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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 배낭여행-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유럽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배낭 멘 여행길에선 낯모르는 이와 “안녕” 하고 입만 벙긋하는 인사만으로도 말꼬리가 길어진다. 어디서 왔는지 이름이 뭔지 아주 사소한 호감부터 “너 지금 행복하니?” 선문답 같은 대화에 이르기까지. 나는 꿈꾸듯 거닐며 수많은 이방인들과 옷깃 스치는 인연을 맺었다. 이를테면 옷깃스침 동행이랄까. 유럽 땅에서 보낸 보름의 낮과 밤, 나는 마냥 행복했다가 돌연 쓸쓸해지고 그지없이 황홀했다가 못내 아쉬워 어쩔 줄 모르는 순간순간을 맞이한다. about ‘동행’ 본 기사는 SJR EUROPE에서 론칭한 ‘동행’ 상품을 따라 여행한 기록이다. 3월27일부터 4월12일까지 프랑스 파리를 시작으로 이탈리아 로마에 이르기까지 총 6개국 18개 도시를 탐방했다. tip 1 동행 상품가 외에 옵션투어 비용, 식비, 자유 여행을 하면서 지출한 교통비와 각종 입장료 등 15박 17일의 현지에서 지출한 여행경비는 120만원 남짓. 기념품 구입 또는 개인 쇼핑 품목이 많을 경우에는 더 넉넉하게 준비하는 것이 좋다. tip 2 파리의 라스파일 시장과 몽파르나스 묘지, 뮌헨의 영국정원과 슈바빙, 프라하의 카프카 뮤지엄, 비엔나의 레오폴드 뮤지엄, 베네치아의 리도섬과 부라노섬 등은 기본 투어가 아닌 자유 시간을 활용해 여행했다. 기본 투어에 해당하는 파리, 프라하, 비엔나, 베네치아, 로마 등의 주요 도시 투어 역시 일부 구간 동행 후 자유로이 움직였고, 옵션 투어 가운데 바티칸 시국은 개별적으로 방문했다. France Mont Saint Michel, Paris 파리에서 지도 없이 걷기 기어코 파리. 파리는 독보적이다. 자정 가까이 늦은 밤에 도착한 파리였지만 여행에 앞서 만난 선배의 말이 실감이 됐다. “아마도 네 마음과 부단히 싸우는 여행이 될 거야.” 어디부터 갈까, 뭐부터 할까, 마음은 급한데 결정은 못하고, 그럼에도 파리에서는 어느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 여행은 이튿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파리 몽파르나스 타워 가까이에 위치한 호텔Campanile Maine Montparnasse 로비에서 15박 17일간의 동행들과 만났다. 며칠 전에 도착해 이미 파리에 푹 빠진 이도, 스페인이며 어디며 이제 막 국경을 넘어온 이도 있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동행을 태운 버스는 파리를 조금 아껴두고 4시간여를 달려 프랑스의 끄트머리 몽생미셸Mont Saint Michel에 닿았다. 성 미카엘 대천사의 신성한 산성, 몽생미셸은 노르망디Normandie 해변에 떠 있는 아주 작은 바위섬이자 중세로부터 오랜 역사를 이어온 수도원이다. 일대는 드넓은 갯벌이다. 바닷일을 하던 사람들은 이 바위섬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다. 워낙에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밀물썰물의 간격이 짧아 많은 이들이 휩쓸려 버린 탓에 ‘몽통브mont tombe’, ‘무덤 산’이란 고약한 별칭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던 8세기 초반의 어느 날, 인근 아브랑쉬Avranches 지역 오베르St. Aubert 대주교의 꿈에 성 미카엘이 나타나 예배당을 세울 것을 명령했고, 그후 서서히 모습을 달리한다. 14세기 백년전쟁 때에는 전투 요새로, 18세기 대혁명 시절에는 감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오늘 내가 마주한 몽생미셸은 고되고 혼란스러운 노르망디의 역사가 쓸려가고 다시금 수많은 순례자와 여행자들이 밀려오는 축복의 성지다. 그 물살에 실려 동화 속 풍경처럼 아른거리는 몽생미셸 속으로 들어간다. 바위섬 꼭대기의 수도원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은 좁고 가파르지만 저마다의 특색을 살린 호텔과 기념품 가게를 눈으로 즐기고, 입으로는 짧은 물때를 맞추기 위해 빠르고 간편하게 요리하고 먹을 수 있는 이곳의 대표음식 오믈렛과 사과 파이, 발효주 시드르Cidre 등을 즐긴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들어선 수도원에서 갯벌 뒤로 어디서부터가 바닷물인지 모를 그저 눈부신 노르망디 해안을 실눈으로 조망한다. 드디어 정말, 파리의 아침이다. 알람이 울리기 전 진작에 일어나 부산을 떨었다. 조식 서비스를 마다하고 향한 곳은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er.’ 카페 홀을 등지고 바깥 거리 쪽 테라스 좌석에 앉아 에스프레소와 크루아상으로 파리지엔의 밥상을 받아든다. 그러나 난 이따금씩 꿈꿨다. 저마다의 삶을 일구고 있는 파리지엔들마저 도시의 풍경으로 소비되는 파리에서 보들레르가 말한 ‘플라뇌르flaneur’, 이 도시의 산보객이 되는 순간을. 개인의 삶과 분리하여 도시 자체를 관찰하고 감상하는 한가한 무리가 되는 것이야말로 파리를 가장 파리답게 소비하는 방법이 아닐까. 자리를 털고 일어났지만, 카페 드 플로르에서 몇 발짝 나가지 못하고 바로 옆 서점에서 발길을 멈춘다. 막 문을 여는 참이다. 출근하는 서점 직원들을 따라 들어가 바바리코트 차림의 백발 할아버지들과 책 구경을 한다. 파리를 담은 사진집 몇 권을 골랐다. 그리고 다시 감이 이끄는 대로 걷다 ‘라스파일 시장Marche Biologique Raspail’에 이른다. 화요일과 금요일이면 우리의 오일장처럼, 라스파일 도로변에 장이 선단다. 일요일에는 파리 근교에서 재배하는 유기농 식재료를 사고파는 유기농마켓이 열린다. 운이 좋다. 마침 장날이다. “봉쥬르.” 늘어선 가판 너머에서 들려오는 싱싱한 인사와 한 손에는 애견, 다른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든 동네 할머니와의 연속된 조우. 그리고 갖가지 방식으로 조리한 올리브를 맛보기로 건네는 손길까지 의도치 않게 살가운 일상을 공유한다. 예상치 못했던 진짜 파리지엔의 모습.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몽파르나스 묘지Montparnasse Cemetery에는 안내지도를 들고 명망가들의 묘를 찾는 이들이 꽤 많다. 시장에서 산 빨간 딸기를 베어 먹으며 보들레르 묘 앞에 마주앉은 나는 잠시 시간여행자로 전환된다. 아, 파리에서의 3일은 턱없이 짧다. 나는 파리를 빠르게 읽기로 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튈르리 정원과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쉬지 않고 걸었다. 그 긴긴 길 위엔 셀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많은 의자가 줄지어 있고 그 위로 걸음을 멈춘 사람들이 기대어 있었다. 그날 밤, 중세 파리 투어를 했던 동행 몇몇이 해질녘 몽마르트르에서의 낭만을 안주 삼아 조촐한 와인 파티를 열고 있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가는 것만으로도 이유가 되는 장소가 있다. 지칠 대로 지쳤지만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다음날, 동행들로부터 귀동냥한 정보를 중얼거리며 뤽상부르 공원Le Jardin du Luxembourg에서 아침 산책을 했다. 오늘 역시 조식 서비스 대신에 공원의 작은 카페테리아에서 크레이프와 커피로 덜 깬 잠을 달랜다. 조깅하는 파리지엔과 이른 아침부터 가이드 뒤를 쫓는 단체여행객들을 번갈아 바라봤다. 까짓것 부지런해져 보지 뭐. 반의반, 그 일부만이라도 보겠다고 오르세 미술관Musee d’Orsay으로 갔다. 역시나 나의 관심사는 미술작품보단 ‘오르세’라는 공간과 그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므로 두어 시간이면 될 거라는 건방진 생각이 있었다. 말도 안 된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오르세는 물론 파리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다. 그냥 넋 놓기로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난 몽마르트르Montmartre 언덕 한가운데서 본의 아니게 낯선 구경꾼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몽마르트르의 예술가에게 초상을 맡기고 싶었지만 여유가 없었다. 붓 대신 가위를 들고 2~3분 만에 옆모습 실루엣을 종이에 오려 준다는 거리 예술가 앞에 앉았다. 대개 어린 아이들이 재미 삼아 하는 것 같았다. 관심의 대상이 나인지 예술가의 손놀림인지 모르겠더라. 카메라 플래시가 여기저기서 터진다. 민망함을 누르는 동안에 완성된 나의 실루엣. 하나도 안 닮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탐이 나는 파리에서 마지막은 바토 무슈Bateaux Mouches 위에서의 센강 유랑이다. 저마다의 파리를 즐긴 동행들이 하나둘 선착장으로 모여 이야기를 쏟아낸다. 듣는 이는 드물다. 알알이 불씨 오른 에펠탑이 가까워진다. 탄성이나 호들갑 없이 오히려 조용해진다. 파리의 밤이 강물 따라 흘러간다. ▶travie info 동행 프로그램은 여행하는 도시 가운데 주요 도시에서 지식 가이드를 제공한다. 프랑스에서는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1일 투어를 기본 일정에 포함하고 있고 파리에서는 2가지의 옵션 투어가 준비되어 있다. 옵션 투어는 물론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지식 가이드 투어에도 강제사항은 없다. 개인의 여행 기호를 존중하여 얼마든 자유 여행이 가능하다. route 1. 루브르 박물관+중세 파리투어 샹젤리제 거리→개선문→루브르박물관→중식→시테섬→노트르담성당→최고재판소→콩시에르쥬리→시청사→퐁피두센터→사요궁전(에펠탑 조망) route 2. 오르세 미술관+파리 인상파 투어 오르세 미술관→로댕미술관 정원→몽마르트르 언덕(성심성당, 예술인의 광장, 피카소의 작업실, 물랭루즈(조망))→개선문(샹젤리제) Switzerland Interaken,Luzern,Mürren,Mürren 만년설 위로 반짝이던 하루 파리 유랑을 끝낸 동행들이 모두 버스에 올랐다. 꼬박 8~9시간 몸을 구겨 잠을 청해야 한다. 다들 오랜 시간의 쪽잠이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려서인지 금세 잠에 빠진다. 조금 깊이 잠들었다 깨어났다.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는데 여전히 낯선 도로 위다. 예상치 못한 거센 눈발로 좀더 안전한 길을 찾아 돌아가고 있다고 했다. 다행이다. 이번 여정은 이 야간이동을 시작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라하까지 여정의 절반 이상을 이 버스 한 대로 움직인다. 유럽 배낭인데 유레일이 아니고 버스라니 처음엔 갸웃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도시간 이동에 소비되는 시간과 번거로움을 줄일 수 있어 나로선 반가운 일이다. 예상보다 한두 시간 늦었지만 무사히 인터라켄이다. 도시락으로 요기한 동행 대부분이 ‘Top of Europe’ 융프라우에 오를 채비를 한다.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인터라켄에서 나는 과감히 융프라우를 포기했다. 이미 올랐다는 것이 큰 이유였지만 파리 파노라마가 가시기 전 유럽의 지붕 아래서 그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지난 여행에서 아쉽게 놓쳤던 청정마을 뮈렌Murren 행 기차에 올랐다. 기착지 라우터브루넨Lauterbrunnen에서 케이블카로 갈아타기 전 마을의 작은 카페에 들러 따뜻한 홈메이드 스프 한 그릇을 먹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눈에 파묻힌 것만 같은 집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뮈렌에서 단출한 워킹화에 의지하여 곧 미끄러질 듯 뒤뚱거리며 걷는다. 날쌔게 지나가는 스키어들은 물론 눈썰매 힘껏 지치는 어린 아이들도 탄탄한 기운을 뿜어낸다. 변덕스런 날씨로 여행자 애태우기 일쑤인 그날의 융프라우는 다행히 쾌청했다고 동행들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하산했다. 오늘은 다들 세상 모르고 잠이 들겠지. 하얀 솜사탕처럼 멀리 뭉게뭉게 겹쳐 있는 알프스 산맥의 품속에서 그만큼 달달한 꿈을 꾸면서. 이른 아침인데 하늘을 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알프스 높은 곳 어디에선가 발을 뗐을 패러글라이더들이 드문드문. 지천이 눈꽃, 상고대로 뒤덮인 산길을 지나 어느새 루체른Luzern이다. 호반 위로 얌전히 뻗은 카펠교Kapellbrucke를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스위스의 고즈넉함을 맛본다. Germany Füssen, Munich 찰나지만 더없이 벅찬 순간 몇 시간 후 국경을 넘어 독일 퓌센Fussen에 도착했다. 오후 4시 전후인데 벌써 어둑하니 날씨가 궂다. 저 멀리 노이슈반슈타인 성Schloss Neuschwanstein이 보인다. 이곳이야말로 진정한 동화 속 모습이다.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등장하는 상당수 장면의 배경이니 말이다. 성의 일부가 보수공사 중인 데다 성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는 마리엔 다리는 기상악화로 출입이 통제된 상황이라 아랫마을에서 성의 초입까지 짧은 산책으로 만족하고 서둘러 뮌헨으로 방향을 틀었다. 늦은 밤에 도착한 뮌헨Munich은 몹시 차분했다. 물론 호프브로이하우스Hofbrauhaus는 달랐다. 동행들과 우르르 몰려간 호프브로이하우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맥주홀답게 사람도, 맥주도, 열기도 거품이 일 듯 넘쳐났다. 뮌헨에선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동행들이 삼삼오오 빈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파리에서의 3박 4일이 짧다 투덜댄 것이 무안할 정도로 뮌헨에선 아주 잠시 머물렀다. 그래도 슈바빙Schwabing과 영국정원Englischer Garten만은 양보할 수 없었다.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읽었던 책의 잔상 때문이었을 게다. 이젠 어떤 내용이었는지 줄거리조차 생각나지 않는데 책을 읽으며 머릿속으로 그렸던 슈바빙과 영국정원의 모습만은 또렷했다. 오스트리아로 출발하기 전, 자유로운 3시간이 주어졌다. 호텔 리셉션에서 지도 한 장과 함께 효율적인 동선을 추천받아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곧 멎을 것처럼 숨이 찼음에도 자전거와 유모차가 차례로 엇갈려 지나가고 오리와 거위가 벤치를 돌며 길동무 해주는 영국정원에서 더 깊이 차가운 공기를 들이킨다. 그리곤 지그재그로 훑어 내려간 슈바빙. 짧아서 아쉬웠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호하다. 전혀. 그곳에 내가 존재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벅차기만 한 걸. 찰나일지라도. 다시 올라탄 동행 버스, 차창에 스치는 풍경은 눈 깜빡일 때마다 영화 스틸 컷이 된다. 할슈타트로 가는 길이다. 휴대전화로 알림 메시지가 계속 들어온다. 네트워크 설정을 알리는 메시지. 버스가 조금만 방향을 바꾸어도 네트워크 설정이 달라진다. 독일 통신망을 잡았다가 오스트리아 통신망을 잡았다가. 이윽고 조용해졌다 싶었을 때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그곳, 할슈타트 끄트머리에 있었다. Austria Hallstatt, Salzburg, Vienna 유럽의 작은 마을들을 가다 여전히 하얀빛을 발하는 눈이 마을을 살포시 덮고 있다. 그만치 차가운 공기가 뺨을 스친다. 춥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상쾌하면서 동시에 차분해지는 기분. 깜빡 졸다 깨나니 어느새 할슈타트Hallstatt 호수다. 할슈타트는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사이에 있다. 할슈타트를 포함하여 이 일대를 보통 잘츠카머구트Salzkammergut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호수를 끼고 있는 이곳의 작은 마을들은 알프스 아래 투명한 빛을 머금고 있다. 모두 자석에 이끌리듯 호숫가로 내달린다. 공기 중엔 감탄만이 존재한다. 떠나오기 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부터 모차르트, 클림트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의 훈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궁금했던 것은 그들이 태동한 마을, 도시, 공간 그 자체였다. 할슈타트에서는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과 이후 잠깐의 산책이 허락됐다. 호수 가장자리 꽤 경사진 산자락을 타고 올라가는 할슈타트의 집들. 집 위에 집, 그 위에 다시 집이 층층이 피라미드를 이룬다. 그런 까닭에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비탈 아래 집의 다락방 또는 굴뚝과 눈이 마주친다. 집 앞 정원, 뒤뜰은 물론이고 담장, 벽면, 창틀에 이르기까지 매일매일 부지런히 쓸고 닦고 손질하는 정성이 느껴진다. 골목길에 맞닿은 벽면에 벤치를 놓은 집들이 많다. 허락 없이 잠시 엉덩이를 붙인다. 등허리를 기대고 가만히 마을을 관찰한다.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연기를 보자 허기가 밀려온다. 이미 때는 놓쳤고 아쉬운 대로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 투박한 파운드케이크 한 조각과 핫초코 한 잔을 주문한다. 할슈타트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동행 버스는 잘츠부르크Salzburg에 도착했다. 재빠르게 캐리어를 호텔 방에 밀어두고 저녁나절 동행의 지식 가이드를 따라 나선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었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ten을 지나 모차르트의 생가가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gasse까지 단숨에 잘츠부르크 구시가를 가로지른다.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차례로 맛보며 오스트리아 스타일의 만찬을 가져볼까 잠시 고민. 하지만 생선요리를 판매하는 이곳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몇 가지 요리를 포장하고 기차역 안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슈니첼과 케이크, 과일 그리고 와인까지 푸짐하게 장을 본다. 호텔 방 안에 차려낸 배낭여행자의 잘츠부르크식 만찬에 흡족해하며 여행 친구들과 꽤 긴 수다를 늘어놓는다. Czech 에곤 실레 그리고 카프카 할슈타트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체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좁다란 골목골목으로 이어진다. 이곳에 와서 알게 된 재미난 사실 하나. 모차르트 엄마 그리고 에곤 실레 엄마의 고향이 각각 할슈타트와 체스키 크룸로프라는 것. 처음엔 웃어넘겼는데 그게 아니다. 두 예술가와 그들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굉장한 포인트. 특히나 엄마의 고향 체스키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에곤 실레Egon Schiele는 한동안 이곳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했다고 한다. 체스키를 표현한 작품도 상당수.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익은 에곤 실레의 초상과 작품으로 디자인한 전시 포스터들이 벽을 도배하고 있다. 마을에는 그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The Egon Schiele Art Centrum도 있다. 굴라쉬 브런치를 즐긴 다음 그가 걸었을 법한 골목을 따라 크룸로프 성으로 향했다. 성의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르는 동안 자주 걸음을 멈췄다. 가파르기도 했지만 시야가 트이는 성벽길에 접어들자 체스키 크룸로프의 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성벽 아래로 흐르는 강물은 그 너머의 마을 가장자리를 둥그스름하게 에두르고 그 안쪽에 중세의 시간을 간직한 집들이 소복히 모여 있다. 을씨년스러운 날씨임에도 마을엔 아늑한 기운이 유유히 흘렀다. 그리고 프라하Prague는 역시나 아름다웠다. 바츨라프 광장에서부터 화약탑, 천문시계, 카렐교까지 프라하 구시가를 동행 매니저의 꼼꼼한 가이드를 따라 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카렐교 위에서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쁜 연인들을 뒤로하고 다리 난간에 바싹 붙어 프라하 성을 바라본다. 카렐교 건너의 펍에서 벨벳 맥주 한 잔. 부드러운 벨벳 거품이 입술에 닿자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그러나 그 기쁨은 스쳐 지나갈 뿐이었나. 잔이 빌 때쯤 이제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고 있음을 셈하게 된다. 달게 자고 일어난 프라하의 아침은 지난밤만큼 아름다웠다. 성비투스성당, 황금소로가 이웃하고 있는 프라하 성 일대를 함께 둘러보는 동행 가이드 투어 이후엔 홀로 프라하 시가지를 쏘다녔다. 가능하면 외면하고 싶었음에도 끝내 제 발로 찾아갔다, 카프카Franz Kafka를. 마냥 들뜨고 신나게 보내도 아쉬움 가득할 여행길에서 가슴 철렁할 것이 분명한데도 어느새 나는 카프카 뮤지엄Franz Kafka Museum 속을 헤매고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닙니다. 꺼져 가는 꿈과 열정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으로 뒤덮인 시간이라는 태양의 갈라진 바닥을-잠수종 속에서처럼-우리는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곳은 재미있는 곳이긴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람을 숨 막히게 하는 곳입니다.” -프란츠 카프카, 구스타프 야노우호의 <카프카의 대화> 인용문 中 카프카가 남긴 기록을 보는 사이 낭만적이기만 했던 프라하는 한순간에 반전된다. 숨이 턱 막힌다. 달달한 체코 전통빵 뜨르들로Trdlo를 뜯어먹으며 어지러운 마음을 다스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곧 프라하를 떠난다. 숨 가쁘게 도착한 다음 여정은 비엔나Vienna.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데 오스트리아에서 꼭 맛보아야 한다는 슈니첼과 비엔나커피를 에곤 실레와 맞바꾸고 나는 다시금 배고픈 여행자가 된다. 레오폴드 미술관Leopold Museum에서 만난 에곤 실레.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을 담은 작품 앞에 섰다. 에곤 실레의 체스키는 내 기억 속의 그곳보다 훨씬 어둡고 울적했지만 나로선 참 반가운 장면이다. 오스트리아에서 체코, 다시 오스트리아로. 공간이 다르고 에곤 실레와 나 사이의 시간 또한 다르지만 그 사이를 연결하는 풍경이 있고 그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이 여행의 순간에 감사한다. ITALY Vaticano,Rome,Veneziam,Sorrento,Sorrento,Sorrento 냉정해질 수 없는 이탈리아 여행 오늘 나는 생애 첫 야간열차를 경험한다. 비엔나에서 베네치아까지. 꼬박 12시간이 지나면 그토록 원했던 베네치아에 닿는다. 이번 동행길에서 가장 기대한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다. 6개의 간이침대가 세 개씩 양 벽면을 의지해 층을 이룬 열차 칸은 비좁았다. 부피 큰 캐리어는 침대 아래 보관함에 들어가지 않아 양쪽 침대 사이에 나란히 줄지어 세웠다. 그 위로 다시 작은 짐들을 포갠다. 이제 열차 칸의 여섯 명은 발 디딜 공간 하나 없이 밤을 달린다. 열악했지만 싫지만은 않았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이 모든 것이 야간열차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이라고.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친구와 단둘이 감행했던 여행이 떠올랐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여 두근두근했던 그 느낌. 한참 줄을 서 겨우 고양이 세수를 했다. 슈니첼 한 덩이를 패티로 넣은 버거와 커피 한 병. 자정 가까이 돼서 맛보는 제대로 된 첫 끼니다. 꿀맛. 푸르렀다. 물이 곧 땅인 베네치아Venezia에서는 모든 것이 맑고 푸르렀다. 동행들과 베네치아 본섬 투어에 나섰다. 떠밀리듯 걸을 수밖에 없을 만큼 본섬엔 여행자들로 가득했다. 그 북적임이 베네치아를 더욱 활기 넘치게, 역동적으로 만들어 준다. 그 물결을 따라 조금 멀리 나가 보자. 배에 올랐다. 리도 섬Lido으로 가는 배다. 매년 가을, 베니스영화제가 열리는 아름다운 섬 리도의 4월은 따사로웠다. 흐드러진 벚꽃과 나뭇가지마다 터져 나온 초록 잎사귀들로 봄기운이 물씬했다. 한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세계의 끝은 낮고도 깊어 그 끝을 가늠할 수 없었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반짝이는 해변에서 태양 빛을 그대로 흡수한다. 허리춤에도 못 미치는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바다 가까이 다가간 아빠, 양동이와 집게를 들고 바닷가의 쓰레기를 줍는 할아버지, 파도를 마주하고 앉아 무심한 얼굴로 사과를 베어 문 젊은 연인. 영화와도 같은 삶의 순간들이다. 리도에서 배를 두 번 갈아타고 도착한 부라노 섬Burano은 색색이 선명했다. 바다로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데칼코마니 풍경을 찍어내는 부라노의 색채는 바다로 나간 이들이 짙은 안개 속에서도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집집마다 알록달록 칠을 한 것이 오늘날로 이어진 것이라고 했다. 예쁘다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곳. 거품이 절반이나 되는 폭신한 카푸치노 한 잔을 들고 본섬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안녕, 부라노. 안녕, 베네치아. 행복한 비명을 지른다. 베네치아의 축복 속에 헤엄치던 나는 어느새 피렌체Firenze 산타마리오 델 피오레 대성당Cattedrale di Santa Maria del Fiore, 한 마디로 두오모Duomo 꼭대기에 올라 있었다. 두말 할 것 없이 <냉정과 열정 사이>를 곱씹으면서. 찰나에도 시작과 끝은 있다. 조금씩 여행의 끝이 보인다. 동행의 마지막, 종착역은 로마 떼르미니. 악명 높은 떼르미니역 플랫폼에 내리는 순간부터 동행들 사이에 긴장감이 맴돈다. 마지막 여행지니 모두들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추억을 만들고 싶지 않은 게지. 주변을 살피고 짐 가방 단속도 단단히 한다. 이제 로마Rome의 법을 따를 시간이다. 이튿날 아침, 로마의 여인 오드리 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날름날름 맛있게 먹었던 영화 <로마의 휴일>의 촬영지인 스페인 광장Piazza di Spagna을 시작으로 트레비 분수, 베네치아 광장, 판테온, 나보나 광장까지 세상 모든 길이 통한다는 로마의 중심을 통과한다. 촌스럽게 무슨 동전 던지기를 하냐고 피식 비웃었던 나는 어둔 밤 조명 밝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 앞에서 슬그머니 동전을 꺼내들었고, 칠칠치 못하게 거리에서 무슨 젤라또를 날름거리냐고 흉봤던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맛있다는 젤라또 가게를 찾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 시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테베레강 건너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마을에 이르러서야 느긋한 한때를 보낸다. 중세로부터 이어진,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라고 했다. 꼭 유명한 집이 아니라도 동네 어귀 작은 카페며 레스토랑 어디엘 들어가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커피와 피자를 맛볼 수 있는 마을이다. 웬만한 부침개보다 훨씬 큰 피자 한 판도 머릿수대로 주문하는 것을, 뜨거운 태양 아래 마시는 와인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들 틈에서 매끄러운 이탈리아 에스프레소를 훅 들이킨다. 산타 마리아 인 트라스테베레 성당과 노천카페가 테두리를 만들고 있는 광장으로 포근한 햇살이 쏟아진다. 조바심쟁이가 모처럼 너그러워진다. 버스 차창 밖으로 나폴리 항을 곁눈질한 끝에 도착한 폼페이Pompeii에서는 그 폐허 위로 핀 들꽃처럼 가슴 뛰는 생명력을, 아말피 코스트Amalfi Coast를 신나게 달려 도착한 쏘렌토Sorrento에서는 나른해서 더 달콤한 지중해 마을의 여유로움을 삼킨다. 꿈은 아니겠지. 마지막은 아니겠지. 바티칸에서 뜻밖에도 새로이 선출된 교황님의 알현식을 마주하기도 했으니 이번 여행, 정말 제대로다. 떼르미니역에서 레오나르도 익스프레스Leonardo Express 열차를 타고 도착한 로마 피우미치노공항.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며 노트북 전원을 켠다. 사진 폴더 안에 새로이 추가된 이미지 파일만 3,000장. 힘들었던 기억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순간순간이 애틋하게만 기억되는 동행. 나는 지금 또다시, 더없이, 여행을 안달하고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서진영 취재협조 SJR EUROPE www.sjreurope.com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삽자루의 유럽 ‘동행’ 15박 16일 2013년 SJR EUROPE에서 제안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배낭여행. 파리에서 시작하여 로마에서 끝나는 15박 16일의 여행 프로그램으로 항공권은 개인의 기호와 예산에 맞게 선택, 자연스럽게 동행 일정 전후로 자신만의 여행 일정을 추가할 수 있다. 일정 내내 전문 지식 가이드 출신의 인솔자가 동행하여 주요 도시에서는 무료 가이드 투어를 제공하는 한편 여행자 스스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여행 정보와 노하우는 물론 충분한 자유 일정을 지원한다. 함께하는 낭만과 혼자만의 자유로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동행의 가장 큰 매력. 몽생미셸과 옹플뢰르, 퓌센, 할슈타트, 체스키 등 자유 여행에서는 가기 힘든 유럽의 소도시를 경유하는 것도 동행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 더욱 다양한 경험을 원하는 여행자를 위해 남부지중해 투어, 바티칸 투어 등 다양한 옵션 투어도 마련해 두었다. 유럽 여행이 처음인 여행자 또는 안전과 도시간 이동에 부담을 느끼는 여행자에게 아주 적합한 상품이다.
  • [영화 프리뷰] ‘빅 픽처’ 부유하지만 지루하게 살 것인가 가난하지만 뜨겁게 살 것인가

    [영화 프리뷰] ‘빅 픽처’ 부유하지만 지루하게 살 것인가 가난하지만 뜨겁게 살 것인가

    폴(로맹 뒤리스)은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성공한 변호사다. 높은 연봉과 그림 같은 집, 아름다운 아내, 귀여운 자식들까지. 그러나 그의 내면은 무언가 잃어버린 것 같은 공허함에 시달린다. 한때 사진가를 꿈꿨던 그는 이제 현실과 타협한 위태로운 중산층일 뿐이다. 최고급 카메라와 암실을 구비해 보지만 그것이 실은 생기 없는 삶에 대한 헛헛한 자기 위안에 불과하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지쳐 가는 건 아내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이웃에 사는 사진가 그렉과 불륜에 빠지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폴은 우발적으로 그렉을 살해한다. ‘빅 픽처’(The Big Picture)는 더글러스 케네디가 쓴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프랑스 영화다. 2010년 국내에 출판된 뒤 주요 서점에서 3년 가까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던 화제작이다. 작가는 기사 작위를 받을 만큼 프랑스에서는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영화의 내용은 ‘자신의 삶을 살고 싶었던 남자’로, 번역된 프랑스판 제목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난다. 자식들을 살인자의 아들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폴은 고민 끝에 그렉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가짜 여권을 만들고 아내에게는 그렉의 이름으로 ‘촬영 제의가 와서 급하게 떠난다’는 이메일을 보낸다. 요트를 타고 나가 시체를 유기한 뒤 배는 폭파시켜 버린다. 신문에는 폴의 부고가 뜬다. 몬테네그로에 정착한 그는 그렉으로 살아가며 잃어버린 사진가의 꿈을 키워 간다. 문제는 그가 예상치 못한 성공을 거두면서 시작된다. 전 유럽이 주목하는 작가가 된 그는 정체가 탄로날 위기에 처한다. 영화의 설정은 전반적으로 원작과 유사하지만 결말은 크게 다르다. 새 삶을 시작한 폴이 사랑에 빠지는 신문사 사진부장의 역할은 줄어들었고, 아내가 유명해진 그렉(폴)을 찾아오는 장면도 없다. 그러나 영혼 없이 안정적인 삶과 가난하지만 뜨거운 삶 중 어떤 것을 택하겠느냐고 묻는 질문은 같다. 되돌릴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른 뒤에야 삶을 직시하게 되는 아이러니도 그렇다. 영화의 후반부는 지중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히는 몬테네그로의 코토르 만에서 촬영했다. 최근 개봉한 ‘사랑은 타이핑 중!’의 로맹 뒤리스가 주연했고 국내 관객에게 친숙한 카트린 드뇌브도 얼굴을 비춘다. 극 중에서 그렉으로 살아가는 폴이 찍는 사진들은 세계적인 사진작가 그룹 ‘매그넘’의 앙트완 다가타가 찍은 작품들이다. 115분. 청소년 관람 불가. 4일 개봉. 배경헌 기자 baenim@seoul.co.kr
  • ‘지중해 진주’ 몰타섬의 맛과 멋을 캐다

    ‘지중해 진주’ 몰타섬의 맛과 멋을 캐다

    남부 유럽 지중해의 중앙에 자리한 섬나라, 몰타. 제주도의 6분의1 넓이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나라이지만 ‘지중해의 숨은 진주’라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바다와 고고학적 유물로 가득하다. 수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몰타의 중심 발레타에선 지중해 깊은 품에서 자란 몰타 참치를 맛볼 수 있다. 다이버들의 지상낙원, 섬 속의 섬 ‘고조’와 중세도시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한 ‘임디나’까지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7000년간 수많은 열강들의 지배를 받으며 다양한 공존의 문화를 지켜온 땅이다. EBS는 17~20일 밤 8시 50분 방영되는 ‘세계테마기행’에서 ‘시간이 멈춘 섬, 몰타’로 여행을 떠난다. 1부 ‘지중해 위의 성채, 발레타’에서 첫 여정이 시작된다. 발레타는 16세기 성 요한 기사단이 건설한 도시로, 견고한 성이 해안선을 둘러싸고 있어 성채 도시로 불린다. 나지막한 모래빛 중세 건물들로 이뤄진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화려한 규모와 장식의 성 요한 대성당이 여행자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바로크 그림 양식의 기초를 만든 위대한 화가 카라바조의 명작 ‘세례 요한의 참수’와 그랜드 마스터 팰리스에 생생하게 깃든 몰타의 숨겨진 역사가 흥미진진하다. 2부 ‘지중해의 그 맛, 몰타 참치’에선 몰타 섬 남쪽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 마샤슬록을 찾는다. 마을에선 매주 일요일 아침 몰타 최대의 수산시장이 열린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선들 사이로 반지르르하게 기름기 도는 붉은 생선 살, 참치가 눈에 띈다. 이곳 참치는 어획량의 99%를 일본으로 수출할 정도로 국가산업의 한 축을 이룬다. 3부 ‘몰타의 푸른 보석, 고조’와 4부 ‘중세로의 초대, 임디나’에선 몰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고조와 과거 몰타의 수도인 임디나를 각각 방문한다. 여정의 마지막 밤은 오랜 세월 거대한 파도와 바람이 빚어낸 ‘블루 그라토’에서 보낸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바닷속 사라진 신화 속 ‘이집트 도시’ 유물 공개

    바닷속 사라진 신화 속 ‘이집트 도시’ 유물 공개

    지금으로 부터 약 1,200년 전 갑자기 물 속으로 가라앉은 ‘전설의 도시’ 헤라클레이온(Heracleion)의 유물이 일반에 공개를 앞두고 있다. 최근 헤라클레이온 국제 공동 발굴팀은 “10년 여에 걸쳐 발굴한 거대 조각상과 금화 등을 곧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원전 7세기 경 건설된 이집트의 고대 도시 헤라클레이온은 지중해의 여러 도시와 무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다. 특히 웅장한 저택과 사원, 항만시설, 거대한 조각상 등 당시 찬란하고 화려한 문명을 자랑했으나 서기 8세기 경 갑자기 물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이 도시는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토스가 남긴 저술과 신화로만 전해질 뿐 그 실체는 확인되지 않아 1천년 넘게 전설로만 기억됐다. 그러나 지난 2000년 이집트 아부 퀴르만(灣) 해저에서 프랑스 발굴팀이 나폴레옹의 동방 진출을 좌절시킨 ‘나일 해전’의 유물을 탐색하다 뜻밖에도 더 큰 유적을 찾아냈다. 바로 바닷속으로 사라진 헤라클레이온과 인근 도시 메노우티스의 유적을 찾아낸 것. 이후 프랑스 발굴팀과 이집트 정부,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연구팀이 가세해 인양이 시작됐고 거대한 조각상을 비롯 금화, 테이블 등 수많은 보물을 건져올렸다. 구체적인 장소와 시기는 아직 미정인 이번 전시는 이중 일부의 ‘보물’만 공개될 예정이며 앞으로 수십 년은 더 발굴해야 할 만큼 유적의 규모도 어마어마 하다. 발굴에 참여한 옥스퍼드 대학 고고학 전공 데미안 로빈슨 교수는 “유적이 놀라울 정도로 보존 상태가 좋다. “ 면서 “당시 문명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고 밝혔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檢 전두환추징팀 “신발 한짝이라도 찾아올 것”

    채동욱 검찰총장이 4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에 대해 다시 한번 철저한 추징을 주문했다. 채 총장은 이날 정례 간부회의에서 전 전 대통령 추징금 추적전담팀(팀장 김민형 검사)에게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관점에서 접근하라”고 강조했다. 또 전두환 추징금 태스크포스(TF)를 총괄하는 유승준 대검 집행과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국내 및 해외를 포함해 여러 가능성을 두고 최대한 (전 전 대통령의 추징금을) 추징하도록 하겠다”면서 “신발 하나라도 잡는 마음으로 열심히 뛰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54) 시공사 대표가 2006년 문을 연 경기 연천군의 야생화단지 ‘허브 빌리지’ 조성에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이 사용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지중해 휴양지를 본떠 만든 허브 빌리지는 5만 7000여㎡ 규모로, 임진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절경을 이루는 곳이다. 전 대표는 2004~2005년 본인 명의로 땅을 매입한 뒤 2005년 5월 야생화단지 조성에 착수, 이듬해 봄 문을 열었다. 2009년부터는 펜션단지를 조성해 목조건물 10여개에 객실 40개를 운영하고 있다. 펜션을 포함해 건물만 20여채에 이른다. 임진강을 접한 데다 도로를 끼고 있어 이 일대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곳 중 하나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땅의 공시지가는 전 대표가 땅을 매입하기 시작한 2004년 당시 3.3㎡당 3762원에서 올해 36만 3000원으로 9년 만에 100배 가까이 올랐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주한 美 해군사령관에 첫 여성 장성

    주한 美 해군사령관에 첫 여성 장성

    주한 미군 해군사령관에 처음으로 여성이 임명됐다. 미국 국방부는 28일(현지시간) “레이 메이버스 미국 해군장관이 리사 프란체티 대령을 준장으로 승진 발령하면서 주한 미군 해군사령관으로 임명했다”고 밝혔다. 뉴욕주 로체스터 출신의 프란체티 신임 사령관은 노스웨스턴대학에서 언론학을 전공했고 해군학군단(NROTC)을 거쳐 임관했다. 해군에서는 지중해, 북대서양 등에서 구축함 함장 등을 역임했으며, 대서양함대 사령부와 해군사관학교 등에서 근무하는 등 현장 및 정책 경험을 두루 갖춘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해군장관 군사부문 보좌관으로 근무하는 프란체티는 미군의 한국 지역 해군사령관과 함께 유엔사 산하 미군 해군사령관 등을 겸임하게 된다. 워싱턴 김상연 특파원 carlos@seoul.co.kr
  • 아빠를 바람나게 하라③Relax

    아빠를 바람나게 하라③Relax

    ●Relax 1 아이가 원하는 이색체험 캠핑이나 하이킹 등이 아빠와 어른들이 주로 하는 활동이라면,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와 휴식에 눈높이를 맞춰 보는 것은 어떨까? <아빠! 어디가?>가 환기시켜 준 것이 바로 그것이다. 1 동강 시스타 리조타는 물 좋고 산 좋은 영월에 자리하고 있다. 스파 시설도 좋아 온가족이 느긋한 휴식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이다 2 소 젖을 짜고, 치즈도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은 경기도 여주의 은아목장 3 크루즈는 3대가 함께 쉼과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바다 위 리조트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동강에 살어리랏다 ‘시스타 리조트’ 서울 인근에도 워터파크가 갖춰진 리조트가 수두룩하지만 조금 더 한적하고 맑은 공기가 있는 강원도 동강으로 떠나 보자. 영월에 위치한 시스타 리조트는 서울에서 3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어 이동에 큰 부담이 없고, 객실구조도 가족에 적합하다. 객실 외관은 유럽의 어느 시골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어 이채롭고, 지난해에는 힐링스파도 새롭게 개장했다. 650명이 동시에 입장할 수 있는 시설로 놀이방, 수유실, 키즈풀 등이 있고 총 4개의 테라피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또 강변에는 야외공연장, 축구장, 족구장, 농구장도 설치돼 있어 굳이 리조트 밖으로 나갈 이유가 없다. 가족 중에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9홀 규모의 시스타 리조트의 골프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 리조트가 동강변에 있다 보니 래프팅 종점을 시스타 리조트에 두고 운영하는 업체들이 많다. 이용요금 일반회원 25만원(패밀리룸 기준) 문의 033-905-2000 www.cistar.co.kr 소 젖 짜고 치즈도 만드는 ‘팜스테이’ 도시 생활에 길들여진 아이들에게 농장체험만큼 호기심을 자극하는 프로그램도 흔치 않다. 경기도 여주에 자리한 ‘은아목장’은 네 가족이 운영하는 농장체험 장소로 방문객들은 신선한 우유와 믿을 수 있는 낙농제품을 생산하는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숙박도 하면서 목장에서 호젓하게 휴식을 누릴 수 있다. 목장에서는 트랙터 타기, 젖소 젖 짜기, 여물 주기 등 낙농체험을 할 수 있으며 모짜렐라, 페타, 고다 등 다양한 종류의 치즈뿐만 아니라 소시지, 치즈, 피자, 버터 등을 만들어 볼 수도 있다. 1박2일 일정으로 은아목장에 머문다면 더욱 다채로운 체험이 가능하다. 목장에서 만든 유제품으로 다양한 음식을 즐기거나 초록 풀밭 위에서 바비큐 파티도 할 수 있다. 이용요금 낙농체험 1만5,000원, 치즈 만들기 수업 1만8,000원. 숙박은 객실 크기에 따라 15만원부터 문의 031-882-5868 www.eunafarm.com 일정 고민 없는 바다 위 리조트 ‘크루즈’ 배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크루즈는 가족여행의 새로운 대안이다. 크루즈의 메카는 지중해와 카리브해지만 그곳까지 이동하는 항공료가 만만치 않기에 부산에서 출발하는 한·중·일 일정이나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운항하는 크루즈를 이용하는 게 현실적이다. 싱가포르에서 출발해 말레이시아 랑카위, 태국 푸껫 등을 기항하는 스타크루즈 버고호는 베스트셀러 중 하나다. 동남아시아와 한국-중국 일정 등을 운영 중인 코스타크루즈의 경우, 부모와 함께하는 18세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 프로모션을 진행 중에 있으며 22만톤급 세계 최대 규모의 크루즈를 보유한 로얄캐리비안은 배 안에 아이스스케이트장, 암벽등반 코스 등을 갖추고 있다. 크루즈는 공연, 키즈프로그램, 사우나, 야외수영장 등이 있어 어린이들이 심심할 틈이 없으며 상품 가격에 식사비가 포함되어 있어 원 없이 다국적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어른들을 위한 공간으로 카지노가 있다는 것도 쏠깃할 만한 요소다. 문의 로얄캐리비안 크루즈 02-777-0033 www.rccl.kr, 스타크루즈 02-733-9033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Relax 2 리조트 패키지로 ‘한 방’에 즐긴다 “누구는 리조트로 여행 갔다는데….” 아이와 부모님의 어깨가 축 처졌다. 침묵으로 방어할 텐가, 부지런히 움직여 볼 텐가. 가격도 착하고 만족도도 최상인 리조트를 수소문했다. 일단 떠나라. 물 좋고 공기 좋은 강원도 평창으로. 1 어린이 2층 침대를 갖춘 알펜시아 리조트 슈페리어룸은 가족여행으로 제격이다 우리 아이, 기 살리기 프로젝트 “아빠 놀러가”라는 말에 심장이 뛴다. 애들은 아빠의 마음을 알랑가 몰라. 떠나고 싶지만 몸이 천근만근이다. 이럴 땐 자고 먹고 체험까지 한번에 해결할 수 있는 호텔 패키지를 이용해 보자. 걱정이 태산인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려 홀리데이인리조트 평창이 ‘키즈 체험 패키지’를 선보였다. 뭐니뭐니 해도 호텔의 품격은 객실이다. 키즈 체험 패키지는 세 가지 타입의 방을 선사한다. 어린이 2층 침대를 포함한 슈페리어룸, 더블침대와 싱글침대를 결합한 할리우드 트윈룸, 침구 4세트를 구비한 온돌방 중 한 곳을 택하면 된다. 패키지에 포함된 체험 서비스를 이용하다 보면 ‘우리 아이가 벌써 이렇게 컸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 것이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상징인 ‘알펜시아 스키 점핑 타워’를 나무 조각 퍼즐로 직접 만들어 볼 수 있고, 대관령 지역의 목장에서 공수해 온 우유로 리조트 내 체험장에서 생치즈도 만들어 볼 수 있다. 치즈 체험을 하는 동안 테이블당 하우스 와인 1명, 주스 및 과자 등도 무료로 제공된다. 패키지명 홀리데이인리조트 평창 키즈 체험 포함내역 홀리데이인리조트 1박, 몽블랑 레스토랑 조식 2인, 스키 점프대 만들기 장난감, 생치즈 만들기 체험 가격 21만원부터 문의 033-339-0000 아빠와 엄마도 아이처럼 쉬고 싶다면 오직 아이를 위한 여행은 싫다? 온 가족이 행복할 수는 없을까. 운전하느라 지친 아빠, 아이를 돌보느라 피곤한 엄마까지 모두 즐거운 여행 말이다. ‘힐링 인 알펜시아 패키지’는 일상에 지친 가족에게 휴식을 선물한다. 대관령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인터컨티넨탈 리조트의 스탠다드룸 혹은 이그제큐티브 스위트에선 대화가 없었던 가족도 도란도란 머리를 맞댄다. 가족간의 정을 두텁게 해주는 건 바로 한 끼 식사다. 이 패키지에는 5만원짜리 식사권도 포함된다. 리조트 내 플레이버스 레스토랑에서 분위기 있는 점식이나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식사권과 별도로 2인 조식도 포함돼 있다. 리조트는 이오셀라스스파 사우나와 피트니스센터도 무료로 제공한다. 각종 영화 DVD 및 음악 CD도 갖추고 있으니 온 가족이 맞춤형 문화생활을 즐겨도 좋다. 체크아웃 시간도 오후 2시까지 연장되니 서두를 필요가 없다. 패키지명 힐링 인 알펜시아 포함내역 인터컨티넨탈호텔 평창 스탠다드룸 혹은 이그제큐티브 스위트 1박, 플레이버스 레스토랑 5만원 식사권, 2인 조식, 영화 DVD 및 음악 CD 대여, 사우나 및 피트니스센터 무료 이용 가격 26만원부터 문의 033-339-0000 글 김명상, 최승표 기자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④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커피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④아디스아바바, 에티오피아 커피

    Addis Ababa 아디스아바바 활기찬 공중도시, 꽃으로 피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를 여행 목적지로 찾는 이들이 있을까? 지금의 수도는 20세기에 이르러 정치, 외교적인 목적 아래 기획적으로 수도로 지정된 만큼 문화유적이나 볼거리는 많지 않다. 국제공항이 있으니, 여행객들은 지방으로 오가는 길에 하루이틀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운 꽃’이라는 뜻의 이름과 달리 먼지 많고 어수선한 도시이긴 하지만 ‘수도이기에’ 둘러볼 만한 장소들이 몇 군데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남다른 민족적 자부심은 독립을 지킨 정통성, 기독교 문화, 찬란했던 고대 문명 그리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기원에까지 맞닿아 있다. 이유인즉 현생 인류의 조상으로 추정되는 ‘루시Lucy’의 뼛조각이 에티오피아에서 발견된 까닭이다. 그 흔적을 아디스아바바 국립대학교 내에 있는 ‘국립박물관National Museum’에서 찾을 수 있다. 최초의 직립보행 유인원인 루시(학명: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발견 당시 고고학자들이 비틀즈의 노래 ‘Lucy in the sky with diamond’를 듣고 있었다 하여 이름지어졌다. 이후 ‘슬기로운 사람’을 뜻하는 호모사피엔스 ‘이달투Idaltu’의 화석이 발견된 것도 에티오피아에서였다. 이 두 개의 화석은 에티오피아인들이 인류의 기원지로서 자신들의 영토에 더욱 강한 자부심을 갖게 했음은 물론이다. 전통시장 ‘마르케토Marketo’와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 ‘엔토토산Mt.Entoto’도 여행객들이 즐겨찾는 곳이다. 마르케토는 다른 아프리카 도시의 시장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은 장식품이나 수공예품을 저렴한 값에 구매할 수 있다. 가장 활기찬 시장 풍경을 보려면 토요일에 들르는 게 좋지만 소매치기에 유의해야 한다.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와 각별한 관계를 갖고 있기도 하다. 6·25 한국전쟁 당시, 약 6,000명의 병력을 파병한 까닭이다. 물론 미국이 아디스아바바에 공항을 건설해 주는 거래가 있었다지만 100여 명이 목숨을 잃어가며 함께 싸워 준 은공을 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에 한국 정부는 아디스아바바에 한국전쟁 기념탑을 세웠고 에티오피아의 질병 퇴치와 가난 극복을 위해 다방면으로 협조하고 있다. Ethiopian Coffee 에티오피아 커피 소중한 사람과 나누는 ‘성스러운 한모금’ 에티오피아에 기원하고 있는 것은 인류만이 아니라 그들이 매일 못 마시면 손이 떨리도록 중독이 되어 버린 음료, 커피도 있다. 커피가 최초로 발견된 것은 지금의 짐마Jimma 지역, 옛 지명 ‘카파Kaffa’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지만 어디까지나 ‘설’에 불과하다. 어쨌든 커피라는 용어 자체가 에티오피아에서 시작된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기원후 6~7세기, 어린 목동 칼디Kaldi는 자신이 기르는 염소들이 흥분하며 날뛰는 모습을 보았고, 이후 며칠간 유심히 관찰한 결과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따먹는 것을 목격했다. 호기심에 칼디도 그 열매를 따먹어 보고는 신경이 곤두서는 경험을 했고, 이를 수도원에 알린 뒤 각성제로서 커피가 보급됐다고 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커피의 원산지를 따져가며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예가체프, 시다모, 하라르 등 에티오피아 커피는 고급종으로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 에티오피아에는 수백만 개의 커피농장이 운영 중인데, 그 독특한 향과 풍미는 절대적으로 에티오피아의 토질에 기인한다고 한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는 음료,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특히 귀중한 손님이나 친구들을 위해 진행하는 ‘커피 세레모니’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다. 세레모니는 약 30분간 진행되는데 느긋하게 커피를 대접받는 매너도 중요하다. 생두를 프라이팬에 올려 숯불에 볶은 뒤에는 프라이팬을 손님들에게 가져가 커피의 향을 맡게 해준다. 이후 볶은 커피를 절구에 넣어 빻고, 주전자에 커피가루를 넣고 끓여낸다. 그리고 에스프레소 한잔의 양만큼 유리잔에 담아 건넨 뒤, 팝콘을 간식으로 함께 먹는 게 세레모니의 완성이다. 아디스아바바 외곽,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베델Bethel’이라는 미망인촌에서 처음으로 맛본 커피는 한번도 경험 못한 맛과 향으로 오감을 적셨다. 여정 중 맛본 수십 잔의 커피들은 당연히 그에 못 미쳤는데, 이는 커피 세레모니와 함께 전해진 정성과 호의가 그만큼 따뜻했고 진했다는 뜻이기도 할 것이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travie info 토모카Tomoka 에티오피아에서 가장 명성 높은 1920년대 이탈리아 카페 분위기의 커피숍으로 아디스아바바에 위치해 있다. 하라르, 예가체프, 시다모 등의 종을 섞어서 판매하는데 하라르의 배율이 높은 편이다. 에스프레소 한잔 가격은 약 400원, 원두는 한 봉지(250g)에 약 3,000원 수준이다. 토모카 커피의 대부분은 최대 수입국인 스웨덴을 포함해 유럽으로 수출된다. www.tomocacoffee.com ”에티오피아인들의 남다른 민족적 자부심은 독립을 지킨 정통성, 기독교 문화, 찬란했던 고대 문명 그리고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인류의 기원에까지 맞닿아 있다.” travel info ethiopia [Ethiopian Food] 인제라Injera 말려 있을 때는 롤케이크, 펼치면 팬케이크와 흡사한 빵으로 그 무난한 겉모습과 달리 지독한 신 맛을 품고 있다. 에티오피아인들의 주식으로, 테프라는 에티오피아 토착 작물과 옥수수가루, 밀가루 등을 섞어서 만든 반죽을 사나흘간 발효시킨 뒤, 구워서 먹는다. 보통 접시에 넓게 펼쳐서 와트Wat라 불리는 매콤하게 볶은 양고기, 쇠고기와 야채 스튜를 곁들여 먹는다. 여행객들은 처음 인제라에 거북함을 느끼다가도 며칠 먹다 보면 나중에는 그 맛에 중독된다. 인제라와 함께 에티오피아인들이 즐겨 먹는 덜 익힌 쇠고기에 고추가루, 버터를 버무린 키트포Kitefo는 좀처럼 이방인들이 시도하기 어려운 음식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은 식당에서는 대부분 고기를 바짝 익혀 준다. 한편, 에티오피아 정교회에서는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하고 있다. [Restaurant] 요드 아비시냐Yod Abyssinia 아디스아바바의 대표적인 관광식당으로 전통공연과 함께 인제라를 비롯한 다양한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을 기반으로 한 에티오피아 전통 음악과 공연을 보면서 전통 술인 테쯔Tej를 맛볼 수도 있다. 테쯔는 꿀이 곁들여진 에티오피아식 와인이다. www.yodethiopia.com 탑뷰Top View 19세기 말부터 수십년간 에티오피아를 넘본 이탈리아의 영향으로 파스타가 널리 전파되어 있다.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는 탑뷰 레스토랑은 아디스아바바에서도 최고급 이탈리아 식당이다. 파스타 가격은 약 5,000원 수준으로 에티오피아에서는 비싼 편이며, 맛은 다소 밋밋하다. [Hotel] 아디스아바바┃데브레 다모Debre Damo 4성급 호텔 ‘데브레 다모’는 지난 3월 문을 열었다. 공항이나 시내가 모두 가깝고, 최신 시설을 도입해 아디스아바바의 다른 4성급 호텔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전체 객실은 102실로, 부엌이 달린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8실이며, 옥상에는 라운지 개념의 스카이바도 운영된다. 체크인 시 5분 이상을 기다리면 투숙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서비스에 공을 들이고 있다. www.debredamohotel.com 쉐라톤 아디스Sheraton Addis 에티오피아에 있는 호텔 중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힐튼, 래디슨블루 등의 체인호텔들도 있지만 규모나 시설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널찍한 수영장과 키즈클럽 등이 갖춰져 있어 가족 여행객이 머물기에 좋다. 실내에서 스파를 즐길 수 있는 아쿠아클럽도 있다. 가격은 1박에 약 30만원 수준으로 높은 편이다. www.sheratonaddis.com 바하르다르┃쿠리프투리조트앤스파Kuriftu resort & spa 휴양지인 타나호수변에 위치한 스파 리조트로, 느긋하게 여유를 만끽하기 위한 모든 요건이 갖춰져 있다. 에티오피아 전통 미술품이 걸려 있는 널찍한 객실, 태닝을 즐길 수 있는 수영장과 산책 코스, 마사지와 네일 캐어 서비스까지 동남아와 지중해의 럭셔리 리조트가 부럽지 않다. www.kurifturesortspa.com 곤다르┃고하호텔Goha Hotel 일부 편의시설이 곤다르 ‘최고급’ 호텔이라는 명성에 못 미치지만 전망과 이색적인 객실 디자인이 모든 걸 상쇄한다. 도시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산턱에 자리하고 있으며, 특히 일몰 풍경이 장관이다. 객실 내부는 화강암 벽에 아프리카 특유의 색감을 살린 장식이 인상적이다. www.gohahotel.com 랄리벨라┃탑트웰브호텔Top Twelve Hotel 유럽 여행객이 많은 랄리벨라에는 수준급 호텔이 많다. 최근 개장한 탑트웰브호텔은 얼핏 사막처럼 보이는 랄리벨라 산의 호쾌한 전경이 내려다보이며, 가죽으로 만든 가구들과 천사 얼굴이 새겨진 침구류가 독특하다. 음식도 훌륭하다. 호텔 주인은 첫 손님이 한국인이었다며 각별한 애정을 표했다. www.toptwelvehotel.com [에티오피아항공Ethiopian airlines] 한국 상륙 앞둔 아프리카의 날개 한국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선택할 수 있는 항공사는 많지만 비행기에 오르는 순간부터 에티오피아 여행을 시작하고 싶다면 에티오피아항공을 선택하는 게 좋다. 일부 배낭여행자들은 버스를 이용해 도시에서 도시로 이동하기도 하지만 에티오피아의 국토 면적은 한반도의 약 5배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에티오피아가 경제적으로 후진국이다 보니, 항공사에 대한 편견도 많지만 에티오피아항공은 1946년에 설립됐으며,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네트워크와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62개의 국제선, 16개 국내선을 운항 중이며, 최신기종인 ‘드림라이너(B787)’ 6기를 포함해 총 59기의 항공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에티오피아항공은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파일럿, 승무원 및 항공 정비 교육 시스템도 운영 중에 있으며, 2011년에는 아시아나항공이 가입된 항공 동맹체 ‘스타얼라이언스Star Alliance’의 정식 회원사가 됐다. 무엇보다 반가운 소식은 에티오피아항공이 오는 6월부터 한국에 취항한다는 소식이다. 에티오피아항공은 아디스아바바를 출발해 홍콩을 경유한 뒤, 서울로 들어오는 새로운 항공 노선을 개설한다. 에티오피아뿐 아니라 케냐,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아프리카 목적지로 가는 여행이 더욱 편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과 에티오피아는 올해 수교 50주년으로 에티오피아항공이 양국간 교류 활성화에 가교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언어 공용어는 암하라어이며, 영어가 비교적 잘 통하는 편이다. 전기 전압은 한국과 같은 220V이지만 소켓 모양이 다른 곳도 있어 멀티어댑터를 챙기는 게 좋다. 화폐 비르Birr를 사용하며, 18비르가 약 1US달러에 해당한다. 비자 도착 비자도 있지만, 출발 전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을 통해 사전 발급을 받는 게 좋다. 비용은 20달러이며, 발급에는 3~4일이 소요된다. 날씨 아디스아바바를 기준으로, 연중 기온이 15~25도 사이로 온화한 편이다. 북회귀선에 속해 있지만 고도가 높은 탓이다. 4~5월이 소우기, 6~9월은 대우기로 비가 집중된다. 예방주사 에티오피아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입국 전,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고 확인증을 여권과 함께 지참해야만 한다. 말라리아, 장티푸스 예방은 필수는 아니지만 권장사항이다. 기부 혹은 적선 에티오피아에서는 여행객이 가는 곳마다 어린이들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럼 없이 다가온다. 돈이나 볼펜, 초콜릿 따위를 달라고 하는데 그 자리에서 현금 몇 푼 건네는 것은 그들을 돕는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차라리 아디스아바바에 소재한 자선단체에 직접 기부하는 방법이 낫다. 옷가지나 볼펜, 초콜릿, 사탕 등을 넉넉히 챙겨가 어린이들에게 건네는 것은 괜찮다.
  •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③바하르다르, 청나일폭포

    Ethiopia 커피보다 깊고 진한 이야기 ③바하르다르, 청나일폭포

    Bahar Dar 바하르다르 호수 위 비밀의 수도원 느긋하게 휴양을 즐길 만한 곳으로, 에티오피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바하르다르Bahar Dar’만한 곳이 없다. 지중해변을 연상시키는 타나호수Lake Tana와 청나일폭포Blue Nile Falls로 가기 위한 관문 도시인 바하르다르는 이제껏 거쳐 왔던 다른 에티오피아 도시들과는 전혀 다르다. 여유로운 풍경이 펼쳐지는가 하면, 종교적으로 곤다르 왕국과 깊은 연관을 갖고 있어 여행객들이 절대 놓치지 않고 들르는 곳이기도 하다. 호수변에 자리한 리조트에서 오찬을 마치고 에스프레소를 한잔 마시며 여유를 만끽하는 사이, 보트 한 대가 여행객을 태우기 위해 슬며시 다가왔다. 서울의 약 6배(3,500km2)에 달하는 광대한 타나 호수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 수도원을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보트는 수도원을 찾아 북쪽으로 힘차게 내달았다. 호수 안의 작은 섬들과 호반에는 10여 개의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데 뱃머리는 가장 아름답다는 ‘케브란 가브리엘Kebran Gabriel’ 수도원이 있는 섬을 빗겨갔다. 여성의 출입이 금지된 까닭이었다. 정교회 수도원이 궁벽한 호숫가에 자리잡은 것은 17세기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은 예수회가 에티오피아 정교회 신자들을 강제로 개종시키려 했고, 무슬림의 공격도 거셌던 터라 이를 피하기 위함이었다. 당시부터 일부 수도사들은 결혼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여성과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다. 한 시간여쯤 달려 ‘제게 반도Zege Peninsula’에 정박했다. 여러 수도원과 교회가 몰려 있고, 여성의 출입도 가능해 여행객의 발길이 가장 많은 곳이다. ‘성 조지 수도원Beta Giorgis’이 먼저 나타났다. 이 수도원은 에티오피아에서도 아름다운 성화들을 간직한 곳으로 유명하다. 유럽 성당의 으리으리한 성화에는 예수와 성경의 인물들, 성자들이 마냥 성스럽게 묘사됐다면, 에티오피아 성화 속 인물들은 어딘가 친근하다. 서양 미술을 기준으로 보면 신체 비율, 이목구비 등은 엉성하기 짝이 없고 색은 과장된 듯이 보이지만 에티오피아 토착 미술 양식이 반영된 이 그림들이야말로 낮은 자에게 가까이 다가간 예수를 더 잘 묘사한 것이 아닐까? 중동의 사나이인 예수를 금발머리 영화배우처럼 묘사한 유럽의 그림들이 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이곳 수도사들은 관광객에게 호의적이다. 수도원 옆에는 화려한 금관과 에티오피아 고대어인 기즈어로 쓰인 성서도 전시돼 있다. 사진 촬영을 요청하자 한 수도사는 능청스럽게 노란 가운을 걸치고 십자가를 손에 쥐더니 포즈를 취해 주었다. 수도원을 둘러보고 바하르다르로 돌아올 때는 일몰시간을 맞췄다. 푸른 호수가 점점 붉게 물들어 갈 무렵, 해를 등지고 유유히 노를 저어가는 돛단배 한 척이 나타나 한 폭의 그림을 완성시켜 주었다. 파피루스로 만든 조각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어부였다. 타나 호수에는 펠리칸, 플라밍고 등 다양한 종의 조류가 서식하고 있어 새를 관찰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운이 좋으면 호수변에서 하마를 볼 수도 있다고 한다. Blue Nile Falls 청나일폭포 흐르고 흘러서 지중해까지 바하르다르에서 차를 몰아 1시간여, 붉은 먼지를 일으키는 비포장도로를 지나 청나일폭포Blue Nile Falls에 다다랐다. 아프리카에서 빅토리아 폭포 다음으로 크다는 폭포를 보기에 앞서 가이드는 “지금은 건기니까 너무 큰 기대를 갖지 않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느다란 청나일강의 지류를 따라 폭포가 있는 곳까지 약 30분을 더 걸었다. 무덤 같은 모양의 가지런한 산봉우리, 너른 들판, 양과 소를 몰고 있는 꼬마 목동들까지 폭포를 마주하기 전부터 눈앞에 펼쳐진 풍경만으로도 가슴 속이 시원해졌다. 순진한 눈망울의 어린이들은 ‘헬로우’ 하며 흔들었던 손을 뒤집어 이내 “헤이, 미스터! 머니! 펜! 초콜릿!”을 외치며 성가시게 따라붙었지만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이면 될 일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이윽고 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덕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폭포는 가문 계절의 그것이라고는 믿기 어렵게 장쾌한 소리를 내며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폭포 앞에서는 소와 양, 염소들이 촉촉히 젖은 풀을 뜯기에 여념이 없었다. 폭포 위로 파랑새가 날아 다니는 풍경은 에덴동산처럼 평화로웠다. 이번 에티오피아 여행 시기가 건기였기에 아쉬움이 가장 컸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였다. 대부분의 여행객은 여행하기 좋은 11~1월 사이를 선택하지만 경천동지의 청나일폭포 풍경을 보려면 우기가 끝난 9, 10월이 최적기다. 2003년 수력발전을 위해 폭포에 댐을 만들어 수량 조절을 하고 있지만 우기에는 400m 너비의 위용 넘치는 폭포를 볼 수 있다. 폭포가 흘러 이룬 청나일강은 빅토리아호수에서 흘러온 백나일강과 만나 이집트를 관통해 지중해까지 5,000여 킬로미터의 대여정을 치른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주한에티오피아대사관 02-790-9766, 에티오피아항공 02-733-0325
  • 시리아 정부군, 반군 전략 요충지 기습 탈환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의 전략적 요충지인 레바논 국경 인근의 쿠사이르를 대부분 탈환했다고 영국 BBC가 시리아 관영 사나(SANA) 통신을 인용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리아 해법을 둘러싸고 미국과 유럽연합(EU) 간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정부군의 기습적인 반격이 이뤄지면서 시리아 사태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지 주목된다. 사나 통신에 따르면 전날 시리아 정부군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연합해 반군이 장악하고 있는 서부 접경도시 쿠사이르 지역을 장악, 반군의 무기를 압수하고 반군이 쓰던 터널을 파괴했다. 현지 활동가들은 이번 교전으로 시리아 정부군 20여명과 헤즈볼라 30여명이 숨졌으며, 반군 측에서도 최소 52명이 사망하는 등 양쪽에서 상당한 희생자가 발생했다고 밝혔다. 쿠사이르는 레바논과 수도 다마스쿠스,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로 반군은 이곳을 통해 레바논으로부터 식량과 무기를 조달해 왔다. 정부군은 이 도시의 탈환을 여러 차례 시도한 바 있다. 따라서 쿠사이르가 정부군에 완전히 넘어갈 경우 2년 넘게 끌어온 시리아 사태의 운명이 뒤바뀔 수도 있다. 뉴욕타임스는 “서방이 시리아를 내버려 두면 지금과는 다른 ‘중동 지도’를 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시리아 정부군이 이스라엘군이 주둔 중인 골란고원을 공격함에 따라 이스라엘 측이 유엔을 통해 시리아에 항의했다고 AFP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이스라엘은 이달 초 시리아 정권이 헤즈볼라에 미사일을 지원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시리아 군사시설을 두 차례 폭격한 바 있어 시리아 내전이 중동지역 분쟁으로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 정체 알고보니…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이 온라인상에서 화제다. 20일 국내 한 포털 사이트에는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이란 키워드가 이틀째 노출되고 있다. 해외 뉴스 소식 사이트 팝뉴스에 따르면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은 최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에 사는 한 남성이 유명 대형상점에서 구매한 농어 입속에서 발견했다. 해외 언론을 통해 소개된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은 등각류에 속하는 기생 동물로, ‘시모토아 엑시구아’로 불리는 종(種)으로 알려졌다. 시모토아 엑시구아는 물고기 혀에 붙어 피를 빨아 먹는 기생충이다. 파문이 일자 유통 업체는 문제의 물고기 구매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고 해당 생선을 구매한 비용을 보상해 주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에일리언 닮은 기생충은 시모토아 엑시구아 뿐만 아니다. 1년 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지중해 연안에는 ‘세라토토아 이탈리카’로 명명된 물고기 기생충이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당시 한 전문가는 인류의 수산자원 과잉 이용이 이 같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터넷뉴스팀
  • [기고] 말리, 알제리 사태를 보는 새로운 눈/한양환 영산대 교수·아프리카연구소장

    [기고] 말리, 알제리 사태를 보는 새로운 눈/한양환 영산대 교수·아프리카연구소장

    서부 아프리카의 말리에서 벌어진 이슬람 세력의 반란을 지상군 파견으로 제압한 올랑드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영웅’ 대접을 받는 모양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를 최초로 공습한 우파의 사르코지 전 대통령이 바로 그 독재자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아 썼다는 사실이 공개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 파병을 떠올리게도 하는 프랑스 사회당 정권의 말리 파병은 인접한 니제르의 우라늄광산에 대한 기득권 보전을 위한 방안이었다. 때문에 프랑스인들의 열광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단지 무인폭격기지를 니제르에 건설하려는 미국이 말리에 유엔평화유지군을 파견하기로 막 전쟁을 끝낸 프랑스와 합의한 점이 눈에 거슬린다. 강대국의 국익 추구 비용을 국제사회에 분담시키는 약삭빠른 행동이라서 그렇다. 국내에서는 프랑스의 파병에 대한 보복으로 발생한 알제리 인질극에 이어, 나이지리아의 이슬람 급진파가 북한 의료진을 살해하면서 아프리카에서의 이슬람 문제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다. 이 ‘혼돈의 도미노’에 대처하는 우리의 외교방안을 제시한 2월 8일자 서울신문의 시론이 눈길을 끈다. 즉, 이슬람 근본주의의 과격성이 모든 사태의 근본인 만큼 원인제공자인 미국?서방 대신 중동·북아프리카 역내에서 선린외교를 펼치며 급부상하는 중견국가 터키와 호흡을 맞추는 것이 15년 만에 비상임이사국 지위를 회복한 우리 한국의 바람직한 유엔안보리 외교노선이라는 주장이다. 과연 터키가 말리사태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올바른 판단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선 말리의 북부지역을 휩쓴 내전 아닌 내전의 직간접적인 배경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말리 북부의 생활터전에서 밀려나 카다피 독재에 동원된 투아레그족이 최신병기로 무장하고 돌아와 벌인 독립투쟁에 알카에다 등 근본주의 세력이 가세한 것이 사태의 직접 원인이다. 간접 원인은 아랍인을 자처하는 사막의 ‘푸른 복면전사’로서 반달 모양의 칼을 휘두르며 호전성과 함께 사하라 이남 흑인들과 차별성을 강조해온 투아레그족의 민족사적 비극이다. 19세기 말 유럽제국주의 식민 경쟁이 초래한 이들의 비극은 지금도 터키의 압제 하에 있는 쿠르드족의 운명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나의 민족정체성을 지닌 이들이 외부여건에 굴복, 분리돼 살아가는 현실이 남북한의 경우와도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유엔에서 터키를 벤치마킹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말리 사태의 본질이 식민종주국의 자의적 영토 분할과 소수민족의 자결권 부정에 있음에도, 터키와 함께 해법을 도모하자함은 아프리카의 정치지형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결여된 제언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게 세네갈의 학자·정치인이었던 셰이크 앙타 디옵이 주장한 방안, 즉 북회귀선을 경계로 아랍세계와 분리된 준대륙적 흑인연방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반세기에 걸친 내전 끝에 남수단의 독립은 흑인과 아랍인의 공존을 환상으로 귀결지은 바 있다. 말리, 니제르와 함께 투아레그족의 땅을 아랍세계에 반환하는 대신 영토 맞교환 협상을 통해 지중해에 이르는 교통로를 확보하면 내륙국가의 한계 극복이 가능하다. 국제정치 현실을 도외시한 이상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게 바로 아프리카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반하는 제안일 것이다.
  • [오늘 ‘물의 날’] 집중호우 - 홍수 점차 늘어… 과학적 물관리 절실

    [오늘 ‘물의 날’] 집중호우 - 홍수 점차 늘어… 과학적 물관리 절실

    22일은 물 피해를 줄이고 물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기 위해 유엔이 정한 ‘세계 물의 날’이다. 하지만 세계는 여전히 가뭄과 홍수에 시달리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연례행사처럼 찾아오는 돌발·집중호우는 물관리(治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그나마 전국에 설치된 16개 다목적댐을 효율적으로 관리해 피해를 줄이고 있다. 우리의 물관리 시스템은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평균 강수량만 놓고 보면 홍수나 가뭄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비슷한 강수량을 갖고 있는 지중해 연안 국가들은 비가 연중 고르게 내리기 때문에 가뭄이나 홍수 걱정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강수량이 여름철에 집중돼 있다. 전체 강수량의 3분의2 이상이 6∼9월에 내린다. 게다가 국토가 동고서저(東高西低) 지형이어서 물을 오랫동안 가둘 수도 없다. 홍수기에는 댐도 물을 임시로 가두는 도구에 불과할 정도다. 수자원 관리가 여간 어렵지 않다. 특히 기상이변에 따른 돌발강우와 특정 지역에 편중된 집중호우는 엄청난 홍수 피해를 가져다 준다. 하루에 80㎜ 이상 집중호우가 내리면 홍수방지책이 한계에 이른다. 그런데 최근 5년간 하루 강수량이 80㎜를 넘은 적이 32회나 된다. 이 중 10회는 150㎜ 이상 내렸다. 홍수 때 넘쳐나는 물을 관리하는 데 진땀을 빼는 이유다. 지형도 물난리에 취약하다. 국토의 3분의2 이상은 산지다. 대부분의 중소 하천은 급류가 많다. 흙으로 덮인 층이 얇아 가둘 수 있는 물의 양도 한정돼 있다. 이 때문에 호우 때는 연례 행사처럼 물난리를 겪을 수밖에 없다. 비가 그치고 나면 전국이 가물어 대지가 타들어 가는 가뭄 피해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하천의 물관리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유량변동계수(최대 유량과 최소 유량의 비율)에서 나타난다. 미국 미시시피강은 우량변동계수가 3대1, 영국 템스강은 8대1이다. 독일 라인강은 18대1, 이집트 나일강은 30대1에 불과하다. 반면 우리나라 유량계수(댐 수량조절 이전)는 300∼400대1이나 된다. 집중 호우에는 홍수로, 갈수기에는 가뭄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년 홍수 피해도 엄청나다. 2002년 8월 집중호우와 태풍 루사의 위력 앞에선 맥을 추지 못했다. 강릉에는 하루 870.5㎜가 내렸다. 예년의 1년 강수량에 가까울 정도다. 피해는 사망 209명, 실종 37명, 6조원 이상의 재산 피해를 입었다. 홍수 복구비로 8조원 이상 쏟아부었다. 2003년 태풍 매미도 큰 피해를 입혔다. 118명이 사망하고 13명이 실종됐다. 재산 피해도 4조 2000억원이나 됐고 복구에 6조 5500억원이 투입됐다. 2006년 7월 태풍 에위니아와 집중호우로 인한 피해도 62명 사망, 1조 8000억원의 재산 피해를 가져왔고 피해 복구에만 3조 5125억원을 들여야 했다. 집중호우 현상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100년 빈도의 시간당 최다 강우량을 넘기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물관리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기후변화로 인한 이상 강우 현상을 인위적으로 막기에는 한계가 따른다. 정확한 기후 예측과 사전 예방, 과학적인 물관리만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홍수 피해를 막는 1차 방어벽은 뭐니 뭐니 해도 다목적댐이다. 4대강 유역에는 16개의 다목적댐이 건설돼 있다. 지난해에도 3개 태풍이 연속 상륙했지만 재산 피해는 4000억원에 그쳤다. 전국의 다목적댐이 홍수 피해 충격을 완화해 줬기 때문이다. 7월 초 장마 때 한강수계에 설치된 소양강·횡성·충주댐은 서울 한강 인도교 기준으로 수위를 73㎝ 낮추는 효과를 거뒀다. 2006년 홍수 때는 정말 아찔했다. 한강 유역의 평균 강우량은 898.8㎜로 예년(322.3㎜)보다 3배 가까이 불어났다. 1973년 기상관측 이래 강우량이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한강 유역은 국가적인 위기에 직면했다. 서울 한강대교 인도교 위험 수위는 10.5m이다. 하지만 당시 3개 댐에서 수량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한강대교 인도교 수위는 무려 13.96m까지 올라갈 뻔했다. 수위를 무려 3.74m나 낮추며 한강 유역 홍수를 막아낸 것이다. 글 사진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②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喜 소금꽃이 핀 호수에서 수영을 Dead Sea 사해 바다는 죽어 소금을 남긴다. 일종의 유언장이다. 소금의 탄생기는 언제 들어도 신비로웠다. 대개 바다의 품을 떠난 물은 저수지, 증발지, 함수창고를 유랑하며 한 줌의 소금이 된다. 그러나 사해Dead Sea 소금은 강한 햇볕과 바람만으로 하얀 속살을 드러냈다. 사실 사해는 바다가 아니라 호수인데, 염도는 일반 해수보다 7~10배가량 더 높다. 어디 염도만 높을까. 피부에 좋은 미네랄도 일반 해수보다 수십배나 많다. 사해 물질로 만든 화장품은 이스라엘 전역에서 판매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아하바AHAVA’는 국내에서도 시판 중인 화장품 브랜드 로 이스라엘에선 보다 저렴하게 살 수 있다. 사해의 명성을 일찍이 들은 유럽인은 이곳에서 몇 날 며칠을 ‘잘 먹고 잘 쉬다 간다’고 했다. 이스라엘 접경지대인 이웃 나라 요르단에서도 사해가 펼쳐진다. 이스라엘에서 사해를 즐기려면 휴양단지인 엔보켁En Boqeq이 좋다. 이곳엔 르 메르디앙, 로열 리모님, 레오나르도, 크라운 플라자 등 이름난 숙소가 사해를 굽어보고 있다. 동남아 풀 빌라 못지않은 사해 리조트에 들어서자 ‘여기가 천국이구나’ 싶었다. 특히 르 메르디앙은 사해의 물을 이용한 스파를 운영 중이다. 굳이 리조트 밖으로 사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실내에서 사해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그래도 이 멀리까지 와서 진짜배기 사해를 놓칠 수 있나.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가운 하나 걸치고 리조트에서 10분 거리인 사해까지 나왔다. 모래가 펼쳐진 틈 사이사이로 소금 꽃이 만발했다. 조심스레 만져 보니 까끌까끌하면서도 끈적끈적하다. 본격적으로 물에 들어가면 몸이 공중부양 하는 것처럼 부웅 떠오른다. 무중력의 우주공간과 다를 바가 없다. 몸이 따끔따끔하다면 상처를 비집고 사해의 성분이 침투했다는 증거다. 잠시 몸을 담그고 나왔을 뿐인데 전신 마사지를 한 것처럼 몸이 매끈해졌다. 그러나 사해와는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 너무 오래 물속에 들어가 있으면 오히려 피부에 부담을 줄 수도 있다. 제아무리 ‘수영 황제’ 펠프스가 울고 갈 만한 수영 실력을 뽐낸다고 한들, 헤엄을 쳐서도 안 된다. 사해는 성분도 성분이지만 지상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유명하다. 해발 -417m. 사해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그냥 놔 주지 않았다. 고도차 때문에 귀가 멍해졌으며 소금 꽃의 향기는 오래도록 코끝을 맴돌았다. 1 생물체가 살 수 없을 정도로 염도가 높은 사해에선 몸이 둥둥 뜬다. 물 위에 떠서 신문을 펼친 여행자의 표정이 즐겁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사해 즐기기 당일 관광 프로그램, 숙소 등 사해를 야무지게 즐길 수 있는 고급 정보를 현지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자. 사해 주변에선 산악 바이크 대회Festival of Mountain Bikes Race, 엔게디 국제 세미 마라톤 대회The Ein Gedi International Semi-marathon Race 등 다양한 스포츠 축제도 열리니 참고할 것. www.deadsea.co.il 네게브 사막은 이스라엘 국토의 50~60%를 차지한다. 러시아에서 왔다는 어느 배낭 여행객은 바이크로 사막을 누비는 중이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척박한 땅에서 받은 후한 대접 Desert사막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 우물이 숨어 있어서 그래.” 황량한 그곳엔 어린왕자가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이스라엘 국토의 50~60%가 바로 사막이다. 사막을 떠올리면 목이 칼칼해지고 머리가 띵해진다. 이 척박한 토양에도 꽃은 핀다. 이스라엘 민족은 선인장을 닮았다. 강한 조상을 둔 까닭인지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는 네팔이나 남미다. 남자도 여자도 군대를 제대하면 무전여행을 하며 세상을 배운단다. 유대인은 사막을 일궈 정착하는 삶을 택했지만 유목민인 베두인은 한곳에 뿌리내리는 것을 불명예로 여긴다. 이스라엘, 요르단 등 중동의 사막을 떠돌며 사는 그들을 꼭 만나고 싶었다. ‘베두’란 말 자체도 아랍어로 직역하면 ‘사막’이다. 일단 베두인의 무대인 사막을 지프차를 타고 달렸다. 황토 빛깔 바람을 일으키며 사륜구동 자동차가 앞으로 나가자, 아웃도어 광고의 한 장면 같은 절경이 펼쳐졌다. 너른 사막의 한가운데는 난데없이 작은 폭포가 보였다. 휴가 나온 군인들이 그곳에서 아담과 이브처럼 부끄러움도 잊고 첨벙첨벙 물놀이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게다가 기다란 뿔이 매력적인 아이벡스도 예고 없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네게브 지프 투어는 아프리카 탐방만큼이나 이색적이다. 지프 투어의 막바지, 베두인 숙소를 찾아갔다. 베두인의 손님맞이는 극진하기로 유명하다. 차와 양고기 요리 등을 넘치도록 준비해 손님이 두 손을 들 때까지 대접한다는 얘기를 익히 들었다. 접시를 비우면 금방 또 음식을 내어 오기 때문에 소량의 음식을 일부러 남기는 게 좋다. 없는 살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인을 거두는 그들은 ‘자신이 누군가를 거두면 언젠가 자신도 남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라 생각한단다. 베두인의 공동체 의식은 ‘나만 잘살면 그만’이라는 현대인이 배워야 할 미덕으로 보였다. 2 사막을 이리저리 떠도는 베두인을 만나면 낙타를 탈 수 있다 2 지프 투어 중 불쑥 나타난 아이벡스. 뿔이 매력적이다 3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이 거대한 사막을 품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travie info 지프 투어 & 베두인 체험 네게브 사막 일대를 지프차로 달리고 싶다면 현지 여행사를 통해 미리 예약해야 한다. 비용은 인원수, 코스, 시간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5~6인이 2~3시간을 탑승할 때를 기준으로 보면, 1인당 약 39달러가량 든다. 지프투어를 예약하면서 베두인 식사 체험을 동시에 예약할 수도 있으니 참조할 것. 지프 투어 예약 www.negevjeeptours.com, www.negevjeep.com/english 베두인 체험 예약 www.hanokdim.com 예술가의 마을에서 타박타박 Mediterranean Sea지중해 경상남북도 크기의 이스라엘은 작은 나라다. 몸집은 작지만 오밀조밀 없는 게 없다. 사해와 사막만 봐도 그랬다. 자그마한 몸으로 어찌 저리 위대한 것을 끌어안고 사는지 놀라울 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서 지중해를 마주쳤을 땐, 사해나 사막을 만났을 때보다 몇 배는 충격이 더 컸다. 대형 쇼핑센터, 유명 호텔, 화려한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이스라엘을 향해 던졌던 선입견이 티 없이 맑고 푸른 지중해에 부딪혀 흩어졌다. 이렇게 따뜻해도 이렇게 다정해도 좋을까 싶을 정도로 지중해변과 맞닿은 이스라엘은 ‘평화’ 그 자체였다. 지중해의 물살은 봄의 언덕으로 불리는 텔아비브Tel Aviv,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이 보존된 카이사레아Caesarea, 무역의 중심지 하이파Haifa, 십자군 시대를 재현하는 아코Akko 등을 타고서 분주히 흘렀다. 압권은 벤구리온 국제공항에서 20여 분이면 당도하는 텔아비브다. 텔아비브는 항구도시라는 신분을 과시했다. 정통성을 지키는 데 급급했던 여타의 도시와 달리 텔아비브는 외지인이 몰고 오는 낯선 기운을 흡수하고 있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 역할을 한 것처럼 텔아비브도 잦은 싸움에 지친 예루살렘을 대신해 제2의 도시로 성장했다. 디아스포라를 겪은 유대인이 하나둘씩 텔아비브로 밀려왔으며 1948년, 마침내 이곳에서 초대 수상 벤 구리온이 “이스라엘이라 불리는 국가를 팔레스타인에 세울 것을 선언한다”고 낭독하기에 이른다. 정신없이 돌아가던 텔아비브의 시곗바늘이 네베쩨덱Neve Tzedek에선 느릿느릿 움직였다. 유럽의 아기자기한 소도시를 닮은 네베쩨덱은 빛과 색을 중시한 인상파 미술작품과 같다. 세계 각지를 떠돌다 돌아온 유대인의 영혼이 깃든 그곳엔 파스텔톤의 집, 히피족이 장난친 것만 같은 거리 벽화가 알록달록하게 펼쳐졌다. 네브쩨덱만큼이나 예술가의 기운이 충만한 곳은 ‘욥바’다. 욥바의 애칭은 올드 자파Old Jaffa. 텔아비브 해안가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욥바의 갤러리들은 하나같이 포스트모더니즘을 따랐다. 그중에서도 욥바의 랜드마크인 베드로의 교회를 따라 내려가다 마주친 일리아나 구어 박물관Ilana Goor Museum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박물관 옥상에 서면 욥바 일대가 한 장의 파노라마 사진이 되어 돌아온다. 박물관을 채우고 있던 다소 난해한 미술작품들은 알면 알수록 더 알쏭달쏭해지는 이스라엘과 통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이스라엘-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①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ISRAEL 신의 땅에서 울다가 웃다가 강해 보이기만 했던 이스라엘을 옆에서 바라보니 곳곳에 흉터가 선명했다. 이스라엘이 낸 ‘민족과 종교’라는 어려운 문제를 풀면, ‘사해·사막·지중해’가 들어있는 3종 선물 세트가 기다린다. 글·사진 구명주 기자 취재협조 이스라엘관광청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悲 로마의 구둣발에 짓밟히랴 Masada마사다 & Qumran쿰란 강자 앞에서 당당하고 약자 앞에선 따뜻하고 싶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을 지켜보는 내 마음은 팔레스타인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편향된 마음을 들킨 것인지, 이스라엘 여행은 처음부터 꼬였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 간의 전쟁이 벌어진 것이다. 신문 국제면이 ‘이스라엘-하마스 교전 격화…전면전 가능’, ‘하마스 군 수장 사망’ 등 살벌한 이야기로 도배됐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안전한 나라가 그 어디 있는가. 내 나라만 하더라도 서로 남과 북으로 찢어져 으르렁거리고 있는데 말이다. 다행히 하늘이 도왔다. 출국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을 때, 현지에서 연락이 온 것이다. “휴전에 합의했으니 안심하고 와도 좋다.” 100여 명을 일주일 만에 죽이고 1,000명을 다치게 했다는 이번 전쟁은 시작도 끝도 문을 여닫는 것처럼 간단해 보였다. 짧은 말다툼으로도 마음이 들들들 끓는데, 총과 칼을 내젓는 싸움이 쉬울 리 없다. 이스라엘을 여행한다는 건 피고름이 철철철 흐르는 그들의 과거사를 훑는 과정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신에게 아들이삭을 제물로 바치려고 했던 아브라함1). 아브라함이 신으로부터 받은 땅은 바로 ‘젖과 꿀이 흐른다’는 가나안이다. 신의 간택을 받았을지언정 아브라함의 자손은 끝없는 고통 속에서 광야를 헤맸다. 그들의 수난사를 읊자면 끝도 없다. 유대인에게 행복한 과거란 노역생활을 하던 이집트를 탈출해 가나안을 되찾았던 순간, 지혜로운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삼았던 시절 정도였을 테다. 여기에 십자군전쟁의 박해,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의 삶까지 더하면 ‘신은 정말 있습니까’ 하고 저절로 묻게 된다. 특히 이스라엘에서 로마제국의 발길질은 악명 높았다. 이탈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지중해에 발을 담근 구두 한 짝과 같은 모양새다. 신발의 높다란 굽으로 로마군은 유대인을 마구잡이로 밟아댔다. 척박한 사막을 비집고 자리한 기괴한 마사다Masada 는 로마군과 유대인의 처절한 싸움을 그 자리에서 똑똑히 지켜봤다. 450m의 높이에 들어선 이 요새는 길이 600m, 너비 320m로 규모가 어마어마하다. AD70년, 로마에서 온 디도 장군의 박해를 피하고자 유대인 960여 명이 마사다로 몰려들었다. 도망자들을 가만히 손 놓고 봐 줄 로마군이 아니다. 1만5,000여 명의 로마군은 마사다를 정복하고자 수를 쓴다. 하늘에 닿을 듯이 높은 마사다에 오르지 못해 쩔쩔매던 로마군은 요새로 들어가기 위한 경사로를 3년에 걸쳐 만들었다. 경사로가 마사다에 닿았을 때, 그곳에서 로마군을 기다린 것은 유대인의 시체 960구. 유대인들은 로마군에게 능멸을 당하는 대신 죽음을 택하기로 했던 것이다. 죽음을 도울 사람을 제비뽑기로 뽑고 최후의 1인은 자살하는 식으로 그들은 끝까지 ‘절개’를 지켰다. 마사다 정상에 오르면 900명이 넘는 유대인이 어떻게 3년간 마사다 꼭대기에서 생활할 수 있었는지 궁금증이 풀린다. 이곳엔 목욕탕, 창고, 채석장, 교회, 수영장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사다의 본래 용도는 왕의 피난처였다. BC40년경 헤롯왕2)은 본인이 도망갈 곳으로 마사다를 지었고 온갖 시설을 갖추었다. 헤롯왕이 만든 시설을 이용하며 목숨을 부지하던 유대인은 빗방울을 모으려 도랑을 만들고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비둘기까지 길렀다고 한다. 마사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로 금방이건만 많은 유대인은 가파른 마사다를 직접 두 발로 오르며 그날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사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쿰란 동굴Cave of Qumran이 있다. 쿰란 동굴 역시 마사다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굴하지 않은 유대인의 삶을 증명한다.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는 쿰란 동굴에 숨어 살던 은둔주의자들이었다. 에세네파는 성경사본을 항아리에 담아 숨겨놓았는데 2,000년이 지난 1947년, 목동이 염소를 찾던 중 항아리를 발견한다. 그 속에서 사해본Dead Sea Scroll으로 불리는 양피지 두루마리 7개가 나왔다. 1)아브라함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는 ‘아들인 이삭을 제물로 올리거라’는 신의 명령을 따르려 했을 정도로 신에게 충성했다. 현재 물과 기름 같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는 사실 알고 보면 아브라함을 한 조상으로 삼고 있다. 2)헤롯왕 이스라엘 일대를 다니다 보면 이스라엘을 통치했던 헤롯왕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헤롯왕은 아기 예수가 두려워 ‘어린아이를 모조리 죽이라’고 지시했던 왕으로 유명하다. 악덕한 왕이긴 했지만 그는 건축에 조예가 깊었다.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으며 자신의 피난처로 철옹성 같은 마사다를 축조했다. 1 로마의 발길질을 피하고자 발버둥친 유대인의 흔적을 이스라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국기에 새겨진 별은 ‘다윗의 별’로 불린다 2 검은 양복을 고수하는 정통 유대교인 3 ‘머리 위에 신이 있다’는 의미의 작은 모자, 키파 4 유대인은 예수의 이야기를 닮은 신약성서를 부정하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그것은 누구의 사원인가 Temple Mount성전산 & Western Wall통곡의 벽 마사다와 쿰란을 돌아보던 중 고개를 들었다. 모래바람이 풀풀 날리는 사막 한가운데서 보이는 것이라곤 너른 하늘과 뜨거운 태양뿐. 왜 유대인이 ‘하나의 신’만을 숭배하는지 퍼뜩 이해가 됐다. 그들에겐 이리저리 떠돌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잡아 줄 강력한 절대자가 필요했을 것이다. 반대로 불교는 ‘숲의 종교’라 불린다. 울창한 숲은 사막과 달리 풍요로워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살아간다. 유일신이 필요 없다. 인간이 곧 신이 될 수 있으며 그저 인간은 자연과 더불어 살면 된다. ‘하늘에 계신 신’을 아버지로 삼는 건 유대교뿐만이 아니다. 유대교에서 뻗어 나온 기독교,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한 발자국 떨어져서 보니 세 종교가 하나로 겹쳐져 보였다. 한 뿌리에서 뻗어 나왔을지언정 결코 세 종교를 같다고 말할 수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종교의 각축장인 예루살렘에 입성하면 세 종교의 정체를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을 조망할 수 있는 감람산에 올랐다. 공동묘지 너머로 성전산Temple Mount이 보였다. 성전산은 유대인, 기독교인, 이슬람교인 모두 ‘성지’라 여기는 곳이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 산인 동시에 예수의 발길이 닿은 곳이며 이슬람교의 창시자인 마호메트가 말을 타고 승천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곳에 서니 세 개의 종교가 동시에 “우리가 진짜”라 외치는 것만 같아 현기증이 났다. 지금 성전산에는 황금색 모자를 쓴 황금사원Dome of Rock이 서 있다. 이슬람교도가 예루살렘을 점령하며 지은 이 사원은 오마르 모스크Mosque of Omar로도 불리며 메카와 메디나만큼이나 중요한 곳으로 여겨진다. 당연히 유대인은 이슬람교도가 축조한 황금사원을 보며 칼을 간다. 그들은 성전을 두 번이나 지었으나 두 번 모두 잃었다. 솔로몬왕 시절 지어진 첫 번째 성전은 전란 중 부서지고 말았고 두 번째 성전은 로마 디도 장군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됐다. 디도 장군은 과시용으로 성전의 서쪽 부분 일부를 남겨 두었는데 그 흔적이 통곡의 벽Western Wall이다. 땅을 잃은 백성은 수천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이 벽 앞에 선다. 세우면 무너지고, 찾으면 또 뺏기고…. 약자의 역사를 이해한다. 우리의 조상도 그랬을 것이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유대인은 성전을 다시 세울 ‘그날’을 기다리며 통곡의 벽에 머리를 조아렸다. 키파1)를 쓰고 몸을 앞뒤로 흔들며 토라2)를 읽는 그들의 모습은 생경하다. 구레나룻을 돌돌 말고 검은 양복을 입은 정통 유대교도도 여기선 흔하게 보인다. 1) 키파 유대인이 쓰는 테두리 없는 모자. ‘하느님이 내 머리 위에 있다’는 뜻으로 크기는 손바닥 크기 정도. 이스라엘 어디서든 쉽게 살 수 있으니 기념품으로 사 와도 좋다. 2) 토라Torah 유대인은 예수의 행적을 담은 신약성서를 인정하지 않고 구약성서만을 읽는다. 토라는 구약성서의 처음 다섯 권을 일컫는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DB를 열다] 대학로 마로니에 나무 43년 전 모습

    [DB를 열다] 대학로 마로니에 나무 43년 전 모습

    옛 서울대 문리대 교정에 있던 마로니에 나무다. 1970년 5월 6일 촬영한 사진이다. 이 나무는 서울대가 1975년 신림동 관악캠퍼스로 옮겨 가고 난 다음 조성된 마로니에 공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사십몇 살을 더 먹어 가지도 더 풍성해지고 한 아름 더 굵어졌다. 마로니에 나무는 원산지가 유럽 남부이며 세계 4대 가로수종의 하나라고 한다. 프랑스의 샹젤리제 거리에도 마로니에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다. 대학로의 마로니에 나무는 1929년 4월 5일 이곳에 심어졌다. 그때는 서울대의 전신인 옛 경성제대 교정이었다. 경성제대 법문학부 교수 우에노 나호테루가 지중해에서 가져다가 심었다고 전한다. 서울대 문리대 시절 마로니에 나무는 학생들에게 그늘을 제공해 주고 벤치에 앉아 대화를 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돼 주었다. 그래서 서울대 문리대를 다닌 사람들은 마로니에 나무를 빼놓고는 대학 시절을 얘기할 수 없다. 이 나무는 나무로서 상금을 받았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식목된 지 햇수로 70년이 되던 1998년 4월 서울대 출신인 이두호 전 환경청 차장이 나무가 고희(古稀)가 되기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준 공로가 있다며 상금 100만원과 상장을 준 것이다. 마로니에 공원은 현재 변신 중이다. 서울 종로구는 마로니에 공원의 면적을 올 상반기까지 60% 넓히는 공사를 하고 있다. 손성진 국장 sonsj@seoul.co.kr
  • 너도 파파가 대학가지 말고 짐 싸래? 18세기 영국 엄친아들의 여행 이야기

    너도 파파가 대학가지 말고 짐 싸래? 18세기 영국 엄친아들의 여행 이야기

    토머스 홉스, 애덤 스미스, 볼테르, 괴테, 존 로크, 존 밀턴, 몽테스키외, 에드워드 기번 등등의 공통점은? 부잣집 도련님들의 유럽기행, 그랜드 투어를 했다. 물론 차이는 있다. 혈통이 좋아 주인으로 여행했느냐, 아니면 돈벌이를 위해 하인 격인 동행교사 자격으로 갔느냐다. 어느 쪽이든간에, 수년 동안 유럽 대륙을 휘휘 둘러보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생각을 얻었고 이를 후대에 길이 남겼다. 그래서 ‘그랜드 투어’(설혜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는 거창하게 말하면 근대 초기 유럽의 지성사인데, 자신의 부모형제도 가볍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대중적인 책을 쓰겠다는 야심에 불타오르고 있는 저자의 희망사항을 감안하자면 그보다는 ‘여행의 모든 것’이라 해두는 것이 좋겠다. 그랜드 투어를 다룬다지만 앞에는 고대의 여행, 중세의 순례, 중세말의 탐험과 모험이 배치되어 있고, 말미에는 ‘대중관광의 아버지’라 불리는 토머스 쿡(1808~1892)을 등장시켜 오늘날 단체 패키지 관광의 원형과 발달상까지 다루고 있어서다. 저자가 힘을 집중하는 곳은 18세기 영국인들의 유럽여행이다. 17세기 이후 크게 월등해진 경제력으로 부를 거머쥐게 된 영국인들이 유럽, 그러니까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주 목적지로 해서 집중적으로 도버해협을 건넌 시기여서다. 프랑스에서는 고급스럽고 세련된 매너와 교양을, 이탈리아에서는 고대 로마 제국의 영광과 쇠락을 배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 움직임에 자극받은 유럽 각지의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랜드 투어에 가세했고, 19세기 들어서는 영화 ‘순수의 시대’, ‘태양은 가득히’에서도 드러나듯 유럽적 전통을 갈망하던 미국의 대부호들도 그랜드 투어에 동참했다. 이런 그랜드 투어였기에 “유럽 지배계급 사이에 동질성을 만들어냈고 예술과 건축의 발달을 촉진했으며 계몽사상을 전파하는 등 유럽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현상”이라는 평을 내릴 수 있다. 그랜드 투어를 했던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을 썼고, 또 열렬한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책의 핵심 메시지가 그랜드 투어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 메트로폴리턴이 종교적 관용을 통한 유럽 통합의 꿈을 주장해서다. 동질적 취향, 예술과 건축의 발달, 계몽사상의 전파를 드러내는 여러 현상 가운데 하나는 팔라디오 열풍이다. 이탈리아 건축가인 안드레아 팔라디오(1508~1580)는 BC 1세기 로마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를 모델로 삼아 몇가지 건축법칙을 만들어냈다. “방을 만들 때는 일곱 가지 기본 형태 가운데 하나를 따라야 하고, 식당은 길이가 폭의 두 배가 되어야 하고, 기둥은 코린트식이 이오니아식보다, 이오니아식이 도리아식보다 더 우위에 있”다는 식이었다. 왜 그런지 딱 부러진 이유는 없음에도 그랜드 투어 중이던 영국의 이니고 존스(1573~1652)가 팔라디오에 감명받아 그의 도면을 수집해 널리 퍼뜨리면서 팔라디오 양식은 건축계의 성경이 되어버렸다. 루브르박물관, 버킹엄궁전은 물론 대서양 건너 백악관, 뉴욕공립도서관, 워싱턴 국립박물관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럼에도 사실 이번 책의 가장 재밌는 부분들은 소소한 얘기들이다. 저자는 그랜드 투어를 떠난 이들의 편지나 일기, 여행 팸플릿 등 1차사료를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그만큼 세세한 묘사나 정황들이 잘 살아 있다. 가령 테어도어 츠빙거에서부터 존 머리의 레드북에 이르기까지 여행안내서의 발달 단계, 오늘날 흔한 이미지와 그리 동떨어지지만은 않은 “독일에서는 군인, 이탈리아에서는 산적, 프랑스에서는 늑대, 지중해에서는 해적”을 조심하라는 당시의 표어, 애써 바다 건너 나왔는데 같은 영국인끼리 어울리기 싫다는 이유로 극구 서로 피하는 모습, 막상 와서 둘러보니 낡고 후진적인 모습에 실망하면서 오히려 모국 영국에 대한 애국심이 고취되는 광경, 영국 하인과 대륙 하인의 성향 차이로 일어나는 에피소드, 여행객들을 상대하는 사기꾼들의 온갖 협잡 등이 흥미롭다. 그 가운데 특히 재밌는 부분은 귀족자제들의 타락상. 그렇게 신신당부하고 ‘베어 리더’(Bear leader·새끼곰 조련사)라 불리던 엄한 동 행교사까지 붙였건만, 어린 나이에 홀로 객지에 떠도는 부유층 자제는 늘 술과 여자, 사치와 향락에 빠졌다. 보다못한 부모들이 가난한 이웃 딸을 “침실 동료”로 붙여주기도 했지만 소용 없었다. 유럽의 매음굴이라 불렸던 베네치아에는 창부가 2만여명 가까이 살았고, 타락한 유럽 대륙의 지체 높은 귀부인들은 어린 남자를 애인으로 삼길 즐겨했다. 물론 창부의 고객, 귀부인의 애인 대부분은 영국에서 온 부유한 꼬마들이었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고전경제학 불멸의 고전이 아니라 그랜드 투어 동행교사로서의 어려움과 무료함을 호소하는 글로 읽어내는 대목에서는 웃음이 절로 난다. 고개를 돌려보면 역시 드러나는 건 우리의 모습이다. 여행은 자유지만 자유는 방탕과 그리 멀지 않고, 교양과 취향을 배운다지만 그것 역시 특권층의 속물적 과시욕구와는 동전의 양면이다. 나쁜 소식만 있는 건 아니다. 1732년 이탈리아 여행경험자들로 결성돼 젊은 놈들이 몰려 다니면서 술이나 퍼마시는 모임으로 비판받았던 딜레당티 모임이 결국 나중에 영국 국립미술관, 영국박물관, 왕립미술원이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니까. 먹고살 만해지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배낭여행, 어학연수, 유학이 나중에 어떤 얼굴로 우리에게 돌아올는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2만 3000원.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낯선 터키의 중심 ①콘야 Konya, 베이쉐히르

    식민지를 찾는 나라들의 교차로에 자리해 왕조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중앙 아나톨리아는 여행자들에게 카파도키아로 대표되는 땅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루크가 자란 그 땅은 영화映畵보다 영화榮華스럽고 경이롭다. 중앙 아나톨리아에는 카파도키아와 더불어 콘야, 카라만 등 금은 낯설고 생소한 도시가 존재한다. 초라한 유명세에 가려졌지만 그 이면에 화려한 역사를 품고 있는 이들 도시는 미지의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를 자극한다. 메블라나의 흔적을 쫓아 콘야 Konya “오라! 오거라! 네가 누구든지 오라.” 1200년경, 이슬람 수피즘을 기반으로 탄생한 메블라나교는 이교도도 무신론자도 거짓을 행한 자도 차별 없이 받아들이는 크고 너그러운 마음을 바탕으로 교리를 펼쳤다. 그리고 지금, 메블라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도시 콘야에서는 여행자들에게 메블라나의 가르침을 이야기한다. 콘야의 역사와 정을 느끼고 싶은 이라면 누구든 오라고. 이 계절, 터키의 해거름은 한국보다 이른 시간에 시작된다. 더욱이 콘야의 하루 해는 이스탄불보다 짧아 콘야의 밤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낯선 곳에서의 저녁 나들이가 조금은 긴장되지만 콘야의 거리를 걷기에 이보다 좋은 때는 없다. 이국적인 풍경에 이끌려 발걸음을 멈출 때마다 “어디에서 왔냐?” “어디를 여행할 거냐?”로 출발하는 과도한 관심을 받게 되니 말이다. 열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라 했지만 이방인에게 특별히 각별해 보이는 콘야 사람들의 친절은 묘하게도 한국인들의 정과 닮아 있다. 수백년 전 메블라나의 가르침이 콘야 사람들의 정서와 닿아 있는 듯 콘야는 ‘메블라나의 철학과 함께 평화, 평안 그리고 관용의 도시가 됐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메블라나는 콘야의 긍지다.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나 콘야에서 깨달음을 얻은 메블라나 젤라레띤 루미(1207~1271). 여전히 많은 이들의 정신적 지주로 칭송을 받는 그는 그의 아버지와 함께 ‘메블라나 박물관’에 묻혀 있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셀주크제국의 장미 정원을 하사 받아 조성된 메블라나교의 수행장을 개조해 1926년 문을 연 곳이다. 여러 이슬람 지도자들의 묘 가운데 메블레비들메블라나교의 수행자이 쓰는 긴 모자를 쓴 메블라나와 그의 아버지의 묘는 가장 크고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메블라나가 생전에 입던 의복, 용품과 더불어 이슬람의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턱수염을 보관한 유리 상자도 흥미롭다. 일부러 향을 입힌 것도 아닌데 상자의 작은 구멍으로 향 냄새가 끊임없이 새어 나온다. 메블라나 박물관은 물과 나무가 존재하는 이슬람의 천국을 지향하여 조성됐다. 잘 꾸며진 정원의 한 켠에서는 실물 크기의 인형들을 전시해 메블레비의 생활을 재현해 놓았다. 메블레비들은 생활이 곧 수행이었다. 심지어 밥을 먹을 때에도 메블라나교의 평등의 원칙에 맞춘 순서와 법도를 따라야 했다. 메블레비는 1,001일 동안의 혹독한 수행을 거쳐야 했는데 수행에는 세마 의식 또한 포함됐다. 세마 의식은 터키 여행의 개인적인 로망이었다. 빙글빙글 하얀 치마가 만들어 내는 어지러운 원圓은 블루 모스크나 지중해의 따뜻한 햇살, 고등어 케밥을 순위에서 밀어낼 정도로 신비로워 보였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운이 좋다. 메블라나교 종교의식의 한 형태이며 수행의 방법이자 명상의 한 종류인 세마를 접하기에 콘야보다 적합한 곳을 찾기는 힘들 테니 말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8시30분, 콘야의 메블라나 컬처 센터에서는 세마 공연이 무료로 진행된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세마는 공연이자 일종의 의식이라 지루한 감이 없지 않다. 터키어로 1시간여 의식에 관한 설명이 지속돼 이슬람교도가 아닌 여행자들은 이내 지치곤 한다. 본격적인 의식은 세마젠세마 의식을 행하는 사람이 쉐이흐세마젠을 이끄는 사람의 손에 입을 맞추고 크게 원을 따라 나아가며 시작된다. 아주 느린, 세 번의 인사를 마치고 세마젠이 입고 있던 망토를 떨어트리면 비로소 회전하는 행위가 시작된다. 지루함을 떨치고 절정을 향해 내달리는 시간, 머리에 스카프를 두른 한 관객이 눈물을 터트린다. 뜨거운 덩어리가 목까지 차오르고 그들의 절실함을 지루하다 비웃은 무지를 반성하니 의식이 더욱 성스럽게 다가온다. 세마 의식에서 도는 행위는 신과의 합일점을 향해 가는 길이며, 가슴에 손을 얹는 것은 유일신에게 다가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점차 빠르게 돌기 시작하는 세마젠은 하늘의 축복을 받기 위해 오른손 손바닥을 위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왼손 손바닥을 아래로 향한다. 세마젠은 돌고 또 돈다. 치마를 휘날리며, 크게 원을 그리며. 그렇게 정신없이 돌다가 신호에 맞춰 순간 정지를 하는데 모든 세마젠이 흐트러짐 없이 꼿꼿이 몸을 가눈다. 세마 의식이 보여주는 수행의 길은 코끼리코 몇 바퀴도 이겨내지 못 하는 중생에게는 멀고도 먼 길임에 틀림없다. 세마 의식 외에 콘야에서는 종교적인 수행의 흔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코란, 수학, 물리학 등을 가르치던 ‘카라타이 신학교’와 하디스를 읽기 위해 세워진 ‘인제 미나레 신학교’가 대표적인 예. 두 신학교 모두 옛 교실을 활용해 박물관을 조성했는데 카라타이 신학교의 타일 장식과 인제 미나레 신학교의 해시계, 아랍어로 쓰여진 1200년대의 경전 등이 볼 만하다. ▶travie info 메블라나 박물관┃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4시40분 입장료 3TL 카라타이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인제 미나레 신학교┃관람시간 오전 9시~정오, 오후 1시~오후 5시 입장료 3TL 작은 도시, 크게 품다 베이쉐히르와 콘야 주변 Beyşehir & Around Konya 콘야에 며칠 머물면 인근의 작은 도시들이 눈에 들어온다. 유명세를 타지 않아 여행자들의 발길이 뜸한 도시들이지만 그들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품어 안고 있다. 콘야에서 차로 1시간 정도 걸리는 베이쉐히르도 그런 도시다. 베이쉐히르에 닿기 전, 라벤더샘이라 불리는 ‘에프라툰프나르’로 향한다. 기원전 12세기인 히타이트 시대, 바람의 신, 태양의 신 등 히타이트 신을 부조해 연못 위에 세운 기념비는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정갈하다. 땅에서 샘솟아 맑디 맑은 연못의 물은 기념비를 포함한 사위를 그대로 투영한다. 에프라툰 프나르의 샘물은 그 옛날, 플라톤이 찾아와 마셨다고 한다. 작은 도시 베이쉐히르는 베이쉐히르 호수가 감싸안고 있다. 베이쉐히르 어디에서나 눈에 들어오는 호수는 낭만과 일상이 공존하는 시민들의 공간이다. 셀주크제국 당시 부족장의 이름을 딴 ‘에쉬레포울루 자미’는 단아하면서도 화려한 모습으로 베이쉐히르 호숫가에 자리하고 있다. 장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전세계 사원 중 나무로 만들어진 최초의, 유일한 사원이다. 베이쉐히르 사람들은 그래서 애석해 한다. 베이쉐히르를 모르는 사람들이 에쉬레포울루를 알 리가 없다는 것이다.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어떻게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에쉬레포울루 자미를 유네스코 세계유산 후보로 등록한 지금, 사람들은 베이쉐히르라는 이름을 함께 알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에쉬레포울루는 겉보다 안이 아름다운 사원이다. 지붕을 받치고 있는 400여 개의 서까래는 거의 원형 그대로 중후한 나뭇결을 뽐내고 쭉 뻗은 나무 기둥은 위용을 머금었다. 호두나무로 만든 민바르이슬람교단는 못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아랍어를 미로처럼 조각해 놓았다. 가운데에는 알라, 밑에는 무함마드, 옆에는 모함마드 제자의 이름을 비롯해 코란 경전을 적었으며, 민바르 옆면은 해와 별 등 천체를 조각했다. 사원 내부의 가운데에는 우물이 자리했다. 뚫린 지붕에서 떨어진 물이 우물에 고이면 여름에는 천연 에어컨이 되고 겨울에는 냉동고가 된다고 했다. 강수량을 확인하는 데에도 우물은 유용했다. 콘야 인근에는 그밖에도 역사적인 가치를 지닌 수많은 유적지가 자리한다. 콘야의 남동쪽 춤라의 작은 시골에 자리한 ‘차탈회육’은 요르단강 서안의 예리코에 이어 전세계에서 두 번째로 손꼽히는 인류의 집단 거주 지역이다. 신석기 시대인 기원전 7,000년경부터 공동 생활을 한 흔적과 농경 사회를 그린 벽화 등 가치 있는 유물들이 이곳에서 발견됐다. 차탈회육 공동 거주지의 집들은 야생동물의 침입을 막기 위해 문을 만들지 않았으며, 집과 집이 서로 연결돼 있었다고 한다. 차탈회육은 2012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클리스트라’는 콘야 남서쪽에서 멀지 않은 곡유트르에 자리하고 있다. 바위를 파 만든 수도원의 모습과 흡사해 작은 카파도키아라 불리는 곳이다. 성경에는 사도 바울이 콘야와 얄바츠 사이(비시디아 안디옥), 클리스트라(루스드라)를 방문했다고 적고 있다. 사도 바울이 제자 디모데를 만난 곳도 이곳이라고 한다. 콘야에서 멀지 않은 실레의 ‘성 헬레나 기념 교회’도 볼거리다. 크리스트교를 공인한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의 방문을 기념해 327년에 지은 교회로 터키의 현존하는 교회 건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진경 취재협조 터키항공 www.turkishairlines.com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커버스토리] “특성 비슷한 주변섬 묶어 정부 주도로 공동개발 나서야”

    [커버스토리] “특성 비슷한 주변섬 묶어 정부 주도로 공동개발 나서야”

    전문가들은 정부나 자치단체의 개발 계획에서 섬이 홀대받는다고 입을 모았다. 농촌에 쏟는 관심에 비하면 무시도 그런 무시가 없다는 것이다. 신순호 목포대 지적학과 교수는 “농촌의 이농보다 섬의 이도(離島) 현상이 더 심각한데 홀대가 심하다”며 “섬 개발은 주민에게만 맡겨서는 안 되고 정부나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섬의 특성을 무시한 개발은 별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중해의 유명 섬들처럼 모든 섬이 관광지 개발에 중점을 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수도권과 가까운 섬은 관광지 개발로 외지인을 끌어들일 수 있으나 먼 섬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후자는 주민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사업으로 사람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섬의 경쟁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접근성을 높이려는 노력 등 적극적인 도서 개발을 주문했다. 김현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지역발전연구실장은 테마별로 섬을 묶어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는 “성격이 비슷한 섬을 핵심과 주변으로 나눠 한데 묶고 여러 분야에서 나서 도와주는 방식이 바람직하다”며 일본의 나오시마 섬을 성공 모델로 꼽았다. 세토 내해의 작은 섬 나오시마는 ‘예술 섬’이다. 20여년 전만 해도 구리 제련소에서 나오는 폐기물로 황폐했지만 기업과 주민, 자치단체 등이 나서 세계적 건축가 안도 다다오에게 섬을 예술 공간으로 되살려 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 자연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땅속에 지은 지중 미술관과 폐가를 예술 공간으로 바꾼 집 프로젝트 등 섬이 예술혼으로 가득 차 해마다 전 세계에서 수십만명이 찾아온다. 김 실장은 “우리나라는 홍어로 유명한 흑산도처럼 자연스럽게 이름이 널리 알려진 섬이 대부분이지만 타이완의 어떤 섬은 고량주를 명품화해 외지에서 이 술을 마시러 많이 찾아온다”면서 “해삼 등 비슷한 특산물을 생산하는 섬끼리 연대해 인위적이고 창의적으로 공동 명품화해 브랜드 파워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성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섬 하나를 대상으로 정부나 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사업 기간이 1~3년의 단기에 그치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그렇다 보니 판박이 사업이 많고 효과도 잘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전남대 문화전문대학원 강신겸 교수는 “관광객을 위한 섬 개발이 많다”며 섬은 외지인 입장에서 개발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섬 사람이 먼저 온전히 살도록 주민 소득을 올리는 사업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외지나 관광객과 연계한 개발은 그다음”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1980년 홍도, 1990년 보길도, 1995년 외도, 2007년 청산도와 증도 등으로 인기 섬이 바뀌어 왔다”며 “섬을 개발해도 트렌드를 꼼꼼히 살핀 다음에 착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전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아일랜드 vs 그리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아일랜드 vs 그리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아일랜드와 그리스, 유럽의 변방인 두 나라는 2년 전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지원받는 초라한 신세였다. 하지만 지금 두 나라의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달라졌다. 아일랜드는 ‘구제금융 졸업’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는 반면, 그리스는 여전히 경기 침체의 터널 속에 갇혀 있다. 변덕이 심한 날씨로 유명한 아일랜드의 경제는 ‘화사한 봄날’을 맞고 있다. 지난해 유럽연합(EU) 재정위기국 포르투갈·이탈리아·아일랜드·그리스·스페인(PIIGS) 가운데 유일하게 플러스(0.4%) 성장을 한 데 이어 올해도 1%대의 성장이 기대된다. 지난 8일에는 금리 3.35%의 조건으로 5년 만기 국채 25억 유로(약 3조 5000억원)어치를 무난히 팔아치웠다. EU 27개국 중 가장 낮은 법인세율(12.5%)과 경제위기 전보다 20%나 싼 임금으로 지난해에만 140여개의 외국 기업을 유치하고 1만 2000여개의 일자리를 늘린 까닭이다. 지중해 연안의 따뜻한 그리스는 6년째 불황의 늪에 빠져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국민 네 명 중 한 명이 실업자이고, 월급과 연금이 40%나 깎여 국민경제는 빈사 상태나 다름없다. 구제금융의 대가로 약속한 대로 2020년까지 공공부채를 국내총생산(GDP)의 120%로 낮추려면 뼈를 깎는 고통의 시간이 더 필요하다. 새해 첫날 철도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등 시위가 끊이지 않는 이유이다. 그리스가 ‘지옥행 열차’에서 탈출하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인이 결코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리스의 근로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멕시코·한국 등에 이어 네번째로 많다. 그렇다면 이유는 뭘까. 그것은 아일랜드와 그리스의 리더십 차이다. 아일랜드는 과거 20년간 메리 로빈슨과 메리 매컬리스라는 두 여성 리더가 ‘세계에서 기업하기 가장 좋은 나라’를 표방하며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통해 외국자금을 끌여들여 연평균 7%대 이상의 고도성장을 이뤘다. 서유럽의 빈국에서 자신들을 수백년간 지배했던 영국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달러 가까이 많은 ‘기적’을 창출한 것이다. 그 덕분에 위기에 몰려도 아일랜드인은 긴축의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고 있다. 반면 그리스는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 등 리더가 EU 가입 후 쏟아져 들어온 저금리의 외국자금을 경제를 위해 쓰기는커녕 집권 연장을 위해 흥청망청 써버리는 바람에 국가부도 위기에 몰렸다. 이에 그리스인은 “리더가 저지른 잘못을 우리가 왜 뒤집어써야 하느냐”며 연일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일랜드의 리더십은 국민들을 통합했고, 그리스의 리더십은 국민들을 분열시킨 셈이다. 지난해 대선 이후 국민들이 ‘내 편’, ‘네 편’으로 분열돼 있다. 원화 가치가 연일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수출 경쟁력을 갉아먹어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시기이다. 이런 ‘난국’에는 신뢰와 설득을 통해 국민을 하나로 묶는 아일랜드의 리더십이 필요하다.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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