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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빌슨(BILSON), 감성캠핑족 위한 유럽형 아웃도어 브랜드 선보여

    빌슨(BILSON), 감성캠핑족 위한 유럽형 아웃도어 브랜드 선보여

    JTBC 재난드라마 디데이, 삼성라이온즈 등 협찬품으로 주목 캠핑열풍이 불기 시작한지 10여 년이 지나면서 캠핑문화가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야외에 나가서 바비큐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단순한 캠핑을 넘어 자신만의 개성과 취향을 살린 ‘감성캠핑’이 새로운 캠핑 트렌드로 급부상 하고 있다. 감성캠핑이란 화려한 캠핑용품 대신 따뜻하고 빈티지한 멋을 지닌 자신만의 캠핑용품으로 보다 안락하고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시도이다. 최근에는 이 같은 감성캠핑의 취지에 공감하는 캠퍼들이 증가하면서 감성캠핑용품에 대한 관심 역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새롭게 문을 연 감성 아웃도어 제품 전문 쇼핑몰 빌슨(BILSON, www.bilson.co.kr)은 따뜻한 감성을 지닌 디자인과 한층 업그레이드 된 기능을 겸비한 유럽형 초경량 타월 브랜드 ‘BUBEL(부벨)’, 미군용 야전침대 브랜드 ‘Disc-O-Bed(디스코베드)’, 카라비너와 후크의 만남 ‘Qlipter(클립터)’ 등을 선보이며 감성캠퍼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마치 어느 지중해 해변에서 캠핑을 즐기는 듯 유럽의 감성의 그대로 옮겨 담은 Kills The Towel ‘BUBEL’은 타월의 퍼포먼스와 스타일 두 가지를 모두 만족시키는 스페인 타월 브랜드다. 부벨의 모든 제품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손에서 태어난 독특한 컬러와 디자인을 담고 있다. 흔히 구할 수 있는 극세사 제품과는 차원이 다른 경량성, 초강력 흡수력, 내구성, 물빠짐 현상방지, 영구 항균처리 등 진보된 기술력을 가진 소재로 사용성을 더욱 높였다. 극한의 요구에 최적화된 침대 솔루션으로 전 세계 긴급 구조 및 군부대 작전 등에 활용되고 있는 야전침대 ‘Disc-O-Bed’ 역시 눈에 띈다. 최근 국내에 소개되면서 캠퍼들의 워너비 아이템을 급부상 중인 디스코베드는 독창적인 디자인과 침대와 벤치로 모두 사용이 가능한 2 in1 기능으로 각광 받고 있다. 어떤 험한 지반에서도 안락한 취침을 약속하며, 조립 및 분해의 편리성, 최소 사이즈 보관으로 사용이 더욱 편리하다. 캠퍼들의 필수품으로 사랑 받고 있는 Qlipter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아이템이다. 클립터는 다목적 기능 툴로 설계돼 카라비너와 후크로 동시에 사용이 가능하며, 나뭇가지나 작은 구멍, 구석에 후크를 걸 경우 고무 캡을 분리해 사용할 수도 있다. 단 70g에 불과한 클립터 하나로 최대하중 22.5kg까지 사용이 가능해 아웃도어는 물론이고 일상생활이나 여행, 각종 스포츠 활동을 즐길 때도 유용하게 활용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JTBC 재난 드라마 디데이, 삼성라이온즈 등에 협찬 상품으로 알려지면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아름다운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지금, 유럽형 아웃도어 브랜드 전문 쇼핑몰 ‘빌슨(BILSON)’에서 당신의 감성캠핑 지수를 한층 높여보는 것은 어떨까. (문의: 070 4086 0139)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척박한 땅에서 삶을 개척한 이스라엘 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삶을 개척한 이스라엘 사람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을 향해 벌여온 오랜 전쟁과 살상으로 세계적 공분의 대상이 되면서도 광야와 바다, 호수 등 자연환경은 또 다른 매력이 되고 있는, 애증의 나라다. 성경의 나라답게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 등과 얽혀 있는 수천년 역사를 품은 유적지도 풍부하다. EBS 1TV는 푸른 지중해의 항구도시에서 고도 예루살렘과 죽음의 땅 사해, 그리고 남부 네게브 사막을 거쳐 최남단 홍해까지 둘러보며 이스라엘의 재발견에 나선다. 15일 밤 8시 50분 세계테마기행 ‘이스라엘의 재발견’에서 척박한 광야를 개척해 온 이스라엘 국민들의 삶을 따라간다. 히브리어로 높은 봉우리를 뜻하는 헤르몬 산(해발 2814m)은 성경에도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명산으로 1년 내내 눈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눈의 산으로 불린다. 헤르몬 산의 만년설은 갈릴리 호수까지 흘러 들어가는데 이스라엘 전체 약 90%의 식수 공급원이 된다. 헤르몬 산 인근 ‘메툴라’ 지역에는 과거 아랍인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교전지가 남아 있다. 방앗간으로 위장된 비밀스러운 무기고를 찾아 아직도 진행형인 분쟁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황량한 광야를 비옥한 농토로 바꾼 원동력으로 유명한 키부츠 집단농장. 히브리어로 ‘협동’이라는 뜻을 가진 이스라엘의 집단 농업 공동체 마을이다. 그중에서 초창기 설립된 미슈마르 하에메크 키부츠를 찾았다. 토지는 국유로, 생산 및 자동차, 집, 교육, 생활비까지 공동 소유로 하며, 구성원의 전체 수입은 키부츠에 귀속된다. 주거는 부부 단위로 할당되고, 세탁과 젖소 키우기, 가게 점원 등 활동은 나눠서 하고 자기에게 맞지 않는 일은 바꿀 수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8] 곰탕과 설렁탕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8] 곰탕과 설렁탕

    한국인은 국물에 주식인 밥을 말아 먹는 특징을 지녔다. 뜨거운 뚝배기의 국밥을 후후 불며 한 그릇 비워야 뭐를 먹은 것 같다. 그 대표적인 국밥에 곰탕과 설렁탕이 있다. 비슷한 맛의 고깃국인 곰탕과 설렁탕의 차이는 무엇일까. 또 나주곰탕은 일반 곰탕과 무슨 차이가 있나. 곰탕은 우리말 ‘고다’에서 나온 말이다. 곰국이라고도 하는 곰탕은 가마솥에 물을 붓고 소고기의 사태, 곱창, 양, 곤자소니와 무, 다시마 등을 넣고 푹 끓인다. 곤자소니는 소의 대장 끝으로 기름기가 많은 부위다. 반면 설렁탕은 도가니, 양지머리를 기본으로 우설, 허파, 지라 등과 함께 사골과 소머리뼈 등 잡뼈를 넣어 허연 국물이 나올 때까지 곤다. 국물 찌꺼기를 걷어내며 몇 번씩 끓인다. 둘 다 살코기보다 주로 잡육을 많이 쓰기는 하는데, 곰탕이 비교적 누런 국물이라면 설렁탕에는 소뼈가 들어가 뽀얗다. 본래 곰탕은 간장으로 간을 하고 설렁탕은 소금으로 입맛에 맞췄다. 둘 다 먹을 때 파를 넣어 맛을 더하고 반찬은 깍두기만 있으면 된다. 설렁탕에는 밥과 함께 국수를 넣기도 한다. 소는 고조선 시대에도 키우기는 했지만, 풀이 많지 않은 우리 땅에선 귀한 고기였다. 곰탕이나 설렁탕 역시 조선 시대에 많은 사람이 더 많은 양을 먹기 위해 국물을 이용한 일종의 장국밥이다. 설렁탕은 조선 때 매년 경칩이 지난 첫 번째 해(亥)일, 축(丑)시에 동대문 밖에서 임금과 신하들이 백성들과 함께하는 신농제를 지내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임금이 먼저 쟁기를 세 번 민 다음 정승 등도 뒤따라 농사짓는 시범을 보인 뒤 소와 돼지 등을 잡아서 백성과 함께 국밥을 먹었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소 사육 정책에 따라 소고기를 싸고 쉽게 접했다. 그 덕분에 서울 무교동과 청계천 수표교를 중심으로 가마솥을 걸어 놓은 곰탕집과 설렁탕집이 늘었다. 따라서 곰탕과 설렁탕은 흔치 않은 서울 음식 중 하나다. 그때는 사대문 인근 밭에서 나는 조선무가 꽤 맛있었다고 전해진다. 깍두기의 무는 한양의 것을 제일로 치고 김장용 배추인 호배추는 중국과 가까운 개성의 것을 으뜸으로 여긴다. 곰탕은 6·25전쟁 이후 전국적으로 퍼졌다. 다만 만드는 방법은 지역의 입맛에 따라 조금 달랐다. 전남의 나주곰탕, 경북의 현풍곰탕, 경남의 마산 곰탕, 황해도의 해주 곰탕 등이 유명하다. 함경도에는 독특한 가리국이 있다. 현풍곰탕과 마산 곰탕은 고기를 넣기 전에 설렁탕처럼 사골로 깊은 맛의 육수를 내는 게 특징이다. 또 소의 잡육도 듬뿍 넣는다. 소고기 곰탕과는 다르지만, 또 다른 장국밥으로 대구의 육개장, 부산의 순대국밥도 있다. 영산강을 끼고 있는 나주에는 사연도 많다. 일제강점기 때 나주에는 군납용 통조림 공장이 있었다. 일제는 고기는 통조림에 쓰고 가죽으로 군용 벨트와 신발, 가방 등을 만들었다. 통조림 공장에서 식용할 수 없는 내장 등 부산물은 버려졌는데, 이를 마을 사람들이 주어 고깃국을 만든 게 나주곰탕의 효시다. 탕을 끓이며 부산물의 비릿한 노린내를 잡기 위해 국물 위에 뜨는 누런 기름기를 밤새 걷어냈다. 그 결과 영양이 더 뛰어나면서도 단백한 나주곰탕이 탄생했다. 어머니의 놀라운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영산강과 나주 일대에는 청동기 후기부터 1000년 가까이 존속했던 신비의 집단이 거주했다. 많지 않은 유물과 유적을 보면 선진적 문명을 영위했던 사람들이었다. 장례에 쓰인 분묘의 경우 한반도나 만주 일대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옹관묘를 사용했다. 옹관묘는 대형 항아리 2개를 서로 붙여 시신을 담은 묘를 말한다. 그때는 고열에서 항아리를 굽는 것만 해도 어려운 기술인데, 큰 항아리를 상용했다는 게 신기한 일이다. 당시 영산강은 지금보다 강폭이 훨씬 넓고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 마치 지중해와 비슷했다. 따라서 강과 바다, (나주)평야를 모두 끼고 있던 만큼 물산이 넘쳐났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남중국과 일본 규슈, 오키나와, 동남아 등과 해상교역을 했다. 나주인은 비슷한 시기인 그리스 문명기의 지중해인처럼 풍요로운 해상 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6세기 한성백제(서울 송파·경기 하남)가 사비(충남 부여)로 천도할 때 역사 속에서 지워진다. 300여년 후 영산강과 나주는 다시 역사에 등장한다. 왕건이 고려를 창건하기 전 후백제의 견훤과 세력을 다툴 때 나주를 공략하기로 했다. 나주는 후백제 도읍인 완산주(전주)의 배후 지역이다. 왕건의 밀사는 나주의 토착 귀족을 몰래 찾았고, 후백제를 치는 데 협조를 구한다. 군주의 뒤통수에서 배신하라는 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나주인들은 왕건을 순순히 따른다. 야사에서는 개성의 해상 세력인 왕건이 “오랜 인연을 지닌 해상인들끼리 뭉쳐야지, 왜 조상의 원수인 북방계 부여인(백제)을 따르느냐”고 설득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 직전의 해상 세력인 (통일)신라기의 장보고도 개성과 나주를 잇는 정신적 지주였다. 왕건을 도운 귀족은 나주 오씨의 시조가 되고, 그 딸이 장화왕후가 된다. 곰탕 한 그릇에 진한 얘기가 배어 있다.   <눈물은 왜 짠가> 시인 한민복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 둬라.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단독] [커버스토리]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 유럽행은 또 다른 차별의 시작이었다

    [단독] [커버스토리] 목숨 걸고 탈출했지만… 유럽행은 또 다른 차별의 시작이었다

    그리스 동쪽 에게해 섬에 도착한 난민들은 이내 눈시울을 적신다. 위태위태한 고무보트가 가라앉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다가 무사히 땅에 발을 딛는 순간, 아이들과 여성들은 울음을 터뜨린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인 그리스까지 밀입국에 성공한 뒤 난민의 이동은 자유롭다. 그러나 고무보트 상륙은 고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지난 8월 조국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 수헤일(23)은 터키를 거쳐 그리스의 레스보스 섬에 닿았지만 그리스 본토를 밟기 위해 마냥 기다려야 했다. 이곳에는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라크 등지에서 몰려온 난민이 2만명 가까이 머물고 있다. 재정위기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맨 그리스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곳 난민은 신분 등록을 마칠 때마다 2500명씩 카페리선에 실려 그리스 본토로 이송된다. 이들은 다시 등 떠밀려 하루 2000명 이상이 북부 마케도니아 국경으로 향한다. 정부가 나서 난민을 발칸 국가들로 떠넘기는 셈이다. ●국경 넘으려 브로커에 돈 주고 가짜 여권 만들고 수헤일은 레스보스 섬에서 열흘 가까이 대기하다 페리에 몸을 실었다. 아테네 외곽의 피레우스항까지의 뱃삯은 46유로(약 6만 1000원). 아테네까지 도보로 이동한 뒤 테살로니카에서 45유로를 내고 열차를 탔다. 국경 도시인 에브조노이까지는 10유로(약 1만 3000원)를 내고 택시를 이용했다. 이곳에서 마케도니아 국경을 넘은 그는 난민 수천 명과 맞닥뜨렸다. 이때부터 발칸을 지나 동유럽으로 북진하는 길이었다. 게브젤리자역에선 가까스로 기차에 올랐다. 스코페까지 10유로, 다시 기차에서 내려 로자네까지 5유로를 내고 버스를 이용했다. 여윳돈이 있었지만 세르비아 국경을 넘기 위해선 다시 걸어야 했다. 하루 수천 명이 몰려 거대한 난민촌으로 돌변한 수도 베오그라드 중앙역을 피하기 위한 여정이었다. 제대로 된 체류 허가증을 받지 못해 헝가리행 열차 탑승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헤일은 일단 베오그라드까지 20유로를 내고 기차로 이동했다. 이후 버스를 타고 국경도시 칸지자까지(20유로) 간 뒤 다시 걸어서 헝가리 국경도시 세게드에 이르렀다. 수헤일은 헝가리가 국경에 철조망을 두르고 난민 유입을 본격 제어하기 직전 100유로 넘는 돈을 주고 손쉽게 부다페스트역에 닿을 수 있었다. 그는 이곳에서 마지막으로 브로커를 통해 550유로가량을 지불하고 승용차에 탑승해 오스트리아 빈을 거쳐 독일 땅을 밟았다. 그가 최종 목적지인 독일까지 오는 동안 들인 교통비만 비행기 삯을 빼고도 2400달러(약 284만원)를 웃돈다. 20일 남짓한 여정 동안 숙식을 위해 들인 비용도 비슷할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땅 시리아에서 6개 나라를 거쳐 도착했다. 이젠 수중에 남은 돈도, 고향 어머니에게 무사하다는 것을 알릴 방법도 없다. 수헤일보다 가난한 난민들은 승용차 대신 구글앱과 왓스앱에 의지해 비상 수송용 열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경로를 찾는다. ●러시아 모스크바를 경유하는 루트도 개척 난민을 돕는 시리아의 애드난 변호사는 “다마스쿠스에서 난민을 대상으로 독일까지 여정을 제공하는 브로커 사업이 활개치고 있다”면서 “평균 500유로(약 67만원)면 가짜 여권을 만들 수 있고 2400달러면 독일까지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부익부 빈인빅 현상이 두드러졌지만 최근 17~25세의 젊은 난민이 주류를 이루면서 브로커 의존도가 크게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난민의 유럽행 경로는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된다. ‘지중해 루트’와 ‘터키·그리스 루트’, ‘북극 루트’ 등이다. 과거 주요 이동로인 지중해 루트는 주로 수단, 리비아를 거쳐 지중해를 건넌 다음 이탈리아의 람페두사나 시칠리아로 유입되는 경로다. 모로코에서 서지중해를 건너 남부 스페인으로 유입되는 난민도 해마다 6000명 선에 이른다. 이 같은 경로의 난민은 2012년 2만 2000여명, 2013년 6만여명 수준이었다가 지난해 12만 4000여명, 올해는 벌써 38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지중해 루트를 이용하기 위해 지금도 리비아에서 30만명 가까운 난민이 대기 중이라고 밝혔다. 지중해 루트에서 전복 사고가 잇따르자 난민들은 그리스·터키 루트로 불리는 육로로 몰렸다. 이 루트에서도 터키에서 그리스까지 가는 데 고무보트를 타야 하기에 동지중해 루트로 불리기도 하는 길이다. EU에 가입하지 않은 터키에서 그리스로 건너가려면 여권 등 까다로운 입국심사를 거쳐야 하기에 난민들은 목숨을 걸고 밀입국용 고무보트에 오른다. UNHCR에 따르면 올 1월부터 8월까지 난민 15만 8000여명이 터키·그리스 루트를 이용했다. 최근 난민들이 새로 개척한 ‘더 확실하고 안전한’ 유럽행 루트는 이른바 ‘북극 루트’다. 시리아에서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간 뒤 이곳에서 러시아로 들어간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무르만스크를 거쳐 노르웨이 오슬로에 닿는다. 이들은 항공편과 기차, 택시, 자전거 등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은 소개했다 ●알자지라 “우리가 원하는 건 전쟁 멈추는 것” 루트에 따른 차별도 존재한다. 이는 인종·종교 차별과도 맞물려 있다. 최근 프랑스 북부도시 칼레의 나타샤 부샤르 시장은 선별적으로 난민을 수용하겠다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거칠게 비난했다. 중동 일대의 난민촌에서 5년간 2만명을 자신들의 기준에 따라 받아들이겠다는 영국 정부의 복안에 반발한 것이다. 칼레에 머무는 난민은 리비아에서 목숨을 걸고 도착한 흑인이 대부분이다. 수단,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 니제르 등 아프리카 출신이다. 이들은 다시 영·불 간 도버해협을 건너려다 매주 수십 명이 목숨을 잃고 있다. 동유럽 국가들은 무슬림을 배제하고 기독교계 난민을 먼저 수용하겠다는 속내를 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국가들은 난민 속에 IS가 섞여 들어오는 것도 우려한다. 난민들이 가장 원하는 루트는 어디일까. ‘어떤 루트도 가지 않고 고향에서 살고 싶다’는 게 정답이다. 아랍권 언론 알자지라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유럽행이 아니라 전쟁이 멈추는 것”이라고 호소하는 시리아 난민 소년 키난 마살메흐(13)의 인터뷰를 전했다. 마살메흐가 “우리는 유럽에 가고 싶지 않다. 고향의 평화를 바란다”고 간청하는 영상은 난민 유입을 막으려는 국가와 난민 수용에 나선 국가 모두에 울림을 줬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3살 난민 쿠르디’ 사고 지역서 어린이 난민 2명 또 사망

    ‘3살 난민 쿠르디’ 사고 지역서 어린이 난민 2명 또 사망

    3살 꼬마 난민 쿠르디의 소식이 전 세계인의 마음을 울린 가운데, 쿠르디가 사망한 지점에서 또 다른 난민 아이들이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의 9일자 보도에 따르면 사고를 당한 가족은 이라크 출신의 난민으로, 쿠르디 가족과 마찬가지로 유럽에 들어가려다 변을 당했다. 12살 된 딸과 8살 된 아들, 나이가 밝혀지지 않은 셋째아이, 남편과 함께 유럽으로 들어가는 난민보트에 오른 제이납 아바스는 쿠르디가 사망한 같은 지점인 터키 해안 인근에서 발견됐다. 이들은 태운 보트는 바다에서 전복됐고, 아바스는 아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당시 이들 난민 가족은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상태였고, 아바스는 뒤집힌 배에서 떨어진 아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결국 아바스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셋째 아이만 구조됐고 나머지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녀는 수습된 어린 딸과 아들의 시신을 부여잡고 “내 잘못이다”라는 말을 반복하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해외 언론에 따르면 아바스 가족은 이라크를 떠나 이스탄불로 들어가는 여정에 올랐었다. 이들은 그리스로 들어가기 위해 2주 간 기회를 엿봤고 결국 간신히 보트에 오를 수 있게 됐지만 이들 가족은 결국 육지에 발을 건네 보지도 못한 채 바다에 휩쓸렸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9일, 아바스는 비닐에 쌓인 두 아이의 시신과 함께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로 돌아갔다. 도착하자마자 바그다드 남쪽 작은 도시까지 트럭을 타고 들어간 뒤 이곳에 아이들을 묻었다. 아바스는 바그다도 공항에 도착한 뒤 “우리는 아이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을 떠나야 했다”는 짧은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해 지중해에서 사망한 난민은 2700명에 이른다. 제2, 제3의 3살 난민 꼬마 쿠르디가 지금 이 순간에도 위험한 여정을 감행하고 있다. 사진= ⓒ AFPBBNews=News1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국내외 난민 현실] 유럽 땅 밟아도… 정신적 공황·폭력에 무방비

    “지중해를 횡단하던 난민선이 침몰해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는 얼마 전 (수용소) 창문에서 투신했어요. 같은 배를 탔던 26세 청년은 불안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고 있죠.”(이탈리아 인권단체 ‘메두’ 소속의 정신과 의사)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까스로 유럽땅을 밟은 난민들이 다시 극심한 후유증과 폭력,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초유의 난민 위기에 직면한 유럽 각국이 난민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한계를 드러낸 탓이다. AFP는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난민위원회(CIR) 보고서를 인용, 시칠리아에 체류 중인 난민 가운데 38%가 우울증을 앓고 44%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고 보도했다. 이곳 난민의 30% 안팎은 고국에서 한 차례 이상 고문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난민선 표류나 침몰 외에도 거대한 사막을 횡단하는 등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국제이주기구(IOM) 관계자는 “엄청나게 몰려드는 난민에게 식량과 통역 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털어놨다. 난민에 대한 폭력도 급증하고 있다. ‘난민의 천국’이라는 독일 로텐부르크의 난민 수용소에선 이날 증오 범죄로 추정되는 방화가 일어나 난민 6명이 다쳤다. 독일에선 올 들어서만 난민 수용소 공격이 200건 이상 발생했다. 영국에서도 올해 무슬림에 대한 증오 범죄가 816건 발생해 전년 동기보다 70% 급증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또 다른 문제다. 베를린 인근 보호소에 사는 시리아 난민 무함마드 알키라니(28)는 3명의 가족이 매달 정부로부터 233유로(약 31만원)를 지원받지만 겨울을 앞두고 방한복을 사기조차 힘겹다고 워싱턴포스트에 털어놨다. AP는 지난해 10월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 다섯 가족 42명이 이날 수도 몬테비데오 광장에서 생활고를 호소하며 출국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난민들의 엑소더스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시리아 난민이 국경을 넘어 터키 남부 도시에 도착했다고 가디언은 전했고, 헝가리 남부 로스케 등지의 수용소에서 난민 수백명이 탈출해 북쪽 부다페스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고 AP가 보도했다. 뒷짐만 지고 있던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도 매년 7만명 규모인 기존 난민 프로그램 쿼터 중 일부를 시리아 난민에게 할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국내외 난민 현실] 유럽 땅 밟아도… 정신적 공황·폭력에 무방비

    “지중해를 횡단하던 난민선이 침몰해 아내와 아이를 한꺼번에 잃은 남자는 얼마 전 (수용소) 창문에서 투신했어요. 같은 배를 탔던 26세 청년은 불안에 시달리며 밤잠을 설치고 있죠.”(이탈리아 인권단체 ‘메두’ 소속의 정신과 의사)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가까스로 유럽땅을 밟은 난민들이 다시 극심한 후유증과 폭력,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상 초유의 난민 위기에 직면한 유럽 각국이 난민들의 상처를 보듬는 데 한계를 드러낸 탓이다. AFP는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난민위원회(CIR) 보고서를 인용, 시칠리아에 체류 중인 난민 가운데 38%가 우울증을 앓고 44%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겪는다고 보도했다. 이곳 난민의 30% 안팎은 고국에서 한 차례 이상 고문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난민선 표류나 침몰 외에도 거대한 사막을 횡단하는 등 여러 차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료는 전무한 상황이다. 국제이주기구(IOM) 관계자는 “엄청나게 몰려드는 난민에게 식량과 통역 등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고 털어놨다. 난민에 대한 폭력도 급증하고 있다. ‘난민의 천국’이라는 독일 로텐부르크의 난민 수용소에선 이날 증오 범죄로 추정되는 방화가 일어나 난민 6명이 다쳤다. 독일에선 올 들어서만 난민 수용소 공격이 200건 이상 발생했다. 영국에서도 올해 무슬림에 대한 증오 범죄가 816건 발생해 전년 동기보다 70% 급증했다. 경제적 어려움은 또 다른 문제다. 베를린 인근 보호소에 사는 시리아 난민 무함마드 알키라니(28)는 3명의 가족이 매달 정부로부터 233유로(약 31만원)를 지원받지만 겨울을 앞두고 방한복을 사기조차 힘겹다고 워싱턴포스트에 털어놨다. AP는 지난해 10월 지구 반대편 우루과이에 정착한 시리아 난민 다섯 가족 42명이 이날 수도 몬테비데오 광장에서 생활고를 호소하며 출국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난민들의 엑소더스는 끊이지 않고 있다. 이날도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한 수천명의 시리아 난민이 국경을 넘어 터키 남부 도시에 도착했다고 가디언은 전했고, 헝가리 남부 로스케 등지의 수용소에서 난민 수백명이 탈출해 북쪽 부다페스트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고 AP가 보도했다. 뒷짐만 지고 있던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도 매년 7만명 규모인 기존 난민 프로그램 쿼터 중 일부를 시리아 난민에게 할당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목숨 건 3500㎞… 세상에서 가장 먼 탈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5일 밤(현지시간) 오랜 여정 끝에 독일 뮌헨역에 도착한 난민들은 “독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아랍어 및 영어 메시지와 박수를 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따뜻한 음식과 음료 외에 아이들에겐 곰인형 같은 푸짐한 선물까지 안겼다. 이들은 서툰 영어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일부는 목숨을 건 ‘엑소더스’가 독일에서 마무리된다는 벅찬 감동에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터뜨렸다. 이들 대다수는 내전이 격화된 시리아 등 중동에서 건너왔다. 터키 국경을 통해 그리스와 발칸 국가들로 넘어온 뒤 경찰의 봉쇄를 뚫고 다시 헝가리까지 이동해 서유럽행 기차를 기다렸다. 시리아의 정든 고향을 등지고 차량과 배편 등을 이용해 최소 3500㎞를 목숨을 걸고 건넜다. 시리아 세 살배기 난민의 비극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인 이날 에게해의 그리스 아가토니시 섬에서 2개월 된 시리아 영아가 익사했다. 한 난민 여성이 물에 빠져 위중한 상태의 아들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섬에 의료진이 없어 결국 숨지는 등 난민의 비극이 계속됐다. 교통수단이 차단된 난민들은 도보행진을 시작했다. 4일 헝가리 부다페스트 켈레티역에서 독일행 기차를 기다리던 난민 500여명은 오스트리아 국경까지 175㎞를 걸어가기 시작했다. “걸어서라도 가겠다”던 행렬은 주변 수용소 난민까지 가세하면서 단박에 수천명 규모로 불었다. 대혼란을 우려한 헝가리 정부는 뒤늦게 버스편을 제공했다. 이날 새벽 3시쯤 난민을 실은 첫 버스가 오스트리아 국경에 도착했다. 헝가리에서 출발한 ‘난민 버스’들은 이날 하루 1만명 가까운 난민을 실어날랐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베르너 파이만 오스트리아 총리는 난민들을 제한 없이 수용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한편 이집트 해군이 지중해에서 난민 220여명이 탑승한 세 척의 어선을 나포했다고 밝혔다고 아랍권 위성채널 알아라비야 등이 6일 보도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세종시에 9개 주제 테마마을 들어선다

    세종시에 9개 주제 테마마을 들어선다

    2017년 세종시에 한옥마을과 유럽마을 등 9개의 다양한 테마 마을이 들어선다. 6일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세종특별본부에 따르면 세종 신도시의 새로운 주거문화를 만들기 위해 생활권별로 한옥형과 유럽형 등 9개 주제의 단독주택단지를 단계적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1-1생활권인 고운동에는 한옥마을·유럽형마을·에너지자급주택단지(제로에너지타운)·생태건축단지가 만들어진다. 제로에너지마을은 태양열과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에너지 사용량을 최소화하거나 단지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 효율 1++ 등급의 집이 35가구(가구당 330㎡) 만들어진다. 토지비(2억 5000만원)와 건축비를 합치면 4억 5000만~5억원 정도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한옥마을(50가구)과 그리스·지중해, 독일 등을 본뜬 유럽풍 마을(90가구)에는 주거단지와 게스트하우스를 만들어 숙박과 체험 관광 등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만든다. 2-1생활권인 다정동에는 모델하우스(견본주택) 마을이 생긴다. 사업지에 들어설 여러 단독 주택들의 견본주택을 지어 홍보, 분양하고 5년간 관광용으로 활용한 뒤에는 부지를 매각해 분양(20~30가구)도 가능하다. 호수공원과 붙어 있는 S-1생활권은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을 본뜬 창조문화마을(50~60가구)을 조성한다. 4-1생활권인 반곡동에는 국책연구단지, 대학 종사자들이 거주하며 창조 활동을 지원받을 수 있는 고품격 친환경창조마을이, 6-4생활권 해밀리에는 젊은 건축가들이 독창적인 모던·사이버 미래 건축을 선보일 친환경미래마을이 추진된다. 행복청과 LH는 올 상반기 단독주택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오는 11월 한옥마을, 에너지자급주택단지, 창조문화마을 등 3곳의 토지 공급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2017~2020년 전 마을이 완공될 예정이다. 세종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세 살 꼬마의 비극…꽉 잠긴 영국 門도 열었다

    세 살 꼬마의 비극…꽉 잠긴 영국 門도 열었다

    세계적인 공분을 일으킨 시리아 꼬마 난민의 비극적 죽음이 2차 대전 이후 최악이라는 난민 사태의 분수령이 될 모양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살아서 도달한 난민은 13만 6840여명으로 지난해 상반기(7만 4850여명)의 곱절 수준이다. 지난 2일 터키의 한 해변에서 익사체로 발견된 아일란 쿠르디(3)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세계인들은 미국과 유럽 등 서구 선진국들에 난민 수용에 적극 나서라는 성토를 쏟아내고 있으며, 자발적인 모금 활동을 전개하는 등 난민 돕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난민 분산 수용 의무화에 합의하는 등 전향적으로 나서고 있다. 3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전날 쿠르디의 이름을 따 개설된 모금펀드에 하루 만에 473명이 모두 1만 5286파운드(약 3000만원)를 기부했다. 모금액은 영국 구호단체 ‘시리아를 위해 손에 손잡고’를 통해 시리아 어린이 난민을 위해 쓰일 예정이다. 시리아 어린이는 하루 7명꼴로 사망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1만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00만 달러(약 23억원) 규모의 난민 지원용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유럽 정치권도 태도를 바꿨다. 특히 EU 국가 중 난민 수용에 가장 인색했던 영국은 더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입장을 선회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4일 “시리아 주변국 난민 캠프에 있는 사람들을 직접 이주시키는 방식으로 수천명에게 문을 열겠다”고 밝혔다. 시리아 국경지역에 있는 유엔난민기구 난민캠프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들을 수용할 것으로 보이며, 독일의 수용 규모(1만 5000여명)를 넘지 않는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됐다. 재집권한 캐머런의 보수당 정권이 난민규제 고삐를 죄며 지금까지 영국에 유입된 난민은 고작 200명 수준. 올해만 80만~100만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것으로 전망되는 독일과 비교하면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는 이날 “아버지로서 아일란의 모습에 깊은 슬픔을 느꼈다. 영국은 도덕적 나라이며, 우리는 도덕적 책임을 이행할 것”이라고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22만 5000명이 참여한 서명운동도 보수당의 정책 변화에 자극제가 됐다. 독일과 프랑스는 EU 회원국이 난민을 의무적으로 분산 수용한다는 원칙에 합의했다. EU 집행위원회는 9일 구체적인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U 회원국이 수용할 난민은 최소 10만명으로 추정되며, 국가별로 난민 할당 인원은 국내총생산(GDP)과 인구수, 실업률, 과거 망명 신청자 등을 기초로 산정된다. 미국에 대해서도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현재 미국에 수용된 시리아 난민은 1800명에 불과하다. UNHCR은 2011년 시리아 내전이 시작되자 미국에 시리아 난민 1만 7000명을 받아들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박상숙 기자 alex@seoul.co.kr
  • “어른들이 미안해” 모래조각이 된 3살 난민 소년

    지난 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해변에 익사한 한 어린 꼬마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온 채 발견돼 전세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던졌다. 바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의 3살 난민 소년 에이란 쿠르디였다. 소년은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유럽 동년배 친구들은 뛰어놀았을 이곳 휴양지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쿠르디의 마지막 모습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를 통해 퍼지며 전세계인 슬픔과 공분을 불러 일으켰으며 네티즌들은 각자의 그림으로 쓸쓸히 떠난 소년을 추모했다. 특히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모래조각 예술가인 수다르산 팻낵은 인도 동쪽에 위치한 부바네스와르에서 65km 떨어진 푸리 해변에 가슴 아픈 작품을 남겼다. 그는 파도가 흘러오면 사라질 해변에, 어린 쿠르디가 사망한 그대로의 모습을 모래조각으로 남겼다. 여기에 다음과 같은 글로 경종을 울렸다. ‘파도에 씻겨간 인류애. 부끄럽다 부끄럽다 부끄럽다’(Humanity washed ashore. SHAME SHAME SHAME...) 그의 말처럼 어린 쿠르디가 꿈도 채 펴보지 못한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난 것은 '어른들' 탓이다. 수니파 무장조직인 IS(이슬람국가)가 코바니를 점령하자 올해 초 쿠르디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이웃 터키로 피신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리스 코스섬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쿠르디 가족이 탑승한 소형보트가 전복되면서다. 총 23명을 태운 소형보트 2대는 항해 도중 전복돼 이 사고로 어린이 5명을 포함 총 12명이 숨졌다. 이 어린이 중 한 명이 바로 쿠르디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고로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사망한 것이다. 쿠르디의 엄마와 형 갈립 또한 바다에 빠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유럽의 안전한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던 가족의 꿈이 무참히 사라진 것이다. 아빠 압둘라 쿠르디는 "우리 가족이 꿈꾸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면서 "가족을 땅에 묻고 나도 죽을 때 까지 그 곁에 머물 것" 이라며 통곡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쿠르디 가족처럼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이 무려 35만 명에 달한다. 특히 많은 난민들이 브로커를 통해 밀입국을 시도해 에이란의 사례처럼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만 2,000명을 넘어선다. 그간 유럽의 각 나라들은 이같은 사실을 애써 침묵하며 '불편한 진실'로 묻었지만 이번 쿠르디의 죽음으로 표면화 된 셈이다. 결국 쿠르디의 비극적인 죽음을 계기로 영국이 추가로 난민을 받겠다고 발표했고, 유럽연합도 수용인원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천국으로 간 쿠르디가 어른들을 부끄럽게 한 것이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잃어버린 문명의 바다’ 환동해를 일군 소민족의 삶

    ‘잃어버린 문명의 바다’ 환동해를 일군 소민족의 삶

    환동해 문명사/주강현 지음/돌베개/730쪽/4만원 환동해(環東海)라는 말은 냉전시대 이후 흔히 쓰이고 있고, 실제로 관계와 교섭 측면에서 아주 친근한 개념으로 통한다. 하지만 우리 역사학계에선 여전히 친숙하지 않은 개념이다. 해양 중심의 역사 쓰기에 익숙치 않았고 중국 중심 동아시아 역사나 농경문화 중심 역사를 해양문명사보다 중시했기 때문이다. ‘환동해 문명사’는 역사 쓰기의 초점을 동해 중심의 해양문명에 맞춰 신선하다. ‘잃어버린 문명의 회랑’이라는 부제대로 냉전시대 훨씬 이전 수천년 전부터 환동해가 밀접한 교섭과 관계의 개념이었고 앞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닐 것이라고 강조한다. 국경이라는 인위적 경계와 국민국가의 한계를 넘어 유라시아 변방인 환동해 영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역사를 복원했다. 환동해 해역은 한국, 북한, 러시아, 일본이 에워싼 ‘동해’, 홋카이도와 사할린 해협 건너 오호츠크해, 캄차카 반도 너머 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는 베링해까지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해를 둘러싼 해양문명사는 중화적 세계관과 패권적 역사관 탓에 오랫동안 잊혀졌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차원에서 일본 석학 아미노 요시히코가 “일본이라는 국가의 실체가 7세기 들어 만들어졌다”며 일본 역사를 농민이 아닌 카이민(海民) 중심으로 쓰고자 했던 시도를 높이 평가한다. “지중해의 역사를 가장 잘 기억하는 이는 바로 지중해 자신이다”라는 프랑스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지적대로 환동해 문명사의 주인공을 이 바다의 생태적 순리에 따라 살았던 소민족들이라고 지목한 대목이 도드라진다. 환동해 문명사가 유사무서(有史無書)의 조건에 놓이는 것은 소사회와 소민족이 다양하게 존재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래서 ‘작고 국가 없는 사회의 기록 없는 역사’를 복원하는 것이야말로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매듭짓는다. 김성호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 드라마보다 재밌는 세계사 27가지 장면

    드라마보다 재밌는 세계사 27가지 장면

    세계사 브런치/정시몬 지음/부키/536쪽/1만 8000원 역사책은 아무리 요령껏 정리하고 삽화를 곁들여도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세계사 브런치’는 그런 독자들에게 역사는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충분히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는 인류의 수천년 역사 가운데 드라마보다 더 흥미진진한 27개의 명장면을 고전으로 생생하게 전한다. 도표나 연표 정리 같은 통사식 서술은 지양한다. 대신 역사 속의 결정적인 장면이 섬세하게 묘사되고, 통찰력이 돋보이는 대목들은 영어 텍스트가 함께 제공된다. 역사의 아버지 헤로도토스가 오리엔트와 지중해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각 나라의 역사, 풍속, 지리 등을 상세하게 전하는 ‘역사’, 로마사의 으뜸이라고 할 만한 동시에 영어로 쓰인 가장 위대한 역사서 중 하나로 꼽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 사마천이 궁형의 치욕을 견뎌내며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고대사의 대작인 사마천의 ‘사기’ 등 동양의 역사 고전은 물론 리턴 스트레스 이치의 ‘엘리자베스와 에식스’, 타키투스의 ‘게르메니아’, 아인하르트의 ‘샤를마뉴 일대기’ 등 서양의 걸작들도 총망라돼 있다. 문헌학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충분한 명작들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역사란 무엇인가’, ‘세계사 편력’ 등 우리 시대의 역사 고전 산책으로 마무리하면서 역사 인식이란 준엄하고 고차원적인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이야기를 눈여겨보고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가볍게 읽히지만 이 책이 무게감 있게 다가오는 이유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어른들이 미안해”…SNS, 3살 난민 소년 추모하다

    지난 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해변에 익사한 한 어린 꼬마의 시신이 파도에 밀려온 채 발견돼 전세계에 큰 충격과 슬픔을 던졌다. 바로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의 3살 난민 소년 에이란 쿠르디였다. 소년은 해변 모래에 얼굴을 묻은 채 유럽 동년배 친구들은 뛰어놀았을 이곳 휴양지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됐다. 쿠르디의 마지막 모습은 언론과 소셜네트워크사이트(SNS)를 통해 퍼지며 전세계인 슬픔과 공분을 불러 일으켰으며 네티즌들은 각자의 그림으로 쓸쓸히 떠난 소년을 추모했다. 쿠르디가 꿈도 채 펴보지 못한 채 쓸쓸히 세상을 떠난 것은 '어른들' 탓이다. 수니파 무장조직인 IS(이슬람국가)가 코바니를 점령하자 올해 초 쿠르디 가족들은 고향을 떠나 이웃 터키로 피신했다. 사고가 발생한 것은 그리스 코스섬으로 밀입국하기 위해 쿠르디 가족이 탑승한 소형보트가 전복되면서다. 총 23명을 태운 소형보트 2대는 항해 도중 전복돼 이 사고로 어린이 5명을 포함 총 12명이 숨졌다. 이 어린이 중 한 명이 바로 쿠르디였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이 사고로 아버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사망한 것이다. 쿠르디의 엄마와 형 갈립 또한 바다에 빠져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났다. 유럽의 안전한 나라에서 행복한 삶을 살고자 했던 가족의 꿈이 무참히 사라진 것이다. 터키의 한 영안실 앞에서 막내아들 에이란의 시신을 기다리던 아빠 압둘라 쿠르디는 "우리 가족이 꿈꾸었던 모든 것이 사라졌다" 면서 "가족을 땅에 묻고 나도 죽을 때 까지 그 곁에 머물 것" 이라며 통곡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쿠르디 가족처럼 내전을 피해 유럽으로 건너온 난민이 무려 35만 명에 달한다. 특히 많은 난민들이 브로커를 통해 밀입국을 시도해 에이란의 사례처럼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만 2,000명을 넘어선다. 그간 유럽의 각 나라들은 이같은 사실을 애써 침묵하며 '불편한 진실'로 묻었지만 이번 에이란의 죽음으로 표면화 된 셈이다. 유럽언론들은 이 사진에 다음과 같은 제목들을 달며 자성을 촉구했다. '유럽의 익사' '인도주의, 파도에 휩쓸리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이 한 장의 사진, 세계를 슬픔과 충격에 빠뜨렸다.

    이 한 장의 사진, 세계를 슬픔과 충격에 빠뜨렸다.

    2일(현지시간) 터키 남서부의 해양 휴양지 보드룸에서 세살배기 꼬마 아기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기는 검은 머리에 밝은 빨강색 티셔츠와 군청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 얼굴은 모래에 묻은 채였다. 사진은 SNS를 통해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슬픔과 충격에 빠뜨렸다. 아기는 마치 피곤에 지쳐 신발도 못 벗은 채 침대에 고꾸라져 자고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터키 언론은 아기의 신원이 아일란 쿠르디라고 밝혔다. 어머니 레한과 쿠르디보다 2살 위인 형 가립도 변을 당했다. 아버지 압둘라는 목숨을 건졌다. 쿠르디 가족은 시리아 북부 코바니에서 작은 배를 타고 그리스로 향하던 중이었다. 이들은 지난 6월 캐나다로 이민을 가려고 했지만 후원 요청을 거부당했다. 난민선에 몸을 실을 수 밖에 없었다. 코바니는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와 쿠르드 반군들이 교전을 벌이는 지역이다. 국제 구호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의 저스틴 포시스 최고경영자(CEO)는 “시리아에서 유럽으로 이민을 가려다 숨진 어린 소년의 비극적인 사진은 충격적”이라며 “이 사진은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전세계가 난민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고 말했다. 터키 경찰에 따르면 쿠르디 가족과 같은 배에 탔던 17명 가운데 13명이 숨졌고, 16명이 탄 또 다른 배도 뒤집어져 8명이 숨지고 4명이 실종됐다. 올해 중동·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에서 숨진 난민은 26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해 보다 살기 좋은 유럽으로 가려다 지중해의 거센 풍랑에 목숨을 잃고 있는 것이다. 보드룸이 속한 에게해 연안은 유럽으로 이민 가려는 중동·아프리카의 난민들이 집결하는 곳이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포토] ‘친구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포토] ‘친구들을 외면하지 말아주세요’

    한 어린 소년이 3일(현지시간)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린 시위 중에 바다속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만화를 들고 있다. 앞서 지난 2일 터키 해변에서 숨진 채 발견된 시리아 난민 아일란 쿠르디(3)의 시신을 담은 사진이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쿠르디 가족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IS)의 위협을 피해 가족들과 함께 시리아 북부에서 터키로 탈출해 소형보트를 타고 지중해를 건너 그리스로 가려했지만, 배가 전복돼 엄마(35), 형 갈립(5)과 함께 숨졌다. ⓒ AFPBBNews=News1/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2015 하반기 창업시장 트렌드는 ‘웰빙 브런치’…대표 브랜드 ‘까사밍고’ 인기

    2015 하반기 창업시장 트렌드는 ‘웰빙 브런치’…대표 브랜드 ‘까사밍고’ 인기

    2000년대 중반 국내 시청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며 미국 드라마 열풍을 일으켰던 ‘섹스앤더시티’는 화려한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뉴욕 커리어우먼들의 일상을 조명하며 국내 젊은 세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드라마 속에 종종 노출되었던 브런치를 즐기는 풍경은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늦은 아침, 혹은 이른 점심을 함께 즐기는 친구들의 모습에서 바쁜 일상 가운데 여유를 즐기는 모습이 우리 눈에는 낯설어 보였던 것. 그러나 아침(breakfast)과 점심(lunch)의 합성어인 브런치(brunch)는 이제 국내에서도 젊은 세대는 물론 남녀노소 즐기는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 브런치가 보급되기 시작한 초기에는 흔히 미국 스타일로 불리는 고열량 메뉴들이 주를 이루었지만 이 또한 웰빙 열풍과 결합되어 보다 건강한 식단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최근 브런치 문화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이른 바 ‘지중해식 웰빙 브런치’를 선보이고 있는 ‘까사밍고’와 그 시스타브랜드 ‘까사밍고 키친’을 들 수 있다. 지중해식 웰빙 브런치의 독특한 컨셉은 SNS를 즐겨하는 셀피족은 물론 ‘쿡방’, ‘먹방’ 등의 열풍에 영향을 받은 젊은 세대들에 높은 인기를 끌고 있다고. 물론 까사밍고와 까사밍고 키친이 선보이는 다양한 브런치 메뉴의 맛에 반한 일반인들의 선호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같은 브런치 열풍의 컨셉은 기존 음료 중심의 수익구조로 정체기를 맞은 까페 시장에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며 예비 창업자들에게도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까사밍고의 경우 2013년 12월 홍대에 첫 매장을 오픈한 이래 전국적인 체인망을 구축하며 전국구 프랜차이즈로 자리를 잡았다. 또한 까사밍고의 자매브랜드로서 ‘지중해식 다이닝 카페’라는 컨셉으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 까사밍고키친은 지난 2014년 12월 통영 1호점을 시작으로 제주도 호텔, 강남역 등은 물론 최근에는 분당, 광교, 창원, 김해, 영천, 당진, 제주 등에 오픈을 준비하며 까사밍고의 열풍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처럼 높은 인기와 뛰어난 수익성으로 사랑받는 프랜차이즈 브랜드로 성장한 까사밍고와 까사밍고 키친의 창업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차늘고 있는 추세라고. 더욱이 까사밍고, 까사밍고 키친을 전개하는 프랜차이즈 전문기업 ‘라이온에프지’에서는 신한은행과의 제휴로 창업자금을 최대 1억원까지 무이자 대출 지원하고 있어 예비 창업자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주고 있다. 라이온에프지는 까사밍고, 까사밍고 키친의 경쟁력을 직접 확인하고자 하는 예비 창업가들에게 자사의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시식 및 사업설명회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9월 2일과 9일, 16일, 23일, 30일에 까사밍고 키친의 본사인 라이온에프지(서울시 성동구 성수동 2가 284-55)에서 실시하는 사업설명회를 통해 창업에 대한 더욱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추후에는 시식과 사업설명회를 동시에 가능하도록 강남역점에서도 진행 계획에 있다. 높아가는 브런치 카페 창업 열풍 덕분에 시식회 및 사업설명회 참가 사전예약은 필수이다. 지중해식 웰빙 브런치 까사밍고과 까사밍고 키친에 대한 더욱 자세한 정보는 까사밍고 홈페이지(www.casamingo.co.kr), 또는 대표번호(1544-4133)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어른들의 잘못으로...시신으로 밀려온 3살 시리아 난민 꼬마

    어른들의 잘못으로...시신으로 밀려온 3살 시리아 난민 꼬마

    2일(현지시간) 아침 터키 해변으로 밀려온 3살짜리 시리아 꼬마의 시신이 테러와 전쟁을 피해 더 나은 삶을 찾아가는 난민들이 처한 참혹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AFP통신과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시리아 북부 코바니 출신 에이란 쿠르디(3)는 이날 오전 터키 휴양지 보드룸의 해변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빨간색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시신은 엎드린 채 해변의 모래에 얼굴을 묻은 상태였다.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가 그의 시신을 적셨다. 터키 도안 통신이 찍어 주요 외신이 보도한 그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사진은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킹서비스를 통해 '파도에 휩쓸린 인도주의'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공유되면서 전세계적인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올해 초부터 고향에서 이슬람국가(IS)가 쿠르드 족과 잔혹한 전쟁을 벌여 가족과 함께 떠나온 쿠르디는 터키에서 소형보트에 몸을 싣고 그리스 코스섬을 향해 떠났다가 보드룸 해변 인근 아크야라 지역에서 배가 뒤집혀 변을 당했다. 그의 형(5)도 같은 운명을 맞았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쿠르디 일행을 태운 소형보트 2대는 23명을 태웠는데, 모두 전복돼 어린이 5명과 여성 1명 등 모두 12명이 숨졌다. 7명은 구조됐고, 2명은 구명조끼를 입어 해안에 닿았지만, 2명은 실종된 상태다. 저스틴 포시스 국제어린이구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 CEO는 "시리아에서 전쟁을 피해 도망치다 목숨을 잃은 꼬마의 비극적 사진은 너무 충격적"이라며 "더 나은 삶을 위해 떠나온 난민들이 처한 위험을 상기시킨다"고 말했다. 그는 "이 아이의 참혹한 죽음이 전세계인의 마음을 모으고, 유럽연합(EU)을 압박해 난민위기 해결을 위한 방안을 도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쿠르디의 사진과 관련, 1면 머리기사에 "난민위기의 진정한 비극을 보여준다"고 지적했고, 가디언은 "난민의 참상이 얼마나 끔찍한지 통절히 느끼게 했다"고 보도했다. 인디펜던트는 "파도에 실려온 시리아 꼬마의 사진이 난민에 대한 유럽의 태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대체 무엇이 바뀌겠는가"라고 지적했고, 허핑턴포스트는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를 겨냥해 "데이비드, 뭐라도 좀 하세요"라고 제목을 달았다. 스페인 일간 엘문도와 엘파이스 엘페리오디코 등은 홈페이지에 "유럽의 익사"라는 제목과 함께 쿠르디의 사진을 실었다. 이탈리아 일간 라레푸블리카는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면서 "전세계의 침묵에 대한 사진"이라고 설명했다. 국제이주기구(IOM)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 말까지 지중해를 건너서 유럽에 유입된 난민은 35만 명을 넘어섰다. 그리스와 발칸반도를 거쳐 서유럽으로 들어가는 '발칸루트'가 인기를 끌면서 그리스로 상륙한 난민이 23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탈리아가 11만4000명, 스페인이 2200명으로 뒤를 이었다. 코르디처럼 지중해를 건너다 숨진 난민은 2643명에 달했다. 연합
  •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6] 국수와 파스타

    [김경운 기자의 맛있는 스토리텔링 6] 국수와 파스타

    국수(면)만큼 거의 세계 전역에서 즐기는 음식도 흔치 않다. 국수의 모양이나 요리법, 곁들이는 고명은 지역의 특징에 맞게 변천했지만, 그 원형은 유라시아 문명 교류의 중요한 상징이다. ●국수, 기원전 5000년 중앙아시아 유목민 음식서 유래 면(麵)은 중앙아시아로부터 전해진 밀가루를 이르는 말이다. 진나라 때 서역인이 ‘밀’이라고 부르는 말을 한자로 음차한 것으로 보인다. 또 국수라는 말은 삶은 면을 물에 헹궈 건져 올린 것을 뜻하는 한자어다. 따라서 밀가루를 반죽해 물에 넣고 삶은 게 면이자 국수다. 국수는 기원전 5000~6000년쯤 중앙아시아 유목민의 음식이었다. 반면 서양인은 기원전 3000년쯤부터 밀가루로 음식을 만들었다. 그들의 주식인 고기에 부족한 탄수화물을 섭취하기 위해서다. 국수가 빵보다 역사가 깊은 셈이다. 국수의 유래에 대해 많은 학설이 있지만, 국수가 유목민의 음식인 까닭은 우선 남방의 쌀과 달리 밀은 북방의 건조한 지역에서 자라는 작물이기 때문이다. 반죽한 밀가루를 굳이 수고스럽게 손바닥으로 비벼서 가는 국수 형태로 만든 것은 잠시 머문 정착촌에서 국수를 물에 삶을 때 되도록 빨리 익히기 위해서다. 가느다란 국수가 식감이 좋고 소화도 잘 됐을 것이다. 또 양고기나 마른 야채 등을 넣고 함께 끓여도 잘 어울린다. 다시 이동할 때에는 반죽한 국수만 잘 보관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숙성의 맛을 더할 수 있다. 국수는 기원전 1~2세기 후한 때 실크로드 상인에 의해 동쪽으로 전파된다. 국수는 진과 당을 거쳐 송나라 때 꽃을 피운다. 송의 수도 카이펑에서는 높은 성벽이 사라지고 개방된 국제도시답게 노점이 성행했다. 이 노점에서 국수에 국물을 붓고 고기 절편 등 고명을 얹어 먹었다. ●통일신라~고려초 한반도 유입... 밀가루 귀해 잔치때만 맛 봐 이 시기인 (통일)신라 또는 고려 초 한반도에도 국수가 전해진다. 그러나 우리 땅에선 밀가루가 귀한 식재료였다. 따라서 조선 시대 때까지도 결혼식, 회갑연, 제례일 등 특별한 날에만 국수를 맛볼 수 있었다. 이는 요즘 결혼식장에서 잔치국수를 내놓고 또 일부 지역에선 제사상에 삶은 국수를 올리는 전통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국수 요리는 크게 냉면, 비빔국수, 국수장국(온면), 제물칼국수로 나뉜다. 이 4종에서 무려 60여 가지의 국수 음식이 탄생한다. 우리는 메밀이나 녹두 가루도 국수 재료로 썼다. 함경도와 평안도에는 비빔국수와 냉면이 있다. 황해도 개성은 예부터 부유한 상인이 많이 살던 곳인 만큼 귀한 밀국수를 즐겼다. 지금 밀국수의 본고장은 옛 개성처럼 국제적 항만 도시인 부산이다. 6·25전쟁 이후 미군 원조로 받은 밀가루 덕분이다. 이어 한양에서는 각종 국수 음식이 다 있었지만 특히 전통식 온면을 으뜸으로 여겼다. 온면의 국수는 밀가루 외에도 메밀가루 등을 썼다. 경기도에선 국물이 걸쭉하고 구수한 칼국수를 먹었다. 온면은 삶은 국수를 먼저 그릇에 담은 뒤 맑은 형태의 육수를 부어 깔끔한 맛을 낸다. 반면 제물칼국수는 각종 식재료가 들어간 육수에 국수를 함께 넣고 푹 끓인다. 전라도와 경상도도 만들기 편한 칼국수를 즐겼는데 다만 서해 지역은 조개, 동해나 남해 지역은 멸치, 육수 등 지역 특산물로 맛을 더했다. 까다로운 선비의 고장이라는 안동의 건진국수는 일종의 칼국수이긴 한데, 이를 다시 온면 방식으로 국수를 건져 육수를 붓는 정성을 더 들였다. ●9세기 이슬람 시칠리아 지배하며 국수 유럽에 전파 동양에선 국물과 함께 먹는 국수 음식이 발달된 반면 서양에선 국물 없이 소스를 이용한 국수를 선호했다.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 게르만족, 바이킹족 등이 유럽에서 득세하는 동안 중동에선 신흥 이슬람 세력이 힘을 확장하고 있었다. 이슬람 세력은 중앙아시아도 손에 넣으며 현지 음식인 국수를 받아들인다. 그들은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굴복시킨 뒤 오래전부터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교두보 역할을 하던 시칠리아마저 정복한다. 827년 이슬람군 1만명이 시칠리아 섬에 상륙해 200여년 동안 지배하면서 중앙아시아에서 배운 국수 요리를 처음 유럽 땅에 전파한다. 유럽 남부의 지중해 근처에는 흰 경질밀보다 노란 듀럼밀이 흔했다. 듀럼밀은 단단하고 거칠지만 접착력과 탄력성이 좋다. 우리가 아는 파스타의 노란색 국수 원료다. 스파게티는 300여종에 이른다는 파스타의 한 종류일 뿐이다. 이슬람인들은 듀럼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고, 이게 이탈리아 본토인 나폴리 등을 거쳐 오늘날 세상에 퍼진 파스타가 된다. 토마토소스는 남미의 작물인 토마토가 유럽에 전해진 것이 16세기, 식재료가 된 게 19세기 중반인 만큼 나폴리 등에서 소스로 사용하다가 이탈리아계 미국 이주민이 늘면서 확산된 것이다. 그전엔 치즈 가루 등만 뿌려 맛을 냈다. ●흰 경질밀아닌 노란 듀럼밀 사용... 포크 사용문화로 면 길이 짧아져 그럼 왜 긴 가닥의 국수가 마카로니 등처럼 짧고 도톰한 모양의 파스타(쇼트 파스타)로 바뀐 것일까. 또 이슬람권에서는 왜 국수가 거의 사라졌을까. 국수를 먹는 방법의 차이에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양에서는 고대 시절부터 젓가락과 숟가락을 사용했다. 젓가락은 길고 미끌미끌한 국수 가닥 한 올까지 잘 잡을 수 있다. 반면 서양인은 포크를 쓴다. 우리 상식과 다르게 유럽 귀족이 지금과 같은 모양의 포크를 사용한 것은 베네치아 공국 이후였고, 백성은 대부분 손이나 작은 칼을 썼다. 그러니 가느다란 국수 가닥을 잡기에는 불편했다. 따라서 더 굵거나 또는 나사 모양으로 돌돌 감은 국수를 파스타의 재료로 사용했다. 아울러 이슬람인은 손으로 음식을 집어서 먹는 게 전통인데, 끈적끈적한 육즙을 묻혀 미끈거리는 국수는 더 이상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옛 이란 원주민은 국수를 이르는 말을 가느다란 ‘실’이라는 뜻과 함께 썼다. 음식은 언어처럼 더 나은 진화를 향해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음식의 원형을 찾는 노력을 하면 인류 문명의 긴 역사가 보일 것이다. 김경운 전문기자 kkwoon@seoul.co.kr
  • 아들 보기 위해 7년 간 6억 원 쓴 아빠

    아들 보기 위해 7년 간 6억 원 쓴 아빠

    뛰어난 부성애일까, 아니면 무모한 집착일까? 이혼한 아내가 해외로 데려간 아들의 얼굴을 꾸준히 보기 위해 7년간 무려 6억 원 이상의 돈을 써 결국 빚더미에 앉은 남성의 이야기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국 일간 메트로 등 외신은 29일(현지시간)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말하는 영국인 남성 스튜어트 윕스(37)의 사연을 소개했다. 지난 2008년, 윕스는 아내인 크리스 폴라와 이혼했다. 이혼소송 끝에 아내는 아들 찰리의 양육권을 가졌고, 이에 당시 2살이었던 아들 찰리는 어머니의 본국인 지중해 키프로스 공화국으로 함께 돌아가게 됐다. 아들이 그토록 멀리 떠났지만 윕스는 아들의 인생에서 제외되기를 원치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아들이 태어난 이후 18개월 동안 매일 아들과 시간을 보내며 강한 유대관계를 느꼈었다”며 “(이혼 이후에도) 좋은 아버지 역할을 다하기 위해 무엇이든 불사할 수 있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고 당시의 심정을 설명했다. 그는 그 후로 7년 동안 무려 190회에 걸쳐 아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해왔다. 한 번 여행길에 오를 때마다 항공비, 호텔 숙박비, 자동차 대여료 등으로 2000파운드(약 365만 원) 가량의 상당한 돈을 지출해야 했지만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아들을 위해 썼던 돈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는 법원의 양육비 지불 명령에 의해 아내에게 15만 파운드(약 2억 7000만 원)를 지급해야만 했으며, 다른 한편으로 양육권을 되찾기 위한 소송에 그 동안 6만 파운드(약 1억 9000만 원)을 사용하기도 했던 것. 이러한 재정적 문제는 건강상의 위협으로까지 이어졌다. 잦은 여행 탓에 부족해지는 업무량을 채우려 과로를 일삼던 윕스는 끝내 건강 악화로 심장마비를 겪을 정도였던 것으로 전한다. 그러나 그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고 말했다. 현재 윕스는 원래 일하던 IT 회사를 그만두고 직종을 바꿔 투자은행에서 시간제 은행가로 일하고 있다. 키프로스에 머무는 동안에도 계속 일을 하며 돈을 벌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전해진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다. 윕스는 헤일리라는 다른 여성과 결혼한 상태이며 그녀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소피아(3)와 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포피(6)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차마 아내와 아이들에게 친구들을 버린 채 머나먼 외국 땅으로 떠나자고 요청할 수는 없지만, 아들의 성장을 지켜보겠다는 결심 또한 포기할 수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라며 복잡한 심회를 밝혔다. 방승언 기자 earny@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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