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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어디가’ 본 윤후 반응 “왜 저렇게 찌질하게 울어”

    ‘아빠어디가’ 본 윤후 반응 “왜 저렇게 찌질하게 울어”

    ‘마리텔 V2’ 윤후가 ‘아빠어디가’ 속 자신의 모습에 단호한 평가를 했다. 지난 16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마이리틀텔레비전 V2’(이하 ‘마리텔 V2’)에서는 윤후가 도티, 지상렬과 함께 과거 자신이 출연했던 예능 ‘아빠어디가’를 보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영상에는 윤후가 기분이 좋지 않은 민국이에게 다가가 기분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모습, 지아의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모습, 엄마가 보고 싶은 마음에 전화를 하던 중 눈물을 보이는 모습 등이 담겼다. 영상을 보던 도티는 “이거다 이거”라며 반가워했다. 하지만 윤후는 “이거 언제 끝나요?”, “쟤 왜 저렇게 찌질하게 우냐”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사진=MBC ‘마리텔 V2’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벨린저·트라웃 40홈런 쾅!쾅! 뜨거워지는 홈런 경쟁

    벨린저·트라웃 40홈런 쾅!쾅! 뜨거워지는 홈런 경쟁

    미국 메이저리그 양대 리그 최우수선수(MVP) 후보 코디 벨린저(24·LA 다저스)와 마이크 트라웃(28·LA 에인절스)이 16일(한국시간) 나란히 시즌 40호 홈런포를 가동했다. 시작은 벨린저였다. 류현진과 내셔널리그 MVP 후보로 오르내리는 벨린저는 이날 미국 마이애미주 말린스 파크에서 열린 마이애미 말린스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출전해 4-13으로 뒤지고 있던 7회 상대 투수 오스틴 브라이스(27)에게 추격의 3점 홈런을 쏘아올렸다. 이 홈런으로 다저스는 지난 12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부터 4경기 연속 4홈런 이상을 기록하며 이 부문의 기록을 세웠다. 다저스는 5회와 6회 투수진이 11점을 내주며 벌어진 점수차를 좁히지 못하고 결국 7-13으로 패했다. 선발 등판한 워커 뷸러(25)는 4이닝동안 5피안타 3볼넷 5자책점으로 무너지며 패전투수가 됐다.벨린저가 선두로 치고나간 것도 잠시 아메리칸리그 MVP 후보 트라웃이 40호 홈런으로 따라 붙으며 공동 1위에 올랐다. 트라웃은 16일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 2번타자 중견수로 선발 출격해 3회 화이트삭스 선발 레이날도 로페즈(25)의 4구째 바깥쪽 낮은 체인지업을 걷어 올려 중월 솔로포로 연결했다. 2015년 41홈런을 기록한 이후 4년 만의 40홈런 고지에 오르는 순간이었다. 에인절스는 9회 4득점한 화이트삭스의 맹추격을 겨우 따돌리고 이날 경기에서 8-7로 승리했다. 올해 메이저리그는 벨린저와 트라웃을 비롯해 크리스티안 옐리치(28·밀워키 브루어스)와 피트 알론소(25·뉴욕 메츠)가 각각 39홈런을 기록하며 ‘4대천왕 홈런더비’가 벌어지는 상황이다. 전날까지 4대 천왕의 ‘꼴찌’였던 알론소 역시 이날 미국 조지아주 컴벌랜드의 선트러스트파크에서 열린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서 39호포를 쏘아 올리며 옐리치를 따라잡았다. 알론소는 이 홈런으로 2017년 벨린저가 기록한 내셔널리그 신인 최다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이들의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해 네 타자가 한꺼번에 ‘50홈런 클럽’에 가입할지도 뜨거운 관심사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단일 시즌 50홈런 이상 기록한 선수는 모두 29명으로 4명이 한 시즌에 동시에 50홈런 고지를 밟은 건 1998년과 2001년 두해 뿐이다. 그러나 당시 메이저리그는 ‘약물시대’로 홈런의 의미가 퇴색한 시기였다. 2001년 이후로는 3명 이상 50홈런을 기록한 시즌이 없었다. 쭉쭉 날아가는 공인구에 투수들은 불만이 많지만 역대급 홈런 더비에 팬들의 관심이 뜨거워지고 있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류, 예비 FA 3위… 8개 구단 눈독

    류, 예비 FA 3위… 8개 구단 눈독

    올해 메이저리그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갖게 되는 류현진(32·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예비 FA 랭킹 3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류현진 영입 경쟁에 나설 구단이 8개나 된다는 전망도 나왔다. 미국 스포츠 전문매체 ‘디 애슬레틱’은 15일(한국시간) 올 시즌 후 FA가 되는 선수들의 예상 순위에서 우완투수 게릿 콜(29·휴스턴 애스트로스)을 1위로 평가했다. 2위는 내야수 앤서니 렌던(29·워싱턴 내셔널스), 류현진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류현진은 올 시즌 평균자책점과 조정 평균자책점, 이닝당 출루 허용률, 9이닝당 볼넷 등의 부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면서 “류현진은 90마일에서 92마일 사이의 직구와 커터, 커브, 체인지업 등 네 가지 구종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특별한 투수”라고 평가했다. 이 매체는 다저스, 밀워키 브루어스, 필라델피아 필리스(이상 내셔널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미네소타 트윈스, LA 에인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이상 아메리칸리그) 등이 류현진 영입에 나설 것으로 봤다. 류현진은 오는 18일(한국시간) 오전 8시 미국 조지아주 컴벌랜드의 선트러스트 파크에서 열리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에 선발 등판한다. 류현진은 현재 12승 2패, 평균자책점 1.45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류재민 기자 phoem@seoul.co.kr
  •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정세 오판과 사욕이 빚은 비극. ‘자유시 참변’의 진실

    ‘자유시 참변’ 또는 ‘자유시 사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들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무장충돌한 사건을 말한다. 이 결과로 수십명에서 수백명까지의 한인들이 사망했으며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이 사건이 러시아에서 발생하고 한 쪽이 주로 러시아인들로 구성된 부대이었다는 이유로 공산당이나 러시아가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의 문서보관소가 개방됨에 따라 러시아 연구자들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은 러시아 자료를 사용하여 자유시사변의 원인과 과정에 대한 우리의 지식을 넓혔다. 1990년대 이후 나온 연구에 따르면 자유시사변의 주요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 투쟁 (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해파 공산당 간의 갈등)과 정치 조직 간의 소통 문제 등이었다. 이에 따라 오늘날 학계에서 “독립군을 공산당이 죽였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잔재는 야인시대 같은 예술작품에도 나오고, 누리꾼들이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애용하는 인터넷 백과사전에도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자유시 참변은 위키백과에는 “러시아 적색군이 대한독립군단 소속 독립군들을 포위, 사살한 사건”으로 규정되었고 나무위키에는 “독립군을 포함한 한인 무장 병력과 소련 적군이 교전을 벌인 사건”으로 나오며 심지어 신뢰성이 비교적 높은 한민족문화백과사전에도 비슷한 서술이 있다. 하지만 1921년에는 소련이 아직 설립되지 않았고 극동지역에는 붉은군대가 없었다. 하지만 자유시 참변은 무엇보다도 권력 욕심과 정세 오판의 위험성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다.제1차 세계대전 도중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발생하였으며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를 비롯한 좌익세력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되었다. 1918년, 소비에트 정권을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백위파) 간의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커다란 피해를 가져온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의 결정을 막기 위해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서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이를 구실로 내세워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함으로써 러시아에 쳐들어왔다. 일제의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은 빨치산부대를 결성하여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한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군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쟁으로 경제가 폐허가 된 상황에서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려는 소비에트 정부는 극동지역에서 소비에트 정권을 수립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1920년 4월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당 등과 함께 극동공화국이라는 완충국가를 설립하기로 하였다. 극동공화국은 이에 극동에 있던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그리고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간 전(前) 백위파 부대들으로 구성된 혼합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러한 전략 때문에 일본은 극동지역의 군사 점령을 더 이상 정당화할 수 없게 되었으며 주둔군을 유지하는 것도 경제적 손실로 이어졌다.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봉오동 전투 이후 일제가 실시한 대대적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가기 시작하였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중국과 극동지역에서 무장투쟁 부대 대표 회의를 열어 단일 지휘체계의 구축, 군사학교 설립 등 문제를 논의할 것을 결정했다. 이와 동시에 1921년 1월 15일 코민테른은 극동지역대표부를 설치하고 보리스 슈먀츠키를 대표로 임명하였다. 슈먀츠키는 한인부대를 가능한 한 빨리 극동공화국으로부터 벗어나서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들을 통합하기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깔란드라쉬빌리를 파견하였다. 깔란드라쉬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는 것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먀추키와 이르쿠츠크파 빨치산부대장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국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고 했다. 하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인 상태에서 조선을 향해 진격하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깔라드라쉬빌리와 오하묵 등 사람들의 비타협적인 태도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에트러시아 외무인민위원장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만 지금은 (일제에)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하였다. 6월 10일, 볼셰비키의 지도자인 레닌은 이 서한을 보고 당분간 공공연한 행위를 하지 말고 비밀행동에 초점을 맞추라고 하였다. 같은 날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다시 말하자면, 볼셰비키들은 한인빨치산들을 지원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일제가 극동지역에서 철수한 후에야 군사행동을 계획해도 좋다고 주장한 것이며 사실상 깔란드라쉬빌리의 모험을 중단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이 결정은 깔란드라쉬빌리 행동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며 참변은 불가피해졌다. 통솔권을 독점하려는 깔란다리쉬빌리는 최고려 등 사람들의 지도를 거부한 한인빨치산들로 구성된 사할린부대와 몇 차례의 타협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에 깔란다리쉬빌리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게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하였다. 인민혁명군의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고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서 ‘미움받는 사람들’을 축출하면 항복하겠다고 대답했다. 양측은 7시간동안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깔란드라쉬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그러나 30분만인 오후 3시쯤 전선은 평정되었다. 3시 50분 반항하는 병사들이 진압됐고 4시 사랄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하기 시작했다. 오후 8시 17분 전투는 거의 정리되었다. 자유시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되지만, 사상자에 대한 신뢰성이 높은 자료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글 사진: 바실리 V 레베데프(고려대 사학과 석사)
  • 비잔티움 꽃피운 문명의 용광로… 500년간 멈추지 않는 오스만의 심장

    비잔티움 꽃피운 문명의 용광로… 500년간 멈추지 않는 오스만의 심장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오르한 파무크는 자신의 책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에서 이스탄불을 이렇게 말했다. 파무크는 ‘내 이름은 빨강’, ‘순수박물관’, ‘새로운 인생’ 등을 쓴 터키 작가다. 스웨덴 한림원은 그를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로 지목하며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파무크는 터키 작가라기보다 이스탄불 작가라는 게 맞다. 스스로도 “나는 이스탄불 소설가”라고 말한다.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그는 현재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장편소설 중 ‘눈’(雪)을 제외한 모든 작품을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썼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스탄불을 이렇게 말한다.“내 어린 시절의 이스탄불이 내게 불러일으킨 강렬한 비애의 감정의 원천을 인지하기 위해서는 역사나 오스만제국의 몰락이 가져온 결과뿐만 아니라 이 역사가 도시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에게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보아야 할 것이다.”그의 말대로 이스탄불은 오스만제국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도시다. 아시아와 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그 영향력을 뻗었던 나라 오스만튀르크. 지금 그 땅에는 그 문명과 기독교, 이슬람교가 오랜 시간 뒤엉킨 흔적이 남아 있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반드시 거쳐야 했던 도시였던 이스탄불은 동서양 문물 교류의 중심점이었다. 고대 히타이트부터 시작해 프리지아, 우라티아, 리디아와 로마문명, 기독교와 이슬람 문명이 녹아든 곳이 바로 터키다. 그래서일까 영국의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터키를 두고 ‘인류 문명의 살아 있는 옥외박물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이스탄불의 시작은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의 통치자 비자스는 오랜 기도 끝에 ‘눈먼 땅에 새 도시를 건설하라’는 델피 신전의 신탁을 받는다. 이 의미를 깨닫기 위해 고심하던 비자스는 보스포루스 해안 맞은편의 언덕과 마주친 순간 무릎을 치게 된다. 보스포루스해협과 마르마라해, 에게해, 이 세 바다가 만나는 천혜의 요새에 세상의 절경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누구도 미처 보지 못했던 언덕 위에 비자스의 도시 비잔티움이 태어나는데, 이것이 바로 이스탄불의 시작이다. 하지만 도시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서기 330년에 로마의 콘스탄틴 대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이곳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노플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200년에는 십자군의 침략을 받고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초토화된다. 그러다가 1453년에 비잔틴 제국이 무너진 후 술탄 메흐메트 2세에 의해 오스만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스탄불은 6세기에 이미 인구가 50만명, 9세기에는 100만명이 넘었던 거대도시였다. 지금의 인구도 1200만명에 달한다. 그리고 해마다 평균 20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든다. 이런 이스탄불을 대표하는 건축물이 바로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세계 4대 교회 건축물 중 하나다. 이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4세기인데,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란 이름으로 동로마(비잔틴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구가하던 시기였다. 인부 1만명을 동원해 5년에 걸쳐 지었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되기 전까지 약 900년 동안 동방정교회의 총본산이었으며, 1593년 성베드로 대성당이 들어서기 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성당이 건립되었을 당시 이름은 하기아소피아인데, 터키 사람들은 아야소피아라고 부른다.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 현재 이스탄불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은 532년 반란으로 파괴된 것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다시 지은 것이다.아야소피아 성당은 고난이 많은 건축물로도 유명하다. 십자군 전쟁 때는 십자군들의 약탈 대상이 됐고,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는 이 성당에서 밀려오는 튀르크 군을 바라보며 화염 속에 몸을 던져 자결하기도 했다. 메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을 점령하고도 성당을 파괴하지는 않았다. 다만 1453년부터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면서 종, 제단 등은 제거됐고 기독교 풍의 모자이크는 회반죽으로 덮었다. 이후 터키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케말 파샤(아타튀르크)가 정교 분리 원칙에 따라 이곳을 박물관으로 바꾸면서 아야소피아는 고난의 시대를 마감했다. 성당 내부에는 코란의 경전을 새긴 금문자와 최근에 복원한 성화가 있는데, 그것들이 파란만장했던 이스탄불의 역사를 웅변할 뿐이다. 까다로운 보안검색을 거쳐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장엄한 분위기와 웅장한 규모에 압도당한다. 드높은 천장의 화려한 모자이크는 보는 이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중앙 돔의 높이가 자그마치 55m에 지름이 31m다. 돔에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성화가 그려져 있고 양옆에는 커다란 원반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금색 문자가 나란히 걸려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가 혼재하는 것이다. 2층 회랑에서는 곳곳에 자리한 모자이크 성화를 눈여겨보자. 비록 많이 훼손됐지만 정교함과 화려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개장식 때 황제가 내부의 화려함을 보고는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라고 소리쳤을 정도였다.아야소피아와 마주한 술탄 아흐메트 모스크는 오스만 제국의 14대 술탄 아흐메트 1세가 17세기에 세운 이슬람 사원이다. 직경 27.5m의 커다란 중앙 돔과 이 돔을 받치고 있는 작은 돔으로 지붕이 이뤄져 있다. 웅장한 외관에 걸맞게 첨탑 미너렛이 여섯 개 서 있다. 당시 술탄이 모스크의 미너렛을 황금으로 짓도록 했는데 자금이 부족하자 건축가가 황금(알튼·altin)과 숫자 6(알트·alti)의 발음이 비슷한 것에 착안해 황금 대신 미너렛을 여섯 개 세웠다고 한다. 내부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2만 개 이상의 파란색 타일과 260개 파란 유리창이 푸른 빛을 띠어 성스러운 분위기를 풍긴다. 이로 인해 블루 모스크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관광객들이 빼놓지 않고 들르는 곳이 그랜드 바자르다. 바자르는 중앙아시아의 도시마다 있는 시장을 뜻하는데 이스탄불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바자르 가운데 가장 크고 화려하다. 역사는 무려 500년에 달한다. 현재 무려 5000개의 상점들이 몰려 있는데 보석과 장신구에서 화려한 터키의 그릇, 조명, 가죽류, 입맛을 유혹하는 터키식 젤리, 향신료, 액세서리 가게 등이 들어서 있다. 그랜드 바자르의 모든 입구에는 번호가 쓰여 있는데 내가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가고 싶다면 꼭 이 번호를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워낙 큰 시장이다 보니 어느 입구로 나오느냐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번호를 모르면 길을 헤매기 십상이다. ‘지중해기행’을 쓴 동화작가 한스 안데르센은 “콘스탄티노플에 가면 꼭 그랜드 바자르를 보고 와야 한다. 이 도시의 심장부가 거기 있다”고까지 했다. 파무크의 이스탄불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읽어볼 만한 책은 ‘순수박물관’이다. 2008년작으로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 발표한 소설이다. 한 남자가 단 44일 동안 사랑을 나눈 한 여자를 평생 동안 사랑하면서, 그녀와 관련된 추억을 간직한 물건들을 모으고, 결국 그 물건들을 전시할 박물관을 만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쓴다는 내용이다.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내 인생의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는 것을 이해했더라면, 절대로, 그 행복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깊은 평온으로 내 온몸을 감쌌던 그 멋진 황금의 순간은 어쩌면 몇 초 정도 지속되었지만, 그 행복이 몇 시간처럼, 몇 년처럼 느껴졌다.” 시처럼 아름다운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내내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아주아주 사랑하면, 그를 위해 우리의 가장 귀중한 것을 내주어도 그로부터 해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 희생은 바로 이런 거야.” 그런데 더 재미있는 건 파무크가 진짜로 이 순수박물관을 만들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파무크는 작품을 쓰기 전에 이미 ‘순수박물관’의 배경이 될 공간을 구입했으며, 자신이 직접 기획과 제작에 참여했다. 박물관에는 소설의 각 장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이 하나의 상자 안에 들어 있는 형태로 전시되어 있다. 작가에게 이스탄불은 애증이 교차하는 도시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이스탄불을 이렇게 한탄하곤 했다. “몰락하여 붕괴된 제국의 잔재, 잿더미 아래서 무기력, 빈곤 그리고 우울과 함께 퇴색되며 낡아가는 이스탄불에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곤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이스탄불을 사랑하는가 보다. 자주 이렇게 말하곤 하니까. “삶이 그렇게 최악일 수는 없어. 여전히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갈 수 있으니까.” [여행수첩] 터키항공은 인천~이스탄불 직항편을 주 11회 왕복 운항한다. 비행시간은 11시간 30분. 시차는 한국보다 6시간 늦다. 통화는 리라(YTL)를 사용한다. 1리라에 약 240원이다. 물가는 저렴한 편이다. 터키 사람들이 즐겨 먹는 빵 시미트가 1.5리라(약 400원) 정도다. 터키 음식은 프랑스, 중국과 함께 세계 3대 요리로 불린다. ‘케밥’은 ‘구이’라는 뜻으로 물이 풍부하지 않은 유목생활에서 비롯된 음식이다. 케밥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긴 쇠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구워 먹는 요리를 떠올리는데, 사실 육류를 불에 구워내는 것은 모두 케밥이다. 케밥은 지역, 굽는 방식, 그리고 육류에 따라 수없이 분화돼 오늘날 터키 케밥의 종류는 200~30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아이란은 터키의 국민 음료다. 요구르트에 물을 섞어 희석한, 묽은 요구르트라고 보면 된다. 우리가 흔히 터키시 딜라이트라고 부르는 로쿰은,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 순간 그 달콤함으로 여행의 모든 피로와 근심을 잊게 해 준다. 이스탄불 히포드롬 광장 북쪽에 자리한 ‘요리사 셀림의 쾨프테집’은 터키식 떡갈비 ‘쾨프테’로 유명하다. 터키항공은 환승객을 위해 ‘투어 이스탄불’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환승을 위해 6~24시간 머무르는 레이오버 승객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무료 관광프로그램이다. 현지 가이드와 버스가 제공되고 아침·점심 식사가 포함돼 있다.
  • 오늘 시작된 무슬림 하지 순례에 보이콧 목소리, 왜 나올까

    오늘 시작된 무슬림 하지 순례에 보이콧 목소리, 왜 나올까

    무슬림 최대 종교 행사 가운데 하나인 하지 순례(메카 성지순례)가 9일(현지시간) 시작된 가운데 일부 무슬림은 하지 순례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리비아의 유명 수니파 성직자인 그랜드 사디크 알 가리아니는 하지를 보이콧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하지를 통한 사우디 경제를 부흥시키는 것은 예멘을 공격하는 무기 구매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간접적으로는 시리아 리비아, 튀니지아, 수단 그리고 알제리아를 공격하는 것이고 주장했다. 가리아니는 “두번째 하지를 수행하는 사람은 사우디 통치자를 도와서 우리의 동료인 무슬림에 대항하는 죄를 저지르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 보이콧은 그가 처음 주창한 이슬람 성직자는 아니다. 사우디의 수니파 성직자인 유스프 알 카라다위 역시 지난해 8월 “알라는 하지에 돈을 쓰는 것보다 배고픈 무슬림을 먹이고, 병든 이를 치료하며, 집 없는 사람에게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 더 좋게 본다”고 주장했다. 튀니지의 이맘연합회의 선임 관리인 파델 아쇼르는 “가난한 튀니지아 사람들을 돕는데 쓰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이슬람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의 영향력은 정치적·군사적 능력에 연결된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 유대도 있다. 이슬람 성지인 메카와 메디나가 있고, 가장 신성한 신전인 카바 신전과 예언자 마호메트의 무덤이 있어 사우디의 영향력은 이웃 아랍국가를 넘어 전세계 무슬림들에게도 미친다. 연간 하지 기간에 200만 이상의 무슬림이 메카에 몰려들며, 연간으로 따지면 이보다 훨씬 많다. 사우디 성지순례부는 올해 성지순례에 약 100개국에서 온 무슬림 184만명을 포함해 모두 250만여명이 참여한다고 집계했다. 이는 지난해보다 약 20만명 많은 수다. 세계 각국에서 온 부유한 무슬림들이 고급호텔에서 며칠간 체류한다. 이들이 연간 사우디에 뿌리는 돈은 120억달로로 추정된다. 하지와 관련한 일자리가 99만 3000개에 이른다. 하지는 이슬람 교도이면 평생에 한 번에 해야 하는 의식이다. 사우디 당국은 하지의 중요성을 감안해 단교한 카타르, 적대적인 이란의 무슬림에게도 비자를 발급하고 있다. 올해 하지는 14일 저녁에 끝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글로벌 In&Out] 공산당이 독립군 죽였다던 ‘자유시 참변’의 내막/바실리 V 레베데프 고려대 사학과 석사

    ‘자유시 참변’은 1921년 6월 28일 한인부대와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이 자유시에서 한 무장충돌이다. 이 결과 수십~수백명의 한인이 사망해 독립운동이 큰 타격을 입었다. 특히 냉전시기에는 소련 공산당이 한인을 속여 독립군을 죽였다는 주장이 강했다. 하지만 1990년대에 러시아 문서보관소가 개방돼 임경석, 윤상원 등 한국근대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자유시 참변의 원인은 민족해방운동 내부의 권력투쟁(특히 이르쿠츠크파와 상하이파 간의 갈등)과 정치조직 간의 소통 문제 때문이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10월 혁명이 일어나 러시아공산당(볼셰비키)에 의해 소비에트 정권이 수립됐다. 1918년 러시아 내전이 벌어졌다. 러시아에 큰 피해를 준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을 끝내려는 볼셰비키들을 막으려던 연합국은 군대를 파견해 러시아 내전에 개입했다. 일본은 1918년 4월 5일 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병했다. 일제 시베리아 출병의 영향을 받은 러시아 지역 한인들이 빨치산부대를 결성해 볼셰비키의 붉은군대와 함께 항일투쟁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최신 무기로 무장하며 전투력이 뛰어난 일본부대들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비에트 정부는 1920년 반(反)볼셰비키 일부 세력과 손잡고 극동공화국을 설립하고 붉은군대의 부대들과 빨치산 부대, 극동공화국 정부 편으로 넘어온 전(前) 백위파 부대들로 혼합 구성된 인민혁명군을 창설했다. 극동공화국은 극동지역의 대부분을 점령한 일본군의 철수에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였고 인민혁명군은 일제가 지원하는 백위파 군대와 싸우는 데 집중했다. 이와 동시에 무장부대 통합운동이 전개됐다. 봉오동전투 이후 대대적인 토벌작전 등으로 한인부대들이 간도에서 러시아령으로 넘어갔다. 러시아공산당 극동국 한인부는 민족해방운동을 강화하기 위해 1921년에 한인부대 대표회의를 열어 통합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동시에 코민테른은 극동지역 대표부를 설치하고 슈마츠키를 대표로 임명했다. 슈마츠키는 한인부대를 빨리 조선 쪽으로 이동할 계획을 세웠으며 무장부대 통합을 위해 창설된 고려혁명군정의회의 위원장으로 조지아 출신인 칼란드라시빌리를 파견했다. 칼란드라시빌리는 극좌 무정부주의자로서 전략적으로 사고하기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이었다. 극동의 나폴레옹을 꿈꾸던 그는 슈마츠키와 오하묵, 최고려 등과 함께 한국 내에서 무장투쟁을 공공연하게 벌이려 했지만, 무기도 병력도 열세였다. 또 통솔권을 독점하려던 칼란드라시빌리는 자유시에 집결한 빨치산 부대들의 항의를 불러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 외무인민위원 치체린은 1921년 6월 9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한인 빨치산들을 비밀리에 반드시 지원해야 하고, 지금은 공공연한 적대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6월 10일 러시아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한인부대들은 러시아 영토에 머물면서 적극 행동에 나서기 위해 적절한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는 치체린의 제안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 결정은 칼란드라시빌리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는 6월 28일 극동공화국 인민혁명군 소속 자유시 수비대에 사할린부대를 무장해제시킬 것을 요청했다. 최후통첩을 받은 사할린부대 책임자들은 무장해제하지 않았다. 양측은 7시간 동안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오후 2시 20분 인민혁명군 병력 1000명과 칼란드라시빌리 사령부에 속한 한인 병사 300명은 더는 기다리지 않고 공격을 시작했다. 오후 4시 사할린부대의 한인들은 백기를 들고 항복했다. 자유시 사변의 사망자는 최소 36명에서 최대 400명으로 추측된다. 이 자유시 참변으로 빨치산 부대 통합운동은 완전히 실패했다.
  • “방해하지마!”…친누나 살해한 美 10대 소년에 ‘무기징역’

    “방해하지마!”…친누나 살해한 美 10대 소년에 ‘무기징역’

    미국의 10대 소년이 자신의 게임을 방해한 누나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발행되는 유력 일간지인 애틀랜타저널컨스티튜션의 3일 보도에 따르면 조지아주 중부 메이컨에 살던 18세(사건 당시 16세) 소년 케이본 왓킨스는 지난해 2월, 자신의 집에서 당시 20세였던 친누나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사건은 사소한 일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케이본은 스마트폰 게임으로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고 있었고, 이후 누구의 방해도 없이 게임을 즐기기 위해 멋대로 집에서 사용하는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바꿨다. 이후에도 케이본과 어머니의 말다툼을 끝나지 않았고, 이를 들은 케이본의 누나가 어머니를 돕기 위해 2층에서 내려왔다. 누나와 남동생의 말다툼은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급기야 어머니는 남매를 말리지 못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그 사이 케이본은 몸싸움 도중 누나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고, 경찰과 구급차가 도착한 후에도 케이본의 도가 지나친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누나는 현장에서 정신을 잃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과 구급대원이 두 사람을 떼어놓은 뒤 누나를 인근 병원으로 후송했지만, 다음날 밤, 케이본의 누나는 사망했다. 현지 검사는 “비록 가해자가 누나를 죽일 의도가 없었다 할지라도 고의적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는 행동으로 죽음에 이끈 것이 확실하다”고 주장했고, 현지 시간으로 지난 2일, 재판부는 아직 10대인 케이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메이컨 지방검사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폭력적인 행동이 한 가족의 말할 수 없는 비극을 만들었다”면서 “나는 재판부의 이번 결정이 남아있는 이들의 삶을 치료할 수 있는 문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유재석, 딸 얘기에 발끈한 이유?

    유재석, 딸 얘기에 발끈한 이유?

    방송인 유재석이 둘째 딸을 언급했다. 유재석은 4일 오후 방송한 SBS 예능 ‘런닝맨’에서 딸 유나은 양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유재석은 나은 양에 대해 “돌이 다 되어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누굴 닮았느냐’는 질문에 “의견이 나뉜다. 어떤 분은 나경은 씨를 닮았다고 하고 다른 분은 나를 닮았다고 한다”고 밝혔다. 유재석은 ‘희비가 교차하겠다’는 지적에 “나를 닮으면 뭐가 어떠냐”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한편 2008년 나경은 전MBC아나운서와 결혼한 유재석은 2010년 아들 유지호 군을, 2018년 딸 유나은 양을 얻었다. 사진 = 서울신문DB (사진은 지아 유재석) 연예부 seoulen@seoul.co.kr
  • 10개월 아기 안은 채…다리 180도 찢어 트렁크 닫는 여성

    10개월 아기 안은 채…다리 180도 찢어 트렁크 닫는 여성

    한 손에는 유모차, 다른 한 손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차 트렁크를 닫아야 한다면? 러시아의 한 유명 인플루언서가 다리를 180도 찢어 발꿈치로 트렁크를 닫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해 누리꾼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러시아에서 운동 회사를 운영하는 CEO이자 44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을 뜻하며 ‘파워블로거’나 수십만 명의 팔로워 수를 가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 혹은 1인 방송 진행자들을 통칭하는 말)인 안나 칸유크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영상 한 개를 게재했다. 영상에는 안나가 10개월 된 딸 지아를 안고 자동차 트렁크를 닫는 모습이 담겼다. 딸을 품에 안은 안나는 자동차 뒤로 돌아가 트렁크를 연다. 이어 유모차를 꺼낸 안나는 손으로 트렁크 문을 닫는 일반적인 방법 대신 특별한 방법을 선택한다. 바로 ‘발’로 트렁크를 닫는 것. 안나는 조심스럽게 한쪽 다리를 뻗더니 이내 180도 다리를 찢는다. 높은 하이힐을 신었지만 놀라운 균형감각을 선보인 안나는 뻗은 다리로 가볍게 트렁크를 닫는다. 영상은 130만 번 이상 조회되며 많은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들은 “인상적이다”, “유연성이 대단하다”, “나도 도전해보고 싶군” 등의 반응을 보이며 안나의 놀라운 유연성에 감탄했다. 사진·영상=anna_kanyuk/인스타그램 영상부 seoultv@seoul.co.kr
  •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미국 역대 대통령 보니, 트럼프 인종차별은 양반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로 저주”女노예에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노예 매질하면 보상”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레이건 “원숭이들 신발 불편해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인종차별적인 대통령이 수두룩했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런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그는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성관계를 지속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사적인 대화 중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뉴욕타임스는 31일(현지시간) 로널드 레이건(40대) 전 대통령이 1971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닉슨과 통화 중에 “아프리카에서 온 원숭이들을 보기 위해, 빌어먹을”이라면서 “그들은 아직도 신발을 신는 걸 불펴해한다”고 말한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파일엔 그가 아프리카 유엔 대표부를 “식인종”이라고 부르는 것도 녹음됐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트럼프만 그런 것 아님, 레이건도 탄자니아 대표단에 “원숭이들”

    트럼프만 그런 것 아님, 레이건도 탄자니아 대표단에 “원숭이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만 인종주의적 편견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71년 유엔 본부에서 아프리카 탄자니아 대표단을 가리켜 “원숭이들”이라고 표현했다고 미국 잡지가 최근 폭로했다.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중국을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고 대만을 축출하는 안건에 대한 표결 때 아프리카 대표단들이 미국을 따돌리고 찬성 표를 던지는 데 격분했다. 특히 탄자니아 대표단 멤버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대만을 응원했던 레이건은 다음날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람들 좀 봐요.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온 원숭이들 말이요. 빌어먹을 놈들, 그들은 아직도 신발 신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1974년 하야한 닉슨은 웃음을 터뜨렸다고 영국 BBC가 지난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물론 공석에서 의도적으로 인종차별적 언사를 남발하는 트럼프와 당시 대통령에게 전화 통화를 통해 흉을 본 레이건은 많이 다르다. 녹취록을 발굴한 이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닉슨 대통령 박물관 관장을 지낸 뉴욕 대학 역사학과의 팀 나프탈리 부교수로 잡지 ‘더 애틀랜틱’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 이같은 발언 내용을 밝혀냈다. 이들 테이프는 레이건이 살아 있던 2000년 국립문서보관소에 의해 전체가 공개됐다가 2004년 레이건이 사망하자 법원 명령을 좇아 프라이버시 보호를 이유로 문제가 된 대목들이 제거됐다. 나프탈리 부교수는 “로널드 레이건과 관련된 대화를 재검토할 수 있도록 요청했고 2주 전 국립문서보관소는 완벽한 버전을 배포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레이건은 원래 유엔 탈퇴를 압박하려고 전화를 걸었는데 나중에 닉슨 대통령은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불만을 터뜨린 것이 전화를 건 목적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닉슨은 레이건이 탄자니아 대표단을 신발도 신지 않고 카니발을 즐겼다고 말했다고 국무장관에게 전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또 1970년 로데지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 격리 정책을 공개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을 새로 발굴된 녹음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나프탈리 부교수는 덧붙였다. 레이건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집권했는데 냉전이 클라이맥스에 이르렀고 소비에트 공산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는 치매와 오래 투병하다 93세를 일기로 2004년 세상을 떠났다. 한편 AP통신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미국의 초기 대통령 대다수는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 나쁜 냄새로” 저주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또 저서에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적었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의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냈다. 그는 노예 150명 가운데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학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닉슨(37대)은 재임 중 사적인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난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떠벌였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인비야 4년 만에 V버디 퍼팅 해볼래?

    인비야 4년 만에 V버디 퍼팅 해볼래?

    4년 만에 브리티시여자오픈 정상 탈환에 나선 박인비(31)가 제시카 코르다, 앤절라 스탠퍼드(이상 미국)와 대회 1라운드에 나선다. 1일 잉글랜드 밀턴킨스의 워번 골프클럽에서 개막하는 시즌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메이저 우승컵 쟁탈전인 이 대회 조직위원회가 31일 발표한 1라운드 조 편성을 보면 박인비는 코르다, 스탠퍼드와 함께 1일(한국시간) 오후 3시 14분에 1번홀을 출발한다. ●박, 메이저 8승 기회… 고진영·박성현 등 경쟁 메이저 통산 7승을 기록 중인 박인비가 마지막으로 우승컵을 들어 올린 건 2015년 이 대회에서였다. 올해 우승하면 박인비는 4년 만에 메이저 우승컵을 8개로 만들 수 있고,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통산 20승도 꽉 채울 수 있다. 한국 선수의 브리티시여자오픈 최다 우승 횟수도 7회로 늘린다. 한국 선수들은 브리티시오픈이 메이저 대회로 승격된 2001년 이후 6차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지난주 에비앙 챔피언십을 포함, 올해 네 차례 메이저대회에서 2승을 거둔 고진영(24)은 제시카의 동생인 넬리 코르다(미국), 스즈키 아이(일본)와 함께 1일 밤 8시 38분 1번홀에서 티오프한다. 에비앙 대회 선두에 1타 뒤진 2위로 출발했지만 4라운드 초반 무너지는 바람에 공동 6위로 대회를 접었던 박성현(26)은 머리나 앨릭스(미국) 등과 함께 오후 3시 3분에 첫 티샷을 한다. 지난 6월 US오픈 정상에 올랐던 이정은6(23)는 브리트니 랭(미국) 등과 오후 7시 43분에,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시즌 상금 1위 자격으로 두 번째 메이저대회에 나선 최혜진(20)은 오후 5시 53분에 경기를 시작한다. ●지난해 챔피언 홀 “우승 트로피 두 달 전 도난당해” 지난해 선두 폰아농 펫람(태국)에게 1타 뒤졌다가 마지막 날 2타 차로 밀어내고 역전 우승을 차지했던 조지아 홀(잉글랜드)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당시 받은 우승 트로피를 도난당한 사실을 털어놓았다. 캐런 스터플스(2004년)에 이어 잉글랜드 선수로는 14년 만에 두 번째 우승을 신고했던 홀은 “2개월 전 런던 외곽 치스윅의 건물 주차장에서 누군가가 트렁크에 실어 놨던 트로피를 가져갔다”고 밝혔다. 그러나 홀이 잃어버린 우승 트로피는 진품이 아니라 모조품이다. 대회를 주관하는 영국왕립골프협회(R&A)는 진짜 트로피는 시상식에서만 사용한 뒤 세인트 앤드루스의 본부에 보관한다. 우승자가 가져가는 트로피는 모조품이다. 홀은 “보험사에 물어봤더니 모조품도 7000달러 안팎의 가치가 있다더라”고 전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역대 美 대통령 보니, 트럼프 “난 덜 인종차별” 할만

    제퍼슨 “흑인 나쁜 냄새 나는 저주”흑인 노예와 지속적 성관계 강요도잭슨 “도망친 노예 때리면 보상금”윌슨 백악관서 KKK 찬양 영화 상영닉슨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 녹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버지니아주 주의회 설립 400주년을 맞아 제임스타운을 방문하기 직전 “나는 세상에서 가장 덜 인종주의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최근 흑인이 많은 선거구를 “쥐와 설치류가 들끓는 난장판”이라고 칭하는 등 잇단 인종차별 발언으로 논란을 빚은 트럼프 대통령 입에서 나온 말이라기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이날 AP통신이 소개한 역대 미 대통령들의 인종주의 흑역사를 살펴보면, 트럼프보다 더한 인종차별주의자들이 수두룩하다는 걸 알게 된다. 버지니아주는 미국에 유럽 이주민과 함께 아프리카 노예도 처음 도착하며 노예제 역사가 시작된 땅이다. AP통신은 이같은 버지니아 주의회 설립 기념일을 맞아,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전후 논평과 정책결정에서 보여준 공적·사적 행동 중 당시에나 지금이나 인종주의적이라고 평가받는 사례를 소개했다. 조지 워싱턴(초대)부터 재커리 테일러(12대)까지 초기 대통령 대부분은 흑인 노예를 소유했으며, 원주민(인디언)과 아프리카계, 라틴계 사람들이 투표권이나 배심원 자격을 갖지 못하던 시절 권력을 장악했다. 학자나 인권 지도자들이 문제를 제기했지만 당대에 흔했던 인종차별적 견해는 되풀이됐다.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문에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썼다. 하지만 저서에는 흑인이 “매우 강하고 기분나쁜 냄새로” 저주 받았으며, 예술이나 시를 창작할 능력이 없다고 썼다. 그는 노예제가 부도덕하다면서도 노예를 소유했고, 역사가들에 따르면 흑인 노예 중 한 명과 지속적으로 성관계를 하기도 했다. 제퍼슨은 저서에서 흑인 노예들이 해방되면 그들을 추방해야 한다고 썼다. 노예를 해방하면 흑인과 백인이 평화롭게 함께 살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도 남부 출신 노예 소유주였으며, 대통령이 되기 전인 1804년엔 도망친 노예 한 명 당 50달러를 줄 것이며, 노예에게 매질을 하면 300대까지 100대 당 10달러씩 더 준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그는 노예 150명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해방시키지 말라는 유언까지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재임기간 동안 조지아주에서 체로키 원주민을 강제로 제거하며 수천명을 죽게 한 것으로 유명하다. 우체국장이 수정헌법 제1조를 정면으로 위반하며 노예제 반대 출판물을 압수한 것을 묵인하기도 했으며 출판물들을 “반 헌법적이며 사악한 것”이라고 했다.우드로 윌슨(28대) 대통령은 버지니아 태생으로 프린스턴대 총장 재직 당시 흑인의 입학을 금지했다. 그는 일부 흑인의 지지 덕분에 미국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집권 뒤 그와 민주당은 공무원 조직의 인종분리 정책을 뒤집는 것을 거부했다. 윌슨은 1915년 백악관에서 KKK를 영웅시하는 인종차별 영화 ‘국가의 탄생’을 상영해 논란을 빚었다. 그는 백인 폭도들이 흑인을 무차별 공격한 1919년 ‘붉은 여름’ 당시에도 폭력에 반대하는 논평을 하긴 했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막기 위해 연방정부의 자원을 사용하진 않았다.존 F 케네디 암살 뒤 대통령직을 맡은 린든 존슨(36대)은 전임자가 추진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민권 법안을 이어받은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의 사적인 대화가 녹음된 테이프엔 존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자신이 요직에 임명한 흑인을 묘사하며 일상적으로 인종차별적 비방을 했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다.존슨의 후임자 리처드 닉슨 역시 재임 중 사적인 대화에서 인종차별적 비방을 자주 했다. 그는 “우리는 ‘하찮은 검둥이 녀석들’(little Negro bastards)을 가구 당 2400달러에 달하는 복지 대상자 명부에 더 많이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종종 유대계, 멕시코계, 이탈리아계,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에게 경멸적인 발언을 했다. 닉슨의 이런 발언은 존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수십년 뒤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알려졌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글렌데일 소녀상에 배설물 훼손 사건…FBI에 수사 의뢰

    글렌데일 소녀상에 배설물 훼손 사건…FBI에 수사 의뢰

    미국서 반달리즘(공공기물 파손)은 중범죄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북동쪽의 소도시 글렌데일에 설치된 평화의 소녀상이 훼손돼 미 연방 하원 브래드 셔먼(민주·캘리포니아) 의원실이 미 연방수사국(FBI)에 정식 수사 의뢰를 한 것으로 29일(현지시간) 확인됐다. 김현정 CARE(위안부행동·옛 가주한미포럼) 대표에 따르면 지난 25일 글렌데일 중앙도서관 시립공원에 세워진 소녀상 얼굴 부위에 개 배설물을 묻히고 주변에도 배설물을 쏟아놓은 사건이 벌어져 현지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글렌데일 경찰서는 최근 한 달 사이 소녀상이 훼손된 사건이 3건 있었다고 전했다. 현장에 CCTV가 설치돼 있지만, 단순 감시 용도일 뿐 녹화 기능은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김 대표는 하원 외교위원회 아태소위원장인 셔먼 의원 측이 지난주 소녀상 훼손 소식을 듣고 지난 26일 FBI에 사건을 수사 의뢰했다고 전했다.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최근 소녀상 훼손 사건이 잇달아 벌어진 것이 일본의 경제 보복과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사실 여부를 단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미국에서 공공 기념물을 훼손하는 반달리즘(기물 파손) 범죄는 중범죄에 속한다. 소녀상을 찾은 마이크 혼다 전 연방 의원은 “소녀상 훼손은 명백한 범죄이자 미국 시민에 대한 위협”이라고 말했다. 글렌데일 소녀상은 올해로 건립 6주년을 맞는 상징물로 미국 내에 처음 설치된 소녀상이다. 당시 일본은 소녀상 설치를 막기 위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걸었지만 패소했다. 미국 내에는 현재 글렌데일 소녀상 외에 미시간 주 사우스필드 한인문화회관, 조지아 주 브룩헤이븐 블랙번 메인공원, 뉴욕 맨해튼 뉴욕한인회관 등 4곳에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돼 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앤마리 무료공연’ 이지아 포착 ‘반가운 얼굴’

    ‘앤마리 무료공연’ 이지아 포착 ‘반가운 얼굴’

    이지아가 앤 마리에 대한 팬심을 드러냈다. 29일 이지아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Annemarie♥ #paradisecity”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게재했다. 사진 속 이지아는 앤 마리와 함께 활짝 웃고 있다. 이지아의 반가운 근황이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앤마리는 지난 28일 인천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린 홀리데이랜드페스티벌에 오르기로 예정됐으나 취소됐다. 공연 주최 측은 “우천으로 인한 뮤지션의 요청으로 다니엘 시저와 앤 마리 공연이 취소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앤 마리가 자신의 SNS에 “주최측이 무대에 오르려면 객석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할 시 책임지겠다는 각서에 사인을 하라고 요구했다“며 공연 취소가 자신의 뜻이 아님을 폭로해 논란이 일었다. 이후 앤 마리는 한국 팬들을 위해 파라다이스시티 한 호텔에서 무료 공연을 열어 화제를 모았다. 한편 이지아는 지난해 10월 종영한 KBS2 드라마 ‘오늘의 탐정’ 이후 차기작을 검토 중이다. 사진 = 서울신문DB 연예부 seoulen@seoul.co.kr
  • 21서울국제무용콩쿠르 그랑프리에 한예종 이윤주

    21서울국제무용콩쿠르 그랑프리에 한예종 이윤주

    교 무용원의 이윤주(21)가 제16회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여자 컨템포러리 시니어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전체 대상인 그랑프리도 거머쥐었다. 한예종은 이번 대회에서 그랑프리 수상자를 포함해 모두 16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서울국제무용콩쿠르 사무국은 지난 19~25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진행된 이번 대회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컨템포러리 시니어 남자 1등은 이창민(22·한예종)이 차지했고, 발레 부문 시니어 여자 1등은 최유정(21·한예종), 시니어 남자 1등은 안성준(22·한예종)에게 돌아갔다. 이들을 포함해 발레 부문에서 29명, 컨템포러리 무용에서 24명, 민족무용 35명, 안무 7명까지 총 95명이 수상의 기쁨을 누렸다. 발레 시니어 남자 1등 안성준과 2등 국찬우(22·국민대), 컨템포러리 남자 시니어 1등 이창민과 2등 나지훈(22·국민대)은 예술·체육요원(보충역)으로 사실상 병역 면제 혜택도 받는다. 또 상위권 수상자 13명은 미국 칼아츠, 영국 트리니티 라반 콘서바토리, 중국 베이징 수도사범대학, 조지아 발레단 등에서 공부할 기회를 받았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박연수 딸 송지아 “수지 닮은꼴로 화제 될 줄 몰랐다”

    박연수 딸 송지아 “수지 닮은꼴로 화제 될 줄 몰랐다”

    박연수가 딸 송지아가 수지 닮은꼴로 화제를 모은 사진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최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4’에서는 박연수와 송지아 모녀, 정주리, 강예빈, 이국주가 출연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는 ‘수지 닮은꼴’로 화제를 모은 송지아의 사진이 공개됐다. 이를 본 출연진들은 “너무 예쁘다”, “정말 수지를 닮았다”며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MC 조세호가 “사진을 올린 것이 화제가 될 줄 알았냐”고 묻자, 박연수는 “전혀 생각을 못했다. 아이가 작년에 10cm 이상 컸다. 이 때 사진을 찍어주면 예쁠 것 같아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렸는데 그게 화제가 됐다”고 답했다. 박연수는 이어 “저날따라 청초해 보였다. 학원을 많이 돌아서 그런지”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야기를 듣던 송지아 또한 “학원 때문에 피곤해서...”라며 덧붙였다. 사진=KBS2 ‘해피투게더4’ 방송 캡처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박연수가 말하는 전남편 송종국 “지금은 완전한 친구 사이”

    박연수가 말하는 전남편 송종국 “지금은 완전한 친구 사이”

    배우 박연수가 전 남편 송종국에 대해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 25일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해피투게더4’에서는 박연수와 송지아 모녀, 정주리, 강예빈, 이국주가 출연했다. 이날 박연수는 송종국과의 사이를 언급하며 “지금은 완전히 친구사이가 됐다. 서로 친구가 되기까지 6년 반 정도가 걸렸다. 누군가를 미워하니까 아팠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서로 연애 고민에 대해서도 상담한다. 누굴 만나고 헤어지는지 얘기한다”고 전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송지아 또한 “지욱이랑 엄마, 아빠랑 넷이서 밥을 먹기도 한다”며 이혼 후에도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연수는 “아이들도 사랑을 받아야 잘 크듯이, 우리도 이혼했다고 숨겨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분들께서 마음을 열고 바라봐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송지아도 “아빠 엄마가 사이가 좋지 않은 시절이 있었는데, 그 때 엄마가 웃는 모습을 잘 못봤다. 요즘은 웃는 모습이 자주 보여서 너무 좋다”며 든든한 딸의 면모를 보였다. 한편, 송종국과 박연수는 지난 2007년 결혼해 지아와 지욱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지난 2015년 이혼하면서 박연수가 아이들에 대한 양육권과 친권을 갖게 됐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 ‘해투’ 강예빈, “눈 앞에서 사인 찢은 안티팬” 경악

    ‘해투’ 강예빈, “눈 앞에서 사인 찢은 안티팬” 경악

    방송인 강예빈이 대인기피증을 고백했다. 25일 방송된 KBS 2TV ‘해피투게더4’는 ‘근황 신고식’ 특집으로 꾸며진 가운데 박연수, 송지아,정주리, 이국주, 강예빈이 출연해 입담을 뽐냈다. 이날 강예빈은 방송이 뜸했던 이유에 대해 “저를 불러주시지 않더라”고 농담한 뒤 “고향이 경기도 여주인데 엄마 옆으로 갔다. 지금은 연극 때문에 잠시 서울에 와 있는 상태”라고 말문을 열었다. 강예빈은 공백기 동안 고향에서 시간을 보낸 데 대해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의 품에서 보호받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강예빈은 “얼짱 출신으로 데뷔해 악플을 달고 살았다. 눈앞에서 내 사인을 찢는 경우도 있었다”라며 “그래도 괜찮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다”라고 밝혔다. 강예빈은 “대인기피증이 심하게 와서 집 밖으로 1년을 못 나갔다”라고 고백했다. 강예빈은 “‘강예빈이 교통사고로 죽었으면 좋겠다. 왜냐면 내 남자친구가 좋아하기 때문에’등 너무 많은 악플에 시달렸다. 지하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던 (스토커) 분들도 계셨다. 너무 무서워서 고향집으로 갔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어 “지금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너무 떨려서 토할 뻔했다. 한 달 동안 식사도 제대로 못해서 3kg이 빠졌다. 그런데 연극으로 대인기피증을 극복했다. 무대와 가까운 객석에서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봐주셔서 감사하다”고 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드러냈다. 사진= KBS 2TV 연예부 seoule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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