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지식인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총파업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암행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 김용
    2026-08-0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4,726
  • 산업포털 오픈마켓 ‘산업인’, 홈페이지 새 단장 실시

    산업포털 오픈마켓 ‘산업인’, 홈페이지 새 단장 실시

    편리하게 산업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 산업인이 홈페이지 새 단장을 마쳤다. 산업포털 지식 오픈마켓 사이트 ‘산업인’(대표 김주식, www.sanupin.co.kr)은 지난 1일 자사 홈페이지를 리뉴얼 오픈했다고 밝혔다. 산업인은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품을 판매 및 구매할 수 있는 오픈마켓 방식(전자상거래중개업)의 쇼핑몰을 통합한 산업전문 포털 사이트다. 소비자와 판매자, 사용자와 생산자, 개인과 기업 등 산업관련 모든 분야의 직종 군들이 한데 모여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제작된 것. 산업인은 여러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종합쇼핑몰과 차별화하기 위해 상품검색에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도록 오직 산업용품의 입점만을 허용하고 있다. 입점된 상품도 대분류 1차 카테고리 23개, 중분류 2차 카테고리 161개 소분류 3차 카테고리 1,235개 및 국내외 800여 개의 브랜드로 세분화하여 전문성과 정확도를 높였다. 산업인은 이번 리뉴얼로 산업인 회원들의 소소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산업인 뉴스(등록번호-울산아01080)를 발간, 단순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벗어나 산업소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종합 서비스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회원들은 산업인 뉴스를 통해 제조, 도매, 소매, 유통 현장 등 산업현장에 직접 찾아가 취재한 기사를 만나볼 수 있다. 이밖에 산업지식대백과, 산업지식인 Q/A, 신제품/신기술, 적합한 제품 찾기, 제품 사용후기, 제품비교분석, 산업부분의 구인/구직 등의 다양한 산업 정보를 제공하고, 기존 커뮤니티를 정비하여 직거래 장터인 중고장터, 삽니다, 공장상가팝니다 등의 게시판도 운영한다. 산업인 관계자는 “산업관련용품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살리고 전문적인 산업인프라 구축하기 위해 리뉴얼을 진행하게 됐다”며 “더욱 활발한 산업정보교류와 지식공유를 위해 다양한 기업소식 제보 및 산업관련 판매자들의 많은 입점과 참여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산업인은 홈페이지 리뉴얼 오픈을 기념해 회원가입 이벤트, 커뮤니티 우수자 이벤트, 포인트적립, 할인쿠폰, 구매금액별 사은품증정 등 다양한 기획전을 제공하고 있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20대 최연소 광역예비후보의 당차고 창의적인 공약

    20대 최연소 광역예비후보의 당차고 창의적인 공약

    경기도광역의원 수원시 제1선거구의 민주당 예비후보로 공식 등록한 정희윤 예비후보가 지난달 28일 “도민의 행복이 먼저다”라며 안전과 복지, 교통, 문화, 교육 등 5대 행복에 대한 대책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다. 정희윤 예비후보는 현재 만 27세로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최연소 광역의원이 된다.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와 공학을 전공하고 있는 정 예비후보는 꿈꿔왔던 창의적인 교육방식과 도정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정치를 시작했다. 교육과 정치에 대한 열망으로 아주대학교 경영학과를 중퇴하고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 정 예비후보는 대한민국인재연합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인재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일에 디딤돌을 자처했다. 그 결과 20대 약관의 나이에 대통령상(2회)과 장관상(3회)을 수상했으며, 2013년 대한민국 신지식인(교육분야)으로 선정되기도 한 입지전적 인물. 특히 발명에 재능이 커 발명분야 최고기록을 가진 경기도민으로 경기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5대 행복과 관련한 정 예비후보의 도정계획은 교육시설을 확충하고, 국민생활체육 시민시설의 확충과 재래시장의 주차시설 확대, 그리고 노인복지 및 일자리 확대를 포함한다. 또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당겨오고 그와 동시에 기업의 이익 증대를 꾀하기 위한 계획이 있으며, 지역주민과의 소통을 강화시킬 도정 신문고 설치, SNS 개편을 통한 소통개선, 그리고 자영업자를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특히 눈에 띄는 이색적인 공약은 ‘찾아가는 시스템’이다. 이는 지역에서 폐지 및 고철을 수거해 자신의 집에 폐지를 쌓고 고물상에서 리어카를 빌려 자신의 몸보다 무거운 무게를 운반하는 60세 이상 노인들이 수거와 매매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헌혈을 100회 이상 할 정도로 지역발전과 안녕, 그리고 행복한 우리동네를 구현하는 데 꿈이 있는 정희윤 예비후보에 도민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유곽에 꾹꾹 눌러 쓴 현실 옥중서도 저항한 그를 기억하며…

    우유곽에 꾹꾹 눌러 쓴 현실 옥중서도 저항한 그를 기억하며…

    ‘빈 들에 어둠이 가득하다/물 흐르는 소리 내 귀에서 맑고/개똥벌레 하나 풀섶에서/자지 않고 깨어나 일어나/깜빡깜빡 빛을 내고 있다//그래 자지 마라 개똥벌레야/너마저 이 밤에 빛을 잃고 말면/나는 누구와 동무하여/이 어둠의 시절을 보내란 말이냐’(김남주-개똥벌레 하나) “어이, 나는 시인이라기보다 무슨 글쟁이라기보다 전사여 전사!”라고 스스로를 정의했던 김남주(1946~1994) 시인.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고교, 대학을 중퇴하고 1974년 등단한 그는 1979년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사건으로 10여년간 투옥 생활을 했다. 감옥에서 우유곽, 담배 은박지 등에 꾹꾹 눌러쓰거나, 면회 온 사람, 출옥하는 사람에게 구술을 전해 세상으로 내보낸 그의 시들은 변혁과 저항의 표상으로 남았다. 하지만 감옥에서 나온 지 6년도 채 안 된 1994년 그는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의 20주기를 맞아 문학평론가, 시인 등 18명의 필자들이 그의 문학세계 20년을 통찰한 ‘김남주 문학의 세계’(창비)를 펴냈다. 염무웅 문학평론가는 “10년 가까운 감옥살이는 그의 삶에서 결코 공백이 아니었다. 0.75평밖에 안 되는 부자유의 공간 속에서도 그는 혁명투사로서 또 시인으로서 더욱 치열하게 자신을 단련했다”며 “500편 가까운 김남주의 시들 중 4분의3정도가 감옥 안에서 쓰인 것으로 짐작되는데, 세계문학사상 이런 예는 아마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짚었다. 남진우 평론가는 “급진적, 정치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그는 시대 상황을 외면한 공허한 예술을 지양하고 현실적으로 즉각적이고 유용한 시적 담론을 추구했다”며 “그의 공격 대상은 단지 권력자나 외세에 부역하는 족속들에 머물지 않고 소시민의 유약한 허위의식을 여실히 들추어냈다”고 지적했다. 윤지관 평론가는 “김남주의 성공적인 시들은 관념성과 상투성의 함정을 뛰어넘은 경우에 생겨난다”며 “이 시들은 그 강렬한 호소력으로 여전히 독자의 정신에 충격을 주고 공적인 증오에 바탕한 신랄한 풍자의 칼날이 번득인다”고 평했다. 하지만 “노동을 다룬 시에서는 노동현장이나 노동자의 일상에 매개한 박노해의 노동 현실에 대한 이해와 달리, 김남주의 노동자 계몽은 어디까지나 전위적 지식인의 주입식 교육에 가깝다”며 한계를 지적했다. 그가 남긴 시 518편을 한데 묶은 ‘김남주 시전집’(창비)도 함께 출간됐다. 7부로 구성된 전집은 시인이 투옥되기 이전의 초기작과 옥중시, 출옥 이후의 시 등 집필 시기에 따라 나눠 엮었다. 중복 출간되면서 제목을 바꾸거나 고쳐 쓰인 작품은 텍스트를 확정해 원본과 가장 가까운 정본(定本)으로 완성됐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대법 “스팸메일 발송기도 악성프로그램”

    자동으로 광고성 스팸메일을 보내거나 댓글을 작성하는 프로그램을 ‘악성 프로그램’으로 인정해 유죄를 확정한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인터넷에서 이메일 주소를 대량 수집해 무작위로 발송하거나 블로그에 자동으로 홍보용 댓글을 올리는 프로그램을 판매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38)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김씨는 2007년 5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인터넷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를 개설한 뒤 네이버,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사용할 수 있는 메일 발송기, 이메일 수집기, 블로그 댓글 등록기, 지식인 의견글 등록기, 쪽지 자동발송기 등 모두 7가지 프로그램(4040만원 상당)을 판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김씨는 이웃의 와이파이 무선 인터넷 공유기에 무단 접속하는 방법을 이용, 다른 사람의 홈페이지에 하루 평균 8만여건의 스팸 글을 게시하는 등 프로그램 판매를 홍보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해당 프로그램은 손쉽게 동일한 내용의 광고성 메시지를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도록 반복 게재하는 데 쓰인다. 이러한 메시지는 정보통신망에 필요 이상의 부하를 일으키는 것이 인정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메일이나 쪽지함이 광고성 스팸으로 채워져 있는 점 등을 종합하면 이 프로그램은 정보통신망 이용촉진법 및 정보보호법상 ‘악성 프로그램’에 해당한다”며 “이러한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열린세상] 아랫물이 맑아서 버티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열린세상] 아랫물이 맑아서 버티고 있다/이정옥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

    영하 25도의 울란바토르 수크바타르광장의 밤은 추웠다. 안경 렌즈가 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눈치로 알아채고 중국에서 온 수친과 핑이 끝까지 부축하여 무사히 호텔까지 왔다. 그들은 옷도 얇게 입은 채 그 추위 속에서 일행에서 뒤처진 타이완에서 온 어니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1987년 중국을 떠나 베를린에 있는 국제투명성기구 본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랴오는 칭화대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는 수친에게 여러 가지를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몽골에서 일하는 중국인 여행사 직원이 찾아와 그들을 친절히 안내하는 모습도 보인다. 타이베이, 베이징, 베를린, 울란바토르라는 현재 살고 있는 도시와 세대, 하고 있는 일, 그리고 이데올로기와 관계없이 중국인이라는 정체성, 중국어라는 소통의 도구를 기초로 그들은 자연스럽게 오래된 지기처럼 어울렸다. 2014년 2월 18, 19일 열린 국제투명성기구 주최 동아시아회의였다. 동아시아 각국이 보다 청렴하고 부패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장치를 만들고 일반 시민에게 언론 홍보를 강화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전문가 워크숍이었다. 몽골은 반부패부를 설치하고 모든 고위직 공무원의 재산 및 부패 관련 의혹을 감찰하는 독립 국가기구를 설치하고 있었다. 클릭만 하면 누구나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 등의 재산 상태, 주식 보유 실태, 급여까지도 상세하게 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몽골의 희귀 광물을 향해 몰려드는 투자자들의 로비로 국가 자산이 개인 탐욕의 먹이가 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결기가 보였다. 회의에 참가한 우리도 몽골 대통령의 월수입과 보유하고 있는 주식 그리고 재산까지 상세히 볼 수 있었다. 전 근대 시대의 칭기즈칸, 독립 영웅 수크바타르, 민주화의 영웅 조리크를 누구나가 다 존경하고 사랑하고 있었다. 민주화, 투명성, 인권이라는 1990년대 그들이 얻어낸 가치를 중심에 두고 칭기즈칸 시대의 전통을 다시 복원해 새로운 헌법을 만들어 냈다. 전통과 근대, 탈근대의 가치를 한데 아울러 통합의 축을 만들고 있었다. 게다가 인구 구성도 젊다. 현재 우리나라 인기 드라마에 비친 몽골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타이완 투명성 기구는 군대의 투명성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냉전이라는 명분이 군대의 권한 남용으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방위산업의 투명성 강화, 군대에서의 청소년 캠프 등을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하듯 군대의 경험을 민간에 전수시키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눈, 시민사회의 기준을 군대가 도입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용감한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카사블랑카 도매 시장의 비리를 지속적으로 고발하고 있는 상인의 이야기, 촌장 선거 부정을 바로잡기 위해 투옥당하는 고초를 겪고도 계속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30대 중반 중국 청년 사업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제13회 투명사회상을 수상한 황인걸 수방사헌병단 수사과장의 내부비리 고발 이야기는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군대와 방위산업의 투명성 문제가 국제투명성기구에서도 현재 주요 의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울란바토르 공항에서 등산복 차림의 한 무리 한국인들이 눈에 띄었다. 울란바토르에서 하루 종일 기차를 타고 가서 바이칼호 얼음 위에서 명상을 하고 오는 8박9일간의 여정이라고 했다. 그들의 도전 정신이 감탄스러웠다. 경기 중에 새삼 모두가 빙상연맹의 불공정성을 떠들 때 단합의 중요성을 소리 없이 깨우친 어린 선수들의 어른스러움, 큰 영웅에 목마른 한국인의 과도한 갈망을 적절하게 걸러 내는 메달 소녀들의 모습이 든든하다. 유일한 분단국이라는 멍에에 묶인 갈라짐의 정치, 언론과 지식인의 혹세무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의 작은 영웅들은 스스로의 양심과 명예라는 기준을 설정해 맑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아랫물의 에너지와 청정함으로 윗물의 탁함을 중화시키고 있었다.
  • [병원 바이럴마케팅①] 상위노출 전쟁, 정작 콘텐츠가 ‘관건’

    [병원 바이럴마케팅①] 상위노출 전쟁, 정작 콘텐츠가 ‘관건’

    국내 온라인 바이럴마케팅은 네이버 등 검색 포털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그 중에서도 병·의원/한의원은 맛집과 더불어 속칭 작업글들이 넘쳐나는 대표적인 후기성 바이럴마케팅 분야다. 이마저도 상위노출이라는 목표 아래 방대한 양의 바이럴 포스팅을 쏟아내는 소수의 대형 의료기관들 간 쩐의 전쟁으로 좁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달리 말하면, 이제 상위노출도 아무 병원이나 할 수 없는 일이 돼가고 있다는 말이다. 대형 포털의 상위노출 검색로직을 파악하기 위해 바이럴마케팅 기업들이 몸부림을 치는 것도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이 의뭉스러운 ‘기술’과 ‘쩐’이 점령한 포털 검색결과를 바라보는 의료정보 이용 소비자들의 시선은 과연 어떠할까? 오월의나무 정진서 실장은 포털 검색로직보다는 소비자들의 시선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케팅이란 결국 ‘인식의 싸움’이기 때문에 포털 검색결과 화면에서 블로그, 카페, 지식인 등 각종 바이럴 채널에서 반복노출을 점하는 쪽이 소비자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따라서 상위노출 전략을 통한 반복노출 효과는 바이럴마케팅의 주요한 목표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들의 검색행위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정진서 실장은 분석했다. 반복노출이 어떤 내용들이 있는지 살피는 전반적 시야와 관련된 사안이라면, 소비자의 진짜 시선의 무게는 해당 콘텐츠의 진위나 신뢰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비교 검증 과정에 실린다는 관측이다. 정진서 실장은 잠재 고객환자의 최종 결정단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온라인 의료정보 이용 행태 연구가 검색로직 연구보다 선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병원의 상위노출 경쟁이 심화될수록 고객환자의 콘텐츠 비교 검증 과정은 더욱 세밀해지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바이럴 채널을 통해 유포되는 콘텐츠이고, 콘텐츠에 신뢰와 더불어 개연성과 차별성까지 더할 수 있는 기획의 중요성이 대두된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병원, 의원, 한의원이 지향해야 할 바이럴 콘텐츠의 기획방향은 무엇일까? # 신뢰를 줄 수 있는 바이럴 콘텐츠의 3가지 유형 가장 이상적인 콘텐츠는 의료인이 직접 생산하는 전문적 의학 콘텐츠일 것이다. 포털에서 마련된 지식인 등의 공론장에서 주고받는 질의응답 형태의 바이럴 콘텐츠도 있지만, 운영 블로그의 경우는 생생함까지 더해져서 상당한 신뢰를 안겨줄 수 있다. 그러나 바이럴 콘텐츠는 전문적 의학정보만으로 구성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이럴 콘텐츠의 본질상 비전문가의 경험담이 더 의미 있을 수 있다. 물론 병원의 진료와 병행한 운영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점도 있다. 비전문가의 경험담 중 가장 기본이 되는 콘텐츠는 치료사례 또는 후기다. 그러나 원칙적으로 의료법은 후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온라인상에서 로그인 절차를 거치는 한에서만 사용을 허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개수 채우기 식의 치료사례가 아닌, 좋은 사례를 얻기 위해서는 의료진과 병원 측의 각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좋은 치료사례나 후기를 얻기 위한 의료기관의 노력이 필요한 데서 볼 수 있듯이 환자와 병원의 커뮤니케이션, 좀 더 넓혀서 ‘원내 이야기’는 중요한 바이럴 콘텐츠의 원천이다. 치료법이나 장비, 도구 등이 스탠더드화(化)돼 있는 서양의학 의료기관의 경우, 원내 서비스의 질 또는 전문성을 갖춘 의료인의 캐릭터와 같은 면에서 얼마든지 바이럴의 본질적 요소를 발굴할 수 있다.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기 어려운 의학정보나 사용상의 제약이 많은 후기와는 달리, 원내 이야기는 기획에 따라 크게 좌우될 수 있는 부분이다. 치료후기조차도 독립적인 단위 콘텐츠로 보기 보다는 원내 이야기의 연장 선상에서 병원의 색깔을 보다 더 드러낼 수 있는 기획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조언도 정진서 실장은 덧붙였다. 개인이 아닌 병원이 운영하기 때문에 이른바 작업 블로그 냄새가 나지 않겠냐는 반문에 대해서는 운영 주체의 문제보다는 차라리 기획의 부재 때문이라고 잘라 말한다. 오히려 기획이 배제된 후기성 콘텐츠의 일차원적인 사용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고 정진서 실장은 진단한다. # 병원 바이럴 채널은 원내 이야기를 다뤄야 한다 위의 경우들을 현실적으로 조합해 보면, 블로그 등 병원의 바이럴 채널은 결국 원내 이야기를 다루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서 원내 이야기란 공지사항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의료인을 포함한 해당 병원 또는 의원, 한의원의 진솔한 모습을 담은 전체상이다. 치료사례를 편집해 올리더라도 1번 치료사례, 2번 치료사례 식의 치료사례가 아니라 다양한 치료사례에 대한 의료인의 종합적 분석을 곁들어서 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다못해 병원을 주로 방문하는 내원 환자층에 대한 통계적 사실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수 있으나 이는 의료진 또는 간호사들의 어림짐작 속에만 머물러 있는 안타까운 경우가 많다. 보통 소개환자는 많으나 신규환자가 적은 병원들의 하소연을 들을 때, 소개환자가 많다는 자체가 우리 병원만의 신용도를 높일 수 있는 마케팅 요소가 아니겠냐고 정진서 실장은 되묻는다. 자랑거리만을 말해서도 안 된다. 환자들이 호소하는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것을 적극적으로 개선해가는 모습도 블로그를 통해 병의원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상당한 어필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 병원 전문 마케팅 기업의 존재 이유 병원 마케팅의 답은 원내에 있다. 그러나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를 모르는 병원 또는 의원, 한의원들이 대부분이다. 정진서 실장은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병원 전문 마케팅 기업들이 목소리를 내야 할 지점이라고 요약한다. 다양한 병원의 홍보 또는 마케팅 대행이나 프로모션을 담당하며 얻게 되는 경험들은 홍보나 마케팅의 향방을 잡지 못하는 병·의원, 한의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자산이다. 그러나 병원마케팅 기업조차도 스스로의 자산에 대한 재평가에 인색한 경우가 많다. 보통 병원마케팅 기업들은 큰 병원급 의료기관이나 대형 네트워크 의료기관 포트폴리오에만 집착하는 경우가 많고, 병·의원 또한 동종 업계 병원의 마케팅 경험이 있느냐만을 관건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병원과 의원 그리고 한의원과 같은 의료기관은 보통의 기업과 달리 매출과 직결될 수 있는 마케팅을 외주에 맡기는 독특한 관행이 있다. 그만큼 전문적인 분야라는 뜻이다. 따라서 병원의 특성을 이해하는 일은 포털의 검색 로직을 이해하는 일보다 중요한 일일 수밖에 없고, 병원 특성에 맞는 것으로 평가되는 바이럴마케팅에도 전문적 기획이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정진서 실장은 오월의나무의 바이럴마케팅은 병원 바이럴 콘텐츠의 다양한 특성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고객 환자가 수행하는 비교 검증 단계까지 고려한 콘텐츠 전략을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고객환자의 정보 이용 패턴에 대한 연구가 PC를 넘어서 모바일로 확대되고 있다고 전하면서 모바일 역시 상위노출 검색로직 파악보다는 고객환자들이 모바일에서 선호하는 콘텐츠의 유형을 연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 목숨을 건 학도병 탈출기… 첫 기록을 꺼내다

    목숨을 건 학도병 탈출기… 첫 기록을 꺼내다

    어느 독립운동가의 조국/윤재현 지음/나남/592쪽/3만 5000원 “꿈에 그리던 광복군이 된 것은 한없이 기뻤으나 장쑤성 린촨시에서 보낸 시간은 지루하고 무료했다. (중략) 시간을 뜻있게 보내기 위해 우리끼리 잡지를 만들기로 하고 몇몇 동료가 함께 나섰다. 이름은 ‘등불’로 정했다.”(225쪽) 3·1절 95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조국’이란 무엇인가. 이 가슴 뛰는 단어를 떠올리며 세상에 나온 잡지 ‘등불’은 ‘장정’(김준엽)이나 ‘돌베개’(장준하) 등의 책에도 여러 차례 언급된 바 있다. 중국 민가의 개를 훔쳐 먹을 만큼 비참했던 광복군 간부 훈련반 시절 저자인 고(故) 윤재현 박사는 동료인 김준엽·장준하 등과 의기투합해 책을 펴냈다. 종이가 없어 속옷을 벗어 손으로 필사한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 보스턴칼리지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생물학자다. 유전변이 쥐를 다룬 그의 논문은 지금도 ‘네이처’나 ‘사이언스’ 등 세계적 과학저널에 인용될 만큼 인정받는다. 하지만 그가 해방 공간에 머문 시기는 불과 3년. 무장해제를 조건으로 가까스로 귀국한 광복군과 불순세력으로 내몰린 임시정부 지도자들의 처지를 한탄하다 급작스럽게 미국행을 택했다. 1948년 28세의 젊은 나이에 도미하기까지 그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저자는 19세에 일본 교토의 도시샤대학으로 유학 갔다. 하지만 침략 전쟁에 광분한 일제에 등떠밀려 1940년대 초 중국의 전장으로 향했다. 저자는 “‘일본군 입대’란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앞에 몸부리치다 온갖 좌절과 분노를 쏟아냈다”고 했다. 앞장서 학병 지원을 선전하고 다닌 당시 조선 최고 지식인들은 저주의 대상이 됐다. 이후의 삶은 광풍처럼 휘몰아쳤다. 용산 25부대 입영 이후 설원을 내달려 배치된 전장, 살아 있는 중국인을 창검으로 찔러 죽이던 훈련, 중국 변방의 비참한 조선인 술집 접대부들, 고문과 사형의 위험을 무릅쓰고 감행한 탈영, 2400㎞를 걸어 73일 만에 도착한 충칭의 임시정부. 이들을 맞은 건 백범 김구였다. 저자는 “위대한 혁명 영웅을 만나 감격과 기쁨에 또 한 번 목이 메었다”고 회상했다. 몸도 씻고 수염도 깎고 화톳불을 피워 이투성이 옷을 태운 저자 일행은 밤을 지새워 목놓아 조선의 옛 노래를 불렀다고 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다시 미군 정보기관인 OSS에 배속돼 특수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국내 침투가 임박한 1945년 8월 10일, 훈련 책임자로부터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전해 듣는다. 이런 경험은 고스란히 우리나라 최초의 학병 탈출기인 ‘사선을 헤매며’(1948)에 담겼다. 임시정부 부주석을 지낸 우사 김규식은 책 서두의 추천사에서 “심신상의 고통은 이루 기록할 수도, 형언할 수도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단 한 권 남았던 책은 보존 상태가 불량해 내용을 알아보기가 불가능했다. 저자의 조카인 김현주 광운대 교수는 1994년에 타계한 윤 교수를 대신해 ‘사선을 헤매며’와 임시정부 소개 책자인 ‘우리 임시정부’(1946), 소설 ‘동토의 청춘’(1979)을 엮어 책을 펴냈다. 책은 우리의 태만과 방종을 꾸짖는 고함 소리와 같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구본영 칼럼] 우리 안의 안전불감증, 혹은 성마름

    [구본영 칼럼] 우리 안의 안전불감증, 혹은 성마름

    지난주 동계올림픽이 열린 소치의 눈밭을 지켜보다 폭설 속 경주의 리조트에서 대참사가 빚어졌다는 TV 자막을 접했다. 우리 선수의 금메달 낭보를 기다리던 차에 악몽 같은 소식이었다. “눈이 그렇게 많이 왔는데 지붕 한 번만 쳐다봤더라면 얘들이 그렇게….” 눈 무게로 체육관 천장이 무너져 아들을 잃은 어느 아버지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에 맴돈다. 유달영은 자전적 수필 ‘슬픔에 관하여’에서 부모를 여읜 슬픔을 하늘이 무너지는 데 빗대 ‘천붕’(天崩)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아들을 먼저 보내는 아픔을 표현하는 말은 찾지도 못했다. 미우나오션 리조트 체육관 붕괴로 10명이 소중한 생명을 잃었다. 새내기 대학생들이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만 비극에서 값비싼 교훈을 찾아야만 한다. 사고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꼽힌다. 코오롱그룹 측은 눈 핑계를 대고 싶겠지만, 사건 자체는 누가 봐도 인재(人災)다. 무엇보다 쏘나타 200대 무게의 눈이 덮인 체육관에 560명을 입장시킨 ‘배짱 영업’이 놀랍다. 그것도 얇은 철판에 스티로폼을 덧댄 샌드위치 패널로 덮은 허술한 건물에.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개명하면서까지 안전을 강조하던 정부는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국민행복의 출발은 안전에 있다”고 한 박근혜 정부의 인식이 잘못됐단 말은 아니다. ‘경주참사’ 며칠 전 인근 울산에서 폭설로 수많은 공장의 샌드위치 패널이 붕괴했는데도 ‘안전’행정부 등 당국은 적극적 사전 안전점검에 나서지 않았다. 부산외국어대나 총학생회 측의 무신경은 말할 것도 없다. 강도만 다를 뿐 기업과 정부, 그리고 학교와 학생회 모두 안전 불감증에 젖어든 꼴이다. 문득 오래전 우리 농촌을 여행한 외국인 여행자가 쓴 글이 생각난다. “추운 겨울인데 창호지가 찢긴 채로 있었다. 잠자리에 들게 되자 (농부는) 버선으로 구멍을 막았으며, 아침이 되자 태연히 그 버선을 꺼내 신었다. 겨울 내내 그렇게 지내며 창호지를 바르려 하지 않으려는 것 같았다.” 한국인의 일상적 무신경에 대한 신랄한 지적이었다. 우리를 보는 세계인의 객관적 평가도 이 여행자의 시선과 별반 다르지 않다. 무역협회가 얼마 전 국내외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포커스그룹 인터뷰와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라. 조사에서 한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저소득 탈식민 국가들의 역할모델’로 평가됐으나 한국인은 ‘열심히 살지만, 여유가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미지로 비쳐졌다. 문제는 매사를 건성건성 해치우는 습성이 우리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는 사실이다. ‘적당주의’는 지역·세대·계층을 불문하고 만연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이념적 성향을 떠나 지식인층에서도 예외는 없다. 얼마 전 어느 진보 논객은 검찰이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20년형을 구형하자 “허황된 꿈을 꾸는 이석기도 미쳤지만, 그 허황된 꿈에 20년형을 구형하는 검찰도 미쳤다”고 조롱했다. 다른 정치적 계산이 있는지 모르나 매우 안이한 언급으로 비쳐진다. 천길 둑도 개미 구멍 탓에 무너진다는데…. 이 의원 주도 모임에서 ‘평택 유조창 탱크 폭파” 등 대량 인명살상 위험이 있는 온갖 테러 계획이 거론됐다면 말이다. 9·11테러를 자행한 빈 라덴이 미국과 전쟁하겠다고 호언했을 때만 해도 모두들 “허황하다고 했다”는 이상돈 교수의 반론이 그래서 설득력이 있다. 결국 우리 안의 안전 불감증이 화근이다. 선진권으로 확실히 진입하려면 우리 내면에 체화된 속도지상주의나 그 이면에 깃든 조급한 욕심부터 걷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안전을 강조한들 이 땅에 건설됐거나 앞으로 지어질 어느 건물과 다리가 무너지거나, 카드사 정보유출 같은 금융사고가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황차 복지국가 건설이나 통일 등 국가대사를 차질 없이 일구려면 차근차근 미리미리 준비하는 것 이외에 달리 무슨 대안이 있겠는가. 논설실장 kby7@seoul.co.kr
  • 성매매와의 전쟁… 中 인권논쟁 비화

    성매매와의 전쟁… 中 인권논쟁 비화

    관영 언론의 고발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산된 중국의 ‘성매매와의 전쟁’이 인권과 이념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자유파 지식인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성매매 전쟁’을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자 당국이 이를 ‘반(反)정부 여론’으로 인식하고 반격에 나서면서 민·관 대립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16일 베이징, 광저우(廣州) 지역 여대생들이 “성매매도 정당한 직업이며 성매매 종사자들도 인권과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중국중앙(CC)TV의 광둥(廣東) 성매매 실태 보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에 참가한 여대생 웨이팅팅(韋??)은 “CCTV가 광둥의 성매매 실태를 조명하면서 매춘 여성들의 얼굴과 알몸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CCTV는 지난 9일 광둥의 성매매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자유파 지식인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당국이 정작 큰 호랑이(큰 부패)는 못 잡고 민주와 헌정, 그리고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요구한 인권 운동가들은 줄줄이 사법처리하면서 성매매 전쟁을 성전(聖戰)인 양 포장해 약자인 매춘 여성들만 괴롭힌다는 주장이다. 자유파 언론인 출신인 류샹난(劉向南)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CCTV 여성 앵커들이 고관들에게 몸을 파는 노리개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관영 언론이 자신은 권력에 영혼을 팔면서 약자인 매춘 여성의 알몸만 비추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국은 매춘 전쟁 대신 공직자 재산공개 등 국민을 위한 반부패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비롯해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관영 언론들은 이 같은 ‘성매매 전쟁’ 보도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당국에 대한 반감으로 보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선전전을 펴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 15일 사설에서 “서방 국가에서도 매춘은 불법이다.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은 기본 상식도 없는 소리”라고 꼬집었으며, 환구시보는 “성매매 문제를 고발한 CCTV에 대한 비난은 사회 주류 여론에 위배되는 소리”라고 자제를 경고했다. 한편 중국 당국은 매춘 소탕 작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광둥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매춘 단속이 잇따르고 있으며 지난 13일 장쑤(江蘇)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공안 5000명이 출동해 성매매 종사자 100여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광둥성은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지 못한 죄로 옌샤오캉(嚴小康) 둥관(東莞)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을 면직 처리했다. 광둥발 ‘성매매와의 전쟁’을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 광둥 당 서기와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후춘화는 이번 성매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난해 전개한 ‘마약과의 전쟁’ 이후 또 하나의 정치적 치적을 쌓게 된다. 후춘화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당 서기 취임 이후 8개월 동안 반부패 혐의로 20여명의 지역 고위 관리를 낙마시켰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女앵커, 고관대작 노리개…다 아는 사실”

    “女앵커, 고관대작 노리개…다 아는 사실”

    관영 언론의 고발로 시작돼 전국적으로 확산된 중국의 ‘성매매와의 전쟁’이 인권과 이념 논란으로 비화되고 있다. 자유파 지식인들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성매매 전쟁’을 인권 침해라고 비판하자 당국이 이를 ‘반(反)정부 여론’으로 인식, 반격에 나서면서 민·관 대립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홍콩 명보(明報)는 16일 베이징, 광저우(廣州) 지역 여대생들이 “성매매도 정당한 직업이며 성매매 종사자들도 인권과 인격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중국중앙(CC)TV의 광둥(廣東) 성매매 실태 보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시위에 참가한 여대생 웨이팅팅(韋??)은 “CCTV가 광둥의 성매매 실태를 조명하면서 매춘 여성들의 얼굴과 알몸을 그대로 노출시킨 것은 심각한 인권침해 행위”라고 비판했다. CCTV는 지난 9일 광둥의 성매매 실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보도가 나가자 자유파 지식인들의 문제제기가 이어졌다. 당국이 정작 큰 호랑이(큰 부패)는 못 잡고 민주와 헌정, 그리고 공직자 재산공개 등을 요구한 인권 운동가들은 줄줄이 사법처리하면서 성매매 전쟁을 성전(聖戰)인 양 포장해 약자인 매춘 여성들만 괴롭힌다는 주장이다. 자유파 언론인 출신인 류샹난(劉向南)은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에서 “CCTV 여성 앵커들이 고관들에게 몸을 파는 노리개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라면서 “관영 언론이 자신은 권력에 영혼을 팔면서 약자인 매춘 여성의 알몸만 비추고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국은 매춘 전쟁 대신 공직자 재산공개 등 국민을 위한 반부패에 앞장서야 한다는 것이다. 당 기관지인 인민일보를 비롯해 신화통신, 환구시보 등 관영 언론들은 이 같은 ‘성매매 전쟁’ 보도에 대한 비난 여론을 당국에 대한 반감으로 보고 이를 억제하기 위해 선전전을 펴고 있다. 인민일보는 지난 15일 사설에서 “서방 국가에서도 매춘은 불법이다. 성매매를 옹호하는 것은 기본 상식도 없는 소리”라고 꼬집었으며, 환구시보는 “성매매 문제를 고발한 CCTV에 대한 비난은 사회 주류 여론에 위배되는 소리”라고 자제를 경고했다. 한편 중국 당국은 매춘 소탕 작전을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은 광둥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매춘 단속이 잇따르고 있으며 지난 13일 장쑤(江蘇)성과 헤이룽장(黑龍江)성에서 공안 5000명이 출동해 성매매 종사자 100여명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광둥성은 불법 성매매를 근절하지 못한 죄로 옌샤오캉(嚴小康) 둥관(東莞)시 부시장 겸 공안국장을 면직 처리했다. 광둥발 ‘성매매와의 전쟁’을 차세대 주자로 꼽히는 후춘화(胡春華) 광둥 당 서기와 연결시키는 시각도 있다. 후춘화는 이번 성매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난해 전개한 ‘마약과의 전쟁’ 이후 또 하나의 정치적 치적을 쌓게 된다. 후춘화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반부패 기치를 내걸고 있으며 당 서기 취임 이후 8개월 동안 반부패 혐의로 20여명의 지역 고위 관리를 낙마시켰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조선 지식인의 문화, 한시에 다 담겼네

    조선 지식인의 문화, 한시에 다 담겼네

    한시의 품격/김풍기 지음/창비/316쪽/1만 5000원 조선 중기의 문신 허균이 1615년 무렵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 청나라의 수도 연경에서 천문을 살피는 중국 관리를 만났는데 그가 말하길 “조선 쪽에 해당하는 하늘에서 규성(奎星·문장을 관장하는 별자리)이 빛을 잃은 걸 보니 아마도 뛰어난 문장가가 죽은 모양”이라고 했다. 순간 허균의 머릿속에는 번뜩 불길한 생각이 스쳤다. ‘현재 조선 최고의 문장가를 꼽으라면 당연히 나이리라. 그렇다면 이승에서의 내 명운이 다했다는 말이 아닌가.’ 머나먼 중국 땅에서 객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말을 달려 압록강을 건너자 시인이며 문신인 차천로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런! 당대 최고의 문장가는 내가 아니라 차천로였다는 거였군.’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일화이다. 하지만 조선의 문인들은 관직에 등용되어서도 시를 짓는 등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과 국가를 경영하려 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다. 조선 중기의 문인 채유후와 정두경은 당대 최고의 시문가(詩文家)들이었다. 한번은 두 사람이 함께 과거를 관장하게 됐다. 당시 채유후는 정이품 대제학(大提學)으로서 한 시대의 문풍(文風)을 좌우하는 막중한 자리였고, 정두경은 정육품인 정언(正言)으로서 왕의 잘잘못을 따지고 간언하는 사간원 관원이었다. 그래서인지 정두경은 과거시험 답안지를 채점하는 일에는 관여하지 않고 낙방으로 분류된 응시자들의 답안지를 들추어 보면서 그중 어떤 것은 잘 썼노라며 칭찬을 하곤 했다. 정두경의 행동을 참다 못한 채유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대가 문장을 잘한다고는 하지만 지금의 직책은 대간(臺諫)에 속하는 정언을 맡고 있으니, 직책을 넘어서는 일일랑 하지 않는 게 좋겠소.” 그러자 정두경은 버럭 화를 내면서 수염을 잡고 소리쳤다. “백창(伯昌·채유후의 자)! 네가 우연히 동책(東策·과거시험 예상 문제집)을 읽고 과거에 급제한 건 요행이다. 내가 보기에, 네가 과거시험 책임자가 된 건 썩은 쥐새끼나 같은 거다. 네가 감히 나를 꾸짖는단 말이냐?” 정두경이 심하게 비난했으나 채유후는 곧바로 웃으면서 사람을 불러 술을 가져오게 해 술잔을 권하며 시 한수를 청했다. 정두경은 붓을 들어 즉시 시를 썼다. 책은 조선시대 주류 문화인 한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뿐만 아니라 그 속에서 조선 지식인 사회와 문화를 읽어낸다. 또한 ‘한시란 무엇이다’라고 정의하지 않고 한시를 보는 저마다의 다른 시각을 다양하게 보여 주면서 한시 입문서 역할도 하고 있다. 유상덕 선임기자 youni@seoul.co.kr
  • [저자와 차 한잔] ‘사유와 매혹’ 펴낸 박홍순 씨

    [저자와 차 한잔] ‘사유와 매혹’ 펴낸 박홍순 씨

    지금 한국에는 인문학 열풍이 뜨겁다. 각급 도서관이며 지방자치단체와 학술단체, 기업체가 앞다퉈 마련하는 문화 강좌엔 인문학을 배우려는 수강생들로 넘쳐난다. 그런데 그 뜨거운 인문학 열풍의 한쪽에선 깊이 있는 공부가 아쉽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홍순(51)씨는 그런 틈새에 일찍 눈뜬 인문학 전도사다. 웬만한 이라면 한번쯤 읽어 봤을 스테디셀러 ‘미술관 옆 인문학’ ‘히스토리아 대논쟁’ ‘맛있는 고전 읽기’의 저자다. 그가 8년간에 걸친 고생 끝에 역저 ‘사유와 매혹’(서해문집)의 저술을 마무리했다. ‘사유와 매혹’ 2편 출간에 맞춰 14일 그를 만났다.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어디서든 쉽게 느낄 수 있을 만큼 폭넓게 번지고 있어요. 그런데 그 갈증에 걸맞은 내용과 깊이가 모자라요. 대학 울타리 안에 머물고 있는 아카데믹한 인문학과 초보·입문에 머무는 얕은 맛보기의 양극화가 안타깝지요.” 그래서 이제 그 갈증의 간극을 메우기 위해 학계와 지식인들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박씨는 먼저 말을 꺼냈다. 8년 만에 마침표를 찍은 그의 저술도 어찌 보면 그런 갈증을 해소하는 데 작은 보탬이 되려는 차원에서 시도한 결과물이다. 2002년 1편이 원시시대부터 중세까지의 철학사와 미술사를 접목한 것이라면 2편은 근대부터 현대까지의 천착이다. 864쪽의 방대한 분량이다. 웬만한 전문가라 해도 철학사나 미술사의 한쪽만 들춰내기도 버거울 듯한 분야다. 인류사에 큰 획을 그었던 철학 사조의 핵심을 관련 미술 작품을 붙여 이해를 돕는 친절한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은 사람 삶의 근본적인 가치를 들여다보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지름길입니다. 깊이 있는 공부와 천착이라면 훨씬 더 실속 있는 지혜와 가치를 건져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요즘 인문학 공부는 그렇지 못해요.” 그저 처세술과 화술 혹은 개인 차원의 치유 방편쯤으로 다뤄지는 어긋난 인문학 열기에 대한 지적이다. 그러면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어찌 보면 비전문가인 그가 어떻게 그 까다롭고 방대한 철학과 미술을 연결하게 됐을까. “원래 미대 지망생이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결국 생물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학생운동과 시민사회운동을 하면서 인문사회과학 책들을 찾아 읽었고, 미술은 원래 관심 분야인 만큼 독학을 해 왔어요.” 철학사에 대한 통찰 없이 미술사를 이해할 수 없고 미술사를 알지 못하면 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렵다고 한다. 이번 책을 내기 위해서도 지난 8년간 유럽 미술관을 샅샅이 훑어 작품들을 확인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통제와 억압으로 암울했던 시대와는 크게 다릅니다. 자유에 대한 갈증은 해소됐지만 정작 내용 면에선 바람직하지 못한 것 같아요. 자유로운 개개인이 문화적 동질감을 갖고 연대한다면 훨씬 더 성숙하고 발전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오랫동안 몸담아 왔던 문화운동에 대한 속 깊은 소견이다. “인문학이 현실 사회에서 동떨어진다면 화석화될 것이 뻔하지요. 당연히 인문학적 사고는 일상적인 사고와 행위를 지배하는 통념에 대한 도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이 사는 데 있어서 경제적인 동기가 중요하지만 어찌 보면 문화적 동기도 그 못지않게 크게 작용한다. 지금 한창인 인문학 열기는 바로 그 문화적 동질감의 결속에 다름 아니라고 거듭 말한다. 그는 공무원, 교사 등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의와 공공도서관의 스타 강사로도 유명하다. 8년간 이번 책 작업을 진행하면서 너무 힘이 들어 ‘괜히 시작했다’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지만 책이 나오고 보니 보람이 크단다. 그 “미련한 고집”은 계속될 것 같다. ‘서양철학과 미술의 역사’ ‘동양철학과 미술의 역사’ ‘한국철학과 미술의 역사’ 연작을 70세까지 세상에 내는 게 소원이란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영국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

    [부고] 영국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취임하기 전 ‘대처리즘’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신랄하게 비판했던 좌파 문화이론가 스튜어트 홀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텔레그래프 등 영국 언론은 10일(현지시간) 홀의 죽음을 일제히 보도했다. 대부분의 좌파 지식인이 대처를 깔보는 가운데 그는 총리 취임 4개월 전에 대처의 등장과 새 시대로의 진입을 알아봤다. 그의 대처리즘은 좌파 사회의 사고를 재구성하며 훗날 신노동당 탄생의 토대가 됐다. 1932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에서 태어난 홀은 1951년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 대학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본토의 차별로 박사학위를 포기하고 정치, 문화를 연구한 그는 ‘다문화주의’가 영국 정치의 주류에 편입되는 데 기여했다. 1960년 역사학자 E P 톰슨, 문화학자 레이먼드 윌리엄스와 함께 신좌파를 대표하는 잡지 ‘신좌파 리뷰’의 창간 편집자로 활동하며 영국 사회에 이민과 정체성 등에 관한 다양한 논쟁이 일어나게 했다. 1964년부터는 영국 최초의 문화연구소인 버밍엄대 현대문화연구소에서 활동했다. 홀은 1979년부터 오픈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연구를 계속했고 1997년 은퇴한 뒤로는 대중 앞에 드러나는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홀은 2년 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독립적인 분석도 아이디어도 없어진 좌파가 곤경에 빠졌다”면서 “사람들의 관점을 바꿀 정치적 감각을 잃어버린 좌파는 그저 시류를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21세기 지식인 2000인’ 등재

    ‘21세기 지식인 2000인’ 등재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가 북한·통일 문제 전문가로는 이례적으로 세계 인명사전에 잇달아 등재됐다. 경남대는 임 교수가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 국제인명센터(IBC)가 발간할 ‘21세기 뛰어난 지식인 2000인’의 등재 인물로 선정됐다고 10일 밝혔다. 임 교수는 미국의 인명사전 ‘마퀴스 후즈 후’ 2014년판에 등재된 데 이어 외국 인명사전 2개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임 교수는 남북 교류·협력 사업에서 왕성한 연구 활동을 해 왔고 20여권의 저서와 논문 30여편을 발표했다.
  • 최장집 교수 “정치할 시간에 연구 더 했어야”

    최장집 교수 “정치할 시간에 연구 더 했어야”

    “차라리 그 시간에 학교에서 더 열심히 연구하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원로 정치학자인 최장집(71)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 8일 자신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해 “그 시간에 연구를 더 했어야 한다”고 회고하며 학자들의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개진했다. 최 교수는 이날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W스테이지에서 열린 ‘문화의 안과 밖’ 세 번째 강연에서 ‘학문의 중립성과 참여’를 주제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학자들은) 학문적 탐구에 전념하면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나도) 개인적 인간관계나 정치적 문제 등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지만 돌아보면 거기에서 내가 한 역할이란 크지 않다. 별로 남는 게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지난해에는 안철수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 이사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정치와 사회에 대한 관찰자이자 심판관이 지식인의 적절한 역할이자 위상”이라며 “민주화 이후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 현실의 정당정치 과정, 그와 연결된 사회운동 등 3개 영역에서 학자들의 역할과 영향력이 크게 확대된 만큼 학자들의 정치 참여는 책임을 수반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학자들이 현실정치,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 등 공적 영역에서 하는 행위는 사회적으로 매우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정당정치가 분단체제하에서 이념적으로 양극화됐고, 선거에서 이긴 정당이 정부를 관리·운영할 권한을 위임받는 현실에선 학자들의 현실 참여가 정치권력과 이념으로 양극화된 어느 한 쪽에 편입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학자가 꼭 현실 참여를 통해서만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학문 연구에 전념하면서도 공익에 얼마든지 이바지할 수 있다”며 “정치인과 마찬가지로 학자들도 자신의 사익을 위해 진실을 왜곡하거나 깊이 탐구하지 않는 등 소명의식과 책임윤리를 결여한 채 가치와 신념을 추구하는 것이 얼마나 공익에 해가 되는지 인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반도의 통일과 한·중 공조/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글로벌 시대] 한반도의 통일과 한·중 공조/전가림 호서대 교양학부 교수

    지금 북한에서는 ‘지식인의 탈주 내지 이반 현상’과 ‘국제적 고립무원 상태’, 그리고 ‘도덕적 불감증’ 등과 같은 체제 말기적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필자는 얼마 전 본지에 실린 글에서 밝힌 바 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일반 백성의 빈곤이 정치적 변혁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이래 심각한 경제적 위기가 정치권력의 안전을 크게 위협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저명한 정치학자인 라스웰 교수도 계속적인 가치박탈이야말로 지배에 대한 반항의 원인이 된다고 했다. 최근 미국 공영방송 PBS의 뉴스 프로그램 ‘프런트라인’은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 체제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체제의 종말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지난달 6일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 생각한다”고 한 이래 통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그간 우리 사회에는 ‘통일 부담론과 회피론’이 적지 않았지만 지금은 통일이야말로 민족의 블루오션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통령이 ‘대박’이란 통속적인 언어를 사용한 이면에는 통일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통일에 대한 국민의 심리적 부담과 회피를 불식시키려는 계산된 정치적 수사로 여겨진다. 그러나 세상사란 여의치 않은 것이어서 기대했던 대박이 쪽박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헌법 제4조에 명시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즉, 자유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인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의 존엄이 통일된 한반도에 정치적 비전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박 대통령도 그런 통일을 염두에 두고 ‘대박’이라고 했을 것이다. 국제기구와 전문가들은 7500만 인구의 ‘통일 한국’이 경제·정치적으로 세계의 주도국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고 있고,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는 “남북 통합이 시작되면 최소 3억 달러의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고 했으니 말이다. 적어도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같은 준비와 노력은 북한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신속한 정보에 근거해야 한다. 이미 진부한 말같이 들릴지라도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병가의 주장은 만고불변의 진리가 되었으니,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에 대한 정보 수집능력은 물론 국내외에서의 대공수사력 강화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예측불허의 북한 정권의 행태와 모험주의적 도발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이른바 종북 내지 친북 세력이 곳곳에서 준동하고 있다는 우리의 현실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반도의 분단이 그런 것처럼 통일도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으므로 관련국들에 대한 이해와 공조는 불가피하다. 지난번 박 대통령은 다보스 포럼 기조연설 직후 클라우스 슈밥 다보스 포럼 회장과의 질의응답에서 “통일은 한국에만 대박이 아니라, 동북아 주변국 모두에게 대박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실증적인 자료와 객관적인 가능성을 가지고 관련국들의 이해와 공조를 구해야 한다. 특히 주변국들 중에서도 대북 영향력이나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중국의 이해와 공조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선행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한반도 통일은 나쁜 통일(쪽박)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춘원은 왜 조선총독에게 학교 건립을 몰래 건의했을까

    춘원은 왜 조선총독에게 학교 건립을 몰래 건의했을까

    소설가인 춘원 이광수(1892~1950)가 3·1운동 직후 해외를 방랑하던 지식인 조선 청년의 구제를 언급하며 조선총독인 사이토 마코토(1858~1936)에게 보낸 2건의 ‘건의서’ 전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창씨개명한 일본 이름인 가야마 미쓰로(香山光郞)가 말해 주듯 민족주의자, 근대문학자, 천황주의자, 친일 작가의 모습이 얽힌 이광수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받는다. 하타노 세쓰코 나타카현립대 교수는 최근 발간된 ‘근대서지’ 8호의 ‘사이토 문서와 이광수의 건의서’란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건의서에는 “조선인의 망령된 움직임을 견제하고 그들에게 지식과 부를 주어 생활의 안정을 얻는 데 효력을 얻을 수 있다. 상술한 사업을 진행하는 데 절대 비밀을 지키는 것이 좋다”는 이광수의 당부가 실려 있다. 이 건의서는 일본 국회도서관 헌정자료실에 보관 중인 ‘사이토 마코토 관계문서’에 포함된 140자 분량의 원고지 14장에 담긴 문건이다. 해군대신, 내무대신, 내각총리대신 등을 지낸 사이토는 3·1운동이 일어난 1919년부터 10년간 조선총독을 지내며 이른바 ‘문화통치’를 수행했다. 생전 일기·서류 등 1만건 이상의 방대한 자료를 남겼다. ‘재외 조선인에 대한 긴급책에 대해 다음의 2건을 건의함’이란 부제가 달린 문건에는 이광수가 사이토에게 조선 통치를 조언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등교육 이상을 받은 조선 청년 2000여명이 중국과 시베리아를 유랑하는 현실을 우려하면서 이들이 러시아의 수중에 들어가면 무장 독립운동 등 일본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거론했다. 이광수가 내건 해법은 교육과 직업의 제공이다. 이를 국가나 인류가 꼭 수행해야 할 선도사업이라고 주장했다. 두 번째 건의서에선 간도, 서간도에 거주하는 방랑 청년들을 위해 소학교와 강습소를 짓고 계몽 출판물을 배포할 것을 제안했다. 사업 적임자로는 명망과 사무적 수완, 강고한 의지를 지닌 조선인으로 친일파로 여겨지지 않는 사람이어야 한다고도 했다. 하타노 교수는 “이광수가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한 것은 당시 총독부 돈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동포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며 “나름의 각오를 지닌 제안이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정병석의 경제산책] 스페인 제국 쇠퇴의 교훈

    [정병석의 경제산책] 스페인 제국 쇠퇴의 교훈

    스페인은 한때 전 세계에 걸쳐 해가 지지 않는 대 제국을 건설했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래 17세기 중반까지 아메리카에서 금 181t, 은 1만 7000t이 스페인으로 유입되었다. 금괴 1개가 1kg 정도이니 금 유입량만 계산해도 금괴 18만개가 넘는다.(지난해 한국 정부의 금 보유량이 100t을 넘어섰다.) 그 막강했던 스페인도 1588년 무적함대의 패배를 겪고 17세기 들어 쇠퇴하기 시작한다. 스페인의 여러 학자들은 제국의 쇠퇴를 막기 위해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진단하며 특단의 정책이 시급하다는 것을 호소하면서 1600년 첫 책 출판을 필두로 17세기 전반에 잇달아 개혁 서적을 발간한다. 이들 일군의 학자들을 계획자, 설계자라는 의미로 ‘아비트리스타’라고 한다. 그런데 이들이 제안한 여러 개혁 조치들은 스페인에서 수용되지 않는다. 후대의 어느 역사가는 역사상 이렇게 시의적절하게 훌륭한 해결책을 제시한 선례도 없고 더구나 그러한 건설적인 제안들이 그처럼 철저히 무시된 사례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이들의 책은 스페인에서 인쇄 출판되어 사람들에게 읽히며 평가를 받는 기회를 얻었다. 반면에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본 책을 인쇄했던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의 경우에는 19세기 초반에 저술된 다산의 경세유표 등 실학파들의 혁신적인 국가 쇄신책들이 출판되는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몇 사람이 필사본으로 겨우 돌려보아야 하는 처지에 머물러 있었다. 아비트리스타들은 전쟁과 사치로 낭비되는 과도한 정부지출을 줄이자, 불공정한 세제를 혁신하자, 관개 수로와 도로를 확충하자는 제안을 했다. 스페인은 막대한 금·은을 갖고도 해마다 외국과의 전쟁, 궁궐과 기념비적인 건축물, 마드리드로의 수도 이전 등에 탕진하여 국가 재정은 적자를 면치 못했고 왕실은 8차례나 파산에 직면해야 했다. 쏟아져 들어오는 금은보화는 전쟁과 사치에 낭비될 뿐 생산시설을 만들거나 도로, 관개 저수지 등 생산적인 자본을 축적하는 용도로는 쓰이지 못했다. 왕실, 귀족과 소수의 상인들에게 막대한 이권과 독점 특혜를 주고 평민들에게는 무거운 세금 부담을 지워 사회통합을 저해했다. 귀족, 성직자들에게는 면세 혜택을 주고 그 부담을 평민들에게 무겁게 지워 빈부격차를 확대했다. 당시 학자들은 이런 모든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개혁안을 제시했던 것이다. 아비트리스타들은 상공업을 경시하는 풍조를 바꾸고 사치를 배격하며 근검절약하자는 제안도 한다. 빈부격차의 확대로 중산층이 축소되어 사회적 균형, 공정한 비례가 계속 훼손되면 나라가 쇠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늘날 경제학의 핵심 이슈인 이러한 문제인식이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정립되기도 전인 17세기 초에 이미 나왔다는 것을 보며 당시 지식인들의 현실 진단과 대안 제시가 얼마나 예리했는지 감탄스러울 정도다. 한 나라의 경제성장에는 자본, 노동 등의 생산요소와 정치, 경제, 제도뿐만 아니라 국민의 윤리관, 가치관 등도 중요하다. 경제성장에 장기적으로는 제도가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이론을 정립하여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노스는 사회의 가치관 윤리 등 문화(이를 비공식적 제도라 부른다)가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요즘에는 사회적 자본이 경제에 미치는 역할을 강조하는 학자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는 언제부터인지 법제도를 너무 앞세우는 나머지 신뢰, 사회규범, 가치관 등 비공식적 제도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법제도는 당초 의도했던 목적과는 달리 또 다른 규제를 양산하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저해할 가능성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법제도라기보다는 경제 주체들이 신뢰하며 자유롭게 경제활동을 하도록 인센티브를 주며 사회통합을 배려하는 비공식적 제도, 사회적 자본이 아닐까 생각한다.
  • [박홍환의 시시콜콜] 소녀들의 절망과 동아시아의 비극

    [박홍환의 시시콜콜] 소녀들의 절망과 동아시아의 비극

    그녀의 일생이 송두리째 나락으로 떨어진 건 그녀 나이 13살 때였다. 함경남도 영흥의 집 앞에서 일본 순사에게 납치된 그녀는 3년간 유리공장에서 강제노역을 당한 뒤 간도로 끌려갔다. 꽃다운 어린 소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일본군에게 청춘을 짓밟힌 그녀는 절망감으로 가득했을 10대 이후 암흑의 삶을 가슴속에 담아놓은 채 어제 경기 파주의 삼각지성당 하늘묘원에 지친 몸을 눕혔다. 그렇게 떠난 그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황금자 할머니가 폐지와 빈병을 주워 모은 전 재산을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얼마나 사무쳤는지 “위안부 문제를 잘 공부해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평생을 대인공포증과 일본 순사의 환상과 환청에 시달렸던 그녀는 왜 아픈 역사를 후대에 기억시키려 했던 것일까. 또 다른 그녀, 샤수친(夏淑琴)의 시계는 유난히 추웠던 난징(南京)의 1937년 12월에 멈춰져 있다. 그녀 나이 8살 때다. 흘러내린 피로 강을 이뤘던 난징대학살 당시 그녀는 눈앞에서 온 가족을 잃었다. 자신도 일본군 칼에 3곳이나 찔려 사경을 헤매다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당시 난징에서는 일본군 병사들의 ‘살인경쟁’으로 한 달 동안 30만명이 무참히 학살됐다. 여성들의 경우 ‘선간후살’(先姦後殺·먼저 성폭행하고 나중에 죽임)하거나 위안부로 데려갔다. 그런 ‘야만의 시대’를 직접 경험하고 목격한 그녀는 일본군의 만행을 증언하는 일에 평생을 매달려 왔다. 그녀가 트라우마에서 벗어날 날은 언제쯤일까. 제3의 그녀, 요코 가와시마 왓킨스 역시 깊은 절망감에 빠진 어린 시절을 겪었다. 군림하던 ‘황국 신민’에서 졸지에 지탄받는 ‘패전국 쓰레기’로 전락한 건 그녀 나이 12살 때다. 당시 절망과 공포 속에 함경북도 나남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귀국하는 과정이 몇 해 전 일부 내용이 논란이 됐던 ‘요코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그녀가 책을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무엇일까. 황 할머니의 별세로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 가운데 생존자는 55명만 남았다. 황 할머니가 한을 못 풀고 눈을 감기 직전 일본 공영방송 NHK의 모미이 가쓰토 신임 회장은 “전쟁 지역에는 모두 위안부가 있었다. 한국이 일본만 (위안부를) 강제 연행했다고 주장한다”는 망언을 했다. 극우주의자인 하시모토 도루 오사카 시장은 “모미이 회장의 위안부 발언은 정론”이라고 맞장구쳤다. 일본의 우익 지식인들은 난징대학살을 여전히 ‘난징사건’으로 축소 규정한 채 학살 전모를 부정하고 있다. 패전의 기억을 담은 ‘요코 이야기’는 일본에서 출간조차 되지 못했다. 이렇듯 20세기 초·중반 동아시아의 비극을 초래한 일본은 여전히 ‘소녀들의 절망’을 외면하고 있다. 오히려 과거로 회귀하는 우익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일본이 과거사를 부정하는 한 동아시아의 비극은 끝나지 않았다. 논설위원 stinger@seoul.co.kr
  • “아베가 참배한 요시다 연구 전무… 한국역사가 日우경화 방조한 것”

    “아베가 참배한 요시다 연구 전무… 한국역사가 日우경화 방조한 것”

    “한국 역사학계에서 이들(요시다 쇼인과 도쿠토미 소호)에 관한 연구가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이 상황을 방치하는 것은 가장 큰 피해국인 한국이 오늘 일본의 우경화를 방조하는 행위가 된다.”(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 “1905년 을사늑약이나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원천무효였다고 주장하면서 일제에 의해 강박된 1907년 광무 황제의 황위 이양은 유효했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한국의 역사교과서들도 좀 더 논리적 정합성을 갖출 필요가 있다.”(김명섭 연세대 교수) 2010년 한일병합조약 무효 선언을 내놓았던 한·일 지식인들이 27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동북아역사재단에 다시 모였다. 이날 ‘2010년의 약속, 2015년의 기대’를 주제로 한 학술회의에 참석한 지식인들은 현 한·일 상황에 대한 문제를 진단하고, 제안을 내놓으면서 발전적인 양국 관계 설정을 모색했다. ‘근대 일본 한국 침략의 사상적 기저’를 주제로 발표한 이 교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역사관과 행보를 명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시다 쇼인과 도쿠토미 소호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선 2013년 8월 아베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대신 요시다의 묘소를 선택한 것을 한국 언론들이 ‘개인적 취향’으로 판단한 것을 두고 “비극이 아니라 희극”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요시다 쇼인은 기토 다카요시, 이토 히로부미 등 메이지유신을 성공시키고 한국 침략에 수훈을 세운 인물들의 스승”이라면서 “그는 존왕양이(尊王攘夷)와 정한론(征韓論)을 일본이 나아갈 길로 가르쳤다”고 설명했다. 정한론은 1870년대 일본정계에 일었던 조선 침략론을 일컫는다. 그는 아베 총리가 지난해 말 야스쿠니 신사를 찾은 것에 대해서는 “기습적인 기획이 아니라 정확한 순서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요시다의 묘소를 참배한 뒤 그의 가르침으로 대외 침략정책을 수행하면서 희생된 자들을 위로하는 야스쿠니 신사를 가는 수순이었다는 것이다. 이어 일본 제국의 대표적인 언론인이자 평론가였던 도쿠토미 소호를 “요시다의 팽창주의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만들어 간 주역”으로 소개하면서 아베 총리의 역사관은 팽창주의 사관을 이어 가면서 “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는 역할을 해내겠다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김영섭 교수는 국내 역사 인식과 역사교과서의 변화를 요구했다. 김 교수는 “을사늑약과 한일병합은 원천무효라면서 1910년을 대한제국의 ‘역사적 종점’으로 설정한 현행 교과서의 서술은 논리적으로 상충될 수 있다”고 했다. 한일병합으로써 대한제국이 소멸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는 한 한일병합조약의 영향력은 유효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토론자로 나선 미야지마 히로시 성균관대 교수는 한·일 간 ‘새로운 21세기 패러다임’을 제안하면서 “아베 정권은 20세기 전반 제국주의시대 패러다임으로 돌아가 있다. 21세기 패러다임이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한·중, 한·미, 일·중 관계가 연동되면서 한·일 관계는 더 구조적이고 어려운 상태가 됐다”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는 시간적 여유가 없을 정도다. 식민지 책임론을 가지고 논쟁하면 끝이 없다. 한·일 간극을 어느 정도 메울 수 있는 대상을 놓고 대화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