘 모르겠다. 한번 호되게 맞은 뒤통수의 얼얼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테니 아마 현재의 어려운 경제 여건 때문이리라 생각된다. 하지만 어려울수록 나누며 돕는 게 이웃하는 이들의 도리이다. 더구나 필리핀은 우리가 아주 어려웠던 시절 피 흘리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았던 고마운 이웃이다. 지금 현장에서는 약탈마저 성행하는 모양이다. 그렇다고 눈살만 찌푸릴 일은 아니다. 사흘 굶어 담 안 넘을 사람 없다는 말도 있다. 절박한 이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에는 눈물부터 지어야 옳다. 그래서 지금은 무덤덤함이 과함이다. 일상의 삶에 바쁜 사람들은 곁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의식을 못한다는 것이다. 이럴 때 종을 울려주는 것이야말로 언론의 의무가 아닐까 싶다. 지난번에 과했다가 뒤통수까지 맞은 게 창피해 데면데면하는 것이라면 정말 못났다. 실수였다면 바로잡아야 할 게 아닌가. 우리가 진짜 올바른 정신과 따뜻한 마음을 지닌 이웃임을, 함께하는 이웃 중에서 진정으로 믿고 따를 만한 정신의 지주임을 보여줄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아무리 가진 게 많은 부자라도 그 힘만으로 사람들이 따르는 이를 이길 수는 없는 법이기에 더구나. 이제 지구촌이라는 이름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지구 반대편 남아메리카 대륙이건 아프리카이건, 길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우리 교민이나 여행객이 있고, 사건 사고라도 터질 양이면 우선 ‘우리나라 사람은?’하며 묻게 되니 말이다. 우리가 하는 행동거지 역시 마찬가지, 지구 반대편에서 실시간으로 듣고 보며 머리를 끄덕이거나 내저을 것이다. 사람이니 판단하는 것 역시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정승 집 개 상가에 머리를 조아리면 비웃을 것이고, 이해를 떠나 진심 어린 연민의 눈물을 지으면 멀리서도 공감하며 마음으로 다가올 것이다. 아버지의 선비 정신이어도 좋고 어머니의 보듬는 마음이어도 좋다. 올곧은 자세로 의연하게 세상을 안아가자.
  • 관동대지진 때 두살배기도 학살 당해

    관동대지진 때 두살배기도 학살 당해

    주일 한국대사관의 이사 과정에서 발견되어 19일 처음 공개된 명부들은 그동안 피해자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3·1운동과 관동 대지진 피살자의 신상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이 명부들은 1952년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기미년 살상자 수, 일본 관동 진재 희생자, 제2차 대전 시 징용자 및 사상자 수, 왜정하 애국사상운동자로서 옥사자 수 등을 조사 집계하라”는 지시에 따라 만들어졌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1953년에 만들어진 명부가 지금 공개된 것은 주일대사관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가기록원은 자료를 넘겨받아 3개월 넘게 분석작업을 벌였지만 총 67권의 명부를 모두 분석하지는 못하고 일부 지역을 골라 내용을 파악했다.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읍·면 단위로 성명,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그동안 3·1운동 순국자 가운데 독립유공자로 인정된 이는 총 391명에 불과하며, 지금까지 어떤 명부도 발견되지 않았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독립유공자로 53명이 포상받았고 8명이 포상 보류됐는데, 이번 명부로 100여명이 새롭게 확인됐다. 충청도 지역은 31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는데 69명이 이번 명부를 통해 추가로 확인됐다. 독립운동가 박은식은 1920년에 지은 ‘독립운동지혈사’에서 3·1운동 피살자 숫자를 7509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이번 명부가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작성된 것으로 북한 등 일부 지역은 행정력이 미치지 못해 피살자 숫자가 적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1923년 9월 1일 일어난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290명의 명단인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도 처음으로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 수는 독립신문이 1923년 11월 6661명으로 보도하고, 독일 자료에서는 2만여명으로 언급됐다. 일본에서의 피살자는 조사하지 못하고, 국내에 연고가 있는 사람만 조사되어 명단은 290명에 불과하나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피살 방식도 피살, 타살, 총살 등 다양하게 기록되었다. 경남 합천군을 연고로 하는 2살짜리 아기 등 이모씨 일가족 4명이 모두 학살당한 사례도 구체적으로 담겨 있다.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보상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는 피징용자 명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원본 기록으로 추정된다. 국가기록원이 보존하고 있는, 1957년 노동청이 작성한 피징용자 명부에는 28만 5771명이 등재되어 있으며, 이 가운데 우리 정부는 약 16만명을 피징용자로 인정했다. 이번에 발견된 명부는 남한 지역만 조사 대상으로 해 1957년 작성된 명부보다 5만 5990명이 적으나 생년월일, 주소 등이 포함되어 피해자 보상심의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으로 과거사 증빙자료로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한·일청구권 협정 때 명시안돼… 배상문제 새 쟁점 부상

    19일 일본 관동 대지진 피살자 및 강제징용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 명부가 새롭게 공개되면서 그동안 제대로 파악되지 않았던 강제 징용자와 피살자의 배상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부는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을 통해 징용 및 징병에 대한 배상이 포함된 청구권 자금을 일본 측으로부터 받았으나 이 과정에서 3·1운동 피해자와 관동 대지진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았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가 한·일청구권 협정 체결과정에서 활용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새로운 자료라는 점에서 추가 배상을 요구할 근거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자료는 우리 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잇따르고 이에 대해 일본 재계가 반발하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조태영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일본의 추가 배상 문제와 관련, “방대한 자료인 만큼 발견된 명부의 성격과 내용 등에 대한 상세한 분석 작업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유관순 열사 옥중서 타살당해” 3·1운동 희생자 명부 첫 공개

    3·1운동 피살자 명부와 1923년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가 최초로 공개됐다. 또 새로운 내용의 ‘일정(日政) 시 피징용자’ 명부도 추가로 발견돼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안전행정부 국가기록원은 19일 1953년 이승만 정부에서 작성한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 1권 630명, 일본 진재(震災) 시 피살자 명부 1권 290명, 일정 시 피징용자 명부 65권 22만 9781명 등 67권을 수집하여 분석한 결과를 밝혔다. 이번에 공개된 명부는 주일 한국대사관이 이전하는 과정에서 지난 6월 발견되어 8월 국가기록원으로 옮겨졌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이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내무부에 전국적인 조사를 지시해 이번 명부가 작성됐다. 1952년 2월 제1차 한·일 회담이 결렬되고, 1953년 4월 제2차 한·일 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되어 주일대사관에 보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관순 열사에 대해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당함”이라고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명부’는 217쪽의 습자지로 구성된 1권으로 지역별로 총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는 최초의 명부다.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도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장으로 구성되었으며, 290명의 명단이 담겼다. 박경국 국가기록원장은 “이번 명부는 전국적인 정부 조사 결과인 데다 주소나 생년월일까지 포함됐을 정도로 세세해 앞으로 피해보상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유관순 부친 유중권 열사도 3·1만세 때 총살당해”

    국가기록원이 19일 공개한 명부에는 일제의 만행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3·1운동 시 피살자 명부’는 유관순 열사에 대해 “3·1독립 운동만세로 인하여 왜병에 피검(被檢)돼 옥중에서 타살(打殺)당함”이라고 기록했다. 이어 유 열사 부친인 유중권 열사는 기미년 3월 1일 천안군 병천면 병천리에서 “3·1운동 독립만세로 인하여 총살당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유중권 열사의 바로 옆에 성명이 “이씨(李氏)”라고 표기된 여성이 등장하는데 주소·순국장소·순국상황란에 유중권 열사와 같다는 기호가 표기돼 있어 유관순 열사의 어머니로 알려진 이소제 열사로 추정된다. 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은 “기존의 3·1운동 관련 기록은 일본 경찰의 것으로 조선인 몇 명이 시위에 참가해 몇 명이 죽었다는 식이어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면서 “이번 명부에는 이름과 연령, 순국장소, 상황 등이 기록되어 처음으로 순국자들이 어떻게 순국했는지 알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재판기록 없이 독립만세 현장에서 사망해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한 독립유공자들을 확인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전망이다. 1923년 일본 관동지방에서 일어난 대지진의 혼란 속에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켰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넣고 다닌다’는 유언비어가 순식간에 퍼졌다. 6000~2만명으로 추산되는 조선인이 학살당했는데, ‘일본 진재 시 피살자 명부’는 국내 연고가 있는 290명의 피살자 참상을 담고 있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3·1운동, 日관동대지진 피살자 명단 최초 발견·공개

    한국 정부가 1953년에 전국적으로 조사한 3·1운동과 일본 관동(關東·간토)대지진 피살자 명부가 사상 처음으로 발견, 공개됐다. 이번에 우리나라 최초의 일제 강제징병자 세부 명부도 나와 일제강점기 피해보상 문제가 새로운 전기를 맞을지 주목된다. 국가기록원은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1953년 이승만 정부가 작성한 ‘3·1운동시 피살자 명부(1권·630명)’,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1권·290명)’,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65권·22만 9781명)’ 등 3가지 명부 67권에 대한 분석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지난 6월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이다. 국가기록원은 이를 이관받아 명부별 분석작업을 거쳐 이날 결과를 공개했다. 이들 명부는 1952년 12월 15일 제109회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내무부에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한 명부로 1953년 4월 제2차 한일회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고 기록원은 밝혔다. ’3·1운동시 피살자명부’에는 1권 217매에 지역별로 모두 630명의 희생자가 실려 있으며 읍·면 단위로 이름, 나이, 주소, 순국일시, 순국장소, 순국상황 등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그동안 3·1운동을 하다 순국한 이들 중 공식적으로 인정된 독립유공자 수는 391명에 불과한데, 이번 피살자 명부 발견으로 그 숫자는 3배 가까이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 독립운동가 박은식의 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된 3·1운동 피살자 수는 7509명이다. ’일본 진재(震災)시 피살자 명부’는 1923년 9월 1일 발생한 관동대지진 당시 희생된 한국인 명부로, 1권 109매에 모두 290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관동대지진 당시 한국인 피살자수는 6661명∼2만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구체적인 희생자 명단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 명부에는 관동대지진 희생자 이름 외에 본적, 나이, 피살일시, 피살장소, 피살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일정(日政)시 피징용(징병)자 명부’는 지금까지 작성된 피징용자 명부 중 가장 오래된 원본기록으로, 65권에 22만 9781명의 명단을 담고 있다. 이는 역시 1957년 한국 정부가 작성한 28만 5771명의 왜정시 피징용자명부에 비해 5만 5990명이 적지만 기존 명부에서 확인할 수 없었던 생년월일이나 주소 등이 포함돼 있어 피해보상을 위한 사실 관계 확인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록원은 내다봤다. 실제로 경북 경산지역의 경우 피징용자 4285명 중 1000여명이 종전 명부에는 없는 새로운 명단으로 밝혀졌다고 기록원은 설명했다. 박걸순 충북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과 관동대지진 당시 피살자 명부는 지금까지 학계에 알려지지 않은 최초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과거사 증빙자료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들 명부가 정부수립 직후 우리 정부 차원에서 처음으로 전국적인 조사를 통해 작성됐다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덧붙였다. 기록원은 이번에 수집한 자료를 국가보훈처 등 관련부서에 넘겨 독립유공자 선정과 과거사 증빙자료로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명부별 세부사항을 정리해 내년 초부터 일반인도 열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후쿠시마 핵연료 반출 18일 시작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 4호기 원자로의 핵연료 저장수조에서 핵연료를 밖으로 빼내는 작업이 18일부터 시작된다고 일본 언론들이 지난 16일 보도했다. 향후 30∼40년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후쿠시마 제1원전 폐로(해체) 과정에 본격적으로 진입한 셈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18일 오전 4호기 건물 상부에 설치된 크레인을 사용해 핵연료 수송용 용기를 수조에 넣은 뒤 오후부터 2일 정도에 걸쳐 수조 내 핵연료봉 22개를 용기에 담을 예정이다. 이후 도쿄전력은 용기에 저장된 핵연료들을 수조 밖으로 꺼낸 다음 현장에서 약 100m 떨어진 ‘공유 수조’로 옮기게 된다. 해체가 결정된 후쿠시마 제1원전 1~4호기의 수조에서 본격적으로 핵연료를 추출하는 것은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사고 이후 처음이다. 총 1533개의 핵연료봉(사용전 202개, 사용 후 1331개)이 있는 4호기의 수조에서 핵연료를 모두 추출해 옮기는 데는 약 1년이 걸릴 것으로 도쿄전력은 보고 있다. 4호기 건물은 대지진 당시 수소폭발로 크게 파손됐다. 또 다른 지진 등으로 수조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핵연료를 조기에 추출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제기됐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일제 징용피해자 명부·자료 대거 발견 “아직 안 알려진 의미 있는 내용도 포함”

    일제 징용피해자 명부·자료 대거 발견 “아직 안 알려진 의미 있는 내용도 포함”

    주일 한국대사관 청사를 이전하면서 한국 정부가 1950년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명부 및 관련 자료가 대거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파악됐다.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 6월 주일대사관 청사 신축에 따른 이사 과정에서 서고에 보관돼 있던 3·1운동 관련 희생자, 강제동원 피해자,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 피해자 등의 명부가 발견됐다. 이 자료들은 한국에서 작성된 문서와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이 자체 조사를 거쳐 작성한 피해기록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대사관은 이 문서에 대한 1차 분석을 거쳐 지난 8월 안전행정부로 이관했다. 이후 안행부 산하 국가기록원은 전문가, 관계기관과 함께 정부가 기존에 보유한 강제징용 한인 명부 및 자료와 대조·분석 작업을 벌였고 이르면 18일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기록원 관계자는 “강제동원 명부와 관련 자료가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분석작업에 시간이 많이 걸렸으며, 역사적이나 사료적으로 매우 가치가 있는 자료임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문서에 대해 한 정부 관계자는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의미 있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문서의 작성 목적과 관련, 다른 정부 소식통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협상때 일본에 제시하기 위해 작성한 문서로 보인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가 보관 중인 강제동원 관련 문서로는 정부가 작성한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와 일본이 한국에 넘겨준 유수(留守)명부, 피징용사망자 연명부, 해군 군인군속 명부 등이 있다. 이 중 왜정시 피징용자 명부는 한국 노동청이 1958년 대일 배상청구의 근거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1942∼45년 일본에 끌려갔던 피징용자 28만 5183명을 도별로 파악해 작성했다. 또 유수명부는 일본 후생성이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병된 16만 148명의 한국 군인·군속 등의 병적(兵籍)을 일본 부대장들의 보고를 토대로 작성한 문서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서울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속보] 일본 간토지역서 규모 5.4 지진

    [속보] 일본 간토지역서 규모 5.4 지진

    일본 기상청은 16일 오후 8시44분 수도 도쿄가 있는 일본 간토(關東) 지역에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진원은 북위 35.6도, 동경 140.2도의 지바(千葉)현 북서부 지역이며 진원의 깊이는 90km라고 기상청은 밝혔다. 이 지진으로 이바라키(茨城)현 남부, 사이타마(埼玉)현 남부, 지바(千葉)현 북서부, 가나가와(神奈川)현 동부 등에서 진도 4의 흔들림이 있었다. 진도 3이 측정된 도쿄 도심에서도 10초 이상 강한 흔들림이 감지됐다. 이 지진으로 쓰나미 경보는 발령되지 않았다. 우리 기상청은 일본 지진으로 국내 영향은 없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한 자 한 자 漢字쓰기 10년…상아탑 꿈★ 도운 주민센터

    한 자 한 자 漢字쓰기 10년…상아탑 꿈★ 도운 주민센터

    “그래도 제 앞에선 ‘다 늙어 대학 가서 뭐하게’라는 내색을 하지 않고 ‘대단한 결심 했다’ ‘애썼다’ 해 주니까 그게 고맙죠. 허허.” 14일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양판태(66)씨의 목소리에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양씨는 최근 기쁜 소식을 하나 받았다. 대전대 서예한문학과에 특기자전형으로 수시합격 통지를 받은 것이다. 애써 키운 4남매는 이래저래 대학 공부를 다 시켰으니 집에선 14학번으로 학번상 가장 막내인 셈이다. 양씨가 서예에 취미를 붙인 것은 2004년이다. 응봉동 주민센터에서 운영하는 서예교실에 들어가면서부터다. 뭔가 배워 보고는 싶었지만 그때만 해도 서예로 대학을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래도 어릴 적 어른들 어깨너머로 봐둔 건 있으니 주민센터에서 하는 다른 프로그램보다는 취미 삼아 하기 좋겠다 싶었죠.” 한자를 공부한 것도 아니다. “6남매였는데 집안이 어렵다 보니 학교 다녀와서 가방 던져 놓자마자 논밭일 돕기에 바빴어요. 그 시절에는 학자금 대출도, 알바라는 것도 없었으니 자연스레 그냥 공부를 그만둔 거지요.” 응봉동 주민센터에서 서예를 꾸준히 배워 나가면서 자신감이 붙었다. 한국서화협회에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대학에 가고 싶단 생각도 슬슬 들었다. “글씨를 써 가며 이런저런 책을 보다 보니 ‘공부라는 게 한번 만지면 어떻게든 끝을 봐야 하는 것이로구나’ 싶더군요. 더구나 요즘은 100세 시대 아닙니까.” 10년이나 글씨를 써 왔으면서도 굳이 대학에 입학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도 그 때문이다. “10년 썼다지만 쓰면 쓸수록 이제 입문이다 여겼습니다. 뭔가를 더 배워 한 단계 올라서고 싶었어요.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살아가는 데도 활력을 얻고 저 스스로에게도 새로운 자극을 주고 싶습니다.” 서예 공부를 도와준 주민센터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4년 동안 열심히 배워서 졸업작품은 꼭 주민센터에 기증할 수 있도록 할게요. 도와주신 서예교실 강사님들, 회원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서예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글귀를 꼽아 달라는 말에 양씨는 ‘새옹지마’를 꼽았다. “인생이 원하는 대로 살아지진 않지만 그래도 때론 이런 행운을 가져다주지 않습니까. 허허허.”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김연아, 필리핀 구호기금 10만 달러 전달

    김연아, 필리핀 구호기금 10만 달러 전달

    ‘피겨 여왕’ 김연아(23)가 최근 태풍 ‘하이옌’으로 큰 피해를 본 필리핀에 긴급구호기금을 내놓았다. 유니세프 한국위원회는 “김연아가 올해 큰 태풍에 피해를 본 필리핀 어린이들을 돕고 싶다며 긴급구호기금 10만 달러(약 1억 674만원)를 유니세프에 전달했다”고 14일 밝혔다. 유니세프 측은 이 기금을 필리핀 어린이들에게 식수를 제공하고 위생·교육 상태를 진전시키는 데 사용하겠다고 덧붙였다. 김연아는 2010년 유니세프 국제친선대사에 임명된 이래 꾸준히 재난을 당한 세계 어린이들을 돕는 데 힘을 보태 왔다. 친선대사로 임명되기 전이던 2010년 1월에는 아이티 지진 구호기금으로 1억원을 기부했고 이듬해 5월에는 세계선수권대회 준우승 상금을 일본 대지진 피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써 달라며 유니세프 측에 쾌척했다. 국내 소년·소녀 가장, 난치병 어린이들에게도 2010년부터 3년간 후원금을 냈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기능성 피톤치드 다운재킷

    기능성 피톤치드 다운재킷

    12일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 근처에서 아웃도어 브랜드인 밀레의 모델들이 신제품인 피톤치드 가공 다운재킷을 선보이고 있다. 피톤치드 다운재킷은 100% 국내산 편백나무로부터 추출한 피톤치드 원액을 첨가해 항균, 체취 제거, 집먼지진드기 제거 등이 가능한 기능성 제품이다.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 시속 380㎞ 태풍, 폭풍해일과 만나 도시 삼켜

    시속 380㎞ 태풍, 폭풍해일과 만나 도시 삼켜

    필리핀 중부를 강타한 초대형 태풍 ‘하이옌’으로 실종·사망자 수가 1만 2000명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면서 전 세계가 이번 태풍 피해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인명 피해를 놓고 다양한 이유들이 거론되고 있다. 우선 하이옌 자체가 역대 최고 수준의 위력을 지닌 태풍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에 따르면 하이옌의 최대 순간 풍속은 379㎞에 달한다. 미국의 관측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하이옌은 허리케인 ‘카밀’(1969년·시속 304㎞)을 넘어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자리매김한다. 일반적으로 태풍의 바람 세기는 보퍼트 풍력계급표에 따라 1∼12등급으로 나뉘는데 가장 강력한 바람인 12등급의 풍속 기준은 시속 118㎞ 이상이다. 육상에서는 이 정도 속도의 바람이 부는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JTWC가 관측한 하이옌의 최대 순간 풍속은 12등급 바람 기준치의 3배가 넘는다. 기상청 관계자는 “한국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의 바람이다. 나무뿌리가 뽑히고 건물이 흔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2003년 태풍 ‘매미’가 찾아왔을 당시 기록된 시간당 216㎞(초속 60m)가 최고 기록이다. 필리핀 기상당국은 지난 8일 하이옌 중심부의 최대 풍속과 최대 순간 풍속을 각각 235㎞와 275㎞라고 밝혔다. 미국의 관측치보다는 위력이 떨어지지만 이 경우에도 하이옌은 올해 발생한 가장 큰 태풍이자 관측 사상 네 번째로 강력한 태풍이 된다. 하이옌 내습 당시 생겨난 폭풍해일이 태풍과 상승 작용을 일으킨 것도 피해를 키운 요인으로 분석된다. 이번 태풍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중부 타클로반 지역의 경우 3m 높이의 해일이 일대를 덮쳤다. 현지 ABS-CBN방송은 “바다가 타클로반을 삼켰다”면서 “폭풍해일이 마치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나타난 쓰나미와 같았다”고 밝혔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도 거론된다. 기후변화로 태풍의 발생 빈도가 높아지고 바람의 세기도 강해지면서 하이옌 같은 ‘슈퍼 태풍’이 나왔다는 설명이다. 한편 태풍의 직격탄을 맞은 남부 타클로반 지역은 전력과 통신이 모두 끊기면서 약탈 등 각종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주민들이 상점을 약탈하고 현금지급기(ATM)를 부수자 경찰 병력이 긴급 배치돼 현지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헬리콥터 편으로 피해 현장을 방문한 베니그노 아키노 대통령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에 할 말을 잊었다고 수행한 볼테르 가즈민 국방장관이 전했다. 국제사회는 필리핀 태풍 피해 돕기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밸러리 에이머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HCA) 국장은 9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필리핀에 있는 유엔 기구들이 신속히 생필품을 지원하고 재난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필리핀 정부와 응급 구조당국을 지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연합(EU)도 즉각적인 지원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위클리 포커스] 핵연료봉 1533개… 떨어뜨리는 순간 ‘방사능 폭탄’

    [위클리 포커스] 핵연료봉 1533개… 떨어뜨리는 순간 ‘방사능 폭탄’

    후쿠시마 제1원전 4호기의 사용 후 연료풀에서 핵연료봉 1533개(사용 후 1331개, 사용 전 202개)의 추출 작업이 이르면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수습 작업이 제2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오염수보다 연료 추출 작업이 더 걱정된다”는 다나카 순이치 원자력규제위원장의 말처럼 작업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이 다량 유출될 가능성도 있어 일본 열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도쿄전력은 며칠 내 4호기 건물 위에 설치한 크레인을 이용해 사용 후 연료풀 안에 담긴 연료봉을 전용 용기인 캐스크에 담아 반출하는 작업을 시작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연료봉을 떨어뜨려 손상시키면 우라늄, 플루토늄을 비롯해 다량의 방사성물질이 유출된다는 점이다. 저장 수조에 폭발 잔해가 남아 있다거나 사고 당시 연료 냉각을 위해 바닷물을 투입했던 것도 변수다. 연료봉이 파손되거나 변형됐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우려인 연료봉 낙하를 막기 위해 도쿄전력은 크레인에 사용하는 철선을 이중으로 설치했다. 사고 당시 수소폭발로 날아가 버린 지붕 대신 철판을 덮은 상태인데 연료봉을 꺼낼 때는 방사성물질이 흩날리는 경우를 대비해 별도의 커버도 씌운다. 만에 하나 연료봉이나 캐스크를 떨어뜨리더라도 원전 부지 경계의 방사선량이 최대 0.0053밀리시버트(m㏜)를 넘지 않기 때문에 대량 피폭 위험은 없다는 게 도쿄전력의 주장이다. 그러나 그간 도쿄전력의 오염수 대응 행태 등을 보면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사고가 없더라도 시간은 많이 걸린다. 이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2014년 말에야 끝난다. 이 밖에 폐로가 확정된 1~3호기에 남아 있는 용융 연료(녹아내린 연료)는 총 1496개로 추정되는데 이들의 반출 방법은 아직 정하지도 못했다. 도쿄전력은 연료가 원자로 압력용기에서 격납용기로 흘러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방사선량이 워낙 높아 정확한 상태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도쿄전력은 오는 13일 카메라를 부착한 소형 무선조종 배를 이용해 1호기의 압력억제실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녹아내린 연료를 꺼내는 폐로 3단계 진입은 빨라도 2020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도쿄전력의 지난한 사고 뒷수습은 1979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섬(TMI) 원전 사고와 비슷한 양상을 띨 것으로 보인다. TMI의 경우 사고 후 6년이 지난 1985년에야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꺼내기 시작했다. 핵연료를 충분히 냉각시킨 뒤 분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작업에만도 5년이 걸렸고 처리 과정에서 나온 기타 액체 폐기물 처리와 사고 지역 정화 등까지 완전히 끝난 것은 사고 후 14년이 지난 1993년이었다. 1986년 원전 사고가 발생한 체르노빌의 경우 원자로의 방사성물질 누출을 중단시킬 방법이 없자 가로·세로 100m, 높이 165m의 콘크리트(5000t)와 납으로 묻어 버렸지만 이후에도 방사성물질이 계속 새어 나오는 등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4호기 방사능 수치 283~306”… 연료봉 제거 위험성 애써 축소

    “4호기 방사능 수치 283~306”… 연료봉 제거 위험성 애써 축소

    2011년 3·11 동일본 대지진 당시 수소 폭발로 건물 전체가 파손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4호기의 저장 수조에서 핵연료봉을 인출하는 작업이 다음 주 시작된다. 폐로(廢爐)가 예정된 원전 1~4호기 풀에서 본격적으로 연료를 꺼내는 작업이 시작된 것은 사고 이후 처음이다. 도쿄전력은 그동안 건물 잔해를 제거해 왔고, 이제 사용 후 연료와 미사용 연료를 저장 수조에서 꺼내 옮기는 2단계 작업에 진입한다. 이후 녹아내린 연료(용융 연료)를 꺼내고 완전히 폐로하기까지 30~40년이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막 첫걸음을 뗀 셈이다. 도쿄전력은 핵연료봉 추출 준비 작업에 들어간 4호기를 포함한 후쿠시마 제1원전 내부를 7일 주일 외국인 특파원 공동취재단에 공개했다. 외부 전체를 철판으로 둘러싼 4호기 안에서는 직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도쿄전력 관계자는 “이곳의 방사능 수치가 시간당 109마이크로시버트(μ㏜)”라고 설명했지만 공동취재단이 자체 공수해 온 방사능 측정기에는 ‘283~306μ㏜’라는 숫자가 찍혔다. 이곳 5층에는 가로·세로 10m 크기 연료 풀의 물 속에 잠긴 연료봉이 있다. 4호기 수조에는 현재 사용 후 핵연료봉 1331개와 사용 전 핵연료봉 202개 등 모두 1533개가 있다. 이 연료봉이 적당히 냉각됐으니 이를 모두 꺼내 100m가량 떨어진 공용 수조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추출 작업은 간단하다. 4호기 건물 위에 설치된 크레인을 이용해 연료봉을 꺼낸 뒤 길이 5.5m의 전용 용기인 ‘캐스크’(Cask)에 담는다. 연료봉을 담은 캐스크를 물 밖으로 끌어내 차에 실어 공용 수조로 옮기기를 반복한다. 한 번에 최대 22개밖에 처리할 수 없어 일러야 2014년 말에나 끝날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방식으로 처리해야 하는 연료가 1호기에는 392개, 2호기 615개, 3호기에 566개 더 있다. 이 작업을 마치면 2018년 말이 될 것으로 도쿄전력은 보고 있다. 핵연료봉 추출 작업의 현장 담당자인 도쿄전력의 하라 다카시는 공동취재단에 “2011년 사고 때의 수소 폭발로 엄청난 양의 잔해가 연료 저장 수조에 떨어졌고 지금은 수중 청소기 등을 이용해 대부분 제거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물 속에는 여전히 수많은 잔해가 남아 있어 연료 인출 과정에서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한편,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갑상선에 미친 영향 등을 확인하는 검사 결과가 대량으로 잘못 집계된 것으로 드러났다고 아사히 신문이 8일 보도했다. 후쿠시마현립의대는 담당자가 1년 반에 걸쳐 재검사가 필요한지 등을 판단해야 하는 130명분의 검사결과가 의사의 확인 없이 임의로 분류·집계됐다고 밝혔다. 후쿠시마 제1원전 공동취재단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 카로 에메랄드 “프라이머리, 우리 것 배꼈다” 분노

    카로 에메랄드 “프라이머리, 우리 것 배꼈다” 분노

    표절 논란에 휩싸인 힙합 프로듀서 프라이머리의 노래 ‘I Got C’의 원작곡자로 지목된 그룹 카로 에멜랄드의 프로듀서 데이비스 슈울러스(David Schreurs)가 트위터를 통해 분노를 표시했다. 슈울러스는 7일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너(프라이머리)가 우리 것을 배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늘이 무너지진 않겠지만 쿨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라고 적었다. 그는 또 “정당한 평가를 받아라”라고도 했다. 비판의 수위가 높은 것은 아니었지만 뮤지션으로서는 상당히 자존심 상할 수 있는 말이다. 프라이머리는 최근 MBC ‘무한도전-자유로 가요제’에서 박명수와 함께 발표한 노래 ‘I Got C’가 카로 에메랄드의 노래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프라이머리의 소속사 아메바컬쳐 측은 “기술적으로 전혀 다른 노래다. 레트로 스윙 장르다 보니 유사하게 들리는 것일 뿐 표절은 절대 아니다”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슈울러스는 최근 인터넷 연예매체와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내가 “I Got C”를 들을때, 우리 곡 중 3곡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I Got C’(아가씨), ‘해피엔딩’, ‘미스터리’ 각각에 대해 멜로디, 구성, 리듬, 코드 등 구체적인 부분까지 짚어가며 “유사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또 “프라이머리는 훌륭한 프로듀서이니 이제 자신의 재능을 믿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보도가 나온 뒤에도 아메바컬쳐는 “해프닝이 잘 마무리되는 것 같아 다행”이라면서 “더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겠다는 생각 뿐이다. 빨리 이 사태가 지나가길 바란다”는 말로 일축했다. 따라서 슈울러스의 글은 이런 소속사의 태도에 분개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사가 수업시간에 장애학생 귀를 라이터불로 지져 ‘경악’

    교사가 수업시간에 장애학생 귀를 라이터불로 지져 ‘경악’

    최근 서울의 한 특수학교에서 교사가 수업시간에 장애학생의 귀를 라이터 불로 지진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5일 서울시교육청 등에 따르면 서울 모 특수학교 A교사는 지난달 25일 고등학교 2학년인 B군이 수업시간에 졸자 라이터 불로 B군의 귀를 지졌다. 같은 반 학생의 학부모가 30일 국민신문고를 통해 민원을 넣었고 시교육청은 사건 발생 일주일 뒤인 1일 이 사건을 인지해 해당 학교에 조사를 나가 사실을 확인했다. A교사는 시교육청 조사에서 “아이의 잠을 깨우려고 벌인 일인데 실수였다”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A교사는 피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모두 사과했으며 재발 방지도 약속했다. B군은 정신지체 3급 장애학생으로 귀에 가벼운 화상을 입긴 했지만 병원 치료가 필요한 정도는 아닌 것으로 파악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교사는 교사 경력 20~30년 정도의 베테랑 교사인데 이런 일을 벌이다니 놀랍다”면서 “이는 교사의 기본적인 자질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해당 학교에도 기관경고를 내렸다”면서 “당사자에 일벌백계 차원의 확실한 징계를 내리도록 요구한 상태”라고 전했다. 아울러 “죄질이 나쁘지만 우발적인 사건이라 징계 자체는 경징계 수준에 그칠 것”이라면서 “개인적으로는 교사를 그만두게 하고 싶지만 그렇게까지 가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힘들어야 편하다니… 반전 남자 반전 매력

    힘들어야 편하다니… 반전 남자 반전 매력

    서인국(26)은 반전의 남자다. 72만분의1의 경쟁률을 뚫고 ‘슈퍼스타K’(슈스케)의 초대 우승자가 된 그가 가수가 아닌 배우로 먼저 자리를 잡게 될 것이라고는 본인은 물론 주변에서도 예상하지 못했다. 첫 주연작으로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노 브레싱’으로는 기대 이상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다. 요즘 그의 소속사에는 수십권의 영화 시나리오가 쌓이고 있을 정도다. 그 자신도 주위의 이런 반응에 어리둥절하기만 하다. “전혀 예상을 못했죠. 사실 제가 영화를 이끌 만한 외모도, 톱스타도 아니잖아요. 제게 기회를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죠. 기대에 못 미칠까봐 정말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청춘 영화로는 드물게 개봉 닷새간 28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순항 중인 영화 ‘노 브레싱’에서 은둔형 수영 천재 조원일을 연기한 그는 아직 다듬어지진 않았지만 날것의 풋풋함으로 가득한 연기를 펼쳤다. 원일은 수영 천재였으나 인생의 큰 트라우마를 겪은 뒤 희망을 잃고 살아가다 다시 최고 수영 선수의 꿈을 키워가는 인물. 그는 원일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저도 가수를 꿈꿨던 고등학교 때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눈치를 많이 받았죠. 망상에 빠져 살지 말고 그만두라는 주위의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렇게 죽어라고 노력해 가수가 됐지만 꿈을 이루고 나니 내일에 대한 기대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매달려 몇년을 살았어요. 그런데 원일을 만나면서 제 열정을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됐죠.” 슈스케에서 우승한 뒤 가수로 데뷔한 그가 한동안 실의에 빠졌던 것은 아마추어일 때는 몰랐던 현실의 벽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지상파 TV에서는 케이블 출신이라는 견제가 심했다. 나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을 많이 했고, 속도 많이 상했다”고 했다. 그렇게 막힌 길을 뚫어준 계기가 연기 데뷔작인 KBS 드라마 ‘사랑비’(2012)였다. “그때는 일종의 도피일 수도 있었겠지만, 살을 14kg이나 찌우고 더벅머리를 만들어 가수 서인국의 모습을 없애버리자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김창무 역할에 단단히 미쳐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저를 알리기 위한 도구로 연기를 이용한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데뷔작에서 고향인 울산 사투리로 연기자의 가능성을 보인 그는 지난해 tvN 인기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투박한 경상도 남자지만 속은 따뜻한 검사 윤윤제 역으로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누가 봐도 잘생긴 사람이 해야 되는 멋있는 캐릭터를 제가 했으니 참 부담스러웠다”면서도 “그 작품으로 배우로서의 다양한 얼굴을 소화할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가를 들었다”고 했다. ‘노 브레싱’에서 그는 눈빛이 살아 있는 수영 장면, 특유의 장기인 무심한 듯한 멜로 연기까지 두루 선보였다. 특히 긴 삼겹살을 자르지도 않고 한입에 우걱우걱 먹는 연기는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몸매를 드러내는 수영 영화인데 워낙 원일이 잘 먹는 캐릭터여서 살이 4~5kg 정도 붙었어요. 먹으면서도 대사를 하는 장면이 많았는데 어눌하게 들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또박또박 말하는 데 애를 많이 먹었고요.” 수영 천재를 연기하기 위해 박태환 선수와 마이클 펠프스의 수영 자세를 열심히 참조하기도 했다. 요즘 ‘대세’인 이종석(극중 수영 경쟁자)과의 연기 신경전도 만만치 않았다. “수영 장면은 카메라가 워낙 가까이서 잡기 때문에 대역을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어요. 한동안 휴대전화 메인 화면을 박태환 선수로 설정해 놓고 수영의 기초부터 다시 다졌어요. 친구랑 헬스장을 가도 신경이 쓰이는데 종석이와 왜 라이벌 의식이 없었겠어요. 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그 친구는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로 한창 바빠 훈련 시간을 제대로 못 맞췄는데도 잘 해내더라고요. 수영 감각을 타고난 친구 같았어요.” ‘까도남’ 같은 이미지의 이종석이 먼저 친근하게 애교를 부리며 다가와 줘서 정말 고마웠다는 그다. “촬영할 때 몸이나 마음이 힘들지 않으면 뭔가 영 찜찜하다”는 그에게서 배우의 근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연말에 생애 첫 콘서트를 열 생각으로 온통 들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영락없는 가수다. “가수는 제가 정말 사랑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절대로 놓지 않을 겁니다. 연기도 마찬가지죠.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계속할 거예요. 연기와 노래는 제게 오른손, 왼손 같은 거죠. 어느 쪽이 더 좋다고 이야기할 수 없을 그런 것. 평범한 인생에서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지독한 악역에도 도전해 보고 싶고요. 뭐든 잘해내야죠. 전 더 이상 아마추어가 아닌 프로니까요.”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사설] 경상흑자 일본 첫 추월 박수치긴 이르다

    올해 우리나라의 경상수지 흑자액이 일본을 처음 앞지를 것이라는 소식은 격세지감이란 말을 떠올리게 한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일본의 경상흑자액은 약 1594억 달러로 우리나라(32억 달러)의 무려 50배였다. 격차가 많이 줄었다고는 하나 여전히 일본의 경제규모는 우리나라의 6배다. 그런 일본을 제치고 우리나라가 해외에서 더 많은 달러를 벌어들일 것이라고 하니 기록적인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손뼉을 치기에는 걱정스러운 대목이 많다. 실력에 의한 역전이라기보다는 일시적인 요인에 기댄 측면이 짙기 때문이다. 올 1~8월 우리나라의 경상흑자는 422억 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일본은 415억 3000만 달러다. 우리나라가 약 7억 달러 많다. 이런 추세라면 연간으로도 우리나라가 일본을 30억 달러가량 앞지를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렇게 되면 두 나라의 통계 비교가 가능한 1980년 이후 첫 역전이다. 한때 2000억 달러가 넘었던 일본의 경상흑자액이 거의 4분의1 토막 난 것은 2011년 동일본대지진 탓이 크다. 원전이 멈춰서면서 대체 에너지 수입이 급증한 것이다. 소니 등 주력 수출군이었던 전기전자업체가 급격히 쇠락하고 아베노믹스로 엔화가치가 지난해 말 이후 40%가량 떨어진 것도 경상수지의 달러 환산액을 갉아먹었다. 거꾸로 우리나라는 원화가치가 강세를 보이면서 경상수지 달러 환산액이 늘었다. 작년 2월부터 올 9월까지 20개월 연속 경상흑자 행진을 이어오고 있다지만 수출이 많이 늘어서라기보다는 경기 부진으로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든 데 따른 불황형 흑자 성격이 강하다. 한마디로 경상 흑자의 일본 추월은 내가 잘해서라기보다는 상대의 부진과 요행이 겹쳐 빚어낸 반짝 승리인 셈이다. 최근 우리의 수출이 살아나는 기미이기는 하지만 엔화 약세가 다시 가속화하면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올해 선박수주량은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다시 내줄 공산이 높다. 세계 5위(생산 기준)까지 치고 올라간 자동차는 좀체 한 단계 도약을 하지 못하고 있다. 휴대전화도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렀지만 그 이후의 성장동력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조만간 재역전될 가능성이 농후하고 큰 의미도 없는 ‘역전’ 기록에 취하지 말고 새로운 먹거리 발굴에 주력해야 한다. 당장은 선진국의 돈 풀기 파티가 끝나면 곧바로 닥쳐올 것이라는 환율전쟁의 경고에 바짝 귀를 기울이고 대비해야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