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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센베이’같이 얄팍한 담론, 인류의 ‘원숭이화’ 날로 악화…복잡한 현실부터 마주 보라

    ‘센베이’같이 얄팍한 담론, 인류의 ‘원숭이화’ 날로 악화…복잡한 현실부터 마주 보라

    조삼모사 ‘원숭이화’ 현대사회 일침좌·우익 사이 ‘회색지대’ 는 사라져지식인마저 단순한 이야기로 어필훑어보기, 켜켜이 얽힌 현실 못 풀어아베 정권 8년간 일본 정치 무너져자각하고 인정하는 게 변화의 시작수행 끝 찾아올 ‘회복 탄력성’ 기대자본론 ‘지적 긴장감’ 곱씹어 보길현대사회를 ‘원숭이화’라는 키워드로 꾸짖은 우치다 다쓰루(74) 고베여대 명예교수에게 “원숭이화가 계속되고 있는가”라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그렇다”고 대답했다. 원숭이의 조삼모사(朝三暮四)식 사고, 과거·현재·미래에 걸친 복잡하고 연속적인 고찰이 불가능해지면서 센베이(일본의 전통 과자)처럼 얇아진 담론이 일본은 물론 전 세계의 정치 분단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일본 정치의 질적 저하는 “쇠락한 국력” 탓이라고 했다. 따끔한 말만 쏟아 내는 그에게 ‘원숭이화를 멈출 방법’을 묻자 “그래도 한번은 인류의 ‘회복 탄력성’이 작용하지 않겠느냐”고 답했다. 구체적인 방법을 묻는 말에는 “수행(修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이자 사상가, 무도가, 교육가인 우치다 명예교수를 지난달 26일 일본 고베 개풍관에서 만났다.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이란 뜻의 개풍관은 그가 은퇴 후 합기도 수련은 물론 인문학 강좌를 열기도 하는 일종의 배움 공동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사망한 뒤 일본 정치사회를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원숭이화’가 심화하고 있는가. “악화하고 있다. 일본뿐 아니라 미국, 한국, 프랑스, 독일 전 세계가 닮아 있다. 긴 시간(time span) 복잡한 사고가 불가능해진 탓이다. 과거에는 좌익 온건파와 우익 온건파들 사이에 소통이 가능한 회색지대가 있었다. 지금은 모두가 단순하게 말하고, 원리주의적 사고만 하니 공감대가 없는 사람과는 대화를 전혀 할 수 없게 됐다. 21세기 와서 이렇게 정치 문화가 쇠퇴할 줄은 예상하지 못 했다.” -왜 이렇게 된 건가. “미디어가 복잡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보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써 온 탓도 있다.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간단한 이야기가 지적 부하(負荷)가 줄기 때문에 편하다. 서비스업인 미디어에서는 성립할 수 있다고 보지만 모두가 단순한 스토리 패턴에 익숙해져 버렸다. 지식인도 단순하게 이야기해야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복잡한 현실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사라졌다.” -복잡한 이야기를 들으면 일단 불안해진다. “현실은 굉장히 복잡한 여러 이유가 층층이 얽혀 있다. 그것을 풀어 나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이야기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훑어보기식으로 현상을 파악하면 순간에는 안심할 수 있겠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복잡한 현실과는 전혀 맞지 않기 때문에 어긋남이 생긴다. 이에 생각지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들이 반복해서 일어나게 된다.” ‘74년을 살았지만 이렇게 악화한 건 처음’이라는 게 그의 현실 평가다. 수천 년 동안 인간은 진화하고 꾸준히 성숙해졌기 때문에 ‘최악’이라는 현재는 ‘단기적인 변화’일 것이라고 긍정적인 해석도 덧댔다. 그러면서 ‘회복 탄력성’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한번은 작동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암울한 문장이 따라왔다. “다만 현재 주류 언론에서는 그 회복력이 작용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새 내각 출범에도 정치 개혁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가 높지 않은 듯하다. “지난 제2 아베 정권 8년간 철저하게 (일본 정치는) 망했다. 아베는 미국을 등에 업고 내각법제국, 검찰, 미디어를 모두 ‘예스맨’으로 채웠다. 야당의 요구에는 단 1㎜도 양보하지 않았다. 과반수로 선거에서만 이긴다는 사고다. 야당을 지지하는 국민의 40%를 적으로 돌리고 자기들만을 위한 사적 정치를 해 온 셈이다. 그런 부끄러운 정치를 한 정치인은 과거에 없었다.” -왜 부끄러운 정치인데 바뀌지 않는가. “버블 붕괴 이후 대미 자립을 요구하는 패기와 야심이 사라졌다. 세상에 일본이 자랑할 수 있었던 건 돈밖에 없었던 거다. 그게 없어져 완전히 자신감을 잃었다. 도쿄 상공인 요코다 공역은 일본 영공인데도 항공관제를 미군이 장악하고 있고 민간 항공기는 허가 없이 날 수 없다. 이런 데 대해 특히 젊은이들이 부끄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선 후보 9명 가운데 6명의 최종 학력이 미국 대학이었다. 그들의 정책을 잘 들여다봐라. 모든 공약이 미국을 향해 있다.” -일본인은 거대한 힘을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특수한 국민 정서가 있다던데. “일본에 있어 미국은 자연현상과 같다. 지진이라든지 해일, 태풍 같은 느낌이다. 자연현상이라면 대항할 방법이 없다. 다들 그런 현상을 받아들인 상태에서 어떻게 출세해 나갈지, 어떻게 돈을 벌지 그것만 생각하고 있다. 일본 시스템이 덜컹거리고 있지만 처신을 잘하면 대충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어두운 미래 전망을 풀어내던 우치다 명예교수는 “지금이 굉장히 곤란한 상태라는 걸 자각하고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변화할 수 있다”고 했다. 좀더 긴 역사적 주기 속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들을 바라보는 일, 적어도 100년 정도의 주기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 3년 동안 인류는 진전을 이루지 못한 채 흘려보냈다. “그 3년 동안 소통이 멈췄다. 대면 소통은 이야기가 중층적인 메시지가 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오직 한 형태의 메시지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공통 배경이나, 관심사가 있는 사람끼리는 말이 통하지만 조금만 떨어져 버리면 말이 굉장히 얄팍해진다. 바로 대립하거나, 원프레이즈로 말을 끊어 버린다던가.” -그런 식으로 일종의 회색지대가 없어진 건가. “말이라는 건 중층적이어서 여러 층으로 해석이 바뀌기도 한다. 밀도 있는 밀푀유(페이스트리를 켜켜이 쌓아 올린 프랑스 디저트) 같은 말을 하려면 역시 기술이 필요하다. 센베이 같은 말을 쓰는 대화는 굉장히 가난하고, 난폭하고, 공격적으로 되기도 한다. 최근 3년간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는 것을 보았지만 모두 말의 사용법에 숙달했는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서투르고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어휘도 줄고 있다.”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수행이 필요하다. 스스로 기술을 찾고자 하는 자기 노력. 말을 잘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쓸 수 있다면 분명히 나도 기분이 좋을 것 같다고 절실히 생각하는 것.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기술적으로 향상될 수 있다. 그런데 어른이란 사람들이 모두 잡스러운 언어를 쓰니까…. TV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들을 봐도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훌륭해서 저렇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없다.” -최근 관심사는 무엇인가. “젊은이들. 그 안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나오는 일을 응원하고 있다. 일본에선 40~50대가 제일 싸우지 않는 세대인데, 20~30대 사이에서 ‘위 세대에 붙어서 가면 우리 때는 더 가난해지고 더 비민주적인 나라가 되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 여러 가지 활동을 응원하고 있다.” 그는 대표적으로 사이토 고헤이(37) 도쿄대 교수와 시라이 사토시(47) 교토세이카대 교수를 꼽았다. 사이토 교수는 33세 때 ‘지속 불가능 자본주의’를 출간해 전 세계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시라이 교수는 일본 전후 담론을 이야기한 ‘영속패전론’, ‘카를 마르크스’ 등으로 한국에도 소개된 학자다. -다시 마르크스의 ‘자본론’인가. “소련도 중국도 실패했지만 자본론은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적 언설로서 자본주의의 결점을 매우 선명하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이론 체계다. 21세기가 돼도 아직 읽을 만한 책이라고 느낀다. 과거에는 자본주의도 자신들이 바르다는 걸 제대로 증명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생기는 ‘지적 긴장감’이란 게 있었다. 그 사이에서 다시 한번 정치·경제·사회·문화가 성숙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소통은 줄고 정부의 억압과 통제는 늘어나는 디스토피아 미래를 말하는 듯했던 우치다 명예교수는 인터뷰 끝자락에선 희망을 건져 올렸다. “희망은 있다. 저는 늘 낙관적이다. 다만 절망적인 현상 인식을 근거로 해 거기에서부터 희망을 쌓아 나갈 수 있다고 본다. 계속 복잡한 현상과 마주해야 한다. 훨씬 더 비관적으로 봐야 한다. 그래야 낙관도 할 수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내년에 75세니 후기 고령자가 된다. 슬슬 은거…. 원래부터 집 밖엔 잘 안 나가니까 은거는 아닌가(웃음). 아, 올겨울에 1930년대 일본 군부가 폭주하기 전 사상가들에 대한 연구집을 내는데 이 중에 조선의 동학운동에 참가한 사람이 있다. 제국주의에 대항하자는 내셔널리스트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나. 나중에 이게 끔찍한 이야기로 변하긴 하지만….”
  • “잘못한 것도 어신디… 제주도를 살려내라”… 재일동포 3세가 1인극으로 전하는 4·3

    “잘못한 것도 어신디… 제주도를 살려내라”… 재일동포 3세가 1인극으로 전하는 4·3

    “얼마나 무서웠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얼마나…. 잘못한 것도 어신디(없는데). 할망을 살려내라, 어멍을 살려내라, 아방을 살려내라, 제주도를 살려내라.” 한국인도, 제주인도 제대로 담아내기 힘든 제주4·3 이야기 4·3진혼극 ‘이카이노 삼춘의 깃발’이 재일교포 3세의 1인극으로 탄생돼 23일 설문대여성문화센터 무대에 올려지고 있었다. 울음조차 삼켜야 했고 말하는 것도 소리내 하소연도 못했던 세월,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지만 타국에서 씩씩하게 살았던 이카이노 제주 ‘삼춘(삼촌의 제주어)’의 이야기가 시작됐다. 특히 4·3 학살이 있던 그날, 제주인들이 총칼에 맞아 죽어가자 마치 어제의 악몽처럼 눈앞에서 재현되자 객석은 훌쩍거리기 시작했고 소리없는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비장하도록 한을 토해내는 절규에 관객들은 모두 울컥한 때문이다. 시나리오는 물론 연출, 주연까지 도맡아 열연한 재일교포 김기강(51) 극단 돌 대표는 연극이 끝난 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 30대부터 4·3에 대해 언젠가 쓰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며 “제주 4·3 진상 규명작품을 주로 공연해온 제주도 놀이패 ‘한라산’ 선배들의 작품을 보면서 공부했고 작품을 함께 하며 몸에 배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모은 4·3 자료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오랜시간쓰며 준비한 작품”이라며 “일본 오사카, 도쿄에서 공연한 뒤 이렇게 제주 무대에도 올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극단 돌을 사랑하는 일본 팬들 중 지식인들 중심으로 연극을 보고 난 뒤 4·3을 배우는 열기가 일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성산읍 삼달리 출신이라는 김 대표는 “슬픈 역사를 슬프게만 만들지 말자고 생각했고 힘있고 신나는 작품으로 승화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살암시민 살아지주(살아가다보면 살아진다)’라는 대사처럼 삶은 계속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연출자의 의도가 시작부터 잘 표현됐다. 주먹밥을 직접 만들어 온 할머니가 객석에 있는 관객들에게 나눠주며 소통했고 객석에서 종이배로 만든 밀항선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는 여정으로 연극이 시작됐다. “저에겐 꿈이 없었어요. 스무살 때 연극을 만나면서 꿈이 생겼죠. 우리말도 못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들이 생기면서 용기를 얻게 됐어요”라고 말하는 김대표. 그는 “연극을 통해 아이들이 꿈을 꾸었으면 좋겠고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고2때부터 김기강으로 살겠다고 선언하며 일본 이름을 포기한 김 대표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고 있다. 그가 연극을 통해 마지막에 내뱉는 독백처럼 “우리가 진짜 가고 싶은 곳은 남도 아니고 북도 아니고 통일된 제주도”라는 메시지가 묵직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무엇보다 경계인인 재일제주인 3세가 4·3이야기로 감동 무대를 선사한 점에선 제주도민들에겐 자성의 순간이고 성찰의 시간이 됐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재일제주인의 역사는 100년을 넘고 있다. 1930년대 중반 제주인구의 4분의 1인 5만여명이 일본에 거주할 정도였고 대다수가 오사카 이카이노에 거주했다”면서 “차별과 냉대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재일제주인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전했다.
  • [서울on] 하류 언어

    [서울on] 하류 언어

    “일본에서 그런 말을 했다간 질이 낮은 하품(下品) 인간으로 취급되지.” 얼마 전 일본의 한 지인과의 대화에서 나왔던 말이다. 일부 한국 사람이 다른 이들에게 “어디 사세요? 아파트예요, 빌라예요? 몇 평이고, 얼마에 샀어요? 전세예요, 월세예요?”라며 재산 수준을 자세히 묻는다고 하자 돌아온 대답이었다. 질문에는 상대방의 계층을 가늠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우리나라의 중산층 기준은 ‘30평대 아파트, 월급 500만원 이상, 1억원 이상의 예금’과 같이 물질적 조건에 치우쳐 있다. 재력만 알면 계층을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일본에선 어쩌다 사는 지역까지는 물어볼 수 있다 해도 상대방 재산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을 경우 ‘타인의 사생활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한 인간’이란 오명이 붙는다고 한다. 남의 주머니 사정을 왜 알아야 하며 알아서 뭐 하냐는 것이다. 서구권은 더하다. ‘하류층’이란 시선까지 덤으로 따라온다. ‘돈돈’거리면서 재산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건 ‘저속하고 교양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란 인식이 지배적이다. 서구의 상류층과 지식인 계층에서는 문화, 예술, 시사, 철학 등에 대한 교양과 지식이 중요하게 다뤄진다. 미국의 사회비평가 폴 퍼셀은 “하류층은 계층을 ‘돈의 양’으로 정의하며, 중산층은 돈만큼이나 교육과 직업을 중시하고, 상류층은 돈과는 무관하게 취향·가치·생각·행동을 강조한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르면 상당수 한국인의 계층에 대한 시각은 미국의 하류층에 가깝다. 이러한 현상의 뿌리는 한국의 독특한 역사적 맥락에서 찾을 수 있다. 1960년대 이후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린 초고속 성장을 이루는 과정에서 서구와 달리 다소 노골적이거나 천민적인 문화가 잔재처럼 남은 탓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재산에 대한 무례한 질문이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지는 한 원인이다. 코로나 이후 부동산·주식 가격이 폭등해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이런 질문은 더 빈번해졌다. 현재 어려운 처지에 있으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일종의 ‘낙인효과’도 강해졌다. 어린 세대는 더욱 우려스럽다. 초중고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들을 자가와 전세 거주자로 구분 짓는다. 임대아파트 거주민을 비하하는 ‘LH 거지’, ‘휴먼시아 거지’와 같은 모욕적인 표현이 마구 사용된다. 타인의 가치를 경제적 잣대로 구분하는 어른들의 하류 문화를 어린 세대가 고스란히 흡수하더니 한층 노골적으로 표출하는 셈이다. 사회 리더들 역시 이러한 하류 문화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몇 년 전 한 국회의원이 ‘이부망천’(이혼하면 부천에 살고 망하면 인천에 산다)이라는 부적절한 농담을 한 것이 그 예다. 1960년대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인이 정신적 차원의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일궈 내지 못한 건 아닐까. 개인의 가치를 경제적 기준이 아닌 다양한 측면에서 평가하는 성숙한 문화로 발돋움시키는 건 우리 세대의 과제다. 타인의 재산에 대해 무심코 던지는 질문이 실은 무례할 수 있다는 인식은 그 첫걸음이다. 김성은 기획취재부 기자
  • “한일 안보협력 필요하나 동맹 불필요… 정책 국민 공감대 필수” [K이슈 플랫폼]

    “한일 안보협력 필요하나 동맹 불필요… 정책 국민 공감대 필수” [K이슈 플랫폼]

    강제동원 제3자 변제 해법 적절 ‘한미일안보협의체’ 기구 있어야일중과의 원전 관리 협력 주도를한일관계 모든 면 지속 발전돼야문제 여전… 법률 의한 재단설립을‘지휘체계 일체화’ 수준 가선 안 돼오염수방류 외 대안, 日 압박 필요북일 접촉·관계 개선 가능성 대비K이슈플랫폼은 다툼만 있고 해결이 없는 우리 사회에 합의를 통한 정책방향 제시를 목표로 기획됐다. 주최자인 ‘진실과 정론’은 K정책플랫폼(이사장 전광우), 한반도선진화재단(박재완), 안민정책포럼(유일호), 경제사회연구원(최대석)으로 구성된 싱크탱크 연대이다. 의제 : 현 정부 대일정책에 대한 평가와 향후 과제 토론자 : 남기정 서울대 일본연구소장(한일협력 신중 추진론) 박영준 국방대 국가안보문제연구소장(한일협력 적극 추진론) 사회 : 손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동아시아연구원장) 토론 정리 : 박진 K정책플랫폼 공동원장(KDI대학원 교수) 현 정부는 한일관계 개선을 대표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야당은 역사문제 해결 없이 한일관계를 개선했다며 현 정부를 비판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과거사에 대해 전향적 역사 인식을 보인 바 있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1일 취임했고 한일 두 정상은 지난 10일 첫 만남을 가졌다. 내년은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 정부의 대일정책, 어떻게 평가할 수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 1.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방식 [사회] 최근 한일관계 경색은 2018년 우리 대법원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이 일본 기업에 있다고 판시하면서 시작됐지요. 일본은 이에 반발해 수출을 규제하고 백색 국가 리스트에서도 한국을 배제했습니다. 현 정부가 작년 제3자 변제방식을 해법으로 내면서 한일 경제협력은 다시 정상화됐지만 논란은 여전합니다. 두 분 의견 말씀해 주시지요. [박영준] 사실 대법원 판결은 그간 우리 행정부가 견지해 온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70년대 박정희 정부는 일본에 대한 개인의 청구권 신고를 받고 보상금을 지급했었습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민관 공동위원회도 1965년 협정 시의 무상 3억 달러에는 강제동원 피해보상도 포함돼 있다는 견해를 보인 바 있습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 문재인 정부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은 채 일본 정부와의 갈등만 확대했습니다. 현 정부는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권리침해를 막기 위해 제3자 변제개념을 적용한 것입니다. 이는 민간의 재단을 통해 한국과 일본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토록 한다는 방안으로서 적절한 대응이었다고 평가합니다. [남기정] 대법원 판결은 헌법전문과 한일기본조약에 대한 우리 정부의 기본 입장을 반영한 것입니다. 아직 강제동원 보상 문제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선 피해자들이 수용치 않고 있습니다. 실제 기금 모집에도 진전이 없습니다. 피해자들은 심지어 한국 내 일본자산을 압류하고 이를 현금화해 보상에 사용하자고 말합니다. 정부도 한 걸음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법률에 의한 재단 설립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한일 양국의 기업들도 배임 논란에서 벗어나 마음 편히 출연을 할 수 있고 재단이 정권과 무관하게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영준] 정부가 작년 한일관계 정상화 이후 제3자 변제 방식 관련 후속 조치에 다소 소홀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법률에 의한 재단설립은 양국 기업이 참가할 수 있도록 변화의 물꼬를 튼다는 점에서 동의할 수 있습니다. 2. 한일 안보협력 [사회] 작년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은 안보협력을 추진키로 합의했습니다. 이후 3국 간 북한 군사 동향 정보 공유, 대잠수함 공동훈련, 미사일 방어 공동훈련 등을 실시했습니다. 이에 대한 의견을 부탁드립니다. [박영준] 북한이 중국, 러시아와 군사관계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이에 공동의 위협인식을 갖는 국가들 간 억제 차원의 안보협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특히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한미동맹을 강화, 확대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남기정] 한일안보협력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합니다. 그러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수준의 동맹으로 가는 것은 반대입니다. 한미일이 지휘체계를 일체화하는 수준까지 가면 북한,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는 크게 악화될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한미일의 국익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하면 우리는 중국 등을 외교적으로 활용할 수 없게 됩니다. [박영준] 저 역시 한일안보협력을 동맹 수준으로 격상하는 데에는 반대입니다. 그러나 그 협력의 수준이 정권에 따라 요동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지속될 필요는 있습니다. 그러자면 한미일안보협의체(KOJAUS) 등 3국 간 제도화된 기구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남기정] 안보협력의 지속성은 필요합니다만 기구 설립은 한국과 일본의 국익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의 유연성을 제약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사회] 그렇다면 일본과의 안보협력은 지금보다는 다소 강화될 필요는 있으나 동맹 수준은 불필요하며, 기구 설립 등 제도화는 국회 등 민주적 절차를 통해 추진한다 정도면 어떨까요? [모두] 좋습니다. 3. 오염처리수 문제 [사회] 2021년 일본 정부가 오염처리수를 바다에 방출하기로 결정하자 일본 어민은 물론 우리를 포함한 주변국이 반대한 바 있지요. 그 유해성에 대한 논란이 뜨거웠으나 일본은 결국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승인을 얻어 작년 8월 24일 오염처리수를 방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대해 논의해 볼까요. [박영준] 오염처리수의 무해성에 대해서는 IAEA는 물론 미국 정부도 인정한 바 있습니다. 방류 후 1년이 넘었지만 그 유해성은 더이상 큰 논란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더구나 우리가 반대한다고 해서 일본의 방류를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달라지는 것 없이 한일관계만 나빠지는 것이지요. 저는 우리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다고 봅니다. [남기정] 오염처리수의 유해성에 대해 다소 과장된 반응이 있었던 점은 사실이지요. 그러나 해양 방출 이외의 해법에 대한 연구는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방류에는 향후 30년이 소요된다고 하는데 일본 측이 다른 대안도 검토하도록 외교적 압박을 지속할 수 있는 국제협력의 틀을 모색해야 합니다. [박영준] 국제협력의 틀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방류가 시작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 모색은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국제협력기구를 통해 일본에 방류 관련 정보 공유와 모니터링을 요구하면서 동북아의 원전 관련 안전성을 포괄적으로 담보토록 하는 것이 낫다고 봅니다. 특히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은 중국의 원전 관련 정보이지요. 한국이 일본과 중국에 대해 원전 안전관리 등을 위한 협력과 협의기구 설치를 주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기정] 동의합니다. 4. 향후의 대일정책 방향 [사회] 이시바 총리 내각이 출범했습니다. 이에 대해 정부에 장단기 조언을 주신다면. [남기정] 단기적으로는 일본이 대북 관계 개선에 나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합니다. 이 경우 우리는 이를 지지하면서 북일관계 개선이 한반도 안정에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는 한일 안보협력을 점진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우리가 한일관계에서 정책적 유연성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박영준] 우리도 북한 관리 차원에서 북일 접촉을 주시하고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북한·중국·러시아 연대가 강화되는 지정학적 여건 속에서 한일관계는 안보, 경제, 문화면에서 모두 지속 발전돼야 한다는 당위론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사회] 오늘 논의에서 느낀 점이 있습니다. 첫째, 정치가 한일관계에 대한 견해 차이를 극단화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두 분은 다른 이념적 지향성을 가지고 있지만 정파성을 배제하고 나니 많은 합의에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파성이 지배하는 현실 정치에서의 합의는 이 토론에 비해 훨씬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공론 형성에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둘째, 정책결정자들은 한일관계를 다루는 데 있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현안에 대해 결정을 미루거나 미봉책으로 일관해 정책 실패를 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교훈 삼기보다는 정파적 합리화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대일관계의 근본 문제를 다루는 장기전략을 마련해야 합니다. 셋째, 역사 인식이나 대일정책 방향 등 근본 이슈들에 대해 국민과의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입니다. 정부가 민간전문가 및 시민단체와 대화하면서 대다수의 국민이 공감하는 결론을 도출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대일본 관계에선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이런 과정이 미흡하면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대세를 이루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두] 공감합니다.
  • 내장산 단풍 너머 내님 찾기…‘나는 절로’, 새달 2일 백양사서

    내장산 단풍 너머 내님 찾기…‘나는 절로’, 새달 2일 백양사서

    만남 템플스테이 ‘나는 절로’가 이번엔 ‘단풍 성지’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내 임 찾기에 나선다. 대한불교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오는 11월 2~3일, 1박 2일간 ‘나는 절로, 백양사’를 개최한다. 내장산에 깃든 백양사는 국내 최고의 수행도량이자 가을 단풍 명소다. 근현대 한국불교의 선지식인 만암 대종사와 서옹 대종사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호남의 대표적인 수행도량이다. 조계종 복지재단은 “백양사는 사찰음식의 세계화를 위해 진력하는 사찰음식 명장 정관 스님이 주석하신 곳”이라며 “‘나는 절로’를 통해 백양사 천진암에서 사찰 음식을 직접 체험하고 맛볼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할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절로’는 저출생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보건복지부와 협력해 진행하고 있다. 올해 경기 강화 전등사,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강원 양양 낙산사, 서울 화계사 등에서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됐다. 특히 40대 특집으로 진행된 ‘나는 절로, 화계사’ 편에선 4커플이 탄생하기도 했다. ‘나는 절로, 백양사’ 편에 선정된 남녀 각 10명, 총 20명의 참가자는 1박 2일 동안 백양사 참배, 정관 스님과 함께하는 사찰음식 체험, 저출생 대응 인식개선 교육, 레크리에이션, 1대1 로테이션 차담 등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소중한 인연을 찾을 예정이다. ‘나는 절로, 백양사’에는 30대 미혼남녀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신청은 14일 오전 10시~18일 오후 2시까지다. 조계종사회복지재단 누리집(www.jabinanum.or.kr)에서 받는다.
  • 10월의 독립운동가에 임천택·서병학·박창운 선생

    10월의 독립운동가에 임천택·서병학·박창운 선생

    국가보훈부는 쿠바, 멕시코 등 중남미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임천택, 서병학, 박창운을 ‘2024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임천택(1903~1985·애국장)은 어머니를 따라 멕시코로 떠난 뒤 18살이 되던 해 쿠바로 이주해 대한인국민회 마탄사스지방회, 재큐한족연합외교회, 재큐한족단 등에서 활동했고, 민성국어학교 교장, 진성학교 교장으로 지내며 민족교육에 힘썼다. 또 광복군 후원금을 모았고, 국내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민족의식 확산에도 기여했다. 서병학(1885~미상·애족장)은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4년간 노동을 한 뒤 1921년 쿠바로 옮겨 메리다지방회, 오학기나지방회, 마탄사스지방회, 하바나지방회 등 한인단체에서 활동했다. 민성국어학교 교사, 하바나 국어학교 교사로 활동하며 한인들의 정체성과 민족의식 함양을 위해 노력했다. 박창운(1889~미상·애족장)도 1921년부터 쿠바의 한인단체에서 활동했고 민성국어학교 교장으로 지내며 청년들의 교육을 위해 노력했다. 보훈부는 “3인의 중남미 지역 독립운동가들은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대한인국민회를 중심으로 단결해 한인들의 이익을 옹호했고 일생을 바쳐 독립운동에 매진했다”고 평가했다.
  • 김정은 ‘핵 돈줄’ 韓 온라인쇼핑 침투…인사동 화방이 北 쩐주?

    김정은 ‘핵 돈줄’ 韓 온라인쇼핑 침투…인사동 화방이 北 쩐주?

    유엔 대북 제재 대상이자 국내법상 금융거래 제한 대상인 북한 ‘만수대창작사’의 미술 작품이 국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버젓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9일 탈북자 출신인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 있는 A 화방은 최근까지 네이버쇼핑을 통해 만수대창작사 소속 황영준 화백의 ‘금강산 천불사 계곡의 백계수’를 배송비 포함 95만원에 판매했다. 또 국내 온라인 미술품 경매사이트 B는 2017년부터 작년 10월까지 만수대창작사 작품 150점을 경매에 부쳐 왔다. 이 사이트는 각 작품의 화백을 ‘만수대창작사 단장’, ‘만수대창작사 실장’ 등 북한 내 계급 그대로 홍보했다. 다만 30일 네이버쇼핑은 “대북관련 유엔 대북제재 대상 또는 금융위 금융거래 제재 대상 관련 키워드에 대한 검색결과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만수대창작사’ 키워드 검색을 차단했다. 조선노동당 직속 기관인 만수대창작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 지시로 1959년 설립된 북한 최대 종합미술 창작사다. 통일부는 만수대창작사를 ‘김일성·김정일 우상화 등 각종 작품을 만들어 외화벌이에 나서는 북한 미술 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만수대창작사를 ‘북핵 돈줄’로 평가한다. 2017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이 기관을 북한의 핵 개발 등에 필요한 자금을 공급하는 ‘외화벌이 창구’로 지목하고 대북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들은 만수대창작사 작품 구매·소유·이전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2016년 12월 테러자금금지법에 따라 만수대창작사를 ‘금융거래 등 제한 대상자’로 지정하기도 했다. 따라서 금융위 허가 없이 금융거래하거나, 거래 상대방이 제한대상자임을 알면서 허가 없이 금융거래하면 테러자금금지법 6조에 따라 형사처벌 대상(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이와 관련해 박충권 의원은 “만수대창작사가 제작한 작품을 사들이는 등 금융거래를 할 경우 공중 등 협박목적 및 대량살상무기확산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테러자금금지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이어 “유엔 제재 대상이자 국내법에서 금지한 만수대창작사의 그림이 유통된다는 것은 국제사회에 대한민국이 대북 제재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것으로 비칠 우려가 있다”며 “유통 경로와 매수인 등의 현행법 위반 여부를 자세히 검토하고 안내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탈북민 단체 NK지식인연대는 지난달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유엔 회원국인 중국의 칭다오 미술관에서 만수대창작사 소속 작가들의 작품이 팔리고 있다고 전했다. 해당 작품들은 모두 대북제재 지정 이후에 발표된 것으로, 7000∼30만 위안(약 130∼5666만원) 사이의 가격에 판매 중이라고 NK지식인연대는 설명했다.
  • [열린세상] 지정학적 변화와 개발 협력 전략

    [열린세상] 지정학적 변화와 개발 협력 전략

    지난달 주스리랑카 한국대사관과 현지 유력 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했다. 한국이 1960년대부터 법·제도를 마련한 후 꾸준한 연구개발(R&D) 투자를 통해 기술혁신을 이루고 생산성을 증대한 경험을 부러워했다. 한국은 R&D 투자와 경제 발전의 상관관계를 잘 보여 주는 모범사례다. 현지 지식인들이 빈곤, 세수부족 등 당면한 문제 때문에 과거 한국처럼 R&D 투자를 하기 어렵다는 볼멘소리를 했다. 개도국 한국을 경험한 필자는 한국의 교육열, 경제발전에 대한 국민적 열망과 국정 우선순위를 결정하는 리더십 역량과 의지가 경제발전의 핵심 요인임을 강조했다. 정부는 2004년 지식공유사업(KSP)을 시작했다. 파트너 국가의 시행착오 감소와 효율적 정책 지원이 주목적인 KSP는 성공적이라고 평가받는다. 다만 상대국은 자국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한국의 정책 집행 과정에서의 구체적 성공 및 실패 사례와 요인, 교훈이 공유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의 경험이 후발 개도국의 발전과 개발에 최적화, 극대화할 수 있는 체계화된 협력이 요구된다. 빠르게 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의 역할과 책무 그리고 제도적 뒷받침에 대한 국가적 담론이 필요한 때가 됐다. 먼저 국내 제도적 정비가 중요하다. 분절화와 정책 수립·집행 기관의 이원화로 인한 일관성 부족, 행정비용 증가 등 비효율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미국 국제개발처는 무상 개발 협력의 정책과 집행을 총괄한다. 유사 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은 집행기관 역할만 하고 정책은 외교부에서 수립한다. 집행마저도 여러 기관에 흩어져 있다. 분절화가 뉴노멀이 된 지금 이런 주장은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분절화의 재정비와 간소화 없이 지나친다면 국가의 예산·정책·집행의 낭비가 너무 크다. 아울러 집적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야 한다. 지정학적 변화와 함께 강화되는 소다자 협력에 적극 참여해야 한다. 개발 협력에서 앞선 국가들은 한국과의 공조에 관심이 높다. 경험 많은 국가와의 협력이 때론 편치 않기도 하다. 그러나 불편하다고 기피하면 진정한 선진국 클럽에 가입할 수 있겠는가. 선진국은 다방면에서 쌓인 축적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슈를 주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한국의 경제개발 경험과 기술력은 국제사회 이슈를 주도할 충분한 논리와 설득력을 부여한다. 유연하고 회복력 있는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의 정착을 위해 1.5 트랙 혹은 2.0 트랙과 같은 국제 논의와 협력의 장을 조성해 국제 담론을 주도할 수 있다. 이는 한국과 입장이 유사한 국가 민간 부문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개발 협력은 진출국 내 글로벌 기업의 호감도와 친밀도 제고에 효과적인 수단이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샤넬 등은 진출국에서 개발 협력에 적극 참여한다. 사이버보안이 전 세계 공통 관심사로 부상하자 구글은 아시아재단과 함께 한국 포함해 아시아 12개국에서 사이버보안 교육·훈련 사업을 한다. 샤넬은 여성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인도 주식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가치가 경쟁 기업들에 비해 저평가돼 있다. 상대적으로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호감도 때문이란다. 우리 기업들도 개발 협력에 참여함으로써 이미지 제고와 비즈니스 기회 창출 및 확대에 나서야 한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도 상호 협력이 필요하다. 재생에너지 개발이 어려운 한국이 개발 협력을 통해 재생에너지 개발에 유리한 국가를 적극 지원하고, 유엔에서 논의가 더딘 재생에너지 인증서 추진을 가속화할 수 있다. 개도국과 세계를 위해 상호 이익이 되는 좀더 폭넓고 중장기적인 시각의 개발 협력을 우리 정부와 공공 부문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도 추진할 때다. 이는 아시아재단이 추구하고 있는 한국의 역할 확대, 즉 ‘아시아를 위한 한국’과도 궤를 같이한다. 송경진 아시아재단 한국대표
  • 오른손 일을, 왼손이 알아야 하는 이유

    오른손 일을, 왼손이 알아야 하는 이유

    타인을 향한 연민과 관심, 나누고 베풀려는 인간의 선한 충동은 바이러스처럼 전염되며 이런 관대함이 혐오와 분열에 맞서 세상을 바꾼다고 주장하는 책이다. 인간의 이타적 본성과 선한 영향력을 주제로 한 비슷한 종류의 저서들 사이에서 이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는 관대함의 전염성과 힘을 생생히 체험한 저자의 남다른 이력 때문이다. 저자 크리스 앤더슨은 TED 대표이자 수석큐레이터다. 엘리트 지식인들끼리의 비공개 오프라인 콘퍼런스였던 TED를 2001년에 인수해 연간 조회수 10억회가 넘는 세계적인 온라인 강연 플랫폼으로 성공시킨 주역이다. 성공의 비결은 나눔이었다. 비싼 참가비를 내야만 들을 수 있었던 강연을 온라인에 무료로 공개했다. 나아가 강연을 열고 싶어 하는 어느 나라, 어느 도시든 자유롭게 TED 명칭을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콘텐츠 공유를 넘어 브랜드 자체를 나눠 준 것이다. 그렇게 생겨난 수많은 ‘TEDx’들이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지식과 통찰, 영감을 지구촌 곳곳으로 전파하는 기적을 만들어 냈다. 저자는 이 모든 일이 ‘관대함의 전염성’이라는 마법 덕분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저자에 따르면 관대함의 전염은 인간 본성과 현대의 초연결성, 두 가지 핵심 요인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받은 대로 돌려주려는 성향이 있어서 타인의 친절을 경험하거나 선행을 목격하면 ‘친절의 연쇄반응’이 일어난다. 인터넷과 소셜미디어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이 연쇄반응을 극적으로 증폭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저자는 판단한다. 기부와 선행에 대한 기존 인식의 틀을 깨는 의견도 흥미롭다. 흔히 선행은 순수하게 이타적이어야 하고, 남에게 과시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선행의 의도보다는 효과에 집중하고,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알게 해서 더 많은 사람을 관대함의 바이러스에 전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민주화·노동운동 헌신… 영원한 재야, 꿈 안고 떠나다

    민주화·노동운동 헌신… 영원한 재야, 꿈 안고 떠나다

    전태일 분신 계기로 노동운동 시작9년 수감… 12년간 수배 생활 ‘고초’ 최근까지 국회의원 특권 폐지 앞장 尹 “우리 시대를 지킨 진정한 귀감”정부, 국민훈장 추서… 정치권 애도 ‘영원한 재야’로 불리며 최근까지 국회의원 특권 폐지에 앞장섰던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이 암 투병 끝에 22일 별세했다. 79세. 유족은 장 원장이 이날 새벽 경기 고양시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장 원장은 지난 7월 페이스북에 “담낭암 말기로 암이 다른 장기로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며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적었다. 1945년 12월 27일 경남 밀양 태생인 장 원장은 서울대 법대 학생회장 출신으로 전태일 열사의 분신자살을 계기로 재야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 1971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1970년 전 열사 죽음 후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함께 시신을 수습한 뒤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후 관련 자료를 수집해 ‘전태일 평전’을 출간하는 데 기여했다. 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이런 경력에도 장 원장은 민주화운동 등에 따른 보상금을 받지 않았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라고 했다. 장 원장은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가 의장인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 창립에 동참했고, 이후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와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89년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며 진보정당 운동을 시작해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하지만 제도권 정치와는 거리가 멀었다. 1992년부터 14·15·16·17·19·21대 총선과 2002년 재보궐선거 등 일곱 번 모두 낙선했다. 직전 21대 총선에는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로 나섰지만 역시 고배를 마셨다. 장 원장은 최근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설립해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앞장섰다. 그는 언론 인터뷰에서 “국회의원 특권은 180여 가지”라며 “국회의원 연봉(세비)은 1억 5500만원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했다. 또 국회의원 월급을 도시근로자 평균(378만원)인 400만원으로 깎자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장기표 선생은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으로 우리 시대를 지키신 진정한 귀감이셨다. 장 선생의 뜻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고 애도했다며 정혜전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정부는 장 원장에게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고,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전달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고인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다”며 “국민의힘은 고인의 삶처럼 오직 국민만 바라보고 민생을 꼼꼼히 챙기겠다. 고인이 강조했던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아직 공식 논평을 낼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말년에 보수 측으로 전향했다는 점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으로 치러진다. 장지는 경기 이천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은 26일. (02)2072-2091~3.
  •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 암 투병 중 별세

    ‘재야 운동권 대부’ 장기표 선생 암 투병 중 별세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22일 별세했다. 78세. 유족 등에 따르면 장 원장은 담낭암 투병 끝에 이날 오전 1시 35분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고인은 약 두 달 전인 7월 16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며칠 전 건강 상태가 매우 안 좋아 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담낭암 말기에 암이 다른 장기에까지 전이돼 치료가 어렵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여러 어려운 사정에서도 물심양면의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기대에 부응하기는커녕 갑자기 죽음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정말 죄송하다”고 썼다. 1945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 법학과에 입학했으나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을 계기로 학생 운동과 노동 운동에 투신해 1995년에야 졸업했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을 하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하는 등 1970~80년대 여러 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으며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민주화 운동에 따른 보상금은 일절 받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9년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1970년 전태일 사후에는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이후 전태일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조영래 변호사에게 전달해 ‘전태일 평전’을 만드는 데 기여했고, 2009년에는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1980년대부터 재야 운동의 핵심 세력으로 떠오른 그는 1984년 10월 문익환 목사를 의장으로 종교인, 변호사, 퇴직 언론인 등이 참여하는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를 창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후 국민회의와 민중민주운동협의회(민민협)의 통합을 이끌어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을 창립했다. 1990년에는 현재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현 고용노동부 장관 등과 함께 민중당 창당에 앞장서면서 진보 정당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개혁신당, 한국사회민주당, 녹색사민당, 새정치연대 등을 창당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를 시작으로 15·16대 총선, 2002년 재보궐, 이어 17·19·21대까지 7차례 선거에서 모두 떨어졌다. 21대 총선에서는 현재 보수정당(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국민의힘을 탈당해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던 중 원외 정당 가락당에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22대 총선에 후보를 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고, 세 차례 대선에도 출마를 선언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평생 노동·시민 운동에 헌신했음에도 결국 제도권 정계로는 진출하지 못해 ‘영원한 재야’라는 별명을 얻었다. 최근에는 ‘신문명정책연구원’을 만들어 저술과 국회의원 특권 폐지 운동 등에 집중해왔다. 지난해부터는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로도 활동하며 국회의원의 면책·불체포 특권 폐지, 정당 국고 보조금 폐지, 국민소환제 도입 등을 주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조무하씨와 딸 하원·보원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 [단독] 문학은 분명히 세상을 바꾼다…사랑이 그 시작

    [단독] 문학은 분명히 세상을 바꾼다…사랑이 그 시작

    연대 의미 상실, 독선으로 변해이데올로기 아닌 인류에 집중가치 있는 예술, 정신을 드높여K팝 즐겨 듣고 김치 직접 담가 ‘행동하는 양심’으로 불리는 튀르키예 문학의 거장 소설가 쥴퓌 리바넬리(78)는 원래 ‘2024 서울국제작가축제’가 열리던 지난 7일 한국에서 독자들과 만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국 직전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머리를 다치면서 방한 일정이 취소됐다. 한국에서 작가와 만나기로 약속하고 앞서 사전 질문지를 보냈던 서울신문은 한국문학번역원으로부터 작가가 한국에 오지 못하게 됐다는 안내를 받았다. 아쉬워하던 차, 그가 튀르키예에서 답변을 보내왔다는 반가운 소식이 18일 전해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소설 ‘세레나데’ 등의 작품이 한국 독자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감사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지만 지역의 차이를 뛰어넘는 ‘인간의 드라마’를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이제는 모두가 믿지 않는 아주 ‘오래 지속되는 사랑’이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신의 작품에는 여성 주인공이 많이 등장한다. “이슬람을 비롯한 세계 모든 문화권에서 여성들이 억압받는 걸 지켜봤다. 인간을 출산하고 기르고 돌보며 문명이 유지되게끔 하는 그들은 아주 오랜 기간 읽고 쓰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기회를 박탈당했다. 내가 여성의 권리를 온 힘으로 지지하는 이유다.” -200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는 등 정치 활동도 했었다. 예술과 정치는 어떤 관계인가. “정치를 향한 열망은 없었다. 거의 끌려들어 갔다. 잠시 국회의원을 했지만 정치가 나와 맞지 않다는 걸 금방 깨달았다. 정치는 어떤 예술가와도 맞지 않는 일이다. 정치인은 정확한 때에 정확한 말을 해야 한다.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 예술가는 반대다. 그들의 내면에 있는 것이라면 어떤 모순조차도 예술을 통해 전할 수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 정치라는 ‘지저분한 게임’ 속에서 오래 버틸 수 없었다.” -좌파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붕괴한 지 오래고 세계적으로 극우가 득세하는데. “사회주의는 이상적인 사고방식이었지만 자본주의가 부추긴 경쟁과 야망의 논리 안에서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단극화된’ 세계에서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연대의 의미를 상실한 우리는 점점 독선적으로 변해 가고 있다. 나는 요즘 스스로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아닌 ‘인류’에 집중하는 작가라고 여기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은. “나의 장인어른은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한국은 무척 가깝다고 느끼는 나라다. 한국의 역사와 문학, 영화를 보며 감탄한다. K팝도 즐겨 듣는다. 한국의 음식도 무척 좋아하는데 집에서 김치를 담그기도 한다. 과거 유엔에서 만났던 반기문 전 총장에게 내 책을 선물한 적도 있다. 과거 튀르키예에는 많은 대중음악 잡지가 있었는데 지금은 유일하게 K팝 잡지만 출간되고 있다. 블랙핑크, 모모랜드 등이 인기가 많다.” -문학은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물론이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다. 변화는 마음에서 시작돼 행동으로 이어질 거다. 가치 있는 예술은 인간의 정신을 드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나는 여기에 헌신하고 있다. 내 노래 가사 중 이런 구절이 있다.(리바넬리는 튀르키예에서 작가뿐 아니라 가수, 영화감독으로도 활동한다.) ‘아름다움은 세상을 구하고 모든 건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말을 믿는다.”
  • ‘비판적 보수주의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서울신문 편집국장 별세

    ‘비판적 보수주의자’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서울신문 편집국장 별세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비판적 보수주의자’ 남재희(南載熙) 전 노동부 장관이 16일 9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그는 주류 일간지 신문기자이자 여당 정치인으로 살았지만, 가슴 속에는 자유주의자의 열정을 간직하며 여야를 가리지 않는 비판을 서슴지않던 지식인이었다. 1934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난 그는 청주고(25회)를 졸업한 뒤 서울대 의과대학을 다니다 철학에 빠져, 2학년을 마치고 다시 시험을 봐 법대로 진로를 바꿨다. 그는 이승만 정부 때 이 대통령 양아들(이강석)이 부정 편입했다는 이유로 동맹휴학을 주도한 바 있다. 공직 진출을 꿈꿨지만, 학생 운동 전력으로 힘들 것이란 생각에 1958년 한국일보 공채 수습기자로 입사해 언론계에 투신했다. 1962~1972년 조선일보 기자와 정치부장, 편집부국장을 거쳐 1972년 서울신문 편집국장, 1977년 서울신문 주필을 지냈다. 1979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서울 강서구에서 제10대 국회의원이 된 것을 시작으로 13대 의원까지 4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된 10·26 사태 이후 공화당 내 소장파 박찬종, 오유방, 정동성과 정풍운동을 주도했고, 신군부 쿠데타 이후 민주정의당 창당에 참여했다. 1986년 하나회 멤버 중심의 군 고위 장성과 현직 국회의원들의 취중 난투극으로 알려진 ‘국방위 회식 사건’의 ‘피해자’였다. 1993~1994년 김영삼 정부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내며 언론과 정치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장관 재임 당시 노동계의 무노동 부분임금을 지지하면서 ‘비판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았다. 64세 때인 1996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에는 진보와 보수 양쪽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원로 지식인이자 정치적 멘토로 활약해왔다. 그에 관해 고은 시인은 “의식은 야당에 있으나, 현실은 여당에 있다. 꿈은 진보에 있었으나, 체질은 보수에 있었다. 시대는 이런 사람에게 술을 주었다. 술 취해 집에 돌아가면 3만 권의 책이 있었다. 법과대학 동기인 아내와 데모하는 딸의 빈방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보수당 의원 시절 운동권 딸들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1981년 당시 서울대 국사학과에 재학 중이던 장녀 남화숙 씨가 민주화 시위 도중 연행되자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사퇴서를 썼지만, 전두환 대통령이 반려했다. 차녀인 남영숙 주노르웨이 대사도 시위 전력으로 옥고를 치렀다. 영숙 씨는 당시 미국에 망명 중이던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측근 예춘호 전 민추협 부의장 아들과 결혼했다. ‘스튜던트 파워’, ‘모래 위에 쓰는 글’, ‘정치인을 위한 변명’, ‘문제는 리더다’, ‘남재희가 만난 통 큰 사람들’, ‘진보 열전 남재희의 진보인사 교유록 오십년’ 등 저서를 냈고, 새마을훈장 근면장과 청조근정훈장을 받았다. 유족은 부인 변문규씨와 사이에 4녀(남화숙·남영숙·남관숙·남상숙)와 사위 예종영·김동석씨 등이 있다.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3호실이다. 발인은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는 청주시 미원 선영이다. ☎ 02-2227-7500
  • 조선 춤꾼 이야기에…야경에… 취하고 취하다

    조선 춤꾼 이야기에…야경에… 취하고 취하다

    꽤 오래전 일이다. ‘조선의 프로페셔널’(안대회, 2007)이란 책을 통해 운심(雲心)이란 조선의 여성을 알게 됐다. 그는 칼춤, 그러니까 검무의 대가다. 출중한 외모에 유창한 언변, 글까지 잘 쓰는 만능 엔터테이너였다. 조선의 검무라야 ‘진주 검무’밖에 몰랐을 만큼 무지했던 이에게 경남 밀양에 전승된다는 검무와 당대의 춤꾼이었던 운심 이야기는 당시 무척 생경한 충격이었다. “연아(煙兒)가 스물에 장안에 들어가/가을 연꽃처럼 춤을 추자 일만 개의 눈이 서늘했지/들으니 청루에는 말들이 몰려들어/젊은 귀족 자제들 쉴 새가 없다지.” ‘태을암문집’에 수록돼 전해 오는 시다. 밀양의 토박이 양반 신국빈이 지었다. ‘연아’는 운심을 가리키는 호칭이다. 그러니까 지방의 호족이 기생 춤꾼을 위한 시를 쓰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조선의 춤꾼 ’ 기생 운심 기록 곳곳에 운심은 조선 영조 때 밀양도호부(현 경남 밀양)에 속했던 관기다. 여성의 삶 자체가 터럭만큼의 무게도 갖지 못하던 시대, 하물며 천박한 기생의 삶을 당대 남성 지식인들이 정성껏 기록해 주리라 기대하는 건 무리다. 그런데도 운심에 대한 기록은 신국빈의 작품 외에도 박제가의 ‘묘향산소기’, 성대중의 ‘청성잡기’ 등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글쓴이마다 적당히 ‘초’를 쳤으리라 예상한다 쳐도, 운심이 발군의 춤꾼이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이제 그를 찾아 밀양으로 간다. 여러 해 겨눴던, 그의 뒤안길을 밟는 여정이다. 밀양은 변화를 거부하는 도시처럼 여겨진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도시도 있지만 밀양은 변화의 속도가 무척 더디다. 부산, 김해 같은 대도시에 인접해 그런 느낌이 더하다. 아직도 전도연의 영화 ‘밀양’(2007)을 추억하고 있고, 여전히 정우성의 ‘똥개’(2003) 촬영지가 명소 대접을 받는다. ●‘밀양의 아이콘’ 영남루의 장엄함 요즘 밀양은 소도시 축에 속한다. 조선시대엔 달랐다. 밀양도호부가 있던 대단한 도시였다. 밀양의 아이콘인 영남루(국보)가 당대의 위세를 방증하는 유산이다. 영남루는 객사에 딸린 건물이다. 부속건물의 규모가 저리도 장대했으니 당대 밀양의 규모가 얼마나 컸을지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한양에서 힘깨나 쓰는 벼슬아치라도 내려오면 밤새 영남루에서 풍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중에 운심도 있었을 터. 늦은 밤 밀양강 둔치에 앉아 보는 영남루는 그래서 더 장엄하고 근사해 뵌다. 평양 부벽루, 진주 촉석루와 더불어 조선 3대 누각이란 상찬이 공연히 생긴 게 아니다. 상동면 신안운심문화마을부터 간다. 운심이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남아 있는 운심의 자취라야 마을 담벼락에 장식처럼 그려 넣은 그의 벽화와 묘가 전부지만 그를 실감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여러 기록으로 보면, 조선에서 검무가 갑자기 유행한 건 18세기다. 공교롭게도 운심의 활동 시기와 겹친다. 이전까지만 해도 검무는 남성의 춤이었다. 무예의 일종으로 여겨졌다. 그러니까 무예를 연마하는 과정의 하나였던 거다. 그런데 어여쁜 여성이 철릭 입고, 전포 쓰고 칼을 휘두르는 모습은 당시 무척 생경하고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운심의 이야기는 기록과 구전이 섞여 전해 온다. 기록으로 전하는 운심의 생애는 관기 때부터다. 멸문지화를 당한 건지, 무슨 사연으로 관기가 된 건지는 알려진 게 없다. 운심은 스무 살 때 선상기(選上妓)로 선발돼 한양으로 올라갔고, 검무로 귀족 자제들의 혼을 빼놨다. “가볍게 걷다가 도약함이 마치 땅을 밟지 않는 듯하다. 보폭을 늘였다 줄였다 하여 남은 기운을 다한다. 무릇 치고, 던지고, 나가고, 물러나고, 위치를 바꾸어 서고, 스치고, 찢고, 빠르고, 느리고 하는 동작들이 음악의 장단에 합치되어 멋을 자아낸다.” 박제가가 남긴 검무기(劍舞記) 중 한 구절이다. 운심의 제자들이 춘 칼춤을 보고도 이렇게 감동했으니 스승의 춤사위는 얼마나 빼어났을까. 선상기로 뽑혀 궁중 연회에 참여한 기생들은 행사 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운심은 귀향하지 않고 한양에 머물며 자신의 재능을 발현할 기회를 엿봤다. 운심을 소실로 거둔 이는 백하 윤순(1680~1741)이다. ‘동국진체’로 유명한 초서의 대가다. 성대중의 ‘청성잡기’, 안대회의 ‘조선의 프로페셔널’에선 둘을 연인 관계로 규정한다. ●운심의 못다 이룬 사랑… 밀암에 안장 구전은 이와 다르다.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운심은 밀양 관기로 있을 때 사대부 출신의 한 관원과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기생과 양반이라는 신분이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운심은 한양으로 불려 갔고, 50세를 훌쩍 넘겨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에 새겼던 관원은 오래전 다른 고을로 전출 간 뒤였다. 운심은 많은 사람이 오가는 영남대로변 신안마을 근처에 주막집을 내고 관원을 찾았지만 허사였다. 십수 년이 지난 뒤 몸과 마음의 병이 깊어진 그는 이런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뒀다. “내가 죽거든 관원들이 왕래하는 역원(驛院·관원의 숙소) 근처 큰 길가에 묻어 달라.” 그의 제자와 마을 사람들은 그를 마을 옆 야산의 꿀벵이(蜜岩·밀암)에 안장했다. 영남대로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이다. 장병수 밀양문화도시센터장은 “원래 봉분은 2003년 태풍 ‘매미’ 때 대부분 유실됐고, 현재 봉분은 그 이후 새로 조성한 것”이라며 “음력 9월 9일을 운심의 기일로 잡고 밀양검무보존회원과 마을 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고 마을 축제를 여는 등 그를 기리고 있다”고 전했다. 신안마을은 운심이 태어나고 말년을 보낸 곳이다. 해마다 가을이면 밀양검무축제를 열었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엔 그마저 멈췄다. 그의 이야기를 그린 마을 벽화는 해졌고, 묘엔 잡초만 무성하다. 조선 검무의 효시였다는 걸출한 춤꾼을 대하는 후손의 자세가 참 야박하다. ●‘밀양 아리랑길’ 천경사·금시당·월연정 이제 밀양의 관광지를 말할 차례다. 요즘 지방자치단체마다 거의 예외 없이 걷기 길을 조성해 뒀다. 밀양엔 ‘밀양아리랑길’이 있다. 전체 3개 코스인데, 그중 3코스가 걸어 볼 만하다. 밀양을 대표하는 정자들과 절집 등을 아우른 길이다. 밀양철교가 있는 용두목을 들머리 삼아 천경사~금시당~월연정~고례마을~추화산성에 이르는 5.6㎞짜리 길이다. 바삐 걷자면 두어 시간 만에 돌아볼 수도 있고, 인증샷 찍으며 설렁설렁 걷자면 4~5시간은 족히 걸린다. 전 구간을 돌아보기 어렵다면 천경사, 금시당, 월연정 정도는 꼭 둘러보길 권한다. 모두 차로 수월하게 접근할 수 있다. 천경사는 용두산 절벽에 터를 잡은 작은 절집이다. ‘석굴도량’으로 널리 알려졌다. 동굴 안에 법당을 마련했는데, 한여름에도 오한이 들 정도로 시원하다. 금시당은 1566년 조선 중기의 문신 이광진이 지은 별서다. 별서는 밥을 해 먹으며 기거할 수 있는 일종의 별장을 뜻한다. 금시당 옆은 1860년 조성했다는 백곡재다. 보통 두 건물을 묶어 ‘금시당 백곡재’란 이름으로 불린다. 금시당과 백곡재는 마당을 함께 쓴다. 자그마한 협문을 나서면 곧바로 매화나무가 객을 맞는다. 100년을 훨씬 넘겼다는 토종 매화다. 지금도 수없이 많은 이파리를 매달고 있을 만큼 성하다. 화석 같은 주름이 새겨진 늙은 가지가 수평으로 내달리고, 그 위로 작고 여린 가지들이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선 모양새다. 이 늙은 매화가 꽃을 틔울 때면 주변이 온통 선경으로 변할 터다. 널찍한 마당엔 늙은 배롱나무들이 늘어서 있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백송과 은행나무다. 중국이 원산인 백송은 이름처럼 둥지와 이파리가 흰빛을 띤다. 한국에선 보기가 쉽지 않다. 중국에서와 달리 제대로 번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금시당에서 가장 유명한 건 은행나무다. 이광진이 건물을 지을 때 직접 심었다는 나무다. 그러니까 수령이 약 460년에 이르는 셈이다. 11월 초순께 노란 은행잎이 날릴 때면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이들이 대문 밖까지 늘어선다고 한다. 월연정은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명승이다. 밀양강과 동천이 합류하는 산자락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1520년 조선 중종 때 월연 이태가 처음 조성했다. 곱게 늙은 정자 외에도 탄금암, 쌍천교 등의 유적과 백송, 오죽 등 희귀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다. 월연정 진입로 바로 옆은 용평터널이다. 백송터널, 월연터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배우 정우성의 ‘리즈 시절’과 만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2003년 영화 ‘똥개’에 동네 건달로 출연한 정우성이 조폭들과 패싸움을 벌이는 장면 등이 촬영됐다. 지금도 인증샷을 찍으려는 이들이 제법 많이 찾는다. ●요즘 ‘핫플’ 위양리와 퇴로리 요즘 밀양의 ‘핫플’은 위양못이 있는 위양리와 퇴로리다. 위양못은 이팝나무꽃이 핀 풍경으로 널리 알려진 봄 여행지다. 저수지 주변에 늘어선 왕버드나무 고목들이 붉게 물드는 가을에도 봄 못지않게 빼어난 풍경을 선보인다. 특히 바람이 없는 아침나절, 잔잔한 물위로 주변 풍경이 비칠 때면 신선의 세계를 엿보는 듯하다. 지금은 작은 연못으로 쪼그라들었지만 처음 축조됐던 신라시대엔 둘레가 4.5리(약 2㎞)에 달할 정도로 컸다고 한다. 퇴로리는 위양리와 이웃한 동네다. 여주 이씨 종택 등 고택과 진흙으로 쌓은 토담길 등 고풍스런 흔적과 만날 수 있다. 고택이나 농가 등을 카페로 꾸민 곳도 많다. 다리쉼하기 맞춤하다. ●옛 풍경 오롯이 마주할 삼문동 일대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밀양 시내 밀양대공원 일대를 찾길 권한다. 대공원 외에도 밀양아리랑아트센터, 국립밀양기상과학관, 우주천문대, 시립박물관 등 교육, 체험 시설들이 빼곡하다. ‘펫팸족’(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면 무안면의 의견고개를 찾는 게 좋겠다. 잠든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으로 산불을 끄다 죽은 충직한 개의 전설이 전하는 곳이다. 의구비(義狗碑)도 조성돼 있다. 쉬 보기 어려운 옛 풍경들과 오롯이 마주하고 싶다면 삼문동 일대를 둘러볼 것을 권한다. ‘작은 여의도’라고 할까, 서울 여의도처럼 밀양강이 돌아가며 만든 일종의 하중도다. 허름한 여인숙, 낡은 TV가 쌓여 있는 전파사 등 비좁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잊고 살았던 유년 시절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인증샷 명소 ‘달빛쌈지공원’ 추천 인증샷 찍기 좋은 명소 한 곳 덧붙이자. ‘달빛쌈지공원’은 낡은 수도 공급시설을 재활용해 조성한 문화공간이다. 탐방 데크, 스카이로드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마련돼 있다. 젊은 연인들이 밀회를 즐길 겸 야경 사진을 찍기 위해 많이 찾는다. 밀양의 대표 명소인 영남루에서 멀지 않다. [여행 수첩] →내비게이션엔 ‘신안운심문화마을’을 찍고 가야 한다. 마을 앞으로 KTX 철길이 나 있어 지하차도로 진입해야 하는데, 초행자들이 진입로를 찾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운심의 묘까지는 신안마을 주차장에서 2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가는 길에 잡초가 무성한 데다 봉분도 벌초가 되지 않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 가급적 신안마을까지만 돌아보길 권한다. →밀양의 대표 먹거리는 단연 돼지국밥이다. 무안면의 동부식육식당, 밀양 시내 내이동의 조방돼지국밥,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밀양돼지국밥 등이 알려졌다.
  • 1930년대에도 ‘얼죽아’?…한국인의 못말리는 커피 사랑

    1930년대에도 ‘얼죽아’?…한국인의 못말리는 커피 사랑

    추운 겨울에도 냉커피를 고집하는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커피)현상은 한국의 독특한 커피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아이스커피의 인기는 놀랍게도 193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아이스 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해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먹는다.’ 1930년 7월 16일자 조선일보에는 아이스커피를 나눠 마시는 모던 보이와 모던 걸을 묘사한 삽화가 등장한다. 1920년대 얼음 공장이 생겨 인공 얼음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찬 음료가 유행했는데 커피도 예외가 아니었다. 1941년 5월 22일자 매일신보에는 ‘아이스커피 이렇게 만들면 좋다’는 기사가 실렸다. 내용은 이렇다. ‘커피는 더운 것에는 여러 가지를 쓰지마는 찬 커피에는 자바 것이 제일 좋다. 아이스커피는 흐리거나 검게 보이는 것은 보기에도 흉하고 마시면 맛도 좋지 못하다. 아이스커피는 반드시 투명하게 맑아야만 한다.’ ‘커피 공화국’으로 불릴 만큼 온 국민이 커피를 즐겨 마시면서도 그동안 잘 알지 못했던 한국의 커피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특별전 ‘요즘 커피’(11월 10일까지)다. 민속박물관이 외래 문물인 커피 관련 전시를 여는 것이 의아할 수 있겠으나 160년 세월을 거쳐 한국인의 일상에 없어서는 안 될 생필품으로 자리 잡은 점을 고려하면 이제 커피가 민속 음료 반열에 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시는 조선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때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그리고 광복 이후 급변하는 시대와 사회 변화에 발맞춘 커피의 변천사를 소개한다. 아울러 커피에 얽힌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를 풍부한 사료와 손때묻은 추억의 물품 60여 점을 통해 흥미롭게 풀어놓는다.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건 1861년 조선에 온 프랑스 신부에 의해서였다. 커피를 처음 마신 한국인은 누구일까. 기록으로 보면 조선 후기 문관 민건호(1843~1920)다. 1884년 7월 27일 일기에 갑비차(커피)를 대접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대한제국 시기에는 상류층 조선인과 서양인이 커피의 주 소비층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지식인과 모던 보이·모던 걸들이 백화점과 서양 음식점, 다방에서 커피를 즐겼다. 커피와 우유, 설탕을 섞어 만든 가정용 가루 커피, 조선의 관광상품이었던 인삼 커피 등이 당시 인기를 끌었다. 광복 이후 1960년대까지는 다방커피의 전성기였다. 다방은 문인과 예술가들의 아지트로 사랑받았지만 실직자들의 집합소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1970~80년대에는 원두커피전문점이 등장하고, 믹스커피가 탄생했으며 1990년대 들어서는 커피체인점과 카페 문화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전시 후반부에는 요즘 우리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인지를 설문조사, 인터뷰 등으로 다채롭게 풀어냈다. 박물관이 실시한 자체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답은 ‘습관적으로’(30%)였다. 이어 ‘피로와 잠 등을 쫓기 위해’ (27%), ‘맛이 좋아서’(23%) 순이었다. 처음 마신 커피를 묻는 질문에는 믹스커피가 49%로 가장 많았고, 아메리카노는 6%에 불과했다. 커피 껌과 커피 맛 아이스크림 등 각종 커피 가공식품, 원형 통에 든 인스턴트커피, 꽃무늬 커피잔과 구식 커피포트, 다방 이름이 적힌 성냥갑과 공중전화카드 등 전시장에 소개된 옛 자료들을 보며 추억 여행을 떠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 수심위, 만장일치 ‘명품백’ 불기소 권고… 이번 주 무혐의 가닥

    수심위, 만장일치 ‘명품백’ 불기소 권고… 이번 주 무혐의 가닥

    논의 과정 비공개 등 논란은 여전오늘 부의심의위 개최… 막판 변수야권 ‘김 여사 특검법’ 재추진 예고주가조작 의혹 처분 방향도 주목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전담팀 구성 후 4개월여간 이어진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수심위 참석 위원 14명은 ‘만장일치’로 불기소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퇴임하는 이원석 검찰총장은 수심위 권고대로 불기소 처분을 이번 주에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여사에게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가 수심위에 참석하지 못했고 수심위 논의 과정도 공개되지 않아 야당을 중심으로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 김승호)는 조만간 김 여사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릴 전망이다. 다만 최 목사가 별도로 수심위 소집을 요구한 터라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원회가 9일 열린다. 검찰은 부의심의위 결과가 나온 후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임기 종료 전 명품백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수심위를 직권으로 소집했던 만큼 수심위 권고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심위는 지난 6일 오후 2시부터 7시 10분까지 심의를 진행한 뒤 전원이 김 여사에 대한 불기소 처분 의견으로 의결했다고 한다. 무작위 선정된 15명 위원 가운데 14명이 참석했다. 위원들은 수사팀과 김 여사 측 변호인 의견, 최 목사 의견서를 토대로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 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 수재, 변호사법 위반 등 6가지 혐의를 모두 살펴본 뒤 이같이 결론 내렸다. 현행법상 금품을 받은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할 규정이 없는 데다 법리상 김 여사가 받은 금품과 윤 대통령 직무와의 관련성 및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원들 중 일부는 “김 여사 연루설이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까지 마무리될 때 같이 처리하는 게 어떠냐”며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야권은 “면죄부 처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반발하고 있어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른바 ‘김 여사 특검법’ 재추진도 예고했다. 2018년 검찰개혁위원회에서 수심위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결론만 공개한 지식인들(전문가)의 논의 결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분 방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사건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계좌가 동원됐다는 의혹이다. 권 전 회장 등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오는 12일 항소심 결과가 나온다. 법조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김 여사처럼 주가조작에 계좌가 활용된 ‘전주’ 손모씨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다. 손씨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나 검찰이 2심에서 손씨에게 ‘방조’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지라 재판 결과에 따라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처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명품백 사건’ 이번주 불기소 최종 결론 낼듯…‘주가조작’ 처분도 주목

    ‘명품백 사건’ 이번주 불기소 최종 결론 낼듯…‘주가조작’ 처분도 주목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가 지난 6일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불기소를 권고하면서 전담팀 구성 후 4개월여간 이어진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 수심위는 참석 위원 ‘만장일치’로 불기소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오는 15일 퇴임하는 이원석 검찰총장은 수심위 권고대로 불기소 처분을 이번 주에 최종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김 여사에게 가방을 건넨 최재영 목사가 수심위에 참석하지 못했고, 수심위 논의 과정도 공개되지 않아 야당을 중심으로 여전히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조만간 김 여사에 대해 최종 무혐의 처분을 내릴 전망이다. 다만 최 목사가 별도로 수심위 소집을 요구한 터라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는 부의심의위원회가 9일 열린다. 검찰은 부의심의위 결과가 나온 후 사건을 종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임기 종료 전 명품백 사건을 마무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고 수심위를 직권으로 소집했던 만큼 수심위 권고를 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법조계 관측이다.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수심위는 지난 6일 오후 2시부터 7시 10분까지 현안위원회를 열어 심의를 진행한 뒤 전원이 김 여사에 대한 불기소 처분 의견으로 의결했다고 한다. 위원들은 수사팀과 김 여사 측 변호인 의견, 최 목사 의견서를 토대로 청탁금지법 위반, 뇌물 수수,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 수재, 변호사법 위반 등 6가지 혐의를 모두 살펴본 뒤 이같이 결론 내렸다. 현행법상 금품을 받은 공직자의 배우자를 처벌할 규정이 없는 데다 법리상 김 여사가 받은 금품과 윤 대통령 직무와의 관련성 및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수사팀 의견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위원들 중 일부는 “김 여사 연루설이 있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까지 마무리될 때 같이 처리하는 게 어떠냐”며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야권이 “면죄부 처분을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며 반발하고 있어 여진은 계속될 전망이다. 이른바 ‘김 여사 특검법’ 재추진도 예고했다. 2018년 검찰개혁위원회에서 수심위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박준영 변호사는 자신의 소셜미디어(SNS)에 “결론만 공개한 지식인들(전문가)의 논의 결과를 국민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처분 방향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 사건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 등이 주가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의 계좌가 동원됐다는 의혹이다. 권 전 회장과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 등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고 오는 12일 항소심 결과가 나온다. 법조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김 여사처럼 주가조작에 계좌가 활용된 ‘전주’ 손모씨에 대해 재판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느냐다. 손씨는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으나 검찰이 2심에서 손씨에게 ‘방조’ 혐의를 추가해 공소장을 변경한지라 재판 결과에 따라 김 여사에 대한 검찰 처분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 ‘친일·독재 미화 논란’ 역사 교과서…野 “검정 과정 조사하라”

    ‘친일·독재 미화 논란’ 역사 교과서…野 “검정 과정 조사하라”

    정부의 검정을 통과한 일부 역사 교과서가 친일·독재 옹호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야당이 교과서 검정 과정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교육부는 “역사관에 대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검정 심사에 문제가 없다고 반박했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려했던 대로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가 나왔다”며 검정 과정에 대한 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이 담긴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 교과서는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적을 부각한다”며 “다른 교과서는 장기독재로 표현한 이승만 집권기를, 뉴라이트 교과서는 장기집권으로 기술한다”고 말했다. 이어 “뉴라이트 교과서는 ‘1946년 단독정부 수립을 공표한 이승만이 만약 정읍 발언을 하지 않았다면 이후 어떻게 됐을까’라는 가정법을 이용해 남한 단독정부 수립의 정당성을 주장한다”며 “우파 세력의 역사적 관점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는 시도”라고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이 교과서는 위안부 관련 서술은 다른 교과서의 절반 분량으로 줄였다”고 지적했다. 한국학력평가원의 ‘한국사2’ 교과서는 이승만 정부를 ‘장기 집권’으로 표현하고, ‘광복 후 우리 역사에 영향을 끼친 인물 7인’ 중 가장 앞에 언급하는 등 건국 대통령의 면모를 강조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본문에서 성 착취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 없이 ‘젊은 여성들을 끌고 가 끔찍한 삶을 살게 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주로 참고자료와 연습문제 형태로 제시했다. 이 교과서는 또한 ‘자치론자들은 일제에 맞서기보다 식민 통치를 인정하면서 한국인의 자치권과 참정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며 이광수 등의 자치운동을 소개했다. 또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학생의 관점을 묻는 ‘주제 탐구’ 코너에서 ‘일제에 협력한 친일 지식인들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등의 질문을 제시해 친일 미화 논란이 일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이에 대해 “자치론자들이 친일 행보를 걸었던 이유에 대해 학생들에게 되묻는 표현을 기술함으로써 친일 행적을 일부 정당화할 가능성을 열어두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교과서 검정 과정이 부실하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교과서 검정을 받으려면 최근 3년간 검정 신청 교과 관련 도서를 1권 이상 출판해야 하는데, 이 출판사는 지난해 7월 수능 기출 문제집 한 권만 출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해당 교과서가 2022 개정 교육과정과 편찬 준거에 따른 심사를 통과했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이 부총리는 이날 국회 교육위원회에서 “개별 교과서에 대해 평가하기보다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검정제도의 취지를 고려해 검정에 합격한 다른 교과서와 함께 종합적이고 균형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제 제기된 교과서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을 잘 따랐느냐, 헌법 이념과 가치·교육 중립성을 유지했느냐 하는 기준에 따라서 검정했고 그 심사를 통과한 교과서”라고 반박했다.
  • [최보기의 책보기] 아! 시골에서 신평처럼 살고 싶다

    [최보기의 책보기] 아! 시골에서 신평처럼 살고 싶다

    스스로 강력하게 원하기만 하면 시골에 내려가 도시의 삶과 다르게 사는 것이 결코 실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인은 생각만 있을 뿐 행동에 나서지 않아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산다. 시작이 반이라지만 첫발 내딛기가 여간 쉽지 않다. 여전히 마음만 있을 뿐 첫발을 떼기가 어렵다면 거두절미하고 『시골살이 두런두런』을 권한다. 저자 신평은 기자들에게 상당히 알려진 뉴스 메이커다.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판사, 변호사, 로스쿨 교수’로 이어지는 이력 또한 보통 사람과는 많이 다르다. 성공할 만큼 성공한 사람이 시골에 내려가 한적하게 즐기며 사는 것을 자랑하는데 보통사람에게 따라 하라고? 아니꼬운 반응이 나올 수 있다. 걱정 마시라. 그런 정도 책이면 서울신문 귀한 칼럼에 소개할 이유도 없으니까. 화려한 이력과 달리 그가 가족과 함께 경주 교외로 내려가 논밭 농사지으며 살기는 벌써 30년도 넘었다. 법조인으로서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90년대 초반 심한 우울증으로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위기를 맞았을 때였다. 중간에 잠시 대학 교수로 경주를 떠났지만 2018년 경주의 집과 농토로 완벽하게 귀환했던 이유는 ‘굴곡 많고 심하게 울렁거렸던, 무엇 하나 제대로 완성하지 못한 채 토막났던, 거듭된 추락으로 ‘세상의 똥구멍’까지 보아야 했던 인생’과의 정면대결이었다. 그러므로 『시골살이 두런두런』은 심신이 몹시 지친 도시인에게는 위로와 치유를, 첫발 떼기를 주저하는 귀촌열망인에게는 결심과 꿈을 주는 책이다. 잘난 체하는 ‘소위 지식인’의 과장과 허풍의 문체는 한 줄도 없는 대신 쉬운 시와 산문으로 편하게 두런두런거리는 시골살이의 사철이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신평의 귀거래사’다. “제 누추한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작은 빛으로 반짝였으면, 연못에 튀는 빗방울이 되었으면 합니다”라는 저자의 발언 또한 ‘어서 첫발을 떼라’는 주문으로 읽힌다. “행복의 제1조건은 더 많은 것을 가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것들에 만족하며 너그럽게 사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는 저자가 30년 전부터 짓고 가꿔온 집을 방문할 기회가 있다면 경주 시내를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던 신라고석이나 탑돌을 모아 만든 장독대와 축담의 디딤돌을 꼭 밟아 봐야 하리. 이 얼마나 장엄한 장독대인가!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역사장편소설 ‘1915’ 펴낸 광양 지킴이 ‘이준태 작가’…아버지에 대한 속죄 마음

    역사장편소설 ‘1915’ 펴낸 광양 지킴이 ‘이준태 작가’…아버지에 대한 속죄 마음

    “‘소설 1915’는 ‘아버지에 대한 속죄의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나라와 이웃을 사랑한 젊은 지식인들의 이야기입니다.” ‘1915’는 전남 광양을 지키고 있는 이준태(71) 작가가 4년의 집필 끝에 지난 2019년 출간한 첫 작품이다. 이 작가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꿈꿨던 1915년생 큰아버지와 1917년생 아버지를 소설의 모티브로 소설을 썼다. 그는 전북 김제가 고향으로, 익산 남성고와 전북대학교를 졸업했다. 건설이 한창이던 1980년대 서울의 한 건설회사에 취직, 3년간의 중동 파견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제철소 건설이 시작되던 광양으로 왔다. 타향 생활이 쉽지 않았다. 외로워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렇게 쓴 글들이 호평을 받았다. 등단 권유까지 받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집필 활동을 하다 나이 60이 넘어 출판사를 통해 출간했다. 이 책을 쓰고 나서야 드디어 ‘작가’라는 말을 듣는 것이 부끄럽지 않게 됐다고 했다. 600여쪽 분량의 엄청난 양이다. 주인공 이현성은 작가의 큰 아버지다. 서울 중앙고보(현 중앙고등학교)를 다녔고, 이현성의 사촌 동생 이현철은 전주농림학교를 다닌 작가의 아버지다. 당시의 지식인 다수가 그랬듯 두 사람 모두 사회주의 사상에 빠져 활동한다. 연인과의 러브스토리, 선후배들과 나눈 지식·철학 토론,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학교) 진학, 변호사의 꿈, 지하조직에서의 독립운동 등의 이야기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전형적인 친일파의 행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도 등장해 울분을 짓게 한다. 주인공 이현성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 악랄한 일제강점기를 살아내야 했던 민초들과 역사적 사건 등의 서사가 촘촘하게 그려져 있다. 소설의 주 배경이 전남북, 서울 등 지리적·공간적 범위가 리얼하게 묘사돼 있어 마치 당시의 지형, 지물을 다큐로 보는 듯 한다. 순천, 광양, 옥곡,구례, 남원, 전주 등 전라선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 동네의 당시 모습이 마치 다큐를 보듯 펼쳐졌다. 작가는 “‘소설 1915’를 통해 일제의 악랄한 만행, 지식인들의 고뇌, 친일파들의 무자비함, 브나로드 운동, 사회주의 등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공부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그는 “역사, 철학, 식물, 종교 등 광범위한 지식들이 총 망라돼 있다”며 “이 책을 읽다 보면 영화 동주, 밀정, 대창 김창수, 박열, 봉오동전투, 영웅 등 일제강점기를 다룬 역사영화들 오버랩 될 것이다”고 웃음을 보였다. 그만큼 현장감과 사실감이 돋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고마움과 그리움도 절절해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작가는 “아버지는 투사 기질도 없었는데 좌익 활동을 해 경찰로부터 끊임없는 감시를 받고 사셨다”며 “빨갱이 자식이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타인이 주는 상처보다 ‘니 애비가 빨갱이다’라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의 말이 더 큰 아픔이었다”고 회상했다. 좌익 꼬리표가 붙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아버지 때문에 가족이 힘들게 살았던 적도 있었으나 아버지 친구의 도움으로 작은 사업을 하면서 가정을 챙겼고, 자식들을 공부시켰다. 아버지는 아들을 연좌제로부터 자유롭게 해주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고, 그런 아버지 노력 덕분에 인천 연평도에서 해병대 장교로 군 복무를 마칠 수 있었다. 책에 서평을 써준 신기남 전 국회의원은 해병대에서 만난 동기다. 작가는 “아버지가 자식들의 삶을 걱정하지 않는 줄로만 알았고, 원망 같은 것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버지와 그다지 살갑게 지내지 못했다”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님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듣고 그제서야 아버지께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팩트와 픽션이 섞인 ‘소설 1915’는 작가가 아버지 가슴을 아리게 해드렸을 불효를 속죄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 광양시 중마동에 거주하고 있는 작가는 매년 서울에 있는 친구, 지인들을 초청해 아름다운 산천을 돌아보고, 이곳을 지키기 위해 삶을 바쳤던 선열들의 삶을 되새겨 보는 ‘이준태의 섬진강 기행’에 나선다. 임실 옥정호에서 시작해 순창, 남원, 곡성, 구례를 거쳐 광양 망덕포구에 이르는 오백오십리 길이다. 틈틈이 익힌 노래 실력은 음악회를 열 만큼 수준급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여행에서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 앞에서 ‘오솔레미오’를 열창한 적도 있다. 가족, 지인 등을 초대해 지금까지 음악회를 10여 차례 열었다. 부인은 한의학 박사 최정원 씨. 64만 구독자를 보유한 ‘허준할매건강tv’를 운영하는 파워 유튜버다. 이준태 작가는 “베이비붐 세대가 이제 거의 은퇴를 하면서 시니어가 물밀듯이 사회구성원으로 편입되고 있다”며 “문학, 음악, 미술 등 그들이 공감하고 교류하고 향유 할 수 있는 그런 좋은 문화공간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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