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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세월호 참사와 6·4 지방선거/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2014년 4월 16일 아침, 우리 모두는 일찍이 경험하지 못했던 대참사 앞에 망연자실해졌다. 미처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학생들이 어른들의 탐욕과 부정,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 앞에 스러져갔다. 자리를 지키라는 방송으로 승객들을 선실에 남겨둔 채 선장과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에서 제일 먼저 빠져나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처럼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없는 장면은 없었다. 천인공노할 집단학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들은 분노했다. 자식을 잃은 부모, 부모를 잃은 어린 아이, 학생을 잃은 선생님, 선생님을 잃은 제자들…. 어느 누구도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우리 모두는 유가족들에 대해 깊은 위로와 조의를 표했다. 사후처리에 우왕좌왕하는 정부에 분통을 터뜨리면서도 이 참사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을 찾고 책임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는 데 깊이 공감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의 모든 활동은 국민의 마음처럼 위축됐고 대한민국은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버렸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기 직전, 정치권은 기초연금과 방송통신법 개정안을 두고 대치하면서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6·4 지방선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기초단체 공천폐지 문제를 둘러싼 정치권의 지루한 갈등은 결국 안철수 공동대표가 당원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로 결정하는 데 동의함으로써 출구를 찾았다. 새누리당은 일찍부터 기초공천 폐지공약을 지킬 수 없음을 천명하고, 4월 30일까지 모든 공천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었다.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마치 4차원의 세계에 빠진 것처럼 모든 것이 정지됐다. 공천이나 경선과정은 전면 중지됐고 선거운동도 금지됐다. 생때같은 자식을 찬 바닷물 속에 두고 찾지 못하는 부모들 앞에 정치 과정을 진행할 경우 국민의 지탄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일주일이 넘고 열흘이 지나자 더 이상 정치 과정을 미루기만 할 수는 없었다. 일부에서는 지방선거를 연기하자는 의견도 제시됐지만, 선거 후 이어지는 정치 과정도 있기에 조용한 경선을 표방하면서 6·4 지방선거를 향한 여정은 다시 시작됐다. 그런데 여기서 구태정치가 다시 나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정치적 이익을 위해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권보다 먼저 세월호를 정치에 이용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지 말았어야 할 이유’라든가 이 참사의 책임을 지고 하야하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지성인이라는 도올 김용옥은 하나부터 열까지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니 물러나라고 주장한다. 있어서는 안 될 사고였고, 그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행정의 난맥상에 대한 총체적 책임이 대통령에 있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해도 이를 빌미로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요, 스스로 이 시대의 지식인임을 포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세월호 참사를 지난해부터 이어온 대통령 불인정 주장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기부정이다.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빌려 간접적인 사과를 표명한 것을 사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데 동의한다고 해도 일반 국민이면 몰라도 정치권 인사가 세월호 참사를 이용해 대통령과 정부를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우리 사회의 지도층에 속한 인사들이라면 우리 모두가 이 참사에 대해 도의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스스로 반성해 보자. 우리는 그동안 매사에 안전수칙을 지켜 왔는가. 작은 이익을 위해 적당히 일을 처리한 적은 없었나? 조금 빨리 가기 위해 교통 법규를 위반하지는 않았는가. 항공기 안전점검 때문에 출발 시간이 연기됐을 때 제때에 가지 못한다고 항의한 적은 없었는가. 그동안 모든 일을 빨리빨리, 대충대충해 온 것이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아닌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크고 작은 책임이 있다. 지금은 아직 물속에서 찾지 못한 승객들을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 품으로 보내드리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아울러 이 참사의 모든 과정에 대한 정밀 분석과 조사를 통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적 비극을 자신들의 작은 정치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 위기 때마다 나라 바로잡은 명문장

    위기 때마다 나라 바로잡은 명문장

    고려를 읽다/이혜순 지음/섬섬/512쪽/2만 5000원 그동안 조선시대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해 왔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됐고 왕과 사대부의 삶도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 역관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의 삶, 노비와 기생의 일상까지 접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려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그들의 관심사는 무엇이고 삶은 어떠했으며 시대와 역사의 흐름속에서 무엇을 열망했을까. 고려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은 조선 초기에 편찬된 ‘고려사’와 ‘고려사절요’가 유일하다. 고려 전기의 문집은 대부분 소실됐다. 신간 ‘고려를 읽다’는 고려의 지식인들이 철학이나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다양한 사고와 의식을 견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문학적 가치가 높은 글에서부터 정치적인 글, 외교문서, 논설문, 편지, 묘지문, 종교의례문, 과거시험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명문장을 선정해 번역하고 해설을 붙였다. 고려인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저자는 고려시대의 공문서가 역사·학술적으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주목할 만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고려는 조선에 비해 훨씬 역동적인 사회였다고 말한다. 신분 간 고착이 심하지 않았고 왕실과 귀족이 정면 대립하기도 했다. 고려는 끊임없이 외세의 침략을 받았다. 특히 중국과 만주의 정세 변화에 따라 나라 운명도 수시로 바뀌었다. 거란의 내침에 시달렸고 송나라 멸망 이후 새로 세운 남송과 여진족 국가인 금나라 사이에서 새우등 터지지 않으려고 노심초사했다. 몽골 항쟁에 실패한 뒤에는 오랫동안 원나라의 간섭을 받아야 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자주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는데 그때마다 이를 바로잡는 데 일조한 것이 문장보국의 명문들이었다. 이 책은 이런 글들을 통해 고려 500년을 지속할 수 있었던 동력을 이해하게 하고, 인문학이 나라를 살렸음을 일러 준다. 역사의 고비마다 외세로부터 영토를 지키고 국권을 방어하기 위해 간절한 진정성을 담아 보낸 외교 편지를 읽다 보면 고려와 주변국의 복잡한 정세 변화가 한눈에 잡힌다. 고려 사회와 문화, 풍속 등 매력적인 면을 알 수 있어 흥미롭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씨줄날줄] 출판사 구조조정/문소영 논설위원

    세계인이 열광하는 월드컵이 열리는 해는 출판계에는 지옥 같은 해다. 그러잖아도 가뭄에 콩 나듯 듬성듬성한 매출은 오는 6월 중순 예선전과 함께 뚝 떨어져 ‘절벽매출’이 될 것이다. 출판사는 인터넷 서점의 등장으로 동네 출판사가 몰락해 책을 만들어도 보낼 곳을 잃었고, 독서보다 훨씬 재미있는 유흥거리가 손바닥의 스마트폰에 집중된 탓에 매년 독서인구가 줄어들고 있지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지난달 29일 도서정가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이 개정법이 ‘숨통’이 될지 또 다른 ‘목눌림’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올 들어 좀 팔린 책이 있다는 이야기를 출판계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출판사 매출을 제로로 만드는 블랙홀은 사실 월드컵뿐이 아니다. 동계·하계 올림픽,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 및 의원 선거, 대형 사건·사고 등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영세한 출판사와 직원들이 어떻게 올해를 날까 걱정된다. 지난 2월 소치 동계올림픽이 열렸다. 3월은 야권의 합당이 관심사였다. 4월 세월호 침몰 참사가 발생해 그 여파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오는 6월 4일 지방선거는 세월호 참사에서 보여준 여야의 무능함에 분노해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파가 증가해 선거결과가 오리무중이지만 선거가 임박하면 점차 관심이 증대될 것이다. 한국 기준으로 오는 6월 13일~7월 14일까지 열릴 브라질 월드컵은 출판 초토화의 가장 강력한 토네이도가 될 것이다. 7월 초 한국팀의 16강진출 여부와 상관없이 FIFA컵의 주인공이 브라질의 삼바 축구냐, 스페인의 무적함대냐, 프랑스의 예술축구냐, 독일의 전차군단이냐를 두고 날밤을 새울 것이니, 언제 책을 읽을 것인가. 가을에는 인천에서 아시안게임도 열린다.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출판사들이 최근 시작한 일은 인적 구조조정이다. 출판사 맏형 같은 M사가 3월 말에 진행했다가 직원들의 반발과 외부에 알려지자 철회했다. 또 다른 대형 출판사 K사도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래서 다들 우려하는 시선으로 출판계를 바라보고 있다. 건강하고 활발한 출판문화가 형성돼야 지식산업에 종사하는 창백한 지식인들이 가늘게나마 호흡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돌파구는 수년 전부터 내수 활성화였다. 내수를 활성화하려면 일자리가 유지돼야 하고, 일자리가 유지돼야 내수가 활성화되는 선순환 구조로 들어갈 수 있다. 독일은 통일의 여파로 1990년대 경기침체가 오자 근무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로 경기침체를 돌파했고 현재 유럽 최강국이다. 불황이지만 문화창조와 융성의 토대인 출판계가 일자리를 없애지 말고 다른 대책을 마련할 수는 없을까.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기고] 배설 기념관을 짓자/김재성 언론인

    [기고] 배설 기념관을 짓자/김재성 언론인

    1909년 5월 1일 서울 종로구 홍파동 2-1. 벽안의 30대 지사가 가족과 조선인 동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고종으로부터 배설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영국인 베델(Bethell). 그는 눈을 감으면서 “나는 죽어도 대한매일신보는 길이 살아 한국동포를 구하기를 원하노라”는 유언을 남겼다. 기울어져 가는 왕조와 인연이 돼 운명하는 순간까지 이 나라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는 사업하는 부친을 따라 일본에 왔다가 1904년 3월 영국 데일리 크로니콜 특파원으로 한국에 첫발을 디뎠다. 첫 기사는 그해 4월 14일 ‘경운궁 화재’ 사건. ‘일제의 방화’라는 제목의 장문 기사였다. 그러나 이 기사가 회사의 친일 논조와 맞지 않아 곧바로 해임되는 바람에 그는 한반도에서 일어난 첫 필화사건의 주인공이 됐다. 배설은 곧바로 신채호, 양기탁, 박은식 등 우국 지식인들과 뜻을 모아 신문 창간에 착수해 1904년 7월 18일자로 창간호를 발행했다. 제호는 ‘대한매일신보’. 대한매일신보는 창간 후 1905년의 을사늑약 무효, 1906년 1월 30일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고종황제의 대표 파견, 한국군대 해산과 군부대신 폐지 등을 대서특필했다. 뿐만 아니라 을사늑약에 옥쇄를 찍지 않았다는 내용의 고종황제 밀서를 영국 트리뷴지에 줘 크게 보도하는 등 동분서주하다가 과로와 일제의 방해 등 정신적 스트레스가 쌓여 분사했다. 1945년 8월,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총독부 고별연설을 했다. “우리는 패했지만 한국이 승리한 것은 아니다. 장담하건대 한국인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한국은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아베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아베는 1953년에 죽었다. 만약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뭐라고 할까. 7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기득권을 이어가고 있는 친일세력과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면서 아마도 그는 “봐라! 내가 뭐라고 했나” 라며 큰소리치지 않을까.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너무 많은 것들을 잊고 있다. 배설 선생의 경우가 그렇다. 그의 임종을 지켜보던 한국인들은 “기념관을 건립하여 은혜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에게 약속했던 분들이 그 후 약속을 지킬 만한 정신적·물질적 여유를 갖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신보의 산실이었던 서울 종로구 홍파동 2-1번지 배설 선생의 자택(대지 1837평)은 1943년 안모씨에게 소유권 이전등기를 거쳐 현재는 돈의문 1구역 도시환경 정비사업으로 지정된 상태다. 땅 주인이 1909년에 사망하고 그 부인이 영국으로 떠났는데 1943년에 어떻게 소유권 이전등기가 가능했는지, 해방과 6·25를 거치면서 등기부 망실과 그 회복과정에서 오류가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원상회복을 통한 기념관 건립 대지 확보는 방법이 있을 것 같다. 정부와 시 당국의 의지가 있고 이 땅의 시민정신만 살아있으면 민족의 은인이 살던 자택, 신문역사의 첫 장을 연 현장에 기념관 하나 짓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 ‘지식행정’ 활성화 공직 경쟁력 높인다

    ‘지식행정’ 활성화 공직 경쟁력 높인다

    공무원 조직 사이의 벽을 허물고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도록 서로 업무 처리 성과물을 공유하는 시스템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기로 했다. 안전행정부는 올해 하반기에 ‘지식행정 종합발전계획’(가칭) 수립을 목표로 ‘지식행정’ 환경을 전면 개선할 방침이라고 30일 밝혔다. 지식행정이란 조직 및 개인 차원에서 업무 경험, 연구 등을 바탕으로 축적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발굴해 행정기관끼리 공유하고 이를 활용해 조직 경쟁력을 높이는 행정을 가리킨다. 지식행정에서의 ‘지식’은 현재 법령 정보 및 행정 심판례, 교육 및 출장보고서, 업무편람, 연구보고서, 연설문, 전자결재 문서, 업무 노하우 등으로 분류된다. 우선 안행부는 2007년에 구축돼 서비스되고 있는 ‘정부통합지식행정시스템’(GKMC)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GKMC는 중앙부처 41곳, 지방자치단체 124곳 등 165개 기관별로 자체 운영하고 있는 지식행정시스템(KMS)을 연결해 각 기관에서 생산한 여러 업무 지식을 한데 모은 공간이다. GKMC에 등록된 지식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2007년 11만 5893건이었던 업무 지식은 2010년 25만 2791건에서 지난해 73만 8270건까지 늘었다. GKMC 내 커뮤니티 숫자도 같은 기간 11개에서 699개로 급증했다. ‘지식공동체’(CoP)라고도 불리는 커뮤니티는 온라인 공간을 통해 서로의 업무 경험을 공유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 기존 업무 및 정책 품질 향상에 기여하는 것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조직을 가리킨다. 하지만 지식 등록 수는 늘어나는 반면 지식의 질적 수준은 제고되지 않고 있다는 게 안행부의 평가다. 안행부 관계자는 “전자결재 문서 안에는 외부 출장 결재 문서, 대금 지급 증명서 등 단순 행정 처리 문서가 포함돼 있는데 이는 지식이라고 볼 수 없다”면서 “지식에 해당하지 않는 결재 문서를 수작업으로 일일이 거르기가 힘든 만큼 필터링 시스템을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시간이 경과돼 활용도가 낮은 지식을 걸러내고 필요한 정보를 GKMC 내에서 쉽게 검색할 수 있도록 작업하기로 했다. GKMC 홈페이지 분류체계(BRM) 역시 시스템 개선 항목에 포함된다. 안행부는 또 GKMC에 업무 지식을 많이 올리거나 질문에 대한 답변 글을 적극적으로 올린 공무원들에게 별도의 인센티브를 제공할 방침이다. 현재 지식행정에 기여한 공무원을 대상으로 매월 ‘이달의 지식인’을 선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이다. 안행부 관계자는 “지식행정 기여도를 인사상 승진과 연계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면서 “인사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부서들과의 협의를 통해 인센티브 방식을 구체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전문가 의견] 이향수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 “부처 칸막이 여전, 공직 폐쇄성 개혁을” 건국대 이향수 행정학과 교수는 30일 “세월호 침몰 사고에서도 중앙부처 간 칸막이는 허물어지지 않았다”면서 “부처 협업을 높이는 차원에서 정부기관 간 영상회의가 가능하도록 하는 ‘나라e음’(정부통합의사소통시스템), 업무 지식을 공유할 수 있는 정부통합지식행정시스템(GKMC) 등 여러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만 결국 중요한 순간에는 부처 이기주의가 발목을 잡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식행정 활성화를 통해 폐쇄적인 공직문화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980년대 후반에 등장한 ‘지식경영’(정보 자산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활용해 성과를 향상시키는 경영 기법) 개념에서 비롯된 지식행정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이후부터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교수는 “IMF 사태 당시 정부가 드러낸 외교 협상력 부족 등을 계기로 각 부처에 산재한 중요 정보들을 공유하고 집결시켜 복잡한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자는 논의가 싹텄다”면서 “1999년 당시 철도청 지식행정시스템(KMS) 구축을 시작으로 지식행정이 새로운 행정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현재 공공 부문의 경우 업무 지식을 공유해서 조직 성과 향상에 기여해도 해당 공무원에 대한 보상책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면서 “문화상품권 한장 수준의 보상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인사와 연계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아인슈타인·정약용 등 동서양 지식인 100명, 한국 지식문화를 바꾸다

    아인슈타인·정약용 등 동서양 지식인 100명, 한국 지식문화를 바꾸다

    우리나라의 인문학적 토양을 풍성하게 해 줄 대중교양서로서의 인문학시리즈를, 우리 학자들의 역량으로 직접 만들어 내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김영사의 ‘지식인마을’ 시리즈가 40권째 책 ‘지식인 마을에 가다’ 출간으로 10년의 대장정을 마무리했다. 시리즈 기획부터 구성, 진행 상황, 특장점 등을 담아 지식인마을의 가이드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책은 이 시리즈의 총기획자이자 제1권 ‘진화론도 진화한다’의 저자이기도 한 장대익 교수(서울대 자유전공학부)가 썼다. 장 교수는 23일 “우리는 문턱을 넘기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지만 대학 입학의 문턱을 넘는 순간 그 학문적 열정과 호기심은 사라지고마는 ‘문턱 증후군’이 있다. 비단 대학생뿐 아니라 전 사회에 퍼진 질병이다. 한국의 지식문화를 바꿔 보자는 의도에서 시리즈는 출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한 사람의 교양인을 키우는 데 동서양의 지식인을 총동원한다는 심정으로 시리즈를 진행했다”면서 “당초 50권을 낼 계획이었지만 시간을 더 이상 지체할 수 없고, 이 정도면 기획 의도를 어느 정도 살렸다는 판단에서 40권으로 끝내게 됐다”고 덧붙였다. ‘지식인마을’은 인문, 자연, 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국내 소장파 학자들이 가상의 공간에서 지식네트워크를 구축해 동서양의 위대한 지식인 100명과 대중을 연결해 주고자 기획됐다. 인문·사회·과학·기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지식인 100명을 촌장(개척자)과 일꾼(계승자)으로 등장시켜 각 권마다 대립하거나 영향을 끼친 2명의 지식인이 치열한 논쟁과 창조적 계승과정을 통해 독창적 지식의 드라마를 펼쳐나가도록 했다. 지금까지 시리즈에는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32명의 젊은 학자들이 참여했고, 입시에 매달리느라 중·고등학교 6년간 교양의 암흑기를 지나온 청년층, 특히 대학 1학년생 수준에 맞춰 집필했다. 2006년 11월 1~15권이 출간된 이후 순차적으로 출간됐다. 공자와 맹자(강신주 지음), 세이건과 호킹(강태길), 케인즈와 하이에크(박종현), 벤야민과 아도르노(신혜경) 등 시리즈로는 보기 드물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도 나왔다. ‘다상담’ 등으로 인문학 열풍의 중심에 서 있는 철학자 강신주 박사도 이 시리즈를 통해 대중과 처음 만났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삼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삼대’

    염상섭의 ‘삼대’하면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 중·고등학교와 대입 논술에서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이 책은 학교 시험에도 자주 출제된다. 몇 년 전 한 중학교의 3학년 국어시험에 ‘삼대’가 출제됐다. 이 책의 등장인물인 이필순이 1년간 다녔던 공장이 무엇인지를 묻는 문제였다. 워낙 두껍고 1920~30년대 사용하던 서울 문체가 그대로 나오기 때문에 중학생이 읽어내기 어려운 책이다. 그런데 자세히 읽지 않으면 찾지 못할 세부적인 부분에서 문제가 출제된 것이다. 치열한 내신 서열화를 위해 어려운 문제를 내야만 했던 국어 교사의 고민이 느껴졌다. 이 문제의 정답은 ‘고무공장’. 전체 500쪽이 넘는 책에서 한두 번 언급된다. 아이들은 메리야스 공장, 벽돌공장, 철공장 등등 다양한 공장을 만들어냈다. ‘삼대’는 우리나라 문학사에서 사실주의 문학으로 손꼽히는 뛰어난 작품이다. 사실주의 문학이란 개성보다는 객관적 인식을 더 중요시하는 것이며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통해 세계를 파악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경향을 말한다. 염상섭은 근대의 본질을 성숙한 안목으로 통찰하고 식민지 시기 현실을 치밀하게 묘사해 낸 사실주의의 대가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삼대’는 1920~1930년대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중산층 집안인 조씨 일가에 대한 가족사 소설로 3대에 걸친 갈등을 통해 당시 식민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1931년 1월 1일부터 9월 27일까지 조선일보에 215회로 연재됐다. ‘삼대’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구세대를 대표하는 조의관, 타락한 개화주의자 조상훈, 식민지 세대의 중도적 인물인 조덕기다.(가계도 참고) 조의관은 한말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구세대 인물이다. 자수성가해 재산가가 된 그는 돈을 주고 옥관자를 붙여 양반이 되고, 대동보소를 맡아 족보를 치장하는 데 거액을 들인다. 그는 식민지 시기라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가문을 중시하는 유교적인 가치관을 고집한다. 이것은 기독교 신자이자 전통적인 가치관을 무시하는 아들 조상훈과의 대립에서 더욱 강조된다. 조의관의 일생을 지탱한 것은 ‘사당’과 ‘금고 열쇠’였다. 이를 손자 조덕기에게 물려줘 구시대의 가치관을 이어나가고자 한다. 아들 조상훈은 기독교인이며 학교 교원으로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다. 하지만 독립운동가인 홍경애의 부친을 돕다가 아들 조덕기의 동창이기도 한 어린 홍경애와 관계를 맺고 아이를 갖자 연락을 끊는다. 이후 김의경이라는 몰락한 양반의 딸과 정을 통하고 노름을 일삼는다. 처음에는 봉건질서에 대항하여 새로운 이념을 폈지만 좌절을 겪으면서 그릇된 길로 가는 과도기적인 인물이다. 염상섭은 그를 통해 좌절한 개화주의 지식인의 정신적·도덕적 타락을 보여줬다. 반면 조덕기는 조상훈의 아들로 일본 유학생이다. 조부와 부친 사이에서 중도적 입장을 보여 주며 사상적으로는 사회주의에 심퍼사이저(동조자)의 입장을 나타낸다.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고 전통적인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점은 조부를 닮았고, 이필순에 대한 이성애적 이끌림은 아버지를 닮았다. 그는 집안의 가족주의를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려고 한다. 진보주의자로 등장하는 김병화는 친구 조덕기와 대조적인 인물로 사상과 행동에 급진적인 모습을 나타내지만 뚜렷한 활동을 하지 않는 관념적 사회주의자였다. 하지만 홍경애를 통해 피혁을 만나고 ‘산해진’이라는 반찬가게를 꾸려 사회주의 지하당 조직을 재건하는 아지트로 사용하며 실천적인 모습으로 변모한다. 홍경애는 기독교인이자 독립유공자였던 아버지를 보살펴 주던 조상훈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타락의 길을 걷다가 김병화를 만나 간접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하며 김병화와 동지애를 확립해 나간다. 필순은 자신에게 친절한 덕기에게 끌리지만 그의 재산에 대한 거부감과 아내와 자식이 있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다잡는다. 삼대에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갈등은 조의관과 조상훈의 대립이다. 그들은 증조부의 제사를 둘러싸고 갈등한다. 그리고 조의관이 아들인 조상훈을 배제하고 손자 조덕기에게 재산상속권을 주면서 관계는 더욱 뒤틀린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관계들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돈’에 대한 욕망이다. 조의관과 수원집, 조상훈과 홍경애, 김의경 등 각 인물의 돈에 대한 욕망이 서로를 할퀴며 몰락하는 단서로 작용한다. 젊은 첩 수원집의 수작으로 조의관이 비소에 중독돼 사망하게 된 것이라든지 조상훈이 유흥비를 마련하기 위해 금고를 턴 것은 돈에 의해 몰락해 가는 가족의 윤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는 이념 갈등이다. 부르주아 출신의 조덕기는 봉건주의나 서구사상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식민지 지식인의 전형이다. 당시 수용된 사회주의의 동조자인 그는 김병화를 물심양면 돕는다. 반면 김병화는 조덕기의 현실 타협적인 자세를 비판하지만 수시로 물질적인 도움을 받기를 원한다. 이는 장훈과 피혁 같은 직업적인 사회주의자들과는 다른 모습이다. 이렇게 ‘삼대’는 식민지 시기 변화하는 각 세대의 가치와 의식의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살던 개인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오늘날 개인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해답도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회 속에서 개인의 욕망을 실현하는 바람직한 방향은 무엇일까. ‘삼대’의 비극은 자신의 욕망을 다음 세대에까지 존속시키고 강요하고 집착한 데 있다. 요즘에도 부모의 가치관을 자녀세대에게 강요하는 일이 많다. 특히 가장 심각한 현상은 과열된 교육열이다. 이것은 ‘삼대’의 조의관이 보였던 집착과 같은 색깔이다. 어려서부터 부모의 욕망을 추종하게 된 아이들은 학업 부담을 안고 끝도 없는 경쟁에 노출된다. 요즘 중2병이나 사춘기가 심한 것도 자신의 꿈을 찾지 못하고 강요된 삶을 사는 학생들의 절규로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을 완성해 나가기 위해서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부모나 자녀 모두가 자신의 꿈을 실현해 나가고, 그 과정을 존중하며 소통해야 한다. 건강한 가치를 실현하고 있는 개인들이 가족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확대시켜 나간다면 이것이 바로 바람직한 ’삼대‘의 욕망이 아닐까.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만나려면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염상섭 만나려면

    지난 1일 횡보 염상섭(1897~1963) 상이 서울 종로구 삼청공원에서 광화문 교보생명빌딩 종로출입구 쪽으로 옮겨져 설치됐다. 김영중의 작품인 염상섭 상은 함께 앉아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벤치 형태의 조각품으로 1996년 ‘문학의 해’에 문인들이 한국근대문학을 대표할 인물로 염상섭을 뽑은 것을 기념해 설치됐다. 처음 종로구 종묘광장 입구에 설치됐던 상은 2009년 종묘광장 정비사업 때문에 엉뚱하게 삼청공원으로 이전됐었다. 이후 염상섭 상에 걸맞은 장소를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던 문화계와 시민사회는 광화문이라는 새 터전에 만족하는 눈치다. 지식인, 문인, 언론인으로서 그가 생전에 활동한 곳이기 때문이다. 염상섭은 지금도 광화문 근처에 모여 있는 경향신문, 매일신보(서울신문 전신), 동아일보, 조선일보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하며 작품활동을 폈다. 1921년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개벽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두 파산’, ‘만세전’ 등의 작품이 있고 ‘삼대’를 탈고한 뒤 매일신보에 연재한 ‘무화과’와 ‘백구’를 후속작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조선의 10대 명문가, 그들의 정신과 혼

    조선의 10대 명문가, 그들의 정신과 혼

    명문가, 그 깊은 역사/권오영 외 지음/글항아리/416쪽/3만원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지배이념으로 성립된 중앙집권적 양반 관료 국가로 흔히 인식된다. 그리고 그 시대 많은 지식인들이 관료로 등용되는 지름길이었던 과거의 큰 틀은 유교경전과 역사서의 공부로 집약된다. 조선왕조 500년을 주도했던 양반 관료들은 당연히 유교의 예(禮)와 덕(德)을 겸비한 인재였다. 그 예·덕의 출중한 인재들은 학맥·혼맥을 통해 권력의 정점에 섰고 그 과정에서 많은 부패상을 낳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부는 물론 지식까지 독점했던 양반은 조선사 연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영역이다. ‘명문가, 그 깊은 역사’는 바로 그 조선왕조의 핵심 주체였던 양반 명가들을 통해 조선의 정신과 혼을 반추해 눈길을 끈다. 한국학 연구자들로 구성된 뿌리회가 2004년부터 답사하고 연구해 온 100개의 조선 명문가 중 10개를 추려 소개했다. 한양 조씨 정암, 창녕 성씨 청송, 창녕 조씨 남명, 영일 정씨 송강, 풍산 류씨 겸암·서애, 무안 박씨 무의공, 해주 오씨 추탄, 파평 윤씨 명재, 한양 조씨 주실, 여주 이씨 퇴로 가문이 주인공이다. 책의 특징은 많은 명문가들의 생멸 속에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는 대표 명가들의 생성 과정과 영향력을 추적한 점이다. 권력의 정점을 누린 배경과 결속보다는 도와 예의 정신에 초점을 맞춘 점이 도드라진다. 사림정치와 도학정의 시대를 열었던 가문, 의(義) 정신을 바탕으로 불세출의 문학을 이뤄낸 인물들의 가문, 학문정치로 나라의 운명을 갈랐던 명가 등의 카테고리로 묶어 풀어내는 명가의 인재와 그 유산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16세기 사림의 영수로 꼽히는 조광조의 한양 조씨 가문이 등장하고 세를 누렸던 과정은 독특하다. 선조 조인옥은 고려말 이성계에게 위화도 회군을 종용한 인물. 이성계와의 혼인관계를 토대로 기반을 다졌던 조씨 가문은 문종비 복위를 지지하면서 사림성향으로 전환했으며 결국 조광조를 중심으로 중앙에 진출한 사림세력은 도학정치의 이상 실현에 집중했다는 추적이다. 성삼문, 성담수, 성현, 성혼 등 수많은 관료와 학자를 배출한 창녕 성씨 가문의 도학 정치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특히 “도란 큰길과 같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분명한데 어찌 알기 어렵다고 하는가”라고 소리쳤던 성수침과 그 아들 성혼의 이황·이이와의 관계도 눈여겨볼 만하다. 율곡과 사단칠정으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 성혼은 과거를 단념하고 학문에 온 힘을 쏟은 인물로 그의 ‘이기일발설’은 소론계와 김창협·김창흡 등 일부 노론 학자에 계승돼 학맥을 형성한 바탕이다. 성수침의 묘갈명은 이황이 직접 썼으며 성혼 묘비의 비문은 김집이 짓고 윤순거가 썼다고 하니 두 부자의 학문과 인품에 대한 조선조 학자들의 존경과 칭송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윤선도와 함께 한국 가사문학의 쌍벽으로 불리는 송강 정철을 배출한 호남 명가 영일 정씨 가문의 배경도 독특하다. 특히 아직 조사되지 않았다는 송강 정철 가문의 고문서들이 소개돼 흥미롭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진보여, 이념에서 나와 서민에게 가라

    진보여, 이념에서 나와 서민에게 가라

    진보의 착각/크리스토퍼 래시 지음/이희재 옮김/휴머니스트/768쪽/3만 5000원 “진보라는 관념에 논박할 만한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진보를 믿을까?” 역사가 늘 더 나은 방향으로 진보할 것이라는 기대는 무너졌다. ‘공동체’와 ‘모두가 윤택한 삶’을 기치로 내걸어 지지를 얻은 좌파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20세기 말에는 우파가 재부상했다. 복지국가가 자유시장주의를 대체하리라던 좌파의 신념도 무너졌다. 그런데도 진보에 대한 믿음이 여전한 현실을 두고 미국 역사가이자 사회비평가 크리스토퍼 래시는 ‘괴이한 현상’이라고 규정한다. 래시는 ‘진보의 착각’(원제 The True and Only Heaven)에서 이 시대 지식인들이 길 잃은 진보를 향한 맹목적인 낙관주의와 오해에서 깨어나야 한다면서 진보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 원제(참되고 오직 하나뿐인 천국)의 의미는 곧 진보가 추구하는 이상향이다. 과거 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저자는 1970년대 중반부터 성 해방, 여성의 직장생활, 전문기관의 아동 보육 등으로 대변된 좌파의 기획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이때 등장한 새로운 좌파는 초창기 좌파의 역사에 무지해 분파주의는 극에 달하고, 이념적 순결성에 집착하며, 낙오된 사람들의 집단 감상주의처럼 그 역사에서 가장 불미스러운 모습을 자꾸 되살려 내려 했다. 더불어 “미래와 싸운 것이 아니라 후지고 몽매하고 생각이 짧아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우월감을 느끼는 엘리트주의에 매몰됐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진보의 천국은 더이상 없다고 주장하며, 사회 내부의 심리·문화·정신적 질서를 다시 세우는 일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19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진보에 관한 논쟁을 이끌어 온 사상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 좌파의 궤적을 고찰하면서 그동안 오독했던 기독교 전통, 계몽주의와 세계주의, 자유주의와 서민주의 등 다양한 이론과 가치관을 재조명하는 이유다. 저자는 좌파와 우파는 생산물의 분배를 두고 극심하게 갈등했으나 양쪽 모두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긍정했다고 해설한다. 대량 생산을 통한 생활 수준의 향상을 추구하면서 결국 환경재앙과 빈부격차의 심화, 전 세계적 폭동과 테러, 기후변화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이제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좌우의 이념 공방이 아니라 사회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리·문화·정신적 기초의 붕괴다. 노동의 즐거움과 안정된 관계, 가정생활, 향토애, 역사적 귀속감 등 정신적 가치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이때에 진보가 추구해야 할 것은 전체주의나 집단주의 등 이념적 재무장이 아니다. 현재의 한계를 명확하게 바라보고 사회·문화적 질서를 바로 세우는 ‘서민 철학’이다. 욕망을 절제하고 한계를 받아들이는 기독교 금욕주의적 자세가 필요하다고 봤다. 보통 ‘대중 영합주의’로 쓰이는 포퓰리즘(populism)을 저자는 자립과 책임, 검약과 절제를 중시하는 미국 중하류층의 특성을 일컫는 ‘서민주의’로 풀이하면서 진보에 필요한 태도의 연장선에 두었다. 또한 저자는 연대를 만들기 위해서는 모호한 인도주의와 보편성 대신 ‘평범한 이들’의 개별적 속성에 눈을 돌리고 향토애에 기반한 공동체 의식을 추구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를테면 진보는 흑인과 백인이 같은 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비슷한 사람들과 모여 살고 싶어 하는 공동체 본능은 생각보다 강하므로 다름을 존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공동체의 보존은 평등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인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평등에 꼭 필요한 가치이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더불어 다른 진영에 있는 상대방에게도 공동체나 집단에 대한 충성이 있다는 점을 존중해야 진정한 연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관용’이라는 보편주의적 처방이 아니라 ‘용서’라는 종교적 이상이 전제된 것이다. 이 책의 함정은 저자가 사망하기 3년 전 1991년에 나왔다는 점이다. 출간 당시 저자는 좌파에게는 파시스트로, 우파에겐 반기업주의자로 비난받았다. 번역본이 나온 현재 한국에서는 ‘23년 전의 사유가 현재에 적용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생길 법도 하다. 진보 이론을 정리한 사유의 결과물이 서민의 삶과 유리된 채 이념 논쟁과 권력 투쟁을 반복하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사점을 던지는 것은 분명하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김문이 만난사람] 고구려 마상무예 연구가 고성규 씨

    최근 잠시 시들해졌지만 얼마 전만 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조랑말은 세계를 뛰어다니면서 신나게 춤을 췄다. 가수 싸이의 말춤이다. 전 세계가 삽시간에 ‘코리아표’ 조랑말에 흥분했다. 역사상 말로 세계를 지배한 칭기즈칸 이후 처음 있는 일이어서 참으로 놀랍기 그지 없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다면 왜 하필 한반도에서 시작된 말춤에 세계인들이 열광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기마민족의 유전자가 확 폭발하며 빛을 낸 것이다. 우리 민족은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하는 기마전술과 사냥술을 갖고 있다. 그 원류는 고구려의 기마술이다. 특히 호랑이를 잡는 기마 사냥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할 수 없는 문화였다. 고분벽화 속의 수렵도에 고스란히 그 흔적이 그려져 있다. ●기마민족 아니었으면 싸이 말춤 성공했겠나 고성규(54)씨는 고구려 기마무예를 20년째 홀로 외롭게 연구하고 있다. 수렵도에 그려진 기마술에 반해 몰두했다. 본인이 직접 말을 타고 활을 쏘며 창을 던지는 무예까지 스스로 터득했다. 그냥 말을 타고 달리는 것도 중심을 잡기 힘든데 그는 전사, 측사, 후사 등 각 방면으로 고난도의 활쏘기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기마무예는 물론 말에 대한 이론도 척척박사다. 아시아·유럽 등 세계 각국의 말을 직접 사 들여와 키우며 연구한 결과다. 지난달 27일 경기 양주시 장흥면 일영리 자택에서 그를 만났다. 집 입구에는 ‘마구간’이라는 푯말이 세워져 있었다. 잘생긴 하얀 말이 낯선 손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히힝” 인사를 한다. 고씨가 마구간을 안내하면서 말을 일일이 소개한다. 말들이 저마다 표정을 지었기에 마치 말과 인터뷰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페인의 안달루시안, 미국의 아메리칸 포니 등은 연구용으로 수입해 왔다. 그 뒤를 이어 몽골 말, 내몽골 말, 러시아 아무르강 출신 말, 한라말. 일송정 해란강의 만주 말, 호주 말, 네덜란드 말 등 출신 성분도 다양하다. 모두 23마리를 소개받았다. “칭기즈칸이 유럽까지 원정 가서 싹쓸이하다시피 이긴 까닭을 아시나요. 그건 바로 몽골 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덩치는 유럽 말에 비해 작지만 거친 땅에서 자라 공격성이 강하고 아주 민첩하지요. 회전력이 유럽 말에 비해 2~3배 더 빠릅니다. 일제 때 일본 경찰들이 한국을 침략하면서 호주 말을 타고 왔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조랑말보다 몸집이 더 큰 말을 사용하면서 심리적 공포를 주기 위해 칼까지 차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날쌘 조랑말을 길들여 풀어놨더라면 호주 말들을 모두 쓰러뜨려 역사도 달라졌을 것입니다.” ●20년째 수렵도 속 활쏘기 등 무예 독학 조랑말은 우리의 전통 말인 과하마(果下馬)와 몽골 말의 교배로 태어난 말로 발 뒤차기가 정교하고 민첩한 특징을 지녔다고 고씨는 설명한다. 과하마는 키가 작아 말을 타고서도 능히 과실나무 밑을 지나갈 수 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으로, 고구려와 동예의 특산물이었다. 특히 고구려에서는 시조 주몽(朱蒙)이 타고 다니면서 전승했다는 내용이 전한다. 그는 이 같은 사실에 흥미를 느껴 고구려 벽화 속 수렵도를 연구하는 한편 직접 말을 키워 여러 실험을 통해 활쏘기와 창던지기 등의 무예를 익혔다. “수천년 전 고구려의 마사희(馬射戱)라고 하는 살벌한 마상궁술도 ‘희롱할 희(戱)’를 쓸 만큼 ‘놀이’로 즐겼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와서 말을 타고 격구(擊毬) 놀이로 이어졌지요. 또한 윷놀이의 말판도 말을 타고 다니는 형태로 볼 때 우리 민족은 달리고 싶은 욕구를 놀이로 승화시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하던 ‘말뚝박기’, 학창 시절 운동회 때의 ‘기마전’도 그런 것이고요. 아이들이 태어나면 걸음마를 할 때까지 목말을 태우고 다니듯 알게 모르게 우린 끝없이 말을 타고 있었지요.” 그러면서 고씨는 “왜 우리 민족에게 ‘빨리빨리’의 습성이 생겼는지 아느냐”고 반문한다. 설명이 그럴듯하다. 말은 속도를 대변하는 동물이며 말을 타고 광활한 북방 대륙을 누비던 우리 민족이 말에서 내려 좁은 한반도에 유배를 당해 살다 보니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빨리빨리’ 서두르게 됐으며 끝장을 빨리 봐야 하는 민족이 됐다는 것이다. 또 반문한다. 싸이의 말춤에 가장 빠르게 반응한 나라가 어디인 줄 아느냐고 했다. 그것은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폴란드, 호주, 몽골, 브라질 등 말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는 나라들이라고 했다. 싸이의 말춤은 요즘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유치한 안무 트렌드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딴죽을 거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신성한 동물인 말을 소재로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고 했다. 싸이가 각 나라에 가서 인터뷰를 할 때 우리나라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사실을 홍보했더라면 효과가 아주 좋았을 것이란 거다. 따라서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기마문화 콘텐츠를 살려 전통 가치를 계속 유지, 상승시키는 작업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기운을 말에게 불어넣느라 고생도 많이 했다. “여기에 있는 말 중 절반 이상은 제 손으로 직접 받고 키워 훈련시켰습니다. 그러다 낙마 사고도 많이 당했습니다. 말과 함께 넘어지거나 밟혀 골절상 등 대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지요. 어느 말이 마상무예에 적합한지 일일이 교육을 시켜 봐야 하거든요. 서양 말은 긴 창을 이용하기 편하고 동양 말은 활과 창을 다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이런 훈련과 함께 2002년 7월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을 시작으로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제주~임진각),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 충무공 탄신제 마상무예 격구 시연, 서울 하이 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 등에 참여해 왔다. 그런 활동들을 통해 기마문화의 우수성을 꾸준히 선보였다. 또한 2011년 주한외교사절단(대사 부부) 50여명을 초청해 고구려 기마무예의 세계화를 위한 행사도 열었다. 이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고구려 기마 사냥에 쓰였던 활의 크기는 80㎝ 정도였고, 말의 키는 130~150㎝로 작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전투마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날쌨습니다. 고구려 말처럼 작은 말은 이미 13세기 칭기즈칸이 세계를 정복했을 만큼 대단했습니다. 고구려는 4~6세기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기마문화를 발전시키고 세계 기마문화사에 큰 획을 그을 정도로 최고의 마필 조교술과 사냥술을 가지고 있었지요.” ●초등 4학년 때부터 승마에 대한 본능적 이끌림 말에 대한 역사, 장점, 고구려의 마상무예 등의 얘기가 거침없이 나온다. 말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을까.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짐수레를 끌고 다니는 말을 처음 접했다. ‘언젠가는 저 말을 꼭 타봐야지’라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축산고등학교에 입학해 대관령 목장에서 말을 타고 실습을 했다. 축산고는 춥고 배고팠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기와 우유를 생산하라고 만든 학교였다. 어쨌거나 드넓은 초원에서 말을 타고 달려 보니 말의 매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말에 대한 자랑을 다시 늘어놓는다. “비너스 같은 몸매와 역동적인 근육, 탄력적인 엉덩이 곡선 등 말은 어느 동물과도 비교되지 않는 신이 내린 몸매를 자랑하지요. 남녀노소, 낙마의 공포감만 없다면 누구나 타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뿐인가요. 인류를 위해 가장 희생한 동물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전장에서 죽은 주인과 함께 순장하기도 했잖아요.” 그러면서 자신이 고주몽의 58대손이라고 한다. 다시 그의 인생 이야기로 이어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 시절이었다. 신문에서 승마를 대중화한다는 기사를 보고 주말마다 파주, 원당, 일산, 포천 등 승마장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말 타는 법을 배웠다. 처음에는 10번 정도 타면 되는 줄 알았더니 100번 이상은 타야 어느 정도 감이 잡힌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 무렵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당시 부인은 서울에서 합창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승마를 함께 배우자는 말에 부인이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같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말 타는 법을 익혔다. 부인은 경희대에서 승마지도자 자격증까지 땄다. 고씨도 그동안 여러 개의 타이틀을 땄다. 대한청년기마대장을 비롯해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경기도승마연합회 부회장,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고구려기마보존협회 회장 등이 그것들이다. ●고궁에서 마상무예 하는 그날을 꿈꿔요 “영국을 찾는 관광객들이 버킹엄궁전 앞에서 기마대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잖아요. 우리도 광화문 앞에서 고구려 기마문화를 재현하면 외국인들이 많이 오게 돼 있어요. 문화라는 것은 단순합니다. 계속 유지하면 돼요. 창경궁에서 마상무예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나요. 일본은 원래 말이 없었는데도 말을 동원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TV 사극을 보세요. 전부 서양 말을 타고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더니 “고구려 기마무예로 인간문화재로 지정됐으면 좋겠다”고 대답한다. 그동안 이렇게 솔직한 얘기를 자주 해 왔으리라. 마구간의 말에게 간다. 무슨 말을 하는지 상상하면서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선임기자 km@seoul.co.kr 마상무예 앞장서는 고성규씨는 >> 강원도 영월에서 태어났다. 축산고 재학 시절 대관령 목장에서 실습을 하면서 말에 매력을 느꼈다. 고교 졸업 후 기아자동차 영업사원으로 일하면서 신문에 난 ‘승마 대중화’ 기사를 보고 본격적으로 말을 타기 시작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무용총 수렵도를 보고 고구려 기마무예를 스스로 터득하기 시작했다. 올해로 20년째다. 대한청년기마대 발대식(2002년), 통일염원 승마 국토종주(2002년), 백제문화제 마상 퍼레이드(2002년), 서울하이페스티벌 마상 퍼레이드(2005년), 광개토대왕 추모제 고구려 기마무예 시연(2005년), 월드컵 4강 진출 및 토고전 승리 기원(2006년), 미8군 제2사단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공연(2007년), 서울 중구 충무공 이순신 탄신제 마상 퍼레이드(2008년), 일본 대사관 앞 독도영유권 주장 규탄대회 기마무예소년단 총감독(2008년), 주한 외교사절 대사 부부 초청 고구려 기마무예 세계화추진 공연(2011년) 등의 활동을 펼쳤다. 2012년에는 국무총리표창을 받았고 대한민국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현재 전국승마연합회 심판위원, 대한기마문화연구회 회장 등을 맡고 있다.
  • [길섶에서] 먼지들의 도시/박찬구 논설위원

    봄비에서 먼지 냄새가 난다. 미세먼지에 신경이 곤두선 탓일까. 매캐한 입자가 호흡기를 거쳐 혈관으로 퍼지는 듯하다. 향수를 자극하는 항구 도시의 봄바람까지 서울에서 기대하긴 어렵지만, 옅은 꽃향기쯤은 묻혔길 바랐는데 어리석었나 보다. 계절의 정감마저 먼지들에 빼앗긴 꼴이다. 바다를 건너왔건, 도심에서 자생했건, 먼지들은 거리를 점령할 기세로 틈입을 노린다. 슈퍼황사 주의보까지 예상된다. 영락없는 먼지들의 도시다. 며칠 전 한 환경단체가 대기 질을 개선해 도시를 살리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푯말에는 ‘자동차가 쉬면 도시는 산다’라고 적었다. 문명으로 움직이는 도시에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공감이 가는 구호다. 시인 김수영은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부조리한 권력과 현실 앞에 무력한 지식인의 허위의식을 모래와 먼지에 빗댔고, ‘먼지’에서는 자본주의 문명의 때가 묻은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이 사유하는 행동인을 묘사했다. 새삼 위안과 힘을 얻는다. 피할 도리가 없다고 마냥 초라해질 수는 없다. 먼지의 공습에 대처하는 일상의 자세를 생각한다. 박찬구 논설위원 ckpark@seoul.co.kr
  • “만화 같은 내 작품… 소설 가장 중요한 덕목 재미”

    “만화 같은 내 작품… 소설 가장 중요한 덕목 재미”

    해방 직후 북녘 땅에선 일본 여성에 대한 구 소련군의 무차별적 성폭력이 자행됐다. 식당이나 과수원 등 재산을 정리하러 잠시 귀국을 늦춘 일본 남성들은 이 ‘비극’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했다. 이때 ‘일본의 혼’이 회자됐다. “죽창이라도 만들어 아내와 딸을 지키라”는 충고는 아내와 딸이 몸을 더럽히기 전에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앗으라는 ‘잔인한 겁박’과 다름없었다. 중견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인 김용희(51) 평택대 교수가 최근 펴낸 세 번째 장편소설 ‘해랑’(나남)은 해방 이후 기억을 상실한 ‘조선인 밀정’에 관한 이야기다. 해방 공간의 부조리와 잔인함이 가감 없이 담겼다. 작가는 이 비극적 감회를 되살리기 위해 전쟁의 광기 속에서 예술과 사랑을 지켜낸 한 사내를 내세운다. 첩자이자 천재 피아니스트인 해랑은 사실 자신이 일본인인지 조선인인지조차 알지 못한다. 소설은 한 인터넷 매체에 연재돼 매회 1만회 가까운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작품이다. 해방 정국에서 자기 균열을 경험한 지식인들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함석헌옹께서 ‘해방은 도둑처럼 찾아온다’고 하셨는데 당시 기록을 보면 조선인 누구도 해방을 꿈꾸지 못할 만큼 극적으로 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해방은 조선의 해방이 아니라 친일파의 해방이었더군요. 그들은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해방을 맞았고 이후 암살, 살육, 보복이 이어졌죠.” 최근 서울 중구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작가는 문학의 엄숙주의를 배척한다고 했다. “제 작품은 만화 같기도 하고 영상적인 측면에 기대는 부분이 커요. 소설이 지니는 가장 중요한 덕목도 재미와 감동이라고 생각하죠.” 소설의 삽화도 만화 같은 분위기의 작품 30여장으로 치장했다. 평택대 제자로 손발을 맞춰 온 변지은 화백의 작품이다. 소설은 수수께끼와 같은 추리를 날렵하고 가벼운 문체에 담아 속도감 있게 전개한다. 작가는 1992년 ‘문학과 사회’를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2009년에는 ‘작가세계’에 소설 ‘꽃을 던지다’를 발표하면서 겸업에 나섰다. 이후 장편소설 ‘란제리 소녀시대’ ‘화요일의 키스’ 등과 소설집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이 이어졌다. 더불어 작가는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한 것도 엄숙주의를 깨기 위한 실험 중 하나”라면서 “소설은 ‘나는 누구인가’를 찾아가는 소박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오상도 기자 sdoh@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슬픈열대’

    한곳에 오래 살다 보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무엇이 있었다가 없어지기도 하고 바뀌기도 한다. 좋은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바뀐 것들 대부분은 되돌릴 수 없다. 이런 사실들이 모여 역사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도 해본다. 역사가 중요하다고들 한다. 과거를 알아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이런 명분 아래 그냥 배워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슬픈 열대’의 저자 끌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많은 사람들이 오랜 시간 동안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사실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다. 직무 수행을 위한 준비를 하고 사회의 기능 체계 속에 이미 한 자리를 확보했다는 느긋함으로 학교에 다닐 수 있었지만 그는 자신의 특수한 성격이 그것을 견디지 못했다고 고백한다. 우리 시대의 많은 청춘들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도 청년기에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있었다. 고3 때 선생님이 법률 공부가 적성에 맞을 것이라고 권하자 2주간의 요점 정리만을 공부하는 것으로 쉽게 법학시험을 끝낼 수 있어서 법학부에 등록하고 철학 학위도 준비했다. 학위를 받고 그리 어렵지 않게 최연소로 철학교수 자격시험을 한 번 만에 통과했다. 전도유망한 철학교수로 안착할 수 있었으나 철학에서 배우고 훈련했던 논리들이 철학적 논리의 완성도를 위해서만 쓸모 있다는 생각에 철학과 멀어지게 됐다. 그가 철학과 멀어졌다 해도 그의 사상적 토대가 철학에서 온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자신의 세 스승이라고 표현한 지질학,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에서 체험과 실재 사이의 통로는 불연속적인 것이며 실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객관적 총합 안에서 우선 체험을 거부해야 한다고 배웠다. 하지만 이에 대한 회의를 통해 체험이 더욱 중요하다고 느끼게 됐다. 이런 생각은 미국의 민족학자 로버트 로위가 쓴 ‘미개사회’를 읽고 확고해졌다. 철학적 훈련에 갑갑함을 느끼던 레비 스트로스는 이 책에서 철학적 지식이 아닌 관찰자의 직업적 참여가 있어야만 그 의미를 보존할 수 있는 원주민 사회의 실제 체험과 만나며 자신의 길이 민족학에 있음을 확신하게 됐다. ‘슬픈 열대’는 그가 42세 되던 해(1950년)에 출판됐다. 자신이 어쩌다 민족학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서부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문명의 광기에 소심하지만 집요하게 저항했던 것을 거쳐 브라질 원주민과의 만남에서 보고 듣고 생각한 것, 그리고 유네스코 문화사절로 파키스탄과 인도를 여행한 내용 일부를 정리한 방대한 책이다. 출발에서 귀로에 이르기까지 총 40장으로 구성된 목차만 보면 지구 사방을 여행한 경험담처럼 보인다. 인생을 여행에 비유한다면 여행기로 보아도 좋지만 그가 사람들의 뇌리에 던진 충격은 제2차 세계대전을 마감하게 한 원자폭탄과도 같아 사상서라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KDC 분류 체계 중에서 기호 985대 남아메리카 지리에 분류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문명과 야만을 임의대로 구분하여 자기들이 속한 곳을 문명이라 부르고 그렇지 못한 곳을 야만이라 칭하며 맘껏 짓밟아도 된다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던졌다. 두 번의 세계대전은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물리적 파괴와 인간 살상을 목도하며 인간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은 지식인들은 인간에 대한 근원적 탐구를 자신의 특성에 맞게 시작했고 이로 인해 생겨난 결과물들은 지금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사유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다. 스트로스는 유대계 프랑스인으로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점령했던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미국의 록펠러 재단이 유럽 학자들을 구해 내기 위해 계획한 ‘신사회 조사 연구원’의 초청을 받는 형식으로 브라질에 가게 됐다. 민족학에 대한 열정으로 브라질 탐험을 떠난 것 같지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많은 영화와 다큐, 체험기, 사진, 회화 들을 통해 유대인들의 박해와 고통을 잘 알고 있기에 그가 브라질로 향하는 여정이 순탄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가 처해 있던 당시의 위기 상황을 생각하노라면 그가 현상 너머에 있는 심층에서 보편적 구조를 발견하고, 인간의 우열을 가르는 것이 매우 잘못됐다고 결론짓게 된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스트로스는 인간정신의 무의식에 존재하는 구조적 측면을 통해 인간정신을 탐구하고자 했다. 인간이 구조라 불리는 계획된 회로에 따르는 존재라는 주장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가 제시하는 구조들이 무의식의 표현이라 하더라도 이 구조를 특정 문화집단이나 특정 개인의 속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 전체의 속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탐구하는 인간이 구조주의에 의해 주체를 상실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고 차별하는 행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지금 현실에서 차별하는 것이 잘못일 수도 있다는 주장은 여전히 필요하고도 절실하다. 그래서 비판의 여지에도 불구하고 스트로스의 ‘슬픈 열대’는 우리 시대의 고전이라 불릴 자격을 얻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정리해 저장한 것을 손쉽게 들여다보는 것이다. 우리는 스트로스가 자신의 경험과 마주하기 위해 20년 걸린 이 책을 존중하며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한꺼번에 다 읽으라는 말은 아니다. 브라질 원주민 부족의 낯선 생활을 신기하게 들여다보고 놀라움을 느끼고 싶다면 해당 부분만 읽으면 된다. 목차를 보면 쉽게 고를 수 있다. 스트로스의 문학적 자질을 음미하고 싶다면 선상 노트만 보아도 된다. 물론 꼼꼼하게 전체를 읽는다면 장마다 빛나는 문장들 속에서 지금 여기의 나에게 꼭 필요한 여러 의미를 만날 수 있다. 그가 묘사하는 원시세계를 머릿속에서 동영상화하며 읽으면 더욱 흥미롭게 읽힌다. 스트로스는 엘리트의 길을 무리 없이 간 사람이었다. 철학 교수 자격을 얻는 데 어려워하지도 않았고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아 다시 반복해야 하는 일에서 불안을 느꼈다. 불안을 다독이며 살아갈 수도 있었으나 자신이 품었던 회의를 간과하지 않았다. 의심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 인류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고 인문학뿐 아니라 사회과학 전체에 인식론적 전환을 가져왔다. 자신의 내부에서 신호를 보내는 사인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이를 위한 지적 탐색에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행복하게 자신의 길을 갔다. 나이 든 사람들은 청춘을 가능성이 많은 세대라 부러워하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불안하다고 한다. 불안한 청춘이 불안을 달래기보다는 불안과 마주했던 사람의 궤적을 보며 미지의 세계를 향해 용기를 내어 보았으면 좋겠다.
  • 北모란봉악단 女가수, 리설주 질투심에…경악

    北모란봉악단 女가수, 리설주 질투심에…경악

    북한을 대표하는 모란봉악단에서 처음으로 공훈배우 칭호를 받은 류진아가 정치범 수용소에 수감된 것은 장성택의 애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바람기’를 막기 위한 부인 리설주의 ‘질투심’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류진아는 모란봉악단 창단 1년 만인 지난해 7월 악단에서 첫 공훈배우 칭호를 수여받았으며, 지난해 12월 처형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과는 연인 관계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RFA)은 지난달 “장성택의 일당으로 지목된 예술인 40여명이 최근 일급 정치범이 수용되는 함경북도 청진시 수성교화소에 수감됐으며, 그 중에는 모란봉악단 공훈배우 류진아가 포함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탈북자단체인 NK지식인연대는 29일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류진아가 수성교화소에 수감된 이유는 장성택 측근이라서가 아니라 리설주의 치맛바람 때문”이라면서 “류진아는 모란봉악단에서 처음으로 공훈배우 칭호를 받을 만큼 노래와 미모를 갖추었는데 이것이 리설주의 심기를 건드렸다”고 보도했다. NK지식인연대는 또 “최근 북한 내부에서 리설주가 막강한 권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부 소식통은 “리설주가 파워 권력으로 부상하게 된 것은 김정은이 부모를 모두 잃은 외로운 형편에서 처가의 의견을 존중하고 많이 의존하기 때문”이라면서 “‘장성택 처형 사건’도 겉으로 보기엔 많은 사람이 동원된 것 같지만 실은 아내인 리설주와 그의 가족이 상당히 개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 번 수감되면 다시는 세상 구경을 못하는 곳으로 알려졌던 청진수성교화소는 2002년부터 종신형과 연한형으로 나눠 연한형에 처하면 형을 받은 만큼 살고 나오면 된다고 한다. 이번에 류진아는 5년형을 받고 수성교화소에 수감됐는데 형을 다 채우고도 리설주 때문에 못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앞서 모란봉악단이 지난해 10월 당 창건 68주년 기념공연 이후 5개월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장성택 숙청 사건에 연루돼 함께 숙청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류진아는 지난 17일 활동을 재개한 모란봉악단의 공연에 등장하지 않아 처형설까지 제기됐다. 그러나 북한 조선중앙TV가 최근 방송한 모란봉악단의 공연 영상에 류진아의 모습이 다시 나와 수감설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중앙TV가 지난달 24일 방송한 모란봉악단의 공연 영상에서 류진아는 악장 겸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 선우향희와 함께 등장했다. 하지만 이 장면이 언제 촬영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아 류진아의 유고 여부를 이 방송만으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김정은의 지시로 창단한 모란봉 악단은 지난 2012년 7월 6일 첫 공연을 했으며, 류진아를 비롯한 7명의 가수와 10여명의 연주자가 소속된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인생은 뜨겁게(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사회평론 펴냄) 20세기 대표 지성인이자 저술가, 195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문필가이기도 한 영국 사상가 버트런드 러셀(1872~1970)의 자서전이다. 2003년 상·하권으로 나뉘어 출간된 첫 완역판에서 각 장에 수록된 서간문을 덜어내고 한 권으로 재편집한 개정판이다. 러셀은 생의 마지막에 출간한 자서전 서문에서 자신을 지배해 온 세 가지 열정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대한 열정, 진리 추구에 대한 열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 러셀은 이 열정들이 거센 바람과도 같이 자신을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면서 그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했다. 영국 웨일스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도덕적으로 엄격한 조부모 밑에서 고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 러셀이 뛰어난 수학자이자 철학자로 성장하는 과정, 1차 대전을 겪으며 전쟁과 핵무기에 반대하던 실천적 지식인으로 변모하는 모습 등이 담겨 있다. 596쪽. 1만 9000원.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펴냄) 전 세계적으로 40억 부가 넘게 팔린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60세이던 1950년 쓰기 시작해 15년 뒤인 1965년 완성한 자서전이다. 작가의 경력은 어떻게 시작됐는지부터 그녀의 수많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모델이 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 유명 작품을 쓰게 된 계기와 후기 등을 들려준다. 어린 시절 프랑스에서의 추억, 1900년대 상류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상세한 묘사나 세계대전 무렵 영국 여성들의 삶이 묘사된다. 크리스티는 서문에서 인생은 흥미진진하고도 즐거운 현재, 모호하지만 흥미로운 계획을 세울 수 있는 미래, 현재를 떠받들고 있는 기억과 사실들인 과거로 구성된다면서 추억의 즐거움을 누리겠다고 했다.자서전을 끝내며 크리스티는 “이만 자서전을 끝맺어야 할 듯싶다. 삶에 관한 한 말해야 할 것은 모두 말했으니”라고 했으나 이후 10년이 그녀 생애 최고의 시간들이었다. 808쪽. 2만 8000원. 인간관계를 발명한 남자(스티븐 와츠 지음, 정지현 옮김, 아템포 펴냄) ‘현대 성공철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데일 카네기(1888~1955) 평전이다. 카네기의 삶을 전면적으로 다룬 최초의 평전으로, 미주리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미국 현대 인물의 평전을 집필하는 스티븐 와츠가 썼다. 현대 미국 비즈니스 문화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20세기 현대 성공철학의 메시아로 불리는 카네기의 삶과 의미를 풀어 나간다. 미주리 주의 시골 마을에서 가난한 아버지와 독실한 신앙심을 가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소년 데일은 대학 시절부터 대중 연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형식주의를 거부하는 카네기의 수사법과 연설법은 대학 공부를 마칠 무렵 완성됐다. YMCA에서 대중 연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을 쏟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현대적인 성공철학을 정의한 베스트셀러 ‘카네기 인간관계론’(1936년 초판 발행)을 썼다. 형식주의를 거부하고 성공하고 싶다면 호감 가는 성격을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심리적 요구를 이해하라며 인간 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한 그의 조언은 현대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632쪽. 2만 8000원. 모험본능을 깨워라(스킵 요웰 지음, 이채령 옮김, 푸르메 펴냄) 세계적인 아웃도어용품 ‘잔스포츠’의 공동 설립자인 히피 출신 사업가 스킵 요웰(1946~)의 인생, 모험 그리고 창의적인 사업 이야기다. 미국 서부 캔자스주의 촌구석 출신 소년이 모험 중독자이자 훌륭한 산악인이 된 사연, 삼촌의 정비소 창고에서 사촌과 그의 여자 친구 잔이 패밀리 사업으로 시작한 일이 아웃도어 산업 정상에 오르기까지의 사연 등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초기에 창립자 3명이 인디언이나 에스키모 복장을 하고 직접 카탈로그 사진을 찍었던 일, 돔형 텐트를 착안한 일화 등을 통해 저자는 잔스포츠의 성공 비결로 한계를 정하지 않은 창립자들의 순수함, 철저한 제품 검증 등을 꼽았다. 매우 독특하고 유쾌한 인물의 자서전인 동시에 성공한 벤처 사업가의 경영 전략이 담긴 경영 서적이기도 하며 모험 에세이로도 읽을 수 있다. 288쪽. 1만 5000원.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얼마 전 부산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승객이 선로에 떨어졌다. 그때 이름 없는 시민이 선로로 뛰어들어 승객을 구해 냈다. 한 시민의 용감하고 신속한 구조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을 ‘기사’에 비유한다. “저 사람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해”, “정말 정의로운 기사야” 라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의 상징이 된 ‘기사’. 우리가 상상하는 기사는 아서 왕처럼 건장한 체격에, 화려한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말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이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약자를 구하는 멋진 그 이름 ‘기사’. 여기에 그러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자신을 편력기사로 부르며 정의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을 했던 돈키호테. 그는 누구인가. 그동안 ‘돈키호테’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영화, 무용 등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돈키호테를 닮은 사람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하거나 키호테시즘(돈키호테적인 성격이나 생활태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를 위해 먼저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스페인의 상황을 살펴보자.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1547년은 카를 5세(1500~1558)가 지배한 시대로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값싼 은이 대량 유입되었고, 식민지를 수출시장으로 한 모직물 공업이 번창했다. 카를 5세의 뒤를 이은 필리페 2세(1527~1598)가 레판토 해전(1571년 오스만튀르크와 기독교 연합 함대가 코린트 만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충돌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기세는 점점 높아져 갔다. 절대왕정을 확립한 필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만들어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1세에게 패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최고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던 16세기 초에 기사도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기사도 소설에서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스페인의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547년 카를 5세 치하에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필리페 2세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고 이후 몰락해 가는 조국을 보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그의 인생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안에 자기가 겪은 스페인의 영광과 쇠퇴를 담으려 했다. 그 결과 기사도 소설에만 존재하는 영광의 세계를 현실에서 찾고 있는 돈키호테가 탄생한 것이다.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주인공의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다. 그는 스페인 라만차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귀족이었다. 그는 기사와 아름다운 아가씨, 마법사, 용, 마법에 걸린 숲, 신비한 검이 등장하는 모험담에 푹 빠진 나머지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세상을 유랑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명예를 드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초 종자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찾아 세상을 떠돌면서 악을 바로잡고, 불행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라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붙인다. 그가 떠난 편력은 온통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행동의 연속이었다. 풍차를 거인이 둔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갤리선에 노역을 하러 가는 죄수들을 풀어 주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만족한다. 지나가던 우리에 든 사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시종일관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소설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를 이용하여 당시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귀족의 행태를 풍자했다. 죄수를 풀어 주는 이야기도 기존사회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테아와 돈 페르난도의 사랑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랑을 말하고, 섬의 영주가 된 산초에게 충고하는 모습에서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당시 중세사회를 넘어 문예부흥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근대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인물을 이해하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돈키호테가 꿈꾸는 이상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열망하는 이상은 이미 쇠락해 버린 스페인에 대한 정의로 볼 수 있고, 광기 어린 행동은 새로운 르네상스가 추구한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돈키호테가 현실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죽음을 맞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철저한 논리와 행동의 일치, 주변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의감에 대한 열망,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돌적인 공격, 더할 수 없는 덕행에 빠져드는 광기 어린 행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방황하는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와 실천력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돈키호테가 주는 문학적 가치이자 묘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산초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리는 항상 문학작품에서 주인공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주변 인물이 존재한다. ‘돈키호테’의 산초가 그렇다. 그동안 산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단순하고 솔직해서 배고픔과 추위 등 본능에 충실한 산초.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돈키호테의 여정에 참여한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돈키호테가 언젠가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허황된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를 적절히 통제하며 돕는다. 돈키호테가 물레방아를 괴물로 생각해 공격하려하자 로시탄테의 뒷다리를 묶고 마법사가 한 짓이라고 속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막기 위해 지나가는 못생긴 시골 아가씨들을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섬의 영주가 되어 모자에 대한 명판결을 내리고, 노인들의 분쟁을 해결하여 섬 주민들에게 현자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스스로 영주의 자리를 내놓은 뒤 돈키호테에게 돌아가 임종을 지키며 숭배하는 현명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간다. 산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우리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 돈키호테의 꿈을 향한 용기와 실천은 전환기 지식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세이다. 많은 고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2% 부족하다. 돈키호테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초를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산초는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돈키호테를 돕는다. 산초와 같이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여 돈키호테처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한 효과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2014 공직열전] (60) 경찰청 (상) 현 정부서 위상 높아진 ‘10만 조직’

    [2014 공직열전] (60) 경찰청 (상) 현 정부서 위상 높아진 ‘10만 조직’

    ‘민중의 지팡이’와 ‘권력의 몽둥이’. 경찰은 극과 극의 별칭으로 불린다. ‘민생’을 위할 때와 ‘권력’을 위해 일할 때 엇갈린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만큼 시민과 살을 맞댄 밀접한 기관이라는 얘기일 터. 경찰은 현 정부 들어 위상이 높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치안 분야 핵심 공약인 ‘4대 악(성·학교·가정폭력, 불량식품) 척결’을 위해 선봉에 섰고 집권 2년 차인 올해에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국정 캐치프레이즈로 내걸리면서 경찰의 역할이 재차 강조됐다. 박 대통령이 임기 내 경찰을 2만명 더 늘리기로 해 조직에 힘이 실렸다. 경찰 인사 문제는 어느 행정 조직보다 폭발력이 강한 이슈다. 조직원이 10만명에 달하는 데다 경찰에 임용되는 경로가 다양하다 보니 인사에 예민하다. 특히 고위직 인사 결과는 조직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주는 만큼 입직 경로(경찰대·간부후보생·고시 특채·순경 공채 등)와 출신지를 고려해 신중히 한다. 지방경찰청장을 맡는 치안정감(중앙부처 1급과 동일)과 치안감급(2급) 간부 32명을 분석해 보니 입직 경로별 안배가 뚜렷했다. 경찰대 출신이 11명, 간부후보생으로 입직한 인원이 10명, 사법·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정 특채된 간부가 9명이었다. 순경 공채와 경위 특채 인원도 각각 1명씩 있었다. 역대 경찰청장 18명 가운데 고시 출신이 9명, 간부후보생 출신이 8명이었다. 지역별로 보면 부산·경남과 대구·경북 출신이 눈에 띈다. 영남 출신이 13명으로 전체의 40.6%였고 충청 7명, 호남 6명, 서울·경기 3명, 강원 3명 등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고위직 인사 후보군 중 50%가 영남 출신이어서 치안감 이상 간부 중 이 지역 출신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기계적으로 안배를 하면 오히려 영남권이 역차별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성한(58) 경찰청장에 이어 경찰청 내 ‘넘버2’인 이인선(53) 차장은 경찰대 출신 중 ‘큰형님’(1기)이다. 현직에 남은 1기생 80여명 중 최고위직에 올라 있다. 부드러운 리더십을 발휘하는 스타일로 본청과 서울경찰청에서 인사·기획 분야를 주로 맡았다. 이 차장은 “서울청 기획계장 때 2부제(2교대)였던 파출소 등의 근무 형태를 3부제로 바꾼 것이 가장 뿌듯했던 일”이라고 자평했다. 경찰대 2기인 강신명(50) 서울청장은 꼼꼼한 일 처리로 현 정부의 첫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일했다. 외향적 성격으로 직원들과 소통하고, 대언론 관계도 무난하다. 강 청장은 “경찰청 정보국장 등을 지내 정보통으로 알려졌지만 생활안전 분야에서도 오래 근무했다”고 말했다. 경찰청 혁신기획단 팀장(2005~2006년)으로 근무할 때 제주특별자치도법에 특별자치경찰을 신설하는 내용을 입법화하는 작업에 참여했다. 경찰대 동기생 중 이만희(51) 전 경기청장과 줄곧 승진 선두를 다퉜다. 이금형(56) 부산청장은 순경으로 입직해 치안감·치안정감까지 승진하며 ‘여성 최초’라는 타이틀을 도맡았다. ‘불도저’, ‘대처’라는 별명에서 보듯 저돌적 스타일로 주로 과학수사와 여성청소년 업무를 맡았다. 임신 6개월 때 임신 사실을 숨긴 채 살인 사건 현장에서 피해자 지문을 채취한 일화로 유명하다. 서울 마포경찰서장 때인 2006년 서울 서부권 연쇄 성폭행 사건인 ‘발바리 사건’ 해결을 주요 경력으로 내세운다. 1981년 충북 경찰청 상황실에 근무할 때 전투경찰이던 이인균(58·전 신세계 부사장)씨와 결혼해 세 딸을 뒀다. 최동해(54) 경기청장은 대표적인 ‘법무통’이다. 사법·행정고시를 모두 합격한 뒤 법제처 사무관으로 일하다 2003년 경정 특채로 경찰에 들어섰다. 경찰청 법무과장과 경북 칠곡·경기 가평·서울 노원 경찰서장 등을 지냈다. 또 경찰청 특수수사과장과 서울청 수사부장 등을 지내 수사 분야에서도 이력을 쌓았다. 안재경(56) 경찰대학장은 행정고시 출신으로 경정에 특채됐다. 고시 출신이지만 서울 노량진경찰서 형사과장과 종로경찰서 수사과장 등을 역임해 일선에서 잔뼈가 굵은 ‘수사통’이다. 컴퓨터에 관심이 있어 범죄 통계를 토대로 범죄를 예측하는 ‘컴스펫’ 프로그램을 만들어 1998년 신지식인에 선정된 이채로운 이력이 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다음회는 경찰청(하) 입니다
  • [열린세상]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위안부 역사관/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미래지향적 한·일관계와 위안부 역사관/김경민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유엔 인권회의에서 한국의 외교부장관으로서는 최초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심대한 고통을 당한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일본이 과거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기를 인내하며 기다려 왔지만 더 이상 인내할 수 없을 만큼 일본 정계 인사들의 망언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한의 일제 식민지배와, 종군위안부와 강제 징용에 대한 사죄가 고노 담화, 무라야마 총리의 사죄 등으로 근근이 위안을 받아 왔지만 일본 관료들의 수없는 과거사 부정도 함께 이어져 오면서 억울함을 겨우 추스르던 한국의 국민들은 수없는 좌절감을 맛보곤 했다. 그런데 아베라는 인물이 총리직에 두 번이나 올라서면서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망언을 쏟아내고 있기에 윤 장관의 유엔인권회의 발언은 시의적절한 처신이었다고 평가된다. 그리고 한국의 외교부 장관이 유엔인권회의에서 공식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한 만큼 일본의 전격적인 과거사 직시의 처신이 없는 한 범정부적인 정책으로 일본 측의 잘못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면서도 도쿄 시내 한복판에서 “한국인은 일본에서 나가라”는 인종차별적 데모를 하는 일본 극우세력을 보면서 21세기 개명천지에 이런 나라도 있으니 경악을 금치 못할 판이다. 만약 한국에서 일본인들을 나가라고 하면 일본 국민은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세계의 경제대국이라는 일본 일각에서 벌어지는, 있을 수도 없는 반인권적 집단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필자는 동북아의 번영과 평화의 미래를 이렇게 꿈꾸어 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패전한 일본은 민주주의라는 길을 한국과 중국보다 오래 경험했기 때문에 과거의 침략사를 진정으로 잘못되었다고 회개하면 한국과 미래의 동반자로서 공산주의 중국을 민주화시키는 데 힘을 합치면 동북아의 평화와 미래가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런데 일본의 과거 침략사 부정에 국제사회뿐만 아니라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미국마저 잘못되었다고 할 정도이니, 이제는 그냥 덮어둘 일이 아닌 것이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지식인층의 상당수가 아직도 희망을 갖고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민들어가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참에 종군위안부의 문제만큼은 종결을 지어야겠다. 일본의 인권유린을 역사에 남기기 위해 종군위안부 역사관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여성으로 가장 수치스러웠을 종군위안부 생활을 어둠에 묻어 두었다가 용기를 내어 이 사회에 얼굴을 드러내고 나와 주신 피해자 어르신들의 진정한 용기를 영원히 기록할 기념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는 전쟁을 통한 참혹한 인권유린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제사회가 널리 알 수 있는 역사관을 만들어야 하겠다. 100만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독가스실에서 죽어 갔던 폴란드 아우슈비츠의 복원 사업도 폴란드 의회의 결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지금도 1년에 1000만명 이상 방문하고 있어 역사의 산 교육현장이 되고 있다. 독일은 그 수치스러운 현장을 진정한 사죄의 가슴으로 협력하고 있다. 감히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독살의 현장과 굶주림, 강제노역 등의 현장을 아우슈비츠뿐만 아니라 독일 뮌헨 근처의 다카우 수용소, 생체실험을 자행했던 베를린 근처의 작센하우스, 베를린 한복판의 나치 홀러코스트 기념관 등 독일 전역에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그래서 독일은 그 진정성으로 인해 폴란드로부터도 용서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연세가 들어 임종이 얼마 남지 않은 종군 위안부 어르신들이 모두 다 사라져 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그 당시의 참상을 기록해둬야 한다. 중국이 일본의 센카쿠 열도를 넘보면서 더욱 광분하고 있는 일본은 과거사를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다시는 그런 인권유린이 없도록 하겠다는 모습이 있을 때 센카쿠 영토 문제도 국제사회가 일본 편에서 도와주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일본이 이성을 찾아 과거사를 제대로 직시하기를 촉구한다.
  •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중국의 꿈’에 실종된 인권운동가

    [김규환 선임기자의 차이나 로드] ‘중국의 꿈’에 실종된 인권운동가

    지난 5일 오전 10시 50분쯤, 중국 최대의 정치 행사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열리는 인민대회당과 지척에 있는 베이징의 톈안먼(天安門) 진수이차오(水橋) 부근. 40세 안팎의 한 여성이 갑자기 옷을 벗어던진 뒤 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여 분신을 시도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변에 있던 공안(경찰)들이 쏜살같이 달려와 불을 끈 뒤 이 여성을 서둘러 연행했다. 분신 시도 현장은 지난해 10월 5명이 숨지고 40명이 다친 차량 돌진 테러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이 여성의 분신 이유는 즉각 알려지지 않고 있으며 공안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사건이 일어난 만큼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홍콩 명보(明報)가 6일 보도했다. ●정치개혁 주장 SNS 무더기 폐쇄 공산당 일당 독재의 중국 사회가 반체제 인사를 양산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인권 유린의 현장인 ‘노동교화소’를 폐지하는 등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인 이면에는 공산당 독재를 비판하거나 민주적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학자나 유명 블로거들의 웨이보(微博·트위터) 계정을 무더기로 폐쇄하는 등 오히려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는 모습이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비정부기구(NGO)인 ‘중국인권수호자’(CHRD)가 지난 3일(현지시간) 발표한 2013년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에서 형사 구류된 인권운동가는 전년보다 3배 이상 급증한 220여명에 이른다. 실종된 인권운동가들도 전년보다 3배 이상 늘어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중국의 꿈’(中國夢)이라는 달콤한 정치 구호를 내세우며 출범한 지난해 중국 인권 상황은 5년래 최악인 것으로 분석된다고 미 자유아시아방송(RFA)이 4일 보도했다. 보고서는 중국 공안당국이 인권변호사와 언론인, 시위자들을 공공질서 교란 혐의로 구속하는 일이 보편화돼 있으며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와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등의 소수민족 인권을 무차별적으로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의 인권운동가 류칭(劉靑)은 “시진핑 정권은 부패 척결에 나서는 한편 반체제 인사, 인권운동가 등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인사들에 대한 단속도 강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식인들 기득권 던지고 반체제 인사로 중국에 반체제 인사가 양산되고 있는 것은 중국이 지난 30여년간 고속 성장을 거듭하면서 엄청난 부를 일궈냈지만 이와 동시에 빈부 격차와 부패, 금융 부실과 거품, 환경오염 등의 고질적인 사회 문제를 낳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감히 기득권을 내던진 쉬즈융(許志永) 변호사와 샤예량(夏業良) 전 베이징(北京)대 경제학원 부교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쉬 변호사는 공직자 재산 공개 등을 요구하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주도하다 체포돼 지난 1월 ‘공공질서 교란’ 혐의로 징역 4년형을 선고받았다. 이 운동을 시작한 2012년 5월 이후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마다 가택 연금됐으며 지난해 7월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체포됐다. 2008년 공산당 일당 독재를 철폐하고 민주적 정치 개혁을 요구하는 ‘08헌장’에 서명한 샤 전 교수는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샤오보(劉曉波)와도 아주 가깝게 지냈다. 지난해 10월 해직 통보를 받은 그는 12월 26일 미국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 강의로 13년간의 베이징대 생활을 마쳤다. 샤 전 교수는 “베이징대를 떠나게 돼 만감이 교차한다”며 “이는 국가와 시대의 비애”라고 비판했다. 대학의 자유를 강조해 온 천훙궈(諶洪果) 시베이(西北)정법대 교수는 지난해 말 ‘사직 공개성명’을 인터넷에 올렸다. 학교 당국으로부터 몇 차례 압력받은 사실을 밝힌 천 교수는 “교수 직책을 유지하고 체제에 순응하기 위해 그동안 지켜 온 원칙을 버리고 구차해질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보편적 권리도 쟁취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학생들에게 법치의 신앙과 법률의 권위, 과정의 가치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라고 되묻기도 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초에는 장쉐중(張雪忠) 상하이 화둥(華東)정법대 교수가 입헌 정치 등을 공개적으로 호소하다 정직됐다. 민주 헌정 요구는 서방이 중국을 공격하는 도구라는 관영 언론의 주장에 대해 “이런 논리가 헌정의 가치를 압살하는 것”이라며 언론의 자유와 민주 법제 등을 요구한 게 빌미가 됐다. 화둥정법대 측은 교수 신분으로 학교 시스템을 활용해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발표한 것은 교수 직업 수칙 등을 어긴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장 교수는 자신의 정직에 대해 “분명히 정치적인 의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9월에는 왕궁취안(王功權) 등 대표적인 인권운동가들이 ‘공공의 질서를 교란한 죄’로 체포됐다. 인터넷 논객인 쉐만쯔(薛蠻子), 저우루바오(周祿寶), 친즈후이(秦志暉) 등도 성매매, 사기 등의 혐의로 붙잡혀 갔다. 이 때문에 ‘온건파’에 속하는 중국의 자유파 지식인 100여명도 지난달 20일 정치 개혁과 민주화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이 모임에는 마오쩌둥(毛澤東)의 비서 출신인 리루이(李銳)를 비롯해 두다오정(杜導正) 전 신문출판서 서장 등 공산당 원로들과 중국 정치 개혁을 주장하다 실각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아들인 후더핑(胡德平), 저명한 경제학자 마오위스(茅於軾) 등이 참석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정치 개혁은 입헌 정치와 법치의 제도화가 주요 내용이다. 중국 공산당이 헌정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현대적 집권당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면 과제이며 이를 위해선 낡은 사상, 옛 습관, 옛 제도 등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게 이들의 요구 사항이다. ●관영언론 다당제 비판… 개혁 견제 그렇다고 중국 정부가 가까운 시일 내 정치 개혁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을 것으로는 기대하지 않고 있다. 체제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중국 정치의 특성상 급격한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자유파 학자인 베이징대 법학과 장첸판(張千帆) 교수는 “5년 내에 중국의 정치 개혁은 어렵다”고 단언했다. 인민일보 등 중국 관영 매체들은 서구식 다당제에 대해 비판하며 정치 개혁 요구를 견제하고 있다. 이런 만큼 머지않아 중국 당국은 극심한 빈부 차, 도농 및 지역 간 소득 격차 등의 사회 양극화 문제와 사법적 불공정성 등을 해결하는 정책적 대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khk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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