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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준마가 있더라도 노예의 손에 모욕을 당하다 (보통 말과 함께) 마굿간에서 나란히 죽어 끝내 천리마로 일컬어지지 못한다.(중략) 천리마를 채찍질하되 그 도로써 하지 아니하며 이를 먹이되 능히 그 재주를 다하게 하지 못하며, 울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채찍을 들고 말에 임하여 말하되 “천하에 좋은 말이 없노라.”하니 슬프도다. 참으로 말이 없느냐, 참으로 말을 알아보는 자가 없느냐?(‘잡설·雜說 중’) ●천리마, 백락을 찾아 나서다 송대(宋代)의 문장가 소식이 “문장으로써 8대 동안의 쇠미한 풍조를 진작시키고 도의로써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천하를 구제했다.”고 칭송했던, 당대(唐代) ‘고문(古文)운동’의 리더이자 송대 ‘신유학’(新儒學)의 계보를 논할 때 맨 앞자리에 놓이는 사상가 한유(韓愈·768~824). 그러나 한유의 청년 시절은 곤궁하고 암울했다. 당나라 대종 연간에 태어난 한유는 조실부모하고 형님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의지할 가문도 어른도 없었던, 실질적인 소년가장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고 세상에 이름을 남길 방법은 과거(科擧) 합격을 통한 출세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려 해도 추천이 있어야 했고 명문가의 자제들은 특채로 임용되었다. 한유는 자존심을 내던지고 재상의 집 근처에 머물며 자신의 추천을 부탁하는 편지를 연거푸 보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순간도 자부심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천리마임을 자처하고, 세상에 그 천리마를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한다. 천리마는 여기 있으나 백락은 여기 없구나! 그럴진대 천리마가 스스로 백락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유가 살았던 시대는 당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성당 시절에서 중당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이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755년에 일어난 안사(安史)의 난이었다. 대규모 용병을 지휘하며 세를 키워가던 군벌의 잦은 반란으로 정치는 불안했고 유랑민이 속출했다. 당 제국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지만, 귀족들은 조정의 관직을 세습하면서 도교의 양생술이나 불교의 마음 수행에 빠져 백성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도대체 세상을 걱정하고 경영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런 탄식 속에서 한유는, 마음을 다스리고 뜻을 바로 하는 것이 천하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유학의 도(道)를 종주(宗主)로 삼아 스스로를 ‘유학자’로 정립한다. 당시의 사상적 조류는 불교와 도교였으며, 유학의 도는 쇠미해진 옛날의 도[古道]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한유는 이 유학의 도(道)야말로 백성을 구제하고 시대를 쇄신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하에, 어찌할 수 없는 신분의 특권을 인간의 능동적인 배움으로 뛰어넘고자 스승 되기를 자처했다. 그는 “옛날 성인은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데도 스승을 찾아 물으러 다녔고 지금의 사람은 성인보다 한참 부족한데도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사설·師說)라고 말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배움을 강조한다. 벼슬길에 나아가면 성인의 도를 실천하고, 물러나면 성인의 도를 전파하는 것이 유학자였기 때문에 제자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장유(長幼)와 귀천(貴賤)에 상관없이 누구든 배우면 성인의 도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의 견고한 귀족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유에게 유학은 고리타분한 ‘옛 학문’(古之學)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현재의 학문’(今之學)이었던 것이다. ●뿌리를 길러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오 새로운 사상은 새로운 글쓰기를 낳는 법. 한유가 귀족주의에 대항한 또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혁신하는 것이었다. 당대 글쓰기의 조류는 성당 시절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변려문(?儷文) 형식이었다. 변(?)은 두 마리 말이 나란히 수레를 끈다는 뜻이고, 려(儷)는 한 쌍의 남녀라는 뜻으로, 글을 쓸 때 글자와 성조(聲調)를 고려하여 나란하게 대구를 맞춰 쓰기 때문에 변려문이라 한다. 변려문은 한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중국 문학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는 글쓰기였다. 그러나 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변려문은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귀족들의 자족적인 글쓰기가 되고 말았다. 한유는 변려문의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비판하면서 성인의 도를 드러낼 수 있는 고문(古文)으로 문풍의 변혁을 꾀한다. 한유의 주장은, 내용은 없고 화려하기만 한 지금의 글(時文)을 배척하고 누구나 읽을 줄만 알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예전의 문장을 쓰자는 것이다. 고문이란 당나라 이전 선진(先秦), 양한(兩漢) 시대의 산문적 글쓰기를 지칭한다. 맹자(孟子) 이후로 단절된 성인의 도를 계승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부하던 한유에게 고문은 옛 성인의 도가 담긴 모범적 글쓰기였다. 따라서 그의 ‘고문 운동’은 단순한 문장의 개혁을 넘어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사상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유의 고문 운동은 중소 지주층, 과거 수험생인 젊은 지식인 계층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었을 때 남이 비웃으면 나는 기뻤고, 칭찬하면 근심했다.”라고 할 정도로, 한유는 전력을 다해 당시의 문장과 거리를 둔다. 그 결과 한유의 문장은 전고(典故)도 없고 성운(聲韻)도 없는 기이한 것이 되었다. 한유 문장의 특징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기(奇)’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변려문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독창적 글쓰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유는 고문의 담백한 문체와 명징한 내용 전달을 본받으면서도, 시를 산문처럼 쓰기도 하고, 글자를 반복해서 리듬감을 살리는가 하면, 참신한 소재를 글쓰기의 주제로 삼는 등 자신만의 파격을 감행한다. 그가 내세웠던 ‘유학의 도’는, 전통과 혁신이 통일된 글쓰기 속에서 효과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문장을 답습하는 것은 사유 자체를 답습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귀족적 질서에 종속되어 살 텐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써라! 한유의 고문 운동은 자기 시대 안에서 자기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처절한 ‘반시대적 고찰’의 산물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운다(不平則鳴) “대개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이면 운다. 만물이 뛰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달리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끓어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데웠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지 않는 쇠나 돌을 무엇인가가 치면 소리를 낸다. 말에 있어서 또한 이와 같아서 사람은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이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것이 있어서이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不平則鳴).” 한유는 평생 소리를 냈다. 청년 시절의 불우함, 유학자를 자처하며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시달렸던 비방, 두 번의 유배 생활, 생계를 위해 써준 묘지명 때문에 무덤에 아첨했다는 불명예까지, 그야말로 “평정을 얻지 못한” 한평생이었다. 56세에는 장안의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장관인 경조윤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한유는 평생토록 시대의 부침 속에서 민감하고도 과감하게 “소리를 냈다(鳴)”.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문장에 공명(共鳴)한 이들은 새로운 지식인 계층을 형성했고, 그가 내세운 ‘도’(道)는 훗날 후학들이 걸어가는 길이 되었다. 백락이 없음을 한탄하던 천리마의 고성(高聲)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우리는 천리마인가, 백락인가. 천리마가 되지 못할 바에야,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세상 모든 소리(鳴)에 귀 기울이면서, 그 안에 담긴 ‘불평심’(不平心)과 공명해야 하지 않을까. 홍숙연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서울살이 지배하는 자본신화 스캔하다

    서울살이 지배하는 자본신화 스캔하다

    “을지로입구역, 영등포역, 서울역, 건대입구역, 그리고 2010년에 재개장한 청량리역까지 서울의 중요한 교통 분기점마다 롯데의 자본은 깊숙이 들어가 있다.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이동하는 모든 순간, 모든 환경, 모든 문화가 롯데 왕국 안에서 순환적으로 이뤄지며 소비되는, 자본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신화가 이렇게 형성되고 있다.” ‘이면의 도시’(정진열·김형재 글, 자음과모음 펴냄)는 두 디자인 전공자가 날카로운 촉수와 날 선 감각으로 서울을 공감각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자음과모음에서 시리즈로 펴내는 하이브리드 총서의 다섯 번째 책. 하이브리드 총서는 ‘경계 간 글쓰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란 표제 아래 젊고 의욕 있는 학자들이 학문적 실험과 매력적인 글쓰기를 한데 보여 주고 있다. 저자들은 언론과 재벌 혼맥도, 한국 지식인의 이념 분포도, 촛불시위 행진 방향과 경찰 대치 상황, 국회의원 자리배치도 등 민감한 사안을 한 장의 그래픽 또는 지도로 요약해 낸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구별 주소, 지역구 국회의원 중 서초·강남구에 자택을 소유한 의원 지도 등은 그다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자리배치도는 초선부터 7선까지 당선 숫자에 따라 색깔을 달리했는데 맨 뒷자리에는 이회창, 조순형, 이인제, 남경필, 박근혜, 정몽준, 이상득, 홍사덕, 황우여, 박상천, 정세균, 박지원, 천정배 등 신문 정치면에서 자주 이름을 볼 수 있는 중견 정치인들이 쭉 앉아 있다. 지역구 의원 가운데 서초·강남구에 자택을 소유한 인원은 총 47명 가운데 한나라당 30명, 민주당 11명, 자유선진당 3명이다. 지역구와 자택 주소가 다른 의원도 80명이나 된다. 저자들의 예민한 관찰자적 시선은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 잠실역 주변을 ‘롯데 왕국’이라 비꼬는 저자들은 지하 공간에 대해서도 ‘어둠의 강을 건너 하데스의 왕국’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 지배자)의 공간이자 죽은 자들의 땅이었던 지하는 근대 초기에는 지상의 공습을 피하고자 숨어드는 공간이었다. 언제부턴가 지하 공간은 가장 고도화한 상업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각이다. 게다가 대형 지하 쇼핑몰의 등장과 함께 영세 지하상가에 감도는 패배감의 기운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서울 시민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당장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옆의 시청 지하철역 상가만 해도 서울시의 지하상가 정책을 타도하는 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다. 시청역 지하상가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50대의 박모씨는 촛불시위가 상가에 끼쳤던 영향에 대해 “화장실 쓰는 데 불편함 말고는 뭐, 워낙 다들 점잖은 사람들이니까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요새는 시위 문화도 옛날 같지 않으니까요. 월드컵 때처럼 좋은 일 때문에 모인 게 아니라 어려운 상황이었던 때라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죠.”라고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정치와 자본에 대해 날카로운 해부를 한 저자 중 한명은 가족의 대출 역사까지 털어놓는다. 1997년 저자의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슈퍼마켓을 인수하고자 시가 10억원짜리 건물을 4억원에 구매하기로 하고 한빛은행에서 재건축한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을 빌린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대출은 철회된다. 저자의 부모는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채 1년이 못 되어 슈퍼마켓을 폐업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대출의 역사가 나의 인생, 그리고 가족의 역사와 같다.”고 말한다. 책은 모든 금융업체가 개인의 신용 정보를 공유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동의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질문한다. ‘이면의 도시’는 익숙한 일상과 공간의 틈새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이미지와 감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대기업과 정부의 욕망이 어떻게 우리를 잠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새삼 일깨운다. 허술하게 가려졌던 상처와 상실을 세세하게 일러 주는 책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독자를 일깨우는 방식은 일방적인 서술이 아니라 예쁘게 잘 요약된 지도와 재치가 넘치는 문장이다. 저자들은 경험 많은 택시 운전자처럼 우리가 그동안 허투루 지나쳤던 서울이란 도시의 이면을 돋보기로 확대한 듯 보여 준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중동과 아랍에 ‘민주의 봄’을 안겨 준 ‘재스민 혁명’에 대한 전 세계 테드(TED) 마니아들의 찬사는 끝이 없었다.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의 공식 개막에 앞서 10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에든버러 EICC에서는 전 세계 테드x(지역별 테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운영자 교육행사 ‘테드x 워크숍’이 열렸다. 테드 측이 비영리 원칙을 실천하며 지구촌에 테드의 정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계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행사다. 44개국 110명이 참가했다. 워크숍에서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의 지평을 연 중동, 아프리카 지역 운영자들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폐쇄된 사회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테드x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재스민 혁명의 불을 댕긴 튀니지의 테드x 관계자는 “지식인들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모인 테드x가 ‘혁명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역할을 했고,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고 전했다. 이집트 테드x 카이로 운영자도 “독재정권 아래 하나의 시각만 강요받던 사람들이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자유에 대한 욕망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점차 상승효과를 본 것 같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네명의 운영자들이 참석했다. 테드x 부산의 김마니씨, 테드x 이화의 강지혜씨, 테드x 동성로의 신윤희씨, 테드x 경원대의 에이다이다. 에이다는 필리핀 출신 유학생이다. 대구대 특수교육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신윤희씨는 “한국에서 테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비영리의 원칙을 지키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다른 나라의 노하우를 배워 가고 싶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온 참가자는 “한국에서 테드 열풍이 거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라이선시들과 얘기해 보니 그 열정에 다시금 놀랐다.”면서 “기회가 되면 한국의 테드x행사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1일 아침 9시 30분(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국제콘퍼런스센터(EICC). 큰 덩치에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의 톰 리엘리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무대에 올랐다. 장내를 메운 70여개국 900여명의 청중들은 ‘테드(TED) 펠로’ 큐레이터인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연중 2차례 열리는 최고의 지식페스티벌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이 닷새간의 여정에 닻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0대 소녀부터 70대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 피부색은 달랐지만 감동은 한결같았다. 매년 8월 공연 페스티벌 ‘프린지’와 군악경연 ‘밀리터리 타투’로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는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 올해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지식 순례자들로 예년보다 한달 앞서 축제의 기운이 달아올랐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리엘리가 유머를 섞어 가며 테드 펠로를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테드 펠로는 테드가 매년 선정하는 신(新)지식인들. 26명의 테드 펠로들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란 별칭답게 독특하면서도, 메시지 강한 기술과 성과들을 풀어놓았다. 첫번째로 ‘18분간의 소통’을 시작한 사람은 중미 과테말라의 신재생 에너지기업 ‘케솔’(QUETSOL)의 창업자 마누엘 아구일라. 자기 나라 농촌 초가집 앞에 설치된 첨단 태양광 패널의 모습을 대형 화면에 띄웠다. 태양광 패널에서 나온 한 가닥의 전깃줄이 초가집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면에 참석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아구일라는 “이렇게 초라한 시도가 궁극적으로 각국의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조디 우는 탄자니아에서 농업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자신의 발명품 얘기를 꺼냈다. 우는 “막대기로 옥수수 낟알을 떠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자전거 바퀴로 작동하는 탈곡기를 만들었다.”면서 “그들은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훨씬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이 탈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출신의 슐레이만 바히트는 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밝은 희망을 담담하게 풀어 갔다. 그는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재학 당시 9·11 테러가 터지자 4명의 미국인 학생들이 나를,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캠퍼스에서 공격했다.”면서 “그러나 난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 내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아랍 문화를 가르치고, 미래 세대에는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전역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그 수단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저의 이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한테 처음 털어놓았을 때 ‘중동에선 지나친 모험’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동에는 저의 이상을 담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 티베트와 몽골의 사막지대를 누비며 사람의 뼈를 통해 10년 가까이 아시아인의 생태적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중국인 고고생물학자 크리스틴 리,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질 진단기를 만들고 있는 미국인 소나 루스라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무대에는 15일까지 50여명의 연사들이 올라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를 주제로 18분 동안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외치게 된다. 테드 프로듀서 준 코언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이루는 문화적 성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루는 놀라운 강연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인 행위예술가 이재림씨가 연단에 오르는 13일 행사는 우리나라에도 생중계된다. 테드x 경원대(경원대 영상문화관), 테드x 이태원(명동 해치홀), 테드x 카이스트(카이 라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날 EICC 앞에는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들 사전에 등록을 하고 왔지만 연단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노라 랭은 “올초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테드 2011 콘퍼런스에 가고 싶었지만 일찍 마감돼서 이번에는 아주 서둘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벤처회사를 차렸다는 일본인 다키오는 “등록비 6000달러(약 700만원)는 분명히 큰 금액”이라며 “그러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내 마음속 영웅들과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강연 18분 제한… 흥행요소 극대화”

    TED를 관통하는 가장 큰 원칙은 ‘비영리’다. TED의 이름을 걸고 공개되는 콘텐츠에는 딱 두 가지의 단서만 붙는다. 첫째가 ‘편집하지 말 것’, 두 번째가 ‘돈 받고 팔지 말 것’이다. TED는 이 원칙에만 동조한다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제공한다. 직접적으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전 세계 누구나 ‘TED’의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 수 있다. 실사 등 까다로운 절차 없이 오로지 이메일로만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그러나 TED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헐렁해 보이는 TED의 모든 요소들이 사실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18분이라는 강의시간 제한이다. 대부분 콘퍼런스들이 최소 50분의 강연시간을 보장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TED 측은 이를 “18분이 사람들의 주목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TEDx 관계자는 “18분이라는 시간 때문에 강연자들은 더욱 콤팩트하고 효과적으로 자기 지식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서 “이는 결국 시각적인 효과와 극적인 연출로 이어지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결국 시간 제한이 TED 강연의 흥행 요소를 부추기고, 이것이 TED 동영상의 확산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TED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로 ‘동영상’이라는 전파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동영상을 이용하면 강연을 글로 읽거나 듣는 것과 달리 강연자의 숨결과 표정, 미묘한 손동작까지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TED 콘퍼런스가 끝나자마자 공개되는 동영상에는 전세계 70여개 언어의 자막이 붙는다. 번역 자원 봉사자들은 대가로 TED 콘퍼런스 실황중계를 볼 수 있는 시청권만을 얻을 뿐이다. TED에 따르면 매월 TED 동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3억명 수준이며, 인기 동영상은 10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TED 콘퍼런스의 주제는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한 모호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라든지 ‘기술의 소원’ 같은 식이다. 이 때문에 콘퍼런스마다 하나의 소재로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삶의 재료’를 소재로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이번 ‘TED글로벌 2011’의 경우도 생명공학자는 물론 뇌과학자, 미술가, 행위예술가, 코미디언, 가수, 건축가, 철학자, 소설가 등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연사로 등장할 예정이다. TED는 완결된 틀을 갖고 있지 않다. 젊은 지식인들을 선정해 별도의 세션을 만들어 내는 ‘TED 펠로(Fellow)’ 등 매년 새로운 형태의 TED가 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TED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쇼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TED 참가를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유행이라며 TED를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2009년 3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TED 글로벌 콘퍼런스. 연사로 나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말라리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보기술(IT)이나 정보화 시대에 대한 그의 박학한 지식과 미래전망을 듣고 싶어하던 관객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게이츠는 말라리아가 가난한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인지 설명하면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자고 호소했다. #1 빌 게이츠 ‘모기쇼’의 충격효과 강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갑자기 게이츠가 동그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병 안에서 모기들이 튀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 말라리아 모기의 위험에 대해 말하던 게이츠의 돌발 행동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 유력 언론들은 “가장 효과적인 쇼이자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2 바람 길들인 아프리카 풍차소년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소년이 망가진 자전거와 폐차에서 구한 철판 네 장으로 풍력 발전기를 만들었다.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발전기는 전구 네 개와 라디오 두 대를 작동시킬 수 있는 완벽한 발명품이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TED 주관사 새플링 재단은 이 소년을 2007년 TED 콘퍼런스 연사로 초청했다. 진심어린 소년의 목소리는 TED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숨을 죽이게 하고, 강연 동영상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윌리엄 캄쾀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의 이야기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소원’ 말하며 세상 바꾸려는 이들 TED 행사장에 서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최소 1억명 이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게 된다. 행사장에 선보인 모든 내용이 TED 토크스(talks)로 불리는 동영상으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빌 게이츠, 빌 클린턴, 제임스 캐머런, 인드라 누이, 빌 포드, 제이미 올리버, 제인 구달, 앨 고어, 보노, 프랭크 게리, 필리프 스타르크, 폴 사이먼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사들이 18분간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눴다. TED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가들이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미의 키친’으로 유명한 세계적 요리 전문가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법’이 아닌 ‘음식을 가르치는 법’을 통해 비만 퇴치를 역설해 지난해 최고의 TED 강연자로 선정됐다. 저명한 교육가 켄 로빈슨은 ‘학교가 (오히려)창의력을 죽인다.’고 주장했다. 연사들은 ‘TED 위시(wish)’로 불리는 ‘자신의 소원’을 강연 중에 말함으로써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변화를 꿈꾼다. 혁신적인 기술들도 수없이 등장했다. 지난해 컴퓨터 전문가 존 언더코플러는 특수한 센서가 부착된 장갑을 양손에 끼고 나와 스크린에 3차원으로 배열된 사진 수천장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모습을 TED 콘퍼런스 단상에서 보여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 등장했던 톰 크루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언더코플러는 ‘지-스피크’라고 명명된 이 기술에 대해 “5년 후 일반인이 구입하는 컴퓨터에 장착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이 강연을 담은 동영상은 TED 사상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올초 미국 롱비치 TED에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 아만다가 연단에 올랐다. 스키를 타다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그녀에게 로봇공학자 이더 벤더는 ‘로보틱 강화골격’이라는 신기술을 선물했다. 로보틱 강화골격을 입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아만다의 모습은 당시 강연장에 있던 사람은 물론 동영상을 본 전세계인들에게 TED가 꿈을 실현시키는 강력힌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앞서 캄쾀바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명인과 첨단과학을 아는 사람만이 TED를 통해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12살 어린이 아도라 스비탁은 “세상이 아이 같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린이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는다. 세상을 망치는 것은 어른들”이라고 주장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아인슈타인’은 조련사 스테파니 화이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놀라운 동물의 능력을 몸소 보여줬다. ●메인 무대에 오르는 한국인들 한국인들도 TED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06년 TED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인 재미교포 2세 제프 한이 등장했다. 그는 화면 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고, 두 명의 진행자가 동시에 손을 얹고 화면을 조작했다. 누르고 당기는 것이 전부였던 ‘터치’ 기술의 획기적인 변신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현재 우리는 이 기술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직접 체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도 올 3월 TED 무대에 섰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과 조끼로 진동을, 발바닥으로 압력을, 손으로 공기신호를 받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다름아닌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시각장애인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완벽하게 시연했다. 이 아이디어는 좀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형 자동차 업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같은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의 TED 펠로(TED가 선정한 신지식인)인 민세희씨가 전력소비량에 따라 집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취임 후 20여차례 특강, 소통의 일부죠”

    “취임 후 20여차례 특강, 소통의 일부죠”

    “주민과 하는 소통의 일부라고 생각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특강을 해요. 지식봉사를 하다 보니 구의원에 대한 신뢰도 쌓이고 의회 위상도 저절로 높아지는 것 같아요.” 김수범(62) 광진구의회 의장은 오랜 직장 생활과 다양한 사회활동 경험을 살려 요즘 지식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7일 이같이 말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에 능통한 데다 대기업인 ㈜대상에서 무역사업본부장을 지내며 익힌 감각 덕분에 국제비즈니스맨 출신의 최고경영자(CEO)형 의장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기업·단체는 물론 대학 등에서 특강 러브콜을 자주 받는다. 상공회의소 워크숍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근무 경험을 살려 ‘성공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두바이 왕이 선보인 상상력 리더십에 의한 창조 경영의 성공사례를 제시하고 국제적인 경영 노하우를 전달해 박수를 받았다. 광진우체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고객관리 비법을 전수했다. 의장 취임 후 긍정적인 마인드와 구민 행복을 위한 특강을 20여 차례나 했다. 이 같은 공로에 힘입어 지난달 한국신지식인협회로부터 최우수 신지식인상을 받기도 했다. 개인의 영광 이전에 의회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듣는다. 김 의장이 의정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재선의원과 초선의원들의 신구 조화로 소통하는 의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주민을 주인처럼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의원들의 전문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원 14명 가운데 10명이 주거환경정비사업 전문가 양성 과정을 밟는 이유도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런 말로 의욕을 새롭게 다졌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관대함과 인자함으로 의정을 이끌고 싶어요. 어떤 경우에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화합과 타협으로 의회를 이끈 의장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강북구 교육 승부수 ‘독서 동아리’ 바람

    강북구 교육 승부수 ‘독서 동아리’ 바람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강남 아주머니들보다 책을 들고 다니는 강북 아주머니가 더 아름답습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지난 4일 집무실에서 독서 동아리 모임을 열며 학부모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줄곧 주부들을 초빙해 독서 동아리의 필요성을 설파해 왔다. 책 사랑에 빠진 것이다. 4월 유치원 학부모들을 초청했고, 5월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를 중심으로 클럽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책벌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 주부들을 매일같이 만나 독서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4월부터 학부모 중심 동아리 조성… 구청장 집무실서 토론 “하버드대에서 가장 성공한 중퇴자 빌 게이츠가 대학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을 읽어 세상에 빨리 나가 그 지식들을 사회에 접목하고 싶었다고요.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책 읽는 아이는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고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립율곡어린이집과 해맞이어린이집에 자녀들을 맡기고 있는 주부들로 구성된 독서 동아리 회원 11명은 구청장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받아 적었다. “사실 저도 책을 즐겨 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TV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3년만 TV 대신 책을 가까이해 자녀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길러 주길 바랍니다.” 박 구청장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께 뭘 배웠니’라는 질문보다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질문하려면 자연스럽게 예습과 복습을 하고 성적도 덩달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책 읽는 습관에 따라 교육도 승부가 날 것”이라며 “독서 동아리가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1월부터 U도서관 시스템 구축… 어디서나 30만권 대출 가능 원종심(33·송중동)씨는 “구청장을 가까이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집무실에서 독서 모임을 하니까 막연했던 자녀교육에 대한 확신이 서는 느낌”이라며 “구청장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부들을 만나는 열정을 보니 믿음이 간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은숙(37·송천동)씨 또한 “명문학원도 없어 아이들이 크면 강남으로 이사갈까 고민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직접 확인하니 속이 후련하다.”면서 “열심히 활동해 아이를 지혜롭게 키우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구청장과 대화를 마친 주부들은 U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 스크린으로 익히고, 구 홈페이지 ‘리더스클럽’에서 동아리로 활동하는 방법을 익혔다. 구가 1월부터 4개 구립도서관과 14개 새마을문고, 지하철역 3곳에 U도서관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30만여권의 책을 언제 어디서든 대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춘 것이다. 박 구청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독서 동아리 붐이 일어나 4·19국립묘지, 솔밭공원, 북서울 꿈의 숲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책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두고 보세요. 3년 뒤면 명문학원 10개를 유치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을 테니까요.”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윌리엄 화이트는 조직철학자이다. 그는 1956년 불후의 명작 ‘조직인’(The Organization Man)을 남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 군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인간은 조직을 떠나 살 수 없다. 평생을 조직 속에서 살다가 조직의 일원으로 죽어간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조직에 매몰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수용하는 길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길이다. 화이트의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典型)이었다. 책이 출판될 당시 미국인의 삶의 모습은 조직인 그 자체였다. 미국 대중의 의식과 공감대를 형성한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1970년대에 들어와 로버트 실버맨과 헤밍은 ‘조직인에서의 탈출:전문인으로의 진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화이트의 조직인을 비판한다.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상일 뿐이며, 조직인으로서의 사고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역설한다. 실버맨과 헤밍에 따르면 전문인은 조직의 틀을 벗어나 활동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조직에서 일을 하지만 전문영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든다. 같은 전문인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하면 협의체를 만들어 함께 일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 대우가 좋지 않으면 전문인은 스스로 만든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그 조직을 떠난다. 전문인은 21세기에 들어와 창조적 전문인(creative professional)으로 진화한다. 전문지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전문가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의 도래를 주장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바로 그다. 그는 21세기에는 전 세계에서 1000만명 정도의 창조적 지식인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는 이들을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이라고 지칭한다. 조직인, 전문인, 창조적 전문인 같은 시대적 소명을 묘사한 인간관은 인사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시대를 이끄는 인재 발탁의 전범(典範) 역할을 하는 정부 인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야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보고 배우며, 민간 영역에서도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마디로 조직인의 인간상을 뛰어넘는 인사를 찾기 어렵다. 전문성보다는 지근거리 인물만 보인다. 전문성 없는 사람을 장관에 발탁하여, 공무원은 이들의 교육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 정치권은 더 한심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조직 내에서는 유력 인사에 맹종하는 인물만이 득세한다. 능력 있는 인물의 정치권 영입보다는 유력 인사에 줄서기 순으로 정치인 충원이 이루어진다. 정·관(政官) 인사가 이 정도이니 대한민국에 창조적 지식인이 설 땅이 너무나 좁다. 현 정부는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권력누수 현상도 정권 담당자가 자초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자성보다는 관료사회를 향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 현안, 부처 간 갈등, 혹은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에 적극 나서기 그리고 사정기관을 동원하여 공무원 기강잡기를 주문한다. 정실인사를 최소화하고, 실적 중심 인사를 해왔으면 권력 누수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든 정실은 다를지라도 실적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실인사가 다음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내년은 사계절 모두가 근래 보기 드문 정치의 계절이라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줄서기가 난무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전문성도 없는 인물이 줄서기 순에 따라 우수수 요직에 입성하고, 그로 인해 흔들리는 공직사회의 폐해가 눈에 선하다. 이것은 엽관제(spoils system)로서 1800년대 미국에서 존재했던 행정학의 고전적 사례이다. 그 유령이 5년마다 21세기 여기, 대한민국에서 출몰한다. 엽관제의 유령을 물리치는 퇴마사가 올 날을 기대해 본다.
  • 책愛 빠진 구청장

    책愛 빠진 구청장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강남 아주머니들보다 책을 들고 다니는 강북 아주머니가 더 아름답습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지난 4일 집무실에서 독서 동아리 모임을 열며 학부모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줄곧 주부들을 초빙해 독서 동아리의 필요성을 설파해 왔다. 책 사랑에 빠진 것이다. 4월 유치원 학부모들을 초청했고, 5월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를 중심으로 클럽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책벌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 주부들을 매일같이 만나 독서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하버드대에서 가장 성공한 중퇴자 빌 게이츠가 대학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을 읽어 세상에 빨리 나가 그 지식들을 사회에 접목하고 싶었다고요.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책 읽는 아이는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고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립율곡어린이집과 해맞이어린이집에 자녀들을 맡기고 있는 주부들로 구성된 독서 동아리 회원 11명은 구청장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받아 적었다. 박 구청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박 구청장은 경청하는 주부들이 따분해할까 봐 배려도 잊지 않았다. “내 말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감잎차와 방울토마토를 맘껏 리필해 즐기세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책을 즐겨 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TV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3년만 TV 대신 책을 가까이해 자녀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길러 주길 바랍니다.”  박 구청장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께 뭘 배웠니’라는 질문보다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질문하려면 자연스럽게 예습과 복습을 하고 성적도 덩달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책 읽는 습관에 따라 교육도 승부가 날 것”이라며 “독서 동아리가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종심(33·송중동)씨는 “구청장을 가까이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집무실에서 독서 모임을 하니까 막연했던 자녀교육에 대한 확신이 서는 느낌”이라며 “구청장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부들을 만나는 열정을 보니 믿음이 간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은숙(37·송천동)씨 또한 “명문학원도 없어 아이들이 크면 강남으로 이사갈까 고민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직접 확인하니 속이 후련하다.”면서 “열심히 활동해 아이를 지혜롭게 키우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구청장과 대화를 마친 주부들은 U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 스크린으로 익히고, 구 홈페이지 ‘리더스클럽’에서 동아리로 활동하는 방법을 익혔다. 구가 1월부터 4개 구립도서관과 14개 새마을문고, 지하철역 3곳에 U도서관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30만여권의 책을 언제 어디서든 대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춘 것이다.  박 구청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독서 동아리 붐이 일어나 4·19국립묘지, 솔밭공원, 북서울 꿈의 숲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책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두고 보세요. 3년 뒤면 명문학원 10개를 유치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을 테니까요.”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박찬구 국제부 차장

    묵묵히 제 임무를 처리하던 병사였다. 전역을 한 해도 채 남겨놓지 않은 그해 늦여름, 그는 느닷없는 굉음 속에 헬기로 후송됐다. 대인지뢰를 밟았다. GOP 철책선 너머에서 철조망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병사의 바로 옆에서 철조망을 끌던 중대장의 하계 전투복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육사 출신 대대장의 일성은 이랬다. “죽었어, 살았어?” 한 해를 훨씬 넘긴 뒤 민간인통제구역 바깥에서 그를 만났다. 묵묵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간혹 애써 짓는 미소와 음식점으로 걸음을 옮길 때 규칙적으로 무너지는 오른쪽 몸이 생경했다. 대인지뢰는 그의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앗아가 버렸다.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대인지뢰는 우리 측 공병이 북측의 남침에 대비해 설치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여름철 빗물에 유실됐다고 했다. 인간이 발명한 무기 가운데 대인지뢰만큼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것은 없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목숨을 앗아가기보다 병사에게 중상을 입혀 다른 병사로 하여금 부축하게 만드는, 그래서 전투력을 곱절로 저하시키는 무기, 그것이 대인지뢰다. 총과 총을 맞든 전쟁터라면, 어떤 무기인들 못 쓰겠냐고 할 수 있다.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 나와 우리의 가족을 겨냥한 대인지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비인간적인 살상무기에 대한 경종이 울릴 만큼 울린 21세기에 말이다. 모하메드 투르고멘. 54세. 25년 전 그는 리비아 군대에서 폭발물 처리반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리비아 서부 지역에서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투르고멘은 리비아군과 반군이 치열하게 대치한 미스라타 교외에서 대인지뢰 550여개를 찾아냈다. 낙타가 지뢰를 밟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낙타의 불운으로 리비아군의 가장 큰 지뢰밭을 찾아낼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금속탐지기는 소용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뢰였다. 투르고멘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당구 막대기를 사용해 지뢰를 하나 둘 탐지했다고 한다. 그러곤 경고 팻말을 남겼다. 흥밋거리로 넘길 수 없는 얘기다. 투르고멘은 “플라스틱이라니, 이전에 못본 지뢰들이다. 어린이와 가족들이 이 땅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라고 몸서리를 쳤다. 알자지라는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대인지뢰의 설치가 대다수 국가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도 발끈했다. 카다피군은 로켓 발사기에 반군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지뢰를 매설했다고 한다. 인간의 야만성, 전쟁의 몰가치성은 어디까지 흐르는 것일까. 알자지라를 읽어내려가다 1980년대 후반 한반도 중서부 지역 전방 부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대인지뢰가 지닌 야만성, 그리고 그 대인지뢰가 21세기 중동에서 민간인을 타깃으로 작심하고 있었다는 섬뜩함 때문이었을 테다. 리비아에서는 클러스터 폭탄을 만지작거리다 두 팔을 잃은 어린이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지난해 오슬로 조약으로 사용과 제조가 금지됐지만, 리비아에서 이 폭탄은 리본까지 단 채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한다. 시공(時空)에 따라 전쟁은 이상과 가치를 발현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반(反)파시스트 의용군에 참여한 경험을 담아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니, 어떤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을 멸하는 것이다. 그러니 묻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사람과 세상을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인류와 이상을 살리기 위한 전쟁을, 실천적 지식인이 뛰어드는 전쟁을, 헤밍웨이는 장편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인지뢰와 클러스터 폭탄이 난무하는 땅, 리비아에서는 야만의 전쟁, 전쟁의 야만을 뺀다면 무엇이 카다피를 기억할 것인가. 무고한 어린이와 민간인의 주검 위에서, 과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릴 것인가. ckpark@seoul.co.kr
  • 김정일 “정보전부대는 내 배짱이고 예비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지난해와 올해 우리나라 대형 사이트들에 대해 사이버테러를 일으킨 북한 정보전 부대에 대해 “핵무기와 함께 나의 배짱이고 예비대”라고 격찬한 것으로 28일 알려졌다. NK지식인연대 김홍광 대표는 29일 서울 전쟁기념관에서 한국군사학회와 국방소프트웨어 산학연합회가 주최하는 ‘북한의 사이버전 능력과 한국의 사이버전 태세’라는 주제의 세미나에 발표할 논문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김 대표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지난 2009년 중순 북한군 장령(장성) 간부 강연회에서 정찰국 121소의 해킹 업적을 보고받으며 “현대전쟁은 기름(석유)전쟁, 알(탄약)전쟁으로부터 정보전쟁으로 바뀌었다.”면서 “단 한명도 다치지 않고 제국주의를 한 방에 궁지에 몰아넣었다. 정보전부대는 핵무기와 함께 나의 배짱이고 예비대”라고 역설했다. 이와 함께 김 대표는 북한군이 작년 정찰총국 예하의 사이버부대인 121소를 ‘121국’으로 승격하고 사이버전 병력을 500명에서 지난해 이후 3000여명으로 확대했다고 주장했다. 오이석기자 hot@seoul.co.kr
  • [씨줄날줄] 킬링 필드/박홍기 논설위원

    ‘서로 죽이고 죽는 일도, 종교도 없이,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꿈꿔 보세요.’ 존 레넌의 대표곡 ‘이매진’(Imagine)이 흐른다. 캄보디아 현지인 기자 디스 프란이 생활하는 태국 국경의 수용소에 미국인 기자 시드니 쉴버그가 찾아온다. 둘은 눈물의 포옹을 한다. 프란은 캄보디아가 크메르루주 정권에 넘어간 뒤 쉴버그와 헤어져 모진 고문을 겪다 ‘죽음의 들판’을 지나 탈출했다. 1984년 제작된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 필드’(The Killing Fields)의 마지막 장면이다. 킬링 필드는 크메르루주가 저지른 대학살로 생긴 집단 무덤이다. 500개가 훨씬 넘는다. 때문에 영화 제목도 ‘Fields’ 복수형이다. 영화는 1980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쉴버그의 ‘디스 프란의 생과 사’를 각색, 국경과 인종을 뛰어넘는 우정과 인간애를 다뤘다. 그러나 영화는 어디까지나 영화일 뿐이다. 크메르루주의 야만과 광기를 다 담지도, 표현할 수도 없었다. 태국과 라오스 영토를 지배했던 앙코르와트의 영광을 구현했던 크메르 제국의 후예를 자처한 크메르루주는 1975년 집권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자급자족형 농경공산주의, 지상낙원의 건설을 기치로 내걸었다. 부르주아라고 분류될 수 있는 지식인과 전문직·기술자층은 모두 죽였다. 가운데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였으면 펜을 많이 쓴 사람이라는 이유로, 손이 깨끗하면 노동자 계급이 아니라는 이유로 잔인하게 학살했다. 얼굴이 희다고, 안경을 썼다고,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여자든, 아이든 가리지 않고 만행의 대상이 됐다. 비명소리를 덮으려고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기도 했다. 인간이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없었다. 1979년 베트남 침공으로 붕괴될 때까지 최소 200만명이 처형되거나 질병과 영양실조 등으로 사망했다. 전 인구의 4분의1이다. 20세기 최악의 학살극 중 하나다. 킬링 필드의 핵심 전범 4인이 어제 32년 만에 크메르루주 전범재판소(ECCC) 법정에 섰다. 정권의 서열 2위였던 누온 체아를 비롯, 이엥 사리 전 외무장관과 부인 이엥 티리트 전 내무장관, 키우 삼판 전 국가주석 등이다. 수괴 폴 포트는 1998년 사망했다. AP통신은 “독일 나치 전범들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받은 재판”이라고 규정했다. 희생자들의 한을 풀어주고 ‘반인륜 범죄’가 재발하지 않도록 단죄해야 할 역사적 당위성을 가진 세기의 재판이다. 평화를 갈구하는 존 레넌의 노래처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박홍기 논설위원 hkpark@seoul.co.kr
  • 공화 ‘다크호스’ 바크먼 출사표

    미국 공화당의 내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미셸 바크먼(55·미네소타) 하원의원이 출사표를 썼다. 지역구인 미네소타 대신 자신의 고향인 아이오와주 워털루를 대장정의 출발지로 삼았다. 아이오와는 내년 2월 공화당의 첫 당원대회(코커스)가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보수 유권자 단체인 티파티와 기독교 보수파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바크먼 의원은 27일 워털루에서 열린 대중집회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4년 더 미국 경제를 맡겨 둘 수 없다.”고 오바마 정권에 각을 세우며 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오바마는 단임 대통령에 그칠 것”이라며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오바마의 대항마로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바크먼 의원은 지난 25일 아이오와주 공화당 코커스에 참석할 것으로 예상되는 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22%의 지지를 얻으며 23%로 1위를 차지한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를 1% 포인트 차이로 추격, 돌풍을 예고한 바 있다. 바크먼 의원은 지난 1월 조사에서는 35%를 얻은 롬니 전 주지사를 훨씬 밑도는 5%를 얻는데 그쳤었다. 특히 지난 13일 공화당 대선주자 7명이 참석한 뉴햄프셔 토론회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선명하고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데 성공, 롬니 전 주지사와 함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여론조사 선두를 달리는 롬니 전 주지사가 중도적인 색채를 지니고 있다면, 바크먼 의원은 보수진영의 대안으로서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바크먼 의원의 지지율이 미 전국 조사에서는 10%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성공적인 첫 토론으로 세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를 능가하는 다크호스로 떠오르는 데 성공했다고 전하고 뉴햄프셔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지에서의 출정 캠페인을 통해 전국 지지율을 끌어올리려 한다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라이벌로 꼽히는 페일린이 대중적이지만 지식인 계층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점을 빗대어 바크먼을 ‘지적인 페일린’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4)어린이 동화작가 안데르센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4)어린이 동화작가 안데르센

    여기 세 명의 소녀가 있다. 첫 번째 소녀는 도끼를 든 사형집행인에게 이렇게 간청한다. “이 두 발을 잘라주세요!” 그녀는 빨간 구두를 신은 제 두 발이 깡충깡충 춤추며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보아야 했다. 두 번째 소녀는 새해 아침에 눈밭에서 얼어 죽은 채 발견되었다. 밤새 성냥을 켜 언 몸을 녹이려 했으나 역부족. 따뜻한 난로와 잘 구워진 거위 요리, 죽은 할머니의 환영을 보던 소녀는 앉은 채로 숨이 멎었다. 마지막 소녀는 물거품이 되어 사라졌다. 혀를 자른 대신 두 다리를 얻었지만 끝내 왕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9세기 당시에도 그랬듯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겠지만, 그의 동화가 아이들에게 적합한지 묻는 이들은 아주 많다. 아이들에게 읽히기에는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구슬프지 않은가 ? 아니, 애초에 안데르센의 동화는 정말 어린이를 위한 글이었을까? ●못생기고 배운 것 없이 배우의 길로 “한데 저 커다란 오리 좀 봐. 정말 이상하게 생겼네. 저 오리하고는 함께 어울리기 싫은걸.” 덴마크의 시골 오덴세에서 구두수선공 아버지와 세탁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안데르센은 열네 살 되던 1819년 코펜하겐으로 상경한다. 당시 교양인들의 관심사는 예술과 문학이었고, 특히 코펜하겐 중산층의 오페라와 연극에 대한 관심은 지대했다. 안데르센 역시 당시 흐름대로 배우의 꿈을 품고서 무작정 상경했던 터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배우로서의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것이 첫 번째 걸림돌이라면, 그보다 더 심각한 걸림돌은 볼품없는 외모였다. 안데르센 자신이야말로 한 마리 ‘미운 오리 새끼’였던 것이다. 배우의 꿈을 접고 그가 만약 오덴세로 돌아갔다면, 우리는 ‘빨간 구두’나 ‘성냥팔이 소녀’를 읽는 행운을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자신의 상상력과 시적 재능으로 무언가 해 볼 것이 있다고 여겼다. 마침 코펜하겐에서 문학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었다. 영국이나 프랑스 등 다른 유럽 국가의 지식인들이 정치와 혁명에 열을 올리는 사이 덴마크 지식인들이 집중할 거리는 예술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못생기고 배운 것 없는 미운 오리도 코펜하겐의 예술과 문화에 동참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만만치 않았다. 발표한 글마다 혹평을 받아, 칭찬에 굶주린 그에게 두고두고 큰 상처가 되었다. 또한 출세작 ‘즉흥시인’이 조국 덴마크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인기를 누린 탓에 안데르센은 덴마크가 자신에게 모종의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여기기까지 했다. 그러나 이는 절반의 진실이다. 사실 코펜하겐에는 보잘것없는 저 어린 남자를, 그저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후원하고 기다려 준 이들 또한 많았기 때문이다. 안데르센은 좋은 선생을 추천받았으며, 학교에도 새로 입학할 수 있었다. 이러한 인복에 힘입어 그는 ‘외다리 주석 병정’처럼 녹아 사라지지 않고 길이 남을 동화들을 써낼 수 있었다. ●주목받지 않으면 못 배기는 성격 “당신은 이제 사람이 아닌 그림자처럼 보이는군요.” 동화를 쓰면서 승승장구하던 안데르센은 41살이 되던 해 자서전을 쓰기 시작한다. “내 인생은 멋진 이야기다. 행복하고 온갖 신나는 일로 가득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책의 제목은 ‘내 인생의 동화’. 그는 자기 삶을 동화로 만들고자 했고, 이에 사건의 연대를 바꾸고, 자신의 천재성과 순수성을 과시하는 데 자서전의 절반 이상을 할애했다. 그뿐이 아니다. 저명한 40대 작가가 쓴 이 자서전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유명 인사들의 호의와 환호에 흥분하는 아이의 모습이다. 어떻게 보면 안데르센의 빼어난 동화들은 이처럼 그의 아이 같은 성격에 빚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어느 식사 장소에서든 나오는 요리를 가장 먼저 대접받지 않고는 못 배겼고, 어느 자리에 가도 자신이 에스코트 받는 게 마땅하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곧잘 토라지고 상처 받았다. 그런 면에서 안데르센은 영원한 아이다. 그리고 그 자라지 않은 마음이야말로 그의 동화의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아이의 시선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말하는 사람이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떼쓰는 마음, 미친 듯이 질투하는 마음…. 10년에 한 번꼴로 자서전을 발표한 것도 자기 모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의 산물이었다. 총 세 권의 자서전 속에서 보이는 그의 모습은 한결같이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과시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이 또 하나 있다. 첫 번째 자서전이 거의 마무리되던 즈음 안데르센은 그림자를 잃어버린 남자를 둘러싼 짧은 동화 ‘그림자’를 쓰기 시작한다. 작품 속에서 그림자는 어느 날 성공해서 남자 앞에 나타나고, 차차 주객이 전도되어 남자가 오히려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고 만다. ‘이봐, 친구. 이제 난 이 세상에서 남부럽지 않은 행운과 권력을 갖게 되었어. 그래서 널 위해서 뭔가 특별한 것을 해 주려고 해. (…) 대신, 사람들이 널 보고 그림자라고 부르게 하겠어. 그리고 네가 한때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절대로 말해선 안 돼. 1년에 한 번씩 내가 햇살이 비치는 발코니로 나가 앉아 있을 때 넌 내 발 아래 누워 있어야 해. 예전에 내가 그림자였을 때처럼 말이야.’ 바야흐로 그림자의 역습. ‘그림자’의 안데르센이 ‘내 인생의 동화’의 안데르센에게 제대로 한 방을 먹인 셈이다. 작품 속에서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게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던 것처럼, 수많은 독자를 거느린 안데르센 역시 자기가 과시하는 명성과 사랑이 모두 허구임을 눈치채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동화는, 안데르센 자신도 모르는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인어공주 등 안데르센 동화의 불편한 진실 인어 공주의 목소리는 다른 형상들의 목소리와 같이 천상의 소리처럼 맑고 투명했다. 땅 위의 음악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그 소리를 흉내낼 수는 없었다. 안데르센은 애초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쓴 게 아니었고, 동화작가로 분류되는 것조차 꺼렸다. 때문에 1835년 ‘어린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첫선을 보인 그의 동화집은 훗날 단순하게 ‘동화집’이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그는 어린이에게 줄 교훈 따위에 관심이 없었고, 어디까지나 자신을 위해, 자신의 고통을 쓰고자 했다. 몇몇 일화들 속의 안데르센은 마치 하루의 긴 시간 내내 홀로 방치된 애완견 같다. 강아지는 너무 외롭고, 그래서 귀가한 주인 앞에서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주인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 하게 된다. 감정이 풍부한 안데르센은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한 후에도 여전히 눈치가 없었고 과장된 언행을 일삼았다. 그래서 찰스 디킨스는 진절머리를 냈고, 그의 구애를 받은 여성들은 질겁하며 달아났다. 안데르센은 죽는 날까지 끝내 연인이나 가정을 얻지 못했다. 그의 이런 모습들이 여러 동화들 속에 편재해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연약하고, 고독하고, 이룰 수 없는 욕망 때문에 괴로워하는 주인공들 모두가 그의 분신이다. 주목받고 싶어 하고, 그만큼 늘 배고픈 안데르센들. 때문에 안데르센의 동화는 꿈 많은 아이가 보는 세상처럼 환상적일 수 있었으며, 갈망하고 떼쓰는 아이가 겪는 세계처럼 비극적일 수 있었다. 물거품이 된 인어공주는 영원한 영혼을 갈망하고, 그래서 지금도 우리 인간이 들을 수 없는 아름답지만 슬픈 목소리로 노래한다. 디즈니가 새로 창조한 인어는 왕자의 사랑을 얻고 행복을 누린다. 그러나 이 세계란 그렇게 만만치 않은 곳임을 안데르센은 감추려 하지 않았다. 그의 동화가 세상에 나오고서야 사람들은, 세상은 고통에 차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구원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임을 동화를 통해 절감할 수 있었다. 이를 몸소 보여 준 것이 안데르센 자신이다. 그는 세계란 제 뜻대로 되지 않고 인간은 소망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오직 동화를 통해서만, 허둥대고 어처구니없는 짓만 골라 하는 얼간이 안데르센이 아니라 차분한 목소리로 자기 고통과 슬픔을 호소하는 작가 안데르센이 될 수 있었으니까. 그는 어린 아이 같은 자신을 위한 글쓰기에서 시작해, 사랑받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아파하는 모든 이를 향해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동화를 쓴 사람이다. 안데르센이 허영에 차 있고, 고독하고,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는 남자였던 것은 사실이지만, 바로 그런 남자였기에 지금 우리는 기이하고 매혹적인 157편의 동화를 읽는 행운을 누리는 것이리라. 안명희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北, 해커 600명 해외파견… 사이버戰 올인”

    최근 북한이 600명의 해커들을 해외에서 비밀리에 운용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북한 자동화부대에서 해커로 활동했던 탈북자 장세율씨는 24일(현지시간)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가장 최근에 들은 정보에 따르면 600명의 북한 해커들이 300명씩 2개팀으로 나뉘어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럽 파견팀은 나토국가 공격 임무” 장씨는 북한의 총참모부 정찰총국이 해커들을 단순 프로그래머로 위장해 중국과 러시아, 유럽으로 파견하고 있다고 전하고 이들의 임무는 할당받은 지역들을 겨냥한 공격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장씨는 “유럽으로 파견된 해커들의 임무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국가들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외에 파견된 해커들은 1~2년마다 귀국하면서 순환근무를 하고 있다고 장씨는 덧붙였다. 하지만 해커들이 배치된 유럽 국가들이 어디인지는 언급하지 않았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알자지라는 장씨의 말을 인용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이버전을 준비하기 위해 엄청난 돈을 쏟아붓고 있으며, ‘최고 중의 최고(해커)’를 양성하기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새로운 컴퓨터 프로그램이 나올 때마다 자신이 양성한 해커들에게 이를 연구시키기 위해 프로그램을 사들이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장씨는 북한의 사이버테러 요원의 산실로 알려진 미림대학 출신으로, 2008년 탈북해 현재 인민군 출신 탈북자로 구성된 단체인 ‘북한인민해방전선’을 이끌고 있다. 알자지라는 또 탈북지식인들의 모임인 ‘NK지식인연대’의 김흥광 대표와의 인터넷전화 인터뷰에서 “지난해 500명 수준이던 해커 요원들의 수가 3000명 이상으로 늘었고, 이들은 북한 내부와 중국, 러시아 등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밝혔다고 전했다. ●해커에 주택 제공·해외여행 특혜 알자지라는 해커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으면 그 부모가 평양에 거주할 수 있는 특혜를 누리게 되며, 기혼 해커에게도 평양에 있는 공동주택이 제공된다고 보도했다. 또 이들은 인터넷에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지만, 김 위원장은 대부분의 해커들이 조국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에서 해커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한 김 대표는 “이들은 노동당에 대한 충성심을 갖고 있으며, 일정 수준의 생활이 보장되고, 거주와 해외 여행의 기회까지 주어진다. 엘리트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하다.”고 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中신예들이 그린 자본주의 明暗

    中신예들이 그린 자본주의 明暗

    중국 현대 미술의 최근 경향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다음 달 21일까지 서울 삼성동 인터알리아에서 열리는 ‘눈부신 윤리학’전이다. 리천(48), 펑정지에(43), 종비아오(43), 인자오양(41), 관용(43) 등 ‘차세대 블루칩’으로 꼽히는 중국 작가 5명의 작품이 나왔다. 전시 제목에 급속한 고도성장 속의 중국사회 명암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눈부시게 성장하고 있지만, 그 눈부심 때문에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면을 들춰 보자는 취지다. 초점은 이념적 긴장이나 갈등보다는 조금 더 현실 묘사쪽으로 선회한다. 중국 문학에서도 마오쩌둥, 문화대혁명, 천안문을 이제 그만 ’팔아먹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상흔문학에 대한 비판이 많은 실정이다. 마찬가지로 미술도 중국만의 특수성보다 자본주의적 보편성을 강조하는 방식이다. 이는 최근 보석으로 풀려난 반체제 예술가 아이웨이웨이에 대한 생각해서도 드러난다. 서구 예술가들은 한동안 “프리 아이웨이웨이”(아이웨이웨이에게 자유를)를 입에 달고 살았지만 정작 종비아오는 “자유라는 건 너무 추상적”이라면서 “절대적 자유란 없고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말했다. 일견 무심해 보이는 듯한 태도다. 서구 지식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을 부각시키기보다, 조금 더 중국적인 부분으로 선회한 것이다. ‘초상’ 시리즈로 유명한 펑정지에의 작품이 그렇고, 중국의 도가적 풍모를 조각으로 드러낸 리천의 작품도 그렇다. 현대적 중국의 풍경을 환상적으로 그려낸 종비아오도 마찬가지다. 예외가 있다면 책이 잔뜩 쌓인 서가 풍경을 묘사한 관용과, 마오쩌둥과 천안문을 회전기법으로 표현한 인자오양 정도다. 마오쩌둥과 천안문을 그렸다곤 하지만 인자오양의 최근작은 군중을 묘사한 ‘디퓨전’이다. 그렇다면 남는 이는 관용이다. 관용 스스로는 책을 많이 그린 것에 대해 “서구 평론가들은 책과 다르게 움직이는 중국 지식인에 대한 얘기라고 말하고 싶어하지만, 맞다 아니다라고 말하기 전에 책이 많은 것은 개인적으로 나에게 친숙한 일상적 풍경의 디테일이란 점을 말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02)3479-0114.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우리구 의회 소식

    ●중구의회(의장 김수안) 김수안 의장은 22일 정동 사랑의 열매 대강당에서 열린 ‘나눔리더스클럽’ 발족식 행사에 창립 회원으로 참석했다. 나눔리더스클럽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지역사회 나눔문화 확산을 위해 결성한 모임이다. 김 의장은 1998년부터 13년간 의정활동비를 사회에 환원하는 등 봉사와 기부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광진구의회(의장 김수범) 김수범 의장이 2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신지식인협회 선정 ‘제17회 신지식인상’을 수상했다. 대기업 임원 출신인 김 의장은 폭넓은 경험에서 나온 다양한 주제로 지역단체와 공무원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등 지식봉사를 실천한 공을 인정받았다. ●종로구의회(의장 오금남) 지난 17일 한우리홀과 구청 광장에서 열린 어린이집연합회 알뜰바자회에 참석했다. 구립 어린이집연합회 주관으로 개최된 바자회에는 주민 1000여명이 참여해 기증받은 각종 생활용품과 재활용품 등을 판매·교환했다. ●강남구의회(의장 조성명) 지난 17일 뜻밖의 화재로 삶의 터전을 잃은 개포동 재건마을 주민들을 방문해 위로하고, 속옷과 컵라면 등 생활필수품을 전달했다. 현장을 찾은 의원들은 화재 현장을 살펴본 뒤 주민들을 만나 피해상황을 듣고, 요구사항을 경청해 구청에 전달했다.
  • 서구의 제국주의보다 日제국주의가 낫다고?

    서구의 제국주의보다 日제국주의가 낫다고?

    ‘천황 vs 교황’. 시오노 나나미가 써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로마인 이야기’를 압축할 수 있는 키워드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선 신의 수가 팔만이라고 한다. 일일이 헤아려서 팔만이 아니다. ‘오만’군데서 압력이 들어왔다는 말처럼, 팔만은 엄청 많다는 뜻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하기 이전의 로마에서 바로 다신교 사회의 일본을 읽어내려 했다. 로마가 유일신 교리를 펼치는 기독교를 채택함으로써 다민족 다국가를 한데 어우르는 제국에 걸맞은 포용력을 스스로 잃어버렸다고 본다. 이는 대동아공영권의 주요 논리 가운데 하나다. 편협하고 독단적인 일신교 교황에 맞서 넓은 가슴을 가진 다신교의 천황 품에 안기라는 논리다. 서구 제국주의보다 일본 제국주의 지배가 더 낫지 않으냐는 얘기다. ●카이사르 지도력 중시… 지식인 희화화 그런 관점에서 그리스로마사 전공자인 김경현 고려대 사학과 교수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분석한 글을 계간지 ‘철학과 현실’에 실었다. 구체적으로 1~5권까지를 요약 정리한 ‘또 하나의 로마인 이야기’를 분석대상으로 삼은 ‘우리에게 로마사란 무엇인가’라는 글이다. 김 교수는 시오노 나나미가 해석한 로마사를 ‘현실주의, 성공제일주의, 영웅주의, 결과주의, 엘리트주의, 권력지상주의, 반지성주의’로 요약했다. 그렇기에 ‘로마인 이야기’가 한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 수 있는 이유는 “신자유주의가 풍미하기 시작한 1990년대 이래 우리 사회의 풍토에 걸맞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로마사 전공자의 입장에서 “로마의 흥기가 주는 역사적 교훈을 시오노 나나미처럼 우악스럽게 다룬 예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그 유례가 없다.”고 혹평했다. 왜 이런 결론에 도달했을까.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의 고독하지만 영웅적인 지도력을 중시하다 보니 지식인 키케로와 브루투스를 희화화하고 민중은 언제나 영웅추종적인 단일 유기체로 취급한다. 이는 독재에 대한 변호와 민주주의에 대한 유보와 통한다. 쉽게 말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 추종자를 떠올리면 된다. 시오노 나나미의 언급은 더 직접적이다. “지식인은 시대에 대한 통찰력은 우수하나 구체적 제안은 없다.”거나 “독재자가 민중을 무시한다고 하지만 사실 어중간하게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민의 같은 것에 신경쓰지 않는다.”거나 “자신은 확실한 비전이 없으면서 타인이 하는 일에는 큰소리로 비판한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다.”라고 주장한다. ‘로마인이야기’는 일본판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인 셈이다. ●‘로마 경계선 구상’ 역사적 근거 없어 김 교수는 조금 다르게 묻는다. 그렇다면 제국 로마의 팽창은 다른 이민족들엔 어떤 의미였는가. 이는 김 교수 표현대로 “일본 제국주의 침탈을 받아야 했던 우리에겐 좀 더 피부에 와닿는 질문”이다.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은 “침략 욕구와 영토 욕구를 위해서 행해진 것이 아니라 로마의 안전을 확립하기 위한 전쟁”이었다. 동시에 로마의 정복전쟁으로 말미암아, 그로 인해 전파된 로마의 앞선 문명으로 말미암아 후대 유럽의 기틀이 놓였다고 본다. 김 교수는 일단 카이사르가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로마제국의 경계선으로 생각하는 원대한 구상을 가졌다는 시오노 나나미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다. 로마 국내 진공을 위해 갈리아 지역을 제패할 필요가 있었던 카이사르의 야심을 미화하려다 보니 나온 억측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이런 추측 자체가 아시아 대륙에서 일본을 향해 툭 불거져 나온 조선반도가 위협적이기 때문에 자국의 안전을 위해 한국을 침탈했다는 일제의 ‘조선 팔뚝론’과 닮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일제는 한국과 중국과 동남아를 자국의 안전을 위한 경계선으로 확정하려는 원대한 구상 아래 제국 확장 정책을 지속했고, 그렇기에 한국, 중국, 동남아의 오늘날이 있게 되었던가. 그렇다면 이제 자국의 안전을 위한 방위선 확정 계획은 뭐든지 찬사를 받아야 하는 행동인가. 김 교수는 여기서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일본이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꿈꾸었듯이, 중국이 동아시아의 영구적 평화를 명분으로 대국화를 꾀한다면 역시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 당연히 그럴 턱이 없다. ‘내가 하면 어쩔 수 없는 자위행동이요, 네가 하면 제국주의적 침략 야욕’인 셈이다. 김 교수는 이를 일러 “제국주의에 대한 이런 이중 기준은 대개 제국주의자들이 공유하는 속성”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김 교수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사에 대해 비판하는 지점을 보면, 한국현대사를 ‘영광의 역사’로 다시 조명하자는 우익 진영의 움직임이 연상된다. ‘사실에 기초한 역사 연구’를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그 밑바닥에는 성공의 사다리 높은 곳에 앉아 ‘맞아, 저 시절 우린 국가를 발전시켰지.’라며 뿌듯해하는 ‘한국인 이야기’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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