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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세계의 창] 이·팔 전쟁도 우크라 사태도 100년 전 잉태됐다

    1914년 7월 28일,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길어야 반년이라던 전쟁이 ‘4년간 36개국 6500만 군인이 참전해 850만명이 죽은’ 총력전이자 참호전으로 변했다. 1차 세계대전이 ‘대(Great) 전쟁’, 혹은 ‘모든 전쟁을 끝낸 전쟁’(the War to end all wars)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가장 큰 변화는 홀대받던 하층노동자와 여성들이 전방 전쟁터와 후방 군수공장에서 흘린 피와 땀의 대가로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으로 거듭났다는 점이다. 그러나 모두에게 제 몫이 돌아갈 수는 없는 법. 제 몫을 챙기지 못한 이들 사이에 불만이 일었고 이는 오늘날 다양한 국제분쟁의 뿌리가 됐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 등이 1차 대전 발발 100주년을 기리며 내놓은 보도를 통해 1차 대전이 남긴 유산을 짚어봤다. 키워드는 4대 제국의 몰락이다. 조태성 기자 cho1904@seoul.co.kr 1. 중동 분쟁의 뿌리 - 오스만 제국의 몰락 독립을 미끼로 분할통치하는 것은 제국주의의 오랜 수법이다. 영국·프랑스는 독일·오스트리아 편에 가담한 오스만제국을 해체하기 위해 1916년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맺었다. 오스만제국 내 소수민족의 독립 열망을 부추겨서 제국을 붕괴시킨 뒤 분할통치하자는 것이었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바로 이 임무를 수행하는 영국 첩보원 얘기다. 아랍세계의 크고 작은 종족분쟁이 여기서 출발했다. 요즘 뉴스를 장식하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충돌도 마찬가지다. 1917년 아서 밸푸어 영국 외무장관은 오스만제국의 일부였던 팔레스타인에다 유대인 국가를 허용한다는 발언을 언론에 흘렸다. 아직 참전하지 않은 미국의 지원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계 유대인에게 당근을 던져 주자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이스라엘 건국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희망사항’ 정도로 치부됐다. 그러나 밸푸어의 발언 이후 현실이 됐다. 반면 오스만제국의 배후를 교란하는 대가로 독립을 약속받은 팔레스타인은 충격에 빠졌다. 양측 대립이 격화되면서 영국은 뒤늦게 “가장 큰 외교적 실수”라고 한탄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이스라엘은 끝까지 건국을 고집했고 1949년 이를 인정받았다. 오랜 분쟁의 시작이었다. 2. 차르가 되고픈 푸틴 - 러시아 제국의 몰락 서구 언론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흔히 차르라 부른다. 음험한 권력자의 이미지 때문만은 아니다. 푸틴의 정책 자체가 러시아제국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내포하고 있어서다. 러시아제국 시절과 지금의 국경선을 비교해 볼 때 가장 극명한 차이는 러시아와 유럽 사이의 완충지대다. 북유럽에서 중부유럽에 걸쳐 핀란드, 발틱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등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중부유럽은 예부터 곡창지대여서 늘 주변국들이 탐내는 대상이었다. 산업화로 발전해 나가던 서유럽국가들의 텃밭이자 유럽 진출을 도모하려는 러시아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요즘 우크라이나를 사이에 둔 미국과 러시아 간 다툼도 여기에서 기원한다. 18세기 이후 우크라이나 서부는 독일·오스트리아 쪽에, 중부와 동부는 러시아 쪽에 속했다. 1차 대전 때 독립을 시도했으나 곧 소련에 합병됐다. 공산권이 붕괴하자 바로 독립을 이뤄냈다. 이 때문에 러시아는 1차 대전 당시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이후 지금까지 서구의 모든 중부유럽 정책이 러시아를 겨냥하는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1차 대전 당시의 지정학은 지금도 여전한 셈이다. 3. EU 출범의 씨앗으로 - 대영제국의 몰락 20세기 초 모든 분야에서 미국은 영국을 거의 다 따라잡았다. 그럼에도 식민지, 해군력, 금융시스템으로 무장한 영국은 최강제국의 위엄을 잃지 않았다. 1차 대전은 여기에 결정타를 날렸다. 전쟁 때문에 돈이 부족해진 영국은 1917년 4월 미국의 지원 없이는 3주도 버틸 수 없다며 미국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야 했다. 1차 대전 기간 미국이 연합군에 빌려 준 돈만 해도 모두 71억 달러였다. 1차 대전은 유럽연합(EU)의 씨앗을 뿌려 놓기도 했다. 1919년 파리강화회담 중 프랑스 장교 장 모네는 ‘경제적 통합을 통한 전쟁의 종식’이란 아이디어를 내놨다. 독일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던 연합군은 이를 무시했다. 기회는 몇 차례 더 있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오스트리아의 백작 리하르트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 칼레르기도 ‘변덕스러운 정치 대신 지속적인 경제교류가 평화를 보장한다’고 주장했다. 당대 유럽의 지식인들은 열렬히 지지했으나 일반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유럽인들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경제적 통합을 통한 영구평화의 달성’이란 꿈을 1, 2차 대전에 책임 있는 독일이 이끌고 있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4. 귀족 세계의 종말 -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몰락 1차 대전이 드러낸 구세계의 빛과 그림자는 단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다. 근대민족국가 설립이라는 열풍을 차단하기 위해 합스부르크 왕가를 정점으로 결성된 귀족 연합체다. 민족의 이익보다 신분의 이익을 앞세운 것이다. 그만큼 보수적이고 억압적인 성격이 강한 지배체제였다. 근대화 바람을 마냥 피할 수는 없었다. 1914년 산업화에 착수하면서 민족 갈등이 불거져 나왔고 이는 곧 1차 대전의 촉발 원인으로 꼽히는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저격 사건으로 이어졌다. 이 때문에 전후 제국은 철저히 해체됐다. 땅은 빼앗겼고 나라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로 삼등분됐다. 반면 민족보다 신분을 앞세웠기에 다른 유럽 지역에 비해 유대인 탄압이 덜했고 이 때문에 20세기 초 경제학, 심리학, 철학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선보인 유대계 지식인들이 수없이 배출됐다. 나중에 이들이 히틀러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미국은 세계패권뿐 아니라 학문의 패권도 거머쥐게 됐다.
  • 멕시코판 ‘도가니’ 운영자 ‘로사 엄마’, 증거부족으로 무혐의

    멕시코판 ‘도가니’ 사건으로 구금된 보호시설 운영자가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학대를 당했다는 피해자들의 폭로에 공분이 계속되고 있다.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혐의로 구금됐던 설립자 겸 운영자 로사 델 카르멘 베르두스코(79)가 20일(현지시간) 무혐의로 석방됐다. 검찰은 ‘로사 엄마’로 불리며 선행을 인정받아온 베르두스코가 학대행위에 연루돼 있다는 충분한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고 계속 구금하기에는 너무 고령이라 석방키로 했다고 밝혔다. 베르두스코가 무혐의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대가족집’에서 벌어진 만행에 대한 공분은 계속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쥐가 들끓는 방에서 썩은 음식을 먹으며 구걸을 강요당했고 여성 수용자들은 성폭행으로 임신하기도 했다는 증언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용자를 심하게 구타한 뒤 물과 음식을 주지 않고 독방에 가뒀다는 증언도 나온 상태다. 수사 당국도 가해자로 지목된 직원 6명은 구금 상태에서 조사를 계속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폭로가 사실로 드러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치인과 지식인, 지역 주민 등이 잇따라 베르두스코를 변호하고 나서면서 공방도 벌어지고 있다. 멕시코의 대표적 여성작가 엘레나 포니아토프스카는 TV에 나와 “베르두스코는 대단한 일을 해왔지만 지금은 분명히 박해를 받고 있다”며 공개적으로 옹호에 나서기도 했다. 베르두스코는 60여 년간 멕시코에서 고아와 비행 청소년, 마약 중독자 등을 돌보며 선행의 대명사로 꼽혀왔다. 그러나 경찰은 학대행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지난 15일 ‘대가족집’을 급습, 어린이 약 450명과 성인 150여 명을 구출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위험 해결엔 도시 연대가 도움… 서울이 亞연합 주도할 수도”

    “위험 해결엔 도시 연대가 도움… 서울이 亞연합 주도할 수도”

    “거대 도시들의 공통적으로 겪는 잠재적 위험을 해결하는 데 도시들 사이의 연대가 역할을 하리라고 본다. 아시아 도시들의 연합을 떠올린다면 서울이 얼마든지 주도권을 잡고 이끌 수 있다.” 11일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메가시티 싱크탱크 협의체 창립 포럼’에서 세계적 사회학자로 꼽히는 울리히 베크(70) 독일 뮌헨대 교수는 박원순 시장과 대담을 갖고 이같이 밝혔다. 그는 “21세기에 등장한 세계적 문제는 협력 없이는 해결할 수 없다. 하지만 국가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대결과 갈등을 조장해 문제의 빌미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사회와 학계, 언론은 이슈를 만들고 계몽을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결정을 할 수 없다”며 “이런 상황에서는 글로벌 도시가 해결사로 나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 단위의 정치권력은 진정한 문제의 해결보다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해법을 제시하기 때문에 한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베크 교수는 “도시연합을 구상해보라. 도시연합을 국가연대의 대안으로 생각하면 새로운 정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이 문제를 아시아 혹은 세계적으로 논의해본다면 기존의 (국가 중심의)협력체계가 바뀌고 정보의 흐름도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시장은 이에 대해 “큰 제안이라서 성급하게 답하긴 어렵지만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EC)도 프랑스 지식인 한 명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난관도 따르겠지만 아시아도 지금과는 다른 협력관계를 맺을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그는 “국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시민의 안전하고 쾌적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도시정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시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시장은 “위험 사회의 극복을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풀뿌리 단체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 개조 방법을 거론하고 있는데 과거처럼 형식적인 기구 개편이라든지 매뉴얼의 변화, 예산의 재배치로는 충분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시장과의 대담 뒤 인터뷰에서 아시아의 경우 역사문제에 대한 갈등이 연대에 걸림돌이 된다는 질문에 베크 교수는 “국가 권력에 견줘 도시는 민족적 갈등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말로 풀어갔다. 그는 “이 때문에 시민들과 도시들의 연대가 초국가적인 위험·문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끝맺었다. 김동현 기자 moses@seoul.co.kr
  • 유시민이 선택한 ‘의미있는’ 현대사

    유시민이 선택한 ‘의미있는’ 현대사

    나의 한국현대사/유시민 지음/돌베개/420쪽/1만 8000원 “나는 냉정한 관찰자가 아니라 번민하는 당사자로서 우리 세대가 살았던 역사를 돌아보았다. 없는 것을 지어내거나 사실을 왜곡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사실들을 선택해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로 묶어 해석할 권리는 만인에게 주어져 있다. 나는 이 권리를 소신껏 행사했다.” 정치인의 옷을 벗고 문필업으로 돌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한 유시민은 ‘나의 한국현대사’를 펴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책에 담은 지난 55년에 대해 ‘제한적인 자부심’을 갖는다고 했다. 1959년과 비교하면 2014년의 대한민국을 이룬 현대사를 “자부심을 느껴도 좋을 역사”라고 규정했다. 하지만 결코 완벽하고 훌륭하지만은 않다. “수치심과 분노, 슬픔과 아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 여전하다. 그는 ‘훌륭한 변화’와 ‘부끄럽고 추악한 역사’ 사이에서 그 시대를 살아온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역사를 기술했다. 자신의 개인적 이야기로 책을 시작하면서 “역사책을 읽을 때 글쓴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살피는 게 좋다”고 했다. 필자의 사상이나 사관에 따라 현대사의 해석이 달라질 여지가 크다는 사실을 귀띔하는, 일종의 제언이다. 대학 때는 운동권이었고 이후 민주계 인사로 분류되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무위원의 이력이 더해져, 그가 판단한 현대사가 감정적·정치적 공방에 휩쓸릴 여지도 없지 않다. 저자는 이에 대해 “감당할 만한 가치가 있는 위험이라고 믿는다”면서 이를 실천하듯 거침없이 한국현대사를 풀어낸다. 책은 대한민국이 “평등하게 가난한 독재국가”였던 1959년과 “불평등하게 풍요로운 민주국가”인 2014년을 개괄적으로 비교하면서 운을 뗀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 시절 부정선거에서부터 4·19 혁명, 5·16 쿠데타, 5·18 광주 민주항쟁, 6월 항쟁을 포함한 1980년대 민주화 투쟁 등 민주화와 산업화를 중심으로 현대사의 이슈들을 촘촘히 훑는다. 대북관계, 복지정책 등에서는 진보지식인의 시각이 드러나지만, 대부분 사안을 객관적으로 판단하려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씨줄날줄] 조자룡(趙子龍)의 칼/정기홍 논설위원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정치사를 논할 때 ‘청류’(淸流)와 ‘탁류’(濁流)로 크게 분류하곤 한다. 청류가 유교적 학식을 갖춘 사대부층(지식인)인 데 반해 탁류는 환관 출신 등 소위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하위층을 일컫는다. 역사의 기록은 이러한 큰 틀에서 전장의 영웅호걸들을 분류한 뒤 어짐과 간교함 등을 끄집어내 이야기를 풀어간다. 삼국시대 호걸들의 무용담을 적은 역사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를 영웅시하고 조조를 간웅(奸雄)으로 묘사한 것도 이 범주에 속한다. 책은 유비를 인자함이 넘치는 군주로, 조조는 덕이 없고 교활한 꾀가 뛰어난 것으로 서술한다. 역사서 내용의 8할이 팩트(사실)라니 맞다고 본다. 조조의 성격은 경박해 음식을 먹을 땐 얼굴을 사발에 처박아 두건은 언제나 더러웠다고 전한다. 조조의 조부는 환관이었고 그는 양자로 입적됐다. 이른바 비천한 탁류 출신인 것이다. 하지만 왕침의 ‘위서’(魏書)는 그가 유교 경전 등을 섭렵해 재주가 동시대의 제갈공명에 필적했다고 적고 있다. 유비는 독서를 즐기지 않고 군자인 체하면서 위선의 가면을 쓴 것으로 묘사된다. 유비와 관우, 장비가 의형제를 맺은 ‘도원결의’(桃園結義) 고사에도 청류와 탁류의 내용이 비슷하게 그려진다. 역사의 기록은 시대에 따라 각색되면서 허구(이면)가 끼어들기도 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국빈 방문해 삼국지에서 등장하는 호걸 조자룡을 그린 대형 족자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해 신의가 새삼 주목받고 있다. 후한 시대의 조자룡은 유비와 조조가 한판을 벌인 장판파(長坂坡) 전투에서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가자 한 필의 말을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이들을 구해낸 인물이다. 삼국지 영웅호걸 가운데 ‘충의로움’의 표상으로 꼽힌다. 그가 당시 아군들의 칼과 창을 빼앗아 휘둘렀다 해서 ‘조자룡 칼’로 전해지는 유명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에 대한 후세의 해석은 다소 박하다. ‘조자룡 헌 칼 쓰듯’이란 말로 자기 분수를 모르고 멋대로 사용하는 것에 비유된다. 중국의 역사가들은 영웅호걸의 유형을 감정이입을 통해 다채롭고 꼼꼼하게 전한다. 유비와 조조는 물론 제갈공명 등의 무용담은 이래서 흥미롭다. 이들은 대체로 군주에게 충성하거나 천하를 얻는 마키아벨리스트로 묘사된다. 조자룡의 기개세도 이러한 중국 사상의 한 단면일 것이다. 또한 삼국지 영웅담은 이후 1300년이 지나면서 유교적인 이데올로기의 세례를 받아 씌어진 면도 없지 않다. 이들의 내용이 사실이건, 다소 덧칠된 허구이건 ‘조자룡 족자’ 선물이 중국의 ‘관시’(관계)와 요즘 대세로 자리한 우리의 ‘의리’가 버무려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기홍 논설위원 hong@seoul.co.kr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옛 여인에 빠지다(조혜란 지음, 마음산책 펴냄) 춘향에서 향랑까지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여성 15명을 다시 불러내 그들의 삶에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투영해 본다. 저자는 전작 ‘옛 소설에 빠지다’로 고전소설을 재미있게 읽는 방법을 귀띔했던 조혜란 이화여대 국문학과 부교수. ‘구운몽’의 백능파, ‘만복사저포기’의 그녀, ‘삼한습유’의 마모 등 고전소설 속 여성 캐릭터 15명을 분석함으로써 욕망, 가부장제, 섹슈얼리티, 버림받은 자에 대한 통찰 등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탐구주제들을 돌아본다. 예컨대 ‘사씨남정기’의 교채란은 남편을 모함하고 정부와 도망치는 악인의 전형으로 묘사됐지만 지금이라면 지극히 욕망에 충실한 여성으로 복권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고전에 매몰된 캐릭터들에게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과정에서 그 소설들을 정독하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면, 그건 ‘덤’이다. 344쪽. 1만 6000원. 진화하는 민주주의(김상준 지음, 문학동네 펴냄) 자생적 민주주의가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이슬람 등 비서구 지역에서는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조명했다. 이를 통해 저자(경희대 공공대학원 교수)는 오늘날의 민주주의가 유럽을 정점으로 발전한 역사의 결과물로만 단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17세기 유럽 지식인 중에도 중국과 조선을 철학자가 통치하는 선진정치의 모델로 받아들인 이가 있었다는 것. 즉 서구에서 기원해 비서구 지역으로 전파된 것으로 인식된 민주주의는 오랜 고정관념이며 비서구 지역의 문화에서 이미 자생적 민주주의의 토양이 형성되어 있었다는 결론이다. 주 예산의 40%를 주민 결정에 맡긴 주민자치예산제도를 운영하는 인도 케랄라 주, 빈곤가구 현금지원 정책 ‘보우사 파밀리아’를 실시한 브라질 등이 그 예다. 비서구 지역에서 약진하는 민주주의는 기존 민주주의 체제가 보여주지 못한 활력과 창조성을 내재하고 있으며, 서구 중심을 벗어나 다원 균형 문명으로 발전하는 과정에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344쪽. 1만 5000원. 세기말 빈(칼 쇼르스케 지음, 김병화 옮김, 글항아리 펴냄)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빈은 한마디로 지성의 용광로였다. 미국의 문화사 연구가인 저자는 세기 말 빈 사회의 다중적인 모습을 조명함으로써 문화의 본질을 들춰보는 방대한 작업을 했다. 당시 빈 사회는 과학과 예술의 양립, 도덕과 탐미주의의 공존 등 이중적 대립구도가 곳곳에 혼재했다. 자아, 기성가치와 질서의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던 역사적 무대에 초점을 맞춘 뒤 그 다중적인 면모를 통찰하는 저자의 지적 편력이 책갈피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문학, 건축, 미술, 음악, 심리학 등 당대 유럽지성사를 풍미했던 주역들이 한 무대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문화역사를 직조해 나갔는지를 재확인한 저술이다. 사회에 억압된 본능을 회화로 표현한 클림트, 사회적 무기력감을 극복한 코코슈카의 표현주의 회화, 쇤베르크의 현대음악 등이 빈이라는 특정공간을 무대로 복기된다. 그런 작업을 통해 책은 신통하게도 ‘역사’와 ‘오늘’이 얼마나 긴밀히 상호작용하는지를 웅변한다. 576쪽. 3만 1000원. 부모의 권위(요세프 크라우스 지음, 장혜경 옮김, 푸른숲 펴냄) 자녀를 유능하고 행복한 사람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반드시 권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육 지침서다. 저자는 독일 김나지움(우리나라의 인문계 고등학교) 교장이자 30년 넘게 독일교사연합 회장을 지낸 교육 전문가. 자기밖에 모르는 응석받이 아이들이 교육현장의 문제가 되고 있는 사실을 발견한 저자는 오랜 관찰과 연구 끝에 그런 아이들 뒤에는 이른바 ‘헬리콥터 부모’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권위적’인 게 아니라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를 어떻게 양육하는지, 부모들이 착각하는 자녀교육의 그릇된 진실이 무엇인지를 교육학의 역사, 뇌과학, 사회학 등 연구결과와 유럽 각국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소개한다. 독일의 교육 문제가 우리나라와 너무나 닮은꼴이라는 데 놀라게 되는데, 책의 제언들은 그래서 더 가치 있게 들린다. 권위 있는 부모는 아이를 부족하게 키울 줄 알고, 아이에게 집착하지 않는다는 등의 명쾌한 조언이 이어진다. 192쪽. 1만 2000원.
  • [씨줄날줄] 고액 강연료/문소영 논설위원

    미국 민주당의 차기 유력 대선 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대학생들로부터 강연료 반납 요청을 받고 있어 화제다. 미국 네바다주립대 라스베이거스캠퍼스(UNLV) 학생회는 ‘빌 힐러리 앤드 첼시 클린턴 재단’에 편지를 보내 22만 5000달러(약 2억 2500만원)의 강연료의 일부나 전부를 대학에 반환해 달라고 요청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오는 10월 13일 이 대학 재단의 기금 모금행사에서 강연할 예정이다. 학생회는 “대학 등록금이 4년간 17% 오르는 상황에서 강연료가 너무 고액”이라고 반발했다. 특히 “대학 기금 모금 행사의 강연료가 22만 5000달러라면 누구든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클린턴 전 장관 측은 이런 요청에 대해 “강연료는 클린턴 재단으로 들어가 에이즈 퇴치, 기후 변화 예방 등에 쓰인다”고 설명했고, 세이브더칠드런, 헬렌켈러인터내셔널, 국제보호협회 등의 단체에서 무료 강연도 많이 했다고 적극적으로 해명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최근 “백악관을 나올 때 빈털터리여서 악착같이 강연에 매달렸다”라며 ‘생계형 강연’임을 강조하지만 여론은 냉소적이다. 클린턴 전 장관은 국무장관 시절을 담은 회고록 ‘어려운 선택들’ 인세로 1400만 달러(약 140억원)를 벌어들였다. 1회당 강연료가 20만~25만 달러에 이른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2001년 퇴임하고 지난해까지 542회 강연에서 1억 490만 달러(약 1049억원)를 벌어들였다. 클린턴 부부는 100만 달러(약 10억원)의 주택 2채를 소유하고 있다. 생계형 강연에 필사적이기에는 충분히 부자가 아닌가 싶다. 한국 또한 세계적인 석학에게 억대의 강사료를 지급한다는 소문이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같은 경우다. 반면 한국 강사의 회당 강연료는 최대 1000만원 안팎이라고 한다. 1회에 억대 강연료를 받는 국내 강사는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남자의 물건’의 저자 김정운 전 명지대 교수나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김난도 서울대 교수 등이 특급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명 강사가 기업을 대상으로 한 회당 강연료는 100만~500만원 선이지만 대학이나 공공기관의 경우는 10만~50만원 선으로 떨어진다. 강연을 주요 생계수단으로 삼는 무명의 강사들에게는 팍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다. 정부를 포함한 우리 사회 전반이 지식산업에 인색해 원고료나 강연료를 낮게 책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능기부 분위기가 확산돼 무료강연도 늘어가는 추세다. 고액 강연료로 입길에 오르는 클린턴 전 장관을 보며 우리의 ‘문화융성 시대’를 생각해 본다. 이 땅의 지식인들도 책을 쓰고 강연하며 큰 부자가 되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문소영 논설위원 symun@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0) ‘논어’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20) ‘논어’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기만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 ‘논어’(語)의 옹야(雍也)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몇 해 전 유명 서예가에게서 글씨를 받을 기회가 생겼다. 평소 논어를 좋아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논어를 뒤져, 두고두고 보고 싶은 구절을 찾았다. 아이 방에 걸어 둘 것과 내가 삶의 지침으로 삼고자 하는 두 구절을 찾느라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읽어가기에 그리 많은 양은 아니었으나 사람답게 살기 위한 길에 대한 진지하고도 치열한 담론이 진도를 더디게 만들었다. 논어에서 굳이 이 구절을 선택한 것은 공부하는 아이가 이왕이면 그저 열심히만 하지 말고 즐겁게 했으면 하는 바람에서였다. 그런데 아이는 열심히도 힘든데 즐기기까지 하라는 거냐며 내 욕심을 알아채고 말았다. 그러면 나는 학이(學而)편의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不患人知不己知, 患不知人也·남이 나를 알지 못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를 되뇌며 서운함을 다독인다. 물론 이렇게 얕은 의미는 아니지만 일단 내 편리대로 마음을 다스리는 데 써 본다. 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서 자기 방에 있는 가구들의 위치를 바꾼다고 수선을 피울 때 공자 말씀이 들어 있는 액자를 치워 주려 하였다. 의외로 아이는 책상 앞에 걸어 두겠다고 했다. 어떤 마음에서 그리 말하였는지 짐작할 길 없지만 그 구절이 아이의 앞날을 지켜 주리라 생각하니 왠지 흐뭇했다. 이제 고등학교 교육 과정에 고전 과목이 생긴다. 지식을 쌓는 데 치중했던 교육 현실에 대한 반성이 담긴 개편일 것이라 생각해 본다. 이에 맞춰 출판계는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청소년 대상으로 고전 읽기를 권장하며 펴낸 책들을 보면 제목에 ‘생각의 근육’, ‘고전의 힘’ 등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고전이 지닌 가치를 함축하고 효용까지 생각한 흔적일 것이다. ‘고전’(古典)이란 말 속에는 ‘오래되었다’는 뜻이 들어 있다. 오래된 것에는 그저 옛것이라는 의미 외에 많은 사람에게 널리 모범이 될 만하다는 내포가 있다. 고전이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았다면 영리한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남았을 리가 없다. 많은 학자들이 주석을 달고 편찬을 거듭하며 생명을 누리는 고전 중에 우리의 삶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책이 논어다.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화제가 된 것은 공자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긍정으로든 부정으로든 크다는 반증일 것이다. 논어는 ‘맹자(孟子), 대학(大學), 중용(中庸)과 더불어 사서(四書)라 불리며 중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지식인들에게 최고의 고전이라 불리는 책이다. 논어의 저자를 ‘공자’로 알기 쉬운데 사실은 공구라는 2500여년 전에 살았던 중국인의 말과 행동을 그의 제자들이 쓴 것으로 딱 잘라 누가 저자인지 말하기는 애매하다. 확실한 것은 공자 자신의 손으로 기록, 정리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대체 공자가 어떤 사람이었길래 말과 행동이 기록돼 많은 사상을 낳고 2500여년의 유구한 세월을 견뎌내며 거듭 태어나고 있는 것일까. 공자는 본명이 ‘공구’(孔丘)로 공자(孔子)의 자(子)는 일종의 존칭인데 이름을 귀히 여겨 함부로 부르지 않으려는 관습에서 나온 전통이다. 공자는 공 선생님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지금은 전 세계에 공 선생님이라 불리며 존경을 받지만 당시의 그의 삶은 매우 불우하였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잃고 빈곤에 시달리며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열악한 생활환경에 굴하지 않고 공부하고 수양에 힘써 50세가 지나서는 정치가로 등용되기도 했다. 문화국가 건설을 목표로 개혁을 시도하였지만 실패하여 여러 나라를 떠돌게 된다. 공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약육강식의 패도정치가 난무하던 때라 예(禮)와 인(仁)을 이야기하며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은 씨알이 먹히지 않았다. 결국 공자는 자신의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군주를 만나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낙향 후에도 자기 수양과 제자들의 교육에 힘쓰다 74세로 생을 마쳤다. 논어는 참 평범한 책이다. 나이 먹고 철든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할 법한 이야기들이 일정한 체계도 없이 나열됐다. 그래도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 내용을 살펴보자면 개인의 인격 수양에 관한 것, 사회 윤리, 정치와 철학, 사람에 따라 다르게 가르치고자 했던 문답, 문인들에 대한 비판, 공자 자신의 술회, 제자들이 공자에 대해 표한 존경 등을 담고 있다. 이 중에서 개인의 인격 수양과 사회 윤리가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이런 분포만 봐도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이성을 믿고 그것을 절차탁마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널리 퍼뜨려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 논어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논어는 배움에서 시작해 지명(知命)으로 마무리된다. 개인의 완성을 배움에서 시작된다고 보아 학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명이란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다. 세상 만물이 살아가는 이치인 하늘의 뜻을 통해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알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논어에서 사람의 도리를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읽다 보면 자주 나오는 글자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인(仁)이다. 인을 우리말로 옮기면 ‘어질다’인데 요즘 말로 ‘착하다’쯤 될 듯싶다. 공자가 말하는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는 제자 안연에게 말한 ‘극기복례’(克己禮·자기의 사사로운 욕심을 극복하고 예법으로 돌아오라)에 집약되어 있다. 사사로운 욕심이란 먹고 입는 것에서 돈을 많이 벌거나 출세하고자 하는 것까지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는 욕심을 말한다. 예(禮)는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유익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고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 말할 수 있다. 정말이지 공자님 말씀이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논어는 학이(學而)편에서 요왈(堯曰)편까지 20편, 534장으로 구성됐다. 한 장이라고 해도 한 줄 또는 두 줄 정도의 문장이 대부분이다. 편의 제목에도 어떤 뜻이 있다기보다는 첫 문장의 글자를 따온 것일 뿐이다. 전체에 사용된 한자 수는 1만 5918자로 중복된 글자를 빼면 1500여자 정도다. 낱낱의 글자 수를 들먹인 까닭은 그리 많지 않은 분량이니 들여다보지도 않고 겁부터 먹지 말자는 의미다. 논어를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들거든 논어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아 해설한 책보다는 원문을 그대로 풀어낸 책부터 시작하면 좋다. 옛사람들처럼 소리 내어 읽어보자. 공자의 제자 된 기분으로 그 뜻을 헤아리고 자신의 생활 속에 묻어 있던 공자를 발견해 보자. 일정한 체계가 없어 어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체계가 없는 만큼 자유롭게 느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자의 사유를 모두 읽어 낸다는 욕심은 버리고 그저 책을 가까이 두고 보면 좋겠다. 화장실 선반이나 거실 탁자 옆에 두고 눈에 띌 때마다 한 번씩 펼쳐보자.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한자에 기죽지 말고 짧은 문장에서 볼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의미를 발견하고 내 생활에 반영해 보는 재미를 누려 보라 권하고 싶다. 혹 내키거든 내 감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려 보자. 최영주 한우리독서토론논술 책임연구원
  • ‘닥치고 군대육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

    ‘닥치고 군대육아’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 등 눈에 띄는 베스트셀러

    상반기 출판계의 키워드인 ‘미디어셀러’의 열풍을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53)의 장편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이어받고 있다. 18일 개봉한 영화의 영향으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6월 넷째주 베스트셀러 차트에서 지난주보다 5계단 오른 2위에 걸렸다. 미디어셀러는 TV와 영화 등 미디어에 노출된 후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진보 지식인인 조국 교수(49·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삶과 공부에 대한 여정을 담은 인터뷰집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는 13위로 들어왔다. 30만부가 넘게 팔리며 상반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문학평론가 정여울(38)씨의 ‘내가 사랑한 유럽 톱10’의 두 번째 이야기 ‘나만 알고싶은 유럽 톱10’은 출간 즉시 9위로 진입했다. ‘내가 사랑한 유럽 톱10’은 여전히 5위에 올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럽의 베스트셀러인 조조 모예스(45)의 소설 ‘미 비포 유’는 10주 연속 1위를 달렸다. 16위에 랭크된 재무설계사 김선미씨의 ‘닥치고 군대육아’도 눈에 띈다. ‘닥치고 군대육아’는 육아 멘토 ‘하은맘’ 김선미씨가 ‘불량육아’에 이어 2년 만에 내놓은 육아안내서이다. 한국출판인회의가 20~26일 교보문고·영풍문고·반디앤루니스·예스24·인터파크도서·알라딘 등 8곳의 서적 판매량을 종합한 결과다. 1. 미 비포 유(조조 모예스·살림) 2.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열린책들) 3. 어떤 하루(신준모·프롬북스) 4.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칼필레머·토네이도미디어그룹주식회사) 5. 내가 사랑한 유럽 톱 10(정여울·홍익출판사) 6. 말공부(조윤제·흐름출판) 7. 몽환화(히가시노 게이고·비채) 8. 코믹 메이플 스토리 오프라인 RPG 72 (송도수·서울문화사) 9. 나만 알고 싶은 유럽 톱 10(정여울·홍익출판사) 10.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양창순·센추리원) 11. 느리게 더 느리게(장사오형·다연) 12. 1cm 첫 번째 이야기(김은주 김재연·허밍버드) 13.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조국 류재운·다산북스) 14. 해커스 토익 보카(2014 전면개정판)(데이비드 조·해커스어학연구소) 15. 어떤 사람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가(존 네핑저·토네이도) 16. 지랄발랄 하은맘의 닥치고 군대 육아(김선미·알에이치코리아) 17. 그래도 사랑(정현주·중앙북스) 18. 월급쟁이 부자들(이명로·스마트북스) 19. 강신주의 감정수업(강신주·민음사) 20.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이근후·갤리온)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구촌 책세상] 옌거링의 ‘루판옌스’

    [지구촌 책세상] 옌거링의 ‘루판옌스’

    “중국이여,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가.” 소설 제목 ‘루판옌스’(陸犯焉識)는 문화대혁명(문혁·1966~1976년) 당시 노동교화소에서 죄수인 주인공 루옌스(陸焉識)를 부르던 이름이다. 문혁 당시 지식인들은 타도 대상으로 지목돼 변방 노동 현장이나 감옥으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이들은 자신의 성명 사이에 죄수를 뜻하는 ‘판’(犯)을 넣은 이름으로 불려졌다. 루판옌스의 루(陸)는 ‘중국 대륙’을, 옌스(焉識)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는가’란 뜻이다. 작가는 주인공의 이름을 통해 중국인들에게 처참한 문혁의 역사를 기억하는지를 묻고 있다. 책은 재미 화교 작가 옌거링(嚴歌?)이 2012년 초에 펴낸 장편소설이다. 지난 5월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에 의해 영화 ‘귀래(歸來·돌아오다)’로 각색돼 흥행 돌풍을 일으키면서 원작도 덩달아 베스트셀러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문혁은 중국을 무질서와 파국으로 이끈 광기의 역사다. 홍위병들이 부르주아 세력과 자본주의 타도를 외치며 전역에서 파괴 행위를 일삼았고 이 과정에서 신장(新疆) 등 변방 오지로 끌려가 얼어죽고 굶어죽은 지식인만 수백만명에 달한다. 당시 부모와 자식이 서로를 비판하는 투쟁이란 이름의 잔혹행위 속에서 중국인들은 정신적·육체적으로 무너졌다. 소설 ‘루판옌스’는 문혁으로 망가진 루옌스와 그 가족의 인생을 통해 문혁을 고발하고 있다. 영어와 불어에 능통한 유학파 루옌스 교수. 서양 문화와 풍류를 즐기던 그는 문혁 때 부르주아로 지목돼 변방 노동교화소로 끌려간다. 참회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기는 무기징역으로 늘어난다. 그곳에서 10년 넘게 버텨냈지만 그의 지성과 낭만 그리고 자존은 산산조각이 난다. 정략결혼으로 만나 지루하게만 여기던 아내 펑완위(馮婉玉)와의 평범한 결혼 생활을 동경하게 되면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새삼 깨닫는다. 그러나 막상 문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내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가족 사이에서 그의 존재 가치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영화 ‘귀래’는 이 책의 마지막 30쪽가량을 각색해 만든 것이다. 소설은 문혁을 고발하고 있지만 정작 문혁의 피해자인 소설 속 주인공들은 조금도 저항하거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문혁으로 인해 망가진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거나 망각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주인공은 감시와 탄압에 밀려 광기어린 마오쩌둥(毛澤東)의 역사와 공산당 일당독제 체제에 순응하는 중국인의 모습을 닮아 있는 듯하다. 베이징 주현진 특파원 jhj@seoul.co.kr
  • 나를 지웠다, 이 오래된 정원에서…

    나를 지웠다, 이 오래된 정원에서…

    알아야 잘 보인다. 모르면 봐도 별 감흥이 없다. 전남 담양의 소쇄원(명승 제40호)이 그랬다. 오래전 소쇄원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고백건대 잘 지은 정자와 잘 조성된 정원을 구경했다는 것 외의 감흥은 받지 못했다. 대개의 범부들이 이와 비슷할 텐데, 건축가 승효상이 쓴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란 책을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진다. 저자는 책을 통해 소쇄원 안에 담긴 인문 정신을 헤아려야 비로소 소쇄원이 제대로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간다. 제월광풍(霽月光風, 비 갠 저녁 무렵 휘영청 떠오른 달빛에 섞여 부는 맑은 바람) 일렁이는 곳으로. 소쇄원(瀟灑園). ‘맑을 소’(瀟), ‘깨끗할 쇄’(灑)다. 맑고 깨끗한 기운이 넘치는 곳이란 뜻이다. 소쇄한 곳으로 길을 이끄는 건 뜻밖에 오리다. 소쇄원 초입의 시냇가에서 늘 볼 수 있는 오리들이 내방객들을 홍진 너머의 세계로 안내하는 방자 노릇을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소쇄원을 조성한 양산보(1503~1557)의 발자취를 좇다 보면 알게 된다. 양산보는 담양 북쪽의 창평 출신이다. 열다섯 살 때 한양으로 올라가 조광조를 사사한 양산보는 불과 열일곱 되던 해에 과거에 나가 제꺼덕 급제한다. 한데 그해 겨울, 스승 조광조가 기묘사화에 연루돼 전남 화순으로 유배된 뒤 사약을 받는다. 유배지까지 따라나섰던 양산보는 스승의 죽음을 목격하고는 충격을 받아 고향으로 내려온다. ●양산보가 30대에 짓기 시작… 3代 걸쳐 완성 낙향한 ‘정치 신인’ 양산보는 30대에 이르러 소쇄원을 짓기 시작한다. 바로 이 대목부터 후손들의 주장과 구전 등이 뒤섞이기 시작한다. 내용은 이렇다. 양산보가 어느 날 작은 계곡에서 노닐던 오리와 마주하게 됐다. 계곡 상류로 뒤뚱뒤뚱 달아나는 오리를 쫓던 양산보는 작은 폭포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다. 양산보는 오리가 알려 준 계곡에 정자를 짓고 정원을 가꾼다. 이게 시작이었다. 이후 소쇄원은 아들과 손자 등 3대에 걸쳐 완성됐다. 현재 소쇄원의 면적은 4060㎡(약 1230평)다. 하지만 조성 당시엔 이보다 훨씬 컸다고 한다. 양인용(77) 문화관광해설사는 “예전엔 담장을 기준으로 내·외원으로 나뉘었으나 주변 여건이 변하면서 담장 안쪽의 내원 지역만 남았다”고 설명했다. ●대봉대·애양단 등 인문학적 의미 담겨 소쇄원의 들머리는 대나무숲이다. 어둑한 대숲을 지나면 한순간 하늘이 탁 트이고, 그 아래 작은 계곡이 나온다. 이른바 ‘올곧은 선비의 오래된 정원’은 볕 환한 계곡 위에 그림처럼 앉아 있다. 오래전 소쇄원을 찾은 객들이 ‘이리 오너라’라며 통자를 넣었던 곳도 필경 이쯤이었을 터다. 대숲을 나서면서부터는 주변 사물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어느 것 하나 인문학적 사유가 스미지 않은 게 없으니, 당연히 허투루 보아 넘길 것도 없다. 맨 처음 마주하는 건 두 개의 작은 못이다. 계곡수 일부를 상지(上池)로 끌어들인 뒤, 하지(下池)를 거쳐 다시 계곡으로 빠져나가도록 했다. 연못 위는 봉황을 기다린다는 뜻의 정자 대봉대(待鳳臺)다. 원두막 형태의 정자는 근래 지어진 것이지만 다진 바닥은 옛 모습 그대로다. 대봉대 맞은편엔 벽오동(碧梧桐) 한 그루가 서 있다. 비췻빛 수피를 가진 오동나무다. 봉황은 벽오동에만 깃들고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 하니, 소쇄원 초입의 조경 속엔 성군의 출현을 기다리는 양산보의 바람이 담겼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이처럼 소쇄원 곳곳에 식재된 나무들은 저마다 뜻을 갖고 있다. 동백나무는 효를, 매화나무는 선비의 기상을 상징한다. 장수를 기원하는 복숭아나무도 심었다. 담장 안쪽의 모퉁이는 애양단(愛陽壇)이다. 소쇄원 안에서 가장 볕이 잘 드는 지역이란다. 담장이 꺾어지는 한복판에 동백나무 한 그루가 단정하게 서 있다. 가장 따뜻한 지역에 효를 상징하는 동백나무를 심은 뜻, 부모에게 따스한 볕 한 줌 선물하려는 바람이란 것쯤은 누구라도 쉬 짐작할 터다. ●정적인 제월당·동적인 광풍각 결국 하나로 바로 옆은 오곡문(五谷門)이다. 암반 위로 계류가 ‘갈지’(之)자를 그리며 다섯 번 돌아간다 해서 오곡이다. 오곡문은 담장과 계곡이 만나는 곳에 세운 담장 겸 수로다. 담 아래 투박한 돌을 쌓아 주춧돌로 삼고 그 사이 구멍으로 계곡수를 흘려보내는 구조다. 얼핏 부실해 뵈지만 450년이 넘도록 온갖 물난리에도 끄떡없이 버텼다고 한다. 걸핏하면 붕괴 사고를 일으키는 부실한 후손보다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오곡문을 등지고 서면 건물 두 채가 눈에 들어온다. 오른쪽 위의 세 칸 집은 주인이 머무는 제월당(霽月堂), 그 아래 날아갈 듯 팔작지붕을 인 집은 주로 객이 머물던 광풍각(光風閣)이다. ‘비 갠(霽) 저녁 무렵 떠오른 달빛(月)에 부는 맑은 바람(光風)’은 바로 이 두 건물을 염두에 둔 표현이다. 이쯤에서 전문가의 해석을 듣자. 승효상의 감상을 요약하면 이렇다. 먼저 제월당과 광풍각이 들어앉은 자세가 대단히 교묘하다. 제월당의 레벨은 나무와 담장 등 정적인 요소들이 수평으로 연결돼 있다. 반면 광풍각은 활개 치듯 오르는 처마선과 변화무쌍한 바위, 계곡수가 만드는 음향 등 동적인 요소들로 가득하다. 두 레벨 사이엔 통로가 삽입돼 있다. 이 통로는 때로는 바위를 건너고, 때로는 물길을 돌며, 또 때로는 단을 딛도록 설계돼 두 레벨이 서로 교류하고 부딪치게 한 뒤 결국 하나가 되도록 만드는 매개공간 노릇을 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위를 절단하고 물길을 틀고, 지형의 레벨을 조작하기도 했다. 자, 이처럼 정원과 건물 전체가 인위적인 공간을 자연적이라 말할 수 있을까. 승효상의 답은 명료하다. “그 모든 조작의 결과가 결단코 부자연스럽지 않으니, 여기에는 자연을 지배하려는 오만이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을 희롱하려 드는 모자람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는 자연과 적극적으로 공존하려는 자세이며 자연과 나를 서로 납득시키는 지식인의 창조적 태도이다.” 이게 바로 인문 정신이며 소쇄원은 그 치열한 작가 정신의 소산이라는 얘기다. ●제월당 뒤 낮은 굴뚝… 선비 정신 엿볼수 있어 잊지 말아야 할 것 하나. 제월당 뒤편에 키 낮은 굴뚝이 있다. 효율만 따지자면 굴뚝은 높아야 옳다. 그래야 연기가 잘 빠지고 온기도 온전하게 방으로 전달된다. 한데 굳이 무릎 높이로 만든 건 다소 불편하고 부족하게 살겠다는 뜻이다. 스스로에게 내핍을 강제하는 것, 그게 선비 정신일 테니 말이다. 담양읍내에도 볼거리가 많다. 이맘때라면 관방제림을 ‘강추’할 만하다. 200여년 전 관방천을 따라 조성된 느티나무, 팽나무 등의 숲이 2㎞가량 운치 있게 이어졌다. 담양 대나무 축제는 27~30일 죽녹원과 관방천 일대에서 열린다. 대나무 소망탑 쌓기, BMX(묘기 자전거)대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글 사진 담양 손원천 여행전문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1) →가는 길:소쇄원은 담양 남쪽, 관방제림 등은 북쪽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소쇄원은 호남고속도로 창평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가장 알기 쉽다. 이어 광주 방면 60번 지방도를 따라 고서교차로까지 간 뒤 887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소쇄원 방면으로 곧장 가면 된다. 이 루트에 명옥헌 원림, 창평 삼지내 마을 등 명소들이 밀집돼 있다. 소쇄원 요금소 381-0115. 관방제림, 죽녹원 등을 먼저 보려면 88고속도로 담양나들목을 이용하는 게 낫다. 이어 죽향대로를 타고 무주읍내 방면으로 곧장 가면 된다. 죽녹원 380-2680. →맛집:죽녹원 건너편 영산강변에 국수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옛 담양장이 활기를 띠던 시절, 장터를 찾은 이들에게 싼값에 국수를 말아 주던 집들이 하나둘 늘면서 이제는 20여개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잔치·비빔국수, 약계란 등을 맛볼 수 있다. 대나무에 밥을 지은 대통밥은 읍내 박물관앞집(381-1990)이 이름났다. 슬로시티 중 하나인 삼지내 마을 초입 전통시장 주변에 국밥집이 몰려 있다. 창평시장국밥(383-4424)이 그중 유명하다. →잘 곳:옛 한옥에서 묵으려면 삼지내 마을로 가야 한다. 일반 숙박업소는 담양읍내에 많다. 고가의 숙소로는 담양온천호텔이 꼽힌다. 380-5000.
  • [세종로의 아침] 참을 수 없는 기록의 가벼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참을 수 없는 기록의 가벼움/함혜리 문화부 선임기자

    출판 담당으로 많은 책을 접하게 되면서 기록물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 최근에 출간된 정민 교수의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문예공화국’(문학동네 펴냄)을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제대로 된 기록이 훗날 얼마나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깨닫게 해 줬기 때문이었다. 책은 정 교수가 하버드 옌칭연구소의 초빙을 받아 1년간 머물면서 그곳 도서관에서 발견한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의 소장 자료들을 세밀하게 분석하며 써내려간 18세기 조선과 청나라 지식인들의 문화·학술 교류사다. 쉽게 왕래할 수 없던 시절이었지만 우연한 만남에서 시작된 교류는 또 다른 만남으로 이어졌고 서찰과 문집을 통해 소중하게 가꾼 결과 나라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서는 아름다운 지적 커뮤니티를 이뤘다. 200년 전 꽃핀 한·청 지식인의 우정을 오늘의 학자가 생생하게 되살려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시 그들이 주고받은 서찰과 문집에 그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시대의 세밀한 정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기록물은 대체 불가능성과 고유성을 지닌다. 우리가 문자로 기록을 남기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된다. 아무리 단편적인 내용을 담고 있을지라도 후대의 사람들은 그 기록을 통해 과거를 이해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글 한 자 쓰는 것에 대한 책임이 어찌 무겁지 않겠는가. 유네스코가 세계기록문화유산사업을 창설하고 세계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존·활용하기 위해 세계기록문화유산을 선정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최근 역사적 기록물과 관련해 안타까운 소식을 접했다.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원본성이 크게 훼손된 채 반복 출판되고 있다는 것이다. 백범은 죽기를 각오하고 조국독립을 위한 의거를 계획하던 1928년 봄 무렵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하기 시작해 상권을 완성했다. 이어 1942년 중경임시정부 청사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처지에 ‘두 아들에게 아비의 경력이라도 알게 할 목적으로’ 하권을 완성했다. 해방 후 귀국과정과 귀국 후의 활동에 대해 구술기록한 부분에 ‘나의 소원’을 덧붙여 1947년 국사원에서 출간한 것이 백범일지의 효시다. 문제는 처음 출간 당시 춘원 이광수가 원고의 교열을 보면서 긴박했던 독립운동 현장에서 기록한 원본의 생생함이 많이 희석되고, 백범 특유의 문체가 깔끔하게 다듬어지는 등 백범의 냄새가 거의 지워진 것이다. 심지어 친필본에서 선조가 안동 김씨 김자점의 방계라고 밝히고 있음에도, 국사원본에서는 이를 ‘안동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라고 시작부터 왜곡했다. 국사원본이 백범 선생의 서문을 받아 수록했고, 발간승인을 얻은 유일본이었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백범일지 판본은 80여종이 존재한다. 늦은 감이 있지만 열화당 출판사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백범일지의 친필 원본을 토대로 복간 작업을 하고 있다니 기대가 크다. 26일은 백범 선생이 경교장에서 숨을 거둔 지 65주기가 되는 날이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고 힘주어 외치며 조국을 위해 몸을 사른 선생의 뜻을 바르게 알고, 가슴깊이 간직하는 것이 후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lotus@seoul.co.kr
  • 한 위대한 철학자의 국가 개혁론

    한 위대한 철학자의 국가 개혁론

    개인 대 국가/허버트 스펜서 지음/이상률 옮김/이책/252쪽/1만 5000원 허버트 스펜서(1820~1903)는 빅토리아 시대에 가장 유명했던 사상가였다. 영국인에게는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될 정도였다. 같은 시대에 살았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저자를 가리켜 ‘나보다 몇 배 나은 위대한 철학자이자 선배’라고 불렀다. 다윈보다 먼저 ‘진화’와 ‘적자생존’의 개념을 설명했다. 저자의 명성은 영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저작 대부분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어, 러시아어 등으로 번역될 정도로 철학과 사회학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사상이 유행하고 칼 마르크스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지식인 사회에서 주변으로 밀려났으며, 저자의 사상적 진실 또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개인 대 국가’는 오늘날 ‘스펜서 연구가’들에 의해 저자의 사상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탄생한 책이다. 옮긴이는 해설을 통해 개인과 국가의 관계, 다수결 민주주의 제도의 문제점, 사유재산의 정당성, 반(反)사회주의 예언, 사회복지 등과 관련해 저자의 독창적 사상이 그의 시대만큼이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지 않으냐는 여러 연구가들의 주장을 언급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국가 권위에 도전하는 한 위대한 철학자의 국가 개혁론을 다루고 있다. ‘자유민주국가에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국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인하고, 또 잘못된 과다 입법을 통한 국가 강제가 개인의 자유와 삶에 많은 해악을 끼치고 있음에도 전혀 책임지지 않는 입법자들의 죄를 묻는다. 19세기 영국 사회상과의 차이에도 현재 여러 나라에서 추진하는 작은 정부의 실현, 공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복지논쟁 등과 관련된 문제들이 저자가 주장한 국가 개혁론의 핵심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보여 준다. 김문 선임기자 km@seoul.co.kr
  •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 “한일 정부 간 문안 조정 있었다” 한일관계 큰 파장

    고노담화 검증결과 발표 “한일 정부 간 문안 조정 있었다” 한일관계 큰 파장

    ‘고노담화’ ‘고노담화 검증결과’ ‘고노담화란’ 고노담화 검증 결과가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20일 ‘군(軍)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내용을 담은 담화 검증 결과를 내 놓았다. 지지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가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사회에 보고한 고노담화 검증 결과에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됐다고 보도했다. 또 양국 정부가 문안 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도 검증 결과 문서에 포함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으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지난 2월 말 정부 안에 민간 지식인 5명으로 검증팀을 설치,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간에 문안을 조정했는지 여부 등을 검증하겠다고 밝힌 뒤 검증팀을 꾸려 검증을 진행했다. 검증팀의 좌장인 다다키 게이이치(但木敬一) 전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자회견을 통해 검증 결과를 공개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고노담화 검증, 한일 간 문안 조정 있었다” 日정부 발표…한일관계 큰 파장

    “고노담화 검증, 한일 간 문안 조정 있었다” 日정부 발표…한일관계 큰 파장

    ‘고노담화’ ‘고노담화 검증결과’ ‘고노담화란’ 고노담화 검증 결과가 한일관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20일 ‘군(軍)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 정부 간의 문안 조정이 있었다’는 내용을 담은 담화 검증 결과를 내 놓았다. 지지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가 중의원 예산위원회 이사회에 보고한 고노담화 검증 결과에 이 같은 내용이 명시됐다고 보도했다. 또 양국 정부가 문안 조정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했다는 내용도 검증 결과 문서에 포함됐다고 통신은 전했다. 고노담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조사 결과에 따라 1993년 8월4일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당시 관방장관이 발표한 것으로, 군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아베 내각은 지난 2월 말 정부 안에 민간 지식인 5명으로 검증팀을 설치, 담화 작성 과정에서 한일간에 문안을 조정했는지 여부 등을 검증하겠다고 밝힌 뒤 검증팀을 꾸려 검증을 진행했다. 검증팀의 좌장인 다다키 게이이치(但木敬一) 전 검찰총장은 이날 오후 4시 30분 기자회견을 통해 검증 결과를 공개한다. 고노담화 검증 파동 일지 2006년도판 일본 중학교 교과서 본문에서 ‘위안부’ 기술 사라짐 ▲ 2007년 3월 = 아시아여성평화기금 해산. ▲ 2007년 7월 30일 = 미국 하원 본회의,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 책임 인정 및 공식 사죄 요구하는 결의 채택 ▲ 2011년 8월 30일 = 헌재,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 청구권 분쟁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건 위헌” 결정 ▲ 2011년 9월 = 외교통상부, 일본에 위안부 배상청구권 문제 외교협의 요청 ▲ 2011년 12월 14일 = 위안부 피해자 1천번째 수요시위, 주한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평화비 설치 ▲ 2011년 12월 18일 = 이명박 대통령, 한일 정상회담서 위안부 문제 집중 거론 ▲ 2012년 3월1일 = 이 대통령, 3.1절 기념식서 위안부 문제 언급 ▲ 2012년 8월 21,24일 = 하시모토 오사카시장 “강제연행을 문제삼으려면 증거를 보여라” “고노담화가 한일관계를 망친 최대 원흉” 발언 ▲ 2012년 12월 27일 = 스가 관방장관 ‘고노담화 수정’ 언급 ▲ 2013년 1월 6일 = 미 정부 고위 관계자 ‘고노담화 수정하면 미국 정부 차원에서 대응한다’고 일본 정부에 통고 ▲ 2013년 1월 29일 = 미 뉴욕주 상원, 위안부 결의 채택 ▲ 2013년 2월 7일 = 아베 총리, 국회서 “사람 납치같은 강제를 보여주는 증거가 없다” 발언 ▲ 2013년 5월 13일 = 하시모토 시장 “위안부 제도는 당시에 필요했다” 발언 ▲ 2013년 7월 30일 =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에 ‘위안부 소녀상’ 제막 ▲ 2013년 9월 18일 = 프랑스 파리 샤이오궁 앞에서 수요시위 개최 ▲ 2014년 1월 15일 = 미국 하원에서 2007년 위안부 결의안 준수를 촉구하는 법안 표결 통과. 16일 상원 통과, 17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서명 ▲ 2014년 1월 24일 = 미국 뉴욕주 낫소카운티 아이젠하워파크 현충원에 위안부 결의안 기림비 제막 ▲ 2014년 1월 30일 = 2014 프랑스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한국만화기획전-지지 않는 꽃’ 전시·소개 ▲ 2014년 2월 20일 =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고노담화 학술적 관점에서 더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발언, , 재미 일본계 단체 ‘역사의 진실을 요구하는 세계 연합회 회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 연방지법에 글렌데일 시 위안부 소녀상 철거 요구 소송 제기 ▲ 2014년 2월 28일 =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일본 관방장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고노담화 작성 경위 검증하겠다고 답변. ▲ 2014년 3월 1일 = 박근혜 대통령, 3·1절 기념사에서 “이제 쉰다섯 분밖에 남지않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처는 당연히 치유받아야 한다.과거의 역사를 부정할수록 초라해지고 궁지에 몰리게 되는 것”이라고 언급 ▲ 2014년 3월 5일 = 윤병세 외교부 장관 제25차 유엔인권이사회 고위급 회기 기조연설에서 고노 담화 수정 움직임이 “반인도적·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 ▲ 2014년 3월 14일 =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아베 내각에서 고노 담화의 수정을 생각하고 있지 않다” 발언 ▲ 2014년 3월 31일 =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 등 일본 학자 1천167명 고노담화 계승·발전 요구 공동 성명 발표 ▲ 2014년 4월 16일 =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시아국장·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 서울에서 위안부 문제 논의 국장급 첫 협의. ▲ 2014년 4월 25일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위안부 문제는 “매우 끔찍한 인권 침해 문제라고 생각한다” 발언 ▲ 2014년 5월 15일 = 이상덕 국장·이하라 국장, 일본 외무성에서 위안부 문제 국장급 2차 협의 ▲ 2014년 5월 22일 = 미국 하원 군사위 소속 로레타 산체스의원, 본회의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촉구 성명서 제출 ▲ 2014년 5월 30일 = 미국 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 정부청사 뒤 잔디공원에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 평화가든’ 제막식 개최. 미국 수도권 첫 위안부 기림비 공개 ▲ 2014년 6월 10일 = 중국 외교부 “일본군 위안부 자료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신청했다”고 밝혀 ▲ 2014년 6월 16일 = 정대협,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 방문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촉구 서명 150만 명분 유엔 인권이사회 의장 측에 전달. ▲ 2014년 6월 20일 = 일본 정부 고노담화 작성 경위 검증 보고서 중의원 제출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스티븐슨 고문과 총리 후보자/김정현 소설가

    [열린세상] 스티븐슨 고문과 총리 후보자/김정현 소설가

    1909년 3월 21일, 대한제국 외교고문으로 있던 미국인 D W 스티븐슨은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의 황실과 정부는 부패하고 타락했다. 관리들은 인민의 재산을 약탈하고 있다. 게다가 인민은 우매하기 그지없다. 하여 한국은 독립할 자격이 없으며, 일본이 통치하지 않으면 러시아의 식민지가 될 것이다. 이토 통감의 시책은 조선인민에 유익하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고 있는 자로서 감히 할 수 없는 말이었는데, 배후에는 이토 히로부미의 조종이 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단체는, 특히 기독교계 주도로 격렬히 반발하며 발언 취소를 요구했지만 스티븐슨은 거절했다. 이틀 뒤인 3월 23일, 대한국인 전명운(田明雲)과 장인환(張仁煥)은 스티븐슨을 사살해 대한제국과 한국인의 의기를 밝혔다. 대한민국 정부는 해방 후 두 의사(義士)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안중근(安重根) 독립의군 참모중장도 스티븐슨 사살 사건에 용기를 얻어 이토 사살을 결심했다고 한다. 국가와 지사(志士)의 자세는 모름지기 그러한 것이며, 공무를 담임하는 자 역시 그러한 정신이 바탕이 돼야 한다.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과거 발언이 국민을 기막히게 하고 있다. 당사자는 종교인으로서의 발언이었다고 일축하려 든다. 그런데 스티븐슨 발언에 대한 반발의 주축도 재미한인기독교단체였다. 대한제국 당시의 국민이었고, 나라의 위기에 가장 가슴 조리던 당사자들이었다. 그들은 기독교인이 아니었거나 그 사이 하나님이 바뀌기라도 한 것인가. 아니면 그분들 역시 무지했다는 것인가. 도무지 종교인으로서의 발언이기에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의 근거를 모르겠다. 앞뒤 맥락이 잘려 왜곡되었다는 변명도 있다. 그러나 그는 유력 신문사의 주필을 지낸 비중 있는 오피니언 리더였다. 더구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었으니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앞뒤를 잘라 왜곡된 것이라 주장하더라도 그만한 지식인으로서 선택한 ‘표현’이었으니 그야말로 ‘DNA’에 잠재된 의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솔직히 술자리의 한담에서도 그런 표현을 했다가는 귀싸대기 맞기 딱 좋은 시절 아닌가. 일본과의 관계회복이 필요하다는 원칙에는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을 만큼 막 나가는 게 오늘의 일본이다. 일본의 근본적 자세 변화가 없는데 먼저 나서 관계개선을 도모했다가는 어떤 국민적 반발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이런 살얼음 판국에 자신의 말이 일본 극우파의 조롱거리가 되고 있음에도 총리의 직을 수행할 수 있고, 해야 한다는 고집이 참으로 어이없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를 사살한 소식이 전해지자 고종 태황제께서는 ‘이토 공작은 대한제국의 자부(慈父)와 같은데 그 흉한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탄식하시며, 이토에게 문충공(文忠公)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읽으면서도 어찌나 내가 구차하고 부끄럽던지! 그 생각이 왜 갑자기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위안부 청산은 이미 끝났다는 칼럼은 제목만으로도 전대미문의 압권이다. 조금이라도 민족의식과 국가관이 있다면 애당초 사양했어야 할 일이었다. 혹여 대통령의 침묵과 새누리당에 기대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르기는 하지만 설마 그런 과거 발언이 있으리라고는 짐작도 못했을 테니 대통령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을 것이다. 이미 상처도 있는데, 임명한 지 며칠 만에 지명 철회를 할 수도 없는 대통령의 진퇴양난 침묵과 집권당의 어정쩡한 소명 기회에 기댄다면 그건 비겁한 정도를 넘어 엿 먹이는 행태에 다름 아니다. 더구나 지금은 국가개조가 화두가 되는, 스스로도 어찌 될지 모르는 국민감정의 초비상 시국이다. 뭉개서 자리를 얻었다가 국민감정이 폭발하는 날에는…, 새누리당도 그렇지만 먼저 당사자가 내버린 염치와 양심을 되찾아 나라를 구하는 지사가 될 마지막 기회를 버리지 말기를 바란다. 부디!
  • 이육사시문학상 이성복 시인

    이육사시문학상 이성복 시인

    제11회 이육사시문학상 수상자로 시집 ‘래여애반다라’의 이성복(62) 시인이 선정됐다. 심사위원회는 “이성복의 시는 타락한 세상, 추락한 권위로 특징지워지는 현실을 살아가는 지식인의 자기 모멸감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켜 돋보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시상식은 오는 7월 26일 이육사문학축전과 함께 이육사문학관에서 열린다.
  • [김일수 樂山樂水] 하나님의 뜻과 역사해석의 문제

    [김일수 樂山樂水] 하나님의 뜻과 역사해석의 문제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몇 가지 말과 글이 국회의 총리인준 절차를 앞두고 정치적 논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물론 문제된 말들은 기독교 신앙체계 안에서 신학적 논쟁 내지 신앙의 색깔논쟁에 충분한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한 시대를 살아가는 한 지식인의 역사인식과 책임의식, 지성과 세계개방성, 보편성과 특수성의 조화 등 다양한 관점에서도 흥미있는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특히 주목할 대목은 일제식민지배와 한국전쟁과 같은 한국 근·현대사의 굵직굵직한 난제들을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는 시각에서 뭉뚱그려 이해하려 했다는 점이다. 우선 이 같은 섭리신앙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생소한 것이어서 그것에 입각한 역사해석 자체가 반감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창조세계에 대한 그분의 주권적인 통치를 부인하면 자연과 인간세계의 모든 역사적인 사건진행은 결국 우연이나 운명 또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이라 해서 의견충돌이 없을 수 없다. 하나님의 뜻과 일하심은 신묘막측(神妙莫測)해서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로 단정할 수 없는 난제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치독일의 유대인 학살이나 일본의 난징대학살을 섣불리 하나님의 뜻으로 돌린다든가, 미국의 이라크전쟁을 하나님의 성전(聖戰)으로 해석한다면, 민족갈등이나 종교 간 갈등 내지 문화충돌을 자초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謀士)가 되었느뇨.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3~36).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존재의 비밀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엇이라고 지칭한 바 있다. 하물며 존재보다 더 심원한 곳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역사이해에 경솔하게 끌어다 쓴다면 화를 자초하기가 쉽다. 함석헌 선생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우리 민족의 결점으로 첫째 생각하는 힘이 모자란다는 점을 꼽았다. 그래서 시(詩 ) 없는 민족이요, 철학 없는 국민이요, 종교 없는 민중이 되었고, 그 결과 착함과 날쌤과 조심성 있고 너그러운 옛 기상들이 시들었으며, 역사 발전이 중간에 변경되어 고난의 역사로 치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 고난을 우리 민족의 병을 고쳐 주려고 든 사랑의 매로 이해했다. 모든 역사적 사실은 해석된 사실이다. 그리고 그 해석작업은 어느 초인(超人)이나 소수의 천재들의 독단적인 주관이나 전유물이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호소통과 공감의 눈높이, 그리고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좇아가는 정신들의 상호주관적인 대화 마당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하나님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겸손히 묻고 또 조심스럽게 깨달아 가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고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가는 동시대의 아픈 이웃들을 포용하며, 희망의 지평으로 함께 걸어가는 마음도 가져야 한다. 이런 류의 역사해석에는 부득불 하나님의 의(義 )와 참사랑이 드러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의 역사적 비극들 속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의 사랑과 섭리의 손길처럼, 총리 후보자 개인에게도 개입하시는 깊은 뜻이 어디엔가 있으리라 짐작된다. 지식은 지역적, 시대적, 문화적, 민족적, 당파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 한계를 보편적인 인간존중 및 하나님 앞과 역사 앞에서 져야 할 예언자적, 도덕적 책임의식을 가지고 뛰어넘으려는 치열한 정신적 노력을 우리는 지성이라 부른다. 시련들을 지혜롭게 뛰어넘어 훌륭한 지성적 국무총리가 되기를 바란다.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경제학자의 영광과 패배(히가시타니 사토시 지음, 신현호 옮김, 부키 펴냄) 20세기의 운명을 바꾼 현대 경제학자 14명의 삶과 이론을 현대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존 M 케인스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케인스 경제학을 받아들인 미국의 케인스주의자들과 케인스에 반발한 경제학자들로 나누어 독창적 주장과 이론을 소개한다. 하버드대 재학 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교수로부터 받은 차별을 멋지게 극복한 폴 새뮤얼슨, 학생 시절 겪은 대공황의 충격을 계기로 빈곤 문제를 파헤치고 새로운 사회주의론을 펼친 존 갤브레이스, 무명의 학자로 살다가 금융위기 예측으로 극적으로 부활한 하이먼 민스키, 케인스 경제학의 허점을 날카롭게 비판한 밀턴 프리드먼, 아버지의 실명과 아내의 자살 등 연이은 불행을 새로운 경제학 연구로 확장한 게리 베커 등을 소개한다. 경제 사상과 이론의 발전 과정, 천재적 경제학자들의 눈부신 활약과 실수 속에 전개된 20세기 경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416쪽. 1만 6000원. 미학사3(타타르키비츠 지음, 손효주 옮김, 미술문화 펴냄) 폴란드 출신 미학자이자 미술사학자인 브와디스와프 타타르키비츠(1886~1980)가 남긴 미학 분야의 명저 ‘미학사’ 중 마지막 권. 고대와 중세 미학을 각각 다룬 1권과 2권에 이어 15~17세기 근대 미학의 역사를 다뤘다. 총 9부로 구성돼 이 시기 유럽 미학에서 의미 있는 사건과 주요 인물, 특징을 정리했다. 책은 시, 시학, 음악, 건축, 회화 등 예술 장르 대부분을 아우르면서 근대 미학의 태동기로서의 15~17세기에 집중한다. 저자는 미학이 하나의 학문 분과로 자리잡는 데 이 시기의 역할이 매우 컸다고 강조한다. 페트라르카와 보카치오를 시작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로보르텔로, 스칼리체르, 뒤러, 몽테뉴, 카라바조, 루벤스, 코르네유 등 당대 예술을 대표하는 인물들의 역사적 의미와 이론 등을 풍부한 원문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한다. 근대 미학을 이끈 주요 인물들의 희귀한 초상화를 각 장에 삽입했고, 역사적으로 사료 가치가 증명된 희귀 도판들도 고증 자료로 제시했다. 904쪽. 3만 8000원. 한반도 나비도감(백문기·신유항 지음, 자연과생태 펴냄) 한반도에 기록된 나비 전종(280종)을 분류학적으로 정리했다. 우리나라 나비 연구의 시초가 된 석주명 박사의 ‘한반도 나비’(1939년) 이래의 한반도 나비 연구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오랜 세월 한반도 나비 연구에 대한 종합적 분류작업이 없었던 탓에 잘못된 정보를 반복 인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수정하기 위해 우리나라 곤충 연구사의 산증인인 80대의 신유항 박사와 열정 어린 40대의 중반의 곤충연구자 백문기 박사가 합심해 공동작업에 들어갔다. 6년에 걸쳐 참고 문헌 400여종을 꼼꼼히 살펴 한반도 나비의 분류학적 소속을 명확히 하고 옛 지명을 현재에 맞게 정리했으며 같은 종의 다른 이름도 추리고, 북한명도 밝혀내 기입했다. 수리팔랑나비, 모시나비, 호랑나비 등 무리별로 우리나라 이름의 유래와 분포, 출현 시기, 먹이식물 등을 정리한 그림 검색표를 수록해 찾기 쉽도록 했다. 생태 및 표본 사진 3200여 컷을 수록했으며 한반도 나비의 먹이식물도 정리했다. 600쪽. 5만 5000원.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조국 지음, 류재운 정리, 다산북스 펴냄) ‘강남 좌파’의 간판 스타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펼쳐 보인 자화상. 화려한 스펙, 잘생긴 외모로 소위 ‘엄친아’로 알려진 그가 어떻게 만 16세에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만 26세에 교수가 되고, 그리고 대표 진보 지식인으로 살게 됐는지 솔직하게 풀어 놓는다. 조 교수는 주말을 제외하고는 시간 대부분을 7평 연구실에서 공부하며 보낸다. 책 제목은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라는 화두 아래 끊임없이 공부하는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며,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좋은 대학, 직장에 전전긍긍하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한국 청년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드러난다. 류재운 작가가 조 교수를 인터뷰한 내용을 조 교수가 다시 집필했다. 260쪽. 1만 5000원.
  • [열린세상] 엄마 만세/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열린세상] 엄마 만세/이정옥 대구 가톨릭대 사회학 교수

    엄마의 승리였다. 이번 6·4 지방 선거는. 자식들의 생명과 미래를 지키려는 엄마들의 참여가 이루어낸 성과였다. 나는 그들을 ‘앵그리 맘’이라는 국적도 없고 역사적 맥락도 없는 말로 부르고 싶지 않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를 비롯해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의 고비 속에 어머니들은 의연했고 대의를 위해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최고라는 내 자식 사랑을 초월했다. 우리 역사 속에 어머니는 큰 이름이다. 어머니는 대의를 위해 자신의 아픔을 참는 존재, 그리고 모든 영광을 아들에게 돌리는 존재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남성들의 역사 히스토리( his+story)다. 어머니의 뒤를 이은 엄마들이 허스토리(her+story)를 썼다. 언론이 뿜어내는 연기는 자욱했고 매연은 지독했다. 세월호 참사를 보도하는 언론은 짙은 안개와 매연을 내뿜으며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분별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엄마들은 언론이 품어내는 매연 속에서 매운 눈을 부비며 무엇이 참이고 거짓인지를 밝혀내려고 애썼다. 세월호 참사 속에서 누군가 원하는 것처럼 정치적 냉소주의에 침몰하지도 않았다. 한탄에 빠지지도 않았다. 고비마다 정확하게 질문하고, 정확하게 참여하고, 정확하게 선택했다. 엄마들이 이끌어 가는 민심에 이끌려 여당도 상향식 공천제를 도입하고 상대적으로 유권자를 더 잘 대변할 수 있는 후보를 공천하는 ‘성의’를 보였다. 4·16 이전과 이후가 변화되어야만 한다는 당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발언한 인사들은 참과 거짓을 분명하게 분별할 줄 아는 엄마들의 맑은 시선 앞에서 민낯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 많은 아시아 친구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왔다. 인도 네루 대학의 치노이 교수, 중국과 홍콩의 사회과학 교수들, 필리핀대 교수,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전역에서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줬다. 전 유엔대 부총장이었던 원로 정치학자인 무샤코지 교수를 비롯해 많은 일본의 지식인들도 마음으로부터의 축하를 보내줬다. 각종 국제회의에서 대안적 미래를 위해 같이 고민하고 토론하며 실험했던 동료가 이제는 행정 책임을 맡는 당선인이 되었다는 것에 놀라움과 기대, 그리고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축하가 이어졌다. 아시아는 물론 민주주의가 발전했다는 서구에서도 시민운동, 진보적 지식인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바로 선거로 당선되는 사례는 드물기 때문이다. 시민의 목소리와 정치권의 논리가 다르다는 이중구조를 체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축하의 인사와 함께 던진 말은 한국 유권자들의 현명한 선택이 부럽다는 내용이었다. 선거에 뛰어들어 처음 그들이 후보로 나선다고 했을 때만 해도 지식인의 치기 어린 실험에 연민을 보내는 상황이었다. 아무도 당선까지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당선이 됐다. 기적이 아니다. 엄마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4·16 참사 후에 달라진 지형 속에 엄마들이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다. 낙선한 후보들도 한목소리로 ‘친환경’, ‘공기의 질’을 중요한 담론으로 끌어내 오지 않았던가. 참담한 비극 속에서 우리 모두는 아이들의 시신을 엄마 품에 안아 올려주는 것은 이름도 생소한, 수백억짜리의 첨단 장비가 아니라 명령 없이도 자발적인 측은지심으로 움직인 어부들의 마음, 잠수사들의 의지였다는 것을 확인했다. 첨단 무기가 안보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좋은 사람이 우리의 인간 안보를 지켜준다는 것을 확인했다. 좋은 사람을 선출하는 것, 그것이 안보를 지키는 기초 중에 기초라는 것을 이제 엄마들이 알게 됐다. 언론이 아무리 검은 연기를 뿜어 옥석을 뒤섞어 놓아도 엄마들의 밝은 눈은 옥석을 가려낸다. 내 아이에 대한 사랑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끌어올릴 만큼 이제 엄마들은 정치적으로 성숙했다. 이 엄마들의 정직한 시선을 비켜나갈 수 있는 이미지 정치는 없다. 엄마들이 나선 정치판과 그러지 않은 정치판은 전혀 다르다. 이 변화를 읽지 못하면 장강의 거센 뒷물에 의해 밀려가는 앞 물이 될 수밖에 없다. 이번 6·4 지방선거 결과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엄마 만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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