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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北 군대·경찰·보위부도 식량난 허덕 국제사회 원조 취약계층 전달 안 돼”

    “北 군대·경찰·보위부도 식량난 허덕 국제사회 원조 취약계층 전달 안 돼”

    #1 김정일 총서기나 요직에 있는 사람들의 경호 전문부대인 호위사령부의 장교를 만나 물어보니, 하루 식량공급량은 옥수수 300g, 즉 한 끼에 100g이라고 한다. 이 정도의 양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영양실조가 걸리는 양이다.…어린 병사가 집에 와서 “얼마라도 좋으니 식량을 좀 달라.”고 빌어먹으러 와 놀랐다. “상관의 명령으로 집들을 돌고 있다. 먹을 것을 가지고 가지 않으면 맞는다.”고 했다. 이 10년 동안 1월에 이렇게까지 군대에 식량이 없었던 해는 없었다. (올 1월 평안북도) #2 병사들의 한 끼는 옥수수쌀 160g에 반찬이라고는 고체형 간장을 물에 푼 ‘말린 간장’뿐이라고 한다. 일반 부대에서는 한 끼에 옥수수쌀 130~140g과 소금물만 나온다고 한다. (2월 말 양강도 여단 지휘부 장교) #3 올 들어 배급이 한꺼번에 감소해 지난 3~4월에는 본인분 배급만 한 달에 10~15일분밖에 나오지 않았다. 탄광 노동자의 평균 식사는 한 끼는 옥수수밥, 나머지는 옥수수가루로 만든 국수나 죽이 전부다. 빈곤층은 하루 두 끼를 옥수수 죽으로 때우고 있다. (평안남도 순천지구 탄광) 군대, 경찰, 보위부, 우량탄광 종사자 등 북한의 이른바 ‘우선배급대상’도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어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해도 취약계층에까지 혜택이 돌아가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한 잠입취재로 유명한 일본 언론사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공동대표가 최근 세종연구소에서 열린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시마루 대표에 따르면 ‘우선배급대상’은 김정일·김정은 체제 유지를 위한 최중요 조직으로 군대, 경찰, 보위부, 당·행정기관의 간부, 지식인, 탄광·군수산업 등의 부양가족과 평양시민 일부로 북한 인구의 20% 정도를 차지한다. ‘우선배급대상’은 공동농장이나 기관에서 경작하는 농지 등을 통해 식량을 충족해 왔으나, 여기에서 식량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이시마루는 지적했다. 또 식량배급이나 급료도 거의 지급받지 못하고 있는 도시주민들, 즉 ‘배급두절그룹’도 전체 인구의 40~50%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원조를 호소하는 것은 우선배급대상 계층에 줄 식량이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으로, 국제사회가 식량을 지원하면 북한은 우선배급대상에게부터 나눠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정일 정권이 주민들에게 배급해야 할 국가보유 식량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지적한 뒤 “실제 시장에 가면 쌀, 옥수수, 밀가루, 돼지고기, 술 등 식량이 팔리고 있는데, 이는 민간소유 식량이 팔리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시마루는 이어 “식량지원이 취약계층에까지 전달되게 하려면 북한이 국제사회가 생각하는 ‘우선지원대상’을 수용하고, 한정된 식량이 약속대로 분배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반기문총장 ‘동해병기’ 각별한 관심 둘 듯

    반기문총장 ‘동해병기’ 각별한 관심 둘 듯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국제수로기구(IHO)의 동해 표기 문제와 관련, 역할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반 총장은 방한 이틀째인 10일 오후 국회를 방문, 박희태 국회의장 주최 오찬 및 ‘유엔 새천년 개발목표’(MDG) 포럼에 참석한 뒤 한나라당 이주영 정책위 의장이 “IHO에서 동해 표기가 일본해로 돼 있는데 최소한 동해(East Sea)와 병기되도록 각별한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하자 “잘 알았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阿 지원에 감사… MB 유엔총회 초청 반 총장은 박 의장과의 오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등을 계기로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이 욱일승천하고 있는 기분”이라며 “내가 사무총장 연임에 성공한 것도 이런 배경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반 총장은 또 “유엔이 모든 국제적인 일을 처리해 나가는 데 있어 (각국) 의회의 지원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면서 “기후변화와 에너지·물·식량 부족, 생필품 가격 앙등, 최근 벌어지고 있는 국제적인 경제위기 등을 처리하는 데 의회의 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이어 청와대를 찾아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환담하고, 만찬을 함께했다. 이 대통령은 반 총장의 재선을 축하하며 “나는 반 총장의 덕을 보고 있다.”고 덕담했다. 이어 “(반 총장은) 더 어려운 일, 헌신적인 일을 해야 한다.”면서 “유엔 사무총장이 앞장서 역할을 하고 대한민국이 역할을 하면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인식을 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평창올림픽 유치의 중심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솔선수범 리더십이 있었다.”고 화답했다. 반 총장은 우리나라가 최근 동부 아프리카 가뭄에 신속한 지원을 한 데 감사를 나타내고, 경제발전과 민주화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 기여를 확대해 달라고 요청했다. ●UNGC에 많은 기업 가입 당부 반 총장은 앞서 오전에는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유엔 글로벌콤팩트(UNGC) 한국협회 주최로 열린 간담회에 참석, “유엔이 해결하고자 하는 세계 여러 문제를 풀어 가려면 기업인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윤리 의식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반 총장은 또 “오는 2020년까지 UNGC 회원 기업 수를 2만여개로 확장하고자 한다.”며 한국 기업의 많은 참여를 당부했다. 반 총장은 이어 교육과학기술부와 외교통상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2011 유엔 아카데믹 임팩트(UNAI) 포럼’에 참석, 국내외 대학 총장, 국제기구 관계자 등 300여명과 만났다. 반 총장은 개회사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처럼 지식인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면 세상을 더 지혜롭고 공평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유·성실·존중이라는 세 요소를 토대로 식량과 영양 안보, 지속가능한 개발, 인류 번영이라는 과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유엔과 정부, 학계와 교육계가 공동의 목표를 갖고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강조했다. 김미경·김효섭기자 chaplin7@seoul.co.kr
  • 조선은 왜 근대화 실패했나

    조선은 왜 근대화 실패했나

    ‘일본, 한국 병합을 말하다’(열린책들 펴냄)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이 “일본, 도대체 왜 이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논문집이다. 지난해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했던 일본의 진보적 학자들이 낸 19편의 글이 실렸다. 일본 잡지 ‘사상’(思想)에 ‘한국 병합 100년을 묻다’를 주제로 발간한 특집호와 뒤이어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을 번역한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논문은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의 ‘일본사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고리타분한 유교에 젖지 않아 우뚝 설 수 있었다는 ‘탈아론’(脫亞論) 자체를 겨냥한다. 미야지마 교수가 보기에 이는 거꾸로다. 유교에 젖지 않아 일본이 우뚝 설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유교 문화권이 아니어서 일본은 내내 주변부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서 추진한 사법개혁 작업을 한 예로 든다. 일본에 근대 민법과 상법을 도입한 법학자 우메 겐지로를 조선에 불러들였는데 그는 조선을 연구한 뒤 “소유권이라 할 수 있는 권리가 한국의 인민에게는 적어도 수백년 전부터 인정돼 왔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미개했던 일본은 서구문명 무조건 수용 쉽게 말해 우매한 조선에 한 수 가르쳐 주려 했더니, 조선은 이미 두세 수 앞서 가고 있더라는 얘기다. 조선은 어떻게 근대적 소유권 제도를 수백년 전에 이미 확립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그게 바로 (일본이 끝내 거부한) 유교문명권의 특징”이라고 답한다. 1871~1873년 메이지 정부가 단행한 일본의 근대 개혁 작업에 대해서도 미야지마 교수는 평가절하한다. 그때서야 일본에 도입된 호적·징병제도, 토지매매나 직업·이주의 자유, 군현제는 이미 조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추진했다는 근대적 개혁의 상당 부분은 조선에는 필요 없었다.”면서 “조선에 이미 있었고, 그 까닭은 유교 모델을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근대화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있던 조선이 일본에 역전당했는가. 미야지마 교수는 “서구와 일본에서 근대 들어 비로소 실현됐던 상당 부분이 조선에 이미 실현돼 있었다는 조건” 그 자체가 걸림돌이었다고 본다. ●유 교문명 앞섰던 조선은 비판적 수용… 日에 역전당해 즉 이미 어느 정도 그런 제도가 뿌리내리고 있다 보니 “근대적 변혁을 실시하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불명확해지고, 이로 인해 서구 문명 수용이 절실하게 인식되기 곤란해졌으며, 동시에 서구문명을 상대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 문명을 접한 조선·일본 양국 지식인이 남긴 기록을 보면 일본은 ‘매료’가 분명히 드러나는 반면, 조선은 ‘비판적 수용’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뒤집으면 워낙 밑천이 없었던 일본은 남의 것을 금세 주워 먹을 수 있었지만, 유교 문명권 속에서 오랜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전통을 지닌 조선은 가진 게 워낙 많아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한 사례로 “일본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정체”를 들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행을 계기로 사회제도적 차원에서의 진보가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서구적 전통을 근대화의 목표로 급속하게 수입한 것과 다소간 뒤틀림이 있고 전진과 후퇴가 있더라도 그 이전 사회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수용하는 것과의 차이라는 뜻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잘나가던’ 조선, 왜 일본에 역전당했을까?

     ‘일본, 한국병합을 말하다’(열린책들 펴냄)는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 학자들이 “일본, 도대체 왜 이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논문집이다. 지난해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했던 일본의 진보적 학자들이 낸 19편의 글이 실렸다. 일본 잡지 ‘사상’(思想)에 ‘한국병합 100년을 묻다’를 주제로 발간한 특집호와 뒤이어 열린 심포지엄 내용을 정리한 단행본을 번역한 것이다.  가장 눈길을 끄는 논문은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의 ‘일본사 인식의 패러다임 전환을 위하여’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고리타분한 유교에 젖지 않아 우뚝 설 수 있었다는 ‘탈아론’(脫亞論) 자체를 겨냥한다. 미야지마 교수가 보기에 이는 거꾸로다. 유교에 젖지 않아 일본이 우뚝 설 수 있었던 게 아니라 유교 문화권이 아니어서 일본은 내내 주변부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통감으로서 추진한 사법개혁 작업을 한 예로 든다. 일본에 근대 민법과 상법을 도입한 법학자 우메 겐지로를 조선에 불러들였는데 그는 조선을 연구한 뒤 “소유권이라 할 수 있는 권리가 한국의 인민에게는 적어도 수백년 전부터 인정되어왔다는 점은 의심할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  쉽게 말해 우매한 조선에게 한 수 가르쳐주려 했더니, 조선은 이미 두세수 앞서 가고 있더라는 얘기다. 조선은 어떻게 근대적 소유권 제도를 수백년 전에 이미 확립했을까. 미야지마 교수는 “그게 바로 (일본이 끝내 거부한) 유교문명권의 특징”이라고 답한다.  1871~1873년 사이 메이지 정부가 단행한 일본의 근대 개혁 작업에 대해서도 미야지마 교수는 평가절하한다. 그때서야 일본에 도입된 호적·징병제도, 토지매매나 직업·이주의 자유, 군현제는 이미 조선에 있었다는 것이다. 미야지마 교수는 “일본이 추진했다는 근대적 개혁의 상당 부분은 조선에는 필요 없었다.”면서 “조선에 이미 있었고, 그 까닭은 유교모델을 수용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렇다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근대화에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있던 조선이 일본에게 역전당했는가. 미야지마 교수는 “서구와 일본에서 근대에 들어 비로소 실현됐던 상당 부분이 조선에 이미 실현되어 있었다는 조건” 그 자체가 걸림돌이었다고 본다.  즉, 이미 어느 정도 그런 제도가 뿌리 내리고 있다 보니 “근대적 변혁을 실시하기 위한 과제가 무엇인지 불명확해지고, 이로 인해 서구 문명 수용이 절실하게 인식되기 곤란해졌으며, 동시에 서구문명을 상대화하려는 움직임이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구문명을 접한 조선·일본 양국 지식인이 남긴 기록을 보면 일본은 ‘매료’가 분명히 드러나는 반면, 조선은 ‘비판적 수용’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봤다. 뒤집으면 워낙 밑천이 없었던 일본은 남의 것을 금세 주워 먹을 수 있었지만, 유교문명권 속에서 오랜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전통을 지닌 조선은 가진 게 워낙 많아 움직임이 굼뜰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미야지마 교수는 이 문제는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한 사례로 “일본 민중운동과 시민운동의 정체”를 들었다. 한국은 1987년 민주화 이행을 계기로 사회제도적 차원에서의 진보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는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서구적 전통을 근대화를 목표로 급속하게 수입한 것과 다소간 뒤틀림이 있고 전진과 후퇴가 있더라도 그 이전 사회역사적 경험을 토대로 수용하는 것과의 차이라는 뜻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中 고속철도 건설 ‘브레이크’

    ‘속도전’ 양상으로 내달려온 중국의 고속철도 증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브레이크를 움켜 쥔 ‘기관사’는 성광쭈(盛光祖) 철도부장이다. 40명의 희생자와 200명 가까운 부상자를 낸 고속철도 추돌참사로 ‘철도부 해체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가운데 철도부 수장이 결국 ‘안전우선’을 요구하는 여론에 백기를 든 셈이다. 성 부장이 최근 열린 철도부 간부회의에서 “앞으로 고속철도를 포함한 신규 노선을 건설할 때 안전을 최우선 순위에 놓고 엄격하게 공기(工期)를 지키라.”고 지시했다고 4일 경화시보 등 중국 언론들이 보도했다. 성 부장은 “안전은 하늘과 같이 크고, 책임은 태산과 같이 무겁다.”면서 이같이 요구했다. 최근 몇 년간 중국은 마치 ‘대약진 운동’을 하듯 고속철도 건설에 매진해왔다. 지난 2월 부패 혐의로 낙마한 류즈쥔(劉志軍) 철도부장의 실적 욕심과 ‘세계 최고’에 도취된 최고 지도부의 묵인 속에 공기를 앞당겨 조기 개통하는 것을 당연시해 왔다. 지난 6월30일 개통한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도 원래 연말쯤 개통 예정이었지만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일(7월 1일)에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개통을 앞당겼다. 시공 도중에 ‘부실 콘크리트 타설’ 등의 우려가 제기됐고, 한달 여의 시험운행 기간이 턱없이 짧다는 지적도 나왔지만 누구도 조기 개통을 막을 엄두를 못냈다. 이렇게 무리하게 개통한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는 한달여 동안 크고 작은 고장으로 자주 멈춰서 전 세계의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베이징~상하이 고속철도의 잦은 고장과 원저우(溫州) 고속철도 추돌 참사 등으로 중국 내부에서도 팽창 위주의 고속철도 건설을 중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철도부 수장의 ‘공기 준수’ 선언이 나옴에 따라 중국 고속철도 노선의 확장 속도가 눈에 띄게 더뎌질 수밖에 없게 됐다. 철도부의 부채가 2조 위안(약 330조원)을 돌파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철도부 해체론’은 더 큰 힘을 얻고 있다. 중국 철도부는 7만여명에 이르는 자체 공안(경찰)과 16개 지방철도국, 2개의 직영 철도공사, 3개의 운수자회사, 신문사 등을 거느린 매머드 조직이다. 차관급 이상 간부가 9명, 전체 직원은 211만명이 넘는다. 지난 2008년 대부제(大部制) 정부개편 당시 항공, 육로교통과 함께 교통운수부에 통합될 예정이었지만 철도부만 살아남아 막강파워를 과시했다. 통폐합을 막은 당시 류 부장 뒤에 덩샤오핑과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인맥이 버티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원저우 참사를 계기로 건설도 스스로 하고, 감사도 자신이 하는 기형적 조직에서 부패와 부실이 싹텄다는 진단과 함께 이제는 ‘공룡 철도부’를 해체해야 할 때라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지식인들은 철도부 문제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철저하게 조사해달라는 청원을 제기해놓고 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열린세상] 우리나라 대학의 경쟁력/강대희 서울대 예방의학 교수

    지난주에 미국 동부에 위치한 명문 대학 몇 군데를 방문하였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세계 대학 순위 10위권 안에 드는 명문 대학의 경쟁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노벨상 수상자가 진행하는 강의, 수백만 권의 장서를 자랑하는 도서관, 일년 내내 캠퍼스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생들 간의 논쟁과 다양한 공연 등 대학이 자유와 진리의 전당임을 있는 그대로 보여 준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부의 미래’에서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은 분야 간 속도의 충돌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경제 발전의 속도를 사회 제도나 정책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시속 160㎞의 속도로 혁신을 거듭하고 있지만 정부와 관료조직, 대학은 50㎞도 안 되는 속도로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고 꼬집는다. 이런 속도의 차이는 결국 상호 충돌을 야기하고 변화와 발전의 흐름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고 지적하였다. 몇 달째 등록금 논쟁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대학의 현실은 어떠한가. 2010년도 우리나라 교육예산은 약 40조원 중에서 약 12%가 대학에 지원된다. 정부지원만 가지고는 건물 하나 제대로 짓기 어렵다. 하버드대의 대학발전기금은 35조원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전체 교육예산과 맞먹는다. 서울대학교 발전기금의 100배를 넘는다. 이렇게 모은 발전기금은 훌륭한 교수를 영입하고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는 데 사용한다. 동부 명문 프린스턴대는 2010년 전체 학부학생의 60%인 3000명에게 1300억원을 재정 지원하였다. 1인당 지원 액수는 평균 4000만원으로 학비 및 생활비의 약 80% 정도이다. 학생이 받는 재정지원은 학생 가정의 소득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예를 들어 가정 전체 소득이 일년에 7000만원이 되지 않을 때는 학비 및 생활비 전액을 지원한다. 특이한 사항은 가정형편이 학생 선발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배려하여 같은 조건에 있는 어려운 학생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장치해 놓은 것이다. 상위소득 가정에까지 반값 등록금을 주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학발전기금 모금의 주요 대상은 동문들이다. 거금을 기부하는 동문들의 공통점은 젊은 시절 대학에서의 경험이 본인의 현재 성공에 중요하게 기여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명문대학 학부교육은 매 학기 모든 강좌가 엄청난 분량의 읽을 거리와 과제 발표 등으로 학점을 따기가 힘들기로 유명하다. 혹독한 학문적인 단련과 더불어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감과 국가와 세계에 대한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대학시절에 끊임없이 가르친 결과라고 생각한다. 우리 대학생은 어떠한가. 입학 당시부터 취업이나 취직이 잘되는 인기학과에 학생들이 몰리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전공보다는 고시준비나 대기업 취직을 위한 스펙 쌓기와 학점관리에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보낸 대학생활이 향후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뻔한 일이다. 열린 세상을 향한 도덕적인 인간이 되기 위한 대학 교육의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명문대학의 또 다른 특징은 교수의 연구업적이다. 정년보장 트랙에 들어간 교수들의 연구는 치열하다 못해 처절하다. 정년보장을 받기 위해서는 양적인 성과 못지않게 질적인 우수성을 보여 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국내 명문 의대 교수 중에서 1년에 논문을 한편도 안 쓴 사람이 15% 정도라고 한다. 환자 진료와 임상 실습 교육에 시간을 많이 빼앗기는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교수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새로운 전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학 강의 또한 훌륭한 연구에 기반을 두었을 때 충실히 내용이 전달된다. 세계 유수 대학은 변화의 속도와 전쟁을 하고 있다. 미국 명문대학들은 우수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중국에, 아랍에 캠퍼스를 세우고 교수들을 파견하고 있다. 한국인 최초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에 임명된 다트머스대 김용 교수는 서울대학교의 법인화는 우리나라 대학의 새로운 모델을 보여 주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꼭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이 바로 국가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김문이 만난사람] 세계적 옻칠예술가 전용복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르네상스 시대에 제작된 최고의 명작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500여년 지난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도료나 아교 등으로 덧칠을 해 놓아 원래의 ‘모나리자 미소’를 잃은 지 오래다. 만약 무덤에서 다빈치가 일어나 그 모습을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아마도 장탄식을 하겠다. 좀 더 오래가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 것을 놓고 후회막급할 것이다. 여기서 잠깐, 고민하는 다빈치에게 우리 전통의 옻칠을 얘기해 주자. 1500년 전의 고구려 벽화나 700여년 전의 팔만대장경 글씨가 지금까지 온전하게 남아 있는 것을 예로 들면서 우리 조상의 옻칠에서 그 비결을 찾을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요즘 같은 첨단 과학의 시대에 그저 산에 나는 옻을 사용했다는 조상들의 지혜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이참에 제대로 보여 주고 싶다. 그만큼 옻칠은 나무의 결이나 그림을 고스란히 살려 주는 동시에 장구한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여실히 입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옻이란 무엇인가. 옻을 잘 모르는 사람도 ‘옻오리탕’ ‘옻닭도리탕’ 정도는 들어 봤을 것이다. 또 ‘옻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좀 더 전문적으로 알기 위해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은 옻칠 예술가 전용복(58)씨를 만나러 간다. 인터뷰에 앞서 유명한 일화를 떠올렸다. 지난해 7월이었다. 문화재청이 주최한 ‘전통공예의 산업화·세계화 심포지엄’에서 전씨는 직접 옻칠한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옻을 입힌 제기와 상, 장롱 등은 수없이 보았으나 손목시계는 처음이라는 점에서 확 주목을 끌었다. 그가 지금까지 만든 손목시계는 8억원과 3억원짜리 1개씩, 그리고 5000만원짜리 30여개. 4년 전 세이코 시계 회사의 주문을 받아서 시계 금박에 옻칠을 해 영원 불멸의 작품을 만들었던 것. 또 있다. 1991년 11월 13일. 도쿄 시내의 국보급 연회장인 메구로가조엔(1920년대 일본의 고급 문화를 담은 호텔, 연회장, 예식장으로 쓰인 복합 건물)이 오픈되는 날이다. 거기엔 이례적으로 태극기가 휘날렸다. 전씨가 3000여명에 달하는 일본 옻칠 장인들과의 경쟁에서 이겨 3년 만에 완벽하게 복원해 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60년 전 조선의 장인들이 나라 잃은 울분을 삭이며, 피와 땀을 흘렸던 과거의 한을 떠올리며 대역사를 재현해 내 일본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것이다. 미술관 엘리베이터나 사계절 산수화 등의 창작품에는 전씨의 이름 세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음은 물론이었다. 서울 화양리 네거리에 위치한 ‘전용복 옻칠예 아카데미’. 자리에 앉으면서 “옻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더니 “거봐요, 기자라는 사람이 저러니 참으로….”라고 야단부터 맞았다. “옻은 만년의 신비를 갖고 있습니다. 세 가지로 말할 수 있지요. 첫째, 옻칠은 지구상에서 그 어떤 물질보다 오래 생명력을 유지합니다. 둘째, 옻칠은 나무에서 추출한 수액이므로 자연 친화적이며 인체에 유익한 물질을 생성합니다. 셋째, 옻칠은 아름다움을 가장 오래도록 간직하게 해 줍니다. 옻칠만이 가지고 있는 신비스러움은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그런 수액을 제공하는 옻나무들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난 4월 중국 문화부 중외문화교류중심 초청으로 베이징에서 ‘전용복 칠화전’을 가졌다. 이때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은 축사를 통해 “신해혁명 100주년을 맞는 중국 땅에서 서양인들이 선망해 오던 칠공예를 아시아 문화 발신의 기점을 만든 전용복 선생에게 큰 기대와 함께 경의를 표한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일본에서 중국으로 걸어간 거대한 발자국이 드디어 대륙 땅에 찍히는 순간 옻칠은 다채롭고 찬란한 아침 햇살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일본에서 24년을 살면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그가 당당히 중국 문화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진 무대였으니 국내외에서 적지 않은 관심이 쏠렸다. 중국 문화부 관계자 뤼진은 “이번 전시는 만년의 빛이라는 테마로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전시회”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 전시를 얘기하는 전씨에게 요즘 무슨 일로 바쁜지 물었다. “서양 가구에 옻을 입히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바로크 양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지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옻칠을 갖고 우리의 생활공간에 어떻게 아름답게 접목할까 하는 것입니다. 4년 전부터 연구해온 것을 구체화하고 있지요. 한국의 전통 옻이 친환경적 소재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것입니다. 전씨는 또 “옻의 활용은 무궁무진하다. 옻을 이용한 작품 개발 등 순수 예술도 있지만 이제는 일반 서민들도 옻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대중화해야 한다.”면서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화에도 힘써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중요한 얘기를 하나 꺼낸다. 다름 아닌 오는 11월 세계 유네스코 이리나 보코바 사무총장이 방한할 때 세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전 세계 투어 전시회 협약을 맺기로 했다는 것이다. 유네스코 본부가 있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일대와 미국 남미 등에서 옻예술 전시회를 갖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우리의 전통 옻예술이 서양 세계를 향해 떠나는 최초의 길이라고 말했다. 그가 일본에서 귀국한 지 1년밖에 안 됐다. 소식을 듣고 한 수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이들 중 몇몇이 선발돼 ‘옻칠예 아카데미’에서 작품 활동을 같이 하고 있다. 수제자로 할 만한 사람은 15명. 전씨는 현재 세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다. 첫 번째는 창작 전시 작품, 두 번째는 주거공간에 쓰이는 생활작품, 그 다음에는 후진 양성을 위한 일이다. 그는 얼마 전 부산 영산대 석좌교수로 초빙을 받았고 올가을 학기부터는 이화여대에서 특강을 하기로 예정돼 있다. 최근에는 가구 회사인 바로크C&F와 협약을 맺어 서양 가구에 우리의 전통 옻을 입히는 작업에 주력하고 있다. “완성된 물건이 1만년 가는 것은 옻밖에 없습니다. 살균력이 좋고 전자파도 잘 흡수합니다. 이러한 장점을 활용해 산업 부문에도 적용할 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예술적 접목도 다양할 때가 됐지요. 젊은 작가와 젊은 디자이너, 그리고 우리 공예를 지켜온 사람과 결합해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실험작품을 내놓았다. 앞서 얘기한 옻칠한 금속시계뿐만 아니라 비올라·첼로 등 악기에도 옻칠을 했던 것. 특히 피아노의 경우 음향판에 옻칠을 했더니 소리가 무척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렇다면 완성된 물건에 옻은 어떻게 칠할까. 오묘한 색깔은 어떻게 빚어낼까. “옻나무 수액을 처음 채취했을 때에는 막걸리 색깔과 비슷합니다. 이에 열을 가하면 맥주병 색깔로 변하지요. 이런 정제 과정에서 돌가루를 적당히 섞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색깔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옻을 음용하다 보니 옻나무가 점점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요즘에는 중국에서 수입해야 할 형편입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보다 훨신 많은 1년에 70t 정도 사용하고 있지요.” 그는 6·25전쟁이 끝날 무렵 부산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안 살림으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길거리에서 과일과 국화빵 장사를 했다. 연탄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관심을 두었던 것은 동네 어귀마다 자리한 나전칠기 가구나 장롱을 만드는 곳이었다. 화가가 되는 꿈도 꾸었다. 소나무 판자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또 손재주가 좋아 목재소에서 헌 나무토막을 주워 와 토끼집이며 개집을 직접 만들어 이웃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며 청년이 돼 해병대에 입대했고 전역한 뒤 목재 회사에 입사했다. 1978년 당시 월급은 57만원. 솜씨가 워낙 좋아 회사로부터 특별 배려를 받았다. 열정과 패기까지 있어 젊은 나이에 기획실장과 디자인 회사 재정까지 맡았다. 잘나가던 그에게 어느 날 ‘전용복식 가구’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왔다. 회사의 만류를 뿌리치고 경기 마석에 예린공예사를 차렸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공예품을 만들어 내려는 뜻에서 예린(藝鱗)이라고 했던 것. 이후 그의 작품은 서울에 있는 고급 가구상들에게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그러나 고향인 부산으로 옮기면서 가구공방 운영이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활로를 모색하던 중 도자기 위에 옻칠을 한 ‘와태칠 기법’을 생각해 냈다. 독학으로 1200년 전의 기술을 익히면서 옻칠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가구와는 점점 멀어졌고 순수한 옻칠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로 탈바꿈했다. 1986년 한국현대공예미술전에 와태칠 작품을 출품해 대상을 거머쥐는 등 타고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 후였다. 일본인 무역상이 오래된 ‘오젠’ 밥상 하나를 들고 와 수리를 부탁했다. 그 일본인은 도쿄예술대학에서 얘기를 듣고 찾아왔다고 말했다. 밥상 윗부분에는 고운 빛깔의 나전으로 두 마리의 학이 아름다운 자태로 입혀져 있었다. 전씨는 새것처럼 깔끔하게 수리를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메구로가조엔 복원 작업에 참여했고 여러 차례 전시회를 가지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일본 교과서에 실렸으며 한때 귀화 요청을 받기도 했다. “옻칠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혼의 정수(精髓)이자 영원불멸의 유산입니다. 일본에서 당당할 수 있었던 것도 ‘나는 조선의 옻칠장이’라는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이 땅의 옻칠 문화를 되살리는 데 진력을 다할 생각입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전용복씨는… 1953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1991년 일본 메구로가조엔의 옻칠 작품을 3년에 걸쳐 복원해 내 세계적인 옻칠 작가로 명성을 얻었다. 23년 동안 일본에서 살다가 1년 전 귀국했다. 지난 4월 중국 정부 초청으로 전시회를 가져 그의 진가를 새삼 입증했다. 그의 이력은 이렇다. 1980년 예린 칠연구소를 설립했으며 1983년 일본 한국문화원 초대 전시회, 1986년 한국 현대미술전 대상 수상, 일본 이와테 현 미술공방전 특상(1988), 대한민국 신지식인 대통령 표창장 수상(2000), 이와테 현 가와이무라 약사도칠예관 명예관장(2000), 대통령 표창 수상 기념 개인전(2001), 이와테 칠예미술관&동관대표 취임(2004), APEC기념작품전시회(2005), 세계 최고급 옻칠 시계 발표(2008), 온스타일과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공동 기획 아트도네이션 작품 기증(2009) 등이다. 현재는 서울 화양리에서 제자들과 작품 활동을 하면서 생활공간에 어떻게 옻을 적용할 것인지를 연구하고 있다.
  • [박명재 세상 추임새] 공직과 대학의 관료문화

    [박명재 세상 추임새] 공직과 대학의 관료문화

    우리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인 조직과 집단으로는 대학과 공직, 대학교수와 공무원을 들 수 있다. 오랜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대학의 최고경영자(CEO)로 있는 나는 관료주의라는 관점에서 대학과 공직사회 그리고 대학교수와 공무원들을 비교론적 시각에서 자주 들여다보게 된다. 여기서 관료주의란 대규모 조직과 구성원 사이에서 나타나는 합리성과 비합리성, 순기능과 역기능, 특정의 행동양식 내지 의식상태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하면 되겠다. 무엇보다 대학과 공직사회 모두 사회변화에 참 더디다는 점이다. 공직사회는 이미 철밥통으로 불릴 정도로 보수와 경직성의 상징이 되어 있으며, 사회변화를 가장 먼저 선도하고 주창해야 할 대학사회 역시 그들의 주장, 이론과 달리 발빠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다.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유명한 앨빈 토플러의 말을 빌려보면, 선진국인 미국사회도 똑같은 현상에 처해 있다. 그는 미국 내 한 조직과 집단의 변화 속도를 달리는 자동차에 비유하여, 기업은 가장 이상적인 인터넷 속도인 100마일, 전문가 조직과 집단은 90마일, 미국 정부의 규제는 40마일, 공무원조직은 30마일 속도로 변화하고 있으며, 미국의 교육이란 차는 불과 10마일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경우 교육은 정부의 교육정책과 제도, 초·중·고등교육과 그 종사자 모두를 총칭하는 것이지만, 한국의 대학과 대학구성원들의 변화 속도 역시 이 범주에 머무르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공직사회의 변화가 더딘 것은 공무원들의 보신과 안일주의 등 행태적 요소와 더불어 관련 법률의 개정, 예산 조치, 관계기관과 이해당사자 간의 협의·조정 등 시간을 요하는 물리적 측면이 있지만, 대학사회에도 부처 간 이기주의 못지않게 대학과 과 간에 만만찮은 할거주의가 있다. 극단적으로 학교나 단과대학의 발전보다 자기 과의 운명에 더 사활을 거는 경우를 보게 된다. 공직사회보다 오히려 더 심한 소통·개방의 부재를 실감하게 된다. 몇십년째 똑같은 강의 노트를 가지고 강의를 한다는 전설적인 교수 얘기는 없어졌지만 아직도 일방전달식 교수 방법과 도제제도 못지않은 교수 사회의 지나친 경직성은 공직사회의 엄격한 상하관계를 떠올리게 하고, 학교경영에 대한 이사회의 전근대적 관여와 간섭은 중앙정부의 지방정부에 대한 지시·감독과 비슷하다. 이 같은 대학과 공직사회의 경직성, 느린 속도감은 우리사회 전체의 변화를 느리게 하는 주범이 된다. 시속 10~30마일 속도로 엉금엉금 달려가는 자동차는 다른 차의 흐름에 큰 장애가 되는 동시에 낮은 연비로 연료를 크게 소모한다. 즉, 더딘 정부 규제와 경직된 공무원들이 앞서가는 민간부문의 발목을 잡게 되고, 산업현장이 요구하는 변변한 취업교육 하나 제대로 못 시키는 대학교육에 대하여 학부모와 학생들은 등록금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외쳐댄다. 문제는 어떻게 이 공직과 대학사회를 쇄신하고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답은 의외로 간단하고 자명하다. 공직과 대학 구성원인 공무원과 대학교수들은 누구보다 깨어 있는 지식인으로서 스스로 문제를 자각하고 공감하고 있으며 변화의 대상과 당위성, 그 방법을 잘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의지와 실천의 문제만 남는다. 그런데 공직과 대학은 그 특성상 유능한 리더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들 스스로 변화를 모색하고 실천할 때 그 실효성이 확보된다. 그들은 대통령이나 장관, 총장의 지시를 듣고 쉽사리 피동적으로 움직이기보다는 리더의 합리적인 조직 경영 방식과 올바른 조직 쇄신 방향에 대한 자기 확신과 동조·공감이 형성될 때 비로소 변화의 불길을 지피고 탄력이 붙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직과 대학의 구성원 스스로가 쇄신의 절박성과 긴박성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이대로 머뭇거린다면 자칫 반값 봉급, 반값 등록금 이상의 더 호된 요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 산시성-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중국다운 중국을 찾아가다 산시성 山西省 ‘중국의 현대를 보려면 상하이를, 중국의 근대 오백년 역사를 보려면 베이징을, 오천년 중국 역사를 보려면 산시山西로 가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아찔한 현대 발전상보다는 중국에 대해 품고 있는 로망을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가장 중국다운 장소를 찾는다면 산시성이 그 답이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아 더 비밀스럽게 빛나는 곳, 산시를 소개한다.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명희 취재협조 (주)레드팡닷컴 02-6925-2569 핑야오구청 平遙古城 평요고성 유네스코가 감탄한 성곽 도시 베이징에서 고속열차로 3시간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산시성山西省은 그 면면을 살펴보면 아직까지 우리에게 생소한 점이 더 많은, 매력적인 곳이다. 일단 세계 3대 문명인 황하문명의 발상지이면서 세계 면 요리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는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는 점에서 그렇고, 활발한 교류와 무역으로 중국 금융 중심지로서 융성했던 명·청대의 모습이 그대로 잘 보존된 세계문화유산 고성까지 지니고 있는 까닭에서다. 산시성을 여행할 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어 보자. 오랜 역사를 품고 있는 중국의 진짜 모습을 잰 걸음으로 볼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역사 유적지가 많은 이곳 산시에서도 핑야오가 조금 더 특별한 이유는 바로 핑야오구청 때문이다. 핑야오구청은 1997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 당시 그 보존 상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을 정도로 2,500년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고성이다. 성벽 둘레 길이 6,163m, 성 전체 면적은 여의도의 5배의 큰 규모를 자랑하는 곳으로 성문 안으로 발을 디디면 타임머신이라도 탄 듯 명·청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성의 골목이나 성벽의 구멍 개수까지 공자의 제자수를 따라한 것에서도 볼 수 있듯이 핑야요구청은 중국의 유교문화를 가장 잘 나타낸 곳으로도 꼽히며 그 자체가 하나의 큰 박물관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1970년대 개발의 급류를 타고 허물어질 뻔했던 고성은 생각 있는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원래의 모습을 지킬 수 있었고, 현재는 유럽인들에게 ‘가장 가고 싶은 중국 내 여행지 10위’를 차지할 정도로 사랑을 받는 곳이 되었다. 느긋하게 옛 중국을 만끽하다 완벽에 가깝게 보존된 유네스코 지정 고성이라 유명 여행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호객 행위며 시끌벅적한 상업화의 모습을 볼까 걱정했던 것은 한낱 기우에 불과했다. 크게 상업화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을 뿐 아니라 이곳에서는 조용히 고성의 정취를 느끼는 일이 가능하다. 핑야오구청에서라면 골목들을 탐험하는 일조차 설레는 ‘여행’이 되어 줄 것이다. 계획도시였음을 알려주듯 반듯하고 널찍하게 뻗은 골목들에는 14세기 명나라 때 지어진 건축물이 줄지어 있어, 걷는 것만으로도 명·청 시대의 건축이나 발전 모습 등 그 시대의 문화를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붉은 등을 매단 상점과 식당 등을 지나 조용히 걷노라면 몇백년전 사람들도 이곳을 지나다니며 같은 풍경을 봤으리라는 생각에 묘한 기분에 빠져든다. 살아있는 박물관이라는 말답게 발길 닿는 곳마다 역사적인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중국 최초의 근대 은행인 표호票號나 불교, 도교 사원, 각종 박물관들이 도처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민가 구역으로 들어가면 예전부터 그래 왔던 것처럼 자연스레 흘러가는 삶의 모습들이 고성과 역사를 같이하며 빛이 바랜 집들과 어우러져 정감어린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활기찬 고성의 모습을 한눈에 조망하려면 고성에서 가장 높은 시루에 오르기를 추천한다. 핑야오구청에서 가장 멋진 전망을 제공함과 동시에 훌륭한 포토 포인트가 되어 준다. 1 핑야오구청 거리에서 마임을 하는 예술가 2 국제학교 학생들이 저마다 예쁜 중국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모습이 이국적이다 3 핑야요구청에는 중국의 옛모습이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한복판에 위치한 시루는 이곳의 랜드마크이자 전망대 역할을 한다 4 시루에서 내려다본 핑야요구청 거리. 예스런 모습의 거리지만 활기가 넘친다 산시성의 면 요리 맛보기! 혹시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이탈리아로 전해 준 면요리가 지역에 맞게 변형된 것이 스파게티라는 설을 들어 본 적이 있는지. 이 ‘누들로드’의 시발점이라고 불리는 산시성은 쌀보다는 메밀이나 밀, 귀리 등이 많이 나는 기후 때문에 예부터 면 요리를 즐겨먹었다. 현재 380여 가지가 넘는 면 요리를 가지고 있으며 9월에는 면 축제도 열린다니 가히 면 요리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산시성 식당에서 볼 수 있는 면 요리들은 중국 요리 특유의 향이 진하지 않아 한국인의 입맛에도 맞는 편이다. 오히려 맛이 다소 심심하면 함께 나온 소스들을 넣어 먹으면 된다. 핑야오구청을 즐기는 6가지 방법 2,500년 전 세워진 이 고색창연한 성 안에서는 누구든 시간을 잊고 중국 문화의 매력에 빠져든다. 그 긴 역사에 압도되어 짐짓 역사책마냥 지루하거나 고루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일랑은 접어두시길. 은퇴 후 동양 문화를 즐기러 온 프랑스 노부부들만큼이나 젊은 여행자들이 많은 곳도 핑야오구청이었으니 말이다.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진 기자의 ‘핑야오구청 120% 즐기기’ 제안! 1 카페에서 오후의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핑야오구청은 유럽인들이 꼽은 중국에서 가고 싶은 여행지 중 10위 안에 드는 곳이기도 하다 2 고소해서 우리 입맛에도 맞는 미니호떡 셔무미쩌무위에빙. 산책에 즐거움을 더해 줄 간식 거리들이 도처에 있다 3, 6 핑야오구청 여행을 완벽하게 마무리시켜 줄 고택 숙소. 정원이 내다보이는 오래된 중국 전통 가옥에서 보내는 밤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한다 4, 5 선물로 좋을 한자로 만든 핸드폰줄과 예쁜 중국풍 신발들. 핑야오구청에서 즐기는 쇼핑은 화려하거나 떠들석하지 않지만 소소한 재미가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01 자전거로 돌아보는 고성의 낭만 핑야오고성 내의 주 교통수단은 전기차와 자전거.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전통과 환경을 보전하려는 노력이 보이는 부분이다. 반대로 그만큼 여유롭게 그리고 조용히 고성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걷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자전거로 고성 구석구석을 누비는 것도 언제나 즐거운 대안이 되어 준다. 종일 타도 10위안이라는 매력적인 가격에, 자전거에 서툰 이들을 위해 다인용 자전거도 준비되어 있다. 02 고성에서 쇼핑하기 쇼핑은 도시에서만 즐길 수 있다고? 물론 다양하고 세련된 물건들이 즐비한 도시에서의 그것과 견줄 수는 없겠지만, 이곳에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쇼핑의 즐거움이 존재한다는 사실. 핑야오의 특산품을 찾는다면 칠기제품이 유명하지만 조금 더 가벼운 기념품을 찾는다면 종이로 화려한 예술세계를 구현하는 종이공예나 아기자기한 손거울, 한지로 만드는 핸드폰줄 등이 인기 있다. 꽃 자수가 예쁜 중국풍 신발이나 어린이용 치파오도 중국 여행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해줄 아이템. 대부분이 정찰제로 운영되거나 무리한 흥정 혹은 호객 행위가 없어 더욱 기분 좋다. 03 하루의 피로를 푸는 마사지 중국 여행에 마사지를 빼놓기 아쉽다면 저녁을 먹고 고성 내 여기저기 자리잡고 있는 마사지숍으로 가보자. 숍마다 가격 차이는 크게 없으므로 둘러보고 맘에 드는 곳으로 가면 된다. 마사지사의 실력은 종종 운에 좌우되곤 하지만 하루 여행의 피로를 풀며 휴식하기에는 충분하다. 04 고택에서 맞는 고즈넉한 밤 중국 전통 가옥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고택은 이곳에서의 하루를 근사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숙소. 문을 지나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난 길을 지나면 곳곳에 위치한 정원이 운치를 더해 객실로 가는 동안의 짧은 순간에도 <홍등> 같은 중국 영화 속에 들어온 듯한 기분을 내게 해준다. 매번 똑같이 생긴 호텔이 지루하다면 이곳에서의 하룻밤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아침나절 정원 나뭇가지에 앉은 맑은 새소리와 햇살에 잠이 깨면 이곳을 떠나기가 무척이나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05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주전부리 골목 탐험을 하다 보면 출출해질 때쯤 새로운 주전부리들이 나타나곤 한다. 장조림 맛이 나는 핑야오 쇠고기 핑야오 뉴러우나 호두, 참깨 등이 들어가 고소한 미니호떡 셔우미쩌우위에빙 등이 그것이다. 명청가를 바라보며 즐기는 그윽한 차 한 잔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겠다. 06 세계의 여행자들과 나누는 시원한 맥주 한잔 고성에 어둠이 깔리고 홍등에 불이 들어올 즈음 고성 내 위치한 카페나 바에 가면 낮에 거리에서 스쳐지나가던 여행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미국에서 온 여행자들도 있고 중국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은 모습도 보인다. 흥겨운 음악과 시원한 칭타오 한잔을 사이에 두고 핑야오구청의 매력을 이야기하는 즐거움을 놓치지 말자. 대부분의 고택 숙소들이 일찍 문을 닫기에 기분 좋을 만큼의 술자리 이후에는 내일을 위해 숙소로 돌아가는 것이 좋다. T clip 인천에서 산시성 성도 타이위엔(太原, 태원)까지 아시아나 전세기가 2011년 10월28일까지 운항된다. 월요일과 금요일 주 2회 운항하며 약 2시간 소요.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며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5~9월.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느림 위안화(1위안은 약170원) 일본 NHK에서까지 취재 올 정도로 건강에 좋다고 소문난 산시성 식초와 이백, 두보 등이 극찬했다고 전해지는 중국 명주인 ‘펀주汾酒 ’가 있다. 전세기 한국사업자인 (주)레드팡닷컴(02-6925-2569)을 비롯한 전국 여행사에서 산시성 여행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멘산 綿山 면산 한식의 유래를 찾아서 핑야오구청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위치한 멘산綿山은 여행책자에서도 찾기 힘든 곳이지만 한해 130만명의 중국인이 찾는 여행지다. 중국 4대 명절 ‘한식寒食’이 유래된 곳이자 가파른 협곡을 따라 불교와 도교 사원들이 자리잡고 있어 중국 문화와 정신을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인 까닭이다. 개자추 전설의 배경이 된 곳답게 멘산에는 개자추의 무덤과 사당이 자리잡고 있다. 무덤은 약 해발 1,800m 높이에 위치하고 있어, 그곳을 향하는 케이블카에서 시원한 멘산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사당은 원래 있던 동굴을 이용해 만들었는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 믿는 사람들의 말을 반영하듯 화려한 위용을 자랑한다. 절벽 위에 세워진 공중도시 멘산은 중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일컬어지는 타이항太行산맥에서 나온 한 갈래다. 그 천연절경의 협곡을 따라 불교, 도교 사원들이 세워졌고 현대에 들어서는 호텔까지 더해져 공중도시를 형성하고 있다. 한 석탄 부호가 후손들에게 문화유산을 물려주고자 훼손, 파괴된 부분을 복원하고 전폭적인 투자를 한 덕에 명실상부한 문화 관광지가 되었다고. 절벽 동굴에 지어진 불교사원 윈펑스雲峰寺, 운봉사는 당태종 시대에 서안의 가뭄을 해결했던 고승이 있던 곳으로 108번뇌와 12간지를 상징하는 120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동굴 안쪽에서 내려다보는 사원과 멘산의 풍경이 가히 절경이며 간절한 기원이 깃든 절벽 위의 종들도 이국적이다. 이곳에서 이른 아침에 산책을 하면 발아래로 안개 낀 협곡이 펼쳐져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다. 이곳에서 갈지자로 난 계단을 따라 오르거나 엘리베이터의 힘을 빌면 정궈스正果寺, 정과사에 닿는다. 중국 남북조시대 정토교淨土敎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담란曇鸞대사를 기념하는 파고다와 법당 및 동굴에서 발견된 등신불들이 안치되어 있는 곳이다. 도교사원인 따뤄궁 또한 절벽에 층층이 쌓여 올려진 건물로서, 금박으로 쓰여진 도덕경에서 볼 수 있듯 확연한 도교적 색채를 지녔지만 멘산의 유물들을 모아둔 전시관도 구경할 수 있어 일반인도 가볼 만하다. 저택에서 엿본 산시성의 번영기 멘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왕자다위안王家大院, 왕가대원도 산시성의 매력적인 관광지 중 하나다. 청대淸代의 명문가 저택이었던 이곳은 압도적인 크기를 지니고 있어, 흔히 얘기하는 중국의 스케일과 부유했던 산시성의 모습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4만 5,000㎡의 면적에 1,000개에 달하는 방을 가지고 있으며 건축양식으로도 유명하다. 저택 전체 모습은 왕王자 형태로 되어 있으며 곳곳에 많은 뜻이 숨겨진 디테일한 장식과 조각이 흥미롭다. 현재는 정부 관리 하에 관광지로 관리되고 있으며 미로같이 얽힌 저택 내에서 자칫 눈을 팔면 일행을 잃기 십상이다. 절벽 위의 호텔, 원펑수위안 멘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호텔인 윈펑수위안雲峰墅苑, 운봉서원은 중국 내 유일한 절벽 위 호텔로 윈펑스 옆에 자리잡고 있다. 해발 2,000m에 위치한 객실에서 즐기는 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다. T clip 한식의 유래가 된 개자추의 전설 멘산을 이야기하면서 개자추介子推를 빼놓을 수 없다. 자신의 허벅지 살을 베어 먹이며 주인인 문공을 보필한 진晋나라 충신 개자추는 아직까지도 충효를 이야기할 때 회자되는 인물. 문공이 왕위에 오른 뒤 서로의 공을 놓고 다투는 신하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개자추는 어머니를 모시고 바로 이곳 멘산에 칩거하게 되고, 문공은 개자추를 산에서 내려오게 하려고 산에 불을 지르지만 결국 개자추는 어머니와 불에 타 죽은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이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개자추가 죽은 날에 불을 사용하지 않고 차가운 음식을 먹은 것이 바로 한식의 유래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17) 당나라 고문(古文)운동의 리더 한유

    세상에 백락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으니 천리마는 항상 있으나 백락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비록 준마가 있더라도 노예의 손에 모욕을 당하다 (보통 말과 함께) 마굿간에서 나란히 죽어 끝내 천리마로 일컬어지지 못한다.(중략) 천리마를 채찍질하되 그 도로써 하지 아니하며 이를 먹이되 능히 그 재주를 다하게 하지 못하며, 울어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채찍을 들고 말에 임하여 말하되 “천하에 좋은 말이 없노라.”하니 슬프도다. 참으로 말이 없느냐, 참으로 말을 알아보는 자가 없느냐?(‘잡설·雜說 중’) ●천리마, 백락을 찾아 나서다 송대(宋代)의 문장가 소식이 “문장으로써 8대 동안의 쇠미한 풍조를 진작시키고 도의로써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천하를 구제했다.”고 칭송했던, 당대(唐代) ‘고문(古文)운동’의 리더이자 송대 ‘신유학’(新儒學)의 계보를 논할 때 맨 앞자리에 놓이는 사상가 한유(韓愈·768~824). 그러나 한유의 청년 시절은 곤궁하고 암울했다. 당나라 대종 연간에 태어난 한유는 조실부모하고 형님마저 일찍 세상을 떠나 의지할 가문도 어른도 없었던, 실질적인 소년가장이었다. 집안을 일으키고 세상에 이름을 남길 방법은 과거(科擧) 합격을 통한 출세밖에 없었다. 그러나 과거를 보려 해도 추천이 있어야 했고 명문가의 자제들은 특채로 임용되었다. 한유는 자존심을 내던지고 재상의 집 근처에 머물며 자신의 추천을 부탁하는 편지를 연거푸 보낸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한순간도 자부심을 버리지 않는다. 스스로 천리마임을 자처하고, 세상에 그 천리마를 알아주는 이가 없음을 탄식한다. 천리마는 여기 있으나 백락은 여기 없구나! 그럴진대 천리마가 스스로 백락을 찾아 나서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한유가 살았던 시대는 당나라가 경제, 문화적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성당 시절에서 중당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이 전환의 결정적 계기는 755년에 일어난 안사(安史)의 난이었다. 대규모 용병을 지휘하며 세를 키워가던 군벌의 잦은 반란으로 정치는 불안했고 유랑민이 속출했다. 당 제국은 일시에 혼란에 빠졌지만, 귀족들은 조정의 관직을 세습하면서 도교의 양생술이나 불교의 마음 수행에 빠져 백성들의 고통을 나 몰라라 했다. 도대체 세상을 걱정하고 경영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런 탄식 속에서 한유는, 마음을 다스리고 뜻을 바로 하는 것이 천하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유학의 도(道)를 종주(宗主)로 삼아 스스로를 ‘유학자’로 정립한다. 당시의 사상적 조류는 불교와 도교였으며, 유학의 도는 쇠미해진 옛날의 도[古道]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한유는 이 유학의 도(道)야말로 백성을 구제하고 시대를 쇄신할 수 있는 무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신념하에, 어찌할 수 없는 신분의 특권을 인간의 능동적인 배움으로 뛰어넘고자 스승 되기를 자처했다. 그는 “옛날 성인은 보통 사람을 능가하는 데도 스승을 찾아 물으러 다녔고 지금의 사람은 성인보다 한참 부족한데도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사설·師說)라고 말하며 스승과 제자로 이어지는 배움을 강조한다. 벼슬길에 나아가면 성인의 도를 실천하고, 물러나면 성인의 도를 전파하는 것이 유학자였기 때문에 제자를 키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장유(長幼)와 귀천(貴賤)에 상관없이 누구든 배우면 성인의 도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은 당시의 견고한 귀족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다. 한유에게 유학은 고리타분한 ‘옛 학문’(古之學)이 아니라 가장 혁신적인 ‘현재의 학문’(今之學)이었던 것이다. ●뿌리를 길러 열매 맺기를 기다리시오 새로운 사상은 새로운 글쓰기를 낳는 법. 한유가 귀족주의에 대항한 또 다른 방법은 글쓰기를 혁신하는 것이었다. 당대 글쓰기의 조류는 성당 시절의 화려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변려문(?儷文) 형식이었다. 변(?)은 두 마리 말이 나란히 수레를 끈다는 뜻이고, 려(儷)는 한 쌍의 남녀라는 뜻으로, 글을 쓸 때 글자와 성조(聲調)를 고려하여 나란하게 대구를 맞춰 쓰기 때문에 변려문이라 한다. 변려문은 한자의 아름다움을 드러내고 중국 문학의 예술성을 한껏 높이는 글쓰기였다. 그러나 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변려문은 당시의 어지러운 현실상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귀족들의 자족적인 글쓰기가 되고 말았다. 한유는 변려문의 알맹이 없는 공허함을 비판하면서 성인의 도를 드러낼 수 있는 고문(古文)으로 문풍의 변혁을 꾀한다. 한유의 주장은, 내용은 없고 화려하기만 한 지금의 글(時文)을 배척하고 누구나 읽을 줄만 알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는 예전의 문장을 쓰자는 것이다. 고문이란 당나라 이전 선진(先秦), 양한(兩漢) 시대의 산문적 글쓰기를 지칭한다. 맹자(孟子) 이후로 단절된 성인의 도를 계승할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자부하던 한유에게 고문은 옛 성인의 도가 담긴 모범적 글쓰기였다. 따라서 그의 ‘고문 운동’은 단순한 문장의 개혁을 넘어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 대항하는 사상투쟁의 일환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한유의 고문 운동은 중소 지주층, 과거 수험생인 젊은 지식인 계층에게서 전폭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남에게 보여주었을 때 남이 비웃으면 나는 기뻤고, 칭찬하면 근심했다.”라고 할 정도로, 한유는 전력을 다해 당시의 문장과 거리를 둔다. 그 결과 한유의 문장은 전고(典故)도 없고 성운(聲韻)도 없는 기이한 것이 되었다. 한유 문장의 특징을 한 글자로 요약하면 ‘기(奇)’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변려문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그의 독창적 글쓰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유는 고문의 담백한 문체와 명징한 내용 전달을 본받으면서도, 시를 산문처럼 쓰기도 하고, 글자를 반복해서 리듬감을 살리는가 하면, 참신한 소재를 글쓰기의 주제로 삼는 등 자신만의 파격을 감행한다. 그가 내세웠던 ‘유학의 도’는, 전통과 혁신이 통일된 글쓰기 속에서 효과적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문장을 답습하는 것은 사유 자체를 답습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귀족적 질서에 종속되어 살 텐가. 새롭게 생각하고, 새롭게 써라! 한유의 고문 운동은 자기 시대 안에서 자기 시대를 극복하고자 했던 한 지식인의 처절한 ‘반시대적 고찰’의 산물이었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운다(不平則鳴) “대개 만물은 평정을 얻지 못하면 소리를 내게 된다. 초목은 소리를 내지 않지만 바람이 흔들면 소리를 내고, 물은 소리가 없지만 바람이 움직이면 운다. 만물이 뛰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쳤기 때문이고 그것이 내달리는 것은 무엇인가가 그것을 막았기 때문이고 그것이 끓어오르는 것은 무엇인가가 데웠기 때문이다. 소리를 내지 않는 쇠나 돌을 무엇인가가 치면 소리를 낸다. 말에 있어서 또한 이와 같아서 사람은 부득이한 일이 있은 뒤에야 말을 하게 된다. 노래하는 것은 생각이 있어서이고 우는 것은 가슴에 품은 것이 있어서이다. 입에서 나와 소리가 되는 것은 모두 마음에 편안하지 못한 것이 있어서일 것이다(不平則鳴).” 한유는 평생 소리를 냈다. 청년 시절의 불우함, 유학자를 자처하며 많은 사람들과 논쟁하는 과정에서 시달렸던 비방, 두 번의 유배 생활, 생계를 위해 써준 묘지명 때문에 무덤에 아첨했다는 불명예까지, 그야말로 “평정을 얻지 못한” 한평생이었다. 56세에는 장안의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장관인 경조윤의 자리에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한유는 평생토록 시대의 부침 속에서 민감하고도 과감하게 “소리를 냈다(鳴)”. 깊은 울림을 주는 그의 문장에 공명(共鳴)한 이들은 새로운 지식인 계층을 형성했고, 그가 내세운 ‘도’(道)는 훗날 후학들이 걸어가는 길이 되었다. 백락이 없음을 한탄하던 천리마의 고성(高聲)은 지금 우리에게까지 전해진다. 우리는 천리마인가, 백락인가. 천리마가 되지 못할 바에야, 천리마를 알아보는 백락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 세상 모든 소리(鳴)에 귀 기울이면서, 그 안에 담긴 ‘불평심’(不平心)과 공명해야 하지 않을까. 홍숙연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 서울살이 지배하는 자본신화 스캔하다

    서울살이 지배하는 자본신화 스캔하다

    “을지로입구역, 영등포역, 서울역, 건대입구역, 그리고 2010년에 재개장한 청량리역까지 서울의 중요한 교통 분기점마다 롯데의 자본은 깊숙이 들어가 있다. 먹고, 자고, 입고, 놀고, 이동하는 모든 순간, 모든 환경, 모든 문화가 롯데 왕국 안에서 순환적으로 이뤄지며 소비되는, 자본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신화가 이렇게 형성되고 있다.” ‘이면의 도시’(정진열·김형재 글, 자음과모음 펴냄)는 두 디자인 전공자가 날카로운 촉수와 날 선 감각으로 서울을 공감각적으로 들여다본 책이다. 자음과모음에서 시리즈로 펴내는 하이브리드 총서의 다섯 번째 책. 하이브리드 총서는 ‘경계 간 글쓰기, 한국 인문학의 새 지형도’란 표제 아래 젊고 의욕 있는 학자들이 학문적 실험과 매력적인 글쓰기를 한데 보여 주고 있다. 저자들은 언론과 재벌 혼맥도, 한국 지식인의 이념 분포도, 촛불시위 행진 방향과 경찰 대치 상황, 국회의원 자리배치도 등 민감한 사안을 한 장의 그래픽 또는 지도로 요약해 낸다. 특히 국회의원 선거구별 주소, 지역구 국회의원 중 서초·강남구에 자택을 소유한 의원 지도 등은 그다지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국회의원 자리배치도는 초선부터 7선까지 당선 숫자에 따라 색깔을 달리했는데 맨 뒷자리에는 이회창, 조순형, 이인제, 남경필, 박근혜, 정몽준, 이상득, 홍사덕, 황우여, 박상천, 정세균, 박지원, 천정배 등 신문 정치면에서 자주 이름을 볼 수 있는 중견 정치인들이 쭉 앉아 있다. 지역구 의원 가운데 서초·강남구에 자택을 소유한 인원은 총 47명 가운데 한나라당 30명, 민주당 11명, 자유선진당 3명이다. 지역구와 자택 주소가 다른 의원도 80명이나 된다. 저자들의 예민한 관찰자적 시선은 정치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서울 잠실역 주변을 ‘롯데 왕국’이라 비꼬는 저자들은 지하 공간에 대해서도 ‘어둠의 강을 건너 하데스의 왕국’으로 변했다고 주장한다. 하데스(죽은 자들의 나라 지배자)의 공간이자 죽은 자들의 땅이었던 지하는 근대 초기에는 지상의 공습을 피하고자 숨어드는 공간이었다. 언제부턴가 지하 공간은 가장 고도화한 상업 공간으로 변모했다는 것이 저자들의 시각이다. 게다가 대형 지하 쇼핑몰의 등장과 함께 영세 지하상가에 감도는 패배감의 기운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는 서울 시민이라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당장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옆의 시청 지하철역 상가만 해도 서울시의 지하상가 정책을 타도하는 구호가 곳곳에 붙어 있다. 시청역 지하상가에서 모자 가게를 운영하는 50대의 박모씨는 촛불시위가 상가에 끼쳤던 영향에 대해 “화장실 쓰는 데 불편함 말고는 뭐, 워낙 다들 점잖은 사람들이니까 다른 문제는 전혀 없었어요. 요새는 시위 문화도 옛날 같지 않으니까요. 월드컵 때처럼 좋은 일 때문에 모인 게 아니라 어려운 상황이었던 때라 분위기가 좀 어수선했죠.”라고 저자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정치와 자본에 대해 날카로운 해부를 한 저자 중 한명은 가족의 대출 역사까지 털어놓는다. 1997년 저자의 아버지가 실직하면서 슈퍼마켓을 인수하고자 시가 10억원짜리 건물을 4억원에 구매하기로 하고 한빛은행에서 재건축한 아파트를 담보로 3억원을 빌린다. 그러나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모든 대출은 철회된다. 저자의 부모는 높은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채 1년이 못 되어 슈퍼마켓을 폐업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대출의 역사가 나의 인생, 그리고 가족의 역사와 같다.”고 말한다. 책은 모든 금융업체가 개인의 신용 정보를 공유하는 현재의 금융 시스템에 동의해야 할 이유가 뭐냐고 질문한다. ‘이면의 도시’는 익숙한 일상과 공간의 틈새를 들여다보면서 우리의 이미지와 감각이 어떻게 변했는지, 대기업과 정부의 욕망이 어떻게 우리를 잠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지 새삼 일깨운다. 허술하게 가려졌던 상처와 상실을 세세하게 일러 주는 책이 편안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독자를 일깨우는 방식은 일방적인 서술이 아니라 예쁘게 잘 요약된 지도와 재치가 넘치는 문장이다. 저자들은 경험 많은 택시 운전자처럼 우리가 그동안 허투루 지나쳤던 서울이란 도시의 이면을 돋보기로 확대한 듯 보여 준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18분의 소통 TED 2011] 44개국 ‘테드 전파자’ 110명 재스민 혁명에 아낌없는 찬사

    중동과 아랍에 ‘민주의 봄’을 안겨 준 ‘재스민 혁명’에 대한 전 세계 테드(TED) 마니아들의 찬사는 끝이 없었다.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의 공식 개막에 앞서 10일(현지시간) 오전 영국 에든버러 EICC에서는 전 세계 테드x(지역별 테드)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운영자 교육행사 ‘테드x 워크숍’이 열렸다. 테드 측이 비영리 원칙을 실천하며 지구촌에 테드의 정신을 퍼뜨리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단계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행사다. 44개국 110명이 참가했다. 워크숍에서는 재스민 혁명을 통해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민주의 지평을 연 중동, 아프리카 지역 운영자들이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들은 폐쇄된 사회에서 자신들이 주도한 테드x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재스민 혁명의 불을 댕긴 튀니지의 테드x 관계자는 “지식인들이 의견을 나누기 위해 모인 테드x가 ‘혁명의 필요성’을 논의하는 역할을 했고, 이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급속히 퍼져 나갔다.”고 전했다. 이집트 테드x 카이로 운영자도 “독재정권 아래 하나의 시각만 강요받던 사람들이 자신 속에 숨어 있는 자유에 대한 욕망을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점차 상승효과를 본 것 같다.”고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네명의 운영자들이 참석했다. 테드x 부산의 김마니씨, 테드x 이화의 강지혜씨, 테드x 동성로의 신윤희씨, 테드x 경원대의 에이다이다. 에이다는 필리핀 출신 유학생이다. 대구대 특수교육 연구교수로 재직중인 신윤희씨는 “한국에서 테드가 큰 인기를 끌고 있지만, 비영리의 원칙을 지키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이 많은 것도 사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다른 나라의 노하우를 배워 가고 싶다.”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온 참가자는 “한국에서 테드 열풍이 거세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는데, 라이선시들과 얘기해 보니 그 열정에 다시금 놀랐다.”면서 “기회가 되면 한국의 테드x행사에 꼭 가 보고 싶다.”고 말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8분의 소통 TED 2011] “태양광 초가집, 신재생에너지 첫 걸음”

    11일 아침 9시 30분(현지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국제콘퍼런스센터(EICC). 큰 덩치에 사람 좋아보이는 인상의 톰 리엘리가 만면에 웃음을 띠고 무대에 올랐다. 장내를 메운 70여개국 900여명의 청중들은 ‘테드(TED) 펠로’ 큐레이터인 그에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연중 2차례 열리는 최고의 지식페스티벌 ‘테드 글로벌 콘퍼런스 2011’이 닷새간의 여정에 닻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10대 소녀부터 70대 백발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와 성별, 피부색은 달랐지만 감동은 한결같았다. 매년 8월 공연 페스티벌 ‘프린지’와 군악경연 ‘밀리터리 타투’로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는 축제의 도시 에든버러. 올해에는 각국에서 모여든 지식 순례자들로 예년보다 한달 앞서 축제의 기운이 달아올랐다. 장내가 조용해지자 리엘리가 유머를 섞어 가며 테드 펠로를 한명씩 호명하기 시작했다. 테드 펠로는 테드가 매년 선정하는 신(新)지식인들. 26명의 테드 펠로들은 ‘아이디어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이란 별칭답게 독특하면서도, 메시지 강한 기술과 성과들을 풀어놓았다. 첫번째로 ‘18분간의 소통’을 시작한 사람은 중미 과테말라의 신재생 에너지기업 ‘케솔’(QUETSOL)의 창업자 마누엘 아구일라. 자기 나라 농촌 초가집 앞에 설치된 첨단 태양광 패널의 모습을 대형 화면에 띄웠다. 태양광 패널에서 나온 한 가닥의 전깃줄이 초가집에 전기를 공급하는 장면에 참석자들이 탄성을 질렀다. 아구일라는 “이렇게 초라한 시도가 궁극적으로 각국의 에너지 부족을 해결하는 밑바탕이 될 수 있다.”고 소리 높여 말했다. 중국계 미국인인 조디 우는 탄자니아에서 농업혁명으로까지 불리는 자신의 발명품 얘기를 꺼냈다. 우는 “막대기로 옥수수 낟알을 떠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워 자전거 바퀴로 작동하는 탈곡기를 만들었다.”면서 “그들은 이제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훨씬 적은 노력으로 훨씬 더 많이 탈곡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요르단 출신의 슐레이만 바히트는 아픈 경험에서 길어 올린 밝은 희망을 담담하게 풀어 갔다. 그는 “2001년 미국 미네소타대 재학 당시 9·11 테러가 터지자 4명의 미국인 학생들이 나를, 단지 아랍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캠퍼스에서 공격했다.”면서 “그러나 난 고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 내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아랍 문화를 가르치고, 미래 세대에는 관계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호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 후 요르단을 비롯한 아랍 전역에서 이런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심했다. 그 수단은 애니메이션이었다. “저의 이런 생각을 주변 사람들한테 처음 털어놓았을 때 ‘중동에선 지나친 모험’이라는 우려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동에는 저의 이상을 담은 만화와 애니메이션, 게임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들 외에 티베트와 몽골의 사막지대를 누비며 사람의 뼈를 통해 10년 가까이 아시아인의 생태적 연결고리를 찾고 있는 중국인 고고생물학자 크리스틴 리,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수질 진단기를 만들고 있는 미국인 소나 루스라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무대에는 15일까지 50여명의 연사들이 올라 ‘삶의 재료’(The Stuff of Life)를 주제로 18분 동안 자신의 지식을 나누고, 인류를 향한 메시지를 외치게 된다. 테드 프로듀서 준 코언은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비밀스러운 생물학적 반응에서부터 우리 사회를 이루는 문화적 성취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삶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다루는 놀라운 강연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국인 행위예술가 이재림씨가 연단에 오르는 13일 행사는 우리나라에도 생중계된다. 테드x 경원대(경원대 영상문화관), 테드x 이태원(명동 해치홀), 테드x 카이스트(카이 라운지)에서 볼 수 있다. 이날 EICC 앞에는 행사 시작 2시간 전부터 길게 줄이 늘어서기 시작했다. 다들 사전에 등록을 하고 왔지만 연단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노라 랭은 “올초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테드 2011 콘퍼런스에 가고 싶었지만 일찍 마감돼서 이번에는 아주 서둘렀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대기업에 다니다 최근 벤처회사를 차렸다는 일본인 다키오는 “등록비 6000달러(약 700만원)는 분명히 큰 금액”이라며 “그러나 빌 게이츠(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나 마크 저커버그(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내 마음속 영웅들과 나란히 앉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차 있다.”고 전했다. 글 사진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강연 18분 제한… 흥행요소 극대화”

    TED를 관통하는 가장 큰 원칙은 ‘비영리’다. TED의 이름을 걸고 공개되는 콘텐츠에는 딱 두 가지의 단서만 붙는다. 첫째가 ‘편집하지 말 것’, 두 번째가 ‘돈 받고 팔지 말 것’이다. TED는 이 원칙에만 동조한다면 사실상 무제한에 가까운 자유를 제공한다. 직접적으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면 전 세계 누구나 ‘TED’의 이름을 걸고 행사를 열 수 있다. 실사 등 까다로운 절차 없이 오로지 이메일로만 라이선스를 취득하는 것이 가능한 이유다. 그러나 TED에 관여했던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헐렁해 보이는 TED의 모든 요소들이 사실은 치밀한 전략의 결과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우선 18분이라는 강의시간 제한이다. 대부분 콘퍼런스들이 최소 50분의 강연시간을 보장하는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짧은 시간이다. TED 측은 이를 “18분이 사람들의 주목을 유지할 수 있는 마지노선”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실제로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국내 TEDx 관계자는 “18분이라는 시간 때문에 강연자들은 더욱 콤팩트하고 효과적으로 자기 지식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면서 “이는 결국 시각적인 효과와 극적인 연출로 이어지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결국 시간 제한이 TED 강연의 흥행 요소를 부추기고, 이것이 TED 동영상의 확산 효과를 높인다는 것이다. TED가 전 세계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비결로 ‘동영상’이라는 전파수단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 동영상을 이용하면 강연을 글로 읽거나 듣는 것과 달리 강연자의 숨결과 표정, 미묘한 손동작까지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TED 콘퍼런스가 끝나자마자 공개되는 동영상에는 전세계 70여개 언어의 자막이 붙는다. 번역 자원 봉사자들은 대가로 TED 콘퍼런스 실황중계를 볼 수 있는 시청권만을 얻을 뿐이다. TED에 따르면 매월 TED 동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3억명 수준이며, 인기 동영상은 10억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한다. TED 콘퍼런스의 주제는 철학적인 의미를 함축한 모호한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이라든지 ‘기술의 소원’ 같은 식이다. 이 때문에 콘퍼런스마다 하나의 소재로 얼마나 다양한 시각을 보여줄 수 있는지, ‘삶의 재료’를 소재로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리는 이번 ‘TED글로벌 2011’의 경우도 생명공학자는 물론 뇌과학자, 미술가, 행위예술가, 코미디언, 가수, 건축가, 철학자, 소설가 등 수많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연사로 등장할 예정이다. TED는 완결된 틀을 갖고 있지 않다. 젊은 지식인들을 선정해 별도의 세션을 만들어 내는 ‘TED 펠로(Fellow)’ 등 매년 새로운 형태의 TED가 등장하고 있다. 일각에서 TED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무대에 오르는 사람에게 쇼를 강요한다는 이유로 TED 참가를 거부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 유행이라며 TED를 폄하하는 학자들도 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18분의 소통 TED2011] 빌 게이츠, 손님들 향해 모기떼 풀어놓고서…

    2009년 3월 미국 롱비치에서 열린 TED 글로벌 콘퍼런스. 연사로 나선 빌 게이츠 전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말라리아’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정보기술(IT)이나 정보화 시대에 대한 그의 박학한 지식과 미래전망을 듣고 싶어하던 관객들은 다소 의아해했다. 게이츠는 말라리아가 가난한 아프리카 국민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협인지 설명하면서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자고 호소했다. #1 빌 게이츠 ‘모기쇼’의 충격효과 강연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갑자기 게이츠가 동그란 유리병을 꺼내들었다. 뚜껑을 열자 병 안에서 모기들이 튀어 나왔다. 조금 전까지 말라리아 모기의 위험에 대해 말하던 게이츠의 돌발 행동에 행사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뉴욕타임스(NYT), 가디언 등 유력 언론들은 “가장 효과적인 쇼이자 행동이었다.”고 평가했다. #2 바람 길들인 아프리카 풍차소년 2001년 아프리카 말라위의 한 소년이 망가진 자전거와 폐차에서 구한 철판 네 장으로 풍력 발전기를 만들었다. 조악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 발전기는 전구 네 개와 라디오 두 대를 작동시킬 수 있는 완벽한 발명품이었다. 얘기를 전해들은 TED 주관사 새플링 재단은 이 소년을 2007년 TED 콘퍼런스 연사로 초청했다. 진심어린 소년의 목소리는 TED 행사장을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숨을 죽이게 하고, 강연 동영상은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윌리엄 캄쾀바라는 이름을 가진 이 소년의 이야기는 ‘바람을 길들인 풍차 소년’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됐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소원’ 말하며 세상 바꾸려는 이들 TED 행사장에 서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최소 1억명 이상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하게 된다. 행사장에 선보인 모든 내용이 TED 토크스(talks)로 불리는 동영상으로 공개되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빌 게이츠, 빌 클린턴, 제임스 캐머런, 인드라 누이, 빌 포드, 제이미 올리버, 제인 구달, 앨 고어, 보노, 프랭크 게리, 필리프 스타르크, 폴 사이먼 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연사들이 18분간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눴다. TED의 가장 큰 특징은 전문가들이 자기 전문분야에 대해서만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이미의 키친’으로 유명한 세계적 요리 전문가 제이미 올리버는 ‘요리법’이 아닌 ‘음식을 가르치는 법’을 통해 비만 퇴치를 역설해 지난해 최고의 TED 강연자로 선정됐다. 저명한 교육가 켄 로빈슨은 ‘학교가 (오히려)창의력을 죽인다.’고 주장했다. 연사들은 ‘TED 위시(wish)’로 불리는 ‘자신의 소원’을 강연 중에 말함으로써 세상에 메시지를 던지고, 변화를 꿈꾼다. 혁신적인 기술들도 수없이 등장했다. 지난해 컴퓨터 전문가 존 언더코플러는 특수한 센서가 부착된 장갑을 양손에 끼고 나와 스크린에 3차원으로 배열된 사진 수천장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모습을 TED 콘퍼런스 단상에서 보여줬다.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2002)에 등장했던 톰 크루즈의 모습 그대로였다. 언더코플러는 ‘지-스피크’라고 명명된 이 기술에 대해 “5년 후 일반인이 구입하는 컴퓨터에 장착될 것”이라고 단언했고 이 강연을 담은 동영상은 TED 사상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올초 미국 롱비치 TED에서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 아만다가 연단에 올랐다. 스키를 타다 영원히 걸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를 진솔하게 털어놓는 그녀에게 로봇공학자 이더 벤더는 ‘로보틱 강화골격’이라는 신기술을 선물했다. 로보틱 강화골격을 입고 휠체어에서 일어나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오는 아만다의 모습은 당시 강연장에 있던 사람은 물론 동영상을 본 전세계인들에게 TED가 꿈을 실현시키는 강력힌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앞서 캄쾀바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유명인과 첨단과학을 아는 사람만이 TED를 통해 기회를 얻는 것은 아니다. 12살 어린이 아도라 스비탁은 “세상이 아이 같은 생각을 요구한다. 어린이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는다. 세상을 망치는 것은 어른들”이라고 주장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아프리카 회색앵무새 ‘아인슈타인’은 조련사 스테파니 화이트와 함께 무대에 올라 관객들에게 놀라운 동물의 능력을 몸소 보여줬다. ●메인 무대에 오르는 한국인들 한국인들도 TED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다. 2006년 TED 글로벌 콘퍼런스에는 컬럼비아대 대학원생인 재미교포 2세 제프 한이 등장했다. 그는 화면 위에 엄지와 검지 손가락을 올리고 확대와 축소를 반복했고, 두 명의 진행자가 동시에 손을 얹고 화면을 조작했다. 누르고 당기는 것이 전부였던 ‘터치’ 기술의 획기적인 변신에 참석자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현재 우리는 이 기술을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통해 직접 체험하고 있다. 세계적인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버지니아공대 교수도 올 3월 TED 무대에 섰다. 그는 운전대를 잡은 손바닥과 조끼로 진동을, 발바닥으로 압력을, 손으로 공기신호를 받는 시스템을 선보였다. 다름아닌 시각장애인이 운전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는 무대에서 시각장애인이 실제 도로를 달리는 장면을 완벽하게 시연했다. 이 아이디어는 좀 더 안전한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하는 대형 자동차 업체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같은 무대에서 한국인 최초의 TED 펠로(TED가 선정한 신지식인)인 민세희씨가 전력소비량에 따라 집 크기가 달라지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데이터 시각화’ 기술을 선보이기도 했다. 에든버러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취임 후 20여차례 특강, 소통의 일부죠”

    “취임 후 20여차례 특강, 소통의 일부죠”

    “주민과 하는 소통의 일부라고 생각해 부르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특강을 해요. 지식봉사를 하다 보니 구의원에 대한 신뢰도 쌓이고 의회 위상도 저절로 높아지는 것 같아요.” 김수범(62) 광진구의회 의장은 오랜 직장 생활과 다양한 사회활동 경험을 살려 요즘 지식봉사를 하는 이유에 대해 7일 이같이 말했다. 영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에 능통한 데다 대기업인 ㈜대상에서 무역사업본부장을 지내며 익힌 감각 덕분에 국제비즈니스맨 출신의 최고경영자(CEO)형 의장으로 통한다. 그래서인지 기업·단체는 물론 대학 등에서 특강 러브콜을 자주 받는다. 상공회의소 워크숍에서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 근무 경험을 살려 ‘성공하는 사람들’을 주제로 두바이 왕이 선보인 상상력 리더십에 의한 창조 경영의 성공사례를 제시하고 국제적인 경영 노하우를 전달해 박수를 받았다. 광진우체국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는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고객관리 비법을 전수했다. 의장 취임 후 긍정적인 마인드와 구민 행복을 위한 특강을 20여 차례나 했다. 이 같은 공로에 힘입어 지난달 한국신지식인협회로부터 최우수 신지식인상을 받기도 했다. 개인의 영광 이전에 의회 위상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듣는다. 김 의장이 의정활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재선의원과 초선의원들의 신구 조화로 소통하는 의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주민을 주인처럼 섬기는 서번트 리더십(Servant Leadership)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의원들의 전문성을 함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의원 14명 가운데 10명이 주거환경정비사업 전문가 양성 과정을 밟는 이유도 서번트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이런 말로 의욕을 새롭게 다졌다.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랬던 것처럼 관대함과 인자함으로 의정을 이끌고 싶어요. 어떤 경우에도 절대 화를 내지 않고 화합과 타협으로 의회를 이끈 의장으로 기억되고 싶어요.”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강북구 교육 승부수 ‘독서 동아리’ 바람

    강북구 교육 승부수 ‘독서 동아리’ 바람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강남 아주머니들보다 책을 들고 다니는 강북 아주머니가 더 아름답습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지난 4일 집무실에서 독서 동아리 모임을 열며 학부모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줄곧 주부들을 초빙해 독서 동아리의 필요성을 설파해 왔다. 책 사랑에 빠진 것이다. 4월 유치원 학부모들을 초청했고, 5월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를 중심으로 클럽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책벌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 주부들을 매일같이 만나 독서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4월부터 학부모 중심 동아리 조성… 구청장 집무실서 토론 “하버드대에서 가장 성공한 중퇴자 빌 게이츠가 대학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을 읽어 세상에 빨리 나가 그 지식들을 사회에 접목하고 싶었다고요.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책 읽는 아이는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고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립율곡어린이집과 해맞이어린이집에 자녀들을 맡기고 있는 주부들로 구성된 독서 동아리 회원 11명은 구청장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받아 적었다. “사실 저도 책을 즐겨 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TV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3년만 TV 대신 책을 가까이해 자녀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길러 주길 바랍니다.” 박 구청장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께 뭘 배웠니’라는 질문보다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질문하려면 자연스럽게 예습과 복습을 하고 성적도 덩달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책 읽는 습관에 따라 교육도 승부가 날 것”이라며 “독서 동아리가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1월부터 U도서관 시스템 구축… 어디서나 30만권 대출 가능 원종심(33·송중동)씨는 “구청장을 가까이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집무실에서 독서 모임을 하니까 막연했던 자녀교육에 대한 확신이 서는 느낌”이라며 “구청장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부들을 만나는 열정을 보니 믿음이 간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은숙(37·송천동)씨 또한 “명문학원도 없어 아이들이 크면 강남으로 이사갈까 고민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직접 확인하니 속이 후련하다.”면서 “열심히 활동해 아이를 지혜롭게 키우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구청장과 대화를 마친 주부들은 U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 스크린으로 익히고, 구 홈페이지 ‘리더스클럽’에서 동아리로 활동하는 방법을 익혔다. 구가 1월부터 4개 구립도서관과 14개 새마을문고, 지하철역 3곳에 U도서관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30만여권의 책을 언제 어디서든 대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춘 것이다. 박 구청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독서 동아리 붐이 일어나 4·19국립묘지, 솔밭공원, 북서울 꿈의 숲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책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두고 보세요. 3년 뒤면 명문학원 10개를 유치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을 테니까요.” 글 사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열린세상] 엽관제 유령을 물리칠 퇴마사/허만형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

    윌리엄 화이트는 조직철학자이다. 그는 1956년 불후의 명작 ‘조직인’(The Organization Man)을 남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 군상을 이렇게 묘사한다. 인간은 조직을 떠나 살 수 없다. 평생을 조직 속에서 살다가 조직의 일원으로 죽어간다.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을 버리고 조직에 매몰되어야 한다. 또한 조직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로 수용하는 길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길이다. 화이트의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典型)이었다. 책이 출판될 당시 미국인의 삶의 모습은 조직인 그 자체였다. 미국 대중의 의식과 공감대를 형성한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1970년대에 들어와 로버트 실버맨과 헤밍은 ‘조직인에서의 탈출:전문인으로의 진입’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화이트의 조직인을 비판한다. 조직인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상일 뿐이며, 조직인으로서의 사고로는 성공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전문성을 역설한다. 실버맨과 헤밍에 따르면 전문인은 조직의 틀을 벗어나 활동한다. 이들은 각기 다른 조직에서 일을 하지만 전문영역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만든다. 같은 전문인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필요하면 협의체를 만들어 함께 일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발전을 동시에 추구한다. 대우가 좋지 않으면 전문인은 스스로 만든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그 조직을 떠난다. 전문인은 21세기에 들어와 창조적 전문인(creative professional)으로 진화한다. 전문지식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전문가만이 성공이 보장되는 시대의 도래를 주장한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의 리처드 플로리다 교수가 바로 그다. 그는 21세기에는 전 세계에서 1000만명 정도의 창조적 지식인이 세계 경제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는 이들을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이라고 지칭한다. 조직인, 전문인, 창조적 전문인 같은 시대적 소명을 묘사한 인간관은 인사에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시대를 이끄는 인재 발탁의 전범(典範) 역할을 하는 정부 인사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야 공기업 등 정부 산하기관에서도 보고 배우며, 민간 영역에서도 정부 정책에 순응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마디로 조직인의 인간상을 뛰어넘는 인사를 찾기 어렵다. 전문성보다는 지근거리 인물만 보인다. 전문성 없는 사람을 장관에 발탁하여, 공무원은 이들의 교육에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다. 정치권은 더 한심하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당조직 내에서는 유력 인사에 맹종하는 인물만이 득세한다. 능력 있는 인물의 정치권 영입보다는 유력 인사에 줄서기 순으로 정치인 충원이 이루어진다. 정·관(政官) 인사가 이 정도이니 대한민국에 창조적 지식인이 설 땅이 너무나 좁다. 현 정부는 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을 걱정하는 모양이다. 생각해 보면 권력누수 현상도 정권 담당자가 자초한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는 자성보다는 관료사회를 향해서 목소리를 높인다. 국가 현안, 부처 간 갈등, 혹은 사회적 쟁점이 되는 문제에 적극 나서기 그리고 사정기관을 동원하여 공무원 기강잡기를 주문한다. 정실인사를 최소화하고, 실적 중심 인사를 해왔으면 권력 누수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누가 권력을 잡든 정실은 다를지라도 실적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정실인사가 다음 정부에서도 예외가 아닐 듯하다. 내년은 사계절 모두가 근래 보기 드문 정치의 계절이라 유력 정치인을 중심으로 줄서기가 난무하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전문성도 없는 인물이 줄서기 순에 따라 우수수 요직에 입성하고, 그로 인해 흔들리는 공직사회의 폐해가 눈에 선하다. 이것은 엽관제(spoils system)로서 1800년대 미국에서 존재했던 행정학의 고전적 사례이다. 그 유령이 5년마다 21세기 여기, 대한민국에서 출몰한다. 엽관제의 유령을 물리치는 퇴마사가 올 날을 기대해 본다.
  • 책愛 빠진 구청장

    책愛 빠진 구청장

     “명품가방을 들고 다니는 강남 아주머니들보다 책을 들고 다니는 강북 아주머니가 더 아름답습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지난 4일 집무실에서 독서 동아리 모임을 열며 학부모들에게 힘을 불어넣었다. 그는 지난 4월부터 줄곧 주부들을 초빙해 독서 동아리의 필요성을 설파해 왔다. 책 사랑에 빠진 것이다. 4월 유치원 학부모들을 초청했고, 5월엔 초등학생을 둔 학부모를 중심으로 클럽을 만들었다. 그렇다고 책벌레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럼 주부들을 매일같이 만나 독서 예찬론을 펼치는 이유는 뭘까.  “하버드대에서 가장 성공한 중퇴자 빌 게이츠가 대학을 그만둔 이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는군요. 어린 시절 너무 많은 책을 읽어 세상에 빨리 나가 그 지식들을 사회에 접목하고 싶었다고요. 독서를 많이 하는 사람은 세상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지혜가 생겨서 그런 게 아닐까요.”  그는 이렇게도 말했다. “우리 아이들도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책을 가까이해야 합니다. 책 읽는 아이는 저절로 공부를 잘하게 되고 지식인이 아닌 지혜로운 인간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구립율곡어린이집과 해맞이어린이집에 자녀들을 맡기고 있는 주부들로 구성된 독서 동아리 회원 11명은 구청장의 말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받아 적었다. 박 구청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다. 박 구청장은 경청하는 주부들이 따분해할까 봐 배려도 잊지 않았다. “내 말에 너무 집중하지 말고 감잎차와 방울토마토를 맘껏 리필해 즐기세요.”라며 웃음을 지었다. “사실 저도 책을 즐겨 읽지 않아요. 하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TV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3년만 TV 대신 책을 가까이해 자녀들에게 책읽는 습관을 길러 주길 바랍니다.”  박 구청장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선생님께 뭘 배웠니’라는 질문보다 ‘선생님께 어떤 질문을 했니’라고 묻는 부모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질문하려면 자연스럽게 예습과 복습을 하고 성적도 덩달아 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책 읽는 습관에 따라 교육도 승부가 날 것”이라며 “독서 동아리가 그 출발점”이라고 강조했다. 원종심(33·송중동)씨는 “구청장을 가까이서 만나기도 쉽지 않은데 이렇게 집무실에서 독서 모임을 하니까 막연했던 자녀교육에 대한 확신이 서는 느낌”이라며 “구청장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주부들을 만나는 열정을 보니 믿음이 간다.”고 미소를 지었다. 최은숙(37·송천동)씨 또한 “명문학원도 없어 아이들이 크면 강남으로 이사갈까 고민했는데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직접 확인하니 속이 후련하다.”면서 “열심히 활동해 아이를 지혜롭게 키우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박 구청장과 대화를 마친 주부들은 U도서관을 어떻게 이용하면 좋은지 스크린으로 익히고, 구 홈페이지 ‘리더스클럽’에서 동아리로 활동하는 방법을 익혔다. 구가 1월부터 4개 구립도서관과 14개 새마을문고, 지하철역 3곳에 U도서관 자동화시스템을 구축해 30만여권의 책을 언제 어디서든 대출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갖춘 것이다.  박 구청장은 이렇게 말을 맺었다. “독서 동아리 붐이 일어나 4·19국립묘지, 솔밭공원, 북서울 꿈의 숲 등에서 삼삼오오 모여 책읽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두고 보세요. 3년 뒤면 명문학원 10개를 유치하는 것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을 테니까요.”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데스크 시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박찬구 국제부 차장

    묵묵히 제 임무를 처리하던 병사였다. 전역을 한 해도 채 남겨놓지 않은 그해 늦여름, 그는 느닷없는 굉음 속에 헬기로 후송됐다. 대인지뢰를 밟았다. GOP 철책선 너머에서 철조망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병사의 바로 옆에서 철조망을 끌던 중대장의 하계 전투복은 온통 피범벅이었다. 육사 출신 대대장의 일성은 이랬다. “죽었어, 살았어?” 한 해를 훨씬 넘긴 뒤 민간인통제구역 바깥에서 그를 만났다. 묵묵한 표정은 여전했지만, 간혹 애써 짓는 미소와 음식점으로 걸음을 옮길 때 규칙적으로 무너지는 오른쪽 몸이 생경했다. 대인지뢰는 그의 오른쪽 다리 무릎 아래를 앗아가 버렸다. 그의 인생을 한순간에 바꿔버린 대인지뢰는 우리 측 공병이 북측의 남침에 대비해 설치해 놓은 것이라는 사실이 조사 결과 밝혀졌다. 여름철 빗물에 유실됐다고 했다. 인간이 발명한 무기 가운데 대인지뢰만큼 비인간적이고 잔인한 것은 없다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목숨을 앗아가기보다 병사에게 중상을 입혀 다른 병사로 하여금 부축하게 만드는, 그래서 전투력을 곱절로 저하시키는 무기, 그것이 대인지뢰다. 총과 총을 맞든 전쟁터라면, 어떤 무기인들 못 쓰겠냐고 할 수 있다.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무고한 시민과 어린이, 나와 우리의 가족을 겨냥한 대인지뢰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그것도 비인간적인 살상무기에 대한 경종이 울릴 만큼 울린 21세기에 말이다. 모하메드 투르고멘. 54세. 25년 전 그는 리비아 군대에서 폭발물 처리반으로 근무했다. 지금은 리비아 서부 지역에서 반군으로 활동하고 있다. 투르고멘은 리비아군과 반군이 치열하게 대치한 미스라타 교외에서 대인지뢰 550여개를 찾아냈다. 낙타가 지뢰를 밟아 발견할 수 있었다.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는 “낙타의 불운으로 리비아군의 가장 큰 지뢰밭을 찾아낼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금속탐지기는 소용없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뢰였다. 투르고멘은 다른 두 사람과 함께 당구 막대기를 사용해 지뢰를 하나 둘 탐지했다고 한다. 그러곤 경고 팻말을 남겼다. 흥밋거리로 넘길 수 없는 얘기다. 투르고멘은 “플라스틱이라니, 이전에 못본 지뢰들이다. 어린이와 가족들이 이 땅에서 지낸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다.”라고 몸서리를 쳤다. 알자지라는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대인지뢰의 설치가 대다수 국가에서 금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앰네스티 인터네셔널도 발끈했다. 카다피군은 로켓 발사기에 반군이 접근하는 것을 막는다는 이유로 지뢰를 매설했다고 한다. 인간의 야만성, 전쟁의 몰가치성은 어디까지 흐르는 것일까. 알자지라를 읽어내려가다 1980년대 후반 한반도 중서부 지역 전방 부대에서의 기억을 떠올린 것은 대인지뢰가 지닌 야만성, 그리고 그 대인지뢰가 21세기 중동에서 민간인을 타깃으로 작심하고 있었다는 섬뜩함 때문이었을 테다. 리비아에서는 클러스터 폭탄을 만지작거리다 두 팔을 잃은 어린이가 병원에 실려가기도 한다. 지난해 오슬로 조약으로 사용과 제조가 금지됐지만, 리비아에서 이 폭탄은 리본까지 단 채 어린이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다고 외신은 보도한다. 시공(時空)에 따라 전쟁은 이상과 가치를 발현하는 무대가 될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반(反)파시스트 의용군에 참여한 경험을 담아 “나 또한 인류의 일부이니, 어떤 이의 죽음도 나 자신을 멸하는 것이다. 그러니 묻지 말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느냐고,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해 울리는 것이다.”라고 갈파했다. 사람과 세상을 죽이기 위한 전쟁이 아니라 인류와 이상을 살리기 위한 전쟁을, 실천적 지식인이 뛰어드는 전쟁을, 헤밍웨이는 장편소설에서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플라스틱 대인지뢰와 클러스터 폭탄이 난무하는 땅, 리비아에서는 야만의 전쟁, 전쟁의 야만을 뺀다면 무엇이 카다피를 기억할 것인가. 무고한 어린이와 민간인의 주검 위에서, 과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릴 것인가. ckpar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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