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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금호아시아나] 중고택시 2대로 시작해 여객·타이어로 확장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업자 고 박인천 회장은 1901년 7월 5일 전남 나주에서 출생했다. 빈농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29세에 독학으로 경찰에 입문했고, 같은 해에 이순정 여사를 배필로 맞았다. 1946년 박인천 회장은 17만원(圓)의 자본금으로 미국산 중고택시 2대를 사들였다. 오늘날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출발을 알리는 ‘광주택시’를 설립한 셈이다. 그는 사업을 확장해 1948년 ‘광주여객’을 세워 버스운수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여객사업은 1950년대 말까지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타이어를 구하는 게 문제였다. 지금처럼 도로사정이 좋지 않은 터라 타이어는 수월하게 닳았다. 여객사업 과정에 타이어를 쉽게 구하고자 1960년 설립한 회사가 금호타이어다. 생산 초기 하루 20본 정도의 타이어를 생산했지만, 기술부족과 열악한 생산환경 등으로 시판 엄두도 못냈다. 하지만 5년 만에 KS 마크를 획득했고 이와 때를 맞춰 군납업체로 지정받으면서 타이어 사업은 놀라운 속도로 번창해 나갔다. 박인천 회장은 1972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던 장남 박성용 박사(금호아시아나그룹 2대 회장)로부터 ‘지주회사’ 설립을 건의받아 10월 10일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자신을 비롯해 장남 박성용 박사 등 7명을 발기인으로 ‘금호실업’ 설립을 결의했다. 금호실업이란 이름은 박 회장의 아호인 ‘금호’(錦湖)를 따온 것이다. 금호실업은 금호타이어, 광주고속(현 금호고속), 전남제사, 한국합성고무(현 금호석유화학) 등의 주식 100%를 거머쥔 명실상부한 지주회사의 틀을 갖추게 된다. 또 계열사 통합관리를 위해 ‘투자사업부’를 설치해 신규사업 추진을 담당하는가 하면 그룹 공채사원 모집과 교육 등 전반적인 인력관리, 경영실적 평가 등을 수행했다. 40여년이 지난 지금은 흔한 시스템이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변화였다. 사세는 확장일로를 걸었다.1973년 출범 당시 6개에 불과했던 계열사는 4년 만인 1977년에는 12개로 늘어났다. 특히 고속버스와 타이어 부문의 성장은 눈부실 정도여서 1970년대 업계 선두로 부상했다. 1984년 6월 6일 박인천 창업회장의 타계로 금호는 2세 경영시대를 열게 됐다. 장남인 박성용 그룹부회장이 아버지를 이어 2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박성용 회장은 대통령 경제비서관, 부총리 특별보좌관 등을 역임했던 국정참여 경험을 경영에 결합해 실력파 전문경영인으로 주목받았다. 특히 그는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키면서 취임 당시 6900억원이던 그룹 매출을 1995년 4조원 규모로 끌어 올렸다. 1996년 4월 금호아시아나그룹 3대 회장에 취임한 박정구 회장은 ‘세계 일류 기업을 만든다는 화두를 던졌다. 1995년 문을 연 금호생명환경과학연구소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강원 설악과 전남 화순 등에 잇달아 콘도를 개장해 회사의 외연을 관광과 레저까지 넓혔다. 이들에 비하면 박삼구 회장은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안 살림을 맡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그룹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2002년 9월 2일 금호아시아나그룹의 4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 1년 만인 2003년 외환위기 이후 지속해 온 구조조정을 완료해 위기 속 리더십을 선보였다. 이후 재도약은 시작됐다. 금호산업과 아시아나 등 반등한 계열사들의 실적에 힘입어 그룹 재건에 나섰다. 2006년 대우건설에 이어 2008년 대한통운 인수에 성공하는 등 굵직한 기업 인수합병을 성사시키며 금호의 가장 화려한 때를 이끌었다. 하지만 이 같은 외양 불리기는 지난 10년간 금호가 ‘승자의 저주’에 빠지게 된 원인이 되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1주에 1원 대기업 비상장 계열사株 거래…지배력 강화 오너·가족에 주식 몰아줬나

    GS에너지는 올해 1월 GS그룹 계열사인 위너셋이 보유하고 있는 GS플라텍 주식 105만 7000여주를 105만 7000원에 모두 샀다. 주당 따져 보면 단돈 1원에 주식을 산 셈이다. GS에너지는 GS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GS가 100% 지분을 보유한 회사다. 대기업들의 일부 비상장 계열사 주식이 주당 1원에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 상당수가 오너 가족이거나 이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여서 오너 일가족의 지배력 강화를 위한 ‘주식 몰아주기 편법’이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1원에 주식거래가 이뤄진 회사들은 비상장이라 연매출이나 영업이익 등을 공시하지 않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본 잠식 중인 비상장 회사 중에는 연매출과 자산이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등 회생 가능성이 큰 곳도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 입장에서 부실 회사를 1원이라도 받고 처리하는 게 나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회계 장부를 속여 재벌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이를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13일 재벌닷컴이 2013년부터 현재까지 자산 5조원 넘는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비상장 계열사 주식 매매를 조사한 결과 GS와 이랜드, 삼성, 동부, LS 등 5개 그룹 소속 9개 계열사가 주당 1원의 가격으로 거래됐다. 그룹별로는 GS그룹이 4개사(GS플라텍, 코스모앤컴퍼니, 코스모산업, 코스모촉매), 이랜드그룹이 2개사(프리먼트, 리드온), 삼성(에스에스엘엠)·동부(동부팜)·LS그룹(트리노테크놀리지)이 각각 1개사였다. 이랜드그룹 계열사인 이랜드월드는 자사가 갖고 있던 프리먼트라는 계열사 주식 40만주(58.65%)를 개인에게 40만원을 받고 처분했고, 이랜드건설 등은 계열사였던 시스템 통합업체 리드온 주식 76만 400주를 이랜드월드에 76만 4000원을 받고 매각했다. 이랜드월드는 박성수 회장이 40.59%, 부인 곽숙재씨가 8.05%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등 특수관계인이 99% 지분을 가진 오너 일가족의 소유 회사다. 동부그룹 계열사인 동부팜화옹 역시 보유 중인 농업법인 동부팜 주식 12만 7000여주(23.66%)를 동부팜한농에 2013년 12월 12만 7000원에 매각했다. 동부팜한농은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중심 중공업에 집중… 매출22조·재계10위 ‘우뚝’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 중심 중공업에 집중… 매출22조·재계10위 ‘우뚝’

    국내 최고(最古)의 기업이자 2013년 기준 매출액 21조 9365억원, 계열사 21개를 거느린 재계 10위(공기업 제외) 두산그룹은 현재 두산가(家) 3세이자 고(故) 박두병 두산 초대회장의 여섯째인 박용만(60) 두산그룹 회장을 중심으로 그룹이 움직이고 있다. 2012년 박 회장이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다른 형제들은 그룹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3세의 자녀들인 4세가 각 계열사에 들어가 경영을 맡으면서 3세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두산그룹을 보는 재계의 관심사는 형제경영으로 유명한 두산그룹이 4세에 이르러서도 계속 전통을 유지할 수 있을지다. 두산그룹의 지배구조를 보면 그룹의 미래를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두산을 지주회사로 해서 두산중공업 등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다시 두산중공업은 두산건설, 두산인프라코어, 두산엔진 등의 중공업 부문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는 식이다. 그룹의 최상위에 있는 ㈜두산의 지분은 두산가 3~5세들이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있다. 두산가 3세 가운데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한 것은 그룹을 이끌고 있는 박 회장으로 4.17%를 가지고 있다. 초대회장의 첫째인 박용곤(83) 명예회장이 1.38%, 넷째 박용성(75) 중앙대 이사장이 3.04%, 다섯째 박용현(72)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이 3%를 각각 보유한 상황이다. 4세의 지분 보유에서 가장 앞선 이는 박 명예회장의 장남인 박정원(53) ㈜두산 지주부문 회장 겸 두산건설 회장이다. 지분 6.4%를 보유하고 있어 두산의 미래가 그를 중심으로 펼쳐질 것이 예상된다. 또 장자 상속주의인 두산그룹에서 선대회장의 장손이 박정원 회장이기에 그가 두산 4세 경영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두산가의 4세는 10년 전만 하더라도 각 계열사의 임원이나 사원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어엿하게 회장 혹은 사장의 직함을 달고 회사를 대표하고 있다. 두산가 4세 가운데 대표주자인 박정원 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치고 1990년 두산산업 뉴욕·도쿄지사에서 근무하면서 그룹에 안착했다. 이어 1994년 오비맥주 이사대우, 1999년 두산 대표이사 부사장, 2001년 두산 대표이사 사장을 거쳐 2009년 두산건설 대표이사 회장에 올랐다.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지원(50) 두산중공업 부회장 겸 두산 최고운영책임자(COO)의 경력도 돋보인다. 그는 2001년 두산이 인수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의 민영화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용성 중앙대 이사장의 장남인 박진원(47) ㈜두산 산업차량·모트롤 부문 사장은 1993년 두산음료 사원으로 입사해 두산의 전략 수립 부서이자 박용만 회장이 만든 트라이씨(Tri-C)에서 약 3년간 실력을 닦은 전략통이다. 박 이사장의 차남인 박석원(44) 두산엔진 부사장은 그가 맡고 있는 신규사업 가운데 선박용 저온탈질설비를 4년간의 연구기간을 거쳐 독자개발에 성공해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 상용화를 이뤄내기도 했다. 박용현 두산연강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박태원(46) 두산건설 사장은 1994년 두산유리에 들어가 그룹에 합류했고 2006년 두산건설로 자리를 옮겼다. 박 이사장의 차남인 박형원(45) 두산인프라코어 부사장은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및 중남미 소형건설장비 시장의 영업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3남인 박인원(42) 두산중공업 전무는 2003년 두산에 입사한 이후 2010년 두산중공업으로 자리를 옮겼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인 박서원(36) 오리콤 부사장은 4세 가운데 가장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사촌형제들이 MBA 과정을 밟으며 그룹을 물려받을 준비를 했다면 그는 세계 광고인들의 등용문인 미국 뉴욕 스쿨오브비주얼아트 출신으로 아버지의 도움 없이 2006년 독립광고회사인 빅앤트를 설립했다. 박 부사장은 지난해 10월 오리콤에 합류했다.박 부사장은 오리콤 합류 후 경쟁 프레젠테이션(PT)을 통해 캐논을 시작으로 한화그룹, 웅진식품 등의 광고 200억원 물량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박 회장의 차남 박재원(30) 두산인프라코어 부장은 4세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려 아직 유일하게 임원에 오르지 않았다. 그는 미국 뉴욕대 경영대학을 졸업한 뒤 보스턴컨설팅그룹을 거쳐 2013년 말 두산인프라코어에 입사했다. 이처럼 3~4세가 조화롭게 그룹을 책임지고 있는 가운데 두산그룹은 일찌감치 창업 100주년이던 1996년 소비재 위주의 사업구조를 수출 중심의 중공업으로 재편하기로 하고 차근차근 진행해 왔다. 지난해 9월 두산동아 지분을 예스24에 매각함으로써 소비재 사업 정리를 완료했다. 수출 중심의 중공업 사업을 중점적으로 키우면서 두산그룹은 글로벌 기업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두산의 해외 매출 비중은 1998년 12%에 불과했지만 2013년 현재 64%로 5배 이상 커지면서 국내 매출 비중을 훨씬 앞섰다. 두산그룹에서 일하는 임직원의 국적만 38개국, 4만 2600여명의 임직원 가운데 2만 1000여명이 해외사업장에 소속돼 있다. 그룹의 중심에는 두산중공업이 있다. 2000년 말 두산이 인수한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을 민영화하면서 2002년 17%에 불과했던 해외 수주 비중을 2007년 이후부터 70%에 달할 정도로 확대하며 현상 유지를 하는 데 노력하고 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강제 전직’ 삼성에버랜드 직원 252명 손배訴

    삼성에버랜드(현 제일모직)에서 일하다 에스원으로 이직한 직원 980여명 가운데 252명이 제일모직을 상대로 “강제 전직으로 인한 피해를 보상하라”며 10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청구 규모는 332억 9000만원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삼성에버랜드가 상장을 통해 삼성그룹 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우리사주 배정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어 전직 요구에 응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었다”며 사측의 회유와 협박 때문에 강제 이직했다고 주장했다. 삼성웰스토리로 옮긴 직원들도 집단소송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삼성에버랜드는 2013년 11월 건물관리사업은 에스원에 매각하고, 식품사업은 삼성웰스토리로 분할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건물관리부 직원 980명과 식품사업부 직원 2800명은 각각 에스원과 웰스토리로 소속을 바꿨다. 삼성에버랜드는 지난해 6월 ‘연내 주식 상장 계획’을 발표하고 7월엔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변경한 뒤 12월 상장을 마무리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당시 회유와 압박을 할 이유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진그룹] 인천 창고서 ‘한진상사’로 출발… 2019년 세계 10대 항공사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진그룹] 인천 창고서 ‘한진상사’로 출발… 2019년 세계 10대 항공사로

    1945년 11월 인천 해안동의 한 허름한 창고. 당시 25세의 청년 조중훈은 ‘한진상사’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회사 이름엔 ‘한민족(韓民族)의 전진(前進)’이라는 다소 거창한 포부를 담았다. 가진 것이라고는 낡은 트럭 1대였지만 조씨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 일거리 걱정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해방과 함께 인천항에는 중국 상하이에서 건너온 운동화, 양복, 밀가루 등의 생필품들이 밀려들었고 누군가 이런 물건을 실어 날라야 했기 때문이다. 이 창고가 올해로 만 70살이 된 한진그룹의 모태다. 한진상사는 5년 만에 종업원 40여명에 트럭 30대를 보유한 단단한 회사로 자라났다. 승승장구할 것만 같던 사업은 19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 탓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조중훈 회장은 모든 것을 앗아간 전쟁에서 기회를 찾았다. 한진은 1956년 무렵 주한 미군 용역사업에 참여했다. 한진상사는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따냈다. 가용 차량만 500대에 이르는 번듯한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됐다. 1961년에는 주한 미군 통근버스 20대를 사들여 서울~인천 간 좌석버스 사업을 시작했다. 한진고속의 시초다. 한진그룹은 월남전 미군의 군수물자 수송을 맡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베트남에 파병 중인 미군 장교들을 끈질기게 설득해 1966년에 주월 미군사령부와 790만 달러의 군수물품 수송 계약을 체결했다. 그 후 1971년 종전 때까지 5년간 벌어들인 외화는 총 1억 5000만 달러에 달했다. 당시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25~200달러 안팎이었다. 1968년에는 한국공항과 한일개발을 설립하고 인하공대를 인수하기에 이르렀다. 이듬해인 1969년에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로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던 국영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본격적으로 항공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한항공공사는 당시 동남아 11개국 항공사 중 꼴찌에 금융 부채만 27억원에 달했다. 조 회장은 훗날 “대한항공공사 인수는 국적기 사업을 국익 차원에서 이끌어야 할 소명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고 회고했다. 1977년에는 육·해·공을 잇는 종합 수송 그룹을 완성하겠다는 목표로 컨테이너 전용 해운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1990년대 들어 조 회장의 주요 관심사는 2세 경영 체제 확립이었다. 4명의 아들을 모두 주력 계열사에 포진시킨 그는 장남 양호씨는 대한항공, 차남 남호씨는 한진중공업, 삼남 수호씨는 한진해운, 사남 정호씨에게는 한진투자증권 등의 금융사를 맡겼다. 1990년대 후반엔 정치적인 격랑도 있었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면 김대중 정권 때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1997년 대한항공의 괌 추락 사고 이후 2년 만에 다시 상하이 공항에서 비행기가 추락하자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족벌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어 국무회의에서 대한항공에 대한 고강도 제재 의사를 내비쳤다. 3개월간 조사 인력만 240여명이 동원된 국세청 조사에서 한진그룹은 무려 1조 395억원을 불법적으로 빼돌린 사실이 적발돼 5416억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이어진 검찰 수사에서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및 횡령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정권은 “정치적 배경은 전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재계에선 여전히 “박정희부터 김영삼 정권까지 한진그룹이 보여 온 ‘반DJ 행보’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 이후 한진호의 키는 2세들이 넘겨받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대한항공과 한진해운 등을 중심으로 글로벌 종합물류기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조남호 회장은 중공업계열, 조정호 회장은 금융계열사 지주회사 전환을 통해 각각 제조와 금융그룹을 키워 가는 모양새다. 2006년 사망한 삼남 조수호 회장이 맡고 있던 한진해운은 부인 최은영씨가 8년간 회장직을 수행해 오다 지난해 초 조양호 회장에게 넘겼다. 한진그룹은 2014년 12월 말 현재 지주회사 한진칼 아래 대한항공, 진에어, 한국공항, 에어코리아(이상 항공 부문), 한진해운(해운 부문), ㈜한진(육상운송), 한진관광, 정석기업, 칼호텔네트워크(관광·호텔·레저 부문), 한진정보통신(정보 서비스 부문) 등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148대의 항공기를 보유한 대한항공은 전 세계 45개국 126개 도시를 취항 중이다. 대한항공은 창사 5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는 매출액 25조원을 달성해 항공여객 부문 10위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진해운도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등 170여척의 선박으로 전 세계 60여개 정기 항로를 운항하며 연간 1억t 이상의 화물을 수송하는 세계적인 선사로 발돋움했다. 덕분에 한진그룹은 2013년 기준 매출 24조 7760억원, 자산 총액 39조 5220억원 규모의 대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한진은 예기치 못한 위기를 겪고 있다. 땅콩 회항으로 대두된 3세의 ‘오너 리스크’ 때문이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한진그룹을 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달갑지 않고, 일각에선 대한항공에 대한 불매운동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창업주 가문에 계속 경영을 맡기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고생을 모르고 자란 데다 경험이 짧아 능력과 품성이 검증되지 않은 3세들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것이 올바르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로 칠순을 맞은 한진은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진그룹] 땅콩 회항에 ‘미운 오리’ 된 3세들… “그래도 경영승계는 될 듯”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진그룹] 땅콩 회항에 ‘미운 오리’ 된 3세들… “그래도 경영승계는 될 듯”

    지난해 12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진 이후 한진가 3세는 전 국민의 주목 대상이다. 천민자본주의 속에 살고 있다는 우리 국민의 좌절감과 재벌가 자녀의 민낯을 고스란히 보여 준 일련의 사건으로 성난 민심은 여전히 사그라질 줄 모른다. 이 과정에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기치를 내걸며 창업주가 일군 기업 이미지 역시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그나마 최근 유례없는 저유가가 대한항공의 유일한 버팀목인 셈이다. 한진은 사주 일가의 승진이 빠른 대표적인 기업이다. 조양호 회장의 장녀인 조 전 부사장은 1999년 25세로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에 입사해 불과 6년 만인 2005년 대한항공 상무보가 됐다. 당시 나이 31세였다. 한진칼 대표이기도 한 장남 조원태씨는 2008년 33세에 여객사업본부장이 된 후 이듬해 전무를 거쳐 지난해 대한항공 부사장이 됐다. 막내인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24세인 2007년 과장으로 입사한 뒤 3년 만인 27세에 상무보로 승진했다. 현재 직함인 전무가 된 것은 29세 때다. 인생에서 어려움 없이 빠르게 승승장구만 해 온 탓일까. 한진그룹 3세들의 부정적인 행실과 언행은 업계는 물론 언론계까지 소문이 널리 퍼졌다. 과거 임원진으로 배치된 3세들로부터 막말을 듣거나 서류 뭉치 등으로 맞았다고 증언하는 직원이 부지기수다. 2012년 12월 당시 전무였던 원태씨는 인하대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던 시민단체 관계자와 이를 취재하던 기자에게 욕설과 막말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시위대를 향해 조씨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다. 2005년에는 승용차를 운전하다 시비가 붙어 70대 노인을 폭행한 사건으로 입건된 전력이 있다. 당시 나이는 30세로 대한항공 경영전략본부 기획부 부팀장을 맡고 있었다. 막내딸인 조현민 전무는 언니 현아씨가 검찰에 출두한 지난해 12월 17일쯤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내용의 메시지를 언니에게 보낸 것이 드러나 물의를 빚었다. 조 전무는 이 사실이 알려지자 황급히 사과했지만 진정성에 대한 논란만 이어졌다. 지난해 말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자신이 ‘낙하산’이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아이러니컬하게도 3세들은 모두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 첫째 현아씨는 1999년 미국 코넬대 호텔경영학 학사, 둘째 원태씨는 미국 남가주대(USC) 경영전문대학원(MBA), 막내 현민씨도 오빠와 같은 남가주대를 졸업한 뒤 서울대 경영대학원을 MBA를 마쳤다. 재계에서는 명문가를 자처하는 한진가(家)의 자녀 교육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3남매의 행실로 봐서는 한진그룹의 3세 경영이 과연 가능할까 싶지만 답부터 얘기하면 ‘그래도 3세 경영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기업의 후계 구도는 국민 여론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재벌 자녀들이 각자 얼마의 주식을 확보했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시간이 지나면 터질 것만 같았던 분노도 사그라지기 마련이고 그때 후계 구도를 정리하면 그만이라는 게 한진그룹의 계산인지도 모른다. 한진가 3세들은 지배구조의 핵심 축인 한진칼 지분을 엇비슷한 규모로 보유 중이다. 3남매는 각각 사실상 지주사로 전환한 한진칼 지분의 2.5%를 보유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 보유 지분은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조 회장의 지배력은 절대적이다. 지주사 한진칼의 지분 15.6%와 현재 중간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는 정석기업과 ㈜한진 지분을 각각 27.2%, 6.9% 쥐고 있다. 결국 3세 구도는 아버지인 조 회장에 의지에 달려 있다. 땅콩 회항으로 인해 유력한 경쟁자이던 장녀 현아씨가 구속된 상태고 현역에서도 물러났다는 점에서 재계에선 둘째이자 장남인 조원태 부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한진그룹은 순환출자에서 벗어나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지배구조 개편에 박차를 가했다. 2013년 8월 대한항공의 인적분할(회사를 분리한 후 신설법인의 주식을 모회사의 주주에게 같은 비율로 배분하는 방식)을 통해 한진칼을 출범시키며 ‘대한항공→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으로 이어지는 기존의 순환출자 고리를 깼다. 한진칼은 다시 지난해 11월 대한항공 주식과 신주를 맞바꾸는 방식의 유상증자로 총수 일가 중심의 지배구조를 단단히 했다. 이어 12월 ㈜한진이 보유하던 한진칼 지분 5.28%를 블록딜로 매각해 정석기업이 ㈜한진을 거쳐 한진칼 지분을 갖는 또 하나의 순환출자 고리에서도 벗어났다. 결과적으로 조 회장 외 13인의 총수 일가는 지주사가 된 한진칼 지분 26.3%를 틀어쥐게 됐다. 관건은 조 회장의 복심이다. 그동안 자녀들에게 지분을 나눠 주는 데 있어 조 회장은 철두철미할 만큼 공평하게 분배했다. 그만큼 후계를 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동안 항공업계에선 향후 한진그룹이 업무 영역에 따라 3개로 나뉘어 배분될 것이란 예상이다. 장녀 현아씨에겐 호텔과 관광 사업을, 둘째 원태씨에겐 대한항공 등 주력 사업을, 막내 현민씨에겐 저가항공사 진에어와 부대상품 판매 등의 계열사를 나눠 주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 탓에 이 같은 구도에 적잖은 변수가 생겼다. 3남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아질수록 앞으로 조 회장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화그룹] ‘M&A 신공’ 김승연, 삼성과 빅딜…자산 50조 재계 9위 ‘눈앞’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한화그룹] ‘M&A 신공’ 김승연, 삼성과 빅딜…자산 50조 재계 9위 ‘눈앞’

    ‘승부사’ 김승연(63) 한화그룹 회장이 이끄는 한화그룹의 역사는 인수·합병(M&A)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11월 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등 자산 규모 17조원에 달하는 삼성 계열사 4곳을 인수·합병하면서 한화그룹의 올해 재계 순위는 ‘땅콩 회항’ 논란으로 휘청인 한진그룹을 누르고 9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인수 자금만 2조원에 달하는 이른바 삼성·한화 간 ‘빅딜’에 따라 자산 규모가 37조원에서 50조원대로 껑충 뛰었다. 2002년 대한생명을 인수해 재계 10위권에 진입한 지 12년 만이다. 김 회장은 한화그룹의 전신인 한국화약그룹의 창업자인 부친 김종희 회장이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29세의 어린 나이에 회사를 물려받았다. 김종희 회장은 1952년 10월 자본금 5억원으로 부산에서 한국화약을 세웠고 한국전쟁이 끝나자 서울로 옮겨 방위산업, 정밀화학 등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김승연 회장이 그룹 회장으로 취임하던 1981년 당시 계열사는 15개, 매출액은 1조 600억원이었다. 김 회장이 경영을 지휘한 34년 동안 매출액은 40조원, 계열사는 50개를 넘어섰다. 김 회장에게는 여전히 2007년 있었던 아들 관련 일로 인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아있다. 하지만 실제 경영에서의 김 회장은 예리한 분석력과 과감한 실천으로 부실 기업을 인수해 모두 정상화시키고 회사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 탁월한 경영 능력의 소유자로 평가받는다. 경영 일선 복귀 직전에 삼성과 빅딜을 성공시켜 승부사의 건재함을 재계에 과시한 김 회장의 ‘M&A 신공’은 1981년 취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취임 직후인 1982년 김 회장은 2차 오일쇼크로 글로벌 석유화학 경기 위축으로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한국다우케미칼과 한양화학을 주변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전격 인수했다. 성장가능성을 읽은 김 회장의 선택은 인수 당시 매출 1620억원에서 2013년 3조 5914억원으로 21배나 키웠고 현재 그룹의 주력 계열사가 됐다. 현재 보험업계 2위인 한화생명 역시 2002년 대한생명을 합병한 성과다. 2조 3000억원에 달하던 누적 손실은 6년 만에 완전 해소했고 연간 5000억원의 이익을 창출하고 있다. 1985년에는 리조트업계 선두주자였던 정아그룹의 명성콘도를 인수해 당시 자본잠식 상태였던 그룹을 정상화시키고 국내 최대 레저기업인 한화리조트로 키웠다. 한화는 태양광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키우기 위해 파산 기업이었던 독일 큐셀을 2012년 인수해 1년 만인 2013년 흑자 전환에 성공시켰다. 지난해 12월 한화큐셀과 한화솔라원을 합병해 단숨에 글로벌 태양광 셀 부문 세계 1위로 올라섰다. 이제 관심은 한화그룹이 지난해 이뤄진 삼성 4사와의 인수·합병의 시너지 효과를 어떻게 내느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16년 만에 국내 재계가 자율적으로 이룬 최대 규모 M&A를 한화가 먼저 제안한 것은 그룹의 모태인 방위사업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보겠다는 김 회장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의 지주회사인 한화는 방산회사인 삼성테크윈과 삼성텔레스를 인수하면서 지난해 매출이 1조원에서 2조 6000억원으로 뛰어올라 국내 방산업체 1위가 됐다. 김 회장은 1974년부터 정밀탄약과 유도무기 위주로 방산업체를 키워 왔는데 이번 인수로 기존 사업에 항공기·함정용 엔진, 사격통제장치(레이더), 로봇 무인화 사업 등을 더해 사업다각화가 가능해졌다. 한화케미칼은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 인수를 통해 매출이 18조원에 육박하면서 국내 석유화학산업 선두에 섰다. 그룹은 삼성토탈 인수로 정유사업에 15년 만에 재진출하게 됐다. 한화그룹은 1999년 현대그룹에 한화에너지를 현대오일뱅크(당시 현대정유)에 매각했다. 한화그룹은 상반기 중 석유화학, 방산, 태양광 등 핵심 사업으로 사업구조 개편을 마무리하고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쟁력이 없거나 시너지가 부족한 사업은 과감히 매각할 예정이다. 그러나 남은 과제도 적지 않다. 삼성 빅딜을 성공하기 위한 자금 확보와 삼성계열사 직원들의 매각 반대 투쟁 등을 넘어야 한다. 저유가 시대에 수익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는 석유화학사업에 대한 빅딜 효과에 의문도 제기된다. 김 회장은 올해 초 문제 해결을 위해 삼성계열사 PMI(합병 후 통합)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100% 고용승계는 물론 기존과 똑같은 처우와 복리 수준을 약속했다. 3세 후계 경영을 본격화한 김 회장이 ‘신용과 의리’의 한화 정신으로 한화그룹의 제2 도약을 원만하게 이끌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금호산업 매각 본격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매각 작업이 본격화했다.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최대어로 평가받는 만큼 주인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쏠린다. 금호산업 채권금융기관(채권단)은 30일 보유하고 있는 금호산업 경영권 지분(약 58%)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매각한다고 공고했다. 인수의향서(LOI)는 다음달 25일까지 접수한다. 매각은 산업은행 인수합병실과 크레디트스위스(CS)가 주관한다. 채권단은 “국적 항공사인 아시아나를 인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자 관급 공사 수주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면서 “베트남 등에서도 독보적인 사업기반 등을 가진 회사인 만큼 과감한 투자를 할 만한 매물”이라는 입장이다. 금호산업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30.08%를 보유하고 있어 금호산업을 인수하면 아시아나항공 경영권까지 쥐게 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지분 인수를 위한 자금은 충분히 확보한 상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채권단은 원금 회수를 위한 적정 매각가격은 1조원(1주당 6만원)으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경쟁이 치열해지면 인수대금이 1조 5000억원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아직까지 공개적으로 인수 의사를 밝힌 회사는 없다. 단 증권가를 중심으로 CJ와 롯데, 신세계 등 유통사들과 현재 금호산업의 일부 지분(약 4%)을 보유 중인 호반건설, 일부 사모펀드 등이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농심] 창립 50년 만에 매출 2만배… ‘한국의 맛’ 세계에 알리기 박차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농심] 창립 50년 만에 매출 2만배… ‘한국의 맛’ 세계에 알리기 박차

    올해 창립 50돌을 맞는 농심그룹의 각오는 남다르다. 농심은 롯데가(家)에서 독립한 1965년에 창립해 국내의 대표적인 식품개발기업으로 우뚝 섰다. 창립 당시 약 100명이었던 직원 수가 현재 1만여명으로 100배 늘었고 매출액은 2억원에서 출발해 4조원으로 2만배나 뛰었다. 농심의 베스트셀러 ‘신라면’은 한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 한국을 대표하는 맛으로 퍼지고 있다. 사업도 다양해졌다. 1973년 포장전문회사 율촌화학을 설립했고 1975년 동양체인을 인수해 농심가(현 메가마트)를 세웠다. 1979년 설립된 식재전문기업 태경농산 등이 농심그룹으로 재편됐다. 현재 이 회사들은 그룹의 주요 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이어 1993년 농심데이타시스템과 동래관광호텔(현 호텔농심)이 설립됐고 1996년에는 광고전문회사 농심기획, 1997년 농심엔지니어링이 잇따라 만들어졌다. 2001년에는 일동레이크 골프클럽을 인수해 농심개발을 세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회사들은 2003년 7월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가 설립되면서 이 아래로 정리됐다. 이처럼 농심을 성장시킨 1인자는 신춘호(85) 회장이다.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창업 1세대인 신 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의 그룹 본사로 출근해 업무를 보고 있다. 신 회장은 그룹의 큰 방향이나 핵심 전략만 직접 챙기고 나머지는 자녀들과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고 있다. 신 회장은 일찌감치 후계 구도의 틀을 잡아왔다. 신 회장은 공식적으로 누구에게 어떤 회사를 맡기겠다고 말한 적은 없다. 다만 신 회장의 자녀들이 어떤 계열사에 소속돼 있고 얼마큼 지분을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농심의 미래를 읽을 수 있다. 2010년부터 농심홀딩스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는 장남인 신동원(57) 농심 부회장이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홀딩스의 지분 36.88%를 가지고 있는 최대 주주다. 차남인 신동윤(57) 율촌화학 부회장이 그다음으로 많은 19.69%를 가지고 있다. 신 회장은 계열사인 농심의 지분 7.4%와 율촌화학 지분 13.5%를 보유 중이다. 이 가운데 농심그룹의 매출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인 농심은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맡고 있다. 신동원 부회장은 1979년 농심에 사원으로 입사했지만 정식으로 일하기 시작한 것은 1983년부터다. 1997년 국제담당 대표이사를 거쳐 2000년부터 농심 대표이사 부회장을 맡고 있다. 특히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세계화를 진두지휘해 성공을 거뒀다. 농심은 1996년 중국 상하이에 라면공장을 만들면서 본격적인 세계화 전략을 시작했다. 1997년 신 부회장이 국제담당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1997년 칭다오공장, 1999년 선양공장 등 중국사업과 2005년 미국공장 준공까지 이뤄내면서 세계 각지에서 성과를 냈다.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은 1983년 농심에 입사한 이후 1989년 율촌화학으로 자리를 옮겨 2000년 사장을, 2006년부터 부회장을 맡고 있다. 신 회장의 호인 율촌을 딴 율촌화학은 식품, 생활용품의 각종 포장재를 생산하며 업계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 밖에도 반도체 포장재, 전자제품과 자동차 부품 포장재, 휴대전화 등 디스플레이 광학필름 분야에서도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3년 기준 4400억원 매출을 올린 바 있다. 3남인 신동익(55) 메가마트 부회장은 1984년 농심에 입사해 1992년 농심가(현 매가마트) 대표이사에 오른 뒤 2002년부터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메가마트는 부산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통기업으로 1995년 메가마트 동래점이 문을 연 이래 부산 남천점, 언양점 등 13개의 대형마트와 1개의 백화점을 보유하고 있다. 2013년 기준 약 6200억원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이처럼 안정된 1~2세 경영 체제로 굴러가는 농심그룹은 국내에서는 업계 1위인 라면과 스낵 시장을 계속해서 탄탄하게 유지하면서 해외 시장에 더 적극적으로 진출하겠다는 계획이다. 농심은 라면시장에서 63%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1위를 기록하면서 스낵시장에서는 30%의 점유율로 업계 1, 2위를 다투고 있다. 이런 국내에서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의 맛을 알린다는 게 농심의 목표다. 특히 지난해 중국사업 매출이 전년 대비 28% 성장한 1억 8000만 달러를 달성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올해 중국 내 성장잠재력이 높은 화둥지역에 판매 조직을 강화하고 장기적으로 사천성, 귀주성 등 서남부 지역으로도 판매망을 넓혀 나갈 계획이다. 농심이 가장 공을 들이는 사업은 미래 성장동력으로 여기는 ‘생수’다. 백두산 물을 담은 ‘백산수’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생수시장 2위에 올랐다. 농심은 올해 국내 시장점유율을 10%로 올리고 농심 라면의 중국 진출 성공을 바탕으로 세계 최대의 생수시장인 중국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창립 이후 최대 규모인 2000억원을 투자해 백두산 근처인 중국 얼다오바이허 지역에 올해 7월 완공 목표인 백산수 신공장을 건설 중이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내 몸이 원하는 식단 찾아야 ‘건강 100세’ 누린다

    내 몸이 원하는 식단 찾아야 ‘건강 100세’ 누린다

    건강을 위해 채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채식 위주의 식단을 유지하면 몸에 좋은 지방∙콜레스테롤 섭취에 도움이 되고 노화에 따른 두뇌 기능 감퇴를 늦추는 등 몸에 이로운 작용을 한다. 하지만 무조건 과일과 채소 위주의 식단을 고집하는 것은 오히려 영향 불균형을 초래해 건강을 위협하기도 한다. 특히 칼슘∙비타민∙아연 부족으로 성장기 아이들이나 임산부 건강에 문제가 일으킬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몸에 좋은 약도 과하면 독이 되듯 무조건 채식만 우선하다 보면 필수 영양소 부족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면서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찾아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문을 연 맞춤식 헬스케어 센터 ‘케이유웰링’에선 회원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토탈영양케어서비스를 제공한다. 첨단 검사를 통해 사상 체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영양관리를 실시하는 것이다. 이 밖에도 각자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처방하고 영양소 흡수율을 높이는 섭취방법을 안내한다. 또 사상체질에 따른 도움이 되는 식품과 주의해야 하는 식품, 질환별 또는 내 몸의 밸런스를 위한 식생활 가이드 등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 받을 수 있다. # 건강 다이어트 코스 눈길 유료로 진행되는 3주간의 다이어트 코스도 눈길을 끈다. 이 프로그램은 체중 감량에 도움을 주는 Slim diet, 근육 형성에 도움을 주는 Muscle diet, 균형 잡힌 영양소 섭취에 도움을 주는 Balance diet, 사상체질에 따른 나만의 맞춤 식단 Welling diet 등 총 4개로 구성 된다. 서울 역삼동에 문을 연 케이유웰링은 고려대학교기술지주회사인 KU융합의과학연구소(KUMSI)가 투자한 회사다. 고려대학교기술지주회사는 고대와 고대의료원이 주주로 구성돼 있으며 KUMSI는 줄기세포전문연구소로 줄기세포보관 및 국내검진센터병원과 항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케이유웰링은 회원제로 운영된다. 1인 회원의 입회가격은 연회비를 포함해 4500만원이며 가족회원에게는 특별혜택이 적용돼 가족 수에 상관없이 6000만원이다. 계약금은 가입금액의 10%로 상품에 따라 400만원에서 800만원이며 입금과 동시에 예약신청이 가능하다. 상세한 상담은 고객의전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2-555-2318.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롯데그룹] 日=장남 韓=차남 공식 ‘흔들’… 승계 열쇠는 베일속 광윤사에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롯데그룹] 日=장남 韓=차남 공식 ‘흔들’… 승계 열쇠는 베일속 광윤사에

    “지금 롯데그룹은 더블 경영 시스템으로 가고 있다. 신격호 회장이 고령임에도 총괄회장으로서 아직도 직함을 유지하고 있고, 아버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여전히 그룹에서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은 신격호 회장의 영향력이 건재하다는 얘기다. 아들인 신동빈 회장이 조금씩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고 현재 신동빈 체제로 약 80% 왔다고 보면 된다.” 롯데그룹에 정통한 재계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올해 나이 93세로 현역 재계 오너 가운데 최연장자인 신격호 총괄회장 이후 롯데그룹의 후계 구도를 따졌을 때 장남인 신동주(61)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일본 롯데그룹을, 차남인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한국 롯데그룹을 각각 맡는 것으로 이해돼 왔다. 형제가 모두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형인 신 전 부회장은 1987년 일본 롯데에 입사하면서 계속 일본 롯데그룹 경영에 집중했다. 반면 동생인 신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 입사 이후 1990년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 상무로 한국 롯데그룹에 참여한 뒤 2011년 2월 한국 롯데그룹 회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장남, 한국=차남’이라는 공식이 성립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이 지난해 말부터 강력 대두되고 있다.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가 지난해 12월 26일 연 임시 이사회에서 신 전 부회장을 일본 롯데 주요 계열사인 롯데 부회장, 롯데상사 부회장 겸 사장, 롯데아이스 이사에서 해임시켰다. 이어 롯데홀딩스는 지난 8일 연 임시주주총회에서 신 전 부회장을 이사직에서 해임하는 내용을 결의, 승인하면서 결국 신 전 부회장은 일본 롯데그룹의 경영에서 모두 손을 떼게 됐다. 롯데홀딩스 측은 해임 이유에 대해 “기업의 기밀에 관한 것으로 답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로써 한국 롯데는 신 회장이 맡지만 일본 롯데는 신 총괄회장의 최측근인 쓰쿠다 다카유키(72) 롯데홀딩스 사장이 경영하는 방식으로 당분간 이뤄지게 됐다. 롯데그룹 측 그 누구도 그룹의 후계 구도를 밝힐 수 없는 상황에서 롯데그룹의 향방을 읽을 수 있는 키워드는 지배 구조다. 신 전 부회장이 경영에서 손을 뗀 것은 사실이지만 섣불리 후계 구도에서 밀렸다고 단정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의 지분을 여전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배 구조의 최상위는 신 총괄회장이다. 일본 롯데그룹의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위에는 롯데홀딩스 지분 22%를 가지고 있는 일본 ‘광윤사’(光潤社)가 있다. 포장재를 만드는 광윤사는 비상장사로 매출 등이 비공개돼 있어 일본 롯데그룹 홈페이지에 설명된 사업 내용이 전부다. 광윤사 외에도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모두 비상장사라 기업 지분 구조는 베일에 감춰져 있다. 이런 광윤사의 지분 절반을 소유하고 있는 최대주주는 신 총괄회장이다. 또 광윤사는 한국 롯데그룹을 지배하는 호텔롯데의 지분 19.07%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신 총괄회장이 자신의 광윤사 지분을 누구에게 넘기느냐에 따라 최종 후계자가 결정되는 셈이다. 일본 롯데그룹이 이런 상황이라 한국 롯데그룹은 74개 계열사가 417개 순환출자를 하고 있어 지하철 노선도보다 더 복잡한 지배 구조를 보이고 있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는 호텔롯데다. 호텔롯데는 롯데알미늄 지분 12.99%를 가지고 있고, 롯데알미늄은 롯데제과 지분을 7.86%를 소유하고 있다. 이어 롯데제과는 롯데쇼핑 지분을 7.86%, 롯데칠성 지분을 18.33% 보유하고 있다. 또 롯데칠성은 롯데쇼핑 지분을 3.93%, 호텔롯데는 롯데쇼핑 지분을 8.83% 가지는 형식으로 한국 롯데그룹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은 각 계열사의 지분을 근소한 차이로 나눠 가지고 있다. 누가 조금만 더 지분을 가지더라도 위에 올라설 수 있다. 이 때문에 신 전 부회장이 지분을 계속 가지고 있는 한 후계 구도가 한쪽으로 흘렀다고 단정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형제들의 주요 계열사 지분 보유 현황을 보면 롯데제과는 신 전 부회장이 3.96%, 신 회장이 5.34%, 롯데쇼핑은 13.45%, 13.46%, 롯데칠성은 2.83%, 5.71%, 롯데푸드는 똑같이 1.96%씩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변수는 신 총괄회장의 또 다른 자녀들이다. 신 총괄회장의 장녀이자 형제들의 누나인 신영자(73) 롯데장학·복지재단 이사장은 롯데백화점을 최고의 백화점으로 키운 탁월한 경영능력을 보였지만 신 회장이 경영 전면에 등장하면서 자리를 내주고 후계 경쟁에서 벗어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다만 신 이사장이 보유한 국내 롯데 계열사의 지분을 보면 만만찮다. 신 이사장은 롯데제과 지분 2.52%, 롯데쇼핑 0.74%, 롯데칠성 2.66%, 롯데푸드 1.09% 등을 보유 중이다. 숫자로 봤을 때는 미미하지만 의미를 따졌을 때는 크다. 신 전 부회장과 신 회장의 지분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에 신 이사장이 조금이라도 지분을 넘기면 순위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의 차녀 신유미 호텔 롯데 도쿄사무소 고문은 롯데쇼핑 지분 0.09%, 롯데푸드 0.33% 등 별다른 지분을 가지고 있지 않아 후계 구도에서 비껴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신 총괄회장이 고령임에도 건강을 유지하고 있고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최상위 회사의 지분 절반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영향력은 건재하다 못해 강력하다. 이 때문에 후계 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KB의 LIG손보 인수 지지부진 왜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취임 이후 첫 성과로 주목받았던 LIG손해보험 인수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말 우여곡절 끝에 금융 당국으로부터 LIG손보 인수 승인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하지 못했다. KB금융과 LIG그룹 간 ‘가격 차이’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아서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LIG그룹에 당초 인수가격보다 10%가량 깎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LIG그룹은 “가격은 이미 협상이 끝난 부분인 만큼 이제 와 값을 낮춰 주기는 힘들다”며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KB는 당초 LIG손보 지분 19.47%를 인수하는 데 6850억원의 가격을 지불하기로 했다. 그런데 KB가 본격적인 실사에 들어간 후 LIG손보의 수익성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나쁘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 문제가 됐다. 우선 LIG손보의 지난해 순이익 추정치가 크게 내려갔다. 지난해 6월 인수 확정 당시에 LIG 측이 내세웠던 순이익 예상치는 2578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말 LIG는 절반에 불과한 1370억원으로 예상치를 낮췄다. KB 측이 두 배나 비싼 가격에 LIG를 샀다는 얘기다. 실적 악화의 가장 큰 원인은 미국 법인이다. 2013년 손실은 400억원, 지난해 손실은 무려 800억원 수준이다. 인수 후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도 걸림돌이다. LIG손보를 금융 자회사로 편입하기 위해서는 지주회사법상 지분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LIG손보 지분을 추가로 10%가량 사들여야 하는 것이다. 건전성 제고와 영업력 강화를 위해서도 추가 자금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KB가 LIG에 쏟아부을 돈은 인수가를 합쳐 총 1조원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온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GS그룹] 현장 중시·투명성 강화… 홀로서기 10년 만에 재계 7위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GS그룹] 현장 중시·투명성 강화… 홀로서기 10년 만에 재계 7위로

    GS의 2015년은 창립 10년을 맞는 특별한 해다. 반세기를 넘어서는 LG그룹과의 동반자 관계를 접고 2004년 7월 GS홀딩스(현 ㈜GS) 설립을 시작으로, 2005년 3월 새로운 그룹 기업이미지(CI)를 선포하고 GS그룹의 출범을 알렸다. 현재 GS그룹은 지주회사인 ㈜GS와 GS에너지, GS칼텍스, GS리테일, GS홈쇼핑, GS EPS, GS글로벌, GS E&R, GS스포츠, GS건설 등 주요 자회사와 계열사를 포함해 80개 기업(2014년 3월 말 기준)으로 이뤄져 있다. 2013년 말 자산 약 58조 1000억원으로 자산규모 기준 재계 순위 7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의 기업집단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출범 당시(2004년 말 기준) 매출 23조원, 자산 18조 7000억원이었던 그룹의 외형은 2013년 매출 68조 4000억원, 자산 58조 1000억원으로 3배 규모로 커졌다.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도 갖췄다. GS는 2004년 매출 23조원 중 수출과 해외매출 비중이 7조 1000억원으로 약 30%였다. 하지만 2013년에는 그룹 전체 매출 68조 4000억원 중 수출 비중을 약 55%인 39조원으로 끌어올렸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해외사업과 수출로 일궈 내는 글로벌 기업으로 변모한 셈이다. 계열 분리 과정에서 시끄러운 경영권 다툼이 벌어지기 일쑤인 우리나라 재계에서 거대 기업의 분리를 잡음 없이 해결했다는 점도 자랑거리다. 10년이 지났지만 허씨와 구씨 가문은 여전히 서로의 사업영역을 존중해 상대의 주력 업종에는 신사업을 추진하지 않는 아름다운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 GS는 출범 이후 그룹 차원에서 에너지, 유통, 건설 등 기존 사업의 경쟁력 강화와 함께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인수·합병(M&A)과 사업구조조정 등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주력사인 GS칼텍스는 고도화시설 등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로 생산시설과 해외수출을 큰 폭으로 늘렸다. 하루 77만 5000배럴의 원유 정제 능력을 갖췄고, 2000년대 들어 총 5조원을 투자해 2·3·4중질유분해시설을 잇달아 완공하며 고도화 처리 능력을 26만 8000배럴로 늘렸다. GS리테일과 GS홈쇼핑도 사업구조 조정을 통해 미래 성장동력 확보에 적극적이다. 2010년 2월 백화점과 마트 부문을 매각했고, 이후 편의점과 슈퍼마켓을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했다. GS홈쇼핑은 해외 7개국에서 취급고가 1조원에 육박하는 글로벌 홈쇼핑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다만 GS건설은 어려운 고비를 겪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침체와 저가 수주로 말미암은 파장을 사업구조 개편을 통해 수습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GS건설은 주택사업과 석유화학·정유 플랜트 중심의 사업 구조를 넘어 액화천연가스(LNG), 원자력, 담수화 개발, 해상플랜트 등 기술, 지식 집약적 사업으로 사업구조를 개편 중이다. 2005년 출범 당시 4조원이던 매출은 2013년 9조 5000억원으로 2배 이상 성장했다. 이 같은 성장의 배경에는 GS그룹 허창수(67) 회장의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지도력이 바탕이 됐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2004년 7월 허창수 회장은 GS 출범과 함께 허씨 가문의 추대를 받아 GS그룹의 대표로 선임됐다. 허 회장은 LG그룹 공동경영 시절 다양한 계열사를 두루 거치며 풍부한 실무경험을 쌓아 왔다. 그는 현장 중심의 경영과 이사회의 투명성을 늘 강조한다. 경영진의 판단이 현장을 벗어나서도 안 되며 이에 기반을 둔 경영진의 판단 역시 투명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허 회장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국내외 주요 계열사들의 연구, 생산, 판매시설 및 건설현장 등을 자주 찾아다닌다. 개인 재산을 털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모습은 다른 기업 사주가 본받아야 할 정도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사회공헌을 하면서 오너 일가는 생색만 내고 회사 돈으로 내는 게 다반사다. 허 회장은 2006년 12월 사재를 출연해 남촌재단을 설립, 소외 계층 환자를 위한 의료사업과 저소득 가정 자녀의 교육, 장학지원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재단 설립 당시 허 회장은 매년 GS건설 주식 등을 출연해 재단기금을 500억원 이상 규모로 키우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어김없이 지켜지고 있다. 2006년 말 GS건설 주 3만 5800주로 시작된 기부는 9년 동안 무려 37만 주가 쌓였다. 돈으로 환산하면 약 360억원에 달한다. 이런 모습은 대외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8년 2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시아 이타주의자 48인’에 허 회장의 이름을 올렸다. 허 회장은 2011년 2월 경제계 원로들의 추대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직(33, 34대)을 맡아 지금까지 재계를 대표하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재계 인사는 “가진 돈을 값지게 쓸 줄 아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의 착한 부자”라고 말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GS그룹] 허씨 49명, 46.15% 지분… 우애 좋은 사촌들 ‘공동경영’ 형태

    [재계 인맥 대해부 (2부) 후계 경영인의 명암 GS그룹] 허씨 49명, 46.15% 지분… 우애 좋은 사촌들 ‘공동경영’ 형태

    GS그룹의 지주회사인 ㈜GS의 최대 주주는 허씨 일가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허씨 49명이 46.15%를 보유 중이다. 고 허만정씨를 기준으로 하면 ‘수’ 자 돌림인 3세 형제들이 현재 GS그룹의 주력 계열사들을 이끌고 있다. 그 아래 ‘홍’ 자 돌림 4세들도 속속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후계 구도는 아직 논의하기에 시기상조다. 허창수 회장이 여전히 건재한 이유도 있겠지만 지분이 사촌들에게 골고루 나뉘어 있는 ‘공동경영체제’ 형태에서 4세 중 누가 전면에 등장할지 예상하기 쉽지 않다. 대대로 우애 좋은 가문이지만 이 과정에서 지분분배나 후계구도가 어떻게 변할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GS의 4세들은 대부분 신입사원부터 시작해 능력과 실적을 검증받으며 단계적으로 승진을 거친다. 4세들 중 현재 임원은 GS건설 허윤홍 상무, GS칼텍스 허준홍 상무, GS칼텍스 허세홍 부사장(GS그룹 입사 순) 등이 있다. 허창수 GS 회장의 장남인 허윤홍(36) 상무는 한영외국어고를 졸업한 뒤 미국 세인트루이스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귀국해 2002년 GS칼텍스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연수 과정에서 동기들과 똑같이 주유소에서 주유원 생활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이는 현장을 중시하는 허 회장의 지론과도 맥을 같이한다. 2005년 GS건설 대리로 입사해 과장(2007년), 차장(2009년), 부장(2010년)을 거치며 현장 경험을 쌓았고, 2013년 정기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했다. 허 상무는 GS건설 재무팀장 시절에 국내 기업의 난제로 꼽히던 국제회계기준(IFRS)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상무 승진 후에도 기업설명(IR)과 경영혁신을 담당했다. 올해부터 플랜트공사담당을 맡아 해외사업 수행 경쟁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직원들과 토론을 통해 의사를 결정하는 스타일로 일 처리가 상당히 꼼꼼하다는 평이다.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의 장남 허준홍(40) GS칼텍스 상무는 보성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콜로라도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허 상무는 고 허만정씨의 장남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허 상무는 2002년 셰브론을 거쳐 2005년 GS칼텍스 여수공장 생산기획팀에 사원으로 입사한 이후 제품팀, 시장분석팀에 근무한 뒤 2010년 윤활유 해외영업팀장, 2012년 싱가포르현지법인 원유 제품 트레이딩 부문장을 거쳐 2013년 상무로 승진했다. 올해부터 LPG사업부문장을 맡고 있다. 허 상무는 윤활유해외영업팀장 재직 시 GS칼텍스의 첫 윤활유 해외법인인 인도법인 설립을 주도하는 등 탁월한 국제감각과 리더십도 갖추고 있다.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장남인 허세홍(46) GS칼텍스 부사장은 휘문고와 연세대를 거쳐 미국 스탠퍼드대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허 부사장의 할아버지는 고 허만정씨 장남으로 삼성그룹 창업에 기여한 고 허정구 삼양통상 명예회장이다. 허 부사장은 1992년 대학 졸업 후 일본 오사키전기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뱅커스트러스트 한국지사, IBM 미국 본사를 거쳐 2003년 이후 셰브런 미국 본사와 싱가포르 법인을 거쳐 2007년 GS칼텍스 싱가포르 현지법인 부법인장(상무)으로 GS칼텍스에 입사해 원유제품 거래를 담당했다. 허 부사장은 2009년 싱가포르 현지법인장(전무), 2011년 여수공장 생산기획공장장을 거쳐 2013년 GS칼텍스 석유화학사업본부장(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부터 석유화학· 윤활유사업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다.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S그룹] ‘태·평·두’ 3세 후계구도 본격화… 아들 위주로 진행

    ‘태·평·두’(구태회·구평회·구두회 명예회장의 줄임말) 구씨 가문의 3세 후계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유교적 색채가 강한 보수적인 LS그룹의 3세 경영수업은 철저히 아들 위주로 진행된다. 배우자는 물론 딸들도 그룹 경영에서 배제된다. LS그룹은 지난 1일 신년인사에서 부사장급 이상 경영 후계자들을 발탁해 중책을 맡겼다. 3세 후계자들은 대부분 승진했다. 지난해 11월 작고한 고 구자명 LS-니꼬동제련 회장 아들인 구본혁 LS-니꼬동제련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다. 구 전무는 국민대 국제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UCLA에서 MBA를 마친 뒤 2003년 LS전선에 입사했다. 이후 2009년 지주회사인 LS 경영기획팀에서 경험을 쌓다가 2012년 임원이 되면서 LS-니꼬동제련으로 옮겼다. LS오너 일가 3세 가운데 처음으로 임원 자리에 9년 만에 올랐다. 구자엽 LS전선 회장의 아들인 구본규 LS산전 이사는 상무로 승진했다. 구본규 상무는 원전 부품비리가 터졌던 2013년 연말 인사에서 전반적인 인사폭이 축소되는 중에도 오너 일가로는 유일하게 LS산전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했다. 2007년 LS전선에 입사해 2010년 LS산전으로 옮겨 상무가 되기까지 6년 만에 이뤄진 초고속 승진이다. 이들은 모두 고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손주들이다. 그룹의 주력인 LS산전에는 현재 구본규 상무 외에 고 구평회 EI 명예회장의 손주이자 구자열 LS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구동휘씨가 LS산전 부장으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2013년 11월 LS산전 차장으로 입사한 동휘씨는 처음에는 경영전략실 전략기획 부문에서 일하다 “공장일부터 배워야 한다”는 부친 구자열 회장의 방침에 따라 바로 충북 청주의 LS산전 생산공장 생산기획팀으로 내려갔다. 아버지의 권유로 입사 전에는 2년간 우리투자증권 투자은행(IB)에서 일했다. 구태회 명예회장의 장손이자 구자홍 LS미래원 회장의 아들인 구본웅씨는 미국에서 벤처캐피탈 회사인 포메이션8을 창업해 벤처사업가로 활동 중이고 구자철 예스코 회장의 외아들 구본권씨는 2012년 LS그룹에 입사해 현재 LS전선 차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2월과 4월에는 두 차례에 걸쳐 구자홍 LS미래원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고 구자명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 LS그룹 2세 경영진들은 자신들의 지분을 3세에게 고스란히 넘겼다. LS그룹은 지주사인 ㈜LS를 중심으로 LS전선, LS산전, LS엠트론, LS-니꼬동제련 등 주요 계열사 지분을 ‘태·평·두’ 삼형제가 각각 33.4%씩 보유하고 있다. ㈜LS의 33.4%는 가문별로 구태회 명예회장, 고 구평회 명예회장 측, 고 구두회 명예회장 측이 20%씩 4대4대2의 비중으로 나눠서 보유 중이다. 일각에서는 아직까지 2세 경영인이 비교적 젊은 편이어서 후계 논의를 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구자홍 회장 가문의 자식에 대한 자산 승계율은 14.7%, 구자열 회장 가문의 자산승계율은 15.7%에 불과하다. 다만 구자은 LS 엠트론 부회장 가문은 부친인 구두회 회장이 작고한 관계로 자산승계율이 100%다. 가부장적인 LS그룹은 창업주의 2·3세 아들이 경영 전면에 급부상하고 있는 반면 딸들은 삼성·현대가 등과는 달리 완전 배제돼 있다. 현재 그룹 경영에 참여하는 딸은 단 한명도 없다. 고 구두회 명예회장의 차녀인 구지희씨는 2011년 LS지분 8000주를 남동생과 언니인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과 구은정 태은물류사장에게 넘기고 LS그룹과의 지분 관계를 완전히 청산했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럭키금성→LG’ 20년 구본무號… 해외 매출 10배 키웠다

    ‘럭키금성→LG’ 20년 구본무號… 해외 매출 10배 키웠다

    구본무호(號) LG가 취항 2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LG는 GS, LS, LIG, LF 등 주요 계열사와 분리했고, 대기업 최초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해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었다. 1994년 말 대비 지난해 해외 매출은 10조원에서 100조원으로 20년간 10배를 키웠다. 럭키금성에서 기업 이미지(CI)를 LG로 바꾼 것도 딱 20년 전이다. LG그룹은 구 회장이 지난 14~15일 경기 이천 LG인화원에서 글로벌 CEO 전략회의와 회장 취임 20주년 기념 만찬을 가졌다고 16일 밝혔다. 이 행사에는 강유식 LG경영개발원 부회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 등 최고경영자(CEO)와 사업본부장 등 40여명이 참석했다. 구 회장은 행사에서 “LG 브랜드가 진정한 일등 LG로 성장해 영속할 수 있도록 하자”며 “논의한 게 구호가 아닌 실행으로 이어져 성과를 내야 한다. 최고경영진이 직접 챙겨 달라”고 거듭 강조했다. 구 회장은 “끈기의 리더십”으로 통한다. CI 변경은 1995년 2월 취임한 구 회장의 첫 번째 작품인데, 그는 당시 회사 안팎의 반대에도 “글로벌 기업으로 가려면 CI 변경이 필수”라고 끊임없이 구성원들을 설득시켰다고 한다. 사업에서도 그의 끈기는 빛을 발했다. 세계 1위 제품으로 통하는 LG전자의 2차전지가 대표적이다. 2차전지는 구 회장이 부회장 시절인 1992년 제안해 20년 넘는 연구개발 끝에 결실을 이뤘다. 이제 LG는 전자·화학·통신서비스 등 3대 핵심 사업을 축으로 150조원대 매출을 올리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 됐다. 20년 전인 1994년과 지난해를 비교해 보면 시가총액은 7조원에서 67조원으로 껑충 뛰었고 외형적 성장도 상당했다. 회사는 해외법인을 90개에서 290여개로, 임직원 수는 10만명에서 22만명 규모로 늘렸다. 2003년 지주회사로의 전환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대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순환출자 문제를 해결하고 계열사가 오로지 본연의 사업에만 전념할 수 있는 선진화된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한편 회의에서는 구 회장이 강조한 ‘일등’과 ‘성과’를 위한 실행력 제고에 대한 열띤 토의가 있었다. LG는 차세대 성장엔진으로 태양광 모듈, 에너지저장장치(ESS), 스마트카 전장부품, 솔루션 등에 주력하고 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건강한 밥상이 질병 없는 노후로 가는 지름길

    건강한 밥상이 질병 없는 노후로 가는 지름길

    최근 웰빙 열풍을 타고 유기농 채소의 수요가 증가하고, 저염식 건강 조리법이 관심을 끌고 있다.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관리가 식습관 조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매일 섭취하는 음식은 우리 몸에 가장 직접적이고 장기적으로 영향을 주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건강한 식단으로 몸을 관리해야 질병 없는 노후를 맞이할 수 있다”면서 “내 몸에 꼭 필요한 영양소를 찾아 흡수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문을 연 맞춤식 헬스케어 센터 ‘케이유웰링’은 첨단 검사를 통한 맞춤형 영양 관리를 해준다. 사상체질별로 도움이 되거나 주의해야 하는 식품을 안내하고 내 몸의 밸런스를 위한 식생활실천 가이드를 제공한다. 이 밖에 각자 몸에 필요한 영양소 처방, 영양소 흡수율을 높이는 섭취방법, 사상체질에 따른 도움이 되는 식품과 주의해야 하는 식품 안내, 질환별 또는 내 몸의 밸런스를 위한 식생활 가이드 등의 정보를 동시에 제공 받을 수 있다. # 저니맨야구사관학교와 손잡고 영양처방 서비스 강화 케이유웰링은 최근 저니맨야구사관학교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맞춤식 영양처방 서비스 강화에 힘쓰고 있다. 저니맨야구사관학교는 국내최초로 6개 프로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한 저니맨으로 유명한 전 프로야구선수 출신인 최익성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이다. 케이유웰링의 투자지주회사인 KUMSI(고려대학교융합의과학연구소)는 제휴를 통해 양사가 가진 스포츠클리닉 및 영양처방과 관련한 콘텐트를 전국에 보급시키는 것은 물론, 이웃국가인 일본 및 아시아지역에서의 야구 교류 등을 통해 한국스포츠산업의 해외 진출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특히 웰링스포츠클리닉에서 운영하고 있는 건강카페 헬시테이블은 최 대표의 참여로 웰링VVIP 회원은 물론,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도 개별 맞춤식 운동처방 및 영양처방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 ‘케이유웰링’ VIP 회원 모집 케이유웰링은 고려대학교기술지주회사인 KU융합의과학연구소(KUMSI)가 투자한 회사다. 고려대학교기술지주회사는 고려대학교중앙학원이 주주로 구성돼 있으며 KUMSI는 줄기세포 전문 연구소로 줄기세포 보관 및 국내 검진센터 병원과 항노화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 케이유웰링 1인 회원 입회가격은 연회비를 포함해 4500만원이다. 가족회원에게는 특별혜택이 적용돼 가족 수에 상관없이 6000만원이다. 케이유웰링 회원가입에 대한 자세한 상담은 고객의전팀으로 문의하면 된다. 문의 02-555-2318.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LG그룹] 차석용 ‘공격적 M&A’ 이상철 ‘막강 통신통’ 박진수 ‘화학업계 산증인’

    LG그룹은 지주회사의 특성상 각 계열사가 많은 자율권을 가지고 있다. 오너가 있긴 하지만 직접적인 플레이가 각 계열사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LG에는 오랜 기간 업에 종사하며 사업을 키워 온 전문경영인 부회장들과 사장들이 많다. 이들이 사업을 책임지는 구조라는 얘기다. 실제 이상철(67) LG유플러스 부회장은 ‘통신업계의 역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통신업계 전문가다. 국방과학연구소(ADD), KT, KTF, 정보통신부 장관, 광운대 총장까지 역임한 그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민·관·학을 모두 거친 ‘통신통’으로 유명하다. 2010년 LG유플러스 대표로 취임했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나와 미국 버지니아폴리테크닉주립대에서 전기공학 석사, 듀크대에서 전기공학 박사를 받았다. 차석용(62) LG생활건강 부회장도 대학과 대학원 과정을 미국에서 마치고 미국 P&G 본사에 입사한 이래 한국P&G, 해태제과 등 국내외 업체들의 최고경영자(CEO)를 두루 거치며 국제 감각과 경영 능력을 쌓은 글로벌 전문 경영인이다. 2005년 LG생활건강 CEO 취임 후 그가 보여준 인수·합병(M&A) 행보는 거침없었다.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사들여 음료사업부를 새롭게 추가했고 1년 만에 이를 흑자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2009년에는 다이아몬드샘물, 2010년에는 더페이스샵과 한국음료, 2011년에는 해태음료, 2012년에는 바이올렛드림(구 보브)과 일본 화장품 업체 긴자 스테파니를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현재 차 부회장의 공격적인 M&A를 통해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의 삼각 편대를 탄탄하게 갖추며 가파른 성장을 이어 가고 있다. 그는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코넬대 경영대학원 경영학석사(MBA)를 받았다. 박진수(62) LG화학 부회장은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나와 LG화학에 입사한 이후 15년 이상 생산 공장을 누비며 생생한 현장 감각을 익혔다. 이후에는 사업부장, 사업본부장을 비롯해 주요 화학 계열사 CEO를 두루 거치며 풍부한 현장 경험과 전문 지식으로 ABS, SAP(고흡수성수지) 등 주요 사업들을 세계적인 위치에 올려놨다. 한상범(60) LG디스플레이 사장은 33년 동안 정보기술(IT) 핵심 부품인 반도체, 디스플레이 업계에 종사하며 제품 장비 개발, 생산 공정, 영업,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모두 경험한 IT업계 최고 전문가이자 명실공히 한국 디스플레이 역사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연세대 요업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미국 스티븐스공과대에서 금속공학 석사, 같은 대학에서 재료공학 박사를 받았다. 이웅범(58) LG이노텍 사장은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하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2012년 LG이노텍 대표이사를 맡아 어려운 경영 환경 속에서도 체질 개선을 통해 매출 성장과 11분기 연속 흑자를 달성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사상 최대 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구본준 부회장이 이끄는 LG전자 밑으로는 조준호(56) 사장, 조성진(59) 사장, 권봉석(52) 부사장 등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경영자들이 전진 배치됐다. 조준호 사장은 LG전자의 스마트폰 사업부문을, ‘고졸 신화’로 통하는 조성진 사장은 냉장고, 세탁기 등의 생활가전 부문인 홈어플라이언스(HA) 사업본부를 진두지휘한다. 그는 용산공고를 졸업한 뒤 산학 우수 장학생으로 LG전자(구 금성사)에 입사해 36년간 세탁기 연구에만 몰두했다. 홈엔터테인먼트(HE) 사업본부는 권 부사장이 맡았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현대글로비스 지분매각 무산 정몽구 父子 행보 주목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계획이 무산된 이후 현대차그룹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12일(현지시간) 정의선 부회장이 직접 나서 승계와는 무관하다고 말했지만 여전히 증권가에서는 경영권 승계 차원에서 현대모비스 지분을 인수할 ‘실탄’을 마련하는 게 주목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의도였든 현대차는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매각하게 되면 일감 몰아주기 논란을 해소하는 동시에 지배구조 개선과 경영권 승계 문제를 쉽게 해소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이런 배경에서 일각에서는 제3의 대안인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설이 재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합병보다는 블록딜의 재추진 가능성이 높다는 예상이 만만치 않다. 업계 관계자는 “합병을 통한 경영권 승계는 너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에 정의선 부회장의 현대글로비스와 현대모비스 지분 교환설이 여전히 유효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 합병을 하면 이미 보유한 지분을 매각할 필요도 없이 손쉽게 지배력을 높일 수 있지만 증손회사 지분 100%를 보유해야 하는 지주회사법상 복잡한 계열사 지분 교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 현재 현대글로비스의 시총은 11조 2500억원으로 현대모비스 23조 1618억원의 48.6% 수준에 불과하다. 합병을 추진하려면 앞으로 현대글로비스의 주식 가치를 높여 시가총액을 두 배 이상 높여야 하는 과정이 남아 있다. 블록딜을 재추진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지분 매각을 통해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과세 부담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블록딜이 성사됐다면 대주주 일가는 내년 연간 100억여원의 공정과세가 축소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부응할 필요도 있어 블록딜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가능이 크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의 고위 관계자도 이날 “현대글로비스 일부 지분을 매각하더라도 최대주주 지위는 유지된다”고 밝히고 “우호 지분을 포함한 지분율도 약 40% 이상으로 지켜질 것”이라고 말했다. 디트로이트 유영규 기자 whoami@seoul.co.kr
  •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SK그룹(하)] ‘따로 또 같이’… 자율·책임경영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넘는다

    [재계 인맥 대해부 (2부)후계 경영인의 명암 SK그룹(하)] ‘따로 또 같이’… 자율·책임경영으로 글로벌 경제위기 넘는다

    2012년 11월 26일 서울 워커힐 호텔 아카디아 연수원에서 열린 ‘2차 CEO 세미나’. 이듬해 경영방침을 정하는 자리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20여개 SK 관계사 대표들 간에 격론이 벌어졌다. 최 회장은 “지주회사와 회장이 단독으로 그룹 경영을 결정할 수 있는 시대는 갔다. 새로운 성장동력원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가장 정통한 관계사가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그룹과 각 분야 전문가들이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경영방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집단지성을 활용한 위원회 경영의 첫 제안이었다. 대표들의 의견은 갈렸다. 방향성은 맞지만 처음 도입하는 경영방식에 대한 우려감과 우리나라 대기업 경영구조상 계열사 대표가 단독으로 결정하는 시스템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가 교차했다. 최 회장은 “CEO들이 걱정하고 우려하는 대목을 잘 알고 있지만 두렵다고 해서 올바른 방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그 길이 맞다면 가야 한다. 문제점은 실행하면서 고쳐 나가면 된다”며 설득에 나섰다. 이른바 ‘따로 또 같이 3.0’ 체제의 시작이었다. 이 체제에서 각 계열사는 자율적으로 경영행위를 판단하고 책임을 지게 된다. 그룹에서는 계열사의 판단을 도울 수 있도록 별도의 전문위원회를 구성해 지원한다.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공간으로 SK는 6개 위원회와 1개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각 계열사는 개별 비즈니스의 이해관계에 맞춰 7개 위원회에 들어가 ‘따로따로’의 역량을 강화한다. ‘또 같이’는 복수의 계열사가 참여하거나 그룹 차원의 역량이 동원되는 주요 사업 또는 신규 시장에 진출할 때 개별 위원회 또는 복수의 위원회가 나서 종합적인 검토를 진행한다. 7개 위원회 중 전략위원회는 그룹 차원의 전략과 목표를 설정하는 곳이다. 또 그룹의 전체 성과를 관리한다. 그룹 차원의 역량이 투입되는 주요 사업에 대해 올바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각종 경영정보를 제공하고, 각 계열사의 비즈니스를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글로벌성장위원회는 명칭 그대로 그룹과 관계사의 글로벌 성장을 서포트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관계사별 사업 역량과 경험을 모아 ‘또 같이’ 진행할 수 있는 글로벌 프로젝트 발굴을 측면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시장 개척을 위한 정보와 인프라를 제공하는 것도 주요 역할이다. 커뮤니케이션위원회는 그룹의 눈과 귀, 입이 되는 조직이다. 그룹 안팎의 다양한 상황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이해관계자들과의 진솔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고 있다. 또 그룹이 주력하는 경제와 사회 분야 어젠다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대외협력하는 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사회공헌위원회는 다른 그룹에서 찾아보기 힘든 조직이다. 국내 대기업 최초로 관계사와 협력업체를 아우르는 그룹 단위의 동반성장시스템을 만들었다. 계열사별 단편적인 지원이 아니라 수혜 대상이 실질적인 경쟁력과 생존력을 갖출 수 있도록 그룹 전체가 협력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인재육성위원회는 그룹이 지향하는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양성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윤리경영위원회는 그룹과 관계사의 감사와 법무 행정을 지원하는 조직이다. 특별위원회로 만들어진 ICT기술성장특별위원회는 그룹의 정보통신기술(ICT) 분야를 성장시키기 위해 관계사 간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맡는다. 앞서 SK그룹은 주요 분기점마다 경영의 틀을 달리했다. 2002년 제주 선언을 통해 각사 생존 경영 중심의 ‘따로 또 같이 1.0’을 시작했다. 재빠르게 부실 회사의 사업조정을 마쳤고, 각 계열사는 어떤 위기에도 그룹 도움 없이 홀로 경영이 가능한 흑자전환 구조로 변신했다. 5년 뒤인 2007년에는 ‘따로 또 같이 2.0’ 체제를 출범했다. 지주회사로의 체제 전환을 이뤘고, 오랜 내수기업의 이미지를 털어내고 국내 전체 수출의 10% 안팎을 책임지는 수출형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기간 수출 규모가 급증해 2007년 20조원에서 2012년 말 64조원으로 3배 이상 늘었고, 같은 기간 매출은 69조원에서 158조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주회사에 의존하며 사업을 추진하는 ‘따로 또 같이 2.0’ 체제는 관계사들이 지주회사에 의존하는 현상을 낳았다. 회장과 지주회사가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그룹은 2013년부터 각 관계사에 자율경영과 의사결정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따로 또 같이 3.0’ 체제를 시행했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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