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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분규 정부개입시대 끝났다/김 대통령

    ◎현중이 선례… 자율해결 정착돼야 김영삼대통령은 29일 『앞으로의 노사분규에서 정부의 공권력개입은 최대한 억제될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공권력의 노사분규개입종식을 선언했다. 김대통령은 이날 낮 청와대에서 의료보장및 사회복지전문가 45명을 초청,오찬을 나누는 자리에서 『이번 현대중공업의 분규가 공권력의 개입없이 타결된 것은 노사분규 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구체화한 것』이라면서 이같이 밝혔다. 김대통령은 『노사관계는 기본적으로 노와 사의 문제로 정부가 공권력으로 개입할 성격이 아니다』라고 못박고 『노와 사가 타협하고,토론하고,진통하고,이해하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통령의 이같은 선언으로 악성분규에 공권력을 투입해 사태를 해결하던 노사분규 해결방식은 더이상 활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기업은 과거에 정치자금등 정치권으로 가던 많은 자금을 절약할 수 있게 됐다』면서 『기업들이 이 절약분을 근로자처우와 사원복지시설에 투자한다면 노사문제도 상당부분 저절로 풀릴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대통령은 이어 『경제발전과 국민복지향상은 선진국으로 가는 두개의 바퀴』라고 전제,『경제발전과 사회복지를 균등하게 확충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멕시코 대선 당선 확실/에르네스토 세디요(뉴스인물)

    ◎전기공 아들… 교육장관 역임/수재형의 노력파… 미예일대 경제학박사 21일 실시된 멕시코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는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에르네스토 세디요(42)후보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으나 뛰어난 두뇌와 성실성으로 고속성장,집권당 대통령후보에 오른 입지전적인인물이다. 세디요는 전기공의 아들로 태어나 구두닦이를 하는등 어려운 생활에서도 명석한 두뇌와 노력을 바탕으로 미예일대학교에서 경제학박사를 받은 전문기술관료다. 이번 대선전까지만 해도 선출직 공직에는 한번도 나선 일이 없으며 대신 행정부에서 꾸준히 성장,88년 카를로스 살리나스 데 고르타리대통령 정부에서 예산·기획장관,교육장관을 지냈다. 때문에 지난 3월 집권 PRI 대통령후보였던 루이스 도날도 콜로시오가 유세도중 피살,그의 뒤를 이어 집권당 대통령후보가 될때까지만 해도 머리가 좋지만 다소 소극적인 관료출신 인사로 비쳐졌을뿐 대중에 널리 알려지지는 못했다. 집권 제도혁명당 선거운동본부는 이에 따라 세디요가 대통령후보로 지명되자 노동계층출신이지만 출중한 지능과 근면성으로 고속성장,집권당의 대통령후보로 부상했다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세디요는 전문관료출신답게 주요정책의 세부사항까지 정통해 선거유세에 들어가자 살리나스 현대통령이 직접 발탁한 집권당 후보라기보다 야당지도자를 방불케하는 맹렬한 어조로 만연한 부패구조를 질타했다.또 경제,사법,민주주의,농업,빈곤문제,보건,환경부문에 걸친 10개항의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것이 이번 선거승리에 주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세디요는 그러나 정치인으로서의 카리스마적 성향이나 정치력이 부족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게다가 집권 제도혁명당 대통령후보로는 처음으로 50%에 못미치는 지지율을 얻는데 그쳤다.이같은 점을 고려할때 그 어느때보다 강력해진 야당에 맞서 자신의 영향력을 잃지 않으면서 경제개혁과 민주화확대를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다.
  • 아테네/관광타운 플라카(아랍서 지중해까지:13)

    ◎그리스혼 번뜩이는 십자가목걸이/토속음식·술 겸해 파는 「타베르나」 곳곳에… 초저녁부터 “불야성” 활주로를 향해 고도를 낮추기 시작한 기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 도시 혹은 한 나라의 첫인상이 실제의 리얼리티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를 필자는 모른다.3박4일 혹은 길어야 4박5일 정도씩 각 나라에 배당된 이번 여행일정으로는 어차피 수박 겉핥기식의 관광유람 밖에는 소득이 없을 것같고 이런때 채택되는 그럴싸한 유적지라든가 뜻깊은 건물 내지 역사적 유물들을 찾는 일에도 필자는 실상 애초부터 흥미를 잃은채 포기하고 있었다.루브르를 하루만에 다 보고 소감을 말하라는 소리와도 그것은 같다.40년을 살고 있어도 서울이라는 괴상한 도시의 그 중심이 어딘지 필자는 아직 그 끄트머리조차 파악을 못하고 있는 형편인 것이다. 공중에서는 우선 그 나라의 땅과 산과 마을들의 대체적인 형태와 윤곽이 드러나고 빛깔이 나타난다.자주색에 가까운 지질과 짙고 어두운 녹색의 산야를 완만하고 구불구불한 오렌지 빛깔의 길들이 갈퀴질하듯이 마구 엇갈리고 있던 스페인의 첫 인상은,번드레하게 치장한 마드리드라는 도시와 후지고 매운 지방색이 두드러지던 그라나다를 직접 밟고 접촉했을 때의 그 느낌과도 무관하지 않았다.이스탄불 상공에서는 강과 붉은 벽돌지붕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올라오는 왁자지껄한 소음까지 들렸다.물론 이런 식의 과장은 린드버그가 애 기로 뉴욕에서 파리까지 사상 첫 무착륙비행을 하면서 『저것이 파리의 등불이다』라고 외쳤을 때의 그런 갈증과 그리움 없이는 어불성설의 것이기는 하다. ○포세이돈 환영이 아테네 상공에서 해신 포세이돈이 거대한 몸을 뒤채는 것을 보았다고 하면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른다.필자 눈에 들어온 에게해의 물빛은 그만큼이나 푸르고 맑았다.기창 하나 가득 부드러운 옥색이 들이닥치면서 없어지지를 않아 처음엔 하늘의 일부인가 했다.여기저기 솜털처럼 희끗희끗한 작은 파도의 흔적이 보였을때야 물이라고 알아봤을 정도다.좀 커보이는 솜털은 아마 요트의 돛이었으리라.아직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방대한 푸른 공간…에게해의 인상은 한마디로 그랬다.영화 「지중해」를 만든 가브리엘 살바토레는 이 잔잔한 바다에서 「망각」을 보았다.아비규환의 전쟁,쓸모없는 욕심,그리고 가차없이 생명을 무너뜨리는 시간이란 것의 망각.아구다가와 수상소설인 「에게해에 바친다」를 쓴 판화가 이케다 마쓰오(지전만수부)는 거기서 서양여자의 자궁을 보았다.거창한 문명을 만들어놓고도 모태 주위에서 한 치를 벗어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인간의 파리와도 같은 집착과 욕망.「그랑 블루」의 뤽 베송은 이색필름 「아틀란티스」에서 그 살아있는 물의 리듬을 보았고 「구세주 알렉산더」를 만든 그리스의 현역 테오도로스 앙겔로폴로스는 아마 도시국가의 번영과 민주주의와 헬레니즘을 제창한 고대 그리스인의 자존심을 거기서 보고 각성을 촉구하는 그런 파격적인 필름을 만들었을 것이다. ○영어안내표기 없어 신화란 무엇인가.자연과 인간을 고리짓는 강인한 생명력의 그 의인화이며 그런 갈망의 변용이 아니겠는가.고대 그리스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외디푸스니 엘렉트라니 하는 인간의 잠재의식과 매몰된 무의식의 깊은곳까지도 샅샅이 천착해 들어갔다.포세이돈이 살아있다는 소리도 따지자면 그런 자연으로서의 바다의 순도거나 그 오염 여부를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실제로 에게해가 다른 대양에 비해 어느 정도나 덜 오염이 되어있는 것인지 구체적인 자료나 수치를 필자는 아는 바가 없다.그렇긴 해도 여태껏 보아온 바다들 중에서는 가장 맑고 순연하다는 확신이 드는 것은 비단 눈으로만 측정된 그 감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초행이라 기왕에 보아왔던 영화나 소설이나 여타의 선입견으로는 우리 보다 훨씬 가난하리라 여겼는데 실제의 아테네는 그렇지도 않아보였다.다소 실망했다면 아마 그 탓이었을지도 모른다.선입견 속의 그리스는 바다를 낀 벼랑들 틈에 다붙은 정갈하고 흰 방형의 돌집들과 검은 천으로 몸을 감싸고 전란과 가난과 외세의 침입이라는 질곡을 끈질기게 견뎌내는 낙천적인 사람들의 굴곡짙은 그 얼굴의 음영이었다.카잔차키스의 소설 「희랍인 조르바」도 그렇고,여성이면서도 저항정치활동을 해온 끝에 집권한 사회당의 문화청장관까지 지내다 얼마전에 작고한 배우 머리나 멜리쿠리가 남편 율스 닷신과 함께 만든 콜걸 얘기의 필름 「일요일은 참으세요」를 봐도 그 이미지는 여축이 없다.이런 이미지에는 「피가 마르는 듯한 햇빛」이라는 식의 일종 말할 수 없이 청량하고 건조한 느낌이 스며있는데,더구나 제대로 된 고대 희랍비극의 영상작품 같은 것에는 그 뉘앙스가 절정에 달한다.「아무리 가난하더라도 세계의 중심적인 고뇌를 가장 가까이서 노려보며 고개를 돌리지 않는」그런 느낌의 이미지가 지금의 아테네에서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정도는 아니지만,호텔로 가는 콘스탄티누 거리 양쪽에 에워싸고 밀집한 현대식 호화아파트들의 모습이 우선 그런 기대를 반감시키고 있었다.그나마 낙조가 비쳐드는 건물 틈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면서 스쳐가는 아크로폴리스의 남아있는 신전들이 그 기묘한 실망을 달래주고라도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처럼 언덕위에 저런 것이 정말 다 서있네』라고 일행중의 하나가 내지른 탄성처럼,사양길에 접어든 해운업 보다도 순전히 그런 볼거리의 관광자원에힘입어 그리스는 이 정도의 여유나마 지니게된 것처럼 보인다.거리는 깨끗해서 후진데가 거의 눈에 띄지않았고,시민들은 코를 치켜든채 다소 거만한 표정들이었다.음식점이나 길이거나 영어표기가 거의 되어있지 않고 지도를 내보이며 길을 물어도 우선 모른다고 고개를 내젓기가 일쑤며 더구나 게발새발 지껄이는 엉터리 영어같은 것은 처음부터 먹혀들지도 않는다. 전시대의 건물들이 비교적 그대로 남아있는 플라카 지구의 골목들은 아닌게 아니라 그 자존심 높은 그리스인들이 외래객을 위해 따로 특별히 선심이라도 베푼 듯한,그런 신경과 배려가 유감없이 내배있는 곳이었다.우선 상점들과 거기 진열된 물건들이 정교하고 예뻤다.그리스 정교의 표지인 독특한 십자가 목걸이를 주로 파는 액세서리 가게엘 들어섰더니 득의만면하게 그것들을 「작품」이라고 소개했다.어째서 작품이냐니까 손으로 직접 만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넓적한 은판에다 뒤뷔페 풍의 희화(호화)들을 낙서처럼 간단히 새겨넣은 것들인데,노심초사하는 그런 공정을 한쪽 코너에서 그대로보여주기까지 하고있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도리도 없다.자존심과 상술이 교묘하게 결합된 예다.기념품들도 왁자하게 진열되어 있지않고,손가락만한 크기의 납작한 블론즈 제품인 옛 기마상 같은 것도 하나하나의 모양새가 조금씩 다르게 정성이 가 있다.여기에서 만은 가게들도 친절하고 물건 값이 비싸지도 않아 야박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야등 줄줄이 내걸어 토속음식과 술을 겸해 파는 타베르나 라는 카페 비슷한 독특한 음식점들의 모양새와 정취역시 그랬다.걷다보면 같은 길이 또 나올 정도로 사통팔달로 뚫려서 연결이 되고있는 계단과 골목 여기저기에서 심심치 않게 나타나곤 하는 그런 곳들은 빨간 고추같은 야등들을 줄줄이 내걸고 길에다 좌석을 내놓고 있다.채양빛깔이며 장식이며 디자인의 색조가 외래객의 굶주린 정서를 직통으로 파고들기에 모자람이 없다.일행들이 모두 무드파들이어서가 아니라 우리는 왜 이런 식의 길가 가게를 발전시키지 못했을까 하고 탄식이 나올 정도다.초저녁부터 등불들이 켜지고 그황금빛으로 환한 좁은 길을 메운 쌍쌍들이 흐느적대듯 느리게 흘러간다.야하지도 소란하지도 않은 불야성…이라는 소리가 저절로 떠오른다.역시 군데군데서 마주치는 소극장 윈도의 공연 포스터들을 들여다 본즉 하나같이 심각하고 진지한 장면들을 내걸고 있다.희극의 그것이라도 아테네 사람들의 표정에는 모종의 엄숙함이 노상 곁들여져 있는 것도 같다.뭐라고 토론하는 소리같은 것이 들려와 올려다 본 골목모퉁이 한 술집의 이름이 그 좋은 증좌가 된다.왈 「소크라테스의 감옥」.
  • 42년만에 치른 소대장 영결식/연천 DMZ서 심창섭소위 유골 발견

    ◎6·25 백마고지전투서 산화… 현장에 묻혀/신분증 등 찾아내 신원확인… 훈장 추서 「군번 120728.이름 심창섭.소속 보병 제9사단 28연대 2대대 5중대.계급 소위」 6·25당시 임관 6개월도 못돼 격전의 백마고지전투에서 전사,전우들에 의해 포연이 자욱한 그 자리에 묻힌 심소위의 유골과 유품이 42년만에 발굴돼 17일 현장에서 영결식이 치러졌다.심소위의 유골은 대전국립묘지에 안장된다. 전방 열쇠부대 수색대대 소대장 권오윤소위(25)등 수색대원 10명은 지난 6월15일 연천북부 비무장지대에서 진지보수작업을 위해 땅을 파내려가던중 흩어진 유골을 찾아냈다. 초여름의 더위속에서 땀을 흘리며 삽을 놀리던 대원 이상현상병(22)이 땅에 묻힌 유골과 가죽지갑,글자를 알아보기 힘들만큼 빛바랜 신분증 1개등을 발견한 것. 수색대원들은 이 유골이 전투끝에 산화한 선배장병의 것으로 직감,헌병대에 보고하고 정밀조사에 들어가 유골일체와 「심창섭」이라고 새겨진 플라스틱도장,실탄 10발이 들어 있는 카빈소총을 추가로 찾아냈다. 열쇠부대는 이 유품들을 즉시 국방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 지문감식등을 의뢰하는 한편 육군본부 병적과의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의 위패봉안자명부등을 통한 신원확인작업에 나섰다. 지문감식에는 실패했지만 참전장교연명부와 국립묘지에서 전사·위패봉안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한달여만인 지난달 중순 신원이 최종확인됐다. 국군문서보관소는 심소위에 대해 「52년5월24일 소위임관,52년10월9일 강원 철원지구에서 두부파편창으로 전사,본가에 봉송」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백마고지는 52년10월6일부터 15일까지 열흘동안 피아간에 뺏고 뺏기는 혈전이 펼쳐진 격전지.양측 합해 1만3천여명의 전사자가 발생했고 고지의 주인이 무려 24번 바뀐 것으로 전사에 기록돼 있다. 육군은 당시 23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하게 순국한 심소위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17일 상오 부대안에서 참전동지·유가족등이 참가한 가운데 영결식을 치르고 심소위에게 1계급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했다. 독자로 대가 끊긴 심소위의 가장 가까운 친척으로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심재홍씨(47)는『항상 위패만 국립묘지에 봉안돼 있어 안타까웠다』면서 『고인도 이제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라고 눈시울을 적셨다.
  • 농지위탁경영때도 소유권 인정/당정

    ◎분할상속 금지 등 단일농지법 추진 정부와 민자당은 8일 농지법이 분산돼 나타나는 정책수행의 혼선을 해소하기 위해 「농지개혁법」「농지개혁사업정리에 관한 특별조치법」「농지의 보전및 이용에 관한 법」「농지임대차관리법」「지력증진법」등 5개 법률을 폐지하는 대신 이를 체계적으로 종합한 「농지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당정이 입법을 추진하고 있는 농지법의 주요내용은▲임대차 또는 위탁경영을 할 때도 소유권을 인정,도시 거주민도 농지소유가 가능하게 하고 ▲농지의 세분화를 방지하기 위해 농지를 자녀에게 분할 상속할수 없는 「일자상속제」를 도입하는 것등이다. 당정은 또▲농업경영을 하지 않는 토지는 정부가 매수,영농법인이나 농민에게 대리경작하도록 하며 ▲농지전용허가권을 전면적으로 시·도,시·군·구에 위임하고 ▲통작거리제와 사전거주제는 폐지하는 내용을 법안에 담기로 했다. 당정은 이밖에 ▲영농회사법인에 비농가를 부분적으로 참여시켜 외부자본을 유인하며 ▲농지의 용도를 변경하지 않는 한 형질변경은 자유화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당정은 그러나 농지의 처분에 대해서는 『영농을 위한 농지소유 상한을 농업진흥지역 안에서는 철폐하고 농진지역 밖에서는 5만㎡까지 인정하자』는 민자당측과 『농지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는 정부측의 방침이 맞서고 있다. 당정은 이와 함께 농·수·축·임협법을 개정해 신용사업과 경제사업부분을 분리,독립채산제로 운영하되 금융개방화 추이에 따라 신용부문을 통합,「협동은행」을 설립하기로 했다.
  • 「보선승리」 여권의 향후 향보

    ◎이 대표 입지 강화… 정국주도 모색/민주/교섭단체 구성 가속… 야 통합 의욕/신민 「8·2보선」이후 민주당과 신민당에 생기가 돌고 있다.민주당은 불모지인 영남권,그것도 상당히 보수적이라는 경주에서 1석을 건져 지난해 전통적 여권지역인 강원도에서의 「명주­양양신화」에 이어「호남당」「지역당」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어버렸다고 자평하고 있다. 애초 민주당은 이번 보선에 임하면서 의석을 건지기 보다는 내년이후의 정치일정을 감안,득표율 상승에만 신경을 썼던 것이 사실이다.그만큼 민주당에게는 세곳 모두 절대열세로 평가됐고 공천 막판까지 야권후보 단일화에 당력을 집중한 것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없지 않았다.따라서 「경주 승리」는 단순히 수치상의 1승을 뛰어넘는 정치적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고 앞으로 민주당의 진로와 당내의 역학구도,야권통합에도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점쳐진다. 민주당은 우선 그동안의 수세와 무력감에서 벗어나 정국주도의 자신감을 회복,주요 현안마다 여권을 압박해나갈 것 같다.그리고 시기는정기국회를 전후한 가을정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경주 승리로 이대표의 위상이 강화됐으며 당연히 그의 행보가 빨라지리란 관측이다. 원내총무경선 및 국회부의장 선정과정에서 지도력에 손상을 입은 이대표이지만 정치적 명운을 걸 정도로 이번 보선에 전력투구,『경주 승리는 완벽한 이대표의 작품』 『이대표가 선거를 치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등의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더욱이 보선기간 내내 강행군을 펼친 그의 모습과 외유나 다녀오고 조문파문·정치자금 수수사건처럼 악재만 안겨준 비주류측의 행동은 궤를 달리한다는 지적이 많다. 여하튼 이대표는 내년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주류측의 공세에 대한 방어력을 키우게 됐으며 자신의 지지기반인 영남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을 확실히 묶어두는 기대밖의 성과도 얻었다. 반면 비주류측은 이에 반비례해 한동안 기세가 위축될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선거는 「국지전」에 지나지 않는 만큼 이대표가 총선이나 대선처럼 「전면전」에서도 능력을 발휘할 지는 의문이며 또 그의 위상이 강화되더라도 지금까지 보여준 우유부단한 스타일이 계속된다면 좋은 기회를 또다시 잃을 가능성이 있다는 조심스런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신민당도 통합후 첫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만큼 다시한번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또 이번 승리를 바탕으로 내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도 자력으로 치를 수 있다고 까지 자신한다.이른바 3당구도로의 복원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민주당의 「영남권 교두보 확보」와 신민당의 「대구연고권 확인」은 야권통합을 더욱 힘들게 만들 공산이 높다.신민당의 도움없이도 영남권 공략이 충분하다는 주로 민주당의 영남권 지구당 위원장들의 상황인식도 여기에 한몫 한다. 그러나 여당 참패,야당 승리로 나타난 이번 보선 결과는 『같은 야당끼리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는 당위성을 더욱 부각시킬 가능성도 없지 않다.
  • 토지거래 연내 사실상 실명화/종합 토지전산망 연말까지 완성

    정부는 토지소유별 보유토지의 위치·면적·가액 등을 상세히 알 수 있는 「종합토지 전산망」을 올해 말까지 완비하기로 했다.따라서 내년부터는 이 전산망을 통해 입수되는 토지거래 자료와 금융권에서 나오는 자금거래 자료를 대조해 남의 이름으로 등기하는 명의 신탁자를 색출,부동산의 실명화를 유도하기로 했다. 또 군사시설 보호구역,수도권 준농림지역,33개 시군 통합지역·투기 우려지역을 비롯,전국의 모든 토지거래 동향을 매주 점검키로 했다.투기조짐이 있으면 1천9백명의 투기 조사반을 즉시 투입,자금 출처조사를 벌인다. 정부는 3일 홍철 건설부 제1차관보 주재로 경제기획원·내무부·재무부·농림수산부·상공자원부·국세청 등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토지초과이득세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부동산 투기예방 대책회의」를 갖고,이같은 방지책을 마련했다. 회의에서는 신경제 5개년 계획대로 과표평준화 및 현실화를 추진,종합토지세제의 과세표준액을 오는 96년부터 공시지가와 일치시키기로 했다.개별지가 자동계산 프로그램도 내년말까지 끝내,96년부터는 전국 2백71개 시·군·구에 이를 적용한다. 또 토지개발공사는 매월 두 차례씩 국세청에 토지거래 자료를 보낼 때,매입자와 매도자의 거주지 및 토지소재지를 읍·면·동까지 전산으로 처리키로 했다.국세청은 이 자료를 등기자료와 비교,미등기전매 등을 빠르고 정확히 가려낼 수 있게 됐다. 농지거래에 따른 사후 관리를 강화하기 위해 농지를 원래의 취득목적과 달리 이용할 경우,1년 내에 처분하도록 의무화했다.정해진 기간내에 처분하지 않으면 농어촌진흥공사 등에서 매입한다. 한편 지난 92년 6월 말 이전에 허가받아 취득한 토지 27만건에 대해 오는 9월 말까지 이용실태를 조사하도록 각 시·군·구에 지시했다.
  • 컴퓨터 카메라시대 열렸다/필름대신 디스켓에 저장… 합성·인화 가능

    ◎현상 생략돼 신속… 국내 언론사들도 이용 컴퓨터의 발달이 사진작가들의 가방속을 바꿔놓고 있다.또한 현상과 인화를 하기 위해 짙은 화학약품냄새가 풍기던 암실에 이제는 각종 첨단 장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급속히 발전하기 시작한 PC하드웨어는 대량의 데이터파일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이와함께 다양한 소프트웨어로 섬세한 그래픽 처리가 가능해지면서 사진분야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되었다.2년전 코닥의 포토CD 개발의 성공은 필름사진시대에서 본격적인 디지털 파일시대로의 첫삽뜨기였다. 사진의 디지털혁명이 본격화되면서 사진을 포함하는 각종 인쇄매체들은 본격적인 전자출판의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또한 통신을 이용한 이미지전송이 가능케 되어 사진은 TV스크린이나 컴퓨터,PDA(개인정보단말기) 등 다양한 전자기기에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컴퓨서브나 프로디지,아메리카온라인 등 온라인 정보서비스에서 사진작가들의 디지탈 사진작품을 찾아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우리나라도 천리안이나 하이텔 등의 공중통신망에 사진작가들이 직접 제작한 작품들이 많이 올라와있다.특히 미 타임지는 지난 91년 12월호 표지를 디지털 사진작품으로 장식해 출판계의 작품사진 분야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디지털 사진혁명은 이미지캡처부터 출력까지 사진처리에 관련된 전반적인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최근 들어 애플사가 필름없는 사진기 「퀵테이크」를 발표함으로써 카메라와 컴퓨터의 접목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코닥과 AP통신이 공동개발한 「뉴스카메라」는 현재 가장 널리 쓰이는 디지털카메라이다.비디오 캠코더의 원리를 이용한 디지털 사진기는 필름 대신에 디스켓에 저장,이를 컴퓨터 화면에 띄워 프린트 하거나 합성하는 것으로 해상도면에서도 기존의 사진기보다 뛰어나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금까지 필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등의 작업이 단축 생략되는 것이다. 사진작가들이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디지털 사진작품에 흥미를 갖는 이유는 작품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이 적으면서도 다양한 작업을 할수 있다는 점이다.특히 소프트웨어에서 제공하는 「먼저보기(PREVIEW)」기능을 활용하면 방금 작업한 사진의 결과를 즉시 볼 수 있고 이에 따른 수정작업을 쉽게 할 수 있어 디지털 사진작업이 가진 가장 뛰어난 장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사진기에 망원렌즈,필터,필름이 들어 있던 사진작가들의 가방속이 이제는 노트북을 비롯해 일출,일몰시간 등을 계산해주는 계산기,음성으로 메모사항을 녹음할 수 있는 워크맨,각종 사진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CD지갑 등 각종 전자제품들로 가득 채워지게 됐다. 한편 국내에서도 현상,인화등의 작업이 생략되는 디지털카메라의 신속성 때문에 일부 언론사에서 다소 고가이지만 이런 기재를 채택,중요한 취재현장등에서 이용하는 곳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외국인 접촉·안전사고도 “반국가죄”/북,정치범 어떻게 다루고 있나

    ◎사형·재산몰수등 무제한 처벌/시효없고 변호인이 “자백” 강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 군도가 세계언론의 표적으로 떠오른 가운데 북한의 「반국가범죄」및 「인권상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체 북한 인민들에게 가장 무섭고 가혹한 범죄로는 「반혁명범죄」,「반국가범죄」가 첫손에 꼽힌다.북한은 74년 북한형법 제2편에 「반혁명범죄」를 규정,김일성 유일지배체제 유지에 장애가 될 우려가 있는 모든 행위를 반혁명범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다.이는 「반혁명분자들은 로동계급의 계급적 원쑤들이므로 무자비하고 철저히 처단해야 한다」며 반혁명범죄를 사법차원이 아닌 계급투쟁의 일환으로 취급한 것. 북한측은 줄곧 우리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면서도 자신들의 이 「반혁명범죄」가 비인도적인 측면에서 대내외적으로 비난을 받게되자 87년 북한형법을 개정해 「반혁명범죄」를 삭제하는 대신 「반국가범죄」를 새로이 규정했으나 이 또한 「반혁명범죄」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이 「반국가범죄」는 주체사상에 따른 북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노동계급적·정치적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범죄의 구성요건이 지극히 추상적·다의적이며 유추해석을 사실상 무제한 허용,반금일성부자체제의 부정적 행위해 대해서는 무제한 처벌을 가능토록 하고 있다. 더욱이 이 범죄는 형사소추시효도 적용받지 않는 데다가 사형·전재산몰수형등 가혹한 조항을 두고 있어 북한 인민들에게는 그 어떠한 법률보다도 위협적인 존재이다. 고씨를 비롯,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정치·사상범들은 체제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기약없는 「감방살이」를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북한은 정치범과 일반형사범을 구분,체제비판자등 이른바 「정치범」에 대해서는 재판을 허용치 않고 있으며 변호인 역시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 변호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설득을 통해 죄를 자백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반국가범죄」에는 『…년 이상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는 식의 중벌위주의 형벌규정을 적용함으로써 일단 형을 선고받으면 노동교화소나정치범 수용소에 무한정 수감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와 관련,법무부 특수법령과 성영훈검사는 『북한은 근대형사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와 유추해석금지의 원칙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면서 『국가이익및 집단이익에 반하는 행위는 물론 단순히 외국인과 접촉하거나 사업장 안에서의 단순사고도 반국가범죄로 처벌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한의 인권상황은 더더욱 나쁘다.아예 「인권개념」이 없다고 보는게 타당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북의 인권은 초국가적·천부적인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당에 의해 부여되고 보장되는 「공민의 권리」에 불과하며 자유권보다는 당의 물질적 급부를 내용으로 하는 수익권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주체사상의 중심체제 아래서는 개인의 존재는 부정될 수 밖에 없다며 인권개념을 왜곡하고 있다. 북한은 또한 외국이나 국제기구의 인권보고서 등을 『파렴치한 내정간섭』으로 호도하는 과민반응을 보여 이번 북한의 정치범 수용실태를 첫 공개한 국제사면위원회의 보고서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주목되고 있다. ◎“억류 고통 극복… 꼭 돌아오셔요”/고상문씨 부인 조복희씨 눈물의 편지 남편 고상문씨(46·당시 서울 수도여고교사)가 북한의 승호마을 정치범 수용소에 감금돼 있다는 소식을 15년만에 들은 부인 조복희씨(43·은평구 갈현동)는 2일 서울 중구 대한적십자사에 남편의 귀환을 기다리는 심정을 담은 편지 1통을 전달하며 남편의 귀환을 촉구했다. 조씨는 이날 『어제 전달한 남편의 송환을 촉구하는 진정서와 함께 꼭 이편지를 남편에게 전달하고 남편을 하루바삐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16절지 두장 분량으로 된 『현미아빠 보세요』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서 조씨는 꽃다운 28세에 결혼,10개월만에 남편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은뒤 15년의 세월이 지나 불혹을 넘긴 43세의 중년이 되기까지 남편을 그리는 애절한 마음을 편지 구석구석에 내비치고 있다. 『당신이 갖고다니며 사용하던 소형 트랜지스터와 함께 내 선물로 산 바바리코트 꾸러미가 집으로 도착한 후 나는 심한 환청과환상에 시달렸습니다.몇차례 병원생활을 하기도 했고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이루는 긴 세월을 나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마르면서도 우리의 딸 현미를 기르는 보람으로 지금까지 버티며 살아왔습니다』라고 적고있다. 조씨는 특히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빠는 왜 안와,왜 편지 한장 없어」라는 질문을 계속 해오는 딸 현미를 더이상 속일 수 없어 중학교에 들어간 날 사실을 말해주자 「우리 엄마는 너무나 불쌍한 여자」라고 했다』면서 『그 때가 가장 괴로운 순간이었다』고 그간의 회한의 세월을 담담히 소개했다. 조씨는 이어 『당신과의 생이별이란 사건은 내 인생에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면서도 『당신의 핏줄 현미에게 아빠가 돌아올 수 있다는 희망은 다시 나를 설레게 합니다』라며 그간의 고통을 이겨내고 남편의 무사귀가를 기다리는 애틋한 마음을 보였다. 조씨는 편지 끝에 『당신도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라며 만나는 그날까지 남편의 건투를 비는 성숙한 아내의 마음씀씀이도 잊지않았다. 조씨는 이날 편지전달과함께 딸 현미양이 대통령앞으로 보내는 편지도 소개했다. 현미양은 이 편지에서 『아빠가 돌아오시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해서 펜을 들었다』면서 『정치범 수용소에 갇혀 계신 아빠의 귀환을 위해 힘써달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적십자사는 조씨의 편지를 국제적십자사나 북한적십자사에 직접 전달하는 방법을 검토중이다.
  • 공장입지 가능여부 10일내 통보/새달부터

    ◎대기업도 농공단지 조성 허용/「규제완화」 실무위 오는 8월부터 어느 지역에 공장을 세울 수 있는지 여부를 10일 이내에 알 수 있다.지금은 기업들이 수도권 정비계획,도시계획,환경영향,농지전용 등 54개 토지 관련 법규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일일이 관계당국에 확인해야 하기 때문에 길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정부는 27일 제17차 경제행정 규제완화 실무위원회(위원장 한리헌기획원 차관)를 열고 공업배치법 시행령 개정을 포함,11건의 공장입지 관련 행정규제 완화방안을 마련,다음 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각 시·군·구가 공장 설립을 희망하는 기업으로부터 입지 신청을 받아 10일 이내에 가능 여부를 확인해 알려주는 공장입지 기준확인서 발급제도가 도입된다. 이를 위해 현재 국토이용관리법,도시계획법,농어촌발전 특별조치법 등 6개 토지관련 법령에 분산된 공장입지 관련 사항을 한데 묶은 「용도지역별 공장입지 허용기준」을 오는 10월까지 통합,고시한다. 또 오는 9월부터는 공단으로 이전한 업체가 기존 공장을 처분해야 하는 기간을 종전의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토지매매 부진에 따른 비업무용 판정 등의 불이익을 면해 주기로 했다. 대기업도 농공단지 조성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대기업이 직접 개발한 농공단지를 계열사 등에 분양할 수 있게 된다. 지역에 따라 10만∼30만평으로 구분된 시·군당 농공단지 개발 연면적 한도가 일률적으로 30만평으로 확대된다.지금은 전체 분양면적의 50% 이상에 해당하는 입주희망 업체를 미리 확보해야 농공단지를 개발할 수 있으나 앞으로는 선개발 후분양 방식으로 바뀐다.
  • “전력소비 줄이고 비용도 절감”/「빙축열­가스식 냉방」 관심 집중

    ◎빙축열/값싼 심야전기로 얼음얼려 낮에 활용/가스식/남아도는 도시가스 사용 냉방기 가동 전력난으로 15일부터 제한송전등이 실시되는 가운데 빙축열 냉방과 가스식 냉방시스템등 절전을 돕는 신기술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에너지전문가들은 빙축열 및 가스식 냉방방식이 전력예비율을 높여 전력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를 덜어줄 기술이라며 설치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빙축열냉방시스템이란 하오10시부터 상오8시까지의 밤시간에 남아도는 심야전력을 이용해 냉동기를 가동,얼음을 만들어 축열조에 저장하였다가 낮시간에 얼음을 녹여 냉방하는 방식.주간 전기료의 30%에 불과한 심야전기를 이용해 운전비를 절반으로 낮출수 있을 뿐아니라 주간 최대전력수요시간대의 냉방전력사용을 줄일수 있다.가스식 냉방시스템은 여름철 남아도는 도시가스를 연료로 하는 냉방방식으로 할인된 가격으로 가스를 공급받아 운전비를 줄일수 있고 전력사용에 부담을 주지 않는다. 현재 국내에 빙축열냉방시스템이 갖춰진 빌딩은 96개소,가스식냉방시스템이 갖춰진 빌딩은 2천8백74개소. 에너지절약은 물론 여름철 전력 최대수요시간대에 20%를 차지하는 냉방전력부하를 줄이는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전문가들은 5천평 규모의 건물 3천5백개에 가스냉방을 설치할 경우에는 1백만㎾규모의 원자력발전소 1기(2조원 상당)의 건설을 줄일 수 있을 정도의 효과를 볼수도 있다고 밝힌다. 서울 미도파백화점 상계점의 경우 93년 개점시부터 빙축열시스템을 도입,냉방수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연간 5천6백만원을 절약하고 있다.이곳 관계자는 『빙축열냉방은 일반 전기냉방과 냉방효과는 같으나 운영비가 절약되고 무더위 기간에도 예비전력에 구애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92년부터 빙축열냉방을 도입한 서울 그랜드백화점의 경우도 전력공급차질에 대한 큰 우려없이 냉방시설을 가동하며 일반 전기냉방에 비해 연간 3천5백만∼4천만원정도 경비를 줄이고 있다.빙축열시스템을 도입한 건물의 관계자들은 초기시설비가 부담스럽지만 1년쯤 가동하면 초기 투자비를 모두 회수할수 있을 정도로 전기요금을 절약할수 있어서 경제적이라며 빙축열시스템을 권장한다. 전기냉방과 가스냉방을 병행해오고 있는 인터콘티넨탈호텔의 경우는 평소 10대4인 전기와 가스냉방의 비율을 여름철에는 10대7로 가스냉방의 비율을 높여 월1천2백만원 정도의 경비를 줄인다. 그러나 이같은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가급적 빨리 현재 「권장사항」으로만 돼 있는 신축건물에 대한 가스식냉방을 「의무사항」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또 3∼4년전부터 널리 보급되고 있는 가스식냉방에 비해 초기 과다한 시설비와 장소문제로 보급이 정체되고 있는 빙축열냉방방식에 대해서도 관심이 제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위해 현재 정부에서는 가스냉방시스템을 설치하는 수용자와 마찬가지로 빙축열 냉방시스템을 설치하는 수용자에게도 설치비의 90%를 저리로 석유사업자금에서 융자하고 소득세 공제 등의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 농지법안의 몇가지 쟁점(사설)

    농지법개정안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지키면서 농지이용의 효율성을 높이려는 취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정부는 우루과이라운드(UR)이후 농업의 경쟁력강화를 위해서 지금까지 규제위주의 농업관련법을 통폐합하여 농지법안으로 단일화하고 있다. 이 법안은 농업진흥지역내에서 농지소유상한(현행 10∼20㏊)을 철폐하고 농지를 구입하려면 농지소재지에 6개월간 거주해야 하는 사전거주요건과 거주지로부터 농지까지 통작거리제도(현행 20㎞)를 폐지하고 있다.또 현재의 가족농에서 전업농내지는 기업농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 농업회사법인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농지전용규제를 대폭 완화하고 있다. 우리농업의 국제경쟁력강화는 우루과이라운드이후 시급한 과제이다.그 점에서 규제위주로 되어 있는 농지제도를 개선하는 것은 당연하다.그러나 이 법안에 몇가지 쟁점이 있어 보인다.첫째로 과거 6번에 걸친 농지법제정에서 걸림돌이 됐던 농지상한선 철폐가 과연 농업경쟁력강화에 얼마나 기여하겠느냐는 점이다.일본의 예를 보면 벼농사의 경우 10∼15㏊까지는 생산비가 절감되나 그 이상을 넘으면 생산비가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본의 사례는 현행의 10∼20㏊ 농지상한선이 생산비절감에 적합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또 상한선을 철폐했다고 해서 농가당 영농규모가 늘어 난다는 보장이 없다.일본은 지난 70년 상한선을 철폐했으나 농가당 영농규모가 늘지 않았다.이는 상한선 철폐가 경쟁력강화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 농지소유를 위한 6개월 사전거주와 통작거리제도의 폐지는 대통령자문기구인 농어촌발전위원회에서 그대로 존치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우리는 교통수단이 다양화된 현 시점에서 통작거리를 폐지하는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그러나 사전거주 없이 농지구입을 허용할 경우 도시민의 투기목적 농지구입 우려가 있다. 셋째로 농업진흥지역이외의 준농림지역중 2·3차산업의 개발여건이 양호한 지역의 경우 농지 및 산지의 전용철차를 신고제로 전환하는 등 농지전용절차를 대폭 완화한 것은 농촌에 제조업과 서비스산업을 유치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된다.그러나 이것 역시 농지투기 우려를 배제할 수 없다. 넷째로 농업회사법인의 경우 주식회사는 제외하고 합자회사와 합명회사로 한정한 것은 잘한 일이다.농지소유자격이 없게된 농업회사법인은 농지처분을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형사처벌 등 강력한 법적제재를 받게 한 것도 경자유전의 원칙을 최대한 살리려는 입법취지로 본다.앞으로 이 법안의 입법예고와 공청회과정에서 이들 문제가 충분히 검토되고 논의되기 바란다.
  • 자경농민 세제혜택 등 우대/새 농지법 제정안 내용 요약

    ◎임차인 편의위해 계약 3년서 1년으로/「농어촌 산업지역」 지정… 2·3차산업 유지 정부가 마련한 농지법안의 주요 내용을 간추린다. ▷농지에 관한 기본이념◁ 농지는 국민의 식량공급과 국토 환경보전의 기반이 되는 한정된 자원이므로 보전되어야 하고,농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이용되어야 하며,투기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농지 소유제도◁ 농지의 소유자격은 「경자유전의 원칙」을 적용,원칙적으로 농민과 농업법인으로 제한한다.농업법인에는 기존의 영농조합 법인과 새로 도입하는 농업회사 법인이 있다. 농민들의 협업 경영체인 영농조합 법인이 농업진흥지역 밖에서 지닐 수 있는 농지의 소유상한은 조합원 수에 3㏊를 곱한 수치이다.그러나 기업적 영농체인 농업회사 법인은 출자자 수와는 관계 없이 3㏊로 제한한다.농업회사 법인에는 일부 비농민의 자본참여도 허용되므로 가급적 기름진 농지가 많은 진흥지역 안에 설립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다. 통작거리 제한이 폐지되면 다른 사람에게 위탁할 수 있는 여지도 커지므로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은 세제혜택 등 우대방안을 마련한다.이를 위해 농민이 원할 경우 시·구·읍·면장이 농지 원부와 농지관리위원회의 확인을 거쳐 내주는 「자경증명 발급제도」를 신설한다. 자경은 「소유농지의 경작에 항상 종사하는 경우」와 「소유농지의 농업생산 과정의 반 이상을 자기의 노력으로 경작하는 경우」로 나눈다. 징집·복역·취학·질병·부상 등의 불가피한 사유에 한해 완전 위탁을,노동력이 부족하거나 경영비용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경우 일부 위탁을 각각 허용한다.이를 어기면 3백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린다. ▷농지 임대차◁ 지금은 농민이나 부재지주를 가리지 않고 아무나 농지를 임대할 수 있으나 농지법이 시행된 이후에 취득한 농지는 임대가 불가능하다.이농이나 상속으로 보유한 1㏊ 이내의 농지나,농지법이 시행되기 이전에 소유한 농지만 임대할 수 있다.임대차 계약기간은 빌리는 사람의 편의를 위해 3년에서 1년으로 줄인다. ▷농지 이용증진◁ 시장·군수가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5년마다 농지 이용계획을 수립해 시행한다.계획에는 생산기반 정비를 위한 투자계획과 경영규모 확대계획 등을 담는다.경영하지 않는 농지의 처분의무 대상 중 농지 소유자가 시·군이나 농협,농어촌진흥공사가 시행하는 각종 농지이용 증진사업에 농지를 제공하면 특례를 인정,1년 이내 처분의무를 면제한다. ▷농지보전 및 이용제도◁ 농어촌에 2,3차 산업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시·도지사로 하여금 농업진흥지역 밖의 농지를 대상으로 「농어촌 산업지역」을 지정토록 한다.이 지역에서는 농지전용 허가제를 신고제로 바꿔 공장이나 서비스산업 및 관광 지구로 적극 활용한다. 형질변경은 농지전용의 범위에서 뺀다.따라서 논과 밭의 전환이나 성토 및 절토 등의 형질변경은 농작물의 재배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안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진흥지역 안에서 법을 어겨 전용하면 5년 이하의 징역이나 토지 가액만큼의 벌금을,진흥지역 밖에서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토지가액의 절반을 벌금으로 물린다.
  • 남도답사 1번지/강진∼해남 가족여행 인기

    ◎청자가마터·대흥사 등 유적 고찰 즐비/고산유물관엔 시가집 등 3천점 전시/한반도육지 남쪽끝 알리는 토말탑도 가볼만 최근 가족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 있다.한반도 최남단의 전남 강진·해남지역.이곳은 지난해 미술평론가 유홍준씨가 쓴「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남도 답사1번지로 소개해 놓은뒤 답사객들의 발길이 부쩍 늘고 있다. 『…지난 20년간 내가 답사의 광이 되어 제철이면 나를 부르는 곳을 따라가고 또 가고,그리하여 나에게 다가온 저 문화유산의 느낌을 확인하고 확대하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여덟번을 다녀온 곳이 바로 강진 해남 땅이다.강진과 해남은 우리역사에서 단한번도 무대에 부상하여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일이 없었으니 그 옛날의 영화를 말해주는 대단한 유적과 유물이 남아있을 리 만무한 곳이며,지금도 반도의 오지로 어쩌다 나 같은 답사객의 발길이나 닿는 이 조용한 시골은 그옛날 은둔자의 낙향지이거나 유배객의 귀양지였을 따름이다.그러나 월출산, 도갑사, 월남사지,다산초당, 칠량면의고려청자가마터, 해남 대흥사와 일지암, 고산윤선도의 고택인 녹우당,그리고 땅끝(토말)에 이르는 이 답사길을 나는 언제부터인가 남도답사 일번지라고 명명하였다…』유홍준은 조국강산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산과 바다, 들판이 있기에 주저없이 일번지로 내세우고 있노라 한다. 서울쯤에서 자동차로 6시간이면 전남 강진에 닿는다.강진에는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시인 영랑 김윤식의 생가가 강진읍내가 내려다보이는 높은 터에 자리하고,마당 한편에는 꽃진 모란 무리와 시비가 세워져 있다.영랑생가는 몇차례 전매되면서 일부 변형됐다가 지난 85년 군에서 매입,원형을 복원했다. 영랑의 생가를 보고 군청에서 18㎞쯤 떨어진 대구면일대의 신비의 고려청자 도요지(사적 68호)를 찾아가 보자.일찌기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씨가 가마터에서 발견된 새초롬 파르스름한 고려청자 조각을 보며 반해서 찬사를했던 곳. 고려 전시대에 걸쳐 1백70개의 가마터가 총망라돼 있던 고려자기의 모태이자 청자연구의 기반이 되는 이곳에는 올해말 완공을 목표로 1천평규모의 고려청자 도요지전시관이 한창 공사중이다. 또 군청에서 8㎞쯤 떨어진 도암면 만덕리 귤동에는 조선말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요 사상가이며 경륜가인 다산 정약용이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초당(사적 제107호)이 있어 답사길에 나선 이들을 맞는다.다산은 18년 귀양생활중 이곳에서 10년간 머물며 후진을 기르고 저술에 힘썼다.목민심서등 5백여권의 저서를 이 곳에서 완성,이를 총정리한 여유당전서를 남겼다.초당을 나와 땀을 씻고 풍광이 시원한 천일각에서 구강포구를 바라보는 맛도 일품이다.해남읍에서 3㎞를 달리면 연동리에 잘 정돈된 고산 윤선도유적지가 있다.특히 해남 윤씨의 종가인 녹우당(사적 제167호)은 풍수지리에 따라 덕음산(덕음산)을 진산으로 ㅁ자형 가옥구조로 조선시대 양반가옥의 모양을 잘 전해주고 있다. 뒷산에는 비자나무숲(천연기념물 제241호)이 우거져 있다. 이웃한 고산유물관에는 국보 제240호인 고산의 증손 윤두서자화상을 비롯,중년에 연동으로 내려와 해남 금쇄동과 완도·보길도를 오가며 남긴 산중신곡집·어부사시사등 3천여점의 유물이 보관,전시돼 문화의 맥을 전한다.해남읍내에서 43㎞쯤 내려가면 한반도 육지부 최남단인 「땅끝」에 닿는다.사자봉아래 깎아진 절벽에는 땅끝을 알리는 토말탑이 세워져 있다. 북위 34도17분38초,동경 126도6분01초에 위치한 토말탑은 높이 10m의 삼각구조물.유홍준의 말대로 땅끝에 서서 인생과 역사를 추스려볼 기회를 갖는다는 것은 여간 뜻깊은 일이 아닐수 없다.땅끝으로 가는 길은 오갈데 없는 절망의 벼랑처럼 생각하기쉬우나 우리나라에서 둘째로 아름다운 산경, 야경 해경을 보여주고 있다는 이 코스를 한번 답사해볼만하다.
  • 비정한 권력투쟁가… 유례없는 반세기 독재/김일성 82년의 인생역정

    ◎유년 평양·만주 전전… 20세에 빨치산 활동/해방후 구소점령군 배경업고 권력장악/도전세력 가치없이 제거… 1인체제 구축/민족통일 빙자 6·25남침… 「전범」 낙인/67년 주체사상 만들어 사회주의 통치도구로 활용하기도 김일성.현대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장기집권을 누린 독재자이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난 45년 소련군을 등에 업고 한반도의 절반인 북한땅의 통치자가 된 뒤 거의 반세기동안 무소불위의 절대권력을 휘둘러왔다.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주석과 당총비서라는 사회주의 체제 특유의 어마어마한 권력집중적 직책도 모자라 북한주민들에게 「위대한 수령」,「민족의 태양」으로 부르기를 강요한 전제군주적 독재자였다. 김은 어찌보면 사이비 종교집단의 교주처럼 전지전능하고 무오류의 존재로 인식되도록 주민들을 세뇌시켜왔다고 할 수 있다.먹을 것이 모자라 하루 두끼 먹기운동을 벌이면서도 철저한 사상무장과 외부 정보통제로 주민들로 하여금 지상낙원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믿도록 만드는능력을 갖춘 인물이 바로 김일성이기 때문이다. 김은 1912년 4월15일 평양의 한 농가에서 아버지 김형직과 어머니 강반석을 부모로 하여 철주와 영주를 동생으로 둔 삼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본명은 성주였으나 만주에서 빨치산활동을 할 때 일성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기록은 우상화과정에서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엄청나게 날조되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그의 출생지가 평남 대동군 룡산면 하리 칠골에 있는 외가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을 거쳐 다시 일성으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김일성의 「공식」생가는 평양 대동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지금의 만경대이며 이른바 「혁명의 요람」으로 북한의 모든 주민들에게는 참배의 대상이 되어왔다. 김은 어린 시절 한때 외할아버지가 개신교 장로를 지내는 등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강반석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만경대에서 짧은 유년시절을 보낸 뒤 가족과 함께 만주로 이주했다.그후 김은 만주의 중국계 소학교인 모예산소학교,팔도구소학교와 평양근교 외가인 칠골에 있는 외조부 강돈욱이 교감으로 있던 창덕학교 등을 전전하며 파란많은 소년기를 보내다 26년 역시 중국계인 무송소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32년 유격대활동에 적극 가담하기까지의 기간은 뚜렷한 활동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다만 북한에서 나온 그의 전기들은 이 기간중 장춘과 길림 사이에 있는 가륜에서 한인농민들에게 사상교화작업을 했다고 쓰고 있다. 그는 31년 중국 공산당에 입당,32년 중순부터 중국 공산당 산하의 항일 빨치산집단에 참여한다.이때 이름도 성주에서 일성으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김의 항일투쟁경력은 그가 북한정권을 장악한뒤 유일체제를 강화하면서 그에 대한 우상화를 합리화하기 위해 터무니없이 과장·미화되었다.북한의 선전용 김일성 전기들은 만주사변이 일어난 32년 그가 조선공산당을 창설했다고 하지만 당시 불과 19세였던 그는 당시 그럴만한 힘이 없었다. 그는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양세봉이라는 한인이 이끄는 유격조직에 들어감으로써 항일빨치산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이후 그는 중국공산당 산하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에 사병으로 들어가 활동하다 우수한 중국어 실력을 인정받아 나중에 대대장급으로 승진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만주 일대에서 소규모 유격활동을 벌이던 김은 37년 유격대원 2백명을 이끌고 국경 마을인 함남 보천보를 습격했다.일본경찰지서와 우체국 등을 방화하고 추격해오는 경찰서장을 비롯한 일경 7명을 살해한 이른바 「보천보전투」를 벌여 순식간에 유명해졌다. 김은 이 전투가 자신이 참여한 빨치산 전투중 가장 성공적인 전투였다고 자랑하며 보천보에 자신의 동상과 혁명박물관까지 세우고 북한 주민들에개 참관을 강요했다.하지만 보천보사건을 일으킨 사람이 김일성이 아니라는 소수 의견을 내는 학자들도 있다.즉 보천보사건의 김일성은 그해 11월 죽었으며 그의 부하였던 사람이 소련으로 도피한 뒤 그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보천보사건 이후 일본이 중국 본토 침략의 전초전으로 만주의 빨친산에 대한 대대적인 토벌전에나서는 바람에 동북항일연군은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했다.때문에 김도 41년 8월 소련의 블라디보스토크 서쪽으로 피신해야 했다. 소련은 이 무렵 만주에서 일본과의 전쟁에 대비,중국인과 한인유격대원들을 모아 블라디보스토크 근교 등지에 「88독립저격여단」이라는 부대를 창설했다.김도 김책,최용건,이동화 등 빨치산 동료들과 함께 이 부대에 들어가 43년에는 대위급으로 진급한다. 김은 여기서 만주에서 함께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김정숙과 결혼했다.그녀는 16세 때인 35년에 김일성의 빨치산부대에 가담해 주방일 등 잡일을 보았던 여자였다. 김은 42년 그녀와의 사이에 첫아들인 정일(소련명 유라)을 낳았다.하지만 그녀는 49년 평양에서 사산아를 낳다가 사망했다. 해방과 함께 무명의 소련군 장교로 평양에 입성한 그는 이후 소련의 절대적 후원과 타고난 권모술수로 재빨리 권력을 장악한다.소련 점령군은 친소세력에 의한 공산정권 수립의 필요성에 따라 자신들의 협조자들 가운데 하나를 북한지도자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고 김이 바로 그같은소련의 의도를 기민하게 포착한 것이다. 소련점령군이 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만들어 김일성을 위원장으로 지명하면서 정치지도자로서의 그의 기반이 강화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에서 4월까지 한달동안 자신을 도와준 소련에 감사를 표시하기위해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돌아온 뒤인 6월 24일 북로당과 남로당 중앙위원회연석회의를 열어 당 위원장자리를 차지했다.이 회의에서 당의 명칭도 북조선노동당에서 조선노동당으로 바꾸었다. 당과 정부기관을 장악하는데 성공한 김일성은 자신에게 도전하는 세력을 가차없이 제거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것으로 만들었다.그는 자신에게 협력했던 인사도 자신에 도전할 정도로 위험하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숙청 또는 암살이라는 수단을 동원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데 심지어 자신과 유격대활동을 함께했던 빨치산대원들까지 가차없이 제거하기도 했다. 그는 조만식과 같은 민족주의자뿐 아니라 박헌영,김두봉등과 같이 자신에게 협력했던 수많은 인물들을 한국전쟁에 대한패전책임을 덮어씌우거나 종파주의를 부추키고 있다는등의 갖가지 죄목을 걸어 제거함으로써 결국 북한정권을 족벌체제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소련의 힘을 빌려 48년 북한정권의 초대수상에,49년 조선노동당 초대위원장에 오른뒤 도전세력들을 가차없이 제거하기 시작했다.그는 조만식 등 민족주의자는 물론 현준혁 등 국내파,박헌영 등 남로당계,김두봉을 위시한 연안파,허가이 등 소련파를 차례로 숙청해 결국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김은 자신의 권좌가 어느 정도 다져진 50년 6월25일 한반도의 적화통일이라는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마침내 무력 남침을 감행한다. 그 자신이 식은죽먹기라고 여겼던 적화통일이 유엔의 개입으로 실패로 끝났음에도 그는 전혀 책임을 느끼지 않았다. 김일성이 무력 적화통일이라는 야욕을 공공연히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1947년부터였다.그는 신년사를 통해 『단합된 민주조선의 건설은 남한에 있는 반동적인 매국노들에 대한 궁극적인 승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인민군과 보안대를 강화시켜야한다』고 역설했다. 김일성은 모든 상황이 유리하다고 판단,밤도둑처럼 새벽야음을 틈타 남침을 했으나 유엔군이 참전하고 중국의용군이 자신을 도와주러 왔을때는 이미 전쟁이 자신의 관리능력 밖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되었다.국제정세를 너무 단순하게 보았던 판단착오의 결과였다. 김일성은 자신의 실수로 엄청난 결과가 빚어지자 동료들을 숙청했다.그는 1950년 12월 21일 강계에서 열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원회의에서 그의 빨치산 동료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으며 그 가운데서 김일,최광,임춘추,김열,무정등은 당에서 축출해버렸다. 김일성은 뒤이어 당의 재조직문제를 놓고 자신과 이견을 보인 소련파의 거두 허가이를 숙청했으며 박헌영을 비롯한 국내파들도 정부전복을 기도하고 미국을 위해 스파이활동을 했다는등의 죄목으로 체포해 사형에 처하는등 자신에게 도전하거나 더이상 쓸모가 없다고 생각되는 세력은 여지없이 제거하는 비정함을 보였다. 김일성은 50년대 중반 자신에게 정치적으로 도전하는 세력들을 숙청하기 위한 수단으로 「주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67년에 「주체사상」을 만들어 냈으며 72년에 와서 북한의 사회주의헌법에 통치이념으로 명문화시켜 통치의 도구로 사용했다. 그러나 이같은 주체사상과 김일성에 대한 극단적인 우상화가 맞물리면서 북한정권이 안에서부터 서서히 허물어지는 요인이 됐다. 북한의 선전매체들이 김일성에 대해 『가랑잎을 띄우고 대하를 건너가는 만고의 영웅이며 그가 한번 노려보기만 하면 원쑤도 가을 풀같이 쓰러진다』고 보도할 정도로 북한은 이후 유사종교집단적 사회구조를 띠면서 경직적인 김일성 1인체제가 굳어지기 시작했다. 70년대 이후 김일성은 남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완전히 밀리면서 철저한 폐쇄체제로 주민들을 통제하면서 다른 한편 아들인 김정일에게로 후계세습작업을 가시화하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나름대로의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 72년 12월 비공개리에 당중앙위 전원회의를 거쳐 김정일을 자신의 후계자로 내부적으로 결정했다.그도 소련의 스탈린 등의 전례를 보고 자신의 사후에 대해 대비를 시작한 것이다.다시 말해 스탈린 사망후 대대적인 격하운동에 충격을 받은 김이 사후 안전판으로 세계사에 유례없는 부자간 권력승계라는 희화적 구도를 상정하게 된 것이다. 어쨌든 그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 이상으로 김정일에 대한 상징조작을 단계적으로 확대해나가면서 권력을 하나씩 아들에게 이양하기 시작했다.김정일에 대한 호칭을 「당중앙」에서부터 「경애하는 지도자 동지」,「향도의 별」 등으로 격상시켜나가면서 노동당 조직비서(73년),노동당 정치 상무위원회 위원(80년),인민군 최고사령관(91년),국방위원장(93년) 등 핵심요직을 하나하나 물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들에게 「살아있는 신」으로 우상화작업을 펴온 김일성도 끝내 죽음을 거부할 수 없는,한 평범한 인간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그 자신도 70년대 이후 각종 질병에 시달리면서 건강유지에 발버둥쳐온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김일성의 질환은 지난 73년께부터 확인된 뒷머리의 혹에서부터 고혈압·당뇨·난청·신경통·뇌일혈을 비롯해 그를 8일 새벽 마침내 죽음으로 몰고간 심근경색 등 10여가지에 이르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그는 분단 반세기만에 초유의 역사적 사건인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급사했다.그를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고간 원인이 그의 일생일대의 도박이라고 할 수 있는 정상회담에 대한 준비과정에서의 과로 때문인지,아니면 경제난과 대외적 고립에 따른 누적된 스트레스 탓인지는 아무도 모른다.죽은 자는 말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북한주민들에게 영생불사의 존재로 신격화된 그도 죽음 앞에 아무도 예외일 수가 없다는 철리를 그의 맹목적인 추종세력들에게 마침내 일께워 준것이다. 그의 공과는 후세의 사가가 엄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다.그가 역사의 장에 어떻게 기록되든 과대망상에 빠진 권력의 화신이었다는 사실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미 뚜렷이 각인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일성 연표◁ △1912.4.15 평남 대동군 고평면 남리 만경대출생(본명은 김성주) △1923 만주 장백현 팔도구 소학교 졸업 △1926 만주 길림 육문중학 중퇴,재학중 공청 가입 △1930 김성주를 김일성으로 개명 △1931 중국공산당 입당 △1932 중국공산당 조선인부대 지대장 △1935 김일성으로 재개명 △1936 조국광복회 조직 △1937.6 함남 보천보 습격 △1937.9 함남 증평리 습격 △1940말 소련으로 망명 △1945.8 소련군 소좌 △1945.9 소련점령군 비호하 입북 △1945.10 조선공산당 서북5도당책임자 및 열성자대회 참석 △1945.10 「김일성장군」환영 평양시군중대회에 등장 △1945.12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책임비서 △1946.2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 위원장 △1946.7 북조선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장단 의장 △1946.8 북조선노동당 부위원장 △1947.2 북조선 인민위원회 위원장 △1948.8 최고인민회의 제1기 대의원 △1948.9 수상(제1차 내각) △1949.3 경제문화 협정체결차 소련방문 △1949.6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0.6 군사위원회 위원장 △1950.7 인민군 최고사령관 △1953.2 원솔칭호 △1953.7 영웅칭호 △1956.4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1957.9 수상(제2차 내각) △1957.11 당 및 정부 대표단장으로 소련 10월혁명 40주년 기념식 참석 △1959.1 소련 제21차 공산당대회 참석 △1959.9 중국 정권창건 10주년 기념식 참석 △1961.7 우호협조 및 상호 원조조약 체결차 소련 중국 방문 △1961.9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및 정치위원회 위원장 △1961.10 소련공산당 제22차대회 참석 △1962.10 수상(제3차 내각) △1966.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총비서 △1967.1 소련방문 △1967.12 수상(제4차 내각) △1970.11 노동당 총비서 겸 정치위원 △1972.12국가주석 △1972.12중앙인민위원회 위원겸 국방위원회 위원장 △1975.4중국방문 △1975.5루마니아·알제리·모리타니·불가리아·유고 순방 △1977.11국방위원회 위원장 △1977.11인민군 최고사령관(원수) △1977.12 국가주석 △1980.5 유고 티토대통령 장례식 참석 및 루마니아 방문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1980.10 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총비서·군사위원장 △1982.4 국가주석 △1982.9 중국 방문 △1984.5 소련등 동구권 8개국(소련·폴란드·동독·체코·헝가리·유고·불가리아·루마니아)순방 △1986.10 소련 방문 △1986.12 국가주석 △1988.6 몽골 방문(중국·소련 경유) △1989.11 중국 방문 △1990.5 국가주석 △1991.10 중국 방문 △1992.4 대원솔 칭호 △1993.4 「전민족 대단결 10대강령」발표 △1994.4.8 사망
  • 예멘,대대적 사면 약속/군사행동 전면중지 선언/유엔에 서한

    ◎재산·인명피해 보상 천명 【유엔본부 로이터 연합】 예멘정부는 7일 남예멘에 대한 승리를 선언한 몇시간뒤 모든 군사행동을 중지하고 대대적인 사면을 실시하는 한편 전쟁 피해자를 보상하겠다고 유엔에 약속했다. 사이드 알 아타르 예멘 총리서리는 이날 압둘 카림 알 이리아니 기획장관을 통해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에게 전달한 서한에서 이같이 약속하면서 북예멘군은 전쟁으로 고초를 겪은 남예멘 수도 아덴의 시민에게 식량과 식수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예멘정부는 이날 서한에서 군사행동을 즉각적이고도 영구히 중단하며 광범위한 사면을 실시하는 한편 전쟁으로 재산을 잃은 국민과 전쟁 희생자 가족에게 모두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정치다원주의,의사표현과 언론 및 인권의 자유 등을 존중하고 통일 예멘에 관한 국민적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불완전 평화통일」의 허구성 입증/체제 이질성­문화적 갈등 해소못해/권력마찰 심화… 내전 “총칼로 해결”/남­북 예멘 무력재통일 안팎 2개월간의극심한 내전을 빚은 예멘사태는 7일 북예멘군이 남예멘의 수도 아덴을 완전점령함으로써 북예멘의 승리로 일단락됐다.이로써 지난 90년 회교정권인 북예멘과 사회주의 체제인 남예멘의 대화에 의한 평화통일을 이뤘던 예멘은 4년만에 북예멘의 무력흡수에 의한 재통일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군사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북예멘의 무력통일은 쌍방간에 완전한 합의가 결여된 평화통일이 얼마나 공허한 것인가를 다시한번 부각시켜 준다.통일후에도 각각의 군대를 보유할 정도로 불완전한 통일을 이뤘던 남·북예멘은 뿌리깊은 정치체제의 이질성과 경제·문화적 갈등,석유를 둘러싼 이권다툼과 남북지도자간의 권력마찰을 극복하지 못함으로써 내전에 휩싸일 수 밖에 없었다. 내전이 발발하자 아랍국들은 91년 걸프전당시 이라크를 지지했던 살레 예멘대통령에게 불만을 가졌지만 전황이 북예멘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말로만 즉각적인 휴전을 종용할 뿐 남예멘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꺼리는 신중한 자세를 보였다.이에 따라 살레대통령은 의도했던 대로군사력에서 열세에 놓여있는 남예멘을 무력으로 진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살레대통령이 앞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는 산적해 있다. 국민들은 내전종식에 대해 전쟁으로 인한 참화를 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내고 있지만 해외로 망명한 남예멘의 살렘 알베이드 부통령을 비롯한 남측지도부가 끝까지 투쟁할 뜻을 비추고 있어 잠정적인 국지전의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또 경제적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남예멘국민의 반북정서가 강해 살레대통령의 첫번째 과제는 전쟁으로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남북간 균형된 발전을 도모하는 일로 보인다. 이와함께 북예멘에 의한 재통일을 탐탁치 않게 보고 있는 주변국가들과의 관계는 향후 중동평화에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전통적으로 남북예멘의 대립을 교묘히 이용하는 정책을 펴왔던 사우디아라비아와 중동의 다른 군주제국가들은 북예멘에 의한 흡수통일로 강력한 민주체제를 갖춘 통일예멘이 등장하는 것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90년 대화와 합의에 의한 통일을 이루어 분단국가에 새로운 모범을 보였던 예멘이 「중동의 최빈국」이라는 오명을 떨쳐버리고 진정한 의미의 새로운 통일국가로 거듭나기까지는 험난한 앞길이 예견된다.
  • 주식거래·마권 농특세 부과/오늘부터 달라지는 것

    ◎개인도 해외증권 투자가능/집5채 소유자 임대사업자격/부실시공업체는 면허 취소/거주지 변동땐 전입신고만/주민등초본 타지서도 발급/CD­RP 최단만기 60일로 1일부터 농어촌특별세가 부과된다.개인의 해외증권 투자가 1억원한도에서 허용된다.1일부터 달라지는 것을 부처별로 알아본다. ▷내무부◁ ▲주민등록등·초본 발급=7월부터 전국행정선망이 가동돼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주민등록등·초본이 발급된다.서울이외의 지역에서 서울의 주민등록 등·초본발급을 받을 수 있다.다만 서울에서 서울이외지역의 등·초본의 발급은 내년 1월1일부터 가능하다.거주지 이외의 읍·면·동사무소에서 주민등록등·초본을 발급받을 때는 등·초본을 발급 1면마다 6백원,열람할때는 1회에 5백원의 수수료를 내야한다.그러나 거주지에서 등·초본을 발급받거나 열람할 때에는 지금처럼 각각 60원과 40원이다.이밖에 일반인도 1만원 수수료를 내면 행정전산망 자료를 이용할 수 있다. ▲전출·입신고=거주지 변경에 따른 전출·입신고가 전입신고만으로 가능케되고 전입신고를 할때 통·이장의 확인날인과 지역의료보험 가입자의 의료보험신고절차가 필요없게 됐다.또 여자도 세대주가 될 수 있게 된다. ▲주민등록증 발급=만17세가 되는 달로부터 1개월이내에 주민등록증을 발급받도록 되어 있던 신규 주민등록증 발급신청기간도 6개월로 늘어난다.주민등록증을 분실해 재발급받아야 하는 경우 지·파출소를 거쳐야만했던 번거로움이 없어진다.다만 주민등록증 재발급 수수료가 지금까지의 1천원보다 10배나 많은 1만원으로 오른다. ▷재무부◁ ▲농어촌특별세 시행=10년간 한시적으로 시행.과세대상 및 세율은 소득세·법인세·관세·취득세·등록세 감면액의 20%,각종 저축관련 감면세액의 10%,증권거래금액의 0·15%,법인세 과세표준에서 5억원을 초과하는 금액의 2%,취득세액의 10%,마권세액의 20% 등. ▲3단계 금리자유화 부분시행(7·18)=양도성 예금증서(CD),거액 환매체(RP),거액 기업어음(CP) 등 최단만기 91일에서 60일로 단축.거액 CP는 최장만기 1백80일에서 2백70일로 확대.은행의 표지어음 발행 및 매출허용. ▲개인및 법인의 해외증권 직접투자=개인 1억원,일반법인 3억원 한도에서 국내 증권사를 통해 외국 유수의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증권을 살 수 있다. ▲외국인투자 활성화=공업용 모래채취업과 항공터미널 시설운영업,화약·불꽃제품 제조업 등 3개 업종에 대한 외국인 투자가 완전 또는 부분개방. ▲중소기업 전환사채에 대한 외국인 투자허용=상장 중소기업이 발행한 무보증상장 전환사채에 외국인 투자를 종목별 상장금액의 30%,1인당 5%까지 허용. ▷농림수산부◁ ▲농지전용 신청서류 감축=7가지에서 4가지로 감축. ▲축산업 등록기준 변경=종돈업은 20두에서 50두이상,양돈업은 1백두에서 2백두이상,산란계 양계업은 3만수에서 5만수이상,육계는 1만수에서 5만수이상. ▲한우 종축수출=한우,한우정액,한우수정란을 수출할 때 농림수산부장관의 추천필요. ▲축산물 분류변경=가축부산물(뼈·뿔·내장),로열제리,화분도 축산물에 포함. ▷상공자원부◁ ▲공업배치 및 공장설립 규제완화=이전 촉진지역내 공업단지의 중소기업 공장신설 허용.기준 공장면적률 5∼45%수준으로 조정.특정지역에 공장설립이 가능한 지 여부를 알아볼 수 있는 입지기준확인서 발급제 도입.도시형 업종의 범위를 1백91개에서 3백38개로 확대. ▲고압가스 허가대상 완화=사고 위험도 적은 소규모 냉동제조업은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전환. ▷건설부◁ ▲임대사업자 등록자격 신설=임대목적으로 5가구이상의 주택을 건설 또는 매입해 소유권보전등기 및 소유권 이전등기 한 사람. ▲주상복합건물 사업계획 승인대상=상업지역 및 준주거지역 안의 상업용 면적 50% 이상,2백가구 미만은 제외해 건설을 활성화. ▲임대의무기간=국가 및 자방자치단체 지원이나 국민주택기금을 지원받은 영구임대 공공건설 임대주택(50년),국민주택기금 지원 무주택근로자 공공건설 임대주택(10년),공공건설 임대주택 및 민간건설 임대주택(5년),매입임대주택(3년). ▲부실시공 및 불법하도급업체 제재 강화=면허취소나 영업정지. ▷국세청◁ ▲세금계산서 교부·제출제도 변경=부가가치세 과세대상인 물품공급자의 경우 세금계산서 종전 4매 발행에서 3매로 축소. ▲부가가치세 영세율 적용절차 간소화=수출신고서와 선박회사 대금청구서도 영세율 첨부서류로 인정.
  • 「오자와전략」 와해… 제2정계개편 가속/일 새연정 탄생배경과 전망

    ◎“어떻게든 정권잡고 보자” 자민 집념/자민분열·외교정책 달라 단명점쳐 일본사회당의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 위원장이 새 총리로 선출됐다.사회당 출신 총리의 등장은 일본정치의 흐름이 일단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호헌파 중심으로 바뀌게 됐음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다. 사회당 총리는 지난 47년 「가타야마 내각」 이후 전후 일본정치사에서 두번째이며 이번 총리선출을 계기로 자민당이 사실상 분열상태에 빠지는등 일본정국은 제2정계 개편으로 움직이고 있다. 무라야마 총리의 선출은 그러나 단순히 일본정치의 「사회당 시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무라야마정권은 전후 일본정치를 지배해왔던 자민당과 사회당의 연립정권이다.자민당 지도부는 총리후보로 고노 요헤이(하야양평) 총재 대신 무라야마 위원장을 옹립하기로 결정했으며 자민당의 지지를 배경으로 「무라야마 총리」가 탄생했다. 자민당 지도부가 무라야마 위원장을 지지하기로 결정한 것은 어떻게 해서든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낭) 신생당대표간사가 지배하는 연립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할수 있다. 오자와는 자민당 집행부 결정에 대항,가이후 도시키 전총리를 총리후보로 내세웠다. 가이후 전총리는 그러나 연립여당과 자민당 개혁파등의 지지를 받았으나 사회당내 중도·우파들의 지지까지는 얻지못해 패배했다.가이후 전총리의 패배는 그동안 일본정치의 막후 실력자로 군림하며 권력집중형 보수양당제로의 정계개편을 추진해왔던 오자와의 이른바 「오자와 전략」의 패배라 할수 있다. 오자와는 군사면을 포함,적극적인 국제공헌을 할수 있는 이른바 「보통국가」의 실현을 위한 정치구조를 지향하고 있다.그러나 「오자와 전략」이 일단 패배함으로써 일본정치는 사회당과 자민당의 호헌파,신당사키가케등을 중심으로한 비군사적 국제공헌을 지향하는 「비둘기파」세력이 정권전면에 나서게 됐다. 그러나 자민당과 사회당은 안보·외교등 기본적인 국가정책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정권운영에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기도 한다.자민당은 특히 가이후 전총리를 지지한 개혁파들을 중심으로 탈당할 세력이 있을 것으로 보여 재분열 될 가능성이 있다.오자와는 이러한 과정에서 보수세력의 결집을 적극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무라야마 정권의 등장으로 일본의 외교정책이 어떻게 변할지 주목된다.사회당내에는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세력도 있지만 미·일,한·일관계등 기본적인 외교정책에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다만 북한과의 관계가 보다 좋아질 가능성은 있다.◎일총리 올른 무라야마 누구/팔자 흰눈썹 인상적인 화합형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신임 일본총리는 일본 사회당 출신으로는 지난 47년 가타야마(편산)총리 이후 47년만에 처음으로 총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정치인. 지난 24년 3월 3일 규슈의 오이타(대분)현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고학으로 메이지대학에서 경제학과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오이타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전에는 향리에서 노조지도자로 일해왔다. 그는 지난 72년 중의원의원에 당선된 뒤 7선을 거듭해 왔으며 연금과 복지문제등을 중심으로 의정활동을 펴왔다. 그는오이타시 의원으로 출마할 때도 주위의 간곡한 권고로 출마했으며 지난해 국회대책위원장을 끝으로 정계를 은퇴하려 했으나 좌·우파의 추대로 야마하나위원장을 이어 사회당 위원장에 올랐다.그는 경력에서 보듯이 서민적인 풍모를 풍기는 대중정치인으로 화합에는 남다른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같은 성품이 위상이 약화되고 있는 사회당의 지도자로서 난세를 맞고 있는 일본 정국에서 총리에까지 오르도록 한 비결. 사회당내 온건좌파 그룹의 지도자인 그는 우파에 비해 다소 북한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부인 요시이에여사와의 사이에 1녀를 두고 있다.
  • 농지전용 허가·신고/절차대폭 간소화

    농림수산부는 25일부터 농지전용 허가 및 신고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시장이나 군수에게 전용 허가를 신청할 때 내는 서류를 7종에서 사업계획 개요서,지적도 등 4종으로 줄였다.읍·면·동장에게 전용 신고를 할 때 드는 신청서는 5종에서 4종으로,전용한 농지의 용도변경 승인을 신청하는 서류는 4종에서 3종으로 줄였다.
  • 카터,오늘 김 대통령 면담/어제 내한… 내일 판문점통해 방북

    북한핵문제의 해결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남북한을 동시방문하는 지미 카터 전미국대통령내외가 13일 하오3시50분 미국 델타항공편으로 내한했다. 카터전대통령은 서울에서 2박한 뒤 15일 상오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들어가 평양에서 김일성북한주석등을 만나고 18일 하오 서울로 돌아올 예정이다. 이에 앞서 카터전대통령은 14일 저녁 청와대에서 레이니주한미국대사가 배석한 가운데 김영삼대통령과 만찬을 하며 북한핵문제와 한반도정세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카터 전대통령의 이번 남북한 동시방문은 개인자격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북한 방문을 전후해 두차례 김대통령을 면담하는등 남북정상들을 차례로 만나 핵문제등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그의 남북한 사이의 메시지전달등 중재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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